S7. Relation of the Eternal Son to the Universe 개요 7편 영원 아들과 우주의 관계
The Spirit-Gravity Circuit 영(靈)-중력(重力) 회로
7:1.1 (81.6) The Eternal Son exercise absolute spiritual sovereignty. The control of universal spiritual gravity is universal spiritual sovereignty. 영원 아들은 절대적인 영적 주권을 행사하십니다. 우주의 영 중력에 대한 조정이 우주의 영적 주권입니다.
7:1.7 (82.6) The spiritual gravity of the Eternal Son is absolute. 영원 아들의 영적 중력은 절대적입니다.
7:1.10 (83.2) The Eternal Son dominates the realm of actual spiritual values, whereas the Deity Absolute seems to pervade the vast domain of potential spirit values. 영원 아들이 실제 영적 가치들의 영역을 지배하는 반면에, 신(神) 절대자는 잠재적 영 가치들의 광대한 권역에 가득 퍼져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7:1.11 (83.3) Spirit seems to emerge from the potentials of the Deity Absolute; spirit eventually finds final destiny in the absolute grasp of the spiritual gravity of the Eternal Son. This appears to be the cycle of experiential spirit, but existential spirit is inherent in the infinity of the Second Source and Center. 영은 신(神) 절대자의 잠재로부터 창발하는 것으로 보이며; 영은 결국 영원 아들의 영적 중력의 절대 장악 속에서 최종 운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The Administration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경영
7:2.1 (83.4) On Paradise the presence and personal activity of the Original Son is profound, absolute in the spiritual sense. 천국에서 기원 아들의 현존과 고유적 활동이 심오하며, 영적 의미로 절대적입니다.
7:2.2 (83.5) In the central universe the personal activity of the Original Son is discernible in the exquisite spiritual harmony of the eternal creation. 중앙우주에서 기원 아들의 고유적 활동은 영원한 창조계의 절묘한 영적 조화 가운데 식별됩니다.
7:2.4 (83.7) The administration of the Eternal Son in the superuniverses is encountered in every phase of the activities of all sectors of the domains of the Ancients of Days. In the local universes, however, we observe the Eternal Son personally present in the persons of the Paradise Sons. 초우주에서 영원 아들의 경영은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권역에 속한 모든 구역들의 모든 활동 단계에서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역우주에서, 영원 아들이 천국 아들들의 고유자들 안에 직접 현존하는 것을 우리가 목격합니다.
Relation of the Eternal Son to the Individual 영원 아들과 개인의 관계
7:3.2 (84.2) The spiritual-gravity pull of the Eternal Son constitutes the inherent secret of the Paradise ascension of surviving human souls. The spirit-gravity circuit literally pulls the soul of man Paradiseward. 영원 아들의 영-중력 끌어당김은 생존하는 인간 혼들의 천국 상승에 본래부터 있는 비밀입니다. 영-중력 회로는 문자 그대로 사람의 혼을 천국 방향으로 끌어당깁니다.
7:3.3 (84.3) The spirit-gravity circuit is the basic channel for transmitting the genuine prayers of the believing human heart from the level of human consciousness to the actual consciousness of Deity. That which represents true spiritual value in your petitions will be seized by the universal circuit of spirit gravity and will pass immediately and simultaneously to all divine personalities concerned. 영-중력 회로는 믿음이 있는 인간 심정의 진정한 기도를 인간 의식의 차원에서 신(神)의 실재적 의식으로 전달하는 기본적 통로입니다. 너희 청원들에서 참된 영적 가치를 나타내는 그것은, 영 중력의 우주적 회로로 포착될 것이고, 관련된 모든 신적 고유성들에게 즉시 동시에 전달될 것입니다.
7:3.6 (84.6) Conversely, if your supplications are purely material and wholly self-centered, there exists no plan whereby such unworthy prayers can find lodgment in the spirit circuit of the Eternal Son. 반대로, 만일 너희가 간청한 것들이 아주 물질적이고 전적으로 자기-중심적이면, 그러한 무가치한 기도들이 영원 아들의 영 회로에 머물 수 있는 어떤 계획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7:3.7 (85.1) It is the motivating thought, the spiritual content, that validates the mortal supplication. Words are valueless. 필사자 탄원을 정당함을 인정하는 것은, 동기가 되는 생각, 영적 내용입니다. 말은 가치가 없습니다.
The Divine Perfection Plans 신적 완전 계획들
7:4.4 (85.5) 1. The Plan of Progressive Attainment. This provision for upstepping the creatures of time involves the Father’s bestowal of the Thought Adjusters and the endowing of material creatures with the prerogatives of personality. 1. 진보적 달성 계획. 시간의 창조물들을 증진하는 이 준비에, 아버지의 생각 조율자들 증여와 고유성 특권을 물질 창조물들에게 주는 것이 포함됩니다.
7:4.5 (85.6) 2. The Bestowal Plan. This consists of the Eternal Son’ bestowal of the Sons of God upon the evolutionary creations, there to personalize and factualize, to incarnate and make real, the love of the Father and the mercy of the Son to the creatures of all universes. 2. 증여 계획. 이것은 영원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진화 창조계에 증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고유성화와 사실화하여,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자비를 모든 우주들의 창조물들에게 육신화하고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7:4.6 (85.7) 3. The Plan of Mercy Ministry. This is the service so essential to the practical and effective operation of both the attainment and the bestowal undertakings. 3. 자비 사역의 계획. 이것은 달성 및 증여사업 둘 모두에 대한 실천적이며 효력적인 작용에 아주 필수적인 봉사입니다.
The Spirit of Bestowal 증여(贈與)의 영
7:5.4 (86.5) The Eternal Son came to mortal man on Urantia when the divine personality of his Son, Michael of Nebadon, incarnated in the human nature of Jesus of Nazareth. 영원 아들은 자신의 아들, 네바돈의 미가엘 신적 고유성이 나사렛 예수의 인간 본성으로 성육신(成肉身)했을 때 유란시아에 있는 필사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7:5.10 (87.4) The Eternal Son is the exemplary inspiration for all the Sons of God in their ministrations of bestowal throughout the universes of time and space. 영원 아들은 모든 시공간 우주에서 증여 업무 중인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을 위한 모델적 영감(靈感)입니다. 7:5.11 (87.5) Each Paradise Son is a divinely perfect portraiture of the Original Son. It is literally true, whosoever has seen a Paradise Son has seen the Eternal Son of God. 각 천국 아들은 기원적 아들의 완전한 신적 초상화입니다. 천국 아들을 본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원 아들을 본 것이라는 말은 정말로 옳습니다.
The Paradise Sons of God 하나님의 천국 아들들
7:6.1 (87.6) The lack of a knowledge of the multiple Sons of God is a source of great confusion on Urantia.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수(多數) 있다는 지식의 부족함이 유란시아에서 큰 혼돈의 근원입니다. 7:6.5 (88.3) Much as the Creator Sons are personalized by the Father and the Son, so are the Magisterial Sons personalized by the Son and the Spirit. 아버지와 아들이 창조자 아들들을 고유성화하는 것과 똑같이, 아들과 영이 치안(治安) 아들들을 고유성화합니다. 7:6.6 (88.4) The Father, Son, and Spirit also unite to personalize the versatile Trinity Teacher Sons.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연합하여 다재다능한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을 고유성화합니다.
7:6.7 (88.5) All Sons of God who take origin in the persons of the Paradise Deities are in direct and constant communication with the Eternal Mother Son. 천국 신(神)들의 고유자들에서 비롯된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은 영원한 어머니 아들과 직접적으로 계속 소통합니다.
The Supreme Revelation of the Father 아버지의 최극 계시
7:7.1 (88.7) The Eternal Son is a complete, exclusive, universal, and final revelation of the spirit and th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All knowledge of, and information concerning, the Father must come from the Eternal Son and his Paradise Sons. 영원 아들은 우주 아버지의 영(靈)과 고유성에 대한 완전하고 유일하며 우주적인 최종적 계시입니다. 아버지에 관한 모든 지식과 정보는 영원 아들과 그의 천국 아들들로부터 와야만 합니다. 7:7.3 (89.2) The primal Son and his Sons are engaged in making a universal revelation of the spiritual and personal nature of the Father to all creation. 기원 아들과 그의 아들들은 모든 창조계에 아버지의 영적이며 고유적 본성을 우주적으로 계시합니다.
7:7.4 (89.3) The Father comes down to you as a personality only through the divine Sons of the Eternal Son. And you attain the Father by this same living way. 아버지는 영원 아들에 속한 신적 아들들을 통해서만 고유성으로서 너희에게 내려옵니다. 그리고 너희는 이 동일한 살아있는 길에 의해서 아버지에게 도달합니다.
7:7.6 (89.5) More of the character and merciful nature of the Eternal Son of mercy you should comprehend as you meditate on the revelation of these divine attributes which was made in loving service by your own Creator Son, onetime Son of Man on earth, now the exalted sovereign of your local universe — the Son of Man and the Son of God. 너희 자신의 창조자 아들, 한때 지상에서 인자(人子)였고, 지금은 너희 지역 우주의 고원(高遠)한 주권자 – 인자(人子)와 하나님 아들 –의 애정이 깊은 섬김으로 계시된 이 신적 속성을 깊이 생각하고 헤아리면서, 너희는 영원 아들의 성품과 자비의 본성을 훨씬 더 이해해야 합니다.
6:1.1 (73.5) The Eternal Son is the original and only-begotten Son of God. He is God the Son, the Second Person of Deity and the associate creator of all things. 영원 아들은 하나님의 기원적 독생 아들입니다. 그는 아들 하나님, 신(神)의 차위(次位) 및 만물의 부(副)창조자입니다.
6:1.2 (74.1) The Eternal Son is the spiritual center and the divine administrator of the spiritual government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The Eternal Son is first a cocreator and then a spiritual administrator. The First Source and Center is the Volitional Absolute; the Second Source and Center is the Personality Absolute. 영원 아들은 온 우주의 영적 정부에서 영적 중심이시며, 신적 경영자입니다. 영원 아들은 첫째 공동 창조자이고, 그 다음으로는 영적 경영자입니다. 첫째 근원 중심은 의지 절대자이며, 둘째 근원 중심은 고유성 절대자입니다.
Nature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본성
6:2.2 (74.7) The Eternal Son is the eternal Word of God. The Eternal Son is God the Father personally manifest to the universe of universes. 영원 아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입니다. 영원 아들은 우주들의 우주에 직접 드러낸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6:2.5 (75.2) The Eternal Son possesses all the Father’s character of divinity and attributes of spirituality. The Son is the fullness of God’s absoluteness in personality and spirit, and these qualities the Son reveals in his personal management of the spiritual government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영원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신성(神性)의 성품과 영성(靈性)의 속성을 지닙니다. 아들은 고유성과 영으로 하나님 절대성의 충만함이며, 영원 아들은 우주들의 우주의 영적 정부를 고유적으로 경영하면서 이런 특성을 계시합니다.
6:2.8 (75.5) The Father loves his universe children as a father; the Eternal Son looks upon all creatures both as father and as brother. 아버지는 그의 우주 자녀들을 아버지로서 사랑하시며, 영원 아들은 모든 창조물들을 아버지와 형제로서 바라보십니다.
Ministry of the Father’s Love 아버지 사랑의 사역
6:3.1 (75.6) The Son is the revelation of divine love to the universes. The Son cannot love more than the Father, but he can show mercy to creatures in one additional way, for he not only is a primal creator like the Father, but he is also the Eternal Son of that same Father, thereby sharing in the sonship experience of all other sons of the Universal Father. 아들은 우주에 대한 신적 사랑의 계시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사랑할 수 없지만, 그는 한 가지 추가적으로 창조물들에게 자비를 보일 수 있는 것은 그가 아버지처럼 최초의 창조자일 뿐만 아니라, 또 동일한 아버지의 영원 아들로서, 우주 아버지의 모든 다른 아들들의 아들됨 체험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6:3.4 (75.9) The ministry of the Eternal Son is devoted to the revelation of the God of love to the universe of universes. Rather should you realize that all the merciful ministrations of the Sons of God are a direct revelation of the Father’s heart of universal love and infinite compassion. The Father’s love is the real and eternal source of the Son’s mercy. 영원 아들의 사역은 온 우주에 사랑의 하나님 계시에 바쳐집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든 자비로운 직무는 우주적 사랑과 무한한 연민을 지닌 아버지의 직접적 심정의 계시임을 너희는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 자비의 실제적 영원한 근원입니다.
6:3.5 (75.10) God is love, the Son is mercy. Mercy is applied love, the Father’s love in action in the person of his Eternal Son. 하나님은 사랑이고, 아들은 자비입니다. 자비는 적용된 사랑, 그의 고유자 영원 아들 안에서 활동하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Attributes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속성
6:4.1 (76.1) All pure unfragmented spirit and all spiritual beings and values are responsive to the infinite drawing power of the primal Son of Paradise. 순전한 비(非)파편화 영(靈)과 모든 영적 존재들과 가치들은, 천국 최초 아들의 무한한 흡인력에 응답합니다.
The Son is omnipotent only in the spiritual realm. 아들은 영적 영역 안에서만 전능(全能)하십니다. Spiritually the Eternal Son is omnipresent. 영원 아들은 영적으로 전재(全在)합니다. 6:4.8 (77.1) The Father and the Son really know the number and whereabouts of all the spirits and spiritualized beings in the universe of universes. 아버지와 아들은 온 우주의 모든 영들과 영성화 존재들의 숫자와 소재(所在)를 정말로 아십니다.
6:4.9 (77.2) The Eternal Son, as a loving, merciful, and ministering spiritual personality, is wholly and infinitely equal with the Universal Father, while in all those merciful and affectionate personal contacts with the ascendant beings of the lower realms the Eternal Son is just as kind and considerate, just as patient and long-suffering, as are his Paradise Sons in the local universes who so frequently bestow themselves upon the evolutionary worlds of time. 사랑스럽고, 자비롭게 봉사하시는 영적 고유성으로서 영원 아들은, 전적으로 무한하게 우주 아버지와 동일하시지만, 반면에 더 낮은 영역의 상승하는 존재들과의 모든 자비롭고 애정 어린 개인적 접촉에 있어서, 영원 아들은 시간의 진화 세계에 그렇게 자주 자신들을 증여하는, 자신에 속한, 지역 우주들의 천국 아들들처럼, 그렇게 친절하고 자상하며, 인내하고 참을성이 많습니다.
Limitations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한계
6:5.1 (77.4) The Eternal Son does not personally function in the physical domains, nor does he function, except through the Conjoint Actor, in the levels of mind ministry to creature beings. 영원 아들은 물리적 권역에서 고유적으로 활동하지 않으며, 공동 행위자를 통하지 않으면서, 창조 존재들에게 마음 사역의 수준에서 활동하지도 않습니다.
6:5.3 (77.6) The Eternal Son is thus a cocreator of personalities, but he bestows personality upon no being and of himself, alone, never creates personal beings. 영원 아들은 고유성들의 그런 공동창조자이지만, 그는 존재에게 고유성을 증여하지 않으며, 스스로 홀로 고유적 존재를 결코 창조하지 않습니다.
6:5.4 (77.7) The Eternal Son is limited in transmittal of creator prerogatives. The Eternal Son transmits creatorship powers only to the first or direct personalization. 영원 아들은 창조자 특권의 전달에 제한이 있습니다. 영원 아들은 창조자됨의 권능을 최초 또는 직접적 고유성화에만 전달합니다.
6:5.5 (78.1) The Eternal Son, as an infinite and exclusively personal being, cannot fragmentize his nature, cannot distribute and bestow individualized portions of his selfhood upon other entities or persons as do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Infinite Spirit. 영원 아들은, 무한한 오로지 고유 존재로서, 자신의 본성을 파편화할 수 없고, 우주 아버지나 무한 영이 하듯이, 자신의 개별 부분들을 다른 개체나 고유자들에게 분배하거나 증여할 수 없습니다.
The Spirit Mind 영 마음
6:6.1 (78.4) The Eternal Son is spirit and has mind, but not a mind or a spirit which mortal mind can comprehend. 영원 아들은 영(靈)이며 마음이 있지만, 필사자 마음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마음이나 영(靈)이 아닙니다. 6:6.3 (78.6) The mind of the Eternal Son is like that of the Father but unlike any other mind in the universe, and with the mind of the Father it is ancestor to the diverse and far-flung minds of the Conjoint Creator. 영원 아들의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과 같지만, 우주의 다른 어떤 마음과 같지 않으며, 아버지의 마음과 함께 그것은 공동창조주의 다양하고 광범위한 마음들의 조상입니다.
6:6.4 (78.7) And then, as you pass through the superuniverse and on to Havona, many of these spirit-concealed mysteries will clarify as you begin to be endowed with the “mind of the spirit” — spiritual insight. 그 후 너희가 초우주를 지나 하보나에 이르러, 너희가 “영(靈)의 마음” – 영적 통찰력 –을 부여받기 시작하면, 이렇게 숨겨진 대부분의 영(靈) – 신비들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Personality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고유성
6:7.1 (79.1) The Eternal Son is that infinite personality from whose unqualified personality fetters the Universal Father escaped by the technique of trinitization, and he is absolute personality. 영원 아들은 우주 아버지를 속박하는 불별불가 고유성으로부터, 삼위일체화 기법으로 벗어난, 무한 고유성이며, 그는 절대 고유성입니다.
6:7.2 (79.2) This absolute personality is the divine and eternal pattern, first, of the Father’s bestowal of personality upon the Conjoint Actor and, subsequently, of his bestowal of personality upon the myriads of his creatures throughout a far-flung universe. 이 절대 고유성은 먼저, 공동 행위자에게 아버지 고유성을 증여하고, 그후 광범위한 우주 내내 자신의 수많은 창조물들에게 자신의 고유성을 증여한, 신적인 영원한 원본입니다.
Realization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실체화
6:8.1 (79.4) In the same sense that God is the Universal Father, the Son is the Universal Mother. And all of us, high and low, constitute their universal family. 하나님이 우주 아버지이듯이 아들은 우주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높든 낮든, 그들의 우주 가족입니다.
6:8.3 (79.6) Merely recall that God is the initiating thought and the Son is the expressionful word. 하나님은 창시(創始)하는 생각이고, 아들은 표현된 말씀임을 단지 기억하십시오.
6:8.4 (80.1) The Eternal Son is infinite, but he is approachable through the persons of his Paradise Sons and through the patient ministry of the Infinite Spirit. Without the bestowal service of the Paradise Sons and the loving ministry of the creatures of the Infinite Spirit, beings of material origin could hardly hope to attain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은 무한하지만, 그의 천국 아들들에 속한 고유자들과 무한 영의 인내하는 사역을 통해 그에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천국 아들들의 증여 봉사와 무한 영의 창조물들에 대한 사랑의 사역 없이, 물질적 기원 존재들이 영원 아들에게 도달할 희망은 거의 없습니다.
6:8.5 (80.2) But as you ascend in the Paradise path of spiritual progression, the personality of the Eternal Son will become increasingly real to you, and the reality of his infinitely spiritual mind will become more discernible to your progressively spiritualizing mind. 그러나 너희가 영적 진보의 천국 경로로 상승하면서, 영원 아들의 고유성은 너희에게 점차 실제가 될 것이며, 그의 무한히 영적인 마음의 실체는 너희의 진보적으로 영성화하는 마음으로 더 식별하게 될 것입니다.
5:1.3 (63.1) Although the approach to the Paradise presence of the Father must await your attainment of the highest finite levels of spirit progression, 5:1.4 (63.2) the possibilities for spiritual progress in the ascension career are equal to all; 아버지의 천국 현존에 접근하는 것은 너희가 영(靈) 진보의 최고 유한 차원에 이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상승 생애에서 영적 진보의 가능성은 모두에게 동등합니다.
5:1.6 (63.4) If mortal man is wholeheartedly spiritually motivated, unreservedly consecrated to the doing of the Father’s will, 5:1.7 (63.5) there exists no negative influence of mortal deprivation nor positive power of possible interference which can prevent such a divinely motivated soul from securely ascending to the portals of Paradise. 필사 사람이 전심으로 영적으로 자극 받아,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전적으로 헌신하면, 그렇게 신적으로 자극된 혼이 천국 입구까지 확실히 상승(上昇)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필사자 결핍으로 인한 어떤 부정적 영향도, 방해할 수 있는 어떤 적극적 권능도 없습니다.
5:1.8 (63.6) To each of you and to all of us, God is approachable, the Father is attainable, the way is open; 너희 각자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접근할 수 있으며, 아버지는 도달할 수 있으며, 그 길은 열려 있습니다.
5:1.11 (64.2) Mortal man may draw near God and may repeatedly forsake the divine will so long as the power of choice remains. Man’s final doom is not sealed until he has lost the power to choose the Father’s will. Man’s eternal destiny is assured when Adjuster fusion proclaims to the universe that such an ascender has made the final and irrevocable choice to live the Father’s will. 선택의 권능이 남아 있는 한, 필사 사람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도 있고, 신적 뜻을 거듭하여 저버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최종적 파멸은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는 권능을 잃어버리기 까지 확정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승자가 아버지의 뜻을 살기로 최종적인 결정적 선택을 했다고 융합한 조율자가 우주에 선포하면, 사람의 영원한 운명은 확실히 보장됩니다.
5:1.12 (64.3) If you yield to the leadings of the spiritual forces in you and around you, you cannot fail to attain the high destiny established by a loving God as the universe goal of his ascendant creatures from the evolutionary worlds of space. 너희가 너희 안과 주위에 있는 영적 기세들의 인도를 따른다면, 공간의 진화 세계들에서, 그의 상승 창조물들의 우주 목표로서, 애정이 깊은 하나님이 확정하신, 높은 운명에 이르는데, 너희는 실패할 수 없습니다.
The Presence of God 하나님의 현존
5:2.1 (64.4) The spiritual presence of Divinity is determined by the spiritual capacity of receptivity and by the degree of the consecration of the creature’s will to the doing of the divine will. 신성(神性)의 영적 현존은 영적 수용력과 신적 뜻을 행하려는 창조물의 의지에 속한 헌신의 정도(程度)로 결정됩니다.
5:2.3 (64.6) What a mistake to dream of God far off in the skies when the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 lives within your own mind! 우주 아버지의 영이 너희 자신의 마음에 살아있는데, 하늘 멀리에 떨어져 있는 하나님을 꿈꾸는 것은 얼마나 큰 오류인지요!
5:2.4 (64.7) The proof of fraternity with the divine Adjuster consists wholly in the nature and extent of the fruits of the spirit which are yielded in the life experience of the individual believer. “By their fruits you shall know them.” 신적 조율자와 형제관계라는 증거는 전적으로 신자 개인의 생활 체험에서 맺는 영(靈)의 열매들의 본성과 정도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너희가 그들을 알리라(마7:20).”
True Worship 참된 경배
5:3.1 (65.3) In the highest sense, we worship the Universal Father and him only. 최고의 의미에서, 우리는 우주 아버지, 오직 그 분만 경배합니다.
5:3.3 (65.5) Worship is for its own sake; prayer embodies a self- or creature-interest element; that is the great difference between worship and prayer. 경배는 그 자체를 위한 것입니다. 기도는 자신이나 창조물에게 이익이 되는 요소를 포함합니다. 이것이 경배와 기도의 커다란 차이입니다.
5:3.4 (65.6) The moment the element of self-interest intrudes upon worship, that instant devotion translates from worship to prayer and more appropriately should be directed to the person of the Eternal Son or the Creator Son. 자아-이익의 요소가 경배에 끼어드는 순간, 즉시 헌신은 경배에서 기도로 환원되고 오히려 영원 아들 또는 창조주 아들의 고유자에게 적합하도록 방향이 옮겨집니다.
5:3.6 (66.2) The Creator or Sovereign Sons who preside over the destinies of the local universes stand in the place of both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Eternal Son of Paradise. These Universe Sons receive, in the name of the Father, the adoration of worship and give ear to the pleas of their petitioning subjects throughout their respective creations. To the children of a local universe a Michael Son is, to all practical intents and purposes, God. 지역우주들의 운명을 관할하는 창조주 또는 주권자 아들들은 천국의 우주 아버지와 영원 아들 두 분을 대신하십니다. 이 우주 아들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경배의 찬미를 받고, 그들 각자의 창조계 전체에서 탄원하는 그들 백성들의 요청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지역우주의 자녀들에게, 미가엘 아들이, 모든 실제적 의도와 목적들에 대해서, 하나님입니다.
5:3.7 (66.3) Man’s realization of the reality of the worship experience is chiefly determined by the developmental status of his evolving immortal soul. The spiritual growth of the soul takes place wholly independently of the intellectual self-consciousness. 경배 체험의 실체에 대한 사람의 깨달음은 주로 그의 진화하는 불멸 혼의 발달 상태로 결정됩니다. 혼의 영적 성장은 지적인 자기-의식과는 전적으로 관계없이 일어납니다.
5:3.8 (66.4) Worship is the act of the material mind’s assenting to the attempt of its spiritualizing self, under the guidance of the associated spirit, to communicate with God as a faith son of the Universal Father. The mortal mind consents to worship; the immortal soul craves and initiates worship; the divine Adjuster presence conducts such worship in behalf of the mortal mind and the evolving immortal soul. True worship, in the last analysis, becomes an experience realized on four cosmic levels: the intellectual, the morontial, the spiritual, and the personal — the consciousness of mind, soul, and spirit, and their unification in personality. 경배는, 영성화하는 자기가, 관련된 영(靈)의 안내를 따라, 우주 아버지의 신앙 아들로서, 하나님과 소통하려는 시도에, 물질적 마음이 동의하는 행위입니다. 필사 마음은 경배에 동의합니다. 불멸 혼은 경배를 갈망하고 시작합니다. 신적 조율자 현존이 필사 마음과 진화하는 불멸 혼을 대신하여 그런 경배로 인도합니다. 참된 경배는,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네 가지의 질서우주적 수준에서 실현되는 체험이 됩니다: 지적, 모론시아적, 영적 및 고유적 –마음, 혼, 영 및 그것들이 고유성으로 통합된 의식.
God in Religion 종교의 하나님
5:4.1 (66.5) Religion is not merely a passive 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 and “surety of survival”; it is a living and dynamic experience of divinity attainment predicated on humanity service. 종교는 “절대적 의존”과 “생존의 보장”이라는 수동적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성 봉사에 입각한 신적 성취의 살아있는 체험이며 역동적인 체험입니다.
5:4.5 (67.3) All religions teach the worship of Deity and some doctrine of human salvation. The Buddhist religion promises salvation from suffering, unending peace; the Jewish religion promises salvation from difficulties, prosperity predicated on righteousness; the Greek religion promised salvation from disharmony, ugliness, by the realization of beauty; Christianity promises salvation from sin, sanctity; Mohammedanism provides deliverance from the rigorous moral standards of Judaism and Christianity. The religion of Jesus is salvation from self, deliverance from the evils of creature isolation in time and in eternity. 모든 종교는 신에 대한 경배와 인간 구원에 대한 교리를 가르칩니다. 불교는 고통으로부터 구원받는, 끝없는 평화를 약속합니다. 유대교는 어려움으로부터 구원받는, 공의에 근거한 번영을 약속합니다. 그리스(헬라) 종교는 부조화와 추함으로부터 구원받는, 아름다움의 실현을 약속합니다. 기독교는 죄로부터 구원받는, 거룩함sanctity을 약속합니다. 회교(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엄격한 도덕 기준으로부터의 해방을 제공합니다. 예수의 종교는 자아로부터 구원으로, 시간과 영원 속에서 창조물이 고립되어 있는 악으로부터 해방을 제공합니다.
5:4.6 (67.4) The Hebrews based their religion on goodness; the Greeks on beauty; both religions sought truth. Jesus revealed a God of love, and love is all-embracing of truth, beauty, and goodness. 히브리인들의 종교는 선(善)에 기초를 두고,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에 기초를 두며, 두 종교 모두 진리를 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하나님을 계시하셨으며, 사랑은 진리, 아름다움, 그리고 선(善)의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5:4.7 (67.5) The Zoroastrians had a religion of morals; the Hindus a religion of metaphysics; the Confucianists a religion of ethics. Jesus lived a religion of service. All these religions are of value in that they are valid approaches to the religion of Jesus. Religion is destined to become the reality of the spiritual unification of all that is good, beautiful, and true in human experience. 조로아스터 교도들은 도덕의 종교를 가졌으며, 힌두 교인들은 형이상학의 종교를 가졌고, 유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윤리의 종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봉사의 종교를 실천하셨습니다. 이 모든 종교들은 예수님의 종교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가치가 있습니다. 종교는 인간의 체험 가운데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모든 것을 영적으로 통합하는 실체가 되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
5:4.8 (67.6) The Greek religion had a watchword “Know yourself”; the Hebrews centered their teaching on “Know your God”; the Christians preach a gospel aimed at a “knowledge of the Lord Jesus Christ”; Jesus proclaimed the good news of “knowing God, and yourself as a son of God.” These differing concepts of the purpose of religion determine the individual’s attitude in various life situations and foreshadow the depth of worship and the nature of his personal habits of prayer. The spiritual status of any religion may be determined by the nature of its prayers. 그리스 종교는 “너 자신을 알라”는 표어가 있었고,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을 알라”는 가르침에 집중했으며, 기독교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목표로 하는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고, 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라”는 복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종교의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서로 다른 개념들은 다양한 생활환경 가운데 있는 개별존재의 태도를 결정하며, 경배의 깊이와 그의 개인적 기도 습관의 본질을 미리 드러냅니다. 어떤 종교이든지 그 영적 상태는 기도의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5:4.10 (67.8) The Christian concept of God is an attempt to combine three separate teachings: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 개념은 분리된 세 가르침들을 통합하려는 시도입니다.
5:4.11 (67.9) 1. The Hebrew concept — God as a vindicator of moral values, a righteous God. 히브리 개념─도덕적 가치의 옹호자로서의 공의로운 하나님.
5:4.12 (67.10) 2. The Greek concept — God as a unifier, a God of wisdom. 그리스(헬라) 개념─통합자로서의 지혜의 하느님.
5:4.13 (68.1) 3. Jesus’ concept — God as a living friend, a loving Father, the divine presence. 예수님의 개념─살아 계시는 친구로서 사랑의 아버지이시며, 신적 존재로서의 하나님.
5:4.14 (68.2) It must therefore be evident that composite Christian theology encounters great difficulty in attaining consistency. This difficulty is further aggravated by the fact that the doctrines of early Christianity were generally based on the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of three different persons: Philo of Alexandria, Jesus of Nazareth, and Paul of Tarsus. 그러므로 혼합된 기독교 신학은 일관성 유지에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어려움은, 초기 기독교 교리들이 일반적으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나사렛 예수, 그리고 다소의 바울, 즉 서로 다른 이 세 사람 각자의 종교적 체험에 기초를 두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5:4.15 (68.3) In the study of the religious life of Jesus, view him positively. Think not so much of his sinlessness as of his righteousness, his loving service. Jesus upstepped the passive love disclosed in the Hebrew concept of the heavenly Father to the higher active and creature-loving affection of a God who is the Father of every individual, even of the wrongdoer. 예수님의 종교적 일생을 연구하면서, 예수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십시오. 그 분이 죄가 없다는 사실 보다는 그의 공의(正義)로우심과 그의 사랑스러운 봉사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에 대한 히브리 개념 속에 드러난 수동적 사랑에서, 모든 개별존재, 심지어 그릇된 행동을 범한 자에게도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더 적극적인 사랑으로 창조물을 향하시는 하나님의 애정으로 증진시켰습니다.
The Consciousness of God 하나님 의식(意識)
5:5.6 (69.1) Religious experience, being essentially spiritual, can never be fully understood by the material mind; hence the function of theology, the psychology of religion. The essential doctrine of the human realization of God creates a paradox in finite comprehension. It is well-nigh impossible for human logic and finite reason to harmonize the concept of divine immanence, God within and a part of every individual, with the idea of God’s transcendence, the divine domination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These two essential concepts of Deity must be unified in the faith-grasp of the concept of the transcendence of a personal God and in the realization of the indwelling presence of a fragment of that God in order to justify intelligent worship and validate the hope of personality survival. The difficulties and paradoxes of religion are inherent in the fact that the realities of religion are utterly beyond the mortal capacity for intellectual comprehension. 종교적 체험은 본질적으로 영적이기 때문에 물질적 마음으로는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학, 즉 종교의 심리학 기능으로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필수적 교리는 하나님을 제한적으로 깨닫고 이해하기 때문에 역설(逆說)을 만들어 냅니다. 인간 논리와 유한한 이성은, 하나님이 인간 내부에서 각 개별존재의 일부분으로 계신다는 신적 내재성의 개념을, 우주들의 우주를 신적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초월성 관념과 조화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 두 가지 신(神)에 대한 본질적 개념은, 고유한 하나님에 대한 초월성 개념을 신앙으로 파악하고, 바로 그 하나님의 단편이, 지적 경배를 정당화하고 고유성 생존의 소망을 확증하기 위해, 내주하며 현존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합일되어야만 합니다. 종교의 실체는 지적으로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을 철저히 벗어난다는 사실 때문에, 종교의 난제들과 역설들은 본래부터 선천적입니다.
5:5.7 (69.2) Mortal man secures three great satisfactions from religious experience, even in the days of his temporal sojourn on earth: 사람은 땅에 잠시 머무는 동안에도, 종교적 체험에서 세 가지 큰 만족감을 얻게 됩니다.
5:5.8 (69.3) 1. Intellectually he acquires the satisfactions of a more unified human consciousness. 지적으로 사람은 더욱 통일된 인간 의식에서 만족감을 얻습니다.
5:5.9 (69.4) 2. Philosophically he enjoys the substantiation of his ideals of moral values. 철학적으로 사람은 도덕적 가치에 있어서 자신의 이상(理想)이 구체화되는 것을 즐깁니다.
5:5.10 (69.5) 3. Spiritually he thrives in the experience of divine companionship, in the spiritual satisfactions of true worship. 영적으로 사람은 참된 경배에서 영적 만족을 누리면서, 신적 동반자 신분을 체험하면서 성장합니다.
5:5.11 (69.6) God-consciousness, as it is experienced by an evolving mortal of the realms, must consist of three varying factors, three differential levels of reality realization. There is first the mind consciousness — the comprehension of the idea of God. Then follows the soul consciousness — the realization of the ideal of God. Last, dawns the spirit consciousness — the realization of the spirit reality of God. By the unification of these factors of the divine realization, no matter how incomplete, the mortal personality at all times overspreads all conscious levels with a realization of the personality of God. 하나님-의식은, 그 영역의 진화하는 사람이 체험하는 것처럼, 변화하는 세 요소들, 즉 실체를 의식하는 서로 다른 세 차원들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첫째로 마음 의식 – 하나님의 관념idea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혼 의식 – 하나님의 이상(ideal理想)을 깨닫는 것이 따라옵니다. 마지막으로 영 의식 – 하나님이 영 실체이심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신적 깨달음의 이 요소들이 통합되어, 아무리 불완전 하더라도 인간의 고유성은, 하나님의 고유성을 깨달으면서 모든 의식 차원들에 항상 가득 퍼지게 됩니다.
The God of Personality 고유성의 하나님
5:6.1 (70.2) God the Father is the bestower and the conservator of every personality. And the Paradise Father is likewise the destiny of all those finite personalities who wholeheartedly choose to do the divine will, those who love God and long to be like him.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고유성의 증여자인 동시에 보존자이십니다. 그리고 천국의 아버지는 마찬가지로 신적 뜻을 행하기로 마음을 다하여 선택한 모든 유한한 고유성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와 같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들의 운명입니다.
5:6.3 (70.4) Personality is that quality and value in cosmic reality which is exclusively bestowed by God the Father upon these living systems of the associated and co-ordinated energies of matter, mind, and spirit. 고유성은 물질, 마음, 그리고 영이 연합되고 조정된 에너지가 이 살아있는 조직에 아버지 하나님 홀로 증여하신, 질서가 있는 우주 실체 안에 있는 본질과 가치입니다.
5:6.4 (70.5) There is no personality apart from God the Father, and no personality exists except for God the Father. 어떤 고유성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분리되지 않으며, 어떤 고유성도 하나님 아버지 없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5:6.7 (71.2) The material self has personality and identity, temporal identity; the prepersonal spirit Adjuster also has identity, eternal identity. This material personality and this spirit prepersonality are capable of so uniting their creative attributes as to bring into existence the surviving identity of the immortal soul. 물질적 자아는 고유성과 정체성, 즉 일시적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전(前)고유적 영 조절자 역시 정체성, 즉 영원한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물질적 고유성과 이러한 영 전(前)고유성은 그들의 창조적 속성들을 연합하여 불멸의 혼이라는 생존하는 정체성의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5:6.10 (71.5) The personality circuit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is centered in the person of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Paradise Father is personally conscious of, and in personal touch with, all personalities of all levels of self-conscious existence. And this personality consciousness of all creation exists independently of the mission of the Thought Adjusters. 우주들의 우주의 고유성 회로는 우주 아버지의 개인 안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천국 아버지는 모든 차원에 있는 자아-의식 존재의 모든 고유성들을 개인적으로 의식하고, 개인성으로 접촉하십니다. 그리고 전체 창조물에 대한 이 고유성 의식은 생각 조절자들의 사명과는 별도로 존재합니다.
A Synopsis of S4. God’s Relation to the Universe 개요 4편.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
4:0.1 (54.1) THE Universal Father has an eternal purpose pertaining to the material, intellectual, and spiritual phenomena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which he is executing throughout all time. 우주 아버지는 온 우주의 물질적, 지적 및 영적 현상들에 대해 영원한 목적이 있으며, 그는 모든 시간 내내 실행합니다.
The Universe Attitude of the Father 우주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
4:1.2 (54.5) The watchword of the universe is progress. Throughout all millenniums providence has been working out the plan of progressive evolution. 우주의 표어는 진보입니다. 수천 년 내내, 섭리는 진보적인 진화 계획을 수행했습니다.
4:1.5 (55.3) God constantly upholds all things material and all beings spiritual. The universes are eternally stable. There is stability in the midst of apparent instability. There is an underlying order and security in the midst of the energy upheavals and the physical cataclysms of the starry realms. 하나님은 모든 물질적인 것들과 영적인 존재들을 계속 유지합니다. 우주들은 영원히 안정되어 있습니다. 외견상 불안정한 가운데 안정성이 있습니다. 별들의 영역에 있는 에너지 격변과 물리적 대변동 가운데, 근본적인 질서와 안정이 있습니다.
God and Nature 하나님과 자연
4:2.3 (56.7) Nature is a time-space resultant of two cosmic factors: first, the immutability, perfection, and rectitude of Paradise Deity, and second, the experimental plans, executive blunders, insurrectionary errors, incompleteness of development, and imperfection of wisdom of the extra-Paradise creatures, from the highest to the lowest. Therefore must nature ever be of a changing mood, whimsical withal, though stable underneath, and varied in accordance with the operating procedures of a local universe. 자연은 두 가지 질서우주적 요인(要因)이 시간과 공간에서 합성된 결과입니다. 첫째는 천국 신(神)의 불변성•완전성•정당함이며, 둘째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천국 외부에 있는 창조물들의 실험적 계획, 실행적 실책, 반란의 잘못들, 불완전한 개발 및 지혜의 불완전성입니다. 따라서 자연은, 밑바닥이 안정되어 있지만, 늘 변화하는 경향 중에 있는 동시에 항상 변덕스러우며, 지역 우주의 운영 절차에 따라서 다양합니다.
4:2.4 (57.1) Nature is the perfection of Paradise divided by the incompletion, evil, and sin of the unfinished universes. This quotient is thus expressive of both the perfect and the partial, of both the eternal and the temporal. Continuing evolution modifies nature by augmenting the content of Paradise perfection and by diminishing the content of the evil, error, and disharmony of relative reality. 자연은 천국의 완전성을, 완성되지 않은 우주들의 불완전성, 악 및 죄로 나눈 것입니다. 이 몫은 그렇게 완전한 것과 부분적인 두 가지로,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 둘 가지로 표현됩니다. 계속되는 진화는 천국 완전성의 내용을 증대시키고, 상대적 실체에 속한 악, 실수 및 부조화의 내용을 줄여서, 자연을 변경합니다.
4:2.6 (57.3) Nature, on your world, is a qualification of the laws of perfection by the evolutionary plans of the local universe. Nature also is a manifestation of the unfinished, the incomplete, the imperfect outworkings of the development, growth, and progress of a universe experiment in cosmic evolution. 우리 세계의 자연은, 지역 우주의 진화 계획으로 인해, 완전한 법칙이 수정된 것입니다. 자연은 또한 질서우주 진화에서, 우주 실험의 발전, 성장, 진보가 마무리되지 않고 완성되지 않은 채, 불완전한 작용이 나타난 모습입니다.
God’s Unchanging Character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성품
4:3.5 (58.3) The Universal Father never does anything that causes subsequent sorrow or regret, but the will creatures of the planning and making of his Creator personalities in the outlying universes, by their unfortunate choosing, sometimes occasion emotions of divine sorrow in the personalities of their Creator parents. 우주 아버지는 나중에 슬픔이나 후회를 만들 어떤 것도 하지 않지만, 우주 변경(邊境)에 있는 그의 창조주 고유성들이 계획하고 만든 의지 창조물들의 불행한 선택으로 인해, 때때로 그들 창조주 부모의 고유성들에게 신적 슬픔이 일어납니다.
4:3.6 (58.4) The infinite goodness of the Father is beyond the comprehension of the finite mind of time; Perfection of divine goodness can be discerned by mortal imperfection of insight only because it stands in contrastive association with relative imperfection in the relationships of time and matter in the motions of space. 아버지의 무한한 선(善)은 시간의 유한한 마음이 지닌 이해력을 초월합니다. 신적 선(善)의 완전성은 필사자의 불완전한 통찰력으로 식별될 수 있는데, 이는 오로지 공간 운동에 있는 시간과 물질의 관계에서, 그 선(善)이 상대적 불완전과 대조되는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The Realization of God 하나님의 실감(實感실체로 체험)화
4:4.4 (58.9) The Father-Absolute is the creator of the central and perfect universe and the Father of all other Creators. The Father is infinite and eternal, but to deny the possibility of his volitional self-limitation amounts to a denial of this very concept of his volitional absoluteness. 아버지-절대자는 중앙 및 완전한 우주의 창조자이며 다른 모든 창조주들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무한하고 영원하지만, 그의 의지적 자기-제한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은 바로 그의 이 의지적 절대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4:4.5 (59.1) First and last — eternally — the infinite God is a Father. 영원히 처음과 나중이신 무한한 하나님은 아버지입니다.
4:4.7 (59.3) It requires revelation to show that the First Cause of science and the self-existent Unity of philosophy are the God of religion, full of mercy and goodness and pledged to effect the eternal survival of his children on earth. 과학의 첫째 원인과 철학의 자존적 통일체가 종교의 하느님, 즉 자비와 선이 가득하고 지상에 있는 그의 자녀들의 영원한 생존을 보증하신 하느님이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계시가 필요합니다.
4:4.9 (59.5) The consciousness of a victorious human life on earth is born of that creature faith which dares to challenge each recurring episode of existence when confronted with the awful spectacle of human limitations, by the unfailing declaration: Even if I cannot do this, there lives in me one who can and will do it, a part of the Father-Absolute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And that is “the victory which overcomes the world, even your faith.” 지상에서 승리하는 인간생활의 의식은, 되풀이되는 각 존재의 사건에 감히 도전하는 그 창조물의 신앙으로부터, 인간적 한계들의 무서운 장면에 직면할 때, 다음의 분명한 선언에 의해 생깁니다. “내가 이것을 할 수 없을지라도, 그것을 할 수 있고 또 하실 분, 즉 우주들의 우주의 아버지-절대자의 부분이, 내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극복하는 승리, 즉 너희 신앙(요일5:4)”입니다.
Erroneous Ideas of God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
4:5.2 (60.1) One of the greatest sources of confusion on Urantia concerning the nature of God grows out of the failure of your sacred books clearly to distinguish between the personalities of the Paradise Trinity and between Paradise Deity and the local universe creators and administrators. 하나님의 본성에 관해 유란시아에 있는 가장 큰 혼동의 근원 중 하나는 너희 성스러운 책들이 천국 삼위일체의 고유성들 사이와 천국 신(神)과 지역우주 창조자들 및 경영자들 사이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해서 발생합니다.
4:5.4 (60.3) The barbarous idea of appeasing an angry God, of propitiating an offended Lord, of winning the favor of Deity through sacrifices and penance and even by the shedding of blood, represents a religion wholly puerile and primitive, a philosophy unworthy of an enlightened age of science and truth. Such beliefs are utterly repulsive to the celestial beings and the divine rulers who serve and reign in the universes. It is an affront to God to believe, hold, or teach that innocent blood must be shed in order to win his favor or to divert the fictitious divine wrath. 희생 제물들과 고행(苦行)을 통해서 그리고 심지어 피를 흘림으로, 성난 하나님을 달래고, 감정이 상한 주님의 비위를 맞추고, 신(神)의 은혜를 얻으려는 야만적인 관념은, 완전히 미숙하고 원시적인 종교를 대표하며, 과학과 진리를 깨우친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철학입니다. 그런 믿음들은 우주들에서 봉사하고 다스리는 천상의 존재들과 신적 통치자들에게는 완전히 혐오감을 일으킵니다. 그의 은혜를 얻거나 가상적인 신적 진노를 풀기 위해서 무죄한 피를 흘려야 한다고 믿고, 주장하거나,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4:5.7 (60.6) But the inhabitants of Urantia are to find deliverance from these ancient errors and pagan superstitions respecting the nature of the Universal Father. The revelation of the truth about God is appearing, and the human race is destined to know the Universal Father in all that beauty of character and loveliness of attributes so magnificently portrayed by the Creator Son who sojourned on Urantia as the Son of Man and the Son of God. 그러나 유란시아의 거주민들은 우주 아버지의 본성에 관한 이러한 고대의 잘못들과 이교적 미신들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진리의 계시가 다가오고 있으며, 인류는 인자(人子)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란시아에 머물렀던 창조주 아들이, 그토록 숭고하게 묘사했던, 성품의 아름다움과 속성들의 사랑스러움이라는 모든 점에서 우주 아버지를 알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A Synopsis of Paper 3. The Attributes of God 개요 3편 하나님의 속성들
God is omnipresent; he alone can be in numberless places simultaneously(3.1.1). He rules in the local universes through his Creator Sons who are discernible to lower orders of beings and can compensate for God’s invisibility. God is greater than all of his combined creations. Although he exists throughout the universes, the universes can never encompass his infinity(3.1.2). God pervades the physical universes of the past, present, and future. He is the primordial foundation of material creation(3.1.7). 하나님은 전재(全在)합니다. 하나님 홀로, 동시에 수없이 많은 장소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는 지역우주에서 낮은 계층의 존재들이 알아볼 수 있어서 하나님의 비(非)가시성(可視性)을 보충할 수 있는, 자기 창조주 아들들을 통해 다스립니다. 하나님은 자기 연합 창조계의 모든 것보다 큽니다. 그는 우주 전체에 존재하지만, 우주들은 그의 무한성을 결코 포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현재 및 미래의 물리적 우주들에 퍼져 있습니다. 그는 물질적 창조계의 원초적 근거입니다.
Individually, humans are indwelt by Father fragments(3.1.9), and the effective presence of God within each person is conditioned by the degree of cooperation provided(3.1.11). Fluctuations of God’s presence are not due to whims of the Father but are directly determined by the mortal’s choice to receive him. God has freely bestowed himself without limit or favor(3.1.12). 개인적으로 아버지 파편들이 인간들에 내주하며, 각자 안에 실재하는 하나님의 효율성은 협력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하나님이 실재하는 변동은 아버지의 변덕 때문이 아니라, 그를 받아들이는 필사자의 선택으로 직접 결정됩니다. 제한도 편애도 없이, 하나님은 아낌없이 자신을 증여했습니다.
God is energy. He is the cause of all physical phenomena(3.2.3); he controls all power(3.2.4). The power of God does not function blindly(3.2.6), but it is nearly impossible to explain the nature of his laws. From the limitations of our mortal perspective, many actions of the Creator may seem arbitrary and cruel, but God’s actions are always purposeful, intelligent, kind, and wise(3.2.8). 하나님은 에너지입니다. 그는 모든 물리적 현상의 원인입니다. 그는 모든 권능을 조정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맹목적으로 기능하지 않지만, 그의 법칙의 본성을 설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 필사자의 제한된 관점에서 보면, 창조자의 여러 행위는 독단적이고 모질게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행위는 언제나 목적이 있고, 지능적이며, 친절하고 현명합니다.
God knows all things(3.3.1). He is the only personality who knows the number of all the stars and planets(3.3.2). His consciousness is universal, his circuit encompasses all personalities(3.3.3). God is never subject to surprise(3.3.4). The potential force, wisdom, and love of God is not reduced by his self-bestowal on subordinate creatures and creations(3.4.1). If creation should continue eternally, the power of God’s control from the Isle of Paradise would be adequate for such an eternally increasing creation; God would still possess the same potential as if his power had never poured forth into the universe(3.4.2). Likewise, sending Father fragments to indwell the mortals of numerous worlds in no way lessens the wisdom and perfection of truth of the all-powerful Father(3.3.4). 하나님은 만물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별들과 행성들의 수(數)를 아시는 유일한 고유성입니다. 그의 의식은 우주적이며, 그의 회로는 모든 고유성들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놀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잠재적 기세, 지혜 및 사랑은, 아래 피조물들과 창조계들에 자신을 증여함으로, 감소되지 않습니다. 창조계가 영원히 계속되어도, 천국 섬으로부터 조정하는 하나님의 권능은 그토록 영원히 증가하는 창조계를 위해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권능을 우주에 결코 쏟아부은 적이 없는 것처럼, 여전히 동일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세계들의 필사자들에게 내주하도록 보낸 아버지 파편들은 전능한 아버지의 진리에 속한 지혜와 완전성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The nearest approach to God is through love(3.4.7). Finite mind cannot know the infinity of the Father, but it can feel the Father’s love(3.4.6). 하나님을 향한 최단 접근법은 사랑을 통해서입니다. 유한한 마음은 아버지의 무한성을 알 수 없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The uncertainties of life do not contradict the universal sovereignty of God. Creature life is beset with certain inevitabilities(3.5.5). To develop courage, we must grapple with hardships(3.5.6). To develop altruism, we must experience social inequality(3.5.7). Hope results from being faced with insecurity(3.5.8), and faith arises when we live in such a way that we know less than we can believe(3.5.9). The love of truth is created only in an environment where falsehood is possible(3.5.10). Idealism comes as we struggle for a better world(3.5.11). Loyalty cannot emerge unless we live with the possibility of betrayal(3.5.12), and unselfishness results only if we have a self-life to forsake(3.5.13). To appreciate pleasure we must live in a world where pain and suffering are possible(3.5.14). The only evolutionary world without error would be a world without free intelligence. Man must be fallible if he is to be free(3.5.15). 생명의 불확실성은 하나님의 우주적 주권과 모순되지 않습니다. 창조물 생명은 정해진 필연성으로 시달립니다. 용기를 개발하기 위해, 우리는 어려움과 맞붙어 싸워야 합니다. 애타(愛他)를 위해, 우리는 사회적 불평등을 겪어야 합니다. 소망은 불확실성에 직면한 결과로 생기며, 신앙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적게 아는 그런 식으로 살아갈 때 일어납니다. 진리의 사랑은 거짓이 가능한 환경에서만 만들어집니다. 이상주의(理想主義)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애쓸 때 다가옵니다. 충성은 우리가 배반의 가능성과 함께 살지 않으면 드러날 수 없으며, 이타(利他)는 우리가 버려야할 자기 생명이 있는 경우에만 생깁니다. 기쁨의 진가를 알기 위해 우리는 고통과 고난이 가능한 세상에 살아야 합니다. 실수가 없는 진화 세계만이, 자유로운 지능존재가 없는 세계일 것입니다. 사람이 자유하려면 잘못할 수 있어야 합니다.
The sovereignty of God is unlimited. The universe was not inevitable. It was not an accident, neither is it self-existent; it is subject to the will of the Father(3.6.2). God the Father loves us, God the Son serves us, and God the Spirit inspires us in the adventure of finding the Father(3.6.3). 하나님의 주권은 제한이 없습니다. 우주는 불가피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며, 스스로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주는 아버지의 뜻에 지배됩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아들 하나님은 우리를 보살피며, 영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셔서 아버지를 찾는 모험을 하게 합니다.
144:3.21 (1620.19) 4. Intelligent — according to light. 지능적(知能的) – 빛에 따라서(분별하여).
144:3.22 (1620.20) 5. Trustful — in submission to the Father’s all-wise will. 신뢰 – 모든 면에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144:3.23 (1620.21) When Jesus spent whole nights on the mountain in prayer, it was mainly for his disciples, particularly for the twelve. The Master prayed very little for himself, although he engaged in much worship of the nature of understanding communion with his Paradise Father. 예수께서 밤새 산에서 기도하실 때, 주로 자기 제자들, 특히 12사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주(主)님은 자기 천국 아버지를 이해하는 교제 성격의 경배로 대부분 보내셨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거의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하늘에서 같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오늘 우리에게 내일 양식을 주시고, 우리 혼(魂)들을 생명의 물로 새롭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한 것 같이 우리 빚들을 모두 용서하소서. 우리를 유혹에서 건지시며, 악에서 구하소서. 우리를 아버지처럼 더욱 온전하게 하소서.
144:3.3 (1620.1) Our Father who is in heaven,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144:3.4 (1620.2) Hallowed be your name.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144:3.5 (1620.3)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144:3.6 (1620.4) On earth as it is in heaven. 하늘에서 같이 땅에서도
144:3.7 (1620.5) Give us this day our bread for tomorrow; 오늘 우리에게 내일 양식을 주시고
144:3.8 (1620.6) Refresh our souls with the water of life. 우리 혼(魂)들을 생명의 물로 새롭게 하소서.
144:3.9 (1620.7) And forgive us every one our debts 우리 빚들을 모두 용서하소서.
144:3.10 (1620.8)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한 것 같이
144:3.11 (1620.9) Save us in temptation, deliver us from evil, 우리를 유혹에서 건지시며, 악에서 구하소서.
144:3.12 (1620.10) And increasingly make us perfect like yourself. 우리를 아버지처럼 더욱 온전하게 하소서.
길 기도: 하느님 아버지! 우리 길이신 예수님을 기뻐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로 사랑하고 사람을 형제·자매로 사랑하게 하소서. 전(全) 인류를 예수 공동체로 불러서 예수 제자들과 전도자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 ~ ~ ~
1 우주 영역들을 유지하시는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모든 영예로운 성품을 높이소서. 당신의 존재가 우리를 품으셔서, 하늘에서 당신의 영광이 온전히 나타나심과 달리 우리를 통해 불완전하게 당신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빛의 활력(活力)을 주소서. 우리 심상(心想)에서 악한 샛길로 탈선하지 않게 하소서. 영예롭게 내주하는 영원한 권능이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 아들의 무한한 사랑은 우리에게 영원한 선물입니다. 과연 그러하오니, 진실로 영원합니다.
144:5.2 (1622.1) Our Father in whom consist the universe realms, 우주 영역들을 유지하시는 우리 아버지여,
144:5.3 (1622.2) Uplifted be your name and all-glorious your character.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모든 영예로운 성품을 높이소서.
144:5.4 (1622.3) Your presence encompasses us, and your glory is manifested 당신의 존재가 우리를 품으셔서, 당신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144:5.5 (1622.4) Imperfectly through us as it is in perfection shown on high. 하늘에서 당신의 영광이 온전히 나타나심과 달리 우리를 통해 불완전하게
144:5.6 (1622.5) Give us this day the vivifying forces of light, 오늘 우리에게 빛의 활력(活力)을 주소서.
144:5.7 (1622.6) And let us not stray into the evil bypaths of our imagination, 우리 심상(心想)에서 악한 샛길로 탈선하지 않게 하소서.
144:5.8 (1622.7) For yours is the glorious indwelling, the everlasting power, 영예롭게 내주하는 영원한 권능이 당신의 것입니다.
144:5.9 (1622.8) And to us, the eternal gift of the infinite love of your Son. 당신 아들의 무한한 사랑은 우리에게 영원한 선물입니다.
144:5.10 (1622.9) Even so, and everlastingly true. 과연 그러하오니, 진실로 영원합니다.
~ ~ ~ ~ ~
2 우주의 중심에 계시는 우리의 창조적 부모시여, 우리에게 당신의 본성을 주시며 당신의 성품을 주소서. 우리를 은혜로 당신의 아들들과 딸들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영원한 성취를 통해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천사들이 빛 가운데 당신의 명령을 행하듯이 이 구체에서 우리가 당신의 뜻을 행하도록, 당신이 조율하시며 조정하시는 영을 주셔서 우리 안에 살고 거주하게 하소서. 오늘 진리의 길을 따라 진행하도록 우리를 붙드소서. 타성과 악과 사악한 모든 범죄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우리 창조물의 심정에 당신 자비의 영을 널리 퍼뜨리소서. 불확실한 인생의 미로를 통해서 한걸음씩 당신 자신의 손으로 우리를 이끄소서. 우리의 인생이 다할 때, 우리의 신실한 영들을 당신 자신의 품으로 받으소서. 과연 그러하오니, 우리 소망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144:5.12 (1622.10) Our creative Parent, who is in the center of the universe, 우주의 중심에 계시는 우리의 창조적 부모시여,
144:5.13 (1622.11) Bestow upon us your nature and give to us your character. 우리에게 당신의 본성을 주시며 당신의 성품을 주소서.
144:5.14 (1622.12) Make us sons and daughters of yours by grace 우리를 은혜로 당신의 아들들과 딸들이 되게 하소서.
144:5.15 (1622.13) And glorify your name through our eternal achievement. 우리의 영원한 성취를 통해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144:5.16 (1622.14) Your adjusting and controlling spirit give to live and dwell within us 당신이 조율하시며 조정하시는 영을 주셔서 우리 안에 살고 거주하게 하소서
144:5.17 (1622.15) That we may do your will on this sphere as angels do your bidding in light. 천사들이 빛 가운데 당신의 명령을 행하듯이 이 구체에서 우리가 당신의 뜻을 행하도록
144:5.18 (1622.16) Sustain us this day in our progress along the path of truth. 오늘 진리의 길을 따라 진행하도록 우리를 붙드소서.
144:5.19 (1622.17) Deliver us from inertia, evil, and all sinful transgression. 타성과 악과 사악한 모든 범죄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144:5.20 (1622.18) Be patient with us as we show loving-kindness to our fellows. 우리가 우리 동료들에게 자애(慈愛)하듯이 우리를 참으소서.
144:5.21 (1622.19) Shed abroad the spirit of your mercy in our creature hearts. 우리 창조물의 심정에 당신 자비의 영을 널리 퍼뜨리소서.
144:5.22 (1622.20) Lead us by your own hand, step by step, through the uncertain maze of life, 불확실한 인생의 미로를 통해서 한걸음씩 당신 자신의 손으로 우리를 이끄소서.
144:5.23 (1622.21) And when our end shall come, receive into your own bosom our faithful spirits.우리의 인생이 다할 때, 우리의 신실한 영들을 당신 자신의 품으로 받으소서.
144:5.24 (1622.22) Even so, not our desires but your will be done. 과연 그러하오니, 우리 소망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 ~ ~ ~ ~
3 우리의 온전하며 의로우신 하늘 아버지여, 오늘 우리의 여정을 안내하며 지도하소서. 우리 발걸음을 씻으시고 우리의 생각을 통합하소서. 우리를 영원한 진보의 길로 늘 인도하소서. 권능으로 충만하게 지혜로 우리를 채우소서. 당신의 무한한 에너지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세라핌 무리의 현존과 안내에 속한 신적 의식으로 우리에게 영감(靈感)을 주소서. 빛의 길에서 위를 향해 늘 우리를 안내하소서. 큰 심판 날에 우리를 온전히 의롭게 하소서. 영원한 영광 중에 계신 당신 자신처럼 우리를 만드소서. 하늘에 있는 당신을 향한 끝없는 경배로 우리를 받으소서.
144:5.26 (1622.23) Our perfect and righteous heavenly Father, 우리의 온전하며 의로우신 하늘 아버지여,
144:5.27 (1622.24) This day guide and direct our journey. 오늘 우리의 여정을 안내하며 지도하소서.
144:5.28 (1622.25) Sanctify our steps and co-ordinate our thoughts. 우리 발걸음을 씻으시고 우리의 생각을 통합하소서.
144:5.29 (1622.26) Ever lead us in the ways of eternal progress. 우리를 영원한 진보의 길로 늘 인도하소서.
144:5.30 (1622.27) Fill us with wisdom to the fullness of power 권능으로 충만하게 지혜로 우리를 채우소서.
144:5.31 (1622.28) And vitalize us with your infinite energy. 당신의 무한한 에너지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144:5.32 (1622.29) Inspire us with the divine consciousness of 신적 의식으로 우리에게 영감(靈感)을 주소서.
144:5.33 (1622.30) The presence and guidance of the seraphic hosts. 세라핌 무리의 현존과 안내에 속한
144:5.34 (1622.31) Guide us ever upward in the pathway of light; 빛의 길에서 위를 향해 늘 우리를 안내하소서.
144:5.35 (1622.32) Justify us fully in the day of the great judgment. 큰 심판 날에 우리를 온전히 의롭게 하소서.
144:5.36 (1622.33) Make us like yourself in eternal glory 영원한 영광중에 계신 당신 자신처럼 우리를 만드소서.
144:5.37 (1622.34) And receive us into your endless service on high. 하늘에 있는 당신을 향한 끝없는 경배로 우리를 받으소서.
~ ~ ~ ~ ~
4 신비 속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에게 당신의 거룩한 성품을 드러내소서. 지상의 당신 자녀들에게 오늘을 주셔서 길과 빛과 진리를 보게 하소서. 우리에게 영원한 진보의 길을 보이소서. 그 길을 걸어갈 의지를 우리에게 주소서. 당신의 신적 왕권(王權)을 우리 안에 세우소서. 그것을 우리에게 주셔서 자아를 온전히 다스리게 하소서. 우리를 어두움과 죽음의 길로 탈선하게 않게 하소서. 생명의 물가로 우리를 영원히 이끄소서. 당신을 위해 우리의 이 기도를 들으소서. 우리로 더욱 당신처럼 되기를 기뻐하소서. 최후에, 신적 아들을 위해 영원한 팔로 우리를 받으소서. 과연 그러하오니, 우리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144:5.39 (1622.35) Our Father who is in the mystery, 신비 속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44:5.40 (1622.36) Reveal to us your holy character. 우리에게 당신의 거룩한 성품을 드러내소서.
144:5.41 (1622.37) Give your children on earth this day 지상의 당신 자녀들에게 오늘을 주소서.
144:5.42 (1622.38) To see the way, the light, and the truth. 길과 빛과 진리를 보게 하소서.
144:5.43 (1622.39) Show us the pathway of eternal progress 우리에게 영원한 진보의 길을 보이소서.
144:5.44 (1622.40) And give us the will to walk therein. 그 길을 걸어갈 의지를 우리에게 주소서.
144:5.45 (1622.41) Establish within us your divine kingship 당신의 신적 왕권(王權)을 우리 안에 세우소서.
144:5.46 (1622.42) And thereby bestow upon us the full mastery of self. 그것을 우리에게 주셔서 자아를 온전히 다스리게 하소서.
144:5.47 (1622.43) Let us not stray into paths of darkness and death; 우리를 어두움과 죽음의 길로 탈선하게 않게 하소서.
144:5.48 (1622.44) Lead us everlastingly beside the waters of life. 생명의 물가로 우리를 영원히 이끄소서.
144:5.49 (1622.45) Hear these our prayers for your own sake; 당신을 위해 우리의 이 기도를 들으소서.
144:5.50 (1622.46) Be pleased to make us more and more like yourself. 우리로 더욱 당신처럼 되기를 기뻐하소서.
144:5.51 (1623.1) At the end, for the sake of the divine Son, 최후에, 신적 아들을 위해
144:5.52 (1623.2) Receive us into the eternal arms. 영원한 팔로 우리를 받으소서.
144:5.53 (1623.3) Even so, not our will but yours be done. 과연 그러하오니, 우리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 ~ ~ ~ ~
5 두 분이 하나가 되어 한 부모로 연합하신 영광의 아버지와 어머니여, 당신의 신적 본성에 우리로 충성하게 하소서. 당신의 신적 영의 선물과 증여로 당신 자신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다시 사소서. 당신이 하늘에서 온전히 위엄 있게 나타내심과 달리 그렇게 이 구체에서 불완전하게 당신을 드러내고 있나이다. 우리에게 날마다 형제됨의 즐거운 사역을 주소서. 사랑하는 봉사의 길로 순간마다 우리를 이끄소서. 우리가 당신의 인내를 우리 자녀들에게 바로 보이듯이 당신은 늘 어김없이 우리를 참으소서. 모든 것을 잘하는 신적 지혜를 우리에게 주소서. 모든 창조물에게 은혜로운 무한한 사랑을 주소서. 우리에게 당신의 인내와 자애를 주셔서 우리의 관대함이 이 영역의 약자들을 품을 수도 있게 하소서. 우리 생애가 끝날 때, 그것이 당신 이름에 영예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선한 영에게 기쁨이 되며, 우리 혼을 돕는 자들에게 만족이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여, 우리 소망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의 필사 자녀들의 영원한 선을 위하여 당신의 소망대로 하소서. 과연 그러하기를 바라나이다.
144:5.55 (1623.4) Glorious Father and Mother, in one parent combined, 두 분이 하나가 되어 한 부모로 연합하신 영광의 아버지와 어머니여,
144:5.56 (1623.5) Loyal would we be to your divine nature. 당신의 신적 본성에 우리로 충성하게 하소서.
144:5.57 (1623.6) Your own self to live again in and through us 당신 자신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다시 사소서.
144:5.58 (1623.7) By the gift and bestowal of your divine spirit, 당신의 신적 영의 선물과 증여로
144:5.59 (1623.8) Thus reproducing you imperfectly in this sphere 그렇게 이 구체에서 불완전하게 당신을 드러내고 있나이다.
144:5.60 (1623.9) As you are perfectly and majestically shown on high. 당신이 하늘에서 온전히 위엄 있게 나타내심과 달리
144:5.61 (1623.10) Give us day by day your sweet ministry of brotherhood 우리에게 날마다 형제됨의 즐거운 사역을 주소서.
144:5.62 (1623.11) And lead us moment by moment in the pathway of loving service. 사랑하는 봉사의 길로 순간마다 우리를 이끄소서.
144:5.63 (1623.12) Be you ever and unfailingly patient with us 당신은 늘 어김없이 우리를 참으소서.
144:5.64 (1623.13) Even as we show forth your patience to our children. 우리가 당신의 인내를 우리 자녀들에게 바로 보이듯이
144:5.65 (1623.14) Give us the divine wisdom that does all things well 모든 것을 잘하는 신적 지혜를 우리에게 주소서.
144:5.66 (1623.15) And the infinite love that is gracious to every creature. 모든 창조물에게 은혜로운 무한한 사랑을 주소서.
144:5.67 (1623.16) Bestow upon us your patience and loving-kindness 우리에게 당신의 인내와 자애를 주셔서
144:5.68 (1623.17) That our charity may enfold the weak of the realm. 우리의 관대함이 이 영역의 약자들을 품을 수도 있게 하소서.
144:5.69 (1623.18) And when our career is finished, make it an honor to your name, 우리 생애가 끝날 때, 그것이 당신 이름에 영예가 되게 하소서.
144:5.70 (1623.19) A pleasure to your good spirit, and a satisfaction to our soul helpers. 당신의 선한 영에게 기쁨이 되며, 우리 혼을 돕는 자들에게 만족이 되게 하소서.
144:5.71 (1623.20) Not as we wish, our loving Father, but as you desire the eternal good of your mortal children,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여, 우리 소망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의 필사 자녀들의 영원한 선을 위하여 당신의 소망대로 하소서.
144:5.72 (1623.21) Even so may it be. 과연 그러하기를 바라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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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리의 모든 신실한 근원이며 모든 권능의 중심이시여, 당신의 모든-은혜로우신 아들의 이름이 존경과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당신의 관대함과 축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으니 그래서 우리로 당신의 뜻을 행하고 당신의 명령을 실행하도록 힘을 주시나이다. 순간마다 우리에게 생명나무의 영양분(營養分)을 주소서. 우리를 날마다 그 강의 생명수로 새롭게 하소서. 한 걸음씩 우리를 어두움에서 건져 신적 빛으로 이끄소서. 내주하시는 영의 변화로 우리 마음들을 새롭게 하소서. 그리고 필사자의 종말이 결국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를 당신 자신이 받으시고 우리를 영원으로 보내소서. 결실이 많은 봉사, 즉 천상의 왕관(王冠)을 우리에게 씌우소서.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한 권세를 찬미할 것입니다. 끝없는 전(全) 우주에서 과연 그러합니다.
144:5.74 (1623.22) Our all-faithful Source and all-powerful Center, 우리의 모든 신실한 근원이며 모든 권능의 중심이시여,
144:5.75 (1623.23) Reverent and holy be the name of your all-gracious Son. 당신의 모든-은혜로우신 아들의 이름이 존경과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144:5.76 (1623.24) Your bounties and your blessings have descended upon us, 당신의 관대함과 축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으니
144:5.77 (1623.25) Thus empowering us to perform your will and execute your bidding. 그래서 우리로 당신의 뜻을 행하고 당신의 명령을 실행하도록 힘을 주시나이다.
144:5.78 (1623.26) Give us moment by moment the sustenance of the tree of life; 순간마다 우리에게 생명나무의 영양분(營養分)을 주소서.
144:5.79 (1623.27) Refresh us day by day with the living waters of the river thereof. 우리를 날마다 그 강의 생명수로 새롭게 하소서.
144:5.80 (1623.28) Step by step lead us out of darkness and into the divine light. 한 걸음씩 우리를 어두움에서 건져 신적 빛으로 이끄소서.
144:5.81 (1623.29) Renew our minds by the transformations of the indwelling spirit, 내주하시는 영의 변화로 우리 마음들을 새롭게 하소서.
144:5.82 (1623.30) And when the mortal end shall finally come upon us, 그리고 필사자의 종말이 결국 우리에게 임하면,
144:5.83 (1623.31) Receive us to yourself and send us forth in eternity. 우리를 당신 자신이 받으시고 우리를 영원으로 보내소서.
144:5.84 (1623.32) Crown us with celestial diadems of fruitful service, 결실이 많은 봉사, 즉 천상의 왕관(王冠)을 우리에게 씌우소서.
144:5.85 (1623.33) And we shall glorify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Influence.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한 권세를 찬미할 것입니다.
144:5.86 (1623.34) Even so, throughout a universe without end. 끝없는 전(全) 우주에서 과연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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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주의 은밀한 곳들에 거하시는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을 영예롭게 하시고, 당신의 자비에 경의(敬意)를 표하며, 당신의 판단을 존중히 하소서. 공의(公義)의 태양을 정오에 우리에게 비추소서. 저물녘 흔들리는 우리의 걸음을 당신께서 안내하시기를 우리가 탄원합니다. 당신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우리를 손잡아 이끄소서. 길이 어렵고 때가 어두울 때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우리가 그렇게 자주 당신을 소홀히 하고 잊은 것처럼 우리를 잊지 마소서. 다만 우리가 당신 사랑하기를 갈망하듯이 당신이 자비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소서. 우리가 우리를 괴롭히고 상처를 입힌 자들을 정의(正義)로 용서하듯이 우리를 친절히 내려 보시고 자비로 우리를 용서하소서. 위엄 있는 아들의 사랑과 헌신과 증여가 당신의 끝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생명을 영원하게 하소서. 우주들의 하나님이 그의 영을 충만할 정도로 우리에게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영의 인도에 따르도록 은혜를 주소서. 헌신하는 세라핌천사 무리들의 사랑하는 사역으로 시대 끝까지 아들이 우리를 안내하고 이끄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가 늘 더욱 당신과 같게 하소서. 우리의 마지막에 우리를 영원한 천국 품으로 받으소서. 증여 아들의 이름으로 과연 그러합니다. 그리고 최극자 아버지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하소서.
144:5.88 (1623.35) Our Father who dwells in the secret places of the universe, 우주의 은밀한 곳들에 거하시는 우리 아버지여,
144:5.89 (1623.36) Honored be your name, reverenced your mercy, and respected your judgment.당신의 이름을 영예롭게 하시고, 당신의 자비에 경의(敬意)를 표하며, 당신의 판단을 존중히 하소서.
144:5.90 (1623.37) Let the sun of righteousness shine upon us at noontime, 공의(公義)의 태양을 정오에 우리에게 비추소서.
144:5.91 (1623.38) While we beseech you to guide our wayward steps in the twilight. 저물녘 흔들리는 우리의 걸음을 당신께서 안내하시기를 우리가 탄원합니다.
144:5.92 (1623.39) Lead us by the hand in the ways of your own choosing 당신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우리를 손잡아 이끄소서.
144:5.93 (1623.40) And forsake us not when the path is hard and the hours are dark. 길이 어렵고 때가 어두울 때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144:5.94 (1623.41) Forget us not as we so often neglect and forget you. 우리가 그렇게 자주 당신을 소홀히 하고 잊은 것처럼 우리를 잊지 마소서.
144:5.95 (1623.42) But be you merciful and love us as we desire to love you. 다만 우리가 당신 사랑하기를 갈망하듯이 당신이 자비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소서.
144:5.96 (1623.43) Look down upon us in kindness and forgive us in mercy 우리를 친절히 내려 보시고 자비로 우리를 용서하소서.
144:5.97 (1623.44) As we in justice forgive those who distress and injure us. 우리가 우리를 괴롭히고 상처를 입힌 자들을 정의(正義)로 용서하듯이
144:5.98 (1624.1) May the love, devotion, and bestowal of the majestic Son 위엄 있는 아들의 사랑과 헌신과 증여가
144:5.99 (1624.2) Make available life everlasting with your endless mercy and love. 당신의 끝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생명을 영원하게 하소서.
144:5.100 (1624.3) May the God of universes bestow upon us the full measure of his spirit; 우주들의 하나님이 그의 영을 충만할 정도로 우리에게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144:5.101 (1624.4) Give us grace to yield to the leading of this spirit. 이 영의 인도에 따르도록 은혜를 주소서.
144:5.102 (1624.5) By the loving ministry of devoted seraphic hosts 헌신하는 세라핌천사 무리들의 사랑하는 사역으로
144:5.103 (1624.6) May the Son guide and lead us to the end of the age. 시대 끝까지 아들이 우리를 안내하고 이끄시기를 기원합니다.
144:5.104 (1624.7) Make us ever and increasingly like yourself 우리가 늘 더욱 당신과 같게 하소서.
144:5.105 (1624.8) And at our end receive us into the eternal Paradise embrace. 우리의 마지막에 우리를 영원한 천국 품으로 받으소서.
144:5.106 (1624.9) Even so, in the name of the bestowal Son 증여 아들의 이름으로 과연 그러합니다.
144:5.107 (1624.10) And for the honor and glory of the Supreme Father. 그리고 최극자 아버지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하소서.
하느님들이 나를 돌보시니, 나는 빗나가지 않으리로다. 그들이 나란히 아름다운 길과 영생의 영광스러운 신선함으로 나를 인도하시나이다. 나는 이 신적 현존으로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으리이다. 내가 불안의 골짜기로 내려가거나 의심의 세계들에 오를지라도, 내가 홀로 있거나 내 동료 친구들과 함께 해도, 내가 빛의 합창 속에서 승리하거나 구체들의 적막한 데서 비틀거려도, 당신의 선한 영이 나를 돌보시며, 당신의 영광스러운 천사가 나를 위로하리라. 내가 어둠과 사망 자체의 깊음으로 내려가도,나는 당신을 의심하거나 두려워 아니하리니, 내가 시간의 충만함과 당신 이름의 영광 안에서, 당신께서 성벽 위 높은 곳에 당신과 함께 앉도록 나를 들어올리실 것을 알기 때문이니이다. 아멘.
48:6.9 (552.7) The Gods are my caretakers; I shall not stray; 하느님들이 나를 돌보시니, 나는 빗나가지 않으리로다.
48:6.10 (552.8) Side by side they lead me in the beautiful paths and glorious refreshing of life everlasting. 그들이 나란히 아름다운 길과 영생의 영광스러운 신선함으로 나를 인도하시나이다.
48:6.11 (552.9) I shall not, in this Divine Presence, want for food nor thirst for water. 나는 이 신적 현존으로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으리이다.
48:6.12 (552.10) Though I go down into the valley of uncertainty or ascend up into the worlds of doubt, 내가 불안의 골짜기로 내려가거나 의심의 세계들에 오를지라도,
48:6.13 (552.11) Though I move in loneliness or with the fellows of my kind, 내가 홀로 있거나 내 동료 친구들과 함께 해도,
48:6.14 (552.12) Though I triumph in the choirs of light or falter in the solitary places of the spheres, 내가 빛의 합창 속에서 승리하거나 구체들의 적막한 데서 비틀거려도,
48:6.15 (552.13) Your good spirit shall minister to me, and your glorious angel will comfort me. 당신의 선한 영이 나를 돌보시며, 당신의 영광스러운 천사가 나를 위로하리라.
48:6.16 (552.14) Though I descend into the depths of darkness and death itself, 내가 어둠과 사망 자체의 깊음으로 내려가도
48:6.17 (552.15) I shall not doubt you nor fear you, 나는 당신을 의심하거나 두려워 아니하리니,
48:6.18 (552.16) For I know that in the fullness of time and the glory of your name 내가 시간의 충만함과 당신 이름의 영광 안에서,
48:6.19 (552.17) You will raise me up to sit with you on the battlements on high. 당신께서 성벽 위 높은 곳에 당신과 함께 앉도록 나를 들어올리실 것을 알기 때문이니이다.
예루셈100 (아들50, 딸50) 첫 동산 63(아들31, 딸32) 멜기세덱들 출발 전 5자녀(아들3 딸2) 다음 둘은 쌍둥이 첫 동산을 떠나기 전, 4대 1,647(순혈) 20세 이상 1236명 중 2/3=824명 & 20세 미만 411명 에덴시아행(자녀3/4, 즉 1235명 이별), 20세 이상 1/3=412명 지상에 남음
아담손의 아내와 32자녀(에덴시아행)
둘째 동산 42 (비순혈 2 카노와 이브- 아들 카인, 아담과 라오타-딸 산사) 지상 여인 1,632 중 1,570 안드종족 시작
에이블(둘째 동산 첫 아들, 카인에게 죽음) 카인-놋 종족 레모나와 아들 에녹
셋(둘째 동산 둘째 아들, 대제사장) – 아들 에노스(경배 시작) – 셋의 손자 게난(선교 시작)
아담손(120세 첫 동산 첫 아들)-라타(20세 행성왕자 보좌진 후손) – 67(매 4번째 2차 중도인들의 부모 16명 8쌍 일반 수명) 각 쌍이 70일마다 1명씩 평균 48년 동안 248명 출산(8쌍 통합 1,984명의 2차 중도인 출산, 이 중 873명은 불순종, 1,111명 순종)
A Synopsis of Paper 2. The Nature of God 개요 2편 하나님의 본성
Our understanding of God is handicapped because our minds are limited(2.0.3). Humans can best understand the nature of God as it has been revealed through the life and teachings of Jesus(2.0.1). 우리의 마음들이 제한적이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서 계시되었을 때 인간들은 하나님의 본성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God the Father unfailingly meets the ever-changing demand for himself all over the universe. He knows everything. Universe Sovereigns may engage in adventure; the Constellation Fathers may experiment; the system heads may practice; but the Universal Father sees the end from the beginning. To God, all time is present, there is no past or future. He is infinite in all of his attributes(2.1.4~5).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우주 전체에서 자신을 위해 변화무쌍한 요구를 꼭 채웁니다. 그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우주 주권자는 모험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별자리 아버지들은 실험할 수도 있습니다. 체계 수장(首長)들은 실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 아버지는 시작에서 끝을 봅니다. 하나님에게 모든 시간은 현재이며, 과거도 미래도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속성에서 무한적입니다.
God is perfect. In the universes, perfection is relative, but on Paradise, perfection is undiluted(2.2.4). He is perfect in beauty and goodness; there is nothing lacking in his divine character(2.2.5). His justice is tempered with mercy(2.3.2). God is inherently kind, compassionate and merciful. It is never necessary to persuade him to love us; our need is wholly sufficient to insure the flow of his grace(2.4.2). 하나님은 완전합니다. 우주에서 완전은 상대적이지만 천국에서 완전은 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미(美)와 선(善)에서 완전합니다. 그의 신적 성품에서 전혀 모자람이 없습니다. 그의 정의(正義)는 자비(慈悲)로 조절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친절하고, 온정적이며, 인정이 많습니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도록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필요가 그의 은혜가 흘러나오는 아주 충분한 보증입니다.
Everything good comes from God. Love is the dominant characteristic of his personality(2.5.12). The highest reason to love God is that he guides us, step by step, life by life, until we stand in his very presence(2.5.5). God literally sends his spirit to live and toil with us as we pursue the eternal universe career(2.5.6). 선한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사랑은 그의 고유성이 지닌 지배적 특성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상의 이유는 우리가 그의 면전에 설 때까지, 한 걸음씩, 한 생애씩,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우주 생애를 추구하도록, 하나님은 글자 그대로 자신의 영을 보내어, 우리와 함께 살고 수고하게 합니다.
God is good; he is our eternal refuge. He heals the brokenhearted and binds up the wounds of the soul(2.6.3). It has been said that God loves sinners but hates sin. It is true that God loves sinners, but he has no attitude toward sin because sin is not a spiritual reality(2.6.8). Iniquity is inherently suicidal. The inevitable consequence of deliberate rebellion against God is loss of existence(2.3.2). 하나님은 선(善)합니다. 그는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혼(魂)들의 상처를 싸매십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사랑하시며 죄는 미워한다고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것은 참이지만, 그가 죄를 향해 아무 태도가 없는 이유는 죄가 영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악(肆惡)은 본래 자멸적입니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고의적인 반역의 필연적 결과는 존재의 상실입니다.
Divine truth is universal, but our understanding of truth is finite and therefore only relative. Evolving persons can be certain only as far as their own personal experience extends. That which is true in one part of the universe may be only partially true elsewhere(2.7.2). The search for truth requires a search for the creative design that pre-exists all universe phenomena(2.7.5). 신적 진리는 우주적이지만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유한하므로 상대적일 뿐입니다. 진화하는 고유자들은 그들 자신의 고유적 체험이 확장되는 만큼만 확신하게 될 수 있습니다. 우주의 한 부분에서 참된 것은 다른 곳에서 부분적으로만 참될 수 있을 뿐입니다. 진리 추구는 모든 우주 현상 이전(以前)에-존재하는 창조적 밑그림의 탐색을 요구합니다.
Truth is both beautiful and good. Beauty is true and good. Goodness is true and beautiful. Health, sanity, and happiness are integrations of truth, beauty, and goodness in the human experience(2.7.11). 진리(眞理)는 아름답고 선합니다. 미(美)는 참되고 선합니다. 선(善)은 참되며 아름답습니다. 건강, 온전함 및 행복은 인간 체험에서 진(眞), 미(美) 및 선(善)의 통합들입니다.
A Synopsis of Paper 1. The Universal Father 개요 1편 우주 아버지
The Universal Father is the first source and center of all things. He is a creator, a controller, and an upholder(1.0.1). All enlightened beings worship God the Father and have one supreme ambition-to become like him(1.0.3). 우주 아버지는 만물의 첫째 근원 중심입니다. 그는 창조자, 조정자 및 유지자입니다. 개화된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하며 그와 같이 되려는 하나의 최극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Messengers from Paradise carry God’s divine command throughout the universes: “Be you perfect, even as I am perfect(1.0.3).” Humans cannot be perfect in the infinite sense, but can become complete in divinity of will, personality motivation, and God-consciousness(1.0.5). 천국의 메신저들은 우주들 전체에 하나님의 신적 명령을 전달합니다. “내가 온전 하듯이 너희도 온전하라.” 인간들은 무한한 면에서 온전해질 수 없지만, 의지의 신성(神性), 고유성 동기 및 하나님-의식에 있어서 완비될 수 있습니다.
The Father is known by many names, but reveals himself only by nature. God is primal reality and the source of all truth(1.1.1). He is universal spirit, eternal truth, infinite reality, and a loving father(1.2.1). Affectionate dedication to doing his will is the only gift of true value that humans have to offer God(1.1.2). 아버지는 여러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성으로만 자신을 계시합니다. 그는 우주 영(靈), 영원한 진리, 무한한 실체 및 애정이 깊은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애정 어린 헌신이 인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유일한 선물이며 참된 가치입니다.
God-knowing mortals have within themselves three experiential phenomena that constitute positive proof of God’s existence: God-consciousness, God-seeking, and the desire to do God’s will(1.2.3~6, 1.6.5). 하나님을-아는 필사자들은 자신들 내부에서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적극적 증거인 세 가지 체험적 현상, 즉 하나님-인식, 하나님-추구 및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소망을 지닙니다.
The human body is literally the temple of God; a divine fragment of the Father dwells within each mortal mind(1.4.2). The benefits received from this presence of the divine Father are limited only by the mortal’s capacity to receive and discern spiritual reality(1.4.6). God participates in the struggle of every imperfect soul in the universe who seeks to ascend. It is true that in all our afflictions he is afflicted, for in him we live and move and have our being(1.5.16). 인간의 육체는 글자 그대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아버지의 신적 파편이 각 필사자 마음 내부에 내주합니다. 신적 아버지의 이 실재로부터 받는 혜택들은 영적 실체를 수용하고 분별하는 필사자의 능력으로만 제한됩니다. 우주에서 상승하려는 모든 불완전한 혼의 분투에 하나님이 참여합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에 그가 동참하시며, 그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며, 우리 존재가 있기 때문에 이것은 진실입니다.
God is an eternal, infinite, true, good, and beautiful personality beyond the imagination of the human mind(1.5.2). He delights in his children(1.5.4). The manifestations of the Universal Father in the local universes are his Creator Sons. It is eternally true: “He who has seen the Son, has seen the Father(1.5.5).” 하나님은 인간 마음의 상상을 초월한 영원하고, 무한하며, 진실하고, 선하며, 아름다운 고유성입니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을 매우 기뻐합니다. 지역 우주들에서 우주 아버지의 명백한 표현들이 자신의 창조주 아들들입니다.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요12:45, 14:9).”는 영원히 참됩니다.
God is an eternal power, a majestic presence, and a glorious ideal. He is a perfect personality, a person who can know and be known, love and be loved(1.5.8). Personality is not just an attribute of God, it is the revelation of God to the universes(1.5.13). Human personality is the shadow cast by the divine personality(1.6.1). Mortals view personality from the finite toward the infinite, but God’s perspective moves from the infinite to the finite(1.6.3). 하나님은 영원한 권능, 장엄한 현존 및 영광스러운 이상(理想)입니다. 그는 완전한 고유성, 즉 알고 알려질 수 있으며,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고유자입니다. 고유성은 단지 하나님의 속성이 아니며, 우주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인간의 고유성은 신적 고유성이 투영된 그림자입니다. 필사자들은 유한에서 무한을 향한 관점으로 고유성을 바라보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무한에서 유한을 향해 움직입니다.
Humans attain divine union through progressive spiritual communion with God and wholehearted, intelligent conformity to his will(1.7.2). Mind yielded to spirit becomes increasingly spiritual and ultimately will achieve oneness with the divine(1.3.7). 인간들은 하나님과 진보적인 영적 교통과 하나님의 뜻을 향해 전심으로 지적인 순응을 통해서 신적 연합에 이릅니다. 영을 따르는 마음은 점차 영적인 것이 되며, 궁극적으로 신적인 것과 하나됨에 이를 것입니다.
PART IV. The Life and Teachings of Jesus 4부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들
The Bestowal of Michael on Urantia 유란시아에서 미가엘의 증여 1. The Seventh Bestowal Commission
2. The Bestowal Limitations
3. Further Counsel and Advice
4. The Incarnation — Making Two One
The Times of Michael’s Bestowal 미가엘이 증여된 시기 1. The Occident of the First Century After Christ
2. The Jewish People
3. Among the Gentiles
4. Gentile Philosophy
(1) The Epicurean (2) The Stoic (3) The Cynic (4) The Skeptic 5. The Gentile Religions
The mystery religions 6. The Hebrew Religion
7. Jews and Gentiles
8. Previous Written Records
(1) The Gospel by Mark
(2) The Gospel of Matthew (3) The Gospel by Luke
(4) The Gospel of John Acknowledgment
Birth and Infancy of Jesus 예수님의 탄생과 유아(幼兒)기 1. Joseph and Mary
2. Gabriel Appears to Elizabeth
3. Gabriel’s Announcement to Mary
4. Joseph’s Dream
The “house of David” 5. Jesus’ Earth Parents
6. The Home at Nazareth
7. The Trip to Bethlehem
8. The Birth of Jesus
The legend of the shepherds The three priests from Ur The “Star of Bethlehem” 9. The Presentation in the Temple
10. Herod Acts
The flight to Egypt
The Early Childhood of Jesus 예수님의 초기 유년(幼年)기 The Sojourn in Egypt 1. Back in Nazareth
Jesus’ fourth year 2. The Fifth Year (2 B.C.)
Child rearing 3. Events of the Sixth Year (1 B.C.)
4. The Seventh Year (A.D. 1)
Material accidents 5. School Days in Nazareth
6. His Eighth Year (A.D. 2)
The Later Childhood of Jesus 예수님의 후기 유년(幼年)기 1. Jesus’ Ninth Year (A.D. 3)
The picture on the floor Climate in Galilee 2. The Tenth Year (A.D. 4)
Jacob the stone mason’s son 3. The Eleventh Year (A.D. 5)
The Scythopolis episode 4. The Twelfth Year (A.D. 6)
Personal morality and group loyalty 5. His Thirteenth Year (A.D. 7)
6. The Journey to Jerusalem
Mary, Martha, and Lazarus
Jesus at Jerusalem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님 1. Jesus Views the Temple
2. Jesus and the Passover
3. Departure of Joseph and Mary
4. First and Second Days in the Temple
5. The Third Day in the Temple
6. The Fourth Day in the Temple
The Two Crucial Years 쓰라린 2 년 1. His Fourteenth Year (A.D. 8)
2. The Death of Joseph
3. The Fifteenth Year (A.D. 9)
Origin of “The Lord’s Prayer” The “Son of Man” Who is the Messiah? 4. First Sermon in the Synagogue
5. The Financial Struggle
The Adolescent Years 청년 시절 1. The Sixteenth Year (A.D. 10)
2. The Seventeenth Year (A.D. 11)
The Zealot episode 3. The Eighteenth Year (A.D. 12)
With James at the Passover Visit of Elizabeth and John Death of Amos 4. The Nineteenth Year (A.D. 13)
Rearing the children 5. Rebecca, the Daughter of Ezra
6. His Twentieth Year (A.D. 14)
Passover visit to Jerusalem
Jesus’ Early Manhood 예수님의 초기 성년(成年)기 1. The Twenty-First Year (A.D. 15)
Growing awareness of divinity With Joseph at the Passover 2. The Twenty-Second Year (A.D. 16)
As a smith at Sepphoris 3. The Twenty-Third Year (A.D. 17)
With Simon at the Passover Jesus meets Stephen 4. The Damascus Episode
5. The Twenty-Fourth Year (A.D. 18)
The Alexandrian proposal 6. The Twenty-Fifth Year (A.D. 19)
With Jude at the Passover “Uncle Joshua tell us a story” 7. The Twenty-Sixth Year (A.D. 20)
James’ marriage Miriam’s marriage James head of the family of Joseph
The Later Adult Life of Jesus 예수님의 후기 성년(成年) 생활 1. The Twenty-Seventh Year (A.D. 21)
Zebedee of Capernaum Jesus the boatbuilder 2. The Twenty-Eighth Year (A.D. 22)
Jesus visits Jerusalem Meeting Gonod and Ganid 3. The Twenty-Ninth Year (A.D. 23)
Purpose of the trip to Rome 4. The Human Jesus
On the Way to Rome 로마로 가는 도중에 1. At Joppa — Discourse on Jonah
Discussion of good and evil 2. At Caesarea
The merchant from Mongolia The Greek worker and the Roman foreman God’s will and man’s will 3. At Alexandria
4. Discourse on Reality
5. On the Island of Crete
6. The Young Man Who Was Afraid
7. At Carthage — Discourse on Time and Space
8. On the Way to Naples and Rome
Ezra, the backslidden Jew
The Sojourn at Rome 로마 체류(滯留) 기간 Influence on thirty-two religious leaders 1. True Values
2. Good and Evil
3. Truth and Faith
4. Personal Ministry
To the Roman senator To the Roman soldier To the speaker at the forum To the poor man, falsely accused 5. Counseling the Rich Man
6. Social Ministry
7. Trips About Rome
The thoughtless pagan “Let’s you and I make a new religion.”
The Return from Rome 로마에서 돌아옴 India’s caste system 인도의 특권계급 제도 1. Mercy and Justice 자비와 정의(正義)
2. Embarking at Tarentum 타렌툼에서 배에 오르심
The man mistreating his wife 아내를 학대하는 남성 3. At Corinth 고린도에서
Crispus, chief ruler of the synagogue 회당장(會堂長) 크리스보 Justus, the merchant 상인(商人) 유스도 The two public women 두 매춘부 4. Personal Work in Corinth 고린도에서 개인적 활동
To the miller 제분업(製粉業)자에게 To the Roman centurion 로마 백부장에게 To the Mithraic leader 미트라(신비주의 계통)교 지도자에게 To the Epicurean teacher 에피크로스(쾌락주의) 학파 교사에게 To the Greek contractor 그리스 건축 도급자에게 To the Roman judge 로마의 법관에게 To the mistress of the Greek inn 그리스 숙박소의 여주인에게 To the Chinese merchant 중국 상인에게 To the traveler from Britain 영국에서 온 여행자에게 To the runaway lad 가출 소년에게 To the condemned criminal 사형수에게 5. At Athens — Discourse on Science 아테네에서 – 과학에 관한 논의
6. At Ephesus — Discourse on the Soul 에베소에서 – 혼에 대한 강론
7. The Sojourn at Cyprus — Discourse on Mind 키프로스에 체류 -마음에 대한 강연
8. At Antioch 안디옥에서
9. In Mesopotamia 메소포타미아에서
The Transition Years 과도기(過渡期) 시절 1. The Thirtieth Year (A.D. 24) 30세 되던 해 (서기 24년)
Return to Nazareth 나사렛으로 돌아오심 Marriage of Simon; marriage of Jude 시몬의 결혼; 유다의 결혼 2. The Caravan Trip to the Caspian 카스피까지 간 대상(隊商카라반) 여행
3. The Urmia Lectures 우르미아 강연
4. Sovereignty — Divine and Human 주권 –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5. Political Sovereignty 정치적 주권
6. Law, Liberty, and Sovereignty 법, 자유 및 주권
7. The Thirty-First Year (A.D. 25) 31세 되던 해 (서기 25년)
Solitary wanderings 단독 여행 8. The Sojourn on Mount Hermon 헤르몬 산에서 체류함
End of the Lucifer Rebellion 루시퍼 반란의 종말 The sovereignty of Nebadon 네바돈의 주권 9. The Time of Waiting 기다리는 시간
Visit with John at Jerusalem 요한과 예루살렘에 들르다 Working in Zebedee’s boatshop 세베대의 선박(船舶)제작소에서 작업
John the Baptist 세례(洗禮) 요한 1. John Becomes a Nazarite 나실인이 된 요한
2. The Death of Zacharias 사가랴의 죽음
3. The Life of a Shepherd 목자의 생활
4. The Death of Elizabeth 엘리자벳의 죽음
5. The Kingdom of God 하나님의 나라
6. John Begins to Preach 요한이 설교를 시작하다
7. John Journeys North 요한이 북쪽으로 여행하다
8. Meeting of Jesus and John 예수님과 요한의 만남
Baptism of Jesus 예수님의 세례 9. Forty Days of Preaching 40일간의 설교
10. John Journeys South 요한이 남쪽으로 여행가다
11. John in Prison 감옥에 갇힌 요한
12. Death of John the Baptist 세례 요한의 죽음
Baptism and the Forty Days 세례와 40일 1. Concepts of the Expected Messiah 기대하던 메시아 개념들
2. The Baptism of Jesus 예수님의 세례
3. The Forty Days 40일
Conference with Gabriel 가브리엘과 회담 Completion of universe sovereignty 우주 주권의 완성 4. Plans for Public Work 공(公)사역 계획
The Father’s way 아버지의 길 5. The First Great Decision 첫 번째 중대한 결정
Personalized Adjuster in command 고유성화 조율자 사령관 Insensitivity of Adjuster to time 시간에 대한 조율자의 불감(不感)성 6. The Second Decision 두 번째 결정
The path of normal earthly existence 지상 존재의 정상적 경로 7. The Third Decision 세 번째 결정
Obedience to natural law 자연법칙을 준수함 8. The Fourth Decision 네 번째 결정
Refusal to compromise with evil 악과 타협 거부 9. The Fifth Decision 다섯 번째 결정
Rejection of David’s throne 다윗의 왕좌 거절 10. The Sixth Decision 여섯 번째 결정
“I will be subject to the will of my Father.” “나는 내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리라.”
Tarrying Time in Galilee 갈릴리에 머무른 기간 1. Choosing the First Four Apostles 첫 번째 네 명의 제자를 택함
Andrew and Peter 안드레와 베드로 James and John 야고보와 요한 2. Choosing Philip and Nathaniel 빌립과 나다니엘을 택함
3. The Visit to Capernaum 가버나움 방문
4. The Wedding at Cana 가나의 결혼식
5. Back in Capernaum 가버나움으로 돌아옴
6. The Events of a Sabbath Day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들
7. Four Months of Training 4개월의 훈련
8. Sermon on the Kingdom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
Training the Kingdom’s Messengers 하나님 나라 메신저들의 훈련 1. Final Instructions 최종적 지시들
2. Choosing the Six 여섯 명 선택
3. The Call of Matthew and Simon 마태와 시몬을 부르심
Not the righteous but sinners 의인들이 아니라 죄인들 4. The Call of the Twins 쌍둥이 형제를 부르심
5. The Call of Thomas and Judas 도마와 유다를 부르심
6. The Week of Intensive Training 집중적인 훈련의 주간
7. Another Disappointment 또 한번의 실망
8. First Work of the Twelve 12사도들의 첫 번째 활동
9. Five Months of Testing 5개월 동안의 시간
10. Organization of the Twelve 12사도들의 조직
The Twelve Apostles 12 사도들 1. Andrew, the First Chosen 첫 번째로 선택된 안드레
2. Simon Peter 시몬 베드로
3. James Zebedee 야고보 세베대
4. John Zebedee 요한 세베대
5. Philip the Curious 호기심 많은 빌립
6. Honest Nathaniel 정직한 나다니엘
7. Matthew Levi 마태 레위
8. Thomas Didymus 도마 디디머스
9. and 10. James and Judas Alpheus 야고보와 유다 알패오
11. Simon the Zealot 열심당원 시몬
12. Judas Iscariot 가룟 유다
The Ordination of the Twelve 12 사도의 임직(任職) 1. Preliminary Instruction 예비 교육
2. The Ordination 임직
3. The Ordination Sermon 임직 설교
The “Sermon on the Mount” “산상 설교” 4.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5. Fatherly and Brotherly Love 아버지와 형제의 사랑
Happy are the poor in spirit — the humble… 영이 가난하고 겸손한 자는 행복하도다 Happy are they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공의(公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행복하도다 Happy are the meek… 온유한 자는 행복하도다 Happy are the pure in heart… 심정이 청결한 자는 행복하도다 Happy are they who mourn… 애통하는 자는 행복하도다 Happy are the merciful… 긍휼이 여기는 자는 행복하도다 Happy are the peacemakers… 화평하게 하는 자(분쟁 조정자)는 행복하도다 Happy are they who are persecuted… 핍박을 받는 자는 행복하도다 6. The Evening of the Ordination 성직 임명일 저녁
“I look beyond the act…” “나는 행위 너머를 보느니라.” Concerning divorcement 이혼에 관하여 Justice and mercy 정의(正義)와 자비 “They do well — trouble them not.” “그들은 잘하고 있으니 – 그냥 두어라.” 7. The Week Following the Ordination 성직 임명 다음 주간
8. Thursday Afternoon on the Lake 목요일 오후 호수에서
(1) Doing the Father’s Will 아버지의 뜻을 행함 (2) Political attitude 정치적 태도 (3) Social attitude 사회적 태도 (4) Economic attitude 경제적 태도 (5) Personal religion 개인적 종교 9. The Day of Consecration 성직 봉헌(奉獻)일
10. The Evening After the Consecration 봉헌일 저녁
Beginning the Public Work 공(公) 사역의 시작 1. Leaving Galilee 갈릴리를 떠남
2. God’s Law and the Father’s Will 하나님의 율법과 아버지의 뜻
3. The Sojourn at Amathus 아마투스에 머무름
Jesus’ personality 예수님의 고유성 Jesus’ appearance 예수님의 풍모(風貌) 4. Teaching About the Father 아버지에 대한 가르침
Minister to the sick 병든 자를 보살피는 성직자 5. Spiritual Unity 영적 통일
6. Last Week at Amathus 아마투스에서 마지막 주간(週間)
Teherma the Persian 페르시아인 테헤르마 7. At Bethany Beyond Jordan 요단강 건너 베다니에서
Teaching about the kingdom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 Salvation by faith; liberty through truth 신앙으로 얻는 구원; 진리를 통한 해방 8. Working in Jericho 여리고에서 활동함
9. Departing for Jerusalem 예루살렘으로 출발
The Passover at Jerusalem 예루살렘에서 맞이한 유월절(逾越節) Visit to Annas 안나스를 방문함 1. Teaching in the Temple 성전에서 가르침
2. God’s Wrath 하나님의 진노
Jacob of Crete 크레테의 야곱 3. The Concept of God 하나님 개념
Six Hebrew concepts of God 히브리인의 6가지 하나님 개념들 The earlier ten commandments 초기 십계명(十誡命) 4. Flavius and Greek Culture 플라비우스와 그리스(헬라) 문화
5. The Discourse on Assurance 확신에 대한 강연(講演)
6. The Visit with Nicodemus 니고데모와 대화함
7. The Lesson on the Family 가족에 대한 교훈
8. In Southern Judea 남부 유대에서
The camp in Gethsemane Park 겟세마네 공원에서 야영함
Going Through Samaria 사마리아를 통과(通過거쳐 지나감) 1. Preaching at Archelais 아켈라이스에서 전도함
“They made light of our message.” “그들은 우리 메시지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Do you resemble weaklings?” “너희가 약한 자들을 닮았느냐?” 2. Lesson on Self-Mastery 자아-통달(정복)에 대한 교훈
3. Diversion and Relaxation 기분전환과 긴장완화
Three days on Mount Sartaba 사르타바 산에서 보낸 3일 4. The Jews and the Samaritans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5. The Woman of Sychar 시카의 여인
6. The Samaritan Revival 사마리아의 부흥
In camp on Mount Gerizim 게리짐 산에서 야영함 7. Teachings About Prayer and Worship 기도와 경배에 대한 교훈들
At Gilboa and in the Decapolis 길보아와 데카폴리스에서 1. The Gilboa Encampment 길보아 야영
2. The Discourse on Prayer 기도에 대한 강연
3. The Believer’s Prayer 믿는 자의 기도
4. More About Prayer 기도에 대한 추가 교훈
5. Other Forms of Prayer 다른 형태의 기도
Seven prayers from other worlds 다른 세계들의 일곱 기도문 6. Conference with John’s Apostles 요한의 사도들과 개최한 회의(會議)
7. In the Decapolis Cities 데카폴리스의 도시들에서
8. In Camp Near Pella 펠라 근처 야영지에서
“…tell John that he is not forgotten.” “그를 잊지 않고 있다고 요한에게 전하라.” 9. Death of John the Baptist 세례 요한의 죽음
Four Eventful Days at Capernaum 다사(多事)한 가버나움의 4일간 Visit with Ruth 룻의 방문 1. The Draught of Fishes 어획량(漁獲量 잡은 물고기의 량)
2. Afternoon at the Synagogue 오후에 회당에서
Religion is a personal experience 종교는 고유적 체험 The young epileptic 젊은 뇌전증(간질) 환자 Peter’s wife’s mother 베드로 아내의 모친 3. The Healing at Sundown 일몰(日沒해질녁)의 치유
4. The Evening After 그날 저녁 이후
5. Early Sunday Morning 일요일 이른 아침에
First Preaching Tour of Galilee 갈릴리의 첫 전도 여행 1. Preaching at Rimmon 림몬에서 전도함
2. At Jotapata 요타파타에서
Prayer, thanksgiving, and worship 기도, 감사 및 경배 Justice and mercy 정의(正義)와 자비 Prayer and personal effort 기도와 개인적 노력 Ethical prayer 윤리적 기도 3. The Stop at Ramah 라마에 들르심 Religion, science, and philosophy 종교, 과학 및 철학 The assurance of truth 진리의 확신 The visit at Zebulum 스불론 방문 4. The Gospel at Iron 이론에서 복음 전도
Work in the mines 광산(鑛山)에서 일하심 Healing the leprous man 나병환자를 치유하심 5. Back in Cana 가나로 돌아옴
Titus the nobleman 귀인(貴人) 타이투스 6. Nain and the Widow’s Son 나인과 과부의 아들
7. At Endor 엔도르에서
The Interlude Visit to Jerusalem 막간(幕間)의 예루살렘 방문 1. The Centurion’s Servant 백부장의 하인
2. The Journey to Jerusalem 예루살렘 여행
Separation from John’s apostles 요한의 사도들과 분리 3. At the Pool of Bethesda 베데스다 물웅덩이에서
4. The Rule of Living 생활규칙
Nathaniel’s question about the golden rule 황금률(黃金律)에 대한 나다니엘의 질문 5. Visiting Simon the Pharisee 바리새인 시몬을 방문하다
Parable of the moneylender 대금업자(貸金業者)의 비유 Status and progress 신분(身分자격)과 진보(進步) 6. Returning to Capernaum 가버나움으로 돌아옴
The six spies 여섯 첩자들 “The Sabbath was made for man…”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느니라… “ 7. Back in Capernaum 가버나움으로 되돌아옴
8. The Feast of Spiritual Goodness 영적 선(善)의 잔치
Training Evangelists at Bethsaida 벳새다에서 전도자들 훈련 1. A New School of the Prophets 새 선지자들 학교
2. The Bethsaida Hospital 벳새다 병원
3. The Father’s Business 아버지의 사업
4. Evil, Sin, and Iniquity 악(惡), 죄(罪) 및 사악(肆惡)
5. The Purpose of Affliction 고통의 목적
6. The Misunderstanding of Suffering — Discourse on Job 고통에 대한 오해─욥에 대한 강연
7. The Man with the Withered Hand 손 마른 사람
8. Last Week at Bethsaida 벳새다에서 마지막 주간
Kirmeth of Bagdad 바그다드의 커르메스 9. Healing the Paralytic 중풍병자의 치유
Baptism of three of the spies 세 첩자들의 세례
The Second Preaching Tour 두 번째 전도 여행 David’s intelligence organization 다윗의 정보 조직체 1. The Widespread Fame of Jesus 널리 퍼진 예수님의 명성
The healing phenomena 치유 현상 2. Attitude of the People 사람들의 태도
Two mistakes of early Christianity 초기 기독교의 2가지 실수 Jesus’ fame as a healer 치유자 예수님의 명성 His recognition of the equality of women 여성에 대한 예수님의 동등성 인식 Charm of his personality 매력있는 예수님의 고유성 3. Hostility of the Religious Leaders 종교 지도자들의 적개심
4. Progress of the Preaching Tour 전도 여행의 진전
Comments on anger 분노에 대한 논평 Concerning well-balanced characters 잘 균형 잡힌 성품에 관하여 5. Lesson Regarding Contentment 만족에 대한 교훈
6. The “Fear of the Lord” “주(主)를 두려워함”
7. Returning to Bethsaida 벳새다로 돌아옴
The Third Preaching Tour 세 번째 전도 여행 1. The Women’s Evangelistic Corps 여전도단(女傳道團)
2. The Stop at Magdala 막달라에 잠시 들르다
3. Sabbath at Tiberias 티베리아스에서 맞은 안식일
Discourse on “Magic and Superstition” “마술과 미신”에 대한 강연 4. Sending the Apostles Out Two and Two 사도들을 둘씩 파송함
5. What Must I Do to Be Saved?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는지요?
6. The Evening Lessons 저녁 수업
7. The Sojourn at Nazareth 나사렛에 머무름
8. The Sabbath Service 안식일 예배
9. The Nazareth Rejection 나사렛의 배척
Tarrying and Teaching by the Seaside 바닷가에 머물러 가르침 1. The Parable of the Sower 씨 뿌리는 자의 비유
2. Interpretation of the Parable 비유의 해석
3. More About Parables 비유에 대한 추가 정보
4. More Parables by the Sea 해변의 더 많은 비유들
5. The Visit to Kheresa 케레사를 방문하다
The storm on the lake 호수의 폭풍우 6. The Kheresa Lunatic 케레사의 미치광이
Events Leading up to the Capernaum Crisis 가버나움 위기로 이끈 사건들 Veronica of Caesarea-Philippi 케사리아-필립피의 베로니카 1. At Jairus’s House 야이러스의 집에서
2. Feeding the Five Thousand 5,000명을 먹이다
3. The King-Making Episode 왕-추대 일화(逸話)
4. Simon Peter’s Night Vision 시몬 베드로의 밤 환상
5. Back in Bethsaida 벳새다로 돌아옴
6. At Gennesaret 게네사렛에서
More about the parable of the sower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한 추가 7. At Jerusalem 예루살렘에서
The Crisis at Capernaum 가버나움에서 겪은 위기 1. The Setting of the Stage 무대의 배경
2. The Epochal Sermon 획기적 설교
“I am the bread of life.” “나는 생명의 빵이라.” 3. The After Meeting 모임 후
4. Last Words in the Synagogue 회당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
The boy possessed by the evil spirit 악령 들린 소년 “How can Satan cast out Satan?”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5. The Saturday Evening 토요일 밤
Desertion of the halfhearted followers 성의 없는 추종자들의 저버림
Last Days at Capernaum 가버나움에서 지낸 마지막 며칠 1. A Week of Counsel 한 주간의 회의
2. A Week of Rest 한 주간의 휴식
Closing of the synagogues 회당들의 폐쇄 3. The Second Tiberias Conference 두 번째 티베리아스 회의
4. Saturday Night in Capernaum 토요일 밤 가버나움에서
“What shall we do with Jesus?”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할 것인가?” 5. The Eventful Sunday Morning 파란(波瀾) 많은 일요일 아침
6. Jesus’ Family Arrives 예수님의 가족이 도착하다
7. The Hasty Flight 황급(遑急)한 도피
Fleeing Through Northern Galilee 북(北) 갈릴리를 거쳐 도피함 1. Why Do the Heathen Rage? 왜 이교도(異敎徒)가 분노하는가?
2. The Evangelists in Chorazin 코라진의 전도자들
3. At Caesarea-Philippi 가이사랴-빌립보에서
Truth and creed 진리와 신조(信條) Origin of religious traditions 종교적 전통의 기원 4. On the Way to Phoenicia 페니키아로 가는 길
5. The Discourse on True Religion 참 종교에 대한 강론
6. The Second Discourse on Religion 두 번째 종교 강론
The Sojourn at Tyre and Sidon 티레와 시돈에서 체류(滯留) 1. The Syrian Woman 시리아 여성
2. Teaching in Sidon 시돈에서 가르침
“This world is only a bridge…” “이 세상은 다리에 불과하니라…” 3. The Journey up the Coast 해안을 올라가며 여행함
4. At Tyre 티레에서
5. Jesus’ Teaching at Tyre 티레에서 예수님의 가르침
Parable of the foolish carpenter 어리석은 목수의 비유 Temptation and human nature 유혹과 인간 본성 The essentials of material success 물질적 성공의 필수 요소 Spiritual living and self-respect 영적 생활과 자존심 Ideals and ideas 이상(理想)들과 생각들 Tact, charm, and wisdom 기지, 매력과 현명함 6. The Return from Phoenicia 페니키아에서 돌아옴
Attitude of the Jewish leaders 유대 지도자들의 태도
At Caesarea-Philippi 케자리아(가이사랴)-필립피(빌립보)에서 Jesus attempts to see his family 예수께서 자기 가족을 만나려고 시도하다 1. The Temple-Tax Collector 성전-세(稅) 징수원
“The fish with a shekel in his mouth.” “한 세겔을 입에 물고 있는 생선” 2. At Bethsaida-Julias 벳새다-율리아스에서
3. Peter’s Confession 베드로의 고백
“Who do men say that I am?”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4. The Talk About the Kingdom 하느님 나라에 대한 담화(談話)
5. The New Concept 새로운 개념
6. The Next Afternoon 다음 날 오후
The four stages of Jesus’ life 예수 생애의 4단계 New authoritative pronouncements 새로운 권위적 선언 7. Andrew’s Conference 안드레의 회의(會議)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변모(變貌)의 산 1. The Transfiguration 변모(變貌)
2. Coming Down the Mountain 산에서 내려옴
3. Meaning of the Transfiguration 변모(變貌)의 의미(意味)
4. The Epileptic Boy 뇌전증(간질癎疾) 소년
James of Safed 사펫의 야고보 5. Jesus Heals the Boy 예수께서 소년을 고치시다
“Lord I believe…help my unbelief.” “주여, 제가 믿습니다. … 제 불신앙을 도우소서.” 6. In Celsus’ Garden 셀수스의 정원에서
7. Peter’s Protest 베드로의 항의(抗議)
8. At Peter’s House 베드로의 집에서
The Decapolis Tour 데카폴리스 여행 1. The Sermon on Forgiveness 용서에 대한 설교
“How often shall my brother sin against me?” “내 형제가 내게 몇 번 죄를 범할까요?” Parable of the reckoning with the stewards 청지기들의 결산 비유 Dangers of personal judgment 개인적 판결의 위험성 2. The Strange Preacher 별난 설교자
3. Instruction for Teachers and Believers 교사(敎師)와 신자(信者) 교육
4. The Talk with Nathaniel 나다니엘과의 대화
“What is the truth about the scriptures?” “무엇이 성서에 대한 진실입니까?” 5. The Positive Nature of Jesus’ Religion 예수 종교의 능동적 본질
“…carry the pack a second mile.” “…2마일이나 짐을 지라.” 6. The Return to Magadan 마가단으로 복귀
Rodan of Alexandria 알렉산드리아의 로단 1. Rodan’s Greek Philosophy 로단의 그리스 철학
The three drives of life 삶의 3가지 욕구 Problem solving and worshipful meditation 문제 해결과 경배 묵상 Prejudice and the recognition of truth 선입관과 진리 인식 2. The Art of Living 생활의 기술
Socializing value of friendship 우정의 사회화 가치 The great value of marriage 결혼의 위대한 가치 3. The Lures of Maturity 성숙의 매력
4. The Balance of Maturity 성숙의 균형
Essentials of temporal life 현세 생활의 본질 Factors of material success 물질적 성공의 요소 The meaning of failure 실패의 의미 5. The Religion of the Ideal 이상(理想)적 종교
What is religion? 종교란 무엇인가? The idea of God and the ideal of God 하느님의 개념과 하느님의 이상(理想) The Father is the final value 아버지는 최종적 가치 “But are we willing to pay the price…?” “그러나 우리는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까?”
Further Discussions with Rodan 로단과 추가적 토론 1. The Personality of God 하느님의 고유성
Nathaniel’s five points 나다니엘의 5가지 요점 2. The Divine Nature of Jesus 예수의 신적 본성
Discourse by Nathaniel and Thomas 나다니엘과 도마의 견해 3. Jesus’ Human and Divine Minds 예수의 인간적 및 신적 마음
The midwayers’ views 중도자들의 견해
At the Feast of Tabernacles 장막절(帳幕節)에 “Master…bid fire come down from heaven…” “주여, 하늘에서 불을 내리도록 명하소서.” 1. The Dangers of the Visit to Jerusalem 위험한 예루살렘 방문
2. The First Temple Talk 첫 번째 성전 말씀
Eber the officer of the Sanhedrin 이버, 산헤드린의 관리 3. The Woman Taken in Adultery 간통(姦通)으로 잡혀 온 여성
4. The Feast of Tabernacles 장막절(帳幕節)
5. Sermon on the Light of the World 세상의 빛에 대한 설교
6. Discourse on the Water of Life 생명의 물에 대한 강연
7. The Discourse on Spiritual Freedom 영적 자유에 대한 강연
8. The Visit with Martha and Mary 마르다 및 마리아와 대화
9. At Bethlehem with Abner 베들레헴에서 아브너와 함께
Ordination of the Seventy at Magadan 마가단에서 70인 임직(任職) 1. Ordination of the Seventy
The harvest is plenteous but the laborers are few 2. The Rich Young Man and Others
Riches and the love of wealth 3. The Discussion About Wealth
Parable of the laborers in the vineyard 4. Farewell to the Seventy
Jesus’ instructions Peter’s ordination sermon 5. Moving the Camp to Pella
6. The Return of the Seventy
7. Preparation for the Last Mission
At the Feast of Dedication 봉헌(奉獻)절에 1. Story of the Good Samaritan
2. At Jerusalem
3. Healing the Blind Beggar
4. Josiah Before the Sanhedrin
5. Teaching in Solomon’s Porch
The Perean Mission Begins 페레아 사명 시작 1. At the Pella Camp
2. Sermon on the Good Shepherd
3. Sabbath Sermon at Pella
“Beware of the leaven of the Pharisees…” “…the very hairs of your head are numbered” 4. Dividing the Inheritance
Parable of the foolish rich man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will your heart be also.” “What shall it profit if you gain the whole world…?” 5. Talks to the Apostles on Wealth
“Consider the lilies, how they grow…” 6. Answer to Peter’s Question
Last Visit to Northern Perea 마지막 북(北) 페레아 방문 1. The Pharisees at Ragaba
Ceremonial hand washing 2. The Ten Lepers
3. The Sermon at Gerasa
The straight and narrow way Many who are first will be last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4. Teaching About Accidents
5. The Congregation at Philadelphia
The later ministry and death of Abner
The Visit to Philadelphia 필라델피아 방문 1. Breakfast with the Pharisees
Healing the believer “…sit not down in the chief seat…” 2. Parable of the Great Supper
3. The Woman with the Spirit of Infirmity
4. The Message from Bethany
5. On the Way to Bethany
The Pharisee and the publican Teaching about marriage 6. Blessing the Little Children
Beauty as an influence to worship 7. The Talk About Angels
The Resurrection of Lazarus 나사로의 부활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1. At the Tomb of Lazarus
2. The Resurrection of Lazarus
3. Meeting of the Sanhedrin
“It is better that one man die…” 4. The Answer to Prayer
5. What Became of Lazarus
Last Teaching at Pella 펠라에서 마지막 가르침 The Sanhedrin’s charges against Jesus 1. Parable of the Lost Son
2. Parable of the Shrewd Steward
3. The Rich Man and the Beggar
4. The Father and His Kingdom
Jesus lived a revelation of God
Elohim and Yahweh
The Kingdom of Heaven 하늘나라 1. Concepts of the Kingdom of Heaven
2. Jesus’ Concept of the Kingdom
Sin and forgiveness 3. In Relation to Righteousness
4. Jesus’ Teaching About the Kingdom
5. Later Ideas of the Kingdom
Social brotherhood and spiritual brotherhood Another and greater John the Baptist Christianity and the Jesus gospel
On the Way to Jerusalem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promise me that these my sons shall have honor…” 1. The Departure from Pella
David Zebedee’s later life Antioch and Philadelphia 2. On Counting the Cost
3. The Perean Tour
Farewell to Abner 4. Teaching at Livias
Peter and Simon and the 100 swords Warning of the friendly Pharisees 5. The Blind Man at Jericho
6. The Visit to Zaccheus
7. “As Jesus Passed By”
8. Parable of the Pounds
Nathaniel’s interpretation of the parable
Going into Jerusalem 예루살렘으로 들어감 1. Sabbath at Bethany
Mary anoints Jesus’ feet Jesus rebukes Judas 2. Sunday Morning with the Apostles
3. The Start for Jerusalem
4. Visiting About the Temple
The widow’s mite 5. The Apostles’ Attitude
Monday in Jerusalem 월요일 예루살렘에서 1. Cleansing the Temple
2. Challenging the Master’s Authority
“The baptism of John, whence was it?” 3. Parable of the Two Sons
4. Parable of the Absent Landlord
The stone which the builders rejected 5. Parable of the Marriage Feast
“Destroy this temple and …I will raise it up.”
Tuesday Morning in the Temple 화요일 아침 성전에서 Individual salutations to the twelve 1. Divine Forgiveness
2. Questions by the Jewish Rulers
Is it lawful to give tribute to Caesar? 3. The Sadducees and the Resurrection
4. The Great Commandment
The Deliverer, whose son is he? 5. The Inquiring Greeks
“…except a grain of wheat falls into the earth and dies…” “…if I be lifted up…in your lives…”
The Last Temple Discourse 마지막 성전 강화(講話) 1. The Discourse
“Generation after generation have we sent our prophets…” “…he who would be greatest among you…” “Woe upon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you…cleanse the outside of the cup…” “And now I take leave of you.” 2. Status of Individual Jews
3. The Fateful Sanhedrin Meeting
4. The Situation in Jerusalem
Judas’ final decision
Tuesday Evening on Mount Olivet 화요일 저녁 올리브 산에서 1.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2. The Master’s Second Coming
The account in the Matthew Gospel 3. Later Discussion at the Camp
Parable of the talents “Carry on until I come.” Comments on the growth of living truth 4. The Return of Michael
Wednesday, the Rest Day 수요일, 휴일(休日) 1. One Day Alone with God
John Mark and the lunch basket 2. Early Home Life
3. The Day at Camp
4. Judas and the Chief Priests
5. The Last Social Hour
Beware of the support of the multitude
Last Day at the Camp 야영지에서 마지막 날 1. Discourse on Sonship and Citizenship
Learn to be faithful even in prosperity Tempt not the angels of your supervision… 2. After the Noontime Meal
David relieves Judas of the “bag” Arrangements for the Last Supper 3. On the Way to the Supper
The Last Supper 최후의 만찬(晩餐) 1. The Desire for Preference
2. Beginning the Supper
3. Washing the Apostles’ Feet
4. Last Words to the Betrayer
5. Establishing the Remembrance Supper
The Farewell Discourse 고별(告別) 강화(講話) 1. The New Commandment
“…love one another even as I have loved you.” 2. The Vine and the Branches
3. Enmity of the World
“Let not your hearts be troubled.” “Master, show us the Father…” 4. The Promised Helper
5. The Spirit of Truth
Comments on the golden rule 6. The Necessity for Leaving
Final Admonitions and Warnings 마지막 훈계와 경고 1. Last Words of Comfort
“I give each of you all you will receive.” “Let not your heart be troubled.” 2. Farewell Personal Admonitions
In Gethsemane 겟세마네에서 1. The Last Group Prayer
Jesus’ enlargement of the revelation of God’s name 2. Last Hour Before the Betrayal
Dispatching the runner to Abner David Zebedee’s farewell 3. Alone in Gethsemane
The spirit is willing but the flesh is weak
The Betrayal and Arrest of Jesus 배반과 예수님의 체포 1. The Father’s Will
2. Judas in the City
3. The Master’s Arrest
4. Discussion at the Olive Press
5. On the Way to the High Priest’s Palace
Before the Sanhedrin Court 산헤드린 법정 앞에서 1. Examination by Annas
2. Peter in the Courtyard
3. Before the Court of Sanhedrists
4. The Hour of Humiliation
A new revelation of man to God 5. The Second Meeting of the Court
The Trial Before Pilate 빌라도 앞에서 받은 재판 1. Pontius Pilate
2. Jesus Appears Before Pilate
The written charges of the Sanhedrist tribunal 3. The Private Examination by Pilate
4. Jesus Before Herod
5. Jesus Returns to Pilate
6. Pilate’s Last Appeal
The scourging of Jesus “Behold the man!” 7. Pilate’s Last Interview
8. Pilate’s Tragic Surrender
Just Before the Crucifixion 십자가에 못박히기 직전 Jesus’ family at Bethany 1. The End of Judas Iscariot
The thirty pieces of silver 2. The Master’s Attitude
“Pilate on trial before Jesus.” “Behold God and man!” 3. The Dependable David Zebedee
4. Preparation for the Crucifixion
5. Jesus’ Death in Relation to the Passover
The Crucifixion 십자가에 못박힘 1. On the Way to Golgotha
“Daughters of Jerusalem, weep not for me…” Simon from Cyrene 2. The Crucifixion
3. Those Who Saw the Crucifixion
4. The Thief on the Cross
Jesus’ charge to John 5. Last Hour on the Cross
6. After the Crucifixion
The Time of the Tomb 무덤에 있던 시간 Joseph and Nicodemus before Pilate 1. The Burial of Jesus
2. Safeguarding the Tomb
3. During the Sabbath Day
What did Jesus commend to the Father’s hands? Status of the personality of Jesus 4. Meaning of the Death on the Cross
5. Lessons from the Cross
The Resurrection 부활 1. The Morontia Transit 모론시아 전환
2. The Material Body of Jesus 예수님의 물질 몸
3. The Dispensational Resurrection 섭리시대적 부활
Departure of the Personalized Adjuster 고유성화 조율자의 출발 4. Discovery of the Empty Tomb 빈 무덤의 발견
The five women 다섯 여성들 Jesus appears to Mary Magdalene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 5. Peter and John at the Tomb 무덤에 도착한 베드로와 요한
Second appearance — to Mary Magdalene 막달라 마리아에게 두 번째 출현하심
Morontia Appearances of Jesus 예수님의 모론시아 출현 1. Heralds of the Resurrection 부활의 전령(傳令포고)들
2. Jesus’ Appearance at Bethany 예수님의 베다니 출현
Appearance to his brother James 형제 야고보에게 출현 Appearance to his earthly family 지상 가족들에게 출현 3. At the Home of Joseph 요셉의 집에서
4. Appearance to the Greeks 그리스인들에게 나타나심
5. The Walk with Two Brothers 두 형제와 함께 걸으심
Appearances to the Apostles and Other Leaders 사도들과 다른 지도자에게 출현 Reactions of the individual apostles 사도 개인들의 반응들
1. The Appearance to Peter 베드로에게 출현
2. First Appearance to the Apostles 사도들에게 첫 출현하심
3. With the Morontia Creatures 모론시아 창조물들과 함께
Stages of morontia progression 모론시아 진보의 단계들 4. The Tenth Appearance (At Philadelphia) 필라델피아에서 10번째 출현
5. Second Appearance to the Apostles 사도들에게 두 번째 출현
“Blessed are those in the ages to come…” “…다가오는 시대의 사람들이 복되도다.” 6. The Alexandrian Appearance 알렉산드리아에 출현
Appearances in Galilee 갈릴리에 출현 1. Appearance by the Lake 호숫가에 출현
“Lads, have you caught anything?” “여보시오 친구들, 무엇을 좀 잡았소?” 2. Visiting with the Apostles Two and Two 사도들을 둘 씩 방문함
3. On the Mount of Ordination 임명하신 산에서
4. The Lakeside Gathering 호숫가에서 모임
Final Appearances and Ascension 마지막 출현과 상승 The sixteenth appearance (courtyard of Nicodemus) 16번째 출현(니고데모의 안뜰) 1. The Appearance at Sychar 시카에 출현
2. The Phoenician Appearance 페니키아에 출현
3. Last Appearance in Jerusalem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출현
4. Causes of Judas’s Downfall 유다 패망의 원인들
5. The Master’s Ascension 주님의 승천(昇天)
6. Peter Calls a Meeting 베드로가 모임을 소집하다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진리의 영 증여(贈與)
The new gospel about Jesus 예수님에 대한 새 복음
1. The Pentecost Sermon 오순절 설교
2. The Significance of Pentecost 오순절의 의미
The mission of the Spirit of Truth 진리의 영의 사명 Man’s threefold spiritual endowment 사람의 3중적 영적 증여 The seven higher spiritual influences 더 높은 7가지 영적 영향 3. What Happened at Pentecost 오순절에 발생한 일
4. Beginnings of the Christian Church 기독 교회의 시작
After Pentecost 오순절 이후 Reasons for the triumph of Christianity in the Occident 서양에서 기독교가 승리한 이유들 Early Christian compromises 초기 기독교의 타협들 1. Influence of the Greeks 그리스인(人)들의 영향
2. The Roman Influence 로마의 영향
3. Under the Roman Empire 로마 제국 아래에서
4. The European Dark Ages 유럽의 암흑기
5. The Modern Problem 현대의 문제점
6. Materialism 물질주의
7. The Vulnerability of Materialism 물질주의 취약성
8. Secular Totalitarianism 세속적 전체주의
9. Christianity’s Problem 기독교의 문제
10. The Future 앞 날
The Faith of Jesus 예수님의 신앙 Jesus’ living faith in God 예수님의 살아있는 하나님 신앙 “Seek first the kingdom of heaven.” “먼저 하늘나라를 찾으라” “Why do you call me good?”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일컫느냐?” What prayer meant to Jesus 예수님의 기도 해석 Jesus’ childlike faith in God 어린애 같은 예수님의 하나님 신앙 1. Jesus — The Man 예수 – 인간
2. The Religion of Jesus 예수님의 종교
The religion about Jesus 예수님에 대한 종교 Religion as a personal experience 종교는 개인적 체험 3. The Supremacy of Religion 종교의 최극위
Fact, idea, and relation 사실, 관념 및 관계 Reason, wisdom, and faith 이성, 지혜 및 신앙 Thing, meaning, and value 사물, 의미 및 가치 Unless a divine lover lived in man… 신적 사랑이 사람 안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Morality and religion 도덕성과 종교 The Father is living love… 아버지는 살아있는 사랑이십니다….
The Origin of Urantia 유란시아의 기원 1. The Andronover Nebula
2. The Primary Nebular Stage
3. The Secondary Nebular Stage
4. Tertiary and Quartan Stages
Origin of the Sun 5. Origin of Monmatia — The Urantia Solar System
Retrograde motion 6. The Solar System Stage
The Planet-Forming Era Tidal friction Gravity-tidal explosions 7. The Meteoric Era
The Volcanic Age The Primitive Planetary Atmosphere 8. Crustal Stabilization
The Age of Earthquakes The World Ocean and the First Continent
Life Establishment on Urantia 유란시아의 생명 정착(定着) 1. Physical-Life Prerequisites
2. The Urantia Atmosphere
3. Spatial Environment
4. The Life-Dawn Era
5. The Continental Drift
6. The Transition Period
7. The Geologic History Book
The Marine-Life Era on Urantia 유란시아의 해양-생명 시대 1. Early Marine Life in the Shallow Seas
The Trilobite Age 2. The First Continental Flood Stage
The Invertebrate-Animal Age 3. The Second Great Flood Stage
The Coral Period The Brachiopod Age 4. The Great Land-Emergence Stage
The Vegetative Land-Life Period The Age of Fishes 5. The Crustal-Shifting Stage
The Fern-Forest Carboniferous Period The Age of Frogs 6. The Climatic Transition Stage
The Seed-Plant Period The Age of Biologic Tribulation
Urantia During the Early Land-Life Era 초기 육지-생명 시대의 유란시아 1. The Early Reptilian Age
2. The Later Reptilian Age
3. The Cretaceous Stage
The Flowering-Plant Period The Age of Birds 4. The End of the Chalk Period
The Mammalian Era on Urantia 유란시아의 포유동물 시대 1. The New Continental Land Stage
The Age of Early Mammals 2. The Recent Flood Stage
The Age of Advanced Mammals 3. The Modern Mountain Stage
Age of the Elephant and the Horse 4. The Recent Continental-Elevation Stage
The Last Great Mammalian Migration 5. The Early Ice Age
6. Primitive Man in the Ice Age
7. The Continuing Ice Age
The Dawn Races of Early Man 여명의 초기 인간 종족들 1. The Early Lemur Types
2. The Dawn Mammals
3. The Mid-Mammals
Origin of the Simian tribes 4. The Primates
5. The First Human Beings
6. Evolution of the Human Mind
7. Recognition as an Inhabited World
The First Human Family 첫 인간 가족 1. Andon and Fonta 안돈과 폰타
2. The Flight of the Twins 쌍둥이의 도피
3. Andon’s Family 안돈의 가족
4. The Andonic Clans 안돈의 씨족들
5. Dispersion of the Andonites 안돈-사람들의 분산
6. Onagar — The First Truth Teacher 오나가-첫 번째 진리를 가르친 선생
7. The Survival of Andon and Fonta 안돈과 폰타의 생존
The Evolutionary Races of Color 진화적 유색 인종들 1. The Andonic Aborigines 안돈의 원주민들
2. The Foxhall Peoples 폭스홀 민족
3. The Badonan Tribes 바도난 부족들
4. The Neanderthal Races 네안데르탈인들
5. Origin of the Colored Races 유색 인종들의 기원
6. The Six Sangik Races of Urantia 유란시아의 여섯 산긱 인종
(1) The red man 홍인 (2) The orange man 주황인 (3) The yellow man 황인 (4) The green man 녹인 (5) The blue man 청인 (6) The indigo race 남인종 Purpose of the six races 여섯 인종들의 목적 7. Dispersion of the Colored Races 유색 인종들의 분산
The Overcontrol of Evolution 진화의 전반적-조정 1. Life Carrier Functions 생명 운반자의 기능
(1) The physical level of electrochemistry 전기화학의 물리적 수준 (2) The usual mid-phase of quasi-morontial existence 준(準)-모론시아 실존의 통상의 중간-위상
(3) The advanced semispiritual level 진보된 반(半)영적 수준
2. The Evolutionary Panorama 진화의 개관
3. The Fostering of Evolution 진화의 육성
4. The Urantia Adventure 유란시아 모험
5. Life-Evolution Vicissitudes 생명-진화 변천
6. Evolutionary Techniques of Life 생명의 진화적 기법
7. Evolutionary Mind Levels 진화하는 마음 수준
Mechanical-nonteachable mind 기계적이며-가르칠 수 없는 마음
Nonmechanical experiencing mind 비(非)기계적이며 체험하는 마음 8. Evolution in Time and Space 시간과 공간에 있는 진화
The Planetary Prince of Urantia 유란시아의 행성 왕자 1. Prince Caligastia 칼리가스티아 왕자
2. The Prince’s Staff 왕자의 참모진
3. Dalamatia — The City of the Prince 달라마시아─왕자의 도시
4. Early Days of the One Hundred 100인의 초기 시절
5. Organization of the One Hundred 100인의 조직
(1) The council on food and material welfare 식량과 물질 복지 위원회 (2) The board of animal domestication and utilization 동물 길들이기와 활용(活用)회(會) (3) The advisers regarding the conquest of predatory animals 육식동물 정복에 대한 고문(顧問)들 (4) The faculty on dissemination and conservation of knowledge 지식 보급과 보존 교직원 (5) The commission on industry and trade 산업과 무역 위원회 (6) The college of revealed religion 계시된 종교의 대학 (7) The guardians of health and life 건강과 생명의 수호자들 (8) The planetary council on art and science 예술과 과학 담당 행성 위원회 (9) The governors of advanced tribal relations 증진된 부족 관계의 통치자들 (10) The supreme court of tribal co-ordination and racial co-operation 부족의 통합-협동 및 종족의 협동 담당하는 대법원 6. The Prince’s Reign 왕자의 통치
7. Life in Dalamatia 달라마시아 생활
8. Misfortunes of Caligastia 칼리가스티아의 불행
The Planetary Rebellion 행성의 반란 1. The Caligastia Betrayal 칼리가스티아의 배반 2. The Outbreak of Rebellion 반란의 발발(勃發)
3. The Seven Crucial Years 쓰라린 7년
4. The Caligastia One Hundred After Rebellion 반란 이후 칼리가스티아 100인 5. Immediate Results of Rebellion 즉각적 반란의 결과들
6. Van — The Steadfast 반 – 굳건한 자
7. Remote Repercussions of Sin 죄의 희미한 반향(反響)들
8. The Human Hero of the Rebellion 반란 중의 인간 영웅
The Dawn of Civilization 문명의 여명 1. Protective Socialization 보호적 사회화(社會化)
2. Factors in Social Progression 사회적 진보의 요소들
3. Socializing Influence of Ghost Fear 유령(幽靈) 공포의 사회화적 영향
4. Evolution of the Mores 사회관습의 진화
5. Land Techniques — Maintenance Arts 토지 기법─유지 기술들
(1) The collection stage 채집 단계 (2) The hunting stage 수렵 단계 (3) The pastoral stage 목축 단계 (4) The agricultural stage 경작 단계 6. Evolution of Culture 문화의 진화
The land-man ratio 토지-인간 비율
Primitive Human Institutions 원시적 인간 제도 1. Basic Human Institutions 기본적 인간 제도들
(1) Institutions of self-maintenance 자아-유지의 제도들 (2) Institutions of self-perpetuation 자아-영속의 제도들 (3) Institutions of self-gratification 자아-충족(充足)의 제도들 2. The Dawn of Industry 근면(勤勉)의 여명(黎明)
3. The Specialization of Labor 노동의 전문화
4. The Beginnings of Trade 매매(무역)의 시작
5. The Beginnings of Capital 자본(資本)의 시작
6. Fire in Relation to Civilization 불과 문명의 관계
7. The Utilization of Animals 동물의 이용
8. Slavery as a Factor in Civilization 문명의 요소인 노예 제도
9. Private Property 사유 재산
The Evolution of Human Government 인간 정부(政府)의 진화(進化) 1. The Genesis of War전쟁의 발생
2. The Social Value of War 전쟁의 사회적 가치
Modern industrialism versus militarism 현대 산업주의 대(對) 군국주의 3. Early Human Associations 초기의 인간 연합
4. Clans and Tribes 씨족과 부족
5. The Beginnings of Government 정부(政府)의 시작
6. Monarchial Government 군주(君主)의 정부(政府)
7. Primitive Clubs and Secret Societies 원시적 동호회(同好會)와 비밀 단체(團體)들
8. Social Classes 사회 계급(階級)
9. Human Rights 인간의 권리(權利)
10. Evolution of Justice 정의(正義)의 진화
11. Laws and Courts 법률(法律)과 법정(法廷)
12. Allocation of Civil Authority 시민(市民) 권한(權限)의 분배(分配)
Development of the State 국가의 발전 1. The Embryonic State 초기(初期미발달) 국가
2. The Evolution of Representative Government 대의정치(代議政治)의 진화
3. The Ideals of Statehood 국가의 이상(理想)들
4. Progressive Civilization 진보적 문명
5. The Evolution of Competition 경쟁의 진화
6. The Profit Motive 이익(利益) 동기(動機)
7. Education 교육
8. The Character of Statehood 국가의 특성
Government on a Neighboring Planet 이웃 행성의 정부(政府) 1. The Continental Nation 대륙 국가
2. Political Organization 정치적 조직
3. The Home Life 가정 생활
4. The Educational System 교육 체계
5. Industrial Organization 산업 조직
6. Old-Age Insurance 노년(老年) 보험
7. Taxation 과세(課稅)
8. The Special Colleges 특수 대학들
9. The Plan of Universal Suffrage 일반 선거권의 계획
10. Dealing with Crime 범죄 정책
11. Military Preparedness 군비(軍備군사 대비)
12. The Other Nations 다른 나라들
The Garden of Eden 에덴 동산 Tabamantia’s inspection 타바만시아의 시찰
1. The Nodites and the Amadonites 놋-사람들과 아마돈-사람들
2. Planning for the Garden 동산을 위한 계획
3. The Garden Site 동산의 위치
4. Establishing the Garden 동산의 건립
5. The Garden Home 동산 가정(家庭)
6. The Tree of Life 생명나무
7. The Fate of Eden 에덴의 숙명(宿命)
Adam and Eve 아담과 이브 1. Adam and Eve on Jerusem 예루셈의 아담과 이브
2. Arrival of Adam and Eve 아담과 이브의 도착
3. Adam and Eve Learn About the Planet 아담과 이브가 행성에 대해 배우다
4. The First Upheaval 첫 격변(激變)
5. Adam’s Administration 아담의 경영
6. Home Life of Adam and Eve 아담과 이브의 가정생활
7. Life in the Garden 동산의 생활
8. The Legend of Creation 창조 설화
The Default of Adam and Eve 아담과 이브의 의무-불이행(不履行) 1. The Urantia Problem 유란시아 문제
2. Caligastia’s Plot 칼리가스티아의 음모(陰謀)
3. The Temptation of Eve 유혹에 빠진 이브
4. The Realization of Default 의무-불이행(不履行)의 인식
5. Repercussions of Default 의무-불이행(不履行)의 영향
6. Adam and Eve Leave the Garden 아담과 이브가 동산을 떠나다
7. Degradation of Adam and Eve 아담과 이브의 강등(降等)
8. The So-Called Fall of Man 소위(所謂) 사람의 타락
The Second Garden 둘째 동산 1. The Edenites Enter Mesopotamia 에덴-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로 들어가다
2. Cain and Abel 카인과 아벨
3. Life in Mesopotamia 메소포타미아 생활
The Sethite priesthood 셋-사람 사제 4. The Violet Race 보라색 인종
5. Death of Adam and Eve 아담과 이브의 죽음
Michael’s message 미가엘의 메시지 6. Survival of Adam and Eve 아담과 이브의 생존
The Midway Creatures 중도(中途) 창조물들 1. The Primary Midwayers 1차 중도자들
2. The Nodite Race 놋-사람 종족
3. The Tower of Babel 바벨탑
4. Nodite Centers of Civilization 놋-사람들의 문명 중심지들
5. Adamson and Ratta 아담선과 롸타
6. The Secondary Midwayers 2차 중도자들
7. The Rebel Midwayers 반역한 중도자들
8. The United Midwayers 연합한 중도자들
9. The Permanent Citizens of Urantia 유란시아의 영구 시민들
The Violet Race After the Days of Adam 아담 시대 이후 보라 종족 1. Racial and Cultural Distribution 종족과 문화의 분포
2. The Adamites in the Second Garden 둘째 동산의 아담-사람들
3. Early Expansions of the Adamites 아담-사람들의 초기 팽창
4. The Andites 안드-사람들
5. The Andite Migrations 안드-사람들의 이주
6. The Last Andite Dispersions 마지막 안드-사람의 분산
7. The Floods in Mesopotamia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Story of Noah 노아의 이야기 8. The Sumerians — Last of the Andites 수메르인(人)들 – 마지막 안드-사람들
Andite Expansion in the Orient 동양에서 안드인(人) 확장 1. The Andites of Turkestan 투르키스탄의 안드-사람들
2. The Andite Conquest of India 안드-사람들의 인도 정복
3. Dravidian India 드라비다(人)의 인도 정복
4. The Aryan Invasion of India 아리아인(人)의 인도 침입
5. Red Man and Yellow Man 홍(紅)인종과 황(黃)인종
6. Dawn of Chinese Civilization 중국 문명의 여명(黎明)
7. The Andites Enter China 안드-사람들이 중국에 들어가다
8. Later Chinese Civilization 후대의 중국 문명
Andite Expansion in the Occident 서양에서 안드인(人) 확장 1. The Adamites Enter Europe 아담-사람들이 유럽으로 들어가다
2. Climatic and Geologic Changes 기후와 지질(地質) 변화
Flooding of the Mediterranean 지중해의 범람 3. The Cro-Magnoid Blue Man 크로마뇽 청인
4. The Andite Invasions of Europe 안드-사람들의 유럽 침공
5. The Andite Conquest of Northern Europe 안드-사람들의 북유럽 정복
6. The Andites Along the Nile 나일 강변의 안드-사람들
7. Andites of the Mediterranean Isles 지중해 제도의 안드-사람들
8. The Danubian Andonites 다뉴브의 안돈-사람들
9. The Three White Races 세 종류의 백인종
Development of Modern Civilization 현대 문명의 발전 1. The Cradle of Civilization 문명의 요람
2. The Tools of Civilization 문명의 도구
(1) The taming of fire 불 다루기 (2) The domestication of animals 동물 길들이기 (3) The enslavement of captives 포로의 노예삼기 (4) Private property 사유 재산 3. Cities, Manufacture, and Commerce 도시, 제조업 및 상업
4. The Mixed Races 혼합 인종들
(1) The Caucasoid races 코카서스 인종 (2) The Mongoloid races 몽골 인종 (3) The Negroid races 흑인종 5. Cultural Society 문화적 사회
Might and right 힘과 정의(正義) 6. The Maintenance of Civilization 문명의 유지
(1) Natural circumstances 자연적 환경 (2) Capital goods 자본재(資本財) (3) Scientific knowledge 과학적 지식 (4) Human resources 인적(人的) 자원 (5) Effectiveness of material resources 물질 자원의 효율성 (6) Effectiveness of language 언어의 효율성 (7) Effectiveness of mechanical devices 기계 장치의 효율성 (8) Character of torchbearers 문화선구자의 성품 (9) The racial ideals 인종의 이상(理想)들 (10) Co-ordination of specialists 전문가들의 통합-조정 (11) Place-finding devices 구직(求職) 방책 (12) The willingness to co-operate 협력의 자발성 (13) Effective and wise leadership 효과적인 현명한 지도력 (14) Social changes 사회 변화 (15) The prevention of transitional breakdown 과도기의 몰락 예방
The Evolution of Marriage 결혼의 진화 1. The Mating Instinct 짝짓기 본능
2. The Restrictive Taboos 제한하는 금기
3. Early Marriage Mores 초기의 결혼 관습
4. Marriage Under the Property Mores 재산 관습에 따른 결혼
5. Endogamy and Exogamy 동족(同族) 결혼과 족외(族外) 결혼
6. Racial Mixtures 종족의 혼합
The Marriage Institution 결혼 제도 1. Marriage as a Societal Institution 사회 제도로서의 결혼 2. Courtship and Betrothal 구혼(求婚)과 약혼(約婚) 3. Purchase and Dowry 아내 사들임과 지참금
4. The Wedding Ceremony 결혼식
5. Plural Marriages 복혼(複婚) 6. True Monogamy — Pair Marriage 진정한 단혼(單婚) – 일부일처(一夫一妻) 7. The Dissolution of Wedlock 혼인의 해약(解約) 8. The Idealization of Marriage 결혼의 이상화(理想化)
Marriage and Family Life 결혼과 가정생활 1. Primitive Pair Associations 원시 부부 결합
2. The Early Mother-Family 초기 모계(母系)-가정
3. The Family Under Father Dominance 가부장(家父長) 가정
4. Woman’s Status in Early Society 초기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5. Woman Under the Developing Mores 발전하는 관습에 따른 여성
6. The Partnership of Man and Woman 남성과 여성의 협력
7. The Ideals of Family Life 가정생활의 이상(理想)들
8. Dangers of Self-Gratification 자아-충족의 위험들
The Origins of Worship 경배의 기원들 1. Worship of Stones and Hills 돌과 언덕 숭배
2. Worship of Plants and Trees 식물과 나무 숭배
3. The Worship of Animals 동물 숭배
4. Worship of the Elements 자연력(自然力) 숭배
5. Worship of the Heavenly Bodies 천체(天體) 숭배
6. Worship of Man 사람 숭배
7. The Adjutants of Worship and Wisdom 경배와 지혜의 보조자들
Early Evolution of Religion 종교의 초기 진화 1. Chance: Good Luck and Bad Luck 운수(運數): 행운과 불운
2. The Personification of Chance 운수(運數)의 의인화(擬人化)
3. Death — The Inexplicable 이해할 수 없는 죽음
4. The Death-Survival Concept 죽음 – 생존 개념
5. The Ghost-Soul Concept 유령(幽靈)-혼(魂) 개념 6. The Ghost-Spirit Environment 유령(幽靈)-영(靈) 환경
7. The Function of Primitive Religion 원시 종교의 기능
The Ghost Cults 유령(幽靈) 종파(宗派)들 1. Ghost Fear 유령(幽靈) 공포
2. Ghost Placation 유령(幽靈) 회유(懷柔 달래기)
3. Ancestor Worship 조상숭배(祖上崇拜)
4. Good and Bad Spirit Ghosts 선한 영(靈) 유령(幽靈)과 악한 영 유령(幽靈)
5. The Advancing Ghost Cult 진보하는 유령(幽靈) 종파
6. Coercion and Exorcism 강제(强制)와 축사(逐邪)
7. Nature of Cultism 종파(宗派)주의의 본성
Fetishes, Charms, and Magic 주물(呪物)들, 부적(符籍)들 및 마술 1. Belief in Fetishes
2. Evolution of the Fetish
Images and idols “Sacred Books” 3. Totemism
4. Magic
5. Magical Charms
6. The Practice of Magic
Sin, Sacrifice, and Atonement 죄, 희생제물 및 속죄 1. The Taboo
2. The Concept of Sin
3. Renunciation and Humiliation
The continence cult 4. Origins of Sacrifice
5. Sacrifices and Cannibalism
6. Evolution of Human Sacrifice
7. Modifications of Human Sacrifice
Temple harlotry 8. Redemption and Covenants
9. Sacrifices and Sacraments
10. Forgiveness of Sin
Shamanism — Medicine Men and Priests 샤머니즘 – 주술사(呪術師)들과 사제들 1. The First Shamans — The Medicine Men
2. Shamanistic Practices
3. The Shamanic Theory of Disease and Death
4. Medicine Under the Shamans
5. Priests and Rituals
The Evolution of Prayer 기도의 진화 1. Primitive Prayer
2. Evolving Prayer
Prayer versus magic 3. Prayer and the Alter Ego
4. Ethical Praying
5. Social Repercussions of Prayer
6. The Province of Prayer
7. Mysticism, Ecstasy, and Inspiration
8. Praying as a Personal Experience
9. Conditions of Effective Prayer
The Later Evolution of Religion 추후(追後) 종교의 진화 1. The Evolutionary Nature of Religion
2. Religion and the Mores
3. The Nature of Evolutionary Religion
4. The Gift of Revelation
(1) The Dalamatian teachings (2) The Edenic teachings (3) The Melchizedek of Salem (4) Jesus of Nazareth (5) The Urantia Papers 5. The Great Religious Leaders
6. The Composite Religions
Eleven living religions 7. The Further Evolution of Religion
Machiventa Melchizedek 마키벤타 멜기세덱 1. The Machiventa Incarnation
2. The Sage of Salem
3. Melchizedek’s Teachings 4. The Salem Religion
The creed The seven commandments 5. The Selection of Abraham
6. Melchizedek’s Covenant with Abraham
7. The Melchizedek Missionaries
8. Departure of Melchizedek
9. After Melchizedek’s Departure
10. Present Status of Machiventa Melchizedek
The Melchizedek Teachings in the Orient 동양에서 멜기세덱 가르침들 1. The Salem Teachings in Vedic India
The Rig-Veda 2. Brahmanism
Doctrine of reincarnation 3. Brahmanic Philosophy
4. The Hindu Religion
5. The Struggle for Truth in China
6. Lao-Tse and Confucius
7. Gautama Siddhartha
8. The Buddhist Faith
The gospel of Gautama The moral commandments 9. The Spread of Buddhism
10. Religion in Tibet
11. Buddhist Philosophy
12. The God Concept of Buddhism
The Melchizedek Teachings in the Levant 레반트에서 멜기세덱 가르침들 1. The Salem Religion in Mesopotamia
2. Early Egyptian Religion
3. Evolution of Moral Concepts
4. The Teachings of Amenemope
5. The Remarkable Ikhnaton
6. The Salem Doctrines in Iran
7. The Salem Teachings in Arabia
Yahweh — God of the Hebrews 야훼 – 히브리인의 하나님 1. Deity Concepts Among the Semites
2. The Semitic Peoples
3. The Matchless Moses
4. The Proclamation of Yahweh
5. The Teachings of Moses
Materialistic Providence 6. The God Concept After Moses’ Death
7. Psalms and the Book of Job
Evolution of the God Concept Among the Hebrews 히브리인 사이에서 하나님 개념의 진화 1. Samuel — First of the Hebrew Prophets
2. Elijah and Elisha
3. Yahweh and Baal
4. Amos and Hosea
5. The First Isaiah
Micah and Obadiah 6. Jeremiah the Fearless
7. The Second Isaiah
8. Sacred and Profane History
9. Hebrew History
Ephraim and Judah Saul and David Solomon and taxation Israel and Judah Destruction of the Kingdom of Israel End of the Kingdom of Judah The Babylonian captivity 10. The Hebrew Religion
The Melchizedek Teachings in the Occident 서양에서 멜기세덱 가르침들 1. The Salem Religion Among the Greeks
2. Greek Philosophic Thought
3. The Melchizedek Teachings in Rome
4. The Mystery Cults
The Phrygian cult of Cybele and Attis The Egyptian cult of Osiris and Isis The Iranian cult of Mithras 5. The Cult of Mithras
6. Mithraism and Christianity
7. The Christian Religion
The Social Problems of Religion 종교의 사회적 문제들 1. Religion and Social Reconstruction
2. Weakness of Institutional Religion
3. Religion and the Religionist
4. Transition Difficulties
5. Social Aspects of Religion
6. Institutional Religion
7. Religion’s Contribution
Religion in Human Experience 인간적 체험에 있는 종교 1. Religious Growth
2. Spiritual Growth
3. Concepts of Supreme Value
4. Problems of Growth
5. Conversion and Mysticism
6. Marks of Religious Living
7. The Acme of Religious Living
The Real Nature of Religion 종교의 실제 본성 1. True Religion
2. The Fact of Religion
3. The Characteristics of Religion
Twelve illustrations of spiritual faith 4. The Limitations of Revelation
5. Religion Expanded by Revelation
6. Progressive Religious Experience
Seven aspects of salvation 7. A Personal Philosophy of Religion
8. Faith and Belief
9. Religion and Morality
10. Religion as Man’s Liberator
The Foundations of Religious Faith 종교적 신앙의 토대 1. Assurances of Faith
2. Religion and Reality
3. Knowledge, Wisdom, and Insight
4. The Fact of Experience
5. The Supremacy of Purposive Potential
6. The Certainty of Religious Faith
7. The Certitude of the Divine
8. The Evidences of Religion
The Reality of Religious Experience 종교적 체험의 실체 1. Philosophy of Religion
2. Religion and the Individual
3. Religion and the Human Race
4. Spiritual Communion
5. The Origin of Ideals
6. Philosophic Co-ordination
7. Science and Religion
8. Philosophy and Religion
9. The Essence of Religion
Growth of the Trinity Concept 삼위일체(三位一體) 개념의 성장 1. Urantian Trinity Concepts
2. Trinity Unity and Deity Plurality
3. Trinities and Triunities
4. The Seven Triunities
5. Triodities
Deity and Reality 신(神)과 실체 1. The Philosophic Concept of the I AM
2. The I AM as Triune and as Sevenfold
3. The Seven Absolutes of Infinity
4. Unity, Duality, and Triunity
5. Promulgation of Finite Reality
6. Repercussions of Finite Reality
7. Eventuation of Transcendentals
Universe Levels of Reality 실체의 우주 수준들 1. Primary Association of Finite Functionals
God the Sevenfold 2. Secondary Supreme Finite Integration
The Supreme Being 3. Transcendental Tertiary Reality Association
The Trinity Ultimate 4. Ultimate Quartan Integration
Ultimate Deity 5. Coabsolute or Fifth-Phase Association
The Trinity Absolute 6. Absolute or Sixth-Phase Integration
The cosmos infinite 7. Finality of Destiny
8. The Trinity of Trinities
(1) The level of three Trinities (2) The level of experiential Deity (3) The level of the I AM 9. Existential Infinite Unification
Origin and Nature of Thought Adjusters 생각 조율자들의 기원과 본성 1. Origin of Thought Adjusters
2. Classification of Adjusters
3. The Divinington Home of Adjusters
4. Nature and Presence of Adjusters
5. Adjuster Mindedness
6. Adjusters as Pure Spirits
7. Adjusters and Personality
Mission and Ministry of Thought Adjusters 생각 조율자들의 사명과 돌봄 1. Selection and Assignment
2. Prerequisites of Adjuster Indwelling
On Urantia On other worlds 3. Organization and Administration
Tabamantia’s tribute 4. Relation to Other Spiritual Influences
5. The Adjuster’s Mission
6. God in Man
Relation of Adjusters to Universe Creatures 조율자들과 우주 창조물들의 관계 1. Development of Adjusters
2. Self-Acting Adjusters
3. Relation of Adjusters to Mortal Types
4. Adjusters and Human Personality
5. Material Handicaps to Adjuster Indwelling
6. The Persistence of True Values
The Adjuster that indwelt Jesus 7. Destiny of Personalized Adjusters
Omnipersonal beings
Relation of Adjusters to Individual Mortals 조율자들과 개인 필사자들의 관계 1. Indwelling the Mortal Mind
2. Adjusters and Human Will
3. Co-operation with the Adjuster
4. The Adjuster’s Work in the Mind
5. Erroneous Concepts of Adjuster Guidance
6. The Seven Psychic Circles
7. The Attainment of Immortality
The Adjuster’s plea to the soul
The Adjuster and the Soul 조율자와 혼 1. The Mind Arena of Choice
2. Nature of the Soul
3. The Evolving Soul
4. The Inner Life
5. The Consecration of Choice
6. The Human Paradox
7. The Adjuster’s Problem
A guardian of destiny’s statement
Personality Survival 고유성 생존 Fourteen aspects of personality 1. Personality and Reality
2. The Self
3. The Phenomenon of Death
4. Adjusters After Death
5. Survival of the Human Self
6. The Morontia Self
7. Adjuster Fusion
Seraphic Guardians of Destiny 운명의 세라핌천사 수호(守護)자들 1. The Guardian Angels
2. The Destiny Guardians
3. Relation to Other Spirit Influences
4. Seraphic Domains of Action
5. Seraphic Ministry to Mortals
6. Guardian Angels After Death
7. Seraphim and the Ascendant Career
Seraphic Planetary Government 세라핌천사 행성 정부(政府) 1. The Sovereignty of Urantia
2. The Board of Planetary Supervisors
3. The Resident Governor General
4. The Most High Observer
Most High regencies 5. The Planetary Government
6. The Master Seraphim of Planetary Supervision
(1) The epochal angels (2) The progress angels (3) The religious guardians (4) The angels of national life (5) The angels of the races (6) The angels of the future (7) The angels of enlightenment (8) The angels of health (9) The home seraphim (10) The angels of industry (11) The angels of diversion (12) The angels of superhuman ministry 7. The Reserve Corps of Destiny
The Supreme Being 최극 존재 1. Relativity of Concept Frames
2. The Absolute Basis for Supremacy
3. Original, Actual, and Potential
4. Sources of Supreme Reality
5. Relation of the Supreme to the Paradise Trinity
6. Relation of the Supreme to the Triodities
7. The Nature of the Supreme
The Almighty Supreme 전능 최극자 1. The Supreme Mind
The cosmic mind 2. The Almighty and God the Sevenfold
3. The Almighty and Paradise Deity
4. The Almighty and the Supreme Creators
5. The Almighty and the Sevenfold Controllers
The problem of equilibrium 6. Spirit Dominance
7. The Living Organism of the Grand Universe
God the Supreme 최극자 하나님 1. Nature of the Supreme Being
2. The Source of Evolutionary Growth
Creature-trinitized sons and growth 3. Significance of the Supreme to Universe Creatures
4. The Finite God
Cosmic morality — supreme duty 5. The Oversoul of Creation
Finaliter transcendation Repercussions of human growth 6. The Quest for the Supreme
7. The Future of the Supreme
Supreme and Ultimate — Time and Space 최극과 궁극 –시간과 공간 1. Time and Eternity
Experiential (subjective) time units 2. Omnipresence and Ubiquity
3. Time-Space Relationships
Truth and fact Space and pattern 4. Primary and Secondary Causation
5. Omnipotence and Compossibility
6. Omnipotence and Omnificence
7. Omniscience and Predestination
8. Control and Overcontrol
The time governor of progress 9. Universe Mechanisms
10. Functions of Providence
The Bestowals of Christ Michael 그리스도 미가엘의 증여(贈與) 1. The First Bestowal
2. The Second Bestowal
3. The Third Bestowal
4. The Fourth Bestowal
5. The Fifth Bestowal
6. The Sixth Bestowal
7. The Seventh and Final Bestowal
8. Michael’s Postbestowal Status위로↑
The Evolution of Local Universes 지역 우주들의 진화 1. Physical Emergence of Universes 우주들의 물리적 창발
2. Universe Organization 우주 조직
3. The Evolutionary Idea 진화적 관념
4. God’s Relation to a Local Universe 하나님과 지역 우주의 관계
5. The Eternal and Divine Purpose 영원한 신적 목적
Administration of the Local Universe 지역 우주의 경영 1. Michael of Nebadon 네바돈의 미가엘
2. The Sovereign of Nebadon 네바돈의 주권자
3. The Universe Son and Spirit 우주 아들과 영
4. Gabriel — The Chief Executive 가브리엘 – 수석 실행자
5. The Trinity Ambassadors 삼위일체 대사들
6. General Administration 일반적 경영
Local universe time 지역 우주 시간 7. The Courts of Nebadon 네바돈의 법정
8. The Legislative and Executive Functions 입법 및 실행 기능
The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지역 우주 어머니 영 1. Personalization of the Creative Spirit 창조적 영의 고유성화
2. Nature of the Divine Minister 신적 성직자의 본성
3. The Son and Spirit in Time and Space 시공에서 아들과 영
4. The Local Universe Circuits 지역 우주 회로들
5. The Ministry of the Spirit 영의 돌봄
6. The Spirit in Man 사람 안에 있는 영
Dual nature of man 사람의 이중 본성 7. The Spirit and the Flesh 영과 육신
“This is the way.” “이것이 길이다.”
The Local Universe Sons of God 하나님의 지역 우주 아들들 1. The Father Melchizedek 아버지 멜기세덱
2. The Melchizedek Sons 멜기세덱 아들들
3. The Melchizedek Worlds 멜기세덱 세계들
4. Special Work of the Melchizedeks 멜기세덱들의 특수 업무
Melchizedek incarnations 멜기세덱 성육신(成肉身)들 5. The Vorondadek Sons 보론다덱 아들들
6. The Constellation Fathers 별자리 아버지들
7. The Vorondadek Worlds 보론다덱 세계들
8. The Lanonandek Sons 라노난덱 아들들
Primary Lanonandeks 1차 라노난덱들 Secondary Lanonandeks 2차 라노난덱들 Tertiary Lanonandeks 3차 라노난덱들 9. The Lanonandek Rulers 라노난덱 통치자들
10. The Lanonandek Worlds 라노난덱 세계들
The Life Carriers 생명 운반자들 1. Origin and Nature of Life Carriers 생명 운자자들의 기원과 본성
2. The Life Carrier Worlds 생명 운반자 세계들
3. Life Transplantation 생명 이식(移植)
4. Melchizedek Life Carriers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들
The midsoniters 중한(中限)자들 Salvington Worlds of the Finaliters 최종자들의 샐빙턴 세계들
5.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일곱 보조 마음-영들
(1) The spirit of intuition 직관(直觀)의 영 (2) The spirit of understanding 이해(理解)의 영 (3) The spirit of courage 용기(勇氣)의 영 (4) The spirit of knowledge 지식(知識)의 영 (5) The spirit of counsel 조언(助言)의 영 (6) The spirit of worship 경배(敬拜)의 영 (7) The spirit of wisdom 지혜(智慧)의 영 6. Living Forces 살아있는 기세(氣勢)들
Personalities of the Local Universe 지역 우주의 고유성들 1. The Universe Aids 우주 조력자들
2. The Brilliant Evening Stars 찬란한 저녁별들
Created Evening Stars 창조된 저녁별들 Ascendant Evening Stars 상승 저녁별들 The Worlds of the Evening Stars 저녁별들의 세계들 3. The Archangels 천사장들
The Worlds of the Archangels 천사장들의 세계들 4. Most High Assistants 지고(至高) 보좌관들
5. High Commissioners 높은 위원들
Race commissioners 인종(人種) 위원들 Nebadon Corps of Perfection 네바돈 완전단(團) Worlds of the Spirit-Fused Mortals 영-융합 필사자들의 세계들 6. Celestial Overseers 천상의 시찰(視察)자들
Nebadon educational system 네바돈 교육 체계 7. Mansion World Teachers 저택 세계 교사들
8. Higher Spirit Orders of Assignment 임명된 높은 영 계층들
Solitary Messengers 단독 메신저들 Universe Circuit Supervisor — Andovontia 우주 회로 감독자 – 안도본시아 Census Director — Salsatia 인구조사 관리자 – 살사시아 Associate Inspector 부(副) 조사관 Assigned Sentinels 지정(指定) 감시자들 Universal Conciliators 우주 조정(調停)자들 Technical Advisers 기술 충고자들 Celestial Recorders 천상의 기록자들 Morontia Companions 모론시아 동반자들 9. Permanent Citizens of the Local Universe 지역 우주의 영구 시민들
(1) Susatia 수사시아 (2) Univitatia 유니비타시아 (3) Material Sons 물질 아들들 (4) Midway Creatures 중도 창조물들 Abandonters 아반돈터들 10. Other Local Universe Groups 다른 지역 우주 집단들
The Spironga 스피롱가 The Spornagia 스포르나기아 Courtesy colonies 우대(優待) 거류민들
Ministering Spirits of the Local Universe 지역 우주를 돌보는 영들 1. Origin of Seraphim 세라핌천사들의 기원
2. Angelic Natures 천사의 본성들
3. Unrevealed Angels 미(未)계시된 천사들
4. The Seraphic Worlds 세라핌천사 세계들
5. Seraphic Training 세라핌천사 훈련
6. Seraphic Organization 세라핌천사 조직
7. Cherubim and Sanobim 케루빔과 사노빔
8. Evolution of Cherubim and Sanobim 케루빔과 사노빔의 진화
(1) Ascension Candidates 상승 후보자들 (2) Mid-phase Cherubim 중간-단계 케루빔 (3) Morontia Cherubim 모론시아 케루빔 9. The Midway Creatures 중도 창조물들
(1) Primary Midwayers 1차 중도자들 (2) Secondary Midwayers 2차 중도자들
The Seraphic Hosts 세라핌천사 무리 1. Supreme Seraphim 최극 세라핌천사들
(1) Son-Spirit Ministers 아들-영 성직자들 Bestowal attendants 증여 수행원들 (2) Court Advisers 법정 충고자들 (3) Universe Orientators 우주 예비교육자들 (4) The Teaching Counselors 조교 조언자들 (5) Directors of Assignment 임명 관리자들 (6) The Recorders 기록자들 (7) Unattached Ministers 무(無)소속 성직자들 2. Superior Seraphim 우수 세라핌천사들
(1) The Intelligence Corps 정보단(團) (2) The Voice of Mercy 자비의 음성 (3) Spirit Co-ordinators 영 정합(整合)자들 (4) Assistant Teachers 보좌관 교사들 (5) The Transporters 수송자들 Seraphic transport techniques 세라핌천사 수송 기법들 (6) The Recorders 기록자들 Broadcasters 방송자들 (7) The Reserves 예비자들 3. Supervisor Seraphim 감독자 세라핌천사들
(1) Supervising Assistants 감독 보좌관들 (2) Law Forecasters 법 예측(豫測)자들 (3) Social Architects 사회 건축가들 (4) Ethical Sensitizers 윤리 감작(感作)자들 (5) The Transporters 수송자들 (6) The Recorders 기록자들 (7) The Reserves 예비자들 4. Administrator Seraphim 경영자 세라핌천사들
(1) Administrative Assistants 경영 보좌관들 (2) Justice Guides 정의(正義) 안내자들 (3) Interpreters of Cosmic Citizenship 질서우주 시민권 통역자들 (4) Quickeners of Morality 도덕성 촉진(促進)자들
(5) The Transporters 운송자들 (6) The Recorders 기록자들 (7) The Reserves 예비군 5. Planetary Helpers 행성 조수(助手)들
(1) The Voices of the Garden 동산의 목소리 (2) The Spirits of Brotherhood 형제 공동체의 영(靈)들 (3) The Souls of Peace 평화의 혼(魂)들 (4) The Spirits of Trust 신뢰의 영(靈)들 (5) The Transporters 운송자들 Departure of a seraphic transport 세라핌 운송의 출발 (6) The Recorders 기록자들 (7) The Reserves 예비군 6. Transition Ministers 과도(過渡) 사역자들
7. Seraphim of the Future 미래의 세라핌
8. Seraphic Destiny 세라핌 운명
9. The Corps of Seraphic Completion 세라핌 완료단(團)
The Ascending Sons of God 상승하는 하나님의 아들들 1. Evolutionary Seraphim 진화 세라핌
2. Ascending Material Sons 상승 물질 아들들
3. Translated Midwayers 승천(昇天) 중도자들
4. Personalized Adjusters 고유성화 조율자들
5. Mortals of Time and Space 시공간(視空間)의 필사자들
Mortals of the transient or experiential Adjuster sojourn 일시적 혹은 체험적 조율자가 머무는 필사자들 Mortals of the non-Adjuster-fusion types 비(非)-조율자-융합 유형의 필사자들 Mortals of Adjuster-fusion potential 조율자-융합 잠재성의 필사자들 The unnumbered series 무수(無數) 계열 6. The Faith Sons of God 하느님의 신앙 아들들
7. Father-Fused Mortals 아버지-융합 필사자들
8. Son-Fused Mortals 아들-융합 필사자들
9. Spirit-Fused Mortals 영(靈)-융합 필사자들
Techniques of memory reconstruction 기억 복원 기법 10. Ascendant Destinies 상승하는 운명들
Physical Aspects of the Local Universe 지역 우주의 물리적 모습 1. The Nebadon Power Centers
2. The Satania Physical Controllers
3. Our Starry Associates
4. Sun Density
5. Solar Radiation
6. Calcium — The Wanderer of Space
7. Sources of Solar Energy
8. Solar-Energy Reactions
9. Sun Stability
10. Origin of Inhabited Worlds
Energy — Mind and Matter 에너지 – 마음과 물질 1. Paradise Forces and Energies
2. Universal Nonspiritual Energy Systems (Physical Energies)
(1) Space potency (2) Primordial force (3) Emergent energies a. Puissant energy
b. Gravity energy
(4) Universe power (5) Havona energy (6) Transcendental energy (7) Monota 3. Classification of Matter
4. Energy and Matter Transmutations
5. Wave-Energy Manifestations
6. Ultimatons, Electrons, and Atoms
7. Atomic Matter
8. Atomic Cohesion
9. Natural Philosophy
10. Universal Nonspiritual Energy Systems (Material Mind Systems)
(1) Preadjutant-spirit minds
(2) Adjutant-spirit minds (3) Evolving morontia minds
The cosmic mind 11. Universe Mechanisms
12. Pattern and Form — Mind Dominance
The Constellations 별자리들 1. The Constellation Headquarters
2. The Constellation Government
3. The Most Highs of Norlatiadek
4. Mount Assembly — The Faithful of Days
5. The Edentia Fathers since the Lucifer Rebellion
6. The Gardens of God
7. The Univitatia
8. The Edentia Training Worlds
9. Citizenship on Edentia
The Celestial Artisans 천상의 거장(巨匠)들 1. The Celestial Musicians 2. The Heavenly Reproducers
3. The Divine Builders
4. The Thought Recorders
5. The Energy Manipulators
6. The Designers and Embellishers
7. The Harmony Workers
8. Mortal Aspirations and Morontia Achievements
The Local System Administration 지역 체계 경영 1. Transitional Culture Worlds
(1) The Finaliter World (2) The Morontia World (3) The Angelic World (4) The Superangel World
(5) The World of the Sons (6) The World of the Spirit (7) The World of the Father 2. The System Sovereign
3. The System Government
4. The Four and Twenty Counselors
5. The Material Sons
6. Adamic Training of Ascenders
Parental experience The probation nursery of Satania 7. The Melchizedek Schools
The Local System Headquarters 지역 체계 본부들 1. Physical Aspects of Jerusem
2. Physical Features of Jerusem
3. The Jerusem Broadcasts
4. Residential and Administrative Areas
5. The Jerusem Circles
(1) Circles of the Sons of God (2) Circles of the angels (3) Circles of the Universe Aids (4) Circles of the Master Physical Controllers (5) Circles of the ascending mortals (6) Circles of the courtesy colonies (7) Circles of the finaliters 6. The Executive-Administrative Squares
7. The Rectangles — The Spornagia
8. The Jerusem Triangles
The Seven Mansion Worlds 일곱 저택 세계들 1. The Finaliters’ World
Requisite parental experience 2. The Probationary Nursery
3. The First Mansion World
Morontia Companions 4. The Second Mansion World
5. The Third Mansion World
6. The Fourth Mansion World
7. The Fifth Mansion World
8. The Sixth Mansion World
Adjuster fusion 9. The Seventh Mansion World
10. Jerusem Citizenship
The Morontia Life 모론시아 생활 1. Morontia Materials
2. Morontia Power Supervisors
(1) Circuit Regulators (2) System Co-ordinators (3) Planetary Custodians 보관자들 (4) Combined Controllers (5) Liaison stabilizers (6) Selective Assorters (7) Associate Registrars 3. Morontia Companions
(1) Pilgrim Guardians (2) Pilgrim Receivers and Free Associators (3) Hosts to Celestial Visitors (4) Co-ordinators and Liaison Directors
(5) Interpreters and Translators (6) Excursion and Reversion Supervisors (7) Area and Building Custodians 보관자들 4. The Reversion Directors
Celestial humor Mortal humor 5. The Mansion World Teachers
6. Morontia World Seraphim — Transition Ministers
(1) Seraphic Evangels Original of Twenty-third Psalm (2) Racial Interpreters (3) Mind Planners (4) Morontia Counselors
Stereoscopic effect of mota (5) Technicians (6) Recorder-Teachers Truth and fact (7) Ministering Reserves Success, failure, and ego 7. Morontia Mota
8. The Morontia Progressors
The Inhabited Worlds 거주 세계들 1. The Planetary Life
2. Planetary Physical Types
(1) The atmospheric types (2) The elemental types
(3) The gravity types (4) The temperature types (5) The electric types (6) The energizing types (7) The unnamed types 3. Worlds of the Nonbreathers
4. Evolutionary Will Creatures
5. The Planetary Series of Mortals
(1) Adjustment to planetary environment Experimental series inspected by Tabamantia
(2) Brain-type (3) Spirit-reception series (4) Planetary-mortal epochs (5) Creature-kinship serials (6) Adjuster-fusion series (7) Techniques of terrestrial escape 6. Terrestrial Escape
(1) The dispensational or group order of survival
(2) The individual orders of ascension (3) The probationary-dependent orders of ascension (4) The secondary modified orders of ascension (5) The primary modified order of ascension
The Planetary Princes 행성 왕자들 1. Mission of the Princes
2. Planetary Administration
3. The Prince’s Corporeal Staff
4. The Planetary Headquarters and Schools
5. Progressive Civilization 6. Planetary Culture
7. The Rewards of Isolation
Agondonters Tabamantia an agondonter
The Planetary Adams 행성 아담들 1. Origin and Nature of the Material Sons of God
2. Transit of the Planetary Adams
3. The Adamic Missions
4. The Six Evolutionary Races
5. Racial Amalgamation — Bestowal of the Adamic Blood
6. The Edenic Regime
7. United Administration
Planetary Mortal Epochs 행성 필사자 시기(時期)들 1. Primitive Man
2. Post-Planetary Prince Man
3. Post-Adamic Man
4. Post-Magisterial Son Man
5. Post-Bestowal Son Man
6. Urantia’s Post-Bestowal Age
7. Post-Teacher Son Man
The Lucifer Rebellion 루시퍼 반란 1. The Leaders of Rebellion
2. The Causes of Rebellion
3. The Lucifer Manifesto
4. Outbreak of the Rebellion
5. Nature of the Conflict
6. A Loyal Seraphic Commander
7. History of the Rebellion
8. The Son of Man on Urantia
9. Present Status of the Rebellion
Problems of the Lucifer Rebellion 루시퍼 반란의 문제들 1. True and False Liberty
2. The Theft of Liberty
3. The Time Lag of Justice
4. The Mercy Time Lag
5. The Wisdom of Delay
Twelve reasons 6. The Triumph of Love
The Spheres of Light and Life 빛과 생명의 구체들 1. The Morontia Temple
2. Death and Translation
3. The Golden Ages
4. Administrative Readjustments
The seven stages on a planet Release of midwayers Adamic departure 5. The Acme of Material Development
6. The Individual Mortal
7. The First or Planetary Stage
8. The Second or System Stage
9. The Third or Constellation Stage
10. The Fourth or Local Universe Stage
11. The Minor and Major Sector Stages
12. The Seventh or Superuniverse Stage
The Unqualified Supervisors of the Supreme
Universal Unity 우주 통일 1. Physical Co-ordination
2. Intellectual Unity
3. Spiritual Unification
4. Personality Unification
5. Deity Unity
6. Unification of Evolutionary Deity
7. Universal Evolutionary Repercussions
8. The Supreme Unifier
9. Universal Absolute Unity
10. Truth, Beauty, and Goodness
PART I. The Central and Superuniverses 1부 중앙 및 초우주들
0. Foreword 서문(序文)
Deity and Divinity 신(神)과 신성
God 하나님
The First Source and Center 첫째 근원이며 중심
The Seven Absolutes 일곱 절대자(絶對者)들
Reality 실체
Concept of the I AM I am의 개념
Universe Reality 우주 실체
Paradise 천국
Personality Realities 고유성 실체들
Energy and Pattern 에너지와 원본(原本)
The Supreme Being 최극(最極) 존재
God the Sevenfold 칠중(七重) 하나님
God the Ultimate 궁극자(窮極者) 하나님
God the Absolute 절대자(絶對者) 하나님
The Three Absolutes 세 절대자(絶對者)들
The Trinities 삼위일체(三位一體)들
Acknowledgment 인정(認定)
The Universal Father 우주 아버지
The Father’s Name 아버지의 이름
The Reality of God 하나님의 실체
God is a Universal Spirit 하나님은 우주의 영
The Mystery of God 하나님의 신비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우주 아버지의 고유성
Personality in the Universe 우주의 고유성
Spiritual Value of the Personality Concept 고유성 개념의 영적가치
The Nature of God 하나님의 본성
The Infinity of God 하나님의 무한성
The Father’s Eternal Perfection 아버지의 영원한 완전성
Justice and Righteousness 정의(正義)와 공의(公義)
The Divine Mercy 신적 자비
The Love of God 하나님의 사랑
The Goodness of God 하나님의 선(善)
Divine Truth and Beauty 신적 진(眞)과 미(美)
The Attributes of God 하나님의 속성들
God’s Everywhereness 모든 곳에 계시는 하나님
God’s Infinite Power 하나님의 무한한 권능
God’s Universal Knowledge 하나님의 우주적 지식
God’s Limitlessness 제한이 없는 하나님
The Father’s Supreme Rule 아버지의 최극 통치
The Inevitabilities 필연성들
The Father’s Primacy 아버지의 수위성(首位性First in Importance)
The benediction 강복(降福)
God’s Relation to the Universe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
The Universe Attitude of the Father 우주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
Providence 섭리
God and Nature 하나님과 자연
God’s Unchanging Character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성품
The Realization of God 하나님의 실체화
Erroneous Ideas of God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
God’s Relation to the Individual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
The Approach to God 하나님께 이르는 길
The Presence of God 하나님의 현존(現存)
True Worship 참된 경배
God in Religion 종교의 하나님
The Consciousness of God 하나님 의식(意識)
The God of Personality 고유성의 하나님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
Identity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정체성
Nature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본성
Ministry of the Father’s Love 아버지 사랑의 돌봄
Attributes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속성들
Omnipotence, omnipresence, omniscience 전능(全能), 전재(全在), 전지(全知)
Limitations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한계
The Spirit Mind 영 마음
Personality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고유성
Realization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실체화
Relation of the Eternal Son to the Universe 영원 아들과 우주의 관계
The Spirit-Gravity Circuit 영-중력 회로
The Administration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경영
Relation of the Eternal Son to the Individual 개인과 영원 아들의 관계
The Divine Perfection Plans 신적 완전 계획들
The Spirit of Bestowal 증여(贈與)의 영
Bestowals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증여들
Bestowals of the Original Michael 기원 미가엘의 증여들
The Paradise Sons of God 하나님의 천국 아들들
The Supreme Revelation of the Father 아버지의 최극 계시
The Infinite Spirit 무한 영
The God of Action 행동의 하나님
Nature of the Infinite Spirit 무한 영의 본성
Relation of the Spirit to the Father and the Son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영의 관계
The Spirit of Divine Ministry 신적 돌봄의 영
Creative Daughters 창조적 딸들
The Presence of God 하나님의 현존(現存)
Personality of the Infinite Spirit 무한 영의 고유성
Relation of the Infinite Spirit to the Universe 무한 영과 우주의 관계
Attributes of the Third Source and Center 셋째 근원이며 중심의 속성들
The Omnipresent Spirit 전재(全在)하는 영
The Universal Manipulator 우주의 조종자
The Absolute Mind 절대 마음
The Ministry of Mind 마음의 돌봄
The Mind-Gravity Circuit 마음-중력 회로
Universe Reflectivity 우주 반사(反射)
Personalities of the Infinite Spirit 무한 영의 고유성들
Functional family of the Third Source and Center 셋째 근원이며 중심의 기능적 가족
The Paradise Trinity 천국 삼위일체
Self-Distribution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첫째 근원이며 중심의 자아-분배
Deity Personalization 신(神) 고유성화
The Three Persons of Deity 신(神)의 세 고유자들
The Trinity Union of Deity 신(神)의 삼위일체 연합
Functions of the Trinity 삼위일체의 기능들
Finite, absonite, and absolute attitude 유한(有限), 절한(絶限) 및 절대(絶對) 태도
The Stationary Sons of the Trinity 삼위일체의 고정 아들들
Justice, evidence, and judgment 정의, 증거 및 심판
The Overcontrol of Supremacy 최극위의 전반적 조정
The Trinity Beyond the Finite 유한을 초월한 삼위일체
Limits of mortal destiny 필사자 운명의 한계들
The Eternal Isle of Paradise 천국의 영원한 섬
The Divine Residence 신적 거주지
Nature of the Eternal Isle 영원 섬의 본질
Upper Paradise 상부 천국
Peripheral Paradise 주변 천국
Nether Paradise 하부 천국
Space Respiration 공간 호흡 작용
Unpervaded space 비(非)침투(浸透) 공간
Space Functions of Paradise 천국의 공간 기능들
Midspace zones 중간-공간 지대들
Paradise Gravity 천국 중력
Force, energy, power 힘, 에너지, 권능(동력)
The Uniqueness of Paradise 천국의 독특성
The Universe of Universes 우주들의 우주
Space Levels of the Master Universe 주(主)우주의 공간 수준들
The Domains of the Unqualified Absolute 무제한 절대자의 권역
Universal Gravity 우주의 중력
Space and Motion 공간과 운동
Space and Time 공간과 시간
Universal Overcontrol 우주의 전반적-조정
The Part and the Whole 부분과 전체
Matter, Mind, and Spirit 물질, 마음 및 영
Personal Realities 고유적 실체들
The Sacred Spheres of Paradise 천국의 신성한 구체들
The Seven Sacred Worlds of the Father 아버지의 신성한 일곱 세계들
(1) Divinington 신(神)별 (2) Sonarington 아들별 (3) Spiritington 영(靈)별 (4) Vicegerington 대관(代官)별 (5) Solitarington 단독(單獨)별 (6) Seraphington 천사(天使)별 (7) Ascendington 상승(上昇)별
Father-World Relationships 아버지-세계 관계들
The Sacred Worlds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신성한 세계들
The Worlds of the Infinite Spirit 무한 영의 세계들
Executive abodes of the Master Spirits 주(主) 영들의 실행 거주지들
The Central and Divine Universe 중앙 및 신적 우주
The Paradise-Havona System 천국-하보나 체계
Paradise-Havona day 천국-하보나 일(하루) The dark gravity bodies 암흑 중력체들
Constitution of Havona 하보나의 구조
The Havona Worlds 하보나 세계들
Creatures of the Central Universe 중앙우주의 창조물들
Havona natives 하보나 원주민들
Life in Havona 하보나 생활
Monotony and adventure 단조로움과 모험
The Purpose of the Central Universe 중앙우주의 목적
The Seven Superuniverses 일곱 초우주들
The Superuniverse Space Level 초우주 공간 수준
Organization of the Superuniverses 초우주들의 조직
The Superuniverse of Orvonton 오르본톤 초우주
Nebulae — The Ancestors of Universes 성운(星雲)-우주들의 조상들
The Origin of Space Bodies 공간(空間)체(體)들의 기원
The Spheres of Space 공간의 구체들
The Architectural Spheres 건축 구체들
Superuniverse time 초우주 시간
Energy Control and Regulation 에너지 조정과 규제
Circuits of the Superuniverses 초우주의 회로들
Local universe circuits 지역우주 회로들
Rulers of the Superuniverses 초우주의 통치자들
The Deliberative Assembly 심의회(審議會)
The Supreme Tribunals 최극 재판소들
The Sector Governments 구역 정부(政府)들
Purposes of the Seven Superuniverses 초우주의 일곱 목적들
The Seven Master Spirits 일곱 주(主) 영들
Relation to Triune Deity 삼자일치적 신(神)에 대한 관계
Relation to the Infinite Spirit 무한 영에 대한 관계
Identity and Diversity of the Master Spirits 주(主) 영들의 정체성과 다양성
Attributes and Functions of the Master Spirits 주(主) 영들의 속성들과 기능들
Relation to Creatures 창조물들에 대한 관계
The Cosmic Mind 질서 우주 마음
Causation, duty, and worship 원인, 의무 및 경배
Morals, Virtue, and Personality 도덕, 미덕 및 고유성
Urantia Personality 지구(유란시아) 고유성
Reality of Human Consciousness 인간 의식의 실체
The Seven Supreme Spirit Groups 일곱 최극 영 집단들
The Seven Supreme Executives 일곱 최극 실행자들
Creature-trinitized Sons 창조물-삼위일체화 아들들
Majeston — Chief of Reflectivity 위엄(威嚴)자─반사(反射)의 장(長수석)
The Reflective Spirits 반사(反射) 영들
The Reflective Image Aids 반사 이미지 조력자들
The Seven Spirits of the Circuits 회로들의 일곱 영들
The Local Universe Creative Spirits 지역 우주 창조적 영들
The Adjutant Mind-Spirits 보조 마음-영들
Functions of the Supreme Spirits 최극 영들의 기능들
The Supreme Trinity Personalities 최극 삼위일체 고유성들
The Trinitized Secrets of Supremacy 삼위일체화 최극위의 비밀들
The Eternals of Days 영원부터 늘 계신이들
The Ancients of Days 옛적부터 늘 계신이들
The Perfections of Days 완전하게 늘 계신이들
The Recents of Days 최근부터 늘 계신이들
The Unions of Days 연합으로 늘 계신이들
The Faithfuls of Days 충심으로 늘 계신이들
The Co-ordinate Trinity-Origin Beings 정합(整合) 삼위일체 기원-존재들
The Trinity Teacher Sons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
The Perfectors of Wisdom 지혜의 완전자들
The Divine Counselors 신적 조언자들
The Universal Censors 우주 검열자들
Stationary Sons of the Trinity 삼위일체 고정 아들들
Inspired Trinity Spirits 영감 받은 삼위일체 영들
Havona Natives 하보나 원주민들
Paradise Citizens 천국 시민들
The Paradise Sons of God 하나님의 천국 아들들
The Descending Sons of God 하강하는 하나님의 아들들
The Magisterial Sons 치안(治安) 아들들
Judicial Actions 사법(司法) 행위들
Magisterial Missions 치안(治安) 사명들
Bestowal of the Paradise Sons of God 하나님의 천국 아들들의 증여
The Mortal-Bestowal Careers 필사자-증여 생애들
The Trinity Teacher Sons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
Local Universe Ministry of the Daynals 데이날들의 지역 우주 돌봄
Planetary Service of the Daynals 데이날들의 행성 봉사
United Ministry of the Paradise Sons 천국 아들들의 연합 돌봄
The Paradise Creator Sons 천국 창조자 아들들 The Original Michael 기원적 미가엘 1. Origin and Nature of Creator Sons 창조자 아들들의 기원과 본성 2. The Creators of Local Universes 지역 우주들의 창조자들
3. Local Universe Sovereignty 지역 우주 주권
4. The Michael Bestowals 미가엘 증여
5. Relation of Master Sons to the Universe 우주에 대한 주(主)아들들의 관계
6. Destiny of the Master Michaels 주(主) 미가엘들의 운명
The Trinitized Sons of God 삼위일체화 하나님의 아들들
The Trinity-Embraced Sons 삼위일체를-품은 아들들
Trinitized Sons of Attainment 삼위일체화 도달(到達)의 아들들 Trinitized Sons of Selection 삼위일체화 선택(選擇)의 아들들 Trinitized Sons of Perfection 삼위일체화 완전(完全)의 아들들
The Mighty Messengers 막강한 메신저들
Those High in Authority 높은 권위(權威)자들
Those Without Name and Number 무명(無名)무수(無數)자들
The Trinitized Custodians 삼위일체화 보관(保管)자들
The Trinitized Ambassadors 삼위일체화 대사(大使)들
Technique of Trinitization 삼위일체화 기법
Ascender-trinitized Sons 상승자-삼위일체화 아들들 Paradise-Havona trinitized Sons 천국-하보나-삼위일체화 아들들 Trinitized sons of destiny 삼위일체화 운명의 아들들
The Creature-Trinitized Sons 창조물-삼위일체화 아들들
The Celestial Guardians 천상의 수호(守護)자들
High Son Assistants 높은 아들 보좌관들
The Solitary Messengers 단독 메신저들
Nature and Origin of Solitary Messengers 단독 메신저들의 본성과 기원
Assignments of Solitary Messengers 단독 메신저들의 임무
Time and Space Services of Solitary Messengers 단독 메신저들의 시공간 봉사
Seraphic and other space velocities 세라핌천사 및 다른 존재의 공간 속도들
Special Ministry of Solitary Messengers 단독 메신저들의 특별 돌봄
Trinitized sons of destiny 운명의 삼위일체화 아들들
Higher Personalities of the Infinite Spirit 무한 영의 높은 고유성들
The Universe Circuit Supervisors 우주 회로 감독자들
The Census Directors 인구조사 관리자들
Personal Aids of the Infinite Spirit 무한 영의 개인적 조력자들
The Associate Inspectors 부(副) 조사관들
The Assigned Sentinels 지정(指定) 감시자들
The Graduate Guides 졸업생 안내자들
Grandfanda, the first ascender 그랜드환다, 첫 상승자
Origin of the Graduate Guides 졸업생 안내자들의 기원
The Messenger Hosts of Space 공간의 메신저 무리
The Havona Servitals 하보나 봉사자들
The Universal Conciliators 우주 조정(調停분쟁을 합의로 이끄는)자들
The Far-Reaching Service of Conciliators 조정(調停)자들의 광범위한 봉사
Technical Advisers 기술 충고자들
The Custodians of Records on Paradise 천국의 기록 보관(保管)자들
The Celestial Recorders 천상(天上)의 기록자들
The Morontia Companions 모론시아 동반자들
The Paradise Companions 천국 동반자들
Ministering Spirits of the Central Universe 중앙 우주를 돌보는 영들
The Ministering Spirits 돌보는 영들
Ministering Spirits of the Central Universe 중앙우주를 돌보는 영들 Ministering Spirits of the Superuniverses 초우주들을 돌보는 영들 Ministering Spirits of the Local Universes 지역 우주들을 돌보는 영들
The Mighty Supernaphim 막강한 초(超)천사들
The Tertiary Supernaphim 3차 초(超)천사들
(1) The Harmony Supervisors 조화 감독자들 (2) The Chief Recorders 수석 기록자들 (3) The Broadcasters 방송자들 (4) The Messengers 메신저들 (5) The Intelligence Co-ordinators 정보 통합자들 (6) The Transport Personalities 수송 고유성들 (7) The Reserve Corps 예비(豫備)단(團)
The Secondary Supernaphim 2차 초(超)천사들
Ascenders’ arrival in Havona 하보나에 상승자들의 도착
The Pilgrim Helpers 순례자 조수(助手)들
The Supremacy Guides 최극위 안내자들
The Trinity Guides 삼위일체 안내자들
The Son Finders 아들 발견자들
Failure to find Deity 신(神) 발견의 실패
The Father Guides 아버지 안내자들
The Counselors and Advisers 조언자들과 충고자들
Assignments of defeated candidates 실패한 후보자들의 임무들
The Complements of Rest 휴식 보충자들
Creature-trinitized sons 창조물-삼위일체화 아들들
Ministry of the Primary Supernaphim 1차 초(超)천사들의 돌봄
Instigators of Rest 휴식 선동자(煽動者)들
Nature of rest 휴식의 본성
Chiefs of Assignment 임명 수석자(首席者)들
Interpreters of Ethics 윤리 해석자들
Directors of Conduct 행위 관리자들
The Custodians of Knowledge 지식 보관자들
Masters of Philosophy 철학의 대가(大家)들
Conductors of Worship 경배 인도자들
Ministering Spirits of the Superuniverses 초우주들을 돌보는 영들
The Tertiaphim 3품천사들
The Omniaphim 전(全)천사들
The Seconaphim 2품천사들
The Primary Seconaphim 1차 2품천사들
(1) The Voice of the Conjoint Actor 공동 행위자의 음성 (2) The Voice of the Seven Master Spirits 일곱 주(主) 영들의 음성 (3) The Voice of the Creator Sons 창조주 아들들의 음성 (4) The Voice of the Angelic Hosts 천사 무리의 음성 (5) Broadcast Receivers 방송 수신자들 (6) Transport Personalities 수송 고유성들 (7) The Reserve Corps 예비단(團)
The Secondary Seconaphim 2차 2품천사들
(1) The Voice of Wisdom 지혜의 음성 (2) The Soul of Philosophy 철학의 혼 (3) The Union of Souls 혼들의 연합 (4) The Heart of Counsel 조언의 심정 (5) The Joy of Existence 실존의 기쁨 (6) The Satisfaction of Service 봉사의 만족 (7) The Discerner of Spirits 영들의 식별자
The Tertiary Seconaphim 3차 2품천사들
(1) The Significance of Origins 기원의 의미 (2) The Memory of Mercy 자비의 기억 (3) The Import of Time 시간의 중요성 (4) The Solemnity of Trust 신뢰의 엄숙 (5) The Sanctity of Service 봉사의 존엄(尊嚴) (6) and (7) The Secret of Greatness and the Soul of Goodness 위대함의 비밀과 선(善)의 혼
Ministry of the Seconaphim 2품천사들의 돌봄
The Universe Power Directors 우주 권능(동력) 관리자들
The Seven Supreme Power Directors 일곱 최극 권능(동력) 관리자들
The Supreme Power Centers 최극 권능(동력) 중심들
(1) Supreme Center Supervisors 최극 중심 감독자들 (2) Havona Centers 하보나 중심들 (3) Superuniverse Centers 초우주 중심들 (4) Local Universe Centers 지역 우주 중심들 (5) Constellation Centers 별자리 중심들 (6) System Centers 체계 중심들 (7) Unclassified Centers 미(未)분류된 중심들
The Domain of Power Centers 권능(동력) 중심들의 권역
The Master Physical Controllers 주(主) 물리 조정자들
(1) Associate Power Directors 부(副) 권능(동력) 관리자들 (2) Mechanical Controllers 기계적 조정자들 (3) Energy Transformers 에너지 변환자들 (4) Energy Transmitters 예너지 발송자들 (5) Primary Associators 1차 결합자들 (6) Secondary Dissociators 2차 분리자들 (7) The Frandalanks 후랜달랑크들 The Chronoldeks 크로놀덱들
The Master Force Organizers 주(主) 기세 조직자들
Primary Eventuated Master Force Organizers 1차 궁극적 주(主) 기세 조직자들 Associate Transcendental Master Force Organizers 부(副) 초월 주(主) 기세 조직자들
Personalities of the Grand Universe 대우주의 고유성들
The Paradise Classification of Living Beings 살아있는 존재들의 천국 분류
Triune-Origin Beings 삼자일치적-기원 존재들
Dual-Origin Beings 2중-기원 존재들
Single-Origin Beings 단일-기원 존재들
Eventuated Transcendental Beings 궁극에 이른 초월 존재들
Fragmented Entities of Deity 신(神)의 단편화 실재들
Superpersonal Beings 초(超)고유적 존재들
VII. Unclassified and Unrevealed Orders 미(未)분류되고 미(未)계시된 계층들
The Uversa Personality Register 유버르사 고유성 등록부
The Paradise Deities 천국 신(神)들
The Supreme Spirits 최극 영들
The Trinity-Origin Beings 삼위일체-기원 존재들
The Sons of God 하나님의 아들들
Personalities of the Infinite Spirit 무한 영의 고유성들
The Universe Power Directors 우주 권능(동력) 관리자들
The Corps of Permanent Citizenship 영구 시민권 단(團) Composite Personality Groups 혼합 고유성 집단들
The Courtesy Colonies 우대 거류민들
(1) The Star Students 별 연구자들 (2) The Celestial Artisans 천상의 거장(巨匠)들
(3) The Reversion Directors 복귀 관리자들 (4) Extension-School Instructors 연장-학교 강사들 (5) The Various Reserve Corps 다양한 예비 단(團) (6) The Student Visitors 학생 방문자들 (7) The Ascending Pilgrims 상승 순례자들
The Ascending Mortals 상승 필사자들
(1) Planetary Mortals 행성 필사자들 (2) Sleeping Survivors 잠자는 생존자들 (3) Mansion World Students 저택 세계 학생들 (4) Morontia Progressors 모론시아 진보자들 (5) Superuniverse Wards 초우주 피(被)후견자들 (6) Havona Pilgrims 하보나 순례자들 (7) Paradise Arrivals 천국 도착자들
0:0.1 (1.1) IN THE MINDS of the mortals of Urantia — that being the name of your world — there exists great confusion respecting the meaning of such terms as God, divinity, and deity. Human beings are still more confused and uncertain about the relationships of the divine personalities designated by these numerous appellations. Because of this conceptual poverty associated with so much ideational confusion, I have been directed to formulate this introductory statement in explanation of the meanings which should be attached to certain word symbols as they may be hereinafter used in those papers which the Orvonton corps of truth revealers have been authorized to translate into the English language of Urantia. 너희 세계의 명칭인 유란시아 필사자들의 마음에는 하나님, 신성(神性) 및 신(神)과 같은 그런 표현들의 의미에 대해서 커다란 혼란이 있습니다. 인간들은 여러 이들 호칭으로 불리는 신적 고유성들의 관계에 대해 훨씬 더 잘못 알고 있으며 분명히 모르고 있습니다. 그만큼 관념적(觀念的현실과 동떨어진) 혼란과 관련된 이 개념의 결핍 때문에, 오르본톤 진리 계시자들 단(團)이 유란시아의 영어로 번역하도록 위임받은, 아래의 그런 글에서 사용될 수 있는, 특정한 단어의 상징들에 부여되어야 하는, 의미를 설명하는 이 도입문장을 명확하게 말하도록, 내가 지시 받았습니다.
0:0.2 (1.2) It is exceedingly difficult to present enlarged concepts and advanced truth, in our endeavor to expand cosmic consciousness and enhance spiritual perception, when we are restricted to the use of a circumscribed language of the realm. But our mandate admonishes us to make every effort to convey our meanings by using the word symbols of the English tongue. We have been instructed to introduce new terms only when the concept to be portrayed finds no terminology in English which can be employed to convey such a new concept partially or even with more or less distortion of meaning. 우리는 영역의 한정된 언어를 사용하도록 제한을 받는 가운데, 질서우주 의식을 확대하고 영적 지각력을 향상하기위해 우리가 애쓰면서, 확장된 개념과 진보한 진리를 제시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지시는 영어의 단어 상징들을 사용하여 우리의 의미를 전달하도록 우리에게 갖은 노력을 다하라고 권고합니다. 부분적이거나 어느정도 의미의 왜곡이 있어도 그런 새로운 개념 전달에 사용될 개념을 묘사하는 전문 영어 용어를 찾지 못할 경우에만 새 용어들을 도입하도록 우리는 지시 받았습니다.
0:0.3 (1.3) In the hope of facilitating comprehension and of preventing confusion on the part of every mortal who may peruse these papers, we deem it wise to present in this initial statement an outline of the meanings to be attached to numerous English words which are to be employed in designation of Deity and certain associated concepts of the things, meanings, and values of universal reality. 이 글들을 정독(精讀뜻을 새겨 가며 자세히 살피어 읽음)할 수도 있는 모든 필사자의 편에서 이해를 돕고 혼란이 예방되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는 이 개시문에, 신(神)의 호칭과 우주 실체의 물자체들, 의미들 및 가치들의 관련된 특정 개념들에 사용될 수많은 영어 단어들에 부여된 의미들의 개요를 제시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깁니다.
0:0.4 (1.4) But in order to formulate this Foreword of definitions and limitations of terminology, it is necessary to anticipate the usage of these terms in the subsequent presentations. This Foreword is not, therefore, a finished statement within itself; it is only a definitive guide designed to assist those who shall read the accompanying papers dealing with Deity and the universe of universes which have been formulated by an Orvonton commission sent to Urantia for this purpose. 그러나 전문 용어의 정의(定義뜻매김)와 한계(限界)를 이 서문에서 명확하게 말하기 위해서, 다음의 발표들에 있는 이 용어들의 어법을 예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서문은 그 자체로 완결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神)과 우주들의 우주를 다루는 첨부 글들을 읽을 자들을 돕도록 의도된 일정한 지침일 뿐이며, 이 목적으로 유란시아에 파송된 오르본톤 위원회가 글들을 작성했습니다.
0:0.5 (1.5) Your world, Urantia, is one of many similar inhabited planets which comprise the local universe of Nebadon. This universe, together with similar creations, makes up the superuniverse of Orvonton, from whose capital, Uversa, our commission hails. Orvonton is one of the seven evolutionary superuniverses of time and space which circle the never-beginning, never-ending creation of divine perfection — the central universe of Havona. At the heart of this eternal and central universe is the stationary Isle of Paradise, the geographic center of infinity and the dwelling place of the eternal God. 너희 세계, 유란시아는 네바돈 지역 우주를 구성하는, 비슷한 여러 거주 행성 중 하나입니다. 유사한 창조계와 함께 이 우주는 오르본톤 초우주를 이루는데, 우리 위원회는 그 수도 유버르사에 속해 있습니다. 오르본톤은 시공간의 일곱 진화 초우주 중 하나로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신적 완전에 속한 창조계 – 하보나 중앙 우주-를 회전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중앙 우주의 중심에 고정된 천국 섬, 무한성의 지리적 중심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거주지가 있습니다.
0:0.6 (1.6) The seven evolving superuniverses in association with the central and divine universe, we commonly refer to as the grand universe; these are the now organized and inhabited creations. They are all a part of the master universe, which also embraces the uninhabited but mobilizing universes of outer space. 우리는 중앙의 신적 우주와 함께 진화하는 일곱 초우주들을 보통 대(大)우주라 합니다. 이것들이 지금 조직된 거주 창조계들입니다. 그것들은 다 주(主)우주의 일부인데, 주(主)우주는 비(非)거주이지만 외부 공간의 동원되는 우주들도 포함합니다.
I. Deity and Divinity 신(神)과 신성(神性)
0:1.1 (2.1) The universe of universes presents phenomena of deity activities on diverse levels of cosmic realities, mind meanings, and spirit values, but all of these ministrations — personal or otherwise — are divinely co-ordinated. 우주들의 우주는 질서우주 실체들, 마음 의미들 및 영(靈) 가치들에 속한 다양한 수준에서 신(神) 활동들을 나타내지만, 모든 이 표현들은 – 고유적이든 아니든 – 신적으로 조정-통합되어 있습니다.
0:1.2 (2.2) DEITY is personalizable as God, is prepersonal and superpersonal in ways not altogether comprehensible by man. Deity is characterized by the quality of unity — actual or potential — on all supermaterial levels of reality; and this unifying quality is best comprehended by creatures as divinity. 신(神)은 하나님으로서 고유화될 수 있으며, 사람이 아예 파악할 수 없는 면에서 전(前)고유적이며 초(超)고유적입니다. 신(神)은 실체의 모든 초(超)물질적 수준에서 단일성 – 실재적 또는 잠재적 – 특질이 있습니다. 창조물들은 이 통합하는 특성을 신성(神性)으로써 가장 잘 파악합니다.
0:1.3 (2.3) Deity functions on personal, prepersonal, and superpersonal levels. Total Deity is functional on the following seven levels: 신(神)은 고유적, 전(前)고유적 및 초(超)고유적 수준에서 활동합니다. 신(神)은 전체적으로 다음의 일곱 수준에서 활동합니다.
0:1.6 (2.6) 3. Associative — self-personalized and divinely fraternal Deity. 연대적(連帶的공동 연결) – 자기-고유화 및 신적으로 우애(友愛)하는 신(神)
0:1.7 (2.7) 4. Creative — self-distributive and divinely revealed Deity. 창조적(創造的새 것을 만드는) – 자기-분배(分配)적이며 신적으로 계시(啓示)하는 신(神)
0:1.8 (2.8) 5. Evolutional — self-expansive and creature-identified Deity. 진화적(進化的점차 발전함) – 자기-팽창적이며 창조물과-동일시 하는 신(神)
0:1.9 (2.9) 6. Supreme — self-experiential and creature-Creator-unifying Deity. Deity functioning on the first creature-identificational level as time-space overcontrollers of the grand universe, sometimes designated the Supremacy of Deity. 최극적(最極的) – 자기-체험적이며 창조물과-창조주를-통합하는 신(神). 대(大)우주의 시공간 전반적-조정자들, 즉 때때로 신(神)의 최극위(最極位)로 불리며, 창조물과-동일시하는 첫째 수준에서 활동하는 신(神).
0:1.10 (2.10) 7. Ultimate — self-projected and time-space-transcending Deity. Deity omnipotent, omniscient, and omnipresent. Deity functioning on the second level of unifying divinity expression as effective overcontrollers and absonite upholders of the master universe. As compared with the ministry of the Deities to the grand universe, this absonite function in the master universe is tantamount to universal overcontrol and supersustenance, sometimes called the Ultimacy of Deity. 궁극적(窮極的) – 자기-투사적(投射的)이며 시간-공간-초월 신(神). 전능(全能), 전지(全知), 전재(全在)하는 신(神). 주(主)우주의 사실상 전반적-조정자들 및 절한(節限) 유지자들로서, 신성(神性) 표현을 통합하는 둘째 수준에서 활동하는 신(神). 대(大)우주에 대한 신(神)들의 돌봄과 비교해서, 주(主) 우주에서 이 절한(節限) 기능은 때때로 신(神)의 궁극위(窮極位)로 불리는, 우주의 전반적-조정 및 초(超)유지에 해당합니다.
0:1.11 (2.11) The finite level of reality is characterized by creature life and time-space limitations. Finite realities may not have endings, but they always have beginnings — they are created. The Deity level of Supremacy may be conceived as a function in relation to finite existences. 실체의 유한(有限) 수준은 창조물 생명과 시공간 제한의 특징이 있습니다. 유한(有限) 실체들은 끝이 없을 수도 있지만,그들은 언제나 시작이 있습니다. – 그들은 창조됩니다. 최극위(最極位)의 신(神) 수준은 유한(有限) 실존(實存)들에 관해 활동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0:1.12 (2.12) The absonite level of reality is characterized by things and beings without beginnings or endings and by the transcendence of time and space. Absoniters are not created; they are eventuated — they simply are. The Deity level of Ultimacy connotes a function in relation to absonite realities. No matter in what part of the master universe, whenever time and space are transcended, such an absonite phenomenon is an act of the Ultimacy of Deity. 실체의 절한(節限) 수준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들과 존재들 및 시공간 초월의 특징이 있습니다. 절한(節限)자들은 창조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궁극에 이르러 결국 생깁니다. – 그들은 있을 뿐입니다. 궁극위(窮極位)의 신(神) 수준은 절한(節限) 실체들에 관한 활동을 의미합니다. 주(主) 우주의 어떤 부분에서도, 시공(時空)을 초월할 때마다, 그런 절한(節限) 현상은 신(神)의 궁극위(窮極位)의 행위입니다.
0:1.13 (2.13) The absolute level is beginningless, endless, timeless, and spaceless. For example: On Paradise, time and space are nonexistent; the time-space status of Paradise is absolute. This level is Trinity attained, existentially, by the Paradise Deities, but this third level of unifying Deity expression is not fully unified experientially. Whenever, wherever, and however the absolute level of Deity functions, Paradise-absolute values and meanings are manifest. 절대(絶對) 수준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습니다. 실례로, 천국에는 시간과 공간이 실존이 없습니다. 천국의 시공간 상태는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수준은 천국 신(神)들에 의해 삼위일체가 존재적으로 도달하지만, 신(神) 표현을 통합하는 이 셋째 수준은 체험으로 충분히 통합되지 않습니다. 신(神)의 절대(絶對) 수준이 언제나, 어디서나, 어떻게 활동해도, 천국-절대 가치들과 의미들이 나타납니다.
0:1.14 (3.1) Deity may be existential, as in the Eternal Son; experiential, as in the Supreme Being; associative, as in God the Sevenfold; undivided, as in the Paradise Trinity. 신(神)은 영원 아들 안에서 처럼 존재될 수 있고, 최극 존재 안에서 처럼 체험될 수 있으며, 칠중 하나님 안에서 처럼 연대적(連帶的공동 연결)일 수 있고, 천국 삼위일체 안에서 처럼 분할되지 않습니다.
0:1.15 (3.2) Deity is the source of all that which is divine. Deity is characteristically and invariably divine, but all that which is divine is not necessarily Deity, though it will be co-ordinated with Deity and will tend towards some phase of unity with Deity — spiritual, mindal, or personal. 신(神)은 신적인 모든 것의 근원입니다. 신(神)은 특성적으로 변함없이 신적이지만, 신적인 모든 것이 신(神)과 조정-통합될 것이며, 신(神)과 함께 연합하는 어떤 영적(靈的), 마음적 혹은 고유적 단계를 향하여도, 그것이 반드시 신(神)은 아닙니다.
0:1.16 (3.3) DIVINITY is the characteristic, unifying, and co-ordinating quality of Deity. 신성(神性)은 신(神)의 특유한, 통합-조정 특성입니다.
0:1.17 (3.4) Divinity is creature comprehensible as truth, beauty, and goodness; correlated in personality as love, mercy, and ministry; disclosed on impersonal levels as justice, power, and sovereignty. 신성(神性)은 창조물에게 진(眞참 진리), 미(美아름다움) 및 선(善)으로 파악될 수 있고, 고유성 안에서 사랑, 자비 및 보살핌으로 관련되며, 비(非)고유적 수준에서 정의(正義), 권능(權能동력) 및 주권(主權)으로 드러납니다.
0:1.18 (3.5) Divinity may be perfect — complete — as on existential and creator levels of Paradise perfection; it may be imperfect, as on experiential and creature levels of time-space evolution; or it may be relative, neither perfect nor imperfect, as on certain Havona levels of existential-experiential relationships. 신성(神性)은 천국 완전의 존재적 및 창조주 수준에서 처럼 완전하게 – 완비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시공간 진화의 체험적인 창조물 수준에서 처럼 불완전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존재적-체험적 관계의 하보나 수준에서 처럼 완전하지도 않고 불완전하지도 않은 상대적일 수도 있습니다.
0:1.19 (3.6) When we attempt to conceive of perfection in all phases and forms of relativity, we encounter seven conceivable types: 우리가 상대성에 속한 모든 단계와 형태에서 완전을 생각하려고 하면,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일곱 유형에 부닥칩니다.
0:1.20 (3.7) 1. Absolute perfection in all aspects. 모든 면에서 절대적 완전.
0:1.21 (3.8) 2. Absolute perfection in some phases and relative perfection in all other aspects. 일부 절대적 완전과 다른 모든 면에서 상대적 완전.
0:1.22 (3.9) 3. Absolute, relative, and imperfect aspects in varied association. 다양한 관계에서, 절대적이고 상대적이며 불완전한 면.
0:1.23 (3.10) 4. Absolute perfection in some respects, imperfection in all others. 일부 면에서 절대적 완전, 다른 모든 면에서 불완전.
0:1.24 (3.11) 5. Absolute perfection in no direction, relative perfection in all manifestations. 모든 면에서 절대적 완전이 아니고, 드러난 모든 면에서 상대적 완전.
0:1.25 (3.12) 6. Absolute perfection in no phase, relative in some, imperfect in others. 모든 면에서 절대적 완전이 아니고, 일부는 상대적이며, 다른 면에서 불완전.
0:1.26 (3.13) 7. Absolute perfection in no attribute, imperfection in all. 모든 면에서 절대적 완전이 아니고, 모든 면에서 불완전.
II. God 하나님
0:2.1 (3.14) Evolving mortal creatures experience an irresistible urge to symbolize their finite concepts of God. Man’s consciousness of moral duty and his spiritual idealism represent a value level — an experiential reality — which is difficult of symbolization. 진화하는 필사 창조물들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유한한 개념들을 상징화하려는 억누룰 수 없는 충동을 겪습니다. 도덕적 의무와 영적 이상주의(理想主義)에 대한 사람의 의식은, 상징화하기 어려운, 가치 수준, 즉 체험적 실체에 해당합니다.
0:2.2 (3.15) Cosmic consciousness implies the recognition of a First Cause, the one and only uncaused reality. God, the Universal Father, functions on three Deity-personality levels of subinfinite value and relative divinity expression: 질서우주 의식은 첫째 원인, 즉 유일하게 원인이 없는 실체에 대한 인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우주 아버지는 아(亞)무한적 가치와 상대적 신성(神性) 표현에 속한 다음의 세 신(神)-고유성 수준들에서 활동합니다.
0:2.3 (3.16) 1. Prepersonal — as in the ministry of the Father fragments, such as the Thought Adjusters. 전(前)고유적 – 생각 조율자처럼 아버지 파편들의 돌봄에서처럼
0:2.4 (3.17) 2. Personal — as in the evolutionary experience of created and procreated beings. 고유적 – 창조된 생식 존재들의 진화적 체험에서처럼
0:2.5 (3.18) 3. Superpersonal — as in the eventuated existences of certain absonite and associated beings. 초(超)고유적 – 일정한 절한(節限) 및 관련 존재들의 궁극에 이르러 결국 생긴 실존들에서처럼
0:2.6 (3.19) GOD is a word symbol designating all personalizations of Deity. The term requires a different definition on each personal level of Deity function and must be still further redefined within each of these levels, as this term may be used to designate the diverse co-ordinate and subordinate personalizations of Deity; for example: the Paradise Creator Sons — the local universe fathers. 하나님은 모든 신(神)의 고유성화를 나타내는 단어 상징입니다. 그 용어는 신(神) 기능의 각 고유적 수준에서 다른 정의(定義)가 필요하며, 이 용어는, 실례로, 천국 창조자 아들들 – 지역 우주 아버지들처럼, 신(神)의 다양한 통합-조정 및 하위(下位) 고유성화에 사용될 수도 있어서, 이런 각 수준 안에서 훨씬 더 재(再)정의(定義)되어야 합니다.
0:2.7 (4.1) The term God, as we make use of it, may be understood: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사용할 때,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0:2.8 (4.2) By designation — as God the Father. 칭호(稱號)로 – 하나님 아버지로서
0:2.9 (4.3) By context — as when used in the discussion of some one deity level or association. When in doubt as to the exact interpretation of the word God, it would be advisable to refer it to the person of the Universal Father. 문맥에서 – 어떤 한 신(神) 수준 혹은 연합(관련)에 대한 논의에서 사용할 경우. 단어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불확실할 때, 그것은 고유자 우주 아버지로 여기는 것이 적당합니다.
0:2.10 (4.4) The term God always denotes personality. Deity may, or may not, refer to divinity personalities.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언제나 고유성의 표시입니다. 신(神)은 신성(神性) 고유성을 말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0:2.11 (4.5) The word GOD is used, in these papers, with the following meanings: 이들 문서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다음의 의미들로 사용됩니다.
0:2.12 (4.6) 1. God the Father — Creator, Controller, and Upholder. The Universal Father, the First Person of Deity. 아버지 하나님 – 창조자, 조정자 및 유지자. 우주 아버지, 신(神)의 수위(首位).
0:2.13 (4.7) 2. God the Son — Co-ordinate Creator, Spirit Controller, and Spiritual Administrator. The Eternal Son, the Second Person of Deity. 아들 하나님 – 조정-통합 창조자, 영(靈) 조정자 및 영적 경영자. 영원 아들, 신(神)의 차위(次位).
0:2.14 (4.8) 3. God the Spirit — Conjoint Actor, Universal Integrator, and Mind Bestower. The Infinite Spirit, the Third Person of Deity. 영(靈) 하나님 – 공동 행위자, 우주 통합(統合)자 및 마음 증여자. 무한 영, 신(神)의 삼위(三位).
0:2.15 (4.9) 4. God the Supreme — the actualizing or evolving God of time and space. Personal Deity associatively realizing the time-space experiential achievement of creature-Creator identity. The Supreme Being is personally experiencing the achievement of Deity unity as the evolving and experiential God of the evolutionary creatures of time and space. 최극 하나님 – 시공간에서 현실화 즉, 진화하는 하나님. 창조물-창조자 정체성에 속한 시공간 체험적 성취를 연합하여 실현하는 고유적 신(神). 최극 존재는, 시공간의 진화 창조물들의, 진화하고 체험하는 하나님으로서, 직접 신(神) 연합의 성취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0:2.16 (4.10) 5. God the Sevenfold — Deity personality anywhere actually functioning in time and space. The personal Paradise Deities and their creative associates functioning in and beyond the borders of the central universe and power-personalizing as the Supreme Being on the first creature level of unifying Deity revelation in time and space. This level, the grand universe, is the sphere of the time-space descension of Paradise personalities in reciprocal association with the time-space ascension of evolutionary creatures. 칠중 하나님 – 시공간 어디에나 실제로 활동하는 신(神) 고유성. 중앙 우주의 경계 내외에서 활동하며, 시공간에서 통합하는 신(神) 계시의 첫 창조계 수준에서 최극 존재로서 권능(동력)을-고유성화하는, 고유적 천국 신(神)들과 그들의 창조적 동료들. 이 수준, 즉 대(大)우주는, 진화 창조물들의 시공간 상승과 상호연관되어 천국 고유성들의 시공간 하강의 영역입니다.
0:2.17 (4.11) 6. God the Ultimate — the eventuating God of supertime and transcended space. The second experiential level of unifying Deity manifestation. God the Ultimate implies the attained realization of the synthesized absonite-superpersonal, time-space-transcended, and eventuated-experiential values, co-ordinated on final creative levels of Deity reality. 궁극 하나님 – 궁극에 이르러 결국 생긴 초(超)시간 및 초월 공간의 하나님. 통합하는 신(神)이 드러나는 둘째 체험적 수준. 궁극 하나님은, 신(神) 실체의 최종적인 창조적 수준들에서 조정-통합되어, 절한(節限)-초(超)고유적, 시공간-초월적 및 궁극에 이르러 결국 생긴-체험적 가치들이, 합성에 도달된 실현을 의미합니다.
0:2.18 (4.12) 7. God the Absolute — the experientializing God of transcended superpersonal values and divinity meanings, now existential as the Deity Absolute. This is the third level of unifying Deity expression and expansion. On this supercreative level, Deity experiences exhaustion of personalizable potential, encounters completion of divinity, and undergoes depletion of capacity for self-revelation to successive and progressive levels of other-personalization. Deity now encounters, impinges upon, and experiences identity with, the Unqualified Absolute. 절대 하나님 – 지금 신(神) 절대자(絶對者)로서 존재하면서, 초월적 초(超)고유적 가치들과 신성(神性) 의미들을 체험하는 하나님. 이것은 통합하는 신(神) 표현 및 확장의 셋째 수준입니다. 이 초(超)창조적 수준에서, 신(神)은 고유성화하는 잠재력의 고갈을 체험하고, 신성(神性)의 완비와 만나며, 연속적으로 진보하는 다른 고유성화의 수준들에 자기-계시를 위한 능력의 고갈을 겪습니다. 신(神)은 이제 분별불가(무제한) 절대자와 만나, 부딪치고, 동일성을 체험합니다.
III. The First Source and Center 첫째 근원 및 중심
0:3.1 (4.13) Total, infinite reality is existential in seven phases and as seven co-ordinate Absolutes: 총(總모든), 무한 실체는 일곱 단계로, 일곱 조정-통합 절대자들로서 실존합니다.
0:3.2 (5.1) 1. The First Source and Center. 첫째 근원 및 중심.
0:3.3 (5.2) 2. The Second Source and Center. 둘째 근원 및 중심.
0:3.4 (5.3) 3. The Third Source and Center. 셋째 근원 및 중심.
0:3.5 (5.4) 4. The Isle of Paradise. 천국 섬.
0:3.6 (5.5) 5. The Deity Absolute. 신(神) 절대자.
0:3.7 (5.6) 6. The Universal Absolute. 우주(宇宙) 절대자.
0:3.8 (5.7) 7. The Unqualified Absolute. 분별불가(分別不可무제한) 절대자.
0:3.9 (5.8) God, as the First Source and Center, is primal in relation to total reality — unqualifiedly. The First Source and Center is infinite as well as eternal and is therefore limited or conditioned only by volition. 하나님은, 첫째 근원 및 중심으로서, 총(總) 실체의 관계에서 –분별불가하게(무제한으로) – 수위(首位)입니다. 첫째 근원 및 중심은 무한하고 영원해서 의지(자유의사)로만 제한되거나 조절됩니다.
0:3.10 (5.9) God — the Universal Father — is the personalit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and as such maintains personal relations of infinite control over all co-ordinate and subordinate sources and centers. Such control is personal and infinite in potential, even though it may never actually function owing to the perfection of the function of such co-ordinate and subordinate sources and centers and personalities. 하나님 – 우주 아버지 –은 첫째 근원 및 중심의 고유성이며 모든 조정-통합 및 하위(下位) 근원 및 중심을 전반적으로 무한히 조정하는 고유적 관계를 그렇게 유지합니다. 그런 조정은, 그런 조정-통합 및 하위(下位) 근원들, 중심들 및 고유성들의 완전한 활동 때문에, 그것이 결코 실제로 활동하지 않아도, 잠재적으로 고유적이며 무한합니다.
0:3.11 (5.10) The First Source and Center is, therefore, primal in all domains: deified or undeified, personal or impersonal, actual or potential, finite or infinite. No thing or being, no relativity or finality, exists except in direct or indirect relation to, and dependence on, the primac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그래서 첫째 근원 및 중심은 모든 영역, 즉 신(神)화 혹은 비(非)신(神)화, 고유적 혹은 미(未)고유적, 현실적 혹은 잠재적, 유한 혹은 무한에서 수위(首位)입니다. 어떤 사물 혹은 존재, 어떤 상대성 혹은 최종성도 첫째 근원 및 중심의 수위(首位)성과 직접 혹은 간접적 관련과 의존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습니다.
0:3.12 (5.11) The First Source and Center is related to the universe as: 첫째 근원 및 중심은 다음과 같이 우주와 이어져 있습니다.
0:3.13 (5.12) 1. The gravity forces of the material universes are convergent in the gravity center of nether Paradise. That is just why the geographic location of his person is eternally fixed in absolute relation to the force-energy center of the nether or material plane of Paradise. But the absolute personality of Deity exists on the upper or spiritual plane of Paradise. 물질 우주의 중력 기세들은 하부 천국의 중력 중심에 수렴(收斂한데 모임)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고유자에 속한 지리적 위치가 천국의 하부(下部) 즉 물질 면(面)의 기세-에너지 중심과 절대적 관계에서 영원히 고정된 이유입니다. 그러나 신(神)의 절대 고유성은 천국의 상부(上部) 즉 영적 면(面)에 실재합니다.
0:3.14 (5.13) 2. The mind forces are convergent in the Infinite Spirit; the differential and divergent cosmic mind in the Seven Master Spirits; the factualizing mind of the Supreme as a time-space experience in Majeston. 마음 기세는 무한 영(靈)에게, 구별적으로 발산하는 질서우주 마음은 일곱 주(主) 영에게, 시공간 체험으로써 사실화하는 최극자의 마음은 위엄(威嚴)자에게 수렴(收斂한데 모임)합니다.
0:3.15 (5.14) 3. The universe spirit forces are convergent in the Eternal Son. 우주 영(靈) 기세는 영원 아들에게 수렴(收斂한데 모임)합니다.
0:3.16 (5.15) 4. The unlimited capacity for deity action resides in the Deity Absolute. 신(神) 활동을 위한 무제한의 수용력은 신(神) 절대자에게 있습니다.
0:3.17 (5.16) 5. The unlimited capacity for infinity response exists in the Unqualified Absolute. 무한 응답을 위한 무제한의 수용력은 분별불가(무제한) 절대자에게 실재합니다.
0:3.18 (5.17) 6. The two Absolutes — Qualified and Unqualified — are co-ordinated and unified in and by the Universal Absolute. 우주 절대자가 두 – 제한 및 무제한- 절대자를 조정-통합하고 통일합니다.
0:3.19 (5.18) 7. The potential personality of an evolutionary moral being or of any other moral being is centered in th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진화하는 도덕적 존재나 어떤 다른 도덕적 존재의 잠재적 고유성은 우주 아버지의 고유성을 중심에 둡니다.
0:3.20 (5.19) REALITY, as comprehended by finite beings, is partial, relative, and shadowy. The maximum Deity reality fully comprehensible by evolutionary finite creatures is embraced within the Supreme Being. Nevertheless there are antecedent and eternal realities, superfinite realities, which are ancestral to this Supreme Deity of evolutionary time-space creatures. In attempting to portray the origin and nature of universal reality, we are forced to employ the technique of time-space reasoning in order to reach the level of the finite mind. Therefore must many of the simultaneous events of eternity be presented as sequential transactions. 유한한 존재들은 실체를 부분적, 상대적 및 그림자처럼 납득합니다. 진화하는 유한한 창조물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신(神) 실체는 최극 존재 안에 포함됩니다. 그렇지만, 진화하는 시공간 창조물들의 이 최극 신(神)에게 조상이 되는, 선행(先行)적 영원한 실체들, 초(超)유한 실체들이 있습니다. 우주 실체의 기원과 본성을 묘사하면서, 우리는 무한한 마음 수준에 이르도록 시공간 추론의 기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성의 동시적 여러 사건은 순차적으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0:3.21 (6.1) As a time-space creature would view the origin and differentiation of Reality, the eternal and infinite I AM achieved Deity liberation from the fetters of unqualified infinity through the exercise of inherent and eternal free will, and this divorcement from unqualified infinity produced the first absolute divinity-tension. This tension of infinity differential is resolved by the Universal Absolute, which functions to unify and co-ordinate the dynamic infinity of Total Deity and the static infinity of the Unqualified Absolute. 시공간 창조물이 실체의 기원과 분화(分化)를 조사할 때, 영원 무한한 자존위(自存位스스로 계신 분)는 본래 영원한 자유 의지의 행사로, 무제한 무한의 속박에서 신(神) 해방에 이르셨으며, 무제한 무한을 벗어난 이 분리(分離)가 첫 절대 신성(神性)-긴장을 일으켰습니다. 총(總) 신(神)의 동적(動的) 무한 및 분별불가(무제한) 절대자의 정적(靜的) 무한을 통일하고 조정-통합하려고 활동하는 우주 절대자가 구별된 무한의 이 긴장을 해소합니다.
0:3.22 (6.2) In this original transaction the theoretical I AM achieved the realization of personality by becoming the Eternal Father of the Original Son simultaneously with becoming the Eternal Source of the Isle of Paradise. Coexistent with the differentiation of the Son from the Father, and in the presence of Paradise, there appeared the person of the Infinite Spirit and the central universe of Havona. With the appearance of coexistent personal Deity, the Eternal Son and the Infinite Spirit, the Father escaped, as a personality, from otherwise inevitable diffusion throughout the potential of Total Deity. Thenceforth it is only in Trinity association with his two Deity equals that the Father fills all Deity potential, while increasingly experiential Deity is being actualized on the divinity levels of Supremacy, Ultimacy, and Absoluteness. 이 기원적 업무에서, 이론적 자존위(自存位스스로 계신 분)는 기원 아들의 영원 아버지가 되는 동시에 천국 섬의 영원한 근원이 되어 고유성의 실체에 이르렀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아들이 분화하고 천국의 실존이 함께 실재하면서, 고유자 무한 영과 하보나 중앙 우주가 나타났습니다. 함께 실재로 나타난 고유적 신(神), 영원 아들과 무한 영과 함께, 총(總) 신(神)의 모든 잠재성에서, 고유성으로서 아버지는, 다른 불가피한 발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이후 아버지는 자신의 두 신(神)과 연합하는 삼위일체에서만 모든 신(神) 잠재성을 채우시는 한편, 체험적 신(神)은, 최극위·궁극위· 절대의 신성(神性) 수준에서, 점차 현실화합니다.
0:3.23 (6.3) The concept of the I AM is a philosophic concession which we make to the time-bound, space-fettered, finite mind of man, to the impossibility of creature comprehension of eternity existences — nonbeginning, nonending realities and relationships. To the time-space creature, all things must have a beginning save only the ONE UNCAUSED — the primeval cause of causes. Therefore do we conceptualize this philosophic value-level as the I AM, at the same time instructing all creatures that the Eternal Son and the Infinite Spirit are coeternal with the I AM; in other words, that there never was a time when the I AM was not the Father of the Son and, with him, of the Spirit. 자존위(自存位스스로 계신 분) 개념은, 시간에-묶이고 공간에-갇힌, 인간의 유한한 마음과, 영원성 실재들 –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실체들과 관계들에 대한 창조물의 불가능한 납득에 대해, 우리가 만든 철학적 용인(容認인정)입니다. 시간-공간 창조물에게, 만물은 원인이 없는 한 가지 – 원인 중 원초적 원인만 제외하고, 시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존위(自存位스스로 계신 분)로서 이 철학적 가치-수준을 개념화하는 동시에 영원 아들과 무한 영이 자존위(自存位스스로 계신 분)와 함께 영원하다고 모든 창조물에게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서, 자존위(自存位스스로 계신 분)가 아들의 아버지가 아니고, 그와 함께, 영(靈)의 아버지가 아니었던 때가 결코 없었습니다.
0:3.24 (6.4) The Infinite is used to denote the fullness — the finality — implied by the primac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The theoretical I AM is a creature-philosophic extension of the “infinity of will,” but the Infinite is an actual value-level representing the eternity-intension of the true infinity of the absolute and unfettered free will of the Universal Father. This concept is sometimes designated the Father-Infinite. 무한자는 첫째 근원 및 중심의 수위(首位)성으로 함축된 충만함 – 최종성- 을 나타내려고 사용됩니다. 이론적 자존위(自存位스스로 계신 분)는 “의지의 무한”에 속한 창조물-철학적 확장이지만, 무한자는 우주 아버지의 절대적으로 묶이지 않는 자유 의지에 속한 참된 무한의 내포적-영원성을 나타내는 실재적 가치-수준입니다. 이 개념은 때로 아버지-무한자를 말합니다.
0:3.25 (6.5) Much of the confusion of all orders of beings, high and low, in their efforts to discover the Father-Infinite, is inherent in their limitations of comprehension. The absolute primacy of the Universal Father is not apparent on subinfinite levels; therefore is it probable that only the Eternal Son and the Infinite Spirit truly know the Father as an infinity; to all other personalities such a concept represents the exercise of faith. 아버지-무한자를 발견하려 할 때, 높고 낮은 여러 존재 계층들의 많은 혼동은, 그들의 제한된 납득에 있어서 본래적입니다. 우주 아버지의 절대 수위(首位)성은 하위-무한 수준들에게 명백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영원 아들과 무한 영만이 정말로 아버지를 무한으로 아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른 모든 고유성들에게 그런 개념은 이 신앙의 과정을 나타냅니다.
IV. Universe Reality 우주 실체
0:4.1 (6.6) Reality differentially actualizes on diverse universe levels; reality originates in and by the infinite volition of the Universal Father and is realizable in three primal phases on many different levels of universe actualization: 실체는 다양한 우주 수준에서 서로 다르게 현실화합니다. 실체는 우주 아버지의 무한한 의지 가운데, 그 의지로 시작되며 여러 우주 현실의 다른 수준에서 1차 세 가지 단계로 실현 가능합니다.
0:4.2 (6.7) 1. Undeified reality ranges from the energy domains of the nonpersonal to the reality realms of the nonpersonalizable values of universal existence, even to the presence of the Unqualified Absolute. 비(非)신(神)화 실체는 비(非)고유적 에너지 분야에서 우주 실존의 고유화가 될 수 없는 가치의 영역까지, 심지어 분별불가(무제한) 절대자의 실존까지 걸쳐있습니다.
0:4.3 (7.1) 2. Deified reality embraces all infinite Deity potentials ranging upward through all realms of personality from the lowest finite to the highest infinite, thus encompassing the domain of all that which is personalizable and more — even to the presence of the Deity Absolute. 신(神)화 실체는 최저 유한에서 최고 무한까지 모든 고유성 영역을 거쳐, 위로 분류되는 모든 무한 신(神) 잠재성을 포함하므로, 고유화가 가능한 그 이상 – 심지어 신(神) 절대자의 실존까지, 모든 분야를 포함합니다.
0:4.4 (7.2) 3. Interassociated reality. Universe reality is supposedly either deified or undeified, but to subdeified beings there exists a vast domain of interassociated reality, potential and actualizing, which is difficult of identification. Much of this co-ordinate reality is embraced within the realms of the Universal Absolute. 중간-관련 실체. 우주 실체는 소위 신(神)화 또는 비(非)신(神)화 둘 중 하나지만, 아(亞아래)신(神)화 존재들에게는, 확인하기 힘든, 잠재적이며 현실화하는. 광대한 중간-관련 실체의 분야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 조정-통합 실체는 우주 절대자의 영역 내부에 포함됩니다.
0:4.5 (7.3) This is the primal concept of original reality: The Father initiates and maintains Reality. The primal differentials of reality are the deified and the undeified — the Deity Absolute and the Unqualified Absolute. The primal relationship is the tension between them. This Father-initiated divinity-tension is perfectly resolved by, and eternalizes as, the Universal Absolute. 기원적 실체의 1차 개념은 이것입니다. 아버지가 실체를 시작하고 유지합니다. 실체의 1차 차이는 신(神)화와 비(非)신(神)화 – 신(神) 절대자와 분별불가(무제한) 절대자입니다. 1차 관계는 그들 사이의 긴장입니다. 우주 절대자가 이 아버지가-개시한 신성(神性) 긴장을 완전히 해소하고 우주 절대자로서 그것을 영원화합니다.
0:4.6 (7.4) From the viewpoint of time and space, reality is further divisible as: 시간과 공간의 관점에서, 실체는 다음과 같이 더 나누어집니다.
0:4.7 (7.5) 1. Actual and Potential. Realities existing in fullness of expression in contrast to those which carry undisclosed capacity for growth. The Eternal Son is an absolute spiritual actuality; mortal man is very largely an unrealized spiritual potentiality. 현실적 및 잠재적. 충만히 표현되어 실존하는 것과 이에 대비하여 성장을 위해 숨겨진 수용력을 지닌 실체들. 영원 아들은 절대 영적 현실 실체입니다. 필사 사람은 아주 대부분 실현되지 않은 영적 잠재 실체입니다.
0:4.8 (7.6) 2. Absolute and Subabsolute. Absolute realities are eternity existences. Subabsolute realities are projected on two levels: Absonites — realities which are relative with respect to both time and eternity. Finites — realities which are projected in space and are actualized in time. 절대적 및 아(亞아래)절대적. 절대 실체들은 영원성 실존들입니다. 아(亞)절대 실체들은 두 수준으로 투사(投射)됩니다. 절한(節限)자들 – 시간과 영원 둘 다 관계된 상대적 실체들. 유한(有限)자들 – 공간에 투사되고 시간에서 현실화된 실체들.
0:4.9 (7.7) 3. Existential and Experiential. Paradise Deity is existential, but the emerging Supreme and Ultimate are experiential. 실존적 및 체험적. 천국 신(神)은 실존적이지만, 떠오르는 최극자와 궁극자는 체험적입니다.
0:4.10 (7.8) 4. Personal and Impersonal. Deity expansion, personality expression, and universe evolution are forever conditioned by the Father’s freewill act which forever separated the mind-spirit-personal meanings and values of actuality and potentiality centering in the Eternal Son from those things which center and inhere in the eternal Isle of Paradise. 고유적(固有的) 및 미(未)고유적(固有的). 아버지의 자유의지 행위가 신(神) 확장, 고유성 표현 및 우주 진화를 영원히 결정하며, 아버지의 자유의지 행위가 천국 영원 섬에 중심을 두고 본래 있는 것들로부터 영원 아들에게 중심을 둔 현실성과 잠재성에 속한 마음-영-고유적 의미들 및 가치들을 영원히 분리했습니다.
0:4.11 (7.9) PARADISE is a term inclusive of the personal and the nonpersonal focal Absolutes of all phases of universe reality. Paradise, properly qualified, may connote any and all forms of reality, Deity, divinity, personality, and energy — spiritual, mindal, or material. All share Paradise as the place of origin, function, and destiny, as regards values, meanings, and factual existence. 천국은 우주 실체의 모든 단계에 속한 고유적 및 비(非)고유적 초점 절대자들을 포괄하는 용어입니다. 아주 제한해서 천국은, 영적·마음적·물질적인, 어떤 모든 형태의 실체, 신(神), 신성(神性), 고유성 및 에너지를 내포할 수 있습니다. 모두 천국을, 가치들·의미들 및 사실적 실존에 관해, 기원, 기능 및 운명의 장소로 공유합니다.
0:4.12 (7.10) The Isle of Paradise — Paradise not otherwise qualified — is the Absolute of the material-gravity control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Paradise is motionless, being the only stationary thing in the universe of universes. The Isle of Paradise has a universe location but no position in space. This eternal Isle is the actual source of the physical universes — past, present, and future. The nuclear Isle of Light is a Deity derivative, but it is hardly Deity; neither are the material creations a part of Deity; they are a consequence. 천국 섬 – 달리 제한하지 않는다면 – 첫째 근원 및 중심의 물질-중력 조정의 절대자입니다. 천국 섬은, 우주들의 우주에서 유일하게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습니다. 천국 섬은 공간에서 위치가 없지만 우주 소재지(所在地자리 잡고 있는 곳)가 있습니다. 이 영원 섬은 과거·현재·미래에 속한 물리적 우주들의 실재 근원입니다. 핵(核중심) 빛의 섬은 신(神)에서 파생했지만, 도저히 신(神)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질적 창조계는 신(神)의 일부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결과입니다.
0:4.13 (7.11) Paradise is not a creator; it is a unique controller of many universe activities, far more of a controller than a reactor. Throughout the material universes Paradise influences the reactions and conduct of all beings having to do with force, energy, and power, but Paradise itself is unique, exclusive, and isolated in the universes. Paradise represents nothing and nothing represents Paradise. It is neither a force nor a presence; it is just Paradise. 천국은 창조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 우주 활동들의 유일한 조정자이며, 반응(反應)자라기 보다 훨씬 더 조정자(調停者)입니다. 물질 우주들에 널리, 천국은, 기세, 에너지 및 동력과 관계하는 모든 존재의 반응 및 행위에 영향을 주지만, 천국 자체는 우주들 가운데 독특하고 배타적이며 고립되어 있습니다. 천국은 아무 것도 대표하지 않고, 어떤 것도 천국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세도 아니고 현존(現存)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천국입니다.
V. Personality Realities 고유성 실체들
0:5.1 (8.1) Personality is a level of deified reality and ranges from the mortal and midwayer level of the higher mind activation of worship and wisdom up through the morontial and spiritual to the attainment of finality of personality status. That is the evolutionary ascent of mortal- and kindred-creature personality, but there are numerous other orders of universe personalities. 고유성은 신(神)화 실체의 수준이며, 경배와 지혜의 더 높은 마음 활성화에 속한 필사자와 중도자 수준에서 모론시아적 및 영적 수준을 거쳐 고유성 상태의 최종 도달까지 이어집니다. 그것은 필사 및 유사-창조물 고유성의 진화적 상승이지만, 다른 계층의 수없이 많은 우주 고유성들이 있습니다.
0:5.2 (8.2) Reality is subject to universal expansion, personality to infinite diversification, and both are capable of well-nigh unlimited Deity co-ordination and eternal stabilization. While the metamorphic range of nonpersonal reality is definitely limited, we know of no limitations to the progressive evolution of personality realities. 실체는 우주적으로 확대되고, 고유성은 무한히 다양화하며, 둘 다 거의 제한 없이 신(神) 조정-통합과 영원한 안정화(安定化)까지 할 수 있습니다. 비(非)고유적 실체의 변화 범위는 명확히 제한되어 있지만, 우리는 고유성 실체들의 진보적 진화에는 제한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0:5.3 (8.3) On attained experiential levels all personality orders or values are associable and even cocreational. Even God and man can coexist in a unified personality, as is so exquisitely demonstrated in the present status of Christ Michael — Son of Man and Son of God. 도달한 체험적 수준에서 모든 고유성 계층들 혹은 가치들은 연합할 수 있고 심지어 공동창조적입니다. 그리스도 미가엘-인자(人子)와 하나님의 아들-의 현재 상태로 아주 절묘하게 증명되었듯이, 하나님과 사람도 통일된 고유성에 공존할 수 있습니다.
0:5.4 (8.4) All subinfinite orders and phases of personality are associative attainables and are potentially cocreational. The prepersonal, the personal, and the superpersonal are all linked together by mutual potential of co-ordinate attainment, progressive achievement, and cocreational capacity. But never does the impersonal directly transmute to the personal. Personality is never spontaneous; it is the gift of the Paradise Father. Personality is superimposed upon energy, and it is associated only with living energy systems; identity can be associated with nonliving energy patterns. 고유성의 모든 아(亞)무한 계층들과 단계들은 연합하여 도달 가능하며 잠재적으로 공동창조적입니다. 전(前)고유적, 고유적 및 초(超)고유적 존재들은 조정-통합도달, 진보적 성취 및 공동창조적 능력에 속한 상호 잠재성으로 모두 함께 연결됩니다. 그러나 미(未)고유적 존재들은 결코 고유자로 즉시 변화되지 않습니다. 고유성은 자동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천국 아버지의 선물입니다. 고유성은 초월적으로 에너지를 이용하며, 오직 생명이 있는 에너지 체계들과 결합합니다. 정체성은 생명이 없는 에너지 원본들과 결합할 수 있습니다.
0:5.5 (8.5) The Universal Father is the secret of the reality of personality, the bestowal of personality, and the destiny of personality. The Eternal Son is the absolute personality, the secret of spiritual energy, morontia spirits, and perfected spirits. The Conjoint Actor is the spirit-mind personality, the source of intelligence, reason, and the universal mind. But the Isle of Paradise is nonpersonal and extraspiritual, being the essence of the universal body, the source and center of physical matter, and the absolute master pattern of universal material reality. 우주 아버지는 고유성 실체, 고유성 증여 및 고유성 운명의 비밀입니다. 영원 아들은 절대 고유성, 영적 에너지·모론시아 영(靈)들·완성된 영(靈)들의 비밀입니다. 공동 행위자는 영(靈)-마음 고유성, 지능·이성·우주 마음의 근원입니다. 그러나 천국 섬은 비(非)고유적 및 영적 범위를 넘어선 우주 체(體)의 본질, 물리적 물질의 근원 및 중심, 우주적 물질 실체의 절대 주(主) 원본입니다.
0:5.6 (8.6) These qualities of universal reality are manifest in Urantian human experience on the following levels: 우주 실체의 이 특성들은 다음 수준들에서 유란시아의 인간 체험으로 나타납니다.
0:5.7 (8.7) 1. Body. The material or physical organism of man. The living electrochemical mechanism of animal nature and origin. 몸. 사람의 물질적 또는 물리적 유기체. 동물의 본성과 기원에 속한 생명 있는 전기화학 구조.
0:5.8 (8.8) 2. Mind. The thinking, perceiving, and feeling mechanism of the human organism. The total conscious and unconscious experience. The intelligence associated with the emotional life reaching upward through worship and wisdom to the spirit level. 마음. 인간 유기체의 생각하고, 감지하고, 느끼는 구조. 의식적·무의식적 총(總) 체험. 경배와 지혜를 통해 위로 영(靈) 수준에 이르는 감정적 생명과 연합된 지능.
0:5.9 (8.9) 3. Spirit. The divine spirit that indwells the mind of man — the Thought Adjuster. This immortal spirit is prepersonal — not a personality, though destined to become a part of the personality of the surviving mortal creature. 영(靈). 사람의 마음에 내주하는 신적 영(靈) – 생각 조율자. 이 불멸 영(靈)은, 생존하는 필사 창조물의 고유성의 일부가 되는 운명이지만, 고유성이 아니고, 전(前)고유적입니다.
0:5.10 (8.10) 4. Soul. The soul of man is an experiential acquirement. As a mortal creature chooses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so the indwelling spirit becomes the father of a new reality in human experience. The mortal and material mind is the mother of this same emerging reality. The substance of this new reality is neither material nor spiritual — it is morontial. This is the emerging and immortal soul which is destined to survive mortal death and begin the Paradise ascension. 혼(魂). 사람의 혼(魂)은 체험으로 얻습니다. 필사 창조물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선택하면, 내주하는 영(靈)이 인간 체험에서 새 실체의 아버지가 됩니다. 필사 및 물질 마음은 떠오르는 바로 이 실체의 어머니입니다. 이 새 실체의 본체는 물질적이지도, 영적이지도 않고 모론시아적입니다. 이것이, 필사자 죽음에서 살아남아 천국 상승을 시작할 운명의, 떠오르는 불멸 혼(魂)입니다.
0:5.11 (9.1) Personality. The personality of mortal man is neither body, mind, nor spirit; neither is it the soul. Personality is the one changeless reality in an otherwise ever-changing creature experience; and it unifies all other associated factors of individuality. The personality is the unique bestowal which the Universal Father makes upon the living and associated energies of matter, mind, and spirit, and which survives with the survival of the morontial soul. 고유성. 필사 사람의 고유성은, 몸도, 마음도, 영(靈)도 아니고, 혼(魂)도 아닙니다. 고유성은, 변화무쌍한 다른 창조물 체험에서, 변함없는 유일한 실체입니다. 그것은 개인성에 속한 다른 모든 연합 요소들을 통합합니다. 고유성은 우주 아버지가 물질·마음·영(靈)의 살아있는 결합 에너지들로 만들고, 모론시아 혼(魂)의 생존과 함께 살아남는, 독특한 증여물입니다.
0:5.12 (9.2) Morontia is a term designating a vast level intervening between the material and the spiritual. It may designate personal or impersonal realities, living or nonliving energies. The warp of morontia is spiritual; its woof is physical. 모론시아는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 있는, 광대한 수준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그것은 고유적이거나 미(未)고유적 실체들, 생명이 있거나 생명이 없는 에너지들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모론시아의 날실(세로로 놓인 실)은 영적입니다. 그것의 씨실(가로로 놓인 실)은 물리적입니다.
VI. Energy and Pattern 에너지와 원본(原本)
0:6.1 (9.3) Any and all things responding to the personality circuit of the Father, we call personal. Any and all things responding to the spirit circuit of the Son, we call spirit. Any and all that responds to the mind circuit of the Conjoint Actor, we call mind, mind as an attribute of the Infinite Spirit — mind in all its phases. Any and all that responds to the material-gravity circuit centering in nether Paradise, we call matter — energy-matter in all its metamorphic states. 아버지의 고유성 회로에 응답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우리는 고유적이라고 부릅니다. 아들의 영(靈) 회로에 응답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우리는 영(靈)이라고 부릅니다. 공동 행위자의 마음 회로에 응답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우리는 마음이라고 부르는데, 무한 영(靈)의 속성으로서 마음은 모든 단계에 있는 마음입니다. 하부 천국에 중심을 둔 물질-중력 회로에 응답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우리는 물질 – 그 모든 변형(變形) 상태에 있는 에너지-물질이라고 부릅니다.
0:6.2 (9.4) ENERGY we use as an all-inclusive term applied to spiritual, mindal, and material realms. Force is also thus broadly used. Power is ordinarily limited to the designation of the electronic level of material or linear-gravity-responsive matter in the grand universe. Power is also employed to designate sovereignty. We cannot follow your generally accepted definitions of force, energy, and power. There is such paucity of language that we must assign multiple meanings to these terms. 에너지를 우리는 영적, 마음적 및 물질적 영역에 적용된, 모든 것을-포함하는 용어로 사용합니다. 기세도 순전히 그렇게 사용됩니다. 동력(권능)은 대개 대(大)우주에 있는 물질적 또는 직선적(1차, 선형)-중력-응답 물질의 전자(電子)적 수준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정합니다. 권능(동력)은 주권을 나타낼 때도 사용됩니다. 우리는 너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세와 에너지 및 권능(동력)에 대한 정의(定意)를 따를 수 없습니다. 언어가 너무 적어서 우리는 이 용어들에 대해 다양한 의미들을 부여해야 합니다.
0:6.3 (9.5) Physical energy is a term denoting all phases and forms of phenomenal motion, action, and potential. 물리적 에너지는 현상적 동작, 활동 및 잠재력의 모든 단계와 형태를 표시하는 용어입니다.
0:6.4 (9.6) In discussing physical-energy manifestations, we generally use the terms cosmic force, emergent energy, and universe power. These are often employed as follows: 물리적-에너지 표현을 논할 때, 우리는 대체로 질서우주 기세, 창발 에너지 및 우주 동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것들은 종종 다음과 같이 사용됩니다.
0:6.5 (9.7) 1. Cosmic force embraces all energies deriving from the Unqualified Absolute but which are as yet unresponsive to Paradise gravity. 질서우주 기세는 분별불가(무제한) 절대자에서 파생되지만 아직 천국 중력에 응답하지 않는 모든 에너지들을 포함합니다.
0:6.6 (9.8) 2. Emergent energy embraces those energies which are responsive to Paradise gravity but are as yet unresponsive to local or linear gravity. This is the pre-electronic level of energy-matter. 창발 에너지는 천국 중력에 응답하지만 지역(국소)적 또는 직선(1차, 선형) 중력에 아직 응답하지 않는 에너지들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에너지-물질의 전자-이전(以前) 수준입니다.
0:6.7 (9.9) 3. Universe power includes all forms of energy which, while still responding to Paradise gravity, are directly responsive to linear gravity. This is the electronic level of energy-matter and all subsequent evolutions thereof. 우주 동력(권능)은 여전히 천국 중력에 응답하면서, 직선(1차, 선형) 중력에 직접 응답하는 모든 형태의 에너지들을 포함합니다. 이것은 에너지-물질의 전자 수준과 그 원인으로 계속 일어나는 모든 진화들입니다.
0:6.8 (9.10) Mind is a phenomenon connoting the presence-activity of living ministry in addition to varied energy systems; and this is true on all levels of intelligence. In personality, mind ever intervenes between spirit and matter; therefore is the universe illuminated by three kinds of light: material light, intellectual insight, and spirit luminosity. 마음은 다양한 에너지 체계 위에 살아 있는 돌봄의 현존-활동을 내포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지능 수준에서 참입니다. 고유성 안에서 마음은 언제나 영(靈)과 물질 사이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주는 세 종류의 빛: 물질적 빛·지적 통찰력·영(靈) 광도(光度)로 조명됩니다.
0:6.9 (10.1) Light — spirit luminosity — is a word symbol, a figure of speech, which connotes the personality manifestation characteristic of spirit beings of diverse orders. This luminous emanation is in no respect related either to intellectual insight or to physical-light manifestations. 빛 – 영(靈) 광도(光度)는 단어상징, 비유적 표현으로 다양한 계층에 속한 영(靈) 존재들의 고유성 표현 특성을 내포합니다. 이 빛을 내는 발산은 지적 통찰력 또는 물리적-빛 표현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0:6.10 (10.2) PATTERN can be projected as material, spiritual, or mindal, or any combination of these energies. It can pervade personalities, identities, entities, or nonliving matter. But pattern is pattern and remains pattern; only copies are multiplied. 원본(原本)은 물질적, 영적, 마음적, 또는 이 에너지들의 모든 조합으로서 구체적으로 투사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고유성들, 정체성들, 개체들 및 생명이 없는 물질에 가득 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본은 원본이고 원본으로 남습니다. 사본들만 늘어납니다.
0:6.11 (10.3) Pattern may configure energy, but it does not control it. Gravity is the sole control of energy-matter. Neither space nor pattern are gravity responsive, but there is no relationship between space and pattern; space is neither pattern nor potential pattern. Pattern is a configuration of reality which has already paid all gravity debt; the reality of any pattern consists of its energies, its mind, spirit, or material components. 원본은 에너지를 형성할 수 있지만 그것을 조정하지 않습니다. 중력이 에너지-물질을 유일하게 조정합니다. 공간도 원본도 중력에 응답하지 않지만, 공간과 원본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공간은 원본도 잠재력 원본도 아닙니다. 원본은 이미 중력의 모든 빚을 다 갚은 실체의 배열입니다. 어떤 원본의 실체라도 그 에너지, 마음, 영(靈) 또는 물질 성분으로 구성됩니다.
0:6.12 (10.4) In contrast to the aspect of the total, pattern discloses the individual aspect of energy and of personality. Personality or identity forms are patterns resultant from energy (physical, spiritual, or mindal) but are not inherent therein. That quality of energy or of personality by virtue of which pattern is caused to appear may be attributed to God — Deity — to Paradise force endowment, to the coexistence of personality and power. 총체적 면과 아주 달리, 원본은 에너지와 고유성의 개인적 면을 드러냅니다. 고유성 또는 정체성 형태들은 에너지(물리적, 영적 또는 마음적)에서 합성된 원본들이지만, 그것에 본래적이지 않습니다. 에너지 또는 고유성의 그 특질로 인해서 원본이 나타나게 되어, 에너지 또는 고유성의 그 특질은, 하나님 – 신(神), 천국 기세 증여, 및 공존하는 고유성과 권능(동력)이 있는 결과입니다.
0:6.13 (10.5) Pattern is a master design from which copies are made. Eternal Paradise is the absolute of patterns; the Eternal Son is the pattern personality; the Universal Father is the direct ancestor-source of both. But Paradise does not bestow pattern, and the Son cannot bestow personality. 원본은 사본들이 만들어진 주(主) 설계도입니다. 영원 천국은 원본 중 절대입니다. 영원 아들은 원본 고유성입니다. 우주 아버지는 둘 다의 직계 조상-근원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원본을 증여하지 않으며, 아들은 고유성을 증여할 수 없습니다.
VII. The Supreme Being 최극(最極) 존재
0:7.1 (10.6) The Deity mechanism of the master universe is twofold as concerns eternity relationships. God the Father, God the Son, and God the Spirit are eternal — are existential beings — while God the Supreme, God the Ultimate, and God the Absolute are actualizing Deity personalities of the post-Havona epochs in the time-space and the time-space-transcended spheres of master universe evolutionary expansion. These actualizing Deity personalities are future eternals from the time when, and as, they power-personalize in the growing universes by the technique of the experiential actualization of the associative-creative potentials of the eternal Paradise Deities. 주(主)우주의 신(神) 작용 구조는 영원 관계에 관해 이중적(二重的)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및 영(靈) 하나님은 영원한 실존 존재들이지만, 최극 하나님, 궁극 하나님 및 절대 하나님은 시공 및 주(主)우주가 진화로 팽창하는 시공초월 구체들에서, 하보나-이후 획기적 시대를 현실화하는 신(神) 고유성들입니다. 이 현실화 신(神) 고유성들은, 영원한 천국 신(神)들의 결합-창조적 잠재성에 속한 체험적 현실화 기법으로 성장하는 우주들에서 권능(동력)을-고유화할 때부터, 그렇게 미래 영원자들입니다.
0:7.2 (10.7) Deity is, therefore, dual in presence: 따라서 신(神)은 이중적으로 현존합니다.
0:7.3 (10.8) 1. Existential — beings of eternal existence, past, present, and future. 실존적 – 과거·현재·미래의 영원한 실존 존재들.
0:7.4 (10.9) 2. Experiential — beings actualizing in the post-Havona present but of unending existence throughout all future eternity. 체험적 – 하보나-이후 현재에 현실화하지만 모든 미래의 영원 내내 끝없이 실존하는 존재들.
0:7.5 (10.10) The Father, Son, and Spirit are existential — existential in actuality (though all potentials are supposedly experiential). The Supreme and the Ultimate are wholly experiential. The Deity Absolute is experiential in actualization but existential in potentiality. The essence of Deity is eternal, but only the three original persons of Deity are unqualifiedly eternal. All other Deity personalities have an origin, but they are eternal in destiny. 아버지·아들·영(靈)은 (모든 잠재성들은 필경 체험적이지만) 실존적 – 현실로 실존합니다. 최극자와 궁극자는 완전히 체험적입니다. 신(神) 절대자는 현실화(現實化)에서 체험적이지만 잠재성에서 실존적입니다. 신(神)의 본질은 영원이지만, 신(神)의 기원적 삼위만 분별불가(무제한)하게 영원합니다. 다른 모든 신(神) 고유성들은 기원적이지만, 그들은 운명에 있어서 영원합니다.
0:7.6 (10.11) Having achieved existential Deity expression of himself in the Son and the Spirit, the Father is now achieving experiential expression on hitherto impersonal and unrevealed deity levels as God the Supreme, God the Ultimate, and God the Absolute; but these experiential Deities are not now fully existent; they are in process of actualization. 아들과 영(靈)으로 실존적 신(神) 자신의 표현을 성취한 아버지는 지금까지 미(未)고유적 및 숨겨진 신(神) 수준에서, 최극 하나님·궁극 하나님·절대 하나님으로서, 지금 체험적 표현을 성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체험적 신(神)들은 지금 충분히 실존적이지 않으며 그들은 현실화(現實化) 과정 중입니다.
0:7.7 (11.1) God the Supreme in Havona is the personal spirit reflection of the triune Paradise Deity. This associative Deity relationship is now creatively expanding outward in God the Sevenfold and is synthesizing in the experiential power of the Almighty Supreme in the grand universe. Paradise Deity, existential as three persons, is thus experientially evolving in two phases of Supremacy, while these dual phases are power-personality unifying as one Lord, the Supreme Being. 하보나의 최극자 하나님은 삼자일치 천국 신(神)의 고유적 영(靈) 반사(反射)입니다. 신(神) 관계의 이 결합은 칠중 하나님 안에서 지금 밖을 향해 창조적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대(大)우주에서 전능 최극자의 체험적 권능으로 합성하고 있습니다. 삼위로서 실존하는 천국 신(神)은 그래서 최극위의 2단계에서 체험적으로 진화하는 동시에, 이런 이중 단계는 한 분의 주님, 최극 존재로서 통합하는 권능-고유성입니다.
0:7.8 (11.2) The Universal Father achieves freewill liberation from the bonds of infinity and the fetters of eternity by the technique of trinitization, threefold Deity personalization. The Supreme Being is even now evolving as a subeternal personality unification of the sevenfold manifestation of Deity in the time-space segments of the grand universe. 우주 아버지는 무한성의 속박과 영원성의 구속으로부터 삼위일체화 기법, 삼중 신 고유성화로, 자유의지 해방을 성취합니다. 최극 존재는 대(大)우주의 시공 부분에서 신(神)의 칠중 표현에 속한 아(亞)영원한 고유성 통합으로서 지금도 진화 중입니다.
0:7.9 (11.3) The Supreme Being is not a direct creator, except that he is the father of Majeston, but he is a synthetic co-ordinator of all creature-Creator universe activities. The Supreme Being, now actualizing in the evolutionary universes, is the Deity correlator and synthesizer of time-space divinity, of triune Paradise Deity in experiential association with the Supreme Creators of time and space. When finally actualized, this evolutionary Deity will constitute the eternal fusion of the finite and the infinite — the everlasting and indissoluble union of experiential power and spirit personality. 최극 존재는, 그가 위엄자의 아버지 외에 직접적 창조자가 아니지만, 그는 모든 창조물-창조자 우주 활동을 종합하는 조정-통합자입니다. 진화 우주에서 지금 현실화 중인 최극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최극 창조자들과 함께 체험적 관계에서 삼자일치 천국 신에 속한 신(神) 상관(相關)자 및 시공간 신성(神性)의 합성자입니다. 결국 현실화하면, 이 진화적 신(神)은, 체험적 권능과 영(靈) 고유성의 영구히 파기할 수 없는 연합, 유한과 무한을 영원히 융합할 것입니다.
0:7.10 (11.4) All time-space finite reality, under the directive urge of the evolving Supreme Being, is engaged in an ever-ascending mobilization and perfecting unification (power-personality synthesis) of all phases and values of finite reality, in association with varied phases of Paradise reality, to the end and for the purpose of subsequently embarking upon the attempt to reach absonite levels of supercreature attainment. 모든 시공 유한 실체는, 진화하는 최극 존재의 지도 추진력 아래에서, 천국 실체의 다양한 단계와 관련하여, 끝까지 초(超)창조물 도달의 절한(節限) 수준에 이르려는 시도를 계속 착수하려는 목적으로, 늘 상승하는 동원 및 유한 실체의 모든 단계와 가치에 속한 (권능-고유성을 종합하는) 통합의 완성에 바쁩니다.
VIII. God the Sevenfold 칠중(七重) 하나님
0:8.1 (11.5) To atone for finity of status and to compensate for creature limitations of concept, the Universal Father has established the evolutionary creature’s sevenfold approach to Deity: (법적) 상태의 유한성을 보상(補償)하고 창조물의 개념 한계를 보완하려고, 우주 아버지가 진화 창조물이 신(神)에 이르는 칠중 접근법을 마련했습니다.
0:8.2 (11.6) 1. The Paradise Creator Sons. 천국 창조자 아들들.
0:8.3 (11.7) 2. The Ancients of Days.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
0:8.4 (11.8) 3. The Seven Master Spirits. 일곱 주(主) 영들.
0:8.5 (11.9) 4. The Supreme Being. 최극 존재.
0:8.6 (11.10) 5. God the Spirit. 영(靈) 하나님.
0:8.7 (11.11) 6. God the Son. 아들 하나님.
0:8.8 (11.12) 7. God the Father. 아버지 하나님.
0:8.9 (11.13) This sevenfold Deity personalization in time and space and to the seven superuniverses enables mortal man to attain the presence of God, who is spirit. This sevenfold Deity, to finite time-space creatures sometime power-personalizing in the Supreme Being, is the functional Deity of the mortal evolutionary creatures of the Paradise-ascension career. Such an experiential discovery-career of the realization of God begins with the recognition of the divinity of the Creator Son of the local universe and ascends through the superuniverse Ancients of Days and by way of the person of one of the Seven Master Spirits to the attainment of the discovery and recognition of the divin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on Paradise. 필사 인간은 시공 및 일곱 초우주에서 이 칠중 신(神) 고유성화로, 영(靈)이신 하나님의 현존에 이를 수 있습니다. 유한한 시공 창조물들에게, 최극 존재 안에서 언젠가 권능(동력)이-고유성화하는, 이 칠중 신(神)은, 천국 상승 생애의 필사 진화 창조물들의 기능적 신(神)입니다. 하나님의 실상을 알게 되는 그런 체험적 발견-생애는 지역 우주에서 창조자 아들의 신성(神性)을 알아보면서 시작하고, 초우주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을 거치며, 일곱 주(主) 영(靈) 중 한 고유자를 지나서 천국에 있는 우주 아버지의 신적 고유성을 발견하고 인식하는데 이르도록 상승합니다.
0:8.10 (12.1) The grand universe is the threefold Deity domain of the Trinity of Supremacy, God the Sevenfold, and the Supreme Being. God the Supreme is potential in the Paradise Trinity, from whom he derives his personality and spirit attributes; but he is now actualizing in the Creator Sons, Ancients of Days, and the Master Spirits, from whom he derives his power as Almighty to the superuniverses of time and space. This power manifestation of the immediate God of evolutionary creatures actually time-space evolves concomitantly with them. The Almighty Supreme, evolving on the value-level of nonpersonal activities, and the spirit person of God the Supreme are one reality — the Supreme Being. 대(大)우주는 최극위 삼위일체, 칠중 하나님 및 최극 존재에 속한 삼중 신(神) 영역입니다. 최극자 하나님은 천국 삼위일체 안에서 잠재적이며, 그의 고유성과 영(靈) 속성은 천국 삼위일체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창조자 아들들,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 및 주(主) 영들 안에서 현실화하고 있으며, 이들에게서 그의 권능이 시간과 공간에 속한 초우주들에게, 전능자로서 시작합니다. 진화 창조물들에게 직접적인 하나님의 이 권능의 표현은 현실에서 그들과 함께 시간과 공간에서 동시에 진화합니다. 비(非)고유적 활동의 가치 수준에서 진화하는 전능 최극자와 최극 하나님의 고유자 영(靈)은 하나의 실체 – 최극 존재입니다.
0:8.11 (12.2) The Creator Sons in the Deity association of God the Sevenfold provide the mechanism whereby the mortal becomes immortal and the finite attains the embrace of the infinite. The Supreme Being provides the technique for the power-personality mobilization, the divine synthesis, of all these manifold transactions, thus enabling the finite to attain the absonite and, through other possible future actualizations, to attempt the attainment of the Ultimate. The Creator Sons and their associated Divine Ministers are participants in this supreme mobilization, but the Ancients of Days and the Seven Master Spirits are probably eternally fixed as permanent administrators in the grand universe. 칠중 하나님의 신(神) 결합에서 창조자 아들들이 작용 구조를 제공하며, 그로 인해 필사자는 불멸이 되며 유한자는 무한의 품에 이릅니다. 최극 존재가 이 모든 다중 처리에 속한 권능(동력)-고유성 동원, 신적 합성을 위한 기법을 제공하여, 유한자는 절한(節限)에 이르고 가능한 다른 미래 현실화를 거쳐 궁극 도달을 시도합니다. 창조자 아들들과 관련된 신적 성직자들은 이 최극 동원에 참여하지만,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과 일곱 주(主) 영들은 필시 대(大)우주에서 영구적인 경영자들로서 영원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0:8.12 (12.3) The function of God the Sevenfold dates from the organization of the seven superuniverses, and it will probably expand in connection with the future evolution of the creations of outer space. The organization of these future universes of the primary, secondary, tertiary, and quartan space levels of progressive evolution will undoubtedly witness the inauguration of the transcendent and absonite approach to Deity. 칠중 하나님의 기능은 일곱 초우주의 조직에서 시작되고, 그것은 필시 외부 공간 창조계의 미래 진화와 관련되어 확대될 것입니다. 진보적 진화의 1차, 2차, 3차 및 4차 공간 수준에 속한 이 미래 우주들의 조직은 신(神)을 향한 초월적 절한(節限) 접근의 개시를 분명히 목격할 것입니다.
IX. God the Ultimate 궁극자(窮極者) 하나님
0:9.1 (12.4) Just as the Supreme Being progressively evolves from the antecedent divinity endowment of the encompassed grand universe potential of energy and personality, so does God the Ultimate eventuate from the potentials of divinity residing in the transcended time-space domains of the master universe. The actualization of Ultimate Deity signalizes absonite unification of the first experiential Trinity and signifies unifying Deity expansion on the second level of creative self-realization. This constitutes the personality-power equivalent of the universe experiential-Deity actualization of Paradise absonite realities on the eventuating levels of transcended time-space values. The completion of such an experiential unfoldment is designed to afford ultimate service-destiny for all time-space creatures who have attained absonite levels through the completed realization of the Supreme Being and by the ministry of God the Sevenfold. 최극 존재가, 대(大)우주를 둘러싼 에너지와 고유성의 잠재성에 속한 선행하는 신성(神性) 재질에서 진보적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궁극자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한 주(主)우주 영역에 있는 신성(神性)의 잠재성에서 결국 생깁니다. 궁극 신(神)의 현실화는 첫째 체험적 삼위일체의 절한(絶限) 통합을 가리키며, 창조적 자기-실현의 둘째 수준에서 통합하는 신(神) 확장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시공간 초월적 가치의 궁극 수준에 있는 천국 절한(絶限) 실체들의 우주 체험적-신(神) 현실화에 속한 고유성-권능(동력)의 등가(等價같은 값)입니다. 그런 체험적 전개의 완성은, 최극 존재의 완성된 실현을 통해서 그리고 칠중 하나님의 돌봄으로, 절한(絶限) 수준에 도달한 모든 시공간 창조물들을 위해 궁극적으로 봉사하는-운명을 제공하도록 고안되었습니다.
0:9.2 (12.5) God the Ultimate is designative of personal Deity functioning on the divinity levels of the absonite and on the universe spheres of supertime and transcended space. The Ultimate is a supersupreme eventuation of Deity. The Supreme is the Trinity unification comprehended by finite beings; the Ultimate is the unification of the Paradise Trinity comprehended by absonite beings. 궁극자(窮極者) 하나님은 절한(絶限)의 신성(神性) 수준과 초(超)시간 및 초월공간의 우주 구체들에서 활동하는 고유적 신(神)을 말합니다. 궁극자는 결국 신(神)의 초(超)최극(最極)이 생김입니다. 최극자는 유한(有限) 존재가 이해하는 삼위일체 통합입니다. 궁극자는 절한(絶限) 존재들이 이해하는 천국 삼위일체의 통합입니다.
0:9.3 (13.1) The Universal Father, through the mechanism of evolutionary Deity, is actually engaged in the stupendous and amazing act of personality focalization and power mobilization, on their respective universe meaning-levels, of the divine reality values of the finite, the absonite, and even of the absolute. 우주 아버지는, 진화적 신(神)의 작용 구조를 통해, 유한(有限)·절한(絶限) 및 심지어 절대(絶對)의 신적 실체 가치에 대해, 각 우주 의미-수준들에서, 우주-고유성을 초점화하고 권능(동력)을 동원(動員)하는 굉장히 놀라운 활동에 실제로 참여합니다.
0:9.4 (13.2) The first three and past-eternal Deities of Paradise — the Universal Father, the Eternal Son, and the Infinite Spirit — are, in the eternal future, to be personality-complemented by the experiential actualization of associate evolutionary Deities — God the Supreme, God the Ultimate, and possibly God the Absolute. 천국의 첫 세 분이며 과거- 영원 신(神)들 – 우주 아버지, 영원 아들 및 무한 영(靈)-은 영원한 미래에, 동료 진화적 신들 – 최극자 하나님, 궁극자 하나님 및 필시 절대자 하나님-의 체험적 현실화로 고유성이 보완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0:9.5 (13.3) God the Supreme and God the Ultimate, now evolving in the experiential universes, are not existential — not past eternals, only future eternals, time-space-conditioned and transcendental-conditioned eternals. They are Deities of supreme, ultimate, and possibly supreme-ultimate endowments, but they have experienced historic universe origins. They will never have an end, but they do have personality beginnings. They are indeed actualizations of eternal and infinite Deity potentials, but they themselves are neither unqualifiedly eternal nor infinite. 지금 체험적 우주들에서 진화하는 최극자 하나님과 궁극자 하나님은 실존적이지 않고 – 과거 영원자들이 아니라 오직 미래 영원자들, 시간과-공간에-제약을 받으며, 초월적으로-제약을 받는 영원자들입니다. 그들은 최극, 궁극 및 필시 최극-궁극 자질의 신(神)들이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우주 기원을 체험했습니다. 그들은 결코 끝이 없을 것이지만 그들은 고유성 시작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 영원하고 무한한 신(神) 잠재성들의 현실화들이지만, 그들 자신은 무조건 영원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습니다.
X. God the Absolute 절대자(絶對者) 하나님
0:10.1 (13.4) There are many features of the eternal reality of the Deity Absolute which cannot be fully explained to the time-space finite mind, but the actualization of God the Absolute would be in consequence of the unification of the second experiential Trinity, the Absolute Trinity. This would constitute the experiential realization of absolute divinity, the unification of absolute meanings on absolute levels; but we are not certain regarding the encompassment of all absolute values since we have at no time been informed that the Qualified Absolute is the equivalent of the Infinite. Superultimate destinies are involved in absolute meanings and infinite spirituality, and without both of these unachieved realities we cannot establish absolute values. 시공간 유한(有限) 마음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신(神) 절대자의 영원한 실체가 지닌 여러 특색이 있지만, 절대자 하나님의 현실화는 둘째 체험적 삼위일체, 절대 삼위일체 통합의 결과일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신성의 체험적 실현, 절대 수준에서 절대 의미의 통합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별불가(무제한) 절대자가 무한자와 동등하다고 들은 적이 없어서, 모든 절대 가치의 포괄(包括모두 끌어 넣음)에 관해 확신하지 못합니다. 초(超)궁극 운명들은 절대 의미들과 무한한 영성(靈性)에 관련되어 있고, 이 미(未)성취된 두 실체들이 없이, 우리는 절대 가치들을 정할 수 없습니다.
0:10.2 (13.5) God the Absolute is the realization-attainment goal of all superabsonite beings, but the power and personality potential of the Deity Absolute transcends our concept, and we hesitate to discuss those realities which are so far removed from experiential actualization. 절대자 하나님은 모든 초(超)절한 존재들의 실현-도달 목표이지만, 신(神) 절대자의 권능(동력)과 고유성 잠재력은 우리의 개념을 초월하고, 우리는 체험적 현실화에서 아주 멀리 떠난 그런 실체들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XI. The Three Absolutes 세 절대자(絶對者)들
0:11.1 (13.6) When the combined thought of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Eternal Son, functioning in the God of Action, constituted the creation of the divine and central universe, the Father followed the expression of his thought into the word of his Son and the act of their Conjoint Executive by differentiating his Havona presence from the potentials of infinity. And these undisclosed infinity potentials remain space concealed in the Unqualified Absolute and divinely enshrouded in the Deity Absolute, while these two become one in the functioning of the Universal Absolute, the unrevealed infinity-unity of the Paradise Father. 우주 아버지와 영원한 아들의 결합한 생각이, 행위의 하나님으로 기능하면서, 신적 중앙우주의 창조계를 이루었을 때, 아버지는, 무한 잠재성에서 자신의 하보나 현존을 분화하여, 자기 생각을 자기 아들의 말씀과 자신들 공동 실행자의 행위로 표현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춰진 이 무한 잠재성은 무제한(분별불가) 절대자 안에 숨겨져 있고, 신 절대자 안에 신적으로 둘러싸인 공간으로 남아 있는 한편, 이 둘은 천국 아버지의 감춰진 무한-통일성, 즉 우주 절대자의 기능으로 하나가 됩니다.
0:11.2 (13.7) Both potency of cosmic force and potency of spirit force are in process of progressive revelation-realization as the enrichment of all reality is effected by experiential growth and through the correlation of the experiential with the existential by the Universal Absolute. By virtue of the equipoising presence of the Universal Absolute, the First Source and Center realizes extension of experiential power, enjoys identification with his evolutionary creatures, and achieves expansion of experiential Deity on the levels of Supremacy, Ultimacy, and Absoluteness. 모든 실체는 체험적 성장과 우주 절대자에 의한 실존적인 체험적인 상호 관계를 통해 풍족해지듯이, 질서우주 기세와 영(靈) 기세의 잠재력 둘 다, 진보적인 계시-실현 과정에 있습니다. 균형을 잡는 우주 절대자의 현존으로, 첫째 근원 및 중심은 체험적 권능 확장을 실현하고, 자신의 진화 창조물들과 동일시를 누리며, 최극위·궁극위·절대성 수준에 있는 체험적 신(神)의 팽창을 성취합니다.
0:11.3 (14.1) When it is not possible fully to distinguish the Deity Absolute from the Unqualified Absolute, their supposedly combined function or co-ordinated presence is designated the action of the Universal Absolute. 신(神) 절대자와 무제한(분별불가) 절대자를 충분히 구별하기 어려울 때, 필시 그들의 결합한 기능 혹은 조정 통합된 실존을 우주 절대자의 행위라고 부릅니다.
0:11.4 (14.2) 1. The Deity Absolute seems to be the all-powerful activator, while the Unqualified Absolute appears to be the all-efficient mechanizer of the supremely unified and ultimately co-ordinated universe of universes, even universes upon universes, made, making, and yet to be made. 신(神) 절대자는 전능 활성자로 생각되지만, 무제한(분별불가) 절대자는, 최극으로 통합하고 궁극으로 조정되고 통합된 우주들의 우주, 심지어 생성되었고, 생성되며, 아직 생성되지 않은 우주들의 우주들까지 완전히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기계화인듯합니다.
0:11.5 (14.3) The Deity Absolute cannot, or at least does not, react to any universe situation in a subabsolute manner. Every response of this Absolute to any given situation appears to be made in terms of the welfare of the whole creation of things and beings, not only in its present state of existence, but also in view of the infinite possibilities of all future eternity. 신(神) 절대자는 어떤 우주 상황에 대해서 아(亞)절대 방식으로 반응할 수 없고 또한 적어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어떤 상황에 대해 이 절대자의 모든 응답은, 현재 실존의 상태만이 아니라 미래 모든 영원에 속한 무한 가능성을 고려한, 모든 창조계의 사물과 존재의 복지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듯합니다.
0:11.6 (14.4) The Deity Absolute is that potential which was segregated from total, infinite reality by the freewill choice of the Universal Father, and within which all divinity activities — existential and experiential — take place. This is the Qualified Absolute in contradistinction to the Unqualified Absolute; but the Universal Absolute is superadditive to both in the encompassment of all absolute potential. 신(神) 절대자는 우주 아버지의 자유의지 선택에 의한 총 무한 실체에서 분리된 그 잠재력이며, 그 안에서 모든 신성 활동이 – 실존적이며 체험적으로 발생합니다. 이것이 무제한(분별불가) 절대자와 구별된 제한 절대자입니다. 그러나 우주 절대자는 모든 절대 잠재력을 망라하므로 둘 모두에게 합한 것을 초월합니다.
0:11.7 (14.5) 2. The Unqualified Absolute is nonpersonal, extradivine, and undeified. The Unqualified Absolute is therefore devoid of personality, divinity, and all creator prerogatives. Neither fact nor truth, experience nor revelation, philosophy nor absonity are able to penetrate the nature and character of this Absolute without universe qualification. 무제한(분별불가) 절대자는 비(非)고유적으로 신적이지 않으며 신(神)화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제한(분별불가) 절대자는 고유성, 신성 및 모든 창조자 특권이 없습니다. 사실이나 진리, 체험이나 계시, 철학이나 절한(絶限) 그 어떤 것도 우주 자격 없이 이 절대자의 본성과 특성을 간파할 수 없습니다.
0:11.8 (14.6) Let it be made clear that the Unqualified Absolute is a positive reality pervading the grand universe and, apparently, extending with equal space presence on out into the force activities and prematerial evolutions of the staggering stretches of the space regions beyond the seven superuniverses. The Unqualified Absolute is not a mere negativism of philosophic concept predicated on the assumptions of metaphysical sophistries concerning the universality, dominance, and primacy of the unconditioned and the unqualified. The Unqualified Absolute is a positive universe overcontrol in infinity; this overcontrol is space-force unlimited but is definitely conditioned by the presence of life, mind, spirit, and personality, and is further conditioned by the will-reactions and purposeful mandates of the Paradise Trinity. 무제한(분별불가) 절대자는, 대우주에 침투하며, 일곱 초우주 너머 공간 지역에 경이적으로 펼쳐진, 기세 활동들과 물질-이전(以前) 진화 안으로, 명백히, 동등한 공간 현존이 계속 나아감과 함께 확장하는 적극적 실체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무제한(분별불가) 절대자는, 무조건 절대적인 우주성, 우월성 및 수위성에 관한 추상적 궤변의 억측에 입각한 부정적인 철학적 개념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무제한(분별불가) 절대자는 무한성 안에 있는 적극적인 우주 전반적-조정입니다. 이 전반적-조정은 무제한 공간-기세이지만 생명·마음·영(靈)·고유성 실존으로 분명히 제한되고, 천국 삼위일체의 의지-반응과 목적적인 명령으로 더욱 제한됩니다.
0:11.9 (14.7) We are convinced that the Unqualified Absolute is not an undifferentiated and all-pervading influence comparable either to the pantheistic concepts of metaphysics or to the sometime ether hypothesis of science. The Unqualified Absolute is force unlimited and Deity conditioned, but we do not fully perceive the relation of this Absolute to the spirit realities of the universes. 우리는 무제한(분별불가) 절대자가, 형이상학의 범신(汎神) 개념이나 한때 과학의 에테르설에 해당되는, 획일적으로 모든 것에 침투하는 영향력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무제한(분별불가) 절대자는 무제한 기세이며 제한받는 신(神)이지만, 우리는 이 절대자와 우주의 영(靈) 실체들의 관계를 충분히 감지하지 못합니다.
0:11.10 (14.8) 3. The Universal Absolute, we logically deduce, was inevitable in the Universal Father’s absolute freewill act of differentiating universe realities into deified and undeified — personalizable and nonpersonalizable — values. The Universal Absolute is the Deity phenomenon indicative of the resolution of the tension created by the freewill act of thus differentiating universe reality, and functions as the associative co-ordinator of these sum totals of existential potentialities. 우주 실체들을 신(神)화되고 비(非)신(神)화된 – 고유적이되거나 고유적이 될 수 없는 – 가치들로 구별하는, 우주 아버지의 절대 자유의지 활동으로, 우리가 논리적으로 추론할 때, 우주 절대자는 필연적이었습니다. 우주 절대자는, 그렇게 우주 실체를 구별하는 자유의지 행위로 만들어진 긴장 해소를 가리키는 신(神) 현상이며, 실존적 잠재성들이 속한 이 총합에 관련하여 조정하고 통합하는 자로서 기능합니다.
0:11.11 (15.1) The tension-presence of the Universal Absolute signifies the adjustment of differential between deity reality and undeified reality inherent in the separation of the dynamics of freewill divinity from the statics of unqualified infinity. 우주 절대자의 긴장-현존은, 무제한(분별불가) 무한성의 정력(靜力)에서 자유의지 신성(神性)의 동력(動力)을 분리할 때 본래적으로 있는 신(神) 실체와 비(非)신(神)화 실체 사이에 있는 차이의 조율을 의미합니다.
0:11.12 (15.2) Always remember: Potential infinity is absolute and inseparable from eternity. Actual infinity in time can never be anything but partial and must therefore be nonabsolute; neither can infinity of actual personality be absolute except in unqualified Deity. And it is the differential of infinity potential in the Unqualified Absolute and the Deity Absolute that eternalizes the Universal Absolute, thereby making it cosmically possible to have material universes in space and spiritually possible to have finite personalities in time.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잠재적 무한은 절대적이며 영원에서 분리할 수 없습니다. 시간 안에서 현실적 무한은 부분일 뿐이므로 비(非)절대적입니다. 현실적 고유성의 무한은 무제한(분별불가) 신(神) 안에 있지 않으면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무제한(분별불가) 절대자와 신(神) 절대자 안에 있는 무한 잠재력의 격차가 우주 절대자를 영원화하여, 질서우주적으로, 공간 안에서 물질 우주들을 지니고, 시간 안에서 유한한 고유성들을 지닐 수 있게 합니다.
0:11.13 (15.3) The finite can coexist in the cosmos along with the Infinite only because the associative presence of the Universal Absolute so perfectly equalizes the tensions between time and eternity, finity and infinity, reality potential and reality actuality, Paradise and space, man and God. Associatively the Universal Absolute constitutes the identification of the zone of progressing evolutional reality existent in the time-space, and in the transcended time-space, universes of subinfinite Deity manifestation. 유한자가 무한자와 함께 질서우주에서 공존할 수 있는 것은 우주 절대자의 결합하는 현존이, 시간과 영원, 유한과 무한, 잠재적 실체와 현실적 실체, 천국과 공간,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긴장을 그토록 완전히 같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결합하여, 우주 절대자는 시공에 존재하는 진보적 진화 실체의 지대와 초월적 시공에서 아(亞)무한 신(神)이 나타나는 우주들을 일체화합니다.
0:11.14 (15.4) The Universal Absolute is the potential of the static-dynamic Deity functionally realizable on time-eternity levels as finite-absolute values and as possible of experiential-existential approach. This incomprehensible aspect of Deity may be static, potential, and associative but is not experientially creative or evolutional as concerns the intelligent personalities now functioning in the master universe. 우주 절대자는 정적(靜的)-동적(動的) 신(神)의 잠재력이며, 시간-영원 수준에서 유한- 절대적 가치로서, 또 체험-실존적 접근으로서, 기능적으로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신(神)의 이 모습은 정적(靜的), 잠재적, 결합적일 수 있지만, 주(主)우주에서 지금 활동하는 지적 고유성들에 관해서, 체험적으로 창조적이거나 진화적이지 않습니다.
0:11.15 (15.5) The Absolute. The two Absolutes — qualified and unqualified — while so apparently divergent in function as they may be observed by mind creatures, are perfectly and divinely unified in and by the Universal Absolute. In the last analysis and in the final comprehension all three are one Absolute. On subinfinite levels they are functionally differentiated, but in infinity they are ONE. 절대자. 두 절대자 ― 제한 및 무제한 절대자들은 마음 창조물들이 관찰하는 것처럼 명백히 그토록 다르지만, 우주 절대자 안에서, 그로 인해 완전히 신적으로 통합되어 있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이해해서, 셋 모두 하나의 절대자입니다. 아(亞)무한 수준에서 그들은 기능적으로 분화되지만 무한에서 그들은 하나입니다.
0:11.16 (15.6) We never use the term the Absolute as a negation of aught or as a denial of anything. Neither do we regard the Universal Absolute as self-determinative, a sort of pantheistic and impersonal Deity. The Absolute, in all that pertains to universe personality, is strictly Trinity limited and Deity dominated. 무엇의 반증으로써, 또는 어떤 것의 부인(否認)으로써, 우리는 절대자라는 용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주 절대자를 범신론적 비(非)고유적 유형의 자기-확정적 신(神)으로 간주하지도 않습니다. 우주 고유성에 속한다는 모든 면에서, 절대자는 엄격히 제한받는 삼위일체이며 지배받는 신(神)입니다.
XII. The Trinities 삼위일체(三位一體)들
0:12.1 (15.7) The original and eternal Paradise Trinity is existential and was inevitable. This never-beginning Trinity was inherent in the fact of the differentiation of the personal and the nonpersonal by the Father’s unfettered will and factualized when his personal will co-ordinated these dual realities by mind. The post-Havona Trinities are experiential — are inherent in the creation of two subabsolute and evolutional levels of power-personality manifestation in the master universe. 기원적인 영원한 천국 삼위일체는 실존적이며 필연적이었습니다. 결코 시작이 없는 이 삼위일체는, 속박을 푸는 아버지의 의지로 고유적 실체와 비(非)고유적 실체를 분화한다는 사실에 본래 있었고, 그의 고유적 의지가 마음으로 이 2중 실체들을 조정하고 통합할 때, 사실화되었습니다. 하보나-이후 삼위일체들은 체험적이며, 주(主)우주에 있는 권능(동력)-고유성 표현에 속한 2가지, 아(亞)절대 및 진화 수준의 창조계에서 본래적입니다.
0:12.2 (15.8) The Paradise Trinity — the eternal Deity union of the Universal Father, the Eternal Son, and the Infinite Spirit — is existential in actuality, but all potentials are experiential. Therefore does this Trinity constitute the only Deity reality embracing infinity, and therefore do there occur the universe phenomena of the actualization of God the Supreme, God the Ultimate, and God the Absolute. 천국 삼위일체 – 우주 아버지·영원 아들·무한 영의 영원한 신(神) 연합은 현실로 실존적이지만, 모든 잠재력들은 체험적입니다. 그러므로 이 삼위일체는 무한을 품는 유일한 신(神) 실체여서 최극자 하느님·궁극자 하느님·절대자 하느님이 현실화하는 우주 현상이 일어납니다.
0:12.3 (15.9) The first and second experiential Trinities, the post-Havona Trinities, cannot be infinite because they embrace derived Deities, Deities evolved by the experiential actualization of realities created or eventuated by the existential Paradise Trinity. Infinity of divinity is being ever enriched, if not enlarged, by finity and absonity of creature and Creator experience. 첫째 및 둘째 체험적 삼위일체, 하보나-이후 삼위일체들은 파생된 신(神)들, 창조된 실체들의 체험적 현실화로 진화되거나 실존적 천국 삼위일체로 결국 생긴 신(神)들을 포함하므로 무한할 수 없습니다. 신성(神性)의 무한성은, 확대되지 않더라도, 창조물 및 창조주 체험에 속한 유한 및 절한에 의해 늘 풍부해지고 있습니다.
0:12.4 (16.1) Trinities are truths of relationship and facts of co-ordinate Deity manifestation. Trinity functions encompass Deity realities, and Deity realities always seek realization and manifestation in personalization. God the Supreme, God the Ultimate, and even God the Absolute are therefore divine inevitabilities. These three experiential Deities were potential in the existential Trinity, the Paradise Trinity, but their universe emergence as personalities of power is dependent in part on their own experiential functioning in the universes of power and personality and in part on the experiential achievements of the post-Havona Creators and Trinities. 삼위일체들은 조정하고 통합하는 신(神) 표현의 관계와 사실들에 대한 진리들입니다. 삼위일체 기능들은 신(神) 실체들을 포함하며, 신(神) 실체들은 고유화로 항상 실현하고 표현하려 합니다. 그래서 최극자 하느님, 궁극자 하느님 및 절대자 하느님까지 신적 필연들입니다. 이 세 체험적 신(神)들은 실존적 삼위일체, 천국 삼위일체 안에서 잠재적이었지만, 권능(동력)의 고유성들로서 그들의 우주 출현 중 일부는 권능(동력)의 우주에서 그들 자신의 체험적 기능에, 일부는 하보나-이후 창조자들 및 삼위일체들의 체험적 성취에 달려 있습니다.
0:12.5 (16.2) The two post-Havona Trinities, the Ultimate and the Absolute experiential Trinities, are not now fully manifest; they are in process of universe realization. These Deity associations may be described as follows: 하보나-이후 두 삼위일체들, 궁극 및 절대 체험적 삼위일체들은 지금 충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주 실현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신(神) 결합은 다음과 같이 묘사될 수 있습니다.
0:12.6 (16.3) 1. The Ultimate Trinity, now evolving, will eventually consist of the Supreme Being, the Supreme Creator Personalities, and the absonite Architects of the Master Universe, those unique universe planners who are neither creators nor creatures. God the Ultimate will eventually and inevitably powerize and personalize as the Deity consequence of the unification of this experiential Ultimate Trinity in the expanding arena of the well-nigh limitless master universe. 궁극 삼위일체는 지금 진화하고 있으며, 결국 최극 존재, 최극 창조자 고유성들 및 창조자들도 아니고 창조물들도 아닌 독특한 저 우주 계획자들인 주(主)우주의 절한 건축가들로 구성됩니다. 궁극 하느님은, 거의 제한없는 주(主)우주의 팽창 무대에서 이 체험적 궁극 삼위일체를 통일하는 신(神) 결과로서, 결국 필연적으로 동력화 및 고유성화할 것입니다.
0:12.7 (16.4) 2. The Absolute Trinity — the second experiential Trinity — now in process of actualization, will consist of God the Supreme, God the Ultimate, and the unrevealed Consummator of Universe Destiny. This Trinity functions on both personal and superpersonal levels, even to the borders of the nonpersonal, and its unification in universality would experientialize Absolute Deity. 절대 삼위일체 – 둘째 체험적 삼위일체-는 지금 현실화 과정에 있으며 최극 하느님, 궁극 하느님 및 우주 운명의 비(非)계시 완성자로 구성될 것입니다. 이 삼위일체는 고유적 및 초(超)고유적 두 수준과 비(非)고유적 경계까지 기능하며, 절대 신(神)은 우주성 안에 있는 삼위일체 통일로 체험화할 것입니다.
0:12.8 (16.5) The Ultimate Trinity is experientially unifying in completion, but we truly doubt the possibility of such full unification of the Absolute Trinity. Our concept, however, of the eternal Paradise Trinity is an ever-present reminder that Deity trinitization may accomplish what is otherwise nonattainable; hence do we postulate the sometime appearance of the Supreme-Ultimate and the possible trinitization-factualization of God the Absolute. 궁극 삼위일체는 체험적으로 완전히 통일되지만, 우리는 절대 삼위일체의 그런 충만한 통일의 가능성을 정말로 의심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천국 삼위일체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달리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신(神) 삼위일체화가 달성할 수 있음을 늘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젠가 최극-궁극의 출현과 절대 하느님의 삼위일체화-현실화의 가능성이 자명하다고 가정합니다.
0:12.9 (16.6) The philosophers of the universes postulate a Trinity of Trinities, an existential-experiential Trinity Infinite, but they are not able to envisage its personalization; possibly it would equivalate to the person of the Universal Father on the conceptual level of the I AM. But irrespective of all this, the original Paradise Trinity is potentially infinite since the Universal Father actually is infinite. 우주들의 철학자들은 삼위일체들의 삼위일체, 실존적-체험적 삼위일체 무한을 자명한 것으로 가정하지만, 그들은 그 고유성화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아마 자존(自存)자의 개념적 수준에서 우주 아버지의 고유자와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두와 관계없이, 우주 아버지가 실제로 무한하므로, 기원적 삼위일체는 잠재적으로 무한합니다.
Acknowledgment 승인(承認)
0:12.11 (16.8) In formulating the succeeding presentations having to do with the portrayal of the character of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nature of his Paradise associates, together with an attempted description of the perfect central universe and the encircling seven superuniverses, we are to be guided by the mandate of the superuniverse rulers which directs that we shall, in all our efforts to reveal truth and co-ordinate essential knowledge, give preference to the highest existing human concepts pertaining to the subjects to be presented. We may resort to pure revelation only when the concept of presentation has had no adequate previous expression by the human mind. 완전한 중앙우주와 둘레를 돌고 있는 일곱 초우주에 대해 시도된 기술과 함께, 우주 아버지의 성품과 그의 천국 동료들의 본성에 대한 묘사와 관련된 계속되는 진술을 서술하면서, 진리 및 조정하고 통합하는 필수적 지식을 계시하려고 우리가 모든 노력할 때, 제시된 주제들에 적합한, 기존의 최고 인간개념을 우리가 선호하도록, 관리하는 초우주 통치자들의 명령으로, 우리가 인도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시한 개념이 이전에 인간 마음으로 적절히 표현된 적이 없는 경우에만 순수한 계시를 사용할 것입니다.
0:12.12 (17.1) Successive planetary revelations of divine truth invariably embrace the highest existing concepts of spiritual values as a part of the new and enhanced co-ordination of planetary knowledge. Accordingly, in making these presentations about God and his universe associates, we have selected as the basis of these papers more than one thousand human concepts representing the highest and most advanced planetary knowledge of spiritual values and universe meanings. Wherein these human concepts, assembled from the God-knowing mortals of the past and the present, are inadequate to portray the truth as we are directed to reveal it, we will unhesitatingly supplement them, for this purpose drawing upon our own superior knowledge of the reality and divinity of the Paradise Deities and their transcendent residential universe. 신적 진리의 잇따른 행성의 계시들은, 영적 가치에 대한 기존의 최고 개념들을, 행성 지식의 새롭게 향상된 조정 통합의 일부로써, 항상 포함합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그의 우주 동료들에 대해 이 진술을 작성하면서, 우리는 이 글들의 기초로서, 영적 가치와 우주 의미를 지닌 최고로 가장 진보적인 행성 지식을 나타내는 1,000개 이상의 인간개념들을 선택했습니다. 과거와 현재에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들로부터 모아 정리한, 이 인간개념들이, 우리가 진리를 계시하려고 지시를 받은 대로, 진리를 묘사하기에 부적절하면, 이 목적을 위해 천국 신(神)들과 그들이 초월적으로 거주하는 우주의 실체와 신성에 대한 우리 자신의 우수한 지식을 이용하여, 우리는 주저 없이 그것들을 보완할 것입니다.
0:12.13 (17.2) We are fully cognizant of the difficulties of our assignment; we recognize the impossibility of fully translating the language of the concepts of divinity and eternity into the symbols of the language of the finite concepts of the mortal mind. But we know that there dwells within the human mind a fragment of God, and that there sojourns with the human soul the Spirit of Truth; and we further know that these spirit forces conspire to enable material man to grasp the reality of spiritual values and to comprehend the philosophy of universe meanings. But even more certainly we know that these spirits of the Divine Presence are able to assist man in the spiritual appropriation of all truth contributory to the enhancement of the ever-progressing reality of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 God-consciousness. 우리는 어려운 우리 과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성(神性)과 영원의 개념의 언어를 필사자 마음의 유한한 개념의 언어 상징으로 완전히 옮기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마음 내부에 하나님의 파편이 거주하는 것과 인간 혼(魂)과 함께 진리의 영(靈)이 머물러 있음을 압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 영(靈) 기세들이 서로 협력하여 물질 인간이 영적 가치의 실체를 파악하고 우주 의미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훨씬 더 분명히 우리는 신적 현존의 이 영(靈)들이, 늘-진보하는 실체, 즉 하느님을-의식하는, 고유한 종교적 체험의 향상에 공헌하는 모든 진리를 영적으로 사용하도록 인간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0:12.14 (17.3) [Indited by an Orvonton Divine Counselor, Chief of the Corps of Superuniverse Personalities assigned to portray on Urantia the truth concerning the Paradise Deities and the universe of universes.] [천국 신(神)들과 우주들의 우주에 관한 진리를 유란시아에 묘사하도록 선정된, 오르본톤 신적 조언자, 초우주 고유성들 군단의 수석이 작성함.]
142:0.1 (1596.1) THE month of April Jesus and the apostles worked in Jerusalem, going out of the city each evening to spend the night at Bethany. Jesus himself spent one or two nights each week in Jerusalem at the home of Flavius, a Greek Jew, where many prominent Jews came in secret to interview him. 4월에 예수님과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일하셨으며 매일 저녁 도시 밖으로 나가 베다니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예수님 홀로 매주 하루나 이틀 밤은 예루살렘에 있는 헬라파 유대인 플라비우스의 집에서 보내셨는데 여러 저명한 유대인들이 그를 만나러 거기로 은밀히 찾아왔습니다.
142:0.2 (1596.2) The first day in Jerusalem Jesus called upon his friend of former years, Annas, the onetime high priest and relative of Salome, Zebedee’s wife. Annas had been hearing about Jesus and his teachings, and when Jesus called at the high priest’s home, he was received with much reserve. When Jesus perceived Annas’s coldness, he took immediate leave, saying as he departed: “Fear is man’s chief enslaver and pride his great weakness; will you betray yourself into bondage to both of these destroyers of joy and liberty?” But Annas made no reply. The Master did not again see Annas until the time when he sat with his son-in-law in judgment on the Son of Man. 예루살렘에서 첫 날 예수님은 옛 친구 안나스를 방문했는데 그는 한때 대제사장으로 세베대의 아내 살로메의 친척이었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과 그의 가르침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집을 방문하자, 그는 많이 삼가면서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이 안나스의 냉랭함을 눈치채자 즉시 물러나 떠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이 주로 사람을 노예로 삼고자만이 사람의 가장 큰 약점이라. 당신은 기쁨과 해방을 파괴하는 이 두 가지에 매여 자신을 속이려합니까?” 그러나 안나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안나스가 사위와 함께 인자(人子사람의 아들)를 재판하는 자리에 앉을 때까지 주(主)님은 그를 다시 만나지 않았습니다.
1. Teaching in the Temple 성전에서 가르침
142:1.1 (1596.3) Throughout this month Jesus or one of the apostles taught daily in the temple. When the Passover crowds were too great to find entrance to the temple teaching, the apostles conducted many teaching groups outside the sacred precincts. The burden of their message was: 이 달 내내, 예수님이나 사도 중 하나가 매일 성전에서 가르쳤습니다. 유월절 군중이 너무 많아서 가르치는 성전의 입구를 찾기가 어렵게 되자, 사도들은 신성한 경내(境內) 밖에서 가르치는 여러 그룹을 운영했습니다. 그들의 메시지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42:1.2 (1596.4) 1.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하늘나라가 가까이에있습니다.
142:1.3 (1596.5) 2. By faith in the fatherhood of God you may enter the kingdom of heaven, thus becoming the sons of God.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신앙하여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이 됩니다.
142:1.4 (1596.6) 3. Love is the rule of living within the kingdom — supreme devotion to God while loving your neighbor as yourself. 사랑이 하늘나라의 생활 규칙이며, 하나님께 최극으로 헌신하는 동시에 자신처럼 여러분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142:1.5 (1596.7) 4. Obedience to the will of the Father, yielding the fruits of the spirit in one’s personal life, is the law of the kingdom.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자신의 삶에서 영(靈)의 열매를 맺는 것이 하늘나라의 법입니다.
142:1.6 (1596.8) The multitudes who came to celebrate the Passover heard this teaching of Jesus, and hundreds of them rejoiced in the good news. The chief priests and rulers of the Jews became much concerned about Jesus and his apostles and debated among themselves as to what should be done with them. 유월절을 축하하러 온 군중(群衆)이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들었으며, 그 중 수백 명이 복음을 기뻐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통치자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에 대해 깊이 우려(憂慮)했고 그들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자기들끼리 의논했습니다.
142:1.7 (1596.9) Besides teaching in and about the temple, the apostles and other believers were engaged in doing much personal work among the Passover throngs. These interested men and women carried the news of Jesus’ message from this Passover celebration to the uttermost parts of the Roman Empire and also to the East. This was the beginning of the spread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to the outside world. No longer was the work of Jesus to be confined to Palestine. 성전 안과 주위의 가르침 외에, 사도들과 다른 신자들은 유월절 군중 속에서 개인적인 많은 일로 바빴습니다. 관심 있는 이 남녀들은 예수님이 전하신 소식을 이 유월절 잔치로부터로마제국의 극(極)지방과 또한 동방(東方)까지 전했습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의 복음이 외부 세상으로 퍼지는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더 이상 팔레스타인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2. God’s Wrath 하나님의 진노
190210하나님의 진노 출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Do not worship any other god, for the LORD, whose name is Jealous, is a jealous God.
142:2.1 (1597.1) There was in Jerusalem in attendance upon the Passover festivities one Jacob, a wealthy Jewish trader from Crete, and he came to Andrew making request to see Jesus privately. Andrew arranged this secret meeting with Jesus at Flavius’s home the evening of the next day. This man could not comprehend the Master’s teachings, and he came because he desired to inquire more fully about the kingdom of God. Said Jacob to Jesus: “But, Rabbi, Moses and the olden prophets tell us that Yahweh is a jealous God, a God of great wrath and fierce anger. The prophets say he hates evildoers and takes vengeance on those who obey not his law. You and your disciples teach us that God is a kind and compassionate Father who so loves all men that he would welcome them into this new kingdom of heaven, which you proclaim is so near at hand.” 예루살렘의 유월절 잔치에 크레테에서 온 부유한 유대 상인 야곱이 참석하여, 예수님과 사적으로 뵙기를 안드레에게 요청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뵙는 이 은밀한 모임을 다음 날 저녁 플라비우스의 집에서 준비했습니다. 이 사람은 주(主)님의 가르침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더 충분히 물어보려고 찾아왔습니다. 야곱은 예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랍비시여, 모세와 옛 선지자들은, 야훼가 질투의 하나님, 큰 진노와 맹렬한 분노의 하나님이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분이 악인들을 미워하고 그분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복수하신다고 선지자들은 말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은, 하나님이 친절하며 인정이 많은 아버지이시며, 모든 사람들을 너무 사랑해서, 당신이 아주 가까이 있다고 선포하는 이 새로운 하늘나라로 그들을 환영하신다고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142:2.2 (1597.2) When Jacob finished speaking, Jesus replied: “Jacob, you have well stated the teachings of the olden prophets who taught the children of their generation in accordance with the light of their day. Our Father in Paradise is changeless. But the concept of his nature has enlarged and grown from the days of Moses down through the times of Amos and even to the generation of the prophet Isaiah. And now have I come in the flesh to reveal the Father in new glory and to show forth his love and mercy to all men on all worlds. As the gospel of this kingdom shall spread over the world with its message of good cheer and good will to all men, there will grow up improved and better relations among the families of all nations. As time passes, fathers and their children will love each other more, and thus will be brought about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love of the Father in heaven for his children on earth. Remember, Jacob, that a good and true father not only loves his family as a whole — as a family — but he also truly loves and affectionately cares for each individual member.” 야곱이 말을 마치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야곱이여, 당신은 옛 선지자들이 자기 시대의 빛에 따라서그들 세대의 자녀들을 가르쳤던 가르침들을 잘 표현했습니다. 천국의 우리 아버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본성에 대한 개념은, 모세의 시절부터 아모스의 시대를 거쳐 선지자 이사야 세대에 이르기까지 내려오면서 확대되고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영광으로 아버지를 계시하고 그의 사랑과 자비를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내가 육체로 왔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격려와 온정의 메시지와 함께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널리 퍼져서, 모든 나라의 민족들 사이에 개선된 더 좋은 관계가 생길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들과 자녀들이 서로 더 사랑할 것이며, 이렇게 지상의 자녀들을 위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야곱이여, 선하고 참된 아버지는 가족을 가정 전체로 사랑할 뿐 아니라 또한 각 개인을 참으로 사랑하고 애정을 다해 보살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142:2.3 (1597.3) After considerable discussion of the heavenly Father’s character, Jesus paused to say: “You, Jacob, being a father of many, know well the truth of my words.” And Jacob said: “But, Master, who told you I was the father of six children? How did you know this about me?” And the Master replied: “Suffice it to say that the Father and the Son know all things, for indeed they see all. Loving your children as a father on earth, you must now accept as a reality the love of the heavenly Father for you — not just for all the children of Abraham, but for you, your individual soul.” 하늘 아버지의 성품에 대해 상당히 토론한 후, 예수님은 한숨 돌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여, 많은 자녀를 둔 아버지로서 당신은 내 말의 진실함을 잘 알리라.” 그러자 야곱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주(主)님, 제가 여섯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누가 당신께 말했나요? 저에 대해 이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러자 주(主)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만물을 안다는 것으로 충분하니, 정말로 그들은 모든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 아버지로서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므로, 당신 즉 아브라함의 모든 자녀만 아니라 당신 개인의 혼(魂)을 향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실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142:2.4 (1597.4) Then Jesus went on to say: “When your children are very young and immature, and when you must chastise them, they may reflect that their father is angry and filled with resentful wrath. Their immaturity cannot penetrate beyond the punishment to discern the father’s farseeing and corrective affection. But when these same children become grown-up men and women, would it not be folly for them to cling to these earlier and misconceived notions regarding their father? As men and women they should now discern their father’s love in all these early disciplines. And should not mankind, as the centuries pass, come the better to understand the true nature and loving character of the Father in heaven? What profit have you from successive generations of spiritual illumination if you persist in viewing God as Moses and the prophets saw him? I say to you, Jacob, under the bright light of this hour you should see the Father as none of those who have gone before ever beheld him. And thus seeing him, you should rejoice to enter the kingdom wherein such a merciful Father rules, and you should seek to have his will of love dominate your life henceforth.” 그 후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자녀들이 아주 어리고 미숙하며 그들을 혼내야만 할 때, 그들은 자기 아버지가 화가 나 분노로 가득했다고 돌이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미숙해서 멀리 보고 교정하는 아버지의 애정을 식별할 만큼 징계를 넘어 통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아이들이 자라서 남성과 여성이 되었는데, 그들이 아버지에 대해예전의 이런 잘못된 생각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습니까? 남성과 여성으로서 그들은 이제 예전의 이런 모든 훈육에서 자기 아버지의 사랑을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여러 세기(世紀)가 지나면서 이제는 인류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참된 본성과 사랑하시는 성품을 더 이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모세와 선지자들이 본 대로 하나님 보기를 고집 한다면, 영적으로 계몽된 이어진 세대에서 당신은 무슨 이득을 얻습니까? 야곱이여, 내가 당신에게 말하겠는데, 당신은 이 시간의 밝은 빛 아래에서 전에 그 누구도 본적이 없는 아버지를 보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그를 봄으로 당신은 그렇게 자비로운 아버지가 다스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기쁨을 누려야 하며 아버지의 사랑의 뜻이 이제부터 당신의 삶을 다스리도록 해야만 합니다.”
142:2.5 (1598.1) And Jacob answered: “Rabbi, I believe; I desire that you lead me into the Father’s kingdom.”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랍비여, 제가 믿습니다. 당신께서 아버지의 나라로 저를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The Concept of God 하나님 개념
190217하나님 개념 (1)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142:3.1 (1598.2) The twelve apostles, most of whom had listened to this discussion of the character of God, that night asked Jesus many questions about the Father in heaven. The Master’s answers to these questions can best be presented by the following summary in modern phraseology: 12사도들 대부분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이 논의를 경청(傾聽귀를 기울임)했으며, 그 날 밤 예수님께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해 여러 질문들을 했습니다. 이 질문들에 대한 주(主)님의 대답을 현대적 어법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가장 잘 제시할 수 있습니다.
142:3.2 (1598.3) Jesus mildly upbraided the twelve, in substance saying: Do you not know the traditions of Israel relating to the growth of the idea of Yahweh, and are you ignorant of the teaching of the Scriptures concerning the doctrine of God? And then did the Master proceed to instruct the apostles about the evolution of the concept of Deity throughout the course of the development of the Jewish people. He called attention to the following phases of the growth of the God idea: 예수님은 사실 다음의 말로 12사도들을 가볍게 꾸짖으셨습니다. 너희는 야훼 관념의 성장과 관계된 이스라엘의 전통을 알지 못하느냐? 또 하나님의 교리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모르느냐? 그 후 주(主)님은 사도들에게 유대민족의 발전 과정을 통한 신(神) 개념의 진화에 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관념의 성장 단계에 대한 다음 구절들을 상기(想起다시 생각해냄)시켰습니다.
142:3.3 (1598.4) 1. Yahweh — the god of the Sinai clans. This was the primitive concept of Deity which Moses exalted to the higher level of the Lord God of Israel. The Father in heaven never fails to accept the sincere worship of his children on earth, no matter how crude their concept of Deity or by what name they symbolize his divine nature. 야훼 – 시나이 씨족들의 하나님. 이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의 주(主) 하나님이라는 높은 차원으로 고양시켰던 원시적 신(神) 개념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자신들의 신(神) 개념이 미숙하든지 자녀들이 어떤 이름으로 아버지의 신적 본성을 상징하든지 관계없이, 지상에서 그 자녀들의 신실한 경배를 반드시 받으십니다.
142:3.4 (1598.5) 2. The Most High. This concept of the Father in heaven was proclaimed by Melchizedek to Abraham and was carried far from Salem by those who subsequently believed in this enlarged and expanded idea of Deity. Abraham and his brother left Ur because of the establishment of sun worship, and they became believers in Melchizedek’s teaching of El Elyon — the Most High God. Theirs was a composite concept of God, consisting in a blending of their older Mesopotamian ideas and the Most High doctrine. 지고자(至高者지극히 높으신 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 개념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선포했으며, 확대되고 확장된 이 신(神) 관념은 나중에 믿은 사람들이 살렘에서 멀리까지 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형제는 태양신 경배 체제 때문에 우르를 떠났으며, 그들은 엘 엘리온 – 지고자에 대한 멜기세덱 가르침의 신자(信者)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신(神) 개념은 옛 메소포타미아 관념들과 지고자(至高者지극히 높으신 분) 교리를 혼합하여 합성한 하나님 개념이었습니다.
142:3.5 (1598.6) 3. El Shaddai. During these early days many of the Hebrews worshiped El Shaddai, the Egyptian concept of the God of heaven, which they learned about during their captivity in the land of the Nile. Long after the times of Melchizedek all three of these concepts of God became joined together to form the doctrine of the creator Deity, the Lord God of Israel.엘 샤다이. 이 초기 시절에 많은 히브리인들은 엘 샤다이, 즉 나일 강 유역에 사로잡힌 때에 배웠던 이집트 사람들의 하늘 하나님 개념을 경배했습니다. 멜기세덱 시대 훨씬 후에 이 모든 세 가지 하나님 개념들이 합해져서 창조자 신(神), 이스라엘의 주(主) 하나님 교리가 형성되었습니다.
142:3.6 (1598.7) 4. Elohim. From the times of Adam the teaching of the Paradise Trinity has persisted. Do you not recall how the Scriptures begin by asserting that “In the beginning the Gods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This indicates that when that record was made the Trinity concept of three Gods in one had found lodgment in the religion of our forebears. 엘로힘. 아담의 시대부터천국 삼위일체의 가르침이 지속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들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고 성서가 단언하면서 어떻게 시작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느냐? 이것은 그 기록이 만들어졌을 때하나(통일체)로서 세 하나님들의 삼위일체 개념이 우리 선조들의 종교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142:3.7 (1598.8) 5. The Supreme Yahweh. By the times of Isaiah these beliefs about God had expanded into the concept of a Universal Creator who was simultaneously all-powerful and all-merciful. And this evolving and enlarging concept of God virtually supplanted all previous ideas of Deity in our fathers’ religion. 최극자(最極者) 야훼. 이사야의 시대에 하나님에 대한 이 믿음들이, 전능한 동시에 온전히 자비로운우주의 창조자 개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진화되고 확대되는이 하나님 개념이 우리 조상들의 종교에 있는 이전의 모든 신(神) 관념들을 사실상 대체했습니다.
142:3.8 (1598.9) 6. The Father in heaven. And now do we know God as our Father in heaven. Our teaching provides a religion wherein the believer is a son of God. That is the good new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heaven. Coexistent with the Father are the Son and the Spirit, and the revelation of the nature and ministry of these Paradise Deities will continue to enlarge and brighten throughout the endless ages of the eternal spiritual progression of the ascending sons of God. At all times and during all ages the true worship of any human being — as concerns individual spiritual progress — is recognized by the indwelling spirit as homage rendered to the Father in heaven.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종교는 신자(信者)가 하나님의 아들(자녀)이라고 규정합니다. 그것이 하늘나라 복음(福音)의 기쁜 소식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공존(共存함께 존재)하며, 이 천국 신(神)들의 본성과 사역에 대한 계시는 하나님의 상승하는 아들(자녀)들이 영원히 영적으로 진보하는 끝없는 세대들을 통해계속 확대되고 빛날 것입니다. 항상 모든 세대에서 어떤 인간 존재라도 개인적인 영적 진보에 관한 참된 경배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드리는 경의(敬意존경)로서 내주(內住)하는 영이 인정합니다.
190224하나님 개념 (2) 출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For in six days the LORD made the heavens and the earth, the sea, and all that is in them, but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Therefore the LORD blessed the Sabbath day and made it holy.
142:3.9 (1599.1) Never before had the apostles been so shocked as they were upon hearing this recounting of the growth of the concept of God in the Jewish minds of previous generations; they were too bewildered to ask questions. As they sat before Jesus in silence, the Master continued: “And you would have known these truths had you read the Scriptures. Have you not read in Samuel where it says: ‘And the anger of the Lord was kindled against Israel, so much so that he moved David against them, saying, go number Israel and Judah’? And this was not strange because in the days of Samuel the children of Abraham really believed that Yahweh created both good and evil. But when a later writer narrated these events, subsequent to the enlargement of the Jewish concept of the nature of God, he did not dare attribute evil to Yahweh; therefore he said: ‘And Satan stood up against Israel and provoked David to number Israel.’ Cannot you discern that such records in the Scriptures clearly show how the concept of the nature of God continued to grow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 사도들은 이전 세대들의 유대인들 마음에 있었던 하나님 개념의 성장을 이렇게 자세히 들으면서 전에 없었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너무 당황해서 질문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말없이 예수님 앞에 앉아 있자, 주(主)님은 계속하셨습니다. “너희가 성서를 읽었다면, 이 진리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 ‘주(主)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렇게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대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삼하24:1).’는 구절을 사무엘에서 읽지 못했느냐?그리고 사무엘의 시대에는 야훼가 선과 악 둘 다 창조했다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실제로 믿었기 때문에 이것은 이상하지 않았느니라. 그러나 훗날 기자(記者)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유대 개념의 확대된 이후에 이 사건들을 말했을 때, 그는 감히 악을 야훼의 탓으로 돌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21:1).’ 성서의 그런 기록들은 하나님 본성의 개념이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얼마나 계속 성장하는지 명백히 드러내고 있음을 너희는 헤아릴 수 없겠느냐?
142:3.10 (1599.2) “Again should you have discerned the growth of the understanding of divine law in perfect keeping with these enlarging concepts of divinity. When the children of Israel came out of Egypt in the days before the enlarged revelation of Yahweh, they had ten commandments which served as their law right up to the times when they were encamped before Sinai. And these ten commandments were: “이렇게 확대된 신성(神性)의 개념들에온전히 어울리도록신적 율법에 대한 이해의 성장을 또한 헤아렸어야하느니라. 확장된 야훼의 계시 이전 시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할 때, 그들은 시나이 앞에서 야영할 그 시절까지도 자신들의 법으로 사용했던 십계명(十誡命)이 있었습니다. 이 십계명은 다음과 같으니라.
142:3.11 (1599.3) “1. You shall worship no other god, for the Lord is a jealous God.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주님은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34:14).
142:3.12 (1599.4) “2. You shall not make molten gods.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출34:17).
142:3.13 (1599.5) “3. You shall not neglect to keep the feast of unleavened bread. 너는 무교절(無酵節 누룩이 없는 떡, 유월절 이후 7일간 출애굽을 감사)지키기를 소홀하지 말라(출34:18).
142:3.14 (1599.6) “4. Of all the males of men or cattle, the first-born are mine, says the Lord. 사람들이나 가축들이나 모든 수컷 중 첫 태생은 내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출34:19).
142:3.15 (1599.7) “5. Six days you may work, but on the seventh day you shall rest.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쉴지니라(출34:21).
142:3.16 (1599.8) “6. You shall not fail to observe the feast of the first fruits and the feast of the ingathering at the end of the year. 초실절(맥추절, 첫 수확 곡식의 공동 제사일, 칠칠절은 개인적 첫 열매 제사일) 지키기를 잊지 말고 세말에는 수장절(收藏節 초막절, 장막절, 나무 열매 소출)을 지키라(출34:22).
142:3.17 (1599.9) “7. You shall not offer the blood of any sacrifice with leavened bread. 너는 어떤 제물의 피도 유교병(누룩이 있는 떡)과 함께 드리지 말라(출34:25a).
142:3.18 (1599.10) “8. The sacrifice of the feast of the Passover shall not be left until morning. 유월절 제물을 아침까지 두지 말라(출34:25b).
142:3.19 (1599.11) “9. The first of the first fruits of the ground you shall bring to the house of the Lord your God. 네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네 하나님 주님의 전에 드리라(출34:26a).
142:3.20 (1599.12) “10. You shall not seethe a kid in its mother’s milk.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출34:26b).
142:3.21 (1599.13) “And then, amidst the thunders and lightnings of Sinai, Moses gave them the new ten commandments, which you will all allow are more worthy utterances to accompany the enlarging Yahweh concepts of Deity. And did you never take notice of these commandments as twice recorded in the Scriptures, that in the first case deliverance from Egypt is assigned as the reason for Sabbath keeping, while in a later record the advancing religious beliefs of our forefathers demanded that this be changed to the recognition of the fact of creation as the reason for Sabbath observance? “그러고 나서 시나이 산의 천둥과 번개에 에워싸여 모세가 그들에게 새로운 십계명을 주었는데, 너희가 모두 인정한 그 십계명은 신(神)에 대해 확장된 야훼 개념이 동반된 더 훌륭한 표현이라. 너희는 성서에 두 번 기록된 이 계명들, 즉 첫 경우에는 이집트에서 해방이 안식일 준수의 이유로 정해진 반면, 나중의 기록에는 우리 조상들의 진보한 종교적 믿음의 요구로 안식일 준수의 이유가 창조의 사실에 대한 인식으로 이렇게 바뀐 것을 주목하지 못했느냐? (구원 기념일-출애굽 구원신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창조 기념일-천지창조출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42:3.22 (1599.14) “And then will you remember that once again — in the greater spiritual enlightenment of Isaiah’s day — these ten negative commandments were changed into the great and positive law of love, the injunction to love God supremely and your neighbor as yourself. And it is this supreme law of love for God and for man that I also declare to you as constituting the whole duty of man.” “그리고 후에 다시 한 번 – 이사야 시절에 더 큰 영적 계몽으로 – 부정적인 이 십계명이 위대하며 긍정적인 사랑의 법, 즉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바뀌었음을 너희는 기억할 것이라. 인간의 온전한 의무를 이루는 것으로 내가 또한 너희에게 선언하는 것이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사랑의 이 최극 법이라(ex. 사58:10 네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142:3.23 (1600.1) And when he had finished speaking, no man asked him a question. They went, each one to his sleep. 그리고 그가 말씀을 마치셨을 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서 각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4. Flavius and Greek Culture 플라비우스와 그리스(헬라) 문화
190303우상 숭배와 예술 감상 출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You shall not make for yourself an idol in the form of anything in heaven above or on the earth beneath or in the waters below.
142:4.1 (1600.2) Flavius, the Greek Jew, was a proselyte of the gate, having been neither circumcised nor baptized; and since he was a great lover of the beautiful in art and sculpture, the house which he occupied when sojourning in Jerusalem was a beautiful edifice. This home was exquisitely adorned with priceless treasures which he had gathered up here and there on his world travels. When he first thought of inviting Jesus to his home, he feared that the Master might take offense at the sight of these so-called images. But Flavius was agreeably surprised when Jesus entered the home that, instead of rebuking him for having these supposedly idolatrous objects scattered about the house, he manifested great interest in the entire collection and asked many appreciative questions about each object as Flavius escorted him from room to room, showing him all of his favorite statues. 그리스(헬라)파 유대인 플라비우스는 율법을 이행할 의무가 없는개종자여서 할례도 세례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술과 조각의 아름다움에 심취한 애호(愛好)가였기에 예루살렘에서 머물 때 거주하던 집은 아름다운 건물이었습니다. 이 집은 그가 세계 여행을 하면서 사방에서 수집한 매우 귀중한 보물들로 절묘하게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려고 생각 했을 때, 소위 이런 형상(形像)들을 보시고 주님의 기분이 거슬리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집에 들어섰을 때 집안 곳곳에 놓여 우상(偶像)적으로 추정되는 물건들로 인해 그를 꾸짖는 대신에, 모든 수집품에 큰 관심을 보이셨으며, 플라비우스가 이 방 저 방으로 예수님을 안내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조상(彫像조각상)들을 보이자, 예수님은 각 물건에 대해 진가를 이해하는 여러 질문들을 하셔서, 플라비우스는 놀랐지만 기뻤습니다.
142:4.2 (1600.3) The Master saw that his host was bewildered at his friendly attitude toward art; therefore, when they had finished the survey of the entire collection, Jesus said: “Because you appreciate the beauty of things created by my Father and fashioned by the artistic hands of man, why should you expect to be rebuked? Because Moses onetime sought to combat idolatry and the worship of false gods, why should all men frown upon the reproduction of grace and beauty? I say to you, Flavius, Moses’ children have misunderstood him, and now do they make false gods of even his prohibitions of images and the likeness of things in heaven and on earth. But even if Moses taught such restrictions to the darkened minds of those days, what has that to do with this day when the Father in heaven is revealed as the universal Spirit Ruler over all? And, Flavius, I declare that in the coming kingdom they shall no longer teach, ‘Do not worship this and do not worship that’; no longer shall they concern themselves with commands to refrain from this and take care not to do that, but rather shall all be concerned with one supreme duty. And this duty of man is expressed in two great privileges: sincere worship of the infinite Creator, the Paradise Father, and loving service bestowed upon one’s fellow men. If you love your neighbor as you love yourself, you really know that you are a son of God. 주(主)님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우호적인 태도에 당황한 집주인을 보셨기 때문에 모든 수집품을 다 둘러보신 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창조하고, 인간의 예술적인 손길로 만들어진만물의 아름다움의 진가를 네가 이해한다고 왜 비난받아야 한다고 너는 생각하는가? 모세가 한때 우상숭배및 거짓 신(하나님)들 숭배와 싸우려 했다고 해서왜 모든 사람들이 우아함과 아름다움의 복제물에 얼굴을 찡그려야 하느냐? 내가 네가 이르노니, 플라비우스야, 모세의 자손들은 그를 오해했으며,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의 형상들과 모습에 대한 그의 금지(禁止)까지 그들은 지금 거짓 신(하나님)들로 만드느니라. 그러나 모세가 당시 우매한 마음들에게 그런 제한들을 가르쳤어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만물 위에 우주의 영 통치자로 계시(啓示)된 오늘날에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 그러니 플라비우스야, 내가 선언하겠는데 다가오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이것을 섬기지 말라, 저것을 섬기지 말라’고 더 이상 가르치지 않을 것이라. 그들은 이것을 삼가고 저것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명령에 더 이상 스스로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모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의무에 관심을 두게 되리라. 그리고 두 가지 위대한 특권들로 표현되는 사람의 이 의무는 무한 창조자 즉 천국 아버지를 신실히 경배하고 자신의 동료 인간들에게 쏟는 애정 깊은 봉사이니라. 네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면, 너희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아들)임을 정말 아느니라.
142:4.3 (1600.4) “In an age when my Father was not well understood, Moses was justified in his attempts to withstand idolatry, but in the coming age the Father will have been revealed in the life of the Son; and this new revelation of God will make it forever unnecessary to confuse the Creator Father with idols of stone or images of gold and silver. Henceforth, intelligent men may enjoy the treasures of art without confusing such material appreciation of beauty with the worship and service of the Father in Paradise, the God of all things and all beings.” “내 아버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시대에는 우상 숭배에 저항하려는 모세의 시도가 정당화되었지만, 다가오는 시대에 아버지는 아들의 일생으로 계시되리라. 그리고 새로운 이 하나님 계시는 창조주 아버지를 돌로 만든 우상이나 금과 은의 형상들과 영원히 혼동할 필요가 없게 하리라. 이제부터 지능적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그렇게 물질적으로 감상하는 것과 천국의 아버지 즉, 만물 및 모든 존재들의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예배를 혼동하지 않으면서, 귀중한 예술품들을 즐겨도 되느니라.”
142:4.4 (1600.5) Flavius believed all that Jesus taught him. The next day he went to Bethany beyond the Jordan and was baptized by the disciples of John. And this he did because the apostles of Jesus did not yet baptize believers. When Flavius returned to Jerusalem, he made a great feast for Jesus and invited sixty of his friends. And many of these guests also became believers in the message of the coming kingdom. 플라비우스는 예수께서 자신에게 가르친 모든 것을 믿었습니다. 다음 날 그는 요단강 건너 베다니로 가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예수님의 사도들이 아직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플라비우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으며 자기 친구 60명을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이 손님들 중 많은 이들도 다가오는 나라에 대한 메시지를 믿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The Discourse on Assurance 확신에 대한 강연(講演)
190310 구원의 확신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The Spirit himself testifie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God’s children.
142:5.1 (1601.1) One of the great sermons which Jesus preached in the temple this Passover week was in answer to a question asked by one of his hearers, a man from Damascus. This man asked Jesus: “But, Rabbi, how shall we know of a certainty that you are sent by God, and that we may truly enter into this kingdom which you and your disciples declare is near at hand?” And Jesus answered: 이 유월절 주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하신 가장 위대한 설교 중 하나는 다마스쿠스에서 온 한 청중(聽衆)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하지만 랍비여, 하나님이 당신을 보내시고,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는 이 (하늘)나라로 우리가 정말 들어갈 수 있는 지, 우리가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습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142:5.2 (1601.2) “As to my message and the teaching of my disciples, you should judge them by their fruits. If we proclaim to you the truths of the spirit, the spirit will witness in your hearts that our message is genuine. Concerning the kingdom and your assurance of acceptance by the heavenly Father, let me ask what father among you who is a worthy and kindhearted father would keep his son in anxiety or suspense regarding his status in the family or his place of security in the affections of his father’s heart? Do you earth fathers take pleasure in torturing your children with uncertainty about their place of abiding love in your human hearts? Neither does your Father in heaven leave his faith children of the spirit in doubtful uncertainty as to their position in the kingdom. If you receive God as your Father, then indeed and in truth are you the sons of God. And if you are sons, then are you secure in the position and standing of all that concerns eternal and divine sonship. If you believe my words, you thereby believe in Him who sent me, and by thus believing in the Father, you have made your status in heavenly citizenship sure. If you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you shall never fail in the attainment of the eternal life of progress in the divine kingdom. “내 메시지와 내 제자들의 가르침에 관해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판단해야 하리라. 우리가 너희에게 영에 속한 진리들을 선포한다면, 그 영이 너희 심정(마음)에 우리 메시지가 진(眞)짜라고 증언하리라. 하늘 아버지가 허락(許諾)한하늘나라와 너희 확신에 관해 내가 질문하리라. 너희 중 훌륭하고 마음씨 고운 어떤 아버지가 자기 자녀(아들)로 하여금 집안에서 자기 위치와 아버지의 애정을 확신할 입장에 대해 걱정으로 마음을 졸이도록 놔두겠는가? 너희 세상 아버지들이 인간의 변함없는 사랑의 심정(마음) 대신에 불안정하게 자녀들을 괴롭히면서 즐기는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영에 속한 자기의 신앙 자녀들이 하늘나라에서 그들의 위치에 대해 의심스런 불안정에 남겨두지 않으시니라. 너희가 하나님을 너희 아버지로 받아들이면, 참으로 진실로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아들)들이라. 그리고 너희가 자녀(아들)들이면, 영원한 신적 아들됨에 대한 모든 위치와 신분에서너희는 안전하니라. 너희가 내 말을 믿어서나를 보내신 그 분을 믿음으로 그렇게 아버지를 믿으면, 너희는 하늘 시민권이 보장된 신분이라.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면, 너희는 신적 나라에서진보의 영생(永生영원한 생존) 획득에 결코 실패하지 않으리라.
142:5.3 (1601.3) “The Supreme Spirit shall bear witness with your spirits that you are truly the children of God. And if you are the sons of God, then have you been born of the spirit of God; and whosoever has been born of the spirit has in himself the power to overcome all doubt, and this is the victory that overcomes all uncertainty, even your faith. “최극 영이 너희 영들과 함께너희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증언하리라. 그리고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아들)들이면, 너희는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태어난 것이라. 누구나 영으로 난 자는 자신 안에모든 의심을 극복하는 권능을 지니며, 이것이 모든 불확실성, 너의 신앙도 극복하는 승리이니라.
142:5.4 (1601.4) “Said the Prophet Isaiah, speaking of these times: ‘When the spirit is poured upon us from on high, then shall the work of righteousness become peace, quietness, and assurance forever.’ And for all who truly believe this gospel, I will become surety for their reception into the eternal mercies and the everlasting life of my Father’s kingdom. You, then, who hear this message and believe this gospel of the kingdom are the sons of God, and you have life everlasting; and the evidence to all the world that you have been born of the spirit is that you sincerely love one another.” “선지자 이사야가 이런 시대들을 이렇게 언급했느니라.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사32:15a), 그 때에 공의(公義)의 열매는 영원히 화평과 평안과 안전이라(사32:17).’ 그리고 이 복음을 진실로 믿는 모두내 아버지 나라의 영원한 자비와 영생에 들어감에 대해 내가 보증인이 되리라. 그러므로 이 메시지를 듣고 (하늘)나라의 이 복음을 믿는 너희는하나님의 자녀(아들)들이며 너희는 영원히 생명을 소유하느니라. 온 세상에 너희가 영으로 태어난 증거는 너희가 신실하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142:5.5 (1601.5) The throng of listeners remained many hours with Jesus, asking him questions and listening attentively to his comforting answers. Even the apostles were emboldened by Jesus’ teaching to preach the gospel of the kingdom with more power and assurance. This experience at Jerusalem was a great inspiration to the twelve. It was their first contact with such enormous crowds, and they learned many valuable lessons which proved of great assistance in their later work. 경청하던 무리들은 남아서 여러 시간 예수님께 질문했고 위안이 되는 그의 대답을 세심히 경청했습니다. 사도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용기를 얻어더 힘찬 확신으로하늘나라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이 체험으로 12사도들은 크게 격려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엄청난 군중과 처음 만났으며 나중에 일하면서 큰 도움이 된 여러 귀중한 교훈들을 배웠습니다.
6. The Visit with Nicodemus 니고데모와 대화함
190317영으로 태어나는 길 요3:1-13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 Now there was a man of the Pharisees named Nicodemus, a member of the Jewish ruling council. 2 He came to Jesus at night and said, “Rabbi, we know you are a teacher who has come from God. For no one could perform the miraculous signs you are doing if God were not with him.” 3 In reply Jesus declared, “I tell you the truth, no one can see the kingdom of God unless he is born again.” 4 “How can a man be born when he is old?” Nicodemus asked. “Surely he cannot enter a second time into his mother’s womb to be born!” 5 Jesus answered, “I tell you the truth,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unless he is born of water and the Spirit. 6 Flesh gives birth to flesh, but the Spirit gives birth to spirit. 7 You should not be surprised at my saying, ‘You must be born again.’ 8 The wind blows wherever it pleases. You hear its sound, but you cannot tell where it comes from or where it is going. So it is with everyone born of the Spirit.” 9 “How can this be?” Nicodemus asked. 10 “You are Israel’s teacher,” said Jesus, “and do you not understand these things? 11 I tell you the truth, we speak of what we know, and we testify to what we have seen, but still you people do not accept our testimony. 12 I have spoken to you of earthly things and you do not believe; how then will you believe if I speak of heavenly things? 13 No one has ever gone into heaven except the one who came from heaven–the Son of Man.
142:6.1 (1601.6) One evening at the home of Flavius there came to see Jesus one Nicodemus, a wealthy and elderly member of the Jewish Sanhedrin. He had heard much about the teachings of this Galilean, and so he went one afternoon to hear him as he taught in the temple courts. He would have gone often to hear Jesus teach, but he feared to be seen by the people in attendance upon his teaching, for already were the rulers of the Jews so at variance with Jesus that no member of the Sanhedrin would want to be identified in any open manner with him. Accordingly, Nicodemus had arranged with Andrew to see Jesus privately and after nightfall on this particular evening. Peter, James, and John were in Flavius’s garden when the interview began, but later they all went into the house where the discourse continued. 어느 날 저녁 플라비우스의 집에 유대의 산헤드린 원로(元老)회원으로 부유한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는 이 갈릴리 사람의 가르침에 대해 많이 들어서, 어느 날 오후 예수께서 성전 뜰에서 가르치실 때 그의 말을 들으러 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러 자주 가려 했지만, 이미 유대 통치자들이 예수님과 틀어져서어떤 산헤드린 회원도 공개적으로 예수님과 같은 편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참석한 사람들이 볼까봐 두려워했습니다. 따라서 니고데모는 해가 진 후 바로 이 날 저녁 은밀히예수님을 만나려고 안드레와 함께 준비했습니다. 회담이 시작되었을 때, 베드로, 야고보 및 요한은 플라비우스의 정원에 있었지만, 나중에 그들 모두 강연이 계속되던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142:6.2 (1602.1) In receiving Nicodemus, Jesus showed no particular deference; in talking with him, there was no compromise or undue persuasiveness. The Master made no attempt to repulse his secretive caller, nor did he employ sarcasm. In all his dealings with the distinguished visitor, Jesus was calm, earnest, and dignified. Nicodemus was not an official delegate of the Sanhedrin; he came to see Jesus wholly because of his personal and sincere interest in the Master’s teachings. 니고데모를 환영하면서 예수님은 특별한 경의를 표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대화하면서 어떤 타협이나 과도한 설득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主)님은 그의 은밀한 방문객을 논박(論駁조리있게 공격)하거나 비꼬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귀빈(貴賓귀한 손님)을 대하는 모든 일에서, 예수님은 침착하고 진지(眞摯참되고 착실)하셨으며 품위가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의 공적(公的) 대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주(主)님의 가르침에 대한 사적(私的)인 신실한 관심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142:6.3 (1602.2) Upon being presented by Flavius, Nicodemus said: “Rabbi, we know that you are a teacher sent by God, for no mere man could so teach unless God were with him. And I am desirous of knowing more about your teachings regarding the coming kingdom.” 플라비우스가 소개하자, 니고데모가 말했습니다. “랍비여,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단순한 사람이 아무도 그렇게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당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생인 줄 우리가 압니다. 다가오는 (하늘)나라에 관해 당신의 가르침을 더 알기 원합니다.”
142:6.4 (1602.3) Jesus answered Nicodemus: “Verily, verily, I say to you, Nicodemus, except a man be born from above,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Then replied Nicodemus: “But how can a man be born again when he is old? He cannot enter a second time into his mother’s womb to be born.”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니고데모야, 사람이 위에서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러자 니고데모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그가 태어나려고 다시 모태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142:6.5 (1602.4) Jesus said: “Nevertheless, I declare to you, except a man be born of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That which is born of the flesh is flesh, and that which is born of the spirit is spirit. But you should not marvel that I said you must be born from above. When the wind blows, you hear the rustle of the leaves, but you do not see the wind — whence it comes or whither it goes — and so it is with everyone born of the spirit. With the eyes of the flesh you can behold the manifestations of the spirit, but you cannot actually discern the spirit.”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내가 네게 밝히노니, 사람이 영으로 태어나지 않고는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신에서 태어난 것은 육신이요,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위에서 태어나야만 한다는 내 말에 놀라지 말아야 하리라.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지만, 그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네가 보지 못하는 것처럼 영에서 태어난 누구나 그러하니라. 육신의 눈으로 영의 표현을 볼 수 있어도네가 실제로 영을 식별할 수는 없느니라.”
142:6.6 (1602.5) Nicodemus replied: “But I do not understand — how can that be?” Said Jesus: “Can it be that you are a teacher in Israel and yet ignorant of all this? It becomes, then, the duty of those who know about the realities of the spirit to reveal these things to those who discern only the manifestations of the material world. But will you believe us if we tell you of the heavenly truths? Do you have the courage, Nicodemus, to believe in one who has descended from heaven, even the Son of Man?” 니고데모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요?”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아직도 이 모두를 모르느냐?그래서 영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의 의무는 물질 세상에 나타난 것들만 알아보는 자들에게 이런 것들을 계시(啓示)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네게 하늘의 진리들을 말하면네가 우리를 믿겠느냐? 니고데모야, 하늘에서 내려온 자, 즉 사람의 아들도 믿을 용기가있느냐?”
142:6.7 (1602.6) And Nicodemus said: “But how can I begin to lay hold upon this spirit which is to remake me in preparation for entering into the kingdom?” Jesus answered: “Already does the spirit of the Father in heaven indwell you. If you would be led by this spirit from above, very soon would you begin to see with the eyes of the spirit, and then by the wholehearted choice of spirit guidance would you be born of the spirit since your only purpose in living would be to do the will of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And so finding yourself born of the spirit and happily in the kingdom of God, you would begin to bear in your daily life the abundant fruits of the spirit.” 그러자 니고데모가 말했습니다. “그렇지만(하늘)나라로 들어가도록 저를 새롭게 만드는 이 영을 제가 어떻게 붙잡기 시작할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벌써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이 네 안에 있느니라. 네가 위에서 온 이 영의 인도를받고자 하면, 너는 곧 영의 눈으로 보기 시작할 것이며, 그 다음에네가 사는 유일한 목적이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의 뜻을 행하게 되는 것이므로, 영 안내를 향한 전심의 선택으로 인해, 너는 영으로부터 태어나게 되느니라.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행복하게 영으로부터 태어난 자신을 그렇게 알게 되면, 너는 일상생활에서 풍부한 영의 열매를 맺게 시작하리라.”
142:6.8 (1602.7) Nicodemus was thoroughly sincere. He was deeply impressed but went away bewildered. Nicodemus was accomplished in self-development, in self-restraint, and even in high moral qualities. He was refined, egoistic, and altruistic; but he did not know how to submit his will to the will of the divine Father as a little child is willing to submit to the guidance and leading of a wise and loving earthly father, thereby becoming in reality a son of God, a progressive heir of the eternal kingdom. 니고데모는 아주 신실했습니다. 그는 깊이 감명을 받았지만 당황해서 떠나갔습니다. 니고데모는 자기개발, 자기절제 및 높은 도덕 자질에서도 잘 훈련되었습니다. 그는 세련되었으며, 자부심이 강하고, 애타적이었지만, 작은 어린아이가 지혜롭고 애정이 깊은 세상 아버지의 안내와 인도에 기꺼이 복종하듯이, 신적 아버지의 뜻에 자기 뜻을 복종시켜서정말로 하나님의 자녀(아들) 즉 영원한 나라의 진보하는 상속자가 되는지 몰랐습니다.
142:6.9 (1603.1) But Nicodemus did summon faith enough to lay hold of the kingdom. He faintly protested when his colleagues of the Sanhedrin sought to condemn Jesus without a hearing; and with Joseph of Arimathea, he later boldly acknowledged his faith and claimed the body of Jesus, even when most of the disciples had fled in fear from the scenes of their Master’s final suffering and death. 그러나 니고데모는 (하늘)나라를 붙잡기에 충분한신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산헤드린의 자기 동료들이 신문(訊問사건 조사) 없이 예수님께 유죄 판결을 내리려 하자희미하게 항의했습니다. 제자들 대부분이 주님의 마지막 고난과 죽음의 현장에서 두려워 도망했을 때에도, 그는 나중에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대담하게 자기 신앙을 고백했으며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했습니다.
7. The Lesson on the Family 가족에 대한 교훈
190324가족에 대한 교훈(1)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How great is the love the Father has lavished on us, that we should be called children of God! And that is what we are! The reason the world does not know us is that it did not know him.
142:7.1 (1603.2) After the busy period of teaching and personal work of Passover week in Jerusalem, Jesus spent the next Wednesday at Bethany with his apostles, resting. That afternoon, Thomas asked a question which elicited a long and instructive answer. Said Thomas: “Master, on the day we were set apart as ambassadors of the kingdom, you told us many things, instructed us regarding our personal mode of life, but what shall we teach the multitude? How are these people to live after the kingdom more fully comes? Shall your disciples own slaves? Shall your believers court poverty and shun property? Shall mercy alone prevail so that we shall have no more law and justice?” Jesus and the twelve spent all afternoon and all that evening, after supper, discussing Thomas’s questions. For the purposes of this record we present the following summary of the Master’s instruction: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주간에 가르침과 개인적 사역으로 분주히 보내신 후 예수님은 그 다음 수요일을 베다니에서 사도들과 쉬면서 보내셨습니다. 그 날 오후에 도마가 질문을 해서 길고 교훈적인 대답을 얻어냈습니다. 도마가 말했습니다. “주(主)여, 저희가 (하늘)나라의 대사들로 따로 구별된 그날에 주님은 저희에게 많이 말씀하시며 우리의 개인적 생활 방식에 관해 가르치셨는데, 우리는 군중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하늘)나라가 더 완전히 온 후에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당신의 제자들이 노예를 가져도 됩니까? 당신을 믿는 자들이 가난하려고 애쓰면서 재산을 멀리해야 합니까? 더 이상의 율법과 정의(正義) 없이 자비만 가득해야 합니까?” 예수님과 12사도들은 오후 및 식사 후 저녁 내내 도마의 질문들을 논의하며 보냈습니다. 이 기록을 위하여 우리는 주(主)님의 교훈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제시합니다.
142:7.2 (1603.3) Jesus sought first to make plain to his apostles that he himself was on earth living a unique life in the flesh, and that they, the twelve, had been called to participate in this bestowal experience of the Son of Man; and as such coworkers, they, too, must share in many of the special restrictions and obligations of the entire bestowal experience. There was a veiled intimation that the Son of Man was the only person who had ever lived on earth who could simultaneously see into the very heart of God and into the very depths of man’s soul. 예수님 자신은 지상에서 육신으로 독특한 생명을 살고 그 12사도들은 인자(人子사람의 아들)의 이 증여 체험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아서 그런 동료로서 그들도 전체 증여 체험의 특별한 제한과 의무 중 여러 가지에 함께 해야만 함을 먼저 사도들에게 분명히 하고자 하셨습니다. 인자(人子사람의 아들)는 하나님의 그 심정과 사람 혼의 그 깊이를 동시에 들여다 보면서 지상에서 살았던 유일한 사람이라고 넌지시 알리셨습니다.
142:7.3 (1603.4) Very plainly Jesus explained that the kingdom of heaven was an evolutionary experience, beginning here on earth and progressing up through successive life stations to Paradise. In the course of the evening he definitely stated that at some future stage of kingdom development he would revisit this world in spiritual power and divine glory. 하늘나라는 여기 지상에서 시작하여 연속하는 삶의 정거장들을 거쳐 천국까지 진보하는진화적 체험이라고 예수님은 아주 명백히 설명하셨습니다. 저녁의 과정 중 (하늘)나라 발전의 어느 미래 단계에영적 권능과 신적 영광으로그가 이 세상에 되돌아올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142:7.4 (1603.5) He next explained that the “kingdom idea” was not the best way to illustrate man’s relation to God; that he employed such figures of speech because the Jewish people were expecting the kingdom, and because John had preached in terms of the coming kingdom. Jesus said: “The people of another age will better understand the gospel of the kingdom when it is presented in terms expressive of the family relationship — when man understands religion as the teaching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an, sonship with God.” Then the Master discoursed at some length on the earthly family as an illustration of the heavenly family, restating the two fundamental laws of living: the first commandment of love for the father, the head of the family, and the second commandment of mutual love among the children, to love your brother as yourself. And then he explained that such a quality of brotherly affection would invariably manifest itself in unselfish and loving social service. 그 다음에 그는 “(하늘)나라 관념”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으며, 유대인들이 (하늘)나라를 기대하고 있었고, 요한이 다가오는 (하늘)나라의 관점으로 설교했기 때문에 그런 비유를 사용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 복음을 가족 관계의 표현으로 제시하고, 종교를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사람의 형제 됨, 하나님의 자녀(아들)됨으로 사람이 이해하면, 다른 시대의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복음을 더 잘 이해할 것이라.” 그 후 주(主)님은 꽤 길게 하늘 가족의 실례로서 땅의 가족을 말씀하시면서 삶의 근본적인 두 법칙을 새로 말하셨습니다. 가장(家長집의 어른) 아버지를 사랑하는 첫 계명과 자녀간의 서로 사랑, 즉 네 형제를 자신처럼 사랑하는 둘째 계명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그런 형제애정의 본질은 자체로 사심이 없으며 사랑하는 사회봉사로 나타나리라고 설명하셨습니다.
142:7.5 (1603.6) Following that, came the memorable discussion of the fundamental characteristics of family life and their application to the relationship existing between God and man. Jesus stated that a true family is founded on the following seven facts: 가정생활의 근본적 특징들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적용하는 잊지 못할 토론이 뒤따랐습니다. 참된 가족은 다음의 일곱 사실에 기초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42:7.6 (1604.1) 1. The fact of existence. The relationships of nature and the phenomena of mortal likenesses are bound up in the family: Children inherit certain parental traits. The children take origin in the parents; personality existence depends on the act of the parent. The relationship of father and child is inherent in all nature and pervades all living existences. 존재의 사실. 사람의 본성(本性본래 성질) 관계와 서로 닮은 현상은 가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특성을 물려받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에 뿌리를 둡니다. 고유성 존재는 부모의 행위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자녀 관계는 만물에 본래적이며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 가득합니다.
142:7.7 (1604.2) 2. Security and pleasure. True fathers take great pleasure in providing for the needs of their children. Many fathers are not content with supplying the mere wants of their children but enjoy making provision for their pleasures also. 안전과 기쁨. 참된 아버지는 자녀의 필요를 채우면서 크게 기뻐합니다. 많은 아버지들은 자녀들의 단순한 필요 공급으로 만족하지 않으며자녀들의 소망 또한 즐겁게 마련합니다.
142:7.8 (1604.3) 3. Education and training. Wise fathers carefully plan for the education and adequate training of their sons and daughters. When young they are prepared for the greater responsibilities of later life. 교육과 훈련. 현명한 아버지들은 자기 아들딸의 교육과 적절한 훈련을 신중히 계획합니다. 나중 생활의 더 큰 책임을 위해 어릴 때 준비합니다.
142:7.9 (1604.4) 4. Discipline and restraint. Farseeing fathers also make provision for the necessary discipline, guidance, correction, and sometimes restraint of their young and immature offspring. 단련과 억제(抑制억누름). 통찰하는 아버지들은 또한 어리고 미숙한 자녀에게 필요한 단련, 안내, 교정 및 때로 억제를 준비합니다.
142:7.10 (1604.5) 5. Companionship and loyalty. The affectionate father holds intimate and loving intercourse with his children. Always is his ear open to their petitions; he is ever ready to share their hardships and assist them over their difficulties. The father is supremely interested in the progressive welfare of his progeny. 친교와 충성. 다정한 아버지는 자녀들과 친밀한 애정관계를 유지합니다. 그의 귀는 자녀들의 간청에 항상 열려 있습니다. 그는 자녀들의 고난을 나누며 모든 어려움을 도울 준비가 늘 되어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진보적 복지에 최고로 관심을 둡니다.
142:7.11 (1604.6) 6. Love and mercy. A compassionate father is freely forgiving; fathers do not hold vengeful memories against their children. Fathers are not like judges, enemies, or creditors. Real families are built upon tolerance, patience, and forgiveness. 사랑과 자비. 자비로운 아버지는 아낌없이 용서합니다.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보복하려는 기억들을 갖지 않습니다. 아버지들은 판사들, 원수들이나 채권자들과 같지 않습니다. 진정한 가정들은 관용, 인내, 용서 위에 세워집니다.
142:7.12 (1604.7) 7. Provision for the future. Temporal fathers like to leave an inheritance for their sons. The family continues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 Death only ends one generation to mark the beginning of another. Death terminates an individual life but not necessarily the family. 미래 준비. 현세의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유산을 남기려 합니다. 가족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이어집니다. 죽음은 다른 세대의 시작을 표시하는 한 세대의 마침일 뿐입니다. 죽음으로 개인의 일생이 끝나지만 반드시 가족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190331가족에 대한 교훈(2)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142:7.13 (1604.8) For hours the Master discussed the application of these features of family life to the relations of man, the earth child, to God, the Paradise Father. And this was his conclusion: “This entire relationship of a son to the Father, I know in perfection, for all that you must attain of sonship in the eternal future I have now already attained. The Son of Man is prepared to ascend to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so that in me is the way now open still wider for all of you to see God and, ere you have finished the glorious progression, to become perfect, even as your Father in heaven is perfect.” 몇 시간 동안 주(主)님은 이 가정생활의 특징을 하나님, 천국 아버지에 대한 인간, 지상 자녀의 관계에 대해 적용하시며 의논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너희가 영원한 미래에 자녀로서 도달해야만 하는 모든 것에 나는 지금 벌써 도달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이 모든 관계를 온전히 알고 있느니라. 인자(人子사람의 아들)는 아버지의 오른 편으로 오를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너희 모두하나님을 보고, 너희가 영광의 진보를 마치기 전에실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처럼,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길이 내 안에 활짝 넓게 열려 있느니라.”
142:7.14 (1604.9) When the apostles heard these startling words, they recalled the pronouncements which John made at the time of Jesus’ baptism, and they also vividly recalled this experience in connection with their preaching and teaching subsequent to the Master’s death and resurrection. 사도들이 이 놀라운 말씀들을 들었을 때, 예수님의 세례 시(時) 요한이 했던 선언을 생각해냈으며, 주(主)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 자신들의 설교 및 가르침과 관련하여 그들은 이 체험을 또한 생생히 기억했습니다.
142:7.15 (1604.10) Jesus is a divine Son, one in the Universal Father’s full confidence. He had been with the Father and comprehended him fully. He had now lived his earth life to the full satisfaction of the Father, and this incarnation in the flesh had enabled him fully to comprehend man. Jesus was the perfection of man; he had attained just such perfection as all true believers are destined to attain in him and through him. Jesus revealed a God of perfection to man and presented in himself the perfected son of the realms to God. 예수님은 우주의 아버지께서 완전히 신뢰하는 신적 아들이십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계셨으며 그를 완전히 이해하셨습니다. 그는 이제 아버지께서 충분히 만족하시도록 지상에서 사셨으며 이 성육신(成肉身)으로 그는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참된 모든 신자들이 그 안에서 그를 통해도달하도록 정해진 바로 그 완전함에 도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완전한 하나님을 계시했고, 하나님께 자신 안에서 영역의 완전한 아들을 내놓으셨습니다.
142:7.16 (1605.1) Although Jesus discoursed for several hours, Thomas was not yet satisfied, for he said: “But, Master, we do not find that the Father in heaven always deals kindly and mercifully with us. Many times we grievously suffer on earth, and not always are our prayers answered. Where do we fail to grasp the meaning of your teaching?” 예수께서 몇 시간 강연하셨지만, 도마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主)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항상 우리를 친절히 자비롭게 대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다. 여러 번 우리는 지상에서 몹시 고생하고, 우리 기도가 항상 응답되지도 않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의 의미를 어디에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142:7.17 (1605.2) Jesus replied: “Thomas, Thomas, how long before you will acquire the ability to listen with the ear of the spirit? How long will it be before you discern that this kingdom is a spiritual kingdom, and that my Father is also a spiritual being? Do you not understand that I am teaching you as spiritual children in the spirit family of heaven, of which the fatherhead is an infinite and eternal spirit? Will you not allow me to use the earth family as an illustration of divine relationships without so literally applying my teaching to material affairs? In your minds cannot you separate the spiritual realities of the kingdom from the material,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problems of the age? When I speak the language of the spirit, why do you insist on translating my meaning into the language of the flesh just because I presume to employ commonplace and literal relationships for purposes of illustration? My children, I implore that you cease to apply the teaching of the kingdom of the spirit to the sordid affairs of slavery, poverty, houses, and lands, and to the material problems of human equity and justice. These temporal matters are the concern of the men of this world, and while in a way they affect all men, you have been called to represent me in the world, even as I represent my Father. You are spiritual ambassadors of a spiritual kingdom, special representatives of the spirit Father. By this time it should be possible for me to instruct you as full-grown men of the spirit kingdom. Must I ever address you only as children? Will you never grow up in spirit perception? Nevertheless, I love you and will bear with you, even to the very end of our association in the flesh. And even then shall my spirit go before you into all the world.”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도마야, 도마야, 네가 얼마나 오래되어야영의 귀로 듣는 능력을 얻겠느냐? 너는 이 (하늘)나라가 영적 나라이며 내 아버지 또한 영적 존재임을 얼마나 오래되어야 네가 헤아리겠느냐? 무한하고 영원한 영이신 가장(家長)이 계신, 하늘의 영적 가족안에 있는 영적 자녀들로서 내가 너희를 가르치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내 가르침을 물질적 일에 문자적으로 적용하지 말고, 신적 관계의 예증으로 지상 가족들을 내가 사용하도록허락하지 않으려느냐? 너희 마음에서 (하늘)나라의 영적 실체들을 세대의 물질적, 사회적, 경제적, 및 정치적 문제들과 분리시킬 수 없느냐? 내가영의 언어로 말할 때, 예증의 목적으로 평범한 글자 그대로의 관계를 사용한다고 생각해서, 어찌하여 너희는내 의미를 육신의 언어로 옮기려고 고집하느냐? 내 자녀들아, 영의 나라의 가르침을 노예제도, 가난, 주택, 토지의 누추한 일들과 인간 평등과 정의(正義)에 속한 물질 문제에 적용하기를 그치도록내가 부탁하노라. 이런 세속 문제들은 이 세상 사람들의 관심거리이며, 어느 정도 그것들이 모두에게 영향을 주지만, 내가 내 아버지를 대표하듯이 너희는 세상에서나를 대표하도록부름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영적 나라의 영적 대사들, 즉 영 아버지의 특별한 대표들이니라. 이제는내가 너희를 영 나라의 성숙한 어른으로서가르칠 수 있어야 하리라. 내가 이제까지 너희를 아이들로서만 말해야 하느냐? 너희는 영 이해력이 성장하지 않느냐? 그래도 나는 육신으로 우리가 교제하는 마지막까지도너희를 사랑하며 너희를 참으리라. 그리고 그 때도 내 영은 너희 앞서 온 세상으로 가리라.”
8. In Southern Judea 남부 유대에서
190407남부 유대 사역 요3:22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After this, Jesus and his disciples went out into the Judean countryside, where he spent some time with them, and baptized.
142:8.1 (1605.3) By the end of April the opposition to Jesus among the Pharisees and Sadducees had become so pronounced that the Master and his apostles decided to leave Jerusalem for a while, going south to work in Bethlehem and Hebron. The entire month of May was spent in doing personal work in these cities and among the people of the surrounding villages. No public preaching was done on this trip, only house-to-house visitation. A part of this time, while the apostles taught the gospel and ministered to the sick, Jesus and Abner spent at Engedi, visiting the Nazarite colony. John the Baptist had gone forth from this place, and Abner had been head of this group. Many of the Nazarite brotherhood became believers in Jesus, but the majority of these ascetic and eccentric men refused to accept him as a teacher sent from heaven because he did not teach fasting and other forms of self-denial. 4월 말에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사이에서 예수님에 대한 반대가 너무 뚜렷해서 주(主)님과 사도들은 잠시 예루살렘을 떠나 베들레헴과 헤브론에서 사역하러 남쪽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5월 내내 이들 도시들과 인근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개인을 상대로 사역하며 보냈습니다. 이 여행에서 대중 설교는 없었고 단지 각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돌보는 동안에, 예수님과 아브너는 이 기간 중 얼마간 나실인들의 거주지를 방문하면서 엔게디에서 보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 곳 출신으로 아브너는 이 집단의 지도자였습니다. 많은 나실인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되었지만, 금욕적이며 특이한 이 사람들 대부분은 예수님을 하늘이 보낸 선생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했는데, 이는 그가 금식과 다른 형태의 금욕(자아–부정)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42:8.2 (1605.4) The people living in this region did not know that Jesus had been born in Bethlehem. They always supposed the Master had been born at Nazareth, as did the vast majority of his disciples, but the twelve knew the facts.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을 몰랐습니다. 대다수의 수많은 제자들처럼, 그들은 언제나 주(主)님이 나사렛에서 태어났다고 추측했지만, 12사도들은 그 사실들을 알았습니다.
142:8.3 (1605.5) This sojourn in the south of Judea was a restful and fruitful season of labor; many souls were added to the kingdom. By the first days of June the agitation against Jesus had so quieted down in Jerusalem that the Master and the apostles returned to instruct and comfort believers. 남부 유대에 이렇게 머무는 동안은 평온하고 수고의 결실이 풍부한 시기였습니다. 많은 혼들이 (하늘)나라에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6월 초에 예수님을 반대하는 소동이 예루살렘에서 가라앉자주(主)님과 사도들은 신자들을 가르치고 위로하려고 돌아갔습니다.
142:8.4 (1606.1) Although Jesus and the apostles spent the entire month of June in or near Jerusalem, they did no public teaching during this period. They lived for the most part in tents, which they pitched in a shaded park, or garden, known in that day as Gethsemane. This park was situated on the western slope of the Mount of Olives not far from the brook Kidron. The Sabbath weekends they usually spent with Lazarus and his sisters at Bethany. Jesus entered within the walls of Jerusalem only a few times, but a large number of interested inquirers came out to Gethsemane to visit with him. One Friday evening Nicodemus and one Joseph of Arimathea ventured out to see Jesus but turned back through fear even after they were standing before the entrance to the Master’s tent. And, of course, they did not perceive that Jesus knew all about their doings. 예수님과 사도들은 6월 내내 예루살렘 내부와 그 근처에서 보내셨지만, 그들은 이 기간에대중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당시 겟세마네로 알려진 그늘진 공원, 즉 정원에 천막을 치고 대부분 지냈습니다. 이 공원은 올리브 산의 서쪽 비탈에 위치했는데 기드론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안식일 주말에 그들은 대개 베다니에서 나사로와 그 자매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벽 안으로 겨우 몇 번 들어가셨지만, 관심 있는 다수의 탐구자들이 그를 만나러 겟세마네로 나왔습니다. 어떤 금요일 저녁에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지만주(主)님의 천막 입구 앞에 서 있다가 두려워서 다시 돌아갔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그들의 행동을 모두 알고 있음을 그들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142:8.5 (1606.2) When the rulers of the Jews learned that Jesus had returned to Jerusalem, they prepared to arrest him; but when they observed that he did no public preaching, they concluded that he had become frightened by their previous agitation and decided to allow him to carry on his teaching in this private manner without further molestation. And thus affairs moved along quietly until the last days of June, when one Simon, a member of the Sanhedrin, publicly espoused the teachings of Jesus, after so declaring himself before the rulers of the Jews. Immediately a new agitation for Jesus’ apprehension sprang up and grew so strong that the Master decided to retire into the cities of Samaria and the Decapolis.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음을 유대의 통치자들이 알고 그를 체포하려고 준비했지만, 그가 대중 설교를 하지 않는 것을 지켜보고 이전에 자신들이 벌인 소동으로 예수께서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추정하여 추가적 위협 없이이렇게 사적으로 계속 가르치는 것을 놔두기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시몬이라는 산헤드린 회원 하나가, 유대의 통치자들 앞에서 자신을 밝힌 후에,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지했던 6월 말까지는 사태가 조용히 진행되었습니다. 즉시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새로운 소동이 일어나 격렬해져서주님은 사마리아와 데카폴리스의 도시들로 물러나기로 정했습니다.
190428사랑에 담겨 있는 훈련 롬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38 For I am convinced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either angels nor demons, neither the present nor the future, nor any powers, 39 neither height nor depth, nor anything else in all creation, will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that is in Christ Jesus our Lord.
143:0.1 (1607.1) AT THE end of June, A.D. 27, because of the increasing opposition of the Jewish religious rulers, Jesus and the twelve departed from Jerusalem, after sending their tents and meager personal effects to be stored at the home of Lazarus at Bethany. Going north into Samaria, they tarried over the Sabbath at Bethel. Here they preached for several days to the people who came from Gophna and Ephraim. A group of citizens from Arimathea and Thamna came over to invite Jesus to visit their villages. The Master and his apostles spent more than two weeks teaching the Jews and Samaritans of this region, many of whom came from as far as Antipatris to hear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서기(西紀) 27년 6월말에, 유대 종교 통치자들의 반대가 커져서 예수님과 12사도들은 천막과 소소한(小少얼마되지 않은) 사물들을 베다니의 나사로 집에 보관하도록 보낸 후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북쪽 사마리아로 가면서 베델에서 안식일을 보냈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은 고프나와 에브라임에서 온 사람들에게 며칠 동안 전도했습니다. 아리마대와 탐나에서 온 일단(一團)의 시민들이 자기네 마을을 방문하도록 예수님을 초청하려고 건너왔습니다. 주(主)님과 사도들은 이 지역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을 가르치며 2주 이상 보냈는데, 그들 중 많은 이들은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듣기 위해 안티파트리스처럼 먼 곳에서 왔습니다.
143:0.2 (1607.2) The people of southern Samaria heard Jesus gladly, and the apostles, with the exception of Judas Iscariot, succeeded in overcoming much of their prejudice against the Samaritans. It was very difficult for Judas to love these Samaritans. The last week of July Jesus and his associates made ready to depart for the new Greek cities of Phasaelis and Archelais near the Jordan. 남부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으며, 가룟 유다를 제외한 사도들은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자신들의 편견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유다가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사랑하기는 아주 어려웠습니다. 7월 마지막 주에 예수님과 동료들은 요단 근처 파사엘리스와 아켈라이스의 새로운 그리스 도시들로 떠나려고 준비했습니다.
1. Preaching at Archelais 아켈라이스에서 전도함
143:1.1 (1607.3) The first half of the month of August the apostolic party made its headquarters at the Greek cities of Archelais and Phasaelis, where they had their first experience preaching to well-nigh exclusive gatherings of gentiles — Greeks, Romans, and Syrians — for few Jews dwelt in these two Greek towns. In contacting with these Roman citizens, the apostles encountered new difficulties in the proclamation of the message of the coming kingdom, and they met with new objections to the teachings of Jesus. At one of the many evening conferences with his apostles, Jesus listened attentively to these objections to the gospel of the kingdom as the twelve repeated their experiences with the subjects of their personal labors. 8월 전반부에 사도 일행은 파사엘리스와 아켈라이스의 그리스 도시들에 본부를 두고 거기에서 그들은 거의 이방인들 –그리스인들, 로마인들, 시리아인들-만의 모임에서 설교하는 첫 경험을 했는데, 이 두 그리스 도시들에는 유대인들이 거의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로마 시민들과 접촉하면서, 사도들은 다가오는 (하늘)나라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새로운 어려움에 부닥쳤으며, 예수님의 가르침들에 대한 새로운 반대를 겪었습니다. 사도들과 가졌던 여러 저녁 회의 중 하나에서, 12사도들이 개인적으로 애썼던 자신들의 체험을 주제로 반복해서 말하자,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복음에 대한 이 반대이유들을 주의 깊게 경청하셨습니다.
143:1.2 (1607.4) A question asked by Philip was typical of their difficulties. Said Philip: “Master, these Greeks and Romans make light of our message, saying that such teachings are fit for only weaklings and slaves. They assert that the religion of the heathen is superior to our teaching because it inspires to the acquirement of a strong, robust, and aggressive character. They affirm that we would convert all men into enfeebled specimens of passive nonresisters who would soon perish from the face of the earth. They like you, Master, and freely admit that your teaching is heavenly and ideal, but they will not take us seriously. They assert that your religion is not for this world; that men cannot live as you teach. And now, Master, what shall we say to these gentiles?” 빌립이 여쭌 질문이 그들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이었습니다. 빌립이 말했습니다. “주(主)여, 이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그런 가르침들이 약한 자들이나 노예들에게만 어울린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메시지를 가볍게 여깁니다. 이교도의 종교는 강하고 튼튼하며 적극적인 성품을 얻게 하므로 우리의 가르침보다 뛰어나다고 그들이 주장합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약한 사람들, 즉 수동적 무저항(無抵抗)자들로 만들어, 이 지상에서 곧 사라지리라고 그들이 단언합니다. 주(主)여, 그들은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의 교훈이 하늘의 이상(理想)적 가르침이라고 거리낌 없이 인정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가르치는 대로 사람들이 살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의 종교는 이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들이 주장합니다. 주(主)여, 이제 우리가 이 이방인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될까요?”
143:1.3 (1607.5) After Jesus had heard similar objections to the gospel of the kingdom presented by Thomas, Nathaniel, Simon Zelotes, and Matthew, he said to the twelve: 도마, 나다니엘, 시몬 젤로떼, 마태가 제시한 (하늘)나라 복음에 대한 비슷한 반대이유들을 들으신 후 예수께서 12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43:1.4 (1608.1) “I have come into this world to do the will of my Father and to reveal his loving character to all mankind. That, my brethren, is my mission. And this one thing I will do, regardless of the misunderstanding of my teachings by Jews or gentiles of this day or of another generation. But you should not overlook the fact that even divine love has its severe disciplines. A father’s love for his son oftentimes impels the father to restrain the unwise acts of his thoughtless offspring. The child does not always comprehend the wise and loving motives of the father’s restraining discipline. But I declare to you that my Father in Paradise does rule a universe of universes by the compelling power of his love. Love is the greatest of all spirit realities. Truth is a liberating revelation, but love is the supreme relationship. And no matter what blunders your fellow men make in their world management of today, in an age to come the gospel which I declare to you will rule this very world. The ultimate goal of human progress is the reverent recognition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loving materialization of the brotherhood of man. “나는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의 사랑하는 성품을 모든 인류에게 계시하러이 세상에 왔노라. 내 형제들아, 그것이 나의 사명이니라. 그래서 오늘날 또는 다른 세대의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 내 가르침들을 오해하는 것에 개의치 않고, 나는 이 한 가지를 행할 것이라. 그러나 신적 사랑에도 엄격한 훈련이 있다는 사실을 너희는 간과(看過대충 넘김)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아버지는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으로경솔한 자녀의 어리석은 행위를 종종 제한하느니라. 자녀는 아버지의 제한하는 훈련에 담긴 지혜와 사랑의 동기들을 항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천국의 내 아버지는 강력한 사랑의 권능으로 온 우주들을 다스린다고 내가 너희에게 선언하노라. 사랑은 모든 영 실체들 중에서 최고이니라. 진리는 자유롭게 하는 계시이지만, 사랑은 최극 관계니라. 그리고 너희 동료 인간들이 현재 자신들의 세상 관리에 있어서 무슨 큰 실책들을 저질러도, 다가오는 시대에는 내가 너희에게 선언하는 복음이 바로 이 세상을 다스릴 것이니라. 인간 진보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경건히 인식하고 사람의 형제애(兄弟愛형제 사랑)를깊은 애정으로 실현하는 것이니라.
143:1.5 (1608.2) “But who told you that my gospel was intended only for slaves and weaklings? Do you, my chosen apostles, resemble weaklings? Did John look like a weakling? Do you observe that I am enslaved by fear? True, the poor and oppressed of this generation have the gospel preached to them. The religions of this world have neglected the poor, but my Father is no respecter of persons. Besides, the poor of this day are the first to heed the call to repentance and acceptance of sonship. The gospel of the kingdom is to be preached to all men — Jew and gentile, Greek and Roman, rich and poor, free and bond — and equally to young and old, male and female. “그러나 내 복음이 노예들과 약한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누가 너희에게 말하더냐? 내가 택한 너희 사도들이 약한 자들을 닮았느냐? 요한이 약한 자와 같더냐?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를 너희가 보느냐? 이 세대의 가난한 자들과 학대받는 자들이 선포된 복음을 지닌 것은 사실이라. 이 세상의 종교들은 가난한 자들을 무시했지만, 내 아버지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느니라. 게다가, 오늘 가난한 자들은 회개의 부르심과 자녀 됨의 수용(受容받아들임)에 마음을 두는 첫째들이라. (하늘)나라의 복음은 모든 사람들 –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인과 로마인,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인과 매인 자 – 및 젊은이와 노인,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전해져야 하니라.
143:1.6 (1608.3) “Because my Father is a God of love and delights in the practice of mercy, do not imbibe the idea that the service of the kingdom is to be one of monotonous ease. The Paradise ascent is the supreme adventure of all time, the rugged achievement of eternity. The service of the kingdom on earth will call for all the courageous manhood that you and your coworkers can muster. Many of you will be put to death for your loyalty to the gospel of this kingdom. It is easy to die in the line of physical battle when your courage is strengthened by the presence of your fighting comrades, but it requires a higher and more profound form of human courage and devotion calmly and all alone to lay down your life for the love of a truth enshrined in your mortal heart. “내 아버지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자비의 실천을 아주 기뻐하시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봉사가 단조롭고 쉬운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말라. 천국 상승은 언제나 최극 모험이며, 영원의 험난한 성취라. 지상의 (하늘)나라 봉사는 너희와 너희 동료들이 동원할 수 있는모든 용기 있는 남성다움을 요구할 것이라. 너희 중 여럿이 이 (하늘)나라 복음에 충성(忠誠)하다가 처형되리라. 전투하는 너희 전우(戰友)의 존재로 너희 용기가 강화되면, 물리적 전투 중에 죽는 것은 쉽지만, 너희 필사(必死반드시 죽는) 인간의 심정에 간직된진리를 사랑해서, 차분하게 온전히 홀로자기 생명을 버리는 것은 더 높고, 더 심오한 형태의 인간적 용기와 헌신을 요구하느니라.
143:1.7 (1608.4) “Today, the unbelievers may taunt you with preaching a gospel of nonresistance and with living lives of nonviolence, but you are the first volunteers of a long line of sincere believers in the gospel of this kingdom who will astonish all mankind by their heroic devotion to these teachings. No armies of the world have ever displayed more courage and bravery than will be portrayed by you and your loyal successors who shall go forth to all the world proclaiming the good news —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en. The courage of the flesh is the lowest form of bravery. Mind bravery is a higher type of human courage, but the highest and supreme is uncompromising loyalty to the enlightened convictions of profound spiritual realities. And such courage constitutes the heroism of the God-knowing man. And you are all God-knowing men; you are in very truth the personal associates of the Son of Man.” “오늘날, 불신자들이 무저항의 복음을 전하며비폭력의 삶을 사는 너희를 조롱할 수도 있지만, 너희는 이 가르침들에 영웅적으로 헌신하여모든 인류를 놀라게할 자들, 즉 이 (하늘)나라의 복음을 믿는 신실한 신자들의 긴 행렬에 속한첫 번째 자원(自願스스로 나선)자들이니라. 복음 –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아버지 사랑)과 인간의 형제 됨(형제 사랑)을 선포하면서 온 세상에 나아갈너희와 너희의 충직한 후계자들이 생생하게 묘사할 용기와 용맹보다 더한 것을 세상의 어떤 군대도 결코 보여주지 못했느니라. 육신의 용기는 가장 낮은 형태의 용맹이니라. 마음의 용맹이 더 높은 유형의 인간적 용기이지만, 최고 및 최극의 용맹은 심오한 영적 실체들을 깨우친 확신에 대한 타협하지 않는 충성이니라. 그리고 그런 용기가 하나님을–아는 사람의 영웅적 행위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너희는 모두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니라. 정말 진실로 너희는 인자(人子사람의 아들)의 개인적 동료들이기 때문이니라.”
143:1.8 (1608.5) This was not all that Jesus said on that occasion, but it is the introduction of his address, and he went on at great length in amplification and in illustration of this pronouncement. This was one of the most impassioned addresses which Jesus ever delivered to the twelve. Seldom did the Master speak to his apostles with evident strong feeling, but this was one of those few occasions when he spoke with manifest earnestness, accompanied by marked emotion. 이것은 그 상황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모두가 아니었지만, 연설의 서론으로, 그는 이 선언을확대하고 실례를 들어 장시간 계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일찍이 12사도들에게 하셨던 가장 열정적인 연설들 중 하나였습니다. 주(主)님은 좀처럼 사도들에게 뚜렷이 격렬한 감정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이것은 두드러진 감동과 더불어 분명한 진지함으로 말씀하셨던 그 드문 경우들 중 하나였습니다.
143:1.9 (1609.1) The result upon the public preaching and personal ministry of the apostles was immediate; from that very day their message took on a new note of courageous dominance. The twelve continued to acquire the spirit of positive aggression in the new gospel of the kingdom. From this day forward they did not occupy themselves so much with the preaching of the negative virtues and the passive injunctions of their Master’s many-sided teaching. 사도들의 대중 설교와 개인적 사역의 결과는 즉각적이었습니다. 바로 그 날부터 그들의 메시지는 새로운 음조(音調)의 용기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12사도들은 (하늘)나라의 새 복음으로긍정적인 적극성의 영(정신)을 계속 얻었습니다. 이 날 이후로 그들은 주(主)님의 다면(多面)적인 가르침에 있는 소극적 덕목과 수동적 명령의 설교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2. Lesson on Self-Mastery 자아-통달(정복)에 대한 교훈
190505자아–통달(정복) 벧전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When he was reviled, reviled not again; when he suffered, he threatened not; but committed himself to him that judgeth righteously:
143:2.1 (1609.2) The Master was a perfected specimen of human self-control. When he was reviled, he reviled not; when he suffered, he uttered no threats against his tormentors; when he was denounced by his enemies, he simply committed himself to the righteous judgment of the Father in heaven. 주(主)님은 인간적 자아–통제(자제, 극기)의 완전한 표본이었습니다. 그는 욕설을 듣고도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고통을 받았을 때 괴롭히는 자에 대항해서 어떤 위협의 말도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대적들이 비난했을 때, 그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올바른 판단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143:2.2 (1609.3) At one of the evening conferences, Andrew asked Jesus: “Master, are we to practice self-denial as John taught us, or are we to strive for the self-control of your teaching? Wherein does your teaching differ from that of John?” Jesus answered: “John indeed taught you the way of righteousness in accordance with the light and laws of his fathers, and that was the religion of self-examination and self-denial. But I come with a new message of self-forgetfulness and self-control. I show to you the way of life as revealed to me by my Father in heaven. 한 저녁 회의에서 안드레가 예수께 여쭈었습니다. “주(主)여, 요한이 우리에게 가르쳤듯이 우리가 자아–부정(금욕禁慾)을 실천해야 합니까? 아니면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자아–통제(자제, 극기)를 열심히 해야 합니까? 선생님의 가르침과 요한의 가르침은 어떤 면에서 다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요한은 진실로 자기 선조들의 빛과 율법에 따라서 정의(正義)의 길을 너희에게 가르쳤으며, 그것은 자아–반성과 자아-부정(금욕禁慾)의 종교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자아–망각(자기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욕심이 없음)과 자아–통제(자제, 극기)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가지고 오느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내게 계시한 대로 나는 너희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노라.
143:2.3 (1609.4) “Verily, verily, I say to you, he who rules his own self is greater than he who captures a city. Self-mastery is the measure of man’s moral nature and the indicator of his spiritual development. In the old order you fasted and prayed; as the new creature of the rebirth of the spirit, you are taught to believe and rejoice. In the Father’s kingdom you are to become new creatures; old things are to pass away; behold I show you how all things are to become new. And by your love for one another you are to convince the world that you have passed from bondage to liberty, from death into life everlasting.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자기 자아를 다스리는 자는 한 도시를 점령하는 자보다 더 위대하니라. 자아–통달(자아–정복)은 사람의 도덕적 본성의 척도(尺度판단 기준)이며 그의 영적 발전의 지표(指標방향, 목적, 기준의 표지)니라. 구(舊낡은)체제에서 너희는 금식하고 기도했느니라. 영으로 거듭난 새 창조물로서, 너희는 믿고 기뻐하라고 배우느니라.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는 새 창조물이 되어야 하니라. 이전 것들은 사라지기 때문이니라. 보라, 만물이 어떻게 새로워지는지 내가 너희에게 보이노라.그리고 너희가 서로 사랑하여서, 너희가 포로(捕虜속박)에서 해방(解放자유롭게 함)으로, 죽음에서영생(永生)으로 옮긴 것을 세상에 알게 하라.
143:2.4 (1609.5) “By the old way you seek to suppress, obey, and conform to the rules of living; by the new way you are first transformed by the Spirit of Truth and thereby strengthened in your inner soul by the constant spiritual renewing of your mind, and so are you endowed with the power of the certain and joyous performance of the gracious, acceptable, and perfect will of God. Forget not — it is your personal faith in the exceedingly great and precious promises of God that ensures your becoming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Thus by your faith and the spirit’s transformation, you become in reality the temples of God, and his spirit actually dwells within you. If, then, the spirit dwells within you, you are no longer bondslaves of the flesh but free and liberated sons of the spirit. The new law of the spirit endows you with the liberty of self-mastery in place of the old law of the fear of self-bondage and the slavery of self-denial. “옛 방식에 따라 너희는 억누르고, 복종하며, 생활의 규칙에 순응하려 하느니라. 새 방식에 따라 너희는 먼저 진리의 영으로 변화되어서, 너희는 계속 영적으로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너희 내적 혼을 강하게 하며, 그렇게 해서 너희는 은혜롭고, 기뻐하며,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기쁘게 이행하는 권능을 받게 되느니라. 너희를 신적 본성에 참여자가 되도록 보장하는 것은 아주 위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너희의 개인적 신앙임을 잊지 말라. 이렇게 너희신앙과 영의 변화로 너희는 정말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며, 그의 영은 실제로 너희 안에 거하느니라. 그런즉 그 영이 네 안에 거하면, 너희는 더 이상 육신의 노예들이 아니라, 자유롭게 해방된 영의 아들(자녀)들이니라. 자아–속박의 두려움과 자아–부정의 노예에 속한 옛 율법 대신에, 영의 새로운 법은 너희에게 자아–통달(자아–정복)의 해방을 주느니라.
143:2.5 (1609.6) “Many times, when you have done evil, you have thought to charge up your acts to the influence of the evil one when in reality you have but been led astray by your own natural tendencies. Did not the Prophet Jeremiah long ago tell you that the human heart is deceitful above all things and sometimes even desperately wicked? How easy for you to become self-deceived and thereby fall into foolish fears, divers lusts, enslaving pleasures, malice, envy, and even vengeful hatred! “너희가 악을 행했을 때, 너희는 너희 행동들을 악한 자의 영향으로 그 책임을 돌리려고 여러 번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너희 자신의 자연적 경향으로 미혹된 것뿐이라. 인간의 심정은 무엇보다 거짓되어 속이는 경향이 있으며 때로 몹시 사악하기까지 하다(렘17:9)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오래 전에 너희에게 이르지 않았더냐? 자아–기만으로어리석은 두려움, 여러 욕망, 노예로 삼는 쾌락, 악의, 질투 및 복수하려는 원한에 너희가 얼마나 쉽게 빠지는가?
143:2.6 (1610.1) “Salvation is by the regeneration of the spirit and not by the self-righteous deeds of the flesh. You are justified by faith and fellowshipped by grace, not by fear and the self-denial of the flesh, albeit the Father’s children who have been born of the spirit are ever and always masters of the self and all that pertains to the desires of the flesh. When you know that you are saved by faith, you have real peace with God. And all who follow in the way of this heavenly peace are destined to be sanctified to the eternal service of the ever-advancing sons of the eternal God. Henceforth, it is not a duty but rather your exalted privilege to cleanse yourselves from all evils of mind and body while you seek for perfection in the love of God. “자기 혼자 옳다는 육신의 독선적 행위가 아니라, 영(靈)의 거듭남으로 구원되니느라. 영으로 태어난 아버지의 자녀들은 언제나 항상 자아 및 육신의 욕망에 속한 모든 것들의 주인들이므로, 육신의 두려움과 자아–부정(금욕禁慾)이 아니라, 너희는 신앙으로 의롭게 되며, 은혜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느니라. 신앙으로 구원됨을 너희가 알 때, 너희는 하나님과 참된 평화를 갖느니라. 그리고 이 하늘 평화의 길을 따르는 모든 이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늘–진보하는 아들들의 영원한 봉사에 거룩히 바치도록 예정되어 있느니라.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전을 추구하면서마음과 육체의 모든 악으로부터 너희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오히려 너희의 고귀한 특권이니라.
143:2.7 (1610.2) “Your sonship is grounded in faith, and you are to remain unmoved by fear. Your joy is born of trust in the divine word, and you shall not therefore be led to doubt the reality of the Father’s love and mercy. It is the very goodness of God that leads men into true and genuine repentance. Your secret of the mastery of self is bound up with your faith in the indwelling spirit, which ever works by love. Even this saving faith you have not of yourselves; it also is the gift of God. And if you are the children of this living faith, you are no longer the bondslaves of self but rather the triumphant masters of yourselves, the liberated sons of God. “너희의 아들(자녀)됨의 근거는 신앙이므로, 두려움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유지하라. 너희 기쁨은 신적 말씀의 신뢰에서 생기므로너희는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의 실체를 의심하게 되지 않아야 하리라. 하나님의 바로 그 선(善)이 사람을 참되고 진정한 회개로 이끄느니라. 자아 통달(정복)의 너희 비결은 내주하시며 늘 사랑으로 일하시는 영을 믿는 너희 신앙과 깊이 관련되느니라. 이 구원하는 신앙조차 너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것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리고 너희가 살아있는 이 신앙의 자녀들이면, 너희는 더 이상 자신의 노예들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 자신들의 승리한 주인들, 즉 하나님의 해방된 자녀(아들)들이라.
143:2.8 (1610.3) “If, then, my children, you are born of the spirit, you are forever delivered from the self-conscious bondage of a life of self-denial and watchcare over the desires of the flesh, and you are translated into the joyous kingdom of the spirit, whence you spontaneously show forth the fruits of the spirit in your daily lives; and the fruits of the spirit are the essence of the highest type of enjoyable and ennobling self-control, even the heights of terrestrial mortal attainment — true self-mastery.” “내 자녀들아, 너희가 영으로 태어나면, 너희는 자아–부정의 삶에 속한 자아–의식적 속박과 모든 육신의 욕망의 걱정에서영원히 해방되어, 영에 속한 기쁨의 나라로 옮겨지며 거기에서 너희 일상생활에서 저절로 영의 열매를 드러내느니라. 영의 열매들은 가장 높은 유형의 즐겁고 고상한 자아–통제, 즉 세상에서 필사자가 절정에까지 도달하는참된 자아–통달(정복)의 핵심이니라.”
3. Diversion and Relaxation 기분전환과 긴장완화
190512기분전환과 긴장완화 요4:3-4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쌔 4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3 When the Lord learned of this, he left Judea and went back once more to Galilee. 4 Now he had to go through Samaria.
143:3.1 (1610.4) About this time a state of great nervous and emotional tension developed among the apostles and their immediate disciple associates. They had hardly become accustomed to living and working together. They were experiencing increasing difficulties in maintaining harmonious relations with John’s disciples. The contact with the gentiles and the Samaritans was a great trial to these Jews. And besides all this, the recent utterances of Jesus had augmented their disturbed state of mind. Andrew was almost beside himself; he did not know what next to do, and so he went to the Master with his problems and perplexities. When Jesus had listened to the apostolic chief relate his troubles, he said: “Andrew, you cannot talk men out of their perplexities when they reach such a stage of involvement, and when so many persons with strong feelings are concerned. I cannot do what you ask of me — I will not participate in these personal social difficulties — but I will join you in the enjoyment of a three-day period of rest and relaxation. Go to your brethren and announce that all of you are to go with me up on Mount Sartaba, where I desire to rest for a day or two. 이 무렵에 신경과민과 감정적 긴장이 사도들과 직계 제자 동료들 사이에 크게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함께 살며 일하기에 거의 길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제자들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기에 점차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이방인들과 사마리아인들과 접촉하는 일이 이 유대인들에게는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이외에, 예수님의 최근 설교가 그들의 불안한 마음 상태를 늘렸습니다. 안드레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음에 무엇을 할지 몰라서, 자기 문제들과 난문제들을 가지고 주(主)님께로 갔기 때문입니다. 수석 사도가 설명하는 고민을 들으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안드레야, 그들이 그런 난처한 단계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격렬한 감정들에 관련되어 있을 때 그들의 난국에서 벗어나서 너는 그들과 의논할 수 없느니라. 나는 너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노라. 나는 이 개인적인 사회적 곤경에 관여하지 않겠으나사흘 간 휴식하고 긴장완화로 보낼 때 너희와 합류하리라. 네 형제들에게 가서 너희 모두 나와 함께 사르타바 산에 가서 내가 하루나 이틀 쉬고자 한다고 알리라.
143:3.2 (1610.5) “Now you should go to each of your eleven brethren and talk with him privately, saying: ‘The Master desires that we go apart with him for a season to rest and relax. Since we all have recently experienced much vexation of spirit and stress of mind, I suggest that no mention be made of our trials and troubles while on this holiday. Can I depend upon you to co-operate with me in this matter?’ In this way privately and personally approach each of your brethren.” And Andrew did as the Master had instructed him. “이제 너는 가서 11명의 형제들 각자에게 사적(私的)으로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하느니라. ‘주(主)께서 잠시 쉬면서 긴장을 풀려고 우리가 그와 함께 각자 가기를 원하시니라. 우리 모두 최근에 많이 속상하고 마음의 긴장을 겪었으니, 이번 휴가에는 우리 시련과 곤경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도록 내가 제안한다. 이 문제로 네가 내게 협조하기를 내가 기대해도 되겠는가?’ 이렇게 사적으로 직접 네 형제들 각자에게 이야기하라.” 안드레는 주(主)님께서 자신에게 지시한 대로 했습니다.
143:3.3 (1611.1) This was a marvelous occasion in the experience of each of them; they never forgot the day going up the mountain. Throughout the entire trip hardly a word was said about their troubles. Upon reaching the top of the mountain, Jesus seated them about him while he said: “My brethren, you must all learn the value of rest and the efficacy of relaxation. You must realize that the best method of solving some entangled problems is to forsake them for a time. Then when you go back fresh from your rest or worship, you are able to attack your troubles with a clearer head and a steadier hand, not to mention a more resolute heart. Again, many times your problem is found to have shrunk in size and proportions while you have been resting your mind and body.” 이것은 각자의 체험에 있어서 굉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산으로 오르던 그날을 결코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행 내내 그들의 걱정에 대해서는 거의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산 정상에 이르자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자기 주위에 앉히셨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모두 휴식의 소중함과 긴장 완화의 효험을 배워야 하니라. 뒤얽힌 문제들을 푸는 최선책은 잠시 그것들을 버려두는 것임을 너희가 깨달아야만 하니라. 그 후, 휴식이나 경배에서 원기를 회복해 돌아오면, 더 단호한 심정은 물론이고 더 맑은 머리와 더 안정된 손길로 너희 문제들에 착수할 수 있느니라. 게다가 너희 마음과 몸을 쉬는 동안 너희 문제의 크기와 정도가 축소된 것을 여러 번 발견하게 되느니라.”
143:3.4 (1611.2) The next day Jesus assigned to each of the twelve a topic for discussion. The whole day was devoted to reminiscences and to talking over matters not related to their religious work. They were momentarily shocked when Jesus even neglected to give thanks — verbally — when he broke bread for their noontide lunch. This was the first time they had ever observed him to neglect such formalities. 다음 날 예수님은 토의 주제를 12사도들 각자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의 종교적 업무와 관계없는 문제들을 돌이켜 생각하고 이야기하면서 온 종일을 보냈습니다. 한낮 점심에 빵을 나누며 예수께서 감사의 말조차 하지 않으시는 그 순간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그런 절차를 건너뛰는 것을 본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습니다.
143:3.5 (1611.3) When they went up the mountain, Andrew’s head was full of problems. John was inordinately perplexed in his heart. James was grievously troubled in his soul. Matthew was hard pressed for funds inasmuch as they had been sojourning among the gentiles. Peter was overwrought and had recently been more temperamental than usual. Judas was suffering from a periodic attack of sensitiveness and selfishness. Simon was unusually upset in his efforts to reconcile his patriotism with the love of the brotherhood of man. Philip was more and more nonplused by the way things were going. Nathaniel had been less humorous since they had come in contact with the gentile populations, and Thomas was in the midst of a severe season of depression. Only the twins were normal and unperturbed. All of them were exceedingly perplexed about how to get along peaceably with John’s disciples. 그들이 산에 오를 때, 안드레의 머리는 문제로 꽉 차 있었습니다. 요한의 심정은 과도히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야고보의 혼은 슬픔으로 번거로웠습니다. 사도들이 이방인들 사이에 머물고 있었기에 마태는 자금 때문에 몹시 시달렸습니다. 베드로는 과로했고 평소보다 최근에 더 신경질적이었습니다. 유다는 주기적인 신경과민과 이기심으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시몬은 자신의 애국심을 인간의 형제 사랑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으로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빌립은 일이 진행되는 방식으로 인해 점점 더 당혹스러웠습니다. 사도들이 이방사람들과 접촉한 이후 나다니엘은 유머가 줄어들었고, 도마는 한창 심한 우울증 기간 중에 있었습니다. 쌍둥이 형제들만 정상적이었고 침착했습니다. 그들 모두 요한의 제자들과 어떻게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해 몹시 당혹스러웠습니다.
143:3.6 (1611.4) The third day when they started down the mountain and back to their camp, a great change had come over them. They had made the important discovery that many human perplexities are in reality nonexistent, that many pressing troubles are the creations of exaggerated fear and the offspring of augmented apprehension. They had learned that all such perplexities are best handled by being forsaken; by going off they had left such problems to solve themselves. 셋째 날 그들이 산을 내려와 야영지로 돌아오자, 큰 변화가 그들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여러 인간의 혼란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절실한 여러 고민들은 지나친 두려움의 산물이며 불안이 확대된 결과라는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그런 모든 문제들을 내버려둘 때 가장 잘 처리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두 배웠습니다. 그들이 떠나버려서 그런 문제들이 저절로 풀리도록 놔두었기 때문입니다.
143:3.7 (1611.5) Their return from this holiday marked the beginning of a period of greatly improved relations with the followers of John. Many of the twelve really gave way to mirth when they noted the changed state of everybody’s mind and observed the freedom from nervous irritability which had come to them as a result of their three days’ vacation from the routine duties of life. There is always danger that monotony of human contact will greatly multiply perplexities and magnify difficulties. 이 휴가에서 돌아오자 요한의 추종자들과 크게 개선된 관계가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적 생활의 의무에서 떠난 3일간 휴가의 결과로써, 그들은 모두의 마음 상태가 달라졌음을 알아차렸고, 그들에게 생겼던 신경과민에서 벗어난 것을 보고 여러 12사도들은 정말로 주체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단조로운 인간적 접촉으로 혼란이 크게 늘어나고 어려움이 확대될 위험이 언제나 있습니다.
143:3.8 (1611.6) Not many of the gentiles in the two Greek cities of Archelais and Phasaelis believed in the gospel, but the twelve apostles gained a valuable experience in this their first extensive work with exclusively gentile populations. On a Monday morning, about the middle of the month, Jesus said to Andrew: “We go into Samaria.” And they set out at once for the city of Sychar, near Jacob’s well. 두 그리스 도시들 즉 아켈라이스와 파사엘리스에서 이방인들이 많이 복음을 믿지는 않았지만, 12사도들은 온전히 이방사람들과 이렇게 처음으로 넓게 일하면서 귀중한 체험을 얻었습니다. 그 달 중순경(AD 27년 8월) 어느 월요일 아침에 예수께서 안드레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마리아로 들어간다.” 그래서 그들은 야곱의 우물 근처 시카 시(市)로 즉시 출발했습니다.
4. The Jews and the Samaritans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190519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왕하17: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The king of Assyria brought people from Babylon, Cuthah, Avva, Hamath and Sepharvaim and settled them in the towns of Samaria to replace the Israelites. They took over Samaria and lived in its towns.
143:4.1 (1612.1) For more than six hundred years the Jews of Judea, and later on those of Galilee also, had been at enmity with the Samaritans. This ill feeling between the Jews and the Samaritans came about in this way: About seven hundred years B.C., Sargon, king of Assyria, in subduing a revolt in central Palestine, carried away and into captivity over twenty-five thousand Jews of the northern kingdom of Israel and installed in their place an almost equal number of the descendants of the Cuthites, Sepharvites, and the Hamathites. Later on, Ashurbanipal sent still other colonies to dwell in Samaria. 600년 이상, 유대의 유대인들과 나중에는 갈릴리의 유대인들도 사마리아인들과 반목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간의 악(惡)감정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기원 전 700년경에 아시리아의 왕 사르곤이 중부(中部) 팔레스타인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유대인 25,000명 이상을 포로로 잡아갔고 그들의 자리를 거의 같은 수(數)의 큐트인, 세파르브인, 하마트인 후손들로 정착시켰습니다(왕하17:24, 30-31). 나중에 아숴바니팔이 다른 거류민(居留民타국에 머무는 사람)들을 보내 사마리아에 거주시켰습니다.
143:4.2 (1612.2) The religious enmity between the Jews and the Samaritans dated from the return of the former from the Babylonian captivity, when the Samaritans worked to prevent the rebuilding of Jerusalem. Later they offended the Jews by extending friendly assistance to the armies of Alexander. In return for their friendship Alexander gave the Samaritans permission to build a temple on Mount Gerizim, where they worshiped Yahweh and their tribal gods and offered sacrifices much after the order of the temple services at Jerusalem. At least they continued this worship up to the time of the Maccabees, when John Hyrcanus destroyed their temple on Mount Gerizim. The Apostle Philip, in his labors for the Samaritans after the death of Jesus, held many meetings on the site of this old Samaritan temple.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서 종교적 반목은 유대인들의 이전 바빌론 유수(幽囚포로생활)에서 귀환하는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때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의 재건을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알렉산더의 점령군들에게 우호적인 지원을 확대하여 유대인들을 불쾌하게 했습니다. 그들의 호의에 보답하여 알렉산더는 사마리아인들에게 게리짐 산에 성전 건축을 허락했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야훼 및 그들의 부족 신들(하나님들)을 경배했으며 예루살렘의 성전 봉사의 순서를 따라서 희생물을 바쳤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요한 히르카누스가 게리짐 산에 있는 그들의 성전을 파괴했던, 마카비 시대까지 이 경배를 계속했습니다. 사도 빌립은 예수님의 사후(死後)에 사마리아인들을 위해 일하면서 이 사마리아 성전 옛터에서 여러 모임들을 했습니다.
143:4.3 (1612.3) The antagonisms between the Jews and the Samaritans were time-honored and historic; increasingly since the days of Alexander they had had no dealings with each other. The twelve apostles were not averse to preaching in the Greek and other gentile cities of the Decapolis and Syria, but it was a severe test of their loyalty to the Master when he said, “Let us go into Samaria.” But in the year and more they had been with Jesus, they had developed a form of personal loyalty which transcended even their faith in his teachings and their prejudices against the Samaritans.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서 적대관계는 옛날부터 있었으며 역사적이었습니다. 알렉산더 시절 이후로 그들은 점차 서로 상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2사도들은 그리스 또는 데카폴리스와 시리아의 다른 이방인 도시들에서 전도하기를 싫어하지 않았지만, 주(主)께서 “사마리아로 들어가자.”고 말씀하시자, 그것은 주(主)님께 충성하는 엄중한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일 년 이상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그의 가르침을 신앙하면서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편견까지 뛰어넘는 일종의 개인적 충성심을 길렀습니다.
5. The Woman of Sychar 시카의 여인
190526영생하는 생명수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but whoever drinks the water I give him will never thirst. Indeed, the water I give him will become in hi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143:5.1 (1612.4) When the Master and the twelve arrived at Jacob’s well, Jesus, being weary from the journey, tarried by the well while Philip took the apostles with him to assist in bringing food and tents from Sychar, for they were disposed to stay in this vicinity for a while. Peter and the Zebedee sons would have remained with Jesus, but he requested that they go with their brethren, saying: “Have no fear for me; these Samaritans will be friendly; only our brethren, the Jews, seek to harm us.” And it was almost six o’clock on this summer’s evening when Jesus sat down by the well to await the return of the apostles. 주(主)님과 12사도들이 야곱의 우물에 이르렀을 때, 여행으로 지친 예수님은 우물가에 머물렀으며, 빌립은 시카에서 음식과 천막 가져오는 일을 거들도록 사도들을 데리고 갔는데, 그들이 이 근처에 당분간 머물기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아들들은 예수님과 함께 남으려고 했지만, 그는 그들도 형제들과 함께 가라고 부탁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걱정은 하지 마라. 이 사마리아인들은 친절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우리 형제들인 유대인들만이 우리를 해치려고 하니라.” 예수님은 사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우물가에 앉으셨던 때는, 이 여름의 저녁, 거의 6시였습니다.
143:5.2 (1612.5) The water of Jacob’s well was less mineral than that from the wells of Sychar and was therefore much valued for drinking purposes. Jesus was thirsty, but there was no way of getting water from the well. When, therefore, a woman of Sychar came up with her water pitcher and prepared to draw from the well, Jesus said to her, “Give me a drink.” This woman of Samaria knew Jesus was a Jew by his appearance and dress, and she surmised that he was a Galilean Jew from his accent. Her name was Nalda and she was a comely creature. She was much surprised to have a Jewish man thus speak to her at the well and ask for water, for it was not deemed proper in those days for a self-respecting man to speak to a woman in public, much less for a Jew to converse with a Samaritan. Therefore Nalda asked Jesus, “How is it that you, being a Jew, ask for a drink of me, a Samaritan woman?” Jesus answered: “I have indeed asked you for a drink, but if you could only understand, you would ask me for a draught of the living water.” Then said Nalda: “But, Sir, you have nothing to draw with, and the well is deep; whence, then, have you this living water? Are you greater than our father Jacob who gave us this well, and who drank thereof himself and his sons and his cattle also?” 야곱의 우물은 시카의 우물들보다 광물질이 적었으므로 식수(食水)로 매우 소중했습니다. 예수님은 목이 말랐으나 우물에서 물을 길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시카의 한 여인이 물주전자를 가져와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고 준비했을 때,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물을 주시오.” 이 사마리아의 여인은 그의 모습과 복장을 보고 예수께서 유대인임을 알았으며 그의 어투에서 그가 갈릴리 유대인이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날다Nalda였고, 미모의 여인이었습니다. 유대 남자가 이렇게 우물가에서 그녀에게 말하며 물을 청해서 그녀는 매우 놀랐는데, 당시에 자존심 있는 남자가 공공연히 여성에게 말을 거는 것,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대화하는 것을 적절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다는 예수께 여쭈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째서 사마리아 여자인 내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에게 물을 요청했지만, 네가 이해할 수만 있다면, 네가 내게 생명수(生命水) 한 모금을 청했을 것이라.” 그러자 날다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당신은 물을 길을 그릇도 없고 우물은 깊은데 그렇다면 어디서 이 생명수를 얻으시렵니까?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었고, 자신과 자기 아들들 및 자기 가축까지 마시게 했던, 우리 조상 야곱보다 당신이 더 위대하십니까?”
143:5.3 (1613.1) Jesus replied: “Everyone who drinks of this water will thirst again, but whosoever drinks of the water of the living spirit shall never thirst. And this living water shall become in him a well of refreshment springing up even to eternal life.” Nalda then said: “Give me this water that I thirst not, neither come all the way hither to draw. Besides, anything which a Samaritan woman could receive from such a commendable Jew would be a pleasure.”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겠지만, 살아있는 영(靈)의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결코 목마르지 않으리라. 그리고 이 생명수는 그 사람 안에서 영원한 생명(永生)에 이르기까지 솟아나는 상쾌한 샘물이 되리라.” 그러자 날다가 말했습니다. “내게 이 물을 주셔서 목마르지 않고 멀리서 여기까지 물을 길러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게다가, 사마리아 여인이 그런 훌륭한 유대인에게서 받을 수 있는 어떤 것도 만족될 것입니다.”
143:5.4 (1613.2) Nalda did not know how to take Jesus’ willingness to talk with her. She beheld in the Master’s face the countenance of an upright and holy man, but she mistook friendliness for commonplace familiarity, and she misinterpreted his figure of speech as a form of making advances to her. And being a woman of lax morals, she was minded openly to become flirtatious, when Jesus, looking straight into her eyes, with a commanding voice said, “Woman, go get your husband and bring him hither.” This command brought Nalda to her senses. She saw that she had misjudged the Master’s kindness; she perceived that she had misconstrued his manner of speech. She was frightened; she began to realize that she stood in the presence of an unusual person, and groping about in her mind for a suitable reply, in great confusion, she said, “But, Sir, I cannot call my husband, for I have no husband.” Then said Jesus: “You have spoken the truth, for, while you may have once had a husband, he with whom you are now living is not your husband. Better it would be if you would cease to trifle with my words and seek for the living water which I have this day offered you.” 예수께서 기꺼이 자신과 대화하시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날다는 몰랐습니다. 그녀는 주(主)님의 용모에서 고결하고 경건한 사람의 표정을 보았지만, 친절을 평범한 친숙함으로 오해하였으며, 그의 비유적 표현을 자신에게 접근하려는 것으로 잘못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도덕적으로 단정치 못한 여인이어서, 버젓이 경박스럽게 되었을 때, 예수께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위엄 있는 음성으로, “여인아,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여기로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명령으로 날다는 제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주(主)님의 친절을 잘못 판단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그의 말투를 오해했음을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두려웠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비범한 사람의 현존 앞에 서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기에 크게 당황하여 적당한 대답을 마음에서 더듬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저는 남편이 없어서 남편을 불러 올 수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진실을 말하였도다. 네가 한 때 남편이 있었을지 모르나 네가 지금 사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라. 내 말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오늘 내가 너에게 주는 생명수를 찾는 것이 더 좋으리라.”
143:5.5 (1613.3) By this time Nalda was sobered, and her better self was awakened. She was not an immoral woman wholly by choice. She had been ruthlessly and unjustly cast aside by her husband and in dire straits had consented to live with a certain Greek as his wife, but without marriage. Nalda now felt greatly ashamed that she had so unthinkingly spoken to Jesus, and she most penitently addressed the Master, saying: “My Lord, I repent of my manner of speaking to you, for I perceive that you are a holy man or maybe a prophet.” And she was just about to seek direct and personal help from the Master when she did what so many have done before and since — dodged the issue of personal salvation by turning to the discussion of theology and philosophy. She quickly turned the conversation from her own needs to a theological controversy. Pointing over to Mount Gerizim, she continued: “Our fathers worshiped on this mountain, and yet you would say that in Jerusalem is the place where men ought to worship; which, then, is the right place to worship God?” 이 때 날다는 진지하게 되었으며, 선한 자아가 깨어났습니다. 그녀는 전적으로 스스로 선택한 부도덕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그녀를 잔인하고 부당하게 버렸기 때문에 몹시 궁핍하여 결혼하지 않고 어떤 그리스인의 아내로 동거하기로 동의했습니다. 날다는 이제 생각 없이 예수께 말한 것이 대단히 부끄러웠으며 후회 막심하여 주(主)님께 여쭈었습니다. “내 주여, 당신에게 한 저의 말투를 회개합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경건한 사람, 아마도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주님께로부터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도움을 간신히 구했을 때,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이전과 이후에 했듯이 그녀는 신학과 철학의 논의로 화제를 돌려 개인적 구원의 문제를 교묘히 피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필요에서 신학적 논쟁으로 재빨리 대화를 돌렸습니다. 게리짐 산을 가리키면서 그녀는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 산에서 경배했는데, 아직도 당신들은 예루살렘이 사람들이 경배해야만 할 곳이라 말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어디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바른 장소인지요?”
143:5.6 (1613.4) Jesus perceived the attempt of the woman’s soul to avoid direct and searching contact with its Maker, but he also saw that there was present in her soul a desire to know the better way of life. After all, there was in Nalda’s heart a true thirst for the living water; therefore he dealt patiently with her, saying: “Woman, let me say to you that the day is soon coming when neither on this mountain nor in Jerusalem will you worship the Father. But now you worship that which you know not, a mixture of the religion of many pagan gods and gentile philosophies. The Jews at least know whom they worship; they have removed all confusion by concentrating their worship upon one God, Yahweh. But you should believe me when I say that the hour will soon come — even now is — when all sincer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in truth, for it is just such worshipers the Father seeks. God is spirit, and they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Your salvation comes not from knowing how others should worship or where but by receiving into your own heart this living water which I am offering you even now.” 예수님은 여인의 혼이 조물주(造物主)와 직접 탐구하는 접촉을 피하려는 시도를 아셨지만, 그녀의 혼에 더 나은 삶의 길을 알려는 열망이 있음을 보셨습니다. 결국, 날다의 심정에는 생명수를 향한 참된 갈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참을성 있게 그녀를 대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아, 네게 이르노니, 이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니며, 너희가 아버지를 경배할 때가 곧 오리라. 그러나 지금 너희는 많은 이교도 신(하나님)들의 종교와 이방인의 철학들이 혼합된, 알지 못하는 것을 경배하니라. 적어도 유대인들은 경배하는 자를 아느니라. 그들은 한 하나님 야훼 경배에 집중해서 모든 혼란을 제거했느니라. 그러나 모든 신실한 경배자들은 영과 진리로 아버지를 경배할 때가 곧 오리니, 지금이라고 내가 말할 때, 너희는 나를 믿어야 할지니라. 아버지는 바로 그런 경배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를 경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해야만 하니라. 너희 구원은 다른 이들이 어떻게 혹은 어디에서 경배하는지 알아서가 아니라 내가 지금 너에게 주는 생명수를 너 자신의 심정에 받아들임으로 오느니라.”
143:5.7 (1614.1) But Nalda would make one more effort to avoid the discussion of the embarrassing question of her personal life on earth and the status of her soul before God. Once more she resorted to questions of general religion, saying: “Yes, I know, Sir, that John has preached about the coming of the Converter, he who will be called the Deliverer, and that, when he shall come, he will declare to us all things” — and Jesus, interrupting Nalda, said with startling assurance, “I who speak to you am he.” 그러나 날다는 지상에서 자기 개인적 일생과 하나님 앞에서 자기 혼의 상태를 묻는 난처한 논의를 한 번 더 피하려 했습니다. 한 번 더 그녀는 일반적 종교 질문에 호소하며 말했습니다. “예, 선생님, 해방자로 불리게 될 개종시키는 분이 오셔서 만물을 우리에게 드러내리라고 요한이 설교한 것을 제가 압니다.” – 그러자 예수께서 날다의 말을 막으면서 깜짝 놀라게 하는 확신으로 말씀하기를, “네게 말하는 내가 그니라.”
143:5.8 (1614.2) This was the first direct, positive, and undisguised pronouncement of his divine nature and sonship which Jesus had made on earth; and it was made to a woman, a Samaritan woman, and a woman of questionable character in the eyes of men up to this moment, but a woman whom the divine eye beheld as having been sinned against more than as sinning of her own desire and as now being a human soul who desired salvation, desired it sincerely and wholeheartedly, and that was enough. 이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신적 본성과 지상에서 이룬 아들됨을 직접, 단언하며 숨기지 않는 최초의 선언이었습니다. 그것은 한 여인,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순간까지 남자들 눈에 의심스러운 성격의 여인에게 선언되었지만, 그녀 자신의 열망으로 죄를 범하기 보다는 다른 이에 대항하여 죄를 지었으며 지금은 구원을 열망하는 인간 혼으로서, 구원을 신실하게 전심으로 열망했던 여인으로, 신적 눈은 보았으며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143:5.9 (1614.3) As Nalda was about to voice her real and personal longing for better things and a more noble way of living, just as she was ready to speak the real desire of her heart, the twelve apostles returned from Sychar, and coming upon this scene of Jesus’ talking so intimately with this woman — this Samaritan woman, and alone — they were more than astonished. They quickly deposited their supplies and drew aside, no man daring to reprove him, while Jesus said to Nalda: “Woman, go your way; God has forgiven you. Henceforth you will live a new life. You have received the living water, and a new joy will spring up within your soul, and you shall become a daughter of the Most High.” And the woman, perceiving the disapproval of the apostles, left her waterpot and fled to the city. 날다가 자기 심정의 실제 갈망을 말할 준비가 되었듯이, 그녀가 더 나은 일들과 더 고상한 삶의 길에 대한 자신의 실제 개인적 갈망을 말하려 했을 때, 12사도들이 시카에서 돌아와, 예수께서 이 여인과 – 이 사마리아 여인과 홀로 – 친근히 말하는 이 장면을 보고 그들은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재빨리 자기들의 물건들을 놓고 비켜서서, 아무도 감히 예수님을 비난하지 못할 때, 한편 예수께서 날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아, 너의 길을 가라. 하나님께서 너를 용서하였느니라. 이제부터 너는 새 삶을 살리라. 네가 생명수를 받았으니 새 기쁨이 네 혼에서 넘칠 것이며 너는 지고자의 딸이 되리라.” 그 여인은 사도들의 불만을 감지하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 도시로 달아났습니다.
143:5.10 (1614.4) As she entered the city, she proclaimed to everyone she met: “Go out to Jacob’s well and go quickly, for there you will see a man who told me all I ever did. Can this be the Converter?” And ere the sun went down, a great crowd had assembled at Jacob’s well to hear Jesus. And the Master talked to them more about the water of life, the gift of the indwelling spirit. 그녀는 도시에 들어가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외쳤습니다. “야곱의 우물로 빨리 가십시오. 거기에 내가 전에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볼 것입니다. 이 사람이 그 개종시키는 분이지 않겠습니까?” 해 지기 전에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야곱의 우물가에 모였습니다. 주(主)님은 그들에게 생명수, 즉 내주(內住)하는 영의 선물에 대해 더 말씀하셨습니다.
143:5.11 (1614.5) The apostles never ceased to be shocked by Jesus’ willingness to talk with women, women of questionable character, even immoral women. It was very difficult for Jesus to teach his apostles that women, even so-called immoral women, have souls which can choose God as their Father, thereby becoming daughters of God and candidates for life everlasting. Even nineteen centuries later many show the same unwillingness to grasp the Master’s teachings. Even the Christian religion has been persistently built up around the fact of the death of Christ instead of around the truth of his life. The world should be more concerned with his happy and God-revealing life than with his tragic and sorrowful death. 예수께서 여인들, 의심스러운 성격의 여인들, 심지어 부도덕한 여인들과 기꺼이 대화하시는 것을 보고 사도들은 충격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인들, 소위 부도덕한 여인들도 하나님을 그들의 아버지로 선택할 수 있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딸들과 영생의 후보자가 되는 혼을 소유하고 있음을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19세기가 지난 뒤에도, 많은 이들이 주(主)님의 가르침들을 똑같이 기꺼이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기독교조차 그의 일생의 진리 둘레 대신에 그리스도 죽으심의 사실 둘레에 지속적으로 쌓아 올렸습니다. 세상은 그의 비극적인 슬픈 죽음보다 하나님을–계시하신 예수님의 행복한 일생에 더 관심을 두었어야만 했습니다.
143:5.12 (1614.6) Nalda told this entire story to the Apostle John the next day, but he never revealed it fully to the other apostles, and Jesus did not speak of it in detail to the twelve. 날다가 다음 날 이 모든 이야기를 사도 요한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는 다른 사도들에게 결코 전부 밝히지 않았으며, 예수님도 12사도들에게 그것에 대해 상세히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143:5.13 (1615.1) Nalda told John that Jesus had told her “all I ever did.” John many times wanted to ask Jesus about this visit with Nalda, but he never did. Jesus told her only one thing about herself, but his look into her eyes and the manner of his dealing with her had so brought all of her checkered life in panoramic review before her mind in a moment of time that she associated all of this self-revelation of her past life with the look and the word of the Master. Jesus never told her she had had five husbands. She had lived with four different men since her husband cast her aside, and this, with all her past, came up so vividly in her mind at the moment when she realized Jesus was a man of God that she subsequently repeated to John that Jesus had really told her all about herself. 날다는 예수께서 “자신이 했던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요한에게 말했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날다 이야기에 대해 예수께 여러 번 여쭙고 싶었지만, 결코 묻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그녀 자신에 대해 한 가지만 말씀하셨지만, 그녀의 눈을 보면서 그녀를 대하는 그의 태도로 인해 한 순간 그녀의 마음에 자신의 파란만장한 모든 생애가 주마등처럼 떠올랐는데, 그녀는 이렇게 계시된 자신의 모든 과거 생애를 주(主)님의 표정 및 말씀과 관련지었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그녀에게 다섯 남편이 있었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버린 뒤에 다른 네 명의 남자들과 동거했었는데, 예수께서 하나님의 사람임을 그녀가 깨닫게 되는 순간, 이것이 그녀의 모든 과거와 함께, 너무나 생생하게 그녀의 마음에 떠올랐기 때문에, 나중에 예수께서 그녀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그녀에게 실제로 말했다고 그녀는 요한에게 반복했습니다.
The Samaritan Revival 사마리아의 부흥
190616예수님의 양식 요4:34-38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34 “My food,” said Jesus, “is 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and to finish his work. 35 Do you not say, ‘Four months more and then the harvest’? I tell you, open your eyes and look at the fields! They are ripe for harvest. 36 Even now the reaper draws his wages, even now he harvests the crop for eternal life, so that the sower and the reaper may be glad together. 37 Thus the saying ‘One sows and another reaps’ is true. 38 I sent you to reap what you have not worked for. Others have done the hard work, and you have reaped the benefits of their labor.”
143:6.1 (1615.2) On the evening that Nalda drew the crowd out from Sychar to see Jesus, the twelve had just returned with food, and they besought Jesus to eat with them instead of talking to the people, for they had been without food all day and were hungry. But Jesus knew that darkness would soon be upon them; so he persisted in his determination to talk to the people before he sent them away. When Andrew sought to persuade him to eat a bite before speaking to the crowd, Jesus said, “I have meat to eat that you do not know about.” When the apostles heard this, they said among themselves: “Has any man brought him aught to eat? Can it be that the woman gave him food as well as drink?” When Jesus heard them talking among themselves, before he spoke to the people, he turned aside and said to the twelve: “My meat is 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and to accomplish His work. You should no longer say it is such and such a time until the harvest. Behold these people coming out from a Samaritan city to hear us; I tell you the fields are already white for the harvest. He who reaps receives wages and gathers this fruit to eternal life; consequently the sowers and the reapers rejoice together. For herein is the saying true: ‘One sows and another reaps.’ I am now sending you to reap that whereon you have not labored; others have labored, and you are about to enter into their labor.” This he said in reference to the preaching of John the Baptist. 날다가 예수님을 만나라고 시카에서 군중(群衆)을 이끌어낸 그 저녁에, 12사도는 음식을 가지고 막 돌아왔으며, 온종일 음식 없이 허기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대신에 자기들과 함께 식사하기를 예수께 청(請)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둠이 곧 올 것을 아셨기에 그들을 돌려보내기 전에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려는 결정을 밀고 나갔습니다. 군중에게 말하기 전 뭐 좀 드시라고 안드레가 그를 설득하려 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느니라.” 이 말을 듣고 사도들끼리 말했습니다. “누가 드실 것을 그에게 갖다 드렸는가? 여인이 음료만이 아니라 음식도 드렸던 것이 아닐까?” 예수께서 그들 사이에서 하는 말을 들으시고, 사람들에게 말하기 전에 얼굴을 돌려 12사도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성취하는 것이라. 너희는 추수까지 이러이러한 시간이 있다고 더 이상 말하지 말라. 우리말을 들으려고 사마리아 도시에서 나오는 이 사람들을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밭이 벌써 희어져 추수 때니라. 거두는 자는 임금(賃金)을 받고 영생(永生)까지 이 열매를 거두느니라.그 결과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기뻐하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하는 말이 옳도다. 너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도록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느니라.다른 이들이 수고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수고한 결과를 막 거두려고 하느니라.” 그는 이것을 세례 요한의 전도와 관련하여 말씀하셨습니다.
143:6.2 (1615.3) Jesus and the apostles went into Sychar and preached two days before they established their camp on Mount Gerizim. And many of the dwellers in Sychar believed the gospel and made request for baptism, but the apostles of Jesus did not yet baptize. 예수님과 사도들은 시카로 들어갔으며 게리짐 산에 야영지를 세우기 전에 이틀 동안 전도했습니다. 시카의 여러 주민들이 복음을 믿었으며 세례 받기를 요청했지만, 예수님의 사도들은 아직 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143:6.3 (1615.4) The first night of the camp on Mount Gerizim the apostles expected that Jesus would rebuke them for their attitude toward the woman at Jacob’s well, but he made no reference to the matter. Instead he gave them that memorable talk on “The realities which are central in the kingdom of God.” In any religion it is very easy to allow values to become disproportionate and to permit facts to occupy the place of truth in one’s theology. The fact of the cross became the very center of subsequent Christianity; but it is not the central truth of the religion which may be derived from the life and teachings of Jesus of Nazareth. 게리짐 산에서 야영한 첫날밤에, 사도들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그 여인을 향한 자신들의 태도를 예수님께서 나무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는 그 일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한 실체들”에 관한 잊지 못할 강의를 하셨습니다. 어떤 종교나 그 신학에서 가치들이 균형을 잃어버리며, 사실들이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허용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십자가의 사실이 나중에 기독교의 바로 그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들에서 유래될 수 있는 그 종교의 중심 진리가 아닙니다.
143:6.4 (1615.5) The theme of Jesus’ teaching on Mount Gerizim was: That he wants all men to see God as a Father-friend just as he (Jesus) is a brother-friend. And again and again he impressed upon them that love is the greatest relationship in the world — in the universe — just as truth is the greatest pronouncement of the observation of these divine relationships. 게리짐 산에서 예수님 교훈의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원하신 것은 자신(예수님)이 바로 형제-친구인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친구로 보는 것입니다. 이 신적 관계의 소견에서 진리가 가장 위대한 선언인 것과 똑같이, 사랑이 세상과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관계임을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143:6.5 (1616.1) Jesus declared himself so fully to the Samaritans because he could safely do so, and because he knew that he would not again visit the heart of Samaria to preach the gospel of the kingdom. 예수께서 자신을 사마리아인들에게 충분히 드러내신 것은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러 사마리아의 중심부에 다시 방문하지 못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143:6.6 (1616.2) Jesus and the twelve camped on Mount Gerizim until the end of August. They preached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 the fatherhood of God — to the Samaritans in the cities by day and spent the nights at the camp. The work which Jesus and the twelve did in these Samaritan cities yielded many souls for the kingdom and did much to prepare the way for the marvelous work of Philip in these regions after Jesus’ death and resurrection, subsequent to the dispersion of the apostles to the ends of the earth by the bitter persecution of believers at Jerusalem. 예수님과 12사도들은 8월 말까지 게리짐 산에서 야영했습니다. 그들은 낮에 여러 도시의 사마리아인들에게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 즉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전했으며 밤에는 야영지에서 보냈습니다. 이 사마리아 도시들에서 예수님과 12사도들이 했던 일로 많은 혼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갔으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후, 예루살렘에서 신자들에 대한 모진 박해로 사도들이 땅 끝까지 흩어진 후에, 이 지역에서 빌립의 놀라운 사역을 위한 길이 충분히 준비되도록 했습니다.
Teachings About Prayer and Worship 기도와 경배에 대한 교훈들
190623기도와 경배 요4:23-24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23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 24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143:7.1 (1616.3) At the evening conferences on Mount Gerizim, Jesus taught many great truths, and in particular he laid emphasis on the following: 게리짐 산의 저녁 회의에서 예수님은 여러 위대한 진리들을 가르치셨으며, 특히 다음을 강조하셨습니다.
143:7.2 (1616.4) True religion is the act of an individual soul in its self-conscious relations with the Creator; organized religion is man’s attempt to socialize the worship of individual religionists. 참된 종교는 창조자와 자아-의식 관계 가운데 있는 개인적 혼(魂)의 행동입니다. 조직된 종교는 개인적 신앙인들의 경배를 사회화하려는 인간의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143:7.3 (1616.5) Worship — contemplation of the spiritual — must alternate with service, contact with material reality. Work should alternate with play; religion should be balanced by humor. Profound philosophy should be relieved by rhythmic poetry. The strain of living — the time tension of personality — should be relaxed by the restfulness of worship. The feelings of insecurity arising from the fear of personality isolation in the universe should be antidoted by the faith contemplation of the Father and by the attempted realization of the Supreme. 경배 – 영적 묵상-는 봉사, 즉 물질적 실체 접촉과 번갈아 해야만 합니다. 업무는 놀이와 번갈아 해야 합니다. 종교는 유머로 균형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심오한 철학은 운율적 시(詩)로 긴장을 풀어야 합니다. 생활의 긴장 – 고유성의 시간 긴장-은 경배의 평온으로 긴장이 풀려야 합니다. 우주에서 고유성 고립의 두려움에서 발생한 불안감은, 아버지를 신앙으로 묵상하고 최극자를 자각하려는 시도로 해독(解毒)되어야만 합니다.
143:7.4 (1616.6) Prayer is designed to make man less thinking but more realizing; it is not designed to increase knowledge but rather to expand insight. 기도는 사람이 덜 생각하고 더 자각하도록 의도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지식 증가가 아니라 오히려 통찰력 확대를 위해 고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43:7.5 (1616.7) Worship is intended to anticipate the better life ahead and then to reflect these new spiritual significances back onto the life which now is. Prayer is spiritually sustaining, but worship is divinely creative. 경배는 앞으로 개선된 생활을 예상하고 이 새로운 영적 중요성을 현재 생활에 돌이켜 반영하도록 의도되어 있습니다. 기도는 영적으로 유지하지만, 경배는 신적으로 창조적입니다.
143:7.6 (1616.8) Worship is the technique of looking to the One for the inspiration of service to the many. Worship is the yardstick which measures the extent of the soul’s detachment from the material universe and its simultaneous and secure attachment to the spiritual realities of all creation. 경배는 다수에게 봉사하는 감화력(感化力)을 위해 한 분을 바라보는 기법입니다. 경배는 혼(魂)이 물질 우주에서 초연한(超然벗어나 구애되지 않는) 동시에 모든 창조계의 영적 실체들에 안전히 결속되어 있는 정도를 재는 척도입니다.
143:7.7 (1616.9) Prayer is self-reminding — sublime thinking; worship is self-forgetting — superthinking. Worship is effortless attention, true and ideal soul rest, a form of restful spiritual exertion. 기도는 자아를-상기하는 – 숭고한 사고입니다. 경배는 자아를-망각하는 – 초(超)사고입니다. 경배는 수월한 집중이며, 참된 이상적 혼(魂)의 평안이며, 평안한 영적 노력의 형태입니다.
143:7.8 (1616.10) Worship is the act of a part identifying itself with the Whole; the finite with the Infinite; the son with the Father; time in the act of striking step with eternity. Worship is the act of the son’s personal communion with the divine Father, the assumption of refreshing, creative, fraternal, and romantic attitudes by the human soul-spirit. 경배는 부분이 자신을 전체와, 유한자가 무한자와,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화로 공감하는 행위이며, 시간이 영원에 부딪치는 보폭의 행위입니다. 경배는 아들이 신적 아버지와 개인적인 친교로 인해, 인간의 혼(魂)-영(靈)이 새로워지고, 창조적이며, 형제우애 및 낭만적 태도에 사로잡히는 행위입니다.
143:7.9 (1616.11) Although the apostles grasped only a few of his teachings at the camp, other worlds did, and other generations on earth will. 사도들은 야영지에서 그의 교훈들 중에서 단지 몇 가지를 파악했지만, 다른 세계들은 그 교훈들을 이해했으며, 지상의 다른 세대들도 이해할 것입니다.
190630길보아에 은거(隱居)하신 이유 요4: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After the two days he left for Galilee.
144:0.1 (1617.1) SEPTEMBER and October were spent in retirement at a secluded camp upon the slopes of Mount Gilboa. The month of September Jesus spent here alone with his apostles, teaching and instructing them in the truths of the kingdom. 9월과 10월(AD27)은 길보아산 경사면 위 한적한 텐트에서 은거하며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 9월 한 달 동안 사도들과만 보내셨으며 그들에게 하늘나라 진리들을 가르치고 교육하셨습니다.
144:0.2 (1617.2) There were a number of reasons why Jesus and his apostles were in retirement at this time on the borders of Samaria and the Decapolis. The Jerusalem religious rulers were very antagonistic; Herod Antipas still held John in prison, fearing either to release or execute him, while he continued to entertain suspicions that John and Jesus were in some way associated. These conditions made it unwise to plan for aggressive work in either Judea or Galilee. There was a third reason: the slowly augmenting tension between the leaders of John’s disciples and the apostles of Jesus, which grew worse with the increasing number of believers. 예수님과 사도들이 이 때 사마리아와 데카폴리스의 경계로 은거하신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통치자들은 아주 적대적이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요한과 예수님이 어떤 면에서 관련되어 있다는 의심을 계속 품으면서, 요한을 석방하거나 처형하기를 두려워하면서, 여전히 그를 투옥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유대나 갈릴리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위한 계획은 지혜롭지 않았습니다. 셋째 이유는, 요한의 제자들 중 지도자들과 예수님의 사도들 사이에 서서히 긴장이 고조되어, 신자의 수가 늘어가면서 악화되었습니다.
144:0.3 (1617.3) Jesus knew that the days of the preliminary work of teaching and preaching were about over, that the next move involved the beginning of the full and final effort of his life on earth, and he did not wish the launching of this undertaking to be in any manner either trying or embarrassing to John the Baptist. Jesus had therefore decided to spend some time in retirement rehearsing his apostles and then to do some quiet work in the cities of the Decapolis until John should be either executed or released to join them in a united effort. 예수님은, 가르침과 전도하는 예비 업무의 시절이 거의 끝났고, 다음 행동은 지상(地上)의 삶에서 본격적인 최종적 수고의 시작이 따른다는 것을 아셨으며, 그는 이 일의 시작이 어떤 면에서 세례 요한에게 시험이 되거나 난처하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요한이 처형되는지 아니면 석방되어 연합된 노력에 합세할 때까지, 예수님은 사도들을 연습시키면서 한동안 은거하며 보낸 후, 데카폴리스의 도시들에서 조용히 일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1. The Gilboa Encampment 길보아 야영
144:1.1 (1617.4) As time passed, the twelve became more devoted to Jesus and increasingly committed to the work of the kingdom. Their devotion was in large part a matter of personal loyalty. They did not grasp his many-sided teaching; they did not fully comprehend the nature of Jesus or the significance of his bestowal on earth. 시간이 지나가면서, 12 사도는 예수님께 더 헌신하고, 하늘나라의 업무에 점점 더 몰두했습니다. 그들의 헌신은 대체로 개인적 충성심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예수님의 교훈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본성이나 지상에 자신을 증여하신 중요성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44:1.2 (1617.5) Jesus made it plain to his apostles that they were in retirement for three reasons: 예수님은 자신들이 은거하는 세 가지 이유들을 사도들에게 밝히셨습니다.
144:1.3 (1617.6) 1. To confirm their understanding of, and faith in, the gospel of the kingdom. 하늘나라 복음에 대한 사도들의 이해와 신앙을 확인하기 위하여.
144:1.4 (1617.7) 2. To allow opposition to their work in both Judea and Galilee to quiet down. 유대와 갈릴리에서 사도들의 사역에 대한 반대를 진정시키려고.
144:1.5 (1617.8) 3. To await the fate of John the Baptist. 세례 요한의 최종 결과를 기다리려고.
190707헤르몬 산의 체험과 페레아 언덕의 결정 마4:1-2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1 Then Jesus was led by the Spirit into the desert to be tempted by the devil. 2 After fasting forty days and forty nights, he was hungry.
144:1.6 (1617.9) While tarrying on Gilboa, Jesus told the twelve much about his early life and his experiences on Mount Hermon; he also revealed something of what happened in the hills during the forty days immediately after his baptism. And he directly charged them that they should tell no man about these experiences until after he had returned to the Father. 길보아에 머물면서, 예수님은 12사도들에게 자신의 초기 생애와 헤르몬 산의 체험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세례 직후, 40일 동안 언덕에서 발생한 것도 어느 정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께 돌아간 후에야 비로소 그들이 이 체험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그들에게 직접 분부(分付)하셨습니다.
144:1.7 (1618.1) During these September weeks they rested, visited, recounted their experiences since Jesus first called them to service, and engaged in an earnest effort to co-ordinate what the Master had so far taught them. In a measure they all sensed that this would be their last opportunity for prolonged rest. They realized that their next public effort in either Judea or Galilee would mark the beginning of the final proclamation of the coming kingdom, but they had little or no settled idea as to what the kingdom would be when it came. John and Andrew thought the kingdom had already come; Peter and James believed that it was yet to come; Nathaniel and Thomas frankly confessed they were puzzled; Matthew, Philip, and Simon Zelotes were uncertain and confused; the twins were blissfully ignorant of the controversy; and Judas Iscariot was silent, noncommittal. 이 9월 몇 주 동안 사도들은 쉬면서, 예수께서 자신들을 처음 봉사로 부르신 이후에 겪었던 체험들을 이야기하며 하나하나 열거했으며, 주(主)께서 어느 정도 자신들에게 가르친 것을 통합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했습니다. 이번이 자신들이 마지막으로 오래 쉬는 기회일 것이라고 그들 모두 어느 정도 감지했습니다. 그들은 다음에 유대나 갈릴리에서 자신들의 행할 공적(公的)인 수고가 다가오는 하늘나라에 대한 최후 선포의 출발점임을 깨달았지만, 하늘나라가 왔을 때, 그것이 뭐가 될 지에 대해서 거의 또는 전혀 정해진 관념(觀念)이 없었습니다. 요한과 안드레는 하늘나라가 벌써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는 하늘나라가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고 믿었습니다. 나다니엘과 도마는 솔직히 모르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마태, 빌립, 시몬 젤로떼는 불분명해서 잘 몰랐습니다. 쌍둥이 형제는 논쟁을 알지 못했으며 가룟 유다는 말없이 어물쩍했습니다.
144:1.8 (1618.2) Much of this time Jesus was alone on the mountain near the camp. Occasionally he took with him Peter, James, or John, but more often he went off to pray or commune alone. Subsequent to the baptism of Jesus and the forty days in the Perean hills, it is hardly proper to speak of these seasons of communion with his Father as prayer, nor is it consistent to speak of Jesus as worshiping, but it is altogether correct to allude to these seasons as personal communion with his Father. 예수님은 이 시간의 대부분을 야영지 근처 산에 홀로 계셨습니다. 때때로 그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가셨지만, 기도나 친교로 홀로 떠나 계시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예수님의 세례에 이어 페레아 언덕에서 보낸 40일의 이 시기를 그의 아버지와 기도로 교제했다고 말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고, 예수께서 경배하셨다고 말하는 것도 모순되지만, 이 시기를 그의 아버지와 개인적으로 친교를 나눴다고 언급하는 것이 대체적으로 틀리지 않습니다.
144:1.9 (1618.3) The central theme of the discussions throughout the entire month of September was prayer and worship. After they had discussed worship for some days, Jesus finally delivered his memorable discourse on prayer in answer to Thomas’s request: “Master, teach us how to pray.” 9월 한 달 내내 토의들의 중심 주제는 기도와 경배였습니다. 며칠 동안 그들이 경배에 대해 논의한 후, “주님,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치소서.”라는 도마의 요청에 응답하여 예수님은 마침내 기도에 대해 중요한 강연을 하셨습니다.
144:1.10 (1618.4) John had taught his disciples a prayer, a prayer for salvation in the coming kingdom. Although Jesus never forbade his followers to use John’s form of prayer, the apostles very early perceived that their Master did not fully approve of the practice of uttering set and formal prayers. Nevertheless, believers constantly requested to be taught how to pray. The twelve longed to know what form of petition Jesus would approve. And it was chiefly because of this need for some simple petition for the common people that Jesus at this time consented, in answer to Thomas’s request, to teach them a suggestive form of prayer. Jesus gave this lesson one afternoon in the third week of their sojourn on Mount Gilboa. 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 즉 다가오는 하늘나라에서 구원을 받도록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요한의 기도 형식을 사용하지 말라고 결코 금하지 않으셨지만, 주님께서 고정된 형식적 기도들을 말하는 습관을 충분히 찬성하지 않는다고 사도들은 아주 일찍부터 알아차렸습니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기도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계속 간청했습니다. 12사도들은 예수께서 찬성하는 간구가 어떤 형식인지 간절히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 예수께서 도마의 요청에 응답하여 평민들에게 추천하는 기도의 형태를 가르치도록 허락하신 것은 주로 그들을 위한 간단한 이 기도의 필요성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길보아 산에서 머물던 셋째 주 어느 날 오후에 이 교훈을 주셨습니다.
2. The Discourse on Prayer 기도에 대한 강연
190714 기도는 혼(魂)의 호흡입니다. 눅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Then Jesus told his disciples a parable to show them that they should always pray and not give up.
144:2.1 (1618.5) “John indeed taught you a simple form of prayer: ‘O Father, cleanse us from sin, show us your glory, reveal your love, and let your spirit sanctify our hearts forevermore, Amen!’ He taught this prayer that you might have something to teach the multitude. He did not intend that you should use such a set and formal petition as the expression of your own souls in prayer. “요한은 정말 너희에게 간단한 형태의 기도를 가르쳤느니라. ‘오, 아버지여, 죄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영으로 우리 심정을 언제나 깨끗케 하소서. 아멘!’ 너희가 군중들에게 뭔가 가르칠 수도 있도록 그는 이 기도를 가르쳤느니라. 기도 시(時) 자기 영혼의 표현으로 그렇게 정해진 형태의 탄원을 너희가 사용해야만 한다고 그가 의도하지 않았느니라.
144:2.2 (1618.6) “Prayer is entirely a personal and spontaneous expression of the attitude of the soul toward the spirit; prayer should be the communion of sonship and the expression of fellowship. Prayer, when indited by the spirit, leads to co-operative spiritual progress. The ideal prayer is a form of spiritual communion which leads to intelligent worship. True praying is the sincere attitude of reaching heavenward for the attainment of your ideals. “기도는 전적으로 영(靈)을 향한 개인적이며 자발적인 혼(魂)의 태도이니라. 기도는 아들 신분의 교제와 친교의 표현이기 때문이니라. 영(靈)이 표현된 기도는 협력하는 영적 진보로 인도합니다. 이상적 기도는 지능적 경배로 인도하는 형태의 영적 교제니라. 진실로 기도하는 것은 너희 이상(理想)을 이루려고 하늘로 뻗치는 신실한 태도이니라.
144:2.3 (1619.1) “Prayer is the breath of the soul and should lead you to be persistent in your attempt to ascertain the Father’s will. If any one of you has a neighbor, and you go to him at midnight and say: ‘Friend, lend me three loaves, for a friend of mine on a journey has come to see me, and I have nothing to set before him’; and if your neighbor answers, ‘Trouble me not, for the door is now shut and the children and I are in bed; therefore I cannot rise and give you bread,’ you will persist, explaining that your friend hungers, and that you have no food to offer him. I say to you, though your neighbor will not rise and give you bread because he is your friend, yet because of your importunity he will get up and give you as many loaves as you need. If, then, persistence will win favors even from mortal man, how much more will your persistence in the spirit win the bread of life for you from the willing hands of the Father in heaven. Again I say to you: Ask and it shall be given you; seek and you shall find; knock and it shall be opened to you. For every one who asks receives; he who seeks finds; and to him who knocks the door of salvation will be opened. “기도는 혼의 호흡이며, 아버지의 뜻을 너희가 지속적으로 확인하도록 인도해야 하니라. 너희 중에 누가 이웃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친구여, 빵 세 덩이를 내게 빌려주라. 내 친구가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그 앞에 내놓을 것이 없노라.’ 네 이웃이 대답하여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과 내가 잠자리에 들었으니 일어나 네게 빵을 줄 수 없노라.’하면, 네 친구가 배고프며, 그를 먹일 것이 네게 없다고 너희는 끈질기게 설명할 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만, 그가 네 친구라서 일어나 네게 빵을 주지 않을지라도 너의 끈질긴 재촉 때문에 그가 일어나 네 요구대로 네게 빵을 주리라(눅11:5-8). 그래서 집요함 때문에 필사 사람에게서도 호의(好意)를 얻을 수 있다면, 네 영(靈)의 집요함으로 너희를 자진(自進)해서 돕는 하늘 아버지로부터 얼마나 더 많이 생명의 빵을 얻을 수 있겠느냐? 내가 또 너희에게 말하노라. 구하면 너희가 받으리라. 찾으면 너희가 발견하리라. 두드리면 너희에게 열리리라. 구하는 자마다 받고, 찾는 자가 발견하며, 구원의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기 때문이니라.
144:2.4 (1619.2) “Which of you who is a father, if his son asks unwisely, would hesitate to give in accordance with parental wisdom rather than in the terms of the son’s faulty petition? If the child needs a loaf, will you give him a stone just because he unwisely asks for it? If your son needs a fish, will you give him a watersnake just because it may chance to come up in the net with the fish and the child foolishly asks for the serpent? If you, then, being mortal and finite, know how to answer prayer and give good and appropriate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shall your heavenly Father give the spirit and many additional blessings to those who ask him? Men ought always to pray and not become discouraged. “너희 중 어떤 아버지가, 자녀가 분별없이 요구해도 자녀의 그릇된 간청이 아니라, 오히려 어버이다운 지혜로 주기를 주저하겠느냐? 자녀에게 빵이 필요한데, 그가 어리석게 돌멩이를 원한다고 해서 너희가 그에게 돌멩이를 주겠느냐? 아들에게 생선이 필요한데, 그물에 생선과 함께 우연히 물뱀이 떠올라서 자녀가 미련하게 그 뱀을 요청한다고 해서 너희가 그에게 물뱀을 주겠느냐? 그러면 너희 필사 유한한 존재도 어떻게 기도에 응답하고 너희 자녀에게 좋고 적합한 선물을 어떻게 주는지 아는데, 너희 하늘 아버지가 구하는 자에게 영(靈)과 여러 부가적 축복들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눅11:11-13)? 사람들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니라(눅18:1).
144:2.5 (1619.3) “Let me tell you the story of a certain judge who lived in a wicked city. This judge feared not God nor had respect for man. Now there was a needy widow in that city who came repeatedly to this unjust judge, saying, ‘Protect me from my adversary.’ For some time he would not give ear to her, but presently he said to himself: ‘Though I fear not God nor have regard for man, yet because this widow ceases not to trouble me, I will vindicate her lest she wear me out by her continual coming.’ These stories I tell you to encourage you to persist in praying and not to intimate that your petitions will change the just and righteous Father above. Your persistence, however, is not to win favor with God but to change your earth attitude and to enlarge your soul’s capacity for spirit receptivity. “사악한 도시에 살았던 한 재판관의 이야기를 이르노라. 이 재판관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았느니라. 그 때 그 도시에 가난한 과부가 있었는데 이 부당한 재판관에게 두고두고 찾아가 ‘내 적으로부터 나를 지키소서.’라고 말했느니라. 그가 얼마간 듣지 않다가 곧 속으로, ‘내가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나, 이 과부가 쉬지 않고 나를 귀찮게 하니, 계속 찾아와 참을 수 없게 되지 않도록, 내가 그녀를 변호하리라.’ 너희를 격려하여 집요하게 기도하라고 이 이야기를 너희에게 하는 것이지(눅18:2-7), 너희 간구로 정의롭고 공의로운 하늘 아버지가 바뀔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너희 집요함으로 하나님의 호의를 얻지 못하지만, 지상에서 너의 태도를 바꾸며, 영(靈)적 수용성을 위한 너희 혼(魂)의 용량이 확대되리라.
144:2.6 (1619.4) “But when you pray, you exercise so little faith. Genuine faith will remove mountains of material difficulty which may chance to lie in the path of soul expansion and spiritual progress.” “그러나 너희는 기도할 때, 너희 신앙을 거의 활용하지 않느니라. 참된 신앙은, 혼의 확대와 영적 진보의 길에 놓일 수도 있는 물질적 어려움의 산들을 제거하리라.”
3. The Believer’s Prayer 믿는 자의 기도
190721 효력이 있는 기도 눅11:1-4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1 One day Jesus was praying in a certain place. When he finished, one of his disciples said to him, “Lord, teach us to pray, just as John taught his disciples.” 2 He said to them, “When you pray, say: ” ‘Father,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3 Give us each day our daily bread. 4 Forgive us our sins, for we also forgive everyone who sins against us. An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
144:3.1 (1619.5) But the apostles were not yet satisfied; they desired Jesus to give them a model prayer which they could teach the new disciples. After listening to this discourse on prayer, James Zebedee said: “Very good, Master, but we do not desire a form of prayer for ourselves so much as for the newer believers who so frequently beseech us, ‘Teach us how acceptably to pray to the Father in heaven.’” 그러나 사도들은 아직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새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는 모범 기도문을 예수께서 자신들에게 주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대한 이 강연을 들은 후, 야고보 세베대가 말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주(主)여,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늘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기도를 우리에게 가르쳐 달라.’고 우리에게 그토록 자주 간청하는 새 신자(信者)들을 위해 기도의 형태를 요망합니다.”
144:3.2 (1619.6) When James had finished speaking, Jesus said: “If, then, you still desire such a prayer, I would present the one which I taught my brothers and sisters in Nazareth” 야고보가 말을 마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여전히 그런 기도를 바란다면, 내가 나사렛에서 내 형제·자매들에게 가르쳤던 것을 말하리라.”
144:3.3 (1620.1) Our Father who is in heaven,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144:3.4 (1620.2) Hallowed be your name.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
144:3.5 (1620.3)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144:3.6 (1620.4) On earth as it is in heaven. 하늘에서 같이 땅에서도
144:3.7 (1620.5) Give us this day our bread for tomorrow; 오늘 우리에게 내일 양식을 주시고
144:3.8 (1620.6) Refresh our souls with the water of life. 우리 혼(魂)들을 생명의 물로 새롭게 하소서.
144:3.9 (1620.7) And forgive us every one our debts 우리 빚들을 모두 용서하소서.
144:3.10 (1620.8) As we also have forgiven our debtors.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들을 용서한 것 같이
144:3.11 (1620.9) Save us in temptation, deliver us from evil, 우리를 유혹에서 건지시며, 악에서 구하소서.
144:3.12 (1620.10) And increasingly make us perfect like yourself. 우리를 아버지처럼 더욱 온전하게 하소서.
144:3.13 (1620.11) It is not strange that the apostles desired Jesus to teach them a model prayer for believers. John the Baptist had taught his followers several prayers; all great teachers had formulated prayers for their pupils. The religious teachers of the Jews had some twenty-five or thirty set prayers which they recited in the synagogues and even on the street corners. Jesus was particularly averse to praying in public. Up to this time the twelve had heard him pray only a few times. They observed him spending entire nights at prayer or worship, and they were very curious to know the manner or form of his petitions. They were really hard pressed to know what to answer the multitudes when they asked to be taught how to pray as John had taught his disciples. 사도들이 신자들을 위한 모범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예수께 원한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추종자들에게 몇 개의 기도들을 가르쳤으며, 위대한 모든 교사들은 자기 제자들을 위해 기도들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종교 교사들은 약 25개나 30개의 고정된 기도들을 만들어서, 회당들과 길거리 곳곳에서도 암송했습니다.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특히 싫어하셨습니다. 12사도들은 이때까지 그의 기도를 겨우 몇 번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밤새도록 기도나 경배하는 것을 보았으며, 그의 간구 방식이나 형식을 무척 알고 싶었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군중들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들은 군중들에게 대답할 것을 알려고 정말로 많이 시달렸습니다.
144:3.14 (1620.12) Jesus taught the twelve always to pray in secret; to go off by themselves amidst the quiet surroundings of nature or to go in their rooms and shut the doors when they engaged in prayer. 예수님은 12사도들이 늘 몰래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기도할 때 그들끼리 조용한 자연 환경으로 떠나든지 그들의 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고 가르쳤습니다.
144:3.15 (1620.13) After Jesus’ death and ascension to the Father it became the practice of many believers to finish this so-called Lord’s prayer by the addition of —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Christ.” Still later on, two lines were lost in copying, and there was added to this prayer an extra clause, reading: “For yours is the king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evermore.” 예수께서 죽으시고 아버지께로 상승한 후, 많은 신자(信者)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덧붙여 소위 이 주기도(主祈禱)를 마치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훨씬 후 베끼다가 두 줄이 없어졌고, 이 기도에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로 읽는 여분의 절(節)이 더해졌습니다.
144:3.16 (1620.14) Jesus gave the apostles the prayer in collective form as they had prayed it in the Nazareth home. He never taught a formal personal prayer, only group, family, or social petitions. And he never volunteered to do that. 예수님은 나사렛 가정에서 그것을 기도했듯이, 공동(共同)형태의 기도를 사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는 오직 집단, 가족 또는 사회적 간청(懇請)만 가르치셨지, 결코 개인적 형식의 기도를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코 자진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44:3.17 (1620.15) Jesus taught that effective prayer must be: 예수님은 효력이 있는 기도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144:3.18 (1620.16) 1. Unselfish — not alone for oneself. 사심(私心) 없이 – 홀로 자신만 위하지 말라.
144:3.19 (1620.17) 2. Believing — according to faith. 믿음 – 신앙(信仰)에 따라서.
144:3.21 (1620.19) 4. Intelligent — according to light. 지능적(知能的) – 빛에 따라서(분별하여).
144:3.22 (1620.20) 5. Trustful — in submission to the Father’s all-wise will. 신뢰 – 모든 면에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144:3.23 (1620.21) When Jesus spent whole nights on the mountain in prayer, it was mainly for his disciples, particularly for the twelve. The Master prayed very little for himself, although he engaged in much worship of the nature of understanding communion with his Paradise Father. 예수께서 밤새 산에서 기도하실 때, 주로 자기 제자들, 특히 12사도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주(主)님은 자기 천국 아버지를 이해하는 교제 성격의 경배로 대부분 보내셨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거의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4. More About Prayer 기도에 대한 추가 교훈
190728 기도(祈禱)와 경배(敬拜) 눅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One of those days Jesus went out to a mountainside to pray, and spent the night praying to God.
144:4.1 (1620.22) For days after the discourse on prayer the apostles continued to ask the Master questions regarding this all-important and worshipful practice. Jesus’ instruction to the apostles during these days, regarding prayer and worship, may be summarized and restated in modern phraseology as follows: 기도에 관한 강연 후 며칠 간, 사도들은 주(主)님께 매우 중요한 경배의 실천에 대해 계속 질문했습니다. 이 며칠 동안 기도와 경배에 관해 사도들에게 주신 예수의 가르침을 현대 어법으로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다시 진술할 수도 있습니다.
144:4.2 (1621.1) The earnest and longing repetition of any petition, when such a prayer is the sincere expression of a child of God and is uttered in faith, no matter how ill-advised or impossible of direct answer, never fails to expand the soul’s capacity for spiritual receptivity. 진지하게 간절히 반복하는 그런 청원 기도는 하나님 자녀의 신실한 표현이며 신앙(信仰)의 발언(發言)이라면, 직접적 응답이 경솔하거나 불가능해도, 영(靈)적 수용성을 위한 혼(魂)의 용량 확장에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144:4.3 (1621.2) In all praying, remember that sonship is a gift. No child has aught to do with earning the status of son or daughter. The earth child comes into being by the will of its parents. Even so, the child of God comes into grace and the new life of the spirit by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Therefore must the kingdom of heaven — divine sonship — be received as by a little child. You earn righteousness — progressive character development — but you receive sonship by grace and through faith. 기도할 때마다, 아들 됨이 선물임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자녀도 아들이나 딸의 자격을 얻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세상 자녀는 그 부모의 뜻에 따라 태어납니다. 실로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은혜(恩惠)와 영(靈)의 새 생명으로 태어납니다. 따라서 하늘나라 – 신적 아들(자녀)됨 –는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공의(公義의로움) – 진보적 성품 개발-를 획득하지만, 아들(자녀)됨은 은혜(恩惠)로 신앙(信仰)을 통해 여러분이 받습니다.
144:4.4 (1621.3) Prayer led Jesus up to the supercommunion of his soul with the Supreme Rulers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Prayer will lead the mortals of earth up to the communion of true worship. The soul’s spiritual capacity for receptivity determines the quantity of heavenly blessings which can be personally appropriated and consciously realized as an answer to prayer. 예수님은 기도로 우주들의 우주의 최극 통치자들과 자기 혼으로 초(超)교제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세상 필사자들은 기도로 참된 경배의 교제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수용성을 위한 혼(魂)의 영(靈)적 용량이 하늘 축복의 분량(分量)을 결정하며, 하늘의 축복은 기도의 응답으로서 개인적으로 사용되고 의식적으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144:4.5 (1621.4) Prayer and its associated worship is a technique of detachment from the daily routine of life, from the monotonous grind of material existence. It is an avenue of approach to spiritualized self-realization and individuality of intellectual and religious attainment. 기도 및 그와 관련된 경배는 생활의 일과(日課)에서 분리되어, 물질적 실존의 단조로운 고역에서 벗어나는 기법입니다. 그것은 영성(靈性)화 자아-실현과 지적·종교적 도달의 개인성에 접근하는 수단입니다.
144:4.6 (1621.5) Prayer is an antidote for harmful introspection. At least, prayer as the Master taught it is such a beneficent ministry to the soul. Jesus consistently employed the beneficial influence of praying for one’s fellows. The Master usually prayed in the plural, not in the singular. Only in the great crises of his earth life did Jesus ever pray for himself. 기도는 해로운 내성(內省내관, 자기관찰)의 해독제(解毒濟)입니다. 적어도, 주(主)님께서 가르친 기도는 혼(魂)에 그토록 유익한 수단입니다. 예수님은 동료들을 위해 기도하여 좋은 영향을 집요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주(主)는 보통 단수형(單數形)이 아니라, 복수형(複數形)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지상 생애 중 큰 위기 때에만 자신을 위해 늘 기도하셨습니다.
144:4.7 (1621.6) Prayer is the breath of the spirit life in the midst of the material civilization of the races of mankind. Worship is salvation for the pleasure-seeking generations of mortals. 기도는 인종(人種)의 물질적 문명의 복판에 있는 영(靈) 생명의 호흡입니다. 경배는 쾌락을 추구하는 필사 세대들을 위한 구원입니다.
144:4.8 (1621.7) As prayer may be likened to recharging the spiritual batteries of the soul, so worship may be compared to the act of tuning in the soul to catch the universe broadcasts of the infinite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 기도를 혼(魂)의 영적(靈的) 전지(電池)를 충전(充電)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듯이, 경배는 우주 아버지에 속한 무한 영의 우주 방송들을 잡아채려고 혼(魂)으로 조율하는 행동에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144:4.9 (1621.8) Prayer is the sincere and longing look of the child to its spirit Father; it is a psychologic process of exchanging the human will for the divine will. Prayer is a part of the divine plan for making over that which is into that which ought to be. 기도는 영(靈) 아버지를 진지하게 갈망하는 자녀의 표정입니다. 그것은 인간적 의지를 버리고 신적 의지를 취하는 심리적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있는 것(현재)을 모두 있어야 할 것(미래)으로 바꾸는 신적 계획의 부분입니다.
144:4.10 (1621.9) One of the reasons why Peter, James, and John, who so often accompanied Jesus on his long night vigils, never heard Jesus pray, was because their Master so rarely uttered his prayers as spoken words. Practically all of Jesus’ praying was done in the spirit and in the heart — silently. 예수님의 긴 철야(徹夜)기도에 그렇게 자주 동반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그의 기도를 결코 듣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주(主)님이 기도를 말로 소리 내신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모든 예수님의 기도는 영(靈)으로, 심정(心情)으로 – 고요히 하셨습니다.
144:4.11 (1621.10) Of all the apostles, Peter and James came the nearest to comprehending the Master’s teaching about prayer and worship. 모든 사도들 중에서 베드로와 야고보가 기도와 경배에 관한 주(主)님의 가르침을 가장 가깝게 이해했습니다.
5. Other Forms of Prayer 다른 형태의 기도
190804 이렇게 기도(祈禱)하라 마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This, then, is how you should pray: ” ‘Our Father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144:5.1 (1621.11) From time to time, during the remainder of Jesus’ sojourn on earth, he brought to the notice of the apostles several additional forms of prayer, but he did this only in illustration of other matters, and he enjoined that these “parable prayers” should not be taught to the multitudes. Many of them were from other inhabited planets, but this fact Jesus did not reveal to the twelve. Among these prayers were the following: 때때로, 예수께서 지상에 머무시던 나머지 기간에, 그는 사도들에게, 단지 다른 문제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몇 가지 추가적 기도 형태에 주목하도록 하셨으며, 이 “비유 기도들”을 군중에게 가르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중 많은 것들이 다른 거주 행성들의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이 사실을 12사도들에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 기도들 중에는 다음의 것들이 있었습니다.
144:5.2 (1622.1) Our Father in whom consist the universe realms, 우주 영역들을 유지하시는 우리 아버지여,
144:5.3 (1622.2) Uplifted be your name and all-glorious your character.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모든 영예로운 성품을 높이소서.
144:5.4 (1622.3) Your presence encompasses us, and your glory is manifested 당신의 존재가 우리를 품으셔서, 당신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144:5.5 (1622.4) Imperfectly through us as it is in perfection shown on high. 하늘에서 당신의 영광이 온전히 나타나심과 달리 우리를 통해 불완전하게
144:5.6 (1622.5) Give us this day the vivifying forces of light, 오늘 우리에게 빛의 활력(活力)을 주소서.
144:5.7 (1622.6) And let us not stray into the evil bypaths of our imagination, 우리 심상(心想)에서 악한 샛길로 탈선하지 않게 하소서.
144:5.8 (1622.7) For yours is the glorious indwelling, the everlasting power, 영예롭게 내주하는 영원한 권능이 당신의 것입니다.
144:5.9 (1622.8) And to us, the eternal gift of the infinite love of your Son. 당신 아들의 무한한 사랑은 우리에게 영원한 선물입니다.
144:5.10 (1622.9) Even so, and everlastingly true. 과연 그러하오니, 진실로 영원합니다.
~ ~ ~ ~ ~
144:5.12 (1622.10) Our creative Parent, who is in the center of the universe, 우주의 중심에 계시는 우리의 창조적 부모시여,
144:5.13 (1622.11) Bestow upon us your nature and give to us your character. 우리에게 당신의 본성을 주시며 당신의 성품을 주소서.
144:5.14 (1622.12) Make us sons and daughters of yours by grace 우리를 은혜로 당신의 아들들과 딸들이 되게 하소서.
144:5.15 (1622.13) And glorify your name through our eternal achievement. 우리의 영원한 성취를 통해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144:5.16 (1622.14) Your adjusting and controlling spirit give to live and dwell within us 당신이 조율하시며 조정하시는 영을 주셔서 우리 안에 살고 거주하게 하소서
144:5.17 (1622.15) That we may do your will on this sphere as angels do your bidding in light. 천사들이 빛 가운데 당신의 명령을 행하듯이 이 구체에서 우리가 당신의 뜻을 행하도록
144:5.18 (1622.16) Sustain us this day in our progress along the path of truth. 오늘 진리의 길을 따라 진행하도록 우리를 붙드소서.
144:5.19 (1622.17) Deliver us from inertia, evil, and all sinful transgression. 타성과 악과 사악한 모든 범죄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144:5.20 (1622.18) Be patient with us as we show loving-kindness to our fellows. 우리가 우리 동료들에게 자애(慈愛)하듯이 우리를 참으소서.
144:5.21 (1622.19) Shed abroad the spirit of your mercy in our creature hearts. 우리 창조물의 심정에 당신 자비의 영을 널리 퍼뜨리소서.
144:5.22 (1622.20) Lead us by your own hand, step by step, through the uncertain maze of life, 불확실한 인생의 미로를 통해서 한걸음씩 당신 자신의 손으로 우리를 이끄소서.
144:5.23 (1622.21) And when our end shall come, receive into your own bosom our faithful spirits.우리의 인생이 다할 때, 우리의 신실한 영들을 당신 자신의 품으로 받으소서.
144:5.24 (1622.22) Even so, not our desires but your will be done. 과연 그러하오니, 우리 소망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 ~ ~ ~ ~
144:5.26 (1622.23) Our perfect and righteous heavenly Father, 우리의 온전하며 의로우신 하늘 아버지여,
144:5.27 (1622.24) This day guide and direct our journey. 오늘 우리의 여정을 안내하며 지도하소서.
144:5.28 (1622.25) Sanctify our steps and co-ordinate our thoughts. 우리 발걸음을 씻으시고 우리의 생각을 통합하소서.
144:5.29 (1622.26) Ever lead us in the ways of eternal progress. 우리를 영원한 진보의 길로 늘 인도하소서.
144:5.30 (1622.27) Fill us with wisdom to the fullness of power 권능으로 충만하게 지혜로 우리를 채우소서.
144:5.31 (1622.28) And vitalize us with your infinite energy. 당신의 무한한 에너지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144:5.32 (1622.29) Inspire us with the divine consciousness of 신적 의식으로 우리에게 영감(靈感)을 주소서.
144:5.33 (1622.30) The presence and guidance of the seraphic hosts. 세라핌천사 무리의 현존과 안내에 속한
144:5.34 (1622.31) Guide us ever upward in the pathway of light; 빛의 길에서 위를 향해 늘 우리를 안내하소서.
144:5.35 (1622.32) Justify us fully in the day of the great judgment. 큰 심판 날에 우리를 온전히 의롭게 하소서.
144:5.36 (1622.33) Make us like yourself in eternal glory 영원한 영광중에 계신 당신 자신처럼 우리를 만드소서.
144:5.37 (1622.34) And receive us into your endless service on high. 하늘에 있는 당신을 향한 끝없는 경배로 우리를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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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39 (1622.35) Our Father who is in the mystery, 신비 속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44:5.40 (1622.36) Reveal to us your holy character. 우리에게 당신의 거룩한 성품을 드러내소서.
144:5.41 (1622.37) Give your children on earth this day 지상의 당신 자녀들에게 오늘을 주소서.
144:5.42 (1622.38) To see the way, the light, and the truth. 길과 빛과 진리를 보게 하소서.
144:5.43 (1622.39) Show us the pathway of eternal progress 우리에게 영원한 진보의 길을 보이소서.
144:5.44 (1622.40) And give us the will to walk therein. 그 길을 걸어갈 의지를 우리에게 주소서.
144:5.45 (1622.41) Establish within us your divine kingship 당신의 신적 왕권(王權)을 우리 안에 세우소서.
144:5.46 (1622.42) And thereby bestow upon us the full mastery of self. 그것을 우리에게 주셔서 자아를 온전히 다스리게 하소서.
144:5.47 (1622.43) Let us not stray into paths of darkness and death; 우리를 어두움과 죽음의 길로 탈선하게 않게 하소서.
144:5.48 (1622.44) Lead us everlastingly beside the waters of life. 생명의 물가로 우리를 영원히 이끄소서.
144:5.49 (1622.45) Hear these our prayers for your own sake; 당신을 위해 우리의 이 기도를 들으소서.
144:5.50 (1622.46) Be pleased to make us more and more like yourself. 우리로 더욱 당신처럼 되기를 기뻐하소서.
144:5.51 (1623.1) At the end, for the sake of the divine Son, 최후에, 신적 아들을 위해
144:5.52 (1623.2) Receive us into the eternal arms. 영원한 팔로 우리를 받으소서.
144:5.53 (1623.3) Even so, not our will but yours be done. 과연 그러하오니, 우리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 ~ ~ ~ ~
144:5.55 (1623.4) Glorious Father and Mother, in one parent combined, 두 분이 하나가 되어 한 부모로 연합하신 영광의 아버지와 어머니여,
144:5.56 (1623.5) Loyal would we be to your divine nature. 당신의 신적 본성에 우리로 충성하게 하소서.
144:5.57 (1623.6) Your own self to live again in and through us 당신 자신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다시 사소서.
144:5.58 (1623.7) By the gift and bestowal of your divine spirit, 당신의 신적 영의 선물과 증여로
144:5.59 (1623.8) Thus reproducing you imperfectly in this sphere 그렇게 이 구체에서 불완전하게 당신을 드러내고 있나이다.
144:5.60 (1623.9) As you are perfectly and majestically shown on high. 당신이 하늘에서 온전히 위엄 있게 나타내심과 달리
144:5.61 (1623.10) Give us day by day your sweet ministry of brotherhood 우리에게 날마다 형제됨의 즐거운 사역을 주소서.
144:5.62 (1623.11) And lead us moment by moment in the pathway of loving service. 사랑하는 봉사의 길로 순간마다 우리를 이끄소서.
144:5.63 (1623.12) Be you ever and unfailingly patient with us 당신은 늘 어김없이 우리를 참으소서.
144:5.64 (1623.13) Even as we show forth your patience to our children. 우리가 당신의 인내를 우리 자녀들에게 바로 보이듯이
144:5.65 (1623.14) Give us the divine wisdom that does all things well 모든 것을 잘하는 신적 지혜를 우리에게 주소서.
144:5.66 (1623.15) And the infinite love that is gracious to every creature. 모든 창조물에게 은혜로운 무한한 사랑을 주소서 .
144:5.67 (1623.16) Bestow upon us your patience and loving-kindness 우리에게 당신의 인내와 자애를 주셔서
144:5.68 (1623.17) That our charity may enfold the weak of the realm. 우리의 관대함이 이 영역의 약자들을 품을 수도 있게 하소서.
144:5.69 (1623.18) And when our career is finished, make it an honor to your name, 우리 생애가 끝날 때, 그것이 당신 이름에 영예가 되게 하소서.
144:5.70 (1623.19) A pleasure to your good spirit, and a satisfaction to our soul helpers. 당신의 선한 영에게 기쁨이 되며, 우리 혼을 돕는 자들에게 만족이 되게 하소서.
144:5.71 (1623.20) Not as we wish, our loving Father, but as you desire the eternal good of your mortal children,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여, 우리 소망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의 필사 자녀들의 영원한 선을 위하여 당신의 소망대로 하소서.
144:5.72 (1623.21) Even so may it be. 과연 그러하기를 바라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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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5.74 (1623.22) Our all-faithful Source and all-powerful Center, 우리의 모든 신실한 근원이며 모든 권능의 중심이시여,
144:5.75 (1623.23) Reverent and holy be the name of your all-gracious Son. 당신의 모든-은혜로우신 아들의 이름이 존경과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144:5.76 (1623.24) Your bounties and your blessings have descended upon us, 당신의 관대함과 축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으니
144:5.77 (1623.25) Thus empowering us to perform your will and execute your bidding. 그래서 우리로 당신의 뜻을 행하고 당신의 명령을 실행하도록 힘을 주시나이다.
144:5.78 (1623.26) Give us moment by moment the sustenance of the tree of life; 순간마다 우리에게 생명나무의 영양분(營養分)을 주소서.
144:5.79 (1623.27) Refresh us day by day with the living waters of the river thereof. 우리를 날마다 그 강의 생명수로 새롭게 하소서.
144:5.80 (1623.28) Step by step lead us out of darkness and into the divine light. 한 걸음씩 우리를 어두움에서 건져 신적 빛으로 이끄소서.
144:5.81 (1623.29) Renew our minds by the transformations of the indwelling spirit, 내주하시는 영의 변화로 우리 마음들을 새롭게 하소서.
144:5.82 (1623.30) And when the mortal end shall finally come upon us, 그리고 필사자의 종말이 결국 우리에게 임하면,
144:5.83 (1623.31) Receive us to yourself and send us forth in eternity. 우리를 당신 자신이 받으시고 우리를 영원으로 보내소서.
144:5.84 (1623.32) Crown us with celestial diadems of fruitful service, 결실이 많은 봉사, 즉 천상의 왕관(王冠)을 우리에게 씌우소서.
144:5.85 (1623.33) And we shall glorify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Influence.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한 권세를 찬미할 것입니다.
144:5.86 (1623.34) Even so, throughout a universe without end. 끝없는 전(全) 우주에서 과연 그러합니다.
~ ~ ~ ~ ~
144:5.88 (1623.35) Our Father who dwells in the secret places of the universe, 우주의 은밀한 곳들에 거하시는 우리 아버지여,
144:5.89 (1623.36) Honored be your name, reverenced your mercy, and respected your judgment.당신의 이름을 영예롭게 하시고, 당신의 자비에 경의(敬意)를 표하며, 당신의 판단을 존중히 하소서.
144:5.90 (1623.37) Let the sun of righteousness shine upon us at noontime, 공의(公義)의 태양을 정오에 우리에게 비추소서.
144:5.91 (1623.38) While we beseech you to guide our wayward steps in the twilight. 저물녘 흔들리는 우리의 걸음을 당신께서 안내하시기를 우리가 탄원합니다.
144:5.92 (1623.39) Lead us by the hand in the ways of your own choosing 당신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우리를 손잡아 이끄소서.
144:5.93 (1623.40) And forsake us not when the path is hard and the hours are dark. 길이 어렵고 때가 어두울 때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144:5.94 (1623.41) Forget us not as we so often neglect and forget you. 우리가 그렇게 자주 당신을 소홀히 하고 잊은 것처럼 우리를 잊지 마소서.
144:5.95 (1623.42) But be you merciful and love us as we desire to love you. 다만 우리가 당신 사랑하기를 갈망하듯이 당신이 자비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소서.
144:5.96 (1623.43) Look down upon us in kindness and forgive us in mercy 우리를 친절히 내려 보시고 자비로 우리를 용서하소서.
144:5.97 (1623.44) As we in justice forgive those who distress and injure us. 우리가 우리를 괴롭히고 상처를 입힌 자들을 정의(正義)로 용서하듯이
144:5.98 (1624.1) May the love, devotion, and bestowal of the majestic Son 위엄 있는 아들의 사랑과 헌신과 증여가
144:5.99 (1624.2) Make available life everlasting with your endless mercy and love. 당신의 끝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생명을 영원하게 하소서.
144:5.100 (1624.3) May the God of universes bestow upon us the full measure of his spirit; 우주들의 하나님이 그의 영을 충만할 정도로 우리에게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144:5.101 (1624.4) Give us grace to yield to the leading of this spirit. 이 영의 인도에 따르도록 은혜를 주소서.
144:5.102 (1624.5) By the loving ministry of devoted seraphic hosts 헌신하는 세라핌천사 무리들의 사랑하는 사역으로
144:5.103 (1624.6) May the Son guide and lead us to the end of the age. 시대 끝까지 아들이 우리를 안내하고 이끄시기를 기원합니다.
144:5.104 (1624.7) Make us ever and increasingly like yourself 우리가 늘 더욱 당신과 같게 하소서.
144:5.105 (1624.8) And at our end receive us into the eternal Paradise embrace. 우리의 마지막에 우리를 영원한 천국 품으로 받으소서.
144:5.106 (1624.9) Even so, in the name of the bestowal Son 증여 아들의 이름으로 과연 그러합니다.
144:5.107 (1624.10) And for the honor and glory of the Supreme Father. 그리고 최극자 아버지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하소서.
144:5.108 (1624.11) Though the apostles were not at liberty to present these prayer lessons in their public teachings, they profited much from all of these revelations in their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s. Jesus utilized these and other prayer models as illustrations in connection with the intimate instruction of the twelve, and specific permission has been granted for transcribing these seven specimen prayers into this record. 사도들은 이 기도들을 공적 가르침들로 자유롭게 제시할 수 없었지만, 개인적 종교 체험에 있어서 그들은 이 모든 계시들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12사도들의 깊은 훈련과 관련하여 이것들과 다른 기도 모범들을 실례로 활용하셨고, 이 기록에 이 일곱 개의 기도 실례들을 옮겨 쓰도록 특별한 허락이 주어졌습니다.
6. Conference with John’s Apostles 요한의 사도들과 개최한 회의(會議)
190811 연합의 정신 요4: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although in fact it was not Jesus who baptized, but his disciples.
144:6.1 (1624.12) Around the first of October, Philip and some of his fellow apostles were in a near-by village buying food when they met some of the apostles of John the Baptist. As a result of this chance meeting in the market place there came about a three weeks’ conference at the Gilboa camp between the apostles of Jesus and the apostles of John, for John had recently appointed twelve of his leaders to be apostles, following the precedent of Jesus. John had done this in response to the urging of Abner, the chief of his loyal supporters. Jesus was present at the Gilboa camp throughout the first week of this joint conference but absented himself the last two weeks. 10월 1일경(AD 27) 빌립과 동료사도 몇 명이 가까운 마을에서 음식을 사는 중에 세례 요한의 몇 사도들을 만났습니다. 시장(市場)에서 이렇게 우연히 만난 결과, 예수님의 사도들과 요한의 사도들이 길보아 야영지에서 약 3주간 회의를 열었는데, 이는 요한이 예수님의 선례를 따라 12명 지도자들을 최근에 사도들로 임명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충성된 자기 지지자(支持者)들 중 수제자 아브너의 재촉에 답하여 이렇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공동 회의(會議)의 첫 주 내내 길보아 야영지에 있었지만, 마지막 두 주 간은 빠졌습니다.
144:6.2 (1624.13) By the beginning of the second week of this month, Abner had assembled all of his associates at the Gilboa camp and was prepared to go into council with the apostles of Jesus. For three weeks these twenty-four men were in session three times a day and for six days each week. The first week Jesus mingled with them between their forenoon, afternoon, and evening sessions. They wanted the Master to meet with them and preside over their joint deliberations, but he steadfastly refused to participate in their discussions, though he did consent to speak to them on three occasions. These talks by Jesus to the twenty-four were on sympathy, co-operation, and tolerance. 이 달(10월)의 둘째 주 초에, 아브너는 자기 모든 동료들을 길보아 야영지로 소집해서, 예수님의 사도들과 협의에 들어갔습니다. 이 24명은 3주간 하루에 3번씩, 한 주에 6일 회의를 했습니다. 첫 주에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오전, 오후, 저녁 회의에 참가하셨습니다. 그들은 주(主)님께서 자기들과 회담하며 공동 토의(討議)의 의장(議長)이 되시기를 원했으나, 그는 그 토의 참여를 끝까지 거절하셨고, 그래도 그는 세 번의 강연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께서 24명에게 하신 강연은 공감, 협력 및 관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144:6.3 (1624.14) Andrew and Abner alternated in presiding over these joint meetings of the two apostolic groups. These men had many difficulties to discuss and numerous problems to solve. Again and again would they take their troubles to Jesus, only to hear him say: “I am concerned only with your personal and purely religious problems. I am the representative of the Father to the individual, not to the group. If you are in personal difficulty in your relations with God, come to me, and I will hear you and counsel you in the solution of your problem. But when you enter upon the co-ordination of divergent human interpretations of religious questions and upon the socialization of religion, you are destined to solve all such problems by your own decisions. Albeit, I am ever sympathetic and always interested, and when you arrive at your conclusions touching these matters of nonspiritual import, provided you are all agreed, then I pledge in advance my full approval and hearty co-operation. And now, in order to leave you unhampered in your deliberations, I am leaving you for two weeks. Be not anxious about me, for I will return to you. I will be about my Father’s business, for we have other realms besides this one.” 안드레와 아브너는 두 사도 집단의 공동 회의에서 번갈아 사회를 맡았습니다. 이들에게는 토의할 여러 어려움들과 풀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듭해서 예수님께 그들의 고민들을 가져갔으나, 다음의 대답만 들었을 뿐입니다. “나는 너희의 고유적이며 완전히 종교적인 문제들만 관여하노라. 나는 개인에게 아버지의 대리자이지, 집단에게는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관계에서 개인적 어려움이 있으면 내게 오라, 내가 너희 말을 듣고, 너희 문제를 풀도록 조언하리라. 그러나 너희가 종교적 질문들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들을 통합하고 종교를 사회화하려면, 너희 자신의 결정으로 그런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정해져 있느니라. 그래도 나는 언제나 공감하고 늘 관심을 두고, 너희가 모두 동의한다면, 비(非)영적인 중요한 이런 문제들에 관계된 너희 결론에 이를 때, 내가 충분히 찬성하고 친절히 협력할 것을 미리 약속하노라. 그리고 이제 너희 토의에 방해되지 않도록 나는 2주간 너희를 떠나리라. 내가 너희에게 돌아오리니, 내 걱정은 말라. 나는 아버지의 일을 하리니, 우리는 이 영역 외에 다른 영역들을 지니고 있음이니라.”
144:6.4 (1625.1) After thus speaking, Jesus went down the mountainside, and they saw him no more for two full weeks. And they never knew where he went or what he did during these days. It was some time before the twenty-four could settle down to the serious consideration of their problems, they were so disconcerted by the absence of the Master. However, within a week they were again in the heart of their discussions, and they could not go to Jesus for help. 이렇게 말하신 후, 예수님은 산중턱으로 내려 가셨고, 그들은 꼬박 2주간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기간에 그가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24명은 자신들의 문제에 몰두하며 신중히 고려하기 전에 잠시 시간이 있었으며, 주(主)님의 부재로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한 주간 내에 그들은 토론의 핵심에 다시 들어가, 도움을 청하려 예수님께 갈 수 없었습니다.
144:6.5 (1625.2) The first item the group agreed upon was the adoption of the prayer which Jesus had so recently taught them. It was unanimously voted to accept this prayer as the one to be taught believers by both groups of apostles. 그 집단이 동의했던 첫째 항목은 최근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가르쳤던 기도의 채택이었습니다. 양쪽 사도들이 신자(信者)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으로 이 기도를 받아들이기로 만장일치로 가결(可決)했습니다.
144:6.6 (1625.3) They next decided that, as long as John lived, whether in prison or out, both groups of twelve apostles would go on with their work, and that joint meetings for one week would be held every three months at places to be agreed upon from time to time. 그들은 그 다음에, 요한이 감옥에 있든지 아니면 석방되든지, 그가 살아있는 한, 두 12사도 집단은 자신들의 업무를 계속할 것이며, 때때로 의견을 같이할 장소에서 석 달에 한 주간씩 공동 모임을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144:6.7 (1625.4) But the most serious of all their problems was the question of baptism. Their difficulties were all the more aggravated because Jesus had refused to make any pronouncement upon the subject. They finally agreed: As long as John lived, or until they might jointly modify this decision, only the apostles of John would baptize believers, and only the apostles of Jesus would finally instruct the new disciples. Accordingly, from that time until after the death of John, two of the apostles of John accompanied Jesus and his apostles to baptize believers, for the joint council had unanimously voted that baptism was to become the initial step in the outward alliance with the affairs of the kingdom. 그러나 그들의 모든 문제들 중 가장 심각했던 것은 세례문제였습니다. 예수께서 그 주제에 대해 어떤 견해도 드러내기를 거절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어려움은 모두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요한이 살아 있는 한, 혹은 그들이 공동으로 이 결정을 수정하기까지, 요한의 사도들만 신자(信者)들에게 세례주고, 예수님의 사도들만 마지막에 새 제자들을 가르치기로 동의했습니다. 따라서 그 때부터 요한이 죽기까지, 요한의 사도 두 명이 신자(信者)들에게 세례를 주려고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과 동행했는데, 그것은 세례가 (하나님)나라 업무와 표면적으로 연합된 첫 단계가 되어야 한다고 공동 협의에서 만장일치로 가결(可決)했기 때문입니다.
144:6.8 (1625.5) It was next agreed, in case of the death of John, that the apostles of John would present themselves to Jesus and become subject to his direction, and that they would baptize no more unless authorized by Jesus or his apostles. 그 다음으로, 요한이 죽을 경우 요한의 사도들은 예수께 나와 그의 지도에 복종하고, 예수님 혹은 그의 사도들의 허락 없이 더 이상 세례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찬성했습니다.
144:6.9 (1625.6) And then was it voted that, in case of John’s death, the apostles of Jesus would begin to baptize with water as the emblem of the baptism of the divine Spirit. As to whether or not repentance should be attached to the preaching of baptism was left optional; no decision was made binding upon the group. John’s apostles preached, “Repent and be baptized.” Jesus’ apostles proclaimed, “Believe and be baptized.” 그 후, 요한이 죽을 경우, 예수님의 사도들이 신적 영에 속한 세례의 표상(表象)으로 물세례를 시작하기로 가결(可決)했습니다. 세례의 설교에 회개를 포함할지 말지는 선택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집단을 잡아매는 어떤 결정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사도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전하였고, 예수님의 사도들은 “믿고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했습니다.
144:6.10 (1625.7) And this is the story of the first attempt of Jesus’ followers to co-ordinate divergent efforts, compose differences of opinion, organize group undertakings, legislate on outward observances, and socialize personal religious practices.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의 신도(信徒)들이 서로 다른 노력들을 통합하고, 의견의 차이들을 조정하며, 집단적 업무들을 조직하고, 외적 관례를 제정하며, 개인의 종교적 관행을 사회화하는 첫 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44:6.11 (1625.8) Many other minor matters were considered and their solutions unanimously agreed upon. These twenty-four men had a truly remarkable experience these two weeks when they were compelled to face problems and compose difficulties without Jesus. They learned to differ, to debate, to contend, to pray, and to compromise, and throughout it all to remain sympathetic with the other person’s viewpoint and to maintain at least some degree of tolerance for his honest opinions. 다른 여러 사소한 일들이 고려되었고 그 해결들은 만장일치로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이 24명의 사람들은 예수님도 없이, 문제들에 직면하고 어려움들을 수습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이 두 주간 참으로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그들은 의견을 달리하고, 토론하며, 논쟁하고, 기도하며, 타협하기를 배웠고, 그 기간 내내 모두 다른 사람의 견해에 공감하고, 적어도 어느 정도 그의 정직한 소신에 대해 관용하기를 배웠습니다.
144:6.12 (1625.9) On the afternoon of their final discussion of financial questions, Jesus returned, heard of their deliberations, listened to their decisions, and said: “These, then, are your conclusions, and I shall help you each to carry out the spirit of your united decisions.” 재정문제들을 마지막으로 토의하던 오후에 예수께서 돌아오셨고 그들의 토의들을 듣고 그들의 결정들을 경청하신 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것들이 너희의 결론들이니, 너희가 연합한 결정의 정신(영)을 각자 실행하도록 내가 너희를 도우리라.”
144:6.13 (1626.1) Two months and a half from this time John was executed, and throughout this period the apostles of John remained with Jesus and the twelve. They all worked together and baptized believers during this season of labor in the cities of the Decapolis. The Gilboa camp was broken up on November 2, A.D. 27. 이때부터 두 달 반 후(AD28.1.10), 요한이 처형되었고, 이 기간 내내 요한의 사도들은 예수님과 12사도들과 함께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데카폴리스의 도시들에서 수고하던 이 계절에 모두 함께 일하였고, 신자(信者)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길보아 야영지는 AD 27년 11월 2일에 해산했습니다.
In the Decapolis Cities 데카폴리스의 도시들에서
190818 예수 복음의 대가(代價) 요4:1-2 1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1 The Pharisees heard that Jesus was gaining and baptizing more disciples than John, 2 although in fact it was not Jesus who baptized, but his disciples.
144:7.1 (1626.2) Throughout the months of November and December, Jesus and the twenty-four worked quietly in the Greek cities of the Decapolis, chiefly in Scythopolis, Gerasa, Abila, and Gadara. This was really the end of that preliminary period of taking over John’s work and organization. Always does the socialized religion of a new revelation pay the price of compromise with the established forms and usages of the preceding religion which it seeks to salvage. Baptism was the price which the followers of Jesus paid in order to carry with them, as a socialized religious group, the followers of John the Baptist. John’s followers, in joining Jesus’ followers, gave up just about everything except water baptism. 11월과 12월 내내, 예수님과 24명은 데카폴리스의 그리스 도시들 중 주로 스키토폴리스, 게라사, 아빌라, 및 가다라에서 조용히 일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요한의 업무와 조직을 넘겨받는 예비 기간의 끝이었습니다. 새롭게 계시하는 사회화(社會化) 종교는, 구원하려는 기존(旣存) 종교의 확립된 형태 및 관례와, 타협하는 대가(代價)를 언제나 지불해야 합니다. 세례는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사회화(社會化) 종교 집단으로써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을 포함하기 위해, 지불한 대가(代價)였습니다. 요한의 추종자들은, 예수님의 추종자들과 합병하면서, 세례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 포기했습니다.
144:7.2 (1626.3) Jesus did little public teaching on this mission to the cities of the Decapolis. He spent considerable time teaching the twenty-four and had many special sessions with John’s twelve apostles. In time they became more understanding as to why Jesus did not go to visit John in prison, and why he made no effort to secure his release. But they never could understand why Jesus did no marvelous works, why he refused to produce outward signs of his divine authority. Before coming to the Gilboa camp, they had believed in Jesus mostly because of John’s testimony, but soon they were beginning to believe as a result of their own contact with the Master and his teachings. 예수님은 데카폴리스의 도시들로 향하는 이 선교활동에서 공적으로 거의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꽤 많은 시간을 들여서 24명을 가르치셨고, 요한의 12사도들과 여러 번 특별 수업을 했습니다. 머지않아 그들은 왜 예수께서 투옥된 요한을 방문하러 가지 않았으며, 왜 그가 그의 석방을 위해 아무런 애를 쓰지 않았는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왜 예수께서 아무런 기적적 일들을 행하지 않고, 왜 자신의 신적 권위의 외형적 표적 나타내기를 거절하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길보아 야영지로 오기 전에, 그들은 주로 요한의 증거로 인해 예수님을 믿었지만, 곧 주(主)님과 그의 가르침을 자신들이 직접 접촉한 결과로써 믿기 시작했습니다.
144:7.3 (1626.4) For these two months the group worked most of the time in pairs, one of Jesus’ apostles going out with one of John’s. The apostle of John baptized, the apostle of Jesus instructed, while they both preached the gospel of the kingdom as they understood it. And they won many souls among these gentiles and apostate Jews. 이 두 달간, 그 집단은 대부분의 시간에 예수님의 사도 한 명이 요한의 사도 한 명과 둘씩 짝을 지어 일하러 나갔습니다. 요한의 사도가 세례를 주었고, 예수님의 사도는 가르쳤으며, 한편으로 그들 모두 자기들이 이해한대로 하늘나라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이방인들과 유대교를 버린 많은 혼(魂)들을 개종시켰습니다.
144:7.4 (1626.5) Abner, the chief of John’s apostles, became a devout believer in Jesus and was later on made the head of a group of seventy teachers whom the Master commissioned to preach the gospel. 요한 사도들의 수석 아브너는 예수님의 독실한 신자가 되었고, 나중에 주(主)께서 복음을 전하도록 임명한 70명 교사 집단의 수장(首長)이 되었습니다.
In Camp Near Pella 펠라 근처 야영지에서 190825 세례 요한 보다 큰 자 마11:25-30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5 At that time Jesus said, “I praise you,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because you have hidden these things from the wise and learned, and revealed them to little children. 26 Yes, Father, for this was your good pleasure. 27 “All things have been committed to me by my Father. No one knows the Son except the Father, and no one knows the Father except the Son and those to whom the Son chooses to reveal him. 28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29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30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144:8.1 (1626.6) The latter part of December they all went over near the Jordan, close by Pella, where they again began to teach and preach. Both Jews and gentiles came to this camp to hear the gospel. It was while Jesus was teaching the multitude one afternoon that some of John’s special friends brought the Master the last message which he ever had from the Baptist. 12월 후반에 그들은 모두 펠라 바로 옆 요단강 근처로 넘어갔으며, 거기서 그들은 다시 가르치며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모두 복음을 듣기위해 이 야영지로 왔습니다. 어느 날 오후 예수께서 군중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요한의 각별한 친구들 몇 명이 세례 요한에게서 마지막 메시지를 주(主)님께 가져 왔습니다.
144:8.2 (1626.7) John had now been in prison a year and a half, and most of this time Jesus had labored very quietly; so it was not strange that John should be led to wonder about the kingdom. John’s friends interrupted Jesus’ teaching to say to him: “John the Baptist has sent us to ask — are you truly the Deliverer, or shall we look for another?” 요한은 이제 1년 반 동안 투옥 중이었고, 대체로 이 기간에 예수님은 매우 조용히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하나님)나라를 의아히 여기게 된 것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의 친구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끼어들어 말했습니다. “당신이 정말 구원자인지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지 여쭤보라고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냈습니다.”
144:8.3 (1626.8) Jesus paused to say to John’s friends: “Go back and tell John that he is not forgotten. Tell him what you have seen and heard, that the poor have good tidings preached to them.” And when Jesus had spoken further to the messengers of John, he turned again to the multitude and said: “Do not think that John doubts the gospel of the kingdom. He makes inquiry only to assure his disciples who are also my disciples. John is no weakling. Let me ask you who heard John preach before Herod put him in prison: What did you behold in John — a reed shaken with the wind? A man of changeable moods and clothed in soft raiment? As a rule they who are gorgeously appareled and who live delicately are in kings’ courts and in the mansions of the rich. But what did you see when you beheld John? A prophet? Yes, I say to you, and much more than a prophet. Of John it was written: ‘Behold, I send my messenger before your face; he shall prepare the way before you.’ 예수께서 잠시 멈춰 요한의 친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돌아가 요한에게 그를 잊지 않고 있다고 전하라. 너희가 보고 들은 대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하고 있다고 그에게 이르라.” 그리고 예수님은 요한의 메신저들에게 말씀을 더하신 후, 다시 군중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의심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는 또한 내 제자인, 자기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려고 문의한 것뿐이라. 요한은 약한 자가 아니니라. 헤롯이 그를 투옥하기 전에 요한의 설교를 들었던 너희에게 묻겠노라. 너희는 요한에게서 무엇을 보았느냐 –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변덕쟁이로 부드러운 옷을 입었더냐? 화사하게 차려 입고 고상하게 사는 자들은 보통 왕들의 궁전과 부자들의 저택에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요한을 볼 때 무엇을 보았느냐? 선지자더냐? 옳도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큰 자이니라. 요한에 대해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메신저를 보내리니, 그가 네 앞에서 길을 예비하리라.’고 기록했느니라.
144:8.4 (1627.1) “Verily, verily, I say to you, among those born of women there has not arisen a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yet he who is but small in the kingdom of heaven is greater because he has been born of the spirit and knows that he has become a son of God.”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일어나지 않았느니라.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큰 이유는 그가 영으로 태어났으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자녀)이 되었음을 알기 때문이라.”
144:8.5 (1627.2) Many who heard Jesus that day submitted themselves to John’s baptism, thereby publicly professing entrance into the kingdom. And the apostles of John were firmly knit to Jesus from that day forward. This occurrence marked the real union of John’s and Jesus’ followers. 그 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면서,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의 사도들은 그 날 이후 예수님께 견고히 밀착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요한과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정말로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144:8.6 (1627.3) After the messengers had conversed with Abner, they departed for Machaerus to tell all this to John. He was greatly comforted, and his faith was strengthened by the words of Jesus and the message of Abner. 메신저들이 아브너와 대화한 후, 요한에게 이 모두를 전하려고 마캐루스로 떠났습니다. 요한은 크게 위로받았고, 그의 신앙(信仰)은 예수님의 말씀과 아브너의 메시지로 기운을 얻었습니다.
144:8.7 (1627.4) On this afternoon Jesus continued to teach, saying: “But to what shall I liken this generation? Many of you will receive neither John’s message nor my teaching. You are like the children playing in the market place who call to their fellows and say: ‘We piped for you and you did not dance; we wailed and you did not mourn.’ And so with some of you. John came neither eating nor drinking, and they said he had a devil. The Son of Man comes eating and drinking, and these same people say: ‘Behold, a gluttonous man and a winebibber, a friend of publicans and sinners!’ Truly, wisdom is justified by her children. 이 날 오후에 예수님은 계속 가르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세대를 무엇에 비유할까? 너희 중 여럿이 요한의 메시지나 내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너희는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과 같으니, 자기 친구들을 불러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를 위해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소리 내어 울어도 너희는 슬퍼하지 않았더라.’ 너희 중 일부도 마찬가지라. 요한이 와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더니, 저들은 그가 악마에게 사로잡혔다고 했느니라. 인자(人子)가 와서 먹고 마시자 바로 이 사람들이 ‘보라, 먹기를 탐하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말했느니라. 정말로 지혜는 자기 자녀(행한 일)로 인해 옳다고 인정함을 받느니라.
144:8.8 (1627.5) “It would appear that the Father in heaven has hidden some of these truths from the wise and haughty, while he has revealed them to babes. But the Father does all things well; the Father reveals himself to the universe by the methods of his own choosing. Come, therefore, all you who labor and are heavy laden, and you shall find rest for your souls. Take upon you the divine yoke, and you will experience the peace of God, which passes all understanding.” “하늘 아버지는 이러한 일부 진리들을 지혜롭고 오만한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분명히 드러내시느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모든 것들을 잘 하시니라. 아버지는 자신이 택한 방법으로 우주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너희는 모두 내게로 오라, 그러면 너희 혼(魂)들이 쉬게 되리라. 신적 멍에를 메라. 그러면 너희가 모든 이해를 초월한 하나님의 평화를 체험하리라.”
Death of John the Baptist 세례 요한의 죽음190901 세례 요한의 죽음 막6:27-29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여아에게 주니 여아가 이것을 그 어미에게 주니라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27 So he immediately sent an executioner with orders to bring John’s head. The man went, beheaded John in the prison, 28 and brought back his head on a platter. He presented it to the girl, and she gave it to her mother. 29 On hearing of this, John’s disciples came and took his body and laid it in a tomb.
144:9.1 (1627.6) John the Baptist was executed by order of Herod Antipas on the evening of January 10, A.D. 28. The next day a few of John’s disciples who had gone to Machaerus heard of his execution and, going to Herod, made request for his body, which they put in a tomb, later giving it burial at Sebaste, the home of Abner. The following day, January 12, they started north to the camp of John’s and Jesus’ apostles near Pella, and they told Jesus about the death of John. When Jesus heard their report, he dismissed the multitude and, calling the twenty-four together, said: “John is dead. Herod has beheaded him. Tonight go into joint council and arrange your affairs accordingly. There shall be delay no longer. The hour has come to proclaim the kingdom openly and with power. Tomorrow we go into Galilee.” 세례 요한은 AD 28년 1월 10일(토) 저녁에 헤롯 안티파스의 명령으로 처형되었습니다. 다음 날 요한의 제자 몇 명이 그의 처형 소식을 듣고 마캐루스로 가서 그의 시신을 찾아 묻었으며, 나중에 아브너의 고향, 세바스티에 매장했습니다. 그 다음 날, 1월 12일에, 그들은 펠라 근처에 있던 요한과 예수님의 사도들 야영지를 향해 북쪽으로 출발하여, 예수님께 요한의 죽음에 대해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보고를 듣자, 군중을 해산시키고 24명을 함께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이 죽었노라. 헤롯이 그를 참수(斬首목을 벰)했느니라. 오늘 밤 공동 의회를 열어 그에 따라 너희 업무를 조정하라. 더 이상 지체하지 말라. 하늘나라를 공개적으로 강력히 선포할 때가 왔느니라. 우리는 내일 갈릴리로 가리라.”
144:9.2 (1627.7) Accordingly, early on the morning of January 13, A.D. 28, Jesus and the apostles, accompanied by some twenty-five disciples, made their way to Capernaum and lodged that night in Zebedee’s house. 따라서, AD 28년 1월 13일 이른 아침에, 예수님과 사도들은 25명 정도의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나아갔으며, 그날 밤 세베대의 집에 투숙했습니다.
145:0.1 (1628.1) JESUS and the apostles arrived in Capernaum the evening of Tuesday, January 13. As usual, they made their headquarters at the home of Zebedee in Bethsaida. Now that John the Baptist had been sent to his death, Jesus prepared to launch out in the first open and public preaching tour of Galilee. The news that Jesus had returned rapidly spread throughout the city, and early the next day, Mary the mother of Jesus hastened away, going over to Nazareth to visit her son Joseph.예수님과 사도들은 1월 13일 화요일 저녁에 가버나움에 도착했습니다. 평소처럼, 그들은 본부를 벳새다에 있는 세베대의 집에 두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별세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처음 공개적으로 대중 전도 여행을 시작하려고 준비했습니다. 예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이 모든 도시에 빠르게 퍼졌기 때문에, 다음 날 일찍,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서둘러 자기 아들 요셉을 만나러 나사렛으로 떠나갔습니다.
145:0.2 (1628.2) Wednesday, Thursday, and Friday Jesus spent at the Zebedee house instructing his apostles preparatory to their first extensive public preaching tour. He also received and taught many earnest inquirers, both singly and in groups. Through Andrew, he arranged to speak in the synagogue on the coming Sabbath day. 수요일(AD 28. 1. 14)과 목요일 및 금요일에, 예수님은 대규모로 첫 공개 전도 여행을 준비하는 사도들을 가르치면서 세베대의 집에서 보내셨습니다. 그는 또한 진지한 여러 탐구자들을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받아들여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다가오는 안식일에 자신이 회당에서 설교하도록 안드레를 통해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145:0.3 (1628.3) Late on Friday evening Jesus’ baby sister, Ruth, secretly paid him a visit. They spent almost an hour together in a boat anchored a short distance from the shore. No human being, save John Zebedee, ever knew of this visit, and he was admonished to tell no man. Ruth was the only member of Jesus’ family who consistently and unwaveringly believed in the divinity of his earth mission from the times of her earliest spiritual consciousness right on down through his eventful ministry, death, resurrection, and ascension; and she finally passed on to the worlds beyond never having doubted the supernatural character of her father-brother’s mission in the flesh. Baby Ruth was the chief comfort of Jesus, as regards his earth family, throughout the trying ordeal of his trial, rejection, and crucifixion. 금요일 저녁 늦게 예수님의 막내 여동생 룻이 남몰래 그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들은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박해 있던 배에서 거의 한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요한 세베대를 제외한 어떤 인간 존재도 이 방문을 전혀 몰랐으며,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요청받았습니다. 룻은 아주 어릴 때 영적 의식을 했던 때부터 예수님의 다사(多事)한 사역을 거쳐, 죽음, 부활, 상승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가족 중에서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고 그 지상 사명의 신성(神性)을 유일하게 믿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오빠의 육신적 사명의 초자연적 특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고 결국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가족들에 관해 말할 때, 예수님의 재판, 버림받음 및 십자가형의 견디기 어려운 모든 시련 가운데, 막내 룻은 예수님께 최고의 위로였습니다.
1. The Draught of Fishes 어획량(漁獲量 잡은 물고기의 량)
190908 기적 같은 어획량(漁獲量) 눅5:4-11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4 When he had finished speaking, he said to Simon, “Put out into deep water, and let down the nets for a catch.” 5 Simon answered, “Master, we’ve worked hard all night and haven’t caught anything. But because you say so, I will let down the nets.” 6 When they had done so, they caught such a large number of fish that their nets began to break. 7 So they signaled their partners in the other boat to come and help them, and they came and filled both boats so full that they began to sink. 8 When Simon Peter saw this, he fell at Jesus’ knees and said, “Go away from me, Lord; I am a sinful man!” 9 For he and all his companions were astonished at the catch of fish they had taken, 10 and so were James and John, the sons of Zebedee, Simon’s partners. Then Jesus said to Simon, “Don’t be afraid; from now on you will catch men.” 11 So they pulled their boats up on shore, left everything and followed him.
145:1.1 (1628.4) On Friday morning of this same week, when Jesus was teaching by the seaside, the people crowded him so near the water’s edge that he signaled to some fishermen occupying a near-by boat to come to his rescue. Entering the boat, he continued to teach the assembled multitude for more than two hours. This boat was named “Simon”; it was the former fishing vessel of Simon Peter and had been built by Jesus’ own hands. On this particular morning the boat was being used by David Zebedee and two associates, who had just come in near shore from a fruitless night of fishing on the lake. They were cleaning and mending their nets when Jesus requested them to come to his assistance. 같은 이 주(週) 금요일(AD 28. 1. 16) 아침 예수께서 바닷가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물가 끝으로 너무 가까이 밀어붙이자, 그는 근처 배에 있던 어부들에게 와서 자신을 구하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는 배에 올라가 모인 군중들을 두 시간 이상 계속 가르치셨습니다. 이 배는 “시몬”이라고 불렀는데, 이전에 시몬 베드로가 물고기 잡던 배였기 때문이며 예수께서 직접 만드셨습니다. 이 특별한 아침에 다윗 세베대와 두 동료들이 그 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느라 헛되어 밤을 새다가 해변 근처에 바로 도착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그들은 그물을 씻고 수선하던 중이었습니다.
145:1.2 (1628.5) After Jesus had finished teaching the people, he said to David: “As you were delayed by coming to my help, now let me work with you. Let us go fishing; put out into yonder deep and let down your nets for a draught.” But Simon, one of David’s assistants, answered: “Master, it is useless. We toiled all night and took nothing; however, at your bidding we will put out and let down the nets.” And Simon consented to follow Jesus’ directions because of a gesture made by his master, David. When they had proceeded to the place designated by Jesus, they let down their nets and enclosed such a multitude of fish that they feared the nets would break, so much so that they signaled to their associates on the shore to come to their assistance. When they had filled all three boats with fish, almost to sinking, this Simon fell down at Jesus’ knees, saying, “Depart from me, Master, for I am a sinful man.” Simon and all who were concerned in this episode were amazed at the draught of fishes. From that day David Zebedee, this Simon, and their associates forsook their nets and followed Jesus.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마치신 후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도우러 오느라 너희가 늦어졌으니, 이제 내가 너와 함께 일하리라. 물고기 잡으러 가자. 저쪽 깊은 데로 나아가 그물을 한 번 내리라.” 그러나 다윗의 조수들 중 한 사람 시몬이 대답했습니다. “주(主)여,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밤새 수고했지만 아무 것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분부대로 우리가 가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의 주인 다윗이 손짓을 했기 때문에, 시몬은 예수님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께서 지시하는 장소에 이르러 그물을 내리자, 너무 많은 물고기가 잡혀 그물이 찢어질까봐 염려스러웠으며, 아주 많아서 해변에 있던 동료들에게 도우러 오라고 손짓했습니다. 그들은 배 세 척에 물고기를 가득 실어, 거의 가라앉게 되자, 이 시몬이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主)여, 저를 떠나소서. 저는 죄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시몬과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은 잡은 물고기의 량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날부터 다윗 세베대, 이 시몬 및 그 동료들은 그물을 내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145:1.3 (1629.1) But this was in no sense a miraculous draught of fishes. Jesus was a close student of nature; he was an experienced fisherman and knew the habits of the fish in the Sea of Galilee. On this occasion he merely directed these men to the place where the fish were usually to be found at this time of day. But Jesus’ followers always regarded this as a miracle. 그러나 이것은 어떤 면에서도 결코 기적으로 잡은 물고기 량(量)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밀히 관찰하는 기질을 지니셨습니다. 그는 노련한 어부였으며, 갈릴리 바다 물고기의 습성을 알았습니다. 이 경우에 그는 하루 중 이 때 보통 물고기가 발견되는 장소로 이 사람들에게 지시하셨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항상 이것을 기적으로 여겼습니다.
2. Afternoon at the Synagogue 오후에 회당에서
190915 종교는 고유적 체험 겔18: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Behold, all souls are mine; as the soul of the father, so also the soul of the son is mine: the soul that sinneth, it shall die.
145:2.1 (1629.2) The next Sabbath, at the afternoon service in the synagogue, Jesus preached his sermon on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In the morning Simon Peter had preached on “The Kingdom.” At the Thursday evening meeting of the synagogue Andrew had taught, his subject being “The New Way.” At this particular time more people believed in Jesus in Capernaum than in any other one city on earth. 다음 안식일(AD 28. 1. 17 토) 오후 회당 예배에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셨습니다. 아침에는 시몬 베드로가 “하늘나라”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목요일(AD 28. 1. 15) 저녁 회당 모임에서 안드레는 “새로운 길”이라는 주제로 가르쳤습니다. 특별한 이 시간에, 지상의 어떤 다른 도시보다 가버나움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145:2.2 (1629.3) As Jesus taught in the synagogue this Sabbath afternoon, according to custom he took the first text from the law, reading from the Book of Exodus: “And you shall serve the Lord, your God, and he shall bless your bread and your water, and all sickness shall be taken away from you.” He chose the second text from the Prophets, reading from Isaiah: “Arise and shine, for your light has come, and the glory of the Lord has risen upon you. Darkness may cover the earth and gross darkness the people, but the spirit of the Lord shall arise upon you, and the divine glory shall be seen with you. Even the gentiles shall come to this light, and many great minds shall surrender to the brightness of this light.” 예수께서 이 안식일 오후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면서, 관습에 따라 율법에서 첫 본문(本文)을 골라 출애굽기에서 읽었습니다. “너희는 주(主) 너의 하나님을 섬기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라(출23:25).” 그는 예언서에서 둘째 본문을 골라, 이사야서에서 읽었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주(主)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주(主)의 영이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신적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이방인들도 이 빛으로, 여러 위대한 자들이 광명한 이 빛에 굴복하리라(사60:1-3).”
145:2.3 (1629.4) This sermon was an effort on Jesus’ part to make clear the fact that religion is a personal experience. Among other things, the Master said: 이 설교는 예수님 편에서 종교는 고유적 체험이라는 사실을 밝히려는 노력이었습니다. 다른 것들 중에서 주(主)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45:2.4 (1629.5) “You well know that, while a kindhearted father loves his family as a whole, he so regards them as a group because of his strong affection for each individual member of that family. No longer must you approach the Father in heaven as a child of Israel but as a child of God. As a group, you are indeed the children of Israel, but as individuals, each one of you is a child of God. I have come, not to reveal the Father to the children of Israel, but rather to bring this knowledge of God and the revelation of his love and mercy to the individual believer as a genuine personal experience. The prophets have all taught you that Yahweh cares for his people, that God loves Israel. But I have come among you to proclaim a greater truth, one which many of the later prophets also grasped, that God loves you — every one of you — as individuals. All these generations have you had a national or racial religion; now have I come to give you a personal religion. “여러분도 잘 알듯이, 인정 많은 아버지는 자기 가족 전체를 사랑하며, 가족 개인 각자에 대한 강한 애정 때문에 그는 그들을 한 집단으로 여기시니라.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더 이상 이스라엘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까이 가야 하니라. 집단으로서, 너희는 정말 이스라엘의 자녀들이지만, 개인들로서 너희 각자는 하나님의 자녀라.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드러내려고 내가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하나님의 지식과 그의 사랑과 자비의 계시를 진정으로 고유하게 체험하도록개인 신자(信者)에게 가져 왔노라. 선지자들이 너희에게 가르친 모든 것은, 야훼가 그의 백성을 보살피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니라. 그러나 나는 너희 중에 더 위대한 진리를 선포하러 왔으니, 후에 여러 선지자들 역시 파악했던 것으로, 하나님이 너희 – 너희 모두–를 개인들로서 사랑한다는 것이라. 이 모든 세대에 너희는 민족이나 종족 종교가 있었지만, 이제 나는 너희에게 고유적(개인적) 종교를 주러 왔노라.”
145:2.5 (1630.1) “But even this is not a new idea. Many of the spiritually minded among you have known this truth, inasmuch as some of the prophets have so instructed you. Have you not read in the Scriptures where the Prophet Jeremiah says: ‘In those days they shall no more say, the fathers have eaten sour grapes and the children’s teeth are set on edge. Every man shall die for his own iniquity; every man who eats sour grapes, his teeth shall be set on edge. Behold, the days shall come when I will make a new covenant with my people, not according to the covenant which I made with their fathers when I brought them out of the land of Egypt, but according to the new way. I will even write my law in their hearts. I will be their God, and they shall be my people. In that day they shall not say, one man to his neighbor, do you know the Lord? Nay! For they shall all know me personally, from the least to the greatest.’“그러나 이것도 새 관념이 아니라. 몇 선지자들이 그렇게 너희를 가르쳤기에 너희 중 영적인 마음을 지닌 다수가 이 진리를 이미 알고 있느니라. 성서에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을 한 것을 읽지 못했더냐?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리라.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 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내 백성과 새 언약을 세우리니,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그 조상들과 세운 언약이 아니라 새 길을 따라 세울 것이라.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심정에 쓰기까지 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 날에 한 사람이 이웃에게 너는 주(主)를 아느냐고 그들이 이르지 않으리라. 결코 아니라!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개인적으로 알 것이기 때문이라(렘31:29-34).’
145:2.6 (1630.2) “Have you not read these promises? Do you not believe the Scriptures? Do you not understand that the prophet’s words are fulfilled in what you behold this very day? And did not Jeremiah exhort you to make religion an affair of the heart, to relate yourselves to God as individuals? Did not the prophet tell you that the God of heaven would search your individual hearts? And were you not warned that the natural human heart is deceitful above all things and oftentimes desperately wicked? “너희는 이 약속들을 읽지 않았느냐? 너희가 성서를 믿지 않느냐? 선지자들의 말들이 바로 이 날 너희가 보는 대로 이루어짐을 너희는 이해하지 못하느냐? 그리고 종교를 심정(心情)의 일로 만들며, 너희 자신을 개인들로서 하나님과 관계하라고 예레미야가 너희에게 권고하지(렘24:7) 않더냐? 하늘의 하나님이 너희 개인의 심정을 살펴보실 것이라고(렘17:10) 선지자가 너희에게 말하지 않더냐? 만물보다 거짓되고 종종 심히 부패한 것이 원래 인간의 심정이라고(렘17:9) 너희에게 경고하지 않더냐?”
145:2.7 (1630.3) “Have you not read also where Ezekiel taught even your fathers that religion must become a reality in your individual experiences? No more shall you use the proverb which says, ‘The fathers have eaten sour grapes and the children’s teeth are set on edge.’ ‘As I live,’ says the Lord God, ‘behold all souls are mine; as the soul of the father, so also the soul of the son. Only the soul that sins shall die.’ And then Ezekiel foresaw even this day when he spoke in behalf of God, saying: ‘A new heart also will I give you, and a new spirit will I put within you.’“너희는 또한 종교는 너희 개인적 체험에서 실체가 되어야 한다고 에스겔이 너희 조상들에게도 가르쳤던 부분을 읽지 않았느냐? ‘아비들이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자녀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너희가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되리라. 주(主)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보라, 결단코, 모든 혼들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혼처럼 아들의 혼도 마찬가지라. 범죄하는 혼만이 죽으리라(겔18:2-4).’ 그리고 나서 에스겔은 오늘까지도 예언하여 하나님을 위해 말하기를, ‘새 심정 또한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리라(겔36:26).’고 했습니다.
145:2.8 (1630.4) “No more should you fear that God will punish a nation for the sin of an individual; neither will the Father in heaven punish one of his believing children for the sins of a nation, albeit the individual member of any family must often suffer the material consequences of family mistakes and group transgressions. Do you not realize that the hope of a better nation — or a better world — is bound up in the progress and enlightenment of the individual?” “하나님이 한 개인의 죄로 인해 민족을 벌하리라고 너희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라. 어느 가족의 개인 구성원이 종종 가족의 잘못과 집단 범죄의 물리적인 결과를 겪어야 하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민족의 죄들 때문에 믿는 자기 자녀들 중 누구도 벌하지 않으시리라. 더 나은 국가 또는 더 나은 세상의 희망이 개인의 진보와 계몽에 달려 있음을 너희는 깨닫지 못하느냐?”
145:2.9 (1630.5) Then the Master portrayed that the Father in heaven, after man discerns this spiritual freedom, wills that his children on earth should begin that eternal ascent of the Paradise career which consists in the creature’s conscious response to the divine urge of the indwelling spirit to find the Creator, to know God and to seek to become like him.그 후, 인간이 이 영적 자유를 인식한 후,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지상에 있는 자기 자녀들이 천국 생애의 그 영원한 상승을 시작할 것을 바라신다고 주(主)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생애는 창조주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내주하는 영의 신적 자극에 대한 창조물의 의식적 반응으로 이루어집니다.
145:2.10 (1630.6) The apostles were greatly helped by this sermon. All of them realized more fully that the gospel of the kingdom is a message directed to the individual, not to the nation. 사도들은 이 설교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늘나라의 복음은 민족이 아니라, 개인을 향한 메시지임을 그들 모두 아주 충분히 깨달았습니다.
145:2.11 (1630.7) Even though the people of Capernaum were familiar with Jesus’ teaching, they were astonished at his sermon on this Sabbath day. He taught, indeed, as one having authority and not as the scribes.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익숙했지만, 그들은 이 안식일에 전하신 그의 설교에 놀랐습니다. 그는 정말로 권위를 지닌 자로서 가르치셨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190922이적 추구 세대의 사례들눅4:33-39 33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33 In the synagogue there was a man possessed by a demon, an evilspirit. He cried out at the top of his voice, 34 “Ha! What do you want with us, Jesus of Nazareth? Have you come to destroy us? I know who you are–the Holy One of God!” 35 “Be quiet!” Jesus said sternly. “Come out of him!” Then the demon threw the man down before them all and came out without injuring him. 36 All the people were amazed and said to each other, “What is this teaching? With authority and power he gives orders to evil spirits and they come out!” 37 And the news about him spread throughout the surrounding area. 38 Jesus left the synagogue and went to the home of Simon. Now Simon’s mother-in-law was suffering from a high fever, and they asked Jesus to help her. 39 So he bent over her and rebuked the fever, and it left her. She got up at once and began to wait on them.
145:2.12 (1630.8) Just as Jesus finished speaking, a young man in the congregation who had been much agitated by his words was seized with a violent epileptic attack and loudly cried out. At the end of the seizure, when recovering consciousness, he spoke in a dreamy state, saying: “What have we to do with you, Jesus of Nazareth? You are the holy one of God; have you come to destroy us?” Jesus bade the people be quiet and, taking the young man by the hand, said, “Come out of it” — and he was immediately awakened. 예수께서 말씀을 막 끝내셨을 때, 말씀으로 많이 동요되었던 한 청년이 무리 중에서 격렬한 간질 발작으로 크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발작이 끝나 의식이 회복되자, 그는 몽롱한 상태로 말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신데; 우리를 멸하려고 오셨습니까?” 예수께서 사람들을 조용하게 하고 그 젊은이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거기서 나오라.” 그러자 그가 즉시 깨어났습니다.
145:2.13 (1631.1) This young man was not possessed of an unclean spirit or demon; he was a victim of ordinary epilepsy. But he had been taught that his affliction was due to possession by an evil spirit. He believed this teaching and behaved accordingly in all that he thought or said concerning his ailment. The people all believed that such phenomena were directly caused by the presence of unclean spirits. Accordingly they believed that Jesus had cast a demon out of this man. But Jesus did not at that time cure his epilepsy. Not until later on that day, after sundown, was this man really healed. Long after the day of Pentecost the Apostle John, who was the last to write of Jesus’ doings, avoided all reference to these so-called acts of “casting out devils,” and this he did in view of the fact that such cases of demon possession never occurred after Pentecost. 이 젊은이는 더러운 영이나 악마에게 사로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범한 간질병(뇌전증腦電症)의 피해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질병이 악령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는 이 가르침을 믿고, 자기 질병에 대해 생각했고 말했던 모든 것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더러운 영들의 존재가 그런 현상들을 직접 일으킨다고 모든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 사람에게서 악마를 내쫓았다고 그들이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예수님은 그의 간질(뇌전증)을 치료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 늦게 해질녘까지 이 사람은 정말 병이 낫지 않았습니다. 오순절(五巡節)날이 오래 지난 후, 예수님의 행적을 마지막으로 기록한 사도 요한은 소위 “귀신들을 내쫓는” 이 축사(逐邪) 행위에 대한 모든 언급을 피했으며, 오순절(五巡節)이후 귀신들린 그런 경우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춰 그렇게 했습니다.
145:2.14 (1631.2) As a result of this commonplace incident the report was rapidly spread through Capernaum that Jesus had cast a demon out of a man and miraculously healed him in the synagogue at the conclusion of his afternoon sermon. The Sabbath was just the time for the rapid and effective spreading of such a startling rumor. This report was also carried to all the smaller settlements around Capernaum, and many of the people believed it.이 평범한 사건의 결과로, 예수께서 회당에서 오후 설교를 마칠 때 한 사람에게서 악마를 내쫓아 그를 기적적으로 고치셨다는 소문이 가버나움을 통해 빠르게 퍼졌습니다. 안식일은 그런 놀라운 소문이 빠르게 효과적으로 퍼지는 적기(適期알맞은 시기)였습니다. 이 소문은 또한 가버나움 근처 작은 모든 마을들까지 전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었습니다.
145:2.15 (1631.3) The cooking and the housework at the large Zebedee home, where Jesus and the twelve made their headquarters, was for the most part done by Simon Peter’s wife and her mother. Peter’s home was near that of Zebedee; and Jesus and his friends stopped there on the way from the synagogue because Peter’s wife’s mother had for several days been sick with chills and fever. Now it chanced that, at about the time Jesus stood over this sick woman, holding her hand, smoothing her brow, and speaking words of comfort and encouragement, the fever left her. Jesus had not yet had time to explain to his apostles that no miracle had been wrought at the synagogue; and with this incident so fresh and vivid in their minds, and recalling the water and the wine at Cana, they seized upon this coincidence as another miracle, and some of them rushed out to spread the news abroad throughout the city. 예수님과 12 사도들이 본부로 삼았던 세베대의 큰 집에서, 시몬 베드로의 아내와 그녀의 모친이 요리와 집안일의 대부분을 맡았습니다. 베드로의 집은 세베대의 집 근처에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한기(寒氣)와 발열(發熱)로 며칠간 앓았기 때문에 예수님과 그의 친구들은 회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곳에 들렸습니다. 예수께서 이 아픈 여인을 옆에서 지켜보며, 그녀의 손을 잡고, 이마를 쓰다듬으시며 위로와 용기의 말씀을 하실 그 때, 우연히 열이 그녀에게서 떠났습니다. 회당에서 일어난 일은 기적이 아니라고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설명할 겨를이 아직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그토록 선명하고 생생한 이 사건과 함께 가나에서 물과 포도주 사건이 생각나서, 그들은 이 우연의 일치를 또 하나의 기적으로 여겼으며, 그들 몇 명은 도시 전역으로 달려 나가 널리 소식을 퍼뜨렸습니다.
145:2.16 (1631.4) Amatha, Peter’s mother-in-law, was suffering from malarial fever. She was not miraculously healed by Jesus at this time. Not until several hours later, after sundown, was her cure effected in connection with the extraordinary event which occurred in the front yard of the Zebedee home. 베드로의 장모 아마싸는 학질(말라리아)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녀를 기적으로 고치지 않았습니다. 세베대의 집 앞마당에서 일어났던 특별한 사건과 관련하여, 해가 진 후 몇 시간이 지나서, 그녀의 병이 치료되었습니다.
145:2.17 (1631.5) And these cases are typical of the manner in which a wonder-seeking generation and a miracle-minded people unfailingly seized upon all such coincidences as the pretext for proclaiming that another miracle had been wrought by Jesus.이 사례(事例)들은 이적을 구하는 세대와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붙잡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그들은 예수께서 또 하나의 기적을 행하셨다고 선포할 구실로써 그런 모든 우연의 일치들을 이해합니다.
3. The Healing at Sundown 일몰(日沒해질녁)의 치유
190929일몰(日沒해질녘)의 치유눅4:40 해 질 적에 각색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When the sun was setting, the people brought to Jesus all who had various kinds of sickness, and laying his hands on each one, he healed them.
145:3.1 (1631.6) By the time Jesus and his apostles had made ready to partake of their evening meal near the end of this eventful Sabbath day, all Capernaum and its environs were agog over these reputed miracles of healing; and all who were sick or afflicted began preparations to go to Jesus or to have themselves carried there by their friends just as soon as the sun went down. According to Jewish teaching it was not permissible even to go in quest of health during the sacred hours of the Sabbath.이 다사(多事)한 안식일의 끝날 즈음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이 저녁식사 준비를 마쳤을 때, 모든 가버나움과 그 인근에는 이 치료(治療)의 기적 소문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해가 떨어지자마자, 병들거나 고통 받는 모든 자들이 예수님께 가거나 친구들에 실려서 갈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라, 안식일의 신성(神性)한 시간에는 건강을 찾아 나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145:3.2 (1632.1) Therefore, as soon as the sun sank beneath the horizon, scores of afflicted men, women, and children began to make their way toward the Zebedee home in Bethsaida. One man started out with his paralyzed daughter just as soon as the sun sank behind his neighbor’s house. 그래서 해가 지평선(地平線) 아래로 가라앉자마자, 고통 받는 여러 남녀와 아이들이 벳새다의 세베대 집으로 길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이웃 집 뒤편으로 해가 떨어지자마자 즉시 마비(痲痹)된 자기 딸을 데리고 출발했습니다.
145:3.3 (1632.2) The whole day’s events had set the stage for this extraordinary sundown scene. Even the text Jesus had used for his afternoon sermon had intimated that sickness should be banished; and he had spoken with such unprecedented power and authority! His message was so compelling! While he made no appeal to human authority, he did speak directly to the consciences and souls of men. Though he did not resort to logic, legal quibbles, or clever sayings, he did make a powerful, direct, clear, and personal appeal to the hearts of his hearers. 그 날 모든 사건들은 이 놀라운 일몰(해질녘)의 장면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예수께서 오후 설교에서 사용했던 본문도 질병이 떠나가야 한다고 암시하고 있었습니다(…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라 출23:25). 또한 그는 전례 없는 그런 권능과 권위로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얼마나 감동스러웠던가! 그는 인간의 권위에 어떤 호소도 하지 않으셨고, 사람들의 의식과 혼에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논리적, 율법적 재담 및 재치 있는 속담을 쓰지 않았지만, 그는 힘차게 직접적으로 분명히 그리고 개인적으로 청중들의 심정을 움직였습니다.
145:3.4 (1632.3) That Sabbath was a great day in the earth life of Jesus, yes, in the life of a universe. To all local universe intents and purposes the little Jewish city of Capernaum was the real capital of Nebadon. The handful of Jews in the Capernaum synagogue were not the only beings to hear that momentous closing statement of Jesus’ sermon: “Hate is the shadow of fear; revenge the mask of cowardice.” Neither could his hearers forget his blessed words, declaring, “Man is the son of God, not a child of the devil.”그 안식일은 예수님의 지상(地上) 일생에서, 정말로, 우주의 일생에서 위대한 날이었습니다. 사실 지역우주에서 유대의 작은 도시 가버나움이 네바돈의 진정한 수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설교에서 “증오는 두려움의 그림자이며, 복수는 비겁함의 가면이라.”는 중요한 마지막 진술을 듣는 존재들은 가버나움 회당에 있었던 소수의 유대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청중들은 “사람은 악마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언하는 그의 축복의 말씀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145:3.5 (1632.4) Soon after the setting of the sun, as Jesus and the apostles still lingered about the supper table, Peter’s wife heard voices in the front yard and, on going to the door, saw a large company of sick folks assembling, and that the road from Capernaum was crowded by those who were on their way to seek healing at Jesus’ hands. On seeing this sight, she went at once and informed her husband, who told Jesus. 해가 진 직후, 예수님과 사도들이 여전히 저녁 식탁에 계실 때, 베드로의 아내가 앞마당에서 여러 소리를 듣고 문으로 가면서, 아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큰 무리와 예수님의 손으로 치료받으러 오는 자들로 가득한 가버나움의 도로를 보았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그녀는 즉시 들어가 남편에게 알렸고, 그는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145:3.6 (1632.5) When the Master stepped out of the front entrance of Zebedee’s house, his eyes met an array of stricken and afflicted humanity. He gazed upon almost one thousand sick and ailing human beings; at least that was the number of persons gathered together before him. Not all present were afflicted; some had come assisting their loved ones in this effort to secure healing. 주(主)께서 세베대의 집 앞 입구로 나가자, 괴로움으로 시달려 줄지어 있는 사람들을 마주했습니다. 그는 아파서 병든 거의 1,000명의 존재들을 지켜보셨습니다. 적어도 그런 수(數)의 사람들이 그 앞에 함께 모였기 때문입니다. 모여 있는 모두가 고통 받는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얼마는 이렇게 치료받으러 애쓰는, 그들이 사랑하는 자들을 도우려 왔기 때문입니다.
145:3.7 (1632.6) The sight of these afflicted mortals, men, women, and children, suffering in large measure as a result of the mistakes and misdeeds of his own trusted Sons of universe administration, peculiarly touched the human heart of Jesus and challenged the divine mercy of this benevolent Creator Son. But Jesus well knew he could never build an enduring spiritual movement upon the foundation of purely material wonders. It had been his consistent policy to refrain from exhibiting his creator prerogatives. Not since Cana had the supernatural or miraculous attended his teaching; still, this afflicted multitude touched his sympathetic heart and mightily appealed to his understanding affection.그 자신이 신뢰했던 우주 경영의 아들들의 실수와 범죄의 결과로 크게 시달리며 이렇게 고통 받는 필사자들, 즉 남녀 및 아이들의 모습이 특히 예수님의 인간 심정을 건드려 이 자애로운 창조자 아들의 신적 자비를 자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순전히 물질적 이적의 토대에 지속적인 영적 운동을 결코 세울 수 없음을 잘 아셨습니다. 자신의 창조자 특권을 삼가는 것이 그의 일관된 방침이었습니다. 가나 이후로 초자연적이거나 기적 같은 일이 그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통 받는 이 무리가 그의 공감하는 심정을 건드렸으며 그의 동정적인 애정에 힘차게 호소했습니다.
145:3.8 (1632.7) A voice from the front yard exclaimed: “Master, speak the word, restore our health, heal our diseases, and save our souls.” No sooner had these words been uttered than a vast retinue of seraphim, physical controllers, Life Carriers, and midwayers, such as always attended this incarnated Creator of a universe, made themselves ready to act with creative power should their Sovereign give the signal. This was one of those moments in the earth career of Jesus in which divine wisdom and human compassion were so interlocked in the judgment of the Son of Man that he sought refuge in appeal to his Father’s will. 앞마당에서 한 사람이 외쳤습니다. “주(主)여, 말씀으로 우리 건강을 회복하시고, 병을 고치시며, 우리의 혼을 구원하소서.”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주의 성육신(成肉身)한 창조자를 항상 섬기는 세라핌천사들, 물리 조정자들, 생명 운반자들, 중도자들의 광대한 수행원들이, 그들의 주권자가 신호하면, 창조적 권능으로 행동하려고 스스로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인자(人子)의 판단 중에서 신적 지혜와 인간적 공감이 맞물렸던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여러 순간 중 하나였으며, 그는 아버지의 뜻에 호소하며 의지했습니다.
145:3.9 (1632.8) When Peter implored the Master to heed their cry for help, Jesus, looking down upon the afflicted throng, answered: “I have come into the world to reveal the Father and establish his kingdom. For this purpose have I lived my life to this hour. If, therefore, it should be the will of Him who sent me and not inconsistent with my dedication to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heaven, I would desire to see my children made whole — and —” but the further words of Jesus were lost in the tumult. 도움의 소리에 유념해달라고 베드로가 주님께 애원하자, 예수님은 괴로워하는 군중들을 내려다보시며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아버지를 드러내고 그의 하늘나라를 세우러 왔느니라. 나는 이 시간까지 이 목적을 위하여 내 삶을 살았느니라. 그러므로 그것이 나를 보내신 그분의 뜻이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내 헌신과 모순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자녀들이 건강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 그리고 -” 그러나 그 이상의 예수님 말씀은 소란 속에 파묻혔습니다.
145:3.10 (1633.1) Jesus had passed the responsibility of this healing decision to the ruling of his Father. Evidently the Father’s will interposed no objection, for the words of the Master had scarcely been uttered when the assembly of celestial personalities serving under the command of Jesus’ Personalized Thought Adjuster was mightily astir. The vast retinue descended into the midst of this motley throng of afflicted mortals, and in a moment of time 683 men, women, and children were made whole, were perfectly healed of all their physical diseases and other material disorders. Such a scene was never witnessed on earth before that day, nor since. And for those of us who were present to behold this creative wave of healing, it was indeed a thrilling spectacle. 예수님은 이런 치유 결정의 책임을 자기 아버지의 판결에 맡겼습니다. 주(主)께서 말씀하심과 동시에, 예수님의 고유성화 생각 조율자의 명령 아래에서 섬기는 천상의 고유성들의 모임이 힘차게 움직였기 때문에, 분명히 아버지의 뜻은 어떤 반대도 없었습니다. 광대한 수행원들이 고통 받는 필사자들의 뒤섞인 이 군중 가운데 내려왔고, 순식간에 683명의 남녀와 아이들이 건강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모든 육체적 질병들과 다른 물질적 장애들이 완전하게 치료되었습니다. 그런 장면은 지상에서 그 날 이전과 이후에 결코 목격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창조적인 치료의 물결을 보는 현장에 있던 우리에게, 그것은 진정 감격적인 장관이었습니다.
145:3.11 (1633.2) But of all the beings who were astonished at this sudden and unexpected outbreak of supernatural healing, Jesus was the most surprised. In a moment when his human interests and sympathies were focused upon the scene of suffering and affliction there spread out before him, he neglected to bear in his human mind the admonitory warnings of his Personalized Adjuster regarding the impossibility of limiting the time element of the creator prerogatives of a Creator Son under certain conditions and in certain circumstances. Jesus desired to see these suffering mortals made whole if his Father’s will would not thereby be violated. The Personalized Adjuster of Jesus instantly ruled that such an act of creative energy at that time would not transgress the will of the Paradise Father, and by such a decision — in view of Jesus’ preceding expression of healing desire — the creative act was. What a Creator Son desires and his Father wills IS. Not in all of Jesus’ subsequent earth life did another such en masse physical healing of mortals take place. 그러나 별안간 예기치 않은 이 초자연적 치료의 발생으로 놀랐던 모든 존재들 중에 예수께서 가장 놀라셨습니다. 그의 인간적 관심과 공감이 그 앞에 펼쳐진 고통과 고생의 장면에 집중되는 순간, 특정한 조건들과 특정한 상황 아래에서 창조자 아들의 창조자 특권들에 속한 시간 요소를 제한하기가 불가능함에 대해서 자신의 고유성화 조율자가 충고한 경고들을 그는 인간 마음으로 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아버지의 뜻이 어긋나지 않는다면, 고생하는 이 필사자들이 건강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유성화 조율자는 그 때 그런 창조적 에너지의 행위가 천국 아버지의 뜻을 어기지 않게 된다고 즉시 판단했으며, 그런 결정에 따라 – 예수께서 치료의 소망을 앞서 표현하신 데 비추어 – 창조적 행위가 있었습니다. 창조자 아들이 원하고 그의 아버지께서 뜻하시는 것은 존재합니다. 이후 예수님의 모든 지상 생애에서 필사자들의 그런 집단적 육신 치유는 결코 다시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145:3.12 (1633.3) As might have been expected, the fame of this sundown healing at Bethsaida in Capernaum spread throughout all Galilee and Judea and to the regions beyond. Once more were the fears of Herod aroused, and he sent watchers to report on the work and teachings of Jesus and to ascertain if he was the former carpenter of Nazareth or John the Baptist risen from the dead. 예상되었던 대로, 가버나움의 벳새다에서 일몰(해질녘) 치료의 이 소문이 온 갈릴리와 유대 전역과 그 지역 너머까지 퍼졌습니다. 다시 한 번 헤롯에게 두려움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는 감시자들을 보냈으며,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에 대해 보고하고, 그가 이전의 나사렛 목수인지 아니면 죽은 자 중에서 일어난 세례 요한인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145:3.13 (1633.4) Chiefly because of this unintended demonstration of physical healing, henceforth, throughout the remainder of his earth career, Jesus became as much a physician as a preacher. True, he continued his teaching, but his personal work consisted mostly in ministering to the sick and the distressed, while his apostles did the work of public preaching and baptizing believers. 뜻하지 않은 이런 육신 치료의 증거로, 이후 그의 남은 지상 생애 내내, 예수님은 대개 의사이면서 설교자가 되셨습니다. 정말 그는 계속 가르치셨지만, 대부분 개인적으로 병들고 고통 받는 자들을 보살피셨던 반면에 그의 사도들은 대중에게 설교했으며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145:3.14 (1633.5) But the majority of those who were recipients of supernatural or creative physical healing at this sundown demonstration of divine energy were not permanently spiritually benefited by this extraordinary manifestation of mercy. A small number were truly edified by this physical ministry, but the spiritual kingdom was not advanced in the hearts of men by this amazing eruption of timeless creative healing. 그러나 이 해질녘의 신적 에너지가 나타나 초자연적 혹은 창조적으로 육체가 치료된 자들 대부분은 이 놀라운 자비의 나타남으로 계속 영적으로 유익되지 않았습니다. 소수가 이 육체적 사역으로 교화(敎化)되었지만, 이 놀라운 무(無)시간의 창조적 치료의 사건으로, 영적 하늘나라가 사람들의 심정에서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145:3.15 (1633.6) The healing wonders which every now and then attended Jesus’ mission on earth were not a part of his plan of proclaiming the kingdom. They were incidentally inherent in having on earth a divine being of well-nigh unlimited creator prerogatives in association with an unprecedented combination of divine mercy and human sympathy. But such so-called miracles gave Jesus much trouble in that they provided prejudice-raising publicity and afforded much unsought notoriety.가끔씩 예수님의 지상 사명에 동반되었던 치유의 이적은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그의 계획의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신적 자비와 인간적 공감의 전례 없는 결합과 관련하여, 거의 제한이 없는 창조자 특권을 지닌 신적 존재가 지상에 계시면, 치유 이적들은 본래 부수적(우연히 따르는)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편견을-일으키는 평판을 제공했고 원치 않는 나쁜 평판을 많이 제공했다는 점에서, 소위 그런 기적들은 예수님께 많은 곤란이 되었습니다.
4. The Evening After 그날 저녁 이후
191006하늘나라의 토대:혼(魂)의 구원막1:35-37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5 Very early in the morning, while it was still dark, Jesus got up, left the house and went off to a solitary place, where he prayed. 36 Simon and his companions went to look for him, 37 and when they found him, they exclaimed: “Everyone is looking for you!”
145:4.1 (1634.1) Throughout the evening following this great outburst of healing, the rejoicing and happy throng overran Zebedee’s home, and the apostles of Jesus were keyed up to the highest pitch of emotional enthusiasm. From a human standpoint, this was probably the greatest day of all the great days of their association with Jesus. At no time before or after did their hopes surge to such heights of confident expectation. Jesus had told them only a few days before, and when they were yet within the borders of Samaria, that the hour had come when the kingdom was to be proclaimed in power, and now their eyes had seen what they supposed was the fulfillment of that promise. They were thrilled by the vision of what was to come if this amazing manifestation of healing power was just the beginning. Their lingering doubts of Jesus’ divinity were banished. They were literally intoxicated with the ecstasy of their bewildered enchantment.이 폭발적인 위대한 치유 이후 저녁 내내,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군중이 세베대의 집에 가득했으며, 예수님 사도들의 분위기는 감정적 열광의 최고조였습니다. 인간적 관점에서,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했던 중요한 모든 날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위대한 날이었습니다. 사도들의 희망이 그런 높이까지 기대의 확신으로 급상승했던 적은 전무후무한 때였습니다. 바로 며칠 전 그들이 아직 사마리아의 경계 내(內)에 있을 때, 하늘나라가 권능으로 선포되어질 때가 왔다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고, 그들이 기대했던 것을 그들의 눈으로 이제 본 것은 그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이 놀라운 치유 권능의 나타남이 시작일 뿐이라면, 무엇이 도래할 지 상상하면서 그들은 전율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神性)에 대해 주저했던 의혹들은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당혹스런 황홀감의 도취에 빠져 있었습니다.
145:4.2 (1634.2) But when they sought for Jesus, they could not find him. The Master was much perturbed by what had happened. These men, women, and children who had been healed of diverse diseases lingered late into the evening, hoping for Jesus’ return that they might thank him. The apostles could not understand the Master’s conduct as the hours passed and he remained in seclusion; their joy would have been full and perfect but for his continued absence. When Jesus did return to their midst, the hour was late, and practically all of the beneficiaries of the healing episode had gone to their homes. Jesus refused the congratulations and adoration of the twelve and the others who had lingered to greet him, only saying: “Rejoice not that my Father is powerful to heal the body, but rather that he is mighty to save the soul. Let us go to our rest, for tomorrow we must be about the Father’s business.”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찾았을 때, 그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주(主)님은 일어난 일들로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각색 질병에서 치유된 이 남녀들과 아이들은 예수님께 감사하려고 예수께서 돌아오시기를 바라면서 늦은 저녁까지 남아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났지만 예수께서 나타나시지 않자, 사도들은 주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계속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 그들의 기쁨은 충만하고 완전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그들 중에 돌아오셨을 때는 늦은 시간이었고, 치유 사건의 수혜자들은 거의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인사하려고 남아있던 12사도들과 다른 이들의 축사와 찬미를 물리치시면서 다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육체를 치료하는 내 아버지의 능력을 기뻐하지 말고 오히려 혼(魂)을 구원하는 그의 능력을 기뻐하라. 우리가 내일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하니, 가서 쉬도록 하자.”
145:4.3 (1634.3) And again did twelve disappointed, perplexed, and heart-sorrowing men go to their rest; few of them, except the twins, slept much that night. No sooner would the Master do something to cheer the souls and gladden the hearts of his apostles, than he seemed immediately to dash their hopes in pieces and utterly to demolish the foundations of their courage and enthusiasm. As these bewildered fishermen looked into each other’s eyes, there was but one thought: “We cannot understand him. What does all this mean?” 또다시 12사도들은 실망하고 당혹스러워 슬픈 심정으로 쉬러 갔습니다. 쌍둥이 형제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 그날 밤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주(主)께서 사도들의 혼(魂)을 격려하고 심정을 기쁘게 하시자마자, 즉시 그들의 희망을 산산조각내고 그들의 용기와 열정의 토대를 완전히 분쇄하시는 듯했습니다. 당황한 이 어부들이 서로 바라보면서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구나. 이 모두가 무슨 뜻일까?”
5. Early Sunday Morning 일요일 이른 아침에
145:5.1 (1634.4) Neither did Jesus sleep much that Saturday night. He realized that the world was filled with physical distress and overrun with material difficulties, and he contemplated the great danger of being compelled to devote so much of his time to the care of the sick and afflicted that his mission of establishing the spiritual kingdom in the hearts of men would be interfered with or at least subordinated to the ministry of things physical. Because of these and similar thoughts which occupied the mortal mind of Jesus during the night, he arose that Sunday morning long before daybreak and went all alone to one of his favorite places for communion with the Father. The theme of Jesus’ prayer on this early morning was for wisdom and judgment that he might not allow his human sympathy, joined with his divine mercy, to make such an appeal to him in the presence of mortal suffering that all of his time would be occupied with physical ministry to the neglect of the spiritual. Though he did not wish altogether to avoid ministering to the sick, he knew that he must also do the more important work of spiritual teaching and religious training. 예수님도 토요일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육체적 고통으로 가득하고 물질적 어려움들이 들끓고 있음을 그가 깨달으셨습니다. 그는 병으로 시달리는 자들을 보살피는 일에 자기 시간의 대부분을 바치도록 강요받아서, 사람들의 심정에 영적 하늘나라를 세우는 그의 사명이 육체적인 것들에 대한 사역으로 방해받거나 적어도 종속될 위험성을 심사숙고하셨습니다. 그 날 밤 예수님의 필사 마음을 차지했던 이 비슷한 생각들 때문에, 새벽녘 훨씬 전(前) 일요일 아침에 아버지와 교제하려고 그가 즐겨 찾는 장소 중 하나로 홀로 가려고 일어나셨습니다. 이 날 이른 아침 예수님의 기도 주제(主題)는, 영적인 것을 소홀히 하면서 육체적 사역으로 자신의 모든 시간을 채우도록, 필사자의 고통 앞에서 자신에게 호소하는 인간적 공감을, 자신의 신적 자비와 결합하지 않도록 하는 지혜와 판단력이었습니다. 그는 병자들에 대한 사역을 완전히 회피하려 하지 않으셨지만, 영적 가르침과 종교적 훈련의 더 중요한 업무를 자신이 해야만 함을 아셨습니다.
145:5.2 (1635.1) Jesus went out in the hills to pray so many times because there were no private rooms suitable for his personal devotions. 예수께서 개인적으로 기도하기에 적절한 개인적 방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여러 번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145:5.3 (1635.2) Peter could not sleep that night; so, very early, shortly after Jesus had gone out to pray, he aroused James and John, and the three went to find their Master. After more than an hour’s search they found Jesus and besought him to tell them the reason for his strange conduct. They desired to know why he appeared to be troubled by the mighty outpouring of the spirit of healing when all the people were overjoyed and his apostles so much rejoiced. 베드로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기도하려 가신 직후, 아주 일찍 야고보와 요한을 깨웠고, 세 사람은 주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한 시간이 넘어서 그들은 예수님을 찾았고 그가 이상하게 행동하신 까닭을 말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치료의 강력한 영이 흘러넘쳐서 모든 사람들이 매우 기뻐했고, 사도들이 그렇게 너무 즐거워했을 때, 그가 왜 고통스러워 보이는지 그들은 알고 싶어 했습니다.
145:5.4 (1635.3) For more than four hours Jesus endeavored to explain to these three apostles what had happened. He taught them about what had transpired and explained the dangers of such manifestations. Jesus confided to them the reason for his coming forth to pray. He sought to make plain to his personal associates the real reasons why the kingdom of the Father could not be built upon wonder-working and physical healing. But they could not comprehend his teaching. 예수님은 4시간 이상 이 세 사도들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려고 애썼습니다. 예수님은 발생한 것에 대해 그들에게 가르치셨고, 그런 출현들의 위험에 대해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기도하러 나온 이유를 그들에게 털어놓으셨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하늘나라가 이적-행함과 육체적 치료 위에 세워질 수 없는 참된 이유들을 자신의 개인적 동료들에게 밝히려고 애쓰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가르침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191013 예수님의 사명눅4:42-44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42 At daybreak Jesus went out to a solitary place. The people were looking for him and when they came to where he was, they tried to keep him from leaving them. 43 But he said, “I must preach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to the other towns also, because that is why I was sent.” 44 And he kept on preaching in the synagogues of Judea.
145:5.5 (1635.4) Meanwhile, early Sunday morning, other crowds of afflicted souls and many curiosity seekers began to gather about the house of Zebedee. They clamored to see Jesus. Andrew and the apostles were so perplexed that, while Simon Zelotes talked to the assembly, Andrew, with several of his associates, went to find Jesus. When Andrew had located Jesus in company with the three, he said: “Master, why do you leave us alone with the multitude? Behold, all men seek you; never before have so many sought after your teaching. Even now the house is surrounded by those who have come from near and far because of your mighty works. Will you not return with us to minister to them?” 그 동안, 병 든 다른 무리의 사람들과 호기심에 찬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 아침 일찍 세베대의 집으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게 해달라고 시끄럽게 요구했습니다. 안드레와 사도들은 당혹스러웠고, 열심당 시몬이 군중에게 말하는 동안 안드레와 사도 몇 명이 예수님을 찾으러 갔습니다. 안드레는 세 사람과 함께 예수님을 찾았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主)여, 왜 우리만 군중들에게 남겨 두십니까? 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당신을 찾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당신의 가르침을 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놀라운 기사(奇事기이한 일)로 인해 원근(遠近)에서 온 사람들이 지금도 집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들을 돌보러 저희와 함께 돌아가시지 않겠습니까?”
145:5.6 (1635.5) When Jesus heard this, he answered: “Andrew, have I not taught you and these others that my mission on earth is the revelation of the Father, and my message the proclamation of the kingdom of heaven? How is it, then, that you would have me turn aside from my work for the gratification of the curious and for the satisfaction of those who seek for signs and wonders? Have we not been among these people all these months, and have they flocked in multitudes to hear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Why have they now come to besiege us? Is it not because of the healing of their physical bodies rather than as a result of the reception of spiritual truth for the salvation of their souls? When men are attracted to us because of extraordinary manifestations, many of them come seeking not for truth and salvation but rather in quest of healing for their physical ailments and to secure deliverance from their material difficulties. 예수께서 이 말을 듣고 대답하셨습니다. “안드레야, 지상에서 내 사명은 아버지를 계시하는 것이며, 내 메시지는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내가 너와 다른 이들을 가르치지 않더냐? 그런데,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표적(表迹)과 이적(異蹟)을 찾는 사람들의 만족을 위해 너희가 나로 하여금 내 업무를 제쳐놓게 하다니 어찌된 일이냐? 이 모든 여러 개월 동안 이 사람들 중에 우리가 있지 않았으며, 그들이 하늘나라의 복음을 들으러 군중으로 모이지 않았더냐? 어째서 그들이 와서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느냐? 자기 혼(魂)들을 구원하는 영적 진리를 받아들인 결과가 아니라 자기 육체의 치료 때문이 아니냐? 놀라운 출현(出現나타나 보임)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에게 끌리는 것은, 그들 대부분이 진리와 구원을 찾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적 질병의 치료를 구하고 물질적 어려움에서 확실히 벗어나려함이라.
145:5.7 (1635.6) “All this time I have been in Capernaum, and both in the synagogue and by the seaside have I proclaimed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to all who had ears to hear and hearts to receive the truth. It is not the will of my Father that I should return with you to cater to these curious ones and to become occupied with the ministry of things physical to the exclusion of the spiritual. I have ordained you to preach the gospel and minister to the sick, but I must not become engrossed in healing to the exclusion of my teaching. No, Andrew, I will not return with you. Go and tell the people to believe in that which we have taught them and to rejoice in the liberty of the sons of God, and make ready for our departure for the other cities of Galilee, where the way has already been prepared for the preaching of the good tidings of the kingdom. It was for this purpose that I came forth from the Father. Go, then, and prepare for our immediate departure while I here await your return.”“지금까지 나는 가버나움에 있었고, 회당이나 해변에서나 들을 귀와 진리를 받을 심정이 있는 자들에게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했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돌아가서 이런 호기심 있는 자들의 구미(口味)를 맞추고, 영적인 것들을 제외할 만큼 육체적인 것들을 위한 사역에 여념이 없는 것은 내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 나는 너희가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들을 돌보도록 임명했지만, 내 가르침을 제외할 만큼 내가 치료에 열중해서는 안 되느니라. 안드레야, 아니라, 나는 너희와 함께 돌아가지 않겠노라. 사람들에게 가서, 우리가 그들에게 가르쳤던 것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리는 해방을 기뻐하라고 말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파할 길이 벌써 준비가 되어있는 갈릴리의 다른 도시들로 떠날 준비를 하라. 이 목적을 위하여 내가 아버지로부터 왔노라. 그러니 내가 여기에서 너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가서 우리가 즉시 떠나도록 준비하라.”
145:5.8 (1636.1) When Jesus had spoken, Andrew and his fellow apostles sorrowfully made their way back to Zebedee’s house, dismissed the assembled multitude, and quickly made ready for the journey as Jesus had directed. And so, on the afternoon of Sunday, January 18, A.D. 28, Jesus and the apostles started out upon their first really public and open preaching tour of the cities of Galilee. On this first tour they preached the gospel of the kingdom in many cities, but they did not visit Nazareth. 예수께서 말씀하시자, 안드레와 동료 사도들은 슬픔에 잠겨 세베대의 집으로 돌아갔으며, 예수께서 지시하신 대로, 모인 군중을 해산시키고, 신속히 여행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래서 AD 28년 1월 18일 일요일 오후에, 예수님과 사도들은 갈릴리의 도시들에서 처음 실제로 대중적이며 공개적인 그들의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 첫 여행에서 그들은 여러 도시들에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했지만, 나사렛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145:5.9 (1636.2) That Sunday afternoon, shortly after Jesus and his apostles had left for Rimmon, his brothers James and Jude came to see him, calling at Zebedee’s house. About noon of that day Jude had sought out his brother James and insisted that they go to Jesus. By the time James consented to go with Jude, Jesus had already departed. 그 일요일 오후, 예수님과 사도들이 림몬으로 떠난 직후, 그의 동생 야고보와 유다가 그를 만나러 세베대의 집에 들렀습니다. 그 날 정오 무렵에 유다가 그의 형 야고보를 찾아 함께 예수님을 만나러 가자고 요청했습니다. 야고보가 유다와 함께 가기로 동감했을 때, 예수님은 이미 떠나셨습니다.
145:5.10 (1636.3) The apostles were loath to leave the great interest which had been aroused at Capernaum. Peter calculated that no less than one thousand believers could have been baptized into the kingdom. Jesus listened to them patiently, but he would not consent to return. Silence prevailed for a season, and then Thomas addressed his fellow apostles, saying: “Let’s go! The Master has spoken. No matter if we cannot fully comprehend the mysteries of the kingdom of heaven, of one thing we are certain: We follow a teacher who seeks no glory for himself.” And reluctantly they went forth to preach the good tidings in the cities of Galilee. 사도들은 가버나움에서 일어났던 굉장한 관심거리를 두고 가기 싫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그마치 천 명의 신자들이 세례를 받아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계산했습니다. 예수님은 참을성 있게 그들을 경청했지만 돌아가는데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도마가 동료 사도들에게 말했습니다. “가자! 주(主)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늘나라의 신비(神祕)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우리에게 한 가지는 분명하니라. 자신을 위해 어떤 영광도 구하지 않는 선생님을 우리가 따르는 것이라.” 그리고 마지못해 그들은 갈릴리의 도시들에 복음을 전하러 떠났습니다.
191020 자연 숭배와 복음 신9:16-21 16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급속히 여호와의 명하신 도를 떠났기로 17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에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었노라 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케 하여 크게 죄를 얻었음이라 19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 하였었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21 너희의 죄 곧 너희의 만든 송아지를 취하여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었느니라 16 When I looked, I saw that you had sinned against the LORD your God; you had made for yourselves an idol cast in the shape of a calf. You had turned aside quickly from the way that the LORD had commanded you. 17 So I took the two tablets and threw them out of my hands, breaking them to pieces before your eyes. 18 Then once again I fell prostrate before the LORD for forty days and forty nights; I ate no bread and drank no water, because of all the sin you had committed, doing what was evil in the LORD’s sight and so provoking him to anger. 19 I feared the anger and wrath of the LORD, for he was angry enough with you to destroy you. But again the LORD listened to me. 20 And the LORD was angry enough with Aaron to destroy him, but at that time I prayed for Aaron too. 21 Also I took that sinful thing of yours, the calf you had made, and burned it in the fire. Then I crushed it and ground it to powder as fine as dust and threw the dust into a stream that flowed down the mountain.
146:0.1 (1637.1) THE first public preaching tour of Galilee began on Sunday, January 18, A.D. 28, and continued for about two months, ending with the return to Capernaum on March 17. On this tour Jesus and the twelve apostles, assisted by the former apostles of John, preached the gospel and baptized believers in Rimmon, Jotapata, Ramah, Zebulun, Iron, Gischala, Chorazin, Madon, Cana, Nain, and Endor. In these cities they tarried and taught, while in many other smaller towns they proclaimed the gospel of the kingdom as they passed through. 갈릴리에서 첫 대중 전도여행은 AD 28년 1월 18일 일요일에 시작되어, 약 2달 간 계속되었으며, 3월 17일에 가버나움으로 돌아오면서 끝났습니다. 이 여행에서 예수님과 12사도들은, 요한의 이전(以前) 사도들의 도움으로, 림몬, 요타파타, 라마, 스불론, 이론, 기샬라, 코라진, 매돈, 가나, 내인, 엔도르에서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은 이 도시들에 머물러 가르쳤고, 한편 다른 여러 작은 도시들을 지나가면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146:0.2 (1637.2) This was the first time Jesus permitted his associates to preach without restraint. On this tour he cautioned them on only three occasions; he admonished them to remain away from Nazareth and to be discreet when passing through Capernaum and Tiberias. It was a source of great satisfaction to the apostles at last to feel they were at liberty to preach and teach without restriction, and they threw themselves into the work of preaching the gospel, ministering to the sick, and baptizing believers, with great earnestness and joy. 예수님은 이번에 처음으로 동료들에게 자유로이 전도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여행에서 그는 세 경우만 그들에게 조심시켰습니다. 그는 그들이 나사렛에서 떨어지며, 가버나움과 티베리아스를 지나갈 때 신중하라고 타이르셨습니다. 마침내 사도들은 마음대로 전도하고 자유로이 가르칠 수 있었다고 느껴서 큰 만족을 얻었으며, 큰 열심과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고 병자들을 돌아보며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에 주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1. Preaching at Rimmon 림몬에서 전도함
146:1.1 (1637.3) The small city of Rimmon had once been dedicated to the worship of a Babylonian god of the air, Ramman. Many of the earlier Babylonian and later Zoroastrian teachings were still embraced in the beliefs of the Rimmonites; therefore did Jesus and the twenty-four devote much of their time to the task of making plain the difference between these older beliefs and the new gospel of the kingdom. Peter here preached one of the great sermons of his early career on “Aaron and the Golden Calf.” 작은 도시인 림몬은 한때 바빌론의 대기(大氣)의 신(하나님) 람만 숭배에 바쳐졌습니다. 초기 바빌론과 후기 조로아스터교의 여러 가르침들은 여전히 림몬 사람들의 믿음들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24명은 이 옛 믿음들과 하늘나라 새 복음의 차이를 명백히 하려는 업무에 많은 시간을 바쳤습니다. 베드로는 여기에서 초기 생애의 위대한 설교들 중 한 가지, 즉“아론과 금송아지(출32:1-35, 신9:16-21)”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146:1.2 (1637.4) Although many of the citizens of Rimmon became believers in Jesus’ teachings, they made great trouble for their brethren in later years. It is difficult to convert nature worshipers to the full fellowship of the adoration of a spiritual ideal during the short space of a single lifetime.림몬의 여러 시민들이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믿고 신자(信者)들이 되었지만, 그들은 나중에 자신들의 형제들에게 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한 번의 단기간에 자연 숭배자들을 영적 이상(理想)의 찬미에 몰두하는 동료로 개종시키기는 어렵습니다.
146:1.3 (1637.5) Many of the better of the Babylonian and Persian ideas of light and darkness, good and evil, time and eternity, were later incorporated in the doctrines of so-called Christianity, and their inclusion rendered the Christian teachings more immediately acceptable to the peoples of the Near East. In like manner, the inclusion of many of Plato’s theories of the ideal spirit or invisible patterns of all things visible and material, as later adapted by Philo to the Hebrew theology, made Paul’s Christian teachings more easy of acceptance by the western Greeks. 바빌론과 페르시아의 빛과 어둠, 선과 악, 시간과 영원에 관한 여러 향상된 관념들은 나중에 소위 기독교 교리로 통합되었고, 그런 포함으로 근동(近東) 민족들은 기독교 가르침들을 곧 바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만물의 이상적(理想的) 영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원본들에 대한 플라톤의 여러 이론들이 포함되어, 나중에 필로가 히브리 신학에 적응시키자, 바울의 기독교 가르침들은 서방 그리스인들에게 더 쉽게 수용되었습니다.
146:1.4 (1637.6) It was at Rimmon that Todan first heard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he later carried this message into Mesopotamia and far beyond. He was among the first to preach the good news to those who dwelt beyond the Euphrates. 림몬에서 토단이 처음 하늘나라의 복음을 들었고, 그는 나중에 이 메시지를 메소포타미아와 훨씬 너머까지 전달했습니다. 그는 유프라테스 너머에 살던 자들에게 복음을 첫째로 전한 사람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2. At Jotapata 요타파타에서
191027 기도와 심정(心情)의 일치 잠 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If anyone turns a deaf ear to the law, even his prayers are detestable.
146:2.1 (1638.1) While the common people of Jotapata heard Jesus and his apostles gladly and many accepted the gospel of the kingdom, it was the discourse of Jesus to the twenty-four on the second evening of their sojourn in this small town that distinguishes the Jotapata mission. Nathaniel was confused in his mind about the Master’s teachings concerning prayer, thanksgiving, and worship, and in response to his question Jesus spoke at great length in further explanation of his teaching. Summarized in modern phraseology, this discourse may be presented as emphasizing the following points: 요타파타의 보통 사람들은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의 메시지를 기쁘게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요타파타의 선교의 특징은 이 작은 도시에서 머물던 둘째 날 밤에 예수께서 24 명들에게 하셨던 강연이었습니다. 나다니엘은 기도, 감사 및 경배에 관한 주(主)님의 가르침들에 대해 마음으로 혼란스러워 여쭌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예수님은 자기 가르침에 덧붙여 길게 설명하셨습니다. 현대 어법으로 요약하면, 이 강연은 다음의 요점들을 강조하는 것으로 제시될 수 있습니다.
146:2.2 (1638.2) 1. The conscious and persistent regard for iniquity in the heart of man gradually destroys the prayer connection of the human soul with the spirit circuits of communication between man and his Maker. Naturally God hears the petition of his child, but when the human heart deliberately and persistently harbors the concepts of iniquity, there gradually ensues the loss of personal communion between the earth child and his heavenly Father. 의식적으로 고집스럽게(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사악을 심정에 품으면, 사람과 조물주 사이에 있는 영 소통의 회로와 인간 혼(魂)의 기도 연결이 점차 파괴됩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자기 자녀의 간청을 듣고 계시지만, 인간의 심정이 의도적으로 고집스럽게 사악의 개념을 품으면, 직후에 그 결과로써, 지상 자녀와 그의 하늘 아버지 사이에 고유적인 친교의 상실이 점차 일어납니다.
146:2.3 (1638.3) 2. That prayer which is inconsistent with the known and established laws of God is an abomination to the Paradise Deities. If man will not listen to the Gods as they speak to their creation in the laws of spirit, mind, and matter, the very act of such deliberate and conscious disdain by the creature turns the ears of spirit personalities away from hearing the personal petitions of such lawless and disobedient mortals. Jesus quoted to his apostles from the Prophet Zechariah: “But they refused to hearken and pulled away the shoulder and stopped their ears that they should not hear. Yes, they made their hearts adamant like a stone, lest they should hear my law and the words which I sent by my spirit through the prophets; therefore did the results of their evil thinking come as a great wrath upon their guilty heads. And so it came to pass that they cried for mercy, but there was no ear open to hear.” And then Jesus quoted the proverb of the wise man who said: “He who turns away his ear from hearing the divine law, even his prayer shall be an abomination.”알려져 확립된 하나님의 법칙과 일치하지 않는 기도는 천국 신(神)들에게 몹시 혐오(嫌惡싫어하고 미워함)스러운 행위입니다. 하나님들께서 영, 마음 및 물질의 법칙으로 그들의 창조계에 말씀하실 때, 사람이 하나님들을 경청하지 않으면, 영 고유성들은 바로 그런 창조물의 고의적이며 의식적인 경멸의 행위 때문에 불법적이고 불순종하는 필사자들의 그런 개인적 간청들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스가랴 선지자를 인용하셨습니다.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나의 법과 내 영으로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그들의 악한 생각의 결과로 인해 그들의 간악한 머리들 위에 큰 노(怒)가 내렸도다.그래서 일어난 대로, 그들이 큰 소리로 자비를 구했지만열려 들을 귀가 없었더라(슥7:11-13).” 그 후 예수님은 지혜자의 잠언을 인용하셨습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신적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28:9).”
146:2.4 (1638.4) 3. By opening the human end of the channel of the God-man communication, mortals make immediately available the ever-flowing stream of divine ministry to the creatures of the worlds. When man hears God’s spirit speak within the human heart, inherent in such an experience is the fact that God simultaneously hears that man’s prayer. Even the forgiveness of sin operates in this same unerring fashion. The Father in heaven has forgiven you even before you have thought to ask him, but such forgiveness is not available in your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until such a time as you forgive your fellow men. God’s forgiveness in fact is not conditioned upon your forgiving your fellows, but in experience it is exactly so conditioned. And this fact of the synchrony of divine and human forgiveness was thus recognized and linked together in the prayer which Jesus taught the apostles.하나님-사람간의 소통 경로에서 인간 쪽을 열어 놓으면, 필사자들은 세계들의 창조물들에게 항상 흐르는 신적 사역의 흐름을 즉시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인간의 심정 안에서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는 그런 체험에 본래적인 것은 하나님이 동시에 그 인간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죄용서도 이와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구하려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는 너희를 용서하셨지만, 너희가 너희 동료 사람들을 용서하기까지 너희 고유적인 종교 체험에서 그런 용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용서는 동료들을 향한 너희의 용서에 달려 있지 않지만 그것은 체험적으로 정확히 그렇게 조건적입니다. 그래서 신적이며 인간적인 용서가 동조(同調동시에 작용)하는 이 사실은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치셨던 기도에서 그렇게 인식하게 되었고 함께 연결되어졌습니다.
146:2.5 (1638.5) 4. There is a basic law of justice in the universe which mercy is powerless to circumvent. The unselfish glories of Paradise are not possible of reception by a thoroughly selfish creature of the realms of time and space. Even the infinite love of God cannot force the salvation of eternal survival upon any mortal creature who does not choose to survive. Mercy has great latitude of bestowal, but, after all, there are mandates of justice which even love combined with mercy cannot effectively abrogate. Again Jesus quoted from the Hebrew scriptures: “I have called and you refused to hear; I stretched out my hand, but no man regarded. You have set at naught all my counsel, and you have rejected my reproof, and because of this rebellious attitude it becomes inevitable that you shall call upon me and fail to receive an answer. Having rejected the way of life, you may seek me diligently in your times of suffering, but you will not find me.” 우주에는 기본적인 정의(正義)의 법칙이 있으며, 자비(慈悲)가 이것을 회피하기에 무력합니다. 철저히 이기적인, 시공 영역의 창조물은 천국의 이타적 영광들을 수용(受容받아들임)하기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도 생존을 선택하지 않는 어떤 필사 창조물에게 강제로 영원히 생존하는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자비(慈悲)는 커다란 허용 범위로 베풀어지지만 결국 자비와 결합한 사랑도 사실 폐기할 수 없는 정의(正義)의 요구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히브리 성서를 인용하셨습니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너희는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거절했은즉, 이런 반역하는 태도로 인하여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으리니, 너희가 나를 불러도 대답을 얻지 못하리라. 생명의 길을 거절했기에, 곤란의 때에 너희가 부지런히 나를 찾을 것이나 나를 만나지 못하리라(잠1:24-25, 28)”
146:2.6 (1639.1) 5. They who would receive mercy must show mercy; judge not that you be not judged. With the spirit with which you judge others you also shall be judged. Mercy does not wholly abrogate universe fairness. In the end it will prove true: “Whoso stops his ears to the cry of the poor, he also shall some day cry for help, and no one will hear him.” The sincerity of any prayer is the assurance of its being heard; the spiritual wisdom and universe consistency of any petition is the determiner of the time, manner, and degree of the answer. A wise father does not literally answer the foolish prayers of his ignorant and inexperienced children, albeit the children may derive much pleasure and real soul satisfaction from the making of such absurd petitions.자비를 받으려 하는 자들은 반드시 자비를 보여야 합니다. 심판을 받지 않도록 심판하지 마십시오. 너희가 남을 심판하는 그 정신(영)으로 너희도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자비(慈悲)가 우주의 공평함을 전부 파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다음의 구절이 참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도움을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21:13).” 기도의 신실함이 듣고 계심의 보증입니다. 응답의 시기, 방식과 정도는 간청의 영적 지혜와 우주 일치성이 결정합니다. 지혜로운 아버지는 무지하고 미숙한 자기 자녀들의 어리석은 기도들을 글자 그대로 응답하지 않지만, 자녀들은 그런 부조리한 간청에서 많은 기쁨과 실제 혼(魂)의 만족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146:2.7 (1639.2) 6. When you have become wholly dedicated to the doing of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the answer to all your petitions will be forthcoming because your prayers will be in full accordance with the Father’s will, and the Father’s will is ever manifest throughout his vast universe. What the true son desires and the infinite Father wills IS. Such a prayer cannot remain unanswered, and no other sort of petition can possibly be fully answered. 너희가 하늘 아버지 뜻의 실행에 전적으로 헌신하면, 너희 기도는 아버지의 뜻과 충분히 일치될 것이며 아버지의 뜻이 언제나 자신의 광대한 우주 전체에 드러나므로 너희의 모든 간청에 대한 응답이 다가올 것입니다. 참 자녀가 원하고 무한 아버지께서 뜻하는 것은 존재합니다. 그런 기도는 응답을 받지 않을 수 없지만, 다른 종류의 간청은 도저히 충분하게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146:2.8 (1639.3) 7. The cry of the righteous is the faith act of the child of God which opens the door of the Father’s storehouse of goodness, truth, and mercy, and these good gifts have long been in waiting for the son’s approach and personal appropriation. Prayer does not change the divine attitude toward man, but it does change man’s attitude toward the changeless Father. The motive of the prayer gives it right of way to the divine ear, not the social, economic, or outward religious status of the one who prays. 공의(公義)로운 자의 외침은 하나님 자녀의 신앙 행위로써, 선함, 진리 및 자비로 가득한 아버지 창고의 문을 열게 하며, 이 좋은 선물들은 그 자녀가 접근하여 직접 사용하기를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것들입니다. 기도는 사람을 향한 신적 태도를 바꾸지 않지만, 변함없는 아버지를 향한 사람의 태도를 바꿉니다. 신적 귀에 이르는 통행권은 기도의 동기(動機)이지, 기도하는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또는 외적인 종교적 상태가 아닙니다.
191103 윤리적 기도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146:2.9 (1639.4) 8. Prayer may not be employed to avoid the delays of time or to transcend the handicaps of space. Prayer is not designed as a technique for aggrandizing self or for gaining unfair advantage over one’s fellows. A thoroughly selfish soul cannot pray in the true sense of the word. Said Jesus: “Let your supreme delight be in the character of God, and he shall surely give you the sincere desires of your heart.” “Commit your way to the Lord; trust in him, and he will act.” “For the Lord hears the cry of the needy, and he will regard the prayer of the destitute.”시간의 지연을 피하거나 공간의 장애를 뛰어 넘으려고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자기를 확대하거나 동료들보다 공정하지 못한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이기적인 혼은 참된 의미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최극의 기쁨을 하나님의 성품에 두면, 네 심정의 신실한 소원을 너에게 확실히 주시리라(시37:4).” “너의 길을 주께 맡기고; 그를 신뢰하면 그가 행하시리라(시37:5).” “주님은 궁핍한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시72:12),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기 때문이라(시102:17).”
146:2.10 (1639.5) 9. “I have come forth from the Father; if, therefore, you are ever in doubt as to what you would ask of the Father, ask in my name, and I will present your petition in accordance with your real needs and desires and in accordance with my Father’s will.” Guard against the great danger of becoming self-centered in your prayers. Avoid praying much for yourself; pray more for the spiritual progress of your brethren. Avoid materialistic praying; pray in the spirit and for the abundance of the gifts of the spirit.“내가 아버지로부터 왔으니 너희가 아버지께 무엇을 구할지 망설일 때마다 내 이름으로 구하라(요14:14), 그러면 너희의 진정한 필요와 소원에 따라서, 또한 내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내가 너희 간구(干求)를 전하리라.” 기도할 때 자기중심적이 되는 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자신을 위하여 많이 기도하기를 피하고, 너희 형제들의 영적 진보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하십시오. 물질주의적 기도를 피하고; 영으로, 영의 풍성한 선물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146:2.11 (1639.6) 10. When you pray for the sick and afflicted, do not expect that your petitions will take the place of loving and intelligent ministry to the necessities of these afflicted ones. Pray for the welfare of your families, friends, and fellows, but especially pray for those who curse you, and make loving petitions for those who persecute you. “But when to pray, I will not say. Only the spirit that dwells within you may move you to the utterance of those petitions which are expressive of your inner relationship with the Father of spirits.” 너희가 병든 자와 괴로워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때, 너희 간청이 이렇게 고생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사랑과 지능적 돌봄을 대신하리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너희 가족, 친구, 동료들의 복지를 위해 기도하되, 특별히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애정을 품고 간구하십시오. “그러나 언제 기도할지 나는 이르지 않으리라. 단지 너희 안에 내주하는 영(靈)이 너를 감동하여 영들의 아버지와 너희의 내적 관계를 표현하는 그러한 간구를 말하게 하리라.”
146:2.12 (1640.1) 11. Many resort to prayer only when in trouble. Such a practice is thoughtless and misleading. True, you do well to pray when harassed, but you should also be mindful to speak as a son to your Father even when all goes well with your soul. Let your real petitions always be in secret. Do not let men hear your personal prayers. Prayers of thanksgiving are appropriate for groups of worshipers, but the prayer of the soul is a personal matter. There is but one form of prayer which is appropriate for all God’s children, and that is: “Nevertheless, your will be done.” 많은 이들은 곤란할 때만 기도에 매달립니다. 그런 습관은 경솔하고 그르치게 만듭니다. 사실, 너희가 시달릴 때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너희는 혼(魂)과 함께 모든 일이 잘 풀릴 때에도 또한 너희 아버지께 기도하기를 명심하십시오. 너희의 실제 간구는 항상 비밀리에 하십시오. 자기만의 기도는 사람들이 듣게 않게 하십시오. 감사의 기도들은 경배하는 자들의 집단들에서 적절하지만, 혼(魂)의 기도는 고유적 개인 문제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한 가지 적절한 기도 형태는 이것입니다. “그래도,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146:2.13 (1640.2) 12. All believers in this gospel should pray sincerely for the extension of the kingdom of heaven. Of all the prayers of the Hebrew scriptures he commented most approvingly on the petition of the Psalmist: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Purge me from secret sins and keep back your servant from presumptuous transgression.” Jesus commented at great length on the relation of prayer to careless and offending speech, quoting: “Set a watch, O Lord, before my mouth; keep the door of my lips.” “The human tongue,” said Jesus, “is a member which few men can tame, but the spirit within can transform this unruly member into a kindly voice of tolerance and an inspiring minister of mercy.”이 복음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진정으로 하늘나라의 확장을 위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히브리 성서(聖書)의 모든 기도 중에서 그는 시편 기자의 간구를 가장 만족스럽게 논평하셨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은밀한 죄들에서 씻으시고, 당신의 종으로 고범(故犯일부러 범한)죄를 짓지 말게 하소서(시19:12b-13a).” 예수님은 기도와 관련하여 경솔하며 거슬리는 말투에 대해 매우 길게 논평하면서 인용하셨습니다. “오, 주님,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인간의 혀는 사람이 거의 길들이기 어려운 지체이지만(약3:8a), 내주하는 영(靈)이 다루기 어려운 이 지체를 친절한 관용의 음성과 자비로써 감동을 주는 봉사자로 바꿀 수 있느니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46:2.14 (1640.3) 13. Jesus taught that the prayer for divine guidance over the pathway of earthly life was next in importance to the petition for a knowledge of the Father’s will. In reality this means a prayer for divine wisdom. Jesus never taught that human knowledge and special skill could be gained by prayer. But he did teach that prayer is a factor in the enlargement of one’s capacity to receive the presence of the divine spirit. When Jesus taught his associates to pray in the spirit and in truth, he explained that he referred to praying sincerely and in accordance with one’s enlightenment, to praying wholeheartedly and intelligently, earnestly and steadfastly.예수님은 모든 지상 생애의 여정에서 신적 안내를 위한 기도가, 아버지의 뜻을 알려는 간구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실제로 이것은 신적 지혜를 위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인간의 지식과 특별한 기술을 얻을 수 있다고 결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란, 사람이 신적 영의 현존을 받아들이는 수용력을 확대하는 요소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동료들에게 영과 진리로(요4:24)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던 것은, 사람의 깨우침에 따라 신실히 기도하며, 전심으로, 지능적으로, 열심히 또한 확고히 기도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146:2.15 (1640.4) 14. Jesus warned his followers against thinking that their prayers would be rendered more efficacious by ornate repetitions, eloquent phraseology, fasting, penance, or sacrifices. But he did exhort his believers to employ prayer as a means of leading up through thanksgiving to true worship. Jesus deplored that so little of the spirit of thanksgiving was to be found in the prayers and worship of his followers. He quoted from the Scriptures on this occasion, saying: “It is a good thing to give thanks to the Lord and to sing praises to the name of the Most High, to acknowledge his loving-kindness every morning and his faithfulness every night, for God has made me glad through his work. In everything I will give thanks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화려한 문체의 반복(마6:7a), 감동적인 어법, 금식, 참회(고행), 희생제물로 인해 기도가 더 효험이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신자들에게 감사를 통해 참된 경배로 이어지는 수단으로 기도를 사용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의 기도와 경배에서 감사의 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점을 유감스러워 하셨습니다. 그는 성서를 인용하여 이 경우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며 지고자(至高者)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시92:1-2, 4) 모든 일에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감사하리이다(살전5:18).”
146:2.16 (1640.5) 15. And then Jesus said: “Be not constantly overanxious about your common needs. Be not apprehensive concerning the problems of your earthly existence, but in all these things by prayer and supplication, with the spirit of sincere thanksgiving, let your needs be spread out before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Then he quoted from the Scriptures: “I will praise the name of God with a song and will magnify him with thanksgiving. And this will please the Lord better than the sacrifice of an ox or bullock with horns and hoofs.”그 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일상적 필요로 인해 계속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 너희 지상 존재의 문제들로 인해 염려하지 말고 이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필요를 신실한 감사의 영으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펼쳐놓으라(빌4:6).” 그 후 그는 성서를 인용하셨습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주님을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69:30-31).”
146:2.17 (1641.1) 16. Jesus taught his followers that, when they had made their prayers to the Father, they should remain for a time in silent receptivity to afford the indwelling spirit the better opportunity to speak to the listening soul. The spirit of the Father speaks best to man when the human mind is in an attitude of true worship. We worship God by the aid of the Father’s indwelling spirit and by the illumination of the human mind through the ministry of truth. Worship, taught Jesus, makes one increasingly like the being who is worshiped. Worship is a transforming experience whereby the finite gradually approaches and ultimately attains the presence of the Infinite.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그들이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 후, 내주하는 영이 경청하는 혼에게 말할 더 좋은 기회를 드리기 위해 조용히 받아들이며 잠시 머물러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아버지의 영은, 인간의 마음이 참된 경배의 태도로 있을 때, 사람에게 말하기가 가장 좋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내주하는 영의 도움과 진리의 사역을 통해 인간 마음을 조명하여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사람은 경배하면서 경배를 받는 존재를 점차 닮는다고 예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경배는, 유한자가 무한자의 현존에 점차 접근하여 결국 도달하는 변화의 체험입니다.
146:2.18 (1641.2) And many other truths did Jesus tell his apostles about man’s communion with God, but not many of them could fully encompass his teaching.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사람과 하나님의 친교에 대한 여러 다른 진리들을 말씀하셨지만 그들 대부분은 그의 가르침을 충분히 통합하여 아우를 수 없었습니다.
3. The Stop at Ramah 라마에 들르심
191110 영적(靈的) 확신(確信)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The Spirit himself testifie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God’s children.
146:3.1 (1641.3) At Ramah Jesus had the memorable discussion with the aged Greek philosopher who taught that science and philosophy were sufficient to satisfy the needs of human experience. Jesus listened with patience and sympathy to this Greek teacher, allowing the truth of many things he said but pointing out that, when he was through, he had failed in his discussion of human existence to explain “whence, why, and whither,” and added: “Where you leave off, we begin. Religion is a revelation to man’s soul dealing with spiritual realities which the mind alone could never discover or fully fathom. Intellectual strivings may reveal the facts of life, but the gospel of the kingdom unfolds the truths of being. You have discussed the material shadows of truth; will you now listen while I tell you about the eternal and spiritual realities which cast these transient time shadows of the material facts of mortal existence?” For more than an hour Jesus taught this Greek the saving truth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old philosopher was susceptible to the Master’s mode of approach, and being sincerely honest of heart, he quickly believed this gospel of salvation. 예수님은 라마에서 연로(年老)한 그리스 철학자와 잊지 못할 토의를 하셨는데, 그는 인간 체험의 필요를 채우기에 과학과 철학으로 충분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이 그리스 선생이 말한 여러 부분의 진리를 인정하시며 인내와 공감으로 경청하셨지만, 그가 말을 마치자, 그가 인간 존재의 논의를 “어디서, 왜, 어디로”로 설명하지 못한 점을 단지 지적하면서 다음을 덧붙였습니다. “네가 끝낸 지점에서 우리는 시작하노라. 종교는 사람의 혼에 대한 계시로 영적 실체들을 다루며, 영적 실체들은 마음 홀로 결코 발견하거나 충분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지적(知的) 분투가 생명의 사실들을 드러낼 수도 있지만, 하늘나라의 복음은 존재의 진리들을 펴서 밝히느니라. 너는 진리의 물질적 그림자들을 논의했는데, 영원한 영적 실체들에 대해 내가 너에게 말하는 동안 너는 들어보겠느냐? 그것은 필사 실존의 물질적 사실들에 대한 이러한 과도기적 시간의 그림자들을 투영하느니라.” 한 시간 이상 예수께서 이 그리스인에게 구원하는 하늘나라 복음의 진리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노(老)철학자는 주(主)님의 접근 방식에 민감히 받아들여, 진정 정직한 심정으로 이 구원의 복음을 빨리 믿었습니다.
146:3.2 (1641.4) The apostles were a bit disconcerted by the open manner of Jesus’ assent to many of the Greek’s propositions, but Jesus afterward privately said to them: “My children, marvel not that I was tolerant of the Greek’s philosophy. True and genuine inward certainty does not in the least fear outward analysis, nor does truth resent honest criticism. You should never forget that intolerance is the mask covering up the entertainment of secret doubts as to the trueness of one’s belief. No man is at any time disturbed by his neighbor’s attitude when he has perfect confidence in the truth of that which he wholeheartedly believes. Courage is the confidence of thoroughgoing honesty about those things which one professes to believe. Sincere men are unafraid of the critical examination of their true convictions and noble ideals.” 사도들은 그리스인의 여러 명제들에 동의하신 예수님의 개방적인 태도로 인해 조금 당황했지만, 그 후 예수님은 은밀히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자녀들아, 내가 그리스인의 철학을 묵인했다고 놀라지 말라. 진정 참된 내적 확신은 외적 분석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는 정직한 비평을 분개하지 않느니라. 편협(偏狹)함은 자기 믿음의 진정성에 대해 품고 있는 은밀한 의심(疑心)을 은폐하는 가면(假面)임을 너희는 결코 잊지 말라. 자신이 전심으로 믿는 것을 진리라고 온전히 신뢰한다면 언제라도 이웃의 태도로 인해 흔들리지 않느니라. 용기(勇氣)는 믿는다고 고백한 것들에 대해 철저히 정직(正直)한 확신(確信)이니라. 신실한 사람들은 자신의 참된 확신과 숭고한 이상(理想)에 대해 비판적인 검증을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146:3.3 (1641.5) On the second evening at Ramah, Thomas asked Jesus this question: “Master, how can a new believer in your teaching really know, really be certain, about the truth of this gospel of the kingdom?” 라마에서 둘째 날 저녁에 도마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主)여, 주님의 가르침을 새로 믿는 자가 이 하늘나라의 복음의 진리를 정말로 어떻게 알고 실제로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146:3.4 (1641.6) And Jesus said to Thomas: “Your assurance that you have entered into the kingdom family of the Father, and that you will eternally survive with the children of the kingdom, is wholly a matter of personal experience — faith in the word of truth. Spiritual assurance is the equivalent of your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in the eternal realities of divine truth and is otherwise equal to your intelligent understanding of truth realities plus your spiritual faith and minus your honest doubts. 그러자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버지의 하늘나라 가족으로 들어가서, 하늘나라 자녀로서 영원히 생존할 것이라는 너희의 확신은 전적으로 개인적 체험 – 진리의 말씀에 대한 신앙 –의 문제이니라. 영적 확신은 신적 진리의 영원한 실체들을 너희가 개인적으로 체험한 종교에 해당하며, 또한 다른 점에서 진리 실체들에 대한 너희의 지능적 이해에 너희 영적 신앙을 더하고 너희의 정직한 의심들을 뺀 것과 같으니라.
146:3.5 (1642.1) “The Son is naturally endowed with the life of the Father. Having been endowed with the living spirit of the Father, you are therefore sons of God. You survive your life in the material world of the flesh because you are identified with the Father’s living spirit, the gift of eternal life. Many, indeed, had this life before I came forth from the Father, and many more have received this spirit because they believed my word; but I declare that, when I return to the Father, he will send his spirit into the hearts of all men. “아들(자녀)은 당연히 아버지의 생명이 있느니라. 살아있는 아버지의 영을 받았으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이니라. 너희는 아버지의 살아있는 영, 영원한 생명의 선물과 동일한 존재로 간주되므로, 너희는 육신에 속한 물질 세상에서 너희 생명이 살아남느니라. 내가 아버지로부터 오기 전에 정말로 많은 이들이 이 생명을 가졌고, 그들이 내 말을 믿었으므로 더 많은 이들이 이 영을 받았지만,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그가 모든 사람들의 심정에 그의 영을 보내실 것이라고 내가 선언하노라.”
146:3.6 (1642.2) “While you cannot observe the divine spirit at work in your minds, there is a practical method of discovering the degree to which you have yielded the control of your soul powers to the teaching and guidance of this indwelling spirit of the heavenly Father, and that is the degree of your love for your fellow men. This spirit of the Father partakes of the love of the Father, and as it dominates man, it unfailingly leads in the directions of divine worship and loving regard for one’s fellows. At first you believe that you are sons of God because my teaching has made you more conscious of the inner leadings of our Father’s indwelling presence; but presently the Spirit of Truth shall be poured out upon all flesh, and it will live among men and teach all men, even as I now live among you and speak to you the words of truth. And this Spirit of Truth, speaking for the spiritual endowments of your souls, will help you to know that you are the sons of God. It will unfailingly bear witness with the Father’s indwelling presence, your spirit, then dwelling in all men as it now dwells in some, telling you that you are in reality the sons of God. “너희가 너희 마음에서 활동하는 신적 영을 주시(注視눈여겨봄)할 수 없지만, 내주하는 하늘 아버지의 이 영의 가르침과 인도에 너희 혼(魂)의 권능이 조정되는 정도를 알아보는 실용적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너희 동료에 대한 너희 사랑의 정도이니라. 이 아버지의 영은 아버지의 사랑과 함께 하므로, 그것이 사람을 사로잡으면, 신적 경배와 동료들을 깊은 애정으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반드시 인도합니다. 처음에는 내 가르침으로 인해 너희가 내주하는 우리 아버지의 현존(現存)의 내적 이끄심을 더 의식하게 되므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임을 너희가 믿지만, 곧 진리의 영이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질 것이며, 지금 내가 너희와 함께 살면서 너희에게 진리의 말을 하는 것과 같이, 그것이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리라. 그리고 이 진리의 영은 너희 혼(魂)들에게 주신 영적 재질을 나타내면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임을 너희가 알도록 도우리라(롬8:16). 그것은 지금은 몇 사람 안에 거주하면서 말하시는 것처럼, 그 때는 모든 사람들 안에 내주하면서, 너희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임을, 아버지의 내주하는 현존 즉 너희의 영과 함께 반드시 증언하리라.
146:3.7 (1642.3) “Every earth child who follows the leading of this spirit shall eventually know the will of God, and he who surrenders to the will of my Father shall abide forever. The way from the earth life to the eternal estate has not been made plain to you, but there is a way, there always has been, and I have come to make that way new and living. He who enters the kingdom has eternal life already — he shall never perish. But much of this you will the better understand when I shall have returned to the Father and you are able to view your present experiences in retrospect.” “이 영의 인도를 따르는 모든 세상의 자녀들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알 것이며, 내 아버지의 뜻에 내맡기는 자는 언제까지나 견디리라. 지상 생활에서 영원한 상태에 이르는 길은 너희에게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거기에는 길이 있으며 항상 있었는데, 살아있는 새 길로 만들려고 내가 왔느니라.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가졌으니 – 그는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간 후, 너희는 이러한 많은 것을 더 잘 이해할 것이며, 너희 현재의 체험들을 회고하면서 검증할 수 있으리라.”
146:3.8 (1642.4) And all who heard these blessed words were greatly cheered. The Jewish teachings had been confused and uncertain regarding the survival of the righteous, and it was refreshing and inspiring for Jesus’ followers to hear these very definite and positive words of assurance about the eternal survival of all true believers. 이러한 축복의 말씀을 들은 모든 이들은 많이 기뻤습니다. 의로운 자들의 생존에 관한 유대교의 가르침들은 혼란스럽고 확실하지 않았는데, 참된 모든 신자들의 영원한 생존에 대해 아주 분명히 확신하는 긍정적인 말씀을 들은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후련한 마음으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146:3.9 (1642.5) The apostles continued to preach and baptize believers, while they kept up the practice of visiting from house to house, comforting the downcast and ministering to the sick and afflicted. The apostolic organization was expanded in that each of Jesus’ apostles now had one of John’s as an associate; Abner was the associate of Andrew; and this plan prevailed until they went down to Jerusalem for the next Passover. 사도들은 계속 전도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한편 관례대로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고 병든 자와 고통 받는 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들 각자가 요한의 사도 하나씩 동료로 하여, 사도 조직이 확장되었습니다. 아브너는 안드레의 동료였고, 그들이 다음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내려갈 때까지 이 계획대로 되었습니다.
146:3.10 (1642.6) The special instruction given by Jesus during their stay at Zebulun had chiefly to do with further discussions of the mutual obligations of the kingdom and embraced teaching designed to make clear the differences between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and the amities of social religious obligations. This was one of the few times the Master ever discussed the social aspects of religion. Throughout his entire earth life Jesus gave his followers very little instruction regarding the socialization of religion. 스불론에 머물 때 예수께서 주신 특별 교육은 주로 하늘나라의 상호 의무들에 대한 연장된 토의와 관련되었고, 개인의 종교적 체험과 사회의 종교적 의무에 속한 친목, 이 둘의 차이를 밝히려고 계획된 가르침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主)께서 일찍이 종교의 사회적 측면을 논의하셨던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전(全) 지상 생애를 통해, 예수님은 추종자들에게 종교의 사회화(社會化)에 대한 가르침을 거의 주지 않으셨습니다.
146:3.11 (1643.1) In Zebulun the people were of a mixed race, hardly Jew or gentile, and few of them really believed in Jesus, notwithstanding they had heard of the healing of the sick at Capernaum. 스불론 사람들은 거의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 혼합 종족이었으며, 가버나움에서 병자를 고친 소문을 그들이 들었지만, 그들 중에서 정말로 예수님을 믿은 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4. The Gospel at Iron 이론에서 복음 전도
191117 하늘나라 신앙고백 막 1:40-45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40 A man with leprosy came to him and begged him on his knees, “If you are willing, you can make me clean.” 41 Filled with compassion, Jesus reached out his hand and touched the man. “I am willing,” he said. “Be clean!” 42 Immediately the leprosy left him and he was cured. 43 Jesus sent him away at once with a strong warning: 44 “See that you don’t tell this to anyone. But go, show yourself to the priest and offer the sacrifices that Moses commanded for your cleansing, as a testimony to them.” 45 Instead he went out and began to talk freely, spreading the news. As a result, Jesus could no longer enter a town openly but stayed outside in lonely places. Yet the people still came to him from everywhere.
146:4.1 (1643.2) At Iron, as in many of even the smaller cities of Galilee and Judea, there was a synagogue, and during the earlier times of Jesus’ ministry it was his custom to speak in these synagogues on the Sabbath day. Sometimes he would speak at the morning service, and Peter or one of the other apostles would preach at the afternoon hour. Jesus and the apostles would also often teach and preach at the weekday evening assemblies at the synagogue. Although the religious leaders at Jerusalem became increasingly antagonistic toward Jesus, they exercised no direct control over the synagogues outside of that city. It was not until later in Jesus’ public ministry that they were able to create such a widespread sentiment against him as to bring about the almost universal closing of the synagogues to his teaching. At this time all the synagogues of Galilee and Judea were open to him. 갈릴리와 유대의 여러 작은 도시들처럼 이론에도 회당이 있었는데,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관례처럼 이런 회당에서 안식일에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아침 예배에 그가 말씀하셨고,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 중 하나가 오후에 설교하곤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사도들은 회당의 주(週)중 저녁 모임에서 자주 가르치고 설교하곤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점차 예수님을 적대시(敵對視)했지만, 그들이 도시(예루살렘) 밖 모든 회당을 직접 조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후기 공(公)사역까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일반 회당들이 거의 문을 닫게 될 만큼 그들이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그런 정서를 폭넓게 일으킬 수 없었습니다. 이 당시 갈릴리와 유대의 모든 회당들은 그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146:4.2 (1643.3) Iron was the site of extensive mineral mines for those days, and since Jesus had never shared the life of the miner, he spent most of his time, while sojourning at Iron, in the mines. While the apostles visited the homes and preached in the public places, Jesus worked in the mines with these underground laborers. The fame of Jesus as a healer had spread even to this remote village, and many sick and afflicted sought help at his hands, and many were greatly benefited by his healing ministry. But in none of these cases did the Master perform a so-called miracle of healing save in that of the leper. 이론은 당시 광물질이 풍부한 광산(鑛山) 현장이었고, 예수님은 광부의 생활을 하신 적이 없어서, 이론에 머물던 대부분의 시간을 광산에서 보냈습니다. 사도들이 가정을 방문하고 공적(公的) 장소에서 설교하는 동안, 예수님은 이 지하 노동자들과 함께 광산에서 일하셨습니다. 치유(治癒)자로서 예수님의 명성이 이 외딴 마을까지도 퍼졌고, 많은 병자들과 고통 받는 자들이 그의 손에서 도움을 구했으며, 그의 치유 사역으로 많은 이들이 크게 득을 봤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나병(癩病한센병)환자의 경우를 제외하고 주(主)님은 소위 치유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146:4.3 (1643.4) Late on the afternoon of the third day at Iron, as Jesus was returning from the mines, he chanced to pass through a narrow side street on his way to his lodging place. As he drew near the squalid hovel of a certain leprous man, the afflicted one, having heard of his fame as a healer, made bold to accost him as he passed his door, saying as he knelt before him: “Lord, if only you would, you could make me clean. I have heard the message of your teachers, and I would enter the kingdom if I could be made clean.” And the leper spoke in this way because among the Jews lepers were forbidden even to attend the synagogue or otherwise engage in public worship. This man really believed that he could not be received into the coming kingdom unless he could find a cure for his leprosy. And when Jesus saw him in his affliction and heard his words of clinging faith, his human heart was touched, and the divine mind was moved with compassion. As Jesus looked upon him, the man fell upon his face and worshiped. Then the Master stretched forth his hand and, touching him, said: “I will — be clean.” And immediately he was healed; the leprosy no longer afflicted him. 이론에서 셋째 날 늦은 오후에, 예수께서 광산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좁은 골목을 우연히 지나 가셨습니다. 그가 어떤 나병환자의 누추한 오두막집 근처로 다가갔을 때, 시달리던 그는 치유자로서 예수님의 명성을 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문 앞을 지나가실 때, 감히 그에게 다가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속한 선생들의 메시지를 들었으며, 제가 깨끗해진다면, 저도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나병환자가 이렇게 말했던 것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나병환자들은 회당에 참석하거나 달리 대중 경배에 참가하는 것조차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나병에서 치유되지 않으면, 다가오는 하늘나라로 자신이 환영받을 수 없다고 정말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시달리던 그를 보셨고 매달리던 그의 신앙의 말을 들었을 때, 그의 인간 심정이 감동을 받았으며 신적 마음이 긍휼히 여겼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바라보시자 그 사람은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 때 주(主)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 깨끗해지라.” 그러자 즉시 그가 치유되었으며; 나병이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146:4.4 (1643.5) When Jesus had lifted the man upon his feet, he charged him: “See that you tell no man about your healing but rather go quietly about your business, showing yourself to the priest and offering those sacrifices commanded by Moses in testimony of your cleansing.” But this man did not do as Jesus had instructed him. Instead, he began to publish abroad throughout the town that Jesus had cured his leprosy, and since he was known to all the village, the people could plainly see that he had been cleansed of his disease. He did not go to the priests as Jesus had admonished him. As a result of his spreading abroad the news that Jesus had healed him, the Master was so thronged by the sick that he was forced to rise early the next day and leave the village. Although Jesus did not again enter the town, he remained two days in the outskirts near the mines, continuing to instruct the believing miners further regard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예수께서 그 사람을 일으켜서 그에게 분부하셨습니다. “너의 치유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조용히 너의 일을 처리하되, 제사장에게 자신을 보이고, 네가 깨끗이 치유된 증거로 모세가 명한 제물을 드리라.” 그러나 이 사람은 예수께서 지시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그는 온 동네에 다니며 예수께서 자기 나병을 치유했다고 떠들기 시작했으며, 마을 전체가 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질병에서 깨끗이 나은 것을 사람들이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신에게 권면하신대로 제사장에게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치유하셨다는 소식을 그가 사방에 퍼뜨린 결과, 환자들이 주(主)님께 모여들어, 그는 다음 날 일찍 일어나 그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동네로 다시 들어가지 않았지만, 광산 근처 변두리에 이틀을 남아 있으면서 믿는 광부들에게 하늘나라의 복음에 대해 계속 더 가르치셨습니다.
146:4.5 (1644.1) This cleansing of the leper was the first so-called miracle which Jesus had intentionally and deliberately performed up to this time. And this was a case of real leprosy. 나병환자를 이렇게 고친 것은 예수께서 이때까지 의도적으로, 고의적으로 행한 소위 첫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진짜 나병의 경우였습니다.
146:4.6 (1644.2) From Iron they went to Gischala, spending two days proclaiming the gospel, and then departed for Chorazin, where they spent almost a week preaching the good news; but they were unable to win many believers for the kingdom in Chorazin. In no place where Jesus had taught had he met with such a general rejection of his message. The sojourn at Chorazin was very depressing to most of the apostles, and Andrew and Abner had much difficulty in upholding the courage of their associates. And so, passing quietly through Capernaum, they went on to the village of Madon, where they fared little better. There prevailed in the minds of most of the apostles the idea that their failure to meet with success in these towns so recently visited was due to Jesus’ insistence that they refrain, in their teaching and preaching, from referring to him as a healer. How they wished he would cleanse another leper or in some other manner so manifest his power as to attract the attention of the people! But the Master was unmoved by their earnest urging. 그들은 이론에서 기스칼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며 이틀을 지낸 후, 코라진으로 떠나, 거기에서 그들이 복음을 전도하며 거의 1주일을 보냈지만 하늘나라를 믿는 신자들을 코라진에서 많이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셨던 어떤 곳에서도 그의 메시지가 그토록 전반적으로 거부당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도들은 코라진에 머물면서 많이 억눌렸으며, 안드레와 아브너는 동료들의 용기를 유지하기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조용히 가버나움을 지나 그들은 줄곧 매돈 마을로 갔는데, 거기에서도 일이 잘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방문했던 이런 마을들에서 성공하지 못한 실패가, 가르치고 전도할 때, 예수님을 치유자로서 사도들이 언급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주장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대부분의 사도들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예수께서 또 다른 나병환자를 고치거나 다른 방식으로 그의 권능을 드러내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를 그들이 얼마나 바랐던가! 그러나 주(主)님은 그들의 진지한 재촉에 꼼짝하지 않으셨습니다.
5. Back in Cana 가나로 돌아옴
191124 하나님 권능을 믿는 신앙 요4:46-54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46 Once more he visited Cana in Galilee, where he had turned the water into wine. And there was a certain royal official whose son lay sick at Capernaum. 47 When this man heard that Jesus had arrived in Galilee from Judea, he went to him and begged him to come and heal his son, who was close to death. 48 “Unless you people see miraculous signs and wonders,” Jesus told him, “you will never believe.” 49 The royal official said, “Sir, come down before my child dies.” 50 Jesus replied, “You may go. Your son will live.” The man took Jesus at his word and departed. 51 While he was still on the way, his servants met him with the news that his boy was living. 52 When he inquired as to the time when his son got better, they said to him, “The fever left him yesterday at the seventh hour.” 53 Then the father realized that this was the exact time at which Jesus had said to him, “Your son will live.” So he and all his household believed. 54 This was the second miraculous sign that Jesus performed, having come from Judea to Galilee.
146:5.1 (1644.3) The apostolic party was greatly cheered when Jesus announced, “Tomorrow we go to Cana.” They knew they would have a sympathetic hearing at Cana, for Jesus was well known there. They were doing well with their work of bringing people into the kingdom when, on the third day, there arrived in Cana a certain prominent citizen of Capernaum, Titus, who was a partial believer, and whose son was critically ill. He heard that Jesus was at Cana; so he hastened over to see him. The believers at Capernaum thought Jesus could heal any sickness.예수께서 “우리가 내일 가나로 갈 것이라.”고 발표하시자, 사도 일행은 매우 기뻤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잘 알려져 있어서 가나에서는 호의적으로 경청하며 모일 것을 그들이 알았습니다. 그들이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사역을 잘 하고 있던 셋째 날 가버나움의 저명인사 타이투스가 가나에 도착했는데, 그는 어중간한 신자로서 그의 아들은 위독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가나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나러 서둘러 갔습니다. 가버나움의 신자들은 예수께서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46:5.2 (1644.4) When this nobleman had located Jesus in Cana, he besought him to hurry over to Capernaum and heal his afflicted son. While the apostles stood by in breathless expectancy, Jesus, looking at the father of the sick boy, said: “How long shall I bear with you? The power of God is in your midst, but except you see signs and behold wonders, you refuse to believe.” But the nobleman pleaded with Jesus, saying: “My Lord, I do believe, but come ere my child perishes, for when I left him he was even then at the point of death.” And when Jesus had bowed his head a moment in silent meditation, he suddenly spoke, “Return to your home; your son will live.” Titus believed the word of Jesus and hastened back to Capernaum. And as he was returning, his servants came out to meet him, saying, “Rejoice, for your son is improved — he lives.” Then Titus inquired of them at what hour the boy began to mend, and when the servants answered “yesterday about the seventh hour the fever left him,” the father recalled that it was about that hour when Jesus had said, “Your son will live.” And Titus henceforth believed with a whole heart, and all his family also believed. This son became a mighty minister of the kingdom and later yielded up his life with those who suffered in Rome. Though the entire household of Titus, their friends, and even the apostles regarded this episode as a miracle, it was not. At least this was not a miracle of curing physical disease. It was merely a case of preknowledge concerning the course of natural law, just such knowledge as Jesus frequently resorted to subsequent to his baptism. 이 귀인(貴人)이 가나에서 예수님을 만나자, 가버나움으로 서둘러 가셔서 괴로워하는 자기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사도들이 숨을 죽이고 서 있는 동안, 예수님은 아픈 아들의 아버지를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얼마나 오래 참으랴? 너희 중에 하나님의 권능이 있지만, 너희는 표적과 이적을 보지 못하면 믿기를 거절하는구나.” 그러자 이 귀인(貴人)이 예수께 간청하며 말했습니다. “내 주(主)여, 제가 믿습니다. 그러나 제 아들이 죽기 전에 가소서. 제가 떠날 때, 그 아이는 거의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잠시 고개를 숙여 묵상(默想)하다가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 타이투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버나움으로 서둘러 돌아갔습니다. 그가 돌아가는 중에 그의 하인들이 그를 만나러 나와 말했습니다. “기뻐하십시오. 당신의 아들이 호전(好轉)되었습니다. ─그가 살았습니다.” 그 때 타이투스가 그들에게 몇 시에 소년이 낫기 시작했는지 묻자, 하인들이 “어제 제7시(오후 1시) 경에 열기가 떨어졌습니다.”라고 말하자,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리라.”고 말씀하셨던 시각 무렵임을 그 아버지는 생각해냈습니다. 이후 타이투스는 전심으로 믿었고, 그의 온 가족들도 믿었습니다. 이 아들은 하늘나라의 막강한 사역자가 되었고, 나중에 로마에서 순교하던 자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타이투스의 모든 가족들, 친구들 및 사도들도 이 특별한 사건을 기적으로 여겼지만,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이것은 육신의 병을 치료한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 법칙의 과정에 대한 사전지식의 경우로써 예수께서 세례 이후 자주 사용하시던 바로 그런 지식이었습니다.
146:5.3 (1645.1) Again was Jesus compelled to hasten away from Cana because of the undue attention attracted by the second episode of this sort to attend his ministry in this village. The townspeople remembered the water and the wine, and now that he was supposed to have healed the nobleman’s son at so great a distance, they came to him, not only bringing the sick and afflicted but also sending messengers requesting that he heal sufferers at a distance. And when Jesus saw that the whole countryside was aroused, he said, “Let us go to Nain.” 이 마을에서 이런 종류의 특별한 사건을 두 번째 행하심으로 지나친 관심을 끌게 되어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다시 가나를 서둘러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물과 포도주를 기억했고, 이제 그가 그토록 먼 거리에서 귀인의 아들을 고친 것으로 여겨서, 그들은 그에게 환자와 시달리는 자들을 데려올 뿐만 아니라, 그가 멀리서 환자들을 치료하시도록 요청하는 메신저들을 또한 보냈습니다. 모든 시골의 떠들썩한 반응을 보신 예수님은 “나인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6. Nain and the Widow’s Son 나인과 과부의 아들
191201 기적과 의식(意識)의 확장 눅7:11-17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쌔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1 Soon afterward, Jesus went to a town called Nain, and his disciples and a large crowd went along with him. 12 As he approached the town gate, a dead person was being carried out–the only son of his mother, and she was a widow. And a large crowd from the town was with her. 13 When the Lord saw her, his heart went out to her and he said, “Don’t cry.”14 Then he went up and touched the coffin, and those carrying it stood still. He said, “Young man, I say to you, get up!” 15 The dead man sat up and began to talk, and Jesus gave him back to his mother. 16 They were all filled with awe and praised God. “A great prophet has appeared among us,” they said. “God has come to help his people.” 17 This news about Jesus spread throughout Judea and the surrounding country.
146:6.1 (1645.2) These people believed in signs; they were a wonder-seeking generation. By this time the people of central and southern Galilee had become miracle minded regarding Jesus and his personal ministry. Scores, hundreds, of honest persons suffering from purely nervous disorders and afflicted with emotional disturbances came into Jesus’ presence and then returned home to their friends announcing that Jesus had healed them. And such cases of mental healing these ignorant and simple-minded people regarded as physical healing, miraculous cures. 이 사람들은 표적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구하는 세대였습니다. 이때까지 갈릴리 중부와 남부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그의 개인적 사역에 대해서 기적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완전히 신경쇠약과 정서장애로 시달리는 수십, 수백의 정직한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온 후 집으로 돌아가 자기 친구들에게, 예수께서 자신들을 치유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무지하고 단순한 이 사람들은 그런 정신 치료의 경우를 육체적 치유, 기적의 치료로 여겼습니다.
146:6.2 (1645.3) When Jesus sought to leave Cana and go to Nain, a great multitude of believers and many curious people followed after him. They were bent on beholding miracles and wonders, and they were not to be disappointed. As Jesus and his apostles drew near the gate of the city, they met a funeral procession on its way to the near-by cemetery, carrying the only son of a widowed mother of Nain. This woman was much respected, and half of the village followed the bearers of the bier of this supposedly dead boy. When the funeral procession had come up to Jesus and his followers, the widow and her friends recognized the Master and besought him to bring the son back to life. Their miracle expectancy was aroused to such a high pitch they thought Jesus could cure any human disease, and why could not such a healer even raise the dead? Jesus, while being thus importuned, stepped forward and, raising the covering of the bier, examined the boy. Discovering that the young man was not really dead, he perceived the tragedy which his presence could avert; so, turning to the mother, he said: “Weep not. Your son is not dead; he sleeps. He will be restored to you.” And then, taking the young man by the hand, he said, “Awake and arise.” And the youth who was supposed to be dead presently sat up and began to speak, and Jesus sent them back to their homes. 예수께서 가나를 떠나 나인으로 가려 하자, 수많은 신자들과 호기심 있는 여러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들은 기적과 이적에 몰두했으며,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성문 근처에 이르렀을 때, 나인의 한 홀어머니의 외아들을 운구하여 근처 공동묘지를 향하는 장례 행렬을 만났습니다. 이 여인은 아주 존경을 받고 있어서, 동네 사람들 절반이, 죽었다고 여긴 이 소년의 관을 들고 가는 상여꾼(喪輿시신 운반자)들을 따라갔습니다. 장례의 행렬이 예수님과 그의 신자들 앞에 이르자, 과부와 그녀의 친구들이 주(主)님을 알아보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그에게 간청했습니다. 기적의 기대감이 높이 일어나, 예수께서 인간의 어떤 병도 고칠 수 있으니, 그런 치유자라면 죽은 자도 살릴 수 있으리라고 그들이 생각했습니다. 끈질긴 간청을 받으면서, 예수님은 앞으로 나아가 관의 뚜껑을 열고 그 소년을 살펴보셨습니다. 그 청년이 실제로 죽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자신이 막을 수 있는 비극임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를 향해 말하셨습니다. “울지 말라. 너의 아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느니라. 그가 너에게 되돌아오리라.” 그런 후 청년의 손을 잡고 “깨어 일어나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은 것으로 여겼던 청년이 즉시 일어나 앉아 말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은 그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146:6.3 (1645.4) Jesus endeavored to calm the multitude and vainly tried to explain that the lad was not really dead, that he had not brought him back from the grave, but it was useless. The multitude which followed him, and the whole village of Nain, were aroused to the highest pitch of emotional frenzy. Fear seized many, panic others, while still others fell to praying and wailing over their sins. And it was not until long after nightfall that the clamoring multitude could be dispersed. And, of course, notwithstanding Jesus’ statement that the boy was not dead, everyone insisted that a miracle had been wrought, even the dead raised. Although Jesus told them the boy was merely in a deep sleep, they explained that that was the manner of his speaking and called attention to the fact that he always in great modesty tried to hide his miracles. 예수님은 군중을 진정시키고, 그 젊은이가 실제로 죽지 않았으며, 자신이 그를 죽음에서 되살리지 않았다고 설명하려고 애쓰셨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군중과 나인의 온 동네는 감정적 격앙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다수가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다른 이들은 공포에 빠진 한편 다른 이들은 계속 엎드려 기도하며 자신들의 죄를 한탄하여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한참 지난 후 소란스런 군중들이 흩어졌습니다. 물론 소년이 죽지 않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기적이 일어났으며 죽은 자도 일어났다고 모든 사람이 주장했습니다. 그 소년은 단지 깊이 잠들었던 것이라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이라고 그들이 설명했으며, 그는 항상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의 기적을 숨기려 하셨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146:6.4 (1646.1) So the word went abroad throughout Galilee and into Judea that Jesus had raised the widow’s son from the dead, and many who heard this report believed it. Never was Jesus able to make even all his apostles fully understand that the widow’s son was not really dead when he bade him awake and arise. But he did impress them sufficiently to keep it out of all subsequent records except that of Luke, who recorded it as the episode had been related to him. And again was Jesus so besieged as a physician that he departed early the next day for Endor.그래서 예수께서 과부의 아들을 죽음에서 살렸다는 말이 갈릴리 전역과 유대까지 퍼졌으며, 이 소문을 들은 많은 이들이 그것을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과부의 아들에게 깨어 일어나라고 명했을 때, 그 소년이 실제로 죽지 않았음을 예수님은 결코 자신의 모든 사도들에게도 충분히 이해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가가 들었던 특별한 사건으로서 그것을 기록했던 누가의 기록을 제외하고 모든 후대의 기록에 들어가지 않도록 예수께서 충분히 사도들에게 명심시켰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사람들이 의사(医師)로서 예수님에게 너무 몰려들어서 그는 다음날 일찍 엔도르(Endor)로 떠났습니다.
7. At Endor 엔도르에서
191208 오순절 이전의 탈선한 중도자들 삼상 28:7-25 7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8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쌔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는 사울이 가로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올리라 9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의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10 사울이 여호와로 그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치 아니하리라 11 여인이 가로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사울이 가로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12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13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14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 모양이 어떠하냐 그가 가로되 한 노인이 올라 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줄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15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군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 나의 행할 일을 배우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16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17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신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18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1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라 20 사울이 갑자기 땅에 온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을 인하여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 기력이 진하였으니 이는 그가 종일 종야에 식물을 먹지 못하였음이라 21 그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심히 고통함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여종이 왕의 말씀을 듣고 나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왕이 내게 이르신 말씀을 청종하였사오니 22 그런즉 청컨대 이제 여종의 말을 들으사 나로 왕의 앞에 한 조각 떡을 드리게 하시고 왕은 잡수시고 길 가실 때에 기력을 얻으소서 23 사울이 거절하여 가로되 내가 먹지 아니하겠노라 그 신하들과 여인이 강권하매 그 말을 듣고 땅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으니라 24 여인의 집에 살진 송아지가 있으므로 그것을 급히 잡고 가루를 취하여 뭉쳐 무교병을 만들고 구워서 25 사울의 앞에와 그 신하들의 앞에 드리니 그들이 먹고 일어나서 그 밤에 가니라 7 Saul then said to his attendants, “Find me a woman who is a medium, so I may go and inquire of her.” “There is one in Endor,” they said. 8 So Saul disguised himself, putting on other clothes, and at night he and two men went to the woman. “Consult a spirit for me,” he said, “and bring up for me the one I name.” 9 But the woman said to him, “Surely you know what Saul has done. He has cut off the mediums and spiritists from the land. Why have you set a trap for my life to bring about my death?” 10 Saul swore to her by the LORD, “As surely as the LORD lives, you will not be punished for this.” 11 Then the woman asked, “Whom shall I bring up for you?” “Bring up Samuel,” he said. 12 When the woman saw Samuel, she cried out at the top of her voice and said to Saul, “Why have you deceived me? You are Saul!” 13 The king said to her, “Don’t be afraid. What do you see?” The woman said, “I see a spirit coming up out of the ground.” 14 “What does he look like?” he asked. “An old man wearing a robe is coming up,” she said. Then Saul knew it was Samuel, and he bowed down and prostrated himself with his face to the ground. 15 Samuel said to Saul, “Why have you disturbed me by bringing me up?” “I am in great distress,” Saul said. “The Philistines are fighting against me, and God has turned away from me. He no longer answers me, either by prophets or by dreams. So I have called on you to tell me what to do.” 16 Samuel said, “Why do you consult me, now that the LORD has turned away from you and become your enemy? 17 The LORD has done what he predicted through me. The LORD has torn the kingdom out of your hands and given it to one of your neighbors—to David. 18 Because you did not obey the LORD or carry out his fierce wrath against the Amalekites, the LORD has done this to you today. 19 The LORD will hand over both Israel and you to the Philistines, and tomorrow you and your sons will be with me. The LORD will also hand over the army of Israel to the Philistines.” 20 Immediately Saul fell full length on the ground, filled with fear because of Samuel’s words. His strength was gone, for he had eaten nothing all that day and night. 21 When the woman came to Saul and saw that he was greatly shaken, she said, “Look, your maidservant has obeyed you. I took my life in my hands and did what you told me to do. 22 Now please listen to your servant and let me give you some food so you may eat and have the strength to go on your way.” 23 He refused and said, “I will not eat.” But his men joined the woman in urging him, and he listened to them. He got up from the ground and sat on the couch. 24 The woman had a fattened calf at the house, which she butchered at once. She took some flour, kneaded it and baked bread without yeast. 25 Then she set it before Saul and his men, and they ate. That same night they got up and left.
146:7.1 (1646.2) At Endor Jesus escaped for a few days from the clamoring multitudes in quest of physical healing. During their sojourn at this place the Master recounted for the instruction of the apostles the story of King Saul and the witch of Endor. Jesus plainly told his apostles that the stray and rebellious midwayers who had oftentimes impersonated the supposed spirits of the dead would soon be brought under control so that they could no more do these strange things. He told his followers that, after he returned to the Father, and after they had poured out their spirit upon all flesh, no more could such semispirit beings — so-called unclean spirits — possess the feeble- and evil-minded among mortals. 엔도르에서 예수님은 육체적 치유를 시끄럽게 요구하는 군중으로부터 며칠을 피하셨습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주(主)님은 사울 왕과 엔도르의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사도들을 가르치려고 자세히 얘기하셨습니다. 죽은 자의 영들로 여겨져 자주 남의 흉내를 내었고, 탈선하여 반역한 중도자들이 곧 통제되어 더 이상 이런 이상한 짓들을 할 수 없게 되리라고 예수는 사도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께 돌아간 후, 자기들이 자신들의 영을 모든 육신에 쏟아 부은 후, 소위 더러운 영들로 불리는 그런 반(半)영 존재들이 더 이상 연약하고 악한 의도를 지닌 필사자들에게 빙의(憑依옮겨 붙음)될 수 없으리라고 신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46:7.2 (1646.3) Jesus further explained to his apostles that the spirits of departed human beings do not come back to the world of their origin to communicate with their living fellows. Only after the passing of a dispensational age would it be possible for the advancing spirit of mortal man to return to earth and then only in exceptional cases and as a part of the spiritual administration of the planet.예수는 자기 사도들에게, 죽은 인간 존재들의 영들은 살아있는 자기 동료들과 교통하려고 기원된 그들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더 설명하셨습니다. 다만 섭리 시대가 지난 후, 진보된 필사 사람의 영이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데, 게다가 예외적 경우에, 행성의 영적 경영의 부분으로서만 가능합니다.
146:7.3 (1646.4) When they had rested two days, Jesus said to his apostles: “On the morrow let us return to Capernaum to tarry and teach while the countryside quiets down. At home they will have by this time partly recovered from this sort of excitement.”그들이 이틀간 쉬었을 때,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골이 조용해지는 동안 우리는 내일 가버나움으로 돌아가서, 머물러 가르치자. 그들의 상태가 이 무렵 이런 종류의 소동에서 얼마간 나아졌으리라.”
191215 이방인(異邦人)의 큰 신앙 눅7:1-10 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1 When Jesus had finished saying all this in the hearing of the people, he entered Capernaum. 2 There a centurion’s servant, whom his master valued highly, was sick and about to die. 3 The centurion heard of Jesus and sent some elders of the Jews to him, asking him to come and heal his servant. 4 When they came to Jesus, they pleaded earnestly with him, “This man deserves to have you do this, 5 because he loves our nation and has built our synagogue.” 6 So Jesus went with them. He was not far from the house when the centurion sent friends to say to him: “Lord, don’t trouble yourself, for I do not deserve to have you come under my roof. 7 That is why I did not even consider myself worthy to come to you. But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8 For I myself am a man under authority, with soldiers under me. I tell this one, ‘Go,’ and he goes; and that one, ‘Come,’ and he comes. I say to my servant, ‘Do this,’ and he does it.” 9 When Jesus heard this, he was amazed at him, and turning to the crowd following him, he said, “I tell you, I have not found such great faith even in Israel.” 10 Then the men who had been sent returned to the house and found the servant well.
147:0.1 (1647.1) JESUS and the apostles arrived in Capernaum on Wednesday, March 17, and spent two weeks at the Bethsaida headquarters before they departed for Jerusalem. These two weeks the apostles taught the people by the seaside while Jesus spent much time alone in the hills about his Father’s business. During this period Jesus, accompanied by James and John Zebedee, made two secret trips to Tiberias, where they met with the believers and instructed them in the gospel of the kingdom. 예수님과 사도들은 3월 17일(AD 28) 수요일에 가버나움에 도착해서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 2주(週) 동안 벳새다의 본부에서 보냈습니다. 이 2주(週) 동안 사도들은 해변에서 사람들을 가르쳤고, 한편 예수님은 자기 아버지의 업무 관계로 언덕에서 홀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기간에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와 함께 티베리아스를 은밀히 2번 찾아가, 거기에서 그들은 신자들과 만나, 하늘나라의 복음을 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147:0.2 (1647.2) Many of the household of Herod believed in Jesus and attended these meetings. It was the influence of these believers among Herod’s official family that had helped to lessen that ruler’s enmity toward Jesus. These believers at Tiberias had fully explained to Herod that the “kingdom” which Jesus proclaimed was spiritual in nature and not a political venture. Herod rather believed these members of his own household and therefore did not permit himself to become unduly alarmed by the spreading abroad of the reports concerning Jesus’ teaching and healing. He had no objections to Jesus’ work as a healer or religious teacher. Notwithstanding the favorable attitude of many of Herod’s advisers, and even of Herod himself, there existed a group of his subordinates who were so influenced by the religious leaders at Jerusalem that they remained bitter and threatening enemies of Jesus and the apostles and, later on, did much to hamper their public activities. The greatest danger to Jesus lay in the Jerusalem religious leaders and not in Herod. And it was for this very reason that Jesus and the apostles spent so much time and did most of their public preaching in Galilee rather than at Jerusalem and in Judea. 헤롯 왕실의 여럿이 예수님을 믿고, 이런 모임들에 참석했습니다. 헤롯의 정식 가족 중 이런 신자들의 영향으로 도움을 받아 예수님에 대한 통치자의 적대감이 줄었습니다. 티베리아스의 이 신자들은, 예수께서 선포하는 “하늘나라”는 사실 영적이며, 정치적 위험이 없다고 헤롯에게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헤롯은 이 자기 왕실 사람들을 상당히 믿었으며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짐으로 스스로 과도히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치유(治癒)자나 종교교사로서 예수님의 일에 이의(異議다른 주장)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의 여러 조언자들과 헤롯 자신조차 태도가 호의적이었지만,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의 영향을 받은 그의 부하들 무리가 있어서 예수님과 사도들에 대해 신랄하게 협박하는 대적들로 남았으며 나중에 대중 활동을 많이 방해했습니다. 예수님께 가장 큰 위험은 예루살렘 종교 지도자들이었지 헤롯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님과 사도들은 예루살렘과 유대보다는 갈릴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시며, 대부분의 대중 전도를 하셨습니다.
1. The Centurion’s Servant 백부장의 하인
147:1.1 (1647.3) On the day before they made ready to go to Jerusalem for the feast of the Passover, Mangus, a centurion, or captain, of the Roman guard stationed at Capernaum, came to the rulers of the synagogue, saying: “My faithful orderly is sick and at the point of death. Would you, therefore, go to Jesus in my behalf and beseech him to heal my servant?” The Roman captain did this because he thought the Jewish leaders would have more influence with Jesus. So the elders went to see Jesus and their spokesman said: “Teacher, we earnestly request you to go over to Capernaum and save the favorite servant of the Roman centurion, who is worthy of your notice because he loves our nation and even built us the very synagogue wherein you have so many times spoken.” 그들이 유월절 잔치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준비하기 전날, 가버나움에 주둔하던 로마의 수비대 지휘관, 백부장 망거스가 회당의 통치자들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나의 신실한 하인이 아파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를 대신하여 예수님께 가서 내 하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해 주시겠습니까?” 그 로마 지휘관은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더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이 예수를 보러 왔고 그들의 대변인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당신께서 가버나움으로 건너가서 로마 백부장이 아끼는 하인을 구해주시기를 우리가 진심으로 간청합니다. 그는 당신의 눈을 끄는 훌륭한 사람으로,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당신께서 여러 번 말씀하셨던 바로 그 회당도 우리에게 지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147:1.2 (1647.4) And when Jesus had heard them, he said, “I will go with you.” And as he went with them over to the centurion’s house, and before they had entered his yard, the Roman soldier sent his friends out to greet Jesus, instructing them to say: “Lord, trouble not yourself to enter my house, for I am not worthy that you should come under my roof. Neither did I think myself worthy to come to you; wherefore I sent the elders of your own people. But I know that you can speak the word where you stan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For I am myself under the orders of others, and I have soldiers under me, and I say to this one go, and he goes; to another come, and he comes, and to my servants do this or do that, and they do it.” 예수께서 그들의 말을 듣자,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들과 함께 백부장의 집으로 건너가서, 정원을 들어서기 전에 그 로마 군인은 자기 친구들을 밖으로 보내 예수님을 맞이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주여, 저는 당신이 저의 집에 묵으실만한 자격이 없으니, 수고스럽게 저의 집에 들어오지 마십시오. 저 또한 스스로 당신께 갈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서 제가 당신 민족의 장로들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계신 곳에서 말씀하실 수 있고 그러면 제 하인이 나을 것을 저는 압니다. 왜냐하면 제 자신이 다른 이들의 명령을 받고, 제 아래에도 군인들이 있으며,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다른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오며, 제 하인들에게 이것을 하거나 저것을 하라 하면 그들이 그것을 합니다.”
147:1.3 (1648.1) And when Jesus heard these words, he turned and said to his apostles and those who were with them: “I marvel at the belief of the gentile. Verily, verily, I say to you, I have not found so great faith, no, not in Israel.” Jesus, turning from the house, said, “Let us go hence.” And the friends of the centurion went into the house and told Mangus what Jesus had said. And from that hour the servant began to mend and was eventually restored to his normal health and usefulness. 예수께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돌이켜 자기 사도들과 그들과 함께 있던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의 믿음이 놀랍도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지만, 내가 이렇게 큰 신앙을 만나지 못하였느니라. 이스라엘에서 아무도 아니라.” 예수께서 그 집에서 돌아서시며 “그러면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백부장의 친구들이 집으로 들어가 망거스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부터 하인은 호전되기 시작했으며 결국 정상적 건강과 일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147:1.4 (1648.2) But we never knew just what happened on this occasion. This is simply the record, and as to whether or not invisible beings ministered healing to the centurion’s servant, was not revealed to those who accompanied Jesus. We only know of the fact of the servant’s complete recovery. 그러나 이 경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전혀 몰랐습니다. 이것은 단지 기록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백부장의 하인을 돌보아 치유했는지 아닌지, 예수님과 동행했던 자들에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인이 완쾌(完快)된 사실만 알 뿐입니다.
2. The Journey to Jerusalem 예루살렘 여행
191222 피(희생제물) 없는 유월절(逾越節) 출12:13-14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13 The blood will be a sign for you on the houses where you are; and when I see the blood, I will pass over you. No destructive plague will touch you when I strike Egypt. 14 “This is a day you are to commemorate; for the generations to come you shall celebrate it as a festival to the LORD -a lasting ordinance.
147:2.1 (1648.3) Early on the morning of Tuesday, March 30, Jesus and the apostolic party started on their journey to Jerusalem for the Passover, going by the route of the Jordan valley. They arrived on the afternoon of Friday, April 2, and established their headquarters, as usual, at Bethany. Passing through Jericho, they paused to rest while Judas made a deposit of some of their common funds in the bank of a friend of his family. This was the first time Judas had carried a surplus of money, and this deposit was left undisturbed until they passed through Jericho again when on that last and eventful journey to Jerusalem just before the trial and death of Jesus. 3월 30일(AD 28) 화요일 아침 일찍, 예수님과 사도 일행은 유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떠났으며, 요단 계곡의 경로로 갔습니다. 그들은 4월 2일 금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평소처럼 베다니에 본부를 두었습니다. 여리고를 통과하면서, 그들은 쉬기 위해 잠시 멈추었고, 그 동안 유다는 자기 가족 친구의 은행에 공동기금 얼마를 예금했습니다. 이 때 처음 유다가 여분의 돈을 지녔으며, 예수께서 재판받아 죽기 바로 직전 예루살렘으로 가는 다사(多事)한 마지막 여행에서 그들이 여리고를 다시 통과할 때까지, 이 예금은 건드리지 않고 남겨두었습니다.
147:2.2 (1648.4) The party had an uneventful trip to Jerusalem, but they had hardly got themselves settled at Bethany when from near and far those seeking healing for their bodies, comfort for troubled minds, and salvation for their souls, began to congregate, so much so that Jesus had little time for rest. Therefore they pitched tents at Gethsemane, and the Master would go back and forth from Bethany to Gethsemane to avoid the crowds which so constantly thronged him. The apostolic party spent almost three weeks at Jerusalem, but Jesus enjoined them to do no public preaching, only private teaching and personal work.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평온히 여행했지만, 원근(遠近)각처에서 육신을 치유하고, 불안한 마음이 위로받으며, 자신 혼의 구원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이기 시작하여 예수님은 거의 쉴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베다니에서 자리를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겟세마네에서 야영했으며, 주(主)님은 자신에게 계속 밀려드는 군중들을 피하려고 베다니에서 겟세마네를 오가셨습니다. 사도 일행은 예루살렘에서 거의 3주간 지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공적 전도를 금하고, 사적 가르침과 개인 사역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47:2.3 (1648.5) At Bethany they quietly celebrated the Passover. And this was the first time that Jesus and all of the twelve partook of the bloodless Passover feast. The apostles of John did not eat the Passover with Jesus and his apostles; they celebrated the feast with Abner and many of the early believers in John’s preaching. This was the second Passover Jesus had observed with his apostles in Jerusalem. 베다니에서 그들은 조용히 유월절을 축하했습니다. 예수님과 12사도 모두가 피(희생제물) 없이 유월절 잔치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요한의 사도들은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브너 및 요한의 설교를 믿은 여러 초기 신자들과 함께 잔치를 축하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함께 지킨 두 번째 유월절이었습니다.
147:2.4 (1648.6) When Jesus and the twelve departed for Capernaum, the apostles of John did not return with them. Under the direction of Abner they remained in Jerusalem and the surrounding country, quietly laboring for the extension of the kingdom, while Jesus and the twelve returned to work in Galilee. Never again were the twenty-four all together until a short time before the commissioning and sending forth of the seventy evangelists. But the two groups were co-operative, and notwithstanding their differences of opinion, the best of feelings prevailed. 예수님과 12사도가 가버나움으로 떠났을 때, 요한의 사도들은 그들과 함께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아브너의 지도 아래 그들은 예루살렘과 그 주위 시골에 남아서 하늘나라의 확장을 위해 조용히 수고한 반면에 예수님과 12사도는 사역하러 갈릴리로 되돌아갔습니다. 전도자 70명을 임명하고 파송하기 전(前) 짧은 시간까지, 24명이 다시는 모두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두 일행들은 협력했으며, 의견들이 달랐지만, 최상의 감정을 유지했습니다.
3. At the Pool of Bethesda 벳세스다 물웅덩이에서
191229 영생(永生)의 신앙(信仰) 요5:1-4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1 After this there was a feast of the Jews; and Jesus went up to Jerusalem. 2 Now there is at Jerusalem by the sheep market a pool, which is called in the Hebrew tongue Bethesda, having five porches. 3 In these lay a great multitude of impotent folk, of blind, halt, withered, waiting for the moving of the water. 4 For an angel went down at a certain season into the pool, and troubled the water: whosoever then first after the troubling of the water stepped in was made whole of whatsoever disease he had.
147:3.1 (1649.1) The afternoon of the second Sabbath in Jerusalem, as the Master and the apostles were about to participate in the temple services, John said to Jesus, “Come with me, I would show you something.” John conducted Jesus out through one of the Jerusalem gates to a pool of water called Bethesda. Surrounding this pool was a structure of five porches under which a large group of sufferers lingered in quest of healing. This was a hot spring whose reddish-tinged water would bubble up at irregular intervals because of gas accumulations in the rock caverns underneath the pool. This periodic disturbance of the warm waters was believed by many to be due to supernatural influences, and it was a popular belief that the first person who entered the water after such a disturbance would be healed of whatever infirmity he had. 예루살렘의 두 번째 안식일(AD28. 4. 10 토) 오후에 주(主)님과 사도들이 성전예배에 막 참석하려 했을 때, 요한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지요. 제가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문 중 하나를 거쳐 밖으로 나가 베데스다라는 물웅덩이로 안내했습니다. 이 웅덩이 주위에 있던 다섯 현관 구조물 밑에 많은 환자들이 치료하려고 서성거렸습니다. 이곳은 온천이었고 웅덩이 밑 바위 동굴에 모인 가스 때문에 불규칙한 간격으로 불그레한 색조의 물이 끓어오르곤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온수의 주기적인 거품을 초자연적 세력 때문이라고 믿어서, 그렇게 부글거린 후 처음 물에 들어간 자는 어떤 병이든지 치유된다고 널리 믿고 있었습니다.
147:3.2 (1649.2) The apostles were somewhat restless under the restrictions imposed by Jesus, and John, the youngest of the twelve, was especially restive under this restraint. He had brought Jesus to the pool thinking that the sight of the assembled sufferers would make such an appeal to the Master’s compassion that he would be moved to perform a miracle of healing, and thereby would all Jerusalem be astounded and presently be won to believe in the gospel of the kingdom. Said John to Jesus: “Master, see all of these suffering ones; is there nothing we can do for them?” And Jesus replied: “John, why would you tempt me to turn aside from the way I have chosen? Why do you go on desiring to substitute the working of wonders and the healing of the sick for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of eternal truth? My son, I may not do that which you desire, but gather together these sick and afflicted that I may speak words of good cheer and eternal comfort to them.” 사도들은 예수께서 주신 제한 밑에서 어느 정도 가만히 있지 못했는데 12사도 중 가장 어린 요한이 이 제약 밑에서 특히 차분하지 못했습니다. 모인 환자들의 광경이 그렇게 주님의 연민을 일으켜 그가 치유의 기적을 행하도록 감동받으시면 그로 인해 예루살렘이 모두 놀라 즉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게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예수님을 물웅덩이로 모셨습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主)여, 이 고통 받는 자들을 다 보십시오.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요한아, 너는 왜 나를 유혹해서 내가 선택한 길에서 벗어나게 하느냐? 왜 너는 영원한 진리의 복음 선포 대신에, 이적을 행하며 병자 치유하기를 계속 원하느냐? 내 아들아,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겠지만 이 병자들과 고통 받는 자들이 기운을 내고 영원한 위로의 말을 내가 하도록 그들을 함께 모으라”
147:3.3 (1649.3) In speaking to those assembled, Jesus said: “Many of you are here, sick and afflicted, because of your many years of wrong living. Some suffer from the accidents of time, others as a result of the mistakes of their forebears, while some of you struggle under the handicaps of the imperfect conditions of your temporal existence. But my Father works, and I would work, to improve your earthly state but more especially to insure your eternal estate. None of us can do much to change the difficulties of life unless we discover the Father in heaven so wills. After all, we are all beholden to do the will of the Eternal. If you could all be healed of your physical afflictions, you would indeed marvel, but it is even greater that you should be cleansed of all spiritual disease and find yourselves healed of all moral infirmities. You are all God’s children; you are the sons of the heavenly Father. The bonds of time may seem to afflict you, but the God of eternity loves you. And when the time of judgment shall come, fear not, you shall all find, not only justice, but an abundance of mercy. Verily, verily, I say to you: He who hears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believes in this teaching of sonship with God, has eternal life; already are such believers passing from judgment and death to light and life. And the hour is coming in which even those who are in the tombs shall hear the voice of the resurrection.”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있는 대부분의 여러분은 여러 해 그릇된 삶으로 인해 병들어 고통 중에 있느니라. 더러는 살다가 불의의 사고로, 다른 이들은 조상들의 잘못으로 고생하는 한편 너희 중 더러는 잠시 너희 생활의 불완전한 조건의 장애로 인해 애쓰고 있느니라. 그러나 지상에서 너희 상태를 개선하고 특히 너희의 영원한 신분을 보증하려고 내 아버지가 일하시고 나도 일하느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그런 뜻을 알지 못하면 우리 중 아무도 삶의 곤경을 많이 바꿀 수 없노라. 결국 우리 모두 영원자의 뜻을 행하려고 은혜를 입고 있느니라. 너희 육신의 고통이 다 치유되면, 너희가 정말 놀라겠지만, 모든 영적 질병을 씻어내고 자신이 깨어나 모든 도덕적 결점이 치유되는 일이 더 놀랄 일이라. 너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너희는 하늘 아버지의 아들(자녀)들이라. 너희가 시간의 속박으로 시달리는 듯하지만, 영원의 하나님은 너희를 사랑하시니라. 심판의 시간이 올 때에, 두려워 말라. 너희는 모두 정의(正義)만이 아니라 풍성한 자비도 발견하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이 가르침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느니라. 이미 그런 신자(信者)들은 심판과 죽음에서 빛과 생명으로 나아가고 있느니라. 그리고 무덤에 있는 자들도 부활의 음성을 들을 때가 다가오고 있느니라.”
147:3.4 (1649.4) And many of those who heard believed the gospel of the kingdom. Some of the afflicted were so inspired and spiritually revivified that they went about proclaiming that they had also been cured of their physical ailments. 말씀을 들었던 많은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었습니다. 시달리던 더러는 영감(靈感)을 많이 받아 영적으로 소생하여서, 자기 육신의 질병도 치료되었다고 선포하며 다녔습니다.
147:3.5 (1649.5) One man who had been many years downcast and grievously afflicted by the infirmities of his troubled mind, rejoiced at Jesus’ words and, picking up his bed, went forth to his home, even though it was the Sabbath day. This afflicted man had waited all these years for somebody to help him; he was such a victim of the feeling of his own helplessness that he had never once entertained the idea of helping himself which proved to be the one thing he had to do in order to effect recovery — take up his bed and walk. 그의 불안한 마음의 질병으로 수 년 간 기가 꺾여 심하게 시달리던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뻐하였고 안식일이었지만 그의 침상을 집어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시달리던 이 사람은 자기를 도와줄 누군가를 여태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력한 느낌에 그렇게 속아서 스스로 일어날(자신을 도울)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회복하기 위해 자신이 해야만 했던 한 가지 일은 침상을 집어 들고 걷는 것이었습니다.
147:3.6 (1650.1) Then said Jesus to John: “Let us depart ere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come upon us and take offense that we spoke words of life to these afflicted ones.” And they returned to the temple to join their companions, and presently all of them departed to spend the night at Bethany. But John never told the other apostles of this visit of himself and Jesus to the pool of Bethesda on this Sabbath afternoon. 그 때 예수께서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우리에게 와서, 우리가 병든 이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을 했다고 화내기 전에 떠나자.” 그래서 그들은 동료들과 함께 하려고 성전으로 돌아갔고, 그들 모두 베다니에서 밤을 지내려고 곧 떠났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과 예수가 이 안식일 오후에 베데스다의 물웅덩이에 들렀다고 다른 사도들에게 결코 말하지 않았습니다.
4. The Rule of Living
200105 황금률(黃金律) 1 마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So in everything, 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for this sums up the Law and the Prophets
147:4.1 (1650.2) On the evening of this same Sabbath day, at Bethany, while Jesus, the twelve, and a group of believers were assembled about the fire in Lazarus’s garden, Nathaniel asked Jesus this question: “Master, although you have taught us the positive version of the old rule of life, instructing us that we should do to others as we wish them to do to us, I do not fully discern how we can always abide by such an injunction. Let me illustrate my contention by citing the example of a lustful man who thus wickedly looks upon his intended consort in sin. How can we teach that this evil-intending man should do to others as he would they should do to him?” 바로 이 안식일 저녁에 베다니에서 예수님과 12사도들 및 신자 일행이 나사로의 정원 불 옆에 모였을 때, 나다니엘이 예수께 이 질문을 했습니다. “주(主)여, 남들이 우리에게 행하기를 바라듯이 우리가 남들에게 행해야한다고 가르치시며, 옛 생활 규칙에 대한 명백한 해석을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셨지만 그런 명령을 우리가 항상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저는 충분히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약혼자를 그토록 거칠게 범하려는 호색한(好色漢)의 예로 제 주장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악행하려는 사람에게 타인들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가 타인들에게 해야 한다고 우리가 어떻게 가르칠 수 있습니까?”
147:4.2 (1650.3) When Jesus heard Nathaniel’s question, he immediately stood upon his feet and, pointing his finger at the apostle, said: “Nathaniel, Nathaniel! What manner of thinking is going on in your heart? Do you not receive my teachings as one who has been born of the spirit? Do you not hear the truth as men of wisdom and spiritual understanding? When I admonished you to do 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I spoke to men of high ideals, not to those who would be tempted to distort my teaching into a license for the encouragement of evil-doing.” 예수께서 나다니엘의 질문을 듣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사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니엘아, 나다니엘아! 네 심정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너는 영(靈)으로 난 자로서 내 가르침들을 받아들이지 않느냐? 너는 지혜와 영적 분별의 사람으로서 진리를 듣지 않느냐? 타인들이 너희에게 해주기 바라는 것처럼 너희가 타인들에게 행하라고 내가 너희에게 타이를 때, 나는 높은 이상(理想)의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지, 내 가르침을 왜곡하여 악행을 조장하는 방종으로 부추기는 자들에게 하지 않았느니라.”
147:4.3 (1650.4) When the Master had spoken, Nathaniel stood up and said: “But, Master, you should not think that I approve of such an interpretation of your teaching. I asked the question because I conjectured that many such men might thus misjudge your admonition, and I hoped you would give us further instruction regarding these matters.” And then when Nathaniel had sat down, Jesus continued speaking: “I well know, Nathaniel, that no such idea of evil is approved in your mind, but I am disappointed in that you all so often fail to put a genuinely spiritual interpretation upon my commonplace teachings, instruction which must be given you in human language and as men must speak. Let me now teach you concerning the differing levels of meaning attached to the interpretation of this rule of living, this admonition to ‘do to others that which you desire others to do to you’: 주(主)께서 말을 마치자, 나다니엘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主)여, 제가 선생님의 가르침에 대한 그런 해석을 찬성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권고를 그렇게 잘못 본다고 제가 추측하고, 이 문제들에 관해 설명을 더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질문을 드립니다.” 그리고 나서 나다니엘이 자리에 앉자, 예수께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니엘아, 네 마음으로 그런 악한 관념을 지지하지 않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지만, 나는 너희 모두 그렇게 자주 내 평범한 가르침들, 즉 인간 언어로 사람들이 말해야 하는 대로 너희에게 주어져야 하는 교훈을 참되게 영적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실망하노라. ‘타인들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타인들에게 행하라.’는 이 생활 규칙, 즉 이 권고에 대한 해석에 첨부된 다른 차원의 의미에 관해 이제 내가 너희를 가르치리라.”
147:4.4 (1650.5) “1. The level of the flesh. Such a purely selfish and lustful interpretation would be well exemplified by the supposition of your question. 육신의 차원. 그렇게 순전히 이기적이고 호색적인 해석은 네 질문의 추측(推測)으로 잘 예시되느니라.
147:4.5 (1650.6) “2. The level of the feelings. This plane is one level higher than that of the flesh and implies that sympathy and pity would enhance one’s interpretation of this rule of living. 느낌의 차원. 이 수준은 육신의 차원보다 한 차원 높으며, 이 삶의 규칙에 대한 자신의 해석은 공감(共感)과 연민(憐愍)으로 향상될 것을 뜻하느니라.
147:4.6 (1650.7) “3. The level of mind. Now come into action the reason of mind and the intelligence of experience. Good judgment dictates that such a rule of living should be interpreted in consonance with the highest idealism embodied in the nobility of profound self-respect. 마음의 차원. 마음의 이성(理性)과 체험의 지능을 이제 실행하라. 그런 생활 규칙은 최고의 이상주의(理想主義)와 조화롭게 해석되고 심오한 자기-존중의 고귀함으로 구현되어야 한다고 현명한 판단이 지시하느니라.
200112 황금률(黃金律) 2 눅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Do 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147:4.7 (1651.1) “4. The level of brotherly love. Still higher is discovered the level of unselfish devotion to the welfare of one’s fellows. On this higher plane of wholehearted social service growing out of the consciousness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consequent recognition of the brotherhood of man, there is discovered a new and far more beautiful interpretation of this basic rule of life. 형제 사랑의 차원. 더 높은 차원에서 자기 동료들의 복지(福祉)를 위한 이타적 헌신이 발견되니라. 전심을 다해 사회적으로 봉사하는 더 높은 수준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의식한 결과 사람의 형제 됨을 인식하여 발생하며, 거기에서 생활의 이 기본 규칙에 대한 새롭고 훨씬 아름다운 해석이 발견되느니라.
147:4.8 (1651.2) “5. The moral level. And then when you attain true philosophic levels of interpretation, when you have real insight into the rightness and wrongness of things, when you perceive the eternal fitness of human relationships, you will begin to view such a problem of interpretation as you would imagine a high-minded, idealistic, wise, and impartial third person would so view and interpret such an injunction as applied to your personal problems of adjustment to your life situations. 도덕의 차원. 그 후 너희가 해석의 참된 철학적 차원에 도달하고, 사물의 옳고 그름에 대한 실제 통찰력을 지니며, 인간관계의 영원한 적합성(適合性)을 감지하면, 너희가 고상하고, 이상주의(理想主義)적이며, 현명하고, 공평한 제3자가 그런 명령을 그렇게 보고 해석하리라고 너희가 상상하듯이, 너희 생활환경에 너희가 개인적으로 조율할 문제를 적용하듯이, 너희가 그런 해석의 문제로 판단하기 시작하리라.
147:4.9 (1651.3) “6. The spiritual level. And then last, but greatest of all, we attain the level of spirit insight and spiritual interpretation which impels us to recognize in this rule of life the divine command to treat all men as we conceive God would treat them. That is the universe ideal of human relationships. And this is your attitude toward all such problems when your supreme desire is ever to do the Father’s will. I would, therefore, that you should do to all men that which you know I would do to them in like circumstances.” 영적 차원. 그리고 그 다음에 마지막이지만 가장 중요한, 영(靈) 통찰력과 영적 해석의 차원에 우리가 도달하는데, 이것이 우리를 재촉하여 이 생활 규칙에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을 대하신다고 우리가 생각하듯이 모든 사람들을 대하라는, 신적 명령을 알아보게 하느니라. 그것이 인간관계의 우주 이상(理想)이니라. 너희 최고 소망이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면 이것이 그런 모든 문제들을 향한 너희의 태도이니라. 그러므로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모든 이들에게 행할 것이라고 너희가 아는 것을 너희가 그들에게 행하기를 내가 바라노라.
147:4.10 (1651.4) Nothing Jesus had said to the apostles up to this time had ever more astonished them. They continued to discuss the Master’s words long after he had retired. While Nathaniel was slow to recover from his supposition that Jesus had misunderstood the spirit of his question, the others were more than thankful that their philosophic fellow apostle had had the courage to ask such a thought-provoking question. 이때까지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중에서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물러나신 후 오래도록 그들은 주(主)님의 말씀을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예수께서 나다니엘의 질문에 담긴 참뜻을 오해하셨다는 그의 추측으로부터 그는 천천히 회복되었지만, 다른 사도들은 철학적인 동료 사도가 그런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여쭐 용기를 지닌 것에 대해 아주 고맙게 여겼습니다.
5. Visiting Simon the Pharisee 바리새인 시몬을 방문하다
200119 대금업자(貸金業者)의 비유 눅 7:36-50 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36 Now one of the Pharisees invited Jesus to have dinner with him, so he went to the Pharisee’s house and reclined at the table. 37 When a woman who had lived a sinful life in that town learned that Jesus was eating at the Pharisee’s house, she brought an alabaster jar of perfume, 38 and as she stood behind him at his feet weeping, she began to wet his feet with her tears. Then she wiped them with her hair, kissed them and poured perfume on them. 39 When the Pharisee who had invited him saw this, he said to himself, “If this man were a prophet, he would know who is touching him and what kind of woman she is—that she is a sinner.” 40 Jesus answered him, “Simon, I have something to tell you.” “Tell me, teacher,” he said. 41 “Two men owed money to a certain moneylender. One owed him five hundred denarii, and the other fifty. 42 Neither of them had the money to pay him back, so he canceled the debts of both. Now which of them will love him more?” 43 Simon replied, “I suppose the one who had the bigger debt canceled.” “You have judged correctly,” Jesus said. 44 Then he turned toward the woman and said to Simon, “Do you see this woman? I came into your house. You did not give me any water for my feet, but she wet my feet with her tears and wiped them with her hair. 45 You did not give me a kiss, but this woman, from the time I entered, has not stopped kissing my feet. 46 You did not put oil on my head, but she has poured perfume on my feet. 47 Therefore, I tell you, her many sins have been forgiven—for she loved much. But he who has been forgiven little loves little.” 48 Then Jesus said to her, “Your sins are forgiven.” 49 The other guests began to say among themselves, “Who is this who even forgives sins?” 50 Jesus said to the woman, “Your faith has saved you; go in peace.”
147:5.1 (1651.5) Though Simon was not a member of the Jewish Sanhedrin, he was an influential Pharisee of Jerusalem. He was a halfhearted believer, and notwithstanding that he might be severely criticized therefor, he dared to invite Jesus and his personal associates, Peter, James, and John, to his home for a social meal. Simon had long observed the Master and was much impressed with his teachings and even more so with his personality. 시몬은 유대의 산헤드린 회원이 아니었지만, 예루살렘에서 영향력 있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열의 없는 신자로서, 심하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대담하게 예수님과 그의 개인 동료들, 베드로, 야고보 및 요한을 자기 집에서 교제하며 식사하도록 초대했습니다. 시몬은 주(主)님을 오랫동안 지켜보았고, 그의 가르침과 심지어 그의 고유성에 그토록 더 감명을 받았습니다.
147:5.2 (1651.6) The wealthy Pharisees were devoted to almsgiving, and they did not shun publicity regarding their philanthropy. Sometimes they would even blow a trumpet as they were about to bestow charity upon some beggar. It was the custom of these Pharisees, when they provided a banquet for distinguished guests, to leave the doors of the house open so that even the street beggars might come in and, standing around the walls of the room behind the couches of the diners, be in position to receive portions of food which might be tossed to them by the banqueters. 부유한 바리새인들은 자선에 전념했으며 자신들의 자선행위에 대한 선전(宣傳)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때로 그들은 어떤 거지에게 자선을 베풀려고 할 때 나팔까지 불곤 했습니다. 이 바리새인들이 귀빈(貴賓)을 위해 연회(宴會)할 때, 집의 문들을 열어서 거리의 거지들까지 들어오게 하여, 식사하는 자들의 소파 뒤로 그 방의 벽에 둘러서서, 연회 손님들이 그들에게 던져 줄 수도 있는 음식 조각들을 받도록 자리를 잡게 한 것이 그들의 관례였습니다.
147:5.3 (1651.7) On this particular occasion at Simon’s house, among those who came in off the street was a woman of unsavory reputation who had recently become a believer in the good new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This woman was well known throughout all Jerusalem as the former keeper of one of the so-called high-class brothels located hard by the temple court of the gentiles. She had, on accepting the teachings of Jesus, closed up her nefarious place of business and had induced the majority of the women associated with her to accept the gospel and change their mode of living; notwithstanding this, she was still held in great disdain by the Pharisees and was compelled to wear her hair down — the badge of harlotry. This unnamed woman had brought with her a large flask of perfumed anointing lotion and, standing behind Jesus as he reclined at meat, began to anoint his feet while she also wet his feet with her tears of gratitude, wiping them with the hair of her head. And when she had finished this anointing, she continued weeping and kissing his feet. 이 특별한 날 시몬의 집에, 거리에서 들어온 자들 중에 평판이 좋지 않은 여성이 있었는데, 최근에 하나님 나라 복음의 기쁜 소식을 믿었습니다. 이 여성은 이방인들의 성전 뜰 바로 옆에 있는 소위 고급 사창가(私娼街) 중 하나를 운영하던 이전 포주(抱主)로서 예루살렘 전체에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후, 부도덕한 자기 사업장을 닫고, 자기와 관련된 대부분의 여성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도록 했습니다. 이렇지만,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그녀를 아주 경멸했으며, 매춘의 표시로 머리를 늘어뜨리도록 강요했습니다. 무명(無名)의 이 여성이 커다란 향유(香油) 로션 병을 가져와, 소파에 기대어 식사 중인 예수님 뒤에 서서, 그의 발에 향유를 붓고 또한 감사의 눈물로 그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 향유를 부어 바르기를 마친 후, 그녀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그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147:5.4 (1652.1) When Simon saw all this, he said to himself: “This man, if he were a prophet, would have perceived who and what manner of woman this is who thus touches him; that she is a notorious sinner.” And Jesus, knowing what was going on in Simon’s mind, spoke up, saying: “Simon, I have something which I would like to say to you.” Simon answered, “Teacher, say on.” Then said Jesus: “A certain wealthy moneylender had two debtors. The one owed him five hundred denarii and the other fifty. Now, when neither of them had wherewith to pay, he forgave them both. Which of them do you think, Simon, would love him most?” Simon answered, “He, I suppose, whom he forgave the most.” And Jesus said, “You have rightly judged,” and pointing to the woman, he continued: “Simon, take a good look at this woman. I entered your house as an invited guest, yet you gave me no water for my feet. This grateful woman has washed my feet with tears and wiped them with the hair of her head. You gave me no kiss of friendly greeting, but this woman, ever since she came in, has not ceased to kiss my feet. My head with oil you neglected to anoint, but she has anointed my feet with precious lotions. And what is the meaning of all this? Simply that her many sins have been forgiven, and this has led her to love much. But those who have received but little forgiveness sometimes love but little.” And turning around toward the woman, he took her by the hand and, lifting her up, said: “You have indeed repented of your sins, and they are forgiven. Be not discouraged by the thoughtless and unkind attitude of your fellows; go on in the joy and liberty of the kingdom of heaven.” 시몬이 이 모든 것을 보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선지자라면, 이렇게 자기를 만지는 이 여성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 즉 악명이 높은 죄인인줄 알았으리라.” 그러자 예수님은 시몬의 마음에 있었던 것을 아시고, 크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노라.” 시몬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계속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부유한 (고리) 대금업자(貸金業者)에게 빚진 자 둘이 있었느니라. 하나는 그에게 오백 데나리온(옛 로마의 은화)의 빚이 있고, 다른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의 빚이 있었노라. 그런데 둘 다 갚을 것이 없어서, 그가 둘 다 면제했느니라. 시몬아, 네 생각에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했습니다. “많이 면제 받은 자이겠지요.” 그러자 예수께서 “네 판단이 옳도다.”라며 여자를 가리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이 여인을 잘 보아라. 나는 너의 집에 초대된 손님으로 들어 왔지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을 주지 않았느니라. 감사하는 이 여인은 눈물로 내 발을 씻고, 자기 머리털로 그것들을 닦았느니라. 너는 내게 친절한 환영의 입맞춤을 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들어온 이후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았느니라.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붓지 않았으나, 그녀는 귀한 로션을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 모든 것의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정말로 그녀의 많은 죄는 용서받았고 이것 때문에 그녀가 많이 사랑했느니라. 그러나 단지 조금 용서 받은 자들은 때로 조금밖에 사랑하지 않느니라.” 그리고 여인을 향해 돌이켜,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정말로 네 죄를 회개했으며 그것들은 용서받았느니라. 생각이 모자라고 몰인정한 네 동료들의 태도에 낙담하지 말라. 하늘나라의 기쁨과 해방으로 살아가라.”
147:5.5 (1652.2) When Simon and his friends who sat at meat with him heard these words, they were the more astonished, and they began to whisper among themselves, “Who is this man that he even dares to forgive sins?” And when Jesus heard them thus murmuring, he turned to dismiss the woman, saying, “Woman, go in peace; your faith has saved you.” 그와 함께 식탁에 앉았던 시몬과 그의 친구들은 이 말씀들을 듣자, 그들은 더 깜짝 놀라 “이 사람이 누군데 자기가 감히 죄를 용서하기까지 하는가?”라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런 군말을 들으시자, 그 여인을 보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아, 평안히 가라. 네 신앙이 너를 구원했느니라.”
147:5.6 (1652.3) As Jesus arose with his friends to leave, he turned to Simon and said: “I know your heart, Simon, how you are torn betwixt faith and doubts, how you are distraught by fear and troubled by pride; but I pray for you that you may yield to the light and may experience in your station in life just such mighty transformations of mind and spirit as may be comparable to the tremendous changes which the gospel of the kingdom has already wrought in the heart of your unbidden and unwelcome guest. And I declare to all of you that the Father has opened the doors of the heavenly kingdom to all who have the faith to enter, and no man or association of men can close those doors even to the most humble soul or supposedly most flagrant sinner on earth if such sincerely seek an entrance.” And Jesus, with Peter, James, and John, took leave of their host and went to join the rest of the apostles at the camp in the garden of Gethsemane. 예수께서 자기 친구들과 함께 떠나려고 일어나면서, 시몬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네가 신앙과 의심 사이에서 얼마나 찢기는지, 네가 얼마나 두려움으로 미칠 듯 하고, 자존심으로 괴로워하는지, 나는 네 심정을 알고 있느니라. 그러나 나는 네가 빛을 따르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초대받지 않고 달갑지 않은 네 손님의 심정에 이미 일으킨, 엄청난 변화들에 해당될 수도 있는 바로 그런 강력한 마음과 영의 변환이, 네 삶의 자리에서 체험하도록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노라. 그리고 내가 너희 모두에게 선언하노니, 아버지께서 신앙을 지닌 모두가 들어오도록 하늘나라의 문들을 여셨으니, 가장 비천한 혼 혹은 아마 지상에서 가장 극악한 죄인들도 그토록 신실히 들어가려고 하면, 어떤 사람이나 집단도 그 문들을 닫을 수 없느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및 요한과 함께 집주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 겟세마네 동산 야영지에 있는 나머지 사도들과 합류하러 갔습니다.
200126 신분(身分자격)과 진보(進步) 히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by a new and living way opened for us through the curtain, that is, his body,
147:5.7 (1653.1) That same evening Jesus made the long-to-be-remembered address to the apostles regarding the relative value of status with God and progress in the eternal ascent to Paradise. Said Jesus: “My children, if there exists a true and living connection between the child and the Father, the child is certain to progress continuously toward the Father’s ideals. True, the child may at first make slow progress, but the progress is none the less sure. The important thing is not the rapidity of your progress but rather its certainty. Your actual achievement is not so important as the fact that the direction of your progress is Godward. What you are becoming day by day is of infinitely more importance than what you are today. 그 날 저녁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신분(身分자격)의 상대적(相對的) 가치(價値)와 천국을 향한 영원한 상승의 진보(進步)에 관해 오래 기억되어야 할 연설을 사도들에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자녀들아, 아이와 아버지 사이에 진실로 살아있는 연결이 존재한다면, 그 아이는 아버지의 이상(理想)들을 향해 계속 진보할 것이 확실하니라. 사실, 그 아이는 처음에 서서히 진보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진보는 확실하니라. 중요한 것은 너희 진보(進步)의 속도(速度)가 아니라, 오히려 그 확실성(確實性)이니라. 너희 진보(進步)의 방향(方向)이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사실보다 너희의 실제적 성취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느니라. 매일 너희가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가 오늘 너희가 무엇인지보다 무한히 더욱 중요하니라.
147:5.8 (1653.2) “This transformed woman whom some of you saw at Simon’s house today is, at this moment, living on a level which is vastly below that of Simon and his well-meaning associates; but while these Pharisees are occupied with the false progress of the illusion of traversing deceptive circles of meaningless ceremonial services, this woman has, in dead earnest, started out on the long and eventful search for God, and her path toward heaven is not blocked by spiritual pride and moral self-satisfaction. The woman is, humanly speaking, much farther away from God than Simon, but her soul is in progressive motion; she is on the way toward an eternal goal. There are present in this woman tremendous spiritual possibilities for the future. Some of you may not stand high in actual levels of soul and spirit, but you are making daily progress on the living way opened up, through faith, to God. There are tremendous possibilities in each of you for the future. Better by far to have a small but living and growing faith than to be possessed of a great intellect with its dead stores of worldly wisdom and spiritual unbelief.” “너희 중 몇 명이 오늘 시몬의 집에서 봤던 변화된 이 여인은 이 순간, 시몬과 선의(善意)를 가진 그의 동료들보다 상당히 아래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느니라. 그러나 이 바리새인들이 무의미(無意味)한 전례(典禮)식에 속한 기만(欺瞞) 집단을 오가며 망상(妄想)의 거짓 진보에 골몰하는 동안, 이 여인은 아주 진지하게 하나님을 향하여 길고 중대한 추구를 시작했으며, 천국을 향한 그녀의 경로는 영적 자만(自慢)이나 도덕적 자기-만족으로 막혀있지 않느니라. 인간의 입장에서, 여인은 시몬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떠나 있지만, 그녀의 혼은 전진 운동 중에 있느니라. 그녀는 영원한 목적을 향한 도중에 있느니라. 이 여인에게는 미래의 엄청난 영적 가능성들이 있느니라. 너희 중 더러는 혼과 영의 실제적 차원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너희는 신앙을 통해 하나님을 향해 위로 열린 살아있는 길에서 매일 진보하고 있느니라. 너희 각자에게는 미래를 위한 엄청난 가능성들이 있느니라. 죽은 세속적 지혜와 영적 불신으로 가득한 위대한 지성을 소유하기보다 작아도 살아있어 성장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훨씬 좋으니라.”
147:5.9 (1653.3) But Jesus earnestly warned his apostles against the foolishness of the child of God who presumes upon the Father’s love. He declared that the heavenly Father is not a lax, loose, or foolishly indulgent parent who is ever ready to condone sin and forgive recklessness. He cautioned his hearers not mistakenly to apply his illustrations of father and son so as to make it appear that God is like some overindulgent and unwise parents who conspire with the foolish of earth to encompass the moral undoing of their thoughtless children, and who are thereby certainly and directly contributing to the delinquency and early demoralization of their own offspring. Said Jesus: “My Father does not indulgently condone those acts and practices of his children which are self-destructive and suicidal to all moral growth and spiritual progress. Such sinful practices are an abomination in the sight of God.” 그러나 예수님은 진심으로 자기 사도들에게 하나님 자녀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이용하는(생각 없이 믿는) 어리석음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하늘 아버지는, 언제나 죄를 눈감아주고 무모함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부모, 즉 트릿하고(똑똑하지 않고), 흐리터분(분명하지 못)하며, 미련하게 눈감아주는 부모가 아니라고 그가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지나친 응석을 받아주는 분별없는 부모들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자신의 실례들을 오해하여 적용하지 말라고 그는 청중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런 부모들은 지상의 어리석음과 공모(共謀)하여 경솔한 자기 자녀들의 도덕적 파멸을 초래하여서, 자기 자녀들의 비행(非行나쁜 짓)과 초기 타락에 확실히 직접적인 원인이 되느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는, 모든 도덕적 성장과 영적 진보에 자멸(自滅자기 파괴)적이며 자포(自暴자살적 자기포기)적인, 자기 자녀의 그런 행위들과 관례들을 너그럽게 눈감아주지 않느니라. 그런 죄받을 실행들은 하나님 앞에서 혐오(嫌惡몹시 질색하여 증오함)를 불러 일으키느니라.”
147:5.10 (1653.4) Many other semiprivate meetings and banquets did Jesus attend with the high and the low, the rich and the poor, of Jerusalem before he and his apostles finally departed for Capernaum. And many, indeed, became believers in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were subsequently baptized by Abner and his associates, who remained behind to foster the interests of the kingdom in Jerusalem and thereabouts. 예수님은 사도들과 함께 마침내 가버나움으로 떠나기 전에, 예루살렘의 높고 낮은 자들 및 부자와 가난한 자들과 함께, 반쯤 사사로운 여러 다른 모임들과 연회들에 참석하셨습니다. 다수가 정말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신자들이 되었고, 예루살렘과 근처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려고 뒤에 남았던 아브너와 그의 동료들에게 나중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6. Returning to Capernaum 가버나움으로 돌아옴
200202 인자(人子)는 안식일의 주인 막2:23-28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23 One Sabbath Jesus was going through the grainfields, and as his disciples walked along, they began to pick some heads of grain. 24 The Pharisees said to him, “Look, why are they doing what is unlawful on the Sabbath?” 25 He answered, “Have you never read what David did when he and his companions were hungry and in need? 26 In the days of Abiathar the high priest, he entered the house of God and ate the consecrated bread, which is lawful only for priests to eat. And he also gave some to his companions.” 27 Then he said to them, “The Sabbath was made for man, not man for the Sabbath. 28 So the Son of Man is Lord even of the Sabbath.”
147:6.1 (1653.5) The last week of April, Jesus and the twelve departed from their Bethany headquarters near Jerusalem and began their journey back to Capernaum by way of Jericho and the Jordan. 4월(AD 28. 4.24 토 이후) 마지막 주간에 예수님과 12사도들은 예루살렘 근처 그들의 베다니 본부를 떠나, 여리고와 요단을 경유하여 원래의 가버나움으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147:6.2 (1654.1) The chief priests and the religious leaders of the Jews held many secret meetings for the purpose of deciding what to do with Jesus. They were all agreed that something should be done to put a stop to his teaching, but they could not agree on the method. They had hoped that the civil authorities would dispose of him as Herod had put an end to John, but they discovered that Jesus was so conducting his work that the Roman officials were not much alarmed by his preaching. Accordingly, at a meeting which was held the day before Jesus’ departure for Capernaum, it was decided that he would have to be apprehended on a religious charge and be tried by the Sanhedrin. Therefore a commission of six secret spies was appointed to follow Jesus, to observe his words and acts, and when they had amassed sufficient evidence of lawbreaking and blasphemy, to return to Jerusalem with their report. These six Jews caught up with the apostolic party, numbering about thirty, at Jericho and, under the pretense of desiring to become disciples, attached themselves to Jesus’ family of followers, remaining with the group up to the time of the beginning of the second preaching tour in Galilee; whereupon three of them returned to Jerusalem to submit their report to the chief priests and the Sanhedrin. 대제사장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결정하려고 여러 비밀모임을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중단시킬 어떤 것을 해야만 한다고 모두 동의했지만,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 할 수 없었습니다. 헤롯이 요한을 끝냈듯이 행정당국이 예수님을 처리해주기를 그들이 기대했지만, 예수님의 전도로 인하여 로마 관리들이 너무 불안하지 않도록 예수님이 자신의 업무를 잘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떠나기 전 날 열렸던 모임에서, 그는 종교적인 혐의(嫌疑)로 체포되어 산헤드린(고대 예루살렘 최고 재판소)에서 재판되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 결과 여섯 명의 비밀 첩자 위원회가 임명받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관찰하고 율법위반과 신성모독의 증거를 충분히 모으면 보고서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했습니다. 이 여섯 유대인들은 약 30명 정도 되는 사도 일행을 여리고에서 따라 잡았으며, 제자들이 되기를 바라는 듯이 보이면서 예수 추종파로 들러붙어서 갈릴리에서 두 번째 전도 여행을 시작할 때까지 일행과 함께 남아 있었습니다. 그 후 그들 중 세 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대사장들과 산헤드린에게 자신들의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147:6.3 (1654.2) Peter preached to the assembled multitude at the crossing of the Jordan, and the following morning they moved up the river toward Amathus. They wanted to proceed straight on to Capernaum, but such a crowd gathered here they remained three days, preaching, teaching, and baptizing. They did not move toward home until early Sabbath morning, the first day of May. The Jerusalem spies were sure they would now secure their first charge against Jesus — that of Sabbath breaking — since he had presumed to start his journey on the Sabbath day. But they were doomed to disappointment because, just before their departure, Jesus called Andrew into his presence and before them all instructed him to proceed for a distance of only one thousand yards, the legal Jewish Sabbath day’s journey. 베드로는 요단강 건널목에서 모여 있는 대중에게 설교했으며,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아마투스를 향해 강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들은 가버나움에 바로 가려고 했지만, 그렇게 많은 무리가 여기로 모여들어 삼 일 동안 머물며 설교하고, 가르치며, 세례를 주었습니다. 5월의 첫 날, 안식일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그들은 집으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대담하게 안식일에 여행을 떠나려 했으니, 예루살렘 첩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그들의 첫 혐의 – 안식일 준수 위반 –를 지금 확보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기 직전에 예수께서 안드레를 그의 앞으로 불러, 그들 모두 앞에서 유대 안식일의 법적 여행 거리, 1,000 야드(914미터)만 가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그들은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147:6.4 (1654.3) But the spies did not have long to wait for their opportunity to accuse Jesus and his associates of Sabbath breaking. As the company passed along the narrow road, the waving wheat, which was just then ripening, was near at hand on either side, and some of the apostles, being hungry, plucked the ripe grain and ate it. It was customary for travelers to help themselves to grain as they passed along the road, and therefore no thought of wrongdoing was attached to such conduct. But the spies seized upon this as a pretext for assailing Jesus. When they saw Andrew rub the grain in his hand, they went up to him and said: “Do you not know that it is unlawful to pluck and rub the grain on the Sabbath day?” And Andrew answered: “But we are hungry and rub only sufficient for our needs; and since when did it become sinful to eat grain on the Sabbath day?” But the Pharisees answered: “You do no wrong in eating, but you do break the law in plucking and rubbing out the grain between your hands; surely your Master would not approve of such acts.” Then said Andrew: “But if it is not wrong to eat the grain, surely the rubbing out between our hands is hardly more work than the chewing of the grain, which you allow; wherefore do you quibble over such trifles?” When Andrew intimated that they were quibblers, they were indignant, and rushing back to where Jesus walked along, talking to Matthew, they protested, saying: “Behold, Teacher, your apostles do that which is unlawful on the Sabbath day; they pluck, rub, and eat the grain. We are sure you will command them to cease.” And then said Jesus to the accusers: “You are indeed zealous for the law, and you do well to remember the Sabbath day to keep it holy; but did you never read in the Scripture that, one day when David was hungry, he and they who were with him entered the house of God and ate the showbread, which it was not lawful for anyone to eat save the priests? and David also gave this bread to those who were with him. And have you not read in our law that it is lawful to do many needful things on the Sabbath day? And shall I not, before the day is finished, see you eat that which you have brought along for the needs of this day? My good men, you do well to be zealous for the Sabbath, but you would do better to guard the health and well-being of your fellows. I declare that the Sabbath was made for man and not man for the Sabbath. And if you are here present with us to watch my words, then will I openly proclaim that the Son of Man is lord even of the Sabbath.” 그러나 첩자들은 안식일 준수 위반으로 예수님과 사도들을 고소할 기회를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일행이 좁은 길을 지날 때, 양쪽 근처 가까이에 아주 잘 익은 밀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몇 사도가 배가 고파, 익은 이삭을 뜯어 먹었습니다. 나그네들이 길을 가면서 스스로 낟알로 만드는 일은 일상적이라서 그런 행위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첩자들은 이것을 예수님을 공격할 구실로 삼았습니다. 그들이 손으로 이삭을 비비는 안드레를 보자, 그에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당신이 안식일에 이삭을 뜯어 비비는 것이 불법임을 모릅니까?” 그러자 안드레가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배가 고파서 필요한 만큼만 비볐는데, 언제부터 안식일에 이삭을 먹는 것이 죄가 되었습니까?”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대답했습니다. “먹는 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비는 일은 법을 위반한 일이니, 당신의 주(主)께서 그런 행동을 분명히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안드레가 말했습니다. “이삭 먹기가 잘못이 아니라면, 우리 손으로 비비는 일은 너희가 인정한 낟알 씹는 일보다 분명히 더한 일이 전혀 아닙니다. 왜 그런 하찮은 일로 트집을 잡습니까?” 그들이 궤변가들이라고 안드레가 넌지시 비치자, 그들은 화가 나서, 마태와 함께 이야기하며 예수께서 걷던 곳으로 급히 돌아가 항의하며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선생님, 당신의 사도들이 안식일에 불법한 일을 행합니다. 그들이 이삭을 따서 비벼 먹습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그만 두도록 명령하리라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비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실로 율법에 열심이며, 거룩히 지키라는 안식일을 너희는 잘 기억하는도다. 그러나 어느 날 다윗이 배가 고파서, 그와 함께 있던 자들과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제단(祭壇)의 빵을 먹었으며, 그것은 제사장들 외에 누구라도 먹으면 율법이 아니었음을 너희는 성서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그리고 다윗은 또한 이 빵을 자신과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었느니라. 그리고 안식일에 여러 필요한 것들을 하는 일이 율법적임을 너희는 우리 율법에서 읽지 않았느냐? 그리고 날이 다가기 전에 오늘의 필요를 위해 너희가 기른 것을 너희가 먹는 모습을 내가 봐야 하지 않겠느냐? 내 선한 사람들아, 너희가 안식일을 위해 열심인 것은 잘하는 일이지만, 너희 동료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것이 더 좋으니라.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내가 선언하노라. 너희가 내 말을 감시하려고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다면, 인자(人子)는 안식일에도 주인임을 내가 공공연히 선포하리라.“
147:6.5 (1655.1) The Pharisees were astonished and confounded by his words of discernment and wisdom. For the remainder of the day they kept by themselves and dared not ask any more questions. 바리새인들은 그의 분별이 있고 지혜로운 말씀에 깜짝 놀라서 당황했습니다. 남은 그날 그들은 자기들끼리 있으면서 더 이상 감히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147:6.6 (1655.2) Jesus’ antagonism to the Jewish traditions and slavish ceremonials was always positive. It consisted in what he did and in what he affirmed. The Master spent little time in negative denunciations. He taught that those who know God can enjoy the liberty of living without deceiving themselves by the licenses of sinning. Said Jesus to the apostles: “Men, if you are enlightened by the truth and really know what you are doing, you are blessed; but if you know not the divine way, you are unfortunate and already breakers of the law.” 유대 전통들과 노예적 전례(典禮)들에 대한 예수님의 반대는 언제나 적극적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행하셨고 확언하신 것이었습니다. 주(主)님은 소극적인 탄핵(彈劾비난)에는 거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범죄의 방종으로 자기에게 편리하게 잘못 생각하지 않고 생활하는 해방을 누릴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아, 너희가 진리로 깨어나 너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말로 안다면, 너희는 복되니라. 그러나 너희가 신적 길을 모른다면, 너희는 불행하며, 이미 율법의 파괴자들이니라.”
7. Back in Capernaum 가버나움으로 되돌아옴
200209 참된 것을 받아들일 신앙과 용기 눅5:33-39 33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35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3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33 They said to him, “John’s disciples often fast and pray, and so do the disciples of the Pharisees, but yours go on eating and drinking.” 34 Jesus answered, “Can you make the guests of the bridegroom fast while he is with them? 35 But the time will come when the bridegroom will be taken from them; in those days they will fast.” 36 He told them this parable: “No one tears a patch from a new garment and sews it on an old one. If he does, he will have torn the new garment, and the patch from the new will not match the old. 37 And no one pours new wine into old wineskins. If he does, the new wine will burst the skins, the wine will run out and the wineskins will be ruined. 38 No, new wine must be poured into new wineskins. 39 And no one after drinking old wine wants the new, for he says, ‘The old is better.’ “
147:7.1 (1655.3) It was around noon on Monday, May 3, when Jesus and the twelve came to Bethsaida by boat from Tarichea. They traveled by boat in order to escape those who journeyed with them. But by the next day the others, including the official spies from Jerusalem, had again found Jesus. 예수님과 12사도들이 타리케아에서 배를 타고 벳새다로 온 때는 5월 3일(AD 28) 월요일 정오 무렵이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여행하던 자들을 피하려고 배로 여행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예루살렘에서 온 공인(公認)된 첩자들이 포함된 다른 이들이 다시 예수님을 찾아냈습니다.
147:7.2 (1655.4) On Tuesday evening Jesus was conducting one of his customary classes of questions and answers when the leader of the six spies said to him: “I was today talking with one of John’s disciples who is here attending upon your teaching, and we were at a loss to understand why you never command your disciples to fast and pray as we Pharisees fast and as John bade his followers.” And Jesus, referring to a statement by John, answered this questioner: “Do the sons of the bridechamber fast while the bridegroom is with them? As long as the bridegroom remains with them, they can hardly fast. But the time is coming when the bridegroom shall be taken away, and during those times the children of the bridechamber undoubtedly will fast and pray. To pray is natural for the children of light, but fasting is not a part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heaven. Be reminded that a wise tailor does not sew a piece of new and unshrunk cloth upon an old garment, lest, when it is wet, it shrink and produce a worse rent. Neither do men put new wine into old wine skins, lest the new wine burst the skins so that both the wine and the skins perish. The wise man puts the new wine into fresh wine skins. Therefore do my disciples show wisdom in that they do not bring too much of the old order over into the new teaching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You who have lost your teacher may be justified in fasting for a time. Fasting may be an appropriate part of the law of Moses, but in the coming kingdom the sons of God shall experience freedom from fear and joy in the divine spirit.” And when they heard these words, the disciples of John were comforted while the Pharisees themselves were the more confounded. 화요일 저녁에 예수께서 한 학급의 일상적 질의응답을 인도하실 때, 여섯 첩자의 두목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 여기에서 선생님의 수업에 참석한 요한의 제자 중 하나와 얘기했는데, 우리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요한이 자기 신도들에게 시킨 것처럼, 당신의 제자들에게 금식하고 기도하라고 당신께서 명하지 않으신 이유를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요한의 진술을 언급하면서 이 질문자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신랑이 결혼 첫날밤을 보내는 방의 아들들(신랑 친구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 그들이 금식하느냐? 신랑이 그들과 함께 있는 한 그들은 결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때가 오리니, 그 때는 결혼 첫날밤을 보내는 방의 자녀들(신랑 친구들)이 확실히 금식하고 기도하리라. 기도하는 것은 빛의 자녀들에게 자연스럽지만, 금식은 하늘나라 복음의 부분이 아니니라. 현명한 재단사(裁斷師)는, 새 헝겊 조각이 젖으면 줄어들어서 해어진(닳아서 떨어진) 틈이 더 벌어지지 않도록, 헌 옷에 오그라들지 않은 새 헝겊 조각으로 깁지 않음을 생각해보라. 새 포도주가 가죽부대들을 터뜨려 포도주와 가죽부대 둘 다 못쓰게 되지 않도록, 누구라도 새 포도주를 오래된 가죽 부대들에 넣지 않느니라. 슬기로운 자는 새 포도주를 새 가죽부대에 넣느니라. 따라서 내 사도들이 하나님나라 복음의 새 교훈 안으로 낡은 관습을 너무 많이 가져오지 않음으로 현명하게 조치하느니라. 선생을 잃은 너희는 잠시 금식함이 옳을 수 있느니라. 금식은 모세의 율법에 적합한 부분이 될 수도 있지만,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은 두려움에서 벗어난 자유와 신적 영 안에서 기쁨을 체험하리라.” 그리고 그들이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요한의 제자들은 위로를 받은 한편,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더 당황스러웠습니다.
147:7.3 (1656.1) Then the Master proceeded to warn his hearers against entertaining the notion that all olden teaching should be replaced entirely by new doctrines. Said Jesus: “That which is old and also true must abide. Likewise, that which is new but false must be rejected. But that which is new and also true, have the faith and courage to accept. Remember it is written: ‘Forsake not an old friend, for the new is not comparable to him. As new wine, so is a new friend; if it becomes old, you shall drink it with gladness.’” 그 후 주(主)님은 낡은 모든 가르침들이 완전히 새 교리들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지 않도록 청중에게 계속 경고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래 되고 또한 참된 것은 지속되어야 하느니라. 또한 새롭지만 거짓된 것은 물리쳐야 하느니라. 그러나 새롭고 또한 참된 것을 받아들일 신앙과 용기를 지니라. 기록된 다음을 기억하라. ‘옛 친구를 버리지 말지니, 새 친구는 그와 견줄 수 없음이라. 새 친구는 새 포도주와 같으니라. 그것이 오래 되면, 너희는 기쁨으로 그것을 마시라.’”
8. The Feast of Spiritual Goodness 영적 선(善)의 잔치
200216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살아있는 신앙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But grow in grace, and in the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ur Jesus Christ. To him be glory both now and for ever. Amen.
147:8.1 (1656.2) That night, long after the usual listeners had retired, Jesus continued to teach his apostles. He began this special instruction by quoting from the Prophet Isaiah: 그 날 밤 일반 청중들이 물러간 뒤 오랫동안 예수님은 사도들을 계속 가르쳤습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인용하여 이 특별 가르침을 시작하셨습니다.
147:8.2 (1656.3) “‘Why have you fasted? For what reason do you afflict your souls while you continue to find pleasure in oppression and to take delight in injustice? Behold, you fast for the sake of strife and contention and to smite with the fist of wickedness. But you shall not fast in this way to make your voices heard on high. “너희가 왜 금식했느냐? 너희가 억압에서 기쁨을 찾고 불법을 계속 기뻐하면서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 혼들을 괴롭히느냐? 보라, 너희는 논쟁하고 다투며, 흉악의 주먹으로 치려고 금식하는도다. 그러나 너희 목소리를 상달하려면 이런 식으로 금식하지 말라(사58:3-4).
147:8.3 (1656.4) “‘Is it such a fast that I have chosen — a day for a man to afflict his soul? Is it to bow down his head like a bulrush, to grovel in sackcloth and ashes? Will you dare to call this a fast and an acceptable day in the sight of the Lord? Is not this the fast I should choose: to loose the bonds of wickedness, to undo the knots of heavy burdens,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and to break every yoke? Is it not to share my bread with the hungry and to bring those who are homeless and poor to my house? And when I see those who are naked, I will clothe them. “그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며, 사람이 자기 혼을 괴롭히는 날이 되겠느냐? 자기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입고 엎드리는 것이 금식이냐? 너희가 이것을 감히 금식이라 부르고, 주님이 기꺼워할(은근히 기뻐할) 날이라 하겠느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끌러주고, 무거운 짐의 매듭을 풀어주며, 억압받는 자를 해방하고, 모든 멍에를 꺾는 이것이 아니냐? 주린 자에게 내 양식을 나눠주며, 집 없고 가난한 자를 내 집에 들이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내가 헐벗은 자를 보면, 내가 그들을 입히리라(사58:5-7).
147:8.4 (1656.5) “‘Then shall your light break forth as the morning while your health springs forth speedily. Your righteousness shall go before you while 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your rear guard. Then will you call upon the Lord, and he shall answer; you will cry out, and he shall say — Here am I. And all this he will do if you refrain from oppression, condemnation, and vanity. The Father rather desires that you draw out your heart to the hungry, and that you minister to the afflicted souls; then shall your light shine in obscurity, and even your darkness shall be as the noonday. Then shall the Lord guide you continually, satisfying your soul and renewing your strength. You shall become like a watered garden, like a spring whose waters fail not. And they who do these things shall restore the wasted glories; they shall raise up the foundations of many generations; they shall be called the rebuilders of broken walls, the restorers of safe paths in which to dwell.’”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바로 일어나는 동시에 네 치유가 급속하리라.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주님의 영광이 네 후위(後衛)에 있으리라. 네가 주님을 부를 때에 그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고 그가 말씀하시리라. 네가 억압, 비난 및 자만심을 그만두면, 그가 이 모든 것을 행하시리라. 아버지는 정말로, 네가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혼들을 네가 돌보기를 바라시니라. 그러면 네 빛이 어둠 중에서 비치며, 네 흑암도 대낮처럼 되리라. 그 때 주님께서 너를 항상 인도하여 네 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힘을 새롭게 하리라.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이 되리라. 이 일들을 하는 자들은 황폐한 영광을 회복할 것이며, 그들은 역대의 기초들을 일으켜 세우리니, 그들은 무너진 벽의 재건(再建)자들과 살기에 안전한 경로의 복구(復舊)자들로 불릴 것이라(사58:8-12).’”
147:8.5 (1656.6) And then long into the night Jesus propounded to his apostles the truth that it was their faith that made them secure in the kingdom of the present and the future, and not their affliction of soul nor fasting of body. He exhorted the apostles at least to live up to the ideas of the prophet of old and expressed the hope that they would progress far beyond even the ideals of Isaiah and the older prophets. His last words that night were: “Grow in grace by means of that living faith which grasps the fact that you are the sons of God while at the same time it recognizes every man as a brother.” 그런 후 밤늦도록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현재와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서 그들을 지켜주는 것은 그들의 신앙이었지, 그들의 혼을 괴롭히거나 육체의 금식이 아니라는 진리를 제시하셨습니다. 그는 사도들에게 적어도 옛 선지자의 사상(思想)에 따라 살아가도록 권고하셨고, 이사야와 더 오래된 선지자들의 이상(理想)도 훨씬 초월하여 진보하리라는 희망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날 밤 그의 마지막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인 동시에 모든 사람을 형제로 인정하는 그 사실을 붙드는 살아있는 신앙으로 은혜 안에서 성장하라.”
147:8.6 (1656.7) It was after two o’clock in the morning when Jesus ceased speaking and every man went to his place for sleep. 새벽 2시가 지나서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셨으며, 모든 사람이 자기 잠자리로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