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155 Fleeing Through Northern Galilee 북(北) 갈릴리를 거쳐 도피함

Paper 155

Fleeing Through Northern Galilee 북(北)갈릴리를 거쳐 도피함

1. Why Do the Heathen Rage? 왜 이교도(異敎徒)가 분노하는가?
2. The Evangelists in Chorazin 코라진의 전도자들
3. At Caesarea-Philippi 가이사랴-빌립보에서
Truth and creed 진리와 신조(信條)
Origin of religious traditions 종교적 전통의 기원
4. On the Way to Phoenicia 페니키아로 가는 길
5. The Discourse on True Religion 참 종교에 대한 강론
6. The Second Discourse on Religion 두 번째 종교 강론

155:0.1 (1725.1) SOON after landing near Kheresa on this eventful Sunday, Jesus and the twenty-four went a little way to the north, where they spent the night in a beautiful park south of Bethsaida-Julias. They were familiar with this camping place, having stopped there in days gone by. Before retiring for the night, the Master called his followers around him and discussed with them the plans for their projected tour through Batanea and northern Galilee to the Phoenician coast. 파란(波瀾) 많은 이 일요일에 케레사 근처에 하선한 직후, 예수님과 24명은 북쪽으로 조금 갔으며, 벳새다-율리아스 남쪽의 아름다운 공원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지난 시절 며칠간 거기서 보냈었기 때문에, 이 야영지에 익숙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주(主)께서 자기 제자들을 주위로 불러 바타니아와 북(北)갈릴리를 거쳐 페니키아 해안에 이르는 예상 여행 계획을 함께 의논했습니다.

1. Why Do the Heathen Rage? 왜 이교도(異敎徒)가 분노하는가?

210509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는 진리 순종 시2:1-12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1 Why do the nations conspire and the peoples plot in vain? 2 The kings of the earth take their stand and the rulers gather together against the LORD and against his Anointed One. 3 “Let us break their chains,” they say, “and throw off their fetters.” 4 The One enthroned in heaven laughs; the Lord scoffs at them. 5 Then he rebukes them in his anger and terrifies them in his wrath, saying, 6 “I have installed my King on Zion, my holy hill.” 7 I will proclaim the decree of the LORD : He said to me, “You are my Son ; today I have become your Father. 8 Ask of me, and I will make the nations your inheritance, the ends of the earth your possession. 9 You will rule them with an iron scepter ; you will dash them to pieces like pottery.” 10 Therefore, you kings, be wise; be warned, you rulers of the earth. 11 Serve the LORD with fear and rejoice with trembling. 12 Kiss the Son, lest he be angry and you be destroyed in your way, for his wrath can flare up in a moment. Blessed are all who take refuge in him.

155:1.1 (1725.2) Said Jesus: “You should all recall how the Psalmist spoke of these times, saying, ‘Why do the heathen rage and the peoples plot in vain? The kings of the earth set themselves, and the rulers of the people take counsel together, against the Lord and against his anointed, saying, Let us break the bonds of mercy asunder and let us cast away the cords of love.’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시편(詩篇) 기자(記者)가 이 시대를 어떻게 말했는지 모두 생각해 내야 하느니라. ‘어찌하여 이교도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되어 음모를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백성의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하느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여, 우리가 자비의 유대(紐帶 끈과 띠)를 둘로 쪼개고 사랑의 구속을 던져 버리자 하도다(시2:2-3).’

155:1.2 (1725.3) “Today you see this fulfilled before your eyes. But you shall not see the remainder of the Psalmist’s prophecy fulfilled, for he entertained erroneous ideas about the Son of Man and his mission on earth. My kingdom is founded on love, proclaimed in mercy, and established by unselfish service. My Father does not sit in heaven laughing in derision at the heathen. He is not wrathful in his great displeasure. True is the promise that the Son shall have these so-called heathen (in reality his ignorant and untaught brethren) for an inheritance. And I will receive these gentiles with open arms of mercy and affection. All this loving-kindness shall be shown the so-called heathen, notwithstanding the unfortunate declaration of the record which intimates that the triumphant Son ‘shall break them with a rod of iron and dash them to pieces like a potter’s vessel.’ The Psalmist exhorted you to ‘serve the Lord with fear’ — I bid you enter into the exalted privileges of divine sonship by faith; he commands you to rejoice with trembling; I bid you rejoice with assurance. He says, ‘Kiss the Son, lest he be angry, and you perish when his wrath is kindled.’ But you who have lived with me well know that anger and wrath are not a part of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of heaven in the hearts of men. But the Psalmist did glimpse the true light when, in finishing this exhortation, he said: ‘Blessed are they who put their trust in this Son.’” “오늘날 너희는 너희 눈앞에서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시편 기자의 나머지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리니, 그가 인자(人子)와 그의 지상 사명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품었기 때문이니라. 내 나라는 사랑에 토대를 두고, 자비로 선포되며, 이타적 섬김으로 세워지느니라. 내 아버지는 하늘에 앉아서 이교도들을 조롱하면서 웃지 않으시니라(시2:4). 그는 매우 불쾌하여 격노하지 않으시니라(시2:5). 아들이 소위 이런 이교도들(실은 자신의 무지하고 배우지 못한 형제들)을 유업(遺業)으로 받으리라는 약속(2:8)은 참이니라. 그리고 나는 자비와 애정으로 이런 이방인들을 대환영하리라. 승리한 아들이 ‘철장(鐵杖 쇠 지팡이)으로 그들을 깨뜨리고 질그릇같이 그들을 산산(散散)이 부수리라.’고 공표한 기록(시2:9)의 부적당한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자애(慈愛 도타운 사랑)를 소위 이교도들에게 베풀 것이라. 시편 기자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경외함으로 섬기라(시2:11a).’고 권고했지만, – 나는 너희에게 신앙으로 신적 아들 된 고귀한 특혜(特惠)를 받으라고 명하노라. 그는 너희에게 떨며 즐거워하라(시2:11b)고 명령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확신으로 기뻐하라고 명하노라. 그는 ‘아들에게 입 맞추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화를 내며 그의 진노가 타올라 너희가 망하리라(시2:12a).’라고 말하지만, 나와 함께 살아온 너희는, 분노와 격노가 사람의 심정에 하늘나라를 세우는 부분이 아님을, 잘 아느니라. 그러나 이 권고를 마치면서 ‘이 아들을 신뢰하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시2:12b).’라고 말했을 때, 시편 기자는 참 빛을 얼핏 보았느니라.”

155:1.3 (1725.4) Jesus continued to teach the twenty-four, saying: “The heathen are not without excuse when they rage at us. Because their outlook is small and narrow, they are able to concentrate their energies enthusiastically. Their goal is near and more or less visible; wherefore do they strive with valiant and effective execution. You who have professed entrance into the kingdom of heaven are altogether too vacillating and indefinite in your teaching conduct. The heathen strike directly for their objectives; you are guilty of too much chronic yearning. If you desire to enter the kingdom, why do you not take it by spiritual assault even as the heathen take a city they lay siege to? You are hardly worthy of the kingdom when your service consists so largely in an attitude of regretting the past, whining over the present, and vainly hoping for the future. Why do the heathen rage? Because they know not the truth. Why do you languish in futile yearning? Because you obey not the truth. Cease your useless yearning and go forth bravely doing that which concerns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예수님은 계속 24명을 가르치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교도들이 우리에게 분노할 때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시야가 작고 좁아서, 그들은 자신들의 에너지를 열광적으로 집중할 수 있느니라. 그들의 목표는 가깝고 거의 눈에 보이는 것이므로, 그들은 용감히 효과적으로 실행하려고 싸우느니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고백한 너희는 가르칠 때 모두 너무 망설이며 불명확하니라. 이교도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직접 공격하느니라. 너희는 과도하게 오래 끄는 갈망을 범하고 있느니라. 너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이교도들이 포위 공격하여 도시를 차지하듯이 영적 강습(强襲 세차게 습격함)으로 왜 그것을 차지하지 않느냐? 너희 섬김이 그렇게 주로 과거를 후회하고, 현재를 푸념하면서, 미래를 헛되이 바라는 태도라면 너희는 도저히 하느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느니라. 왜 이교도들이 분노하는가? 그들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니라. 왜 너희는 쓸데없는 갈망으로 쇠약해지느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헛된 갈망을 그만두고 하느님 나라 설립에 관련된 일을 용감히 하면서 나아가라.

155:1.4 (1726.1) “In all that you do, become not one-sided and overspecialized. The Pharisees who seek our destruction verily think they are doing God’s service. They have become so narrowed by tradition that they are blinded by prejudice and hardened by fear. Consider the Greeks, who have a science without religion, while the Jews have a religion without science. And when men become thus misled into accepting a narrow and confused disintegration of truth, their only hope of salvation is to become truth-co-ordinated — converted.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지나치게 전문화하지 말라.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바리새인들은 참으로 자신들이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느니라. 그들은 전통으로 너무 편협해져서, 편견으로 분별이 없고 두려움으로 냉혹해져 있느니라. 그리스인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종교 없이 과학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유대인들은 과학 없이 종교를 가지고 있느니라. 사람들이 이렇게 잘못 이끌려 편협하고 혼란스럽게 분해된 진리를 받아들이면, 그들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은 진리를-통합하고 조정하여 개종(改宗)하는 것이니라.

155:1.5 (1726.2) “Let me emphatically state this eternal truth: If you, by truth co-ordination, learn to exemplify in your lives this beautiful wholeness of righteousness, your fellow men will then seek after you that they may gain what you have so acquired. The measure wherewith truth seekers are drawn to you represents the measure of your truth endowment, your righteousness. The extent to which you have to go with your message to the people is, in a way, the measure of your failure to live the whole or righteous life, the truth-co-ordinated life.” “내가 이 영원한 진리를 단호하게 주장하노라. 너희가 진리를 통합-조정하여 이 아름다운 온전함의 공의(公義 고결성)를 너희 생활에서 실증하기를 배운다면, 그때 너희 동료들이 너희가 그렇게 얻은 것을 자신들이 얻을 수 있도록 너희를 찾을 것이니라. 구도자(求道者)들이 너희에게 끌리는 정도(程度)가 너희가 지닌 진리 재질, 너희 공의(公儀 고결성)의 정도(程度)를 나타내느니라. 너희가 메시지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가야 하는 정도(程度)는, 어떤 면에서, 너희가 온전한, 공의(公義 고결성)의 생활 즉, 진리에 통합-조정한 생활에 실패한 정도(程度)니라.”

155:1.6 (1726.3) And many other things the Master taught his apostles and the evangelists before they bade him good night and sought rest upon their pillows. 주(主)님은 사도들과 전도자들이 자신에게 밤 인사를 하고 베개를 베기 전, 그들에게 여러 다른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2. The Evangelists in Chorazin 고라진의 전도자들

210516 혼(魂)의 진보(進步)를 점검(點檢)하는 신앙 마 11: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Woe to you, Korazin! Woe to you, Bethsaida! If the miracles that were performed in you had been performed in Tyre and Sidon, they would have repented long ago in sackcloth and ashes.

155:2.1 (1726.4) On Monday morning, May 23, Jesus directed Peter to go over to Chorazin with the twelve evangelists while he, with the eleven, departed for Caesarea-Philippi, going by way of the Jordan to the Damascus-Capernaum road, thence northeast to the junction with the road to Caesarea-Philippi, and then on into that city, where they tarried and taught for two weeks. They arrived during the afternoon of Tuesday, May 24. 5월 23일 월요일 아침,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지시하여 12 전도자들과 함께 고라진으로 건너가게 하면서 자신은 11명과 함께 가이사랴-빌립보로 떠났는데, 요단강을 거쳐 다마스쿠스-가버나움 길로 가서, 거기에서 가이사랴-빌립보로 가는 길과 만나는 교차점까지 북동쪽으로 간 후, 그 도시로 들어가, 거기에서 2주간 머물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5월 24일 화요일 오후에 도착했습니다.

155:2.2 (1726.5) Peter and the evangelists sojourned in Chorazin for two weeks,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to a small but earnest company of believers. But they were not able to win many new converts. No city of all Galilee yielded so few souls for the kingdom as Chorazin. In accordance with Peter’s instructions the twelve evangelists had less to say about healing — things physical — while they preached and taught with increased vigor the spiritual truths of the heavenly kingdom. These two weeks at Chorazin constituted a veritable baptism of adversity for the twelve evangelists in that it was the most difficult and unproductive period in their careers up to this time. Being thus deprived of the satisfaction of winning souls for the kingdom, each of them the more earnestly and honestly took stock of his own soul and its progress in the spiritual paths of the new life. 베드로와 전도자들은 2주간 코라진에 머물면서, 얼마 되지 않지만 진지한 신도 일행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새 개종자들을 많이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온 갈릴리 도시 중 코라진처럼, 하느님 나라에 들어오지 않은 혼(魂)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지시대로, 12 전도자들은 육체적 치유에 대한 것들을 적게 말했던 반면에 하늘나라의 영적 진리를 더욱 힘차게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코라진의 2주간은 이때까지 12 전도자들의 이력에서 가장 어렵고 결과가 없는 시기였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참으로 괴로운 역경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혼(魂)들을 얻는 만족을 이렇게 잃어버리게 되자, 그들 각자 더 진심으로 정직하게 자신의 혼(魂)과 새 생명의 영적 경로에서 혼(魂)의 진보를 점검했습니다.

155:2.3 (1726.6) When it appeared that no more people were minded to seek entrance into the kingdom, Peter, on Tuesday, June 7, called his associates together and departed for Caesarea-Philippi to join Jesus and the apostles. They arrived about noontime on Wednesday and spent the entire evening in rehearsing their experiences among the unbelievers of Chorazin. During the discussions of this evening Jesus made further reference to the parable of the sower and taught them much about the meaning of the apparent failure of life undertakings.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려고 마음을 써서 찾는 사람들이 더 없는 듯이 보이자, 베드로가 6월 7일 화요일에 자기 동료들을 함께 불러 모아서, 예수님과 사도들에게 합세하려고 가이사랴-빌립보로 떠났습니다. 그들이 수요일 정오 무렵에 도착해서 코라진의 불신자들 사이에 겪었던 체험을 자세히 이야기하며 저녁 내내 보냈습니다. 이날 저녁 토론하면서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해 더 언급하셨고, 그들에게 명백히 실패한 인생 모험의 의미에 대해 많이 가르쳤습니다.

3. At Caesarea-Philippi 가이사랴-빌립보에서

210523 형제사랑이 하느님 사랑의 길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The King will reply, ‘I tell you the truth, whatever you did for one of the least of these brothers of mine, you did for me.’

155:3.1 (1727.1) Although Jesus did no public work during this two weeks’ sojourn near Caesarea-Philippi, the apostles held numerous quiet evening meetings in the city, and many of the believers came out to the camp to talk with the Master. Very few were added to the group of believers as a result of this visit. Jesus talked with the apostles each day, and they more clearly discerned that a new phase of the work of preaching the kingdom of heaven was now beginning. They were commencing to comprehend that the “kingdom of heaven is not meat and drink but the realization of the spiritual joy of the acceptance of divine sonship.” 예수께서 가이사랴-빌립보 인근에서 이렇게 두 주간 머물면서 공적인 일을 하지 않았지만, 사도들은 도시에서 수없이 조용한 저녁 모임을 열었고, 여러 신자가 주(主)님과 이야기하려고 야영지로 나왔습니다. 이런 방문의 결과로 신자 집단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사도들과 이야기했고, 그들은 하늘나라를 전하는 과업의 새로운 국면이 이제 시작되고 있음을 더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그들은 “하늘나라가 먹고 마심이 아니라 신적 아들 됨을 수용하는 영적 기쁨의 실현임(롬14:17)”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155:3.2 (1727.2) The sojourn at Caesarea-Philippi was a real test to the eleven apostles; it was a difficult two weeks for them to live through. They were well-nigh depressed, and they missed the periodic stimulation of Peter’s enthusiastic personality. In these times it was truly a great and testing adventure to believe in Jesus and go forth to follow after him. Though they made few converts during these two weeks, they did learn much that was highly profitable from their daily conferences with the Master. 가이사랴-빌립보에 머물렀던 것은 11 사도들에게 진정한 시험이었습니다. 그들에게 2주간은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거의 풀이 죽었고, 그들은 베드로의 열렬한 성격에서 나온 간헐적 자극이 그리웠습니다. 이 기간에 예수를 믿고 그를 따라 나아가는 것은 정말로 고도로 노력이 요구되는 모험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2주간에 거의 개종자들이 없었지만, 그들은 주(主)님과 매일 회의하면서 아주 유익한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155:3.3 (1727.3) The apostles learned that the Jews were spiritually stagnant and dying because they had crystallized truth into a creed; that when truth becomes formulated as a boundary line of self-righteous exclusiveness instead of serving as signposts of spiritual guidance and progress, such teachings lose their creative and life-giving power and ultimately become merely preservative and fossilizing. 사도들은 유대인들이 진리를 신조(信條)로 명확히 정리했기 때문에 그들이 영적으로 침체하여 죽어 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진리가 영적 안내와 진보의 명확한 길잡이로 섬기는 대신에 독선적(獨善的) 배타주의(排他主義)의 경계선으로 나타날 때, 그런 가르침은 그 창조적인 생명력을 잃고, 결국 보존된 화석이 될 뿐임을 알았습니다.

155:3.4 (1727.4) Increasingly they learned from Jesus to look upon human personalities in terms of their possibilities in time and in eternity. They learned that many souls can best be led to love the unseen God by being first taught to love their brethren whom they can see. And it was in this connection that new meaning became attached to the Master’s pronouncement concerning unselfish service for one’s fellows: “Inasmuch as you did it to one of the least of my brethren, you did it to me.” 그들은 예수로부터 인간 고유성들을, 시간과 영원 안에 있는 그들의 장래성(將來性)으로 환산하기를 점차 배웠습니다. 그들은, 여러 혼(魂)이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들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움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가장 잘 이끌릴 수 있음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관해, 이타적으로 동료들을 섬기는 주(主)님의 선언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 중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은, 너희가 내게 행한 것이니라(마25:40).”

155:3.5 (1727.5) One of the great lessons of this sojourn at Caesarea had to do with the origin of religious traditions, with the grave danger of allowing a sense of sacredness to become attached to nonsacred things, common ideas, or everyday events. From one conference they emerged with the teaching that true religion was man’s heartfelt loyalty to his highest and truest convictions. 가이사랴에 이렇게 머물면서 얻은 위대한 교훈 중 하나는, 신성하지 않은 것들, 즉 평범한 생각들 혹은 일상적 사건들에 신성한 느낌을 부여하도록 허용하는, 아주 심각한 위험이 따르는, 종교적 전통의 기원과 관련되었습니다. 한 회의에서, 참된 종교는, 인간 최고의 가장 참된 확신에 대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자신의 충성이라는 교훈이, 그들에게 분명해졌습니다.

155:3.6 (1727.6) Jesus warned his believers that, if their religious longings were only material, increasing knowledge of nature would, by progressive displacement of the supposed supernatural origin of things, ultimately deprive them of their faith in God. But that, if their religion were spiritual, never could the progress of physical science disturb their faith in eternal realities and divine values. 예수는 자기 신자들에게, 그들의 종교적 열망이 단지 물질적이었다면, 사물의 초자연적 기원이라고 가정했던 것이, 자연에 대한 지식의 증가로, 점차 치환되어, 결국 하느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이 빼앗길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가 영적이었다면, 물리적 과학의 진보가 영원한 실체와 신적 가치들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결코 방해할 수 없으리라.

155:3.7 (1727.7) They learned that, when religion is wholly spiritual in motive, it makes all life more worth while, filling it with high purposes, dignifying it with transcendent values, inspiring it with superb motives, all the while comforting the human soul with a sublime and sustaining hope. True religion is designed to lessen the strain of existence; it releases faith and courage for daily living and unselfish serving. Faith promotes spiritual vitality and righteous fruitfulness. 종교의 동기가 완전히 영적이면, 숭고한 지속적 희망으로 인간의 혼(魂)을 계속 격려하면서, 그것은 모든 삶을 더 가치 있게 하고, 그것을 높은 목적으로 채우며, 그것을 초월적 가치로 품위를 높이고, 그것을 훌륭한 동기로 고무(鼓舞)한다는 것을, 그들이 들었습니다. 참된 종교는 존재의 긴장을 줄이도록 고안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일상생활과 이타적 섬김을 위한 신앙과 용기를 내보냅니다. 신앙은 영적 활력과 의로운 결실을 증진합니다.

155:3.8 (1727.8) Jesus repeatedly taught his apostles that no civilization could long survive the loss of the best in its religion. And he never grew weary of pointing out to the twelve the great danger of accepting religious symbols and ceremonies in the place of religious experience. His whole earth life was consistently devoted to the mission of thawing out the frozen forms of religion into the liquid liberties of enlightened sonship. 예수님은 자기 사도들에게, 어떤 문명도 그 종교의 최고를 상실하고,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고 반복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치지 않고 12명에게, 종교적 체험 대신에 종교적 상징과 의식(儀式)을 수용하는 심각한 위험을 지적했습니다. 그의 모든 지상 생활은, 얼어붙은 형태의 종교를 아들 된 영적 통찰력의 자유가 흘러가도록 녹이는 사명에 시종일관 바쳐졌습니다.

4. On the Way to Phoenicia 페니키아로 가는 길

210530 자연 종교와 계시 종교 행17: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Paul then stood up in the meeting of the Areopagus and said: “Men of Athens! I see that in every way you are very religious.

155:4.1 (1728.1) On Thursday morning, June 9, after receiving word regarding the progress of the kingdom brought by the messengers of David from Bethsaida, this group of twenty-five teachers of truth left Caesarea-Philippi to begin their journey to the Phoenician coast. They passed around the marsh country, by way of Luz, to the point of junction with the Magdala-Mount Lebanon trail road, thence to the crossing with the road leading to Sidon, arriving there Friday afternoon. 6월 9일(AD 29) 목요일 아침에, 벳새다의 다윗 메신저들이 전해준 하느님 나라의 진행에 관한 소식을 받은 후, 25명의 이 진리 교사들은 가이샤라-빌립보를 떠나 페니키아 연안으로 여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습지대를 돌아, 루스를 거쳐, 막달라-산 레바논 오솔길과 만나는 분기점까지 갔고, 거기서 시돈으로 이어지는 길을 건너, 금요일 오후에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155:4.2 (1728.2) While pausing for lunch under the shadow of an overhanging ledge of rock, near Luz, Jesus delivered one of the most remarkable addresses which his apostles ever listened to throughout all their years of association with him. No sooner had they seated themselves to break bread than Simon Peter asked Jesus: “Master, since the Father in heaven knows all things, and since his spirit is our support in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of heaven on earth, why is it that we flee from the threats of our enemies? Why do we refuse to confront the foes of truth?” But before Jesus had begun to answer Peter’s question, Thomas broke in, asking: “Master, I should really like to know just what is wrong with the religion of our enemies at Jerusalem. What is the real difference between their religion and ours? Why is it we are at such diversity of belief when we all profess to serve the same God?” And when Thomas had finished, Jesus said: “While I would not ignore Peter’s question, knowing full well how easy it would be to misunderstand my reasons for avoiding an open clash with the rulers of the Jews at just this time, still it will prove more helpful to all of you if I choose rather to answer Thomas’s question. And that I will proceed to do when you have finished your lunch.” 루스 근처 바위의 돌출된 바위 턱 그늘 밑에서 점심을 위해 잠시 멈췄을 때, 예수님은, 자기 사도들이 지금까지 여러 해 자신과 교제하며 들었던 가장 놀라운 연설 중 하나를 하셨습니다. 그들이 함께 식사하려고 앉자마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主)여, 하늘 아버지가 모든 것을 아시며, 그의 영(靈)이 지상에서 하늘나라를 세우는 우리를 후원하는데, 우리가 왜 우리 대적들의 위협에서 도망하나요? 우리가 왜 진리의 적들에 맞서지 않는지요?” 예수께서 베드로의 질문에 대답하시기 전에, 도마가 끼어들어 질문했습니다. “주(主)여, 예루살렘에 있는 우리 적들의 종교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 정말로 바로 알고 싶습니다. 그들의 종교와 우리 종교에서 실제로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 같은 하느님을 섬긴다고 고백하면서 왜 우리는 그렇게 다양하게 믿고 있습니까?” 도마가 그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번에 유대인들의 통치자들과 공개적인 충돌을 피하려는 내 이유는 오해하기 쉽다는 것을 아주 잘 알기 때문에, 내가 베드로의 질문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지만, 내가 오히려 도마의 질문에 답하기를 택한다면, 그것이 너희 모두에게 훨씬 더 유익할 것이라. 너희가 점심을 마치면 내가 계속 말할 것이라.”

5. The Discourse on True Religion 참 종교에 대한 강론

155:5.1 (1728.3) This memorable discourse on religion, summarized and restated in modern phraseology, gave expression to the following truths: 종교에 관해 잊지 못할 이 강연을 현대적 표현으로 요약하고 다시 진술하여, 다음의 진리를 표명했습니다.

155:5.2 (1728.4) While the religions of the world have a double origin — natural and revelatory — at any one time and among any one people there are to be found three distinct forms of religious devotion. And these three manifestations of the religious urge are: 세상의 종교들은 이중 기원 – 자연적인 것과 계시적인 것 –이 있지만, 언제나, 어떤 한 민족 중에서도, 세 가지 독특한 형태의 종교적 헌신이 발견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충동은 다음의 세 가지로 표현됩니다.

155:5.3 (1728.5) 1. Primitive religion. The seminatural and instinctive urge to fear mysterious energies and worship superior forces, chiefly a religion of the physical nature, the religion of fear. 원시 종교.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를 두려워하고 초자연적인 기세를 경배하려는 자연 그대로의 본능적 충동, 주로 물리적 자연 종교, 두려움의 종교.

155:5.4 (1728.6) 2. The religion of civilization. The advancing religious concepts and practices of the civilizing races — the religion of the mind — the intellectual theology of the authority of established religious tradition. 문명 종교. 진보한 종교적 개념과 문명 인종의 관례 – 마음의 종교 – 확립된 종교 전통 권위의 지적 신학.

155:5.5 (1728.7) 3. True religion — the religion of revelation. The revelation of supernatural values, a partial insight into eternal realities, a glimpse of the goodness and beauty of the infinite character of the Father in heaven — the religion of the spirit as demonstrated in human experience. 참 종교 – 계시 종교. 초자연적 가치의 계시, 영원한 실체들에 대한 부분적 통찰력, 하늘 아버지의 무한한 성품에 속한 선(善)과 미(美)의 섬광(閃光 번쩍이는 빛) – 인간 체험으로 드러난 영(靈)의 종교.

155:5.6 (1729.1) The religion of the physical senses and the superstitious fears of natural man, the Master refused to belittle, though he deplored the fact that so much of this primitive form of worship should persist in the religious forms of the more intelligent races of mankind. Jesus made it clear that the great difference between the religion of the mind and the religion of the spirit is that, while the former is upheld by ecclesiastical authority, the latter is wholly based on human experience. 주(主)님은 그렇게 많은 이런 원시적 형태의 경배가 인류의 더 지능적인 종족의 종교적 형태로 지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유감으로 여기셨지만, 그는 물리적 감각의 종교와 자연인(自然人)의 미신적 두려움을 하찮게 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의 종교와 영(靈)의 종교 사이에서 가장 큰 차이가, 전자(前者)는 교회의 권위로 유지되는 반면에, 후자(後者)는 인간 체험에 전부 토대를 두고 있음을 확연히 밝히셨습니다.

210606 권위-마음의 종교와 참-영(靈)의 종교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The Spirit gives life; the flesh counts for nothing. The words I have spoken to you are spirit and they are life.

155:5.7 (1729.2) And then the Master, in his hour of teaching, went on to make clear these truths: 그런 후 주님은, 가르침의 시간에, 이런 진리를 계속 명백히 밝히셨습니다.

155:5.8 (1729.3) Until the races become highly intelligent and more fully civilized, there will persist many of those childlike and superstitious ceremonies which are so characteristic of the evolutionary religious practices of primitive and backward peoples. Until the human race progresses to the level of a higher and more general recognition of the realities of spiritual experience, large numbers of men and women will continue to show a personal preference for those religions of authority which require only intellectual assent, in contrast to the religion of the spirit, which entails active participation of mind and soul in the faith adventure of grappling with the rigorous realities of progressive human experience. 인종의 지능이 더 높아지고 충분히 더 문명화될 때까지, 원시적으로 퇴보한 사람들의 진화적 종교 관례의 특색인, 그런 어린애 같고 미신적인 여러 의식이 지속할 것입니다. 인류가 영적 체험의 실체를, 더 높고, 더 넓게 인식하는 수준으로 진보할 때까지, 많은 남녀가, 진보적 인간 체험의 엄격한 실체들과 씨름하는 신앙 모험 안에서, 마음과 혼(魂)의 적극적 참여가 수반되는 영(靈)의 종교와 현저히 다르게, 지적 동의만 요구하는 그런 권위의 종교들을 개인적으로 계속 더 좋아할 것입니다.

155:5.9 (1729.4) The acceptance of the traditional religions of authority presents the easy way out for man’s urge to seek satisfaction for the longings of his spiritual nature. The settled, crystallized, and established religions of authority afford a ready refuge to which the distracted and distraught soul of man may flee when harassed by fear and tormented by uncertainty. Such a religion requires of its devotees, as the price to be paid for its satisfactions and assurances, only a passive and purely intellectual assent. 전통적 권위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영적 본성의 갈망을 채우려는 자기 충동을 위해, 쉬운 탈출구를 마련해 줍니다. 정해지고, 결정화되어, 확립된 권위종교는 괴롭고 산란해진 인간의 혼(魂)이 두려움에 시달리고 불확실성으로 고통을 받을 때, 피할 수 있는, 준비된 피난처를 제공합니다. 그런 종교는 만족과 확신을 얻는 값으로, 신자들에게 단지 수동적이며 순전히 지적인 동의만 요구합니다.

155:5.10 (1729.5) And for a long time there will live on earth those timid, fearful, and hesitant individuals who will prefer thus to secure their religious consolations, even though, in so casting their lot with the religions of authority, they compromise the sovereignty of personality, debase the dignity of self-respect, and utterly surrender the right to participate in that most thrilling and inspiring of all possible human experiences: the personal quest for truth, the exhilaration of facing the perils of intellectual discovery, the determination to explore the realities of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the supreme satisfaction of experiencing the personal triumph of the actual realization of the victory of spiritual faith over intellectual doubt as it is honestly won in the supreme adventure of all human existence — man seeking God, for himself and as himself, and finding him. 그리고 권위의 종교에 자신들의 운명을 그렇게 내던져서, 그들은 고유성의 주권을 위태롭게 하고, 스스로 품위를 지키는 존엄성을 떨어뜨리며, 가능한 모든 인간 체험, 즉 개인적인 진리 추구, 지적 발견의 모험에 직면하는 흥분, 개인적 종교 체험의 실체를 탐험하는 결정, 모든 인간 존재 – 스스로, 자신으로서 하느님을 찾고 그를 발견하는 인간의 최극 모험으로 정직하게 얻는 것처럼, 지적 의심에 대한 영적 신앙 승리의 실제 실현에 속한 개인적 승리를 체험하는 최고의 만족에 가장 감격적으로 고무(鼓舞)하도록 참여할 권리를 완전히 포기할지라도, 차라리 그렇게 자신의 종교적 위로 얻기를 더 좋아할 개인들이 그렇게 소심하고 걱정하며 머뭇거리면서, 오랫동안 지상에 살 것입니다.

155:5.11 (1729.6) The religion of the spirit means effort, struggle, conflict, faith, determination, love, loyalty, and progress. The religion of the mind — the theology of authority — requires little or none of these exertions from its formal believers. Tradition is a safe refuge and an easy path for those fearful and halfhearted souls who instinctively shun the spirit struggles and mental uncertainties associated with those faith voyages of daring adventure out upon the high seas of unexplored truth in search for the farther shores of spiritual realities as they may be discovered by the progressive human mind and experienced by the evolving human soul. 영(靈)의 종교는 노력, 분투, 갈등, 신앙, 결단, 사랑, 충성 및 진보를 의미합니다. 마음의 종교 – 권위의 신학 –는 형식적 신자들에게 이러한 노력을 거의 전혀 요구하지 않습니다. 영적 실체들이 진보하는 인간 마음으로 발견되고 진화하는 인간 혼(魂)으로 체험되는 것처럼, 영적 실체들의 먼 해안을 찾아, 탐험 되지 않은 진리의 높은 바다로 대담하게 모험하는 그런 신앙 항해와 관련된 정신적 불확실성과 영(靈) 분투를 본능적으로 피하는 혼(魂)들, 그렇게 걱정하며 열의가 없는 혼(魂)들을 위한 안전한 피난처이며 쉬운 길이 전통입니다.

210613 하느님 자녀의 새 종교 롬 8:16-17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6 The Spirit himself testifie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God’s children. 17 Now if we are children, then we are heirs–heirs of God and co-heirs with Christ, if indeed we share in his sufferings in order that we may also share in his glory.

155:5.12 (1729.7) And Jesus went on to say: “At Jerusalem the religious leaders have formulated the various doctrines of their traditional teachers and the prophets of other days into an established system of intellectual beliefs, a religion of authority. The appeal of all such religions is largely to the mind. And now are we about to enter upon a deadly conflict with such a religion since we will so shortly begin the bold proclamation of a new religion — a religion which is not a religion in the present-day meaning of that word, a religion that makes its chief appeal to the divine spirit of my Father which resides in the mind of man; a religion which shall derive its authority from the fruits of its acceptance that will so certainly appear in the personal experience of all who really and truly become believers in the truths of this higher spiritual communion.” 그리고 예수님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전통적 교사들과 다른 시대 예언자들의 다양한 교리들을 지적 믿음의 확립된 체계, 권위의 종교로 공식화했느니라. 그런 종교들은 대개 마음에 호소하느니라.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런 종교와 치명적인 투쟁을 시작할 참이니, 우리가 즉시 새 종교 – 오늘날 그 단어가 의미하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내주하는 내 아버지의 신적 영(靈)에 주로 호소하는 종교, 더 높은 이런 신적 친교의 진리 안에서 정말 참으로 신자들이 되는 모든 자의 개인적 체험으로 아주 확실히 나타날, 그 받아들이는 열매에서 그 권위가 나오는 종교를 과감히 선포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155:5.13 (1730.1) Pointing out each of the twenty-four and calling them by name, Jesus said: “And now, which one of you would prefer to take this easy path of conformity to an established and fossilized religion, as defended by the Pharisees at Jerusalem, rather than to suffer the difficulties and persecutions attendant upon the mission of proclaiming a better way of salvation to men while you realize the satisfaction of discovering for yourselves the beauties of the realities of a living and personal experience in the eternal truths and supreme grandeurs of the kingdom of heaven? Are you fearful, soft, and ease-seeking? Are you afraid to trust your future in the hands of the God of truth, whose sons you are? Are you distrustful of the Father, whose children you are? Will you go back to the easy path of the certainty and intellectual settledness of the religion of traditional authority, or will you gird yourselves to go forward with me into that uncertain and troublous future of proclaiming the new truths of the religion of the spirit, the kingdom of heaven in the hearts of men?” 예수님은 각 24명을 가리켜 부르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너희 중 누가, 하늘나라의 영원한 진리와 최고의 위엄 안에서, 살아서 직접 체험하는 실체들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견하는 만족을 너희가 실감하면서, 사람들에게 더 나은 구원의 길을 선포하는 사명에 따라붙는 어려움과 박해를 겪기보다는, 예루살렘의 바리새인들이 옹호(擁護)하는 것처럼, 확립되어 화석화된 종교에 순응하는 쉬운 이 길을 택하려느냐? 너희는 두려워하며 나약하게 안일을 꾀하느냐? 너희는 너희 앞날을 진리의 하느님 손에 맡기기에 두려워하느냐, 너희는 누구의 아들들이냐? 너희는 아버지를 믿지 않느냐, 너희는 누구의 자녀들이냐? 너희는 전통적 권위종교의 확실성과 지적 안정성의 쉬운 길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나와 함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영(靈)의 종교에 속한 새 진리, 인간의 심정에 있는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단언할 수 없는 거친 미래로 뛰어들어 전진하겠느냐?”

155:5.14 (1730.2) All twenty-four of his hearers rose to their feet, intending to signify their united and loyal response to this, one of the few emotional appeals which Jesus ever made to them, but he raised his hand and stopped them, saying: “Go now apart by yourselves, each man alone with the Father, and there find the unemotional answer to my question, and having found such a true and sincere attitude of soul, speak that answer freely and boldly to my Father and your Father, whose infinite life of love is the very spirit of the religion we proclaim.” 그의 말씀을 듣던 24명 모두가, 예수께서 일찍이 자신들에게 하셨던 몇 번 되지 않는 감정적 호소 중 하나인, 이 말씀에 일심동체로 충성스러운 반응을 나타내려고, 일어섰지만, 그가 손을 들어 그들을 멈추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너희는 홀로 떨어져, 아버지와 함께 각자 홀로 가서, 내 질문에 대해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대답을 찾아, 혼(魂)의 그런 참된 신실한 태도를 발견하고, 사랑에 속한 그의 무한한 생명이 바로 우리가 선포하는 종교의 영(靈)이신, 내 아버지와 너희 아버지께 그 대답을 마음껏 대담하게 말씀드리라.”

155:5.15 (1730.3) The evangelists and apostles went apart by themselves for a short time. Their spirits were uplifted, their minds were inspired, and their emotions mightily stirred by what Jesus had said. But when Andrew called them together, the Master said only: “Let us resume our journey. We go into Phoenicia to tarry for a season, and all of you should pray the Father to transform your emotions of mind and body into the higher loyalties of mind and the more satisfying experiences of the spirit.” 전도자들과 사도들은 잠시 그들 각자 떨어져 갔습니다. 그들의 영(靈)들은 고양(高揚)되었고, 그들의 마음은 고취(鼓吹)되었으며,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으로, 그들의 감정은 힘차게 감동되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가 그들은 함께 불렀을 때, 주님은 “우리 여행을 다시 계속하자. 우리는 페니키아로 가서 잠시 머물 것이며, 너희 모두 아버지께 너희 마음과 몸의 감정들이, 더 높은 마음의 충성과 더 만족스러운 영(靈)의 체험으로 바뀌도록 기도해야 하니라.”고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155:5.16 (1730.4) As they journeyed on down the road, the twenty-four were silent, but presently they began to talk one with another, and by three o’clock that afternoon they could not go farther; they came to a halt, and Peter, going up to Jesus, said: “Master, you have spoken to us the words of life and truth. We would hear more; we beseech you to speak to us further concerning these matters.” 그들이 길 아래로 여행할 때, 24명은 말이 없었지만, 이내 그들은 서로 말하기 시작했고, 그날 오후 3시에 그들은 더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멈췄고, 베드로가 예수께 올라가 말했습니다. “주여, 당신께서 저희에게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는 더 듣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이런 문제들에 관해 저희에게 더 말해주시기를 저희가 간청합니다.”

6. The Second Discourse on Religion 두 번째 종교 강론

210620 권위종교와 영(靈)의 종교 1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You will keep in perfect peace him whose mind is steadfast, because he trusts in you.

155:6.1 (1730.5) And so, while they paused in the shade of the hillside, Jesus continued to teach them regarding the religion of the spirit, in substance saying: 그래서 그들이 언덕 비탈의 그늘에 멈췄을 때, 예수께서 영(靈)의 종교에 관해 계속 가르쳤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55:6.2 (1730.6) You have come out from among those of your fellows who choose to remain satisfied with a religion of mind, who crave security and prefer conformity. You have elected to exchange your feelings of authoritative certainty for the assurances of the spirit of adventurous and progressive faith. You have dared to protest against the grueling bondage of institutional religion and to reject the authority of the traditions of record which are now regarded as the word of God. Our Father did indeed speak through Moses, Elijah, Isaiah, Amos, and Hosea, but he did not cease to minister words of truth to the world when these prophets of old made an end of their utterances. My Father is no respecter of races or generations in that the word of truth is vouchsafed one age and withheld from another. Commit not the folly of calling that divine which is wholly human, and fail not to discern the words of truth which come not through the traditional oracles of supposed inspiration. 너희는 마음의 종교에 남아 만족하기로 선택하여, 안전을 갈망하고 차라리 순응하기를 택한, 그런 너희 시대 사람 중에서 빠져나왔느니라. 너희는 권위를 확신하는 너희 감정을 버리고, 모험적이고 진보적인 신앙에 속한 영(靈)의 확신을 택하였느니라. 너희는 대담하게 제도적 종교의 가혹한 속박에 맞서 항의하고, 오늘날 하느님의 말씀으로 여겨진 기록된 전통의 권위를 거절했느니라. 우리 아버지는 참으로 모세, 엘리야, 아모스, 호세아를 통해 말씀하셨지만, 이런 옛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말을 마쳤을 때, 그는 세상에 진리의 말씀을 멈추지 않고 공급하셨느니라. 내 아버지는, 진리의 말씀을 한 세대에는 허락하고 다른 세대에는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종이나 세대를 차별하는 분이 아니니라. 완전히 인간적인 것을, 신적이라고 부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영감(靈感)으로 여겨진, 전통적 성언(聖言)을 통해 오지 않은 진리의 말씀을 반드시 분별(分別)하라.

155:6.3 (1731.1) I have called upon you to be born again, to be born of the spirit. I have called you out of the darkness of authority and the lethargy of tradition into the transcendent light of the realization of the possibility of making for yourselves the greatest discovery possible for the human soul to make — the supernal experience of finding God for yourself, in yourself, and of yourself, and of doing all this as a fact in your own personal experience. And so may you pass from death to life, from the authority of tradition to the experience of knowing God; thus will you pass from darkness to light, from a racial faith inherited to a personal faith achieved by actual experience; and thereby will you progress from a theology of mind handed down by your ancestors to a true religion of spirit which shall be built up in your souls as an eternal endowment. 나는 너희가 거듭나서, 영(靈)으로 태어나기를 요청하노라. 나는 너희를, 권위의 어둠과 전통의 무기력에서, 스스로 인간 혼(魂)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발견 – 스스로, 그 자체로, 저절로, 하느님을 발견하고, 너희 자신의 고유한 체험에서 사실 이 모두를 행하는, 숭고한 체험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초월적 빛 안으로, 소집했느니라. 그리고 그렇게 너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전통의 권위에서 하느님을 아는 체험으로 건널 갈 수 있느니라. 그렇게 너희는 어둠에서 빛으로, 물려받은 민족 신앙에서 현실 체험의 노력으로 성취한 개인적 신앙으로 건너갈 것이니라. 그리고 그것에 의해 너희는 너희 조상들이 유산으로 남긴 마음의 신학에서 영원한 재질로 너희 혼(魂)들에 축적될 영(靈)의 참 종교로 진보하리라. 

155:6.4 (1731.2) Your religion shall change from the mere intellectual belief in traditional authority to the actual experience of that living faith which is able to grasp the reality of God and all that relates to the divine spirit of the Father. The religion of the mind ties you hopelessly to the past; the religion of the spirit consists in progressive revelation and ever beckons you on toward higher and holier achievements in spiritual ideals and eternal realities. 너희 종교는 전통적 권위의 단순한 지적 믿음에서 하느님의 실체와 아버지의 신적 영(靈)에 관련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살아있는 신앙의 현실 체험으로 바뀔 것이라. 마음의 종교는 너희를 절망적으로 과거에 동여매느니라. 영(靈)의 종교는 진보적 계시에 있으며, 영적 이상(理想)들과 영원한 실체들에서 더 높고 더 거룩한 성취를 향하도록 언제나 너희에게 손짓하느니라.

155:6.5 (1731.3) While the religion of authority may impart a present feeling of settled security, you pay for such a transient satisfaction the price of the loss of your spiritual freedom and religious liberty. My Father does not require of you as the price of entering the kingdom of heaven that you should force yourself to subscribe to a belief in things which are spiritually repugnant, unholy, and untruthful. It is not required of you that your own sense of mercy, justice, and truth should be outraged by submission to an outworn system of religious forms and ceremonies. The religion of the spirit leaves you forever free to follow the truth wherever the leadings of the spirit may take you. And who can judge — perhaps this spirit may have something to impart to this generation which other generations have refused to hear? 권위의 종교는 현재 정해진 안도감을 줄 수도 있지만, 너희는 그런 일시적 만족을 위해 너희 영적 자유와 종교적 해방을 잃어버리는 대가를 치르고 있느니라. 내 아버지는 너희에게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대가로, 너희가 영적으로 혐오스럽고, 신앙이 없으며, 진실성이 없는 것들에 대한 믿음에 동의하도록 스스로 강요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으시니라. 낡은 종교적 형태와 예식 체계에 복종하여, 너희 자신의 자비·정의·진리에 대한 감각이 짓밟혀야 한다고 너희에게 요구하지 않으시니라. 영(靈)의 종교는 영원히 너희를 자유롭게 하여, 영(靈)의 이끄심이 너희를 어디로 데려가든지, 진리를 따르게 하느니라. 아마 이 영(靈)이 다른 세대들이 들으려 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이 세대에 나눠줄지 누가 판단할 수 있느냐?

155:6.6 (1731.4) Shame on those false religious teachers who would drag hungry souls back into the dim and distant past and there leave them! And so are these unfortunate persons doomed to become frightened by every new discovery, while they are discomfited by every new revelation of truth. The prophet who said, “He will be kept in perfect peace whose mind is stayed on God,” was not a mere intellectual believer in authoritative theology. This truth-knowing human had discovered God; he was not merely talking about God. 굶주린 혼(魂)들을 끌고 어두운 먼 과거로 돌아가 그곳에 그들을 버리는, 그런 거짓 종교 선생들은 수치스럽지 않은가! 그래서 이런 유감스러운 사람들은 온갖 새로운 발견으로 몹시 두려워하게 되어 있으며, 게다가 그들은 온갖 새로운 진리의 계시로 당황하느니라. “마음을 하느님께 두는 자는 완전한 평온을 누릴 것이라(사26:3).”라고 말했던 선지자는 단지 권위 신학의 지적 신자가 아니었도다. 진리를 아는 이 사람은 하느님을 발견했었고, 그는 단지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느니라.

210627 권위종교와 영(靈)의 종교 2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because those who are led by the Spirit of God are sons of God.

155:6.7 (1731.5) I admonish you to give up the practice of always quoting the prophets of old and praising the heroes of Israel, and instead aspire to become living prophets of the Most High and spiritual heroes of the coming kingdom. To honor the God-knowing leaders of the past may indeed be worth while, but why, in so doing, should you sacrifice the supreme experience of human existence: finding God for yourselves and knowing him in your own souls? 내가 권하노니, 너희가 항상 옛 선지자들을 인용하고 이스라엘의 영웅들을 찬양하는 습관을 버리고, 대신에 지고(至高)자의 살아있는 선지자들과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의 영적 영웅들이 되기를 갈망하라. 과거 하느님을-아는 지도자들은 실로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지만, 그렇게 하면서, 너희는 인간 존재- 스스로 하느님을 발견하고 너희 자신의 혼(魂)들 안에서 그를 아는 -의 최고 체험을 왜 희생해야 하느냐?

155:6.8 (1732.1) Every race of mankind has its own mental outlook upon human existence; therefore must the religion of the mind ever run true to these various racial viewpoints. Never can the religions of authority come to unification. Human unity and mortal brotherhood can be achieved only by and through the superendowment of the religion of the spirit. Racial minds may differ, but all mankind is indwelt by the same divine and eternal spirit. The hope of human brotherhood can only be realized when, and as, the divergent mind religions of authority become impregnated with, and overshadowed by, the unifying and ennobling religion of the spirit — the religion of personal spiritual experience. 모든 인종은 인간 존재에 대해 각각 정신적 견해를 지니고 있느니라. 따라서 마음의 종교는 이런 다양한 인종적 관점에 늘 충실해야 하니라. 권위종교들은 결코 통일될 수 없느니라. 인간 일치와 필사자 형제사랑은 영(靈) 종교의 오직 초(超)자질에 의해서, 이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느니라. 종족 마음들은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인류는 다름없는 신적인, 영원한 영(靈)이 내주하느니라. 인간의 형제 사랑 소망은, 권위의 서로 다른 마음 종교들이, 통일하여 고귀하게 하는 영(靈)의 종교 – 개인적 영적 체험의 종교로 채워지게 될 때, 그것으로 무색(無色)해지는 만큼만, 실현될 수 있느니라.

155:6.9 (1732.2) The religions of authority can only divide men and set them in conscientious array against each other; the religion of the spirit will progressively draw men together and cause them to become understandingly sympathetic with one another. The religions of authority require of men uniformity in belief, but this is impossible of realization in the present state of the world. The religion of the spirit requires only unity of experience — uniformity of destiny — making full allowance for diversity of belief. The religion of the spirit requires only uniformity of insight, not uniformity of viewpoint and outlook. The religion of the spirit does not demand uniformity of intellectual views, only unity of spirit feeling. The religions of authority crystallize into lifeless creeds; the religion of the spirit grows into the increasing joy and liberty of ennobling deeds of loving service and merciful ministration. 권위종교는 사람들을 분열하고 양심적 배열에서 서로 거슬러 배치할 뿐이니라. 영(靈)의 종교는 점차 사람들을 함께 끌어들여 서로 이해심을 가지고 공감하게 하느니라. 권위종교는 사람에게 믿음의 획일성을 요구하지만, 이것은 현 상태의 세상에서 실현 불가능하니라. 영(靈)의 종교는, 믿음의 다양성을 최대한 허용하면서, 체험의 통일성 – 운명의 획일성만 요구하느니라. 영(靈)의 종교는, 관점과 견해의 획일성이 아니라, 통찰력의 획일성만 요구하느니라. 영(靈)의 종교는 지적 견해의 획일성이 아니라, 영(靈) 느낌의 통일성만 요구하느니라. 권위종교는 생명을 잃은 신조로 결정(結晶)화하느니라. 영(靈)의 종교는 점차 애정을 품고 섬기고 자비롭게 보살피는, 품위 있는 행위에 속한 기쁨과 자유로 점점 더 자라느니라.

155:6.10 (1732.3) But watch, lest any of you look with disdain upon the children of Abraham because they have fallen on these evil days of traditional barrenness. Our forefathers gave themselves up to the persistent and passionate search for God, and they found him as no other whole race of men have ever known him since the times of Adam, who knew much of this as he was himself a Son of God. My Father has not failed to mark the long and untiring struggle of Israel, ever since the days of Moses, to find God and to know God. For weary generations the Jews have not ceased to toil, sweat, groan, travail, and endure the sufferings and experience the sorrows of a misunderstood and despised people, all in order that they might come a little nearer the discovery of the truth about God. And, notwithstanding all the failures and falterings of Israel, our fathers progressively, from Moses to the times of Amos and Hosea, did reveal increasingly to the whole world an ever clearer and more truthful picture of the eternal God. And so was the way prepared for the still greater revelation of the Father which you have been called to share.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이렇게 전통적으로 결실이 없는 악한 시대에 넘어졌다는 이유로 너희가 그들을 경멸의 태도로 바라보지 않도록 주의하라. 우리 선조들은 끊임없이 열렬하게 하느님 찾기에 몰두했으며, 아담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이 알았던, 아담의 시대 이후로 다른 전(全) 인류가 아무도 하느님을 몰랐을 때, 그들은 하느님을 발견했느니라. 내 아버지는 모세의 시절 이래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알려고 오랫동안 꾸준히 분투한 이스라엘을 주목하셨느니라. 지친 여러 세대에 유대인들은, 모두 하느님에 대한 진리의 발견에 조금 더 가까이 가려고, 그들은 그침 없이, 수고하고, 땀 흘리며, 신음하고, 고생하며, 고통을 견디고, 오해받고 경멸당하는 민족의 슬픔을 경험했느니라.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실패와 비틀거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들은 점차, 모세로부터 아모스와 호세아의 시대까지, 전(全) 세계에 영원한 하느님을 더 분명하고 더 진실하게 더욱더 드러나도록 묘사했느니라. 그래서 너희가 나누도록 부르신, 아버지를 훨씬 위대하게 계시하는 길이 준비되었느니라.

155:6.11 (1732.4) Never forget there is only one adventure which is more satisfying and thrilling than the attempt to discover the will of the living God, and that is the supreme experience of honestly trying to do that divine will. And fail not to remember that the will of God can be done in any earthly occupation. Some callings are not holy and others secular. All things are sacred in the lives of those who are spirit led; that is, subordinated to truth, ennobled by love, dominated by mercy, and restrained by fairness — justice. The spirit which my Father and I shall send into the world is not only the Spirit of Truth but also the spirit of idealistic beauty. 살아 계신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려는 시도보다 더 만족스럽고 감동적인 모험은 하나뿐임을 잊지 말지니, 그것은 신적 뜻을 정말로 행하려는 최상의 체험이니라. 그리고 하느님의 뜻은 지상의 어떤 직업으로도 이룰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라. 어떤 직업은 거룩하지 않고, 어떤 것은 세속적이니라. 영(靈)에 이끌려, 즉 진리를 따르고, 사랑으로 고귀해지며, 자비에 좌우되고, 공평 – 정의(正義)로 삼가는 자들의 삶에서, 모든 것은 신성하니라. 내 아버지와 내가 세상에 보낼 영(靈)은 진리의 영(靈)뿐만 아니라 또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영(靈)이니라.

210704 권위종교와 영(靈)의 종교3 마18: 2-3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 He called a little child and had him stand among them. 3 And he said: “I tell you the truth,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littl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155:6.12 (1732.5) You must cease to seek for the word of God only on the pages of the olden records of theologic authority. Those who are born of the spirit of God shall henceforth discern the word of God regardless of whence it appears to take origin. Divine truth must not be discounted because the channel of its bestowal is apparently human. Many of your brethren have minds which accept the theory of God while they spiritually fail to realize the presence of God. And that is just the reason why I have so often taught you that the kingdom of heaven can best be realized by acquiring the spiritual attitude of a sincere child. It is not the mental immaturity of the child that I commend to you but rather the spiritual simplicity of such an easy-believing and fully-trusting little one. It is not so important that you should know about the fact of God as that you should increasingly grow in the ability to feel the presence of God. 너희는 하느님의 말씀을 신학적 권위에 속한 옛 기록의 구절에서만 찾기를 멈춰야 하느니라. 하느님의 영(靈)으로 태어난 자들은 하느님 말씀의 출처로 여기는 것과 관계없이 이제부터 그것을 알아볼 것이니라. 신적 진리의 경로가 언뜻 보기에 인간적이라 해서 그것을 얕잡아보지 말아야 하느니라. 너희 형제들 다수가 하느님의 현존을 영적으로 실감하지 못하면서 하느님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느니라.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순수한 어린이의 태도로 하늘나라를 가장 잘 실감할 수 있다고, 내가 그토록 자주 너희를 가르친 이유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권하는 것은, 어린이의 정신적 미숙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쉽게-믿고 완전히-신뢰하는 어린이의 영적 단순성이니라. 너희가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능력이 점차 자라야 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사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그토록 중요하지 않도다.

155:6.13 (1733.1) When you once begin to find God in your soul, presently you will begin to discover him in other men’s souls and eventually in all the creatures and creations of a mighty universe. But what chance does the Father have to appear as a God of supreme loyalties and divine ideals in the souls of men who give little or no time to the thoughtful contemplation of such eternal realities? While the mind is not the seat of the spiritual nature, it is indeed the gateway thereto. 너희가 일단 너희 혼(魂)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 시작하면, 즉시 너희는 다른 사람들의 혼(魂)에서, 또한 결국 막강한 우주의 모든 피조물과 창조계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 시작할 것이라. 그러나 그런 영원한 실체들의 주의 깊은 심사숙고에 거의 또는 전혀 시간이 없는 사람들의 혼(魂) 안에, 아버지가 최상의 충성과 신적 이상(理想)으로, 나타날 무슨 가망이 있겠느냐? 마음은 영적 본성의 자리가 아니지만, 실로 그에 이르는 통로이니라.

155:6.14 (1733.2) But do not make the mistake of trying to prove to other men that you have found God; you cannot consciously produce such valid proof, albeit there are two positive and powerful demonstrations of the fact that you are God-knowing, and they are: 그러니 너희가 하느님을 찾았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입증하려고 실수하지 말라. 너희는 의식적으로 그렇게 근거가 확실한 증거를 만들 수 없지만, 너희가 하느님을-안다는 사실을 확실히 효과적으로 증명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다음과 같으니라.

155:6.15 (1733.3) 1. The fruits of the spirit of God showing forth in your daily routine life. 너희 일상생활에 나타나는 하느님 영(靈)의 열매들.

155:6.16 (1733.4) 2. The fact that your entire life plan furnishes positive proof that you have unreservedly risked everything you are and have on the adventure of survival after death in the pursuit of the hope of finding the God of eternity, whose presence you have foretasted in time. 너희가 시간 안에서 미리 맛본 하느님의 현존, 영원의 하느님을 발견하는 희망을 찾아 사후(死後) 생존의 모험에, 기탄없이 자신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무릅썼던 확실한 증거를 너희 전체 인생 계획이 제공한다는 사실.

155:6.17 (1733.5) Now, mistake not, my Father will ever respond to the faintest flicker of faith. He takes note of the physical and superstitious emotions of the primitive man. And with those honest but fearful souls whose faith is so weak that it amounts to little more than an intellectual conformity to a passive attitude of assent to religions of authority, the Father is ever alert to honor and foster even all such feeble attempts to reach out for him. But you who have been called out of darkness into the light are expected to believe with a whole heart; your faith shall dominate the combined attitudes of body, mind, and spirit. 이제 실수하지 말라. 내 아버지는 가장 연약한 신앙의 깜박임에도 언제나 응답하시느니라. 그는 원시인의 육체적이며 미신적인 감정들도 알아보시느니라. 그리고 신앙이 너무 약해서 권위종교에 동의하는 수동적 태도에 대한 지적 순응에 불과한, 그렇게 정직하지만 두려워하는 혼(魂)들과 함께, 아버지께 손을 내밀려는 그런 모든 연약한 시도들도, 그는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 존중하고 마음에 품으시느니라. 그러나 어둠에서 빛으로 끌어낸 너희들은 전심으로 믿어야 하느니라. 너희 신앙이 몸, 마음 및 영의 합한 태도를 다스릴 것이라.

155:6.18 (1733.6) You are my apostles, and to you religion shall not become a theologic shelter to which you may flee in fear of facing the rugged realities of spiritual progress and idealistic adventure; but rather shall your religion become the fact of real experience which testifies that God has found you, idealized, ennobled, and spiritualized you, and that you have enlisted in the eternal adventure of finding the God who has thus found and sonshipped you. 너희는 내 사도들이며, 너희에게 종교는 영적 진보와 이상적인 모험의 거친 실체들을 똑바로 보기 두려워서 도망하는 신학적 피난처가 되지 말아야 하리라. 그러나 오히려 너희 종교는, 하느님이 너희를 발견하고, 이상화하며, 품위 있게 하고, 영화(靈化)했으며, 그렇게 너희를 발견하여 자녀로 삼은 하느님을 찾는 영원한 모험에 너희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입증하는 실제 체험의 사실이 되어야 할 것이니라.

155:6.19 (1733.7) And when Jesus had finished speaking, he beckoned to Andrew and, pointing to the west toward Phoenicia, said: “Let us be on our way.”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자, 안드레를 불러, 페니키아를 향해 서쪽을 가리키며, “우리 길을 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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