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mas

지구

지역 우주 네바돈의 성지(聖地)

1천만 세계의 수석(首席)

그리스도 미가엘의 필사자 고향

재림이 약속된 십자가의 세계

 

영원 아들

하보나 7 회로에 직접 7번 증여(천국 아들들의 본래 속성)

자신의 대표자들 즉 미가엘 및 아보날 계층을 통해 지역 우주에 자신 증여

 

그리스도 미가엘

영원 아들이 611,121번째 증여된 분(/70만 지역 우주 창조자)

창조자 아들, 경영자 교육, 실행자 훈련, 체험적 주권 획득 임무

4천억 년 전에 지역 우주 네바돈 조직 시작
증여 임무 : 지역 우주에서 최극의 주권을 얻는 교육 훈련 과정

최극의 의미

천국 신(神)의 7 단계 뜻과 시공간 창조물의 관점 통합

삼위일체 일곱 주(主) 영의 계시를 체험하여 최극자의 주권에 참여.

 

예수님의 증여 (이 성육신成肉身한 신비)

10억 년 전 시작하여 1억 5천만년 간격으로 증여 발생.

마지막 7번째 증여(2025년 전) – 아담의 채무불이행 직후 3만 5천년 이전에 결정

7번 증여 완성으로 천국 삼위일체의 최극 대표자 가능

 

그리스도 미가엘

전(全) 지역 우주 네바돈 주권자

1 멜기세덱 사역자 – 멜기세덱 증여(아버지-아들-영의 연합된 뜻)

2 체계 구원자 – 라노난덱 증여(아버지-아들의 뜻)

3 아담적 구세주 – 물질 아들 아담 증여(아버지-영의 뜻)

4 세라핌 천사 동료 – 세라핌 천사 증여(아들-영의 뜻)

5 상승 영들의 동료 – 유버르사 필사자 증여(공동 행위자 무한 영의 뜻)

6 모론시아 진보자 – 모론시아 필사자 증여(영원 아들의 뜻)

7 필사자 육신과 같은 사람의 아들 – 지구 물질 혈육 필사자 증여(우주 아버지의 뜻)

유란시아의 행성 왕자

 

7번째 증여의 목적

계시 향상자, 즉 아버지 하나님 계시

 

증여의 결과

최극자의 계시를 경험한 칠중 주(主) 아들 신분

궁극 삼위일체의 구성 멤버

외부 우주 공간에서 제1 체험적 삼위일체의 최극 존재와 협력 예정

 

상승의 결과

진리의 영을 부어서 생각 조율자의 사역 가능.

우리의 모델이 아니라 영감(靈感)의 성육신(成肉身) 일생.

보호된 글: 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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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7 Personalities of the Local Universe 개요37편 지역 우주의 고유성들

S37 Personalities of the Local Universe 개요37편 지역 우주의 고유성들

37:0.2 (406.2) Preceding papers have dealt with the created orders of sonship; succeeding narratives will portray the ministering spirits and the ascending orders of sonship. This paper is chiefly concerned with an intervening group, the Universe Aids, but it will also give brief consideration to certain of the higher spirits stationed in Nebadon and to certain of the orders of permanent citizenship in the local universe. 이전의 문서들은 창조된 아들 계열을 다루었습니다. 계속되는 이야기들은 보살피는 영(靈)들과 아들 된 상승 계열을 묘사할 것입니다. 이 문서는 주로 두 사이에 개재된 집단, 우주 조력자들에 관련되지만, 네바돈에 배치된 어떤 고등 영(靈)들과 지역 우주의 어떤 영구 시민권 계열들도 짧게 고찰할 것입니다.

  1. The Universe Aids 우주 조력자들

37:1.2 (406.4) 1. Bright and Morning Stars. 광명한 새벽별들.

37:1.3 (406.5) 2. Brilliant Evening Stars. 찬란한 저녁별들.

37:1.4 (406.6) 3. Archangels. 천사장들.

37:1.5 (406.7) 4. Most High Assistants. 지고 보좌관들

37:1.6 (406.8) 5. High Commissioners. 고등 판무관(辦務官 보호국·식민지에 파견되어 정치·외교 따위의 사무를 처리하는 관리)들.

37:1.7 (406.9) 6. Celestial Overseers. 천상의 시찰(視察)자들.

37:1.8 (406.10) 7. Mansion World Teachers. 저택 세계 교사들.

37:1.9 (406.11) The Bright and Morning Star of our universe is known as Gabriel of Salvington. 우리 우주의 광명한 새벽별은 샐빙톤의 가브리엘로 알려져 있습니다. 37:1.10 (406.12) As the universe grew and administrative problems multiplied, he was provided with a personal staff of unrevealed assistants, and eventually this group was augmented by the creation of the Nebadon corps of Evening Stars. 우주가 성장하고 행정 업무가 늘어나면서, 그에게 미(未)계시 보좌관들에 속한 개인 참모가 준비되었고, 결국, 이 집단은 저녁별들의 네바돈 단(團)의 창조로 늘어났습니다.

  1. The Brilliant Evening Stars 찬란한 저녁별들

37:2.1 (407.1) They serve in many capacities but chiefly as liaison officers of Gabriel, the local universe chief executive. 그들은 여러 능력이 있지만 주로 지역 우주 수석 실행자 가브리엘의 연락 장교로 섬깁니다. 37:2.3 (407.3) Though personally occupied with administrative duties, Gabriel maintains contact with all other phases of universe life and affairs through the Brilliant Evening Stars. 개인적으로 경영 직책에 종사하지만, 가브리엘은 찬란한 저녁별들을 통해 다른 모든 단계의 우주 생활과 업무들과 접촉을 유지합니다. 37:2.4 (407.4) The Brilliant Evening Stars are a unique twofold order, embracing some of created dignity and others of attained service. 찬란한 저녁별들은 일부의 창조된 존엄층과 봉사로 도달하는 나머지 계층을 포함하는, 독특한 2중 계층입니다.

37:2.5 (407.5) Both types of Brilliant Evening Stars are easily visible to morontia personalities and certain types of supermortal material beings. 찬란한 저녁별의 두 유형은 모론시아 고유성들과 어떤 유형의 초(超)필사 물질 존재들에게 쉽게 보입니다. 37:2.6 (407.6) The head of these superangels is Gavalia, the first-born of this order in Nebadon. Galantia is the first of the ascendant superangels to attain this high estate. 이들 초(超)천사들의 수석은 네바돈의 이 계층에서 처음 태어난 가발리아입니다. 갈란시아는 이 높은 신분에 도달한 상승 초(超)천사 중 첫째입니다. 37:2.7 (407.7) No grouping or company organization of the Brilliant Evening Stars exists other than their customary association in pairs on many assignments. 찬란한 저녁별들의 집단화 또는 단체 조직은, 여러 임무에 통상 쌍으로 결합하는 이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37:2.8 (407.8) One of the high duties of the Evening Stars is to accompany the Avonal bestowal Sons on their planetary missions, even as Gabriel accompanied Michael on his Urantia bestowal. 저녁별들의 높은 임무 중 하나는, 가브리엘이 미가엘의 유란시아 증여에 그와 함께 갔듯이, 아보날 증여 아들들의 행성 사명에 함께 가는 것입니다. 37:2.9 (408.1) Similar pairs of these superangels are assigned to the planetary corps of Trinity Teacher Sons that functions to establish the postbestowal or dawning spiritual age of an inhabited world. 비슷한 이런 초(超)천사 쌍들은, 거주 세계의 증여 이후(以後) 혹은 영적 여명(黎明) 시대를 확립하려고 활동하는,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의 행성 단(團)에 배정됩니다. 37:2.10 (408.2) The Worlds of the Evening Stars. The sixth group of seven Salvington worlds and their forty-two tributary satellites are assigned to the administration of the Brilliant Evening Stars. 저녁별들의 세계들. 일곱 샐빙톤 세계의 여섯째 집단과 그것들의 42 종속 위성들은 찬란한 저녁별들의 경영에 할당되어 있습니다.

  1. The Archangels 천사장들

37:3.1 (408.4) Archangels are the offspring of the Creator Son and the Universe Mother Spirit. 천사장들은 창조주 아들과 우주 어머니 영(靈)의 자손입니다. 37:3.2 (408.5) Archangels are one of the few groups of local universe personalities who are not normally under the jurisdiction of Gabriel. 천사장들은 보통 가브리엘의 관할권에 없는 지역 우주 고유성들 중 소수 집단 중 하나입니다. 37:3.3 (408.6) The archangel corps of Nebadon is directed by the first-born of this order, and in more recent times a divisional headquarters of the archangels has been maintained on Urantia. 이 계열의 첫 태생이 네바돈의 천사장단(團)을 관리하며, 최근에 천사장의 분과 본부가 유란시아에 유지되었습니다.

37:3.4 (409.1) Do you grasp the significance of the fact that your lowly and confused planet has become a divisional headquarters for the universe administration and direction of certain archangel activities having to do with the Paradise ascension scheme? This undoubtedly presages the future concentration of other ascendant activities on the bestowal world of Michael and lends a tremendous and solemn import to the Master’s personal promise, “I will come again.” 너희는, 너희의 초라하고 혼란스러워하는 행성이 우주 경영과 천국 상승 기획에 관련된 어떤 천사장 활동의 관리를 위한 분과 본부가 되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파악합니까? 이것은 확실히, 미가엘의 증여 세계에서 다른 상승 활동에 속한 미래 집결의 전조(前兆)가 되며, “내가 다시 오리라.”는 주(主)님의 직접적 약속에 굉장히 엄연한 중요성을 제공합니다.

37:3.5 (409.2) In general, the archangels are assigned to the service and ministry of the Avonal order of sonship, but not until they have passed through extensive preliminary training in all phases of the work of the various ministering spirits. 대개 천사장들은, 아들된 아보날 계열의 섬김과 돌봄에 배치되지만, 그들이 다양하게 보살피는 영(靈)들의 모든 과업 단계에서 다방면의 예비 훈련을 통과할 때까지 배정받지 못합니다. 37:3.6 (409.3) Two senior archangels are always assigned as the personal aids of a Paradise Avonal on all planetary missions, whether involving judicial actions, magisterial missions, or bestowal incarnations. 천사장들 선임 2명이, 사법 활동, 치안 사명 혹은 증여 성육신을 포함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모든 행성 임무에서 천국 아보날의 개인적 조력자들로 언제나 배정됩니다.

37:3.7 (409.4) The Worlds of the Archangels. The seventh group of the encircling Salvington worlds, with their associated satellites, is assigned to the archangels. 천사장들의 세계들. 샐빙톤 세계들을 둘러싸는 일곱째 집단은, 관련된 그들의 위성들과 함께, 천사장들에게 배정됩니다. 37:3.8 (409.5) It is on these worlds that personality records and identification sureties are classified, filed, and preserved during that time which intervenes between mortal death and the hour of repersonalization, the resurrection from death. 이런 세계들에서, 필사자 죽음과 재(再)고유성화, 죽음에서 부활하는 시간 사이에 일어나는 그런 시간 동안, 고유성 기록들과 신분 증명 보증이 분류되고, 정리되어, 보존됩니다.

  1. Most High Assistants 지고(至高)보좌관들

37:4.1 (409.6) The Most High Assistants are a group of volunteering beings, of origin outside the local universe, who are temporarily assigned as central and superuniverse representatives to, or observers of, the local creations. 지고(至高)보좌관들은 지역 우주 밖에서 기원한, 자원(自願)하는 존재 집단이며, 지역 창조계에, 중앙 및 초우주 대표자들로서 혹은 지역 창조계의 관찰자들로서 임시로 배정되었습니다.

37:4.2 (409.7) From time to time we thus benefit from the ministry and assistance of such Paradise-origin beings as Perfectors of Wisdom, Divine Counselors, Universal Censors, Inspired Trinity Spirits, Trinitized Sons, Solitary Messengers, supernaphim, seconaphim, tertiaphim, and other gracious ministers, who sojourn with us for the purpose of helping our native personalities in the effort to bring all Nebadon into fuller harmony with the ideas of Orvonton and the ideals of Paradise. 때때로 우리는 모든 네바돈을 오르본톤의 관념들 및 천국의 이상(理想)들과 최대한 더 조화되도록, 우리의 토착 고유성들을 위해, 우리와 함께 머무는 지혜의 완전자들, 신적 조언자들, 우주 검열자들, 영감받은 삼위일체 영(靈)들, 삼위일체화 아들들, 단독 메신저들, 초천사들, 2품천사들, 3품천사들 및 다른 은혜로운 사역자들과 같은 그런 천국 기원 존재들의 보살핌과 지원으로 이렇게 혜택을 입습니다.

37:4.3 (410.1) Any of these beings may be voluntarily serving in Nebadon and hence be technically outside our jurisdiction, but when functioning by assignment, such personalities of the super- and central universes are not wholly exempt from the regulations of the local universe of their sojourn, though they continue to function as representatives of the higher universes and to work in accordance with the instructions which constitute their mission in our realm. 이런 존재 중 누구나 네바돈에서 자원하여 섬길 수 있어서, 기술적으로 우리 권한 밖에 있지만, 배정받아 활동할 때, 초우주 및 중앙 우주의 그런 고유성들은, 더 높은 우주의 대표자들로서 활동과 우주 영역에서 그들의 사명을 이루는 지시에 따른 일을 지속해도, 자신들이 머무는 지역 우주의 규정에서 완전히 면제되지 않습니다.

37:4.4 (410.2) Most High Assistants serve in local universe and in constellation capacities but are not directly attached to the system or planetary governments. 지고(至高)보좌관들은 지역 우주와 성좌에서 자격을 가지고 섬기지만, 체계나 행성 정부에 직접 소속되지 않습니다. 37:4.5 (410.3) Most of this corps is enlisted in assisting the Nebadon Paradise personalities — the Union of Days, the Creator Son, the Faithfuls of Days, the Magisterial Sons, and the Trinity Teacher Sons. 대부분의 이 집단은 네바돈 천국 고유성들-연합으로 늘 계신 이, 창조자 아들, 충심으로 늘 계신 이, 치안 아들들 및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을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지원합니다.

  1. High Commissioners 고등 판무관(辦務官)들

37:5.1 (410.4) The High Commissioners are Spirit-fused ascendant mortals. 고등 판무관(辦務官)들은 영(靈)-융합 상승 필사자들입니다. 37:5.2 (410.5) Surviving souls of this order attain immortality by eternal fusion with an individualized fragment of the spirit of the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이런 계열의 생존 혼(魂)들은 지역 우주 어머니 영(靈)의 개인화 영(靈) 분신과 영원히 융합하여 불멸에 이릅니다.

37:5.3 (411.1) Not being Adjuster fused, they never become finaliters, but they do eventually become enrolled in the local universe Corps of Perfection. They have in spirit obeyed the Father’s command, “Be you perfect.” 그들은 조율자와 융합되지 않아서 결코 최종자들이 되지 않으나, 그들은 결국 지역 우주에서 완전단(團)에 등록됩니다. 그들은 “너희는 완전하라.”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영(靈)으로 순종했습니다. 37:5.4 (411.2) After attaining the Nebadon Corps of Perfection, Spirit-fused ascenders may accept assignment as Universe Aids, this being one of the avenues of continuing experiential growth which is open to them. 네바돈 완전단(團)에 이른 후, 영(靈)-융합 상승자들은 우주 조력자들로서 임무를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은 자신들에게 열린, 계속된 체험 성장의 수단 중 하나입니다.

37:5.5 (411.3) The High Commissioners begin their service on the planets as race commissioners. 고등 판무관(辦務官)들은 종족 판무관(辦務官)들로서 행성들에서 근무를 시작합니다. 37:5.6 (411.4) After long experience in problem solving on the inhabited worlds, these race commissioners are advanced to the higher levels of function, eventually attaining the status of High Commissioners of and in the local universe. 거주 세계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오랜 체험 후, 이런 종족 판무관(辦務官)들은 더 높은 수준의 활동으로 전진하여 결국 지역 우주에 있는 지역 우주의 고등 판무관(辦務官)들의 자격에 도달합니다.

37:5.7 (411.5) We invariably find these commissioners in all the tribunals of justice, from the lowest to the highest. 우리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모든 사법 재판소에서, 항상 이런 판무관(辦務官)들을 발견합니다. 37:5.8 (411.6) High Commissioners are attached to the various messenger hosts of space and always to the ministering spirits of time. 고등 판무관(辦務官)들은 다양한 공간의 메신저 무리와 언제나 시간 안에서 보살피는 영(靈)들에게 언제나 소속됩니다. 37:5.9 (411.7) Whenever fairness and justice require an understanding of how a contemplated policy or procedure would affect the evolutionary races of time, these commissioners are at hand to present their recommendations. 공정(公正)과 정의(正義)로 인해, 생각하고 헤아려 본 정책이나 절차가 시간의 진화 종족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이런 판무관(辦務官)들은 언제든지 자신들의 권고를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37:5.10 (411.8) The Worlds of the Spirit-fused Mortals. The eighth group of seven primary worlds and tributary satellites in the Salvington circuit are the exclusive possession of the Spirit-fused mortals of Nebadon. 영(靈)-융합 필사자들의 세계들. 샐빙톤 회로의 일곱 1차 세계들의 8번째 집단과 종속 위성들은 네바돈의 영(靈)-융합 필사자들이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37:5.11 (411.9) Except for those few who attain Uversa and Paradise, these worlds are the permanent residence of the Spirit-fused survivors. 유버르사와 천국에 이르는 그런 소수(小數)를 제외하고, 이런 세계들은 영(靈)-융합 생존자들의 영구 거주지입니다.

  1. Celestial Overseers 천상의 시찰(視察)자들

37:6.1 (412.1) The Nebadon educational system is jointly administered by the Trinity Teacher Sons and the Melchizedek teaching corps, but much of the work designed to effect its maintenance and upbuilding is carried on by the Celestial Overseers.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과 멜기세덱 교수단(團)이 네바돈 교육 체계를 공동으로 운영하지만, 천상의 시찰(視察)자들이 그것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대부분의 과업을 수행합니다.

37:6.2 (412.2) This training of mind and education of spirit is carried on from the worlds of human origin up through the system mansion worlds and the other spheres of progress associated with Jerusem, on the seventy socializing realms attached to Edentia, and on the four hundred and ninety spheres of spirit progress encircling Salvington. 이런 마음 훈련과 영(靈) 교육은 인간이 기원한 세계들부터 체계 저택 세계들과 예루셈과 관련된 다른 진보 구체들까지, 에덴시아에 속한 70 사회화 영역들과 샐빙톤을 에워싸는, 영(靈) 진보에 속한 490 구체들에서, 수행됩니다. 37:6.3 (412.3) The methods employed in many of the higher schools are beyond the human concept of the art of teaching truth, but this is the keynote of the whole educational system. 여러 고등학교에서 사용된 방법들은 진리 교수법에 속한 인간적 개념을 초월하지만, 모든 교육 체계의 기본방침은, 진보한(영적 통찰력) 체험으로 획득된 성품(性品)이라는, 이것입니다.

37:6.4 (412.4) Fundamentally, the Nebadon educational system provides for your assignment to a task and then affords you opportunity to receive instruction as to the ideal and divine method of best performing that task. 기본적으로 네바돈 교육 체계는 과업에 대해 너희 임무를 고려한 후, 너희에게 그 과업을 최선으로 수행할 이상적(理想的)이며 신적인 방법에 관해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합니다. 37:6.5 (412.5) The purpose of all this training and experience is to prepare you for admission to the higher and more spiritual training spheres of the superuniverse. 이런 모든 훈련과 체험의 목적은 초우주의 더 높고 더 영적인 훈련 구체들에 들어가도록 너희를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37:6.6 (412.6) The progression of eternity does not consist solely in spiritual development. Intellectual acquisition is also a part of universal education. 영원의 진보는 영적 발전만이 아닙니다. 지적 습득도 우주 교육의 일부입니다.37:6.7 (413.1) Before leaving the universe of Nebadon, most Urantia mortals will be afforded opportunity to serve for a longer or shorter time as members of the Nebadon corps of Celestial Overseers. 네바돈 우주를 떠나기 전에, 대부분의 유란시아 필사자들은 천상의 시찰(視察)자들로 구성된 네바돈단(團)의 회원으로서, 장·단기간에 섬길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1. Mansion World Teachers 저택 세계 교사들

37:7.1 (413.2) The Mansion World Teachers are recruited and glorified cherubim. Like most other instructors in Nebadon they are commissioned by the Melchizedeks. They function in most of the educational enterprises of the morontia life, and their number is quite beyond the comprehension of mortal mind. 저택 세계 교사들은 모집된, 영화(榮化) 케루빔 천사들입니다. 네바돈에 있는 대부분의 다른 교관처럼 멜기세덱들이 그들을 임명합니다. 그들은 모론시아 생활에 속한 대부분의 교육 기획에서 활동하며, 그들의 수(數)는 필사 마음의 이해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37:7.2 (413.3) As an attainment level of cherubim and sanobim, the Mansion World Teachers will receive further consideration in the next paper, while as teachers playing an important part in the morontia life, they will be more extensively discussed in the paper of that name. 케루빔 천사와 사노빔 천사들이 도달한 수준으로서, 저택 세계 교사들은 다음 편에서 추가 고려를 받을 것이며, 게다가, 모론시아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사들로서, 그들은 그 명칭에 속한 편에서 더 넓게 논의될 것입니다.

  1. Higher Spirit Orders of Assignment 임명된 고등 영(靈) 계층들

37:8.1 (413.4) Besides the power centers and the physical controllers, certain of the higher-origin spirit beings of the family of the Infinite Spirit are of permanent assignment to the local universe. 동력 중심들과 물리 조정자들 외에, 무한 영(靈)의 가족에 속한 어떤 고등-기원 영(靈) 존재들이 지역 우주에 영구히 배치됩니다. 37:8.2 (413.5) The Solitary Messengers, when functionally attached to the local universe administration, render invaluable service to us in our efforts to overcome the handicaps of time and space. 단독 메신저들이 지역 우주 경영에 기능적으로 배속되면, 우리가 시간과 공간의 장애를 극복하려고 애쓸 때, 매우 귀중한 봉사를 합니다.

37:8.3 (413.6) Andovontia is the name of the tertiary Universe Circuit Supervisor stationed in our local universe. 안도본시아는 우리 지역 우주에 배치된 3차 우주 회로 감독자의 이름입니다. 37:8.4 (413.7) The Nebadon Census Director, Salsatia, maintains headquarters within the Gabriel sector of Salvington. 네바돈 인구조사 관리자, 살사시아는 샐빙톤의 가브리엘 구역 내에 본부를 유지합니다. 37:8.5 (413.8) An Associate Inspector is resident on Salvington. 부(副) 조사관이 샐빙톤에 거주합니다. 37:8.6 (414.1) The Universal Conciliators are the traveling courts of the universes of time and space, functioning from the evolutionary worlds up through every section of the local universe and on beyond. 우주 조정(調停 분쟁을 합의로 이끄는)자들은, 진화 세계들로부터 지역 우주의 각 구역과 그 너머까지 활동하는, 시공간 우주의 순회 이동 법정들입니다.

37:8.7 (414.2) Of the Technical Advisers, the legal minds of the realm, we have our quota, about one-half billion. 기술 충고자들은 영역의 법적 마음들이며, 그중 우리(네바돈)는 약 5억을 할당받았습니다. 37:8.8 (414.3) Of the Celestial Recorders, the ascendant seraphim, we have in Nebadon seventy-five. 천상의 기록자들은 상승 세라핌 천사들이며, 이중 우리 네바돈에 75명이 있습니다.

37:8.9 (414.4) The ministry of the seventy billion Morontia Companions in Nebadon is described in those narratives dealing with the transition planets of the pilgrims of time. 네바돈에서 700억 모론시아 동반자들의 봉사 사역은 시간 순례자들의 과도기 행성들을 다루는 그 이야기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37:8.10 (414.5) Each universe has its own native angelic corps. 각 우주는 자체 토착 천사단(團)이 있습니다.

  1. Permanent Citizens of the Local Universe 지역 우주의 영구 시민들

37:9.1 (414.6) As with the super- and central universes, the local universe has its orders of permanent citizenship. 초우주와 중앙우주에서처럼, 지역 우주는 자체 계열의 영구 시민이 있습니다. 37:9.6 (414.11) These natives of the local creation, together with the Spirit-fused ascenders and the spironga (who are otherwise classified), constitute a relatively permanent citizenship. 지역 창조계의 이런 원주민들은 영-융합 상승자들 및 (다르게 분류되는) 스피롱가와 함께 그렇게 영구 시민을 구성합니다.

37:9.7 (414.12) The Susatia. These marvelous beings reside and function as permanent citizens on Salvington, the headquarters of this local universe. 수사시아. 이 굉장한 존재들은 이 지역 우주의 본부, 샐빙톤에서 영구 시민으로 거주하며 활동합니다. 37:9.8 (414.13) The Univitatia. Each of the one hundred constellation headquarters clusters of architectural spheres enjoys the continuous ministry of a residential order of beings known as the univitatia. 유니비타시아. 건축 구체에 속한 일백 성좌단 각 본부는 유니비타시아로 알려진 거주 존재 계열의 계속적 보살핌을 누립니다.

37:9.9 (415.1) The Material Sons of God. When a creative liaison between the Creator Son and the universe representative of the Infinite Spirit, the Universe Mother Spirit, has completed its cycle, when no more offspring of the combined nature are forthcoming, then does the Creator Son personalize in dual form his last concept of being, thus finally confirming his own and original dual origin. 하느님의 물질 아들들. 창조자 아들과 무한 영(靈)의 우주 대리자, 우주 어머니 영(靈) 사이에 창조적 교섭(交涉)이 그 순환을 마치고, 통합 본성의 자녀가 그 이상 나오지 않으면, 그다음 창조자 아들은 자신의 마지막 존재의 개념을 이중 형태로 고유화하여서, 결국 자기 본래의 이중 기원을 확증합니다. 37:9.10 (415.2) On a planetary mission the Material Son and Daughter are commissioned to found the Adamic race of that world, a race designed eventually to amalgamate with the mortal inhabitants of that sphere. 행성 임무에서 물질 아들과 딸은 그 세계의 아담 인종, 결국 그 구체의 필사 거주자들과 함께 혼합하도록 의도된 인종을 세우도록 임명됩니다.

37:9.11 (415.3) The Midway Creatures. In the early days of most inhabited worlds, certain superhuman but materialized beings are of assignment, but they usually retire upon the arrival of the Planetary Adams. 중도(中途) 창조물들. 거주 세계 대부분의 초기에, 확실히 초인간적이지만 물질화 존재들이 배정되지만, 그들은 대개 행성 아담들의 도착으로 물러갑니다. 37:9.12 (415.4) In like manner, all divisions of the administrative organization of the local universes and superuniverses have their more or less permanent populations, inhabitants of citizenship status. 마찬가지로, 지역 우주들과 초우주들에 속한 경영 조직의 모든 분야는 거의 자신들의 영구 주민들, 시민권 신분의 거주자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1. Other Local Universe Groups 다른 지역 우주 집단들

37:10.1 (416.1) Besides the seraphic and mortal orders, who will be considered in later papers, there are numerous additional beings concerned in the maintenance and perfecting of such a gigantic organization as the universe of Nebadon, which even now has more than three million inhabited worlds, with ten million in prospect. 뒤의 글에서 고려될 세라핌천사 및 필사자 계열들 외에, 지금도 3백만 이상이며 1천만 거주 세계가 될, 네바돈 우주와 같이 그렇게 거대한 조직의 유지와 개선에 관련된 수많은 추가 존재들이 있습니다.

37:10.2 (416.2) The Spironga are the spirit offspring of the Bright and Morning Star and the Father Melchizedek. 스피롱가는 광명한 새벽별과 아버지 멜기세덱의 영(靈) 자녀들입니다. 37:10.3 (416.3) The Spornagia. The architectural headquarters worlds of the local universe are real worlds — physical creations. 스포르나기아. 지역 우주의 건축 본부 세계는 실제 세계 – 물리적 창조계들입니다. 37:10.4 (416.4) The various courtesy colonies are domiciled on Salvington and elsewhere. 다양한 우대(優待)거류민들이 샐빙톤과 다른 곳에 거주합니다.

37:10.5 (416.5) Always there is attached to the universe service a corps of ascending mortals, including the glorified midway creatures. 영화(榮化 영화롭게)된 중도(中途) 창조물들을 포함하여, 상승 필사단(團)이 언제나 우주 봉사에 배속됩니다. 37:10.6 (416.6) There are still other types of intelligent life concerned with the administration of a local universe, but the plan of this narrative does not provide for the further revelation of these orders of creation. 지역 우주의 경영과 관련된 다른 유형들의 지능 생명이 여전히 있지만, 이 이야기의 계획은 이런 계층의 창조계를 추가로 계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S139 The Twelve Apostles 개요139편 12 사도들

S139 The Twelve Apostles 개요139편 12 사도들

139:0.2 (1548.2) These twelve men represented many different types of human temperament. 이 12명의 사람은 다양한 인간 기질(氣質)들을 대표했습니다. 139:0.3 (1548.3) All of them, except the Alpheus twins, were graduates of the synagogue schools, having been thoroughly trained in the Hebrew scriptures and in much of the current knowledge of that day. Seven were graduates of the Capernaum synagogue schools, and there were no better Jewish schools in all Galilee. 알페오의 쌍둥이를 제외하고, 그들은 모두 회당 학교의 졸업생들이었으며, 히브리 성서와 그 당시 통용되는 많은 지식으로 철저히 훈련을 받았습니다. 7명은 가버나움 회당 학교들의 졸업생들이었고, 모든 갈릴리에서 더 좋은 유대인 학교는 없었습니다. 139:0.4 (1548.4) They had not all been put through the same rigid and stereotyped educational curriculum. 그들은 똑같이 경직되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교육과정을 모두 밟지 않았습니다.

  1. Andrew, the First Chosen 첫 번째로 선택된 안드레

139:1.1 (1548.5) Andrew, chairman of the apostolic corps of the kingdom, was born in Capernaum. When he became an apostle, Andrew was unmarried but made his home with his married brother, Simon Peter. Both were fishermen and partners of James and John the sons of Zebedee. 하느님 나라의 사도단장, 안드레가버나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사도가 되었을 때, 안드레미혼이었지만, 기혼 남동생 시몬 베드로의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둘 다 어부였고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동업자들이었습니다. 139:1.2 (1548.6) In A.D. 26, the year he was chosen as an apostle, Andrew was 33, a full year older than Jesus and the oldest of the apostles. He sprang from an excellent line of ancestors and was the ablest man of the twelve. Excepting oratory, he was the peer of his associates in almost every imaginable ability. 그가 사도로 선택된 서기 26에, 안드레는 예수님 보다 만 1살이 많은 33사도 중 연장자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가계의 조상을 둔 출신으로 12사도들 중에서 가장 유능했습니다. 웅변을 제외하고, 그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능력에 있어서 동료들과 대등했습니다. 139:1.3 (1549.1) Andrew was a good organizer but a better administrator. To the very end Andrew remained dean of the apostolic corps. 안드레유능한 조직가였지만, 오히려 더 훌륭한 행정관리자였습니다. 바로 마지막까지 안드레는 사도단장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139:1.4 (1549.2) Andrew was the chief supporter of Jesus’ policy. 안드레는 예수님의 정책받드는 1등 옹호자였습니다.

139:1.5 (1549.3) Andrew was usually conversant with what was going on; he was an understanding executive and an efficient administrator. He rendered a prompt decision on every matter brought to his notice unless he deemed the problem one beyond the domain of his authority, in which event he would take it straight to Jesus. 안드레는 대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해하는 집행자였고 실력 있는 행정관리자였습니다. 그는 눈에 띠는 모든 문제를 신속히 처리했고, 그의 권한 영역을 넘어선 문제로 판단되면 그 사건을 즉시 예수님께로 가져갔습니다. 139:1.6 (1549.4) Andrew and Peter never seemed to be in the least jealous of each other’s abilities or achievements. 안드레와 베드로는, 각자의 능력이나 업적에 대해 서로 조금이라도 질투하는 것처럼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139:1.8 (1549.6) Of all the apostles, Andrew was the best judge of men. Andrew had a great gift for discovering the hidden resources and latent talents of young people. 모든 사도 중 안드레가 사람들을 가장 잘 판단하였습니다. 안드레는 젊은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는 자원과 잠재적인 재능을 발견하는 탁월한 은사(恩賜)가 있었습니다.

139:1.9 (1549.7) Very soon after Jesus’ ascension on high, Andrew began the writing of a personal record of many of the sayings and doings of his departed Master. After Andrew’s death other copies of this private record were made and circulated freely among the early teachers of the Christian church. These informal notes of Andrew’s were subsequently edited, amended, altered, and added to until they made up a fairly consecutive narrative of the Master’s life on earth. The last of these few altered and amended copies was destroyed by fire at Alexandria about one hundred years after the original was written by the first chosen of the twelve apostles. 예수님의 상승 이후 곧바로, 안드레는 떠나가신 ()님의 많은 말씀들과 행적들의 개인적 기록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드레의 사후(死後) 이 사적(私的) 기록의 다른 사본들이 만들어져, 기독교회의 초기 선생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회람(回覽)되었습니다. 안드레의 이러한 비공식적 노트들은, 기독교회의 초기 선생들이 주(主)님의 지상 생애를 상당히 일관된 이야기로 만들 때까지, 안드레의 기록 이후에 편집되어, 수정되고, 변경되어, 첨부되었습니다. 변경되고 수정된 마지막 몇 개의 이 사본들은, 12 사도들 중의 첫째로 선택된 사도가 원본을 기록한 지 약 100년이 지나 알렉산드리아에서 불에 타 버렸습니다.

139:1.10 (1550.1) Andrew was a man of clear insight, logical thought, and firm decision, whose great strength of character consisted in his superb stability. Andrew was one of those all-round, even-tempered, self-made, and successful men of modest affairs. 안드레는 명석한 통찰력, 논리적 사고, 확고한 판단력을 지닌 사람으로, 그의 성품 중 큰 장점은 뛰어난 안정감이었습니다. 안드레는 다재다능하고, 침착하며, 자립적이고, 그만그만한 과업에 성공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139:1.11 (1550.2) Andrew admired Jesus because of his consistent sincerity, his unaffected dignity. 안드레는 예수님의 일관된 성실함과 꾸밈없는 기품 때문에 예수님을 사모했습니다. 139:1.12 (1550.3) When the later persecutions finally scattered the apostles from Jerusalem, Andrew journeyed through Armenia, Asia Minor, and Macedonia and, after bringing many thousands into the kingdom, was finally apprehended and crucified in Patrae in Achaia. It was two full days before this robust man expired on the cross, and throughout these tragic hours he continued effectively to proclaim the glad tidings of the salvation of the kingdom of heaven. 나중에 박해로 결국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졌을 때, 안드레는 아르메니아, 소아시아, 마케도니아를 지나 여행하였고, 수천 명을 나라로 인도한 후, 결국 아카이아의 파트라이에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 건장한 사람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만 이틀이 걸렸는데, 이러한 비극적인 시간들 내내 그는 하늘나라 구원의 기쁜 소식을 계속 효과적으로 선포했습니다.

  1. Simon Peter 시몬 베드로

139:2.1 (1550.4) When Simon joined the apostles, he was thirty years of age. He was married, had three children, and lived at Bethsaida, near Capernaum. His brother, Andrew, and his wife’s mother lived with him. 시몬사도들에 합류했을 때, 그는 30였습니다. 그는 결혼해서 세 자녀가 있었고, 가버나움 인근 벳새다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형 안드레와 장모가 그와 함께 살았습니다.

139:2.3 (1550.6) Simon Peter had grown up permitting himself freely to indulge strong feelings; he was constantly getting into difficulties because he persisted in speaking without thinking. This sort of thoughtlessness also made incessant trouble for all of his friends and associates. 시몬 베드로격한 감정에 자유롭게 탐닉하도록 스스로 허용하며 자랐습니다. 그는 생각 없이 말하기를 고집했기 때문에, 항상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런 식의 그의 경솔함은 또한 그의 친구들이나 동료들 모두에게 끊임없는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139:2.4 (1550.7) Peter was a fluent speaker, eloquent and dramatic. He was also a natural and inspirational leader of men, a quick thinker but not a deep reasoner. He was a man of quick decision and sudden action. 베드로는 극적인 능변의 유창한 연사(演士)였습니다. 그는 또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타고난 지도자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었지만, 심오한 추론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빨리 결정하고 급히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39:2.5 (1551.1) The one trait which Peter most admired in Jesus was his supernal tenderness. Peter never grew weary of contemplating Jesus’ forbearance. 베드로가 가장 경탄한 예수님의 한 가지 특성더할 수 없는 다정함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관용을 깊이 생각하면서 싫증난 적이 없었습니다.

139:2.6 (1551.2) He was one of the most inexplicable combinations of courage and cowardice that ever lived on earth. His great strength of character was loyalty, friendship. Peter could withstand persecution and any other form of direct assault, but he withered and shrank before ridicule. 그는 그때까지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 용기와 비겁함이 가장 희한하게 섞인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의 성품 중 큰 장점은 충성과 우정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박해나 다른 형태의 직접적인 모욕은 잘 견디었지만, 조롱 앞에서는 의기소침으로 위축되었습니다. 139:2.7 (1551.3) Peter was the first of Jesus’ apostles to come forward to defend the work of Philip among the Samaritans and Paul among the gentiles; yet later on at Antioch he reversed himself when confronted by ridiculing Judaizers, temporarily withdrawing from the gentiles only to bring down upon his head the fearless denunciation of Paul. 베드로는, 빌립의 사마리아인들 과업과 바울의 이방인들 과업에 대하여, 예수님의 사도 중 가장 먼저 앞장서서 변호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안디옥에서, 조롱하는 유대주의자들과 마주쳤을 때, 그는 자기 입장을 뒤집어, 잠시 이방인으로부터 물러나, 바울의 두려움이 없는 비난에 고개를 떨 꿀 뿐이었습니다.

139:2.8 (1551.4) He was the first one of the apostles to make wholehearted confession of Jesus’ combined humanity and divinity and the first — save Judas — to deny him. 그는 사도 중 예수님의 통합된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전심으로 고백했고, 유다를 제외하고 예수를 부첫 사도였습니다. 139:2.9 (1551.5) But he was the outstanding preacher of the twelve; he did more than any other one man, aside from Paul, to establish the kingdom and send its messengers to the four corners of the earth in one generation. 그러나 그는 12명 중 탁월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바울을 제외하고, 한 세대에, 나라를 세우고, 지구의 전 지역에 메신저들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보냈습니다.

139:2.10 (1551.6) After his rash denials of the Master he found himself, and with Andrew’s sympathetic and understanding guidance he again led the way back to the fish nets while the apostles tarried to find out what was to happen after the crucifixion. When he was fully assured that Jesus had forgiven him and knew he had been received back into the Master’s fold, the fires of the kingdom burned so brightly within his soul that he became a great and saving light to thousands who sat in darkness. 주(主)님을 경솔히 부인한 후, 그는 자신을 발견했으며, 안드레의 공감하며 분별 있는 안내와 함께, 사도들이 십자가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기다리며 찾는 동안, 그는 다시 고기잡이 그물로 돌아가는 길로 앞장섰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기를 용서하셨음을 충분히 확신하고, 자신이 주(主)님의 신도로 복귀하여 수용되었음을 알았을 때, 나라의 불빛이 그의 혼 안에서 아주 밝게 타올라서 어둠에 앉아 있던 수천 명에게 위대한 구원의 빛이 되었습니다.

139:2.11 (1551.7) After leaving Jerusalem and before Paul became the leading spirit among the gentile Christian churches, Peter traveled extensively, visiting all the churches from Babylon to Corinth. He even visited and ministered to many of the churches which had been raised up by Paul. Although Peter and Paul differed much in temperament and education, even in theology, they worked together harmoniously for the upbuilding of the churches during their later years. 예루살렘을 떠난 뒤, 바울이 이방의 기독교회들을 이끄는 인물이 되기 전에, 베드로는 바빌론에서 고린도까지 모든 교회들을 방문하며 널리 여행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세운 많은 교회들까지도 방문하고 섬겼습니다. 비록 베드로와 바울은, 기질과 교육, 그리고 신학도 많이 달랐지만, 그들은 후년에 교회를 설립하는 일에 어울려 함께 일했습니다. 139:2.12 (1552.1) Something of Peter’s style and teaching is shown in the sermons partially recorded by Luke and in the Gospel of Mark. His vigorous style was better shown in his letter known as the First Epistle of Peter; at least this was true before it was subsequently altered by a disciple of Paul. 베드로의 스타일과 교훈의 일부는 누가가 부분적으로 기록한 설교마가복음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강력한 스타일은 베드로 전서로 알려진 그의 서신에 잘 나타나 있는데, 나중에 바울의 제자가 (베드로전서)를 변경하기 전까지 이것이 사실이었습니다. 139:2.13 (1552.2) But Peter persisted in making the mistake of trying to convince the Jews that Jesus was, after all, really and truly the Jewish Messiah. Right up to the day of his death, Simon Peter continued to suffer confusion in his mind between the concepts of Jesus as the Jewish Messiah, Christ as the world’s redeemer, and the Son of Man as the revelation of God, the loving Father of all mankind.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께서 결국 실제로 진정한 유대인의 메시아였다고 유대인들에게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잘못을 고집했습니다. 바로 죽는 그 날까지, 시몬 베드로의 마음은, 예수가 유대인의 메시아,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속(救贖)자라는 개념과 사람의 아들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시라는 개념 사이에서 계속 혼란을 겪었습니다.

139:2.14 (1552.3) Peter’s wife was a very able woman. For years she labored acceptably as a member of the women’s corps, and when Peter was driven out of Jerusalem, she accompanied him upon all his journeys to the churches as well as on all his missionary excursions. And the day her illustrious husband yielded up his life, she was thrown to the wild beasts in the arena at Rome. 베드로의 아내매우 유능한 여인이었습니다. 여러 해 그녀는 여인들 분대(여전도회)의 일원으로 기쁘게 수고했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자, 그녀는 그의 모든 선교여행 뿐 아니라 모든 교회로 가는 여행에 그와 동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명한 자기 남편이 죽는 날, 그녀는 로마의 투기장에서 사나운 짐승들에게 던져졌습니다. 139:2.15 (1552.4) And so this man Peter, an intimate of Jesus, one of the inner circle, went forth from Jerusalem proclaiming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with power and glory until the fullness of his ministry had been accomplished; and he regarded himself as the recipient of high honors when his captors informed him that he must die as his Master had died — on the cross. And thus was Simon Peter crucified in Rome.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과 친밀한, 내부자 중 하나였던, 이 사람 베드로는 그의 사역을 충만히 완수하기까지, 권능과 영광으로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그를 체포한 자가, 베드로가 그의 주(主)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 죽어야만 한다고 알려주자, 자신을 높은 명예를 받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몬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1. James Zebedee 야고보 세베대

139:3.1 (1552.5) James, the older of the two apostle sons of Zebedee, whom Jesus nicknamed “sons of thunder,”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came an apostle. 예수께서 세베대의 두 아들인 사도들을 “우뢰(雨雷)의 아들들”이라고 별명을 붙였는데 둘 중에 형 야고보는 사도가 되었을 때 30였습니다. 139:3.2 (1552.6) This able apostle was a temperamental contradiction; he seemed really to possess two natures, both of which were actuated by strong feelings. 이 유능한 사도기질적인 모순 덩어리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두 본성을 가진 듯했으며, 그 두 본성격한 감정으로 발동했습니다. 139:3.3 (1552.7) Though James was in no sense moody, he could be quiet and taciturn one day and a very good talker and storyteller the next. 야고보는 감각적으로 조금도 변덕스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조용하고 말이 없다가, 다음 날에는 뛰어난 좌담(座談)의 명수이며 이야기꾼이 되었습니다.

139:3.4 (1552.8) The outstanding feature of James’s personality was his ability to see all sides of a proposition. Of all the twelve, he came the nearest to grasping the real import and significance of Jesus’ teaching. 야고보의 고유성 중 눈에 띄는 점은 문제의 모든 면을 볼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모든 12명 중에서, 그는 예수 가르침의 참 의미와 중요성을 가장 가깝게 파악했습니다. 139:3.5 (1553.1) Though James and John had their troubles trying to work together, it was inspiring to observe how well they got along. 야고보와 요한은 함께 일하려고 애쓰면서 고생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서로 잘 지내는지, 지켜보면 감동을 일으킵니다. 139:3.6 (1553.2) That characteristic of Jesus which James most admired was the Master’s sympathetic affection. Jesus’ understanding interest in the small and the great, the rich and the poor, made a great appeal to him. 야고보가 가장 감탄한 예수님의 성품()님의 공감적 애정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작은 자와 위대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이해하는 관심이 그에게 가장 큰 매력을 주었습니다.139:3.7 (1553.3) James Zebedee was a well-balanced thinker and planner. 야고보 세베대는 잘 균형 잡힌 사색가이며 입안자였습니다. 139:3.8 (1553.4) He was modest and undramatic, a daily server, an unpretentious worker, seeking no special reward when he once grasped something of the real meaning of the kingdom. 그는 점잖아서 요란스럽지 않았으며, 매일 충실히 섬기며, 허세부리지 않는 일꾼으로서, 일단 나라의 참 의미의 실제를 파악하자 그이상 특별한 보상을 찾지 않았습니다.

139:3.9 (1553.5) James lived his life to the full, and when the end came, he bore himself with such grace and fortitude that even his accuser and informer, who attended his trial and execution, was so touched that he rushed away from the scene of James’s death to join himself to the disciples of Jesus. 야고보는 그의 일생을 충만히 살았으며, 종말이 오자, 그는 그토록 은혜롭게 불굴의 용기로 견디어서, 재판과 집행에 참석했던 고소인과 밀고자까지 감명을 받아, 야고보의 처형장에서 뛰쳐나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합류하였습니다.

  1. John Zebedee 요한 세베대

139:4.1 (1553.6) When he became an apostle, John was twenty-four years old and was the youngest of the twelve. 사도가 되었을 때, 요한24였고, 12명 중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 139:4.2 (1553.7) Since John was the youngest of the twelve and so closely associated with Jesus in his family affairs, he was very dear to the Master, but it cannot be truthfully said that he was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요한은 12 중 가장 어렸고, 가족 업무로 예수님과 친밀히 관련되어, ()님께 매우 소중했지만, “예수께서 사랑한 그 제자”라고 정말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139:4.3 (1554.1) Peter, James, and John were assigned as personal aides to Jesus soon after they became apostles.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사도가 된 직후 예수님의 개인 비서들로 배치되었습니다.

139:4.4 (1554.2) John Zebedee had many lovely traits of character, but one which was not so lovely was his inordinate but usually well-concealed conceit. 요한 세베대성품사랑스러운 특성이 많았지만, 그리 사랑스럽지 않았던 한 가지과도하지만 잘 감춰진 자만(自慢 자기 과대 평가)이었습니다. 139:4.5 (1554.3) The strongest trait in John’s character was his dependability. 요한의 성품 중 가장 강한 특성은 그의 신뢰성이었습니다. 139:4.6 (1554.4) Those characteristics of Jesus which John most appreciated were the Master’s love and unselfishness. 요한이 가장 높이 평가한 예수님의 특징들은, ()님의 사랑과 이기심 없는 태도였습니다.

139:4.7 (1554.5) John was a man of few words except when his temper was aroused. 요한은 성질이 격해진 때를 제외하면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139:4.8 (1555.1) There was another side to John that one would not expect to find in this quiet and introspective type. He was somewhat bigoted and inordinately intolerant. 요한에게는 이 조용하고 내성적 유형에서 기대할 수 없는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소 고집이 세고 지나치게 편협했습니다. 139:4.9 (1555.2) John’s life was tremendously influenced by the sight of Jesus’ going about without a home as he knew how faithfully he had made provision for the care of his mother and family. 요한의 일생은, 예수께서 얼마나 성실히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대비하셨는지 알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집 없이 지내는 모습에서 엄청나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139:4.10 (1555.3) John had a cool and daring courage which few of the other apostles possessed. 요한은 다른 사도들이 거의 갖지 못한, 침착하며 대담한 용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139:4.11 (1555.4) This son of Zebedee was very closely associated with Peter in the early activities of the Christian movement, becoming one of the chief supporters of the Jerusalem church. 이 세베대의 아들은 기독 운동의 초기 활동에서 베드로와 아주 밀접히 관련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 지지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139:4.12 (1555.5) Several years after the martyrdom of James, John married his brother’s widow. The last twenty years of his life he was cared for by a loving granddaughter. 야고보의 순교 몇 년 후, 요한은 형의 과부와 결혼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20년은 사랑스러운 손녀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139:4.13 (1555.6) John was in prison several times and was banished to the Isle of Patmos for a period of four years until another emperor came to power in Rome. 요한은 여러 번 투옥되었고, 다른 황제가 로마에서 권력을 잡기까지 4년 동안 팟모섬에 추방되었습니다. 139:4.14 (1555.7) When in temporary exile on Patmos, John wrote the Book of Revelation, which you now have in greatly abridged and distorted form. This Book of Revelation contains the surviving fragments of a great revelation, large portions of which were lost, other portions of which were removed, subsequent to John’s writing. It is preserved in only fragmentary and adulterated form. 팟모섬에 잠시 유배되었을 때, 요한은 계시록을 썼는데, 너희가 지금 갖고 있는 계시록은 크게 단축되고 왜곡된 형태입니다. 이 계시록은 큰 계시 중 남은 단편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요한이 기록한 이후에, 커다란 부분들은 소실되었고, 다른 부분들은 제거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단편적이고 불순물이 섞여 오염된 형태로 보존되었습니다.

139:4.15 (1555.8) John traveled much, labored incessantly, and after becoming bishop of the Asia churches, settled down at Ephesus. He directed his associate, Nathan, in the writing of the so-called “Gospel according to John,” at Ephesus, when he was ninety-nine years old. Of all the twelve apostles, John Zebedee eventually became the outstanding theologian. He died a natural death at Ephesus in A.D. 103 when he was one hundred and one years of age. 요한많이 여행하고, 쉼 없이 수고했으며, 아시아 교회들의 감독이 된 후 에베소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99세에 에베소에서 자기 동료 나단에게 소위 요한에 의한 복음을 쓰도록 지시했습니다. 12 사도 중에서 요한 세베대는 결국 탁월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AD 103년 에베소에서 101세의 나이로 자연사했습니다.

  1. Philip the Curious 호기심 많은 빌립

139:5.1 (1556.1) Philip was the fifth apostle to be chosen, being called when Jesus and his first four apostles were on their way from John’s rendezvous on the Jordan to Cana of Galilee. 빌립은 다섯 번째 사도로 선택되었는데, 그는 예수님과 첫 네 사도가 요단에서 요한을 만나고 갈릴리의 가나로 가는 도중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139:5.2 (1556.2) Philip was twenty-seven years of age when he joined the apostles; he had recently been married, but he had no children at this time. 빌립이 27세에 사도로 참여했습니다. 그는 최근에 결혼했으며, 이때 아이는 없었습니다.

139:5.3 (1556.3) When the apostles were organized for service, Philip was made steward; it was his duty to see that they were at all times supplied with provisions. 사도들이 봉사하려고 편성할 때, 빌립은 사무장(事務長)이 되었는데, 그들에게 양식이 항상 공급되도록 살피는 것이 그의 의무였습니다. 139:5.4 (1556.4) Philip came from a family of seven, three boys and four girls. He was next to the oldest, and after the resurrection he baptized his entire family into the kingdom. 빌립은 3소년과 4소녀 즉 일곱 (자녀)가 있는 가족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둘째였는데, 부활 후, 온 가족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세례를 주었습니다. 139:5.5 (1556.5) The strong point about Philip was his methodical reliability; the weak point in his make-up was his utter lack of imagination, the absence of the ability to put two and two together to obtain four. 빌립의 강점은 그의 질서정연한 확실성이었고, 기질적 약점전적으로 상상력이 부족해서, 둘에 둘을 더해 넷을 얻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139:5.6 (1556.6) The one quality about Jesus which Philip so continuously admired was the Master’s unfailing generosity. 빌립이 계속 경탄했던 예수님에 관한 한 가지의 특질()님의 끊임없는 관대함이었습니다. 139:5.7 (1557.1) There was little about Philip’s personality that was impressive. He was often spoken of as “Philip of Bethsaida, the town where Andrew and Peter live.” 빌립의 고유성에는 인상적인 점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안드레와 베드로가 사는 성읍 벳새다의 빌립”으로 흔히 불렸습니다. 139:5.8 (1557.2) The apostolic steward was not a good public speaker, but he was a very persuasive and successful personal worker. 사도 사무장은 훌륭한 대중 연설가는 아니었지만, 매우 설득력 있고 성공적인 개인적 일꾼이었습니다.

139:5.9 (1557.3) The inability of Philip to adapt himself to a new situation was well shown when the Greeks came to him at Jerusalem, saying: “Sir, we desire to see Jesus.”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빌립의 무능력예루살렘에서 그리스인들이 그에게 와서: “선생님, 우리는 예수님을 뵙고자 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잘 나타났습니다. 139:5.10 (1557.4) Philip went on through the trying times of the Master’s death, participated in the reorganization of the twelve, and was the first to go forth to win souls for the kingdom outside of the immediate Jewish ranks, being most successful in his work for the Samaritans and in all his subsequent labors in behalf of the gospel. 빌립은 주()께서 죽는 견딜 수 없는 시간을 계속 겪었는데, 12사도의 재조직에 참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혼(사람)들을 얻으려고 직계 유대인 계층 밖으로 제일 먼저 나아갔으며, 사마리아인들을 위한 그의 일과 복음을 위한 훗날의 모든 수고에서 가장 성공했습니다.

139:5.11 (1557.5) Philip’s wife, who was an efficient member of the women’s corps, became actively associated with her husband in his evangelistic work after their flight from the Jerusalem persecutions. 빌립의 아내는 여성 대원 중 유능한 회원으로, 예루살렘 박해를 피한 후 남편의 전도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139:5.12 (1558.1) Philip, the onetime steward of the twelve, was a mighty man in the kingdom, winning souls wherever he went; and he was finally crucified for his faith and buried at Hierapolis. 한때 12사도의 사무장 빌립(하느님) 나라에서 막강한 사람으로 가는 곳마다 혼들을 얻었습니다. 결국 그는 신앙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고 히에라폴리스에 묻혔습니다.

  1. Honest Nathaniel 정직한 나다니엘

139:6.1 (1558.2) Nathaniel, the sixth and last of the apostles to be chosen by the Master himself, was brought to Jesus by his friend Philip. 나다니엘은 주()님께서 6번째로 직접 선택한 사도로서, 친구 빌립이 그를 예수님께 안내했습니다. 139:6.2 (1558.3) When Nathaniel joined the apostles, he was twenty-five years old and was the next to the youngest of the group. He was the youngest of a family of seven, was unmarried, and the only support of aged and infirm parents, with whom he lived at Cana. 나다니엘이 사도로 참여했을 때, 그는 25세로 그룹에서 두 번째로 젊었습니다. 그는 일곱 명 가족 중 막내로 미혼(未婚)이었으며, 가나에서 함께 사는 연세 들고 허약한 부모의 유일한 부양자였습니다.

139:6.3 (1558.4) Jesus did not himself give Nathaniel a nickname, but the twelve soon began to speak of him in terms that signified honesty, sincerity. He was “without guile.” And this was his great virtue; he was both honest and sincere. The weakness of his character was his pride. 예수께서 직접 나다니엘에게 별명을 주지 않으셨지만, 12 사도들은 곧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의미의 용어로 그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간사(奸詐)가 없는사람으로 이것이 그의 큰 장점이었는데, 그는 정직하면서 성실했습니다. 그의 성품 중에서 단점은 (강한) 자부심이었습니다. 139:6.4 (1558.5) In many respects Nathaniel was the odd genius of the twelve. He was the apostolic philosopher and dreamer, but he was a very practical sort of dreamer. He alternated between seasons of profound philosophy and periods of rare and droll humor. 여러 면에서 나다니엘은 12 중 이상야릇한 천재였습니다. 그는 사도 철학자이며 몽상가였지만, 매우 실천적인 몽상가였습니다. 그는 한동안 심오한 철학에 빠져 있다가 얼마간 희한하게 익살스런 분위기 사이를 오락가락했습니다.

139:6.5 (1558.6) The apostles all loved and respected Nathaniel, and he got along with them splendidly, excepting Judas Iscariot. 사도들 모두 나다니엘을 사랑하고 존중했으며, 그는 유다 가룟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지냈습니다. 139:6.6 (1559.1) Many times, when Jesus was away on the mountain with Peter, James, and John, and things were becoming tense and tangled among the apostles, when even Andrew was in doubt about what to say to his disconsolate brethren, Nathaniel would relieve the tension by a bit of philosophy or a flash of humor; good humor, too.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과 함께 산으로 멀리 떠나계실 때, 사도들 사이에서 일들이 긴박히 엉켰을 때, 그리고 안드레까지 우울한 형제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할 때, 여러 번, 나다니엘이 약간의 철학이나 혹은 번쩍이는 유머로, 그것도 기분 좋게, 긴장을 풀어주곤 했습니다.

139:6.7 (1559.2) Nathaniel’s duty was to look after the families of the twelve. 나다니엘의 임무12사도들의 가족들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139:6.8 (1559.3) Nathaniel most revered Jesus for his tolerance. 나다니엘은 예수님의 포용력 때문에 그를 가장 존경했습니다. 139:6.9 (1559.4) Nathaniel’s father (Bartholomew) died shortly after Pentecost, after which this apostle went into Mesopotamia and India proclaiming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and baptizing believers. He also was a great man in the kingdom and did much to spread his Master’s teachings, even though he did not participate in the organization of the subsequent Christian church. Nathaniel died in India. 나다니엘의 아버지(바돌로메)가 오순절 직후에 별세한 후, 이 사도는 메소포타미아와 인도로 가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하느님) 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이었으며, 그는 나중에 기독교회의 조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님의 가르침을 멀리 펼치며 많이 일했습니다. 나다니엘은 인도에서 별세했습니다.

  1. Matthew Levi 마태 레위

139:7.1 (1559.5) Matthew, the seventh apostle, was chosen by Andrew. 마태는 일곱 번째 사도로 안드레가 선택했습니다. 139:7.2 (1559.6) Andrew appointed Matthew the financial representative of the apostles. 안드레는 마태를 사도들의 재정 대표로 임명했습니다. 139:7.3 (1559.7) Levi’s strong point was his wholehearted devotion to the cause. 레위의 강점은 (하느님 나라) 운동에 전심(全心)으로 헌신한 점이었습니다.

139:7.4 (1559.8) It was the Master’s forgiving disposition which Matthew most appreciated. 마태가 가장 감사히 여긴 것()님의 용서하는 성향이었습니다. 139:7.5 (1560.1) Though Matthew was a man with a past, he gave an excellent account of himself, and as time went on, his associates became proud of the publican’s performances. 마태는 과거를 지닌 사람이었지만, 너무 훌륭하게 처신했으며, 시간이 지나자, 동료들은 세리의 성과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139:7.6 (1560.2) The great and useful life of Matthew, the business man and customs collector of Capernaum, has been the means of leading thousands upon thousands of other business men, public officials, and politicians, down through the subsequent ages, also to hear that engaging voice of the Master saying, “Follow me.” 사업가이며 가버나움의 세관 징수원이었던, 마태의 위대하고 훌륭한 일생은, 수천 명의 다른 사업가들, 공무원들, 정치가들도, 다음 세대 내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님의 매력적인 음성을 듣도록 인도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139:7.7 (1560.3) The presence of Matthew among the twelve was the means of keeping the doors of the kingdom wide open to hosts of downhearted and outcast souls who had regarded themselves as long since without the bounds of religious consolation. 12사도 중에 있었던 마태의 존재는, 오래 전부터 자신들이 종교적 위안의 경계선 밖에 있다고 여겨왔던 낙담하고 버림받은 수많은 혼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139:7.8 (1560.4) Matthew received freely tendered offerings from believing disciples and the immediate auditors of the Master’s teachings, but he never openly solicited funds from the multitudes. 마태는 믿는 제자들()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는 사람들자유롭게 내는 헌금을 받았지만, 결코 공개적으로 군중들에게 기금을 간청하지 않았습니다. 139:7.9 (1560.5) When the funds for the week were short of the estimated requirements, Levi would often draw heavily upon his own personal resources. The apostles all died without knowing that Matthew was their benefactor to such an extent that, when he went forth to proclaim the gospel of the kingdom after the beginning of the persecutions, he was practically penniless. 한 주간의 기금이 예산보다 부족하면, 레위는 자주 자기 개인 재산에서 돈을 많이 찾아 쓰곤 하였습니다. 박해가 시작된 후 마태가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나갔을 때, 그는 사실상 무일푼이었을 정도로, 마태가 그들의 후원자였음을 사도들은 모두 죽을 때까지 몰랐습니다.

139:7.10 (1560.6) When these persecutions caused the believers to forsake Jerusalem, Matthew journeyed north,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baptizing believers. This regenerated publican died triumphant in the faith of a salvation he had so surely learned from the teachings of the Master during his recent sojourn on earth. 이 박해들로 신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자, 마태는 북쪽으로 여행하면서, 나라의 복음을 설교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새 사람이 된 이 세리는, 최근에 지상에 머무시던 ()님의 가르침에서 확실히 배웠던 구원의 신앙으로 승리를 거두며 죽었습니다.

  1. Thomas Didymus 도마 디디머스

139:8.1 (1561.1) Thomas was the eighth apostle, and he was chosen by Philip. 도마는 여덟 번째 사도로, 빌립이 선택했습니다. 139:8.2 (1561.2) When Thomas joined the apostles, he was twenty-nine years old, was married, and had four children. 도마가 사도들과 합류할 때, 그는 29로, 결혼해서 4자녀가 있었습니다. 139:8.3 (1561.3) The early home life of Thomas had been unfortunate. 도마의 초기 가정생활불행했습니다. 139:8.4 (1561.4) Thomas’s great strength was his superb analytical mind coupled with his unflinching courage — when he had once made up his mind. 도마의 큰 장점은, 그가 일단 마음을 정하면, 뛰어난 분석적 마음에 굽힐 줄 모르는 용기가 결부된 것이었습니다.

139:8.5 (1561.5) In the organization of the twelve Thomas was assigned to arrange and manage the itinerary, and he was an able director of the work and movements of the apostolic corps. 열둘의 조직에서 도마는 여행일정을 세우고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사도 대원들의 일과 움직임에 대한 유능한 관리자였습니다. 139:8.6 (1561.6) Jesus enjoyed Thomas very much and had many long, personal talks with him. 예수님은 도마와 매우 즐겁게 지내셨고 여러 번 길게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139:8.7 (1562.1) The other apostles held Jesus in reverence because of some special and outstanding trait of his replete personality, but Thomas revered his Master because of his superbly balanced character. 다른 사도들은 예수의 충만한 고유성이 지닌 어떤 특별하고 탁월한 특성 때문에 그를 존경했지만, 도마는 뛰어나게 균형 잡힌 성품 때문에 주님을 존경했습니다.

139:8.8 (1562.2) In the councils of the twelve Thomas was always cautious, advocating a policy of safety first, but if his conservatism was voted down or overruled, he was always the first fearlessly to move out in execution of the program decided upon. 12 사도 의회에서 도마는 언제나 신중했으며, 안전제일 정책을 주장했지만, 안전제일 주의가 부결되거나 취소되면, 결정된 계획의 실행그가 항상 제일 먼저 두려움 없이 나섰습니다. 139:8.9 (1562.3) Thomas was in some respects like Philip; he also wanted “to be shown,” but his outward expressions of doubt were based on entirely different intellectual operations. 도마는 어떤 면에서 빌립과 비슷했습니다. 그도 역시 “눈으로 보기를 원했지만, 겉으로 표현된 그의 의심은 전혀 다른 지적 작용에 근거를 두었습니다.

139:8.10 (1562.4) Thomas had some very bad days. 도마는 상당히 매우 힘든 날들을 겪었습니다. 139:8.11 (1562.5) Sometimes Thomas would get permission from Andrew to go off by himself for a day or two. 종종 도마는 홀로 하루나 이틀 말없이 떠나도록 안드레에게 허락을 받곤 했습니다. 139:8.12 (1562.6) Thomas is the great example of a human being who has doubts, faces them, and wins. 도마의심을 품고, 그것들을 대면하고, 극복하는 인간의 위대한 모델입니다.

139:8.13 (1563.1) Thomas had a trying time during the days of the trial and crucifixion. He gave wise counsel to the apostles after Pentecost and, when persecution scattered the believers, went to Cyprus, Crete, the North African coast, and Sicily, preaching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and baptizing believers. And Thomas continued preaching and baptizing until he was apprehended by the agents of the Roman government and was put to death in Malta. Just a few weeks before his death he had begun the writing of the life and teachings of Jesus. 도마는 재판과 십자가 처형의 기간에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오순절 이후 사도들에게 현명하게 조언했으며, 박해로 신도들이 흩어지자, 그는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들을 설교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키프로스, 크레데, 북(北)아프리카 해안, 시실리로 갔습니다. 그리고 도마는 로마 정부의 관리들에게 체포되어 말타에서 죽기까지 계속 설교하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가 불과 죽기 몇 주 전에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들을 기록하기 시작했었습니다.

  1. and 10. James and Judas Alpheus 9-10. 야고보와 유다 알페오

139:10.1 (1563.2) James and Judas the sons of Alpheus, the twin fishermen living near Kheresa, were the ninth and tenth apostles and were chosen by James and John Zebedee. 알페오의 아들들, 야고보와 유다는 게라사 근처에 사는 쌍둥이 어부들로, 9번째와 10번째의 사도들이었고, 야고보와 요한 세베대가 선택했습니다. 139:10.2 (1563.3) There is not much to be said about these two commonplace fisherfolk. 이들 두 평범한 어부들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139:10.3 (1563.4) Andrew assigned them to the work of policing the multitudes. 안드레는 그들에게 군중들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139:10.4 (1563.5) The multitudes of the common people were greatly encouraged to find two like themselves honored with places among the apostles. 일반인의 무리는 자신들과 같은 두 사람이 영예롭게 사도들 사이에 있음을 알고 크게 격려를 받았습니다. 139:10.5 (1563.6) James and Judas, who were also called Thaddeus and Lebbeus, had neither strong points nor weak points. 또한 다대오와 레비오로 불렸던 야고보와 유다는 장점도, 단점도 없었습니다. 139:10.6 (1563.7) James Alpheus especially loved Jesus because of the Master’s simplicity. 야고보 알페오는 주()님의 단순함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139:10.7 (1564.1) Judas Alpheus was drawn toward Jesus because of the Master’s unostentatious humility. 유다 알페오는 주()님의 허세 없는 겸손 때문에 예수님께 끌렸습니다.

139:10.8 (1564.2) The twins were good-natured, simple-minded helpers, and everybody loved them. 쌍둥이들은 착하고, 순진한 조수였으며, 모든 사람이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139:10.9 (1564.3) And how gratefully proud were these humble men on that day when the Master refused to accept a certain rich man as an evangelist unless he would sell his goods and help the poor. 어떤 부자(富者)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돕지 않는 한, 주님께서 전도자(傳道者)로 받아주기를 거절하신 그날, 이 겸손한 사람들은 얼마나 감사하며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139:10.10 (1564.4) Only once or twice in all their association with Jesus did the twins venture to ask questions in public. 쌍둥이들은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일 중에 단지 한두 번 공개적으로 감히 질문했습니다.

139:10.11 (1564.5) The twins served faithfully until the end, until the dark days of trial, crucifixion, and despair. They never lost their heart faith in Jesus, and (save John) they were the first to believe in his resurrection. But they could not comprehend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Soon after their Master was crucified, they returned to their families and nets; their work was done. They had not the ability to go on in the more complex battles of the kingdom. But they lived and died conscious of having been honored and blessed with four years of close and personal association with a Son of God, the sovereign maker of a universe. 쌍둥이들은 끝까지, 재판과 십자가 처형과 절망의 어두운 날들까지, 성실히 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신앙하는 심정을 결코 잃지 않았고, (요한을 제외하고) 그들은 그의 부활을 처음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 나라의 설립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주(主)님이 십자가에 처형되신 직후, 그들은 가족에게 돌아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들의 일은 끝났습니다. 그들은 더 어려운 (하느님) 나라의 전투를 계속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우주의 주권적 조물주가깝게 4년 동안 개인적 관계를 갖는 영예와 축복 받았음을 의식하면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1. Simon the Zealot 열심당원 시몬

139:11.1 (1564.6) Simon Zelotes, the eleventh apostle, was chosen by Simon Peter. 시몬 젤로테는 11번째 사도로, 시몬 베드로가 선택했습니다. 139:11.2 (1564.7) Simon Zelotes was given charge of the diversions and relaxation of the apostolic group, and he was a very efficient organizer of the play life and recreational activities of the twelve. 시몬 젤로테는 사도 그룹의 기분 전환과 휴식을 담당했으며, 그는 12사도들의 운동 생활과 오락 활동에 대해 아주 효율적인 조직가였습니다.

139:11.3 (1564.8) Simon’s strength was his inspirational loyalty. 시몬의 강점영감(靈感)을 일으키는 충성이었습니다. 139:11.4 (1565.1) Simon’s great weakness was his material-mindedness. 시몬의 큰 약점물질적 마음가짐이었습니다. 139:11.5 (1565.2) The one thing about Jesus which Simon so much admired was the Master’s calmness, his assurance, poise, and inexplicable composure. 시몬이 예수에 대해 그토록 탄복한 한 가지()님의 고요함, 그의 확신, 평정,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침착성이었습니다.

139:11.6 (1565.3) Although Simon was a rabid revolutionist, a fearless firebrand of agitation, he gradually subdued his fiery nature until he became a powerful and effective preacher of “Peace on earth and good will among men.” 시몬은 과격한 혁명가였고, 두려움 없이 선동하는 선동가였지만, 그가 “땅에서 평화와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뜻을 전하는 강력하고 유능한 설교자가 되기까지, 그는 점차 불같은 성품을 가라앉혔습니다. 139:11.7 (1565.4) He was a rebel by nature and an iconoclast by training, but Jesus won him for the higher concepts of the kingdom of heaven. 그는 천성이 반항아였고, 훈련받은 인습 타파주의자였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더 높은 개념을 위해 그를 설득하셨습니다.

139:11.8 (1565.5) Jesus was not afraid to identify himself with business men, laboring men, optimists, pessimists, philosophers, skeptics, publicans, politicians, and patriots. 예수님은 자신을 사업가, 노동자, 낙천가, 비관론자, 철학자, 회의론자, 세리, 정치가, 애국자들과 동일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139:11.9 (1565.6) The Master had many talks with Simon, but he never fully succeeded in making an internationalist out of this ardent Jewish nationalist. ()님은 시몬과 많이 이야기하셨지만, 이 열렬한 유대 민족주의자국제주의자로 만드는 데 결코 충분히 성공하지 못하셨습니다.

139:11.10 (1565.7) After the dispersion because of the Jerusalem persecutions, Simon went into temporary retirement. He was in despair, but in a few years he rallied his hopes and went forth to proclaim the gospel of the kingdom. 예루살렘의 박해로 흩어진 후, 시몬은 잠간 은둔했습니다. 그는 절망했지만, 몇 년 내에 그는 자기 소망들을 다시 모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나갔습니다.

139:11.11 (1565.8) He went to Alexandria and, after working up the Nile, penetrated into the heart of Africa, everywhere preaching the gospel of Jesus and baptizing believers. Thus he labored until he was an old man and feeble. And he died and was buried in the heart of Africa. 그는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나일 강으로 올라가며 일한 후, 아프리카의 심장부를 통과하며 모든 곳에서 예수님의 복음설교하며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늙고 쇠약해질 때까지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어서 아프리카의 심장부에 묻혔습니다.

  1. Judas Iscariot 가룟 유다

139:12.1 (1565.9) Judas Iscariot, the twelfth apostle, was chosen by Nathaniel. He was born in Kerioth, a small town in southern Judea. When he was a lad, his parents moved to Jericho, where he lived and had been employed in his father’s various business enterprises until he became interested in the preaching and work of John the Baptist. Judas’s parents were Sadducees, and when their son joined John’s disciples, they disowned him. 가룟 유다는 12번째 사도로서, 나다니엘이 선택했습니다. 그는 남부 유대의 작은 도시인 케리옷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소년이었을 때 그의 부모는 여리고로 이사했고, 그가 세례 요한의 설교와 일에 관심을 갖기까지는, 그곳에 살면서 자기 아버지의 여러 사업체에 종사했습니다. 유다의 부모는 사두개인이어서, 아들이 요한의 제자가 되자, 자식과 관계를 끊었습니다.

139:12.2 (1566.1) When Nathaniel met Judas at Tarichea, he was seeking employment with a fish-drying enterprise at the lower end of the Sea of Galilee. He was thirty years of age and unmarried when he joined the apostles. He was probably the best-educated man among the twelve and the only Judean in the Master’s apostolic family. 나다니엘유다를 타리케아에서 만났을 때, 그는 갈릴리 바다의 하류 끝에 있는 생선-건조 사업체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가 될 때, 30세였고 결혼 전이었습니다. 그는 아마 12사도 중에서 최상의 교육을 받았고, 주(主)님의 사도 대원에서 유일한 유대 지방 사람이었습니다.

139:12.3 (1566.2) Andrew appointed Judas treasurer of the twelve, a position which he was eminently fitted to hold, and up to the time of the betrayal of his Master he discharged the responsibilities of his office honestly, faithfully, and most efficiently. 안드레는 유다를 12사도의 회계로 임명하였는데, 그에게 탁월하게 어울리는 자리였으며, 주(主)님을 배반하기 직전까지, 그는 자기 직무의 책임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가장 효율적으로 실행했습니다.

139:12.4 (1566.3) There was no special trait about Jesus which Judas admired above the generally attractive and exquisitely charming personality of the Master. Judas was never able to rise above his Judean prejudices against his Galilean associates; he would even criticize in his mind many things about Jesus. 보통 매력적이며 정교하게 호감을 끄는 주()님의 고유성 이외에, 유다가 감탄했던 예수님의 특별한 특성이 없었습니다. 유다는 결코 갈릴리 동료들에 적대적인 유대 지방 사람의 편견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예수님에 대해서도 여러 면에서 마음으로 비판했습니다.

139:12.5 (1566.4) Judas was a good business man. It required tact, ability, and patience, as well as painstaking devotion, to manage the financial affairs of such an idealist as Jesus, to say nothing of wrestling with the helter-skelter business methods of some of his apostles. Judas really was a great executive, a farseeing and able financier. And he was a stickler for organization. None of the twelve ever criticized Judas. 유다는 훌륭한 사업가였습니다. 몇 사도들이 혼란스런 직무 방식으로 씨름하고 있음을 언급하지 않아도, 예수님과 같은 그런 이상주의자의 재무 관리에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헌신은 물론 재치와 능력 그리고 인내가 요구되었습니다. 유다는 정말로 훌륭한 집행자, 즉 선견지명이 있는 유능한 재정가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조직에 대해 꽤 까다로운 사람이었습니다. 12 중 아무도 유다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139:12.6 (1566.5) Judas was an only son of unwise parents. When very young, he was pampered and petted; he was a spoiled child. As he grew up, he had exaggerated ideas about his self-importance. 유다는 현명하지 못한 부모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그는 제멋대로 했으며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그는 버릇없는 아이였습니다. 그는 자라면서, 자신(自信)-과잉(자존, 자만)에 대한 관념을 과대시했습니다.

139:12.7 (1566.6) To Jesus, Judas was a faith adventure. From the beginning the Master fully understood the weakness of this apostle and well knew the dangers of admitting him to fellowship. But it is the nature of the Sons of God to give every created being a full and equal chance for salvation and survival. 예수님에게, 유다는 신앙의 모험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주(主)님은 이 사도의 약점을 충분히 이해하셨고, 그를 동료로 받아들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의 본성은, 모든 창조된 존재에게 구원과 생존을 위해 충분하며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139:12.8 (1567.1) This is just the reason why Jesus permitted Judas to go on to the very end, always doing everything possible to transform and save this weak and confused apostle. But when light is not honestly received and lived up to, it tends to become darkness within the soul. Judas grew intellectually regarding Jesus’ teachings about the kingdom, but he did not make progress in the acquirement of spiritual character as did the other apostles. He failed to make satisfactory personal progress in spiritual experience. 이것이, 예수께서 유다가 끝까지 계속하도록 허용하셨고, 약하고 혼란에 빠진 이 사도를 변화시켜 구원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셨던 바로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빛은 순전히 수용되어 그에 따라 살지 않으면, 빛은 혼에서 어둠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지적으로는 성장했지만, 다른 사도들처럼 영적 성품 획득에는 진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적 체험에서 만족스러운 개인적 진보실패했습니다.

139:12.9 (1567.2) Judas became increasingly a brooder over personal disappointment, and finally he became a victim of resentment. His feelings had been many times hurt, and he grew abnormally suspicious of his best friends, even of the Master. 유다갈수록 개인적 실망으로 속을 끓이다가 결국 원한(怨恨)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감정들은 여러 번 상처를 받았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들, ()님까지도 비정상적으로 갈수록 공연히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139:12.10 (1567.3) But these wicked and dangerous ideas did not take definite shape until the day when a grateful woman broke an expensive box of incense at Jesus’ feet. This seemed wasteful to Judas, and when his public protest was so sweepingly disallowed by Jesus right there in the hearing of all, it was too much. That event determined the mobilization of all the accumulated hate, hurt, malice, prejudice, jealousy, and revenge of a lifetime, and he made up his mind to get even with he knew not whom; but he crystallized all the evil of his nature upon the one innocent person in all the sordid drama of his unfortunate life just because Jesus happened to be the chief actor in the episode which marked his passing from the progressive kingdom of light into that self-chosen domain of darkness. 그러나 사악하고 위험한 이 망상들은, 감사하는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값진 향료 상자를 깨뜨린 그 날까지, 뚜렷한 모습이 없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유다에게 낭비로 여겨졌고, 공개적인 자기 항의(抗議) 모든 사람이 듣고 있는 바로 거기에서 예수님에 의해 전면적으로 묵살되자, 유다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 사건으로 축적되어 왔던 모든 미움, 상처, 원한, 편견, 질투, 평생의 복수를 총동원하기로 결심했고, 모르는 누군가에게 복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불행한 일생의 비열한 모든 드라마에서 자신의 모든 악의 본성이 무죄한 한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났는데, 그것은 바로, 진보하는 빛의 나라에서 스스로선택한 그 어둠의 영역으로 유다의 통행을 표시하는 그 장면에서 예수님이 마침 주연(主演) 배우가 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139:12.11 (1567.4) The Master many times, both privately and publicly, had warned Judas that he was slipping, but divine warnings are usually useless in dealing with embittered human nature. Jesus did everything possible, consistent with man’s moral freedom, to prevent Judas’s choosing to go the wrong way. The great test finally came. The son of resentment failed; he yielded to the sour and sordid dictates of a proud and vengeful mind of exaggerated self-importance and swiftly plunged on down into confusion, despair, and depravity. 주(主)님은 여러 번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그가 미끄러져 이탈하고 있다고 경고했지만, 신적 경고들적개심을 품은 인간 본성을 다루는데 대개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잘못된 길을 선택해서 가지 않도록, 인간의 도덕적 자유와 조화를 이루시면서,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하셨습니다. 큰 시험의 날이 마침내 다가왔습니다. 원한(怨恨)의 아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는, 지나치게 자아를중요시하는, 거만하며 복수심에 불타는 마음졸렬하며 비열한 명령에 굴복했고, 신속하게 혼란, 절망, 그리고 타락으로 뛰어들었습니다.

139:12.12 (1567.5) Judas then entered into the base and shameful intrigue to betray his Lord and Master and quickly carried the nefarious scheme into effect. During the outworking of his anger-conceived plans of traitorous betrayal, he experienced moments of regret and shame, and in these lucid intervals he faintheartedly conceived, as a defense in his own mind, the idea that Jesus might possibly exert his power and deliver himself at the last moment. 그 후 유다는 자신의 주인이신 주()님을 배반하는 야비하고 치욕스러운 음모를 시작했으며, 사악한 계획을 급히 실행했습니다. 자기 분노로 잉태한 반역적 배반을 수행하는 동안, 그는 후회와 수치심의 순간들을 겪었으며, 제 정신이 들었던 이 기간에 그는 마음이 약해져서, 변명하는 마음으로, 예수께서 아마 마지막 순간에 권능을 발휘하여 예수 자신을 구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139:12.13 (1567.6) When the sordid and sinful business was all over, this renegade mortal, who thought lightly of selling his friend for thirty pieces of silver to satisfy his long-nursed craving for revenge, rushed out and committed the final act in the drama of fleeing from the realities of mortal existence — suicide. 비열하고 죄받을 많은 일이 모두 끝나자, 오래 품었던 복수심을 채우려고 자기 친구를 은화 30개를 받고 가볍게 팔아넘길 생각을 했던 이 변절한 필사자는 달려 나가 필사자 실존의 실체에서 도망하여 드라마의 마지막 장에서 자살했습니다.

139:12.14 (1567.7) The eleven apostles were horrified, stunned. Jesus regarded the betrayer only with pity. The worlds have found it difficult to forgive Judas, and his name has become eschewed throughout a far-flung universe. 11명의 사도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아찔했습니다. 예수님은 배반자를 불쌍히 여기셨을 뿐입니다. 세계들유다를 용서하기 어려움알게 되었고, 멀리-퍼진 우주 전체에서 그의 이름은 피하게 되었습니다.

S83 The Marriage Institution 개요83편 결혼 제도

S83 The Marriage Institution 개요83편 결혼 제도

83:0.3 (922.3) The self-regarding and self-gratifying sex relationship entails the certain consequences of self-denial and insures the assumption of altruistic duties and numerous race-benefiting home responsibilities. This sex impulse automatically and unerringly compels man to think and eventually leads him to love. 이기적인 자기만족의 성(性)관계가 자기절제의 결과를 남기고, 이타적 의무와 인종에-이로운 수많은 가정 책임을 확실히 떠맡습니다. 이런 성(性) 충동이 자동으로 반드시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어 결국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1. Marriage as a Societal Institution 사회 제도로서의 결혼

83:1.1 (922.4) Marriage is society’s mechanism designed to regulate and control those many human relations which arise out of the physical fact of bisexuality. 결혼은 양성(兩性)의 물리적 사실에서 생기는 그런 여러 인간관계를 규정하고 조정하도록 계획된 사회 기구입니다. 83:1.4 (922.7) Marriage is an institution of society, not a department of the church. 결혼은 사회 제도이며, 교회의 분야가 아닙니다. 83:1.5 (922.8) Primitive marriage was primarily industrial; and even in modern times it is often a social or business affair. 원시 결혼은 원래 산업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서도 결혼은 종종 사회나 사업적 업무입니다.

  1. Courtship and Betrothal 구혼(求婚)과 약혼(約婚)

83:2.1 (923.1) Primitive marriages were always planned by the parents of the boy and girl. 원시 결혼은 언제나 소년과 소녀의 부모가 계획했습니다. 83:2.2 (923.2) So marriage by capture preceded marriage by contract. Pseudo elopement was the transition stage between capture by force and subsequent courtship by charming. 포획 결혼이 계약 결혼보다 먼저 일어났습니다. 위장 도망은 강제 포획과 차후 매력에 의한 구애 사이에 있는 전환 단계였습니다. 83:2.3 (923.3) Later, mock capture became a part of the regular wedding ceremony. 나중에 포획 흉내가 일상 결혼식의 부분이 되었습니다. 83:2.4 (923.4) Man has usually taken the lead in courtship, but not always. And as civilization has progressed, women have had an increasing part in all phases of courtship and marriage. 대개 남자가 구혼(求婚)에 앞장섰지만, 항상 그렇지 않습니다. 문명이 진보하면서, 모든 구혼(求婚)과 결혼 단계에서 여성의 역할이 늘어났습니다. 83:2.5 (923.5) Increasing love, romance, and personal selection in premarital courtship are an Andite contribution to the world races. 혼전 구혼(求婚)에서 사랑, 낭만 및 개인적 선택의 증가는 세계 인종에 대한 안드-사람들의 공헌입니다. 83:2.6 (923.6) The betrothal was originally equivalent to marriage; and among early peoples sex relations were conventional during the engagement. In recent times, religion has established a sex taboo on the period between betrothal and marriage. 약혼은 원래 결혼에 해당했습니다. 그래서 초기 민족들 사이에 약혼 기간의 성(性)관계는 관행적이었습니다. 최근에, 종교가 약혼과 결혼 사이 기간에 성(性) 금기를 확립했습니다.

  1. Purchase and Dowry 아내 사들임과 지참금

83:3.1 (923.7) The purchase price of a wife was regarded as a forfeit or deposit which the husband was doomed to lose in case of divorce or desertion. 아내 구입 가격은, 이혼이나 불법 유기의 경우에 남편이 손해를 보기로 정한 벌금이나 보증금으로 여겼습니다. 83:3.2 (924.1) Service was equivalent to cash in the purchase of a wife. 봉사(奉仕 받들어 섬김)는 아내구입에서 현금과 같았습니다. 83:3.3 (924.2) As civilization progressed, fathers did not like to appear to sell their daughters, and so, while continuing to accept the bride purchase price, they initiated the custom of giving the pair valuable presents which about equaled the purchase money. And upon the later discontinuance of payment for the bride, these presents became the bride’s dowry. 문명이 발전하면서, 아버지들은 자기 딸들을 파는 것같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신부 매입 값을 계속 받으면서, 구매 대금과 거의 같은 값진 선물을 부부에게 주는 관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후일 신부를 위한 금액이 폐지된 후, 이런 선물들은 신부의 지참금이 되었습니다. 83:3.4 (924.3) The idea of a dowry was to convey the impression of the bride’s independence, to suggest far removal from the times of slave wives and property companions. A man could not divorce a dowered wife without paying back the dowry in full. 지참금의 생각은 신부의 자활(自活)하는 인상의 전달, 즉 노예 아내 및 재산 동반자의 시대와 아주 달라졌음을 암시합니다. 남성은 지참금의 전액을 갚지 않으면 지참금을 가져온 아내와 이혼할 수 없었습니다.

  1. The Wedding Ceremony 결혼식

83:4.1 (924.4) The wedding ceremony grew out of the fact that marriage was originally a community affair, not just the culmination of a decision of two individuals. 결혼은 두 개인 결정의 성취만 아니라, 원래 공동체 업무였다는 사실에서, 결혼식이 발전하여 커졌습니다. 83:4.3 (924.6) At first the wedding ceremony was more on the order of a betrothal and consisted only in public notification of intention of living together; later it consisted in formal eating together. 처음에 결혼식은 약혼과 더 비슷했고, 동거(同居)의 의도를 공개적으로 알릴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결혼은 정식으로 같이 식사하는 것이었습니다. 83:4.4 (924.7) Efforts to insure fecundity also led to the association of marriage with certain magical or religious ceremonials. 다산 보증의 노력으로, 결혼은 어떤 마술이나 종교적 예식의 관련으로 또한 이어졌습니다.

83:4.9 (925.5) The luck element, that in spite of all premarital tests certain marriages turned out bad, led primitive man to seek insurance protection against marriage failure; led him to go in quest of priests and magic. And this movement culminated directly in modern church weddings. But for a long time marriage was generally recognized as consisting in the decisions of the contracting parents — later of the pair — while for the last five hundred years church and state have assumed jurisdiction and now presume to make pronouncements of marriage. 혼전(婚前)의 모든 시험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혼은 불행해졌다는 행운 요소로 인해서, 원시인(人)은 결혼 실패를 막으려고 보증을 찾게 되었고, 사제들과 마술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이 바로 현대 교회 결혼으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결혼은 일반적으로 계약하는 부모들(나중에는 그 쌍)의 결정이라고 인정되었던 반면에 지난 500년 동안에 교회와 국가가 관할권을 떠맡았고, 지금은 대담하게 결혼을 선언합니다.

  1. Plural Marriages 복혼(複婚)

83:5.1 (925.6) In the early history of marriage the unmarried women belonged to the men of the tribe. Later on, a woman had only one husband at a time. This practice of one-man-at-a-time was the first step away from the promiscuity of the herd. 초기 결혼 역사에서 미혼 여성들은 부족의 남성들에게 속했습니다. 나중에 한 여성은 한 번에 한 남편만 있었습니다. 한 번에 한 남성이라는 이런 관례는 무리의 집단적 난혼(亂婚)을 떠나는 첫 단계였습니다. 83:5.2 (925.7) The next step in mating evolution was the group marriage. 짝짓기 진화의 다음 단계는 집단 결혼이었습니다. 83:5.3 (926.1) Group marriages gradually gave way before the emerging practices of polygamy — polygyny and polyandry — among the more advanced tribes. 더 진보한 부족 중에서, 복혼(複婚)-일부다처(一夫多妻)와 일처다부(一妻多夫)-관행이 출현하기 전에, 집단 결혼은 점차 무너졌습니다. 83:5.10 (926.8) True polygyny, where all the wives are of equal status and all the children equal, has been very rare. 모든 아내가 동등한 자격으로, 모든 자녀가 동등한, 진정한 일부다처(一夫多妻)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83:5.12 (926.10) The taboo wife — one wife of legal status — created the concubine mores. Concubinage was the steppingstone to monogamy, the first move away from frank polygyny. 금기 아내–법적 자격이 있는 한 아내-가 첩 관습을 만들었습니다. 축첩(蓄妾)이 일부일처(一夫一妻)제의 발판, 명백한 일부다처(一夫多妻)에서 멀어지는 첫 조처였습니다.

  1. True Monogamy — Pair Marriage 진정한 단혼(單婚) – 일부일처(一夫一妻)

83:6.6 (927.7) Monogamy always has been, now is, and forever will be the idealistic goal of human sex evolution. This ideal of true pair marriage entails self-denial, and therefore does it so often fail just because one or both of the contracting parties are deficient in that acme of all human virtues, rugged self-control. 단혼(單婚)은 언제나 인간의 성(性) 진화의 이상적 목표였고, 지금도 그러며,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참된 일부일처제의 이런 이상(理想)에 극기(克己)가 필요하므로, 결혼 당사자 중 하나 혹은 둘 다, 오로지 모든 인간 미덕의 절정, 엄격한 자제(自制)가 모자라서 그토록 자주 실패합니다.

83:6.7 (927.8) Monogamy is the yardstick which measures the advance of social civilization as distinguished from purely biologic evolution. Monogamy is not necessarily biologic or natural, but it is indispensable to the immediate maintenance and further development of social civilization. It contributes to a delicacy of sentiment, a refinement of moral character, and a spiritual growth which are utterly impossible in polygamy. 단혼(單婚)은 순전히 생물학적 진화와 구별되는, 사회적 문명의 진보를 측정하는 척도입니다. 단혼(單婚)은 반드시 생물학적 혹은 자연발생적이지 않아도, 사회 문명의 즉각적 정비(整備)와 추가 발전에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것은 감정의 섬세함, 세련된 도덕적 특성 및 복혼(複婚)에서는 완전히 불가능한 영적 성장에 기여(寄與)합니다. 83:6.8 (928.1) Pair marriage favors and fosters that intimate understanding and effective co-operation which is best for parental happiness, child welfare, and social efficiency. Marriage, which began in crude coercion, is gradually evolving into a magnificent institution of self-culture, self-control, self-expression, and self-perpetuation. 일부일처제는 부모의 행복, 자녀의 복지 및 사회적 증진에 최선(最善)인, 친밀한 이해 및 효과적 협력을 뒷받침하고 촉진합니다. 미숙한 강압으로 시작된 결혼은 자기 수양(修攘), 자제(自制 극기), 자기표현 및 자기 영속(永續)의 훌륭한 제도로 점차 진화하고 있습니다.

  1. The Dissolution of Wedlock 혼인의 해약(解約)

83:7.3 (928.4) The inauguration of wife purchase and wife dowry, by introducing a property penalty for marriage failure, did much to lessen separation. 결혼 실패에 대한 재산 위약금을 도입한, 아내구입과 아내 지참금의 시작으로 별거(別居)가 크게 줄었습니다. 83:7.4 (928.5) The social pressure of community standing and property privileges has always been potent in the maintenance of the marriage taboos and mores. 공동체 존속과 재산 특권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결혼 금기와 관습의 유지에 언제나 유력했습니다. 83:7.6 (928.7) The real test of marriage, all down through the ages, has been that continuous intimacy which is inescapable in all family life. Two pampered and spoiled youths, educated to expect every indulgence and full gratification of vanity and ego, can hardly hope to make a great success of marriage and home building — a lifelong partnership of self-effacement, compromise, devotion, and unselfish dedication to child culture. 대대로 모든 세대에서, 결혼에 대한 진정한 시험은, 모든 가정생활에서 불가피한, 부단한 친밀함이었습니다. 모든 방종(放縱)과 허영과 자만을 완전히 채우도록 교육받은, 제멋대로 버릇없이 행동하는 두 젊은이는 결혼과 가정(家庭) 세우기 – 자기를 삼가고, 양보하며, 헌신하고, 자녀 양육에 이타적으로 헌신하는 평생 배우자 됨에, 크게 성공하기를 도저히 바랄 수 없습니다. 83:7.7 (929.1) Easy divorce, when the result of lack of self-control or failure of normal personality adjustment, only leads directly back to those crude societal stages from which man has emerged so recently and as the result of so much personal anguish and racial suffering. 자제(自制) 부족이나 정상적인 인격 조율 실패의 결과로, 쉬운 이혼(離婚)은, 사람이 아주 최근에, 그렇게 많은 개인적인 번민과 인종적 고통의 결과로써, 벗어났던, 그런 미숙한 사회적 단계로 바로 되돌아가게 할 뿐입니다.

83:7.8 (929.2) But just so long as society fails to properly educate children and youths, so long as the social order fails to provide adequate premarital training, and so long as unwise and immature youthful idealism is to be the arbiter of the entrance upon marriage, just so long will divorce remain prevalent. 그러나 사회가 아이들과 젊은이를 적절히 교육하지 못하고, 사회 계층이 충분히 혼전 훈련을 제공하지 못하며, 분별없이 미숙한 젊은이 특유의 이상주의(理想主義)가 결혼의 중재자가 되는 한, 이혼(離婚)은 바로 그렇게 오래 널리 유행할 것입니다. 83:7.9 (929.3) The great inconsistency of modern society is to exalt love and to idealize marriage while disapproving of the fullest examination of both. 현대 사회의 커다란 모순은, 사랑의 격찬과 결혼의 이상화(理想化), 둘 모두를 완전히 점검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격찬하고 결혼을 이상화(理想化)하는 것입니다.

  1. The Idealization of Marriage 결혼의 이상화(理想化)

83:8.1 (929.4) Marriage which culminates in the home is indeed man’s most exalted institution, but it is essentially human. 가정에서 절정에 이르는 결혼은 정말 인간의 가장 고귀한 제도이지만, 본질상 인간적입니다. 83:8.2 (929.5) The union of husband and wife in the marriage-home relationship is a material function of the mortals of the evolutionary worlds. 결혼-가정 관계에서 남편과 아내의 연합은 진화 세계 필사자들의 물질적 활동입니다. 83:8.3 (929.6) Neither can marriage be truly compared to the relation of the Adjuster to man nor to the fraternity of Christ Michael and his human brethren. 결혼은 정말로 조율자와 인간의 관계나, 그리스도 미가엘과 그의 인간 형제들의 우애에 견줄 수 없습니다. 83:8.5 (930.1) After all, the ideal mortal marriage is humanly sacred. 결국 이상적(理想的)인 필사자 결혼은 인간적으로 신성합니다.

83:8.6 (930.2) Young men and women should be taught something of the realities of marriage before they are plunged into the exacting demands of the interassociations of family life. 젊은 남녀는 서로 연합하는 가정생활의 힘든 요구에 돌입하기 전에, 그들은 결혼의 현실성을 어느 정도 배워야 합니다. 83:8.8 (930.4) Marriage is not just an individualistic ideal; it is the evolving social partnership of a man and a woman, existing and functioning under the current mores, restricted by the taboos, and enforced by the laws and regulations of society. 결혼은 개인주의적 이상(理想)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금기로 제한되고, 사회의 법률과 규정으로 시행되며, 현행 관습에 따라 존재하고 작용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진화하는 사회적 동반자 관계입니다.

S138 Training the Kingdom’s Messengers 개요 138편 하나님 나라 메신저들의 훈련

S138 Training the Kingdom’s Messengers 개요 138편 하나님 나라 메신저들의 훈련

138:0.1 (1538.1) AFTER preaching the sermon on “The Kingdom,” Jesus called the six apostles together that afternoon and began to disclose his plans for visiting the cities around and about the Sea of Galilee. “나라”에 대해 설교하신 후, 예수님은 그날 오후 6명의 사도들을 불러 모아서 갈릴리 바다 주변과 그 인근에 있는 도시들을 방문하려는 그의 계획을 드러내기 시작하셨습니다.

  1. Final Instructions 최종적 지시들

138:1.1 (1538.3) The next day, Sunday, June 23, A.D. 26, Jesus imparted his final instructions to the six. He sent them forth by twos, James and John going to Kheresa, Andrew and Peter to Capernaum, while Philip and Nathaniel went to Tarichea. 다음 날, 서기 26년 6월 23일 일요일에 예수님은 6명의 사도들에게 최종적으로 지시하셨습니다. 그는 그들을 둘씩 짝을 지어 보냈는데, 야고보와 요한은 게레사로, 안드레와 베드로는 가버나움으로, 빌립과 나다니엘은 타리케아로 갔습니다.

138:1.2 (1538.4) Before they began this first two weeks of service, Jesus announced to them that he desired to ordain twelve apostles to continue the work of the kingdom after his departure and authorized each of them to choose one man from among his early converts for membership in the projected corps of apostles. 그들이 이러한 첫 번째 두 주간의 봉사를 시작하기 전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가 떠난 후, 나라의 일을 계속할 12명의 사도들을 임명하기 원한다고 발표하셨으며, 기획된 사도단(團)의 회원 자격으로 그의 초기 개종자 중 한 사람씩 그들 각자가 선택하도록 권한을 주셨습니다.

  1. Choosing the Six 여섯 명 선택

138:2.1 (1539.4) This first missionary tour of the six was eminently successful. They returned to Jesus more fully realizing that, after all, religion is purely and wholly a matter of personal experience. 이 첫 번째 여섯 명의 선교(宣敎) 여행은 굉장히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종교란 순전히 전적으로 개인적 체험의 문제임을 더욱 충분히 인식하면서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138:2.3 (1539.6) The newly selected apostles were: 새로 뽑힌 사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38:2.4 (1539.7) 1. Matthew Levi, the customs collector of Capernaum was selected by Andrew. 마태 레위는 가버나움의 세관 징수원이며, 안드레가 그를 선택했습니다.

138:2.5 (1539.8) 2. Thomas Didymus, a fisherman of Tarichea was selected by Philip. 도마 디디머스는 타리케아의 어부이며, 빌립이 그를 선택했습니다.

138:2.6 (1539.9) 3. James Alpheus, a fisherman and farmer of Kheresa, was selected by James Zebedee. 야고보 알페오는 게레사의 어부(漁夫)이자 농부이며, 야고보 세베대가 그를 선택했습니다.

138:2.7 (1539.10) 4. Judas Alpheus, the twin brother of James Alpheus, also a fisherman, was selected by John Zebedee. 유다 알페오는 야고보 알페오의 쌍둥이 형제로, 그 역시 어부이며 요한 세베대가 그를 선택했습니다.

138:2.8 (1540.1) 5. Simon Zelotes was a high officer in the patriotic organization of the Zealots was selected by Peter. 시몬 젤로떼는 열심당이라는 애국적 조직에서 높은 장교였고, 베드로가 그를 선택했습니다.

138:2.9 (1540.2) 6. Judas Iscariot was an only son of wealthy Jewish parents living in Jericho. Because of his experience with finances, Nathaniel invited him to join their ranks. 가룟 유다는 여리고에 사는 어느 부유한 유대인 부모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재정에 관한 경력 때문에, 나다니엘이 그를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도록 초청했습니다.

  1. The Call of Matthew and Simon 마태와 시몬을 부르심

138:3.1 (1540.4) The next day Jesus and the six went to call upon Matthew, the customs collector. Matthew was awaiting them, having balanced his books and made ready to turn the affairs of his office over to his brother. As they approached the toll house, Andrew stepped forward with Jesus, who, looking into Matthew’s face, said, “Follow me.” And he arose and went to his house with Jesus and the apostles. 다음 날(AD 26. 7. 9. ) 예수님과 여섯 사도는 세리(세관 징수원) 마태를 방문하러 갔습니다. 마태는 그의 장부를 정리해 놓고, 동생에게 그의 사무실의 관련된 일들을 넘겨줄 준비를 마친 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세금징수소에 접근했을 때, 안드레가 예수님과 함께 앞으로 나갔으며, 예수님은 마태의 얼굴을 바라보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예수님과 사도들을 자기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138:3.3 (1540.6) After a noontide luncheon at Matthew’s house they all went with Peter to call upon Simon the Zealot, whom they found at his old place of business, which was now being conducted by his nephew. When Peter led Jesus up to Simon, the Master greeted the fiery patriot and only said, “Follow me.” 마태의 집에서 점심식사 후에, 그들은 모두 베드로와 함께 열심당원 시몬을 방문하러 가서 그가 이전에 사업을 하던 장소에서 만났는데, 이제는 그의 조카가 그 일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시고 시몬에게 갔을 때, 주(主)님은 그 열성 애국자에게 인사하면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만 하셨습니다.

  1. The Call of the Twins 쌍둥이 형제를 부르심

138:4.1 (1541.3) On the morrow all nine of them went by boat over to Kheresa to execute the formal calling of the next two apostles, James and Judas the twin sons of Alpheus, the nominees of James and John Zebedee. James Zebedee presented the Master to the Kheresa fishermen, and Jesus, gazing on them, nodded and said, “Follow me.” 다음 날(AD 26. 7. 10. ) 그들 9명 모두, 야고보 세베대와 요한 세베대가 추천한, 다음 차례의 두 사도, 즉 알페오의 쌍둥이 아들들인 야고보와 유다를 정식으로 부르기 위하여 배를 타고 게레사로 건너갔습니다. 야고보 세베대가 게레사의 그 어부들에게 주(主)님을 소개했고, 예수님은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38:4.2 (1541.4) That afternoon, which they spent together, Jesus fully instructed them concluding his remarks by saying: “All men are my brothers. My Father in heaven does not despise any creature of our making. The kingdom of heaven is open to all men and women. No man may close the door of mercy in the face of any hungry soul who may seek to gain an entrance thereto. We will sit at meat with all who desire to hear of the kingdom. As our Father in heaven looks down upon men, they are all alike. Refuse not therefore to break bread with Pharisee or sinner, Sadducee or publican, Roman or Jew, rich or poor, free or bond. The door of the kingdom is wide open for all who desire to know the truth and to find God.” 그들이 함께 보낸 그 날(AD 26. 7. 10. ) 오후, 예수님은 그들을 충분히 가르치시면서, 다음의 말로 끝맺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내 형제들이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는 우리가 창조한 어떤 창조물도 무시하지 않느니라. 하늘나라는 모든 남녀에게 열려있도다. 거기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어떤 굶주린 혼 앞에서 아무도 자비의 문을 닫지 않느니라.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 듣기를 원하는 모두 함께 식사하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사람들을 바라보실 때, 그들 모두 마찬가지라. 따라서 바리새인이나 죄인, 사두개인이나 세리, 로마인이나 유대인, 부자나 가난한 자, 자유로운 자나 묶인 자와 함께 빵을 떼는 것을 거부하지 말라. 하느님 나라의 문은 진리를 알고 하나님을 찾으려는 모두에게 넓게 열려있느니라.”

  1. The Call of Thomas and Judas 도마와 유다를 부르심

138:5.1 (1542.2) Thomas the fisherman and Judas the wanderer met Jesus and the apostles at the fisher-boat landing at Tarichea, and Thomas led the party to his near-by home. Philip now presented Thomas as his nominee for apostleship and Nathaniel presented Judas Iscariot, the Judean, for similar honors. Jesus looked upon Thomas and said: “Thomas, you lack faith; nevertheless, I receive you. Follow me.” To Judas Iscariot the Master said: “Judas, we are all of one flesh, and as I receive you into our midst, I pray that you will always be loyal to your Galilean brethren. Follow me.” (AD 26. 7. 11. ) 어부였던 도마와, 방랑자 유다는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타리케아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을 만났으며, 도마는 근처 자신의 집으로 그들을 안내하였습니다. 빌립은 이제 자신이 사도로 추천한 도마를 소개하였고, 나다니엘은 유대 지방 사람인 가룟 유다를 역시 정중하게 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도마를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야, 너는 신앙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받아들인다. 나를 따르라.” 주(主)님은 가룟 유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야, 우리는 모두 한 몸이며, 너를 우리 가운데 받아들이는 것처럼, 너는 항상 너의 갈릴리 형제들에게 충성하게 되기를 내가 기도하노라. 나를 따르라.”

138:5.2 (1542.3) Always would they make the mistake of trying to fit Jesus’ new gospel into their old forms of religious belief. They could not grasp the idea that Jesus had come to proclaim a new gospel of salvation and to establish a new way of finding God; they did not perceive that he was a new revelation of the Father in heaven. 그들은 항상 예수님의 새 복음을 자신들이 갖고 있는 옛 형태의 종교적 믿음(신념)에 끼워 맞추려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새로운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찾는 새로운 길을 설립하러 오신 그 관념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새로운 계시였음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1. The Week of Intensive Training 집중적인 훈련의 주간

138:6.1 (1542.6) The next week was devoted to a program of intense training. 그 다음 주(AD26. 7. 14.일~20토)는 집중적인 훈련 계획에 바쳐졌습니다. 138:6.3 (1543.1) Jesus endeavored to make clear to his apostles the difference between his teachings and his life among them and the teachings which might subsequently spring up about him. “My kingdom and the gospel related thereto shall be the burden of your message. Be not sidetracked into preaching about me and about my teachings. Proclaim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portray my revelation of the Father in heaven but do not be misled into the bypaths of creating legends and building up a cult having to do with beliefs and teachings about my beliefs and teachings.” 예수님은 가르침과 그들 중에서 생활하신 삶과, 후에 자신에 대해서 생길 수 있는 가르침들 사이의 차이점을, 사도들에게 분명히 밝히려고 애쓰셨습니다. “내 나라와 그와 관련된 복음이 너희 메시지의 중심이 되어야 하리라. 나에 대해서나 나의 가르침에 대해서 설교하는 잘못된 곁길로 빠지지 말라.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내가 계시하는 하늘의 아버지를 묘사하라. 그러나 나의 믿음들과 가르침들에 대한 믿음들과 가르침들과 관련된 전설을 창조하고 종파(宗派)를 세우는 샛길로 잘못 인도하지 말라.

138:6.4 (1543.2) In these early teachings Jesus sought to avoid controversies with his apostles as far as possible excepting those involving wrong concepts of his Father in heaven. In all such matters he never hesitated to correct erroneous beliefs. There was just one motive in Jesus’ postbaptismal life on Urantia, and that was a better and truer revelation of his Paradise Father; he was the pioneer of the new and better way to God, the way of faith and love. Ever his exhortation to the apostles was: “Go seek for the sinners; find the downhearted and comfort the anxious.” 이 초기의 가르침에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에 대한 그릇된 개념이 포함되지 않는 한, 가급적이면 사도들과 논쟁하는 것을 피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한 문제들이 제기될 때에는 언제나 주저하지 않고 잘못된 믿음(신념)들을 바로잡았습니다. 유란시아에서 세례 이후에 예수님의 일생은 단 한 가지의 동기만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천국 아버지를 더 낫게 더 참되게 계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새롭고 더 좋은 길, 신앙과 사랑의 길의 개척자였습니다. 항상 사도들에게 주신 그의 권고는 “가서 죄인들을 찾으라. 낙담한 자들을 찾고 근심하는 자를 위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1. Another Disappointment 또 한 번의 실망

138:7.1 (1543.4) Jesus had planned for a quiet missionary campaign of five months’ personal work. And early on this first day of the week, just as he was about to announce this to his twelve apostles, Peter made bold to say: “And when shall we learn, each of us, the positions we are to occupy with you in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 .” Jesus said: “My little children, how long shall I bear with you! Have I not made it plain to you that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I have told you many times that I have not come to sit on David’s throne, and now how is it that you are inquiring which place each of you will occupy in the Father’s kingdom? 예수님은 다섯 달 동안(AD26. 7월 21일 ~ 12월) 개인적으로 일하는 조용한 선교 캠페인을 계획하셨습니다. 그 주간의 이 첫째 날 이른 아침에, 그가 12 사도들에게 이 계획을 발표하려는 그때, 베드로가 대담하게 말했습니다. “나라를 설립할 때 당신과 함께 저희 각자가 맡아야 할 직위는 언제쯤 알게 될까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너희를 참아야 하겠느냐! 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너희에게 명백히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다윗의 왕좌에 앉으러 온 것이 아니라고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해 주었는데, 어찌하여 지금 너희가 아버지의 나라에서 차지할 각자의 직위를 묻고 있느냐?

Can you not perceive that I have called you as ambassadors of a spiritual kingdom? Do you not understand that soon, very soon, you are to represent me in the world and in the proclamation of the kingdom, even as I now represent my Father who is in heaven? Can it be that I have chosen you and instructed you as messengers of the kingdom, and yet you do not comprehend the nature and significance of this coming kingdom of divine pre-eminence in the hearts of men? My friends, hear me once more. Banish from your minds this idea that my kingdom is a rule of power or a reign of glory. Indeed, all power in heaven and on earth will presently be given into my hands, but it is not the Father’s will that we use this divine endowment to glorify ourselves during this age. In another age you shall indeed sit with me in power and glory, but it behooves us now to submit to the will of the Father and to go forth in humble obedience to execute his bidding on earth.” 내가 너희를 영적 나라의 대사로 불렀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느냐? 내가 지금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대신하고 있듯이, 너희는 곧, 바로 곧, 이 세상에서 나라를 선포하는 일에서 나를 대신하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너희를 선택하여 나라의 메신저들로서 가르쳤는데, 사람들의 심정에 신적 탁월함으로 다가오는 이 나라의 본질과 중요성을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느냐? 나의 친구들아, 한 번 더 내 말을 들으라. 내 나라는 권능의 통치나 영광의 지배라는 이 관념을 마음에서 지우라. 진실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이 곧 내 손에 주어지겠지만, 이 신적 자질을 이 시대에 우리 자신들을 영화롭게 하려고 쓰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다른 시대에, 너희는 진실로 나와 함께 권능과 영광으로 앉게 될 것이지만, 지금은 우리가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고, 이 땅에서 그의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 겸손히 순종함으로 출발함이 마땅하니라.” 138:7.2 (1544.1) Once more were his associates shocked, stunned. 그의 동료들은 다시 한 번 충격을 받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1. First Work of the Twelve 12 사도들의 첫 번째 활동

138:8.2 (1545.3) Jesus taught them to preach the forgiveness of sin through faith in God without penance or sacrifice, and that the Father in heaven loves all his children with the same eternal love. He enjoined his apostles to refrain from discussing: 예수님은 그들에게 회개나 희생물 없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죄를 용서받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영원한 사랑으로 그의 모든 자녀를 똑같이 사랑하신다고 설교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138:8.8 (1545.9) Jesus made plain to his apostles the difference between the repentance of so-called good works as taught by the Jews and the change of mind by faith — the new birth — which he required as the price of admission to the kingdom. He taught his apostles that faith was the only requisite to entering the Father’s kingdom. John had taught them “repentance — to flee from the wrath to come.” Jesus taught, “Faith is the open door for entering into the present, perfect, and eternal love of God.” Jesus did not speak like a prophet, one who comes to declare the word of God. He seemed to speak of himself as one having authority. Jesus sought to divert their minds from miracle seeking to the finding of a real and personal experience in the satisfaction and assurance of the indwelling of God’s spirit of love and saving grace.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가르쳤던 소위 선행의 회개와 나라의 입장료로 요구되는 신앙에 의한 마음의 변화새 탄생(거듭남) – 사이의 차이점을 사도들에게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신앙이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필수조건임을 사도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요한은 “회개(悔改) – 다가오는 진노로부터 피하라.”고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예수께서 “신앙은 오늘, 완전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들어가는 열린 문”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온 선지자처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권위를 지닌 자로서 말하는 듯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사랑과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여 속죄와 확신에 대한 실제적이며 개인적인 체험을 찾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전환하려고 애쓰셨습니다.

138:8.9 (1545.10) The disciples early learned that the Master had a profound respect and sympathetic regard for every human being he met, and they were tremendously impressed by this uniform and unvarying consideration which he so consistently gave to all sorts of men, women, and children. He was master and teacher, but he was more — he was also a friend and neighbor, an understanding comrade. 제자들은 주(主)님께서 만나게 된 모든 사람마다 깊은 존중과 공감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일찍부터 배웠으며, 모든 계층의 남녀와 아이들에게 그렇게 일관되게 쏟는 이러한 한결같고 변함없는 배려에 대단히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님이며 선생님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그는 또한 친구이며 이웃이었으며, 이해심 많은 벗이었습니다. 138:8.11 (1546.2) He made it very clear to them that women were to be accorded equal rights with men in the kingdom. 그는 하느님 나라에서 여인들도 남자들과 똑같은 권리를 갖게 됨을 그들에게 아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1. Five Months of Testing 5개월간의 시험

138:9.2 (1546.4) Not only were these months of quiet work a great test to the apostles, a test which they survived, but this season of public inactivity was a great trial to Jesus’ family. 조용히 일한 이 몇 개월은 사도들에게 큰 시험, 그들이 살아남은 시험이었을 뿐만 아니라, 공적 활동이 없던 이 시기는 예수님의 가족들에게도 큰 시련이었습니다. 138:9.1 (1546.3) The twelve apostles endured the test. With all of their grumblings, doubts, and transient dissatisfactions they remained true to their vows of devotion and loyalty to the Master. It was their personal association with Jesus during these months of testing that so endeared him to them that they all (save Judas Iscariot) remained loyal and true to him even in the dark hours of the trial and crucifixion. 12사도들은 그 시험을 참고 견디었습니다. 그들은 불평과 의심 그리고 일시적 불만을 품은 채로, 주(主)님에 대한 헌신과 충성의 서약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이러한 시험하는 몇 달 동안 사도들은 예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통해 그를 귀히 여겼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 재판과 십자가형의 암울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예수님께 여전히 충성하고 성실했습니다. 138:9.3 (1546.5) The apostles carried on their personal work in Capernaum, Bethsaida-Julias, Chorazin, Gerasa, Hippos, Magdala, Cana, Bethlehem of Galilee, Jotapata, Ramah, Safed, Gischala, Gadara, and Abila. 사도들은 가버나움, 벳새다-쥴리아스, 코라진, 게라사, 히포, 막달라, 가나, 갈릴리의 베들레헴, 요타파타, 라마, 사펫, 기샬라, 가다라, 그리고 아빌라에서 그들의 개인을 상대로 과업을 수행하였습니다.

These five months of work with Jesus led these apostles, each one of them, to regard him as the best friend he had in all the world. And it was this human sentiment, and not his superb teachings or marvelous doings, that held them together until after the resurrection and the renewal of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예수님과 일하던 이 다섯 달은 이 사도들 각자가 예수님을 온 세상에서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부활 후 새로운 하늘나라의 복음 선포까지, 사도들을 함께 붙들어 둔 것은 이 인간의 정서였지, 그의 훌륭한 가르침이나 놀라운 행적이 아니었습니다. By the time Jesus was prepared to launch forth on his public work, his entire family (except Ruth) had practically deserted him. They simply could not fathom his philosophy nor grasp his teaching; it was all too much for those of his own flesh and blood. 예수께서 공적 과업을 개시할 준비가 되었을 무렵, 그의 전 가족은 (룻을 제외하고) 사실상 그를 버렸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의 철학을 헤아리거나 그의 가르침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피붙이들에게는 그 모든 일이 너무 벅찼습니다.

  1. Organization of the Twelve 12 사도들의 조직

138:10.2 (1547.2) 1. Andrew, the first chosen apostle, was designated chairman and director general of the twelve. 제일 먼저 선택된 안드레가 12명의 의장이며 총책임자로 지명되었습니다.

138:10.3 (1547.3) 2. Peter, James, and John were appointed personal companions of Jesus.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의 개인적 동행자로 임명되었습니다.

138:10.4 (1547.4) 3. Philip was made steward of the group. 빌립은 그룹의 사무장이 되었습니다.

138:10.5 (1547.5) 4. Nathaniel watched over the needs of the families of the twelve. 나다니엘은 12명 사도의 가족들의 필요를 돌보았습니다.

138:10.6 (1547.6) 5. Matthew was the fiscal agent of the apostolic corps. 마태는 사도단의 재정 담당자였습니다.

138:10.7 (1547.7) 6. Thomas was manager of the itinerary. 도마는 일정 계획 관리자였습니다.

138:10.8 (1547.8) 7. James and Judas the twin sons of Alpheus were assigned to the management of the multitudes. 알페오의 쌍둥이 아들인 야고보와 유다는 군중들 관리에 배치되었습니다.

138:10.9 (1547.9) 8. Simon Zelotes was given charge of recreation and play. 시몬 젤로떼는 오락과 놀이를 담당했습니다.

138:10.10 (1547.10) 9. Judas Iscariot was appointed treasurer. 가룟 유다는 회계로 지명되었습니다.

138:10.11 (1547.11) In this way the twelve functioned from their early organization. 12명의 사도는 초기 조직부터 이런 식으로 활동했습니다.

S137 Tarrying Time in Galilee 개요 137편 갈릴리에 머무른 기간

S137 Tarrying Time in Galilee 개요 137편 갈릴리에 머무른 기간

137:0.1 (1524.1) EARLY on Saturday morning, February 23, A.D. 26, Jesus came down from the hills to rejoin John’s company encamped at Pella. 서기 26년(32세-31세 6개월) 2월 23일 토요일 이른 아침, 예수님은 펠라에서 야영을 하고 있던 요한의 무리들과 합류하기 위하여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1. Choosing the First Four Apostles 첫 번째 네 명의 제자를 택함

137:1.1 (1524.2) During this Sabbath two of John’s leading disciples spent much time with Jesus. Of all John’s followers one named Andrew was the most profoundly impressed with Jesus; Andrew said: “I have observed you ever since you came to Capernaum, and I believe you are the new Teacher, and though I do not understand all your teaching, I have fully made up my mind to follow you; I would sit at your feet and learn the whole truth about the new kingdom.” And Jesus, with hearty assurance, welcomed Andrew as the first of his apostles, that group of twelve who were to labor with him in the work of establishing the new kingdom of God in the hearts of men. 이 안식일 동안 요한의 수제자(首弟子) 두 명이 예수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요한의 모든 제자들 중에서 안드레라고 이름하는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안드레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당신이 가버나움에 오신 이래부터 당신을 계속 지켜보았으며, 당신이 바로 그 새로운 선생님이신 것을 믿으며; 당신의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당신을 따르기로 마음을 확실히 정하였습니다. 당신께 복종하면서 새로운 왕국에 대한 모든 진리를 배우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확신으로, 자신과 함께 사람들의 심정에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될 열 두 명의 그룹에서 첫 번째 사도로 그를 환영하셨습니다.

137:1.3 (1524.4) Andrew beckoned to Jesus to draw aside while he announced that his brother desired to join himself to the service of the new kingdom. And in welcoming Simon as his second apostle, Jesus said: “Simon, your enthusiasm is commendable, but it is dangerous to the work of the kingdom. I admonish you to become more thoughtful in your speech. I would change your name to Peter.” 안드레는 예수님을 한쪽 옆으로 불러내어, 자기 동생도 역시 새로운 왕국의 일을 하는데 참여하길 원하고 있다고 그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시몬을 자신의 두 번째 사도로 환영하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너의 정열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것은 왕국의 일에 있어서는 위험하다. 나는 네가 언행에 있어서 좀 더 사려가 깊어지기를 바란다. 나는 네 이름을 베드로로 바꾸고자 하노라.”

137:1.6 (1525.3) Jesus was asleep when they reached his abode, but they awakened him, saying: John then made bold to ask, “But, Master, will James and I be associates with you in the new kingdom, even as Andrew and Simon?” And Jesus, laying a hand on the shoulder of each of them, said: “You have been with me in the kingdom from the beginning. At all times concern yourselves only with doing the will of the Father who is in heaven.” 그들이 예수님의 거처에 도착했을 때에 예수님은 잠들어 있었지만, 그들은 그를 깨워서 말하였습니다. 요한은, “그러면 주(主)여, 야고보와 저도 안드레와 시몬처럼 새로운 왕국에서 당신의 동료가 되는 것입니까?”라고 대담하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 각각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맨 처음부터 나와 함께 왕국 안에 있었느니라. 모든 때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만 너희 자신을 염려하라.”

137:1.7 (1525.4) From this day on the term apostle was employed to distinguish the chosen family of Jesus’ advisers from the vast multitude of believing disciples who subsequently followed him. 이날부터, 예수님의 선택된 조언자들 일행과, 훗날 그를 따르던 광대한 무리의 믿는 제자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도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습니다.

  1. Choosing Philip and Nathaniel 빌립과 나다니엘을 택함

137:2.4 (1526.4) Peter took Philip to one side and proceeded to explain that they, referring to himself, Andrew, James, and John, had all become associates of Jesus in the new kingdom and strongly urged Philip to volunteer for service. 베드로는 빌립을 한쪽으로 데리고 나가, 자신과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모두 언급하며 예수님의 새로운 왕국의 동료가 되었다고 설명했으며, 빌립에게도 봉사에 자원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였습니다. 137:2.5 (1526.5) It suddenly dawned on Philip that Jesus was a really great man, possibly the Messiah, and he decided to abide by Jesus’ decision in this matter; and he went straight to him, asking, “Teacher, shall I go down to John or shall I join my friends who follow you?” And Jesus answered, “Follow me.” Philip was thrilled with the assurance that he had found the Deliverer. 빌립은 예수께서 실제로 위대한 인물이고 아마도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으며, 이 일에 대해 예수님의 결정을 따르기로 결심하였고, 곧장 예수께로 가서 요청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요한을 보러 길을 내려가야 합니까, 아니면 당신을 따르는 내 친구들과 같이 가야 합니까?” 예수는 “나를 따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빌립은 자기가 해방자를 찾았다는 확신으로 인해 감격스러웠습니다.

137:2.6 (1526.6) Philip now motioned to the group to remain where they were while he hurried back to break the news of his decision to his friend Nathaniel, who still tarried behind under the mulberry tree, turning over in his mind the many things which he had heard concerning John the Baptist, the coming kingdom, and the expected Messiah. Philip broke in upon these meditations, exclaiming, “I have found the Deliverer, him of whom Moses and the prophets wrote and whom John has proclaimed.” Nathaniel, looking up, inquired, “Whence comes this teacher?” And Philip replied, “He is Jesus of Nazareth, the son of Joseph, the carpenter, more recently residing at Capernaum.” And then, somewhat shocked, Nathaniel asked, “Can any such good thing come out of Nazareth?” But Philip, taking him by the arm, said, “Come and see.” 아직도 뽕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 나다니엘에게 자신이 결정한 소식을 알리려고 급히 그에게로 가면서, 빌립은 일행에게 그 자리에 그냥 남아있어 달라고 손짓으로 표시하였으며, 나다니엘은 세례 요한과 다가오는 왕국 그리고 기대하고 있는 메시아에 대해 자기가 들어왔던 많은 것들을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그의 묵상을 깨뜨리면서, “나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기록하고 요한이 선포하였던 해방자를 발견하였다.”라고 외쳤습니다. 나다니엘이 그를 쳐다보면서, “이 선생님은 어디 출신이신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그는 요셉의 아들인 목수인데, 최근에는 가버나움에 사셨던 나사렛의 예수이시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약간 놀란 나다니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가 있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그의 팔을 끌면서, “가서 만나보자.”라고 말하였습니다.

137:2.7 (1527.1) Philip led Nathaniel to Jesus, who, looking benignly into the face of the sincere doubter, said: “Behold a genuine Israelite, in whom there is no deceit. Follow me.” And Nathaniel, turning to Philip, said: “You are right. He is indeed a master of men. I will also follow, if I am worthy.” And Jesus nodded to Nathaniel, again saying, “Follow me.” 빌립이 나다니엘을 예수께로 데려갔으며, 그는 진지하게 의심하고 있는 얼굴을 인자하게 들여다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안에는 아무 거짓이 없도다. 나를 따르라.” 그러자 나다니엘은 빌립을 돌아보며, “네 말이 맞다. 그는 진정 사람들의 주(主)이시다. 나도 자격이 된다면, 따르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니엘에게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다시 한 번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The Visit to Capernaum 가버나움 방문

137:3.2 (1527.5) Before leaving Nazareth, the new associates of Jesus told Joseph and other members of Jesus’ family about the wonderful events of the then recent past and gave free expression to their belief that Jesus was the long-expected deliverer. 나사렛을 떠나기 전에, 예수님의 새로운 동료들은 요셉과 예수님의 다른 가족들에게, 지난 얼마 동안에 일어난 놀라운 사건들에 대해 말했고, 예수님은 자신들이 오래 기다려오던 해방자(구원자)라는 믿음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였습니다.

137:3.3 (1527.6) Jude was present at Jesus’ baptism and, with his brother James, had become a firm believer in Jesus’ mission on earth. 유다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의 형 야고보와 함께 있었으며, 예수님의 지상 사명을 굳게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37:3.4 (1527.7) Jesus arrived in Capernaum Monday night, but he did not go to his own home, where lived James and his mother; he went directly to the home of Zebedee. 예수님은 월요일 밤(AD 26, 2월 25일)에 가버나움에 도착하였으나, 야고보와 어머니가 살고 있던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곧장 세베대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137:3.6 (1528.2) On the next day, Tuesday, they all journeyed over to Cana for the wedding of Naomi, which was to take place on the following day. And in spite of Jesus’ repeated warnings that they tell no man about him “until the Father’s hour shall come,” they insisted on quietly spreading the news abroad that they had found the Deliverer. They each confidently expected that Jesus would inaugurate his assumption of Messianic authority at the forthcoming wedding at Cana, and that he would do so with great power and sublime grandeur. They remembered what had been told them about the phenomena attendant upon his baptism, and they believed that his future course on earth would be marked by increasing manifestations of supernatural wonders and miraculous demonstrations. Accordingly, the entire countryside was preparing to gather together at Cana for the wedding feast of Naomi and Johab the son of Nathan. 다음 날 화요일(AD 26, 2월 26일)에, 그들은 모두 그 다음 날로 예정된 나오미의 결혼식(結婚式)에 참석하러 가나를 향하여 여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시간이 올 때까지” 자신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거듭된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이 해방자(구원자)를 발견하였다는 소식을 은밀하게 널리 퍼뜨렸습니다. 그들 각자가, 다가올 가나의 결혼식에서 예수님이 메시아적 권위 수락을 시작하실 것이며 대단한 권능과 숭고한 위엄으로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확신 가운데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세례에서 일어났던 현상에 대해 이미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그의 지상생활에서 다가올 과정에는 초자연적 경이(驚異)들이 더욱 드러날 것과 기적적인 실증들을 남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온 시골 사람들은 나오미와 나단의 아들인 요합의 결혼 잔치를 위해 가나에 함께 모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137:3.7 (1528.3) Mary had not been so joyous in years. She journeyed to Cana in the spirit of the queen mother on the way to witness the coronation of her son. Not since he was thirteen years old had Jesus’ family and friends seen him so carefree and happy, so thoughtful and understanding of the wishes and desires of his associates, so touchingly sympathetic. And so they all whispered among themselves, in small groups, wondering what was going to happen. What would this strange person do next? How would he usher in the glory of the coming kingdom? And they were all thrilled with the thought that they were to be present to see the revelation of the might and power of Israel’s God. 마리아는 몇 년 동안 이렇게 즐거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즉위식을 보려고 행차하는 황태후의 기분으로 가나를 향해 여행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가 열세 살 되던 해 이후로, 그렇게 염려 없이 자유롭고 행복하며, 주변 사람들의 소원과 희망을 그렇게 헤아리고 이해하며, 그렇게 감동적으로 공감하는 그의 모습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무슨 일이 일어날려는 지에 궁금해 하면서 속삭였습니다. 이 이상한 사람이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그는 다가올 왕국의 영광을 어떻게 열어 보일 것인가? 그들은 모두 이스라엘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드러나는 것을 목격하는 현장에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떨렸습니다.

  1. The Wedding at Cana 가나의 결혼식

137:4.1 (1528.4) It was a Jewish custom to celebrate weddings on Wednesday, and the invitations had been sent abroad for the wedding one month previously. 결혼식은 수요일(AD26. 2. 27)에 축하하는 것이 유대관습이었으며, 초청장은 결혼식 한 달 전에 보내졌습니다. 137:4.7 (1529.4) Before the wedding supper was over, the servants brought the father of the bridegroom the disconcerting news that the wine was running short. The mother of the bridegroom confided to Mary that the supply of wine was exhausted. And Mary confidently said: “Have no worry — I will speak to my son. He will help us.” 결혼 만찬이 끝나기 전에, 하인들은 신랑의 아버지에게 포도주가 떨어져 가고 있다는 당황스러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신랑의 어머니는 마리아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내 아들에게 말하겠습니다. 그가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137:4.8 (1529.5) As Jesus was standing alone in a corner of the garden, his mother approached him, saying, “My son, they have no wine.” And Jesus answered, “My good woman, what have I to do with that?” Said Mary, “But I believe your hour has come; cannot you help us?” Jesus replied: “Again I declare that I have not come to do things in this wise. Why do you trouble me again with these matters?” And then, breaking down in tears, Mary entreated him, “But, my son, I promised them that you would help us; won’t you please do something for me?” And then spoke Jesus: “Woman, what have you to do with making such promises? See that you do it not again. We must in all things wait upon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예수께서 정원 한쪽에 혼자 서 계실 때에, 그의 어머니가 가까이 와서 말하기를, “내 아들아, 그들에게 포도주가 다 떨어졌느니라.” 그리자 예수님은, “선한 여인이시여, 내가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네 시간이 왔다고 믿는다.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없겠느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내가 선언합니다만, 나는 이런 식의 일을 행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왜 이러한 일들로 또 나를 괴롭히십니까?” 그러자 마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애원하기를, “그렇지만 내 아들아, 나는 그들에게 네가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제발 나를 위해 뭔가를 하지 않겠느냐?”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여, 무슨 관계가 있어서 그러한 약속을 하셨습니까? 다시는 그런 약속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섬겨야만 합니다.”

137:4.9 (1530.1) Mary the mother of Jesus was crushed; she was stunned! As she stood there before him motionless, with the tears streaming down her face, the human heart of Jesus was overcome with compassion for the woman who had borne him in the flesh; and bending forward, he laid his hand tenderly upon her head, saying: “Now, now, Mother Mary, grieve not over my apparently hard sayings, for have I not many times told you that I have come only to do the will of my heavenly Father? Most gladly would I do what you ask of me if it were a part of the Father’s will — “ and Jesus stopped short, he hesitated. Mary seemed to sense that something was happening. Leaping up, she threw her arms around Jesus’ neck, kissed him, and rushed off to the servants’ quarters, saying, “Whatever my son says, that do.” But Jesus said nothing. He now realized that he had already said — or rather desirefully thought — too much.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풀이 꺾였으며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녀는 예수님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자, 예수님의 인간적 심정은 자신을 낳은 여인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몸을 앞으로 굽혀 그녀의 머리 위에 부드럽게 손을 얹으며 말하였습니다. “, , 어머니 마리아여, 겉으로 보기에 매정한 나의 말에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나는 단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온 것이라고 내가 여러 번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내게 부탁하시는 일이 아버지 뜻의 일부분이라면 얼마든지 기꺼이 하겠는데” 예수님은 잠시 멈추었고, 망설였습니다. 마리아는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일어나 예수님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춘 후, 하인들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가면서, “내 아들이 말한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행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이미 너무 많은 말을아니 차라리 바램이 넘치는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37:4.10 (1530.2) Mary was dancing with glee. She did not know how the wine would be produced, but she confidently believed that she had finally persuaded her first-born son to assert his authority, to dare to step forth and claim his position and exhibit his Messianic power. And, because of the presence and association of certain universe powers and personalities, of which all those present were wholly ignorant, she was not to be disappointed. The wine Mary desired and which Jesus, the God-man, humanly and sympathetically wished for, was forthcoming. 마리아는 기뻐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녀는 포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될지는 몰랐지만, 자기가 마침내 자기 맏아들이 그의 권위를 주장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의 지위를 선포하고 메시아의 권능을 드러내도록 설득하였다고 지신 있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특정한 우주의 권능과 고유성들의 현존과 연합 때문에, 그녀는 실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원했고 하나님인간이신 예수께서 인간적인 공감으로 바랐던 포도주가 막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137:4.12 (1530.4) Of all persons present at the marriage feast of Cana, Jesus was the most surprised. In the face of the expressed wish of the Universe Creator Sovereign, there was no escaping the instantaneous appearance of wine. 가나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 가장 놀란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우주적 창조자 주권자가 표현한 소망의 면전에서 포도주가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137:4.13 (1530.5) But this was in no sense a miracle. At Cana on this occasion the agents of the Creator made wine just as they do by the ordinary natural processes except that they did it independently of time and with the intervention of superhuman agencies in the matter of the space assembly of the necessary chemical ingredients. 그러나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에서 이 경우에 창조주 대리자들은, 그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화학적 요소들을 공간에서 조립하는 문제에 있어서 초인간 대리자들이 개입했다는 것 외에는, 평범한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서 포도주를 만들었습니다.

137:4.16 (1531.3) Mary and the disciples of Jesus were greatly rejoiced at the supposed miracle which they thought Jesus had intentionally performed, but Jesus withdrew to a sheltered nook of the garden and engaged in serious thought for a few brief moments. 마리아와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대하던 기적을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행하였다고 생각하고 기쁨을 크게 즐거워했지만, 예수님은 정원의 아늑한 외진 곳으로 물러나 잠시 심각한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137:4.17 (1531.4) Jesus now fully comprehended that he must constantly be on guard lest his indulgence of sympathy and pity become responsible for repeated episodes of this sort. Nevertheless, many similar events occurred before the Son of Man took final leave of his mortal life in the flesh. 예수님은 이제, 공감과 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는 주의해야만 이런 종류의 반복된 일화들에 책임질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사건들이 사람의 아들의 육신의 생명이 마치기 전에 여러 번 발생했습니다.

  1. Back in Capernaum 가버나움으로 돌아옴

137:5.1 (1531.5) Though many of the guests remained for the full week of wedding festivities, Jesus, with his newly chosen disciple-apostles — James, John, Andrew, Peter, Philip, and Nathaniel — departed very early the next morning for Capernaum, going away without taking leave of anyone. 많은 손님들은 결혼 연회가 있는 그 주간 내내 머물러 있었지만, 예수님은 자기가 새로 뽑은 제자-사도들 – 야고보, 요한,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니엘 –을 데리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다음 날 아침(AD 26. 2. 28. ) 일찍 가버나움으로 떠났습니다. 137:5.2 (1531.6) After supper that evening, in this home of Zebedee and Salome, there was held one of the most important conferences of all Jesus’ earthly career. Only the six apostles were present at this meeting. But when Jesus set out to make clear to them who he was and what was to be his mission on earth and how it might possibly end, they were stunned. They could not grasp what he was telling them. 그날 밤 저녁식사 후에, 세베대와 살로메의 집에서, 예수님의 든 지상(地上)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 중 하나가 열렸습니다. 단지 여섯 명의 사도들만이 그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기가 누구이며, 땅에서 그의 사명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 그들에게 명백하게 설명하자, 그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그가 하시는 말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137:5.3 (1532.1) Jesus came clearly to comprehend that he never would be able to make his followers see him in any other light than as the long-expected Messiah. 예수님은 자신의 추종자들이 그렇게 오래 기대한 메시아 이외에 다른 각도에서 자신을 보게 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1. The Events of a Sabbath Day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들

137:6.1 (1532.3) Jesus’ first public appearance following his baptism was in the Capernaum synagogue on Sabbath, March 2, A.D. 26. 예수님의 세례 이후 그의 첫 공적 출현은 AD 26년 3월 2일(토)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있었습니다. 137:6.2 (1532.4) When Jesus stood up, the ruler of the synagogue handed him the Scripture roll, and he read from the Prophet Isaiah. 예수께서 일어서자, 회당장은 그에게 성서 두루마리를 건네주었으며, 그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부터 읽었습니다. 137:6.3 (1533.1) When he had finished this reading, Jesus handed the roll back to its keeper. Before sitting down, he simply said: “Be patient and you shall see the glory of God; even so shall it be with all those who tarry with me and thus learn to do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이 낭독을 마치고, 예수께서는 두루마리를 관리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자리에 앉기 전에 그는 단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라, 그러면 너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나와 함께 머물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을 이렇게 배우는 사람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137:6.4 (1533.2) That afternoon Jesus and his apostles, with James and Jude, entered a boat and pulled down the shore a little way, where they anchored while he talked to them about the coming kingdom. And they understood more than they had on Thursday night. 그날(AD 26. 3. 2. 토) 오후에 예수님과 야고보와 유다를 포함한 사도들은 배를 타고 해변을 따라 좀 떨어진 곳으로 나갔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래할 하느님 나라에 대해 말하는 동안, 그들은 그곳에 닻을 내렸습니다. 137:6.5 (1533.3) Jesus said: “Be patient, be gentle. Be ever obedient to the Father’s will. Make yourselves ready for the call of the kingdom. While you will experience great joy in the service of my Father, you should also be prepared for trouble, for I warn you that it will be only through much tribulation that many will enter the kingdom. We go forth to labor for a generation of sign seekers. They will be slow to recognize in the revelation of my Father’s love the credentials of my mission.”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인내하며 관대하라. 항상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라. 하느님 나라의 부르심에 너희 자신을 준비하라. 내 아버지를 섬기면서 너희가 큰 기쁨을 체험하는 반면에 너희는 또한 고난에 대비해야 하리니, 많은 시련을 겪어야만 여러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기 때문이라. 우리는 표적을 찾는 자들에 속한 세대를 향해 수고하러 나아가고 있느니라. 그들은 내 아버지 사랑의 계시 안에 있는 내 사명에 대한 신임장을 더디 알아볼 것이니라.

  1. Four Months of Training 4개월의 훈련

137:7.1 (1533.5) For four long months — March, April, May, and June — this tarrying time continued; Jesus held over one hundred long and earnest, though cheerful and joyous, sessions with these six associates and his own brother James. 4개월─3월, 4월, 5월, 6월─에 걸치는 이 긴 기다림의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섯 명의 동료들과 친동생 야고보에게 100번이 넘는 길고도 진지한, 그러나 유쾌하고 즐거운 강의를 하셨습니다. 137:7.2 (1534.1) Jesus possessed that matchless grace of personality which enabled him so to live among them that they were not dismayed by his divinity. And they were held together by his matchless personality and by the gracious words which he spoke to them evening upon evening. 예수님은 비할 데 없이 은혜로운 그런 고유성을 갖고 계셔서, 자신의 신성(神性)으로 그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그들 중에서 그렇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할 데 없는 예수님의 고유성과, 저녁마다 그가 그들에게 주시는 은혜로운 말씀들로 단합되어 갔습니다.

137:7.13 (1535.5) While Jesus laid emphasis on the proclamation of the “good tidings of the kingdom of heaven.” He unfailingly impressed upon his associates that they must “show forth love, compassion, and sympathy.” He early taught his followers that the kingdom of heaven was a spiritual experience having to do with the enthronement of God in the hearts of men. 예수는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의 선포에 중점을 두셨습니다. 그는 자기 동료들이 “사랑과 연민과 공감을 보여야 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셨습니다. 그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하늘나라는 사람들의 심정으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과 관련된 영적 체험임을 일찍부터 가르치셨습니다. 137:7.14 (1535.6) He did not precipitate confusion by the presentation of truth too far beyond their capacity to comprehend. 그는 그들의 이해 능력을 너무 뛰어넘는 진리의 제시로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1. Sermon on the Kingdom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

137:8.1 (1535.7) On Sabbath, June 22, Jesus occupied the synagogue pulpit for the second time since bringing his apostles to Capernaum. 6월 22일(토) 안식일에, 예수께서 사도들을 가버나움으로 데리고 오신 이래 두 번째 회당 설교를 맡았습니다. 137:8.6 (1536.3) “I have come to proclaim the establishment of the Father’s kingdom. And this kingdom shall include the worshiping souls of Jew and gentile, rich and poor, free and bond, for my Father is no respecter of persons; his love and his mercy are over all. “나는 아버지 나라의 설립을 선포하려고 왔노라. 이 나라는 유대인과 이방인,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로운 자와 얽매인 자들의 경배하는 혼들을 포함할 것이니, 내 아버지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라; 그의 사랑과 자비는 모두에게 주시느니라.” 137:8.7 (1536.4) “The Father in heaven sends his spirit to indwell the minds of men, and when I shall have finished my work on earth, likewise shall the Spirit of Truth be poured out upon all flesh. My disciples sha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y their moral decisions and by their spirit victories; and when they once enter therein, they shall find joy, righteousness, and eternal life.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사람들의 마음에 거하도록 그의 영(靈)을 보내신다. 내가 지상에서 내 일을 완결할 때, 마찬가지로 진리의 영이 모든 육체 위에 부어질 것이다. 나의 제자들은 그들의 도덕적 결정과 그들의 영 승리들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라. 그들이 일단 거기로 들어가면, 그들은 기쁨과 공의와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137:8.8 (1536.5) “Those who first seek to enter the kingdom, thus beginning to strive for a nobility of character like that of my Father, shall presently possess all else that is needful. But I say to you in all sincerity: Unless you seek entrance into the kingdom with the faith and trusting dependence of a little child, you shall in no wise gain admission. “먼저 그 나라에 들어가려고, 그렇게 내 아버지가 지니신 것과 같은, 성품의 고귀함을 얻으려고 애쓰기 시작하는 자들은, 즉시 필요한 다른 모든 것들을 소유할 것이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모든 성실함으로 이르노니, 어린아이의 신앙과 신뢰하는 믿음(의존)으로 나라 안으로 들어가려하지 않으면, 너희는 도저히 입국이 허가되지 않을 것이라. 137:8.9 (1536.6) “And this kingdom of God is righteousness,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그리고 이 하나님 나라는 성령(聖靈) 안에 있는 공의, 평화, 그리고 기쁨이라. 137:8.10 (1536.7) “When you enter the heavenly kingdom, you will be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 “너희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성령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으리라. 137:8.11 (1536.8) “In my Father’s kingdom there shall be only those who seek perfection through service, for I declare that he who would be great in my Father’s kingdom must first become server of all. “내 아버지의 나라에는 섬김으로 완전을 찾는 자들만 있을 것이며, 내가 선언하노니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큰 자가 되려면 먼저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만 하리라.

137:8.13 (1536.10) “The kingdom of heaven is a life of progressive righteousness and increasing joy in the perfecting service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하늘나라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완전히 섬기면서 진보하는 공의와 기쁨이 증가하는 생활이라. 137:8.14 (1537.1) “No matter what price you may pay to enter the kingdom of heaven, you shall receive manyfold more of joy and spiritual progress in this world, and in the age to come eternal life. “너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어떤 값을 치러도, 너희는 이 세상에서 여러 배의 많은 기쁨과 영적 진보를 받을 것이며, 다가오는 시대에 영원한 생명을 받으리라. 137:8.15 (1537.2) “All who enter therein shall find abundant liberty and joyous salvation. “거기에 들어가는 모든 자는 풍부한 해방과 기쁜 구원을 찾을 것이라. 137:8.16 (1537.3) “Those who shall ascend to my Father will certainly attain the right hand of his glory in Paradise. And all who enter the kingdom of heaven shall become the sons of God, and in the age to come so shall they ascend to the Father. And I have not come to call the would-be righteous but sinners and all who hunger and thirst for the righteousness of divine perfection. “내 아버지께 상승할 자들은 반드시 천국에서 그의 영광의 우편에 도달할 것이라. 그리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모든 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자녀들)이 될 것이며, 다가오는 시대에 그들은 그렇게 아버지께로 상승할 것이라. 그리고 나는, 의롭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자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과 신적 완전의 공의에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모든 자를 부르러 온 것이다. 137:8.17 (1537.4) “Now have I come proclaiming faith, the gift of God, as the price of entrance into the kingdom of heaven. If you would but believe that my Father loves you with an infinite love, then you are in the kingdom of God.” “나는 이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값으로, 하나님의 선물, 신앙을 선포하러 왔노라. 너희는 내 아버지께서 무한한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너희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것이라.”

S136 Baptism and the Forty Days 개요136편 세례와 40일

S136 Baptism and the Forty Days 개요136편 세례와 40일

136:0.2 (1509.2) When John preached the coming kingdom, the burden of his message was: Repent! flee from the wrath to come. When Jesus began to preach, there remained the exhortation to repentance, but such a message was always followed by the gospel, the good tidings of the joy and liberty of the new kingdom. 요한이 다가오는 나라를 전파하였을 때, 그의 메시지의 요점은 “회개하라! 앞으로 올 진노(震怒)를 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설교를 시작하였을 때, 회개하라는 권고는 같았지만, 그러한 메시지에는 언제는 복음, 즉 새로운 나라의 기쁨과 자유의 행복한 소식이 뒤따랐습니다.

  1. Concepts of the Expected Messiah 기대하던 메시아 개념

136:1.1 (1509.3) The concept evolve from the “servant of the Lord” to the “son of David,” “Son of Man,” and “Son of God.” 그 개념은 “주님의 종(왕, 제사장, 선지자)”으로부터 “다윗의 아들(완전한 인간),” “사람의 아들(초인간),”과 “하느님의 아들(신적 존재)”까지 발전되었습니다. 136:1.3 (1509.5) But they almost completely lost sight of the personality of the promised Messiah. They were looking for a restoration of Jewish national glory — Israel’s temporal exaltation — rather than for the salvation of the world. It therefore becomes evident that Jesus of Nazareth could never satisfy this materialistic Messianic concept of the Jewish mind. 그러나 그들은 약속된 메시아의 고유성(인격)에 대한 시각은 거의 완벽하게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구원보다는 유대의 민족적 영광─이스라엘의 세속적인 지위 향상─이 회복되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러한 물질주의적인 메시아의 개념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음이 명백해집니다. 136:1.5 (1510.2) And the kingdom of heaven could mean only one thing to any devout Jew: The coming of the Messiah. 어떤 열렬한 유대인에게라도 하늘나라라는 말은 오직 한 가지만을 의미했는데: 그것은 메시아의 도래였습니다.

136:1.6 (1510.3) There was one feature of the bestowal of Michael which was utterly foreign to the Jewish conception of the Messiah, and that was the union of the two natures, the human and the divine. Never had the Jews for a single moment entertained the true concept of the union in one earth personality of the two natures, the human and the divine. The incarnation of the Creator in the form of the creature had not been revealed beforehand. It was revealed only in Jesus; the world knew nothing of such things until the Creator Son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the mortals of the realm. 미가엘 증여에 있어서, 유대 메시아의 개념과 매우 다른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두 본성의 연합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두 가지의 본성이 이 세상의 한 고유성으로 연합한다는 참된 개념은 한순간도 고려해본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창조물의 형상으로 창조주가 육신이 되심은 과거에는 한 번도 계시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예수님 안에서만 계시되었으며; 창조주 아들이 육신으로 와서 그 땅의 필사자들 가운데에 거하시기 전까지, 세상은 그러한 일들을 알 수 없었습니다.

  1. The Baptism of Jesus 예수님의 세례

136:2.3 (1511.2) As John laid his hands upon Jesus to baptize him, and he heard this same spirit of Paradise origin now speak,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And John, with Jesus’ two brothers, also heard these words. Only the eyes of Jesus beheld the Personalized Adjuster. 요한이 그에게 세례를 주기 위하여 예수님 위에 손을 얹자, 천국 기원의 바로 그 영이 당시에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의 두 동생과 요한도 이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의 눈에만 고유성화 조율자가 보였습니다. 136:2.4 (1511.3) And while the four of them tarried in the water, Jesus, looking up to the near-by Adjuster, prayed: “My Father who reigns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even as it is in heaven.” When he had prayed, the “heavens were opened,” and the Son of Man saw the vision, presented by the now Personalized Adjuster, of himself as a Son of God as he was before he came to earth in the likeness of mortal flesh, and as he would be when the incarnated life should be finished. This heavenly vision was seen only by Jesus. 그들 네 명이 물에 머무는 동안, 예수님은 바로 근처의 조율자를 바라보며 기도하셨습니다. “하늘을 다스리는 내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그가 기도를 마치자, “하늘들이 열리고,” 사람의 아들은 이제 고유성화 조율자가 제시한, 자신이 필사자 육신의 모습으로 지상에 오기 이전(以前)과 육신화 생애를 마치고 되어질 이후(以後)의 하느님 아들로서 자신의 환영(幻影)을 보았습니다. 예수님만 이런 하늘의 환영을 봤습니다.

136:2.6 (1512.2) When Jesus was baptized, he repented of no misdeeds; he made no confession of sin. His was the baptism of consecration to the performance of the will of the heavenly Father. At his baptism he heard the unmistakable call of his Father, the final summons to be about his Father’s business. 예수께서 세례를 받았을 때, 그는 아무런 잘못도 회개하지 않았으며; 아무 죄도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헌신하는 세례였습니다. 세례받을 때, 그는 아버지의 일을 시작하라는 마지막 호출인 아버지의 명백한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136:2.7 (1512.3) This day of baptism ended the purely human life of Jesus. The divine Son has found his Father, the Universal Father has found his incarnated Son, and they speak the one to the other. 세례받은 이 날에 예수님은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일생을 끝마쳤습니다. 136:2.8 (1512.4) In the very year of A.D. 26, (Jesus was almost thirty-one and one-half years old when he was baptized.) 바로 서기 26년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는 거의 31살 반이었습니다).

  1. The Forty Days 40일

136:3.1 (1512.5) This Prince of Urantia, so soon to be proclaimed supreme Sovereign of Nebadon, now went into forty days of retirement to formulate the plans and determine upon the technique of proclaiming the new kingdom of God in the hearts of men. 곧 네바돈의 최극 주권자로 선포될, 유란시아의 이 왕자는, 사람들의 심정에 새로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계획을 구상하고 그 기법을 결정짓기 위하여, 이제 40일간 은둔에 들어갔습니다. 136:3.2 (1512.6) During this isolation in the Perean hills he determined upon the policy to be pursued and the methods to be employed in the new and changed phase of earth life which he was about to inaugurate. 페레아 언덕에서 혼자 계셨던 이 기간에, 그는 새롭게 변경된 지상 일생의 국면에서, 자신이 곧 시작하여 추구해야 할 정책과 사용되어야 할 방법들을 결정하셨습니다.

  1. Plans for Public Work 공(公)사역 계획

136:4.6 (1514.7) Gabriel had reminded Jesus that there were two ways in which he might manifest himself to the world in case he should choose to tarry on Urantia for a time. 가브리엘은 예수께서 유란시아에 한동안 머물기로 선택할 경우,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136:4.7 (1515.1) 1. His own way — the way that might seem most pleasant and profitable from the standpoint of the immediate needs of this world and the present edification of his own universe. 그 자신의 방법 – 이 세상의 즉각적 필요와 자기 우주의 당면한 계발(啓發)의 입장에서 가장 적절히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방법.

136:4.8 (1515.2) 2. The Father’s way — the exemplification of a farseeing ideal of creature life visualized by the high personalities of the Paradise administration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아버지의 방법 – 우주들의 우주의 천국 경영을 맡은 높은 고유성들이 구상한, 창조물 일생의 선견지명이 있는 이상(理想)의 모범.

136:4.9 (1515.3) On the third day of this isolation Jesus promised himself he would go back to the world to finish his earth career, and that in a situation involving any two ways he would always choose the Father’s will. And he lived out the remainder of his earth life always true to that resolve. Even to the bitter end he invariably subordinated his sovereign will to that of his heavenly Father. 이 고립의 3일에, 예수께서는 자기 지상 생애를 마치려고 세상으로 돌아가, 두 방법이 포함된 상황에서 항상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지상 생애의 나머지를 언제나 그런 결심에 충실하게 사셨습니다. 쓰라린 마지막에도 그는 변함없이 자기 주권적 뜻을 하늘 아버지의 뜻에 종속시켰습니다.

  1. The First Great Decision 첫 번째 중대한 결정

136:5.1 (1516.1) On the third day after beginning this conference with himself and his Personalized Adjuster, Jesus was presented with the vision of the assembled celestial hosts of Nebadon sent by their commanders to wait upon the will of their beloved Sovereign. This mighty host embraced twelve legions of seraphim and proportionate numbers of every order of universe intelligence. 자기 자신과 그의 고유성화 조율자와의 협의가 시작된 지 3일째 되는 날, 사랑하는 주권자의 뜻을 섬기라고 그들의 사령관이 보낸 네바돈 천상의 무리가 집합되어있는 환영(幻影)이 예수님에게 보였습니다. 이 강력한 무리는 12 군단의 세라핌 천사들과, 우주의 각 계층들로부터 온 균등한 숫자의 지능존재들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136:5.5 (1517.1) He had by a single decision excluded all of his attendant universe hosts of varied intelligences from participating in his ensuing public ministry except in such matters as concerned time only. It therefore becomes evident that any possible supernatural or supposedly superhuman accompaniments of Jesus’ ministry pertained wholly to the elimination of time unless the Father in heaven specifically ruled otherwise. 단 한 번의 결정으로, 그는 시간에 관한 문제만을 제외하고는, 자기가 계속적인 대중을 위한 공(公) 사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양한 우주 지능존재들 무리의 참여를 배제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공(公) 사역에서 따라다녔던 초자연적이거나 초인간적 업적이라고 이야기되는 것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특별히 다른 방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닌 한, 전적으로 시간 제거에 관계된 것임이 명백해졌습니다.

  1. The Second Decision 두 번째 결정

136:6.2 (1518.1) He now definitely decided against a policy which would transcend, violate, or outrage his own established natural laws. The Master chose a program of living which was the equivalent of deciding against miracles and wonders. Again he surrendered everything into the hands of his Paradise Father. 이제 그는 자신이 세운 자연법칙을 초월하거나 위반하거나 어기는 정책은 피하기로 분명하게 결정하였습니다. 주(主)님은 기적이나 이적을 행하지 않겠다는 결정에 상당하는 삶의 프로그램을 선택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의 천국 아버지의 손에 맡겼습니다. 136:6.4 (1518.3) He purposed to follow the unnatural course — he decided not to seek self-preservation. 그는 부자연스러운 과정을 따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 자아보존을 추구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36:6.11 (1519.4) Jesus thus revealed to the creatures of his universe the technique of the new and better way, the higher moral values of living and the deeper spiritual satisfactions of evolutionary human existence on the worlds of space. 이렇게 예수님은 자기 우주의 창조물들에게, 더 높은 도덕적 삶의 가치와 공간의 세계에서 진화하는 인간 존재가 누릴 더 깊은 영적 만족의 새롭고 나은 길로 가는 기법을 계시하셨습니다.

  1. The Third Decision 세 번째 결정

136:7.1 (1519.5) He decided to refrain from all superhuman intervention when the crisis of his life in the flesh should come. 그는 육신상의 삶의 위기가 올 때, 모든 초인간적 개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36:7.2 (1519.6) Jesus knew his fellow countrymen were expecting a Messiah who would be above natural law. But such a course, however gratifying to the sign-seeking Jews, would be, not a revelation of his Father, but a questionable trifling with the established laws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예수님은 자기 동료 민족이 자연법칙을 초월하는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은, 표적을 찾는 유대인들을 만족시키더라도, 그의 아버지를 나타내 보이는 길은 아닐 것이며 단지 우주들의 우주에 세워져 있는 법칙들을 의심스럽게 하는 무익한 행동일 뿐입니다. 136:7.4 (1520.1) Throughout his entire earth life Jesus was consistently loyal to this decision. 예수님은 자신의 지상 일생 내내, 끊임없이 이 결정에 충실하였습니다.

  1. The Fourth Decision 네 번째 결정

136:8.8 (1521.3) He refused to prostitute his divine attributes for the purpose of acquiring unearned popularity or for gaining political prestige. He would not countenance the transmutation of divine and creative energy into national power or international prestige. Jesus of Nazareth refused to compromise with evil, much less to consort with sin. The Master triumphantly put loyalty to his Father’s will above every other earthly and temporal consideration. 그는, 노력 없이 얻는, 인기를 얻는 목적이나 정치적 명성을 얻으려고 자신의 신적 속성들을 악용하기를 거절하셨습니다. 그는 신적이며 창조적인 에너지를 민족적 권능이나 국제적 명성으로 변질시키는 것을 묵인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죄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악과 타협하는 것도 거부하셨습니다. 주(主)님은, 다른 세속적이며 현세적으로 고려할 모든 것 위에 아버지의 뜻에 충성하는 것을, 승리한 마음으로 올려놓으셨습니다.

  1. The Fifth Decision 다섯 번째 결정

136:9.2 (1522.1) The Jews envisaged a deliverer who would come in miraculous power to cast down Israel’s enemies and establish the Jews as world rulers, free from want and oppression. Jesus knew that this hope would never be realized. He knew that the kingdom of heaven had to do with the overthrow of evil in the hearts of men, and that it was purely a matter of spiritual concern. He thought out the advisability of inaugurating the spiritual kingdom with a brilliant and dazzling display of power — and such a course would have been permissible and wholly within the jurisdiction of Michael — but he fully decided against such a plan. 유대인들은 해방자를, 기적의 힘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적들을 쳐부수고, 유대인들을 세상의 통치자들로 만들어 주며, 빈곤과 억압에서 해방시켜주는 자로 마음속에 그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희망이 결코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늘나라는 사람들의 심정에서 악을 버려야만 하는 일이며, 그것은 순수하게 영적 관련 문제였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는 찬란하며 눈부신 권능을 전시하는 영적 왕국의 취임식의 대안─그런 과정은 허락될 것이며 전적으로 미가엘의 관할권 안에 있었습니다.─을 생각했지만, 그는 그러한 계획을 반대하기로 완전히 결정하셨습니다.

  1. The Sixth Decision 여섯 번째 결정

136:10.1 (1523.6) On the last day of this memorable isolation, before starting down the mountain to join John and his disciples, the Son of Man made his final decision. And this decision he communicated to the Personalized Adjuster in these words, “And in all other matters, as in these now of decision-record, I pledge you I will be subject to the will of my Father.” 이 기억할만한 고립의 마지막 날, 요한과 그의 제자들에게 합류하러 산에서 내려가시기 전에, 사람의 아들은 그의 마지막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그는 이 결정을 다음과 같은 말로 고유성화 조율자에게 통보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다른 문제에서, 이제 이 여러 기록된-결정대로, 나는 나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할 것을 당신께 서약합니다.”

S36 The Life Carriers 개요 36편 생명 운반자들

S36 The Life Carriers 개요 36편 생명 운반자들

36:0.1 (396.1) LIFE does not originate spontaneously. Life is constructed according to plans formulated by the (unrevealed) Architects of Being and appears on the inhabited planets either by direct importation or as a result of the operations of the Life Carriers of the local universes. 생명은 자연적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생명은 (미未계시) 존재 건축가들이 만든 계획에 따라 구성되며, 직수입 또는 지역 우주에 속한 생명 운반자들의 작용 결과로서 거주 행성들에 출현합니다.

  1. Origin and Nature of Life Carriers 생명 운반자들의 기원과 본성

36:1.1 (396.2) The Life Carriers are the offspring of three pre-existent personalities: the Creator Son, the Universe Mother Spirit, and, by designation, one of the three Ancients of Days presiding over the destinies of the superuniverse concerned. 생명 운반자들은 선재(先在)하는 세 고유성들 : 창조자 아들, 우주 어머니 영(靈) 및 지정되어, 관련된 초우주 운명을 관장하는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 중 한 분의 자녀입니다. 36:1.2 (396.3) They are directed by the life-determining trio, consisting of Gabriel, the Father Melchizedek, and Nambia, the original and first-born Life Carrier of Nebadon. 가브리엘, 아버지 멜기세덱 및 네바돈에서 기원적으로 처음 태어난 생명 운반자, 남비아로 구성된, 생명을 결정하는 트리오가 그들을 지도합니다. 36:1.3 (396.4) Life Carriers are graded into three grand divisions: The first division is the senior Life Carriers, the second, assistants, and the third, custodians. 생명 운반자들은 3대 분과로 등급이 정해집니다. 첫째 분과는 선임 생명 운반자들이고, 둘째는 보좌관들이며, 셋째는 보관자들입니다.

  1. The Life Carrier Worlds 생명 운반자 세계들

36:2.1 (397.1) The Melchizedeks have the general oversight of the fourth group of seven primary spheres in the Salvington circuit. These worlds of the Life Carriers are designated as follows: 멜기세덱들은 샐빙톤 회로의 4번째 일곱 1차 구체 집단을 전체적으로 감독합니다. 생명 운반자들의 이런 세계들은 다음과 같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36:2.2 (397.2) 1. The Life Carrier headquarters. 생명 운반자 본부. 36:2.3 (397.3) 2. The life-planning sphere. 생명-계획 구체. 36:2.4 (397.4) 3. The life-conservation sphere. 생명-보존 구체. 36:2.5 (397.5) 4. The sphere of life evolution. 생명 진화의 구체. 36:2.6 (397.6) 5. The sphere of life associated with mind. 마음과 결합한 생명의 구체. 36:2.7 (397.7) 6. The sphere of mind and spirit in living beings. 살아있는 존재들의 마음과 영의 구체. 36:2.8 (397.8) 7. The sphere of unrevealed life. 미(未)계시 생명의 구체.

  1. Life Transplantation 생명 이식(移植)

36:3.1 (399.3) They are the carriers, disseminators, and guardians of life as it appears on the evolutionary worlds of space. 생명이 공간의 진화 세계에 나타나므로, 그들은 생명 운반자들, 파종자들 및 보관자들입니다. 36:3.2 (399.4) They sometimes organize the life patterns after arriving on the planet of assignment in accordance with formulas previously approved for a new adventure in life establishment. 그들은, 생명 정착의 새 모험을 위해 이전에 승인된 공식을 따라 배치된 행성에 도착한 후, 때때로 생명 원본을 조직합니다. 36:3.4 (399.6) The vital spark — the mystery of life — is bestowed through the Life Carriers, not by them. 생명의 섬광 – 생명의 신비 –은 생명 운반자들이 증여하지 않고, 그들을 통해 증여됩니다. 36:3.8 (400.3) When the Life Carriers operating on a new world have once succeeded in producing a being with will, with the power of moral decision and spiritual choice, then and there their work terminates — they are through; 새 세계에서 일하는 생명 운반자들이 도덕적 결정과 영적 선택의 힘을 지닌 의지 존재의 생산에 일단 성공하는 그때, 그들이 끝내서, 그들의 과업이 종료됩니다.

  1. Melchizedek Life Carriers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들

36:4.1 (400.5) In every local system of inhabited worlds throughout Nebadon there is a single sphere whereon the Melchizedeks have functioned as life carriers. 네바돈 전체의 모든 거주 세계가 속한 지역 체계마다, 멜기세덱들이 생명 운반자들로 활동하는 구체가 하나 있습니다. 36:4.2 (400.6) The progeny of a Melchizedek life carrier and a Material Daughter are known as midsoniters.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와 물질 딸의 자손은 중한(中限)자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36:4.6 (401.2) The children of the Melchizedek life carriers and the Material Daughters are domiciled on the seventh world of the finaliters, the Salvington midsonite sphere.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들과 물질 딸들의 자녀들은 최종자들의 일곱째 세계, 샐빙톤 중한(中限)자 구체에서 삽니다. 36:4.8 (401.4) It is the belief of the Melchizedek life carriers that their midsonite children will some day be endowed with the transcendental and eternal spirit of absonity by God the Ultimate.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들은 궁극 하느님이 언젠가 자신들의 중한(中限) 자녀들에게 절한(絶限)의 초월적인 영원한 영(靈)을 증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1.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일곱 보조 마음-영(靈)들

36:5.1 (401.5) It is the presence of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on the primitive worlds that conditions the course of organic evolution; that explains why evolution is purposeful and not accidental. 생물진화 과정을 결정하는 것은 원시 세계에 있는 일곱 보조 마음-영들의 존재입니다. 그것이 진화가 의도적이며, 우발적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36:5.2 (401.6)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are called by names which are the equivalents of the following designations: intuition, understanding, courage, knowledge, counsel, worship, and wisdom. 일곱 보조 마음-영들은 다음의 명칭에 해당하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직관(直觀), 이해(理解), 용기(勇氣), 지식(知識), 조언(助言), 경배(敬拜) 및 지혜(智慧).

  1. Living Forces 살아있는 기세(氣勢)들

36:6.3 (404.1) Life Carriers can organize the material forms, or physical patterns, of living beings, but the Spirit provides the initial spark of life and bestows the endowment of mind. Animal mind and human mind are gifts of the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functioning through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while creature ability to reproduce is the specific and personal impartation of the Universe Spirit to the ancestral life plasm inaugurated by the Life Carriers. 생명 운반자들은 살아있는 존재의 물질적 형태, 물리적 원본을 조직할 수 있지만, 영(靈)이 최초 생명의 섬광을 공급하며 마음 자질을 증여합니다. 동물 마음과 인간 마음은, 일곱 보조 마음-영(靈)들을 통해 활동하는, 지역 우주 어머니 영(靈)의 선물이며, 한편 번식하는 창조물 능력은 생명 운반자들이 시작한 조상의 생명 원형질에 우주 영(靈)이 명확히 직접 전달한 것입니다. 36:6.5 (404.3) The survival of mortal creatures is wholly predicated on the evolvement of an immortal soul within the mortal mind. 필사 창조물의 생존은 전적으로 필사 마음 안에 있는 불멸 혼(魂)의 진화에 근거합니다. 36:6.7 (404.5) We know that life flows from the Father through the Son and by the Spirit. 우리는 생명이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통해 영(靈)에 의해서 흐르는 것을 압니다.

S82 The Evolution of Marriage 개요82편 결혼의 진화

S82 The Evolution of Marriage 개요82편 결혼의 진화

82:0.1 (913.1) Marriage is man’s reactional adjustment to bisexuality. Marriage has given mankind the home, and the home is the crowning glory of the whole long and arduous evolutionary struggle. 결혼은 양성에 인간이 조율하며 반응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인류에게 가정을 제공했으며, 가정은 길고 힘든 진화적 투쟁 전체에서 최고의 영광입니다.

  1. The Mating Instinct 짝짓기 본능

82:1.1 (913.4) Mating is an innate propensity, and marriage is its evolutionary social repercussion. 짝짓기는 타고난 성향이고, 결혼은 그 진화의 사회적 반향(反響)입니다. 82:1.8 (914.4) The perpetuation of the evolving human species is made certain by the presence of this racial mating impulse, an urge which is loosely called sex attraction. This great biologic urge becomes the impulse hub for all sorts of associated instincts, emotions, and usages — physical, intellectual, moral, and social. 이런 종족의 짝짓기 충동, 막연히 성적 매력이라고 하는 충동의 존재로, 진화하는 인간종의 영속은 확실합니다. 위대한 이 생물학적 충동은 관련된 모든 종류-육체적, 지적, 도덕적 및 사회적-의 본능, 감정 및 관례를 위한 중심적 충동이 됩니다. 82:1.10 (914.6) Intelligent submission of this impulse to the regulations of society is the supreme test of the actuality of any civilization. 이런 충동을 사회 규정에 지적으로 복종시키는 것이, 문명화의 현실에 대한 최고의 시험입니다.

  1. The Restrictive Taboos 제한하는 금기

82:2.4 (915.2) In the earliest stages of tribal development the mores and restrictive taboos were very crude, but they did keep the sexes apart — this favored quiet, order, and industry — and the long evolution of marriage and the home had begun. The sex customs of dress, adornment, and religious practices had their origin in these early taboos which defined the range of sex liberties and thus eventually created concepts of vice, crime, and sin. 부족이 발전하는 최초의 단계에서 관습과 제한하는 금기는 아주 미숙했지만, 그것들이 남녀를 떼어 놓아 – 이것이 평온과 질서와 근면을 촉진했으며, 결혼과 가정의 오랜 진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의복, 장식 및 종교적 관습에 대한 성적 풍습은 성적 해방의 범위를 규정하는 이런 초기 금기에서 유래되었고, 이렇게 결국 부도덕, 범죄 및 죄의 개념이 생겼습니다.

  1. Early Marriage Mores 초기의 결혼 관습

82:3.3 (915.6) The early sex and mating mores were a mass of inconsistent and crude regulations. But in spite of all this, those races which exalted and practiced marriage naturally evolved to higher levels and survived in increased numbers. 초기 성(性) 및 짝짓기 관습은 대부분이 일관성이 없고 허술한 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격찬하고 실행한 그런 종족들은 자연히 더 높은 수준으로 진화했고, 살아남은 수가 늘었습니다. 82:3.4 (915.7) In primitive times marriage was the price of social standing. 원시 시대에 결혼은 사회적 신분의 값이었습니다.

  1. Marriage Under the Property Mores 재산 관습에 따른 결혼

82:4.1 (917.4) Property has been the stabilizer of marriage. 재산은 결혼을 안정시켰습니다. 82:4.2 (917.5) Primitive marriage was an investment, an economic speculation. And that the property mores were effective in stabilizing the marriage institution is borne out by the fact that marriage was more permanent among the early tribes than it is among many modern peoples. 원시 결혼은 투자, 경제적 투기였습니다. 그리고 결혼이 여러 현대 민족들 사이보다는 초기 부족들 사이에서 더 영구적이었다는 사실이, 재산 관습이 결혼제도의 안정에 효과적이었음을 실증합니다.

  1. Endogamy and Exogamy 동족(同族) 결혼과 족외(族外) 결혼

82:5.2 (918.2) While the inbreeding of good stock sometimes resulted in the upbuilding of strong tribes, the spectacular cases of the bad results of the inbreeding of hereditary defectives more forcibly impressed the mind of man, with the result that the advancing mores increasingly formulated taboos against all marriages among near relatives. 좋은 혈통의 족내 교배로 때때로 강한 부족이 설립되었지만, 족내 교배로 인한 유전적 장애의 나쁜 결과로 놀란 경우가 사람의 마음이 더욱 강력히 인식된 결과로, 진보하는 관습이 가까운 친척 사이의 모든 결혼을 반대하는 금기를 점차 만들어냈습니다. 82:5.8 (919.4) But it was not possible for out-mating to become prevalent until neighboring groups had learned to live together in relative peace. 그러나 이웃 집단들이 비교적 평화롭게 같이 살아가기를 배울 때까지, 족외-짝짓기가 널리 유행할 수 없었습니다.

82:5.9 (919.5) Outmarriage itself was a peace promoter. Outmarriage led to tribal co-ordination and to military alliances; it was a nation builder. Outmarriage was also greatly favored by increasing trade contacts; adventure and exploration contributed to the extension of the mating bounds and greatly facilitated the cross-fertilization of racial cultures. 족외 결혼 자체는 평화 촉진자였습니다. 족외 결혼으로 부족적 통합-조정과 군사 동맹에 이르렀습니다. 족외 결혼이 국가를 세웠습니다. 교역 접촉의 증가로 족외 결혼 역시 더 지지를 받았습니다. 모험과 탐험이 짝짓는 범위의 확장에 큰 도움이 되었고, 인종 문화의 상호 교류를 크게 도왔습니다.

  1. Racial Mixtures 인종 혼합

82:6.5 (920.3) Hybridization of superior and dissimilar stocks is the secret of the creation of new and more vigorous strains. Hybridization augments vigor and increases fertility. 우수한 다른 인종의 교배가 새롭고 더 강건한 혈통이 창조되는 비결입니다. 잡종 번식이 생기를 증가시키고 생식 능력을 증대합니다. 82:6.7 (920.5) Even among inferior stocks, hybrids often are an improvement on their ancestors. Hybridization makes for species improvement because of the role of the dominant genes. Racial intermixture increases the likelihood of a larger number of the desirable dominants being present in the hybrid. 열등한 종족 중에서도, 튀기가 종종 그 조상들보다 낫습니다. 우성 유전자의 역할 때문에, 교배가 종자를 개선합니다. 인종 혼합으로, 잡종 안에 존재할, 바람직한 우성 유전성의 가능성이 더 많이 늘어납니다.

82:6.8 (920.6) For the past hundred years more racial hybridization has been taking place on Urantia than has occurred in thousands of years. The danger of gross disharmonies as a result of crossbreeding of human stocks has been greatly exaggerated. The chief troubles of “half-breeds” are due to social prejudices. 수천 년간 일어났던 것보다 과거 수백 년간 인종 교배가 유란시아에서 더 많이 발생했습니다. 인간 혈통이 교배한 결과로써 심한 부조화의 위험이 많이 과장되었습니다. “잡종들”의 주된 문제는 사회적 편견 때문입니다. 82:6.11 (921.1) After all, the real jeopardy of the human species is to be found in the unrestrained multiplication of the inferior and degenerate strains of the various civilized peoples rather than in any supposed danger of their racial interbreeding. 결국, 인류의 실제 위험은, 소위 어떤 인종 교배의 위험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화된 다양한 종족 중에서 열등하고 퇴화한 혈통들의 억제되지 않은 증식에서 발견됩니다.

S135 John the Baptist 개요 135편 세례(洗禮) 요한

S135 John the Baptist 개요 135편 세례(洗禮) 요한

135:0.1 (1496.1) JOHN the Baptist was born March 25, 7 B.C., in accordance with the promise that Gabriel made to Elizabeth in June of the previous year. 세례 요한은, 일 년 전 6월에 가브리엘이 엘리자벳에게 나타나서 약속한 대로, BC 7년 3월 25일에 태어났습니다.

  1. John Becomes a Nazarite 나실인이 된 요한

135:1.1 (1496.6) His parents had selected his age of fourteen as the appropriate year for him to take the formal Nazarite vow. 그의 부모는 그의 14살이 정식 나실인으로 서약하기에 적당한 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135:1.2 (1496.7) John as a life Nazarite was looked upon as a sanctified and holy personality. 요한은 종신(終身) 나실인으로서 신성하고 거룩한 인격으로 여겨졌습니다. 135:1.4 (1497.2) When sixteen years old, John, as a result of reading about Elijah, became greatly impressed with the prophet of Mount Carmel and decided to adopt his style of dress. 16세가 되었을 때, 요한은 엘리야에 관한 글을 읽은 결과로 갈멜산의 선지자에게 크게 감명(感銘)을 받아 그의 복장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1. The Death of Zacharias 사가랴의 죽음

135:2.1 (1497.3) After an illness of several months Zacharias died in July, A.D. 12, when John was just past eighteen years of age. 몇 달 동안 병을 앓은 후, 사가랴는 서기(西紀) 12년 7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 요한은 막 18세가 되었습니다. 135:2.2 (1497.4) In September of this year Elizabeth and John made a journey to Nazareth to visit Mary and Jesus. 이해 9월에 엘리자벳과 요한은 마리아와 예수를 방문하러 나사렛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He was admonished, not only by Jesus’ words but also by his example, to return home, take care of his mother, and await the “coming of the Father’s hour.” 예수의 말뿐만 아니라 그의 본보기에 의해 그는 깨닫게 되어,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보살피며 “아버지 시간의 도래”를 기다렸습니다. 135:2.4 (1497.6) He was very fond of Abner, the acknowledged leader and head of the Engedi colony. 그는 엥게디 거류민단의 유명한 지도자이며 우두머리인 아브너를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1. The Life of a Shepherd 목자의 생활

135:3.1 (1497.7) John’s life as a shepherd afforded him a great deal of time for thought. 요한의 생활은 목자였기에 그는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많았습니다. 135:3.3 (1498.2) John was never able completely to rise above the confusion produced by what he had heard from his parents concerning Jesus and by passages which he read in the Scriptures. 요한은 예수에 관해 부모에게서 들은 것과 성서에서 자신이 읽은 구절들로 인해 생긴 혼란에서 결코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His mother assured him that his distant cousin, Jesus of Nazareth, was the true Messiah, that he had come to sit on the throne of David, and that he (John) was to become his advance herald and chief support. 그의 어머니는 먼 사촌, 나사렛 예수가 참 메시아이며, 그는 다윗의 보좌에 앉을 것이고, 그(요한)는 그의 도래를 미리 알리는 큰 기둥이 될 것이라고 그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135:3.4 (1498.3) The feeling grew in John’s heart that he was to be the last of the old prophets and the first of the new. 자신이 옛 선지자들의 마지막이며 새 선지자들의 첫째가 되리라는 느낌이 요한의 심정에서 자라났습니다.

  1. The Death of Elizabeth 엘리자벳의 죽음

135:4.1 (1499.1) On August 17, A.D. 22, when John was twenty-eight years of age, his mother suddenly passed away. AD 22년 8월 17일, 요한이 28세가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135:4.6 (1499.6) At last he thought out the method of proclaiming the new age, the kingdom of God; he settled that he was to become the herald of the Messiah; he swept aside all doubts and departed from Engedi one day in March of A.D. 25 to begin his short but brilliant career as a public preacher. 드디어 그는 새 시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는 자신이 메시아의 선구자가 되기로 정했습니다. 그는 모든 의심을 쓸어버리고, AD 25년 3월 어느 날, 짧았지만 대중 설교자로서 눈부신 생애를 시작하려고 엥게디를 떠났습니다.

  1. The Kingdom of God 하느님의 나라

135:5.2 (1500.2) To the Jews of Palestine the phrase “kingdom of heaven” was an absolutely righteous state.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에게 “하늘나라”는 절대적으로 공의로운 국가였습니다. 135:5.4 (1500.4) Many looked expectantly for a new king in Palestine, for a regenerated Jewish nation. Another group of devout Jews taught that the world was approaching its certain end, and that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were to usher in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of God. 많은 사람은 재건된 유대 국가를 위해 새로운 왕이 팔레스타인에 나타나 다스릴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믿음이 깊은 다른 유대인 집단은, 세상은 확실히 종말에 가까웠다는 것과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느님 나라 설립을 예고하고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135:5.5 (1500.5) The literalists taught that a world-wide war would ensue which would destroy all unbelievers, while the faithful would sweep on to universal and eternal victory. The spiritists taught that the kingdom would be ushered in by the great judgment of God, at the same time elevating the believing saints of the chosen people to high seats of honor and authority with the Son of Man. 문자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인 전쟁이 잇달아 일어나 믿지 않는 모든 자들이 멸망하는 반면에 신실히 믿는 자들은 우주적이며 영원한 승리로 압승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 심판으로 그 나라가 임하는 동시에, 선택된 백성 중에서 믿는 성도들은 사람의 아들과 함께 명예롭고 권위 있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135:5.6 (1501.1) Some of the Jews held to the opinion that God might possibly establish this new kingdom by direct and divine intervention, but the vast majority believed that he would interpose some representative intermediary, the Messiah. 어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직접적인 신적 개입으로, 새로운 이 나라 설립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품었지만, 대다수는 중재(仲裁)하는 메시아가 대리인(代理人)으로 개입하리라고 믿었습니다. 135:5.8 (1501.3) Each of these various groups of Jewish-kingdom expectants was intrigued by the proclamations of this sincere, enthusiastic, rough-and-ready preacher of righteousness and repentance, who so solemnly exhorted his hearers to “flee from the wrath to come.” 이렇게 유대 왕국을 기다리는 여러 집단은 각자, 성실히, 열성적으로, 공의와 회개를 부르짖는 이 투박한 설교자의 외침에 매료되었으며, 그는 청중에게 “다가올 진노로부터 도피하라.”고 매우 엄숙하게 훈계했습니다.

  1. John Begins to Preach 요한이 설교를 시작하다

135:6.1 (1501.4) Early in the month of March, A.D. 25, John began to preach to the people who passed by on their way back and forth across the river Jordan. 서기 25년 3월 초기에, 요한은 요단강을 건너 오가는 도중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135:6.4 (1502.2) Only fifteen months intervened between the time John began to preach and baptize and his arrest and imprisonment at the instigation of Herod Antipas, but in this short time he baptized considerably over one hundred thousand penitents. 요한이 설교와 세례를 시작한 때부터 헤롯 안티파스의 선동으로 체포되어 갇힐 때까지 겨우 15개월이었으나, 이 짧은 기간에 그는 10만 명이 훨씬 넘는 회개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135:6.8 (1502.6) He counseled all: “Make ready for the end of the age —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그는 모두에게 권했습니다. “시대의 종말을 위해 준비하라─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1. John Journeys North 요한이 북쪽으로 여행하다.

135:7.2 (1503.2) As John journeyed north, he thought much about Jesus. “There will come after me one who is greater than I, whose sandal straps I am not worthy to stoop down and unloose. I baptize you with water, but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his shovel is in his hand thoroughly to cleanse his threshing floor; he will gather the wheat into his garner, but the chaff will he burn up with the judgment fire.” 요한은 북쪽으로 여행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위대하시니,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노라.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그 분은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줄 것이다. 자기 타작마당을 샅샅이 깨끗하게 하려고 그의 손에 삽을 들고 있느니라. 알곡은 곡간에 모아들이시겠지만, 쭉정이는 심판의 불에 태우시리라(막1:7-8, 마3:11-12).”

  1. Meeting of Jesus and John 예수님과 요한의 만남

135:8.6 (1504.4) John was atremble with emotion as he made ready to baptize Jesus of Nazareth in the Jordan at noon on Monday, January 14, A.D. 26. Thus did John baptize Jesus and his two brothers James and Jude. The four men still standing in the water heard a strange sound, and presently there appeared for a moment an apparition immediately over the head of Jesus, and they heard a voice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요한은 AD 26년 1월 14일, 월요일 정오에 요단강에서 나사렛 예수에게 세례 준비를 하면서 감정에 북받쳐 전율하였습니다. 그렇게 요한은 예수님과 그의 두 동생, 야고보와 유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여전히 물속에 서 있던 네 사람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이내 하나의 환영(幻影)이 잠깐 예수의 머리 바로 위에 나타났으며, 그들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아주 기뻐하는 자라(3:17).”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135:8.7 (1504.5) John had said, “Now I know of a certainty that you are the Deliverer.” But Jesus made no reply. 요한은 “이제 나는 당신이 해방자임을 확실히 압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 Forty Days of Preaching 40일간의 설교

135:9.2 (1505.2) It was a tense time, these forty days of tarrying, waiting for the return of Jesus. 예수께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머물렀던 이 40일은 매우 긴장된 시간이었습니다. 135:9.7 (1505.7) It was early on the morning of Sabbath, February 23, that the company of John, engaged in eating their morning meal, looked up toward the north and beheld Jesus coming to them. As he approached them, John stood upon a large rock and, lifting up his sonorous voice, said: “Behold the Son of God, the deliverer of the world! I beheld the divine spirit descending upon this man, and I heard the voice of God declare,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2월 23일 안식일 이른 아침에, 요한의 일행이 아침식사를 하는 중에 북쪽으로 올려보다가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자, 요한은 큰 바위 위에 올라서서 우렁찬 목소리를 높여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세상의 해방자를 보라! 나는 성령이 이 사람 위에 강림하는 것을 보았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아주 기뻐하는 자라.’고 선포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노라.” 135:9.9 (1506.2) To John’s inquiries about his own preaching and mission Jesus only said, “My Father will guide you now and in the future as he has in the past.” 자신의 설교와 사명에 대한 요한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단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과거에 하셨듯이 현재와 미래에도 너를 인도하시리라.”

  1. John Journeys South 요한이 남쪽으로 여행가다

135:10.1 (1506.3) Since Jesus had gone north into Galilee, John felt led to retrace his steps southward. Accordingly, on Sunday morning, March 3, John and the remainder of his disciples began their journey south. 예수께서 북쪽 갈릴리로 가셔서, 요한은 남쪽으로 발걸음을 되돌려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서 33일 일요일 아침에 요한과 나머지 제자들은 남쪽으로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135:10.2 (1506.4) In the weeks following the baptism of Jesus the character of John’s preaching gradually changed into a proclamation of mercy for the common people, while he denounced with renewed vehemence the corrupt political and religious rulers.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이후 몇 주 동안, 요한의 설교의 특징은 점차 보통 사람들을 위한 자비의 선포로 바뀌어 갔으며, 반면에 그는 다시 되살아난 격렬함으로 부패한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공공연히 비난하였습니다. 135:10.3 (1506.5) Herod resented John’s public criticisms of his domestic affairs. Accordingly, very early in the morning of June 12, the agents of Herod placed John under arrest. 헤롯은 자신의 가정 문제에 대해 요한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나 있었습니다. 따라서 6월 12일 아주 이른 아침, 헤롯의 부하들이 요한을 체포하였습니다.

  1. John in Prison 감옥에 갇힌 요한

135:11.1 (1506.6) For more than a year and a half this rugged man of God’s outdoors languished in that despicable prison. 광야에서 살던 억센 이 하나님의 사람은 그 경멸스러운 감옥에서 일 년 반 이상이나 있으면서 괴로운 생활 가운데 시들어갔습니다.

135:11.3 (1507.2) It was a sore disappointment to John that Jesus sent him no word, that he came not to see him, and that he exercised none of his great power to deliver him from prison. But Jesus knew all about this. He had great love for John, but being now cognizant of his divine nature and knowing fully the great things in preparation for John when he departed from this world and also knowing that John’s work on earth was finished, he constrained himself not to interfere in the natural outworking of the great preacher-prophet’s career. 예수께서 아무 말도 그에게 보내지 않는 점과 그를 만나러 오지 않는 점 그리고 그를 감옥에서 구하기 위해 큰 권능도 하나도 쓰지 않으신 점은 그에게 비통한 실망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매우 사랑하셨지만, 이제는 자신의 신적 본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가 이 세상을 하직하면 그에게는 위대한 일들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또한 땅에서 요한의 일은 끝이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대한 설교자-선지자 생애의 자연스러운 끝마무리에 간섭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자제하셨습니다.

135:11.4 (1507.3) Just a few days before his death John, the Son of Man replied: “Go back to John and tell him that I have not forgotten but to suffer me also this, for it becomes us to fulfill all righteousness. Tell John what you have seen and heard — that the poor have good tidings preached to them — and, finally, tell the beloved herald of my earth mission that he shall be abundantly blessed in the age to come if he finds no occasion to doubt and stumble over me.” And this was the last word John received from Jesus. This message greatly comforted him and did much to stabilize his faith and prepare him for the tragic end of his life in the flesh which followed so soon upon the heels of this memorable occasion. 죽기 바로 며칠 전에, 사람의 아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요한에게 돌아가서, 내가 잊지 않고 있다는 것과 이 또한 나에게 고통이며, 그것으로 우리가 모든 공의(公義)를 성취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에게 말하라. 요한에게 너희가 보고 들은 것 가난한 자가 기쁜 소식을 들었다는 것 을 전하고, 마지막으로, 나의 지상 사명의 귀한 전령에게, 그가 나를 의심하거나 실족하지 않는다면, 그는 장차 다가올 시대에 넘치는 복을 받으리라는 것을 전하라.” 이것이 요한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이 메시지는 그를 매우 안심시켰으며, 그의 신앙을 굳건하게 해 주었고, 이 기억할 만한 사건 바로 직후에 일어났던 그의 육신의 일생의 비극적인 종말에 대해 그를 준비시켜 주었습니다.

  1. Death of John the Baptist 세례 요한의 죽음

135:12.1 (1508.1) As John was working in southern Perea when arrested, he was taken immediately to the prison of the fortress of Machaerus, where he was incarcerated until his execution. 요한이 남쪽 페레아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되었을 때, 그는 즉시 마캐루스의 요새에 있는 교도소로 보내졌고, 처형을 당할 때까지 그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135:12.5 (1508.5) Since Herodias had failed to bring about John’s death by direct appeal to Herod, she now set herself to the task of having John put to death by cunning planning. 헤로디아스는 헤롯에게 요한을 죽여 달라는 자신의 직접적인 청원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제 요한을 죽이기 위하여 간악한 계획을 세우는 일에 직접 착수했습니다.

135:12.6 (1508.6) In the course of the evening’s festivities and entertainment, Herodias presented her daughter to dance before the banqueters. Herod was very much pleased with the damsel’s performance and, calling her before him, said: “You are charming. I am much pleased with you. Ask me on this my birthday for whatever you desire, and I will give it to you, even to the half of my kingdom.” And Herod did all this while well under the influence of his many wines. The young lady drew aside and inquired of her mother what she should ask of Herod. Herodias said, “Go to Herod and ask for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And the young woman, returning to the banquet table, said to Herod, “I request that you forthwith give me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on a platter.” 헤로디아스는 저녁 잔치들과 연회의 순서 속에 자기 딸을 연회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도록 하였습니다. 헤롯은 처녀의 공연에 매우 심히 기분이 좋아져서 그녀를 불러 말했습니다. “너는 매력이 있구나. 네가 나를 매우 기쁘게 하였으니, 나의 생일인 오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구하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노라.” 헤롯은 포도주에 몹시 취한 그 기운으로 이 모든 일을 했습니다. 젊은 처녀는 물러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헤롯에게 구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헤로디아스는 말하였습니다. “헤롯에게 가서 세례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그리고 젊은 처녀는 연회 식탁으로 돌아와서 헤롯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장 세례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내게 주기를 요청하옵니다.”

135:12.7 (1508.7) Herod was filled with fear and sorrow, but because of his oath and because of all those who sat at meat with him, he would not deny the request. And Herod Antipas sent a soldier, commanding him to bring the head of John. So was John that night beheaded in the prison, the soldier bringing the head of the prophet on a platter and presenting it to the young woman at the rear of the banquet hall. And the damsel gave the platter to her mother. When John’s disciples heard of this, they came to the prison for the body of John, and after laying it in a tomb, they went and told Jesus. 헤롯은 두려움과 슬픔에 휩싸였지만, 자신이 맹세한 것과 그와 함께 앉아 회식하던 자들로 인하여 그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헤롯 안티파스는 군인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요한은 교도소에서 목이 베어졌고, 그 군인은 선지자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그것을 연회장 뒤에 있는 그 젊은 여인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 처녀는 그 소반을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서 요한의 시체를 가지러 교도소로 왔으며, 그들은 요한의 시신을 무덤에 묻은 후에 예수님께 가서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