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171
On the Way to Jerusalem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promise me that these my sons shall have honor…” “저의 이 아들들이 영예를 얻을 것이라고 제게 약속하소서…”
1. The Departure from Pella 펠라 출발
David Zebedee’s later life 다윗 세베대의 노후 생활
Antioch and Philadelphia 안디옥과 필라델피아
2. On Counting the Cost 비용 계산하기
3. The Perean Tour 페레아 여행
Farewell to Abner 아브너에게 작별 인사
4. Teaching at Livias 리비아스에서 가르침
Peter and Simon and the 100 swords 베드로와 시몬과 100자루의 칼
Warning of the friendly Pharisees 우호적인 바리새인들의 경고
5. The Blind Man at Jericho 여리고의 시각 장애인
6. The Visit to Zaccheus 삭개오 방문
7. “As Jesus Passed By” “예수께서 지나가시면서”
8. Parable of the Pounds 므나(파운드)의 비유(
Nathaniel’s interpretation of the parable 나다니엘의 비유 해석
240204 섬기러 오신 사람의 아들 마20:20-28a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171:0.1 (1867.1) THE day after the memorable sermon on “The Kingdom of Heaven,” Jesus announced that on the following day he and the apostles would depart for the Passover at Jerusalem, visiting numerous cities in southern Perea on the way. “하늘나라”의 인상(印象) 짙은 설교를 한 다음 날(AD30 3. 12. 일), 예수는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키려고 이튿날 출발할 것이며, 도중에 남부 페레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171:0.2 (1867.2) The address on the kingdom and the announcement that he was going to the Passover set all his followers to thinking that he was going up to Jerusalem to inaugurate the temporal kingdom of Jewish supremacy. No matter what Jesus said about the nonmaterial character of the kingdom, he could not wholly remove from the minds of his Jewish hearers the idea that the Messiah was to establish some kind of nationalistic government with headquarters at Jerusalem. 하느님 나라에 대한 연설과 그가 유월절에 가신다는 발표로 인해 그의 모든 추종자는 그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유대인이 다스리는 현세적 나라가 시작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의 비(非)물질적 특성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셨든, 그는 자신의 유대인 청중들의 마음에서 메시아가 예루살렘에 본부를 둔 일종의 민족주의 정부를 설립한다는 생각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171:0.3 (1867.3) What Jesus said in his Sabbath sermon only tended to confuse the majority of his followers; very few were enlightened by the Master’s discourse. The leaders understood something of his teachings regarding the inner kingdom, “the kingdom of heaven within you,” but they also knew that he had spoken about another and future kingdom, and it was this kingdom they believed he was now going up to Jerusalem to establish. When they were disappointed in this expectation, when he was rejected by the Jews, and later on, when Jerusalem was literally destroyed, they still clung to this hope, sincerely believing that the Master would soon return to the world in great power and majestic glory to establish the promised kingdom. 예수께서 안식일(AD30, 3. 11. 토) 설교에서 하신 말씀은 그의 추종자 대부분을 혼동시키기 쉬울 뿐이었습니다. 주님의 강연으로 깨우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지도자들은 내적인 하느님 나라, 즉 “너희 안(심정)에 있는 하느님 나라(눅17:21b)”에 관한 그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알아들었지만, 그들도 그가 말했던 또 다른 미래의 하느님 나라에 대해 알았고, 그가 바로 이런 하느님 나라를 세우려고 지금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기대가 어긋나, 유대인들이 그를 버렸고, 나중에 예루살렘이 글자 그대로 궤멸해버렸을 때, 그들은 여전히 이런 희망에 매달려, 주께서 곧 큰 권능과 위엄 있는 영광으로 세상에 돌아와 약속된 하느님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171:0.4 (1867.4) It was on this Sunday afternoon that Salome the mother of James and John Zebedee came to Jesus with her two apostle sons and, in the manner of approaching an Oriental potentate, sought to have Jesus promise in advance to grant whatever request she might make. But the Master would not promise; instead, he asked her,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Then answered Salome: “Master, now that you are going up to Jerusalem to establish the kingdom, I would ask you in advance to promise me that these my sons shall have honor with you, the one to sit on your right hand and the other to sit on your left hand in your kingdom.” 이 일요일(AD30 3.12) 오후에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의 어머니 살로메가 자신의 두 사도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동방의 군주에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예수께서 자신의 어떤 요청이든 들어준다고 미리 약속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약속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그는 그녀에게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하기 원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살로메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이제 당신께서 하느님 나라를 세우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이니, 저의 이 아들들이 당신과 함께 영예를 얻어, 당신의 나라에서 하나는 당신 우편에 다른 하나는 당신 좌편에 앉을 것을 저에게 미리 약속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마20:20-21, 막10:35-37).”
171:0.5 (1867.5) When Jesus heard Salome’s request, he said: “Woman, you know not what you ask.” And then, looking straight into the eyes of the two honor-seeking apostles, he said: “Because I have long known and loved you; because I have even lived in your mother’s house; because Andrew has assigned you to be with me at all times; therefore do you permit your mother to come to me secretly, making this unseemly request. But let me ask you: Are you able to drink the cup I am about to drink?” And without a moment for thought, James and John answered, “Yes, Master, we are able.” Said Jesus: “I am saddened that you know not why we go up to Jerusalem; I am grieved that you understand not the nature of my kingdom; I am disappointed that you bring your mother to make this request of me; but I know you love me in your hearts; therefore I declare that you shall indeed drink of my cup of bitterness and share in my humiliation, but to sit on my right hand and on my left hand is not mine to give. Such honors are reserved for those who have been designated by my Father.” 예수께서 살로메의 요청을 듣고, “여인이여, 너는 네가 무엇을 구하는지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영예를 구하는 두 사도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오랫동안 알고 사랑했고, 내가 너희 어머니 집에서 살기도 했으며, 안드레가 너희에게 항상 나와 함께 있으라고 했기 때문에, 너희 어머니가 몰래 내게 와서 이런 부당한 요청을 하도록 너희가 허용하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묻겠노라.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러자 생각할 틈도 없이 야고보와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예, 주님,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루살렘에 왜 올라가는지 너희가 알지 못해서 내가 슬퍼하노라. 너희가 내 나라의 본성을 알아듣지 못해서 내 마음이 아프구나. 너희가 너희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내게 이런 요청을 하니 내가 실망스럽구나. 그러나 너희가 너희 심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을 내가 알기에, 너희가 정말로 나의 쓴잔을 마시고 나의 굴욕을 함께 나눌 것이나, 내 우편과 좌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님을 내가 선언하노라. 그런 영예는 내 아버지가 지정한 자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느니라(마20:22-23, 막10:38-40).
171:0.6 (1868.1) By this time someone had carried word of this conference to Peter and the other apostles, and they were highly indignant that James and John would seek to be preferred before them, and that they would secretly go with their mother to make such a request. When they fell to arguing among themselves, Jesus called them all together and said: “You well understand how the rulers of the gentiles lord it over their subjects, and how those who are great exercise authority. But it shall not be so in the kingdom of heaven. Whosoever would be great among you, let him first become your servant. He who would be first in the kingdom, let him become your minister. I declare to you that the Son of Man came not to be ministered to but to minister; and I now go up to Jerusalem to lay down my life in the doing of the Father’s will and in the service of my brethren.” When the apostles heard these words, they withdrew by themselves to pray. That evening, in response to the labors of Peter, James and John made suitable apologies to the ten and were restored to the good graces of their brethren. 이 무렵 누군가가 이 회의 소식을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전했고, 그들은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들보다 앞서 뽑혀 쓰이려 하고, 그들의 어머니와 함께 몰래 가서 그런 요청을 하려 한 것에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들이 저희끼리 다투기 시작하자, 예수께서 그들 모두 불러 모아 말했습니다. “너희는 이방인 통치자들이 어떻게 그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리는지, 그리고 큰 자들이 어떻게 권력을 행사하는지 잘 알고 있느니라.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면 그는 먼저 너희 봉사자가 되어야 하느니라.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가 되려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단언하노니,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는 섬김을 받지 않고 섬기러 왔느니라. 나는 이제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내 형제들을 섬기는 일에 내 목숨을 버리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라.” 사도들은 이런 말씀을 듣자, 자기들끼리 물러나 기도했습니다. 그날 저녁, 베드로의 수고에 응하여, 야고보와 요한이 열 사도에게 적절히 사과했고, 형제들의 선한 온정으로 되돌아갔습니다(마20:24-28a, 막10:41-45a).
171:0.7 (1868.2) In asking for places on the right hand and on the left hand of Jesus at Jerusalem, the sons of Zebedee little realized that in less than one month their beloved teacher would be hanging on a Roman cross with a dying thief on one side and another transgressor on the other side. And their mother, who was present at the crucifixion, well remembered the foolish request she had made of Jesus at Pella regarding the honors she so unwisely sought for her apostle sons. 세베대의 아들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우편과 좌편의 자리를 요청하면서, 한 달도 안 되어, 자신들이 사랑하는 선생이 한쪽에는 죽어가는 도둑과 다른 쪽에는 또 다른 죄인과 함께 로마 십자가에 매달리게 될 것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처형 현장에 있었던 그들의 어머니는 펠라에서 예수께 자기 사도 아들들을 위해 그렇게 분별없이 구했던 영예에 관한 어리석은 간청을 곰곰이 떠올렸습니다.
1. The Departure from Pella 펠라 출발
240211 안디옥과 필라델피아 행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171:1.1 (1868.3) On the forenoon of Monday, March 13, Jesus and his twelve apostles took final leave of the Pella encampment, starting south on their tour of the cities of southern Perea, where Abner’s associates were at work. They spent more than two weeks visiting among the seventy and then went directly to Jerusalem for the Passover. 3월 13일 월요일 오전에, 예수와 그의 열두 사도는 드디어 펠라 야영지를 떠나 아브너의 동료들이 일하고 있는 남부 페레아 도시를 둘러보려고 남쪽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들은 2주가 넘게 70인 사이에서 보낸 후 유월절을 보내려고 바로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171:1.2 (1868.4) When the Master left Pella, the disciples encamped with the apostles, about one thousand in number, followed after him. About one half of this group left him at the Jordan ford on the road to Jericho when they learned he was going over to Heshbon, and after he had preached the sermon on “Counting the Cost.” They went on up to Jerusalem, while the other half followed him for two weeks, visiting the towns in southern Perea. 주께서 펠라를 떠날 때, 사도들과 야영했던 거의 1천 명의 제자들이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 무리 중 거의 절반이 여리고 길에 있는 요단 여울에서, 그가 헤스본으로 건너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비용 계산”에 대해 설교한 후에 그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고 나머지 절반은 2주간 그의 뒤를 따라 남부 페레아의 읍내들을 방문했습니다.
171:1.3 (1868.5) In a general way, most of Jesus’ immediate followers understood that the camp at Pella had been abandoned, but they really thought this indicated that their Master at last intended to go to Jerusalem and lay claim to David’s throne. A large majority of his followers never were able to grasp any other concept of the kingdom of heaven; no matter what he taught them, they would not give up this Jewish idea of the kingdom. 대체로 예수의 직계 추종자 중 대다수는 펠라에서 야영을 그만두고 떠나는 것을 전해 듣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것은 그들의 주(主)가 결국 예루살렘에 가서 다윗의 왕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표시로 사실 생각했습니다. 그의 추종자 중 대다수는 다른 어떤 하늘나라 개념도 결코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든, 그들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런 유대인의 생각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171:1.4 (1868.6) Acting on the instructions of the Apostle Andrew, David Zebedee closed the visitors’ camp at Pella on Wednesday, March 15. At this time almost four thousand visitors were in residence, and this does not include the one thousand and more persons who sojourned with the apostles at what was known as the teachers’ camp, and who went south with Jesus and the twelve. Much as David disliked to do it, he sold the entire equipment to numerous buyers and proceeded with the funds to Jerusalem, subsequently turning the money over to Judas Iscariot. 사도 안드레의 지시에 따라, 다윗 세베대는 3월 15일 수요일에, 펠라에서 방문자들의 야영지를 폐쇄했습니다. 이때는 거의 4,000명의 방문자가 숙식 중이었는데, 여기에는 사도들과 함께 선생들의 야영지로 알려진 곳에 머물다가 예수 및 열두 사도와 함께 남쪽으로 간 1,000명 이상의 사람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하기가 너무 싫었지만 여러 구매자에게 장비 전체를 팔아 예루살렘으로 기금을 가져가서 나중에 그 돈을 가롯 유다에게 넘겼습니다.
171:1.5 (1869.1) David was present in Jerusalem during the tragic last week, taking his mother back with him to Bethsaida after the crucifixion. While awaiting Jesus and the apostles, David stopped with Lazarus at Bethany and became tremendously agitated by the manner in which the Pharisees had begun to persecute and harass him since his resurrection. Andrew had directed David to discontinue the messenger service; and this was construed by all as an indication of the early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at Jerusalem. David found himself without a job, and he had about decided to become the self-appointed defender of Lazarus when presently the object of his indignant solicitude fled in haste to Philadelphia. Accordingly, sometime after the resurrection and also after the death of his mother, David betook himself to Philadelphia, having first assisted Martha and Mary in disposing of their real estate; and there, in association with Abner and Lazarus, he spent the remainder of his life, becoming the financial overseer of all those large interests of the kingdom which had their center at Philadelphia during the lifetime of Abner. 다윗은, 십자가 처형 후 벳새다로 자기 어머니와 함께 돌아갔던, 비극적인 마지막 주간(AD30. 4.2일~8토)에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예수와 사도들을 기다리면서 다윗은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 집에 묵었는데 나사로의 부활 이후 바리새인들이 그를 학대하고 괴롭히기 시작한 방식에 엄청나게 동요되었습니다. 안드레가 다윗에게 메신저 봉사를 중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모두 이것을 예루살렘에서 하느님 나라가 머지않아 설립되는 표시로 해석했습니다. 다윗은 할 일이 없어졌고, 곧 자신이 분개한 염려의 대상이 필라델피아로 서둘러 도피하자, 그는 자칭 나사로의 옹호자가 되기로 거의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부활 후 언젠가, 자기 어머니도 돌아가신 후, 다윗은, 먼저 마르다와 마리아를 도와 그들의 부동산을 처분하고 필라델피아로 갔습니다. 거기서 아브너 및 나사로와 함께, 아브너의 평생에 필라델피아에 중심을 둔 하느님 나라의 그렇게 많은 모든 이익의 재정 관리자가 되어서, 그의 여생을 보냈습니다.
171:1.6 (1869.2) Within a short time after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Antioch became the headquarters of Pauline Christianity, while Philadelphia remained the center of the Abnerian kingdom of heaven. From Antioch the Pauline version of the teachings of Jesus and about Jesus spread to all the Western world; from Philadelphia the missionaries of the Abnerian version of the kingdom of heaven spread throughout Mesopotamia and Arabia until the later times when these uncompromising emissaries of the teachings of Jesus were overwhelmed by the sudden rise of Islam. 예루살렘 멸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안디옥은 바울 기독교의 본부가 되었고, 반면에 필라델피아는 아브너의 하늘나라 중심지로 남았습니다. 안디옥에서 바울판 예수의 가르침 및 예수에 대한 가르침이 모든 서양에 퍼졌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아브너판 하늘나라의 선교사들이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 전역으로 퍼졌고, 나중에 이렇게 타협하지 않는, 예수 가르침의 특사(特使 특별 임무의 사절)들이 이슬람의 급부상(急浮上)으로 압도당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2. On Counting the Cost 비용 계산하기
240218 비용 계산과 자발성 눅14:25-26, 28-35 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171:2.1 (1869.3) When Jesus and the company of almost one thousand followers arrived at the Bethany ford of the Jordan sometimes called Bethabara, his disciples began to realize that he was not going directly to Jerusalem. While they hesitated and debated among themselves, Jesus climbed upon a huge stone and delivered that discourse which has become known as “Counting the Cost.” The Master said: 예수와 거의 1천 명의 추종자 일행이 이전에 베다바라로 불렀던 요단강의 베다니 여울에 도착하자(요1:28), 그의 제자들은 그가 맞바로 예루살렘에 가려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주저하며 저희끼리 논의할 때, 예수께서 큰 바위에 올라가 “비용 계산”으로 알려진 강연을 했습니다. 주(主)께서 말했습니다.
171:2.2 (1869.4) “You who would follow after me from this time on, must be willing to pay the price of wholehearted dedication to the doing of my Father’s will. If you would be my disciples, you must be willing to forsake father, mother, wife, children, brothers, and sisters. If any one of you would now be my disciple, you must be willing to give up even your life just as the Son of Man is about to offer up his life for the completion of the mission of doing the Father’s will on earth and in the flesh. “너희가 이제부터 나를 따라오려면,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전심으로 헌신하는 대가를 자발적으로 치러야만 하느니라. 너희가 내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너희는 부모, 아내, 자녀와 형제자매들을 자진해서 버려야만 하느니라. 너희 중 누구라도 지금 내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가 지상에서 육신으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명을 완수하려고 자기 목숨을 이제 막 바치기 직전처럼 너희 생명도 기꺼이 포기해야만 하느니라(마10:37, 눅14:25-26).
171:2.3 (1869.5) “If you are not willing to pay the full price, you can hardly be my disciple. Before you go further, you should each sit down and count the cost of being my disciple. Which one of you would undertake to build a watchtower on your lands without first sitting down to count up the cost to see whether you had money enough to complete it? If you fail thus to reckon the cost, after you have laid the foundation, you may discover that you are unable to finish that which you have begun, and therefore will all your neighbors mock you, saying, ‘Behold, this man began to build but was unable to finish his work.’ Again, what king, when he prepares to make war upon another king, does not first sit down and take counsel as to whether he will be able, with ten thousand men, to meet him who comes against him with twenty thousand? If the king cannot afford to meet his enemy because he is unprepared, he sends an embassy to this other king, even when he is yet a great way off, asking for terms of peace. “너희가 자발적으로 충분히 값을 치르려 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거의 내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너희가 더 나아가기 전에, 각자 앉아서 내 제자가 되는 비용을 계산해야 하느니라. 너희 중 누가 먼저 앉아서 망대(望臺)를 완공할 정도로 충분히 돈이 있는지 알려고 비용을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 너희 중 누가 자기 땅에 망대(望臺)를 세우려고 손대겠느냐? 너희가 끝내 이렇게 비용을 낱낱이 계산하지 않고 만다면, 너희가 기초 공사를 한 후, 너희가 시작한 일을 마칠 수 없음을 알게 되어, 너희 모든 이웃이 ‘보라, 이 사람이 건축에 손댔지만 자기 일을 마칠 수 없었네.’라고 말하며 너희를 조롱하리라. 한편, 어떤 왕이 다른 왕과 전쟁하려고 준비할 때, 먼저 앉아서 1만 명의 군사로 2만 명의 군사로 자신을 대적해 오는 그를 대처할 수 있을지에 관해 상의하지 않겠느냐? 왕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자기 적을 맞설 수 없다면, 이런 다른 왕이 아직 상당히 멀리 있어도, 그에게 사절단을 보내 평화 협정을 요청하느니라(눅14:28-32).
171:2.4 (1870.1) “Now, then, must each of you sit down and count the cost of being my disciple. From now on you will not be able to follow after us, listening to the teaching and beholding the works; you will be required to face bitter persecutions and to bear witness for this gospel in the face of crushing disappointment. If you are unwilling to renounce all that you are and to dedicate all that you have, then are you unworthy to be my disciple. If you have already conquered yourself within your own heart, you need have no fear of that outward victory which you must presently gain when the Son of Man is rejected by the chief priests and the Sadducees and is given into the hands of mocking unbelievers. 그러니 이제 너희 각자 앉아서 내 제자가 되는 비용을 계산해야 하느니라. 이제부터 너희는 가르침을 듣고 하는 일들을 보면서 우리를 따라올 수 없으리라. 너희는 호된 박해에 직면하여, 결정적인 실망에도 불구하고 이 복음을 증언해야 하리라. 너희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마지못해서 바친다면, 내 제자가 되기에 어울리지 않느니라. 너희가 너희 자신의 심정에서 이미 자신을 이겼다면,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를 버려서 조롱하는 불신자들의 손에 넘길 때 너희가 당장 얻고 싶은 그런 외적 승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느니라(눅14:33).
171:2.5 (1870.2) “Now should you examine yourself to find out your motive for being my disciple. If you seek honor and glory, if you are worldly minded, you are like the salt when it has lost its savor. And when that which is valued for its saltiness has lost its savor, wherewith shall it be seasoned? Such a condiment is useless; it is fit only to be cast out among the refuse. Now have I warned you to turn back to your homes in peace if you are not willing to drink with me the cup which is being prepared. Again and again have I told you that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but you will not believe me. He who has ears to hear let him hear what I say.” “이제 너희는 내 제자가 되려는 너희 동기를 알아내기 위해서 자신을 살펴야 하느니라. 너희가 명예와 영광을 구하고, 너희가 세속적으로 생각하면, 너희는 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같으니라. 짠맛의 가치를 가진 그것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무엇으로 맛을 내겠느냐? 그런 조미료는 쓸모가 없어서 쓰레기로 내던지기에 딱 맞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경고하였노니, 너희가 준비된 잔을 나와 함께 자진해서 마시지 않으려면 평안히 집으로 돌아가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내가 너희에게 몇 번이나 말했지만 너희가 나를 믿지 않으리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내가 말하는 것을 들어라(마5:13, 막9:50a, 눅14:34-35).”
171:2.6 (1870.3) Immediately after speaking these words, Jesus, leading the twelve, started off on the way to Heshbon, followed by about five hundred. After a brief delay the other half of the multitude went on up to Jerusalem. His apostles, together with the leading disciples, thought much about these words, but still they clung to the belief that, after this brief period of adversity and trial, the kingdom would certainly be set up somewhat in accordance with their long-cherished hopes. 이 말씀을 마친 후 곧, 예수께서 열두 사도를 이끌고 헤스본으로 길을 가기 시작했고, 대략 500명이 따라갔습니다. 잠시 지체한 후, 무리 중 나머지 절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의 사도들은 주된 제자들과 함께 이 말씀을 많이 생각했지만, 이 짧은 역경과 시련의 기간 후, 자신들이 오랫동안 품었던 기대대로 하느님 나라가 어느 정도 반드시 세워지리라는 믿음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습니다.
3. The Perean Tour 페레아 여행
240225 아브너에게 작별 인사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171:3.1 (1870.4) For more than two weeks Jesus and the twelve, followed by a crowd of several hundred disciples, journeyed about in southern Perea, visiting all of the towns wherein the seventy labored. Many gentiles lived in this region, and since few were going up to the Passover feast at Jerusalem, the messengers of the kingdom went right on with their work of teaching and preaching. 예수와 열두 사도 및 뒤좇는 수백 명의 제자들이 2주 이상 남부 페레아 부근을 여행하면서 70인 사도가 수고하는 모든 읍내를 방문했습니다. 이 지역에는 많은 이방인이 살았고, 예루살렘의 유월절 잔치에 거의 올라가지 않아서 하느님 나라 메신저들은 가르치고 설교하는 자신들의 일을 바로 계속했습니다.
171:3.2 (1870.5) Jesus met Abner at Heshbon, and Andrew directed that the labors of the seventy should not be interrupted by the Passover feast; Jesus advised that the messengers should go forward with their work in complete disregard of what was about to happen at Jerusalem. He also counseled Abner to permit the women’s corps, at least such as desired, to go to Jerusalem for the Passover. And this was the last time Abner ever saw Jesus in the flesh. His farewell to Abner was: “My son, I know you will be true to the kingdom, and I pray the Father to grant you wisdom that you may love and understand your brethren.” 예수는 헤스본에서 아브너를 만났고, 안드레는 70인 사도의 수고가 유월절 잔치로 인해 중도에 그만두지 말아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을 완전히 무시하고 메신저들의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타일렀습니다. 그는 또한 여성단(團)만이라도 원하는 대로 유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에 가도록 용납하라고 아브너에게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아브너가 일찍이 예수를 육신으로 본 마지막 때였습니다. 아브너에게 했던 그의 작별 인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보게, 나는 네가 하느님 나라에 충실할 것을 알고 있으며, 아버지께서 네가 너희 형제들을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네게 주시도록 내가 기도하노라.”
171:3.3 (1870.6) As they traveled from city to city, large numbers of their followers deserted to go on to Jerusalem so that, by the time Jesus started for the Passover, the number of those who followed along with him day by day had dwindled to less than two hundred. 그들이 이 도시 저 도시로 다니는 동안, 그들을 따르던 상당수가 예루살렘에 가려고 자리를 떠서, 예수께서 유월절을 위해 출발할 무렵, 매일 그와 함께 따르던 자들의 수(數)가 2백 명 미만으로 줄어들었습니다.
171:3.4 (1871.1) The apostles understood that Jesus was going to Jerusalem for the Passover. They knew that the Sanhedrin had broadcast a message to all Israel that he had been condemned to die and directing that anyone knowing his whereabouts should inform the Sanhedrin; and yet, despite all this, they were not so alarmed as they had been when he had announced to them in Philadelphia that he was going to Bethany to see Lazarus. This change of attitude from that of intense fear to a state of hushed expectancy was mostly because of Lazarus’s resurrection. They had reached the conclusion that Jesus might, in an emergency, assert his divine power and put to shame his enemies. This hope, coupled with their more profound and mature faith in the spiritual supremacy of their Master, accounted for the outward courage displayed by his immediate followers, who now made ready to follow him into Jerusalem in the very face of the open declaration of the Sanhedrin that he must die. 사도들은 예수께서 유월절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산헤드린이 온 이스라엘에 예수께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메시지를 퍼뜨리고, 그의 소재를 아는 누구나 산헤드린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명령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가 필라델피아에서 자신들에게 나사로를 보러 베다니로 갈 것이라고 알렸을 때처럼 그렇게 놀라지 않았습니다. 극도의 두려움에서 조용한 기대감으로 이렇게 바뀐 태도는 주로 나사로의 부활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비상시에 자신의 신적 권능을 발휘하여 그의 대적들을 부끄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런 희망은, 그들 주(主)님의 영적 패권(霸權)에 대한 더 심오한 자신들의 성숙한 신앙과 결부되어, 그가 죽어야 한다는 산헤드린의 공개 선언에 직면하여 예루살렘으로 이제 그를 따를 준비를 마친 그의 직계 추종자들이 보여준 표면적 용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171:3.5 (1871.2) The majority of the apostles and many of his inner disciples did not believe it possible for Jesus to die; they, believing that he was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regarded him as immortal and already triumphant over death. 대부분의 사도와 그와 친한 여러 제자는 예수가 죽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부활이요 생명(요11:25)”이라고 믿어서, 그를 이미 죽음을 이긴 불사신(不死身)으로 여겼습니다.
4. Teaching at Livias 리비아스에서 가르침
240303 변모 체험의 격려 눅13:31-35a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171:4.1 (1871.3) On Wednesday evening, March 29, Jesus and his followers encamped at Livias on their way to Jerusalem, after having completed their tour of the cities of southern Perea. It was during this night at Livias that Simon Zelotes and Simon Peter, having conspired to have delivered into their hands at this place more than one hundred swords, received and distributed these arms to all who would accept them and wear them concealed beneath their cloaks. Simon Peter was still wearing his sword on the night of the Master’s betrayal in the garden. (AD30) 3월 29일 수요일 저녁에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은, 남부 페레아 도시들을 순회한 후,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리비아스에서 야영했습니다. 이날 밤 이곳 리비아스에서 100 자루 이상의 칼을 자기들 손에 전달받기로 공모한, 시몬 젤로떼와 시몬 베드로는 이 무기들을 받아서, 그것들을 받아서 자신들 외투 밑에 몰래 착용하려는 모두에게 분배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정원에서 주를 배반하던 그날 밤에도 여전히 자기 칼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171:4.2 (1871.4) Early on Thursday morning before the others were awake, Jesus called Andrew and said: “Awaken your brethren! I have something to say to them.” Jesus knew about the swords and which of his apostles had received and were wearing these weapons, but he never disclosed to them that he knew such things. When Andrew had aroused his associates, and they had assembled off by themselves, Jesus said: “My children, you have been with me a long while, and I have taught you much that is needful for this time, but I would now warn you not to put your trust in the uncertainties of the flesh nor in the frailties of man’s defense against the trials and testing which lie ahead of us. I have called you apart here by yourselves that I may once more plainly tell you that we are going up to Jerusalem, where you know the Son of Man has already been condemned to death. Again am I telling you that the Son of Man will be delivered into the hands of the chief priests and the religious rulers; that they will condemn him and then deliver him into the hands of the gentiles. And so will they mock the Son of Man, even spit upon him and scourge him, and they will deliver him up to death. And when they kill the Son of Man, be not dismayed, for I declare that on the third day he shall rise. Take heed to yourselves and remember that I have forewarned you.” 목요일(AD30. 3.30) 이른 아침, 다른 제자들이 깨기 전에 예수께서 안드레를 불러 말했습니다. “네 형제들을 깨우라! 내가 그들에게 이를 말이 있느니라.” 예수는 칼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자기 사도 중 누가 이런 무기를 받아서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그런 일들을 알고 있다고 그들에게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안드레가 자기 동료를 깨워서, 그들끼리 모였을 때,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내 자녀들아, 너희가 오랫동안 나와 함께 있었고, 이때를 위해 필요한 것을 너희에게 많이 가르쳤지만, 나는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시련과 시험에 맞서 불확실한 육신과 인간의 덧없는 방어를 신뢰하지 말라고 너희에게 경고하노라. 내가 너희를 여기로 따로 부른 것은, 너희가 아는 대로,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에게 이미 사형 선고를 내린, 예루살렘으로 우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내가 한 번 더 분명히 너희에게 이르고자 함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다시 이르노니,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가 대제사장들과 종교 통치자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며, 그들이 그에게 형을 선고한 후 이방인들의 손에 넘길 것이니라. 그래서 그들은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를 조롱하고 침까지 뱉고 채찍질할 것이며 그들이 그를 죽게 하리라. 그리고 그들이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를 죽일 때, 낙담하지 말지니, 제 삼일에 그가 일어날 것이라고 내가 선언하기 때문이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고, 내가 너희에게 미리 경고한 것을 기억하라(마16:21, 17:22b-23, 막8:31, 9:31, 10:32b-34, 눅9:22, 44, 18:31-33).”
171:4.3 (1871.5) Again were the apostles amazed, stunned; but they could not bring themselves to regard his words as literal; they could not comprehend that the Master meant just what he said. They were so blinded by their persistent belief in the temporal kingdom on earth, with headquarters at Jerusalem, that they simply could not — would not — permit themselves to accept Jesus’ words as literal. They pondered all that day as to what the Master could mean by such strange pronouncements. But none of them dared to ask him a question concerning these statements. Not until after his death did these bewildered apostles wake up to the realization that the Master had spoken to them plainly and directly in anticipation of his crucifixion. 사도들은 또 깜짝 놀라 아찔했지만, 그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들은 주께서 말한 그대로 뜻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본부가 있는 지상의 세속적 하느님 나라에 대한 고집스러운 믿음으로 눈이 멀어서 예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날 온종일 주께서 무슨 의도로 그렇게 이상하게 선언했는지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이런 말씀에 관하여 감히 그에게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당황했던 사도들은 그가 돌아가신 후에 비로소 주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것을 분명히 내다보고 직접 자신들에게 말했던 실상을 알아차렸습니다(막9:32, 눅9:45, 18:34).
171:4.4 (1872.1) It was here at Livias, just after breakfast, that certain friendly Pharisees came to Jesus and said: “Flee in haste from these parts, for Herod, just as he sought John, now seeks to kill you. He fears an uprising of the people and has decided to kill you. We bring you this warning that you may escape.” 아침 식사 직후에, 여기 리비아스에서 우호적인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와서 말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서둘러 피하십시오, 헤롯이 요한을 찾았듯이 당신을 죽이려고 지금 찾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반란을 두려워하여 당신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벗어나도록 이렇게 당신에게 경고합니다(눅13:31).
171:4.5 (1872.2) And this was partly true. The resurrection of Lazarus frightened and alarmed Herod, and knowing that the Sanhedrin had dared to condemn Jesus, even in advance of a trial, Herod made up his mind either to kill Jesus or to drive him out of his domains. He really desired to do the latter since he so feared him that he hoped he would not be compelled to execute him.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습니다. 헤롯은 나사로의 부활로 두려워 놀랐으며, 산헤드린이 재판도 하기 전에 감히 예수에게 형을 선고한 사실을 알고, 헤롯은 예수를 죽이거나 자기 영토에서 그를 몰아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그를 두려워해서 그를 처형하지 않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후자를 정말로 원했습니다.
171:4.6 (1872.3) When Jesus heard what the Pharisees had to say, he replied: “I well know about Herod and his fear of this gospel of the kingdom. But, mistake not, he would much prefer that the Son of Man go up to Jerusalem to suffer and die at the hands of the chief priests; he is not anxious, having stained his hands with the blood of John, to become responsible for the death of the Son of Man. Go you and tell that fox that the Son of Man preaches in Perea today, tomorrow goes into Judea, and after a few days, will be perfected in his mission on earth and prepared to ascend to the Father.”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말을 듣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헤롯과 이 하느님 나라 복음에 대한 그의 두려움을 잘 알고 있느니라. 그러나 잘못 생각하지 말지니, 그는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생하고 대제사장들의 손에 죽는 것을 훨씬 좋아하느니라. 그는 요한의 피로 자기 손을 더럽혀서,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질지 염려하지 않느니라. 너희는 가서,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가 오늘은 페레아에서 설교하고 내일은 유대로 들어가, 며칠 후 지상에서 자기 사명을 완수하고 아버지께 올라가려고 준비될 것이라고 그 여우에게 전하라(눅13:32).”
171:4.7 (1872.4) Then turning to his apostles, Jesus said: “From olden times the prophets have perished in Jerusalem, and it is only befitting that the Son of Man should go up to the city of the Father’s house to be offered up as the price of human bigotry and as the result of religious prejudice and spiritual blindness. O Jerusalem, Jerusalem, which kills the prophets and stones the teachers of truth! How often would I have gathered your children together even as a hen gathers her own brood under her wings, but you would not let me do it! Behold, your house is about to be left to you desolate! You will many times desire to see me, but you shall not. You will then seek but not find me.” And when he had spoken, he turned to those around him and said: “Nevertheless, let us go up to Jerusalem to attend the Passover and do that which becomes us in fulfilling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그런 다음 자기 사도들을 향해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옛날부터 선지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죽었으니,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가 아버지 집의 도시로 올라가 인간 고집불통의 값으로, 그리고 종교적 편견 및 영적 시각 상실증의 결과로 바쳐지는 것이 마땅할 따름이라.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진리의 선생들을 돌로 쳐서 죽이는구나! 암탉이 날개 아래 자기 병아리들을 모으듯이 얼마나 자주 내가 너희 자녀를 모으려 했으나, 내가 그렇게 하도록 너희가 놔두지 않았도다! 보라, 너의 집이 곧 황폐하게 남겨지리라! 네가 여러 번 나를 보고 싶어 할 것이나, 너희는 보지 못할 것이라. 너희가 그때 나를 찾아도 찾지 못할 것이라.” 그가 말씀하신 후, 그가 자기 주변 사람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에 올라가 유월절에 참석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우리가 되도록 그렇게 하자(마23:37-38, 눅13:33-35a).”
171:4.8 (1872.5) It was a confused and bewildered group of believers who this day followed Jesus into Jericho. The apostles could discern only the certain note of final triumph in Jesus’ declarations regarding the kingdom; they just could not bring themselves to that place where they were willing to grasp the warnings of the impending setback. When Jesus spoke of “rising on the third day,” they seized upon this statement as signifying a sure triumph of the kingdom immediately following an unpleasant preliminary skirmish with the Jewish religious leaders. The “third day” was a common Jewish expression signifying “presently” or “soon thereafter.” When Jesus spoke of “rising,” they thought he referred to the “rising of the kingdom.” 이날(AD30. 3.30 목) 예수를 따라 여리고에 들어간 신자 일행은 당황하여 어리둥절했습니다. 사도들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예수의 선언에서 최종 승리의 어떤 낌새만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임박한 좌절의 경고를 기꺼이 파악하려는 데까지 바로 나아갈 정신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제 삼일에 일어난다”라고 말하자, 그들은 이 말을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불쾌한 예비 논쟁 직후에 하느님 나라가 확실히 승리하는 뜻으로 붙잡았습니다. “제 삼일”은 “이내” 또는 “얼마 있다 곧”을 나타내는, 흔한 유대인들의 말투였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난다”라고 말하자, 그들은 그가 “하느님 나라가 일어난다”라는 말로 생각했습니다(마16:21, 17:23, 20:19, 막8:31, 9:31, 10:34, 눅9:22, 18:33, 24:7, 46).
171:4.9 (1872.6) Jesus had been accepted by these believers as the Messiah, and the Jews knew little or nothing about a suffering Messiah. They did not understand that Jesus was to accomplish many things by his death which could never have been achieved by his life. While it was the resurrection of Lazarus that nerved the apostles to enter Jerusalem, it was the memory of the transfiguration that sustained the Master at this trying period of his bestowal. 이런 신자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였고 유대인들은 고난받는 메시아에 대해 조금도 또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서는 결코 이룰 수 없던 많은 것을 그의 죽음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은 나사로의 부활로 용기를 얻어 예루살렘에 들어갔지만, 이렇게 자신을 증여하는, 견디기 어려운 시기에 주님을 격려했던 것은 변모(變貌)의 기억이었습니다.
5. The Blind Man at Jericho 여리고의 시각 장애인
240310 바디매오의 신앙 막10:46-52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171:5.1 (1873.1) Late on the afternoon of Thursday, March 30, Jesus and his apostles, at the head of a band of about two hundred followers, approached the walls of Jericho. As they came near the gate of the city, they encountered a throng of beggars, among them one Bartimeus, an elderly man who had been blind from his youth. This blind beggar had heard much about Jesus and knew all about his healing of the blind Josiah at Jerusalem. He had not known of Jesus’ last visit to Jericho until he had gone on to Bethany. Bartimeus had resolved that he would never again allow Jesus to visit Jericho without appealing to him for the restoration of his sight. (AD30) 3월 30일 목요일 늦은 오후에 예수와 그의 사도들은, 약 200명의 추종자 무리의 선두에서, 여리고 성곽에 가까이 갔습니다. 그들이 성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들은 거지 무리와 마주쳤는데, 그중에 젊어서부터 보지 못하는 노인, 바디매오가 있었습니다. 이 눈먼 거지는 예수에 대해 많이 들었고, 예루살렘에서 그가 눈먼 요시야를 치유한 것에 대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베다니까지 가고 나서야 비로소 그는 예수께서 여리고를 마지막으로 방문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디매오는 자기 시력의 회복을 위해 예수께 호소하지 않고는 예수께서 다시 여리고를 방문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결정했습니다(마20:29, 막10:46, 눅18:35).
171:5.2 (1873.2) News of Jesus’ approach had been heralded throughout Jericho, and hundreds of the inhabitants flocked forth to meet him. When this great crowd came back escorting the Master into the city, Bartimeus, hearing the heavy tramping of the multitude, knew that something unusual was happening, and so he asked those standing near him what was going on. And one of the beggars replied, “Jesus of Nazareth is passing by.” When Bartimeus heard that Jesus was near, he lifted up his voice and began to cry aloud, “Jesus, Jesus, have mercy upon me!” And as he continued to cry louder and louder, some of those near to Jesus went over and rebuked him, requesting him to hold his peace; but it was of no avail; he cried only the more and the louder. 예수께서 다가오신다는 소식이 여리고에 널리 알려지자, 주민 수백 명이 그를 만나려고 몰려들었습니다. 이렇게 큰 인파가 주님을 호위(護衛)하여 도시 안으로 다시 돌아오자, 바디매오는 쿵쿵거리는 군중의 격렬한 발소리를 듣고,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서, 자기 근처에 서 있는 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거지 중 하나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께서 가까이 계신다는 말을 듣자, 그는 자기 목소리를 높여 크게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여,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점점 더 큰 소리로 계속 외치자, 예수 옆에 있는 자 중 일부가 그에게 가서 꾸짖어 조용히 하라고 요청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는 더욱더 크게 외칠 뿐이었습니다(마20:30-31, 막10:47-48, 눅18:36-39).
171:5.3 (1873.3) When Jesus heard the blind man crying out, he stood still. And when he saw him, he said to his friends, “Bring the man to me.” And then they went over to Bartimeus, saying: “Be of good cheer; come with us, for the Master calls for you.” When Bartimeus heard these words, he threw aside his cloak, springing forward toward the center of the road, while those near by guided him to Jesus. Addressing Bartimeus, Jesus said: “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Then answered the blind man, “I would have my sight restored.” And when Jesus heard this request and saw his faith, he said: “You shall receive your sight; go your way; your faith has made you whole.” Immediately he received his sight, and he remained near Jesus, glorifying God, until the Master started on the next day for Jerusalem, and then he went before the multitude declaring to all how his sight had been restored in Jericho. 예수께서 그 시각 장애인이 외침을 들었을 때, 그는 가만히 멈춰 섰습니다. 그가 그를 보시자, 그가 자기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을 내게로 데려오라.” 그러자 그들이 바디매오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기운 내라, 주께서 너를 데려오라고 하시니 우리와 함께 가자.” 바디매오가 이 말을 듣자, 그는 자기 외투를 버리고, 길 한가운데로 튀어 나갔고, 동시에 바로 가까이에 있는 자들이 그를 예수께 인도했습니다. 바디매오에게 말을 걸며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뭘 하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그 시각 장애인이 “저는 제 시력이 회복되고자 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가 이 요청을 듣고 그의 신앙을 보시자, 그가 말했습니다. “네 신앙이 너를 낫게 했으니, 너는 네 시력을 받을 것이며, 네 길을 가라.” 즉시 그는 자기 시력을 받았고, 주께서 다음 날(AD30. 3. 31 금요일) 예루살렘으로 떠날 때까지, 예수 가까이에 남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 다음에, 군중 앞에 가서 자기 시력이 여리고에서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모두에게 밝혔습니다(마20:32-34, 막10:49-52, 눅18:40-43).
6. The Visit to Zaccheus 삭개오 방문
240317 삭개오의 신앙 눅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71:6.1 (1873.4) When the Master’s procession entered Jericho, it was nearing sundown, and he was minded to abide there for the night. As Jesus passed by the customs house, Zaccheus the chief publican, or tax collector, happened to be present, and he much desired to see Jesus. This chief publican was very rich and had heard much about this prophet of Galilee. He had resolved that he would see what sort of a man Jesus was the next time he chanced to visit Jericho; accordingly, Zaccheus sought to press through the crowd, but it was too great, and being short of stature, he could not see over their heads. And so the chief publican followed on with the crowd until they came near the center of the city and not far from where he lived. When he saw that he would be unable to penetrate the crowd, and thinking that Jesus might be going right on through the city without stopping, he ran on ahead and climbed up into a sycamore tree whose spreading branches overhung the roadway. He knew that in this way he could obtain a good view of the Master as he passed by. And he was not disappointed, for, as Jesus passed by, he stopped and, looking up at Zaccheus, said: “Make haste, Zaccheus, and come down, for tonight I must abide at your house.” And when Zaccheus heard these astonishing words, he almost fell out of the tree in his haste to get down, and going up to Jesus, he expressed great joy that the Master should be willing to stop at his house. 주님의 행렬이 여리고에 들어갔을 때, 해질 즈음이었고, 그는 그날 밤(AD30.3.30 목)은 그곳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예수께서 세관 옆을 지나칠 때, 세리장(稅吏長), 즉 수세 관리(收稅官吏) 삭개오가 마침 그 자리에 있었고, 그는 예수를 몹시 보고 싶어 했습니다. 이 세리장(稅吏長)은 큰 부자였고, 갈릴리에서 온 이 선지자에 대해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어쩌다 다음에 여리고를 방문하게 되면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만나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군중들을 헤집어 밀어제치며 나아가려 했지만, 군중은 너무 많았고, 키가 작아서, 그는 그들의 머리 위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리장(稅吏長)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도시의 중심부 근처에 이르기까지 군중을 바싹 뒤따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군중을 꿰뚫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예수께서 멈추지 않고 그 도시를 지나서 똑바로 빠져나갈 것으로 생각하자, 그는 앞으로 계속 달려서, 넓은 길로 가지들이 쭉 뻗어 늘어뜨린 무화과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면 주님이 스쳐 지나갈 때 자신이 그를 잘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예수께서 지나가다가 멈춰서 삭개오를 올려다보며 “삭개오야, 서둘러 내려오라, 내가 오늘 밤 너의 집에 머물러야겠구나.”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삭개오가 이런 놀라운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서둘러 내려오다 나무에서 거의 떨어질 뻔했고, 예수께 가서, 주께서 기꺼이 자기 집에서 여장(旅裝)을 풀려고 하셔서 너무 기쁘다고 말로 표현했습니다(눅19:1-6).
171:6.2 (1874.1) They went at once to the home of Zaccheus, and those who lived in Jericho were much surprised that Jesus would consent to abide with the chief publican. Even while the Master and his apostles lingered with Zaccheus before the door of his house, one of the Jericho Pharisees, standing near by, said: “You see how this man has gone to lodge with a sinner, an apostate son of Abraham who is an extortioner and a robber of his own people.” And when Jesus heard this, he looked down at Zaccheus and smiled. Then Zaccheus stood upon a stool and said: “Men of Jericho, hear me! I may be a publican and a sinner, but the great Teacher has come to abide in my house; and before he goes in, I tell you that I am going to bestow one half of all my goods upon the poor, and beginning tomorrow, if I have wrongfully exacted aught from any man, I will restore fourfold. I am going to seek salvation with all my heart and learn to do righteousness in the sight of God.” 그들은 바로 삭개오의 집으로 갔는데, 여리고에 살던 자들은 예수께서 세리장(稅吏長)의 집에 있기로 허락하셔서 매우 놀랐습니다. 주님과 그 사도들이 삭개오와 함께 그의 집 문 앞에 머물러 있는 중에도, 여리고의 바리새인 중 하나가 곁에 있다가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죄인, 동족을 착취하는 강도, 아브라함의 배교한 아들과 함께 묵으러 갔는지 보라.” 예수께서 이 말을 듣자, 그는 삭개오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삭개오는 발판에 올라서서 말했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나는 세리이며 죄인이지만, 위대한 선생께서 내 집에 거하러 오셨느니라. 그가 들어가기 전에, 내 모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내일부터는, 내가 어떤 이에게서 조금이라도 부당하게 거두었다면, 4배로 되돌려 드릴 것을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제 심정을 다해 구원을 바라며 하느님이 보시기에 의롭게 행하기를 배우겠습니다(눅19:7-8).”
171:6.3 (1874.2) When Zaccheus had ceased speaking, Jesus said: “Today has salvation come to this home, and you have become indeed a son of Abraham.” And turning to the crowd assembled about them, Jesus said: “And marvel not at what I say nor take offense at what we do, for I have all along declared that the Son of Man has come to seek and to save that which is lost.” 삭개오가 말을 멈추자,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임했으며, 너는 실로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었도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 모여든 군중을 향해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에 놀라지 말고 우리가 하는 행동에 화내지 말라,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 내가 내내 선언했기 때문이니라(눅19:9-10).”
171:6.4 (1874.3) They lodged with Zaccheus for the night. On the morrow they arose and made their way up the “road of robbers” to Bethany on their way to the Passover at Jerusalem. 그들은 그날 밤 삭개오와 함께 머물렀습니다. 다음 날(AD30.3.31 금) 그들이 일어나 예루살렘의 유월절로 가는 길에 “강도들의 길”을 따라 베다니로 올라갔습니다.
7. “As Jesus Passed By””예수께서 지나가시면서”
240324 예수 제자의 길 행10:38b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171:7.1 (1874.4) Jesus spread good cheer everywhere he went. He was full of grace and truth. His associates never ceased to wonder at the gracious words that proceeded out of his mouth. You can cultivate gracefulness, but graciousness is the aroma of friendliness which emanates from a love-saturated soul. 예수는 어디를 가셔도 좋은 기운을 퍼뜨렸습니다. 그는 은혜와 진리로 충만했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에 경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너희는 기품(氣品 고상한 움직임)을 계발(啓發)할 수 있지만 정중(鄭重 점잖고 예의 있는 태도)함은 사랑에 흠뻑 적신 혼(魂)에서 발산하는 친절의 향내입니다(요1:14).
171:7.2 (1874.5) Goodness always compels respect, but when it is devoid of grace, it often repels affection. Goodness is universally attractive only when it is gracious. Goodness is effective only when it is attractive.선(善)은 언제나 존중하지 않을 수 없게 하지만, 그것이 은혜가 없으면, 그것은 종종 애정을 몰아냅니다. 선(善)은 정중할 때만 예외 없이 매력적입니다. 선(善)은 매력적일 때만 효과가 있습니다.
171:7.3 (1874.6) Jesus really understood men; therefore could he manifest genuine sympathy and show sincere compassion. But he seldom indulged in pity. While his compassion was boundless, his sympathy was practical, personal, and constructive. Never did his familiarity with suffering breed indifference, and he was able to minister to distressed souls without increasing their self-pity. 예수는 정말로 사람들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진심에서 우러난 공감을 표현하고, 진실한 연민(憐愍)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동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연민(憐愍)은 한계가 없었지만, 그의 공감(共感)은 실질적이고, 개인적이며, 건설적이었습니다. 고통에 대한 친숙함으로 그는 절대로 무관심하지 않았고,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혼(魂)들의 자기 연민을 키우지 않으면서 그들을 보살필 수 있었습니다.
171:7.4 (1874.7) Jesus could help men so much because he loved them so sincerely. He truly loved each man, each woman, and each child. He could be such a true friend because of his remarkable insight — he knew so fully what was in the heart and in the mind of man. He was an interested and keen observer. He was an expert in the comprehension of human need, clever in detecting human longings. 예수는 사람들을 너무 진실하게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을 그토록 많이 도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각각의 남녀와 아이 하나하나를 사랑했습니다. 그는 놀랄 만한 통찰력 – 사람의 심정과 마음에 있는 것을 그토록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관심 있어 하는, 명민한 관찰자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필요를 터득한 숙달자였고, 인간의 갈망을 민첩하게 간파했습니다.
171:7.5 (1874.8) Jesus was never in a hurry. He had time to comfort his fellow men “as he passed by.” And he always made his friends feel at ease. He was a charming listener. He never engaged in the meddlesome probing of the souls of his associates. As he comforted hungry minds and ministered to thirsty souls, the recipients of his mercy did not so much feel that they were confessing to him as that they were conferring with him. They had unbounded confidence in him because they saw he had so much faith in them. 예수는 언제나 서두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지나가면서” 자기 동료 인간들을 위로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자기 친구들이 마음을 놓도록 했습니다. 그는 귀 기울여 듣는 매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동료들의 혼(魂)들을 쓸데없이 참견하여 한 번도 캐어물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주린 사람들을 위로하고 목마른 혼(魂)들을 돌볼 때, 그의 자비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에게 실토(實吐)한다기보다는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그가 자신들을 그렇게 깊이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를 한없이 신뢰했습니다(막2:14a, 요9:1a).
171:7.6 (1875.1) He never seemed to be curious about people, and he never manifested a desire to direct, manage, or follow them up. He inspired profound self-confidence and robust courage in all who enjoyed his association. When he smiled on a man, that mortal experienced increased capacity for solving his manifold problems. 그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없었으며, 그는 그들에게 지시하고, 마음대로 움직이거나, 따라가려는 욕구를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과 즐겁게 사귀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자신감(自信感)과 강건한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그가 한 사람에게 미소 지으면, 그 사람은 자기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증진되었습니다.
171:7.7 (1875.2) Jesus loved men so much and so wisely that he never hesitated to be severe with them when the occasion demanded such discipline. He frequently set out to help a person by asking for help. In this way he elicited interest, appealed to the better things in human nature. 예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아주 슬기롭게 사랑해서, 그들을 엄하게 바로잡아야 할 때 언제나 주저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종종 도움을 요청하여 사람을 도우려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관심을 끌어내어, 인간 본성의 더 나은 점에 호소했습니다.
171:7.8 (1875.3) The Master could discern saving faith in the gross superstition of the woman who sought healing by touching the hem of his garment. He was always ready and willing to stop a sermon or detain a multitude while he ministered to the needs of a single person, even to a little child. Great things happened not only because people had faith in Jesus, but also because Jesus had so much faith in them. 주님은 그의 옷자락을 만져 치유되려는 여인의 터무니없는 미신(迷信)에서 구원받는 신앙을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단 한 사람, 심지어 어린아이의 필요를 보살피는 동안 설교를 멈추거나 군중을 붙잡아 둘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었고 기꺼이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신뢰(信賴)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그들을 아주 많이 신뢰(信賴)했기 때문에 위대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AD29.3.22 화 152.0.2~3, 마9:20-22, 막5:25-34, 눅8:43-48).
171:7.9 (1875.4) Most of the really important things which Jesus said or did seemed to happen casually, “as he passed by.” There was so little of the professional, the well-planned, or the premeditated in the Master’s earthly ministry. He dispensed health and scattered happiness naturally and gracefully as he journeyed through life. It was literally true, “He went about doing good.” 예수께서 말하거나 행한 정말로 중요한 일들은 대부분 무심코 “그가 지나가시면서” 일어난 듯이 보였습니다. 주님의 지상 사역에는 전문적이고, 잘 계획되거나, 미리 계획된 것이 아주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인생 여정에, 꾸밈없이, 우아하게, 건강을 베풀고 행복을 확산시켰습니다. 말 그대로 “그는 두루 다니며 선을 행했습니다(행10:38).”
171:7.10 (1875.5) And it behooves the Master’s followers in all ages to learn to minister as “they pass by” — to do unselfish good as they go about their daily duties. 주님의 추종자들답게 모든 세대에 “그들이 지나가면서” 섬기기를 익혀서, 그들은 매일 맡은 일에 열중하면서 욕심 없이 선을 행해야 합니다.
8. Parable of the Pounds 므나(파운드)의 비유
240331 능력과 충실함 눅19:11-26, 28 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171:8.1 (1875.6) They did not start from Jericho until near noon since they sat up late the night before while Jesus taught Zaccheus and his family the gospel of the kingdom. About halfway up the ascending road to Bethany the party paused for lunch while the multitude passed on to Jerusalem, not knowing that Jesus and the apostles were going to abide that night on the Mount of Olives. 그들은 예수께서 삭개오와 그의 가족에게 하느님 나라 복음을 가르치면서 전날 늦은 밤까지 앉아 있었기에 거의 정오에 여리고에서 출발했습니다. 베다니로 오르는 길의 중턱에서 일행은 점심 식사를 위해 잠시 멈추는 동안 군중은 예수와 사도들이 그날 밤 감람(橄欖)산에 묵을 것을 모르고 예루살렘으로 지나갔습니다.
171:8.2 (1875.7) The parable of the pounds, unlike the parable of the talents, which was intended for all the disciples, was spoken more exclusively to the apostles and was largely based on the experience of Archelaus and his futile attempt to gain the rule of the kingdom of Judea. This is one of the few parables of the Master to be founded on an actual historic character. It was not strange that they should have had Archelaus in mind inasmuch as the house of Zaccheus in Jericho was very near the ornate palace of Archelaus, and his aqueduct ran along the road by which they had departed from Jericho. 므나(파운드)의 비유는, 모든 제자에게 적용되는 달란트 비유와 달리, 오로지 사도들에게만 말했고, 대부분 아켈라오스의 경험과 유대 왕국을 지배하려는 그의 헛된 시도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이것은 실제 역사적 인물에 근거한, 주님의 몇 안 되는 비유 중 하나입니다. 여리고에 있는 삭개오의 집이 아켈라오스의 화려한 궁전과 매우 가깝고 그의 수로(水路)가 여리고에서 출발한 길을 따라서 흘렀기 때문에 그것들이 아켈라오스를 고려한 것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171:8.3 (1875.8) Said Jesus: “You think that the Son of Man goes up to Jerusalem to receive a kingdom, but I declare that you are doomed to disappointment. Do you not remember about a certain prince who went into a far country to receive for himself a kingdom, but even before he could return, the citizens of his province, who in their hearts had already rejected him, sent an embassy after him, saying, ‘We will not have this man to reign over us’? As this king was rejected in the temporal rule, so is the Son of Man to be rejected in the spiritual rule. Again I declare that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but if the Son of Man had been accorded the spiritual rule of his people, he would have accepted such a kingdom of men’s souls and would have reigned over such a dominion of human hearts. Notwithstanding that they reject my spiritual rule over them, I will return again to receive from others such a kingdom of spirit as is now denied me. You will see the Son of Man rejected now, but in another age that which the children of Abraham now reject will be received and exalted.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가 왕국을 받으러 예루살렘에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너희가 실망에 처해있다고 내가 밝히노라. 어떤 왕자가 왕국을 받으려고 먼 나라로 갔지만, 그가 돌아오기도 전에, 벌써 마음으로 그를 거절한 그의 지역의 시민들이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그의 뒤를 따라 사절단을 보낸 것에 대해 너희가 기억하지 않느냐(눅19:14)? 이 왕의 현세적 통치가 거절된 것처럼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의 영적 통치가 거절될 것이니라. 내가 다시 밝히노니,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느니라. 그러나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에게 자기 백성의 영적 통치가 허용되었다면, 그는 사람들의 혼(魂)들로 이루어진 그런 왕국을 받아들이고 인간 심정의 그런 통치권을 잡았을 것이니라. 그들이 자신들에 대한 내 영적 통치를 거절해도, 나는 다시 돌아와 지금 나에게 응하지 않는 그런 영(靈)의 왕국을 다른 이들로부터 받아들일 것이라. 너희는 지금 거절된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를 볼 것이지만 다른 시대에는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지금 거절한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가 받아들여지고 높아지리라.
171:8.4 (1876.1) “And now, as the rejected nobleman of this parable, I would call before me my twelve servants, special stewards, and giving into each of your hands the sum of one pound, I would admonish each to heed well my instructions that you trade diligently with your trust fund while I am away that you may have wherewith to justify your stewardship when I return, when a reckoning shall be required of you. “그리고 이제, 이 비유에서 거절된 귀족으로서, 나는 내 앞에 내 열두 종, 특별한 청지기들을 불러서 각자의 손에 1므나(파운드)의 금액을 주면서, 내가 떨어져 있을 때 너희의 신탁 자금으로 너희가 부지런히 장사하여, 내가 돌아와 너희에게 계산이 요구될 때 너희가 그것으로 너희 청지기 직무를 제대로 했다고 보일 수 있도록, 내 지시를 각자 잘 유념하기를 내가 이르노라(눅19:11-13).
171:8.5 (1876.2) “And even if this rejected Son should not return, another Son will be sent to receive this kingdom, and this Son will then send for all of you to receive your report of stewardship and to be made glad by your gains. “이 거절된 아들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다른 아들이 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도록 보내질 것인데, 이 아들이 그때 너희 모두를 위해 너희 청지기 직무 보고서를 받도록 파송되어 너희 이익을 기뻐하리라(눅19:15a).
171:8.6 (1876.3) “And when these stewards were subsequently called together for an accounting, the first came forward, saying, ‘Lord, with your pound I have made ten pounds more.’ And his master said to him: ‘Well done; you are a good servant; because you have proved faithful in this matter, I will give you authority over ten cities.’ And the second came, saying, ‘Your pound left with me, Lord, has made five pounds.’ And the master said, ‘I will accordingly make you ruler over five cities.’ And so on down through the others until the last of the servants, on being called to account, reported: ‘Lord, behold, here is your pound, which I have kept safely done up in this napkin. And this I did because I feared you; I believed that you were unreasonable, seeing that you take up where you have not laid down, and that you seek to reap where you have not sown.’ Then said his lord: ‘You negligent and unfaithful servant, I will judge you out of your own mouth. You knew that I reap where I have apparently not sown; therefore you knew this reckoning would be required of you. Knowing this, you should have at least given my money to the banker that at my coming I might have had it with proper interest.’ “그 후 이 청지기들이 회계 보고를 위해 함께 불러 모이자, 첫째가 말하며 나섰습니다. ‘주여, 당신의 므나(파운드)로 제가 10므나(파운드)를 더 벌었습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잘했구나, 너는 이 일로 너희 충실을 입증했으니 너는 성실한 하인이도다, 내가 너에게 열 개의 도시를 다스릴 권세를 주리라.’ 그리고 둘째가 와서 말하기를, ‘주여, 저에게 맡긴 당신의 므나(파운드)로 5므나(파운드)를 벌었습니다. 주인이 말했습니다. ‘내가 알맞게 네가 다섯 개의 도시를 다스리게 하리라.’ 그리고 기타 등등 다른 하인들을 거쳐 마지막 하인에 이르도록 책임을 묻자 보고했습니다. ‘주여, 보소서, 여기에 당신의 므나(파운드)가 있는데, 제가 이 작은 수건에 안전히 보관했습니다. 당신이 두려워서 제가 이렇게 했습니다. 당신은 두지 않은 데서 취하고 심지 않은 데서 거두려 한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이라고 제가 믿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주인이 말했습니다. ‘너, 게으르고 성실하지 않은 하인아, 내가 네 입으로 너를 판단하리라. 내가 분명히 뿌리지 않은 데서 거둔다고 네가 알았으니, 이런 결산이 너에게 요구될 것을 네가 알고 있었도다. 이것을 알았으니, 너는 적어도 내 돈을 은행업자에게 줘서 내가 올 때 적당한 이자와 함께 내가 내 돈을 갖도록 해야 했느니라(눅19:15-23).
171:8.7 (1876.4) “And then said this ruler to those who stood by: ‘Take the money from this slothful servant and give it to him who has ten pounds.’ And when they reminded the master that such a one already had ten pounds, he said: ‘To every one who has shall be given more, but from him who has not, even that which he has shall be taken away from him.’” “그런 후 이 주권자가 옆에 서 있던 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게으른 하인의 돈을 취하여 열 므나(파운드)를 가진 그에게 주어라.’ 그들이 주인에게 그 사람은 이미 열 므나(파운드)를 가지고 있다고 일깨우자, 그가 말했습니다. ‘있는 자는 더 받을 것이지만, 없는 자에게는 그가 있는 것마저도 빼앗기리라(눅19:24-26).’”
171:8.8 (1876.5) And then the apostles sought to know the difference between the meaning of this parable and that of the former parable of the talents, but Jesus would only say, in answer to their many questions: “Ponder well these words in your hearts while each of you finds out their true meaning.” 그런 후 사도들은 이 비유와 이전 달란트 비유의 의미 차이를 알려고 했으나, 예수는 그들의 여러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습니다. “너희 각자가 그것들의 참된 의미를 찾아내면서 너희 심정으로 이런 말들을 충분히 깊이 생각하라.”
171:8.9 (1876.6) It was Nathaniel who so well taught the meaning of these two parables in the after years, summing up his teachings in these conclusions: 여러 해가 지나 나다니엘이 이런 두 비유의 의미를 아주 잘 가르쳤는데, 이런 결론으로 자기 가르침을 요약했습니다.
171:8.10 (1876.7) 1. Ability is the practical measure of life’s opportunities. You will never be held responsible for the accomplishment of that which is beyond your abilities. 능력은 인생의 형편을 재는 실제 척도입니다. 너희는 자기 능력을 벗어난 성취에 대해 절대로 책임을 지지 않을 것입니다.
171:8.11 (1876.8) 2. Faithfulness is the unerring measure of human trustworthiness. He who is faithful in little things is also likely to exhibit faithfulness in everything consistent with his endowments. 충실함은 인간의 신뢰를 재는 정확한 척도입니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자기 재능과 조화되는 모든 것에서도 충실함을 드러낼 것입니다.
171:8.12 (1876.9) 3. The Master grants the lesser reward for lesser faithfulness when there is like opportunity. 주님은 기회가 왔을 때 더 적은 충실함에 대해서 더 적게 보상합니다.
171:8.13 (1877.1) 4. He grants a like reward for like faithfulness when there is lesser opportunity. 그는 기회가 더 적을 때 충실함과 같은 정도로 보상합니다.
171:8.14 (1877.2) When they had finished their lunch, and after the multitude of followers had gone on toward Jerusalem, Jesus, standing there before the apostles in the shade of an overhanging rock by the roadside, with cheerful dignity and a gracious majesty pointed his finger westward, saying: “Come, my brethren, let us go on into Jerusalem, there to receive that which awaits us; thus shall we fulfill the will of the heavenly Father in all things.” 그들이 점심 식사를 마치고, 추종자 무리가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간 후, 길가의 돌출한 바위 그늘에서 예수는 사도들 앞에 일어나 손가락으로 서쪽을 가리키며 기운찬 위엄과 은혜로운 위풍으로 말했습니다. “자, 내 형제들아, 예루살렘으로 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자,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일에서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리라.”
171:8.15 (1877.3) And so Jesus and his apostles resumed this, the Master’s last journey to Jerusalem in the likeness of the flesh of mortal man. 그래서 예수와 그의 사도들은 필사 인간 육신의 모습으로 예루살렘으로 주님의 마지막 여정을 이렇게 다시 계속했습니다(눅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