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139 The Twelve Apostles 12 사도들

Paper 139

The Twelve Apostles 12 사도들

1. Andrew, the First Chosen 첫 번째로 선택된 안드레
2. Simon Peter 시몬 베드로
3. James Zebedee 야고보 세베대
4. John Zebedee 요한 세베대
5. Philip the Curious 호기심 많은 빌립
6. Honest Nathaniel 정직한 나다니엘
7. Matthew Levi 마태 레위
8. Thomas Didymus 도마 디디머스
9. and 10. James and Judas Alpheus 야고보와 유다 알패오
11. Simon the Zealot 열심당원 시몬
12. Judas Iscariot 가룟 유다

171203 12 사도들-첫 번째 선택된 안드레 1 행4: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When they saw the courage of Peter and John and realized that they were unschooled, ordinary men, they were astonished and they took note that these men had been with Jesus.

139:0.1 (1548.1) IT IS an eloquent testimony to the charm and righteousness of Jesus’ earth life that, although he repeatedly dashed to pieces the hopes of his apostles and tore to shreds their every ambition for personal exaltation, only one deserted him. 예수께서 반복하여 사도들의 희망을 산산이 깨뜨리고 그들의 개인적으로 높아지려는 모든 야망을 갈가리 찢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한 사람만이 그를 저버렸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지상(地上) 생애의 매력과 의로움을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139:0.2 (1548.2) The apostles learned from Jesus about the kingdom of heaven, and Jesus learned much from them about the kingdom of men, human nature as it lives on Urantia and on the other evolutionary worlds of time and space. These twelve men represented many different types of human temperament, and they had not been made alike by schooling. Many of these Galilean fishermen carried heavy strains of gentile blood as a result of the forcible conversion of the gentile population of Galilee one hundred years previously. 사도들은 예수님으로부터 하늘나라에 대해서 배웠으며, 예수님은 그들로부터 사람들의 나라, 즉 지구(유란시아) 및 시간과 공간의 진화하는 다른 세계들에 살고 있던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많이 배우셨습니다. 이 12명의 사도들은 다양한 인간 기질(氣質)들을 대표했으며, 그들은 학교 교육으로 비슷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100년 전에 갈릴리의 이방 사람들을 강제로 개종시킨 결과 대부분의 이 갈릴리 어부들은 이방인의 혈통을 상당히 지니고 있었습니다.

139:0.3 (1548.3) Do not make the mistake of regarding the apostles as being altogether ignorant and unlearned. All of them, except the Alpheus twins, were graduates of the synagogue schools, having been thoroughly trained in the Hebrew scriptures and in much of the current knowledge of that day. Seven were graduates of the Capernaum synagogue schools, and there were no better Jewish schools in all Galilee. 사도들 모두가 무지하고 배우지 못했다고 여기는 잘못을 범하지 마십시오. 알패오의 쌍둥이들을 제외하고, 그들은 모두 회당 학교의 졸업생들이었으며, 히브리 성서와 그 당시 통용되는 많은 지식으로 철저히 훈련을 받았습니다. 7명은 가버나움 회당 학교들의 졸업생들이었고, 모든 갈릴리에서 더 좋은 유대인 학교는 없었습니다.

139:0.4 (1548.4) When your records refer to these messengers of the kingdom as being “ignorant and unlearned,” it was intended to convey the idea that they were laymen, unlearned in the lore of the rabbis and untrained in the methods of rabbinical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s. They were lacking in so-called higher education. In modern times they would certainly be considered uneducated, and in some circles of society even uncultured. One thing is certain: They had not all been put through the same rigid and stereotyped educational curriculum. From adolescence on they had enjoyed separate experiences of learning how to live. 너희의 기록들이 이 나라의 메신저들을 “무지하고 교육받지 못한, 학문 없는 범인(행4:13)”으로 칭하는 것은, 그들이 랍비들의 지식을 배우지 못했고, 랍비들의 성서해석방법으로 훈련받지 않은 평신도(문외한)들이었다는 관념을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그들은 소위 고등교육(전문적 전공)이 결여되어 있었다. 현대에서 그들은 분명히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로 여겨질 것이고, 심지어 어떤 사회 집단에서는 교양 없는 사람들로 간주될 것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들은 똑같이 경직되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교육과정을 모두 밟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춘기부터 계속 그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하였다.

1. Andrew, the First Chosen 첫 번째로 선택된 안드레

139:1.1 (1548.5) Andrew, chairman of the apostolic corps of the kingdom, was born in Capernaum. He was the oldest child in a family of five — himself, his brother Simon, and three sisters. His father, now dead, had been a partner of Zebedee in the fish-drying business at Bethsaida, the fishing harbor of Capernaum. When he became an apostle, Andrew was unmarried but made his home with his married brother, Simon Peter. Both were fishermen and partners of James and John the sons of Zebedee. 나라의 사도단의 의장, 안드레는 가버나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5명-자신, 남동생 시몬, 여동생 3명-의 자녀들 중 장남이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그의 아버지는 가버나움의 어항(漁港)인 벳새다에서 생선 건조업을 하는 세베대의 동업자였습니다. 그가 사도가 되었을 때, 안드레는 미혼이었지만, 기혼 남동생 시몬 베드로의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둘 다 어부였고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동업자들이었습니다.

139:1.2 (1548.6) In A.D. 26, the year he was chosen as an apostle, Andrew was 33, a full year older than Jesus and the oldest of the apostles. He sprang from an excellent line of ancestors and was the ablest man of the twelve. Excepting oratory, he was the peer of his associates in almost every imaginable ability. Jesus never gave Andrew a nickname, a fraternal designation. But even as the apostles soon began to call Jesus Master, so they also designated Andrew by a term the equivalent of Chief. 그가 사도로 선택된 서기 26년에, 안드레는 예수님 보다 만 1살이 많은 33세로 사도들 중 연장자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가계의 조상을 둔 출신으로 12사도들 중에서 가장 유능했습니다. 웅변을 제외하고, 그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능력에 있어서 동료들과 대등했습니다. 예수님은 안드레에게 애칭(愛稱), 형제우애의 호칭을 결코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바로 예수님을 주(主)님으로 부르기 시작했듯이, 그들은 또한 안드레를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용어로 불렀습니다.

139:1.3 (1549.1) Andrew was a good organizer but a better administrator. He was one of the inner circle of four apostles, but his appointment by Jesus as the head of the apostolic group made it necessary for him to remain on duty with his brethren while the other three enjoyed very close communion with the Master. To the very end Andrew remained dean of the apostolic corps. 안드레는 유능한 조직가였지만, 오히려 더 훌륭한 행정-관리자였습니다. 그는 네 사도들로 구성된 핵심 그룹의 하나였지만, 예수께서 그를 사도적 집단의 우두머리로 임명하셔서 그의 임무는 형제들과 함께 남아 있어야 했던 반면에, 다른 셋은 주(主)님과 매우 가깝게 사귀었습니다. 바로 마지막까지 안드레는 사도단의 장(長책임자)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139:1.4 (1549.2) Although Andrew was never an effective preacher, he was an efficient personal worker, being the pioneer missionary of the kingdom in that, as the first chosen apostle, he immediately brought to Jesus his brother, Simon, who subsequently became one of the greatest preachers of the kingdom. Andrew was the chief supporter of Jesus’ policy of utilizing the program of personal work as a means of training the twelve as messengers of the kingdom. 안드레가 감명을 주는 설교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실력 있는 개인적 일꾼, 즉 첫째로 선택된 사도로서 즉시 자신의 동생 시몬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는 점에 있어서, 나라의 선구자적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 시몬은 그 후 나라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안드레는 나라의 메신저들로 12사도들을 훈련시키는 수단으로 개인 상대의 과업 계획을 활용하는 예수님의 정책을 받드는 1등 옹호자였습니다.

139:1.5 (1549.3) Whether Jesus privately taught the apostles or preached to the multitude, Andrew was usually conversant with what was going on; he was an understanding executive and an efficient administrator. He rendered a prompt decision on every matter brought to his notice unless he deemed the problem one beyond the domain of his authority, in which event he would take it straight to Jesus. 예수께서 사도들을 사적(私的)으로 가르치셨을 때나 군중들에게 설교를 하셨을 때나, 안드레는 대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해하는 집행자였고 실력 있는 행정-관리자였습니다. 그는 눈에 띠는 모든 문제들을 신속히 처리했고, 그의 권한 영역을 넘어선 문제로 판단되면 그 사건을 즉시 예수님께로 가져갔습니다.

171210 12 사도들-첫 번째 선택된 안드레 2 막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As Jesus walked beside the Sea of Galilee, he saw Simon and his brother Andrew casting a net into the lake, for they were fishermen.

139:1.6 (1549.4) Andrew and Peter were very unlike in character and temperament, but it must be recorded everlastingly to their credit that they got along together splendidly. Andrew was never jealous of Peter’s oratorical ability. Not often will an older man of Andrew’s type be observed exerting such a profound influence over a younger and talented brother. Andrew and Peter never seemed to be in the least jealous of each other’s abilities or achievements. Late on the evening of the day of Pentecost, when, largely through the energetic and inspiring preaching of Peter, two thousand souls were added to the kingdom, Andrew said to his brother: “I could not do that, but I am glad I have a brother who could.” To which Peter replied: “And but for your bringing me to the Master and by your steadfastness keeping me with him, I should not have been here to do this.” Andrew and Peter were the exceptions to the rule, proving that even brothers can live together peaceably and work together effectively. 안드레와 베드로의 관계. 안드레와 베드로는 성품과 기질이 매우 달랐지만, 더할 나위 없이 서로 잘 지낸 점은 그들의 명예로 영구히 기록되어야만 합니다. 안드레는 결코 베드로의 웅변 능력을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안드레 유형(類型)의 나이 든 사람이 어리고 재능 있는 형제에게 그런 심오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안드레와 베드로는, 각자의 능력이나 업적에 대해 서로 조금이라도 질투하는 것처럼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오순절의 늦은 그날 저녁, 주로 베드로의 열광적이고 영감 있는 설교를 통하여 2,000명의 혼들이 나라에 추가되었을 때, 안드레는 자기 동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동생을 가져서 기쁘구나.” 거기에 베드로가 이렇게 답변하였습니다. “형이 나를 주(主)님께 데려오지 않고, 꾸준히 나를 주(主)님 곁에 붙들어 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런 일을 하려고 여기에 있지 않았겠지.” 형제간이라도 평화로이 함께 지내고 효과적으로 함께 일 할 수 있음을 증명하여, 안드레와 베드로는 원칙에 있어서 예외(例外)였습니다.

139:1.7 (1549.5) After Pentecost Peter was famous, but it never irritated the older Andrew to spend the rest of his life being introduced as “Simon Peter’s brother.” 안드레의 넓은 마음 베드로는 오순절 이후에 유명해졌지만, “시몬 베드로의 형”으로 소개되면서 보낸 여생은 나이 든 안드레를 언짢게 하지 않았습니다.

139:1.8 (1549.6) Of all the apostles, Andrew was the best judge of men. He knew that trouble was brewing in the heart of Judas Iscariot even when none of the others suspected that anything was wrong with their treasurer; but he told none of them his fears. Andrew’s great service to the kingdom was in advising Peter, James, and John concerning the choice of the first missionaries who were sent out to proclaim the gospel, and also in counseling these early leaders about the organization of the administrative affairs of the kingdom. Andrew had a great gift for discovering the hidden resources and latent talents of young people. 나라를 위한 안드레의 위대한 봉사. 모든 사도들 중 안드레가 사람들을 가장 잘 판단하였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회계가 뭔가 잘못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을 때에도, 안드레는 가룟 유다의 심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걱정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위한 안드레의 위대한 봉사는 복음을 선포하려고 파송될 첫 선교사들의 선택에 관해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권고하고, 또한 나라의 행정 사무의 조직에 대하여 이 초기 지도자들을 조언한 것입니다. 안드레는 젊은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는 자원과 잠재적인 재능을 발견하는 탁월한 은사(恩賜)가 있었습니다.

139:1.9 (1549.7) Very soon after Jesus’ ascension on high, Andrew began the writing of a personal record of many of the sayings and doings of his departed Master. After Andrew’s death other copies of this private record were made and circulated freely among the early teachers of the Christian church. These informal notes of Andrew’s were subsequently edited, amended, altered, and added to until they made up a fairly consecutive narrative of the Master’s life on earth. The last of these few altered and amended copies was destroyed by fire at Alexandria about one hundred years after the original was written by the first chosen of the twelve apostles. 안드레의 기록. 예수님의 상승 이후 곧바로, 안드레는 떠나가신 주(主)님의 많은 말씀들과 행적들의 개인적 기록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드레의 사후(死後) 이 사적(私的) 기록의 다른 사본들이 만들어져, 기독교회의 초기 선생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회람(回覽)되었습니다. 안드레의 이러한 비공식적 노트들은, 기독교회의 초기 선생들이 주(主)님의 지상 생애를 상당히 일관된 이야기로 만들 때까지, 안드레의 기록 이후에 편집되어, 수정되고, 변경되어, 첨부되었습니다. 변경되고 수정된 마지막 몇 개의 이 사본들은, 12 사도들 중의 첫째로 선택된 사도가 원본을 기록한 지 약 100년이 지나 알렉산드리아에서 불에 타 버렸습니다.

139:1.10 (1550.1) Andrew was a man of clear insight, logical thought, and firm decision, whose great strength of character consisted in his superb stability. His temperamental handicap was his lack of enthusiasm; he many times failed to encourage his associates by judicious commendation. And this reticence to praise the worthy accomplishments of his friends grew out of his abhorrence of flattery and insincerity. Andrew was one of those all-round, even-tempered, self-made, and successful men of modest affairs. 안드레의 장점과 단점. 안드레는 명석한 통찰력, 논리적 사고, 확고한 판단력을 지닌 사람으로, 그의 성품 중 큰 장점은 뛰어난 안정감이었습니다. 그의 기질적 단점은 열정의 부족이었는데, 그는 여러 번 사려 깊은 칭찬으로 자기 동료들을 격려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친구들의 가치 있는 업적들을 칭찬하는 일에 과묵했던 이것은, 아첨이나 불성실에 대한 그의 혐오감에서 생겼습니다. 안드레는 다재다능하고, 침착하며, 자립적이고, 그만그만한 과업에 성공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139:1.11 (1550.2) Every one of the apostles loved Jesus, but it remains true that each of the twelve was drawn toward him because of some certain trait of personality which made a special appeal to the individual apostle. Andrew admired Jesus because of his consistent sincerity, his unaffected dignity. When men once knew Jesus, they were possessed with the urge to share him with their friends; they really wanted all the world to know him. 안드레가 느낀 예수님의 매력. 사도들 모두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12명 각자마다 그에게 끌린 것은, 각 사도들에게 특별히 호감을 주는 어떤 고유성의 특색 때문이었음이 사실로 남아 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의 일관된 성실함과 꾸밈없는 기품 때문에 예수님을 사모했습니다. 사람들은 일단 예수님을 알게 되면, 자기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온 세상이 그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139:1.12 (1550.3) When the later persecutions finally scattered the apostles from Jerusalem, Andrew journeyed through Armenia, Asia Minor, and Macedonia and, after bringing many thousands into the kingdom, was finally apprehended and crucified in Patrae in Achaia. It was two full days before this robust man expired on the cross, and throughout these tragic hours he continued effectively to proclaim the glad tidings of the salvation of the kingdom of heaven. 안드레의 마지막 나중에 박해로 결국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졌을 때, 안드레는 아르메니아, 소아시아, 마케도니아를 지나 여행하였고, 수천 명을 나라로 인도한 후, 결국 아카이아의 파트라이에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 건장한 사람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만 이틀이 걸렸는데, 이러한 비극적인 시간들 내내 그는 하늘나라 구원의 기쁜 소식을 계속 효과적으로 선포했습니다.

2. Simon Peter 시몬 베드로

171217 시몬 베드로 1 요1:40-42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0 Andrew, Simon Peter’s brother, was one of the two who heard what John had said and who had followed Jesus. 41 The first thing Andrew did was to find his brother Simon and tell him, “We have found the Messiah” (that is, the Christ). 42 And he brought him to Jesus. Jesus looked at him and said, “You are Simon son of John. You will be called Cephas” (which, when translated, is Peter).

139:2.1 (1550.4) When Simon joined the apostles, he was thirty years of age. He was married, had three children, and lived at Bethsaida, near Capernaum. His brother, Andrew, and his wife’s mother lived with him. Both Peter and Andrew were fisher partners of the sons of Zebedee. 시몬이 사도들에 합류했을 때, 그는 30세였습니다. 그는 결혼해서 세 자녀가 있었고, 가버나움 인근 벳새다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형 안드레와 장모가 그와 함께 살았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둘 다 세베대의 아들들과 동업하는 어부들이었습니다.

139:2.2 (1550.5) The Master had known Simon for some time before Andrew presented him as the second of the apostles. When Jesus gave Simon the name Peter, he did it with a smile; it was to be a sort of nickname. Simon was well known to all his friends as an erratic and impulsive fellow. True, later on, Jesus did attach a new and significant import to this lightly bestowed nickname. 주(主)님은 안드레가 시몬을 두 번째 사도로 소개하기 전부터, 얼마간 그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셨을 때, 그는 미소를 지으셨는데, 그것은 일종의 별명이 될 것이었습니다. 시몬은 모든 그의 친구들에게 변덕스럽고 충동적인 동료로 유명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가볍게 주신 별명에, 나중에 새롭고 뜻 깊은 의미를 붙인 것이 사실입니다.

139:2.3 (1550.6) Simon Peter was a man of impulse, an optimist. He had grown up permitting himself freely to indulge strong feelings; he was constantly getting into difficulties because he persisted in speaking without thinking. This sort of thoughtlessness also made incessant trouble for all of his friends and associates and was the cause of his receiving many mild rebukes from his Master. The only reason Peter did not get into more trouble because of his thoughtless speaking was that he very early learned to talk over many of his plans and schemes with his brother, Andrew, before he ventured to make public proposals. 시몬 베드로는 충동적인 낙천가(樂天家)였습니다. 그는 격한 감정에 자유롭게 탐닉하도록 스스로 허용하며 자랐습니다. 그는 생각 없이 말하기를 고집했기 때문에, 항상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런 식의 그의 경솔함은 또한 그의 친구들이나 동료들 모두에게 끊임없는 골칫거리가 되었고, 그가 주(主)님으로부터 가벼운 꾸중을 많이 들었던 이유였습니다. 베드로의 분별없는 말 때문에 더 심한 곤경에 빠지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는, 그가 과감히 공적 제안을 내놓기 전에, 많은 자기 계획들과 기획들을 그의 형 안드레와 의논하기를 아주 일찍부터 배웠기 때문입니다.

139:2.4 (1550.7) Peter was a fluent speaker, eloquent and dramatic. He was also a natural and inspirational leader of men, a quick thinker but not a deep reasoner. He asked many questions, more than all the apostles put together, and while the majority of these questions were good and relevant, many of them were thoughtless and foolish. Peter did not have a deep mind, but he knew his mind fairly well. He was therefore a man of quick decision and sudden action. While others talked in their astonishment at seeing Jesus on the beach, Peter jumped in and swam ashore to meet the Master. 베드로는 극적인 능변의 유창한 연사(演士)였습니다. 그는 또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타고난 지도자로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었지만, 심오한 추론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도들 모두를 합한 이상으로 많은 질문들을 했는데, 이 질문의 대부분은 선하고 적절했지만, 그 중 많은 것들은 분별이 없고 어리석었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마음은 없었지만, 자기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빨리 결정하고 급히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해변에서 예수님을 보고 놀라서 말하는 동안, 베드로는 물에 뛰어 들어, 주(主)님을 만나려고 해변으로 헤엄쳤습니다.

139:2.5 (1551.1) The one trait which Peter most admired in Jesus was his supernal tenderness. Peter never grew weary of contemplating Jesus’ forbearance. He never forgot the lesson about forgiving the wrongdoer, not only seven times but seventy times and seven. He thought much about these impressions of the Master’s forgiving character during those dark and dismal days immediately following his thoughtless and unintended denial of Jesus in the high priest’s courtyard. 베드로가 가장 경탄한 예수님의 한 가지 특성은 더할 수 없는 다정함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관용을 깊이 생각하면서 싫증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잘못하는 사람을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하는 것에 대한 교훈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안마당에서 경솔히 뜻하게 않게 예수님을 부인한 직후, 그 어둡고 우울한 며칠 주(主)님의 용서하는 성품에서 받은 이 인상들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139:2.6 (1551.2) Simon Peter was distressingly vacillating; he would suddenly swing from one extreme to the other. First he refused to let Jesus wash his feet and then, on hearing the Master’s reply, begged to be washed all over. But, after all, Jesus knew that Peter’s faults were of the head and not of the heart. He was one of the most inexplicable combinations of courage and cowardice that ever lived on earth. His great strength of character was loyalty, friendship. Peter really and truly loved Jesus. And yet despite this towering strength of devotion he was so unstable and inconstant that he permitted a servant girl to tease him into denying his Lord and Master. Peter could withstand persecution and any other form of direct assault, but he withered and shrank before ridicule. He was a brave soldier when facing a frontal attack, but he was a fear-cringing coward when surprised with an assault from the rear. 시몬 베드로는 비참하리만큼 동요했습니다.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갑자기 흔들거리곤 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예수께서 자기 발을 씻지 못하게 했다가 그 후, 주(主)님의 대답을 듣고, 온 몸을 씻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은 베드로의 단점이 머리에 있지, 심정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는 그 때까지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용기와 비겁함이 가장 희한하게 섞인 사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의 성품 중 큰 장점은 충성과 우정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실제 진실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높이 솟는 헌신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너무 불안정하고 일관성이 없어서 여종이 자신을 놀려 그의 주(主)님이시며 선생님을 부인하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베드로는 박해나 다른 형태의 직접적인 모욕은 잘 견디었지만, 조롱 앞에서는 의기소침으로 위축되었습니다. 그는 전면 공격을 당했을 때는 용감한 군인이었지만, 후면 습격으로 놀랄 때에는 두려움으로 움츠린 겁쟁이였습니다.

139:2.7 (1551.3) Peter was the first of Jesus’ apostles to come forward to defend the work of Philip among the Samaritans and Paul among the gentiles; yet later on at Antioch he reversed himself when confronted by ridiculing Judaizers, temporarily withdrawing from the gentiles only to bring down upon his head the fearless denunciation of Paul. 베드로는, 빌립의 사마리아인들 과업과 바울의 이방인들 과업에 대하여, 예수님의 사도들 중 가장 먼저 앞장서서 변호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안디옥에서, 조롱하는 유대주의자들과 마주쳤을 때, 그는 자신의 입장을 뒤집어, 잠시 이방인으로부터 물러나, 바울의 두려움이 없는 비난에 고개를 떨 꿀 뿐이었습니다.

139:2.8 (1551.4) He was the first one of the apostles to make wholehearted confession of Jesus’ combined humanity and divinity and the first — save Judas — to deny him. Peter was not so much of a dreamer, but he disliked to descend from the clouds of ecstasy and the enthusiasm of dramatic indulgence to the plain and matter-of-fact world of reality. 그는 사도들 중에서 예수님의 통합된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전심으로 고백했고, 유다를 제외하고 예수를 부인한 첫 번째 사도였습니다. 베드로는 심한 몽상가는 아니었지만, 환희의 구름과 극적 탐닉의 열광에서, 실체의 평범한 사실 그대로의 세계로 내려오기를 싫어했습니다.

171224 시몬 베드로 2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Truly, truly, I say to you, when you were younger, you used to gird yourself and walk wherever you wished; but when you grow old, you will stretch out your hands and someone else will gird you, and bring you where you do not wish to go(NASV).”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39:2.9 (1551.5) In following Jesus, literally and figuratively, he was either leading the procession or else trailing behind — “following afar off.” But he was the outstanding preacher of the twelve; he did more than any other one man, aside from Paul, to establish the kingdom and send its messengers to the four corners of the earth in one generation. 베드로의 진폭 예수님을 따르면서, 문자 그대로, 비유적으로, 그는 행렬을 이끌거나 아니면 뒤에 – “멀찍이 뒤에 떨어져서” –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12명 중 탁월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바울을 제외하고, 한 세대에, 나라를 세우고, 지구의 전 지역에 메신저들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보냈습니다.

139:2.10 (1551.6) After his rash denials of the Master he found himself, and with Andrew’s sympathetic and understanding guidance he again led the way back to the fish nets while the apostles tarried to find out what was to happen after the crucifixion. When he was fully assured that Jesus had forgiven him and knew he had been received back into the Master’s fold, the fires of the kingdom burned so brightly within his soul that he became a great and saving light to thousands who sat in darkness. 베드로의 반전 주(主)님을 경솔히 부인한 후, 그는 자신을 발견했으며, 안드레의 공감하며 분별 있는 안내와 함께, 사도들이 십자가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기다리며 찾는 동안, 그는 다시 고기잡이 그물로 돌아가는 길로 앞장섰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기를 용서하셨음을 충분히 확신하고, 자신이 주(主)님의 신도로 복귀하여 수용되었음을 알았을 때, 나라의 불빛이 그의 혼 안에서 아주 밝게 타올라서 어둠에 앉아 있던 수천 명에게 위대한 구원의 빛이 되었습니다.

139:2.11 (1551.7) After leaving Jerusalem and before Paul became the leading spirit among the gentile Christian churches, Peter traveled extensively, visiting all the churches from Babylon to Corinth. He even visited and ministered to many of the churches which had been raised up by Paul. Although Peter and Paul differed much in temperament and education, even in theology, they worked together harmoniously for the upbuilding of the churches during their later years. 형제정신 실천 예루살렘을 떠난 뒤, 바울이 이방의 기독교회들을 이끄는 인물이 되기 전에, 베드로는 바빌론에서 고린도까지 모든 교회들을 방문하며 널리 여행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세운 많은 교회들까지도 방문하고 섬겼습니다. 비록 베드로와 바울은, 기질과 교육, 그리고 신학도 많이 달랐지만, 그들은 후년에 교회를 설립하는 일에 어울려 함께 일했습니다.

139:2.12 (1552.1) Something of Peter’s style and teaching is shown in the sermons partially recorded by Luke and in the Gospel of Mark. His vigorous style was better shown in his letter known as the First Epistle of Peter; at least this was true before it was subsequently altered by a disciple of Paul. 베드로의 스타일과 교훈의 일부는 누가가 부분적으로 기록한 설교와 마가복음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강력한 스타일은 베드로 전서로 알려진 그의 서신에 잘 나타나 있는데, 나중에 바울의 제자가 (베드로전서)를 변경하기 전까지는 이것이 사실이었습니다.

139:2.13 (1552.2) But Peter persisted in making the mistake of trying to convince the Jews that Jesus was, after all, really and truly the Jewish Messiah. Right up to the day of his death, Simon Peter continued to suffer confusion in his mind between the concepts of Jesus as the Jewish Messiah, Christ as the world’s redeemer, and the Son of Man as the revelation of God, the loving Father of all mankind. 베드로의 실수와 혼란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께서 결국 실제로 진정한 유대인의 메시아였다고 유대인들에게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잘못을 고집했습니다. 바로 죽는 그 날까지, 시몬 베드로의 마음은, 예수가 유대인의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속(救贖)자는 개념과 사람의 아들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시라는 개념 사이에서 계속 혼란을 겪었습니다.

139:2.14 (1552.3) Peter’s wife was a very able woman. For years she labored acceptably as a member of the women’s corps, and when Peter was driven out of Jerusalem, she accompanied him upon all his journeys to the churches as well as on all his missionary excursions. And the day her illustrious husband yielded up his life, she was thrown to the wild beasts in the arena at Rome. 베드로의 아내는 매우 유능한 여인이었습니다. 여러 해 그녀는 여인들 분대(여전도회)의 일원으로 기쁘게 수고했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자, 그녀는 그의 모든 선교여행 뿐 아니라 모든 교회로 가는 여행에 그와 동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명한 자기 남편이 죽는 날, 그녀는 로마의 투기장에서 사나운 짐승들에게 던져졌습니다.

139:2.15 (1552.4) And so this man Peter, an intimate of Jesus, one of the inner circle, went forth from Jerusalem proclaiming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with power and glory until the fullness of his ministry had been accomplished; and he regarded himself as the recipient of high honors when his captors informed him that he must die as his Master had died — on the cross. And thus was Simon Peter crucified in Rome. 베드로와 사명 완수와 순교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과 친밀한, 내부자 중 하나였던, 이 사람 베드로는 그의 사역을 충만히 완수하기까지, 권능과 영광으로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그를 체포한 자가, 베드로가 그의 주(主)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 죽어야만 한다고 알려주자, 자신을 높은 명예를 받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몬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3. James Zebedee 야고보 세베대

171231 야고보 세베대 1 눅9:52-54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2 And he sent messengers on ahead, who went into a Samaritan village to get things ready for him; 53 but the people there did not welcome him, because he was heading for Jerusalem. 54 When the disciples James and John saw this, they asked, “Lord, do you want us to call fire down from heaven to destroy them?”

139:3.1 (1552.5) James, the older of the two apostle sons of Zebedee, whom Jesus nicknamed “sons of thunder,”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came an apostle. He was married, had four children, and lived near his parents in the outskirts of Capernaum, Bethsaida. He was a fisherman, plying his calling in company with his younger brother John and in association with Andrew and Simon. James and his brother John enjoyed the advantage of having known Jesus longer than any of the other apostles. 야고보 세베대의 가정 배경 예수께서 세베대의 두 아들인 사도들을 “우뢰(雨雷)의 아들들”이라고 별명을 붙였는데 둘 중에 형 야고보는 사도가 되었을 때 30세였습니다. 그는 결혼해서 4 자녀를 두었으며, 가버나움 근교 벳새다에 계신 부모 근처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어부로서 동생 요한과 한 팀으로, 안드레와 시몬의 동업자가 되어 생업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야고보와 동생 요한은 다른 어떤 사도들 보다 예수님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는 이점(利點)이 있었습니다.

139:3.2 (1552.6) This able apostle was a temperamental contradiction; he seemed really to possess two natures, both of which were actuated by strong feelings. He was particularly vehement when his indignation was once fully aroused. He had a fiery temper when once it was adequately provoked, and when the storm was over, he was always wont to justify and excuse his anger under the pretense that it was wholly a manifestation of righteous indignation. Except for these periodic upheavals of wrath, James’s personality was much like that of Andrew. He did not have Andrew’s discretion or insight into human nature, but he was a much better public speaker. Next to Peter, unless it was Matthew, James was the best public orator among the twelve. 야고보 세베대의 기질 이 유능한 사도는 기질적인 모순 덩어리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두 본성을 가진 듯했으며, 그 두 본성은 격한 감정으로 발동했습니다. 그는 일단 분개가 충분히 치밀어 오르면, 특별히 격렬했습니다. 그는 일단 성질이 충분히 자극되면, 불같은 기질을 드러냈으며, 폭풍이 끝나면, 그는 그것이 전적으로 의로운 분개의 표현이라는 핑계로 자신의 분노를 언제나 정당화하면서 변명하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이 주기적인 분노의 격발을 제외하면, 야고보의 고유성은 안드레와 아주 비슷했습니다. 그는 인간 본성을 꿰뚫는 안드레의 분별력이나 통찰력은 없었지만, 안드레보다 훨씬 뛰어난 대중 연설가였습니다. 베드로 다음으로, 마태가 없었다면, 야고보가 12명 중 가장 우수한 대중 웅변가였습니다.

139:3.3 (1552.7) Though James was in no sense moody, he could be quiet and taciturn one day and a very good talker and storyteller the next. He usually talked freely with Jesus, but among the twelve, for days at a time he was the silent man. His one great weakness was these spells of unaccountable silence. 야고보 세베대의 약점 야고보는 감각적으로 조금도 변덕스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조용하고 말이 없다가, 다음 날에는 뛰어난 좌담(座談)의 명수이며 이야기꾼이 되었습니다. 그는 대개 예수님과 자유롭게 이야기했지만, 12명 중에서는 한 번에 며칠씩 침묵했습니다. 그의 한 가지 큰 약점설명할 수 없는 이 침묵들이 한 차례씩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139:3.4 (1552.8) The outstanding feature of James’s personality was his ability to see all sides of a proposition. Of all the twelve, he came the nearest to grasping the real import and significance of Jesus’ teaching. He, too, was slow at first to comprehend the Master’s meaning, but ere they had finished their training, he had acquired a superior concept of Jesus’ message. James was able to understand a wide range of human nature; he got along well with the versatile Andrew, the impetuous Peter, and his self-contained brother John. 야고보 세베대의 장점 야고보의 고유성 중 눈에 띄는 점은 문제의 모든 면을 볼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모든 12명 중에서, 그는 예수 가르침의 참 의미와 중요성을 가장 가깝게 파악했습니다. 그 역시 처음에는 주(主)님의 의미를 더디게 이해했지만, 그들이 훈련을 마치기 전에, 그는 예수님의 메시지가 지닌 보다 높은 개념을 알아들었습니다. 야고보는 광범위한 인간 본성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다재다능한 안드레와, 충동적인 베드로말이 없는 동생 요한과 아주 잘 지냈습니다.

139:3.5 (1553.1) Though James and John had their troubles trying to work together, it was inspiring to observe how well they got along. They did not succeed quite so well as Andrew and Peter, but they did much better than would ordinarily be expected of two brothers, especially such headstrong and determined brothers. But, strange as it may seem, these two sons of Zebedee were much more tolerant of each other than they were of strangers. They had great affection for one another; they had always been happy playmates. It was these “sons of thunder” who wanted to call fire down from heaven to destroy the Samaritans who presumed to show disrespect for their Master. But the untimely death of James greatly modified the vehement temperament of his younger brother John. 야고보 세베대의 형제 관계 야고보와 요한은 함께 일하려고 애쓰면서 고생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서로 잘 지내는 지 지켜보면 감동을 일으킵니다. 그들은 안드레와 베드로처럼 아주 잘 지내지는 못했어도, 특별히 그렇게 고집 세고 단호한 형제들은, 보통의 두 형제들 사이에서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잘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보여도, 이 세베대의 두 아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보다는 훨씬 서로에게 더 관대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매우 다정했고, 언제나 행복한 놀이 친구였습니다. 주(主)님께 무례를 범했다고 여겨진 사마리아인들을 죽이도록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리고 싶어 했던 자들이 이 “우뢰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의 때 이른 죽음으로 동생 요한의 격렬한 기질이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171231-180101 야고보 세베대 2 행12:1-2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1 It was about this time that King Herod arrested some who belonged to the church, intending to persecute them. 2 He had James, the brother of John, put to death with the sword.

139:3.6 (1553.2) That characteristic of Jesus which James most admired was the Master’s sympathetic affection. Jesus’ understanding interest in the small and the great, the rich and the poor, made a great appeal to him. 야고보가 가장 감탄한 예수님의 성품은 ()님의 공감적 애정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작은 자와 위대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를 이해하는 관심이 그에게 가장 큰 매력을 주었습니다.

139:3.7 (1553.3) James Zebedee was a well-balanced thinker and planner. Along with Andrew, he was one of the more level-headed of the apostolic group. He was a vigorous individual but was never in a hurry. He was an excellent balance wheel for Peter. 야고보 세베대는 잘 균형 잡힌 사색가이며 입안자였습니다. 그는 안드레와 함께 그룹에서 더 분별 있는 사도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활기찬 개인이었지만 절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베드로를 안정시키는 뛰어난 원동력이었습니다.

139:3.8 (1553.4) He was modest and undramatic, a daily server, an unpretentious worker, seeking no special reward when he once grasped something of the real meaning of the kingdom. And even in the story about the mother of James and John, who asked that her sons be granted places on the right hand and the left hand of Jesus, it should be remembered that it was the mother who made this request. And when they signified that they were ready to assume such responsibilities, it should be recognized that they were cognizant of the dangers accompanying the Master’s supposed revolt against the Roman power, and that they were also willing to pay the price. When Jesus asked if they were ready to drink the cup, they replied that they were. And as concerns James, it was literally true — he did drink the cup with the Master, seeing that he was the first of the apostles to experience martyrdom, being early put to death with the sword by Herod Agrippa. James was thus the first of the twelve to sacrifice his life upon the new battle line of the kingdom. Herod Agrippa feared James above all the other apostles. He was indeed often quiet and silent, but he was brave and determined when his convictions were aroused and challenged. 그는 점잖아서 요란스럽지 않았으며, 매일 충실히 섬기며, 허세부리지 않는 일꾼으로서, 일단 나라의 참 의미의 실제를 파악하자 더 이상 특별한 보상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들에게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 자리를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던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이 요청을 한 사람은 그 어머니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책임을 맡을 준비가 되었다고 나타냈을 때, 로마 권력에 대한 주(主)님의 반란을 추측하였고, 그에 따르는 위험을 그들은 알고 있었으며, 또한 그 값을 기꺼이 치르려 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 잔을 마실 준비가 되었는지 물으셨을 때,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에게 그것은 문자 그대로 참말이었습니다. – 그는 일찍 헤롯 아그립바의 칼에 죽게 되어, 순교했던 첫 사도로서, 주(主)님과 함께 잔을 마셨습니다. 야고보는 그렇게 나라의 새로운 전선(戰線)에서 열 둘 중 첫째로 생명을 바쳤습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다른 모든 사도들보다 야고보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정말로 가끔씩 조용히 침묵했지만, 그의 확신을 자극하고 도전하면, 용감하였고 결심이 굳건했습니다.

139:3.9 (1553.5) James lived his life to the full, and when the end came, he bore himself with such grace and fortitude that even his accuser and informer, who attended his trial and execution, was so touched that he rushed away from the scene of James’s death to join himself to the disciples of Jesus. 야고보는 그의 일생을 충만히 살았으며, 종말이 오자, 그는 그토록 은혜롭게 불굴의 용기로 견디어서, 재판과 집행에 참석했던 고소인과 밀고자까지 감명을 받아, 야고보의 처형장에서 뛰쳐나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합류하였습니다.

4. John Zebedee 요한 세베대

180107 요한 세베대 1 요21: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7 Then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said to Peter, “It is the Lord!” As soon as Simon Peter heard him say, “It is the Lord,” he wrapped his outer garment around him (for he had taken it off) and jumped into the water. 20 Peter turned and saw that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was following them. (This was the one who had leaned back against Jesus at the supper and had said, “Lord, who is going to betray you?”)

139:4.1 (1553.6) When he became an apostle, John was twenty-four years old and was the youngest of the twelve. He was unmarried and lived with his parents at Bethsaida; he was a fisherman and worked with his brother James in partnership with Andrew and Peter. Both before and after becoming an apostle, John functioned as the personal agent of Jesus in dealing with the Master’s family, and he continued to bear this responsibility as long as Mary the mother of Jesus lived. 가정배경 사도가 되었을 때, 요한은 24세였고, 12명 중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 그는 미혼(未婚)으로 벳새다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어부였고, 형 야고보와 함께 안드레 및 베드로와 동업했습니다. 사도가 되기 전후에, 요한은 주(主)님의 가족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개인적 대리인 역할을 하였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살아 있는 동안에 계속 이 책임을 맡았습니다.

139:4.2 (1553.7) Since John was the youngest of the twelve and so closely associated with Jesus in his family affairs, he was very dear to the Master, but it cannot be truthfully said that he was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You would hardly suspect such a magnanimous personality as Jesus to be guilty of showing favoritism, of loving one of his apostles more than the others. The fact that John was one of the three personal aides of Jesus lent further color to this mistaken idea, not to mention that John, along with his brother James, had known Jesus longer than the others. “예수께서 사랑한 그 제자로 불린 이유 요한은 12 중 가장 어렸고, 가족 업무로 예수님과 친밀히 관련되어, 주(主)님께 매우 소중했지만, “예수께서 사랑한 그 제자라고 정말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그렇게 관대한 고유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사도들 중 하나를 더 사랑하는 편애를 보이는 죄가 있다고 너희는 거의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형 야고보와 함께 요한이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알아온 것에다가, 그가 예수님의 개인적 3 비서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이 잘못된 생각을 더 그럴 듯하게 만들었습니다.

139:4.3 (1554.1) Peter, James, and John were assigned as personal aides to Jesus soon after they became apostles. Shortly after the selection of the twelve and at the time Jesus appointed Andrew to act as director of the group, he said to him: “And now I desire that you assign two or three of your associates to be with me and to remain by my side, to comfort me and to minister to my daily needs.” And Andrew thought best to select for this special duty the next three first-chosen apostles. He would have liked to volunteer for such a blessed service himself, but the Master had already given him his commission; so he immediately directed that Peter, James, and John attach themselves to Jesus. 축복받은 특별한 임무와 봉사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사도가 된 직후 예수님의 개인 비서들로 배치되었습니다. 12명이 선택된 직후, 예수께서 안드레를 그 무리의 관리자로 임명하셨을 때, 그는 안드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네가 너의 동료 중 두 세 사람을 임명하여 나와 함께 내 곁에 남아서 나를 도와 내 일상의 필요들을 보살피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안드레는 이 특별 임무에, (자기) 다음으로 선택된 3명의 첫 사도들을 뽑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축복받은 봉사에 자신이 자원하고 싶었지만, 주(主)님은 그에게 이미 임무를 주셨기 때문에, 그는 즉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도록 지시했습니다.

139:4.4 (1554.2) John Zebedee had many lovely traits of character, but one which was not so lovely was his inordinate but usually well-concealed conceit. His long association with Jesus made many and great changes in his character. This conceit was greatly lessened, but after growing old and becoming more or less childish, this self-esteem reappeared to a certain extent, so that, when engaged in directing Nathan in the writing of the Gospel which now bears his name, the aged apostle did not hesitate repeatedly to refer to himself as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In view of the fact that John came nearer to being the chum of Jesus than any other earth mortal, that he was his chosen personal representative in so many matters, it is not strange that he should have come to regard himself as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since he most certainly knew he was the disciple whom Jesus so frequently trusted. 요한 세베대의 특성 요한 세베대는 성품 중 사랑스러운 특성이 많았지만, 그리 사랑스럽지 않았던 한 가지는 과도하지만 잘 감춰진 자만(自慢 자기 과대 평가)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오랜 교제로 그의 성품은 많은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이 자만이 크게 줄었지만, 나이 들어 다소 유치해진 후, 이 자존심(自尊心)이 어느 정도 다시 나타나, 그가 이제 자기 이름을 담은 복음을 기록하도록 나단을 지시하면서, 노년의 사도는 망설임 없이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로 거듭 언급했습니다. 요한이 세상의 다른 어떤 필사자보다 더 가까운 예수님의 친구였으며, 그토록 많은 경우에 예수께서 선택한 개인적 대리인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그가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로 여기게 된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예수께서 그렇게 자주 신뢰하셨던 제자였음을 가장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39:4.5 (1554.3) The strongest trait in John’s character was his dependability; he was prompt and courageous, faithful and devoted. His greatest weakness was this characteristic conceit. He was the youngest member of his father’s family and the youngest of the apostolic group. Perhaps he was just a bit spoiled; maybe he had been humored slightly too much. But the John of after years was a very different type of person than the self-admiring and arbitrary young man who joined the ranks of Jesus’ apostles when he was twenty-four. 성품의 변화 요한의 성품 중 가장 강한 특성은 그의 신뢰성이었습니다. 그는 신속하고 용감하며, 성실하고 헌신적이었습니다. 가장 큰 약점은 이 특징적 자만이었습니다. 그는 가족 중 막내였고 사도 그룹에서도 가장 어렸습니다. 그는 버릇이 좀 없었을지 모르는데 아마 약간 과도하게 어르면서 자랐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수년 후 요한은, 24세에 예수님의 사도 등급에 참여했던 자화자찬하며 제멋대로 행하던 젊은이와는 아주 다른 유형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139:4.6 (1554.4) Those characteristics of Jesus which John most appreciated were the Master’s love and unselfishness; these traits made such an impression on him that his whole subsequent life became dominated by the sentiment of love and brotherly devotion. He talked about love and wrote about love. This “son of thunder” became the “apostle of love”; and at Ephesus, when the aged bishop was no longer able to stand in the pulpit and preach but had to be carried to church in a chair, and when at the close of the service he was asked to say a few words to the believers, for years his only utterance was, “My little children, love one another.” 요한이 가장 높이 평가한 예수님의 특징들은, ()님의 사랑과 이기심 없는 태도였습니다. 이 특성들에 무척 감명을 받아 그 후 그의 전 생애는 사랑의 정서와 형제의 헌신으로 지배되었습니다. 그는 사랑을 논하며 사랑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이 “우뢰의 아들”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에서 연로한 감독이 더 이상 설교단에 서서 설교할 수 없어서 의자에 앉은 채로 교회로 옮겨져야만 했는데, 예배가 끝나 신자들에게 몇 마디 말씀을 하시라고 요청을 받았을 때, 여러 해 동안 그는 이렇게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

180114 요한 세베대 2 계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I, John, your brother and companion in the suffering and kingdom and patient endurance that are ours in Jesus, was on the island of Patmos because of the word of God and the testimony of Jesus.

139:4.7 (1554.5) John was a man of few words except when his temper was aroused. He thought much but said little. As he grew older, his temper became more subdued, better controlled, but he never overcame his disinclination to talk; he never fully mastered this reticence. But he was gifted with a remarkable and creative imagination. 극복하지 못한 침묵 요한은 성질이 격해진 때를 제외하면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많이 생각했지만 말은 거의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질이 많이 순해졌고, 더 조절되었지만, 말하기 싫어하는 경향은 결코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과묵함을 결코 충분히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랍고 창조적인 상상력의 재능이 있었습니다.

139:4.8 (1555.1) There was another side to John that one would not expect to find in this quiet and introspective type. He was somewhat bigoted and inordinately intolerant. In this respect he and James were much alike — they both wanted to call down fire from heaven on the heads of the disrespectful Samaritans. When John encountered some strangers teaching in Jesus’ name, he promptly forbade them. But he was not the only one of the twelve who was tainted with this kind of self-esteem and superiority consciousness. 요한의 자존심과 우월 의식 요한에게는 이 조용하고 내성적 유형에서 기대할 수 없는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소 고집이 세고 지나치게 편협했습니다. 이 면에서 그와 야고보는 아주 비슷했습니다. 그들 두 사람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무례한 사마리아인들의 머리 위에, 내리고 싶어 했습니다. 요한은, 어떤 낯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을 보자, 즉시 그들을 제지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12 명 중에서, 이 종류의 자존심과 우월 의식에 오염된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39:4.9 (1555.2) John’s life was tremendously influenced by the sight of Jesus’ going about without a home as he knew how faithfully he had made provision for the care of his mother and family. John also deeply sympathized with Jesus because of his family’s failure to understand him, being aware that they were gradually withdrawing from him. This entire situation, together with Jesus’ ever deferring his slightest wish t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and his daily life of implicit trust, made such a profound impression on John that it produced marked and permanent changes in his character, changes which manifested themselves throughout his entire subsequent life. 예수께 영향 받은 변화 요한의 일생은, 예수께서 얼마나 성실히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대비하셨는지 알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집 없이 지내는 모습에서 엄청나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요한은 예수님의 가족이 그를 이해하지 못해서 예수님과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깊이 공감했습니다. 예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는 가장 사소한 소원도 미루지 않고 매일 무조건 신뢰하는 생활과 더불어, 이 모든 상황이 요한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그의 성품에 뚜렷한 영속적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변화들은 후에 그의 전 일생에 걸쳐 드러났습니다.

139:4.10 (1555.3) John had a cool and daring courage which few of the other apostles possessed. He was the one apostle who followed right along with Jesus the night of his arrest and dared to accompany his Master into the very jaws of death. He was present and near at hand right up to the last earthly hour and was found faithfully carrying out his trust with regard to Jesus’ mother and ready to receive such additional instructions as might be given during the last moments of the Master’s mortal existence. One thing is certain, John was thoroughly dependable. John usually sat on Jesus’ right hand when the twelve were at meat. He was the first of the twelve really and fully to believe in the resurrection, and he was the first to recognize the Master when he came to them on the seashore after his resurrection. 요한의 침착한 용기 요한은 다른 사도들이 거의 갖지 못한, 침착하며 대담한 용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체포되던 밤 예수님을 바로 따라갔고, 바로 죽음의 자리까지 대담하게 주(主)님과 동행했던 유일한 사도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함께 했으며, 세상에서 바로 마지막 시간까지도 가까이 있었으며, 예수님의 어머니에 관해 그의 신뢰를 성실히 수행했고, 주(主)님의 필사자 실존으로서 마지막 순간에도 추가 지시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확실한데, 요한은 철저히 믿을 만했습니다. 12 사도들이 식사를 할 때, 요한은 대개 예수님의 오른 편에 앉았습니다. 그는 12 중 첫째로 정말 충분히 부활을 믿었고, 부활 후 해변에서 그들에게 오셨을 때, 처음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139:4.11 (1555.4) This son of Zebedee was very closely associated with Peter in the early activities of the Christian movement, becoming one of the chief supporters of the Jerusalem church. He was the right-hand support of Peter on the day of Pentecost. 기독 운동의 초기 활동의 지지자 이 세베대의 아들은 기독 운동의 초기 활동에서 베드로와 아주 밀접히 관련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 지지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오순절 날 베드로의 오른팔로 지지했습니다.

139:4.12 (1555.5) Several years after the martyrdom of James, John married his brother’s widow. The last twenty years of his life he was cared for by a loving granddaughter. 요한의 말년 야고보의 순교 몇 년 후, 요한은 형의 과부와 결혼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20년은 사랑스러운 손녀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139:4.13 (1555.6) John was in prison several times and was banished to the Isle of Patmos for a period of four years until another emperor came to power in Rome. Had not John been tactful and sagacious, he would undoubtedly have been killed as was his more outspoken brother James. As the years passed, John, together with James the Lord’s brother, learned to practice wise conciliation when they appeared before the civil magistrates. They found that a “soft answer turns away wrath.” They also learned to represent the church as a “spiritual brotherhood devoted to the social service of mankind” rather than as “the kingdom of heaven.” They taught loving service rather than ruling power — kingdom and king. “인류의 사회적 봉사에 헌신하는 영적 형제 신분”으로서의 교회 요한은 여러 번 투옥되었고, 다른 황제가 로마에서 권력을 잡기까지 4년 동안 팟모섬에 추방되었습니다. 요한이 눈치와 총명이 없었다면, 거침없었던 형 야고보처럼 그는 확실히 죽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 주님의 동생 야고보와 함께, 국가의 재판관들 앞에 나타났을 때, 요한은 지혜롭게 화해하기를 배웠습니다. 그들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합니다(잠15:1).”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교회가 “하늘나라”라기보다는 “인류의 사회적 봉사에 헌신하는 영적 형제 신분”의 표현임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지배하는 권능 – 왕국과 왕 -보다 사랑하는 봉사를 가르쳤습니다.

139:4.14 (1555.7) When in temporary exile on Patmos, John wrote the Book of Revelation, which you now have in greatly abridged and distorted form. This Book of Revelation contains the surviving fragments of a great revelation, large portions of which were lost, other portions of which were removed, subsequent to John’s writing. It is preserved in only fragmentary and adulterated form. 요한계시록 팟모섬에 잠시 유배되었을 때, 요한은 계시록을 썼는데, 너희가 지금 갖고 있는 계시록은 크게 단축되고 왜곡된 형태이다. 이 계시록은 큰 계시 중 남은 단편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요한이 기록한 이후에, 커다란 부분들은 소실되었고, 다른 부분들은 제거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단편적이고 불순물이 섞여 오염된 형태로 보존되었습니다.

139:4.15 (1555.8) John traveled much, labored incessantly, and after becoming bishop of the Asia churches, settled down at Ephesus. He directed his associate, Nathan, in the writing of the so-called “Gospel according to John,” at Ephesus, when he was ninety-nine years old. Of all the twelve apostles, John Zebedee eventually became the outstanding theologian. He died a natural death at Ephesus in A.D. 103 when he was one hundred and one years of age. 요한은 많이 여행하고, 쉼 없이 수고했으며, 아시아 교회들의 감독이 된 후 에베소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99세에 에베소에서 자기 동료 나단에게 소위 요한에 의한 복음을 쓰도록 지시했습니다. 12 사도 중에서 요한 세베대는 결국 탁월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AD 103년 에베소에서 101세의 나이로 자연사했습니다.

5. Philip the Curious 호기심 많은 빌립

180121 호기심 많은 빌립 1 요1:43-44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3 The next day Jesus decided to leave for Galilee. Finding Philip, he said to him, “Follow me.” 44 Philip, like Andrew and Peter, was from the town of Bethsaida.

139:5.1 (1556.1) Philip was the fifth apostle to be chosen, being called when Jesus and his first four apostles were on their way from John’s rendezvous on the Jordan to Cana of Galilee. Since he lived at Bethsaida, Philip had for some time known of Jesus, but it had not occurred to him that Jesus was a really great man until that day in the Jordan valley when he said, “Follow me.” Philip was also somewhat influenced by the fact that Andrew, Peter, James, and John had accepted Jesus as the Deliverer. 빌립은 다섯 번째 사도로 선택되었는데, 그는 예수님과 첫 네 사도들이 요단에서 요한을 만나고 갈릴리의 가나로 가는 도중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가 벳새다에서 살았기 때문에, 빌립은 한동안 예수님을 알고 있었지만, 요단 계곡에서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기 전까지는, 예수께서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빌립은 또한 안드레,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을 구원(해방)자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139:5.2 (1556.2) Philip was twenty-seven years of age when he joined the apostles; he had recently been married, but he had no children at this time. The nickname which the apostles gave him signified “curiosity.” Philip was always wanting to be shown. He never seemed to see very far into any proposition. He was not necessarily dull, but he lacked imagination. This lack of imagination was the great weakness of his character. He was a commonplace and matter-of-fact individual. 빌립이 27세에 사도로 참여했습니다. 그는 최근에 결혼했으며, 이 때 아이는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그에게 준 별명은 “호기심”을 의미했습니다. 빌립은 언제나 눈으로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어떤 제안도 결코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꼭 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상력은 모자랐습니다. 이 상상력 결핍이 성품 중 가장 큰 약점이었습니다. 그는 평범하고 사무적인 사람이었습니다.

139:5.3 (1556.3) When the apostles were organized for service, Philip was made steward; it was his duty to see that they were at all times supplied with provisions. And he was a good steward. His strongest characteristic was his methodical thoroughness; he was both mathematical and systematic. 사도들이 봉사하려고 편성할 때, 빌립은 사무장(事務長)이 되었는데, 그들에게 양식이 항상 공급되도록 살피는 것이 그의 의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훌륭한 사무장이었습니다. 그의 가장 강한 특성은 질서정연한 철저함이었는데, 그는 엄밀하고 체계적이었습니다.

139:5.4 (1556.4) Philip came from a family of seven, three boys and four girls. He was next to the oldest, and after the resurrection he baptized his entire family into the kingdom. Philip’s people were fisherfolk. His father was a very able man, a deep thinker, but his mother was of a very mediocre family. Philip was not a man who could be expected to do big things, but he was a man who could do little things in a big way, do them well and acceptably. Only a few times in four years did he fail to have food on hand to satisfy the needs of all. Even the many emergency demands attendant upon the life they lived seldom found him unprepared. The commissary department of the apostolic family was intelligently and efficiently managed. 빌립은 3소년과 4소녀 즉 일곱 (자녀)가 있는 가족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둘째였는데, 부활 후, 온 가족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세례를 주었습니다. 빌립의 친척들은 어민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매우 유능한 사람으로 깊은 사색가였으나 어머니는 아주 평범한 가족 출신이었습니다. 빌립은 큰일을 감당할 인물은 아니었지만, 사소한 일들을 큰 방식으로, 마음에 들게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4년 동안 모두의 필요를 채울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은 단지 몇 번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지냈던 생활에 수반된 여러 비상시(非常時)의 요구에도, 그가 준비되지 않았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도 가족의 식량부서는 지혜롭게 효과적으로 관리되었습니다.

139:5.5 (1556.5) The strong point about Philip was his methodical reliability; the weak point in his make-up was his utter lack of imagination, the absence of the ability to put two and two together to obtain four. He was mathematical in the abstract but not constructive in his imagination. He was almost entirely lacking in certain types of imagination. He was the typical everyday and commonplace average man. There were a great many such men and women among the multitudes who came to hear Jesus teach and preach, and they derived great comfort from observing one like themselves elevated to an honored position in the councils of the Master; they derived courage from the fact that one like themselves had already found a high place in the affairs of the kingdom. And Jesus learned much about the way some human minds function as he so patiently listened to Philip’s foolish questions and so many times complied with his steward’s request to “be shown.” 빌립의 강점은 그의 질서정연한 확실성이었고, 기질적 약점은 전적으로 상상력이 부족해서, 둘에 둘을 더해 넷을 얻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는 추상적(이론적)으로 엄밀했지만, 건설적 상상력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떤 유형의 상상력은 거의 전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는 일상의 평범한 전형적인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을 듣고자 왔던 군중들 가운데 그런 남녀가 매우 많았는데,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 주()님의 의회(사도들)에서 명예로운 지위로 높여진 것을 보고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 업무에서 벌써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빌립의 어리석은 질문들을 참을성 있게 듣고, “보여 달라”는 자기 사무장의 요구에 그토록 여러 번 응하시면서, 어떤 인간들의 마음이 기능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배우셨습니다.

139:5.6 (1556.6) The one quality about Jesus which Philip so continuously admired was the Master’s unfailing generosity. Never could Philip find anything in Jesus which was small, niggardly, or stingy, and he worshiped this ever-present and unfailing liberality. 빌립이 계속 경탄했던 예수님에 관한 한 가지의 특질은 주(主)님의 끊임없는 관대함이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에게서 도량이 좁고, 쩨쩨하고, 인색한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고, 그는 항상 나타나는 이 끊임없는 너그러움을 존경하였습니다.

180128 호기심 많은 빌립 2 행8:5-6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5 Philip went down to a city in Samaria and proclaimed the Christthere. 6 When the crowds heard Philip and saw the miraculous signs he did, they all paid close attention to what he said.

139:5.7 (1557.1) There was little about Philip’s personality that was impressive. He was often spoken of as “Philip of Bethsaida, the town where Andrew and Peter live.” He was almost without discerning vision; he was unable to grasp the dramatic possibilities of a given situation. He was not pessimistic; he was simply prosaic. He was also greatly lacking in spiritual insight. He would not hesitate to interrupt Jesus in the midst of one of the Master’s most profound discourses to ask an apparently foolish question. But Jesus never reprimanded him for such thoughtlessness; he was patient with him and considerate of his inability to grasp the deeper meanings of the teaching. Jesus well knew that, if he once rebuked Philip for asking these annoying questions, he would not only wound this honest soul, but such a reprimand would so hurt Philip that he would never again feel free to ask questions. Jesus knew that on his worlds of space there were untold billions of similar slow-thinking mortals, and he wanted to encourage them all to look to him and always to feel free to come to him with their questions and problems. After all, Jesus was really more interested in Philip’s foolish questions than in the sermon he might be preaching. Jesus was supremely interested in men, all kinds of men. 빌립의 고유성에는 인상적인 점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안드레와 베드로가 사는 성읍 벳새다의 빌립”으로 흔히 불렸습니다. 그는 분별하는 선견(先見)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주어진 환경에서 극적인 가능성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비관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평범했습니다. 그는 또한 영적 통찰력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그는 주(主)님의 가장 심오한 강론들 중 한 강론의 중간에 망설이지 않고 명백히 어리석은 질문으로 예수님을 가로막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경솔함에 대해 결코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내심으로 빌립을 대하셨으며, 가르침의 더 깊은 의미를 파악할 능력이 없음을 헤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일단 이러한 성가신 질문들 때문에 빌립을 책망한다면, 이 정직한 혼이 상할 뿐만이 아니라, 그 견책이 빌립의 마음을 다치게 하여, 그가 다시는 자유롭게 질문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공간 세계들에 비슷하게 생각이 더딘 필사자(必死者)들이 셀 수 없이 무수하게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으며, 그들 모두 자신을 바라보고 항상 질문들과 문제들을 가지고 자신에게 편하게 오도록 격려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전하시는 설교보다 빌립의 어리석은 질문에 실제로 더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최상의 관심을 두셨습니다.

139:5.8 (1557.2) The apostolic steward was not a good public speaker, but he was a very persuasive and successful personal worker. He was not easily discouraged; he was a plodder and very tenacious in anything he undertook. He had that great and rare gift of saying, “Come.” When his first convert, Nathaniel, wanted to argue about the merits and demerits of Jesus and Nazareth, Philip’s effective reply was, “Come and see.” He was not a dogmatic preacher who exhorted his hearers to “Go” — do this and do that. He met all situations as they arose in his work with “Come” — “come with me; I will show you the way.” And that is always the effective technique in all forms and phases of teaching. Even parents may learn from Philip the better way of saying to their children not “Go do this and go do that,” but rather, “Come with us while we show and share with you the better way.” 사도 사무장은 훌륭한 대중 연설가는 아니었지만, 매우 설득력 있고 성공적인 개인적 일꾼이었습니다. 그는 쉽게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어떤 것을 맡아도 매우 끈기 있게 했습니다. 그는 오라고 말하는 훌륭하고 보기 드문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첫째로 개종시킨 나다니엘이 예수님과 나사렛의 장단점에 대해 따지려 하자, 빌립은 와서 보라고 효과적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는 자기 청중들에게 “가서”-이것을 행하고 저것을 행하라-고 훈계하는 고압적인 설교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하다가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와서”- “나를 따라 오라; 내가 그 길을 당신들에게 보여주리라.”고 대처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형태와 단계의 가르침에서 항상 효과적인 기법입니다.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가서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라.”고 말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가 너에게 더 나은 길을 보여 주고 나눌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가자.”고 말하는 더 좋은 방법을 빌립에게 배워도 좋습니다.

139:5.9 (1557.3) The inability of Philip to adapt himself to a new situation was well shown when the Greeks came to him at Jerusalem, saying: “Sir, we desire to see Jesus.” Now Philip would have said to any Jew asking such a question, “Come.” But these men were foreigners, and Philip could remember no instructions from his superiors regarding such matters; so the only thing he could think to do was to consult the chief, Andrew, and then they both escorted the inquiring Greeks to Jesus. Likewise, when he went into Samaria preaching and baptizing believers, as he had been instructed by his Master, he refrained from laying hands on his converts in token of their having received the Spirit of Truth. This was done by Peter and John, who presently came down from Jerusalem to observe his work in behalf of the mother church.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빌립의 무능력은 예루살렘에서 그리스인들이 그에게 와서: “선생님, 우리는 예수님을 뵙고자 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잘 나타났습니다. 그 때 빌립은, 어떤 유대인이 그런 질문을 했다면 “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외국인들이었고, 빌립은 그런 문제들에 대해 윗사람들로부터 지시 받은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가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지도자 안드레의 의견을 듣는 것이었고, 그 후 두 사도는 답변을 기대하는 그리스인들을 예수님께 데려 갔습니다. 마찬가지로, ()님의 지시대로, 신자(信者)들에게 설교하고 세례를 주면서 사마리아로 들어갔을 때, 그는 그들이 진리의 영을 받았다는 표시로 개종자들 위에 손 얹기를 삼갔습니다. 이것은 모(母)교회를 대신하여 그의 일을 살피려고 예루살렘에서 즉시 내려온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 실행되었습니다.

139:5.10 (1557.4) Philip went on through the trying times of the Master’s death, participated in the reorganization of the twelve, and was the first to go forth to win souls for the kingdom outside of the immediate Jewish ranks, being most successful in his work for the Samaritans and in all his subsequent labors in behalf of the gospel. 빌립은 주(主)께서 죽으시는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을 계속 겪었는데, 12사도의 재조직에 참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혼(사람)들을 얻으려고 직계 유대인 계층 밖으로 제일 먼저 나아갔으며, 사마리아인들을 위한 그의 일과 복음을 위한 훗날의 모든 수고에서 가장 성공했습니다.

139:5.11 (1557.5) Philip’s wife, who was an efficient member of the women’s corps, became actively associated with her husband in his evangelistic work after their flight from the Jerusalem persecutions. His wife was a fearless woman. She stood at the foot of Philip’s cross encouraging him to proclaim the glad tidings even to his murderers, and when his strength failed, she began the recital of the story of salvation by faith in Jesus and was silenced only when the irate Jews rushed upon her and stoned her to death. Their eldest daughter, Leah, continued their work, later on becoming the renowned prophetess of Hierapolis. 빌립의 아내는 여성 대원들 중에서 유능한 회원으로, 예루살렘 박해를 피한 후 남편의 전도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두려움이 없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빌립의 십자가 밑에 서서 그가 자신을 죽이는 자들에게까지도 기쁜 소식을 전파하도록 격려하였으며, 그의 힘이 다하자, 그녀는 예수를 신앙하여 구원받는 이야기를 낭송하기 시작했고, 성난 유대인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어 돌로 그녀를 죽였을 때, 비로소 잠잠하였습니다. 맏딸 레아는 그들의 일을 이어받았고, 나중에 히에라폴리스의 저명한 여()선지자가 되었습니다.

139:5.12 (1558.1) Philip, the onetime steward of the twelve, was a mighty man in the kingdom, winning souls wherever he went; and he was finally crucified for his faith and buried at Hierapolis. 한 때 12사도의 사무장 빌립은 (하나님) 나라에서 막강한 사람으로 가는 곳마다 혼들을 얻었습니다. 결국 그는 신앙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고 히에라폴리스에 묻혔습니다.

6. Honest Nathaniel 정직한 나다니엘

180204 정직한 나다니엘 요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Jesus saw Nathanael coming to him, and saith of him, Behold an Israelite indeed, in whom is no guile!

139:6.1 (1558.2) Nathaniel, the sixth and last of the apostles to be chosen by the Master himself, was brought to Jesus by his friend Philip. He had been associated in several business enterprises with Philip and, with him, was on the way down to see John the Baptist when they encountered Jesus. 나다니엘은 주(主)님께서 6번째로 직접 선택한 사도로서, 친구 빌립이 그를 예수님께 안내했습니다. 그는 여러 사업 기획으로 빌립과 관련되어 있었고, 그와 함께 세례자 요한을 만나러 내려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139:6.2 (1558.3) When Nathaniel joined the apostles, he was twenty-five years old and was the next to the youngest of the group. He was the youngest of a family of seven, was unmarried, and the only support of aged and infirm parents, with whom he lived at Cana; his brothers and sister were either married or deceased, and none lived there. Nathaniel and Judas Iscariot were the two best educated men among the twelve. Nathaniel had thought to become a merchant. 나다니엘이 사도로 참여했을 때, 그는 25세로 그룹에서 두 번째로 젊었습니다. 그는 일곱 명 가족 중 막내로 미혼(未婚)이었으며, 가나에서 함께 사는 연세 들고 허약한 부모의 유일한 부양자였습니다. 그의 형들과 누나들은 결혼을 했거나 죽어서 거기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습니다. 나다니엘과 유다 가룟은 12명 중 가장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나다니엘은 상인이 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39:6.3 (1558.4) Jesus did not himself give Nathaniel a nickname, but the twelve soon began to speak of him in terms that signified honesty, sincerity. He was “without guile.” And this was his great virtue; he was both honest and sincere. The weakness of his character was his pride; he was very proud of his family, his city, his reputation, and his nation, all of which is commendable if it is not carried too far. But Nathaniel was inclined to go to extremes with his personal prejudices. He was disposed to prejudge individuals in accordance with his personal opinions. He was not slow to ask the question, even before he had met Jesus, “Can any good thing come out of Nazareth?” But Nathaniel was not obstinate, even if he was proud. He was quick to reverse himself when he once looked into Jesus’ face. 예수께서 직접 나다니엘에게 별명을 주지 않으셨지만, 12 사도들은 곧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의미의 용어로 그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간사(奸詐)가 없는” 사람으로 이것이 그의 큰 장점이었는데, 그는 정직하면서 성실했습니다. 그의 성품 중에서 단점은 (강한) 자부심이었는데; 그는 자기 가족, 도시, 명성, 민족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했으며, 그 모두는 도가 지나치지 않는다면, 칭찬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다니엘은 개인적인 편견에서 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개인적 견해로 개인들을 미리 판단하는 성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기도 전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라고 서슴지 않고 질문했습니다. 그러나 나다니엘은 자부심이 강했지만, 완고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일단 예수님의 얼굴을 보자, 얼른 자기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139:6.4 (1558.5) In many respects Nathaniel was the odd genius of the twelve. He was the apostolic philosopher and dreamer, but he was a very practical sort of dreamer. He alternated between seasons of profound philosophy and periods of rare and droll humor; when in the proper mood, he was probably the best storyteller among the twelve. Jesus greatly enjoyed hearing Nathaniel discourse on things both serious and frivolous. Nathaniel progressively took Jesus and the kingdom more seriously, but never did he take himself seriously. 여러 면에서 나다니엘은 12 중에서 이상야릇한 천재였습니다. 그는 사도 철학자이며 몽상가였지만, 매우 실천적인 몽상가였습니다. 그는 한 동안 심오한 철학에 빠져 있다가 얼마 동안 희한하게 익살스런 분위기 사이를 오락가락했습니다. 적절한 분위기에서 그는 12 중 어쩌면 최고의 이야기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지한 것들과 하찮은 것들에 대한 나다니엘의 담론 듣기를 아주 즐기셨습니다. 나다니엘은 점진적으로, 예수님과 그 나라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지만, 자신을 진지하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139:6.5 (1558.6) The apostles all loved and respected Nathaniel, and he got along with them splendidly, excepting Judas Iscariot. Judas did not think Nathaniel took his apostleship sufficiently seriously and once had the temerity to go secretly to Jesus and lodge complaint against him. Said Jesus: “Judas, watch carefully your steps; do not overmagnify your office. Who of us is competent to judge his brother? It is not the Father’s will that his children should partake only of the serious things of life. Let me repeat: I have come that my brethren in the flesh may have joy, gladness, and life more abundantly. Go then, Judas, and do well that which has been intrusted to you but leave Nathaniel, your brother, to give account of himself to God.” And the memory of this, with that of many similar experiences, long lived in the self-deceiving heart of Judas Iscariot. 사도들 모두 나다니엘을 사랑하고 존중했으며, 그는 유다 가룟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지냈습니다. 유다는 나다니엘이 사도직을 충분히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한 번 무모히 예수님께 몰래 가서 그에 대해 불평을 제기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야, 신중히 행동하라. 너의 직무를 너무 넘어서지 말라. 우리 중 누가 자기 형제를 판단할 자격이 있겠느냐? 자녀들이 삶에서 진지한 것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다시 말하는데, 나는 육신으로 내 형제들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일생이 더 풍성하도록 왔노라. 유다야, 그러니 가서 너에게 맡겨진 일을 잘하고, 네 형제 나다니엘이 하나님께 스스로 설명하도록 놔두라.” 그리고 이 기억은 비슷한 여러 경험들과 함께, 자기를 기만하는 유다 가룟의 심정에 오래 남아있었습니다.

139:6.6 (1559.1) Many times, when Jesus was away on the mountain with Peter, James, and John, and things were becoming tense and tangled among the apostles, when even Andrew was in doubt about what to say to his disconsolate brethren, Nathaniel would relieve the tension by a bit of philosophy or a flash of humor; good humor, too.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과 함께 산으로 멀리 떠나계실 때, 사도들 사이에서 일들이 긴박히 엉켰을 때, 그리고 안드레까지 우울한 형제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할 때, 여러 번, 나다니엘이 약간의 철학이나 혹은 번쩍이는 유머로, 그것도 기분 좋게, 긴장을 풀어주곤 했습니다.

139:6.7 (1559.2) Nathaniel’s duty was to look after the families of the twelve. He was often absent from the apostolic councils, for when he heard that sickness or anything out of the ordinary had happened to one of his charges, he lost no time in getting to that home. The twelve rested securely in the knowledge that their families’ welfare was safe in the hands of Nathaniel. 나다니엘의 임무는 12사도들의 가족들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주 사도 회의에 결석했는데, 그가 맡고 있는 가족들 중에서 병이나 어떤 일이 생겼다고 들었을 때, 그는 지체하지 않고 그 집을 방문했기 때문입니다. 12사도들은 가족의 복지가 나다니엘의 손에 안전하게 맡겨져 있음을 알고 안심하며 지냈습니다.

139:6.8 (1559.3) Nathaniel most revered Jesus for his tolerance. He never grew weary of contemplating the broadmindedness and generous sympathy of the Son of Man. 나다니엘은 예수님의 포용력 때문에 그를 가장 존경했습니다. 그는 사람의 아들의 관대한 마음과 너그러운 공감을 묵상하면서 결코 싫증나지 않았습니다.

139:6.9 (1559.4) Nathaniel’s father (Bartholomew) died shortly after Pentecost, after which this apostle went into Mesopotamia and India proclaiming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and baptizing believers. His brethren never knew what became of their onetime philosopher, poet, and humorist. But he also was a great man in the kingdom and did much to spread his Master’s teachings, even though he did not participate in the organization of the subsequent Christian church. Nathaniel died in India. 나다니엘의 아버지(바돌로메)가 오순절 직후에 별세한 후, 이 사도는 메소포타미아와 인도로 가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의 형제들은, 한 때 그들의 철학자요 시인이며 익살꾼(해학가諧謔家)이 어떻게 되었는지 결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이었으며, 그는 나중에 기독교회의 조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주(主)님의 가르침을 멀리 펼치며 많이 일했습니다. 나다니엘은 인도에서 별세했습니다.

7. Matthew Levi 마태 레위

180211 마태 레위 마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As Jesus went on from there, he saw a man named Matthew sitting at the tax collector’s booth. “Follow me,” he told him, and Matthew got up and followed him.

139:7.1 (1559.5) Matthew, the seventh apostle, was chosen by Andrew. Matthew belonged to a family of tax gatherers, or publicans, but was himself a customs collector in Capernaum, where he lived. He was thirty-one years old and married and had four children. He was a man of moderate wealth, the only one of any means belonging to the apostolic corps. He was a good business man, a good social mixer, and was gifted with the ability to make friends and to get along smoothly with a great variety of people. 마태는 일곱 번째 사도로 안드레가 선택했습니다. 마태는 세금을 걷는 세리(稅吏) 가족에 속했지만, 자신은 그가 살던 가버나움에서 관세 징수원이었습니다. 그는 31세였고 결혼하여 4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는 상당히 부유한 사람으로, 사도단에 속한 자로서 유일한 자산가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사업가였고, 사교술이 좋았으며, 친구를 만들고 아주 다양한 사람들과 원만하게 어울리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139:7.2 (1559.6) Andrew appointed Matthew the financial representative of the apostles. In a way he was the fiscal agent and publicity spokesman for the apostolic organization. He was a keen judge of human nature and a very efficient propagandist. His is a personality difficult to visualize, but he was a very earnest disciple and an increasing believer in the mission of Jesus and in the certainty of the kingdom. Jesus never gave Levi a nickname, but his fellow apostles commonly referred to him as the “money-getter.” 안드레는 마태를 사도들의 재정 대표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어떤 면에서 사도 조직을 위한 회계 대리인이었고 홍보(弘報) 대변인이었습니다. 그는 인간 본성을 예리하게 감정(鑑定)했으며 매우 효과적인 선전원이었습니다. 그는 표현하기 어려운 고유성을 지녔지만, 매우 열성적인 제자였고, 예수님의 사명과 (하나님) 나라의 확실성을 갈수록 깊이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레위에게 별명을 주지 않았지만, 동료 사도들은 흔히 그를 “돈 잘 버는 자”로 불렀습니다.

139:7.3 (1559.7) Levi’s strong point was his wholehearted devotion to the cause. That he, a publican, had been taken in by Jesus and his apostles was the cause for overwhelming gratitude on the part of the former revenue collector. However, it required some little time for the rest of the apostles, especially Simon Zelotes and Judas Iscariot, to become reconciled to the publican’s presence in their midst. Matthew’s weakness was his shortsighted and materialistic viewpoint of life. But in all these matters he made great progress as the months went by. He, of course, had to be absent from many of the most precious seasons of instruction as it was his duty to keep the treasury replenished. 레위의 강점은 (하나님 나라) 운동에 전심(全心)으로 헌신한 점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세리인 그를 받아주신 일은, 전직 세금 징수원의 편에서 넘치도록 감사할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사도들, 특히 시몬 젤로떼와 유다 가룟이 그들 중에 세리가 있음을 인정하기에는 얼마간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태의 약점은 인생을 근시적이며 물질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에서 여러 달이 지나자 그는 크게 나아졌습니다. 물론 그는, 금고를 채우는 것이 그의 의무였기에, 가장 귀중한 학습 시간에 많이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139:7.4 (1559.8) It was the Master’s forgiving disposition which Matthew most appreciated. He would never cease to recount that faith only was necessary in the business of finding God. He always liked to speak of the kingdom as “this business of finding God.” 마태가 가장 감사히 여긴 것은 주(主)님의 용서하는 성향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에서 신앙만이 필수적이라고 끊임없이 말하곤 했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이 일”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했습니다.

139:7.5 (1560.1) Though Matthew was a man with a past, he gave an excellent account of himself, and as time went on, his associates became proud of the publican’s performances. He was one of the apostles who made extensive notes on the sayings of Jesus, and these notes were used as the basis of Isador’s subsequent narrative of the sayings and doings of Jesus, which has become known as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마태는 과거를 지닌 사람이었지만, 너무 훌륭하게 처신했으며, 시간이 지나자, 동료들은 세리의 성과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광범위하게 받아 적은 사도 중 하나로, 이 노트들은 나중에 이사도르가 기록한 예수님의 말씀들과 행적들의 기초로 사용되었고, 마태에 의한 복음서라고 알려졌습니다.

139:7.6 (1560.2) The great and useful life of Matthew, the business man and customs collector of Capernaum, has been the means of leading thousands upon thousands of other business men, public officials, and politicians, down through the subsequent ages, also to hear that engaging voice of the Master saying, “Follow me.” Matthew really was a shrewd politician, but he was intensely loyal to Jesus and supremely devoted to the task of seeing that the messengers of the coming kingdom were adequately financed. 사업가이며 가버나움의 세관 징수원이었던, 마태의 위대하고 훌륭한 일생은, 수천 명의 다른 사업가들, 공무원들, 정치가들도, 밑으로 다음 세대들 내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주(主)님의 매력적인 음성을 듣도록 인도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마태는 정말로 명석한 정치가였지만, 예수님께 열성적으로 충성했으며,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메신저들에게 충분히 자금이 조달되도록 원조하는 직무에 극도로 헌신했습니다.

139:7.7 (1560.3) The presence of Matthew among the twelve was the means of keeping the doors of the kingdom wide open to hosts of downhearted and outcast souls who had regarded themselves as long since without the bounds of religious consolation. Outcast and despairing men and women flocked to hear Jesus, and he never turned one away. 12사도 중에 있었던 마태의 현존은, 오래 전부터 자신들이 종교적 위안의 경계선 밖에 있다고 여겨왔던 낙담하고 버림받은 수많은 혼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버림받고 절망하는 남녀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들었으며, 예수님은 한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139:7.8 (1560.4) Matthew received freely tendered offerings from believing disciples and the immediate auditors of the Master’s teachings, but he never openly solicited funds from the multitudes. He did all his financial work in a quiet and personal way and raised most of the money among the more substantial class of interested believers. He gave practically the whole of his modest fortune to the work of the Master and his apostles, but they never knew of this generosity, save Jesus, who knew all about it. Matthew hesitated openly to contribute to the apostolic funds for fear that Jesus and his associates might regard his money as being tainted; so he gave much in the names of other believers. During the earlier months, when Matthew knew his presence among them was more or less of a trial, he was strongly tempted to let them know that his funds often supplied them with their daily bread, but he did not yield. When evidence of the disdain of the publican would become manifest, Levi would burn to reveal to them his generosity, but always he managed to keep still. 마태는 믿는 제자들과 주(主)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내는 헌금을 받았지만, 결코 공개적으로 군중들에게 기금을 간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히 개인적 방법으로 모든 재정 일을 처리했고, 관심 있는 신자들 중 더 재산이 있는 계층 사이에서 대부분의 돈을 모금했습니다. 그는 사실 주(主)님과 사도들의 일에 자신의 적당한 재산 전체를 썼지만, 전부 알고 있던 예수님을 제외하고, 그들(사도)은 이 관대함을 조금도 몰랐습니다. 마태는 예수님과 동료들이 자기 돈을 오염된 것으로 여길까 두려워서 사도들의 기금에 버젓이 기부하기를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신자들의 이름으로 많이 냈습니다. 초기 몇 개월 동안, 마태가 그들 사이에서 자기 현존이 어느 정도 문제임을 알게 되었을 때, 마태는 그의 기금으로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자주 공급했다고 그들에게 알리려는 유혹을 강하게 받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세리를 경멸하는 증거가 나타나게 되면, 레위는 그들에게 자신의 관대함을 드러내려고 분노가 치밀곤 했지만, 그는 항상 잠잠히 가라앉도록 관리했습니다.

139:7.9 (1560.5) When the funds for the week were short of the estimated requirements, Levi would often draw heavily upon his own personal resources. Also, sometimes when he became greatly interested in Jesus’ teaching, he preferred to remain and hear the instruction, even though he knew he must personally make up for his failure to solicit the necessary funds. But Levi did so wish that Jesus might know that much of the money came from his pocket! He little realized that the Master knew all about it. The apostles all died without knowing that Matthew was their benefactor to such an extent that, when he went forth to proclaim the gospel of the kingdom after the beginning of the persecutions, he was practically penniless. 한 주간의 기금이 예산보다 부족하면, 레위는 자주 자기 개인 재산에서 많이 돈을 찾아 쓰곤 하였습니다. 또한 가끔씩, 그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단히 흥미를 느끼게 되면, 필요한 기금을 요청하지 못하여 심지어 그가 개인적으로 충당해야만 한다고 알았지만, 차라리 남아서 가르침 듣기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레위는 많은 돈이 그의 주머니에서 나왔음을 예수께서 알아주시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그는, 주(主)님께서 전부 알고 계셨음을 조금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박해가 시작된 후 마태가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나갔을 때, 그는 사실상 무일푼이었을 정도로, 마태가 그들의 후원자였음을 사도들은 모두 죽을 때까지 몰랐습니다.

139:7.10 (1560.6) When these persecutions caused the believers to forsake Jerusalem, Matthew journeyed north,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baptizing believers. He was lost to the knowledge of his former apostolic associates, but on he went, preaching and baptizing, through Syria, Cappadocia, Galatia, Bithynia, and Thrace. And it was in Thrace, at Lysimachia, that certain unbelieving Jews conspired with the Roman soldiers to encompass his death. And this regenerated publican died triumphant in the faith of a salvation he had so surely learned from the teachings of the Master during his recent sojourn on earth. 이 박해들로 신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자, 마태는 북쪽으로 여행하면서, 나라의 복음을 설교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는 예전의 사도 동료들과 소식이 끊어졌지만, 그는 설교하고 세례를 주면서 시리아, 카파도시아, 갈라시아, 비티니아, 트레이스를 거쳐 계속 나아갔습니다. 리시마키아에 있는 트레이스에서, 어떤 믿지 않는 유대인이 그를 죽이려고 병정과 공모했습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된 이 세리는, 최근에 지상에 머무시던 주(主)님의 가르침에서 확실히 배웠던 구원의 신앙으로 승리를 거두며 죽었습니다.

8. Thomas Didymus 도마 디디머스

180218 도마 디디머스 1 요20:24-25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4 Now Thomas (called Didymus), one of the Twelve, was not with the disciples when Jesus came. 25 So the other disciples told him, “We have seen the Lord!” But he said to them, “Unless I see the nail marks in his hands and put my finger where the nails were, and put my hand into his side, I will not believe it.”

139:8.1 (1561.1) Thomas was the eighth apostle, and he was chosen by Philip. In later times he has become known as “doubting Thomas,” but his fellow apostles hardly looked upon him as a chronic doubter. True, his was a logical, skeptical type of mind, but he had a form of courageous loyalty which forbade those who knew him intimately to regard him as a trifling skeptic. 도마는 여덟 번째 사도로, 빌립이 선택했습니다. 후에 그는 “의심하는 도마”로 알려졌지만, 동료 사도들은 조금도 그를 상습적인 의혹자(의심을 품는 사람)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그의 마음은 논리적이며 회의적인 유형이었지만, 그는 용감히 충성하는 사람이어서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하찮은 회의론자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139:8.2 (1561.2) When Thomas joined the apostles, he was twenty-nine years old, was married, and had four children. Formerly he had been a carpenter and stone mason, but latterly he had become a fisherman and resided at Tarichea, situated on the west bank of the Jordan where it flows out of the Sea of Galilee, and he was regarded as the leading citizen of this little village. He had little education, but he possessed a keen, reasoning mind and was the son of excellent parents, who lived at Tiberias. Thomas had the one truly analytical mind of the twelve; he was the real scientist of the apostolic group. 도마가 사도들과 합류할 때, 그는 29세로, 결혼해서 4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목수와 석공이었지만, 나중에 어부가 되어, 갈릴리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요단강 서쪽 둑에 자리 잡은, 타리케아에 살았으며, 그는 이 작은 마을에서 유지(有志)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교육은 거의 받지 못하였지만, 예리하고 논리적인 마음을 가진 훌륭한 부모의 아들이었고, 그의 부모는 티베리아스에 살았습니다. 도마는 12사도 중 참으로 분석적 마음을 지닌 유일한 사람으로, 사도 그룹에서 사실상 과학자였습니다.

139:8.3 (1561.3) The early home life of Thomas had been unfortunate; his parents were not altogether happy in their married life, and this was reflected in Thomas’s adult experience. He grew up having a very disagreeable and quarrelsome disposition. Even his wife was glad to see him join the apostles; she was relieved by the thought that her pessimistic husband would be away from home most of the time. Thomas also had a streak of suspicion which made it very difficult to get along peaceably with him. Peter was very much upset by Thomas at first, complaining to his brother, Andrew, that Thomas was “mean, ugly, and always suspicious.” But the better his associates knew Thomas, the more they liked him. They found he was superbly honest and unflinchingly loyal. He was perfectly sincere and unquestionably truthful, but he was a natural-born faultfinder and had grown up to become a real pessimist. His analytical mind had become cursed with suspicion. He was rapidly losing faith in his fellow men when he became associated with the twelve and thus came in contact with the noble character of Jesus. This association with the Master began at once to transform Thomas’s whole disposition and to effect great changes in his mental reactions to his fellow men. 도마의 초기 가정생활은 불행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결혼생활에서 전적으로 행복하지는 않았으며, 이것은 도마가 어른이 되자 체험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매우 까다롭고 잘 다투는 기질로 자랐습니다. 그의 아내까지 그가 사도들에게 합세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녀는 비관적인 남편이 대부분 집을 떠나있게 되리라는 생각으로 안도했습니다. 도마는 또한 의심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와 평화롭게 지내기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처음에 도마로 인해 아주 너무 당황하여, 자기 형 안드레에게, 도마는 “나쁜 성격에, 싸우려하고, 항상 의심한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동료들은 도마를 알아 갈수록, 그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최고로 정직하고 단호하게 충성스러움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완전히 성실하고, 나무랄 데 없이 진실했지만, 천부적으로 흠잡는 사람이었고, 자라서 진짜 비관론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분석적인 마음은 의심으로 시달렸습니다. 그가 열둘과 관련되자, 그는 신속히 동료 인간들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따라서 예수님의 고상한 성품에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주(主)님과 이런 관계는 즉시 도마의 기질 전체를 바꾸기 시했고, 동료들에 대한 그의 정신적 반응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39:8.4 (1561.4) Thomas’s great strength was his superb analytical mind coupled with his unflinching courage — when he had once made up his mind. His great weakness was his suspicious doubting, which he never fully overcame throughout his whole lifetime in the flesh. 도마의 큰 장점은, 그가 일단 마음을 정하면, 뛰어난 분석적 마음에 굽힐 줄 모르는 용기가 결부된 것이었습니다. 그의 큰 약점은 상대를 믿지 않는 의심으로, 육신의 전 생애에 걸쳐 충분히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139:8.5 (1561.5) In the organization of the twelve Thomas was assigned to arrange and manage the itinerary, and he was an able director of the work and movements of the apostolic corps. He was a good executive, an excellent businessman, but he was handicapped by his many moods; he was one man one day and another man the next. He was inclined toward melancholic brooding when he joined the apostles, but contact with Jesus and the apostles largely cured him of this morbid introspection. 열둘의 조직에서 도마는 여행일정을 세우고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사도 대원들의 일과 움직임에 대한 유능한 관리자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행정가, 뛰어난 사업가였지만, 자신의 변덕스런 기분 때문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루는 어떤 사람이었고 다음 날은 또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사도들에 합세했을 때, 그는 우울한 생각에 쏠려 있었지만, 예수님과 사도들의 접촉으로 이 병적인 내면-성찰에서 많이 치료되었습니다.

139:8.6 (1561.6) Jesus enjoyed Thomas very much and had many long, personal talks with him. His presence among the apostles was a great comfort to all honest doubters and encouraged many troubled minds to come into the kingdom, even if they could not wholly understand everything about the spiritual and philosophic phases of the teachings of Jesus. Thomas’s membership in the twelve was a standing declaration that Jesus loved even honest doubters. 예수님은 도마와 매우 즐겁게 지내셨고 여러 번 길게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사도들 중에 그의 현존(도마가 있다는 사실)은 정직하게 의혹을 품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위로였고, 불안한 많은 마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지닌 영적이며 철학적인 단계에 대해 모두 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도록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열둘 중에 포함된 도마의 회원자격은 예수님께서 정직하게 의심이 많은 자들도 사랑하셨다는 지속적인 선언이었습니다.

139:8.7 (1562.1) The other apostles held Jesus in reverence because of some special and outstanding trait of his replete personality, but Thomas revered his Master because of his superbly balanced character. Increasingly Thomas admired and honored one who was so lovingly merciful yet so inflexibly just and fair; so firm but never obstinate; so calm but never indifferent; so helpful and so sympathetic but never meddlesome or dictatorial; so strong but at the same time so gentle; so positive but never rough or rude; so tender but never vacillating; so pure and innocent but at the same time so virile, aggressive, and forceful; so truly courageous but never rash or foolhardy; such a lover of nature but so free from all tendency to revere nature; so humorous and so playful, but so free from levity and frivolity. It was this matchless symmetry of personality that so charmed Thomas. He probably enjoyed the highest intellectual understanding and personality appreciation of Jesus of any of the twelve. 다른 사도들은 예수님의 충만한 고유성이 지닌 어떤 특별하고 탁월한 특성 때문에 그를 존경했지만, 도마는 뛰어나게 균형 잡힌 성품 때문에 주님을 존경했습니다. 도마는, 그렇게 깊은 애정으로 자비하셔도 강직하게 공정하고 공평하시며, 견고하지만 완고하지 않으시고, 침착하지만 무관심하지 않으시며, 도움이 되고 공감하시면서도 간섭하거나 독재적이 아니시며, 강하신 동시에 온화하시며, 적극적이시지만 거칠거나 무례하지 않으시고, 부드럽지만 우유부단하지 않으시며, 순수하고 순진하신 동시에 씩씩하고 진취적이며 강력하시고, 진실로 용감하시나 경솔하거나 무모하지 않으시며, 자연을 사랑하시지만 자연을 숭배하는 모든 경향에서 자유로우시고, 유머가 풍부하고 쾌활하시지만 촐싹이거나 경박하지 않으신 분을 점점 더 경탄하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도마는 이렇게 비할 수 없이 균형 잡힌 고유성에 그렇게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아마 열둘 중 누구보다, 예수님을 가장 지적으로 이해하고 고유성의 진가를 인정하고 즐거워했습니다.

180225 도마 디디머스 2 요11: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Then Thomas (called Didymus) said to the rest of the disciples, “Let us also go, that we may die with him.”

139:8.8 (1562.2) In the councils of the twelve Thomas was always cautious, advocating a policy of safety first, but if his conservatism was voted down or overruled, he was always the first fearlessly to move out in execution of the program decided upon. Again and again would he stand out against some project as being foolhardy and presumptuous; he would debate to the bitter end, but when Andrew would put the proposition to a vote, and after the twelve would elect to do that which he had so strenuously opposed, Thomas was the first to say, “Let’s go!” He was a good loser. He did not hold grudges nor nurse wounded feelings. Time and again did he oppose letting Jesus expose himself to danger, but when the Master would decide to take such risks, always was it Thomas who rallied the apostles with his courageous words, “Come on, comrades, let’s go and die with him.” 12사도 의회에서 도마는 언제나 신중했으며, 안전제일 정책을 주장했지만, 안전제일 주의가 부결되거나 취소되면, 결정된 계획의 실행에 그가 항상 제일 먼저 두려움 없이 나섰습니다. 그는 반복해서 무모하고 주제넘은 어떤 계획들을 계속 반대하곤 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격렬히 논쟁하곤 했지만, 안드레가 그 제안을 투표에 붙여서, 그가 그렇게 격렬히 반대했던 것을 12사도들이 채택하기로 한 후에는, 도마가 제일 먼저 “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패배자(태연하게 지는 사람)였습니다. 그는 원한이나 상한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거듭, 그는 예수께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반대했지만, 주(主)께서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정하려 하셨을 때, “친구들이여, 어서 갑시다. 가서 주(主)와 함께 목숨을 바칩시다.”라는 용기 있는 말로 사도들을 집결시키는 사람은 항상 도마였습니다.

139:8.9 (1562.3) Thomas was in some respects like Philip; he also wanted “to be shown,” but his outward expressions of doubt were based on entirely different intellectual operations. Thomas was analytical, not merely skeptical. As far as personal physical courage was concerned, he was one of the bravest among the twelve. 도마는 어떤 면에서 빌립과 비슷했습니다. 그도 역시 “눈으로 보기”를 원했지만, 겉으로 표현된 그의 의심은 전혀 다른 지적 작용에 근거를 두었습니다. 도마는 분석적이었고, 단순히 회의적(懷疑的)이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육체적 용기에 관해서, 그는 12사도들 중 가장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139:8.10 (1562.4) Thomas had some very bad days; he was blue and downcast at times. The loss of his twin sister when he was nine years old had occasioned him much youthful sorrow and had added to his temperamental problems of later life. When Thomas would become despondent, sometimes it was Nathaniel who helped him to recover, sometimes Peter, and not infrequently one of the Alpheus twins. When he was most depressed, unfortunately he always tried to avoid coming in direct contact with Jesus. But the Master knew all about this and had an understanding sympathy for his apostle when he was thus afflicted with depression and harassed by doubts. 도마는 상당히 매우 힘든 날들을 겪었습니다. 그는 때로 우울하였고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가 9살 때, 쌍둥이 여동생을 잃어서 슬픔이 많은 청소년기를 보냈고, 그 뒤 인생에서 변덕스러운 문제들이 늘어났습니다. 도마가 낙담하게 되면 그가 회복하도록, 때로는 나다니엘, 때로는 베드로, 때로는 알패오 쌍둥이들 중 하나가, 도왔습니다. 그가 아주 침울해지면, 불행히도 그는 예수님과 직접 대면하기를 항상 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님은 이것을 모두 아셨고, 그가 그렇게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의심으로 시달릴 때, 자신의 사도를 이해하며 헤아리셨습니다.

139:8.11 (1562.5) Sometimes Thomas would get permission from Andrew to go off by himself for a day or two. But he soon learned that such a course was not wise; he early found that it was best, when he was downhearted, to stick close to his work and to remain near his associates. But no matter what happened in his emotional life, he kept right on being an apostle. When the time actually came to move forward, it was always Thomas who said, “Let’s go!” 종종 도마는 홀로 하루나 이틀 말없이 떠나도록 안드레에게 허락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그런 방식이 현명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가 낙심했을 때 일에 매진하면서 동료들 근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최선임을 일찍이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감정적 일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는 계속 사도로 남아 있었습니다. 실제로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 오면, “갑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항상 도마였습니다.

139:8.12 (1562.6) Thomas is the great example of a human being who has doubts, faces them, and wins. He had a great mind; he was no carping critic. He was a logical thinker; he was the acid test of Jesus and his fellow apostles. If Jesus and his work had not been genuine, it could not have held a man like Thomas from the start to the finish. He had a keen and sure sense of fact. At the first appearance of fraud or deception Thomas would have forsaken them all. Scientists may not fully understand all about Jesus and his work on earth, but there lived and worked with the Master and his human associates a man whose mind was that of a true scientist — Thomas Didymus — and he believed in Jesus of Nazareth. 도마는 의심을 품고, 그것들을 대면하고, 극복하는 인간의 위대한 모델입니다. 그는 넓은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흠잡는 비평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논리적인 사색가였고, 예수님과 동료 사도들에게 엄밀한 시금석(試金石)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일이 진짜가 아니었다면, 도마 같은 사람을 처음부터 끝까지 잡아 놓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사실에 대해 예리하고 확실한 감각을 지녔습니다. 사기나 속임수가 나타나는 첫 순간에, 도마는 그들을 모두 버렸을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예수님과 그의 지상 일에 대해 모두 충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나사렛 예수를 믿었던 도마 디디머스, 즉 진정한 과학자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 주님과 인간 동료들과 함께 살았고 일했습니다.

139:8.13 (1563.1) Thomas had a trying time during the days of the trial and crucifixion. He was for a season in the depths of despair, but he rallied his courage, stuck to the apostles, and was present with them to welcome Jesus on the Sea of Galilee. For a while he succumbed to his doubting depression but eventually rallied his faith and courage. He gave wise counsel to the apostles after Pentecost and, when persecution scattered the believers, went to Cyprus, Crete, the North African coast, and Sicily, preaching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and baptizing believers. And Thomas continued preaching and baptizing until he was apprehended by the agents of the Roman government and was put to death in Malta. Just a few weeks before his death he had begun the writing of the life and teachings of Jesus. 도마는 재판과 십자가 처형의 기간에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한동안 절망의 심연(深淵깊은 수렁)에 있었지만, 용기를 회복하여 사도들에 합세했고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환영하려고 사도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는 잠시 의심의 우울증에 굴복했지만, 결국 신앙과 용기를 회복했습니다. 그는 오순절 이후 사도들에게 현명하게 조언했으며, 박해로 신도들이 흩어지자, 그는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들을 설교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키프로스, 크레데, 북 아프리카 해안, 시실리로 갔습니다. 그리고 도마는 로마 정부의 관리들에게 체포되어 말타에서 죽기까지 계속 설교하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가 불과 죽기 몇 주 전에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들을 기록하기 시작했었습니다.

9. and 10. James and Judas Alpheus 9-10. 야고보와 유다 알페오

180304 야고보와 유다 알패오 마10: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Philip and Bartholomew; Thomas and Matthew the tax collector; James son of Alphaeus, and Thaddaeus;

139:10.1 (1563.2) James and Judas the sons of Alpheus, the twin fishermen living near Kheresa, were the ninth and tenth apostles and were chosen by James and John Zebedee. They were twenty-six years old and married, James having three children, Judas two. 알페오의 아들들, 야고보와 유다는 게라사 근처에 사는 쌍둥이 어부들로, 9번째와 10번째의 사도들이었고,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가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26세였고 결혼을 했으며, 야고보는 3명의 자녀들을, 유다는 2명의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139:10.2 (1563.3) There is not much to be said about these two commonplace fisherfolk. They loved their Master and Jesus loved them, but they never interrupted his discourses with questions. They understood very little about the philosophical discussions or the theological debates of their fellow apostles, but they rejoiced to find themselves numbered among such a group of mighty men. These two men were almost identical in personal appearance, mental characteristics, and extent of spiritual perception. What may be said of one should be recorded of the other. 이들 두 평범한 어부들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그들은 주(主)님을 사랑했고, 주(主)님도 그들을 사랑하셨지만, 그들은 결코 질문으로 그의 강연을 가로막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동료 사도들의 철학적 토의나 신학적 논쟁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들이 그런 집단의 막강한 사람들 사이에 열거됨을 발견하고 기뻐했습니다. 이들 두 사람은 개인적 용모, 정신적 특성, 영적 인식 정도가 거의 같았습니다. 한 사람에 대해 말해도 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기록되어져야 했습니다.

139:10.3 (1563.4) Andrew assigned them to the work of policing the multitudes. They were the chief ushers of the preaching hours and, in fact, the general servants and errand boys of the twelve. They helped Philip with the supplies, they carried money to the families for Nathaniel, and always were they ready to lend a helping hand to any one of the apostles. 안드레는 그들에게 군중들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그들은 설교시간에 1등 안내원이었으며, 사실 12사도들의 시중을 드는, 심부름꾼이었습니다. 그들은 소모품을 다루는 빌립을 도왔고, 나다니엘을 위해 가족들에게 돈을 전달했으며, 항상 어떤 사도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139:10.4 (1563.5) The multitudes of the common people were greatly encouraged to find two like themselves honored with places among the apostles. By their very acceptance as apostles these mediocre twins were the means of bringing a host of fainthearted believers into the kingdom. And, too, the common people took more kindly to the idea of being directed and managed by official ushers who were very much like themselves. 일반인의 무리들은 자신들과 같은 두 사람이 영예롭게 사도들 사이에 있음을 알고 크게 격려를 받았습니다. 이 평범한 쌍둥이들이 사도로 승인된 바로 그 사실이 주눅 들린 신자의 무리를 (하나님) 나라로 데려오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도 자신들과 아주 많이 비슷한 공식 안내원들이 지도하고 관리한다는 생각에 더 친절히 여겼습니다.

139:10.5 (1563.6) James and Judas, who were also called Thaddeus and Lebbeus, had neither strong points nor weak points. The nicknames given them by the disciples were good-natured designations of mediocrity. They were “the least of all the apostles”; they knew it and felt cheerful about it. 또한 다대오와 레비오로 불렸던 야고보와 유다는 장점도, 단점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그들에게 준 별명은 평범하다는 착한 호칭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도 중 가장 작은 자들”이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알고 기분 좋게 느꼈습니다.

139:10.6 (1563.7) James Alpheus especially loved Jesus because of the Master’s simplicity. These twins could not comprehend the mind of Jesus, but they did grasp the sympathetic bond between themselves and the heart of their Master. Their minds were not of a high order; they might even reverently be called stupid, but they had a real experience in their spiritual natures. They believed in Jesus; they were sons of God and fellows of the kingdom. 야고보 알패오는 주(主)님의 단순함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이 쌍둥이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들과 주(主)님의 심정 사이에 있는 (마음이 통하는) 공감의 연대감을 파악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수준이 높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공손을 담아도, 아둔하다고 불릴 수 있지만, 그들은 영적 본질을 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었고 (하나님) 나라의 동료였습니다.

139:10.7 (1564.1) Judas Alpheus was drawn toward Jesus because of the Master’s unostentatious humility. Such humility linked with such personal dignity made a great appeal to Judas. The fact that Jesus would always enjoin silence regarding his unusual acts made a great impression on this simple child of nature. 유다 알패오는 주(主)님의 허세 없는 겸손 때문에 예수님께 끌렸습니다. 개인적 위엄을 동반한 그런 겸손이 유다에게 큰 매력을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비범한 행동에 관해 항상 침묵하라고 분부한 사실은, 이 단순한 기질의 자녀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139:10.8 (1564.2) The twins were good-natured, simple-minded helpers, and everybody loved them. Jesus welcomed these young men of one talent to positions of honor on his personal staff in the kingdom because there are untold millions of other such simple and fear-ridden souls on the worlds of space whom he likewise wishes to welcome into active and believing fellowship with himself and his outpoured Spirit of Truth. Jesus does not look down upon littleness, only upon evil and sin. James and Judas were little, but they were also faithful. They were simple and ignorant, but they were also big-hearted, kind, and generous. 쌍둥이들은 착하고, 순진한 조수였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은 한 가지 재능을 지닌 이 청년들을 (하나님) 나라의 개인 참모라는 영예로운 지위로 환영하셨는데, 그는 마찬가지로 자신과 활동적인 믿음의 사귐 안으로, 흘러나온 진리의 영과 함께, 공간 세계의 그렇게 단순하며 두려움에 떠는,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혼들을 환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작음이 아니라, 단지 악과 죄를 경멸하십니다. 야고보와 유다는 작았지만, 그들은 또한 신실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하고 무지했지만, 또한 도량이 넓었고, 친절하고, 관대했습니다.

139:10.9 (1564.3) And how gratefully proud were these humble men on that day when the Master refused to accept a certain rich man as an evangelist unless he would sell his goods and help the poor. When the people heard this and beheld the twins among his counselors, they knew of a certainty that Jesus was no respecter of persons. But only a divine institution — the kingdom of heaven — could ever have been built upon such a mediocre human foundation! 어떤 부자(富者)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돕지 않는 한, 주님께서 전도자(傳道者)로 받아주기를 거절하신 그 날, 이 겸손한 사람들은 얼마나 감사하며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그 쌍둥이들이 예수의 조언자들 중에 있음을 보았을 때, 그들은 예수께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으심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신적 제도─하늘나라─만이 그런 평범한 인간적 기반 위에 언제나 설립될 수 있었습니다.

139:10.10 (1564.4) Only once or twice in all their association with Jesus did the twins venture to ask questions in public. Judas was once intrigued into asking Jesus a question when the Master had talked about revealing himself openly to the world. He felt a little disappointed that there were to be no more secrets among the twelve, and he made bold to ask: “But, Master, when you do thus declare yourself to the world, how will you favor us with special manifestations of your goodness?” 쌍둥이들은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일 중에 단지 한두 번 공개적으로 감히 질문했습니다. 주(主)께서 자신을 세상에 숨김없이 드러내시겠다고 얘기했을 때, 유다가 예수님께 흥미롭게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12명 사이에 더 이상 비밀이 없어진다는 것에 조금 실망을 느끼고, 그는 감히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주(主)여, 당신께서 그렇게 세상에 자신을 밝히시면, 우리에게 당신의 선함을 특별히 나타내는 은혜를 어떻게 베푸시렵니까?”

139:10.11 (1564.5) The twins served faithfully until the end, until the dark days of trial, crucifixion, and despair. They never lost their heart faith in Jesus, and (save John) they were the first to believe in his resurrection. But they could not comprehend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Soon after their Master was crucified, they returned to their families and nets; their work was done. They had not the ability to go on in the more complex battles of the kingdom. But they lived and died conscious of having been honored and blessed with four years of close and personal association with a Son of God, the sovereign maker of a universe. 쌍둥이들은 끝까지, 재판과 십자가 처형과 절망의 어두운 날들까지, 성실히 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신앙하는 심정을 결코 잃지 않았고, (요한을 제외하고) 그들은 그의 부활을 처음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설립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주(主)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신 직후, 그들은 가족에게 돌아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들의 일은 끝났습니다. 그들은 더 어려운 (하나님) 나라의 전투를 계속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우주의 주권적 조물주와 가깝게 4년 동안 개인적 관계를 갖는 영예와 축복 받았음을 의식하면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11. Simon the Zealot 열심당원 시몬

180311 열심당원 시몬 눅6: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Matthew, Thomas, James son of Alphaeus, Simon who was called the Zealot,

139:11.1 (1564.6) Simon Zelotes, the eleventh apostle, was chosen by Simon Peter. He was an able man of good ancestry and lived with his family at Capernaum. He was twenty-eight years old when he became attached to the apostles. He was a fiery agitator and was also a man who spoke much without thinking. He had been a merchant in Capernaum before he turned his entire attention to the patriotic organization of the Zealots. 시몬 젤로테는 11번째 사도로, 시몬 베드로가 선택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가문에 속한 유능한 사람이었고, 가버나움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사도들에게 소속되었을 때 28세였습니다. 그는 격렬한 선동가였으며, 또한 생각 없이 많이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애국적 조직인 열심당에 심혈을 다하기 전까지 가버나움의 상인이었습니다.

139:11.2 (1564.7) Simon Zelotes was given charge of the diversions and relaxation of the apostolic group, and he was a very efficient organizer of the play life and recreational activities of the twelve. 시몬 젤로테는 사도 그룹의 기분 전환과 휴식을 담당했으며, 그는 12사도들의 운동 생활과 오락 활동에 대해 아주 효율적인 조직가였습니다.

139:11.3 (1564.8) Simon’s strength was his inspirational loyalty. When the apostles found a man or woman who floundered in indecision about entering the kingdom, they would send for Simon. It usually required only about fifteen minutes for this enthusiastic advocate of salvation through faith in God to settle all doubts and remove all indecision, to see a new soul born into the “liberty of faith and the joy of salvation.” 시몬의 강점은 영감(靈感)을 일으키는 충성이었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주저하며 버둥거리는 남자나 여자를 발견하면, 그들은 시몬을 부르곤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신앙)으로 구원된다는 이 열성적인 주창자가, 모든 의심들을 해결하고 모든 망설임을 없애고, 새로운 혼이 “신앙의 해방과 구원의 기쁨”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는데 대개 약 15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139:11.4 (1565.1) Simon’s great weakness was his material-mindedness. He could not quickly change himself from a Jewish nationalist to a spiritually minded internationalist. Four years was too short a time in which to make such an intellectual and emotional transformation, but Jesus was always patient with him. 시몬의 큰 약점은 물질적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는 유대 민족주의자로부터 영적 마음을 가진 국제주의자로, 자신을 빨리 전환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런 지적 감정적 변환을 이루기에 4년은 너무 짧았지만, 예수님은 항상 그를 인내하셨습니다.

139:11.5 (1565.2) The one thing about Jesus which Simon so much admired was the Master’s calmness, his assurance, poise, and inexplicable composure. 시몬이 예수에 대해 그토록 탄복한 한 가지는 주(主)님의 고요함, 그의 확신, 평정,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침착성이었습니다.

139:11.6 (1565.3) Although Simon was a rabid revolutionist, a fearless firebrand of agitation, he gradually subdued his fiery nature until he became a powerful and effective preacher of “Peace on earth and good will among men.” Simon was a great debater; he did like to argue. And when it came to dealing with the legalistic minds of the educated Jews or the intellectual quibblings of the Greeks, the task was always assigned to Simon. 시몬은 과격한 혁명가였고, 두려움 없이 선동하는 선동가였지만, 그가 “땅에서 평화와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뜻”을 전하는 강력하고 유능한 설교자가 되기까지, 그는 점차 불같은 성품을 가라앉혔습니다. 시몬은 뛰어난 토론자였고, 논쟁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주의적 마음을 가진 교육받은 유대인이나 지적 궤변의 그리스인들을 다루는 과제는 언제나 시몬이 맡았습니다.

139:11.7 (1565.4) He was a rebel by nature and an iconoclast by training, but Jesus won him for the higher concepts of the kingdom of heaven. He had always identified himself with the party of protest, but he now joined the party of progress, unlimited and eternal progression of spirit and truth. Simon was a man of intense loyalties and warm personal devotions, and he did profoundly love Jesus. 그는 천성이 반항아였고, 훈련받은 인습 타파주의자였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더 높은 개념을 위해 그를 설득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을 항의당(抗議黨)과 항상 동일시했었지만, 이제는 영과 진리의 한없이 영원한 진보, 그 진보당(進步黨)에 가입했습니다. 시몬은 강렬한 충성심따뜻하게 직접 헌신하는 사람이었고, 예수님을 충심으로 사랑했습니다.

139:11.8 (1565.5) Jesus was not afraid to identify himself with business men, laboring men, optimists, pessimists, philosophers, skeptics, publicans, politicians, and patriots. 예수님은 자신을 사업가, 노동자, 낙천가, 비관론자, 철학자, 회의론자, 세리, 정치가, 애국자들과 동일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139:11.9 (1565.6) The Master had many talks with Simon, but he never fully succeeded in making an internationalist out of this ardent Jewish nationalist. Jesus often told Simon that it was proper to want to see the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orders improved, but he would always add: “That is not the business of the kingdom of heaven. We must be dedicated to the doing of the Father’s will. Our business is to be ambassadors of a spiritual government on high, and we must not immediately concern ourselves with aught but the representation of the will and character of the divine Father who stands at the head of the government whose credentials we bear.” It was all difficult for Simon to comprehend, but gradually he began to grasp something of the meaning of the Master’s teaching. 주(主)님은 시몬과 많이 이야기하셨지만, 이 열렬한 유대 민족주의자를 국제주의자로 만드는 데 결코 충분히 성공하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주 시몬에게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질서들이 개선되기를 보려는 것은 적절하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항상 다음의 말을 덧붙이곤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직무가 아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 헌신해야만 한다. 우리의 직무는 높은 영적 정부(政府)의 대사가 되는 것이며, 신임장을 지닌 우리는 그 정부(政府)의 정상(頂上)에 계신 신적 아버지의 뜻과 성품을 대표하는 외에 어떤 것도 자신에 대해 바로 염려하지 말아야만 하느니라.” 시몬은 모두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점차 주님께서 가르치신 어지간한 의미를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139:11.10 (1565.7) After the dispersion because of the Jerusalem persecutions, Simon went into temporary retirement. He was literally crushed. As a nationalist patriot he had surrendered in deference to Jesus’ teachings; now all was lost. He was in despair, but in a few years he rallied his hopes and went forth to proclaim the gospel of the kingdom. 예루살렘의 박해로 흩어진 후, 시몬은 잠간 은둔했습니다. 그는 글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는 민족주의적 애국자로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존중하여 항복했으며, 이제 모두 잃었습니다. 그는 절망했지만, 몇 년 내에 그는 자기 소망들을 다시 모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나갔습니다.

139:11.11 (1565.8) He went to Alexandria and, after working up the Nile, penetrated into the heart of Africa, everywhere preaching the gospel of Jesus and baptizing believers. Thus he labored until he was an old man and feeble. And he died and was buried in the heart of Africa. 그는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나일 강으로 올라가며 일한 후, 아프리카의 심장부를 통과하며 모든 곳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설교하며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늙고 쇠약해질 때까지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어서 아프리카의 심장부에 묻혔습니다.

12. Judas Iscariot 가룟 유다

180318 가룟 유다1 계22:17b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and whoever wishes, let him take the free gift of the water of life.

139:12.1 (1565.9) Judas Iscariot, the twelfth apostle, was chosen by Nathaniel. He was born in Kerioth, a small town in southern Judea. When he was a lad, his parents moved to Jericho, where he lived and had been employed in his father’s various business enterprises until he became interested in the preaching and work of John the Baptist. Judas’s parents were Sadducees, and when their son joined John’s disciples, they disowned him. 가룟 유다는 12번째 사도로서, 나다니엘이 선택했습니다. 그는 남부 유대의 작은 도시인 케리옷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소년이었을 때 그의 부모는 여리고로 이사했고, 그가 세례 요한의 설교와 일에 관심을 갖기까지는, 그곳에 살면서 자기 아버지의 여러 사업체에 종사했습니다. 유다의 부모는 사두개인이어서, 아들이 요한의 제자가 되자, 자식과 관계를 끊었습니다.

139:12.2 (1566.1) When Nathaniel met Judas at Tarichea, he was seeking employment with a fish-drying enterprise at the lower end of the Sea of Galilee. He was thirty years of age and unmarried when he joined the apostles. He was probably the best-educated man among the twelve and the only Judean in the Master’s apostolic family. Judas had no outstanding trait of personal strength, though he had many outwardly appearing traits of culture and habits of training. He was a good thinker but not always a truly honest thinker. Judas did not really understand himself; he was not really sincere in dealing with himself. 나다니엘이 유다를 타리케아에서 만났을 때, 그는 갈릴리 바다의 하류 끝에 있는 생선-건조 사업체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가 될 때, 30세였고 결혼 전이었습니다. 그는 아마 12사도 중에서 최상의 교육을 받았고, 주(主)님의 사도 대원에서 유일한 유대 지방 사람이었습니다. 유다는 개인적 장점 중에서 눈에 띠는 특성이 없었지만, 표면적으로 여러 문화적 특성(교양)과 훈련된 습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사색가(思索家)였지만, 항상 참으로 정직한 사색가는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자신을 정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정말 신실하게 자신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139:12.3 (1566.2) Andrew appointed Judas treasurer of the twelve, a position which he was eminently fitted to hold, and up to the time of the betrayal of his Master he discharged the responsibilities of his office honestly, faithfully, and most efficiently. 안드레는 유다를 12사도의 회계로 임명하였는데, 그에게 탁월하게 어울리는 자리였으며, 주(主)님을 배반하기 직전까지, 그는 자기 직무의 책임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가장 효율적으로 실행했습니다.

139:12.4 (1566.3) There was no special trait about Jesus which Judas admired above the generally attractive and exquisitely charming personality of the Master. Judas was never able to rise above his Judean prejudices against his Galilean associates; he would even criticize in his mind many things about Jesus. Him whom eleven of the apostles looked upon as the perfect man, as the “one altogether lovely and the chiefest among ten thousand,” this self-satisfied Judean often dared to criticize in his own heart. He really entertained the notion that Jesus was timid and somewhat afraid to assert his own power and authority. 보통 매력적이며 정교하게 호감을 끄는 주(主)님의 고유성 이외에, 유다가 감탄했던 예수님의 특별한 특성이 없었습니다. 유다는 결코 갈릴리 동료들에 적대적인 유대 지방 사람의 편견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예수님에 대해서도 여러 면에서 마음으로 비판했습니다. 11 사도들이 완전한 사람, 즉 “만인(萬人) 중에서 온전히 사랑스럽고 최고으뜸이신 분”으로 간주했던 그 분을, 자아-만족(자만自滿자기로 가득해서 거드름으로 만족)이 가득한 이 유대 사람은 심정(마음)으로 감히 자주 비판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신의 권능과 권위를 주장하기에 소심하고 어느 정도 두려워하신다는 생각을 정말로 품었습니다.

139:12.5 (1566.4) Judas was a good business man. It required tact, ability, and patience, as well as painstaking devotion, to manage the financial affairs of such an idealist as Jesus, to say nothing of wrestling with the helter-skelter business methods of some of his apostles. Judas really was a great executive, a farseeing and able financier. And he was a stickler for organization. None of the twelve ever criticized Judas. As far as they could see, Judas Iscariot was a matchless treasurer, a learned man, a loyal (though sometimes critical) apostle, and in every sense of the word a great success. The apostles loved Judas; he was really one of them. He must have believed in Jesus, but we doubt whether he really loved the Master with a whole heart. The case of Judas illustrates the truthfulness of that saying: “There is a way that seems right to a man, but the end thereof is death.” It is altogether possible to fall victim to the peaceful deception of pleasant adjustment to the paths of sin and death. Be assured that Judas was always financially loyal to his Master and his fellow apostles. Money could never have been the motive for his betrayal of the Master. 유다는 훌륭한 사업가였습니다. 몇 사도들이 혼란스런 직무 방식으로 씨름하고 있음을 언급하지 않아도, 예수님과 같은 그런 이상주의자의 재무 관리에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헌신은 물론 재치와 능력 그리고 인내가 요구되었습니다. 유다는 정말로 훌륭한 집행자, 즉 선견지명이 있는 유능한 재정가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조직에 대해 꽤 까다로운 사람이었습니다. 12 중 아무도 유다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가룟 유다는 비길 데 없는 회계로, 학자였고, 충성스러운 (가끔 비판적이었던) 사도였으며, 모든 면에서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유다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정말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분명히 예수님을 믿었지만(believed), 그가 온 마음(심정)으로 주()님을 정말 사랑했었는지, 우리는 미심쩍게 여깁니다. 유다의 경우에 다음의 격언이 현실그대로임을 보여줍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언14:12, 16:25).” 죄와 사망의 길에 이르는 즐거운 조율 중에서 평화로운 속임수에 희생물이 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유다는 항상 재정적으로 주(主)님과 동료들에게 충성했음을 확신하라. 돈은 절대로 그가 주()님을 배반한 동기가 될 수 없었습니다.

139:12.6 (1566.5) Judas was an only son of unwise parents. When very young, he was pampered and petted; he was a spoiled child. As he grew up, he had exaggerated ideas about his self-importance. He was a poor loser. He had loose and distorted ideas about fairness; he was given to the indulgence of hate and suspicion. He was an expert at misinterpretation of the words and acts of his friends. All through his life Judas had cultivated the habit of getting even with those whom he fancied had mistreated him. His sense of values and loyalties was defective. 유다는 현명하지 못한 부모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그는 제멋대로 했으며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그는 버릇없는 아이였습니다. 그가 자라면서, 자아중요(자존, 젠체함, 거만하게 굶)에 대한 관념을 과대시했습니다. 그는 불쌍한 실패자였습니다. 그는 공평함에 대하여 흐리터분하고 왜곡된 관념을 가졌습니다. 그는 증오와 의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들의 언행(言行)을 오해하는 달인(達人)이었습니다. 유다는 전(全) 생애를 통하여,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이 복수하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그의 가치와 충성의 감각은 결함이 있었습니다.

139:12.7 (1566.6) To Jesus, Judas was a faith adventure. From the beginning the Master fully understood the weakness of this apostle and well knew the dangers of admitting him to fellowship. But it is the nature of the Sons of God to give every created being a full and equal chance for salvation and survival. Jesus wanted not only the mortals of this world but the onlookers of innumerable other worlds to know that, when doubts exist as to the sincerity and wholeheartedness of a creature’s devotion to the kingdom, it is the invariable practice of the Judges of men fully to receive the doubtful candidate. The door of eternal life is wide open to all; “whosoever will may come”; there are no restrictions or qualifications save the faith of the one who comes. 예수님에게, 유다는 신앙의 모험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주(主)님은 이 사도의 약점을 충분히 이해하셨고, 그를 동료로 받아들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의 본성은, 모든 창조된 존재에게 구원과 생존을 위해 충분하며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물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성실하게 전심을 다해 헌신하는지 의심이 있을 때, 사람들의 심판자는 의심스러운 후보자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불변의 관례임을, 이 세상의 필사자들 뿐 아니라 무수히 많은 다른 세상들에서 주시하는 자들에게도 알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문은 모두에게 활짝 열려있습니다. “누구든지 와도 됩니다.” 거기에는 오는 사람의 신앙 이외에 어떤 제한이나 자격 조건이 없습니다.

180325 가룟 유다2 마26:14-16 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14 Then one of the Twelve–the one called Judas Iscariot–went to the chief priests 15 and asked, “What are you willing to give me if I hand him over to you?” So they counted out for him thirty silver coins. 16 From then on Judas watched for an opportunity to hand him over.

139:12.8 (1567.1) This is just the reason why Jesus permitted Judas to go on to the very end, always doing everything possible to transform and save this weak and confused apostle. But when light is not honestly received and lived up to, it tends to become darkness within the soul. Judas grew intellectually regarding Jesus’ teachings about the kingdom, but he did not make progress in the acquirement of spiritual character as did the other apostles. He failed to make satisfactory personal progress in spiritual experience. 이것이, 예수께서 유다가 끝까지 계속하도록 허용하셨고, 약하고 혼란에 빠진 이 사도를 변화시켜 구원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셨던 바로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빛은 순전히 수용되어 그에 따라 살지 않으면, 빛은 혼에서 어둠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지적으로는 성장했지만, 다른 사도들처럼 영적 성품 획득에는 진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적 체험에서 만족스러운 개인적 진보에 실패했습니다.

139:12.9 (1567.2) Judas became increasingly a brooder over personal disappointment, and finally he became a victim of resentment. His feelings had been many times hurt, and he grew abnormally suspicious of his best friends, even of the Master. Presently he became obsessed with the idea of getting even, anything to avenge himself, yes, even betrayal of his associates and his Master. 유다는 갈수록 개인적 실망으로 속을 끓이다가 결국 원한(怨恨)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감정들은 여러 번 상처를 받았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들, 주(主)님까지도 비정상적으로 갈수록 공연히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내, 그는, 복수하는 일이라면, 그렇습니다. 동료들과 주(主)님까지도 배반해서, 복수하려는 망상에 사로잡혔습니다.

139:12.10 (1567.3) But these wicked and dangerous ideas did not take definite shape until the day when a grateful woman broke an expensive box of incense at Jesus’ feet. This seemed wasteful to Judas, and when his public protest was so sweepingly disallowed by Jesus right there in the hearing of all, it was too much. That event determined the mobilization of all the accumulated hate, hurt, malice, prejudice, jealousy, and revenge of a lifetime, and he made up his mind to get even with he knew not whom; but he crystallized all the evil of his nature upon the one innocent person in all the sordid drama of his unfortunate life just because Jesus happened to be the chief actor in the episode which marked his passing from the progressive kingdom of light into that self-chosen domain of darkness. 그러나 사악하고 위험한 이 망상들은, 감사하는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값진 향료 상자를 깨뜨린 그 날까지, 뚜렷한 모습이 없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유다에게 낭비로 여겨졌고, 공개적인 자기 항의(抗議)가 모든 사람들이 듣고 있는 바로 거기에서 예수님에 의해 전면적으로 묵살되자, 유다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 사건으로 축적되어 왔던 모든 미움, 상처, 원한, 편견, 질투, 평생의 복수를 총동원하기로 결심했고, 모르는 누군가에게 복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불행한 일생의 비열한 모든 드라마에서 자신의 모든 악의 본성이 무죄한 한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났는데, 그것은 바로, 진보하는 빛의 나라에서 스스로-선택한 그 어둠의 영역으로 유다의 통행을 표시하는 그 장면(에피소드)에서 예수님이 마침 주연(主演) 배우가 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139:12.11 (1567.4) The Master many times, both privately and publicly, had warned Judas that he was slipping, but divine warnings are usually useless in dealing with embittered human nature. Jesus did everything possible, consistent with man’s moral freedom, to prevent Judas’s choosing to go the wrong way. The great test finally came. The son of resentment failed; he yielded to the sour and sordid dictates of a proud and vengeful mind of exaggerated self-importance and swiftly plunged on down into confusion, despair, and depravity. 주(主)님은 여러 번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그가 미끄러져 이탈하고 있다고 경고했지만, 신적 경고들은 적개심을 품은 인간 본성을 다루는데 대개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잘못된 길을 선택해서 가지 않도록, 인간의 도덕적 자유와 조화를 이루시면서,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큰 시험의 날이 마침내 다가왔습니다. 원한(怨恨)의 아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는, 지나치게 자아를-중요시하는, 거만하며 복수심에 불타는 마음의 졸렬하며 비열한 명령에 굴복했고, 신속하게 혼란, 절망, 그리고 타락으로 뛰어들었습니다.

139:12.12 (1567.5) Judas then entered into the base and shameful intrigue to betray his Lord and Master and quickly carried the nefarious scheme into effect. During the outworking of his anger-conceived plans of traitorous betrayal, he experienced moments of regret and shame, and in these lucid intervals he faintheartedly conceived, as a defense in his own mind, the idea that Jesus might possibly exert his power and deliver himself at the last moment. 그 후 유다는 자신의 주인이신 주(主)님을 배반하는 야비하고 치욕스러운 음모를 시작했으며, 사악한 계획을 급히 실행했습니다. 자기 분노로 잉태한 반역적 배반을 수행하는 동안, 그는 후회와 수치심의 순간들을 겪었으며, 제 정신이 들었던 이 기간에 그는 마음이 약해져서, 변명하는 마음으로, 예수께서 아마 마지막 순간에 권능을 발휘하여 예수 자신을 구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139:12.13 (1567.6) When the sordid and sinful business was all over, this renegade mortal, who thought lightly of selling his friend for thirty pieces of silver to satisfy his long-nursed craving for revenge, rushed out and committed the final act in the drama of fleeing from the realities of mortal existence — suicide. 비열하고 죄 받을 많은 일이 모두 끝나자, 오래 품었던 복수심을 채우려고 자기 친구를 은화 30개를 받고 가볍게 팔아넘길 생각을 했던 이 변절한 필사자는 달려 나가 필사자 실존의 실체에서 도망하여 드라마의 마지막 장에서 자살했습니다.

139:12.14 (1567.7) The eleven apostles were horrified, stunned. Jesus regarded the betrayer only with pity. The worlds have found it difficult to forgive Judas, and his name has become eschewed throughout a far-flung universe. 11명의 사도들은 공포에 사로잡혔고 아찔했습니다. 예수님은 배반자를 불쌍히 여기셨을 뿐입니다. 세계들은 유다를 용서하기 어려움을 알게 되었고, 멀리-퍼진 우주 전체에서 그의 이름은 피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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