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168 The Resurrection of Lazarus 나사로의 부활

Paper 168

The Resurrection of Lazarus 나사로의 부활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나는 부활이요 생활이라(요11:25)…”
1. At the Tomb of Lazarus 나사로의 무덤에서
2. The Resurrection of Lazarus 나사로의 부활
3. Meeting of the Sanhedrin 산헤드린 모임
“It is better that one man die…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나으니라…”
4. The Answer to Prayer 기도에 대한 응답
5. What Became of Lazarus 나사로는 어떻게 되었는가

230806 나사로 부활의 서막 요11:17-33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168:0.1 (1842.1) IT WAS shortly after noon when Martha started out to meet Jesus as he came over the brow of the hill near Bethany. Her brother, Lazarus, had been dead four days and had been laid away in their private tomb at the far end of the garden late on Sunday afternoon. The stone at the entrance of the tomb had been rolled in place on the morning of this day, Thursday. 마르다가 베다니 근처 언덕마루를 넘어오신 예수님을 만나러 나섰을 때는 정오(AD30. 3.2. 목) 직후였습니다(요11:20a). 그녀의 남동생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었고(요11:17) 일요일(AD30. 2.26) 오후 늦게 정원 맨 끝에 있는 개인 무덤에 안장(安葬)되었습니다. 목요일 오늘 아침에 무덤 입구의 돌을 제자리로 굴렸습니다.

168:0.2 (1842.2) When Martha and Mary sent word to Jesus concerning Lazarus’s illness, they were confident the Master would do something about it. They knew that their brother was desperately sick, and though they hardly dared hope that Jesus would leave his work of teaching and preaching to come to their assistance, they had such confidence in his power to heal disease that they thought he would just speak the curative words, and Lazarus would immediately be made whole. And when Lazarus died a few hours after the messenger left Bethany for Philadelphia, they reasoned that it was because the Master did not learn of their brother’s illness until it was too late, until he had already been dead for several hours.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께 나사로가 발병(發病)했다고 전했을 때, 그들은 주께서 그것에 관해 뭔가를 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형제가 지독히 병들었음을 알았고, 예수께서 가르치고 전하는 그의 사역을 놔두고 자신들을 도우러 올 것을 감히 바라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가 치료의 말씀만 하셔도 나사로가 즉시 건강해지리라고 생각할 만큼 그들은 질병을 치유하는 그의 권능에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신저가 필라델피아를 향해 베다니를 떠난 지 몇 시간 후 나사로가 죽었을 때, 너무 늦게, 나사로가 이미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주께서 자기 형제의 발병(發病)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그들이 판단했습니다.

168:0.3 (1842.3) But they, with all of their believing friends, were greatly puzzled by the message which the runner brought back Tuesday forenoon when he reached Bethany. The messenger insisted that he heard Jesus say, “…this sickness is really not to the death.” Neither could they understand why he sent no word to them nor otherwise proffered assistance. 그러나 전달자가 돌아와 베다니에 도착한 화요일 오전에 가져온 메시지로 그들은, 자신들의 믿는 모든 친구와 함께, 아주 당황(唐惶)했습니다. 메신저는 “… 이 병은 정말 죽는 병이 아니라(요11:4a).”라고 예수가 말하는 것을 자기가 들었다고 우겼습니다. 그들은 그가 왜 자신들에게 아무 말도 보내지 않고, 다른 도움도 주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168:0.4 (1842.4) Many friends from near-by hamlets and others from Jerusalem came over to comfort the sorrow-stricken sisters. Lazarus and his sisters were the children of a well-to-do and honorable Jew, one who had been the leading resident of the little village of Bethany. And notwithstanding that all three had long been ardent followers of Jesus, they were highly respected by all who knew them. They had inherited extensive vineyards and olive orchards in this vicinity, and that they were wealthy was further attested by the fact that they could afford a private burial tomb on their own premises. Both of their parents had already been laid away in this tomb. 근처 작은 마을들의 여러 친구와 예루살렘의 다른 이들이 슬픔에 잠긴 자매들을 위로하려고 들렀습니다(요11:18-19). 나사로와 그의 자매들은 작은 마을 베다니를 이끌며 살았던, 부유하고 훌륭한 유대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세 명 다 오랫동안 예수의 열렬한 추종자들이었지만 그들을 아는 모두가 그들을 아주 존경했습니다. 그들은 이 근처의 광대한 포도원과 올리브 과수원을 물려받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자신들 소유의 토지에 개인 무덤을 가질 여유가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부유한 증거였습니다. 그들의 부모 둘 다 이미 이 무덤에 안장되었습니다.

168:0.5 (1842.5) Mary had given up the thought of Jesus’ coming and was abandoned to her grief, but Martha clung to the hope that Jesus would come, even up to the time on that very morning when they rolled the stone in front of the tomb and sealed the entrance. Even then she instructed a neighbor lad to keep watch down the Jericho road from the brow of the hill to the east of Bethany; and it was this lad who brought tidings to Martha that Jesus and his friends were approaching. 마리아는 예수가 오리라는 생각을 포기하고 자기 슬픔에 빠졌지만, 마르다는 자신들이 무덤 앞의 돌을 굴려 입구를 봉쇄한 바로 그날 아침까지도 예수가 오리라는 기대에 매달렸습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이웃 소년에게 지시하여 베다니 동쪽의 언덕마루에서 여리고 길 아래로 망을 보게 하였습니다. 이 소년이 마르다에게 예수와 그 친구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168:0.6 (1842.6) When Martha met Jesus, she fell at his feet, exclaiming, “Master, if you had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 Many fears were passing through Martha’s mind, but she gave expression to no doubt, nor did she venture to criticize or question the Master’s conduct as related to Lazarus’s death. When she had spoken, Jesus reached down and, lifting her upon her feet, said, “Only have faith, Martha, and your brother shall rise again.” Then answered Martha: “I know that he will rise again in the resurrection of the last day; and even now I believe that whatever you shall ask of God, our Father will give you.” 마르다가 예수를 만나자, 그녀는 그의 발밑에 엎드려 외쳤습니다. “주여, 당신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동생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르다의 마음에 여러 불안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의심을 표현하지 않았고, 나사로의 죽음과 관련된 주님의 조처를 감히 트집 잡지도 문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가 말을 마치자, 예수께서 손을 뻗어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습니다. “마르다야, 신앙만 가지라, 너의 형제가 다시 살아나리라.” 그러자 마르다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가 마지막 날 부활에 다시 살아날 줄 압니다. 그리고 지금도 당신이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든지, 우리 아버지가 당신에게 주실 것을 내가 믿습니다(요11:20-24).”

168:0.7 (1843.1) Then said Jesus, looking straight into the eyes of Martha: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 me, though he dies, yet shall he live. In truth, whosoever lives and believes in me shall never really die. Martha, do you believe this?” And Martha answered the Master: “Yes, I have long believed that you are the Deliverer, the Son of the living God, even he who should come to this world.” 그러자 예수께서 마르다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시며 말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 사실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결코 정말로 죽지 않으리라. 마르다야,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다가 주님께 대답했습니다. “예, 저는 당신이 구원자,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며, 이 세상에 오셔야 할 분인 것도 오랫동안 믿었습니다(요11:25-27).”

168:0.8 (1843.2) Jesus having inquired for Mary, Martha went at once into the house and, whispering to her sister, said, “The Master is here and has asked for you.” And when Mary heard this, she rose up quickly and hastened out to meet Jesus, who still tarried at the place, some distance from the house, where Martha had first met him. The friends who were with Mary, seeking to comfort her, when they saw that she rose up quickly and went out, followed her, supposing that she was going to the tomb to weep. 예수께서 마리아의 안부를 묻자, 마르다가 즉시 집으로 들어가, 여동생에게 속삭이며 말했습니다. “주가 여기에 계셔서 너를 찾으신다.”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서둘러 예수를 만나러 나갔는데, 그는 마르다가 그를 처음 만났던 곳,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직 그대로 계셨습니다. 마리아를 위로하려고 그녀와 함께 있던 친구들은 그녀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그녀가 울려고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그녀를 따라갔습니다(요11:28-31).

168:0.9 (1843.3) Many of those present were Jesus’ bitter enemies. That is why Martha had come out to meet him alone, and also why she went in secretly to inform Mary that he had asked for her. Martha, while craving to see Jesus, desired to avoid any possible unpleasantness which might be caused by his coming suddenly into the midst of a large group of his Jerusalem enemies. It had been Martha’s intention to remain in the house with their friends while Mary went to greet Jesus, but in this she failed, for they all followed Mary and so found themselves unexpectedly in the presence of the Master. 그 자리에 있던 여럿은 예수의 신랄한 대적들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마르다는 그를 만나러 홀로 나왔고, 또한 그가 마리아를 찾는다고 그녀에게 은밀히 알리려고 갔으며, 마르다는 예수가 보고 싶었지만, 그의 대적들인 예루살렘의 큰 무리 가운데 그가 갑자기 와서 생길 수도 있는 가능한 어떤 다툼도 피하려 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께 인사하러 가는 동안 마르다는 친구들과 집에 남아 있을 작정이었지만, 그들 모두 마리아를 따라가서 뜻밖에 주님 앞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렇게 못했습니다.

168:0.10 (1843.4) Martha led Mary to Jesus, and when she saw him, she fell at his feet, exclaiming, “If you had only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 And when Jesus saw how they all grieved over the death of Lazarus, his soul was moved with compassion. 마르다는 마리아를 예수께 이끌었고, 그녀가 그를 보자, 그녀는 그의 발밑에 엎드려 외쳤습니다. “당신이 여기에 계시기만 했어도 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 모두 나사로의 죽음으로 얼마나 마음 아파하는지 보시고, 그의 혼(魂)에 연민(憐愍)이 일어났습니다(요11:32-33).

168:0.11 (1843.5) When the mourners saw that Mary had gone to greet Jesus, they withdrew for a short distance while both Martha and Mary talked with the Master and received further words of comfort and exhortation to maintain strong faith in the Father and complete resignation to the divine will. 마리아가 예수께 인사하러 가는 것을 본 조문객(弔問客)들은 마르다와 마리아 둘 다 주님과 이야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확고한 신앙과 신적 뜻을 완벽히 따르도록 유지하라는 위로와 권고의 말씀을 더 받아들이는 동안 조금 떨어진 거리로 물러났습니다.

168:0.12 (1843.6) The human mind of Jesus was mightily moved by the contention between his love for Lazarus and the bereaved sisters and his disdain and contempt for the outward show of affection manifested by some of these unbelieving and murderously intentioned Jews. Jesus indignantly resented the show of forced and outward mourning for Lazarus by some of these professed friends inasmuch as such false sorrow was associated in their hearts with so much bitter enmity toward himself. Some of these Jews, however, were sincere in their mourning, for they were real friends of the family. 예수의 인간 마음은 나사로와 자매 유족에 대한 그의 사랑과 이렇게 믿으려 하지 않고 살인할 작정인 일부 유대인이 겉으로 드러낸 애정 과시에 대한 그의 경멸과 모욕 사이의 다툼으로 크게 움직였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자칭 친구들 가운데 일부가 나사로를 위해 억지로 외적으로 애도하는 모습에 분연히 분개(憤慨)했는데, 그런 거짓 슬픔이 자신을 향해 그토록 심하게 신랄히 증오하는 그들의 심정과 관련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유대인 중 일부는 가족의 진정한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진심으로 애도(哀悼)했습니다.

1. At the Tomb of Lazarus 나사로의 무덤에서

230827 나사로의 무덤에서1 요11:34-37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168:1.1 (1843.7) After Jesus had spent a few moments in comforting Martha and Mary, apart from the mourners, he asked them, “Where have you laid him?” Then Martha said, “Come and see.” And as the Master followed on in silence with the two sorrowing sisters, he wept. When the friendly Jews who followed after them saw his tears, one of them said: “Behold how he loved him. Could not he who opened the eyes of the blind have kept this man from dying?” By this time they were standing before the family tomb, a small natural cave, or declivity, in the ledge of rock which rose up some thirty feet at the far end of the garden plot. 예수께서 조문객(弔問客)들과 떨어져 마르다와 마리아를 잠시 위로한 후, “그를 어디에 눕혔느냐?”고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와서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슬퍼하는 두 자매를 말없이 따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을 뒤따르던 호의적인 유대인들이 그의 눈물을 보고 그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그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라. 시각 장애인의 눈을 여신 그가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할 수 없었을까?” 이 무렵 그들은 정원 터의 맨 끝에서 약 30피트(9.1미터)로 솟아오른 바위 턱 내리막 경사의 작은 자연 동굴, 바로 가족무덤 앞에 서 있었습니다(요11:34-37).

168:1.2 (1844.1) It is difficult to explain to human minds just why Jesus wept. While we have access to the registration of the combined human emotions and divine thoughts, as of record in the mind of the Personalized Adjuster, we are not altogether certain about the real cause of these emotional manifestations. We are inclined to believe that Jesus wept because of a number of thoughts and feelings which were going through his mind at this time, such as: 예수가 대체 왜 우셨는지 인간의 마음에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인격(고유성)화 조율자의 마음에 기록된 대로, 결합하여 기재(記載)된 인간의 감정과 신적 생각에 접근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런 감정적 표현의 실제 원인에 대해 완전히 확신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이런 때에 그의 마음에 지나가는 다음과 같은 여러 생각과 감정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고 믿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168:1.3 (1844.2) 1. He felt a genuine and sorrowful sympathy for Martha and Mary; he had a real and deep human affection for these sisters who had lost their brother. 그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진심으로 슬픔에 공감했습니다. 그는 자기 형제를 잃은 이 자매들에게 진실로 깊은 인간적 애정을 지녔습니다.

168:1.4 (1844.3) 2. He was perturbed in his mind by the presence of the crowd of mourners, some sincere and some merely pretenders. He always resented these outward exhibitions of mourning. He knew the sisters loved their brother and had faith in the survival of believers. These conflicting emotions may possibly explain why he groaned as they came near the tomb. 그는 참석한 조문객 무리의 일부는 참되고 일부는 가식에 불과하여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피상적인 애도의 표현을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매들이 그들의 형제를 사랑하고 신자들의 생존에 대한 신앙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상반되는 감정은 어쩌면 그들이 무덤 근처로 갔을 때 그가 슬픔으로 신음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168:1.5 (1844.4) 3. He truly hesitated about bringing Lazarus back to the mortal life. His sisters really needed him, but Jesus regretted having to summon his friend back to experience the bitter persecution which he well knew Lazarus would have to endure as a result of being the subject of the greatest of all demonstrations of the divine power of the Son of Man. 그는 나사로를 지금 살아 있는 세상의 생활로 다시 데려오기를 진실로 주저했습니다. 그의 자매들은 정말로 그가 필요했지만, 예수는 자기 친구를 다시 소환하여 모진 박해에 부닥칠 것을 유감스럽게 여겼는데,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의 모든 신적 권능 중 최대 실증의 대상이 되는 결과로 나사로가 견뎌야 할 것을 자신이 잘 알고 있었습니다.

168:1.6 (1844.5) And now we may relate an interesting and instructive fact: Although this narrative unfolds as an apparently natural and normal event in human affairs, it has some very interesting side lights. While the messenger went to Jesus on Sunday, telling him of Lazarus’s illness, and while Jesus sent word that it was “not to the death,” at the same time he went in person up to Bethany and even asked the sisters, “Where have you laid him?” Even though all of this seems to indicate that the Master was proceeding after the manner of this life and in accordance with the limited knowledge of the human mind, nevertheless, the records of the universe reveal that Jesus’ Personalized Adjuster issued orders for the indefinite detention of Lazarus’s Thought Adjuster on the planet subsequent to Lazarus’s death, and that this order was made of record just fifteen minutes before Lazarus breathed his last. 이제 우리는 흥미롭고 도움이 되는 사실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인간사에서 언뜻 보기에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사건으로 전개되지만, 밝혀질 아주 흥미로운 측면이 있습니다. 메신저가 일요일에 예수께 가서 나사로의 질병에 대해 그에게 말했을 때, 예수는 그것이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라고 기별을 보내는 동시에 베다니에 직접 올라가 자매들에게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라고 묻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은 주께서 현세의 방식을 고려하고 제한된 인간 마음의 지식에 따라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듯하지만, 그렇기는 해도, 나사로가 죽은 후 나사로의 생각 조율자가 행성에 기한 없이 남아 있도록 예수의 인격(고유성)화 조율자가 명령을 내렸고, 나사로가 마지막 숨을 쉬기 바로 15분 전에 이 명령이 기록되었다고 우주의 기록이 알려줍니다.

168:1.7 (1844.6) Did the divine mind of Jesus know, even before Lazarus died, that he would raise him from the dead? We do not know. We know only what we are herewith placing on record. 나사로가 죽기도 전에 예수께서 나사로를 죽음에서 되살릴 것을 예수의 신적 마음이 알았는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는 이것과 함께 기록으로 밝힌 것만 압니다.

168:1.8 (1844.7) Many of Jesus’ enemies were inclined to sneer at his manifestations of affection, and they said among themselves: “If he thought so much of this man, why did he tarry so long before coming to Bethany? If he is what they claim, why did he not save his dear friend? What is the good of healing strangers in Galilee if he cannot save those whom he loves?” And in many other ways they mocked and made light of the teachings and works of Jesus. 예수의 여러 대적은 그의 애정 표현을 비웃으려는 마음이 일어나 저희끼리 말했습니다. “그가 이 사람을 그렇게 많이 생각했다면 그는 베다니에 오기 전에 왜 그렇게 오래 지체했는가? 그가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라면 그는 왜 소중한 자기 친구를 구하지 않았을까? 그가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을 구할 수 없다면 갈릴리에서 낯선 자들을 치유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다른 여러 방법으로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과업을 조롱하고 가볍게 여겼습니다.

168:1.9 (1844.8) And so, on this Thursday afternoon at about half past two o’clock, was the stage all set in this little hamlet of Bethany for the enactment of the greatest of all works connected with the earth ministry of Michael of Nebadon, the greatest manifestation of divine power during his incarnation in the flesh, since his own resurrection occurred after he had been liberated from the bonds of mortal habitation. 그래서 이 목요일(AD30. 3. 2) 오후 2시 30분쯤, 베다니의 이 작은 마을에서, 네바돈 미가엘의 지상 사역과 관련된 모든 과업 중 가장 위대한 상연(上演), 자신이 직접 성육신(成肉身)하신 동안에 가장 위대한 신적 권능의 표현을 위한 무대가 모두 마련되었는데, 그 자신의 부활은 필사자 거주지(육신)의 속박에서 해방된 후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168:1.10 (1845.1) The small group assembled before Lazarus’s tomb little realized the presence near at hand of a vast concourse of all orders of celestial beings assembled under the leadership of Gabriel and now in waiting, by direction of the Personalized Adjuster of Jesus, vibrating with expectancy and ready to execute the bidding of their beloved Sovereign. 나사로의 무덤 앞에 모든 작은 무리는 가브리엘의 지도력 아래 모든 계층의 천상 존재들이 거대한 집단으로 모여서 기대감으로 설레는 가운데, 자신들이 사랑하는 주권자의 명령을 실행할 준비를 갖추고, 이제 예수의 인격(고유성)화 조율자의 지시를 기다리며 가까이에 있는 것을 조금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230903 나사로의 무덤에서2 요11:39-41a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41 돌을 옮겨 놓으니

168:1.11 (1845.2) When Jesus spoke those words of command, “Take away the stone,” the assembled celestial hosts made ready to enact the drama of the resurrection of Lazarus in the likeness of his mortal flesh. Such a form of resurrection involves difficulties of execution which far transcend the usual technique of the resurrection of mortal creatures in morontia form and requires far more celestial personalities and a far greater organization of universe facilities. 예수께서 그런 명령의 말씀을 내려 “그 돌을 치우라.”고 말하자, 모인 천상의 무리는 나사로가 필사 육신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극적인 사건을 행하려고 준비했습니다. 그런 부활의 형태는 필사 창조물을 모론시아 형태로 부활시키는 평소의 기법을 훨씬 초월하는 실행의 어려움이 필연적으로 따르며 훨씬 더 많은 천상의 인격(고유성)과 훨씬 더 큰 우주 시설의 조직이 필요합니다(요11:39a).

168:1.12 (1845.3) When Martha and Mary heard this command of Jesus directing that the stone in front of the tomb be rolled away, they were filled with conflicting emotions. Mary hoped that Lazarus was to be raised from the dead, but Martha, while to some extent sharing her sister’s faith, was more exercised by the fear that Lazarus would not be presentable, in his appearance, to Jesus, the apostles, and their friends. Said Martha: “Must we roll away the stone? My brother has now been dead four days, so that by this time decay of the body has begun.” Martha also said this because she was not certain as to why the Master had requested that the stone be removed; she thought maybe Jesus wanted only to take one last look at Lazarus. She was not settled and constant in her attitude. As they hesitated to roll away the stone, Jesus said: “Did I not tell you at the first that this sickness was not to the death? Have I not come to fulfill my promise? And after I came to you, did I not say that, if you would only believe, you should see the glory of God? Wherefore do you doubt? How long before you will believe and obey?” 마르다와 마리아는 무덤 앞의 돌을 치우라고 지시하는 예수님의 이런 명령을 들었을 때, 그들은 상반(相反)된 감정으로 가득 찼습니다. 마리아는 나사로가 죽음에서 살아나기를 기대했지만, 마르다는 여동생의 신앙을 어느 정도 공유하면서도 예수님과 사도들 및 그들의 친구들에게 나사로의 모습이 남 앞에 내놓을만하지 않다는 두려움으로 더 걱정스러웠습니다. 마르다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돌을 치워야만 하나요? 내 동생이 죽은 지 이제 나흘이 지났으니 이때쯤이면 시신이 썩기 시작했나이다.” 마르다 역시 주께서 왜 돌을 옮기라고 했는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예수께서 아마 마지막으로 나사로를 한 번 보기만 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태도는 안정되게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돌을 굴려 치우기를 주저하자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내가 처음에 너희에게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내 약속을 지키러 오지 않았더냐?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온 후, 너희가 믿기만 하면 너희가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무엇 때문에 너희가 의심하느냐? 너희가 믿고 순종하기 전에 얼마나 오래 걸리겠느냐(요11:39b-40)?”

168:1.13 (1845.4) When Jesus had finished speaking, his apostles, with the assistance of willing neighbors, laid hold upon the stone and rolled it away from the entrance to the tomb. 예수께서 말을 마치자, 그의 사도들이 자원하는 이웃들의 도움으로 돌을 잡고 무덤 입구에서 그것을 굴려 치웠습니다(요11:41a).

168:1.14 (1845.5) It was the common belief of the Jews that the drop of gall on the point of the sword of the angel of death began to work by the end of the third day, so that it was taking full effect on the fourth day. They allowed that the soul of man might linger about the tomb until the end of the third day, seeking to reanimate the dead body; but they firmly believed that such a soul had gone on to the abode of departed spirits ere the fourth day had dawned.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죽음의 천사의 칼끝에서 담즙(膽汁) 방울이 사흘째 끝에 작용하기 시작하여 나흘째에 완전히 효력이 드러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혼(魂)이 사흘째 끝까지 무덤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시신(屍身)을 소생시키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혼(魂)이 넷째 날이 밝기 전에 망령(亡靈)들의 거처로 갔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168:1.15 (1845.6) These beliefs and opinions regarding the dead and the departure of the spirits of the dead served to make sure, in the minds of all who were now present at Lazarus’s tomb and subsequently to all who might hear of what was about to occur, that this was really and truly a case of the raising of the dead by the personal working of one who declared he was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죽은 자와 죽은 자의 영(靈)이 떠남에 관한 이런 믿음과 일반적인 생각은 이제 나사로의 무덤 앞에 있는 모두와 그리고 막 일어날 일에 대해 나중에 듣게 되는 모두의 마음에, 이것이 스스로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한 본인의 직접적 활동으로 죽은 자가 일어나는 실제의 참된 사건이라고 확신하기에 충분했습니다(요11:25).

2. The Resurrection of Lazarus 나사로의 부활

230910 나사로의 부활 요11:41b-47 41b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168:2.1 (1845.7) As this company of some forty-five mortals stood before the tomb, they could dimly see the form of Lazarus, wrapped in linen bandages, resting on the right lower niche of the burial cave. While these earth creatures stood there in almost breathless silence, a vast host of celestial beings had swung into their places preparatory to answering the signal for action when it should be given by Gabriel, their commander. 45명 정도의 이 필사 일행이 무덤 앞에 서자, 그들은 면 붕대로 싸여 무덤 굴의 우측 아래 벽감(壁龕)에 놓인 나사로의 형체를 희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지상 창조물들이 거의 숨을 죽이고 조용히 서 있는 동안, 거대한 무리의 천상 존재들은 자신들의 지휘관 가브리엘이 내릴 행동 신호에 응답할 준비로서 제자리를 잡았습니다.

168:2.2 (1846.1) Jesus lifted up his eyes and said: “Father, I am thankful that you heard and granted my request. I know that you always hear me, but because of those who stand here with me, I thus speak with you, that they may believe that you have sent me into the world, and that they may know that you are working with me in that which we are about to do.” And when he had prayed, he cried with a loud voice, “Lazarus, come forth!” 예수께서 눈을 들어 말했습니다. “아버지, 제 요청을 들으시고 허락하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저는 당신께서 언제나 제 말을 들으시는 줄 알지만, 여기에 저와 함께 서 있는 자들 때문에, 제가 당신께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당신이 저를 세상에 보내셨음을 그들이 믿을 수 있고, 우리가 바로 하려는 일에 당신께서 저와 함께 일하고 있음을 그들이 알게 하려함입니다.” 그가 기도를 마치자,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요11:41b-43)!”

168:2.3 (1846.2) Though these human observers remained motionless, the vast celestial host was all astir in unified action in obedience to the Creator’s word. In just twelve seconds of earth time the hitherto lifeless form of Lazarus began to move and presently sat up on the edge of the stone shelf whereon it had rested. His body was bound about with grave cloths, and his face was covered with a napkin. And as he stood up before them — alive — Jesus said, “Loose him and let him go.” 이렇게 지켜보는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광대한 천상의 무리는 모두 창조자의 말씀에 순종하여 단일체로 움직였습니다. 지상의 시간으로 12초 만에 지금까지 죽었던 나사로의 형체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놓여 있던 돌 선반 끝에 바로 앉았습니다. 그의 몸은 수의(襚衣)로 싸여 있었고 그 얼굴은 작은 수건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그가 그들 앞에 살아서 일어나자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그를 풀어서 놓으라(요11:44).”

168:2.4 (1846.3) All, save the apostles, with Martha and Mary, fled to the house. They were pale with fright and overcome with astonishment. While some tarried, many hastened to their homes. 마르다 및 마리아와 함께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집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들은 공포로 창백했고 경악에 사로잡혔습니다. 일부는 머물렀지만, 대부분은 각자 집으로 서둘러 갔습니다.

168:2.5 (1846.4) Lazarus greeted Jesus and the apostles and asked the meaning of the grave cloths and why he had awakened in the garden. Jesus and the apostles drew to one side while Martha told Lazarus of his death, burial, and resurrection. She had to explain to him that he had died on Sunday and was now brought back to life on Thursday, inasmuch as he had had no consciousness of time since falling asleep in death. 나사로가 예수와 사도들에게 인사하며 수의(襚衣)의 의미와 자신이 정원에서 깨어난 이유를 물었습니다. 마르다가 나사로에게 그의 죽음, 매장 및 부활에 대해 말하는 동안 예수와 사도들은 한쪽으로 갔습니다. 그녀는 그가 죽음으로 잠든 이후 내내 시간 의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가 일요일에 죽었다가 목요일에 바로 다시 살아났음을 그에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168:2.6 (1846.5) As Lazarus came out of the tomb, the Personalized Adjuster of Jesus, now chief of his kind in this local universe, gave command to the former Adjuster of Lazarus, now in waiting, to resume abode in the mind and soul of the resurrected man.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자, 이제 이 지역 우주에서 자기 종류의 수석(首席), 예수의 인격(고유성)화 조율자가 현재 대기 중인 나사로의 이전 조율자에게 부활한 사람의 마음과 혼(魂)에 다시 머물기 시작하라고 명령했습니다.

168:2.7 (1846.6) Then went Lazarus over to Jesus and, with his sisters, knelt at the Master’s feet to give thanks and offer praise to God. Jesus, taking Lazarus by the hand, lifted him up, saying: “My son, what has happened to you will also be experienced by all who believe this gospel except that they shall be resurrected in a more glorious form. You shall be a living witness of the truth which I spoke —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But let us all now go into the house and partake of nourishment for these physical bodies.” 그러자 나사로는 자기 자매들과 함께 예수께로 가서 주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하면서 하느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손으로 잡아 일으키며 말했습니다. “이보게, 너에게 일어난 일은, 이 복음을 믿는 모든 자가 더 영광스러운 형태로 부활할 것만 제외하고, 그들 또한 겪을 것이니라. 너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내가 말한 진리의 살아있는 증인이 되리라. 그러나 이제 모두 집으로 들어가 이 육신을 위해 함께 식사하자(요11:25).”

168:2.8 (1846.7) As they walked toward the house, Gabriel dismissed the extra groups of the assembled heavenly host while he made record of the first instance on Urantia, and the last, where a mortal creature had been resurrected in the likeness of the physical body of death. 그들이 집을 향해 걸어가자, 가브리엘은 필사 창조물이 죽은 신체의 모습으로 부활한 유란시아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를 기록하면서 모였던 특별 집단의 하늘 무리를 해산시켰습니다.

168:2.9 (1846.8) Lazarus could hardly comprehend what had occurred. He knew he had been very sick, but he could recall only that he had fallen asleep and been awakened. He was never able to tell anything about these four days in the tomb because he was wholly unconscious. Time is nonexistent to those who sleep the sleep of death. 나사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거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주 아팠던 것을 알았지만, 자신이 잠들었다가 깨어난 것만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전혀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무덤에 있었던 이 나흘에 대해 아무것도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의 잠을 자는 자들에게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168:2.10 (1846.9) Though many believed in Jesus as a result of this mighty work, others only hardened their hearts the more to reject him. By noon the next day this story had spread over all Jerusalem. Scores of men and women went to Bethany to look upon Lazarus and talk with him, and the alarmed and disconcerted Pharisees hastily called a meeting of the Sanhedrin that they might determine what should be done about these new developments. 많은 사람이 이 기적의 결과로 예수를 믿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들의 마음을 독하게 먹고 그를 더 배척(排斥)할 뿐이었습니다. 다음 날 정오에 이 이야기가 온 예루살렘에 퍼졌습니다. 많은 남녀가 베다니로 가서 나사로를 보고 그와 이야기했고, 깜짝 놀라 당황한 바리새인들은 이 새로운 사태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려고 급하게 산헤드린 모임을 소집했습니다(요11:45-47).

3. Meeting of the Sanhedrin 산헤드린 모임

230917 산헤드린의 반응 요11:47-50, 53-54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168:3.1 (1847.1) Even though the testimony of this man raised from the dead did much to consolidate the faith of the mass of believers in the gospel of the kingdom, it had little or no influence on the attitude of the religious leaders and rulers at Jerusalem except to hasten their decision to destroy Jesus and stop his work. 죽었다가 살아난 이 사람의 증언이 하느님 나라를 복음을 믿는 수많은 신자(信者)의 신앙이 견고해지는 일에 크게 도움이 되었지만,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의 태도는 예수를 죽이고 그의 활동을 막으려는 그들의 결정을 재촉한 것 외에, 거의 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168:3.2 (1847.2) At one o’clock the next day, Friday, the Sanhedrin met to deliberate further on the question, “What shall we do with Jesus of Nazareth?” After more than two hours of discussion and acrimonious debate, a certain Pharisee presented a resolution calling for Jesus’ immediate death, proclaiming that he was a menace to all Israel and formally committing the Sanhedrin to the decision of death, without trial and in defiance of all precedent. 다음 날(AD30. 3.3) 금요일 1시에 산헤드린은 “우리가 나사렛 예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더 심의하려고 모였습니다. 2시간이 넘게 토론과 신랄한 논쟁 후, 어떤 바리새인이, 예수는 온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이라고 선포하며, 재판도 없이 모든 선결례(先決例)를 무시하고 산헤드린에 사형의 판결을 공식적으로 맡기자면서, 예수의 즉각적 사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내놓았습니다(요11:47).

168:3.3 (1847.3) Time and again had this august body of Jewish leaders decreed that Jesus be apprehended and brought to trial on charges of blasphemy and numerous other accusations of flouting the Jewish sacred law. They had once before even gone so far as to declare he should die, but this was the first time the Sanhedrin had gone on record as desiring to decree his death in advance of a trial. But this resolution did not come to a vote since fourteen members of the Sanhedrin resigned in a body when such an unheard-of action was proposed. While these resignations were not formally acted upon for almost two weeks, this group of fourteen withdrew from the Sanhedrin on that day, never again to sit in the council. When these resignations were subsequently acted upon, five other members were thrown out because their associates believed they entertained friendly feelings toward Jesus. With the ejection of these nineteen men the Sanhedrin was in a position to try and to condemn Jesus with a solidarity bordering on unanimity. 이렇게 위엄있는 유대 지도자 무리가 예수를 체포하여 신성 모독의 혐의와 유대의 신성한 법을 경멸한 여러 다른 죄명으로 재판에 넘길 것을 누누이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전에도 한번 예수가 죽어야 한다고 하기까지 했지만, 산헤드린이 재판에 앞서 그의 죽음을 판결하려 한다는 공적인 표명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의는 그런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결정이 제안되자 14명의 산헤드린 회원이 단체로 사임했기 때문에, 표결에 부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임은 거의 두 주간 공적으로 처리되지 않았지만, 그날 산헤드린에서 물러난 14명 집단은 결코 다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임이 나중에 처리되자, 5명의 다른 회원이 예수를 향해 우호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고 그들의 동료가 믿는다는 이유로, 쫓겨났습니다. 이들 19명의 회원이 추방되자, 산헤드린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공동 일치로 예수를 재판하고 형을 선고할 입장이 되었습니다.

168:3.4 (1847.4) The following week Lazarus and his sisters were summoned to appear before the Sanhedrin. When their testimony had been heard, no doubt could be entertained that Lazarus had been raised from the dead. Though the transactions of the Sanhedrin virtually admitted the resurrection of Lazarus, the record carried a resolution attributing this and all other wonders worked by Jesus to the power of the prince of devils, with whom Jesus was declared to be in league. 다음 주 나사로와 그의 자매들이 산헤드린에 출두하도록 소환되었습니다. 그들의 증언을 듣자,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났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산헤드린의 보고서는 나사로의 부활을 사실상 인정했지만, 의사록은, 예수가 행한 이 일과 다른 모든 이적이 악령들 괴수(魁首)의 권세의 소치로 돌리며 예수가 그들과 결탁했다고 선고하면서, 결의안을 실었습니다.

168:3.5 (1847.5) No matter what the source of his wonder-working power, these Jewish leaders were persuaded that, if he were not immediately stopped, very soon all the common people would believe in him; and further, that serious complications with the Roman authorities would arise since so many of his believers regarded him as the Messiah, Israel’s deliverer. 이적(異蹟)을 행하는 그의 권세의 근원이 무엇이든, 그를 즉시 멈추게 하지 않으면, 모든 일반인이 이내 그를 믿을 것이며, 게다가 그를 믿는 대다수가 그를 메시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여기므로 로마 당국과 심각하게 곤란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이런 유대 지도자들이 확신했습니다(요11:48).

168:3.6 (1847.6) It was at this same meeting of the Sanhedrin that Caiaphas the high priest first gave expression to that old Jewish adage, which he so many times repeated: “It is better that one man die, than that the community perish.” 바로 이 산헤드린 모임에서 대제사장 가야바가 옛 유대 격언을 처음 표명했고, 그는 아주 여러 번 되풀이했습니다. “공동체가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나으니라(요11:49-50, 18:14).”

168:3.7 (1847.7) Although Jesus had received warning of the doings of the Sanhedrin on this dark Friday afternoon, he was not in the least perturbed and continued resting over the Sabbath with friends in Bethpage, a hamlet near Bethany. Early Sunday morning Jesus and the apostles assembled, by prearrangement, at the home of Lazarus, and taking leave of the Bethany family, they started on their journey back to the Pella encampment. 예수는 이 사악한 금요일 오후에 산헤드린 소행의 경고를 받았지만,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으며 친구들과 함께 베다니 근처의 작은 마을 벳바게에서 안식일 내내 계속 쉬었습니다. 일요일(AD30. 3.5) 아침 일찍 예수와 사도들은 예정대로, 나사로의 집에 모여 베다니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고, 펠라 야영지로 돌아가는 여행을 떠났습니다(요11:53-54).

4. The Answer to Prayer 기도에 대한 응답

230924 기도 응답 마7:7a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168:4.1 (1848.1) On the way from Bethany to Pella the apostles asked Jesus many questions, all of which the Master freely answered except those involving the details of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Such problems were beyond the comprehension capacity of his apostles; therefore did the Master decline to discuss these questions with them. Since they had departed from Bethany in secret, they were alone. Jesus therefore embraced the opportunity to say many things to the ten which he thought would prepare them for the trying days just ahead. 베다니에서 펠라로 가는 도중에 사도들이 예수께 여러 질문을 했고,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그런 세부 사항을 제외하고, 그 모든 질문에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그런 문제들은 사도들의 이해 능력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이어서 주님은 사도들과 이런 문제로 이야기하기를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들이 남몰래 베다니를 떠났기 때문에, 그들끼리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열 사도에게 눈앞에 닥친 힘든 날을 그들이 대비하도록 자신이 생각했던 여러 가지를 말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168:4.2 (1848.2) The apostles were much stirred up in their minds and spent considerable time discussing their recent experiences as they were related to prayer and its answering. They all recalled Jesus’ statement to the Bethany messenger at Philadelphia, when he said plainly, “This sickness is not really to the death.” And yet, in spite of this promise, Lazarus actually died. All that day, again and again, they reverted to the discussion of this question of the answer to prayer. 사도들의 마음이 크게 동요되어 기도와 그 응답에 관한 최근의 경험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보내며 토론했습니다. 그들 모두 필라델피아에서 베다니 메신저에게 “이 병은 정말로 죽음에 이르지 않느니라(요11:4).”라고 예수께서 분명히 하신 진술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이 있었지만, 나사로는 실제로 죽었습니다. 그날 하루 종일 그들은 기도 응답에 대한 이런 질문에 대해 여러 번 토의했습니다.

168:4.3 (1848.3) Jesus’ answers to their many questions may be summarized as follows: 그들의 여러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168:4.4 (1848.4) 1. Prayer is an expression of the finite mind in an effort to approach the Infinite. The making of a prayer must, therefore, be limited by the knowledge, wisdom, and attributes of the finite; likewise must the answer be conditioned by the vision, aims, ideals, and prerogatives of the Infinite. There never can be observed an unbroken continuity of material phenomena between the making of a prayer and the reception of the full spiritual answer thereto. 기도는 무한자에게 접근하려고 애쓰는 유한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것은 유한자의 지식, 지혜 및 속성으로 제한됩니다. 똑같이 응답도 무한자의 미래 전망, 목적, 이상(理想) 및 특권으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과 그에 대해 충분히 영적으로 응답을 받는 것 사이에 물질 현상의 계속된 연속성은 결코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168:4.5 (1848.5) 2. When a prayer is apparently unanswered, the delay often betokens a better answer, although one which is for some good reason greatly delayed. When Jesus said that Lazarus’s sickness was really not to the death, he had already been dead eleven hours. No sincere prayer is denied an answer except when the superior viewpoint of the spiritual world has devised a better answer, an answer which meets the petition of the spirit of man as contrasted with the prayer of the mere mind of man. 기도가 언뜻 보기에 응답이 되지 않으면, 어떤 타당한 이유로 응답이 많이 늦어져도, 지연(遲延)은 종종 더 나은 응답의 조짐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로의 질병이 정말로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AD30. 2. 26 늦은 밤), 그는 이미 죽은 지 11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영적 세계의 우월한 관점으로 고안된 더 나은 응답, 인간의 단순한 마음의 기도와 대조하여 인간 영(靈)의 청원을 충족시키는 응답을 제외하고, 신실한 기도는 거부되지 않습니다.

168:4.6 (1848.6) 3. The prayers of time, when indited by the spirit and expressed in faith, are often so vast and all-encompassing that they can be answered only in eternity; the finite petition is sometimes so fraught with the grasp of the Infinite that the answer must long be postponed to await the creation of adequate capacity for receptivity; the prayer of faith may be so all-embracing that the answer can be received only on Paradise. 영(靈)으로 작성되어 신앙으로 표현된, 시간의 기도들은 자주 너무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함하여서 그것들은 영원에서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유한한 청원은 때때로 무한자의 손길을 잉태하고 있어서 적절한 수용 능력의 창조를 기다리도록 응답이 오래 미뤄져야 합니다. 신앙의 기도는 너무 모든 것을 포함하여서 천국에서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168:4.7 (1848.7) 4. The answers to the prayer of the mortal mind are often of such a nature that they can be received and recognized only after that same praying mind has attained the immortal state. The prayer of the material being can many times be answered only when such an individual has progressed to the spirit level. 필사 마음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종종, 바로 그 기도하는 마음이 불멸 상태에 이른 후에만 그것들이 받아들여져 인식될 수 있는 그런 성질을 띠고 있습니다. 물질 존재의 기도는 그런 개인이 영(靈) 수준으로 진보했을 때만 여러 번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168:4.8 (1848.8) 5. The prayer of a God-knowing person may be so distorted by ignorance and so deformed by superstition that the answer thereto would be highly undesirable. Then must the intervening spirit beings so translate such a prayer that, when the answer arrives, the petitioner wholly fails to recognize it as the answer to his prayer. 하느님을 아는 사람의 기도는 무지로 왜곡되고 미신으로 변형되어서 그에 대한 응답이 아주 해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중재하는 영(靈) 존재들이 그런 기도를 아주 바꾸어서, 응답이 도착할 때, 청원자가 그것을 자기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끝내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맙니다.

168:4.9 (1848.9) 6. All true prayers are addressed to spiritual beings, and all such petitions must be answered in spiritual terms, and all such answers must consist in spiritual realities. Spirit beings cannot bestow material answers to the spirit petitions of even material beings. Material beings can pray effectively only when they “pray in the spirit.” 모든 참된 기도는 영적 존재들에게 전해지며, 그런 모든 청원은 영적 관점에서 응답 되어야 하고, 그런 모든 응답은 영적 실체에 있어야 합니다. 영(靈) 존재들은 심지어 물질 존재들의 영(靈) 청원에 대해 물질적 응답을 줄 수 없습니다. 물질 존재들은 “영(靈)으로 기도할” 때만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엡6:18).

168:4.10 (1849.1) 7. No prayer can hope for an answer unless it is born of the spirit and nurtured by faith. Your sincere faith implies that you have in advance virtually granted your prayer hearers the full right to answer your petitions in accordance with that supreme wisdom and that divine love which your faith depicts as always actuating those beings to whom you pray. 기도가 영(靈)으로 태어나 신앙으로 자라지 않으면, 어떤 기도도 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너희 신앙에 의해 너희가 기도하는 그런 존재들을 언제나 행동하게 하는 것으로 표현하는 최고의 지혜와 신적 사랑에 따라서, 너희 신실한 신앙은, 너희가 사실상 너희 기도를 듣는 자들에게 너희 청원에 충분히 응답할 권리를 미리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168:4.11 (1849.2) 8. The child is always within his rights when he presumes to petition the parent; and the parent is always within his parental obligations to the immature child when his superior wisdom dictates that the answer to the child’s prayer be delayed, modified, segregated, transcended, or postponed to another stage of spiritual ascension. 자녀는 부모에게 요청하려 할 때 언제나 자기 권리가 있습니다. 부모는 언제나 미숙한 자녀에 대해, 자녀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지체, 변경, 분리, 넘어서거나 영적으로 상승하는 다른 단계로 미루도록, 자신의 뛰어난 지혜로 명령할 어버이의 책임이 있습니다.

168:4.12 (1849.3) 9. Do not hesitate to pray the prayers of spirit longing; doubt not that you shall receive the answer to your petitions. These answers will be on deposit, awaiting your achievement of those future spiritual levels of actual cosmic attainment, on this world or on others, whereon it will become possible for you to recognize and appropriate the long-waiting answers to your earlier but ill-timed petitions. 영(靈) 갈망의 기도하기를 주저하지 말라. 너희가 너희 청원에 대한 응답을 받을 것을 의심하지 말라. 이런 응답은, 이 세상이나 다른 세상에서, 그런 미래의 실제적 질서 우주 도달의 영적 수준에서 너희 성취를 기다리며 예치되어 있을 것이며, 그때, 너희는 오래 기다렸지만 시기를 놓친 너희 초기 청원에 대한 응답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68:4.13 (1849.4) 10. All genuine spirit-born petitions are certain of an answer. Ask and you shall receive. But you should remember that you are progressive creatures of time and space; therefore must you constantly reckon with the time-space factor in the experience of your personal reception of the full answers to your manifold prayers and petitions. 영(靈)에서 비롯된 모든 참된 청원은 확실히 응답받습니다. 구하면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시간과 공간의 진보적 창조물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다양한 기도와 청원에 대한 너희의 완전한 개인적 응답을 받는 체험에서 항상 시간과 공간의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마7:7a, 21:22, 막11:24, 눅11:9a).

5. What Became of Lazarus 나사로는 어떻게 되었는가

231001 부활 후 나사로의 행적 요12:10-11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168:5.1 (1849.5) Lazarus remained at the Bethany home, being the center of great interest to many sincere believers and to numerous curious individuals, until the days of the crucifixion of Jesus, when he received warning that the Sanhedrin had decreed his death. The rulers of the Jews were determined to put a stop to the further spread of the teachings of Jesus, and they well judged that it would be useless to put Jesus to death if they permitted Lazarus, who represented the very peak of his wonder-working, to live and bear testimony to the fact that Jesus had raised him from the dead. Already had Lazarus suffered bitter persecution from them. 나사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당시에, 산헤드린이 자기 죽음을 판결했다고 경고받을 때(AD30. 4. 4)까지, 여러 신실한 신자들과 수많은 호기심 있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관심의 중심지가 된, 베다니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유대 통치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더 이상 퍼지는 것을 막기로 결의했고, 예수 이적(異蹟) 활동의 바로 그 정점을 대표하는 나사로가 살아서, 예수께서 죽었던 그를 부활시켰다는 사실에 대해 증언하도록 자신들이 허용한다면, 예수를 죽여도 소용이 없게 될 것이라고 잘 판단했습니다. 나사로는 이미 그들로부터 신랄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168:5.2 (1849.6) And so Lazarus took hasty leave of his sisters at Bethany, fleeing down through Jericho and across the Jordan, never permitting himself to rest long until he had reached Philadelphia. Lazarus knew Abner well, and here he felt safe from the murderous intrigues of the wicked Sanhedrin. 그래서 나사로는 베다니에서 자기 자매들에게 급히 작별하고 떠나 여리고를 지나 요단강을 건너 필라델피아에 이를 때까지 충분히 쉬지 못하면서 도피했습니다. 나사로는 아브너를 잘 알고 있었고, 여기에서 그는 사악한 산헤드린의 살인 음모(陰謀)에서 안심했습니다.

168:5.3 (1849.7) Soon after this Martha and Mary disposed of their lands at Bethany and joined their brother in Perea. Meantime, Lazarus had become the treasurer of the church at Philadelphia. He became a strong supporter of Abner in his controversy with Paul and the Jerusalem church and ultimately died, when 67 years old, of the same sickness that carried him off when he was a younger man at Bethany. 바로 뒤 이런 마르다와 마리아는 베다니의 토지를 처분하고 페레아에 있는 자신들의 형제와 합쳤습니다. 그 사이에 나사로는 필라델피아 교회의 회계원(會計員)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브너가 바울 및 예루살렘 교회와 논쟁할 때 아브너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었고, 결국 67세에, 베다니에서 젊은이였을 때 자신을 죽게 했던 똑같은 질병으로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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