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G

Forword
0:0.1 In the minds of the mortals of Urantia – that being the name of your world – there exists great confusion respecting the meaning of such terms as God, divinity, and deity. Human beings are still more confused and uncertain about the relationships of the divine personalities designated by these numerous appellations. Because of this conceptual poverty associated with so much ideational confusion, I have been directed to formulate this introductory statement in explanation of the meanings which should be attached to certain word symbols as they may be hereinafter used in those papers which the Orvonton corps of truth revealers have been authorized to translate into the English language of Uran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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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1 길교회의 미래 The future of the WJC

길 교회의 미래

A. 하느님 나라 – 하느님의 아버지 되심을 믿는 형제·자매 공동체
1. 지상의 하느님 나라 – 하느님의 뜻(비이기적 사랑)을 행하려는 최상의 요망
2. 하늘의 하느님 나라 – 필사 신앙인들의 목표(하느님의 사랑이 완전하고, 그 뜻이 신적으로 성취된 상태)

B.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
1. 신앙, 성실 – 자녀라는 선물을 받아들여서 아버지의 지혜를 완전히 확신하고 진정으로 신뢰하는 가운데 의심 없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하며 편견과 선입관 없이 하느님 나라로 들어와 순전한 아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가르침을 받을 것.
2. 진리 열망 – 공의를 갈망하는 마음의 변화, 하느님처럼 되고자 하느님을 찾으려는 동기를 획득.

C. 비이기적 사랑의 핵심- 개인의 종교적 신앙 결단으로 사회의 윤리적 실천 봉사

D. 현재 문제점 – 바울의 제도화된 교회는 예수가 선포한 하늘나라의 실제 대용품

바울의 제도화된 교회: 예수의 이상적 개념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상태로 예수의 개인적 삶과 가르침 위에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영생 개념을 보충하고 영적인 것과 대조적인 필로 교리로 강화하여, 일찍이 지구에 존재했던 가장 진보적인 인간 사회 중 하나로 바울이 세운 것. 영생의 문제를 개인의 영적 체험에서 사회적 신자들 교회로 변경하여 치명상을 가함.

1. 유대인에게 하늘나라는 이스라엘 공동체
2. 이방인에게 하늘나라는 기독교 교회
3. 예수님에게 하늘나라는 하느님의 아버지 되심을 신앙으로 고백하므로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로 전심으로 헌신한다고 선포하여서 사람의 영적 형제·자매 공동체 회원이 되는 그런 개인들의 총합.

E. 절대적 전망 – 믿는 자들의 심정 안에 있는, 주께서 가르친 바로 이런 하늘나라가 기독교 교회 및 지상에 있는 다른 모든 종교, 인종, 국가와 모든 각 개인에게 선포될 것.

F. 예수 전망의 결론

1. 사회 조직체 즉 교회가 교단과 교파를 통합하여 참된 영적 하늘나라의 진보를 따르게 될 것.

2. 기독교 교회는 좌절된 영적 하느님 나라의 애벌레 단계, 예수의 하느님 나라 개념이 지금 잠들어 있는 고치.

3. 여전히 살아있는 신적 형제·자매 공동체의 하느님 나라가 결국 분명하게 이런 오랜 침체에서 솟아오를 것입니다.

220821 성탄의 배경

220821 성탄절 – 성탄의 배경

눅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and she gave birth to her firstborn, a son. She wrapped him in cloths and place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guest room available for them.

120:0.1 (1323.1) To live such identical lives as he imposes upon the intelligent beings of his own creation, thus to bestow himself in the likeness of his various orders of created beings, is a part of the price which every Creator Son must pay for the full and supreme sovereignty of his self-made universe of things and beings. 그가 자기 창조계의 지능 존재에게 부과한 그런 똑같은 삶을 살기 위해, 이렇게 그의 다양한 창조 존재 계열의 모습으로 자신을 증여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우주 만물과 존재의 정식 최극 주권을 위해 모든 창조자 아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의 부분입니다(7번 증여-멜기세덱, 라노난덱, 물질 아들, 세라핌, 영 필사자, 모론시아 필사자, 물질 필사자).

119:7.2 (1316.5) The public announcement that Michael had selected Urantia as the theater for his final bestowal was made shortly after we learned about the default of Adam and Eve. 미가엘이 자신의 최종 증여의 무대로 유란시아를 선택했다는 공적 발표는 아담과 이브의 의무-불이행(不履行)에 대해 우리(12 네바돈 위원회)가 들었던 직후에 있었습니다(3만 8천 년 전). 119:7.3 (1316.6) It was a thrilling announcement which was broadcast from Salvington telling that the babe of Bethlehem had been born on Urantia. 베들레헴의 아기가 유란시아에 태어났다고 알리는 샐빙톤의 방송은 떨리는 발표였습니다. 119:7.4 (1316.7) For a third of a century of earth time all eyes in all parts of this local universe were focused on Urantia. 지구 시간으로 1/3세기 동안 이 지역 우주의 전역에 있는 모든 이목이 유란시아에 집중했습니다.

119:7.5 (1317.1) Joshua ben Joseph, the Jewish baby, was conceived and was born into the world just as all other babies before and since except that this particular baby was the incarnation of Michael of Nebadon, a divine Son of Paradise and the creator of all this local universe of things and beings. And this mystery of the incarnation of Deity within the human form of Jesus, otherwise of natural origin on the world, will forever remain unsolved. Even in eternity you will never know the technique and method of the incarnation of the Creator in the form and likeness of his creatures. That is the secret of Sonarington, and such mysteries are the exclusive possession of those divine Sons who have passed through the bestowal experience. 요셉의 아들 여호수아, 유대인 아기는, 이 특별한 아기가 네바돈의 미가엘이 성육신(成肉身)한 천국의 신적 아들이며 이 모든 지역 우주의 만물과 존재의 창조자였다는 점만 제외하고, 이전과 이후의 다른 모든 아기와 똑같이 잉태되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예수의 인간 형태로 신(神)이 성육신(成肉身)한 이런 신비는, 세상의 자연적 기원과 다르게, 영원히 풀리지 않은 채로 남을 것입니다. 영원에서도 너희는 창조자가 창조물의 형태와 모습으로 성육신(成肉身)한 기법과 방법을 절대로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아들별의 비밀이며 이런 신비는 증여 체험을 거친 그런 신적 아들들의 독점적 소유입니다.

119:7.7 (1317.3) Jesus’ human parents were average people of their day and generation, and this incarnated Son of God was thus born of woman and was reared in the ordinary manner of the children of that race and age. 예수의 인간 부모는 그 시절 당대의 보통 사람들이었고, 성육신(成肉身)한 하느님의 이 아들은 이렇게 여성에게 태어나 그 종족과 시대의 보통 아이들의 방식으로 양육되었습니다. 119:8.2 (1318.1) And thus has your little world become known throughout all Nebadon as the arena wherein Michael completed the experience which is required of every Paradise Creator Son before he is given unlimited control and direction of the universe of his own making. As you ascend the local universe, you will learn more about the ideals of the personalities concerned in Michael’s previous bestowals. 이렇게 너희 작은 세계는, 모든 천국 창조자 아들이 직접 만든 우주에 대해 자신에게 제한 없는 통제와 지시가 주어지기 전에, 그들 각자에게 요구된 체험을 미가엘이 완료한 활동 무대로, 온 네바돈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122:0.2 (1344.2) In counsel with Gabriel, Michael finally chose Urantia as the planet whereon to enact his final bestowal. Subsequent to this decision Gabriel made a personal visit to Urantia, and he decided that the Hebrews as the bestowal race possessed relative advantages. Upon Michael’s approval of this decision, Gabriel appointed and dispatched to Urantia the Family Commission of Twelve — selected from among the higher orders of universe personalities — which was intrusted with the task of making an investigation of Jewish family life. 미가엘은 가브리엘과 상의하여 자신을 마지막으로 증여할 행성으로 유란시아를 골랐습니다. 이 결정에 따라 가브리엘이 직접 유란시아를 방문하여, 증여 종족으로 히브리인(人)들이 상대적 이점을 지녔다고 그가 결정했습니다. 미가엘이 이런 결정을 승인하자, 가브리엘이 우주 고유성 중 고등 계열 중에서 뽑은 12가정 위원회를 임명하여 유대 가정생활의 조사 업무를 맡겨 유란시아로 급파했습니다.

122:0.3 (1344.3) From the three couples nominated, Gabriel made the personal choice of Joseph and Mary, subsequently making his personal appearance to Mary, at which time he imparted to her the glad tidings that she had been selected to become the earth mother of the bestowal child. 추천된 세 부부 중에서, 가브리엘이 요셉과 마리아를 직접 선정한 후에 마리아에게 자신이 직접 나타나 그녀가 증여 아이의 지상 모친으로 뽑히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그녀에게 전했습니다.

122:8.1 (1351.5) By the break of day the pangs of childbirth were well in evidence, and at noon, August 21, 7 B.C., with the help and kind ministrations of women fellow travelers, Mary was delivered of a male child. Jesus of Nazareth was born into the world, was wrapped in the clothes which Mary had brought along for such a possible contingency, and laid in a near-by manger. 동틀 무렵 산통이 완전히 뚜렷해져, BC 7년 8월 21일 정오에 동료 여성 여행자의 도움과 친절한 보살핌으로 마리아는 남자아이를 낳았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세상에 태어났고, 그런 만일의 사태에 마리아가 가져온 옷에 싸여, 바로 구유에 뉘어졌습니다.

122:8.2 (1351.6) In just the same manner as all babies before that day and since have come into the world, the promised child was born; and on the eighth day, according to the Jewish practice, he was circumcised and formally named Joshua (Jesus). 그날 이전과 이후로 모든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똑같이, 약속의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팔일째 유대 관습에 따라 그는 할례를 받고 정식으로 여호수아(예수)라 불렀습니다.

S142 The Passover at Jerusalem 개요142편 예루살렘에서 맞이한 유월절(逾越節)

S142 The Passover at Jerusalem 개요142편 예루살렘에서 맞이한 유월절(逾越節)

142:0.1 (1596.1) THE month of April Jesus and the apostles worked in Jerusalem, going out of the city each evening to spend the night at Bethany. 4월에 예수님과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일하셨으며 매일 저녁 도시 밖으로 나가 베다니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142:0.2 (1596.2) The first day in Jerusalem Jesus called upon his friend of former years, Annas, the onetime high priest and relative of Salome, Zebedee’s wife. 예루살렘에서 첫날 예수님은 옛 친구 안나스를 방문했는데 그는 한때 대제사장으로 세베대의 아내 살로메의 친척이었습니다.

1. Teaching in the Temple 성전에서 가르침

142:1.1 (1596.3) Throughout this month Jesus or one of the apostles taught daily in the temple. 이달 내내, 예수님이나 사도 중 하나가 매일 성전에서 가르쳤습니다.

142:1.2 (1596.4) 1.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하늘나라가 가까이에 있습니다.

142:1.3 (1596.5) 2. By faith in the fatherhood of God you may enter the kingdom of heaven, thus becoming the sons of God.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신앙하여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며,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이 됩니다.

142:1.4 (1596.6) 3. Love is the rule of living within the kingdom — supreme devotion to God while loving your neighbor as yourself. 사랑이 하늘나라의 생활 규칙이며, 하나님께 최극으로 헌신하는 동시에 자신처럼 여러분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142:1.5 (1596.7) 4. Obedience to the will of the Father, yielding the fruits of the spirit in one’s personal life, is the law of the kingdom.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자신의 삶에서 영(靈)의 열매를 맺는 것이 하늘나라의 법입니다.

142:1.6 (1596.8) The multitudes who came to celebrate the Passover heard this teaching of Jesus, and hundreds of them rejoiced in the good news. 유월절을 축하하러 온 군중(群衆)이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들었으며, 그중 수백 명이 복음을 기뻐했습니다. 142:1.7 (1596.9) These interested men and women carried the news of Jesus’ message from this Passover celebration to the uttermost parts of the Roman Empire and also to the East. This was the beginning of the spread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to the outside world. No longer was the work of Jesus to be confined to Palestine. 관심 있는 이 남녀들은 예수님이 전하신 소식을 이 유월절 잔치로부터 로마제국의 극(極)지방과 또한 동방(東方)까지 전했습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의 복음이 외부 세상으로 퍼지는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더 이상 팔레스타인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1. God’s Wrath 하느님의 진노

142:2.1 (1597.1) There was in Jerusalem in attendance upon the Passover festivities one Jacob, a wealthy Jewish trader from Crete, and he came to Andrew making request to see Jesus privately. 예루살렘의 유월절 잔치에 크레테에서 온 부유한 유대 상인 야곱이 참석하여, 예수님과 사적으로 뵙기를 안드레에게 요청했습니다.

Said Jacob to Jesus: “But, Rabbi, Moses and the olden prophets tell us that Yahweh is a jealous God, a God of great wrath and fierce anger. You and your disciples teach us that God is a kind and compassionate Father who so loves all men that he would welcome them into this new kingdom of heaven, which you proclaim is so near at hand.” 야곱은 예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랍비시여, 모세와 옛 선지자들은, 야훼가 질투의 하나님, 큰 진노와 맹렬한 분노의 하나님이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은, 하나님이 친절하며 인정이 많은 아버지이시며, 모든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당신이 아주 가까이 있다고 선포하는 이 새로운 하늘나라로 그들을 환영하신다고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142:2.2 (1597.2) When Jacob finished speaking, Jesus replied: “Jacob, you have well stated the teachings of the olden prophets who taught the children of their generation in accordance with the light of their day. Our Father in Paradise is changeless. 야곱이 말을 마치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야곱이여, 당신은 옛 선지자들이 자기 시대의 빛에 따라서 그들 세대의 자녀들을 가르쳤던 가르침들을 잘 표현했습니다. 천국의 우리 아버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But the concept of his nature has enlarged and grown from the days of Moses down through the times of Amos and even to the generation of the prophet Isaiah. And now have I come in the flesh to reveal the Father in new glory and to show forth his love and mercy to all men on all worlds. As the gospel of this kingdom shall spread over the world with its message of good cheer and good will to all men, there will grow up improved and better relations among the families of all nations. As time passes, fathers and their children will love each other more, and thus will be brought about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love of the Father in heaven for his children on earth. Remember, Jacob, that a good and true father not only loves his family as a whole — as a family — but he also truly loves and affectionately cares for each individual member.” 그러나 그의 본성에 대한 개념은, 모세의 시절부터 아모스의 시대를 거쳐 선지자 이사야 세대에 이르기까지 내려오면서 확대되고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영광으로 아버지를 계시하고 그의 사랑과 자비를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내가 육체로 왔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격려와 온정의 메시지와 함께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널리 퍼져서, 모든 나라의 민족들 사이에 개선된 더 좋은 관계가 생길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들과 자녀들이 서로 더 사랑할 것이며, 이렇게 지상의 자녀들을 위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야곱이여, 선하고 참된 아버지는 가족을 가정 전체로 사랑할 뿐 아니라 또한 각 개인을 참으로 사랑하고 애정을 다해 보살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142:2.3 (1597.3) Loving your children as a father on earth, you must now accept as a reality the love of the heavenly Father for you not just for all the children of Abraham, but for you, your individual soul.” 지상에서 아버지로서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므로, 당신 즉 아브라함의 모든 자녀만 아니라 당신 개인의 혼()을 향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실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142:2.4 (1597.4) Then Jesus went on to say: “When your children are very young and immature, and when you must chastise them, they may reflect that their father is angry and filled with resentful wrath. Their immaturity cannot penetrate beyond the punishment to discern the father’s farseeing and corrective affection. But when these same children become grown-up men and women, would it not be folly for them to cling to these earlier and misconceived notions regarding their father? As men and women they should now discern their father’s love in all these early disciplines. And should not mankind, as the centuries pass, come the better to understand the true nature and loving character of the Father in heaven? What profit have you from successive generations of spiritual illumination if you persist in viewing God as Moses and the prophets saw him? I say to you, Jacob, under the bright light of this hour you should see the Father as none of those who have gone before ever beheld him. And thus seeing him, you should rejoice to enter the kingdom wherein such a merciful Father rules, and you should seek to have his will of love dominate your life henceforth.” 그 후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자녀들이 아주 어리고 미숙하며 그들을 혼내야만 할 때, 그들은 자기 아버지가 화가 나 분노로 가득했다고 돌이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미숙해서 멀리 보고 교정하는 아버지의 애정을 식별할 만큼 징계를 넘어 통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아이들이 자라서 남성과 여성이 되었는데, 그들이 아버지에 대해 예전의 이런 잘못된 생각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습니까? 남성과 여성으로서 그들은 이제 예전의 이런 모든 훈육에서 자기 아버지의 사랑을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여러 세기(世紀)가 지나면서 이제는 인류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참된 본성과 사랑하시는 성품을 더 이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모세와 선지자들이 본 대로 하나님 보기를 고집 한다면, 영적으로 계몽된 이어진 세대에서 당신은 무슨 이득을 얻습니까? 야곱이여, 내가 당신에게 말하겠는데, 당신은 이 시간의 밝은 빛 아래에서 전에 그 누구도 본적이 없는 아버지를 보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그를 봄으로 당신은 그렇게 자비로운 아버지가 다스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기쁨을 누려야 하며 아버지의 사랑의 뜻이제부터 당신의 삶을 다스리도록 해야만 합니다.”

142:2.5 (1598.1) And Jacob answered: “Rabbi, I believe; I desire that you lead me into the Father’s kingdom.”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랍비여, 제가 믿습니다. 당신께서 아버지의 나라로 저를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1. The Concept of God 하느님 개념

142:3.1 (1598.2) The twelve apostles, most of whom had listened to this discussion of the character of God, that night asked Jesus many questions about the Father in heaven. 12사도 대부분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이 논의를 경청했으며, 그날 밤 예수님께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해 여러 질문들을 했습니다. 142:3.2 (1598.3) And then did the Master proceed to instruct the apostles about the evolution of the concept of Deity throughout the course of the development of the Jewish people. He called attention to the following phases of the growth of the God idea: 그후 주(主)님은 사도들에게 유대민족의 발전 과정을 통한 () 개념의 진화에 관해 가르치셨습니다.

142:3.3 (1598.4) 1. Yahweh the god of the Sinai clans. This was the primitive concept of Deity which Moses exalted to the higher level of the Lord God of Israel. 야훼 – 시나이 씨족들의 하나님. 이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라는 높은 차원으로 고양시켰던 원시적 신() 개념이었습니다.

142:3.4 (1598.5) 2. The Most High. Abraham and his brother became believers in Melchizedek’s teaching of El Elyon — the Most High God. Theirs was a composite concept of God, consisting in a blending of their older Mesopotamian ideas and the Most High doctrine. 지고자(至高者지극히 높으신 분). 아브라함과 그의 형제엘 엘리온 지고자에 대한 멜기세덱 가르침의 신자(信者)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신(神) 개념은 옛 메소포타미아 관념들지고자(至高者지극히 높으신 분) 교리혼합하여 합성한 하나님 개념이었습니다.

142:3.5 (1598.6) 3. El Shaddai. During these early days many of the Hebrews worshiped El Shaddai, the Egyptian concept of the God of heaven, which they learned about during their captivity in the land of the Nile. Long after the times of Melchizedek all three of these concepts of God became joined together to form the doctrine of the creator Deity, the Lord God of Israel. 엘 샤다이. 이 초기 시절에 많은 히브리인엘 샤다이, 즉 나일 강 유역에 사로잡힌 때에 배웠던 이집트 사람들의 하늘 하나님 개념경배했습니다. 멜기세덱 시대 훨씬 후이 모든 세 가지 하나님 개념들이 합해져서 창조자 신(),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 교리가 형성되었습니다.

142:3.6 (1598.7) 4. Elohim. From the times of Adam the teaching of the Paradise Trinity has persisted. Do you not recall how the Scriptures begin by asserting that “In the beginning the Gods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This indicates that when that record was made the Trinity concept of three Gods in one had found lodgment in the religion of our forebears. 엘로힘. 아담의 시대부터 천국 삼위일체의 가르침이 지속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들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고 성서가 단언하면서 어떻게 시작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느냐? 이것은 그 기록이 만들어졌을 때 하나(통일체)로서 세 하나님들의 삼위일체 개념이 우리 선조들의 종교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142:3.7 (1598.8) 5. The Supreme Yahweh. By the times of Isaiah these beliefs about God had expanded into the concept of a Universal Creator who was simultaneously all-powerful and all-merciful. And this evolving and enlarging concept of God virtually supplanted all previous ideas of Deity in our fathers’ religion. 최극자(最極者) 야훼. 이사야의 시대에 하나님에 대한 이 믿음들이, 전능한 동시에 온전히 자비로운 우주의 창조자 개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진화되고 확대되는 이 하나님 개념우리 조상들의 종교에 있는 이전의 모든 신() 관념들사실상 대체했습니다.

142:3.8 (1598.9) 6. The Father in heaven. And now do we know God as our Father in heaven. Our teaching provides a religion wherein the believer is a son of God. That is the good new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heaven.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종교신자(信者)가 하나님의 아들(자녀)이라고 규정합니다. 그것이 하늘나라 복음(福音)의 기쁜 소식입니다.

142:3.9 (1599.1) Never before had the apostles been so shocked as they were upon hearing this recounting of the growth of the concept of God in the Jewish minds of previous generations. 사도들은 이전 세대들의 유대인들 마음에 있었던 하느님 개념의 성장을 이렇게 자세히 들으면서 전에 없었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And the anger of the Lord was kindled against Israel, so much so that he moved David against them, saying, go number Israel and Judah’? ()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렇게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대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삼하24:1).’는 구절을 사무엘에서 읽지 못했느냐? ‘And Satan stood up against Israel and provoked David to number Israel.’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21:1).

142:3.10 (1599.2) “Again should you have discerned the growth of the understanding of divine law in perfect keeping with these enlarging concepts of divinity. When the children of Israel came out of Egypt in the days before the enlarged revelation of Yahweh, they had ten commandments which served as their law right up to the times when they were encamped before Sinai. 이렇게 확대된 신성(神性)의 개념들 온전히 어울리도록 신적 율법에 대한 이해의 성장을 또한 헤아렸어야 하느니라. 확장된 야훼의 계시 이전 시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할 때, 그들은 시나이 앞에서 야영할 그 시절까지도 자신들의 법으로 사용했던 십계명(十誡命)이 있었습니다.

142:3.21 (1599.13) “And then, amidst the thunders and lightnings of Sinai, Moses gave them the new ten commandments, which you will all allow are more worthy utterances to accompany the enlarging Yahweh concepts of Deity. “그러고 나서 시나이 산의 천둥과 번개에 에워싸여 모세가 그들에게 새로운 십계명을 주었는데, 너희가 모두 인정한 그 십계명은 ()에 대해 확장된 야훼 개념이 동반된 더 훌륭한 표현이라.

And did you never take notice of these commandments as twice recorded in the Scriptures, that in the first case deliverance from Egypt is assigned as the reason for Sabbath keeping, while in a later record the advancing religious beliefs of our forefathers demanded that this be changed to the recognition of the fact of creation as the reason for Sabbath observance? 너희는 성서에 두 번 기록된 이 계명들, 즉 첫 경우에는 이집트에서 해방안식일 준수의 이유로 정해진 반면, 나중의 기록에는 우리 조상들의 진보한 종교적 믿음의 요구안식일 준수의 이유가 창조의 사실에 대한 인식으로 이렇게 바뀐 것을 주목하지 못했느냐?

142:3.22 (1599.14) “And then will you remember that once again — in the greater spiritual enlightenment of Isaiah’s day — these ten negative commandments were changed into the great and positive law of love, the injunction to love God supremely and your neighbor as yourself. And it is this supreme law of love for God and for man that I also declare to you as constituting the whole duty of man.” “그리고 후에 다시 한번 이사야 시절에 더 큰 영적 계몽으로 부정적인 이 십계명이 위대하며 긍정적인 사랑의 법,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바뀌었음을 너희는 기억할 것이라. 인간의 온전한 의무를 이루는 것으로 내가 또한 너희에게 선언하는 것이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사랑의 이 최극 법이라.

  1. Flavius and Greek Culture 플라비우스와 그리스(헬라) 문화

142:4.1 (1600.2) Flavius, the Greek Jew, was a proselyte of the gate, having been neither circumcised nor baptized; and since he was a great lover of the beautiful in art and sculpture, the house which he occupied when sojourning in Jerusalem was a beautiful edifice. 그리스(헬)파 유대인 플라비우스는 율법을 이행할 의무가 없는 개종자여서 할례도 세례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술과 조각의 아름다움에 심취한 애호(愛好)였기에 예루살렘에서 머물 때 거주하던 집은 아름다운 건물이었습니다.

142:4.2 (1600.3) The Master saw that his host was bewildered at his friendly attitude toward art; therefore, when they had finished the survey of the entire collection, Jesus said: “Because you appreciate the beauty of things created by my Father and fashioned by the artistic hands of man, why should you expect to be rebuked? Because Moses onetime sought to combat idolatry and the worship of false gods, why should all men frown upon the reproduction of grace and beauty? 주(主)님은 예술에 대한 자신의 우호적인 태도에 당황한 집주인을 보셨기 때문에 모든 수집품을 다 둘러보신 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창조하고, 인간의 예술적인 손길로 만들어진 만물의 아름다움의 진가를 네가 이해한다고 왜 비난받아야 한다고 너는 생각하는가? 모세가 한때 우상숭배 및 거짓 신(하나님)들 숭배와 싸우려 했다고 해서 왜 모든 사람이 우아함과 아름다움의 복제물에 얼굴을 찡그려야 하느냐?

I say to you, Flavius, Moses’ children have misunderstood him, and now do they make false gods of even his prohibitions of images and the likeness of things in heaven and on earth. But even if Moses taught such restrictions to the darkened minds of those days, what has that to do with this day when the Father in heaven is revealed as the universal Spirit Ruler over all? 내가 네가 이르노니, 플라비우스야, 모세의 자손들은 그를 오해했으며,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의 형상들과 모습에 대한 그의 금지(禁止)까지 그들은 지금 거짓 신(하나님)들로 만드느니라. 그러나 모세가 당시 우매한 마음들에게 그런 제한들을 가르쳤어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만물 위에 우주의 영 통치자로 계시(啓示)된 오늘날에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

And, Flavius, I declare that in the coming kingdom they shall no longer teach, ‘Do not worship this and do not worship that’; no longer shall they concern themselves with commands to refrain from this and take care not to do that, but rather shall all be concerned with one supreme duty. 그러니 플라비우스야, 내가 선언하겠는데 다가오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이것을 섬기지 말라, 저것을 섬기지 말라’고 더 이상 가르치지 않을 것이라. 그들은 이것을 삼가고 저것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명령더 이상 스스로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모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의무에 관심을 두게 되리라.

And this duty of man is expressed in two great priileges: sincere worship of the infinite Creator, the Paradise Father, and loving service bestowed upon one’s fellow men. If you love your neighbor as you love yourself, you really know that you are a son of God. 그리고 두 가지 위대한 특권들로 표현되는 사람의 이 의무무한 창조자 즉 천국 아버지를 신실히 경배하고 자기 동료 인간들에게 쏟는 애정 깊은 봉사이니라. 네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면, 너희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아들)임을 정말 아느니라.

142:4.3 (1600.4) “In an age when my Father was not well understood, Moses was justified in his attempts to withstand idolatry, but in the coming age the Father will have been revealed in the life of the Son; and this new revelation of God will make it forever unnecessary to confuse the Creator Father with idols of stone or images of gold and silver. Henceforth, intelligent men may enjoy the treasures of art without confusing such material appreciation of beauty with the worship and service of the Father in Paradise, the God of all things and all beings.” “내 아버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시대에는 우상 숭배에 저항하려는 모세의 시도가 정당화되었지만, 다가오는 시대에 아버지아들의 일생으로 계시되리라. 그리고 새로운 이 하나님 계시창조주 아버지돌로 만든 우상이나 금과 은의 형상들과 영원히 혼동할 필요가 없게 하리라. 이제부터 지능적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그렇게 물질적으로 감상하는 것천국의 아버지 즉, 만물 및 모든 존재들의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예배혼동하지 않으면서, 귀중한 예술품들을 즐겨도 되느니라.”

142:4.4 (1600.5) Flavius believed all that Jesus taught him. The next day he went to Bethany beyond the Jordan and was baptized by the disciples of John. And this he did because the apostles of Jesus did not yet baptize believers. When Flavius returned to Jerusalem, he made a great feast for Jesus and invited sixty of his friends. And many of these guests also became believers in the message of the coming kingdom. 플라비우스는 예수께서 자신에게 가르친 모든 것을 믿었습니다. 다음 날 그는 요단강 건너 베다니로 가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예수님의 사도들이 아직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플라비우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으며 자기 친구 60명을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이 손님들 중 많은 이들도 다가오는 나라에 대한 메시지를 믿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1. The Discourse on Assurance 확신에 대한 강연(講演)

142:5.1 (1601.1) “But, Rabbi, how shall we know of a certainty that you are sent by God, and that we may truly enter into this kingdom which you and your disciples declare is near at hand?” “하지만 랍비여, 하나님이 당신을 보내시고,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는 이 (하늘)나라로 우리가 정말 들어갈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습니까?”

142:5.2 (1601.2) “As to my message and the teaching of my disciples, you should judge them by their fruits. If we proclaim to you the truths of the spirit, the spirit will witness in your hearts that our message is genuine. Concerning the kingdom and your assurance of acceptance by the heavenly Father, let me ask what father among you who is a worthy and kindhearted father would keep his son in anxiety or suspense regarding his status in the family or his place of security in the affections of his father’s heart? Do you earth fathers take pleasure in torturing your children with uncertainty about their place of abiding love in your human hearts? Neither does your Father in heaven leave his faith children of the spirit in doubtful uncertainty as to their position in the kingdom. If you receive God as your Father, then indeed and in truth are you the sons of God. And if you are sons, then are you secure in the position and standing of all that concerns eternal and divine sonship. If you believe my words, you thereby believe in Him who sent me, and by thus believing in the Father, you have made your status in heavenly citizenship sure. If you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you shall never fail in the attainment of the eternal life of progress in the divine kingdom. “내 메시지와 내 제자들의 가르침에 관해 너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판단해야 하리라. 우리가 너희에게 영에 속한 진리들을 선포한다면, 그 영이 너희 심정(마음)우리 메시지가 진()짜라고 증언하리라. 하늘 아버지가 허락(許諾) 하늘나라와 너희 확신에 관해 내가 질문하리라. 너희 중 훌륭하고 마음씨 고운 어떤 아버지가 자기 자녀(아들)로 하여금 집안에서 자기 위치와 아버지의 애정을 확신할 입장에 대해 걱정으로 마음을 졸이도록 놔두겠는가? 너희 세상 아버지들인간의 변함없는 사랑의 심정(마음) 대신에 불안정하게 자녀들을 괴롭히면서 즐기는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영에 속한 자기의 신앙 자녀들하늘나라에서 그들의 위치에 대해 의심스런 불안정에 남겨두지 않으시니라. 너희가 하나님을 너희 아버지로 받아들이면, 참으로 진실로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아들)이라. 그리고 너희가 자녀(아들)들이면, 영원한 신적 아들됨에 대한 모든 위치와 신분에서 너희는 안전하니라. 너희가 내 말을 믿어서 나를 보내신 그분을 믿음으로 그렇게 아버지를 믿으면, 너희는 하늘 시민권이 보장된 신분이라.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면, 너희는 신적 나라에서 진보의 영생(永生영원한 생존) 획득결코 실패하지 않으리라.

142:5.3 (1601.3) “The Supreme Spirit shall bear witness with your spirits that you are truly the children of God. And if you are the sons of God, then have you been born of the spirit of God; and whosoever has been born of the spirit has in himself the power to overcome all doubt, and this is the victory that overcomes all uncertainty, even your faith. “최극 영이 너희 영들과 함께 너희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증언하리라. 그리고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아들)이면, 너희는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태어난 것이라. 누구나 영으로 난 자자신 안에 모든 의심을 극복하는 권능지니며, 이것이 모든 불확실성, 너의 신앙도 극복하는 승리이니라.

142:5.4 (1601.4) “Said the Prophet Isaiah, speaking of these times: ‘When the spirit is poured upon us from on high, then shall the work of righteousness become peace, quietness, and assurance forever.’ And for all who truly believe this gospel, I will become surety for their reception into the eternal mercies and the everlasting life of my Father’s kingdom. You, then, who hear this message and believe this gospel of the kingdom are the sons of God, and you have life everlasting; and the evidence to all the world that you have been born of the spirit is that you sincerely love one another.” “선지자 이사야가 이런 시대들을 이렇게 언급했느니라.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32:15a), 그 때에 공의(公義)의 열매는 영원히 화평과 평안과 안전이라(32:17).’ 그리고 이 복음을 진실로 믿는 모두 내 아버지 나라의 영원한 자비와 영생에 들어감에 대해 내가 보증인이 되리라. 그러므로 이 메시지를 듣고 (하늘)나라의 이 복음을 믿는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아들)이며 너희는 영원히 생명을 소유하느니라. 온 세상에 너희가 영으로 태어난 증거는 너희가 신실하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142:5.5 (1601.5) The throng of listeners remained many hours with Jesus, asking him questions and listening attentively to his comforting answers. Even the apostles were emboldened by Jesus’ teaching to preach the gospel of the kingdom with more power and assurance. This experience at Jerusalem was a great inspiration to the twelve. It was their first contact with such enormous crowds, and they learned many valuable lessons which proved of great assistance in their later work. 경청하던 무리들은 남아서 여러시간 예수님께 질문했고 위안이 되는 그의 대답세심히 경청했습니다. 사도들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용기를 얻어 더 힘찬 확신으로 하늘나라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이 체험으로 12사도들은 크게 격려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엄청난 군중과 처음 만났으며 나중에 일하면서 큰 도움이 된 여러 귀중한 교훈들을 배웠습니다.

  1. The Visit with Nicodemus 니고데모와 대화함

142:6.1 (1601.6) One evening at the home of Flavius there came to see Jesus one Nicodemus, a wealthy and elderly member of the Jewish Sanhedrin. 어느 날 저녁 플라비우스의 집에 유대의 산헤드린 원로(元老)회원으로 부유한 니고데모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142:6.2 (1602.1) In all his dealings with the distinguished visitor, Jesus was calm, earnest, and dignified. Nicodemus came to see Jesus wholly because of his personal and sincere interest in the Master’s teachings. 귀빈(貴賓귀한 손님)을 대하는 모든 일에서, 예수님은 침착하고 진지(眞摯참되고 착실)하셨으며 품위가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오로지 주(主)님의 가르침에 대한 사적(私的)인 신실한 관심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142:6.3 (1602.2) Upon being presented by Flavius, Nicodemus said: “Rabbi, we know that you are a teacher sent by God, for no mere man could so teach unless God were with him. And I am desirous of knowing more about your teachings regarding the coming kingdom.” 플라비우스가 소개하자, 니고데모가 말했습니다. “랍비여,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단순한 사람이 아무도 그렇게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생인 줄 우리가 압니다. 다가오는 (하늘)나라에 관해 당신의 가르침더 알기 원합니다.” 142:6.4 (1602.3) Jesus answered Nicodemus: “Verily, verily, I say to you, Nicodemus, except a man be born from above,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Then replied Nicodemus: “But how can a man be born again when he is old? He cannot enter a second time into his mother’s womb to be born.”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니고데모야, 사람이 위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러자 니고데모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그가 태어나려고 다시 모태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142:6.5 (1602.4) Jesus said: “Nevertheless, I declare to you, except a man be born of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That which is born of the flesh is flesh, and that which is born of the spirit is spirit. But you should not marvel that I said you must be born from above. When the wind blows, you hear the rustle of the leaves, but you do not see the wind — whence it comes or whither it goes — and so it is with everyone born of the spirit. With the eyes of the flesh you can behold the manifestations of the spirit, but you cannot actually discern the spirit.”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내가 네게 밝히노니, 사람이 영으로 태어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신에서 태어난 것은 육신이요,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위에서 태어나야만 한다는 내 말에 놀라지 말아야 하리라.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지만, 그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네가 보지 못하는 것처럼 영에서 태어난 누구나 그러하니라. 육신의 눈으로 영의 표현을 볼 수 있어도 네가 실제로 영을 식별할 수는 없느니라.”

142:6.6 (1602.5) Nicodemus replied: “But I do not understand — how can that be?” Said Jesus: “Can it be that you are a teacher in Israel and yet ignorant of all this? It becomes, then, the duty of those who know about the realities of the spirit to reveal these things to those who discern only the manifestations of the material world. But will you believe us if we tell you of the heavenly truths? Do you have the courage, Nicodemus, to believe in one who has descended from heaven, even the Son of Man?” 니고데모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요?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아직도 이 모두를 모르느냐? 그래서 영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의 의무물질 세상에 나타난 것들만 알아보는 자들에게 이런 것들을 계시(啓示)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네게 하늘의 진리들을 말하면 네가 우리를 믿겠느냐? 니고데모야, 하늘에서 내려온 자, 사람의 아들도 믿을 용기가 있느냐?”

142:6.7 (1602.6) And Nicodemus said: “But how can I begin to lay hold upon this spirit which is to remake me in preparation for entering into the kingdom?” Jesus answered: “Already does the spirit of the Father in heaven indwell you. If you would be led by this spirit from above, very soon would you begin to see with the eyes of the spirit, and then by the wholehearted choice of spirit guidance would you be born of the spirit since your only purpose in living would be to do the will of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And so finding yourself born of the spirit and happily in the kingdom of God, you would begin to bear in your daily life the abundant fruits of the spirit.”그러자 니고데모가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늘)나라로 들어가도록 저를 새롭게 만드는 이 영제가 어떻게 붙잡기 시작할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벌써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이 네 안에 있느니라. 네가 위에서 온 이 영의 인도 받고자 하면, 너는 곧 영의 눈으로 보기 시작할 것이며, 그 다음에 네가 사는 유일한 목적이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의 뜻을 행하게 되는 것이므로, 영 안내를 향한 전심의 선택으로 인해, 너는 영으로부터 태어나게 되느니라.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행복하게 영으로부터 태어난 자신을 그렇게 알게 되면, 너는 일상생활에서 풍부한 영의 열매를 맺게 시작하리라.”

142:6.8 (1602.7) Nicodemus was thoroughly sincere. He was deeply impressed but went away bewildered. Nicodemus was accomplished in self-development, in self-restraint, and even in high moral qualities. He was refined, egoistic, and altruistic; but he did not know how to submit his will to the will of the divine Father as a little child is willing to submit to the guidance and leading of a wise and loving earthly father, thereby becoming in reality a son of God, a progressive heir of the eternal kingdom. 니고데모는 아주 신실했습니다. 그는 깊이 감명받았지만 당황해서 떠나갔습니다. 니고데모는 자기개발, 자기절제 및 높은 도덕 자질에서도 잘 훈련되었습니다. 그는 세련되었으며, 자부심이 강하고, 애타적이었지만, 작은 어린아이가 지혜롭고 애정이 깊은 세상 아버지의 안내와 인도에 기꺼이 복종하듯이, 신적 아버지의 뜻에 자기 뜻을 복종시켜서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아들) 즉 영원한 나라의 진보하는 상속자가 되는지 몰랐습니다.

142:6.9 (1603.1) But Nicodemus did summon faith enough to lay hold of the kingdom. He faintly protested when his colleagues of the Sanhedrin sought to condemn Jesus without a hearing; and with Joseph of Arimathea, he later boldly acknowledged his faith and claimed the body of Jesus, even when most of the disciples had fled in fear from the scenes of their Master’s final suffering and death. 그러나 니고데모는 (하늘)나라를 붙잡기에 충분한 신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는 산헤드린의 자기 동료들이 신문(訊問사건 조사) 없이 예수님께 유죄 판결을 내리려 하자 희미하게 항의했습니다. 제자들 대부분이 주님의 마지막 고난과 죽음의 현장에서 두려워 도망했을 때에도, 그는 나중에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대담하게 자기 신앙을 고백했으며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했습니다.

  1. The Lesson on the Family 가족에 대한 교훈

142:7.1 (1603.2) Said Thomas: “Master, on the day we were set apart as ambassadors of the kingdom, you told us many things, instructed us regarding our personal mode of life, but what shall we teach the multitude? How are these people to live after the kingdom more fully comes? Shall your disciples own slaves? Shall your believers court poverty and shun property? Shall mercy alone prevail so that we shall have no more law and justice?” 도마가 말했습니다. “주(主)여, 저희가 (하늘)나라의 대사들로 따로 구별된 그날에 주님은 저희에게 많이 말씀하시며 우리의 개인적 생활 방식에 관해 가르치셨는데, 우리는 군중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하늘)나라가 더 완전히 온 후에 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당신의 제자들이 노예를 가져도 됩니까? 당신을 믿는 자들이 가난하려고 애쓰면서 재산을 멀리해야 합니까? 더 이상의 율법과 정의(正義) 없이 자비만 가득해야 합니까?”

142:7.2 (1603.3) Jesus sought first to make plain to his apostles that he himself was on earth living a unique life in the flesh, and that they, the twelve, had been called to participate in this bestowal experience of the Son of Man; and as such coworkers, they, too, must share in many of the special restrictions and obligations of the entire bestowal experience. There was a veiled intimation that the Son of Man was the only person who had ever lived on earth who could simultaneously see into the very heart of God and into the very depths of man’s soul. 예수님 자신은 지상에서 육신으로 독특한 생명을 살고 그 12사도는 인자(人子사람의 아들)이 증여 체험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아서 그런 동료로서 그들도 전체 증여 체험의 특별한 제한과 의무여러 가지에 함께 해야만 함을 먼저 사도들에게 분명히 하고자 하셨습니다. 인자(人子사람의 아들)는 하나님의 그 심정사람 혼의 그 깊이동시에 들여다보면서 지상에서 살았던 유일한 사람이라고 넌지시 알리셨습니다.

142:7.3 (1603.4) Very plainly Jesus explained that the kingdom of heaven was an evolutionary experience, beginning here on earth and progressing up through successive life stations to Paradise. In the course of the evening he definitely stated that at some future stage of kingdom development he would revisit this world in spiritual power and divine glory. 하늘나라여기 지상에서 시작하여 연속하는 삶의 정거장들을 거쳐 천국까지 진보하는 진화적 체험이라고 예수님은 아주 명백히 설명하셨습니다. 저녁의 과정(하늘)나라 발전의 어느 미래 단계에 영적 권능과 신적 영광으로 그가 이 세상에 되돌아올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142:7.4 (1603.5) He next explained that the “kingdom idea” was not the best way to illustrate man’s relation to God; that he employed such figures of speech because the Jewish people were expecting the kingdom, and because John had preached in terms of the coming kingdom. Jesus said: “The people of another age will better understand the gospel of the kingdom when it is presented in terms expressive of the family relationship — when man understands religion as the teaching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an, sonship with God.” Then the Master discoursed at some length on the earthly family as an illustration of the heavenly family, restating the two fundamental laws of living: the first commandment of love for the father, the head of the family, and the second commandment of mutual love among the children, to love your brother as yourself. And then he explained that such a quality of brotherly affection would invariably manifest itself in unselfish and loving social service. 그다음에 그는 “(하늘)나라 관념”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으며, 유대인들이 (하늘)나라를 기대하고 있었고, 요한이 다가오는 (하늘)나라의 관점으로 설교했기 때문그런 비유를 사용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 복음가족 관계의 표현으로 제시하고, 종교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사람의 형제 됨, 하나님의 자녀(아들)으로 사람이 이해하면, 다른 시대의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복음을 더 잘 이해할 것이라.” 그 후 주(主)님은 꽤 길게 하늘 가족의 실례로서 땅의 가족을 말씀하시면서 삶의 근본적인 두 법칙을 새로 말하셨습니다. 가장(家長집의 어른) 아버지를 사랑하는 첫 계명자녀간의 서로 사랑, 즉 네 형제를 자신처럼 사랑하는 둘째 계명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그런 형제애정의 본질은 자체로 사심이 없으며 사랑하는 사회봉사로 나타나리라고 설명하셨습니다.

142:7.5 (1603.6) Following that, came the memorable discussion of the fundamental characteristics of family life and their application to the relationship existing between God and man. Jesus stated that a true family is founded on the following seven facts: 가정생활의 근본적 특징들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적용하는 잊지 못할 토론이 뒤따랐습니다. 참된 가족은 다음의 일곱 사실에 기초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42:7.6 (1604.1) 1. The fact of existence. 존재의 사실. 142:7.7 (1604.2) 2. Security and pleasure. 안전과 기쁨. 142:7.8 (1604.3) 3. Education and training. 교육과 훈련. 142:7.9 (1604.4) 4. Discipline and restraint. 단련과 억제(抑制억누름). 142:7.10 (1604.5) 5. Companionship and loyalty. 친교와 충성. 142:7.11 (1604.6) 6. Love and mercy. 사랑과 자비. 142:7.12 (1604.7) 7. Provision for the future. 미래 준비.

142:7.13 (1604.8) And this was his conclusion: “This entire relationship of a son to the Father, I know in perfection, for all that you must attain of sonship in the eternal future I have now already attained. The Son of Man is prepared to ascend to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so that in me is the way now open still wider for all of you to see God and, ere you have finished the glorious progression, to become perfect, even as your Father in heaven is perfect.” 이것이 그의 결론이었습니다. “너희가 영원한 미래에 자녀로서 도달해야만 하는 모든 것나는 지금 벌써 도달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이 모든 관계온전히 알고 있느니라. 인자(人子사람의 아들)는 아버지의 오른 편으로 오를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너희 모두 하나님을 보고, 너희가 영광의 진보를 마치기 전에 실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처럼,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길이 내 안에 활짝 넓게 열려 있느니라.”

142:7.14 (1604.9) When the apostles heard these startling words, they recalled the pronouncements which John made at the time of Jesus’ baptism, and they also vividly recalled this experience in connection with their preaching and teaching subsequent to the Master’s death and resurrection. 사도들이 이 놀라운 말씀들을 들었을 때, 예수님의 세례 시() 요한이 했던 선언생각해냈으며, 주(主)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 자신들의 설교 및 가르침과 관련하여 그들은 이 체험을 또한 생생히 기억했습니다.

142:7.15 (1604.10) Jesus is a divine Son, one in the Universal Father’s full confidence. He had been with the Father and comprehended him fully. He had now lived his earth life to the full satisfaction of the Father, and this incarnation in the flesh had enabled him fully to comprehend man. Jesus was the perfection of man; he had attained just such perfection as all true believers are destined to attain in him and through him. Jesus revealed a God of perfection to man and presented in himself the perfected son of the realms to God. 예수님은 우주의 아버지께서 완전히 신뢰하는 신적 아들이십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계셨으며 그를 완전히 이해하셨습니다. 그는 이제 아버지께서 충분히 만족하시도록 지상에서 사셨으며성육신(成肉身)으로 그는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참된 모든 신자들그 안에서 그를 통해 도달하도록 정해진 바로 그 완전함에 도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완전한 하나님을 계시했고, 하나님께 자신 안에서 영역의 완전한 아들을 내놓으셨습니다.

142:7.16 (1605.1) Although Jesus discoursed for several hours, Thomas was not yet satisfied, for he said: “But, Master, we do not find that the Father in heaven always deals kindly and mercifully with us. Many times we grievously suffer on earth, and not always are our prayers answered. Where do we fail to grasp the meaning of your teaching?” 예수께서 몇 시간 강연하셨지만, 도마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主)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항상 우리를 친절히 자비롭게 대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다. 여러 번 우리는 지상에서 몹시 고생하고, 우리 기도가 항상 응답되지도 않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의 의미를 어디에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142:7.17 (1605.2) Jesus replied: “Thomas, Thomas, how long before you will acquire the ability to listen with the ear of the spirit? How long will it be before you discern that this kingdom is a spiritual kingdom, and that my Father is also a spiritual being? Do you not understand that I am teaching you as spiritual children in the spirit family of heaven, of which the fatherhead is an infinite and eternal spirit? Will you not allow me to use the earth family as an illustration of divine relationships without so literally applying my teaching to material affairs? In your minds cannot you separate the spiritual realities of the kingdom from the material,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problems of the age? When I speak the language of the spirit, why do you insist on translating my meaning into the language of the flesh just because I presume to employ commonplace and literal relationships for purposes of illustration? My children, I implore that you cease to apply the teaching of the kingdom of the spirit to the sordid affairs of slavery, poverty, houses, and lands, and to the material problems of human equity and justice. These temporal matters are the concern of the men of this world, and while in a way they affect all men, you have been called to represent me in the world, even as I represent my Father. You are spiritual ambassadors of a spiritual kingdom, special representatives of the spirit Father. By this time it should be possible for me to instruct you as full-grown men of the spirit kingdom. Must I ever address you only as children? Will you never grow up in spirit perception? Nevertheless, I love you and will bear with you, even to the very end of our association in the flesh. And even then shall my spirit go before you into all the world.”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도마야, 도마야, 네가 얼마나 오래되어야 영의 귀로 듣는 능력을 얻겠느냐? 너는 (하늘)나라가 영적 나라이며 내 아버지 또한 영적 존재임을 얼마나 오래되어야 네가 헤아리겠느냐? 무한하고 영원한 영이신 가장(家長)이 계신, 하늘의 영적 가족 안에 있는 영적 자녀들로서 내가 너희를 가르치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내 가르침을 물질적 일에 문자적으로 적용하지 말고, 신적 관계의 예증으로 지상 가족들을 내가 사용하도록 허락하지 않으려느냐? 너희 마음에서 (하늘)나라의 영적 실체들세대의 물질적, 사회적, 경제적, 및 정치적 문제들분리시킬 수 없느냐? 내가 영의 언어로 말할 때, 예증의 목적으로 평범한 글자 그대로의 관계를 사용한다고 생각해서, 어찌하여 너희는 내 의미를 육신의 언어로 옮기려고 고집하느냐? 내 자녀들아, 영의 나라의 가르침노예제도, 가난, 주택, 토지의 누추한 일들인간 평등과 정의(正義)에 속한 물질 문제적용하기를 그치도록 내가 부탁하노라. 이런 세속 문제들은 이 세상 사람들의 관심거리이며, 어느 정도 그것들이 모두에게 영향을 주지만, 내가 내 아버지를 대표하듯이 너희는 세상에서 나를 대표하도록 부름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영적 나라의 영적 대사들, 영 아버지의 특별한 대표들이니라. 이제는 내가 너희를 영 나라의 성숙한 어른으로서 가르칠 수 있어야 하리라. 내가 이제까지 너희를 아이들로서만 말해야 하느냐? 너희는 영 이해력이 성장하지 않느냐? 그래도 나는 육신으로 우리가 교제하는 마지막까지도 너희를 사랑하며 너희를 참으리라. 그리고 그 때도 내 영은 너희 앞서 온 세상으로 가리라.”

8. In Southern Judea 남부 유대에서

142:8.1 (1605.3) By the end of April the opposition to Jesus among the Pharisees and Sadducees had become so pronounced that the Master and his apostles decided to leave Jerusalem for a while, going south to work in Bethlehem and Hebron. The entire month of May was spent in doing personal work in these cities and among the people of the surrounding villages. No public preaching was done on this trip, only house-to-house visitation. A part of this time, while the apostles taught the gospel and ministered to the sick, Jesus and Abner spent at Engedi, visiting the Nazarite colony. John the Baptist had gone forth from this place, and Abner had been head of this group. Many of the Nazarite brotherhood became believers in Jesus, but the majority of these ascetic and eccentric men refused to accept him as a teacher sent from heaven because he did not teach fasting and other forms of self-denial. 4월 말에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사이에서 예수님에 대한 반대가 너무 뚜렷해서 주(主)님과 사도들은 잠시 예루살렘을 떠나 베들레헴과 헤브론에서 사역하러 남쪽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5월 내내 이들 도시들과 인근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개인을 상대로 사역하며 보냈습니다. 이 여행에서 대중 설교는 없었고 단지 각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돌보는 동안에, 예수님과 아브너는 이 기간 중 얼마간 나실인들의 거주지를 방문하면서 엥게디에서 보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 곳 출신으로 아브너는 이 집단의 지도자였습니다. 많은 나실인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 되었지만, 금욕적이며 특이한 이 사람들 대부분은 예수님을 하늘이 보낸 선생으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했는데, 이는 그가 금식과 다른 형태의 금욕(자아-부정)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42:8.2 (1605.4) The people living in this region did not know that Jesus had been born in Bethlehem. They always supposed the Master had been born at Nazareth, as did the vast majority of his disciples, but the twelve knew the facts.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을 몰랐습니다. 대다수의 수많은 제자들처럼, 그들은 언제나 주(主)님이 나사렛에서 태어났다고 추측했지만, 12사도들은 그 사실들을 알았습니다.

142:8.3 (1605.5) This sojourn in the south of Judea was a restful and fruitful season of labor; many souls were added to the kingdom. By the first days of June the agitation against Jesus had so quieted down in Jerusalem that the Master and the apostles returned to instruct and comfort believers. 남부 유대에 이렇게 머무는 동안은 평온하고 수고의 결실이 풍부한 시기였습니다. 많은 혼들이 (하늘)나라에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6월 초에 예수님을 반대하는 소동이 예루살렘에서 가라앉자 주(主)님과 사도들은 신자들을 가르치고 위로하려고 돌아갔습니다.

142:8.4 (1606.1) Although Jesus and the apostles spent the entire month of June in or near Jerusalem, they did no public teaching during this period. They lived for the most part in tents, which they pitched in a shaded park, or garden, known in that day as Gethsemane. This park was situated on the western slope of the Mount of Olives not far from the brook Kidron. The Sabbath weekends they usually spent with Lazarus and his sisters at Bethany. Jesus entered within the walls of Jerusalem only a few times, but a large number of interested inquirers came out to Gethsemane to visit with him. One Friday evening Nicodemus and one Joseph of Arimathea ventured out to see Jesus but turned back through fear even after they were standing before the entrance to the Master’s tent. And, of course, they did not perceive that Jesus knew all about their doings. 예수님과 사도들은 6월 내내 예루살렘 내부와 그 근처에서 보내셨지만, 그들은 이 기간에 대중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당시 겟세마네로 알려진 그늘진 공원, 즉 정원에 천막을 치고 대부분 지냈습니다. 이 공원은 올리브 산의 서쪽 비탈에 위치했는데 기드론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안식일 주말에 그들은 대개 베다니에서 나사로와 그 자매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벽 안으로 겨우 몇 번 들어가셨지만, 관심 있는 다수의 탐구자들이 그를 만나러 겟세마네로 나왔습니다. 어떤 금요일 저녁에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지만 주(主)님의 천막 입구 앞에 서 있다가 두려워서 다시 돌아갔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그들의 행동을 모두 알고 있음을 그들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142:8.5 (1606.2) When the rulers of the Jews learned that Jesus had returned to Jerusalem, they prepared to arrest him; but when they observed that he did no public preaching, they concluded that he had become frightened by their previous agitation and decided to allow him to carry on his teaching in this private manner without further molestation. And thus affairs moved along quietly until the last days of June, when one Simon, a member of the Sanhedrin, publicly espoused the teachings of Jesus, after so declaring himself before the rulers of the Jews. Immediately a new agitation for Jesus’ apprehension sprang up and grew so strong that the Master decided to retire into the cities of Samaria and the Decapolis.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음을 유대의 통치자들이 알고 그를 체포하려고 준비했지만, 그가 대중 설교를 하지 않는 것을 지켜보고 이전에 자신들이 벌인 소동으로 예수께서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추정하여 추가적 위협 없이 이렇게 사적으로 계속 가르치는 것을 놔두기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시몬이라는 산헤드린 회원 하나가, 유대의 통치자들 앞에서 자신을 밝힌 후에,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지지했던 6월 말까지는 사태가 조용히 진행되었습니다. 즉시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새로운 소동이 일어나 격렬해져서 주님은 사마리아와 데카폴리스의 도시들로 물러나기로 정했습니다.

S141 Beginning the Public Work 개요141편 공(公) 사역의 시작

S141 Beginning the Public Work 개요141편 공(公) 사역의 시작

141:0.1 (1587.1)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January 19, A.D. 27, Jesus and the twelve apostles made ready to depart from their headquarters in Bethsaida. 그 주의 첫날 AD 27년 1월 19일(주일)에 예수님과 12사도들은 벳새다의 본부를 떠나려고 준비했습니다. 141:0.2 (1587.2) Just before leaving, the apostles missed the Master, and Andrew went out to find him. After a brief search he found Jesus sitting in a boat down the beach, and he was weeping. 떠나기 직전 주(主)님이 보이지 않아서 안드레가 그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잠시 찾은 후 그는 보트에 앉아계신 예수님을 발견했는데 그는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1. Leaving Galilee 갈릴리를 떠남

141:1.1 (1587.3) Capernaum was not far from Tiberias, and the fame of Jesus had begun to spread well over all of Galilee and even to parts beyond. 가버나움은 티베리아스에서 멀지 않았고 예수님의 명성(名聲)은 온 갈릴리와 바깥 여러 지역까지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141:1.2 (1587.4) The first day Jesus and the apostles only journeyed as far as Tarichea, where they rested for the night. The next day they traveled to a point on the Jordan near Pella where John had preached about one year before, and where Jesus had received baptism. 첫날에 예수님과 사도들만 타리케아까지 여행했고 거기에서 그날 밤 쉬었습니다. 다음날 그들은 펠라 근처 요단강의 한 장소로 이동했는데, 그곳은 요한이 일년 전쯤 설교하고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곳이었습니다.

141:1.3 (1588.1) Jesus did no public preaching. Andrew divided the multitude and assigned the preachers for the forenoon and afternoon assemblies. 예수님은 대중(大衆)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안드레는 군중을 나누어 오전 오후 집회를 위해 설교자들을 임명했습니다.

141:1.4 (1588.2) Many of those who came from Perea and Judea had been baptized by John and were interested in finding out more about Jesus’ teachings. 페레아와 유대에서 온 많은 이들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더 알려고 관심이 있었습니다. 141:1.5 (1588.3) From night to night Andrew carefully instructed his fellow apostles in the delicate and difficult task of getting along smoothly with the followers of John the Baptist. 밤마다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과 평온히 잘 지내는, 민감하고 어려운 일을 동료 사도들에게 신중히 지시했습니다.

  1. God’s Law and the Father’s Will 하느님의 율법과 아버지의 뜻

141:2.1 (1588.4) I declare that the kingdom of heaven is the realization and acknowledgment of God’s rule within the hearts of men. True, there is a King in this kingdom, and that King is my Father and your Father. We are indeed his loyal subjects, but far transcending that fact is the transforming truth that we are his sons. In my life this truth is to become manifest to all. 하늘나라는 사람들의 심정(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실감하고(깨닫고) 인정하는 것임을 내가 선언하노라. 진실로, 이 나라에 왕이 계시는데, 그 왕은 내 아버지요 너희 아버지시라. 우리는 실로 그의 충성스런 신하(국민)들이지만, 그 사실을 훨씬 초월하는 것은 우리가 그의 아들(자녀)들이라는 변화적 진리라. 내 일생으로 이 진리가 모두에게 나타나리라.

141:2.2 (1588.5) “When you are the subjects of this kingdom, you indeed are made to hear the law of the Universe Ruler; but when, because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which I have come to declare, you faith-discover yourselves as sons, you henceforth look not upon yourselves as law-subject creatures of an all-powerful king but as privileged sons of a loving and divine Father. Verily, verily, I say to you, when the Father’s will is your law, you are hardly in the kingdom. But when the Father’s will becomes truly your will, then are you in very truth in the kingdom because the kingdom has thereby become an established experience in you. When God’s will is your law, you are noble slave subjects; but when you believe in this new gospel of divine sonship, my Father’s will becomes your will, and you are elevated to the high position of the free children of God, liberated sons of the kingdom.” “너희가 이 나라의 신하(국민)들이면, 너희는 정말 우주 통치자의 율법을 듣게 되느니라. 그러나 내가 선포하러 온 (하나님) 나라 복음 때문에, 너희가 자신들이 아들(자녀)들임을 신앙으로 발견하면, 너희는 이제부터 전능한 왕의 율법에 복종하는 창조물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신적 아버지의 특권을 가진 아들(자녀)들로서 여기게 되리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버지의 뜻이 너희의 율법이면, 너희는 도저히 하늘나라에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 참으로 너희의 뜻이 되면, 너희는 그 나라에서 그 진리 안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나라가 이로서 너희 안에서 확고한 체험이 되었기 때문이라. 하나님의 뜻이 너희의 율법이면, 너희는 고귀한 노예 국민들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신적 아들 신분이라는 이 새 복음을 믿으면, 내 아버지의 뜻은 너희의 뜻이 되며, 너희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녀들, (하나님) 나라의 해방된 아들(자녀)들의 높은 자리로 올라가느니라.”

141:2.3 (1589.1) Some of the apostles grasped something of this teaching, but none of them comprehended the full significance of this tremendous announcement, unless it was James Zebedee. 사도 중 몇은 이 가르침에서 어느 정도 파악했지만, 야고보 세베대를 제외하고 이 엄청난 선언의 중대성(重大性)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1. The Sojourn at Amathus 아마투스에 머무름

141:3.1 (1589.2) The Master and his apostles remained near Amathus for almost three weeks. The apostles continued to preach twice daily to the multitude, and Jesus preached each Sabbath afternoon. 주(主)님과 사도들은 아마투스 근처에 거의 3주간 남아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매일 2번씩 군중에게 계속 설교했고, 예수님은 매 안식일 오후에 설교하셨습니다.

141:3.2 (1589.3) Peter, James, and John did most of the public preaching.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대부분의 공(公)적 설교를 했습니다. 141:3.3 (1589.4) Andrew was much occupied with the task of adjusting the constantly recurring misunderstandings and disagreements between the disciples of John and the newer disciples of Jesus. 안드레는, 요한의 제자들과 새로운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오해와 의견 차이를 조율하는 일로 많이 분주했습니다.

141:3.4 (1589.5) The Master displayed great wisdom and manifested perfect fairness in all of his dealings with his apostles and with all of his disciples. Jesus was truly a master of men. 주(主)님은 사도들과 모든 제자를 다루는 온갖 일에서 뛰어난 지혜를 나타냈고 온전한 공평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 사람들의 달인(達人)이셨습니다.

141:3.5 (1589.6) Jesus of Nazareth was indeed a strong and forceful personality. 나사렛 예수는 진실로 강하고 힘센 고유성이었습니다. 141:3.6 (1590.1) The pictures of Jesus have been most unfortunate. 예수님의 초상화(肖像畵)들은 가장 유감스럽습니다. 141:3.7 (1590.2) The Master’s yoke is, indeed, easy, but even so, he never imposes it. 그는 말씀하셨습니다. 주(主)님의 멍에가 정말 쉽지만, 그래도 그는 절대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141:3.8 (1590.3) Jesus portrayed conquest by sacrifice, the sacrifice of pride and selfishness. 예수님은 희생, 즉 자만과 이기심을 희생시킨 승리를 묘사하셨습니다.

  1. Teaching About the Father 아버지에 대한 가르침

141:4.1 (1590.4) While sojourning at Amathus, Jesus spent much time with the apostles instructing them in the new concept of God. 아마투스에 머물면서 예수님은 사도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하나님의 새 개념을 가르쳤습니다. 141:4.2 (1590.5) “God is your Father, and religion — my gospel — is nothing more nor less than the believing recognition of the truth that you are his son.” “하나님은 너희 아버지시며, 종교 – 내 복음 -는 너희가 그의 아들(자녀)이라는 진리를 믿음으로 인식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

141:4.3 (1590.6) Jesus also sought to free the minds of his apostles from the idea of offering animal sacrifices as a religious duty. 예수님은 또한 종교적 의무로써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관념에서 사도들의 마음을 해방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141:4.4 (1590.7) At this same time Jesus began to teach the twelve more fully concerning their mission “to comfort the afflicted and minister to the sick.” He taught them to recognize: 바로 이때, 예수님은 12사도에게 “고통받는 자를 위로하며 병든 자를 보살피는” 그들의 사명에 관해 더 많이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는 다음을 헤아리도록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141:4.5 (1591.1) 1. Diseases of the flesh 육신의 질병 141:4.6 (1591.2) 2. Troubled minds 불안한 마음 141:4.7 (1591.3) 3. The possession of evil spirits.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힘.

141:4.8 (1591.4) Jesus explained to his apostles on several occasions the nature, and something concerning the origin, of these evil spirits, in that day often also called unclean spirits. The Master well knew the difference between the possession of evil spirits and insanity, but the apostles did not.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그 당시 흔히 더러운 영들이라 불려진 이 악한 영들의 본성과 그 기원에 관한 어떤 것을 여러 번 설명하셨습니다. 주(主)님은 악한 영들에 사로잡히는 것과 정신병의 차이를 잘 알았지만 사도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141:4.9 (1591.5) From week to week and from month to month, throughout this entire year, the apostles paid more and more attention to the healing ministry of the sick. 매주, 매월, 이 해(AD27) 내내, 사도들은 병든 자들의 치유 봉사에 더 많이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1. Spiritual Unity 영적 통일

141:5.1 (1591.6) One of the most eventful of all the evening conferences at Amathus was the session having to do with the discussion of spiritual unity. Spiritual unity is derived from the consciousness that each of you is indwelt, and increasingly dominated, by the spirit gift of the heavenly Father. 아마투스에서 있었던 모든 회의들 중에서 가장 중대한 한 가지는 영적 통일(統一)의 논의와 관계된 회의였습니다. 영적 통일(統一)은, 하늘 아버지의 영 선물이 너희 각자에게 내주하며 서서히 지배해 가는 의식에서 얻게 되니라.

141:5.2 (1591.7) “In this way you may experience a perfected unity of spirit purpose and spirit understanding growing out of the mutual consciousness of the identity of each of your indwelling Paradise spirits. You can achieve the unity of the service of God even while you render such service in accordance with the technique of your own original endowments of mind, body, and soul. “이렇게 너희는 각자에게 내주하는 천국 영들의 동일성을 서로 의식하면서 생긴 영 목적과 영 이해의 완성된 통일을 체험할 수도 있느니라. 마음·몸·혼에 속한 너희 자신의 독창적 자질의 역량에 따라 너희가 그렇게 봉사해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한 봉사의 통일을 이룰 수 있느니라.”

141:5.3 (1592.1) “Your spirit unity implies two things, which always will be found to harmonize in the lives of individual believers: First, you are possessed with a common motive for life service; you all desire above everything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Second, you all have a common goal of existence; you all purpose to find the Father in heaven, thereby proving to the universe that you have become like him.” “너희의 영 통일은 두 가지를 의미하며, 그것들은 항상 신자들 개인의 생활에서 조화를 이루는 근거가 되리라. 첫째, 너희는 일생 봉사를 위한 공통적 동기를 갖게 되니라. 너희는 모두 모든 것 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 행하기를 바라느니라. 둘째, 너희는 모두 공통적 존재 목적을 가지느니라. 너희는 모두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찾고자 하여, 너희가 그와 같이 되었음을 우주에게 증명하느니라.”

141:5.4 (1592.2) Many times during the training of the twelve Jesus reverted to this theme. Repeatedly he told them it was not his desire that those who believed in him should become dogmatized and standardized in accordance with the religious interpretations of even good men. 그를 믿는 자들이, 심지어 선한 사람들의 종교적 해석을 따라, 독단적이 되거나 규격화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그는 반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 Last Week at Amathus 아마투스에서 마지막 주간(週間)

141:6.1 (1592.3) Near the end of the last week at Amathus, Simon Zelotes brought to Jesus one Teherma, a Persian doing business at Damascus. Andrew had presented Teherma to Simon for instruction. 아마투스에서 마지막 주말이 다가오자, 시몬 젤로떼는 다마스커스에서 사업하는 페르시아인 테헤르마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안드레는 테헤르마를 시몬에게 보내 교육받게 했습니다.

141:6.2 (1592.4) Simon asked the Master: “Why is it that I could not persuade him? Lead men into the kingdom, and the great and living truths of the kingdom will presently drive out all serious error. When you have presented to mortal man the good news that God is his Father, you can the easier persuade him that he is in reality a son of God. When you have a man safely and securely within the kingdom, then is the time, when such a one shall come to you with inquiries, to impart instruction having to do with the progressive advancement of the soul within the divine kingdom.” 시몬은 주(主)님께 여쭈었습니다. “저는 왜 그를 설득시킬 수 없었는지요?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라, 그러면 그 나라의 위대한 살아있는 진리들이 곧 모든 심각한 잘못을 몰아내리라. 네가 필사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라는 기쁜 소식을 제시하면, 그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너는 그를 더 쉽게 설득할 수 있느니라. 네가 사람을 안전하게 확실히 (하나님) 나라로 들여보내서, 그런 사람이 네게 와서 질문을 하게 되면, 그때가 신적 (하나님) 나라에서 혼의 진보적 전진에 관계된 가르침을 나눠줄 때이니라.”

141:6.3 (1592.5) Simon was astonished at these words, but he did as Jesus had instructed him, and Teherma, the Persian, was numbered among those who entered the kingdom. 시몬은 이 말씀들을 듣고 놀랐지만, 예수께서 그에게 지시한 대로 행하였고 페르시아인(人) 테헤르마는 (하느님) 나라로 들어간 자들에 포함되었습니다.

141:6.4 (1592.6) “When you enter the kingdom, you are reborn. You cannot teach the deep things of the spirit to those who have been born only of the flesh; first see that men are born of the spirit before you seek to instruct them in the advanced ways of the spirit. Do not undertake to show men the beauties of the temple until you have first taken them into the temple. Introduce men to God and as the sons of God before you discourse on the doctrines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sonship of men. Do not strive with men — always be patient. It is not your kingdom; you are only ambassadors. Simply go forth proclaiming: This is the kingdom of heaven — God is your Father and you are his sons, and this good news, if you wholeheartedly believe it, is your eternal salvation.” “너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너희가 거듭나느니라. 너희는 육신으로만 난 자들에게 영의 깊은 것들을 가르칠 수 없느니라. 너희가 그들에게 영의 진보된 길들로 가르치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사람들이 영으로 태어났는지를 살피라. 너희가 먼저 그들을 성전으로 데리고 간 다음에 비로소 사람들에게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이려고 하라. 하나님의 아버지되심과 사람의 자녀됨의 교리를 너희가 강연하기 전에, 사람들을 하나님께 하나님의 아들(자녀)들로 소개하라. 사람들과 겨루지 말라. 항상 인내하라. 그것은 너희의 나라가 아니라, 너희는 대사들일 뿐이라. 단지 나아가 선포하라. 이것이 하늘나라이니 – 하나님은 너의 아버지시며 너희는 그의 아들(자녀)들이라, 너희가 전심으로 믿으면 이 기쁜 소식이 너희의 영원한 구원이니라.”

141:6.5 (1593.1) The apostles made great progress during the sojourn at Amathus. When you enter the kingdom of heaven, you shall be baptized with the Spirit. 아마투스에 머무는 동안 사도들은 크게 진보했습니다. 너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면, 너희는 영(靈)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1. At Bethany Beyond Jordan 요단강 건너 베다니에서

    141:7.1 (1593.2) On February 26, Jesus, his apostles, and a large group of followers journeyed down the Jordan to the ford near Bethany in Perea, the place where John first made proclamation of the coming kingdom. 2월 26일(AD 27)에 예수님과 사도들 및 따르는 많은 무리가 요단강을 따라 내려가 페레아 지역의 베다니 근처 여울까지 여행했는데, 그곳은 요한이 처음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 장소였습니다. 141:7.2 (1593.3) The second week of the sojourn at Bethany beyond Jordan, Jesus took Peter, James, and John into the hills across the river and south of Jericho for a three days’ rest. The Master taught these three many new and advanced truths about the kingdom of heaven. 요단강 건너 베다니에 머물던 둘째 주간에,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강 건너 여리고 남쪽의 언덕으로 3일 동안 쉬러 가셨습니다. 주(主)님은 이 세 사도에게 하늘나라에 대해 진보한 새 진리를 많이 가르치셨습니다.

141:7.3 (1593.4) Jesus endeavored to make clear that he desired his disciples, having tasted of the good spirit realities of the kingdom, so to live in the world that men, by seeing their lives, would become kingdom conscious and hence be led to inquire of believers concerning the ways of the kingdom.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선한 영 실체들의 맛을 본 그의 제자들이 세상에서 살며, 그들의 삶을 본 사람들(하늘)나라를 인식하게 되어 (하늘)나라의 길에 대해 믿는 자들이 질문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이해시키려 애쓰셨습니다. 141:7.4 (1593.5) The Master sought to impress upon all teacher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that their only business was to reveal God to the individual man as his Father — to lead this individual man to become son-conscious; then to present this same man to God as his faith son. 주(主)님은 (하늘)나라 복음의 모든 교사가 개인에게 하나님을 그의 아버지로 드러내어 그 개인이 아들(자녀)임을 알도록 이끈 후 동일한 이 사람을 하나님께 그의 신앙 아들로 소개하는 것그들의 유일한 과업임을 애써 강조하셨습니다.

141:7.5 (1593.6) Jesus made it plain that he had come to establish personal and eternal relations with men which should forever take precedence over all other human relationships. And he emphasized that this intimate spiritual fellowship was to be extended to all men of all ages and of all social conditions among all peoples. 예수님은 사람들과 고유적이며 영원한 관계들을 맺으려고 오셨으며 이것은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 언제나 우선해야만 한다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친밀한 영적 친교모든 사람 중에서 모든 시대 및 모든 사회적 신분을 지닌 모든 사람에게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141:7.6 (1593.7) Jesus laid great emphasis upon what he called the two truths of first import in the teachings of the kingdom, and they are: the attainment of salvation by faith, and faith alone, associated with the revolutionary teaching of the attainment of human liberty through the sincere recognition of truth, “You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Jesus was the truth made manifest in the flesh, and he promised to send his Spirit of Truth into the hearts of all his children after his return to the Father in heaven.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가르침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두 가지 진리를 크게 강조하셨는데, 그것들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진리를 신실하게 인식하여 인간이 해방에 이른다는 혁명적 가르침과 관련한 신앙으로, 오직 신앙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나타난 진리였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자신이 돌아간 후 모든 자기 자녀의 심정에 자기 진리의 영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41:7.7 (1594.1) The Master was teaching these apostles the essentials of truth for an entire age on earth. They often listened to his teachings when in reality what he said was intended for the inspiration and edification of other worlds. 주(主)님은 이 사도들에게 지상의 모든 세대를 위한 진리의 본질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자주 그의 가르침을 경청했으며, 그의 말씀은 실제로 다른 세상들에게 영감(靈感)을 주고 교화(敎化)하려는 의도였습니다.

141:7.8 (1594.2) To insure the recognition of his Father in the unfolding of the plan of the kingdom, Jesus explained that he had purposely ignored the “great men of earth.” His plan was world-wide, even universal. (하늘)나라의 계획을 펼쳐서 그의 아버지를 확실히 인식하도록, 예수님은 “지상의 위대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계획은 세계적이었고, 심지어 우주적이었습니다. 141:7.9 (1594.3) He sought mildly to impart to these apostles the truth that he had come on this bestowal mission, not to set an example for a few earth creatures, but to establish and demonstrate a standard of human life for all peoples upon all worlds throughout his entire universe. 그는, 소수의 지상 창조물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전() 우주에 있는 온 세상 만민을 위해 인생의 표준을 세우고 드러내려고, 이 증여 사명을 위해 오셨다는 진리를 이 사도들에게 조심스럽게 알리려고 애쓰셨습니다.

141:7.10 (1594.4) He announced that he had come to function as a teacher, a teacher sent from heaven to present spiritual truth to the material mind. Jesus spoke directly to men’s souls. 그는 교사, 물질 마음에 영적 진리를 드러내려고 하늘에서 파견된 교사로서 활동하려고 오셨다고 발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혼들에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141:7.11 (1594.5) It was on this occasion that Jesus intimated to Peter, James, and John that his work on earth was in some respects to be limited by the commission of his “associate on high,” referring to the prebestowal instructions of his Paradise brother, Immanuel. He told them that he had come to do his Father’s will and only his Father’s will. 예수님은 증여 이전에 자신의 천국 형(兄) 임마누엘의 지시를 언급하면서, 지상에서 자신의 과업이 어떤 면에서 “높은 곳에 있는 동료”의 명령으로 제한된다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이때 공표(公表)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자기 아버지의 뜻, 오직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41:7.12 (1594.6) The apostles were beginning to recognize the unaffected friendliness of Jesus. Though the Master was easy of approach, he always lived independent of, and above, all human beings. Not for one moment was he ever dominated by any purely mortal influence or subject to frail human judgment. 사도들은 예수님의 변하지 않는 우정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주(主)님은 가까이하기 쉬웠지만, 그는 항상 모든 인간과 관계없이 초월해서 사셨습니다. 한순간도 그는 완전히 인간의 영향력이나 연약한 인간적 판단에 지배되지 않았습니다.

141:7.13 (1594.7) James was astonished at how Jesus seemed to see the end from the beginning. The Master rarely appeared to be surprised. He was never excited, vexed, or disconcerted. He never apologized to any man. He was at times saddened, but never discouraged. 예수께서 시작점에서 마지막을 보는 것으로 여겨져 야고보는 깜짝 놀랐습니다. 주(主)님은 놀라는 일이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그는 결코 흥분하거나 짜증 내거나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코 어떤 사람에게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때때로 슬퍼했지만, 절대로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141:7.14 (1594.8) More clearly John recognized that, notwithstanding all of his divine endowments, after all, he was human. Jesus lived as a man among men and understood, loved, and knew how to manage men. In his personal life he was so human, and yet so faultless. And he was always unselfish. 그의 모든 신적 자질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수께서 인간이었음을 요한은 더욱 분명히 알아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 사이에서 사람으로 사셨고, 이해했으며, 사랑했고, 또한 그들을 다룰 줄 아셨습니다. 사(私)생활에서 그는 아주 인간적이었지만 흠이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사심(私心)이 없었습니다.

141:7.15 (1595.1) Although Peter, James, and John could not understand very much of what Jesus said on this occasion, his gracious words lingered in their hearts, and after the crucifixion and resurrection they came forth greatly to enrich and gladden their subsequent ministry. No wonder these apostles did not fully comprehend the Master’s words, for he was projecting to them the plan of a new age.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이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많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은혜로운 말씀들은 그들의 심정에 오래 남았으며, 십자가 처형과 부활 후에 그것들이 솟구쳐 훗날 그들의 사역을 매우 풍성하고 기쁘게 했습니다. 이 사도들이 ()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데, 그가 새 시대의 계획을 소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 Working in Jericho 여리고에서 활동함

141:8.1 (1595.2) Throughout the four weeks’ sojourn at Bethany beyond Jordan, several times each week Andrew would assign apostolic couples to go up to Jericho for a day or two. 요단강 건너 베다니에서 4주간 머무는 내내, 안드레는 매주 몇 번씩 사도들을 두 명씩 하루나 이틀 동안 여리고에 올라가도록 배치하곤 했습니다.

141:8.2 (1595.3) The apostles did some public work in Jericho, but their efforts were chiefly of a more quiet and personal nature. They now made the discovery that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was very comforting to the sick; that their message carried healing for the afflicted. 사도들은 여리고에서 어느 정도 대중 활동을 했지만 주로 더 조용히 개인적 종류의 운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늘)나라의 복음이 병자들에게 매우 위로가 되고, 자기들의 메시지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치유를 가져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41:8.3 (1595.4) They stopped in Jericho on the way up to Jerusalem and were overtaken by a delegation from Mesopotamia that had come to confer with Jesus. The apostles had planned to spend but a day here, but when these truth seekers from the East arrived, Jesus spent three days with them, and they returned to their various homes along the Euphrates happy in the knowledge of the new truths of the kingdom of heaven.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도중에 여리고에서 멈추었으며, 예수님과 의논하려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대표단(代表團)이 그들을 따라잡았습니다. 사도들은 여기에서 하루만 보낼 계획이었지만 진리를 찾는 이 사람들이 동쪽에서 도착하자 예수님은 그들과 3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나라의 새 진리를 알고 행복하게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그들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 Departing for Jerusalem 예루살렘으로 출발

141:9.1 (1595.5) On Monday, the last day of March, Jesus and the apostles began their journey up the hills toward Jerusalem. Lazarus of Bethany had been down to the Jordan twice to see Jesus, and every arrangement had been made for the Master and his apostles to make their headquarters with Lazarus and his sisters at Bethany as long as they might desire to stay in Jerusalem. 3월의 마지막 날 월요일(AD 27년 3월 31일)에, 예수님과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언덕으로 오르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베다니의 나사로는 예수님을 만나러 요단에 두 번 내려 왔었고, 주(主)님과 그의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머물기를 바라는 한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과 함께 베다니에 그들의 본부를 두도록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141:9.2 (1595.6) The disciples of John remained at Bethany beyond the Jordan, teaching and baptizing the multitudes, so that Jesus was accompanied only by the twelve when he arrived at Lazarus’s home. Here Jesus and the apostles tarried for five days, resting and refreshing themselves before going on to Jerusalem for the Passover. It was a great event in the lives of Martha and Mary to have the Master and his apostles in the home of their brother, where they could minister to their needs. 요한의 제자들은 요단강 건너 베다니에 남아서 군중들을 가르치며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12사도만 데리고 나사로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가기 전에 5일 동안 머물면서 쉬며 기운을 회복했습니다. ()님과 사도들을 형제의 집에 모시면서 그들의 필요를 보살필 수 있었던 것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생애에서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141:9.3 (1595.7) On Sunday morning, April 6, Jesus and the apostles went down to Jerusalem; and this was the first time the Master and all of the twelve had been there together. 4월 6일 일요일(AD 27) 아침에 예수님과 사도들은 예루살렘으로 내려갔으며; 주(主)님과 모든 12사도가 함께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S140 The Ordination of the Twelve 개요140편 12 사도의 임직(任職)

S140 The Ordination of the Twelve 개요140편 12 사도의 임직(任職)

140:0.1 (1568.1) JUST before noon on Sunday, January 12, A.D. 27, Jesus called the apostles together for their ordination as public preacher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서기 27년 1월 12일 일요일 정오 직전, 예수님(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공적 설교자들임직(任職직무를 맡김)하려고 사도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140:0.2 (1568.2) Two by two he gathered up the other apostles, and when he had assembled all twelve, he journeyed with them to the highlands north of Capernaum, where he proceeded to instruct them in preparation for their formal ordination. 예수님은 둘씩 다른 사도들을 모았으며, 12사도를 다 모아 가버나움 북쪽 고지로 여행하셨고, 거기에서 그는 공식 임직 준비로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140:0.3 (1568.3) They were going apart with the Master to participate in some sort of solemn ceremony of personal consecration and collective dedication to the sacred work of representing their Master in the proclamation of the coming of his Father’s kingdom. 그들은 다가온 예수님의 아버지 나라를 선포하면서 주님을 대표하는 신성한 사명개인적으로 봉헌하집단적으로 헌신하는 엄숙한 예식에 참여하려고 주님과 떨어져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1. Preliminary Instruction 예비 교육

140:1.1 (1568.4) Before the formal ordination service Jesus spoke to the twelve as they were seated about him. 정식 임직(任職) 예배 전에, 예수님은 사도들을 자신 주위에 앉히시고 말씀하셨습니다. 140:1.2 (1568.5) Many shall come from the east and from the west to sit down with us in the Father’s kingdom, while many of the children of Abraham will refuse to enter this new brotherhood of the rule of the Father’s spirit in the hearts of the children of men.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와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우리와 함께 자리하는 반면에, 아브라함의 많은 자녀들은 사람 자녀들의 심정에서 다스리는 아버지의 영의 이 새로운 형제 됨들어가기를 거절할 것이다.

140:1.3 (1568.6) “The power of this kingdom shall consist, not in the strength of armies nor in the might of riches, but rather in the glory of the divine spirit that shall come to teach the minds and rule the hearts of the reborn citizens of this heavenly kingdom, the sons of God. 이 나라의 권능은 군사력이나 부()의 세력에 있지 않고, 오히려 이 하늘나라의 거듭난 시민들, 하나님의 자녀들마음을 가르치고, 심정을 다스리려고 오실 신적 영의 영광에 있느니라. 140:1.4 (1569.1) “Faith alone will pass you through its portals, but you must bring forth the fruits of my Father’s spirit if you would continue to ascend in the progressive life of the divine fellowship. “오직 신앙으로 너희가 하나님 나라의 정문을 통과하겠지만, 너희가 신적 교제의 진보적 일생에서 계속 상승하려면, 너희는 내 아버지의 영()의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

140:1.5 (1569.2) “Your message to the world shall be: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in finding these, all other things essential to eternal survival shall be secured therewith. “세상에 전할 너희 메시지: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공의(公義)를 구하라, 이것들을 찾으면서, 영원한 생존에 필요한 다른 모든 것들 그와 함께 확보될 것이다.

140:1.6 (1569.3) “Whosoever would become great in my Father’s kingdom shall become a minister to all. “누구든지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크고자 하는 자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될 것이라. 140:1.7 (1569.4) “And this which your eyes now behold, this small beginning of twelve commonplace men, shall multiply and grow until eventually the whole earth shall be filled with the praise of my Father. “그리고 너희 눈으로 지금 보는 이것, 평범한 열두 명의 이 미약한 출발이, 결국 온 땅이 내 아버지의 찬미로 가득할 때까지, 늘어나고 성장하리라.

  1. The Ordination 임직

140:2.1 (1569.5) Jesus now instructed the twelve mortals who had just listened to his declaration concerning the kingdom to kneel in a circle about him. 예수님은 이제, 나라에 관한 자신의 선언을 바로 들은 12 필사자들에게 자기 주위에 원을 그리며 무릎을 꿇도록 지시했습니다.

140:2.2 (1569.6) “My Father, I now bring to you these men, my messengers. From among our children on earth I have chosen these twelve to go forth to represent me as I came forth to represent you. Love them and be with them as you have loved and been with me. And now, my Father, give these men wisdom as I place all the affairs of the coming kingdom in their hands. And I would, if it is your will, tarry on earth a time to help them in their labors for the kingdom. And again, my Father, I thank you for these men, and I commit them to your keeping while I go on to finish the work you have given me to do.” 내 아버지, 저는 이제 저의 메신저들인 이들을 당신 앞에 데려왔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대표하려고 온 것처럼, 저를 대신하여 내보내려고 세상의 우리 자녀들 중에서 열둘을 제가 택했습니다. 당신이 저를 사랑하셔서 함께 했듯이, 그들을 사랑하고 함께 하소서. 그리고 이제 아버지여,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모든 직무들을 저들의 손에 맡기오니, 이 사람들에게 지혜(智慧)를 주소서. 그리고 당신의 뜻이라면, 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할 저들을 도우려고 세상에 잠시 머물러 있으려 합니다. 그리고 다시, 내 아버지여, 이들로 인해 당신께 감사드리며, 당신께서 제가 하도록 맡기신 일을 마치려고 계속하는 동안 저들을 당신의 보호 아래에 맡깁니다.”

140:2.3 (1570.1) When Jesus had finished praying, the apostles remained each man bowed in his place. A great silence pervaded the place while a host of celestial beings looked down upon this solemn and sacred scene — the Creator of a universe placing the affairs of the divine brotherhood of man under the direction of human minds. 예수께서 기도를 마치자, 사도들은 각자 고개를 숙인 채 자기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천상존재들의 무리가 이 엄숙하고 신성한 – 우주의 창조자가 사람의 신적 형제 됨의 직무들인간 마음의 지도 아래에 맡기시는장면을 내려다보는 동안, 그곳은 깊은 침묵이 가득 찼습니다.

  1. The Ordination Sermon 임직 설교

140:3.1 (1570.2) As my agents on earth you will be obligated to abide by those teachings and practices which are reflective of my ideals of mortal living on the worlds of space, and which I exemplify in my earth life of revealing the Father who is in heaven. 땅에서 나의 대리자들로서 너희는, 공간 세계들에서 필사자 생활에 대한 내 관념을 반영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계시하는 내 지상 생활로 본을 보이는, 그런 가르침들과 실천들로 살아야할 의무가 있으리라.

140:3.2 (1570.3) “When you find my children in distress, speak encouragingly to them, saying: “너희가 곤란 중에 있는 내 자녀를 보거든, 다음의 말로 그들을 격려하라. 140:3.3 (1570.4) “Happy are the poor in spirit, the humble, for theirs are the treasures of the kingdom of heaven. “영이 가난하고 겸손한 자는 행복하나니, 하늘나라의 보물들이 그들의 것임이요. 140:3.4 (1570.5) “Happy are they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shall be filled. “공의(公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행복하나니, 그들이 채워질 것임이요. 140:3.5 (1570.6) “Happy are the meek, for they shall inherit the earth. “온유한 자는 행복하나니,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임이요. 140:3.6 (1570.7) “Happy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심정이 청결한 자는 행복하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140:3.7 (1570.8) “And even so speak to my children these further words of spiritual comfort and promise: “그리고 내 자녀들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영적 위로와 약속의 이 말들을 더욱 일러 주어라. 140:3.8 (1570.9) “Happy are they who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Happy are they who weep, for they shall receive the spirit of rejoicing. “애통하는 자는 행복하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슬퍼하는 자는 행복하나니, 그들이 기쁨의 영(靈)을 받을 것임이요. 140:3.9 (1570.10) “Happy are the merciful, for they shall obtain mercy. “긍휼히 여기는 자는 행복하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140:3.10 (1570.11) “Happy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the sons of God. “화평케 하는 자는 행복하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40:3.11 (1570.12) “Happy are they who are persecuted for righteousness’ sake,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공의(公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행복하나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임이요. 140:3.13 (1570.14)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140:3.14 (1571.1) “I am sending you out into the world to represent me and to act as ambassadors of my Father’s kingdom, and as you go forth to proclaim the glad tidings, put your trust in the Father whose messengers you are. “나를 대표하고 내 아버지 나라의 대사로 행하도록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내노니, 너희가 나가서 기쁜 소식을 선포할 때, 너희를 사자(使者메신저)로 보내신 아버지를 신뢰하라. 140:3.15 (1571.2) “I say to you: Love your enemies, do good to those who hate you, bless those who curse you, and pray for those who despitefully use you.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을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위하여 축복하고, 너희를 악의로 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140:3.16 (1571.3) “Your Father in heaven makes the sun to shine on the evil as well as upon the good.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는 선한 자들뿐만이 아니라 악한 자들에게도 해를 비춰주신다. 140:3.17 (1571.4) “You are commissioned to save men, not to judge them. 너희는 심판이 아니라, 사람들을 구하도록 임명되었느니라. 140:3.18 (1571.5) “If you would guide others into the kingdom, you must yourselves walk in the clear light of living truth. 너희가 (하나님) 나라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려면, 너희 스스로 살아있는 진리의 선명한 빛으로 걸어가야만 하리라. 140:3.19 (1571.6) “In gaining an entrance into the kingdom of heaven, it is the motive that counts. My Father looks into the hearts of men and judges by their inner longings and their sincere intentions.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동기(動機행위의 원인)로 평가되느니라. 내 아버지는 사람의 심정을 들여다보시고, 그들 내면의 갈망과 진실한 의도들을 판단하시니라.

140:3.20 (1571.7) “Every one who hears this charge and sincerely executes his commission to represent me before men even as I have represented my Father to you, shall find an abundant entrance into my service and into the kingdom of the heavenly Father.” “이 명령을 듣고, 내가 아버지를 너희에게 나타내듯이, 사람들 앞에서 나를 나타내라는 임무를 진정으로 수행하는 모든 사람은, 내가 섬기는 하늘 아버지의 나라로 풍족히 들어가리라.” 140:3.21 (1571.8) Never before had the apostles heard Jesus speak in this way, for he had talked to them as one having supreme authority. 예수께서 최극 권세를 지닌 자로서 그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사도들은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1.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140:4.1 (1572.1) The so-called “Sermon on the Mount” was Jesus’ ordination charge to the twelve apostles. 소위 “산상수훈(山上垂訓)”은 예수께서 임직하는 열두 사도에게 주신 훈시였습니다. 140:4.2 (1572.2)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salt with a saving savor. “너희는 세상의 소금, 맛을 잃지 않은 소금이니라. 140:4.3 (1572.3) In Jesus’ time salt was precious. 예수님 당시 소금은 귀중했습니다. 140:4.4 (1572.4)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140:4.5 (1572.5) While light dispels darkness, it can also be so “blinding” as to confuse and frustrate. 빛은 어두움을 몰아내지만 한편, 빛은 또한 그렇게 혼란과 좌절에 빠지도록 “눈을 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140:4.6 (1572.6) Unselfishness is the badge of human greatness. The highest levels of self-realization are attained by worship and service. 비(非)이기심은 인간적 위대함의 표지(標識)라. 최고 수준의 자아-실현은 경배와 봉사로 달성되느니라. 140:4.7 (1572.7) “By their fruits you shall know them.” “그들의 열매로 너희는 그들을 알리라.”

140:4.8 (1572.8) While inherited urges cannot be fundamentally modified, emotional responses to such urges can be changed; therefore the moral nature can be modified, character can be improved. 타고난 충동은 근본적으로 변경될 수 없는 반면에, 그런 충동에 대한 감정적 반응은 변화될 수 있다. 따라서 도덕적 본성은 변경될 수 있고 성품은 향상될 수 있다.

140:4.9 (1572.9) He admonished them not to depend on mere intellectual assent, credulity, and established authority. 그는 단순한 지적 동의, 쉽게 믿는 경향, 및 확립된 권위에 의존하지 말라고 사도들을 훈계하셨습니다. 140:4.10 (1573.1) Happiness is little dependent on environment, though pleasing surroundings may greatly contribute thereto. 즐거운 환경이 행복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해도, 행복은 거의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다. 140:4.11 (1573.2) Every mortal really craves to be a complete person, to be perfect even as the Father in heaven is perfect, and such attainment is possible because in the last analysis the “universe is truly fatherly.”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듯이 필사자마다 정말 완비된(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며, 결국 “우주는 참으로 아버지답기” 때문에 그러한 달성이 가능하다.

  1. Fatherly and Brotherly Love 아버지 사랑과 형제 사랑

140:5.1 (1573.3) From the Sermon on the Mount to the discourse of the Last Supper, Jesus taught his followers to manifest fatherly love rather than brotherly love. 산상수훈에서 최후 만찬의 강론까지, 예수님은 따르는 자들에게 형제의 사랑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140:5.2 (1573.4) Jesus loves mankind with a dual affection. 예수님은 이중 애정으로 인류를 사랑하십니다.

140:5.3 (1573.5) Jesus did not expect his followers to achieve an impossible manifestation of brotherly love, but he did expect them to so strive to be like God — to be perfect even as the Father in heaven is perfect. 예수님은 따르는 자들이 불가능한 모습으로 형제 사랑의 성취를 기대하지 않으셨지만, 그들이 하나님과 같이 –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하게 되도록 – 분투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140:5.4 (1573.6) The Master introduced this momentous discourse by calling attention to four faith attitudes as the prelude to the subsequent portrayal of his four transcendent and supreme reactions of fatherly love in contrast to the limitations of mere brotherly love. 주(主)님은, 단순한 형제 사랑의 한계와 대조하여,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자신의 네 가지 초월적 최극 반응들로 이루어진 후반부 묘사에 대한 전주곡(前奏曲)으로, 신앙의 네 가지 태도들에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이 중대한 강론을 소개하셨습니다.

140:5.5 (1573.7) He first talked about those who were poor in spirit, hungered after righteousness, endured meekness, and who were pure in heart. 그는 먼저 영이 가난한 자들, 공의(公義)에 굶주린 자들, 온유함을 지속하는 자들, 심정이 청결한 자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140:5.6 (1573.8) The faith and the love of these beatitudes strengthen moral character and create happiness. 이 지극한(최극) 행복(팔복)의 신앙과 사랑은 도덕적 성품을 강화하고 행복을 창조합니다.

140:5.7 (1573.9) 1. “Happy are the poor in spirit the humble.” “영이 가난하고 겸손한 자는 행복하도다.” 140:5.8 (1574.1) 2. “Happy are they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shall be filled.” “공의(公義)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행복하나니, 그들이 채워질 것임이요.” 140:5.9 (1574.2) Experiential righteousness is a pleasure, not a duty. 체험적 공의는 기쁨이며, 의무가 아닙니다. 140:5.10 (1574.3) It is not so easy to teach a child mind these first two of the beatitudes, but the mature mind should grasp their significance. 어린애 같은 사람의 마음에 팔복의 처음 이 두 가지를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성숙한 마음은 그 중요성을 파악해야만 합니다. 140:5.11 (1574.4) 3. “Happy are the meek, for they shall inherit the earth.” “온유한 자는 행복하나니,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임이요.” 140:5.12 (1574.5) 4. “Happy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shall see God.” “심정이 청결한 자는 행복하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140:5.13 (1574.6) To see God — by faith — means to acquire true spiritual insight. 하나님을 보는 것- 신앙으로 -은 참된 영적 통찰력을 습득한다는 의미입니다.

140:5.14 (1574.7) It is easy to teach this admonition even to a child. 이 훈계는 아이에게도 가르치기 쉽습니다. 140:5.15 (1574.8) And then Jesus went on to instruct his followers in the realization of the chief purpose of all human struggling — perfection — even divine attainment. 그 후 예수님은 추종자들에게 모든 인간의 주된 분투의 목적 – 온전 – 신적 달성까지-의 실현을 계속 지시하셨습니다.

140:5.16 (1575.1) 1. “Happy are they who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애통하는 자는 행복하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140:5.17 (1575.2) 2. “Happy are the merciful, for they shall obtain mercy.” “긍휼히 여기는 자는 행복하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140:5.18 (1575.3) 3. “Happy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the sons of God.” “화평하게 하는 자(분쟁 조정자)는 행복하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40:5.19 (1575.4) Children can easily be taught to function as peacemakers. 아이들은 화평(분쟁조정)자로 활동하도록 쉽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140:5.20 (1575.5) 4. “Happy are they who are persecuted for righteousness’ sake,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Happy are you when men shall revile you and persecute you and shall say all manner of evil against you falsely. Rejoice and be exceedingly glad, for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공의(公義)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행복하나니,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임이요.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가 행복하니라. 기뻐하고 넘치도록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140:5.21 (1575.6) So often persecution does follow peace. 종종 박해가 화평을 따릅니다. 140:5.22 (1575.7) Children always respond to the challenge of courage. 아이들은 항상 용기에 도전할 때 반응합니다.

140:5.23 (1575.8) And so it is revealed that the beatitudes of the Sermon on the Mount are based on faith and love and not on law — ethics and duty. 그래서 산상수훈의 지복(至福지극한 팔복)은 신앙과 사랑에 근거를 두며, 법 – 윤리와 의무 –에 근거를 두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140:5.24 (1575.9) Fatherly love delights in returning good for evil — doing good in retaliation for injustice. 아버지의 사랑은 악을 선으로 – 불의를 선행으로 갚아서 – 답례하기를 기뻐합니다.

  1. The Evening of the Ordination 성직 임명일 저녁

140:6.1 (1576.1) Sunday evening, on reaching the home of Zebedee from the highlands north of Capernaum, Jesus and the twelve partook of a simple meal. 일요일 저녁, 가버나움 북쪽 산지에서 세베대의 집에 도착한 예수님과 12사도는 간단하게 식사했습니다. 140:6.2 (1576.2) “You find it difficult to receive my message because you would build the new teaching directly upon the old, but I declare that you must be reborn. “너희는 옛 가르침 바로 위에 새 가르침을 세우려 하기 때문에 내 메시지를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만, 내가 명백히 말하는데, 너희는 거듭나야만 하니라.

140:6.3 (1576.3) “I demand of you a righteousness that shall exceed the righteousness of those who seek to obtain the Father’s favor by almsgiving, prayer, and fasting. “나는 너희에게 자선(慈善)과 기도와 금식으로 아버지의 은혜를 얻으려는 이들의 의로움을 넘어설 의로움을 요구하노라. 140:6.4 (1576.4) Then said Simon Peter: “Master, if you have a new commandment, we would hear it. Reveal the new way to us.”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主)여, 새 계명이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새 길을 보여 주십시오.”

140:6.5 (1576.5) “You can only judge men by their acts, but my Father looks into the hearts of his children and in mercy adjudges them in accordance with their intents and real desires.” 너희는 사람을 행위로 판단할 수밖에 없지만, 내 아버지는 자녀의 심정을 들여다보시며 자비로 그들의 의도와 실제 갈망에 따라 그들을 판결하느니라.”

140:6.6 (1576.6) I am on earth solely to comfort the minds, liberate the spirits, and save the souls of men. But I will say, concerning this question of divorcement, that, while Moses looked with favor upon such things, it was not so in the days of Adam and in the Garden.” 나는 오직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영을 해방시키며, 혼을 구하려고 이 땅에 있노라. 그러나 이 이혼의 문제에 관해 내가 말하노니, 모세는 그런 일들에 찬성했지만, 아담의 시절, (에덴) 동산에서는 그렇지 않았느니라.” 140:6.7 (1577.1) “Always must you recognize the two viewpoints of all mortal conduct — the human and the divine; the ways of the flesh and the way of the spirit; the estimate of time and the viewpoint of eternity.” “너희는 필사자의 모든 행위를 두 가지 관점 – 인간적 관점과 신적 관점; 육신의 방식과 영의 방식; 시간적 평가와 영원의 관점 -을 항상 인식해야만 하느니라.”

140:6.8 (1577.2) Again must you remember that you are my messengers. You are my personal representatives.” “너희가 나의 메신저들임을 다시 기억해야만 하니라. 너희는 나의 개인적 대표자들이니라.”

140:6.9 (1577.3) Mercy always shall determine your judgments and love your conduct. And if these are hard sayings, you can even now turn back.” 자비가 항상 너희의 판단을 결정할 것이며 사랑이 너희 행위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말들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너희는 이제라도 되돌아갈 수 있다.” 140:6.10 (1577.4) Peter said: “Master, we would go on with you. We would be apostles, not merely disciples.”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主)여, 우리는 당신과 함께 계속할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한 제자가 아닌 사도가 되겠습니다.” 140:6.11 (1577.5) When Jesus heard this, he said: “Be willing, then, to take up your responsibilities and follow me.” 예수께서 이 말을 듣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기꺼이 너희 책임을 지고 나를 따르라.”

140:6.12 (1577.6) “The lamp of the body is the eye; if, therefore, your eye is generous, your whole body will be full of light.”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편견 없이, 사심이 없음)하면 너의 온몸이 빛으로 가득할 것이다.”

140:6.13 (1577.7) You cannot sincerely worship God and at the same time wholeheartedly serve mammon. Already have you learned that willing hands and earnest hearts shall not go hungry. And now, when you prepare to devote all of your energies to the work of the kingdom, be assured that the Father will not be unmindful of your needs.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when you have found entrance thereto, all things needful shall be added to you. ” 너희는 신실하게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동시에 전심으로 재물을 섬길 수 없다. 자발적인 노력과 진지한 심정이 굶주리지 않을 것임을 너희가 이미 배웠느니라. 그리고 이제 너희가 모든 에너지를 (하나님) 나라의 일에 헌신하려고 준비할 때, 아버지가 너희의 필요에 무관심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고 너희가 거기로 들어가면, 필요한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지리라.” 140:6.14 (1578.1) “My brethren, you are earthen vessels; it is best for you to go to your rest so as to be ready for the morrow’s work.” “내 형제들아, 너희는 흙으로 만든 그릇들이라. 내일 일을 준비하기 위해 가서 쉬는 것이 최선이라.”

  1. The Week Following the Ordination 성직 임명 다음 주간

140:7.1 (1578.2) “Now must you begin your work of preaching the glad tidings and instructing believers. Make ready to go to Jerusalem.” “이제 너희는 기쁜 소식을 설교하고 신자들 가르치는 임무를 시작해야 하니라. 예루살렘으로 갈 준비를 하라.” 140:7.2 (1578.3) Inquiring groups had come from cities as far away as Tyre, Sidon, Damascus, Caesarea, and Jerusalem. Heretofore, Jesus had greeted these people and taught them concerning the kingdom, but the Master now turned this work over to the twelve. 호기심 있는 무리들이 티레, 시돈, 다마스쿠스, 케자리아, 그리고 예루살렘 같은 먼 도시로부터 왔습니다. 지금까지 예수께서 이들을 맞아 (하느님) 나라에 관해 가르쳤지만, 주님은 이제 이 일을 12사도들에게 맡겼습니다.

140:7.3 (1578.4) For two days they worked, teaching by day and holding private conferences late into the night. 그들은 이틀간 일했는데, 낮에는 가르치고 밤늦도록 사적으로 모였습니다. 140:7.4 (1578.5) During this week of rehearsing, Jesus many times repeated to his apostles the two great motives of his postbaptismal mission on earth: 이 연습 주간에, 예수님은 세례이후 자신의 지상 사명의 두 가지 큰 동기(動機)를 사도들에게 여러 번 반복하셨습니다. 140:7.5 (1578.6) 1. To reveal the Father to man. 아버지를 사람에게 계시함. 140:7.6 (1578.7) 2. To lead men to become son-conscious — to faith-realize that they are the children of the Most High. 사람들이 지고자(至高者)의 자녀임을 신앙으로 깨달아, 아들-의식이 들도록 인도함.

140:7.7 (1579.1) “May your wisdom equal your zeal and your courage atone for your ignorance.” “너희 지혜가 너희의 열정과 같고, 너희 용기가 너희 무지를 보상(報償갚아줌)하기를 바라노라.”

140:7.8 (1579.2) Though the apostles failed to comprehend much of his teaching, they did not fail to grasp the significance of the charmingly beautiful life he lived with them. 사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많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지냈던 즐겁고 아름다운 생활의 중요성은 파악했습니다.

  1. Thursday Afternoon on the Lake 목요일 오후 호수에서

140:8.1 (1579.3) On Thursday afternoon Jesus went out from the shore in a boat with Peter, James, and John to talk over the affairs of the kingdom. This was a four hours’ teaching conference, embracing scores of questions and answers, and may most profitably be put in this record by reorganizing the summary of this momentous afternoon as it was given by Simon Peter to his brother, Andrew, the following morning: 목요일 오후에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하느님) 나라의 일을 논의하려고 배를 타고 물가를 떠나가셨습니다.

140:8.2 (1579.4) 1. Doing the Father’s will. Jesus’ teaching to trust in the overcare of the heavenly Father was not a blind and passive fatalism. 아버지의 뜻을 행함. 하늘 아버지의 보호를 신뢰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맹목적이며 수동적인 운명론(運命論숙명론)이 아니었습니다. 140:8.3 (1579.5) Jesus made clear to the three the difference between the requirements of apostleship and discipleship. 예수님은 세 사도에게 사도직과 제자직의 자격 차이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140:8.4 (1579.6) Jesus had great difficulty in getting them to understand his personal practice of nonresistance.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무저항 실천을 이해시키는 것이 아주 힘들었습니다. 140:8.5 (1579.7) He made it clear to the three that his teachings applied to the individual, not the state. 그는 세 사도에게 자신의 가르침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에게 적용된다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140:8.6 (1580.1) Love your enemies — remember the moral claims of human brotherhood.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140:8.7 (1580.2) The futility of evil. 악의 무용성(無用性쓸데없음). 140:8.8 (1580.3) Have faith. 신앙을 가져라.

140:8.9 (1580.4) 2. Political attitude. He cautioned his apostles to be discreet in their remarks concerning the strained relations then existing between the Jewish people and the Roman government. 정치적 태도.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유대 민족과 로마정부 사이에 그때 존재하는 긴장관계에 대해 비평을 삼가라고 조심시켰습니다. 140:8.10 (1580.5) Jesus was not, therefore, a political reformer. 따라서 예수님은 정치적 개혁가가 아니었습니다.

140:8.11 (1580.6) 3. Social attitude. He taught pure sympathy, compassion. 사회적 태도. 그는 순수한 공감, 연민을 가르치셨습니다. 140:8.12 (1580.7) Jesus had a firm sense of justice, but it was always tempered with mercy. 예수님은 확고한 정의감을 지니셨지만, 그것은 언제나 자비로 조절되었습니다. 140:8.13 (1580.8) He made it clear that indiscriminate kindness may be blamed for many social evils. 그는 분별없는 친절이 많은 사회악의 책임일 수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140:8.14 (1581.1) The family occupied the very center of Jesus’ philosophy of life — here and hereafter. 가족은 여기와 향후 예수님의 생활 철학에서 바로 핵심을 차지했습니다.

140:8.15 (1581.2) 4. Economic attitude. He recognized the need for social justice and industrial fairness, but he offered no rules for their attainment. 경제적 태도. 그는 사회적 정의와 산업적 공평의 필요를 인정했지만, 그 달성을 위해 어떤 규율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140:8.16 (1581.3) He never taught his followers to avoid earthly possessions, only his twelve apostles. 그는 열두 사도를 제외한 그의 추종자들에게 현세의 소유물을 피하라고 절대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140:8.17 (1581.4) Jesus frequently warned his listeners against covetousness, declaring that “a man’s happiness consists not in the abundance of his material possessions.”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탐욕에 대해 자주 경고하시면서, “사람의 행복은 그의 물질적 소유의 풍부함에 있지 않다.”고 선언하셨습니다. 140:8.18 (1581.5) Jesus would make all men Godlike and then stand by sympathetically while these sons of God solve their own political, social, and economic problems.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과 같이 만들어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및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동안 공감을 나타내시며 곁에 계실 것입니다.

140:8.19 (1581.6) 5. Personal religion. You, as did his apostles, should the better understand Jesus’ teachings by his life. 개인적 종교. 너희는, 그의 사도들이 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그의 가르침을 더 온전히 이해해야만 합니다. 140:8.20 (1582.1) He had come down to earth to teach “the voluntary conformity of man’s will to God’s will.” 그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사람 의지의 자발적 순종(順從)”을 가르치려고 땅에 오셨습니다. 140:8.21 (1582.2) He was a positive teacher of true virtue. 그는 긍정적으로 참된 미덕을 가르치는 선생이셨습니다. 140:8.22 (1582.3) Jesus laid great emphasis on “first making the tree good.” 예수님은 “먼저 나무를 좋게 만드는 것”에 큰 비중을 두셨습니다.

140:8.23 (1582.4) The heart of Jesus’ religion consisted in the acquirement of a compassionate character coupled with a personality motivated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예수 종교의 핵심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고유성과 연결된 온정(溫情따뜻한 공감)의 성격 획득에 있습니다. 140:8.24 (1582.5) Peter grasped the idea that the gospel they were about to proclaim was really a fresh beginning for the whole human race. 베드로는 그들이 선포할 복음이 정말로 온 인류를 위한 새로운 시작이라는 관념을 붙잡았습니다. 140:8.25 (1582.6) James grasped the thrilling truth that Jesus wanted his children on earth to live as though they were already citizens of the completed heavenly kingdom. 야고보는 예수님의 자녀들이 땅에서 이미 완성된 하늘나라의 시민들인 것처럼 살기를 예수님께서 원하신다는 감격적인 진리를 붙잡았습니다.

140:8.26 (1582.7) Jesus knew men were different, and he so taught his apostles. 예수님은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아셨고, 그렇게 사도들을 가르치셨습니다. 140:8.27 (1583.1) The three apostles were shocked this afternoon when they realized that their Master’s religion made no provision for spiritual self-examination. 세 사도는 주(主)의 종교는 영적 자기-반성을 위한 규정이 없음을 깨닫고 이날 오후에 깜짝 놀랐습니다.

140:8.28 (1583.2) The right to enter the kingdom is conditioned by faith, personal belief.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권리는 신앙, 개인적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140:8.29 (1583.3) The teaching of Jesus is a religion for everybody, not alone for weaklings and slaves. 예수님의 가르침은 약한 사람들과 노예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종교입니다. 140:8.30 (1583.4) He did insist that religion was the exclusive business of the twelve. 그는 종교를 열두 사도가 전념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140:8.31 (1583.5) He concerned himself exclusively with the underlying and permanent spiritual needs of the human race. 그는 인류의 근원적이며 변하지 않는 영적 필요에만 오로지 관여하셨습니다.

140:8.32 (1583.6) The Master came to create in man a new spirit, a new will — to impart a new capacity for knowing the truth, experiencing compassion, and choosing goodness — the will to be in harmony with God’s will, coupled with the eternal urge to become perfect, even as the Father in heaven is perfect. 주(主)님은 사람 안에 새로운 영, 새로운 의지를 창조하여 – 진리를 알고, 온정(溫情따뜻한 공감)을 체험하며, 선을 선택하는 새 능력,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하게 되려는 영원한 충동과 함께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려는 의지를 나눠주려고 오셨습니다.

  1. The Day of Consecration 성직 봉헌(奉獻)일

140:9.1 (1583.7) The next Sabbath day Jesus devoted to his apostles, journeying back to the highland where he had ordained them; and there, after a long and beautifully touching personal message of encouragement, he engaged in the solemn act of the consecration of the twelve. 그다음 안식일에 예수님은 사도들을 임직했던 고지(高地)로 돌아가, 그들에게 전념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친히 길고 아주 감동적인 격려의 말씀을 하신 후, 열두 사도의 엄숙한 성직 봉헌식을 시작했습니다.

140:9.2 (1584.1) Jesus reviewed many features of the ordination sermon, delivered on this same spot, and then, calling them before him one by one, he commissioned them to go forth in the world as his representatives. The Master’s consecration charge was: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Liberate spiritual captives, comfort the oppressed, and minister to the afflicted. Freely you have received, freely give.” 예수님은 바로 이 자리에서 전했던 임직 설교의 여러 요점을 살피신 후 그들을 하나씩 자신 앞에 불러서 그의 대리자로 세상에 나가도록 임명했습니다. 주(主)님의 봉헌 명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온 세상에 가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라. 영적 포로를 해방하고, 억눌린 자를 위로하며, 고통받는 자를 보살피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140:9.3 (1584.2) Jesus advised them to take neither money nor extra clothing, saying, “The laborer is worthy of his hire.” And finally he said: “Behold I send you forth as sheep in the midst of wolves; be you therefore as wise as serpents and as harmless as doves. 예수님은 그들에게 돈이나 여벌옷을 지니지 말라고 이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일꾼이 자기 임금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리고 그는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 But fear not; I will be with you, and my spirit shall go before you into all the world. And my Father’s presence will abide with you while you go first to the Jews, then to the gentiles.”… 그러나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며 내 영이 너희보다 먼저 온 세상에 가리라. 그리고 너희가 먼저는 유대인들에게요, 나중에는 이방인들에게 가는 동안 내 아버지의 임재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140:9.4 (1584.3) And when they came down from the mountain, they journeyed back to their home in Zebedee’s house.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 그들은 세베대의 집에 있는 그들의 근거지로 돌아갔습니다.

10. The Evening After the Consecration 봉헌일 저녁

140:10.1 (1584.4) That evening while teaching in the house, for it had begun to rain, Jesus talked at great length, trying to show the twelve what they must be, not what they must do. 비가 오기 시작해서 그 날 저녁 집에서 가르치시는 동안 예수님은 장시간 말씀하시면서, 열두 사도가 해야만 할 것이 아니라 되어야만 할 것을 보이려고 애쓰셨습니다.

140:10.2 (1584.5) Another great handicap in this work of teaching the twelve was their tendency to take highly idealistic and spiritual principles of religious truth and remake them into concrete rules of personal conduct. 열둘을 가르치는 이 일의 또 다른 큰 어려움은, 종교적 진리의 높은 이상적·영적 원리들을 취해서 개인적 행동의 구체적 규칙들로 개조하려는 그들의 경향이었습니다. 140:10.3 (1585.1) It was not apparent to the apostles that their Master was engaged in living a life of spiritual inspiration for every person of every age on every world of a far-flung universe. 그들의 주(主)님이 광대한 우주의 모든 세계에서 모든 세대의 모든 사람을 위해 영적 영감의 삶을 사셨다는 것이 사도들에게는 명백하지 않았습니다. 140:10.4 (1585.2) There is present that natural affection between every normal child and its father which insures an understanding and loving relationship, and which forever precludes all disposition to bargain for the Father’s love and mercy. And the gospel you are going forth to preach has to do with a salvation growing out of the faith-realization of this very and eternal child-father relationship.” 모든 정상적 어린이와 그 아버지 사이에는 자연스런 애정이 있어서, 이해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보증(保證)하며, 그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얻으려고 거래하려는 모든 경향을 언제나 가로막느니라. 너희가 나가 전하려는 복음은 바로 이 영원한 자녀-아버지 관계의 신앙-깨달음에서 생긴 구원과 관계있느니라.”

140:10.5 (1585.3) The one characteristic of Jesus’ teaching was that the morality of his philosophy originated in the personal relation of the individual to God — this very child-father relationship. Jesus placed emphasis on the individual, not on the race or nation. While eating supper, Jesus had the talk with Matthew in which he explained that the morality of any act is determined by the individual’s motive. 예수님의 가르침의 한 가지 특징은 그 철학의 도덕성이 하나님에 대한 개인의 고유적 관계 – 바로 이 자녀-아버지 관계 –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종이나 나라가 아니라 개인에게 비중을 두셨습니다. 저녁 식사하면서, 예수님은 마태와 이야기하면서 어떤 행동의 도덕성은 개인의 동기가 결정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140:10.6 (1585.4) This new religion of Jesus was not without its practical implications, but whatever of practical political, social, or economic value there is to be found in his teaching is the natural outworking of this inner experience of the soul as it manifests the fruits of the spirit in the spontaneous daily ministry of genuine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예수님의 이 새 종교는 실천적 암시(暗示넌지시 깨우치는 내용)들이 없지 않았지만, 실천적인 정치적·사회적 혹은 경제적 가치에 속한 무엇이 그의 가르침에서 발견되든지, 혼의 이 내적 체험의 자연스런 결실이며, 그것은 진정한 고유적 종교 체험에서 우러나온 매일의 사역(봉사)에서 영의 열매들이 증명되는 것과 같습니다. 140:10.7 (1585.5) After Jesus and Matthew had finished talking, Simon Zelotes asked, “But, Master, are all men the sons of God?” And Jesus answered: “Yes, Simon, all men are the sons of God, and that is the good news you are going to proclaim.” 예수께서 마태와 대화를 마치자, 시몬 젤로떼가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주(主)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들인지요?”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렇다. 시몬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이것이 너희가 선포할 복음이라.”

140:10.8 (1585.6) In response to a question asked by Andrew, the Master made it clear that the morality of his teaching was inseparable from the religion of his living. He taught morality, not from the nature of man, but from the relation of man to God. 안드레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주(主)님은 그 가르침의 도덕성은 그 삶의 종교와 분리할 수 없었다고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는 사람 본성의 도덕성이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로부터 도덕성을 가르치셨습니다. 140:10.9 (1585.7) John asked Jesus, “Master, what is the kingdom of heaven?” And Jesus answered: “The kingdom of heaven consists in these three essentials: first, recognition of the fact of the sovereignty of God; second, belief in the truth of sonship with God; and third, faith in the effectiveness of the supreme human desire to do the will of God — to be like God. And this is the good news of the gospel: that by faith every mortal may have all these essentials of salvation.” 요한이 예수께 여쭈었습니다. “주(主)여, 하늘나라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답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이 세 가지 본질이니라. 첫째 하나님 주권의 사실인정, 둘째 하나님의 아들 됨의 진리 믿음, 셋째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 하나님 같이 되려는 – 최극 인간 소망의 효과성을 신앙함. 이것이 복음의 기쁜 소식이니라. 신앙으로 모든 필사자는 이 모든 구원의 본질을 소유할 수 있느니라.” 140:10.10 (1586.1) And now the week of waiting was over, and they prepared to depart on the morrow for Jerusalem. 그리고 이제 기다리는 주간이 끝났고, 그들은 이튿날 예루살렘으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S84 Marriage and Family Life 개요84편 결혼과 가정생활

S84 Marriage and Family Life 개요84편 결혼과 가정생활

84:0.1 (931.1) Home building should be the center and essence of all educational effort. 가정 세우기는 모든 교육적 노력의 중심과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84:0.2 (931.2) The family is the channel through which the river of culture and knowledge flows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 가정은, 문화와 지식의 강(江)이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흐르는 경로입니다. 84:0.3 (931.3) The home is basically a sociologic institution. 가정은 원래 사회 조직 제도입니다.

1. Primitive Pair Associations 원시 부부 결합

84:1.1 (931.4) Marriage was not founded on sex relations. 결혼은 성(性)관계에 근거를 두지 않았습니다. 84:1.2 (931.5) Woman, because of physical and emotional attachment to her offspring, is dependent on co-operation with the male, and this urges her into the sheltering protection of marriage. 여성은, 자녀에 대한 육체적, 정서적 애착 때문에, 남성과 함께하는 협력에 의존하며, 이런 충동이 그녀를 결혼의 보호 안으로 피하게 합니다. 84:1.3 (931.6) Marriage was not even brought about by the conscious realization of the obligations of sex relations. 결혼은 성(性)관계의 의무에 대한 의식적 자각으로 생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84:1.4 (932.1) Many early peoples associated ghosts with the sea. 초기에 여러 민족은 유령(幽靈)을 바다와 관련지었습니다. 84:1.5 (932.2) The first step in enlightenment came with the belief that sex relations opened up the way for the impregnating ghost to enter the female. 성(性)관계로, 임신시키는 유령(幽靈)이 여성에게 들어가는 길이 열렸다는 믿음에서, 계몽의 첫 단계가 따라왔습니다.

84:1.6 (932.3) A family of some simple sort was insured by the fact that the reproductive function entails the mother-child relationship. 생식(生殖) 기능이 어머니-자녀 관계를 일으킨다는 사실로 인해 어떤 단순한 유형의 가족이 보장되었습니다. 84:1.7 (932.4) The mother and child relation is natural, strong, and instinctive, and one which, therefore, constrained primitive women to submit to many strange conditions and to endure untold hardships. 어머니와 자녀 관계는 자연스럽고, 강력하며, 본능적이어서, 원시 여성들이 여러 낯선 상황들을 감수하고 무수한 고난을 견디도록 했습니다.

84:1.8 (932.5) While the mother-child association is neither marriage nor home, it was the nucleus from which both sprang. 어머니-자녀 관계는 결혼도 아니고 가정도 아니지만, 그것은 두 가지가 솟아 나온 핵심이었습니다. 84:1.9 (932.6) Regardless of the antagonisms of these early pairs, notwithstanding the looseness of the association, the chances for survival were greatly improved by these male-female partnerships. 이런 초기 부부들의 대립과 관계없이, 그 결합이 느슨했지만, 생존 기회는 이런 남녀 협동으로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2. The Early Mother-Family 초기 모계(母系)-가정

84:2.1 (932.7) The woman’s periodic hemorrhage and her further loss of blood at childbirth early suggested blood as the creator of the child (even as the seat of the soul) and gave origin to the blood-bond concept of human relationships. 여성의 주기적 출혈과 추가적인 분만 출혈로, 피를 아이의 창조자 (심지어 혼魂의 자리로) 연상하여, 인간관계에 속한 혈연(血緣) 개념이 최초로 생겼습니다. 84:2.2 (932.8) The primitive family, growing out of the instinctive biologic blood bond of mother and child, was inevitably a mother-family. 본능적으로 어머니와 자녀의 생물학적 혈연에서 생긴 원시 가정은 불가피하게 모계(母系) 가정이었습니다. 84:2.3 (933.1) Under the mother-family mores the wife’s mother enjoyed virtually supreme authority in the home. 모계(母系)-가정의 관습에 따라, 아내의 어머니가 가정에서 사실상 최고의 권위를 누렸습니다.

84:2.4 (933.2) The earliest races gave little credit to the father, looking upon the child as coming altogether from the mother. 아주 초기의 종족들은, 자녀를 전적으로 어머니 출신으로 여기면서, 아버지를 거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84:2.5 (933.3) At first, it was the custom for the man to go to his wife’s people, but in later times, after a man had paid or worked out the bride price, he could take his wife and children back to his own people. 처음에는, 남성이 아내의 가족에게 가는 것이 관습이었지만, 후일에 남성이 신붓값을 치르거나 일해서 갚은 후, 그는 자기 아내와 자녀를 자기 가족에게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84:2.6 (933.4) With the passing of the hunter mores, when herding gave man control of the chief food supply, the mother-family came to a speedy end. 사냥 관습이 지나가고, 사람이 목축을 주요한 식량 공급으로 장악하면서, 모계(母系)-가정이 빨리 끝났습니다. 84:2.7 (933.5) The stupendous change from the mother-family to the father-family is one of the most radical and complete right-about-face adjustments ever executed by the human race. 모계(母系)-가정에서 부계(父系)-가정으로의 엄청난 변화는 인류가 일찍이 실행했던 가장 철저하고 완전한 180도 전환 조율 중 하나였습니다.

3. The Family Under Father Dominance 가부장(家父長) 가정

84:3.1 (933.6) It may be that the instinct of motherhood led woman into marriage, but it was man’s superior strength, together with the influence of the mores, that virtually compelled her to remain in wedlock. 모성 본능이 여성을 결혼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상 여성이 결혼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은, 관습의 영향과 함께 남성의 우수한 힘이었습니다. 84:3.2 (934.1) The scant courtesy paid womankind during the Old Testament era is a true reflection of the mores of the herdsmen. 구약(舊約) 시대에 여성을 아무렇게나 대우한 것은 목자의 관습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84:3.3 (934.2) But man was no more to blame for his low opinion of woman during past ages than was woman herself. 그러나 과거 시대에 여성에 대한 낮은 평가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 자신의 탓이었습니다. 84:3.4 (934.3) Primitive women also unintentionally created their dependence on the male by their admiration and applause for his pugnacity and virility. 원시 여성들도 남성의 호전성(好戰性)과 박력(迫力)을 기리고 칭찬하여 무심결에 남성을 의존했습니다. 84:3.5 (934.4) Among the more advanced races, women are not so large or so strong as men. 더 앞선 종족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크거나 강하지 않습니다.

84:3.6 (934.5) The herdsman looked to his flocks for sustenance, but throughout these pastoral ages woman must still provide the vegetable food. Primitive man shunned the soil. 목자(牧者)들은 생계를 위해 자기 가축 떼를 돌봤지만, 이런 목축 시대에 여성은 여전히 채소 식량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84:3.7 (934.6) Woman has always had to work; at least right up to modern times the female has been a real producer. 여성은 언제나 일해야 했습니다. 적어도 현대까지 여성은 실질적 생산자였습니다. 84:3.8 (934.7) Woman’s first liberation came when man consented to till the soil, consented to do what had theretofore been regarded as woman’s work. 남성이 경작하기로 동의하고, 그 이전에 여성의 일로 여겼던 것을 하기로 동의했을 때, 여성의 첫 해방이 왔습니다. 84:3.9 (934.8) Before the herding stage of society, mothers used to nurse their babies until they were four and five years old. 사회의 목축 단계 이전에는, 아기들이 4~5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들이 자기 아기들에게 젖을 먹이곤 했습니다. 84:3.10 (934.9) Decreasing primitive warfare greatly lessened the disparity between the division of labor based on sex. 원시 전쟁의 감소로 성별에 따른 분업 사이의 격차가 크게 줄었습니다.

4. Woman’s Status in Early Society 초기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84:4.1 (935.1) Generally speaking, during any age woman’s status is a fair criterion of the evolutionary progress of marriage as a social institution. 보통, 어떤 시대라도 여성의 지위는, 사회 제도로서 결혼에 대한 진화적 진보의 공정한 기준입니다. 84:4.2 (935.2) Woman’s status has always been a social paradox. 여성의 지위는 언제나 사회적 역설(逆說)이었습니다. 84:4.3 (935.3) Early woman was not to man a friend, sweetheart, lover, and partner but rather a piece of property, a servant or slave and, later on, an economic partner, plaything, and childbearer. 초기 여성은 남성에게 친구, 애인, 연인, 배우자가 아니라 오히려 재산의 일부, 하인이나 노예였고, 나중에는 경제적 동반자, 노리개 그리고 아이 낳는 자였습니다.

84:4.4 (935.4) The sexes have had great difficulty in understanding each other. 남녀는 서로 이해하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84:4.5 (935.5) Men have long regarded women as peculiar, even abnormal. 남성들은 여성들이 유별나며, 정상이 아니라고까지 오랫동안 여겼습니다. 84:4.6 (935.6) Childbearing was once generally looked upon as rendering a woman dangerous and unclean. 한때 해산(解産)이 대개 여성을 위험하고 불결하게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84:4.7 (935.7) Among the unmixed tribes, childbirth was comparatively easy, occupying only two or three hours; it is seldom so easy among the mixed races. 순수한 부족 중에서 분만은, 2~3시간만 걸려서, 상당히 쉬웠습니다. 혼합 인종 중에 분만은 거의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84:4.8 (936.1) The so-called modesty of women respecting their clothing and the exposure of the person grew out of the deadly fear of being observed at the time of a menstrual period. 여성의 의복과 신체의 노출에 관해 소위 여성의 정숙(貞淑)은 월경 기간에 발견되는 지독한 걱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84:4.9 (936.2) However foolish these olden notions were, they did some good since they gave overworked females, at least when young, one week each month for welcome rest and profitable meditation. 이런 옛 개념들이 아무리 어리석었어도, 그것들은 과로한 여성들에게 적어도 젊었을 때, 자유롭게 쉬고 유익하게 묵상하도록 매월 1주일씩 주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일부 쓸모가 있었습니다.

84:4.10 (936.3) A great advance was made when a man was denied the right to kill his wife at will. 남성이 자기 아내를 마음대로 죽일 권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커다란 진보가 이루어졌습니다. 84:4.11 (936.4) But primitive women did not pity themselves as their more recently liberated sisters are wont to do. They were, after all, fairly happy and contented. 그러나 원시 여성들은, 더 최근에 해방된 자매들이 곧잘 하듯이, 자신들을 딱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상당히 행복하고 만족했습니다.

5. Woman Under the Developing Mores 발전하는 관습에 따른 여성

84:5.1 (936.5) In self-perpetuation woman is man’s equal, but in the partnership of self-maintenance she labors at a decided disadvantage, and this handicap of enforced maternity can only be compensated by the enlightened mores of advancing civilization and by man’s increasing sense of acquired fairness. 자아-영속에서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지만, 자아를-유지하는 협력에서 여성은 명백히 불리한 입장에서 온 힘을 기울이며, 강요된 모성애로 인한 이런 불이익은 발전하는 문명의 진보한 관습과 기득(旣得 이미 차지하고 있는) 공정성에 대한 남성의 체증(遞增 점차 늘어나는) 감각으로 상쇄(相殺)될 뿐입니다.

84:5.2 (936.6) As society evolved, the sex standards rose higher among women because they suffered more from the consequences of the transgression of the sex mores. 사회가 진화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 성별 기준이 더 높아졌는데, 성별 관습을 어긴 결과로 그들이 더 많이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84:5.3 (936.7) The modern idea of sex equality is beautiful and worthy of an expanding civilization, but it is not found in nature. 현대의 남녀평등 관념은 확장하는 문명에 훌륭하고 가치가 있지만,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84:5.4 (937.1) But man did not consciously nor intentionally seize woman’s rights and then gradually and grudgingly give them back to her. 그러나 남성이 의식적으로나 의도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빼앗지 않았으며 그 후 점차 마지못해 여성에게 그것들을 돌려줍니다.

84:5.5 (937.2) The Adamites and Nodites accorded women increased recognition, and those groups which were influenced by the migrating Andites have tended to be influenced by the Edenic teachings regarding women’s place in society. 아담-사람들과 놋-사람들은 여자들을 갈수록 더 인정했으며, 이주하는 안드-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은 그런 집단은 사회에서 여성의 처지에 관한 에덴의 가르침으로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84:5.6 (937.3) The early Chinese and the Greeks treated women better than did most surrounding peoples. But the Hebrews were exceedingly distrustful of them. 초기 중국인과 그리스인(人)들은 대부분의 주변 민족들보다 여성들을 더 잘 대우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인(人)들은 여성들을 지나치게 믿지 않았습니다.

84:5.7 (937.4) Science, not religion, really emancipated woman.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 실제로 여성을 해방했습니다. 84:5.8 (937.5) These changes have tended toward woman’s liberation from domestic slavery and have brought about such a modification of her status that she now enjoys a degree of personal liberty and sex determination that practically equals man’s. 이런 변화들은 여성을 가사 노예 상태에서 해방하는 경향이 있었고, 여성의 지위가 변경되어 사실상 남성의 사정에 못지않은 어느 정도의 개인적 해방과 성별 결정을 이제 누립니다. 84:5.9 (937.6) The reaction of enlightened peoples from the inequitable mores governing woman’s place in society has indeed been pendulumlike in its extremeness. 사회에서 여성의 처지를 결정하는 불공정한 관습에서 개화된 민족들의 반응은 실로 극도로 추와 같았습니다.

84:5.10 (937.7) In the ideals of pair marriage, woman has finally won recognition, dignity, independence, equality, and education. 일부일처의 이상(理想)들로 여성은 결국 인정, 존엄성, 독립, 평등과 교육을 얻었습니다. 84:5.11 (938.1) Woman is man’s equal partner in race reproduction, hence just as important in the unfolding of racial evolution. 여성은 종족 번식에서 동등한 남성의 동반자이므로, 종족 진화의 전개에서 똑같이 중요합니다. 84:5.12 (938.2) Each sex has its own distinctive sphere of existence, together with its own rights within that sphere. 남녀 각각 자신의 독특한 존재 영역과 그 영역 내에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84:5.13 (938.3) Civilization never can obliterate the behavior gulf between the sexes. 문명은 결코 남녀 간의 행동 차이를 없앨 수 없습니다. 84:5.14 (938.4) Each sex will always have its own special sphere, albeit they will ever and anon overlap. 각 남녀는, 자기 특유의 영역들이 때때로 겹쳐질지라도, 항상 자기 특유의 영역을 가질 것입니다.

6. The Partnership of Man and Woman 남성과 여성의 협력

84:6.1 (938.5) The reproductive urge unfailingly brings men and women together for self-perpetuation but, alone, does not insure their remaining together in mutual co-operation — the founding of a home. 번식(繁殖) 충동이 자아-영속을 위해 남녀를 확실히 결합하게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이 함께 남아 서로 협력하면서 가정을 세우도록 책임지게 하지는 않습니다.
84:6.2 (938.6) Every successful human institution embraces antagonisms of personal interest which have been adjusted to practical working harmony, and homemaking is no exception. 성공한 어떤 인간 제도나 실제로 활동이 조화되도록 조율한 개인적 이익의 대립을 포함하며, 가정 관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84:6.3 (938.7) Male and female are, practically regarded, two distinct varieties of the same species living in close and intimate association. 남녀는 실제로, 밀접하게 친한 관계로 살아가는 동종(同種)의 다른 두 변종(變種)으로 여겨집니다. 84:6.4 (938.8) Woman has always been the moral standard-bearer and the spiritual leader of mankind. 여성은 언제나 인류의 도덕적 기수(旗手)와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84:6.5 (938.9) The differences of nature, reaction, viewpoint, and thinking between men and women, far from occasioning concern, should be regarded as highly beneficial to mankind, both individually and collectively. 남녀 사이의 본성, 반응, 관점 및 사고의 차이는, 우려(憂慮)는커녕, 개별로, 공동으로 인류에게 대단히 유익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84:6.6 (939.1) Men and women need each other in their morontial and spiritual as well as in their mortal careers. 남성들과 여성들은 필사자 생애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모론시아와 영적 생애들에서도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84:6.7 (939.2) While the sexes never can hope fully to understand each other, they are effectively complementary, and though co-operation is often more or less personally antagonistic, it is capable of maintaining and reproducing society. 남녀가 서로 완전히 이해하기를 바랄 수 없지만, 그들은 사실상 서로 보완하는 관계이며, 협력은 종종 거의 개인적으로 대립하지만, 공동체를 유지하고 재생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84:6.8 (939.3) Marriage is the mother of all human institutions, for it leads directly to home founding and home maintenance, which is the structural basis of society. 결혼은, 사회 조직의 토대인 가정을, 선두에 서서 바로 세우고 가정을 유지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 제도의 원천입니다.

7. The Ideals of Family Life 가정생활의 이상(理想)들

84:7.1 (939.4) Sex mating is instinctive, children are the natural result, and the family thus automatically comes into existence. 성적 짝짓기는 본능적이고, 자녀는 자연스러운 결과여서 가정은 자동으로 생깁니다. 84:7.2 (939.5) Woman’s instinct to love and care for children conspired to make her the interested party in promoting marriage and primitive family life.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는 여성의 본능 때문에 여성은 결혼과 원시 가정생활을 촉진하는 이해당사자가 됩니다.

84:7.3 (939.6) Sex association is natural, but marriage is social and has always been regulated by the mores. 성적 결합은 자연스럽지만, 결혼은 사회적이며 항상 관습으로 규정되었습니다. 84:7.4 (939.7) 1. The new role of religion 종교의 새 역할 84:7.5 (940.1) 2. The new role of science 과학의 새 역할 84:7.6 (940.2) 3. The new function of pleasure lures 의향(意向) 매력의 새 기능 84:7.7 (940.3) 4. The enhancement of parental instinct 어버이다운 본능의 향상.

84:7.8 (940.4) But the home as an institution, a partnership between one man and one woman, dates more specifically from the days of Dalamatia, about one-half million years ago, the monogamous practices of Andon and his immediate descendants having been abandoned long before. 그러나 제도로서 가정,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동반자 관계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안돈과 그 직계 후손의 일부일처 관례가 오래전에 버려졌던, 거의 50만 년 전, 달라마시아 시절부터 시작합니다.

84:7.9 (940.5) The early family embraced a related working group, including the slaves, all living in one dwelling. 초기 가정은 모두 한집에 사는, 노예들을 포함해서 관련 노동 집단을 포함했습니다. 84:7.10 (940.6) Love of offspring is almost universal and is of distinct survival value. 자녀 사랑은 거의 일반적이며, 명백히 생존 가치가 있습니다. 84:7.11 (940.7) The large families among ancient peoples were not necessarily affectional. 고대 민족들 사이에서 대가족들이 반드시 애정적이지는 않았습니다.

84:7.19 (940.15) Ancestor worshipers view the failure to have sons as the supreme calamity for all time and eternity. 조상 숭배자들은 아들들이 없는 것을 영구히, 영원히 최악의 불행으로 간주합니다. 84:7.20 (941.1) Among ancient savages, discipline of children was begun very early. 고대 야만인들 사이에서 자녀 훈련은 아주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84:7.21 (941.2) Modern problems of child culture are rendered increasingly difficult by: 자녀 훈육의 현대적 문제는 다음의 이유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84:7.22 (941.3) 1. The large degree of race mixture. 심한 혼혈(混血). 84:7.23 (941.4) 2. Artificial and superficial education. 강요된 피상적 교육. 84:7.24 (941.5) 3. Inability of the child to gain culture by imitating parents. 아이가 부모를 본받아서 양육될 수 없음

84:7.25 (941.6) The olden ideas of family discipline were biologic, growing out of the realization that parents were creators of the child’s being. 가정 훈육의 오래된 개념은 생물학적이었는데, 부모들이 아이 존재의 창조자들이라는 인식에서 생겼습니다. 84:7.26 (941.7) Civilization regards the parents as assuming all duties, the child as having all the rights. 문명은, 부모가 모든 책임을 떠맡고, 자녀는 모든 권리를 지닌 것으로, 간주합니다.

84:7.27 (941.8) In the present industrial and urban era the marriage institution is evolving along new economic lines. 현재의 산업적 도시 시대에, 결혼제도는 새로운 경제 노선을 따라 진화하고 있습니다. 84:7.28 (941.9) The family is the fundamental unit of fraternity in which parents and children learn those lessons of patience, altruism, tolerance, and forbearance which are so essential to the realization of brotherhood among all men. 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모든 사람 사이에서 형제 사랑의 실현에 아주 본질적인, 참을성, 애타(愛他)주의, 너그러움과 자제심의 그런 교훈을 배우는, 기본적인 형제 우애 단위입니다.

84:7.29 (941.10) In an ideal family filial and parental affection are both augmented by fraternal devotion. 이상적(理想的)인 가정에서, 우애(友愛)적 헌신으로, 효성스러운 애정과 어버이다운 애정 둘 다 늘어납니다.

84:7.30 (942.1) A true family — a good family — reveals to the parental procreators the attitude of the Creator to his children, while at the same time such true parents portray to their children the first of a long series of ascending disclosures of the love of the Paradise parent of all universe children. 참된 가정 – 좋은 가정은 출산 어버이에게, 자기 자녀들 대한 창조주의 태도를 나타내는 동시에 그런 참된 부모는 자기 자녀들에게, 일련의 긴 상승 단계 중 첫째로, 모든 우주 자녀들의 천국 부모의 사랑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묘사합니다.

8. Dangers of Self-Gratification 자아-충족의 위험들

84:8.1 (942.2) The great threat against family life is the menacing rising tide of self-gratification, the modern pleasure mania. 가정생활의 최고 위협은 위협적으로 증가하는, 현대의 쾌락증(症), 자아-충족의 풍조입니다. 84:8.2 (942.3) Originally, property was the basic institution of self-maintenance, while marriage functioned as the unique institution of self-perpetuation. 원래 재산은 자아-유지의 기본 제도였던 반면에 결혼은 자아-영속의 유일한 제도로 기능했습니다.

84:8.3 (942.4) The violet race introduced a new and only imperfectly realized characteristic into the experience of humankind — the play instinct coupled with the sense of humor. 보라 인종이 새로우며, 겨우 불완전하게 실현된 특성, 즉 유머 감각과 결부된 놀이 본능을 인류의 체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84:8.4 (942.5) Vanity and fashion cannot minister to home building and child culture. 허영(虛榮)과 유행(遊行)은 가정 설립과 자녀 양육에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84:8.5 (942.6) All efforts to obtain wholesome diversion and to engage in uplifting play are sound. 건전한 유희(遊戲)를 얻고 향상하는 놀이에 참여하려는 모든 노력은 정상적입니다.

84:8.6 (943.1) Self-gratifications have indeed cost a fatal price if they bring about the collapse of marriage, the decadence of family life, and the destruction of the home — man’s supreme evolutionary acquirement and civilization’s only hope of survival. 자아-충족들이 결혼의 붕괴, 가정생활의 타락과 사람의 최고 진화적 성취이며 문명이 생존할 유일한 희망인, 가정의 파괴를 초래한다면, 그것은 정말 치명적인 대가를 치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