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172 Going into Jerusalem 예루살렘에 들어감

Paper 172

Going into Jerusalem 예루살렘에 들어감

1. Sabbath at Bethany 베다니의 안식일
Mary anoints Jesus’ feet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기름을 바르다
Jesus rebukes Judas 예수께서 유다를 나무라다
2. Sunday Morning with the Apostles 사도들과 함께 한 일요일 아침
3. The Start for Jerusalem 예루살렘을 향한 출발
4. Visiting About the Temple 성전 근처를 방문
The widow’s mite 과부의 잔돈
5. The Apostles’ Attitude 사도들의 태도

240407 예수 평온의 비결 요12: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72:0.1 (1878.1) JESUS and the apostles arrived at Bethany shortly after four o’clock on Friday afternoon, March 31, A.D. 30. Lazarus, his sisters, and their friends were expecting them; and since so many people came every day to talk with Lazarus about his resurrection, Jesus was informed that arrangements had been made for him to stay with a neighboring believer, one Simon, the leading citizen of the little village since the death of Lazarus’s father. 예수와 사도들은 AD30년 3월 31일 금요일 오후 4시 직후에 베다니에 도착했습니다. 나사로와 그의 자매들 및 친구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나사로의 부활에 대해 그와 이야기하려고 매일 왔기 때문에, 예수는 나사로의 부친 별세 후 작은 마을을 이끄는 시민, 이웃집 신자 시몬의 집에 머물도록 준비되었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172:0.2 (1878.2) That evening, Jesus received many visitors, and the common folks of Bethany and Bethpage did their best to make him feel welcome. Although many thought Jesus was now going into Jerusalem, in utter defiance of the Sanhedrin’s decree of death, to proclaim himself king of the Jews, the Bethany family — Lazarus, Martha, and Mary — more fully realized that the Master was not that kind of a king; they dimly felt that this might be his last visit to Jerusalem and Bethany. 그날 저녁, 예수께서 여러 방문자를 맞이했고, 베다니와 벳바게의 서민들은 그를 환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예수께서 산헤드린의 사형 선고를 철저히 무시하고, 자신을 유대인의 왕으로 선포하려고, 지금 예루살렘에 들어간다고 생각했지만, 베다니 가족 – 나사로, 마르다 그리고 마리아는 주님이 그런 종류의 왕이 아님을 더 온전히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그가 예루살렘과 베다니를 방문하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172:0.3 (1878.3) The chief priests were informed that Jesus lodged at Bethany, but they thought best not to attempt to seize him among his friends; they decided to await his coming on into Jerusalem. Jesus knew about all this, but he was majestically calm; his friends had never seen him more composed and congenial; even the apostles were astounded that he should be so unconcerned when the Sanhedrin had called upon all Jewry to deliver him into their hands. While the Master slept that night, the apostles watched over him by twos, and many of them were girded with swords. Early the next morning they were awakened by hundreds of pilgrims who came out from Jerusalem, even on the Sabbath day, to see Jesus and Lazarus, whom he had raised from the dead. 대제사장들은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머문다고 보고받았지만, 그들은 그의 친구를 사이에서 그를 체포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정했습니다. 예수는 이런 모두를 알고 계셨지만, 그는 점잖고 의젓하게 침착했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그토록 차분하고 유쾌한 그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산헤드린이 모든 유대인에게 자기들 수중에 그를 넘기라고 요구했을 때(요11:57) 그가 그렇게 태연하셔서 사도들조차 깜짝 놀랐습니다. 주께서 그날 밤 주무시는 동안 사도들은 둘씩 짝지어 그를 지켰고, 그들 대부분 칼을 차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안식일이었지만 수백 명의 순례자들이 아침 일찍 예수와 그가 죽은 자로부터 되살린 나사로를 보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그들은 잠에서 깼습니다(요12:9).

1. Sabbath at Bethany 베다니의 안식일

240414 마리아의 봉헌 요11:55-56, 12:1-5, 7-8, 10 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56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72:1.1 (1878.4) Pilgrims from outside of Judea, as well as the Jewish authorities, had all been asking: “What do you think? will Jesus come up to the feast?” Therefore, when the people heard that Jesus was at Bethany, they were glad, but the chief priests and Pharisees were somewhat perplexed. They were pleased to have him under their jurisdiction, but they were a trifle disconcerted by his boldness; they remembered that on his previous visit to Bethany, Lazarus had been raised from the dead, and Lazarus was becoming a big problem to the enemies of Jesus. 유대 당국자들뿐만 아니라 유대 밖에서 온 순례자들도 모두 묻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수께서 잔치에 나타날까요?” 그런 까닭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계신다는 소식을 사람들이 듣고 기뻐했지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약간 헷갈렸습니다. 그들은 그가 자신들의 관할 구역에 있어서 좋았지만, 그의 대담함으로 인해 약간 당황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이전에 베다니를 방문했을 때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고, 나사로가 예수의 대적들에게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이 기억했습니다(요11:55-56).

172:1.2 (1878.5) Six days before the Passover, on the evening after the Sabbath, all Bethany and Bethpage joined in celebrating the arrival of Jesus by a public banquet at the home of Simon. This supper was in honor of both Jesus and Lazarus; it was tendered in defiance of the Sanhedrin. Martha directed the serving of the food; her sister Mary was among the women onlookers as it was against the custom of the Jews for a woman to sit at a public banquet. The agents of the Sanhedrin were present, but they feared to apprehend Jesus in the midst of his friends. 유월절 6일 전, 안식일이 지난 후 저녁에 모든 베다니와 벳바게 주민들이 시몬의 집에서 공개 연회(宴會)로 함께 예수의 도착을 축하했습니다. 이 만찬은 산헤드린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나사로를 축하하여 열렸습니다. 마르다는 음식 접대를 관리했고, 공중 연회에 여성이 앉아있는 것은 유대 관습에 맞지 않기 때문에, 그의 동생 마리아는 여성 구경꾼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의 첩보원(諜報員)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를 그의 친구들 사이에서 체포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요12:1-2a).

172:1.3 (1879.1) Jesus talked with Simon about Joshua of old, whose namesake he was, and recited how Joshua and the Israelites had come up to Jerusalem through Jericho. In commenting on the legend of the walls of Jericho falling down, Jesus said: “I am not concerned with such walls of brick and stone; but I would cause the walls of prejudice, self-righteousness, and hate to crumble before this preaching of the Father’s love for all men.” 예수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옛날의 여호수아에 대해 시몬과 얘기하면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인(人)들이 어떻게 여리고를 통해 예루살렘에 이르렀는지 자세히 말했습니다. 여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린 구전(口傳)을 언급하면서,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나는 벽돌과 돌로 만든 그런 성벽에 관심이 없지만, 모든 사람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을 이렇게 설교하기에 앞서 편견(偏見), 독선(獨善)과 증오의 성벽을 허물어 버릴 것이라(수6:20).”

172:1.4 (1879.2) The banquet went along in a very cheerful and normal manner except that all the apostles were unusually sober. Jesus was exceptionally cheerful and had been playing with the children up to the time of coming to the table. 모든 사도가 평소와 달리 진지한 것 외에, 연회는 매우 즐겁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예수는 대단히 기분이 좋으셨고, 식탁에 올 때까지 아이들과 놀고 계셨습니다.

172:1.5 (1879.3) Nothing out of the ordinary happened until near the close of the feasting when Mary the sister of Lazarus stepped forward from among the group of women onlookers and, going up to where Jesus reclined as the guest of honor, proceeded to open a large alabaster cruse of very rare and costly ointment; and after anointing the Master’s head, she began to pour it upon his feet as she took down her hair and wiped them with it. The whole house became filled with the odor of the ointment, and everybody present was amazed at what Mary had done. Lazarus said nothing, but when some of the people murmured, showing indignation that so costly an ointment should be thus used, Judas Iscariot stepped over to where Andrew reclined and said: “Why was this ointment not sold and the money bestowed to feed the poor? You should speak to the Master that he rebuke such waste.” 잔치를 마칠 무렵,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여성 구경꾼 무리 중에서 앞으로 걸어 나와, 예수께서 주빈(主賓)으로 기대어 있는 곳으로 올라가, 매우 진기하고 값비싼 연고(軟膏)가 들어있는 커다란 방해석 단지를 열어서, 주님의 머리에 바른 다음에, 그녀가 자기 머리카락을 끌어내려 그것으로 그의 발을 닦으면서, 연고(軟膏)를 그의 발에 붓기 시작할 때까지는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온 집이 연고(軟膏)의 향기로 충만하게 되었고, 참석한 모두가 마리아의 행위에 깜짝 놀랐습니다. 나사로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몇 사람이 그렇게 값비싼 연고가 이렇게 소비되어야 하는지 분개하며 속삭이자, 가롯 유다가 안드레가 기댄 곳으로 가서 말했습니다. “왜 이 연고를 팔아 그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먹이는데 주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주님께 말씀드려서 그가 그런 낭비를 꾸짖어야 합니다(요12:3-5).”

172:1.6 (1879.4) Jesus, knowing what they thought and hearing what they said, put his hand upon Mary’s head as she knelt by his side and, with a kindly expression upon his face, said: “Let her alone, every one of you. Why do you trouble her about this, seeing that she has done a good thing in her heart? To you who murmur and say that this ointment should have been sold and the money given to the poor, let me say that you have the poor always with you so that you may minister to them at any time it seems good to you; but I shall not always be with you; I go soon to my Father. This woman has long saved this ointment for my body at its burial, and now that it has seemed good to her to make this anointing in anticipation of my death, she shall not be denied such satisfaction. In the doing of this, Mary has reproved all of you in that by this act she evinces faith in what I have said about my death and ascension to my Father in heaven. This woman shall not be reproved for that which she has this night done; rather do I say to you that in the ages to come, wherever this gospel shall be preached throughout the whole world, what she has done will be spoken of in memory of her.” 그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말을 들으신, 예수는 자기 옆에 무릎을 꿇은 마리아의 머리에 그의 손을 얹고 친절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너희 모두 그녀를 가만히 두라. 그녀가 자기 심정으로 선한 일을 했는데, 왜 이 일로 그녀를 괴롭히느냐? 이 연고(軟膏)를 팔아 그 돈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어야 한다고 중얼거리며 말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가난한 자들과 언제나 같이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에게 좋다고 여길 때 그들을 돌볼 수 있겠지만, 나는 곧 내 아버지께 가기 때문에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못할 것이라. 이 여인은 내 시신의 장례를 위해 이 연고를 오랫동안 모았고, 이제 내 죽음을 내다보고 이렇게 연고를 바르는 것을 좋게 여겼으니, 그녀에게 그런 만족이 있을 것이라. 이렇게 하여 마리아가 내 죽음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승천하는 것에 관해 내가 말한 것에 대한 신앙을 그녀가 이 행위로 증명한다는 점에서, 그녀는 너희 모두를 타일렀느니라. 이 여인은 그녀가 오늘 밤에 행한 일로 비난을 받지 않으리라. 오히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다가올 세대에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전 세계에 널리, 그녀가 행한 일이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려 그녀를 기념할 것이니라(마26:10-13, 막14:6-9, 요12:7-8).”

172:1.7 (1879.5) It was because of this rebuke, which he took as a personal reproof, that Judas Iscariot finally made up his mind to seek revenge for his hurt feelings. Many times had he entertained such ideas subconsciously, but now he dared to think such wicked thoughts in his open and conscious mind. And many others encouraged him in this attitude since the cost of this ointment was a sum equal to the earnings of one man for one year — enough to provide bread for five thousand persons. But Mary loved Jesus; she had provided this precious ointment with which to embalm his body in death, for she believed his words when he forewarned them that he must die, and it was not to be denied her if she changed her mind and chose to bestow this offering upon the Master while he yet lived. 가롯 유다는 이런 꾸지람을 개인적 책망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는 결국 자기 상한 감정에 대해 복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여러 번 잠재의식으로 그런 생각을 품었지만, 이제 그는 자신이 노골적으로 의식하는 마음으로 뻔뻔하게 그토록 사악한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이 연고(軟膏)의 가격이 한 사람의 연간 수입과 맞먹는 금액으로 충분히 오천 명에게 빵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여러 사람이 그에게 이런 태도를 부추겼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를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그가 자신들에게 그가 죽어야 한다고 예고했을 때 그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그의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 이 귀한 연고(軟膏)를 내놓았고, 그녀가 자기 마음을 바꾸어 주께서 아직 살아계실 때 이런 봉헌에 사용하려 했다면 그녀를 물리치지 말아야 했습니다(요12:3).

172:1.8 (1879.6) Both Lazarus and Martha knew that Mary had long saved the money wherewith to buy this cruse of spikenard, and they heartily approved of her doing as her heart desired in such a matter, for they were well-to-do and could easily afford to make such an offering. 나사로와 마르다는 마리아가 이 감송(甘松) 단지를 살 돈을 오랫동안 저축한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들은 부유하여 그런 봉헌을 쉽게 할 수 있어서, 그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 그녀가 원하는 대로 진심으로 그녀의 행위를 지지했습니다.

172:1.9 (1880.1) When the chief priests heard of this dinner in Bethany for Jesus and Lazarus, they began to take counsel among themselves as to what should be done with Lazarus. And presently they decided that Lazarus must also die. They rightly concluded that it would be useless to put Jesus to death if they permitted Lazarus, whom he had raised from the dead, to live. 대제사장들은 예수와 나사로를 위해 베다니의 이런 만찬 소식을 듣자, 그들은 나사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저희끼리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 나사로도 죽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되살린 나사로를 살려 두면 예수를 죽이는 것이 소용없다고 당연하게 결론을 내렸습니다(요12:10).

2. Sunday Morning with the Apostles 사도들과 함께 한 일요일 아침

240421 예수 옆에 머물러 깨어 기도하라 마26:38b 마 26:38b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172:2.1 (1880.2) On this Sunday morning, in Simon’s beautiful garden, the Master called his twelve apostles around him and gave them their final instructions preparatory to entering Jerusalem. He told them that he would probably deliver many addresses and teach many lessons before returning to the Father but advised the apostles to refrain from doing any public work during this Passover sojourn in Jerusalem. He instructed them to remain near him and to “watch and pray.” Jesus knew that many of his apostles and immediate followers even then carried swords concealed on their persons, but he made no reference to this fact. 이 일요일(AD30. 4. 2.) 아침 시몬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주님은 열두 사도를 자기 측근으로 불러서 예루살렘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지막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이 아버지께 돌아가기 전에 아마 많이 연설하고 여러 교훈을 가르칠 것이지만 예루살렘에 머무는 이 유월절에 공적 업무를 그만두라고 사도들에게 충고하며 말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자기 옆에 머물러 “깨어 기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예수는 자기 여러 사도와 직계 추종자들이 그때까지도 몸에 칼을 숨겨 휴대한 것 알았지만 이 사실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172:2.2 (1880.3) This morning’s instructions embraced a brief review of their ministry from the day of their ordination near Capernaum down to this day when they were preparing to enter Jerusalem. The apostles listened in silence; they asked no questions. 이 아침의 지시에는 가버나움 근처에서 임직(任職)한 날부터 예루살렘에 들어가기로 준비하는 이날까지 자신들의 사역을 간략하게 검토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아무 질문도 없이 조용히 경청했습니다.

172:2.3 (1880.4) Early that morning David Zebedee had turned over to Judas the funds realized from the sale of the equipment of the Pella encampment, and Judas, in turn, had placed the greater part of this money in the hands of Simon, their host, for safekeeping in anticipation of the exigencies of their entry into Jerusalem. 그날 아침 일찍 다윗 세베대는 펠라 야영지의 장비를 판매해 얻은 자금을 유다에게 넘겨줬고, 유다는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급한 상황을 내다보고 보관하려고 결국 이 돈의 대부분을 주최자 시몬의 손에 맡겼습니다.

172:2.4 (1880.5) After the conference with the apostles Jesus held converse with Lazarus and instructed him to avoid the sacrifice of his life to the vengefulness of the Sanhedrin. It was in obedience to this admonition that Lazarus, a few days later, fled to Philadelphia when the officers of the Sanhedrin sent men to arrest him. 사도들과 회의한 후, 예수는 나사로와 서로 이야기하면서 산헤드린의 복수에 그의 목숨을 희생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권고에 순종하여 나사로는, 며칠 후 산헤드린의 관리들이 자신을 체포하려고 사람들을 보냈을 때, 필라델피아로 도피했습니다.

172:2.5 (1880.6) In a way, all of Jesus’ followers sensed the impending crisis, but they were prevented from fully realizing its seriousness by the unusual cheerfulness and exceptional good humor of the Master. 어느 정도, 예수의 추종자 모두 임박한 위기를 감지했지만, 주님의 여느 때와 다른 쾌활함과 드물게 좋은 기분으로 인해 그 심각성을 완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3. The Start for Jerusalem 예루살렘을 향한 출발

240428 겸손한 자로 오시는 예수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72:3.1 (1880.7) Bethany was about two miles from the temple, and it was half past one that Sunday afternoon when Jesus made ready to start for Jerusalem. He had feelings of profound affection for Bethany and its simple people. Nazareth, Capernaum, and Jerusalem had rejected him, but Bethany had accepted him, had believed in him. And it was in this small village, where almost every man, woman, and child were believers, that he chose to perform the mightiest work of his earth bestowal, the resurrection of Lazarus. He did not raise Lazarus that the villagers might believe, but rather because they already believed. 베다니는 성전에서 3.2km 정도 떨어져 있었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 준비를 마쳤을 때 일요일(AD30. 4. 2.) 오후 1시 30분이 지났습니다. 그는 베다니와 그곳의 순박한 사람들에게 깊은 애정의 호감이 있었습니다. 나사렛, 가버나움과 예루살렘은 그를 버렸지만, 베다니는 그를 받아들였고, 그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남녀와 아이들이 믿는 자들이었던 이 작은 마을에서 그는 자기 지상 증여 중 가장 강력한 일, 나사로의 부활을 일으키려고 결정했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믿도록 나사로를 살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이미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72:3.2 (1880.8) All morning Jesus had thought about his entry into Jerusalem. Heretofore he had always endeavored to suppress all public acclaim of him as the Messiah, but it was different now; he was nearing the end of his career in the flesh, his death had been decreed by the Sanhedrin, and no harm could come from allowing his disciples to give free expression to their feelings, just as might occur if he elected to make a formal and public entry into the city. 예수는 아침 내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언제나 자신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모든 대중적 환호를 감추려고 애썼지만, 이제는 달랐습니다. 자기 육신의 생애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산헤드린이 그의 죽음의 판결을 알렸으며, 자신이 공적으로 소문내며 도시에 들어가기로 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 제자들이 그들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놔두어도 아무 손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72:3.3 (1881.1) Jesus did not decide to make this public entrance into Jerusalem as a last bid for popular favor nor as a final grasp for power. Neither did he do it altogether to satisfy the human longings of his disciples and apostles. Jesus entertained none of the illusions of a fantastic dreamer; he well knew what was to be the outcome of this visit. 예수는 대중적 호의를 위한 최후 시도나 최종 권력 쟁취로써 이런 공개적인 예루살렘 입성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제자들과 사도들의 인간적 열망을 채우기 위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현실과 동떨어진 몽상가의 망상을 전혀 마음에 품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번 방문의 결과가 무엇이 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172:3.4 (1881.2) Having decided upon making a public entrance into Jerusalem, the Master was confronted with the necessity of choosing a proper method of executing such a resolve. Jesus thought over all of the many more or less contradictory so-called Messianic prophesies, but there seemed to be only one which was at all appropriate for him to follow. Most of these prophetic utterances depicted a king, the son and successor of David, a bold and aggressive temporal deliverer of all Israel from the yoke of foreign domination. But there was one Scripture that had sometimes been associated with the Messiah by those who held more to the spiritual concept of his mission, which Jesus thought might consistently be taken as a guide for his projected entry into Jerusalem. This Scripture was found in Zechariah, and it said: “Rejoice greatly, O daughter of Zion; shout, O daughter of Jerusalem. Behold, your king comes to you. He is just and he brings salvation. He comes as the lowly one, riding upon an ass, upon a colt, the foal of an ass.” 예루살렘에 공개적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하신 주님은 그런 결심을 실행할 적절한 방법을 택할 필요에 직면했습니다. 예수는 거의 모순되는 숱한, 소위 메시아 예언들을 곰곰이 모두 생각했지만, 자신이 따르기에 모두 적절한 것은 단 하나뿐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대부분 이런 예언적 발언은 왕, 다윗의 아들이며 후계자, 모든 이스라엘을 외국 지배의 속박에서 건질 과감하고 공격적인 현세적 해방자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 사명에 대한 영적 개념을 더 중요하게 여긴 사람들이 때때로 메시아와 관련지었던 성서 구절이 하나 있었는데, 예수는 그것을 모순 없이 자기 예루살렘 입성 계획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가랴에서 이 성서 구절을 찾았는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외치라.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정의(正義)로우시며 구원을 베푸느니라. 그는 나귀를 타시니 작은 나귀, 당나귀 새끼를 타고 겸손한 자로 임하느니라(슥9:9).”

172:3.5 (1881.3) A warrior king always entered a city riding upon a horse; a king on a mission of peace and friendship always entered riding upon an ass. Jesus would not enter Jerusalem as a man on horseback, but he was willing to enter peacefully and with good will as the Son of Man on a donkey. 전투하는 왕은 언제나 말을 타고 도시에 들어갔습니다. 평화와 우호(友好)의 사명 중인 왕은 언제나 나귀를 타고 들어갔습니다. 예수는 말을 탄 사람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않았으나, 나귀를 탄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로서 평화적인 선한 뜻을 가지고 기꺼이 들어가려 했습니다.

172:3.6 (1881.4) Jesus had long tried by direct teaching to impress upon his apostles and his disciples that his kingdom was not of this world, that it was a purely spiritual matter; but he had not succeeded in this effort. Now, what he had failed to do by plain and personal teaching, he would attempt to accomplish by a symbolic appeal. Accordingly, right after the noon lunch, Jesus called Peter and John, and after directing them to go over to Bethpage, a neighboring village a little off the main road and a short distance northwest of Bethany, he further said: “Go to Bethpage, and when you come to the junction of the roads, you will find the colt of an ass tied there. Loose the colt and bring it back with you. If anyone asks you why you do this, merely say, ‘The Master has need of him.’” And when the two apostles had gone into Bethpage as the Master had directed, they found the colt tied near his mother in the open street and close to a house on the corner. As Peter began to untie the colt, the owner came over and asked why they did this, and when Peter answered him as Jesus had directed, the man said: “If your Master is Jesus from Galilee, let him have the colt.” And so they returned bringing the colt with them. 예수는, 자기 왕국이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그것은 순전히 영적 문제임을 자기 사도들과 자기 제자들의 마음에 새기려고 직접 가르치며 오랫동안 애썼지만, 그는 이런 노력으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분명한, 개인적 가르침으로 끝내 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 상징적 호소로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점심 식사 직후에, 예수는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서, 큰길에서 조금 벗어나 베다니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이웃 마을 벳바게로 건너가도록 지시한 후, 그가 덧붙여 말했습니다. “벳바게로 가서, 너희가 교차로에 이르면, 너희가 거기에서 묶여 있는 나귀 새끼를 발견하리라. 그것을 풀어서 함께 데려오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고 물으면, ‘주께서 나귀가 필요합니다.’라고만 말하라.” 그래서 주께서 지시한 대로 두 사도가 벳바게로 갔을 때, 그들은 트인 거리, 모퉁이 집 근처에서 그 어미 곁에 묶여 있는 나귀 새끼를 발견했습니다. 베드로가 그 나귀 새끼를 풀기 시작하자, 주인이 다가와 그들이 왜 이렇게 하느냐고 물었고, 예수께서 지시한 대로 베드로가 그에게 대답하자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너희 주님이 갈릴리에서 온 예수라면, 그 나귀 새끼를 그에게 가져가라.”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그 나귀 새끼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마21:1-3, 6-7a, 막11:1-7a, 눅19:29-35a).

240505 종려주일 예루살렘의 실상(實狀) 눅19:35b-44 35b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172:3.7 (1881.5) By this time several hundred pilgrims had gathered around Jesus and his apostles. Since midforenoon the visitors passing by on their way to the Passover had tarried. Meanwhile, David Zebedee and some of his former messenger associates took it upon themselves to hasten on down to Jerusalem, where they effectively spread the report among the throngs of visiting pilgrims about the temple that Jesus of Nazareth was making a triumphal entry into the city. Accordingly, several thousand of these visitors flocked forth to greet this much-talked-of prophet and wonder-worker, whom some believed to be the Messiah. This multitude, coming out from Jerusalem, met Jesus and the crowd going into the city just after they had passed over the brow of Olivet and had begun the descent into the city. 이 무렵 수백 명의 순례자들이 예수와 그의 사도 주위에 모였습니다. 오전 중반 이후로 유월절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지나가던 방문자들이 머물렀습니다. 그 사이에 다윗 세베대와 그의 이전 일부 메신저들은 자발적으로 예루살렘으로 서둘러 내려가, 그들은 거기에서 성전 근처로 방문하는 여러 순례자에게 나사렛 예수가 의기양양하게 도시로 입성한다는 소식을 효과적으로 전파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수천 명의 방문자들은 많이들 이야기하는 이 선지자, 어떤 이들이 메시아로 믿는, 이적(異蹟)을 행하는 사람에게 인사하러 밖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이 무리는, 예수와 군중이 감람산 마루를 지나 도시로 내려가기 시작한 직후에 도시로 들어가는 그들을 만났습니다(요12:18).

172:3.8 (1882.1) As the procession started out from Bethany, there was great enthusiasm among the festive crowd of disciples, believers, and visiting pilgrims, many hailing from Galilee and Perea. Just before they started, the twelve women of the original women’s corps, accompanied by some of their associates, arrived on the scene and joined this unique procession as it moved on joyously toward the city. 행렬이 베다니에서 출발하자, 잔치하는 제자들, 신자들 및 갈릴리와 페레아에서 온 여러 방문 순례자의 흥겨운 무리가 크게 열광했습니다. 그들이 출발하기 직전에, 원래 여성단(團)의 열두 여성이 그들의 일부 동료들과 함께 그 자리에 도착하여, 도시를 향해 즐겁게 움직이는 이 독특한 행렬에 끼어들었습니다.

172:3.9 (1882.2) Before they started, the Alpheus twins put their cloaks on the donkey and held him while the Master got on. As the procession moved toward the summit of Olivet, the festive crowd threw their garments on the ground and brought branches from the near-by trees in order to make a carpet of honor for the donkey bearing the royal Son, the promised Messiah. As the merry crowd moved on toward Jerusalem, they began to sing, or rather to shout in unison, the Psalm, “Hosanna to the son of David;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Hosanna in the highest. Blessed be the kingdom that comes down from heaven.” 그들이 출발하기 전에, 알페오 쌍둥이가 자신들의 겉옷을 나귀에 얹고 주께서 타시는 동안 나귀를 붙들었습니다. 행렬이 감람산 정상에 가까워지자, 흥겨운 무리가 자신들의 옷을 땅에 던지고, 가까운 나무에서 가지들을 가져와, 왕족의 아들, 약속된 메시아를 태운 나귀를 위해 영예로운 융단을 만들었습니다. 즐거운 무리가 예루살렘을 향해 움직이면서 노래, 더 정확히 말하면, 일제히 시편 “다윗의 아들을 찬미하라. 주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찬미하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왕국에 복이 있음이여(시118:26).”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마21:7b-9, 막11:7b-10, 눅19:35b-38, 요12:12-14a).

172:3.10 (1882.3) Jesus was lighthearted and cheerful as they moved along until he came to the brow of Olivet, where the city and the temple towers came into full view; there the Master stopped the procession, and a great silence came upon all as they beheld him weeping. Looking down upon the vast multitude coming forth from the city to greet him, the Master, with much emotion and with tearful voice, said: “O Jerusalem, if you had only known, even you, at least in this your day, the things which belong to your peace, and which you could so freely have had! But now are these glories about to be hid from your eyes. You are about to reject the Son of Peace and turn your backs upon the gospel of salvation. The days will soon come upon you wherein your enemies will cast a trench around about you and lay siege to you on every side; they shall utterly destroy you, insomuch that not one stone shall be left upon another. And all this shall befall you because you knew not the time of your divine visitation. You are about to reject the gift of God, and all men will reject you.” 예수께서는 도시와 성전 탑들 전체가 보이는 감람산 마루에 이를 때까지 그들이 이동하는 동안 쾌활하고 즐거웠습니다. 주께서 거기서 행렬을 멈추셨고, 그들은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면서 모두 큰 침묵에 빠졌습니다. 자신을 맞이하려고 도시에서 나오는 엄청난 무리를 내려다보면서, 주님은 많은 감정과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아, 너라도 적어도 오늘 너에게, 너의 평화에 속한 것들, 네가 그토록 자유롭게 가질 수 있었던 것들을 알기만이라도 했더라면! 그러나 이제 이런 영광이 네 눈에서 가리어지려고 하는구나. 너는 막 평화의 아들을 거부하고 구원의 복음을 저버리려는 참이로다. 너의 대적들이 너를 둘러 주변에 진지(陣地)를 파고 사방으로 너를 공격하여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정도로 그들이 너를 완전히 멸망시킬 그날이 너에게 곧 오리라.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너에게 닥치는 것은 네가 신적 방문의 때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니라. 네가 막 하느님의 선물을 거절하는 참이며, 모든 사람이 너희를 버릴 것이라(눅19:41-44).”

172:3.11 (1882.4) When he had finished speaking, they began the descent of Olivet and presently were joined by the multitude of visitors who had come from Jerusalem waving palm branches, shouting hosannas, and otherwise expressing gleefulness and good fellowship. The Master had not planned that these crowds should come out from Jerusalem to meet them; that was the work of others. He never premeditated anything which was dramatic. 그가 말씀을 마치고 그들이 감람산을 내려가자, 예루살렘에서 온 수많은 방문자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신을 찬미하라)를 외치며, 그 밖에 매우 기뻐하며 정답게 친교를 표현하며 바로 합세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군중이 예루살렘에서 나와 자신들을 맞이하도록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극적(劇的)인 어떤 일도 결코 미리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172:3.12 (1882.5) Along with the multitude which poured out to welcome the Master, there came also many of the Pharisees and his other enemies. They were so much perturbed by this sudden and unexpected outburst of popular acclaim that they feared to arrest him lest such action precipitate an open revolt of the populace. They greatly feared the attitude of the large numbers of visitors, who had heard much of Jesus, and who, many of them, believed in him. 주를 환영하려고 쏟아져 나온 군중을 따라서 바리새인과 그의 다른 대적들도 많이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갑작스러운 뜻밖의 대중적 환호의 분출로 인해 많이 당황하여 그런 행동이 대중의 공개적 폭동을 촉발(觸發)하지 않을까 해서 그를 체포하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예수에 대해 많이 듣고 그중 다수가 그를 믿는, 수많은 방문자의 태도를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172:3.13 (1882.6) As they neared Jerusalem, the crowd became more demonstrative, so much so that some of the Pharisees made their way up alongside Jesus and said: “Teacher, you should rebuke your disciples and exhort them to behave more seemly.” Jesus answered: “It is only fitting that these children should welcome the Son of Peace, whom the chief priests have rejected. It would be useless to stop them lest in their stead these stones by the roadside cry out.” 그들이 예루살렘에 다가올수록, 군중은 더욱 시위를 벌이자, 일부 바리새인이 예수 옆에 다가와 말할 정도였습니다. “선생님, 당신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꾸짖어 그들이 더 점잖게 행동하게 타일러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했습니다. “이 자녀들이 대제사장들이 배척(排斥)한, 평화의 아들을 이 자손들이 환영함이 마땅하니라. 길가의 이런 돌들이 그들 대신에 외치면 안 되니까 그들을 막는 것은 쓸데없느니라(눅19:39-40).”

172:3.14 (1882.7) The Pharisees hastened on ahead of the procession to rejoin the Sanhedrin, which was then in session at the temple, and they reported to their associates: “Behold, all that we do is of no avail; we are confounded by this Galilean. The people have gone mad over him; if we do not stop these ignorant ones, all the world will go after him.” 바리새인들은 당시 성전에서 회의 중인 산헤드린에 합류하러 행렬 앞으로 서둘러 가서, 자기 동료들에게 보고했습니다. “보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소용이 없느니라. 이 갈릴리 사람 때문에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노라. 사람들이 그에게 미친 듯이 빠졌도다. 우리 이 무지한 자들을 막지 않으면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가리라.”

172:3.15 (1883.1) There really was no deep significance to be attached to this superficial and spontaneous outburst of popular enthusiasm. This welcome, although it was joyous and sincere, did not betoken any real or deep-seated conviction in the hearts of this festive multitude. These same crowds were equally as willing quickly to reject Jesus later on this week when the Sanhedrin once took a firm and decided stand against him, and when they became disillusioned — when they realized that Jesus was not going to establish the kingdom in accordance with their long-cherished expectations. 이렇게 피상적이고 즉흥적인 대중적 열광의 분출에 따른 깊은 의미가 정말로 없었습니다. 이런 환영은 기쁘고 진지했지만 이렇게 잔치하는 군중의 심정에 뿌리 깊은 어떤 진정한 확신의 조짐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 군중은, 산헤드린이 일단 단호하게 그를 적대하는 태도를 결정했을 때, 그리고 예수가 오랜 염원인 자신들의 기대에 따라 왕국을 세우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그들이 환멸을 느꼈을 때, 이번 주 후반에 예수를 똑같이 기꺼이 빨리 물리쳐 버렸습니다.

172:3.16 (1883.2) But the whole city was mightily stirred up, insomuch that everyone asked, “Who is this man?” And the multitude answered, “This is the prophet of Galilee, Jesus of Nazareth.”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을 정도로 온 도시가 대단히 동요되었습니다. 군중은 “이 사람이 갈릴리의 선지자, 나사렛 예수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마21:10-11).

4. Visiting About the Temple 성전 근처를 방문

240512 헌금의 값어치 눅21:1-4 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172:4.1 (1883.3) While the Alpheus twins returned the donkey to its owner, Jesus and the ten apostles detached themselves from their immediate associates and strolled about the temple, viewing the preparations for the Passover. No attempt was made to molest Jesus as the Sanhedrin greatly feared the people, and that was, after all, one of the reasons Jesus had for allowing the multitude thus to acclaim him. The apostles little understood that this was the only human procedure which could have been effective in preventing Jesus’ immediate arrest upon entering the city. The Master desired to give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high and low, as well as the tens of thousands of Passover visitors, this one more and last chance to hear the gospel and receive, if they would, the Son of Peace. 알페오 쌍둥이들이 나귀를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동안, 예수와 열 사도는 가까운 동료들과 떨어져, 성전 근처를 거닐며 유월절 준비를 바라보았습니다(막11:11a). 산헤드린은 사람들을 아주 두려워해서 예수를 괴롭히려고 시도하지 않았고, 그것은 결국 예수가 군중이 자신을 그렇게 환호하도록 놔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사도들은 이것이 예수께서 도시에 들어가자마자 즉시 체포되지 않게 막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인간적 조처임을 조금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높고 낮은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수만 명의 유월절 방문자에게, 복음을 듣고, 그들이 원한다면, 평화의 아들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기회를 이번에 한 번 더 주려고 했습니다.

172:4.2 (1883.4) And now, as the evening drew on and the crowds went in quest of nourishment, Jesus and his immediate followers were left alone. What a strange day it had been! The apostles were thoughtful, but speechless. Never, in their years of association with Jesus, had they seen such a day. For a moment they sat down by the treasury, watching the people drop in their contributions: the rich putting much in the receiving box and all giving something in accordance with the extent of their possessions. At last there came along a poor widow, scantily attired, and they observed as she cast two mites (small coppers) into the trumpet. And then said Jesus, calling the attention of the apostles to the widow: “Heed well what you have just seen. This poor widow cast in more than all the others, for all these others, from their superfluity, cast in some trifle as a gift, but this poor woman, even though she is in want, gave all that she had, even her living.” 이제 저녁이 되어 군중이 음식을 찾아 떠나자, 예수와 그의 직계 추종자들만 남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날이었는지! 사도들은 생각에 잠겨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한 수년간 그런 날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잠시 그들은 헌금함 곁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을 넣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부자들은 헌금함에 많이 넣었고 모두 자기가 소유한 정도에 따라 얼마를 넣었습니다. 마침내, 가까스로 차려입은 가난한 과부가 왔는데, 그녀가 적은 잔돈 2개를 나팔 모양 안으로 던져넣는 것을 그들이 보았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과부에게 사도들을 주목시키며 말했습니다. “너희가 방금 본 것을 분명히 주의해라. 이 가난한 과부는 다른 모든 이보다 더 많이 넣었는데, 이 다른 모두는 자기 남아도는 것에서 약간의 푼돈을 거저 던져넣었지만, 이 가난한 여인은 궁핍함에도 자신이 가진 모든 생활비까지 내놓았도다(막12:41-44, 눅21:1-4).”

172:4.3 (1883.5) As the evening drew on, they walked about the temple courts in silence, and after Jesus had surveyed these familiar scenes once more, recalling his emotions in connection with previous visits, not excepting the earlier ones, he said, “Let us go up to Bethany for our rest.” Jesus, with Peter and John, went to the home of Simon, while the other apostles lodged among their friends in Bethany and Bethpage.
저녁이 다가오자, 그들은 조용히 성전 뜰을 거닐었고, 예수는 이전의 방문과 초기 방문을 포함해서 이들에 관한 자신의 감정을 떠올리면서 이런 익숙한 현장을 한 번 더 둘러본 후 말했습니다. “우리는 베다니로 올라가 쉬자.” 예수는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시몬의 집에 가셨고, 한편 다른 사도들은 베다니와 벳바게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머물렀습니다(막11:11b).

5. The Apostles’ Attitude 사도들의 태도

240519 안드레, 베드로, 야고보 및 요한의 태도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72:5.1 (1883.6) This Sunday evening as they returned to Bethany, Jesus walked in front of the apostles. Not a word was spoken until they separated after arriving at Simon’s house. No twelve human beings ever experienced such diverse and inexplicable emotions as now surged through the minds and souls of these ambassadors of the kingdom. These sturdy Galileans were confused and disconcerted; they did not know what to expect next; they were too surprised to be much afraid. They knew nothing of the Master’s plans for the next day, and they asked no questions. They went to their lodgings, though they did not sleep much, save the twins. But they did not keep armed watch over Jesus at Simon’s house. 이 일요일(AD30.4.2) 저녁에 그들이 베다니로 돌아갈 때, 예수는 사도들 앞에서 걸었습니다. 그들이 시몬의 집에 도착한 후 헤어질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열두 사람도 일찍이, 이런 하느님 나라 대사들의 마음과 혼(魂)에 지금처럼 다양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던 경험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건장한 갈릴리인(人)들은 헛갈려 당황했습니다. 그들은 다음에 무엇을 기대할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너무 놀라서 많이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음 날 주님의 계획을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 숙소로 갔지만 쌍둥이들 외에, 그들은 잠을 많이 못 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몬의 집에서 무장한 채 예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요12:16a).

172:5.2 (1884.1) Andrew was thoroughly bewildered, well-nigh confused. He was the one apostle who did not seriously undertake to evaluate the popular outburst of acclaim. He was too preoccupied with the thought of his responsibility as chief of the apostolic corps to give serious consideration to the meaning or significance of the loud hosannas of the multitude. Andrew was busy watching some of his associates who he feared might be led away by their emotions during the excitement, particularly Peter, James, John, and Simon Zelotes. Throughout this day and those which immediately followed, Andrew was troubled with serious doubts, but he never expressed any of these misgivings to his apostolic associates. He was concerned about the attitude of some of the twelve who he knew were armed with swords; but he did not know that his own brother, Peter, was carrying such a weapon. And so the procession into Jerusalem made a comparatively superficial impression upon Andrew; he was too busy with the responsibilities of his office to be otherwise affected. 안드레는 너무 당황해서 거의 어찌할 바 몰랐습니다. 그는 대중의 폭발적 환호를 진지하게 평가하려고 나서지 않은 유일한 사도였습니다. 그는 사도단의 수장(首長)으로서 자기 책임의 생각에 너무 몰두하여 군중의 커다란 호산나(신神을 찬미한 말)의 의미나 중요성을 진지하게 검토할 수 없었습니다. 안드레는 소동 중에 그들의 감정에 이끌릴까 봐 걱정했던 자기 동료 몇 명, 특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시몬 젤로떼를 지켜보느라 틈이 없었습니다. 이날과 그다음 며칠간 내내, 안드레는 심각한 의혹으로 괴로웠지만, 그는 이런 불안을 자기 동료 사도들에게 절대로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알기에 열두 사도 중 칼로 무장한 일부의 태도를 염려했지만, 자기 동생 베드로가 그런 무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행렬은 안드레에게 비교적 영향이 적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는 자기 직무의 책임으로 너무 바빠서 다른 점에서 영향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172:5.3 (1884.2) Simon Peter was at first almost swept off his feet by this popular manifestation of enthusiasm; but he was considerably sobered by the time they returned to Bethany that night. Peter simply could not figure out what the Master was about. He was terribly disappointed that Jesus did not follow up this wave of popular favor with some kind of a pronouncement. Peter could not understand why Jesus did not speak to the multitude when they arrived at the temple, or at least permit one of the apostles to address the crowd. Peter was a great preacher, and he disliked to see such a large, receptive, and enthusiastic audience go to waste. He would so much have liked to preach the gospel of the kingdom to that throng right there in the temple; but the Master had specifically charged them that they were to do no teaching or preaching while in Jerusalem this Passover week. The reaction from the spectacular procession into the city was disastrous to Simon Peter; by night he was sobered and inexpressibly saddened. 시몬 베드로는 처음에 이렇게 열광하는 대중의 시위로 휩쓸릴 뻔했지만, 그들이 그날 밤 베다니로 돌아왔을 때 그는 상당히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베드로는 주께서 무엇을 하려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이렇게 대중적으로 지지하는 파도에 여세를 몰아서 일종의 어떤 선언을 하지 않아서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베드로는 대중이 성전에 도착했을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왜 이야기하거나, 적어도 사도 중 하나가 군중에게 연설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위대한 설교자였고, 그는 그렇게 잘 받아들이는, 열광적인, 큰 청중이 낭비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는 바로 그곳 성전에서 그 군중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몹시 전하고 싶었을 것이지만, 주님은 이 유월절 주간에, 예루살렘에 있는 동안 그들이 가르치거나 설교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들에게 분명히 지시했었습니다. 도시로 들어가는 극적인 행렬의 반응은 시몬 베드로에게 비참했고, 밤에 그의 마음이 가라앉자,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펐습니다.

172:5.4 (1884.3) To James Zebedee, this Sunday was a day of perplexity and profound confusion; he could not grasp the purport of what was going on; he could not comprehend the Master’s purpose in permitting this wild acclaim and then in refusing to say a word to the people when they arrived at the temple. As the procession moved down Olivet toward Jerusalem, more especially when they were met by the thousands of pilgrims who poured forth to welcome the Master, James was cruelly torn by his conflicting emotions of elation and gratification at what he saw and by his profound feeling of fear as to what would happen when they reached the temple. And then was he downcast and overcome by disappointment when Jesus climbed off the donkey and proceeded to walk leisurely about the temple courts. James could not understand the reason for throwing away such a magnificent opportunity to proclaim the kingdom. By night, his mind was held firmly in the grip of a distressing and dreadful uncertainty. 야고보 세베대에게, 이 일요일은 당혹과 깊은 혼란의 날이었습니다. 그는 벌어진 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미친 듯한 환호를 용납한 후 그들이 성전에 이르자 사람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으려 했던 주님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행렬이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내려가면서, 특히 더 주님을 환영하러 쏟아져 나온 순례자 수천 명을 그들이 직면했을 때, 야고보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해 뜻을 이뤄 기쁜 우쭐댐과 희열이 충돌하는 감정 및 그들이 성전에 도착했을 때 일어날 것에 관해 깊은 공포심으로 몹시 어수선했습니다. 그런 후 예수께서 나귀에서 내려와 성전 뜰 주변을 느긋하게 계속 거닐 때 그는 기가 꺾였고 실망에 휩싸였습니다. 야고보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그렇게 엄청난 기회를 허비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밤에 그의 마음은 비참함과 지독한 불확실성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172:5.5 (1884.4) John Zebedee came somewhere near understanding why Jesus did this; at least he grasped in part the spiritual significance of this so-called triumphal entry into Jerusalem. As the multitude moved on toward the temple, and as John beheld his Master sitting there astride the colt, he recalled hearing Jesus onetime quote the passage of Scripture, the utterance of Zechariah, which described the coming of the Messiah as a man of peace and riding into Jerusalem on an ass. As John turned this Scripture over in his mind, he began to comprehend the symbolic significance of this Sunday-afternoon pageant. At least, he grasped enough of the meaning of this Scripture to enable him somewhat to enjoy the episode and to prevent his becoming overmuch depressed by the apparent purposeless ending of the triumphal procession. John had a type of mind which naturally tended to think and feel in symbols. 요한 세베대는 예수께서 왜 이렇게 했는지 대략 거의 이해했습니다. 그는 적어도 소위 이렇게 승리를 축하하는 예루살렘 입성의 영적 의미를 얼마간 파악했습니다. 군중이 성전을 향해 이동할 때, 요한은 거기 나귀 새끼에 걸터앉은 자기 주님을 보면서, 예수께서 이전에 성서 구절을 인용하며 들려준, 메시아가 평화의 사람으로 와서 예루살렘으로 나귀를 타고 들어간다고 묘사한 스가랴의 말씀(슥9:9)을 생각해 냈습니다. 요한은 자기 마음으로 이 성구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는 이 일요일 오후 행렬의 상징적 의미를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그는 행사를 어느 정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이 성구의 의미를 충분히 파악해서 겉보기에 목적이 없이 끝난 승리의 행렬로 인해 그다지 의기소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상징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고 느끼는 경향의 마음 유형을 지녔습니다.

240526 빌립, 나다니엘, 마태 및 도마의 태도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72:5.6 (1885.1) Philip was entirely unsettled by the suddenness and spontaneity of the outburst. He could not collect his thoughts sufficiently while on the way down Olivet to arrive at any settled notion as to what all the demonstration was about. In a way, he enjoyed the performance because his Master was being honored. By the time they reached the temple, he was perturbed by the thought that Jesus might possibly ask him to feed the multitude, so that the conduct of Jesus in turning leisurely away from the crowds, which so sorely disappointed the majority of the apostles, was a great relief to Philip. Multitudes had sometimes been a great trial to the steward of the twelve. After he was relieved of these personal fears regarding the material needs of the crowds, Philip joined with Peter in the expression of disappointment that nothing was done to teach the multitude. That night Philip got to thinking over these experiences and was tempted to doubt the whole idea of the kingdom; he honestly wondered what all these things could mean, but he expressed his doubts to no one; he loved Jesus too much. He had great personal faith in the Master. 빌립은 갑작스러운 자발적 돌발로 완전히 동요되었습니다. 그는 감람산을 내려오는 동안 모든 시위가 무엇에 대한 것인지 어떤 명확한 개념에 이를 만큼 자기 생각을 충분히 정리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는 자기 주님이 영예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공연을 즐겼습니다. 그들이 성전에 이를 때쯤 예수께서 아마 자신에게 군중을 먹이라고 요청할 것으로 생각해서 그는 불안했는데, 예수께서 느긋하게 군중을 물리치는 행동으로, 사도 대부분은 그렇게 몹시 실망했지만, 빌립은 아주 안심했습니다. 군중은 때때로 열두 사도의 사무장에게 커다란 골칫거리였습니다. 그가 군중의 물질적 필요에 관하여 이런 개인적 두려움에서 안도한 후, 빌립은 베드로와 함께 군중을 가르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실망을 표현했습니다. 빌립은 그날 밤 이런 경험을 다시 생각하면서 하느님 나라의 전체 개념에 대한 의혹에 끌렸습니다. 그는 정말로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미심쩍었지만 자기 의혹을 아무에게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를 너무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개인적으로 믿는 신앙이 컸습니다.

172:5.7 (1885.2) Nathaniel, aside from the symbolic and prophetic aspects, came the nearest to understanding the Master’s reason for enlisting the popular support of the Passover pilgrims. He reasoned it out, before they reached the temple, that without such a demonstrative entry into Jerusalem Jesus would have been arrested by the Sanhedrin officials and cast into prison the moment he presumed to enter the city. He was not, therefore, in the least surprised that the Master made no further use of the cheering crowds when he had once got inside the walls of the city and had thus so forcibly impressed the Jewish leaders that they would refrain from placing him under immediate arrest. Understanding the real reason for the Master’s entering the city in this manner, Nathaniel naturally followed along with more poise and was less perturbed and disappointed by Jesus’ subsequent conduct than were the other apostles. Nathaniel had great confidence in Jesus’ understanding of men as well as in his sagacity and cleverness in handling difficult situations. 나다니엘은 상징적이고 예언적인 면을 제외하고 유월절 순례자들의 대중적 지지를 얻은 주님의 이유를 가장 가깝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성전에 도착하기 전에, 그렇게 시위하는 예루살렘 입성이 없었다면, 그가 대담하게 도시로 들어가는 순간, 산헤드린 관리들이 예수를 체포하여 투옥했으리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께서 일단 도시의 성벽 안으로 들어왔고, 이런 식으로 유대 지도자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줘서 그들이 그를 즉각 구속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가 환호하는 군중을 더 이상 이용하지 않으시는 것에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이런 식으로 도시에 들어온 진정한 이유를 이해했기에, 나다니엘은 자연히 더 침착하게 따라갔고, 다른 사도들보다 예수의 다음 행동에 불안과 실망이 적었습니다. 나다니엘은 어려운 상황을 다루는 예수의 현명함과 능숙함만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그의 이해를 크게 신뢰했습니다.

172:5.8 (1885.3) Matthew was at first nonplused by this pageant performance. He did not grasp the meaning of what his eyes were seeing until he also recalled the Scripture in Zechariah where the prophet had alluded to the rejoicing of Jerusalem because her king had come bringing salvation and riding upon the colt of an ass. As the procession moved in the direction of the city and then drew on toward the temple, Matthew became ecstatic; he was certain that something extraordinary would happen when the Master arrived at the temple at the head of this shouting multitude. When one of the Pharisees mocked Jesus, saying, “Look, everybody, see who comes here, the king of the Jews riding on an ass!” Matthew kept his hands off of him only by exercising great restraint. None of the twelve was more depressed on the way back to Bethany that evening. Next to Simon Peter and Simon Zelotes, he experienced the highest nervous tension and was in a state of exhaustion by night. But by morning Matthew was much cheered; he was, after all, a cheerful loser. 마태는 이 화려한 공연 행렬로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는 자신도 예루살렘의 왕이 구원을 가지고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기뻐한다고 선지자가 언급한 스가랴서의 글귀를 생각해 낼 때까지 자기 눈이 보고 있는 것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행렬이 도시 방향으로 이동한 후 성전을 향해 가까워지자, 마태는 황홀해졌습니다. 그는 이렇게 외치는 무리의 선두에 있는 주께서 성전에 도착하면 엄청난 뭔가가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바리새인 중 하나가 예수를 업신여기며 “누가 여기에 오는지 모두 보시오, 유대인의 왕이 나귀를 타고 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마태는 커다란 자제심을 발휘하여 겨우 그에게 자기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베다니로 돌아오는 길에 열두 사도 중 누구도 더 풀이 죽지 않았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시몬 젤로떼 다음으로 그는 신경과민으로 최고로 긴장했고, 밤에는 기진맥진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되자 마태는 기운이 많이 났습니다. 어쨌든 결국 그는 졌지만 씩씩한 사람이었습니다(슥9:9).

172:5.9 (1886.1) Thomas was the most bewildered and puzzled man of all the twelve. Most of the time he just followed along, gazing at the spectacle and honestly wondering what could be the Master’s motive for participating in such a peculiar demonstration. Down deep in his heart he regarded the whole performance as a little childish, if not downright foolish. He had never seen Jesus do anything like this and was at a loss to account for his strange conduct on this Sunday afternoon. By the time they reached the temple, Thomas had deduced that the purpose of this popular demonstration was so to frighten the Sanhedrin that they would not dare immediately to arrest the Master. On the way back to Bethany Thomas thought much but said nothing. By bedtime the Master’s cleverness in staging the tumultuous entry into Jerusalem had begun to make a somewhat humorous appeal, and he was much cheered up by this reaction. 도마는 모든 열두 사도 중 가장 어리둥절하여 당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 광경을 지켜보며 그렇게 별난 시위에 참여하는 주님의 동기가 무엇인지 정말로 의아해하면서 단지 따라갔습니다. 그의 깊은 심정에서 그는 모든 공연이 솔직히 어리석지는 않아도 약간 유치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이처럼 행동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이 일요일(AD30. 4.2) 오후에 그의 별난 행위를 설명하기에 난처했습니다. 그들이 성전에 이를 무렵에, 도마는 이런 대중 시위의 목적은 산헤드린을 몹시 놀라게 해서 그들이 감히 주님을 즉시 체포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추론했습니다. 도마는 베다니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많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잘 시간에, 떠들썩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도록 기획한 주님의 영리함으로 어느 정도 익살스럽게 매료되기 시작했고, 그는 이런 반응으로 기운이 많이 났습니다.

240602 시몬 젤로떼, 알페오 쌍둥이 형제, 가롯 유다의 태도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72:5.10 (1886.2) This Sunday started off as a great day for Simon Zelotes. He saw visions of wonderful doings in Jerusalem the next few days, and in that he was right, but Simon dreamed of the establishment of the new national rule of the Jews, with Jesus on the throne of David. Simon saw the nationalists springing into action as soon as the kingdom was announced, and himself in supreme command of the assembling military forces of the new kingdom. On the way down Olivet he even envisaged the Sanhedrin and all of their sympathizers dead before sunset of that day. He really believed something great was going to happen. He was the noisiest man in the whole multitude. By five o’clock that afternoon he was a silent, crushed, and disillusioned apostle. He never fully recovered from the depression which settled down on him as a result of this day’s shock; at least not until long after the Master’s resurrection. 시몬 젤로떼에게 이번 일요일은 위대한 날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음 며칠간 예루살렘에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환상을 보았고, 그가 옳았지만, 시몬은, 다윗의 왕좌에 앉은 예수와 함께, 유대인의 새로운 국가 통치가 설립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시몬은 왕국이 선포되자마자 민족주의자들이 갑자기 행동하기 시작하고, 새 왕국의 소집된 군대의 최고 지휘권을 가진 자신을 보았습니다. 감람산을 내려가면서, 그는 그날 해지기 전에 산헤드린과 그 동조자들이 죽는 것을 마음에 그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정말로 위대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군중 전체에서 가장 소란스러웠습니다. 그날 오후 5시가 되자, 그는 잠잠히, 짓눌렸고, 쓰라린 허무감에 빠진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날 충격의 결과로 가라앉은 의기소침에서 온전히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주님의 부활 후 한참이 지나서야 회복되었습니다.

172:5.11 (1886.3) To the Alpheus twins this was a perfect day. They really enjoyed it all the way through, and not being present during the time of quiet visitation about the temple, they escaped much of the anticlimax of the popular upheaval. They could not possibly understand the downcast behavior of the apostles when they came back to Bethany that evening. In the memory of the twins this was always their day of being nearest heaven on earth. This day was the satisfying climax of their whole career as apostles. And the memory of the elation of this Sunday afternoon carried them on through all of the tragedy of this eventful week, right up to the hour of the crucifixion. It was the most befitting entry of the king the twins could conceive; they enjoyed every moment of the whole pageant. They fully approved of all they saw and long cherished the memory. 알페오 쌍둥이들에게 이날은 완벽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이날 내내 즐겼으며, 성전 근처를 조용히 방문할 때 없었고, 대중적 격변의 비참한 결말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베다니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사도들의 기가 꺾인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쌍둥이들의 기억에서, 이날은 언제나 그들에게 지상에서 낙원에 가장 가까웠던 날이었습니다. 이날은 사도들로서 그들의 전 생애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일요일 오후의 흔쾌한 기분의 기억으로 십자가에 처형되는 바로 그 시간까지 이렇게 사건이 많은 비극적 주간 내내 견뎠습니다. 그것은 쌍둥이들이 생각해 낼 수 있었던 가장 어울리는 왕의 입성이었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행렬 전체의 모든 순간을 즐겼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모든 것이 완전히 마음에 들었고 그 기억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었습니다.

172:5.12 (1886.4) Of all the apostles, Judas Iscariot was the most adversely affected by this processional entry into Jerusalem. His mind was in a disagreeable ferment because of the Master’s rebuke the preceding day in connection with Mary’s anointing at the feast in Simon’s house. Judas was disgusted with the whole spectacle. To him it seemed childish, if not indeed ridiculous. As this vengeful apostle looked upon the proceedings of this Sunday afternoon, Jesus seemed to him more to resemble a clown than a king. He heartily resented the whole performance. He shared the views of the Greeks and Romans, who looked down upon anyone who would consent to ride upon an ass or the colt of an ass. By the time the triumphal procession had entered the city, Judas had about made up his mind to abandon the whole idea of such a kingdom; he was almost resolved to forsake all such farcical attempts to establish the kingdom of heaven. And then he thought of the resurrection of Lazarus, and many other things, and decided to stay on with the twelve, at least for another day. Besides, he carried the bag, and he would not desert with the apostolic funds in his possession. On the way back to Bethany that night his conduct did not seem strange since all of the apostles were equally downcast and silent. 모든 사도 중 가롯 유다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이런 입성으로 가장 해롭게 나쁜 영향을 받았습니다. 전날(AD30.4.1. 토) 시몬 집의 잔치에서 마리아가 기름을 바른 것에 관한 주님의 꾸중 때문에 그의 마음은 불쾌감으로 들끓었습니다. 유다는 모든 광경이 못마땅하고 아니꼬웠습니다. 그에게 그것은 어리석게 보였고, 그렇지 않다면 정말로 꼴불견이었습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이 사도는 이런 일요일 오후의 진행을 구경하면서, 자신에게 예수는 왕이라기보다는 어릿광대와 더 비슷해 보였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모든 공연을 몹시 분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나귀나 나귀 새끼를 타려는 누구든지 얕보는 그리스인(人)들과 로마인(人)들의 관점을 공유했습니다. 개선 행렬이 도시로 들어갈 때쯤, 유다는 그런 하느님 나라의 모든 개념을 버리기로 거의 결심했습니다. 그는 하늘나라를 세우려는 그런 터무니없는 모든 시도를 버리기로 거의 결정했습니다. 그런 후 그는 나사로의 부활과 다른 여러 일을 생각하며 적어도 열둘과 하루 더 계속 남기로 결심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돈주머니를 갖고 있어서, 사도 기금을 갖고 도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베다니로 돌아오는 길에 모든 사도가 똑같이 풀이 죽어 아무 말도 없어서, 그의 행동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172:5.13 (1887.1) Judas was tremendously influenced by the ridicule of his Sadducean friends. No other single factor exerted such a powerful influence on him, in his final determination to forsake Jesus and his fellow apostles, as a certain episode which occurred just as Jesus reached the gate of the city: A prominent Sadducee (a friend of Judas’s family) rushed up to him in a spirit of gleeful ridicule and, slapping him on the back, said: “Why so troubled of countenance, my good friend; cheer up and join us all while we acclaim this Jesus of Nazareth the king of the Jews as he rides through the gates of Jerusalem seated on an ass.” Judas had never shrunk from persecution, but he could not stand this sort of ridicule. With the long-nourished emotion of revenge there was now blended this fatal fear of ridicule, that terrible and fearful feeling of being ashamed of his Master and his fellow apostles. At heart, this ordained ambassador of the kingdom was already a deserter; it only remained for him to find some plausible excuse for an open break with the Master. 유다는 자기 사두개파 친구들의 비웃음으로 굉장히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수와 자기 동료 사도들을 내버리기로 그가 결정적으로 결심하면서, 예수께서 성문에 도착하자마자 벌어진 어떤 일화만큼 그에게 그렇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단 하나의 다른 요소가 없었습니다. 유명한 사두개인(유다 집안의 친구)이 그에게 힘차게 달려와 명랑하게 비웃는 자세로 그의 등을 찰싹 때리며 말했습니다. “내 친한 친구여, 왜 안색이 불안한가? 기운 내어, 이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 나귀에 앉아 예루살렘 문으로 타고 올 때, 우리 모두 함께 그를 환호하세.” 유다는 박해로 기가 죽지 않았지만, 이런 유형의 비웃음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오래 품은 복수의 감정과 함께 이렇게 치명적인 비웃음의 두려움, 자기 주님과 동료 사도들을 창피하게 여기는, 지독하게 두려워하는 감정이 이제 뒤섞였습니다. 이 임직한 하느님 나라의 대사는 마음으로 이미 탈영병(脫營兵)이었습니다.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은, 그럴듯한 변명을 찾아서 공개적으로 주님과 관계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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