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37 Tarrying Time in Galilee 개요 137편 갈릴리에 머무른 기간

S137 Tarrying Time in Galilee 개요 137편 갈릴리에 머무른 기간

137:0.1 (1524.1) EARLY on Saturday morning, February 23, A.D. 26, Jesus came down from the hills to rejoin John’s company encamped at Pella. 서기 26년(32세-31세 6개월) 2월 23일 토요일 이른 아침, 예수님은 펠라에서 야영을 하고 있던 요한의 무리들과 합류하기 위하여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1. Choosing the First Four Apostles 첫 번째 네 명의 제자를 택함

137:1.1 (1524.2) During this Sabbath two of John’s leading disciples spent much time with Jesus. Of all John’s followers one named Andrew was the most profoundly impressed with Jesus; Andrew said: “I have observed you ever since you came to Capernaum, and I believe you are the new Teacher, and though I do not understand all your teaching, I have fully made up my mind to follow you; I would sit at your feet and learn the whole truth about the new kingdom.” And Jesus, with hearty assurance, welcomed Andrew as the first of his apostles, that group of twelve who were to labor with him in the work of establishing the new kingdom of God in the hearts of men. 이 안식일 동안 요한의 수제자(首弟子) 두 명이 예수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요한의 모든 제자들 중에서 안드레라고 이름하는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안드레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당신이 가버나움에 오신 이래부터 당신을 계속 지켜보았으며, 당신이 바로 그 새로운 선생님이신 것을 믿으며; 당신의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당신을 따르기로 마음을 확실히 정하였습니다. 당신께 복종하면서 새로운 왕국에 대한 모든 진리를 배우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확신으로, 자신과 함께 사람들의 심정에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될 열 두 명의 그룹에서 첫 번째 사도로 그를 환영하셨습니다.

137:1.3 (1524.4) Andrew beckoned to Jesus to draw aside while he announced that his brother desired to join himself to the service of the new kingdom. And in welcoming Simon as his second apostle, Jesus said: “Simon, your enthusiasm is commendable, but it is dangerous to the work of the kingdom. I admonish you to become more thoughtful in your speech. I would change your name to Peter.” 안드레는 예수님을 한쪽 옆으로 불러내어, 자기 동생도 역시 새로운 왕국의 일을 하는데 참여하길 원하고 있다고 그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시몬을 자신의 두 번째 사도로 환영하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너의 정열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것은 왕국의 일에 있어서는 위험하다. 나는 네가 언행에 있어서 좀 더 사려가 깊어지기를 바란다. 나는 네 이름을 베드로로 바꾸고자 하노라.”

137:1.6 (1525.3) Jesus was asleep when they reached his abode, but they awakened him, saying: John then made bold to ask, “But, Master, will James and I be associates with you in the new kingdom, even as Andrew and Simon?” And Jesus, laying a hand on the shoulder of each of them, said: “You have been with me in the kingdom from the beginning. At all times concern yourselves only with doing the will of the Father who is in heaven.” 그들이 예수님의 거처에 도착했을 때에 예수님은 잠들어 있었지만, 그들은 그를 깨워서 말하였습니다. 요한은, “그러면 주(主)여, 야고보와 저도 안드레와 시몬처럼 새로운 왕국에서 당신의 동료가 되는 것입니까?”라고 대담하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 각각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맨 처음부터 나와 함께 왕국 안에 있었느니라. 모든 때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만 너희 자신을 염려하라.”

137:1.7 (1525.4) From this day on the term apostle was employed to distinguish the chosen family of Jesus’ advisers from the vast multitude of believing disciples who subsequently followed him. 이날부터, 예수님의 선택된 조언자들 일행과, 훗날 그를 따르던 광대한 무리의 믿는 제자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도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습니다.

  1. Choosing Philip and Nathaniel 빌립과 나다니엘을 택함

137:2.4 (1526.4) Peter took Philip to one side and proceeded to explain that they, referring to himself, Andrew, James, and John, had all become associates of Jesus in the new kingdom and strongly urged Philip to volunteer for service. 베드로는 빌립을 한쪽으로 데리고 나가, 자신과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모두 언급하며 예수님의 새로운 왕국의 동료가 되었다고 설명했으며, 빌립에게도 봉사에 자원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였습니다. 137:2.5 (1526.5) It suddenly dawned on Philip that Jesus was a really great man, possibly the Messiah, and he decided to abide by Jesus’ decision in this matter; and he went straight to him, asking, “Teacher, shall I go down to John or shall I join my friends who follow you?” And Jesus answered, “Follow me.” Philip was thrilled with the assurance that he had found the Deliverer. 빌립은 예수께서 실제로 위대한 인물이고 아마도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으며, 이 일에 대해 예수님의 결정을 따르기로 결심하였고, 곧장 예수께로 가서 요청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요한을 보러 길을 내려가야 합니까, 아니면 당신을 따르는 내 친구들과 같이 가야 합니까?” 예수는 “나를 따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빌립은 자기가 해방자를 찾았다는 확신으로 인해 감격스러웠습니다.

137:2.6 (1526.6) Philip now motioned to the group to remain where they were while he hurried back to break the news of his decision to his friend Nathaniel, who still tarried behind under the mulberry tree, turning over in his mind the many things which he had heard concerning John the Baptist, the coming kingdom, and the expected Messiah. Philip broke in upon these meditations, exclaiming, “I have found the Deliverer, him of whom Moses and the prophets wrote and whom John has proclaimed.” Nathaniel, looking up, inquired, “Whence comes this teacher?” And Philip replied, “He is Jesus of Nazareth, the son of Joseph, the carpenter, more recently residing at Capernaum.” And then, somewhat shocked, Nathaniel asked, “Can any such good thing come out of Nazareth?” But Philip, taking him by the arm, said, “Come and see.” 아직도 뽕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 나다니엘에게 자신이 결정한 소식을 알리려고 급히 그에게로 가면서, 빌립은 일행에게 그 자리에 그냥 남아있어 달라고 손짓으로 표시하였으며, 나다니엘은 세례 요한과 다가오는 왕국 그리고 기대하고 있는 메시아에 대해 자기가 들어왔던 많은 것들을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그의 묵상을 깨뜨리면서, “나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기록하고 요한이 선포하였던 해방자를 발견하였다.”라고 외쳤습니다. 나다니엘이 그를 쳐다보면서, “이 선생님은 어디 출신이신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그는 요셉의 아들인 목수인데, 최근에는 가버나움에 사셨던 나사렛의 예수이시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약간 놀란 나다니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가 있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그의 팔을 끌면서, “가서 만나보자.”라고 말하였습니다.

137:2.7 (1527.1) Philip led Nathaniel to Jesus, who, looking benignly into the face of the sincere doubter, said: “Behold a genuine Israelite, in whom there is no deceit. Follow me.” And Nathaniel, turning to Philip, said: “You are right. He is indeed a master of men. I will also follow, if I am worthy.” And Jesus nodded to Nathaniel, again saying, “Follow me.” 빌립이 나다니엘을 예수께로 데려갔으며, 그는 진지하게 의심하고 있는 얼굴을 인자하게 들여다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안에는 아무 거짓이 없도다. 나를 따르라.” 그러자 나다니엘은 빌립을 돌아보며, “네 말이 맞다. 그는 진정 사람들의 주(主)이시다. 나도 자격이 된다면, 따르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니엘에게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다시 한 번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7-3 Peter’s Confession 베드로의 고백

  1. Peter’s Confession 베드로의 고백

210919 해방자,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마16:13-17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3 When Jesus came to the region of Caesarea Philippi, he asked his disciples, “Who do people say the Son of Man is?” 14 They replied, “Some say John the Baptist; others say Elijah; and still others, Jeremiah or one of the prophets.” 15 “But what about you?” he asked. “Who do you say I am?” 16 Simon Peter answered,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17 Jesus replied, “Blessed are you, Simon son of Jonah, for this was not revealed to you by man, but by my Father in heaven.

157:3.1 (1745.2) Early Tuesday morning Jesus and the twelve apostles left Magadan Park for Caesarea-Philippi, the capital of the Tetrarch Philip’s domain. Caesarea-Philippi was situated in a region of wondrous beauty. It nestled in a charming valley between scenic hills where the Jordan poured forth from an underground cave. The heights of Mount Hermon were in full view to the north, while from the hills just to the south a magnificent view was had of the upper Jordan and the Sea of Galilee. 화요일(8/9) 아침 일찍 예수님과 12 사도는 마가단 공원을 떠나 분봉(分封)왕 빌립 영토의 수도, 가이사랴-빌립보로 향했습니다. 가이사랴-빌립보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지역에 있었습니다. 그곳은 요단강에 지하 동굴에서 쇄도하는 경치 좋은 언덕 사이의 매력적인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헤르몬 산의 정상이 북쪽으로 완전히 보였고, 한편 언덕에서 바로 남쪽으로 요단강 상류와 갈릴리 바다의 멋진 경관이 보였습니다.

157:3.2 (1745.3) Jesus had gone to Mount Hermon in his early experience with the affairs of the kingdom, and now that he was entering upon the final epoch of his work, he desired to return to this mount of trial and triumph, where he hoped the apostles might gain a new vision of their responsibilities and acquire new strength for the trying times just ahead. As they journeyed along the way, about the time of passing south of the Waters of Merom, the apostles fell to talking among themselves about their recent experiences in Phoenicia and elsewhere and to recounting how their message had been received, and how the different peoples regarded their Master.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 업무에 대한 초기 체험으로 헤르몬산에 갔었고, 이제 그는 자기 업무의 획기적 막바지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시련과 승리의 이 산에 돌아가려고 했고, 거기서 사도들이 자신들의 책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얻고 눈앞의 곤경을 위해 새 힘을 얻게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들이 여행 과정에 메롬 물가 남쪽을 지나칠 무렵에 사도들은 페니키아와 다른 곳에서 자신들의 최근 경험에 대해 자기들끼리 말하고, 자신들의 메시지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다른 민족들이 자신들의 주(主)님을 어떻게 존경하는지 자세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157:3.3 (1745.4) As they paused for lunch, Jesus suddenly confronted the twelve with the first question he had ever addressed to them concerning himself. He asked this surprising question, “Who do men say that I am?” 그들이 점심을 먹으려고 잠시 멈췄을 때, 예수께서 갑자기, 자신에 관해 지금까지 12 사도에게 하지 않았던 첫 질문으로 그들을 마주 대하셨습니다. 그는 이 놀라운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57:3.4 (1746.1) Jesus had spent long months in training these apostles as to the nature and character of the kingdom of heaven, and he well knew the time had come when he must begin to teach them more about his own nature and his personal relationship to the kingdom. And now, as they were seated under the mulberry trees, the Master made ready to hold one of the most momentous sessions of his long association with the chosen apostles.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본성과 특성에 관해 이 사도들을 훈련하며 수개월이나 보내서, 그는 그가 자신의 본성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자신의 고유 관계에 대해 더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뽕나무 밑에 앉았을 때, 주님은 자신이 선택한 사도들과 오랜 교제 중 가장 중요한 회의 중 하나를 하려고 준비했습니다.

157:3.5 (1746.2) More than half the apostles participated in answering Jesus’ question. They told him that he was regarded as a prophet or as an extraordinary man by all who knew him; that even his enemies greatly feared him, accounting for his powers by the indictment that he was in league with the prince of devils. They told him that some in Judea and Samaria who had not met him personally believed he was John the Baptist risen from the dead. Peter explained that he had been, at sundry times and by various persons, compared with Moses, Elijah, Isaiah, and Jeremiah. When Jesus had listened to this report, he drew himself upon his feet, and looking down upon the twelve sitting about him in a semicircle, with startling emphasis he pointed to them with a sweeping gesture of his hand and asked, “But who say you that I am?” There was a moment of tense silence. The twelve never took their eyes off the Master, and then Simon Peter, springing to his feet, exclaimed: “You are the Deliverer, the Son of the living God.” And the eleven sitting apostles arose to their feet with one accord, thereby indicating that Peter had spoken for all of them. 사도 중 절반 이상이 예수의 질문에 답하며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아는 모든 이가 그를 선지자나 비범한 사람으로 여기며, 그의 적들조차, 그가 악령들의 왕과 결탁했다는 기소로 그의 권능을 설명하면서, 그를 매우 두려워한다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직접 그를 만나지 못한 유대와 사마리아의 몇 사람은 그가 죽은 자 중에서 살아난 세례 요한으로 믿는다고 그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러 차례, 다양한 사람들이 그를 모세, 엘리야, 이사야 및 예레미아와 비교했다고 베드로가 설명했습니다(마16:13-14). 예수께서 이런 보고를 들은 후, 그가 똑바로 서서, 반원으로 자기 주위에 앉은 12 사도를 내려 보면서, 그가 곡선을 그리는 손짓으로 그들을 가리켜, 놀라울 정도로 강조하면서 “하지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했습니다. 긴장된 침묵의 순간이 흘렀습니다. 12 사도는 주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으며, 그때 시몬 베드로가 벌떡 일어나, “당신은 해방자,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입니다(마16:15-16).”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앉아 있는 11 사도들이, 베드로가 자기 모두를 위해서 말했다는 표시로써, 함께 일어났습니다.

157:3.6 (1746.3) When Jesus had beckoned them again to be seated, and while still standing before them, he said: “This has been revealed to you by my Father. The hour has come when you should know the truth about me. But for the time being I charge you that you tell this to no man. Let us go hence.” 예수께서 손짓으로 그들에게 다시 앉으라고 하셨고, 여전히 그들 앞에 서서, 그가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가 이것을 너희에게 계시하셨느니라(마16:17). 너희가 나에 대한 진상을 알아야 할 때가 왔느니라. 그러나 당분간 너희는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마16:20). 이제 가자.”

157:3.7 (1746.4) And so they resumed their journey to Caesarea-Philippi, arriving late that evening and stopping at the home of Celsus, who was expecting them. The apostles slept little that night; they seemed to sense that a great event in their lives and in the work of the kingdom had transpired. 그래서 그렇게 그들은 가이사랴-빌립보로 다시 여행하여, 그날 저녁 늦게 도착하여 그들을 기다리던 셀수스의 집에서 여장(旅裝 여행할 때의 차림)을 풀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날 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애와 하느님 나라 과업에서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음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83-5 Plural Marriages 복혼(複婚)

  1. Plural Marriages 복혼(複婚)

83:5.1 (925.6) In the early history of marriage the unmarried women belonged to the men of the tribe. Later on, a woman had only one husband at a time. This practice of one-man-at-a-time was the first step away from the promiscuity of the herd. While a woman was allowed but one man, her husband could sever such temporary relationships at will. But these loosely regulated associations were the first step toward living pairwise in distinction to living herdwise. In this stage of marriage development children usually belonged to the mother. 초기 결혼 역사에서 미혼 여성들은 부족의 남성들에게 속했습니다. 나중에 한 여성은 한 번에 한 남편만 있었습니다. 한 번에 한 남성이라는 이런 관례는 무리의 집단적 난혼(亂婚)을 떠나는 첫 단계였습니다. 한 여성에게는 한 남성뿐이었지만, 그녀의 남편은 그런 일시적 관계를 마음대로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헐겁게 규정하는 이런 관계는 무리로 사는 것과 구별되어 짝으로 살아가기 위한 첫 단계였습니다. 결혼 발전의 이 단계에서 아이들은 대개 어머니에게 속했습니다.

83:5.2 (925.7) The next step in mating evolution was the group marriage. This communal phase of marriage had to intervene in the unfolding of family life because the marriage mores were not yet strong enough to make pair associations permanent. The brother and sister marriages belonged to this group; five brothers of one family would marry five sisters of another. All over the world the looser forms of communal marriage gradually evolved into various types of group marriage. And these group associations were largely regulated by the totem mores. Family life slowly and surely developed because sex and marriage regulation favored the survival of the tribe itself by insuring the survival of larger numbers of children. 짝짓기 진화의 다음 단계는 집단 결혼이었습니다. 결혼의 이런 공동 단계가 가족생활의 전개에 개입된 것은, 결혼 관습이 쌍의 결합을 영속하게 할 정도로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매 결혼이 이런 집단에 속했습니다. 한 가정의 다섯 형제가 다른 가정의 다섯 자매와 결혼하곤 했습니다. 전 세계에 더 헐거운 형태의 공동 결혼이 점차 다양한 유형의 집단 결혼으로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집단 결합은 대개 토템(가족·종족의 상징으로 숭배하는 자연물·동물) 관습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가족생활은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발전했는데, 성(性)과 결혼 규정으로, 더 많은 수의 자녀들이 살아남도록 지켜져서, 부족 자체의 생존이 유리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83:5.3 (926.1) Group marriages gradually gave way before the emerging practices of polygamy — polygyny and polyandry — among the more advanced tribes. But polyandry was never general, being usually limited to queens and rich women; furthermore, it was customarily a family affair, one wife for several brothers. Caste and economic restrictions sometimes made it necessary for several men to content themselves with one wife. Even then, the woman would marry only one, the others being loosely tolerated as “uncles” of the joint progeny. 더 진보한 부족 중에서, 복혼(複婚)-일부다처(一夫多妻)와 일처다부(一妻多夫)-관행이 출현하기 전에, 집단 결혼은 점차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일처다부는, 보통 여왕들과 부유한 여성들에게 한정되어서,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관례상 여러 형제가 한 아내와 사는 집안일이었습니다. 카스트(특권계급)와 경제적 제한으로 때때로 여러 남성이 한 아내로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설령 그래도, 여성은 단 하나와 결혼하고, 나머지는 공동 자녀의 “삼촌들”로서 어렴풋이 묵인되었습니다.

83:5.4 (926.2) The Jewish custom requiring that a man consort with his deceased brother’s widow for the purpose of “raising up seed for his brother,” was the custom of more than half the ancient world. This was a relic of the time when marriage was a family affair rather than an individual association. 남성이 “자기 형제에게 씨가 있게(창38:8)” 하려고 죽은 형제의 과부와 사귀도록 요구한 유대인 관습은 고대 세계 절반 이상의 관습이었습니다. 이것은, 결혼이 개인 결합이기보다 집안일이었던, 시대의 잔재였습니다.

83:5.5 (926.3) The institution of polygyny recognized, at various times, four sorts of wives: 일부다처(一夫多妻) 제도는 여러 차례에 네 종류의 아내를 인정했습니다.

83:5.6 (926.4) 1. The ceremonial or legal wives. 정식 법적 아내들.

83:5.7 (926.5) 2. Wives of affection and permission. 애정으로 허락된 아내들.

83:5.8 (926.6) 3. Concubines, contractual wives. 첩, 계약 아내들.

83:5.9 (926.7) 4. Slave wives. 노예 아내들.

83:5.10 (926.8) True polygyny, where all the wives are of equal status and all the children equal, has been very rare. Usually, even with plural marriages, the home was dominated by the head wife, the status companion. She alone had the ritual wedding ceremony, and only the children of such a purchased or dowered spouse could inherit unless by special arrangement with the status wife. 모든 아내가 동등한 자격으로, 모든 자녀가 동등한, 진정한 일부다처(一夫多妻)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대개, 복혼(複婚)이라도, 반려자 자격이 있는 수석 아내가 가정을 좌우했습니다. 그녀만 제의(祭儀)적 결혼식을 했고, 자격이 있는 아내의 특별한 합의가 없는 한, 그렇게 구매하고 지참금을 낸 배우자의 자녀들만 상속(相續)할 수 있었습니다.

83:5.11 (926.9) The status wife was not necessarily the love wife; in early times she usually was not. The love wife, or sweetheart, did not appear until the races were considerably advanced, more particularly after the blending of the evolutionary tribes with the Nodites and Adamites. 자격이 있는 아내가 반드시 사랑하는 아내는 아니었습니다. 옛날에 그녀는 대개 그렇지 않았습니다. 진화 부족들이 놋-사람들 및 아담-사람들과 혼합된 이후 특히 더, 종족들이 상당히 진보했을 때까지, 사랑하는 아내, 즉 연인은 등장(登場)하지 않았습니다.

83:5.12 (926.10) The taboo wife — one wife of legal status — created the concubine mores. Under these mores a man might have only one wife, but he could maintain sex relations with any number of concubines. Concubinage was the steppingstone to monogamy, the first move away from frank polygyny. The concubines of the Jews, Romans, and Chinese were very frequently the handmaidens of the wife. Later on, as among the Jews, the legal wife was looked upon as the mother of all children born to the husband. 금기 아내–법적 자격이 있는 한 아내-가 첩 관습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관습에 따라 남성은 한 명의 아내만 있었지만, 그는 첩들이 몇이라도 성(性)관계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축첩(蓄妾)이 일부일처(一夫一妻)제의 발판, 명백한 일부다처(一夫多妻)에서 멀어지는 첫 조처였습니다. 유대인, 로마인과 중국인의 첩들은 아주 빈번히 아내의 하녀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유대인 사이에서 그렇듯이, 법적 아내를 남편에게 태어난 모든 자녀의 어머니로 여겼습니다.

83:5.13 (926.11) The olden taboos on sex relations with a pregnant or nursing wife tended greatly to foster polygyny. Primitive women aged very early because of frequent childbearing coupled with hard work. (Such overburdened wives only managed to exist by virtue of the fact that they were put in isolation one week out of each month when they were not heavy with child.) Such a wife often grew tired of bearing children and would request her husband to take a second and younger wife, one able to help with both childbearing and the domestic work. The new wives were therefore usually hailed with delight by the older spouses; there existed nothing on the order of sex jealousy. 임신하거나 수유(授乳) 중인 아내와 성(性)관계에 대한 오래된 금기가 일부다처(一夫多妻)를 조장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원시 여성들은 잦은 해산과 힘든 노동이 결부되어 아주 일찍 늙었습니다. (그렇게 과로한 아내들은 자녀를 임신하지 않았을 때, 매달 일주일씩 그들이 격리되었다는 사실 덕분에 겨우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는 자녀를 낳느라 자주 지쳐서, 해산하고 가사(家事)를 도울 수 있는, 두 번째로 더 젊은 아내를 얻으라고 남편에게 요청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이 든 배우자들은 대개 새 아내들을 기쁘게 환호하며 맞이했습니다. 거기에는 성적 시샘의 종류가 전혀 없었습니다.

83:5.14 (926.12) The number of wives was only limited by the ability of the man to provide for them. Wealthy and able men wanted large numbers of children, and since the infant mortality was very high, it required an assembly of wives to recruit a large family. Many of these plural wives were mere laborers, slave wives. 아내의 수(數)는 그들을 부양할 남성의 능력으로만 제한되었습니다. 부유하고 능력 있는 남성들은 많은 수(數)의 자녀를 원했고, 유아 사망률이 아주 높아서, 대가족을 만들려면 아내들을 모아야 했습니다. 이런 복수(複數) 아내들의 여럿은 단순히 노동하는 노예 아내들이었습니다.

83:5.15 (927.1) Human customs evolve, but very slowly. The purpose of a harem was to build up a strong and numerous body of blood kin for the support of the throne. A certain chief was once convinced that he should not have a harem, that he should be contented with one wife; so he promptly dismissed his harem. The dissatisfied wives went to their homes, and their offended relatives swept down on the chief in wrath and did away with him then and there. 인간의 관습은 진화하지만 아주 느립니다. 후궁의 목적은 왕권을 유지하려고 강한 여러 혈연관계 집단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족장은 한때 자신이 후궁을 가지지 말고, 한 아내로 만족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자기 후궁을 해산시켰습니다. 불만스러운 아내들은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고, 기분이 상한 그들의 친척들이 격노하여 족장을 급습했고 즉시 그를 죽였습니다.

37-3 The Archangels 천사장들

  1. The Archangels 천사장들

37:3.1 (408.4) Archangels are the offspring of the Creator Son and the Universe Mother Spirit. They are the highest type of high spirit being produced in large numbers in a local universe, and at the time of the last registry there were almost eight hundred thousand in Nebadon. 천사장들은 창조주 아들과 우주 어머니 영(靈)의 자손입니다. 그들은 지역 우주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최고 유형의 높은 영(靈)이며, 최종 등록 당시에, 네바돈에 거의 80만이 있었습니다.

37:3.2 (408.5) Archangels are one of the few groups of local universe personalities who are not normally under the jurisdiction of Gabriel. They are not in any manner concerned with the routine administration of the universe, being dedicated to the work of creature survival and to the furtherance of the ascending career of the mortals of time and space. While not ordinarily subject to the direction of the Bright and Morning Star, the archangels do sometimes function by his authority. They also collaborate with others of the Universe Aids, such as the Evening Stars, as is illustrated by certain transactions depicted in the narrative of life transplantation on your world. 천사장들은 보통 가브리엘의 관할권에 없는 지역 우주 고유성들 중 소수 집단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창조물 생존의 과업과 시공간 필사자들이 속한 상승 생애의 촉진에 전념하면서, 어떤 면에서도 우주의 일상 경영과 관련되지 않습니다. 천사장들은 보통 광명한 새벽별의 지시를 받지 않지만, 그들은 때로 그의 권한으로 활동합니다. 그들도, 너희 세계의 생명 이식(移植) 이야기에서 서술된 처리로 설명되어 있듯이, 저녁별들과 같은 다른 우주 조력자들에게 협력합니다.

37:3.3 (408.6) The archangel corps of Nebadon is directed by the first-born of this order, and in more recent times a divisional headquarters of the archangels has been maintained on Urantia. It is this unusual fact that soon arrests the attention of extra-Nebadon student visitors. Among their early observations of intrauniverse transactions is the discovery that many ascendant activities of the Brilliant Evening Stars are directed from the capital of a local system, Satania. On further examination they discover that certain archangel activities are directed from a small and apparently insignificant inhabited world called Urantia. And then ensues the revelation of Michael’s bestowal on Urantia and their immediately quickened interest in you and your lowly sphere. 이 계열의 첫 태생이 네바돈의 천사장단(團)을 관리하며, 최근에 천사장의 분과 본부가 유란시아에 유지되었습니다. 이런 유별난 사실이 곧 네바돈 밖의 학생 방문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내부우주의 처리에 대한 그들의 초기 관찰을 보면, 찬란한 저녁별들의 여러 상승 활동이 지역 체계 사타니아의 수도에서 관리되어 있음이 발견됩니다. 추가(追加)조사로 그들은, 어떤 천사장 활동이 유란시아라는 작고, 언뜻 보기에 하찮은 거주 세계에서 관리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런 다음, 유란시아에서 미가엘의 증여 계시와 너희와 너희의 초라한 구체에 대한 그들의 즉각적인 빠른 관심이 잇달아 일어납니다.

37:3.4 (409.1) Do you grasp the significance of the fact that your lowly and confused planet has become a divisional headquarters for the universe administration and direction of certain archangel activities having to do with the Paradise ascension scheme? This undoubtedly presages the future concentration of other ascendant activities on the bestowal world of Michael and lends a tremendous and solemn import to the Master’s personal promise, “I will come again.” 너희는, 너희의 초라하고 혼란스러워하는 행성이 우주 경영과 천국 상승 기획에 관련된 어떤 천사장 활동의 관리를 위한 분과 본부가 되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파악합니까? 이것은 확실히, 미가엘의 증여 세계에서 다른 상승 활동에 속한 미래 집결의 전조(前兆)가 되며, “내가 다시 오리라.”는 주(主)님의 직접적 약속에 굉장히 엄연한 중요성을 제공합니다.

37:3.5 (409.2) In general, the archangels are assigned to the service and ministry of the Avonal order of sonship, but not until they have passed through extensive preliminary training in all phases of the work of the various ministering spirits. A corps of one hundred accompanies every Paradise bestowal Son to an inhabited world, being temporarily assigned to him for the duration of such a bestowal. If the Magisterial Son should become temporary ruler of the planet, these archangels would act as the directing heads of all celestial life on that sphere. 대개 천사장들은, 아들된 아보날 계열의 섬김과 돌봄에 배치되지만, 그들이 다양하게 보살피는 영(靈)들의 모든 과업 단계에서 다방면의 예비 훈련을 통과할 때까지 배정받지 못합니다. 모든 천국 증여 아들의 그런 증여 기간에 그에게 임시로 배정된 100명의 단(團)이 거주 세계로 함께 갑니다. 치안(治安) 아들이 행성의 임시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면, 이런 천사장들은 그 구체에 있는 모든 천상 생명을 관리하는 수석들로서 행동할 것입니다.

37:3.6 (409.3) Two senior archangels are always assigned as the personal aids of a Paradise Avonal on all planetary missions, whether involving judicial actions, magisterial missions, or bestowal incarnations. When this Paradise Son has finished the judgment of a realm and the dead are called to record (the so-called resurrection), it is literally true that the seraphic guardians of the slumbering personalities respond to “the voice of the archangel.” The roll call of a dispensation termination is promulgated by an attendant archangel. This is the archangel of the resurrection,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archangel of Michael.” 천사장들 선임 2명이, 사법 활동, 치안 사명 혹은 증여 성육신을 포함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모든 행성 임무에서 천국 아보날의 개인적 조력자들로 언제나 배정됩니다. 이런 천국 아들이 그 영역의 판결을 마치고 죽은 자들이 등록(소위 부활)하도록 부름을 받을 때, 잠을 자는 고유성들의 세라핌천사 보관자들이 “천사장의 음성(살전4:16)”에 응답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사실입니다. 수행 천사장이 섭리시대 종결의 호출을 공포(公布)합니다. 이분이 때로 “미가엘의 천사장”으로 불리는 부활의 천사장입니다.

37:3.7 (409.4) The Worlds of the Archangels. The seventh group of the encircling Salvington worlds, with their associated satellites, is assigned to the archangels. Sphere number one and all of its six tributary satellites are occupied by the personality record keepers. This enormous corps of recorders busy themselves with keeping straight the record of each mortal of time from the moment of birth up through the universe career until such an individual either leaves Salvington for the superuniverse regime or is “blotted out of recorded existence” by the mandate of the Ancients of Days. 천사장들의 세계들. 샐빙톤 세계들을 둘러싸는 일곱째 집단은, 관련된 그들의 위성들과 함께, 천사장들에게 배정됩니다. 구체 1번과 그 종속된 여섯 위성들 모두 고유성 기록 관리자들이 차지합니다. 이렇게 막대한 기록단(團)은, 탄생 순간에서 온 우주 생애를 거쳐 그런 개인이 초우주 체제를 향해 샐빙톤을 떠나든지 아니면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명령으로 “기록된 존재가 지워질” 때까지, 각 필사자의 시간 기록을 착실히 하느라 분주합니다.

37:3.8 (409.5) It is on these worlds that personality records and identification sureties are classified, filed, and preserved during that time which intervenes between mortal death and the hour of repersonalization, the resurrection from death. 이런 세계들에서, 필사자 죽음과 재(再)고유성화, 죽음에서 부활하는 시간 사이에 일어나는 그런 시간 동안, 고유성 기록들과 신분 증명 보증이 분류되고, 정리되어, 보존됩니다.

157-2 At Bethsaida-Julias 벳새다-율리아스에서

2. At Bethsaida-Julias 벳새다-율리아스에서

210912 위선의 누룩을 조심하라 마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Then Jesus said unto them, Take heed and beware of the leaven of the Pharisees and of the Sadducees.

157:2.1 (1744.4) On Monday, August 8, while Jesus and the twelve apostles were encamped in Magadan Park, near Bethsaida-Julias, more than one hundred believers, the evangelists, the women’s corps, and others interested in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came over from Capernaum for a conference. And many of the Pharisees, learning that Jesus was here, came also. By this time some of the Sadducees were united with the Pharisees in their effort to entrap Jesus. Before going into the closed conference with the believers, Jesus held a public meeting at which the Pharisees were present, and they heckled the Master and otherwise sought to disturb the assembly. Said the leader of the disturbers: “Teacher, we would like you to give us a sign of your authority to teach, and then, when the same shall come to pass, all men will know that you have been sent by God.” And Jesus answered them: “When it is evening, you say it will be fair weather, for the heaven is red; in the morning it will be foul weather, for the heaven is red and lowering. When you see a cloud rising in the west, you say showers will come; when the wind blows from the south, you say scorching heat will come. How is it that you so well know how to discern the face of the heavens but are so utterly unable to discern the signs of the times? To those who would know the truth, already has a sign been given; but to an evil-minded and hypocritical generation no sign shall be given.” 8월 8일 월요일에 예수님과 12사도는 벳새다-율리아스 근처 마가단 공원에서 야영하는 동안, 100명의 이상의 신자, 전도자들, 여성단(女性團) 및 하느님 나라 설립에 관심이 있는 다른 이들이 회의하려고 가버나움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 바리새인도, 예수께서 여기 계신 것을 알고, 왔습니다. 이 무렵 일부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 연합하여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신자들과 비공개(非公開)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참석한 공개 모임을 열었으며, 그들은 주(主)님을 야유하고, 그렇지 않으면 집회를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방해자들의 두목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에게 당신이 가르치는 권한의 표적을 주시고, 그 후, 같은 표적이 일어나면, 모든 사람이 당신을 하느님이 보내신 줄 알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저녁이 되어, 하늘이 붉으면, 너희는 날이 맑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잔뜩 흐리면, 날이 궂겠다 하니라(마16:1-3a). 너희가 서쪽에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너희는 소나기가 오리라 하고,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심히 더우리라 하니라(눅12:54-55). 어째서 너희는 하늘의 기상(氣像)을 분별할 줄 잘 알면서 시대의 표적을 그토록 아예 분별할 수 없느냐(마16:3b)? 진리를 알려는 자들은 이미 표적을 받았지만, 악의로 해석하는 위선적 세대는 아무 표적도 받지 못하리라.”

157:2.2 (1745.1) When Jesus had thus spoken, he withdrew and prepared for the evening conference with his followers. At this conference it was decided to undertake a united mission throughout all the cities and villages of the Decapolis as soon as Jesus and the twelve should return from their proposed visit to Caesarea-Philippi. The Master participated in planning for the Decapolis mission and, in dismissing the company, said: “I say to you, beware of the leaven of the Pharisees and the Sadducees. Be not deceived by their show of much learning and by their profound loyalty to the forms of religion. Be only concerned with the spirit of living truth and the power of true religion. It is not the fear of a dead religion that will save you but rather your faith in a living experience in the spiritual realities of the kingdom. Do not allow yourselves to become blinded by prejudice and paralyzed by fear. Neither permit reverence for the traditions so to pervert your understanding that your eyes see not and your ears hear not. It is not the purpose of true religion merely to bring peace but rather to insure progress. And there can be no peace in the heart or progress in the mind unless you fall wholeheartedly in love with truth, the ideals of eternal realities. The issues of life and death are being set before you — the sinful pleasures of time against the righteous realities of eternity. Even now you should begin to find deliverance from the bondage of fear and doubt as you enter upon the living of the new life of faith and hope. And when the feelings of service for your fellow men arise within your soul, do not stifle them; when the emotions of love for your neighbor well up within your heart, give expression to such urges of affection in intelligent ministry to the real needs of your fellows.”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후, 그는 물러가서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저녁 회의를 준비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예수님과 12 사도가 제안을 받은 가이사랴-빌립보 방문에서 돌아오자마자 데카폴리스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 널리 연합 선교를 하기로 정했습니다. 주(主)님은 데카폴리스 선교를 위한 계획에 참여하셨고, 일행을 해산시키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마16:6, 막8:15, 눅12:1b). 많은 학식의 과시와 종교 형식에 대한 뿌리 깊은 그들의 충성에 속지 말라. 살아있는 진리의 영(靈)과 참 종교의 권능에만 관여하라. 너희를 구원할 것은 죽은 종교의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 나라의 영적 실체 안에 있는 살아있는 체험에 대한 너희 신앙이라. 너희 자신이 편견으로 눈이 멀고 두려움으로 마비되게 하지 말라. 전통을 존중해서, 너희가 너무 잘못 이해하여 너희 눈으로 보지 못하고 너희 귀로 듣지 못하도록 용납하지 말라. 참 종교의 목적은 단순히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실히 진보하는 것이라. 그리고 너희가 전심으로 진리, 영원한 실체들의 이상(理想)들과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어떤 심정의 평화나 마음의 진보가 조금도 있을 수 없느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 영원에 속한 의로운 실체들을 반대하는 시간에 속한 죄 많은 쾌락이 너희 앞에 놓여 있느니라. 너희는 신앙과 소망의 새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지금도, 너희는 두려움과 의심의 속박에서 해방을 찾아내기 시작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너희 혼(魂) 안에서 같은 너희 인간들을 섬기려는 느낌이 일어나면, 그것들을 억누르지 말라. 너희 이웃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너희 심정에서 솟아나면, 너희 동료의 참된 필요를 지능적으로 돌보는 가운데, 그런 애정의 충동을 표현하라.”

83-4 The Wedding Ceremony 결혼식

4. The Wedding Ceremony 결혼식

83:4.1 (924.4) The wedding ceremony grew out of the fact that marriage was originally a community affair, not just the culmination of a decision of two individuals. Mating was of group concern as well as a personal function. 결혼은 두 개인 결정의 성취만 아니라, 원래 공동체 업무였다는 사실에서, 결혼식이 발전하여 커졌습니다. 짝짓기는 개인적 활동만이 아니라 집단적 관심사였습니다.

83:4.2 (924.5) Magic, ritual, and ceremony surrounded the entire life of the ancients, and marriage was no exception. As civilization advanced, as marriage became more seriously regarded, the wedding ceremony became increasingly pretentious. Early marriage was a factor in property interests, even as it is today, and therefore required a legal ceremony, while the social status of subsequent children demanded the widest possible publicity. Primitive man had no records; therefore must the marriage ceremony be witnessed by many persons. 마술, 의례(儀禮) 및 예식(禮式)이 고대인(人)들의 온 생활을 둘러쌌고 결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문명이 진보하면서, 결혼이 더 진지하게 여겨지게 되자, 결혼식이 점차 자랑하여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초기 결혼은,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재산 이익(利益)의 요인이었으므로, 법적 예식이 필요했고, 게다가 차후 자녀들의 사회적 신분을 최대한 널리 알려야 했습니다. 원시인은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결혼식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83:4.3 (924.6) At first the wedding ceremony was more on the order of a betrothal and consisted only in public notification of intention of living together; later it consisted in formal eating together. Among some tribes the parents simply took their daughter to the husband; in other cases the only ceremony was the formal exchange of presents, after which the bride’s father would present her to the groom. Among many Levantine peoples it was the custom to dispense with all formality, marriage being consummated by sex relations. The red man was the first to develop the more elaborate celebration of weddings. 처음에 결혼식은 약혼과 더 비슷했고, 동거(同居)의 의도를 공개적으로 알릴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결혼은 정식으로 같이 식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부 부족 중에서 부모들은 자기 딸을 남편에게 단지 데려갔습니다. 다른 경우에 유일한 예식은 정식의 선물 교환이었으며, 그 후 신부의 아버지가 그녀를 신랑에게 소개하곤 했습니다. 여러 레반트 민족들은 모든 예식 없이, 성(性)관계로 신방(新房)을 차리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홍인이 더 정교한 혼인 잔치를 처음 개발했습니다.

83:4.4 (924.7) Childlessness was greatly dreaded, and since barrenness was attributed to spirit machinations, efforts to insure fecundity also led to the association of marriage with certain magical or religious ceremonials. And in this effort to insure a happy and fertile marriage, many charms were employed; even the astrologers were consulted to ascertain the birth stars of the contracting parties. At one time the human sacrifice was a regular feature of all weddings among well-to-do people. 아이가 없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고, 불임(不姙)을 영(靈) 간계의 탓으로 여겼기 때문에, 다산 보증의 노력으로, 결혼은 어떤 마술이나 종교적 예식의 관련으로 또한 이어졌습니다. 행복한 다산 결혼을 보증하려는 이런 노력으로, 여러 부적이 사용되었습니다. 결혼 당사자들의 출생 별들을 확인하려고 점성술사들의 의견까지 들었습니다. 한때 부유한 사람들의 모든 결혼에서 인신(人身) 공양(供養)이 일상적 특색이었습니다.

83:4.5 (925.1) Lucky days were sought out, Thursday being most favorably regarded, and weddings celebrated at the full of the moon were thought to be exceptionally fortunate. It was the custom of many Near Eastern peoples to throw grain upon the newlyweds; this was a magical rite which was supposed to insure fecundity. Certain Oriental peoples used rice for this purpose. 행운의 날들을 찾았고, 목요일을 가장 좋은 날로 여겼으며, 만월(滿月)에 행하는 결혼이 특별한 행운이 되리라고 여겼습니다. 여러 근동(近東) 민족은 신혼부부에게 곡물을 던지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다산을 보증한다고 알려진 마술적 제의(祭儀)였습니다. 어떤 동양 민족들은 이런 목적으로 쌀을 사용했습니다.

83:4.6 (925.2) Fire and water were always considered the best means of resisting ghosts and evil spirits; hence altar fires and lighted candles, as well as the baptismal sprinkling of holy water, were usually in evidence at weddings. For a long time it was customary to set a false wedding day and then suddenly postpone the event so as to put the ghosts and spirits off the track. 불과 물은 유령들과 악령들을 격퇴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항상 여겼습니다. 따라서 세례(洗禮)에 뿌리는 성수(聖水)와 마찬가지로, 제단의 불과 촛불은 결혼식에서 대개 두드러지게 보였습니다. 거짓으로 결혼일을 정한 후, 유령들과 영(靈)들을 물리치려고 갑자기 행사를 연기하는 것은 오랜 관습이었습니다.

83:4.7 (925.3) The teasing of newlyweds and the pranks played upon honeymooners are all relics of those far-distant days when it was thought best to appear miserable and ill at ease in the sight of the spirits so as to avoid arousing their envy. The wearing of the bridal veil is a relic of the times when it was considered necessary to disguise the bride so that ghosts might not recognize her and also to hide her beauty from the gaze of the otherwise jealous and envious spirits. The bride’s feet must never touch the ground just prior to the ceremony. Even in the twentieth century it is still the custom under the Christian mores to stretch carpets from the carriage landing to the church altar. 신혼부부를 놀리고 신혼여행자들에게 하는 장난은, 영(靈)들의 시샘이 일어나지 않도록, 영(靈)들의 눈에 비참하고 불편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던 때, 그렇게 아주 먼 시대의 모든 잔재입니다. 면사포를 입는 것은, 유령들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질투하고 시샘하는 다른 영(靈)들의 시선에서 그녀의 아름다움도 숨기도록, 신부를 위장해야만 한다고 여겼던, 당시의 잔재입니다. 예식 직전에 신부의 발이 땅에 닿지 말아야 했습니다. 20세기에도 기독교 관습에 따라, 도착한 차량에서 교회 제단까지 융단(絨緞)을 까는 것이 아직도 관습입니다.

83:4.8 (925.4) One of the most ancient forms of the wedding ceremony was to have a priest bless the wedding bed to insure the fertility of the union; this was done long before any formal wedding ritual was established. During this period in the evolution of the marriage mores the wedding guests were expected to file through the bedchamber at night, thus constituting legal witness to the consummation of marriage. 결혼식의 가장 오래된 형태 중 하나는 결혼의 다산을 보증하려고 사제가 결혼 동침(同寢)을 축복(祝福)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공식적인 결혼제의(祭儀) 훨씬 이전에 이루어졌습니다. 결혼 관습이 진화하는 이런 시기에, 하객들은 밤에 침실을 통해 지나가도록 예정되어서, 결혼 성사의 법적 증인이 되었습니다.

83:4.9 (925.5) The luck element, that in spite of all premarital tests certain marriages turned out bad, led primitive man to seek insurance protection against marriage failure; led him to go in quest of priests and magic. And this movement culminated directly in modern church weddings. But for a long time marriage was generally recognized as consisting in the decisions of the contracting parents — later of the pair — while for the last five hundred years church and state have assumed jurisdiction and now presume to make pronouncements of marriage. 혼전(婚前)의 모든 시험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혼은 불행해졌다는 행운 요소로 인해서, 원시인(人)은 결혼 실패를 막으려고 보증을 찾게 되었고, 사제들과 마술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이 바로 현대 교회 결혼으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결혼은 일반적으로 계약하는 부모들(나중에는 그 쌍)의 결정이라고 인정되었던 반면에 지난 500년 동안에 교회와 국가가 관할권을 떠맡았고, 지금은 대담하게 결혼을 선언합니다.

37-2 The Brilliant Evening Stars 찬란한 저녁별들

2. The Brilliant Evening Stars 찬란한 저녁별들

37:2.1 (407.1) These brilliant creatures were planned by the Melchizedeks and were then brought into being by the Creator Son and the Creative Spirit. They serve in many capacities but chiefly as liaison officers of Gabriel, the local universe chief executive. One or more of these beings function as his representatives at the capital of every constellation and system in Nebadon. 멜기세덱들이 이들 찬란한 창조물들을 계획한 다음에 창조주 아들과 창조적 영(靈)이 낳았습니다. 그들은 여러 능력이 있지만 주로 지역 우주 수석 실행자 가브리엘의 연락 장교로 섬깁니다. 이런 존재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이 네바돈에 있는 모든 성좌와 체계 수도에 가브리엘의 대행자로 활동합니다.

37:2.2 (407.2) As chief executive of Nebadon, Gabriel is ex officio chairman of, or observer at, most of the Salvington conclaves, and as many as one thousand of these are often in session simultaneously. The Brilliant Evening Stars represent Gabriel on these occasions; he cannot be in two places at the same time, and these superangels compensate for this limitation. They perform an analogous service for the corps of the Trinity Teacher Sons. 네바돈의 수석 실행자, 가브리엘은 셀빙톤의 비밀회의 대부분에서 직권상 의장 혹은 참관자이며, 1,000개 되는 이런 회의들이 종종 동시에 열립니다. 이런 경우에 찬란한 저녁별들이 가브리엘을 대표합니다. 그는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 없으며, 이런 초(超)천사들이 이런 한계를 보충합니다. 그들은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 단(團)을 위한 비슷한 봉사를 수행합니다.

37:2.3 (407.3) Though personally occupied with administrative duties, Gabriel maintains contact with all other phases of universe life and affairs through the Brilliant Evening Stars. They always accompany him on his planetary tours and frequently go on special missions to the individual planets as his personal representatives. On such assignments they have sometimes been known as “the angel of the Lord.” They frequently go to Uversa to represent the Bright and Morning Star before the courts and assemblies of the Ancients of Days, but they seldom journey beyond the confines of Orvonton. 개인적으로 경영 직책에 종사하지만, 가브리엘은 찬란한 저녁별들을 통해 다른 모든 단계의 우주 생활과 업무들과 접촉을 유지합니다. 그들은 그가 행성을 여행할 때 언제나 그와 함께 가며, 그의 개인적 대리인으로서 특수임무로 개별 행성에 자주 갑니다. 그런 임무에 그들은 때로“주님의 천사”로 알려졌습니다. 그들은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법정과 의회 앞에서 광명한 새벽별을 대표해서 자주 유버르사에 가지만, 그들은 좀처럼 오르본톤 경계를 넘어서 여행하지 않습니다.

37:2.4 (407.4) The Brilliant Evening Stars are a unique twofold order, embracing some of created dignity and others of attained service. The Nebadon corps of these superangels now numbers 13,641. There are 4,832 of created dignity, while 8,809 are ascendant spirits who have attained this goal of exalted service. Many of these ascendant Evening Stars started their universe careers as seraphim; others have ascended from unrevealed levels of creature life. As an attainment goal this high corps is never closed to ascension candidates so long as a universe is not settled in light and life. 찬란한 저녁별들은 일부의 창조된 존엄층과 봉사로 도달하는 나머지 계층을 포함하는, 독특한 2중 계층입니다. 이들 초(超)천사로 이루어진 네바돈단(團)은 현재 13,641명입니다. 창조된 존엄층은 4,832명이고 한편 8,809명은 고귀하게 섬기는 이런 목표에 도달한 상승 영(靈)들입니다. 이렇게 여러 상승 저녁별들은 세라핌천사로서 자기들의 우주 생애를 시작했습니다. 나머지는 미(未)계시 수준의 창조물 생애에서 상승했습니다. 도달 목표로서, 이런 높은 단(團)은, 우주가 빛과 생명에 자리를 잡지 않은 한, 결코 상승 후보자들 가까이에 있지 않습니다.

37:2.5 (407.5) Both types of Brilliant Evening Stars are easily visible to morontia personalities and certain types of supermortal material beings. The created beings of this interesting and versatile order possess a spirit force which can be manifested independently of their personal presence. 찬란한 저녁별의 두 유형은 모론시아 고유성들과 어떤 유형의 초(超)필사 물질 존재들에게 쉽게 보입니다. 이렇게 흥미롭고 다재다능한 계층에 속한 창조된 존재들은, 자신들의 고유적 현존과 관계없이 분명히 나타날 수 있는 영(靈) 기세를 소유합니다.

37:2.6 (407.6) The head of these superangels is Gavalia, the first-born of this order in Nebadon. Since the return of Christ Michael from his triumphant bestowal on Urantia, Gavalia has been assigned to the ascendant mortal ministry, and for the last nineteen hundred Urantia years his associate, Galantia, has maintained headquarters on Jerusem, where he spends about half of his time. Galantia is the first of the ascendant superangels to attain this high estate. 이들 초(超)천사들의 수석은 네바돈의 이 계층에서 처음 태어난 가발리아입니다. 그리고 미가엘이 유란시아에서 승리한 자신의 증여에서 돌아온 이후, 가발리아는 상승 필사자를 보살피도록 배정되었고, 유란시아 시간으로 마지막 1,900년 동안 그의 동료 갈란시아는, 거의 절반의 자기 시간을 보낸, 예루셈에서 본부를 유지했습니다. 갈란시아는 이 높은 신분에 도달한 상승 초(超)천사 중 첫째입니다.

37:2.7 (407.7) No grouping or company organization of the Brilliant Evening Stars exists other than their customary association in pairs on many assignments. They are not extensively assigned on missions pertaining to the ascendant career of mortals, but when thus commissioned, they never function alone. They always work in pairs — one a created being, the other an ascendant Evening Star. 찬란한 저녁별들의 집단화 또는 단체 조직은, 여러 임무에 통상 쌍으로 결합하는 이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필사자들의 상승 생애에 속한 임무에 널리 임명되지 않으나, 그렇게 임명되면, 그들은 결코 홀로 활동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쌍-하나의 창조된 존재와 다른 하나의 상승 저녁별-으로 일합니다.

37:2.8 (407.8) One of the high duties of the Evening Stars is to accompany the Avonal bestowal Sons on their planetary missions, even as Gabriel accompanied Michael on his Urantia bestowal. The two attending superangels are the ranking personalities of such missions, serving as cocommanders of the archangels and all others assigned to these undertakings. It is the senior of these superangel commanders who, at the significant time and age, bids the Avonal bestowal Son, “Be about your brother’s business.” 저녁별들의 높은 임무 중 하나는, 가브리엘이 미가엘의 유란시아 증여에 그와 함께 갔듯이, 아보날 증여 아들들의 행성 사명에 함께 가는 것입니다. 수행하는 두 초(超)천사들은, 천사장들과 이런 업무에 배정된 다른 모두의 공동 지휘관들로서 섬기는, 그런 사명에 속한 상급 고유성들입니다. 이런 초(超)천사 지휘관 중 선임이, 중요한 시간과 시대에, 아보날 증여 아들에게, “당신 형의 업무를 돌보소서.”라고 말합니다.

37:2.9 (408.1) Similar pairs of these superangels are assigned to the planetary corps of Trinity Teacher Sons that functions to establish the postbestowal or dawning spiritual age of an inhabited world. On such assignments the Evening Stars serve as liaisons between the mortals of the realm and the invisible corps of Teacher Sons. 비슷한 이런 초(超)천사 쌍들은, 거주 세계의 증여 이후(以後) 혹은 영적 여명(黎明) 시대를 확립하려고 활동하는,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의 행성 단(團)에 배정됩니다. 그런 임무에, 저녁별들은 그 영역의 필사자들과 교사 아들들의 비(非)가시(可視)적 단(團) 사이에 연락관들로 섬깁니다.

37:2.10 (408.2) The Worlds of the Evening Stars. The sixth group of seven Salvington worlds and their forty-two tributary satellites are assigned to the administration of the Brilliant Evening Stars. The seven primary worlds are presided over by the created orders of these superangels, while the tributary satellites are administered by ascendant Evening Stars. 저녁별들의 세계들. 일곱 샐빙톤 세계의 여섯째 집단과 그것들의 42 종속 위성들은 찬란한 저녁별들의 경영에 할당되어 있습니다. 이런 초(超)천사들 중 창조된 계층이 일곱 1차 세계들이 주관하며, 한편 상승 저녁별들이 종속 위성들을 경영합니다.

37:2.11 (408.3) The satellites of the first three worlds are devoted to the schools of the Teacher Sons and the Evening Stars dedicated to the spirit personalities of the local universe. The next three groups are occupied by similar joint schools devoted to the training of ascending mortals. The seventh-world satellites are reserved for the triune deliberations of the Teacher Sons, the Evening Stars, and the finaliters. During recent times these superangels have been closely identified with the local universe work of the Corps of the Finality, and they have long been associated with the Teacher Sons. There exists a liaison of tremendous power and import between the Evening Stars and the Gravity Messengers attached to the finaliter working groups. The seventh primary world itself is reserved for those unrevealed matters which pertain to the future relationship that will obtain between the Teacher Sons, the finaliters, and the Evening Stars consequent upon the completed emergence of the superuniverse manifestation of the personality of God the Supreme. 처음 세 세계의 위성들은, 지역 우주의 영(靈) 고유성들에게 헌신적인, 교사 아들들과 저녁별의 학교들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 집단은 상승 필사자들에게 헌신적인, 비슷한 공동 학교들이 차지합니다. 일곱째 세계 위성들은, 교사 아들들, 저녁별들 및 최종자들의 삼자일치적 심의를 위해 확보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이런 초(超)천사들은 최종단(最終團)의 지역 우주 과업과 밀접하게 동일시되었고, 그들은 교사 아들들과 오랫동안 관련되었습니다. 저녁별들과 최종자 작업 그룹에 부속된 중력 메신저들 사이에 엄청난 동력과 중요성에 속한 연락관이 존재합니다. 일곱째 1차 세계 자체는, 최극자 하느님의 고유성의 완료된 출현이 초우주에 드러나는 결과로, 교사 아들들, 최종자들 및 저녁별들 사이에 도달할, 미래 관계에 속한 미(未)계시 문제들을 위해 확보되어 있습니다.

157-1 The Temple-Tax Collector 성전-세(稅) 징수원

1. The Temple-Tax Collector 성전-세(稅) 징수원

210905 성전-세(稅)의 진실 마17:24-27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24 After Jesus and his disciples arrived in Capernaum, the collectors of the two-drachma tax came to Peter and asked, “Doesn’t your teacher pay the temple tax?” 25 “Yes, he does,” he replied. When Peter came into the house, Jesus was the first to speak. “What do you think, Simon?” he asked. “From whom do the kings of the earth collect duty and taxes–from their own sons or from others?” 26 “From others,” Peter answered. “Then the sons are exempt,” Jesus said to him. 27 “But so that we may not offend them, go to the lake and throw out your line. Take the first fish you catch; open its mouth and you will find a four-drachma coin. Take it and give it to them for my tax and yours.”

157:1.1 (1743.3) As Jesus, with Andrew and Peter, tarried by the lake near the boatshop, a temple-tax collector came upon them and, recognizing Jesus, called Peter to one side and said: “Does not your Master pay the temple tax?” Peter was inclined to show indignation at the suggestion that Jesus should be expected to contribute to the maintenance of the religious activities of his sworn enemies, but, noting a peculiar expression on the face of the tax collector, he rightly surmised that it was the purpose to entrap them in the act of refusing to pay the customary half shekel for the support of the temple services at Jerusalem. Accordingly, Peter replied: “Why of course the Master pays the temple tax. You wait by the gate, and I will presently return with the tax.” 예수께서 안드레 및 베드로와 함께 배 작업장 근처 호숫가에 머물 때, 성전-세(稅) 징수원이 그들에게 와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한편으로 베드로를 불러 말했습니다. “너의 주님이 성전 세(稅)를 내지 않는가?” 베드로는, 예수가 단언한 그의 적들의 종교적 활동 유지에 바쳐야 한다는 제안에 분개하려 했으나, 세(稅) 징수원의 기묘한 표정을 알아차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봉사를 지원하는 관례적인 반 세겔의 납부를 거절했다는 법률로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의도를, 정확히 짐작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물론 주께서 성전 세(稅)를 내십니다. 당신이 문 옆에 기다리면 내가 곧 세금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157:1.2 (1743.4) Now Peter had spoken hastily. Judas carried their funds, and he was across the lake. Neither he, his brother, nor Jesus had brought along any money. And knowing that the Pharisees were looking for them, they could not well go to Bethsaida to obtain money. When Peter told Jesus about the collector and that he had promised him the money, Jesus said: “If you have promised, then should you pay. But wherewith will you redeem your promise? Will you again become a fisherman that you may honor your word? Nevertheless, Peter, it is well in the circumstances that we pay the tax. Let us give these men no occasion for offense at our attitude. We will wait here while you go with the boat and cast for the fish, and when you have sold them at yonder market, pay the collector for all three of us.” 그때 베드로는 성급히 말했습니다. 유다가 그들의 자금을 갖고 있었고, 그는 호수 건너편에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형제 및 예수님도 돈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을 찾는 줄 알면서, 그들은 돈을 가지러 벳새다에 바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징수원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이 그에게 돈을 약속했다고 말하자,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네가 약속했으면, 네가 내야 하느니라. 하지만 무엇으로 네 약속을 지키려느냐? 네 말을 지키려고 네가 다시 어부가 되려느냐? 그렇지만, 베드로야, 사정이 그러하니, 우리가 세금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니라. 이들이 우리 태도로 성나지 않게 하자. 네가 배로 가서 그물을 던지는 동안 우리가 여기서 기다릴 것이니, 네가 저쪽 시장에 그것을 팔아서, 우리 셋 모두를 위해 징수원에게 내라.”

157:1.3 (1744.1) All of this had been overheard by the secret messenger of David who stood near by, and who then signaled to an associate, fishing near the shore, to come in quickly. When Peter made ready to go out in the boat for a catch, this messenger and his fisherman friend presented him with several large baskets of fish and assisted him in carrying them to the fish merchant near by, who purchased the catch, paying sufficient, with what was added by the messenger of David, to meet the temple tax for the three. The collector accepted the tax, forgoing the penalty for tardy payment because they had been for some time absent from Galilee. 근처에 서 있던 다윗의 비밀 메신저가 이 모든 말을 엿들은 후에, 해안 근처에서 고기를 낚는 동료에게 빨리 오라고 신호했습니다. 베드로가 고기 잡으러 배로 나가려고 준비했을 때, 이 메신저와 그의 어부 친구가 그에게 커다란 생선 바구니 몇 개를 주었고, 그를 도와서 바로 근처에서 물고기를 사들여 충분히 지급하는 생선 상인에게 그것들을 옮겼고, 세 명의 성전 세(稅)를 채우려고 다윗의 메신저가 그것에 보탰습니다. 징수원은, 그들이 한동안 갈릴리에 없었기에 납부를 지체한 벌금 없이 세금을 받았습니다.

157:1.4 (1744.2) It is not strange that you have a record of Peter’s catching a fish with a shekel in its mouth. In those days there were current many stories about finding treasures in the mouths of fishes; such tales of near miracles were commonplace. So, as Peter left them to go toward the boat, Jesus remarked, half-humorously: “Strange that the sons of the king must pay tribute; usually it is the stranger who is taxed for the upkeep of the court, but it behooves us to afford no stumbling block for the authorities. Go hence! maybe you will catch the fish with the shekel in its mouth.” Jesus having thus spoken, and Peter so soon appearing with the temple tax, it is not surprising that the episode became later expanded into a miracle as recorded by the writer of Matthew’s Gospel. 베드로가 한 세겔을 입에 물고 있는 생선을 잡았다는 기록을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마17:27)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당시 생선 입에 있는 보물의 발견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돌고 있었습니다. 기적에 가까운 그런 이야기들은 흔해 빠졌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을 떠나 배를 향해 가자, 예수께서 다소 익살스럽게 말했습니다. “왕의 자녀들이 세금을 내야만 하다니, 이상하구나. 대개 외부인들이 왕실 유지를 위해 납세하지만, 우리는 당국에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하느니라. 가라! 네가 입에 세겔이 있는 생선을 잡을지도 모르겠구나.” 예수께서 이렇게 말했고, 베드로가 바로 성전 세(稅)를 가지고 나타났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저자가 기록했듯이 사건이 나중에 기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157:1.5 (1744.3) Jesus, with Andrew and Peter, waited by the seashore until nearly sundown. Messengers brought them word that Mary’s house was still under surveillance; therefore, when it grew dark, the three waiting men entered their boat and slowly rowed away toward the eastern shore of the Sea of Galilee. 예수님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함께 거의 해가 질 때까지 해변에서 기다렸습니다. 메신저들은, 마리아의 집이 여전히 감시받고 있었다는 소식을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래서 날이 어두워지자, 기다리던 세 사람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동쪽 해안을 향해 서서히 계속 노를 저었습니다.

157-0 At Caesarea-Philippi 가이사랴-빌립보에서

Paper 157

At Caesarea-Philippi 가이사랴-빌립보에서

157:0.1 (1743.1) BEFORE Jesus took the twelve for a short sojourn in the vicinity of Caesarea-Philippi, he arranged through the messengers of David to go over to Capernaum on Sunday, August 7, for the purpose of meeting his family. By prearrangement this visit was to occur at the Zebedee boatshop. David Zebedee had arranged with Jude, Jesus’ brother, for the presence of the entire Nazareth family — Mary and all of Jesus’ brothers and sisters — and Jesus went with Andrew and Peter to keep this appointment. It was certainly the intention of Mary and the children to keep this engagement, but it so happened that a group of the Pharisees, knowing that Jesus was on the opposite side of the lake in Philip’s domains, decided to call upon Mary to learn what they could of his whereabouts. The arrival of these Jerusalem emissaries greatly perturbed Mary, and noting the tension and nervousness of the entire family, they concluded that Jesus must have been expected to pay them a visit. Accordingly they installed themselves in Mary’s home and, after summoning reinforcements, waited patiently for Jesus’ arrival. And this, of course, effectively prevented any of the family from attempting to keep their appointment with Jesus. Several times during the day both Jude and Ruth endeavored to elude the vigilance of the Pharisees in their efforts to send word to Jesus, but it was of no avail. 예수께서 12사도를 데리고 가이사랴-빌립보 부근에 잠시 머무르기 전에, 그는 자기 가족을 만나려고, 8월 7일 일요일에 가버나움으로 건너가도록 다윗의 메신저를 통해 준비하셨습니다. 이 방문은 세베대 배 작업장에서 만나기로 미리 정했습니다. 다윗 세배대가 예수님의 동생 유다와 함께 모든 나사렛 가족 – 마리아와 모든 예수님의 형제, 자매들이 참석하도록 준비했고, 예수님은 안드레 및 베드로와 함께 이 약속을 지키려고 갔습니다. 마리아와 자녀들은 이 약속을 분명히 지키려고 했지만, 우연히 바리새인 무리가 예수께서 빌립의 영토에 있는 호수 건너편에 있음을 알고, 그의 소재를 알려고 마리아를 방문하기로 정했습니다. 이런 예루살렘 밀정들의 도착으로 마리아는 매우 불안했으며, 온 가족의 긴장과 불안을 알아차리고, 예수께서 그들을 틀림없이 방문할 작정이라고 그들이 추정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마리아의 집에 앉아 증원군을 부른 후, 예수의 도착을 끈기 있게 기다렸습니다. 물론 가족 중 누구도 이것으로 인해 예수님과 약속을 실제로 지키려고 해 볼 수 없었습니다. 낮에 몇 번씩 유다와 룻은 바리새인들의 경계를 피해 예수님께 소식을 전하려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157:0.2 (1743.2) Early in the afternoon David’s messengers brought Jesus word that the Pharisees were encamped on the doorstep of his mother’s house, and therefore he made no attempt to visit his family. And so again, through no fault of either, Jesus and his earth family failed to make contact. 이른 오후에 다윗의 메신저들이 예수께 소식을 가져와, 바리새인들이 그 모친의 집 문간에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해서, 그는 가족을 방문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누구의 잘못도 없이, 예수님과 지상 가족들은 연락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S136 Baptism and the Forty Days 개요136편 세례와 40일

S136 Baptism and the Forty Days 개요136편 세례와 40일

136:0.2 (1509.2) When John preached the coming kingdom, the burden of his message was: Repent! flee from the wrath to come. When Jesus began to preach, there remained the exhortation to repentance, but such a message was always followed by the gospel, the good tidings of the joy and liberty of the new kingdom. 요한이 다가오는 나라를 전파하였을 때, 그의 메시지의 요점은 “회개하라! 앞으로 올 진노(震怒)를 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설교를 시작하였을 때, 회개하라는 권고는 같았지만, 그러한 메시지에는 언제는 복음, 즉 새로운 나라의 기쁨과 자유의 행복한 소식이 뒤따랐습니다.

  1. Concepts of the Expected Messiah 기대하던 메시아 개념

136:1.1 (1509.3) The concept evolve from the “servant of the Lord” to the “son of David,” “Son of Man,” and “Son of God.” 그 개념은 “주님의 종(왕, 제사장, 선지자)”으로부터 “다윗의 아들(완전한 인간),” “사람의 아들(초인간),”과 “하느님의 아들(신적 존재)”까지 발전되었습니다. 136:1.3 (1509.5) But they almost completely lost sight of the personality of the promised Messiah. They were looking for a restoration of Jewish national glory — Israel’s temporal exaltation — rather than for the salvation of the world. It therefore becomes evident that Jesus of Nazareth could never satisfy this materialistic Messianic concept of the Jewish mind. 그러나 그들은 약속된 메시아의 고유성(인격)에 대한 시각은 거의 완벽하게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구원보다는 유대의 민족적 영광─이스라엘의 세속적인 지위 향상─이 회복되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러한 물질주의적인 메시아의 개념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음이 명백해집니다. 136:1.5 (1510.2) And the kingdom of heaven could mean only one thing to any devout Jew: The coming of the Messiah. 어떤 열렬한 유대인에게라도 하늘나라라는 말은 오직 한 가지만을 의미했는데: 그것은 메시아의 도래였습니다.

136:1.6 (1510.3) There was one feature of the bestowal of Michael which was utterly foreign to the Jewish conception of the Messiah, and that was the union of the two natures, the human and the divine. Never had the Jews for a single moment entertained the true concept of the union in one earth personality of the two natures, the human and the divine. The incarnation of the Creator in the form of the creature had not been revealed beforehand. It was revealed only in Jesus; the world knew nothing of such things until the Creator Son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the mortals of the realm. 미가엘 증여에 있어서, 유대 메시아의 개념과 매우 다른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두 본성의 연합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두 가지의 본성이 이 세상의 한 고유성으로 연합한다는 참된 개념은 한순간도 고려해본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창조물의 형상으로 창조주가 육신이 되심은 과거에는 한 번도 계시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예수님 안에서만 계시되었으며; 창조주 아들이 육신으로 와서 그 땅의 필사자들 가운데에 거하시기 전까지, 세상은 그러한 일들을 알 수 없었습니다.

  1. The Baptism of Jesus 예수님의 세례

136:2.3 (1511.2) As John laid his hands upon Jesus to baptize him, and he heard this same spirit of Paradise origin now speak,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And John, with Jesus’ two brothers, also heard these words. Only the eyes of Jesus beheld the Personalized Adjuster. 요한이 그에게 세례를 주기 위하여 예수님 위에 손을 얹자, 천국 기원의 바로 그 영이 당시에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의 두 동생과 요한도 이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의 눈에만 고유성화 조율자가 보였습니다. 136:2.4 (1511.3) And while the four of them tarried in the water, Jesus, looking up to the near-by Adjuster, prayed: “My Father who reigns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even as it is in heaven.” When he had prayed, the “heavens were opened,” and the Son of Man saw the vision, presented by the now Personalized Adjuster, of himself as a Son of God as he was before he came to earth in the likeness of mortal flesh, and as he would be when the incarnated life should be finished. This heavenly vision was seen only by Jesus. 그들 네 명이 물에 머무는 동안, 예수님은 바로 근처의 조율자를 바라보며 기도하셨습니다. “하늘을 다스리는 내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그가 기도를 마치자, “하늘들이 열리고,” 사람의 아들은 이제 고유성화 조율자가 제시한, 자신이 필사자 육신의 모습으로 지상에 오기 이전(以前)과 육신화 생애를 마치고 되어질 이후(以後)의 하느님 아들로서 자신의 환영(幻影)을 보았습니다. 예수님만 이런 하늘의 환영을 봤습니다.

136:2.6 (1512.2) When Jesus was baptized, he repented of no misdeeds; he made no confession of sin. His was the baptism of consecration to the performance of the will of the heavenly Father. At his baptism he heard the unmistakable call of his Father, the final summons to be about his Father’s business. 예수께서 세례를 받았을 때, 그는 아무런 잘못도 회개하지 않았으며; 아무 죄도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헌신하는 세례였습니다. 세례받을 때, 그는 아버지의 일을 시작하라는 마지막 호출인 아버지의 명백한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136:2.7 (1512.3) This day of baptism ended the purely human life of Jesus. The divine Son has found his Father, the Universal Father has found his incarnated Son, and they speak the one to the other. 세례받은 이 날에 예수님은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일생을 끝마쳤습니다. 136:2.8 (1512.4) In the very year of A.D. 26, (Jesus was almost thirty-one and one-half years old when he was baptized.) 바로 서기 26년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는 거의 31살 반이었습니다).

  1. The Forty Days 40일

136:3.1 (1512.5) This Prince of Urantia, so soon to be proclaimed supreme Sovereign of Nebadon, now went into forty days of retirement to formulate the plans and determine upon the technique of proclaiming the new kingdom of God in the hearts of men. 곧 네바돈의 최극 주권자로 선포될, 유란시아의 이 왕자는, 사람들의 심정에 새로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계획을 구상하고 그 기법을 결정짓기 위하여, 이제 40일간 은둔에 들어갔습니다. 136:3.2 (1512.6) During this isolation in the Perean hills he determined upon the policy to be pursued and the methods to be employed in the new and changed phase of earth life which he was about to inaugurate. 페레아 언덕에서 혼자 계셨던 이 기간에, 그는 새롭게 변경된 지상 일생의 국면에서, 자신이 곧 시작하여 추구해야 할 정책과 사용되어야 할 방법들을 결정하셨습니다.

  1. Plans for Public Work 공(公)사역 계획

136:4.6 (1514.7) Gabriel had reminded Jesus that there were two ways in which he might manifest himself to the world in case he should choose to tarry on Urantia for a time. 가브리엘은 예수께서 유란시아에 한동안 머물기로 선택할 경우,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136:4.7 (1515.1) 1. His own way — the way that might seem most pleasant and profitable from the standpoint of the immediate needs of this world and the present edification of his own universe. 그 자신의 방법 – 이 세상의 즉각적 필요와 자기 우주의 당면한 계발(啓發)의 입장에서 가장 적절히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방법.

136:4.8 (1515.2) 2. The Father’s way — the exemplification of a farseeing ideal of creature life visualized by the high personalities of the Paradise administration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아버지의 방법 – 우주들의 우주의 천국 경영을 맡은 높은 고유성들이 구상한, 창조물 일생의 선견지명이 있는 이상(理想)의 모범.

136:4.9 (1515.3) On the third day of this isolation Jesus promised himself he would go back to the world to finish his earth career, and that in a situation involving any two ways he would always choose the Father’s will. And he lived out the remainder of his earth life always true to that resolve. Even to the bitter end he invariably subordinated his sovereign will to that of his heavenly Father. 이 고립의 3일에, 예수께서는 자기 지상 생애를 마치려고 세상으로 돌아가, 두 방법이 포함된 상황에서 항상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지상 생애의 나머지를 언제나 그런 결심에 충실하게 사셨습니다. 쓰라린 마지막에도 그는 변함없이 자기 주권적 뜻을 하늘 아버지의 뜻에 종속시켰습니다.

  1. The First Great Decision 첫 번째 중대한 결정

136:5.1 (1516.1) On the third day after beginning this conference with himself and his Personalized Adjuster, Jesus was presented with the vision of the assembled celestial hosts of Nebadon sent by their commanders to wait upon the will of their beloved Sovereign. This mighty host embraced twelve legions of seraphim and proportionate numbers of every order of universe intelligence. 자기 자신과 그의 고유성화 조율자와의 협의가 시작된 지 3일째 되는 날, 사랑하는 주권자의 뜻을 섬기라고 그들의 사령관이 보낸 네바돈 천상의 무리가 집합되어있는 환영(幻影)이 예수님에게 보였습니다. 이 강력한 무리는 12 군단의 세라핌 천사들과, 우주의 각 계층들로부터 온 균등한 숫자의 지능존재들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136:5.5 (1517.1) He had by a single decision excluded all of his attendant universe hosts of varied intelligences from participating in his ensuing public ministry except in such matters as concerned time only. It therefore becomes evident that any possible supernatural or supposedly superhuman accompaniments of Jesus’ ministry pertained wholly to the elimination of time unless the Father in heaven specifically ruled otherwise. 단 한 번의 결정으로, 그는 시간에 관한 문제만을 제외하고는, 자기가 계속적인 대중을 위한 공(公) 사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양한 우주 지능존재들 무리의 참여를 배제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공(公) 사역에서 따라다녔던 초자연적이거나 초인간적 업적이라고 이야기되는 것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특별히 다른 방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닌 한, 전적으로 시간 제거에 관계된 것임이 명백해졌습니다.

  1. The Second Decision 두 번째 결정

136:6.2 (1518.1) He now definitely decided against a policy which would transcend, violate, or outrage his own established natural laws. The Master chose a program of living which was the equivalent of deciding against miracles and wonders. Again he surrendered everything into the hands of his Paradise Father. 이제 그는 자신이 세운 자연법칙을 초월하거나 위반하거나 어기는 정책은 피하기로 분명하게 결정하였습니다. 주(主)님은 기적이나 이적을 행하지 않겠다는 결정에 상당하는 삶의 프로그램을 선택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의 천국 아버지의 손에 맡겼습니다. 136:6.4 (1518.3) He purposed to follow the unnatural course — he decided not to seek self-preservation. 그는 부자연스러운 과정을 따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 자아보존을 추구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36:6.11 (1519.4) Jesus thus revealed to the creatures of his universe the technique of the new and better way, the higher moral values of living and the deeper spiritual satisfactions of evolutionary human existence on the worlds of space. 이렇게 예수님은 자기 우주의 창조물들에게, 더 높은 도덕적 삶의 가치와 공간의 세계에서 진화하는 인간 존재가 누릴 더 깊은 영적 만족의 새롭고 나은 길로 가는 기법을 계시하셨습니다.

  1. The Third Decision 세 번째 결정

136:7.1 (1519.5) He decided to refrain from all superhuman intervention when the crisis of his life in the flesh should come. 그는 육신상의 삶의 위기가 올 때, 모든 초인간적 개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36:7.2 (1519.6) Jesus knew his fellow countrymen were expecting a Messiah who would be above natural law. But such a course, however gratifying to the sign-seeking Jews, would be, not a revelation of his Father, but a questionable trifling with the established laws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예수님은 자기 동료 민족이 자연법칙을 초월하는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은, 표적을 찾는 유대인들을 만족시키더라도, 그의 아버지를 나타내 보이는 길은 아닐 것이며 단지 우주들의 우주에 세워져 있는 법칙들을 의심스럽게 하는 무익한 행동일 뿐입니다. 136:7.4 (1520.1) Throughout his entire earth life Jesus was consistently loyal to this decision. 예수님은 자신의 지상 일생 내내, 끊임없이 이 결정에 충실하였습니다.

  1. The Fourth Decision 네 번째 결정

136:8.8 (1521.3) He refused to prostitute his divine attributes for the purpose of acquiring unearned popularity or for gaining political prestige. He would not countenance the transmutation of divine and creative energy into national power or international prestige. Jesus of Nazareth refused to compromise with evil, much less to consort with sin. The Master triumphantly put loyalty to his Father’s will above every other earthly and temporal consideration. 그는, 노력 없이 얻는, 인기를 얻는 목적이나 정치적 명성을 얻으려고 자신의 신적 속성들을 악용하기를 거절하셨습니다. 그는 신적이며 창조적인 에너지를 민족적 권능이나 국제적 명성으로 변질시키는 것을 묵인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죄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악과 타협하는 것도 거부하셨습니다. 주(主)님은, 다른 세속적이며 현세적으로 고려할 모든 것 위에 아버지의 뜻에 충성하는 것을, 승리한 마음으로 올려놓으셨습니다.

  1. The Fifth Decision 다섯 번째 결정

136:9.2 (1522.1) The Jews envisaged a deliverer who would come in miraculous power to cast down Israel’s enemies and establish the Jews as world rulers, free from want and oppression. Jesus knew that this hope would never be realized. He knew that the kingdom of heaven had to do with the overthrow of evil in the hearts of men, and that it was purely a matter of spiritual concern. He thought out the advisability of inaugurating the spiritual kingdom with a brilliant and dazzling display of power — and such a course would have been permissible and wholly within the jurisdiction of Michael — but he fully decided against such a plan. 유대인들은 해방자를, 기적의 힘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적들을 쳐부수고, 유대인들을 세상의 통치자들로 만들어 주며, 빈곤과 억압에서 해방시켜주는 자로 마음속에 그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희망이 결코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늘나라는 사람들의 심정에서 악을 버려야만 하는 일이며, 그것은 순수하게 영적 관련 문제였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는 찬란하며 눈부신 권능을 전시하는 영적 왕국의 취임식의 대안─그런 과정은 허락될 것이며 전적으로 미가엘의 관할권 안에 있었습니다.─을 생각했지만, 그는 그러한 계획을 반대하기로 완전히 결정하셨습니다.

  1. The Sixth Decision 여섯 번째 결정

136:10.1 (1523.6) On the last day of this memorable isolation, before starting down the mountain to join John and his disciples, the Son of Man made his final decision. And this decision he communicated to the Personalized Adjuster in these words, “And in all other matters, as in these now of decision-record, I pledge you I will be subject to the will of my Father.” 이 기억할만한 고립의 마지막 날, 요한과 그의 제자들에게 합류하러 산에서 내려가시기 전에, 사람의 아들은 그의 마지막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그는 이 결정을 다음과 같은 말로 고유성화 조율자에게 통보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다른 문제에서, 이제 이 여러 기록된-결정대로, 나는 나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할 것을 당신께 서약합니다.”

83-3 Purchase and Dowry 아내 사들임과 지참금

3. Purchase and Dowry 아내 사들임과 지참금

83:3.1 (923.7) The ancients mistrusted love and promises; they thought that abiding unions must be guaranteed by some tangible security, property. For this reason, the purchase price of a wife was regarded as a forfeit or deposit which the husband was doomed to lose in case of divorce or desertion. Once the purchase price of a bride had been paid, many tribes permitted the husband’s brand to be burned upon her. Africans still buy their wives. A love wife, or a white man’s wife, they compare to a cat because she costs nothing. 고대인들은 사랑과 약속을 의심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연합은 현실적인 어떤 보호조치, 재산으로 보증되어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아내 구입 가격은, 이혼이나 불법 유기의 경우에 남편이 손해를 보기로 정한 벌금이나 보증금으로 여겼습니다. 일단 신부 구입 가격을 지불하고 나면, 여러 부족이 남편의 소인(燒印)을 그녀에게 찍도록 허용했습니다. 아프리카인(人)들은 아직도 자기 아내를 사들입니다. 고양이는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사랑하는 아내, 즉 백인의 아내를 고양이로 비유합니다.

83:3.2 (924.1) The bride shows were occasions for dressing up and decorating daughters for public exhibition with the idea of their bringing higher prices as wives. But they were not sold as animals — among the later tribes such a wife was not transferable. Neither was her purchase always just a cold-blooded money transaction; service was equivalent to cash in the purchase of a wife. If an otherwise desirable man could not pay for his wife, he could be adopted as a son by the girl’s father and then could marry. And if a poor man sought a wife and could not meet the price demanded by a grasping father, the elders would often bring pressure to bear upon the father which would result in a modification of his demands, or else there might be an elopement. 신부 쇼는 갖춰 입고 꾸민 딸들이 아내로서 그들의 값을 더 높이려는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적절한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물로 팔리지 않았습니다. 후기 부족들 사이에서 그런 아내는 양도(讓渡)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구입이 언제나 냉혹한 금전 거래만은 아니었습니다. 봉사(奉仕 받들어 섬김)는 아내구입에서 현금과 같았습니다. 탐나도록 매력적인 남성이 자기 아내를 위해 값을 치를 수 없다면, 소녀의 아버지가 그를 아들로 입양한 후, 그는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남성이 아내를 얻으려 하지만 욕심 많은 아버지가 요구하는 값을 치를 수 없으면, 부족의 어른들이 종종 아버지에게 압력을 가해서 그의 요구사항을 수정하게 만들거나, 그 외에 애인과 함께 달아날 수 있었습니다.

83:3.3 (924.2) As civilization progressed, fathers did not like to appear to sell their daughters, and so, while continuing to accept the bride purchase price, they initiated the custom of giving the pair valuable presents which about equaled the purchase money. And upon the later discontinuance of payment for the bride, these presents became the bride’s dowry. 문명이 발전하면서, 아버지들은 자기 딸들을 파는 것같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신부 매입 값을 계속 받으면서, 구매 대금과 거의 같은 값진 선물을 부부에게 주는 관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후일 신부를 위한 금액이 폐지된 후, 이런 선물들은 신부의 지참금이 되었습니다.

83:3.4 (924.3) The idea of a dowry was to convey the impression of the bride’s independence, to suggest far removal from the times of slave wives and property companions. A man could not divorce a dowered wife without paying back the dowry in full. Among some tribes a mutual deposit was made with the parents of both bride and groom to be forfeited in case either deserted the other, in reality a marriage bond. During the period of transition from purchase to dowry, if the wife were purchased, the children belonged to the father; if not, they belonged to the wife’s family. 지참금의 생각은 신부의 자활(自活)하는 인상의 전달, 즉 노예 아내 및 재산 동반자의 시대와 아주 달라졌음을 암시합니다. 남성은 지참금의 전액을 갚지 않으면 지참금을 가져온 아내와 이혼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부족 중에는, 신부와 신랑의 부모와 함께 상호 예치금을 만들어, 한 편이 다른 편을 버리는 경우, 실제 결혼 보증금으로 몰수되도록 했습니다. 사들이기에서 지참금으로 이동하는 과도기에, 아내를 사들이면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속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녀들은 아내의 가족에 속했습니다.

37-1 The Universe Aids 우주 조력자들

1. The Universe Aids 우주 조력자들

37:1.1 (406.3) Many of the unique orders generally grouped in this category are unrevealed, but as presented in these papers, the Universe Aids include the following seven orders: 일반적으로 이 범주로 분류된 여러 독특한 계열은 계시가 되지 않지만, 이런 문서들에 제시된 것처럼, 우주 조력자들은 다음 일곱 계열을 포함합니다.

37:1.2 (406.4) 1. Bright and Morning Stars. 광명한 새벽별들.

37:1.3 (406.5) 2. Brilliant Evening Stars. 찬란한 저녁별들

37:1.4 (406.6) 3. Archangels. 천사장들.

37:1.5 (406.7) 4. Most High Assistants. 지고 보좌관들.

37:1.6 (406.8) 5. High Commissioners. 고등 판무관(辦務官 보호국·식민지에 파견되어 정치·외교 따위의 사무를 처리하는 관리)들.

37:1.7 (406.9) 6. Celestial Overseers. 천상의 시찰(視察)자들.

37:1.8 (406.10) 7. Mansion World Teachers. 저택 세계 교사들.

37:1.9 (406.11) Of the first order of Universe Aids, the Bright and Morning Stars, there is just one in each local universe, and he is the first-born of all creatures native to a local universe. The Bright and Morning Star of our universe is known as Gabriel of Salvington. He is the chief executive of all Nebadon, functioning as the personal representative of the Sovereign Son and as spokesman for his creative consort. 우주 조력자 중 첫 계열에 속한 광명한 새벽별들은 각 지역 우주에 하나만 있고, 그는 지역 우주의 모든 토착 창조물 중 첫 태생입니다. 우리 우주의 광명한 새벽별은 샐빙톤의 가브리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주권자 아들의 개인적 대리인과 그의 창조적 배우자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모든 네바돈의 수석 실행자입니다.

37:1.10 (406.12) During the earlier times of Nebadon, Gabriel worked quite alone with Michael and the Creative Spirit. As the universe grew and administrative problems multiplied, he was provided with a personal staff of unrevealed assistants, and eventually this group was augmented by the creation of the Nebadon corps of Evening Stars. 네바돈의 초기에, 가브리엘은 미가엘 및 창조적 영과 함께 완전히 홀로 일했습니다. 우주가 성장하고 행정 업무가 늘어나면서, 그에게 미(未)계시 보좌관들에 속한 개인 참모가 준비되었고, 결국, 이 집단은 저녁별들의 네바돈 단(團)의 창조로 늘어났습니다.

37-0 Personalities of the Local Universe 지역 우주의 고유성들

Paper 37

Personalities of the Local Universe 지역 우주의 고유성들

37:0.1 (406.1) AT THE head of all personality in Nebadon stands the Creator and Master Son, Michael, the universe father and sovereign. Co-ordinate in divinity and complemental in creative attributes is the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the Divine Minister of Salvington. And these creators are in a very literal sense the Father-Son and the Spirit-Mother of all the native creatures of Nebadon. 네바돈에 있는 모든 고유성의 정상에는 창조자 및 주(主) 아들, 미가엘, 우주 아버지 및 주권자가 서 있습니다. 지역 우주 어머니 영(靈), 샐빙톤의 신적 성직자가 신성(神性)에서 통합-조정하며 창조적 속성에서 보완합니다. 그리고 이런 창조자들은 바로 문자 그대로, 네바돈의 모든 토착 창조물들의 아버지-아들과 영(靈)-어머니입니다.

37:0.2 (406.2) Preceding papers have dealt with the created orders of sonship; succeeding narratives will portray the ministering spirits and the ascending orders of sonship. This paper is chiefly concerned with an intervening group, the Universe Aids, but it will also give brief consideration to certain of the higher spirits stationed in Nebadon and to certain of the orders of permanent citizenship in the local universe. 이전의 문서들은 창조된 아들 계열을 다루었습니다. 계속되는 이야기들은 보살피는 영(靈)들과 아들 된 상승 계열을 묘사할 것입니다. 이 문서는 주로 두 사이에 개재된 집단, 우주 조력자들에 관련되지만, 네바돈에 배치된 어떤 고등 영(靈)들과 지역 우주의 어떤 영구 시민권 계열들도 짧게 고찰할 것입니다.

S36 The Life Carriers 개요 36편 생명 운반자들

S36 The Life Carriers 개요 36편 생명 운반자들

36:0.1 (396.1) LIFE does not originate spontaneously. Life is constructed according to plans formulated by the (unrevealed) Architects of Being and appears on the inhabited planets either by direct importation or as a result of the operations of the Life Carriers of the local universes. 생명은 자연적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생명은 (미未계시) 존재 건축가들이 만든 계획에 따라 구성되며, 직수입 또는 지역 우주에 속한 생명 운반자들의 작용 결과로서 거주 행성들에 출현합니다.

  1. Origin and Nature of Life Carriers 생명 운반자들의 기원과 본성

36:1.1 (396.2) The Life Carriers are the offspring of three pre-existent personalities: the Creator Son, the Universe Mother Spirit, and, by designation, one of the three Ancients of Days presiding over the destinies of the superuniverse concerned. 생명 운반자들은 선재(先在)하는 세 고유성들 : 창조자 아들, 우주 어머니 영(靈) 및 지정되어, 관련된 초우주 운명을 관장하는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 중 한 분의 자녀입니다. 36:1.2 (396.3) They are directed by the life-determining trio, consisting of Gabriel, the Father Melchizedek, and Nambia, the original and first-born Life Carrier of Nebadon. 가브리엘, 아버지 멜기세덱 및 네바돈에서 기원적으로 처음 태어난 생명 운반자, 남비아로 구성된, 생명을 결정하는 트리오가 그들을 지도합니다. 36:1.3 (396.4) Life Carriers are graded into three grand divisions: The first division is the senior Life Carriers, the second, assistants, and the third, custodians. 생명 운반자들은 3대 분과로 등급이 정해집니다. 첫째 분과는 선임 생명 운반자들이고, 둘째는 보좌관들이며, 셋째는 보관자들입니다.

  1. The Life Carrier Worlds 생명 운반자 세계들

36:2.1 (397.1) The Melchizedeks have the general oversight of the fourth group of seven primary spheres in the Salvington circuit. These worlds of the Life Carriers are designated as follows: 멜기세덱들은 샐빙톤 회로의 4번째 일곱 1차 구체 집단을 전체적으로 감독합니다. 생명 운반자들의 이런 세계들은 다음과 같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36:2.2 (397.2) 1. The Life Carrier headquarters. 생명 운반자 본부. 36:2.3 (397.3) 2. The life-planning sphere. 생명-계획 구체. 36:2.4 (397.4) 3. The life-conservation sphere. 생명-보존 구체. 36:2.5 (397.5) 4. The sphere of life evolution. 생명 진화의 구체. 36:2.6 (397.6) 5. The sphere of life associated with mind. 마음과 결합한 생명의 구체. 36:2.7 (397.7) 6. The sphere of mind and spirit in living beings. 살아있는 존재들의 마음과 영의 구체. 36:2.8 (397.8) 7. The sphere of unrevealed life. 미(未)계시 생명의 구체.

  1. Life Transplantation 생명 이식(移植)

36:3.1 (399.3) They are the carriers, disseminators, and guardians of life as it appears on the evolutionary worlds of space. 생명이 공간의 진화 세계에 나타나므로, 그들은 생명 운반자들, 파종자들 및 보관자들입니다. 36:3.2 (399.4) They sometimes organize the life patterns after arriving on the planet of assignment in accordance with formulas previously approved for a new adventure in life establishment. 그들은, 생명 정착의 새 모험을 위해 이전에 승인된 공식을 따라 배치된 행성에 도착한 후, 때때로 생명 원본을 조직합니다. 36:3.4 (399.6) The vital spark — the mystery of life — is bestowed through the Life Carriers, not by them. 생명의 섬광 – 생명의 신비 –은 생명 운반자들이 증여하지 않고, 그들을 통해 증여됩니다. 36:3.8 (400.3) When the Life Carriers operating on a new world have once succeeded in producing a being with will, with the power of moral decision and spiritual choice, then and there their work terminates — they are through; 새 세계에서 일하는 생명 운반자들이 도덕적 결정과 영적 선택의 힘을 지닌 의지 존재의 생산에 일단 성공하는 그때, 그들이 끝내서, 그들의 과업이 종료됩니다.

  1. Melchizedek Life Carriers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들

36:4.1 (400.5) In every local system of inhabited worlds throughout Nebadon there is a single sphere whereon the Melchizedeks have functioned as life carriers. 네바돈 전체의 모든 거주 세계가 속한 지역 체계마다, 멜기세덱들이 생명 운반자들로 활동하는 구체가 하나 있습니다. 36:4.2 (400.6) The progeny of a Melchizedek life carrier and a Material Daughter are known as midsoniters.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와 물질 딸의 자손은 중한(中限)자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36:4.6 (401.2) The children of the Melchizedek life carriers and the Material Daughters are domiciled on the seventh world of the finaliters, the Salvington midsonite sphere.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들과 물질 딸들의 자녀들은 최종자들의 일곱째 세계, 샐빙톤 중한(中限)자 구체에서 삽니다. 36:4.8 (401.4) It is the belief of the Melchizedek life carriers that their midsonite children will some day be endowed with the transcendental and eternal spirit of absonity by God the Ultimate.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들은 궁극 하느님이 언젠가 자신들의 중한(中限) 자녀들에게 절한(絶限)의 초월적인 영원한 영(靈)을 증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1.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일곱 보조 마음-영(靈)들

36:5.1 (401.5) It is the presence of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on the primitive worlds that conditions the course of organic evolution; that explains why evolution is purposeful and not accidental. 생물진화 과정을 결정하는 것은 원시 세계에 있는 일곱 보조 마음-영들의 존재입니다. 그것이 진화가 의도적이며, 우발적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36:5.2 (401.6)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are called by names which are the equivalents of the following designations: intuition, understanding, courage, knowledge, counsel, worship, and wisdom. 일곱 보조 마음-영들은 다음의 명칭에 해당하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직관(直觀), 이해(理解), 용기(勇氣), 지식(知識), 조언(助言), 경배(敬拜) 및 지혜(智慧).

  1. Living Forces 살아있는 기세(氣勢)들

36:6.3 (404.1) Life Carriers can organize the material forms, or physical patterns, of living beings, but the Spirit provides the initial spark of life and bestows the endowment of mind. Animal mind and human mind are gifts of the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functioning through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while creature ability to reproduce is the specific and personal impartation of the Universe Spirit to the ancestral life plasm inaugurated by the Life Carriers. 생명 운반자들은 살아있는 존재의 물질적 형태, 물리적 원본을 조직할 수 있지만, 영(靈)이 최초 생명의 섬광을 공급하며 마음 자질을 증여합니다. 동물 마음과 인간 마음은, 일곱 보조 마음-영(靈)들을 통해 활동하는, 지역 우주 어머니 영(靈)의 선물이며, 한편 번식하는 창조물 능력은 생명 운반자들이 시작한 조상의 생명 원형질에 우주 영(靈)이 명확히 직접 전달한 것입니다. 36:6.5 (404.3) The survival of mortal creatures is wholly predicated on the evolvement of an immortal soul within the mortal mind. 필사 창조물의 생존은 전적으로 필사 마음 안에 있는 불멸 혼(魂)의 진화에 근거합니다. 36:6.7 (404.5) We know that life flows from the Father through the Son and by the Spirit. 우리는 생명이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통해 영(靈)에 의해서 흐르는 것을 압니다.

156-6 The Return from Phoenicia 페니키아에서 돌아옴

6. The Return from Phoenicia 페니키아에서 돌아옴

210829 살아있는 하느님의 영(靈) 종교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You, however, are controlled not by the sinful nature but by the Spirit, if the Spirit of God lives in you. And if anyone does not have the Spirit of Christ, he does not belong to Christ.

156:6.1 (1741.1) About noon on Sunday, July 24, Jesus and the twelve left the home of Joseph, south of Tyre, going down the coast to Ptolemais. Here they tarried for a day, speaking words of comfort to the company of believers resident there. Peter preached to them on the evening of July 25. 7월 24일(AD29), 일요일 정오 무렵에, 예수님과 12사도는 티레의 남쪽, 요셉의 집을 떠나 해안을 따라 프톨레마이스로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여기에 하루 머물면서 거기 사는 신자 일행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7월 25일(월) 저녁에 그들에게 설교했습니다.

156:6.2 (1741.2) On Tuesday they left Ptolemais, going east inland to near Jotapata by way of the Tiberias road. Wednesday they stopped at Jotapata and instructed the believers further in the things of the kingdom. Thursday they left Jotapata, going north on the Nazareth-Mount Lebanon trail to the village of Zebulun, by way of Ramah. They held meetings at Ramah on Friday and remained over the Sabbath. They reached Zebulun on Sunday, the 31st, holding a meeting that evening and departing the next morning. 그들은 화요일(7/26)에 프톨레마이스를 떠나 티베리아스 길을 거쳐 요타파타 근처까지 내륙 동쪽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수요일(7/27)에 요타파타에 도착해서 신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일에 대해 더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목요일(7/28)에 요타파타를 떠나 북쪽으로 나사렛-레바논 산 오솔길로 라마를 거쳐 스불론 마을까지 갔습니다. 그들은 금요일(7/29)에 라마에서 집회하고 안식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들은 31일, 일요일에 스불론에 도착하여 그날 저녁 집회하고 다음 날 아침에 떠났습니다.

156:6.3 (1741.3) Leaving Zebulun, they journeyed over to the junction with the Magdala-Sidon road near Gischala, and thence they made their way to Gennesaret on the western shores of the lake of Galilee, south of Capernaum, where they had appointed to meet with David Zebedee, and where they intended to take counsel as to the next move to be made in the work of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그들은 스불론을 떠나(8/1월) 기샬라 부근 막달라-시돈 길의 교차로까지 여행했으며, 거기서 그들은, 다윗 세베대와 만나기로 약속하여, 하느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과업의 다음 조처를 상의하려 했던, 가버나움의 남쪽, 갈릴리 호수의 서쪽 해변 게네사렛까지 나아갔습니다.

156:6.4 (1741.4) During a brief conference with David they learned that many leaders were then gathered together on the opposite side of the lake near Kheresa, and accordingly, that very evening a boat took them across. For one day they rested quietly in the hills, going on the next day to the park, near by, where the Master once fed the five thousand. Here they rested for three days and held daily conferences, which were attended by about fifty men and women, the remnants of the once numerous company of believers resident in Capernaum and its environs. 다윗과 간단히 회의하는 동안, 그들은 여러 지도자가 그때 호수 맞은편 케레사 근처에 모였음을 알게 되어서, 바로 그날 밤에 배로 건너갔습니다. 그들은 하루를 조용히 언덕에서 쉬었고, 주(主)께서 이전에 5,000명을 먹였던 바로 근처 공원에 다음날 갔습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3일간 쉬면서, 매일 회의했는데, 가버나움과 그 주변에 거주하는, 한때 허다했던 신자 무리의 나머지, 약 50명의 남녀가 참석했습니다.

156:6.5 (1741.5) While Jesus was absent from Capernaum and Galilee, the period of the Phoenician sojourn, his enemies reckoned that the whole movement had been broken up and concluded that Jesus’ haste in withdrawing indicated he was so thoroughly frightened that he would not likely ever return to bother them. All active opposition to his teachings had about subsided. The believers were beginning to hold public meetings once more, and there was occurring a gradual but effective consolidation of the tried and true survivors of the great sifting through which the gospel believers had just passed. 예수께서 가버나움과 갈릴리를 비웠던, 페니키아 체류 기간에, 그의 적들은 모든 운동이 해산된 것으로 단정했고, 급하게 예수께서 물러난 것은, 그가 너무 두려워서 그가 자신들을 괴롭히려고 전혀 돌아올 것 같지 않다고 결말을 지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에 대한 적극적인 모든 반대가 거의 진정되었습니다. 신자들은 한 번 더 공개 모임을 열기 시작했고, 복음 신자들이 바로 통과한 큰 체질(감별) 중에서 신뢰할 수 있는 생존자들의 완만하지만, 눈에 띄는 강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156:6.6 (1741.6) Philip, the brother of Herod, had become a halfhearted believer in Jesus and sent word that the Master was free to live and work in his domains. 헤롯(안티파스)의 동생 빌립(헤롯 빌립)은 예수님을 뜨뜻미지근하게 믿는 신자가 되어서, 주께서 자기 영토 안에서 자유롭게 살면서 일하라고 기별을 보냈습니다.

156:6.7 (1741.7) The mandate to close the synagogues of all Jewry to the teachings of Jesus and all his followers had worked adversely upon the scribes and Pharisees. Immediately upon Jesus’ removing himself as an object of controversy, there occurred a reaction among the entire Jewish people; there was general resentment against the Pharisees and the Sanhedrin leaders at Jerusalem. Many of the rulers of the synagogues began surreptitiously to open their synagogues to Abner and his associates, claiming that these teachers were followers of John and not disciples of Jesus. 예수와 그의 모든 추종자의 가르침을 모든 유대 회당에서 차단하라는 명령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반대로 작용했습니다. 논쟁의 대상으로서 예수가 사라지자마자, 전(全) 유대 민족 사이에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전반적으로 예루살렘의 바리새인들과 산헤드린 지도자들을 반대하는 분노가 있었습니다. 여러 회당장이 아브너와 그의 동료들에게 자신들의 회당을 비밀리에 열기 시작하면서, 이 선생들은 요한의 추종자이지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156:6.8 (1741.8) Even Herod Antipas experienced a change of heart and, on learning that Jesus was sojourning across the lake in the territory of his brother Philip, sent word to him that, while he had signed warrants for his arrest in Galilee, he had not so authorized his apprehension in Perea, thus indicating that Jesus would not be molested if he remained outside of Galilee; and he communicated this same ruling to the Jews at Jerusalem. 헤롯 안티파스도 심경의 변화를 겪고, 예수께서 호수 건너편 자기 동생 빌립의 영토에 머물러 있음을 알고, 예수께 기별을 보내어, 자신이 갈릴리에서 예수님의 체포영장에 서명했지만, 자신이 페레아에서 예수의 체포를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갈릴리 밖에 머물러 있으면 예수께서 간섭받지 않으리라고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 이 판결을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통보했습니다.

156:6.9 (1742.1) And that was the situation about the first of August, A.D. 29, when the Master returned from the Phoenician mission and began the reorganization of his scattered, tested, and depleted forces for this last and eventful year of his mission on earth. 그리고 그것이, 주(主)께서 페니키아 선교에서 돌아와, 지상에서 자신의 마지막 파란 많은 사명의 이 해에, 흩어지고, 시험을 거쳐, 고갈된 자기 집단을 재편하기 시작했던, AD 29년 8월 1일 무렵의 상황이었습니다.

156:6.10 (1742.2) The issues of battle are clearly drawn as the Master and his associates prepare to begin the proclamation of a new religion, the religion of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who dwells in the minds of men. 주(主)님과 그의 동료들이 새 종교, 사람들의 마음에 사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영(靈) 종교의 선포를 시작하려고 준비하면서, 확실히 전투의 쟁점을 얻었습니다.

83-2 Courtship and Betrothal 구혼(求婚)과 약혼(約婚)

2. Courtship and Betrothal 구혼(求婚)과 약혼(約婚)

83:2.1 (923.1) Primitive marriages were always planned by the parents of the boy and girl. The transition stage between this custom and the times of free choosing was occupied by the marriage broker or professional matchmaker. These matchmakers were at first the barbers; later, the priests. Marriage was originally a group affair; then a family matter; only recently has it become an individual adventure. 원시 결혼은 언제나 소년과 소녀의 부모가 계획했습니다. 이런 관습과 자유 선택의 시대 사이 과도기 단계는 결혼 중개인이나 전문 중매인이 차지했습니다. 이런 중매인들은 처음에 이발사였고, 나중에 사제들이었습니다. 결혼은 원래 집단의 업무였고, 다음에는 가족 문제였습니다. 겨우 최근에 그것은 개인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83:2.2 (923.2) Coercion, not attraction, was the approach to primitive marriage. In early times woman had no sex aloofness, only sex inferiority as inculcated by the mores. As raiding preceded trading, so marriage by capture preceded marriage by contract. Some women would connive at capture in order to escape the domination of the older men of their tribe; they preferred to fall into the hands of men of their own age from another tribe. This pseudo elopement was the transition stage between capture by force and subsequent courtship by charming. 옛날에 여성은 성(性)에 무관심하지 않았고, 관습으로 주입된 성(性) 열등감만 있었습니다. 습격이 거래보다 먼저 일어났듯이, 포획 결혼이 계약 결혼보다 먼저 일어났습니다. 어떤 여성들은 자기 부족 노인들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포획될 때 묵인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차라리 자기 또래의 타(他) 부족 남성들의 수중에 들어가기를 택했습니다. 위장 도망은 강제 포획과 차후 매력에 의한 구애 사이에 있는 전환 단계였습니다.

83:2.3 (923.3) An early type of wedding ceremony was the mimic flight, a sort of elopement rehearsal which was once a common practice. Later, mock capture became a part of the regular wedding ceremony. A modern girl’s pretensions to resist “capture,” to be reticent toward marriage, are all relics of olden customs. The carrying of the bride over the threshold is reminiscent of a number of ancient practices, among others, of the days of wife stealing. 옛날 결혼식은 모방 도주, 한때 일반적 관행이었던 일종의 도망 예행 연습 같은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포획 흉내가 일상 결혼식의 부분이 되었습니다. 현대 소녀가 결혼 준비로 과묵하면서, “포획”에 저항하는 척 꾸미는 것은 다 고대 관습의 유물입니다. 신부를 안고 문턱을 넘는 것은 수많은 고대 관행 중 특히 아내를 훔치던 시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83:2.4 (923.4) Woman was long denied full freedom of self-disposal in marriage, but the more intelligent women have always been able to circumvent this restriction by the clever exercise of their wits. Man has usually taken the lead in courtship, but not always. Woman sometimes formally, as well as covertly, initiates marriage. And as civilization has progressed, women have had an increasing part in all phases of courtship and marriage. 여성은 결혼해서 충분히 스스로 처신하는 자유가 오랫동안 거부당했지만, 더 영리한 여성들은 언제나 자기 지혜를 똑똑하게 사용해서 이런 제한을 회피할 수 있었습니다. 대개 남자가 구혼(求婚)에 앞장섰지만, 항상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이 때때로 남몰래 만이 아니라 정식으로 결혼을 제안합니다. 문명이 진보하면서, 모든 구혼(求婚)과 결혼 단계에서 여성의 역할이 늘어났습니다.

83:2.5 (923.5) Increasing love, romance, and personal selection in premarital courtship are an Andite contribution to the world races. The relations between the sexes are evolving favorably; many advancing peoples are gradually substituting somewhat idealized concepts of sex attraction for those older motives of utility and ownership. Sex impulse and feelings of affection are beginning to displace cold calculation in the choosing of life partners. 혼전 구혼(求婚)에서 사랑, 낭만 및 개인적 선택의 증가는 세계 인종에 대한 안드-사람들의 공헌입니다. 성별 사이의 관계는 순조롭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진보하는 여러 민족은, 유용성과 소유권의 그런 오래된 동기 대신에 성적 매력의 다소 이상화된 개념을 점차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생 동반자를 선택할 때, 성적 충동과 애정 감정이 냉정한 계산 대신 들어서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83:2.6 (923.6) The betrothal was originally equivalent to marriage; and among early peoples sex relations were conventional during the engagement. In recent times, religion has established a sex taboo on the period between betrothal and marriage. 약혼은 원래 결혼에 해당했습니다. 그래서 초기 민족들 사이에 약혼 기간의 성(性)관계는 관행적이었습니다. 최근에, 종교가 약혼과 결혼 사이 기간에 성(性) 금기를 확립했습니다.

36-6 Living Forces 살아있는 기세(氣勢)들

6. Living Forces 살아있는 기세(氣勢)들

36:6.1 (403.6) Life is both mechanistic and vitalistic — material and spiritual. Ever will Urantia physicists and chemists progress in their understanding of the protoplasmic forms of vegetable and animal life, but never will they be able to produce living organisms. Life is something different from all energy manifestations; even the material life of physical creatures is not inherent in matter. 생명은 기계론적이며 물활론적 – 물질적이며 영적입니다. 유란시아 물리학자들과 화학자들은 식물과 동물 생명 형태의 원형질에 대한 이해가 늘 진보할 것이지만, 그들은 결코 살아있는 유기체를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생명은 모든 에너지 표현과 다른 것입니다. 물리적 창조물들의 물질적 생명도 본래 물질 안에 있지 않습니다.

36:6.2 (403.7) Things material may enjoy an independent existence, but life springs only from life. Mind can be derived only from pre-existent mind. Spirit takes origin only from spirit ancestors. The creature may produce the forms of life, but only a creator personality or a creative force can supply the activating living spark. 물질적인 것들은 독립적인 생활을 누릴 수도 있지만, 생명은 오직 생명으로부터 발생합니다. 마음은 단지 선재(先在 먼저 있는)한 마음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습니다. 영(靈)은 오직 영(靈) 원종(原種 종자)들로부터 일어납니다. 창조물이 생명의 형태를 만들 수 있지만, 창조자 고유성 또는 창조적 기세만이 활성화하는 살아있는 섬광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36:6.3 (404.1) Life Carriers can organize the material forms, or physical patterns, of living beings, but the Spirit provides the initial spark of life and bestows the endowment of mind. Even the living forms of experimental life which the Life Carriers organize on their Salvington worlds are always devoid of reproductive powers. When the life formulas and the vital patterns are correctly assembled and properly organized, the presence of a Life Carrier is sufficient to initiate life, but all such living organisms are lacking in two essential attributes — mind endowment and reproductive powers. Animal mind and human mind are gifts of the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functioning through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while creature ability to reproduce is the specific and personal impartation of the Universe Spirit to the ancestral life plasm inaugurated by the Life Carriers. 생명 운반자들은 살아있는 존재의 물질적 형태, 물리적 원본을 조직할 수 있지만, 영(靈)이 최초 생명의 섬광을 공급하며 마음 자질을 증여합니다. 생명 운반자들이 샐빙톤 세계들에서 조직하는 살아있는 형태의 실험적 생명조차 언제나 생식력이 전혀 없습니다. 생명 공식과 생명의 원본이 정확히 조립되어 완전히 조직되면, 생명 운반자의 현존으로 충분히 생명이 시작되지만, 그렇게 살아있는 모든 유기체는 2가지 필수적 속성 – 마음 자질과 생산력 –이 없습니다. 동물 마음과 인간 마음은, 일곱 보조 마음-영(靈)들을 통해 활동하는, 지역 우주 어머니 영(靈)의 선물이며, 한편 번식하는 창조물 능력은 생명 운반자들이 시작한 조상의 생명 원형질에 우주 영(靈)이 명확히 직접 전달한 것입니다.

36:6.4 (404.2) When the Life Carriers have designed the patterns of life, after they have organized the energy systems, there must occur an additional phenomenon; the “breath of life” must be imparted to these lifeless forms. The Sons of God can construct the forms of life, but it is the Spirit of God who really contributes the vital spark. And when the life thus imparted is spent, then again the remaining material body becomes dead matter. When the bestowed life is exhausted, the body returns to the bosom of the material universe from which it was borrowed by the Life Carriers to serve as a transient vehicle for that life endowment which they conveyed to such a visible association of energy-matter. 생명 운반자들이 에너지 체계를 조직한 후, 그들이 생명의 원본을 설계하면, 추가 현상이 일어나야 합니다. “생명의 호흡”은 이렇게 생명이 없는 형태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아들들이 생명의 형태를 세울 수 있지만, 생명의 섬광을 정말로 주는 분은 하느님의 영(靈)입니다. 이렇게 전달된 생명이 다 사용되면, 그때 남아 있는 물질 육체는 다시 죽은 물질이 됩니다. 증여된 생명이 고갈되면, 생명 운반자들이 그렇게 가시적으로 결합한 에너지-물질에 전달한 생명 자질을 위해, 일시적 수단으로 사용하도록 그들이 빌렸던, 물질 우주의 품으로 육체는 되돌아갑니다.

36:6.5 (404.3) The life bestowed upon plants and animals by the Life Carriers does not return to the Life Carriers upon the death of plant or animal. The departing life of such a living thing possesses neither identity nor personality; it does not individually survive death. During its existence and the time of its sojourn in the body of matter, it has undergone a change; it has undergone energy evolution and survives only as a part of the cosmic forces of the universe; it does not survive as individual life. The survival of mortal creatures is wholly predicated on the evolvement of an immortal soul within the mortal mind. 생명 운반자들이 식물과 동물에 증여한 생명은 식물이나 동물이 죽은 후 생명 운반자들에게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아있는 것들의 죽는 생명은 정체성도 고유성도 없습니다. 그것은 죽은 후까지 개별적으로 살아남지 않습니다. 그 생명이 존재하며 물질 육체에 머무는 시간 동안, 그것은 변화되었습니다. 그것은 에너지 진화를 겪었고, 우주에 속한 질서우주 기세의 부분으로서 단지 살아남습니다. 그것은 개별 생명으로 살아남지 않습니다. 필사 창조물의 생존은 전적으로 필사 마음 안에 있는 불멸 혼(魂)의 진화에 근거합니다.

36:6.6 (404.4) We speak of life as “energy” and as “force,” but it is really neither. Force-energy is variously gravity responsive; life is not. Pattern is also nonresponsive to gravity, being a configuration of energies that have already fulfilled all gravity-responsive obligations. Life, as such, constitutes the animation of some pattern-configured or otherwise segregated system of energy — material, mindal, or spiritual. 우리가 생명에 대해 “에너지”와 “기세”로 말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어느 쪽도 아닙니다. 기세-에너지는 다양하게 중력에 반응합니다. 생명은 그렇지 않습니다. 원본도 이미 모든 중력-반응의 의무를 완료한 에너지 배열이며, 중력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서, 어떤 원본-배열 혹은 그렇지 않으면 분리된 물질적, 마음적 혹은 영적 에너지 체계의 활기가 됩니다.

36:6.7 (404.5) There are some things connected with the elaboration of life on the evolutionary planets which are not altogether clear to us. We fully comprehend the physical organization of the electrochemical formulas of the Life Carriers, but we do not wholly understand the nature and source of the life-activation spark. We know that life flows from the Father through the Son and by the Spirit. It is more than possible that the Master Spirits are the sevenfold channel of the river of life which is poured out upon all creation. But we do not comprehend the technique whereby the supervising Master Spirit participates in the initial episode of life bestowal on a new planet. The Ancients of Days, we are confident, also have some part in this inauguration of life on a new world, but we are wholly ignorant of the nature thereof. We do know that the Universe Mother Spirit actually vitalizes the lifeless patterns and imparts to such activated plasm the prerogatives of organismal reproduction. We observe that these three are the levels of God the Sevenfold, sometimes designated as the Supreme Creators of time and space; but otherwise we know little more than Urantia mortals — simply that concept is inherent in the Father, expression in the Son, and life realization in the Spirit. 진화 행성들에서 생명의 정교(精巧 정밀하고 교묘함)화와 관련된 어떤 것들은 전체적으로 우리에게 명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명 운반자들의 전기화학적 공식의 물리적 조직을 충분히 납득하지만, 우리는 생명-활성화 섬광의 본성과 근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생명이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통해 영(靈)에 의해서 흐르는 것을 압니다. 주(主) 영(靈)들이, 모든 창조계에 부어지는 생명 강의 칠중 경로임은 가능한 이상(以上)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독하는 주(主) 영(靈)이 새 행성에 생명을 증여하는 최초의 사건에 참여하는 기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도 새 세계에서 이런 생명의 시작에 어떤 몫을 한다고 확신하지만, 우리는 그 본성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주 어머니 영(靈)이 실체로 생명이 없는 원본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렇게 활성화된 원형질에 유기물이 번식하는 특권을 나누어 주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이런 세 가지가 시간과 공간의 최극 창조자들로 종종 임명된, 칠중 하느님 수준들임을 관찰하지만, 다른 점에서, 유란시아 필사자들의 개념, 아버지 안에 본래 있고, 아들로 표현되며, 영 안에서 생명이 실현되는 단순한 그 이상(以上)을, 우리가 더 알고 있지 않습니다.

36:6.8 (405.1) [Indited by a Vorondadek Son stationed on Urantia as an observer and acting in this capacity by request of the Melchizedek Chief of the Supervising Revelatory Corps.][감독하는 계시단(啓示團)의 수석 멜기세덱의 요청에 따라, 이런 자격으로 유란시아에 배치되어 관찰하며 활동하는 보론다덱 아들이 작성함]

S82 The Evolution of Marriage 개요82편 결혼의 진화

S82 The Evolution of Marriage 개요82편 결혼의 진화

82:0.1 (913.1) Marriage is man’s reactional adjustment to bisexuality. Marriage has given mankind the home, and the home is the crowning glory of the whole long and arduous evolutionary struggle. 결혼은 양성에 인간이 조율하며 반응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인류에게 가정을 제공했으며, 가정은 길고 힘든 진화적 투쟁 전체에서 최고의 영광입니다.

  1. The Mating Instinct 짝짓기 본능

82:1.1 (913.4) Mating is an innate propensity, and marriage is its evolutionary social repercussion. 짝짓기는 타고난 성향이고, 결혼은 그 진화의 사회적 반향(反響)입니다. 82:1.8 (914.4) The perpetuation of the evolving human species is made certain by the presence of this racial mating impulse, an urge which is loosely called sex attraction. This great biologic urge becomes the impulse hub for all sorts of associated instincts, emotions, and usages — physical, intellectual, moral, and social. 이런 종족의 짝짓기 충동, 막연히 성적 매력이라고 하는 충동의 존재로, 진화하는 인간종의 영속은 확실합니다. 위대한 이 생물학적 충동은 관련된 모든 종류-육체적, 지적, 도덕적 및 사회적-의 본능, 감정 및 관례를 위한 중심적 충동이 됩니다. 82:1.10 (914.6) Intelligent submission of this impulse to the regulations of society is the supreme test of the actuality of any civilization. 이런 충동을 사회 규정에 지적으로 복종시키는 것이, 문명화의 현실에 대한 최고의 시험입니다.

  1. The Restrictive Taboos 제한하는 금기

82:2.4 (915.2) In the earliest stages of tribal development the mores and restrictive taboos were very crude, but they did keep the sexes apart — this favored quiet, order, and industry — and the long evolution of marriage and the home had begun. The sex customs of dress, adornment, and religious practices had their origin in these early taboos which defined the range of sex liberties and thus eventually created concepts of vice, crime, and sin. 부족이 발전하는 최초의 단계에서 관습과 제한하는 금기는 아주 미숙했지만, 그것들이 남녀를 떼어 놓아 – 이것이 평온과 질서와 근면을 촉진했으며, 결혼과 가정의 오랜 진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의복, 장식 및 종교적 관습에 대한 성적 풍습은 성적 해방의 범위를 규정하는 이런 초기 금기에서 유래되었고, 이렇게 결국 부도덕, 범죄 및 죄의 개념이 생겼습니다.

  1. Early Marriage Mores 초기의 결혼 관습

82:3.3 (915.6) The early sex and mating mores were a mass of inconsistent and crude regulations. But in spite of all this, those races which exalted and practiced marriage naturally evolved to higher levels and survived in increased numbers. 초기 성(性) 및 짝짓기 관습은 대부분이 일관성이 없고 허술한 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격찬하고 실행한 그런 종족들은 자연히 더 높은 수준으로 진화했고, 살아남은 수가 늘었습니다. 82:3.4 (915.7) In primitive times marriage was the price of social standing. 원시 시대에 결혼은 사회적 신분의 값이었습니다.

  1. Marriage Under the Property Mores 재산 관습에 따른 결혼

82:4.1 (917.4) Property has been the stabilizer of marriage. 재산은 결혼을 안정시켰습니다. 82:4.2 (917.5) Primitive marriage was an investment, an economic speculation. And that the property mores were effective in stabilizing the marriage institution is borne out by the fact that marriage was more permanent among the early tribes than it is among many modern peoples. 원시 결혼은 투자, 경제적 투기였습니다. 그리고 결혼이 여러 현대 민족들 사이보다는 초기 부족들 사이에서 더 영구적이었다는 사실이, 재산 관습이 결혼제도의 안정에 효과적이었음을 실증합니다.

  1. Endogamy and Exogamy 동족(同族) 결혼과 족외(族外) 결혼

82:5.2 (918.2) While the inbreeding of good stock sometimes resulted in the upbuilding of strong tribes, the spectacular cases of the bad results of the inbreeding of hereditary defectives more forcibly impressed the mind of man, with the result that the advancing mores increasingly formulated taboos against all marriages among near relatives. 좋은 혈통의 족내 교배로 때때로 강한 부족이 설립되었지만, 족내 교배로 인한 유전적 장애의 나쁜 결과로 놀란 경우가 사람의 마음이 더욱 강력히 인식된 결과로, 진보하는 관습이 가까운 친척 사이의 모든 결혼을 반대하는 금기를 점차 만들어냈습니다. 82:5.8 (919.4) But it was not possible for out-mating to become prevalent until neighboring groups had learned to live together in relative peace. 그러나 이웃 집단들이 비교적 평화롭게 같이 살아가기를 배울 때까지, 족외-짝짓기가 널리 유행할 수 없었습니다.

82:5.9 (919.5) Outmarriage itself was a peace promoter. Outmarriage led to tribal co-ordination and to military alliances; it was a nation builder. Outmarriage was also greatly favored by increasing trade contacts; adventure and exploration contributed to the extension of the mating bounds and greatly facilitated the cross-fertilization of racial cultures. 족외 결혼 자체는 평화 촉진자였습니다. 족외 결혼으로 부족적 통합-조정과 군사 동맹에 이르렀습니다. 족외 결혼이 국가를 세웠습니다. 교역 접촉의 증가로 족외 결혼 역시 더 지지를 받았습니다. 모험과 탐험이 짝짓는 범위의 확장에 큰 도움이 되었고, 인종 문화의 상호 교류를 크게 도왔습니다.

  1. Racial Mixtures 인종 혼합

82:6.5 (920.3) Hybridization of superior and dissimilar stocks is the secret of the creation of new and more vigorous strains. Hybridization augments vigor and increases fertility. 우수한 다른 인종의 교배가 새롭고 더 강건한 혈통이 창조되는 비결입니다. 잡종 번식이 생기를 증가시키고 생식 능력을 증대합니다. 82:6.7 (920.5) Even among inferior stocks, hybrids often are an improvement on their ancestors. Hybridization makes for species improvement because of the role of the dominant genes. Racial intermixture increases the likelihood of a larger number of the desirable dominants being present in the hybrid. 열등한 종족 중에서도, 튀기가 종종 그 조상들보다 낫습니다. 우성 유전자의 역할 때문에, 교배가 종자를 개선합니다. 인종 혼합으로, 잡종 안에 존재할, 바람직한 우성 유전성의 가능성이 더 많이 늘어납니다.

82:6.8 (920.6) For the past hundred years more racial hybridization has been taking place on Urantia than has occurred in thousands of years. The danger of gross disharmonies as a result of crossbreeding of human stocks has been greatly exaggerated. The chief troubles of “half-breeds” are due to social prejudices. 수천 년간 일어났던 것보다 과거 수백 년간 인종 교배가 유란시아에서 더 많이 발생했습니다. 인간 혈통이 교배한 결과로써 심한 부조화의 위험이 많이 과장되었습니다. “잡종들”의 주된 문제는 사회적 편견 때문입니다. 82:6.11 (921.1) After all, the real jeopardy of the human species is to be found in the unrestrained multiplication of the inferior and degenerate strains of the various civilized peoples rather than in any supposed danger of their racial interbreeding. 결국, 인류의 실제 위험은, 소위 어떤 인종 교배의 위험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화된 다양한 종족 중에서 열등하고 퇴화한 혈통들의 억제되지 않은 증식에서 발견됩니다.

83-1 Marriage as a Societal Institution 사회 제도로서의 결혼

1. Marriage as a Societal Institution 사회 제도로서의 결혼

83:1.1 (922.4) Marriage is society’s mechanism designed to regulate and control those many human relations which arise out of the physical fact of bisexuality. As such an institution, marriage functions in two directions: 결혼은 양성(兩性)의 물리적 사실에서 생기는 그런 여러 인간관계를 규정하고 조정하도록 계획된 사회 기구입니다. 그런 제도로서, 결혼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83:1.2 (922.5) 1. In the regulation of personal sex relations. 개인적 성(性)관계를 규정할 때.

83:1.3 (922.6) 2. In the regulation of descent, inheritance, succession, and social order, this being its older and original function. 이것이 더 오래된 본래 기능인데, 혈통, 유전, 상속 및 사회적 계층을 규정할 때.

83:1.4 (922.7) The family, which grows out of marriage, is itself a stabilizer of the marriage institution together with the property mores. Other potent factors in marriage stability are pride, vanity, chivalry, duty, and religious convictions. But while marriages may be approved or disapproved on high, they are hardly made in heaven. The human family is a distinctly human institution, an evolutionary development. Marriage is an institution of society, not a department of the church. True, religion should mightily influence it but should not undertake exclusively to control and regulate it. 결혼에서 발생한 가족 자체는 재산 관습과 함께 결혼제도를 안정시켰습니다. 결혼을 안정시킨 강력한 다른 요소들은 자만, 허영, 기사도, 의무 및 종교적 신념입니다. 그러나 결혼들이 하늘에서 승인될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것들은 전혀 하늘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 가족은 뚜렷하게 진화로 발전한 인간 제도입니다. 결혼은 사회 제도이며, 교회의 분야가 아닙니다. 참으로 종교가 결혼에 힘차게 영향을 줘야 하지만, 독점적으로 결혼을 떠맡아 조정하고 규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83:1.5 (922.8) Primitive marriage was primarily industrial; and even in modern times it is often a social or business affair. Through the influence of the mixture of the Andite stock and as a result of the mores of advancing civilization, marriage is slowly becoming mutual, romantic, parental, poetical, affectionate, ethical, and even idealistic. Selection and so-called romantic love, however, were at a minimum in primitive mating. During early times husband and wife were not much together; they did not even eat together very often. But among the ancients, personal affection was not strongly linked to sex attraction; they became fond of one another largely because of living and working together. 원시 결혼은 원래 산업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서도 결혼은 종종 사회나 사업적 업무입니다. 안드 혈통이 혼합된 영향과 진보하는 문명 관습의 결과로, 결혼은 서서히 상호적, 낭만적, 어버이적, 시(詩)의 감성적, 애정적, 윤리적 및 심지어 이상주의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과 소위 낭만적 사랑은 원시적 짝짓기에서 최소한이었습니다. 초기 시대에 남편과 아내는 별로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식사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고대인들 사이에서, 개인적 애정은 성적 매력으로 강하게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함께 살고 일했기 때문에, 대개 서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83-0 The Marriage Institution 결혼 제도

Paper 83

The Marriage Institution 결혼 제도

83:0.1 (922.1) THIS is the recital of the early beginnings of the institution of marriage. It has progressed steadily from the loose and promiscuous matings of the herd through many variations and adaptations, even to the appearance of those marriage standards which eventually culminated in the realization of pair matings, the union of one man and one woman to establish a home of the highest social order. 이것은 초기 결혼제도가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무리의 자유로운 난교(亂交 상대를 가리지 않는 짝짓기)에서 여러 변화와 적응을 거쳐, 한 쌍의 짝짓기, 최고 사회 계층의 가정을 세우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연합이 이루어져 결국 절정에 달한, 그런 결혼 기준이 출현하기까지 꾸준히 진보했습니다.

83:0.2 (922.2) Marriage has been many times in jeopardy, and the marriage mores have drawn heavily on both property and religion for support; but the real influence which forever safeguards marriage and the resultant family is the simple and innate biologic fact that men and women positively will not live without each other, be they the most primitive savages or the most cultured mortals. 결혼은 여러 번 위험에 빠졌으며, 결혼 관습은 버티기 위해서 힘겹게 재산과 종교를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결혼과 그 결과로 생긴 가정을 영원히 보호하는 실질적 영향력은 남성과 여성들이, 가장 원시적인 야만인들이든지 가장 교양있는 필사자들이든지, 단연 서로 없이는 살지 않을 것이라는 순전히 타고난 생물학적 사실입니다.

83:0.3 (922.3) It is because of the sex urge that selfish man is lured into making something better than an animal out of himself. The self-regarding and self-gratifying sex relationship entails the certain consequences of self-denial and insures the assumption of altruistic duties and numerous race-benefiting home responsibilities. Herein has sex been the unrecognized and unsuspected civilizer of the savage; for this same sex impulse automatically and unerringly compels man to think and eventually leads him to love. 이기적인 사람이 자신에게서 동물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도록 유인한 것은 성욕(性慾) 때문이었습니다. 이기적인 자기만족의 성(性)관계가 자기절제의 결과를 남기고, 이타적 의무와 인종에-이로운 수많은 가정 책임을 확실히 떠맡습니다. 이 점에서 성(性)은 인정을 받지도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한 야만인들의 교화(敎化)자였습니다. 바로 이런 성(性) 충동이 자동으로 반드시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어 결국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