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84
Marriage and Family Life 결혼과 가정생활
1. Primitive Pair Associations 원시 부부 결합
2. The Early Mother-Family 초기 모계(母系)-가정
3. The Family Under Father Dominance 가부장(家父長) 가정
4. Woman’s Status in Early Society 초기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5. Woman Under the Developing Mores 발전하는 관습에 따른 여성
6. The Partnership of Man and Woman 남성과 여성의 협력
7. The Ideals of Family Life 가정생활의 이상(理想)들
8. Dangers of Self-Gratification 자아-충족의 위험들
84:0.1 (931.1) MATERIAL necessity founded marriage, sex hunger embellished it, religion sanctioned and exalted it, the state demanded and regulated it, while in later times evolving love is beginning to justify and glorify marriage as the ancestor and creator of civilization’s most useful and sublime institution, the home. And home building should be the center and essence of all educational effort. 물질적 필요가 결혼의 근거를 이루었고, 성적 갈망이 결혼을 장식했으며, 종교가 결혼을 인가하고 결혼 활동을 강화했으며, 국가가 결혼을 요구하고 규정했고, 게다가, 후대에 진화하는 사랑은, 가장 유용하고 숭고한 문명 제도, 즉 가정의 조상과 창조자로서 결혼을 정당화하고 미화(美化)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 세우기는 모든 교육적 노력의 중심과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84:0.2 (931.2) Mating is purely an act of self-perpetuation associated with varying degrees of self-gratification; marriage, home building, is largely a matter of self-maintenance, and it implies the evolution of society. Society itself is the aggregated structure of family units. Individuals are very temporary as planetary factors — only families are continuing agencies in social evolution. The family is the channel through which the river of culture and knowledge flows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 짝짓기는 다양한 정도의 자아-만족(滿足)과 결부된 순전한 자아-영속(永續)의 행동입니다. 결혼, 가정 세우기는 대개 자아-유지(維持)의 문제이며, 그것은 사회의 진화를 포함합니다. 사회 자체는 가정 단위의 집합 구조입니다. 개인들은 아주 일시적인 행성 요소들입니다 – 가정만이 영속하는 사회적 진화를 일으키는 요소입니다. 가정은, 문화와 지식의 강(江)이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흐르는 경로입니다.
84:0.3 (931.3) The home is basically a sociologic institution. Marriage grew out of co-operation in self-maintenance and partnership in self-perpetuation, the element of self-gratification being largely incidental. Nevertheless, the home does embrace all three of the essential functions of human existence, while life propagation makes it the fundamental human institution, and sex sets it off from all other social activities. 가정은 원래 사회 조직 제도입니다. 결혼은 자아-유지(維持)의 협력과 자아-영속(永續)의 협조로 생겼고, 자아-만족(滿足)의 요소는 대개 부수적입니다. 그렇지만, 가정은 인간 존재에 속한 모든 세 가지 본질적 작용을 포함하며, 생명 증식은 가정을 기본적인 인간 제도로 만들고, 성(性)은 다른 모든 사회적 활동들로부터 가정을 시작하게 합니다.
1. Primitive Pair Associations 원시 부부 결합
84:1.1 (931.4) Marriage was not founded on sex relations; they were incidental thereto. Marriage was not needed by primitive man, who indulged his sex appetite freely without encumbering himself with the responsibilities of wife, children, and home. 결혼은 성(性)관계에 근거를 두지 않았습니다. 성관계는 결혼에 부수하여 일어났습니다. 아내, 자녀 및 가정을 책임지지 않고 자유로이 성(性)욕을 채웠던 원시인들은 결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84:1.2 (931.5) Woman, because of physical and emotional attachment to her offspring, is dependent on co-operation with the male, and this urges her into the sheltering protection of marriage. But no direct biologic urge led man into marriage — much less held him in. It was not love that made marriage attractive to man, but food hunger which first attracted savage man to woman and the primitive shelter shared by her children. 여성은, 자녀에 대한 육체적, 정서적 애착 때문에, 남성과 함께하는 협력에 의존하며, 이런 충동이 그녀를 결혼의 보호 안으로 피하게 합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어떤 생물학적 충동도 남성을 결혼으로 이끌지 않았고 – 하물며 그를 결혼으로 가두지 않았습니다. 남성의 마음을 결혼으로 이끈 것은, 사랑이 아니라, 야만인을 여성에게 끌어들인 것은 먼저 식량 기갈(飢渴)과 그녀의 자녀와 공유했던 원시적 피난처였습니다.
84:1.3 (931.6) Marriage was not even brought about by the conscious realization of the obligations of sex relations. Primitive man comprehended no connection between sex indulgence and the subsequent birth of a child. It was once universally believed that a virgin could become pregnant. The savage early conceived the idea that babies were made in spiritland; pregnancy was believed to be the result of a woman’s being entered by a spirit, an evolving ghost. Both diet and the evil eye were also believed to be capable of causing pregnancy in a virgin or unmarried woman, while later beliefs connected the beginnings of life with the breath and with sunlight. 결혼은 성(性)관계의 의무에 대한 의식적 자각으로 생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원시인은 성적 탐닉과 그 결과로 일어나는 아이 출산 사이의 관계를 결코 깨닫지 못했습니다. 한때 처녀가 임신할 수 있다고 일반적으로 믿었습니다. 야만인은 아기들이 영(靈)의 나라에서 만들어진다고 일찍부터 생각했습니다. 임신은 진화하는 유령(幽靈), 영(靈)이 여성에게 들어간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식이 요법과 저주의 눈길도 처녀 즉 미혼여성을 임신시킬 수 있다고 믿었으며, 게다가 후기 믿음은 생명의 시작을 호흡 및 햇빛과 연결했습니다.
84:1.4 (932.1) Many early peoples associated ghosts with the sea; hence virgins were greatly restricted in their bathing practices; young women were far more afraid of bathing in the sea at high tide than of having sex relations. Deformed or premature babies were regarded as the young of animals which had found their way into a woman’s body as a result of careless bathing or through malevolent spirit activity. Savages, of course, thought nothing of strangling such offspring at birth. 초기에 여러 민족은 유령(幽靈)을 바다와 관련지었습니다. 그래서 처녀들은 목욕 관행에 많이 제한되었습니다. 젊은 여성들은 성(性)관계를 갖는 것보다 만조(滿潮 밀물)때 목욕하기를 훨씬 더 두려워했습니다. 기형아(畸形兒) 즉 조산아(早産兒)들은 조심성 없는 목욕이나 심술궂은 영(靈) 행위의 결과로써 여성의 몸에 들어갈 방법을 찾은 동물의 새끼로 여겼습니다. 물론 야만인들은 그런 자녀가 태어날 때 교살(絞殺 목을 졸라 죽임)하기를 예사로 여겼습니다.
84:1.5 (932.2) The first step in enlightenment came with the belief that sex relations opened up the way for the impregnating ghost to enter the female. Man has since discovered that father and mother are equal contributors of the living inheritance factors which initiate offspring. But even in the twentieth century many parents still endeavor to keep their children in more or less ignorance as to the origin of human life. 성(性)관계로, 임신시키는 유령(幽靈)이 여성에게 들어가는 길이 열렸다는 믿음에서, 계몽의 첫 단계가 따라왔습니다. 그 이후 사람은 부모가 자녀를 시작하는 살아있는 유전 인자의 동등한 공헌자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도 여러 부모는 여전히 인간 생명의 기원에 대해 자기 자녀가 어느 정도 알지 못하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84:1.6 (932.3) A family of some simple sort was insured by the fact that the reproductive function entails the mother-child relationship. Mother love is instinctive; it did not originate in the mores as did marriage. All mammalian mother love is the inherent endowment of the adjutant mind-spirits of the local universe and is in strength and devotion always directly proportional to the length of the helpless infancy of the species. 생식(生殖) 기능이 어머니-자녀 관계를 일으킨다는 사실로 인해 어떤 단순한 유형의 가족이 보장되었습니다. 모성애는 본능적입니다. 그것은 결혼처럼 관습에서 비롯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포유동물 모성애는 지역 우주에 속한 보조 마음-영(靈)들의 선천적 증여 재질이며, 강도(剛度)와 헌신(獻身)의 정도는 언제나 그 종(種) 무력한 유아기의 길이에 정비례합니다.
84:1.7 (932.4) The mother and child relation is natural, strong, and instinctive, and one which, therefore, constrained primitive women to submit to many strange conditions and to endure untold hardships. This compelling mother love is the handicapping emotion which has always placed woman at such a tremendous disadvantage in all her struggles with man. Even at that, maternal instinct in the human species is not overpowering; it may be thwarted by ambition, selfishness, and religious conviction. 어머니와 자녀 관계는 자연스럽고, 강력하며, 본능적이어서, 원시 여성들이 여러 낯선 상황들을 감수하고 무수한 고난을 견디도록 했습니다. 강력한 이런 모성애는 남성과 함께 하는 모든 투쟁에서 여성을 항상 그토록 불리한 입장에 두었던, 약하게 만든 감정입니다. 그래도 인간종의 모성 본능은 압도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야망, 이기심 및 종교적 신념으로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84:1.8 (932.5) While the mother-child association is neither marriage nor home, it was the nucleus from which both sprang. The great advance in the evolution of mating came when these temporary partnerships lasted long enough to rear the resultant offspring, for that was homemaking. 어머니-자녀 관계는 결혼도 아니고 가정도 아니지만, 그것은 두 가지가 솟아 나온 핵심이었습니다. 이런 일시적 협력의 결과로 생긴 자녀를 양육하기에 충분히 오래 지속되었을 때, 그것이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짝짓기 진화에서 커다란 진보가 왔습니다.
84:1.9 (932.6) Regardless of the antagonisms of these early pairs, notwithstanding the looseness of the association, the chances for survival were greatly improved by these male-female partnerships. A man and a woman, co-operating, even aside from family and offspring, are vastly superior in most ways to either two men or two women. This pairing of the sexes enhanced survival and was the very beginning of human society. The sex division of labor also made for comfort and increased happiness. 이런 초기 부부들의 대립과 관계없이, 그 결합이 느슨했지만, 생존 기회는 이런 남녀 협동으로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가족과 자녀를 제외하고, 협동하는 남녀는 두 남자 또는 두 여자 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더 우월합니다. 이런 남녀 부부는 생존을 향상했고, 인간 사회의 바로 시작이었습니다. 노동의 남녀 구분도 안락을 만들고 행복을 증가시켰습니다.
- The Early Mother-Family 초기 모계(母系)-가정
84:2.1 (932.7) The woman’s periodic hemorrhage and her further loss of blood at childbirth early suggested blood as the creator of the child (even as the seat of the soul) and gave origin to the blood-bond concept of human relationships. In early times all descent was reckoned in the female line, that being the only part of inheritance which was at all certain. 여성의 주기적 출혈과 추가적인 분만 출혈로, 피를 아이의 창조자 (심지어 혼魂의 자리로) 연상하여, 인간관계에 속한 혈연(血緣) 개념이 최초로 생겼습니다. 초기에 모든 후손은, 아주 확실히 상속의 유일한 부분이었던, 여성 혈통으로 여겼습니다.
84:2.2 (932.8) The primitive family, growing out of the instinctive biologic blood bond of mother and child, was inevitably a mother-family; and many tribes long held to this arrangement. The mother-family was the only possible transition from the stage of group marriage in the horde to the later and improved home life of the polygamous and monogamous father-families. The mother-family was natural and biologic; the father-family is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The persistence of the mother-family among the North American red men is one of the chief reasons why the otherwise progressive Iroquois never became a real state. 본능적으로 어머니와 자녀의 생물학적 혈연에서 생긴 원시 가정은 불가피하게 모계(母系)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부족은 이런 제도를 오랫동안 고수(固守)했습니다. 모계(母系)-가정은 유목민의 집단 결혼에서 일부다처와 일부일처 부계(父系)-가정들의 후기에 개선된 가정생활로 유일하게 넘어가는 단계였습니다. 모계(母系)-가정은 자연스럽게 발생한 생물학적이었습니다. 부계(父系)-가정은 사회적, 경제적 및 정치적이었습니다. 북(北)아메리카의 홍인(紅人) 사이에서 지속된 모계(母系)-가정이, 다른 점에서 진보적인 이로쿼이인(人)이 결코 실제 국가가 되지 못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84:2.3 (933.1) Under the mother-family mores the wife’s mother enjoyed virtually supreme authority in the home; even the wife’s brothers and their sons were more active in family supervision than was the husband. Fathers were often renamed after their own children. 모계(母系)-가정의 관습에 따라, 아내의 어머니가 가정에서 사실상 최고의 권위를 누렸습니다. 아내의 형제들과 그들의 아들들까지도 가정 관리에 남편보다 더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버지들은 흔히 자기 자녀를 따라 개명(改名)되었습니다.
84:2.4 (933.2) The earliest races gave little credit to the father, looking upon the child as coming altogether from the mother. They believed that children resembled the father as a result of association, or that they were “marked” in this manner because the mother desired them to look like the father. Later on, when the switch came from the mother-family to the father-family, the father took all credit for the child, and many of the taboos on a pregnant woman were subsequently extended to include her husband. The prospective father ceased work as the time of delivery approached, and at childbirth he went to bed, along with the wife, remaining at rest from three to eight days. The wife might arise the next day and engage in hard labor, but the husband remained in bed to receive congratulations; this was all a part of the early mores designed to establish the father’s right to the child. 아주 초기의 종족들은, 자녀를 전적으로 어머니 출신으로 여기면서, 아버지를 거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녀들이 어울리는 결과로서 아버지를 닮거나 자녀들이 아버지를 닮도록 어머니가 원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렇게 “자국이 남아 있다.”라고 믿었습니다. 후에 모계(母系)-가정에서 부계(父系)-가정으로 바뀌자, 아버지가 아이에 대한 모든 공적을 취했으며, 임신부(姙娠婦)에 대한 여러 금기가 나중에 확장되어 그녀의 남편을 포함했습니다. 아버지가 될 사람은 출산 시간이 다가오자 일을 그만두었고, 분만 중에 그는 아내와 마찬가지로 침실로 가서 3일에서 8일간 남아서 쉬었습니다. 아내는 다음날 일어나 중노동을 할 수도 있지만, 남편은 침실에 남아 축하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를 세우려고 의도된 초기 관습의 일부였습니다.
84:2.5 (933.3) At first, it was the custom for the man to go to his wife’s people, but in later times, after a man had paid or worked out the bride price, he could take his wife and children back to his own people. The transition from the mother-family to the father-family explains the otherwise meaningless prohibitions of some types of cousin marriages while others of equal kinship are approved. 처음에는, 남성이 아내의 가족에게 가는 것이 관습이었지만, 후일에 남성이 신붓값을 치르거나 일해서 갚은 후, 그는 자기 아내와 자녀를 자기 가족에게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모계(母系)-가정에서 부계(父系)-가정으로의 과도기(過渡期)는 동등한 다른 혈족의 결혼은 승인하는 반면에, 다른 점에서 의미 없는 사촌 결혼의 일부 유형에 대한 금제(禁制)를 설명합니다.
84:2.6 (933.4) With the passing of the hunter mores, when herding gave man control of the chief food supply, the mother-family came to a speedy end. It failed simply because it could not successfully compete with the newer father-family. Power lodged with the male relatives of the mother could not compete with power concentrated in the husband-father. Woman was not equal to the combined tasks of childbearing and of exercising continuous authority and increasing domestic power. The oncoming of wife stealing and later wife purchase hastened the passing of the mother-family. 사냥 관습이 지나가고, 사람이 목축을 주요한 식량 공급으로 장악하면서, 모계(母系)-가정이 빨리 끝났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부계(父系)-가정과 성공적으로 맞설 수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실패로 끝났습니다. 어머니의 남성 친척에게 맡긴 권능은 남편-아버지에게 집중된 권능과 맞설 수 없었습니다. 여성은 해산하고 계속된 권위와 늘어난 가사 생활력을 행사하는, 통합된 과업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 도둑질과 나중의 아내구입이 다가오면서, 모계(母系)-가정은 신속히 지나갔습니다.
84:2.7 (933.5) The stupendous change from the mother-family to the father-family is one of the most radical and complete right-about-face adjustments ever executed by the human race. This change led at once to greater social expression and increased family adventure. 모계(母系)-가정에서 부계(父系)-가정으로의 엄청난 변화는 인류가 일찍이 실행했던 가장 철저하고 완전한 180도 전환 조율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변화는 즉시 더 커다란 사회적 표현과 가정 모험의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3. The Family Under Father Dominance 가부장(家父長) 가정
84:3.1 (933.6) It may be that the instinct of motherhood led woman into marriage, but it was man’s superior strength, together with the influence of the mores, that virtually compelled her to remain in wedlock. Pastoral living tended to create a new system of mores, the patriarchal type of family life; and the basis of family unity under the herder and early agricultural mores was the unquestioned and arbitrary authority of the father. All society, whether national or familial, passed through the stage of the autocratic authority of a patriarchal order. 모성 본능이 여성을 결혼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상 여성이 결혼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은, 관습의 영향과 함께 남성의 우수한 힘이었습니다. 목축 생활이 새로운 관습 체계, 가부장적 유형의 가정생활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목자(牧者)와 초기 농업 관습 아래에서 가정 단결의 토대는 의문의 여지 없이 독단적인 아버지의 권위였습니다. 모든 사회는, 국가이든 가족이든, 가부장적 체제에 속한 독재적 권위의 단계를 겪었습니다.
84:3.2 (934.1) The scant courtesy paid womankind during the Old Testament era is a true reflection of the mores of the herdsmen. The Hebrew patriarchs were all herdsmen, as is witnessed by the saying, “The Lord is my Shepherd.” 구약(舊約) 시대에 여성을 아무렇게나 대우한 것은 목자의 관습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히브리 족장들은, “주는 나의 목자시니(시 23:1a)”라는 말로 입증되듯이, 모두 목자였습니다.
84:3.3 (934.2) But man was no more to blame for his low opinion of woman during past ages than was woman herself. She failed to get social recognition during primitive times because she did not function in an emergency; she was not a spectacular or crisis hero. Maternity was a distinct disability in the existence struggle; mother love handicapped women in the tribal defense. 그러나 과거 시대에 여성에 대한 낮은 평가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 자신의 탓이었습니다. 여성은 비상시에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은 원시 시대에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성은 눈부신 난국의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모성(母性)은 생존 경쟁에서 뚜렷하게 무력했습니다. 모성애(母性愛)는 종족 방어에서 여성을 불리한 입장에 서게 했습니다.
84:3.4 (934.3) Primitive women also unintentionally created their dependence on the male by their admiration and applause for his pugnacity and virility. This exaltation of the warrior elevated the male ego while it equally depressed that of the female and made her more dependent; a military uniform still mightily stirs the feminine emotions. 원시 여성들도 남성의 호전성(好戰性)과 박력(迫力)을 기리고 칭찬하여 무심결에 남성을 의존했습니다. 전사(戰士)를 이렇게 칭찬하여 남성의 자존심을 높였던 반면에 여성의 자존심을 동시에 약하게 하여 더 의존하게 했습니다. 군복(軍服)은 여성의 감정을 여전히 힘차게 움직입니다.
84:3.5 (934.4) Among the more advanced races, women are not so large or so strong as men. Woman, being the weaker, therefore became the more tactful; she early learned to trade upon her sex charms. She became more alert and conservative than man, though slightly less profound. Man was woman’s superior on the battlefield and in the hunt; but at home woman has usually outgeneraled even the most primitive of men. 더 앞선 종족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크거나 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약한 여성은 더 눈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일찍이 익혀서 자기 성적 매력을 이용했습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약간 덜 해박했지만, 더 빈틈없이 신중했습니다. 남성은 전쟁터와 사냥에서 여성보다 뛰어났지만, 여성은 가정에서 대개 가장 야성적인 남성들도 작전으로 이겼습니다.
84:3.6 (934.5) The herdsman looked to his flocks for sustenance, but throughout these pastoral ages woman must still provide the vegetable food. Primitive man shunned the soil; it was altogether too peaceful, too unadventuresome. There was also an old superstition that women could raise better plants; they were mothers. In many backward tribes today, the men cook the meat, the women the vegetables, and when the primitive tribes of Australia are on the march, the women never attack game, while a man would not stoop to dig a root. 목자(牧者)들은 생계를 위해 자기 가축 떼를 돌봤지만, 이런 목축 시대에 여성은 여전히 채소 식량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원시 남성은 농작(農作)을 피했습니다. 그것은 전부 너무 온화하고, 모험적이지 않았습니다. 여성이 어머니들이어서, 그들이 식물을 잘 재배할 수 있다는 옛 미신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진보가 더딘 여러 부족에서, 남성은 고기를, 여성은 채소를 요리하고, 호주의 원시 부족이 행진할 때, 여성은 결코 사냥감을 공격하지 않는 반면에, 남성은 몸을 굽혀 근채류(根菜類 뿌리채소)를 캐지 않습니다.
84:3.7 (934.6) Woman has always had to work; at least right up to modern times the female has been a real producer. Man has usually chosen the easier path, and this inequality has existed throughout the entire history of the human race. Woman has always been the burden bearer, carrying the family property and tending the children, thus leaving the man’s hands free for fighting or hunting. 여성은 언제나 일해야 했습니다. 적어도 현대까지 여성은 실질적 생산자였습니다. 남성은 대개 더 쉬운 길을 택했고 이런 불평등은 전(全) 인류 역사 내내 나타났습니다. 여성이 가산(家産 집 재산)을 떠맡고 자녀를 돌본 까닭에, 남성의 손을 자유롭게 전투나 사냥에 전념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여성은 언제나 고생을 참는 자였습니다.
84:3.8 (934.7) Woman’s first liberation came when man consented to till the soil, consented to do what had theretofore been regarded as woman’s work. It was a great step forward when male captives were no longer killed but were enslaved as agriculturists. This brought about the liberation of woman so that she could devote more time to homemaking and child culture. 남성이 경작하기로 동의하고, 그 이전에 여성의 일로 여겼던 것을 하기로 동의했을 때, 여성의 첫 해방이 왔습니다. 남성 포로들이 더는 죽지 않고 농사짓는 노예가 되었던 것은 커다란 진보였습니다. 이것이 여성을 해방하여 여성은 가사(家事)와 자녀 양육에 시간을 더 쏟을 수 있었습니다.
84:3.9 (934.8) The provision of milk for the young led to earlier weaning of babies, hence to the bearing of more children by the mothers thus relieved of their sometimes temporary barrenness, while the use of cow’s milk and goat’s milk greatly reduced infant mortality. Before the herding stage of society, mothers used to nurse their babies until they were four and five years old. 어린아이들에게 우유를 마련하여 아기들이 더 일찍 젖을 떼게 되어서, 이렇게 때때로 일시적인 불임에서 벗어난 어머니들이 자녀를 더 많이 낳게 되었고, 게다가 소젖과 염소젖의 사용으로 유아 사망률이 크게 줄었습니다. 사회의 목축 단계 이전에는, 아기들이 4~5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들이 자기 아기들에게 젖을 먹이곤 했습니다.
84:3.10 (934.9) Decreasing primitive warfare greatly lessened the disparity between the division of labor based on sex. But women still had to do the real work while men did picket duty. No camp or village could be left unguarded day or night, but even this task was alleviated by the domestication of the dog. In general, the coming of agriculture has enhanced woman’s prestige and social standing; at least this was true up to the time man himself turned agriculturist. And as soon as man addressed himself to the tilling of the soil, there immediately ensued great improvement in methods of agriculture, extending on down through successive generations. In hunting and war man had learned the value of organization, and he introduced these techniques into industry and later, when taking over much of woman’s work, greatly improved on her loose methods of labor. 원시 전쟁의 감소로 성별에 따른 분업 사이의 격차가 크게 줄었습니다. 그러나 남성들이 보초 업무를 하는 동안 여성들은 여전히 실질적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어떤 야영지나 마을도 방어 없이 밤낮으로 놔둘 수 없었지만 이런 일도 개를 길들여 다소 해결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농업이 닥쳐오면서 여성의 위신과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습니다. 적어도 이것은 남성이 자신을 농부로 바꾸었던 때까지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성이 경작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자마자, 그 결과 즉시 농업 방법이 크게 개선되었고, 잇따른 세대로 퍼졌습니다. 사냥과 전쟁에서 남성은 조직의 가치를 익혔고, 이런 기법을 산업에 받아들였으며, 나중에 여성의 일을 많이 인계받았을 때, 여성의 산만한 노동 방식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4. Woman’s Status in Early Society 초기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84:4.1 (935.1) Generally speaking, during any age woman’s status is a fair criterion of the evolutionary progress of marriage as a social institution, while the progress of marriage itself is a reasonably accurate gauge registering the advances of human civilization. 보통, 어떤 시대라도 여성의 지위는, 사회 제도로서 결혼에 대한 진화적 진보의 공정한 기준인 한편, 결혼 자체의 진보는 인간 문명의 진보를 나타내는 상당히 정확한 척도입니다.
84:4.2 (935.2) Woman’s status has always been a social paradox; she has always been a shrewd manager of men; she has always capitalized man’s stronger sex urge for her own interests and to her own advancement. By trading subtly upon her sex charms, she has often been able to exercise dominant power over man, even when held by him in abject slavery. 여성의 지위는 언제나 사회적 역설(逆說)이었습니다. 여성은 언제나 남성을 슬기롭게 관리했습니다. 여성은 항상 자신의 이익과 진보를 위해 남성의 더 강한 성적 충동을 이용했습니다. 남성에게 잡혀 절망적인 노예였을 때조차, 자기 성적 매력을 교묘히 흥정하여, 여성은 종종 남성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84:4.3 (935.3) Early woman was not to man a friend, sweetheart, lover, and partner but rather a piece of property, a servant or slave and, later on, an economic partner, plaything, and childbearer. Nonetheless, proper and satisfactory sex relations have always involved the element of choice and co-operation by woman, and this has always given intelligent women considerable influence over their immediate and personal standing, regardless of their social position as a sex. But man’s distrust and suspicion were not helped by the fact that women were all along compelled to resort to shrewdness in the effort to alleviate their bondage. 초기 여성은 남성에게 친구, 애인, 연인, 배우자가 아니라 오히려 재산의 일부, 하인이나 노예였고, 나중에는 경제적 동반자, 노리개 그리고 아이 낳는 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적당히 만족한 성(性)관계는 언제나 여성의 선택과 협조의 요소가 필요했으며, 이것은 항상 지능적인 여성들에게, 성별로서 자신들의 사회적 처지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직접적인 개인적 입장에 상당히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이 자신들의 속박을 덜려고 계속 기민함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로 인해, 남성의 불신과 의혹은 효과가 없었습니다.
84:4.4 (935.4) The sexes have had great difficulty in understanding each other. Man found it hard to understand woman, regarding her with a strange mixture of ignorant mistrust and fearful fascination, if not with suspicion and contempt. Many tribal and racial traditions relegate trouble to Eve, Pandora, or some other representative of womankind. These narratives were always distorted so as to make it appear that the woman brought evil upon man; and all this indicates the onetime universal distrust of woman. Among the reasons cited in support of a celibate priesthood, the chief was the baseness of woman. The fact that most supposed witches were women did not improve the olden reputation of the sex. 남녀는 서로 이해하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남성은, 여성에 관해, 의심과 경멸은 아니라 해도, 무지한 의혹과 두려운 매혹이 낯설게 뒤섞였다는 점에서 여성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여러 부족과 종족의 전통은 재난을 이브, 판도라, 혹은 어떤 다른 여성 대표자에게 돌립니다. 이런 설화들은, 여성이 남성에게 악을 가져온 것으로 보이게 만들어, 언제나 왜곡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것은, 한때 누구나 여성이 불신당했음을 나타냅니다. 독신 사제직의 옹호에 인용된 주요한 이유는 여성의 천함이었습니다. 가장 소문난 마법사들이 여성이었다는 사실로 여성에 대한 오래된 평판이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84:4.5 (935.5) Men have long regarded women as peculiar, even abnormal. They have even believed that women did not have souls; therefore were they denied names. During early times there existed great fear of the first sex relation with a woman; hence it became the custom for a priest to have initial intercourse with a virgin. Even a woman’s shadow was thought to be dangerous. 남성들은 여성들이 유별나며, 정상이 아니라고까지 오랫동안 여겼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여성들이 혼(魂)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습니다. 초기에 여성과 첫 성(性)관계에 대해 큰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에서 사제가 처녀와 첫 성교를 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습니다. 여성의 그림자까지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84:4.6 (935.6) Childbearing was once generally looked upon as rendering a woman dangerous and unclean. And many tribal mores decreed that a mother must undergo extensive purification ceremonies subsequent to the birth of a child. Except among those groups where the husband participated in the lying-in, the expectant mother was shunned, left alone. The ancients even avoided having a child born in the house. Finally, the old women were permitted to attend the mother during labor, and this practice gave origin to the profession of midwifery. During labor, scores of foolish things were said and done in an effort to facilitate delivery. It was the custom to sprinkle the newborn with holy water to prevent ghost interference. 한때 해산(解産)이 대개 여성을 위험하고 불결하게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출산 후 긴 정화 예식을 해야 하도록 여러 부족 관습이 정했습니다. 남편이 해산 기간에 참여했던 그런 집단을 제외하고, 출산을 앞둔 어머니를 꺼려서 홀로 남겨두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것도, 피했습니다. 마침내 노파들이 분만 중인 어머니를 돌보도록 허용되었고, 이런 관행이 산파술(産婆術) 직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분만 중에, 해산을 도우려고 어리석은 여러 일을 말하고 행했습니다. 유령(幽靈)의 간섭을 막으려고 신생아에게 성수(聖水)를 뿌리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84:4.7 (935.7) Among the unmixed tribes, childbirth was comparatively easy, occupying only two or three hours; it is seldom so easy among the mixed races. If a woman died in childbirth, especially during the delivery of twins, she was believed to have been guilty of spirit adultery. Later on, the higher tribes looked upon death in childbirth as the will of heaven; such mothers were regarded as having perished in a noble cause. 순수한 부족 중에서 분만은, 2~3시간만 걸려서, 상당히 쉬웠습니다. 혼합 인종 중에 분만은 거의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여성이 특히 쌍생아를 낳다가 분만 중에 죽으면, 그녀는 영적 간음죄를 범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나중에 고등 부족들은 출산 중 죽음을 하늘의 뜻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어머니들은 고귀한 이유로 죽었다고 간주했습니다.
84:4.8 (936.1) The so-called modesty of women respecting their clothing and the exposure of the person grew out of the deadly fear of being observed at the time of a menstrual period. To be thus detected was a grievous sin, the violation of a taboo. Under the mores of olden times, every woman, from adolescence to the end of the childbearing period, was subjected to complete family and social quarantine one full week each month. Everything she might touch, sit upon, or lie upon was “defiled.” It was for long the custom to brutally beat a girl after each monthly period in an effort to drive the evil spirit out of her body. But when a woman passed beyond the childbearing age, she was usually treated more considerately, being accorded more rights and privileges. In view of all this it was not strange that women were looked down upon. Even the Greeks held the menstruating woman as one of the three great causes of defilement, the other two being pork and garlic. 여성의 의복과 신체의 노출에 관해 소위 여성의 정숙(貞淑)은 월경 기간에 발견되는 지독한 걱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렇게 발견되는 것은, 무거운 죄, 금기의 위반이었습니다. 고대 관습에 따라, 사춘기에서 분만기의 끝까지 모든 여성은 매월 꼬박 1주일씩 가족과 사회적 격리를 완료해야 했습니다. 여성이 만지고, 앉으며, 누운 모든 것은 “더러워” 졌습니다. 매 월경 이후 소녀의 몸에서 악령을 몰아내려고, 난폭하게 그녀를 때리는 것이 오랜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성이 가임기가 지나면, 그녀는 더 많은 권리와 특권을 받아서, 대개 더 상당히 대우받았습니다. 이런 모든 관점에서 여성이 멸시받은 것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인(人)들까지 월경하는 여성을 커다란 3가지 오염 원인 중 하나로 꼽았는데, 나머지 둘은 돼지고기와 마늘이었습니다.
84:4.9 (936.2) However foolish these olden notions were, they did some good since they gave overworked females, at least when young, one week each month for welcome rest and profitable meditation. Thus could they sharpen their wits for dealing with their male associates the rest of the time. This quarantine of women also protected men from over-sex indulgence, thereby indirectly contributing to the restriction of population and to the enhancement of self-control. 이런 옛 개념들이 아무리 어리석었어도, 그것들은 과로한 여성들에게 적어도 젊었을 때, 자유롭게 쉬고 유익하게 묵상하도록 매월 1주일씩 주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일부 쓸모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머지 시간에 자기 남성 동료를 다루기 위한 자신들의 지혜를 연마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여성의 격리로 남성 역시 과도한 성적 탐닉에서 보호되어서, 부차적으로 인구 제한과 자제심 증강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84:4.10 (936.3) A great advance was made when a man was denied the right to kill his wife at will. Likewise, it was a forward step when a woman could own the wedding gifts. Later, she gained the legal right to own, control, and even dispose of property, but she was long deprived of the right to hold office in either church or state. Woman has always been treated more or less as property, right up to and in the twentieth century after Christ. She has not yet gained world-wide freedom from seclusion under man’s control. Even among advanced peoples, man’s attempt to protect woman has always been a tacit assertion of superiority. 남성이 자기 아내를 마음대로 죽일 권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커다란 진보가 이루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결혼 선물을 지닐 수 있게 되었을 때, 진일보했습니다. 나중에 여성은 재산을 소유하고 조정하며 처분까지 하는 법적 권리를 얻었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교회나 국가에서 재직할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여성은 그리스도 이후 20세기까지, 20세기에 언제나 어느 정도 재산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여성들은 남성의 조정에서 차단된, 세계적인 자유를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진보한 민족 중에서도, 여성을 보호하려는 남성의 시도는 언제나 우월성에 대한 암묵적 주장이었습니다.
84:4.11 (936.4) But primitive women did not pity themselves as their more recently liberated sisters are wont to do. They were, after all, fairly happy and contented; they did not dare to envision a better or different mode of existence. 그러나 원시 여성들은, 더 최근에 해방된 자매들이 곧잘 하듯이, 자신들을 딱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상당히 행복하고 만족했습니다. 그들은 더 낫거나 다른 존재 방식을 감히 마음에 그리지 못했습니다.
5. Woman Under the Developing Mores 발전하는 관습에 따른 여성
84:5.1 (936.5) In self-perpetuation woman is man’s equal, but in the partnership of self-maintenance she labors at a decided disadvantage, and this handicap of enforced maternity can only be compensated by the enlightened mores of advancing civilization and by man’s increasing sense of acquired fairness. 자아-영속에서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지만, 자아를-유지하는 협력에서 여성은 명백히 불리한 입장에서 온 힘을 기울이며, 강요된 모성애로 인한 이런 불이익은 발전하는 문명의 진보한 관습과 기득(旣得 이미 차지하고 있는) 공정성에 대한 남성의 체증(遞增 점차 늘어나는) 감각으로 상쇄(相殺)될 뿐입니다.
84:5.2 (936.6) As society evolved, the sex standards rose higher among women because they suffered more from the consequences of the transgression of the sex mores. Man’s sex standards are only tardily improving as a result of the sheer sense of that fairness which civilization demands. Nature knows nothing of fairness — makes woman alone suffer the pangs of childbirth. 사회가 진화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 성별 기준이 더 높아졌는데, 성별 관습을 어긴 결과로 그들이 더 많이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남성의 성별 기준은 문명이 요구하는 그런 공정성에 대한 순전한 감각의 결과로서 마지못해 좋아질 뿐입니다. 자연은 공정성을 조금도 모릅니다. – 여성 홀로 분만의 고통을 겪도록 내버려 둡니다.
84:5.3 (936.7) The modern idea of sex equality is beautiful and worthy of an expanding civilization, but it is not found in nature. When might is right, man lords it over woman; when more justice, peace, and fairness prevail, she gradually emerges from slavery and obscurity. Woman’s social position has generally varied inversely with the degree of militarism in any nation or age. 현대의 남녀평등 관념은 확장하는 문명에 훌륭하고 가치가 있지만,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힘이 정의(正義)일 때 남성이 여성을 좌지우지합니다. 정의, 평화 및 공정이 더 널리 보급되면, 여성은 점차 노예 상태와 낮은 신분에서 벗어납니다. 여성의 사회적 처지는 어느 민족이나 시대에도, 대개 군국주의 정도와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84:5.4 (937.1) But man did not consciously nor intentionally seize woman’s rights and then gradually and grudgingly give them back to her; all this was an unconscious and unplanned episode of social evolution. When the time really came for woman to enjoy added rights, she got them, and all quite regardless of man’s conscious attitude. Slowly but surely the mores change so as to provide for those social adjustments which are a part of the persistent evolution of civilization. The advancing mores slowly provided increasingly better treatment for females; those tribes which persisted in cruelty to them did not survive. 그러나 남성이 의식적으로나 의도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빼앗지 않았으며 그 후 점차 마지못해 여성에게 그것들을 돌려줍니다. 이 모든 것은 무의식적으로 예기치 못한 사회 진화의 사건이었습니다. 여성이 부가된 권리를 실제로 누릴 때가 되자, 남성의 의식적 태도에 전혀 상관없이 여성이 그것들을 취했습니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관습은, 문화의 지속적 진화의 일부인 그런 사회적 조율을 제공하기 위해, 변경됩니다. 진보하는 관습은, 여성을 위해 점차 더 나은 대우를 서서히 제공했습니다. 계속 여성들을 학대한 그런 부족들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84:5.5 (937.2) The Adamites and Nodites accorded women increased recognition, and those groups which were influenced by the migrating Andites have tended to be influenced by the Edenic teachings regarding women’s place in society. 아담-사람들과 놋-사람들은 여자들을 갈수록 더 인정했으며, 이주하는 안드-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은 그런 집단은 사회에서 여성의 처지에 관한 에덴의 가르침으로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84:5.6 (937.3) The early Chinese and the Greeks treated women better than did most surrounding peoples. But the Hebrews were exceedingly distrustful of them. In the Occident woman has had a difficult climb under the Pauline doctrines which became attached to Christianity, although Christianity did advance the mores by imposing more stringent sex obligations upon man. Woman’s estate is little short of hopeless under the peculiar degradation which attaches to her in Mohammedanism, and she fares even worse under the teachings of several other Oriental religions. 초기 중국인과 그리스인(人)들은 대부분의 주변 민족들보다 여성들을 더 잘 대우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인(人)들은 여성들을 지나치게 믿지 않았습니다. 서양에서 여성은, 기독교가 남성에게 더 엄중한 성별 책임을 부과하여 관습을 진전시켰지만, 기독교에 첨부된 바울의 교리에 따라, 힘들게 올라갔습니다. 여성의 지위는 회교(回敎)에서 여성에게 부여한 특징적인 비하(卑下 업신여겨 낮춤)에 따라 거의 희망이 없으며, 여성은 다른 여러 동양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더 어렵게 살아가기까지 합니다.
84:5.7 (937.4) Science, not religion, really emancipated woman; it was the modern factory which largely set her free from the confines of the home. Man’s physical abilities became no longer a vital essential in the new maintenance mechanism; science so changed the conditions of living that man power was no longer so superior to woman power.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 실제로 여성을 해방했습니다. 여성을 가정의 제약에서 충분히 해방한 것은 근대적 공장이었습니다. 새 생활 구조에서 남성의 신체 능력은 지극히 중요한 필수 요소가 더는 아니었습니다. 과학이 생활 조건을 변경하여 남성의 능력이 여성의 능력보다 이제는 뛰어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84:5.8 (937.5) These changes have tended toward woman’s liberation from domestic slavery and have brought about such a modification of her status that she now enjoys a degree of personal liberty and sex determination that practically equals man’s. Once a woman’s value consisted in her food-producing ability, but invention and wealth have enabled her to create a new world in which to function — spheres of grace and charm. Thus has industry won its unconscious and unintended fight for woman’s social and economic emancipation. And again has evolution succeeded in doing what even revelation failed to accomplish. 이런 변화들은 여성을 가사 노예 상태에서 해방하는 경향이 있었고, 여성의 지위가 변경되어 사실상 남성의 사정에 못지않은 어느 정도의 개인적 해방과 성별 결정을 이제 누립니다. 한때 여성의 가치는 식량 생산 능력이었으나, 발명과 부요(富饒)로 여성은 활동하는 새 세계 – 품위와 매력의 영역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산업이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해방을 위해 무의식적이며 의도하지 않은 투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또 진화는 계시조차 성취하지 못한 것을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84:5.9 (937.6) The reaction of enlightened peoples from the inequitable mores governing woman’s place in society has indeed been pendulumlike in its extremeness. Among industrialized races she has received almost all rights and enjoys exemption from many obligations, such as military service. Every easement of the struggle for existence has redounded to the liberation of woman, and she has directly benefited from every advance toward monogamy. The weaker always makes disproportionate gains in every adjustment of the mores in the progressive evolution of society. 사회에서 여성의 처지를 결정하는 불공정한 관습에서 개화된 민족들의 반응은 실로 극도로 추와 같았습니다. 산업화한 인종들 사이에서 여성은 거의 모든 권리를 받아들였고 병역과 같은 여러 의무에서 면제를 누리고 있습니다. 모든 생존 경쟁의 완화로 여성이 해방되었고, 여성은 일부일처주의를 향한 모든 진보에서 즉시 혜택을 받았습니다. 약자는, 사회의 진보적 진화에서 관습이 조율될 때마다, 언제나 어울리지 않게 많은 이익을 얻습니다.
84:5.10 (937.7) In the ideals of pair marriage, woman has finally won recognition, dignity, independence, equality, and education; but will she prove worthy of all this new and unprecedented accomplishment? Will modern woman respond to this great achievement of social liberation with idleness, indifference, barrenness, and infidelity? Today, in the twentieth century, woman is undergoing the crucial test of her long world existence! 일부일처의 이상(理想)들로 여성은 결국 인정, 존엄성, 독립, 평등과 교육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여성이 이렇게 새로운 전례 없는 성취에 합당하다고 입증할까요? 근대 여성이 사회적 해방의 커다란 이런 성취에 나태, 무관심, 불임과 배신으로 반응할까요? 오늘날 20세기에 여성은 자신의 오랜 세계 존재에 대해 결정적인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84:5.11 (938.1) Woman is man’s equal partner in race reproduction, hence just as important in the unfolding of racial evolution; therefore has evolution increasingly worked toward the realization of women’s rights. But women’s rights are by no means men’s rights. Woman cannot thrive on man’s rights any more than man can prosper on woman’s rights. 여성은 종족 번식에서 동등한 남성의 동반자이므로, 종족 진화의 전개에서 똑같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진화는 여성의 권리를 실현하도록 점차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의 권리는 결코 남성들의 권리가 아닙니다. 남성이 여성의 권리로 번영할 수 없는 것처럼 여성은 남성의 권리로 번성할 수 없습니다.
84:5.12 (938.2) Each sex has its own distinctive sphere of existence, together with its own rights within that sphere. If woman aspires literally to enjoy all of man’s rights, then, sooner or later, pitiless and emotionless competition will certainly replace that chivalry and special consideration which many women now enjoy, and which they have so recently won from men. 남녀 각각 자신의 독특한 존재 영역과 그 영역 내에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만약 여성이 남성의 모든 권리를 완전히 누리려 한다면, 여러 여성이 지금 누리고 있으며, 아주 최근에 여성들이 남성들로부터 얻은, 기사도와 특별 배려를, 조만간 냉혹하고 냉담한 경쟁이, 반드시 대신할 것입니다.
84:5.13 (938.3) Civilization never can obliterate the behavior gulf between the sexes. From age to age the mores change, but instinct never. Innate maternal affection will never permit emancipated woman to become man’s serious rival in industry. Forever each sex will remain supreme in its own domain, domains determined by biologic differentiation and by mental dissimilarity. 문명은 결코 남녀 간의 행동 차이를 없앨 수 없습니다. 대대로 관습은 변하지만, 본능은 변하지 않습니다. 선천적 모성애는 해방된 여성이 업계에서 남성의 심각한 경쟁자가 되도록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각 남녀는, 생물학적 구별과 정신적 차이로 결정되는 분야들, 자기 영역에서 최고로 남을 것입니다.
84:5.14 (938.4) Each sex will always have its own special sphere, albeit they will ever and anon overlap. Only socially will men and women compete on equal terms. 각 남녀는, 자기 특유의 영역이 때때로 일부분이 중복될지라도, 항상 자기 특유의 영역을 가질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만 남성들과 여성들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것입니다.
6. The Partnership of Man and Woman 남성과 여성의 협력
84:6.1 (938.5) The reproductive urge unfailingly brings men and women together for self-perpetuation but, alone, does not insure their remaining together in mutual co-operation — the founding of a home. 번식(繁殖) 충동이 자아-영속을 위해 남녀를 확실히 결합하게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이 함께 남아 서로 협력하면서 가정을 세우도록 책임지게 하지는 않습니다.
84:6.2 (938.6) Every successful human institution embraces antagonisms of personal interest which have been adjusted to practical working harmony, and homemaking is no exception. Marriage, the basis of home building, is the highest manifestation of that antagonistic co-operation which so often characterizes the contacts of nature and society. The conflict is inevitable. Mating is inherent; it is natural. But marriage is not biologic; it is sociologic. Passion insures that man and woman will come together, but the weaker parental instinct and the social mores hold them together. 성공한 어떤 인간 제도나 실제로 활동이 조화되도록 조율한 개인적 이익의 대립을 포함하며, 가정 관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결혼, 가정 설립의 토대는 그렇게 자주 자연과 사회의 연결을 묘사하는 대립적 협력의 최고 표현입니다. 갈등(葛藤)은 피할 수 없습니다. 짝짓기는 타고난 것이며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생물학적이지 않고, 사회학적입니다. 남녀가 합할 것을 열정(熱情)이 보증하지만 연약한 어버이의 본능과 사회적 관습이 그들을 단결시킵니다.
84:6.3 (938.7) Male and female are, practically regarded, two distinct varieties of the same species living in close and intimate association. Their viewpoints and entire life reactions are essentially different; they are wholly incapable of full and real comprehension of each other. Complete understanding between the sexes is not attainable. 남녀는 실제로, 밀접하게 친한 관계로 살아가는 동종(同種)의 다른 두 변종(變種)으로 여겨집니다. 그들의 관점과 전체 생활 반응은 본질상 다릅니다. 그들은 서로 충분히 진실로 이해할 능력이 아예 없습니다. 남녀 사이에 완벽한 양해(諒解)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84:6.4 (938.8) Women seem to have more intuition than men, but they also appear to be somewhat less logical. Woman, however, has always been the moral standard-bearer and the spiritual leader of mankind. 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 still fraternizes with destiny.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직관을 지닌 것 같지만, 그들도 약간 덜 논리적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여성은 언제나 인류의 도덕적 기수(旗手)와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요람을 흔드는 손은 여전히 운명(運命)과 친하게 사귑니다.
84:6.5 (938.9) The differences of nature, reaction, viewpoint, and thinking between men and women, far from occasioning concern, should be regarded as highly beneficial to mankind, both individually and collectively. Many orders of universe creatures are created in dual phases of personality manifestation. Among mortals, Material Sons, and midsoniters, this difference is described as male and female; among seraphim, cherubim, and Morontia Companions, it has been denominated positive or aggressive and negative or retiring. Such dual associations greatly multiply versatility and overcome inherent limitations, even as do certain triune associations in the Paradise-Havona system. 남녀 사이의 본성, 반응, 관점 및 사고의 차이는, 우려(憂慮)는커녕, 개별로, 공동으로 인류에게 대단히 유익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여러 계층의 우주 창조물들은 이중 양상(樣相)으로 고유성을 표현하도록 창조됩니다. 필사자들, 물질 아들들 및 중한(中限)자들 사이에서, 이런 차이는 남성과 여성으로 언급됩니다. 세라핌천사, 케루빔과 모론시아 동반자들 사이에서, 그것은 양성적 또는 적극적 그리고 음성적 또는 소극적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이런 이중 결합은, 천국-하보나 체계에서 심지어 어떤 삼자일치적 결합이 행하듯이, 융통성을 대단히 다양화하고 선천적 한계를 극복합니다.
84:6.6 (939.1) Men and women need each other in their morontial and spiritual as well as in their mortal careers. The differences in viewpoint between male and female persist even beyond the first life and throughout the local and superuniverse ascensions. And even in Havona, the pilgrims who were once men and women will still be aiding each other in the Paradise ascent. Never, even in the Corps of the Finality, will the creature metamorphose so far as to obliterate the personality trends that humans call male and female; always will these two basic variations of humankind continue to intrigue, stimulate, encourage, and assist each other; always will they be mutually dependent on co-operation in the solution of perplexing universe problems and in the overcoming of manifold cosmic difficulties. 남성들과 여성들은 필사자 생애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모론시아와 영적 생애들에서도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남녀 사이에 있는 관점의 차이는 심지어 첫 생애를 넘어 지역과 초우주 상승 내내 계속됩니다. 그리고 하보나에서도, 한때 남녀였던 순례자들은 천국으로 상승하면서 여전히 서로 돕게 될 것입니다. 최종단(團)에서도, 창조물은 인간들이 남성과 여성으로 부르는 고유성 경향의 흔적을 없애는 정도까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류의 이런 두 기본 변종(變種)은 언제나 계속 서로에게 흥미를 갖고, 격려하며, 용기를 주고, 서로 거들 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협력하면서 서로 의지하여 복잡한 우주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한 질서우주 어려움을 극복할 것입니다.
84:6.7 (939.2) While the sexes never can hope fully to understand each other, they are effectively complementary, and though co-operation is often more or less personally antagonistic, it is capable of maintaining and reproducing society. Marriage is an institution designed to compose sex differences, meanwhile effecting the continuation of civilization and insuring the reproduction of the race. 남녀가 서로 완전히 이해하기를 바랄 수 없지만, 그들은 사실상 서로 보완하는 관계이며, 협력은 종종 거의 개인적으로 대립하지만, 공동체를 유지하고 재생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결혼은 문명을 연장하고 인류의 재생을 보장하는 동시에 성별 차이를 진정시키도록 계획된 제도입니다.
84:6.8 (939.3) Marriage is the mother of all human institutions, for it leads directly to home founding and home maintenance, which is the structural basis of society. The family is vitally linked to the mechanism of self-maintenance; it is the sole hope of race perpetuation under the mores of civilization, while at the same time it most effectively provides certain highly satisfactory forms of self-gratification. The family is man’s greatest purely human achievement, combining as it does the evolution of the biologic relations of male and female with the social relations of husband and wife. 결혼은, 사회 조직의 토대인 가정을, 선두에 서서 바로 세우고 가정을 유지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 제도의 원천입니다. 가정은 자아-유지의 작용에 매우 중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정은 문명의 관습에 따라 인류가 영속하는 유일한 희망인 동시에 분명히 아주 만족스러운 형태의 자아-만족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공합니다. 가정은, 남녀의 생물학적 관계의 진화와 남편과 아내의 사회적 관계를 결합하는, 사람의 가장 위대한, 인간의 순전한 업적입니다.
7. The Ideals of Family Life 가정생활의 이상(理想)들
84:7.1 (939.4) Sex mating is instinctive, children are the natural result, and the family thus automatically comes into existence. As are the families of the race or nation, so is its society. If the families are good, the society is likewise good. The great cultural stability of the Jewish and of the Chinese peoples lies in the strength of their family groups. 성적 짝짓기는 본능적이고, 자녀는 자연스러운 결과여서 가정은 자동으로 생깁니다. 종족이나 국가에 속한 가정들처럼 그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들이 좋으면 마찬가지로 그 사회도 좋습니다. 유대와 중국 민족의 위대한 문화적 안정은 그들 가족 집단의 능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84:7.2 (939.5) Woman’s instinct to love and care for children conspired to make her the interested party in promoting marriage and primitive family life. Man was only forced into home building by the pressure of the later mores and social conventions; he was slow to take an interest in the establishment of marriage and home because the sex act imposes no biologic consequences upon him.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는 여성의 본능 때문에 여성은 결혼과 원시 가정생활을 촉진하는 이해당사자가 됩니다. 남성은 후일의 관습과 사회적 관습의 압력으로 가정을 세우지 않을 수 없을 뿐이었습니다. 남성은, 성(性)행위가 자신에게 생물학적 영향이 없으므로 결혼과 가정의 설립에 서서히 관심을 가졌습니다.
84:7.3 (939.6) Sex association is natural, but marriage is social and has always been regulated by the mores. The mores (religious, moral, and ethical), together with property, pride, and chivalry, stabilize the institutions of marriage and family. Whenever the mores fluctuate, there is fluctuation in the stability of the home-marriage institution. Marriage is now passing out of the property stage into the personal era. Formerly man protected woman because she was his chattel, and she obeyed for the same reason. Regardless of its merits this system did provide stability. Now, woman is no longer regarded as property, and new mores are emerging designed to stabilize the marriage-home institution: 성적 결합은 자연스럽지만, 결혼은 사회적이며 항상 관습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종교적, 도덕적 및 윤리적) 관습은 재산·자부심(自負心)·기사도(騎士道)와 함께 결혼과 가정 제도를 안정시킵니다. 관습이 변동할 때마다 가정-결혼제도의 안정이 오르내립니다. 결혼은 이제 재산 단계에서 개인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전에 여성은 남성의 재산이었기에 남성이 여성을 보호했고, 같은 이유로 여성이 복종했습니다. 그 장점에 상관없이, 이 체제가 안정을 마련했습니다. 이제 여성을 더는 재산으로 여기지 않으며 결혼-가정 제도를 안정시키려는 새 관습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84:7.4 (939.7) 1. The new role of religion — the teaching that parental experience is essential, the idea of procreating cosmic citizens, the enlarged understanding of the privilege of procreation — giving sons to the Father. 종교의 새 역할 – 부모 체험이 필수적이라는 가르침, 질서우주 시민을 낳는 생각, 자손을 아버지께 드리는 출산 특권에 대한 확장된 이해.
84:7.5 (940.1) 2. The new role of science — procreation is becoming more and more voluntary, subject to man’s control. In ancient times lack of understanding insured the appearance of children in the absence of all desire therefor. 과학의 새 역할 – 인간의 조절로, 더욱더 의도적으로 출산하게 됩니다. 고대에는, 조절에 대한 모든 욕망이 없어서, 이해 결핍 때문에 자녀의 출현이 보장되었습니다.
84:7.6 (940.2) 3. The new function of pleasure lures — this introduces a new factor into racial survival; ancient man exposed undesired children to die; moderns refuse to bear them. 의향(意向) 매력의 새 기능 – 이것이 종족 생존의 새 요소를 끌어들입니다. 고대인은 원하지 않은 자녀가 죽도록 집 밖에 버렸습니다. 현대인들은 원하지 않는 자녀를 낳지 않으려 합니다.
84:7.7 (940.3) 4. The enhancement of parental instinct — each generation now tends to eliminate from the reproductive stream of the race those individuals in whom parental instinct is insufficiently strong to insure the procreation of children, the prospective parents of the next generation. 어버이다운 본능의 향상. 이제 각 세대는, 다음 세대의 예비 부모인 자녀 출산을 보증하기에 어버이다운 본능이 강하지 않은 그런 개인들을, 종족 생식의 흐름에서 몰아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84:7.8 (940.4) But the home as an institution, a partnership between one man and one woman, dates more specifically from the days of Dalamatia, about one-half million years ago, the monogamous practices of Andon and his immediate descendants having been abandoned long before. Family life, however, was not much to boast of before the days of the Nodites and the later Adamites. Adam and Eve exerted a lasting influence on all mankind; for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the world men and women were observed working side by side in the Garden. The Edenic ideal, the whole family as gardeners, was a new idea on Urantia. 그러나 제도로서 가정,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동반자 관계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안돈과 그 직계 후손의 일부일처 관례가 오래전에 버려졌던, 거의 50만 년 전, 달라마시아 시절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놋-사람들과 후대 아담-사람들의 시대 이전(以前)의 가정생활은 자랑할만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온 인류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처음으로 남성들과 여성들이 동산에서 나란히 일하는 관습이 지켜졌습니다. 원예가들로서 온 가족, 즉 에덴의 이상(理想)은 유란시아에서 새로운 개념이었습니다.
84:7.9 (940.5) The early family embraced a related working group, including the slaves, all living in one dwelling. Marriage and family life have not always been identical but have of necessity been closely associated. Woman always wanted the individual family, and eventually she had her way. 초기 가정은 모두 한집에 사는, 노예들을 포함해서 관련 노동 집단을 포함했습니다. 결혼과 가정생활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았으나 필연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되었습니다. 여성은 언제나 독립된 가정을 원했으며 결국 여성의 방식대로 했습니다.
84:7.10 (940.6) Love of offspring is almost universal and is of distinct survival value. The ancients always sacrificed the mother’s interests for the welfare of the child; an Eskimo mother even yet licks her baby in lieu of washing. But primitive mothers only nourished and cared for their children when very young; like the animals, they discarded them as soon as they grew up. Enduring and continuous human associations have never been founded on biologic affection alone. The animals love their children; man — civilized man — loves his children’s children. The higher the civilization, the greater the joy of parents in the children’s advancement and success; thus the new and higher realization of name pride comes into existence. 자녀 사랑은 거의 일반적이며, 명백히 생존 가치가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자녀의 복지를 위해 어머니의 이익을 언제나 희생했습니다. 에스키모인(人) 어머니는 심지어 아직도 자기 아기를 씻기는 대신에 핥습니다. 그러나 원시 어머니들은 아주 어렸을 때, 자기 자녀를 기르고 보살폈을 뿐입니다. 동물들처럼, 원시 어머니들은 그들이 자라자마자 그들을 버렸습니다. 오래 이어진 인간관계는 생물학적 애정에만 근거를 둔 적이 없었습니다. 동물들은 자기 새끼를 사랑합니다. 인간 – 문명화된 인간은 자기 자녀들의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문명이 높을수록 부모는 자녀의 진보와 성공을 기뻐합니다. 이렇게 긍지(矜持)라는 이름의 더 높은 새로운 인식이 생깁니다.
84:7.11 (940.7) The large families among ancient peoples were not necessarily affectional. Many children were desired because: 고대 민족들 사이에서 대가족들이 반드시 애정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의 이유로 여러 자녀가 필요했습니다.
84:7.12 (940.8) 1. They were valuable as laborers. 그들이 노동자들로 유용했습니다.
84:7.13 (940.9) 2. They were old-age insurance. 그들은 노령 보험이었습니다.
84:7.14 (940.10) 3. Daughters were salable. 딸들은 팔기에 적합했습니다.
84:7.15 (940.11) 4. Family pride required extension of name. 가정의 긍지(矜持)에 이름의 확장이 필요했습니다.
84:7.16 (940.12) 5. Sons afforded protection and defense. 아들들은 보호와 방어를 감당했습니다.
84:7.17 (940.13) 6. Ghost fear produced a dread of being alone. 유령 공포로 홀로 있기를 두려워했습니다.
84:7.18 (940.14) 7. Certain religions required offspring. 어떤 종교들에는 자손이 필요했습니다.
84:7.19 (940.15) Ancestor worshipers view the failure to have sons as the supreme calamity for all time and eternity. They desire above all else to have sons to officiate in the post-mortem feasts, to offer the required sacrifices for the ghost’s progress through spiritland. 조상 숭배자들은 아들들이 없는 것을 영구히, 영원히 최악의 불행으로 간주합니다. 그들은, 사후(死後) 잔치를 맡아, 영의 나라 내내 유령이 나아가도록 필요한 희생을 바칠, 아들들을 다른 무엇보다 요망합니다.
84:7.20 (941.1) Among ancient savages, discipline of children was begun very early; and the child early realized that disobedience meant failure or even death just as it did to the animals. It is civilization’s protection of the child from the natural consequences of foolish conduct that contributes so much to modern insubordination. 고대 야만인들 사이에서 자녀 훈련은 아주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는 불순종이 동물들에게 바로 그랬듯이, 실패나 죽음도 의미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어리석은 행위의 당연한 결과로부터 아이를 보호한 문명이 현대의 불순종에 아주 많이 도움이 됩니다.
84:7.21 (941.2) Eskimo children thrive on so little discipline and correction simply because they are naturally docile little animals; the children of both the red and the yellow men are almost equally tractable. But in races containing Andite inheritance, children are not so placid; these more imaginative and adventurous youths require more training and discipline. Modern problems of child culture are rendered increasingly difficult by: 에스키모 아이들은 날 때부터 유순한 어린 동물이어서, 훈련이 거의 없이 단순한 징계로 잘 자랍니다. 홍인과 황인의 아이들도 거의 비슷하게 유순합니다. 그러나 안드-사람의 유전을 지닌 인종의 아이들은 그렇게 차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더욱 상상을 좋아하고 모험을 즐기는 젊은이들은 훈련과 징계가 더 필요합니다. 자녀 훈육의 현대적 문제는 다음의 이유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84:7.22 (941.3) 1. The large degree of race mixture. 심한 혼혈(混血).
84:7.23 (941.4) 2. Artificial and superficial education. 강요된 피상적 교육.
84:7.24 (941.5) 3. Inability of the child to gain culture by imitating parents — the parents are absent from the family picture so much of the time. 아이가 부모를 본받아서 양육될 수 없음 – 부모가 (자녀와 함께 있어야 하는) 가족사진에서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없습니다.
84:7.25 (941.6) The olden ideas of family discipline were biologic, growing out of the realization that parents were creators of the child’s being. The advancing ideals of family life are leading to the concept that bringing a child into the world, instead of conferring certain parental rights, entails the supreme responsibility of human existence. 가정 훈육의 오래된 개념은 생물학적이었는데, 부모들이 아이 존재의 창조자들이라는 인식에서 생겼습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친권(親權) 부여 대신에, 인간 존재에 대한 최고의 책임이 따른다는 개념으로, 가정생활의 진보한 이상(理想)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84:7.26 (941.7) Civilization regards the parents as assuming all duties, the child as having all the rights. Respect of the child for his parents arises, not in knowledge of the obligation implied in parental procreation, but naturally grows as a result of the care, training, and affection which are lovingly displayed in assisting the child to win the battle of life. The true parent is engaged in a continuous service-ministry which the wise child comes to recognize and appreciate. 문명은, 부모가 모든 책임을 떠맡고, 자녀는 모든 권리를 지닌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녀의 부모 존경은 부모 출산에 들어있는 채무(債務 갚을 빚)를 아는 데서 생기지 않고, 자녀가 생존 투쟁을 이기도록 도우면서 애정으로 드러난, 보살핌, 훈련과 애정의 결과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참된 부모는, 슬기로운 자녀가 알아보고 절실히 느끼도록 쉬지 않고 돌보는 섬김에 마음과 힘을 다합니다.
84:7.27 (941.8) In the present industrial and urban era the marriage institution is evolving along new economic lines. Family life has become more and more costly, while children, who used to be an asset, have become economic liabilities. But the security of civilization itself still rests on the growing willingness of one generation to invest in the welfare of the next and future generations. And any attempt to shift parental responsibility to state or church will prove suicidal to the welfare and advancement of civilization. 현재의 산업적 도시 시대에, 결혼제도는 새로운 경제 노선을 따라 진화하고 있습니다. 가정생활은 더욱더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에, 한때 자산이었던 자녀들은 경제적 채무(債務 빚)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명 자체의 보장은 한 세대가 다음 미래 세대의 복지에 기꺼이 투자하는 성장에 여전히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 책임을 국가나 교회로 옮기려는 모든 시도는 문명의 복지와 증진에 자멸을 초래할 것입니다.
84:7.28 (941.9) Marriage, with children and consequent family life, is stimulative of the highest potentials in human nature and simultaneously provides the ideal avenue for the expression of these quickened attributes of mortal personality. The family provides for the biologic perpetuation of the human species. The home is the natural social arena wherein the ethics of blood brotherhood may be grasped by the growing children. The family is the fundamental unit of fraternity in which parents and children learn those lessons of patience, altruism, tolerance, and forbearance which are so essential to the realization of brotherhood among all men. 결혼은, 자녀들과 그 결과인 가정생활과 함께, 가장 높은 인간 본성의 잠재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필사자 고유성의 이런 속성을 분발시켜 표현하는 이상적인 방법을 마련합니다. 가정은 인간종이 생물학적으로 영속하게 합니다. 가정은, 성장하는 자녀들이 혈연적 형제 사랑의 윤리를 파악할 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사회적 활동 무대입니다. 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모든 사람 사이에서 형제 사랑의 실현에 아주 본질적인, 참을성, 애타(愛他)주의, 너그러움과 자제심의 그런 교훈을 배우는, 기본적인 형제 우애 단위입니다.
84:7.29 (941.10) Human society would be greatly improved if the civilized races would more generally return to the family-council practices of the Andites. They did not maintain the patriarchal or autocratic form of family government. They were very brotherly and associative, freely and frankly discussing every proposal and regulation of a family nature. They were ideally fraternal in all their family government. In an ideal family filial and parental affection are both augmented by fraternal devotion. 문명화된 종족들이 더욱 전반적으로 안드-사람들의 가족-회의 관례로 돌아간다면 인간 사회는 크게 개선될 것입니다. 그들은 가부장(家父長)적 혹은 독재적 형태의 가정 정치체제를 유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주 친숙하게 연합하고, 가정의 본래 모습에 속한 모든 제안과 규정을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가정 정치체제에서 더할 나위 없이 우애(友愛)적이었습니다. 이상적(理想的)인 가정에서, 우애(友愛)적 헌신으로, 효성스러운 애정과 어버이다운 애정 둘 다 늘어납니다.
84:7.30 (942.1) Family life is the progenitor of true morality, the ancestor of the consciousness of loyalty to duty. The enforced associations of family life stabilize personality and stimulate its growth through the compulsion of necessitous adjustment to other and diverse personalities. But even more, a true family — a good family — reveals to the parental procreators the attitude of the Creator to his children, while at the same time such true parents portray to their children the first of a long series of ascending disclosures of the love of the Paradise parent of all universe children. 가정생활은 참된 도덕의 조상, 의무에 대한 충성 의식의 선조입니다. 강제적인 가정생활의 결합으로 고유성이 안정되고, 다른 다양한 고유성에 대해 부득이하게 필연적으로 조율하면서, 그 고유성이 활발히 성장하게 합니다. 그러나 더욱더, 참된 가정 – 좋은 가정은 출산 어버이에게, 자기 자녀들 대한 창조주의 태도를 나타내는 동시에 그런 참된 부모는 자기 자녀들에게, 일련의 긴 상승 단계 중 첫째로, 모든 우주 자녀들의 천국 부모의 사랑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묘사합니다.
8. Dangers of Self-Gratification 자아-충족의 위험들
84:8.1 (942.2) The great threat against family life is the menacing rising tide of self-gratification, the modern pleasure mania. The prime incentive to marriage used to be economic; sex attraction was secondary. Marriage, founded on self-maintenance, led to self-perpetuation and concomitantly provided one of the most desirable forms of self-gratification. It is the only institution of human society which embraces all three of the great incentives for living. 가정생활의 최고 위협은 위협적으로 증가하는, 현대의 쾌락증(症), 자아-충족의 풍조입니다. 결혼하는 주요 동기는 경제적이었고, 성적 매력은 부차적이었습니다. 자아-유지에 근거한 결혼은 자아-영속으로 이어졌고, 부수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형태의 자아-충족 중 하나를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생활의 가장 큰 동기 중 세 가지 모두를 포함하는, 인간 사회의 유일한 제도입니다.
84:8.2 (942.3) Originally, property was the basic institution of self-maintenance, while marriage functioned as the unique institution of self-perpetuation. Although food satisfaction, play, and humor, along with periodic sex indulgence, were means of self-gratification, it remains a fact that the evolving mores have failed to build any distinct institution of self-gratification. And it is due to this failure to evolve specialized techniques of pleasurable enjoyment that all human institutions are so completely shot through with this pleasure pursuit. Property accumulation is becoming an instrument for augmenting all forms of self-gratification, while marriage is often viewed only as a means of pleasure. And this overindulgence, this widely spread pleasure mania, now constitutes the greatest threat that has ever been leveled at the social evolutionary institution of family life, the home. 원래 재산은 자아-유지의 기본 제도였던 반면에 결혼은 자아-영속의 유일한 제도로 기능했습니다. 음식 만족, 놀이와 유머는 간헐적인 성적 탐닉과 함께 자아-충족의 수단이었지만, 진화하는 관습이 자아-충족의 어떤 뚜렷한 제도를 세우지 못했던 사실이 남아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즐거움에 대한 전문 기법을 발전시키는 데 이렇게 실패해서, 모든 인간 제도가 그렇게 철저히 이런 쾌락 추구로 가득합니다. 재산 축적이 모든 형태의 자아-충족을 늘리는 도구가 되어가는 한편, 결혼은 종종 쾌락의 수단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지나친 방종, 이렇게 널리 퍼진 쾌락증(症)이 이제, 가정생활의 사회 진화적 제도에 늘 퍼부어진, 최고의 위협을 만들어냅니다.
84:8.3 (942.4) The violet race introduced a new and only imperfectly realized characteristic into the experience of humankind — the play instinct coupled with the sense of humor. It was there in measure in the Sangiks and Andonites, but the Adamic strain elevated this primitive propensity into the potential of pleasure, a new and glorified form of self-gratification. The basic type of self-gratification, aside from appeasing hunger, is sex gratification, and this form of sensual pleasure was enormously heightened by the blending of the Sangiks and the Andites. 보라 인종이 새로우며, 겨우 불완전하게 실현된 특성, 즉 유머 감각과 결부된 놀이 본능을 인류의 체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적당히 상긱과 안돈-사람들에게 있었지만, 아담 혈통이 이런 원시적 경향을 쾌락의 가능성, 새로운 자아-충족의 미화된 형태로 끌어올렸습니다. 허기 채우기를 제외하고 기본적 형태의 자아-충족은 성욕 충족이며, 이런 형태의 육감적 쾌락은 상긱과 안드-사람들의 혼합으로 굉장히 강화되었습니다.
84:8.4 (942.5) There is real danger in the combination of restlessness, curiosity, adventure, and pleasure-abandon characteristic of the post-Andite races. The hunger of the soul cannot be satisfied with physical pleasures; the love of home and children is not augmented by the unwise pursuit of pleasure. Though you exhaust the resources of art, color, sound, rhythm, music, and adornment of person, you cannot hope thereby to elevate the soul or to nourish the spirit. Vanity and fashion cannot minister to home building and child culture; pride and rivalry are powerless to enhance the survival qualities of succeeding generations. 안드-사람 이후 종족들의 활동성, 호기심, 모험심과 쾌락에 빠지는 특성의 혼합에 실제적 위험이 있습니다. 혼(魂)의 굶주림은 육체적 쾌락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가정과 자녀에 대한 사랑은 어리석은 쾌락 추구로 늘어나지 않습니다. 너희가 예술, 색깔, 소리, 리듬, 음악과 사람을 꾸미는 자원을 다 써도, 너희는 그것으로 혼(魂)을 높이거나 영이 향상하기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허영(虛榮)과 유행(遊行)은 가정 설립과 자녀 양육에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자랑과 경쟁은 다음 세대들의 생존 특성의 향상에 무력합니다.
84:8.5 (942.6) Advancing celestial beings all enjoy rest and the ministry of the reversion directors. All efforts to obtain wholesome diversion and to engage in uplifting play are sound; refreshing sleep, rest, recreation, and all pastimes which prevent the boredom of monotony are worth while. Competitive games, storytelling, and even the taste of good food may serve as forms of self-gratification. (When you use salt to savor food, pause to consider that, for almost a million years, man could obtain salt only by dipping his food in ashes. 진보하는 천상(天上)의 존재들은 모두 휴식과 복귀 관리자들의 보살핌을 누립니다. 건전한 유희(遊戲)를 얻고 향상하는 놀이에 참여하려는 모든 노력은 정상적입니다. 단조로운 권태를 예방하는 상쾌한 잠, 휴식, 오락 및 모든 기분 전환은 가치 있습니다. 경기 종목, 이야기하기와 좋은 음식을 맛보는 것도 자아-충족의 형태로서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너희가 음식 맛을 내려고 소금을 사용하는, 거의 100만 년간, 사람이 자기 음식을 재 속에 담가서만 소금을 얻을 수 있었음을, 잠시 멈추어 생각하라.)
84:8.6 (943.1) Let man enjoy himself; let the human race find pleasure in a thousand and one ways; let evolutionary mankind explore all forms of legitimate self-gratification, the fruits of the long upward biologic struggle. Man has well earned some of his present-day joys and pleasures. But look you well to the goal of destiny! Pleasures are indeed suicidal if they succeed in destroying property, which has become the institution of self-maintenance; and self-gratifications have indeed cost a fatal price if they bring about the collapse of marriage, the decadence of family life, and the destruction of the home — man’s supreme evolutionary acquirement and civilization’s only hope of survival. 사람은 스스로 즐기라. 인류는 무수한 방법으로 쾌락을 찾으라. 진화하는 인류는 모든 형태의 정당한 자아-충족, 오랫동안 상승한 생물학적 투쟁의 결실을 탐구하라. 사람은 오늘날 즐거운 자기 쾌락의 일부를 잘 얻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운명의 목표를 잘 보라! 쾌락이 자아-유지의 제도가 된, 재산을 성공적으로 파괴한다면, 그것은 정말 자멸(自滅)적입니다. 그리고 자아-충족들이 결혼의 붕괴, 가정생활의 타락과 사람의 최고 진화적 성취이며 문명이 생존할 유일한 희망인, 가정의 파괴를 초래한다면, 그것은 정말 치명적인 대가를 치릅니다.
84:8.7 (943.2) [Presented by the Chief of Seraphim stationed on Urantia.][유란시아에 배치된 수석 세라핌이 제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