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141 Beginning the Public Work 공(公) 사역의 시작

Paper 141

Beginning the Public Work 공(公) 사역의 시작

1. Leaving Galilee 갈릴리를 떠남
2. God’s Law and the Father’s Will 하나님의 율법과 아버지의 뜻
3. The Sojourn at Amathus 아마투스에 머무름
Jesus’ personality 예수님의 고유성
Jesus’ appearance 예수님의 풍모(風貌)
4. Teaching About the Father 아버지에 대한 가르침
Minister to the sick 병든 자를 보살피는 성직자
5. Spiritual Unity 영적 통일
6. Last Week at Amathus 아마투스에서 마지막 주간(週間)
Teherma the Persian 페르시아인 테헤르마
7. At Bethany Beyond Jordan 요단강 건너 베다니에서
Teaching about the kingdom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
Salvation by faith; liberty through truth 신앙으로 얻는 구원; 진리를 통한 해방
8. Working in Jericho 여리고에서 활동함
9. Departing for Jerusalem 예루살렘으로 출발

181118 신앙-자녀의 감사 시92:1-4 1-3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4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1 It is good to praise the LORD and make music to your name, O Most High, 2 to proclaim your love in the morning and your faithfulness at night, 3 to the music of the ten-stringed lyre and the melody of the harp. 4 For you make me glad by your deeds, O LORD; I sing for joy at the works of your hands.

141:0.1 (1587.1)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January 19, A.D. 27, Jesus and the twelve apostles made ready to depart from their headquarters in Bethsaida. The twelve knew nothing of their Master’s plans except that they were going up to Jerusalem to attend the Passover feast in April, and that it was the intention to journey by way of the Jordan valley. They did not get away from Zebedee’s house until near noon because the families of the apostles and others of the disciples had come to say good-bye and wish them well in the new work they were about to begin. 그 주의 첫 날 AD 27년 1월 19일(주일)에 예수님과 12사도들은 벳새다의 본부를 떠나려고 준비했습니다. 12사도는, 4월의 유월절 축제에 참석하러 예루살렘에 갈 것이며, 요단 계곡을 거쳐 여행할 의도라는 것 외에, 주(主)님의 계획을 전혀 몰랐습니다. 사도들의 가족들과 제자들의 다른 이들이 작별하며 사도들이 새로 시작할 일에 축복하러 왔기 때문에 그들은 거의 정오까지 세베대의 집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141:0.2 (1587.2) Just before leaving, the apostles missed the Master, and Andrew went out to find him. After a brief search he found Jesus sitting in a boat down the beach, and he was weeping. The twelve had often seen their Master when he seemed to grieve, and they had beheld his brief seasons of serious preoccupation of mind, but none of them had ever seen him weep. Andrew was somewhat startled to see the Master thus affected on the eve of their departure for Jerusalem, and he ventured to approach Jesus and ask: “On this great day, Master, when we are to depart for Jerusalem to proclaim the Father’s kingdom, why is it that you weep? Which of us has offended you?” And Jesus, going back with Andrew to join the twelve, answered him: “No one of you has grieved me. I am saddened only because none of my father Joseph’s family have remembered to come over to bid us Godspeed.” At this time Ruth was on a visit to her brother Joseph at Nazareth. Other members of his family were kept away by pride, disappointment, misunderstanding, and petty resentment indulged as a result of hurt feelings. 떠나기 직전 주(主)님이 보이지 않아서 안드레가 그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잠시 찾은 후 그는 보트에 앉아계신 예수님을 발견했는데 그는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열둘은 종종 슬퍼보였던 주(主)님을 봤었고, 그가 잠간씩 심각하게 몰두한 모습을 봤었지만, 그가 눈물 흘리는 것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안드레는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날 주님께서 그렇게 계신 것을 보고 어느 정도 놀랐고 감히 접근해서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主)님! 아버지의 나라를 선포하러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이 좋은 날에 왜 눈물을 흘리시는지요? 저희 중 누가 기분을 상하게 했습니까?” 예수님은 안드레와 함께 열둘에게 가시면서 대답했습니다. “너희 중 누구도 나를 슬프게 하지 않았느니라. 내가 슬픈 것은 단지 내 아버지 요셉의 가족 중 누구도 기억해서 우리에게 안전을 기원하러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이때 룻은 나사렛에서 오빠 요셉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식구들은 감정이 상한 결과로 자만심, 실망, 오해 및 사소한 원한에 빠져 (주님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1. Leaving Galilee 갈릴리를 떠남

181125 40일과 세례 요한의 사역 인수(引受) 마4: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Large crowds from Galilee, the Decapolis, Jerusalem, Judea and the region across the Jordan followed him.

141:1.1 (1587.3) Capernaum was not far from Tiberias, and the fame of Jesus had begun to spread well over all of Galilee and even to parts beyond. Jesus knew that Herod would soon begin to take notice of his work; so he thought best to journey south and into Judea with his apostles. A company of over one hundred believers desired to go with them, but Jesus spoke to them and besought them not to accompany the apostolic group on their way down the Jordan. Though they consented to remain behind, many of them followed after the Master within a few days. 가버나움은 티베리아스에서 멀지 않았고 예수님의 명성(名聲)은 온 갈릴리와 바깥 여러 지역까지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헤롯이 자신의 일을 곧 주목하기 시작할 것을 아셔서, 그는 사도들과 함께 남쪽 유대로 여행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0명이 넘는 신자들 일행이 그들과 함께 가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요단으로 내려가는 길에 사도 그룹과 동행하지 말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들은 뒤에 남기로 동의했지만, 대부분 며칠 안에 주(主)님을 따라갔습니다.

141:1.2 (1587.4) The first day Jesus and the apostles only journeyed as far as Tarichea, where they rested for the night. The next day they traveled to a point on the Jordan near Pella where John had preached about one year before, and where Jesus had received baptism. Here they tarried for more than two weeks, teaching and preaching. By the end of the first week several hundred people had assembled in a camp near where Jesus and the twelve dwelt, and they had come from Galilee, Phoenicia, Syria, the Decapolis, Perea, and Judea. 첫 날에 예수님과 사도들만 타리케아까지 여행했고 거기에서 그 날 밤 쉬었습니다. 다음날 그들은 펠라 근처 요단강의 한 장소로 이동했는데, 그곳은 요한이 일 년 전쯤 설교하고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던 곳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은 2주 이상 머물면서 가르치고 전도했습니다. 첫째 주말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과 12사도가 머물던 장소 근처 야영지로 모였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페니키아, 시리아, 데카폴리스, 페레아, 유대에서 왔습니다.

141:1.3 (1588.1) Jesus did no public preaching. Andrew divided the multitude and assigned the preachers for the forenoon and afternoon assemblies; after the evening meal Jesus talked with the twelve. He taught them nothing new but reviewed his former teaching and answered their many questions. On one of these evenings he told the twelve something about the forty days which he spent in the hills near this place. 예수님은 대중(大衆)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안드레는 군중을 나누어 오전 오후 집회를 위해 설교자들을 임명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예수께서 12사도들과 이야기하셨습니다. 새 가르침은 없었으나 그는 이전의 가르침을 돌이켜보면서 사도들의 많은 질문에 답하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12사도들에게 이 장소 근처 언덕에서 자신이 지냈던 40일에 관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41:1.4 (1588.2) Many of those who came from Perea and Judea had been baptized by John and were interested in finding out more about Jesus’ teachings. The apostles made much progress in teaching the disciples of John inasmuch as they did not in any way detract from John’s preaching, and since they did not at this time even baptize their new disciples. But it was always a stumbling stone to John’s followers that Jesus, if he were all that John had announced, did nothing to get him out of prison. John’s disciples never could understand why Jesus did not prevent the cruel death of their beloved leader. 페레아와 유대에서 온 많은 이들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더 알려고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어떤 면에서도 요한의 설교를 손상시키지 않았고, 이번에 새 제자들에게 세례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요한의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전한 모두가 예수님이라면, 그가 요한을 감옥(監獄)에서 끌어내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요한의 추종자들에게는 항상 장애물이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사랑하는 지도자가 참혹하게 죽지 않도록 보호하지 않은 이유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141:1.5 (1588.3) From night to night Andrew carefully instructed his fellow apostles in the delicate and difficult task of getting along smoothly with the followers of John the Baptist. During this first year of Jesus’ public ministry more than three fourths of his followers had previously followed John and had received his baptism. This entire year of A.D. 27 was spent in quietly taking over John’s work in Perea and Judea. 밤마다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과 평온히 잘 지내는, 민감하고 어려운 일을 동료 사도들에게 신중히 지시했습니다. 예수님의 공(公) 사역 첫 해 동안 그의 추종자들 4분의 3 이상이, 전에 요한을 따랐고 그의 세례를 받았었습니다. 이 AD 27년 전부는 페레아와 유대에서 요한의 사역을 조용히 인계받는데 사용되었습니다.

2. God’s Law and the Father’s Will 하나님의 율법과 아버지의 뜻

181202 하나님의 율법과 아버지의 뜻 요1:12-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2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13 children born not of natural descent, nor of human decision or a husband’s will, but born of God.

141:2.1 (1588.4) The night before they left Pella, Jesus gave the apostles some further instruction with regard to the new kingdom. Said the Master: “You have been taught to look for 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 and now I come announcing that this long-looked-for kingdom is near at hand, even that it is already here and in our midst. In every kingdom there must be a king seated upon his throne and decreeing the laws of the realm. And so have you developed a concept of the kingdom of heaven as a glorified rule of the Jewish people over all the peoples of the earth with Messiah sitting on David’s throne and from this place of miraculous power promulgating the laws of all the world. But, my children, you see not with the eye of faith, and you hear not with the understanding of the spirit. I declare that the kingdom of heaven is the realization and acknowledgment of God’s rule within the hearts of men. True, there is a King in this kingdom, and that King is my Father and your Father. We are indeed his loyal subjects, but far transcending that fact is the transforming truth that we are his sons. In my life this truth is to become manifest to all. Our Father also sits upon a throne, but not one made with hands. The throne of the Infinite is the eternal dwelling place of the Father in the heaven of heavens; he fills all things and proclaims his laws to universes upon universes. And the Father also rules within the hearts of his children on earth by the spirit which he has sent to live within the souls of mortal men. 펠라를 떠나기 전날 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새 나라에 관해 좀 더 가르치셨습니다. 주(主)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라고 배웠고, 이제 나는 오래 기대하던 이 나라가 아주 가까이 있으며 이미 이곳에 우리들 중에 있다고 선언하노라. 모든 나라에는 왕좌에 앉아서 그 나라의 법을 선포하는 왕이 있어야 한다. 너희는 메시아가 다윗의 왕좌에 앉아, 기적적인 권능의 이 자리에서 온 세상의 율법을 선포하며, 유대 민족이 지상의 모든 민족들을 영화롭게 다스리는 하늘나라의 개념을 그렇게 개발했다. 그러나 내 자녀들아, 너희는 신앙의 눈으로 보지 않고, 영(靈)의 이해 없이 듣고 있느니라. 하늘나라는 사람들의 심정(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실감하고(깨닫고) 인정하는 것임을 내가 선언하노라. 진실로, 이 나라에 왕이 계시는데, 그 왕은 내 아버지요 너희 아버지시라. 우리는 실로 그의 충성스런 신하(국민)들이지만, 그 사실을 훨씬 초월하는 것은 우리가 그의 아들(자녀)들이라는 변화적 진리라. 내 일생으로 이 진리가 모두에게 나타나리라. 또한 우리 아버지는 보좌에 앉으시지만,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니라. 무한자의 보좌는 하늘들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원한 처소이니라. 그는 만물을 채우시고, 우주들의 우주들에 자신의 법을 선포하시니라. 또한 아버지는, 필사 사람들의 혼들 안에서 살도록 그가 보내 온 영(靈)으로, 지상에 있는 그의 자녀들의 심정(마음) 안에서 다스리시니라.

141:2.2 (1588.5) “When you are the subjects of this kingdom, you indeed are made to hear the law of the Universe Ruler; but when, because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which I have come to declare, you faith-discover yourselves as sons, you henceforth look not upon yourselves as law-subject creatures of an all-powerful king but as privileged sons of a loving and divine Father. Verily, verily, I say to you, when the Father’s will is your law, you are hardly in the kingdom. But when the Father’s will becomes truly your will, then are you in very truth in the kingdom because the kingdom has thereby become an established experience in you. When God’s will is your law, you are noble slave subjects; but when you believe in this new gospel of divine sonship, my Father’s will becomes your will, and you are elevated to the high position of the free children of God, liberated sons of the kingdom.” “너희가 이 나라의 신하(국민)들이면, 너희는 정말 우주 통치자의 율법을 듣게 되느니라. 그러나 내가 선포하러 온 (하나님) 나라 복음 때문에, 너희가 자신들이 아들(자녀)들임을 신앙으로 발견하면, 너희는 이제부터 전능한 왕의 율법에 복종하는 창조물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신적 아버지의 특권을 가진 아들(자녀)들로서 여기게 되리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버지의 뜻이 너희의 율법이면, 너희는 도저히 하늘나라에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 참으로 너희의 뜻이 되면, 너희는 그 나라에서 그 진리 안에 있는 것이니, (하나님) 나라가 이로서 너희 안에서 확고한 체험이 되었기 때문이라. 하나님의 뜻이 너희의 율법이면, 너희는 고귀한 노예 국민들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신적 아들 신분이라는 이 새 복음을 믿으면, 내 아버지의 뜻은 너희의 뜻이 되며, 너희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녀들, (하나님) 나라의 해방된 아들(자녀)들의 높은 자리로 올라가느니라.”

141:2.3 (1589.1) Some of the apostles grasped something of this teaching, but none of them comprehended the full significance of this tremendous announcement, unless it was James Zebedee. But these words sank into their hearts and came forth to gladden their ministry during later years of service. 사도들 중 몇은 이 가르침에서 어느 정도 파악했지만, 야고보 세베대를 제외하고 이 엄청난 선언의 중대성(重大性)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들은 그들의 심정(마음)들에 스며들었다가, 후에 여러 해 봉사하면서 떠올라 그들의 사역을 기쁘게 했습니다.

3. The Sojourn at Amathus 아마투스에 머무름

181209 영적 능력으로 쉬게 하리라 마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8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29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30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141:3.1 (1589.2) The Master and his apostles remained near Amathus for almost three weeks. The apostles continued to preach twice daily to the multitude, and Jesus preached each Sabbath afternoon. It became impossible to continue the Wednesday playtime; so Andrew arranged that two apostles should rest each day of the six days in the week, while all were on duty during the Sabbath services. 주(主)님과 사도들은 아마투스 근처에 거의 3주간 남아있었습니다. 사도들은 매일 2번씩 군중에게 계속 설교했고, 예수님은 매 안식일 오후에 설교하셨습니다. 수요일 휴식은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한 주에서 6일 동안은 매일 두 명씩 사도들이 쉬도록 정했고, 한편 안식일 예배에는 모두가 근무했습니다.

141:3.2 (1589.3) Peter, James, and John did most of the public preaching. Philip, Nathaniel, Thomas, and Simon did much of the personal work and conducted classes for special groups of inquirers; the twins continued their general police supervision, while Andrew, Matthew, and Judas developed into a general managerial committee of three, although each of these three also did considerable religious work.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대부분의 공(公)적 설교를 했습니다. 빌립, 나다니엘, 도마, 시몬은 개인적으로 많이 일했고 특별한 그룹의 질문자들을 위해 학급을 운영했습니다. 쌍둥이들은 일반 치안 감독을 계속했고, 한편 안드레, 마태, 유다는 3인의 일반 관리 위원회를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 셋은 또한 각자 종교적 일을 상당히 했습니다.

141:3.3 (1589.4) Andrew was much occupied with the task of adjusting the constantly recurring misunderstandings and disagreements between the disciples of John and the newer disciples of Jesus. Serious situations would arise every few days, but Andrew, with the assistance of his apostolic associates, managed to induce the contending parties to come to some sort of agreement, at least temporarily. Jesus refused to participate in any of these conferences; neither would he give any advice about the proper adjustment of these difficulties. He never once offered a suggestion as to how the apostles should solve these perplexing problems. When Andrew came to Jesus with these questions, he would always say: “It is not wise for the host to participate in the family troubles of his guests; a wise parent never takes sides in the petty quarrels of his own children.” 안드레는, 요한의 제자들과 새로운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오해와 의견 차이를 조율하는 업무로 많이 분주했습니다. 며칠마다 심각한 사태가 일어났지만, 안드레는, 동료 사도들의 도움으로, 다투는 일행들을 권유해서 적어도 일시적으로 어느 정도 합의하도록 처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어떤 회의에도 참여하기를 거부하셨고, 그는 이 어려움들을 적절히 조율하는 어떤 충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사도들이 이런 곤란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한 번도 제안하지 않으셨습니다. 안드레가 이 질문들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오면, 그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손님의 가정불화에 관여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니라.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들의 사소한 싸움에 어느 편을 들지 않느니라.”

141:3.4 (1589.5) The Master displayed great wisdom and manifested perfect fairness in all of his dealings with his apostles and with all of his disciples. Jesus was truly a master of men; he exercised great influence over his fellow men because of the combined charm and force of his personality. There was a subtle commanding influence in his rugged, nomadic, and homeless life. There was intellectual attractiveness and spiritual drawing power in his authoritative manner of teaching, in his lucid logic, his strength of reasoning, his sagacious insight, his alertness of mind, his matchless poise, and his sublime tolerance. He was simple, manly, honest, and fearless. With all of this physical and intellectual influence manifest in the Master’s presence, there were also all those spiritual charms of being which have become associated with his personality — patience, tenderness, meekness, gentleness, and humility. 주(主)님은 사도들과 모든 제자를 다루는 온갖 일에서 뛰어난 지혜를 나타냈고 온전한 공평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 사람들의 달인(達人)이셨습니다. 그는 고유성의 결합된 매력과 힘으로 동료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어렵게 방랑하는 노숙(露宿) 생활에는 미묘하며 위엄 있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권위 있는 교육 태도, 명료한 논리, 추리력(推理力), 총명한 통찰력, 빈틈없는 마음, 비길 수 없는 안정(安定), 탁월한 포용력(包容力)에는 지적(知的) 매력과 영적 흡인력(吸引力)이 있었습니다. 그는 순수하고 남자다우며 정직하고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님의 인품(人品)에는 이 모든 육체적·지적 영향력 리스트와 더불어, 또한 그의 고유성과 관련된 그 모든 존재의 영적 매력들 – 참을성, 다정함, 온화함, 품위, 및 겸손(謙遜) -이 있었습니다.

141:3.5 (1589.6) Jesus of Nazareth was indeed a strong and forceful personality; he was an intellectual power and a spiritual stronghold. His personality not only appealed to the spiritually minded women among his followers, but also to the educated and intellectual Nicodemus and to the hardy Roman soldier, the captain stationed on guard at the cross, who, when he had finished watching the Master die, said, “Truly, this was a Son of God.” And red-blooded, rugged Galilean fishermen called him Master. 나사렛 예수는 진실로 강하고 힘센 고유성이었습니다. 그는 지적 권능과 영적(靈的) 요새(要塞)였습니다. 그의 고유성은 추종자들 중에 영적 마음의 여성들만이 아니라, 교육받은 지적 니고데모강건한 로마 군인의 마음까지 끌었습니다. 십자가에서 근무하던 그 대장은 주님의 죽음을 보고 나서 말했습니다. “진실로 이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그리고 원기 왕성하고 억센 갈릴리 어부들은 그를 주(主)님으로 불렀습니다.

141:3.6 (1590.1) The pictures of Jesus have been most unfortunate. These paintings of the Christ have exerted a deleterious influence on youth; the temple merchants would hardly have fled before Jesus if he had been such a man as your artists usually have depicted. His was a dignified manhood; he was good, but natural. Jesus did not pose as a mild, sweet, gentle, and kindly mystic. His teaching was thrillingly dynamic. He not only meant well, but he went about actually doing good. 예수님의 초상화(肖像畵)들은 가장 유감스럽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그림들은 젊은이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수님이 너희 화가들이 흔히 그렸던 그런 사람이었다면, 성전(聖殿) 상인들이 예수 앞에서 전혀 도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모습은 당당한 어른으로, 그는 선했지만, 꾸밈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온순하고 다정하며, 상냥하고 친절한 신비주의자(神秘主義者)의 자세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떨리도록 힘찼습니다. 그는 호의(好意)만이 아니라 실제로 돌아다니며 선행을 행하셨습니다.

141:3.7 (1590.2) The Master never said, “Come to me all you who are indolent and all who are dreamers.” But he did many times say, “Come to me all you who labor, and I will give you rest — spiritual strength.” The Master’s yoke is, indeed, easy, but even so, he never imposes it; every individual must take this yoke of his own free will. 주(主)님은 “게으른 너희와 꿈꾸는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는 너희는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영적 능력 –을 주리라.” 주(主)님의 멍에는, 정말로, 쉽지만, 그래도 그는 결코 강요하지 않습니다. 각 개인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이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

141:3.8 (1590.3) Jesus portrayed conquest by sacrifice, the sacrifice of pride and selfishness. By showing mercy, he meant to portray spiritual deliverance from all grudges, grievances, anger, and the lust for selfish power and revenge. And when he said, “Resist not evil,” he later explained that he did not mean to condone sin or to counsel fraternity with iniquity. He intended the more to teach forgiveness, to “resist not evil treatment of one’s personality, evil injury to one’s feelings of personal dignity.” 예수님은 희생, 즉 자만과 이기심을 희생시킨 승리를 묘사하셨습니다. 자비를 보여서, 그는 모든 원한, 불만, 분노, 그리고 이기적 권세와 복수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영적 해방을 생생히 묘사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악에 저항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죄를 눈감아주거나 사악(邪惡)과 함께 하라는 조언(助言)을 뜻하지 않는다고 그가 나중에 설명하셨습니다. 그는 용서를 더 가르치려고, “사람의 고유성을 취급하는 악, 즉 사람의 고유적 존엄의 감정들을 해치는 악에 저항하지 말라.”는 의도였습니다.

4. Teaching About the Father 아버지에 대한 가르침

181216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The Spirit himself testifie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God’s children.

141:4.1 (1590.4) While sojourning at Amathus, Jesus spent much time with the apostles instructing them in the new concept of God; again and again did he impress upon them that God is a Father, not a great and supreme bookkeeper who is chiefly engaged in making damaging entries against his erring children on earth, recordings of sin and evil to be used against them when he subsequently sits in judgment upon them as the just Judge of all creation. The Jews had long conceived of God as a king over all, even as a Father of the nation, but never before had large numbers of mortal men held the idea of God as a loving Father of the individual. 아마투스에 머물면서 예수님은 사도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하나님의 새 개념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아버지이시며, 땅에서 잘못하는 자녀들에 대해 해로운 목록들, 즉 나중에 모든 창조계의 공정한 심판자로서 그들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아 그들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죄와 악을 기록하면서 주로 바쁜, 위대한 최극 회계원이 아니라고 사도들에게 거듭해서 강조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만유의 왕, 심지어 민족의 아버지(사63:16;64:8)로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필사 사람들은 하나님이 개인을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생각(관념)을 이전에 한 번도 지닌 적이 없었습니다.

141:4.2 (1590.5) In answer to Thomas’s question, “Who is this God of the kingdom?” Jesus replied: “God is your Father, and religion — my gospel — is nothing more nor less than the believing recognition of the truth that you are his son. And I am here among you in the flesh to make clear both of these ideas in my life and teachings.” “(하늘)나라의 이 하나님은 누구십니까?”라는 도마의 질문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희 아버지시며, 종교 – 내 복음 -는 너희가 그의 아들(자녀)이라는 진리를 믿음으로 인식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 그리고 나는 내 일생과 가르침으로 이 두 생각(관념)을 밝히려고 여기에 육체로 너희 가운데 있노라.”

141:4.3 (1590.6) Jesus also sought to free the minds of his apostles from the idea of offering animal sacrifices as a religious duty. But these men, trained in the religion of the daily sacrifice, were slow to comprehend what he meant. Nevertheless, the Master did not grow weary in his teaching. When he failed to reach the minds of all of the apostles by means of one illustration, he would restate his message and employ another type of parable for purposes of illumination. 예수님은 또한 종교적 의무로써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관념에서 사도들의 마음을 해방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러나 매일 희생제물을 드리는 종교로 훈련된 이 사람들은 그의 의미를 천천히 이해했습니다. 그래도 주(主)님은 가르치는데 지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실례로 사도들의 마음을 다 이해시키지 못하면, 그는 메시지를 새롭게 말하며, 깨닫게 하려고 다른 종류의 비유를 사용하곤 하셨습니다.

141:4.4 (1590.7) At this same time Jesus began to teach the twelve more fully concerning their mission “to comfort the afflicted and minister to the sick.” The Master taught them much about the whole man — the union of body, mind, and spirit to form the individual man or woman. Jesus told his associates about the three forms of affliction they would meet and went on to explain how they should minister to all who suffer the sorrows of human sickness. He taught them to recognize: 바로 이 때, 예수님은 12사도들에게 “고통 받는 자를 위로하며 병든 자를 보살피는”그들의 사명에 관해 더 많이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주(主)님은 그들에게 전인(全人) – 개인적 남녀를 형성하는 몸, 마음, 영의 연합 – 에 관해 많이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동료들에게 그들이 당면하게 될 세 가지 형태의 고통에 대해 말씀하셨고, 인간의 질병으로 슬픔을 겪는 모든 이들을 섬기는 방법을 계속 설명하셨습니다. 그는 다음을 헤아리도록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141:4.5 (1591.1) 1. Diseases of the flesh — those afflictions commonly regarded as physical sickness. 육신의 질병 – 보통 육체적 병으로 여긴 그런 고통들.

141:4.6 (1591.2) 2. Troubled minds — those nonphysical afflictions which were subsequently looked upon as emotional and mental difficulties and disturbances. 불안한 마음 – 나중에 감정적· 정신적 곤경과 장애로 여긴 그런 비육체적인 고통들.

141:4.7 (1591.3) 3. The possession of evil spirits.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힘.

141:4.8 (1591.4) Jesus explained to his apostles on several occasions the nature, and something concerning the origin, of these evil spirits, in that day often also called unclean spirits. The Master well knew the difference between the possession of evil spirits and insanity, but the apostles did not. Neither was it possible, in view of their limited knowledge of the early history of Urantia, for Jesus to undertake to make this matter fully understandable. But he many times said to them, alluding to these evil spirits: “They shall no more molest men when I shall have ascended to my Father in heaven, and after I shall have poured out my spirit upon all flesh in those times when the kingdom will come in great power and spiritual glory.”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그 당시 흔히 더러운 영들이라 불려진 이 악한 영들의 본성과 그 기원에 관한 어떤 것을 여러 번 설명하셨습니다. 주(主)님은 악한 영들에 사로잡히는 것과 정신병의 차이를 잘 알았지만 사도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구(유란시아)의 초기 역사에 대해 그들이 지닌 제한적 지식의 관점에서, 예수님이 이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 번 그들에게 이 악한 영들을 언급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 (하나님) 나라가 위대한 권능과 영적 영광으로 임하는 그 때에 내가 모든 육체에게 내 영을 부어준 후에는, 그들이 더 이상 사람들을 괴롭히지 못하리라.”

141:4.9 (1591.5) From week to week and from month to month, throughout this entire year, the apostles paid more and more attention to the healing ministry of the sick. 매주, 매월, 이 해(AD27) 내내, 사도들은 병든 자들의 치유 봉사에 더 많이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5. Spiritual Unity 영적 통일

181223 영적 통일(統一)과 획일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Make every effort to keep the unity of the Spirit through the bond of peace.

141:5.1 (1591.6) One of the most eventful of all the evening conferences at Amathus was the session having to do with the discussion of spiritual unity. James Zebedee had asked, “Master, how shall we learn to see alike and thereby enjoy more harmony among ourselves?” When Jesus heard this question, he was stirred within his spirit, so much so that he replied: “James, James, when did I teach you that you should all see alike? I have come into the world to proclaim spiritual liberty to the end that mortals may be empowered to live individual lives of originality and freedom before God. I do not desire that social harmony and fraternal peace shall be purchased by the sacrifice of free personality and spiritual originality. What I require of you, my apostles, is spirit unity — and that you can experience in the joy of your united dedication to the wholehearted doing of the will of my Father in heaven. You do not have to see alike or feel alike or even think alike in order spiritually to be alike. Spiritual unity is derived from the consciousness that each of you is indwelt, and increasingly dominated, by the spirit gift of the heavenly Father. Your apostolic harmony must grow out of the fact that the spirit hope of each of you is identical in origin, nature, and destiny. 아마투스에서 있었던 모든 회의들 중에서 가장 중대한 한 가지는 영적 통일(統一)의 논의와 관계된 회의였습니다. 야고보 세베대가 여쭈었습니다. “주(主)여, 저희가 똑같이 보고 그래서 저희들 사이에 더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 질문을 듣고 영 안에서 동요가 일어나 대답하셨습니다. “야고보야, 야고보야, 너희가 모두 똑같이 봐야 한다고 내가 언제 너희를 가르쳤느냐? 필사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독창성과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살게 하려는 목적으로 영적 자유를 선포하러 내가 세상에 왔노라. 자유로운 고유성과 영적 독창성을 희생해서 사회적 조화와 형제우애의 평화를 얻게 되기를 나는 바라지 않노라. 내가 너희, 내 사도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영 통일(統一)이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전심(全心)으로 행하는 너희의 연합된 헌신의 기쁨 안에서 너희가 영 통일을 체험할 수 있느니라. 영적으로 똑같기 위해, 너희는 똑같이 보거나 똑같이 느끼거나 똑같이 생각하지도 말아야만 하니라. 영적 통일(統一)은, 하늘 아버지의 영 선물이 너희 각자에게 내주하며 서서히 지배해 가는 의식에서 얻게 되니라. 너희의 사도적 조화는, 너희 각자에게 속한 영 소망의 기원, 본성 및 운명이 동일하다는 사실에서 생겨야만 하니라.

141:5.2 (1591.7) “In this way you may experience a perfected unity of spirit purpose and spirit understanding growing out of the mutual consciousness of the identity of each of your indwelling Paradise spirits; and you may enjoy all of this profound spiritual unity in the very face of the utmost diversity of your individual attitudes of intellectual thinking, temperamental feeling, and social conduct. Your personalities may be refreshingly diverse and markedly different, while your spiritual natures and spirit fruits of divine worship and brotherly love may be so unified that all who behold your lives will of a surety take cognizance of this spirit identity and soul unity; they will recognize that you have been with me and have thereby learned, and acceptably, how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You can achieve the unity of the service of God even while you render such service in accordance with the technique of your own original endowments of mind, body, and soul. “이렇게 너희는 각자에게 내주하는 천국 영들의 동일성을 서로 의식하면서 생긴 영 목적과 영 이해의 완성된 통일을 체험할 수도 있느니라. 지적 사고, 개성이 강한 느낌 및 사회적 행위에 속한 너희 개인적 태도가 지닌 극도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이 모든 심오한 영적 통일을 누릴 수 있느니라. 너희 고유성들은 보기 드물게 다양하고 뚜렷이 다른 반면에 너희의 영적 본성과 신적 경배와 형제의 사랑에 속한 영 열매들은 그토록 하나가 되어 너희의 삶을 바라보는 모든 자들은 이 영 동일성과 혼 통일을 확실히 깨닫게 되리라. 너희가 나와 함께 있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방법을 만족스럽게 배웠음을 그들이 알아보리라. 마음·몸·혼에 속한 너희 자신의 독창적 자질의 역량에 따라 너희가 그렇게 봉사해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한 봉사의 통일을 이룰 수 있느니라.”

141:5.3 (1592.1) “Your spirit unity implies two things, which always will be found to harmonize in the lives of individual believers: First, you are possessed with a common motive for life service; you all desire above everything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Second, you all have a common goal of existence; you all purpose to find the Father in heaven, thereby proving to the universe that you have become like him.” “너희의 영 통일은 두 가지를 의미하며, 그것들은 항상 신자들 개인의 생활에서 조화를 이루는 근거가 되리라. 첫째, 너희는 일생 봉사를 위한 공통적 동기를 갖게 되니라. 너희는 모두 모든 것 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 행하기를 바라느니라. 둘째, 너희는 모두 공통적 존재 목적을 가지느니라. 너희는 모두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찾고자 하여, 너희가 그와 같이 되었음을 우주에게 증명하느니라.”

141:5.4 (1592.2) Many times during the training of the twelve Jesus reverted to this theme. Repeatedly he told them it was not his desire that those who believed in him should become dogmatized and standardized in accordance with the religious interpretations of even good men. Again and again he warned his apostles against the formulation of creeds and the establishment of traditions as a means of guiding and controlling believers in the gospel of the kingdom. 그를 믿는 자들이, 심지어 선한 사람들의 종교적 해석을 따라, 독단적이 되거나 규격화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그는 반복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 안에서 신자들을 인도하고 조정하는 수단으로써 신조(信條)들의 형성과 전통의 설립에 반대하여 거듭 경고하셨습니다.

6. Last Week at Amathus 아마투스에서 마지막 주간(週間)

어둠을 몰아내는 진리 엡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Do not think that I have come to abolish the Law or the Prophets; I have not come to abolish them but to fulfill them.

141:6.1 (1592.3) Near the end of the last week at Amathus, Simon Zelotes brought to Jesus one Teherma, a Persian doing business at Damascus. Teherma had heard of Jesus and had come to Capernaum to see him, and there learning that Jesus had gone with his apostles down the Jordan on the way to Jerusalem, he set out to find him. Andrew had presented Teherma to Simon for instruction. Simon looked upon the Persian as a “fire worshiper,” although Teherma took great pains to explain that fire was only the visible symbol of the Pure and Holy One. After talking with Jesus, the Persian signified his intention of remaining for several days to hear the teaching and listen to the preaching. 아마투스에서 마지막 주말이 다가오자, 시몬 젤로떼는 다마스커스에서 사업하는 페르시아인 테헤르마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테헤르마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만나러 가버나움에 갔다가, 거기에서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요단강으로 내려가셨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 나섰습니다. 안드레는 테헤르마를 시몬에게 보내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불은 순결하며 거룩한 분을 가시(可視)적으로 상징일 뿐이라고 테헤르마가 열심히 설명했지만, 시몬은 그 페르시아인(人)을 “불 경배자”로 여겼습니다. 예수님과 대화 후 그 페르시아인(人)은 가르침을 받고 설교를 들으려고 며칠 머물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141:6.2 (1592.4) When Simon Zelotes and Jesus were alone, Simon asked the Master: “Why is it that I could not persuade him? Why did he so resist me and so readily lend an ear to you?” Jesus answered: “Simon, Simon, how many times have I instructed you to refrain from all efforts to take something out of the hearts of those who seek salvation? How often have I told you to labor only to put something into these hungry souls? Lead men into the kingdom, and the great and living truths of the kingdom will presently drive out all serious error. When you have presented to mortal man the good news that God is his Father, you can the easier persuade him that he is in reality a son of God. And having done that, you have brought the light of salvation to the one who sits in darkness. Simon, when the Son of Man came first to you, did he come denouncing Moses and the prophets and proclaiming a new and better way of life? No. I came not to take away that which you had from your forefathers but to show you the perfected vision of that which your fathers saw only in part. Go then, Simon, teaching and preaching the kingdom, and when you have a man safely and securely within the kingdom, then is the time, when such a one shall come to you with inquiries, to impart instruction having to do with the progressive advancement of the soul within the divine kingdom.” 시몬 젤로떼가 예수님과 따로 있을 때, 시몬은 주(主)님께 여쭈었습니다. “저는 왜 그를 설득시킬 수 없었는지요? 왜 그는 제게 그렇게 저항하고 당신에게는 그렇게 쉽게 귀를 기울였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구원받으려는 자들의 심정에서 뭔가를 제거(除去)하려는 모든 노력을 그만두라고 몇 번이나 가르쳤느냐 ? 이 굶주린 혼들에게 뭔가를 단지 넣도록 수고하라고 얼마나 자주 말했느냐?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라, 그러면 그 나라의 위대한 살아있는 진리들이 곧 모든 심각한 잘못을 몰아내리라. 네가 필사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라는 기쁜 소식을 제시하면, 그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너는 그를 더 쉽게 설득할 수 있느니라. 그렇게 하여 너는 어둠에 거하는 자를 구원의 빛으로 이끌게 되리라. 시몬아, 인자(人子)가 처음 너희에게 왔을 때, 그가 모세와 선지자들을 비난하면서 새롭고 개선된 생명의 길을 선포하였더냐? 아니라. 나는 너희 선조들에게서 받은 것들을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너의 조상들이 부분만 보았던 것의 완전한 모습을 너희에게 보여주려고 왔노라. 그러니 시몬아, 가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전도하라. 네가 사람을 안전하게 확실히 (하나님) 나라로 들여보내서, 그런 사람이 네게 와서 질문을 하게 되면, 그때가 신적 (하나님) 나라에서 혼의 진보적 전진에 관계된 가르침을 나눠줄 때이니라.”

141:6.3 (1592.5) Simon was astonished at these words, but he did as Jesus had instructed him, and Teherma, the Persian, was numbered among those who entered the kingdom. 시몬은 이 말씀들을 듣고 놀랐지만, 예수께서 그에게 지시한 대로 행하였고 페르시아인(人) 테헤르마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간 자들 가운데 들어갔습니다.

141:6.4 (1592.6) That night Jesus discoursed to the apostles on the new life in the kingdom. He said in part: “When you enter the kingdom, you are reborn. You cannot teach the deep things of the spirit to those who have been born only of the flesh; first see that men are born of the spirit before you seek to instruct them in the advanced ways of the spirit. Do not undertake to show men the beauties of the temple until you have first taken them into the temple. Introduce men to God and as the sons of God before you discourse on the doctrines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sonship of men. Do not strive with men — always be patient. It is not your kingdom; you are only ambassadors. Simply go forth proclaiming: This is the kingdom of heaven — God is your Father and you are his sons, and this good news, if you wholeheartedly believe it, is your eternal salvation.” 그 날 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삶에 대해 사도들에게 강연하셨습니다. 다음은 그 말씀의 일부입니다. “너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 너희가 거듭나느니라. 너희는 육신으로만 난 자들에게 영의 깊은 것들을 가르칠 수 없느니라. 너희가 그들에게 영의 진보된 길들로 가르치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사람들이 영으로 태어났는지를 살피라. 너희가 먼저 그들을 성전으로 데리고 간 다음에 비로소 사람들에게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이려고 하라. 하나님의 아버지되심과 사람의 자녀됨의 교리를 너희가 강연하기 전에, 사람들을 하나님께 하나님의 아들(자녀)들로 소개하라. 사람들과 겨루지 말라. 항상 인내하라. 그것은 너희의 나라가 아니라, 너희는 대사들일 뿐이라. 단지 나아가 선포하라. 이것이 하늘나라이니 – 하나님은 너의 아버지시며 너희는 그의 아들(자녀)들이라, 너희가 전심으로 믿으면 이 기쁜 소식이 너희의 영원한 구원이니라.”

141:6.5 (1593.1) The apostles made great progress during the sojourn at Amathus. But they were very much disappointed that Jesus would give them no suggestions about dealing with John’s disciples. Even in the important matter of baptism, all that Jesus said was: “John did indeed baptize with water, but when you enter the kingdom of heaven, you shall be baptized with the Spirit.” 아마투스에 머무는 동안 사도들은 크게 진보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을 다루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어떤 제안도 주지 않아서 그들은 매우 실망했습니다. 중요한 세례 문제까지도 예수님의 말씀은 다음이 전부였습니다. “요한은 정말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면, 너희는 영(靈)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7. At Bethany Beyond Jordan 요단강 건너 베다니에서

190106 우리의 길이신 예수님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141:7.1 (1593.2) On February 26, Jesus, his apostles, and a large group of followers journeyed down the Jordan to the ford near Bethany in Perea, the place where John first made proclamation of the coming kingdom. Jesus with his apostles remained here, teaching and preaching, for four weeks before they went on up to Jerusalem. 2월 26일에 예수님과 사도들 및 따르는 많은 무리가 요단강을 따라 내려가 페레아 지역의 베다니 근처 여울까지 여행했는데, 그곳은 요한이 처음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장소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여기에 남아서 4주 동안 가르치고 설교하셨습니다.

141:7.2 (1593.3) The second week of the sojourn at Bethany beyond Jordan, Jesus took Peter, James, and John into the hills across the river and south of Jericho for a three days’ rest. The Master taught these three many new and advanced truths about the kingdom of heaven. For the purpose of this record we will reorganize and classify these teachings as follows: 요단강 건너 베다니에 머물던 둘째 주간에,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강 건너 여리고 남쪽의 언덕으로 3일 동안 쉬러 가셨습니다. 주(主)님은 이 세 사도들에게 하늘나라에 대해 진보한 새 진리를 많이 가르치셨습니다. 이 기록의 목적으로 우리는 이 가르침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분류할 것입니다.

141:7.3 (1593.4) Jesus endeavored to make clear that he desired his disciples, having tasted of the good spirit realities of the kingdom, so to live in the world that men, by seeing their lives, would become kingdom conscious and hence be led to inquire of believers concerning the ways of the kingdom. All such sincere seekers for the truth are always glad to hear the glad tidings of the faith gift which insures admission to the kingdom with its eternal and divine spirit realities.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선한 영 실체들의 맛을 본 그의 제자들이 세상에서 살며, 그들의 삶을 본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인식하게 되어 (하늘)나라의 길에 대해 믿는 자들이 질문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이해시키려 애쓰셨습니다. 그런 모든 신실한 진리 탐구자들은 신앙 선물의 복음 듣기를 항상 기뻐하며, 그 신앙 선물은 영원한 신적 영 실체들과 함께 있는 (하늘)나라의 입국 허락을 보장합니다.

141:7.4 (1593.5) The Master sought to impress upon all teacher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that their only business was to reveal God to the individual man as his Father — to lead this individual man to become son-conscious; then to present this same man to God as his faith son. Both of these essential revelations are accomplished in Jesus. He became, indeed,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The religion of Jesus was wholly based on the living of his bestowal life on earth. When Jesus departed from this world, he left behind no books, laws, or other forms of human organization affecting the religious life of the individual. 주(主)님은 (하늘)나라 복음의 모든 교사들이 개인에게 하나님을 그의 아버지로 드러내어 그 개인이 아들(자녀)임을 알도록 이끈 후 동일한 이 사람을 하나님께 그의 신앙아들로 소개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과업임을 애써 강조하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 두 계시들 모두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는 진실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셨습니다. 예수의 종교는 지상에 증여한 그의 인생의 삶에 전적으로 근거를 둡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개인의 종교적 삶에 영향을 주는 어떤 책이나 법 또는 다른 형태의 인간 조직을 뒤에 남기지 않았습니다.

141:7.5 (1593.6) Jesus made it plain that he had come to establish personal and eternal relations with men which should forever take precedence over all other human relationships. And he emphasized that this intimate spiritual fellowship was to be extended to all men of all ages and of all social conditions among all peoples. The only reward which he held out for his children was: in this world — spiritual joy and divine communion; in the next world — eternal life in the progress of the divine spirit realities of the Paradise Father. 예수님은 사람들과 고유적이며 영원한 관계들을 맺으려고 오셨으며 이것은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 언제나 우선해야만 한다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친밀한 영적 친교가 모든 사람 중에서 모든 시대 및 모든 사회적 신분을 지닌 모든 사람들에게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가 자기 자녀들에게 주셨던 유일한 보답(報答)은: 이 세상에서 영적 기쁨과 신적 친교이며, 다음 세상에서 천국 아버지의 신적 영 실체들로 진보하는 영생이었습니다.

190113 신앙으로 구원을 얻는 진리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141:7.6 (1593.7) Jesus laid great emphasis upon what he called the two truths of first import in the teachings of the kingdom, and they are: the attainment of salvation by faith, and faith alone, associated with the revolutionary teaching of the attainment of human liberty through the sincere recognition of truth, “You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Jesus was the truth made manifest in the flesh, and he promised to send his Spirit of Truth into the hearts of all his children after his return to the Father in heaven.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가르침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두 가지 진리를 크게 강조하셨는데, 그것들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진리를 신실하게 인식하여 인간이 해방에 이른다는 혁명적 가르침과 관련한 신앙으로, 오직 신앙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나타난 진리였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자신이 돌아간 후 모든 자기 자녀들의 심정에 자기 진리의 영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41:7.7 (1594.1) The Master was teaching these apostles the essentials of truth for an entire age on earth. They often listened to his teachings when in reality what he said was intended for the inspiration and edification of other worlds. He exemplified a new and original plan of life. From the human standpoint he was indeed a Jew, but he lived his life for all the world as a mortal of the realm. 주(主)님은 이 사도들에게 지상의 모든 세대를 위한 진리의 본질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자주 그의 가르침을 경청했으며, 그의 말씀은 실제로 다른 세상들에게 영감(靈感)을 주고 교화(敎化)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는 새롭게 인생의 원안(原案본래 계획)을 구현하셨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그는 참으로 유대인이었지만, 그는 영역의 필사자로서 모든 세상을 위한 일생을 사셨습니다.

141:7.8 (1594.2) To insure the recognition of his Father in the unfolding of the plan of the kingdom, Jesus explained that he had purposely ignored the “great men of earth.” He began his work with the poor, the very class which had been so neglected by most of the evolutionary religions of preceding times. He despised no man; his plan was world-wide, even universal. He was so bold and emphatic in these announcements that even Peter, James, and John were tempted to think he might possibly be beside himself. (하늘)나라의 계획을 펼쳐서 그의 아버지를 확실히 인식하도록, 예수님은 “지상의 위대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전 시대에 대부분의 진화종교들이 무시했던 바로 그 가난한 계층과 함께 그의 과업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도 경멸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계획은 세계적이었고, 심지어 우주적이었습니다. 그가 이 선언을 담대히 강조하자, 심지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그가 아마 흥분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41:7.9 (1594.3) He sought mildly to impart to these apostles the truth that he had come on this bestowal mission, not to set an example for a few earth creatures, but to establish and demonstrate a standard of human life for all peoples upon all worlds throughout his entire universe. And this standard approached the highest perfection, even the final goodness of the Universal Father. But the apostles could not grasp the meaning of his words. 그는, 소수의 지상 창조물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전(全) 우주에 있는 온 세상 만민을 위해 인생의 표준을 세우고 드러내려고, 이 증여 사명을 위해 오셨다는 진리를 이 사도들에게 조심스럽게 알리려고 애쓰셨습니다. 그리고 이 표준은 최고의 완전성, 즉 우주 아버지의 최종 선()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의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141:7.10 (1594.4) He announced that he had come to function as a teacher, a teacher sent from heaven to present spiritual truth to the material mind. And this is exactly what he did; he was a teacher, not a preacher. From the human viewpoint Peter was a much more effective preacher than Jesus. Jesus’ preaching was so effective because of his unique personality, not so much because of compelling oratory or emotional appeal. Jesus spoke directly to men’s souls. He was a teacher of man’s spirit, but through the mind. He lived with men. 그는 교사, 물질 마음에 영적 진리를 드러내려고 하늘에서 파견된 교사로서 활동하려고 오셨다고 발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가 하신 것입니다. 그는 교사였지 설교자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베드로가 예수님보다 훨씬 더 유능한 설교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아주 효과적이었는데, 흥미로운 웅변술이나 감정적 매력 때문이 아니라, 그의 독특한 고유성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혼들에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마음을 통해서 가르치는 사람 영의 교사였습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190120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신 예수님 요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For I have come down from heaven not to do my will but 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141:7.11 (1594.5) It was on this occasion that Jesus intimated to Peter, James, and John that his work on earth was in some respects to be limited by the commission of his “associate on high,” referring to the prebestowal instructions of his Paradise brother, Immanuel. He told them that he had come to do his Father’s will and only his Father’s will. Being thus motivated by a wholehearted singleness of purpose, he was not anxiously bothered by the evil in the world. 예수님은 증여 이전에 자신의 천국 형(兄) 임마누엘의 지시를 언급하면서, 지상에서 자신의 과업이 어떤 면에서 “높은 곳에 있는 동료”의 명령으로 제한된다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이때 공표(公表)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자기 아버지의 뜻, 오직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진정한 전심(專心)으로 자극받았기 때문에, 그는 세상의 악으로 걱정스럽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141:7.12 (1594.6) The apostles were beginning to recognize the unaffected friendliness of Jesus. Though the Master was easy of approach, he always lived independent of, and above, all human beings. Not for one moment was he ever dominated by any purely mortal influence or subject to frail human judgment. He paid no attention to public opinion, and he was uninfluenced by praise. He seldom paused to correct misunderstandings or to resent misrepresentation. He never asked any man for advice; he never made requests for prayers. 사도들은 예수님의 변하지 않는 우정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주(主)님은 가까이하기 쉬웠지만, 그는 항상 모든 인간과 관계없이 초월해서 사셨습니다. 한순간도 그는 완전히 인간의 영향력이나 연약한 인간적 판단에 지배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칭찬으로 영향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해를 바로잡거나 허위 진술에 분개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결코 누구에게도 조언을 구하지 않았고, 기도를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141:7.13 (1594.7) James was astonished at how Jesus seemed to see the end from the beginning. The Master rarely appeared to be surprised. He was never excited, vexed, or disconcerted. He never apologized to any man. He was at times saddened, but never discouraged. 예수께서 시작점에서 마지막을 보는 것으로 여겨져 야고보는 깜짝 놀랐습니다. 주(主)님은 놀라는 일이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그는 결코 흥분하거나 짜증 내거나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코 어떤 사람에게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때때로 슬퍼했지만, 절대로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141:7.14 (1594.8) More clearly John recognized that, notwithstanding all of his divine endowments, after all, he was human. Jesus lived as a man among men and understood, loved, and knew how to manage men. In his personal life he was so human, and yet so faultless. And he was always unselfish. 그의 모든 신적 자질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수께서 인간이었음을 요한은 더욱 분명히 알아보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 사이에서 사람으로 사셨고, 이해했으며, 사랑했고, 또한 그들을 다룰 줄 아셨습니다. 사(私)생활에서 그는 아주 인간적이었지만 흠이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사심(私心)이 없었습니다.

141:7.15 (1595.1) Although Peter, James, and John could not understand very much of what Jesus said on this occasion, his gracious words lingered in their hearts, and after the crucifixion and resurrection they came forth greatly to enrich and gladden their subsequent ministry. No wonder these apostles did not fully comprehend the Master’s words, for he was projecting to them the plan of a new age.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이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많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은혜로운 말씀들은 그들의 심정에 오래 남았으며, 십자가 처형과 부활 후에 그것들이 솟구쳐 훗날 그들의 사역을 매우 풍성하고 기쁘게 했습니다. 이 사도들이 주(主)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데, 그가 새 시대의 계획을 소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8. Working in Jericho 여리고에서 활동함

141:8.1 (1595.2) Throughout the four weeks’ sojourn at Bethany beyond Jordan, several times each week Andrew would assign apostolic couples to go up to Jericho for a day or two. John had many believers in Jericho, and the majority of them welcomed the more advanced teachings of Jesus and his apostles. On these Jericho visits the apostles began more specifically to carry out Jesus’ instructions to minister to the sick; they visited every house in the city and sought to comfort every afflicted person. 요단강 건너 베다니에서 4주간 머무는 내내, 안드레는 매주 몇 번씩 사도들을 두 명씩 하루나 이틀 동안 여리고에 올라가도록 배치하곤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여리고에 많은 신자들이 있었고, 그 대다수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더 진보한 가르침들을 환영했습니다. 이 여리고 방문에서 사도들은 병든 자들을 보살피라는 예수님의 지시를 더 분명하게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 도시의 모든 집들을 방문하면서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애썼습니다.

141:8.2 (1595.3) The apostles did some public work in Jericho, but their efforts were chiefly of a more quiet and personal nature. They now made the discovery that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was very comforting to the sick; that their message carried healing for the afflicted. And it was in Jericho that Jesus’ commission to the twelve to preach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and minister to the afflicted was first fully carried into effect. 사도들은 여리고에서 어느 정도 대중 활동을 했지만 주로 더 조용히 개인적 종류의 운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늘)나라의 복음이 병자들에게 매우 위로가 되고, 자기들의 메시지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치유를 가져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고통 받는 자들을 보살피라고 12사도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명령이 여리고에서 처음으로 충분히 실행되었습니다.

141:8.3 (1595.4) They stopped in Jericho on the way up to Jerusalem and were overtaken by a delegation from Mesopotamia that had come to confer with Jesus. The apostles had planned to spend but a day here, but when these truth seekers from the East arrived, Jesus spent three days with them, and they returned to their various homes along the Euphrates happy in the knowledge of the new truths of the kingdom of heaven.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도중에 여리고에서 멈추었으며, 예수님과 의논하려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대표단(代表團)이 그들을 따라잡았습니다. 사도들은 여기에서 하루만 보낼 계획이었지만 진리를 찾는 이 사람들이 동쪽에서 도착하자 예수님은 그들과 3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나라의 새 진리를 알고 행복하게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그들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9. Departing for Jerusalem 예루살렘으로 출발

141:9.1 (1595.5) On Monday, the last day of March, Jesus and the apostles began their journey up the hills toward Jerusalem. Lazarus of Bethany had been down to the Jordan twice to see Jesus, and every arrangement had been made for the Master and his apostles to make their headquarters with Lazarus and his sisters at Bethany as long as they might desire to stay in Jerusalem. 3월의 마지막 날 월요일(AD 27년 3월 31일)에, 예수님과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언덕으로 오르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베다니의 나사로는 예수님을 만나러 요단에 두 번 내려 왔었고, 주(主)님과 그의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머물기를 바라는 한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과 함께 베다니에 그들의 본부를 두도록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141:9.2 (1595.6) The disciples of John remained at Bethany beyond the Jordan, teaching and baptizing the multitudes, so that Jesus was accompanied only by the twelve when he arrived at Lazarus’s home. Here Jesus and the apostles tarried for five days, resting and refreshing themselves before going on to Jerusalem for the Passover. It was a great event in the lives of Martha and Mary to have the Master and his apostles in the home of their brother, where they could minister to their needs. 요한의 제자들은 요단강 건너 베다니에 남아서 군중들을 가르치며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12사도들만 데리고 나사로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가기 전에 5일 동안 머물면서 쉬며 기운을 회복했습니다. 주(主)님과 사도들을 형제의 집에 모시면서 그들의 필요를 보살필 수 있었던 것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생애에서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141:9.3 (1595.7) On Sunday morning, April 6, Jesus and the apostles went down to Jerusalem; and this was the first time the Master and all of the twelve had been there together. 4월 6일 일요일(AD 27) 아침에 예수님과 사도들은 예루살렘으로 내려갔으며; 주(主)님과 모든 12사도가 함께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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