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7-예수의 종교

예수의 종교THE RELIGION OF JESUS

명제1. 예수의 종교는 7가지 필수조건을 제공하는 최종적 구원을 제공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지식과 지혜와 신앙과 진리 그리고 사랑의 조화로운 통합을 온전히 수용하여, 철학적 안정성과 윤리적 민감성과 하나님 인식 그리고 개인적 구원에 대한 적극적 확신을 완전하면서도 동시적으로 제공하는, 최초의 종교를 이루었습니다.

예수의 신앙은 인간 구원의 최종, 인간의 우주 달성의 궁극에 이르는 길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1. 물질적 사슬에서의 구원 – 영이신 하나님과의 아들관계인 개인성을 실현하여 물질적인 사슬로부터의 구원.

2. 지적(知的) 사슬에서 구원 – 사람이 진리를 알게 되니, 진리가 그를 자유롭게 함.

3. 영적 시각장애 사슬에서 구원 – 사람들의 형제우애관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 모든 창조물들의 형제신분 인식, 영적 실체에 대한 봉사 발견, 영 가치의 선함에 대한 활동적 계시.

4. 자아의 미완성으로부터의 구원 – 우주의 영적 차원 달성과 조화의 영원한 실현 및 천국의 완성 실현.

5. 자아로부터의 구원 – 궁극적 마음의 우주 차원의 달성과 모든 다른 자아 존재와의 합동 달성을 통해 자아의식 한계에서 해방.

6. 시간으로부터의 구원 – 하나님을 인지하고 하나님께 봉사하는 끝없는 진보를 통한 영원한 삶의 성취.

7. 유한으로부터의 구원-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과 초월 존재이신 하나님 발견을 통해 성취.

명제2. 예수의 가르침들은 미신, 마술, 신화 그리고 교조주의의 종교를 최종적으로 제거하였습니다.

자연적인 종교의 마술적이고 신화적인 근원적 배경은 후대의 계시 종교와 예수의 종교인 더할 나위 없이 구원하는 복음에 대한 실체와 진리를 무효화시키지 않습니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마침내 마술적인 미신들과 신화적 환상들 그리고 전통적인 교조주의(敎條主義)의 속박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의 마술과 신화는, 초(超)물질적 가치들과 존재들의 실재 그리고 실체를 가정함으로써 후대의 뛰어난 종교를 위한 길을, 매우 효과적으로 예비하였습니다.

명제3. 일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즐겁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러한 진리들이 다시 세상에 선포된다면, 성화(聖化)된 종교적 동기를 지닌 그의 진지한 인간 생애의 제시에 그들은 다시 한 번 응답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의 말을 즐겁게 듣는 이유는 그가 그들 중의 하나인 겸손한 보통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 선생님은 진실로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명제4. 예수님은 바울의 인간에 대한 염세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사악하기보다는 약하다고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편안함을 느끼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는 미신적 금기 사항들의 노예가 된 상태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셨으며, 세상이 근본적으로 악한 것이 아님을 그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지상의 자기 일생에서 도피하기를 갈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육신으로 있는 동안 아버지의 뜻 실천을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하셨습니다. 그는 현실 세계의 한 복판에서 이상적인 종교적 일생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의 인간에 대한 염세적인 견해를 갖지 있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보셨으며, 생존을 선택한 그들 앞에 펼쳐질 장엄하고 영원한 미래를 내다 보셨습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회의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사람을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보십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사악하기보다는 약하다고 보셨으며, 타락했다기보다는 마음이 산란한 상태라고 보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처지가 어떻든지 간에,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었고, 자신의 형제들이었습니다.

명제5. 예수께서는 복음을 자신에 대한 종교로 바꾸는 위험성에 대해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는 그들 가운데서 함께 사신 그의 삶과 그의 가르침, 그리고 후에 생길 수도 있는 자신에 관한 가르침들 사이의 차이점을, 사도들에게 분명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는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왕국과 거기에 관련된 복음이 너희들의 메시지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와 나의 가르침에 관해서 설교하는 잘못된 옆길로 빠지지 말도록 유의하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에 대하여 내가 계시한 것을 표현하라. 그러나 나의 믿음들과 가르침들에 관해서 믿음과 가르침과 관련된 전설을 창조하거나 하나의 종파를 만드는 잘못된 옆길로 빠지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이번에도 그가 왜 그런 말씀을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였으며, 그가 왜 자기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지 감히 묻는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명제6. 베드로는 예수의 종교를 예수에 관한 종교로 변경하는 미묘한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의 원기 왕성한 지도력 아래에서, 그리고 주(主)가 아버지께로 미처 올라가기도 전에, 예수님에 대해 선한 뜻을 가진 지도자들은, 예수의 종교를 예수에 관한 종교라는 새롭고도 수정된 형태로 차츰차츰 그리고 확실하게 변경하는 미묘한 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 6-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뜻THE FATHER'S WILL

명제1.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a. 부정적인 방법 – 나의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으로 하소서.

b. 긍정적인 방법 –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는 것은, 비록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에서 하나님의 사실적 현존 앞에 실제적으로 서있기 전에 오랜 세월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실상은 사람이 영 아버지를 영적으로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선택은 피조물 의지의 부정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나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적극적인 긍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이러한 선택이 이루어지고 나면, 하나님을 선택한 자녀들은 곧 내주하는 하나님의 영과 내적인 연합이 이루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완전을 이루어 가면서, 사람의 개인성과 하나님의 개인성 즉 두 개인성은 서로 자아-의지적인 상호관계를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영원한 동반자의 관계 안에서 영원하게 연합되며, 예배의 친교 안에서, 최상의 만족을 얻게 됩니다.

명제2. 최상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체 뜻 중에서 가장 높은 유한한 표현으로 드러나십니다.

어떤 곳에서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정도까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에 이르면, 하나님의 잠재적 전능성은 우리에게 한 단계 더 실제적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근원의 첫째이며 중심 목적이며, 그것은 절대적 삼위 안에서 잠재적이 되고, 영원한 성자를 통해 개인성으로 드러나며, 무한한 성령의 모든 활동을 통해 연합되고, 천국의 영존하는 틀 안에서 영원화 하게 됩니다. 그리고 최상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체 뜻 중에서 가장 높은 유한한 표현으로 드러나십니다.

하나님 나라 5-새롭고 살아있는 길

새롭고 살아있는 길THE NEW AND LIVING WAY

명제1. 예수님은 새롭게 살아있는 길을 이루셨습니다. 그는 그 길을 아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진리이십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사는 우리 인간들의 영적인 고양(高揚)을 위해 살다가 죽으시면서 “새롭고 살아있는 길”을 확립하십니다. 그의 삶은 천국의 진리가 육체 안에서 성육신 된 것이며, 그것을 아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진리이며 참된 진리의 영이십니다.

명제2. “지상의 새롭고 살아있는 길”은, 사람들이 죽음 이후에 맨션 세계로 다시 직접 갈 수 있음을 뜻합니다.

지상에서 이 “새롭고 살아있는 길”의 확립은 진리의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사실의 문제였습니다. 루시퍼 반란으로 이 세상이 고립되어, 죽음에 처한 사람들은 맨션세계에 직접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오시기 전, 모든 혼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특별한 부활의 때까지 수면상태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모세도 특별 부활의 때까지 다른 편으로 건너가도록 허용되지 않았으며, 타락한 마귀는 이러한 해방 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부터 사람들은 다시 부활의 세계로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명제3. 예수님은 힘이 있으면서도 그 힘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를 거절하는 인격자로서 큰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많은 환난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자연스럽고, 일반적이지만, 어렵고, 고된 방법들을 선택하며, 인류의 가슴속에 하나님 나라를 설립하셨으며, 이는 앞으로 따라오는 자신의 지상 자녀들이 하나님 나라를 성장·확대하는 사역 속에서 겪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아들은, “많은 환난을 겪음으로써 모든 세대의 많은 자녀들이 그 나라에 들어갈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는 이제 힘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것을 순전히 이기적이거나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하기를 끊임없이 거절하는, 인격자로서의 큰 시험을 겪고 계셨습니다.

명제4. 사랑의 통찰력은 진리, 아름다움, 그리고 선을 향한 목마름을 일으키며, 사람은 그 안에서 영광스럽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이라는 낮은 차원으로 내리기에는, 너무나 위대하고 고상합니다. 동물은 환경에 순응해야 하는 존재이지만, 경건한 사람은 자신의 환경을 초월하며, 신성한 사랑의 통찰력으로 현재의 물질적 세상의 한계들을 벗어납니다. 이러한 사랑의 개념은 사람의 혼속에서 진리(眞), 아름다움(美) 그리고 선(善)을 찾도록 인도합니다. 사람이 그것들을 발견하면, 그는 그 안에서 영화롭게 됩니다. 그는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선으로 살아가며, 정의(正義)를 행하려는 소망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 4-나라의 열쇠들

나라의 열쇠들KEYS OF THE KINGDOM

명제1. 나라의 열쇠는 성실함입니다.

나라의 열쇠는 성실함, 더욱 성실함 그리고 더욱 더 성실함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열쇠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열쇠들을 사용하여 영적 진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열쇠를 사용하는 방법은 결심하고, 더욱 결심하고, 그리고 더욱 더 결심하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도덕적 선택은 가능한대로 가장 높은 가치를 선택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선택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행동의 사람이라면 그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명제2. 하나님을 찾으려는 인간의 선택은 유한성을 넘어서는 행위입니다.

인간 의지의 전체 범위는 하나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엄밀히 유한하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와 같이 되고자 하는 선택은 유한성을 넘어섭니다. 오직 영원만이 이러한 선택의 초(超)유한성과 절대성을 밝힐 수 있습니다.

명제3. 예수께서는 나라의 이중 개념, 즉 이 세상과 천국에서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이중적 본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명백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첫째,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숭고한 욕구 즉 윤리적으로 개선된 도덕적 행위의 선한 열매를 맺는 사심 없는 사랑입니다.

둘째, 하늘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자들의 목표이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완전하게 성취된 곳이며, 하나님의 뜻이 더욱 거룩하게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명제4. 예수님은 두 가지 즉 신실한 믿음과 진리에 대한 갈증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필수 조건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믿는 자는 신앙으로 하나님 나라에 지금 들어간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여러 말씀들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두 가지 필수 조건을 가르치셨습니다.

첫째는 신앙과 성실성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와서, 아들관계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의심 없이, 아버지의 지혜에 대한 참된 신뢰와 충만한 자신감으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복종하는 것과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 나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진리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의를 향한 갈증 즉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동기로 변화된 마음입니다.

믿음에 대한 성경 구절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하나님 나라 3-하나님 아버지 되심과 사람의 형제정신

하나님 아버지 되심과 사람의 형제정신FATHERHOOD OF GOD AND BROTHERHOOD OF MAN

명제1. 인간의 형제정신은 보편적이므로 각자 관계의 본질인 동시에 전체 관계의 본질입니다.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이 사랑은 모든 개인을 포함한 신적인 가족, 천국 아버지의 자녀, 자유의지를 지닌 자녀들 사이에 보편적인 형제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보편적 형제 정신은 전체의 관계입니다. 형제정신은 전체의 실제이며, 부분의 본질과는 대조적으로 전체라는 본질을 갖고 있습니다.

명제2. 형제정신은 전체로서 부분의 유익과 고통을 평가한다는 의미입니다.

형제 정신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인격 사이에 있는 관계의 사실로 구성됩니다. 어떤 인격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이득(利得)이나 손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부분의 유익과 고통은 전체로서 평가됩니다. 각 사람의 훌륭한 노력은 모든 사람에게 이득을 주며, 각 사람의 잘못이나 악은 모든 사람의 시련을 더해 준다. 부분이 움직이는 대로, 전체가 움직인다. 전체의 진보가 어떠하면, 부분의 진보도 그러하다. 부분과 전체의 상대 속도는 그 부분이 전체의 관성(慣性) 때문에 늦어지든지, 우주 형제 정신의 운동량 때문에 앞으로 밀려 가든지를 결정한다.

명제3. 항상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으셔야만, 인간이 나중에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우리들의 의식은 사실fact에서 의미meaning를 거쳐 가치value로 나아갑니다. 창조주의 의식은 생각의 가치에서 말씀의 의미를 거쳐 행동의 사실로 나아갑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실존적 무한의 고유한 절대적 통일의 장벽을 깨뜨리기 위해 행동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모델이 되는 우주, 완전한 인격들, 근본적인 진·선·미를 마련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찾으셔서, 나중에 인간이 하나님을 찾도록 하십니다. 언제나 우주의 아버지 하나님이 계셔야만, 하나님의 자녀 신분이 존재하고, 그 결과, 우주의 형제 정신이 존재하게 됩니다.

명제4.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가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라고 너희를 보내노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라. 너희가 온 세상으로 나가 이 하나님 나라 복음 전도의 명령을 다시 듣도록 너희가 모두 있을 때 나타나기 위해 내가 한 주 내내 머물렀느니라. 내가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버지가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그렇게 보내노라. 내가 아버지를 드러낸 것 같이, 너희도 말로만이 아니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지라.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사랑하라고 너희를 보내노라. 너희는 하늘의 기쁨을 선포할 뿐 아니라, 매일의 체험을 통해 신적인 삶의 영적인 실체를 나타내야 하리라.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을 이미 가졌음이라. 너희가 지금은 여기에서 문을 닫고 숨어 있지만, 믿음을 통해, 하늘의 권능인 진리의 영이 오면, 너희는 너희 빛을 감추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온 인류에게 알리리라. 지금은 두려움 때문에 너희가 도피해 했지만, 진리의 영으로 세례를 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얻는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새로운 체험 가운데 너희는 용기 있고 기쁘게 떠나가리라.”

명제5.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명은 예수님의 일생의 사실과 하나님 아들됨의 진리에 토대가 있습니다.

“너희는 여기 갈릴리에 잠시 머물러 전통주의(傳統主義)의 거짓된 안전감에서 살아있는 체험을 통해 얻는 최상의 실체인 사실•진리•신앙에 근거한 새로운 질서의 권위로 전환되는 과도기의 충격에서 회복할지라. 세상에 대한 너희의 사명은 내가 너희와 살면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생을 살았다는 사실과, 너희와 모든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에 기초를 두느니라. 그리고 그 사명은 너희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섬겼듯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실제적인 살아있는 체험의 일생으로 이루어지리라. 믿음이 너희의 빛을 세상에게 드러내리라. 진리의 계시가 전통으로 닫힌 눈을 뜨게 하리라. 너희 사랑의 섬김이 무지로 생긴 편견(偏見)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리라. 이해하는 공감과 사심 없는 헌신으로 동료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감으로, 너희는 아버지 사랑을 아는 유익한 지식으로 저희를 이끌리라.”

명제6. 유대인은 선을, 그리스인들은 미를, 힌두교도들은 헌신을, 고행자들은 존경을, 로마인들은 충성심을 따르지만, 예수님은 사랑으로 봉사하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선을 찬미하고,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을 숭상하며, 힌두교들은 헌신을 높이고, 금욕주의자들은 존경을 따르며, 로마인들은 충성심을 드높이지만, 나는 육체로 형제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일생을 제자들에게 요구하노라.”

하나님 나라 2-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JESUS' TEACHING ABOUT THE KINGDOM

명제1. 하나님 나라는 생명과 자유에 관한 7가지 부요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진리와 그에 관계되어 사람이 형제라는 사실, 이 두 가지 개념으로 시작되고 거기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님은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랜 세월에 걸친 동물적 두려움에서 사람을 해방하고, 동시에 영적 자유를 지닌 새 삶으로 인간 생활이 부요하게 될 것을 예수님은 선언하셨습니다.

1. 새로운 용기와 증대된 영적 권능의 소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며, 영생(永生)을 소망하도록 격려합니다.

2. 그 복음은 가난한 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해 새로운 확신과 참된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3. 복음 자체 안에, 도덕적 가치의 새 표준과, 인간 행위를 측량하는 새 윤리(倫理)의 척도가 있습니다. 그 결과, 새로운 체제의 인간 사회 이상을 보여줍니다.

4. 그 복음은 영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 보다는 상위(上位)에 있음을 말합니다. 복음은 영적 실체들을 영화롭게 하고 초인간적 이상을 높입니다.

5. 이 복음은 영적 달성을 참된 삶의 목표로 제시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도덕적 가치와 신적인 위엄성을 새롭게 부여받았습니다.

6. 영원한 실체들은 땅에서 바르게 노력한 결과와 보상이라고 예수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이 땅에서 사는 이유는 고귀한 운명을 자각한 결과로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7. 새 복음은 인간의 구원이 원대한 신적 목적의 계시임을 확증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들이 끝없이 섬기는 미래의 운명을 통해 완성되고 실현됩니다.

명제2. 예수님은 나라의 정의를 엄밀하게 정의하지 않으셨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형제 정신의 모습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5 단계로 제시하셨습니다.

1. 믿는 자녀들이 개인마다 마음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친교를 나누는 영적 생활의 체험.

2. 복음을 믿는 자들의 소유한 형제 정신의 확장. 믿는 각자의 마음을 하나님의 영이 다스리는 결과, 도덕성이 확장되어 윤리적으로 살아있는 사회의 모습.

3.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영적 존재들이 나누는 초인간적인 형제정신의 나라.

4.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전망과 더불어 영적 생활의 개선으로 발전된 새로운 사회 체제(다음 세대)의 여명(黎明)을 향한 진보.

5. 지상에서 누리는 빛과 생명의 영적 시대로서 성숙한 미래적 하나님 나라.

명제3. 주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의 중요한 모습을 5 항목으로 제시하셨습니다.

1. 개인 우선.

2. 사람의 체험에서 결정 요소인 의지.

3. 하나님 아버지와 누리는 영적인 사귐.

4. 사람에 대한 사랑의 봉사로 얻는 최상의 만족.

5. 물질적인 것을 초월하는 영적인 사람의 인격.

명제4. 나라를 믿는 자녀들은 영생을 가지고, 하늘(우주)을 향해 천국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의 한 가지는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아버지를 땅에 있는 자녀들에게 계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인생 체험을 위해 하나님을 드러내신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가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이 사실은 우리 가슴속에서 영원토록 살아있는 진리가 됩니다. 살아있는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신성하게 의식하게 될 때, 우리는 빛과 생명의 자녀로서 영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우리는 영생을 가지고 온 하늘(우주)을 향해 천국 아버지 하나님을 찾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명제5.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인간의 형제 정신의 실제입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땅에서 그 자녀들을 섬기는 봉사와 관계됩니다.

우리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福音)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실제와 사람이 자녀라는 진리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모든 진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의 메시지는 예수님의 부활 경험으로 변경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에 대한 봉사를 전파해야 합니다.

세상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믿음을 통하여 인간을 고귀하게 하는 이 진리를 실제로 깨닫고 매일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 각자들이 영원한 아버지의 살아 있는 영 자녀(아들)이라는 진리를 직접 붙잡아야만 합니다.

하나님 나라 1-나라의 개념

나라의 개념CONCEPTS OF THE KINGDOM

명제1. 히브리 성서는 하나님 나라를 오늘의 현실과 미래의 소망으로 제시합니다.

히브리 성서 전체를 살펴보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1. 오늘의 현실

2. 미래의 소망 즉, 메시아가 출현하여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는 희망으로서 세례 요한이 가르쳤던 하나님 나라의 개념입니다. 초기부터 예수님과 사도들은 이 두 가지 개념을 다 가르쳤습니다.

3. 후일 유대인들의 개념 – 초자연적 기원과 기적으로 개시되는 세계적인 초월적 국가의 개념

4. 페르시아인의 교훈 – 세상의 종말에 선이 악을 정복하여 신의 나라가 확립됨.

명제2. 나라의 개념은 네 집단의 아이디어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상에 오시기 바로 전에, 유대인들은 이 모든 하나님 나라 이념을 유대인이 승리하는 시대를 견고히 세우기 위해 메시아가 온다는 종말적인 개념으로 통합하고 혼합시켰습니다. 그 때는 땅과 새로운 세상에서, 하나님이 최고로 다스리는 영원한 시대로서 온 인류가 야훼를 경배할 시대였습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 예수님은 유대와 페르시아 종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정에 있었던 유산(遺産)을 이용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기독교 시대의 여러 세기를 통하여 이해와 오해가 뒤섞여 있는 하나님 나라는 뚜렷하게 다른 네 집단의 아이디어를 담고 있습니다.

1. 유대인의 개념

2. 페르시아인의 개념

3. 예수님의 개념 – 너희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로서 인격적인 경험을 동반하는 나라를 뜻합니다. 예수께서는 대중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대한 다양한 개념을 제시하셨지만, 사도들에게 언제나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땅에 있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사람이 직접 겪는 체험이 포함된다고 하셨으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최종적 말씀은 언제나 “너희 안에 있는 나라”라고 하셨습니다.

4. 기독교의 창시자와 선포자들이 세상에 대하여 강조하려고 애쓴 복합적이며 혼동된 개념들.

명제3.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래된 혼란은 세 가지 요소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에 대해 여기세기에 있었던 혼동은 다음의 세 가지 요인에 기인합니다.

1. 예수님과 사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다시 진술하는 여러 진보적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혼동.

2. 유대교에서 이방인의 토양으로 초기의 기독교를 옮겨 심는 것과 불가피하게 연결된 혼동.

3. 기독교가 ‘예수의 인격’이라는 중심 개념에 관하여 조직된 종교가 되어갔다는 사실 속에 내재되어 있었던 혼동.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점점 더 예수에 대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0 -개요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HEAVEN

 

참고구절 히11:1, 요14:1, 요1:12, 엡2:8, 히12:2

 

I. 나라의 개념들CONCEPTS OF THE KINGDOM

II.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JESUS' TEACHING ABOUT THE KINGDOM

III. 하나님 아버지 되심과 사람의 형제정신FATHERHOOD OF GOD AND BROTHERHOOD OF MAN

IV. 나라의 핵심KEYS OF THE KINGDOM

V. 살아있는 새 길THE LIVING AND NEW WAY

VI. 아버지의 뜻THE FATHER'S WILL

VII. 예수님의 종교THE RELIGION OF JESUS

VIII. 새계명THE NEW COMMANDMENT

 

* 이후 하나님 나라는 하늘나라와 동일한 용어로 사용합니다.

Paper 134 The Transition Years 과도기(過渡期) 시절

Paper 134

The Transition Years 과도기(過渡期) 시절

요일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134:0.1 (1483.1) DURING the Mediterranean journey Jesus had carefully studied the people he met and the countries through which he passed, and at about this time he reached his final decision as to the remainder of his life on earth. He had fully considered and now finally approved the plan which provided that he be born of Jewish parents in Palestine, and he therefore deliberately returned to Galilee to await the beginning of his lifework as a public teacher of truth; he began to lay plans for a public career in the land of his father Joseph’s people, and he did this of his own free will. 지중해를 여행하는 동안에 예수님은 만났던 사람들과 거쳐 갔던 나라들에 관하여 주의 깊게 연구하였으며, 이 무렵, 땅에서 보내야하는 여생(餘生)에 관하여 마지막 결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자신이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계획을 충분하게 고려하였고 이제 그 계획을 최종적으로 승인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대중(大衆)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필생의 사명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아버지 요셉의 민족의 땅에서 공생애를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이것을 행하셨습니다.

134:0.2 (1483.2) Jesus had found out through personal and human experience that Palestine was the best place in all the Roman world wherein to set forth the closing chapters, and to enact the final scenes, of his life on earth. For the first time he became fully satisfied with the program of openly manifesting his true nature and of revealing his divine identity among the Jews and gentiles of his native Palestine. He definitely decided to finish his life on earth and to complete his career of mortal existence in the same land in which he entered the human experience as a helpless babe. His Urantia career began among the Jews in Palestine, and he chose to terminate his life in Palestine and among the Jews. 예수님은 개인적인 인간의 경험을 통해서, 팔레스타인이 모든 로마 제국에서, 지상 생애의 마지막 장(章)을 마련하고, 최종 장면을 연출하기에 최적의 장소임을 발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자신이 태어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그의 참된 성품을 숨김없이 나타내고, 신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계획으로 충분히 만족(滿足)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기력한 아기로서 인간 경험을 시작하게 되었던 바로 그 땅에서 지상 생애를 반드시 끝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경력을 완성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지상에서 예수님의 생애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으로 시작하셨고,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으로 자신의 일생을 마치기로 선택하셨습니다.

1. The Thirtieth Year (A.D. 24)서른 살 되던 해(서기 24년)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y is a temple of the Holy Spirit, who is in you, whom you have received from God? You are not your own;

134:1.1 (1483.3) After taking leave of Gonod and Ganid at Charax (in December of A.D. 23), Jesus returned by way of Ur to Babylon, where he joined a desert caravan that was on its way to Damascus. From Damascus he went to Nazareth, stopping only a few hours at Capernaum, where he paused to call on Zebedee’s family. There he met his brother James, who had sometime previously come over to work in his place in Zebedee’s boatshop. After talking with James and Jude (who also chanced to be in Capernaum) and after turning over to his brother James the little house which John Zebedee had managed to buy, Jesus went on to Nazareth. AD 23년 12월, 카락스Charax에서 고노드와 가니드를 떠나보낸 후에, 예수님은 우르Ur를 경유하여 바빌론Babylon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다마스쿠스Damascus로 가는 사막의 대상caravan과 합세하였습니다. 다마스쿠스로부터 나사렛Nazareth으로 돌아가는 도중, 가버나움Capernaum에 단 몇 시간 동안만 들렸을 때, 거기에서 세베대Zebedee의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 그는 동생 야고보James를 만났으며, 야고보는 세베대의 배를 만드는 목공소에서 예수님 대신 일하기 위해 얼마 전부터 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우연히 가버나움에 들렸었던 유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 요한 세베대가 매입하여 관리하던 작은 집을 동생 야고보에게 넘겨준 다음, 계속 나사렛으로 갔습니다.

134:1.2 (1483.4) At the end of his Mediterranean journey Jesus had received sufficient money to meet his living expenses almost up to the time of the beginning of his public ministry. But aside from Zebedee of Capernaum and the people whom he met on this extraordinary trip, the world never knew that he made this journey. His family always believed that he spent this time in study at Alexandria. Jesus never confirmed these beliefs, neither did he make open denial of such misunderstandings. 지중해 여행을 마쳤을 때, 예수님은 공적 사역을 시작할 때까지 필요한 생활비를 넉넉히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버나움의 세베대와 이 특별한 여행에서 그가 만났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가 이러한 여행을 했었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이 기간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공부를 하면서 지냈었다고 언제나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러한 믿음에 대해 옳다고 확인하지도 않았고, 또한 그러한 오해들을 드러내놓고 부인하지도 않으셨습니다.

134:1.3 (1483.5) During his stay of a few weeks at Nazareth, Jesus visited with his family and friends, spent some time at the repair shop with his brother Joseph, but devoted most of his attention to Mary and Ruth. Ruth was then nearly fifteen years old, and this was Jesus’ first opportunity to have long talks with her since she had become a young woman. 나사렛에 머물던 몇 주간 동안, 예수님은 가족과 친구들을 방문하거나 동생 요셉과 수리소에서 함께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지만, 대부분의 관심은 마리아Mary와 룻Ruth에게 두었습니다. 룻은 그 때 거의 15살이었는데, 누이가 처녀가 된 이래로, 예수님이 그녀와 오랜 대화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134:1.4 (1484.1) Both Simon and Jude had for some time wanted to get married, but they had disliked to do this without Jesus’ consent; accordingly they had postponed these events, hoping for their eldest brother’s return. Though they all regarded James as the head of the family in most matters, when it came to getting married, they wanted the blessing of Jesus. So Simon and Jude were married at a double wedding in early March of this year, A.D. 24. All the older children were now married; only Ruth, the youngest, remained at home with Mary. 시몬Simon과 유다Jude는 한 동안 결혼하고 싶었지만, 예수님의 동의 없이는 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맏형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으로 결혼을 미루었습니다. 비록 그들 모두 대부분의 문제에 있어서 야고보를 가장(家長)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막상 결혼이 임박해지자 예수님의 축복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시몬과 유다는 이 해 AD 24년 3월 초순에 합동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나이든 아이들은 이제 모두 결혼하였고, 가장 나이가 어린 룻만이 마리아와 함께 집에 남았습니다.

134:1.5 (1484.2) Jesus visited with the individual members of his family quite normally and naturally, but when they were all together, he had so little to say that they remarked about it among themselves. Mary especially was disconcerted by this unusually peculiar behavior of her first-born son. 예수님은 가족들을 개인별로 만날 때는 매우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게 행동하셨습니다. 그러나 다 같이 있었을 때에는 거의 말이 없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자기들끼리 그것에 대해 한마디씩 했습니다. 특히 마리아는 맏아들의 이상한 태도 때문에 불안했습니다.

134:1.6 (1484.3) About the time Jesus was preparing to leave Nazareth, the conductor of a large caravan which was passing through the city was taken violently ill, and Jesus, being a linguist, volunteered to take his place. Since this trip would necessitate his absence for a year, and inasmuch as all his brothers were married and his mother was living at home with Ruth, Jesus called a family conference at which he proposed that his mother and Ruth go to Capernaum to live in the home which he had so recently given to James. Accordingly, a few days after Jesus left with the caravan, Mary and Ruth moved to Capernaum, where they lived for the rest of Mary’s life in the home that Jesus had provided. Joseph and his family moved into the old Nazareth home. 예수께서 나사렛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을 무렵에 이 도시를 지나가던 어느 큰 대상(카라반)의 안내자가 심한 병에 걸렸는데, 외국어에 능통하였던 예수께서 그의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자원하였습니다. 그는 이 여행 때문에 일 년 동안 집을 비워야 했고, 동생들이 모두 결혼해서 집에는 어머니와 룻뿐이었기 때문에, 그는 가족회의를 소집하였고, 그 자리에서 그는 자기가 최근에 야고보에게 넘겨주었던 가버나움 집으로 어머니와 룻이 이사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가 대상들과 떠난 며칠 뒤에, 마리아와 룻은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였고, 그곳에서 그들은 마리아의 여생(餘生) 동안 예수께서 마련하신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나사렛의 고향집으로 들어왔습니다.

134:1.7 (1484.4) This was one of the more unusual years in the inner experience of the Son of Man; great progress was made in effecting working harmony between his human mind and the indwelling Adjuster. The Adjuster had been actively engaged in reorganizing the thinking and in rehearsing the mind for the great events which were in the not then distant future. The personality of Jesus was preparing for his great change in attitude toward the world. These were the in-between times, the transition stage of that being who began life as God appearing as man, and who was now making ready to complete his earth career as man appearing as God. AD24년, 이 해는 사람의 아들의 내적 체험에 있어서 매우 특별한 몇 해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의 인간 마음과 내주하는 조절자 사이에서 조화(調和)를 이루는 일에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장래에 일어날 위대한 사건들을 위하여, 조절자는 예수님의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훈련시키는 일(rehearsing)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고유성은 세상을 향한 태도에 있어서 큰 변화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간들은 양단의 중간 시기, 인간으로 나타난 하나님으로서의 일생(一生)을 시작하고, 하나님으로 나타난 사람으로서의 땅에서의 생애를 마치려고 이제 준비하는 과도기였습니다.

2. The Caravan Trip to the Caspian 카스피까지 간 대상(카라반) 여행

  •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Finally, brothers, whatever is true, whatever is noble, whatever is right, whatever is pure, whatever is lovely, whatever is admirable—if anything is excellent or praiseworthy—think about such things.

134:2.1 (1484.5) It was the first of April, A.D. 24, when Jesus left Nazareth on the caravan trip to the Caspian Sea region. The caravan which Jesus joined as its conductor was going from Jerusalem by way of Damascus and Lake Urmia through Assyria, Media, and Parthia to the southeastern Caspian Sea region. It was a full year before he returned from this journey. 예수께서 나사렛을 출발하여 대상caravan들과 함께 카스피Caspian 해(海)로 여행을 떠난 것은 기원 후 24년 4월 1일의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안내자로서 합세하였던 그 대상(隊商)은 예루살렘Jerusalem을 출발하여 다마스쿠스Damascus와 우르미아Urmia 호수(湖水)를 경유하고 앗시리아Assyria, 메디아Media, 파르티아Parthia를 거쳐 남동부 카스피 지역으로 갔습니다. 이 여행에서 그가 돌아오기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134:2.2 (1484.6) For Jesus this caravan trip was another adventure of exploration and personal ministry. He had an interesting experience with his caravan family — passengers, guards, and camel drivers. Scores of men, women, and children residing along the route followed by the caravan lived richer lives as a result of their contact with Jesus, to them, the extraordinary conductor of a commonplace caravan. Not all who enjoyed these occasions of his personal ministry profited thereby, but the vast majority of those who met and talked with him were made better for the remainder of their natural lives. 예수님에게 있어서 이 대상 여행은 탐험하면서 개인적으로 사역하는 또 다른 모험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대상 일행들─승객들, 안내원들, 낙타 부리는 자들─과 함께 흥미 있는 체험을 했습니다. 대상이 지나갔던 길을 따라 살고 있었던 많은 남녀 어른들과 아이들은, 그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대상을 이끄는 비범(非凡)한 안내자로 보였던 예수님과 접촉한 결과로,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사역하였던 이 기회들을 누렸던 사람들 전부가 이익을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의 대다수는 더 나은 여생(餘生)을 누렸습니다.

134:2.3 (1484.7) Of all his world travels this Caspian Sea trip carried Jesus nearest to the Orient and enabled him to gain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Far-Eastern peoples. He made intimate and personal contact with every one of the surviving races of Urantia excepting the red. He equally enjoyed his personal ministry to each of these varied races and blended peoples, and all of them were receptive to the living truth which he brought them. The Europeans from the Far West and the Asiatics from the Far East alike gave attention to his words of hope and eternal life and were equally influenced by the life of loving service and spiritual ministry which he so graciously lived among them. 그의 모든 여행 중에서 이 카스피 해의 여행은 예수님께서 동방에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였으며, 그래서 그는 극동(極東)지방 사람들을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홍인종을 제외하고 지구에 살아남아 있는 각 종족들과 친밀하게 개인적으로 접촉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여러 인종들과 혼합 사람들 각자에게 동등하게 개인적으로 베푼 사역활동을 즐겼으며, 그들 모두 예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살아있는 진리를 잘 받아들였습니다. 극서(極西)지방에서 온 유럽인들Europeans이나 극동지방에서 온 아시아인들Asiatics은, 희망과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그의 말에 똑같이 주의를 기울였으며, 그들 가운데 예수께서 그토록 인자하게 사셨던 사랑의 봉사와 영적 사역에 의하여 똑같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134:2.4 (1485.1) The caravan trip was successful in every way. This was a most interesting episode in the human life of Jesus, for he functioned during this year in an executive capacity, being responsible for the material intrusted to his charge and for the safe conduct of the travelers making up the caravan party. And he most faithfully, efficiently, and wisely discharged his multiple duties. 그 대상caravan 여행은 모든 점에서 성공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인간 일생에서 매우 흥미 있는 에피소드(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해에 집행(執行)하는 자격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물질과 카라반(대상) 일행을 이루고 있던 여행자들의 안전한 행위를 책임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가장 신실하고, 효과적으로 그리고 현명하게 여러 가지 임무들을 처리하였습니다.

134:2.5 (1485.2) On the return from the Caspian region, Jesus gave up the direction of the caravan at Lake Urmia, where he tarried for slightly over two weeks. He returned as a passenger with a later caravan to Damascus, where the owners of the camels besought him to remain in their service. Declining this offer, he journeyed on with the caravan train to Capernaum, arriving the first of April, A.D. 25. No longer did he regard Nazareth as his home. Capernaum had become the home of Jesus, James, Mary, and Ruth. But Jesus never again lived with his family; when in Capernaum he made his home with the Zebedees. 카스피 지역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은 우르미아Urmia 호수에서 대상 안내자의 자리를 사직하고 2주가 약간 넘게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나중에 다마스쿠스Damascus로 가는 대상 대열에 승객으로 합세하여 돌아왔는데, 그곳에서 그 낙타들의 주인은 그에게 남아서 같이 일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가버나움Capernaum으로 가는 대상들과 함께 계속 여행하여 AD 25년 4월 1일에 가버나움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나사렛Nazareth을 자기 고향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가버나움Capernaum이 예수와 야고보James와 마리아Mary와 룻Ruth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다시 가족과 함께 살지 않았으며, 가버나움에 있을 때에는 세베대Zebedees의 집에 자신의 거처(居處)를 정하였습니다.

3. The Urmia Lectures우르미아에서의 강연

134:3.1 (1485.3) On the way to the Caspian Sea, Jesus had stopped several days for rest and recuperation at the old Persian city of Urmia on the western shores of Lake Urmia. On the largest of a group of islands situated a short distance offshore near Urmia was located a large building — a lecture amphitheater — dedicated to the “spirit of religion.” This structure was really a temple of the philosophy of religions. 카스피 해(海)로 가는 길에, 예수님은 휴식과 원기회복을 위하여 우르미아 호수의 서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페르시아 도시인 우르미아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습니다. 우르미아 근처 해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섬들 중에서 가장 큰 섬에는 큰 건물 – 원형극장식의 강연 장소 – 이 “종교의 정신spirit”에 봉헌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이 건물은 종교 철학을 다루는 사원(寺院)이었습니다.

134:3.2 (1485.4) This temple of religion had been built by a wealthy merchant citizen of Urmia and his three sons. This man was Cymboyton, and he numbered among his ancestors many diverse peoples. 이 종교 사원은 우르미아의 시민인 어느 부유한 상인(商人)과 그의 세 아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심보이톤Cymboyton이었으며, 그의 선조들 중에는 다른 여러 민족들이 있었습니다.

134:3.3 (1485.5) The lectures and discussions in this school of religion began at ten o’clock every morning in the week. The afternoon sessions started at three o’clock, and the evening debates opened at eight o’clock. Cymboyton or one of his three sons always presided at these sessions of teaching, discussion, and debate. The founder of this unique school of religions lived and died without ever revealing his personal religious beliefs. 이 종교학교의 강의와 토론은 주 중 매일 오전 10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오후 수업은 3시에 시작하였으며, 저녁 토론회는 8시에 열렸습니다. 심보이톤Cymboyton이나 그의 세 아들들 중의 하나가 이 강의•논의•토론 시간에 언제나 사회(司會)를 보았습니다. 독특한 이 종교 학교의 창시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종교적 신념을 밝히지 않은 채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134:3.4 (1485.6) On several occasions Jesus participated in these discussions, and before he left Urmia, Cymboyton arranged with Jesus to sojourn with them for two weeks on his return trip and give twenty-four lectures on “The Brotherhood of Men,” and to conduct twelve evening sessions of questions, discussions, and debates on his lectures in particular and on the brotherhood of men in general. 예수님은 여러 차례 이 논의에 참여했고, 우르미아를 떠나기 전에, 심보이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는 길에 그들과 2주간 동안 머물러 있도록 조정하여, “사람들의 형제신분The Brotherhood of Men”이라는 주제로 24번 강의하고, 특히 그의 강의에 대하여,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의 형제 정신에 대하여, 질문하고 토의하고 토론하는 저녁 시간을 12회 인도하도록 했습니다.

134:3.5 (1485.7) In accordance with this arrangement, Jesus stopped off on the return trip and delivered these lectures. This was the most systematic and formal of all the Master’s teaching on Urantia. Never before or after did he say so much on one subject as was contained in these lectures and discussions on the brotherhood of men. In reality these lectures were on the “Kingdom of God” and the “Kingdoms of Men.” 이러한 일정에 따라 예수님은 돌아오는 길에 우르미아에 들려 계획된 강의들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 계셨던 주님의 모든 가르침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형식을 갖춘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형제신분에 대하여, 이 강의들과 토의들에서처럼, 그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강의들은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와 “사람의 나라Kingdoms of Men”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134:3.6 (1486.1) More than thirty religions and religious cults were represented on the faculty of this temple of religious philosophy. These teachers were chosen, supported, and fully accredited by their respective religious groups. At this time there were about seventy-five teachers on the faculty, and they lived in cottages each accommodating about a dozen persons. Every new moon these groups were changed by the casting of lots. Intolerance, a contentious spirit, or any other disposition to interfere with the smooth running of the community would bring about the prompt and summary dismissal of the offending teacher. He would be unceremoniously dismissed, and his alternate in waiting would be immediately installed in his place. 30개가 넘는 종교들과 종교적 종파들이, 종교 철학 전당의 교수진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교수진들이 대표하는 각 종교 집단이 이 선생들을 선택하고 지원하고 충분히 인가하였습니다. 이 무렵에는 약 75명의 선생들이 교수진으로 활동하였고, 그들은 각 집마다 약 12명이 함께 사는 사택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초승달이 뜰 때마다 이 집단들의 구성원들은 제비를 뽑아서 교체되었습니다. 편협함, 다투기를 좋아하는 정신, 또는 공동체를 순조롭게 운영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어떤 다른 경향을 나타나는 경우에는, 위반한 선생으로서 그 즉시 즉각적으로 해직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 예식을 거치지 않고 해직되었고, 교대 대기자가 곧 그 자리에 임명되었습니다.

134:3.7 (1486.2) These teachers of the various religions made a great effort to show how similar their religions were in regard to the fundamental things of this life and the next. There was but one doctrine which had to be accepted in order to gain a seat on this faculty — every teacher must represent a religion which recognized God — some sort of supreme Deity. There were five independent teachers on the faculty who did not represent any organized religion, and it was as such an independent teacher that Jesus appeared before them. 다양한 종교들을 대표하는 이 선생들은 이생과 다음 생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그들의 종교가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를 보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교수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의 원칙만이 적용되었습니다. 각 선생은 하나님 – 어떤 종류의 최고의 신(神)supreme Deity – 을 인정하는 종교를 대표해야만 했습니다. 교수진 가운데에는 어떤 조직화된 종교도 대표하지 않는 독립된 5명의 선생들이 있었는데, 예수는 그러한 독립된 선생으로 그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134:3.8 (1486.3) [When we, the midwayers, first prepared the summary of Jesus’ teachings at Urmia, there arose a disagreement between the seraphim of the churches and the seraphim of progress as to the wisdom of including these teachings in the Urantia Revelation. Conditions of the twentieth century, prevailing in both religion and human governments, are so different from those prevailing in Jesus’ day that it was indeed difficult to adapt the Master’s teachings at Urmia to the problems of the kingdom of God and the kingdoms of men as these world functions are existent in the twentieth century. We were never able to formulate a statement of the Master’s teachings which was acceptable to both groups of these seraphim of planetary government. Finally, the Melchizedek chairman of the revelatory commission appointed a commission of three of our number to prepare our view of the Master’s Urmia teachings as adapted to twentieth-century religious and political conditions on Urantia. Accordingly, we three secondary midwayers completed such an adaptation of Jesus’ teachings, restating his pronouncements as we would apply them to present-day world conditions, and we now present these statements as they stand after having been edited by the Melchizedek chairman of the revelatory commission.] [우리 중도자들이 우르미아에서 예수님 교훈의 요약을 처음 준비했을 때, 교회의 세라핌천사들과 진보의 세라핌천사들 사이에, 유란시아 계시에 이런 가르침들을 포함하는 지혜에 관하여 불일치가 일어났습니다. 중교와 인간 정부(政府) 둘 다 만연한 20세기의 상황은 예수님 당시에 만연한 그런 상황과 아주 달라서, 이러한 세계 기능들이 20세기에 현존하듯이, 우르미아에서 하셨던 주님의 가르침을 하느님의 나라와 인간들의 나라 문제들에 적응시키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행성 정부(政府)에 속한 이런 세라핌천사의 두 집단이 받아들일 주님의 교훈에 대한 진술을 결코 공식적으로 서술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계시 위원회의 멜기세덱 의장이 우리 회원 중 3명의 위원회를 지명하여, 유란시아의 20세기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상황에 적합하게, 주님의 우르미아 교훈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준비시켰습니다. 따라서 우리 2차 중도자 셋은 예수 교훈을 오늘날 세계 상황에 적용하듯이 그의 선언을 새로 진술하여, 그렇게 예수 교훈의 번안(飜案)을 완료했으며, 계시 위원회의 멜기세덱 의장이 편집한 후 그대로, 우리는 이제 이 진술문을 제시합니다.]

4. Sovereignty — Divine and Human주권─신성한 것과 인간의 것

170111 수요 예수73 (30세-AD24) 주권─신성한 것과 인간의 것 Sovereignty — Divine and Human 마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134:4.1 (1486.4) The brotherhood of men is founded on the fatherhood of God. The family of God is derived from the love of God — God is love. God the Father divinely loves his children, all of them. 사람의 형제신분은 하나님의 아버지신분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기인합니다. –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자녀들을 신적으로 사랑하십니다.

134:4.2 (1486.5) The kingdom of heaven, the divine government, is founded on the fact of divine sovereignty — God is spirit. Since God is spirit, this kingdom is spiritual. The kingdom of heaven is neither material nor merely intellectual; it is a spiritual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man. 하늘나라, 신적인 정부(政府)는 신적인 주권 – 하나님은 영(靈)이십니다. – 라는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이 나라는 영적(靈的)입니다. 하늘나라는 물질적이지도 않고 단순히 지적이지도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적 관계입니다.

134:4.3 (1486.6) If different religions recognize the spirit sovereignty of God the Father, then will all such religions remain at peace. Only when one religion assumes that it is in some way superior to all others, and that it possesses exclusive authority over other religions, will such a religion presume to be intolerant of other religions or dare to persecute other religious believers. 만약 다른 종교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한다면, 그런 모든 종교들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의 종교가 어떤 면에서 다른 모든 종교들보다 우월하고, 그것이 다른 종교들에 대해 배타적인 권위를 갖는 경우에, 그런 종교는 다른 종교들을 용납하지 않거나 감히 다른 종교들의 신자들을 박해(迫害)할 것입니다.

134:4.4 (1487.1) Religious peace — brotherhood — can never exist unless all religions are willing to completely divest themselves of all ecclesiastical authority and fully surrender all concept of spiritual sovereignty. God alone is spirit sovereign. 종교적 평화 – 형제신분 –은 모든 종교들이 교단의 모든 권한을 자발적으로 완전히 버리고, 영적 주권에 대한 모든 관념을 전부 포기(抛棄)하지 않는 한,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영적 주권자이십니다.

134:4.5 (1487.2) You cannot have equality among religions (religious liberty) without having religious wars unless all religions consent to the transfer of all religious sovereignty to some superhuman level, to God himself. 모든 종교들이 모든 종교적 주권(主權)을 초인간적 수준의 하나님 자신에게 넘겨드리기로 동의하지 않는다면, 종교적 전쟁 없이 종교들 사이에 평등(종교적 해방)을 얻을 수 없습니다.

134:4.6 (1487.3) The kingdom of heaven in the hearts of men will create religious unity (not necessarily uniformity) because any and all religious groups composed of such religious believers will be free from all notions of ecclesiastical authority — religious sovereignty. 사람들의 심정 속에 있는 하늘나라는 종교적 연합(반드시 획일적일 필요는 없지만)을 만들어 낼 것인데, 왜냐하면 그런 종교적 신자들로 구성된 모든 종교는 교단의 권한 – 종교적 주권 –에 대한 모든 개념에서 해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34:4.7 (1487.4) God is spirit, and God gives a fragment of his spirit self to dwell in the heart of man. Spiritually, all men are equal. The kingdom of heaven is free from castes, classes, social levels, and economic groups. You are all brethren. 하나님은 영이시며, 하나님은 자신의 영 그 자체의 한 단편(분신分身)을 사람의 심정 안에 내주하도록 보내 주십니다. 영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합니다. 하늘나라는 신분, 특권계급, 사회적 수준이나 경제적 단체들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형제들입니다.

134:4.8 (1487.5) But the moment you lose sight of the spirit sovereignty of God the Father, some one religion will begin to assert its superiority over other religions; and then, instead of peace on earth and good will among men, there will start dissensions, recriminations, even religious wars, at least wars among religionists.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영적 주권을 잃어버리는 순간, 어느 한 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서 평화가 이루어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뜻이 이루어지는 대신, 종교인들 사이에서 불화와 비난이 시작될 것이고 심지어 전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134:4.9 (1487.6) Freewill beings who regard themselves as equals, unless they mutually acknowledge themselves as subject to some supersovereignty, some authority over and above themselves, sooner or later are tempted to try out their ability to gain power and authority over other persons and groups. The concept of equality never brings peace except in the mutual recognition of some overcontrolling influence of supersovereignty. 스스로를 동등하게 여기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들은, 그들 위에 있는 높은 권한, 즉 어떤 초(超)주권의 지배를 받는다고 서로가 인정하지 않는 한, 조만간에 다른 개인들과 단체들을 지배하기 위한 권력과 권한을 갖기 위하여 자신들의 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어떤 초(超)주권의 전권으로 지배하는 영향력을 서로 인정하지 않고서는, 평등(平等)의 개념이 평화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134:4.10 (1487.7) The Urmia religionists lived together in comparative peace and tranquillity because they had fully surrendered all their notions of religious sovereignty. Spiritually, they all believed in a sovereign God; socially, full and unchallengeable authority rested in their presiding head — Cymboyton. They well knew what would happen to any teacher who assumed to lord it over his fellow teachers. There can be no lasting religious peace on Urantia until all religious groups freely surrender all their notions of divine favor, chosen people, and religious sovereignty. Only when God the Father becomes supreme will men become religious brothers and live together in religious peace on earth. 우르미아 종교인들은 종교적 주권에 대한 자신들의 모든 신념들을 온전히 포기했기 때문에, 비교적 평화스럽고 고요하게 함께 살아갔습니다. 영적으로, 그들은 모두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도전할 수 없는 충분한 권한은 그들을 주관하는 수장(首長), 심보이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동료 선생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는 누구든지 막론하고, 그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 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신적인 은총과 선택받은 민족 그리고 종교적 주권에 대한 자신들의 모든 관념을 모든 종교적 집단들이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포기하기 전까지는, 영구한 종교적 평화(平和)를 이 땅에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이 최극의 뜻이 될 때에만,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형제들이 되고 이 세상에서 종교적인 평화 속에 함께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5. Political Sovereignty 정치적 주권

170118 수요 예수74 (30세-AD24) 정치적 주권 단4: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134:5.1 (1487.8) [While the Master’s teaching concerning the sovereignty of God is a truth — only complicated by the subsequent appearance of the religion about him among the world’s religions — his presentations concerning political sovereignty are vastly complicated by the political evolution of nation life during the last nineteen hundred years and more. In the times of Jesus there were only two great world powers — the Roman Empire in the West and the Han Empire in the East — and these were widely separated by the Parthian kingdom and other intervening lands of the Caspian and Turkestan regions. We have, therefore, in the following presentation departed more widely from the substance of the Master’s teachings at Urmia concerning political sovereignty, at the same time attempting to depict the import of such teachings as they are applicable to the peculiarly critical stage of the evolu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in the twentieth century after Christ.][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주(主)의 가르침은 진리입니다. 다만 세상 종교들 사이에서 그에 관한 종교가 나중에 출현되어 단지 복잡해졌을 뿐입니다. 반면에, 정치적 주권에 관한 주님의 발표는 지난 1,900여 년 동안에 국가 생활의 정치적 진화에 의하여 광범위하게 복잡해졌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단지 두 개의 세계적인 강국들 – 서양의 로마제국과 동양의 한(漢) 제국─이 있었을 뿐이며, 이 두 제국은 파르티아Parthian 왕국과 카스피Caspian와 투루키스탄Turkestan 지역의 다른 국가들 때문에 널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의 발표가 정치적 주권에 관해 우르미아Urmia에서 주(主)님께서 가르치신 내용과 동떨어져 있지만, 동시에 그리스도 이후 20세기에 정치적 주권이 진화하는 특별한 결정적 단계에 주님의 가르침이 적용되도록 그 가르침의 의미를 서술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134:5.2 (1487.9) War on Urantia will never end so long as nations cling to the illusive notions of unlimited national sovereignty. There are only two levels of relative sovereignty on an inhabited world: the spiritual free will of the individual mortal and the collective sovereignty of mankind as a whole. Between the level of the individual human being and the level of the total of mankind, all groupings and associations are relative, transitory, and of value only in so far as they enhance the welfare, well-being, and progress of the individual and the planetary grand total — man and mankind. 국가가 무제한적인 국가 주권(主權)을 가지고 있다는 허상에 집착하는 한, 이 땅에서 전쟁은 결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세계에는 오직 두 가지 차원의 상대적 주권만이 있을 뿐인데 바로 인간 개개인의 영적 자유의지와 인류 전체의 집합적 주권입니다. 개별 인간 존재의 차원과 인류 전체의 차원 사이에서, 모든 단체와 연합들은 상대적이고 일시적이며 오직 그들이 개별존재와 행성 전체 즉 사람과 인류의 복지와 안녕 그리고 진보를 향상(向上)시키는 경우에만 가치가 있을 뿐입니다.

134:5.3 (1488.1) Religious teachers must always remember that the spiritual sovereignty of God overrides all intervening and intermediate spiritual loyalties. Someday civil rulers will learn that the Most Highs rule in the kingdoms of men. 종교 교사들은 하나님의 영적 통치권이, 중재하고 중개하는 모든 영적 충성심에 우선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만 합니다. 시민 정부의 통치자들은 사람의 왕국들을 통치하는 지고자들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입니다.

134:5.4 (1488.2) This rule of the Most Highs in the kingdoms of men is not for the especial benefit of any especially favored group of mortals. There is no such thing as a “chosen people.” The rule of the Most Highs, the overcontrollers of political evolution, is a rule designed to foster the greatest good to the greatest number of all men and for the greatest length of time. 사람들의 나라 안에 있는 지고자the Most Highs들의 이 통치는 특별히 혜택을 누리는 어떤 사람들 단체의 특별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선택받은 민족”과 같은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고자들, 즉 정치적 진화를 위에서 총괄하는 분들의 통치는 최다수(最多數)에게, 최장(最長) 기간에, 최대의 이익을 주도록 설계된 법칙입니다.

134:5.5 (1488.3) Sovereignty is power and it grows by organization. This growth of the organization of political power is good and proper, for it tends to encompass ever-widening segments of the total of mankind. But this same growth of political organizations creates a problem at every intervening stage between the initial and natural organization of political power — the family — and the final consummation of political growth — the government of all mankind, by all mankind, and for all mankind. 주권(主權)은 권력이며 그것은 조직에 의하여 성장합니다. 이러한 정치적 권력 조직의 성장은 유익하고 바람직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인류 전체의 가장 넓은 부분들을 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정치조직의 성장은, 초기의 자연스러운 정치권력 – 가족(家族) – 의 조직과 최종적인 정치적 성장의 성취 – 모든 인류의, 모든 인류에 의한, 모든 인류를 위한 – 사이에 있는 모든 중간 단계마다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134:5.6 (1488.4) Starting out with parental power in the family group, political sovereignty evolves by organization as families overlap into consanguineous clans which become united, for various reasons, into tribal units — superconsanguineous political groupings. And then, by trade, commerce, and conquest, tribes become unified as a nation, while nations themselves sometimes become unified by empire. 가족 집단 속에 있는 부모의 권력으로부터 출발하여, 정치적 주권은 조직에 의해 진화합니다. 가족들이 혈연관계의 씨족으로 이어지고, 씨족들은 여러 이유로 부족(部族) 단위 -혈연관계를 초월한 정치적 집단들 –로 연합됩니다. 그런 다음, 무역과 상업 그리고 정복을 통해 부족들이 하나의 국가로 연합되고, 국가들 자체는 때때로 제국으로 연합됩니다.

134:5.7 (1488.5) As sovereignty passes from smaller groups to larger groups, wars are lessened. That is, minor wars between smaller nations are lessened, but the potential for greater wars is increased as the nations wielding sovereignty become larger and larger. Presently, when all the world has been explored and occupied, when nations are few, strong, and powerful, when these great and supposedly sovereign nations come to touch borders, when only oceans separate them, then will the stage be set for major wars, world-wide conflicts. So-called sovereign nations cannot rub elbows without generating conflicts and eventuating wars. 소규모의 집단에서 대규모의 집단으로 주권이 넘어감에 따라 전쟁은 줄어듭니다. 다시 말해서, 작은 국가들 간의 사소한 전쟁들은 줄어드는 반면에, 주권을 행사하는 국가들은 커갈수록 더 큰 전쟁이 일어날 잠재성이 증가합니다. 당장에 온 세상이 탐험되어 점령되고, 나라들의 수가 얼마 안 되지만 강하고 강력하며, 이러한 엄청난 주권을 지닌 나라들의 국경이 서로 이웃하게 되고, 대양(大洋)으로만 겨우 나라들이 분리되어 있다면, 대규모의 전쟁, 즉 세계적인 충돌을 위한 무대가 준비될 것입니다. 소위 주권을 가진 국가들은, 갈등이 일어나 결국 전쟁하지 않고는 서로 잘 지낼 수 없습니다.

134:5.8 (1488.6) The difficulty in the evolu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from the family to all mankind, lies in the inertia-resistance exhibited on all intervening levels. Families have, on occasion, defied their clan, while clans and tribes have often been subversive of the sovereignty of the territorial state. Each new and forward evolu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is (and has always been) embarrassed and hampered by the “scaffolding stages” of the previous developments in political organization. And this is true because human loyalties, once mobilized, are hard to change. The same loyalty which makes possible the evolution of the tribe, makes difficult the evolution of the supertribe — the territorial state. And the same loyalty (patriotism) which makes possible the evolution of the territorial state, vastly complicates the evolutionary development of the government of all mankind. 가족으로부터 전체 인류로 확대되는 정치적 주권의 진화에서 겪는 어려움은, 중간에 개입하는 모든 차원에서 나타나는 관성(慣性)과 저항 안에 놓여 있습니다. 가족들은 경우에 따라 자기들의 씨족에게 도전해 왔으며, 반면에 씨족들과 부족들은 지역 국가의 주권을 종종 전복해왔습니다. 정치적 주권의 진화가 각각 새롭게 나아가는 경우 항상 언제나 그래왔지만, 정치적 조직에서, 이전에 개발된 “발판 단계”로 인해 난처해지고 방해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인 이유는, 일단 동원되면, 인간의 충성심은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족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던 바로 그 충성심은 부족을 초월한 – 지역 국가 – 진화를 어렵게 합니다. 그리고 지역적 국가의 진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동일한 충성심(애국심)이 모든 인류 정부의 진화적 발전을 매우 복잡하게 만듭니다.

134:5.9 (1488.7) Political sovereignty is created out of the surrender of self-determinism, first by the individual within the family and then by the families and clans in relation to the tribe and larger groupings. This progressive transfer of self-determination from the smaller to ever larger political organizations has generally proceeded unabated in the East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Ming and the Mogul dynasties. In the West it obtained for more than a thousand years right on down to the end of the World War, when an unfortunate retrograde movement temporarily reversed this normal trend by re-establishing the submerged political sovereignty of numerous small groups in Europe. 정치적 주권은, 처음에는 가족 안에서 개인이, 다음에는 부족 및 더 큰 집합과 관계된 가족과 씨족들이, 자결(자아결정)주의를 버림으로 만들어집니다. 작은 데서부터 항상 더 큰 정치 조직으로 자결(自決)을 이렇게 진취적으로 양도(讓渡)하는 것은 명(明) 나라와 몽고 왕조가 세워진 뒤로, 동양에서는 대체로 줄어들지 않고 진행되었습니다. 서양에서 그것은, 1천 년이 넘도록, 바로 세계 대전(大戰)이 끝날 때까지 진행되었고, 이 때 유럽에서 수많은 작은 집단들이, 사라졌던 정치적 주권을 다시 확립함으로써, 불행한 역행(逆行) 운동이 이 정상(正常)적인 경향을 일시에 바꿔 놓았습니다.

134:5.10 (1489.1) Urantia will not enjoy lasting peace until the so-called sovereign nations intelligently and fully surrender their sovereign powers into the hands of the brotherhood of men — mankind government. Internationalism — Leagues of Nations — can never bring permanent peace to mankind. World-wide confederations of nations will effectively prevent minor wars and acceptably control the smaller nations, but they will not prevent world wars nor control the three, four, or five most powerful governments. In the face of real conflicts, one of these world powers will withdraw from the League and declare war. You cannot prevent nations going to war as long as they remain infected with the delusional virus of national sovereignty. Internationalism is a step in the right direction. An international police force will prevent many minor wars, but it will not be effective in preventing major wars, conflicts between the great military governments of earth. 이른바 주권 국가들이 그 주권의 권력을 사람의 형제 정신―인류 정부―의 손에 총명하게, 완전히 내어주기까지, 지구는 오래 지속되는 평화를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국제주의―국제 연맹―은 결코 인류에게 영구한 평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나라들의 세계적 연방들이 작은 전쟁을 효과적으로 막고 작은 나라들을 만족스럽게 통제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방들은 세계 전쟁을 방지하거나, 초강대국 서넛이나 다섯을 통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실제적인 갈등에 직면하게 되면, 이 강대국들 가운데 하나가 연맹으로부터 탈퇴하고 전쟁을 선포할 것입니다. 국가가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망상(妄想)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 한, 국가들 간의 전쟁을 미리 예방할 수 없습니다. 국제주의는 올바른 방향에로의 첫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국제 경찰력은 많은 작은 전쟁을 방지하겠지만, 이 세상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정부들 사이의 갈등인 큰 전쟁을 방지하는 데에는 효력이 없을 것입니다.

134:5.11 (1489.2) As the number of truly sovereign nations (great powers) decreases, so do both opportunity and need for mankind government increase. When there are only a few really sovereign (great) powers, either they must embark on the life and death struggle for national (imperial) supremacy, or else, by voluntary surrender of certain prerogatives of sovereignty, they must create the essential nucleus of supernational power which will serve as the beginning of the real sovereignty of all mankind. 참으로 주권을 가진 국가(강대국)의 수가 줄어드는 데 따라서, 인류 정부의 기회와 필요가 늘어납니다. 정말로 주권을 가진 (큰) 강국들이 겨우 몇 나라만 있을 때는, 민족(제국) 우위성을 얻으려고 생사를 건 싸움을 시작하든지, 아니면, 주권의 특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하여, 인류의 참된 주권의 시작으로서 사용될 초국가 권력의 필수 핵심(核心)을 만들어야 합니다.

134:5.12 (1489.3) Peace will not come to Urantia until every so-called sovereign nation surrenders its power to make war into the hands of a representative government of all mankind. Political sovereignty is innate with the peoples of the world. When all the peoples of Urantia create a world government, they have the right and the power to make such a government SOVEREIGN; and when such a representative or democratic world power controls the world’s land, air, and naval forces, peace on earth and good will among men can prevail — but not until then. 소위 주권 국가가 모두 전쟁을 수행할 권력을 인류의 대표 정부에게 양보할 때까지, 평화는 지구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적 주권은 세계의 여러 민족에게 타고난 것입니다. 지구의 모든 민족이 하나의 세계 정부를 창립할 때, 그들은 그러한 정부가 주권을 갖도록 할 권한과 권력이 있습니다. 그러한 대표적 또는 민주적 세계 권력이 지구에서 세계의 육군•해군•공군을 통제할 때, 땅에 평화가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 선의(善意)가 지배할 것입니다. – 그러나 그 때까지는 불가능합니다.

134:5.13 (1489.4) To use an important nineteenth- and twentieth-century illustration: The forty-eight states of the American Federal Union have long enjoyed peace. They have no more wars among themselves. They have surrendered their sovereignty to the federal government, and through the arbitrament of war, they have abandoned all claims to the delusions of self-determination. While each state regulates its internal affairs, it is not concerned with foreign relations, tariffs, immigration, military affairs, or interstate commerce. Neither do the individual states concern themselves with matters of citizenship. The forty-eight states suffer the ravages of war only when the federal government’s sovereignty is in some way jeopardized. 19세기 및 20세기의 중요한 예를 하나 들어본다면, 아메리카 연방의 48주는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이제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권을 연방 정부에게 넘겨주었고, 전쟁의 중재를 통해서, 자체적 결정권이라는 망상에 대한 모든 주장을 버렸습니다. 각 주(州)정부가 그 내부(內部) 사무를 규제하지만, 외교 관계, 관세, 이민, 군사(軍事) 또는 주정부 간의 통상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개별 주(州)는 시민권의 문제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48주는 오직 연방 정부의 주권이 어떤 면에서 위협을 받을 때에만 전쟁의 참화(慘禍)를 겪게 됩니다.

134:5.14 (1489.5) These forty-eight states, having abandoned the twin sophistries of sovereignty and self-determination, enjoy interstate peace and tranquillity. So will the nations of Urantia begin to enjoy peace when they freely surrender their respective sovereignties into the hands of a global government — the sovereignty of the brotherhood of men. In this world state the small nations will be as powerful as the great, even as the small state of Rhode Island has its two senators in the American Congress just the same as the populous state of New York or the large state of Texas. 이 48주는 주권과 자체 결정권이라는 두 가지 궤변을 버렸고, 주 사이에서 평화와 평온을 누립니다. 마찬가지로 지구의 국가들도 각자의 주권을 세계 정부 – 사람의 형제 정신의 주권 – 에 자유롭게 양보할 때 평화를 누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인구가 많은 뉴욕 주나 큰 텍사스 주와 똑같이, 작은 로드 아이랜드 주가 미국 국회에 상원(上院) 의원 두 명을 가진 것처럼, 이 세계 국가에서 작은 나라들은 큰 나라만큼 강력해질 것입니다.

134:5.15 (1490.1) The limited (state) sovereignty of these forty-eight states was created by men and for men. The superstate (national) sovereignty of the American Federal Union was created by the original thirteen of these states for their own benefit and for the benefit of men. Sometime the supernational sovereignty of the planetary government of mankind will be similarly created by nations for their own benefit and for the benefit of all men. 이 48주(州)의 제한된 주권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주를 관할하는 아메리카 연방이 가진 국가적 주권은 이 여러 주 가운데 최초의 13개 주가 자체의 이익을 위하여, 주민(州民)들의 이익을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언젠가 인류의 행성 정부의 초국가적 주권을 여러 나라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비슷한 형태로 만들 것입니다.

134:5.16 (1490.2) Citizens are not born for the benefit of governments; governments are organizations created and devised for the benefit of men. There can be no end to the evolu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short of the appearance of the government of the sovereignty of all men. All other sovereignties are relative in value, intermediate in meaning, and subordinate in status. 시민들은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만들어지고 고안된 조직입니다. 모든 사람의 주권을 대표하는 정부가 나타나지 못하면, 정치적 주권의 진화에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다른 주권의 가치는 상대적이며, 그 의미는 중간적이고, 그 지위는 종속적입니다.

134:5.17 (1490.3) With scientific progress, wars are going to become more and more devastating until they become almost racially suicidal. How many world wars must be fought and how many leagues of nations must fail before men will be willing to establish the government of mankind and begin to enjoy the blessings of permanent peace and thrive on the tranquillity of good will — world-wide good will — among men? 과학의 진보와 함께, 거의 인종족 자살(自殺)행위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갈수록 더 끔찍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류의 정부를 기꺼이 세우고, 영구한 평화의 복을 누리기 시작하고, 사람들 사이에 선의―세계적 선의―에서 생기는 평안을 토대로 번영하기까지, 몇 차례나 세계 전쟁을 치러야 하고, 얼마나 많은 국가 연맹이 실패해야만 할 것인가?

6. Law, Liberty, and Sovereignty 법, 자유, 그리고 주권

170125 수요 예수75 (30세-AD24) 법, 자유, 주권 눅21:9-10 9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10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34:6.1 (1490.4) If one man craves freedom — liberty — he must remember that all other men long for the same freedom. Groups of such liberty-loving mortals cannot live together in peace without becoming subservient to such laws, rules, and regulations as will grant each person the same degree of freedom while at the same time safeguarding an equal degree of freedom for all of his fellow mortals. If one man is to be absolutely free, then another must become an absolute slave. And the relative nature of freedom is true socially, economically, and politically. Freedom is the gift of civilization made possible by the enforcement of LAW. 한 사람이 자유(해방)를 열망한다면,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역시 자기와 똑같은 자유를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해방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들의 집단은, 각 사람에게 같은 정도의 자유를 허락하는 동시에 그의 동료 모든 사람들에게도 같은 양의 자유를 보장해줄, 법과 규칙 그리고 규정들을 지키지 않고서는 함께 평화롭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되려면, 또 다른 한 사람은 절대적인 노예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유의 상대적인 속성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참됩니다. 자유는 법 집행으로 누릴 수 있는 문명의 선물입니다.

134:6.2 (1490.5) Religion makes it spiritually possible to realize the brotherhood of men, but it will require mankind government to regulate the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problems associated with such a goal of human happiness and efficiency. 종교는 사람의 형제 정신의 실현을 영적으로 가능하게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행복이나 효율성에 관계되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문제들을 규정하는 인류 전체의 정부(政府)가 필요할 것입니다.

134:6.3 (1490.6) There shall be wars and rumors of wars — nation will rise against nation — just as long as the world’s political sovereignty is divided up and unjustly held by a group of nation-states. England, Scotland, and Wales were always fighting each other until they gave up their respective sovereignties, reposing them in the United Kingdom. 세상의 정치적 주권이 분리되어 있으며, 국가-주정부들 집단이 불공정하게 차지하는 한, 전쟁이 있고, 전쟁의 소문이 있을 것이다. – 나라와 나라가 대항하여 일어날 것입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웨일즈는 그들이 각자의 주권을 영연방(英聯邦)에 위임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134:6.4 (1490.7) Another world war will teach the so-called sovereign nations to form some sort of federation, thus creating the machinery for preventing small wars, wars between the lesser nations. But global wars will go on until the government of mankind is created. Global sovereignty will prevent global wars — nothing else can. 또 다른 세계 전쟁을 통해, 소위 말하는 주권 국가들은 어떤 종류의 연합정부를 형성해야 하는 지 배우게 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작은 전쟁, 약소국가들 사이의 전쟁을 예방하는 기구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전쟁은 인류 전체의 정부가 생길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지구 전체의 통제권이 세계적 전쟁들을 방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134:6.5 (1490.8) The forty-eight American free states live together in peace. There are among the citizens of these forty-eight states all of the various nationalities and races that live in the ever-warring nations of Europe. These Americans represent almost all the religions and religious sects and cults of the whole wide world, and yet here in North America they live together in peace. And all this is made possible because these forty-eight states have surrendered their sovereignty and have abandoned all notions of the supposed rights of self-determination. 미국의 독립된 48개의 주는 평화를 유지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 48개 주들의 시민들 중에는, 항상 전쟁에 시달리는 유럽의 국가들에 살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국적과 인종들도 섞여 있습니다. 이 미국(美國)인들은 전 세계 모든 종교들과 종교적 종파(宗派)들을 대표하고 있지만, 그들은 이 북미(北美) 지역에서 평화롭게 함께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은 이 48개 주들이 자신들의 주권을 포기하고 자체적 결정 권리에 대한 모든 개념을 버렸기 때문에 가능해졌습니다.

134:6.6 (1490.9) It is not a question of armaments or disarmament. Neither does the question of conscription or voluntary military service enter into these problems of maintaining world-wide peace. If you take every form of modern mechanical armaments and all types of explosives away from strong nations, they will fight with fists, stones, and clubs as long as they cling to their delusions of the divine right of national sovereignty. 그것은 무장(武裝)과 비무장(非武裝)의 문제가 아닙니다. 징병제도 혹은 자발적 군대 복무를 선택하는 문제도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이러한 문제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강대국들로부터 현대의 기계화된 무기(武器)들과 모든 유형의 폭탄들을 다 빼앗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국가적 주권을 신(神)이 준 권리라는 망상에 붙들려 있는 한, 그들은 주먹과 돌과 방망이를 가지고라도 싸울 것입니다.

134:6.7 (1491.1) War is not man’s great and terrible disease; war is a symptom, a result. The real disease is the virus of national sovereignty. 전쟁은 사람이 지닌 중대하고 끔직한 병이 아닙니다. 전쟁은 증상이며 결과입니다. 진짜 병은 국가적 주권이라는 바이러스입니다.

134:6.8 (1491.2) Urantia nations have not possessed real sovereignty; they never have had a sovereignty which could protect them from the ravages and devastations of world wars. In the creation of the global government of mankind, the nations are not giving up sovereignty so much as they are actually creating a real, bona fide, and lasting world sovereignty which will henceforth be fully able to protect them from all war. Local affairs will be handled by local governments; national affairs, by national governments; international affairs will be administered by global government. 이 땅의 국가들은 진정한 주권을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세계적 전쟁들의 참상과 황폐함에서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주권(主權)을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범세계적인 인류 전체 정부를 구성하면서, 국가들은 주권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진실하며 지속적으로, 이후로는 모든 전쟁으로부터 자신들을 충분히 보호해 주는 줄 수 있는 세계적 주권을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역 문제들은 지역 정부가, 국가적 문제들은 국가 정부가 처리하고, 국제적 문제들은 범세계 정부가 관리할 것입니다.

134:6.9 (1491.3) World peace cannot be maintained by treaties, diplomacy, foreign policies, alliances, balances of power, or any other type of makeshift juggling with the sovereignties of nationalism. World law must come into being and must be enforced by world government — the sovereignty of all mankind. 세계평화는, 조약(條約), 외교, 대외 정책, 연맹, 힘의 균형, 혹은 민족주의적 주권으로 조작하는 어떤 다른 유형의 미봉책으로도 유지될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통용되는 법이 만들어져, 그것은 세계정부─모든 인류의 주권─에 의해 집행되어야 합니다.

134:6.10 (1491.4) The individual will enjoy far more liberty under world government. Today, the citizens of the great powers are taxed, regulated, and controlled almost oppressively, and much of this present interference with individual liberties will vanish when the national governments are willing to trustee their sovereignty as regards international affairs into the hands of global government. 세계 정부 아래에서 개인은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오늘날 강대국의 시민들은 거의 강제적으로 세금(稅金)을 징수 당하고, 제약 받고, 통제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재의 개인의 자유에 대한 대부분의 간섭은, 국가정부가 기꺼이 국제적 문제들에 관하여 그들의 주권을 범세계적 정부에게 맡길 때 사라질 것입니다.

134:6.11 (1491.5) Under global government the national groups will be afforded a real opportunity to realize and enjoy the personal liberties of genuine democracy. The fallacy of self-determination will be ended. With global regulation of money and trade will come the new era of world-wide peace. Soon may a global language evolve, and there will be at least some hope of sometime having a global religion — or religions with a global viewpoint. 범세계적 정부 아래에서 국가 집단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개인적 자유를 실현하고 누릴 진정한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자체적인-결정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돈과 무역에 대한 범세계적 차원의 규제에 의해서 세계적 평화의 새로운 시대가 다가올 것입니다. 곧 범세계적 언어가 진화되고, 적어도 범세계적 종교 혹은 범세계적 관점을 가진 종교들을 언젠가 소유하게 된다는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134:6.12 (1491.6) Collective security will never afford peace until the collectivity includes all mankind. 집단의 안전은 그 집합체가 온 인류를 포함할 때까지는, 결코 평화를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134:6.13 (1491.7) The political sovereignty of representative mankind government will bring lasting peace on earth, and the spiritual brotherhood of man will forever insure good will among all men. And there is no other way whereby peace on earth and good will among men can be realized. 인류를 대표하는 정부(政府)의 정치적 주권은 지구에 영원한 평화를 가져올 것이며, 사람의 영적 형제신분은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선의(善意)를 언제까지나 보장할 것입니다. 지상의 평화와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뜻이 실현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 ~ ~ ~

134:6.15 (1491.8) After the death of Cymboyton, his sons encountered great difficulties in maintaining a peaceful faculty. The repercussions of Jesus’ teachings would have been much greater if the later Christian teachers who joined the Urmia faculty had exhibited more wisdom and exercised more tolerance. 심보이톤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들은 평화스러운 교수진을 유지해 나가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만약 우르미아 교수진에 들어간 후대의 기독교 선생들이 좀 더 지혜롭고 좀 더 관대했더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의 반향은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134:6.16 (1491.9) Cymboyton’s eldest son had appealed to Abner at Philadelphia for help, but Abner’s choice of teachers was most unfortunate in that they turned out to be unyielding and uncompromising. These teachers sought to make their religion dominant over the other beliefs. They never suspected that the oft-referred-to lectures of the caravan conductor had been delivered by Jesus himself. 심보이톤Cymboyton의 맏아들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 있는 아브너Abner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브너가 선택한 선생들은 고집이 세고 완고한 자들로 드러나 가장 유감스럽게 되었습니다. 이 선생들은 자신들의 종교로 다른 믿음들을 지배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들은 대상caravan의 지휘자라고 불리는 사람의 강의(講義)가, 예수님 자신이 강연했었던 것이라고는 결코 추측도 하지 못했습니다.

134:6.17 (1491.10) As confusion increased in the faculty, the three brothers withdrew their financial support, and after five years the school closed. Later it was reopened as a Mithraic temple and eventually burned down in connection with one of their orgiastic celebrations. 교수진 사이에서 혼란이 커지자, 세 형제들은 그들의 재정 지원을 끊었고, 5년 뒤에 그 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나중에 그 학교는 미트라 신전(神殿)으로 다시 문을 열었으나 결국 주신(酒神) 축제들의 하나와 연관되어 불에 타버렸습니다.

7. The Thirty-First Year (A.D. 25) 31세 되던 해 (서기 25년)

170201 수요 예수76 (31세-AD25) 31세 되시던 해(서기 25년) 눅4:1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하여 요단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134:7.1 (1492.1) When Jesus returned from the journey to the Caspian Sea, he knew that his world travels were about finished. He made only one more trip outside of Palestine, and that was into Syria. After a brief visit to Capernaum, he went to Nazareth, stopping over a few days to visit. In the middle of April he left Nazareth for Tyre. From there he journeyed on north, tarrying for a few days at Sidon, but his destination was Antioch. 예수께서 카스피Caspian 해(海)로 떠났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세상 여행이 거의 끝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팔레스타인Palestine 밖으로 여행한 것은 한 번밖에는 더 이상 없었는데, 그것은 시리아Syria로 간 것이었습니다. 가버나움Capernaum을 잠시 방문한 후, 그는 나사렛Nazareth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습니다. 4월 중순에 그는 티레Tyre를 향하여 나사렛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북쪽으로 여행하여 시돈Sidon에 며칠 동안 머물렀지만, 그의 목적지는 안디옥Antioch이었습니다.

134:7.2 (1492.2) This is the year of Jesus’ solitary wanderings through Palestine and Syria. Throughout this year of travel he was known by various names in different parts of the country: the carpenter of Nazareth, the boatbuilder of Capernaum, the scribe of Damascus, and the teacher of Alexandria. 이 해에 예수님은 홀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이 해의 여행을 통하여, 그는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나사렛Nazareth의 목수, 가버나움Capernaum의 배 건조자, 다마스쿠스Damascus의 서기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선생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134:7.3 (1492.3) At Antioch the Son of Man lived for over two months, working, observing, studying, visiting, ministering, and all the while learning how man lives, how he thinks, feels, and reacts to the environment of human existence. For three weeks of this period he worked as a tentmaker. He remained longer in Antioch than at any other place he visited on this trip. Ten years later, when the Apostle Paul was preaching in Antioch and heard his followers speak of the doctrines of the Damascus scribe, he little knew that his pupils had heard the voice, and listened to the teachings, of the Master himself. 안디옥Antioch에서 사람의 아들은 일하고, 관찰하고, 공부하고, 방문하고, 봉사하면서 두 달이 넘도록 살았고, 그 동안 계속,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며, 어떻게 인간 존재의 환경에 반응하는가를 배웠습니다. 이 기간 중 3주 동안, 그는 천막 짓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 해의 여행에서 방문했던 다른 어떤 곳보다, 안디옥에 더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10년 후, 사도 바울이 안디옥에서 설교하면서, 추종자들이 다마스쿠스 서기관Damascus scribe의 신조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의 생도들이 바로 그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134:7.4 (1492.4) From Antioch Jesus journeyed south along the coast to Caesarea, where he tarried for a few weeks, continuing down the coast to Joppa. From Joppa he traveled inland to Jamnia, Ashdod, and Gaza. From Gaza he took the inland trail to Beersheba, where he remained for a week. 예수님은 안디옥에서 케자리아Caesarea를 향하여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여행하였고, 그곳에서 몇 주를 머문 후 계속해서 해변을 따라 요파Joppa로 내려갔습니다. 요파에서 그는 잠니아Jamnia, 아쉬돗Ashdod, 가자Gaza를 향하여 내륙으로 여행하였습니다. 가자에서부터 그는 내륙 도로를 택하여 비엘세바Beersheba로 갔고 그곳에서 일 주일동안 머물렀습니다.

134:7.5 (1492.5) Jesus then started on his final tour, as a private individual, through the heart of Palestine, going from Beersheba in the south to Dan in the north. On this journey northward he stopped at Hebron, Bethlehem (where he saw his birthplace), Jerusalem (he did not visit Bethany), Beeroth, Lebonah, Sychar, Shechem, Samaria, Geba, En-Gannim, Endor, Madon; passing through Magdala and Capernaum, he journeyed on north; and passing east of the Waters of Merom, he went by Karahta to Dan, or Caesarea-Philippi. 그 후 예수님은 사적(私的)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셨는데, 팔레스타인Palestine의 심장부를 거쳐서, 남쪽에 비엘세바Beersheba로부터 북쪽으로 단Dan까지 갔습니다. 북쪽으로 가는 이 여행에서, 그는 헤브론Hebron•베들레헴Bethlehem (여기서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곳을 보았습니다)•예루살렘Jerusalem(베다니Bethany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비어롯Beeroth•레보나Lebonah•시카Sychar•세켐Shechem•사마리아Samaria•게바Geba•엔가님En-Gannim•엔도르Endor•마돈Madon을 들렀습니다. 그는 막달라Magdala와 가버나움Capernaum을 지나서, 북쪽으로 줄곧 여행했습니다. 메롬Merom의 우물 동쪽을 지나서, 가라타Karahta의 길로 단Dan, 곧 케자리아 빌립비Caesarea-Philippi로 갔습니다.

134:7.6 (1492.6) The indwelling Thought Adjuster now led Jesus to forsake the dwelling places of men and betake himself up to Mount Hermon that he might finish his work of mastering his human mind and complete the task of effecting his full consecration to the remainder of his lifework on earth.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는 이제 사람들의 거처를 떠나 헤르몬Hermon 산으로 가도록 예수님을 인도하였고, 그 위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인간 마음의 숙달을 마쳤으며, 이 땅에서 남은 일생의 사명에 충만히 헌신하는 과제를 완수하셨습니다.

134:7.7 (1492.7) This was one of those unusual and extraordinary epochs in the Master’s earth life on Urantia. Another and very similar one was the experience he passed through when alone in the hills near Pella just subsequent to his baptism. This period of isolation on Mount Hermon marked the termination of his purely human career, that is, the technical termination of the mortal bestowal, while the later isolation marked the beginning of the more divine phase of the bestowal. And Jesus lived alone with God for six weeks on the slopes of Mount Hermon. 이 때는 유란시아(지구)에서의 주님의 지상 일생에 있어서 드문, 특별한 기간이었습니다. 매우 비슷한 또 하나의 기간은, 세례를 받고 난 바로 뒤에, 주님께서 펠라Pella 근처 작은 산에서 혼자 있을 때 거쳤던 체험이었습니다. 헤르몬Hermon 산에서 이러한 고립 기간은 그의 순수한 인간적 생애의 종료,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수여 절차가 종결되었다는 표지였습니다. 반면에 나중에 있었던 고립기간은 자신을 내어주는 수여에 있어서 더욱 신적인 단계가 시작되었다는 표지였습니다. 예수님은 헤르몬 산기슭에서 6주 동안 홀로 하나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8. The Sojourn on Mount Hermon 헤르몬 산에서의 체류

170208 수요 예수77 31세 AD25 헤르몬 산에서의 체류 마4:3-11

134:8.1 (1492.8) After spending some time in the vicinity of Caesarea-Philippi, Jesus made ready his supplies, and securing a beast of burden and a lad named Tiglath, he proceeded along the Damascus road to a village sometime known as Beit Jenn in the foothills of Mount Hermon. Here, near the middle of August, A.D. 25, he established his headquarters, and leaving his supplies in the custody of Tiglath, he ascended the lonely slopes of the mountain. Tiglath accompanied Jesus this first day up the mountain to a designated point about 6,000 feet above sea level, where they built a stone container in which Tiglath was to deposit food twice a week. 예수님은, 케자리아 빌립보Caesarea-Philippi 근처에서 얼마 동안을 지낸 후에, 생필품(生必品)들을 준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짐을 싣는 짐승과, 티글라스Tiglath라는 아이를 데리고 다마스쿠스Damascus 길을 따라 헤르몬Hermon 산기슭에 있는 한때 베이트 젠Beit Jenn이라고 알려진 마을로 나아갔습니다. 서기 25년 8월 중순 경 그곳에서 그는 본부를 정하고 물자들을 티글라스에게 맡긴 후, 인적이 드문 산비탈을 올라갔습니다. 그 첫째 날에 티글라스는 약 해발 6,000피트(1800미터) 되는 지점까지 예수님과 동행하였고, 그들은 그곳에 돌로 저장고를 지었으며, 티글라스가 일주일에 두 번씩 그곳에 음식을 갖다 놓기로 하였습니다.

134:8.2 (1493.1) The first day, after he had left Tiglath, Jesus had ascended the mountain only a short way when he paused to pray. Among other things he asked his Father to send back the guardian seraphim to “be with Tiglath.” He requested that he be permitted to go up to his last struggle with the realities of mortal existence alone. And his request was granted. He went into the great test with only his indwelling Adjuster to guide and sustain him. 첫 날, 티글라스를 보낸 후, 예수님은 산을 약간 더 올라가서 기도하기 위해 멈추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아버지에게 “티글라스와 함께 있도록” 수호 세라핌천사를 돌려보내기를 요청하셨습니다.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로서의 현실과 마지막 투쟁까지 홀로 감당하도록 허락해 주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 요청은 허락되었습니다. 그는 단지 그를 인도하고 지지하기 위해 내주하는 조절자와 함께 이 엄청난 시험에 들어갔습니다.

134:8.3 (1493.2) Jesus ate frugally while on the mountain; he abstained from all food only a day or two at a time. The superhuman beings who confronted him on this mountain, and with whom he wrestled in spirit, and whom he defeated in power, were real; they were his archenemies in the system of Satania; they were not phantasms of the imagination evolved out of the intellectual vagaries of a weakened and starving mortal who could not distinguish reality from the visions of a disordered mind. 예수님은 산에 있을 동안에 음식을 절약해서 드셨으며, 한 번에 하루나 이틀씩만 금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산에서 대면하였던 초인간 존재들과 영적으로 씨름을 하셨으며, 권능으로 물리쳤던 그 존재들은 실재했습니다. 그들은 사타니아Satania 체계에 있는 그의 대적(大敵)들이었으며, 마음 착란을 일으켜서 환상(幻想)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허약하고 굶주린 사람의 변덕스러운 지성에서 연유된 망상적 환영(幻影)들이 아니었습니다.

134:8.4 (1493.3) Jesus spent the last three weeks of August and the first three weeks of September on Mount Hermon. During these weeks he finished the mortal task of achieving the circles of mind-understanding and personality-control. Throughout this period of communion with his heavenly Father the indwelling Adjuster also completed the assigned services. The mortal goal of this earth creature was there attained. Only the final phase of mind and Adjuster attunement remained to be consummated. 예수님은 8월의 마지막 3주간과 9월의 첫 3주간을 헤르몬Hermon 산에서 지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예수님은 마음-이해와 고유성-조정의 순환계들을 성취하는 사람의 임무를 완료하셨습니다. 그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교제를 갖는 이 기간 동안, 내주 하는 조절자도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을 완료하였습니다. 이 지상의 창조체로서의 인간 목표는 그곳에서 달성되었습니다. 다만 마음과 조절자의 조율이라는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134:8.5 (1493.4) After more than five weeks of unbroken communion with his Paradise Father, Jesus became absolutely assured of his nature and of the certainty of his triumph over the material levels of time-space personality manifestation. He fully believed in, and did not hesitate to assert, the ascendancy of his divine nature over his human nature. 5주가 넘도록 천국 아버지와 중단 없는 친교를 나눈 뒤에, 예수님은 자신의 본성에 대하여 그리고 고유성이 시간-공간에 나타나는 물질적 차원을 확실히 극복했다는 승리의 확실성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성한 본성이 인간 본성의 상위에서 지배한다는 것을 충만하게 믿게 되었고, 주저 없이 그것을 주장하였습니다.

134:8.6 (1493.5) Near the end of the mountain sojourn Jesus asked his Father if he might be permitted to hold conference with his Satania enemies as the Son of Man, as Joshua ben Joseph. This request was granted. During the last week on Mount Hermon the great temptation, the universe trial, occurred. Satan (representing Lucifer) and the rebellious Planetary Prince, Caligastia, were present with Jesus and were made fully visible to him. And this “temptation,” this final trial of human loyalty in the face of the misrepresentations of rebel personalities, had not to do with food, temple pinnacles, or presumptuous acts. It had not to do with the kingdoms of this world but with the sovereignty of a mighty and glorious universe. The symbolism of your records was intended for the backward ages of the world’s childlike thought. And subsequent generations should understand what a great struggle the Son of Man passed through that eventful day on Mount Hermon. 산에서의 체류 기간이 끝나갈 무렵,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요셉의 아들 여호수아Joshua라는 사람의 아들로서 사타니아Satania에 있는 자신의 적들과 회의를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요청은 받아들여졌습니다. 헤르몬 산에서의 마지막 주간에, 엄청난 유혹, 우주적 시험(재판)이 벌어졌습니다. 사탄(루시퍼를 대변한)과 반역적인 행성왕자 칼리가스티아Caligastia가 예수님 앞으로 나왔고 그가 충분히 볼 수 있도록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 이 “유혹”, 반역적인 고유성들의 잘못된 대표 권한 앞에서 인간의 충성심에 대한 이 마지막 시험은 음식이나 성전의 꼭대기 또는 무엄한 행위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왕국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위력 있고 영광스러운 우주의 주권과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록으로 전해진 그 상징은, 유치하게 생각하는 진부한 시대의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후대의 세대들은 그 파란만장한 날에 헤르몬 산에서 사람의 아들이 겪어야 했던 투쟁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나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134:8.7 (1493.6) To the many proposals and counterproposals of the emissaries of Lucifer, Jesus only made reply: “May the will of my Paradise Father prevail, and you, my rebellious son, may the Ancients of Days judge you divinely. I am your Creator-father; I can hardly judge you justly, and my mercy you have already spurned. I commit you to the adjudication of the Judges of a greater universe.” 루시퍼의 사자(使者)들이 제시한 많은 제안들과 반대 제안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단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천국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반역을 일으키는 나의 아들인 너에게는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신적 판결이 있기를 바라노라. 나는 너의 창조주-아버지이다. 나는 너를 도저히 공정하게 판가름할 수 없으며, 너는 이미 나의 자비를 거절하였노라. 나는 너를 더 높은 우주의 재판관들의 판결에 맡기노라.

134:8.8 (1494.1) To all the Lucifer-suggested compromises and makeshifts, to all such specious proposals about the incarnation bestowal, Jesus only made reply, “The will of my Father in Paradise be done.” And when the trying ordeal was finished, the detached guardian seraphim returned to Jesus’ side and ministered to him. 루시퍼가 제안한 모든 절충안들과 미봉책들에 대하여, 성육신하신 증여에 대한 그럴듯한 모든 제안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오직, “천국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지어다.”라고 대답하실 뿐이었습니다. 시험적인 호된 시련이 끝나자, 떠나갔던 수호 성(聖)천사가 예수의 곁으로 돌아와서 그를 섬겼습니다.

134:8.9 (1494.2) On an afternoon in late summer, amid the trees and in the silence of nature, Michael of Nebadon won the unquestioned sovereignty of his universe. On that day he completed the task set for Creator Sons to live to the full the incarnated life in the likeness of mortal flesh on the evolutionary worlds of time and space. The universe announcement of this momentous achievement was not made until the day of his baptism, months afterward, but it all really took place that day on the mountain. And when Jesus came down from his sojourn on Mount Hermon, the Lucifer rebellion in Satania and the Caligastia secession on Urantia were virtually settled. Jesus had paid the last price required of him to attain the sovereignty of his universe, which in itself regulates the status of all rebels and determines that all such future upheavals (if they ever occur) may be dealt with summarily and effectively. Accordingly, it may be seen that the so-called “great temptation” of Jesus took place sometime before his baptism and not just after that event. 늦은 여름의 어느 날 오후, 나무들로 둘러싸인 자연의 정적 속에서, 네바돈의 미가엘은 자신의 우주의 절대적 주권을 성취하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진화하는 세상에서 창조주 아들들이 인간의 육신과 같은 모습으로 성육신한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임무를, 그는 바로 그 날에 완성하셨습니다. 이 감격적인 성취에 대한 우주의 발표는 그로부터 몇 달 후에 있었던 그의 세례의 날까지 미루어졌지만, 그 모든 것은 산에서 그날 실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께서 헤르몬 산에서 내려왔을 때, 사타니아에서의 루시퍼의 반란과 지구(유란시아)에서의 칼리가스티아의 탈퇴는 실제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우주 주권을 갖기 위하여 그에게 요구되어진 마지막 값을 이미 지불하였으며, 그것은 그 자체적으로 모든 반역 현상들을 통제하고, 그러한 모든 미래의 격변들이 (그런 것들이 만약 발생한다면) 즉시 효과적으로 다루어지도록 정해졌습니다. 따라서 소위 예수님의 “큰 시험”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의 세례 직후가 아니라 세례 이전에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134:8.10 (1494.3) At the end of this sojourn on the mountain, as Jesus was making his descent, he met Tiglath coming up to the rendezvous with food. Turning him back, he said only: “The period of rest is over; I must return to my Father’s business.” He was a silent and much changed man as they journeyed back to Dan, where he took leave of the lad, giving him the donkey. He then proceeded south by the same way he had come, to Capernaum.산에서의 체류를 끝내고 예수께서 하산하실 때, 그는 음식을 가지고 올라오던 티글라스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되돌려 보내며 단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휴식기간이 끝났고 나는 아버지의 일을 위해 돌아가야만 하노라.” 그들이 단으로 돌아갈 때 그는 아무 말이 없었으며, 많이 변화된 상태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소년에게 당나귀를 주고 그와 작별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가 왔던 같은 길을 따라 남쪽 방향의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9. The Time of Waiting 기다리는 시간

170215 수요 예수78 기다리는 시간(31세 AD25) 마3:1-2, 5-6

134:9.1 (1494.4) It was now near the end of the summer, about the time of the day of atonement and the feast of tabernacles. Jesus had a family meeting in Capernaum over the Sabbath and the next day started for Jerusalem with John the son of Zebedee, going to the east of the lake and by Gerasa and on down the Jordan valley. While he visited some with his companion on the way, John noted a great change in Jesus. 이제는 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 되었고, 속죄의 날과 초막(草幕)절 축제가 가까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가버나움Capernaum에서 가족모임을 가진 후, 다음 날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떠났습니다. 그들은 호수의 동쪽으로 가며 게라사Gerasa를 지나서 요단Jordan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가는 길에 예수께서 동행자와 함께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요한은 예수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눈치로 알아차렸습니다.

134:9.2 (1494.5) Jesus and John stopped overnight at Bethany with Lazarus and his sisters, going early the next morning to Jerusalem. They spent almost three weeks in and around the city, at least John did. Many days John went into Jerusalem alone while Jesus walked about over the near-by hills and engaged in many seasons of spiritual communion with his Father in heaven. 예수님과 요한은 베다니Bethany에서 나사로Lazarus와 그의 자매들과 함께 그날 밤 묵었으며, 다음 날 아침 일찍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거의 3주를 그 도성(都城)의 안과 근처에서 보냈는데, 적어도 요한은 그랬습니다. 요한은 여러 날 혼자서 예루살렘에 들어갔고, 한편 예수님은 근처에 있는 언덕을 거닐거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영적 교제를 여러 차례 가지셨습니다.

134:9.3 (1494.6) Both of them were present at the solemn services of the day of atonement. John was much impressed by the ceremonies of this day of all days in the Jewish religious ritual, but Jesus remained a thoughtful and silent spectator. To the Son of Man this performance was pitiful and pathetic. He viewed it all as misrepresentative of the character and attributes of his Father in heaven. He looked upon the doings of this day as a travesty upon the facts of divine justice and the truths of infinite mercy. He burned to give vent to the declaration of the real truth about his Father’s loving character and merciful conduct in the universe, but his faithful Monitor admonished him that his hour had not yet come. But that night, at Bethany, Jesus did drop numerous remarks which greatly disturbed John; and John never fully understood the real significance of what Jesus said in their hearing that evening. 두 사람 모두 속죄의 날의 엄숙한 경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요한은 모든 유대 종교 의식의 날들 중 이날의 의식에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예수는 생각에 잠긴 채, 조용한 구경꾼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사람의 아들에게는 이제 이러한 일들이 가엾고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품과 속성을 잘못 나타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 날의 모든 행위들이 신적인 정의의 사실들과 무한한 자비의 진리들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를 낸 장면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이 넘치는 성품과 우주에서의 그분의 자비로우신 행위성에 대한 진정한 진리를 선포하고 싶은 열정에 타올랐지만, 신실한 감시자가 그에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베다니에서, 그가 제시하였던 많은 의견들로 인해 요한은 매우 혼란되었으며, 요한은 그날 밤 예수께서 그들이 들었던 것에 대해 하신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134:9.4 (1495.1) Jesus planned to remain throughout the week of the feast of tabernacles with John. This feast was the annual holiday of all Palestine; it was the Jewish vacation time. Although Jesus did not participate in the merriment of the occasion, it was evident that he derived pleasure and experienced satisfaction as he beheld the lighthearted and joyous abandon of the young and the old. 예수님은 초막절 축제 주간 내내 요한과 함께 남아 있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이 축제는 모든 팔레스타인에서 해마다 있었던 공휴일이었으며, 유대인들의 휴가철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은 그 절기(節氣)의 흥겨운 잔치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노소(老少)를 막론하고 아무 걱정 없이 기쁘게 마음껏 노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했으며 만족스러워 했음이 분명하였습니다.

134:9.5 (1495.2) In the midst of the week of celebration and ere the festivities were finished, Jesus took leave of John, saying that he desired to retire to the hills where he might the better commune with his Paradise Father. John would have gone with him, but Jesus insisted that he stay through the festivities, saying: “It is not required of you to bear the burden of the Son of Man; only the watchman must keep vigil while the city sleeps in peace.” Jesus did not return to Jerusalem. After almost a week alone in the hills near Bethany, he departed for Capernaum. On the way home he spent a day and a night alone on the slopes of Gilboa, near where King Saul had taken his life; and when he arrived at , he seemed more cheerful than when he had left John in Jerusalem. 경축하는 주간의 중간, 축제가 아직 끝나기도 전에, 예수님은 자신의 천국 아버지와 좀 더 긴밀한 교제하기를 위하여 언덕으로 물러나가겠다는 말을 하고 요한에게서 떠나가셨습니다. 요한이 그와 함께 가려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축제가 끝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도록 지시하셨습니다. “너는 사람의 아들의 짐을 지는 것이 요구되지 않느니라. 도시가 평화 속에 잠들어 있는 동안 파수꾼만이 밤새 지켜 있어야 하느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Jerusalem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베다니Bethany 근처에 있는 언덕에서 거의 일주일을 홀로 지낸 후, 그는 가버나움Capernaum으로 갔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사울 왕King Saul이 목숨을 버렸던 장소 가까이에 있는 길보아Gilboa산 기슭에서 하루 밤과 낮을 혼자 지냈으며, 그가 가버나움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예루살렘에서 요한을 떠났을 때보다도 더 쾌활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134:9.6 (1495.3) The next morning Jesus went to the chest containing his personal effects, which had remained in Zebedee’s workshop, put on his apron, and presented himself for work, saying, “It behooves me to keep busy while I wait for my hour to come.” And he worked several months, until January of the following year, in the boatshop, by the side of his brother James. After this period of working with Jesus, no matter what doubts came up to becloud James’s understanding of the lifework of the Son of Man, he never again really and wholly gave up his faith in the mission of Jesus. 다음 날 아침 예수님은 세베대의 작업소에 남겨 두었던 자신의 소지품이 들어있는 상자(箱子)로 가서 작업복을 꺼내 입고,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직접 작업에 참여하였습니다. “나의 때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바쁘게 지내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그는 이듬 해 1월까지 동생 야고보 곁, 배를 만드는 목공소에서, 몇 달 동안 일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일한 이 기간이 끝난 후부터, 야고보는 자신이 이해하기 힘든 사람의 아들의 일생의 과업에 대해 어떤 의심이 떠오르든지 상관없이, 결코 다시는 예수의 사명에 대한 신앙을 다시는 정말로 그리고 모두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134:9.7 (1495.4) During this final period of Jesus’ work at the boatshop, he spent most of his time on the interior finishing of some of the larger craft. He took great pains with all his handiwork and seemed to experience the satisfaction of human achievement when he had completed a commendable piece of work. Though he wasted little time upon trifles, he was a painstaking workman when it came to the essentials of any given undertaking. 배를 만드는 목공소에서 예수께서 마지막 작업을 하셨던 이 기간 동안, 그는 좀 더 큰 몇몇 배의 실내를 마무리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 훌륭한 배를 완성시켜 칭찬할만한 작품을 마쳤을 때 인간다운 성취의 만족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사소한 일들에는 거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지만, 맡은 일의 핵심이 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공을 많이 들이는 일꾼이셨습니다.

134:9.8 (1495.5) As time passed, rumors came to Capernaum of one John who was preaching while baptizing penitents in the Jordan, and John preached: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repent and be baptized.” Jesus listened to these reports as John slowly worked his way up the Jordan valley from the ford of the river nearest to Jerusalem. But Jesus worked on, making boats, until John had journeyed up the river to a point near Pella in the month of January of the next year, A.D. 26, when he laid down his tools, declaring, “My hour has come,” and presently presented himself to John for baptism. 시간이 지나자, 요단 강에서 회개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설교하는 어떤 요한이라는 사람의 소문이 가버나움에 도착했는데, 요한은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예수님은 요한이 활동을 하면서 예루살렘에 가장 가까운 강의 개울로부터 요단 계곡을 따라 거슬러 천천히 올라오고 있다는 이러한 소식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인 서기 26년 1월, 요한이 펠라Pella 가까이에 있는 지점까지 강을 따라 올라올 때까지, 예수님은 배를 만드는 일을 계속하였으며, 이 때 그는 연장을 내려놓고, “나의 때가 이르렀도다.”라고 선언하였고, 당장 세례를 받으러 요한 앞에 나섰습니다.

134:9.9 (1495.6) But a great change had been coming over Jesus. Few of the people who had enjoyed his visits and ministrations as he had gone up and down in the land ever subsequently recognized in the public teacher the same person they had known and loved as a private individual in former years. And there was a reason for this failure of his early beneficiaries to recognize him in his later role of public and authoritative teacher. For long years this transformation of mind and spirit had been in progress, and it was finished during the eventful sojourn on Mount Harmon. 그러나 엄청난 변화가 이미 예수님에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 지역의 땅들을 오가며 방문하고 봉사하며 보살폈던 사람들 중에서 거의 아무도, 나중에 대중을 가르치는 그 선생이 이전에, 그들이 사적인 한 개인으로 알고 지내며 사랑하였던 바로 그 동일한 사람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덕을 입은 사람들이, 그가 나중에 대중을 가르치는 권위 있는 선생 역할로 나타난 그의 모습을 이렇게 알아보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이러한 마음과 영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그것은 그 파란만장한 헤르몬Harmon 산에서의 체류 기간 동안에 완성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Paper 135 John the Baptist 세례(洗禮) 요한

Paper 135

John the Baptist 세례(洗禮) 요한

170222 수요 예수79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서론 & 나실인이 된 요한) 마3: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135:0.1 (1496.1) JOHN the Baptist was born March 25, 7 B.C., in accordance with the promise that Gabriel made to Elizabeth in June of the previous year. For five months Elizabeth kept secret Gabriel’s visitation; and when she told her husband, Zacharias, he was greatly troubled and fully believed her narrative only after he had an unusual dream about six weeks before the birth of John. Excepting the visit of Gabriel to Elizabeth and the dream of Zacharias, there was nothing unusual or supernatural connected with the birth of John the Baptist. 세례 요한John the Baptist은, 일 년 전 6월에 가브리엘Gabriel이 엘리자벳Elizabeth에게 나타나서 약속한 대로, 기원 전 7년 3월 25일에 태어났습니다. 5개월 동안 엘리자벳은 가브리엘의 방문을 비밀로 하였으며, 그녀가 남편 사가랴Zacharias에게 말하였을 때, 그는 매우 고심했었으나 요한이 태어나기 6주 전 이상한 꿈을 꾼 후에는 그녀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가브리엘이 엘리자벳을 방문한 것과 사가랴의 꿈 이외에는 세례요한의 출생과 관련하여 이상하거나 초자연적인 사건은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135:0.2 (1496.2) On the eighth day John was circumcised according to the Jewish custom. He grew up as an ordinary child, day by day and year by year, in the small village known in those days as the City of Judah, about four miles west of Jerusalem. 8일째 되는 날에 요한은 유대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서쪽으로 4마일 가량 떨어져 있는, 그 당시에는 유다Judah의 도시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에서, 그는 날이 가고 해를 거듭하면서 평범한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135:0.3 (1496.3) The most eventful occurrence in John’s early childhood was the visit, in company with his parents, to Jesus and the Nazareth family. This visit occurred in the month of June, 1 B.C., when he was a little over six years of age. 요한의 어린 시절 중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사건은 그가 부모와 함께 예수와 나사렛Nazareth의 가족들을 방문한 일이었습니다. 이 방문은 그가 6살이 조금 넘었을 때인, 기원 전 1년 6월의 일이었습니다.

135:0.4 (1496.4) After their return from Nazareth John’s parents began the systematic education of the lad. There was no synagogue school in this little village; however, as he was a priest, Zacharias was fairly well educated, and Elizabeth was far better educated than the average Judean woman; she was also of the priesthood, being a descendant of the “daughters of Aaron.” Since John was an only child, they spent a great deal of time on his mental and spiritual training. Zacharias had only short periods of service at the temple in Jerusalem so that he devoted much of his time to teaching his son. 나사렛에서 돌아온 후 요한의 부모는 이 아이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작은 마을에는 회당 학교가 없었지만, 사가랴는 제사장으로서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었고, 엘리자벳도 유대의 평균적인 여인들보다는 교육수준이 매우 높았으며, 그녀 또한 “아론의 딸들daughters of Aaron”의 후손으로 제사장의 혈통이었습니다. 요한이 독자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의 정신적, 영적 훈련에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사가랴는 아들의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쏟기 위하여 예루살렘Jerusalem 성전에서는 짧은 기간 동안만 봉사하였습니다.

135:0.5 (1496.5) Zacharias and Elizabeth had a small farm on which they raised sheep. They hardly made a living on this land, but Zacharias received a regular allowance from the temple funds dedicated to the priesthood. 사가랴와 엘리자벳은 양을 기르는 소규모의 목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땅만으로는 거의 생활이 안 되었으나, 사가랴는 제사장들에게 쓰이도록 되어있는 성전의 기금으로부터 정기적인 수당을 받았습니다.

1. John Becomes a Nazarite 나실인Nazarite이 된 요한

135:1.1 (1496.6) John had no school from which to graduate at the age of fourteen, but his parents had selected this as the appropriate year for him to take the formal Nazarite vow. Accordingly, Zacharias and Elizabeth took their son to Engedi, down by the Dead Sea. This was the southern headquarters of the Nazarite brotherhood, and there the lad was duly and solemnly inducted into this order for life. After these ceremonies and the making of the vows to abstain from all intoxicating drinks, to let the hair grow, and to refrain from touching the dead, the family proceeded to Jerusalem, where, before the temple, John completed the making of the offerings which were required of those taking Nazarite vows. 요한은 14세에 졸업하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지만, 그 부모는 그의 14살이 그가 정식 나실인Nazarite으로서 맹세하기에 적당한 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사가랴와 엘리자벳은 그들의 아들을 사해(死海)the Dead Sea 아래에 있는 엔게디Engedi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은 나실인 형제회의 남부 본부였으며, 그곳에서 요한은 정식으로 경건하게, 종신토록 있을 이 계층에 가입하였습니다. 이러한 의식을 치르면서, 독한 술을 마시지 않고 머리를 자르지 않으며 죽은 자에게 손대지 않겠다는 서약을 한 후에, 가족들은 예루살렘으로 갔고, 요한은 성전 앞에서 나실인 서약을 한 자들에게 요구되는 헌물 바치는 일을 마쳤습니다.

135:1.2 (1496.7) John took the same life vows that had been administered to his illustrious predecessors, Samson and the prophet Samuel. A life Nazarite was looked upon as a sanctified and holy personality. The Jews regarded a Nazarite with almost the respect and veneration accorded the high priest, and this was not strange since Nazarites of lifelong consecration were the only persons, except high priests, who were ever permitted to enter the holy of holies in the temple. 요한은 유명한 전임자들인 삼손Samson과 선지자 사무엘Samuel에게 행해졌던 것과 똑같은 종신 봉헌의 맹세를 하였습니다. 종신(終身) 나실인은 신성하고 거룩한 인격(고유성)으로 여겨졌습니다. 유대인들은 나실인을 거의 대제사장과 똑같은 존경과 경의를 가졌으며, 종신토록 봉헌된 나실인들이 대제사장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성전의 지성소(至聖所)holy of holies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되어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135:1.3 (1497.1) John returned home from Jerusalem to tend his father’s sheep and grew up to be a strong man with a noble character. 요한은 아버지의 양들을 보살피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집으로 돌아왔고 고결한 인격을 지닌 강한 남자로 성장했습니다.

135:1.4 (1497.2) When sixteen years old, John, as a result of reading about Elijah, became greatly impressed with the prophet of Mount Carmel and decided to adopt his style of dress. From that day on John always wore a hairy garment with a leather girdle. At sixteen he was more than six feet tall and almost full grown. With his flowing hair and peculiar mode of dress he was indeed a picturesque youth. And his parents expected great things of this their only son, a child of promise and a Nazarite for life. 16세가 되었을 때, 요한은 엘리야Elijah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는데 그 결과로 갈멜Carmel산의 선지자에게 지대한 감명(感銘)을 받게 되어 그의 복장을 본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요한은 항상 가죽 허리띠를 두르고 털옷을 입었습니다. 16세가 되었을 때 그는 1.8미터 이상으로 자랐고 거의 완전히 자랐습니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과 특이한 옷 모습 때문에 그는, 정말로 눈길을 끄는 청년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약속의 아이이자 종신 나실인이었던 자신들의 외아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2. The Death of Zacharias 사가랴의 죽음

170301 수요 예수80 사가랴의 죽음 & 목자의 생활 단2:31-33 31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135:2.1 (1497.3) After an illness of several months Zacharias died in July, A.D. 12, when John was just past eighteen years of age. This was a time of great embarrassment to John since the Nazarite vow forbade contact with the dead, even in one’s own family. Although John had endeavored to comply with the restrictions of his vow regarding contamination by the dead, he doubted that he had been wholly obedient to the requirements of the Nazarite order; therefore, after his father’s burial he went to Jerusalem, where, in the Nazarite corner of the women’s court, he offered the sacrifices required for his cleansing. 몇 달 동안 병을 앓은 후, 사가랴는 서기(西紀) 12년 7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요한은 막 18세가 되었습니다. 나실인의 서약 중에는 자신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죽은 사람에게 접촉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일로 요한은 매우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비록 죽은 자 때문에 몸이 더럽혀지는 것에 대하여 서약(誓約)했던 규율을 따르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나실인 계층에게 요청되는 사항에 전적으로 복종했었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예루살렘으로 가서 여인들의 뜰에 있는 나실인의 구역에서 자신의 정화(淨化)를 위하여 요구되는 희생물을 바쳤습니다.

135:2.2 (1497.4) In September of this year Elizabeth and John made a journey to Nazareth to visit Mary and Jesus. John had just about made up his mind to launch out in his lifework, but he was admonished, not only by Jesus’ words but also by his example, to return home, take care of his mother, and await the “coming of the Father’s hour.” After bidding Jesus and Mary good-bye at the end of this enjoyable visit, John did not again see Jesus until the event of his baptism in the Jordan. 이 해 9월에 엘리자벳Elizabeth과 요한John은 마리아Mary와 예수Jesus를 방문하러 나사렛Nazareth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요한은 그의 일생의 임무에 착수하려고 거의 작정하다시피 하였지만, 예수께서 말 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인 본보기에 의해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를 보살피면서 “아버지의 때가 도래하기까지”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이 즐거운 방문을 마치고 예수와 마리아에게 작별한 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는 사건이 있기까지, 요한은 예수님을 다시 만나지 않았습니다.

135:2.3 (1497.5) John and Elizabeth returned to their home and began to lay plans for the future. Since John refused to accept the priest’s allowance due him from the temple funds, by the end of two years they had all but lost their home; so they decided to go south with the sheep herd. Accordingly, the summer that John was twenty years of age witnessed their removal to Hebron. In the so-called “wilderness of Judea” John tended his sheep along a brook that was tributary to a larger stream which entered the Dead Sea at Engedi. The Engedi colony included not only Nazarites of lifelong and time-period consecration but numerous other ascetic herdsmen who congregated in this region with their herds and fraternized with the Nazarite brotherhood. They supported themselves by sheep raising and from gifts which wealthy Jews made to the order. 요한과 엘리자벳은 집으로 돌아와 미래를 위한 계획들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이 성전 기금으로부터 그에게 주어지는 제사장의 수당(手當) 받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2년 쯤 지난 후에는 그들의 집까지도 거의 처분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양떼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요한이 20세 되던 그 해 여름에 그들은 헤브론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소위 “유대 광야”라고 불리는 곳에서, 요한은 엥게디로부터 사해(死海)로 합류하는 좀 더 큰 시냇물의 지류인 개울가를 따라 양을 쳤습니다. 엥게디 촌(거류민단)에는 종신(終身) 나실인들과 일시적으로 봉헌된 나실인들 뿐만이 아니라 금욕하는 수많은 다른 목자(牧者)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가축 떼와 함께 이 지역에 모여서 나실인 형제회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양을 치는 일과, 부유한 유대인이 그 계층에게 기증한 선물들로 생활을 유지하였습니다.

135:2.4 (1497.6) As time passed, John returned less often to Hebron, while he made more frequent visits to Engedi. He was so entirely different from the majority of the Nazarites that he found it very difficult fully to fraternize with the brotherhood. But he was very fond of Abner, the acknowledged leader and head of the Engedi colony.시간이 지나자, 요한이 헤브론으로 돌아가는 횟수가 뜸해졌고 반면에 엥게디Engedi로는 갈수록 자주 방문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나실인들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에 그는 그 형제회와 충분히 형제우애를 나누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엥게디 거류민단의 유명한 지도자이며 우두머리인 아브너Abner를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3. The Life of a Shepherd 목자의 생활

135:3.1 (1497.7) Along the valley of this little brook John built no less than a dozen stone shelters and night corrals, consisting of piled-up stones, wherein he could watch over and safeguard his herds of sheep and goats. John’s life as a shepherd afforded him a great deal of time for thought. He talked much with Ezda, an orphan lad of Beth-zur, whom he had in a way adopted, and who cared for the herds when he made trips to Hebron to see his mother and to sell sheep, as well as when he went down to Engedi for Sabbath services. John and the lad lived very simply, subsisting on mutton, goat’s milk, wild honey, and the edible locusts of that region. This, their regular diet, was supplemented by provisions brought from Hebron and Engedi from time to time. 이 작은 여울의 계곡을 따라, 요한은 12개가 넘는, 돌로 만든 움막과 돌을 쌓아서 밤을 지내기 위한 가축우리들을 만들었으며, 그 안에서 양떼와 염소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목자로서의 요한의 일생이었기 때문에 그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베스-주르Beth-zur의 고아(孤兒) 소년인 에즈다Ezda와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떤 면으로는 그 소년을 이미 양자(養子)로 삼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며, 그는 요한이 안식일 경배를 드리려고 엥게디로 내려갔을 때는 물론이고, 어머니를 방문하거나 양을 팔기 위해 헤브론으로 갔을 때에도, 양떼를 돌보았습니다. 요한과 그 소년은 양고기, 염소우유, 석청, 그 지방의 식용 메뚜기를 먹으면서 매우 간소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정해진 식사는 때때로 헤브론과 엥게디에서 가져오는 식량으로 보충되었습니다.

135:3.2 (1498.1) Elizabeth kept John posted about Palestinian and world affairs, and his conviction grew deeper and deeper that the time was fast approaching when the old order was to end; that he was to become the herald of the approach of a new age, “the kingdom of heaven.” This rugged shepherd was very partial to the writings of the Prophet Daniel. He read a thousand times Daniel’s description of the great image, which Zacharias had told him represented the history of the great kingdoms of the world, beginning with Babylon, then Persia, Greece, and finally Rome. John perceived that already was Rome composed of such polyglot peoples and races that it could never become a strongly cemented and firmly consolidated empire. He believed that Rome was even then divided, as Syria, Egypt, Palestine, and other provinces; and then he further read “in the days of these kings shall the God of heaven set up a kingdom which shall never be destroyed. And this kingdom shall not be left to other people but shall break in pieces and consume all these kingdoms, and it shall stand forever.” “And there was given him dominion and glory and a kingdom that all peoples, nations, and languages should serve him. His dominion is an everlasting dominion, which shall not pass away, and his kingdom never shall be destroyed.” “And the kingdom and dominion and the greatness of the kingdom under the whole heaven shall be given to the people of the saints of the Most High, whose kingdom is an everlasting kingdom, and all dominions shall serve and obey him.” 엘리자벳은 팔레스타인과 세상의 일상사에 대한 소식을 요한에게 계속해서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옛 체제가 종말을 고하는 때가 빠르게 다가오면서, 그가 새 시대, “하늘나라”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선포자가 될 것이라는 그의 신념은 점점 더 깊어갔습니다. 이 억센 목자는 선지자 다니엘의 글들을 특히 좋아하였습니다. 그는, 사가랴가 그에게 바빌론Babylon에서 시작하여 페르시아Persia, 그리스Greece, 그리고 마침내 로마Rome까지 세상의 위대한 왕국들의 역사를 대표한다고 말해 주었던, 다니엘의 커다란 우상에 대한 묘사를 천 번이나 읽었습니다. 요한은 로마Rome가 이미 다국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종족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강하게 뭉쳐진 굳건한 통합된 제국이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그는 로마Rome가 앞으로 시리아, 이집트, 팔레스타인과 다른 영토들로 더 분열될 것이라고 믿었으며,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는데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And in the days of these kings shall the God of heaven set up a kingdom, which shall never be destroyed: and the kingdom shall not be left to other people, but it shall break in pieces and consume all these kingdoms, and it shall stand for ever. (단2:4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And there was given him dominion, and glory, and a kingdom, that all people, nations, and languages, should serve him: his dominion is an everlasting dominion, which shall not pass away, and his kingdom that which shall not be destroyed(단7:14),”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And the kingdom and dominion, and the greatness of the kingdom under the whole heaven, shall be given to the people of the saints of the most High, whose kingdom is an everlasting kingdom, and all dominions shall serve and obey him.(단7:27).”

135:3.3 (1498.2) John was never able completely to rise above the confusion produced by what he had heard from his parents concerning Jesus and by these passages which he read in the Scriptures. In Daniel he read: “I saw in the night visions, and, behold, one like the Son of Man came with the clouds of heaven, and there was given him dominion and glory and a kingdom.” But these words of the prophet did not harmonize with what his parents had taught him. Neither did his talk with Jesus, at the time of his visit when he was eighteen years old, correspond with these statements of the Scriptures. Notwithstanding this confusion, throughout all of his perplexity his mother assured him that his distant cousin, Jesus of Nazareth, was the true Messiah, that he had come to sit on the throne of David, and that he (John) was to become his advance herald and chief support. 요한은 예수에 관하여 부모로부터 들은 것과 성서에서 자기가 읽은 구절들 때문에 생긴 혼란에서 결코 완전히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다니엘에서 그는 다음 구절을 읽었습니다. “내가 또 밤 환상(幻想)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I saw in the night visions, and, behold, one like the Son of man came with the clouds of heaven, and came to the Ancient of days, and they brought him near before him. And there was given him dominion, and glory, and a kingdom, that all people, nations, and languages, should serve him: his dominion is an everlasting dominion, which shall not pass away, and his kingdom that which shall not be destroyed(단7:13-14).” 그러나 이러한 선지자의 말들은 자기 부모가 자신에게 가르친 것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18세에 예수를 방문하였을 때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도 역시 성서의 말들과 맞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혼동에도 불구하고, 그가 혼란을 일으킬 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먼 사촌인 나사렛 예수가 진정한 메시아이고, 그는 장차 다윗의 왕좌에 앉을 것이며, 그(요한)는 그의 도래를 미리 알리는 자가 될 것이며 그를 지지하는 자들의 우두머리가 되리라는 사실을 그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135:3.4 (1498.3) From all John heard of the vice and wickedness of Rome and the dissoluteness and moral barrenness of the empire, from what he knew of the evil doings of Herod Antipas and the governors of Judea, he was minded to believe that the end of the age was impending. It seemed to this rugged and noble child of nature that the world was ripe for the end of the age of man and the dawn of the new and divine age — the kingdom of heaven. The feeling grew in John’s heart that he was to be the last of the old prophets and the first of the new. And he fairly vibrated with the mounting impulse to go forth and proclaim to all men: “Repent! Get right with God! Get ready for the end; prepare yourselves for the appearance of the new and eternal order of earth affairs, the kingdom of heaven.” 요한은 로마의 악덕과 사악함에 대하여 그리고 그 제국의 방탕함과 도덕적 결핍에 관하여 들은 모든 것으로부터와 그가 알고 있는 헤롯 안티파스와 유대 총독의 사악함으로부터, 그는 그 시대의 마지막이 임박했다는 것을 믿고 싶어 했습니다. 이 억세고 고결한 본성을 지닌 아이에게, 세상은 이제 사람의 시대가 끝나고 새롭고 신성한 시대─하늘의 왕국─가 동트기 위해 무르익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자신이 구(舊)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임과 동시에 새 시대의 첫 번째 선지자가 되리라는 느낌이 요한의 심정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박차고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선포를 하고 싶은 넘치는 충동이 끓어올라 무척 마음이 설렜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과 화해하라! 마지막 날을 위해 준비하고, 세상 일상사들의 새롭고 영원한 체제, 하늘의 왕국 도래를 위하여 너희 자신을 준비하라.”

4. The Death of Elizabeth 엘리자벳의 죽음

170308 수요 예수81 엘리자벳의 죽음 말4:5-6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5 Behold, I will send you Elijah the prophet before the coming of the great and dreadful day of the LORD: 6 And he shall turn the heart of the fathers to the children, and the heart of the children to their fathers, lest I come and smite the earth with a curse.
135:4.1 (1499.1) On August 17, A.D. 22, when John was twenty-eight years of age, his mother suddenly passed away. Elizabeth’s friends, knowing of the Nazarite restrictions regarding contact with the dead, even in one’s own family, made all arrangements for the burial of Elizabeth before sending for John. When he received word of the death of his mother, he directed Ezda to drive his herds to Engedi and started for Hebron. AD 22년 8월 17일, 요한이 28세가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직계가족이라 할지라도 죽은 자와 접촉할 수 없다는 나실인의 제약 조건들을 알고 있는 엘리자벳의 친구들은, 요한에게 그 소식을 알리기 전에 엘리자벳의 장례식 준비를 모두 끝냈습니다. 그가 어머니 죽음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에즈다에게 양떼들을 엥게디로 몰고 가도록 시켰고 자신은 헤브론으로 출발했습니다.

135:4.2 (1499.2) On returning to Engedi from his mother’s funeral, he presented his flocks to the brotherhood and for a season detached himself from the outside world while he fasted and prayed. John knew only of the old methods of approach to divinity; he knew only of the records of such as Elijah, Samuel, and Daniel. Elijah was his ideal of a prophet. Elijah was the first of the teachers of Israel to be regarded as a prophet, and John truly believed that he was to be the last of this long and illustrious line of the messengers of heaven.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엥게디로 돌아와서 그는 자기 양떼를 형제회에게 기증하고, 금식과 기도를 하면서 한 계절 바깥세상과의 접촉을 끊었습니다. 요한은 신성(神性)에 접근하는 오래된 방식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엘리야, 사무엘, 다니엘의 기록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에게 선지자의 이상(理想)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선지자로 여겼던 이스라엘의 선생들 중에서 첫째가는 사람이었으며, 요한은 자신이 하늘 왕국의 메신저(사자)로서의 이러한 장구하게 빛나는 계열의 마지막 선지자가 되리라고 진정으로 믿었습니다.

135:4.3 (1499.3) For two and a half years John lived at Engedi, and he persuaded most of the brotherhood that “the end of the age was at hand”; that “the kingdom of heaven was about to appear.” And all his early teaching was based upon the current Jewish idea and concept of the Messiah as the promised deliverer of the Jewish nation from the domination of their gentile rulers. 2년 반 동안, 요한은 엥게디에서 살았고, “그 시대의 마지막이 가까이 온 것” 즉 “하늘나라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형제회 대부분의 사람들을 설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초기의 모든 가르침들은, 당시의 유대 관념과, 그들의 이방 통치자의 손으로부터 유대 민족을 구원하는 약속된 메시아의 개념에 근거를 두었습니다.

135:4.4 (1499.4) Throughout this period John read much in the sacred writings which he found at the Engedi home of the Nazarites. He was especially impressed by Isaiah and by Malachi, the last of the prophets up to that time. He read and reread the last five chapters of Isaiah, and he believed these prophecies. Then he would read in Malachi: “Behold, I will send you Elijah the prophet before the coming of the great and dreadful day of the Lord; and he shall turn the hearts of the fathers toward the children and the hearts of the children toward their fathers, lest I come and smite the earth with a curse.” And it was only this promise of Malachi that Elijah would return that deterred John from going forth to preach about the coming kingdom and to exhort his fellow Jews to flee from the wrath to come. John was ripe for the proclamation of the message of the coming kingdom, but this expectation of the coming of Elijah held him back for more than two years. He knew he was not Elijah. What did Malachi mean? Was the prophecy literal or figurative? How could he know the truth? He finally dared to think that, since the first of the prophets was called Elijah, so the last should be known, eventually, by the same name. Nevertheless, he had doubts, doubts sufficient to prevent his ever calling himself Elijah. 이 기간 내내 요한은 나실인들의 본거지인 엥게디에서 자신이 발견한 성스러운 글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이사야와 당대에 이르기까지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에 의해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사야서의 마지막 다섯 장을 읽고 또 읽었으며, 그는 이 예언들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음의 구절을 말라기에서 읽었습니다. “보라,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요한은 엘리야가 돌아온다는 말라기의 약속 때문에 곧 도래할 왕국에 대해 설교하고,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들에게 앞으로 올 진노로부터 도망갈 것을 권고하러 나아가는 것을 철회하였습니다. 요한은 곧 도래할 왕국의 메시지를 바로 선포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지만, 앞으로 올 엘리야에 대한 기대가 그로 하여금 2년 이상이나 붙들어 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말라기가 의미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예언은 문자그대로의 의미였을까? 아니면 상징적인 것이었을까? 어떻게 진실을 알 수 있을까? 그는 마침내 선지자들 중에서 첫 번째가 엘리야로 불렸으므로 마지막 선지자도 결국에는 같은 이름으로 불려야 할 것이라고 감히 생각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엘리야라고 부르지 않을 만큼, 그러한 생각에 대해 상당한 회의를 품었습니다.

135:4.5 (1499.5) It was the influence of Elijah that caused John to adopt his methods of direct and blunt assault upon the sins and vices of his contemporaries. He sought to dress like Elijah, and he endeavored to talk like Elijah; in every outward aspect he was like the olden prophet. He was just such a stalwart and picturesque child of nature, just such a fearless and daring preacher of righteousness. John was not illiterate, he did well know the Jewish sacred writings, but he was hardly cultured. He was a clear thinker, a powerful speaker, and a fiery denunciator. He was hardly an example to his age, but he was an eloquent rebuke. 요한이 그 시대의 사람들의 죄와 타락에 대해 직선적이고 비타협적인 공격 방법을 선택한 것은 엘리야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엘리야처럼 옷을 입었고 엘리야처럼 말하려고 애를 썼는데, 겉으로 보이는 모든 면에서 그는 옛 선지자의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그는 본성적으로 건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사람이었고, 조금도 두려움이 없이, 담대한 정의로운 설교자였습니다. 요한은 무식한 자가 아니었으며 유대의 거룩한 기록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교양으로 세련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명철한 사색가였고 힘 있는 웅변가였으며 불같은 탄핵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시대의 전형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설득력 있게 꾸짖었습니다.

135:4.6 (1499.6) At last he thought out the method of proclaiming the new age, the kingdom of God; he settled that he was to become the herald of the Messiah; he swept aside all doubts and departed from Engedi one day in March of A.D. 25 to begin his short but brilliant career as a public preacher. 드디어 그는 하나님의 나라 즉 새 시대를 선포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었는데, 그는 자신이 메시아의 사자(선구자)가 되기로 결정을 하였으며, 모든 의심을 쓸어버리고, AD 25년 3월 어느 날, 짧기는 하였지만 대중 설교자로서 눈부신 생애를 시작하기 위하여 엥게디를 떠났습니다.

5. The Kingdom of God 하나님의 나라

170419 수요 예수82 마3:1-2 그 무렵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하늘 나라가 가까왔다! 회개하라!’ 하고 외쳤다. In those days John the Baptist came, preaching in the Desert of Judea and saying,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
135:5.1 (1500.1) In order to understand John’s message, account should be taken of the status of the Jewish people at the time he appeared upon the stage of action. For almost one hundred years all Israel had been in a quandary; they were at a loss to explain their continuous subjugation to gentile overlords. Had not Moses taught that righteousness was always rewarded with prosperity and power? Were they not God’s chosen people? Why was the throne of David desolate and vacant? In the light of the Mosaic doctrines and the precepts of the prophets the Jews found it difficult to explain their long-continued national desolation. 요한의 메시지를 이해하려면, 그가 활동 무대에 나타났던 당시 유대 민족의 처지를 고려해야만 합니다. 거의 100년 동안 모든 이스라엘인들은 곤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계속 이방 군주들에게 종속되어 있는 상태를 설명하기가 난처했습니다. 모세가 “공의righteousness는 반드시 번영과 권능으로 보상받는다.”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이 아니었던가? 왜 다윗의 왕좌는 황폐한 상태로 비어 있었는가? 모세의 교리와 유대 선지자들의 교훈에 비추어 볼 때, 유대인들은 오래 계속되고 있는 자신들의 민족적 처참함에 대해 설명하기 어려움을 발견했습니다.

135:5.2 (1500.2) About one hundred years before the days of Jesus and John a new school of religious teachers arose in Palestine, the apocalyptists. These new teachers evolved a system of belief that accounted for the sufferings and humiliation of the Jews on the ground that they were paying the penalty for the nation’s sins. They fell back onto the well-known reasons assigned to explain the Babylonian and other captivities of former times. But, so taught the apocalyptists, Israel should take heart; the days of their affliction were almost over; the discipline of God’s chosen people was about finished; God’s patience with the gentile foreigners was about exhausted. The end of Roman rule was synonymous with the end of the age and, in a certain sense, with the end of the world. These new teachers leaned heavily on the predictions of Daniel, and they consistently taught that creation was about to pass into its final stage; the kingdoms of this world were about to become the kingdom of God. To the Jewish mind of that day this was the meaning of that phrase — the kingdom of heaven — which runs throughout the teachings of both John and Jesus. To the Jews of Palestine the phrase “kingdom of heaven” had but one meaning: an absolutely righteous state in which God (the Messiah) would rule the nations of earth in perfection of power just as he ruled in heaven — “Your will be done on earth as in heaven.”예수와 요한의 시대보다 거의 100년 전에, 팔레스타인에서 새로운 학파의 종교 선생들, 종말론자(終末論者)들이 일어났습니다. 이 새로운 선생들은 유대인들이 민족의 죄 때문에 벌을 받고 있다는 데에 근거를 둔 신앙belief 체계를 개발하여, 유대인들이 당하는 고통과 굴욕을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예전에 바빌론과 기타 포로 생활을 설명하는데 사용된, 잘 알려진 이유들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종말론자들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용기를 내야 한다. 고통의 날은 거의 끝나가고 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에 대한 단련은 거의 끝났으며, 이교도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심도 거의 고갈되었다.” 로마 통치의 종료는 시대의 종료, 즉 어떤 면에서는 세상의 종말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새로 나타난 이 선생들은 다니엘의 예언에 깊이 의존하고 있었고, 창조는 그 마지막 단계로 들어가고 있으며, 이 세상의 왕국들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내용을 시종일관하게 가르쳤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이것이 요한과 예수님 두 분의 가르침을 관통하고 있는 관용구 – 하늘나라 –의 의미였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에게 “하늘나라”라는 구절은 단지 한 가지의 의미(意味)가 있었습니다. 하나님(메시아)께서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것과 똑같이 완전한 권능으로 세상 나라들을 다스리시는, 절대적으로 공의로운 국가─“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의미했습니다.

135:5.3 (1500.3) In the days of John all Jews were expectantly asking, “How soon will the kingdom come?” There was a general feeling that the end of the rule of the gentile nations was drawing near. There was present throughout all Jewry a lively hope and a keen expectation that the consummation of the desire of the ages would occur during the lifetime of that generation. 요한의 시대에 유대인들은 모두 “그 나라가 언제 옵니까?”라고 기대하면서 물었습니다. 이방 나라의 통치는 곧 끝날 것이라는 느낌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온 유대 사회에는 오랜 세대 동안에 품어왔던 갈망이 그 세대가 살아있는 동안 성취되리라는 열렬한 소망과 강렬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135:5.4 (1500.4) While the Jews differed greatly in their estimates of the nature of the coming kingdom, they were alike in their belief that the event was impending, near at hand, even at the door. Many who read the Old Testament literally looked expectantly for a new king in Palestine, for a regenerated Jewish nation delivered from its enemies and presided over by the successor of King David, the Messiah who would quickly be acknowledged as the rightful and righteous ruler of all the world. Another, though smaller, group of devout Jews held a vastly different view of this kingdom of God. They taught that the coming kingdom was not of this world, that the world was approaching its certain end, and that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were to usher in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of God; that this kingdom was to be an everlasting dominion, that sin was to be ended, and that the citizens of the new kingdom were to become immortal in their enjoyment of this endless bliss. 유대인들은 도래할 왕국의 성격에 대하여 매우 다양한 추측들을 하고 있었지만, 그 사건은 절박하게 임박하였고 바로 문 앞에 가까이 왔다고 그들은 똑같이 믿었습니다. 구약성경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적들로부터 해방되어 재건된 유대 국가를 위해 다윗왕의 후계자인 메시아로 새로운 왕이 팔레스타인에 나타나 다스릴 것이라고 문자 그대로 기대하였는데, 그 메시아는 온 세상의 정당하고 정의로운 통치자로 빨리 인정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소규모이긴 하지만, 믿음이 깊은 유대인의 다른 집단은, 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매우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도래할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며, 세상은 확실히 종말에 가까웠다는 것과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 나라 설립을 예고하고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이 나라는 영속적인 주권이 될 것이고, 죄는 그치게 될 것이며, 새 나라의 시민들은 이러한 끝없는 축복을 누리면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135:5.5 (1500.5) All were agreed that some drastic purging or purifying discipline would of necessity precede the establishment of the new kingdom on earth. The literalists taught that a world-wide war would ensue which would destroy all unbelievers, while the faithful would sweep on to universal and eternal victory. The spiritists taught that the kingdom would be ushered in by the great judgment of God which would relegate the unrighteous to their well-deserved judgment of punishment and final destruction, at the same time elevating the believing saints of the chosen people to high seats of honor and authority with the Son of Man, who would rule over the redeemed nations in God’s name. And this latter group even believed that many devout gentiles might be admitted to the fellowship of the new kingdom. 지상에서 새 나라가 설립되기 이전에, 어떤 철저한 정화(淨化) 혹은 정제(精製)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인 전쟁이 잇달아 일어나 믿지 않는 모든 자들이 멸망하는 반면에 신실히 믿는 자들은 우주적이며 영원한 승리로 압승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 심판으로 그 나라가 임할 것과, 그 심판으로 불의한 자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의 심판(審判)과 최종적 파멸로 추방되는 동시에, 선택된 백성들 중에서 믿는 성자(聖者)들은 사람의 아들과 함께 명예롭고 권위 있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며, 이 사람의 아들은 회복한 국가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스릴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후자의 집단은 경건한 이방인들도 많이 새 나라의 친교에 들어오도록 허락될 수 있다고 믿기까지 하였습니다.

135:5.6 (1501.1) Some of the Jews held to the opinion that God might possibly establish this new kingdom by direct and divine intervention, but the vast majority believed that he would interpose some representative intermediary, the Messiah. And that was the only possible meaning the term Messiah could have had in the minds of the Jews of the generation of John and Jesus. Messiah could not possibly refer to one who merely taught God’s will or proclaimed the necessity for righteous living. To all such holy persons the Jews gave the title of prophet. The Messiah was to be more than a prophet; the Messiah was to bring in the establishment of the new kingdom, the kingdom of God. No one who failed to do this could be the Messiah in the traditional Jewish sense. 어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직접적인 신적 개입으로, 새로운 이 나라 설립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품었지만, 대다수는 중재(仲裁)하는 메시아가 대리인(代理人)으로 개입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요한과 예수님 세대 유대인들의 마음에서 메시아라는 용어가 지닌 유일하게 가능한 의미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는 단지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거나 의로운 삶의 필요성을 선포하는 자를 언급할 뿐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거룩한 사람들에게 유대인들은 선지자라는 칭호를 주었습니다. 메시아는 선지자 이상이어야 했습니다. 메시아는 새 왕국, 하나님 나라의 설립을 이룩하는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누구라도 전통적인 유대인의 의미에서 메시아일 수 없었습니다.

135:5.7 (1501.2) Who would this Messiah be? Again the Jewish teachers differed. The older ones clung to the doctrine of the son of David. The newer taught that, since the new kingdom was a heavenly kingdom, the new ruler might also be a divine personality, one who had long sat at God’s right hand in heaven. And strange as it may appear, those who thus conceived of the ruler of the new kingdom looked upon him not as a human Messiah, not as a mere man, but as “the Son of Man” — a Son of God — a heavenly Prince, long held in waiting thus to assume the rulership of the earth made new. Such was the religious background of the Jewish world when John went forth proclaiming: “Repent,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누가 이러한 메시아일 것인가? 유대 선생들은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이든 사람들은 다윗의 아들이라는 교리에 집착했습니다. 새 선생들은, 새 나라는 하늘나라이기 때문에 새 통치자 역시 신적인 인물, 하늘에서 하나님 오른쪽에 오래 앉아 계셨던 분이 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새 나라의 통치자를 이렇게 상상한 자들은 그가 인간 메시아, 즉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하나님의 아들─인 새로워진 땅을 통치하려고 오랫동안 기다렸던 하늘의 영주로 보았습니다. 요한이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하였을 때, 유대 나라의 종교적 배경은 이상과 같았습니다.

135:5.8 (1501.3) It becomes apparent, therefore, that John’s announcement of the coming kingdom had not less than half a dozen different meanings in the minds of those who listened to his impassioned preaching. But no matter what significance they attached to the phrases which John employed, each of these various groups of Jewish-kingdom expectants was intrigued by the proclamations of this sincere, enthusiastic, rough-and-ready preacher of righteousness and repentance, who so solemnly exhorted his hearers to “flee from the wrath to come.” 그러므로 다가오는 나라를 요한이 선포할 때, 그의 정열적 설교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의 마음에는, 적어도 여섯 가지의 다른 뜻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사용한 구절에 그들이 어떤 의미(意味)를 부여했든지 상관없이, 이 유대 왕국을 기다리는 여러 집단은 각자, 성실하고, 열심이 있고, 올바름과 뉘우침을 부르짖는 이 투박한 설교자의 외침에 매료되었으며, 그는 청중에게 “다가올 진노로부터 도피하라.”고 매우 엄숙하게 훈계하였습니다.

6. John Begins to Preach 요한이 설교를 시작하다

170426 수요 예수83 눅3:2-3 2 안나스와 가야바는 대제사장으로 있었다. 바로 그 무렵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들려왔다. 3 요한은 요단강 부근의 여러 지방을 다니며 죄를 용서받게 하려고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다. 2 during the high priesthood of Annas and Caiaphas, the word of God came to John son of Zechariah in the desert. 3 He went into all the country around the Jordan, preaching a baptism of repentance for the forgiveness of sins.

135:6.1 (1501.4) Early in the month of March, A.D. 25, John journeyed around the western coast of the Dead Sea and up the river Jordan to opposite Jericho, the ancient ford over which Joshua and the children of Israel passed when they first entered the promised land; and crossing over to the other side of the river, he established himself near the entrance to the ford and began to preach to the people who passed by on their way back and forth across the river. This was the most frequented of all the Jordan crossings. 서기 25년 3월 초기에, 요한은 사해 서쪽 해안의 주변을 따라 여리고 맞은편에 있는 요단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여행하였는데, 그 강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약속된 땅에 처음 들어갈 때 건너갔던 고대의 여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강 저편으로 건너서, 여울 입구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강을 건너 오가는 도중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요단 강을 건너는 모든 길목 가운데 가장 많이 이용되는 곳이었습니다.

135:6.2 (1501.5) It was apparent to all who heard John that he was more than a preacher. The great majority of those who listened to this strange man who had come up from the Judean wilderness went away believing that they had heard the voice of a prophet. No wonder the souls of these weary and expectant Jews were deeply stirred by such a phenomenon. Never in all Jewish history had the devout children of Abraham so longed for the “consolation of Israel” or more ardently anticipated “the restoration of the kingdom.” Never in all Jewish history could John’s message,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have made such a deep and universal appeal as at the very time he so mysteriously appeared on the bank of this southern crossing of the Jordan.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요한은 설교자 이상의 사람임이 분명했습니다. 유대 광야에서 올라온 이 낯선 사람에게 귀를 기울인 사람들의 대다수(大多數)는 선지자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믿으며 떠나갔습니다. 지친 가운데 고대하던 이 유대인의 혼들이 그런 현상에 깊이 마음이 흔들린 것은 당연했습니다. 온 유대 역사에서 아브라함의 경건한 자손들이 이처럼 “이스라엘의 위로”를 고대(苦待)하거나 그렇게 열렬히 “나라가 회복되기”를 기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유대 역사에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요한의 메시지가 요단 강 남쪽 둑을 건너 그렇게 신비롭게 나타난 바로 그 때처럼, 그렇게 깊고 널리 호소한 적도 없었습니다.

135:6.3 (1502.1) He came from the herdsmen, like Amos. He was dressed like Elijah of old, and he thundered his admonitions and poured forth his warnings in the “spirit and power of Elijah.” It is not surprising that this strange preacher created a mighty stir throughout all Palestine as the travelers carried abroad the news of his preaching along the Jordan. 그는 아모스처럼 목자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옛날의 엘리야처럼 옷을 입고,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우렁차게 외쳤으며, 경고(警告)를 쏟아냈습니다. 이 이상한 설교자가 요단강 주변에서 설교한다는 소식을 여행자들이 널리 퍼뜨리자, 팔레스타인 전역에 굉장한 동요가 일어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35:6.4 (1502.2) There was still another and a new feature about the work of this Nazarite preacher: He baptized every one of his believers in the Jordan “for the remission of sins.” Although baptism was not a new ceremony among the Jews, they had never seen it employed as John now made use of it. It had long been the practice thus to baptize the gentile proselytes into the fellowship of the outer court of the temple, but never had the Jews themselves been asked to submit to the baptism of repentance. Only fifteen months intervened between the time John began to preach and baptize and his arrest and imprisonment at the instigation of Herod Antipas, but in this short time he baptized considerably over one hundred thousand penitents. 이 나실인 설교자의 활동에는 아주 특이한 새로운 특징이 있었는데, 그가 자기를 믿고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요단강에 나온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세례가 유대인 사이에서 새로운 의식(儀式)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당시 요한이 시행하듯이 세례가 사용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방인 중에서 개종한 자들을 동료로 받아들이기 위해 성전 밖 뜰에서 세례를 주던 관습은 오래되었지만, 유대인 자신들이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요구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요한이 설교와 세례를 시작한 때부터 헤롯 안티파스의 선동으로 체포되어 갇힐 때까지 겨우 15개월의 기간이었으나, 이 짧은 기간에 그는 10만 명이 훨씬 넘는 회개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135:6.5 (1502.3) John preached four months at Bethany ford before starting north up the Jordan. Tens of thousands of listeners, some curious but many earnest and serious, came to hear him from all parts of Judea, Perea, and Samaria. Even a few came from Galilee. 요한은 요단강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기 전에 베다니 개울가에서 4개월 동안 설교하였습니다. 수만 명의 청중들 중에는, 더러는 호기심 때문에 경청했지만, 많은 이들은 진정으로 진지한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그의 말을 듣기 위하여 유대, 페레아, 사마리아의 모든 지방으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얼마의 사람들은 갈릴리에서 오기도 하였습니다.

135:6.6 (1502.4) In May of this year, while he still lingered at Bethany ford, the priests and Levites sent a delegation out to inquire of John whether he claimed to be the Messiah, and by whose authority he preached. John answered these questioners by saying: “Go tell your masters that you have heard ‘the voice of one crying in the wilderness,’ as spoken by the prophet, saying, ‘make ready the way of the Lord, make straight a highway for our God. Every valley shall be filled, and every mountain and hill shall be brought low; the uneven ground shall become a plain, while the rough places shall become a smooth valley; and all flesh shall see the salvation of God.’” 이 해 5월에 그가 아직도 베다니 여울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요한이 자신을 메시아라고 주장하는지 누구의 권위로 설교 하는지 물어 보기 위해 그에게 대표단을 보냈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질문들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가서 너희 주인들에게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들었다고 이르라. 이는 선지자가 말씀한 바와 같으니, ‘주의 길을 예비하라, 우리 하나님을 위하여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모든 산과 언덕이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부드러운 골짜기가 될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135:6.7 (1502.5) John was a heroic but tactless preacher. One day when he was preaching and baptizing on the west bank of the Jordan, a group of Pharisees and a number of Sadducees came forward and presented themselves for baptism. Before leading them down into the water, John, addressing them as a group said: “Who warned you to flee, as vipers before the fire, from the wrath to come? I will baptize you, but I warn you to bring forth fruit worthy of sincere repentance if you would receive the remission of your sins. Tell me not that Abraham is your father. I declare that God is able of these twelve stones here before you to raise up worthy children for Abraham. And even now is the ax laid to the very roots of the trees. Every tree that brings not forth good fruit is destined to be cut down and cast into the fire.” (The twelve stones to which he referred were the reputed memorial stones set up by Joshua to commemorate the crossing of the “twelve tribes” at this very point when they first entered the promised land.) 요한은 용맹스럽기는 하였지만, 재치가 없는 설교자였습니다. 어느 날, 그가 요단강의 서쪽 강둑에서 설교하고 세례를 주고 있는 중에, 바리새인의 집단과 몇 명의 사두개인들이 앞으로 나와 세례를 받기 위해 그의 앞에 섰습니다. 그들을 물로 인도하기 전에, 요한은 그 집단 전체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누가 너희에게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나는 너희에게 세례를 줄 것인데, 경고하노니, 만약 너희가 속죄를 받으면 진지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겠는데, 하나님은 이 12개의 돌들로도 능히 아브라함의 합당한 자손이 되게 하실 것이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져질 운명이다.” (그가 언급한 12개의 돌은 여호수아에 의해서 “12 지파”들이 처음으로 언약의 땅에 들어갈 때, 그들이 건너 간을 기념하기 위해 바로 그 지점에 세워 놓았던 돌들입니다.)

135:6.8 (1502.6) John conducted classes for his disciples, in the course of which he instructed them in the details of their new life and endeavored to answer their many questions. He counseled the teachers to instruct in the spirit as well as the letter of the law. He instructed the rich to feed the poor; to the tax gatherers he said: “Extort no more than that which is assigned you.” To the soldiers he said: “Do no violence and exact nothing wrongfully — be content with your wages.” While he counseled all: “Make ready for the end of the age —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요한은 자기 제자들을 위해 가르침을 베풀었는데, 그들에게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세부적인 것들을 가르쳤고 그들의 많은 질문들에 대하여 답변을 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그 선생들에게, 율법의 내용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함께 가르치도록 조언하였습니다. 그는 부자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먹일 것을 가르쳤으며, 세금 징수원들에게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정해진 세금 이외에는 더 이상 걷지 말라.” 그는 군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폭력을 사용하지 말고 그 어떤 것도 그릇된 방법으로 강요하지 말라─너희들의 보수에 만족하라.” 동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조언하였습니다. “시대의 종말을 위해 준비하라─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7. John Journeys North 요한이 북쪽으로 여행하다.

170510 수요 예수84 눅3:16-17 16 그래서 요한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능력이 많으신 분이 곧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릴 자격도 없다.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며 17 자기 타작 마당에서 모든 곡식을 키질하여 알곡은 곳간에 모아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16 John answered, saying unto them all, I indeed baptize you with water; but one mightier than I cometh, the latchet of whose shoes I am not worthy to unloose: he shall baptize you with the Holy Ghost and with fire: 17 Whose fan is in his hand, and he will throughly purge his floor, and will gather the wheat into his garner; but the chaff he will burn with fire unquenchable.

135:7.1 (1503.1) John still had confused ideas about the coming kingdom and its king. The longer he preached the more confused he became, but never did this intellectual uncertainty concerning the nature of the coming kingdom in the least lessen his conviction of the certainty of the kingdom’s immediate appearance. In mind John might be confused, but in spirit never. He was in no doubt about the coming kingdom, but he was far from certain as to whether or not Jesus was to be the ruler of that kingdom. As long as John held to the idea of the restoration of the throne of David, the teachings of his parents that Jesus, born in the City of David, was to be the long-expected deliverer, seemed consistent; but at those times when he leaned more toward the doctrine of a spiritual kingdom and the end of the temporal age on earth, he was sorely in doubt as to the part Jesus would play in such events. Sometimes he questioned everything, but not for long. He really wished he might talk it all over with his cousin, but that was contrary to their expressed agreement. 요한은 도래할 나라와 그 왕(王)에 대하여 여전히 혼동된 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오래 설교를 할수록 그는 더 혼동되었지만, 도래할 나라의 성격에 관한 지적(知的) 불확실성 때문에, 그 나라가 곧 도래하리라는 확신에 대한 그의 신념이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요한은 마음으로는 혼동을 겪었을지 모르지만, 영으로는 절대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래할 나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예수께서 그 나라의 통치자이실지 아니실 지에 대해서는 전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요한이 다윗 왕좌의 복권에 대한 관념을 고수하는 한, 다윗의 도시에서 태어난 예수께서 그들이 그토록 오래 기다려 왔던 해방자라는 자신의 부모의 가르침은 시종일관하게 보였지만, 그 당시 그가 영적 나라의 교리와 지상의 일시적인 시대의 종말을 향해 마음이 더 많이 기울게 되자, 그러한 관련사에서의 예수님의 역할에 대해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그는 모든 것이 의문스럽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그 모든 것에 대하여 자기 사촌과 함께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자기들의 명백한 약속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135:7.2 (1503.2) As John journeyed north, he thought much about Jesus. He paused at more than a dozen places as he traveled up the Jordan. It was at Adam that he first made reference to “another one who is to come after me” in answer to the direct question which his disciples asked him, “Are you the Messiah?” And he went on to say: “There will come after me one who is greater than I, whose sandal straps I am not worthy to stoop down and unloose. I baptize you with water, but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his shovel is in his hand thoroughly to cleanse his threshing floor; he will gather the wheat into his garner, but the chaff will he burn up with the judgment fire.” 요한은 북쪽으로 여행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는 요단강을 거슬러 여행하면서 12번 이상이나 멈추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당신이 메시아이십니까?”라고 직접적으로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하면서 “내 뒤에 오시는 다른 분”이라고 아담에서 처음 언급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위대하시니,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노라.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그 분은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줄 것이다. 자기 타작마당을 샅샅이 깨끗하게 하려고 그의 손에 삽을 들고 있느니라. 알곡은 곡간에 모아들이시겠지만, 쭉정이는 심판의 불에 태우시리라.”

135:7.3 (1503.3) In response to the questions of his disciples John continued to expand his teachings, from day to day adding more that was helpful and comforting compared with his early and cryptic message: “Repent and be baptized.” By this time throngs were arriving from Galilee and the Decapolis. Scores of earnest believers lingered with their adored teacher day after day.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면서, 요한은 자신의 가르침을 계속 확장했는데,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초기의 모호한 메시지와 비교해서, 좀 더 유익과 위로가 되는 내용을 나날이 더했습니다. 이 무렵에, 군중들은 갈릴리와 데카폴리스에서부터 몰려왔습니다. 수십 명의 진지한 신도들은 존경하는 자기 선생의 곁을 떠나지 않고 매일 함께 머물렀습니다.

8. Meeting of Jesus and John예수님과 요한의 만남

170524 수요 예수85 마3:16-17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16 And Jesus, when he was baptized, went up straightway out of the water: and, lo, the heavens were opened unto him, and he saw the Spirit of God descending like a dove, and lighting upon him: 17 And lo a voice from heaven,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135:8.1 (1503.4) By December of A.D. 25, when John reached the neighborhood of Pella in his journey up the Jordan, his fame had extended throughout all Palestine, and his work had become the chief topic of conversation in all the towns about the lake of Galilee. Jesus had spoken favorably of John’s message, and this had caused many from Capernaum to join John’s cult of repentance and baptism. James and John the fishermen sons of Zebedee had gone down in December, soon after John took up his preaching position near Pella, and had offered themselves for baptism. They went to see John once a week and brought back to Jesus fresh, firsthand reports of the evangelist’s work. 서기 25년 12월이 되어, 요한이 요단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펠라 근처에 이르렀을 때, 그의 명성은 온 팔레스타인에 두루 퍼졌고, 그의 활동은 갈릴리 호수 근처에 있는 모든 마을들의 주요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메시지에 대하여 호감을 갖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가버나움의 많은 사람들은 회개하고 세례 받는 요한의 종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들, 어부 야고보와 요한도, 요한이 펠라 근처에서 설교할 자리를 잡은 바로 직후인 12월에 내려갔고, 세례 받으러 나셨습니다. 그들은 한 주에 한 번씩 요한을 만나러 갔고, 그 복음 전도자의 활동에 대해 생생하게 직접 얻은 보고를 가지고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135:8.2 (1503.5) Jesus’ brothers James and Jude had talked about going down to John for baptism; and now that Jude had come over to Capernaum for the Sabbath services, both he and James, after listening to Jesus’ discourse in the synagogue, decided to take counsel with him concerning their plans. This was on Saturday night, January 12, A.D. 26. Jesus requested that they postpone the discussion until the following day, when he would give them his answer. He slept very little that night, being in close communion with the Father in heaven. He had arranged to have noontime lunch with his brothers and to advise them concerning baptism by John. That Sunday morning Jesus was working as usual in the boatshop. James and Jude had arrived with the lunch and were waiting in the lumber room for him, as it was not yet time for the midday recess, and they knew that Jesus was very regular about such matters.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와 유다는 세례를 받으러 요한에게 내려가는 것에 대해 서로 논의하였으며; 이제 유다가 안식일 경배를 드리기 위해 가버나움으로 건너 왔을 때, 그와 야고보는 회당에서 예수님의 강론을 들은 뒤에, 자신들의 계획에 대하여 예수님과 상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서기 26년 1월 12일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일로 논의를 미루자고 요청하면서, 그 때 대답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날 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긴밀히 교제 하면서 거의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는 한낮에 동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요한에게 세례 받는 것에 대하여 조언하려고 계획하였습니다. 그 일요일 아침에 예수님은 여느 때처럼 배를 만드는 목공소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유다가 점심을 갖고 도착했지만 아직 점심 휴식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목재실(木材室)에서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그런 일에 예수께서 얼마나 규칙적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35:8.3 (1504.1) Just before the noon rest, Jesus laid down his tools, removed his work apron, and merely announced to the three workmen in the room with him, “My hour has come.” He went out to his brothers James and Jude, repeating, “My hour has come — let us go to John.” And they started immediately for Pella, eating their lunch as they journeyed. This was on Sunday, January 13. They tarried for the night in the Jordan valley and arrived on the scene of John’s baptizing about noon of the next day. 점심 휴식시간 바로 전에 예수님은 연장들을 내려놓고 작업복을 벗었으며, 그와 함께 작업장에 있던 세 명의 일꾼들에게 단지 “나의 때가 이르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자기 동생들인 야고보와 유다에게 나가서 “나의 때가 이르렀으니 함께 요한에게로 가자.”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곧바로 펠라를 향해 떠났고 여행하면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1월 13일 일요일의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요단 계곡에서 그 날 밤을 지냈고, 다음 날 정오 무렵에 요한이 세례를 주는 장면에 이르렀습니다.

135:8.4 (1504.2) John had just begun baptizing the candidates for the day. Scores of repentants were standing in line awaiting their turn when Jesus and his two brothers took up their positions in this line of earnest men and women who had become believers in John’s preaching of the coming kingdom. John had been inquiring about Jesus of Zebedee’s sons. He had heard of Jesus’ remarks concerning his preaching, and he was day by day expecting to see him arrive on the scene, but he had not expected to greet him in the line of baptismal candidates. 요한은 그날의 후보자들에게 세례를 막 주기 시작했습니다. 몇 십 명의 회개자들이 그들의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었고, 예수님과 그의 두 동생들도 이 대열 속에 서서 자리를 잡았는데, 이들은 다가올 나라에 대한 요한의 설교를 믿는 열성적인 남녀들이었습니다. 요한은 세베대의 아들들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물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설교에 관한 예수의 소견을 들었으며, 예수님께서 자기 앞에 나타나기를 매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례를 받으러 온 사람들의 줄에서 예수님께 인사하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135:8.5 (1504.3) Being engrossed with the details of rapidly baptizing such a large number of converts, John did not look up to see Jesus until the Son of Man stood in his immediate presence. When John recognized Jesus, the ceremonies were halted for a moment while he greeted his cousin in the flesh and asked, “But why do you come down into the water to greet me?” And Jesus answered, “To be subject to your baptism.” John replied: “But I have need to be baptized by you. Why do you come to me?” And Jesus whispered to John: “Bear with me now, for it becomes us to set this example for my brothers standing here with me, and that the people may know that my hour has come.” 그렇게 많은 개종자들에게 빠른 시간에 세례를 주는 세세한 일들에 열중하느라 요한은 바로 앞에 사람의 아들이 서실 때까지도 그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을 때, 예식(禮式)은 잠시 중지되었고 그는 자신 육체의 사촌에게 인사하며 여쭈었습니다. “그렇지만 왜 당신이 나를 만나러 물속으로 내려오십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의 세례를 받기 위함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째서 당신이 나에게 오십니까?” 그러자 예수님은 요한에게 속삭이셨습니다. “이제 참고 내 말을 들으라, 왜냐하면 이것은 나와 함께 여기에 서 있는 내 형제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우리가 되고, 또한 사람들이 나의 때가 왔음을 알게 하려 하기 때문이라.”

135:8.6 (1504.4) There was a tone of finality and authority in Jesus’ voice. John was atremble with emotion as he made ready to baptize Jesus of Nazareth in the Jordan at noon on Monday, January 14, A.D. 26. Thus did John baptize Jesus and his two brothers James and Jude. And when John had baptized these three, he dismissed the others for the day, announcing that he would resume baptisms at noon the next day. As the people were departing, the four men still standing in the water heard a strange sound, and presently there appeared for a moment an apparition immediately over the head of Jesus, and they heard a voice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A great change came over the countenance of Jesus, and coming up out of the water in silence he took leave of them, going toward the hills to the east. And no man saw Jesus again for forty days. 예수님의 음성은 단호하고 권위가 서려 있었습니다. 요한은 서기 26년 1월 14일, 월요일 정오에 요단강에서 나사렛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 준비를 하면서 감정에 북받쳐 전율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요한은 예수님과 그의 두 동생인 야고보와 유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이들 세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나서, 그는 그날의 나머지 세례는 다음 날 정오에 계속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사람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갈 때, 여전히 물속에 서있었던 네 사람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이내 하나의 환영(幻影)이 잠깐 예수의 머리 바로 위에 나타났으며, 그들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아주 기뻐하는 자라.”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수의 용모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물에서 나와 그들을 떠나서 동쪽의 언덕들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예수님을 다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135:8.7 (1504.5) John followed Jesus a sufficient distance to tell him the story of Gabriel’s visit to his mother ere either had been born, as he had heard it so many times from his mother’s lips. He allowed Jesus to continue on his way after he had said, “Now I know of a certainty that you are the Deliverer.” But Jesus made no reply. 요한은 충분한 거리를 두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면서, 자신의 어머니의 입을 통하여 수없이 들어왔던 바와 같이, 둘 중에 어느 쪽도 태어나기 전에, 예수님의 어머니 앞에 나타났던 가브리엘의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예수에게 해주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에게 “이제 나는 당신이 구원자(해방자)임을 확실하게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예수께서 자기 길을 계속 가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9. Forty Days of Preaching 40일간의 설교

170531 수요 예수86 요1:30-32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0 This is he of whom I said, After me cometh a man which is preferred before me: for he was before me. 31 And I knew him not: but that he should be made manifest to Israel, therefore am I come baptizing with water. 32 And John bare record, saying, I saw the Spirit descending from heaven like a dove, and it abode upon him.

135:9.1 (1505.1) When John returned to his disciples (he now had some twenty-five or thirty who abode with him constantly), he found them in earnest conference, discussing what had just happened in connection with Jesus’ baptism. They were all the more astonished when John now made known to them the story of the Gabriel visitation to Mary before Jesus was born, and also that Jesus spoke no word to him even after he had told him about this. There was no rain that evening, and this group of thirty or more talked long into the starlit night. They wondered where Jesus had gone, and when they would see him again. 요한이 자기 제자들(그 당시에 약 25-30명가량이 그와 항상 함께 거주하던)에게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세례와 관련되어 일어났던 일에 관해서 진지하게 토의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때 요한이, 예수께서 태어나기 전에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방문한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주었을 때, 또한 심지어 그가 이 사실을 예수님께 말해 주었는데도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주었을 때, 그들은 더욱 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 날 저녁에는 비가 오지 않았으므로 30여명 되는 이 사람들은 별이 빛나는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어디로 갔는지 언제 다시 그를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였습니다.

135:9.2 (1505.2) After the experience of this day the preaching of John took on new and certain notes of proclamation concerning the coming kingdom and the expected Messiah. It was a tense time, these forty days of tarrying, waiting for the return of Jesus. But John continued to preach with great power, and his disciples began at about this time to preach to the overflowing throngs which gathered around John at the Jordan. 이 날의 체험 이후에, 요한의 설교는 새롭고도 확실한 어조로 다가올 나라와 기다리던 메시아에 관해 선포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머물렀던 이 40일 은 매우 긴장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굉장한 권능으로 계속 설교했으며, 그의 제자들은 이 무렵에 요단강에서 요한 주위에 모여 넘쳐 흐르는 군중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35:9.3 (1505.3) In the course of these forty days of waiting, many rumors spread about the countryside and even to Tiberias and Jerusalem. Thousands came over to see the new attraction in John’s camp, the reputed Messiah, but Jesus was not to be seen. When the disciples of John asserted that the strange man of God had gone to the hills, many doubted the entire story. 이렇게 40일 동안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많은 소문들이 그 지방으로 퍼졌고, 그 소문들은 티베리아스와 예루살렘까지도 이르렀습니다. 수천의 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야영지에 있다는 새로운 구경거리인 소문난 메시아를 보려고 모여들었지만, 예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그 이상한 하나님의 사람이 산으로 갔다고 주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 전체를 의심하였습니다.

135:9.4 (1505.4) About three weeks after Jesus had left them, there arrived on the scene at Pella a new deputation from the priests and Pharisees at Jerusalem. They asked John directly if he was Elijah or the prophet that Moses promised; and when John said, “I am not,” they made bold to ask, “Are you the Messiah?” and John answered, “I am not.” Then said these men from Jerusalem: “If you are not Elijah, nor the prophet, nor the Messiah, then why do you baptize the people and create all this stir?” And John replied: “It should be for those who have heard me and received my baptism to say who I am, but I declare to you that, while I baptize with water, there has been among us one who will return to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예수께서 떠난 지 약 3주일이 되었을 때, 예루살렘에서 온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새로운 대표단이 펠라의 그 현장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은 요한에게, 그가 엘리야인지 아니면 모세가 약속한 선지자인지 직접 물었으며; 요한이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들은 “당신이 메시아인가?”라고 대담히 물었고, 요한은 “나는 아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에서 온 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만일 엘리야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니요 메시아도 아니라면, 어찌하여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며 이 모든 동요를 일으키느냐?” 그리고 요한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의 말을 듣고 나의 세례를 받은 자들을 위해서라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야 하겠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선언하는데, 나는 물로 세례를 주는 반면에,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 우리 가운데 있었느니라.”

135:9.5 (1505.5) These forty days were a difficult period for John and his disciples. What was to be the relation of John to Jesus? A hundred questions came up for discussion. Politics and selfish preferment began to make their appearance. Intense discussions grew up around the various ideas and concepts of the Messiah. Would he become a military leader and a Davidic king? Would he smite the Roman armies as Joshua had the Canaanites? Or would he come to establish a spiritual kingdom? John rather decided, with the minority, that Jesus had come to establish the kingdom of heaven, although he was not altogether clear in his own mind as to just what was to be embraced within this mission of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of heaven. 40일의 이 기간은 요한과 그의 제자들에게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요한의 관계는 무엇이 될 것인가? 수많은 질문들이 논의의 대상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정치적 흥정과 이기적인 자리다툼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여러 가지 관념들과 개념을 둘러싸고 심각한 토론들이 벌어졌습니다. 그가 군사 지도자가 되어 다윗과 같은 왕이 될 것인가? 여호수아가 가나안 사람들을 취했던 것과 같이, 그는 로마 군대를 무찌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영적 나라를 세우러 올 것인가? 요한 자신도 하늘나라의 설립에 관한 임무 안에 무엇이 포함되어 하는지에 대하여 자기 마음을 확실히 정하고 있지 못하였지만, 그는 오히려 소수파와 함께 예수께서 하늘나라를 세우러 왔다고 결정했습니다.

135:9.6 (1505.6) These were strenuous days in John’s experience, and he prayed for the return of Jesus. Some of John’s disciples organized scouting parties to go in search of Jesus, but John forbade, saying: “Our times are in the hands of the God of heaven; he will direct his chosen Son.” 이러한 날들은 요한의 체험에서 격렬한 나날들이었으며, 그는 예수께서 돌아오기를 기도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 중 일부는 예수님을 찾으러 가기 위한 수색대를 조직하였으나, 요한은 말리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때는 하늘 하나님 손에 달려 있으니 하나님께서 그가 택한 아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135:9.7 (1505.7) It was early on the morning of Sabbath, February 23, that the company of John, engaged in eating their morning meal, looked up toward the north and beheld Jesus coming to them. As he approached them, John stood upon a large rock and, lifting up his sonorous voice, said: “Behold the Son of God, the deliverer of the world! This is he of whom I have said, ‘After me there will come one who is preferred before me because he was before me.’ For this cause came I out of the wilderness to preach repentance and to baptize with water, proclaiming that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And now comes one who sha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I beheld the divine spirit descending upon this man, and I heard the voice of God declare,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2월 23일 안식일 이른 아침에, 요한의 일행이 아침식사를 하는 중에 북쪽으로 올려보다가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자, 요한은 큰 바위 위에 올라서서 우렁찬 목소리를 높여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세상의 구원자(해방자)를 보라! 이 사람은 내가, ‘내 뒤에 나보다 더 앞선 분이 오시는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셨음이라.’고 말해왔던 그 분이라. 이 때문에 내가 광야로부터 나와서 회개를 설교하고 물로 세례를 주었으며,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였노라. 그리고 이제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 오느니라. 나는 성령이 이 분 위에 강림하는 것을 보았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아주 기뻐하는 자라.’고 선포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노라.”

135:9.8 (1506.1) Jesus bade them return to their food while he sat down to eat with John, his brothers James and Jude having returned to Capernaum. 예수님은 그들에게 식사를 계속하라고 말씀하시고, 한편 동생 야고보와 유다가 가버나움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요한과 함께 식사하시려고 앉으셨습니다.

135:9.9 (1506.2) Early in the morning of the next day he took leave of John and his disciples, going back to Galilee. He gave them no word as to when they would again see him. To John’s inquiries about his own preaching and mission Jesus only said, “My Father will guide you now and in the future as he has in the past.” And these two great men separated that morning on the banks of the Jordan, never again to greet each other in the flesh. 다음 날 아침 일찍, 예수님은 요한과 그의 제자들을 떠나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언제 다시 그들을 보게 될 것에 대해 아무 말씀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설교와 사명에 대한 요한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단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지난 날에 하신 것처럼 현재와 미래에도 너를 안내하실 것이다.” 이들 두 위대한 사람들은 그 날 아침 요단강 강변에서 헤어졌으며, 육신으로는 다시 서로 만나지 않았습니다.

10. John Journeys South요한이 남쪽으로 여행가다

170607 수요 예수87 눅3:19-20 19 그러나 헤롯왕은 자기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한 일과 그 밖에 그가 저지른 모든 악한 일로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도 20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붙잡아 감옥에 가둬 버렸다. 19 But when John rebuked Herod the tetrarch because of Herodias, his brother’s wife, and all the other evil things he had done, 20 Herod added this to them all: He locked John up in prison.

135:10.1 (1506.3) Since Jesus had gone north into Galilee, John felt led to retrace his steps southward. Accordingly, on Sunday morning, March 3, John and the remainder of his disciples began their journey south. About one quarter of John’s immediate followers had meantime departed for Galilee in quest of Jesus. There was a sadness of confusion about John. He never again preached as he had before baptizing Jesus. He somehow felt that the responsibility of the coming kingdom was no longer on his shoulders. He felt that his work was almost finished; he was disconsolate and lonely. But he preached, baptized, and journeyed on southward. 예수님께서는 북쪽에 있는 갈릴리로 가셨기 때문에, 요한은 남쪽으로 발걸음을 되돌려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서 3월 3일 일요일 아침에 요한과 나머지 제자들은 남쪽으로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그 동안에 요한의 가까운 제자들 중 사분의 일 정도는 예수님을 찾아 갈릴리로 떠났습니다. 요한에게서는 혼란에 빠진 슬픈 안색이 보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세례를 주기 이전에 행했던 것과 같은 설교를 다시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쩐지 다가올 나라에 대한 책임을 더 이상 질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일이 거의 끝이 난 것같이 느껴졌으며, 마음 둘 곳을 잃었고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설교를 하고 세례를 주면서 남쪽으로 계속 여행하였습니다.

135:10.2 (1506.4) Near the village of Adam, John tarried for several weeks, and it was here that he made the memorable attack upon Herod Antipas for unlawfully taking the wife of another man. By June of this year (A.D. 26) John was back at the Bethany ford of the Jordan, where he had begun his preaching of the coming kingdom more than a year previously. In the weeks following the baptism of Jesus the character of John’s preaching gradually changed into a proclamation of mercy for the common people, while he denounced with renewed vehemence the corrupt political and religious rulers. 아담이라는 마을 가까이에서 요한은 여러 주간 동안 머물렀으며, 헤롯 안티파스가 다른 사람의 부인을 부당하게 취한 것에 대해 이곳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이 해(서기 26년) 6월경에, 요한은 1년 전에, 다가올 나라에 대한 설교를 시작하였던, 요단강의 베다니 개울가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이후 몇 주 동안, 요한의 설교의 특징은 점차 보통 사람들을 위한 자비의 선포로 바뀌어 갔으며, 반면에 그는 다시 되살아난 격렬함으로 부패된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공공연히 비난하였습니다.

135:10.3 (1506.5) Herod Antipas, in whose territory John had been preaching, became alarmed lest he and his disciples should start a rebellion. Herod also resented John’s public criticisms of his domestic affairs. In view of all this, Herod decided to put John in prison. Accordingly, very early in the morning of June 12, before the multitude arrived to hear the preaching and witness the baptizing, the agents of Herod placed John under arrest. As weeks passed and he was not released, his disciples scattered over all Palestine, many of them going into Galilee to join the followers of Jesus. 요한은 헤롯의 영토에서 설교하였는데, 헤롯 안티파스는 그와 그의 제자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헤롯은 자신의 가정 문제에 대해 요한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헤롯은 요한을 투옥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따라서 6월 12일 아주 이른 아침, 군중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또 세례 주는 것을 보기 위하여 모여들기 전에, 헤롯의 부하들이 요한을 체포하였습니다. 여러 주가 지나도 그가 석방되지 않게 되자, 그의 제자들은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흩어졌으며, 그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추종자들과 합세하려고 갈릴리로 갔습니다.

11. John in Prison 감옥에 갇힌 요한

170614 수요 예수88 요3:26-36, 마11:2-6 2 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3 ‘오실 분이 선생님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어 보게 하였다. 4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가서 듣고 본 것을 요한에게 알려라. 5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고 문둥병자가 깨끗해지며 귀머거리가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 전파된다고 하라. 6 그리고 나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일러 주어라.’ 2 When John heard in prison what Christ was doing, he sent his disciples 3 to ask him, “Are you the one who was to come, or should we expect someone else?” 4 Jesus replied, “Go back and report to John what you hear and see: 5 The blind receive sight, the lame walk, those who have leprosyare cured, the deaf hear, the dead are raised, and the good news is preached to the poor. 6 Blessed is the man who does not fall away on account of me.”

135:11.1 (1506.6) John had a lonely and somewhat bitter experience in prison. Few of his followers were permitted to see him. He longed to see Jesus but had to be content with hearing of his work through those of his followers who had become believers in the Son of Man. He was often tempted to doubt Jesus and his divine mission. If Jesus were the Messiah, why did he do nothing to deliver him from this unbearable imprisonment? For more than a year and a half this rugged man of God’s outdoors languished in that despicable prison. And this experience was a great test of his faith in, and loyalty to, Jesus. Indeed, this whole experience was a great test of John’s faith even in God. Many times was he tempted to doubt even the genuineness of his own mission and experience. 요한은 감옥에서 외로운 가운데 다소간 쓰라린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의 추종자들은 거의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매우 보고 싶었지만, 추종자들 가운데 사람의 아들을 믿게 된 자들을 통해서 그가 하는 일의 소식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종종 예수님과 그의 신적 사명에 대한 의심의 유혹(誘惑)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어째서 견디기 어려운 이 감옥생활에서 자기를 구하려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가? 광야에서 살던 억센 이 하나님의 사람은 그 경멸스러운 감옥에서 일 년 반 이상이나 있으면서 괴로운 생활 가운데 시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체험은 예수님을 향한 요한의 신앙과 충성에 대한 큰 시험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이 모든 체험은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요한의 신앙까지 큰 시험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과 체험의 순수성까지도 의심이 드는 유혹에 여러 번이나 빠졌었습니다.

135:11.2 (1507.1) After he had been in prison several months, a group of his disciples came to him and, after reporting concerning the public activities of Jesus, said: “So you see, Teacher, that he who was with you at the upper Jordan prospers and receives all who come to him. He even feasts with publicans and sinners. You bore courageous witness to him, and yet he does nothing to effect your deliverance.” But John answered his friends: “This man can do nothing unless it has been given him by his Father in heaven. You well remember that I said, ‘I am not the Messiah, but I am one sent on before to prepare the way for him.’ And that I did. He who has the bride is the bridegroom, but the friend of the bridegroom who stands near by and hears him rejoices greatly because of the bridegroom’s voice. This, my joy, therefore is fulfilled. 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 I am of this earth and have declared my message. Jesus of Nazareth comes down to the earth from heaven and is above us all. The Son of Man has descended from God, and the words of God he will declare to you. For the Father in heaven gives not the spirit by measure to his own Son. The Father loves his Son and will presently put all things in the hands of this Son. He who believes in the Son has eternal life. And these words which I speak are true and abiding.” 그가 감옥에서 여러 달을 지낸 후, 요한의 제자들 한 무리가 그에게 찾아왔으며, 그들은 예수님의 공개적인 활동들에 대해 보고를 한 후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상류에 있던 사람이 성공하고 있으며 자기에게 오는 모든 자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는 세리들과 죄인들과도 함께 잔치를 합니다. 선생님은 그를 용감하게 증언하였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선생님의 해방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의 친구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 이 사람은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하였던 대로, ‘나는 메시아가 아니라, 그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을 너희들은 잘 기억하느니라. 그리고 나는 그것을 행하였느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지만, 신랑 친구는 곁에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고 크게 기뻐하느니라. 그러므로 이러한 나의 기쁨이 이루어졌느니라. 그는 흥하여야만 하고 나는 쇠하여야만 하느니라. 나는 이 세상의 사람으로 나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느니라. 나사렛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 와서 우리 모두 위에 계시느니라. 사람의 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왔고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선포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에게 그 영(靈)을 한량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자기 아들을 사랑하셔서 즉시 이 아들의 손에 만물을 맡기시리라. 아들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느니라. 그리고 이러한 나의 말들은 진리이고 영구적인 것이니라.”

135:11.3 (1507.2) These disciples were amazed at John’s pronouncement, so much so that they departed in silence. John was also much agitated, for he perceived that he had uttered a prophecy. Never again did he wholly doubt the mission and divinity of Jesus. But it was a sore disappointment to John that Jesus sent him no word, that he came not to see him, and that he exercised none of his great power to deliver him from prison. But Jesus knew all about this. He had great love for John, but being now cognizant of his divine nature and knowing fully the great things in preparation for John when he departed from this world and also knowing that John’s work on earth was finished, he constrained himself not to interfere in the natural outworking of the great preacher-prophet’s career. 이 제자들은 요한의 선언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고, 너무 놀라서 그들 모두는 아무 말 없이 떠나갔습니다. 요한 역시 몹시 동요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예언의 말을 했다는 것을 인식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는 예수님의 사명과 신성에 대해 결코 송두리째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아무 말도 그에게 보내지 않는 점과 그를 만나러 오지 않는 점 그리고 그를 감옥에서 구하기 위해 큰 권능도 하나도 쓰지 않으신 점은 그에게 비통한 실망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매우 사랑하셨지만, 이제는 자신의 신적 본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가 이 세상을 하직하면 그에게는 위대한 일들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또한 땅에서 요한의 일은 끝이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대한 설교자-선지자 생애의 자연스러운 끝마무리에 간섭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자제하셨습니다.

135:11.4 (1507.3) This long suspense in prison was humanly unbearable. Just a few days before his death John again sent trusted messengers to Jesus, inquiring: “Is my work done? Why do I languish in prison? Are you truly the Messiah, or shall we look for another?” And when these two disciples gave this message to Jesus, the Son of Man replied: “Go back to John and tell him that I have not forgotten but to suffer me also this, for it becomes us to fulfill all righteousness. Tell John what you have seen and heard — that the poor have good tidings preached to them — and, finally, tell the beloved herald of my earth mission that he shall be abundantly blessed in the age to come if he finds no occasion to doubt and stumble over me.” And this was the last word John received from Jesus. This message greatly comforted him and did much to stabilize his faith and prepare him for the tragic end of his life in the flesh which followed so soon upon the heels of this memorable occasion. 감옥에서의 이러한 긴 불안 상태는, 인간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죽기 바로 며칠 전에 요한은 예수님에게 믿을만한 사람들을 보내어 다시 물었습니다. “나의 일은 끝난 것입니까? 왜 나는 감옥에서 괴로워해야만 합니까? 당신은 진정한 메시아이십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이들 두 제자들이 이 메시지를 예수님께 전했을 때, 사람의 아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요한에게 돌아가서, 내가 잊지 않고 있다는 것과 이 또한 나에게 고통이며, 이는 그것으로 우리가 모든 공의(公義)를 성취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에게 말하라. 요한에게 너희가 보고 들은 것 – 가난한 자가 기쁜 소식을 들었다는 것 – 을 전하고, 마지막으로, 나의 지상 사명의 귀한 전령에게, 그가 나를 의심하거나 실족하지 않는다면, 그는 장차 다가올 시대에 넘치는 복을 받으리라는 것을 전하라.” 이것이 요한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이 메시지는 그를 매우 안심시켰으며, 그의 신앙을 굳건하게 해 주었고, 이 기억할 만한 사건 바로 직후에 일어났던 그의 육신의 일생의 비극적인 종말에 대해 그를 준비시켜 주었습니다.

12. Death of John the Baptist 세례요한의 죽음

170621 수요 예수89 마14:5-12 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5 Herod wanted to kill John, but he was afraid of the people, because they considered him a prophet. 6 On Herod’s birthday the daughter of Herodias danced for them and pleased Herod so much 7 that he promised with an oath to give her whatever she asked. 8 Prompted by her mother, she said, “Give me here on a platter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9 The king was distressed, but because of his oaths and his dinner guests, he ordered that her request be granted 10 and had John beheaded in the prison. 11 His head was brought in on a platter and given to the girl, who carried it to her mother. 12 John’s disciples came and took his body and buried it. Then they went and told Jesus.

135:12.1 (1508.1) As John was working in southern Perea when arrested, he was taken immediately to the prison of the fortress of Machaerus, where he was incarcerated until his execution. Herod ruled over Perea as well as Galilee, and he maintained residence at this time at both Julias and Machaerus in Perea. In Galilee the official residence had been moved from Sepphoris to the new capital at Tiberias. 요한이 남쪽 페레아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되었을 때, 그는 즉시 마캐루스의 요새에 있는 교도소로 보내졌고, 처형을 당할 때까지 그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헤롯은 갈릴리 뿐 아니라 페레아도 다스리고 있었으며, 그 당시 페레아의 줄리아스와 마캐루스, 두 곳에 거처(居處)를 두고 있었습니다. 갈릴리의 공관은, 세포리스로부터 새 수도인 티베리아스로 옮겼습니다.

135:12.2 (1508.2) Herod feared to release John lest he instigate rebellion. He feared to put him to death lest the multitude riot in the capital, for thousands of Pereans believed that John was a holy man, a prophet. Therefore Herod kept the Nazarite preacher in prison, not knowing what else to do with him. Several times John had been before Herod, but never would he agree either to leave the domains of Herod or to refrain from all public activities if he were released. And this new agitation concerning Jesus of Nazareth, which was steadily increasing, admonished Herod that it was no time to turn John loose. Besides, John was also a victim of the intense and bitter hatred of Herodias, Herod’s unlawful wife. 헤롯은 요한이 반란을 선동할까봐 그를 석방하기가 두려웠습니다. 수많은 페레아인들이 요한을 거룩한 사람 즉 선지자로 믿었기 때문에, 수도에서 군중이 폭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헤롯은 그를 죽이는 것도 두려워하였습니다. 따라서 헤롯은 그를 달리 어떻게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 나실인 설교자를 계속 교도소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요한은 여러 차례 헤롯 앞에 불려갔었지만, 석방되는 경우라도, 자기가 헤롯의 영역을 떠나거나 혹은 모든 공공 활동들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 결코 동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하여 자라나고 있는 나사렛 예수에 관한 새로운 민심의 동요는, 요한을 풀어주기에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는 점을 헤롯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게다가 요한은 또한 헤롯의 불륜 아내, 헤로디아스의 맹렬하고 극심한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135:12.3 (1508.3) On numerous occasions Herod talked with John about the kingdom of heaven, and while sometimes seriously impressed with his message, he was afraid to release him from prison. 헤롯은 하늘나라에 대해서 요한과 여러 번 이야기를 하였으며, 때때로 요한의 메시지에 매우 감명을 받기도 하였지만, 교도소에서 요한을 석방하기가 두려웠습니다.

135:12.4 (1508.4) Since much building was still going on at Tiberias, Herod spent considerable time at his Perean residences, and he was partial to the fortress of Machaerus. It was a matter of several years before all the public buildings and the official residence at Tiberias were fully completed. 티베리아스에서 많은 건축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헤롯은 페레아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마캐루스 요새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티베리아스에 있는 공공건물들과 공관이 충분하게 완성되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리는 문제였습니다.

135:12.5 (1508.5) In celebration of his birthday Herod made a great feast in the Machaerian palace for his chief officers and other men high in the councils of the government of Galilee and Perea. Since Herodias had failed to bring about John’s death by direct appeal to Herod, she now set herself to the task of having John put to death by cunning planning. 그의 생일 축하를 위해 헤롯은 갈릴리와 페레아의 정부 의회에서 주요 관리들과 기타 고위층을 마캐루스의 궁전에 불러서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헤로디아스는 헤롯에게 요한을 죽여 달라는 자신의 직접적인 청원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제 요한을 죽이기 위하여 간악한 계획을 세우는 일에 직접 착수했습니다.

135:12.6 (1508.6) In the course of the evening’s festivities and entertainment, Herodias presented her daughter to dance before the banqueters. Herod was very much pleased with the damsel’s performance and, calling her before him, said: “You are charming. I am much pleased with you. Ask me on this my birthday for whatever you desire, and I will give it to you, even to the half of my kingdom.” And Herod did all this while well under the influence of his many wines. The young lady drew aside and inquired of her mother what she should ask of Herod. Herodias said, “Go to Herod and ask for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And the young woman, returning to the banquet table, said to Herod, “I request that you forthwith give me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on a platter.” 헤로디아스는 저녁 잔치들과 연회의 순서 속에 자기 딸을 연회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도록 하였습니다. 헤롯은 처녀의 공연에 매우 심히 기분이 좋아져서 그녀를 불러 말했습니다. “너는 매력이 있구나. 네가 나를 매우 기쁘게 하였으니, 나의 생일인 오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구하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노라.” 헤롯은 포도주에 몹시 취한 그 기운으로 이 모든 일을 했습니다. 젊은 처녀는 물러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헤롯에게 구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헤로디아스는 말하였습니다. “헤롯에게 가서 세례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그리고 젊은 처녀는 연회 식탁으로 돌아와서 헤롯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장 세례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내게 주기를 요청하옵니다.”

135:12.7 (1508.7) Herod was filled with fear and sorrow, but because of his oath and because of all those who sat at meat with him, he would not deny the request. And Herod Antipas sent a soldier, commanding him to bring the head of John. So was John that night beheaded in the prison, the soldier bringing the head of the prophet on a platter and presenting it to the young woman at the rear of the banquet hall. And the damsel gave the platter to her mother. When John’s disciples heard of this, they came to the prison for the body of John, and after laying it in a tomb, they went and told Jesus. 헤롯은 두려움과 슬픔에 휩싸였지만, 자신이 맹세한 것과 그와 함께 앉아 회식하던 자들로 인하여 그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헤롯 안티파스는 군인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요한은 교도소에서 목이 베어졌고, 그 군인은 선지자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그것을 연회장 뒤에 있는 그 젊은 여인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 처녀는 그 소반을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서 요한의 시체를 가지러 교도소로 왔으며, 그들은 요한의 시신을 무덤에 묻은 후에 예수님께 가서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Paper 5 God’s Relation to the Individual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

Paper 5

God’s Relation to the Individual 하나님과 개인과의 관계

1702021 고전3:16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Don’t you know that you yourselves are God’s temple and that God’s Spirit lives in you?

5:0.1 (62.1) IF THE finite mind of man is unable to comprehend how so great and so majestic a God as the Universal Father can descend from his eternal abode in infinite perfection to fraternize with the individual human creature, then must such a finite intellect rest assurance of divine fellowship upon the truth of the fact that an actual fragment of the living God resides within the intellect of every normal-minded and morally conscious Urantia mortal. The indwelling Thought Adjusters are a part of the eternal Deity of the Paradise Father. Man does not have to go farther than his own inner experience of the soul’s contemplation of this spiritual-reality presence to find God and attempt communion with him. 우리와 같은 유한한 사람의 마음으로는 다음의 사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한한 완전성 가운데에 계시는 우주 아버지로서 그렇게 위대하고 장엄한 하나님이 자신의 영원한 거처로부터 내려오셔서 개인적인 우리 인간 창조물과 어떻게 형제우애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요? 그러한 우리의 유한한 지성은, 다음의 사실에 대한 진리에 근거해서 신적 교제에 대한 확신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제적 파편이 유란시아 필사자, 즉 모든 정상적 마음을 가지고 도덕적으로 의식하는 우리 지성의 내부에 거주하신다는 사실이 바로 그 진리의 근거입니다. 내주하는 생각 조율자들은 천국 아버지의 영원한 신(神)의 일부분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과의 친교를 시도하기 위하여 이 영적-실체 현존(顯存)에 관한 혼의 깊은 사색으로서의 그 자신의 내적 체험보다 더 멀리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5:0.2 (62.2) God has distributed the infinity of his eternal nature throughout the existential realities of his six absolute co-ordinates, but he may, at any time, make direct personal contact with any part or phase or kind of creation through the agency of his prepersonal fragments. And the eternal God has also reserved to himself the prerogative of bestowing personality upon the divine Creators and the living creatures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while he has further reserved the prerogative of maintaining direct and parental contact with all these personal beings through the personality circuit.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본성의 무한성을 그의 여섯 절대 동등자들의 존재적 실체들에 두루 분배해 오셨지만, 언제든지 그는 자신의 전(前) 고유적 prepersonal 단편의 대리자를 통하여 창조의 어떤 부분이나 위상 또는 종류와 직접적인 개인적 접촉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은 또한 신성한 창조주들과 우주들의 우주의 살아있는 창조물들에게 고유성personality을 증여하는 특권을 자신이 보유해 오셨으며, 동시에 더 나아가 그는 고유성personality 순환회로를 통하여 이 개인적 존재들 전체와 직접적이며 어버이로서의 접촉을 유지하는 특권을 보유해 오셨습니다.

1. The Approach to God 하나님께 다가가는 길

1702023 약4:8 하나님을 가까이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도 여러분을 가까이하실 것입니다. 죄인들은 과거의 잘못을 깨끗이 씻고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은 마음을 정결하게 하십시오. Come near to God and he will come near to you. Wash your hands, you sinners, and purify your hearts, you double-minded.

5:1.1 (62.3) The inability of the finite creature to approach the infinite Father is inherent, not in the Father’s aloofness, but in the finiteness and material limitations of created beings. The magnitude of the spiritual difference between the highest personality of universe existence and the lower groups of created intelligences is inconceivable. Were it possible for the lower orders of intelligence to be transported instantly into the presence of the Father himself, they would not know they were there. They would there be just as oblivious of the presence of the Universal Father as where they now are. There is a long, long road ahead of mortal man before he can consistently and within the realms of possibility ask for safe conduct into the Paradise presence of the Universal Father. Spiritually, man must be translated many times before he can attain a plane that will yield the spiritual vision which will enable him to see even any one of the Seven Master Spirits. 유한한 창조물이 무한한 하나님 아버지께 다가갈 수 없는 무능력함은 선천적인데, 아버지가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창조된 존재들의 유한함과 물질적 한계 때문입니다. 우주 실재 중 가장 높은 고유성과 창조된 지능존재들 중 가장 낮은 집단들 사이에 있는 영적 차이의 크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지능존재의 낮은 계층들이 아버지 자신의 현존 속으로 즉시 옮겨가는 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곳에 있음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과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도 우주 아버지의 현존에 대해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 이 가능성의 영역 내에서 우주 아버지의 천국 현존 안으로 안전히 안내받기를 일관되게 요구할 수 있기 전까지 그 앞에는 멀고도 먼 길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일곱 주(主)영들 중 어느 한 분이라도 볼 수 있는 영적 시력의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영적으로 사람은 여러 차례 모습이 바뀌는 전환이 있어야만 합니다.

5:1.2 (62.4) Our Father is not in hiding; he is not in arbitrary seclusion. He has mobilized the resources of divine wisdom in a never-ending effort to reveal himself to the children of his universal domains. There is an infinite grandeur and an inexpressible generosity connected with the majesty of his love which causes him to yearn for the association of every created being who can comprehend, love, or approach him; and it is, therefore, the limitations inherent in you, inseparable from your finite personality and material existence, that determine the time and place and circumstances in which you may achieve the goal of the journey of mortal ascension and stand in the presence of the Father at the center of all things. 우리의 아버지는 숨어있지 않으며, 그는 제멋대로 은둔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자신의 우주 권역에 있는 자녀들에게 자신을 계시하기 위하여 신적 지혜의 자원들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동원해 오셨습니다. 그를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또는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모든 창조된 존재의 연합을 그가 갈망하도록 만든 그의 사랑의 장엄함에는 무한한 숭고함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관대함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간이 상승하는 여행 목표를 성취하고 만물의 중심에 있는 아버지의 현존 속에 서게 되는 시간과 장소와 상황들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유한한 고유성 그리고 물질적 실재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우리 안에 있는 선천적 한계들입니다.

5:1.3 (63.1) Although the approach to the Paradise presence of the Father must await your attainment of the highest finite levels of spirit progression, you should rejoice in the recognition of the ever-present possibility of immediate communion with the bestowal spirit of the Father so intimately associated with your inner soul and your spiritualizing self. 비록 아버지의 천국 현존에 다가감은 우리가 영 진보의 최고 유한 차원들을 달성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우리는, 우리 내면의 혼 그리고 우리의 영성화하는 자아와 그렇게 긴밀하게 연합된 아버지의 증여 영과 즉각적 교제가 항상-존재 가능함을 인식하며 기뻐해야만 합니다.

170228 롬8:23 이것뿐만 아니라 성령을 첫열매로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 곧 우리 몸이 구원받기를 갈망합니다. Not only so, but we ourselves, who have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groan inwardly as we wait eagerly for our adoption as sons, the redemption of our bodies.

5:1.4 (63.2) The mortals of the realms of time and space may differ greatly in innate abilities and intellectual endowment, they may enjoy environments exceptionally favorable to social advancement and moral progress, or they may suffer from the lack of almost every human aid to culture and supposed advancement in the arts of civilization; but the possibilities for spiritual progress in the ascension career are equal to all; increasing levels of spiritual insight and cosmic meanings are attained quite independently of all such sociomoral differentials of the diversified material environments on the evolutionary worlds. 시간과 공간의 영역에 속한 사람들은 타고난 능력들과 지적 자질에 있어서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발전과 도덕적 진보에 예외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누릴 수 있거나, 아니면 그들이 문명 예술에 있어서 문화와 예상되는 진보를 돕는 거의 모든 인간적 도움의 부족으로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승하는 생애에 있어서의 영적 진보에 대한 가능성은 모두에게 동등합니다. 영적 통찰력과 우주적(cosmic) 의미의, 증가하는 차원들은 진화 세계에 있는 다양한 물질 환경들의 그러한 모든 사회-도덕적 차이들과는 매우 독립적으로 달성됩니다.

5:1.5 (63.3) However Urantia mortals may differ in their intellectual, social, economic, and even moral opportunities and endowments, forget not that their spiritual endowment is uniform and unique. They all enjoy the same divine presence of the gift from the Father, and they are all equally privileged to seek intimate personal communion with this indwelling spirit of divine origin, while they may all equally choose to accept the uniform spiritual leading of these Mystery Monitors. 그러나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지적, 사회적, 경제적, 심지어는 도덕적 기회들과 자질들에 있어서 차이가 있겠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영적 자질은 동일하며 독특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께서 주신 동일한 신적 현존의 선물을 누리며, 그들은 모두 신적 기원을 갖고 있는 내주하는 이 영과의 긴밀한 개인적 교제를 추구하는 특권을 똑같이 누리며, 또한 그들 모두는 이 신비 감시자들의 한결같은 영적 인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에 있어서 차이가 없이 동등합니다.

5:1.6 (63.4) If mortal man is wholeheartedly spiritually motivated, unreservedly consecrated to the doing of the Father’s will, then, since he is so certainly and so effectively spiritually endowed by the indwelling and divine Adjuster, there cannot fail to materialize in that individual’s experience the sublime consciousness of knowing God and the supernal assurance of surviving for the purpose of finding God by the progressive experience of becoming more and more like him.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전심을 다하여 영적으로 동기를 부여받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거리낌 없이 헌신한다면, 그는 내주하는 신적 조절자를 그렇게 확실하고 효과적이며 영적으로, 부여받았기 때문에, 갈수록 하나님을 닮아가는 진보적 체험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는 고결한 의식과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한 목적으로 살아남는다는 천상의 확신이, 그 개인의 체험 속에서 체현(體現)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70301 요일3:2-3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장차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어 그분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3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희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처럼 자신을 깨끗이 지켜야 합니다. 2 Dear friends, now we are children of God, and what we will be has not yet been made known. But we know that when he appears,we shall be like him, for we shall see him as he is. 3 Everyone who has this hope in him purifies himself, just as he is pure.

5:1.7 (63.5) Man is spiritually indwelt by a surviving Thought Adjuster. If such a human mind is sincerely and spiritually motivated, if such a human soul desires to know God and become like him, honestly wants to do the Father’s will, there exists no negative influence of mortal deprivation nor positive power of possible interference which can prevent such a divinely motivated soul from securely ascending to the portals of Paradise. 사람 안에는 살아남는 생각 조절자가 영적으로 내주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간 마음이 진지하게 영적으로 동기부여를 받으며, 그러한 인간 혼이 하나님을 알고자 소망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며, 정직하게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원한다면, 그렇게 신적으로 동기부여를 받은 혼이 천국 입구까지 안전하게 올라가는 상승(上昇)을 저지(底止)할 수 있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결핍으로 인한 어떤 부정적 영향도, 방해가 가능한 어떤 적극적 권능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5:1.8 (63.6) The Father desires all his creatures to be in personal communion with him. He has on Paradise a place to receive all those whose survival status and spiritual nature make possible such attainment. Therefore settle in your philosophy now and forever: To each of you and to all of us, God is approachable, the Father is attainable, the way is open; the forces of divine love and the ways and means of divine administration are all interlocked in an effort to facilitate the advancement of every worthy intelligence of every universe to the Paradise presence of the Universal Father.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창조물들이 자신과 개인적인 교제를 누리는 가운데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는, 생존(生存) 지위와 영적 본성으로 그렇게 달성이 가능한 모든 자들을 받아들일 장소를 천국에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영원히 우리의 인생철학이 되게 하십시오. 각자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가까이 갈 수 있는 분이시고, 아버지는 도달하여 만나 뵐 수 있는 분이시며, 그 길은 열려 있습니다. 모든 우주마다 모든 가치 있는 지능존재가 우주 아버지의 천국 현존을 향해 나아가는 진보를 촉진시키려는 노력으로, 신적 사랑의 힘과 신적 행적의 방법과 수단들은 서로 모두 맞물려 있습니다.

5:1.9 (63.7) The fact that vast time is involved in the attainment of God makes the presence and personality of the Infinite none the less real. Your ascension is a part of the circuit of the seven superuniverses, and though you swing around it countless times, you may expect, in spirit and in status, to be ever swinging inward. You can depend upon being translated from sphere to sphere, from the outer circuits ever nearer the inner center, and some day, doubt not, you shall stand in the divine and central presence and see him, figuratively speaking, face to face. It is a question of the attainment of actual and literal spiritual levels; and these spiritual levels are attainable by any being who has been indwelt by a Mystery Monitor, and who has subsequently eternally fused with that Thought Adjuster. 하나님께 도달하기까지 광대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사실은, 무한자의 현존과 고유성이 실제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어들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승(승천)은 일곱 초우주들의 순환회로의 일부분이며, 너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그 둘레를 회전한다고 해도, 우리는 영과 신분 지위 안에서 안쪽을 향해 계속 휘돌아 회전하는 상태로 있음을 기대해도 됩니다. 우리는 구체에서 구체로, 외부 순환회로에서 계속 더 내부 중심 가까이로 이동하고 있음을 믿어도 되며, 언젠가는, 우리가 신적인 중앙의 현존 안에 서게 될 것이며 상징적으로 말해서 얼굴을 마주 대하고 하나님을 뵙게 될 것임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실제적이며 글자 그대로 영적 수준에 도달했는가의 문제입니다. 신비 감시자가 내주하던 적이 있고, 나중에 그 생각 조절자와 영원히 융합한 어떤 존재든지, 이 영적 차원들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170303 사45:15 구원자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여, 참으로 주는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Truly you are a God who hides himself, O God and Savior of Israel.

5:1.10 (64.1) The Father is not in spiritual hiding, but so many of his creatures have hidden themselves away in the mists of their own willful decisions and for the time being have separated themselves from the communion of his spirit and the spirit of his Son by the choosing of their own perverse ways and by the indulgence of the self-assertiveness of their intolerant minds and unspiritual natures. 아버지는 영적으로 숨어계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렇게도 많은 그의 창조물들은, 그들 자신의 의지적 결정들의 안개 속으로 스스로 멀리 숨어 버렸으며, 그들 자신의 비뚤어진 길을 선택함하고, 그들의 편협한 마음들과 비(非)영적 본성의 자아-주장에 빠짐으로써, 그의 영과 그의 아들의 영의 교제로부터 스스로를 한동안 차단해 버렸습니다.

5:1.11 (64.2) Mortal man may draw near God and may repeatedly forsake the divine will so long as the power of choice remains. Man’s final doom is not sealed until he has lost the power to choose the Father’s will. There is never a closure of the Father’s heart to the need and the petition of his children. Only do his offspring close their hearts forever to the Father’s drawing power when they finally and forever lose the desire to do his divine will — to know him and to be like him. Likewise is man’s eternal destiny assured when Adjuster fusion proclaims to the universe that such an ascender has made the final and irrevocable choice to live the Father’s will.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도 있고, 선택의 권능이 남아 있는 한, 신적인 뜻을 반복적으로 저버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최종적 파멸은 그가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는 권능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확정되지 않습니다. 자기 자녀들의 필요와 청원에 대하여 아버지의 심정은 결코 닫히지 않습니다. 그의 신적인 뜻을 행하고자 – 그를 알고자 하고 그와 같이 되고자 하는 – 하는 욕망을 그들이 최종적으로 영원히 잃어버릴 때에만, 아버지의 이끄시는 권능에 대하여 그의 자손이 그들 심정의 문을 영원히 닫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상승자가 아버지의 뜻을 살기로 최종적이고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였음을, 조절자 융합이 우주에 선포할 때, 사람의 영원한 운명은 확실히 보장됩니다.

5:1.12 (64.3) The great God makes direct contact with mortal man and gives a part of his infinite and eternal and incomprehensible self to live and dwell within him. God has embarked upon the eternal adventure with man. If you yield to the leadings of the spiritual forces in you and around you, you cannot fail to attain the high destiny established by a loving God as the universe goal of his ascendant creatures from the evolutionary worlds of space. 위대하신 하나님은 죽어야 할 사람과 직접적으로 접촉하시며 그의 내부에 살고 거주하기 위하여, 그의 무한하고 영원하며 헤아릴 수 없는 자아의 일부분을 내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영원한 모험을 떠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과 우리 둘레에 있는 영적 힘들의 안내를 따른다면, 우리는 공간 진화 세계들로부터 상승하는 그의 창조물들의 우주 목표로서,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확정하신 그 높은 운명을 달성하는데 실패할 수 없습니다.

2. The Presence of God 하나님의 현존

170307 요일4:12-13 12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12 No one has ever seen God; but if we love one another, God lives in us and his love is made complete in us. 13We know that we live in him and he in us, because he has given us of his Spirit.

5:2.1 (64.4) The physical presence of the Infinite is the reality of the material universe. The mind presence of Deity must be determined by the depth of individual intellectual experience and by the evolutionary personality level. The spiritual presence of Divinity must of necessity be differential in the universe. It is determined by the spiritual capacity of receptivity and by the degree of the consecration of the creature’s will to the doing of the divine will. 무한자의 물리적 현존은 물질 우주의 실체입니다. 신(Deity 神)의 마음 현존은 개인마다 지적 체험의 깊이와, 진화적 고유성 차원에 의해 결정되어야만 합니다. 신성Divinity의 영적 현존은 우주에서 차별될 필요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수용력과, 신적 뜻을 행하려는 창조물의 의지가 헌신한 정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5:2.2 (64.5) God lives in every one of his spirit-born sons. The Paradise Sons always have access to the presence of God,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and all of his creature personalities have access to the “bosom of the Father.” This refers to the personality circuit, whenever, wherever, and however contacted, or otherwise entails personal, self-conscious contact and communion with the Universal Father, whether at the central abode or at some other designated place, as on one of the seven sacred spheres of Paradise. 하나님은 자신의 영으로 탄생한 아들들 각자 안에 살아 계십니다. 천국의 아들들Sons은 하나님의 현존인 “아버지의 오른손”에 언제나 출입할 수 있으며, 그의 모든 창조물인 고유성들은 “아버지의 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나 어떻게 접촉되든지 고유성 순환회로에 관한 것이며, 혹은 그렇지 않다면, 우주 아버지가 중앙 거주지 또는 천국의 일곱 신성한 구체들 중 하나처럼, 다른 지정된 장소에서, 개인적이며 자아-의식적 접촉과 교제를 필요로 합니다.

5:2.3 (64.6) The divine presence cannot, however, be discovered anywhere in nature or even in the lives of God-knowing mortals so fully and so certainly as in your attempted communion with the indwelling Mystery Monitor, the Paradise Thought Adjuster. What a mistake to dream of God far off in the skies when the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 lives within your own mind! 그러나 신적 현존은 자연의 그 어디서나 또는 심지어 하나님을-아는 사람들의 삶에서 발견되기 보다는, 내주하는 신비 감시자, 천국의 생각조절자와 우리가 교제하려고 시도할 때처럼 그렇게 충분하고 분명하게 발견될 수는 없습니다. 우주 아버지의 영이 우리 자신의 마음 안에 살아계시는데, 하늘 멀리에 떨어져 있는 하나님을 꿈꾸는 것은 얼마나 큰 오류인가!

170308 엡5:8-9 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두움 속에 살았으나 이제는 주님을 믿고 빛 가운데 살고 있으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9 빛의 생활은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8 For you were once darkness, but now you are light in the Lord. Live as children of light 9 (for the fruit of the light consists in all goodness, righteousness and truth)

5:2.4 (64.7) It is because of this God fragment that indwells you that you can hope, as you progress in harmonizing with the Adjuster’s spiritual leadings, more fully to discern the presence and transforming power of those other spiritual influences that surround you and impinge upon you but do not function as an integral part of you. The fact that you are not intellectually conscious of close and intimate contact with the indwelling Adjuster does not in the least disprove such an exalted experience. The proof of fraternity with the divine Adjuster consists wholly in the nature and extent of the fruits of the spirit which are yielded in the life experience of the individual believer. “By their fruits you shall know them.” 우리들에게 내주하시는 이 하나님의 단편 때문에, 우리가 조절자의 영적인 인도하심과 조화를 이루어 진보할수록,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와 마주치지만 우리 전체를 구성하는 일부로서 활동하지 않는, 다른 영적인 영향들의 존재와 변화시키는 권능을 우리는 더욱 온전히 식별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주하는 조절자와 가까우며 친밀한 접촉에 대해 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실은, 그 높은 체험이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으로 반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적 조절자와의 형제우애관계를 나누고 있다는 증거는 전적으로 개별 신자의 생활 체험 속에서 맺는 영의 열매들의 본성과 정도로 구성됩니다. “그들의 열매로서 너희는 저희를 알지니라.”

5:2.5 (65.1) It is exceedingly difficult for the meagerly spiritualized, material mind of mortal man to experience marked consciousness of the spirit activities of such divine entities as the Paradise Adjusters. As the soul of joint mind and Adjuster creation becomes increasingly existent, there also evolves a new phase of soul consciousness which is capable of experiencing the presence, and of recognizing the spirit leadings and other supermaterial activities, of the Mystery Monitors. 빈약하게 영성화된 사람의 물질적 마음으로, 천국 조율자처럼 그런 신적 실재들의 영 활동을 뚜렷한 의식으로 체험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과 조절자가 함께 창조한 혼이 더욱 더 실재함으로, 새로운 단계의 혼 의식이 역시 진화하는데, 이것은 신비 감시자들의 영적 인도하심과 다른 초물질 활동들의 현존을 체험하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5:2.6 (65.2) The entire experience of Adjuster communion is one involving moral status, mental motivation, and spiritual experience. The self-realization of such an achievement is mainly, though not exclusively, limited to the realms of soul consciousness, but the proofs are forthcoming and abundant in the manifestation of the fruits of the spirit in the lives of all such inner-spirit contactors. 조절자와 교제하는 전체의 체험은 도덕적 지위, 정신적 동기부여 그리고 영적 체험을 하나로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아-실현의 성취는, 배타적은 아니더라도, 주로 혼 의식의 영역에 국한되지만, 그 증거들은 그렇게 내부-영과 접촉하는 모든 자들의 삶 속에서 영 열매들의 표현으로 풍부히 드러나게 됩니다.

3. True Worship 참된 경배

170309 요4:23 아버지께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인 진실한 예배를 드릴 때가 오는데 바로 이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spirit and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

5:3.1 (65.3) Though the Paradise Deities, from the universe standpoint, are as one, in their spiritual relations with such beings as inhabit Urantia they are also three distinct and separate persons.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the Godheads in the matter of personal appeals, communion, and other intimate relations. In the highest sense, we worship the Universal Father and him only. True, we can and do worship the Father as he is manifested in his Creator Sons, but it is the Father, directly or indirectly, who is worshiped and adored.우주의 관점에서 볼 때, 천국 신(Deities 神)들은 하나로 존재하시지만, 지구(유란시아)에 거주하는 그러한 존재들과 맺는 그들의 영적 관계에 있어서 그들은 또한 별개의 분리된 세 개인들이십니다. 개인적인 호소와 친교, 그리고 다른 친밀한 관계의 문제에 있어서 신위(神位 Godheads)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최고의 의미에서, 우리는 우주 아버지, 오직 그 분만을 경배합니다. 진실로, 우리는 그의 창조주 아들들 안에서 계시되는 그 아버지를 경배할 수 있고 그렇게 하지만,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경배와 찬미를 받는 분은 아버지이십니다.

5:3.2 (65.4) Supplications of all kinds belong to the realm of the Eternal Son and the Son’s spiritual organization. Prayers, all formal communications, everything except adoration and worship of the Universal Father, are matters that concern a local universe; they do not ordinarily proceed out of the realm of the jurisdiction of a Creator Son. But worship is undoubtedly encircuited and dispatched to the person of the Creator by the function of the Father’s personality circuit. We further believe that such registry of the homage of an Adjuster-indwelt creature is facilitated by the Father’s spirit presence. There exists a tremendous amount of evidence to substantiate such a belief, and I know that all orders of Father fragments are empowered to register the bona fide adoration of their subjects acceptably in the presence of the Universal Father. The Adjusters undoubtedly also utilize direct prepersonal channels of communication with God, and they are likewise able to utilize the spirit-gravity circuits of the Eternal Son. 모든 종류의 간청(懇請)은 영원하신 아들과 아들의 영적 조직의 영역에 속합니다. 기도, 모든 정식의 교통, 우주 아버지께 드려지는 찬미와 경배를 제외한 모든 것은 지역우주에 관련된 일들입니다. 그것들(기도들)은 대개 창조주 아들의 관할 영역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배는 아버지의 고유성 순환회로 기능에 의해 의심할 여지없이 순환회로에 연결되어 창조주의 개인에게로 급히 전송됩니다. 더 나아가서 조절자-내주 창조물들의 그러한 경의(敬意)를 등록하는 기록은 아버지의 영 현존에 의해 용이해진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이런 믿음을 입증하는 굉장히 많은 증거가 있으며, 신성한 조언자는 아버지 단편들의 모든 계층이, 그들 주체들의 진실한 찬미를 우주 아버지의 현존 안에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록하는 권한을 부여받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조절자들은 또한 하나님과 교통하는 전(前)고유적 통로들을 직접 활용하며, 그들은 영원 아들의 영-중력 순환회로들도 마찬가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5:3.3 (65.5) Worship is for its own sake; prayer embodies a self- or creature-interest element; that is the great difference between worship and prayer. There is absolutely no self-request or other element of personal interest in true worship; we simply worship God for what we comprehend him to be. Worship asks nothing and expects nothing for the worshiper. We do not worship the Father because of anything we may derive from such veneration; we render such devotion and engage in such worship as a natural and spontaneous reaction to the recognition of the Father’s matchless personality and because of his lovable nature and adorable attributes. 경배는 그 자체를 위한 것입니다. 기도는 자신이나 창조물에게 이익이 되는 요소를 포함합니다. 이것이 경배와 기도의 커다란 차이입니다. 참된 경배에는 자신을 위한 요청이나 다른 개인적 이익의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을 헤아려 이해하는대로 하나님을 경배할 뿐입니다. 경배는 경배자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존경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아버지를 경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비할 데 없는 고유성을 깨달음에 대해 자연스러우면서도 자발적인 반응으로서, 또한 그의 사랑할 만한 본성과 찬미할만한 속성들 때문에 그렇게 헌신을 바치고 그런 경배에 참여하게 됩니다.

170310 골2:9 그리스도 안에는 온갖 신적 성품이 육체적인 형태로 나타나 있습니다. For in Christ all the fullness of the Deity lives in bodily form,

5:3.4 (65.6) The moment the element of self-interest intrudes upon worship, that instant devotion translates from worship to prayer and more appropriately should be directed to the person of the Eternal Son or the Creator Son. But in practical religious experience there exists no reason why prayer should not be addressed to God the Father as a part of true worship. 자아-이익의 요소가 경배에 끼어드는 순간, 즉시 그 헌신은 경배에서 기도로 환원되고 오히려 영원 아들 또는 창조주 아들의 개인에게 적합하도록 방향이 옮겨집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종교적 체험에 있어서는, 기도가 참된 경배의 일부분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드려져서는 안 될 이유가 없습니다.

5:3.5 (66.1) When you deal with the practical affairs of your daily life, you are in the hands of the spirit personalities having origin in the Third Source and Center; you are co-operating with the agencies of the Conjoint Actor. And so it is: You worship God; pray to, and commune with, the Son; and work out the details of your earthly sojourn in connection with the intelligences of the Infinite Spirit operating on your world and throughout your universe. 우리가 우리 일상생활의 실제적 일들을 다룰 때, 우리는 셋째근원이며 중심에 기원을 갖는 영 고유성들의 통제 아래에 있게 됩니다. 우리는 공동 행위자의 대리자들과 협동하게 됩니다. 그런즉 우리는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며, 아들에게 기도하고 그와 교제합니다. 그리고 우리 세계와 우리 우주에 두루 활동하시는 무한 영의 지능존재들과 관련하며, 우리가 이 땅에 머무는 동안 일어나는 세부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5:3.6 (66.2) The Creator or Sovereign Sons who preside over the destinies of the local universes stand in the place of both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Eternal Son of Paradise. These Universe Sons receive, in the name of the Father, the adoration of worship and give ear to the pleas of their petitioning subjects throughout their respective creations. To the children of a local universe a Michael Son is, to all practical intents and purposes, God. He is the local universe personification of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Eternal Son. The Infinite Spirit maintains personal contact with the children of these realms through the Universe Spirits, the administrative and creative associates of the Paradise Creator Sons. 지역우주들의 운명을 주관하는 창조주 또는 주권자 아들들은 천국의 우주 아버지와 영원 아들 두 분의 자리를 대신하십니다. 이 우주 아들들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경배의 찬미를 받고, 그들 각자의 창조계에 두루 탄원하는 그들 백성들의 요청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지역우주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모든 실제적 의도와 목적들에 대해서 미가엘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주 아버지와 영원 아들이 지역우주에 개인화로 구현된 분이십니다. 무한 영은 우주 영(靈)들, 천국 창조주 아들들의 행정적이며 창조적인 동료들을 통하여 이 영역에 속한 자녀들과 개인적 접촉을 유지하십니다.

170314 계19: 10 내가 그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아라! 나도 너와 예수님을 증거하는 네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종에 불과하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은 다 예언의 영을 받아서 하는 것뿐이니 너는 하나님에게만 경배하여라.’ At this I fell at his feet to worship him. But he said to me, “Do not do it! I am a fellow servant with you and with your brothers who hold to the testimony of Jesus. Worship God! For the testimony of Jesus is the spirit of prophecy.”

5:3.7 (66.3) Sincere worship connotes the mobilization of all the powers of the human personality under the dominance of the evolving soul and subject to the divine directionization of the associated Thought Adjuster. The mind of material limitations can never become highly conscious of the real significance of true worship. Man’s realization of the reality of the worship experience is chiefly determined by the developmental status of his evolving immortal soul. The spiritual growth of the soul takes place wholly independently of the intellectual self-consciousness. 진지한 경배는 진화하는 혼의 지배와 연합된 생각조절자의 신적 방향 지도 아래에서, 인간 고유성의 모든 권능이 동원됨을 의미합니다. 물질적 한계를 갖는 마음은 참된 경배의 실제 의의(意義)를 결코 깊이 의식할 수 없습니다. 경배 체험의 실체에 대한 사람의 깨달음은 주로 그의 진화하는 불멸 혼의 발달 단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혼의 영적 성장은 지적 자아-의식과는 전적으로 독립하여 일어납니다.

5:3.8 (66.4) The worship experience consists in the sublime attempt of the betrothed Adjuster to communicate to the divine Father the inexpressible longings and the unutterable aspirations of the human soul — the conjoint creation of the God-seeking mortal mind and the God-revealing immortal Adjuster. Worship is, therefore, the act of the material mind’s assenting to the attempt of its spiritualizing self, under the guidance of the associated spirit, to communicate with God as a faith son of the Universal Father. The mortal mind consents to worship; the immortal soul craves and initiates worship; the divine Adjuster presence conducts such worship in behalf of the mortal mind and the evolving immortal soul. True worship, in the last analysis, becomes an experience realized on four cosmic levels: the intellectual, the morontial, the spiritual, and the personal — the consciousness of mind, soul, and spirit, and their unification in personality. 경배 체험은 합일을 약속하는 조절자가 인간 혼의─하나님을-찾는 죽어야 할 사람의 마음과 하나님을-계시하는 불멸의 조절자가 공동으로 창조하는─형언할 수 없는 염원들과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갈망들을, 신적 아버지에게 전달하려는 숭고한 시도로 구성됩니다. 그러므로 경배는, 연합된 영의 안내를 따라 그의 영성화하는 자아가 우주 아버지의 신앙 아들로서 하나님과 교통하려는 시도에 물질적 마음이 동의하는 행위입니다. 죽어야 할 사람의 마음은 경배에 동의하며, 불멸의 혼은 경배를 갈망하고 일으키며, 신적 조절자 현존은 죽을 인간의 마음과 진화하는 불멸 혼을 대신하여 그러한 경배로 인도합니다. 참된 경배는,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결국 네 가지의 우주적cosmic 차원; 지적, 부활체적, 영적, 그리고 고유적 차원들─마음, 혼 그리고 영의 인식과 고유성 안에서의 그것들의 통합─에서 실현되는 체험이 됩니다.

4. God in Religion 종교에서의 하나님

170419 사26:3 여호와는 자기를 의지하고 마음이 한결같은 자에게 완전한 평안을 주신다. You will keep in perfect peace him whose mind is steadfast, because he trusts in you.

5:4.1 (66.5) The morality of the religions of evolution drives men forward in the God quest by the motive power of fear. The religions of revelation allure men to seek for a God of love because they crave to become like him. But religion is not merely a passive 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 and “surety of survival”; it is a living and dynamic experience of divinity attainment predicated on humanity service. 진화 종교들의 도덕은 하나님 탐구에 있어서, 두려움이라는 원동력에 의해 사람들을 앞으로 몰아갑니다. 계시 종교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되기를 열망하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을 찾도록, 사람들을 매혹시킵니다. 그러나 종교는 “절대적 의존”과 “생존의 보장”이라는 수동적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성 봉사에 입각한 신적 성취의 살아있는 체험이며 역동적인 체험입니다.

5:4.2 (66.6) The great and immediate service of true religion is the establishment of an enduring unity in human experience, a lasting peace and a profound assurance. With primitive man, even polytheism is a relative unification of the evolving concept of Deity; polytheism is monotheism in the making. Sooner or later, God is destined to be comprehended as the reality of values, the substance of meanings, and the life of truth. 참된 종교의 위대하며 즉각적인 봉사는, 인간 체험 속에서 지속적인 통일성, 즉 계속되는 평화와 깊은 확신의 수립입니다. 원시인에게는 다신교(多神敎) 조차 신(Deity 神)에 대한 진화적 개념이 상대적으로 통일된 것입니다. 다신교는 형성 단계에 있는 일신교(一神敎)입니다. 머지않아, 하나님은 가치의 실체, 의미의 본체, 그리고 진리의 생명으로 이해되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

5:4.3 (67.1) God is not only the determiner of destiny; he is man’s eternal destination. All nonreligious human activities seek to bend the universe to the distorting service of self; the truly religious individual seeks to identify the self with the universe and then to dedicate the activities of this unified self to the service of the universe family of fellow beings, human and superhuman. 하나님은 운명의 결정자이시며 사람의 영원한 목적지입니다. 인간의 모든 비종교적 활동은 우주를 자아의 왜곡된 봉사에 따르도록 추구하지만, 참으로 종교적인 개별존재는 자아를 우주와 동일시한 후, 통일된 이 자아의 행위를, 동료 존재들, 즉 인간이나 초인간으로 구성된 우주 가족에 봉사하려고 애씁니다.

5:4.4 (67.2) The domains of philosophy and art intervene between the nonreligious and the religious activities of the human self. Through art and philosophy the material-minded man is inveigled into the contemplation of the spiritual realities and universe values of eternal meanings. 철학과 예술 분야는 인간 자아의 비종교적 활동과 종교적 활동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예술과 철학을 통하여, 물질적-마음을 지닌 사람은 영원한 의미의 영적 실체와 우주 가치에 대한 깊은 사색으로 유인됩니다.

5:4.5 (67.3) All religions teach the worship of Deity and some doctrine of human salvation. The Buddhist religion promises salvation from suffering, unending peace; the Jewish religion promises salvation from difficulties, prosperity predicated on righteousness; the Greek religion promised salvation from disharmony, ugliness, by the realization of beauty; Christianity promises salvation from sin, sanctity; Mohammedanism provides deliverance from the rigorous moral standards of Judaism and Christianity. The religion of Jesus is salvation from self, deliverance from the evils of creature isolation in time and in eternity. 모든 종교는 신(Deity 神)에 대한 경배와 인간 구원에 대한 교리를 가르칩니다. 불교는 고통으로부터 구원받는, 끝 없는 평화를 약속합니다. 유대교는 어려움으로부터 구원받는, 공의(righteousness)에 근거한 번영을 약속합니다. 그리스(헬라) 종교는 부조화와 추함으로부터 구원받는, 아름다움의 실현을 약속합니다. 기독교는 죄로부터 구원받는, 거룩함sanctity을 약속합니다. 회교(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엄격한 도덕 기준으로부터의 해방을 제공합니다. 예수의 종교는 자아로부터 구원으로, 시간과 영원 속에서 창조물이 고립되어 있는 악으로부터의 해방을 제공합니다.

5:4.6 (67.4) The Hebrews based their religion on goodness; the Greeks on beauty; both religions sought truth. Jesus revealed a God of love, and love is all-embracing of truth, beauty, and goodness. 히브리인들의 종교는 선(善)에 기초를 두고,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에 기초를 두며, 두 종교 모두 진리를 추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하나님을 계시하셨으며, 사랑은 진리, 아름다움, 그리고 선(善)의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170420 빌2:15 그러면 삐뚤어지고 잘못된 세대 가운데서 여러분이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끗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을 것이며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so that you may become blameless and pure, children of God without fault in a crooked and depraved generation, in which you shine like stars in the universe

5:4.7 (67.5) The Zoroastrians had a religion of morals; the Hindus a religion of metaphysics; the Confucianists a religion of ethics. Jesus lived a religion of service. All these religions are of value in that they are valid approaches to the religion of Jesus. Religion is destined to become the reality of the spiritual unification of all that is good, beautiful, and true in human experience. 조로아스터 교도들은 도덕의 종교를 가졌으며, 힌두 교인들은 형이상학의 종교를 가졌고, 유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윤리의 종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봉사의 종교를 실천하셨습니다. 이 모든 종교들은 예수님의 종교에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가치가 있습니다. 종교는 인간의 체험 가운데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모든 것을 영적으로 통합하는 실체가 되도록 예정되어 있습니다.

5:4.8 (67.6) The Greek religion had a watchword “Know yourself”; the Hebrews centered their teaching on “Know your God”; the Christians preach a gospel aimed at a “knowledge of the Lord Jesus Christ”; Jesus proclaimed the good news of “knowing God, and yourself as a son of God.” These differing concepts of the purpose of religion determine the individual’s attitude in various life situations and foreshadow the depth of worship and the nature of his personal habits of prayer. The spiritual status of any religion may be determined by the nature of its prayers. 그리스 종교는 “너 자신을 알라”는 표어가 있었고,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을 알라”는 가르침에 집중했으며, 기독교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목표로 하는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고, 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라”는 복된 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종교의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서로 다른 개념들은 다양한 생활환경 가운데 있는 개별존재의 태도를 결정하며, 경배의 깊이와 그의 개인적 기도 습관의 본질을 미리 드러냅니다. 어떤 종교든지 그 영적 상태는 기도의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5:4.9 (67.7) The concept of a semihuman and jealous God is an inevitable transition between polytheism and sublime monotheism. An exalted anthropomorphism is the highest attainment level of purely evolutionary religion. Christianity has elevated the concept of anthropomorphism from the ideal of the human to the transcendent and divine concept of the person of the glorified Christ. And this is the highest anthropomorphism that man can ever conceive. 절반(折半)의 인간으로서 질투하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다신교에서 숭고한 일신교(一神敎)로 넘어가는 사이에 있는 불가피한 과도기적 현상입니다. 높여진 신인 동형 동성론(神人 同形 同性論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신神에 대한 사상)은 순전한 진화종교가 이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이상ideal에서부터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의 개인 존재로서 초월적이며 신적인 개념으로 높아진 신인 동형 동성론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신인 동형 동성론(신을 인격화한 것)입니다.

5:4.10 (67.8) The Christian concept of God is an attempt to combine three separate teachings: 하나님에 대한 기독교 개념은 분리된 세 가르침들을 통합하려는 시도입니다.

5:4.11 (67.9) 1. The Hebrew concept — God as a vindicator of moral values, a righteous God. 히브리 개념─도덕적 가치의 옹호자로서의 공의로운 하나님.

5:4.12 (67.10) 2. The Greek concept — God as a unifier, a God of wisdom. 그리스(헬라) 개념─통합자로서의 지혜의 하느님.

5:4.13 (68.1) 3. Jesus’ concept — God as a living friend, a loving Father, the divine presence. 예수님의 개념─살아 계시는 친구로서 사랑의 아버지이시며, 신적 존재로서의 하나님.

5:4.14 (68.2) It must therefore be evident that composite Christian theology encounters great difficulty in attaining consistency. This difficulty is further aggravated by the fact that the doctrines of early Christianity were generally based on the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of three different persons: Philo of Alexandria, Jesus of Nazareth, and Paul of Tarsus. 그러므로 혼합된 기독교 신학은 일관성 유지에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어려움은, 초기 기독교 교리들이 일반적으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나사렛 예수, 그리고 다소의 바울, 즉 서로 다른 이 세 사람 각자의 종교적 체험에 기초를 두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5:4.15 (68.3) In the study of the religious life of Jesus, view him positively. Think not so much of his sinlessness as of his righteousness, his loving service. Jesus upstepped the passive love disclosed in the Hebrew concept of the heavenly Father to the higher active and creature-loving affection of a God who is the Father of every individual, even of the wrongdoer. 예수님의 종교적 일생을 연구하면서, 예수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십시오. 그 분이 죄가 없다는 사실 보다는 그의 공의(正義)로우심과 그의 사랑스러운 봉사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에 대한 히브리 개념 속에 드러난 수동적 사랑에서, 모든 개별존재, 심지어 그릇된 행동을 범한 자에게도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더 적극적인 사랑으로 창조물을 향하시는 하나님의 애정으로 증진시켰습니다.

5. The Consciousness of God 하나님 의식(意識)

170421 호6:3 그러므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동이 트는 것처럼 확실하다.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봄비같이 그가 우리에게 나오실 것이다.’ Let us acknowledge the LORD; let us press on to acknowledge him. As surely as the sun rises, he will appear; he will come to us like the winter rains, like the spring rains that water the earth.”

5:5.1 (68.4) Morality has its origin in the reason of self-consciousness; it is superanimal but wholly evolutionary. Human evolution embraces in its unfolding all endowments antecedent to the bestowal of the Adjusters and to the pouring out of the Spirit of Truth. But the attainment of levels of morality does not deliver man from the real struggles of mortal living. Man’s physical environment entails the battle for existence; the social surroundings necessitate ethical adjustments; the moral situations require the making of choices in the highest realms of reason; the spiritual experience (having realized God) demands that man find him and sincerely strive to be like him. 도덕은 스스로를 의식하는(자아-의식)의 이성(理性)reason에 그 기원이 있습니다. 도덕은 동물 성향을 초월하지만 순전히 진화된 것입니다. 인간의 진화는 그것이 전개되면서, 조절자들이 수여되고 진리의 영이 퍼부어지기 전에 있던 자원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러나 도덕 수준에 다다르는 것은 필사자의 삶에서 생기는 진짜 투쟁으로부터 사람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물리적 환경은 살기 위한 싸움을 수반하고, 사회의 배경은 윤리적 조정을 필요로 합니다. 도덕적 상황은 이성의 가장 높은 분야에서 선택하기를 요구하며, 영적 체험(하나님을 깨달은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그처럼 되도록 진지하게 애쓰기를 요구합니다.

5:5.2 (68.5) Religion is not grounded in the facts of science, the obligations of society, the assumptions of philosophy, or the implied duties of morality. Religion is an independent realm of human response to life situations and is unfailingly exhibited at all stages of human development which are postmoral. Religion may permeate all four levels of the realization of values and the enjoyment of universe fellowship: the physical or material level of self-preservation; the social or emotional level of fellowship; the moral or duty level of reason; the spiritual level of the consciousness of universe fellowship through divine worship. 종교는 과학의 사실, 사회에 대한 책임, 철학의 가정(假定), 또는 도덕이 암시하는 의무에 기초를 두지 않습니다. 종교는 생활 형편에 대하여 인간이 반응하는 독립된 분야이며, 도덕이 생긴 뒤 인간이 성장하는 모든 단계에서, 종교는 어김없이 드러납니다. 종교는 가치를 실현하고 우주 친교를 누리는 네 가지의 모든 수준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자아를 보호하는 물리적 수준, 곧 물질 수준. 친교하는 사회 수준, 곧 감정의 수준. 이성이 작용하는 도덕 수준, 곧 의무 수준. 신적 경배를 통하여 우주 친교를 의식하는 영적 수준.

5:5.3 (68.6) The fact-seeking scientist conceives of God as the First Cause, a God of force. The emotional artist sees God as the ideal of beauty, a God of aesthetics. The reasoning philosopher is sometimes inclined to posit a God of universal unity, even a pantheistic Deity. The religionist of faith believes in a God who fosters survival, the Father in heaven, the God of love. 사실을 추구하는 과학자는 하나님을 첫째 근원, 힘force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적인 예술가는 하나님을 아름다움의 이상(理想), 미학의 하나님으로 이해합니다. 이치를 따지는 철학자는 때때로, 우주를 통일하는 하나님, 심지어 범신론적 신으로 가정합니다. 신앙이 있는 종교인은 살아남는(생존) 것을 보살피는 하나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사랑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5:5.4 (68.7) Moral conduct is always an antecedent of evolved religion and a part of even revealed religion, but never the whole of religious experience. Social service is the result of moral thinking and religious living. Morality does not biologically lead to the higher spiritual levels of religious experience. The adoration of the abstract beautiful is not the worship of God; neither is exaltation of nature nor the reverence of unity the worship of God. 도덕적 행위는 언제나 진화된 종교에 앞서며, 계시된 종교의 일부가 되는 일도 있지만, 결코 종교적 체험의 전부는 아닙니다. 사회에 봉사하는 것은 도덕적 생각과 종교적 생활의 결과입니다. 도덕은 생물학적으로 종교적 체험을 가지는 더 높은 영적 수준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추상적 아름다움을 찬미함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숭배하는 것이나 통일성을 경외하는 것도 하나님에 대한 경배가 아닙니다.

5:5.5 (68.8) Evolutionary religion is the mother of the science, art, and philosophy which elevated man to the level of receptivity to revealed religion, including the bestowal of Adjusters and 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The evolutionary picture of human existence begins and ends with religion, albeit very different qualities of religion, one evolutional and biological, the other revelational and periodical. And so, while religion is normal and natural to man, it is also optional. Man does not have to be religious against his will. 진화된 종교는 과학•예술•철학의 어머니요, 이것은 조절자가 수여되고 진리의 영의 오심까지 포함하여, 계시된 종교를 받아드리는 수준까지 사람을 높여 주었습니다. 인간 존재의 진화적 묘사는, 종교에서 시작하고 종교에서 끝이 납니다. 그 묘사는 종교의 질적 면에서 아주 달라서, 하나는 진화적•생물학적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계시적이고 주기성이 있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가 사람에게는 정상이고 자연스러운 한편, 또한 사람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뜻을 거역하여 종교적일 필요가 없습니다.

170425 호6:6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으며 불로 태워 바치는 번제보다 나를 아는 것을 원한다. For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and acknowledgment of God rather than burnt offerings.

5:5.6 (69.1) Religious experience, being essentially spiritual, can never be fully understood by the material mind; hence the function of theology, the psychology of religion. The essential doctrine of the human realization of God creates a paradox in finite comprehension. It is well-nigh impossible for human logic and finite reason to harmonize the concept of divine immanence, God within and a part of every individual, with the idea of God’s transcendence, the divine domination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These two essential concepts of Deity must be unified in the faith-grasp of the concept of the transcendence of a personal God and in the realization of the indwelling presence of a fragment of that God in order to justify intelligent worship and validate the hope of personality survival. The difficulties and paradoxes of religion are inherent in the fact that the realities of religion are utterly beyond the mortal capacity for intellectual comprehension. 종교적 체험은 본질적으로 영적이기 때문에 물질적 마음으로는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학, 즉 종교의 심리학 기능으로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필수적 교리는 하나님을 제한적으로 깨닫고 이해하기 때문에 역설(逆說)을 만들어 냅니다. 인간 논리와 유한한 이성은, 하나님이 인간 내부에서 각 개별존재의 일부분으로 계신다는 신적 내재성의 개념을, 우주들의 우주를 신적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초월성 관념과 조화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 두 가지 신(神)에 대한 본질적 개념은, 고유한 하나님에 대한 초월성 개념을 신앙으로 파악하고, 바로 그 하나님의 단편이, 지적 경배를 정당화하고 고유성 생존의 소망을 확증하기 위해, 내주하며 현존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합일되어야만 합니다. 종교의 실체는 지적으로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을 철저히 벗어난다는 사실 때문에, 종교의 난제들과 역설들은 본래부터 선천적입니다.

5:5.7 (69.2) Mortal man secures three great satisfactions from religious experience, even in the days of his temporal sojourn on earth: 사람은 땅에 잠시 머무는 동안에도, 종교적 체험에서 세 가지 큰 만족감을 얻게 됩니다.

5:5.8 (69.3) 1. Intellectually he acquires the satisfactions of a more unified human consciousness. 지적으로 사람은 더욱 통일된 인간 의식에서 만족감을 얻습니다.

5:5.9 (69.4) 2. Philosophically he enjoys the substantiation of his ideals of moral values. 철학적으로 사람은 도덕적 가치에 있어서 자신의 이상(理想)이 구체화되는 것을 즐깁니다.

5:5.10 (69.5) 3. Spiritually he thrives in the experience of divine companionship, in the spiritual satisfactions of true worship. 영적으로 사람은 참된 경배에서 영적 만족을 누리면서, 신적 동반자 신분을 체험하면서 성장합니다.

5:5.11 (69.6) God-consciousness, as it is experienced by an evolving mortal of the realms, must consist of three varying factors, three differential levels of reality realization. There is first the mind consciousness — the comprehension of the idea of God. Then follows the soul consciousness — the realization of the ideal of God. Last, dawns the spirit consciousness — the realization of the spirit reality of God. By the unification of these factors of the divine realization, no matter how incomplete, the mortal personality at all times overspreads all conscious levels with a realization of the personality of God. In those mortals who have attained the Corps of the Finality all this will in time lead to the realization of the supremacy of God and may subsequently eventuate in the realization of the ultimacy of God, some phase of the absonite superconsciousness of the Paradise Father. 하나님-의식은, 그 영역의 진화하는 사람이 체험하는 것처럼, 변화하는 세 요소들, 즉 실체를 의식하는 서로 다른 세 차원들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첫째로 마음 의식 – 하나님의 관념idea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혼 의식 – 하나님의 이상(ideal理想)을 깨닫는 것이 따라옵니다. 마지막으로 영 의식 – 하나님이 영 실체이심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신적 깨달음의 이 요소들이 통합되어, 아무리 불완전 하더라도 인간의 고유성은, 하나님의 고유성을 깨달으면서 모든 의식 차원들에 항상 가득 퍼지게 됩니다. 최종 무리단에 도달한 그 인간의 경우, 이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최극위 하나님 자각으로 이끌리고, 그 다음에는 천국 아버지의 아(亞)절대 초(超)의식의 어떤 단계인 궁극위 하나님 자각에 결국 이르게 될 것입니다.

170426 요일5:13 나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이 글을 씁니다. I write these things to you who believe in the name of the Son of God so that you may know that you have eternal life.

5:5.12 (69.7) The experience of God-consciousness remains the same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but with each advancing epoch in human knowledge the philosophic concept and the theologic definitions of God must change. God-knowingness, religious consciousness, is a universe reality, but no matter how valid (real) religious experience is, it must be willing to subject itself to intelligent criticism and reasonable philosophic interpretation; it must not seek to be a thing apart in the totality of human experience. 하나님을 의식하는 체험은 대대로 변함이 없지만, 인간의 지식knowledge이 진보하는 각 신(新)시대마다 하나님에 대한 철학적 개념과 신학적 정의(定意)는 반드시 바뀌어야만 합니다. 종교적 의식(意識)으로 하나님을-아는 것은 우주적 실체입니다. 그러나 종교적 체험이 얼마나 실제로 효력이 있든지, 그것은 지능적 비평과 합당한reasonable 철학적 해석을 반드시 거쳐야만 합니다. 종교적 의식은 전체적인 인간 체험으로부터 동떨어진 것이 되도록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5:5.13 (69.8) Eternal survival of personality is wholly dependent on the choosing of the mortal mind, whose decisions determine the survival potential of the immortal soul. When the mind believes God and the soul knows God, and when, with the fostering Adjuster, they all desire God, then is survival assured. Limitations of intellect, curtailment of education, deprivation of culture, impoverishment of social status, even inferiority of the human standards of morality resulting from the unfortunate lack of educational, cultural, and social advantages, cannot invalidate the presence of the divine spirit in such unfortunate and humanly handicapped but believing individuals. The indwelling of the Mystery Monitor constitutes the inception and insures the possibility of the potential of growth and survival of the immortal soul. 고유성이 영원히 살아남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이 마음의 선택에 달려 있는데, 그 마음의 결정이 불멸의 혼이 잠재적으로 살아남는 것을 확증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믿고 혼이 하나님을 알 때, 그리고 양육하는 조절자와 함께 마음과 혼 모두가 하나님을 갈망할 때, 그 때 생존이 보장됩니다. 지능의 한계, 교육의 부족, 교양의 결핍, 사회적 지위의 열악함, 그리고 심지어 교육적,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이점이 불행하게 부족하여 초래된 인간 도덕 수준의 열등함조차, 그렇게 불행하고 인간적으로 불리한 장애가 있어도 믿음을 가진 개별존재 속에 있는 신적 영의 현존을 무효로 만들 수 없습니다. 신비 감시자의 내주가 불멸 혼의 성장과 생존의 잠재에 대한 시초를 이루고, 그 가능성을 보장합니다.

5:5.14 (70.1) The ability of mortal parents to procreate is not predicated on their educational, cultural, social, or economic status. The union of the parental factors under natural conditions is quite sufficient to initiate offspring. A human mind discerning right and wrong and possessing the capacity to worship God, in union with a divine Adjuster, is all that is required in that mortal to initiate and foster the production of his immortal soul of survival qualities if such a spirit-endowed individual seeks God and sincerely desires to become like him, honestly elects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출산하는 인간 부모의 능력은 그들의 교육적, 문화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지위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자연적 환경 아래에서 어버이로서의 요소가 결합하면 아주 충분하게 자손을 낳게 됩니다. 신적 조절자와 결합해서, 옳고 그릇됨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능력을 지닌 인간의 마음이, 그 사람 안에서 살아남는 자질을 갖고 있는 불멸의 혼이 생산되는 시작과 육성에 필요한 모든 것이며, 그렇게 영이 부여된 개별 존재들은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진지하게 갈망하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정직하게 택하기만 하면 됩니다.

6. The God of Personality 고유성의 하나님

170428 요12: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하겠다.’ But I, when I am lifted up from the earth, will draw all men to myself.”

5:6.1 (70.2) The Universal Father is the God of personalities. The domain of universe personality, from the lowest mortal and material creature of personality status to the highest persons of creator dignity and divine status, has its center and circumference in the Universal Father. God the Father is the bestower and the conservator of every personality. And the Paradise Father is likewise the destiny of all those finite personalities who wholeheartedly choose to do the divine will, those who love God and long to be like him. 우주 아버지는 고유성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고유성 지위의 가장 낮은 인간과 물질적 창조체로부터 창조자의 존엄과 신적 지위에 있는 가장 높은 개인에 이르기까지, 우주 고유성의 권역은 그 중심과 테두리가 우주의 아버지 안에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고유성의 증여자인 동시에 보존자이십니다. 그리고 천국의 아버지는 마찬가지로 신적 뜻을 행하기로 마음을 다하여 선택한 모든 유한한 고유성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와 같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들의 운명입니다.

5:6.2 (70.3) Personality is one of the unsolved mysteries of the universes. We are able to form adequate concepts of the factors entering into the make-up of various orders and levels of personality, but we do not fully comprehend the real nature of the personality itself. We clearly perceive the numerous factors which, when put together, constitute the vehicle for human personality, but we do not fully comprehend the nature and significance of such a finite personality. 고유성은 우주에서 풀리지 않은 신비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고유성의 다양한 계층과 수준을 구성하는데 들어가는 요소들의 적당한 개념들을 형성할 수는 있지만, 고유성 자체의 실제 본성을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함께 어우러져 있을 때, 인간 고유성을 위한 매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뚜렷이 감지하지만, 우리는 그런 유한(有限)한 고유성의 본성과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5:6.3 (70.4) Personality is potential in all creatures who possess a mind endowment ranging from the minimum of self-consciousness to the maximum of God-consciousness. But mind endowment alone is not personality, neither is spirit nor physical energy. Personality is that quality and value in cosmic reality which is exclusively bestowed by God the Father upon these living systems of the associated and co-ordinated energies of matter, mind, and spirit. Neither is personality a progressive achievement. Personality may be material or spiritual, but there either is personality or there is no personality. The other-than-personal never attains the level of the personal except by the direct act of the Paradise Father. 고유성은 자아를 의식하는 최소한으로부터 하나님을 의식하는 최대한까지의 범위에서 마음 자질을 소유하는 모든 창조물 안에 잠재합니다. 그러나 마음 자질 자체만으로는 고유성이 아니며, 또한 영도 아니고 물리적 에너지도 아닙니다. 고유성은 물질, 마음, 그리고 영이 연합되고 조정된 에너지가 이 살아있는 조직에 아버지 하나님 홀로 증여하신, 질서가 있는 우주 실체 안에 있는 본질과 가치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유성은 점진적으로 성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유성은 물질적 또는 영적이기도 하지만, 그 어느 쪽도 고유성이 있든지 또는 고유성이 없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고유적이지 않은 것은 천국 아버지의 직접적 활동에 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유적 수준에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170502 요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오는 그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No one can come to me unless the Father who sent me draws him, and I will raise him up at the last day.

5:6.4 (70.5) The bestowal of personality is the exclusive function of the Universal Father, the personalization of the living energy systems which he endows with the attributes of relative creative consciousness and the freewill control thereof. There is no personality apart from God the Father, and no personality exists except for God the Father. The fundamental attributes of human selfhood, as well as the absolute Adjuster nucleus of the human personality, are the bestowals of the Universal Father, acting in his exclusively personal domain of cosmic ministry. 고유성의 증여는 우주 아버지의 독점(獨占)적인 기능으로, 살아있는 에너지 체계를 고유성화하는 것이며, 우주 아버지는 그 에너지 체계에 상대적인 창조적 의식의 속성을 부여하며, 그것에 자유의지 조정의 속성을 부여합니다. 어떤 고유성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분리되지 않으며, 어떤 고유성도 하나님 아버지 없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 고유성의 핵(核)인 절대 조율자와 마찬가지로 인간 자아신분의 근본적 속성은 질서가 있는 우주적 돌봄에서 우주 아버지가 독점적인 고유 영역 가운데 행동하시며 주신 것입니다.

5:6.5 (70.6) The Adjusters of prepersonal status indwell numerous types of mortal creatures, thus insuring that these same beings may survive mortal death to personalize as morontia creatures with the potential of ultimate spirit attainment. For, when such a creature mind of personality endowment is indwelt by a fragment of the spirit of the eternal God, the prepersonal bestowal of the personal Father, then does this finite personality possess the potential of the divine and the eternal and aspire to a destiny akin to the Ultimate, even reaching out for a realization of the Absolute. 전(前)고유적 지위의 조절자들은 필사 창조물들의 수많은 유형들 속에 내주하며, 동일한 이 존재들은 필사적 죽음에서 살아남아, 궁극적으로 영에 도달하는 잠재성을 지닌 부활체적 창조물로 고유성화하도록 그렇게 보장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고유성을 받은 창조물의 마음에 영원한 하나님의 영의 단편, 고유적 아버지의 전(前)고유적 선물이 내주할 때, 이 유한한 고유성은 신적이며 영원한 잠재성을 소유하고, 심지어 절대자의 실현에 접촉하면서 궁극자와 동족(同族)이 되는 운명을 열망합니다.

5:6.6 (71.1) Capacity for divine personality is inherent in the prepersonal Adjuster; capacity for human personality is potential in the cosmic-mind endowment of the human being. But the experiential personality of mortal man is not observable as an active and functional reality until after the material life vehicle of the mortal creature has been touched by the liberating divinity of the Universal Father, being thus launched upon the seas of experience as a self-conscious and a (relatively) self-determinative and self-creative personality. The material self is truly and unqualifiedly personal. 신적 고유성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전(前)고유적 조절자 에게 본래부터 있습니다. 인간의 고유성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인간 존재가 받은 질서 있는 우주적 마음 안에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필사 사람의 경험적 고유성은 활동적이며 기능적 실체로서 관찰할 수 없지만, 필사 창조물의 물질적 생명 매체가 우주 아버지의 해방시키는 신성에 접촉된 이후부터는, 자아 의식적, 상대적인 자아 결정적, 그리고 자아 창조적 고유성으로서 경험의 바다 위에서 항해에 나서게 됩니다. 물질적 자아는 진정으로 고유적이며 무조건적으로unqualifiedly 고유적입니다.

5:6.7 (71.2) The material self has personality and identity, temporal identity; the prepersonal spirit Adjuster also has identity, eternal identity. This material personality and this spirit prepersonality are capable of so uniting their creative attributes as to bring into existence the surviving identity of the immortal soul. 물질적 자아는 고유성과 정체성, 즉 일시적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전(前)고유적 영 조절자 역시 정체성, 즉 영원한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물질적 고유성과 이러한 영 전(前)고유성은 그들의 창조적 속성들을 연합하여 불멸의 혼이라는 생존하는 정체성의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170504 요12: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하겠다.’ But I, when I am lifted up from the earth, will draw all men to myself.”

5:6.8 (71.3) Having thus provided for the growth of the immortal soul and having liberated man’s inner self from the fetters of absolute dependence on antecedent causation, the Father stands aside. Now, man having thus been liberated from the fetters of causation response, at least as pertains to eternal destiny, and provision having been made for the growth of the immortal self, the soul, it remains for man himself to will the creation or to inhibit the creation of this surviving and eternal self which is his for the choosing. No other being, force, creator, or agency in all the wide universe of universes can interfere to any degree with the absolute sovereignty of the mortal free will, as it operates within the realms of choice, regarding the eternal destiny of the personality of the choosing mortal. As pertains to eternal survival, God has decreed the sovereignty of the material and mortal will, and that decree is absolute. 그렇게 불멸의 혼이 성장하도록 준비해 왔고, 사람의 내적 자아를 선행(先行) 원인에 묶여 절대 의존하는 속박 상태에서 풀어 놓으신 아버지는 비켜 서 계십니다. 지금, 사람은 이렇게 원인에 대해 응답하는 사슬에서 해방되어져 왔으며, 적어도 영원한 운명에 관한 한, 불멸의 자아(自我)인 혼의 성장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선택하는 대로 자기의 것이 되는 이 살아남는 영원한 자아의 창조를 원하는지 아니면 금할 것인지는, 이제 사람 자신에게 남아 있습니다. 넓은 우주들의 우주 전체에 있는 어떤 다른 존재, 힘, 창조자, 혹은 대리자라도, 필사자가 지닌 자유 의지의 절대 주권에는 조금도 간섭할 수 없는데, 선택하는 필사자 고유성의 영원한 운명에 관하여는, 선택의 영역 안에서 자유 의지의 절대 주권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존에 관하여, 하나님은 물질적 필사자 의지가 주권을 지니고 있음을 선포해 오셨으며, 그 선포는 절대적입니다.

5:6.9 (71.4) The bestowal of creature personality confers relative liberation from slavish response to antecedent causation, and the personalities of all such moral beings, evolutionary or otherwise, are centered in th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They are ever drawn towards his Paradise presence by that kinship of being which constitutes the vast and universal family circle and fraternal circuit of the eternal God. There is a kinship of divine spontaneity in all personality. 창조물에게 고유성을 주셔서 선행하는 원인에 대한 노예적 반응에서 상대적 해방을 수여하며, 그러한 모든 도덕적 존재들의 고유성은 진화적이든지 아니든지, 우주 아버지의 고유성에 중심을 둡니다. 그 도덕적 존재들의 고유성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거대하고 우주적 가족 순환과 형제적 회로를 구성하는 존재의 친족 관계에 의해, 하나님의 천국 현존을 향해 이끌립니다. 모든 고유성 안에는 신적 자발성의 친족 관계가 있습니다.

5:6.10 (71.5) The personality circuit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is centered in the person of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Paradise Father is personally conscious of, and in personal touch with, all personalities of all levels of self-conscious existence. And this personality consciousness of all creation exists independently of the mission of the Thought Adjusters. 우주들의 우주의 고유성 순환회로는 우주 아버지의 개인 안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천국 아버지는 모든 차원에 있는 자아-의식 존재의 모든 고유성들을 개인적으로 의식하고, 개인성으로 접촉하십니다. 그리고 전체 창조물에 대한 이 고유성 의식은 생각 조절자들의 사명과는 별도로 존재합니다.

5:6.11 (71.6) As all gravity is circuited in the Isle of Paradise, as all mind is circuited in the Conjoint Actor and all spirit in the Eternal Son, so is all personality circuited in the personal presence of the Universal Father, and this circuit unerringly transmits the worship of all personalities to the Original and Eternal Personality. 모든 중력은 천국 섬 안에 회로화 되어 있으며, 모든 마음은 공동 행위자 안에 회로화 되어 있고, 모든 영은 영원 아들 안에 회로화 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고유성은 우주 아버지의 고유적 현존 안에 회로화 되어 있으며, 이 회로는 모든 고유성들의 경배를 기원적이며 영원한 고유성에게로 어김없이 전달합니다.

5:6.12 (71.7) Concerning those personalities who are not Adjuster indwelt: The attribute of choice-liberty is also bestowed by the Universal Father, and such persons are likewise embraced in the great circuit of divine love, the personality circuit of the Universal Father. God provides for the sovereign choice of all true personalities. No personal creature can be coerced into the eternal adventure; the portal of eternity opens only in response to the freewill choice of the freewill sons of the God of free will. 조절자가 내주하지 않는 그 고유성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우주 아버지가 선택-해방의 속성을 주셨으며, 그러한 개인들은 신적 사랑의 위대한 회로, 우주 아버지의 고유성 회로 안에 마찬가지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된 모든 고유성들이 주권을 가지고 선택하게 하십니다. 어떤 고유적 창조물도 영원한 모험을 하도록 강요될 수 없습니다. 오직, 자유 의지의 하나님에게 속한 자유 의지의 아들들이 자유 의지로 선택하는 응답에만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의 입구(入口)가 열립니다.

5:6.13 (72.1) And this represents my efforts to present the relation of the living God to the children of time. And when all is said and done, I can do nothing more helpful than to reiterate that God is your universe Father, and that you are all his planetary children. 이것이 살아계신 하나님과 시간에 속한 자녀들과의 관계를 진술하려는 나의 노력을 기술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나에게는, 하나님이 너희의 우주 아버지이며, 너희는 모두 하나님의 행성 자녀들임을 되풀이하는 것 이상으로 더 해줄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5:6.14 (72.2) [This is the fifth and last of the series presenting the narrative of the Universal Father by a Divine Counselor of Uversa.] [이것은 유버르사의 신적 조언자가 시리즈로 발표한 우주 아버지에 대한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진술입니다.]

Paper 4 God’s Relation to the Universe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

Paper 4

God’s Relation to the Universe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

4:0.1 (54.1) THE Universal Father has an eternal purpose pertaining to the material, intellectual, and spiritual phenomena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which he is executing throughout all time. God created the universes of his own free and sovereign will, and he created them in accordance with his all-wise and eternal purpose. It is doubtful whether anyone except the Paradise Deities and their highest associates really knows very much about the eternal purpose of God. Even the exalted citizens of Paradise hold very diverse opinions about the nature of the eternal purpose of the Deities. 창1:31 하나님이 자기가 창조한 것을 보시니 모든 것이 아주 훌륭하였다.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이것이 여섯째 날이었다. God saw all that he had made, and it was very good. And there was evening, and there was morning—the sixth day. 하나님 아버지는 창조세계(우주들의 우주)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지적, 영적 현상들에 대해 영원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목적은 모든 시간의 영역에서 실행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유로운 주권적 의지로 우주를 창조하시되, 자신의 모든 지혜와 영원한 목적에 조화를 이루어 그것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천국의 신(神)들과 최고의 동료들(삼위일체 하나님)을 제외한다면 어떤 존재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진실로 아주 많이 알고 있을지 의구심이 듭니다. 심지어 천국의 고귀한 시민들도 신(神)들Deities의 영원한 목적이 담고 있는 본질에 대하여 아주 다양한 견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4:0.2 (54.2) It is easy to deduce that the purpose in creating the perfect central universe of Havona was purely the satisfaction of the divine nature. Havona may serve as the pattern creation for all other universes and as the finishing school for the pilgrims of time on their way to Paradise; however, such a supernal creation must exist primarily for the pleasure and satisfaction of the perfect and infinite Creators. 하나님께서 완전한 중앙우주 하보나를 창조하신 목적은 신적인 본성을 순수하게 만족시키기 위해서라고 추론하기는 쉽습니다. 하보나는 모든 다른 우주들을 위한 창조의 패턴과, 천국을 향한 도상에 있는 시간의 순례자들을 위한 최종적 학교로써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천상의 창조는 완전하고 무한한 창조주들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 우선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4:0.3 (54.3) The amazing plan for perfecting evolutionary mortals and, after their attainment of Paradise and the Corps of the Finality, providing further training for some undisclosed future work, does seem to be, at present, one of the chief concerns of the seven superuniverses and their many subdivisions; but this ascension scheme for spiritualizing and training the mortals of time and space is by no means the exclusive occupation of the universe intelligences. There are, indeed, many other fascinating pursuits which occupy the time and enlist the energies of the celestial hosts. 진화적인 우리 인간들을 온전하게 하는 놀라운 계획과, 천국에 도달하여 최종자의 무리가 된 후, 어떤 알려져 있지 않은 미래의 과업을 위한 제공된 훈련 계획은 현재 일곱 초우주들과 그들에 속한 여러 종속 부서에서 관심을 두는 중요한 일들 중 하나로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에 있는 우리 인생들을 영성화하고 훈련하는 이 상승 계획이 우주의 지적 존재들이 하는 유일한 업무는 결코 아닙니다. 천상의 무리들이 시간을 소요하고 에너지를 요구하는 매혹적인 여러 다른 업무들이 진실로 많이 있습니다.

1. The Universe Attitude of the Father 우주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

170110 신7:9 그러므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유일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명심하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약속대로 천 대까지 사랑을 베푸실 것입니다. Know therefore that the LORD your God is God; he is the faithful God, keeping his covenant of love to a thousand generations of those who love him and keep his commands.

4:1.1 (54.4) For ages the inhabitants of Urantia have misunderstood the providence of God. There is a providence of divine outworking on your world, but it is not the childish, arbitrary, and material ministry many mortals have conceived it to be. The providence of God consists in the interlocking activities of the celestial beings and the divine spirits who, in accordance with cosmic law, unceasingly labor for the honor of God and for the spiritual advancement of his universe children. 오랜 세월 우리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세계에 신적 업무(業務)의 섭리가 있지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추측해왔던 유치하고, 제멋대로 하는 물질적 돌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주의 법칙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우주 자녀들의 영적 진보를 위하여 끊임없이 수고하는, 천상의 존재들과 신성한 영들의 상호 연결된 활동으로 이루어집니다.

4:1.2 (54.5) Can you not advance in your concept of God’s dealing with man to that level where you recognize that the watchword of the universe is progress? Through long ages the human race has struggled to reach its present position. Throughout all these millenniums Providence has been working out the plan of progressive evolution. The two thoughts are not opposed in practice, only in man’s mistaken concepts. Divine providence is never arrayed in opposition to true human progress, either temporal or spiritual. Providence is always consistent with the unchanging and perfect nature of the supreme Lawmaker.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루는 개념에 있어서, 우주의 표어가 진보임을 깨닫는 수준까지 나아갈 수는 없을까요? 긴 세월 동안 인류는 현재 위치에 이르기 위해 투쟁해 왔습니다. 이러한 수천 년의 세월을 통해 섭리는 진보적인 진화 계획을 수행해 왔습니다. 두 생각들은 실제로는 서로 대립되지 않지만, 사람의 잘못된 개념 안에서만 그렇게 됩니다. 신적 섭리는, 현세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참된 인간적 진보에 대하여 결코 정 반대의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섭리는 최극 입법자의 불변하는 완전한 본성과 언제나 일치합니다.

4:1.3 (55.1) “God is faithful” and “all his commandments are just.” “His faithfulness is established in the very skies.” “Forever, O Lord, your word is settled in heaven. Your faithfulness is to all generations; you have established the earth and it abides.” “He is a faithful Creator.” 여러분을 불러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고전1:9). 주의 계명이 의로우니 내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겠습니다(시119:172). 여호와여, 주의 한결같은 사랑이 하늘에 미치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시36:5).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하여 하늘에 굳게 섰으니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릅니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그대로 있습니다(시119:89-90).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은 계속 선한 일을 하면서 그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입니다(벧전4:19).

170111 시34:15 여호와는 의로운 사람에게 눈을 돌리시고 그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신다. The eyes of the LORD are upon the righteous, and his ears are open unto their cry.

4:1.4 (55.2) There is no limitation of the forces and personalities which the Father may use to uphold his purpose and sustain his creatures. “The eternal God is our refuge, and underneath are the everlasting arms.” “He who dwells in the secret place of the Most High shall abide under the shadow of the Almighty.” “Behold, he who keeps us shall neither slumber nor sleep.” “We know that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ose who love God,” “for the eyes of the Lord are over the righteous, and his ears are open to their prayers.”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목적을 유지하고 창조물들을 기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힘과 고유성들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신33:27a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피난처이시며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너를 붙드신다. … 시91:1 가장 높으신 분의 그늘 아래 사는 자는 전능하신 분의 보호를 받으리라. 시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롬8:28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결국 모든 일이 유익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벧전3:12a 주는 의로운 사람에게 눈을 돌리시고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지만 …

4:1.5 (55.3) God upholds “all things by the word of his power.” And when new worlds are born, he “sends forth his Sons and they are created.” God not only creates, but he “preserves them all.” God constantly upholds all things material and all beings spiritual. The universes are eternally stable. There is stability in the midst of apparent instability. There is an underlying order and security in the midst of the energy upheavals and the physical cataclysms of the starry realms. 하나님은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십니다.”(히1:3). 하나님은 새 세상들을 탄생시킬 때, 자신의 영(아들들)을 보내시며 세상들은 창조됩니다(시104:30). 하나님은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보존하십니다. 느9: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하나님은 모든 물질적인 것들과 영적인 존재들을 계속 붙드십니다. 우주들은 영원히 안정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불안정해 보이지만 그 가운데 안정성이 있습니다. 별들의 영역에 있는 에너지 격변과 물리적 대변동 가운데, 근본적인 질서와 안정이 있습니다.

4:1.6 (55.4) The Universal Father has not withdrawn from the management of the universes; he is not an inactive Deity. If God should retire as the present upholder of all creation, there would immediately occur a universal collapse. Except for God, there would be no such thing as reality. At this very moment, as during the remote ages of the past and in the eternal future, God continues to uphold. The divine reach extends around the circle of eternity. The universe is not wound up like a clock to run just so long and then cease to function; all things are constantly being renewed. The Father unceasingly pours forth energy, light, and life. The work of God is literal as well as spiritual. “He stretches out the north over the empty space and hangs the earth upon nothing.” 하나님 아버지는 우주들을 관리하는 일에서 물러나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는 활동하지 않는 신(神)이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에 대한 현재 유지자의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우주 붕괴는 즉각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실체로서 그러한 어떤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순간에도, 과거의 먼 시대와 영원한 미래처럼, 하나님께서 계속 유지하십니다. 신적 범위는 영원의 순환계 둘레까지 확장됩니다. 우주는 태엽이 감긴 만큼 작동하다가 기능을 멈추는 그러한 시계처럼 감겨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들은 계속해서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에너지와 빛과 생명을 끊임없이 쏟아 부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영적일 뿐 아니라 글자 그대로 입니다. 욥26:7 하나님은 북쪽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지구를 공간에 매달아 놓으시고.

170112 시24:1 (다윗의 시)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요 세계와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체도 다 여호와의 것이다. The earth is the LORD’s, and everything in it, the world, and all who live in it;

4:1.7 (55.5) A being of my order is able to discover ultimate harmony and to detect far-reaching and profound co-ordination in the routine affairs of universe administration. Much that seems disjointed and haphazard to the mortal mind appears orderly and constructive to my understanding. But there is very much going on in the universes that I do not fully comprehend. I have long been a student of, and am more or less conversant with, the recognized forces, energies, minds, morontias, spirits, and personalities of the local universes and the superuniverses. I have a general understanding of how these agencies and personalities operate, and I am intimately familiar with the workings of the accredited spirit intelligences of the grand universe. Notwithstanding my knowledge of the phenomena of the universes, I am constantly confronted with cosmic reactions which I cannot fully fathom. I am continually encountering apparently fortuitous conspiracies of the interassociation of forces, energies, intellects, and spirits, which I cannot satisfactorily explain. 초우주에 있는 신적 조언자의 계층에 속하는 존재는 궁극적 조화를 발견할 수 있고 우주 관리의 일상적인 일들 속에서 멀리까지 도달하는 심오한 합동사역들을 탐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볼 때, 흐트러져 있는 것처럼 그리고 우연한 것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도 신적 조언자가 볼 때는 질서 정연하고 구조적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신적 조언자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매우 많은 것들이 우주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초우주의 신적 조언자는 지역우주들과 초우주들의 인지된 힘, 에너지, 마음, 부활체 의식, 영 및 고유성들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왔고, 그리고 다소 정통해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대리자들과 고유성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를 하고 있으며, 거대우주의 인가받은 영 지적존재들의 하는 일을 상세하게 알고 있습니다. 우주들의 현상에 대한 그의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는 충분히 알아낼 수 없는 조화우주 반응에 끊임없이 마주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는 힘, 에너지, 지성 그리고 영들의 상호 연합된, 외견상 우연한 협력을 이루는 것으로 보이는 일에 끊임없이 부딪히고 있습니다.

4:1.8 (55.6) I am entirely competent to trace out and to analyze the working of all phenomena directly resulting from the functioning of the Universal Father, the Eternal Son, the Infinite Spirit, and, to a large extent, the Isle of Paradise. My perplexity is occasioned by encountering what appears to be the performance of their mysterious co-ordinates, the three Absolutes of potentiality. These Absolutes seem to supersede matter, to transcend mind, and to supervene spirit. I am constantly confused and often perplexed by my inability to comprehend these complex transactions which I attribute to the presences and performances of the Unqualified Absolute, the Deity Absolute, and the Universal Absolute. 그는 우주의 아버지와 영원한 아들과 무한한 영 그리고 크게는 천국의 기능에서 직접 발생된 모든 현상의 활동을 추적하고 분석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곤혹스러움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합력, 세 잠재성의 절대자들의 행위로 보여 지는 것에 부딪힐 때 일어납니다. 이 절대자들은 물질을 대체하고 마음을 초월하며 그 결과 영을 만들어냅니다. 그는 분별불가 절대자와 신(神) 절대자 그리고 우주 절대자의 현존과 행위라고 내가 생각하는 이 복잡한 활동행위들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혼동하고 종종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4:1.9 (56.1) These Absolutes must be the not-fully-revealed presences abroad in the universe which, in the phenomena of space potency and in the function of other superultimates, render it impossible for physicists, philosophers, or even religionists to predict with certainty as to just how the primordials of force, concept, or spirit will respond to demands made in a complex reality situation involving supreme adjustments and ultimate values. 이 절대자들은 우주 안에서 널리, 충분히 – 계시 되지 않는 – 현존들임에 틀림이 없는데, 공간 잠재력 현상 속에서 그리고 다른 초(超)궁극체들의 역할 속에서, 힘, 개념 또는 영의 시초(始原)존재들이, 어떻게 최극 조절과 궁극적 가치들을 포함하는, 복잡한 실체 상황에서 일어나는 요구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관하여 그것은 물리학자, 철학자들 또는 심지어 종교인들에게까지도, 확실히 예측하기가 불가능합니다.

170118 롬8:28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결국 모든 일이 유익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And we know that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 who have been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4:1.10 (56.2) There is also an organic unity in the universes of time and space which seems to underlie the whole fabric of cosmic events. This living presence of the evolving Supreme Being, this Immanence of the Projected Incomplete, is inexplicably manifested ever and anon by what appears to be an amazingly fortuitous co-ordination of apparently unrelated universe happenings. This must be the function of Providence — the realm of the Supreme Being and the Conjoint Actor. 질서 있는 우주 사건들의 전체 구조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이는 시간과 공간의 우주에는 또한 유기적 합일체가 있습니다. 진화하는 최극 존재의 이 살아있는 현존, 구체적으로 투사된 미완성의 내재성(內在性)은, 겉보기에 관련이 없는 우주 사건들이 놀랍게 우연히 조정된 것으로 보이는 일로 인해, 때때로 설명할 수 없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섭리의 기능 즉 최극 존재와 공동행위자의 영역임이 틀림없습니다.

4:1.11 (56.3) I am inclined to believe that it is this far-flung and generally unrecognizable control of the co-ordination and interassociation of all phases and forms of universe activity that causes such a variegated and apparently hopelessly confused medley of physical, mental, moral, and spiritual phenomena so unerringly to work out to the glory of God and for the good of men and angels. 우주 활동의 모든 단계•형태들을 조정하고 상호 관계에 대한, 이 널리 미치고 대체로 파악할 수 없는 통제가, 아주 잡다하고, 겉보기에 희망 없이 혼란에 빠진, 물리적•정신적•도덕적•영적 현상의 잡동사니로 하여금, 한 치도 어김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 사람과 천사의 유익을 위하여, 이루어지게 합니다.

4:1.12 (56.4) But in the larger sense the apparent “accidents” of the cosmos are undoubtedly a part of the finite drama of the time-space adventure of the Infinite in his eternal manipulation of the Absolutes.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질서 있는 우주에서 겉보기에 “우연한 현상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절대자들의 영원한 조종 안에서 무한자가 겪는 시간과 공간 모험의 유한한 드라마의 일부분입니다.

2. God and Nature 하나님과 자연

170124 몰8:22 우리는 지금까지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신음하며 고통당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We know that the whole creation has been groaning as in the pains of childbirth right up to the present time.

4:2.1 (56.5) Nature is in a limited sense the physical habit of God. The conduct, or action, of God is qualified and provisionally modified by the experimental plans and the evolutionary patterns of a local universe, a constellation, a system, or a planet. God acts in accordance with a well-defined, unchanging, immutable law throughout the wide-spreading master universe; but he modifies the patterns of his action so as to contribute to the co-ordinate and balanced conduct of each universe, constellation, system, planet, and personality in accordance with the local objects, aims, and plans of the finite projects of evolutionary unfolding. 제한된 의미에서, 자연은 하나님의 물리적인 성향입니다. 하나님의 행위나 활동은 지역 우주, 별자리, 체계, 또는 행성의 실험 계획과 진화 형태에 의해서 제한되고, 일시적으로 변경됩니다. 널리 확장되는 모우주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은, 명확하고, 변하지 않으며, 바꿀 수 없는 법칙에 따라서 행동하십니다. 그러나 진화적으로 전개되는 유한한 예정들의 지역 목적, 목표, 계획에 따라서, 각 우주•별자리•체계•행성•고유성이 동등하며 안정된 행동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그의 행동 형태를 수정하십니다.

4:2.2 (56.6) Therefore, nature, as mortal man understands it, presents the underlying foundation and fundamental background of a changeless Deity and his immutable laws, modified by, fluctuating because of, and experiencing upheavals through, the working of the local plans, purposes, patterns, and conditions which have been inaugurated and are being carried out by the local universe, constellation, system, and planetary forces and personalities. For example: As God’s laws have been ordained in Nebadon, they are modified by the plans established by the Creator Son and Creative Spirit of this local universe; and in addition to all this the operation of these laws has been further influenced by the errors, defaults, and insurrections of certain beings resident upon your planet and belonging to your immediate planetary system of Satania. 그러므로 인간이 이해하는 것처럼, 자연은 변함없는 신(神)과 그의 바꿀 수 없는 법칙의 기초와 근본적인 배경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법칙은 지역 우주, 별자리, 체계, 행성의 힘과 고유성들이 개시(開始)해서 수행해 온 지역 계획, 목적, 형태, 조건의 작용에 따라서 변경되고, 그 때문에 요동하며, 그를 통해서 대변동을 겪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법칙이 우리의 지역 우주(네바돈)에서 제정된 이래로, 이러한 법칙은 이 지역 우주의 창조자 아들과 창조적 영이 세운 계획에 따라서 변경됩니다.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의 행성에 살며, 우리의 직계 행성 체계(사타니아)에 속한 어떤 존재들의 실수와 태만과 불복종 때문에, 이 법칙의 작용은 더욱 영향을 받습니다.

4:2.3 (56.7) Nature is a time-space resultant of two cosmic factors: first, the immutability, perfection, and rectitude of Paradise Deity, and second, the experimental plans, executive blunders, insurrectionary errors, incompleteness of development, and imperfection of wisdom of the extra-Paradise creatures, from the highest to the lowest. Nature therefore carries a uniform, unchanging, majestic, and marvelous thread of perfection from the circle of eternity; but in each universe, on each planet, and in each individual life, this nature is modified, qualified, and perchance marred by the acts, the mistakes, and the disloyalties of the creatures of the evolutionary systems and universes; and therefore must nature ever be of a changing mood, whimsical withal, though stable underneath, and varied in accordance with the operating procedures of a local universe. 자연은 두 가지 우주 요인(要因)이 시간과 공간에서 합성된 결과입니다. 첫째는 천국 신의 불변성•완전성•정당함이며, 둘째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천국 외부에 있는 피조물의 실험에 의한 계획, 집행상의 실책, 반란을 일으키는 잘못, 불완전한 발육, 지혜의 불완전성입니다. 따라서 자연은, 한결같고 불변하며 훌륭하고 놀라운 완전성의 끈을 영원의 순환계에서 가져옵니다. 그러나 각 우주, 각 행성, 각 개인의 삶에 있어서, 이 자연은 진화하는 체계 및 우주에 있는 피조물들의 행위•실수•불충성에 의해 변경(變更)되고 제한되며, 아마도 훼손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은, 그 밑바닥이 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변덕스럽게 변화하는 분위기 가운데에 있으면서, 동시에 지역 우주의 운영 절차에 따라서, 변화가 있어야만 합니다.

170126 시8:3 주께서 만드신 하늘, 그 곳에 두신 달과 별, 내가 신기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When I consider your heavens,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you have set in place,

4:2.4 (57.1) Nature is the perfection of Paradise divided by the incompletion, evil, and sin of the unfinished universes. This quotient is thus expressive of both the perfect and the partial, of both the eternal and the temporal. Continuing evolution modifies nature by augmenting the content of Paradise perfection and by diminishing the content of the evil, error, and disharmony of relative reality. 자연은 천국의 완전성(分子)을 완성되지 않은 우주들의 불완전함, 악 그리고 죄(分母)로 나눈 결과입니다. 이 몫은 완전한 것과 부분적인 것,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 둘 모두를 그렇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진화는 천국 완전성의 내용을 증대시키고, 상대적 실체의 악, 실수, 부조화의 내용을 줄여서 자연을 변경합니다.

4:2.5 (57.2) God is not personally present in nature or in any of the forces of nature, for the phenomenon of nature is the superimposition of the imperfections of progressive evolution and, sometimes, the consequences of insurrectionary rebellion, upon the Paradise foundations of God’s universal law. As it appears on such a world as Urantia, nature can never be the adequate expression, the true representation, the faithful portrayal, of an all-wise and infinite God. 하나님은 자연이나, 자연의 어떤 힘 가운데에도 직접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연 현상은 점진적 진화를 겪는 불완전한 것들이 겹쳐진 것이며, 때로는 하나님의 우주 법칙인 천국의 토대에 대한 반항적인 반란의 결과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와 같은 세상에 나타나듯이, 자연은 모든 지혜와 무한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적절한 표현, 진정한 표상, 성실한 묘사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4:2.6 (57.3) Nature, on your world, is a qualification of the laws of perfection by the evolutionary plans of the local universe. What a travesty to worship nature because it is in a limited, qualified sense pervaded by God; because it is a phase of the universal and, therefore, divine power! Nature also is a manifestation of the unfinished, the incomplete, the imperfect outworkings of the development, growth, and progress of a universe experiment in cosmic evolution. 우리 세계에 있는 자연은, 지역 우주의 진화 계획으로 인해, 완전한 법칙이 제한된 것입니다. 한정되고 제한된 의미에서 하나님은 자연에 스며들어 있고, 자연은 우주적인 위상이며, 따라서 신적 권능이라는 이유로, 자연을 경배하는 것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시늉에 해당하는 것인지요! 자연은 또한 질서가 있는 우주의 진화에서, 우주 실험의 발전, 성장, 진보가 마무리되지 않고 완성되지 않았으며 불완전한 작용이 나타난 모습입니다.

170131 창2: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This is the account of the heavens and the earth when they were created. When the LORD God made the earth and the heavens-

4:2.7 (57.4) The apparent defects of the natural world are not indicative of any such corresponding defects in the character of God. Rather are such observed imperfections merely the inevitable stop-moments in the exhibition of the ever-moving reel of infinity picturization. It is these very defect-interruptions of perfection-continuity which make it possible for the finite mind of material man to catch a fleeting glimpse of divine reality in time and space. The material manifestations of divinity appear defective to the evolutionary mind of man only because mortal man persists in viewing the phenomena of nature through natural eyes, human vision unaided by morontia mota or by revelation, its compensatory substitute on the worlds of time. 자연 세계에서 외견상 결함으로 보이는 것들은 하나님의 성품 안에서, 그런 것들에 상응하는 어떠한 결함이 있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관찰된 불완전함은 무한성을 묘사하기 위해 계속 회전하는 필름 영상에서 불가피한 정지 순간에 불과합니다. 물질적 인간의 유한한 마음으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신적 실체를 얼핏 포착하는 것은, 연속적인 완전함 가운데 있는 바로 이 결함-중지(中止)들입니다. 신성의 물질적 명시가 인간의 진화된 마음에는 결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타고난 눈을 통해서 자연 현상을 보기를 고집하기 때문이며, 부활체의 지혜나 계시, 곧 시간의 세계에서 보완되는 대용품인 부활체의 통찰력이나 계시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인간적 시각을 통해서 보기를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4:2.8 (57.5) And nature is marred, her beautiful face is scarred, her features are seared, by the rebellion, the misconduct, the misthinking of the myriads of creatures who are a part of nature, but who have contributed to her disfigurement in time. No, nature is not God. Nature is not an object of worship. 그리고 자연은, 자연의 일부분인 수많은 창조물들의 반란과 잘못된 행실, 분별없는 생각들로 인해서 훼손되고 그 얼굴에는 상처를 입어, 그 모습은 시들어 버렸습니다. 그 창조물들은 시간이 되자 자연을 기형적 모습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결단코, 자연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자연은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3. God’s Unchanging Character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성품

170201 신4:24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며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For the LORD your God is a consuming fire, a jealous God.

4:3.1 (57.6) All too long has man thought of God as one like himself. God is not, never was, and never will be jealous of man or any other being in the universe of universes. Knowing that the Creator Son intended man to be the masterpiece of the planetary creation, to be the ruler of all the earth, the sight of his being dominated by his own baser passions, the spectacle of his bowing down before idols of wood, stone, gold, and selfish ambition — these sordid scenes stir God and his Sons to be jealous for man, but never of him. 너무나 오랫동안,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과 비슷한 존재로 생각해 왔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나 우주들의 우주에 있는 그 어떤 다른 존재에 대해서도 질투하지 않으시고, 그런 적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창조주 아들이 사람을 행성 창조에 있어서 걸작이 되고, 온 땅의 통치자가 되도록 의도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존재가 인간 자신의 저열한 욕망에 지배당해 있는 모습, 즉 나무와 돌과 금 그리고 이기적 야망의 우상 앞에 절하는 광경 – 이러한 더러운 장면들이 하나님과 그의 아들들을 선동하여, 사람을 위하여 질투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지, 결코 사람을 질투하는 것이 아닙니다.

4:3.2 (57.7) The eternal God is incapable of wrath and anger in the sense of these human emotions and as man understands such reactions. These sentiments are mean and despicable; they are hardly worthy of being called human, much less divine; and such attitudes are utterly foreign to the perfect nature and gracious character of the Universal Father. 영원한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다운 감정의 의미에서, 또 사람이 그러한 반응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분노(憤怒)하거나 화를 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정서들은 품위가 없고 비열합니다. 그것들은 인간이라 불리는 존재에게도 거의 가치가 없으며, 신적이라고는 더욱 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태도들은 우주 아버지의 완전한 본성과 자비로운 성품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4:3.3 (58.1) Much, very much, of the difficulty which Urantia mortals have in understanding God is due to the far-reaching consequences of the Lucifer rebellion and the Caligastia betrayal. On worlds not segregated by sin, the evolutionary races are able to formulate far better ideas of the Universal Father; they suffer less from confusion, distortion, and perversion of concept. 유란시아(세상)에 사는 사람(필사자)들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면에 있어서 겪는 거의 대부분의 어려움은 루시퍼 반란과 행성 영주였던 칼리가스티아의 배반으로 인해 널리 미치는 결과들 때문입니다. 죄에 의해 격리되지 않은 세계들의 경우, 진화 종족들은 우주 아버지에 대한 훨씬 더 나은 관념들을 조성할 수 있으며, 그들은 혼돈과 왜곡 그리고 개념의 곡해를 덜 겪습니다.

170207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며 인간이 아니시니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어찌 그가 말씀하시고 행하지 않으시며 약속하시고 지키지 않으시겠소? God is not a man, that he should lie, nor a son of man, that he should change his mind. Does he speak and then not act? Does he promise and not fulfill?

4:3.4 (58.2) God repents of nothing he has ever done, now does, or ever will do. He is all-wise as well as all-powerful. Man’s wisdom grows out of the trials and errors of human experience; God’s wisdom consists in the unqualified perfection of his infinite universe insight, and this divine foreknowledge effectively directs the creative free will. 하나님은 전에 하셨던, 지금 하고 있는, 앞으로 계속 하게 될, 어떤 것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모든 권능뿐만이 아니라 지혜도 충만하십니다. 사람의 지혜는 시행과 착오로 구성된 인간 체험으로부터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무한한 우주 통찰력의 절대적인 완전성으로 구성되며, 이 신성한 선견지명(先見之明)은 창조적 자유의지를 효과적으로 지도합니다.

4:3.5 (58.3) The Universal Father never does anything that causes subsequent sorrow or regret, but the will creatures of the planning and making of his Creator personalities in the outlying universes, by their unfortunate choosing, sometimes occasion emotions of divine sorrow in the personalities of their Creator parents. But though the Father neither makes mistakes, harbors regrets, nor experiences sorrows, he is a being with a father’s affection, and his heart is undoubtedly grieved when his children fail to attain the spiritual levels they are capable of reaching with the assistance which has been so freely provided by the spiritual-attainment plans and the mortal-ascension policies of the universes. 우주 아버지는 나중에 슬픔이나 후회의 원인이 되는 어떤 것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주 변경(邊境)에서, 창조주 고유성들이 계획하고 만든 의지 창조체들의 불행한 선택에 의해, 때때로 그들의 창조주 부모의 고유성은 신성한 슬픔의 감정들을 느낍니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류를 범하지 않고, 후회를 품지도 않고, 슬픔을 체험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아버지의 애정을 가진 존재이며, 그의 심정은, 우주들의 영적 성취 계획과 인간의 상승 정책에 의해 그토록 값없이 마련해준 도움으로, 아버지의 자녀들이 도달할 수 있는 영적 차원의 달성에 그의 자녀들이 실패할 때, 여지없이 애통해 하십니다.

4:3.6 (58.4) The infinite goodness of the Father is beyond the comprehension of the finite mind of time; hence must there always be afforded a contrast with comparative evil (not sin) for the effective exhibition of all phases of relative goodness. Perfection of divine goodness can be discerned by mortal imperfection of insight only because it stands in contrastive association with relative imperfection in the relationships of time and matter in the motions of space. 아버지의 무한한 선함은 시간 속에 사는 유한한 마음의 이해력을 뛰어 넘습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선한 모든 단계를 효과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서, (죄가 아니라) 비교가 되는 악과 늘 어떤 대조가 있어야 합니다. 신의 완전한 선은 인간의 불완전한 통찰력으로 식별될 수 있으며, 이는 오로지 공간 운동에 있는 시간과 물질의 관계에서, 그 선이 상대적 불완전과 대조되는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4:3.7 (58.5) The character of God is infinitely superhuman; therefore must such a nature of divinity be personalized, as in the divine Sons, before it can even be faith-grasped by the finite mind of man. 하나님의 성품은 무한하게 초인간적입니다. 따라서 신성의 그러한 본성은, 신성한 아들들 안에서처럼, 그것이 사람의 유한한 마음에 의해 신앙으로 파악될 수 있기 전에, 고유성으로 구현되어야 합니다.

4. The Realization of God 하나님의 실체화

1702010 말3:6 ‘야곱의 후손들아, 나 여호와는 변하는 자가 아니므로 너희가 완전히 망하지는 않는다. “I the LORD do not change. So you, O descendants of Jacob, are not destroyed.

4:4.1 (58.6) God is the only stationary, self-contained, and changeless being in the whole universe of universes, having no outside, no beyond, no past, and no future. God is purposive energy (creative spirit) and absolute will, and these are self-existent and universal. 하나님은 전 우주에서 유일하게 고정되어 계시며, 스스로 충분하시고, 변함이 없는 존재이십니다. 하나님은 외부도 없고, 초월도 없으며,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인 예너지(창조적 영)이시고, 절대 의지이시며, 이러한 목적이 있는 에너지와 절대 의지는 스스로 존재하며, 보편적입니다.

4:4.2 (58.7) Since God is self-existent, he is absolutely independent. The very identity of God is inimical to change. “I, the Lord, change not.” God is immutable; but not until you achieve Paradise status can you even begin to understand how God can pass from simplicity to complexity, from identity to variation, from quiescence to motion, from infinity to finitude, from the divine to the human, and from unity to duality and triunity. And God can thus modify the manifestations of his absoluteness because divine immutability does not imply immobility; God has will — he is will.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기 때문에, 그는 절대적으로 독립적이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정체성은 변화와는 반대됩니다. “나, 주는 변하지 않노라.” 하나님은 변할 수 없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의 지위를 얻기까지는, 하나님이 어떻게 단순성에서 복잡성으로, 동일성에서 변화로, 정지로부터 운동으로, 무한에서 유한으로, 신성한 것에서 인간으로, 단일체에서 이원일체(二元一體)와 삼원일체(三元一體)로 옮겨갈 수 있는지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적 불변성이 부동(움직일 수 없음, 不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은 그의 절대성의 표현을 그렇게 변형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지가 있으시며, 하나님은 의지이십니다.

1702014 요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Jesus said, “Do not hold on to me, for I have not yet returned to the Father. Go instead to my brothers and tell them, ‘I am returning to my Father and your Father, to my God and your God.’ “

4:4.3 (58.8) God is the being of absolute self-determination; there are no limits to his universe reactions save those which are self-imposed, and his freewheel acts are conditioned only by those divine qualities and perfect attributes which inherently characterize his eternal nature. Therefore is God related to the universe as the being of final goodness plus a free will of creative infinity.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스스로 결정하는 자아-결단의 존재이십니다. 스스로를 제한하시는 자아-부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의 우주 반응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그의 자유의지 행위들은, 오직 그의 영원한 본성을 선천적으로 특징짓는 신성한 본질들과 완전한 속성들에 의해서만,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최종적 선(善)의 존재로서, 더 나아가 창조적 무한성의 자유로운 의지로서, 우주에 관계하십니다.

4:4.4 (58.9) The Father-Absolute is the creator of the central and perfect universe and the Father of all other Creators. Personality, goodness, and numerous other characteristics, God shares with man and other beings, but infinity of will is his alone. God is limited in his creative acts only by the sentiments of his eternal nature and by the dictates of his infinite wisdom. God personally chooses only that which is infinitely perfect, hence the supernal perfection of the central universe; and while the Creator Sons fully share his divinity, even phases of his absoluteness, they are not altogether limited by that finality of wisdom which directs the Father’s infinity of will. Hence, in the Michael order of sonship, creative free will becomes even more active, wholly divine and well-nigh ultimate, if not absolute. The Father is infinite and eternal, but to deny the possibility of his volitional self-limitation amounts to a denial of this very concept of his volitional absoluteness. 아버지-절대자는 중앙의 완전한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다른 모든 창조주들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고유성, 선(善), 그리고 수많은 다른 특성들을 사람 및 다른 존재들과 공유하시지만, 의지의 무한성은 홀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그의 영원한 본성의 감성과 그의 무한한 지혜의 명령에 의해서만, 자신의 창조적 행위들을 제한하십니다. 하나님은 무한히 완전한 것만을 직접 선택하시므로 중앙우주는 천상적으로 완전합니다. 창조주 아들들이 자신의 신성, 심지어는 자신의 절대성의 위상들도 전적으로 공유하지만, 그들은 아버지의 의지 무한성을 지도하는 최종 지혜에 의해 전혀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따라서 미가엘 계층의 아들신분에서, 창조적 자유의지는 더욱 활동적이 되며, 절대는 아니라도, 전적으로 신적이고 거의 궁극적입니다. 아버지는 무한하고 영원하지만, 그의 의지로 자아를 제한하는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은 그의 의지적 절대성이라는 바로 이 개념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4:4.5 (59.1) God’s absoluteness pervades all seven levels of universe reality. And the whole of this absolute nature is subject to the relationship of the Creator to his universe creature family. Precision may characterize trinitarian justice in the universe of universes, but in all his vast family relationship with the creatures of time the God of universes is governed by divine sentiment. First and last — eternally — the infinite God is a Father. Of all the possible titles by which he might appropriately be known, I have been instructed to portray the God of all creation as the Universal Father. 하나님의 절대성은 우주 실체의 일곱 차원들 전체에 가득 퍼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절대 본성 전체는 창조자가 자신의 우주 창조체 가족과 갖는 관계에 의해 지배됩니다. 우주들의 우주에서는 정밀성이 삼위일체적 정의(正義)의 특징이 되겠지만, 그러나 시간의 창조체들과 맺는 그의 광대한 가족 관계 전체에 있어서는 우주들의 하나님은 신적 감성에 지배를 받습니다. 처음과 끝까지 – 영원히 – 무한한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그를 적절히 부를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명칭들 중에, 모든 창조의 하나님을 우주 아버지로 묘사하도록 우리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4:4.6 (59.2) In God the Father freewill performances are not ruled by power, nor are they guided by intellect alone; the divine personality is defined as consisting in spirit and manifesting himself to the universes as love. Therefore, in all his personal relations with the creature personalities of the universes, the First Source and Center is always and consistently a loving Father. God is a Father in the highest sense of the term. He is eternally motivated by the perfect idealism of divine love, and that tender nature finds its strongest expression and greatest satisfaction in loving and being loved.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자유의지 행위는 권능으로 다스려지지 않으며 지성으로만 인도되지도 않습니다. 신적 고유성은 영으로 존재하며 우주에 사랑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것으로 정의(定意)됩니다. 그러므로 우주들의 창조체 고유성들에 대한 그의 모든 개인적 관계에 있어서, 첫째근원이며 중심이신 하나님은 항상 한결같이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단어의 가장 고귀한 의미에서 아버지이십니다. 그는 신적 사랑의 완전한 이상주의에 의해 영원히 자극되시며, 그 부드러운 본성의 가장 강한 표현과 가장 큰 만족은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곳에서 발견됩니다.

1702015 요일5:4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세상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for everyone born of God overcomes the world. This is the victory that has overcome the world, even our faith.

4:4.7 (59.3) In science, God is the First Cause; in religion, the universal and loving Father; in philosophy, the one being who exists by himself, not dependent on any other being for existence but beneficently conferring reality of existence on all things and upon all other beings. But it requires revelation to show that the First Cause of science and the self-existent Unity of philosophy are the God of religion, full of mercy and goodness and pledged to effect the eternal survival of his children on earth. 과학에 있어서, 하나님은 첫째 원인이며, 종교에 있어서, 하나님은 우주적인 사랑의 아버지이며, 철학에 있어서,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으로, 존재를 위하여 다른 존재에게 의존하지 않지만, 모든 것들과 모든 다른 존재들에게, 실존이라는 실체를 자비롭게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과학에서 첫째 원인이시며 철학에서 자존적 통일체가 종교의 하나님, 즉 자비와 선이 가득하고 땅 위에 있는 그의 자녀들의 영원한 생존을 보증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계시가 필요합니다.

4:4.8 (59.4) We crave the concept of the Infinite, but we worship the experience-idea of God, our anywhere and any-time capacity to grasp the personality and divinity factors of our highest concept of Deity. 우리는 무한자의 개념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관념, 즉 우리의 가장 높은 신(神) 개념의 고유성과 신적 요소들을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파악할 수 있다는 관념을 소중히 여깁니다.

4:4.9 (59.5) The consciousness of a victorious human life on earth is born of that creature faith which dares to challenge each recurring episode of existence when confronted with the awful spectacle of human limitations, by the unfailing declaration: Even if I cannot do this, there lives in me one who can and will do it, a part of the Father-Absolute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And that is “the victory which overcomes the world, even your faith.”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인간 생활에 대한 자각은 각각 실재가 되풀이되는 에피소드에 감히 도전하는 그 창조물의 신앙에서 생깁니다. 그 신앙은, 인간적 한계들의 무서운 장면에 직면할 때, “내가 이것을 할 수 없을지라도, 그것을 할 수 있고 또 하실 분, 즉 우주들의 우주 아버지-절대자의 부분이, 내 안 속에 살고 계신다.”라는 분명한 선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세상을 정복하는 승리는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5. Erroneous Ideas of God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

1702016 사28:2 여호와께서 그들을 칠 강한 군대를 보내실 것이니 그들이 광풍과 폭우와 무서운 홍수처럼 그 땅에 밀어닥칠 것이다. See, the Lord has one who is powerful and strong. Like a hailstorm and a destructive wind, like a driving rain and a flooding downpour, he will throw it forcefully to the ground. 사29:6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뇌성과 지진과 큰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무서운 불꽃으로 그들을 벌하실 것이니 the LORD Almighty will come with thunder and earthquake and great noise, with windstorm and tempest and flames of a devouring fire.

4:5.1 (59.6) Religious tradition is the imperfectly preserved record of the experiences of the God-knowing men of past ages, but such records are untrustworthy as guides for religious living or as the source of true information about the Universal Father. Such ancient beliefs have been invariably altered by the fact that primitive man was a mythmaker. 종교적 전통은 지난 시대에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들이 겪었던 체험이 불완전하게 보존한 기록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록들은 종교 생활의 안내서나 우주 아버지에 관한 참된 정보의 원천으로서는 믿을만하지 않습니다. 원시인이 신화(神話)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의해, 그러한 고대의 믿음들은 늘 변경되어 왔습니다.

4:5.2 (60.1) One of the greatest sources of confusion on Urantia concerning the nature of God grows out of the failure of your sacred books clearly to distinguish between the personalities of the Paradise Trinity and between Paradise Deity and the local universe creators and administrators. During the past dispensations of partial understanding, your priests and prophets failed clearly to differentiate between Planetary Princes, System Sovereigns, Constellation Fathers, Creator Sons, Superuniverse Rulers, the Supreme Being, and the Universal Father. Many of the messages of subordinate personalities, such as Life Carriers and various orders of angels, have been, in your records, presented as coming from God himself. Urantian religious thought still confuses the associate personalities of Deity with the Universal Father himself, so that all are included under one appellation. 하나님의 본성에 관해서 지구(유란시아)에서 생긴 가장 큰 혼돈의 근원들 중 하나는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성스러운 책들이 천국 삼위일체의 고유성들 사이와 천국 신(Deity 神)과 지역우주 창조자들 그리고 행정자들 사이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해서 발생했습니다. 부분적으로 이해했던 과거 섭리 시대에는, 우리의 사제들과 선지자들이 행성영주들, 체계주권자들, 별자리 아버지들, 창조주 아들들, 초우주 통치자들, 최극 존재, 그리고 우주 아버지 사이를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생명 운반자들과 다양한 천사 계층들과 같은, 종속(하위) 고유성들이 전달한 메시지들 중 대부분이, 우리의 기록들 속에서는,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처럼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지구(유란시아)의 종교 사상(思想)은 신(神)의 연합하는 고유성들과 우주 아버지 자신을 여전히 혼동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가 하나의 명칭 아래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4:5.3 (60.2) The people of Urantia continue to suffer from the influence of primitive concepts of God. The gods who go on a rampage in the storm; who shake the earth in their wrath and strike down men in their anger; who inflict their judgments of displeasure in times of famine and flood — these are the gods of primitive religion; they are not the Gods who live and rule the universes. Such concepts are a relic of the times when men supposed that the universe was under the guidance and domination of the whims of such imaginary gods. But mortal man is beginning to realize that he lives in a realm of comparative law and order as far as concerns the administrative policies and conduct of the Supreme Creators and the Supreme Controllers. 지구(유란시아)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원시적 개념들의 영향에 계속 시달려 오고 있습니다. 폭풍 속에서 날뛰며 돌아다니는 하나님들(gods), 분노로 땅을 흔들고 화를 내면서 사람들을 때려눕히며, 굶주림과 홍수의 때에 불만의 심판을 내리는 이들은 원시적 종교의 하나님들(gods)입니다. 그들은 살아서 우주들을 통치하시는 하나님들(Gods)이 아닙니다. 그러한 개념들은 우주가, 그러한 허구적 가상(假想)의 하나님들(gods)의 안내와 변덕스러움의 지배 아래에 놓여 있다고 사람들이 가정했던 그 시대의 유물입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은, 최극 창조주들과 최극 조정자들의 행정적 정책들과 운영에 관한 한, 자신이 비교적 질서 있는 법칙의 영역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1702017 히9:22 율법에 의하면 거의 모든 것이 다 피로써 깨끗하게 되며 피흘림이 없으면 죄의 용서도 없습니다. And almost all things are by the law purged with blood; and without shedding of blood is no remission.

4:5.4 (60.3) The barbarous idea of appeasing an angry God, of propitiating an offended Lord, of winning the favor of Deity through sacrifices and penance and even by the shedding of blood, represents a religion wholly puerile and primitive, a philosophy unworthy of an enlightened age of science and truth. Such beliefs are utterly repulsive to the celestial beings and the divine rulers who serve and reign in the universes. It is an affront to God to believe, hold, or teach that innocent blood must be shed in order to win his favor or to divert the fictitious divine wrath. 희생 제물들과 고행(苦行)을 통하여 그리고 심지어는 피를 흘림으로, 성난 하나님을 달래고, 감정이 상한 주님의 비위를 맞추고, 신(Deity 神)의 은혜를 얻으려는 야만적인 관념은, 완전히 미숙하고 원시적인 종교를 대표하며, 과학과 진리로 깨우친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철학을 대표합니다. 그러한 믿음들은 우주들 안에서 봉사하고 다스리는 천상의 존재들과 신성한 통치자들에게는 철저히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들입니다. 그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 또는 가상적인 신적 진노를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죄 없는 자의 피를 흘려야만 된다고 믿거나 고집부리거나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4:5.5 (60.4) The Hebrews believed that “without the shedding of blood there could be no remission of sin.” They had not found deliverance from the old and pagan idea that the Gods could not be appeased except by the sight of blood, though Moses did make a distinct advance when he forbade human sacrifices and substituted therefor, in the primitive minds of his childlike Bedouin followers, the ceremonial sacrifice of animals. 히브리인들은 “피 흘림이 없이는 죄의 용서가 있을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모세가 인간을 희생 제물로 드리는 일을 금지하고, 그 대신에 동물을 제례적 희생 제물로 대신하게 하였을 때, 그의 순진한 베두인Bedouin 추종자들의 원시적 마음 안에서 뚜렷한 진보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피를 보지 않고는 하나님들Gods이 달래질 수 없다는 고대의 이교적 관념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였습니다.

4:5.6 (60.5) The bestowal of a Paradise Son on your world was inherent in the situation of closing a planetary age; it was inescapable, and it was not made necessary for the purpose of winning the favor of God. This bestowal also happened to be the final personal act of a Creator Son in the long adventure of earning the experiential sovereignty of his universe. What a travesty upon the infinite character of God! this teaching that his fatherly heart in all its austere coldness and hardness was so untouched by the misfortunes and sorrows of his creatures that his tender mercies were not forthcoming until he saw his blameless Son bleeding and dying upon the cross of Calvary! 우리 세계에 천국 아들을 주시는 증여는 한 행성 시대를 마감하는 상황 속에 본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한 목적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이 증여는 창조주 아들이 자신의 우주에 대한 체험적 주권을 얻는 긴 모험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친히 행동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성품을 얼마나 희화화하는지요? 전적으로 엄격한 냉담함과 완고함으로, 그의 창조물들의 불운과 슬픔을 보면서도, 아버지다운 심정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기에, 그의 죄 없는 아들이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고 죽어 가는 것을 보기까지는, 그의 부드러운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고 이렇게 가르치다니요?

4:5.7 (60.6) But the inhabitants of Urantia are to find deliverance from these ancient errors and pagan superstitions respecting the nature of the Universal Father. The revelation of the truth about God is appearing, and the human race is destined to know the Universal Father in all that beauty of character and loveliness of attributes so magnificently portrayed by the Creator Son who sojourned on Urantia as the Son of Man and the Son of God. 그러나 유란시아(지구)의 거주민들은 우주 아버지의 본성에 관한 이러한 고대의 잘못들과 이교적 미신들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진리의 계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사람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란시아(지구)에 머물렀던 창조주 아들에 의해 그토록 숭고하게 묘사되었던 성품의 아름다움과 속성들의 사랑스러움을 지니신 우주 아버지를 모두 알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습니다.

4:5.8 (61.1) [Presented by a Divine Counselor of Uversa.] [유버르사의 신성한 조언자에 의해 제시되었음]

Paper 3 The Attributes of God 하나님의 속성들

Paper 3

The Attributes of God 하나님의 속성들

3:0.1 (44.1) GOD is everywhere present; the Universal Father rules the circle of eternity. But he rules in the local universes in the persons of his Paradise Creator Sons, even as he bestows life through these Sons. “God has given us eternal life, and this life is in his Sons.” These Creator Sons of God are the personal expression of himself in the sectors of time and to the children of the whirling planets of the evolving universes of space. 요일5:11-12 11 그 증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는 이것입니다. 12 하나님의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을 가졌으나 아들을 모시지 않은 사람은 생명이 없습니다. 11 And this is the record, that God hath given to us eternal life, and this life is in his Son. 12 He that hath the Son hath life; and he that hath not the Son of God hath not life.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우주의 아버지는 영원의 순환계를 다스리십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천국 창조주 아들들의 개인 속에 있는 지역 우주들 안에서, 더 나아가 이 아들들을 통해 생명을 나눠 주심으로 통치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주 아들들은 시간의 영역과 공간의 진화하는 우주의 소용돌이치는 행성에 있는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고유적인 표현이십니다.

3:0.2 (44.2) The highly personalized Sons of God are clearly discernible by the lower orders of created intelligences, and so do they compensate for the invisibility of the infinite and therefore less discernible Father. The Paradise Creator Sons of the Universal Father are a revelation of an otherwise invisible being, invisible because of the absoluteness and infinity inherent in the circle of eternity and in the personalities of the Paradise Deities. 창조된 지적 존재들은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볼 수 없고 분별할 수 없지만, 그 대신에 높은 수준의 고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들을 명백하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아버지는 영원성의 순환계 안과 천국 신들(삼위일체)의 고유성들 안에 본래부터 있는 절대성과 무한성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천국 창조주 아들들은 보이지 않고, 보일 수 없는 존재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계시하십니다.

3:0.3 (44.3) Creatorship is hardly an attribute of God; it is rather the aggregate of his acting nature. And this universal function of creatorship is eternally manifested as it is conditioned and controlled by all the co-ordinated attributes of the infinite and divine realit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We sincerely doubt whether any one characteristic of the divine nature can be regarded as being antecedent to the others, but if such were the case, then the creatorship nature of Deity would take precedence over all other natures, activities, and attributes. And the creatorship of Deity culminates in the universal truth of the Fatherhood of God. 창조자 되심은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이 행동하시는 본성의 총합입니다. 이러한 창조자 되심이 지닌 우주적 기능은, 첫째 근원이시며 중심이신 하나님의 무한성과 신적 실체가 지닌 공동의 모든 속성에 의해 조절되고 조정되는 것으로 영원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적 본성 중에 어느 한 특성이 다른 특성들보다 먼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신(神)의 창조자 되심의 본성은 다른 모든 본성들, 행위들, 그리고 속성들보다 먼저 있었을 것입니다. 신(神)의 창조자 되심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이라는 우주적 진리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1. God’s Everywhereness 모든 곳에 계시는 하나님

3:1.1 (44.4) The ability of the Universal Father to be everywhere present, and at the same time, constitutes his omnipresence. God alone can be in two places, in numberless places, at the same time. God is simultaneously present “in heaven above and on the earth beneath”; as the Psalmist exclaimed: “Whither shall I go from your spirit? or whither shall I flee from your presence?” 수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And as soon as we had heard these things, our hearts did melt, neither did there remain any more courage in any man, because of you: for the LORD your God, he is God in heaven above, and in earth beneath. 모든 곳에 동시에 계실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이 하나님의 편재(遍在, 널리 퍼져 있음)입니다. 하나님만이 두 장소, 수없이 많은 장소에 동시에 계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위에 땅 아래에 동시에 현존하십니다. 시139:7 내가 주를 떠나 어디로 갈 수 있으며 주 앞에서 어디로 피할 수 있겠습니까? Whither shall I go from thy spirit? or whither shall I flee from thy presence?

3:1.2 (44.5) “‘I am a God at hand as well as afar off,’ says the Lord. ‘Do not I fill heaven and earth?’” The Universal Father is all the time present in all parts and in all hearts of his far-flung creation. He is “the fullness of him who fills all and in all,” and “who works all in all,” and further, the concept of his personality is such that “the heaven (universe) and heaven of heavens (universe of universes) cannot contain him.” It is literally true that God is all and in all. But even that is not all of God. The Infinite can be finally revealed only in infinity; the cause can never be fully comprehended by an analysis of effects; the living God is immeasurably greater than the sum total of creation that has come into being as a result of the creative acts of his unfettered free will. God is revealed throughout the cosmos, but the cosmos can never contain or encompass the entirety of the infinity of God. 렘23:23-24 23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한 곳에만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어디든지 있는 하나님이다. 24 내가 볼 수 없도록 은밀한 곳에 숨을 자가 누구냐? 나는 하늘과 땅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23 Am I a God at hand, saith the LORD, and not a God afar off? 24 Can any hide himself in secret places that I shall not see him? saith the LORD. Do not I fill heaven and earth? saith the LORD. 하나님 아버지는 우주 안에 널리 퍼져 있는 하나님 창조의 모든 중심과 모든 부분에 동시에 계십니다. 엡1:23b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the fullness of Him who fills all in all. 고전12:6 모든 것을 … 이루시는 하나님 God who works all things in all 게다가 하나님의 고유성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왕상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우주)과 하늘들의 하늘(우주들의 우주)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But will God indeed dwell on the earth? behold, the heaven and heaven of heavens cannot contain thee; how much less this house that I have builded? 하나님은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신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참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모두는 아닙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은 오직 무한성 속에서만 최종적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결과에 대한 분석으로는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제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유의지의 창조적 행위들의 결과에서 도출된 모든 창조의 총합보다도 더 측량할 수 없이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조화로운 우주 전체를 통해서 두루 계시하시지만, 그 조화로운 우주는 결코 하나님의 무한성 전체를 포함할 수도 없고, 둘러쌀 수도 없습니다.

3:1.3 (45.1) The Father’s presence unceasingly patrols the master universe. “His going forth is from the end of the heaven, and his circuit to the ends of it; and there is nothing hidden from the light thereof.” 시19:6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주행하니 그 열기에서 숨을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다. His going forth is from the end of the heaven, and his circuit unto the ends of it: and there is nothing hid from the heat thereof. 하나님 아버지의 현존은 모든 우주를 끊임없이 순회하십니다.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빛으로부터 피할 자가 없도다. “His going forth is from the end of the heaven, and his circuit to the ends of it; and there is nothing hidden from the light thereof.”

3:1.4 (45.2) The creature not only exists in God, but God also lives in the creature. “We know we dwell in him because he lives in us; he has given us his spirit. This gift from the Paradise Father is man’s inseparable companion.” “He is the ever-present and all-pervading God.” “The spirit of the everlasting Father is concealed in the mind of every mortal child.” “Man goes forth searching for a friend while that very friend lives within his own heart.” “The true God is not afar off; he is a part of us; his spirit speaks from within us.” “The Father lives in the child. God is always with us. He is the guiding spirit of eternal destiny.” 창조물은 하나님 안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창조물 안에 사십니다. 요일4:13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으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Hereby know we that we dwell in him, and he in us, because he hath given us of his Spirit. 천국 아버지로부터의 이 선물은 사람과 분리할 수 없는 동행자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현존하시며 모든 것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의 영은 모든 인간 자녀의 마음 안에 숨어 계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찾으러 떠나지만, 바로 그 친구는 자신의 마음 안에 살고 있습니다. 참되신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분이시며, 하나님의 영은 우리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안에 사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운명을 안내하시는 영이십니다.

3:1.5 (45.3) Truly of the human race has it been said, “You are of God” because “he who dwells in love dwells in God, and God in him.” Even in wrongdoing you torment the indwelling gift of God, for the Thought Adjuster must needs go through the consequences of evil thinking with the human mind of its incarceration. 모든 인류는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요일5:19a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And we know that we are of God 요일4:16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And we have known and believed the love that God hath to us. God is love; and he that dwelleth in love dwelleth in God, and God in him. 심지어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면, 그는 내주하는 하나님의 선물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께서 인간의 마음 안에 갇혀서 인간의 악한 생각의 결과들을 함께 겪어야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3:1.6 (45.4) The omnipresence of God is in reality a part of his infinite nature; space constitutes no barrier to Deity. God is, in perfection and without limitation, discernibly present only on Paradise and in the central universe. He is not thus observably present in the creations encircling Havona, for God has limited his direct and actual presence in recognition of the sovereignty and the divine prerogatives of the co-ordinate creators and rulers of the universes of time and space. Hence must the concept of the divine presence allow for a wide range of both mode and channel of manifestation embracing the presence circuits of the Eternal Son, the Infinite Spirit, and the Isle of Paradise. Nor is it always possible to distinguish between the presence of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actions of his eternal co-ordinates and agencies, so perfectly do they fulfill all the infinite requirements of his unchanging purpose. But not so with the personality circuit and the Adjusters; here God acts uniquely, directly, and exclusively. 골1:15-17 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기 전에 계신 분입니다. 16 그분에 의해서 모든 것이 창조되었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것들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천사들과 영적 존재들과 만물이 다 그분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리고 그분은 모든 것이 있기 전에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He is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 the firstborn over all creation. For by him all things were created: things in heaven and on earth, visible and invisible, whether thrones or powers or rulers or authorities; all things were created by him and for him.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하나님의 모든 곳에 계심(편재遍在, 무소부재無所不在)은 실체 안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본성의 일부분입니다. 공간은 신(神)에게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천국과 중앙 우주에서만 완전성 가운데 제한 없이 자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계십니다. 따라서 중앙우주 하보나를 감싸고 있는 창조계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계시지만, 눈에 보일 수 있도록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십니다. 시공의 창조계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직접적이며 실제적인 임재를 제한하십니다. 그 이유는,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창조자들과 우주의 통치자들이 지닌 주권과 신적 특권들을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적 현존의 개념은 영원한 아들, 무한한 영, 그리고 천국의 섬이 지닌 현존하는 순환 회로가 포함된 두 가지 즉 드러난 계시의 방식과 경로의 넓은 범위를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현존과, 하나님의 영원한 협력자들과 대리자들의 행위들 사이를 항상 구별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목적을 위해 필요한 무한한 요구들을 완전히 성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직접적이면서도 배타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유성 회로와 조절자들의 경우입니다.

3:1.7 (45.5) The Universal Controller is potentially present in the gravity circuits of the Isle of Paradise in all parts of the universe at all times and in the same degree, in accordance with the mass, in response to the physical demands for this presence, and because of the inherent nature of all creation which causes all things to adhere and consist in him. Likewise is the First Source and Center potentially present in the Unqualified Absolute, the repository of the uncreated universes of the eternal future. God thus potentially pervades the physical universes of the past, present, and future. He is the primordial foundation of the coherence of the so-called material creation. This nonspiritual Deity potential becomes actual here and there throughout the level of physical existences by the inexplicable intrusion of some one of his exclusive agencies upon the stage of universe action. 시139:7 내가 주를 떠나 어디로 갈 수 있으며 주 앞에서 어디로 피할 수 있겠습니까? Where can I go from your Spirit? Where can I flee from your presence? 우주의 조정자는 잠재적으로 천국의 중력 순환회로 가운데 현존하십니다. 천국의 중력 순환 회로는 언제나 모든 부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동시에 같은 정도만큼 질량에 따라, 이 현존에 대한 물리적 요구에 응답하여 잠재적으로 천국의 중력 순환 회로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지니신 창조의 모든 본래적 본성은 만물을 응집하여 자신 안에 존재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첫째 근원이시며 중심이신 하나님은 분별이 불가능한 절대자 안에 잠재적으로 현존하십니다. 하나님은 분별이 불가능한 절대자 즉 영원한 미래에 속한 부분으로써 아직 창조되지 않은 우주들의 저장소 안에 잠재적으로 현존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의 물리적 우주에 잠재적으로 가득 퍼져 계십니다. 하나님은 물질적 창조가 응집하는 근원적 토대이십니다. 이 비(非)영적인 신(神)의 잠재성은 물리적 존재의 차원 여러 곳에서 실재가 됩니다. 이러한 실재는 우주 활동의 단계에 있는 몇몇 하나님의 배타적 대리자들의 설명할 수 없는 침입으로 인한 것입니다.

3:1.8 (45.6) The mind presence of God is correlated with the absolute mind of the Conjoint Actor, the Infinite Spirit, but in the finite creations it is better discerned in the everywhere functioning of the cosmic mind of the Paradise Master Spirits. Just as the First Source and Center is potentially present in the mind circuits of the Conjoint Actor, so is he potentially present in the tensions of the Universal Absolute. But mind of the human order is a bestowal of the Daughters of the Conjoint Actor, the Divine Ministers of the evolving universes. 하나님께서 마음으로 현존하시는 것은 공동 행위자 즉 무한한 영의 절대적 마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한한 창조 안에서, 마음으로 현존하시는 하나님은 천국 주(主) 영들의 조화로운 우주 마음이 작용하시는 모든 곳에서 좀 더 온전히 식별됩니다. 첫째 근원이시며 중심이신 하나님께서 공동 행위자 즉 무한한 영의 마음 회로 안에 잠재적으로 현존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주 절대자의 긴장 속에 잠재적으로 현존하십니다. 그러나 인간 수준의 마음은 진화하는 우주들에서 활동하는 신적 성직자들 즉 공동 행위자이신 무한 영의 딸들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3:1.9 (46.1) The everywhere-present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 is co-ordinated with the function of the universal spirit presence of the Eternal Son and the everlasting divine potential of the Deity Absolute. But neither the spiritual activity of the Eternal Son and his Paradise Sons nor the mind bestowals of the Infinite Spirit seem to exclude the direct action of the Thought Adjusters, the indwelling fragments of God, in the hearts of his creature children.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and teaching them to obey everything I have commanded you. And surely I am with you always, to the very end of the age.”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곳에 계시는 영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속한 편재(遍在)의 영은 영원하신 아들에게 속한 우주 영의 현존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일하십니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영은 모든 곳에 계시면서 신(神) 절대자의 영원한 신적 잠재성과 함께 연합하여 일하십니다. 그러나 영원한 아들과 그의 천국 아들들이 행하는 영적 활동이나 무한한 영이 주시는 마음 수여(bestowals)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신 생각 조절자의 직접적 행위를 배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생각 조절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녀들의 마음에 내주하는 하나님의 파편들입니다.

3:1.10 (46.2) Concerning God’s presence in a planet, system, constellation, or a universe, the degree of such presence in any creational unit is a measure of the degree of the evolving presence of the Supreme Being: It is determined by the en masse recognition of God and loyalty to him on the part of the vast universe organization, running down to the systems and planets themselves. Therefore it is sometimes with the hope of conserving and safeguarding these phases of God’s precious presence that, when some planets (or even systems) have plunged far into spiritual darkness, they are in a certain sense quarantined, or partially isolated from intercourse with the larger units of creation. And all this, as it operates on Urantia, is a spiritually defensive reaction of the majority of the worlds to save themselves, as far as possible, from suffering the isolating consequences of the alienating acts of a headstrong, wicked, and rebellious minority. 행성, 체계, 별자리, 우주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에 관하여 말할 때, 어떤 창조적 단위에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 계시는가 하는 것은 최극자가 진화하는 현존의 정도를 재는 척도입니다. 체계들과 행성 자체들에 이르기까지 경감되는 거대한 우주 조직의 부분에서 하나님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하나님에 대한 충성에 따라서 그 정도가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행성들 심지어 체계들까지도 영적 어두움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고귀한 이런 위상들을 보존하고 보호하려는 희망으로 그런 행성들과 체계들은 때때로 어떤 의미에서는 격리되거나 자신들보다 커다란 창조 단위들과의 교류에서 부분적으로 고립됩니다. 이러한 모든 일은 지구에서 발생했듯이, 완고하고 사악하며 반역하는 소수의 이간 행위로 인해 고립되는 결과들 때문에 고통을 받지 않도록 가능한 범위 안에서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세계의 대부분이 영적으로 방어하는 반응입니다.

3:1.11 (46.3) While the Father parentally encircuits all his sons — all personalities — his influence in them is limited by the remoteness of their origin from the Second and the Third Persons of Deity and augmented as their destiny attainment nears such levels. The fact of God’s presence in creature minds is determined by whether or not they are indwelt by Father fragments, such as the Mystery Monitors, but his effective presence is determined by the degree of co-operation accorded these indwelling Adjusters by the minds of their sojourn. 약1:17 완전하고 좋은 모든 선물은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옵니다. 하나님은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변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Every good and perfect gift is from above, coming down from the Father of the heavenly lights, who does not change like shifting shadows. 하나님 아버지는 어버이로서 자신의 아들들 즉 모든 고유성을 지닌 존재들을 순환 회로 안에 두십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영향력은 신(神)의 두 번째와 세 번째 고유존재들로부터 그들의 기원이 떨어져 있는 정도에 의해서 제한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향력은 그들의 운명 달성이 기원의 수준에 가까이 다가갈 때 증대됩니다. 창조물의 마음 안에 하나님께서 현존하신다는 사실은 신비의 감시자들과 같은 하나님의 단편들이 그 안에 내주하는가의 여부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현존이 얼마나 효력이 있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단편들이 머물러 있는 마음이 내주하고 있는 이러한 조절자들을 따라 조화를 이루어 협력하는 정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3:1.12 (46.4) The fluctuations of the Father’s presence are not due to the changeableness of God. The Father does not retire in seclusion because he has been slighted; his affections are not alienated because of the creature’s wrongdoing. Rather, having been endowed with the power of choice (concerning Himself), his children, in the exercise of that choice, directly determine the degree and limitations of the Father’s divine influence in their own hearts and souls. The Father has freely bestowed himself upon us without limit and without favor. He is no respecter of persons, planets, systems, or universes. In the sectors of time he confers differential honor only on the Paradise personalities of God the Sevenfold, the co-ordinate creators of the finite universes. 하나님 아버지의 현존에 대한 효력의 정도는 하나님께서 쉽게 변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가볍게 여김을 받는다고 해서 그 존재로부터 멀리 물러나 계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애정은 창조물의 잘못된 행위로 인해서 멀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들 때문이 아니라, 창조물들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신적인 영향력의 정도와 한계는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직접적으로 결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물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선택할 수 있는 권능을 주셨기 때문에 창조물들이 선택하는 만큼 영향력이 다르게 나타날 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제한이나 편애함이 없이 우리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개인들이나, 행성들, 체계들, 또는 우주들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시간의 영역에서, 칠중 하나님의 천국 고유성들 즉 유한한 우주들에서 협력하는 창조자들에게만 영예를 구별하여 주십니다.

2. God’s Infinite Power 무한한 권능

3:2.1 (46.5) All the universes know that “the Lord God omnipotent reigns.” The affairs of this world and other worlds are divinely supervised. “He does according to his will in the army of heaven and among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It is eternally true, “there is no power but of God.” 계19:6 또 나는 많은 군중이 떠드는 소리와 큰 폭포 소리, 그리고 천둥 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이렇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전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And I heard as it were the voice of a great multitude, and as the voice of many waters, and as the voice of mighty thunderings, saying, Alleluia: for the Lord God omnipotent reigneth. 주 하나님께서 다스리심을 모든 우주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의 일들은 거룩한 감독 아래에 있습니다. 단4:35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시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땅에 있는 사람에게 자기 뜻대로 행하시니 그의 뜻을 거역하거나 그가 행하시는 일을 물어 볼 자가 아무도 없구나.’ And all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are reputed as nothing: and he doeth according to his will in the army of heaven, and among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and none can stay his hand, or say unto him, What doest thou? ‘하나님의 권능 외에는 어떤 권능도 없다.’는 말은 영원히 참됩니다. 롬13:1 … 모든 권력이 다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 there is no power but of God …

3:2.2 (46.6) Within the bounds of that which is consistent with the divine nature, it is literally true that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The long-drawn-out evolutionary processes of peoples, planets, and universes are under the perfect control of the universe creators and administrators and unfold in accordance with the eternal purpose of the Universal Father, proceeding in harmony and order and in keeping with the all-wise plan of God. There is only one lawgiver. He upholds the worlds in space and swings the universes around the endless circle of the eternal circuit. 거룩한 본성과 일치하는 그 한계 안에서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참됩니다. 마19:26 …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다.’ …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사람들, 행성들, 우주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겪는 진화의 과정은 우주 창조자들, 행정자들의 완전한 조정 아래에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진화의 과정은 우주 아버지의 영원한 목적에 일치하게 전개되며, 조화와 질서를 이루면서, 하나님의 모든 지혜로운 계획에 따라서 진행됩니다. 입법자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는 공간의 세계들을 유지하시며, 영원한 순환 회로의 끝없는 순환계를 따라 우주들을 회전시킵니다.

3:2.3 (47.1) Of all the divine attributes, his omnipotence, especially as it prevails in the material universe, is the best understood. Viewed as an unspiritual phenomenon, God is energy. This declaration of physical fact is predicated on the incomprehensible truth that the First Source and Center is the primal cause of the universal physical phenomena of all space. From this divine activity all physical energy and other material manifestations are derived. Light, that is, light without heat, is another of the nonspiritual manifestations of the Deities. And there is still another form of nonspiritual energy which is virtually unknown on Urantia; it is as yet unrecognized. 욥38:25 폭우가 흘러 내려가는 골짜기 길을 누가 만들었으며 번개가 다니는 길을 누가 만들었느냐? Who hath divided a watercourse for the overflowing of waters, or a way for the lightning of thunder. 하나님의 모든 신적 속성들 중에서, 하나님의 권능은 특별히 물질적 우주를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가장 잘 이해됩니다. 비(非)영적 현상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에너지입니다. 물리적 사실에 대한 이 선언은 첫째 근원이시며 중심이신 하나님 아버지가 모든 공간에 있는 우주의 물리적 현상에 대한 기원적 원인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진리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 신적 활동에서 모든 물리적 에너지와 다른 물질적 모습들이 비롯됩니다. 열(heat)이 없는 빛은 신(神)들의 비(非)영적 모습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리고 아직 인지되지 않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지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비(非)영적 에너지의 또 다른 형태가 존재합니다.

3:2.4 (47.2) God controls all power; he has made “a way for the lightning”; he has ordained the circuits of all energy. He has decreed the time and manner of the manifestation of all forms of energy-matter. And all these things are held forever in his everlasting grasp — in the gravitational control centering on nether Paradise. The light and energy of the eternal God thus swing on forever around his majestic circuit, the endless but orderly procession of the starry hosts composing the universe of universes. All creation circles eternally around the Paradise-Personality center of all things and beings. 하나님은 모든 권능을 조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번개가 다니는 길을 정하셨습니다. 욥28:26 비의 법칙과 번개가 다니는 길을 정하셨을 때에 When he made a decree for the rain, and a way for the lightning of the thunder: 하나님께서 모든 에너지의 순환 회로들을 제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형태의 에너지-물질이 나타나는 시간과 방법을 정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부 천국에 중심을 둔 중력의 조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속적 다스림 가운데 영원히 붙들려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빛과 에너지는 하나님의 장엄한 순환 회로 주위를 영원히 회전하고 있습니다. 그 순환 회로는 우주들의 우주를 구성하는 별무리들로서, 끝이 없으면서도 질서를 갖춘 행렬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모든 창조물들은 모든 것들과 모든 존재들의 중심 즉 천국 고유 존재를 중심으로 그 둘레를 영원히 회전하고 있습니다.

3:2.5 (47.3) The omnipotence of the Father pertains to the everywhere dominance of the absolute level, whereon the three energies, material, mindal, and spiritual, are indistinguishable in close proximity to him — the Source of all things. Creature mind, being neither Paradise monota nor Paradise spirit, is not directly responsive to the Universal Father. God adjusts with the mind of imperfection — with Urantia mortals through the Thought Adjusters.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Through him all things were made; without him nothing was made that has been made.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한 권능은 절대적 차원이 지배하는 모든 곳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절대적 차원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3가지 즉 물질적, 마음적, 그리고 영적 에너지를 서로 구별할 수 없습니다. 창조물의 마음은 천국의 단일소(monota: 신성에 가까운 천국의 생생한 비非영적 에너지)도 아니고, 천국의 영도 아니며,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응답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완전한 마음에 알맞게 생각 조절자(하나님 아버지의 영)를 통해서 우리들을 조절하십니다.

3:2.6 (47.4) The Universal Father is not a transient force, a shifting power, or a fluctuating energy. The power and wisdom of the Father are wholly adequate to cope with any and all universe exigencies. As the emergencies of human experience arise, he has foreseen them all, and therefore he does not react to the affairs of the universe in a detached way but rather in accordance with the dictates of eternal wisdom and in consonance with the mandates of infinite judgment. Regardless of appearances, the power of God is not functioning in the universe as a blind force. 하나님 아버지는 일시적인 힘 즉 변경되는 권능도 아니고 요동하는 에너지도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권능과 지혜는 모든 우주의 위급 상황들을 대처하기에 온전히 적절합니다. 인생 경험에서 일어나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을 예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주의 문제들을 초연하듯이 반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위기의 사태에 대해 영원한 지혜의 지시를 따르고, 무한한 판단의 명령과 조화를 이루어 반응하십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겉모습과는 관계없이, 맹목적인 힘으로 우주에서 작용하지 않습니다.

3:2.7 (47.5) Situations do arise in which it appears that emergency rulings have been made, that natural laws have been suspended, that misadaptations have been recognized, and that an effort is being made to rectify the situation; but such is not the case. Such concepts of God have their origin in the limited range of your viewpoint, in the finiteness of your comprehension, and in the circumscribed scope of your survey; such misunderstanding of God is due to the profound ignorance you enjoy regarding the existence of the higher laws of the realm, the magnitude of the Father’s character, the infinity of his attributes, and the fact of his free-willness. 요일3:20 우리 마음도 우리를 책망할 경우가 있는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더욱 책망하시지 않겠습니까? whenever our hearts condemn us. For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s, and he knows everything. 긴급한 상황에 대한 적절한 다스림이 주어지고, 자연적 법칙이 중지되며, 잘못된 적용이 인지되어, 그 상황들을 시정하려는 노력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환경이 발생하지만, 그런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런 개념들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가 이해하는 유한성과 우리의 한정된 조사 범위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런 오해는 심오한 무지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영역에 대한 높은 차원의 법칙의 존재에 대해서도 무지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의 장엄함도 모르며, 하나님의 무한한 속성도, 하나님께서 자유 의지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 깊은 무지에 빠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오해합니다.

3:2.8 (47.6) The planetary creatures of God’s spirit indwelling, scattered hither and yon throughout the universes of space, are so nearly infinite in number and order, their intellects are so diverse, their minds are so limited and sometimes so gross, their vision is so curtailed and localized, that it is almost impossible to formulate generalizations of law adequately expressive of the Father’s infinite attributes and at the same time to any degree comprehensible to these created intelligences. Therefore, to you the creature, many of the acts of the all-powerful Creator seem to be arbitrary, detached, and not infrequently heartless and cruel. But again I assure you that this is not true. God’s doings are all purposeful, intelligent, wise, kind, and eternally considerate of the best good, not always of an individual being, an individual race, an individual planet, or even an individual universe; but they are for the welfare and best good of all concerned, from the lowest to the highest. In the epochs of time the welfare of the part may sometimes appear to differ from the welfare of the whole; in the circle of eternity such apparent differences are nonexistent.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고 있는 행성의 창조물들은 공간의 우주 전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으며, 그 수(數)와 계급(階級)은 거의 무한에 가깝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너무 제한되어 있으며, 때때로 너무 거칠며, 그들의 시야는 너무 단편적이며 지엽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한 속성들을 적절히 표현하는 동시에 이들 피조된 지성들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개괄적인 법을 형성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권능을 지니신 창조주의 많은 행위들이 우리 창조물들에게는 독단적이고 개별적이며 때로는 무정하고 모질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행위들은 모두 목적이 있으며 지성적이고 현명하며 친절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행위들은 모두 영원히 최상의 선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의 개별적 존재, 종족, 행성, 심지어 개별적 우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로부터 가장 높은 자에게 이르기까지 관련된 모든 자의 복지와 최상의 선(善)을 위하십니다. 한정된 시간의 시대에 있어서는, 일부분의 복지가 때때로 전체의 복지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영원의 순환계에서는 그런 외견적 차이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3:2.9 (48.1) We are all a part of the family of God, and we must therefore sometimes share in the family discipline. Many of the acts of God which so disturb and confuse us are the result of the decisions and final rulings of all-wisdom, empowering the Conjoint Actor to execute the choosing of the infallible will of the infinite mind, to enforce the decisions of the personality of perfection, whose survey, vision, and solicitude embrace the highest and eternal welfare of all his vast and far-flung creation. 롬8:16-17 16 바로 그 성령님이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하십니다. 17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16 The Spirit himself testifie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God’s children. 17 Now if we are children, then we are heirs—heirs of God and co-heirs with Christ, if indeed we share in his sufferings in order that we may also share in his glory. 우리는 모두 하나님 가족의 일부분이므로 때로 가족 양육을 함께 나누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여러 행위들 때문에 불편과 혼동을 느끼지만, 그 행위들은 모든 지혜가 담긴 결정들과 최종적 다스림의 결과들입니다. 하나님의 행위들은 공동 행위자(무한한 영)에게 권능을 부여하여 무한한 영이 지닌 마음으로 오류 없는 의지의 선택 즉 완전한 고유성으로 결정하도록 실행하게 합니다. 무한한 영의 탐색, 전망, 그리고 갈망은 광대하고 방대한 창조계를 위한 최상의 행복과 영원한 번영을 포함합니다.

3:2.10 (48.2) Thus it is that your detached, sectional, finite, gross, and highly materialistic viewpoint and the limitations inherent in the nature of your being constitute such a handicap that you are unable to see, comprehend, or know the wisdom and kindness of many of the divine acts which to you seem fraught with such crushing cruelty, and which seem to be characterized by such utter indifference to the comfort and welfare, to the planetary happiness and personal prosperity, of your fellow creatures. It is because of the limits of human vision, it is because of your circumscribed understanding and finite comprehension, that you misunderstand the motives, and pervert the purposes, of God. But many things occur on the evolutionary worlds which are not the personal doings of the Universal Father. 우리들은 분리되고, 지엽적이며 유한하고 거칠며, 매우 물질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 존재의 본성이 선천적으로 지닌 제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관점과 제한 때문에 신적인 많은 행위들이 지닌 지혜와 친절을 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으며 알아볼 수도 없는 장애를 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친절의 행위가 우리의 장애 때문에 우리에게는 강압적 잔인성으로 가득하고, 우리의 동료 창조물의 위로와 번영 그리고 행성에서의 행복과 개인적인 번성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한 특징을 지닌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지닌 제한적인 비전과 인식의 한계와 유한한 이해력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니신 동기(動機)들을 잘못 이해하고, 그 목적들을 곡해합니다. 그러나 진화 세계들에는 우주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개인적으로 행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3:2.11 (48.3) The divine omnipotence is perfectly co-ordinated with the other attributes of the personality of God. The power of God is, ordinarily, only limited in its universe spiritual manifestation by three conditions or situations: 렘32:27 ‘나는 여호와이며 온 인류의 하나님이다. 나에게 어려워서 못할 일이 있겠느냐? “I am the LORD, the God of all mankind. Is anything too hard for me? 하나님의 신적인 전능하심은 하나님의 고유성이 지닌 다른 속성들과 함께 완전하게 연합됩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대개 우주에 나타날 때, 다음의 3가지 조건 또는 상황에 의해서만 제한됩니다.

3:2.12 (48.4) 1. By the nature of God, especially by his infinite love, by truth, beauty, and goodness. 1. 하나님의 본성 특별히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 진미선에 의해서 제한됩니다.

3:2.13 (48.5) 2. By the will of God, by his mercy ministry and fatherly relationship with the personalities of the universe. 2. 하나님의 의지 즉 자비의 돌봄과, 우주의 고유성과 연관된 아버지로서의 관계에 의해서 제한됩니다.

3:2.14 (48.6) 3. By the law of God, by the righteousness and justice of the eternal Paradise Trinity.3. 하나님의 법 즉 공의와, 영원한 천국 삼위일체의 정의에 의해서 제한됩니다.

3:2.15 (48.7) God is unlimited in power, divine in nature, final in will, infinite in attributes, eternal in wisdom, and absolute in reality. But all these characteristics of the Universal Father are unified in Deity and universally expressed in the Paradise Trinity and in the divine Sons of the Trinity. Otherwise, outside of Paradise and the central universe of Havona, everything pertaining to God is limited by the evolutionary presence of the Supreme, conditioned by the eventuating presence of the Ultimate, and co-ordinated by the three existential Absolutes — Deity, Universal, and Unqualified. And God’s presence is thus limited because such is the will of God. 하나님은 권능에 제한이 없으시며, 본성은 신적이시고, 의지는 최종적이며, 속성은 무한하고, 지혜는 영원하며, 실체에 있어서는 절대적이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우주 하나님 아버지의 특성들은 신(神) 안에서 통일되고, 천국 삼위일체 안에서와 삼위일체의 거룩한 아들들 안에서 우주적으로 표현됩니다. 그와는 달리, 천국과 하보나(중앙 우주) 외부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은 최극 존재(Supreme)의 진화적 현존에 의해서 제한되고, 결국 궁극(Ultimate) 존재의 현존으로 조정되며, 세 존재적 절대자들 즉 신 절대자, 우주 절대자, 무제한적 분별불가 절대자에 의해서 조절됩니다. 하나님의 현존은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렇게 제한됩니다.

3. God’s Universal Knowledge 우주적 지식

3:3.1 (48.8) “God knows all things.” The divine mind is conscious of, and conversant with, the thought of all creation. His knowledge of events is universal and perfect. The divine entities going out from him are a part of him; he who “balances the clouds” is also “perfect in knowledge.” “The eyes of the Lord are in every place.” Said your great teacher of the insignificant sparrow, “One of them shall not fall to the ground without my Father’s knowledge,” and also, “The very hairs of your head are numbered.” “He tells the number of the stars; he calls them all by their names.”요일3:20 우리 마음도 우리를 책망할 경우가 있는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은 더욱 책망하시지 않겠습니까? For if our heart condemn us, God is greater than our heart, and knoweth all things.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신적인 마음은 모든 창조물의 생각을 의식하며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건들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은 우주적이며 완전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실재들은 하나님의 일부분입니다. 하나님은 구름이 떠있게 하는 분이시며, 지식이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욥37:16 너는 구름이 균형을 잃지 않고 떠다니는 것과 안전한 지식을 가지신 분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Dost thou know the balancings of the clouds, the wondrous works of him which is perfect in knowledge? 욥36:4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For truly my words shall not be false: he that is perfect in knowledge is with thee. 주님의 눈은 모든 곳에 있습니다. 잠15:3 여호와께서는 어디서든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을 지켜보신다. The eyes of the LORD are in every place, beholding the evil and the good. 하찮은 참새에 대해 우리의 위대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10:29 참새 두 마리가 동전 몇 푼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참새 한 마리도 그저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Are not two sparrows sold for a farthing? and one of them shall not fall on the ground without your Father(Father’s knowledge). 30 하나님은 너희 머리카락도 다 세고 계신다. “But the very hairs of your head are all numbered. 사40:26 너희는 하늘을 바라보아라! 누가 이 모든 별들을 만들었느냐? 여호와께서 별무리를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이끌어내시며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다 헤아리고 계시니 그의 능력이 크시므로 그 중에 하나도 빠진 것이 없다. Lift up your eyes on high And see who has created these stars, The One who leads forth their host by number, He calls them all by name; Because of the greatness of His might and the strength of His power, Not one of them is missing. 시147:4 그가 별의 수를 정하시고 그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신다. He counts the number of the stars; He gives names to all of them.

3:3.2 (49.1) The Universal Father is the only personality in all the universe who does actually know the number of the stars and planets of space. All the worlds of every universe are constantly within the consciousness of God. He also says: “I have surely seen the affliction of my people, I have heard their cry, and I know their sorrows.” For “the Lord looks from heaven; he beholds all the sons of men; from the place of his habitation he looks upon all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Every creature child may truly say: “He knows the way I take, and when he has tried me, I shall come forth as gold.” “God knows our downsittings and our uprisings; he understands our thoughts afar off and is acquainted with all our ways.” “All things are naked and open to the eyes of him with whom we have to do.” And it should be a real comfort to every human being to understand that “he knows your frame; he remembers that you are dust.” Jesus, speaking of the living God, said, “Your Father knows what you have need of even before you ask him.” 사65:24 그들이 나를 부르기도 전에 내가 대답할 것이며 그들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내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할 것이다.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before they call, I will answer; and while they are yet speaking, I will hear.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우주에서, 실제로 공간에 있는 별들과 행성들의 수를 알고 계시는 유일한 고유 존재이십니다. 모든 우주에 있는 전 세계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의식 가운데 존재합니다. 출3:7 그때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학대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잔인한 감독자들에게서 구해 달라고 부르짖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었으며 그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And the LORD said, I have surely seen the affliction of my people which are in Egypt, and have heard their cry by reason of their taskmasters; for I know their sorrows; 시33:13-14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살펴 전 인류를 보시며 14 그의 처소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살피신다. 13 The LORD looketh from heaven; he beholdeth all the sons of men. 14 From the place of his habitation he looketh upon all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욥23:10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가는 길을 다 알고 계신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처럼 깨끗할 것이다. But he knoweth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th tried me, I shall come forth as gold. 시139:2-3 2 주께서는 내가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며 멀리서도 내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 3 내가 일하고 쉬는 것을 다 보고 계시며 나의 모든 행동을 잘 알고 계십니다. 2 Thou knowest my downsitting and mine uprising, thou understandest my thought afar off. 3 Thou compassest my path and my lying down, and art acquainted with all my ways. 히4:13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고백해야 할 그분의 눈 앞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Neither is there any creature that is not manifest in his sight: but all things are naked and opened unto the eyes of him with whom we have to do. 다음의 구절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모든 사람들은 참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시103:14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을 아시며 우리가 먼지에 불과한 존재임을 기억하심이라. For he knoweth our frame; he remembereth that we are dust.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6:8 너희는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신다. Be not ye therefore like unto them: for your Father knoweth what things ye have need of, before ye ask him. 사65:24 그들이 나를 부르기도 전에 내가 대답할 것이며 그들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내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할 것이다.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before they call, I will answer; and while they are yet speaking, I will hear.

3:3.3 (49.2) God is possessed of unlimited power to know all things; his consciousness is universal. His personal circuit encompasses all personalities, and his knowledge of even the lowly creatures is supplemented indirectly through the descending series of divine Sons and directly through the indwelling Thought Adjusters. And furthermore, the Infinite Spirit is all the time everywhere present.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Nothing in all creation is hidden from God’s sight. Everything is uncovered and laid bare before the eyes of him to whom we must give account.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알고 계심에 있어서 제한이 없는 능력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의식은 우주적입니다. 하나님의 고유성 회로는 모든 고유성들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심지어 낮은 창조물이라도 그에 대해 알고 있는 하나님의 지식이, 간접적으로는 하강하는 신적 아들들의 계층들을 통하여, 직접적으로는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들을 통하여 보완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무한한 영은 항상 어디에나 계십니다.

3:3.4 (49.3) We are not wholly certain as to whether or not God chooses to foreknow events of sin. But even if God should foreknow the freewill acts of his children, such foreknowledge does not in the least abrogate their freedom. One thing is certain: God is never subjected to surprise.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의 사건들을 미리 아시기로 선택을 하셨는지 아닌지 전적으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심지어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녀들의 자유의지 행위들을 미리 아신다 하더라도, 그러한 예지는 그들의 자유를 조금도 침해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놀라시지 않습니다.

3:3.5 (49.4) Omnipotence does not imply the power to do the nondoable, the ungodlike act. Neither does omniscience imply the knowing of the unknowable. But such statements can hardly be made comprehensible to the finite mind. The creature can hardly understand the range and limitations of the will of the Creator. 전능하심은 할 수 없는 것들 즉 하나님답지 않은 행위를 하는 권능을 뜻하지 않습니다. 전지하심도 알 수 없는 것을 아는 지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들은 유한한 마음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창조물은 창조자의 의지가 갖는 범위와 한계들을 거의 이해할 수 없습니다.

4. God’s Limitlessness 제한이 없는 하나님

3:4.1 (49.5) The successive bestowal of himself upon the universes as they are brought into being in no wise lessens the potential of power or the store of wisdom as they continue to reside and repose in the central personality of Deity. In potential of force, wisdom, and love, the Father has never lessened aught of his possession nor become divested of any attribute of his glorious personality as the result of the unstinted bestowal of himself upon the Paradise Sons, upon his subordinate creations, and upon the manifold creatures thereof. 골1:17 그리고 그분은 모든 것이 있기 전에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우주들이 발생될 때마다 하나님은 연속적으로 그 우주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 우주들은 신(神)의 중심적 고유성 안에 계속 존재하고 머무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지니신 권능의 잠재성이나 지혜의 저장성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을 창조주 아들들과 종속된 창조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다양한 창조물들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십니다. 그러나 힘과 지혜와 사랑의 잠재성의 어떤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소유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고유성이 지닌 어떤 속성도 제거되지 않습니다.

3:4.2 (49.6) The creation of every new universe calls for a new adjustment of gravity; but even if creation should continue indefinitely, eternally, even to infinity, so that eventually the material creation would exist without limitations, still the power of control and co-ordination reposing in the Isle of Paradise would be found equal to, and adequate for, the mastery, control, and co-ordination of such an infinite universe. And subsequent to this bestowal of limitless force and power upon a boundless universe, the Infinite would still be surcharged with the same degree of force and energy; the Unqualified Absolute would still be undiminished; God would still possess the same infinite potential, just as if force, energy, and power had never been poured forth for the endowment of universe upon universe.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모든 경우마다 새로운 중력의 조절이 요청됩니다. 그러나 비록 창조가 기한 없이 영원히, 심지어 무한에 이르도록 계속 되어 결국 물질적 창조가 제한 없이 존재한다고 해도, 천국의 섬에 머물러 있는 조정과 통합의 권능은 그렇게 무한한 우주를 다스리고 조정하며 합력하는 수준에 알맞게 여전히 적절한 것으로 발견될 것입니다. 제한이 없는 우주에 이렇게 한계가 없는 힘과 권능을 연속적으로 내어 주심에도 불구하고 무한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동일한 정도의 힘과 에너지가 넘치도록 충전되어 계십니다. 분별이 불가능하신 절대자 하나님의 에너지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마다 힘, 에너지, 권능을 쏟아 부어 내어 주신 일이 없는 것처럼, 여전히 동일하게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3:4.3 (50.1) And so with wisdom: The fact that mind is so freely distributed to the thinking of the realms in no wise impoverishes the central source of divine wisdom. As the universes multiply, and beings of the realms increase in number to the limits of comprehension, if mind continues without end to be bestowed upon these beings of high and low estate, still will God’s central personality continue to embrace the same eternal, infinite, and all-wise mind. 시147:5 우리 주는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한하시다. Great is our Lord and mighty in power; his understanding has no limit.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그 영역의 사고(思考)에 그토록 자유롭게 분배된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니신 신적 지혜의 중심이 되는 근원을 조금도 피폐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우주들이 배가되고, 영역의 존재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계까지 그 수가 늘어남에 따라서, 마음이 높고 낮은 지위의 이러한 존재들에게 제한 없이 계속 증여된다고 해도, 하나님의 중심적 고유성은 여전히 동일하게 영원하고 무한하며 모든 지혜의 마음을 계속 담고 있을 것입니다.

3:4.4 (50.2) The fact that he sends forth spirit messengers from himself to indwell the men and women of your world and other worlds in no wise lessens his ability to function as a divine and all-powerful spirit personality; and there is absolutely no limit to the extent or number of such spirit Monitors which he can and may send out. This giving of himself to his creatures creates a boundless, almost inconceivable future possibility of progressive and successive existences for these divinely endowed mortals. And this prodigal distribution of himself as these ministering spirit entities in no manner diminishes the wisdom and perfection of truth and knowledge which repose in the person of the all-wise, all-knowing, and all-powerful Father. 하나님께서 우리의 세계와 다른 세계의 남녀 안에 내주하도록 영(靈) 메신저(사자使者)들을 보내셔도, 신적이며 모든 권능을 지니신 영 고유성으로서 기능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조금도 감소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실 수 있는 그러한 영 감시자들의 범위와 수에는 절대적으로 제한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물들에게 자신을 이렇게 주셔서, 우리들에게 진보적이며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한없는 가능성 즉 거의 믿을 수 없는 미래의 가능성을 창조하십니다. 돌보는 영 실재로서 자신을 이렇게 아낌없이 내어 주시는 분배는, 모든 지혜, 전지(全知)하심, 모든 권능을 지니신 하나님 아버지의 개인 존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진리와 지식의 지혜와 완전성을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습니다.

3:4.5 (50.3) To the mortals of time there is a future, but God inhabits eternity. Even though I hail from near the very abiding place of Deity, I cannot presume to speak with perfection of understanding concerning the infinity of many of the divine attributes. Infinity of mind alone can fully comprehend infinity of existence and eternity of action.창1:26-27 26 그리고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27 자기 모습을 닮은 사람, 곧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26 Then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in our likeness, and let them rule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the birds of the air, over the livestock, over all the earth, and over all the creatures that move along the ground.” 27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he created him;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 시간 안에서 존재하는 우리들에게는 미래가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 속에 거주하십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가까운 곳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우리는 신적인 속성이 지닌 여러 무한성에 대해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무한한 마음만이 존재의 무한성과 행위의 영원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3:4.6 (50.4) Mortal man cannot possibly know the infinitude of the heavenly Father. Finite mind cannot think through such an absolute truth or fact. But this same finite human being can actually feel — literally experience — the full and undiminished impact of such an infinite Father’s love. Such a love can be truly experienced, albeit while quality of experience is unlimited, quantity of such an experience is strictly limited by the human capacity for spiritual receptivity and by the associated capacity to love the Father in return.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하늘 아버지의 무한성을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유한한 마음은 그런 절대 진리와 사실을 꿰뚫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이 유한한 인간 존재는 무한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니신 충만한 사랑의 감소되지 않는 영향력을 실제로 느끼며 문자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은 진실로 경험될 수 있습니다. 체험의 본질에는 제한이 없는 반면에 체험의 양은 영적 수용성에 대한 인간의 능력과, 그에 응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연합된 능력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을 받습니다.

3:4.7 (50.5) Finite appreciation of infinite qualities far transcends the logically limited capacities of the creature because of the fact that mortal man is made in the image of God — there lives within him a fragment of infinity. Therefore man’s nearest and dearest approach to God is by and through love, for God is love. And all of such a unique relationship is an actual experience in cosmic sociology, the Creator-creature relationship — the Father-child affection. 무한한 본질에 대한 유한한 인식은 창조물이 지닌 제한된 능력을 논리적으로 훨씬 뛰어 넘습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 인간 안에 무한성의 파편이 살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해 우리 인간이 가장 가까이 그리고 친밀하게 다가가는 것은 사랑에 의해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독특한 관계는 모두 우주 사회학에서의 실제 경험 즉 창조주-창조물의 관계이며, 아버지-자녀 사이의 애정입니다.

5. The Father’s Supreme Rule 최극 통치

3:5.1 (50.6) In his contact with the post-Havona creations, the Universal Father does not exercise his infinite power and final authority by direct transmittal but rather through his Sons and their subordinate personalities. And God does all this of his own free will. Any and all powers delegated, if occasion should arise, if it should become the choice of the divine mind, could be exercised direct; but, as a rule, such action only takes place as a result of the failure of the delegated personality to fulfill the divine trust. At such times and in the face of such default and within the limits of the reservation of divine power and potential, the Father does act independently and in accordance with the mandates of his own choice; and that choice is always one of unfailing perfection and infinite wisdom. 고전10:26 이것은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For the earth is the Lord’s, and the fulness thereof. 하나님 아버지는 하보나(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상태에서 천국을 감싸고 있는 순환 회로) 이후의 창조계에 접촉하실 때, 직접적 전달 방식으로 자신의 무한한 권능과 최종적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아들들과 그들의 하위 고유성들을 통하여 행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일을 자신의 자유 의지로 행하십니다. 만일 어떤 경우가 발생하여, 신적 마음의 선택이 요청될 경우라면, 모든 위임된 권능들은 직접 행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행위는 위임받은 고유성이 신적 신뢰를 성취하지 못하고 실패한 경우에만 발생됩니다. 그런 경우 그렇게 불이행으로 실패하여 신적 권능과 잠재성이 유보되는 한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독자적으로 행동하시며, 스스로 선택한 권한에 따라 행동하십니다. 그 선택은 항상 절대로 틀림이 없는 완전성과 무한한 지혜 중 하나입니다.

3:5.2 (51.1) The Father rules through his Sons; on down through the universe organization there is an unbroken chain of rulers ending with the Planetary Princes, who direct the destinies of the evolutionary spheres of the Father’s vast domains. It is no mere poetic expression that exclaims: “The earth is the Lord’s and the fullness thereof.” “He removes kings and sets up kings.” “The Most Highs rule in the kingdoms of men.”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들을 통하여 통치하시며, 우주 조직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하나님 아버지의 거대한 권역에 속하는 진화 구체들의 운명을 지도하는 권한을 지닌 행성 영주들로 끝나는 통치자들의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외침은 단순하게 시(詩)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시24:1 (다윗의 시)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요 세계와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체도 다 여호와의 것이다. The earth is the LORD’s, and the fulness thereof; the world, and they that dwell therein. 단2:21 그는 때와 시대를 바꾸시며 왕을 세우고 폐하시며 지혜로운 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 분이시다. And he changeth the times and the seasons: he removeth kings, and setteth up kings: he giveth wisdom unto the wise, and knowledge to them that know understanding: 단5:21 그래서 그는 인간 사회에서 쫓겨났으며 그의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이 되어 들나귀와 함께 살고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은 하늘의 이슬에 젖었습니다. 결국 그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누구에게든지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나라를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And he was driven from the sons of men; and his heart was made like the beasts, and his dwelling was with the wild asses: they fed him with grass like oxen, and his body was wet with the dew of heaven; till he knew that the most high God ruled in the kingdom of men, and that he appointeth over it whomsoever he will.

3:5.3 (51.2) In the affairs of men’s hearts the Universal Father may not always have his way; but in the conduct and destiny of a planet the divine plan prevails; the eternal purpose of wisdom and love triumphs. 사람의 심정 속에 있는 일들의 경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항상 자신의 방법대로 행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행성의 행위와 운명에 경우에는 하나님의 신적 계획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혜와 사랑을 이루는 영원한 목적은 승리를 거둡니다.

3:5.4 (51.3) Said Jesus: “My Father, who gave them to me, is greater than all; and no one is able to pluck them out of my Father’s hand.” As you glimpse the manifold workings and view the staggering immensity of God’s well-nigh limitless creation, you may falter in your concept of his primacy, but you should not fail to accept him as securely and everlastingly enthroned at the Paradise center of all things and as the beneficent Father of all intelligent beings. There is but “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above all and in all,” “and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consist.”요10: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아버지는 그 무엇보다도 위대하신 분이시므로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갈 자가 없다. My Father, which gave them me, is greater than all; and no man is able to pluck them out of my Father’s hand.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족스럽게 창조하신 무한성의 다양한 현장들을 얼핏 보고 어마어마한 광대함을 보고, 하나님의 시원(始原)성primacy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흔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천국 중심에 있는 보좌에 확실하게 영속적으로 좌정(坐定:앉아 계심)하시고, 모든 지적 존재들의 자애로운 아버지이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만 합니다. 엡4:6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해 일하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above all, and through all, and in you all. 골1:17 그리고 그분은 모든 것이 있기 전에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And he is before all things, and by him all things consist.

3:5.5 (51.4) The uncertainties of life and the vicissitudes of existence do not in any manner contradict the concept of the universal sovereignty of God. All evolutionary creature life is beset by certain inevitabilities. Consider the following: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No temptation has seized you except what is common to man. And God is faithful; he will not let you be tempted beyond what you can bear. But when you are tempted, he will also provide a way out so that you can stand up under it. 생명의 불확실성과 존재의 변천성은 하나님의 우주적 주권이라는 개념과 어떤 방식으로도 모순되지 않습니다. 모든 진화적 창조물의 삶은 명백한 필연성으로 인해 시달리고 있습니다. 다음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3:5.6 (51.5) 1. Is courage — strength of character — desirable? Then must man be reared in an environment which necessitates grappling with hardships and reacting to disappointments. 용기(인격의 강인함)가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사람은 어려움과 부딪쳐 싸우고 실망들에 대한 반응이 필요한 환경 가운데에서 성장해야만 합니다.

3:5.7 (51.6) 2. Is altruism — service of one’s fellows — desirable? Then must life experience provide for encountering situations of social inequality. 이타심(동료를 향한 섬김)이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인생의 경험은 사회적 불공평과 마주치는 상황이 제공되어야만 합니다.

3:5.8 (51.7) 3. Is hope — the grandeur of trust — desirable? Then human existence must constantly be confronted with insecurities and recurrent uncertainties. 소망(신뢰의 장엄함)이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인간 실존은 불안정과 되풀이되는 불확실성에 계속 직면해야만 합니다.

3:5.9 (51.8) 4. Is faith — the supreme assertion of human thought — desirable? Then must the mind of man find itself in that troublesome predicament where it ever knows less than it can believe. 신앙(인간적 사고에 대한 최고의 주장)이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은 그 마음으로 알 수 있는 것보다 언제나 더 큰 믿음이 요구되는 곤란과 곤경 가운데 있어야만 합니다.

3:5.10 (51.9) 5. Is the love of truth and the willingness to go wherever it leads, desirable? Then must man grow up in a world where error is present and falsehood always possible. 진리에 대한 사랑과 진리가 인도하는 데로 어디든지 기꺼이 가려는 의지는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사람은 실수가 존재하고 언제나 거짓이 가능한 세상에서 성장해야만 합니다.

3:5.11 (51.10) 6. Is idealism — the approaching concept of the divine — desirable? Then must man struggle in an environment of relative goodness and beauty, surroundings stimulative of the irrepressible reach for better things. 이상주의(신적인 것을 향해 접근하는 개념)는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사람은 상대적 선과 아름다움의 환경 , 즉 더 나은 것에 끊임없이 도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사회적 환경에서 투쟁해야만 합니다.

3:5.12 (51.11) 7. Is loyalty — devotion to highest duty — desirable? Then must man carry on amid the possibilities of betrayal and desertion. The valor of devotion to duty consists in the implied danger of default. 충성(최상의 의무를 향한 헌신)은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인간은 배신과 버려짐의 가능성 가운데에서 견디어야만 합니다. 의무에 헌신하는 용기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내재된 위험 안에 존재합니다.

3:5.13 (51.12) 8. Is unselfishness — the spirit of self-forgetfulness — desirable? Then must mortal man live face to face with the incessant clamoring of an inescapable self for recognition and honor. Man could not dynamically choose the divine life if there were no self-life to forsake. Man could never lay saving hold on righteousness if there were no potential evil to exalt and differentiate the good by contrast. 이기적이지 않음(무사무욕無私無慾: 자기 이익을 초월한 정신)은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자아가 인정받고 명예를 얻으려고 끊임없이 외치는 피할 수 없는 함성에 직면하여 살아야만 합니다. 사람은 만약 버려야할 자아생명이 없다면, 신적 생명을 역동적으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선(善)을 높이고 그와 대조적으로 차별되는 잠재적 악(惡)이 없다면, 결코 구원의 의(올바름righteousness)를 붙들지 않게 됩니다.

3:5.14 (51.13) 9. Is pleasure — the satisfaction of happiness — desirable? Then must man live in a world where the alternative of pain and the likelihood of suffering are ever-present experiential possibilities. 기쁨(행복의 만족감)은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인간은 고생의 대안들과 고통을 겪을 개연성이 항상 실재로 겪을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3:5.15 (52.1) Throughout the universe, every unit is regarded as a part of the whole. Survival of the part is dependent on co-operation with the plan and purpose of the whole, the wholehearted desire and perfect willingness to do the Father’s divine will. The only evolutionary world without error (the possibility of unwise judgment) would be a world without free intelligence. In the Havona universe there are a billion perfect worlds with their perfect inhabitants, but evolving man must be fallible if he is to be free. Free and inexperienced intelligence cannot possibly at first be uniformly wise. The possibility of mistaken judgment (evil) becomes sin only when the human will consciously endorses and knowingly embraces a deliberate immoral judgment. 고전12: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아도 그것이 다 한 몸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와 같습니다. The body is a unit, though it is made up of many parts; and though all its parts are many, they form one body. So it is with Christ. 우주에 있는 각 단위는 전체의 일부분으로 여겨집니다. 부분의 생존은 전체의 계획과 목적에 협력, 즉 하나님 아버지의 신적인 뜻을 행하기 위한 온 마음의 요망과 완전한 자발성에 달려 있습니다. 실수(지혜롭지 못한 판단의 가능성)가 없는 유일한 진화 세계는 자유로운 지능 존재가 없는 세계일 것입니다. 하보나 우주에는 완전한 거주민들과 함께 10억의 완전한 세계들이 있지만, 진화하는 인간은 그가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오류에 빠질 수 있어야만 합니다. 자유를 지니고 있으면서 경험이 없는 지능 존재는 처음에는 변함없이 지혜롭게 될 가능성이 도무지 없습니다. 잘못된 판단(악)의 가능성은 인간 의지가 의식적으로 시인하고, 고의적인 비도덕적 판단인 줄을 알면서 수용할 때에만 죄가 됩니다.

3:5.16 (52.2) The full appreciation of truth, beauty, and goodness is inherent in the perfection of the divine universe. The inhabitants of the Havona worlds do not require the potential of relative value levels as a choice stimulus; such perfect beings are able to identify and choose the good in the absence of all contrastive and thought-compelling moral situations. But all such perfect beings are, in moral nature and spiritual status, what they are by virtue of the fact of existence. They have experientially earned advancement only within their inherent status. Mortal man earns even his status as an ascension candidate by his own faith and hope. Everything divine which the human mind grasps and the human soul acquires is an experiential attainment; it is a reality of personal experience and is therefore a unique possession in contrast to the inherent goodness and righteousness of the inerrant personalities of Havona. 진(眞)미(美)선(善)에 대한 온전한 인식은 신적 우주의 완전성 안에 선천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하보나 세계의 거주민들은 선택의 자극으로써 상대적 가치 수준이라는 잠재성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완전한 존재들은 대조되면서 생각을 강요하는 모든 도덕적 상황들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선(善)을 식별하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완전한 존재들은 도덕적 본성과 영적 지위에 있어서, 실재의 사실 때문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천적인 지위의 한계 안에서만 경험적으로 진보를 이룩해 왔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심지어 상승하는 후보자로서의 지위도 자신의 신앙과 소망에 의해서 얻습니다. 인간의 마음으로 파악하고, 혼으로 획득하는 신적인 모든 것은 경험적 성취입니다. 그것은 고유적 경험의 실체이며, 따라서 잘못이 없는 하보나의 고유성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善)과 공의(公義)righteousness와는 대조적인 독특한 소유물입니다.

3:5.17 (52.3) The creatures of Havona are naturally brave, but they are not courageous in the human sense. They are innately kind and considerate, but hardly altruistic in the human way. They are expectant of a pleasant future, but not hopeful in the exquisite manner of the trusting mortal of the uncertain evolutionary spheres. They have faith in the stability of the universe, but they are utter strangers to that saving faith whereby mortal man climbs from the status of an animal up to the portals of Paradise. They love the truth, but they know nothing of its soul-saving qualities. They are idealists, but they were born that way; they are wholly ignorant of the ecstasy of becoming such by exhilarating choice. They are loyal, but they have never experienced the thrill of wholehearted and intelligent devotion to duty in the face of temptation to default. They are unselfish, but they never gained such levels of experience by the magnificent conquest of a belligerent self. They enjoy pleasure, but they do not comprehend the sweetness of the pleasure escape from the pain potential. 롬8:17-18 17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18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17 Now if we are children, then we are heirs-heirs of God and co-heirs with Christ, if indeed we share in his sufferings in order that we may also share in his glory. 18 I consider that our present sufferings are not worth comparing with the glory that will be revealed in us. 하보나의 창조물들은 본래부터 용기가 있지만, 인간적인 의미에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친절하고 사려가 깊지만, 인간적으로 볼 때는 이타심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즐거운 미래를 기대하고 있지만, 불확실한 진화 구체들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처럼 아름다운 태도를 가지고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우주의 안정성에 있어서는 신앙을 갖고 있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동물의 상태에서 시작해서 천국의 입구까지 오르게 하는 구원의 신앙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문외한(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사람門外漢)들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지만, 혼을 구원하는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들은 이상주의(理想主義)자들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짜릿한 선택으로 최고의 환희를 맛보는 기쁨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지합니다. 그들은 충성되지만, 주어진 의무를 행하지 않게 하는 유혹의 한복판에서, 전심으로 그리고 지성을 다해 의무에 헌신하는 전율은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이지 않지만, 싸우기 좋아하는 자아를 당당히 정복하는 그런 수준의 경험은 결코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기쁨을 즐기지만, 잠재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기쁨의 단맛은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6. The Father’s Primacy 하나님의 수위성(首位性First in Importance)

3:6.1 (52.4) With divine selflessness, consummate generosity, the Universal Father relinquishes authority and delegates power, but he is still primal; his hand is on the mighty lever of the circumstances of the universal realms; he has reserved all final decisions and unerringly wields the all-powerful veto scepter of his eternal purpose with unchallengeable authority over the welfare and destiny of the outstretched, whirling, and ever-circling creation. 신6:4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단 한 분밖에 없는 여호와이십니다.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하나님 아버지는 거룩한 비이기적 성품과 완전한 관대함으로 권위를 양도하시고, 권능을 위임하셔도, 그는 여전히 첫째로 중요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주 영역들의 상황을 조종하는 강력한 지렛대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최종적 결정권을 가지고 계시며, 외부로 확장되고, 소용돌이치며 회전하며, 항상 회전하는 창조계의 행복과 운명에 대해 도전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자신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조금도 실수 없이 전능한 거부권을 행사하십니다.

3:6.2 (52.5) The sovereignty of God is unlimited; it is the fundamental fact of all creation. The universe was not inevitable. The universe is not an accident, neither is it self-existent. The universe is a work of creation and is therefore wholly subject to the will of the Creator. The will of God is divine truth, living love; therefore are the perfecting creations of the evolutionary universes characterized by goodness — nearness to divinity; by potential evil — remoteness from divinity. 하나님의 주권은 제한이 없으며, 그것은 모든 창조에 있어서 근본적 사실입니다. 우주는 불가피하게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우주는 우연한 현상도 아니며, 스스로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주는 창조의 작품이며 따라서 창조주의 뜻에 전적으로 종속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신적 진리이며, 살아있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진화하는 우주들 가운데 완전해지는 창조계들은 신성에 가까운 선함과 신성에서 멀어진 잠재적 악이라는 특성들을 갖고 있습니다.

3:6.3 (53.1) All religious philosophy, sooner or later, arrives at the concept of unified universe rule, of one God. Universe causes cannot be lower than universe effects. The source of the streams of universe life and of the cosmic mind must be above the levels of their manifestation. The human mind cannot be consistently explained in terms of the lower orders of existence. Man’s mind can be truly comprehended only by recognizing the reality of higher orders of thought and purposive will. Man as a moral being is inexplicable unless the re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is acknowledged. 모든 종교 철학은 조만간 한 분 하나님께서 우주를 다스리신다는 통일된 개념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주의 원인들은 우주의 결과들보다 수준이 낮을 수 없습니다. 우주 생명과 조화로운 우주 마음이 흐르는 근원은 그 생명과 마음이 나타난 차원들 보다 높아야만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 보다 낮은 계층의 실재로서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높은 차원에 있는 사고와 목적이 있는 의지의 실체를 인식할 때에만 진실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도덕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우주의 아버지 하나님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습니다.

3:6.4 (53.2) The mechanistic philosopher professes to reject the idea of a universal and sovereign will, the very sovereign will whose activity in the elaboration of universe laws he so deeply reverences. What unintended homage the mechanist pays the law-Creator when he conceives such laws to be self-acting and self-explanatory! 사63: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셔서 그들을 직접 구원하셨다. 그가 사랑과 자비로 그들을 구출해 내시고 그들을 항상 돌보셨으나 In all their affliction he was afflicted, and the angel of his presence saved them: in his love and in his pity he redeemed them; and he bare them, and carried them all the days of old. 기계론적 철학자는 우주적이며 주권적인 의지에 대한 개념을 거부한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주권적 의지는 그가 그토록 경외하는 우주 법칙의 정교한 작용의 주체입니다. 그 기계론자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법칙들이 스스로 작동하고 스스로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바로 우주 법칙을 창조하신 분에게 경의를 바치는 행위입니다.

3:6.5 (53.3) It is a great blunder to humanize God, except in the concept of the indwelling Thought Adjuster, but even that is not so stupid as completely to mechanize the idea of the First Great Source and Center.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에 대한 개념을 제외하고 하나님을 인간화하는 것은 커다란 실책이지만, 첫째 근원이시며 중심에 대한 이념을 기계화하는 것처럼 전적으로 어리석은 정도는 아닙니다.

3:6.6 (53.4) Does the Paradise Father suffer? I do not know. The Creator Sons most certainly can and sometimes do, even as do mortals. The Eternal Son and the Infinite Spirit suffer in a modified sense. I think the Universal Father does, but I cannot understand how; perhaps through the personality circuit or through the individuality of the Thought Adjusters and other bestowals of his eternal nature. He has said of the mortal races, “In all your afflictions I am afflicted.” He unquestionably experiences a fatherly and sympathetic understanding; he may truly suffer, but I do not comprehend the nature thereof. 천국의 아버지께서 고통을 받으십니까? 창조주 아들들은 우리 인간들처럼 분명하게 고통을 받으실 수도 있고, 때때로 그러십니다. 영원하신 아들과 무한하신 영은 한정된 감각 안에서 괴로워하십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로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고통을 받으시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마 고유성 회로 또는 생각 조절자의 개별성과 하나님의 영원한 성품의 다른 증여들을 통해서 그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이사야63:9a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하나님은 의심할 여지없이 아버지로서의 연민어린 이해심을 통해 우리의 모든 고통을 통해 고통을 받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진실로 고통을 받으시지만 우리는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3:6.7 (53.5) The infinite and eternal Ruler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is power, form, energy, process, pattern, principle, presence, and idealized reality. But he is more; he is personal; he exercises a sovereign will, experiences self-consciousness of divinity, executes the mandates of a creative mind, pursues the satisfaction of the realization of an eternal purpose, and manifests a Father’s love and affection for his universe children. And all these more personal traits of the Father can be better understood by observing them as they were revealed in the bestowal life of Michael, your Creator Son, while he was incarnated on Urantia. 시42:2 내 영혼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애타게 그리워하는데 내가 언제나 나아가서 하나님을 뵐 수 있을까? My soul thirsts for God, for the living God. When can I go and meet with God? 우주들의 우주를 다스리시는 무한하고 영원한 통치자는 권능, 형태, 에너지, 과정, 양식(패턴), 원리principle, 현존, 및 이상화된 실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상이시며, 개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적 의지를 행사하시며, 신성(神性)에 대한 자의식을 경험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적 마음의 명령을 실행하시며, 영원한 목적을 실현하는 만족을 추구하시고, 자신의 우주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애정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러한 모든 개인적 특성들은 우리의 창조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성육신(成肉身)으로 증여하신 삶을 통해 드러난 바와 같이 그것들을 살펴볼 때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3:6.8 (53.6) God the Father loves men; God the Son serves men; God the Spirit inspires the children of the universe to the ever-ascending adventure of finding God the Father by the ways ordained by God the Sons through the ministry of the grace of God the Spirit. 하나님 아버지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아들 하나님은 사람들을 섬기십니다. 영 하나님은 우주의 자녀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가도록 언제나 상승의 모험을 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상승의 모험은 영 하나님의 은혜의 돌봄을 통해, 하나님 아들들이 규정하신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3:6.9 (53.7) [Being the Divine Counselor assigned to the presentation of the revelation of the Universal Father, I have continued with this statement of the attributes of Deity.][우주 아버지의 계시를 발표하도록 배정된 신성한 조언자인, 나는 신(神)의 속성들에 대한 이 진술을 계속함.]

Paper 2 The Nature of God 하나님의 본성

Paper 2

The Nature of God 하나님의 본성

2:0.1 (33.1) INASMUCH as man’s highest possible concept of God is embraced within the human idea and ideal of a primal and infinite personality, it is permissible, and may prove helpful, to study certain characteristics of the divine nature which constitute the character of Deity. The nature of God can best be understood by the revelation of the Father which Michael of Nebadon unfolded in his manifold teachings and in his superb mortal life in the flesh. The divine nature can also be better understood by man if he regards himself as a child of God and looks up to the Paradise Creator as a true spiritual Father. 히1:2 하나님에 대해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높은 가능한 개념은, 근원적이며 무한한 고유성에 대한 관념과 이상 안에 포함되기 때문에, 신의 성품을 구성하는 신적 본성에 대한 어떤 특성들을 연구하는 것은, 허락되는 범위 안에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다양한 교훈들과 훌륭하게 사셨던 생애를 통해, 펼치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계시를 통해, 가장 잘 이해될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여기고 천국의 창조주를 진정한 영적 아버지로 존경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신적인 본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기도 1. 하나님의 본성을 이해하는 믿음과 은혜를 주소서. 2.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3. 하나님의 본성을 이해하도록 하나님을 영적인 아버지로 존경하는 자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2 (33.2) The nature of God can be studied in a revelation of supreme ideas, the divine character can be envisaged as a portrayal of supernal ideals, but the most enlightening and spiritually edifying of all revelations of the divine nature is to be found in the comprehension of the religious life of Jesus of Nazareth, both before and after his attainment of full consciousness of divinity. If the incarnated life of Michael is taken as the background of the revelation of God to man, we may attempt to put in human word symbols certain ideas and ideals concerning the divine nature which may possibly contribute to a further illumination and unification of the human concept of the nature and the character of th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요14:9 하나님의 본성은 최상의 관념들이 계시될 때 연구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적인 특성은 천상의 이상들이 묘사될 때 마음에 그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적인 본성의 모든 계시들 중에서, 신성의 충만한 의식에 이르기 이전과 이후의, 나사렛 예수의 종교적인 생애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가장 분명한 통찰력과 영적인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하신 생애를, 인간에게 하나님을 계시하는 근거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신적인 본성에 관한, 어떤 관념들과 이상들을, 인간이 지닌 단어의 상징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됩니다. 그 관념들과 이상들은 아마 우주의 아버지 하나님이 지닌 고유성의 본성과 특성에 대한 인간의 개념을 더 온전히 조명하고 통합하게 합니다. 기도 1.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하소서. 2. 인간으로 성육신(成肉身)하신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고유성이 지닌 신적인 본성과 특성을 파악하게 하소서.

2:0.3 (33.3) In all our efforts to enlarge and spiritualize the human concept of God, we are tremendously handicapped by the limited capacity of the mortal mind. We are also seriously handicapped in the execution of our assignment by the limitations of language and by the poverty of material which can be utilized for purposes of illustration or comparison in our efforts to portray divine values and to present spiritual meanings to the finite, mortal mind of man. All our efforts to enlarge the human concept of God would be well-nigh futile except for the fact that the mortal mind is indwelt by the bestowed Adjuster of the Universal Father and is pervaded by the Truth Spirit of the Creator Son. Depending, therefore, on the presence of these divine spirits within the heart of man for assistance in the enlargement of the concept of God, I cheerfully undertake the execution of my mandate to attempt the further portrayal of the nature of God to the mind of man. 요일2:20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개념을 확대하고 영성화하는데 있어서, 인간 이성의 제한된 수용능력 때문에 많은 장애가 발생합니다. 신적인 가치를 표현하고, 유한한 인간의 마음에 영적인 의미를 제시하기 위해 노력해도, 제한된 언어와, 설명과 비교의 목적을 위해 활용될 자료의 빈곤이 심각한 지장을 초래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개념을 확장하려는 노력은, 만약,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도록 보내신 아버지의 영이 없고,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진리의 영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확장된 개념을 돕기 위해, 인간의 마음 안에 계시는 이러한 거룩한 영들의 현존을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본성을 조금 더 온전히 묘사하려는 시도를 기쁘게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 1.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2.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과 진리의 영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따르게 하소서.

1. The Infinity of God 하나님의 무한성

2:1.1 (33.4) “Touching the Infinite, we cannot find him out. The divine footsteps are not known.” “His understanding is infinite and his greatness is unsearchable.” The blinding light of the Father’s presence is such that to his lowly creatures he apparently “dwells in the thick darkness.” Not only are his thoughts and plans unsearchable, but “he does great and marvelous things without number.” “God is great; we comprehend him not, neither can the number of his years be searched out.” “Will God indeed dwell on the earth? Behold, the heaven (universe) and the heaven of heavens (universe of universes) cannot contain him.” “How unsearchable are his judgments and his ways past finding out!” 욥37:23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측량할 수가 없다. 그는 능력이 크고 모든 일에 의롭고 공정하신 분이시다(현대인의 성경). 시147:5 우리 주는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한하시다(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무한하신 하나님과 접촉(터치)하면서도, 하나님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시77:19 주께서 물결을 헤쳐 지나가시고 깊은 바다를 건너가셨으나 주의 발자국은 볼 수 없었습니다(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이해는 무한하시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욥12:13 그러나 참된 지혜와 능력은 하나님의 것이며 예지와 통찰력도 그의 것이다. 시145:3 여호와는 위대하시므로 높이 찬양을 받으실 분이시다. 그의 위대하심은 측량할 수가 없다(현대인의 성경). 아버지 하나님이 지니신 빛은 우리 인간의 눈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낮은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은 깊은 어둠 속에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왕상8:12 그때 솔로몬이 말하였다. ‘여호와여, 주께서는 캄캄한 구름 가운데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하6:1 그때 솔로몬이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여, 주께서는 캄캄한 구름 가운데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4:11 여러분이 그 산기슭에 섰을 때에 그 산에 불이 붙어 화염이 하늘까지 치솟고 그 주위는 검은 구름과 짙은 어둠으로 뒤덮였습니다. 출20:21 그러나 백성들은 계속 멀리 서 있었으며 모세는 하나님이 계시는 짙은 구름으로 가까이 접근하였다. 신5:22-23 22 여호와께서는 짙은 구름과 어두움으로 둘러싸인 시내산의 불 가운데서 여러분에게 큰 음성으로 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서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기록하여 나에게 주셨습니다. 23 여러분이 어두움 속에서 들려오는 큰 음성을 듣고 또 산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 모두 나에게 와서 하나님의 생각들과 계획들은 측량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위대하시며 놀라운 일들을 헤아릴 수도 없이 행하십니다. 욥5:9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기적도 수없이 행하시며 욥9:10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일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기적을 행하신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연한을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욥36:26 하나님은 너무 위대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연수도 헤아릴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땅 위에 거하실까요? 보라, 하늘(우주)과 하늘들의 하늘(우주들의 우주)가 하나님을 담을 수 없도다. 왕상8:27 하나님이시여, 그렇지만 주께서 정말 땅에 계실 수 있겠습니까? 가장 높은 하늘도 주를 모실 곳이 못되는데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 어떻게 주를 모실 수 있겠습니까? 대하2:6 그러나 누가 실제로 하나님을 모실만 한 성전을 건축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높은 하늘이라도 그분을 수용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 어마어마한 성전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내가 짓고자 하는 것은 그분에게 분향할 장소에 불과합니다. 대하6:18 하나님이시여, 그렇지만 주께서 정말 사람들과 함께 땅에 계실 수 있겠습니까? 가장 높은 하늘도 주를 모실 곳이 못되는데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에 어떻게 주를 모실 수 있겠습니까? 느9:6 주는 유일하신 여호와이시며 하늘과 별, 그리고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고 생명을 주시므로 수많은 하늘의 천사들이 주께 경배를 드립니다. 시148:4 가장 높은 하늘아, 그를 찬양하라. 하늘 위에 있는 물아, 그를 찬양하라. 신10:14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것입니다만 롬11:33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란 그 깊이가 끝이 없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추적할 수가 없습니다.

2:1.2 (34.1) “There is but one God, the infinite Father, who is also a faithful Creator.” “The divine Creator is also the Universal Disposer, the source and destiny of souls. He is the Supreme Soul, the Primal Mind, and the Unlimited Spirit of all creation.” “The great Controller makes no mistakes. He is resplendent in majesty and glory.” “The Creator God is wholly devoid of fear and enmity. He is immortal, eternal, self-existent, divine, and bountiful.” “How pure and beautiful, how deep and unfathomable is the supernal Ancestor of all things!” “The Infinite is most excellent in that he imparts himself to men. He is the beginning and the end, the Father of every good and perfect purpose.”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the eternal Creator is the cause of causes.” 고전8:6 그러나 우리에게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한 분뿐이십니다. 그분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우리도 그분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또 우리의 주님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그분을 통해서 만물이 창조되었고 우리도 그분을 통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직 한 분, 무한하신 아버지는 신실한 창조주이십니다. 엡4:6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해 일하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벧전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은 계속 선한 일을 하면서 그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입니다. 신적인 창조주는 우주의 모든 일들을 결정하시며, 지적인 혼들의 근원과 운명(destiny)이십니다. 욥34:13 누가 그에게 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으며 온 세계를 그에게 맡겼습니까? 잠16:33 제비를 뽑는 일은 사람이 하지만 그 일을 결정하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사41:4 누가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였느냐? 누가 역사의 과정을 정하였느냐?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도 있었고 세상 끝 날에도 있을 나 여호와가 아니냐? 계1:8 주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 지금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 올 전능한 자이다.’ 계1:17-18 17 나는 그분을 보고 그 발 앞에 엎드려 마치 죽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나에게 오른손을 얹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며 18 살아 있는 자이다. 내가 전에 죽었으나 이제는 영원히 살아 있으며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사44:6 이스라엘의 왕이신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시는 전능하신 여호와가 말씀하신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계21:6 그분은 또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다 마쳤다.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이다. 내가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의 샘물을 값없이 주겠다. 계22:13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이다.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혼이시며, 마음의 근원이시고, 모든 창조에 있어서 제한이 없으신 영이십니다. 사40:28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듣지도 못하였느냐? 여호와는 영원하신 분이시며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것을! 그는 피곤하거나 지치지 않으며 그의 깊은 생각은 헤아릴 수가 없다. 시104:30 주께서 주의 영을 보내시므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여 지면을 새롭게 합니다. 위대하신 조정자 하나님은 결코 실수가 없으시며, 그 분은 위엄과 영광으로 찬란하십니다. 삼하22:31 하나님의 행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참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가 되신다. 대상29:11 능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은 다 주께 속하였으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여호와여,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이 주께 있습니다. 사2:19 여호와께서 일어나 땅을 진동시키실 때 사람들이 그의 영광과 위엄의 광채 때문에 무서워서 바위 동굴과 땅굴로 달아나 숨을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두려움과 미움이 전혀 없으십니다. 그는 불멸하고 영원하며 자존하시고 신성하시고 풍성하십니다. 롬1:20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그의 속성,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을 통해 분명히 나타나서 알게 되었으니 이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딤전1:17 영원한 왕이시며 죽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길이길이 존귀와 영광을 돌립시다. 아멘. 계1:8 주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 지금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 올 전능한 자이다.’ 하늘에 계신 만물의 조상이신 하나님은 얼마나 깨끗하시고, 아름다우시며, 깊고, 측량할 수 없으신가? 무한하신 하나님은 탁월하게 자신을 우리에게 나눠주십니다. 그 분은 시작과 끝이시며, 모든 선하고 완전한 목적이 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고전1:12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을 우리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엡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모든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시84:11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태양이시요 방패이시며 우리에게 은혜와 영광을 주시고 올바르게 사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는 분이십니다. 사48: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부른 백성 이스라엘아, 내 말을 들어라. 나는 유일한 하나님이며 처음과 마지막이다. 약1:17 완전하고 좋은 모든 선물은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옵니다. 하나님은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변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시며, 영원하신 창조주는 원인들 중의 원인이십니다. 마19:26 예수님은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막10:27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며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눅1:37 하나님에게는 안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눅18:27 예수님이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막14:36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창18:14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 내년 정한 때에 내가 너에게 돌아 올 것이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렘32:17 ‘주 여호와여, 주는 위대한 능력과 힘으로 천지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주에게는 어려워서 못하실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

2:1.3 (34.2) Notwithstanding the infinity of the stupendous manifestations of the Father’s eternal and universal personality, he is unqualifiedly self-conscious of both his infinity and eternity; likewise he knows fully his perfection and power. He is the only being in the universe, aside from his divine co-ordinates, who experiences a perfect, proper, and complete appraisal of himself. 출3:14 하나님 아버지의 고유성은 영원하며 우주적입니다. 그 하나님의 고유성은 거대한 규모로 무한하게 드러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무한성과 영원성을 온전히 자각하고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자신의 완전하심과 권능도 충분히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신성한 동등위들을 제외한다면, 하나님 아버지만이 자신에 대해 온전하며 타당하게 그리고 완벽한 평가를 체험하시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2:1.4 (34.3) The Father constantly and unfailingly meets the need of the differential of demand for himself as it changes from time to time in various sections of his master universe. The great God knows and understands himself; he is infinitely self-conscious of all his primal attributes of perfection. God is not a cosmic accident; neither is he a universe experimenter. The Universe Sovereigns may engage in adventure; the Constellation Fathers may experiment; the system heads may practice; but the Universal Father sees the end from the beginning, and his divine plan and eternal purpose actually embrace and comprehend all the experiments and all the adventures of all his subordinates in every world, system, and constellation in every universe of his vast domains. 사46:9-10 9 너희는 오래 전에 있었던 옛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고 나와 같은 자도 없다. 10 나는 처음부터 일의 결과를 말하였으며 오래 전에 벌써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하였고 내 계획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행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이 창조하신 전 우주의 여러 구역들 안에서 시간에 따라 발생되는 다양한 필요들을 지속적으로 완전하게 그리고 반드시 충족하십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은 자신을 잘 알고 이해하십니다. 하나님은 무한하게 자신을 의식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속한 완전성의 모든 근원적 속성에 대해 제한이 없이 파악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주에서 우연히 발생한 현상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주를 실험하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에 해당되는 우주의 주권자들은 모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별자리의 아버지들은 실험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체계의 지도자는 실전을 위해 연습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아버지 하나님은 시작점에서 끝을 동시에 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신성한 계획과 영원한 목적은 실제로 모든 실험들과 모험들을 모두 다 포함하고 이해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영역 안에 있는 모든 우주의 모든 세상, 체계, 별자리 안에서 하나님에게 속한 모든 존재들은 온갖 실험들과 모험들을 겪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모두 둘러싸시며 완전히 파악하고 계십니다.

2:1.5 (34.4) No thing is new to God, and no cosmic event ever comes as a surprise; he inhabits the circle of eternity. He is without beginning or end of days. To God there is no past, present, or future; all time is present at any given moment. He is the great and only I AM. 사57:15 나는 가장 높고 거룩하며 영원히 사는 하나님이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살면서도 겸손한 마음으로 죄를 깊이 뉘우치는 자와 함께 하는 것은 내가 회개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기 위해서이다(현대인의 성경). For thus saith the high and lofty One that inhabiteth eternity, whose name is Holy; I dwell in the high and holy place, with him also that is of a contrite and humble spirit, to revive the spirit of the humble, and to revive the heart of the contrite ones(KJV). 하나님에게 새로운 것은 어떤 것도 없습니다. 우주에서 발생하는 어떤 사건도 하나님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순환하는 영원성에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으며, 미래도 없습니다. 모든 시간은 주어진 어떤 순간에만 존재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며, 유일하게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2:1.6 (34.5) The Universal Father is absolutely and without qualification infinite in all his attributes; and this fact, in and of itself, automatically shuts him off from all direct personal communication with finite material beings and other lowly created intelligences. 히1:14 천사들은 모두 섬기는 영들이며 앞으로 구원받을 사람들을 섬기라고 하나님이 보내신 일꾼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무한한 속성을 지니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무한성 자체 때문에 유한한 물질적 존재들과 낮게 창조된 지성들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없게 됩니다.

2:1.7 (34.6) And all this necessitates such arrangements for contact and communication with his manifold creatures as have been ordained, first, in the personalities of the Paradise Sons of God, who, although perfect in divinity, also often partake of the nature of the very flesh and blood of the planetary races, becoming one of you and one with you; thus, as it were, God becomes man, as occurred in the bestowal of Michael, who was called interchangeably the Son of God and the Son of Man. And second, there are the personalities of the Infinite Spirit, the various orders of the seraphic hosts and other celestial intelligences who draw near to the material beings of lowly origin and in so many ways minister to them and serve them. And third, there are the impersonal Mystery Monitors, Thought Adjusters, the actual gift of the great God himself sent to indwell such as the humans of Urantia, sent without announcement and without explanation. In endless profusion they descend from the heights of glory to grace and indwell the humble minds of those mortals who possess the capacity for God-consciousness or the potential therefor. 하나님의 다양한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접촉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다음의 방법을 마련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천국 아들들의 고유성으로 우리와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의 천국 아들들은 완성한 신성을 지니셨음에도 불구하고, 육신과 피를 지닌 사람의 본성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의 천국 아들들은 우리와 함께 우리들 중의 한 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동시에 사람의 아들로 불리는 미가엘의 증여를 통해 일어났듯이, 하나님이 인간이 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무한 영의 고유성들 즉, 다양한 계층의 세라핌 천사들과 다른 천상의 지능존재들을 통해 우리와 소통하십니다. 그들은 낮은 기원을 지닌 물질적 존재들에게 접근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돌보며 그들에게 봉사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자신의 영으로 우리와 접촉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은 위대하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도록 보내신 하나님 자신의 실제 선물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영은 어떤 설명이나 예고도 없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신비하신 인도자로서 우리의 생각을 조절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은 한없는 풍성함으로 영광스러운 높은 자리에게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우리에게 은총을 더하십니다. 이 영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는 영적 수용능력과 그러한 잠재능력을 지닌, 겸손한 마음에 실제로 거하십니다.

2:1.8 (35.1) In these ways and in many others, in ways unknown to you and utterly beyond finite comprehension, does the Paradise Father lovingly and willingly downstep and otherwise modify, dilute, and attenuate his infinity in order that he may be able to draw nearer the finite minds of his creature children. And so, through a series of personality distributions which are diminishingly absolute, the infinite Father is enabled to enjoy close contact with the diverse intelligences of the many realms of his far-flung universe. 눅15:20 그리고서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 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가 멀리서 오고 있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달려가서 아들을 얼싸안고 입을 맞추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 다양한 방법들은 모두 유한한 우리의 이해력을 초월하지만, 모두 하나님의 자발적인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지닌 한계를 뚫고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위해, 자신이 지니신 무한성을 변형하고, 희석시키며 약화시키는 과정을 감수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널리 퍼져 있는 우주의 수많은 영역들에 있는 다양한 지적 존재들과 가까이 접촉하기 위해 절대성이 감소되는 일련의 고유성 분배를 개의치 않으십니다.

2:1.9 (35.2) All this he has done and now does, and evermore will continue to do, without in the least detracting from the fact and reality of his infinity, eternity, and primacy. And these things are absolutely true, notwithstanding the difficulty of their comprehension, the mystery in which they are enshrouded, or the impossibility of their being fully understood by creatures such as dwell on Urantia.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셨고, 지금도 행하시고 계신 모든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무한성, 영원성, 근원성의 사실과 실제를 손상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같은 피조물들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신비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불가능하며,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어렵지만, 이러한 사실들은 절대적으로 참됩니다.

2:1.10 (35.3) Because the First Father is infinite in his plans and eternal in his purposes, it is inherently impossible for any finite being ever to grasp or comprehend these divine plans and purposes in their fullness. Mortal man can glimpse the Father’s purposes only now and then, here and there, as they are revealed in relation to the outworking of the plan of creature ascension on its successive levels of universe progression. Though man cannot encompass the significance of infinity, the infinite Father does most certainly fully comprehend and lovingly embrace all the finity of all his children in all universes. 첫째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무한한 계획과 영원한 목적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에 그 분의 신적인 계획들과 목적들을 충분히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유한한 우리에게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우리들은 단지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들을 잠간씩 여기저기에서 얼핏 파악할 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들은 우주가 진보하는 연속적인 차원들에서 우리 피조물이 상승하는 계획이 실행되는 수준의 정도에 따라 계시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무한성의 의미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우주에 있는 자녀들의 유한성을 명백히 그리고 충분히 이해하시며 모두 사랑으로 품어주십니다.

2:1.11 (35.4) Divinity and eternity the Father shares with large numbers of the higher Paradise beings, but we question whether infinity and consequent universal primacy is fully shared with any save his co-ordinate associates of the Paradise Trinity. Infinity of personality must, perforce, embrace all finitude of personality; hence the truth — literal truth — of the teaching which declares that “In Him we live and move and have our being.” That fragment of the pure Deity of the Universal Father which indwells mortal man is a part of the infinity of the First Great Source and Center, the Father of Fathers. 행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For in him we live, and move, and have our being; as certain also of your own poets have said, For we are also his offspring. 하나님 아버지는 수없이 많은 천국의 존재들과 신성과 영원성을 공유하십니다. 그러나 무한성과 그 결과로 주어지는 우주의 근원성은 천국 삼위일체의 동격 존재들을 제외하고 어떤 존재와 충분히 공유하는지 명백히 알 수는 없습니다. 고유존재의 무한성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고유존재의 모든 유한성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고 선언하는 가르침은 문자 그대로 진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은 순수한 신성의 영이십니다. 그 순수한 신성의 영은 인간의 내면에 내주하십니다. 그 아버지의 영은 첫째 근원이시며 중심이신 하나님 아버지 즉 아버지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무한성의 일부분입니다.

2. The Father’s Eternal Perfection 영원한 완전성

2:2.1 (35.5) Even your olden prophets understood the eternal, never-beginning, never-ending, circular nature of the Universal Father. God is literally and eternally present in his universe of universes. He inhabits the present moment with all his absolute majesty and eternal greatness. “The Father has life in himself, and this life is eternal life.” Throughout the eternal ages it has been the Father who “gives to all life.” There is infinite perfection in the divine integrity. “I am the Lord; I change not.” Our knowledge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discloses not only that he is the Father of lights, but also that in his conduct of interplanetary affairs there “is no variableness neither shadow of changing.” He “declares the end from the beginning.” He says: “My counsel shall stand; I will do all my pleasures” “according to the eternal purpose which I purposed in my Son.” Thus are the plans and purposes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like himself: eternal, perfect, and forever changeless. 요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For as the Father hath life in himself; so hath he given to the Son to have life in himself 우리의 옛 선지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시작도 끝도 없는 순환적 본성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우주에 문자 그대로 영원히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절대적 위엄과 영원한 위대성을 가지고 현재 순간에 거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 안에 생명을 소유하고 계시며, 이 생명은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시대를 거쳐 오는 동안, 모든 생명을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행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신적인 온전함 안에 무한한 완전성이 있습니다. 나는 주(主)님이며, 변하지 않는다(말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하나님께서 빛들의 아버지이시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주의 행성들에서 행하시는 그의 행위는 변경의 가능성도 없으시고 변화의 그림자도 없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약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시작하면서부터 종말을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며, 나는 내 아들 안에서 결정한 영원한 목적에 따라 나는 내가 기뻐하는 모든 일을 행할 것이다(사46:10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그러므로 첫째 근원이시며 중심이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들은, 하나님 자신처럼 영원하고 완전하며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2:2.2 (35.6) There is finality of completeness and perfection of repleteness in the mandates of the Father. “Whatsoever God does, it shall be forever; nothing can be added to it nor anything taken from it.” The Universal Father does not repent of his original purposes of wisdom and perfection. His plans are steadfast, his counsel immutable, while his acts are divine and infallible. “A thousand years in his sight are but as yesterday when it is past and as a watch in the night.” The perfection of divinity and the magnitude of eternity are forever beyond the full grasp of the circumscribed mind of mortal man. 전3:14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은 끝까지 완벽하며, 완전함으로 충만합니다. 전3:14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더하거나 제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목적은 사람이 그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I know that everything God does will endure forever; nothing can be added to it and nothing taken from it. God does it so that men will revere him. 하나님 아버지는 지혜와 완전함에 대해 원래부터의 목적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들은 확고부동합니다. 하나님의 방침은 변경되지 않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행하심은 거룩하며 오류가 없습니다. 시90:4 주에게는 천 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For a thousand years in thy sight are but as yesterday when it is past, and as a watch in the night. 신성의 완전성과 영원의 장엄함은 인간의 제한된 마음으로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범위를 영원히 초월합니다.

2:2.3 (36.1) The reactions of a changeless God, in the execution of his eternal purpose, may seem to vary in accordance with the changing attitude and the shifting minds of his created intelligences; that is, they may apparently and superficially vary; but underneath the surface and beneath all outward manifestations, there is still present the changeless purpose, the everlasting plan, of the eternal God.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대로 행하실 때, 하나님의 반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적존재들 자신이 변하는 태도와 달라지는 마음에 따라 하나님의 반응이 변경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반응은 언뜻 보기에는 바뀌는 것처럼 보이지만, 표면 아래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변함이 없는 목적이 있습니다. 외적으로 드러난 그 이면에는 한결같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존재합니다.

2:2.4 (36.2) Out in the universes, perfection must necessarily be a relative term, but in the central universe and especially on Paradise, perfection is undiluted; in certain phases it is even absolute. Trinity manifestations vary the exhibition of the divine perfection but do not attenuate it. 말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For I am the LORD, I change not; therefore ye sons of Jacob are not consumed. 우주의 중심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완전성은 부득이 상대적인 용어가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중심 특별히 천국에서 완전성은 묽어질 수 없으며, 어떤 상황에서 그것은 심지어 절대적입니다. 삼위일체는 절대세계의 하나님께서 상대세계에 계시된 신적인 완전성의 다양한 현시이지만, 그 완전성은 희석되지 않습니다.

2:2.5 (36.3) God’s primal perfection consists not in an assumed righteousness but rather in the inherent perfection of the goodness of his divine nature. He is final, complete, and perfect. There is no thing lacking in the beauty and perfection of his righteous character. And the whole scheme of living existences on the worlds of space is centered in the divine purpose of elevating all will creatures to the high destiny of the experience of sharing the Father’s Paradise perfection. God is neither self-centered nor self-contained; he never ceases to bestow himself upon all self-conscious creatures of the vast universe of universes. 하나님의 근원적인 완전성은 가정(假定)된 정의(正義)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적인 본성이 지니신 본래적 선하심의 완전성입니다. 하나님은 최종적이시고, 완벽하시며,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이 지니신 아름다우심과 완전하심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공간에서, 살아있는 존재들의 전체적 계획은 신적인 목적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신적인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니신 천국의 완전함을 공유하는 높은 운명적 체험을 향해 모든 의지적 피조물을 고양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중심적이지도 않고, 자아 억제적이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광대한 우주에 있는, 자기를 의식하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자신을 쉬지 않고 나눠 주십니다.

2:2.6 (36.4) God is eternally and infinitely perfect, he cannot personally know imperfection as his own experience, but he does share the consciousness of all the experience of imperfectness of all the struggling creatures of the evolutionary universes of all the Paradise Creator Sons. The personal and liberating touch of the God of perfection overshadows the hearts and encircuits the natures of all those mortal creatures who have ascended to the universe level of moral discernment. In this manner, as well as through the contacts of the divine presence, the Universal Father actually participates in the experience with immaturity and imperfection in the evolving career of every moral being of the entire universe. 엡3:8-9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 가운데서 가장 보잘것없는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기쁜 소식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시고 또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오래 전부터 숨겨졌던 신비로운 계획이 어떤 것인가를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완전하시며, 무한히 온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은 경험적으로 불완전성을 몸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화하는 우주에서 분투하는 모든 피조물들이 겪는 불완전함의 모든 경험에 대한 의식을 공유하십니다. 그 모든 피조물들은 모든 천국 창조주 아들들에게 속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개인적이며 자유로운 손길은 도덕적으로 분별하는 우주의 수준에 도달한 피조물들의 마음을 압도하시며, 그들의 본성을 둘러싸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방법과 신성한 현존의 접촉을 통해서, 우주의 아버지는, 전(全) 우주의 모든 도덕적 존재의 진화적 생애가 지닌, 미성숙함과 불완전성의 체험에 실제적으로 함께 참여하십니다.

2:2.7 (36.5) Human limitations, potential evil, are not a part of the divine nature, but mortal experience with evil and all man’s relations thereto are most certainly a part of God’s ever-expanding self-realization in the children of time — creatures of moral responsibility who have been created or evolved by every Creator Son going out from Paradise. 인간이 지닌 한계들과 잠재적인 악은 신적 본성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악을 경험하는 사람들과 그러한 것들과 관련된 모든 인간관계는 대부분 명백하게, 언제나 확장된 하나님 자아실현의 일부분입니다. 시간의 한계 안에서 살아가는 자녀들은 천국에서 파송된 모든 창조주 아들에 의해 창조되고 진화된 도덕적 책임을 지닌 존재들이며, 이들의 체험과 관계들은 하나님 자아실현의 방법입니다.

3. Justice and Righteousness 정의(正義)와 공의(公義)

2:3.1 (36.6) God is righteous; therefore is he just. “The Lord is righteous in all his ways.” “‘I have not done without cause all that I have done,’ says the Lord.” “The judgments of the Lord are true and righteous altogether.” The justice of the Universal Father cannot be influenced by the acts and performances of his creatures, “for there is no iniquity with the Lord our God, no respect of persons, no taking of gifts.” 시145:17 여호와는 그가 행하시는 모든 일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위에 자비로운 분이시다. The LORD is righteous in all his ways, and holy in all his works.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따라서 그는 정의로우십니다(시145:17). “내가 행한 모든 일이 이유 없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겔14:23 너희가 그들의 행동을 보고 위로를 받게 될 것은 내가 이유 없이 이 모든 일을 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다. And they shall comfort you, when ye see their ways and their doings: and ye shall know that I have not done without cause all that I have done in it, saith the Lord GOD. “주님의 판단은 진실하며 모두 공의로우십니다.” 시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The fear of the LORD is clean, enduring for ever: the judgments of the LORD are true and righteous altogether. 하나님 아버지의 정의(正義)는 피조물의 행위와 공적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불의가 없으시며, 사람을 차별하지도 않으시고, 뇌물을 받지도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대하19:7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재판하십시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부정하고 공정치 못한 재판이나 뇌물 받는 일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Wherefore now let the fear of the LORD be upon you; take heed and do it: for there is no iniquity with the LORD our God, nor respect of persons, nor taking of gifts.

2:3.2 (36.7) How futile to make puerile appeals to such a God to modify his changeless decrees so that we can avoid the just consequences of the operation of his wise natural laws and righteous spiritual mandates! “Be not deceived; God is not mocked, for whatsoever a man sows that shall he also reap.” True, even in the justice of reaping the harvest of wrongdoing, this divine justice is always tempered with mercy. Infinite wisdom is the eternal arbiter which determines the proportions of justice and mercy which shall be meted out in any given circumstance. The greatest punishment (in reality an inevitable consequence) for wrongdoing and deliberate rebellion against the government of God is loss of existence as an individual subject of that government. The final result of wholehearted sin is annihilation. In the last analysis, such sin-identified individuals have destroyed themselves by becoming wholly unreal through their embrace of iniquity. The factual disappearance of such a creature is, however, always delayed until the ordained order of justice current in that universe has been fully complied with. 갈6:7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당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Be not deceived; God is not mocked: for whatsoever a man soweth, that shall he also reap.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께 그 분의 변경할 수 없는 명령을 바꾸라는 철없는 간청은 얼마나 무모한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로운 자연 법칙들과 의로운 영적 명령의 결과를 피하려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갈6:7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당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인간의 잘못된 행위의 결과를 거두는 공의의 집행에 있어서, 이러한 신적인 정의는 항상 자비로 인하여 경감됩니다. 무한한 지혜는 주어진 상황에서 정의와 자비의 비율을 결정하는 영원한 판정자입니다. 잘못된 행위와 하나님의 정부에 대항하는 의도적인 반역으로 인해 실제로 피할 수 없는 가장 큰 처벌은 그 정부의 개인적 주체인 존재의 소멸입니다. 전심으로 범한 죄의 최종적 결과는 절대적인 멸망입니다. 결국 그렇게 죄와 동일시하는 개인들이 불의(사악, 불법)를 끌어안을 때, 전적으로 비존재가 되어 스스로를 파괴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피조물들이 실제로 소멸되는 일은, 우주에서 통용되는 예정된 정의의 절차가 이행될 때까지, 언제나 지연됩니다.

2:3.3 (37.1) Cessation of existence is usually decreed at the dispensational or epochal adjudication of the realm or realms. On a world such as Urantia it comes at the end of a planetary dispensation. Cessation of existence can be decreed at such times by co-ordinate action of all tribunals of jurisdiction, extending from the planetary council up through the courts of the Creator Son to the judgment tribunals of the Ancients of Days. The mandate of dissolution originates in the higher courts of the superuniverse following an unbroken confirmation of the indictment originating on the sphere of the wrongdoer’s residence; and then, when sentence of extinction has been confirmed on high, the execution is by the direct act of those judges residential on, and operating from, the headquarters of the superuniverse. 옵1:16 네가 나의 거룩한 산에서 형벌의 쓴 잔을 마신 것처럼 네 주변의 모든 나라들도 그 잔을 마실 것이다. 그들은 한없이 마시고 비틀거리다가 아주 사라지고 말 것이다.’ For as ye have drunk upon my holy mountain, so shall all the heathen drink continually, yea, they shall drink, and they shall swallow down, and they shall be as though they had not been. 존재의 정지는 대개 각 영역의 섭리 시대나 새 시대의 판결이 있을 때 선언됩니다. 우리와 같은 세계는 섭리시대의 마지막에 존재가 정지됩니다. 행성 협의회로부터, 창조주 아들의 법정을 거쳐서,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심판 법정까지, 심판하는 모든 사법적 공동 판결에 의해 섭리 시대나 새 시대의 판결 시에 존재의 정지가 선포됩니다. 소멸의 명령은 잘못을 행한 거주 구체에서 비롯된 고발 문서를 연속적으로 확인한 후, 초우주의 고등법원에서 시작합니다. 그 후 소멸 판결(선고)은 상부에서 확인한 후, 초우주의 본부에 거주하면서 활동하는 판사들의 직접적인 행위로 그 집행이 이루어집니다.

2:3.4 (37.2) When this sentence is finally confirmed, the sin-identified being instantly becomes as though he had not been. There is no resurrection from such a fate; it is everlasting and eternal. The living energy factors of identity are resolved by the transformations of time and the metamorphoses of space into the cosmic potentials whence they once emerged. As for the personality of the iniquitous one, it is deprived of a continuing life vehicle by the creature’s failure to make those choices and final decisions which would have assured eternal life. When the continued embrace of sin by the associated mind culminates in complete self-identification with iniquity, then upon the cessation of life, upon cosmic dissolution, such an isolated personality is absorbed into the oversoul of creation, becoming a part of the evolving experience of the Supreme Being. Never again does it appear as a personality; its identity becomes as though it had never been. In the case of an Adjuster-indwelt personality, the experiential spirit values survive in the reality of the continuing Adjuster. 욥4:8 사람들이 죄악의 밭을 갈아 악을 씨 뿌리듯 하지만 결국 그들은 심은 대로 거둔다. 존재의 소멸 판결이 최종적으로 확정되면, 죄와 동일시 된 존재는 즉시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되어버립니다. 그런 운명에게 부활은 없으며, 존재의 소멸은 영속적이며 영원합니다. 그 존재의 정체성이 지니고 있었던 살아있는 에너지 요소들은 모두 다 분해되어 버립니다. 그 요소들은 시간변환과 공간변형을 통해, 그것들이 시작되었던 ‘조화로운 우주’의 잠재성 안으로, 모두 분해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보장할 수도 있었던 선택들과 최종적인 결정들에 실패한 피조물들은, 지속적으로 불의한 고유성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생명을 지속할 수 있는 매체를 빼앗겨 버립니다. 불의한 고유성과 관련된 마음이 지속적으로 죄를 품게 되면, 그 마음은, 불의와 완전한 동일시된 자기 정체성이라는 극도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 후에 생명이 정지되어 우주적 분해가 일어나고, 그렇게 고립된 고유성은 창조의 대혼(大魂) 속으로 흡수되며, 최극 존재가 지니는 진화 체험의 일부가 됩니다. 그 고유성은 결코 다시는 나타나지 못하고, 그 정체성은 마치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됩니다. 그 고유성에 내주했던 조절자는 계속되기 때문에, 그 정체성이 경험했던 영적 가치들은, 그 조절자의 실체 안에 살아남게 됩니다.

2:3.5 (37.3) In any universe contest between actual levels of reality, the personality of the higher level will ultimately triumph over the personality of the lower level. This inevitable outcome of universe controversy is inherent in the fact that divinity of quality equals the degree of reality or actuality of any will creature. Undiluted evil, complete error, willful sin, and unmitigated iniquity are inherently and automatically suicidal. Such attitudes of cosmic unreality can survive in the universe only because of transient mercy-tolerance pending the action of the justice-determining and fairness-finding mechanisms of the universe tribunals of righteous adjudication. 시19:9 여호와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일은 순수하므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여호와의 심판은 공정하고 의로우므로 실체의 실제적인 수준들 사이의 우주 경쟁에 있어서, 상위 수준의 고유성이 궁극적으로 하위 수준의 고유성을 이기게 됩니다. 이러한 우주 논쟁의 필연적인 결론은 본래적입니다. 어떤 의지를 지닌 피조물이든지, 이러한 신적인 특성은 실체 또는 실제의 정도와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순전한 악evil, 철저한 잘못error, 고의적인 죄sin, 꺾이지 않는 지독한 불의(사악iniquity)는 본래, 자동적으로 자멸입니다. 그런 태도들은 조화로운 우주 안에서 존재할 수 없는 비실체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비실체들은, 정의를 내리는 결정의 행위가 계류 중이며, 공의의 판결에 대한 우주 법정의 공정한 절차를 찾는, 과도기적 자비와 관용에 의해서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2:3.6 (37.4) The rule of the Creator Sons in the local universes is one of creation and spiritualization. These Sons devote themselves to the effective execution of the Paradise plan of progressive mortal ascension, to the rehabilitation of rebels and wrong thinkers, but when all such loving efforts are finally and forever rejected, the final decree of dissolution is executed by forces acting under the jurisdiction of the Ancients of Days. 지역 우주에서 창조주 아들들의 통치는 창조와 영성화의 일치입니다. 이 분들은 진보하는 창조물들이 상승하는 천국의 계획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하여 자신들을 헌신하십니다. 이들은 반역자들과 잘못 생각하는 자들이 돌이키도록 최선을 다 쏟으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사랑의 노력들이 최종적으로 영원히 거절되면,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사법권 아래에서 행동하는 세력에 의해, 최종적 소멸 명령이 집행됩니다.

4. The Divine Mercy 거룩한 자비

2:4.1 (38.1) Mercy is simply justice tempered by that wisdom which grows out of perfection of knowledge and the full recognition of the natural weaknesses and environmental handicaps of finite creatures. “Our God is full of compassion, gracious, long-suffering, and plenteous in mercy.” Therefore “whosoever calls upon the Lord shall be saved,” “for he will abundantly pardon.” “The mercy of the Lord is from everlasting to everlasting”; yes, “his mercy endures forever.” “I am the Lord who executes loving-kindness, judgment, and righteousness in the earth, for in these things I delight.” “I do not afflict willingly nor grieve the children of men,” for I am “the Father of mercies and the God of all comfort.” 시86:15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분이시며 쉽게 화를 내지 않으시고 신실하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But thou, O Lord, art a God full of compassion, and gracious, long suffering, and plenteous in mercy and truth. 자비는, 지식의 완전성과 유한한 창조물들이 지닌 자연적인 연약함과 환경적인 장애를 충분히 인식하는데서 나온 그 지혜로 완화된 정의일 뿐입니다. 시145:8 여호와는 은혜롭고 자비로운 분이시며 쉽게 화를 내지 않으시고 사랑이 풍성한 분이시다. The LORD is gracious, and full of compassion; slow to anger, and of great mercy. 그러므로 요엘2:32 누구든지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내가 말한 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이며 살아남은 사람 중에 나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이다. And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for on Mount Zion and in Jerusalem there will be deliverance, as the LORD has said, among the survivors whom the LORD calls. 사55:7 악인은 악한 길을 버리며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러면 그가 불쌍히 여기시고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이다. Let the wicked forsake his way And the unrighteous man his thoughts; And let him return to the LORD, And He will have compassion on him, And to our God, For He will abundantly pardon. 시103:17 여호와의 사랑은 자기를 두려워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고… But the mercy of the LORD is from everlasting to everlasting upon them … 시107: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O give thanks unto the LORD, for he is good: for his mercy endureth for ever. 렘9:24 자랑하는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아는 것과 그리고 내가 자비를 베풀며 옳고 공정한 일을 행하는 여호와임을 아는 것으로 자랑하라. 나는 이런 것을 기뻐한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 But let him that glorieth glory in this, that he understandeth and knoweth me, that I am the LORD which exercise lovingkindness, judgment, and righteousness, in the earth: for in these things I delight, saith the LORD. 애3:33 주는 사람을 고생시키고 근심하게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For he doth not afflict willingly nor grieve the children of men. 고후1:3 자비의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Blessed be God, even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Father of mercies, and the God of all comfort;

2:4.2 (38.2) God is inherently kind, naturally compassionate, and everlastingly merciful. And never is it necessary that any influence be brought to bear upon the Father to call forth his loving-kindness. The creature’s need is wholly sufficient to insure the full flow of the Father’s tender mercies and his saving grace. Since God knows all about his children, it is easy for him to forgive. The better man understands his neighbor, the easier it will be to forgive him, even to love him. 시100:5 여호와는 선하시고 그의 사랑은 영원하며 그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른다. For the LORD is good; his mercy is everlasting; and his truth endureth to all generations. 하나님은 원래부터 친절하시고, 본성적으로 연민이 가득하시며, 영속적으로 자비로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친절을 불러오기 위한 어떠한 영향력도 결코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창조물의 필요 자체가 하나님 아버지의 부드러운 자비와 구원의 은혜가 충만히 흘러들어오는 충분한 보증입니다. 시103:13-14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녀들을 쉽게 용서하십니다. 사람이 그 이웃을 이해할수록, 그를 용서하며 더 나아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 더욱 쉬워집니다.

2:4.3 (38.3) Only the discernment of infinite wisdom enables a righteous God to minister justice and mercy at the same time and in any given universe situation. The heavenly Father is never torn by conflicting attitudes towards his universe children; God is never a victim of attitudinal antagonisms. God’s all-knowingness unfailingly directs his free will in the choosing of that universe conduct which perfectly, simultaneously, and equally satisfies the demands of all his divine attributes and the infinite qualities of his eternal nature. 시118:1-4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O give thanks unto the LORD; for he is good: because his mercy endureth for ever. Let Israel now say, that his mercy endureth for ever. Let the house of Aaron now say, that his mercy endureth for ever. Let them now that fear the LORD say, that his mercy endureth for ever. 공의의 하나님은 어떠한 우주의 상황에서도 무한히 지혜로운 분별력으로 정의와 동시에 자비를 행하십니다.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주에 있는 자신의 자녀들을 향하여 모순되는 입장을 취함으로 망설이며 곤란 가운데 계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상반되는 태도로 인한 희생물이 되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한 본성이 지니신, 그의 모든 신적인 속성과 무한한 특성의 요구들을, 완전히, 동시에, 그리고 균등히 만족시키도록 변함없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인도하여 우주 행위를 선택하십니다.

2:4.4 (38.4) Mercy is the natural and inevitable offspring of goodness and love. The good nature of a loving Father could not possibly withhold the wise ministry of mercy to each member of every group of his universe children. Eternal justice and divine mercy together constitute what in human experience would be called fairness. 자비는 선하심과 사랑에서 흘러나온 자연스러우며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선한 본성을 지니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자녀들 중 각자를 향하여 멈추지 않고, 지혜롭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인간의 체험 중 공정함은 영원한 정의와 함께 신적인 자비로 구성됩니다.

2:4.5 (38.5) Divine mercy represents a fairness technique of adjustment between the universe levels of perfection and imperfection. Mercy is the justice of Supremacy adapted to the situations of the evolving finite, the righteousness of eternity modified to meet the highest interests and universe welfare of the children of time. Mercy is not a contravention of justice but rather an understanding interpretation of the demands of supreme justice as it is fairly applied to the subordinate spiritual beings and to the material creatures of the evolving universes. Mercy is the justice of the Paradise Trinity wisely and lovingly visited upon the manifold intelligences of the creations of time and space as it is formulated by divine wisdom and determined by the all-knowing mind and the sovereign free will of the Universal Father and all his associated Creators. 대상16:34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거룩한 자비는 완전성과 불완전성의 우주 차원들 사이에서 공정(公正)하게 조절하는 기법을 나타냅니다. 자비는 진화하는 유한한 존재의 형편에 적응한 최상의 정의(正義)입니다. 또한 자비는 시간의 한계 안에서 살아가는 자녀들이 최고의 유익을 누리고 우주 복지를 만족시키려고 수정된 영원성의 공의(公義)입니다. 자비는 정의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비는 정의(正義)가 지닌 최상의 요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해석입니다. 진화하는 우주에서 하위의 영적 존재들과 물질 창조물들에게 최상의 정의는 공정하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자비는, 천국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의 창조 안에 있는 다양한 지적 존재들에게 베푸는 지혜롭고 사랑스러운 정의(正義)입니다. 자비는 우주의 아버지 하나님과 그와 연합된 창조자들이 신적인 지혜로 형성하고, 전지(全知)(모든 것을 아는)한 마음과 주권적 자유 의지로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5. The Love of God 하나님의 사랑

2:5.1 (38.6) “God is love”; therefore his only personal attitude towards the affairs of the universe is always a reaction of divine affection. The Father loves us sufficiently to bestow his life upon us. “He makes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on the good and sends rain on the just and on the unjust.” 요일4: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16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And so we know and rely on the love God has for us. God is love.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n him.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유일한 개인적인 태도는 항상 거룩한 애정으로서의 반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넉넉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마5:45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된 도리이다. 하나님은 해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다 같이 비치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과 의롭지 못한 사람에게 비를 똑같이 내려 주신다. That ye may be the children of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for he maketh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on the good, and sendeth rain on the just and on the unjust.

2:5.2 (39.1) It is wrong to think of God as being coaxed into loving his children because of the sacrifices of his Sons or the intercession of his subordinate creatures, “for the Father himself loves you.” It is in response to this paternal affection that God sends the marvelous Adjusters to indwell the minds of men. God’s love is universal; “whosoever will may come.” He would “have all men be saved by coming into the knowledge of the truth.” He is “not willing that any should perish.” 하나님의 아들들이 희생하거나 종속된 창조물들의 탄원이 하나님께 영향을 미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스스로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버이로서 애정의 결과로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에 내주하도록 놀라운 조절자들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적입니다. 롬10:13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는 성경 말씀도 있습니다. For whosoever shall call upon the name of the Lord shall be saved. 계22:17 성령님과 신부가 ‘오소서!’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도 ‘오소서!’ 하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목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누구든지 생명의 물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와서 마음껏 마시십시오. And the Spirit and the bride say, Come. And let him that heareth say, Come. And let him that is athirst come. And whosoever will, let him take the water of life freely. 딤전2: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Who will have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unto the knowledge of the truth. 벧후3:9 주님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약속을 지키는 데 더디신 분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오래 참으셔서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The Lord is not slack concerning his promise, as some men count slackness; but is longsuffering to us-ward, not willing that any should perish, but that all should come to repentance.

2:5.3 (39.2) The Creators are the very first to attempt to save man from the disastrous results of his foolish transgression of the divine laws. God’s love is by nature a fatherly affection; therefore does he sometimes “chasten us for our own profit, that we may be partakers of his holiness.” Even during your fiery trials remember that “in all our afflictions he is afflicted with us.” 히12:10 육체의 아버지는 그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잠시 우리를 징계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를 징계하여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For they verily for a few days chastened us after their own pleasure; but he for our profit, that we might be partakers of his holiness. 인간이 하나님의 법칙들을 어리석게 위반하여 비참한 결과가 발생하게 되면, 창조주들이 가장 먼저 인간을 구하기 위해 애쓰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아버지로서의 애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때때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양육하십니다(chasten us for our own profit). 사63: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셔서 그들을 직접 구원하셨다. 그가 사랑과 자비로 그들을 구출해 내시고 그들을 항상 돌보셨으나 In all their affliction he was afflicted, and the angel of his presence saved them: in his love and in his pity he redeemed them; and he bare them, and carried them all the days of old. 그러므로 우리는 불 같은 시련 가운데 있을 때에도, 우리가 받는 모든 고난의 한복판에서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고난 받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2:5.4 (39.3) God is divinely kind to sinners. When rebels return to righteousness, they are mercifully received, “for our God will abundantly pardon.” “I am he who blots out your transgressions for my own sake, and I will not remember your sins.” “Behold what manner of love the Father has bestowed upon us that we should be called the sons of God.” 하나님은 죄인들에게도 하늘의 친절로 대하십니다. 반역한 자들이 공의로 되돌아올 때, 하나님은 그들을 자비로 받아주십니다. 하나님은 풍성히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사55:7 악인은 악한 길을 버리며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러면 그가 불쌍히 여기시고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이다. Let the wicked forsake his way And the unrighteous man his thoughts; And let him return to the LORD, And He will have compassion on him, And to our God, For He will abundantly pardon. 사43:25 그러나 나는 나를 위하여 너희 허물을 삭제하는 하나님이니 내가 다시는 너희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I, even I, am he who blots out your transgressions, for my own sake, and remembers your sins no more.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Behold, what manner of love the Father hath bestowed upon us, that we should be called the sons of God: therefore the world knoweth us not, because it knew him not.

2:5.5 (39.4) After all, the greatest evidence of the goodness of God and the supreme reason for loving him is the indwelling gift of the Father — the Adjuster who so patiently awaits the hour when you both shall be eternally made one. Though you cannot find God by searching, if you will submit to the leading of the indwelling spirit, you will be unerringly guided, step by step, life by life, through universe upon universe, and age by age, until you finally stand in the presence of the Paradis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겔37:14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선하십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가장 큰 증거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선물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물을 주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도록 하십니다. 그 내주하는 선물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생각 조절자로 계십니다. 이 생각 조절자는 자신과 우리가 영원히 하나가 될 때를 그토록 기다리시면서 인내하십니다. 우리는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우리 안에 내주하는 영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되면, 한 걸음씩, 한 생애씩, 우주에서 우주를 거치고, 시대와 시대를 거쳐서 우주의 아버지이신 천국 하나님 아버지의 고유성 면전에 반드시 서게 될 것입니다.

2:5.6 (39.5) How unreasonable that you should not worship God because the limitations of human nature and the handicaps of your material creation make it impossible for you to see him. Between you and God there is a tremendous distance (physical space) to be traversed. There likewise exists a great gulf of spiritual differential which must be bridged; but notwithstanding all that physically and spiritually separates you from the Paradise personal presence of God, stop and ponder the solemn fact that God lives within you; he has in his own way already bridged the gulf. He has sent of himself, his spirit, to live in you and to toil with you as you pursue your eternal universe career. 우리 인간이 지닌 본성적인 한계와 물질로 된 창조물이 지닌 장애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해도,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건너야 하는 간극은 엄청난 거리(물리적 공간)가 있습니다. 동시에 그 사이에는 다리를 놓아야만 하는 영적인 거대한 심연도 있습니다. 눅16: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천국 하나님의 고유성 면전에서 물리적으로 영적으로 우리를 분리하는 모든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고 하는 엄숙한 사실을 멈추어서 숙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으로 이미 그 심연에 다리를 놓아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한 우주의 생애를 추구할 때 우리와 함께 수고하기 위해 우리 안에 사시는 자신 즉 자신의 영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2:5.7 (39.6) I find it easy and pleasant to worship one who is so great and at the same time so affectionately devoted to the uplifting ministry of his lowly creatures. I naturally love one who is so powerful in creation and in the control thereof, and yet who is so perfect in goodness and so faithful in the loving-kindness which constantly overshadows us. I think I would love God just as much if he were not so great and powerful, as long as he is so good and merciful. We all love the Father more because of his nature than in recognition of his amazing attributes. 렘9: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But let him that glorieth glory in this, that he understandeth and knoweth me, that I am the LORD which exercise lovingkindness, judgment, and righteousness, in the earth: for in these things I delight, saith the LORD.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창조물들을 높이 들어 자신에게로 끌어 올리는 위대한 일을 위해 애정을 담아 헌신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쁘게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호2: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And I will betroth thee unto me for ever; yea, I will betroth thee unto me in righteousness, and in judgment, and in lovingkindness, and in mercies. 우리는 권능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삶을 조정하시는 하나님을 당연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시17:7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Shew thy marvellous lovingkindness, O thou that savest by thy right hand them which put their trust in thee from those that rise up against them. 완전히 선하시며, 신실하신 사랑과 자비로 우리에게 변함없이 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우리에게 마땅한 일이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위대하지 않고, 능력이 없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토록 선하시고 자비하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대하30:9 너희가 만일 여호와께 돌아오면 너희 형제들과 너희 자녀가 사로잡은 자들에게서 자비를 입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신지라 너희가 그에게로 돌아오면 그의 얼굴을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더라 For if ye turn again unto the LORD, your brethren and your children shall find compassion before them that lead them captive, so that they shall come again into this land: for the LORD your God is gracious and merciful, and will not turn away his face from you, if ye return unto him.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속성들을 인식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2:5.8 (39.7) When I observe the Creator Sons and their subordinate administrators struggling so valiantly with the manifold difficulties of time inherent in the evolution of the universes of space, I discover that I bear these lesser rulers of the universes a great and profound affection. After all, I think we all, including the mortals of the realms, love the Universal Father and all other beings, divine or human, because we discern that these personalities truly love us. The experience of loving is very much a direct response to the experience of being loved. Knowing that God loves me, I should continue to love him supremely, even though he were divested of all his attributes of supremacy, ultimacy, and absoluteness. 진화하는 우주 공간에 본래부터 있는 다양한 시간적 어려움들과 당당하게 투쟁하는 창조주 아들들과 그들에게 속해 있는 여러 행정 담당자들은 우리들을 향해 위대하고 심오한 애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주의 하나님 아버지와 다른 모든 존재들은 우리를 진실로 사랑합니다. 결국, 우리가 이 사실들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체험은 사랑을 받은 체험에 대한 아주 직접적인 반응입니다. 우리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그 하나님이 최극성, 궁극성, 절대성과 같은 모든 속성이 없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계속 사랑할 것입니다.

2:5.9 (40.1) The Father’s love follows us now and throughout the endless circle of the eternal ages. As you ponder the loving nature of God, there is only one reasonable and natural personality reaction thereto: You will increasingly love your Maker; you will yield to God an affection analogous to that given by a child to an earthly parent; for, as a father, a real father, a true father, loves his children, so the Universal Father loves and forever seeks the welfare of his created sons and daughters. 요일4:16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And we have known and believed the love that God hath to us. God is love; and he that dwelleth in love dwelleth in God, and God in him.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지금 그리고 영원한 세대의 끝없는 순환 회로를 통해 우리에게 계속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을 숙고해 본다면, 거기에는 단 한가지의 합리적이며 자연스러운 고유성 반응이 있게 됩니다. 우리는 창조주를 점진적으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이 세상의 부모에게 바치는 것과 비슷한 애정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아버지, 진정한 아버지, 참된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우주의 아버지는 자신이 창조한 아들들과 딸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번영을 영원히 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5.10 (40.2) But the love of God is an intelligent and farseeing parental affection. The divine love functions in unified association with divine wisdom and all other infinite characteristics of the perfect nature of the Universal Father. God is love, but love is not God. The greatest manifestation of the divine love for mortal beings is observed in the bestowal of the Thought Adjusters, but your greatest revelation of the Father’s love is seen in the bestowal life of his Son Michael as he lived on earth the ideal spiritual life. It is the indwelling Adjuster who individualizes the love of God to each human soul.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현명하며 통찰력이 있는 어버이의 애정입니다. 신적인 사랑은 신적인 지혜와, 우주의 아버지께서 지니신 완전한 성품의 다른 모든 무한한 특성들과 함께 통합되어 기능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사랑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을 위한 신성한 사랑의 가장 큰 명시(明示)는 하나님의 영(생각 조절자)을 주신 것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아버지 사랑의 가장 큰 계시는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주신 것에서 발견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상적인 영적인 생애를 지상에서 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각 인간의 혼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개별화하는 존재는 내주하는 조절자입니다.

2:5.11 (40.3) At times I am almost pained to be compelled to portray the divine affection of the heavenly Father for his universe children by the employment of the human word symbol love. This term, even though it does connote man’s highest concept of the mortal relations of respect and devotion, is so frequently designative of so much of human relationship that is wholly ignoble and utterly unfit to be known by any word which is also used to indicate the matchless affection of the living God for his universe creatures! How unfortunate that I cannot make use of some supernal and exclusive term which would convey to the mind of man the true nature and exquisitely beautiful significance of the divine affection of the Paradise Father. 우주의 자녀들을 향한 하늘 아버지의 신적 사랑을 묘사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인간 단어의 상징만으로는 다 표현될 수가 없습니다. 이 용어는 인간이 지닌 용어들 중에서 존경과 헌신의 관계에 대한 최상의 개념을 담고 있지만, 너무나 자주 인간적인 관계를 지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용어도 저급하며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창조물에 대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비할 데 없는 애정을 표현하는 알려진 단어들 중에서 전적으로 일치하는 다른 단어가 없습니다. 천국 아버지가 지니신 신적 사랑의 참된 본성과 절묘하게 아름다운 의미를 인간의 마음에 전달될 수 있는 숭고하며 전용적인 단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2:5.12 (40.4) When man loses sight of the love of a personal God, the kingdom of God becomes merely the kingdom of good. Notwithstanding the infinite unity of the divine nature, love is the dominant characteristic of all God’s personal dealings with his creatures. 사람이 한 고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가 없게 된다면,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선한 나라일 뿐입니다. 모든 신적인 본성은 무한히 연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물들과 하나님의 모든 개인적 관계에서 지배적인 특징은 사랑입니다.

6. The Goodness of God 하나님의 선하심

2:6.1 (40.5) In the physical universe we may see the divine beauty, in the intellectual world we may discern eternal truth, but the goodness of God is found only in the spiritual world of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In its true essence, religion is a faith-trust in the goodness of God. God could be great and absolute, somehow even intelligent and personal, in philosophy, but in religion God must also be moral; he must be good. Man might fear a great God, but he trusts and loves only a good God. This goodness of God is a part of the personality of God, and its full revelation appears only in the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of the believing sons of God. 출34:6 그리고서 여호와께서는 그의 앞으로 지나가시며 이렇게 외치셨다. ‘나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쉽게 노하지 않고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 And the LORD passed by before him, and proclaimed, The LORD, The LORD God, merciful and gracious, longsuffering, and abundant in goodness and truth, 우리는 물리적 우주에서 신성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며, 지적 세계에서는 영원한 진리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은 영적 세계에서만 발견할 수 있기에, 개인의 종교적 체험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종교의 참된 본질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앙과 신뢰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적으로 하나님은 위대하고 절대적이시며, 심지어 지성적이고 고유적 존재이십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하나님은 도덕적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분명히 선하십니다. 우리 사람들은 위대하신 하나님은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은 신뢰하고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이 지니신 고유성의 일부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충만한 계시는 오직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의 종교적 체험으로만 알 수 있기 때문에 개인마다 누릴 수 있습니다.

2:6.2 (40.6) Religion implies that the superworld of spirit nature is cognizant of, and responsive to, the fundamental needs of the human world. Evolutionary religion may become ethical, but only revealed religion becomes truly and spiritually moral. The olden concept that God is a Deity dominated by kingly morality was upstepped by Jesus to that affectionately touching level of intimate family morality of the parent-child relationship, than which there is none more tender and beautiful in mortal experience. 시34:8 너희는 여호와께서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 알아보아라.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는 자는 복이 있다. O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blessed is the man that trusteth in him. 종교는 영적 성질을 지닌 초월 세계가 인간 세계의 근본적인 필요들을 인식하고, 그 필요들에 응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화 종교는 윤리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 종교만이 진정으로 영적인 도덕성이 있습니다. 옛 개념으로 볼 때, 하나님은 왕과 같은 도덕성으로 지배하는 신(神)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개념을 새로운 차원 즉 친밀한 가정 안에서 자애로운 손길을 나누는 부모와 자녀 관계의 차원으로 향상하셨습니다. 인간의 체험 중 이보다 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2:6.3 (41.1) The “richness of the goodness of God leads erring man to repentance.” “Every good gift and every perfect gift comes down from the Father of lights.” “God is good; he is the eternal refuge of the souls of men.” “The Lord God is merciful and gracious. He is long-suffering and abundant in goodness and truth.”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Blessed is the man who trusts him.” “The Lord is gracious and full of compassion. He is the God of salvation.” “He heals the brokenhearted and binds up the wounds of the soul. He is man’s all-powerful benefactor.” 나1:7 여호와는 선하시고 환난 때에 피난처가 되시며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을 보호하신다. The LORD is good, a strong hold in the day of trouble; and he knoweth them that trust in him. 롬2:4 하나님의 자비로 인해서 사람이 회개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고 오히려 그분의 넘치는 자비와 너그러움과 참으심을 업신여긴단 말입니까? Or despisest thou the riches of his goodness and forbearance and longsuffering; not knowing that the goodness of God leadeth thee to repentance? 약1:17 완전하고 좋은 모든 선물은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옵니다. 하나님은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변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Every good gift and every perfect gift is from above, and cometh down from the Father of lights, with whom is no variableness, neither shadow of turning. 신33: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피난처이시며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너를 붙드신다. 그가 원수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며 ‘그들을 멸하라.’ 하시는구나. The eternal God is thy refuge, and underneath are the everlasting arms: and he shall thrust out the enemy from before thee; and shall say, Destroy them. 출34:6 그리고서 여호와께서는 그의 앞으로 지나가시며 이렇게 외치셨다. ‘나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쉽게 노하지 않고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 And the LORD passed by before him, and proclaimed, The LORD, The LORD God, merciful and gracious, longsuffering, and abundant in goodness and truth. 시111:4 그는 자기가 행한 놀라운 일을 사람들이 기억하도록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스럽고 자비로운 분이시다. He hath made his wonderful works to be remembered: the LORD is gracious and full of compassion. 시147:3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구나. He healeth the broken in heart, and bindeth up their wounds.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신다. 그는 전능한 구원자이시다. 그가 너를 아주 기쁘게 여기시며 너를 말없이 사랑하시고 너 때문에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실 것이다.’ The LORD thy God in the midst of thee is mighty; he will save, he will rejoice over thee with joy; he will rest in his love, he will joy over thee with singing.

2:6.4 (41.2) The concept of God as a king-judge, although it fostered a high moral standard and created a law-respecting people as a group, left the individual believer in a sad position of insecurity respecting his status in time and in eternity. The later Hebrew prophets proclaimed God to be a Father to Israel; Jesus revealed God as the Father of each human being. The entire mortal concept of God is transcendently illuminated by the life of Jesus. Selflessness is inherent in parental love. God loves not like a father, but as a father. He is the Paradise Father of every universe personality. 요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Jesus said, “Do not hold on to me, for I have not yet returned to the Father. Go instead to my brothers and tell them, ‘I am returning to my Father and your Father, to my God and your God.’ ” 하나님을 왕이나 심판자로 보는 개념은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개념은 사람들에게 높은 도덕적 기준을 육성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유지하면서 법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개념은 시간과 영원 안에서 개별적인 인간의 상태를 불안 가운데 있는 슬픈 위치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후에 히브리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아버지라고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각 사람의 아버지이심을 계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에 대해서 인간이 지닌 모든 개념을 초월하여 조명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본래부터 자신을 잊고 생각하지 않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처럼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로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우주에 있는 고유 존재의 천국 아버지이십니다.

2:6.5 (41.3) Righteousness implies that God is the source of the moral law of the universe. Truth exhibits God as a revealer, as a teacher. But love gives and craves affection, seeks understanding fellowship such as exists between parent and child. Righteousness may be the divine thought, but love is a father’s attitude. The erroneous supposition that the righteousness of God was irreconcilable with the selfless love of the heavenly Father, presupposed absence of unity in the nature of Deity and led directly to the elaboration of the atonement doctrine, which is a philosophic assault upon both the unity and the free-willness of God. 렘9:24 자랑하는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아는 것과 그리고 내가 자비를 베풀며 옳고 공정한 일을 행하는 여호와임을 아는 것으로 자랑하라. 나는 이런 것을 기뻐한다. 이것은 나 여호와의 말이다.’ but let him who boasts boast about this: that he understands and knows me, that I am the LORD, who exercises kindness, justice and righteousness on earth, for in these I delight,” declares the LORD. 하나님은 우주의 도덕적 법칙의 근원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통해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시자이시며 가르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진리를 통해서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은 애정을 주고 애정을 갈망하며, 부모와 자녀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분별력 있는 사귐을 추구합니다. 공의는 신적인 생각에 해당되며, 사랑은 아버지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하늘 아버지의 이기심 없는 사랑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추측입니다. 신적인 본성 안에 통일성이 없다는 전제(前提)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의와 사랑이 대립된다는 사상에서 하나님의 통일성과 자유의지 두 가지에 대한 철학적 공격이 발생하여 아주 정교하게 직접적으로 보상하는 가르침을 낳았습니다.

2:6.6 (41.4) The affectionate heavenly Father, whose spirit indwells his children on earth, is not a divided personality — one of justice and one of mercy — neither does it require a mediator to secure the Father’s favor or forgiveness. Divine righteousness is not dominated by strict retributive justice; God as a father transcends God as a judge. 사랑이 많으신 하늘 아버지는 영으로 지상에 있는 자녀들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 하늘 아버지는 분리된 고유성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정의와 자비로 나누어진 고유성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은혜와 용서를 얻기 위해서 조정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신적인 공의는 엄격하게 처벌하는 인과응보의 정의로 좌우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은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을 초월합니다.

2:6.7 (41.5) God is never wrathful, vengeful, or angry. It is true that wisdom does often restrain his love, while justice conditions his rejected mercy. His love of righteousness cannot help being exhibited as equal hatred for sin. The Father is not an inconsistent personality; the divine unity is perfect. In the Paradise Trinity there is absolute unity despite the eternal identities of the co-ordinates of God. 시23:6 주의 선하심과 한결같은 사랑이 평생에 나를 따를 것이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리라. Surely goodness and love wi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하나님은 결코 분노하거나, 복수심에 불타거나, 화를 내지 않으십니다. 사랑은 흔히 지혜로 조절되는 반면에 정의(正義)는 그의 거부된 자비의 조건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공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만큼 죄를 향한 미움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모순된 고유성이 아니시며, 신적인 통일성은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동등하신 분들은 영원한 정체성을 가지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천국 삼위일체 안에는 절대적 통일성이 있습니다.

2:6.8 (41.6) God loves the sinner and hates the sin: such a statement is true philosophically, but God is a transcendent personality, and persons can only love and hate other persons. Sin is not a person. God loves the sinner because he is a personality reality (potentially eternal), while towards sin God strikes no personal attitude, for sin is not a spiritual reality; it is not personal; therefore does only the justice of God take cognizance of its existence. The love of God saves the sinner; the law of God destroys the sin. This attitude of the divine nature would apparently change if the sinner finally identified himself wholly with sin just as the same mortal mind may also fully identify itself with the indwelling spirit Adjuster. Such a sin-identified mortal would then become wholly unspiritual in nature (and therefore personally unreal) and would experience eventual extinction of being. Unreality, even incompleteness of creature nature, cannot exist forever in a progressingly real and increasingly spiritual universe. 하나님이 죄인은 사랑하시고, 죄는 미워하십니다. 이 문장은 철학적으로는 올바르지만 하나님은 초월적 고유성이십니다. 고유 존재만이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습니다. 죄는 고유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유성이라는 실체(잠재적으로 영원한)이시므로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향하여, 하나님은 고유 존재를 향한 태도를 갖지 않으십니다. 죄는 영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는 고유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정의는 고유성을 지닌 존재만을 인지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법은 죄를 파멸하십니다. 만일 사람의 마음이 자신 안에 내주하시는 영 조절자와 온전히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듯이, 죄인이 최종적으로 자신을 죄와 전적으로 동일시하면, 신적 본성이 지닌 이 태도는 명백하게 바뀝니다. 이렇게 죄와 동일시 된 사람은 나중에 본성에 있어서 철저히 비-영적인 상태로 결국 고유적인 실체를 잃어버리고 결국 존재의 소멸을 경험하게 됩니다. 점진적으로 실체적이며 더욱 영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우주에서, 비-실체는 물론이고 심지어 창조물의 본성이 지닌 불완전함도 영원히 존재할 수 없습니다.

2:6.9 (42.1) Facing the world of personality, God is discovered to be a loving person; facing the spiritual world, he is a personal love; in religious experience he is both. Love identifies the volitional will of God. The goodness of God rests at the bottom of the divine free-willness — the universal tendency to love, show mercy, manifest patience, and minister forgiveness. 고유성의 세계에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고유존재로 발견되십니다. 영적 세계에서, 하나님은 고유적인 사랑이십니다. 종교적 체험에서, 하나님은 고유 존재이신 동시에 고유적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자발적인 의지와 동일시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신적 자유 의지의 밑바닥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적 자유의지는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인내를 나타내고, 용서하는 우주적인 경향입니다.

7. Divine Truth and Beauty 하나님의 진리와 아름다움

2:7.1 (42.2) All finite knowledge and creature understanding are relative. Information and intelligence, gleaned from even high sources, is only relatively complete, locally accurate, and personally true. 시34:8 너희는 여호와께서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 알아보아라.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는 자는 복이 있다.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blessed is the man who takes refuge in him.유한한 모든 지식(knowledge)과 창조물의 이해는 상대적입니다. 수준 높은 출처에서 비롯된 정보와 지성(intelligence)이라도 단지 상대적인 완전성과 지역적인 명확성 그리고 개별적으로 진실할 뿐입니다.

2:7.2 (42.3) Physical facts are fairly uniform, but truth is a living and flexible factor in the philosophy of the universe. Evolving personalities are only partially wise and relatively true in their communications. They can be certain only as far as their personal experience extends. That which apparently may be wholly true in one place may be only relatively true in another segment of creation. 물리적인 사실들은 상당히 균일하지만, 진리는 생동적이며 유연한 우주 철학의 요소입니다. 진화하는 고유성들은 소통에 있어서, 단지 부분적으로 현명하고 상대적으로 참될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적 경험이 확장되는 범위 안에서만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한 장소에서 명백하게 전적으로 진실한 것도 다른 창조 구획에서는 단지 상대적으로 진실할 뿐입니다.

2:7.3 (42.4) Divine truth, final truth, is uniform and universal, but the story of things spiritual, as it is told by numerous individuals hailing from various spheres, may sometimes vary in details owing to this relativity in the completeness of knowledge and in the repleteness of personal experience as well as in the length and extent of that experience. While the laws and decre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First Great Source and Center are eternally, infinitely, and universally true; at the same time, their application to, and adjustment for, every universe, system, world, and created intelligence, are in accordance with the plans and technique of the Creator Sons as they function in their respective universes, as well as in harmony with the local plans and procedures of the Infinite Spirit and of all other associated celestial personalities. 신성한 진리, 최종적 진리는 한결같으며 보편적이지만, 다양한 구체의 수많은 개인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영적인 것들에 관한 이야기는 때때로 세부사항에 있어서 다양합니다. 지식의 완전성에 대한 상대성과 개인적 경험의 길이와 정도뿐만이 아니라 그 체험의 충만함에 나타난 상대성 때문입니다. 첫째 위대한 근원과 중심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법칙과 법령, 사고와 태도는 영원히, 무한히, 그리고 우주적으로 참되십니다. 동시에 모든 각각의 우주, 체계, 세상, 창조된 지성들을 향한 그 적용과 조정들은 창조주 아들들의 계획과 기법들과 조화를 이룹니다. 무한한 영과 모든 다른 관련된 천상의 고유성들이 지역적 계획과 절차에 있어서 조화를 이루는 것과 같이, 그분들도 각자 자신들의 우주에서 조화를 이루어 기능하십니다.

2:7.4 (42.5) The false science of materialism would sentence mortal man to become an outcast in the universe. Such partial knowledge is potentially evil; it is knowledge composed of both good and evil. Truth is beautiful because it is both replete and symmetrical. When man searches for truth, he pursues the divinely real. 시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얼마나 단지 내 입에 꿀보다 더 답니다. How sweet are your words to my taste, sweeter than honey to my mouth! 물질주의의 거짓된 과학은 사람을 우주에서 추방당한 존재로 판결합니다. 그런 부분적 지식은 잠재적으로 악이며, 선과 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진리는 충만하면서도 균형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찾을 때, 그는 신성한 실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2:7.5 (42.6) Philosophers commit their gravest error when they are misled into the fallacy of abstraction, the practice of focusing the attention upon one aspect of reality and then of pronouncing such an isolated aspect to be the whole truth. The wise philosopher will always look for the creative design which is behind, and pre-existent to, all universe phenomena. The creator thought invariably precedes creative action. 철학자들은 추상적 오류 즉 실체의 한 측면에 관심을 집중하고, 그렇게 고립된 국면이 전체적 진리가 된다고 주장하는 습관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려 가장 끔찍한 실수를 범합니다. 현명한 철학자는 모든 우주의 현상 이전에 존재하는 배후의 창조적 밑그림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창조자의 생각은 반드시 창조적 활동보다 앞서 있습니다.

2:7.6 (42.7) Intellectual self-consciousness can discover the beauty of truth, its spiritual quality, not only by the philosophic consistency of its concepts, but more certainly and surely by the unerring response of the ever-present Spirit of Truth. Happiness ensues from the recognition of truth because it can be acted out; it can be lived. Disappointment and sorrow attend upon error because, not being a reality, it cannot be realized in experience. Divine truth is best known by its spiritual flavor. 지적 자아의식은 진리의 아름다움과 그 영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지적 자아의식은 진리 개념의 철학적 일관성에 의해서 뿐만이 아니라 항상 현존하는 진리의 영의 어김없는 반응으로 인해 더욱 확실하고 분명하게 그러한 진리의 아름다움과 특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진리를 인식할 때 누리게 됩니다. 진리는 실행하며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망과 슬픔은 잘못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러나 잘못은 실체가 아니므로 체험으로 실체화할 수 없습니다. 신성한 진리는 영적인 향기에 의해서 가장 잘 알려집니다.

2:7.7 (42.8) The eternal quest is for unification, for divine coherence. The far-flung physical universe coheres in the Isle of Paradise; the intellectual universe coheres in the God of mind, the Conjoint Actor; the spiritual universe is coherent in the personality of the Eternal Son. But the isolated mortal of time and space coheres in God the Father through the direct relationship between the indwelling Thought Adjuster and the Universal Father. Man’s Adjuster is a fragment of God and everlastingly seeks for divine unification; it coheres with, and in, the Paradise Deit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시27:4 내가 여호와께 간청한 한 가지 일을 구하리니 내가 평생 여호와의 집에서 살며 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성전에서 그를 묵상하는 일이다. One thing I ask of the LORD, this is what I seek: that I may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all the days of my life, to gaze upon the beauty of the LORD and to seek him in his temple. 영원한 추구는 통일과 신적인 결합을 위한 것입니다. 공간에 멀리 퍼져있는 물리적 우주는 천국에서 응집됩니다. 지적 우주는 마음의 하나님이신 공동 행위자 즉 무한한 영 안으로 응집됩니다. 영적 우주는 영원한 아들의 고유성 안으로 응집됩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에 속해 있는 고립된 인간은 자신 안에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와 우주의 아버지 사이에 있는 직접적 관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결합됩니다. 사람의 조절자는 하나님의 단편이며, 신적인 통일을 영원히 추구합니다. 그것은 첫째 근원이시며 중심이신 천국 신(神)과 함께 그 안에서 결합됩니다.

2:7.8 (43.1) The discernment of supreme beauty is the discovery and integration of reality: The discernment of the divine goodness in the eternal truth, that is ultimate beauty. Even the charm of human art consists in the harmony of its unity. 최고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은 실체를 발견한 후 그 실체와의 통합에서 일어납니다. 영원한 진리 안에 있는 신적 선(善)의 인식이 궁극적 아름다움입니다. 심지어 인간 예술의 매력도 그 통일성의 조화 가운데 존재합니다.

2:7.9 (43.2) The great mistake of the Hebrew religion was its failure to associate the goodness of God with the factual truths of science and the appealing beauty of art. As civilization progressed, and since religion continued to pursue the same unwise course of overemphasizing the goodness of God to the relative exclusion of truth and neglect of beauty, there developed an increasing tendency for certain types of men to turn away from the abstract and dissociated concept of isolated goodness. The overstressed and isolated morality of modern religion, which fails to hold the devotion and loyalty of many twentieth-century men, would rehabilitate itself if, in addition to its moral mandates, it would give equal consideration to the truths of science, philosophy, and spiritual experience, and to the beauties of the physical creation, the charm of intellectual art, and the grandeur of genuine character achievement. 히브리 종교의 가장 큰 오류는 과학의 사실적 진리들과 예술의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연결하지 못한 점입니다. 문명이 발전하고, 종교가 상대적으로 진리를 배제하고 아름다움을 소홀히 여기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일관되게 어리석은 과정을 계속 추구한 이래로, 특정 부류의 사람들은 고립된 선에 대한 추상적이며 분리된 관념에서 멀리하려는 경향이 더욱 발전되었습니다. 현대 종교의 강압적이며 고립적인 도덕성은 20세기 많은 사람들의 헌신과 충성심을 붙잡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도덕적 명령에 추가해서, 그것이 과학, 철학, 그리고 영적 체험의 진리들을 물리적 창조의 아름다움, 지적 예술의 매력, 그리고 진지한 인격 성취의 고결함과 똑같이 고려한다면, 현대 종교는 스스로 회복될 것입니다.

2:7.10 (43.3) The religious challenge of this age is to those farseeing and forward-looking men and women of spiritual insight who will dare to construct a new and appealing philosophy of living out of the enlarged and exquisitely integrated modern concepts of cosmic truth, universe beauty, and divine goodness. Such a new and righteous vision of morality will attract all that is good in the mind of man and challenge that which is best in the human soul. Truth, beauty, and goodness are divine realities, and as man ascends the scale of spiritual living, these supreme qualities of the Eternal become increasingly co-ordinated and unified in God, who is love. 엡3:18 모든 성도들과 함께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폭과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모든 풍성하신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18 may have power, together with all the saints, to grasp how wide and long and high and deep is the love of Christ, 19 and to know this love that surpasses knowledge–that you may be filled to the measure of all the fullness of God. 이 시대의 종교적 도전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선견지명하면서 전진하는, 진취적인 남녀들을 향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새롭고 매력적인 철학을 담대히 구성할 것입니다. 이 살아있는 철학은 조화로운 우주의 진리, 우주의 아름다움, 그리고 신적 선함에 대한 현대적 개념들을 확장하고 세련되게 통합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이렇게 도덕성에 대한 새롭고 올바른 비전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든 선한 것과 인간 혼 안에서 일어나는 최상의 도전들을 매혹시킵니다. 진리, 아름다움, 그리고 선함은 신적 실체들이며, 인간이 영적 삶의 단계를 올라감에 따라서, 영원하신 분이 지니신 이러한 최상의 특성들은 사랑이신 하나님 안에서 더욱 통합되며 통일됩니다.

2:7.11 (43.4) All truth — material, philosophic, or spiritual — is both beautiful and good. All real beauty — material art or spiritual symmetry — is both true and good. All genuine goodness — whether personal morality, social equity, or divine ministry — is equally true and beautiful. Health, sanity, and happiness are integrations of truth, beauty, and goodness as they are blended in human experience. Such levels of efficient living come about through the unification of energy systems, idea systems, and spirit systems. 모든 진리-물질적, 철학적, 그리고 영적-는 아름다운 동시에 선합니다. 모든 실체적 아름다움-물질적 예술 또는 영적 균형성-은 참된 동시에 선합니다. 모든 진정한 선함-고유적 도덕성, 사회적 공정성 또는 신적 사역-은 참된 동시에 아름답습니다. 건강, 온전함, 그리고 행복은 인간의 경험 안에서 혼합된 세 가지 , 즉 진리, 아름다움, 그리고 선함이 통합된 것입니다. 이런 효율적 삶의 수준은 에너지 체계들, 개념 체계들, 그리고 영 체계들의 통합에서 비롯됩니다.

2:7.12 (43.5) Truth is coherent, beauty attractive, goodness stabilizing. And when these values of that which is real are co-ordinated in personality experience, the result is a high order of love conditioned by wisdom and qualified by loyalty. The real purpose of all universe education is to effect the better co-ordination of the isolated child of the worlds with the larger realities of his expanding experience. Reality is finite on the human level, infinite and eternal on the higher and divine levels. 진리는 응집력이 있으며, 아름다움은 매력적이고, 선함은 안정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실체의 가치들이 고유성 체험으로 통합되면, 그 결과는, 지혜로 조정되고 충성으로 검증된, 고차원적 사랑을 낳습니다. 모든 우주 교육의 참된 목적은, 세상에서 고립된 자녀들이, 자신의 확장된 경험의 커다란 실체들과 더 나은 효과적 통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실체는 인간 수준에서는 유한하지만, 고차원적 수준 즉 신적 수준에서의 실체는 무한하며, 영원합니다.

2:7.13 (43.6) [Presented by a Divine Counselor acting by authority of the Ancients of Days on Uversa.]유버르사에 있는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권한으로 활동하는 신적 조언자가 제시함]

Paper 1 The Universal Father 우주의 아버지

  • Paper 1
  • The Universal Father 우주 아버지

1:0.1 (21.1) THE Universal Father is the God of all creation, the First Source and Center of all things and beings. First think of God as a creator, then as a controller, and lastly as an infinite upholder. The truth about the Universal Father had begun to dawn upon mankind when the prophet said: “You, God, are alone; there is none beside you. You have created the heaven and the heaven of heavens, with all their hosts; you preserve and control them. By the Sons of God were the universes made. The Creator covers himself with light as with a garment and stretches out the heavens as a curtain.” Only the concept of the Universal Father — one God in the place of many gods — enabled mortal man to comprehend the Father as divine creator and infinite controller. 우주 아버지는 모든 창조계의 하나님이시며, 만물과 모든 존재의 첫째 근원 중심입니다. 우선 하나님을 창조자로서, 다음에 조정자로서, 마지막에 무한 유지자로서 생각하십시오.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우주 아버지에 대한 진리가 인류에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홀로 계시며; 당신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삼하7:22). 당신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을 그 모든 무리와 함께 창조하셨으며; 그들을 보존하고 조정하십니다(느9:6, 창1:1). 하나님의 아들들이 우주들을 만들었습니다(히1:2). 창조자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십니다(시104:2).” 우주 아버지의 개념 – 여러 신과 같은 존재들 대신에 한 하나님 –만이 필사 인간이 아버지를 신적 창조자와 무한 조정자로 파악할 수 있게 했습니다.

1:0.2 (21.2) The myriads of planetary systems were all made to be eventually inhabited by many different types of intelligent creatures, beings who could know God, receive the divine affection, and love him in return. The universe of universes is the work of God and the dwelling place of his diverse creatures. “God created the heavens and formed the earth; he established the universe and created this world not in vain; he formed it to be inhabited.” 무수한 행성 체계들은, 여러 다양한 유형의 지능적 창조물들, 하나님을 알고, 신적 애정을 받아들여 답례로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이 결국 거주하도록 모두 만들어졌습니다. 우주들의 우주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그의 다양한 창조물들의 거주지입니다. “하나님이 하늘들을 창조하셨고 땅을 지으셨습니다. 그가 우주를 세우셨고 이 세상을 헛되이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사람이 거주하도록 그것을 지으셨습니다(사45:18).”

1:0.3 (21.3) The enlightened worlds all recognize and worship the Universal Father, the eternal maker and infinite upholder of all creation. The will creatures of universe upon universe have embarked upon the long, long Paradise journey, the fascinating struggle of the eternal adventure of attaining God the Father. The transcendent goal of the children of time is to find the eternal God, to comprehend the divine nature, to recognize the Universal Father. God-knowing creatures have only one supreme ambition, just one consuming desire, and that is to become, as they are in their spheres, like him as he is in his Paradise perfection of personality and in his universal sphere of righteous supremacy. From the Universal Father who inhabits eternity there has gone forth the supreme mandate, “Be you perfect, even as I am perfect.” In love and mercy the messengers of Paradise have carried this divine exhortation down through the ages and out through the universes, even to such lowly animal-origin creatures as the human races of Urantia. 개화된 세계들은 우주 아버지를 영원한 조물주와 모든 창조계의 무한 유지자로 모두 인식하고 경배합니다. 우주마다 의지 창조물들은 길고 긴 천국 여행, 아버지 하나님께 도달하는 영원한 모험에 속한 황홀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시간에 속한 자녀들의 초월적 목표는 영원한 하나님을 발견하고, 신적 본성을 파악하며, 우주 아버지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아는 창조물들은 단 하나의 최극 열망, 오로지 하나의 절실한 소망을 지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고유성에 속한 자신의 천국 완전함과 자신의 공의로운 최극위에 속한 우주적 구체에 계시는 것처럼, 창조물들이 자신들의 구체들에서 하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영원에 거하시는(사57:15) 우주 아버지께서 최극 명령을 공포하셨습니다. “내가 온전하듯이 너희는 온전하라(마5:48).” 사랑과 자비로, 천국의 메신저들은 여러 시대에, 우주들 사이에, 유란시아의 인류들처럼 그토록 낮은 동물-기원의 창조물들에게도 이 신적 권고를 전했습니다.

1:0.4 (22.1) This magnificent and universal injunction to strive for the attainment of the perfection of divinity is the first duty, and should be the highest ambition, of all the struggling creature creation of the God of perfection. This possibility of the attainment of divine perfection is the final and certain destiny of all man’s eternal spiritual progress. 신성 완전성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이 장엄한 우주적 권고는, 완전의 하나님께 속한 창조계에서 분투하는 모든 창조물의 첫째 의무이며,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신적 완전에 도달하는 이 가능성은 모든 사람이 영원히 영적으로 진보하는 최종적인 확실한 운명입니다.

1:0.5 (22.2) Urantia mortals can hardly hope to be perfect in the infinite sense, but it is entirely possible for human beings, starting out as they do on this planet, to attain the supernal and divine goal which the infinite God has set for mortal man; and when they do achieve this destiny, they will, in all that pertains to self-realization and mind attainment, be just as replete in their sphere of divine perfection as God himself is in his sphere of infinity and eternity. Such perfection may not be universal in the material sense, unlimited in intellectual grasp, or final in spiritual experience, but it is final and complete in all finite aspects of divinity of will, perfection of personality motivation, and God-consciousness. 유란시아 필사자들은 무한한 관점에서 도저히 완전해질 수 없지만, 이 행성에서 그들이 하는 것처럼 시작해서, 무한한 하나님께서 필사 인간을 위해 마련하신 숭고한 신적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인간 존재들에게 전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들이 자아실현(자기 완성)과 마음 달성에 관련된 모든 점에서 이 운명을 성취할 때, 하나님 자신이 무한성과 영원성의 자기 구체에 계시듯이, 그들은 신적 완전함에 속한 자신들의 구체에서, 똑같이 충만할 것입니다. 그런 완전은 물질적 감각에서 우주적이지 않으며, 제한이 없는 지적인 파악도 아니고, 최종적인 영적 체험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의지의 신성, 고유성 동기의 완전함 및 하나님-의식의 모든 유한한 면에서 그것은 최종적이며 완벽합니다.

1:0.6 (22.3) This is the true meaning of that divine command, “Be you perfect, even as I am perfect,” which ever urges mortal man onward and beckons him inward in that long and fascinating struggle for the attainment of higher and higher levels of spiritual values and true universe meanings. This sublime search for the God of universes is the supreme adventure of the inhabitants of all the worlds of time and space. 이것이 “내가 온전하듯이 너희는 온전하라(마5:48).”는 신적 명령의 진정한 의미로써, 필사 사람이 더욱더 높은 차원의 영적 가치와 진정한 우주 의미들에 도달하게 하는 긴, 황홀한 투쟁에서 계속 전진하도록 촉구하고 그를 안쪽으로 손짓합니다. 우주들의 하나님을 찾는 이 숭고한 탐구는 모든 시공간 세계들의 거주자들에 속한 최극 모험입니다.

  1. The Father’s Name 아버지의 이름

1:1.1 (22.4) Of all the names by which God the Father is known throughout the universes, those which designate him as the First Source and the Universe Center are most often encountered. The First Father is known by various names in different universes and in different sectors of the same universe. The names which the creature assigns to the Creator are much dependent on the creature’s concept of the Creator. The First Source and Universe Center has never revealed himself by name, only by nature. If we believe that we are the children of this Creator, it is only natural that we should eventually call him Father. But this is the name of our own choosing, and it grows out of the recognition of our personal relationship with the First Source and Center. 모든 이름 중 아버지 하나님이 우주들 전체에 알려져 있으며, 그를 첫째 근원이며 우주 중심으로 부르는 이름이 가장 많이 발견됩니다. 첫째 아버지는 다른 우주들에서, 같은 우주의 다른 영역들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창조물이 창조자를 부르는 이름들은 창조자에 대한 창조물의 개념에 많이 좌우됩니다. 첫째 근원 및 우주 중심은 이름이 아니라 본성으로만 자신을 계시했습니다. 우리가 이 창조자의 자녀라고 믿는다면, 우리가 결국 그를 아버지라고 불러야 함이 아주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자신이 선택한 이름이며, 첫째 근원 중심과 우리의 고유적 관계의 인식에서 생깁니다.

1:1.2 (22.5) The Universal Father never imposes any form of arbitrary recognition, formal worship, or slavish service upon the intelligent will creatures of the universes. The evolutionary inhabitants of the worlds of time and space must of themselves — in their own hearts — recognize, love, and voluntarily worship him. The Creator refuses to coerce or compel the submission of the spiritual free wills of his material creatures. The affectionate dedication of the human will to the doing of the Father’s will is man’s choicest gift to God; in fact, such a consecration of creature will constitutes man’s only possible gift of true value to the Paradise Father. In God, man lives, moves, and has his being; there is nothing which man can give to God except this choosing to abide by the Father’s will, and such decisions, effected by the intelligent will creatures of the universes, constitute the reality of that true worship which is so satisfying to the love-dominated nature of the Creator Father. 우주 아버지는 우주들의 지능적 의지 창조물들에 어떤 형태든지 독단적 인식, 형식적 경배 혹은 노예적 봉사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시공간 세계들의 진화적 거주자들은 스스로 그들 자신의 심정으로 그를 인식하고, 사랑하며, 자발적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창조자는 자기 물질 창조물들에 속한 영적 자유 의지들의 복종을 강요하고 강제하기를 거절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인간 의지의 애정 어린 헌신이 하나님께 인간이 선택한 최고의 선물입니다. 사실, 그런 창조물 의지의 헌정(獻呈 자신을 바침)이 사람이 천국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진정으로 가치 있는 유일한 선물이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행17:28a).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려는 이 선택을 제외한 어떤 것도 아니며, 우주들에 속한 지능적 의지 창조물들이 행한 그런 결정들이, 사랑으로 충만한 창조주 아버지의 본성을 만족하게 하는, 진정한 경배의 실체입니다.

1:1.3 (22.6) When you have once become truly God-conscious, after you really discover the majestic Creator and begin to experience the realization of the indwelling presence of the divine controller, then, in accordance with your enlightenment and in accordance with the manner and method by which the divine Sons reveal God, you will find a name for the Universal Father which will be adequately expressive of your concept of the First Great Source and Center. And so, on different worlds and in various universes, the Creator becomes known by numerous appellations, in spirit of relationship all meaning the same but, in words and symbols, each name standing for the degree, the depth, of his enthronement in the hearts of his creatures of any given realm. 너희가 일단 참으로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면, 너희가 정말로 장엄한 창조자를 발견하고, 신적 조정자의 내주하는 존재의 실상을 체험하기 시작한 후, 우리의 깨우침과 신적 아들들이 하나님을 계시하는 방식과 방법에 따라서, 너희는 첫째 위대한 근원 중심에 대한 너희 개념을 적절히 표현하게 될, 우주 아버지를 위한 이름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렇게 다른 세계들과 다양한 우주들에서, 창조주는 수많은 호칭으로 알려지는데, 관계의 영으로 보면 모든 의미는 같지만, 단어와 상징으로 보면 각 이름은 주어진 영역에 속한 창조물들이 경애(敬愛)하는 정도와 깊이를 나타냅니다.

1:1.4 (23.1) Near the center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the Universal Father is generally known by names which may be regarded as meaning the First Source. Farther out in the universes of space, the terms employed to designate the Universal Father more often mean the Universal Center. Still farther out in the starry creation, he is known, as on the headquarters world of your local universe, as the First Creative Source and Divine Center. In one near-by constellation God is called the Father of Universes. In another, the Infinite Upholder, and to the east, the Divine Controller. He has also been designated the Father of Lights, the Gift of Life, and the All-powerful One. 우주들의 우주 중심 근처에서, 우주 아버지는 보통 첫째 근원의 의미로 여길 수도 있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간의 우주들에서 멀어지면, 우주 아버지를 부르기 위해 사용된 용어는 더 많이 우주 중심을 의미합니다. 별들의 창조계로 더 멀어지면, 너희 지역 우주의 본부 세계처럼, 그는 첫째 창조적 근원 및 신적 중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근처 어떤 별자리에서 하나님은 우주들의 아버지로 부릅니다. 다른 데서 무한 유지자(維持者)로, 동쪽에서 신성한 조정자로 부릅니다. 그는 또한 빛들의 아버지, 생명의 선물, 전능하신 분이라고 불렀습니다.

1:1.5 (23.2) On those worlds where a Paradise Son has lived a bestowal life, God is generally known by some name indicative of personal relationship, tender affection, and fatherly devotion. On your constellation headquarters God is referred to as the Universal Father, and on different planets in your local system of inhabited worlds he is variously known as the Father of Fathers, the Paradise Father, the Havona Father, and the Spirit Father. Those who know God through the revelations of the bestowals of the Paradise Sons, eventually yield to the sentimental appeal of the touching relationship of the creature-Creator association and refer to God as “our Father.” 천국 아들이 증여 생애를 살았던 그런 세계들에서, 하나님은 고유적 관계, 부드러운 애정 및 아버지다운 헌신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보통 알려집니다. 너희 별자리 본부에서 하나님은 우주 아버지로 부르며, 거주세계들에 속한 너희 지역 체계의 다른 행성들에서 그는 아버지들의 아버지, 천국 아버지, 하보나 아버지 및 영 아버지로, 다양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천국 아들들이 증여한 계시들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창조물-창조주 연합의 감동적 관계에 속한 감정적 호소에 결국 굴복하여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릅니다.

1:1.6 (23.3) On a planet of sex creatures, in a world where the impulses of parental emotion are inherent in the hearts of its intelligent beings, the term Father becomes a very expressive and appropriate name for the eternal God. He is best known, most universally acknowledged, on your planet, Urantia, by the name God. The name he is given is of little importance; the significant thing is that you should know him and aspire to be like him. Your prophets of old truly called him “the everlasting God” and referred to him as the one who “inhabits eternity.” 성적 창조물들의 행성, 즉 지능적 존재들의 심정에 어버이다운 감정의 충동이 선천적인 세계에서, ‘아버지’라는 용어는 영원한 하나님을 가장 적절히 드러내는 이름입니다. 너희 행성 유란시아에서 그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널리 인정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이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그를 알고 그와 같이 되기를 열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 옛 선지자들은 진심으로 그를 ‘영원하신 하나님(사40:28),’ ‘영원에 거하시는 분(사57:15)’이라고 불렀습니다 .

2. The Reality of God 하나님의 실체

1:2.1 (23.4) God is primal reality in the spirit world; God is the source of truth in the mind spheres; God overshadows all throughout the material realms. To all created intelligences God is a personality, and to the universe of universes he is the First Source and Center of eternal reality. God is neither manlike nor machinelike. The First Father is universal spirit, eternal truth, infinite reality, and father personality. 하나님은 영 세계에서 최초의 실체이시며, 마음 영역에서 진리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물질의 영역 전체를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된 지능 존재들에게 고유성이시며, 우주들의 우주에 영원한 실체의 첫째 근원 중심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나 기계와 같지 않으십니다. ‘첫째 아버지’는 우주 영, 영원한 진리, 무한한 실체 및 아버지 고유성이십니다.

1:2.2 (23.5) The eternal God is infinitely more than reality idealized or the universe personalized. God is not simply the supreme desire of man, the mortal quest objectified. Neither is God merely a concept, the power-potential of righteousness. The Universal Father is not a synonym for nature, neither is he natural law personified. God is a transcendent reality, not merely man’s traditional concept of supreme values. God is not a psychological focalization of spiritual meanings, neither is he “the noblest work of man.” God may be any or all of these concepts in the minds of men, but he is more. He is a saving person and a loving Father to all who enjoy spiritual peace on earth, and who crave to experience personality survival in death. 영원한 하나님은 이상화(理想化) 실체나 고유화(固有化) 우주보다 더욱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은 단지, 필사자의 추구(追究)를 구상화(具象化)한, 사람의 최극 욕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잠재적 공의(公義)의 권능이라는 개념도 아닙니다. 우주 아버지는 자연과 동의어도 아니고 그는 고유화(固有化) 자연 법칙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초월적 실체이며, 최극 가치들에 대한 사람의 전통적 개념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적 의미들의 심리학적 초점화(焦點化), “사람이 만든 가장 고상한 작품”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이런 모든 개념들의 어떤 혹은 모두가 될 수도 있지만, 그는 그 이상(以上)입니다. 그는 지상에서 영적 평화를 누리며, 죽음에서 고유성 생존 체험을 갈망하는 모두에게 구원하는 고유자이며 사랑하는 아버지입니다.

1:2.3 (24.1) The actuality of the existence of God is demonstrated in human experience by the indwelling of the divine presence, the spirit Monitor sent from Paradise to live in the mortal mind of man and there to assist in evolving the immortal soul of eternal survival. The presence of this divine Adjuster in the human mind is disclosed by three experiential phenomena: 하나님 실존의 현실은 신적 존재의 내주에 의한 인간의 체험으로 드러나는데, 그 신적 존재는 천국에서 파송되어 사람의 필사 마음에 살고 있는 영 감시자로서, 거기에서 영원히 생존하는 불멸 혼의 진화를 지원합니다. 인간 마음에 있는 이 신적 조율자의 존재는 3가지 체험적 현상으로 나타납니다(요14:17).

1:2.4 (24.2) 1. The intellectual capacity for knowing God — God-consciousness. 하나님을 아는 지적 능력(하나님-의식)

1:2.5 (24.3) 2. The spiritual urge to find God — God-seeking.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영적 충동(하나님-추구)

1:2.6 (24.4) 3. The personality craving to be like God — the wholehearted desire to do the Father’s will. 하나님 처럼 되려고 갈망하는 고유성(아버지의 뜻을 전심으로 행하려는 소망)

1:2.7 (24.5) The existence of God can never be proved by scientific experiment or by the pure reason of logical deduction. God can be realized only in the realms of human experience; nevertheless, the true concept of the reality of God is reasonable to logic, plausible to philosophy, essential to religion, and indispensable to any hope of personality survival. 하나님의 실존은 과학적 실험이나 논리적 추론(推論)의 순수 이성으로 결코 증명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체험의 영역으로만 실감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실체의 참된 개념은 논리에 맞고, 철학에 대해 그럴 듯하며, 종교에 필수적이고 고유성 생존의 어떤 소망에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1:2.8 (24.6) Those who know God have experienced the fact of his presence; such God-knowing mortals hold in their personal experience the only positive proof of the existence of the living God which one human being can offer to another. The existence of God is utterly beyond all possibility of demonstration except for the contact between the God-consciousness of the human mind and the God-presence of the Thought Adjuster that indwells the mortal intellect and is bestowed upon man as the free gift of the Universal Father.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하나님 실존의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들은 자신들의 고유적 체험으로, 한 인간 존재가 다른 이에게 제공할 수 있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실존한다는 유일하게 명확한 증거를 지닙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 마음의 하나님-의식과 생각 조율자의 하나님-실존 사이의 접촉을 제외하고, 완전히 모든 증명의 가능성을 초월하는데, 그 생각 조율자는 필사자 지성에 내주하며 우주 아버지가 무료 선물로서 인간에게 주십니다.

1:2.9 (24.7) In theory you may think of God as the Creator, and he is the personal creator of Paradise and the central universe of perfection, but the universes of time and space are all created and organized by the Paradise corps of the Creator Sons. The Universal Father is not the personal creator of the local universe of Nebadon; the universe in which you live is the creation of his Son Michael. Though the Father does not personally create the evolutionary universes, he does control them in many of their universal relationships and in certain of their manifestations of physical, mindal, and spiritual energies. God the Father is the personal creator of the Paradise universe and, in association with the Eternal Son, the creator of all other personal universe Creators. 이론상, 너희는 하나님을 창조자로서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는 천국과 완전한 중앙 우주의 고유적 창조자이지만, 천국 창조자 아들들 단(團)이 시간과 공간의 우주들을 모두 창조하고 조직했습니다. 우주 아버지는 네바돈 지역 우주의 고유적 창조자가 아닙니다. 너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그의 아들 미가엘의 창조계입니다. 아버지가 고유적으로 진화 우주들을 창조하지 않지만, 그는 여러 우주 관계들과 물리적, 마음적, 및 영적 에너지들의 표현으로 그것들을 조정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천국 우주의 고유적 창조자이며, 영원 아들과 연합하여 다른 모든 고유적 우주 창조자들을 창조하십니다.

1:2.10 (24.8) As a physical controller in the material universe of universes, the First Source and Center functions in the patterns of the eternal Isle of Paradise, and through this absolute gravity center the eternal God exercises cosmic overcontrol of the physical level equally in the central universe and throughout the universe of universes. As mind, God functions in the Deity of the Infinite Spirit; as spirit, God is manifest in the person of the Eternal Son and in the persons of the divine children of the Eternal Son. This interrelation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with the co-ordinate Persons and Absolutes of Paradise does not in the least preclude the direct personal action of the Universal Father throughout all creation and on all levels thereof. Through the presence of his fragmentized spirit the Creator Father maintains immediate contact with his creature children and his created universes. 우주들의 물질 우주에서 물리 조정자로서, 첫째 근원 중심은 천국 영원 섬의 원본으로 활동하시며, 이 절대 중력 중심을 통해, 영원 하나님은 중앙 우주와 우주들의 우주 전체에서 차별없이 물리적 차원을 전반적으로 질서우주에 따라 조정합니다. 마음으로서, 하나님은 무한 영의 신(神)으로 활동하십니다. 영으로서, 하나님은 영원 아들의 고유자와 영원 아들의 신적 자녀들의 고유자들로 나타납니다. 이 첫째 근원 중심과 천국의 정합(整合)적 고유자들 및 절대자들 사이의 상호관계는 모든 창조계와 그것의 모든 차원에서 우주 아버지의 직접적 고유 행동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의 파편화(破片化) 영의 실존을 통해 창조자 아버지는 자기 창조물 자녀들 및 창조된 우주들과 직접적 접촉을 유지합니다.

3. God is a Universal Spirit 하나님은 우주 영입니다

1:3.1 (25.1) “God is spirit.” He is a universal spiritual presence. The Universal Father is an infinite spiritual reality; he is “the sovereign, eternal, immortal, invisible, and only true God.” Even though you are “the offspring of God,” you ought not to think that the Father is like yourselves in form and physique because you are said to be created “in his image” — indwelt by Mystery Monitors dispatched from the central abode of his eternal presence. Spirit beings are real, notwithstanding they are invisible to human eyes; even though they have not flesh and blood. “하나님은 영이십니다(요4:24).” 하나님은 우주의 영적 실재입니다. 우주 아버지는 무한한 영적 실체이십니다. 그는 “주권이 있으며, 영원하시고, 불멸하시며, 보이지 않으시고, 유일하게 참된 하나님이십니다(딤전1:17).” 너희가 심지어 “하나님의 자녀(행17:28)”이며, 아버지의 영원 실재의 중앙 거처에서 파송된 신비 감시자들이 내주한, 즉 “그의 형상(창1:27)”으로 창조되었다고 너희가 들었지만, 아버지가 너희 자신과 같은 형태와 모습이라고, 너희가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영(靈) 존재들은 살과 피가 없어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실재(實在)합니다.

1:3.2 (25.2) Said the seer of old: “Lo, he goes by me, and I see him not; he passes on also, but I perceive him not.” We may constantly observe the works of God, we may be highly conscious of the material evidences of his majestic conduct, but rarely may we gaze upon the visible manifestation of his divinity, not even to behold the presence of his delegated spirit of human indwelling. 옛 선지자 욥이 고백했습니다. “보라,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욥9:11).” 우리가 계속 하나님의 행위를 지켜볼 수도 있고, 그의 장엄한 행동에 속한 물질적 증거들을 깊이 의식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의 신성(神性)의 명백한 표현을 거의 볼 수도 없고, 심지어 인간에 내주하도록 그가 보내신 영(靈) 실재도 볼 수 없습니다.

1:3.3 (25.3) The Universal Father is not invisible because he is hiding himself away from the lowly creatures of materialistic handicaps and limited spiritual endowments. The situation rather is: “You cannot see my face, for no mortal can see me and live.” No material man could behold the spirit God and preserve his mortal existence. The glory and the spiritual brilliance of the divine personality presence is impossible of approach by the lower groups of spirit beings or by any order of material personalities. The spiritual luminosity of the Father’s personal presence is a “light which no mortal man can approach; which no material creature has seen or can see.” But it is not necessary to see God with the eyes of the flesh in order to discern him by the faith-vision of the spiritualized mind. 우주 아버지는 물질적 장애와 제한된 영적 자질을 지닌 낮은 창조물에게 자신을 감추셔서 그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필사자는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33:20).” 물질 인간은 영(靈) 하나님을 보고 자기 필사 실재를 보전할 수 없습니다. 낮은 영 존재들 집단 혹은 어떤 계층의 물질 고유성들이 신적 고유성 실재의 영광과 영적 광채에 다가가기는 불가능합니다. 아버지 고유 실재의 영적 광휘는 “어떤 필사 사람도 접근할 수 없고, 어떤 물질 창조물도 보지 못했고 또 볼 수 없는 빛(딤전6:16)입니다. 그러므로 영화(靈化) 마음의 신앙-시력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해서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1:3.4 (25.4) The spirit nature of the Universal Father is shared fully with his coexistent self, the Eternal Son of Paradise. Both the Father and the Son in like manner share the universal and eternal spirit fully and unreservedly with their conjoint personality co-ordinate, the Infinite Spirit. God’s spirit is, in and of himself, absolute; in the Son it is unqualified, in the Spirit, universal, and in and by all of them, infinite. 우주 아버지의 영(靈) 본성은 자신의 공존(共存) 자아(自我), 천국의 영원 아들과 온전히 공유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방식으로 우주 및 영원 영(靈)을 자신들과 동등한 공동 고유성, 무한 영과 함께 온전히 무제한적으로 공유합니다. 하나님의 영(靈)은 자체로 절대적입니다. 아들 안에서 그것은 무제한적이며, 영 안에서 우주적이며, 그들 모두 안에서 모두에 의해 무한합니다.

1:3.5 (25.5) God is a universal spirit; God is the universal person. The supreme personal reality of the finite creation is spirit; the ultimate reality of the personal cosmos is absonite spirit. Only the levels of infinity are absolute, and only on such levels is there finality of oneness between matter, mind, and spirit. 하나님은 우주 영(靈)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적 고유자입니다. 유한 창조계의 최극 고유적 실체는 영(靈)입니다. 고유적 질서우주의 궁극 실체는 절한(絶限) 영(靈)입니다. 무한 수준들만이 절대적이며, 그런 수준에서만 물질, 마음 및 영(靈) 사이에 최종적인 일치가 있습니다.

1:3.6 (25.6) In the universes God the Father is, in potential, the overcontroller of matter, mind, and spirit. Only by means of his far-flung personality circuit does God deal directly with the personalities of his vast creation of will creatures, but he is contactable (outside of Paradise) only in the presences of his fragmented entities, the will of God abroad in the universes. This Paradise spirit that indwells the minds of the mortals of time and there fosters the evolution of the immortal soul of the surviving creature is of the nature and divinity of the Universal Father. But the minds of such evolutionary creatures originate in the local universes and must gain divine perfection by achieving those experiential transformations of spiritual attainment which are the inevitable result of a creature’s choosing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우주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잠재적으로 물질, 마음 및 영의 전반적-조정자입니다. 오직 그의 널리 퍼진 고유성 회로로, 하나님은 의지 창조물들에 속해 있는 자신의 광대한 창조계를 직접 다루시지만, 그는 천국 외부에서, 널리 우주에 있는 하나님의 뜻, 즉 자신의 파편화(破片化) 실체들의 실재로만 접촉할 수 있습니다. 시간에 속한 필사자들의 마음에 내주하며, 거기에서 생존하는 창조물의 불멸(不滅) 혼의 진화를 돌보는 이 천국 영(靈)은 우주 아버지의 본성과 신성(神性) 출신입니다. 그러나 그런 진화 창조물들의 마음은 지역 우주들에서 시작하며, 영적 도달의 그런 체험적 변화를 성취하여 신적 완전에 이르러야 하는데, 영적 도달은 천국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창조물이 선택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1:3.7 (26.1) In the inner experience of man, mind is joined to matter. Such material-linked minds cannot survive mortal death. The technique of survival is embraced in those adjustments of the human will and those transformations in the mortal mind whereby such a God-conscious intellect gradually becomes spirit taught and eventually spirit led. This evolution of the human mind from matter association to spirit union results in the transmutation of the potentially spirit phases of the mortal mind into the morontia realities of the immortal soul. Mortal mind subservient to matter is destined to become increasingly material and consequently to suffer eventual personality extinction; mind yielded to spirit is destined to become increasingly spiritual and ultimately to achieve oneness with the surviving and guiding divine spirit and in this way to attain survival and eternity of personality existence. 사람의 내적 체험에서, 마음은 물질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물질과 결합된 마음은 필사자 사후(死後)에 생존할 수 없습니다. 생존 기법은 인간 의지의 조율과, 하나님을 의식하는 지성이 점차 영(靈)의 가르침 가운데 결국 영(靈)의 인도를 받는, 필사자 마음 안에 있는 그런 변환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질 결합에서 영(靈)과 연합하는, 인간 마음의 이런 진화의 결과로 잠재적인 필사자 마음의 영(靈) 상태는 불멸(不滅) 혼이 모론시아 실체들로 변환됩니다. 필사자 마음이 물질에 끌려갈수록 더욱 물질적이 되어 결국 고유성이 소멸하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반면에 마음이 영을 따라 갈수록 더욱 영적이 되어, 생존하며 인도하는 신적 영과 궁극적으로 일치하며, 이렇게 생존과 고유성 존재의 영원에 도달합니다.

1:3.8 (26.2) I come forth from the Eternal, and I have repeatedly returned to the presence of the Universal Father. I know of the actuality and personalit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the Eternal and Universal Father. I know that, while the great God is absolute, eternal, and infinite, he is also good, divine, and gracious. I know the truth of the great declarations: “God is spirit” and “God is love,” and these two attributes are most completely revealed to the universe in the Eternal Son. 나는 영원자로부터 나와 우주 아버지의 실재로 거듭 돌아갔습니다. 나는 첫째 근원 중심, 영원 및 우주 아버지의 현재성과 고유성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위대한 하나님이 절대적이고 영원하며 무한한 동시에 그가 선하고 신적이며 은혜로우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靈)입니다.”와 “하나님은 사랑입니다.”라는 위대한 선언의 진리를 나는 알고 있으며, 이런 두 속성들은 영원 아들 안에 있는 우주에 가장 완벽하게 계시됩니다.

4. The Mystery of God 하나님의 신비

1:4.1 (26.3) The infinity of the perfection of God is such that it eternally constitutes him mystery. And the greaest of all the unfathomable mysteries of God is the phenomenon of the divine indwelling of mortal minds. The manner in which the Universal Father sojourns with the creatures of time is the most profound of all universe mysteries; the divine presence in the mind of man is the mystery of mysteries. 하나님께 속한 완전의 무한성이 그의 신비를 구성합니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 중 가장 큰 것이 필사자 마음들에 신적으로 내주하는 현상입니다. 우주 아버지가 시간의 창조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모든 우주 신비 중 가장 심오합니다. 인간 마음에 있는 신적 실재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1:4.2 (26.4) The physical bodies of mortals are “the temples of God.” Notwithstanding that the Sovereign Creator Sons come near the creatures of their inhabited worlds and “draw all men to themselves”; though they “stand at the door” of consciousness “and knock” and delight to come in to all who will “open the doors of their hearts”; although there does exist this intimate personal communion between the Creator Sons and their mortal creatures, nevertheless, mortal men have something from God himself which actually dwells within them; their bodies are the temples thereof. 필사자들의 물질 육체가 “하나님의 성전들(고전3:16)”입니다. 주권적인 창조주 아들들이 자신들의 거주세계들에 속한 창조물들에게 접근하여 “자신들에게 모든 사람들을 이끌(요12:32)”어도, 그 아들들이 의식의 “문밖에 서서” “심정의 문을 열”려는 모든 이들에 기쁘게 들어가(계3:20)도, 창조주 아들과 그들의 필사 창조물들 사이에 친밀한 개인적 교제가 있다고 해도, 필사 사람들은 자신들 내부에 실제로 내주하는 하나님 자신의 어떤 존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육체들은 성전들입니다. 

1:4.3 (26.5) When you are through down here, when your course has been run in temporary form on earth, when your trial trip in the flesh is finished, when the dust that composes the mortal tabernacle “returns to the earth whence it came”; then, it is revealed, the indwelling “Spirit shall return to God who gave it.” There sojourns within each moral being of this planet a fragment of God, a part and parcel of divinity. It is not yet yours by right of possession, but it is designedly intended to be one with you if you survive the mortal existence. 너희가 여기에서 삶을 마치고, 지상에서 일시적 형태로 너희 과정을 다하며, 육신으로 시승(試乘시험 운행)이 끝나고, 필사 장막을 이루는 티끌이 “그 근원인 흙으로 돌아가(창3:19)”면, 그때, 내주하는 “영(靈)은 그 영(靈)을 주셨던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사실(전12:7)”이 드러납니다. 이 행성에 속한 각 도덕 존재 내부에는 하나님의 파편(破片), 신성(神性)의 핵심적 부분이 머물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너희 소유가 아니지만, 너희 필사 존재가 살아남으면 너희와 하나가 되도록 계획적으로 의도된 것입니다.

1:4.4 (26.6) We are constantly confronted with this mystery of God; we are nonplused by the increasing unfolding of the endless panorama of the truth of his infinite goodness, endless mercy, matchless wisdom, and superb character. 우리는 항상 이 하나님의 신비를 마주보고 있습니다. 그의 무한한 선(善), 끝없는 자비, 비할 데 없는 지혜 및 훌륭한 성품에 속한 끝없는 진리의 전경이 점점 더 펼쳐지면서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1:4.5 (26.7) The divine mystery consists in the inherent difference which exists between the finite and the infinite, the temporal and the eternal, the time-space creature and the Universal Creator, the material and the spiritual, the imperfection of man and the perfection of Paradise Deity. The God of universal love unfailingly manifests himself to every one of his creatures up to the fullness of that creature’s capacity to spiritually grasp the qualities of divine truth, beauty, and goodness. 신적 신비는 유한과 무한, 잠시와 영원, 시공간 창조물과 우주 창조자, 물질적인 것과 영(靈)적인 것, 및 인간의 불완전과 천국 신의 완전성 사이에 존재하는 본래적 차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주적 사랑의 하나님은, 창조물이 신적 진리, 아름다움 및 선함의 특질을 영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충만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신의 창조물 각자에게 확실히 자신을 나타냅니다.

1:4.6 (27.1) To every spirit being and to every mortal creature in every sphere and on every world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the Universal Father reveals all of his gracious and divine self that can be discerned or comprehended by such spirit beings and by such mortal creatures. God is no respecter of persons, either spiritual or material. The divine presence which any child of the universe enjoys at any given moment is limited only by the capacity of such a creature to receive and to discern the spirit actualities of the supermaterial world. 우주들의 우주에 속한 모든 구체와 모든 세계에 있는 모든 영(靈) 존재와 모든 필사 창조물에게, 우주 아버지는, 그런 영 존재들과 그런 필사 창조물들이 분별하거나 이해할 수 있도록, 은혜롭고 신적인 자신의 모든 자아를 계시합니다. 하나님은 영적이든 물질적이든 어떤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우주의 자녀가 언제라도 누리는 신적 실재는 그런 창조물이 초(超)물질 세계의 영(靈) 실정을 수용하고 분별하는 능력으로만 제한됩니다.

1:4.7 (27.2) As a reality in human spiritual experience God is not a mystery. But when an attempt is made to make plain the realities of the spirit world to the physical minds of the material order, mystery appears: mysteries so subtle and so profound that only the faith-grasp of the God-knowing mortal can achieve the philosophic miracle of the recognition of the Infinite by the finite, the discernment of the eternal God by the evolving mortals of the material worlds of time and space. 인간의 영적 체험에 있는 실체로서 하나님은 신비가 아닙니다. 그러나 영(靈) 세계의 실체들을 물질적 계층의 물리적 마음들에 명백히 보이도록 시도할 때, 신비가 나타납니다. 신비들은 너무 미묘하고 심오해서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의 신앙-파악으로만, 유한으로 무한을 인식하는 철학적 기적, 즉 시공간 물질 세계의 진화하는 필사자들이 영원한 하나님을 식별할 수 있게 됩니다. 

5.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우주 아버지의 고유성

1:5.1 (27.3) Do not permit the magnitude of God, his infinity, either to obscure or eclipse his personality. “He who planned the ear, shall he not hear? He who formed the eye, shall he not see?” The Universal Father is the acme of divine personality; he is the origin and destiny of personality throughout all creation. God is both infinite and personal; he is an infinite personality. The Father is truly a personality, notwithstanding that the infinity of his person places him forever beyond the full comprehension of material and finite beings.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무한성이 하나님의 고유성을 흐리거나 무색하게 가리도록 허용하지 마십시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시94:9). 우주 아버지는 신적 고유성(固有性)의 극치(極致)입니다. 그는 창조계 전체에서 고유성(固有性)의 기원(起源)과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동시에 고유적이셔서, 그는 무한 고유성이십니다. 고유자 아버지의 무한성이 물질적이며 유한한 존재들에 속한 충만한 이해 너머에 그를 위치시킨다고 해도 아버지는 진실로 고유성이십니다.

1:5.2 (27.4) God is much more than a personality as personality is understood by the human mind; he is even far more than any possible concept of a superpersonality. But it is utterly futile to discuss such incomprehensible concepts of divine personality with the minds of material creatures whose maximum concept of the reality of being consists in the idea and ideal of personality. The material creature’s highest possible concept of the Universal Creator is embraced within the spiritual ideals of the exalted idea of divine personality. Therefore, although you may know that God must be much more than the human conception of personality, you equally well know that the Universal Father cannot possibly be anything less than an eternal, infinite, true, good, and beautiful personality.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되는 고유성으로서 훨씬 그 이상의 고유성입니다. 그는 초(超)고유성에 속한 가능한 어떤 개념보다 훨씬 그 이상입니다. 그래서 존재의 실체에 대한 최고의 개념이 고유성의 관념과 이상(理想)이라는 물질적 창조물들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신적 고유성의 개념을 논의하는 것은 전혀 쓸데없습니다. 우주 창조자에 대해 물질적 창조물이 지닐 수 있는 가능한 최고의 개념은 신적 고유성을 높인 관념의 영적 이상(理想)들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고유성에 대한 인간적 개념보다 훨씬 그 이상(以上)임을 너희가 알 수 있다고 해도, 우주 아버지는 영원하고, 무한하며, 참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고유성(固有性)보다 못한 어떤 것도 될 수 없음을 너희는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습니다. 

1:5.3 (27.5) God is not hiding from any of his creatures. He is unapproachable to so many orders of beings only because he “dwells in a light which no material creature can approach.” The immensity and grandeur of the divine personality is beyond the grasp of the unperfected mind of evolutionary mortals. He “measures the waters in the hollow of his hand, measures a universe with the span of his hand. It is he who sits on the circle of the earth, who stretches out the heavens as a curtain and spreads them out as a universe to dwell in.” “Lift up your eyes on high and behold who has created all these things, who brings out their worlds by number and calls them all by their names”; and so it is true that “the invisible things of God are partially understood by the things which are made.” Today, and as you are, you must discern the invisible Maker through his manifold and diverse creation, as well as through the revelation and ministration of his Sons and their numerous subordinates. 하나님은 자신의 어떤 창조물에게서 숨어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물질 창조물이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신다(딤전6:16)”는 그 이유만으로 그토록 여러 계층의 존재들이 가까이갈 수 없습니다. 신적 고유성의 광대함과 장엄함은 진화적 필사자들의 불완전한 마음으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는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리시며 뼘으로 우주를 재십니다(사40:12). 그는 땅 위 전역(전체)에 앉으셔서, 하늘들을 차일 같이 펴시며 거주할 우주처럼 그것들을 치십니다(사40:22).”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는지, 누가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는지 보라(사40:26). 그래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롬1:20)은 만드신 만물에게 부분적으로 이해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날, 너희가 있는 대로, 하나님의 아들들과 수많은 하위자들의 계시와 봉사를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여러 다양한 창조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조물주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1:5.4 (28.1) Even though material mortals cannot see the person of God, they should rejoice in the assurance that he is a person; by faith accept the truth which portrays that the Universal Father so loved the world as to provide for the eternal spiritual progression of its lowly inhabitants; that he “delights in his children.” God is lacking in none of those superhuman and divine attributes which constitute a perfect, eternal, loving, and infinite Creator personality. 물질 필사자들이 고유자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해도, 하나님이 고유자라는 확신으로 그들은 기뻐해야 합니다. 우주 아버지가 비천한 거주자들에게 영원한 영적 진보를 주실만큼 그렇게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묘사하는 진리를 신앙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는 “자기 자녀들을 매우 기뻐하십니다(요3:16a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은 완전하고, 영원하며, 애정이 깊고, 무한한 창조자 고유성을 이루는 그런 초(超)인간적이며 신적 성품에 속한 어떤 것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1:5.5 (28.2) In the local creations (excepting the personnel of the superuniverses) God has no personal or residential manifestation aside from the Paradise Creator Sons who are the fathers of the inhabited worlds and the sovereigns of the local universes. If the faith of the creature were perfect, he would assuredly know that when he had seen a Creator Son he had seen the Universal Father; in seeking for the Father, he would not ask nor expect to see other than the Son. Mortal man simply cannot see God until he achieves completed spirit transformation and actually attains Paradise. (초超우주의 요원들을 제외하고) 지역 창조계에서, 거주 세계들의 아버지들이며 지역 우주들의 주권자들인 천국 창조자 아들들을 떠나서, 하나님은 고유적 혹은 거주하며 자신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창조물의 신앙이 온전하다면, 그가 창조주 아들을 볼 때, 그가 우주 아버지를 보고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요12:45, 14:9). 아버지를 찾을 때, 아들 외에 다른 어떤 존재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필사 사람은 영(靈) 변환을 완전히 마치고 실제로 천국에 이르기까지 정말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1:5.6 (28.3) The natures of the Paradise Creator Sons do not encompass all the unqualified potentials of the universal absoluteness of the infinite nature of the First Great Source and Center, but the Universal Father is in every way divinely present in the Creator Sons. The Father and his Sons are one. These Paradise Sons of the order of Michael are perfect personalities, even the pattern for all local universe personality from that of the Bright and Morning Star down to the lowest human creature of progressing animal evolution. 천국 창조주 아들들의 본성은 첫째 근원 중심의 무한 본성에 속한 우주 절대성의 모든 무제한(분별불가)한 잠재성을 포함하지 않지만, 우주 아버지는 모든 면에서 창조주 아들들 안에서 신적으로 계십니다(요14:10). 아버지와 그 아들들은 하나이십니다(요10:30). 이 미가엘 계층의 천국 아들들은, 완전한 고유성들이며, 광명한 새벽별에서 아래로 진보하는 동물 진화의 가장 낮은 인간 창조물까지, 모든 지역 우주 고유성의 원본이기도 합니다. 

1:5.7 (28.4) Without God and except for his great and central person, there would be no personality throughout all the vast universe of universes. God is personality. 하나님과 그의 위대한 중심 고유자가 없다면, 모든 광대한 우주 전체에 어떤 고유성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유성(固有性)입니다.

1:5.8 (28.5) Notwithstanding that God is an eternal power, a majestic presence, a transcendent ideal, and a glorious spirit, though he is all these and infinitely more, nonetheless, he is truly and everlastingly a perfect Creator personality, a person who can “know and be known,” who can “love and be loved,” and one who can befriend us; while you can be known, as other humans have been known, as the friend of God. He is a real spirit and a spiritual reality. 하나님은 영원한 권능, 장엄한 현존, 초월적 이상(理想), 영광스러운 영(靈)이시며, 그는 이 모두이시고, 무한히 그 이상(以上)이시지만, 그는 진실로 영원히 완전한 창조주 고유성(固有性), “알 수 있고 알려질 수 있으며,”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고유자입니다. 게다가 다른 인간들이 하나님의 친구로서 알려졌듯이 너희도 알려질 수 있습니다(약2:23, 요15:14). 하나님은 진짜 영(靈)이며 영적 실체입니다.

1:5.9 (28.6) As we see the Universal Father revealed throughout his universe; as we discern him indwelling his myriads of creatures; as we behold him in the persons of his Sovereign Sons; as we continue to sense his divine presence here and there, near and afar, let us not doubt nor question his personality primacy. Notwithstanding all these far-flung distributions, he remains a true person and everlastingly maintains personal connection with the countless hosts of his creatures scattered throughout the universe of universes. 우리가 우주 전체에 계시된 하나님 아버지를 보고, 수많은 창조물들에게 내주하는 하나님을 알아보며, 그의 주권자 아들들의 고유자들 안에서 그를 바라보고, 그의 신적 현존을 여기저기에서, 원근에서, 계속 감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고유성 수위(首位)에 의혹을 품거나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널리 자신을 내어주시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참된 고유자로서 온 우주에 흩어져 있는 셀 수 없는 자신의 창조물들과 개인적인 연락을 영구히 유지합니다. 

1:5.10 (28.7) The idea of th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is an enlarged and truer concept of God which has come to mankind chiefly through revelation. Reason, wisdom, and religious experience all infer and imply the personality of God, but they do not altogether validate it. Even the indwelling Thought Adjuster is prepersonal. The truth and maturity of any religion is directly proportional to its concept of the infinite personality of God and to its grasp of the absolute unity of Deity. The idea of a personal Deity becomes, then, the measure of religious maturity after religion has first formulated the concept of the unity of God. 우주 아버지의 고유성 관념은 확장되어 더 참된 하나님 개념이며 계시를 통해 주로 인류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성, 지혜 및 종교적 체험은 모두 하나님의 고유성을 추론하고 암시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그것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합니다. 내주하는 생각 조율자도 전(前)고유적입니다. 종교의 진리성과 성숙도는 하나님의 무한한 고유성(固有性) 개념과 신(神)의 절대적 단일성(單一性) 파악에 정비례(正比例)합니다. 다음에, 종교가 하나님의 단일성 개념을 처음 형성한 후, 고유적 신(神) 관념은 종교적 성숙의 척도가 됩니다.

1:5.11 (29.1) Primitive religion had many personal gods, and they were fashioned in the image of man. Revelation affirms the validity of the personality concept of God which is merely possible in the scientific postulate of a First Cause and is only provisionally suggested in the philosophic idea of Universal Unity. Only by personality approach can any person begin to comprehend the unity of God. To deny the personalit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leaves one only the choice of two philosophic dilemmas: materialism or pantheism. 원시종교는 고유적인 여러 신과 같은 존재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인간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계시가 하나님의 고유성 개념의 정당성을 확언하며, 이 개념은 첫째 원인이라는 과학적 가정으로만 가능하며, 우주적 단일성의 철학적 관념으로만 잠정적으로 제시됩니다. 어떤 고유자도 고유성 접근으로만 하나님의 단일성을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근원 중심의 고유성을 부인하면 두 가지 철학적 궁지, 즉 유물론(唯物論) 또는 범신론(汎神論) 중 택일(擇一)만 남습니다.

1:5.12 (29.2) In the contemplation of Deity, the concept of personality must be divested of the idea of corporeality. A material body is not indispensable to personality in either man or God. The corporeality error is shown in both extremes of human philosophy. In materialism, since man loses his body at death, he ceases to exist as a personality; in pantheism, since God has no body, he is not, therefore, a person. The superhuman type of progressing personality functions in a union of mind and spirit. 신(神)을 정관(靜觀마음에 비춰 바라봄)하면, 고유성 개념은 유형성(有形모양과 형체가 있음) 관념이 없어야 합니다. 물질적 신체는, 인간이나 하나님의 고유성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유형성(有形性) 오류는 인간 철학의 양극단(兩極端)에 나타납니다. 유물론(唯物論)에서, 인간은 죽을 때 자기 신체를 상실하므로, 사람은 고유성으로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범신론(汎神論)에서, 하나님은 신체가 없어서, 그는 고유자가 아닙니다. 진보하는 초(超)인간적 유형의 고유성은 마음과 영(靈)의 연합으로 작용합니다.

1:5.13 (29.3) Personality is not simply an attribute of God; it rather stands for the totality of the co-ordinated infinite nature and the unified divine will which is exhibited in eternity and universality of perfect expression. Personality, in the supreme sense, is the revelation of God to the universe of universes. 고유성은 단순히 하나님의 속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유성은 정합(整合)된 무한한 본성과 통일된 신적 의지의 전체성을 뜻하는데, 통일된 신적 의지는 완전하게 표현된 영원성과 우주성으로 드러납니다. 최고의 의미에서 고유성은 우주들의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1:5.14 (29.4) God, being eternal, universal, absolute, and infinite, does not grow in knowledge nor increase in wisdom. God does not acquire experience, as finite man might conjecture or comprehend, but he does, within the realms of his own eternal personality, enjoy those continuous expansions of self-realization which are in certain ways comparable to, and analogous with, the acquirement of new experience by the finite creatures of the evolutionary worlds. 영원하고, 우주적이며, 절대적이고 무한한 하나님은 지식이 자라거나 지혜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추측하거나 납득하듯이, 하나님은 체험이 필요하지 않지만, 자신의 영원한 고유성의 영역 내부에서, 그렇게 계속 자아-실현의 확장을 누리는데, 어떤 면에서 진화 세계들의 유한한 창조물들이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것에 비슷하게 해당합니다.

1:5.15 (29.5) The absolute perfection of the infinite God would cause him to suffer the awful limitations of unqualified finality of perfectness were it not a fact that the Universal Father directly participates in the personality struggle of every imperfect soul in the wide universe who seeks, by divine aid, to ascend to the spiritually perfect worlds on high. This progressive experience of every spirit being and every mortal creature throughout the universe of universes is a part of the Father’s ever-expanding Deity-consciousness of the never-ending divine circle of ceaseless self-realization. 광대한 우주에서, 신적 도움으로, 높은 곳에 있는, 영적으로 완전한 세계들로 상승하려고 애쓰는, 모든 불완전한 혼(魂)에 속한 고유성 분투에, 우주 아버지가 직접 참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면, 무한한 하나님의 절대적 완전성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완전성의 무제한(분별불가) 최종성에 속한 극심한 제한을 겪게 할 것입니다. 모든 우주에서 모든 영(靈) 존재와 모든 필사 창조물의 이 진보적 체험은 그침없는 자아-실현의 끝없는 신적 회로에 속한 아버지의 늘-확장되는 신(神)-인식의 부분입니다.

1:5.16 (29.6) It is literally true: “In all your afflictions he is afflicted.” “In all your triumphs he triumphs in and with you.” His prepersonal divine spirit is a real part of you. The Isle of Paradise responds to all the physical metamorphoses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the Eternal Son includes all the spirit impulses of all creation; the Conjoint Actor encompasses all the mind expression of the expanding cosmos. The Universal Father realizes in the fullness of the divine consciousness all the individual experience of the progressive struggles of the expanding minds and the ascending spirits of every entity, being, and personality of the whole evolutionary creation of time and space. And all this is literally true, for “in Him we all live and move and have our being.” “너희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사63:9a)”와 “너희 모든 승리에서 그는 너희 안에서 너희와 함께 승리하십니다(고후2:14).”는 글자 그대로 진실입니다. 하나님의 전(前)고유적인 신적 영(靈)은 실제 너희의 일부분입니다. 천국 섬은 우주들의 우주에 속한 모든 물리적 변형에 반응합니다. 영원 아들은 모든 창조계에 있는 영(靈) 자극을 포함합니다. 공동 행위자는 팽창하는 질서우주의 표현된 모든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우주 아버지는, 신적 의식의 충만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