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166
Last Visit to Northern Perea 마지막 북(北) 페레아 방문
1. The Pharisees at Ragaba 라가바의 바리새인들
Ceremonial hand washing 의식용 손 씻기
2. The Ten Lepers 열 명의 나환자(癩患者)
3. The Sermon at Gerasa 게라사에서 하신 설교
The straight and narrow way 곧고 좁은 길
Many who are first will be last 첫째가 나중되는 자가 많으니라.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니…”
4. Teaching About Accidents 재난에 대한 가르침
5. The Congregation at Philadelphia 필라델피아의 회중
The later ministry and death of Abner 아브너의 말년 사역과 죽음
230423 예수 복음의 근거 막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166:0.1 (1825.1) FROM February 11 to 20, Jesus and the twelve made a tour of all the cities and villages of northern Perea where the associates of Abner and the members of the women’s corps were working. They found these messengers of the gospel meeting with success, and Jesus repeatedly called the attention of his apostles to the fact that the gospel of the kingdom could spread without the accompaniment of miracles and wonders. 2월 11일(토)부터 20일(월)까지, 예수와 열두 사도는 아브너의 동료들과 여성 단원들이 일하고 있는 북(北) 페레아의 모든 도시와 마을을 순회(巡廻)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복음의 메신저들이 훌륭하게 대처하고 있음을 알았으며,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기적과 이적을 동반하지 않고도 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사도들의 주의(注意)를 거듭하여 환기(喚起)시켰습니다.
166:0.2 (1825.2) This entire mission of three months in Perea was successfully carried on with little help from the twelve apostles, and the gospel from this time on reflected, not so much Jesus’ personality, as his teachings. But his followers did not long follow his instructions, for soon after Jesus’ death and resurrection they departed from his teachings and began to build the early church around the miraculous concepts and the glorified memories of his divine-human personality. 페레아에서 3개월간의 이 모든 선교(宣敎)는 거의 열두 사도의 도움 없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이때부터 복음은 예수의 인격(고유성)이라기보다 그의 가르침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오래되지 않아 그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는데, 예수의 죽음과 부활 직후 그의 가르침에서 이탈하여 기적적인 개념과 그의 신적-인간적 인격(고유성)에 대한 영광스러운 기억을 중심으로 초기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 The Pharisees at Ragaba
라가바의 바리새인들
230430 더 중요한 요구사항 눅11:37-43 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166:1.1 (1825.3) On Sabbath, February 18, Jesus was at Ragaba, where there lived a wealthy Pharisee named Nathaniel; and since quite a number of his fellow Pharisees were following Jesus and the twelve around the country, he made a breakfast on this Sabbath morning for all of them, about twenty in number, and invited Jesus as the guest of honor. 2월 18일(AD 30) 안식일에 예수는 나다니엘이라는 부유한 바리새인이 살았던 라가바에 계셨습니다. 그 지방 주변에서 제법 많은 그 동료가 예수와 열두 사도를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 안식일 아침에 20명쯤 되는 그들 모두를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예수를 귀빈(貴賓)으로 초대했습니다(눅11:37).
166:1.2 (1825.4) By the time Jesus arrived at this breakfast, most of the Pharisees, with two or three lawyers, were already there and seated at the table. The Master immediately took his seat at the left of Nathaniel without going to the water basins to wash his hands. Many of the Pharisees, especially those favorable to Jesus’ teachings, knew that he washed his hands only for purposes of cleanliness, that he abhorred these purely ceremonial performances; so they were not surprised at his coming directly to the table without having twice washed his hands. But Nathaniel was shocked by this failure of the Master to comply with the strict requirements of Pharisaic practice. Neither did Jesus wash his hands, as did the Pharisees, after each course of food nor at the end of the meal. 예수께서 이 아침 식사에 도착하셨을 때, 바리새인들 대부분은 두셋의 율법사와 함께 이미 거기에 있었고 식탁에 앉았습니다. 주님은 손을 씻으러 물동이로 가지 않고 나다니엘의 왼쪽에 바로 앉았습니다. 여러 바리새인, 특히 예수의 가르침에 호의적인 자들은, 그가 청결의 목적으로만 그의 손을 씻고, 그가 이런 순전한 의식용 행위를 몹시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손을 두 번 씻지 않고 바로 식탁으로 가는 것에 대해서 그들은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다니엘은 주께서 바리새인의 엄격한 규칙 습관을 따르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처럼 음식의 각 요리를 먹은 후에 또는 식후에도 그 손을 씻지 않았습니다(눅11:38).
166:1.3 (1825.5) After considerable whispering between Nathaniel and an unfriendly Pharisee on his right and after much lifting of eyebrows and sneering curling of lips by those who sat opposite the Master, Jesus finally said: “I had thought that you invited me to this house to break bread with you and perchance to inquire of me concerning the proclamation of the new gospel of the kingdom of God; but I perceive that you have brought me here to witness an exhibition of ceremonial devotion to your own self-righteousness. That service you have now done me; what next will you honor me with as your guest on this occasion?” 나다니엘과 그 오른편의 악의를 지닌 바리새인 사이에 상당한 귓속말을 하고, 주님의 맞은편에 앉은 자들이 사뭇 눈썹을 치켜뜨고 입술을 비쭉여 비웃은 다음에, 마침내 주께서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이 집에 나를 초대하여 너와 함께 식사하고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복음 선포에 대해 어쩌면 내게 질문하리라고 생각했노라. 그러나 너 자신의 독선(獨善 자기만 옳다고 하는 행동)에 대한 의식용 헌신의 표시를 보라고 네가 나를 여기 데려온 것으로 알겠노라. 네가 지금 내게 그렇게 접대했으니, 네가 이 기회에 너의 손님으로서 나에게 다음의 어떤 것으로 경의를 표할 것이냐?”
166:1.4 (1826.1) When the Master had thus spoken, they cast their eyes upon the table and remained silent. And since no one spoke, Jesus continued: “Many of you Pharisees are here with me as friends, some are even my disciples, but the majority of the Pharisees are persistent in their refusal to see the light and acknowledge the truth, even when the work of the gospel is brought before them in great power. How carefully you cleanse the outside of the cups and the platters while the spiritual-food vessels are filthy and polluted! You make sure to present a pious and holy appearance to the people, but your inner souls are filled with self-righteousness, covetousness, extortion, and all manner of spiritual wickedness. Your leaders even dare to plot and plan the murder of the Son of Man. Do not you foolish men understand that the God of heaven looks at the inner motives of the soul as well as on your outer pretenses and your pious professions? Think not that the giving of alms and the paying of tithes will cleanse you from unrighteousness and enable you to stand clean in the presence of the Judge of all men. Woe upon you Pharisees who have persisted in rejecting the light of life! You are meticulous in tithing and ostentatious in almsgiving, but you knowingly spurn the visitation of God and reject the revelation of his love. Though it is all right for you to give attention to these minor duties, you should not have left these weightier requirements undone. Woe upon all who shun justice, spurn mercy, and reject truth! Woe upon all those who despise the revelation of the Father while they seek the chief seats in the synagogue and crave flattering salutations in the market places!”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들은 식탁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계속하셨습니다. “너희 중 여러 바리새인이 친구들로서 나와 함께 여기에 있고 일부는 심지어 내 제자들이지만, 바리새인들 대부분은 그들 앞에 복음의 행위가 큰 권세로 주어져도, 빛을 보고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고집하도다. 너희가 얼마나 신중하게 잔과 대접의 겉을 깨끗이 하지만, 영적 양식의 그릇이 더럽게 오염되어 있는가(마23:25, 눅11:39)! 너희가 사람들에게 위선적인 거룩한 모습을 확실히 보이려 하지만 너희 내부의 혼(魂)들은 독선(獨善 자기만 옳다고 하는 행동), 탐욕, 강탈(强奪) 및 온갖 방식의 영적 사악함이 가득 차 있도다(마23:28). 너희 지도자들은 감히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의 살해를 꾀하고 계획까지 하도다. 너희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늘의 하느님이 너희 외적인 겉치레와 너희 위선적인 신앙고백만 아니라 혼(魂)의 내적 동기(動機)를 보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느냐(눅16:15)? 자선을 베풀고 십일조를 바친다고 해서 너희가 불의(不義)에서 깨끗해지고 너희가 모든 사람의 심판자 앞에서 깨끗하게 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생명의 빛을 고집스럽게 거절하는 너희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으리라! 너희가 십일조에 매우 신중하고 보란 듯이 자선(慈善)하지만, 너희는 고의로 하느님의 은총을 경멸하고 그의 사랑의 계시를 거절하도다(마23:23, 눅11:42). 너희가 이런 사소한 본분에 주의하는 것이 괜찮아도, 이렇게 더 중요한 요구사항을 그대로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정의(正義)를 피하고, 자비를 경멸하며, 진리를 거절하는 모든 자에게 화 있으리라! 아버지의 계시를 멸시하면서, 회당의 윗자리를 추구하며 시장에서 아첨하는 인사(人事)를 열망하는 모든 자에게 화 있으리라(마23:6-7, 막12:38-39, 눅11:43)!”
230507 하늘나라의 열린 문 눅11:45-54 45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166:1.5 (1826.2) When Jesus would have risen to depart, one of the lawyers who was at the table, addressing him, said: “But, Master, in some of your statements you reproach us also. Is there nothing good in the scribes, the Pharisees, or the lawyers?” And Jesus, standing, replied to the lawyer: “You, like the Pharisees, delight in the first places at the feasts and in wearing long robes while you put heavy burdens, grievous to be borne, on men’s shoulders. And when the souls of men stagger under these heavy burdens, you will not so much as lift with one of your fingers. Woe upon you who take your greatest delight in building tombs for the prophets your fathers killed! And that you consent to what your fathers did is made manifest when you now plan to kill those who come in this day doing what the prophets did in their day — proclaiming the righteousness of God and revealing the mercy of the heavenly Father. But of all the generations that are past, the blood of the prophets and the apostles shall be required of this perverse and self-righteous generation. Woe upon all of you lawyers who have taken away the key of knowledge from the common people! You yourselves refuse to enter into the way of truth, and at the same time you would hinder all others who seek to enter therein. But you cannot thus shut up the doors of the kingdom of heaven; these we have opened to all who have the faith to enter, and these portals of mercy shall not be closed by the prejudice and arrogance of false teachers and untrue shepherds who are like whited sepulchres which, while outwardly they appear beautiful, are inwardly full of dead men’s bones and all manner of spiritual uncleanness.” 예수께서 떠나려고 일어나시자, 식탁에 있던 율법사 한 사람이 그에게 인사하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의 말씀 중 일부에서 당신은 저희 또한 책망하십니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또는 율법사들에게는 올바른 것이 없습니까?” 그러자 예수는, 선 채로 율법사에게 대답했습니다. “너희는 바리새인들처럼 잔치의 상석에서 긴 예복을 즐기면서 견디기 어려운, 무거운 짐을 사람들의 어깨로 짊어지게 하도다. 사람의 혼(魂)들이 이렇게 무거운 짐 아래서, 휘청거릴 때, 너희는 손가락 하나조차 들어 올리지 않으리라. 너희 조상들이 죽인 선지자들을 위해 무덤 세우기를 최고로 즐거워하는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그리고 선지자들이 당시에 했던, 하느님의 공의를 선포하고 하늘 아버지의 자비를 계시하는 것을 오늘날 와서 행하는 자들을 너희가 이제 죽이려고 계획할 때, 너희 조상들이 한 것에 너희가 동의하는 것이 명백하니라. 하지만 이렇게 고집스러운 독선(獨善 자기만 옳다고 하는 행동)적인 세대가 지나간 모든 세대 중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피를 요구하리라. 서민에게서 지식의 열쇠를 제거한 너희 율법사 모두에게 화 있으리라! 너희는 스스로 진리의 길로 들어가기를 단호히 거절하면서 동시에 너희는 그 안에 들어가려는 다른 모든 사람을 방해하곤 했도다. 그러나 너희는 이렇게 하늘나라의 문을 닫을 수 없느니라. 우리가 들어갈 신앙이 있는 모두에게 이런 문들을 열었고, 회칠한 무덤같이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안으로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영적 더러움으로 가득한, 거짓 교사들과 거짓 목자들의 편견과 오만으로, 이런 자비의 입구들이 닫히지 않으리라(마23:13, 27-29, 35-36, 눅11:45-48, 52).”
166:1.6 (1826.3) And when Jesus had finished speaking at Nathaniel’s table, he went out of the house without partaking of food. And of the Pharisees who heard these words, some became believers in his teaching and entered into the kingdom, but the larger number persisted in the way of darkness, becoming all the more determined to lie in wait for him that they might catch some of his words which could be used to bring him to trial and judgment before the Sanhedrin at Jerusalem. 그리고 예수께서 나다니엘의 식탁에서 말씀을 마치자, 그는 함께 먹지 않고 집을 떠났습니다. 이런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 중 일부는 그의 가르침을 믿는 자들이 되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갔으나, 더 많은 수가 어둠의 길을 고집하여,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앞에서 그를 검거하여 재판에 사용될 그의 일부 말씀을 자신들이 캐내려고 숨어서 그를 기다리기로 더욱더 결정하게 되었습니다(눅11:53-54).
166:1.7 (1827.1) There were just three things to which the Pharisees paid particular attention: 바리새인들이 각별하게 주의를 기울인 것은 바로 세 가지였습니다.
166:1.8 (1827.2) 1. The practice of strict tithing. 엄격한 십일조 관행.
166:1.9 (1827.3) 2. Scrupulous observance of the laws of purification. 빈틈없는 정화(淨化)법 준수.
166:1.10 (1827.4) 3. Avoidance of association with all non-Pharisees. 바리새인이 아닌 모든 사람과 관계 회피.
166:1.11 (1827.5) At this time Jesus sought to expose the spiritual barrenness of the first two practices, while he reserved his remarks designed to rebuke the Pharisees’ refusal to engage in social intercourse with non-Pharisees for another and subsequent occasion when he would again be dining with many of these same men. 이때 예수는 영적으로 알맹이가 없는 처음 두 관행을 폭로하려 했지만, 바리새인이 아닌 사람들과 사회적인 교류 참여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거절을 꾸짖으려는 그의 언급은 그가 바로 이런 사람 중 여럿과 다시 식사하는 나중의 또 다른 기회를 위해 훗날로 미뤘습니다.
2. The Ten Lepers 열 명의 나환자(癩患者)
230514 감사와 애정이 깊은 자비 눅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166:2.1 (1827.6) The next day Jesus went with the twelve over to Amathus, near the border of Samaria, and as they approached the city, they encountered a group of ten lepers who sojourned near this place. Nine of this group were Jews, one a Samaritan. Ordinarily these Jews would have refrained from all association or contact with this Samaritan, but their common affliction was more than enough to overcome all religious prejudice. They had heard much of Jesus and his earlier miracles of healing, and since the seventy made a practice of announcing the time of Jesus’ expected arrival when the Master was out with the twelve on these tours, the ten lepers had been made aware that he was expected to appear in this vicinity at about this time; and they were, accordingly, posted here on the outskirts of the city where they hoped to attract his attention and ask for healing. When the lepers saw Jesus drawing near them, not daring to approach him, they stood afar off and cried to him: “Master, have mercy on us; cleanse us from our affliction. Heal us as you have healed others.” 다음 날(AD30.2.19. 일요일) 예수께서 열두 사도와 함께 사마리아 변경 근처의 아마투스로 건너가셨고, 그들이 도시에 접근하자, 이곳 근처에 머물던 열 명의 나환자(癩患者) 무리와 마주쳤습니다. 이 중 아홉은 유대인이었고 하나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대개 이 유대인들은 이런 사마리아인과 모든 사귐이나 접촉을 꺼렸을 것이지만, 그들의 공통된 고통은 모든 종교적 편견을 극복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그의 초기 치유 기적에 대해 많이 들었고, 70인 사도가, 주께서 이런 여행에 열두 사도와 함께 외출하는 예수님의 예상 도착 시간을, 습관적으로 알렸기 때문에, 열 명의 나환자(癩患者)는 그가 이 무렵 이 부근에 나타나기로 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그의 주의를 끌어 치유를 요청하기를 바라며 이곳 도시 변두리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나환자(癩患者 한센병)들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예수를 보자, 감히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 서서 그에게 외쳤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 고통에서 우리를 고쳐주소서. 당신께서 다른 이들을 치유했듯이 우리를 치유하소서(눅17:11-13).”
166:2.2 (1827.7) Jesus had just been explaining to the twelve why the gentiles of Perea, together with the less orthodox Jews, were more willing to believe the gospel preached by the seventy than were the more orthodox and tradition-bound Jews of Judea. He had called their attention to the fact that their message had likewise been more readily received by the Galileans, and even by the Samaritans. But the twelve apostles were hardly yet willing to entertain kind feelings for the long-despised Samaritans. 예수는 열두 사도에게 왜 페레아의 이방인들이, 덜 정통적인 유대인들과 함께, 더 정통적이고 전통에 묶인 유대의 유대인들보다, 70인 사도가 전파한 복음을 기꺼이 더 믿는지 막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찬가지로 갈릴리인(人)들과 심지어 사마리아인(人)들이 그들의 메시지를 더 쉽게 받아들였던 사실에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그러나 열두 사도는 오래 괄시 받던 사마리아인(人)들에 대한 친절한 감정을 아직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166:2.3 (1827.8) Accordingly, when Simon Zelotes observed the Samaritan among the lepers, he sought to induce the Master to pass on into the city without even hesitating to exchange greetings with them. Said Jesus to Simon: “But what if the Samaritan loves God as well as the Jews? Should we sit in judgment on our fellow men? Who can tell? if we make these ten men whole, perhaps the Samaritan will prove more grateful even than the Jews. Do you feel certain about your opinions, Simon?” And Simon quickly replied, “If you cleanse them, you will soon find out.” And Jesus replied: “So shall it be, Simon, and you will soon know the truth regarding the gratitude of men and the loving mercy of God.” 그래서 시몬 젤로떼가 나환자들 사이에서 사마리아인(人)을 알아보자, 주님을 설득하여 그들과 인사를 나누려고 멈춰 서지 않고, 도시로 나아가도록 애썼습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人)이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어찌하겠느냐? 우리가 우리 동료를 판가름해야 하느냐? 누가 알 수 있느냐? 우리가 이런 열 명을 건강하게 한다면, 아마 사마리아인(人)이 유대인들보다도 더 고마움을 표할 것이라. 시몬아, 너는 네 의견에 확신이 있느냐?” 그러자 시몬이 얼른 대답했습니다. “당신께서 그들을 고치면, 당신이 곧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대답했습니다. “시몬아, 그렇게 될 것이며, 너는 사람들의 감사와 하느님의 애정이 깊은 자비에 관한 진리를 곧 알게 될 것이니라.”
166:2.4 (1827.9) Jesus, going near the lepers, said: “If you would be made whole, go forthwith and show yourselves to the priests as required by the law of Moses.” And as they went, they were made whole. But when the Samaritan saw that he was being healed, he turned back and, going in quest of Jesus, began to glorify God with a loud voice. And when he had found the Master, he fell on his knees at his feet and gave thanks for his cleansing. The nine others, the Jews, had also discovered their healing, and while they also were grateful for their cleansing, they continued on their way to show themselves to the priests. 예수께서 나환자들에게 가까이 가면서 말했습니다. “너희가 건강해지면 바로 가서 모세의 율법대로 사제들에게 너희 모습을 보이라.” 그리고 그들이 가다가, 그들은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人)은 자신이 치유된 것을 알자, 그는 되돌아서, 예수를 찾으러 가면서, 큰 소리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주님을 발견하자, 그는, 그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자신의 깨끗해짐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다른 아홉 명의 유대인도 자신의 치유를 깨닫고, 자신들의 깨끗해짐에 대해 감사하면서, 사제들에게 모습을 보이려고 계속 길을 갔습니다(눅17:14-16).
166:2.5 (1828.1) As the Samaritan remained kneeling at Jesus’ feet, the Master, looking about at the twelve, especially at Simon Zelotes, said: “Were not ten cleansed? Where, then, are the other nine, the Jews? Only one, this alien, has returned to give glory to God.” And then he said to the Samaritan, “Arise and go your way; your faith has made you whole.” 사마리아인(人)이 여전히 예수의 발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 주께서 열두 사도, 특히 시몬 젤로떼를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열 명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러면 다른 아홉 명의 유대인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한 명만 하느님에 영광을 돌리려고 돌아왔느니라.” 그런 후 그가 사마리아인(人)에게 말했습니다. “일어나 네 길을 가라. 너의 신앙이 너를 건강하게 만들었느니라(눅17:17-19).”
166:2.6 (1828.2) Jesus looked again at his apostles as the stranger departed. And the apostles all looked at Jesus, save Simon Zelotes, whose eyes were downcast. The twelve said not a word. Neither did Jesus speak; it was not necessary that he should. 그 사람이 떠나자 예수께서 다시 자기 사도들을 보셨습니다. 눈을 내리깐, 시몬 젤로떼만 제외하고 사도들 모두 예수를 보았습니다. 열두 사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말이 없었습니다. 그가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166:2.7 (1828.3) Though all ten of these men really believed they had leprosy, only four were thus afflicted. The other six were cured of a skin disease which had been mistaken for leprosy. But the Samaritan really had leprosy. 이런 열 명 모두 자신들이 나병(한센병)에 걸렸다고 정말로 믿었지만, 네 명만 그렇게 병에 걸려 고통을 겪었습니다. 다른 여섯 명은 나병(癩病)으로 잘못 알았던 피부병이 치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人)은 정말 나병(한센병)에 걸렸습니다.
166:2.8 (1828.4) Jesus enjoined the twelve to say nothing about the cleansing of the lepers, and as they went on into Amathus, he remarked: “You see how it is that the children of the house, even when they are insubordinate to their Father’s will, take their blessings for granted. They think it a small matter if they neglect to give thanks when the Father bestows healing upon them, but the strangers, when they receive gifts from the head of the house, are filled with wonder and are constrained to give thanks in recognition of the good things bestowed upon them.” And still the apostles said nothing in reply to the Master’s words. 예수는 열두 사도에게 나환자(癩患者)들의 깨끗해짐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명했고, 그들이 아마투스로 들어갈 때, 말했습니다. “너희는 집의 자녀들이 자기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지 않을 때도, 축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 아느니라. 그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치료하실 때, 감사하지 않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기지만, 남들은 가장(家長)에게서 선물을 받으면, 놀라움으로 뿌듯하여 자신들에게 주어진 선한 것들을 알아보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느니라.” 그러자 사도들은 주님의 말씀에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3. The Sermon at Gerasa 게라사에서 하신 설교
230521 누가 구원을 받을까? 눅13:22-30 22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166:3.1 (1828.5) As Jesus and the twelve visited with the messengers of the kingdom at Gerasa, one of the Pharisees who believed in him asked this question: “Lord, will there be few or many really saved?” And Jesus, answering, said: 예수님과 열두 사도가 게라사에서 하느님 나라의 메신저들과 이야기했을 때, 그를 믿던 바리새인 중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주님, 실제로 구원받는 사람이 적을까요, 아니면 많을까요?”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했습니다(눅13:22-23).
166:3.2 (1828.6) “You have been taught that only the children of Abraham will be saved; that only the gentiles of adoption can hope for salvation. Some of you have reasoned that, since the Scriptures record that only Caleb and Joshua from among all the hosts that went out of Egypt lived to enter the promised land, only a comparatively few of those who seek the kingdom of heaven shall find entrance thereto. “너희는 아브라함의 자녀들만 구원받을 것이며, 양자로 입양된 이방인들만 구원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배웠느니라. 너희 중 일부는 성서에 이집트를 떠난 모든 무리 중에서 갈렙과 여호수아만 살아서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하느님 나라를 찾는 자 중에서 비교적 적은 수만 거기로 들어가리라고 생각했느니라(민14:30, 38, 26:65, 32:11-12).
166:3.3 (1828.7) “You also have another saying among you, and one that contains much truth: That the way which leads to eternal life is straight and narrow, that the door which leads thereto is likewise narrow so that, of those who seek salvation, few can find entrance through this door. You also have a teaching that the way which leads to destruction is broad, that the entrance thereto is wide, and that there are many who choose to go this way. And this proverb is not without its meaning. But I declare that salvation is first a matter of your personal choosing. Even if the door to the way of life is narrow, it is wide enough to admit all who sincerely seek to enter, for I am that door. And the Son will never refuse entrance to any child of the universe who, by faith, seeks to find the Father through the Son. 너희는 너희 중 다른 격언도 있는데,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은 곧고 좁으며, 거기로 인도하는 문도 마찬가지로 좁아서, 구원을 찾는 자 중에서 이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가 거의 없다는 여러 실태를 담고 있도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고, 거기로 들어가는 입구도 넓어서, 이 길을 가려고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는 가르침도 너희에게 있느니라. 이런 속담은 그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러나 내가 선언하노니, 구원은 먼저 너희 개인이 선택하는 문제이니라. 생명의 길로 가는 문이 좁다고 해도, 진심으로 들어가려고 찾는 모두를 받아 들일만큼 넓으니, 내가 그 문이기 때문이라. 그리고 아들은, 신앙으로, 아들을 통해 아버지를 찾으려고 애쓰는 우주의 어떤 자녀라도 들어가기를 절대로 거절하지 않을 것이니라(마7:13-14, 눅13:24).
166:3.4 (1829.1) “But herein is the danger to all who would postpone their entrance into the kingdom while they continue to pursue the pleasures of immaturity and indulge the satisfactions of selfishness: Having refused to enter the kingdom as a spiritual experience, they may subsequently seek entrance thereto when the glory of the better way becomes revealed in the age to come. And when, therefore, those who spurned the kingdom when I came in the likeness of humanity seek to find an entrance when it is revealed in the likeness of divinity, then will I say to all such selfish ones: I know not whence you are. You had your chance to prepare for this heavenly citizenship, but you refused all such proffers of mercy; you rejected all invitations to come while the door was open. Now, to you who have refused salvation, the door is shut. This door is not open to those who would enter the kingdom for selfish glory. Salvation is not for those who are unwilling to pay the price of wholehearted dedication to doing my Father’s will. When in spirit and soul you have turned your backs upon the Father’s kingdom, it is useless in mind and body to stand before this door and knock, saying, ‘Lord, open to us; we would also be great in the kingdom.’ Then will I declare that you are not of my fold. I will not receive you to be among those who have fought the good fight of faith and won the reward of unselfish service in the kingdom on earth. And when you say, ‘Did we not eat and drink with you, and did you not teach in our streets?’ then shall I again declare that you are spiritual strangers; that we were not fellow servants in the Father’s ministry of mercy on earth; that I do not know you; and then shall the Judge of all the earth say to you: ‘Depart from us, all you who have taken delight in the works of iniquity.’ “그러나 미숙한 쾌락을 계속 추구하고 이기심의 만족을 채우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미루는 모든 자에게 이 점에서 위험이 있도다. 영적 체험으로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거절한 그들이, 그 후에 다가오는 시대에 더 나은 길의 영광이 계시될 때, 거기로 들어가려 할 수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인간의 모습으로 왔을 때 하느님 나라를 거절한 자들이 신성(神性)의 모습이 계시될 때 들어가려고 애쓴다면, 그때 내가 그렇게 이기적인 모든 자에게 말하리라.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노라. 너희는 이런 하늘의 시민권을 준비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런 모든 자비의 제안(提案)을 거절했도다. 너희는 문이 열려 있는 동안 오라는 모든 초대를 거절했도다. 이제 구원을 거절한 너희에게는 문이 닫혔도다. 이 문은 이기적 영광을 위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는 자들에게는 열려 있지 않으니라. 구원은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전심으로 헌신하는 값을 마지못해 치르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영(靈)과 혼(魂)으로 아버지의 나라를 외면하면서, 마음과 몸으로 이 문 앞에서 서서 두드리며, ‘주님, 우리에게 문을 여소서, 우리도 하느님 나라에서 위대해질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소용없느니라. 그때 너희는 내 우리 안의 양 무리에 속하지 않는다고 내가 선언하리라. 나는, 신앙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딤전6:12a, 딤후4:7a), 지상의 하느님 나라에서 이타적인 섬김의 보상을 얻은 자들 사이에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가 당신과 함께 먹고 마시지 않았으며, 당신께서 우리 거리에서 가르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하면, 너희는 영적으로 모르는 사람들이며, 우리가 지상에서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역에서 동료 봉사자들이 아니었고,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내가 다시 선언하리라. 그러면 온 지상의 심판자가 너희에게 ‘사악한 일을 즐겼던 너희는 다 우리에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 눅13:25-27).
166:3.5 (1829.2) “But fear not; every one who sincerely desires to find eternal life by entrance into the kingdom of God shall certainly find such everlasting salvation. But you who refuse this salvation will some day see the prophets of the seed of Abraham sit down with the believers of the gentile nations in this glorified kingdom to partake of the bread of life and to refresh themselves with the water thereof. And they who shall thus take the kingdom in spiritual power and by the persistent assaults of living faith will come from the north and the south and from the east and the west. And, behold, many who are first will be last, and those who are last will many times be first.”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 얻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자는 누구나 그런 영원한 구원을 반드시 얻을 것이니라. 그러나 이런 구원을 거절하는 너희는 언젠가, 아브라함 자손의 선지자들이 이렇게 영화로운 하느님 나라에서 이방 민족의 신자들과 함께 앉아서 생명의 빵을 먹고 거기의 물로 기운을 되찾는 것을 볼 것이라. 그리고 이렇게 영적 권세와 살아있는 신앙의 집요한 공격으로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그들이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에서 올 것이라. 그리고 보라, 먼저 된 많은 자들이 나중이 되고, 나중 된 자들이 여러 번 먼저 되리라(마8:11, 19:30, 20:16, 막10:31, 눅13:28-30).”
166:3.6 (1829.3) This was indeed a new and strange version of the old and familiar proverb of the straight and narrow way. 이것은 곧고 좁은 길이라는 오래되어 잘 알려진 속담을 정말로 새롭게 설명한 생소한 해석이었습니다.
166:3.7 (1829.4) Slowly the apostles and many of the disciples were learning the meaning of Jesus’ early declaration: “Unless you are born again, born of the spirit, you cannot enter the kingdom of God.” Nevertheless, to all who are honest of heart and sincere in faith, it remains eternally true: “Behold, I stand at the doors of men’s hearts and knock, and if any man will open to me, I will come in and sup with him and will feed him with the bread of life; we shall be one in spirit and purpose, and so shall we ever be brethren in the long and fruitful service of the search for the Paradise Father.” And so, whether few or many are to be saved altogether depends on whether few or many will heed the invitation: “I am the door, I am the new and living way, and whosoever wills may enter to embark upon the endless truth-search for eternal life.” 사도들과 여러 제자는 “너희가 거듭나, 영(靈)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너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3:3).”라는 예수의 초기 선언의 의미를 서서히 익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심정이 정직하고 신앙이 진실한 모든 이에게 영원히 진실로 남아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라, 내가 사람들의 심정 문간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게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를 생명의 빵으로 먹이리라(계3:20). 우리는 영(靈)과 목적으로 하나가 되어, 천국 아버지를 찾는, 오래도록 열매가 많이 열리는 섬김 가운데 우리는 그렇게 늘 형제가 될 것이라.” 따라서 소수가 구원되는지, 다수가 구원되는지는 “나는 문이라(요10:7, 9), 나는 새롭게 살아 있는 길이며(요14:6),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영생의 끝없는 진리-추구의 시작에 참여할 수 있느니라.”라는 초대에 소수나 다수가 주의를 기울일지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166:3.8 (1829.5) Even the apostles were unable fully to comprehend his teaching as to the necessity for using spiritual force for the purpose of breaking through all material resistance and for surmounting every earthly obstacle which might chance to stand in the way of grasping the all-important spiritual values of the new life in the spirit as the liberated sons of God. 사도들조차, 모든 물질적 저항을 돌파하고, 해방된 하느님의 아들(자녀)들로서 영(靈) 안에서 새 생명에 속한 가장 중요한 영적 가치의 파악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모든 현세의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영적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4. Teaching About Accidents 재난에 대한 가르침
230528 무엇으로 영적 은혜가 결정되는가? 눅13:1-9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166:4.1 (1830.1) While most Palestinians ate only two meals a day, it was the custom of Jesus and the apostles, when on a journey, to pause at midday for rest and refreshment. And it was at such a noontide stop on the way to Philadelphia that Thomas asked Jesus: “Master, from hearing your remarks as we journeyed this morning, I would like to inquire whether spiritual beings are concerned in the production of strange and extraordinary events in the material world and, further, to ask whether the angels and other spirit beings are able to prevent accidents.” 팔레스타인 사람 대부분은 하루에 두 끼만 먹었으나, 예수와 사도들은 여행할 때 한낮에 잠시 멈춰 쉬면서 기운을 차리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필라델피아로 가는 도중에 그렇게 한낮에 멈추었을 때 도마가 예수께 여쭈었습니다. “주여, 오늘 아침에 우리가 여행할 때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영적 존재들이 물질계에서 기이하고 비상한 사건들을 일으키는 데 관여하는지, 게다가 천사들과 다른 영(靈) 존재들이 재난을 예방할 수 있는지, 제가 질문하고 싶습니다.”
166:4.2 (1830.2) In answer to Thomas’s inquiry, Jesus said: “Have I been so long with you, and yet you continue to ask me such questions? Have you failed to observe how the Son of Man lives as one with you and consistently refuses to employ the forces of heaven for his personal sustenance? Do we not all live by the same means whereby all men exist? Do you see the power of the spiritual world manifested in the material life of this world, save for the revelation of the Father and the sometime healing of his afflicted children? 도마의 질문에 대답하여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오래 너와 같이 있었는데도, 내게 그런 질문을 계속하느냐? 너희는 사람의 아들(인자 人子)이 너희와 하나가 되어 살면서 자기 개인의 생계를 위해 하늘의 기세를 시종일관 사용하려 하지 않는지 네가 지켜보지 않았느냐? 우리 모두 모든 사람이 존재하는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느냐? 너는 아버지의 계시와 때때로 그의 고통받는 자녀들의 치유를 제외하고, 이 세상의 물질적 생활에서 나타나는 영적 세계의 권세를 보고 있느냐?
166:4.3 (1830.3) “All too long have your fathers believed that prosperity was the token of divine approval; that adversity was the proof of God’s displeasure. I declare that such beliefs are superstitions. Do you not observe that far greater numbers of the poor joyfully receive the gospel and immediately enter the kingdom? If riches evidence divine favor, why do the rich so many times refuse to believe this good news from heaven? “너희 조상들은 모두 너무 오랫동안, 번영은 신적 찬성의 신호이고 불행은 하느님이 진노한 증거라고 믿었느니라. 내가 선언하노니, 그런 믿음은 미신적 관습이니라. 너희는, 훨씬 더 많은 가난한 자가 기쁘게 복음을 받아들여 즉시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보지 않느냐? 재산이 신적 은혜의 증거라면 부자들은 어째서 하늘의 이 복음을 그토록 여러 번 믿으려 하지 않는가?
166:4.4 (1830.4) “The Father causes his rain to fall on the just and the unjust; the sun likewise shines on the righteous and the unrighteous. You know about those Galileans whose blood Pilate mingled with the sacrifices, but I tell you these Galileans were not in any manner sinners above all their fellows just because this happened to them. You also know about the eighteen men upon whom the tower of Siloam fell, killing them. Think not that these men who were thus destroyed were offenders above all their brethren in Jerusalem. These folks were simply innocent victims of one of the accidents of time. “아버지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자신의 비를 내리시고, 마찬가지로 정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햇빛을 비추느니라(마5:45). 너희는 빌라도가 희생제물에 피를 섞은 그런 갈릴리인(人)들에 대해 알고 있지만, 네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런 갈릴리인(人)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들이 어떤 면에서 그들의 어떤 동료들보다 죄인들이 아니었느니라. 너희는 또한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18명에 대해 아느니라. 그렇게 죽은 이런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들의 어떤 형제들보다 범죄자들이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런 사람들은 시간의 돌발 사고 중 하나의 무고한 희생자들이었을 뿐이니라(눅13:1-4).
166:4.5 (1830.5) “There are three groups of events which may occur in your lives: “너희 삶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들은 세 가지 종류니라.
166:4.6 (1830.6) “1. You may share in those normal happenings which are a part of the life you and your fellows live on the face of the earth. 너희는 지구상에서 너희와 너희 동료가 사는 생활의 일부인 그런 평범한 사건들을 함께 나눌 수도 있느니라.
166:4.7 (1830.7) “2. You may chance to fall victim to one of the accidents of nature, one of the mischances of men, knowing full well that such occurrences are in no way prearranged or otherwise produced by the spiritual forces of the realm. 너희는 자연계의 돌발 사고 중 하나, 사람들의 재난 중 하나에 우연히 희생될 수도 있는데, 그런 사건들은 영역의 영적 기세들이 예정한 것도, 또한 그들이 일으킨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느니라.
166:4.8 (1830.8) “3. You may reap the harvest of your direct efforts to comply with the natural laws governing the world. 너희는 세상을 다스리는 자연법칙을 좇는 직접적인 너희 노력의 결과를 거둘 수도 있느니라.
166:4.9 (1830.9) “There was a certain man who planted a fig tree in his yard, and when he had many times sought fruit thereon and found none, he called the vinedressers before him and said: ‘Here have I come these three seasons looking for fruit on this fig tree and have found none. Cut down this barren tree; why should it encumber the ground?’ But the head gardener answered his master: ‘Let it alone for one more year so that I may dig around it and put on fertilizer, and then, next year, if it bears no fruit, it shall be cut down.’ And when they had thus complied with the laws of fruitfulness, since the tree was living and good, they were rewarded with an abundant yield. “어떤 사람이 자기 마당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곧이어 여러 번 열매를 구했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자, 그가 자기 앞에 포도원 일꾼들을 불러 말했더라. ‘내가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아 삼 년을 왔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도다. 이런 메마른 나무를 베어 버리라. 어째서 그것이 땅을 거치적거리게 하느냐?’ 그러나 정원사 단장이 그의 주인에게 대답했더라. ‘1년간 그대로 둬서 제가 땅을 두루 파서 거름을 준 다음 내년에 열매가 없으면 베어 버릴 것이라.’ 그들이 그렇게 열매 맺는 법칙을 따르자, 나무가 살아서 튼튼해져서, 그들은 풍부한 수확으로 보상받았더라(눅13:6-9).
166:4.10 (1831.1) “In the matter of sickness and health, you should know that these bodily states are the result of material causes; health is not the smile of heaven, neither is affliction the frown of God. “질병과 건강 문제에서, 너희는 이런 육체적 상태는 물질적 원인의 결과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건강은 하늘의 은총이 아니며, 질병도 하느님의 화난 얼굴이 아니라.
166:4.11 (1831.2) “The Father’s human children have equal capacity for the reception of material blessings; therefore does he bestow things physical upon the children of men without discrimination. When it comes to the bestowal of spiritual gifts, the Father is limited by man’s capacity for receiving these divine endowments. Although the Father is no respecter of persons, in the bestowal of spiritual gifts he is limited by man’s faith and by his willingness always to abide by the Father’s will.” “아버지의 인간 자녀들은 물질적 축복을 받아들이는 동등한 능력이 있도다. 따라서 그는 사람의 자녀들에게 육신의 것들을 차별 없이 주시느니라. 영적 은혜를 주실 때, 아버지는 이런 신적 자질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수용력에 의해 제한되느니라. 아버지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 분이지만, 영적 은혜를 주실 때, 그는 사람의 신앙과 언제나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그의 기꺼이 하는 마음(자발성)으로 제한되느니라.”
166:4.12 (1831.3) As they journeyed on toward Philadelphia, Jesus continued to teach them and to answer their questions having to do with accidents, sickness, and miracles, but they were not able fully to comprehend this instruction. One hour of teaching will not wholly change the beliefs of a lifetime, and so Jesus found it necessary to reiterate his message, to tell again and again that which he wished them to understand; and even then they failed to grasp the meaning of his earth mission until after his death and resurrection. 그들이 필라델피아를 향해 여행을 계속하면서, 예수께서 계속 그들을 가르치고 재난, 질병 및 기적에 관련된 그들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그들은 이런 가르침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한 시간의 가르침으로 평생의 믿음이 완전히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예수는 자신의 메시지를 반복하여, 그들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을 몇 번이고 말할 필요를 간파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까지, 그들은 그의 지상 사명의 의미를 끝내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5. The Congregation at Philadelphia
필라델피아의 회중
230604 예수 복음을 믿고 가르친 아브너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166:5.1 (1831.4) Jesus and the twelve were on their way to visit Abner and his associates, who were preaching and teaching in Philadelphia. Of all the cities of Perea, in Philadelphia the largest group of Jews and gentiles, rich and poor, learned and unlearned, embraced the teachings of the seventy, thereby entering into the kingdom of heaven. The synagogue of Philadelphia had never been subject to the supervision of the Sanhedrin at Jerusalem and therefore had never been closed to the teachings of Jesus and his associates. At this very time, Abner was teaching three times a day in the Philadelphia synagogue. 예수와 열두 사도는 필라델피아에서 전도하고 가르치는 아브너와 그의 동료들을 방문하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페레아의 모든 도시 중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큰 유대인과 이방인 집단, 부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들이 70인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서 하늘나라로 들어갔습니다. 필라델피아의 회당은 예루살렘에 있는 산헤드린의 감독을 받은 적이 없어서, 예수와 그 동료들의 가르침을 금지한 적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때 아브너는 필라델피아 회당에서 하루에 세 번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166:5.2 (1831.5) This very synagogue later on became a Christian church and was the missionary headquarters for the promulgation of the gospel through the regions to the east. It was long a stronghold of the Master’s teachings and stood alone in this region as a center of Christian learning for centuries. 바로 이 회당이 나중에 기독교 교회가 되었고 그 지역을 통해 동쪽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 본부였습니다. 그곳은 오랫동안 주(主)의 가르침의 본거지였고, 이 지역에서 수 세기 동안 독보적인 기독교 학습의 중심지였습니다.
166:5.3 (1831.6) The Jews at Jerusalem had always had trouble with the Jews of Philadelphia. And after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the Jerusalem church, of which James the Lord’s brother was head, began to have serious difficulties with the Philadelphia congregation of believers. Abner became the head of the Philadelphia church, continuing as such until his death. And this estrangement with Jerusalem explains why nothing is heard of Abner and his work in the Gospel records of the New Testament. This feud between Jerusalem and Philadelphia lasted throughout the lifetimes of James and Abner and continued for some time after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Philadelphia was really the headquarters of the early church in the south and east as Antioch was in the north and west.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필라델피아의 유대인들과 언제나 시끄러웠습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수장이었던 예루살렘 교회는 필라델피아 신자들 회중과 심각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너는 필라델피아 교회의 수장이 되어 죽을 때까지 그렇게 머물렀습니다. 예루살렘과 이런 반목(反目)이 신약성서의 복음서 기록에서 아브너와 그의 사역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 이유입니다. 예루살렘과 필라델피아 사이의 이런 불화는 야고보와 아브너의 일생 내내 이어졌고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 얼마간 계속되었습니다. 안디옥이 북쪽과 서쪽에서 초기 교회의 본부였듯이, 필라델피아는 남쪽과 동쪽에서 초기 교회의 실제 본부였습니다.
166:5.4 (1831.7) It was the apparent misfortune of Abner to be at variance with all of the leaders of the early Christian church. He fell out with Peter and James (Jesus’ brother) over questions of administration and the jurisdiction of the Jerusalem church; he parted company with Paul over differences of philosophy and theology. Abner was more Babylonian than Hellenic in his philosophy, and he stubbornly resisted all attempts of Paul to remake the teachings of Jesus so as to present less that was objectionable, first to the Jews, then to the Greco-Roman believers in the mysteries. 아브너가 초기 기독교 교회의 모든 지도자와 불화를 겪은 것은 명백히 불행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경영과 관할권 문제로 베드로 및 야고보(예수의 형제)와 사이가 틀어졌고, 그는 철학과 신학의 차이로 바울과 뜻을 달리했습니다. 아브너는 그리스 철학보다 바빌로니아 철학에 더 가까웠고, 그는, 먼저 유대인들에게, 나중에 신비를 믿는 그리스·로마의 신자들에게 불쾌한 것을 덜 제시하려고 예수의 가르침을 개조하려는 바울의 모든 시도에 완강히 저항했습니다.
166:5.5 (1832.1) Thus was Abner compelled to live a life of isolation. He was head of a church which was without standing at Jerusalem. He had dared to defy James the Lord’s brother, who was subsequently supported by Peter. Such conduct effectively separated him from all his former associates. Then he dared to withstand Paul. Although he was wholly sympathetic with Paul in his mission to the gentiles, and though he supported him in his contentions with the church at Jerusalem, he bitterly opposed the version of Jesus’ teachings which Paul elected to preach. In his last years Abner denounced Paul as the “clever corrupter of the life teachings of Jesus of Nazareth, the Son of the living God.” 이렇게 아브너는 고립된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신분이 없는 교회의 수장이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베드로가 지지한 주님의 형제 야고보에게 감히 도전했습니다. 그는 그런 행위로 자기의 이전 동료들로부터 실제로 헤어졌습니다. 그때 그는 대담하게 바울에게 저항했습니다. 그는 바울의 이방인 선교에 완전히 공감했고, 그는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와 논쟁할 때 그를 지지했지만, 그는 바울이 전하려고 뽑아낸 예수 가르침의 변형을 몹시 반대했습니다. 말년에 아브너는 바울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의 삶의 가르침을 교묘하게 부패시킨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166:5.6 (1832.2) During the later years of Abner and for some time thereafter, the believers at Philadelphia held more strictly to the religion of Jesus, as he lived and taught, than any other group on earth. 아브너의 말년과 그 후 얼마간, 필라델피아의 신자들은 예수께서 살고 가르쳤던 대로 지상에 있는 다른 어떤 집단보다 예수의 종교를 훨씬 더 순전하게 고수했습니다.
166:5.7 (1832.3) Abner lived to be 89 years old, dying at Philadelphia on the 21st day of November, A.D. 74. And to the very end he was a faithful believer in, and teacher of, the gospel of the heavenly kingdom. 아브너는 89세까지 살다가 AD74년 11월 21일에 필라델피아에서 별세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하늘나라의 복음을 충실하게 믿는 신자이며 가르치는 선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