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93
Machiventa Melchizedek 마키벤타 멜기세덱
1. The Machiventa Incarnation 마키벤타의 성육신(成肉身)
2. The Sage of Salem 살렘의 현인(賢人)
3. Melchizedek’s Teachings 멜기세덱의 가르침
4. The Salem Religion 살렘 종교
The creed 신조
The seven commandments 7계명
5. The Selection of Abraham 선택받은 아브라함
6. Melchizedek’s Covenant with Abraham 멜기세덱이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
7. The Melchizedek Missionaries 멜기세덱 선교사들
8. Departure of Melchizedek 멜기세덱의 떠남
9. After Melchizedek’s Departure 멜기세덱이 떠난 후
10. Present Status of Machiventa Melchizedek 마키벤타 멜기세덱의 현재 상태
93:0.1 (1014.1) THE Melchizedeks are widely known as emergency Sons, for they engage in an amazing range of activities on the worlds of a local universe. When any extraordinary problem arises, or when something unusual is to be attempted, it is quite often a Melchizedek who accepts the assignment. The ability of the Melchizedek Sons to function in emergencies and on widely divergent levels of the universe, even on the physical level of personality manifestation, is peculiar to their order. Only the Life Carriers share to any degree this metamorphic range of personality function. 멜기세덱들은 지역 우주의 세계에서 놀랍도록 광범위한 활동에 종사하기 때문에 비상 아들들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문제가 일어나거나 이상한 일이 시도되면, 상당히 자주 멜기세덱이 그 임무를 맡습니다. 비상시와 우주의 널리 확장하는 수준에서, 그리고 인격(고유성)이 나타나는 물리적 수준에서조차 활동하는 멜기세덱 아들들의 능력은 그들 계층 특유의 것입니다. 생명 운반자들만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변형하는 인격(고유성) 활동을 어느 정도 공유합니다.
93:0.2 (1014.2) The Melchizedek order of universe sonship has been exceedingly active on Urantia. A corps of twelve served in conjunction with the Life Carriers. A later corps of twelve became receivers for your world shortly after the Caligastia secession and continued in authority until the time of Adam and Eve. These twelve Melchizedeks returned to Urantia upon the default of Adam and Eve, and they continued thereafter as planetary receivers on down to the day when Jesus of Nazareth, as the Son of Man, became the titular Planetary Prince of Urantia. 우주 아들인 멜기세덱 계층은 유란시아에서 매우 활동적이었습니다. 열두 명의 집단이 생명 운반자들과 함께 섬겼습니다. 나중에 열두 명의 집단은 칼리가스티아 이탈 직후 너희 세계의 수령자들이 되어 아담과 이브의 시대까지 계속 중요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런 열두 멜기세덱은 아담과 이브의 의무 불이행(不履行) 직후 유란시아로 되돌아왔고, 그후 나사렛 예수가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로서 유란시아의 정식 행성 왕자가 되던 그날까지 행성 수령자들로 있었습니다.
1. The Machiventa Incarnation 마키벤타의 성육신(成肉身)
93:1.1 (1014.3) Revealed truth was threatened with extinction during the millenniums which followed the miscarriage of the Adamic mission on Urantia. Though making progress intellectually, the human races were slowly losing ground spiritually. About 3000 B.C. the concept of God had grown very hazy in the minds of men. 유란시아에서 아담 사명의 실패 후 수천 년간 계시 진리는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지적으로 진보했지만, 인류는 영적으로 서서히 물러서고 있었습니다. BC 3,000년경에 하느님의 개념은 인간의 마음에서 매우 흐릿해졌습니다.
93:1.2 (1014.4) The twelve Melchizedek receivers knew of Michael’s impending bestowal on their planet, but they did not know how soon it would occur; therefore they convened in solemn council and petitioned the Most Highs of Edentia that some provision be made for maintaining the light of truth on Urantia. This plea was dismissed with the mandate that “the conduct of affairs on 606 of Satania is fully in the hands of the Melchizedek custodians.” The receivers then appealed to the Father Melchizedek for help but only received word that they should continue to uphold truth in the manner of their own election “until the arrival of a bestowal Son,” who “would rescue the planetary titles from forfeiture and uncertainty.” 열두 멜기세덱 수령자들은 자신들의 행성에서 미가엘의 증여가 곧 일어날지 알았지만, 그들은 얼마나 빨리 일어날지 몰랐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엄숙한 회의를 소집하고 유란시아에 진리의 빛이 지속되도록 대비해달라고 에덴시아의 지고자(至高者)들에게 청원했습니다. 이 청원은 “사타니아의 606번 관련 업무는 오로지 멜기세덱 보관자(保管者)들의 관리에 있다.”라는 명령과 함께 기각(棄却 무시)되었습니다. 그 후 수령자들은 아버지 멜기세덱에게 도움을 호소했지만, “상실과 불안정의 파괴에서 행성의 소유권을 구출해줄” “증여 아들이 도착할 때까지” 자신들이 선택한 방식대로 진리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말만 받았습니다.
93:1.3 (1014.5) And it was in consequence of having been thrown so completely on their own resources that Machiventa Melchizedek, one of the twelve planetary receivers, volunteered to do that which had been done only six times in all the history of Nebadon: to personalize on earth as a temporary man of the realm, to bestow himself as an emergency Son of world ministry. Permission was granted for this adventure by the Salvington authorities, and the actual incarnation of Machiventa Melchizedek was consummated near what was to become the city of Salem, in Palestine. The entire transaction of the materialization of this Melchizedek Son was completed by the planetary receivers with the co-operation of the Life Carriers, certain of the Master Physical Controllers, and other celestial personalities resident on Urantia. 그리고 열두 행성 수령자 중 하나인 마키벤타 멜기세덱이, 네바돈의 전(全) 역사에서 여섯 번만 행해졌던 일, 영역의 임시 사람으로 지상에서 인격(고유성)화하여 세상을 돌보는 비상 아들로서 자진해서 자신을 증여한 것은 철저히 자신들이 힘으로 타개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된 결과였습니다. 샐빙톤 당국이 이 모험에 대해 허락했고, 실제로 마키벤타 멜기세덱의 성육신(成肉身)은 팔레스타인의 살렘이라는 도시가 될 곳 근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멜기세덱 아들이 물질화하는 전체 집행은 생명 운반자들, 몇몇 주(主)물리 조정자들 및 유란시아에 거주한 다른 천상 인격(고유성)들의 협력으로 행성 수령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2. The Sage of Salem 살렘의 현인(賢人)
93:2.1 (1015.1) It was 1,973 years before the birth of Jesus that Machiventa was bestowed upon the human races of Urantia. His coming was unspectacular; his materialization was not witnessed by human eyes. He was first observed by mortal man on that eventful day when he entered the tent of Amdon, a Chaldean herder of Sumerian extraction. And the proclamation of his mission was embodied in the simple statement which he made to this shepherd, “I am Melchizedek, priest of El Elyon, the Most High, the one and only God.” 예수께서 탄생하기 1,973년 전, 유란시아의 인류에게 마키벤타가 증여되었습니다. 그의 도래(到來)는 평범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그의 물질화를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수메르 혈통의 칼데아 목자, 암돈의 천막으로 들어간 중요한 그날 필사 인간이 처음 그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명 선언은 이 목자에게 그가 “나는 멜기세덱이며, 엘 엘리온, 지고(至高)자, 유일한 하느님의 사제라.”고 했던 단순한 문장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93:2.2 (1015.2) When the herder had recovered from his astonishment, and after he had plied this stranger with many questions, he asked Melchizedek to sup with him, and this was the first time in his long universe career that Machiventa had partaken of material food, the nourishment which was to sustain him throughout his ninety-four years of life as a material being. 목자가 놀랐다가 회복하자, 그는 이 낯선 사람에게 여러 질문을 퍼부은 후, 그는 멜기세덱에게 자기와 함께 저녁을 먹자고 청했고, 이것은 마키벤타가 자기의 긴 우주 생애에서 처음 물질 음식을 함께 먹은 것으로, 물질 존재로서 94년 내내 그의 생명을 유지한 음식물이었습니다.
93:2.3 (1015.3) And that night, as they talked out under the stars, Melchizedek began his mission of the revelation of the truth of the reality of God when, with a sweep of his arm, he turned to Amdon, saying, “El Elyon, the Most High, is the divine creator of the stars of the firmament and even of this very earth on which we live, and he is also the supreme God of heaven.” 그리고 그날 밤 그들이 별들 아래에서 이야기할 때, 멜기세덱이 자기 팔을 펼치며 암돈을 향해 “엘 엘리온, 지고(至高)자는 하늘에 있는 별들과 심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지상의 신적 창조자이며, 그는 또한 하늘의 최극 하느님이다.”라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실체에 대한 진리를 계시하는 그의 사명을 시작했습니다.
93:2.4 (1015.4) Within a few years Melchizedek had gathered around himself a group of pupils, disciples, and believers who formed the nucleus of the later community of Salem. He was soon known throughout Palestine as the priest of El Elyon, the Most High, and as the sage of Salem. Among some of the surrounding tribes he was often referred to as the sheik, or king, of Salem. Salem was the site which after the disappearance of Melchizedek became the city of Jebus, subsequently being called Jerusalem. 멜기세덱은 몇 년 안에, 나중에 살렘 공동체의 핵심이 된 한 무리의 학생, 제자 및 신자(信者)를 자기 주위에 모았습니다. 그는 곧 팔레스타인 전체에 엘 엘리온, 지고(至高)자의 사제 및 살렘의 현인(賢人)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변 부족 중 일부 사이에서 그는 자주 살렘의 교주(敎主), 즉 왕으로 불렸습니다. 살렘은 멜기세덱이 실종된 후 여부스의 도시가 되었고 나중에 예루살렘이라고 부른 장소였습니다.
93:2.5 (1015.5) In personal appearance, Melchizedek resembled the then blended Nodite and Sumerian peoples, being almost six feet in height and possessing a commanding presence. He spoke Chaldean and a half dozen other languages. He dressed much as did the Canaanite priests except that on his breast he wore an emblem of three concentric circles, the Satania symbol of the Paradise Trinity. In the course of his ministry this insignia of three concentric circles became regarded as so sacred by his followers that they never dared to use it, and it was soon forgotten with the passing of a few generations. 멜기세덱은 직접 보면 당시 혼합된 놋-사람과 수메르 민족을 닮았고, 키는 거의 6피트(183센치)였고 당당한 풍채(風采)를 지녔습니다. 그는 칼데아 말을 했고 6가지 다른 언어를 구사(驅使)했습니다. 그는 가슴에 세 동심원의 표상, 천국 삼위일체의 사타니아 상징을 달고 있다는 것 이외는, 가나안 사제들처럼 옷을 입었습니다. 그가 사역하던 때에 그의 추종자들은 세 동심원의 표지를 너무 신성하게 여겨서 그들은 그것을 감히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고, 그것은 몇 세대가 지나면서 곧 잊혔습니다.
93:2.6 (1015.6) Though Machiventa lived after the manner of the men of the realm, he never married, nor could he have left offspring on earth. His physical body, while resembling that of the human male, was in reality on the order of those especially constructed bodies used by the one hundred materialized members of Prince Caligastia’s staff except that it did not carry the life plasm of any human race. Nor was there available on Urantia the tree of life. Had Machiventa remained for any long period on earth, his physical mechanism would have gradually deteriorated; as it was, he terminated his bestowal mission in ninety-four years long before his material body had begun to disintegrate. 마키벤타가 영역의 사람들 방식을 따라서 살았지만, 그는 결혼하지 않았고 지상에 후손을 남겨두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신체는 인간 남자의 것을 닮았지만, 어떤 인간 종족의 생명 원형질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 이외에, 실제로는, 왕자 칼리가스티아의 참모진 중 물질화 요원 100명이 사용한, 특별히 그렇게 만들어진 신체 계층이었습니다. 유란시아에서 생명의 나무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마키벤타가 지상에 오랜 기간 남아 있었다면, 그의 신체 작용은 점차 저하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사정으로, 그는 자신의 물질 몸이 분해되기 시작하기 훨씬 전, 94년 만에 자신의 증여 사명을 끝냈습니다.
93:2.7 (1016.1) This incarnated Melchizedek received a Thought Adjuster, who indwelt his superhuman personality as the monitor of time and the mentor of the flesh, thus gaining that experience and practical introduction to Urantian problems and to the technique of indwelling an incarnated Son which enabled this spirit of the Father to function so valiantly in the human mind of the later Son of God, Michael, when he appeared on earth in the likeness of mortal flesh. And this is the only Thought Adjuster who ever functioned in two minds on Urantia, but both minds were divine as well as human. 성육신(成肉身)한 이 멜기세덱은 시간의 권고(勸告)자이며 육신의 조언자로서 자신의 초인간적 인격(고유성)에 내주했던 생각 조율자를 받아서, 유란시아의 문제들과 나중에 하느님의 아들 미가엘이 필사 육신의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났을 때, 아버지의 이 영(靈)이 그의 인간 마음에서 그렇게 훌륭하게 활동하게 한, 성육신(成肉身) 아들에게 내주한 기법에 대한 그런 체험과 실용적 도입부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일찍이 유란시아에서 두 마음으로 활동했던 유일한 생각 조율자였지만 두 마음 다 인간적인 동시에 신적이었습니다.
93:2.8 (1016.2) During the incarnation in the flesh, Machiventa was in full contact with his eleven fellows of the corps of planetary custodians, but he could not communicate with other orders of celestial personalities. Aside from the Melchizedek receivers, he had no more contact with superhuman intelligences than a human being. 육신으로 성육신(成肉身)하는 동안, 마키벤타는 행성 보관자 무리에 속한 자신의 열 한 동료와 충분히 접촉했지만 다른 계층의 천상 인격(고유성)들과 소통할 수 없었습니다. 멜기세덱 수령자들 외에는, 그가 인간 이상으로 더 초인간적인 지능들과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3. Melchizedek’s Teachings 멜기세덱의 가르침
93:3.1 (1016.3) With the passing of a decade, Melchizedek organized his schools at Salem, patterning them on the olden system which had been developed by the early Sethite priests of the second Eden. Even the idea of a tithing system, which was introduced by his later convert Abraham, was also derived from the lingering traditions of the methods of the ancient Sethites. 10년이 지나면서, 멜기세덱은 둘째 에덴의 초기 셋-사람 사제들이 개발했던 옛 제도를 본떠 살렘에서 자기 학교를 조직했습니다. 나중에 개종한 아브라함이 도입한 십일조 제도의 개념까지 또한 고대 셋-사람들의 오래 묵은 전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93:3.2 (1016.4) Melchizedek taught the concept of one God, a universal Deity, but he allowed the people to associate this teaching with the Constellation Father of Norlatiadek, whom he termed El Elyon — the Most High. Melchizedek remained all but silent as to the status of Lucifer and the state of affairs on Jerusem. Lanaforge, the System Sovereign, had little to do with Urantia until after the completion of Michael’s bestowal. To a majority of the Salem students Edentia was heaven and the Most High was God. 멜기세덱은 한 분밖에 없는 하느님, 우주 신(神)의 개념을 가르쳤지만, 그는 사람들이 이런 가르침을 자신이 엘 엘리온-지고자(至高者)라고 불렀던 놀라시아덱의 성좌(星座) 아버지를 떠올려도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멜기세덱은 루시퍼의 상태와 예루셈의 정세에 관해서 거의 침묵을 지켰습니다. 체계 주권자, 라나포지는 미가엘의 증여가 완료될 때까지 유란시아와 거의 관계가 없었습니다. 살렘 학생들 대다수에게 에덴시아는 낙원이었고 지고자(至高者)가 하느님이었습니다.
93:3.3 (1016.5) The symbol of the three concentric circles, which Melchizedek adopted as the insignia of his bestowal, a majority of the people interpreted as standing for the three kingdoms of men, angels, and God. And they were allowed to continue in that belief; very few of his followers ever knew that these three circles were emblematic of the infinity, eternity, and universality of the Paradise Trinity of divine maintenance and direction; even Abraham rather regarded this symbol as standing for the three Most Highs of Edentia, as he had been instructed that the three Most Highs functioned as one. To the extent that Melchizedek taught the Trinity concept symbolized in his insignia, he usually associated it with the three Vorondadek rulers of the constellation of Norlatiadek. 사람들 대다수는 멜기세덱이 자기 증여의 표지로 채택한 세 동심원의 상징을 사람들, 천사들 및 하느님의 세 왕국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믿도록 계속 놔두었습니다. 그의 추종자 중 극소수만 이런 세 동심원이, 신적으로 유지하고 지도하는 천국 삼위일체의 무한성, 영원성 및 우주성의 표상임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조차 세 지고자(至高者)가 하나로 활동한다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 상징이 에덴시아의 세 지고자(至高者)를 나타낸다고 여겼습니다. 멜기세덱은 자신의 표지로 나타낸 삼위일체 개념을 가르칠 경우, 그는 대개 그것을 놀라시아덱 성좌(星座)의 세 보론다덱 통치자들과 관련시켰습니다.
93:3.4 (1016.6) To the rank and file of his followers he made no effort to present teaching beyond the fact of the rulership of the Most Highs of Edentia — Gods of Urantia. But to some, Melchizedek taught advanced truth, embracing the conduct and organization of the local universe, while to his brilliant disciple Nordan the Kenite and his band of earnest students he taught the truths of the superuniverse and even of Havona. 그는 평범한 자기 추종자들에게 에덴시아의 지고자(至高者)들 – 유란시아 하느님들의 통치권의 사실을 초월한 가르침을 제시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일부에게 지역 우주의 경영 조직을 포함한 고급 진리를 가르쳤고,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훌륭한 제자 켄-사람(겐 족속) 노르단과 그가 속한 일단(一團)의 진지한 자기 학생들에게 초우주와 심지어 하보나의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93:3.5 (1016.7) The members of the family of Katro, with whom Melchizedek lived for more than thirty years, knew many of these higher truths and long perpetuated them in their family, even to the days of their illustrious descendant Moses, who thus had a compelling tradition of the days of Melchizedek handed down to him on this, his father’s side, as well as through other sources on his mother’s side. 멜기세덱이 30년 이상 함께 살았던 카트로 가족원들은 이런 고등 진리를 많이 알았고, 자신들의 뛰어난 후손 모세의 시대까지도 자기 가족 안에 이런 진리를 오래 간직하여서, 모세는 자기 어머니 쪽의 출처를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 아버지 쪽으로 멜기세덱 시대의 강력한 전통을 물려받았습니다.
93:3.6 (1016.8) Melchizedek taught his followers all they had capacity to receive and assimilate. Even many modern religious ideas about heaven and earth, of man, God, and angels, are not far removed from these teachings of Melchizedek. But this great teacher subordinated everything to the doctrine of one God, a universe Deity, a heavenly Creator, a divine Father. Emphasis was placed upon this teaching for the purpose of appealing to man’s adoration and of preparing the way for the subsequent appearance of Michael as the Son of this same Universal Father. 멜기세덱은 자기 추종자들이 받아들여 흡수할 수용 능력이 있는 모두를 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하늘과 땅에 관한, 인간, 하느님 및 천사들에 속한 여러 현대 종교적 개념들조차 멜기세덱의 이런 가르침들에서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선생은 모든 것을 하나밖에 없는 하느님, 우주 신(神), 하늘의 창조자, 신적 아버지 교리에 종속시켰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인간의 동경(憧憬)에 호소하고, 바로 이런 우주 아버지의 아들로서 미가엘이 나중에 출현할 길을 예비하는 목적으로 강조되었습니다.
93:3.7 (1017.1) Melchizedek taught that at some future time another Son of God would come in the flesh as he had come, but that he would be born of a woman; and that is why numerous later teachers held that Jesus was a priest, or minister, “forever after the order of Melchizedek.” 멜기세덱은 앞으로 언젠가 또 다른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이 왔던 것처럼 육체로 오지만 여인에게서 태어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수많은 후대 선생이, 예수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른” 사제, 즉 성직자라고 주장했던 이유였습니다(히5:6, 10, 6:20, 7:11, 17).
93:3.8 (1017.2) And thus did Melchizedek prepare the way and set the monotheistic stage of world tendency for the bestowal of an actual Paradise Son of the one God, whom he so vividly portrayed as the Father of all, and whom he represented to Abraham as a God who would accept man on the simple terms of personal faith. And Michael, when he appeared on earth, confirmed all that Melchizedek had taught concerning the Paradise Father. 이렇게 멜기세덱은 모든 이의 아버지로서 그토록 생생하게 묘사하고 아브라함에게 단순한 개인적 신앙으로 사람을 받아들이는 하느님으로 대표했던 하나밖에 없는 하느님의 실제 천국 아들의 증여를 위한 길을 예비하고 그런 세상 경향을 유일신교(唯一神敎)의 단계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미가엘이 지상에 출현하자, 그는 천국 아버지에 관해 멜기세덱이 가르친 모든 것이 옳다고 증명했습니다.
4. The Salem Religion 살렘 종교
93:4.1 (1017.3) The ceremonies of the Salem worship were very simple. Every person who signed or marked the clay-tablet rolls of the Melchizedek church committed to memory, and subscribed to, the following belief: 살렘의 경배 의식은 매우 간소했습니다. 멜기세덱 교회의 진흙-서판 명부에 서명(署名)하거나 인장을 찍은 사람마다 다음의 신조(信條)를 암기하고 동의(同意)했습니다.
93:4.2 (1017.4) 1. I believe in El Elyon, the Most High God, the only Universal Father and Creator of all things. 나는 엘리온, 지고자(至高者) 하느님, 유일한 우주 아버지이신, 만유의 창조자를 믿습니다.
93:4.3 (1017.5) 2. I accept the Melchizedek covenant with the Most High, which bestows the favor of God on my faith, not on sacrifices and burnt offerings. 나는 희생물과 번제(燔祭)물이 아니라, 내 신앙에 하느님의 은혜를 주시는 지고자(至高者)와 맺은 멜기세덱 계약(契約)을 받아들입니다.
93:4.4 (1017.6) 3. I promise to obey the seven commandments of Melchizedek and to tell the good news of this covenant with the Most High to all men. 나는 멜기세덱의 7계명에 순종하고 지고자(至高者)와 맺은 이 계약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할 것을 약속합니다.
93:4.5 (1017.7) And that was the whole of the creed of the Salem colony. But even such a short and simple declaration of faith was altogether too much and too advanced for the men of those days. They simply could not grasp the idea of getting divine favor for nothing — by faith. They were too deeply confirmed in the belief that man was born under forfeit to the gods. Too long and too earnestly had they sacrificed and made gifts to the priests to be able to comprehend the good news that salvation, divine favor, was a free gift to all who would believe in the Melchizedek covenant. But Abraham did believe halfheartedly, and even that was “counted for righteousness.” 그리고 그것이 살렘 집단의 전체 신조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짧고 간단한 신앙의 선언조차 당시 사람들에게 대체로 너무 많고 너무 앞섰습니다. 그들은 거저 신앙으로 신적 은혜를 얻는다는 개념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신과 같은 존재들에게 몰수(沒收)된 상태로 태어난다고 너무 철저히 굳게 믿었습니다. 그들은 너무 오래 너무 열심히 사제들에게 희생물을 바치고 선물했기 때문에, 구원, 신적 은혜가 멜기세덱 계약을 믿고자 하는 모두에게 무료라는 복음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마지못해 믿었는데, 그것조차 “의로 여겨졌습니다(창15:6, 롬4:3, 5, 갈3:6, 약2:23).”
93:4.6 (1017.8) The seven commandments promulgated by Melchizedek were patterned along the lines of the ancient Dalamatian supreme law and very much resembled the seven commands taught in the first and second Edens. These commands of the Salem religion were: 멜기세덱이 보급한 일곱 계명은 고대 달라마시아의 최고 법률의 방침(66.5.13, 66.7.8~15)을 따라 만들었고 첫째(74.7.19)와 둘째 에덴에서 가르친 일곱 명령과 아주 많이 닮았습니다. 살렘 종교의 이런 명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93:4.7 (1017.9) 1. You shall not serve any God but the Most High Creator of heaven and earth. 너희는 하늘과 땅의 지고(至高) 창조자 외에 어떤 하느님도 섬기지 말라.
93:4.8 (1017.10) 2. You shall not doubt that faith is the only requirement for eternal salvation. 너희는 신앙이 영원한 구원을 위한 유일한 요건임을 의심하지 말라.
93:4.9 (1017.11) 3. You shall not bear false witness. 너희는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93:4.10 (1017.12) 4. You shall not kill. 너희는 살인하지 말라.
93:4.11 (1017.13) 5. You shall not steal.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라.
93:4.12 (1018.1) 6.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너희는 간통하지 말라.
93:4.13 (1018.2) 7. You shall not show disrespect for your parents and elders. 너희는 너희 부모와 어른들에게 무례를 보이지 말라.
93:4.14 (1018.3) While no sacrifices were permitted within the colony, Melchizedek well knew how difficult it is to suddenly uproot long-established customs and accordingly had wisely offered these people the substitute of a sacrament of bread and wine for the older sacrifice of flesh and blood. It is of record, “Melchizedek, king of Salem, brought forth bread and wine.” But even this cautious innovation was not altogether successful; the various tribes all maintained auxiliary centers on the outskirts of Salem where they offered sacrifices and burnt offerings. Even Abraham resorted to this barbarous practice after his victory over Chedorlaomer; he simply did not feel quite at ease until he had offered a conventional sacrifice. And Melchizedek never did succeed in fully eradicating this proclivity to sacrifice from the religious practices of his followers, even of Abraham. 거류지 내에서 희생 제사는 절대로 허용되지 않았지만, 멜기세덱은 오래-확립된 관습을 갑자기 뿌리 뽑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으므로 살과 피의 옛 희생물 대신에 빵과 포도주의 성찬으로 대체하도록 이 사람들에게 현명하게 제안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살렘의 왕,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져왔습니다(창14:18).” 그러나 이렇게 신중한 혁신조차 완전하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다양한 부족 모두가 살렘의 변두리에 유지했던 보조 중심지에서 그들의 희생물과 번제(燔祭)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조차 크돌라오멜을 이긴 후 이런 야만스러운 관행을 행했습니다. 그는 정말로 관습적인 희생제물을 바치기까지 아주 편하지 않았습니다. 멜기세덱은 자기 추종자들, 아브라함조차 종교적 관습에서 희생물을 바치는 이런 경향을 완전히 근절하는 데 결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창15:9-10, 22:2-13).
93:4.15 (1018.4) Like Jesus, Melchizedek attended strictly to the fulfillment of the mission of his bestowal. He did not attempt to reform the mores, to change the habits of the world, nor to promulgate even advanced sanitary practices or scientific truths. He came to achieve two tasks: to keep alive on earth the truth of the one God and to prepare the way for the subsequent mortal bestowal of a Paradise Son of that Universal Father. 예수와 마찬가지로, 멜기세덱은 자신이 증여된 사명의 완수에 엄밀하게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는 사회적 관행을 개혁하고, 세상의 습관을 바꾸어보려 하지 않았고, 상급 위생 관례나 과학적 진리조차 보급해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 가지 임무를 이루려고 왔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하느님이라는 진리가 지상에서 꺼지지 않게 하고, 그 우주 아버지의 천국 아들이 나중에 필사자로 증여되기 위한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93:4.16 (1018.5) Melchizedek taught elementary revealed truth at Salem for ninety-four years, and during this time Abraham attended the Salem school three different times. He finally became a convert to the Salem teachings, becoming one of Melchizedek’s most brilliant pupils and chief supporters. 멜기세덱은 94년간 살렘에서 기본적 계시 진리를 가르쳤고, 이 기간에 아브라함은 세 번 서로 다른 시간에 살렘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는 결국 살렘의 가르침으로 개종하여 멜기세덱의 가장 훌륭한 문하생이자 수석 후원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5. The Selection of Abraham 선택받은 아브라함
93:5.1 (1018.6) Although it may be an error to speak of “chosen people,” it is not a mistake to refer to Abraham as a chosen individual. Melchizedek did lay upon Abraham the responsibility of keeping alive the truth of one God as distinguished from the prevailing belief in plural deities. “선민(選民 택한 민족)”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잘못일 수 있지만, 아브라함을 선택받은 개인으로 일컫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복수(複數)의 신(神)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과 구별된 하나밖에 없는 하느님의 진리가 꺼지지 않게 하는 책임을 맡겼습니다.
93:5.2 (1018.7) The choice of Palestine as the site for Machiventa’s activities was in part predicated upon the desire to establish contact with some human family embodying the potentials of leadership. At the time of the incarnation of Melchizedek there were many families on earth just as well prepared to receive the doctrine of Salem as was that of Abraham. There were equally endowed families among the red men, the yellow men, and the descendants of the Andites to the west and north. But, again, none of these localities were so favorably situated for Michael’s subsequent appearance on earth as was the eastern shore of the Mediterranean Sea. The Melchizedek mission in Palestine and the subsequent appearance of Michael among the Hebrew people were in no small measure determined by geography, by the fact that Palestine was centrally located with reference to the then existent trade, travel, and civilization of the world. 마키벤타의 활동 장소로 팔레스타인을 선택한 것은 지도력의 잠재력을 실현할 어떤 인간 가족과 확고히 접촉하려는 열망에 어느 정도 근거를 두었습니다. 멜기세덱이 성육신(成肉身)할 때 아브라함의 가족처럼 살렘의 교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잘된 여러 가족이 지상에 있었습니다. 홍인(紅人)들, 황인(黃人)들 및 서쪽과 북쪽으로 안드-사람 후손들 사이에 똑같이 자질이 있는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장소 중 어떤 곳도, 지중해의 동쪽 해안처럼 미가엘이 나중에 지상에 출현하기에 그렇게 알맞은 자리가 없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멜기세덱 임무와 나중에 히브리 민족에서 미가엘이 출현한 것은 상당히 지형(地形), 그 당시 무역, 교통량 및 세상의 문명에 관해 팔레스타인이 중앙에 놓여 있다는 사실로 결정되었습니다.
93:5.3 (1018.8) For some time the Melchizedek receivers had been observing the ancestors of Abraham, and they confidently expected offspring in a certain generation who would be characterized by intelligence, initiative, sagacity, and sincerity. The children of Terah, the father of Abraham, in every way met these expectations. It was this possibility of contact with these versatile children of Terah that had considerable to do with the appearance of Machiventa at Salem, rather than in Egypt, China, India, or among the northern tribes. 한동안 멜기세덱 수령자들이 아브라함의 조상들을 주목했고, 그들은 특정 세대에 지능, 창의력, 총명과 신실함의 특성이 있는 후손이 나오리라고 자신 있게 기대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의 자녀들이 모든 면에서 이런 기대를 채웠습니다. 테라의 이런 다재다능한 자녀와 이렇게 접촉하는 가능성은 마키벤타가 이집트, 중국, 인도나 북쪽의 부족들 사이가 아니라 살렘에 출현한 것과 상당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93:5.4 (1019.1) Terah and his whole family were halfhearted converts to the Salem religion, which had been preached in Chaldea; they learned of Melchizedek through the preaching of Ovid, a Phoenician teacher who proclaimed the Salem doctrines in Ur. They left Ur intending to go directly through to Salem, but Nahor, Abraham’s brother, not having seen Melchizedek, was lukewarm and persuaded them to tarry at Haran. And it was a long time after they arrived in Palestine before they were willing to destroy all of the household gods they had brought with them; they were slow to give up the many gods of Mesopotamia for the one God of Salem. 테라와 그의 온 가족은 칼데아에 전파된 살렘 종교에 대해 마지못해 개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르에서 살렘 교리를 선포했던 페니키아의 선생, 오비드의 설교를 통해 멜기세덱을 들어서 알았습니다. 그들은 곧장 살렘으로 가려고 우르를 떠났지만, 멜기세덱을 본 적이 없는,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그들을 재촉하여 하란에 머물렀습니다(창11:31).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후 자신들이 가져온 집안의 신과 같은 존재들 모두를 기꺼이 부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들이 살렘의 하나밖에 없는 하느님을 위해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신과 같은 존재들을 서서히 버렸습니다.
93:5.5 (1019.2) A few weeks after the death of Abraham’s father, Terah, Melchizedek sent one of his students, Jaram the Hittite, to extend this invitation to both Abraham and Nahor: “Come to Salem, where you shall hear our teachings of the truth of the eternal Creator, and in the enlightened offspring of you two brothers shall all the world be blessed.” Now Nahor had not wholly accepted the Melchizedek gospel; he remained behind and built up a strong city-state which bore his name; but Lot, Abraham’s nephew, decided to go with his uncle to Salem.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가 죽은 지(창11:32) 몇 주 후에, 멜기세덱은 자기 학생 중 하나, 히타이트족(族) 야람을 보내서 아브라함과 나홀 둘 다 이런 초청의 뜻을 표했습니다. “살렘에 와서, 영원한 창조자의 진리에 대한 우리 가르침을 들으면 당신들 두 형제의 개화된 자손으로 인해 온 세상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홀은 멜기세덱 복음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뒤에 남아서 자기 이름을 딴 강력한 도시-국가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자기 삼촌과 함께 살렘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창12:1-4).
93:5.6 (1019.3) Upon arriving at Salem, Abraham and Lot chose a hilly fastness near the city where they could defend themselves against the many surprise attacks of northern raiders. At this time the Hittites, Assyrians, Philistines, and other groups were constantly raiding the tribes of central and southern Palestine. From their stronghold in the hills Abraham and Lot made frequent pilgrimages to Salem. 살렘에 도착하자, 아브라함과 롯은 북쪽 침략자들의 여러 기습에 대비하여 자신들을 방어할 수 있는 도시 근처의 험한 요새를 골랐습니다. 이때에 히타이트족(族), 아시리아-사람들, 필리스틴-사람들 및 다른 집단들이 팔레스타인 중부와 남부의 부족들을 계속 급습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언덕에 있는 자신들 요새로부터 살렘으로 자주 순례를 떠났습니다(창12:5-6).
93:5.7 (1019.4) Not long after they had established themselves near Salem, Abraham and Lot journeyed to the valley of the Nile to obtain food supplies as there was then a drought in Palestine. During his brief sojourn in Egypt Abraham found a distant relative on the Egyptian throne, and he served as the commander of two very successful military expeditions for this king. During the latter part of his sojourn on the Nile he and his wife, Sarah, lived at court, and when leaving Egypt, he was given a share of the spoils of his military campaigns. 그들이 살렘 근처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지 않아, 아브라함과 롯은 그때 팔레스타인에 가뭄이 들어 음식 필수품을 얻으려고 나일강 유역(流域)으로 여행했습니다. 이집트에 잠깐 머무는 동안, 아브라함은 이집트 왕으로 있는 먼 친척을 발견하여 그는 이 왕을 위해 사령관으로서 두 차례의 군사 원정을 아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그가 나일강에 머물던 후반기에, 그와 그의 아내 사라는 궁전에 살았고, 이집트를 떠날 때, 그는 자기 군사 작전의 전리품 중 일부를 받았습니다(창12:10, 16, 13:1-2).
93:5.8 (1019.5) It required great determination for Abraham to forgo the honors of the Egyptian court and return to the more spiritual work sponsored by Machiventa. But Melchizedek was revered even in Egypt, and when the full story was laid before Pharaoh, he strongly urged Abraham to return to the execution of his vows to the cause of Salem. 아브라함이 이집트 궁전의 영예를 그만두고 마키벤타가 보증하는 더 영적인 과업으로 돌아가는 것은 엄청난 결단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이집트에서도 존경받고 있었고, 파라오 앞에 모든 이야기를 제시하자, 그는 강하게 아브라함을 재촉하여 살렘의 대의(大義)에 대한 그의 서약을 이행하도록 돌아가게 했습니다.
93:5.9 (1019.6) Abraham had kingly ambitions, and on the way back from Egypt he laid before Lot his plan to subdue all Canaan and bring its people under the rule of Salem. Lot was more bent on business; so, after a later disagreement, he went to Sodom to engage in trade and animal husbandry. Lot liked neither a military nor a herder’s life. 아브라함은 왕의 야망이 있었고, 이집트에서 돌아오는 도중에, 그는 가나안 전체를 정복하여 그 민족을 살렘의 지배 아래에 두자는 자기 계획을 롯 앞에 제시했습니다. 롯은 사업에 더 열중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의견 충돌이 있고 난 뒤, 그는 무역과 축산업에 종사(從事)하려고 소돔에 갔습니다. 롯은 군인이나 목자(牧者)의 생활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창13:5-12).
93:5.10 (1019.7) Upon returning with his family to Salem, Abraham began to mature his military projects. He was soon recognized as the civil ruler of the Salem territory and had confederated under his leadership seven near-by tribes. Indeed, it was with great difficulty that Melchizedek restrained Abraham, who was fired with a zeal to go forth and round up the neighboring tribes with the sword that they might thus more quickly be brought to a knowledge of the Salem truths. 자기 가족과 함께 살렘으로 돌아오자, 아브라함은 자기 군사적 계획을 완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곧 살렘 지역의 시민 통치자로 인정받았고, 바로 가까운 일곱 부족을 자기 지도력 아래에 연합시켰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나가서 칼로 이웃 부족들을 소탕하여 이렇게 그들을 살렘 진리의 지식으로 더 빨리 이끌려는 열의로 불이 붙어 있어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말리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93:5.11 (1019.8) Melchizedek maintained peaceful relations with all the surrounding tribes; he was not militaristic and was never attacked by any of the armies as they moved back and forth. He was entirely willing that Abraham should formulate a defensive policy for Salem such as was subsequently put into effect, but he would not approve of his pupil’s ambitious schemes for conquest; so there occurred a friendly severance of relationship, Abraham going over to Hebron to establish his military capital. 멜기세덱은 주위의 모든 부족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군사 우선주의가 아니었고, 왕래하는 군대로부터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나중에 실행했듯이 살렘을 위한 방어 정책 수립을 아주 마음에 들었지만, 정복하려는 자기 문하생의 야심 있는 계획은 찬성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자기 군사 중심지를 세우려고 헤브론으로 건너가면서, 우호적 관계가 끊어졌습니다(창13:18).
93:5.12 (1020.1) Abraham, because of his close connection with the illustrious Melchizedek, possessed great advantage over the surrounding petty kings; they all revered Melchizedek and unduly feared Abraham. Abraham knew of this fear and only awaited an opportune occasion to attack his neighbors, and this excuse came when some of these rulers presumed to raid the property of his nephew Lot, who dwelt in Sodom. Upon hearing of this, Abraham, at the head of his seven confederated tribes, moved on the enemy. His own bodyguard of 318 officered the army, numbering more than 4,000, which struck at this time. 아브라함은 저명한 멜기세덱과 친밀한 관계가 있어서 주변의 소규모 왕들보다 큰 이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멜기세덱을 존경했고 아브라함을 지나치게 두려워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두려움을 알고 있어서, 자기 이웃을 공격할 적절한 기회를 기다릴 뿐이었는데, 이런 통치자 중 일부가 대담하게 소돔에 살던 그의 조카 롯의 재산을 습격하자, 이런 핑계가 생겼습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은, 자기 일곱 연합 부족의 선두에서 적을 공격했습니다. 그 자신의 호위대 318명이 4,000명이 넘는 군대를 이끌고 이때 공격했습니다(창14:8-16).
93:5.13 (1020.2) When Melchizedek heard of Abraham’s declaration of war, he went forth to dissuade him but only caught up with his former disciple as he returned victorious from the battle. Abraham insisted that the God of Salem had given him victory over his enemies and persisted in giving a tenth of his spoils to the Salem treasury. The other ninety per cent he removed to his capital at Hebron.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의 전쟁 선포에 대해 듣고, 그가 그를 말리려고 출발했지만 자기 옛 제자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올 때, 그를 따라잡았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살렘의 하느님이 자신에게 자기 대적들을 이기게 했다고 단언하며 자기 전리품 중 10분의 1을 살렘 기금에 드리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나머지 90퍼센트를 헤브론에 있는 자기 중심지로 옮겼습니다(창14:18-20, 히7:2).
93:5.14 (1020.3) After this battle of Siddim, Abraham became leader of a second confederation of eleven tribes and not only paid tithes to Melchizedek but saw to it that all others in that vicinity did the same. His diplomatic dealings with the king of Sodom, together with the fear in which he was so generally held, resulted in the king of Sodom and others joining the Hebron military confederation; Abraham was really well on the way to establishing a powerful state in Palestine. 이 싯딤 전투 후에, 아브라함은 11개 부족으로 구성된 두 번째 연방의 지도자가 되었고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릴 뿐 아니라 그 부근의 다른 모든 부족도 반드시 똑같이 하게 했습니다. 매우 널리 그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소돔 왕과 맺은 그의 외교 관계의 결과, 소돔 왕과 다른 왕들도 헤브론 군사 연방에 가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팔레스타인에서 강력한 국가를 세우는 일이 아주 잘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6. Melchizedek’s Covenant with Abraham 멜기세덱이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
93:6.1 (1020.4) Abraham envisaged the conquest of all Canaan. His determination was only weakened by the fact that Melchizedek would not sanction the undertaking. But Abraham had about decided to embark upon the enterprise when the thought that he had no son to succeed him as ruler of this proposed kingdom began to worry him. He arranged another conference with Melchizedek; and it was in the course of this interview that the priest of Salem, the visible Son of God, persuaded Abraham to abandon his scheme of material conquest and temporal rule in favor of the spiritual concept of the kingdom of heaven. 아브라함은 가나안 전체의 정복을 구상했습니다. 멜기세덱이 그 일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의 결정을 약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그 기획에 착수하려고 거의 결정했을 때,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작정한 왕국의 통치자로서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생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멜기세덱과 또 다른 회담을 준비했습니다. 이런 면담 과정에서 살렘의 사제, 눈에 보이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브라함을 설득하여 하늘나라의 영적 개념을 위해서 물질적으로 정복하여 잠시 다스리는 아브라함의 기획을 포기하게 했습니다(창15:1-3).
93:6.2 (1020.5) Melchizedek explained to Abraham the futility of contending with the Amorite confederation but made it equally clear that these backward clans were certainly committing suicide by their foolish practices so that in a few generations they would be so weakened that the descendants of Abraham, meanwhile greatly increased, could easily overcome them.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아모리인(人) 연방과 다투는 것이 쓸데없다고 설명했고, 이렇게 퇴보적인 부족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은 관행으로 확실히 자멸(自滅)하고 있어서 몇 세대가 지나면 그들이 아주 약해져서, 그동안 매우 늘어난, 아브라함이 자손이 쉽게 그들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똑같이 분명히 했습니다.
93:6.3 (1020.6) And Melchizedek made a formal covenant with Abraham at Salem. Said he to Abraham: “Look now up to the heavens and number the stars if you are able; so numerous shall your seed be.” And Abraham believed Melchizedek, “and it was counted to him for righteousness.” And then Melchizedek told Abraham the story of the future occupation of Canaan by his offspring after their sojourn in Egypt. 멜기세덱은 살렘에서 아브라함과 공식적으로 계약했습니다. “이제 하늘을 보고 할 수 있으면 별의 수를 세어보라. 네 자손이 그렇게 많아질 것이라(창15:5).”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믿었고, “그것이 그에게 고결한 행위로 여겨졌습니다(창15:6).” 그러자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이집트에 머물렀던 아브라함의 후손이 장차 가나안을 차지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창13:14-17, 15:13-16).
93:6.4 (1020.7) This covenant of Melchizedek with Abraham represents the great Urantian agreement between divinity and humanity whereby God agrees to do everything; man only agrees to believe God’s promises and follow his instructions. Heretofore it had been believed that salvation could be secured only by works — sacrifices and offerings; now, Melchizedek again brought to Urantia the good news that salvation, favor with God, is to be had by faith. But this gospel of simple faith in God was too advanced; the Semitic tribesmen subsequently preferred to go back to the older sacrifices and atonement for sin by the shedding of blood. 아브라함과 맺은 멜기세덱의 이 계약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하느님이 모든 것을 하기로 동의한 위대한 유란시아 협정을 뜻합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로 동의할 뿐입니다. 이전에는 행위 즉 희생물과 제물로만 구원이 보증된다고 믿었습니다. 이제 멜기세덱은 유란시아에 다시, 구원, 하느님의 은총은 신앙으로 얻는다는 복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순전히 신앙하라는 이 복음은 너무 진보적이었습니다. 나중에 셈 부족은 더 오래된 희생 제사와 피를 흘려서 죄를 갚는 일로 되돌아가기를 좋게 여겼습니다.
93:6.5 (1021.1) It was not long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is covenant that Isaac, the son of Abraham, was born in accordance with the promise of Melchizedek. After the birth of Isaac, Abraham took a very solemn attitude toward his covenant with Melchizedek, going over to Salem to have it stated in writing. It was at this public and formal acceptance of the covenant that he changed his name from Abram to Abraham. 이 계약 수립 후, 오래되지 않아, 멜기세덱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이삭이 태어난 후, 아브라함은 살렘으로 건너가 계약을 문서로 작성하면서, 멜기세덱과 맺은 자기 계약에 대해 매우 진지한 마음가짐을 취했습니다. 이렇게 공개적이며 공식적으로 계약을 받아들여서 그는 자기 이름을 아브람(큰 아버지)에서 아브라함(많은 무리의 아버지)으로 바꾸었습니다(창17:1-9).
93:6.6 (1021.2) Most of the Salem believers had practiced circumcision, though it had never been made obligatory by Melchizedek. Now Abraham had always so opposed circumcision that on this occasion he decided to solemnize the event by formally accepting this rite in token of the ratification of the Salem covenant. 멜기세덱은 결코 할례를 의무적으로 만들지 않았지만, 살렘 신자(信者) 대다수는 할례를 실행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언제나 할례를 반대해 왔기에, 그는 이제 이 기회에 살렘 계약을 비준(批准 확인하고 동의)하는 증거로 이런 의례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서 그 사건을 집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창17:10-14, 23-27).
93:6.7 (1021.3) It was following this real and public surrender of his personal ambitions in behalf of the larger plans of Melchizedek that the three celestial beings appeared to him on the plains of Mamre. This was an appearance of fact, notwithstanding its association with the subsequently fabricated narratives relating to the natural destruction of Sodom and Gomorrah. And these legends of the happenings of those days indicate how retarded were the morals and ethics of even so recent a time. 멜기세덱의 더 큰 계획을 위해 그의 개인적인 야망을 이렇게 실제로 공개적으로 포기한 후에 천상의 세 존재가 마므레 평원에서 그에게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소돔과 고모라의 자연 파괴에 관해 꾸며낸 이야기와 관련이 있음에도, 사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건에 대한 이런 전설은 도덕과 윤리가 아주 최근에도 얼마나 지연(遲延)되었는지 알려줍니다(창18-19장).
93:6.8 (1021.4) Upon the consummation of the solemn covenant, the reconciliation between Abraham and Melchizedek was complete. Abraham again assumed the civil and military leadership of the Salem colony, which at its height carried over one hundred thousand regular tithe payers on the rolls of the Melchizedek brotherhood. Abraham greatly improved the Salem temple and provided new tents for the entire school. He not only extended the tithing system but also instituted many improved methods of conducting the business of the school, besides contributing greatly to the better handling of the department of missionary propaganda. He also did much to effect improvement of the herds and the reorganization of the Salem dairying projects. Abraham was a shrewd and efficient business man, a wealthy man for his day; he was not overly pious, but he was thoroughly sincere, and he did believe in Machiventa Melchizedek. 엄숙한 계약이 완성되자,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사이에 화해가 이행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살렘 거류지의 민사(民事) 및 군사 지도력을 다시 떠맡았는데, 그 절정기에 멜기세덱 형제공동체의 명부(名簿)에는 정기적으로 십일조를 내는 10만 명 이상이 기재(記載)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살렘 성전을 크게 개량했고, 모든 학교에 새 천막을 제공했습니다. 그는 십일조 제도를 확대할 뿐 아니라, 선교사 포교부서를 잘 다루는 일에 크게 공헌하는 것에 더해서, 학교 업무를 수행하는 여러 개선된 방법을 실시했습니다. 그는 또한 목축 개량의 실행과 살렘 낙농업 사업의 재편에 크게 진력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영리하고 유능한 사업가, 당시 부자였습니다. 그는 지나치게 신앙심이 깊지 않았지만, 그는 철저히 신실했고, 그는 마키벤타 멜기세덱을 믿었습니다.
7. The Melchizedek Missionaries 멜기세덱 선교사들
93:7.1 (1021.5) Melchizedek continued for some years to instruct his students and to train the Salem missionaries, who penetrated to all the surrounding tribes, especially to Egypt, Mesopotamia, and Asia Minor. And as the decades passed, these teachers journeyed farther and farther from Salem, carrying with them Machiventa’s gospel of belief and faith in God. 멜기세덱은 수년간 계속해서 자기 학생들을 가르치고, 모든 주변 부족 특히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및 소아시아로 침투한 살렘 선교사들을 훈련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자, 이런 선생들은 하느님을 믿고 신앙하는 마키벤타의 복음을 가지고 살렘에서 점점 더 멀리 여행했습니다.
93:7.2 (1021.6) The descendants of Adamson, clustered about the shores of the lake of Van, were willing listeners to the Hittite teachers of the Salem cult. From this onetime Andite center, teachers were dispatched to the remote regions of both Europe and Asia. Salem missionaries penetrated all Europe, even to the British Isles. One group went by way of the Faroes to the Andonites of Iceland, while another traversed China and reached the Japanese of the eastern islands. The lives and experiences of the men and women who ventured forth from Salem, Mesopotamia, and Lake Van to enlighten the tribes of the Eastern Hemisphere present a heroic chapter in the annals of the human race. 반 호수 기슭에 모여 살던 아담선의 후손들은 살렘 종파에 속한 히타이트족(族) 선생들의 자발적인 경청자들이었습니다. 일찍이 안드-사람 중심지였던 이곳에서, 선생들이 유럽과 아시아의 외딴 지역으로 파송되었습니다. 살렘 선교사들은 전(全) 유럽, 영국 제도(諸島)까지 파고들었습니다. 한 무리는 페로스 제도(諸島)를 거쳐 아이슬란드의 안돈-사람들에게 갔고, 한편 다른 무리는 중국을 가로질러 동쪽 섬들의 일본인(日本人)들에게 이르렀습니다. 살렘, 메소포타미아 및 반 호수에서 동반구(東半球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의 부족들에게 중요한 사항을 알리려고 힘차게 떠난 남녀의 생애와 체험은 인류의 연대기(年代記)에서 영웅적인 중요한 장(章 사건)을 나타냅니다.
93:7.3 (1022.1) But the task was so great and the tribes were so backward that the results were vague and indefinite.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 the Salem gospel found lodgment here and there, but except in Palestine, never was the idea of one God able to claim the continued allegiance of a whole tribe or race. Long before the coming of Jesus the teachings of the early Salem missionaries had become generally submerged in the older and more universal superstitions and beliefs. The original Melchizedek gospel had been almost wholly absorbed in the beliefs in the Great Mother, the Sun, and other ancient cults. 그러나 과업은 너무 크고 부족들은 매우 퇴보해있어서 그 결과는 모호하고 막연했습니다.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넘어가면서 살렘 복음은 여기저기에 거점을 마련했지만, 팔레스타인을 제외하고, 하나밖에 없는 하느님 개념이 결코 부족이나 종족 전체의 지속적인 헌신을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오래전에 초기 살렘 선교사들의 가르침은 대체로 더 오래된 전반적인 미신과 믿음들 안에 가라앉았습니다. 원래의 멜기세덱 복음은 대모(大母 위대한 어머니), 태양 및 기타 고대 종파를 믿는 믿음 안에 거의 모두 흡수되었습니다.
93:7.4 (1022.2) You who today enjoy the advantages of the art of printing little understand how difficult it was to perpetuate truth during these earlier times; how easy it was to lose sight of a new doctrine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 There was always a tendency for the new doctrine to become absorbed into the older body of religious teaching and magical practice. A new revelation is always contaminated by the older evolutionary beliefs. 오늘날 인쇄술의 혜택을 누리는 너희는, 이런 초기 시대에 진리를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넘어가면서 얼마나 쉽게 새로운 교리를 잊어버렸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새로운 교리는 언제나 대부분 더 오래된 종교적 가르침과 마술적 관행에 흡수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계시는 더 오래된 진화 믿음에 의해서 언제나 오염됩니다.
8. Departure of Melchizedek 멜기세덱의 떠남
93:8.1 (1022.3) It was shortly after the destruction of Sodom and Gomorrah that Machiventa decided to end his emergency bestowal on Urantia. Melchizedek’s decision to terminate his sojourn in the flesh was influenced by numerous conditions, chief of which was the growing tendency of the surrounding tribes, and even of his immediate associates, to regard him as a demigod, to look upon him as a supernatural being, which indeed he was; but they were beginning to reverence him unduly and with a highly superstitious fear. In addition to these reasons, Melchizedek wanted to leave the scene of his earthly activities a sufficient length of time before Abraham’s death to insure that the truth of the one and only God would become strongly established in the minds of his followers. Accordingly Machiventa retired one night to his tent at Salem, having said good night to his human companions, and when they went to call him in the morning, he was not there, for his fellows had taken him. 마키벤타가 유란시아에 자신의 긴급 증여를 끝내기로 결심한 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직후였습니다. 멜기세덱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육신으로 머물기를 마치기로 결심했는데 그중 주된 사정은 주변 부족들과 자기의 가까운 동료들까지 그를 반신(半神 신과 같은 존재)으로 간주하고, 초자연적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점점 커졌기 때문인데, 그는 정말로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과도히, 아주 미신적인 두려움으로 그를 공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이유 외에, 멜기세덱은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하느님의 진리가 자기 추종자들의 마음에 강하게 확실히 자리를 잡도록 아브라함이 죽기 전 충분히 긴 시간을 두고 자기 지상 활동 무대에서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키벤타는 어느 날 밤 자기 인간 동료들에게 취침 인사를 하면서 살렘의 자기 천막으로 물러갔고, 그들이 아침에 그를 부르러 갔을 때, 그가 거기에 없었는데, 그의 동료들이 그를 데려갔기 때문입니다.
9. After Melchizedek’s Departure 멜기세덱이 떠난 후
93:9.1 (1022.4) It was a great trial for Abraham when Melchizedek so suddenly disappeared. Although he had fully warned his followers that he must sometime go as he had come, they were not reconciled to the loss of their wonderful leader. The great organization built up at Salem nearly disappeared, though the traditions of these days were what Moses built upon when he led the Hebrew slaves out of Egypt. 멜기세덱이 그렇게 갑자기 사라지자,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커다란 시련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이 온대로 언젠가 가야 한다고 자기 추종자들에게 충분히 경고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경탄할 만한 지도자의 손실을 달갑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살렘에 건립한 위대한 조직은 거의 사라졌지만, 모세가 헤브루(히브리) 노예들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왔을 때 그가 건립한 것은 (살렘) 당시의 전통에 속했습니다.
93:9.2 (1022.5) The loss of Melchizedek produced a sadness in the heart of Abraham that he never fully overcame. Hebron he had abandoned when he gave up the ambition of building a material kingdom; and now, upon the loss of his associate in the building of the spiritual kingdom, he departed from Salem, going south to live near his interests at Gerar. 멜기세덱이 없어지자 아브라함이 결코 충분히 극복할 수 없는 슬픔이 그 심정에 생겼습니다. 그가 물질적 왕국을 세우려는 야망을 버렸을 때 그는 헤브론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영적 왕국을 세우면서 자기 동료를 잃어버리자, 그는 살렘을 떠나 자기 세력이 있는 게랄(그랄) 근처에서 살려고 남쪽으로 갔습니다(창20:1).
93:9.3 (1022.6) Abraham became fearful and timid immediately after the disappearance of Melchizedek. He withheld his identity upon arrival at Gerar, so that Abimelech appropriated his wife. (Shortly after his marriage to Sarah, Abraham one night had overheard a plot to murder him in order to get his brilliant wife. This dread became a terror to the otherwise brave and daring leader; all his life he feared that someone would kill him secretly in order to get Sarah. And this explains why, on three separate occasions, this brave man exhibited real cowardice.) 멜기세덱이 사라진 후 아브라함은 두려워서 곧바로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그는 게랄(그랄)에 도착하자 자기 신원을 알리지 않아서, 아비멜렉이 그의 아내를 제 것으로 삼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와 결혼한 직후, 어느 날 밤 그는 자기 눈부신 아내를 취하려고 자신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우연히 들었습니다. 다른 점에서는 용감하고 대담한 그 지도자에게 이런 두려움은 공포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누군가가 사라를 취하려고 자신을 몰래 죽일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용감한 남자가 서로 다른 세 번의 경우에 정말로 비겁함을 드러냈던 이유를 설명합니다(창12:11-20, 20:2-14).)
93:9.4 (1023.1) But Abraham was not long to be deterred in his mission as the successor of Melchizedek. Soon he made converts among the Philistines and of Abimelech’s people, made a treaty with them, and, in turn, became contaminated with many of their superstitions, particularly with their practice of sacrificing first-born sons. Thus did Abraham again become a great leader in Palestine. He was held in reverence by all groups and honored by all kings. He was the spiritual leader of all the surrounding tribes, and his influence continued for some time after his death. During the closing years of his life he once more returned to Hebron, the scene of his earlier activities and the place where he had worked in association with Melchizedek. Abraham’s last act was to send trusty servants to the city of his brother, Nahor, on the border of Mesopotamia, to secure a woman of his own people as a wife for his son Isaac. It had long been the custom of Abraham’s people to marry their cousins. And Abraham died confident in that faith in God which he had learned from Melchizedek in the vanished schools of Salem. 그러나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계승자로서 자기 사명을 오랫동안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 필리스틴 사람들과 아비멜렉의 백성 중에서 개종자들을 만들어 그들과 조약(條約)을 맺었고, 결국 그들의 여러 미신(迷信), 특히 장남을 제물로 바치는 그들의 관습에 물들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다시 팔레스타인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집단이 그를 존경했고 모든 왕이 그를 존중했습니다. 그는 주변 모든 부족의 영적 지도자였으며, 그의 영향력은 그가 죽은 후 얼마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생애 말년에 다시 한번 자신의 초기 활동 무대이며, 멜기세덱과 공동으로 일했던 장소, 헤브론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지막 행동은 메소포타미아 경계에 있는 자기 형제 나홀의 도시로 충실한 하인들을 보내서 자기 아들 이삭의 아내로 자기 민족의 여인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사촌과 결혼하는 것이 아브라함 민족의 오랜 관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사라진 살렘의 학교에서 멜기세덱으로부터 자신이 배운 하느님을 믿는 신앙을 확신하며 죽었습니다(창21:22-32, 22-24장, 25:1-10).
93:9.5 (1023.2) It was hard for the next generation to comprehend the story of Melchizedek; within five hundred years many regarded the whole narrative as a myth. Isaac held fairly well to the teachings of his father and nourished the gospel of the Salem colony, but it was harder for Jacob to grasp the significance of these traditions. Joseph was a firm believer in Melchizedek and was, largely because of this, regarded by his brothers as a dreamer. Joseph’s honor in Egypt was chiefly due to the memory of his great-grandfather Abraham. Joseph was offered military command of the Egyptian armies, but being such a firm believer in the traditions of Melchizedek and the later teachings of Abraham and Isaac, he elected to serve as a civil administrator, believing that he could thus better labor for the advancement of the kingdom of heaven. 다음 세대는 멜기세덱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500년 이내에 많은 사람은 그 이야기 전부를 신화(神話)로 여겼습니다. 이삭은 자기 아버지의 가르침을 아주 잘 새겼고, 살렘 거류지의 복음이 자라나게 했지만, 야곱이 이런 전통의 중요성을 파악하기는 더 어려웠습니다. 요셉은 멜기세덱을 굳게 믿었고, 주로 이것 때문에 그 형제들로부터 몽상가로 여겨졌습니다(창37:19). 이집트에서 요셉의 명예는 주로 그의 증조부 아브라함의 명성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 군대의 군사 지휘권을 제안받았지만, 멜기세덱의 전승(傳承)들과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대 가르침을 아주 확실히 믿는 자여서, 민간 경영자로 봉사하기로 택했고, 자신이 하느님 나라의 진보를 위해 이렇게 더 잘 수고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창41:41).
93:9.6 (1023.3) The teaching of Melchizedek was full and replete, but the records of these days seemed impossible and fantastic to the later Hebrew priests, although many had some understanding of these transactions, at least up to the times of the en masse editing of the Old Testament records in Babylon. 적어도 바빌론에서 구약 성서의 기록이 한꺼번에 편집되던 시기까지 다수가 이런 업무(멜기세덱의 가르침)를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멜기세덱의 가르침은 충분하고 충만하여서, 후대의 히브리 사제들에게는 당시의 기록이 불가능하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93:9.7 (1023.4) What the Old Testament records describe as conversations between Abraham and God were in reality conferences between Abraham and Melchizedek. Later scribes regarded the term Melchizedek as synonymous with God. The record of so many contacts of Abraham and Sarah with “the angel of the Lord” refers to their numerous visits with Melchizedek. 구약 성서의 기록에 아브라함과 하느님 사이의 대화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사이의 회담이었습니다. 후대 서기관들은 멜기세덱이라는 용어를 하느님과 같은 뜻으로 여겼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주(하느)님의 천사”와 아주 많이 접촉한 기록은 멜기세덱을 수없이 방문했다는 언급입니다(창12:7, 13:14, 15:1, 4, 7, 16:7-13, 17:1-22, 18장, 22:11, 15).
93:9.8 (1023.5) The Hebrew narratives of Isaac, Jacob, and Joseph are far more reliable than those about Abraham, although they also contain many diversions from the facts, alterations made intentionally and unintentionally at the time of the compilation of these records by the Hebrew priests during the Babylonian captivity. Keturah was not a wife of Abraham; like Hagar, she was merely a concubine. All of Abraham’s property went to Isaac, the son of Sarah, the status wife. Abraham was not so old as the records indicate, and his wife was much younger. These ages were deliberately altered in order to provide for the subsequent alleged miraculous birth of Isaac. 이삭, 야곱 및 요셉의 히브리인(人) 이야기는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보다 훨씬 더 확실하지만, 바빌론 유수(幽囚 포로)기에 히브리 사제들이 이런 기록들을 편집할 당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그런 이야기들이, 사실에서 벗어나 변경된 여러 가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케투라(그두라)는 아브라함의 아내가 아니었습니다(창25:1). 하갈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첩일 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재산은 아내 신분인 사라의 아들, 이삭에게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록에 나타난 것처럼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았고, 아내는 훨씬 젊었습니다. 이런 나이는 나중에 이삭이 기적적으로 탄생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의도적으로 변경되었습니다(창17:1, 17, 18:11-13, 21:2, 5, 23:1, 24:1, 25:7-8).
93:9.9 (1023.6) The national ego of the Jews was tremendously depressed by the Babylonian captivity. In their reaction against national inferiority they swung to the other extreme of national and racial egotism, in which they distorted and perverted their traditions with the view of exalting themselves above all races as the chosen people of God; and hence they carefully edited all their records for the purpose of raising Abraham and their other national leaders high up above all other persons, not excepting Melchizedek himself. The Hebrew scribes therefore destroyed every record of these momentous times which they could find, preserving only the narrative of the meeting of Abraham and Melchizedek after the battle of Siddim, which they deemed reflected great honor upon Abraham. 유대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은 바빌론 유수(幽囚 포로)로 인해 엄청나게 꺾였습니다. 민족적 열등감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들은 거꾸로 민족적, 종족의 극단적 이기주의로 관심을 돌렸고, 그들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으로서 모든 인종보다 자신들을 높일 작정으로 자신들의 전승을 왜곡하고 악용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아브라함과 기타 자신들의 민족 지도자들을 다른 모든 인물보다 높이 세우려는 목적으로 자신들의 모든 기록을 주의 깊게 편집했고 멜기세덱 자신도 예외로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서기관들은, 아브라함에게 큰 영광을 나타낸 것으로 여겼던, 싯딤의 전투 이후에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이 만나는 이야기만 보존하면서, 자신들이 찾을 수 있는 이런 중대한 시대의 모든 기록을 파괴했습니다(창14:18-20, 히7:1-2).
93:9.10 (1024.1) And thus, in losing sight of Melchizedek, they also lost sight of the teaching of this emergency Son regarding the spiritual mission of the promised bestowal Son; lost sight of the nature of this mission so fully and completely that very few of their progeny were able or willing to recognize and receive Michael when he appeared on earth and in the flesh as Machiventa had foretold. 그리고 이렇게 멜기세덱을 잊어버리면서, 그들은 약속의 증여 아들의 영적 사명에 관한 이 비상(非常) 아들의 가르침도 잊어버렸습니다. 이런 사명의 본성을 그렇게 완전하게 철저히 잊어버려서 마키벤타가 예언한 대로 그가 지상에 성육신(成肉身)하자 그 자손 중에서 미가엘을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 있거나 기꺼이 그렇게 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93:9.11 (1024.2) But one of the writers of the Book of Hebrews understood the mission of Melchizedek, for it is written: “This Melchizedek, priest of the Most High, was also king of peace; without father, without mother, without pedigree, having neither beginning of days nor end of life but made like a Son of God, he abides a priest continually.” This writer designated Melchizedek as a type of the later bestowal of Michael, affirming that Jesus was “a minister forever on the order of Melchizedek.” While this comparison was not altogether fortunate, it was literally true that Christ did receive provisional title to Urantia “upon the orders of the twelve Melchizedek receivers” on duty at the time of his world bestowal.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 중 하나가 멜기세덱의 사명을 이해했는데, 다음과 같이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지고자(至高者)의 사제인 이 멜기세덱은 또한 평화의 왕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지만 하느님의 아들처럼 되어, 그는 계속 사제로 남아 있습니다(히7:1-3).” 이 기자(記者)가 멜기세덱을 후대 미가엘 증여의 유형으로 지정하여, 예수가 “영원히 멜기세덱 계열의 사역자”였다고 확언했습니다(시110:4, 히5:6, 10, 6:20, 7:11, 17, 21). 이런 비교가 다행스럽지만은 않으나, 그리스도가 자신을 세계에 증여한 때에 근무 중인 “열두 멜기세덱 수령자(受領者)의 계열에 따라서” 유란시아에 대한 임시 소유권을 받았던 것은 글자 그대로 사실이었습니다.
10. Present Status of Machiventa Melchizedek 마키벤타 멜기세덱의 현재 상태
93:10.1 (1024.3) During the years of Machiventa’s incarnation the Urantia Melchizedek receivers functioned as eleven. When Machiventa considered that his mission as an emergency Son was finished, he signalized this fact to his eleven associates, and they immediately made ready the technique whereby he was to be released from the flesh and safely restored to his original Melchizedek status. And on the third day after his disappearance from Salem he appeared among his eleven fellows of the Urantia assignment and resumed his interrupted career as one of the planetary receivers of 606 of Satania. 마키벤타가 성육신(成肉身)으로 있을 때 유란시아 멜기세덱 수령자(受領者)들은 11명으로 활동했습니다. 마키벤타가 비상 아들로서 자기 사명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이런 사실을 자기 동료 11명에게 알렸고, 그들은 그가 육신에서 해방되어 안전하게 그의 원래 멜기세덱 신분으로 안전하게 회복되는 기법을 즉시 준비했습니다. 그가 살렘에서 사라진 후 사흘째, 그는 유란시아를 담당하는 자신의 11명 동료 사이에 출현하여 사타니아 606번 행성 수령자 중 하나로 중단했던 자기 생애로 돌아갔습니다.
93:10.2 (1024.4) Machiventa terminated his bestowal as a creature of flesh and blood just as suddenly and unceremoniously as he had begun it. Neither his appearance nor departure were accompanied by any unusual announcement or demonstration; neither resurrection roll call nor ending of planetary dispensation marked his appearance on Urantia; his was an emergency bestowal. But Machiventa did not end his sojourn in the flesh of human beings until he had been duly released by the Father Melchizedek and had been informed that his emergency bestowal had received the approval of the chief executive of Nebadon, Gabriel of Salvington. 마키벤타가 피붙이 창조물로서 증여를 시작했을 때처럼 갑자기, 격식을 차리지 않고 자기 증여를 끝냈습니다. 그의 출현이나 떠남에 어떤 유별난 발표나 과시도 없었습니다. 부활 호출이나 행성 섭리 시대의 종료도 그의 유란시아 출현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출현은 비상 증여였습니다. 그러나 마키벤타는 아버지 멜기세덱이 정식으로 발표하고 네바돈의 수석 실행자, 샐빙톤의 가브리엘이 자신의 비상 증여를 승인했다고 통보될 때까지, 인간 육신으로 계속 머물렀습니다.
93:10.3 (1024.5) Machiventa Melchizedek continued to take a great interest in the affairs of the descendants of those men who had believed in his teachings when he was in the flesh. But the progeny of Abraham through Isaac as intermarried with the Kenites were the only line which long continued to nourish any clear concept of the Salem teachings. 마키벤타 멜기세덱은 자신이 육신으로 있을 때 자기 가르침을 믿었던 그런 사람들의 후손들이 하는 업무에 계속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통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켄-사람들과 결혼하여 살렘 가르침의 선명한 개념을 오랫동안 계속 강화했던 유일한 혈통이었습니다.
93:10.4 (1024.6) This same Melchizedek continued to collaborate throughout the nineteen succeeding centuries with the many prophets and seers, thus endeavoring to keep alive the truths of Salem until the fullness of the time for Michael’s appearance on earth. 바로 이 멜기세덱이 계속되는 19세기 내내 여러 선지자 및 예언자와 계속 협력해서, 지상에 미가엘이 출현하는 때가 차기까지 살렘의 진리가 살아있도록 애썼습니다.
93:10.5 (1025.1) Machiventa continued as a planetary receiver up to the times of the triumph of Michael on Urantia. Subsequently, he was attached to the Urantia service on Jerusem as one of the four and twenty directors, only just recently having been elevated to the position of personal ambassador on Jerusem of the Creator Son, bearing the title Vicegerent Planetary Prince of Urantia. It is our belief that, as long as Urantia remains an inhabited planet, Machiventa Melchizedek will not be fully returned to the duties of his order of sonship but will remain, speaking in the terms of time, forever a planetary minister representing Christ Michael. 마키벤타는 미가엘이 유란시아에서 승리하는 때까지 행성 수령자로서 계속했습니다. 그 후 그는 예루셈에서 24명의 관리자 중 하나로 유란시아를 섬기도록 배속되었고, 최근에서야 예루셈에서 창조자 아들의 개인 대사의 신분으로 등용되어, 유란시아의 대리 행성 왕자의 직함을 맡고 있습니다. 유란시아가 거주 행성으로 남아 있는 한 마키벤타 멜기세덱은 자기 계층의 아들된 본분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않고, 시간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영원히 그리스도 미가엘을 대표하는 행성 사역자로 남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93:10.6 (1025.2) As his was an emergency bestowal on Urantia, it does not appear from the records what Machiventa’s future may be. It may develop that the Melchizedek corps of Nebadon have sustained the permanent loss of one of their number. Recent rulings handed down from the Most Highs of Edentia, and later confirmed by the Ancients of Days of Uversa, strongly suggest that this bestowal Melchizedek is destined to take the place of the fallen Planetary Prince, Caligastia. If our conjectures in this respect are correct, it is altogether possible that Machiventa Melchizedek may again appear in person on Urantia and in some modified manner resume the role of the dethroned Planetary Prince, or else appear on earth to function as vicegerent Planetary Prince representing Christ Michael, who now actually holds the title of Planetary Prince of Urantia. While it is far from clear to us as to what Machiventa’s destiny may be, nevertheless, events which have so recently taken place strongly suggest that the foregoing conjectures are probably not far from the truth. 유란시아에 대한 그의 증여는 비상 증여(贈與)여서, 기록에는 마키벤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네바돈의 멜기세덱 단(斷)은 그들 중 하나를 영구히 상실한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에덴시아의 지고(至高)자들이 공표한 최근의 판결(判決)과, 우버르사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확증으로, 이 증여 멜기세덱이 타락한 행성 왕자, 칼리가스티아를 대신하기로 정해졌음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이 점에서 우리의 추측이 정확하다면, 마키벤타 멜기세덱이 유란시아에 다시 직접 나타나 변경된 어떤 방식으로 폐위된 행성 왕자의 역할을 되찾거나, 아니면 현재 유란시아의 행성 왕자 직함을 실제로 지닌 그리스도 미가엘을 대표하는 대리 행성 왕자로 활동하기 위해 지상에 나타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마키벤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우리에게 분명하지 않지만, 그런데도,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은 앞서 말한 추측이 아마 진실에서 멀지 않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93:10.7 (1025.3) We well understand how, by his triumph on Urantia, Michael became the successor of both Caligastia and Adam; how he became the planetary Prince of Peace and the second Adam. And now we behold the conferring upon this Melchizedek of the title Vicegerent Planetary Prince of Urantia. Will he also be constituted Vicegerent Material Son of Urantia? Or is there a possibility that an unexpected and unprecedented event is to take place, the sometime return to the planet of Adam and Eve or certain of their progeny as representatives of Michael with the titles vicegerents of the second Adam of Urantia? 우리는 유란시아에서 미가엘의 승리로 그가 어떻게 칼리가스티아와 아담의 후계자가 되었는지, 그가 어떻게 평화의 행성왕자(사9:6)와 둘째 아담(고전15:45, 47)이 되었는지 잘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 멜기세덱에게 유란시아의 대리 행성 왕자의 직함이 수여되는 것을 봅니다. 그가 유란시아의 대리 물질 아들도 될 것인가? 아니면, 예기치 않은, 전례 없는 사건이 일어나서, 언젠가 아담과 이브 혹은 그들의 어떤 후손이 미가엘의 대리자로서 유란시아의 대리 둘째 아담의 직함으로 행성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을까요?
93:10.8 (1025.4) And all these speculations associated with the certainty of future appearances of both Magisterial and Trinity Teacher Sons, in conjunction with the explicit promise of the Creator Son to return sometime, make Urantia a planet of future uncertainty and render it one of the most interesting and intriguing spheres in all the universe of Nebadon. It is altogether possible that, in some future age when Urantia is approaching the era of light and life, after the affairs of the Lucifer rebellion and the Caligastia secession have been finally adjudicated, we may witness the presence on Urantia, simultaneously, of Machiventa, Adam, Eve, and Christ Michael, as well as either a Magisterial Son or even Trinity Teacher Sons. 치안(治安) 및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 둘 다 미래에 출현한다는 확신과 관련하여 이런 모든 추측은, 창조자 아들이 언젠가 돌아온다는 명백한 약속과 함께 유란시아를 미래 불확실한 행성으로 만들고 네바돈 온 우주에서 가장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구체 중 하나가 되게 합니다. 유란시아가 빛과 생명의 시대로 다가가는 미래 어느 시대에 루시퍼 반란과 칼리가스티아 탈퇴의 업무가 최종적으로 선고된 후, 치안(治安) 아들 혹은 심지어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만 아니라 마키벤타, 아담과 이브, 그리고 그리스도 미가엘도 일제히 유란시아에 계시는 것을 우리가 눈앞에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93:10.9 (1025.5) It has long been the opinion of our order that Machiventa’s presence on the Jerusem corps of Urantia directors, the four and twenty counselors, is sufficient evidence to warrant the belief that he is destined to follow the mortals of Urantia on through the universe scheme of progression and ascension even to the Paradise Corps of the Finality. We know that Adam and Eve are thus destined to accompany their earth fellows on the Paradise adventure when Urantia has become settled in light and life. 유란시아 지도자들, 24 조언자의 예루셈 단(團)에 마키벤타가 있다는 것은, 그가 진보와 상승의 우주 계획을 거쳐 심지어 천국 최종자 단(團)까지 유란시아 필사자들을 따라가기로 되어있다는 믿음을 보증하는 확실한 증거라는 것이 오랫동안 우리 계층의 의견이었습니다. 우리는 유란시아가 빛과 생명으로 정착될 때, 아담과 이브가 이렇게 천국 모험에서 자신들의 지상 동료들과 함께 가게 되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93:10.10 (1025.6) Less than a thousand years ago this same Machiventa Melchizedek, the onetime sage of Salem, was invisibly present on Urantia for a period of one hundred years, acting as resident governor general of the planet; and if the present system of directing planetary affairs should continue, he will be due to return in the same capacity in a little over one thousand years. 천 년도 채 되지 않아, 한때 살렘의 현인(賢人)이었던 바로 이 마키벤타 멜기세덱이 유란시아에 보이지 않게 100년간 있으면서 행성의 거주 총독으로 활동했습니다. 행성 업무를 관리하는 현 체제가 지속된다면, 그는 1천 년이 조금 지나서 같은 자격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93:10.11 (1026.1) This is the story of Machiventa Melchizedek, one of the most unique of all characters ever to become connected with the history of Urantia and a personality who may be destined to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future experience of your irregular and unusual world. 이것은 일찍이 유란시아의 역사와 연결된 모든 사람 가운데 아주 극히 드문 인물 중 하나로, 변칙적인 유별난 너희 세계의 미래 체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인물, 마키벤타 멜기세덱의 이야기입니다.
93:10.12 (1026.2) [Presented by a Melchizedek of Nebadon.][네바돈의 멜기세덱이 제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