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167
The Visit to Philadelphia 필라델피아 방문
1. Breakfast with the Pharisees 바리새인들과 아침식사
Healing the believer 믿는 자의 치유
“…sit not down in the chief seat…”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2. Parable of the Great Supper 만찬의 비유
3. The Woman with the Spirit of Infirmity 허약한 기질의 여인
4. The Message from Bethany 베다니에서 온 메시지
5. On the Way to Bethany 베다니로 가는 길에서
The Pharisee and the publican 바리새인과 세리(稅吏)
Teaching about marriage 결혼에 대한 가르침
6. Blessing the Little Children 어린이들을 축복함
Beauty as an influence to worship 경배하는 영향력으로서 아름다움
7. The Talk About Angels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
230611 길교회의 미래 막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7:0.1 (1833.1) THROUGHOUT this period of the Perean ministry, when mention is made of Jesus and the apostles visiting the various localities where the seventy were at work, it should be recalled that, as a rule, only ten were with him since it was the practice to leave at least two of the apostles at Pella to instruct the multitude. As Jesus prepared to go on to Philadelphia, Simon Peter and his brother, Andrew, returned to the Pella encampment to teach the crowds there assembled. When the Master left the camp at Pella to visit about Perea, it was not uncommon for from three to five hundred of the campers to follow him. When he arrived at Philadelphia, he was accompanied by over six hundred followers. 이런 페레아 사역 기간 내내, 70인이 활동하는 여러 지역을 방문하는 예수와 사도들을 언급할 때, 적어도 사도 중 두 명은 펠라에 남겨서 군중을 가르치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10명만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필라델피아로 갈 준비를 하자,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 안드레는 펠라 야영지로 돌아가 거기에 모인 군중을 가르쳤습니다. 주(主)께서 펠라 야영지를 떠나 페레아 인근을 방문할 때, 보통 300명에서 500명의 야영자들이 그를 따라갔습니다. 그가 필라델피아에 도착했을 때 600명이 넘는 추종자들이 그를 따라갔습니다.
167:0.2 (1833.2) No miracles had attended the recent preaching tour through the Decapolis, and, excepting the cleansing of the ten lepers, thus far there had been no miracles on this Perean mission. This was a period when the gospel was proclaimed with power, without miracles, and most of the time without the personal presence of Jesus or even of his apostles. 최근에 데카폴리스 여러 곳의 전도 여행에는 기적이 없었고, 10명의 나환자가 깨끗해진 것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이 페레아 선교에 기적이 없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기적 없이, 대부분 시간에 예수님이나 그 사도들조차 친히 그 자리에 없는 가운데 복음이 권능으로 선포되었습니다.
167:0.3 (1833.3) Jesus and the ten apostles arrived at Philadelphia on Wednesday, February 22, and spent Thursday and Friday resting from their recent travels and labors. That Friday night James spoke in the synagogue, and a general council was called for the following evening. They were much rejoiced over the progress of the gospel at Philadelphia and among the near-by villages. The messengers of David also brought word of the further advancement of the kingdom throughout Palestine, as well as good news from Alexandria and Damascus. 예수와 열 명의 사도는 (AD30년) 2월 22일 수요일, 필라델피아에 도착했고, 최근의 여행과 수고로 지친 몸을 쉬면서 목요일과 금요일을 보냈습니다. 그 금요일 밤에 야고보가 회당에서 설교했고, 다음 날 저녁에 총회가 소집되었습니다. 그들은 필라델피아와 바로 이웃 마을에서 복음이 진행되는 상태를 매우 기뻐했습니다. 다윗의 메신저들도 알렉산드리아와 다마스쿠스에서 들려온 좋은 소식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하느님 나라가 더욱 촉진된다는 소식도 가져왔습니다.
1. Breakfast with the Pharisees 바리새인들과 아침식사
230618 복 받는 비결 눅14:1-14a 1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2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4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6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13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167:1.1 (1833.4) There lived in Philadelphia a very wealthy and influential Pharisee who had accepted the teachings of Abner, and who invited Jesus to his house Sabbath morning for breakfast. It was known that Jesus was expected in Philadelphia at this time; so a large number of visitors, among them many Pharisees, had come over from Jerusalem and from elsewhere. Accordingly, about forty of these leading men and a few lawyers were bidden to this breakfast, which had been arranged in honor of the Master. 필라델피아에 아브너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아주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바리새인이 살았는데, 그가 안식일 아침에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눅14:1a). 이때 예수께서 필라델피아에 오기로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방문자 중에 여러 바리새인이 예루살렘과 다른 지역에서 건너왔습니다. 그래서 이런 유력자 중 약 40명과 율법사 몇 명이 주님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이 조찬에 초대되었습니다.
167:1.2 (1833.5) As Jesus lingered by the door, speaking with Abner, and after the host had seated himself, there came into the room one of the leading Pharisees of Jerusalem, a member of the Sanhedrin, and as was his habit, he made straight for the seat of honor at the left of the host. But since this place had been reserved for the Master and that on the right for Abner, the host beckoned the Jerusalem Pharisee to sit four seats to the left, and this dignitary was much offended because he did not receive the seat of honor. 예수께서 아브너와 이야기하면서 문 옆에 머무셨고, 집주인이 앉은 후 예루살렘의 유력한 바리새인 중 한 사람, 산헤드린의 회원이 방으로 들어와 자기 습관대로 집주인의 왼쪽 주빈(主賓)석으로 바로 갔습니다(눅14:7a). 그러나 이 자리는 주님을 위해, 오른쪽 자리는 아브너를 위해 예약되어 있어서, 집주인이 예루살렘 바리새인에게 네 자리 왼쪽에 앉도록 손짓하자, 이 고위 성직자는 주빈석을 받지 못해서 몹시 기분이 상했습니다.
167:1.3 (1834.1) Soon they were all seated and enjoying the visiting among themselves since the majority of those present were disciples of Jesus or else were friendly to the gospel. Only his enemies took notice of the fact that he did not observe the ceremonial washing of his hands before he sat down to eat. Abner washed his hands at the beginning of the meal but not during the serving. 그렇게 참석한 대부분은 예수의 제자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복음에 우호적이어서 그들은 곧 모두 앉아서 서로 방문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대적들만이 그가 식사 자리에 앉기 전에 손 씻는 예식을 지키지 않은 사실을 주목했습니다(눅14:1b). 아브너는 식사를 시작할 때 손을 씻었으나 음식이 나오는 동안에는 손을 씻지 않았습니다.
167:1.4 (1834.2) Near the end of the meal there came in from the street a man long afflicted with a chronic disease and now in a dropsical condition. This man was a believer, having recently been baptized by Abner’s associates. He made no request of Jesus for healing, but the Master knew full well that this afflicted man came to this breakfast hoping thereby to escape the crowds which thronged him and thus be more likely to engage his attention. This man knew that few miracles were then being performed; however, he had reasoned in his heart that his sorry plight might possibly appeal to the Master’s compassion. And he was not mistaken, for, when he entered the room, both Jesus and the self-righteous Pharisee from Jerusalem took notice of him. The Pharisee was not slow to voice his resentment that such a one should be permitted to enter the room. But Jesus looked upon the sick man and smiled so benignly that he drew near and sat down upon the floor. As the meal was ending, the Master looked over his fellow guests and then, after glancing significantly at the man with dropsy, said: “My friends, teachers in Israel and learned lawyers, I would like to ask you a question: Is it lawful to heal the sick and afflicted on the Sabbath day, or not?” But those who were there present knew Jesus too well; they held their peace; they answered not his question. 식사를 마칠 무렵, 오랫동안 만성병을 앓다가 지금은 수종(水腫 부종, 체액의 유출로 붓는) 상태인 한 사람이 거리에서 들어왔습니다. 이 사람은 최근에 아브너의 동료들에게 세례를 받은 믿는 자였습니다. 그는 예수께 치유를 요청하지 않았지만, 주님은 앓고 있는 이 사람이 예수에게 모여드는 군중을 피해서 주님의 관심을 더 끌려는 기대로 이 조찬에 왔다는 것을 아주 잘 알았습니다. 이 사람은 당시에 기적이 거의 행해지지 않는다고 알았지만, 자신의 딱한 처지가 아마 주님의 연민(憐愍)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자기 심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가 잘못 생각하지 않은 것은, 그가 방에 들어가자, 예수와 예루살렘의 독선적인 바리새인 모두 그를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은 그런 사람이 방에 들어오도록 허용한 것에 주저하지 않고 분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 병자를 바라보며, 너무 따스한 미소를 보내서, 그가 다가와 바닥에 앉았습니다. 식사가 끝날 때, 주께서 동료 손님들을 둘러본 다음, 수종에 걸린 사람을 유심히 보신 후 말했습니다. “내 친구들, 이스라엘의 선생과 학식 있는 율법사들이여, 내가 너희에게 질문이 있노라. 안식일에 병으로 앓는 자를 고치는 것이 합법적이냐, 아니냐?”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자들은 예수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들은 잠자코 있으면서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눅14:2-4a).
167:1.5 (1834.3) Then went Jesus over to where the sick man sat and, taking him by the hand, said: “Arise and go your way. You have not asked to be healed, but I know the desire of your heart and the faith of your soul.” Before the man left the room, Jesus returned to his seat and, addressing those at the table, said: “Such works my Father does, not to tempt you into the kingdom, but to reveal himself to those who are already in the kingdom. You can perceive that it would be like the Father to do just such things because which one of you, having a favorite animal that fell in the well on the Sabbath day, would not go right out and draw him up?” And since no one would answer him, and inasmuch as his host evidently approved of what was going on, Jesus stood up and spoke to all present: “My brethren, when you are bidden to a marriage feast, sit not down in the chief seat, lest, perchance, a more honored man than you has been invited, and the host will have to come to you and request that you give your place to this other and honored guest. In this event, with shame you will be required to take a lower place at the table. When you are bidden to a feast, it would be the part of wisdom, on arriving at the festive table, to seek for the lowest place and take your seat therein, so that, when the host looks over the guests, he may say to you: ‘My friend, why sit in the seat of the least? come up higher’; and thus will such a one have glory in the presence of his fellow guests. Forget not, every one who exalts himself shall be humbled, while he who truly humbles himself shall be exalted. Therefore, when you entertain at dinner or give a supper, invite not always your friends, your brethren, your kinsmen, or your rich neighbors that they in return may bid you to their feasts, and thus will you be recompensed. When you give a banquet, sometimes bid the poor, the maimed, and the blind. In this way you shall be blessed in your heart, for you well know that the lame and the halt cannot repay you for your loving ministry.” 그다음 예수께서 병자가 앉은 곳으로 가서, 그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일어나 네 길을 가라. 네가 치유를 요청하지 않았으나, 나는 네 마음의 소망과 네 혼의 신앙을 알고 있노라.” 그 사람이 방을 떠나기 전에, 예수께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식탁에 있는 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가 하는 이런 일은 너희를 하느님 나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느님 나라에 있는 자들에게 자신을 계시하는 것이니라. 너희 중 하나가 아끼던 짐승이 안식일에, 우물에 빠지면 바로 나가 그것을 끌어올리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버지와 같다는 것을 너희가 알아차릴 수 있느니라.” 그에게 아무도 대답하려 하지 않았고, 집주인이 무슨 일이 있는지 분명히 좋게 생각하자, 예수께서 일어나 참석한 모든 자에게 말했습니다. “내 형제들이여, 너희가 혼인 잔치에 초대받을 때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아마 너희보다 더 존경받는 사람이 잔치에 초대받아, 집주인이 너희에게 와서 이렇게 존경받는 다른 손님에게 너희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라. 이런 경우, 너희는 부끄럽게 식탁의 낮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 너희가 잔치에 초대받아 잔치 식탁에 이르면 가장 낮은 자리를 찾아서 거기에 너희 자리를 잡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되리니, 집주인이 손님들을 살펴보고 그가 너희에게 ‘내 친구여, 왜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가? 더 높이 올라오라.’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렇게 그런 사람은 그의 동료 손님들 앞에서 영광을 누릴 것이라. 잊지 말지니, 자기를 높이는 자마다 낮아지고 진실로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만찬에 초대하거나 저녁 식사를 대접할 때, 언제나 너희 친구, 너희 형제, 너희 친척이나 너희 부유한 이웃을 초대하지 말지니, 그들이 답례로 너희를 그들의 잔치에 초대하여 너희는 보상받게 되리라. 너희가 연회를 베풀 때, 때로는 가난한 자, 장애인과 시각 장애인들을 초대하라. 이렇게 하면 너희는 너희 심정에 복을 받으리니, 장애인과 저는 자들은 너희의 애정 어린 봉사에 너희에게 보답할 수 없다는 것을 너희가 잘 알기 때문이라(눅14:4b-14a).”
2. Parable of the Great Supper 만찬의 비유
230625 초대장의 의미 눅14:15-24 15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167:2.1 (1835.1) As Jesus finished speaking at the breakfast table of the Pharisee, one of the lawyers present, desiring to relieve the silence, thoughtlessly said: “Blessed is he who shall eat bread in the kingdom of God” — that being a common saying of those days. And then Jesus spoke a parable, which even his friendly host was compelled to take to heart. He said: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아침 식탁에서 말씀을 마치자, 참석한 율법사 중 하나가 침묵에서 누그러뜨리려고 무심코 “하느님의 나라에서 빵을 먹을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당시의 흔히 하는 말을 했습니다(눅14:15). 그러자 예수께서 그를 지지하던 집주인도 마음에 새기지 않을 수 없는 비유를 하셨습니다.
167:2.2 (1835.2) “A certain ruler gave a great supper, and having bidden many guests, he dispatched his servants at suppertime to say to those who were invited, ‘Come, for everything is now ready.’ And they all with one accord began to make excuses. The first said, ‘I have just bought a farm, and I must needs go to prove it; I pray you have me excused.’ Another said, ‘I have bought five yoke of oxen, and I must go to receive them; I pray you have me excused.’ And another said, ‘I have just married a wife, and therefore I cannot come.’ So the servants went back and reported this to their master. When the master of the house heard this, he was very angry, and turning to his servants, he said: ‘I have made ready this marriage feast; the fatlings are killed, and all is in readiness for my guests, but they have spurned my invitation; they have gone every man after his lands and his merchandise, and they even show disrespect to my servants who bid them come to my feast. Go out quickly, therefore, into the streets and lanes of the city, out into the highways and the byways, and bring hither the poor and the outcast, the blind and the lame, that the marriage feast may have guests.’ And the servants did as their lord commanded, and even then there was room for more guests. Then said the lord to his servants: ‘Go now out into the roads and the countryside and constrain those who are there to come in that my house may be filled. I declare that none of those who were first bidden shall taste of my supper.’ And the servants did as their master commanded, and the house was filled.” “어떤 통치자가 만찬을 베풀고, 많은 손님을 초대하여, 저녁 식사 때 자기 하인들을 초청한 자들에게 보내서 ‘이제 준비가 다 되었으니 오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핑계를 대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내가 막 농장을 샀으니 확인하러 가봐야 합니다. 너그러이 봐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내가 소 다섯 멍에를 샀으니 받으러 가야 합니다. 너그러이 봐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내가 막 아내를 맞이했으니 갈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인들이 돌아와 주인에게 이런 일을 보고했습니다. 집주인이 이런 일을 듣자, 크게 노하여 자기 하인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내가 이 결혼 잔치를 준비하여 살찌운 가축들을 잡고 내 손님들을 위해 모두 준비했으나 그들이 내 초청을 거절했도다. 그들은 각자 자기 땅을 얻으러, 자기 물품을 거래하러 갔고, 내 잔치에 오도록 초청했던 내 하인들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이기까지 하는구나. 그러니 빨리 도시의 중심가와 골목길로, 큰길과 샛길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버림받은 자들, 시각 장애인들과 저는 자들을 여기로 데려와 결혼 잔치에 손님들이 있게 하라.’ 그러자 하인들이 자기 주인의 명령대로 했으나 그때까지도 손님을 위한 자리가 더 있었더라. 그때 주인이 자기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길거리와 시골로 나가서 거기에 있는 자들을 강권(强勸 오지 않을 수 없게)하여 내 집을 채우라. 내가 선언하노니, 먼저 초대받은 자 중 누구도 내 만찬을 맛보지 못할 것이라.’ 하인들이 주인의 명령대로 했더니, 집이 가득하더라(눅14:16-24).”
167:2.3 (1835.3) And when they heard these words, they departed; every man went to his own place. At least one of the sneering Pharisees present that morning comprehended the meaning of this parable, for he was baptized that day and made public confession of his faith in the gospel of the kingdom. Abner preached on this parable that night at the general council of believers. 그들은 이런 말을 듣고 떠나 각자 자기 자리로 갔습니다. 적어도 그날 아침에 참석하여 비웃던 바리새인 중 하나가 이 비유의 의미를 파악했는데, 그는 그날 세례를 받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자기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너는 그날 밤 신자들의 총회에서 이 비유로 설교했습니다.
167:2.4 (1835.4) The next day all of the apostles engaged in the philosophic exercise of endeavoring to interpret the meaning of this parable of the great supper. Though Jesus listened with interest to all of these differing interpretations, he steadfastly refused to offer them further help in understanding the parable. He would only say, “Let every man find out the meaning for himself and in his own soul.” 다음날(AD 30, 2. 26 일요일) 모든 사도가 만찬의 이 비유의 의미를 해석하려고 애쓰는 철학적 과제에 참여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서로 다른 모든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였지만, 그는 끝까지 그들이 비유를 이해하는데 더 이상 도움을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각자 자신과 자신의 혼(魂)으로 그 의미를 알아내라.”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3. The Woman with the Spirit of Infirmity 허약한 기질의 여인
230702 자유와 생명은 무시로 필요한 것 눅13:10-17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167:3.1 (1835.5) Abner had arranged for the Master to teach in the synagogue on this Sabbath day, the first time Jesus had appeared in a synagogue since they had all been closed to his teachings by order of the Sanhedrin. At the conclusion of the service Jesus looked down before him upon an elderly woman who wore a downcast expression, and who was much bent in form. This woman had long been fear-ridden, and all joy had passed out of her life. As Jesus stepped down from the pulpit, he went over to her and, touching her bowed-over form on the shoulder, said: “Woman, if you would only believe, you could be wholly loosed from your spirit of infirmity.” And this woman, who had been bowed down and bound up by the depressions of fear for more than eighteen years, believed the words of the Master and by faith straightened up immediately. When this woman saw that she had been made straight, she lifted up her voice and glorified God. 아브너는 이 안식일(AD30. 2. 25 토)에 주(主)님이 회당에서 가르치시도록 준비했는데, 산헤드린의 명령으로 회당에서 그의 가르침을 모두 닫은 이후 예수께서 처음 회당에 나타났습니다. 예배를 마칠 때 예수께서 우울(憂鬱)한 표정으로 자신 앞에 있는, 몸이 많이 굽은 노년의 여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이 여인은 오랫동안 두려움에 떨었고 삶에서 모든 기쁨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설교단에서 내려오자, 그녀에게 건너가서 그녀의 구부러진 형태의 어깨에 손을 대며 말했습니다. “여인아, 네가 단지 믿고자 하면, 너의 허약한 기질에서 완전히 풀려날 수 있으리라.” 그러자 18년 이상 두려움의 우울증으로 풀이 죽어 묶여 있던 이 여인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신앙으로 즉시 곧게 펴졌습니다. 이 여인은 꼿꼿해진 자신을 보자, 목소리를 높여 하느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눅13:10-13).
167:3.2 (1836.1) Notwithstanding that this woman’s affliction was wholly mental, her bowed-over form being the result of her depressed mind, the people thought that Jesus had healed a real physical disorder. Although the congregation of the synagogue at Philadelphia was friendly toward the teachings of Jesus, the chief ruler of the synagogue was an unfriendly Pharisee. And as he shared the opinion of the congregation that Jesus had healed a physical disorder, and being indignant because Jesus had presumed to do such a thing on the Sabbath, he stood up before the congregation and said: “Are there not six days in which men should do all their work? In these working days come, therefore, and be healed, but not on the Sabbath day.” 이 여인의 고통은 완전히 정신적인 것으로, 그녀의 구부러진 형태는 우울한 마음의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께서 실제로 육체적 장애를 고쳤다고 생각했습니다. 필라델피아 회당의 회중은 예수의 가르침을 찬성했지만, 회당장의 대표는 우호적이지 않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육체적 장애를 고쳤다는 회중의 의견을 나누다가 예수께서 감히 안식일에 그런 일을 했다는 것 때문에 분개하여, 회중 앞에 일어서서 그가 말했습니다. “사람이 모두 일해야 하는 날이 엿새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일하는 날에 와서 고침을 받으라, 그러나 안식일에는 아니라(눅13:14).”
167:3.3 (1836.2) When the unfriendly ruler had thus spoken, Jesus returned to the speaker’s platform and said: “Why play the part of hypocrites? Does not every one of you, on the Sabbath, loose his ox from the stall and lead him forth for watering? If such a service is permissible on the Sabbath day, should not this woman, a daughter of Abraham who has been bound down by evil these eighteen years, be loosed from this bondage and led forth to partake of the waters of liberty and life, even on this Sabbath day?” And as the woman continued to glorify God, his critic was put to shame, and the congregation rejoiced with her that she had been healed. 적개심을 가진 회당장이 이렇게 말하자, 예수께서 연설자의 연단으로 돌아가 말했습니다. “왜 위선자 측의 태도를 취하느냐? 안식일에 너희 모두 외양간에서 자기 소를 풀어 물을 먹이러 끌어내지 않느냐? 안식일에 그런 수고가 허용된다면, 이렇게 18년간 불행하게 묶여 있던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인이 이런 안식일에라도 이런 속박에서 풀려나서 자유와 생명의 물을 마시도록 이끌려 나와야 하지 않느냐?” 그 여인이 하느님께 계속 영광을 돌리자, 예수님을 혹평하던 자는 면목을 잃었고, 회중은 여인이 치유된 것을 그녀와 함께 기뻐했습니다(눅13:15-17).
167:3.4 (1836.3) As a result of his public criticism of Jesus on this Sabbath the chief ruler of the synagogue was deposed, and a follower of Jesus was put in his place. 이 안식일에 그가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결과로 회당장의 대표는 해임되었고, 예수의 추종자가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167:3.5 (1836.4) Jesus frequently delivered such victims of fear from their spirit of infirmity, from their depression of mind, and from their bondage of fear. But the people thought that all such afflictions were either physical disorders or possession of evil spirits. 예수는 종종 그런 두려움의 희생자들을 그들의 허약한 기질에서, 그들의 우울한 마음에서, 그들 두려움의 속박에서 구해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모든 고통은 육체적 장애나 악령에 사로잡힌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67:3.6 (1836.5) Jesus taught again in the synagogue on Sunday, and many were baptized by Abner at noon on that day in the river which flowed south of the city. On the morrow Jesus and the ten apostles would have started back to the Pella encampment but for the arrival of one of David’s messengers, who brought an urgent message to Jesus from his friends at Bethany, near Jerusalem. 예수께서 일요일(AD30. 2.26)에 다시 회당에서 가르쳤고, 많은 사람이 그날 정오에 도시의 남쪽으로 흐르는 강에서 아브너로부터 세례를 받았습니다. 다음날 예수와 열 명의 사도는 펠라 야영지로 돌아가기 시작하려 했으나 다윗 메신저 중 하나가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 있는 그의 친구들로부터 예수께 긴급 메시지를 가지고 도착했습니다.
4. The Message from Bethany 베다니에서 온 메시지
230709 예수 믿는 새 근거를 찾으라 요11:1-16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167:4.1 (1836.6) Very late on Sunday night, February 26, a runner from Bethany arrived at Philadelphia, bringing a message from Martha and Mary which said, “Lord, he whom you love is very sick.” This message reached Jesus at the close of the evening conference and just as he was taking leave of the apostles for the night. At first Jesus made no reply. There occurred one of those strange interludes, a time when he appeared to be in communication with something outside of, and beyond, himself. And then, looking up, he addressed the messenger in the hearing of the apostles, saying: “This sickness is really not to the death. Doubt not that it may be used to glorify God and exalt the Son.” (AD30) 2월 26일 아주 늦은 일요일 밤에 베다니에서 온 전달자가 필라델피아에 도착하여 “주여, 당신이 사랑하는 그가 매우 아픕니다.”라고 말한 마르다와 마리아의 메시지를 가져왔습니다. 이 메시지는 저녁 회의가 끝나서 예수께서 밤에 사도들에게 막 작별하고 있을 때 예수께 전해졌습니다. 예수는 처음에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자기 외부 및 그 너머의 무언가와 대화하듯이 보였던 그런 낯선 막간의 시간 중 하나가 일어났습니다. 그런 후 그는, 올려다보며, 사도들이 듣는 가운데 메신저에게 “이 병은 실제로 죽음에 이르지 않느니라. 그것이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고 아들을 높이기 위해 사용될 수 있음을 의심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요11:1-4).
167:4.2 (1837.1) Jesus was very fond of Martha, Mary, and their brother, Lazarus; he loved them with a fervent affection. His first and human thought was to go to their assistance at once, but another idea came into his combined mind. He had almost given up hope that the Jewish leaders at Jerusalem would ever accept the kingdom, but he still loved his people, and there now occurred to him a plan whereby the scribes and Pharisees of Jerusalem might have one more chance to accept his teachings; and he decided, his Father willing, to make this last appeal to Jerusalem the most profound and stupendous outward working of his entire earth career. The Jews clung to the idea of a wonder-working deliverer. And though he refused to stoop to the performance of material wonders or to the enactment of temporal exhibitions of political power, he did now ask the Father’s consent for the manifestation of his hitherto unexhibited power over life and death. 예수께서 마르다, 마리아와 그들의 형제 나사로를 매우 좋아했습니다(요11:5). 그는 열렬한 애정으로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인간적 생각은 즉시 그들을 도우러 가는 것이었으나, 그의 결합한 마음에 다른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 지도자들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희망을 거의 포기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 백성을 사랑했고, 예루살렘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기회를 한 번 더 가질 수도 있는 계획이 그에게 이제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아버지가 별일이 없다면, 예루살렘에 대한 이 마지막 호소를 자기의 전(全) 지상 생애에서 가장 뜻깊고 엄청난 외적 활동이 되도록 정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기적을 행하는 구원자의 개념에 집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물질적 이적의 실행이나 정치적 권력을 일시적으로 과시(誇示)해서 보일 정도로 비굴해지지 않았으나, 그는 이제 지금까지 드러내지 않은 생살권(生殺權 살리고 죽이는 권리)을 나타내기 위해 아버지의 승낙(承諾)을 구했습니다.
167:4.3 (1837.2) The Jews were in the habit of burying their dead on the day of their demise; this was a necessary practice in such a warm climate. It often happened that they put in the tomb one who was merely comatose, so that on the second or even the third day, such a one would come forth from the tomb. But it was the belief of the Jews that, while the spirit or soul might linger near the body for two or three days, it never tarried after the third day; that decay was well advanced by the fourth day, and that no one ever returned from the tomb after the lapse of such a period. And it was for these reasons that Jesus tarried yet two full days in Philadelphia before he made ready to start for Bethany. 유대인들은 죽은 자들을 죽은 날에 묻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렇게 온난한 기후에서 필요한 관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혼수상태의 사람을 무덤에 두어서 둘째 날 혹은 셋째 날에도, 그런 사람이 종종 무덤에서 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영(靈)이나 혼(魂)이 이삼일 동안 육체 곁에 서성거리지만, 삼일 이후에 절대로 지체하지 않고, 넷째 날에 부패가 진행되기 쉬워서, 그런 기간이 지난 후 절대로 아무도 무덤에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께서 베다니로 출발할 준비를 하기 전에, 필라델피아에서 꼬박 이틀을 (AD30. 2월 28일 화요일까지) 더 머물렀습니다(요11:6).
167:4.4 (1837.3) Accordingly, early on Wednesday morning he said to his apostles: “Let us prepare at once to go into Judea again.” And when the apostles heard their Master say this, they drew off by themselves for a time to take counsel of one another. James assumed the direction of the conference, and they all agreed that it was only folly to allow Jesus to go again into Judea, and they came back as one man and so informed him. Said James: “Master, you were in Jerusalem a few weeks back, and the leaders sought your death, while the people were minded to stone you. At that time you gave these men their chance to receive the truth, and we will not permit you to go again into Judea.” 따라서 수요일 아침 일찍 그가 자기 사도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즉시 다시 유대로 가기 위해 준비하자.” 사도들은 주님의 이 말을 듣자, 그들은 잠시 자기들끼리 물러나 서로 의논했습니다. 야고보가 회의를 통솔했으며, 그들은 예수께서 다시 유대로 들어가도록 놔두는 것은, 어리석을 뿐이라고 모두 동감하여, 그들은 한 사람처럼 돌아와 그에게 그렇게 알렸습니다. 야고보가 말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지난번(장막절) 몇 주간 예루살렘에 계셨을 때 지도자들이 당신을 죽이려 했고, 사람들은 당신을 돌로 쳐서 죽이려 했습니다(162.7.6). 그때 당신께서 이 사람들에게 진리를 받아들일 기회를 주셨으니, 우리는 당신께서 다시 유대로 들어가도록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요11:7-8).”
167:4.5 (1837.4) Then said Jesus: “But do you not understand that there are twelve hours of the day in which work may safely be done? If a man walks in the day, he does not stumble inasmuch as he has light. If a man walks in the night, he is liable to stumble since he is without light. As long as my day lasts, I fear not to enter Judea. I would do one more mighty work for these Jews; I would give them one more chance to believe, even on their own terms — conditions of outward glory and the visible manifestation of the power of the Father and the love of the Son. Besides, do you not realize that our friend Lazarus has fallen asleep, and I would go to awake him out of this sleep!” 그러자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너희는 하루에 안전하게 일할 수도 있는 시간으로 열두 시간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그가 빛이 있어서, 넘어지지 않느니라. 사람이 밤에 다니면 그는 빛이 없어서, 넘어지기 쉬우니라. 내 일이 지속되는 한 내가 유대로 들어가기가 두렵지 않도다. 나는 이런 유대인들을 위해 한 번 더 강력한 일을 행할 것이라. 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방식으로 – 외적 영광의 현상과 아버지의 권능과 아들의 사랑을 눈으로 보기까지, 한 번 더 믿을 기회를 주려고 하노라. 게다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내가 가서 그를 이런 잠에서 깨우려 한다는 것을 너희가 깨닫지 못하느냐(요11:9-11)!”
167:4.6 (1837.5) Then said one of the apostles: “Master, if Lazarus has fallen asleep, then will he the more surely recover.” It was the custom of the Jews at that time to speak of death as a form of sleep, but as the apostles did not understand that Jesus meant that Lazarus had departed from this world, he now said plainly: “Lazarus is dead. And I am glad for your sakes, even if the others are not thereby saved, that I was not there, to the end that you shall now have new cause to believe in me; and by that which you will witness, you should all be strengthened in preparation for that day when I shall take leave of you and go to the Father.” 그러자 사도 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주여, 나사로가 잠들었으면 더 확실하게 회복될 것입니다.” 당시 죽음을 수면의 형태로 말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관습이었지만, 나사로가 이 세상을 떴다는 뜻으로 예수께서 말한 것을, 사도들이 이해하지 못해서, 그가 이제 분명히 말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다른 이들이 그로 인해 구원받지 못할지라도, 너희가 이제 나를 믿을 새로운 근거를 가지도록, 내가 거기에 없었음을, 너희를 위해 내가 기뻐하노라. 그리고 너희가 눈앞에서 볼 것으로 인해, 내가 너희를 떠나 아버지께로 갈 그날을 대비하여 너희 모두 힘을 얻어야 하리라(요11:12-15a).”
167:4.7 (1838.1) When they could not persuade him to refrain from going into Judea, and when some of the apostles were loath even to accompany him, Thomas addressed his fellows, saying: “We have told the Master our fears, but he is determined to go to Bethany. I am satisfied it means the end; they will surely kill him, but if that is the Master’s choice, then let us acquit ourselves like men of courage; let us go also that we may die with him.” And it was ever so; in matters requiring deliberate and sustained courage, Thomas was always the mainstay of the twelve apostles. 그들은 그가 유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권유할 수 없었고, 일부 사도는 그와 동행하기조차 싫어하자, 도마가 자기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얘기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우리 두려움을 말했으나 그는 베다니에 가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나는 그것이 끝을 뜻한다고 확신합니다. 그들은 분명히 그를 죽일 것이지만, 그것이 주님의 선택이라면 용감한 사람들처럼 우리도 처신합시다. 우리도 그와 함께 죽을 수 있도록 함께 갑시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습니다. 신중하고 지속된 용기가 필요한 문제에서, 도마는 언제나 열두 사도의 중심이었습니다(요11:15b-16).
5. On the Way to Bethany 베다니로 가는 길에서
230716 구원의 조건과 영예로운 결혼 눅18:9-14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67:5.1 (1838.2) On the way to Judea Jesus was followed by a company of almost fifty of his friends and enemies. At their noon lunchtime, on Wednesday, he talked to his apostles and this group of followers on the “Terms of Salvation,” and at the end of this lesson told the parable of the Pharisee and the publican (a tax collector). Said Jesus: “You see, then, that the Father gives salvation to the children of men, and this salvation is a free gift to all who have the faith to receive sonship in the divine family. There is nothing man can do to earn this salvation. Works of self-righteousness cannot buy the favor of God, and much praying in public will not atone for lack of living faith in the heart. Men you may deceive by your outward service, but God looks into your souls. What I am telling you is well illustrated by two men who went into the temple to pray, the one a Pharisee and the other a publican. The Pharisee stood and prayed to himself: ‘O God, I thank you that I am not like the rest of men, extortioners, unlearned, unjust, adulterers, or even like this publican. I fast twice a week; I give tithes of all that I get.’ But the publican, standing afar off, would not so much as lift his eyes to heaven but smote his breast, saying, ‘God be merciful to me a sinner.’ I tell you that the publican went home with God’s approval rather than the Pharisee, for every one who exalts himself shall be humbled, but he who humbles himself shall be exalted.” 유대로 가는 길에 50명 가까운 예수의 친구와 대적들 일행이 예수를 따랐습니다. 수요일(AD30. 3.1) 정오 점심시간에 그가 자기 사도들과 이렇게 따르는 무리에게 “구원의 조건”에 대해 말했고, 이 교훈의 끝에 바리새인과 세리(稅吏 세금 징수관)의 비유를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사람의 자녀들에게 구원을 주시고, 이 구원은 신적 가족으로 자녀의 신분을 받아들이는 신앙을 가진 모두에게 무료로 주는 선물임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 구원을 얻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느니라. 독선적(獨善的 혼자만이 옳다는) 행위로 하느님의 은혜를 살 수 없으며, 공개적인 많은 기도로 심정 안에 살아 있는 신앙이 없는 것을 보태어 채울 수 없느니라. 너희가 외적 봉사로 사람들을 속일 수도 있지만, 하느님은 너희 혼(魂)들의 속을 들여다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성전으로 기도하러 들어간 두 사람, 바리새인 하나와 다른 세리 하나로 잘 설명되느니라. 바리새인은 서서 자신에게 기도했느니라. ‘오 하느님, 나는 다른 사람들, 강탈자, 무식한 자, 불의한 자, 간음한 자, 이 세리와도 같지 않음을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가 얻는 모든 것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떨어져 서서 눈을 하늘로 들지도 못하고 자기 가슴을 치며 ‘하느님이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말했더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바리새인보다 오히려 세리가 하느님의 인정을 받고 집으로 갔으니, 자신을 높이는 자마다 낮아질 것이지만, 자신을 낮추는 그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니라(눅18:9-14).”
167:5.2 (1838.3) That night, in Jericho, the unfriendly Pharisees sought to entrap the Master by inducing him to discuss marriage and divorce, as did their fellows one time in Galilee, but Jesus artfully avoided their efforts to bring him into conflict with their laws concerning divorce. As the publican and the Pharisee illustrated good and bad religion, their divorce practices served to contrast the better marriage laws of the Jewish code with the disgraceful laxity of the Pharisaic interpretations of these Mosaic divorce statutes. The Pharisee judged himself by the lowest standard; the publican squared himself by the highest ideal. Devotion, to the Pharisee, was a means of inducing self-righteous inactivity and the assurance of false spiritual security; devotion, to the publican, was a means of stirring up his soul to the realization of the need for repentance, confession, and the acceptance, by faith, of merciful forgiveness. The Pharisee sought justice; the publican sought mercy. The law of the universe is: Ask and you shall receive; seek and you shall find. 그날 밤 여리고에서 적개심이 있는 바리새인들이 갈릴리에서 한때 자기 동료들이 했듯이(147.6.4) 결혼과 이혼에 관해 의논하도록 주님을 꾀어서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지만(마19:3, 막10:2), 예수는 이혼에 관한 그들의 율법과 충돌시키려는 그들의 노력을 솜씨 좋게 피했습니다. 세리와 바리새인이 선한 종교와 나쁜 종교의 실례가 되었듯이, 그들의 이혼 관습은 유대 율법의 더 나은 결혼 법규와 이런 모세의 이혼법령에 대해 바리새(형식주의 및 위선)적으로 해석하는 수치스러운 방종을 대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가장 낮은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했고, 세리는 가장 높은 이상(理想)에 자신을 맞추었습니다. 바리새인에게 헌신은 독선적(獨善的 자기 혼자만이 옳다는) 게으름과 거짓된 영적 방심의 확신으로 이끄는 수단이었습니다. 세리에게 헌신은 회개와 고백 및 신앙으로 자비로운 용서를 받아들일 필요를 깨닫도록 자기 혼(魂)을 일으키는 수단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정의를 추구했고 세리는 자비를 추구했습니다. 우주의 법칙은 이렇습니다. 구하면 너희가 받을 것이라. 찾으면 너희가 찾을 것이라(마7:7-8, 눅11:9-10).
167:5.3 (1838.4) Though Jesus refused to be drawn into a controversy with the Pharisees concerning divorce, he did proclaim a positive teaching of the highest ideals regarding marriage. He exalted marriage as the most ideal and highest of all human relationships. Likewise, he intimated strong disapproval of the lax and unfair divorce practices of the Jerusalem Jews, who at that time permitted a man to divorce his wife for the most trifling of reasons, such as being a poor cook, a faulty housekeeper, or for no better reason than that he had become enamored of a better-looking woman. 예수는 이혼에 관해 바리새인과 논쟁에 말려들기를 물리쳤지만, 결혼에 관해 최고 이상(理想)의 긍정적 가르침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결혼을 모든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이상(理想)적인 최고로 높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는 당시 요리에 서투르고, 살림을 잘 꾸리지 못한다는 아주 하찮은 이유나 아무 이유 없이 남편이 더 잘생긴 여성에게 반했다고, 남성이 자기 아내와 이혼하도록 허용했던, 예루살렘 유대인의 태만하고 부당한 이혼 관행에 대해 강한 반대를 드러냈습니다.
167:5.4 (1839.1) The Pharisees had even gone so far as to teach that divorce of this easy variety was a special dispensation granted the Jewish people, particularly the Pharisees. And so, while Jesus refused to make pronouncements dealing with marriage and divorce, he did most bitterly denounce these shameful floutings of the marriage relationship and pointed out their injustice to women and children. He never sanctioned any divorce practice which gave man any advantage over woman; the Master countenanced only those teachings which accorded women equality with men.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쉬운 다양한 이혼이 유대인, 특히 바리새인들에게 허락된 특별 섭리라고 가르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결혼과 이혼에 관해 선언하기를 거절했지만, 그는 이렇게 못된 경멸적 태도의 결혼 관계를 가장 통렬히 공격했고 여성과 자녀들에 대한 그들의 불법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유리한 어떤 이혼 관행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대등한 입장을 주는 그런 가르침들만 지지했습니다.
167:5.5 (1839.2) Although Jesus did not offer new mandates governing marriage and divorce, he did urge the Jews to live up to their own laws and higher teachings. He constantly appealed to the written Scriptures in his effort to improve their practices along these social lines. While thus upholding the high and ideal concepts of marriage, Jesus skillfully avoided clashing with his questioners about the social practices represented by either their written laws or their much-cherished divorce privileges. 예수께서 결혼과 이혼을 결정하는 새 명령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율법과 더 높은 가르침들에 이르기까지 살도록 촉구했습니다. 그는 이런 사회적 방침을 따라 그들의 관행을 개선하려는 노력으로 끊임없이 기록된 성서에 호소했습니다. 이렇게 높고 이상적(理想的)인 결혼 개념을 지지하면서, 예수는 그들의 성문법이나 그들에게 매우 소중한 이혼 특권으로 주장하는 사회적 관행에 대해 자신에게 질문하는 자들과 충돌하는 것을 능숙하게 피했습니다.
167:5.6 (1839.3) It was very difficult for the apostles to understand the Master’s reluctance to make positive pronouncements relative to scientific,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problems. They did not fully realize that his earth mission was exclusively concerned with revelations of spiritual and religious truths. 사도들은 과학적, 사회적, 경제적 및 정치적 문제들에 관해 단정적으로 발표하기를 꺼리는 주님을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지상 사명이 오로지 영적, 종교적 진리의 계시에 관련된다는 것을 충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167:5.7 (1839.4) After Jesus had talked about marriage and divorce, later on that evening his apostles privately asked many additional questions, and his answers to these inquiries relieved their minds of many misconceptions. At the conclusion of this conference Jesus said: “Marriage is honorable and is to be desired by all men. The fact that the Son of Man pursues his earth mission alone is in no way a reflection on the desirability of marriage. That I should so work is the Father’s will, but this same Father has directed the creation of male and female, and it is the divine will that men and women should find their highest service and consequent joy in the establishment of homes for the reception and training of children, in the creation of whom these parents become copartners with the Makers of heaven and earth. And for this caus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mother and shall cleave to his wife, and they two shall become as one.” 예수께서 결혼과 이혼에 대해 말씀한 후, 그날 저녁 늦게 그의 사도들이 은밀히 여러 추가 질문을 했고, 이런 질문들에 대한 그의 대답으로 여러 그릇된 생각들에 대한 그들의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런 회의의 마지막에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결혼은 영예로운 것이며 모든 사람이 바랄 것이니라.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가 홀로 자기 지상 사명을 추구하는 사실은 결혼의 바람직함에 대한 반영이 절대로 아니니라. 내가 그렇게 일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지만, 바로, 이 아버지는 남성과 여성의 창조를 지시하셨고, 남성들과 여성들이 자녀들을 받아들여 훈련하는 가정을 세우면서 그들의 최고 봉사와 결과로 일어나는 기쁨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 신적 뜻이며 이런 부모들은 그들을 창조하면서 하늘과 땅의 조물주들과 협조자가 되느니라. 그리고 이런 이유로 남자는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서 자기 아내에게 연합(충실히 대)하여 그들 둘이 하나로 될 것이라(창2:24, 마19:4-5, 막10:6-8, 엡5:31).”
167:5.8 (1839.5) And in this way Jesus relieved the minds of the apostles of many worries about marriage and cleared up many misunderstandings regarding divorce; at the same time he did much to exalt their ideals of social union and to augment their respect for women and children and for the home. 그리고 이렇게 예수는 결혼에 대해 많이 근심하는 사도들의 마음을 안심시켰고 이혼에 관한 여러 오해를 풀었습니다. 동시에 사회적 연합에 대한 그들의 이상(理想)을 높이고 여성과 자녀들, 가정에 대한 그들의 존중을 증대하려고 많이 진력했습니다.
6. Blessing the Little Children 어린이들을 축복함
230723 경배의 체질로 성장하기 막10:13-16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167:6.1 (1839.6) That evening Jesus’ message regarding marriage and the blessedness of children spread all over Jericho, so that the next morning, long before Jesus and the apostles prepared to leave, even before breakfast time, scores of mothers came to where Jesus lodged, bringing their children in their arms and leading them by their hands, and desired that he bless the little ones. When the apostles went out to view this assemblage of mothers with their children, they endeavored to send them away, but these women refused to depart until the Master laid his hands on their children and blessed them. And when the apostles loudly rebuked these mothers, Jesus, hearing the tumult, came out and indignantly reproved them, saying: “Suffer little children to come to me; forbid them not, for of such is the kingdom of heaven. Verily, verily, I say to you, whosoever receives not the kingdom of God as a little child shall hardly enter therein to grow up to the full stature of spiritual manhood.” 그날 저녁(AD30. 3.1 수) 결혼과 어린이들의 행복에 관한 예수의 메시지가 온 여리고에 퍼져서, 다음 날 아침, 예수와 사도들이 떠나려고 준비하기 훨씬 이전, 심지어 아침 식사 시간 전에, 수십 명의 어머니가 자녀들을 안고 그들의 손을 이끌며 예수께서 묵은 곳에 와서 그가 그 어린이들을 축복하기를 원했습니다. 사도들이 밖으로 나가 이렇게 모인 어머니와 자녀들을 보고 그들을 내쫓으려 했으나, 이 여성들은 주께서 자기 자녀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하기까지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이 어머니들을 큰 소리로 꾸짖자, 소동을 들은 예수께서 나와 성을 내는 기색으로 그들을 나무라며 말했습니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도록 하고 그들을 금하지 말지니, 하늘나라가 그런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어린이처럼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누구나 도저히 그 안에 들어가 영적으로 완전히 장성한 수준으로 자라지 못할 것이라(마19:13-14, 막10:13-15, 눅18:15-17).”
167:6.2 (1840.1) And when the Master had spoken to his apostles, he received all of the children, laying his hands on them, while he spoke words of courage and hope to their mothers. 주께서 자기 사도들에게 말한 뒤 곧 모든 어린이를 맞아들이며 그들에게 손을 얹으면서 그 어머니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말씀을 했습니다(마19:15, 막10:16).
167:6.3 (1840.2) Jesus often talked to his apostles about the celestial mansions and taught that the advancing children of God must there grow up spiritually as children grow up physically on this world. And so does the sacred oftentimes appear to be the common, as on this day these children and their mothers little realized that the onlooking intelligences of Nebadon beheld the children of Jericho playing with the Creator of a universe. 예수는 자주 천상의 저택들에 대해 자기 사도들에게 말했고,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성장하듯이, 하느님의 진보하는 자녀들은 거기에서 영적으로 성장해야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관찰하는 네바돈의 지능 존재들이 우주의 창조주와 놀고 있는 여리고의 자녀들을 바라본다고 이날 이런 아이들과 그 어머니들이 조금도 깨닫지 못한 것처럼, 신성한 것은 자주 평범한 듯합니다.
167:6.4 (1840.3) Woman’s status in Palestine was much improved by Jesus’ teaching; and so it would have been throughout the world if his followers had not departed so far from that which he painstakingly taught them. 팔레스타인에서 여성의 지위는 예수의 가르침으로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그의 추종자들이 그가 자신들에게 공들여 가르친 데서 그렇게 멀리 떠나지 않았더라면 전 세계가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167:6.5 (1840.4) It was also at Jericho, in connection with the discussion of the early religious training of children in habits of divine worship, that Jesus impressed upon his apostles the great value of beauty as an influence leading to the urge to worship, especially with children. The Master by precept and example taught the value of worshiping the Creator in the midst of the natural surroundings of creation. He preferred to commune with the heavenly Father amidst the trees and among the lowly creatures of the natural world. He rejoiced to contemplate the Father through the inspiring spectacle of the starry realms of the Creator Sons. 또한 여리고에서, 신적 경배의 체질로 어린이들을 어릴 적에 종교적으로 훈련하는 논의와 관련하여, 예수는 경배의 충동으로 이끄는 영향력으로써 특히 아이들의 경우에 아름다움의 위대한 가치를 자기 사도들에게 심어주었습니다. 주님은 교훈과 모범을 통해 창조의 자연환경 속에서 창조주를 경배하는 가치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나무들에 둘러싸여, 오히려 자연 세계의 초라한 창조물 사이에서 하늘 아버지와 친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창조자 아들들의 별이 총총한 영역의 감동적 장관을 통해 아버지를 깊이 상세하게 곰곰이 생각하기를 기뻐했습니다.
167:6.6 (1840.5) When it is not possible to worship God in the tabernacles of nature, men should do their best to provide houses of beauty, sanctuaries of appealing simplicity and artistic embellishment, so that the highest of human emotions may be aroused in association with the intellectual approach to spiritual communion with God. Truth, beauty, and holiness are powerful and effective aids to true worship. But spirit communion is not promoted by mere massive ornateness and overmuch embellishment with man’s elaborate and ostentatious art. Beauty is most religious when it is most simple and naturelike. How unfortunate that little children should have their first introduction to concepts of public worship in cold and barren rooms so devoid of the beauty appeal and so empty of all suggestion of good cheer and inspiring holiness! The child should be introduced to worship in nature’s outdoors and later accompany his parents to public houses of religious assembly which are at least as materially attractive and artistically beautiful as the home in which he is daily domiciled. 자연의 예배당에서 하느님을 경배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하느님과 영적으로 친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지적 접근과 관련하여 최고의 인간 감정이 일어나도록,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집, 매력적인 간소(簡素 간략하여 꾸밈이 없음)한 예술적 장식의 경배당을 마련해야만 합니다. 진리, 아름다움과 거룩함은 참된 경배에 강력하게 효과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정교한 과시적(誇示的) 예술로 꾸민 거대한 화려함과 너무 많은 장식만으로 영(靈) 친교가 진척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은 가장 꾸밈없이 자연과 같을 때 가장 종교적입니다. 어린이들이 아름다움의 매력이 그토록 전혀 없고 기분 좋게 감동적인 거룩함의 모든 암시적 낌새가 도무지 없는 차갑고 메마른 방에서 공적 예배의 개념을 그들이 처음 대면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애처로운가! 어린이는 자연의 야외에서 경배를 대면해야 하고 나중에는 그가 매일 거주하는 집처럼 적어도 상당히 매력적이며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종교적 모임의 공적 경배당에 자기 부모와 함께 가야 합니다.
7. The Talk About Angels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
230730 혼(魂)을 안내하는 천사(天使) 히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167:7.1 (1840.6) As they journeyed up the hills from Jericho to Bethany, Nathaniel walked most of the way by the side of Jesus, and their discussion of children in relation to the kingdom of heaven led indirectly to the consideration of the ministry of angels. Nathaniel finally asked the Master this question: “Seeing that the high priest is a Sadducee, and since the Sadducees do not believe in angels, what shall we teach the people regarding the heavenly ministers?” Then, among other things, Jesus said: 그들이 여리고에서 베다니로 언덕을 오를 때, 나다니엘은 거의 내내 예수 옆에서 걸었고, 하느님 나라와 관련하여 어린이에 대한 논의가 부차적으로 천사의 사역에 대한 항목으로 이어졌습니다(113.1.1, 마18: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나다니엘이 결국 주님께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사두개인(人)인 것으로 보아서, 사두개인들은 천사를 믿지 않으니, 우리는 하늘 사역자들에 관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요?” 그러자 여러 말 가운데서 예수는 다음의 말도 했습니다.
167:7.2 (1841.1) “The angelic hosts are a separate order of created beings; they are entirely different from the material order of mortal creatures, and they function as a distinct group of universe intelligences. Angels are not of that group of creatures called ‘the Sons of God’ in the Scriptures; neither are they the glorified spirits of mortal men who have gone on to progress through the mansions on high. Angels are a direct creation, and they do not reproduce themselves. The angelic hosts have only a spiritual kinship with the human race. As man progresses in the journey to the Father in Paradise, he does traverse a state of being at one time analogous to the state of the angels, but mortal man never becomes an angel. “천사 무리는 창조된 존재 중 독립된 계층이니라. 그들은 필사 창조물의 물질 계층과 완전히 다르며, 그들은 우주 지능 존재 중 별개의 집단으로 활동하느니라. 천사들은 성서에서 ‘하느님의 아들들’로 불리는 창조물 집단 소속이 아니라. 그들은 높은 곳의 저택들(요14:2)을 통해 계속 진보한 필사자들의 영화(靈化)된 영(靈)들도 아니니라. 천사들은 직접 창조되며 그들은 스스로 생식하지 않느니라. 천사 무리는 인류와 영적(靈的) 유사성(類似性)만 있느니라. 사람이 천국의 아버지를 향한 여정으로 전진할 때, 그는 한때 천사의 상태와 유사(類似)한 존재 상태로 횡단(橫斷)하지만, 필사 사람은 절대로 천사가 되지 않느니라.
167:7.3 (1841.2) “The angels never die, as man does. The angels are immortal unless, perchance, they become involved in sin as did some of them with the deceptions of Lucifer. The angels are the spirit servants in heaven, and they are neither all-wise nor all-powerful. But all of the loyal angels are truly pure and holy. “천사들은 결코, 사람처럼 죽지 않느니라. 천사 중 일부가 루시퍼의 속임수에 휩쓸렸듯이 어쩌다 죄에 말려들지 않는 한, 그들은 불멸이니라. 천사들은 하늘의 영(靈) 봉사자들이며, 그들은 모든 점에서 현명하지도 않고, 전능하지도 않으니라. 그러나 모든 충성스러운 천사들은 참으로 순전(純全)하고 거룩하니라.
167:7.4 (1841.3) “And do you not remember that I said to you once before that, if you had your spiritual eyes anointed, you would then see the heavens opened and behold the angels of God ascending and descending? It is by the ministry of the angels that one world may be kept in touch with other worlds, for have I not repeatedly told you that I have other sheep not of this fold? And these angels are not the spies of the spirit world who watch upon you and then go forth to tell the Father the thoughts of your heart and to report on the deeds of the flesh. The Father has no need of such service inasmuch as his own spirit lives within you. But these angelic spirits do function to keep one part of the heavenly creation informed concerning the doings of other and remote parts of the universe. And many of the angels, while functioning in the government of the Father and the universes of the Sons, are assigned to the service of the human races. When I taught you that many of these seraphim are ministering spirits, I spoke not in figurative language nor in poetic strains. And all this is true, regardless of your difficulty in comprehending such matters. 너희 영적 눈이 기름 부음을 받으면 하늘이 열려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너희가 볼 것이라고 내가 전에 한번 말한 것을 너희가 기억하지 못하느냐(요1:51)? 천사들의 사역으로 한 세계가 다른 세계와 접촉을 유지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이 우리에 속하지 않는 다른 양들이 나에게 있다(165.2.9, 요10:16)고 내가 너희에게 두고두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리고 이런 천사들은 너희를 감시한 다음 너희 심정의 생각을 아버지께 말하고 육체의 행위를 보고하도록 나간 영(靈) 세계의 첩자(諜者)들이 아니라. 아버지는 너희 안에 그 자신의 영(靈)이 살고 계시므로(겔37:14, 마10:20, 고전3:16, 요일3:24, 4:13) 그런 봉사가 필요 없으시니라. 그러나 이런 천사 영(靈)들은 하늘 창조계의 한 부분에게 우주의 다른 먼 부분의 행위에 관해 계속 알려주기 위해 활동하느니라. 그리고 여러 천사는 아버지의 정부(政府)와 아들들의 우주에서 활동하면서, 인류에게 봉사하도록 배정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런 세라핌들은 사역하는 영(靈)들이라고 너희에게 가르쳤을 때(히1:14), 나는 비유적 언어나 시적 가락으로 말하지 않았느니라. 너희가 그런 문제를 이해하기에 어렵더라도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니라.
167:7.5 (1841.4) “Many of these angels are engaged in the work of saving men, for have I not told you of the seraphic joy when one soul elects to forsake sin and begin the search for God? I did even tell you of the joy in the presence of the angels of heaven over one sinner who repents, thereby indicating the existence of other and higher orders of celestial beings who are likewise concerned in the spiritual welfare and with the divine progress of mortal man. 이런 천사 중 여럿이 사람을 구원하는 과업에 관여하는데, 그래서 한 혼(魂)이 죄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하느님을 찾기 시작할 때 천사의 기쁨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지 않았더냐? 내가 회개하는 한 죄인에 대한 하늘 천사들의 기쁨에 대해 심지어 너희에게 말해서 필사 인간의 영적 행복과 신적 진보에 똑같이 관여하는 다른, 더 높은 천상 존재 계층의 존재를 가리켰느니라(눅15:10).
167:7.6 (1841.5) “Also are these angels very much concerned with the means whereby man’s spirit is released from the tabernacles of the flesh and his soul escorted to the mansions in heaven. Angels are the sure and heavenly guides of the soul of man during that uncharted and indefinite period of time which intervenes between the death of the flesh and the new life in the spirit abodes.” “또한 이런 천사들은 사람의 영(靈)이 육체(육신의 장막)에서 벗어나 그의 혼(魂)을 하늘의 저택들로 호송하는 수단과 굉장히 관련되어 있느니라. 천사들은 육신의 죽음과 영(靈) 거처의 새 생명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지의 애매한 기간에 사람 혼(魂)에 대한 확실한 하늘의 안내자들이니라.”
167:7.7 (1841.6) And he would have spoken further with Nathaniel regarding the ministry of angels, but he was interrupted by the approach of Martha, who had been informed that the Master was drawing near to Bethany by friends who had observed him ascending the hills to the east. And she now hastened to greet him. 그리고 그는 나다니엘과 천사들의 사역에 관해 더 이야기하려 했으나, 동쪽에 언덕을 오르시던 주님을 알아본 친구들로부터 그가 베다니로 다가온다고 들었던 마르다가 접근하자 그는 중간에 말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서둘러 그를 맞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