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39 The Twelve Apostles 개요139편 12 사도들
139:0.2 (1548.2) These twelve men represented many different types of human temperament. 이 12명의 사람은 다양한 인간 기질(氣質)들을 대표했습니다. 139:0.3 (1548.3) All of them, except the Alpheus twins, were graduates of the synagogue schools, having been thoroughly trained in the Hebrew scriptures and in much of the current knowledge of that day. Seven were graduates of the Capernaum synagogue schools, and there were no better Jewish schools in all Galilee. 알페오의 쌍둥이를 제외하고, 그들은 모두 회당 학교의 졸업생들이었으며, 히브리 성서와 그 당시 통용되는 많은 지식으로 철저히 훈련을 받았습니다. 7명은 가버나움 회당 학교들의 졸업생들이었고, 모든 갈릴리에서 더 좋은 유대인 학교는 없었습니다. 139:0.4 (1548.4) They had not all been put through the same rigid and stereotyped educational curriculum. 그들은 똑같이 경직되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교육과정을 모두 밟지 않았습니다.
- Andrew, the First Chosen 첫 번째로 선택된 안드레
139:1.1 (1548.5) Andrew, chairman of the apostolic corps of the kingdom, was born in Capernaum. When he became an apostle, Andrew was unmarried but made his home with his married brother, Simon Peter. Both were fishermen and partners of James and John the sons of Zebedee. 하느님 나라의 사도단장, 안드레는 가버나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사도가 되었을 때, 안드레는 미혼이었지만, 기혼 남동생 시몬 베드로의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둘 다 어부였고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동업자들이었습니다. 139:1.2 (1548.6) In A.D. 26, the year he was chosen as an apostle, Andrew was 33, a full year older than Jesus and the oldest of the apostles. He sprang from an excellent line of ancestors and was the ablest man of the twelve. Excepting oratory, he was the peer of his associates in almost every imaginable ability. 그가 사도로 선택된 서기 26년에, 안드레는 예수님 보다 만 1살이 많은 33세로 사도 중 연장자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가계의 조상을 둔 출신으로 12사도들 중에서 가장 유능했습니다. 웅변을 제외하고, 그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능력에 있어서 동료들과 대등했습니다. 139:1.3 (1549.1) Andrew was a good organizer but a better administrator. To the very end Andrew remained dean of the apostolic corps. 안드레는 유능한 조직가였지만, 오히려 더 훌륭한 행정–관리자였습니다. 바로 마지막까지 안드레는 사도단장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139:1.4 (1549.2) Andrew was the chief supporter of Jesus’ policy. 안드레는 예수님의 정책을 받드는 1등 옹호자였습니다.
139:1.5 (1549.3) Andrew was usually conversant with what was going on; he was an understanding executive and an efficient administrator. He rendered a prompt decision on every matter brought to his notice unless he deemed the problem one beyond the domain of his authority, in which event he would take it straight to Jesus. 안드레는 대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해하는 집행자였고 실력 있는 행정–관리자였습니다. 그는 눈에 띠는 모든 문제를 신속히 처리했고, 그의 권한 영역을 넘어선 문제로 판단되면 그 사건을 즉시 예수님께로 가져갔습니다. 139:1.6 (1549.4) Andrew and Peter never seemed to be in the least jealous of each other’s abilities or achievements. 안드레와 베드로는, 각자의 능력이나 업적에 대해 서로 조금이라도 질투하는 것처럼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139:1.8 (1549.6) Of all the apostles, Andrew was the best judge of men. Andrew had a great gift for discovering the hidden resources and latent talents of young people. 모든 사도 중 안드레가 사람들을 가장 잘 판단하였습니다. 안드레는 젊은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는 자원과 잠재적인 재능을 발견하는 탁월한 은사(恩賜)가 있었습니다.
139:1.9 (1549.7) Very soon after Jesus’ ascension on high, Andrew began the writing of a personal record of many of the sayings and doings of his departed Master. After Andrew’s death other copies of this private record were made and circulated freely among the early teachers of the Christian church. These informal notes of Andrew’s were subsequently edited, amended, altered, and added to until they made up a fairly consecutive narrative of the Master’s life on earth. The last of these few altered and amended copies was destroyed by fire at Alexandria about one hundred years after the original was written by the first chosen of the twelve apostles. 예수님의 상승 이후 곧바로, 안드레는 떠나가신 주(主)님의 많은 말씀들과 행적들의 개인적 기록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드레의 사후(死後) 이 사적(私的) 기록의 다른 사본들이 만들어져, 기독교회의 초기 선생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회람(回覽)되었습니다. 안드레의 이러한 비공식적 노트들은, 기독교회의 초기 선생들이 주(主)님의 지상 생애를 상당히 일관된 이야기로 만들 때까지, 안드레의 기록 이후에 편집되어, 수정되고, 변경되어, 첨부되었습니다. 변경되고 수정된 마지막 몇 개의 이 사본들은, 12 사도들 중의 첫째로 선택된 사도가 원본을 기록한 지 약 100년이 지나 알렉산드리아에서 불에 타 버렸습니다.
139:1.10 (1550.1) Andrew was a man of clear insight, logical thought, and firm decision, whose great strength of character consisted in his superb stability. Andrew was one of those all-round, even-tempered, self-made, and successful men of modest affairs. 안드레는 명석한 통찰력, 논리적 사고, 확고한 판단력을 지닌 사람으로, 그의 성품 중 큰 장점은 뛰어난 안정감이었습니다. 안드레는 다재다능하고, 침착하며, 자립적이고, 그만그만한 과업에 성공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139:1.11 (1550.2) Andrew admired Jesus because of his consistent sincerity, his unaffected dignity. 안드레는 예수님의 일관된 성실함과 꾸밈없는 기품 때문에 예수님을 사모했습니다. 139:1.12 (1550.3) When the later persecutions finally scattered the apostles from Jerusalem, Andrew journeyed through Armenia, Asia Minor, and Macedonia and, after bringing many thousands into the kingdom, was finally apprehended and crucified in Patrae in Achaia. It was two full days before this robust man expired on the cross, and throughout these tragic hours he continued effectively to proclaim the glad tidings of the salvation of the kingdom of heaven. 나중에 박해로 결국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졌을 때, 안드레는 아르메니아, 소아시아, 마케도니아를 지나 여행하였고, 수천 명을 나라로 인도한 후, 결국 아카이아의 파트라이에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 건장한 사람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만 이틀이 걸렸는데, 이러한 비극적인 시간들 내내 그는 하늘나라 구원의 기쁜 소식을 계속 효과적으로 선포했습니다.
- Simon Peter 시몬 베드로
139:2.1 (1550.4) When Simon joined the apostles, he was thirty years of age. He was married, had three children, and lived at Bethsaida, near Capernaum. His brother, Andrew, and his wife’s mother lived with him. 시몬이 사도들에 합류했을 때, 그는 30세였습니다. 그는 결혼해서 세 자녀가 있었고, 가버나움 인근 벳새다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형 안드레와 장모가 그와 함께 살았습니다.
139:2.3 (1550.6) Simon Peter had grown up permitting himself freely to indulge strong feelings; he was constantly getting into difficulties because he persisted in speaking without thinking. This sort of thoughtlessness also made incessant trouble for all of his friends and associates. 시몬 베드로는 격한 감정에 자유롭게 탐닉하도록 스스로 허용하며 자랐습니다. 그는 생각 없이 말하기를 고집했기 때문에, 항상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런 식의 그의 경솔함은 또한 그의 친구들이나 동료들 모두에게 끊임없는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139:2.4 (1550.7) Peter was a fluent speaker, eloquent and dramatic. He was also a natural and inspirational leader of men, a quick thinker but not a deep reasoner. He was a man of quick decision and sudden action. 베드로는 극적인 능변의 유창한 연사(演士)였습니다. 그는 또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타고난 지도자로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었지만, 심오한 추론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빨리 결정하고 급히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39:2.5 (1551.1) The one trait which Peter most admired in Jesus was his supernal tenderness. Peter never grew weary of contemplating Jesus’ forbearance. 베드로가 가장 경탄한 예수님의 한 가지 특성은 더할 수 없는 다정함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관용을 깊이 생각하면서 싫증난 적이 없었습니다.
139:2.6 (1551.2) He was one of the most inexplicable combinations of courage and cowardice that ever lived on earth. His great strength of character was loyalty, friendship. Peter could withstand persecution and any other form of direct assault, but he withered and shrank before ridicule. 그는 그때까지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 용기와 비겁함이 가장 희한하게 섞인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의 성품 중 큰 장점은 충성과 우정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박해나 다른 형태의 직접적인 모욕은 잘 견디었지만, 조롱 앞에서는 의기소침으로 위축되었습니다. 139:2.7 (1551.3) Peter was the first of Jesus’ apostles to come forward to defend the work of Philip among the Samaritans and Paul among the gentiles; yet later on at Antioch he reversed himself when confronted by ridiculing Judaizers, temporarily withdrawing from the gentiles only to bring down upon his head the fearless denunciation of Paul. 베드로는, 빌립의 사마리아인들 과업과 바울의 이방인들 과업에 대하여, 예수님의 사도 중 가장 먼저 앞장서서 변호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안디옥에서, 조롱하는 유대주의자들과 마주쳤을 때, 그는 자기 입장을 뒤집어, 잠시 이방인으로부터 물러나, 바울의 두려움이 없는 비난에 고개를 떨 꿀 뿐이었습니다.
139:2.8 (1551.4) He was the first one of the apostles to make wholehearted confession of Jesus’ combined humanity and divinity and the first — save Judas — to deny him. 그는 사도 중 예수님의 통합된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전심으로 고백했고, 유다를 제외하고 예수를 부인한 첫 사도였습니다. 139:2.9 (1551.5) But he was the outstanding preacher of the twelve; he did more than any other one man, aside from Paul, to establish the kingdom and send its messengers to the four corners of the earth in one generation. 그러나 그는 12명 중 탁월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바울을 제외하고, 한 세대에, 나라를 세우고, 지구의 전 지역에 메신저들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보냈습니다.
139:2.10 (1551.6) After his rash denials of the Master he found himself, and with Andrew’s sympathetic and understanding guidance he again led the way back to the fish nets while the apostles tarried to find out what was to happen after the crucifixion. When he was fully assured that Jesus had forgiven him and knew he had been received back into the Master’s fold, the fires of the kingdom burned so brightly within his soul that he became a great and saving light to thousands who sat in darkness. 주(主)님을 경솔히 부인한 후, 그는 자신을 발견했으며, 안드레의 공감하며 분별 있는 안내와 함께, 사도들이 십자가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기다리며 찾는 동안, 그는 다시 고기잡이 그물로 돌아가는 길로 앞장섰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기를 용서하셨음을 충분히 확신하고, 자신이 주(主)님의 신도로 복귀하여 수용되었음을 알았을 때, 나라의 불빛이 그의 혼 안에서 아주 밝게 타올라서 어둠에 앉아 있던 수천 명에게 위대한 구원의 빛이 되었습니다.
139:2.11 (1551.7) After leaving Jerusalem and before Paul became the leading spirit among the gentile Christian churches, Peter traveled extensively, visiting all the churches from Babylon to Corinth. He even visited and ministered to many of the churches which had been raised up by Paul. Although Peter and Paul differed much in temperament and education, even in theology, they worked together harmoniously for the upbuilding of the churches during their later years. 예루살렘을 떠난 뒤, 바울이 이방의 기독교회들을 이끄는 인물이 되기 전에, 베드로는 바빌론에서 고린도까지 모든 교회들을 방문하며 널리 여행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세운 많은 교회들까지도 방문하고 섬겼습니다. 비록 베드로와 바울은, 기질과 교육, 그리고 신학도 많이 달랐지만, 그들은 후년에 교회를 설립하는 일에 어울려 함께 일했습니다. 139:2.12 (1552.1) Something of Peter’s style and teaching is shown in the sermons partially recorded by Luke and in the Gospel of Mark. His vigorous style was better shown in his letter known as the First Epistle of Peter; at least this was true before it was subsequently altered by a disciple of Paul. 베드로의 스타일과 교훈의 일부는 누가가 부분적으로 기록한 설교와 마가복음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강력한 스타일은 베드로 전서로 알려진 그의 서신에 잘 나타나 있는데, 나중에 바울의 제자가 (베드로전서)를 변경하기 전까지 이것이 사실이었습니다. 139:2.13 (1552.2) But Peter persisted in making the mistake of trying to convince the Jews that Jesus was, after all, really and truly the Jewish Messiah. Right up to the day of his death, Simon Peter continued to suffer confusion in his mind between the concepts of Jesus as the Jewish Messiah, Christ as the world’s redeemer, and the Son of Man as the revelation of God, the loving Father of all mankind.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께서 결국 실제로 진정한 유대인의 메시아였다고 유대인들에게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잘못을 고집했습니다. 바로 죽는 그 날까지, 시몬 베드로의 마음은, 예수가 유대인의 메시아,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속(救贖)자라는 개념과 사람의 아들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시라는 개념 사이에서 계속 혼란을 겪었습니다.
139:2.14 (1552.3) Peter’s wife was a very able woman. For years she labored acceptably as a member of the women’s corps, and when Peter was driven out of Jerusalem, she accompanied him upon all his journeys to the churches as well as on all his missionary excursions. And the day her illustrious husband yielded up his life, she was thrown to the wild beasts in the arena at Rome. 베드로의 아내는 매우 유능한 여인이었습니다. 여러 해 그녀는 여인들 분대(여전도회)의 일원으로 기쁘게 수고했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자, 그녀는 그의 모든 선교여행 뿐 아니라 모든 교회로 가는 여행에 그와 동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명한 자기 남편이 죽는 날, 그녀는 로마의 투기장에서 사나운 짐승들에게 던져졌습니다. 139:2.15 (1552.4) And so this man Peter, an intimate of Jesus, one of the inner circle, went forth from Jerusalem proclaiming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with power and glory until the fullness of his ministry had been accomplished; and he regarded himself as the recipient of high honors when his captors informed him that he must die as his Master had died — on the cross. And thus was Simon Peter crucified in Rome.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과 친밀한, 내부자 중 하나였던, 이 사람 베드로는 그의 사역을 충만히 완수하기까지, 권능과 영광으로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그를 체포한 자가, 베드로가 그의 주(主)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 죽어야만 한다고 알려주자, 자신을 높은 명예를 받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몬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 James Zebedee 야고보 세베대
139:3.1 (1552.5) James, the older of the two apostle sons of Zebedee, whom Jesus nicknamed “sons of thunder,”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came an apostle. 예수께서 세베대의 두 아들인 사도들을 “우뢰(雨雷)의 아들들”이라고 별명을 붙였는데 둘 중에 형 야고보는 사도가 되었을 때 30세였습니다. 139:3.2 (1552.6) This able apostle was a temperamental contradiction; he seemed really to possess two natures, both of which were actuated by strong feelings. 이 유능한 사도는 기질적인 모순 덩어리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두 본성을 가진 듯했으며, 그 두 본성은 격한 감정으로 발동했습니다. 139:3.3 (1552.7) Though James was in no sense moody, he could be quiet and taciturn one day and a very good talker and storyteller the next. 야고보는 감각적으로 조금도 변덕스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조용하고 말이 없다가, 다음 날에는 뛰어난 좌담(座談)의 명수이며 이야기꾼이 되었습니다.
139:3.4 (1552.8) The outstanding feature of James’s personality was his ability to see all sides of a proposition. Of all the twelve, he came the nearest to grasping the real import and significance of Jesus’ teaching. 야고보의 고유성 중 눈에 띄는 점은 문제의 모든 면을 볼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모든 12명 중에서, 그는 예수 가르침의 참 의미와 중요성을 가장 가깝게 파악했습니다. 139:3.5 (1553.1) Though James and John had their troubles trying to work together, it was inspiring to observe how well they got along. 야고보와 요한은 함께 일하려고 애쓰면서 고생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서로 잘 지내는지, 지켜보면 감동을 일으킵니다. 139:3.6 (1553.2) That characteristic of Jesus which James most admired was the Master’s sympathetic affection. Jesus’ understanding interest in the small and the great, the rich and the poor, made a great appeal to him. 야고보가 가장 감탄한 예수님의 성품은 주(主)님의 공감적 애정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작은 자와 위대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를 이해하는 관심이 그에게 가장 큰 매력을 주었습니다.139:3.7 (1553.3) James Zebedee was a well-balanced thinker and planner. 야고보 세베대는 잘 균형 잡힌 사색가이며 입안자였습니다. 139:3.8 (1553.4) He was modest and undramatic, a daily server, an unpretentious worker, seeking no special reward when he once grasped something of the real meaning of the kingdom. 그는 점잖아서 요란스럽지 않았으며, 매일 충실히 섬기며, 허세부리지 않는 일꾼으로서, 일단 나라의 참 의미의 실제를 파악하자 그이상 특별한 보상을 찾지 않았습니다.
139:3.9 (1553.5) James lived his life to the full, and when the end came, he bore himself with such grace and fortitude that even his accuser and informer, who attended his trial and execution, was so touched that he rushed away from the scene of James’s death to join himself to the disciples of Jesus. 야고보는 그의 일생을 충만히 살았으며, 종말이 오자, 그는 그토록 은혜롭게 불굴의 용기로 견디어서, 재판과 집행에 참석했던 고소인과 밀고자까지 감명을 받아, 야고보의 처형장에서 뛰쳐나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합류하였습니다.
- John Zebedee 요한 세베대
139:4.1 (1553.6) When he became an apostle, John was twenty-four years old and was the youngest of the twelve. 사도가 되었을 때, 요한은 24세였고, 12명 중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 139:4.2 (1553.7) Since John was the youngest of the twelve and so closely associated with Jesus in his family affairs, he was very dear to the Master, but it cannot be truthfully said that he was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요한은 12 중 가장 어렸고, 가족 업무로 예수님과 친밀히 관련되어, 주(主)님께 매우 소중했지만, “예수께서 사랑한 그 제자”라고 정말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139:4.3 (1554.1) Peter, James, and John were assigned as personal aides to Jesus soon after they became apostles.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사도가 된 직후 예수님의 개인 비서들로 배치되었습니다.
139:4.4 (1554.2) John Zebedee had many lovely traits of character, but one which was not so lovely was his inordinate but usually well-concealed conceit. 요한 세베대는 성품 중 사랑스러운 특성이 많았지만, 그리 사랑스럽지 않았던 한 가지는 과도하지만 잘 감춰진 자만(自慢 자기 과대 평가)이었습니다. 139:4.5 (1554.3) The strongest trait in John’s character was his dependability. 요한의 성품 중 가장 강한 특성은 그의 신뢰성이었습니다. 139:4.6 (1554.4) Those characteristics of Jesus which John most appreciated were the Master’s love and unselfishness. 요한이 가장 높이 평가한 예수님의 특징들은, 주(主)님의 사랑과 이기심 없는 태도였습니다.
139:4.7 (1554.5) John was a man of few words except when his temper was aroused. 요한은 성질이 격해진 때를 제외하면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139:4.8 (1555.1) There was another side to John that one would not expect to find in this quiet and introspective type. He was somewhat bigoted and inordinately intolerant. 요한에게는 이 조용하고 내성적 유형에서 기대할 수 없는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소 고집이 세고 지나치게 편협했습니다. 139:4.9 (1555.2) John’s life was tremendously influenced by the sight of Jesus’ going about without a home as he knew how faithfully he had made provision for the care of his mother and family. 요한의 일생은, 예수께서 얼마나 성실히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대비하셨는지 알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집 없이 지내는 모습에서 엄청나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139:4.10 (1555.3) John had a cool and daring courage which few of the other apostles possessed. 요한은 다른 사도들이 거의 갖지 못한, 침착하며 대담한 용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139:4.11 (1555.4) This son of Zebedee was very closely associated with Peter in the early activities of the Christian movement, becoming one of the chief supporters of the Jerusalem church. 이 세베대의 아들은 기독 운동의 초기 활동에서 베드로와 아주 밀접히 관련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 지지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139:4.12 (1555.5) Several years after the martyrdom of James, John married his brother’s widow. The last twenty years of his life he was cared for by a loving granddaughter. 야고보의 순교 몇 년 후, 요한은 형의 과부와 결혼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20년은 사랑스러운 손녀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139:4.13 (1555.6) John was in prison several times and was banished to the Isle of Patmos for a period of four years until another emperor came to power in Rome. 요한은 여러 번 투옥되었고, 다른 황제가 로마에서 권력을 잡기까지 4년 동안 팟모섬에 추방되었습니다. 139:4.14 (1555.7) When in temporary exile on Patmos, John wrote the Book of Revelation, which you now have in greatly abridged and distorted form. This Book of Revelation contains the surviving fragments of a great revelation, large portions of which were lost, other portions of which were removed, subsequent to John’s writing. It is preserved in only fragmentary and adulterated form. 팟모섬에 잠시 유배되었을 때, 요한은 계시록을 썼는데, 너희가 지금 갖고 있는 계시록은 크게 단축되고 왜곡된 형태입니다. 이 계시록은 큰 계시 중 남은 단편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요한이 기록한 이후에, 커다란 부분들은 소실되었고, 다른 부분들은 제거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단편적이고 불순물이 섞여 오염된 형태로 보존되었습니다.
139:4.15 (1555.8) John traveled much, labored incessantly, and after becoming bishop of the Asia churches, settled down at Ephesus. He directed his associate, Nathan, in the writing of the so-called “Gospel according to John,” at Ephesus, when he was ninety-nine years old. Of all the twelve apostles, John Zebedee eventually became the outstanding theologian. He died a natural death at Ephesus in A.D. 103 when he was one hundred and one years of age. 요한은 많이 여행하고, 쉼 없이 수고했으며, 아시아 교회들의 감독이 된 후 에베소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99세에 에베소에서 자기 동료 나단에게 소위 “요한에 의한 복음”을 쓰도록 지시했습니다. 12 사도 중에서 요한 세베대는 결국 탁월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AD 103년 에베소에서 101세의 나이로 자연사했습니다.
- Philip the Curious 호기심 많은 빌립
139:5.1 (1556.1) Philip was the fifth apostle to be chosen, being called when Jesus and his first four apostles were on their way from John’s rendezvous on the Jordan to Cana of Galilee. 빌립은 다섯 번째 사도로 선택되었는데, 그는 예수님과 첫 네 사도가 요단에서 요한을 만나고 갈릴리의 가나로 가는 도중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139:5.2 (1556.2) Philip was twenty-seven years of age when he joined the apostles; he had recently been married, but he had no children at this time. 빌립이 27세에 사도로 참여했습니다. 그는 최근에 결혼했으며, 이때 아이는 없었습니다.
139:5.3 (1556.3) When the apostles were organized for service, Philip was made steward; it was his duty to see that they were at all times supplied with provisions. 사도들이 봉사하려고 편성할 때, 빌립은 사무장(事務長)이 되었는데, 그들에게 양식이 항상 공급되도록 살피는 것이 그의 의무였습니다. 139:5.4 (1556.4) Philip came from a family of seven, three boys and four girls. He was next to the oldest, and after the resurrection he baptized his entire family into the kingdom. 빌립은 3소년과 4소녀 즉 일곱 (자녀)가 있는 가족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둘째였는데, 부활 후, 온 가족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세례를 주었습니다. 139:5.5 (1556.5) The strong point about Philip was his methodical reliability; the weak point in his make-up was his utter lack of imagination, the absence of the ability to put two and two together to obtain four. 빌립의 강점은 그의 질서정연한 확실성이었고, 기질적 약점은 전적으로 상상력이 부족해서, 둘에 둘을 더해 넷을 얻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139:5.6 (1556.6) The one quality about Jesus which Philip so continuously admired was the Master’s unfailing generosity. 빌립이 계속 경탄했던 예수님에 관한 한 가지의 특질은 주(主)님의 끊임없는 관대함이었습니다. 139:5.7 (1557.1) There was little about Philip’s personality that was impressive. He was often spoken of as “Philip of Bethsaida, the town where Andrew and Peter live.” 빌립의 고유성에는 인상적인 점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안드레와 베드로가 사는 성읍 벳새다의 빌립”으로 흔히 불렸습니다. 139:5.8 (1557.2) The apostolic steward was not a good public speaker, but he was a very persuasive and successful personal worker. 사도 사무장은 훌륭한 대중 연설가는 아니었지만, 매우 설득력 있고 성공적인 개인적 일꾼이었습니다.
139:5.9 (1557.3) The inability of Philip to adapt himself to a new situation was well shown when the Greeks came to him at Jerusalem, saying: “Sir, we desire to see Jesus.”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빌립의 무능력은 예루살렘에서 그리스인들이 그에게 와서: “선생님, 우리는 예수님을 뵙고자 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잘 나타났습니다. 139:5.10 (1557.4) Philip went on through the trying times of the Master’s death, participated in the reorganization of the twelve, and was the first to go forth to win souls for the kingdom outside of the immediate Jewish ranks, being most successful in his work for the Samaritans and in all his subsequent labors in behalf of the gospel. 빌립은 주(主)께서 죽는 견딜 수 없는 시간을 계속 겪었는데, 12사도의 재조직에 참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혼(사람)들을 얻으려고 직계 유대인 계층 밖으로 제일 먼저 나아갔으며, 사마리아인들을 위한 그의 일과 복음을 위한 훗날의 모든 수고에서 가장 성공했습니다.
139:5.11 (1557.5) Philip’s wife, who was an efficient member of the women’s corps, became actively associated with her husband in his evangelistic work after their flight from the Jerusalem persecutions. 빌립의 아내는 여성 대원 중 유능한 회원으로, 예루살렘 박해를 피한 후 남편의 전도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139:5.12 (1558.1) Philip, the onetime steward of the twelve, was a mighty man in the kingdom, winning souls wherever he went; and he was finally crucified for his faith and buried at Hierapolis. 한때 12사도의 사무장 빌립은 (하느님) 나라에서 막강한 사람으로 가는 곳마다 혼들을 얻었습니다. 결국 그는 신앙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고 히에라폴리스에 묻혔습니다.
- Honest Nathaniel 정직한 나다니엘
139:6.1 (1558.2) Nathaniel, the sixth and last of the apostles to be chosen by the Master himself, was brought to Jesus by his friend Philip. 나다니엘은 주(主)님께서 6번째로 직접 선택한 사도로서, 친구 빌립이 그를 예수님께 안내했습니다. 139:6.2 (1558.3) When Nathaniel joined the apostles, he was twenty-five years old and was the next to the youngest of the group. He was the youngest of a family of seven, was unmarried, and the only support of aged and infirm parents, with whom he lived at Cana. 나다니엘이 사도로 참여했을 때, 그는 25세로 그룹에서 두 번째로 젊었습니다. 그는 일곱 명 가족 중 막내로 미혼(未婚)이었으며, 가나에서 함께 사는 연세 들고 허약한 부모의 유일한 부양자였습니다.
139:6.3 (1558.4) Jesus did not himself give Nathaniel a nickname, but the twelve soon began to speak of him in terms that signified honesty, sincerity. He was “without guile.” And this was his great virtue; he was both honest and sincere. The weakness of his character was his pride. 예수께서 직접 나다니엘에게 별명을 주지 않으셨지만, 12 사도들은 곧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의미의 용어로 그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간사(奸詐)가 없는” 사람으로 이것이 그의 큰 장점이었는데, 그는 정직하면서 성실했습니다. 그의 성품 중에서 단점은 (강한) 자부심이었습니다. 139:6.4 (1558.5) In many respects Nathaniel was the odd genius of the twelve. He was the apostolic philosopher and dreamer, but he was a very practical sort of dreamer. He alternated between seasons of profound philosophy and periods of rare and droll humor. 여러 면에서 나다니엘은 12 중 이상야릇한 천재였습니다. 그는 사도 철학자이며 몽상가였지만, 매우 실천적인 몽상가였습니다. 그는 한동안 심오한 철학에 빠져 있다가 얼마간 희한하게 익살스런 분위기 사이를 오락가락했습니다.
139:6.5 (1558.6) The apostles all loved and respected Nathaniel, and he got along with them splendidly, excepting Judas Iscariot. 사도들 모두 나다니엘을 사랑하고 존중했으며, 그는 유다 가룟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지냈습니다. 139:6.6 (1559.1) Many times, when Jesus was away on the mountain with Peter, James, and John, and things were becoming tense and tangled among the apostles, when even Andrew was in doubt about what to say to his disconsolate brethren, Nathaniel would relieve the tension by a bit of philosophy or a flash of humor; good humor, too.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과 함께 산으로 멀리 떠나계실 때, 사도들 사이에서 일들이 긴박히 엉켰을 때, 그리고 안드레까지 우울한 형제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할 때, 여러 번, 나다니엘이 약간의 철학이나 혹은 번쩍이는 유머로, 그것도 기분 좋게, 긴장을 풀어주곤 했습니다.
139:6.7 (1559.2) Nathaniel’s duty was to look after the families of the twelve. 나다니엘의 임무는 12사도들의 가족들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139:6.8 (1559.3) Nathaniel most revered Jesus for his tolerance. 나다니엘은 예수님의 포용력 때문에 그를 가장 존경했습니다. 139:6.9 (1559.4) Nathaniel’s father (Bartholomew) died shortly after Pentecost, after which this apostle went into Mesopotamia and India proclaiming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and baptizing believers. He also was a great man in the kingdom and did much to spread his Master’s teachings, even though he did not participate in the organization of the subsequent Christian church. Nathaniel died in India. 나다니엘의 아버지(바돌로메)가 오순절 직후에 별세한 후, 이 사도는 메소포타미아와 인도로 가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하느님) 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이었으며, 그는 나중에 기독교회의 조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주(主)님의 가르침을 멀리 펼치며 많이 일했습니다. 나다니엘은 인도에서 별세했습니다.
- Matthew Levi 마태 레위
139:7.1 (1559.5) Matthew, the seventh apostle, was chosen by Andrew. 마태는 일곱 번째 사도로 안드레가 선택했습니다. 139:7.2 (1559.6) Andrew appointed Matthew the financial representative of the apostles. 안드레는 마태를 사도들의 재정 대표로 임명했습니다. 139:7.3 (1559.7) Levi’s strong point was his wholehearted devotion to the cause. 레위의 강점은 (하느님 나라) 운동에 전심(全心)으로 헌신한 점이었습니다.
139:7.4 (1559.8) It was the Master’s forgiving disposition which Matthew most appreciated. 마태가 가장 감사히 여긴 것은 주(主)님의 용서하는 성향이었습니다. 139:7.5 (1560.1) Though Matthew was a man with a past, he gave an excellent account of himself, and as time went on, his associates became proud of the publican’s performances. 마태는 과거를 지닌 사람이었지만, 너무 훌륭하게 처신했으며, 시간이 지나자, 동료들은 세리의 성과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139:7.6 (1560.2) The great and useful life of Matthew, the business man and customs collector of Capernaum, has been the means of leading thousands upon thousands of other business men, public officials, and politicians, down through the subsequent ages, also to hear that engaging voice of the Master saying, “Follow me.” 사업가이며 가버나움의 세관 징수원이었던, 마태의 위대하고 훌륭한 일생은, 수천 명의 다른 사업가들, 공무원들, 정치가들도, 다음 세대 내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주(主)님의 매력적인 음성을 듣도록 인도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139:7.7 (1560.3) The presence of Matthew among the twelve was the means of keeping the doors of the kingdom wide open to hosts of downhearted and outcast souls who had regarded themselves as long since without the bounds of religious consolation. 12사도 중에 있었던 마태의 존재는, 오래 전부터 자신들이 종교적 위안의 경계선 밖에 있다고 여겨왔던 낙담하고 버림받은 수많은 혼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139:7.8 (1560.4) Matthew received freely tendered offerings from believing disciples and the immediate auditors of the Master’s teachings, but he never openly solicited funds from the multitudes. 마태는 믿는 제자들과 주(主)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내는 헌금을 받았지만, 결코 공개적으로 군중들에게 기금을 간청하지 않았습니다. 139:7.9 (1560.5) When the funds for the week were short of the estimated requirements, Levi would often draw heavily upon his own personal resources. The apostles all died without knowing that Matthew was their benefactor to such an extent that, when he went forth to proclaim the gospel of the kingdom after the beginning of the persecutions, he was practically penniless. 한 주간의 기금이 예산보다 부족하면, 레위는 자주 자기 개인 재산에서 돈을 많이 찾아 쓰곤 하였습니다. 박해가 시작된 후 마태가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나갔을 때, 그는 사실상 무일푼이었을 정도로, 마태가 그들의 후원자였음을 사도들은 모두 죽을 때까지 몰랐습니다.
139:7.10 (1560.6) When these persecutions caused the believers to forsake Jerusalem, Matthew journeyed north,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baptizing believers. This regenerated publican died triumphant in the faith of a salvation he had so surely learned from the teachings of the Master during his recent sojourn on earth. 이 박해들로 신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자, 마태는 북쪽으로 여행하면서, 나라의 복음을 설교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새 사람이 된 이 세리는, 최근에 지상에 머무시던 주(主)님의 가르침에서 확실히 배웠던 구원의 신앙으로 승리를 거두며 죽었습니다.
- Thomas Didymus 도마 디디머스
139:8.1 (1561.1) Thomas was the eighth apostle, and he was chosen by Philip. 도마는 여덟 번째 사도로, 빌립이 선택했습니다. 139:8.2 (1561.2) When Thomas joined the apostles, he was twenty-nine years old, was married, and had four children. 도마가 사도들과 합류할 때, 그는 29세로, 결혼해서 4자녀가 있었습니다. 139:8.3 (1561.3) The early home life of Thomas had been unfortunate. 도마의 초기 가정생활은 불행했습니다. 139:8.4 (1561.4) Thomas’s great strength was his superb analytical mind coupled with his unflinching courage — when he had once made up his mind. 도마의 큰 장점은, 그가 일단 마음을 정하면, 뛰어난 분석적 마음에 굽힐 줄 모르는 용기가 결부된 것이었습니다.
139:8.5 (1561.5) In the organization of the twelve Thomas was assigned to arrange and manage the itinerary, and he was an able director of the work and movements of the apostolic corps. 열둘의 조직에서 도마는 여행일정을 세우고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사도 대원들의 일과 움직임에 대한 유능한 관리자였습니다. 139:8.6 (1561.6) Jesus enjoyed Thomas very much and had many long, personal talks with him. 예수님은 도마와 매우 즐겁게 지내셨고 여러 번 길게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139:8.7 (1562.1) The other apostles held Jesus in reverence because of some special and outstanding trait of his replete personality, but Thomas revered his Master because of his superbly balanced character. 다른 사도들은 예수의 충만한 고유성이 지닌 어떤 특별하고 탁월한 특성 때문에 그를 존경했지만, 도마는 뛰어나게 균형 잡힌 성품 때문에 주님을 존경했습니다.
139:8.8 (1562.2) In the councils of the twelve Thomas was always cautious, advocating a policy of safety first, but if his conservatism was voted down or overruled, he was always the first fearlessly to move out in execution of the program decided upon. 12 사도 의회에서 도마는 언제나 신중했으며, 안전제일 정책을 주장했지만, 안전제일 주의가 부결되거나 취소되면, 결정된 계획의 실행에 그가 항상 제일 먼저 두려움 없이 나섰습니다. 139:8.9 (1562.3) Thomas was in some respects like Philip; he also wanted “to be shown,” but his outward expressions of doubt were based on entirely different intellectual operations. 도마는 어떤 면에서 빌립과 비슷했습니다. 그도 역시 “눈으로 보기”를 원했지만, 겉으로 표현된 그의 의심은 전혀 다른 지적 작용에 근거를 두었습니다.
139:8.10 (1562.4) Thomas had some very bad days. 도마는 상당히 매우 힘든 날들을 겪었습니다. 139:8.11 (1562.5) Sometimes Thomas would get permission from Andrew to go off by himself for a day or two. 종종 도마는 홀로 하루나 이틀 말없이 떠나도록 안드레에게 허락을 받곤 했습니다. 139:8.12 (1562.6) Thomas is the great example of a human being who has doubts, faces them, and wins. 도마는 의심을 품고, 그것들을 대면하고, 극복하는 인간의 위대한 모델입니다.
139:8.13 (1563.1) Thomas had a trying time during the days of the trial and crucifixion. He gave wise counsel to the apostles after Pentecost and, when persecution scattered the believers, went to Cyprus, Crete, the North African coast, and Sicily, preaching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and baptizing believers. And Thomas continued preaching and baptizing until he was apprehended by the agents of the Roman government and was put to death in Malta. Just a few weeks before his death he had begun the writing of the life and teachings of Jesus. 도마는 재판과 십자가 처형의 기간에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오순절 이후 사도들에게 현명하게 조언했으며, 박해로 신도들이 흩어지자, 그는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들을 설교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키프로스, 크레데, 북(北)아프리카 해안, 시실리로 갔습니다. 그리고 도마는 로마 정부의 관리들에게 체포되어 말타에서 죽기까지 계속 설교하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가 불과 죽기 몇 주 전에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들을 기록하기 시작했었습니다.
- and 10. James and Judas Alpheus 9-10. 야고보와 유다 알페오
139:10.1 (1563.2) James and Judas the sons of Alpheus, the twin fishermen living near Kheresa, were the ninth and tenth apostles and were chosen by James and John Zebedee. 알페오의 아들들, 야고보와 유다는 게라사 근처에 사는 쌍둥이 어부들로, 9번째와 10번째의 사도들이었고,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가 선택했습니다. 139:10.2 (1563.3) There is not much to be said about these two commonplace fisherfolk. 이들 두 평범한 어부들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139:10.3 (1563.4) Andrew assigned them to the work of policing the multitudes. 안드레는 그들에게 군중들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139:10.4 (1563.5) The multitudes of the common people were greatly encouraged to find two like themselves honored with places among the apostles. 일반인의 무리는 자신들과 같은 두 사람이 영예롭게 사도들 사이에 있음을 알고 크게 격려를 받았습니다. 139:10.5 (1563.6) James and Judas, who were also called Thaddeus and Lebbeus, had neither strong points nor weak points. 또한 다대오와 레비오로 불렸던 야고보와 유다는 장점도, 단점도 없었습니다. 139:10.6 (1563.7) James Alpheus especially loved Jesus because of the Master’s simplicity. 야고보 알페오는 주(主)님의 단순함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139:10.7 (1564.1) Judas Alpheus was drawn toward Jesus because of the Master’s unostentatious humility. 유다 알페오는 주(主)님의 허세 없는 겸손 때문에 예수님께 끌렸습니다.
139:10.8 (1564.2) The twins were good-natured, simple-minded helpers, and everybody loved them. 쌍둥이들은 착하고, 순진한 조수였으며, 모든 사람이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139:10.9 (1564.3) And how gratefully proud were these humble men on that day when the Master refused to accept a certain rich man as an evangelist unless he would sell his goods and help the poor. 어떤 부자(富者)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돕지 않는 한, 주님께서 전도자(傳道者)로 받아주기를 거절하신 그날, 이 겸손한 사람들은 얼마나 감사하며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139:10.10 (1564.4) Only once or twice in all their association with Jesus did the twins venture to ask questions in public. 쌍둥이들은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일 중에 단지 한두 번 공개적으로 감히 질문했습니다.
139:10.11 (1564.5) The twins served faithfully until the end, until the dark days of trial, crucifixion, and despair. They never lost their heart faith in Jesus, and (save John) they were the first to believe in his resurrection. But they could not comprehend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Soon after their Master was crucified, they returned to their families and nets; their work was done. They had not the ability to go on in the more complex battles of the kingdom. But they lived and died conscious of having been honored and blessed with four years of close and personal association with a Son of God, the sovereign maker of a universe. 쌍둥이들은 끝까지, 재판과 십자가 처형과 절망의 어두운 날들까지, 성실히 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신앙하는 심정을 결코 잃지 않았고, (요한을 제외하고) 그들은 그의 부활을 처음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 나라의 설립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주(主)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신 직후, 그들은 가족에게 돌아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들의 일은 끝났습니다. 그들은 더 어려운 (하느님) 나라의 전투를 계속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우주의 주권적 조물주와 가깝게 4년 동안 개인적 관계를 갖는 영예와 축복 받았음을 의식하면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 Simon the Zealot 열심당원 시몬
139:11.1 (1564.6) Simon Zelotes, the eleventh apostle, was chosen by Simon Peter. 시몬 젤로테는 11번째 사도로, 시몬 베드로가 선택했습니다. 139:11.2 (1564.7) Simon Zelotes was given charge of the diversions and relaxation of the apostolic group, and he was a very efficient organizer of the play life and recreational activities of the twelve. 시몬 젤로테는 사도 그룹의 기분 전환과 휴식을 담당했으며, 그는 12사도들의 운동 생활과 오락 활동에 대해 아주 효율적인 조직가였습니다.
139:11.3 (1564.8) Simon’s strength was his inspirational loyalty. 시몬의 강점은 영감(靈感)을 일으키는 충성이었습니다. 139:11.4 (1565.1) Simon’s great weakness was his material-mindedness. 시몬의 큰 약점은 물질적 마음가짐이었습니다. 139:11.5 (1565.2) The one thing about Jesus which Simon so much admired was the Master’s calmness, his assurance, poise, and inexplicable composure. 시몬이 예수에 대해 그토록 탄복한 한 가지는 주(主)님의 고요함, 그의 확신, 평정,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침착성이었습니다.
139:11.6 (1565.3) Although Simon was a rabid revolutionist, a fearless firebrand of agitation, he gradually subdued his fiery nature until he became a powerful and effective preacher of “Peace on earth and good will among men.” 시몬은 과격한 혁명가였고, 두려움 없이 선동하는 선동가였지만, 그가 “땅에서 평화와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뜻”을 전하는 강력하고 유능한 설교자가 되기까지, 그는 점차 불같은 성품을 가라앉혔습니다. 139:11.7 (1565.4) He was a rebel by nature and an iconoclast by training, but Jesus won him for the higher concepts of the kingdom of heaven. 그는 천성이 반항아였고, 훈련받은 인습 타파주의자였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더 높은 개념을 위해 그를 설득하셨습니다.
139:11.8 (1565.5) Jesus was not afraid to identify himself with business men, laboring men, optimists, pessimists, philosophers, skeptics, publicans, politicians, and patriots. 예수님은 자신을 사업가, 노동자, 낙천가, 비관론자, 철학자, 회의론자, 세리, 정치가, 애국자들과 동일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139:11.9 (1565.6) The Master had many talks with Simon, but he never fully succeeded in making an internationalist out of this ardent Jewish nationalist. 주(主)님은 시몬과 많이 이야기하셨지만, 이 열렬한 유대 민족주의자를 국제주의자로 만드는 데 결코 충분히 성공하지 못하셨습니다.
139:11.10 (1565.7) After the dispersion because of the Jerusalem persecutions, Simon went into temporary retirement. He was in despair, but in a few years he rallied his hopes and went forth to proclaim the gospel of the kingdom. 예루살렘의 박해로 흩어진 후, 시몬은 잠간 은둔했습니다. 그는 절망했지만, 몇 년 내에 그는 자기 소망들을 다시 모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나갔습니다.
139:11.11 (1565.8) He went to Alexandria and, after working up the Nile, penetrated into the heart of Africa, everywhere preaching the gospel of Jesus and baptizing believers. Thus he labored until he was an old man and feeble. And he died and was buried in the heart of Africa. 그는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나일 강으로 올라가며 일한 후, 아프리카의 심장부를 통과하며 모든 곳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설교하며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늙고 쇠약해질 때까지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어서 아프리카의 심장부에 묻혔습니다.
- Judas Iscariot 가룟 유다
139:12.1 (1565.9) Judas Iscariot, the twelfth apostle, was chosen by Nathaniel. He was born in Kerioth, a small town in southern Judea. When he was a lad, his parents moved to Jericho, where he lived and had been employed in his father’s various business enterprises until he became interested in the preaching and work of John the Baptist. Judas’s parents were Sadducees, and when their son joined John’s disciples, they disowned him. 가룟 유다는 12번째 사도로서, 나다니엘이 선택했습니다. 그는 남부 유대의 작은 도시인 케리옷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소년이었을 때 그의 부모는 여리고로 이사했고, 그가 세례 요한의 설교와 일에 관심을 갖기까지는, 그곳에 살면서 자기 아버지의 여러 사업체에 종사했습니다. 유다의 부모는 사두개인이어서, 아들이 요한의 제자가 되자, 자식과 관계를 끊었습니다.
139:12.2 (1566.1) When Nathaniel met Judas at Tarichea, he was seeking employment with a fish-drying enterprise at the lower end of the Sea of Galilee. He was thirty years of age and unmarried when he joined the apostles. He was probably the best-educated man among the twelve and the only Judean in the Master’s apostolic family. 나다니엘이 유다를 타리케아에서 만났을 때, 그는 갈릴리 바다의 하류 끝에 있는 생선-건조 사업체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가 될 때, 30세였고 결혼 전이었습니다. 그는 아마 12사도 중에서 최상의 교육을 받았고, 주(主)님의 사도 대원에서 유일한 유대 지방 사람이었습니다.
139:12.3 (1566.2) Andrew appointed Judas treasurer of the twelve, a position which he was eminently fitted to hold, and up to the time of the betrayal of his Master he discharged the responsibilities of his office honestly, faithfully, and most efficiently. 안드레는 유다를 12사도의 회계로 임명하였는데, 그에게 탁월하게 어울리는 자리였으며, 주(主)님을 배반하기 직전까지, 그는 자기 직무의 책임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가장 효율적으로 실행했습니다.
139:12.4 (1566.3) There was no special trait about Jesus which Judas admired above the generally attractive and exquisitely charming personality of the Master. Judas was never able to rise above his Judean prejudices against his Galilean associates; he would even criticize in his mind many things about Jesus. 보통 매력적이며 정교하게 호감을 끄는 주(主)님의 고유성 이외에, 유다가 감탄했던 예수님의 특별한 특성이 없었습니다. 유다는 결코 갈릴리 동료들에 적대적인 유대 지방 사람의 편견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예수님에 대해서도 여러 면에서 마음으로 비판했습니다.
139:12.5 (1566.4) Judas was a good business man. It required tact, ability, and patience, as well as painstaking devotion, to manage the financial affairs of such an idealist as Jesus, to say nothing of wrestling with the helter-skelter business methods of some of his apostles. Judas really was a great executive, a farseeing and able financier. And he was a stickler for organization. None of the twelve ever criticized Judas. 유다는 훌륭한 사업가였습니다. 몇 사도들이 혼란스런 직무 방식으로 씨름하고 있음을 언급하지 않아도, 예수님과 같은 그런 이상주의자의 재무 관리에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헌신은 물론 재치와 능력 그리고 인내가 요구되었습니다. 유다는 정말로 훌륭한 집행자, 즉 선견지명이 있는 유능한 재정가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조직에 대해 꽤 까다로운 사람이었습니다. 12 중 아무도 유다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139:12.6 (1566.5) Judas was an only son of unwise parents. When very young, he was pampered and petted; he was a spoiled child. As he grew up, he had exaggerated ideas about his self-importance. 유다는 현명하지 못한 부모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그는 제멋대로 했으며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그는 버릇없는 아이였습니다. 그는 자라면서, 자신(自信)-과잉(자존, 자만)에 대한 관념을 과대시했습니다.
139:12.7 (1566.6) To Jesus, Judas was a faith adventure. From the beginning the Master fully understood the weakness of this apostle and well knew the dangers of admitting him to fellowship. But it is the nature of the Sons of God to give every created being a full and equal chance for salvation and survival. 예수님에게, 유다는 신앙의 모험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주(主)님은 이 사도의 약점을 충분히 이해하셨고, 그를 동료로 받아들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의 본성은, 모든 창조된 존재에게 구원과 생존을 위해 충분하며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139:12.8 (1567.1) This is just the reason why Jesus permitted Judas to go on to the very end, always doing everything possible to transform and save this weak and confused apostle. But when light is not honestly received and lived up to, it tends to become darkness within the soul. Judas grew intellectually regarding Jesus’ teachings about the kingdom, but he did not make progress in the acquirement of spiritual character as did the other apostles. He failed to make satisfactory personal progress in spiritual experience. 이것이, 예수께서 유다가 끝까지 계속하도록 허용하셨고, 약하고 혼란에 빠진 이 사도를 변화시켜 구원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셨던 바로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빛은 순전히 수용되어 그에 따라 살지 않으면, 빛은 혼에서 어둠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지적으로는 성장했지만, 다른 사도들처럼 영적 성품 획득에는 진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적 체험에서 만족스러운 개인적 진보에 실패했습니다.
139:12.9 (1567.2) Judas became increasingly a brooder over personal disappointment, and finally he became a victim of resentment. His feelings had been many times hurt, and he grew abnormally suspicious of his best friends, even of the Master. 유다는 갈수록 개인적 실망으로 속을 끓이다가 결국 원한(怨恨)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감정들은 여러 번 상처를 받았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들, 주(主)님까지도 비정상적으로 갈수록 공연히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139:12.10 (1567.3) But these wicked and dangerous ideas did not take definite shape until the day when a grateful woman broke an expensive box of incense at Jesus’ feet. This seemed wasteful to Judas, and when his public protest was so sweepingly disallowed by Jesus right there in the hearing of all, it was too much. That event determined the mobilization of all the accumulated hate, hurt, malice, prejudice, jealousy, and revenge of a lifetime, and he made up his mind to get even with he knew not whom; but he crystallized all the evil of his nature upon the one innocent person in all the sordid drama of his unfortunate life just because Jesus happened to be the chief actor in the episode which marked his passing from the progressive kingdom of light into that self-chosen domain of darkness. 그러나 사악하고 위험한 이 망상들은, 감사하는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값진 향료 상자를 깨뜨린 그 날까지, 뚜렷한 모습이 없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유다에게 낭비로 여겨졌고, 공개적인 자기 항의(抗議)가 모든 사람이 듣고 있는 바로 거기에서 예수님에 의해 전면적으로 묵살되자, 유다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 사건으로 축적되어 왔던 모든 미움, 상처, 원한, 편견, 질투, 평생의 복수를 총동원하기로 결심했고, 모르는 누군가에게 복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불행한 일생의 비열한 모든 드라마에서 자신의 모든 악의 본성이 무죄한 한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났는데, 그것은 바로, 진보하는 빛의 나라에서 스스로–선택한 그 어둠의 영역으로 유다의 통행을 표시하는 그 장면에서 예수님이 마침 주연(主演) 배우가 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139:12.11 (1567.4) The Master many times, both privately and publicly, had warned Judas that he was slipping, but divine warnings are usually useless in dealing with embittered human nature. Jesus did everything possible, consistent with man’s moral freedom, to prevent Judas’s choosing to go the wrong way. The great test finally came. The son of resentment failed; he yielded to the sour and sordid dictates of a proud and vengeful mind of exaggerated self-importance and swiftly plunged on down into confusion, despair, and depravity. 주(主)님은 여러 번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그가 미끄러져 이탈하고 있다고 경고했지만, 신적 경고들은 적개심을 품은 인간 본성을 다루는데 대개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잘못된 길을 선택해서 가지 않도록, 인간의 도덕적 자유와 조화를 이루시면서,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큰 시험의 날이 마침내 다가왔습니다. 원한(怨恨)의 아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는, 지나치게 자아를–중요시하는, 거만하며 복수심에 불타는 마음의 졸렬하며 비열한 명령에 굴복했고, 신속하게 혼란, 절망, 그리고 타락으로 뛰어들었습니다.
139:12.12 (1567.5) Judas then entered into the base and shameful intrigue to betray his Lord and Master and quickly carried the nefarious scheme into effect. During the outworking of his anger-conceived plans of traitorous betrayal, he experienced moments of regret and shame, and in these lucid intervals he faintheartedly conceived, as a defense in his own mind, the idea that Jesus might possibly exert his power and deliver himself at the last moment. 그 후 유다는 자신의 주인이신 주(主)님을 배반하는 야비하고 치욕스러운 음모를 시작했으며, 사악한 계획을 급히 실행했습니다. 자기 분노로 잉태한 반역적 배반을 수행하는 동안, 그는 후회와 수치심의 순간들을 겪었으며, 제 정신이 들었던 이 기간에 그는 마음이 약해져서, 변명하는 마음으로, 예수께서 아마 마지막 순간에 권능을 발휘하여 예수 자신을 구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139:12.13 (1567.6) When the sordid and sinful business was all over, this renegade mortal, who thought lightly of selling his friend for thirty pieces of silver to satisfy his long-nursed craving for revenge, rushed out and committed the final act in the drama of fleeing from the realities of mortal existence — suicide. 비열하고 죄받을 많은 일이 모두 끝나자, 오래 품었던 복수심을 채우려고 자기 친구를 은화 30개를 받고 가볍게 팔아넘길 생각을 했던 이 변절한 필사자는 달려 나가 필사자 실존의 실체에서 도망하여 드라마의 마지막 장에서 자살했습니다.
139:12.14 (1567.7) The eleven apostles were horrified, stunned. Jesus regarded the betrayer only with pity. The worlds have found it difficult to forgive Judas, and his name has become eschewed throughout a far-flung universe. 11명의 사도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아찔했습니다. 예수님은 배반자를 불쌍히 여기셨을 뿐입니다. 세계들은 유다를 용서하기 어려움을 알게 되었고, 멀리-퍼진 우주 전체에서 그의 이름은 피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