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97 Evolution of the God Concept Among the Hebrews 히브리인 사이에서 하나님 개념의 진화

Paper 97

Evolution of the God Concept Among the Hebrews 히브리인 사이에서 하나님 개념의 진화

1. Samuel — First of the Hebrew Prophets 사무엘 – 첫 번째 히브리 선지자
2. Elijah and Elisha 엘리야와 엘리사
3. Yahweh and Baal 야훼와 바알
4. Amos and Hosea 아모스와 호세아
5. The First Isaiah 첫 번째 이사야
Micah and Obadiah 미가와 오바댜
6. Jeremiah the Fearless 두려움을 모르는 예레미야
7. The Second Isaiah 두 번째 이사야
8. Sacred and Profane History 신성한 모독(冒瀆) 역사
9. Hebrew History 히브리인의 역사
Ephraim and Judah 에브라임과 유다
Saul and David 사울과 다윗
Solomon and taxation 솔로몬과 과세(課稅)
Israel and Judah 이스라엘과 유다
Destruction of the Kingdom of Israel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End of the Kingdom of Judah 유다 왕국의 종말
The Babylonian captivity 바빌론 유수(幽囚)
10. The Hebrew Religion 히브리 종교

97:0.1 (1062.1) THE spiritual leaders of the Hebrews did what no others before them had ever succeeded in doing — they deanthropomorphized their God concept without converting it into an abstraction of Deity comprehensible only to philosophers. Even common people were able to regard the matured concept of Yahweh as a Father, if not of the individual, at least of the race. 히브리인들의 영적 지도자들은 철학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추상적인 신(神)개념으로 전환하지 않고 자신들의 하느님 개념을 비의인화(非擬人化 하느님에게 인간적 특성을 투사하지 않는 것)하여 그들 이전에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습니다. 일반인까지 야훼에 대한 성숙한 개념을 개인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종족의 아버지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

97:0.2 (1062.2) The concept of the personality of God, while clearly taught at Salem in the days of Melchizedek, was vague and hazy at the time of the flight from Egypt and only gradually evolved in the Hebraic min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n response to the teaching of the spiritual leaders. The perception of Yahweh’s personality was much more continuous in its progressive evolution than was that of many other of the Deity attributes. From Moses to Malachi there occurred an almost unbroken ideational growth of the personality of God in the Hebrew mind, and this concept was eventually heightened and glorified by the teachings of Jesus about the Father in heaven. 하느님의 인격(고유성) 개념은 멜기세덱 시기에 살렘에서 명백히 가르쳤지만, 이집트에서 탈출할 당시에는 분명하지 않고 흐릿했으며 영적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대응하여 대대로 히브리인들의 마음에서 겨우 서서히 진화했습니다. 야훼의 인격(고유성)에 대한 인식은 다른 여러 신(神)속성에 대한 인식보다 훨씬 더 끊이지 않고 점진적으로 진화했습니다. 모세부터 말라기까지 히브리인의 마음에서 하느님의 인격(고유성)에 대한 관념적 성장이 거의 중단되지 않았고, 이 개념은 결국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으로 고상해지고 영광스러워졌습니다.

1. Samuel — First of the Hebrew Prophets 사무엘 – 첫 번째 히브리 선지자

97:1.1 (1062.3) Hostile pressure of the surrounding peoples in Palestine soon taught the Hebrew sheiks they could not hope to survive unless they confederated their tribal organizations into a centralized government. And this centralization of administrative authority afforded a better opportunity for Samuel to function as a teacher and reformer. 팔레스타인 주변 민족들의 적대적 압력으로 인해 히브리 수장(首長)들은 자신들의 부족 조직을 중앙 정부로 연합시키지 않으면 자신들이 생존을 바랄 수 없다고 빨리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중앙집권적 경영 권한으로 인해 사무엘이 선생과 개혁가로 활동하는 더 좋은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97:1.2 (1062.4) Samuel sprang from a long line of the Salem teachers who had persisted in maintaining the truths of Melchizedek as a part of their worship forms. This teacher was a virile and resolute man. Only his great devotion, coupled with his extraordinary determination, enabled him to withstand the almost universal opposition which he encountered when he started out to turn all Israel back to the worship of the supreme Yahweh of Mosaic times. And even then he was only partially successful; he won back to the service of the higher concept of Yahweh only the more intelligent half of the Hebrews; the other half continued in the worship of the tribal gods of the country and in the baser conception of Yahweh. 사무엘은 멜기세덱의 진리를 자기들 경배 형태의 일부로 계속 존속해 온 살렘 선생들의 오랜 계열 출신이었습니다. 이 선생은 힘찬 불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온 이스라엘을 모세 시대의 최고 야훼 예배로 되돌리기 시작했을 때 자신이 직면했던 거의 전반적인 반대를, 자신의 비범한 결단력과 결합한 위대한 헌신만으로 버티어 냈습니다. 그리고 그렇더라도 그는 부분적으로만 성공했습니다. 그는 히브리인 중 이해력이 더 뛰어난 절반만 되찾아 더 높은 야훼 개념을 섬기게 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그 지역의 부족적 신과 같은 존재들과 열등한 야훼 개념을 계속 숭배했습니다.

97:1.3 (1062.5) Samuel was a rough-and-ready type of man, a practical reformer who could go out in one day with his associates and overthrow a score of Baal sites. The progress he made was by sheer force of compulsion; he did little preaching, less teaching, but he did act. One day he was mocking the priest of Baal; the next, chopping in pieces a captive king. He devotedly believed in the one God, and he had a clear concept of that one God as creator of heaven and earth: “The pillars of the earth are the Lord’s, and he has set the world upon them.” 사무엘은 정력적인 유형의 사람으로 자기 동료들과 함께 하루에 나가서 여러 바알 사적지(史蹟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실용적 개혁가였습니다. 그는 순전히 억제할 수 없는 힘에 사로잡혀 전진했습니다. 그는 거의 설교하지 않았고 덜 가르쳤지만,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어느 날 그는 바알의 사제를 조롱했고, 다음 날 그는 사로잡힌 왕을 내리찍었습니다(삼상15:33). 그는 헌신적으로 하나뿐인 하느님을 믿었고, 하나뿐인 그 하느님이 하늘과 땅의 창조자라는 분명한 개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땅의 기둥들은 주의 것이라, 그가 세상을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삼상2:8).”

97:1.4 (1063.1) But the great contribution which Samuel made to the development of the concept of Deity was his ringing pronouncement that Yahweh was changeless, forever the same embodiment of unerring perfection and divinity. In these times Yahweh was conceived to be a fitful God of jealous whims, always regretting that he had done thus and so; but now,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Hebrews sallied forth from Egypt, they heard these startling words, “The Strength of Israel will not lie nor repent, for he is not a man, that he should repent.” Stability in dealing with Divinity was proclaimed. Samuel reiterated the Melchizedek covenant with Abraham and declared that the Lord God of Israel was the source of all truth, stability, and constancy. Always had the Hebrews looked upon their God as a man, a superman, an exalted spirit of unknown origin; but now they heard the onetime spirit of Horeb exalted as an unchanging God of creator perfection. Samuel was aiding the evolving God concept to ascend to heights above the changing state of men’s minds and the vicissitudes of mortal existence. Under his teaching, the God of the Hebrews was beginning the ascent from an idea on the order of the tribal gods to the ideal of an all-powerful and changeless Creator and Supervisor of all creation. 그러나 사무엘이 신(神)개념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것은, 야훼가 변함없이, 영원히, 정확한 완전성과 신성(神性)의 바로 그 화신(化身)이었다고 울려 퍼졌던 그의 선언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야훼는 질투로 다른 신(神) 숭배를 용서하지 않고, 발작적인 변덕으로, 자신이 이렇게 저렇게 한 것을 늘 후회하는 하느님으로 생각했지만, 이제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빠져나온 이래 처음으로 그들은 이렇게 놀라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힘(지존자)은 거짓이나 후회가 없으시니 그는 후회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삼상15:29).” 신성(神性)을 대하면서 안정성이 선포되었습니다. 사무엘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을 되풀이하며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이 모든 진리, 안정성 및 불변성의 근원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하느님을 사람, 초인간, 기원 불명의 고귀한 영(靈)으로 간주했지만, 이제 그들은 호렙산(山)의 옛날 영(靈)이 변하지 않는, 창조자 완전성의 하느님으로 높아졌다고 들었습니다. 사무엘은 진화하는 하느님 개념이 인간 마음의 변하는 상태와 필사 존재의 흥망을 뛰어넘어 높이 상승하도록 거들었습니다. 그의 가르침에 따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은 부족적 신과 같은 존재들 계열의 관념에서부터 전능하고 변함없는 창조자와 모든 창조계의 감독자라는 이상(理想)으로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97:1.5 (1063.2) And he preached anew the story of God’s sincerity, his covenant-keeping reliability. Said Samuel: “The Lord will not forsake his people.” “He has made with us an everlasting covenant, ordered in all things and sure.” And so, throughout all Palestine there sounded the call back to the worship of the supreme Yahweh. Ever this energetic teacher proclaimed, “You are great, O Lord God, for there is none like you, neither is there any God beside you.” 그리고 그는 하느님의 성실, 계약을 지키는 그의 신뢰성에 관한 이야기를 새로 설교했습니다.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주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삼상12:22).” “그는 우리와 더불어 만사에 질서 있고 확실한, 영원한 계약을 맺었느니라(삼하23:5).” 그래서 온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최고 야훼를 경배하라고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이렇게 활동적인 선생이 늘 선포하기를, “오 주 하느님이여, 당신은 위대하시니, 당신과 같은 이가 없으며, 당신 외에는 어떤 하느님도 없나이다(삼하7:22).”

97:1.6 (1063.3) Theretofore the Hebrews had regarded the favor of Yahweh mainly in terms of material prosperity. It was a great shock to Israel, and almost cost Samuel his life, when he dared to proclaim: “The Lord enriches and impoverishes; he debases and exalts. He raises the poor out of the dust and lifts up the beggars to set them among princes to make them inherit the throne of glory.” Not since Moses had such comforting promises for the humble and the less fortunate been proclaimed, and thousands of despairing among the poor began to take hope that they could improve their spiritual status. 그 이전에 히브리인들은 야훼의 은총을 주로 물질적 번영의 관점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가 감히 “주님은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며, 그는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도다. 그가 가난한 자를 진토(塵土)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들어 올려 영광의 자리를 그들이 물려받도록 왕자들 사이에 그들을 앉게 하시느니라(삼상2:7-8a).”라고 선포할 때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사무엘은 거의 자기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모세 이후로 겸손한 자들과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그런 위로의 약속이 선포된 적이 없었고, 절망적인 수많은 가난한 자들이 자신들의 영적 지위를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97:1.7 (1063.4) But Samuel did not progress very far beyond the concept of a tribal god. He proclaimed a Yahweh who made all men but was occupied chiefly with the Hebrews, his chosen people. Even so, as in the days of Moses, once more the God concept portrayed a Deity who is holy and upright. “There is none as holy as the Lord. Who can be compared to this holy Lord God?” 그러나 사무엘은 부족적 신과 같은 존재의 개념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야훼가 모든 사람을 만들었다고 선포했지만 주로 그의 선민, 히브리인들에게 집중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모세의 시대처럼 다시 한번, 하느님 개념은 거룩하고 고결한 신(神)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주님과 같이 거룩한 분이 없느니라. 누가 이렇게 거룩한 주 하느님과 비교될 수 있겠느냐(삼상2:2)?”

97:1.8 (1063.5) As the years passed, the grizzled old leader progressed in the understanding of God, for he declared: “The Lord is a God of knowledge, and actions are weighed by him. The Lord will judge the ends of the earth, showing mercy to the merciful, and with the upright man he will also be upright.” Even here is the dawn of mercy, albeit it is limited to those who are merciful. Later he went one step further when, in their adversity, he exhorted his people: “Let us fall now into the hands of the Lord, for his mercies are great.” “There is no restraint upon the Lord to save many or few.” 세월이 흐르자, 반백의 늙은 지도자는 하느님에 대한 이해가 진전되어 선언했습니다. “주는 지식의 하느님이라, 그는 행동의 무게를 달아 보시느니라(삼상2:3b). 주님은 자비한 자에게는 자비를 보이시고, 고결한 사람에게는 자신도 고결히 대하시면서(삼하22:26), 땅끝까지 심판하리라(삼상2:10).” 비록 자비로운 자들에게 한정되기는 하지만 여기에도 자비의 여명이 있습니다. 나중에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역경에 처할 때, 그는 자기 민족을 타일렀습니다. “주님의 자비가 크시니, 이제 주님의 손에 빠지자(삼하24:14).” “구할 사람이 많든지, 아니면 적든지, 주님에게는 제한이 없느니라(삼상14:6b).”

97:1.9 (1063.6) And this gradual development of the concept of the character of Yahweh continued under the ministry of Samuel’s successors. They attempted to present Yahweh as a covenant-keeping God but hardly maintained the pace set by Samuel; they failed to develop the idea of the mercy of God as Samuel had later conceived it. There was a steady drift back toward the recognition of other gods, despite the maintenance that Yahweh was above all. “Yours is the kingdom, O Lord, and you are exalted as head above all.” 야훼의 성품에 대한 이런 점진적 개념의 발전은 사무엘 후계자들의 사역 아래에서 연장되었습니다. 그들은 야훼를 계약을 지키는 하느님으로 제시하려 했지만, 사무엘이 정한 속도를 거의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무엘이 나중에 생각했듯이 하느님의 자비 개념을 끝내 진전시키지 못했습니다. 야훼가 모든 것 위에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신과 같은 존재들은 인정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오 주여, 왕국이 주님의 것이며, 당신은 모든 것 위에 머리로서 높이 계시나이다(대상29:11b).”

97:1.10 (1064.1) The keynote of this era was divine power; the prophets of this age preached a religion designed to foster the king upon the Hebrew throne. “Yours, O Lord, is the greatness and the power and the glory and the victory and the majesty. In your hand is power and might, and you are able to make great and to give strength to all.” And this was the status of the God concept during the time of Samuel and his immediate successors. 이 시대의 기본 방침은 신적 권세였습니다. 이 시대의 선지자들은 히브리 왕좌에 앉는 왕을 육성하도록 고안된 종교를 전파했습니다. “오, 주여, 위대함과 권세와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으며, 당신은 모든 사람을 위대하고 강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대상29:11a, 12).” 이것이 사무엘과 그의 직계 후계자들 시대의 하느님 개념의 상태였습니다.

2. Elijah and Elisha 엘리야와 엘리사

97:2.1 (1064.2) In the tenth century before Christ the Hebrew nation became divided into two kingdoms. In both of these political divisions many truth teachers endeavored to stem the reactionary tide of spiritual decadence that had set in, and which continued disastrously after the war of separation. But these efforts to advance the Hebraic religion did not prosper until that determined and fearless warrior for righteousness, Elijah, began his teaching. Elijah restored to the northern kingdom a concept of God comparable with that held in the days of Samuel. Elijah had little opportunity to present an advanced concept of God; he was kept busy, as Samuel had been before him, overthrowing the altars of Baal and demolishing the idols of false gods. And he carried forward his reforms in the face of the opposition of an idolatrous monarch; his task was even more gigantic and difficult than that which Samuel had faced. 그리스도 이전 10세기에 히브리 민족은 두 왕국으로 쪼개졌습니다. 이런 두 정치적 분열 가운데, 여러 진리 선생이 영적 타락이 시작되어 분단 전쟁 후 비참하게 계속된 역행의 풍조를 막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종교를 진척시키는 이런 노력은 단호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공의(公義)의 투사, 엘리야가 자기 가르침을 시작할 때까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왕상17:1). 엘리야는 사무엘 시절에 비교할 만한 하느님 개념을 북 왕국에 회복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에 앞서 사무엘이 했듯이 바알의 제단을 무너뜨리고 거짓된 신과 같은 존재들의 우상들을 부수기에 바빠서 진보한 하느님 개념을 제시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군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의 과업은 사무엘이 직면했던 과업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어려웠습니다(왕상16:30-33, 21:25-26).

97:2.2 (1064.3) When Elijah was called away, Elisha, his faithful associate, took up his work and, with the invaluable assistance of the little-known Micaiah, kept the light of truth alive in Palestine. 엘리야가 부름을 받아 떠난 후 그의 충실한 동료 엘리사가 그의 과업을 맡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가야의 매우 귀중한 도움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진리의 빛이 살아 있게 했습니다(왕하2:1-15, 왕상19:16, 19-20, 22:7-28, 대하18:6-8).

97:2.3 (1064.4) But these were not times of progress in the concept of Deity. Not yet had the Hebrews ascended even to the Mosaic ideal. The era of Elijah and Elisha closed with the better classes returning to the worship of the supreme Yahweh and witnessed the restoration of the idea of the Universal Creator to about that place where Samuel had left it. 그러나 이때는 신(神)개념에서 진보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아직도 모세의 이상(理想)에조차 오르지 못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는 상류 계층이 최극 야훼의 경배로 바싹 가까이 되돌아갔으며, 사무엘이 떠났던 그 자리 근처까지 우주 창조자의 개념이 회복되는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3. Yahweh and Baal 야훼와 바알

97:3.1 (1064.5) The long-drawn-out controversy between the believers in Yahweh and the followers of Baal was a socioeconomic clash of ideologies rather than a difference in religious beliefs. 야훼를 믿는 신자들과 바알의 추종자들 사이에 오랜 계속된 논쟁은 종교적 믿음의 차이보다는 사회경제적 관념의 충돌이었습니다.

97:3.2 (1064.6) The inhabitants of Palestine differed in their attitude toward private ownership of land. The southern or wandering Arabian tribes (the Yahwehites) looked upon land as an inalienable — as a gift of Deity to the clan. They held that land could not be sold or mortgaged. “Yahweh spoke, saying, ‘The land shall not be sold, for the land is mine.’”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토지의 사유권에 대한 태도가 달랐습니다. 남부 또한 방랑하는 아라비아 부족(야훼사람)들은 토지를 신(神)이 씨족에게 준 선물로서 양도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토지를 팔거나 저당(抵當 담보)을 잡힐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야훼가 말하기를, ‘토지는 내 것이니 팔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습니다(레25:23).”

97:3.3 (1064.7) The northern and more settled Canaanites (the Baalites) freely bought, sold, and mortgaged their lands. The word Baal means owner. The Baal cult was founded on two major doctrines: First, the validation of property exchange, contracts, and covenants — the right to buy and sell land. Second, Baal was supposed to send rain — he was a god of fertility of the soil. Good crops depended on the favor of Baal. The cult was largely concerned with land, its ownership and fertility. 북부에 더 자리를 잡은 가나안 사람(바알사람)들은 자신들의 토지를 자유롭게 사고팔고 저당을 잡혔습니다. 바알이라는 단어는 소유자를 의미합니다. 바알 종파는 두 가지 주요 교리에 근거를 두었습니다. 첫째, 재산 교환, 약정(約定) 및 계약, 즉 토지를 사고파는 권리의 합법성. 둘째, 바알은 비를 내려서 땅을 비옥하게 하는 신과 같은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좋은 수확은 바알의 은혜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 종파는 주로 토지, 즉 그 소유권과 비옥(肥沃 생산력)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97:3.4 (1065.1) In general, the Baalites owned houses, lands, and slaves. They were the aristocratic landlords and lived in the cities. Each Baal had a sacred place, a priesthood, and the “holy women,” the ritual prostitutes. 일반적으로 바알 추종자들은 집, 토지, 노예를 소유했습니다. 그들은 귀족적 지주(地主)들이었고 도시들에 살았습니다. 바알마다 신성한 곳, 사제들 및 “거룩한 여성들,” 의식(儀式)의 매춘부들이 있었습니다.

97:3.5 (1065.2) Out of this basic difference in the regard for land, there evolved the bitter antagonisms of social, economic, moral, and religious attitudes exhibited by the Canaanites and the Hebrews. This socioeconomic controversy did not become a definite religious issue until the times of Elijah. From the days of this aggressive prophet the issue was fought out on more strictly religious lines — Yahweh vs. Baal — and it ended in the triumph of Yahweh and the subsequent drive toward monotheism. 토지에 대한 이런 기본적 차이에서 가나안 사람들과 히브리인(人)들이 보여준,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종교적 태도에 속한 격렬한 적대 관계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사회경제적 논쟁은 엘리야의 시대에 이르러 뚜렷한 종교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런 공격적인 선지자의 시대로부터 그 쟁점은 야훼 대 바알이라는 더 엄격한 종교적 노선에서 해결이 날 때까지 싸웠고 야훼의 승리와 뒤이어 일신교를 향한 적극적인 노력으로 끝났습니다.

97:3.6 (1065.3) Elijah shifted the Yahweh-Baal controversy from the land issue to the religious aspect of Hebrew and Canaanite ideologies. When Ahab murdered the Naboths in the intrigue to get possession of their land, Elijah made a moral issue out of the olden land mores and launched his vigorous campaign against the Baalites. This was also a fight of the country folk against domination by the cities. It was chiefly under Elijah that Yahweh became Elohim. The prophet began as an agrarian reformer and ended up by exalting Deity. Baals were many, Yahweh was one — monotheism won over polytheism. 엘리야는 야훼-바알 논쟁을 토지 문제에서 히브리와 가나안 관념의 종교적 측면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아합이 나봇 일가의 토지를 차지하려는 음모로 그들을 살해하자(왕상21:1-16), 엘리야는 오래된 토지 관습에서 도덕적 쟁점을 만들어 바알 추종자들을 적대하여 강력한 반대운동에 나섰습니다. 이것은 도시들의 지배에 저항하는 지방 사람들의 투쟁이기도 했습니다. 주로 엘리야의 영향으로 야훼는 엘로힘이 되었습니다. 선지자는 토지 개혁가로 시작하여 결국 신(神)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바알들은 많았고 야훼는 하나였습니다. – 일신교(一神敎)가 다신교(多神敎)를 물리쳤습니다.

4. Amos and Hosea 아모스와 호세아

97:4.1 (1065.4) A great step in the transition of the tribal god — the god who had so long been served with sacrifices and ceremonies, the Yahweh of the earlier Hebrews — to a God who would punish crime and immorality among even his own people, was taken by Amos, who appeared from among the southern hills to denounce the criminality, drunkenness, oppression, and immorality of the northern tribes. Not since the times of Moses had such ringing truths been proclaimed in Palestine. 부족의 신과 같은 존재-오랫동안 희생 제물과 의식(儀式)으로 섬겼던 신과 같은 존재, 초기 히브리인들의 야훼가 자기 백성 중에서도 범죄와 부도덕을 처벌하려는 하느님으로 변천(變遷)하는 위대한 첫걸음은 남부 구릉지대에서 나타나 북부 부족들의 범죄 행위, 취태(醉態 술에 취함), 억압 및 부도덕을 공공연히 공격한 아모스가 내디뎠습니다. 모세 시대 이후로 팔레스타인에서 그토록 울려 퍼지는 진리가 선포된 적이 없었습니다.

97:4.2 (1065.5) Amos was not merely a restorer or reformer; he was a discoverer of new concepts of Deity. He proclaimed much about God that had been announced by his predecessors and courageously attacked the belief in a Divine Being who would countenance sin among his so-called chosen people. For the first time since the days of Melchizedek the ears of man heard the denunciation of the double standard of national justice and morality. For the first time in their history Hebrew ears heard that their own God, Yahweh, would no more tolerate crime and sin in their lives than he would among any other people. Amos envisioned the stern and just God of Samuel and Elijah, but he also saw a God who thought no differently of the Hebrews than of any other nation when it came to the punishment of wrongdoing. This was a direct attack on the egoistic doctrine of the “chosen people,” and many Hebrews of those days bitterly resented it. 아모스는 단지 회복자나 개혁자가 아니라 새로운 신(神)개념을 발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선조들이 공표했던 하느님에 대해서 많이 선포했고, 소위 신적 존재의 선민(選民 특별한 혜택을 받는 민족, 신7:6, 14:2) 사이에서 죄를 묵인하려는 신적 존재를 믿는 믿음을 용감하게 공격했습니다. 멜기세덱 시대 이후 처음으로 국가적 정의(正義)와 도덕성에 대한 이중적 기준을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소리가 사람의 귀에 들렸습니다. 히브리인들의 귀는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의 하느님, 야훼가 다른 민족들 사이에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생활에서 범죄와 죄를 더 이상 묵인(默認 모르는 체하고 슬며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모스는 사무엘과 엘리야의 단호하고 공정한 하느님을 마음에 그렸지만, 악한 짓에 대한 처벌에 있어서 히브리인들을 다른 나라들과 다르지 않게 생각하는 하느님으로 알았습니다. 이것은 “선민(選民)”이라는 이기적 교리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었고, 당시 여러 히브리인들은 그것을 몹시 원망했습니다.

97:4.3 (1065.6) Said Amos: “He who formed the mountains and created the wind, seek him who formed the seven stars and Orion, who turns the shadow of death into the morning and makes the day dark as night.” And in denouncing his half-religious, timeserving, and sometimes immoral fellows, he sought to portray the inexorable justice of an unchanging Yahweh when he said of the evildoers: “Though they dig into hell, thence shall I take them; though they climb up to heaven, thence will I bring them down.” “And though they go into captivity before their enemies, thence will I direct the sword of justice, and it shall slay them.” Amos further startled his hearers when, pointing a reproving and accusing finger at them, he declared in the name of Yahweh: “Surely I will never forget any of your works.” “And I will sift the house of Israel among all nations as wheat is sifted in a sieve.” 아모스가 말했습니다. “산들을 만들고 바람을 창조한 분, 일곱 별과 오리온을 만드신 분을 찾을 것이니, 그는 사망의 그림자를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밤처럼 어둡게 만드느니라(암4:13, 5:8).” 어중간하게 종교적이고, 기회주의적이며, 때때로 부도덕한 자기 동료들을 공격하면서, 그는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에 대해 말할 때 언제나 일정한 야훼의 굽힐 수 없는 정의(正義)를 표현하려 했습니다. “그들이 지옥으로 파고 들어가도, 내가 거기서 그들을 잡아낼 것이라. 그들이 하늘에 올라가도, 내가 거기서 그들을 끌어내릴 것이라(암9:2).” “그들이 자기 대적들 앞에서 사로잡혀도, 내가 거기에서 정의(正義)의 칼을 보내어 그들을 살해할 것이라(암9:4).” 아모스가 자기 청중들을 가리켜 꾸짖으면서 죄가 있다고 비난하면서, “나는 확실하게 너희의 어떤 소행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암8:7).” “그리고 나는 밀을 체로 걸러내듯이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의 집을 걸러낼 것이라(암9:9).”라고 야훼의 이름으로 선언할 때, 그는 그들을 더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97:4.4 (1066.1) Amos proclaimed Yahweh the “God of all nations” and warned the Israelites that ritual must not take the place of righteousness. And before this courageous teacher was stoned to death, he had spread enough leaven of truth to save the doctrine of the supreme Yahweh; he had insured the further evolution of the Melchizedek revelation. 아모스는 야훼를 “모든 나라의 하느님”으로 선포했고, 의식(儀式)이 공의(公義)의 자리를 대신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경고했습니다(암5:21-24). 이 용감한 선생은 돌에 맞아 죽기 전에, 최고 야훼의 교리를 지켜 내기에 충분한 진리의 영향력을 펼쳤습니다. 그는 멜기세덱 계시가 더욱 발전하도록 책임을 맡았습니다.

97:4.5 (1066.2) Hosea followed Amos and his doctrine of a universal God of justice by the resurrection of the Mosaic concept of a God of love. Hosea preached forgiveness through repentance, not by sacrifice. He proclaimed a gospel of loving-kindness and divine mercy, saying: “I will betroth you to me forever; yes, I will betroth you to me in righteousness and judgment and in loving-kindness and in mercies. I will even betroth you to me in faithfulness.” “I will love them freely, for my anger is turned away.” 호세아는 사랑의 하느님에 대한 모세의 개념을 재현하여 아모스와 정의(正義)의 우주 하느님이라는 그의 교리를 따랐습니다. 호세아는 희생 제물이 아니라 회개를 통한 용서를 설교했습니다(호6:6). 그는 신(神)의 도타운 사랑과 신적 자비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나와 아주 오래 약혼시키리라 나는 분명히 공의(公義)와 공정(公正)으로, 도타운 사랑과 자비로 너희가 나와 약혼시키리라. 나는 실로 충실하게 너희를 나와 약혼시키리라(호2:19-20).” “나는 그들을 아낌없이 사랑하리니, 내 분노가 떠나가기 때문이라(호14:4).”

97:4.6 (1066.3) Hosea faithfully continued the moral warnings of Amos, saying of God, “It is my desire that I chastise them.” But the Israelites regarded it as cruelty bordering on treason when he said: “I will say to those who were not my people, ‘you are my people’; and they will say, ‘you are our God.’” He continued to preach repentance and forgiveness, saying, “I will heal their backsliding; I will love them freely, for my anger is turned away.” Always Hosea proclaimed hope and forgiveness. The burden of his message ever was: “I will have mercy upon my people. They shall know no God but me, for there is no savior beside me.” 호세아는 충실하게 아모스의 도덕적 경고를 계속하면서 하느님에 대해 “내가 그들을 질책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호10:10).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가 “내가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에게 ‘너희는 내 백성이라.’라고 말하리라. 그러면 그들이 ‘당신은 우리 하느님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라(호2:23).”라고 말했을 때, 그것을 반역에 가까운 끔찍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계속 회개와 용서를 설교하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그들의 타락을 치유하리라. 내가 그들을 아낌없이 사랑할 것은 내 분노가 떠나가기 때문이니라(호14:4).” 호세아는 언제나 희망과 용서를 선포했습니다. 그의 메시지 요지는 언제나 “나는 내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리라(호1:7). 그들은 나 외에 다른 하느님을 알지 말 것이니, 나 외에 구원자가 없기 때문이니라(호13:4).”였습니다.

97:4.7 (1066.4) Amos quickened the national conscience of the Hebrews to the recognition that Yahweh would not condone crime and sin among them because they were supposedly the chosen people, while Hosea struck the opening notes in the later merciful chords of divine compassion and loving-kindness which were so exquisitely sung by Isaiah and his associates. 아모스는 히브리인들이 일반적으로 볼 때 선민(先民)이라고 해서 야훼가 그들 가운데 범죄와 죄를 너그럽게 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보도록 그들의 국가적 양심을 되살렸고, 한편 호세아는 이사야와 그의 동료가 그토록 우아하게 찬양했던, 신적 긍휼(矜恤)과 도타운 사랑에 대한 후대의 자비로운 화음에서 첫 소절을 연주했습니다.

5. The First Isaiah 첫 번째 이사야

97:5.1 (1066.5) These were the times when some were proclaiming threatenings of punishment against personal sins and national crime among the northern clans while others predicted calamity in retribution for the transgressions of the southern kingdom. It was in the wake of this arousal of conscience and consciousness in the Hebrew nations that the first Isaiah made his appearance. 이 시대에 북부 씨족들 사이에서 일부가 개인적인 죄악들과 국가적 범죄에 대해서 처벌의 위협이 있다고 선포하는 동안 다른 이들은 남쪽 왕국의 범죄에 대한 응보(應報 행위의 결과)로 재난을 예언했습니다. 히브리 종족들의 양심과 의식이 이렇게 깨어 일어날 때 첫 번째 이사야가 출현했습니다.

97:5.2 (1066.6) Isaiah went on to preach the eternal nature of God, his infinite wisdom, his unchanging perfection of reliability. He represented the God of Israel as saying: “Judgment also will I lay to the line and righteousness to the plummet.” “The Lord will give you rest from your sorrow and from your fear and from the hard bondage wherein man has been made to serve.” “And your ears shall hear a word behind you, saying, ‘this is the way, walk in it.’” “Behold God is my salvation; I will trust and not be afraid, for the Lord is my strength and my song.” “‘Come now and let us reason together,’ says the Lord, ‘though your sins be as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be red like the crimson, they shall be as wool.’” 이사야는 계속해서 하느님의 영원한 본성, 그의 무한한 지혜, 신뢰할 수 있는 그의 변함없는 완전성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습니다. “나는 또한 심판으로 줄을 내리치고, 공의로 다림줄을 내리치리라(사28:17).” “주께서 너희를 너희 슬픔과 너희 두려움, 그리고 사람이 섬기도록 만든 힘든 강제 노역에서 안식을 주리라(사14:3).” “그리고 ‘이것이 길이니, 이 길로 걸어가라.’라는 말소리가 네 뒤에서 네 귀에 들릴 것이라(사30:21).” “보라, 하느님은 나의 구원이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니, 주는 내 힘이며 내 노래이기 때문이라(사12:2).” “주께서 말하시되, ‘지금 와서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악이 주홍 같아도 눈처럼 희게 되리라. 그것들이 핏빛처럼 붉어도 그것들은 양털처럼 될 것이라(사1:18).’”

97:5.3 (1066.7) Speaking to the fear-ridden and soul-hungry Hebrews, this prophet said: “Arise and shine, for your light has come, and the glory of the Lord has risen upon you.”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preach good tidings to the meek; he has sent me to bind up the brokenhearted, to proclaim liberty to the captives and the opening of the prison to those who are bound.” “I will greatly rejoice in the Lord, my soul shall be joyful in my God, for he has clothed me with the garments of salvation and has covered me with his robe of righteousness.” “In all their afflictions he was afflicted, and the angel of his presence saved them. In his love and in his pity he redeemed them.” 공포에 떨고 혼이 굶주린 히브리인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이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 너희 빛이 왔고 주의 영광이 네 위로 솟아올랐기 때문이니라(사60:1).”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온유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게 하셨기에 주의 영이 내게 임하심이라. 그가 나를 보내어 마음이 상한 자들을 싸매고, 사로잡힌 자들에게 해방을, 갇힌 자들에게 감옥이 열렸음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이니라(사61:1).”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내 혼이 내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그가 나를 구원의 옷으로 입히시며 그의 공의(公義)의 예복으로 가리셨기 때문이라(사61:10).” “그들의 모든 고통 가운데 그가 고통을 받으셨고, 그 면전(面前)의 천사가 그들을 건졌느니라. 그의 사랑과 그의 불쌍히 여김으로, 그가 그들을 회복시켰느니라(사63:9).”

97:5.4 (1067.1) This Isaiah was followed by Micah and Obadiah, who confirmed and embellished his soul-satisfying gospel. And these two brave messengers boldly denounced the priest-ridden ritual of the Hebrews and fearlessly attacked the whole sacrificial system. 이 이사야 뒤를 이어 미가와 오바댜가 그의 혼(魂)을 만족시키는 복음을 확증하고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그리고 이런 두 용감한 메신저들은 성직자가 지배하는 히브리인들의 의식(儀式)을 대담하게 공공연히 비난하고 희생 제사 제도 전체를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했습니다.

97:5.5 (1067.2) Micah denounced “the rulers who judge for reward and the priests who teach for hire and the prophets who divine for money.” He taught of a day of freedom from superstition and priestcraft, saying: “But every man shall sit under his own vine, and no one shall make him afraid, for all people will live, each one according to his understanding of God.” 미가는 “보상을 위해 재판하는 통치자들과 고용되어 가르치는 사제들과 돈을 위해 점치는 예언자들을(미3:11)” 공공연히 비난했습니다. 그는 미신과 사제술(司祭術)에서 해방되는 날을 가르치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며, 아무도 그를 두렵게 하지 못하리니,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이 하느님을 이해하는 대로 살 것이기 때문이라(미4:4).”

97:5.6 (1067.3) Ever the burden of Micah’s message was: “Shall I come before God with burnt offerings? Will the Lord be pleased with a thousand rams or with ten thousand rivers of oil? Shall I give my first-born for my transgression, the fruit of my body for the sin of my soul? He has shown me, O man, what is good; and 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but to do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 And it was a great age; these were indeed stirring times when mortal man heard, and some even believed, such emancipating messages more than two and a half millenniums ago. And but for the stubborn resistance of the priests, these teachers would have overthrown the whole bloody ceremonial of the Hebrew ritual of worship. 언제나 미가 메시지의 요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 나아갈까?, 주께서 천 마리의 숫양이나 일만 강의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가 내 죄를 위해 내게 맨 처음 태어난 아이, 내 혼(魂)의 죄를 위해 내 몸의 열매를 바칠까? 사람아, 무엇이 선한지 그가 내게 보이셨느니라. 바르게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며 너의 하느님과 함께 겸손하게 처신하는 것 말고 주께서 무엇을 네게 명하시느냐(미6:6-8)?” 그것은 위대한 시대였습니다. 이는, 2,500년 더 이전에 필사 인간이 그렇게 자유롭게 하는 메시지를 듣고 일부는 믿기까지 했던 정말로 감동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제들의 완강한 저항이 없었다면, 이런 선생들은 히브리 예배 의식의 피비린내 나는 의례 전체를 뒤집어엎었을 것입니다.

6. Jeremiah the Fearless 두려움을 모르는 예레미야

97:6.1 (1067.4) While several teachers continued to expound the gospel of Isaiah, it remained for Jeremiah to take the next bold step in the internationalization of Yahweh, God of the Hebrews. 몇몇 선생이 계속 이사야의 복음을 해설하는 동안, 야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을 국제화하는 대담한 다음 단계는 예레미야가 개입해야 했습니다.

97:6.2 (1067.5) Jeremiah fearlessly declared that Yahweh was not on the side of the Hebrews in their military struggles with other nations. He asserted that Yahweh was God of all the earth, of all nations and of all peoples. Jeremiah’s teaching was the crescendo of the rising wave of the internationalization of the God of Israel; finally and forever did this intrepid preacher proclaim that Yahweh was God of all nations, and that there was no Osiris for the Egyptians, Bel for the Babylonians, Ashur for the Assyrians, or Dagon for the Philistines. And thus did the religion of the Hebrews share in that renaissance of monotheism throughout the world at about and following this time; at last the concept of Yahweh had ascended to a Deity level of planetary and even cosmic dignity. But many of Jeremiah’s associates found it difficult to conceive of Yahweh apart from the Hebrew nation. 예레미야는 다른 나라들과 히브리인들의 군사적 전투에서 야훼가 그들의 편이 아니라고 두려워하지 않고 선언했습니다(렘21:7). 그는 야훼가 온 지상,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의 하느님이라고 주장했습니다(렘32:27-28). 예레미야의 가르침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국제화하는 최고조의 상승 물결이었습니다. 드디어 영원히 이 대담무쌍한 설교자는 야훼는 온 국가의 하느님이며, 이집트인들에게는 오시리스, 바빌로니아인(人)들에게는 벨, 앗시리아인(人)들에게는 아슈르, 또한 필리스틴인(人)들에게는 다곤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고 선포했습니다(렘10:6-7). 그래서 히브리인들의 종교는 이 무렵과 그 뒤로 전 세계에 유일신교(唯一神敎)의 그런 부흥을 함께 나누어 마침내 야훼의 개념은 행성과 심지어 질서 우주의 존엄이 있는 신(神)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여러 동료는 히브리 국가와 떨어져서 야훼를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97:6.3 (1067.6) Jeremiah also preached of the just and loving God described by Isaiah, declaring: “Yes, I have loved you with an everlasting love; therefore with loving-kindness have I drawn you.” “For he does not afflict willingly the children of men.” 예레미야는 또한 이사야가 묘사했던, 정의(正義)롭고 애정이 깊은 하느님에 대해 설교하면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맞도다, 나는 여전한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했느니라. 그래서 내가 너희를 친밀한 사랑으로 끌어당겼느니라(렘31:3).” “그는 사람의 자녀들을 일부러 괴롭히지 않으시기 때문이니라(애3:33).”

97:6.4 (1067.7) Said this fearless prophet: “Righteous is our Lord, great in counsel and mighty in work. His eyes are open upon all the ways of all the sons of men, to give every one according to his ways and according to the fruit of his doings.” But it was considered blasphemous treason when, during the siege of Jerusalem, he said: “And now have I given these lands into the hand of Nebuchadnezzar, the king of Babylon, my servant.” And when Jeremiah counseled the surrender of the city, the priests and civil rulers cast him into the miry pit of a dismal dungeon. 두려움을 모르는 이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우리 주는 의로우시니(렘12:1), 위대하게 계획하시고, 강력하게 일하시느니라. 그의 눈은 사람들의 모든 자녀의 모든 길을 주목하셔서, 그의 길과 그 행위의 열매대로 주시느니라(렘32:19).” 그러나 예루살렘의 포위 기간에 그가 “이제 내가 이 땅들을 내 종, 바빌론의 왕, 네브카드네자르의 손에 주었느니라(렘27:6).”라고 말하자, 그것은 불경한 반역죄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그 도시의 항복을 충고하자(렘38:2-3), 사제들과 국가 통치자들이 그를 진흙투성이의 비참한 지하 감옥 구덩이에 던져넣었습니다(렘38:6).

7. The Second Isaiah 두 번째 이사야

97:7.1 (1068.1) The destruction of the Hebrew nation and their captivity in Mesopotamia would have proved of great benefit to their expanding theology had it not been for the determined action of their priesthood. Their nation had fallen before the armies of Babylon, and their nationalistic Yahweh had suffered from the international preachments of the spiritual leaders. It was resentment of the loss of their national god that led the Jewish priests to go to such lengths in the invention of fables and the multiplication of miraculous appearing events in Hebrew history in an effort to restore the Jews as the chosen people of even the new and expanded idea of an internationalized God of all nations. 히브리 국가의 멸망과 그들의 메소포타미아 포로 생활은 사제들의 단호한 행동이 없었다면 그들의 확장하는 신학에 커다란 이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국가는 바벨론 군대 앞에서 함락되었고, 그들의 국가주의적 야훼는 영적 지도자들의 국제적 설교들로 인해 상처를 입었습니다. 심지어 새롭게 확장된 개념, 즉 모든 국가의 국제화된 하느님의 선민(選民 특별한 혜택을 받는 민족)으로 유대인들을 회복하려는 노력으로 유대 사제들이 우화(寓話)를 꾸며내고 히브리 역사에서 기적과 같은 사건들을 늘리는, 그런 정도로 이끌었던 것은 그들 국가의 신과 같은 존재를 잃어버린 분노였습니다.

97:7.2 (1068.2) During the captivity the Jews were much influenced by Babylonian traditions and legends, although it should be noted that they unfailingly improved the moral tone and spiritual significance of the Chaldean stories which they adopted, notwithstanding that they invariably distorted these legends to reflect honor and glory upon the ancestry and history of Israel. 유대인들은 포로 기간에 바빌론의 전통과 전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들이 이스라엘 조상과 역사에 명예와 영광을 불러오려고 이런 전설들을 변함 없이 왜곡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이 채택한 칼데아 이야기들의 도덕적 기풍과 영적 의미를 끊임없이 개선했다는 점이 주목받아야 합니다.

97:7.3 (1068.3) These Hebrew priests and scribes had a single idea in their minds, and that was the rehabilitation of the Jewish nation, the glorification of Hebrew traditions, and the exaltation of their racial history. If there is resentment of the fact that these priests have fastened their erroneous ideas upon such a large part of the Occidental world, it should be remembered that they did not intentionally do this; they did not claim to be writing by inspiration; they made no profession to be writing a sacred book. They were merely preparing a textbook designed to bolster up the dwindling courage of their fellows in captivity. They were definitely aiming at improving the national spirit and morale of their compatriots. It remained for later-day men to assemble these and other writings into a guide book of supposedly infallible teachings. 이런 히브리 사제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마음에 단 하나의 생각이 있었는데, 그것은 유대 국가를 회복하고, 히브리 전통을 찬미하며, 자신들의 종족 역사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제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생각을 그토록 큰 부분의 서양 세계에 뒤집어씌웠다는 사실에 분노한다면, 그들이 일부러 이렇게 하지 않았고, 영감(靈感)으로 글을 썼다고 주장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신성한 책을 썼다고 선언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그들은 사로잡힌 자기 동료들의 줄어드는 용기를 북돋으려는 뜻으로 교과서를 준비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자기 동포들의 국가적 정신과 사기(士氣)의 향상을 뚜렷하게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것들과 다른 저작들을 조금도 틀림없는 가르침으로 여겨진 안내서로 만드는 일은 결국 후대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97:7.4 (1068.4) The Jewish priesthood made liberal use of these writings subsequent to the captivity, but they were greatly hindered in their influence over their fellow captives by the presence of a young and indomitable prophet, Isaiah the second, who was a full convert to the elder Isaiah’s God of justice, love, righteousness, and mercy. He also believed with Jeremiah that Yahweh had become the God of all nations. He preached these theories of the nature of God with such telling effect that he made converts equally among the Jews and their captors. And this young preacher left on record his teachings, which the hostile and unforgiving priests sought to divorce from all association with him, although sheer respect for their beauty and grandeur led to their incorporation among the writings of the earlier Isaiah. And thus may be found the writings of this second Isaiah in the book of that name, embracing chapters forty to fifty-five inclusive. 유대 사제들은 포로 생활 이후에 이런 저작들을 자유롭게 사용했지만, 그들은 젊고 꿋꿋한 선지자, 두 번째 이사야가 있어서 동료 포로들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이 매우 방해받았는데, 그는 선배 이사야의 정의, 사랑, 공의와 자비의 하느님을 충실히 믿고 의지한 개종자였습니다. 그는 또한 예레미야와 함께 야훼가 모든 국가의 하느님이 되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본성에 속한 이런 이론들을 그토록 매우 효과적으로 설교하여 유대인들과 그들의 포획자들 사이에서 똑같이 개종자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젊은 설교자는 자기 가르침들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적개심에 불타서 깊이 앙심을 먹은 사제들이 그와 관련된 모든 가르침을 분리하려 했지만, 그런 가르침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에 대한 순전한 존중으로 그것들은 초기 이사야의 저작들 사이에 끼어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두 번째 이사야의 저작들은 그 이름의 책에서, 40장에서 55장까지 포함하여 찾을 수 있습니다.

97:7.5 (1068.5) No prophet or religious teacher from Machiventa to the time of Jesus attained the high concept of God that Isaiah the second proclaimed during these days of the captivity. It was no small, anthropomorphic, man-made God that this spiritual leader proclaimed. “Behold he takes up the isles as a very little thing.” “And as the heavens are higher than the earth, so are my ways higher than your ways and my thoughts higher than your thoughts.” 마키벤타부터 예수의 시대까지 어떤 선지자나 종교 선생도 이런 포로 시대에 두 번째 이사야가 선포했던 높은 하느님의 개념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 영적 지도자가 선포한 개념은 작고, 사람 모습을 닮은, 사람이-만든 하느님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보라, 그는 섬들을 아주 작은 것으로 여기느니라(사40:15).” “그리고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9).”

97:7.6 (1069.1) At last Machiventa Melchizedek beheld human teachers proclaiming a real God to mortal man. Like Isaiah the first, this leader preached a God of universal creation and upholding. “I have made the earth and put man upon it. I have created it not in vain; I formed it to be inhabited.” “I am the first and the last; there is no God beside me.” Speaking for the Lord God of Israel, this new prophet said: “The heavens may vanish and the earth wax old, but my righteousness shall endure forever and my salvatio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Fear you not, for I am with you; be not dismayed, for I am your God.” “There is no God beside me — a just God and a Savior.” 마침내 마키벤타 멜기세덱은 실재하는 하느님을 필사 사람에게 선포하는 인간 선생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지도자는 첫 번째 이사야처럼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하느님을 설교했습니다.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두었도다(사45:12a). 내가 땅을 헛되이 창조하지 않았느니라. 나는 사람이 살 수 있게 땅을 만들었느니라(사45:18).”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니라(사41:4, 44:6, 48:12). 나 외에 다른 하느님은 없느니라(사45:6).”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 대변하면서, 이 새로운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하늘이 사라지고 땅은 점점 쇠퇴해도 나의 공의는 영원히 지속하며 나의 구원은 대대로 이어지리라(사51:6, 8).”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기 때문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니라(사41:10).” “공정한 하느님이며 구원자(救援者)인 나 외에 다른 하느님이 없느니라(사45:21).”

97:7.7 (1069.2) And it comforted the Jewish captives, as it has thousands upon thousands ever since, to hear such words as: “Thus says the Lord, ‘I have created you, I have redeemed you, I have called you by your name; you are mine.’” “When you pass through the waters, I will be with you since you are precious in my sight.” “Can a woman forget her suckling child that she should not have compassion on her son? Yes, she may forget, yet will I not forget my children, for behold I have graven them upon the palms of my hands; I have even covered them with the shadow of my hands.” “Let the wicked forsake his ways and the unrighteous man his thoughts, and let him return to the Lord, and he will have mercy upon him, and to our God, for he will abundantly pardon.” 그리고 그것은 유대인 포로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그 이후로 줄곧 수천 명도 그런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되, ‘내가 너희를 창조하였고, 내가 너희를 다시 찾았으며, 내가 너희를 너희 이름으로 불렀으니, 너희는 내 것이라(사43:1).’” “너희가 물 가운데를 무사히 통과할 때, 너희가 내 눈에 사랑스럽기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사43:2).” “여인이 자기 젖먹이 자식을 잊어버리고 자기 자녀를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아니, 여인은 잊어버려도, 나는 내 자녀들을 잊지 않을 것이니, 보라, 내가 그들을 내 손바닥에 새겼기 때문이니라(사49:15-16a). 내가 그들을 내 손의 그늘로 덮기까지 했도다(사51:16).” “악인은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 돌아오라, 그러면 그가 그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라, 그가 넘치도록 용서할 것이기 때문이니라(사55:7).”

97:7.8 (1069.3) Listen again to the gospel of this new revelation of the God of Salem: “He shall feed his flock like a shepherd; he shall gather the lambs in his arms and carry them in his bosom. He gives power to the faint, and to those who have no might he increases strength. Those who wait upon the Lord shall renew their strength; they shall mount up with wings as eagles; they shall run and not be weary; they shall walk and not faint.” 살렘의 하느님에 대한 이런 새로운 계시의 복음에 다시 귀 기울여 들으라. “그는 목자처럼 자기 양 떼를 먹이실 것이라. 그는 어린 양들을 자기 팔로 그러모아 그들을 자기 품에 안을 것이라(사40:11). 그는 약한 자들에게 능력을 주시며, 힘없는 자들에게 힘을 더하시니라(사40:29). 주를 기다리는 자들은 자신들의 힘을 되찾아 새로워지리라. 그들은 독수리들처럼 날개를 펴고 오를 것이라. 그들은 뛰어도 피곤하지 않으리라. 그들은 걸어도 노곤하지 않으리라(사40:31).”

97:7.9 (1069.4) This Isaiah conducted a far-flung propaganda of the gospel of the enlarging concept of a supreme Yahweh. He vied with Moses in the eloquence with which he portrayed the Lord God of Israel as the Universal Creator. He was poetic in his portrayal of the infinite attributes of the Universal Father. No more beautiful pronouncements about the heavenly Father have ever been made. Like the Psalms, the writings of Isaiah are among the most sublime and true presentations of the spiritual concept of God ever to greet the ears of mortal man prior to the arrival of Michael on Urantia. Listen to his portrayal of Deity: “I am the high and lofty one who inhabits eternity.” “I am the first and the last, and beside me there is no other God.” “And the Lord’s hand is not shortened that it cannot save, neither his ear heavy that it cannot hear.” And it was a new doctrine in Jewry when this benign but commanding prophet persisted in the preachment of divine constancy, God’s faithfulness. He declared that “God would not forget, would not forsake.” 이 이사야는 최고 야훼의 확대되는 개념의 복음을 널리 선전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 우주 창조자로 묘사했던 웅변(雄辯)으로 모세와 겨루었습니다. 그는 우주 아버지의 무한한 속성을 시적(詩的)으로 묘사했습니다. 하늘 아버지에 대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선언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시편처럼 이사야의 저작들은 미가엘이 유란시아에 도착하기 전(前)에 필사 사람의 귀에 일찍이 들린 하느님의 영적 개념에 대해 가장 숭고하고 참된 표현들 가운데 있습니다. 신(神)에 대한 그의 묘사에 귀 기울여 들으라. “나는 영원에 거하는 높고 고상한 존재니라(사57:15).”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며 나 외에 다른 하느님이 전혀 없느니라(사44:6).” “주의 손이 짧아서 구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사59:1).” 이렇게 친절하지만, 위엄있는 선지자가 신적 불변성, 하느님의 신실(信實)을 계속 설교하자 그것은 유대인 사회에 새로운 교리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잊지 않고(사49:15), 내버리지 않을 것이다(사41:17).”라고 선언했습니다.

97:7.10 (1069.5) This daring teacher proclaimed that man was very closely related to God, saying: “Every one who is called by my name I have created for my glory, and they shall show forth my praise. I, even I, am he who blots out their transgressions for my own sake, and I will not remember their sins.” 이렇게 대담한 선생은 사람이 하느님과 아주 가깝게 이어져 있다고 선포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자마다 내가 나의 영광을 위해 창조했고(사43:7), 그들은 나를 찬양으로 드러낼 것이라(사43:21). 나, 나조차 자신을 위해 그들의 범죄를 지우는 자이며, 나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리라(사43:25).”

97:7.11 (1069.6) Hear this great Hebrew demolish the concept of a national God while in glory he proclaims the divinity of the Universal Father, of whom he says, “The heavens are my throne, and the earth is my footstool.” And Isaiah’s God was none the less holy, majestic, just, and unsearchable. The concept of the angry, vengeful, and jealous Yahweh of the desert Bedouins has almost vanished. A new concept of the supreme and universal Yahweh has appeared in the mind of mortal man, never to be lost to human view. The realization of divine justice has begun the destruction of primitive magic and biologic fear. At last, man is introduced to a universe of law and order and to a universal God of dependable and final attributes. 이렇게 위대한 히브리인이 한 나라에 한정된 하느님 개념을 뒤엎으면서 우주 아버지의 신성(神性)을 영광 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하며 선포하는 소리를 들어보라. “하늘은 나의 보좌이며 땅은 나의 발판이라(사66:1).” 그렇더라도 이사야의 하느님은 거룩하고 장엄하며, 공명정대하고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사막 베두인 사람들의, 성내며 보복하는, 질투 많은 야훼 개념은 거의 자취를 감췄습니다. 최고이며 우주적인 야훼의 새 개념이 필사 사람의 마음에 출현하여 결코 인간관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신적 정의(正義)의 실현이 원시적 마술과 생물학적 공포를 파멸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사람은 법과 질서의 우주, 신뢰할 수 있고 최종적 속성을 지닌 우주적 하느님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97:7.12 (1070.1) And this preacher of a supernal God never ceased to proclaim this God of love. “I dwell in the high and holy place, also with him who is of a contrite and humble spirit.” And still further words of comfort did this great teacher speak to his contemporaries: “And the Lord will guide you continually and satisfy your soul. You shall be like a watered garden and like a spring whose waters fail not. And if the enemy shall come in like a flood, the spirit of the Lord will lift up a defense against him.” And once again did the fear-destroying gospel of Melchizedek and the trust-breeding religion of Salem shine forth for the blessing of mankind. 그리고 고귀한 하느님의 이 설교자는 조금도 멈추지 않고 이런 사랑의 하느님을 선포했습니다.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살며, 회개하여 교만하지 않은 영(靈)의 사람과 함께 하느니라(사57:15).” 이 위대한 교사는 당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한층 더 위로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너희를 끊임없이 인도하고 너희 혼(魂)을 충족시킬 것이니라. 너희는 물을 뿌린 정원과 같고 물이 동나지 않는 샘물과 같이 될 것이라(사58:11). 그리고 적이 홍수처럼 밀려오면 주의 영(靈)이 그에 대비한 방어물을 세울 것이니라(사59:19).” 두려움을 없애는 멜기세덱의 복음과 신뢰를 키우는 살렘의 종교가 인류를 축복하려고 다시 한번 빛을 비췄습니다.

97:7.13 (1070.2) The farseeing and courageous Isaiah effectively eclipsed the nationalistic Yahweh by his sublime portraiture of the majesty and universal omnipotence of the supreme Yahweh, God of love, ruler of the universe, and affectionate Father of all mankind. Ever since those eventful days the highest God concept in the Occident has embraced universal justice, divine mercy, and eternal righteousness. In superb language and with matchless grace this great teacher portrayed the all-powerful Creator as the all-loving Father. 선견지명이 있으며 용감한 이사야가 최고 야훼, 사랑의 하느님, 우주의 통치자, 온 인류를 넘치게 사랑하는 아버지의 장엄함과 우주적 전능함을 고상하게 묘사하여 실제로 국수주의적 야훼를 무색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시절 이후로 줄곧 서양에서 가장 높은 하느님 개념은 우주적 정의, 신적 자비 그리고 영원한 공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위대한 선생은 뛰어난 언어와 비길 데 없는 우아함으로 전능한 창조자를 모두 사랑으로 감싸는 아버지로 묘사했습니다.

97:7.14 (1070.3) This prophet of the captivity preached to his people and to those of many nations as they listened by the river in Babylon. And this second Isaiah did much to counteract the many wrong and racially egoistic concepts of the mission of the promised Messiah. But in this effort he was not wholly successful. Had the priests not dedicated themselves to the work of building up a misconceived nationalism, the teachings of the two Isaiahs would have prepared the way for the recognition and reception of the promised Messiah. 포로의 신세로 이 선지자는 바빌론 강가에서 귀를 기울여 듣는, 자기 민족과 여러 다른 민족들에게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이사야는 약속된 메시아의 사명에 대한 여러 잘못된, 인종적으로 이기적인 개념들을 많이 없앴습니다. 그는 이렇게 애썼지만,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사제들이 잘못 생각한 민족주의의 보강에 전념하지 않았다면, 두 명 이사야의 가르침으로 약속된 메시아를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길이 마련되었을 것입니다.

8. Sacred and Profane History 신성한 모독(冒瀆) 역사

97:8.1 (1070.4) The custom of looking upon the record of the experiences of the Hebrews as sacred history and upon the transactions of the rest of the world as profane history is responsible for much of the confusion existing in the human mind as to the interpretation of history. And this difficulty arises because there is no secular history of the Jews. After the priests of the Babylonian exile had prepared their new record of God’s supposedly miraculous dealings with the Hebrews, the sacred history of Israel as portrayed in the Old Testament, they carefully and completely destroyed the existing records of Hebrew affairs — such books as “The Doings of the Kings of Israel” and “The Doings of the Kings of Judah,” together with several other more or less accurate records of Hebrew history. 히브리인들의 경험 기록은 신성한 역사로, 나머지 세계의 업무는 모독(冒瀆) 역사로 여기는 관습은 역사 해석에 관해서 인간의 마음에 현존하는 많은 혼란의 원인입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은 유대인의 세속 역사가 없기에 발생합니다. 바빌론에 추방된 사제들이 하느님이 히브리인들과 기적으로 관계되었다는 생각된 자신들의 새로운 기록, 즉 구약 성서에 묘사된 이스라엘의 신성한 역사를 준비한 다음에, 그들은 현존하는 히브리 사건의 기록, “이스라엘 왕들의 행적”과 “유다 왕들의 행적”과 같은 책들을 히브리 역사의 거의 정확한 몇 개의 다른 기록들과 함께 주의 깊게, 철저히 파기했습니다.

97:8.2 (1070.5) In order to understand how the devastating pressure and the inescapable coercion of secular history so terrorized the captive and alien-ruled Jews that they attempted the complete rewriting and recasting of their history, we should briefly survey the record of their perplexing national experience. It must be remembered that the Jews failed to evolve an adequate nontheologic philosophy of life. They struggled with their original and Egyptian concept of divine rewards for righteousness coupled with dire punishments for sin. The drama of Job was something of a protest against this erroneous philosophy. The frank pessimism of Ecclesiastes was a worldly wise reaction to these overoptimistic beliefs in Providence. 세속역사의 파괴적인 압력과 불가피한 강압이 사로잡혀 외국인의 지배를 받는 유대인들을 너무나 공포에 떨게 하여 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완전히 다시 고쳐 쓰려고 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당혹스러운 국가 경험의 기록을 간단히 둘러봐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적절한 비(非)신학적 삶의 철학을 끝내 발전시키지 못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공의(公義)에 대한 신적 보상과 죄에 대한 비참한 처벌을 결부시켜 생각한 그들 고유의 이집트 개념과 싸웠습니다. 욥의 극적 사건은 이런 잘못된 철학에 맞선 상당한 항변이었습니다. 전도서의 솔직한 비관론은 섭리에 대해 이토록 너무 낙관하는 믿음들에 대한 세속적인 현명한 반응이었습니다(전1:1-18, 2:12-17).

97:8.3 (1071.1) But five hundred years of the overlordship of alien rulers was too much for even the patient and long-suffering Jews. The prophets and priests began to cry: “How long, O Lord, how long?” As the honest Jew searched the Scriptures, his confusion became worse confounded. An olden seer promised that God would protect and deliver his “chosen people.” Amos had threatened that God would abandon Israel unless they re-established their standards of national righteousness. The scribe of Deuteronomy had portrayed the Great Choice — as between the good and the evil, the blessing and the curse. Isaiah the first had preached a beneficent king-deliverer. Jeremiah had proclaimed an era of inner righteousness — the covenant written on the tablets of the heart. The second Isaiah talked about salvation by sacrifice and redemption. Ezekiel proclaimed deliverance through the service of devotion, and Ezra promised prosperity by adherence to the law. But in spite of all this they lingered on in bondage, and deliverance was deferred. Then Daniel presented the drama of the impending “crisis” — the smiting of the great image and the immediate establishment of the everlasting reign of righteousness, the Messianic kingdom. 그러나 500년 동안 외국 통치자들의 대군주(大君主) 지위는 끈기 있게 인내심이 강한 유대인들에게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들과 사제들은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걸리나요, 오 주여, 얼마나 오래 걸립니까(사6:11)?” 정직한 유대인이 성서를 찾을수록, 그의 혼란은 더 심해졌습니다. 옛 선지자가 하느님이 자신의 “택한 민족”을 보호하고 구해내리라고 약속했습니다(신7:6-15).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국가적 공의(公義)의 기준을 회복하지 않으면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실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암5). 신명기 기자(記者)는 선(善)과 악(惡), 축복과 저주 사이의 위대한 선택을 묘사했습니다(신11:26-28). 첫 번째 이사야는 인정 많은 왕-구원자를 설교했습니다(사32:1-2). 예레미야는 심정(心情)의 서판에 쓰인 계약, 즉 내적 공의(公義)의 시대를 선포했습니다(렘31:33). 두 번째 이사야는 희생 제물과 구속에 의한 구원에 대하여 말했습니다(사43:22-26). 에스겔은 헌신의 수고를 통한 해방을 선포했고(겔14), 에스라는 율법에 대한 충성으로 번영을 약속했습니다(스7:10). 그러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노예 신분을 떠나지 못했고, 해방은 뒤로 미뤄졌습니다. 그다음 다니엘은 임박한 “위기”의 극적 사건, 즉 거대한 신상(神像)을 깨뜨리고 공의(公義)의 영원한 치세(治世), 메시아 왕국의 즉각적인 설립을 제시했습니다(단2:31-45).

97:8.4 (1071.2) And all of this false hope led to such a degree of racial disappointment and frustration that the leaders of the Jews were so confused they failed to recognize and accept the mission and ministry of a divine Son of Paradise when he presently came to them in the likeness of mortal flesh — incarnated as the Son of Man. 그리고 이 모든 거짓 희망이 종족적 실망과 좌절의 그런 정도로 이끌어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너무 혼란스러워서, 천국의 신적 아들이 곧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로 성육신하여 필사 육신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왔을 때, 그들은 그의 사명과 사역을 끝내 알아보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97:8.5 (1071.3) All modern religions have seriously blundered in the attempt to put a miraculous interpretation on certain epochs of human history. While it is true that God has many times thrust a Father’s hand of providential intervention into the stream of human affairs, it is a mistake to regard theologic dogmas and religious superstition as a supernatural sedimentation appearing by miraculous action in this stream of human history. The fact that the “Most Highs rule in the kingdoms of men” does not convert secular history into so-called sacred history. 모든 현대 종교는 인간 역사의 특정한 획기적 사건에 대해 기적적인 해석을 시도하면서 심각한 실책을 범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 업무의 흐름 속에 섭리로 개입하는 아버지의 손을 여러 번 밀어 넣은 것이 사실이지만, 신학적 교의(敎義)와 종교적 미신을 인간 역사의 이런 흐름 안에 기적적 행위로 나타나는 초자연적 퇴적(堆積)작용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입니다. “지고자(至高者)들이 사람들의 왕국들을 다스립니다(단4:17, 25, 32).”라는 사실이 세속역사를 소위 신성한 역사로 바꾸지 않습니다.

97:8.6 (1071.4) New Testament authors and later Christian writers further complicated the distortion of Hebrew history by their well-meant attempts to transcendentalize the Jewish prophets. Thus has Hebrew history been disastrously exploited by both Jewish and Christian writers. Secular Hebrew history has been thoroughly dogmatized. It has been converted into a fiction of sacred history and has become inextricably bound up with the moral concepts and religious teachings of the so-called Christian nations. 신약성서 저자들과 후대 기독교 저술가들은 좋은 뜻에서 유대인 선지자들을 이상화하려는 시도로 히브리 역사의 왜곡을 더욱 복잡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히브리 역사는 유대인과 기독교 저술가들 모두에 의해서 처참히 부당하게 활용되었습니다. 세속의 히브리 역사는 철저히 교의(진리로 믿는 가르침)로 주장되었습니다. 그것은 신성한 역사의 꾸민 이야기로 변질되었고 소위 기독교 국가들의 도덕적 개념들 및 종교적 가르침들과 단단히 매여져 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97:8.7 (1071.5) A brief recital of the high points in Hebrew history will illustrate how the facts of the record were so altered in Babylon by the Jewish priests as to turn the everyday secular history of their people into a fictitious and sacred history. 히브리 역사에서 중대한 시점들을 잠시 상세히 설명하면 바빌론에서 유대인 사제들이 어떻게 기록의 사실들을 그토록 변경하여 자기 민족의 일상적 세속역사를 가짜의 신성한 역사로 바꾸었는지 예를 들어서 증명이 될 것입니다.

9. Hebrew History 히브리인의 역사

97:9.1 (1071.6) There never were twelve tribes of the Israelites — only three or four tribes settled in Palestine. The Hebrew nation came into being as the result of the union of the so-called Israelites and the Canaanites. “And the children of Israel dwelt among the Canaanites. And they took their daughters to be their wives and gave their daughters to the sons of the Canaanites.” The Hebrews never drove the Canaanites out of Palestine, notwithstanding that the priests’ record of these things unhesitatingly declared that they did. 유대인의 열두 부족은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었고 겨우 서너 부족이 팔레스타인에 자리 잡았습니다. 히브리 국가는 소위 이스라엘 자손들과 가나안 사람들이 연합한 결과로 생성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사람들 사이에 거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딸들을 자신들의 아내로 맞이했고 자기 딸들을 가나안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주었습니다(삿3:5-6).” 히브리인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팔레스타인 밖으로 몰아낸 적이 없었는데도 이런 일들에 대한 사제들의 기록은 자신들이 그렇게 했다고 주저하지 않고 선언했습니다.

97:9.2 (1071.7) The Israelitish consciousness took origin in the hill country of Ephraim; the later Jewish consciousness originated in the southern clan of Judah. The Jews (Judahites) always sought to defame and blacken the record of the northern Israelites (Ephraimites). 이스라엘인 의식은 에브라임 구릉(丘陵)지대에서 일어났고, 후기 유대인 의식은 유다의 남부 씨족에서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유다족 사람들)들은 언제나 북부 이스라엘인들(에브라임 사람들)의 기록을 비방하고 헐뜯으려고 했습니다.

97:9.3 (1072.1) Pretentious Hebrew history begins with Saul’s rallying the northern clans to withstand an attack by the Ammonites upon their fellow tribesmen — the Gileadites — east of the Jordan. With an army of a little more than three thousand he defeated the enemy, and it was this exploit that led the hill tribes to make him king. When the exiled priests rewrote this story, they raised Saul’s army to 330,000 and added “Judah” to the list of tribes participating in the battle. 과시적인 히브리 역사는 암몬 족속들의 요단강 동편 히브리 동료 부족 길르앗 사람들에 대한 공격에 저항하려고 사울이 북부 씨족들을 규합(糾合)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3,000명이 조금 넘는 군대로 적을 쳐부쉈고, 이런 공적으로 산지 부족들은 그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추방당한 사제들이 이 이야기를 고쳐 쓰면서, 그들은 사울의 군대를 330,000명으로 부풀렸고, “유다”족도 전투에 참여한 지파 목록에 추가했습니다(삼상11:1-11).

97:9.4 (1072.2) Immediately following the defeat of the Ammonites, Saul was made king by popular election by his troops. No priest or prophet participated in this affair. But the priests later on put it in the record that Saul was crowned king by the prophet Samuel in accordance with divine directions. This they did in order to establish a “divine line of descent” for David’s Judahite kingship. 암몬 족속을 타파한 직후, 사울은 자기 군대의 보통 선거로 왕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에 어떤 사제나 선지자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사제들은 사울이 신적 지시에 따라 선지자 사무엘이 사울을 왕위에 앉혔다고 기록에 남겼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유다 왕권을 위한 “신적 혈통”을 세우기 위해 이렇게 했습니다(삼상11:14-15).

97:9.5 (1072.3) The greatest of all distortions of Jewish history had to do with David. After Saul’s victory over the Ammonites (which he ascribed to Yahweh) the Philistines became alarmed and began attacks on the northern clans. David and Saul never could agree. David with six hundred men entered into a Philistine alliance and marched up the coast to Esdraelon. At Gath the Philistines ordered David off the field; they feared he might go over to Saul. David retired; the Philistines attacked and defeated Saul. They could not have done this had David been loyal to Israel. David’s army was a polyglot assortment of malcontents, being for the most part made up of social misfits and fugitives from justice. 유대 역사에서 가장 큰 왜곡은 다윗과 관련되었습니다. 사울이 암몬 족속에 대한 승전(그는 야훼에게 공을 돌렸음) 이후에, 필리스틴(블레셋)인들은 두려워서 북부 씨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과 사울은 결코 합의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600인 군사와 함께 필리스틴 동맹을 맺었고(삼상27:2-3), 해안(海岸)을 따라 위로 에스드랠론까지 행진했습니다. 가드에서 필리스틴 사람들은 다윗에게 전투에서 빠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사울에게 귀순할지도 몰라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퇴각했습니다(삼상29:1-11). 필리스틴 사람들은 사울을 공격하여 이겼습니다(삼상31:1-10, 대상10:1-10). 다윗이 이스라엘에 충성했다면 그들은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군대는 여러 언어를 말하는 혼합된 반항자들로서, 대부분 사회의 부적격자들과 도망친 범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삼상22:1-2).

97:9.6 (1072.4) Saul’s tragic defeat at Gilboa by the Philistines brought Yahweh to a low point among the gods in the eyes of the surrounding Canaanites. Ordinarily, Saul’s defeat would have been ascribed to apostasy from Yahweh, but this time the Judahite editors attributed it to ritual errors. They required the tradition of Saul and Samuel as a background for the kingship of David. 필리스틴 사람들이 길보아에서 사울을 비참하게 쳐부수자, 야훼는 주변 가나안 족속들의 눈에 신과 같은 존재 중에서 낮은 지위로 여겨졌습니다. 보통 사울의 패배는 야훼로부터 배교(背敎)한 탓이었지만, 이번은 유다 편집자들이 그것을 의식(儀式)의 실수 탓으로 여겼습니다(삼상28:7-8, 18, 대상10:13-14). 그들은 다윗의 왕권을 위한 배경으로 사울과 사무엘의 전승(傳承)이 필요했습니다.

97:9.7 (1072.5) David with his small army made his headquarters at the non-Hebrew city of Hebron. Presently his compatriots proclaimed him king of the new kingdom of Judah. Judah was made up mostly of non-Hebrew elements — Kenites, Calebites, Jebusites, and other Canaanites. They were nomads — herders — and so were devoted to the Hebrew idea of land ownership. They held the ideologies of the desert clans. 다윗은 자기의 작은 군대와 함께 자기 본부를 히브리인의 도시가 아닌 헤브론에 두었습니다. 곧 그의 동료들이 그를 새로운 유다 왕국의 왕으로 선포했습니다(삼하2:1-4a). 유다 종족은 주로 히브리인이 아닌 인원들, 즉 겐 사람들, 갈렙의 자손들, 여부스 사람들 및 다른 가나안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유목민들, 목자(牧者)들이어서 땅 소유권에 대한 히브리 사고방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막 씨족들의 관념론을 신봉했습니다.

97:9.8 (1072.6) The difference between sacred and profane history is well illustrated by the two differing stories concerning making David king as they are found in the Old Testament. A part of the secular story of how his immediate followers (his army) made him king was inadvertently left in the record by the priests who subsequently prepared the lengthy and prosaic account of the sacred history wherein is depicted how the prophet Samuel, by divine direction, selected David from among his brethren and proceeded formally and by elaborate and solemn ceremonies to anoint him king over the Hebrews and then to proclaim him Saul’s successor. 신성한 역사와 모독(冒瀆) 역사의 차이는 구약 성서에서 발견되듯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에 관한 두 가지 다른 이야기들로 잘 설명됩니다. 그의 직계 추종자들(그의 군대)이 그를 어떻게 왕으로 세웠는지에 대한 세속적 이야기의 일부(삼하2:1-4a)가 나중에 신성한 역사의 장황하고 지루한 설명을 준비했던 사제들의 부주의로 기록에 남겨졌는데, 거기에는 선지자 사무엘이 신적 지시로 어떻게 다윗을 그의 형제 중에서 선택하고, 그를 히브리인들의 왕으로 기름을 부은 다음에 그를 사울의 후임자로 선포하려고, 정교하고 엄숙한 예식에 의해 정식으로 진행했는지 묘사되어 있습니다(삼상16:1-13).

97:9.9 (1072.7) So many times did the priests, after preparing their fictitious narratives of God’s miraculous dealings with Israel, fail fully to delete the plain and matter-of-fact statements which already rested in the records. 아주 여러 번, 사제들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기적적으로 취급한다는 자신들의 가짜 이야기를 미리 마련한 다음에, 이미 기록에 남아있던 솔직한 실제 진술을 끝내 완전히 삭제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97:9.10 (1072.8) David sought to build himself up politically by first marrying Saul’s daughter, then the widow of Nabal the rich Edomite, and then the daughter of Talmai, the king of Geshur. He took six wives from the women of Jebus, not to mention Bathsheba, the wife of the Hittite. 다윗은 처음에는 사울의 딸(삼상18:22-27), 다음에는 부유한 에돔인 나발의 과부(삼상25:42), 그다음에 게수르의 왕 달매의 딸(삼하3:3)과 결혼하여 정치적으로 자신을 치켜세우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히타이트 족의 아내 밧세바(삼하11:26-27)는 물론이고, 여부스의 여인들로부터 여섯 명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97:9.11 (1073.1) And it was by such methods and out of such people that David built up the fiction of a divine kingdom of Judah as the successor of the heritage and traditions of the vanishing northern kingdom of Ephraimite Israel. David’s cosmopolitan tribe of Judah was more gentile than Jewish; nevertheless the oppressed elders of Ephraim came down and “anointed him king of Israel.” After a military threat, David then made a compact with the Jebusites and established his capital of the united kingdom at Jebus (Jerusalem), which was a strong-walled city midway between Judah and Israel. The Philistines were aroused and soon attacked David. After a fierce battle they were defeated, and once more Yahweh was established as “The Lord God of Hosts.” 그리고 다윗은 그런 방법으로, 그런 사람들로부터 에브라임 사람들의 사라지는 북 이스라엘 왕국의 유산과 전통의 계승자로서 신적 유다 왕국의 꾸민 이야기를 쌓아 올렸습니다. 다윗의 다국적인 유다 지파는 유대인들이라기보다 이방인들이었지만, 탄압받는 에브라임의 장로들이 내려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부었습니다(삼하5:3).” 군사적으로 협박한 다음에 다윗은 여부스 사람들과 계약을 맺고,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 중간쯤, 성벽이 튼튼한 도시였던 여부스(예루살렘)에 통일 왕국의 자기 수도(首都)를 세웠습니다(삼하5:6-9). 필리스틴(블레셋) 사람들이 흥분하여 곧 다윗을 공격했습니다(삼하5:17-25). 맹렬한 전투 후에 그들은 패배했고 한 번 더 야훼는 “만군의 주 하느님”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삼하5:10).

97:9.12 (1073.2) But Yahweh must, perforce, share some of this glory with the Canaanite gods, for the bulk of David’s army was non-Hebrew. And so there appears in your record (overlooked by the Judahite editors) this telltale statement: “Yahweh has broken my enemies before me. Therefore he called the name of the place Baal-Perazim.” And they did this because eighty per cent of David’s soldiers were Baalites. 그러나 야훼는 마지못해 하는 수 없이 가나안 사람들의 신과 같은 존재들과 이런 영광의 부분을 함께 나누어야 했는데, 다윗 군대의 대부분은 히브리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 편집자들이 빠뜨린) 너희 기록에 내막을 폭로하는 이런 진술이 나타납니다. “야훼가 내 앞에서 나의 대적들을 무찌르셨도다. 그로 인해 그는 그 지역 이름을 바알-페라짐(브라심)으로 불렀다(삼하5:20).” 다윗의 군인 중 80%가 바알 신 숭배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이렇게 했습니다.

97:9.13 (1073.3) David explained Saul’s defeat at Gilboa by pointing out that Saul had attacked a Canaanite city, Gibeon, whose people had a peace treaty with the Ephraimites. Because of this, Yahweh forsook him. Even in Saul’s time David had defended the Canaanite city of Keilah against the Philistines, and then he located his capital in a Canaanite city. In keeping with the policy of compromise with the Canaanites, David turned seven of Saul’s descendants over to the Gibeonites to be hanged. 다윗은 사울이 에브라임 사람들과 평화 조약을 맺은 가나안 도시, 기브온 사람들을 공격했다고 지적하면서 길보아에서 사울의 패배를 설명했습니다(삼하21:1-2). 이런 이유로 야훼가 그를 저버렸습니다. 사울의 시대에도 다윗은 필리스틴(블레셋)에 맞서 가나안 도시 케일라를 방어했고(삼상23:1-5), 그 후 그는 가나안의 도시 안에 자기 수도의 위치를 정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타협하는 정책에 맞춰, 다윗은 사울 후손 중 일곱 명을 교수형에 처하도록 기브온 사람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삼하21:3-9).

97:9.14 (1073.4) After the defeat of the Philistines, David gained possession of the “ark of Yahweh,” brought it to Jerusalem, and made the worship of Yahweh official for his kingdom. He next laid heavy tribute on the neighboring tribes — the Edomites, Moabites, Ammonites, and Syrians. 필리스틴(블레셋)사람들을 무찌른 후, 다윗은 “야훼의 언약궤”를 손에 넣어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왔고(삼하6:1-17, 대상15:25-29), 자기 왕국을 위해 야훼 숭배를 공식화했습니다. 다음에 그는 이웃 부족들 – 에돔, 모압, 암몬과 시리아 사람들에게 무거운 공물을 바치게 했습니다(삼하8:11-12).

97:9.15 (1073.5) David’s corrupt political machine began to get personal possession of land in the north in violation of the Hebrew mores and presently gained control of the caravan tariffs formerly collected by the Philistines. And then came a series of atrocities climaxed by the murder of Uriah. All judicial appeals were adjudicated at Jerusalem; no longer could “the elders” mete out justice. No wonder rebellion broke out. Today, Absalom might be called a demagogue; his mother was a Canaanite. There were a half dozen contenders for the throne besides the son of Bathsheba — Solomon. 다윗의 부패한 정치 조직은 히브리 관습을 위반하여 북쪽에서 땅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기 시작하여 곧 이전에 필리스틴 사람들이 징수하던 대상(隊商) 관세를 장악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아를 살해하면서 일련의 잔학 행위가 절정에 이르렀습니다(삼하11:14-17). 모든 사법적 항소는 예루살렘에서 선고(宣告)되었고 “장로들”은 더 이상 정의(正義)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폭동이 발생한 것은 당연했습니다. 오늘날, 압살롬은 선동자로 불릴 수 있는데(삼하15:2-6), 그의 어머니는 가나안 사람이었습니다. 밧세바의 아들 – 솔로몬 외에 왕좌를 차지하려는 여섯 명의 경쟁자가 있었습니다.

97:9.16 (1073.6) After David’s death Solomon purged the political machine of all northern influences but continued all of the tyranny and taxation of his father’s regime. Solomon bankrupted the nation by his lavish court and by his elaborate building program: There was the house of Lebanon, the palace of Pharaoh’s daughter, the temple of Yahweh, the king’s palace, and the restoration of the walls of many cities. Solomon created a vast Hebrew navy, operated by Syrian sailors and trading with all the world. His harem numbered almost one thousand. 다윗이 죽은 후 솔로몬은 모든 북부 세력의 정치 조직을 몰아냈지만 자기 아버지 정권의 폭정과 과세를 모두 계속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사치스러운 왕실과 자신의 정교한 건축 계획으로 국가를 파산시켰습니다. 레바논의 집, 파라오 딸의 궁전(왕상7:8), 야훼의 성전, 왕궁 및 여러 도시의 성벽 복원이 있었습니다(왕상9:15). 솔로몬은 시리아 선원들이 운영하는 광대한 히브리 해군을 창설하여 온 세계와 거래했습니다(왕상9:26-27). 그의 후궁 처첩들은 거의 1,000명에 달했습니다(왕상11:3).

97:9.17 (1073.7) By this time Yahweh’s temple at Shiloh was discredited, and all the worship of the nation was centered at Jebus in the gorgeous royal chapel. The northern kingdom returned more to the worship of Elohim. They enjoyed the favor of the Pharaohs, who later enslaved Judah, putting the southern kingdom under tribute. 이 무렵 실로에 있는 야훼의 성전은 평판이 나빠졌고, 국가의 모든 예배는 여부스의 화려한 왕실 예배당에 집중되었습니다. 북 왕국은 엘로힘 숭배로 더욱 되돌아갔습니다. 그들은 파라오들의 총애를 누렸고, 파라오들은 나중에 남 왕국이 공물을 바치도록 유다 왕국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97:9.18 (1073.8) There were ups and downs — wars between Israel and Judah. After four years of civil war and three dynasties, Israel fell under the rule of city despots who began to trade in land. Even King Omri attempted to buy Shemer’s estate. But the end drew on apace when Shalmaneser III decided to control the Mediterranean coast. King Ahab of Ephraim gathered ten other groups and resisted at Karkar; the battle was a draw. The Assyrian was stopped but the allies were decimated. This great fight is not even mentioned in the Old Testament.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에 전쟁의 부침(浮沈 성쇠, 변천)이 있었습니다. 4년간의 내전과 세 왕조 이후에 이스라엘은 토지 거래를 시작한 도시 폭군들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오므리 왕도 세멜의 토지를 사려고 시도했습니다(왕상16:23-24). 그러나 샬만에세르 3세가 지중해 연안을 지배하기로 결정하자, 종말이 급히 다가왔습니다. 에브라임의 아합 왕은 다른 10개 집단을 모아 카르카르에서 저항했고, 전투는 비겼습니다. 아시리아군(軍)은 저지되었지만, 대다수의 동맹국은 섬멸당했습니다. 이 큰 전투는 구약 성서에 언급조차 없습니다.

97:9.19 (1074.1) New trouble started when King Ahab tried to buy land from Naboth. His Phoenician wife forged Ahab’s name to papers directing that Naboth’s land be confiscated on the charge that he had blasphemed the names of “Elohim and the king.” He and his sons were promptly executed. The vigorous Elijah appeared on the scene denouncing Ahab for the murder of the Naboths. Thus Elijah, one of the greatest of the prophets, began his teaching as a defender of the old land mores as against the land-selling attitude of the Baalim, against the attempt of the cities to dominate the country. But the reform did not succeed until the country landlord Jehu joined forces with the gypsy chieftain Jehonadab to destroy the prophets (real estate agents) of Baal at Samaria. 아합 왕이 나봇에게서 땅을 사려고 하자 새로운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페니키아 아내는, 나봇이 “엘로힘과 왕”의 이름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나봇의 땅을 몰수하라고 쓰인 서류에 아합의 이름을 위조했습니다. 그와 그의 아들들은 즉시 처형당했습니다. 강력한 엘리야가 현장에 나타나 나봇 족속의 살인자로 아합을 맹렬히 비난했습니다(왕상21:1-24). 이렇게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하나인 엘리야는 바알 숭배의 토지-판매 태도에 맞서, 시골을 지배하려는 도시들의 시도에 대항하여, 옛 토지 관습의 옹호자로서 자신의 가르침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골 지주 예후가 떠돌이 두목 여호나답과 협력하여 사마리아의 바알 선지자들(부동산 중개인들)을 죽이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개혁이 성공했습니다(왕하10:15-28).

97:9.20 (1074.2) New life appeared as Jehoash and his son Jeroboam delivered Israel from its enemies. But by this time there ruled in Samaria a gangster-nobility whose depredations rivaled those of the Davidic dynasty of olden days. State and church went along hand in hand. The attempt to suppress freedom of speech led Elijah, Amos, and Hosea to begin their secret writing, and this was the real beginning of the Jewish and Christian Bibles. 여호아스(요아스, 왕하12:1-2)와 그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적들에게서 구해내면서 새로운 생활이 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 무렵 사마리아에는 폭력배-귀족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의 약탈 행위는 옛날 다윗 왕조의 폭력배-귀족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국가와 교회가 밀접하게 협력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시도로 인해 엘리야, 아모스와 호세아는 비밀리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것은 유대교와 기독교 성경의 진정한 시작이었습니다.

97:9.21 (1074.3) But the northern kingdom did not vanish from history until the king of Israel conspired with the king of Egypt and refused to pay further tribute to Assyria. Then began the three years’ siege followed by the total dispersion of the northern kingdom. Ephraim (Israel) thus vanished. Judah — the Jews, the “remnant of Israel” — had begun the concentration of land in the hands of the few, as Isaiah said, “Adding house to house and field to field.” Presently there was in Jerusalem a temple of Baal alongside the temple of Yahweh. This reign of terror was ended by a monotheistic revolt led by the boy king Joash, who crusaded for Yahweh for thirty-five years. 그러나 북 왕국은 이스라엘 왕이 이집트 왕과 공모하여 아시리아에 더 이상 조공을 바치려 하지 않을 때까지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3년간의 포위 공격이 시작되었고 뒤이어 북 왕국은 완전히 흩어졌습니다(왕하17:4-6). 에브라임(이스라엘)은 이렇게 사라졌습니다. 유다 – 유대인들, “이스라엘의 남은 자(사10:20)”는 이사야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더한다(사5:8).”라고 말한 것처럼, 소수의 수중에 있는 토지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예루살렘에는 야훼의 성전과 나란히 바알의 성전이 있었습니다. 이런 공포의 통치권은 소년 왕 요아스가 이끈 일신교 폭동으로 끝났으며, 그는 35년간 야훼를 위해 개혁운동을 추진했습니다(왕하11:12-21, 대하23:11-20).

97:9.22 (1074.4) The next king, Amaziah, had trouble with the revolting tax-paying Edomites and their neighbors. After a signal victory he turned to attack his northern neighbors and was just as signally defeated. Then the rural folk revolted; they assassinated the king and put his sixteen-year-old son on the throne. This was Azariah, called Uzziah by Isaiah. After Uzziah, things went from bad to worse, and Judah existed for a hundred years by paying tribute to the kings of Assyria. Isaiah the first told them that Jerusalem, being the city of Yahweh, would never fall. But Jeremiah did not hesitate to proclaim its downfall. 다음 왕 아마샤는 세금을 내는 에돔 족속과 그 이웃들의 반란으로 고생했습니다. 괄목할 승리 후에 그는 자기 북쪽 이웃들을 향해 공격하려고 나아갔으며, 마찬가지로 크게 패배했습니다(대하25:11-12, 22-23). 그러자 시골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을 암살하고 그의 16세 아들을 왕위에 앉혔습니다(대하25:27-28, 26:1). 이 사람은 이사야가 웃시야라고 불렀던 아사랴였습니다. 웃시야 뒤에 형편은 갈수록 더욱 악화하였고, 유다는 아시리아의 왕들에게 공물을 바쳐 100년간 존재했습니다. 첫 번째 이사야는 그들에게 야훼의 도시 예루살렘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사31:5). 그러나 예레미야는 주저하지 않고 예루살렘의 몰락을 선포했습니다(렘6:1-6, 15:5-6).

97:9.23 (1074.5) The real undoing of Judah was effected by a corrupt and rich ring of politicians operating under the rule of a boy king, Manasseh. The changing economy favored the return of the worship of Baal, whose private land dealings were against the ideology of Yahweh. The fall of Assyria and the ascendancy of Egypt brought deliverance to Judah for a time, and the country folk took over. Under Josiah they destroyed the Jerusalem ring of corrupt politicians. 유다의 실제 파멸의 원인은 소년 왕 므낫세의 통치 아래에서 부패하고 부유한 정치꾼 일당이 활동한 결과였습니다(왕하21:1-2, 대하33:1-3). 경제의 변화로 야훼의 관념론에 맞서 사유지를 매매하는 바알 숭배가 촉진되어 다시 일어났습니다. 아시리아의 몰락과 이집트의 지배권으로 유다는 잠시 해방되었고, 시골 사람들이 장악했습니다. 요시야 치하에서 그들이 예루살렘의 부패한 정치꾼 일당을 멸망시켰습니다(왕하22:1-2, 23:1-25, 대하34-35:1-19).

97:9.24 (1074.6) But this era came to a tragic end when Josiah presumed to go out to intercept Necho’s mighty army as it moved up the coast from Egypt for the aid of Assyria against Babylon. He was wiped out, and Judah went under tribute to Egypt. The Baal political party returned to power in Jerusalem, and thus began the real Egyptian bondage. Then ensued a period in which the Baalim politicians controlled both the courts and the priesthood. Baal worship was an economic and social system dealing with property rights as well as having to do with soil fertility. 그러나 이런 시대는 요시야가, 대담하게 바빌론에 맞서 아시리아를 도우려고 이집트에서 해안을 따라 올라오는 네코의 강력한 군대를 가로막으려고 나서자,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유다는 이집트에 조공을 바쳤습니다. 바알 정당이 예루살렘에서 또다시 정권을 잡게 되자, 실제 이집트의 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바알을 숭배하는 정치꾼들이 사법기관과 사제직 모두 지배하는 시기가 잇따랐습니다. 바알 숭배는 재산권을 다루는 경제 및 사회적 체계는 물론 토양 비옥도와 관련되었습니다(왕하23:29-30, 대하35:20-24).

97:9.25 (1075.1) With the overthrow of Necho by Nebuchadnezzar, Judah fell under the rule of Babylon and was given ten years of grace, but soon rebelled. When Nebuchadnezzar came against them, the Judahites started social reforms, such as releasing slaves, to influence Yahweh. When the Babylonian army temporarily withdrew, the Hebrews rejoiced that their magic of reform had delivered them. It was during this period that Jeremiah told them of the impending doom, and presently Nebuchadnezzar returned. 네브카드네자르(느브갓네살)가 네코를 무너뜨리자(렘46:2), 유다는 바빌론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10년간 특별사면의 호의를 받았으나 곧 배반하여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네브카드네자르(느브갓네살)가 그들을 치러 오자, 유다 사람들은 노예 해방과 같은 사회 개혁을 시작하여 야훼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바빌론 군대가 잠시 철수하자,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의 개혁 마법이 자기들을 구해냈다고 기뻐했습니다. 이런 기간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임박한 파멸을 얘기했고 곧 네브카드네자르(느브갓네살)가 되돌아왔습니다(렘38:3, 39:1, 왕하25:1).

97:9.26 (1075.2) And so the end of Judah came suddenly. The city was destroyed, and the people were carried away into Babylon. The Yahweh-Baal struggle ended with the captivity. And the captivity shocked the remnant of Israel into monotheism. 그렇게 유다의 종말이 갑자기 왔습니다. 도시는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왕하25:2-17). 야훼-바알 투쟁은 바빌론 유수(幽囚 감금)와 함께 끝났습니다. 그리고 포로 생활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충격을 받아 일신교에 빠졌습니다.

97:9.27 (1075.3) In Babylon the Jews arrived at the conclusion that they could not exist as a small group in Palestine, having their own peculiar social and economic customs, and that, if their ideologies were to prevail, they must convert the gentiles. Thus originated their new concept of destiny — the idea that the Jews must become the chosen servants of Yahweh. The Jewish religion of the Old Testament really evolved in Babylon during the captivity. 바빌론에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사회 및 경제적 관습을 가진 소그룹으로 존재할 수 없고, 자신들의 관념이 만연되려면, 자신들이 이방인들을 개종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렇게 운명에 대한 자신들의 새 개념이 일어났는데, 유대인은 야훼의 선택받은 종이 되어야 한다는 사상이었습니다. 구약 성서의 유대교는 실제로 바빌론 유수(幽囚 포로 감금) 기간에 바빌론에서 서서히 발전했습니다.

97:9.28 (1075.4) The doctrine of immortality also took form at Babylon. The Jews had thought that the idea of the future life detracted from the emphasis of their gospel of social justice. Now for the first time theology displaced sociology and economics. Religion was taking shape as a system of human thought and conduct more and more to be separated from politics, sociology, and economics. 불멸의 교리도 바빌론에서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미래의 삶에 관한 생각이 자신들의 사회적 정의(正義)의 복음에 대한 중요성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처음으로 신학이 사회학과 경제학 대신에 들어섰습니다. 종교는 점차 정치학, 사회학 및 경제학에서 분리되어 인간 사고와 행위의 체계로 형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97:9.29 (1075.5) And so does the truth about the Jewish people disclose that much which has been regarded as sacred history turns out to be little more than the chronicle of ordinary profane history. Judaism was the soil out of which Christianity grew, but the Jews were not a miraculous people. 그래서 유대 민족에 대한 진실은 신성한 역사로 여겨진 많은 것이 평범한 모독(冒瀆) 역사의 연대기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유대교는 기독교가 성장한 토양이었지만 유대인은 기적적인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10. The Hebrew Religion 히브리 종교

97:10.1 (1075.6) Their leaders had taught the Israelites that they were a chosen people, not for special indulgence and monopoly of divine favor, but for the special service of carrying the truth of the one God over all to every nation. And they had promised the Jews that, if they would fulfill this destiny, they would become the spiritual leaders of all peoples, and that the coming Messiah would reign over them and all the world as the Prince of Peace.

97:10.2 (1075.7) When the Jews had been freed by the Persians, they returned to Palestine only to fall into bondage to their own priest-ridden code of laws, sacrifices, and rituals. And as the Hebrew clans rejected the wonderful story of God presented in the farewell oration of Moses for the rituals of sacrifice and penance, so did these remnants of the Hebrew nation reject the magnificent concept of the second Isaiah for the rules, regulations, and rituals of their growing priesthood.

97:10.3 (1075.8) National egotism, false faith in a misconceived promised Messiah, and the increasing bondage and tyranny of the priesthood forever silenced the voices of the spiritual leaders (excepting Daniel, Ezekiel, Haggai, and Malachi); and from that day to the time of John the Baptist all Israel experienced an increasing spiritual retrogression. But the Jews never lost the concept of the Universal Father; even to the twentieth century after Christ they have continued to follow this Deity conception.

97:10.4 (1076.1) From Moses to John the Baptist there extended an unbroken line of faithful teachers who passed the monotheistic torch of light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 while they unceasingly rebuked unscrupulous rulers, denounced commercializing priests, and ever exhorted the people to adhere to the worship of the supreme Yahweh, the Lord God of Israel.

97:10.5 (1076.2) As a nation the Jews eventually lost their political identity, but the Hebrew religion of sincere belief in the one and universal God continues to live in the hearts of the scattered exiles. And this religion survives because it has effectively functioned to conserve the highest values of its followers. The Jewish religion did preserve the ideals of a people, but it failed to foster progress and encourage philosophic creative discovery in the realms of truth. The Jewish religion had many faults — it was deficient in philosophy and almost devoid of aesthetic qualities — but it did conserve moral values; therefore it persisted. The supreme Yahweh, as compared with other concepts of Deity, was clear-cut, vivid, personal, and moral.

97:10.6 (1076.3) The Jews loved justice, wisdom, truth, and righteousness as have few peoples, but they contributed least of all peoples to the intellectual comprehension and to the spiritual understanding of these divine qualities. Though Hebrew theology refused to expand, it played an important part in the development of two other world religions, Christianity and Mohammedanism.

97:10.7 (1076.4) The Jewish religion persisted also because of its institutions. It is difficult for religion to survive as the private practice of isolated individuals. This has ever been the error of the religious leaders: Seeing the evils of institutionalized religion, they seek to destroy the technique of group functioning. In place of destroying all ritual, they would do better to reform it. In this respect Ezekiel was wiser than his contemporaries; though he joined with them in insisting on personal moral responsibility, he also set about to establish the faithful observance of a superior and purified ritual.

97:10.8 (1076.5) And thus the successive teachers of Israel accomplished the greatest feat in the evolution of religion ever to be effected on Urantia: the gradual but continuous transformation of the barbaric concept of the savage demon Yahweh, the jealous and cruel spirit god of the fulminating Sinai volcano, to the later exalted and supernal concept of the supreme Yahweh, creator of all things and the loving and merciful Father of all mankind. And this Hebraic concept of God was the highest human visualization of the Universal Father up to that time when it was further enlarged and so exquisitely amplified by the personal teachings and life example of his Son, Michael of Nebadon.

97:10.9 (1076.6) [Presented by a Melchizedek of Neba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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