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69 Primitive Human Institutions 원시적 인간 제도

Paper 69

Primitive Human Institutions 원시적 인간 제도

69:0.1 (772.1) EMOTIONALLY, man transcends his animal ancestors in his ability to appreciate humor, art, and religion. Socially, man exhibits his superiority in that he is a toolmaker, a communicator, and an institution builder. 감정적으로는, 사람은 유머(해학諧謔익살)와 예술 그리고 종교를 음미(吟味속 뜻을 새겨서 감상)하는 능력에서 그의 동물 조상들을 능가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사람은 도구 제작자, 의사(意思) 전달자 및 제도 구축자라는 면에서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냅니다.

69:0.2 (772.2) When human beings long maintain social groups, such aggregations always result in the creation of certain activity trends which culminate in institutionalization. Most of man’s institutions have proved to be laborsaving while at the same time contributing something to the enhancement of group security. 인간 존재들이 사회 집단들을 오래 유지할 때, 그러한 집단은 제도화로 절정에 달하는 특정한 활동 경향들을 반드시 창출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사람이 세운 대부분의 제도들은, 노동을 절약하는 동시에 집단 안전의 증진에 공헌한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69:0.3 (772.3) Civilized man takes great pride in the character, stability, and continuity of his established institutions, but all human institutions are merely the accumulated mores of the past as they have been conserved by taboos and dignified by religion. Such legacies become traditions, and traditions ultimately metamorphose into conventions. 문명화된 사람은 자신이 확립한 제도들의 특성, 안정성 및 연속성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지만, 모든 인간 제도들은, 금기들로 인해 보존되고 종교로 인해 위엄을 갖추어 축적된 과거의 사회관습들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유산(遺産)들이 전통이 되고, 전통은 궁극적으로 관습으로 변형됩니다.

1. Basic Human Institutions 기본적 인간 제도들

69:1.1 (772.4) All human institutions minister to some social need, past or present, notwithstanding that their overdevelopment unfailingly detracts from the worth-whileness of the individual in that personality is overshadowed and initiative is diminished. Man should control his institutions rather than permit himself to be dominated by these creations of advancing civilization. 고유성이 짓눌리며 창의력이 감소한다는 점에서, 인간적 제도들의 발달과잉은 분명히 개인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만, 모든 인간적 제도들은 과거나 현재의 어떤 사회적 필요에 공헌합니다. 사람은 진보하는 문명의 이러한 생산물들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용납하기 보다 자신의 제도들을 조정해야만 합니다.

69:1.2 (772.5) Human institutions are of three general classes: 인간 제도들은 세 가지 일반 등급이 있습니다.

69:1.3 (772.6) 1. The institutions of self-maintenance. These institutions embrace those practices growing out of food hunger and its associated instincts of self-preservation. They include industry, property, war for gain, and all the regulative machinery of society. Sooner or later the fear instinct fosters the establishment of these institutions of survival by means of taboo, convention, and religious sanction. But fear, ignorance, and superstition have played a prominent part in the early origin and subsequent development of all human institutions. 자아-유지의 제도들. 이 제도들은 식량 굶주림과 그것과 관련된 자아-보존의 본능에서 기인한 실천 관습들을 포함합니다. 그것들은 산업, 재산, 이익을 위한 전쟁, 및 사회의 모든 규정적 기관들을 포함합니다. 조만간, 공포 본능은 금기, 관습 및 종교적 재가(裁可안건의 결제 허가)로 생존의 이 제도들 확립을 육성합니다. 그러나 공포, 무지 및 미신은 모든 인간 제도들의 초기 기원과 뒤이은 개발에서 탁월한 역할을 했습니다.

69:1.4 (772.7) 2. The institutions of self-perpetuation. These are the establishments of society growing out of sex hunger, maternal instinct, and the higher tender emotions of the races. They embrace the social safeguards of the home and the school, of family life, education, ethics, and religion. They include marriage customs, war for defense, and home building. 자아-영속의 제도들. 이것들은 성욕 굶주림, 모성 본능 및 종족들의 고등 애정에서 기인한 사회의 조직들입니다. 그것들은 가정과 학교, 가정생활, 교육, 윤리 및 종교의 사회적 안전장치를 포함합니다. 그것들은 결혼 관습, 방어 전쟁, 및 주택 건설을 포함합니다.

69:1.5 (772.8) 3. The institutions of self-gratification. These are the practices growing out of vanity proclivities and pride emotions; and they embrace customs in dress and personal adornment, social usages, war for glory, dancing, amusement, games, and other phases of sensual gratification. But civilization has never evolved distinctive institutions of self-gratification. 자아-충족(充足)의 제도들. 이것들은 허영심 성향들과 우월감에서 기인한 관습들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의복 및 신체 장식 관습들, 사회적 관행들, 영광을 위한 전쟁, 춤, 오락, 경기, 그리고 관능적 충족의 다른 단계들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문명은 결코 자아-충족의 특유한 제도들을 진화시키지 않았습니다.

69:1.6 (773.1) These three groups of social practices are intimately interrelated and minutely interdependent the one upon the other. On Urantia they represent a complex organization which functions as a single social mechanism. 이 세 그룹의 사회 관습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이며 세세히 서로 의존합니다. 지구(유란시아)에서 그것들은 단일 사회적 기구로 기능하는 복합적 조직에 해당합니다.

2. The Dawn of Industry 근면(勤勉)의 여명(黎明)

69:2.1 (773.2) Primitive industry slowly grew up as an insurance against the terrors of famine. Early in his existence man began to draw lessons from some of the animals that, during a harvest of plenty, store up food against the days of scarcity. 원시적 근면은 식량 부족의 공포에 대한 보험으로써 서서히 발생했습니다. 현존하는 초기 사람은, 풍부한 수확의 기간에 기근의 때를 대비해서 식량을 저장했던 몇 몇 동물들로부터 교훈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69:2.2 (773.3) Before the dawn of early frugality and primitive industry the lot of the average tribe was one of destitution and real suffering. Early man had to compete with the whole animal world for his food. Competition-gravity ever pulls man down toward the beast level; poverty is his natural and tyrannical estate. Wealth is not a natural gift; it results from labor, knowledge, and organization. 초기 검약(儉約)과 원시적 근면의 여명(黎明) 전, 평균 부족의 운명은 궁핍과 실제 고통 중 하나의 상태였습니다. 초기 사람은 양식을 위해 모든 동물 세계와 경쟁해야만 했습니다. 경쟁의-중력은 심지어 사람을 짐승 수준으로 떨어뜨립니다. 가난은 그의 자연적이며 포학(暴虐잔인하고 난폭)한 상황이고, 부(富)는 자연적 선물이 아닙니다. 부(富)는 노동, 지식 및 조직의 결과로 일어납니다.

69:2.3 (773.4) Primitive man was not slow to recognize the advantages of association. Association led to organization, and the first result of organization was division of labor, with its immediate saving of time and materials. These specializations of labor arose by adaptation to pressure — pursuing the paths of lessened resistance. Primitive savages never did any real work cheerfully or willingly. With them conformity was due to the coercion of necessity. 원시인은 연합의 이점을 알아채는데 아둔하지 않았습니다. 연합은 결국 조직이 되었고, 첫 조직의 결과는 분업(分業나눠서 일함)과 즉시 시간과 재료가 절약되었습니다. 이 노동의 전문화는 압력에 적응하여 – 저항이 줄어드는 경로를 추구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원시 미개인들은 실제 어떤 일도 결코 기쁘게 자진해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필요에 의한 강압에 순응했습니다.

69:2.4 (773.5) Primitive man disliked hard work, and he would not hurry unless confronted by grave danger. The time element in labor, the idea of doing a given task within a certain time limit, is entirely a modern notion. The ancients were never rushed. It was the double demands of the intense struggle for existence and of the ever-advancing standards of living that drove the naturally inactive races of early man into avenues of industry. 원시인은 힘든 일을 싫어했고, 심각한 위험에 직면해야 서두르곤 했습니다. 노동에서 시간 요소, 즉 특정한 시간 내에 주어진 과업을 한다는 관념은 완전히 현대의 개념입니다. 고대(古代)인들은 전혀 급하지 않았습니다. 이중 요구들, 즉 생존의 강렬한 투쟁과 계속 진보하는 생활수준이 원래 게으른 초기 인간 종족들을 근면의 길로 몰아넣었습니다.

69:2.5 (773.6) Labor, the efforts of design, distinguishes man from the beast, whose exertions are largely instinctive. The necessity for labor is man’s paramount blessing. The Prince’s staff all worked; they did much to ennoble physical labor on Urantia. Adam was a gardener; the God of the Hebrews labored — he was the creator and upholder of all things. The Hebrews were the first tribe to put a supreme premium on industry; they were the first people to decree that “he who does not work shall not eat.” But many of the religions of the world reverted to the early ideal of idleness. Jupiter was a reveler, and Buddha became a reflective devotee of leisure. 노동, 의도적 노력이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며, 짐승의 노력은 주로 본능적입니다. 노동의 필요성은 사람에게 최고의 은총입니다. (행성) 왕자의 참모진은 모두 일했습니다. 그들은 지구(유란시아)에서 육체적 노동을 고상히 여기도록 공헌했습니다. 아담은 원예(園藝)가였습니다. 히브리인의 하나님도 일하셨습니다. – 그는 만물의 창조자이며 유지(維持보존하여 지탱함)자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근면을 최극 값어치로 여긴 최초의 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을 수 없다”고 선언한 최초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대부분의 종교들은 초기의 이상(理想)이었던 게으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주피터는 술마시고 흥청대는 자였고, 부처는 한가롭게 반성하는 명상의 신봉자가 되었습니다.

69:2.6 (773.7) The Sangik tribes were fairly industrious when residing away from the tropics. But there was a long, long struggle between the lazy devotees of magic and the apostles of work — those who exercised foresight. 산긱 부족들은 열대지방에서 떨어져 거주할 때 상당히 근면했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마술 신봉자들과 장래를 전망하며 준비하면서 일을 주장하는 자들 사이에는 오랜 세월 투쟁이 있었습니다.

69:2.7 (773.8) The first human foresight was directed toward the preservation of fire, water, and food. But primitive man was a natural-born gambler; he always wanted to get something for nothing, and all too often during these early times the success which accrued from patient practice was attributed to charms. Magic was slow to give way before foresight, self-denial, and industry. 인간의 첫 선견(先見)은 불, 물 및 음식을 보존하는 방향을 향했습니다. 그러나 원시인은 타고난 도박꾼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거저 뭘 얻으려 했고, 너무 자주 이 초기 시대 동안 참는 관습에서 생긴 성공을 모두 마력(魔力이상한 힘)의 탓으로 여겼습니다. 마술(魔術)은 선견지명(先見之明앞을 아는 지혜), 극기(克己자아-부정) 및 근면 앞에서 천천히 물러났습니다.

3. The Specialization of Labor 노동의 전문화

69:3.1 (773.9) The divisions of labor in primitive society were determined first by natural, and then by social, circumstances. The early order of specialization in labor was: 원시 사회의 노동 분할이 처음에는 자연적 상황으로, 나중에는 사회적 상황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노동에서 초기 계층의 전문화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69:3.2 (774.1) 1. Specialization based on sex. Woman’s work was derived from the selective presence of the child; women naturally love babies more than men do. Thus woman became the routine worker, while man became the hunter and fighter, engaging in accentuated periods of work and rest. 성(性)에 따른 전문화. 여성의 일은 아이의 선택적 존재에서 발생했습니다. 여성들은 자연히 아기들을 남성들보다 사랑합니다. 그래서 여성은 일상적 일꾼이 되었고, 한편 남성은 주기적으로 집중해서 일하고 휴식하면서 사냥꾼과 투사가 되었습니다.

69:3.3 (774.2) All down through the ages the taboos have operated to keep woman strictly in her own field. Man has most selfishly chosen the more agreeable work, leaving the routine drudgery to woman. Man has always been ashamed to do woman’s work, but woman has never shown any reluctance to doing man’s work. But strange to record, both men and women have always worked together in building and furnishing the home. 모든 시대에 걸쳐 여성은 금기(禁忌)의 영향으로 순전히 자신의 분야에 머물렀습니다. 남성은 너무 이기적으로 더 마음에 드는 일을 택했고, 일상의 고된 일은 여성에게 맡겼습니다. 남성은 항상 여성의 일 하기를 부끄러워했지만, 여성은 남성의 일을 하는데 조금도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록하기 이상하게도, 가정을 이루고 갖출 때는 남성들과 여성들은 둘 다 항상 함께 일했습니다.

69:3.4 (774.3) 2. Modification consequent upon age and disease. These differences determined the next division of labor. The old men and cripples were early set to work making tools and weapons. They were later assigned to building irrigation works. 나이와 질병의 결과로 일어나는 변경. 이 차이들은 다음의 분업을 결정했습니다. 노인들과 장애인들은 일찍부터 연장과 무기 제조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관개(灌漑물을 대는 일) 작업 건축에 배당되었습니다.

69:3.5 (774.4) 3. Differentiation based on religion. The medicine men were the first human beings to be exempted from physical toil; they were the pioneer professional class. The smiths were a small group who competed with the medicine men as magicians. Their skill in working with metals made the people afraid of them. The “white smiths” and the “black smiths” gave origin to the early beliefs in white and black magic. And this belief later became involved in the superstition of good and bad ghosts, good and bad spirits. 종교에 따른 분화. 주술사(呪術師)들은 육체노동을 면제받은 최초의 인간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초창기 전문적 계급이었습니다. 대장장이들은 마술사들인 주술사들과 겨루었던 작은 집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금속으로 일하는 그들의 기술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흰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들”과 “검은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들”이 백(白)마술과 흑(黑)마술에 대한 초기 믿음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나중에 선한 귀신들과 악한 귀신들, 선한 영들과 악한 영들에 대한 미신에 포함되었습니다.

69:3.6 (774.5) Smiths were the first nonreligious group to enjoy special privileges. They were regarded as neutrals during war, and this extra leisure led to their becoming, as a class, the politicians of primitive society. But through gross abuse of these privileges the smiths became universally hated, and the medicine men lost no time in fostering hatred for their competitors. In this first contest between science and religion, religion (superstition) won. After being driven out of the villages, the smiths maintained the first inns, public lodginghouses, on the outskirts of the settlements. 대장장이들은 특권을 누린 첫 비(非)종교적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전쟁 시(時) 중립국민들로 여겨졌고, 이 특별한 해방은 그들을 원시 사회의 정치가들 계급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 특권들의 심한 남용으로 대장장이들은 널리 미움을 받게 되었으며, 주술사(呪術師)들은 지체하지 않고 자기 경쟁자들을 향한 증오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과학과 종교를 사이에 둔 이 최초의 다툼에서 종교(미신)가 승리했습니다. 마을에서 쫓겨난 뒤, 대장장이들은 주거지역의 외곽에서, 최초의 여인숙, 공공 하숙집을 유지했습니다.

69:3.7 (774.6) 4. Master and slave. The next differentiation of labor grew out of the relations of the conqueror to the conquered, and that meant the beginning of human slavery. 주인과 노예. 노동의 다음 분화는 정복자와 피(被)정복자의 관계에서 발생했고, 그것은 인간 노예 제도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69:3.8 (774.7) 5. Differentiation based on diverse physical and mental endowments. Further divisions of labor were favored by the inherent differences in men; all human beings are not born equal. 다양한 육체적 및 정신적 자질들에 기초를 둔 분화. 선천적 인간의 차이가 분업을 더욱 촉진했습니다. 모든 인간 존재들은 똑같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69:3.9 (774.8) The early specialists in industry were the flint flakers and stone masons; next came the smiths. Subsequently group specialization developed; whole families and clans dedicated themselves to certain sorts of labor. The origin of one of the earliest castes of priests, apart from the tribal medicine men, was due to the superstitious exaltation of a family of expert swordmakers. 산업에서 초기 전문가들은 부싯돌 파편제조자들과 석공(石工)들이었습니다. 다음이 대장장이들이었습니다. 그 후 집단 전문화가 나타났습니다. 온 가족들과 씨족들이 특정한 종류의 노동에 전념했습니다. 부족의 주술사(呪術師)들을 제외하고, 가장 최초의 사제들 특권계급들 중 하나의 유래(由來)는 전문적인 검(劒칼)제작 집안을 미신적으로 높였기 때문이었습니다.

69:3.10 (774.9) The first group specialists in industry were rock salt exporters and potters. Women made the plain pottery and men the fancy. Among some tribes sewing and weaving were done by women, in others by the men. 산업에서 최초의 집단 전문가들은 암염(巖鹽) 수출업자들과 도공(陶工)들이었습니다. 여성들은 평범한 도기를 만들었고 남자들은 화려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부족들 중에서 재봉(裁縫바느질)과 직조(織造천 짜기)는 여성들이 했고, 다른 부족들에서는 남자들이 했습니다.

69:3.11 (774.10) The early traders were women; they were employed as spies, carrying on commerce as a side line. Presently trade expanded, the women acting as intermediaries — jobbers. Then came the merchant class, charging a commission, profit, for their services. Growth of group barter developed into commerce; and following the exchange of commodities came the exchange of skilled labor. 초기 상인들은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첩자로 고용되었고, 상업은 부업으로 했습니다. 곧 무역이 확대되어, 여성들은 중개인 – 중개상 –으로 활동했습니다. 그 후 상인 계급이 나타났고, 봉사에 대한 수수료, 이윤을 징수(徵收거둬들임)했습니다. 집단 교역의 성장이 상업으로 발전했습니다. 상품 교환에 뒤이어 숙련 노동의 교환이 나타났습니다.

4. The Beginnings of Trade 매매(무역)의 시작

69:4.1 (775.1) Just as marriage by contract followed marriage by capture, so trade by barter followed seizure by raids. But a long period of piracy intervened between the early practices of silent barter and the later trade by modern exchange methods. 계약 결혼이 포획 결혼의 뒤를 따른 것처럼, 물물 교환 무역이 습격 강탈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익명(匿名)으로 교환하던 초기 관행과 현대적 교환 방식 사이에는 오랜 기간 해적 행위가 있었습니다.

69:4.2 (775.2) The first barter was conducted by armed traders who would leave their goods on a neutral spot. Women held the first markets; they were the earliest traders, and this was because they were the burden bearers; the men were warriors. Very early the trading counter was developed, a wall wide enough to prevent the traders reaching each other with weapons. 최초의 물물교환은 무장(武裝)한 상인들이 중립 지점에 자기들의 물자를 남겨두면서 처리했습니다. 여성들이 최초의 시장들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최초의 상인들이었는데, 이는 그들이 무거운 짐을 나르는 짐꾼들이었으며 남자들은 전사(戰士)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일찍부터 무역 거래소가 개발되었는데, 이는 상인들이 무기를 가지고 서로 다른 상대에게 도달하지 못하도록 충분히 넓은 벽이었습니다.

69:4.3 (775.3) A fetish was used to stand guard over the deposits of goods for silent barter. Such market places were secure against theft; nothing would be removed except by barter or purchase; with a fetish on guard the goods were always safe. The early traders were scrupulously honest within their own tribes but regarded it as all right to cheat distant strangers. Even the early Hebrews recognized a separate code of ethics in their dealings with the gentiles. 익명(匿名)의 물물 교환을 위한 공탁물들을 안전히 유지하려고 주물(呪物 축귀와 행운의 미신적 물건)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 시장은 도난의 위험이 없었습니다. 물물교환이나 구매 없이 아무것도 이동될 수 없었습니다. 주물(呪物)이 지키는 물자는 언제나 안전했습니다. 초기 상인들은 자기 부족들 간에 철저히 정직했지만, 먼 이방인들을 속이는 것은 다 정당하게 여겼습니다. 초기 히브리인들도 이방인들과 거래하는 경우 별도의 윤리 규정을 인정했습니다.

69:4.4 (775.4) For ages silent barter continued before men would meet, unarmed, on the sacred market place. These same market squares became the first places of sanctuary and in some countries were later known as “cities of refuge.” Any fugitive reaching the market place was safe and secure against attack. 사람들이 신성한 시장에서 무장(武裝)없이 만나기 전에 오랜 기간 익명(匿名)의 물물 교환이 계속되었습니다. 바로 이 시장 광장(廣場)이 첫 신전(神殿)의 자리가 되었고, 어떤 지방에서는 나중에 “도피성(逃避城피난의 도시)”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시장터에 이른 도피자들은 누구든지 안전했고, 공격받을 염려가 없었습니다.

69:4.5 (775.5) The first weights were grains of wheat and other cereals. The first medium of exchange was a fish or a goat. Later the cow became a unit of barter. 최초의 형량(衡量0.0648g/알)들은 밀과 다른 곡식들의 낟알들이었습니다. 최초의 교환 수단은 물고기나 염소였습니다. 후에 암소가 물물교환의 단위가 되었습니다.

69:4.6 (775.6) Modern writing originated in the early trade records; the first literature of man was a trade-promotion document, a salt advertisement. Many of the earlier wars were fought over natural deposits, such as flint, salt, and metals. The first formal tribal treaty concerned the intertribalizing of a salt deposit. These treaty spots afforded opportunity for friendly and peaceful interchange of ideas and the intermingling of various tribes. 현대적 쓰기는 초기 무역 기록들에서 생겼습니다. 사람의 최초 저술은 매매-선전 문서, 소금 광고였습니다. 대부분의 초기 전쟁들은 부싯돌, 소금 및 금속들 같은 천연 매장물들 때문에 싸웠습니다. 최초의 공식적 부족 조약은 소금 매장물을 부족들이 같이 사용하는 것에 관련되었습니다. 이 조약 장소들은, 우호적으로 평화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다양한 부족들이 서로 혼합되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69:4.7 (775.7) Writing progressed up through the stages of the “message stick,” knotted cords, picture writing, hieroglyphics, and wampum belts, to the early symbolic alphabets. Message sending evolved from the primitive smoke signal up through runners, animal riders, railroads, and airplanes, as well as telegraph, telephone, and wireless communication. 필기(筆記)는 “소식(消息메시지) 막대기”, 매듭 있는 끈, 그림 쓰기, 상형문자, 그리고 조가비 염주 띠의 단계를 거쳐, 초기 기호(記號)의 알파벳으로 발전했습니다. 소식(消息메시지) 전송은 원시적 연기(煙氣) 신호에서 주자(走者러너)들, 동물 기수(騎手)들, 철도 및 비행기를 거쳐 전보, 전화 및 무선 통신까지 진화했습니다.

69:4.8 (775.8) New ideas and better methods were carried around the inhabited world by the ancient traders. Commerce, linked with adventure, led to exploration and discovery. And all of these gave birth to transportation. Commerce has been the great civilizer through promoting the cross-fertilization of culture. 고대 상인들은 새로운 생각과 개량된 방법을 사람이 사는 세상 여기저기에 옮겼습니다. 모험과 결부된 상업은 탐험과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가 수송(輸送)을 낳았습니다. 상업은 문화의 교류를 증진하여 문명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5. The Beginnings of Capital 자본(資本)의 시작

69:5.1 (775.9) Capital is labor applied as a renunciation of the present in favor of the future. Savings represent a form of maintenance and survival insurance. Food hoarding developed self-control and created the first problems of capital and labor. The man who had food, provided he could protect it from robbers, had a distinct advantage over the man who had no food. 자본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도록 적용된 노동입니다. 저축은 유지와 생존 보험의 형태를 뜻합니다. 양식 저장은 자제심을 개발했고 자본과 노동에 속한 최초의 문제들을 야기했습니다. 양식을 소유한 자는, 약탈자에게서 그것을 지킬 수만 있다면, 양식이 없는 자들보다 명백하게 유리(有利)했습니다.

69:5.2 (775.10) The early banker was the valorous man of the tribe. He held the group treasures on deposit, while the entire clan would defend his hut in event of attack. Thus the accumulation of individual capital and group wealth immediately led to military organization. At first such precautions were designed to defend property against foreign raiders, but later on it became the custom to keep the military organization in practice by inaugurating raids on the property and wealth of neighboring tribes. 초기 은행가는 부족 중에서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집단의 귀중품들을 맡았고, 공격(攻擊)의 경우에 씨족(氏族) 전체가 그의 오두막을 지키곤 했습니다. 그래서 개인 자본과 집단 재산의 축적 때문에 즉시 군대가 조직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타지방의 침입자들에 대항하여 재산을 지키려고 그런 예방책들이 고안되었지만, 나중에는 이웃 부족들의 재산과 자원을 습격하기 시작하면서 실제로 군대 조직의 유지가 관습이 되었습니다.

69:5.3 (776.1) The basic urges which led to the accumulation of capital were: 자본 축적으로 이끈 근본적 추진력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69:5.4 (776.2) 1. Hunger — associated with foresight. Food saving and preservation meant power and comfort for those who possessed sufficient foresight thus to provide for future needs. Food storage was adequate insurance against famine and disaster. And the entire body of primitive mores was really designed to help man subordinate the present to the future. 선견과 관련된 배고픔. 양식 절약과 보존은, 충분한 선견을 가지고 그렇게 미래 필수품을 대비하려는 자들에게 권력과 위안을 의미했습니다. 양식 저장은 기근과 재난에 대한 적절한 대비였습니다. 그리고 원시적 관습의 대부분 모두는 실제로 사람들이 현재를 미래에 복종하도록 돕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69:5.5 (776.3) 2. Love of family — desire to provide for their wants. Capital represents the saving of property in spite of the pressure of the wants of today in order to insure against the demands of the future. A part of this future need may have to do with one’s posterity. 가족사랑 – 그들의 필요를 마련하려는 욕구. 자본은 오늘의 부족에 대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수요에 대비한 재산 저축을 뜻합니다. 이 미래 필요의 일부는 자손과 관계될 수도 있습니다.

69:5.6 (776.4) 3. Vanity — longing to display one’s property accumulations. Extra clothing was one of the first badges of distinction. Collection vanity early appealed to the pride of man. 허영심 – 사람의 재산축적 과시열망. 여분의 옷은 차별하는 첫 표지의 하나였습니다. 수집하는 허영심은 일찍부터 사람의 자만심에 호소했습니다.

69:5.7 (776.5) 4. Position — eagerness to buy social and political prestige. There early sprang up a commercialized nobility, admission to which depended on the performance of some special service to royalty or was granted frankly for the payment of money. 지위 – 사회 및 정치적 명성을 얻으려는 열망. 일찍부터 상업화된 귀족, 즉 왕족에게 특별 봉사를 행하거나 솔직히 돈을 내서 부여받은 특권이 생겼습니다.

69:5.8 (776.6) 5. Power — the craving to be master. Treasure lending was carried on as a means of enslavement, one hundred per cent a year being the loan rate of these ancient times. The moneylenders made themselves kings by creating a standing army of debtors. Bond servants were among the earliest form of property to be accumulated, and in olden days debt slavery extended even to the control of the body after death. 권력 –주인이 되려는 갈망. 귀중품(재산) 임대는 노예로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는데, 고대의 연(年) 대여(貸與)율은 100%였습니다. 대금업자(貸金業者)들은 채무자들을 상비군으로 만들어 스스로 왕들이 되었습니다. 노예 종들은 가장 최초로 축적되는 재산 형태였으며, 고대에 빚으로 인한 노예제도는 사후에 시신(屍身) 통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69:5.9 (776.7) 6. Fear of the ghosts of the dead — priest fees for protection. Men early began to give death presents to the priests with a view to having their property used to facilitate their progress through the next life. The priesthoods thus became very rich; they were chief among ancient capitalists. 죽은 자의 귀신에 대한 공포 – 보호를 위한 사제 사례금. 일찍이 사람들은 내세 여정을 촉진할 재산 소유의 관점으로 사제들에게 죽음 현금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제들은 매우 부유해졌고, 그들은 고대 자본가들 중에 최고였습니다.

69:5.10 (776.8) 7. Sex urge — the desire to buy one or more wives. Man’s first form of trading was woman exchange; it long preceded horse trading. But never did the barter in sex slaves advance society; such traffic was and is a racial disgrace, for at one and the same time it hindered the development of family life and polluted the biologic fitness of superior peoples. 성(性) 충동 – 하나 이상의 아내를 얻으려는 욕구. 사람의 최초 거래 형태는 여성 교환이었고, 그것은 말의 거래보다 오래 전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성(性) 노예들의 교환은 결코 사회를 진보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 매매는 과거와 현재에도 인종적 치욕이며, 단 한 번에 가정생활의 발전을 저해하고 우월한 민족들의 생물학적 적합성을 오염시켰습니다.

69:5.11 (776.9) 8. Numerous forms of self-gratification. Some sought wealth because it conferred power; others toiled for property because it meant ease. Early man (and some later-day ones) tended to squander his resources on luxury. Intoxicants and drugs intrigued the primitive races. 자아-충족의 수많은 형태들. 어떤 사람들은 부(富)가 권력을 주기 때문에 부(富)를 추구했고, 다른 사람들은 재산이 안락(安樂)을 의미했기 때문에 재산을 위해 수고했습니다. 초기 사람(과 후일의 어떤 사람들)은 사치에 자기 자원을 낭비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알코올음료와 마약은 원시종족들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69:5.12 (776.10) As civilization developed, men acquired new incentives for saving; new wants were rapidly added to the original food hunger. Poverty became so abhorred that only the rich were supposed to go direct to heaven when they died. Property became so highly valued that to give a pretentious feast would wipe a dishonor from one’s name. 문명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저축의 새로운 동기를 얻었습니다. 새로운 욕구가 원래의 양식 배고픔에 신속히 추가되었습니다. 가난을 무척 싫어해서, 사람들이 죽으면 부자들만 천국에 바로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허세 잔치로 자기 이름에서 불명예를 씻어내곤 한다고 재산이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69:5.13 (777.1) Accumulations of wealth early became the badge of social distinction. Individuals in certain tribes would accumulate property for years just to create an impression by burning it up on some holiday or by freely distributing it to fellow tribesmen. This made them great men. Even modern peoples revel in the lavish distribution of Christmas gifts, while rich men endow great institutions of philanthropy and learning. Man’s technique varies, but his disposition remains quite unchanged. 부(富)의 축적은 일찍부터 사회적인 영예의 표지가 되었습니다. 특정 부족의 개인들은 어떤 축일(祝日)에 재산을 태우거나 동료 부족의 일원들에게 무료로 분배하여 단지 감명을 주려고 수년간 재산을 축적하곤 했습니다. 이런 행위가 그들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현대인들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분별없이 분배하며 주연(酒宴술잔치)을 베푸는 반면에 부자들은 큰 자선 및 교육 기관들에 기부합니다. 사람의 기능은 다양하지만, 사람의 경향은 거의 본래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69:5.14 (777.2) But it is only fair to record that many an ancient rich man distributed much of his fortune because of the fear of being killed by those who coveted his treasures. Wealthy men commonly sacrificed scores of slaves to show disdain for wealth. 그러나 고대의 부자의 대부분은 그의 귀중품(재산)을 탐내는 자들에게 피살되는 공포 때문에 자기 재산을 많이 분배했다고 기록해야 오히려 공정합니다. 부자들은 보통 재산에 대한 경멸을 드러내려고 수십 명의 노예들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69:5.15 (777.3) Though capital has tended to liberate man, it has greatly complicated his social and industrial organization. The abuse of capital by unfair capitalists does not destroy the fact that it is the basis of modern industrial society. Through capital and invention the present generation enjoys a higher degree of freedom than any that ever preceded it on earth. This is placed on record as a fact and not in justification of the many misuses of capital by thoughtless and selfish custodians. 자본이 사람을 해방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사람의 사회 및 산업 조직을 아주 복잡하게 했습니다. 자본이 현대 산업 사회의 토대라는 사실은 부당한 자본가들이 자본을 남용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자본과 발명으로, 현 세대는 땅에서 이 전의 어떤 세대보다 더 높은 단계의 자유를 누립니다. 이것은 분별없이 이기적인 관리자들이 자본을 여러 번 오용한 것을 변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실로서 기록한 것입니다.

6. Fire in Relation to Civilization 불과 문명의 관계

69:6.1 (777.4) Primitive society with its four divisions — industrial, regulative, religious, and military — rose through the instrumentality of fire, animals, slaves, and property. 원시 사회는 그것에 속한 네 개의 분야 – 산업적, 규제적, 종교적, 군사적 –와 함께 불, 동물들, 노예들, 및 재산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69:6.2 (777.5) Fire building, by a single bound, forever separated man from animal; it is the basic human invention, or discovery. Fire enabled man to stay on the ground at night as all animals are afraid of it. Fire encouraged eventide social intercourse; it not only protected against cold and wild beasts but was also employed as security against ghosts. It was at first used more for light than heat; many backward tribes refuse to sleep unless a flame burns all night. 불 피우기는 단숨에 사람을 영구히 동물로부터 구별시켰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발명 곧 발견입니다. 모든 동물들이 불을 두려워하므로 사람은 불 때문에 밤에도 지상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불은 저녁 무렵에 사교(社交어울려 사귐)를 촉진했습니다. 불은 추위와 맹수들에게서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귀신들에 대한 안전조치로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 열(熱) 보다는 빛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진보가 늦은 대부분의 부족들은 밤새 불꽃이 타오를 때까지 잠에 들지 않으려 했습니다.

69:6.3 (777.6) Fire was a great civilizer, providing man with his first means of being altruistic without loss by enabling him to give live coals to a neighbor without depriving himself. The household fire, which was attended by the mother or eldest daughter, was the first educator, requiring watchfulness and dependability. The early home was not a building but the family gathered about the fire, the family hearth. When a son founded a new home, he carried a firebrand from the family hearth. 불은 문명화에 영향을 미쳤는데, 불에 타고 있는 목탄(木炭숯)들을 빼앗기지 않고 이웃에게 줘서 손해 없이 이타적이 되는 최초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장녀가 보살폈던 집안의 불은 신중함과 신뢰성을 요구하는 최초의 교육자였습니다. 초기 가옥은 건물이 아닌 불을 둘러 모인 가정, 즉 가정 화로였습니다. 아들이 새 집을 꾸리면, 그는 가정 화로에서 횃불을 가져갔습니다.

69:6.4 (777.7) Though Andon, the discoverer of fire, avoided treating it as an object of worship, many of his descendants regarded the flame as a fetish or as a spirit. They failed to reap the sanitary benefits of fire because they would not burn refuse. Primitive man feared fire and always sought to keep it in good humor, hence the sprinkling of incense. Under no circumstances would the ancients spit in a fire, nor would they ever pass between anyone and a burning fire. Even the iron pyrites and flints used in striking fire were held sacred by early mankind. 불의 발견자 안돈은 그것을 경배의 대상으로 취급하기를 회피했지만, 대부분 그의 자손들은 불꽃을 주물(呪物숭배의 대상)이나 영(靈)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물건들을) 태우지 않으려 해서, 불의 위생적 유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원시인은 불을 두려워했고 그것을 좋게 유지하여 냄새가 적게 나도록 항상 애를 썼습니다. 고대인들은 어떤 상황에도 불에 침을 뱉거나, 어떤 사람과 불타고 있는 불 사이를 결코 지나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초기 인류는 불을 켤 때 쓰는 황철광과 부싯돌들까지 신성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69:6.5 (777.8) It was a sin to extinguish a flame; if a hut caught fire, it was allowed to burn. The fires of the temples and shrines were sacred and were never permitted to go out except that it was the custom to kindle new flames annually or after some calamity. Women were selected as priests because they were custodians of the home fires. 불을 끄면 죄가 되었습니다. 오두막에 불이 붙으면 불에 타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신전(神殿)과 사당(祠堂)의 불들은 신성했고, 매년 또는 어떤 재난 뒤에 새로 불을 켜는 관습을 제외하고는, 결코 불을 끄지 않게 했습니다. 여성들이 집 불들의 관리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사제로 선택되었습니다.

69:6.6 (778.1) The early myths about how fire came down from the gods grew out of the observations of fire caused by lightning. These ideas of supernatural origin led directly to fire worship, and fire worship led to the custom of “passing through fire,” a practice carried on up to the times of Moses. And there still persists the idea of passing through fire after death. The fire myth was a great bond in early times and still persists in the symbolism of the Parsees. 불이 하나님들에게서 어떻게 내려왔는가에 대한 초기 신화들은 번개로 인한 불을 목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초자연적 기원에 대한 이 생각(관념)은 바로 배화(拜火불의 숭배)가 되었고, 배화(拜火불의 숭배)는 “불을 통과하는” 관습, 즉 모세시대까지 계속된 풍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후(死後)에 불을 통과한다는 관념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불의 신화는 초기 시대에 엄청난 결속력이었고 파시교도(8세기에 회교도의 박해를 피해 페르시아에서 인도로 도망간 조로아스터교도의 자손들)의 상징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69:6.7 (778.2) Fire led to cooking, and “raw eaters” became a term of derision. And cooking lessened the expenditure of vital energy necessary for the digestion of food and so left early man some strength for social culture, while animal husbandry, by reducing the effort necessary to secure food, provided time for social activities. 불로 요리하면서, “날 것을 먹는 자들”은 조롱의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리는 음식 소화에 필요한 중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여서 초기 사람에게 사회적 문화를 위한 얼마의 힘을 남겼으며, 동물 사육(飼育)은 양식 확보에 필요한 노력을 줄여서 사회적 활동을 위한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69:6.8 (778.3) It should be remembered that fire opened the doors to metalwork and led to the subsequent discovery of steam power and the present-day uses of electricity. 불은 금속 가공의 문을 열었고 나중에 증기동력(蒸氣動力)을 발견하고 오늘날 전기를 이용하게 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7. The Utilization of Animals 동물의 이용

69:7.1 (778.4) To start with, the entire animal world was man’s enemy; human beings had to learn to protect themselves from the beasts. First, man ate the animals but later learned to domesticate and make them serve him. 처음에 전체 동물세계는 사람의 적(敵)이었고, 인간 존재들은 짐승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를 배워야만 했습니다. 먼저 인간은 동물을 먹었지만 후에는 동물들을 길들이고 인간을 위해 일하도록 만들기를 배웠습니다.

69:7.2 (778.5) The domestication of animals came about accidentally. The savage would hunt herds much as the American Indians hunted the bison. By surrounding the herd they could keep control of the animals, thus being able to kill them as they were required for food. Later, corrals were constructed, and entire herds would be captured. 동물 길들이기는 우연히 일어났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들소를 사냥했던 것처럼 야만인들은 짐승 떼를 사냥하곤 했습니다. 짐승 떼를 포위해서 그들은 동물들을 계속 조정할 수 있었고, 그렇게 그들은 양식이 필요할 때 그것들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울타리를 세워, 짐승 떼 전체를 사로잡곤 했습니다.

69:7.3 (778.6) It was easy to tame some animals, but like the elephant, many of them would not reproduce in captivity. Still further on it was discovered that certain species of animals would submit to man’s presence, and that they would reproduce in captivity. The domestication of animals was thus promoted by selective breeding, an art which has made great progress since the days of Dalamatia. 어떤 동물들은 길들이기 쉬웠지만, 코끼리처럼 대부분의 동물들은 사로잡혀서 번식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동물들은 사람의 현존에 복종하고, 사로잡혀서 번식하려 한다는 것을 나중에 더 발견했습니다. 동물 길들이기는 그렇게 선택적 번식, 즉 달라마시아 시절 이후 크게 진보한 기술로 진척했습니다.

69:7.4 (778.7) The dog was the first animal to be domesticated, and the difficult experience of taming it began when a certain dog, after following a hunter around all day, actually went home with him. For ages dogs were used for food, hunting, transportation, and companionship. At first dogs only howled, but later on they learned to bark. The dog’s keen sense of smell led to the notion it could see spirits, and thus arose the dog-fetish cults. The employment of watchdogs made it first possible for the whole clan to sleep at night. It then became the custom to employ watchdogs to protect the home against spirits as well as material enemies. When the dog barked, man or beast approached, but when the dog howled, spirits were near. Even now many still believe that a dog’s howling at night betokens death. 개는 처음 길들인 동물이었고, 개를 길들이는 어려운 체험은 어떤 개가 온종일 사냥꾼 주변을 맴돈 후 그와 함께 실제로 집에 갔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개들은 양식, 사냥, 수송 및 반려(伴侶)로 이용되었습니다. 처음에 개들은 단지 청승맞게 길게 짖었지만 후에 그들은 (울리는 소리로) 짖는 법을 배웠습니다. 개의 예민한 후각(嗅覺)으로 개가 영들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개를 숭배하는 종파들이 생겼습니다. 감시견(監視犬)을 활용해서 처음으로 씨족 전체가 밤에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것은 감시견(監視犬)들을 활용하여 육체적 적들만이 아니라 영들에 대항해서 집을 보호하는 관습이 되었습니다. 개가 짖으면 사람이나 짐승이 다가온 것이지만, 개가 길게 짖으면 영들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개가 밤에 길게 짖는 것은 죽음의 전조(前兆미리 나타난 징조)라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믿습니다.

69:7.5 (778.8) When man was a hunter, he was fairly kind to woman, but after the domestication of animals, coupled with the Caligastia confusion, many tribes shamefully treated their women. They treated them altogether too much as they treated their animals. Man’s brutal treatment of woman constitutes one of the darkest chapters of human history. 남성이 사냥꾼이었을 때, 그는 여성에게 상당히 친절했지만, 동물들을 길들인 후, 칼리가스티아 혼란과 결부되어, 많은 부족들이 자기 여성들을 명예롭지 못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동물들을 다루듯이 요컨대 너무 비슷하게 여성들을 다루었습니다. 여성을 짐승처럼 다룬 남성의 취급은 인간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章)들 중 하나입니다.

8. Slavery as a Factor in Civilization 문명의 요소인 노예 제도

69:8.1 (778.9) Primitive man never hesitated to enslave his fellows. Woman was the first slave, a family slave. Pastoral man enslaved woman as his inferior sex partner. This sort of sex slavery grew directly out of man’s decreased dependence upon woman. 원시인은 망설이지 않고 동료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여성은 최초의 노예, 가족의 노예였습니다. 목축하는 남성은 여성을 열등한 성(性)상대로서 노예가 되게 했습니다. 이 종류의 성(性)노예제도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의존이 감소된 직접적 결과였습니다.

69:8.2 (779.1) Not long ago enslavement was the lot of those military captives who refused to accept the conqueror’s religion. In earlier times captives were either eaten, tortured to death, set to fighting each other, sacrificed to spirits, or enslaved. Slavery was a great advancement over massacre and cannibalism. 얼마 전까지 노예상태는 정복자의 종교 수용을 거절하는 그 전투 포로들의 운명이었습니다. 초기 시대에 포로들은 먹히든지, 고문으로 죽든지, 서로 싸우게 되든지, 영들에게 희생제물이 되든지, 아니면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 제도는 대량 학살과 식인풍습을 뛰어넘는 엄청난 진보였습니다.

69:8.3 (779.2) Enslavement was a forward step in the merciful treatment of war captives. The ambush of Ai, with the wholesale slaughter of men, women, and children, only the king being saved to gratify the conqueror’s vanity, is a faithful picture of the barbaric slaughter practiced by even supposedly civilized peoples. The raid upon Og, the king of Bashan, was equally brutal and effective. The Hebrews “utterly destroyed” their enemies, taking all their property as spoils. They put all cities under tribute on pain of the “destruction of all males.” But many of the contemporary tribes, those having less tribal egotism, had long since begun to practice the adoption of superior captives. 노예상태는 전쟁 포로들을 자비롭게 대우하는 진보적 단계였습니다. 아이 성(城)의 복병들이 남성들, 여성들 및 아이들까지 모두 학살하면서, 정복자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왕(王)만 살린 것은, 문명인으로 여겼던 민족들까지 야만적 학살을 일삼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바샨 왕 옥을 습격한 것도 똑같이 잔인하고 실제적이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의 적들을 “철저히 멸망”시켰고, 모든 재산을 전리품(戰利品)으로 취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도시들의 “모든 남자들을 멸망시킨” 고통에 공물(貢物)을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부족의 이기심을 덜 지닌 당시 대부분의 부족들은, 우수한 포로들을 (동료로) 받아들이는 관습을 시작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69:8.4 (779.3) The hunter, like the American red man, did not enslave. He either adopted or killed his captives. Slavery was not prevalent among the pastoral peoples, for they needed few laborers. In war the herders made a practice of killing all men captives and taking as slaves only the women and children. The Mosaic code contained specific directions for making wives of these women captives. If not satisfactory, they could be sent away, but the Hebrews were not allowed to sell such rejected consorts as slaves — that was at least one advance in civilization. Though the social standards of the Hebrews were crude, they were far above those of the surrounding tribes. 아메리카의 홍인종처럼, 사냥꾼들은 노예 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포로들을 (동료로) 받아들이거나 죽였습니다. 목축하는 민족들 사이에는 노예제도가 유행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노동자들이 거의 필요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목자(牧者)들은 남성 포로들은 모두 죽이고 여자들과 아이들만 노예로 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법은 이런 여성 포로들을 아내로 삼는 특별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을 쫓아낼 수 있었지만, 히브리인들을 그렇게 거절된 배우자들을 노예로 팔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 그것은 적어도 문명화에서 하나의 진보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사회적 규범이 미숙했지만, 그들은 주변 부족들보다 훨씬 위에 있었습니다.

69:8.5 (779.4) The herders were the first capitalists; their herds represented capital, and they lived on the interest — the natural increase. And they were disinclined to trust this wealth to the keeping of either slaves or women. But later on they took male prisoners and forced them to cultivate the soil. This is the early origin of serfdom — man attached to the land. The Africans could easily be taught to till the soil; hence they became the great slave race. 목자(牧者)들은 최초의 자본가(資本家)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짐승 떼가 자본금이었고, 그들은 이자 – 자연적 증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재산(財産)을 노예들이나 여성들의 관리에 맡기기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은 남자 죄수들을 데려다 땅을 갈도록 강요했습니다. 이것이 농노(農奴)신분 – 토지에 속한 사람 -의 초기 기원입니다. 아프리카인들은 쉽게 땅을 가는 법을 배울 수 있어서, 그들은 거대한 노예 인종이 되었습니다.

69:8.6 (779.5) Slavery was an indispensable link in the chain of human civilization. It was the bridge over which society passed from chaos and indolence to order and civilized activities; it compelled backward and lazy peoples to work and thus provide wealth and leisure for the social advancement of their superiors. 노예제도는 인간 문명의 사슬에서 빠질 수 없는 고리였습니다. 그것은 사회가 혼돈과 게으름에서 질서와 개화된 활동으로 건너가는 다리였습니다. 그것은 진보가 늦고 나태한 사람들이 일해서 그들 윗사람들의 사회적 진보를 위해 재산과 여가를 마련하도록 강요했습니다.

69:8.7 (779.6) The institution of slavery compelled man to invent the regulative mechanism of primitive society; it gave origin to the beginnings of government. Slavery demands strong regulation and during the European Middle Ages virtually disappeared because the feudal lords could not control the slaves. The backward tribes of ancient times, like the native Australians of today, never had slaves. 노예제도는 사람이 원시 사회에 규제 장치를 고안하게 강요했습니다. 그것은 정부(政府)가 시작되는 기원이 되었습니다. 노예제도는 강력한 규정을 필요로 하는데, 봉건 영주들이 노예들을 조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유럽의 중세시대에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진보가 느린 고대의 부족들은,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처럼, 결코 노예들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69:8.8 (779.7) True, slavery was oppressive, but it was in the schools of oppression that man learned industry. Eventually the slaves shared the blessings of a higher society which they had so unwillingly helped create. Slavery creates an organization of culture and social achievement but soon insidiously attacks society internally as the gravest of all destructive social maladies. 노예제도는 정말 포학하지만, 포학의 학교에서 사람은 근면을 배웠습니다. 노예들은 그들이 그토록 마지못해서 도우며 만들었던 고등 사회의 축복들을 결국 나누었습니다. 노예제도는 문화적·사회적 성취의 조직을 만들지만, 곧 모르는 사이에, 가장 지독하게 파괴적인 모든 사회의 병폐로서 사회를 내부에서 공격합니다.

69:8.9 (779.8) Modern mechanical invention rendered the slave obsolete. Slavery, like polygamy, is passing because it does not pay. But it has always proved disastrous suddenly to liberate great numbers of slaves; less trouble ensues when they are gradually emancipated. 현대적 기계의 발명으로 노예가 쓸모없게 되었습니다. 노예제도는, 일부다처(一夫多妻)제처럼, 이익이 없어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많은 노예들을 갑자기 해방하면 항상 재난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서서히 해방될 때 곤란이 적게 일어났습니다.

69:8.10 (780.1) Today, men are not social slaves, but thousands allow ambition to enslave them to debt. Involuntary slavery has given way to a new and improved form of modified industrial servitude. 오늘날, 사람들은 사회적 노예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야망으로 빚의 노예가 됩니다. 무의식적 노예제도가 새롭게 개선된 형태로 변형된 산업적 노예제도가 되고 있습니다. 

69:8.11 (780.2) While the ideal of society is universal freedom, idleness should never be tolerated. All able-bodied persons should be compelled to do at least a self-sustaining amount of work. 사회의 이상은 보편적 자유이지만, 게으름은 결코 묵인되지 말아야만 합니다. 강건한 모든 사람들은 적어도 자립(自立)하는 정도의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해야 합니다.

69:8.12 (780.3) Modern society is in reverse. Slavery has nearly disappeared; domesticated animals are passing. Civilization is reaching back to fire — the inorganic world — for power. Man came up from savagery by way of fire, animals, and slavery; today he reaches back, discarding the help of slaves and the assistance of animals, while he seeks to wrest new secrets and sources of wealth and power from the elemental storehouse of nature. 현대 사회는 반대입니다. 노예제도는 거의 사라졌고, 길들인 동물들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문명은 동력을 얻으려고 불 – 무기(無機)물의 세계-로 향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불, 동물들 및 노예제도를 통해 야만상태에서 올라왔는데, 오늘날 그는 거슬러, 노예들의 도움과 동물들의 원조를 버리면서, 자연의 기본적 창고(倉庫)에서 부(富)와 동력의 새 비밀과 근원을 손에 넣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9. Private Property 사유 재산

69:9.1 (780.4) While primitive society was virtually communal, primitive man did not adhere to the modern doctrines of communism. The communism of these early times was not a mere theory or social doctrine; it was a simple and practical automatic adjustment. Communism prevented pauperism and want; begging and prostitution were almost unknown among these ancient tribes. 원시 사회는 실제로 공동 사회적이었지만, 원시인은 현대 공산주의를 신봉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초기 시대의 공산주의는 단순한 이론이나 사회적 정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실천적 자동 조율이었습니다. 공산주의는 빈곤과 가난을 예방했습니다. 고대의 이 부족들은 구걸과 매춘을 거의 몰랐습니다.

69:9.2 (780.5) Primitive communism did not especially level men down, nor did it exalt mediocrity, but it did put a premium on inactivity and idleness, and it did stifle industry and destroy ambition. Communism was indispensable scaffolding in the growth of primitive society, but it gave way to the evolution of a higher social order because it ran counter to four strong human proclivities: 원시적 공산주의는 특히 사람들을 똑같이 낮추지도 않았고, 평범한 사람을 높이지도 않았지만, 비(非)활동과 나태를 유발했고, 근면을 짓눌렀고 포부를 죽였습니다. 공산주의는 원시 사회의 성장에 필수적 발판이었지만, 인간의 강력한 다음의 네 가지 경향을 거슬렀기 때문에 더 높은 사회 계층의 진화에 길을 비켜 주었습니다.

69:9.3 (780.6) 1. The family. Man not only craves to accumulate property; he desires to bequeath his capital goods to his progeny. But in early communal society a man’s capital was either immediately consumed or distributed among the group at his death. There was no inheritance of property — the inheritance tax was one hundred per cent. The later capital-accumulation and property-inheritance mores were a distinct social advance. And this is true notwithstanding the subsequent gross abuses attendant upon the misuse of capital. 가족. 사람은 재산축적만 바라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자본 재산을 자손에게 남기려 합니다. 그러나 초기 공산적 사회에서 사람의 자본은 즉시 소모되거나 죽을 때 집단에 분배되었습니다. 재산 상속이 없었습니다. – 상속세가 100%였습니다. 후에 자본-축적과 재산-증여 관례는 뚜렷한 사회적 진보였습니다. 그리고 자본의 오용(誤用)에 따른 결과로 엄청난 악용이 있었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69:9.4 (780.7) 2. Religious tendencies. Primitive man also wanted to save up property as a nucleus for starting life in the next existence. This motive explains why it was so long the custom to bury a man’s personal belongings with him. The ancients believed that only the rich survived death with any immediate pleasure and dignity. The teachers of revealed religion, more especially the Christian teachers, were the first to proclaim that the poor could have salvation on equal terms with the rich. 종교적 경향들. 원시인은 또한 다음 존재의 삶을 시작하는 토대로써 재산을 저축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동기로 사람의 개인적 재산을 함께 매장하는 관습이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고대인들은 부자들만 즉시 만족과 위엄으로 죽음에서 생존한다고 믿었습니다. 계시된 종교의 교사들, 특히 기독교 교사들은 더욱,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처음으로 선포했습니다.

69:9.5 (780.8) 3. The desire for liberty and leisure. In the earlier days of social evolution the apportionment of individual earnings among the group was virtually a form of slavery; the worker was made slave to the idler. This was the suicidal weakness of communism: The improvident habitually lived off the thrifty. Even in modern times the improvident depend on the state (thrifty taxpayers) to take care of them. Those who have no capital still expect those who have to feed them. 해방과 여가를 위한 갈망. 사회적 진화의 초기시대에, 집단에서 개인적 소득 분배는 실제로 노예제도의 형태였습니다. 일꾼들은 게으른 자들에게 노예였습니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자멸적 약점이었습니다. 장래를 대비하지 않는 자들은 절약하는 자들을 습관적으로 의존해서 살았습니다. 현대에도,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을 돌보도록 국가(절약하는 납세자들)를 의존합니다. 자본이 없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들을 먹여야 하는 자들을 기대합니다.

69:9.6 (780.9) 4. The urge for security and power. Communism was finally destroyed by the deceptive practices of progressive and successful individuals who resorted to diverse subterfuges in an effort to escape enslavement to the shiftless idlers of their tribes. But at first all hoarding was secret; primitive insecurity prevented the outward accumulation of capital. And even at a later time it was most dangerous to amass too much wealth; the king would be sure to trump up some charge for confiscating a rich man’s property, and when a wealthy man died, the funeral was held up until the family donated a large sum to public welfare or to the king, an inheritance tax. 안전과 권력의 욕구. 부족의 무능한 게으름뱅이들에게 종이 되지 않으려고 다양한 구실을 사용하는 진보적이며 성공적인 개인들의 기만적 관행으로 공산주의가 결국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모든 저축은 비밀이었습니다. 원시적 불안정이 공개적 자본 축적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도 너무 많이 부(富)를 모으는 것은 아주 위험했습니다. 왕은 부자의 재산을 몰수하려고 어떤 혐의를 반드시 조작하곤 했으며, 부자가 죽으면, 가족들이 공적 복지나 왕에게 큰 금액을 상속세로 기부할 때까지 장례식을 지연시켰습니다.

69:9.7 (781.1) In earliest times women were the property of the community, and the mother dominated the family. The early chiefs owned all the land and were proprietors of all the women; marriage required the consent of the tribal ruler. With the passing of communism, women were held individually, and the father gradually assumed domestic control. Thus the home had its beginning, and the prevailing polygamous customs were gradually displaced by monogamy. (Polygamy is the survival of the female-slavery element in marriage. Monogamy is the slave-free ideal of the matchless association of one man and one woman in the exquisite enterprise of home building, offspring rearing, mutual culture, and self-improvement.) 아주 초기에 여성들은 공동체의 재산이었으며, 어머니가 가족을 좌우했습니다. 초기 족장들은 모든 땅을 소유했고, 모든 여성들의 소유자였습니다. 결혼은 부족 통치자의 허락을 필요로 했습니다. 공산주의의 소실과 함께, 여성들은 개인적으로 소유되었고, 아버지가 서서히 가정의 조정을 떠맡았습니다. 그렇게 가정이 시작되었고, 유행하던 일부다처(一夫多妻) 관습들은 서서히 일부일처(一夫一妻)제로 바뀌었습니다. (일부다처제는 결혼에서 여성-노예제도 요소가 남은 것입니다. 일부일처(一夫一妻)제는, 가정 설립, 자녀 양육, 공통 문화 및 자아-향상의 우수한 기획에서 한 남성과 한 여성의 비할 데 없는 연합에 속한 노예-해방의 이상입니다.)

69:9.8 (781.2) At first, all property, including tools and weapons, was the common possession of the tribe. Private property first consisted of all things personally touched. If a stranger drank from a cup, the cup was henceforth his. Next, any place where blood was shed became the property of the injured person or group. 처음에, 연장들과 무기들을 포함한 모든 재산은 부족의 공동 소유였습니다. 사유 재산은 먼저 직접 손을 댄 모든 것들로 이루어졌습니다. 낯선 사람이 컵으로 마시면, 그 컵은 이후 그의 것이었습니다. 다음에, 피 흘린 곳은 어디나 상처 입은 사람이나 집단의 재산이 되었습니다.

69:9.9 (781.3) Private property was thus originally respected because it was supposed to be charged with some part of the owner’s personality. Property honesty rested safely on this type of superstition; no police were needed to guard personal belongings. There was no stealing within the group, though men did not hesitate to appropriate the goods of other tribes. Property relations did not end with death; early, personal effects were burned, then buried with the dead, and later, inherited by the surviving family or by the tribe. 사유재산은 그렇게 처음부터 존중되었는데, 그것이 소유자의 고유성에 속한 부분이 담겨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재산 정직은 이 유형의 미신으로 안전하게 되었습니다. 개인 소유물을 지키는 어떤 경찰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남성들은 타부족의 재산을 망설이지 않고 훔쳤지만, 집단 내에서는 전혀 훔치지 않았습니다. 재산 관계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개인 재산은 불에 태웠고, 그 후 죽은 자와 함께 매장했고, 나중에는 남은 가족이나 부족에게 물려주었습니다.

69:9.10 (781.4) The ornamental type of personal effects originated in the wearing of charms. Vanity plus ghost fear led early man to resist all attempts to relieve him of his favorite charms, such property being valued above necessities. 장식용 개인 휴대품은 부적을 지니는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허영심에 귀신 공포가 더해져 초기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부적들, 필수품 이상으로 평가된 그런 재산을 훔치는 모든 시도에 저항하게 되었습니다.

69:9.11 (781.5) Sleeping space was one of man’s earliest properties. Later, homesites were assigned by the tribal chiefs, who held all real estate in trust for the group. Presently a fire site conferred ownership; and still later, a well constituted title to the adjacent land. 잠자는 공간은 아주 일찍이 사람의 재산들 중 하나였습니다. 나중에 부족의 족장이 집터들을 배치했으며, 그는 집단을 위해 모든 부동산을 맡고 있었습니다. 곧 불 피우는 자리는 소유권이 주어졌고, 좀 더 나중에 우물이 부근 땅에 소유권을 만들어 냈습니다.

69:9.12 (781.6) Water holes and wells were among the first private possessions. The whole fetish practice was utilized to guard water holes, wells, trees, crops, and honey. Following the loss of faith in the fetish, laws were evolved to protect private belongings. But game laws, the right to hunt, long preceded land laws. The American red man never understood private ownership of land; he could not comprehend the white man’s view. 물 구덩이들과 우물들은 첫 사유 재산이었습니다. 주물(呪物)숭배 관습 전체는 물구덩이들, 우물들, 나무들, 농작물들 및 꿀을 지키는데 이용되었습니다. 주물(呪物)숭배 신앙이 사라진 후, 사적 소유물을 지키는 법이 진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렵법, 사냥 권리가 토지법을 훨씬 앞섰습니다. 아메리카의 홍인은 땅의 사적 소유권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홍인은 백인의 관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69:9.13 (781.7) Private property was early marked by family insignia, and this is the early origin of family crests. Real estate could also be put under the watchcare of spirits. The priests would “consecrate” a piece of land, and it would then rest under the protection of the magic taboos erected thereon. Owners thereof were said to have a “priest’s title.” The Hebrews had great respect for these family landmarks: “Cursed be he who removes his neighbor’s landmark.” These stone markers bore the priest’s initials. Even trees, when initialed, became private property. 사유 재산은 일찍부터 가족 문장(紋章)으로 표시되었고, 이것은 가족 문장의 초기 기원입니다. 부동산 역시 영들의 보호 아래에 둘 수 있었습니다. 사제들은 땅을 “신성하게 바쳤으며,” 그러면 그 위에 세운 마법적 금기의 보호 아래에 두게 되었습니다. 소유자들은 그것에 관해 “사제의 증서”를 가진다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이 가족 경계표들을 아주 존중했습니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 돌 표시들은 사제의 머리글자 서명이 있었습니다. 머리글자가 있으면 나무들도 사유 재산이 되었습니다.

69:9.14 (782.1) In early days only the crops were private, but successive crops conferred title; agriculture was thus the genesis of the private ownership of land. Individuals were first given only a life tenureship; at death land reverted to the tribe. The very first land titles granted by tribes to individuals were graves — family burying grounds. In later times land belonged to those who fenced it. But the cities always reserved certain lands for public pasturage and for use in case of siege; these “commons” represent the survival of the earlier form of collective ownership. 초기 시대에 농작물만 사유(私有)적이었지만, 연속적인 농작물은 소유권이 주어졌습니다. 농업은 이렇게 땅에 대한 사적 소유권의 시작이었습니다. 개인들은 처음에 종신 보유권을 받았습니다. 죽을 때 땅은 부족에게 되돌아갔습니다. 부족이 개인들에게 준 맨 처음 토지 소유권은 무덤들 – 가족 매장지들 –이었습니다. 후대에, 땅은 담을 세운 자들에게 속했습니다. 그러나 도시들은 언제나 포위 공격을 받을 때 사용하려고 공적 목초지로 어떤 토지들을 확보해 두었습니다. 이 “공유지들”은 집단 소유권의 초기 형태가 남은 것을 대표합니다.

69:9.15 (782.2) Eventually the state assigned property to the individual, reserving the right of taxation. Having made secure their titles, landlords could collect rents, and land became a source of income — capital. Finally land became truly negotiable, with sales, transfers, mortgages, and foreclosures. 결국 국가가 과세권을 가지고, 개인에게 재산을 할당했습니다. 소유권을 확보한 지주(地主)들은 임대료를 징수할 수 있었고, 땅은 소득의 근원-자본이 되었습니다. 결국 토지는 매각, 이전, 저당, 권리 상실과 함께 정당히 양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69:9.16 (782.3) Private ownership brought increased liberty and enhanced stability; but private ownership of land was given social sanction only after communal control and direction had failed, and it was soon followed by a succession of slaves, serfs, and landless classes. But improved machinery is gradually setting men free from slavish toil. 사적 소유권은 해방을 증대시켰고 안정성을 늘렸지만, 토지의 사적 소유권은 공동적 조정과 지도가 실패한 후에만 사회적 인가를 받았으며, 곧 뒤를 이어 노예들, 농노들 및 토지 없는 계급들이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개선된 기계류가 노예적 수고에서 서서히 사람들을 벗어나게 합니다.

69:9.17 (782.4) The right to property is not absolute; it is purely social. But all government, law, order, civil rights, social liberties, conventions, peace, and happiness, as they are enjoyed by modern peoples, have grown up around the private ownership of property. 재산권은 절대적이 아니라, 순전히 사회적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누리는 것처럼, 정부, 법, 질서, 인권, 사회적 해방, 관습, 평화 및 행복의 전체는 재산의 사적 소유권을 둘러싸고 성장했습니다.

69:9.18 (782.5) The present social order is not necessarily right — not divine or sacred — but mankind will do well to move slowly in making changes. That which you have is vastly better than any system known to your ancestors. Make certain that when you change the social order you change for the better. Do not be persuaded to experiment with the discarded formulas of your forefathers. Go forward, not backward! Let evolution proceed! Do not take a backward step. 현재 사회 계층이 반드시 옳지는 않지만(신적이거나 신성하지 않음), 인류는 서서히 변화를 만들어 이동하도록 잘 해나갈 것이다. 너희가 지닌 것은 너희 조상들이 알았던 어떤 체계보다 아주 월등하다. 너희가 사회적 질서를 바꾸려면 월등하게 바꾸는지 확인하라. 너희 조상들이 폐기한 방식으로 시도하게 두지 말라. 후퇴하지 말고 전진하라! 진화를 계속하라! 뒷걸음질하지 말라.

69:9.19 (782.6) [Presented by a Melchizedek of Nebadon.][네바돈의 멜기세덱이 제시함]

“Paper 69 Primitive Human Institutions 원시적 인간 제도”에 한개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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