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2 The Nature of God 하느님의 본성

Paper 2

The Nature of God 하느님의 본성

  1. The Infinity of God 하느님의 무한성
  2. The Father’s Eternal Perfection 아버지의 영원한 완전성
  3. Justice and Righteousness 정의(正義)와 공의(公義)
  4. The Divine Mercy 신적 자비
  5. The Love of God 하느님의 사랑
  6. The Goodness of God 하느님의 선(善)하심
  7. Divine Truth and Beauty 신적 진리와 아름다움

2:0.1 (33.1) INASMUCH as man’s highest possible concept of God is embraced within the human idea and ideal of a primal and infinite personality, it is permissible, and may prove helpful, to study certain characteristics of the divine nature which constitute the character of Deity. The nature of God can best be understood by the revelation of the Father which Michael of Nebadon unfolded in his manifold teachings and in his superb mortal life in the flesh. The divine nature can also be better understood by man if he regards himself as a child of God and looks up to the Paradise Creator as a true spiritual Father. 하느님에 대해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높은 개념은, 근원적이며 무한한 고유성에 대한 인간의 관념과 이상 안에 포함되므로, 신의 성품을 구성하는 신적 본성에 대한 어떤 특성들을 연구하는 것은, 허락되는 범위 안에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본성은, 네바돈의 미가엘이 자신의 다양한 교훈과 자신이 직접 필사자로 훌륭하게 사셨던 생애로 펼치신, 아버지 계시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하느님의 자녀로 여기고 천국의 창조주를 진정한 영적 아버지로 존경한다면, 그 사람은 신적인 본성 또한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2 (33.2) The nature of God can be studied in a revelation of supreme ideas, the divine character can be envisaged as a portrayal of supernal ideals, but the most enlightening and spiritually edifying of all revelations of the divine nature is to be found in the comprehension of the religious life of Jesus of Nazareth, both before and after his attainment of full consciousness of divinity. If the incarnated life of Michael is taken as the background of the revelation of God to man, we may attempt to put in human word symbols certain ideas and ideals concerning the divine nature which may possibly contribute to a further illumination and unification of the human concept of the nature and the character of th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하느님의 본성은 최상의 관념들이 계시가 될 때 연구될 수 있고, 신적 특성은 천상의 이상(理想)들로 묘사될 때 마음에 그려질 수 있지만, 나사렛 예수가 신성(神性)의 충만한 의식에 이르기 이전과 이후의 모든 종교적 생활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신적 본성의 모든 계시 중에서 가장 분명한 통찰력과 영적인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가엘의 성육신한 생애를, 인간에게 하느님을 계시하는 배경으로 간주한다면, 우주 아버지 고유성의 본성과 특성에 대한 인간의 개념을 더 온전히 조명하고 통합하도록 어떻게 해서든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신적 본성에 관한 어떤 관념들과 이상(理想)들을 우리가 인간 단어의 상징으로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2:0.3 (33.3) In all our efforts to enlarge and spiritualize the human concept of God, we are tremendously handicapped by the limited capacity of the mortal mind. We are also seriously handicapped in the execution of our assignment by the limitations of language and by the poverty of material which can be utilized for purposes of illustration or comparison in our efforts to portray divine values and to present spiritual meanings to the finite, mortal mind of man. All our efforts to enlarge the human concept of God would be well-nigh futile except for the fact that the mortal mind is indwelt by the bestowed Adjuster of the Universal Father and is pervaded by the Truth Spirit of the Creator Son. Depending, therefore, on the presence of these divine spirits within the heart of man for assistance in the enlargement of the concept of God, I cheerfully undertake the execution of my mandate to attempt the further portrayal of the nature of God to the mind of man.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개념을 확대하고 영성화하려고 애쓸 때, 필사자 마음의 제한된 수용 능력에 의해, 우리는 엄청난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신적 가치를 표현하고 유한한 인간의 필사자 마음에 영적 의미를 제시하려고 애쓸 때, 실례나 비교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의 제한과 자료의 빈곤으로 인해, 임무를 수행하면서, 중대한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필사자 마음에 우주 아버지가 증여한 조율자가 내주하고, 창조주 아들의 진리 영(靈)이 충만하다는 사실이 없다면,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개념을 확장하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거의 쓸데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개념 확장을 도우려고, 인간의 심정 내부에 이렇게 현존하는 신적 영(靈)들에 달려 있으므로, 나는 인간의 마음에 하느님의 본성을 더 묘사하려는 내 임무를 기쁘게 수행합니다.

1. The Infinity of God 하나님의 무한성

2:1.1 (33.4) “Touching the Infinite, we cannot find him out. The divine footsteps are not known.” “His understanding is infinite and his greatness is unsearchable.” The blinding light of the Father’s presence is such that to his lowly creatures he apparently “dwells in the thick darkness.” Not only are his thoughts and plans unsearchable, but “he does great and marvelous things without number.” “God is great; we comprehend him not, neither can the number of his years be searched out.” “Will God indeed dwell on the earth? Behold, the heaven (universe) and the heaven of heavens (universe of universes) cannot contain him.” “How unsearchable are his judgments and his ways past finding out!” “우리는 무한성을 접촉하면서, 하느님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신의 발자국은 알려지지 않습니다(시77:19b).” “그의 이해력은 무한하며, 그의 위대함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욥12:13, 시145:3b).” 아버지가 임재하는 눈이 부신 빛은 그의 낮은 창조물들에게 그가 명백히 “짙은 흑암에 거하실” 정도입니다(왕상8:12, 대하6:1, 출20:21, 신5:22-23). 그의 생각들과 계획들은 헤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는 크고 놀라운 일들을 수없이 행합니다(욥5:9, 9:10).” “하느님은 위대합니다. 우리는 그를 파악하지 못하며, 그의 연수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욥36:26).” “하느님께서 참으로 땅 위에 거하실까요? 보라, 하늘(우주)과 하늘들의 하늘(우주들의 우주)가 하느님을 담을 수 없습니다(왕상8:27a, 대하2:6b, 6:18).” “그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지나간 그의 길은 추적할 수 없도다(롬11:33b)!”

2:1.2 (34.1) “There is but one God, the infinite Father, who is also a faithful Creator.” “The divine Creator is also the Universal Disposer, the source and destiny of souls. He is the Supreme Soul, the Primal Mind, and the Unlimited Spirit of all creation.” “The great Controller makes no mistakes. He is resplendent in majesty and glory.” “The Creator God is wholly devoid of fear and enmity. He is immortal, eternal, self-existent, divine, and bountiful.” “How pure and beautiful, how deep and unfathomable is the supernal Ancestor of all things!” “The Infinite is most excellent in that he imparts himself to men. He is the beginning and the end, the Father of every good and perfect purpose.”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the eternal Creator is the cause of causes.” “오직 한 분 하느님, 무한 아버지가 계시며, 또한 그는 신실한 창조자입니다(고전8:6, 엡4:6, 벧전4:19).” “신적 창조자는 또한 우주 감독자, 혼(魂)들의 근원과 운명입니다. 그는 최극 혼(魂), 수위(首位) 마음 및 온 창조계의 제한 없는 영(靈)입니다(욥34:13, 시104:30, 잠16:33, 사40:28, 41:4, 44:6, 계1:8, 17-18, 21:6, 22:13).” “위대한 조정자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위엄과 영광으로 눈부십니다(삼하22:31, 대상29:11, 사2:19).” “창조자 하느님은 두려움과 미움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불멸하고, 영원하며, 자존하고, 신적이며, 풍성합니다(롬1:20, 딤전1:17, 계1:8).” “만물의 고귀한 조상은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얼마나 깊고 헤아릴 수 없는가!” “무한 자는 자신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점에서 가장 탁월합니다. 그는 시작과 끝이며, 모든 선하고 완전한 목적의 아버지입니다(시84:11, 사48:12, 고전1:12, 엡1:3, 약1:17).” “하느님과 함께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영원한 창조자는 원인의 원인입니다(창1:1, 18:14, 렘32:17, 마19:26, 막10:27, 눅1:37, 18:27).”

2:1.3 (34.2) Notwithstanding the infinity of the stupendous manifestations of the Father’s eternal and universal personality, he is unqualifiedly self-conscious of both his infinity and eternity; likewise he knows fully his perfection and power. He is the only being in the universe, aside from his divine co-ordinates, who experiences a perfect, proper, and complete appraisal of himself. 아버지의 영원하고 우주적인 고유성이 무한히 엄청나게 드러나도, 그는 자신의 무한성과 영원성을 절대적으로 스스로 의식합니다(출3:14).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완전과 권세도 완전히 압니다. 그는, 자신의 신적 동료 외에, 자신에 대해 완전하고 정확하며 완벽한 감정(鑑定)을 경험하는, 우주의 유일한 존재입니다.

2:1.4 (34.3) The Father constantly and unfailingly meets the need of the differential of demand for himself as it changes from time to time in various sections of his master universe. The great God knows and understands himself; he is infinitely self-conscious of all his primal attributes of perfection. God is not a cosmic accident; neither is he a universe experimenter. The Universe Sovereigns may engage in adventure; the Constellation Fathers may experiment; the system heads may practice; but the Universal Father sees the end from the beginning, and his divine plan and eternal purpose actually embrace and comprehend all the experiments and all the adventures of all his subordinates in every world, system, and constellation in every universe of his vast domains. 아버지는, 자기 주(主)우주의 다양한 구역에서 때때로 수요 차이의 필요가 변하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변함없이 확실하게 그 필요를 채웁니다. 위대한 하느님은 자신을 알고 이해합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근원적인 완전함의 속성을 무한하게 스스로 의식합니다. 하느님은 질서 우주의 우연이 아닙니다. 그는 우주 실험자도 아닙니다. 우주 주권자들은 모험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성좌 아버지들은 실험할 수도 있습니다. 체계 수장(首長)들은 연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을 보고, 그의 신적 계획과 영원한 목적은 실제로 자기 광대한 영역의 모든 우주에서 모든 세계, 체계와 성좌에 있는 자신의 모든 수하(手下)의 모든 실험과 모든 모험을 포함하고 파악합니다(사46:9-10).

2:1.5 (34.4) No thing is new to God, and no cosmic event ever comes as a surprise; he inhabits the circle of eternity. He is without beginning or end of days. To God there is no past, present, or future; all time is present at any given moment. He is the great and only I AM. 하느님에게 새로운 것은 없으며, 질서 우주의 어떤 사건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영원성의 순환에 사십니다(사57:15). 그는 시작의 시기도 없고 끝의 시기도 없습니다. 하느님께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습니다. 모든 시간은 어느 순간에도 존재합니다. 그는 위대하시며 유일하게 스스로 계십니다(출3:14).

2:1.6 (34.5) The Universal Father is absolutely and without qualification infinite in all his attributes; and this fact, in and of itself, automatically shuts him off from all direct personal communication with finite material beings and other lowly created intelligences. 우주 아버지는 자신의 모든 속성에서 절대적으로 아무 조건 없이 무한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그 자체로 유한한 물질 존재와 기타 낮게 창조된 지능 존재와 직접적인 모든 개인 소통으로부터 자신을 자동으로 차단합니다.

2:1.7 (34.6) And all this necessitates such arrangements for contact and communication with his manifold creatures as have been ordained, first, in the personalities of the Paradise Sons of God, who, although perfect in divinity, also often partake of the nature of the very flesh and blood of the planetary races, becoming one of you and one with you; thus, as it were, God becomes man, as occurred in the bestowal of Michael, who was called interchangeably the Son of God and the Son of Man. And second, there are the personalities of the Infinite Spirit, the various orders of the seraphic hosts and other celestial intelligences who draw near to the material beings of lowly origin and in so many ways minister to them and serve them. And third, there are the impersonal Mystery Monitors, Thought Adjusters, the actual gift of the great God himself sent to indwell such as the humans of Urantia, sent without announcement and without explanation. In endless profusion they descend from the heights of glory to grace and indwell the humble minds of those mortals who possess the capacity for God-consciousness or the potential therefor.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그의 다양한 창조물들과 접촉하고 소통하기 위한 그런 준비가 있어야 하는데, 첫째, 완전한 신성(神性)이면서 바로 행성 인류의 인간 본성에도 참여하여 너희 중 하나가 되고 너희와 함께하는, 하느님의 천국 아들들의 고유성들로, 이런 식으로, 이를테면, 하느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로 상호 바꿀 수 있다고 불렸던, 미가엘의 증여에서 일어났듯이, 하느님이 인간이 됩니다. 둘째, 무한 영(靈)의 고유성들, 다양한 계층의 세라핌 무리와 다른 천상의 지능 존재들이 있어서, 낮은 기원의 물질 존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아주 여러모로 그들을 보살피고 그들을 위해 봉사합니다. 셋째, 비(非)고유적인 신비 권고자(眷顧者 돌봐주는 분)들, 생각 조율자들, 예고도 없고 설명도 없이 유란시아의 인간들과 같이 내주하도록 보낸 위대한 하느님 자신의 실제 선물이 있습니다. 끝없이 풍성하게, 그들은 영광의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하느님을 알아채는 능력이나 그것을 위한 잠재력을 지닌, 그런 필사자들의 겸손한 마음에 영광을 주고 그 마음에 내주합니다.

2:1.8 (35.1) In these ways and in many others, in ways unknown to you and utterly beyond finite comprehension, does the Paradise Father lovingly and willingly downstep and otherwise modify, dilute, and attenuate his infinity in order that he may be able to draw nearer the finite minds of his creature children. And so, through a series of personality distributions which are diminishingly absolute, the infinite Father is enabled to enjoy close contact with the diverse intelligences of the many realms of his far-flung universe. 이렇게 그리고 여러 다른 방식으로, 너희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유한한 이해를 완전히 초월하는 방식으로, 천국 아버지는 자기 창조물 자녀들의 유한한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애정을 기울여 기꺼이 아래로 내려와 자신의 무한성을 완화하고 약화하며 묽게 합니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점점 줄어드는 일련의 고유성 분배를 거쳐, 무한 아버지는 자신의 광대한 우주의 여러 영역에 속한 다양한 지능 존재들과 긴밀한 접촉을 즐길 수 있습니다.

2:1.9 (35.2) All this he has done and now does, and evermore will continue to do, without in the least detracting from the fact and reality of his infinity, eternity, and primacy. And these things are absolutely true, notwithstanding the difficulty of their comprehension, the mystery in which they are enshrouded, or the impossibility of their being fully understood by creatures such as dwell on Urantia. 그는, 적어도 자신의 무한성, 영원성 및 수위성의 사실과 실체를 조금도 떨어뜨리지 않고, 이 모든 것을 행했고, 지금도 하시며 언제나 계속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해하기 어렵고, 그것들을 둘러싼 신비, 즉 유란시아에 거주하는 것과 같은 창조물들이 그런 존재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이런 것들은 절대적으로 실제 그대로입니다.

2:1.10 (35.3) Because the First Father is infinite in his plans and eternal in his purposes, it is inherently impossible for any finite being ever to grasp or comprehend these divine plans and purposes in their fullness. Mortal man can glimpse the Father’s purposes only now and then, here and there, as they are revealed in relation to the outworking of the plan of creature ascension on its successive levels of universe progression. Though man cannot encompass the significance of infinity, the infinite Father does most certainly fully comprehend and lovingly embrace all the finity of all his children in all universes. 첫째 아버지는 자신의 계획에 있어서 무한하고 자신의 목적에 있어서 영원하셔서, 어떤 유한한 존재도 이런 신적 계획과 그런 충만한 목적을 파악하거나 이해하기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필사 인간은 우주가 진행하는 연속적인 수준에서 창조물 상승 계획의 작업에 관해 우주 아버지의 목적이 계시될 때, 단지 때때로 여기저기에서 그것들을 얼핏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무한성의 의미를 둘러볼 수 없지만, 무한 아버지는 가장 확실하게 모든 우주에 있는 모든 자기 자녀의 모든 유한성을 완전히 이해하고 애정을 기울여 품습니다.

2:1.11 (35.4) Divinity and eternity the Father shares with large numbers of the higher Paradise beings, but we question whether infinity and consequent universal primacy is fully shared with any save his co-ordinate associates of the Paradise Trinity. Infinity of personality must, perforce, embrace all finitude of personality; hence the truth — literal truth — of the teaching which declares that “In Him we live and move and have our being.” That fragment of the pure Deity of the Universal Father which indwells mortal man is a part of the infinity of the First Great Source and Center, the Father of Fathers. 아버지는 신성(神性)과 영원성을 많은 수(數)의 고등 천국 존재들과 공유하지만, 우리는, 무한성과 필연적인 우주 수위성(首位性)이 천국 삼위일체에 속한 그의 동등한 동료들 외에 누구와 완전히 공유되는지 의문시합니다. 고유성의 무한성은 필연적으로 모든 고유성의 유한성을 포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행17:28).”라고 선언하는 가르침의 진리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필사 인간에게 내주하는 우주 아버지의 순전한 신(神)의 파편은 첫째 위대한 근원 중심, 아버지들의 아버지에 속한 무한성의 부분입니다.

2. The Father’s Eternal Perfection 아버지의 영원한 완전성

2:2.1 (35.5) Even your olden prophets understood the eternal, never-beginning, never-ending, circular nature of the Universal Father. God is literally and eternally present in his universe of universes. He inhabits the present moment with all his absolute majesty and eternal greatness. “The Father has life in himself, and this life is eternal life.” Throughout the eternal ages it has been the Father who “gives to all life.” There is infinite perfection in the divine integrity. “I am the Lord; I change not.” Our knowledge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discloses not only that he is the Father of lights, but also that in his conduct of interplanetary affairs there “is no variableness neither shadow of changing.” He “declares the end from the beginning.” He says: “My counsel shall stand; I will do all my pleasures” “according to the eternal purpose which I purposed in my Son.” Thus are the plans and purposes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like himself: eternal, perfect, and forever changeless. 당신들의 옛 선지자들도 영원하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우주 아버지의 순환적 본성을 이해했습니다. 하느님은 그의 모든 우주에 정말로 영원히 존재하십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절대적 위엄과 영원한 위대함으로 현재 순간에 존재합니다. “아버지는 자신 안에 생명을 지니며, 이 생명은 영생이라(요5:26a).” 영원히 오랫동안 내내 “모든 생명에게 주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행17:25). 신적 온전함 안에 무한한 완전성이 있습니다. “나는 주(主)이니라. 나는 변하지 않느니라(말3:6)” 온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그가 빛들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행성 간 업무 수행에서 “변함도 없고 변화하는 그림자도 없다(약1:17b).”라는 것을 밝힙니다. 그는 “시작부터 끝을 선언합니다(사46:10a).” 그는 “내가 내 아들 안에서 목표로 삼은 영원한 목적에 따라서(엡3:11)” “내 계획이 유지될 것이라. 내가 기뻐하는 모든 것을 행하리라(사46:10b).”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첫째 근원이며 중심의 계획과 목적은 자신처럼 영원하고 완전하며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2:2.2 (35.6) There is finality of completeness and perfection of repleteness in the mandates of the Father. “Whatsoever God does, it shall be forever; nothing can be added to it nor anything taken from it.” The Universal Father does not repent of his original purposes of wisdom and perfection. His plans are steadfast, his counsel immutable, while his acts are divine and infallible. “A thousand years in his sight are but as yesterday when it is past and as a watch in the night.” The perfection of divinity and the magnitude of eternity are forever beyond the full grasp of the circumscribed mind of mortal man. 아버지의 명령에는 완성의 최종성과 충만의 완전성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행하시는 무엇이든지 영원할 것입니다. 그것에 더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할 수도 없습니다(전3:14a).” 우주 아버지는 지혜와 완전이라는 자신의 원래 목적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의 계획은 확고하고, 그의 방침은 불변하며, 그의 행위는 신적이며 오류(誤謬)가 없습니다. “그의 눈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와 같으며 밤의 한순간에 불과합니다(시90:4).” 신성의 완전성과 영원의 광대함은 필사 인간의 제한된 마음으로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곳에 영원히 있습니다.

2:2.3 (36.1) The reactions of a changeless God, in the execution of his eternal purpose, may seem to vary in accordance with the changing attitude and the shifting minds of his created intelligences; that is, they may apparently and superficially vary; but underneath the surface and beneath all outward manifestations, there is still present the changeless purpose, the everlasting plan, of the eternal God. 그의 영원한 목적을 실행하는, 변함없는 하느님의 반응은 자신이 창조한 지능 존재들의 변화하는 태도와 바뀌는 마음에 따라 변하는 듯합니다. 즉, 그것들은 언뜻 보기에 표면적으로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표면 아래, 모든 외적 표현 밑에, 영원한 하느님의 변함없는 목적, 영원한 계획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2:2.4 (36.2) Out in the universes, perfection must necessarily be a relative term, but in the central universe and especially on Paradise, perfection is undiluted; in certain phases it is even absolute. Trinity manifestations vary the exhibition of the divine perfection but do not attenuate it. 바깥 우주들에서 완전성은 필연적으로 분명히 상대적 용어이지만, 중앙우주와 특히 천국에서 완전성은 희석되지 않습니다. 특정한 단계에서 그것은 심지어 절대적입니다. 삼위일체 표현은 신적 완전성의 표시를 다양하게 하지만, 그것을 약하게 하지 않습니다.

2:2.5 (36.3) God’s primal perfection consists not in an assumed righteousness but rather in the inherent perfection of the goodness of his divine nature. He is final, complete, and perfect. There is no thing lacking in the beauty and perfection of his righteous character. And the whole scheme of living existences on the worlds of space is centered in the divine purpose of elevating all will creatures to the high destiny of the experience of sharing the Father’s Paradise perfection. God is neither self-centered nor self-contained; he never ceases to bestow himself upon all self-conscious creatures of the vast universe of universes. 하느님의 근원적 완전성은 가정(假定)된 정의(正義)가 아니라, 그의 신적 본성에 속한 선함의 내재적 완전성에 있습니다. 그는 최종적이고, 완벽하며, 완전합니다. 그의 의로운 성품에 속한 아름다움과 완전함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공간 세계에서 살아있는 존재들의 전체 계획은 모든 의지 창조물을 아버지 천국의 완전성을 공유하는 체험의 높은 운명으로 끌어올리는 신적 목적을 중심에 둡니다. 하느님은 자기-중심적이지도 않고 자기 안에 갇혀서 마음을 닫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광대한 온 우주에서 스스로 의식하는 모든 창조물에게 절대로 멈추지 않고 자신을 내어 줍니다.

2:2.6 (36.4) God is eternally and infinitely perfect, he cannot personally know imperfection as his own experience, but he does share the consciousness of all the experience of imperfectness of all the struggling creatures of the evolutionary universes of all the Paradise Creator Sons. The personal and liberating touch of the God of perfection overshadows the hearts and encircuits the natures of all those mortal creatures who have ascended to the universe level of moral discernment. In this manner, as well as through the contacts of the divine presence, the Universal Father actually participates in the experience with immaturity and imperfection in the evolving career of every moral being of the entire universe. 하느님은 영원하고 무한히 완전하며, 그는 그 자신의 체험으로 불완전을 친히 알 수 없지만, 그는 모든 천국 창조자 아들들의 진화하는 우주에서 모두 분투하는 창조물의 모든 불완전한 체험에 대한 의식을 공유합니다. 완전에 속한 하느님의 개인적이며 자유로운 손길이 도덕적으로 분별하는 우주 수준까지 상승한 그런 모든 필사 창조물의 심정을 덮고, 그들의 본성을 둘러쌉니다. 이렇게, 신적 현존의 접촉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우주 아버지는, 전(全) 우주의 모든 도덕적 존재의 진화 생애에서, 미성숙과 불완전의 체험에 실제로 참여합니다.

2:2.7 (36.5) Human limitations, potential evil, are not a part of the divine nature, but mortal experience with evil and all man’s relations thereto are most certainly a part of God’s ever-expanding self-realization in the children of time — creatures of moral responsibility who have been created or evolved by every Creator Son going out from Paradise. 인간의 한계, 잠재적 악(惡)은 신적 본성의 일부가 아니지만 악(惡)에 대한 필사자 체험과 그것에 대한 모든 인간의 관계는 시간의 자녀들-천국에서 파송된 모든 창조자 아들이 창조하고 진화시킨 도덕적 책임이 있는 창조물들-안에서 아주 확실하게, 자기-실현을 끝없이 확장하는 하느님의 일부입니다.

3. Justice and Righteousness 정의(正義)와 공의(公義)

2:3.1 (36.6) God is righteous; therefore is he just. “The Lord is righteous in all his ways.” “‘I have not done without cause all that I have done,’ says the Lord.” “The judgments of the Lord are true and righteous altogether.” The justice of the Universal Father cannot be influenced by the acts and performances of his creatures, “for there is no iniquity with the Lord our God, no respect of persons, no taking of gifts.” 하느님은 의로우시므로 그는 공정합니다. “주는 자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서 의로우십니다(시145:17a).” “‘나는 내가 행한 모든 일을 이유 없이 하지 않았느니라(겔14:23b).’라고 주께서 말하느니라.” “주의 판단은 진실하며 다 의로우니라(시19:9b).” 우주 아버지의 정의(正義)는 그의 창조물들의 행위와 성과로 좌우될 수 없으니, “주 우리 하느님께는 사악도 없고, 차별 대우도 없고, 뇌물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대하19:7b).”

2:3.2 (36.7) How futile to make puerile appeals to such a God to modify his changeless decrees so that we can avoid the just consequences of the operation of his wise natural laws and righteous spiritual mandates! “Be not deceived; God is not mocked, for whatsoever a man sows that shall he also reap.” True, even in the justice of reaping the harvest of wrongdoing, this divine justice is always tempered with mercy. Infinite wisdom is the eternal arbiter which determines the proportions of justice and mercy which shall be meted out in any given circumstance. The greatest punishment (in reality an inevitable consequence) for wrongdoing and deliberate rebellion against the government of God is loss of existence as an individual subject of that government. The final result of wholehearted sin is annihilation. In the last analysis, such sin-identified individuals have destroyed themselves by becoming wholly unreal through their embrace of iniquity. The factual disappearance of such a creature is, however, always delayed until the ordained order of justice current in that universe has been fully complied with. 우리가 하느님의 지혜로운 자연법과 의로운 영적 명령이 시행된 공정한 결과를 피할 수 있도록 그의 변함없는 뜻을 변경하기 위해 그런 하느님께 철없이 간청하는 것이 얼마나 헛됩니까! “속지 말라. 하느님은 조롱당하지 않으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사실, 잘못의 결과를 거두는 정의(正義)에서도, 이런 신적 정의(正義)가 언제나 자비(慈悲)로 진정됩니다. 무한한 지혜(智慧)는 주어진 상황에서 정의(正義)와 자비(慈悲)의 비율을 결정하는 영원한 중재자입니다. 하느님의 정부(政府)에 저항하는 범죄와 의도적 반역에 대한 가장 큰 처벌(실제로 피할 수 없는 결과)은 그런 정부(政府)의 개별 주체로서 존재를 잃는 것입니다. 진심이 담긴 죄의 최종 결과는 소멸입니다. 결국, 그렇게 죄와 똑같은 것으로 확인된 개인들은 사악(肆惡)을 받아들여 전적으로 비(非)존재가 되어 스스로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창조물의 실제 소멸은 그 우주에서 통용되는 정의(正義)의 규정된 질서가 완전히 준수되기까지 언제나 지연됩니다.

2:3.3 (37.1) Cessation of existence is usually decreed at the dispensational or epochal adjudication of the realm or realms. On a world such as Urantia it comes at the end of a planetary dispensation. Cessation of existence can be decreed at such times by co-ordinate action of all tribunals of jurisdiction, extending from the planetary council up through the courts of the Creator Son to the judgment tribunals of the Ancients of Days. The mandate of dissolution originates in the higher courts of the superuniverse following an unbroken confirmation of the indictment originating on the sphere of the wrongdoer’s residence; and then, when sentence of extinction has been confirmed on high, the execution is by the direct act of those judges residential on, and operating from, the headquarters of the superuniverse. 존재의 중지(中止)는 대개 각 영역이나 영역들의 섭리적 혹은 획시대적 판결이 있을 때 선언됩니다. 유란시아 같은 세계는 행성적 섭리의 마지막에 존재가 중지(中止)됩니다. 그런 때에 행성 회의로부터 창조자 아들의 법원을 거쳐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판결 재판소에 이르는, 모든 관할 재판소의 통합 행위로 존재의 중지(中止)가 선언될 수 있습니다. 소멸(消滅)의 명령은 범죄자의 거주 영역에서 시작된 기소(起訴)가 위반(違反) 없이 확정된 후 초우주의 상급 법원에서 시작하며, 그 후 소멸형(消滅刑)이 높은 곳에서 확인되면, 초우주 본부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는 그런 판사들의 직접적 행위로 집행됩니다(옵1:16).

2:3.4 (37.2) When this sentence is finally confirmed, the sin-identified being instantly becomes as though he had not been. There is no resurrection from such a fate; it is everlasting and eternal. The living energy factors of identity are resolved by the transformations of time and the metamorphoses of space into the cosmic potentials whence they once emerged. As for the personality of the iniquitous one, it is deprived of a continuing life vehicle by the creature’s failure to make those choices and final decisions which would have assured eternal life. When the continued embrace of sin by the associated mind culminates in complete self-identification with iniquity, then upon the cessation of life, upon cosmic dissolution, such an isolated personality is absorbed into the oversoul of creation, becoming a part of the evolving experience of the Supreme Being. Never again does it appear as a personality; its identity becomes as though it had never been. In the case of an Adjuster-indwelt personality, the experiential spirit values survive in the reality of the continuing Adjuster. 이런 형(刑)이 최종적으로 확정되면, 죄와 똑같이 확인된 존재는 즉시 그가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됩니다. 그런 숙명(宿命)에서 부활은 없으며, 그것은 영속적이며 영원합니다. 정체의 살아있는 에너지 요소들은 시간의 변환과 공간의 변형으로, 그 요소들이 원래 출현했던 질서 우주의 잠재력 안으로 분해됩니다. 사악(肆惡)한 자의 고유성에 관하여, 영원한 생명을 확보할 수 있었던 창조물들의 그런 선택들과 최종적 결정의 실패로 인해 연속적인 생명의 수단을 빼앗깁니다. 결부된 마음으로 죄를 계속 품어 완전히 사악(肆惡)으로 증명된 자기-신원이 절정에 이르면, 생명의 중지(中止)와 질서 우주적 분해로, 그렇게 고립된 고유성은 창조의 대혼(大魂)으로 흡수되어 최극 존재에 속한 진화 체험의 일부가 됩니다. 그것은 결코 다시는 고유성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그 정체성은 마치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됩니다. 조율자가 내주한 고유성의 경우에, 체험적인 영(靈)의 가치는 영속하는 조율자의 실체 안에 살아남습니다.

2:3.5 (37.3) In any universe contest between actual levels of reality, the personality of the higher level will ultimately triumph over the personality of the lower level. This inevitable outcome of universe controversy is inherent in the fact that divinity of quality equals the degree of reality or actuality of any will creature. Undiluted evil, complete error, willful sin, and unmitigated iniquity are inherently and automatically suicidal. Such attitudes of cosmic unreality can survive in the universe only because of transient mercy-tolerance pending the action of the justice-determining and fairness-finding mechanisms of the universe tribunals of righteous adjudication. 어떤 우주에서든 실체의 실제 수준들 사이의 경쟁에서 상위 수준의 고유성이 결국 하위 수준의 고유성을 이길 것입니다. 우주 논쟁의 이런 필연적 결과는 질(質)적 신성(神性)이 모든 의지 창조물의 실체 또는 실재의 정도와 같다는 사실에 본래부터 들어있습니다. 희석되지 않은 악(惡), 철저한 잘못, 계획적인 죄와 누그러지지 않은 사악(肆惡)은 본질적으로 자동 자멸입니다. 그런 (질서) 우주적 비(非)-실체의 태도는, 의로운 판결에 속한 우주 재판소의 정의(正義) 결정과 공정성을 찾는 작용의 활동을 기다리는 동안 오로지 일시적인 자비-관용 때문에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2:3.6 (37.4) The rule of the Creator Sons in the local universes is one of creation and spiritualization. These Sons devote themselves to the effective execution of the Paradise plan of progressive mortal ascension, to the rehabilitation of rebels and wrong thinkers, but when all such loving efforts are finally and forever rejected, the final decree of dissolution is executed by forces acting under the jurisdiction of the Ancients of Days. 지역 우주에서 창조주 아들들의 통치는 창조와 영화(靈化)의 통치입니다. 이런 아들들은 점진적 필사자 상승에 속한 천국 계획의 효과적 실행 및 반역자들과 잘못된 사상가들의 회복에 헌신하지만, 그러한 모든 애정이 깊은 노력이 마침내 영원토록 거부될 때,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재판권에 따라 행동하는 세력이 최종적인 분해의 명령을 집행합니다.

4. The Divine Mercy 신적 자비

2:4.1 (38.1) Mercy is simply justice tempered by that wisdom which grows out of perfection of knowledge and the full recognition of the natural weaknesses and environmental handicaps of finite creatures. “Our God is full of compassion, gracious, long-suffering, and plenteous in mercy.” Therefore “whosoever calls upon the Lord shall be saved,” “for he will abundantly pardon.” “The mercy of the Lord is from everlasting to everlasting”; yes, “his mercy endures forever.” “I am the Lord who executes loving-kindness, judgment, and righteousness in the earth, for in these things I delight.” “I do not afflict willingly nor grieve the children of men,” for I am “the Father of mercies and the God of all comfort.” 자비는 지식의 완전성과 유한한 창조물의 자연적 약점과 환경적 불리한 조건에 대한 완전한 인식에서 생기는 그런 지혜로 부드러워진 정의(正義)일 뿐입니다. “우리 하느님은 긍휼함이 풍성하고, 은혜로우시며, 오래 참으시고, 자비가 풍성합니다(시86:15, 145:8).”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를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욜2:32a),” “그는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이라(사55:7b).” “주의 자비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시103:17)” 게다가 “그의 자비는 영원하게 지속하느니라(시107:1b).” “나는 너그러운 사랑, 공정(公正), 공의(公義)를 땅에 베푸는 주(主)니라, 나는 이런 것들을 기뻐하노라(렘9:24).” 나는 “자비의 아버지이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고후1:3)”이므로, “나는 본심으로 사람의 자녀들을 괴롭히지도 슬프게 하지도 않느니라(애3:33).”

2:4.2 (38.2) God is inherently kind, naturally compassionate, and everlastingly merciful. And never is it necessary that any influence be brought to bear upon the Father to call forth his loving-kindness. The creature’s need is wholly sufficient to insure the full flow of the Father’s tender mercies and his saving grace. Since God knows all about his children, it is easy for him to forgive. The better man understands his neighbor, the easier it will be to forgive him, even to love him. 하느님은 본질적으로 친절하시고, 본성적으로 연민이 가득하시며, 언제나 자비로우십니다(시100:5). 그리고 그의 너그러운 사랑을 불러일으키도록 아버지께 어떤 영향력을 기울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창조물의 필요는 아버지의 부드러운 자비와 그의 구원의 은혜가 충만히 흐르도록 보장하기에 전적으로 충분합니다(시103:13-14). 하느님은 자기 자녀들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용서하기 쉽습니다. 사람이 자기 이웃을 이해할수록, 그를 용서하고 심지어 그를 사랑하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2:4.3 (38.3) Only the discernment of infinite wisdom enables a righteous God to minister justice and mercy at the same time and in any given universe situation. The heavenly Father is never torn by conflicting attitudes towards his universe children; God is never a victim of attitudinal antagonisms. God’s all-knowingness unfailingly directs his free will in the choosing of that universe conduct which perfectly, simultaneously, and equally satisfies the demands of all his divine attributes and the infinite qualities of his eternal nature. 무한한 지혜의 분별력만이 의로운 하느님께서 어떤 우주 상황에서도 정의와 자비를 동시에 베풀도록 합니다. 하늘 아버지는 자기 우주 자녀들을 향해 상반되는 태도로 절대로 분열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절대로 태도에 관한 대립의 희생자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전지(全知)함은 그의 모든 신적 속성과 그의 영원한 본성의 무한한 특성의 요구를 완전히, 동시에, 동등하게 만족시키는 그런 우주 행위를 선택하는 일에서 자신의 자유의지를 정확하게 지시합니다.

2:4.4 (38.4) Mercy is the natural and inevitable offspring of goodness and love. The good nature of a loving Father could not possibly withhold the wise ministry of mercy to each member of every group of his universe children. Eternal justice and divine mercy together constitute what in human experience would be called fairness. 자비는 선함과 사랑에서 흘러나온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애정이 깊은 아버지의 선한 본성은 자기 우주 자녀에 속한 모든 집단 중 각자에게 지혜로운 자비의 돌봄을 아무리 해도 억누를 수 없습니다. 영원한 정의와 신적 자비가 인간 체험에서 공정(公正)이라는 것을 함께 만들어 냅니다.

2:4.5 (38.5) Divine mercy represents a fairness technique of adjustment between the universe levels of perfection and imperfection. Mercy is the justice of Supremacy adapted to the situations of the evolving finite, the righteousness of eternity modified to meet the highest interests and universe welfare of the children of time. Mercy is not a contravention of justice but rather an understanding interpretation of the demands of supreme justice as it is fairly applied to the subordinate spiritual beings and to the material creatures of the evolving universes. Mercy is the justice of the Paradise Trinity wisely and lovingly visited upon the manifold intelligences of the creations of time and space as it is formulated by divine wisdom and determined by the all-knowing mind and the sovereign free will of the Universal Father and all his associated Creators. 신적 자비는 우주의 완전성과 불완전성 수준 사이에서 조율하는 공정한 기법을 나타냅니다. 자비는 진화하는 유한자의 입장에 맞추어 조정된 최극위의 정의(正義), 시간에 속한 자녀들의 최고 이익과 우주 행복을 충족하도록 수정된 영원(永遠)의 공의(公義)입니다. 자비는 정의(正義)에 위배 되지 않고 오히려 진화하는 우주들의 하위 영적 존재들과 물질 창조물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므로, 자비는 최극 정의(正義)의 요구에 대한 사려 분별이 있는 해석입니다. 자비는 신적 지혜로 명확히 나타나고, 우주 아버지와 그의 관련된 모든 창조자의 전지한 마음과 주권적 자유의지로 결정되기 때문에, 자비는 시간과 공간의 창조계에 속한 다양한 지능 존재들에게 지혜롭게 애정을 기울여 방문하는 천국 삼위일체의 정의(正義)입니다.

5. The Love of God 하느님의 사랑

2:5.1 (38.6) “God is love”; therefore his only personal attitude towards the affairs of the universe is always a reaction of divine affection. The Father loves us sufficiently to bestow his life upon us. “He makes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on the good and sends rain on the just and on the unjust.” “하느님은 사랑입니다(요일4:8b).” 그러므로 우주 업무에 대한 그의 유일한 개인적 태도는 언제나 신적 애정의 반응입니다. 아버지는 자기 생명을 우리에게 주실 만큼 우리를 충분히 사랑하십니다. “그는 자신의 태양을 악인과 선인에게 솟아오르게 하시며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비를 내리십니다(막5:45b).”

2:5.2 (39.1) It is wrong to think of God as being coaxed into loving his children because of the sacrifices of his Sons or the intercession of his subordinate creatures, “for the Father himself loves you.” It is in response to this paternal affection that God sends the marvelous Adjusters to indwell the minds of men. God’s love is universal; “whosoever will may come.” He would “have all men be saved by coming into the knowledge of the truth.” He is “not willing that any should perish.” 하느님의 아들들의 희생 또는 그의 하위 창조물들의 중보 기도 때문에 하느님이 자기 자녀를 사랑하도록 설득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인 것은 “아버지가 친히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요16:27).” 이런 아버지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은 놀라운 조율자들을 보내어 인간들의 마음에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주적입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올 수 있습니다(계22:17b).” 그는 “모든 사람이 진리의 지식에 이르러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딤전2:4).” 그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벧후3:9b).”

2:5.3 (39.2) The Creators are the very first to attempt to save man from the disastrous results of his foolish transgression of the divine laws. God’s love is by nature a fatherly affection; therefore does he sometimes “chasten us for our own profit, that we may be partakers of his holiness.” Even during your fiery trials remember that “in all our afflictions he is afflicted with us.” 창조주들은 인간이 신적 법칙을 어리석게 어긴 비참한 결과로부터 인간을 구하려고 맨 처음 시도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본래 자애로운 애정이므로 그는 종종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단련하여 우리가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히12:10b)” 하십니다. 너희가 불같은 시련 중에도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 그가 우리와 함께 고난받으심(사63:9a)”을 기억하십시오.

2:5.4 (39.3) God is divinely kind to sinners. When rebels return to righteousness, they are mercifully received, “for our God will abundantly pardon.” “I am he who blots out your transgressions for my own sake, and I will not remember your sins.” “Behold what manner of love the Father has bestowed upon us that we should be called the sons of God.” 하느님은 죄인들에게 신적으로 친절합니다. 반역한 자들이 공의(公義)로 되돌아오면, “우리 하느님이 풍성히 용서할 것이므로(사55:7),” 그들은 자비롭게 환영받습니다. “나는 나를 위해 너희 (종교적) 죄를 지워 없애는 그이며, 나는 너희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사43:25).”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어떤 방식의 사랑을 베푸셔서 우리를 하느님의 아들(자녀)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지 보라(요일3:1a).”

2:5.5 (39.4) After all, the greatest evidence of the goodness of God and the supreme reason for loving him is the indwelling gift of the Father — the Adjuster who so patiently awaits the hour when you both shall be eternally made one. Though you cannot find God by searching, if you will submit to the leading of the indwelling spirit, you will be unerringly guided, step by step, life by life, through universe upon universe, and age by age, until you finally stand in the presence of the Paradis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결국, 하느님의 선함에 대한 최대 증거와 그를 사랑하는 최고 이유는 둘 다 영원히 하나가 될 때를 그토록 끈기 있게 기다리는 조율자, 즉 아버지의 내주하는 선물입니다. 너희가 탐색하여 하느님을 찾을 수 없지만, 너희가 내주하는 영(靈)의 안내에 복종한다면, 너희는 우주 아버지의 천국 고유성 앞에 마침내 설 때까지, 한 걸음씩, 한 생애씩, 우주에서 우주를 거쳐, 한 시대씩 틀림없이 인도될 것입니다.

2:5.6 (39.5) How unreasonable that you should not worship God because the limitations of human nature and the handicaps of your material creation make it impossible for you to see him. Between you and God there is a tremendous distance (physical space) to be traversed. There likewise exists a great gulf of spiritual differential which must be bridged; but notwithstanding all that physically and spiritually separates you from the Paradise personal presence of God, stop and ponder the solemn fact that God lives within you; he has in his own way already bridged the gulf. He has sent of himself, his spirit, to live in you and to toil with you as you pursue your eternal universe career. 인간 본성의 한계와 너희 물질적 창조의 장애로 인해 너희가 하느님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너희가 하느님을 경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은가! 너희와 하느님 사이에는 건너야 할 엄청난 거리(물리적 공간)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리를 놓아야만 하는 영적으로 차별된 커다란 격차가 존재합니다(눅16:26). 그러나 천국 하느님이 몸소 계신 앞에서 물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너희를 떼어놓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너희 내부에 살아 있다는 엄숙한 사실을 멈춰서 깊이 생각하십시오. 하느님은 이미 자기 방식으로 그 격차에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는 너희가 영원한 우주 생애를 추구할 때 너희 안에 살면서 너희와 함께 수고하도록 자신, 자기 영(靈)을 보냈습니다(고전3:16).

2:5.7 (39.6) I find it easy and pleasant to worship one who is so great and at the same time so affectionately devoted to the uplifting ministry of his lowly creatures. I naturally love one who is so powerful in creation and in the control thereof, and yet who is so perfect in goodness and so faithful in the loving-kindness which constantly overshadows us. I think I would love God just as much if he were not so great and powerful, as long as he is so good and merciful. We all love the Father more because of his nature than in recognition of his amazing attributes. 나는 그렇게 위대한 동시에 자신의 낮은 창조물을 향상하는 돌봄에 그렇게 애정을 다해 헌신하는 분을 경배하는 것이, 쉽고 즐겁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창조와 그 관리에서 그렇게 강력하지만, 선함에서 그렇게 완전하고 우리를 변함없이 자애(慈愛 도타운 사랑)로 그렇게 충실하게 덮는 분을 자연히 사랑합니다. 나는 하느님이 그렇게 위대하고 강력하지 않아도, 그가 그렇게 선하고 자비하면 나는 하느님을 그만큼 사랑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아버지의 놀라운 속성을 인식하기보다 그의 본성 때문에 아버지를 더 사랑합니다.

2:5.8 (39.7) When I observe the Creator Sons and their subordinate administrators struggling so valiantly with the manifold difficulties of time inherent in the evolution of the universes of space, I discover that I bear these lesser rulers of the universes a great and profound affection. After all, I think we all, including the mortals of the realms, love the Universal Father and all other beings, divine or human, because we discern that these personalities truly love us. The experience of loving is very much a direct response to the experience of being loved. Knowing that God loves me, I should continue to love him supremely, even though he were divested of all his attributes of supremacy, ultimacy, and absoluteness. 창조자 아들들과 그들의 하위 경영자들이 공간 우주의 진화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시간의 다양한 어려움과 그토록 씩씩하게 분투하는 것을 볼 때, 내가 우주들의 이런 작은 통치자들에게 크게 깊은 애정을 품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결국 나는 영역의 필사자들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 우주 아버지와 신적이든 인간이든, 다른 모든 존재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인격(고유성)들이 진실로 우리를 사랑한다고 우리가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험은 사랑받는 경험에 대한 아주 직접적인 반응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가 자신의 수위성, 궁극성, 절대성의 모든 속성을 상실했다고 해도 나는 계속 그를 지극히 사랑해야 합니다.

2:5.9 (40.1) The Father’s love follows us now and throughout the endless circle of the eternal ages. As you ponder the loving nature of God, there is only one reasonable and natural personality reaction thereto: You will increasingly love your Maker; you will yield to God an affection analogous to that given by a child to an earthly parent; for, as a father, a real father, a true father, loves his children, so the Universal Father loves and forever seeks the welfare of his created sons and daughters. 아버지의 사랑은 지금 그리고 영원한 시대의 끝없는 순환을 통해 우리를 따릅니다. 너희가 하느님의 본성을 깊이 생각하면 거기에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인격(고유성)의 반응은 하나뿐입니다. 너희는 창조주를 점점 사랑할 것입니다. 너희는 자녀가 지상 부모에게 주는 것과 유사한 애정을 하느님께 드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진정한 아버지, 참된 아버지가 자기 자녀를 사랑하듯이, 우주 아버지께서 자신이 창조한 아들과 딸들의 행복을 사랑하고 영원히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2:5.10 (40.2) But the love of God is an intelligent and farseeing parental affection. The divine love functions in unified association with divine wisdom and all other infinite characteristics of the perfect nature of the Universal Father. God is love, but love is not God. The greatest manifestation of the divine love for mortal beings is observed in the bestowal of the Thought Adjusters, but your greatest revelation of the Father’s love is seen in the bestowal life of his Son Michael as he lived on earth the ideal spiritual life. It is the indwelling Adjuster who individualizes the love of God to each human soul.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이해가 빨라 정확한 판단을 내릴 능력이 있으며 통찰력이 있는 어버이의 애정입니다. 신적 사랑은 신적 지혜와 우주 아버지의 완전한 본성에 속한 다른 모든 무한한 특성들과 통합된 관계로 작용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지만, 사랑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필사자 존재들에 대한 신적 사랑의 가장 큰 표현은 생각 조율자들의 증여로 관찰되지만, 아버지 사랑의 가장 큰 계시는 그의 아들 미가엘이 지상에서 이상적인 영적 생활을 살았을 때, 그의 증여 생애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각 인간 혼(魂)에 개별화하는 것은 내주하는 조율자입니다.

2:5.11 (40.3) At times I am almost pained to be compelled to portray the divine affection of the heavenly Father for his universe children by the employment of the human word symbol love. This term, even though it does connote man’s highest concept of the mortal relations of respect and devotion, is so frequently designative of so much of human relationship that is wholly ignoble and utterly unfit to be known by any word which is also used to indicate the matchless affection of the living God for his universe creatures! How unfortunate that I cannot make use of some supernal and exclusive term which would convey to the mind of man the true nature and exquisitely beautiful significance of the divine affection of the Paradise Father. 나는 사랑이라는 인간의 단어 상징을 사용하여 그의 우주 자녀를 향한 하늘 아버지의 신적 애정을 묘사하지 않을 수 없어서 거의 고통스럽습니다. 이 용어는 존경과 헌신이라는 필사자 관계에 대한 인간의 최고 개념을 그 안에 담고 있지만, 그것은 그의 우주 창조물들을 위해 살아계신 하느님의 비길 데 없는 애정을 나타내도록 똑같이 사용되는 어떤 단어로 알려지기에 아주 가치 없고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 인간관계의 그렇게 많은 부분을 너무 자주 나타냅니다! 천국 아버지의 신적 애정에 속한 참된 본성과 품위 있게 아름다운 의미를 인간의 마음에 전달할 어떤 고상하고 유일한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유감스러운지!

2:5.12 (40.4) When man loses sight of the love of a personal God, the kingdom of God becomes merely the kingdom of good. Notwithstanding the infinite unity of the divine nature, love is the dominant characteristic of all God’s personal dealings with his creatures. 사람이 인격적인 하느님의 사랑을 잃어버리면, 하느님의 나라는 선(善)의 나라가 될 뿐입니다. 신적 본성의 무한한 단일성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하느님이 자기 창조물들을 친히 다루시는 모든 것의 지배적인 특성입니다.

6. The Goodness of God 하느님의 선(善)하심

2:6.1 (40.5) In the physical universe we may see the divine beauty, in the intellectual world we may discern eternal truth, but the goodness of God is found only in the spiritual world of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In its true essence, religion is a faith-trust in the goodness of God. God could be great and absolute, somehow even intelligent and personal, in philosophy, but in religion God must also be moral; he must be good. Man might fear a great God, but he trusts and loves only a good God. This goodness of God is a part of the personality of God, and its full revelation appears only in the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of the believing sons of God. 물리적 우주에서 우리는 신적 아름다움을 볼 수도 있고, 지적 세계에서 우리는 영원한 진리를 알아낼 수도 있지만, 하느님의 선(善)하심은 개인적인 종교 체험의 영적 세계에서만 발견됩니다. 참된 본질에서 종교는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신앙-신뢰입니다. 철학에서 하느님은 위대하고 절대적이며, 어쨌든 심지어 지능적이며 인격적일 수 있지만, 종교에서 하느님은 또한 도덕적이며 선해야 합니다. 사람은 위대한 하느님을 두려워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선하신 하느님만 신뢰하고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이런 선하심은 하느님 고유성(인격성)의 일부이며, 그 완전한 계시는 하느님을 믿는 아들(자녀)들의 개인적인 종교 체험에서만 나타납니다.

2:6.2 (40.6) Religion implies that the superworld of spirit nature is cognizant of, and responsive to, the fundamental needs of the human world. Evolutionary religion may become ethical, but only revealed religion becomes truly and spiritually moral. The olden concept that God is a Deity dominated by kingly morality was upstepped by Jesus to that affectionately touching level of intimate family morality of the parent-child relationship, than which there is none more tender and beautiful in mortal experience. 종교는 영적 본성의 초(超) 세계가 인간 세상의 근본적 필요를 인식하고 응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화 종교는 윤리적일 수도 있지만 계시 종교만이 진실로 영적으로 도덕적입니다. 하느님은 왕의 도덕성으로 지배되는 신(神)이라는 오래된 개념은 예수님에 의해 부모-자녀 관계의 친밀한 가족 도덕성의 애정 어린 감동 수준으로 증진되었고, 필사자 체험에서 그보다 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2:6.3 (41.1) The “richness of the goodness of God leads erring man to repentance.” “Every good gift and every perfect gift comes down from the Father of lights.” “God is good; he is the eternal refuge of the souls of men.” “The Lord God is merciful and gracious. He is long-suffering and abundant in goodness and truth.”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Blessed is the man who trusts him.” “The Lord is gracious and full of compassion. He is the God of salvation.” “He heals the brokenhearted and binds up the wounds of the soul. He is man’s all-powerful benefactor.” “하느님의 풍성한 선하심이 잘못한 사람을 회개로 이끄십니다(롬2:4).”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옵니다(약1:17).” “하느님은 선하시며(나1:7a), 그는 인간 영혼의 영원한 피난처입니다(신33:27a).” “주 하느님은 자비하시며 은혜로우십니다. 그는 오래 참으시며 선하심과 진실이 풍성하십니다(출34:6).”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를 신뢰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시34:8).” “주님은 은혜로우시며 긍휼함이 풍성하시니라(시111:4b). 그는 구원의 하느님이시라(시68:20a).” “그는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도다(시147:3). 그는 사람의 전능한 은인이시라(대상29:12).”

2:6.4 (41.2) The concept of God as a king-judge, although it fostered a high moral standard and created a law-respecting people as a group, left the individual believer in a sad position of insecurity respecting his status in time and in eternity. The later Hebrew prophets proclaimed God to be a Father to Israel; Jesus revealed God as the Father of each human being. The entire mortal concept of God is transcendently illuminated by the life of Jesus. Selflessness is inherent in parental love. God loves not like a father, but as a father. He is the Paradise Father of every universe personality. 하느님을 왕-심판자로 보는 개념은 높은 도덕적 기준을 조성하고 집단으로서 법을 존중하는 백성을 만들었지만, 시간과 영원 가운데 있는 개인별 신자(信者)의 신분을 불안전한 슬픈 처지에 두었습니다. 후대의 히브리 선지자들은 하느님을 이스라엘의 아버지라고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각 인간의 아버지로 계시했습니다. 전체 필사자의 하느님 개념은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초월적으로 조명되었습니다. 이타심은 어버이 사랑에 본래부터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아버지처럼 사랑하지 않고 아버지로서 사랑합니다. 그는 모든 우주 인격(고유성)의 천국 아버지입니다.

2:6.5 (41.3) Righteousness implies that God is the source of the moral law of the universe. Truth exhibits God as a revealer, as a teacher. But love gives and craves affection, seeks understanding fellowship such as exists between parent and child. Righteousness may be the divine thought, but love is a father’s attitude. The erroneous supposition that the righteousness of God was irreconcilable with the selfless love of the heavenly Father, presupposed absence of unity in the nature of Deity and led directly to the elaboration of the atonement doctrine, which is a philosophic assault upon both the unity and the free-willness of God. 공의(公義)는 하느님이 우주 도덕 법칙의 근원임을 의미합니다. 진리는 하느님을 계시자, 교사로서 드러냅니다. 그러나 사랑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애정을 주고 갈망하며, 이해심 있는 친밀한 사귐을 추구합니다. 공의(公義)는 신적 생각일 수도 있지만, 사랑은 아버지의 태도입니다. 하느님의 공의(公義)가 하늘 아버지의 이타적 사랑과 대립한다는 잘못된 추측은 신(神)의 본성에 통일성이 없다고 미리 추정하여 속죄 교리를 공들여 만들어내는 일로 직접 이어졌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통일성과 자유 의지에 대한 철학적 공격입니다.

2:6.6 (41.4) The affectionate heavenly Father, whose spirit indwells his children on earth, is not a divided personality — one of justice and one of mercy — neither does it require a mediator to secure the Father’s favor or forgiveness. Divine righteousness is not dominated by strict retributive justice; God as a father transcends God as a judge. 지상에 있는 그의 자녀들 안에 그의 영(靈)이 살고 있는 다정한 하늘 아버지는, 정의에 속한 하나의 인격과 자비에 속한 하나의 인격 즉, 분열된 인격(고유성)이 아니고, 아버지의 호의나 용서를 얻기 위한 중개자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신적 공의(公義)는 엄하게 보복하는 정의(正義)로 지배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로서 하느님은 심판자로서 하느님을 초월합니다.

2:6.7 (41.5) God is never wrathful, vengeful, or angry. It is true that wisdom does often restrain his love, while justice conditions his rejected mercy. His love of righteousness cannot help being exhibited as equal hatred for sin. The Father is not an inconsistent personality; the divine unity is perfect. In the Paradise Trinity there is absolute unity despite the eternal identities of the co-ordinates of God. 하느님은 결코 격노하고, 복수심에 불타거나 성내지 않습니다. 지혜가 종종 그의 사랑을 억누르는 한편 정의(正義)가 그의 거부된 자비를 결정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의(公義)에 대한 그의 사랑은 죄에 대한 동등한 증오(憎惡)로 드러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일관성이 없는 인격(고유성)이 아닙니다. 신적 통일성은 완전합니다. 천국 삼위일체 안에는 동등한 하느님의 영원한 신원(身元)들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통일성이 있습니다.

2:6.8 (41.6) God loves the sinner and hates the sin: such a statement is true philosophically, but God is a transcendent personality, and persons can only love and hate other persons. Sin is not a person. God loves the sinner because he is a personality reality (potentially eternal), while towards sin God strikes no personal attitude, for sin is not a spiritual reality; it is not personal; therefore does only the justice of God take cognizance of its existence. The love of God saves the sinner; the law of God destroys the sin. This attitude of the divine nature would apparently change if the sinner finally identified himself wholly with sin just as the same mortal mind may also fully identify itself with the indwelling spirit Adjuster. Such a sin-identified mortal would then become wholly unspiritual in nature (and therefore personally unreal) and would experience eventual extinction of being. Unreality, even incompleteness of creature nature, cannot exist forever in a progressingly real and increasingly spiritual universe. 하느님은 죄인을 사랑하고 죄는 미워합니다. 이런 진술은 철학적으로 사실이지만, 하느님은 초월적 인격(고유성)이며, 사람(고유자들)은 다른 사람(고유자들)을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을 뿐입니다. 죄는 사람(고유자)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인격(고유성) 실체(잠재적으로 영원한)이므로 죄인을 사랑하지만, 죄를 향해서 하느님은 개인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데, 죄는 영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는 인격적(고유적)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의 정의(正義)만이 그 존재를 인지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죄인을 구원하고, 하느님의 법이 죄를 파괴합니다. 바로 필사자 마음도 내주하는 영(靈) 조율자와 자신을 바로 완전히 동일시할 수 있는 것처럼 죄인이 마침내 자신을 완전히 죄와 동일시한다면 신적 본성의 이런 태도는 분명히 바뀔 것입니다. 그렇게 죄와 동일시된 필사자는 그때 본성으로 완전히 비(非)영적으로 되어 (그 결과로 개인으로서 실재하지 않게 되며) 최후에 존재의 소멸을 경험할 것입니다. 비(非)실재성, 창조물 본성의 불완전성(不完全性)조차 꾸준히 실제적이며, 점점 영적인 우주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없습니다.

2:6.9 (42.1) Facing the world of personality, God is discovered to be a loving person; facing the spiritual world, he is a personal love; in religious experience he is both. Love identifies the volitional will of God. The goodness of God rests at the bottom of the divine free-willness — the universal tendency to love, show mercy, manifest patience, and minister forgiveness. 인격(고유성)의 세계를 향하면, 하느님은 사랑하는 인격(고유)자로 발견됩니다. 영적 세계를 향하면, 하느님은 인격(고유)적 사랑입니다. 종교적 체험을 향하면, 하느님은 인격(고유)자인 동시에 인격(고유)적 사랑 둘 다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결단적 의지로 확인됩니다. 하느님의 선하심은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며, 인내심을 나타내며, 용서를 베푸는 우주적 경향, 즉 신적 자유-의지의 밑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7. Divine Truth and Beauty 신적 진리와 아름다움

2:7.1 (42.2) All finite knowledge and creature understanding are relative. Information and intelligence, gleaned from even high sources, is only relatively complete, locally accurate, and personally true. 모든 유한한 지식과 창조물의 이해력은 상대적입니다. 수준 높은 출처에서 수집한 정보와 지식도 상대적으로 완전하고, 국지적으로 정확하며, 개인적으로 참될 뿐입니다.

2:7.2 (42.3) Physical facts are fairly uniform, but truth is a living and flexible factor in the philosophy of the universe. Evolving personalities are only partially wise and relatively true in their communications. They can be certain only as far as their personal experience extends. That which apparently may be wholly true in one place may be only relatively true in another segment of creation. 물리적 사실은 상당히 획일적이지만, 진리는 우주 철학에서 살아 있는 유연한 요소입니다. 진화하는 인격(고유)체들은 소통에서 부분적으로만 현명하고 상대적으로 참될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 경험이 확장하는 한에서만 확신할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한 곳에서 전적으로 진실일 수 있는 것이 창조계의 다른 부분에서는 상대적으로만 진실일 수 있습니다.

2:7.3 (42.4) Divine truth, final truth, is uniform and universal, but the story of things spiritual, as it is told by numerous individuals hailing from various spheres, may sometimes vary in details owing to this relativity in the completeness of knowledge and in the repleteness of personal experience as well as in the length and extent of that experience. While the laws and decre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First Great Source and Center are eternally, infinitely, and universally true; at the same time, their application to, and adjustment for, every universe, system, world, and created intelligence, are in accordance with the plans and technique of the Creator Sons as they function in their respective universes, as well as in harmony with the local plans and procedures of the Infinite Spirit and of all other associated celestial personalities. 신적 진리, 최종 진리는 일정하고 우주적이지만, 영적인 것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구체 출신의 수많은 개인이 말했듯이, 지식의 완전성과 개인적 체험의 충만함 및 그런 체험의 길이와 범위에서 이런 상대성 때문에, 세부 사항에서 때때로 다를 수 있습니다. 첫째 위대한 근원 및 중심의 법칙과 판결, 사고와 태도는 영원히, 무한하게 그리고 우주적으로 진실하지만, 동시에 모든 우주, 체계, 세계 및 창조된 지능 존재들을 향한 적용과 조율은 그들이 자신들의 각 우주에서 활동할 때 창조자 아들들의 계획과 기법에 따르며, 무한 영(靈)과 다른 모든 관련된 천상의 인격(고유성)들의 지역 계획과 절차에 조화되어 있습니다.

2:7.4 (42.5) The false science of materialism would sentence mortal man to become an outcast in the universe. Such partial knowledge is potentially evil; it is knowledge composed of both good and evil. Truth is beautiful because it is both replete and symmetrical. When man searches for truth, he pursues the divinely real. 물질주의(物質主義)의 거짓 과학은 필사 사람을 우주에서 추방자가 되도록 판결할 것입니다. 그런 부분적 지식은 선과 악으로 구성된 지식이므로 잠재적으로 악입니다. 진리는 충만하며 균형이 잡혀 있어서 아름답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찾을 때, 그는 신의 힘으로 실재를 뒤쫓습니다.

2:7.5 (42.6) Philosophers commit their gravest error when they are misled into the fallacy of abstraction, the practice of focusing the attention upon one aspect of reality and then of pronouncing such an isolated aspect to be the whole truth. The wise philosopher will always look for the creative design which is behind, and pre-existent to, all universe phenomena. The creator thought invariably precedes creative action. 철학자들은 실체의 한 측면에 주의를 집중한 후 그렇게 고립된 측면을 전체 진리라고 선언하는 관행인 추상의 오류로 잘못 인도될 때 그들은 가장 심각한 잘못을 저지릅니다. 현명한 철학자는 항상 모든 우주 현상 배후에, 그리고 그 이전에 존재하는 창조적 설계를 찾을 것입니다. 창조자의 생각은 변함없이 창조적 행동에 선행합니다.

2:7.6 (42.7) Intellectual self-consciousness can discover the beauty of truth, its spiritual quality, not only by the philosophic consistency of its concepts, but more certainly and surely by the unerring response of the ever-present Spirit of Truth. Happiness ensues from the recognition of truth because it can be acted out; it can be lived. Disappointment and sorrow attend upon error because, not being a reality, it cannot be realized in experience. Divine truth is best known by its spiritual flavor. 지적 자의식(自意識)은 진리 개념의 철학적 일관성뿐만 아니라 항상 존재하는 진리 영(靈)의 조금도 틀리지 않는 응답으로 더 확실하게, 틀림없이 진리의 아름다움, 진리의 영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리는 실행될 수 있고, 실천될 수 있어서 진리를 알아볼 때 행복해집니다. 오류는 실체가 아니어서, 체험으로 실감할 수 없기에 실망과 슬픔이 오류의 결과로 일어납니다. 신적 진리는 영적 풍미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2:7.7 (42.8) The eternal quest is for unification, for divine coherence. The far-flung physical universe coheres in the Isle of Paradise; the intellectual universe coheres in the God of mind, the Conjoint Actor; the spiritual universe is coherent in the personality of the Eternal Son. But the isolated mortal of time and space coheres in God the Father through the direct relationship between the indwelling Thought Adjuster and the Universal Father. Man’s Adjuster is a fragment of God and everlastingly seeks for divine unification; it coheres with, and in, the Paradise Deit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영원한 탐구는 통일, 신적 일관성을 위한 것입니다. 멀리 떨어진 물리적 우주는 천국의 섬에서 일관성이 있습니다. 지적 우주는 마음의 하느님, 공동 행위자에서 일관성이 있습니다. 영적 우주는 영원 아들의 인격(고유성)에서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고립된 필사자는 내주하는 생각 조율자와 우주 아버지 사이의 직접적 관계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일관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조율자는 하느님의 분신(分身)이며 신적 통일을 영원히 추구합니다. 그것은 첫째 근원 및 중심의 천국 신(神)과 함께 그 안에서 일관성이 있습니다.

2:7.8 (43.1) The discernment of supreme beauty is the discovery and integration of reality: The discernment of the divine goodness in the eternal truth, that is ultimate beauty. Even the charm of human art consists in the harmony of its unity. 최고의 아름다움에 대한 식별은 실체를 발견하고 통합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진리 안에서 신적 선(善)을 식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궁극의 아름다움입니다. 인간 예술의 매력조차 그 통일성의 조화에 있습니다.

2:7.9 (43.2) The great mistake of the Hebrew religion was its failure to associate the goodness of God with the factual truths of science and the appealing beauty of art. As civilization progressed, and since religion continued to pursue the same unwise course of overemphasizing the goodness of God to the relative exclusion of truth and neglect of beauty, there developed an increasing tendency for certain types of men to turn away from the abstract and dissociated concept of isolated goodness. The overstressed and isolated morality of modern religion, which fails to hold the devotion and loyalty of many twentieth-century men, would rehabilitate itself if, in addition to its moral mandates, it would give equal consideration to the truths of science, philosophy, and spiritual experience, and to the beauties of the physical creation, the charm of intellectual art, and the grandeur of genuine character achievement. 히브리 종교의 가장 큰 실수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과학의 사실적 진리 및 예술의 매력적 아름다움과 관련짓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문명이 발전하고, 종교가 상대적으로 진리를 배제하고 아름다움을 무시하며 하느님의 선하심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바로 그 어리석은 과정을 계속 추구함에 따라, 특정 유형의 사람들이 고립된 선에 대한 추상적이며 분리된 개념에서 멀어지는 경향이 더욱 전개되었습니다. 여러 20세기 사람들의 헌신과 충성심을 끝내 붙잡지 못한 현대 종교의 과도한 압력과 고립된 도덕성은, 그 도덕적 명령 외에, 과학, 철학, 및 영적 체험의 진리들과 물리적 창조의 아름다움, 지적 예술의 매력 및 진지한 인격 성취의 고결함을 동등하게 고려한다면, 명예를 회복할 것입니다.

2:7.10 (43.3) The religious challenge of this age is to those farseeing and forward-looking men and women of spiritual insight who will dare to construct a new and appealing philosophy of living out of the enlarged and exquisitely integrated modern concepts of cosmic truth, universe beauty, and divine goodness. Such a new and righteous vision of morality will attract all that is good in the mind of man and challenge that which is best in the human soul. Truth, beauty, and goodness are divine realities, and as man ascends the scale of spiritual living, these supreme qualities of the Eternal become increasingly co-ordinated and unified in God, who is love. 이 시대의 종교적 도전은 질서 우주의 진리, 우주의 아름다움 및 신적 선(善)에 대해 확장되어 절묘하게 통합된 현대적 개념에서 새롭고 매력적인 생활 철학을 구축할 용기(勇氣)로, 그런 선견지명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영적 통찰력을 지닌 남녀에게 있습니다. 그렇게 새롭고 의로운 도덕성의 비전은 사람의 마음에서 선(善)한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인간 혼(魂)에 있는 최선의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진리, 아름다움 및 선(善)은 신적 실체이며, 인간이 영적 생활의 척도로 상승할수록, 영원에 속한 이런 최고의 자질은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서 점차 통합-조정되어 통일됩니다.

2:7.11 (43.4) All truth — material, philosophic, or spiritual — is both beautiful and good. All real beauty — material art or spiritual symmetry — is both true and good. All genuine goodness — whether personal morality, social equity, or divine ministry — is equally true and beautiful. Health, sanity, and happiness are integrations of truth, beauty, and goodness as they are blended in human experience. Such levels of efficient living come about through the unification of energy systems, idea systems, and spirit systems. 물질적이든 철학적이든 영적이든 모든 진리는 아름답고 선합니다. 물질적 예술이든 영적 균형이든 모든 진실한 아름다움은 참되고 선합니다. 개인적 도덕성이든 사회적 공정성이든 신적 사역이든 모든 진정한 선(善)은 참된 동시에 아름답습니다. 건강, 온전함, 그리고 행복은 진리, 아름다움, 선(善)이 인간 체험으로 융합된 통합체입니다. 이런 수준의 효율적 삶은 에너지 체계, 사상 체계, 그리고 영(靈) 체계의 통합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2:7.12 (43.5) Truth is coherent, beauty attractive, goodness stabilizing. And when these values of that which is real are co-ordinated in personality experience, the result is a high order of love conditioned by wisdom and qualified by loyalty. The real purpose of all universe education is to effect the better co-ordination of the isolated child of the worlds with the larger realities of his expanding experience. Reality is finite on the human level, infinite and eternal on the higher and divine levels. 진리는 일관성이 있고, 아름다움은 매력적이며, 선(善)은 안정시킵니다. 그리고 실체인 이런 가치들이 인격(고유성) 체험으로 통합-조정되면, 그 결과는 지혜로 조절되고, 충성으로 검증(檢證)된 높은 차원의 사랑입니다. 모든 우주 교육의 실제 목적은 세상의 고립된 아이가 자신의 확장된 체험에 속한 더 큰 실체들과 더 잘 통합하여 조정하는 데 있습니다. 실체는 인간 수준에서 유한하지만, 더 높은 신적 수준에서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2:7.13 (43.6) [Presented by a Divine Counselor acting by authority of the Ancients of Days on Uversa.][유버르사에 있는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권한으로 활동하는 신적 조언자가 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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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1 The Universal Father 우주 아버지

Paper 1

The Universal Father 우주 아버지

  1. The Father’s Name 아버지의 이름
  2. The Reality of God 하느님의 실체
  3. God is a Universal Spirit 하느님은 우주의 영
  4. The Mystery of God 하느님의 신비
  5.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우주 아버지의 고유성
  6. Personality in the Universe 우주의 고유성
  7. Spiritual Value of the Personality Concept 고유성 개념의 영적가치

1:0.1 (21.1) THE Universal Father is the God of all creation, the First Source and Center of all things and beings. First think of God as a creator, then as a controller, and lastly as an infinite upholder. The truth about the Universal Father had begun to dawn upon mankind when the prophet said: “You, God, are alone; there is none beside you. You have created the heaven and the heaven of heavens, with all their hosts; you preserve and control them. By the Sons of God were the universes made. The Creator covers himself with light as with a garment and stretches out the heavens as a curtain.” Only the concept of the Universal Father — one God in the place of many gods — enabled mortal man to comprehend the Father as divine creator and infinite controller. 우주 아버지는 모든 창조계의 하느님, 만물과 모든 존재의 첫째 근원 중심입니다. 먼저 하느님을 창조자로, 그다음에 조정자로, 마지막에 무한 유지자로 생각하십시오. 우주 아버지에 대한 진리는 선지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인류에게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 당신은 홀로 계시며; 당신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삼하7:22). 당신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을 그 모든 무리와 함께 창조하셨으며; 그들을 보존하고 조정하십니다(느9:6, 창1:1). 하느님의 아들들이 우주들을 만들었습니다(히1:2). 창조자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십니다(시104:2).” 우주 아버지의 개념 – 여러 신과 같은 존재들 대신에 한 하느님 –만이 필사 인간이 아버지를 신적 창조자와 무한 조정자로 파악할 수 있게 했습니다.

1:0.2 (21.2) The myriads of planetary systems were all made to be eventually inhabited by many different types of intelligent creatures, beings who could know God, receive the divine affection, and love him in return. The universe of universes is the work of God and the dwelling place of his diverse creatures. “God created the heavens and formed the earth; he established the universe and created this world not in vain; he formed it to be inhabited.” 무수한 행성 체계들은, 여러 다양한 유형의 지능적 창조물들, 하느님을 알고, 신적 애정을 받아들여 답례로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이 결국 거주하도록 모두 만들어졌습니다. 우주들의 우주는 하느님의 작품이며 그의 다양한 창조물들의 거주지입니다. “하느님이 하늘들을 창조하셨고 땅을 지으셨습니다. 그가 우주를 세우셨고 이 세상을 헛되이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이 거주하도록 그것을 지으셨습니다(사45:18).”

1:0.3 (21.3) The enlightened worlds all recognize and worship the Universal Father, the eternal maker and infinite upholder of all creation. The will creatures of universe upon universe have embarked upon the long, long Paradise journey, the fascinating struggle of the eternal adventure of attaining God the Father. The transcendent goal of the children of time is to find the eternal God, to comprehend the divine nature, to recognize the Universal Father. God-knowing creatures have only one supreme ambition, just one consuming desire, and that is to become, as they are in their spheres, like him as he is in his Paradise perfection of personality and in his universal sphere of righteous supremacy. From the Universal Father who inhabits eternity there has gone forth the supreme mandate, “Be you perfect, even as I am perfect.” In love and mercy the messengers of Paradise have carried this divine exhortation down through the ages and out through the universes, even to such lowly animal-origin creatures as the human races of Urantia. 개화된 세계들은 우주 아버지, 영원한 조물주와 모든 창조계의 무한 유지자를 모두 인식하고 경배합니다. 수많은 우주의 의지 창조물들은 길고 긴 천국 여행, 아버지 하느님께 도달하는 영원한 모험의 황홀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시간에 속한 자녀들의 초월적 목표는 영원한 하느님을 발견하고, 신적 본성을 파악하며, 우주 아버지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아는 창조물들은 단 하나의 최극 열망, 오로지 하나의 절실한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이 고유성에 속한 자신의 천국 완전성과 자신의 공의로운 최극위에 속한 우주 구체에 계시는 것처럼, 창조물들이 자신들의 구체들에서 하느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영원에 거하시는(사57:15) 우주 아버지께서 최극 명령을 공포하셨습니다. “내가 온전하듯이 너희는 온전하라(마5:48).” 사랑과 자비로, 천국의 메신저들은 여러 시대를 통해 아래로, 우주들을 통해 밖으로, 유란시아의 인류처럼 그토록 낮은 동물-기원의 창조물들에도 이 신적 권고를 전했습니다.

1:0.4 (22.1) This magnificent and universal injunction to strive for the attainment of the perfection of divinity is the first duty, and should be the highest ambition, of all the struggling creature creation of the God of perfection. This possibility of the attainment of divine perfection is the final and certain destiny of all man’s eternal spiritual progress. 신성 완전성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이 장엄한 우주적 권고는, 완전의 하나님께 속한 창조계에서 분투하는 모든 창조물의 첫째 의무이며,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신적 완전에 도달하는 이 가능성은 모든 사람이 영원히 영적으로 진보하는 최종적인 확실한 운명입니다.

1:0.5 (22.2) Urantia mortals can hardly hope to be perfect in the infinite sense, but it is entirely possible for human beings, starting out as they do on this planet, to attain the supernal and divine goal which the infinite God has set for mortal man; and when they do achieve this destiny, they will, in all that pertains to self-realization and mind attainment, be just as replete in their sphere of divine perfection as God himself is in his sphere of infinity and eternity. Such perfection may not be universal in the material sense, unlimited in intellectual grasp, or final in spiritual experience, but it is final and complete in all finite aspects of divinity of will, perfection of personality motivation, and God-consciousness. 유란시아 필사자들은 무한한 관점에서 도저히 완전해질 수 없지만, 이 행성에서 그들이 하는 것처럼 시작해서, 무한한 하나님께서 필사 인간을 위해 마련하신 숭고한 신적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인간 존재들에게 전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들이 자아실현(자기 완성)과 마음 달성에 관련된 모든 점에서 이 운명을 성취할 때, 하나님 자신이 무한성과 영원성의 자기 구체에 계시듯이, 그들은 신적 완전함에 속한 자신들의 구체에서, 똑같이 충만할 것입니다. 그런 완전은 물질적 감각에서 우주적이지 않으며, 제한이 없는 지적인 파악도 아니고, 최종적인 영적 체험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의지의 신성, 고유성 동기의 완전함 및 하나님-의식의 모든 유한한 면에서 그것은 최종적이며 완벽합니다.

1:0.6 (22.3) This is the true meaning of that divine command, “Be you perfect, even as I am perfect,” which ever urges mortal man onward and beckons him inward in that long and fascinating struggle for the attainment of higher and higher levels of spiritual values and true universe meanings. This sublime search for the God of universes is the supreme adventure of the inhabitants of all the worlds of time and space. 이것이 “내가 온전하듯이 너희는 온전하라(마5:48).”는 신적 명령의 진정한 의미로써, 필사 사람이 더욱더 높은 차원의 영적 가치와 진정한 우주 의미들에 도달하게 하는 긴, 황홀한 투쟁에서 계속 전진하도록 촉구하고 그를 안쪽으로 손짓합니다. 우주들의 하나님을 찾는 이 숭고한 탐구는 모든 시공간 세계들의 거주자들에 속한 최극 모험입니다.

1. The Father’s Name 아버지의 이름

1:1.1 (22.4) Of all the names by which God the Father is known throughout the universes, those which designate him as the First Source and the Universe Center are most often encountered. The First Father is known by various names in different universes and in different sectors of the same universe. The names which the creature assigns to the Creator are much dependent on the creature’s concept of the Creator. The First Source and Universe Center has never revealed himself by name, only by nature. If we believe that we are the children of this Creator, it is only natural that we should eventually call him Father. But this is the name of our own choosing, and it grows out of the recognition of our personal relationship with the First Source and Center. 모든 이름 중 아버지 하느님이 전(全) 우주에 알려져 있으며, 그를 첫째 근원 및 우주 중심으로 부르는 이름들이 가장 많이 발견됩니다. 첫째 아버지는 다른 우주들에서, 같은 우주의 다른 영역들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창조물이 창조자를 부르는 이름들은 창조자에 대한 창조물의 개념에 많이 좌우됩니다. 첫째 근원 및 우주 중심은 결코 이름이 아니라 본성으로만 자신을 계시했습니다. 우리가 이 창조자의 자녀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아주 당연히 그를 결국 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자신이 선택한 이름이며, 첫째 근원 및 중심과 우리의 고유적 관계의 인식에서 생깁니다.

1:1.2 (22.5) The Universal Father never imposes any form of arbitrary recognition, formal worship, or slavish service upon the intelligent will creatures of the universes. The evolutionary inhabitants of the worlds of time and space must of themselves — in their own hearts — recognize, love, and voluntarily worship him. The Creator refuses to coerce or compel the submission of the spiritual free wills of his material creatures. The affectionate dedication of the human will to the doing of the Father’s will is man’s choicest gift to God; in fact, such a consecration of creature will constitutes man’s only possible gift of true value to the Paradise Father. In God, man lives, moves, and has his being; there is nothing which man can give to God except this choosing to abide by the Father’s will, and such decisions, effected by the intelligent will creatures of the universes, constitute the reality of that true worship which is so satisfying to the love-dominated nature of the Creator Father. 우주 아버지는 우주들의 지능적 의지 창조물들에게 어떤 형태든지 독단적 인식, 형식적 경배 혹은 노예적 봉사를 절대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시공간 세계들의 진화적 거주자들은 스스로 그들 자신의 심정으로 그를 인식하고, 사랑하며, 자발적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창조자는 자기 물질 창조물들이 지닌 영적 자유 의지들의 복종을 강요하거나 강제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인간 의지의 애정 어린 헌신이 하느님께 드릴 인간이 선택한 최고의 선물입니다. 사실, 그런 창조물 의지의 헌정(獻呈 자신을 바침)은 사람이 천국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진정으로 가치 있는 유일한 선물이 됩니다. 사람은 하느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행17:28a). 인간이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르려는 이런 선택을 제외한 어떤 것도 아니며, 우주들의 지능적 의지 창조물들이 행한 그런 결정들이, 사랑으로 충만한 창조주 아버지의 본성을 아주 만족하게 하는, 진정한 경배의 실체입니다.

1:1.3 (22.6) When you have once become truly God-conscious, after you really discover the majestic Creator and begin to experience the realization of the indwelling presence of the divine controller, then, in accordance with your enlightenment and in accordance with the manner and method by which the divine Sons reveal God, you will find a name for the Universal Father which will be adequately expressive of your concept of the First Great Source and Center. And so, on different worlds and in various universes, the Creator becomes known by numerous appellations, in spirit of relationship all meaning the same but, in words and symbols, each name standing for the degree, the depth, of his enthronement in the hearts of his creatures of any given realm. 너희가 일단 참으로 하느님을 의식하게 되면, 너희는 정말로 장엄한 창조자를 발견하고, 신적 조정자의 내주하는 존재의 실상을 체험하기 시작한 후, 그다음에, 우리의 깨우침과 신적 아들들이 하느님을 계시하는 방식과 방법에 따라서, 너희는 첫째 위대한 근원 중심에 대한 너희 개념을 적절히 표현하게 될, 우주 아버지를 위한 이름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렇게 다른 세계들과 다양한 우주들에서, 창조주는 수많은 호칭으로 알려지는데, 관계의 영(靈)으로 보면 모든 의미는 같지만, 단어와 상징으로 보면 각 이름은 주어진 영역에 속한 그의 창조물들이 경애(敬愛)하는 정도와 깊이를 나타냅니다.

1:1.4 (23.1) Near the center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the Universal Father is generally known by names which may be regarded as meaning the First Source. Farther out in the universes of space, the terms employed to designate the Universal Father more often mean the Universal Center. Still farther out in the starry creation, he is known, as on the headquarters world of your local universe, as the First Creative Source and Divine Center. In one near-by constellation God is called the Father of Universes. In another, the Infinite Upholder, and to the east, the Divine Controller. He has also been designated the Father of Lights, the Gift of Life, and the All-powerful One. 우주들의 우주 중심 근처에서, 우주 아버지는 보통 첫째 근원의 의미로 여길 수도 있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간의 우주들에서 멀어지면, 우주 아버지를 부르기 위해 사용된 용어는 더 자주 우주 중심을 의미합니다. 별들의 창조계로 더 멀어지면, 너희 지역 우주의 본부 세계처럼, 그는 첫째 창조적 근원 및 신적 중심으로 알려집니다. 근처 한 성좌(星座)에서 하느님은 우주들의 아버지로 부릅니다. 다른 데서 무한 유지자(維持者)로, 동쪽에서 신적 조정자로 부릅니다. 그는 또한 빛들의 아버지, 생명의 선물, 전능하신 분이라고 불렸습니다.

1:1.5 (23.2) On those worlds where a Paradise Son has lived a bestowal life, God is generally known by some name indicative of personal relationship, tender affection, and fatherly devotion. On your constellation headquarters God is referred to as the Universal Father, and on different planets in your local system of inhabited worlds he is variously known as the Father of Fathers, the Paradise Father, the Havona Father, and the Spirit Father. Those who know God through the revelations of the bestowals of the Paradise Sons, eventually yield to the sentimental appeal of the touching relationship of the creature-Creator association and refer to God as “our Father.” 천국 아들이 증여 생애를 살았던 그런 세계들에서, 하느님은 고유적 관계, 부드러운 애정 및 아버지다운 헌신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보통 알려집니다. 너희 성좌(星座) 본부에서 하느님은 우주 아버지로 불리며, 거주 세계들에 속한 너희 지역 체계의 다른 행성들에서 그는 아버지들의 아버지, 천국 아버지, 하보나 아버지 및 영(靈) 아버지로, 다양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천국 아들들이 증여한 계시들을 통해 하느님을 아는 자들은 창조물-창조주 연합의 감동적 관계에 속한 감정적 호소에 결국 굴복하여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릅니다.

1:1.6 (23.3) On a planet of sex creatures, in a world where the impulses of parental emotion are inherent in the hearts of its intelligent beings, the term Father becomes a very expressive and appropriate name for the eternal God. He is best known, most universally acknowledged, on your planet, Urantia, by the name God. The name he is given is of little importance; the significant thing is that you should know him and aspire to be like him. Your prophets of old truly called him “the everlasting God” and referred to him as the one who “inhabits eternity.” 성적(性的) 창조물들의 행성, 즉 지능적 존재들의 심정에 어버이다운 감정의 충동이 선천적인 세계에서, ‘아버지’라는 용어는 영원한 하느님을 가장 적절히 드러내는 이름입니다. 너희 행성 유란시아에서 그는 하느님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널리 인정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이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그를 알고 그와 같이 되기를 열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 옛 선지자들은 진심으로 그를 ‘영원하신 하느님(사40:28),’ ‘영원에 거하시는 분(사57:15)’이라고 불렀습니다.

2. The Reality of God 하나님의 실체

1:2.1 (23.4) God is primal reality in the spirit world; God is the source of truth in the mind spheres; God overshadows all throughout the material realms. To all created intelligences God is a personality, and to the universe of universes he is the First Source and Center of eternal reality. God is neither manlike nor machinelike. The First Father is universal spirit, eternal truth, infinite reality, and father personality. 하느님은 영(靈) 세계에서 최초의 실체입니다. 하느님은 마음 영역에서 진리의 근원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물질 영역 전체를 다스립니다. 하느님은 모든 창조된 지능 존재들에게 고유성이시며, 우주들의 우주에 영원한 실체의 첫째 근원 중심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이나 기계와 같지 않습니다. 첫째 아버지는 우주 영(靈), 영원한 진리, 무한한 실체 및 아버지 고유성입니다.

1:2.2 (23.5) The eternal God is infinitely more than reality idealized or the universe personalized. God is not simply the supreme desire of man, the mortal quest objectified. Neither is God merely a concept, the power-potential of righteousness. The Universal Father is not a synonym for nature, neither is he natural law personified. God is a transcendent reality, not merely man’s traditional concept of supreme values. God is not a psychological focalization of spiritual meanings, neither is he “the noblest work of man.” God may be any or all of these concepts in the minds of men, but he is more. He is a saving person and a loving Father to all who enjoy spiritual peace on earth, and who crave to experience personality survival in death. 영원한 하느님은 이상화(理想化) 실체나 고유화(固有化) 우주보다 더욱 무한합니다. 하느님은 단지, 필사자의 추구(追究)를 구상화(具象化)한, 사람의 최극 욕망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잠재적 공의(公義)의 권능이라는 개념도 아닙니다. 우주 아버지는 자연과 동의어도 아니고 그는 고유화(固有化) 자연법칙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초월적 실체이며, 최극 가치들에 대한 사람의 전통적 개념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영적 의미들의 심리학적 초점화(焦點化)가 아니며, “사람이 만든 가장 고상한 작품”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이런 모든 개념의 어떤 혹은 모두일 수도 있지만, 그는 그 이상(以上)입니다. 그는 지상에서 영적 평화를 누리며, 죽음에서 고유성 생존 체험을 갈망하는 모두에게 구원하는 고유자이며 사랑하는 아버지입니다.

1:2.3 (24.1) The actuality of the existence of God is demonstrated in human experience by the indwelling of the divine presence, the spirit Monitor sent from Paradise to live in the mortal mind of man and there to assist in evolving the immortal soul of eternal survival. The presence of this divine Adjuster in the human mind is disclosed by three experiential phenomena: 하느님 실존의 현실은 신적 존재의 내주에 의한 인간의 체험으로 드러나는데, 그 신적 존재는 천국에서 파송되어 사람의 필사 마음에서 사는 영(靈) 권고자(眷顧者)로서, 거기에서 영원히 생존하는 불멸 혼의 진화를 지원합니다. 인간 마음에 있는 이 신적 조율자의 존재는 3가지 체험적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1:2.4 (24.2) 1. The intellectual capacity for knowing God — God-consciousness. 하나님을 아는 지적 능력(하나님-의식)

1:2.5 (24.3) 2. The spiritual urge to find God — God-seeking.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영적 충동(하나님-추구)

1:2.6 (24.4) 3. The personality craving to be like God — the wholehearted desire to do the Father’s will. 하나님 처럼 되려고 갈망하는 고유성(아버지의 뜻을 전심으로 행하려는 소망)

1:2.7 (24.5) The existence of God can never be proved by scientific experiment or by the pure reason of logical deduction. God can be realized only in the realms of human experience; nevertheless, the true concept of the reality of God is reasonable to logic, plausible to philosophy, essential to religion, and indispensable to any hope of personality survival. 하나님의 실존은 과학적 실험이나 논리적 추론(推論)의 순수 이성으로 결코 증명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체험의 영역으로만 실감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실체의 참된 개념은 논리에 맞고, 철학에 대해 그럴 듯하며, 종교에 필수적이고 고유성 생존의 어떤 소망에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1:2.8 (24.6) Those who know God have experienced the fact of his presence; such God-knowing mortals hold in their personal experience the only positive proof of the existence of the living God which one human being can offer to another. The existence of God is utterly beyond all possibility of demonstration except for the contact between the God-consciousness of the human mind and the God-presence of the Thought Adjuster that indwells the mortal intellect and is bestowed upon man as the free gift of the Universal Father. 하느님을 아는 자들은 하느님 실존의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아는 필사자들은 자신들의 고유적 체험으로, 한 인간 존재가 다른 이에게 제공할 수 있는, 살아 계신 하느님이 실존한다는 유일하게 명확한 증거를 지닙니다. 하느님의 존재는 인간 마음의 하느님-의식과 생각 조율자의 하느님-실존 사이의 접촉을 제외하고, 완전히 모든 증명의 가능성을 초월하는데, 그 생각 조율자는 필사자 지성에 내주하며 우주 아버지가 무료 선물로서 인간에게 주십니다.

1:2.9 (24.7) In theory you may think of God as the Creator, and he is the personal creator of Paradise and the central universe of perfection, but the universes of time and space are all created and organized by the Paradise corps of the Creator Sons. The Universal Father is not the personal creator of the local universe of Nebadon; the universe in which you live is the creation of his Son Michael. Though the Father does not personally create the evolutionary universes, he does control them in many of their universal relationships and in certain of their manifestations of physical, mindal, and spiritual energies. God the Father is the personal creator of the Paradise universe and, in association with the Eternal Son, the creator of all other personal universe Creators. 이론상, 너희는 하느님을 창조자로서 생각할 수도 있으며, 그는 천국과 완전한 중앙우주의 직접적 창조자이지만, 천국 창조자 아들들 단(團)이 시공간 우주들을 모두 창조하고 조직했습니다. 우주 아버지는 네바돈 지역 우주의 직접적 창조자가 아닙니다. 너희가 살아가는 우주는 그의 아들 미가엘의 창조계입니다. 아버지가 직접 진화 우주들을 창조하지 않지만, 그는 그것들의 여러 우주 관계들과 물리적, 마음적, 및 영적 에너지들의 표현으로 그것들을 조정합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천국 우주의 직접적 창조자이며, 영원 아들과 연합하여 다른 모든 직접적 우주 창조자들의 창조자입니다.

1:2.10 (24.8) As a physical controller in the material universe of universes, the First Source and Center functions in the patterns of the eternal Isle of Paradise, and through this absolute gravity center the eternal God exercises cosmic overcontrol of the physical level equally in the central universe and throughout the universe of universes. As mind, God functions in the Deity of the Infinite Spirit; as spirit, God is manifest in the person of the Eternal Son and in the persons of the divine children of the Eternal Son. This interrelation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with the co-ordinate Persons and Absolutes of Paradise does not in the least preclude the direct personal action of the Universal Father throughout all creation and on all levels thereof. Through the presence of his fragmentized spirit the Creator Father maintains immediate contact with his creature children and his created universes. 우주들의 물질 우주에서 물리 조정자로서, 첫째 근원 중심은 천국 영원 섬의 원본으로 활동하며, 이런 절대 중력 중심을 통해, 영원 하느님은 중앙우주와 우주들의 우주 전체에서 차별 없이 물리적 차원을 전반적으로 질서 우주에 따라 조정합니다. 마음으로서, 하느님은 무한 영의 신(神)으로 활동합니다. 영(靈)으로서, 하느님은 영원 아들의 고유자와 영원 아들에 속한 신적 자녀들의 고유자들로 나타납니다. 이런 첫째 근원 중심과 천국의 통합-조정 고유자들 및 절대자들 사이의 상호관계는 모든 창조계와 그것의 모든 차원 내내 우주 아버지의 직접적인 고유 행동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의 분신(分身) 영(靈)의 실존을 통해 창조자 아버지는 자기 창조물 자녀들 및 창조된 우주들과 직접적 접촉을 유지합니다.

3. God is a Universal Spirit 하느님은 우주 영(靈)입니다

1:3.1 (25.1) “God is spirit.” He is a universal spiritual presence. The Universal Father is an infinite spiritual reality; he is “the sovereign, eternal, immortal, invisible, and only true God.” Even though you are “the offspring of God,” you ought not to think that the Father is like yourselves in form and physique because you are said to be created “in his image” — indwelt by Mystery Monitors dispatched from the central abode of his eternal presence. Spirit beings are real, notwithstanding they are invisible to human eyes; even though they have not flesh and blood. “하느님은 영(靈)입니다(요4:24).” 하느님은 우주의 영적 실재입니다. 우주 아버지는 무한한 영적 실체입니다. 그는 “주권이 있고, 영원하며, 불멸하고, 보이지 않으며, 유일하게 참된 하느님입니다(딤전1:17).” 너희가 심지어 “하느님의 자녀(행17:28)”이며, 그의 영원 실재의 중앙 거처에서 파송된 신비 감시자들이 내주한, 즉 “그의 형상(창1:27)”으로 창조되었다고 너희가 들었어도, 아버지가 너희 자신과 같은 형태와 모습이라고, 너희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靈) 존재들은 살과 피가 없어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실재(實在)합니다.

1:3.2 (25.2) Said the seer of old: “Lo, he goes by me, and I see him not; he passes on also, but I perceive him not.” We may constantly observe the works of God, we may be highly conscious of the material evidences of his majestic conduct, but rarely may we gaze upon the visible manifestation of his divinity, not even to behold the presence of his delegated spirit of human indwelling. 옛 선지자 욥이 고백했습니다. “보라,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욥9:11).” 우리가 계속 하느님의 행위를 지켜볼 수도 있고, 그의 장엄한 행동에 속한 물질적 증거들을 깊이 의식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의 신성(神性)의 명백한 표현을 거의 볼 수도 없고, 심지어 인간에게 내주하도록 그가 보낸 영(靈) 실재도 볼 수 없습니다.

1:3.3 (25.3) The Universal Father is not invisible because he is hiding himself away from the lowly creatures of materialistic handicaps and limited spiritual endowments. The situation rather is: “You cannot see my face, for no mortal can see me and live.” No material man could behold the spirit God and preserve his mortal existence. The glory and the spiritual brilliance of the divine personality presence is impossible of approach by the lower groups of spirit beings or by any order of material personalities. The spiritual luminosity of the Father’s personal presence is a “light which no mortal man can approach; which no material creature has seen or can see.” But it is not necessary to see God with the eyes of the flesh in order to discern him by the faith-vision of the spiritualized mind. 우주 아버지는 물질적 장애와 제한된 영적 자질을 지닌 낮은 창조물에게 자신을 감추셔서 그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필사자는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33:20).” 물질 인간은 영(靈) 하나님을 보고 자기 필사 실재를 보전할 수 없습니다. 낮은 영 존재들 집단 혹은 어떤 계층의 물질 고유성들이 신적 고유성 실재의 영광과 영적 광채에 다가가기는 불가능합니다. 아버지 고유 실재의 영적 광휘는 “어떤 필사 사람도 접근할 수 없고, 어떤 물질 창조물도 보지 못했고 또 볼 수 없는 빛(딤전6:16)입니다. 그러므로 영화(靈化) 마음의 신앙-시력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해서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1:3.4 (25.4) The spirit nature of the Universal Father is shared fully with his coexistent self, the Eternal Son of Paradise. Both the Father and the Son in like manner share the universal and eternal spirit fully and unreservedly with their conjoint personality co-ordinate, the Infinite Spirit. God’s spirit is, in and of himself, absolute; in the Son it is unqualified, in the Spirit, universal, and in and by all of them, infinite. 우주 아버지의 영(靈) 본성은 자신의 공존(共存) 자아(自我), 천국의 영원 아들과 온전히 공유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방식으로 우주 및 영원 영(靈)을 자신들과 동등한 공동 고유성, 무한 영과 함께 온전히 무제한적으로 공유합니다. 하나님의 영(靈)은 자체로 절대적입니다. 아들 안에서 그것은 무제한적이며, 영(靈) 안에서 우주적이며, 그들 모두 안에서 모두에 의해 무한합니다.

1:3.5 (25.5) God is a universal spirit; God is the universal person. The supreme personal reality of the finite creation is spirit; the ultimate reality of the personal cosmos is absonite spirit. Only the levels of infinity are absolute, and only on such levels is there finality of oneness between matter, mind, and spirit. 하나님은 우주 영(靈)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적 고유자입니다. 유한 창조계의 최극 고유적 실체는 영(靈)입니다. 고유적 질서우주의 궁극 실체는 절한(絶限) 영(靈)입니다. 무한 수준들만이 절대적이며, 그런 수준에서만 물질, 마음 및 영(靈) 사이에 최종적인 일치가 있습니다.

1:3.6 (25.6) In the universes God the Father is, in potential, the overcontroller of matter, mind, and spirit. Only by means of his far-flung personality circuit does God deal directly with the personalities of his vast creation of will creatures, but he is contactable (outside of Paradise) only in the presences of his fragmented entities, the will of God abroad in the universes. This Paradise spirit that indwells the minds of the mortals of time and there fosters the evolution of the immortal soul of the surviving creature is of the nature and divinity of the Universal Father. But the minds of such evolutionary creatures originate in the local universes and must gain divine perfection by achieving those experiential transformations of spiritual attainment which are the inevitable result of a creature’s choosing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우주에서 하느님 아버지는 잠재적으로 물질, 마음 및 영(靈)의 전반적-조정자입니다. 그의 널리-퍼진 고유성 회로로만, 하느님은 자기 광대한 창조계에 속한 의지 창조물들의 고유성들을 직접 다루지만, 그는 (천국 외부에서), 널리 우주에서 하느님의 뜻, 즉 자신의 파편화(破片化) 실체들의 실재로만 접촉할 수 있습니다. 시간에 속한 필사자들의 마음에 내주하며, 거기에서 생존하는 창조물의 불멸(不滅) 혼의 진화를 촉진하는 이 천국 영(靈)은 우주 아버지의 본성과 신성(神性) 출신입니다. 그러나 그런 진화 창조물들의 마음은 지역 우주들에서 시작하며, 천국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창조물이 선택하는 당연한 결과인, 영적 도달의 그런 체험적 변화를 성취하여 신적 완전을 얻어야 합니다.

1:3.7 (26.1) In the inner experience of man, mind is joined to matter. Such material-linked minds cannot survive mortal death. The technique of survival is embraced in those adjustments of the human will and those transformations in the mortal mind whereby such a God-conscious intellect gradually becomes spirit taught and eventually spirit led. This evolution of the human mind from matter association to spirit union results in the transmutation of the potentially spirit phases of the mortal mind into the morontia realities of the immortal soul. Mortal mind subservient to matter is destined to become increasingly material and consequently to suffer eventual personality extinction; mind yielded to spirit is destined to become increasingly spiritual and ultimately to achieve oneness with the surviving and guiding divine spirit and in this way to attain survival and eternity of personality existence. 사람의 내적 체험에서, 마음은 물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물질과 연결된 마음은 필사자 사후(死後)에 생존할 수 없습니다. 생존 기법은 인간 의지의 그런 조율과, 그렇게 하느님을 의식하는 지성이 점차 영(靈)의 가르침 가운데 결국 영(靈)의 인도를 받는, 필사자 마음 안에 있는 그런 변환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질 결합으로부터 영(靈)과 연합하는, 인간 마음의 이런 진화의 결과로 잠재적인 필사자 마음의 영(靈) 단계는 불멸(不滅) 혼(魂)의 모론시아 실체들로 변환됩니다. 필사자 마음이 물질에 끌려갈수록 점점 물질적이 되는 그 결과로서 결국 고유성이 소멸당하는 운명이 됩니다. 반면에 영(靈)을 따르는 마음은 점점 영적(靈的)으로 되어, 생존하여 인도하는 신적 영(靈)과 궁극적으로 일치하는 운명이 되며, 이렇게 생존과 고유성 실재의 영원에 도달하게 됩니다.

1:3.8 (26.2) I come forth from the Eternal, and I have repeatedly returned to the presence of the Universal Father. I know of the actuality and personalit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the Eternal and Universal Father. I know that, while the great God is absolute, eternal, and infinite, he is also good, divine, and gracious. I know the truth of the great declarations: “God is spirit” and “God is love,” and these two attributes are most completely revealed to the universe in the Eternal Son. 나는 영원자로부터 나와서 우주 아버지의 실재로 거듭 돌아갔습니다. 나는 첫째 근원 및 중심, 영원한 우주 아버지의 현존과 고유성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위대한 하느님이 절대적이고 영원하며 무한한 동시에 또한 그가 선하고 신적이며 은혜로우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영(靈)입니다.”와 “하느님은 사랑입니다.”라는 위대한 선언의 진리를 나는 알고 있으며, 이런 두 속성은 영원 아들 안에 있는 우주에 가장 완벽하게 계시가 됩니다.

4. The Mystery of God 하나님의 신비

1:4.1 (26.3) The infinity of the perfection of God is such that it eternally constitutes him mystery. And the greatest of all the unfathomable mysteries of God is the phenomenon of the divine indwelling of mortal minds. The manner in which the Universal Father sojourns with the creatures of time is the most profound of all universe mysteries; the divine presence in the mind of man is the mystery of mysteries. 하느님께 속한 완전의 무한성이 그를 영원히 신비하게 만드는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모든 신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필사자 마음들에 신적으로 내주하는 현상입니다. 우주 아버지가 시간의 창조물들과 함께 머무르는 방식이 모든 우주 신비 중에서 가장 심오합니다. 인간 마음에 있는 신적 실재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1:4.2 (26.4) The physical bodies of mortals are “the temples of God.” Notwithstanding that the Sovereign Creator Sons come near the creatures of their inhabited worlds and “draw all men to themselves”; though they “stand at the door” of consciousness “and knock” and delight to come in to all who will “open the doors of their hearts”; although there does exist this intimate personal communion between the Creator Sons and their mortal creatures, nevertheless, mortal men have something from God himself which actually dwells within them; their bodies are the temples thereof. 필사자들의 물질 육체가 “하느님의 성전들(고전3:16)”입니다. 주권적 창조주 아들들이 자신들의 거주세계들에 속한 창조물들에게 접근하여 “자신들에게 모든 사람을 이끈다(요12:32).”고 해도, 그 아들들이 의식의 “문밖에 서서” “두드리며” “심정의 문을 열”려는 모든 이에게 기쁘게 들어가(계3:20)도, 창조주 아들과 그들의 필사 창조물들 사이에 친밀한 개인적 교제가 있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 사람들은 자신들 내부에 실제로 내주하는 하느님 자신의 어떤 존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육체들은 성전들입니다.

1:4.3 (26.5) When you are through down here, when your course has been run in temporary form on earth, when your trial trip in the flesh is finished, when the dust that composes the mortal tabernacle “returns to the earth whence it came”; then, it is revealed, the indwelling “Spirit shall return to God who gave it.” There sojourns within each moral being of this planet a fragment of God, a part and parcel of divinity. It is not yet yours by right of possession, but it is designedly intended to be one with you if you survive the mortal existence. 너희가 여기 아래에서 끝마치고, 지상에서 일시적 형태로 너희 과정을 다하며, 육신으로 시승(試乘시험 운행)이 끝나고, 필사 장막을 이루는 티끌이 “그 근원인 흙으로 돌아가(창3:19)”면, 그때, 내주하는 “영(靈)은 그 영(靈)을 주셨던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사실(전12:7)”이 드러납니다. 이 행성의 각 도덕 존재 내부에는 하느님의 파편(破片), 신성(神性)의 핵심적 부분이 머물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 소유권에 의해 너희 것이 아니지만, 너희 필사 존재가 살아남으면 너희와 하나가 되도록 계획적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1:4.4 (26.6) We are constantly confronted with this mystery of God; we are nonplused by the increasing unfolding of the endless panorama of the truth of his infinite goodness, endless mercy, matchless wisdom, and superb character. 우리는 항상 이 하나님의 신비를 마주 대하고 있습니다. 그의 무한한 선(善), 끝없는 자비, 비할 데 없는 지혜 및 훌륭한 성품에 속한 끝없는 진리의 전경(全景)이 점점 더 펼쳐지면서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1:4.5 (26.7) The divine mystery consists in the inherent difference which exists between the finite and the infinite, the temporal and the eternal, the time-space creature and the Universal Creator, the material and the spiritual, the imperfection of man and the perfection of Paradise Deity. The God of universal love unfailingly manifests himself to every one of his creatures up to the fullness of that creature’s capacity to spiritually grasp the qualities of divine truth, beauty, and goodness. 신적 신비는 유한과 무한, 잠시와 영원, 시공간 창조물과 우주 창조자, 물질적인 것과 영(靈)적인 것, 및 인간의 불완전과 천국 신(神)의 완전성 사이에 존재하는 선천적 차이에 있습니다. 우주적 사랑의 하느님은, 창조물이 신적 진리, 아름다움 및 선함의 특질을 영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충만에 이르기까지, 자기 모든 창조물 각자에게 확실히 자신을 나타냅니다.

1:4.6 (27.1) To every spirit being and to every mortal creature in every sphere and on every world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the Universal Father reveals all of his gracious and divine self that can be discerned or comprehended by such spirit beings and by such mortal creatures. God is no respecter of persons, either spiritual or material. The divine presence which any child of the universe enjoys at any given moment is limited only by the capacity of such a creature to receive and to discern the spirit actualities of the supermaterial world. 우주들의 우주에 속한 모든 구체와 모든 세계에 있는 모든 영(靈) 존재와 모든 필사 창조물에게, 우주 아버지는, 그런 영 존재들과 그런 필사 창조물들이 분별하거나 이해할 수 있도록, 은혜롭고 신적인 자신의 모든 자아를 계시합니다. 하느님은 영적이든 물질적이든 어떤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우주의 자녀가 언제라도 누리는 신적 실재는 그런 창조물이 초(超)물질 세계의 영(靈) 실정을 수용하고 분별하는 능력으로만 제한됩니다.

1:4.7 (27.2) As a reality in human spiritual experience God is not a mystery. But when an attempt is made to make plain the realities of the spirit world to the physical minds of the material order, mystery appears: mysteries so subtle and so profound that only the faith-grasp of the God-knowing mortal can achieve the philosophic miracle of the recognition of the Infinite by the finite, the discernment of the eternal God by the evolving mortals of the material worlds of time and space. 인간의 영적 체험에 있는 실체로서 하느님은 신비가 아닙니다. 그러나 영(靈) 세계의 실체들을 물질적 계열의 물리적 마음에 명료해지도록 시도할 때, 신비가 나타납니다. 신비들은 너무 미묘하고 심오해서 하느님을 아는 필사자의 신앙-파악으로만, 유한으로 무한을 인식하는 철학적 기적, 즉 시공간에 속한 물질세계에서 진화하는 필사자들이 영원한 하느님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5.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우주 아버지의 고유성

1:5.1 (27.3) Do not permit the magnitude of God, his infinity, either to obscure or eclipse his personality. “He who planned the ear, shall he not hear? He who formed the eye, shall he not see?” The Universal Father is the acme of divine personality; he is the origin and destiny of personality throughout all creation. God is both infinite and personal; he is an infinite personality. The Father is truly a personality, notwithstanding that the infinity of his person places him forever beyond the full comprehension of material and finite beings. 하느님의 위대하심, 그의 무한성이 하느님의 고유성을 흐리거나 무색하게 가리도록 허용하지 마십시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시94:9). 우주 아버지는 신적 고유성(固有性)의 극치(極致)입니다. 그는 창조계 전체에서 고유성(固有性)의 기원(起源)과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무한하며 동시에 고유적이어서, 그는 무한 고유성입니다. 고유자 아버지의 무한성이 물질적이며 유한한 존재들에 속한 충만한 이해 너머에 영원히 그를 위치시켜도 아버지는 진실로 고유성입니다.

1:5.2 (27.4) God is much more than a personality as personality is understood by the human mind; he is even far more than any possible concept of a superpersonality. But it is utterly futile to discuss such incomprehensible concepts of divine personality with the minds of material creatures whose maximum concept of the reality of being consists in the idea and ideal of personality. The material creature’s highest possible concept of the Universal Creator is embraced within the spiritual ideals of the exalted idea of divine personality. Therefore, although you may know that God must be much more than the human conception of personality, you equally well know that the Universal Father cannot possibly be anything less than an eternal, infinite, true, good, and beautiful personality.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으로 이해되는 고유성으로서 훨씬 그 이상의 고유성입니다. 그는 초(超)고유성에 속한 가능한 어떤 개념보다 훨씬 그 이상입니다. 그래서 존재의 실체에 대한 최고의 개념이 고유성의 관념과 이상(理想)이라는 물질적 창조물들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신적 고유성의 개념을 논의하는 것은 전혀 쓸데없습니다. 우주 창조자에 대해 물질적 창조물이 지닐 수 있는 가능한 최고의 개념은 신적 고유성을 높인 관념의 영적 이상(理想)들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고유성에 대한 인간적 개념보다 훨씬 그 이상(以上)임을 너희가 알 수 있다고 해도, 우주 아버지는 영원하고, 무한하며, 참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고유성(固有性)보다 못한 어떤 것도 될 수 없음을 너희가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습니다. 

1:5.3 (27.5) God is not hiding from any of his creatures. He is unapproachable to so many orders of beings only because he “dwells in a light which no material creature can approach.” The immensity and grandeur of the divine personality is beyond the grasp of the unperfected mind of evolutionary mortals. He “measures the waters in the hollow of his hand, measures a universe with the span of his hand. It is he who sits on the circle of the earth, who stretches out the heavens as a curtain and spreads them out as a universe to dwell in.” “Lift up your eyes on high and behold who has created all these things, who brings out their worlds by number and calls them all by their names”; and so it is true that “the invisible things of God are partially understood by the things which are made.” Today, and as you are, you must discern the invisible Maker through his manifold and diverse creation, as well as through the revelation and ministration of his Sons and their numerous subordinates. 하느님은 자신의 어떤 창조물로부터 숨어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물질 창조물이 접근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신다(딤전6:16)”는 그 이유만으로 그토록 여러 계층의 존재가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신적 고유성의 광대함과 장엄함은 진화 필사자들의 불완전한 마음으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는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리시며 뼘으로 우주를 재십니다(사40:12). 그는 땅 위 전역(전체)에 앉으셔서, 하늘들을 차일 같이 펴시며 거주할 우주처럼 그것들을 펼칩니다(사40:22).”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는지, 누가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는지 보라(사40:26). 그래서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롬1:20)은 만드신 만물에게 부분적으로 이해된다.”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날, 너희가 있는 대로, 하느님의 아들들과 수많은 그 하위자의 계시와 봉사를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여러 다양한 창조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조물주를 너희가 알아차려야 합니다.

1:5.4 (28.1) Even though material mortals cannot see the person of God, they should rejoice in the assurance that he is a person; by faith accept the truth which portrays that the Universal Father so loved the world as to provide for the eternal spiritual progression of its lowly inhabitants; that he “delights in his children.” God is lacking in none of those superhuman and divine attributes which constitute a perfect, eternal, loving, and infinite Creator personality. 물질 필사자들이 고유자 하느님을 볼 수 없다고 해도, 하느님이 고유자라는 확신으로 그들은 기뻐해야 합니다. 우주 아버지가 비천한 거주자들에게 영원한 영적 진보를 주실 만큼 그렇게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묘사하는 진리(요3:16a)를 신앙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는 “자기 자녀들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하느님은 완전하고, 영원하며, 애정이 깊고, 무한한 창조자 고유성을 이루는 그런 초(超)인간적이며 신적 성품에 속한 어떤 것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1:5.5 (28.2) In the local creations (excepting the personnel of the superuniverses) God has no personal or residential manifestation aside from the Paradise Creator Sons who are the fathers of the inhabited worlds and the sovereigns of the local universes. If the faith of the creature were perfect, he would assuredly know that when he had seen a Creator Son he had seen the Universal Father; in seeking for the Father, he would not ask nor expect to see other than the Son. Mortal man simply cannot see God until he achieves completed spirit transformation and actually attains Paradise. (초超우주의 요원들을 제외하고) 지역 창조계에서, 거주 세계들의 아버지들이며 지역 우주들의 주권자들인 천국 창조자 아들들을 떠나서, 하나님은 고유적 혹은 거주하면서 자신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창조물의 신앙이 온전하다면, 그가 창조주 아들을 볼 때, 그가 우주 아버지를 보고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요12:45, 14:9). 아버지를 찾을 때, 아들 외에 다른 어떤 존재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게 됩니다. 필사 사람은 영(靈) 변환을 완전히 마치고 실제로 천국에 이르기까지 정말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1:5.6 (28.3) The natures of the Paradise Creator Sons do not encompass all the unqualified potentials of the universal absoluteness of the infinite nature of the First Great Source and Center, but the Universal Father is in every way divinely present in the Creator Sons. The Father and his Sons are one. These Paradise Sons of the order of Michael are perfect personalities, even the pattern for all local universe personality from that of the Bright and Morning Star down to the lowest human creature of progressing animal evolution. 천국 창조주 아들들의 본성은 첫째 근원 중심의 무한 본성에 속한 우주 절대성의 모든 제한 없는 잠재성을 포함하지 않지만, 우주 아버지는 모든 면에서 창조주 아들들 안에 신적으로 계십니다(요14:10). 아버지와 그 아들들은 하나입니다(요10:30). 이런 미가엘 계열의 천국 아들들은, 완전한 고유성들이며, 광명한 새벽별의 고유성으로부터 아래로 진보하는 동물 진화에 속한 가장 낮은 인간 창조물까지, 모든 지역 우주 고유성의 원본이기도 합니다.

1:5.7 (28.4) Without God and except for his great and central person, there would be no personality throughout all the vast universe of universes. God is personality. 하나님과 그의 위대한 중심 고유자가 없다면, 모든 광대한 우주 전체에 어떤 고유성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유성(固有性)입니다.

1:5.8 (28.5) Notwithstanding that God is an eternal power, a majestic presence, a transcendent ideal, and a glorious spirit, though he is all these and infinitely more, nonetheless, he is truly and everlastingly a perfect Creator personality, a person who can “know and be known,” who can “love and be loved,” and one who can befriend us; while you can be known, as other humans have been known, as the friend of God. He is a real spirit and a spiritual reality.  하느님은 영원한 권능, 장엄한 현존, 초월적 이상(理想), 영광스러운 영(靈)이시며, 그는 이 모든 것이며, 무한히 그 이상(以上)이지만, 그는 진실로 끝없이 완전한 창조주 고유성(固有性), “알 수 있고 알려질 수 있으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으며,” 우리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고유자입니다. 게다가 다른 인간들이 하느님의 친구로 알려졌듯이 너희도 알려질 수 있습니다(약2:23, 요15:14). 하느님은 진짜 영(靈)이며 영적 실체입니다.

1:5.9 (28.6) As we see the Universal Father revealed throughout his universe; as we discern him indwelling his myriads of creatures; as we behold him in the persons of his Sovereign Sons; as we continue to sense his divine presence here and there, near and afar, let us not doubt nor question his personality primacy. Notwithstanding all these far-flung distributions, he remains a true person and everlastingly maintains personal connection with the countless hosts of his creatures scattered throughout the universe of universes. 우리가 우주 아버지의 우주 전체에 계시된 그를 보고, 수많은 그의 창조물에 내주하는 그를 알아보며, 그의 주권자 아들들의 고유자들 안에서 그를 바라보고, 그의 신적 현존을 여기저기에서, 원근에서, 계속 감지하면서, 우리는 그의 고유성 수위(首位 최고의 중요성)를 의심하거나 의혹을 품지 않아야 합니다. 이 모든 광범위한 배포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여전히 참된 고유자로 남아서 온 우주에 흩어진, 셀 수 없는 자기 창조물들과 끝없이 직접적인 접속을 계속합니다.

1:5.10 (28.7) The idea of th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is an enlarged and truer concept of God which has come to mankind chiefly through revelation. Reason, wisdom, and religious experience all infer and imply the personality of God, but they do not altogether validate it. Even the indwelling Thought Adjuster is prepersonal. The truth and maturity of any religion is directly proportional to its concept of the infinite personality of God and to its grasp of the absolute unity of Deity. The idea of a personal Deity becomes, then, the measure of religious maturity after religion has first formulated the concept of the unity of God. 우주 아버지의 고유성 관념은, 주로 계시를 통해 인류에게 왔던, 확장된 더 참된 하느님 개념입니다. 이성, 지혜 및 종교적 체험은 모두 하느님의 고유성을 추론하고 암시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그것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합니다. 내주하는 생각 조율자도 전(前)고유적입니다. 종교의 진리성과 성숙도는 하느님의 무한한 고유성(固有性) 개념과 신(神)의 절대적 단일성(單一性) 파악에 정비례(正比例)합니다. 다음에, 종교가 하느님의 단일성 개념을 처음 형성한 후, 고유적 신(神) 관념은 종교적 성숙의 척도가 됩니다.

1:5.11 (29.1) Primitive religion had many personal gods, and they were fashioned in the image of man. Revelation affirms the validity of the personality concept of God which is merely possible in the scientific postulate of a First Cause and is only provisionally suggested in the philosophic idea of Universal Unity. Only by personality approach can any person begin to comprehend the unity of God. To deny the personalit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leaves one only the choice of two philosophic dilemmas: materialism or pantheism. 원시종교는 고유적인 여러 신과 같은 존재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인간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계시가 하나님의 고유성 개념의 정당성을 확언하며, 이 개념은 첫째 원인이라는 과학적 가정으로만 가능하며, 우주적 단일성의 철학적 관념으로만 잠정적으로 제시됩니다. 어떤 고유자도 고유성 접근으로만 하나님의 단일성을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근원 중심의 고유성을 부인하면 두 가지 철학적 궁지, 즉 유물론(唯物論) 또는 범신론(汎神論) 중 택일(擇一)만 남습니다.

1:5.12 (29.2) In the contemplation of Deity, the concept of personality must be divested of the idea of corporeality. A material body is not indispensable to personality in either man or God. The corporeality error is shown in both extremes of human philosophy. In materialism, since man loses his body at death, he ceases to exist as a personality; in pantheism, since God has no body, he is not, therefore, a person. The superhuman type of progressing personality functions in a union of mind and spirit. 신(神)을 정관(靜觀마음에 비춰 바라봄)하면, 고유성 개념은 유형성(有形모양과 형체가 있음) 관념이 없어야 합니다. 물질적 신체는, 인간이나 하나님의 고유성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유형성(有形性) 오류는 인간 철학의 양극단(兩極端)에 나타납니다. 유물론(唯物論)에서, 인간은 죽을 때 자기 신체를 상실하므로, 사람은 고유성으로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범신론(汎神論)에서, 하나님은 신체가 없어서, 그는 고유자가 아닙니다. 진보하는 초(超)인간적 유형의 고유성은 마음과 영(靈)의 연합으로 작용합니다.

1:5.13 (29.3) Personality is not simply an attribute of God; it rather stands for the totality of the co-ordinated infinite nature and the unified divine will which is exhibited in eternity and universality of perfect expression. Personality, in the supreme sense, is the revelation of God to the universe of universes. 고유성은 단순히 하느님의 속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유성은 통합-조정된 무한한 본성과 통일된 신적 의지의 전체성을 뜻하는데, 통일된 신적 의지는 완전하게 표현된 영원성과 우주성으로 드러납니다. 최고의 의미에서 고유성은 우주들의 우주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입니다.

1:5.14 (29.4) God, being eternal, universal, absolute, and infinite, does not grow in knowledge nor increase in wisdom. God does not acquire experience, as finite man might conjecture or comprehend, but he does, within the realms of his own eternal personality, enjoy those continuous expansions of self-realization which are in certain ways comparable to, and analogous with, the acquirement of new experience by the finite creatures of the evolutionary worlds. 영원하고, 우주적이며, 절대적이고 무한한 하나님은 지식이 자라거나 지혜가 늘어나지 않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추측하거나 납득하듯이, 하나님은 체험이 필요하지 않지만, 자신의 영원한 고유성의 영역 내부에서, 그렇게 계속 자아-실현의 확장을 누리는데, 어떤 면에서 진화 세계들의 유한한 창조물들이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것에 비슷하게 해당합니다.

1:5.15 (29.5) The absolute perfection of the infinite God would cause him to suffer the awful limitations of unqualified finality of perfectness were it not a fact that the Universal Father directly participates in the personality struggle of every imperfect soul in the wide universe who seeks, by divine aid, to ascend to the spiritually perfect worlds on high. This progressive experience of every spirit being and every mortal creature throughout the universe of universes is a part of the Father’s ever-expanding Deity-consciousness of the never-ending divine circle of ceaseless self-realization. 광대한 우주에서, 신적 도움으로, 높은 곳에 있는, 영적으로 완전한 세계들로 상승하려고 애쓰는, 모든 불완전한 혼(魂)에 속한 고유성 분투에, 우주 아버지가 직접 참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면, 무한한 하나님의 절대적 완전성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완전성의 무제한(분별불가) 최종성에 속한 극심한 제한을 겪게 할 것입니다. 모든 우주에서 모든 영(靈) 존재와 모든 필사 창조물의 이 진보적 체험은 그침없는 자아-실현의 끝없는 신적 회로에 속한 아버지의 늘-확장되는 신(神)-인식의 부분입니다.

1:5.16 (29.6) It is literally true: “In all your afflictions he is afflicted.” “In all your triumphs he triumphs in and with you.” His prepersonal divine spirit is a real part of you. The Isle of Paradise responds to all the physical metamorphoses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the Eternal Son includes all the spirit impulses of all creation; the Conjoint Actor encompasses all the mind expression of the expanding cosmos. The Universal Father realizes in the fullness of the divine consciousness all the individual experience of the progressive struggles of the expanding minds and the ascending spirits of every entity, being, and personality of the whole evolutionary creation of time and space. And all this is literally true, for “in Him we all live and move and have our being.” “너희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사63:9a)”와 “너희 모든 승리에서 그는 너희 안에서 너희와 함께 승리합니다(고후2:14).”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진실입니다. 하느님의 전(前)고유적인 신적 영(靈)은 실제 너희의 일부분입니다. 천국 섬은 우주들의 우주에 속한 모든 물리적 변형에 반응합니다. 영원 아들은 모든 창조계에 있는 영(靈) 자극을 포함합니다. 공동 행위자는 팽창하는 질서우주의 표현된 모든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우주 아버지는, 신적 의식의 충만함으로, 시공간의 모든 진화적 창조계에 있는 모든 개체, 존재 및 고유성의 확장하는 마음들과 상승 영들의 진화적 분투에 속한 모든 개인적 체험을 실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그 안에서 살고 기동하며 존재(행17:28)하므로” 이 모든 것은 글자 그대로 진실입니다.

6. Personality in the Universe 우주의 고유성

1:6.1 (29.7) Human personality is the time-space image-shadow cast by the divine Creator personality. And no actuality can ever be adequately comprehended by an examination of its shadow. Shadows should be interpreted in terms of the true substance. 인간의 고유성은 신적 창조주 고유성이 시공간에 투영한형상-그림자입니다. 형상의 그림자를 조사하여, 실재를 결코 충분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림자들은 참된 본체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1:6.2 (30.1) God is to science a cause, to philosophy an idea, to religion a person, even the loving heavenly Father. God is to the scientist a primal force, to the philosopher a hypothesis of unity, to the religionist a living spiritual experience. Man’s inadequate concept of th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can be improved only by man’s spiritual progress in the universe and will become truly adequate only when the pilgrims of time and space finally attain the divine embrace of the living God on Paradise. 하나님은, 과학에게 하나의 원인이고, 철학에게 하나의 관념이며, 종교에게 하나의 고유자, 심지어 애정이 깊은 하늘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과학자에게 원초 기세이고, 철학자에게 단일성의 가설(假說)이며, 종교인에게 살아있는 영적 체험입니다. 우주 아버지의 고유성에 대한 사람의 불충분한 개념은 우주에서 사람의 영적 진보로만 개선될 수 있으며, 시공간의 순례자들이 결국 천국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신적 품에 도달해야만 참으로 충분해질 것입니다.

1:6.3 (30.2) Never lose sight of the antipodal viewpoints of personality as it is conceived by God and man. Man views and comprehends personality, looking from the finite to the infinite; God looks from the infinite to the finite. Man possesses the lowest type of personality; God, the highest, even supreme, ultimate, and absolute. Therefore did the better concepts of the divine personality have patiently to await the appearance of improved ideas of human personality, especially the enhanced revelation of both human and divine personality in the Urantian bestowal life of Michael, the Creator Son. 하나님과 인간이 품고 있듯이 고유성에 대한 정반대의 관점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사람은 유한에서 무한을 보면서 고유성을 알아보고 납득하고, 하나님은 무한에서 유한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가장 낮은 유형의 고유성을 지니고, 하나님은 최고의, 심지어 최극, 궁극, 절대 유형의 고유성을 지닙니다. 그러므로 신적 고유성의 개선된 개념들은, 인간 고유성에 대한 진보된 관념들의 출현, 특히 미가엘, 창조주 아들의 유란시아 증여 인생으로, 인간적이며 신적인 둘 다(Vere Deus et Vere Homo)의 고유성에 대한 강화된 계시를 인내로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1:6.4 (30.3) The prepersonal divine spirit which indwells the mortal mind carries, in its very presence, the valid proof of its actual existence, but the concept of the divine personality can be grasped only by the spiritual insight of genuine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Any person, human or divine, may be known and comprehended quite apart from the external reactions or the material presence of that person. 필사자 마음에 내주하는 전(前)고유적 신적 영(靈)은 자체로 실제 존재의 명백한 증거이지만, 신적 고유성 개념은 참된 고유적 종교 체험에 속한 영적 통찰력으로만 파악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이든 신적이든 어떤 고유자도 그 고유자의 외적 반응 혹은 물질적 실재와 아주 다르게, 알려지고 납득될 수도 있습니다.

1:6.5 (30.4) Some degree of moral affinity and spiritual harmony is essential to friendship between two persons; a loving personality can hardly reveal himself to a loveless person. Even to approach the knowing of a divine personality, all of man’s personality endowments must be wholly consecrated to the effort; halfhearted, partial devotion will be unavailing. 어느 정도 도덕적 유사성(類似性)과 영적 조화는 두 고유자들 사이의 우정(友情)에 필수적입니다. 애정이 깊은 고유성은 사랑 없는 고유자에게 자신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심지어 신적 고유성을 알려고 접근하려면, 사람의 모든 고유성 재질은 완전히 전념하도록 애써야만 합니다. 마음이 없거나, 부분적인 헌신은 소용이 없습니다.

1:6.6 (30.5) The more completely man understands himself and appreciates the personality values of his fellows, the more he will crave to know the Original Personality, and the more earnestly such a God-knowing human will strive to become like the Original Personality. You can argue over opinions about God, but experience with him and in him exists above and beyond all human controversy and mere intellectual logic. The God-knowing man describes his spiritual experiences, not to convince unbelievers, but for the edification and mutual satisfaction of believers. 사람이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동료들의 고유성 가치를 인정할수록, 그는 기원적 고유성을 알려고 더욱 갈망하며, 그렇게 하나님을 아는 인간은 더 열심히 기원적 고유성처럼 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에 대한 견해들을 샅샅이 논할 수 있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 있는 체험은 모든 인간적 논쟁과 단순한 지적 논리를 초월해 있습니다. 하나님을-아는 사람은, 불신자들을 확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자들의 계발(啓發)과 상호 만족을 위해, 자신의 영적 체험을 표현합니다.

1:6.7 (30.6) To assume that the universe can be known, that it is intelligible, is to assume that the universe is mind made and personality managed. Man’s mind can only perceive the mind phenomena of other minds, be they human or superhuman. If man’s personality can experience the universe, there is a divine mind and an actual personality somewhere concealed in that universe. 우주가 알려지고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마음이 만든 우주를 고유성이 경영한다고 가정(假定)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다른 마음들의 마음 현상이 인간적 혹은 초(超)인간적이든 감지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람의 고유성이 우주를 체험할 수 있다면, 그 우주에는 어딘가에 신적 마음과 실재 고유성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1:6.8 (30.7) God is spirit — spirit personality; man is also a spirit — potential spirit personality. Jesus of Nazareth attained the full realization of this potential of spirit personality in human experience; therefore his life of achieving the Father’s will becomes man’s most real and ideal revelation of the personality of God. Even though th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can be grasped only in actual religious experience, in Jesus’ earth life we are inspired by the perfect demonstration of such a realization and revelation of the personality of God in a truly human experience. 하느님은 영(靈) – 영(靈) 고유성이며, 인간도 영(靈) – 잠재적 영(靈) 고유성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인간 체험에서 이 잠재적 영(靈) 고유성의 충만한 현실성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성취한 그의 일생은 인간이 계시하는 가장 실제적이며 이상적인 하느님의 고유성입니다. 우주 아버지의 고유성은 실제 종교적 체험으로만 파악될 수 있다고 해도, 예수님의 지상 생활에서, 참된 인간의 체험 가운데 하느님의 고유성을 그렇게 현실화하고 계시한 완전한 실증으로 우리는 영감을 얻게 됩니다.

7. Spiritual Value of the Personality Concept 고유성 개념의 영적가치

1:7.1 (31.1) When Jesus talked about “the living God,” he referred to a personal Deity — the Father in heaven. The concept of the personality of Deity facilitates fellowship; it favors intelligent worship; it promotes refreshing trustfulness. Interactions can be had between nonpersonal things, but not fellowship. The fellowship relation of father and son, as between God and man, cannot be enjoyed unless both are persons. Only personalities can commune with each other, albeit this personal communion may be greatly facilitated by the presence of just such an impersonal entity as the Thought Adjuster. 예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요6:57)”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그는 고유적 신(神) –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언급했습니다. 신(神)의 고유성 개념은 친교를 조성하고, 지적 경배를 지지하며, 신선한 신뢰성을 증진합니다. 비(非)고유적 사물들 사이에 상호작용은 가능해도, 친교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친교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처럼, 둘 다 고유자들이 아니면 누릴 수 없습니다. 생각 조율자처럼 바로 그런 비(非)고유적 실재의 존재가 이런 고유적 친교를 대단히 촉진할 수도 있지만, 고유성들만이 서로 교제할 수 있습니다.

1:7.2 (31.2) Man does not achieve union with God as a drop of water might find unity with the ocean. Man attains divine union by progressive reciprocal spiritual communion, by personality intercourse with the personal God, by increasingly attaining the divine nature through wholehearted and intelligent conformity to the divine will. Such a sublime relationship can exist only between personalities. 물 한 방울이 대양(大洋)과 하나가 되듯이,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점진적인 상호 영적 사귐, 고유적 하나님과 고유성 교통, 및 신적 뜻에 전심으로 지적인 순종을 통해 신적 본성에 점차 이르러, 신적 연합에 도달합니다. 그런 숭고한 관계는 오직 고유성들 사이에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1:7.3 (31.3) The concept of truth might possibly be entertained apart from personality, the concept of beauty may exist without personality, but the concept of divine goodness is understandable only in relation to personality. Only a person can love and be loved. Even beauty and truth would be divorced from survival hope if they were not attributes of a personal God, a loving Father. 진리의 개념은 어쩌면 고유성과 별개로 생각할 수 있으며, 아름다움의 개념도 고유성 없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신적인 선(善)의 개념은 고유성 관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고유자만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과 진리가 고유적 하나님, 애정이 깊은 아버지의 속성들이 아니라면, 아름다움과 진리까지, 생존 희망에서 분리될 것입니다.

1:7.4 (31.4) We cannot fully understand how God can be primal, changeless, all-powerful, and perfect, and at the same time be surrounded by an ever-changing and apparently law-limited universe, an evolving universe of relative imperfections. But we can know such a truth in our own personal experience since we all maintain identity of personality and unity of will in spite of the constant changing of both ourselves and our environment. 우리는, 하느님이 어떻게 원초적이고, 불변하며, 전능하고, 완전한 동시에, 변화무쌍하며 법칙으로 제한받는 우주, 상대적으로 불완전하게 진화하는 우주로 둘러싸일 수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유적 체험으로 그런 진리를 알 수 있는데, 우리 자신과 우리의 환경이 둘 다 항상 변하지만, 우리 모두 고유성 정체성과 의지의 단일성을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1:7.5 (31.5) Ultimate universe reality cannot be grasped by mathematics, logic, or philosophy, only by personal experience in progressive conformity to the divine will of a personal God. Neither science, philosophy, nor theology can validate the personality of God. Only the personal experience of the faith sons of the heavenly Father can effect the actual spiritual realization of the personality of God. 궁극적 우주 실체는 수학, 논리학 또는 철학이 아니라, 고유자 하나님의 신적 뜻에 점차 순종하는 고유적 체험으로만 파악될 수 있습니다. 과학, 철학 또는 신학도 하나님 고유성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없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신앙 아들들에 속한 고유적 체험만이 하나님 고유성의 실제를 영적으로 깨닫게 합니다.

1:7.6 (31.6) The higher concepts of universe personality imply: identity, self-consciousness, self-will, and possibility for self-revelation. And these characteristics further imply fellowship with other and equal personalities, such as exists in the personality associations of the Paradise Deities. And the absolute unity of these associations is so perfect that divinity becomes known by indivisibility, by oneness. “The Lord God is one.” Indivisibility of personality does not interfere with God’s bestowing his spirit to live in the hearts of mortal men. Indivisibility of a human father’s personality does not prevent the reproduction of mortal sons and daughters. 우주 고유성의 더 높은 개념들은 정체성, 자기-의식, 자기-의지 및 자기-계시의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이 특성들은 더 나아가, 천국 신(神)들의 고유성 모임에 존재하는 것처럼, 다른 동등한 고유성들과 친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모임들의 절대적 단일성은 너무 완전해서 신성(神性)은 불가분(不可分)성, 하나됨으로 알려집니다. “주 하나님은 하나입니다(신6:4).” 고유성의 불가분성은, 필사 인간들의 심정에서 살도록 자신의 영(靈)을 주시는 하나님의 증여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인간 아버지의 고유성에 속한 불가분성은 필사 아들들과 딸들의 생식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1:7.7 (31.7) This concept of indivisibility in association with the concept of unity implies transcendence of both time and space by the Ultimacy of Deity; therefore neither space nor time can be absolute or infinite. The First Source and Center is that infinity who unqualifiedly transcends all mind, all matter, and all spirit. 단일성 개념과 관련된 불가분성의 이 개념은 신(神)의 궁극위로에 의해서 시공간을 모두 다 초월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공간과 시간은 절대적이거나 무한하게 있을 수 없습니다. 첫째 근원 중심은 모든 마음, 모든 물질 및 모든 영(靈)을 무조건 초월하는 그 무한성입니다.

1:7.8 (31.8) The fact of the Paradise Trinity in no manner violates the truth of the divine unity. The three personalities of Paradise Deity are, in all universe reality reactions and in all creature relations, as one. Neither does the existence of these three eternal persons violate the truth of the indivisibility of Deity. I am fully aware that I have at my command no language adequate to make clear to the mortal mind how these universe problems appear to us. But you should not become discouraged; not all of these things are wholly clear to even the high personalities belonging to my group of Paradise beings. Ever bear in mind that these profound truths pertaining to Deity will increasingly clarify as your minds become progressively spiritualized during the successive epochs of the long mortal ascent to Paradise. 천국 삼위일체의 사실은 신적 연합의 진리를 절대로 위반하지 않습니다. 천국 신(神)의 세 고유성은, 모든 우주 실체 반응들과 모든 창조물 관계들에서 하나로 있습니다. 이 세 영원한 고유자들의 존재는 신(神)의 불가분성의 진리를 위반하지 않습니다. 이 우주 문제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필사자 마음에 명백하도록, 내가 자유롭게 사용한 충분한 언어가 없음을 내가 충분히 압니다. 그러나 너희는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천국 존재들의 내 집단에 속한 높은 고유성들에게도 아주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神)에 속한 이 심오한 진리들은, 필사자들의 오랜 천국 상승의 연속적인 획기적 시대들 동안, 너희 마음들이 진보적으로 영화(靈化)되면서 점차 분명해질 것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1:7.9 (32.1) [Presented by a Divine Counselor, a member of a group of celestial personalities assigned by the Ancients of Days on Uversa, the headquarters of the seventh superuniverse, to supervise those portions of this forthcoming revelation which have to do with affairs beyond the borders of the local universe of Nebadon. I am commissioned to sponsor those papers portraying the nature and attributes of God because I represent the highest source of information available for such a purpose on any inhabited world. I have served as a Divine Counselor in all seven of the superuniverses and have long resided at the Paradise center of all things. Many times have I enjoyed the supreme pleasure of a sojourn in the immediate personal presence of the Universal Father. I portray the reality and truth of the Father’s nature and attributes with unchallengeable authority; I know whereof I speak.] [네바돈 지역우주 경계를 넘는 업무와 관계하여 다가오는 이 계시의 그 부분들을 감독하려고, 일곱째 초우주의 본부 유버르사에 있는,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이 임명한 천상 고유성들의 집단 요원, 신적 조언자가 제시함. 나는 하나님의 본성과 속성들을 묘사하는 이 문서들을 후원하도록 위임받았는데, 어떤 거주 세계든지 그런 목적으로 가능한 정보의 최고 근원을 내가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모든 일곱 초우주들에서 신적 조언자로 섬겼고, 오랫동안 만물의 천국 중심에서 살았습니다. 나는 우주 아버지의 바로 고유적 현존에서 머무는 최극의 기쁨을 여러 번 누렸습니다. 나는 도전할 수 없는 권위로 아버지의 본성과 속성들의 실체와 진리를 묘사합니다. 나는 내가 말하는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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