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7 Relation of the Eternal Son to the Universe 영원 아들과 우주의 관계

Paper 7

Relation of the Eternal Son to the Universe 영원 아들과 우주와의 관계

170628 요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I and the Father are one.

7:0.1 (81.1) THE Original Son is ever concerned with the execution of the spiritual aspects of the Father’s eternal purpose as it progressively unfolds in the phenomena of the evolving universes with their manifold groups of living beings. We do not fully comprehend this eternal plan, but the Paradise Son undoubtedly does. 기원 아들은, 아버지의 영원한 목적이, 다양한 집단들의 살아있는 존재들과 함께 진화하고 있는 우주의 현상들 안에서 진보적으로 펼쳐짐에 따라, 이 목적의 영적인 면을 집행하는 데에 항상 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원한 계획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지만, 천국 아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7:0.2 (81.2) The Son is like the Father in that he seeks to bestow everything possible of himself upon his co-ordinate Sons and upon their subordinate Sons. And the Son shares the Father’s self-distributive nature in the unstinted bestowal of himself upon the Infinite Spirit, their conjoint executive. 아들은 자신과 동등한 아들들과 그들의 종속 아들들에게 자신의 가능한 모든 것들을 증여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아버지와 비슷합니다. 그리고 아들은 그들의 공동 실행자인 무한 영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증여하는 점에 있어서, 아버지의 자아-분배 본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7:0.3 (81.3) As the upholder of spirit realities, the Second Source and Center is the eternal counterpoise of the Isle of Paradise, which so magnificently upholds all things material. Thus is the First Source and Center forever revealed in the material beauty of the exquisite patterns of the central Isle and in the spiritual values of the supernal personality of the Eternal Son. 영 실체들의 유지자로서의 둘째 근원이며 중심은, 물질 만물을 매우 훌륭하게 유지하는 천국 섬의 영원한 평형추입니다. 이와 같이, 첫째근원이며 중심은 중앙 섬의 절묘한 원형틀의 물질적 아름다움 안에서 그리고 영원 아들의 천상의 고유성이 지닌 영적 가치 안에서 언제까지나 계시됩니다.

170629 히1:3 그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하나님의 본성을 그대로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며 죄를 깨끗게 하시고 하늘에 계시는 위대하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The Son is the radiance of God’s glory and the exact representation of his being, sustaining all things by his powerful word. After he had provided purification for sins, he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Majesty in heaven.

7:0.4 (81.4) The Eternal Son is the actual upholder of the vast creation of spirit realities and spiritual beings. The spirit world is the habit, the personal conduct, of the Son, and the impersonal realities of spirit nature are always responsive to the will and purpose of the perfect personality of the Absolute Son. 영원 아들은 영 실체들과 영적 존재들이 거하는 광대한 창조의 실질적 유지자이십니다. 영 세계는 아들의 기질, 고유적 행위이며, 영 본성의 미(未)개인적 실체들은 절대 아들의 완전한 고유성의 뜻과 목적에 항상 응답합니다.

7:0.5 (81.5) The Son is not, however, personally responsible for the conduct of all spirit personalities. The will of the personal creature is relatively free and hence determines the actions of such volitional beings. Therefore the freewill spirit world is not always truly representative of the character of the Eternal Son, even as nature on Urantia is not truly revelatory of the perfection and immutability of Paradise and Deity. But no matter what may characterize the freewill action of man or angel, the Son’s eternal grasp of the universal gravity control of all spirit realities continues as absolute. 그러나, 아들은 모든 영 고유성들의 행위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고유적 창조물의 의지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며, 따라서 그러한 의지적 존재들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지구(유란시아)의 자연계가 천국과 신(神)의 완전성과 불변성을 진정으로 계시하는 것이 아니듯이, 자유의지의 영 세계가 영원 아들의 성품을 언제나 진정으로 대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이나 천사의 자유의지의 행동을 어떻게 특징을 짓든지, 모든 영 실체에 대한 아들의 우주 중력조정의 영원한 장악은 절대적으로 계속됩니다.

1. The Spirit-Gravity Circuit 영-중력 순환회로

170630 사40:11-12 11 그는 목자처럼 자기 양떼를 보살피시며 어린 양들을 자기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고 그 어미들을 부드러운 손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12 누가 손으로 바닷물을 되어 보고 뼘으로 하늘을 재어 보았는가? 누가 땅의 티끌을 됫박에 담아 보았으며 누가 산을 저울에 달아 보았는가? 11 He tends his flock like a shepherd: He gathers the lambs in his arms and carries them close to his heart; he gently leads those that have young. 12 Who has measured the waters in the hollow of his hand, or with the breadth of his hand marked off the heavens? Who has held the dust of the earth in a basket, or weighed the mountains on the scales and the hills in a balance?

7:1.1 (81.6) Everything taught concerning the immanence of God, his omnipresence, omnipotence, and omniscience, is equally true of the Son in the spiritual domains. The pure and universal spirit gravity of all creation, this exclusively spiritual circuit, leads directly back to the person of the Second Source and Center on Paradise. He presides over the control and operation of that ever-present and unerring spiritual grasp of all true spirit values. Thus does the Eternal Son exercise absolute spiritual sovereignty. He literally holds all spirit realities and all spiritualized values, as it were, in the hollow of his hand. The control of universal spiritual gravity is universal spiritual sovereignty. 하나님의 내재(內在)성, 그의 편재(遍在), 전능, 그리고 전지에 대해 가르쳐 온 모든 것은, 영의 권역에서 아들에게도 똑같이 참됩니다. 모든 창조의 순수하고 우주적인 영 중력, 즉 배타적으로 영적인 이 순환회로는 천국에 있는 둘째 근원이며 중심의 개인에게로 직접 되돌아가도록 인도합니다. 그는 참된 모든 영 가치들에 대해 항상-현존하며 정확한 영적 장악의 조정과 작용을 관장하십니다. 그래서 영원 아들은 절대적인 영적 주권을 행사하십니다. 그는 글자 그대로 모든 영 실체들과 영성화한 가치들을, 말하자면, 그의 손바닥 안에 쥐고 유지하고 계십니다. 우주의 영 중력에 대한 조정이 우주의 영적 주권입니다.

7:1.2 (82.1) This gravity control of spiritual things operates independently of time and space; therefore is spirit energy undiminished in transmission. Spirit gravity never suffers time delays, nor does it undergo space diminution. It does not decrease in accordance with the square of the distance of its transmission; the circuits of pure spirit power are not retarded by the mass of the material creation. And this transcendence of time and space by pure spirit energies is inherent in the absoluteness of the Son; it is not due to the interposition of the antigravity forces of the Third Source and Center. 영적인 것들에 대한 이 중력 조정은 시간과 공간에 독립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영 에너지는 전달과정에서 줄어들지 않습니다. 영 중력은 시간 지연을 당하는 일이 결코 없으며, 또한 그것은 공간의 감축도 겪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것이 전달되는 거리의 제곱에 따라 줄어들지 않으며, 순수한 영 권능의 순환회로들은 물질적 창조의 질량에 의해 지체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영 에너지로서의 시간과 공간의 이러한 초월은 영원 아들의 절대성 안에서 선천적입니다. 그것은 셋째근원이며 중심의 반(反)중력(重力) 힘의 간섭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7:1.3 (82.2) Spirit realities respond to the drawing power of the center of spiritual gravity in accordance with their qualitative value, their actual degree of spirit nature. Spirit substance (quality) is just as responsive to spirit gravity as the organized energy of physical matter (quantity) is responsive to physical gravity. Spiritual values and spirit forces are real. From the viewpoint of personality, spirit is the soul of creation; matter is the shadowy physical body. 영 실체들은 그들의 질적 가치, 즉 영 본성의 실제적 등급에 따라서 영적 중력 중심이 당기는 힘에 응답합니다. 물리적 물질(양-量)의 조직된 에너지가 물리적 중력에 응답하는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 본체(본질)는 영 중력에 응답합니다. 영적 가치들과 영 힘들은 실제적입니다. 고유성의 관점에서 보면, 영은 창조의 혼이며; 물질은 그림자와 같은 물리적 몸체입니다.

170707 골1:17 그리고 그분은 모든 것이 있기 전에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7:1.4 (82.3) The reactions and fluctuations of spirit gravity are ever true to the content of spiritual values, the qualitative spiritual status of an individual or a world. This drawing power is instantly responsive to the inter- and intraspirit values of any universe situation or planetary condition. Every time a spiritual reality actualizes in the universes, this change necessitates the immediate and instantaneous readjustment of spirit gravity. Such a new spirit is actually a part of the Second Source and Center; and just as certainly as mortal man becomes a spiritized being, he will attain the spiritual Son, the center and source of spirit gravity. 영 중력의 반응들과 동요들은 한 개별존재나 혹은 한 세계의 영적 가치들의 내용과 질(質)적 영적 지위에 대해 언제든지 똑같이 일치합니다. 이 당기는 권능은 모든 우주 상황 또는 행성 조건 아래에서의 상호-그리고 내부-영 가치들에 대해 즉시 응답합니다. 영적 실체가 우주 안에서 사실화될 때마다, 이러한 변화는 영 중력의 재(再)조절을 즉시 순간적으로 필요하게 합니다. 그러한 새로운 영은 실제로 둘째 근원이며 중심의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필사 인간이 영적으로 변화되는 존재가 되는 것과 똑같이, 그는 영 중력의 중심이자 근원인, 영적 아들에 도달할 것입니다.

7:1.5 (82.4) The Son’s spiritual drawing power is inherent to a lesser degree in many Paradise orders of sonship. For there do exist within the absolute spirit-gravity circuit those local systems of spiritual attraction that function in the lesser units of creation. Such subabsolute focalizations of spirit gravity are a part of the divinity of the Creator personalities of time and space and are correlated with the emerging experiential overcontrol of the Supreme Being. 아들의 영적으로 당기는 권능은, 많은 아들관계의 천국 계층들 안에서 점차 적은 정도에 있어서, 선천적입니다. 이는 점차로 더 적은 창조 단위들에서 기능하는 영적 끌어당김이 있는 그 지역 체계들이, 절대 영-중력 순환회로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영 중력의 이러한 하위-절대 초점화 구현들은 시간과 공간의 창조주 고유성들이 지닌 신성의 일부분이며, 최극 존재의 창발하는 체험적 총괄과 상호 관련되어 있습니다.

7:1.6 (82.5) Spirit-gravity pull and response thereto operate not only on the universe as a whole but also even between individuals and groups of individuals. There is a spiritual cohesiveness among the spiritual and spiritized personalities of any world, race, nation, or believing group of individuals. There is a direct attractiveness of a spirit nature between spiritually minded persons of like tastes and longings. The term kindred spirits is not wholly a figure of speech. 영-중력의 당김과 응답은 우주들에서 전체로서 만이 아니라 개별존재들과 개별존재들의 집단사이에서도 작용합니다. 어느 세계, 인종, 국가, 또는 개별존재들의 신앙 집단에도, 영적인 그리고 영으로 된 고유성들 가운데에는 영적 응집력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비슷한 기호나 열망의 마음을 가진 개인들 사이에는 영 본성의 직접적인 끌어당김이 있습니다. ‘유사(類似) 영들’이라는 단어는 전적으로 비유적 표현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170711 요12: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하겠다. But I, when I am lifted up from the earth, will draw all men to myself.”

7:1.7 (82.6) Like the material gravity of Paradise, the spiritual gravity of the Eternal Son is absolute. Sin and rebellion may interfere with the operation of local universe circuits, but nothing can suspend the spirit gravity of the Eternal Son. The Lucifer rebellion produced many changes in your system of inhabited worlds and on Urantia, but we do not observe that the resultant spiritual quarantine of your planet in the least affected the presence and function of either the omnipresent spirit of the Eternal Son or the associated spirit-gravity circuit. 천국의 물질적 중력과 마찬가지로, 영원 아들의 영적 중력도 절대적입니다. 죄와 반란이 지역우주 순환회로들의 작용을 방해할 수도 있지만, 영원 아들의 영 중력을 중단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루시퍼의 반란은 거주세계들로 이루어진 너희 체계와 지구(유란시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우리는 그 결과로 발생한 너희 행성의 영적 격리가 영원 아들의 편재(遍在)하는 영 또는 관련된 영-중력 순환회로의 현존과 기능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를 찾지 못합니다.

7:1.8 (82.7) All reactions of the spirit-gravity circuit of the grand universe are predictable. We recognize all actions and reactions of the omnipresent spirit of the Eternal Son and find them to be dependable. In accordance with well-known laws, we can and do measure spiritual gravity just as man attempts to compute the workings of finite physical gravity. There is an unvarying response of the Son’s spirit to all spirit things, beings, and persons, and this response is always in accordance with the degree of actuality (the qualitative degree of reality) of all such spiritual values. 대우주의 영-중력 순환회로의 모든 반응들은 예측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영원 아들의 편재(遍在)하는 영의 모든 활동과 반응을 인식하며, 그것들이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사람이 유한한 물리적 중력의 작용을 계산해 내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잘-알려진 법칙들에 따라, 우리도 영적 중력을 측정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 사물들과 존재들 그리고 개인들에 대해서는 아들의 영의 변함없는 응답이 있으며, 이 응답은 언제나 그러한 모든 영적 가치들의 실제성의 정도(실체의 질적인 정도)에 따르고 있습니다.

7:1.9 (83.1) But alongside this very dependable and predictable function of the spiritual presence of the Eternal Son, there are encountered phenomena which are not so predictable in their reactions. Such phenomena probably indicate the co-ordinate action of the Deity Absolute in the realms of emerging spiritual potentials. We know that the spirit presence of the Eternal Son is the influence of a majestic and infinite personality, but we hardly regard the reactions associated with the conjectured performances of the Deity Absolute as personal. 그러나 영원 아들의 영적 현존의 바로 이러한 신뢰할 만하고 예측 가능한 기능 이외에, 그 반응을 예측할 수 없는 현상을 마주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현상들은 아마도 창발하는 영적 잠재 영역에서의 신(神) 절대자의 합동 활동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영원 아들의 영 현존이 장엄하고 무한한 고유성의 영향임을 알지만, 개인으로서의 신(神) 절대자의 추측된 행위와 연합된 반응이라고는 거의 여길 수 없습니다.

170712 렘31:3 그때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하였으므로 한결같은 사랑으로 너희를 인도하였다.’ 하고 말하였다. The LORD appeared to us in the past, saying: “I have loved you with an everlasting love; I have drawn you with loving-kindness.

7:1.10 (83.2) Viewed from the personality standpoint and by persons, the Eternal Son and the Deity Absolute appear to be related in the following way: The Eternal Son dominates the realm of actual spiritual values, whereas the Deity Absolute seems to pervade the vast domain of potential spirit values. All actual value of spirit nature finds lodgment in the gravity grasp of the Eternal Son but, if potential, then apparently in the presence of the Deity Absolute. 고유성 관점과 개인들로서 본다면, 영원 아들과 신(神) 절대자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영원 아들이 실질적인 영적 가치들의 권역을 지배하는 반면, 신(神) 절대자는 잠재적 영 가치들의 광대한 권역에 가득 퍼져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영 본성을 가진 모든 실제적 가치는 영원 아들의 중력 장악 안에서 머물러 있지만, 잠재적 가치라면, 겉으로 보기에 신(神) 절대자의 현존 안에 머무는 것처럼 보입니다.

7:1.11 (83.3) Spirit seems to emerge from the potentials of the Deity Absolute; evolving spirit finds correlation in the experiential and incomplete grasps of the Supreme and the Ultimate; spirit eventually finds final destiny in the absolute grasp of the spiritual gravity of the Eternal Son. This appears to be the cycle of experiential spirit, but existential spirit is inherent in the infinity of the Second Source and Center. 영은 신(神) 절대자의 잠재로부터 창발하는 것으로 보이며; 진화하는 영은 최극자와 궁극자의 체험적이고 미완성의 장악 속에서 상호관련성을 발견하며; 영은 결국에는 영원 아들의 영적 중력의 절대 장악 속에서 최종 운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체험적 영의 순환주기로 보이지만, 존재적 영은 둘째근원이며 중심의 무한 안에 본래부터 있습니다.

2. The Administration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경영

170713 롬11:36 만물이 다 그분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그분을 통해서 생동하며 그분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께 길이길이 영광을 돌립시다. 아멘. For from him and through him and to him are all things. To him be the glory forever! Amen.

7:2.1 (83.4) On Paradise the presence and personal activity of the Original Son is profound, absolute in the spiritual sense. As we pass outward from Paradise through Havona and into the realms of the seven superuniverses, we detect less and less of the personal activity of the Eternal Son. In the post-Havona universes the presence of the Eternal Son is personalized in the Paradise Sons, conditioned by the experiential realities of the Supreme and the Ultimate, and co-ordinated with the unlimited spirit potential of the Deity Absolute. 천국에서는 기원 아들의 현존과 그의 개인적 활동이 심오하며, 영적 의미에 있어서 절대적입니다. 우리가 천국으로부터 하보나를 거쳐 일곱 초우주들의 영역 안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영원 아들의 개인적 활동에 대해 점점 덜 감지하게 됩니다. 하보나-이후 우주들에서는 영원 아들의 현존은, 최극자와 궁극자의 체험적 실체들에 의해 조건 지워지며, 또한 신(神) 절대자의 무제한적 영 잠재와 합동을 이루면서, 천국 아들들 안에서 개인성으로 구현됩니다.

7:2.2 (83.5) In the central universe the personal activity of the Original Son is discernible in the exquisite spiritual harmony of the eternal creation. Havona is so marvelously perfect that the spiritual status and the energy states of this pattern universe are in perfect and perpetual balance. 중앙우주에서 기원적 아들의 개인적 활동은 영원한 창조의 절묘한 영적 조화 안에서 식별됩니다. 하보나는 너무나 완전하기 때문에 이 원형틀 우주의 영적 지위와 에너지 상태는 완전하고 영속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7:2.3 (83.6) In the superuniverses the Son is not personally present or resident; in these creations he maintains only a superpersonal representation. These spirit manifestations of the Son are not personal; they are not in the personality circuit of the Universal Father. We know of no better term to use than to designate them superpersonalities; and they are finite beings; they are neither absonite nor absolute. 초우주에서는 아들이 직접 현존하거나 거주하지 않으며; 이러한 창조계들에서 그는 단지 초(超)개인적 표상(表象)을 유지하실 뿐입니다. 아들의 이러한 영 현시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며; 그것들은 우주 아버지의 고유성 순환 회로 속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부르는데 초(超)고유성들이라는 말보다 더 좋은 용어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유한한 존재들이며; 아(亞)절대도 아니고 절대도 아닙니다.

7:2.4 (83.7) The administration of the Eternal Son in the superuniverses, being exclusively spiritual and superpersonal, is not discernible by creature personalities. Nonetheless, the all-pervading spiritual urge of the Son’s personal influence is encountered in every phase of the activities of all sectors of the domains of the Ancients of Days. In the local universes, however, we observe the Eternal Son personally present in the persons of the Paradise Sons. Here the infinite Son spiritually and creatively functions in the persons of the majestic corps of the co-ordinate Creator Sons. 초우주들 안에서 영원 아들의 행정은, 배타적으로 영적이고 초(超)고유적이며, 창조물 고유성들에 의해 식별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개인적 영향력의, 전체에-스며드는 영적 충동은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권역에 속하는 모든 구역들의 모든 활동 위상 속에서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역우주에서는, 영원 아들이 천국 아들들의 개인들 속에 직접 현존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합니다. 여기에서 그 무한 아들은 합동하는 창조주 아들들의 장엄한 무리단의 개인들 속에서 영적으로 그리고 창조적으로 역할을 하십니다.

3. Relation of the Eternal Son to the Individual 영원 아들과 개인의 관계

170718 고후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You show that you are a letter from Christ, the result of our ministry, written not with ink but with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not on tablets of stone but on tablets of human hearts.

7:3.1 (84.1) In the local universe ascent the mortals of time look to the Creator Son as the personal representative of the Eternal Son. But when they begin the ascent of the superuniverse training regime, the pilgrims of time increasingly detect the supernal presence of the inspiring spirit of the Eternal Son, and they are able to profit by the intake of this ministry of spiritual energization. In Havona the ascenders become still more conscious of the loving embrace of the all-pervading spirit of the Original Son. At no stage of the entire mortal ascension does the spirit of the Eternal Son indwell the mind or soul of the pilgrim of time, but his beneficence is ever near and always concerned with the welfare and spiritual security of the advancing children of time. 지역우주 상승에 있어서 시간의 필사자들은 창조자 아들을 영원 아들의 개인적 대표자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초우주 훈련 제도의 상승을 시작하게 되면, 시간의 순례자들은 영원 아들의 영감을 주는 영의, 숭고한 현존을 점점 더 감지하게 되며, 그들은 이러한 영적 에너지 주입의 돌봄을 받아들임으로써 혜택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보나에서 그 상승자들은 전체에-스며드는 기원 아들의 영의, 사랑으로 감싼 포옹을 훨씬 많이 의식하게 됩니다. 전체 필사자 상승의 어떤 단계에서도 영원 아들의 영은 시간 순례자의 마음이나 혼 안에 내주하지 않으나, 그의 은혜 베푸심은 늘 곁에 있으며, 진보하는 시간 자녀들의 복지와 영적 보호에 항상 관련되어 있습니다.

7:3.2 (84.2) The spiritual-gravity pull of the Eternal Son constitutes the inherent secret of the Paradise ascension of surviving human souls. All genuine spirit values and all bona fide spiritualized individuals are held within the unfailing grasp of the spiritual gravity of the Eternal Son. The mortal mind, for example, initiates its career as a material mechanism and is eventually mustered into the Corps of the Finality as a well-nigh perfected spirit existence, becoming progressively less subject to material gravity and correspondingly more responsive to the inward pulling urge of spirit gravity during this entire experience. The spirit-gravity circuit literally pulls the soul of man Paradiseward. 영원 아들의 영-중력 끌어당김은 생존되는 인간 혼들의 천국 상승에 본래부터 있는 비밀입니다. 모든 진정한 영 가치들과 진실로 영성화된 개별존재들은 영원 아들의 영 중력의 확실한 장악 안에 붙들려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필사자 마음은 물질적 기능구조로서 그의 생애를 시작하고, 결국에는 거의 완전한 영 존재로서 최종의 무리단에 소집되는데, 이 전체 체험 동안 점차적으로 물질중력에 덜 지배되고 이에 대응하여 영 중력의 안쪽으로 당기는 충동에 더욱 응답합니다. 영-중력 순환회로는 문자 그대로 사람의 혼을 천국 방향으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7:3.3 (84.3) The spirit-gravity circuit is the basic channel for transmitting the genuine prayers of the believing human heart from the level of human consciousness to the actual consciousness of Deity. That which represents true spiritual value in your petitions will be seized by the universal circuit of spirit gravity and will pass immediately and simultaneously to all divine personalities concerned. Each will occupy himself with that which belongs to his personal province. Therefore, in your practical religious experience, it is immaterial whether, in addressing your supplications, you visualize the Creator Son of your local universe or the Eternal Son at the center of all things. 영-중력 순환회로는 믿음이 있는 인간 심정의 진정한 기도를 인간 의식의 차원에서 신(神)의 실재적 의식으로 전달하는 기본적인 통로입니다. 너희의 청원들 속에 있는 참된 영적 가치를 나타내는 그것은, 영 중력의 우주적 순환회로에 의해 포착될 것이고, 관계된 모든 신적 고유성들에게 즉각적이고 동시에 전달될 것입니다. 각자는 그의 개인적 분야에 속한 것을 맡아 스스로 전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실천적인 종교 체험에 있어서, 너희가 탄원을 드릴 때, 너희 지역우주의 창조자 아들을 떠 올리든지 아니면 만물의 중심에 계시는 영원 아들을 떠 올리든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170719 고전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놋쇠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and have not charity, I am become as sounding brass, or a tinkling cymbal(KJV).

7:3.4 (84.4) The discriminative operation of the spirit-gravity circuit might possibly be compared to the functions of the neural circuits in the material human body: Sensations travel inward over the neural paths; some are detained and responded to by the lower automatic spinal centers; others pass on to the less automatic but habit-trained centers of the lower brain, while the most important and vital incoming messages flash by these subordinate centers and are immediately registered in the highest levels of human consciousness. 영-중력 순환회로의 차별적 기능은 물질적 인간 몸 안에 있는 신경 순환회로들의 기능과 아마도 비교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감각작용들은 신경 경로들을 통해 내부로 이동합니다. 어떤 것들은 하부의 자율적 척추 중심에 의해 억류되다가 응답합니다. 다른 것들은 덜 자율적이지만 습관적으로 훈련된, 하부의 뇌 중심에 전달되며, 한편 가장 중요하고도 치명적인 유입 메시지들은 이들 종속적인 중심들을 섬광처럼 지나, 즉각적으로 인간 의식의 최고 차원에 등록됩니다.

7:3.5 (84.5) But how much more perfect is the superb technique of the spiritual world! If anything originates in your consciousness that is fraught with supreme spiritual value, when once you give it expression, no power in the universe can prevent its flashing directly to the Absolute Spirit Personality of all creation. 그러나 영적 세계의 뛰어난 기법은 얼마나 더 완전한지 모른다! 최극의 영적 가치를 담은 어떤 것이든지 너희의 의식 속에 발생하고, 일단 네가 그것을 표현하면, 모든 창조의 절대 영(靈) 고유성에게 그것이 직접 번개처럼 전달되는 것을 막을 권능이 우주 안에는 전혀 없습니다.

7:3.6 (84.6) Conversely, if your supplications are purely material and wholly self-centered, there exists no plan whereby such unworthy prayers can find lodgment in the spirit circuit of the Eternal Son. The content of any petition which is not “spirit indited” can find no place in the universal spiritual circuit; such purely selfish and material requests fall dead; they do not ascend in the circuits of true spirit values. Such words are as “sounding brass and a tinkling cymbal.” 반대로, 만일 너희가 간청한 것들이 순수하게 물질적이고 전적으로 자아-중심적이라면, 그러한 무가치한 기도들은 영원한 아들의 영 순환회로 안에 머무를 곳을 찾을 수 있는 어떤 계획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으로 쓴” 것이 아닌 어떤 청원의 내용이든지 우주적인 영적 순환회로 안에서 머물 곳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순수하게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요청들은 죽어버릴 것입니다. 그것들은 참된 영 가치들의 순환회로들 속에서 상승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말들은 “소리 나는 징과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7:3.7 (85.1) It is the motivating thought, the spiritual content, that validates the mortal supplication. Words are valueless. 필사자의 탄원을 유효하게 하는 것은, 동기가 되는 생각, 영적 내용입니다. 말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4. The Divine Perfection Plans 신적 완전 계획

170720 창1:26 그리고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air, and over the cattle,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KJV).

7:4.1 (85.2) The Eternal Son is in everlasting liaison with the Father in the successful prosecution of the divine plan of progress: the universal plan for the creation, evolution, ascension, and perfection of will creatures. And, in divine faithfulness, the Son is the eternal equal of the Father. 영원한 아들은 신적 진보의 계획: 의지 창조물의 창조, 진화, 상승 그리고 완전을 위한 우주 계획의 성공적인 실행에서, 아버지와 영속적인 접촉을 하십니다. 그리고 신적 신실함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영원히 동등하십니다.

7:4.2 (85.3) The Father and his Son are as one in the formulation and prosecution of this gigantic attainment plan for advancing the material beings of time to the perfection of eternity. This project for the spiritual elevation of the ascendant souls of space is a joint creation of the Father and the Son, and they are, with the co-operation of the Infinite Spirit, engaged in associative execution of their divine purpose. 아버지와 그의 아들은 영원함의 완전을 향하여, 시간의 물질적 존재들을 전진하게 하는 이 거대한 달성 계획의 조성과 실행에서 하나로 계십니다. 공간의 상승하는 혼들의 영적 고양(高揚)을 위한 이 기획(企劃)은 아버지와 아들 공동의 창조이며, 그들은 무한 영의 협력과 함께 그들의 신적 목적의 관련된 집행에 몰두해 계십니다.

7:4.3 (85.4) This divine plan of perfection attainment embraces three unique, though marvelously correlated, enterprises of universal adventure: 완전성 달성의 이 신적 계획은, 놀라울 정도로 서로 관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우주 모험의 세 가지 사업들을 포함합니다.

7:4.4 (85.5) 1. The Plan of Progressive Attainment. This is the Universal Father’s plan of evolutionary ascension, a program unreservedly accepted by the Eternal Son when he concurred in the Father’s proposal, “Let us make mortal creatures in our own image.” This provision for upstepping the creatures of time involves the Father’s bestowal of the Thought Adjusters and the endowing of material creatures with the prerogatives of personality. 1. 진보적 달성 계획. 이것은 진화적 상승에 대한 우주 아버지의 계획으로, “우리 자신의 형상대로 필사 창조물들을 만들자.”라는 아버지의 제안에 영원한 아들이 찬성하였을 때 그에 의해 기탄없이 받아들여진 프로그램입니다. 시간의 창조물들을 올라가도록 하려는 이러한 준비 속에는 생각 조절자들을 아버지가 증여하는 것과 고유성이라는 특권을 물질적 창조물들에게 부여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70721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Be perfect, therefore,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7:4.5 (85.6) 2. The Bestowal Plan. The next universal plan is the great Father-revelation enterprise of the Eternal Son and his co-ordinate Sons. This is the proposal of the Eternal Son and consists of his bestowal of the Sons of God upon the evolutionary creations, there to personalize and factualize, to incarnate and make real, the love of the Father and the mercy of the Son to the creatures of all universes. Inherent in the bestowal plan, and as a provisional feature of this ministration of love, the Paradise Sons act as rehabilitators of that which misguided creature will has placed in spiritual jeopardy. Whenever and wherever there occurs a delay in the functioning of the attainment plan, if rebellion, perchance, should mar or complicate this enterprise, then do the emergency provisions of the bestowal plan become active forthwith. The Paradise Sons stand pledged and ready to function as retrievers, to go into the very realms of rebellion and there restore the spiritual status of the spheres. And such a heroic service a co-ordinate Creator Son did perform on Urantia in connection with his experiential bestowal career of sovereignty acquirement. 2. 증여 계획. 그 다음의 우주적 계획은 영원 아들과 그의 협동 아들들의 위대한 아버지-계시 사업입니다. 이것은 영원 아들이 제안한 것이며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들을 진화 창조계에 증여하고, 그들이 거기에서 고유성을 구현하고 사실화하며,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자비를 모든 우주들의 창조물들에게 육신화하고 실제가 되도록 만드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증여 계획에 본래부터 있는, 그리고 이 사랑의 섬김의 일시적 모습으로서 천국 아들들은, 잘못 인도된 창조물의 의지가 영적 위험 속에 처한 것의 복구자로서 활동하십니다. 달성 계획의 기능 속에 지연이 발생할 때는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반역이 이 사업을 우연히 망치거나 복잡하게 만든다면, 증여 계획의 긴급 조치가 즉시 시행됩니다. 천국 아들들은 반란이 일어난 바로 그 영역 속으로 가서, 거기에서 그 구체들의 영적 지위를 복구하는 구출자로 활약할 것을 서약하며 준비를 갖춥니다. 그리고 주권을 얻은 체험적 증여 생애와 관련하여, 한 협동 창조자 아들이 지구(유란시아)에서 그러한 영웅적 봉사를 수행했습니다.

7:4.6 (85.7) 3. The Plan of Mercy Ministry. When the attainment plan and the bestowal plan had been formulated and proclaimed, alone and of himself, the Infinite Spirit projected and put in operation the tremendous and universal enterprise of mercy ministry. This is the service so essential to the practical and effective operation of both the attainment and the bestowal undertakings, and the spiritual personalities of the Third Source and Center all partake of the spirit of mercy ministry which is so much a part of the nature of the Third Person of Deity. Not only in creation but also in administration, the Infinite Spirit functions truly and literally as the conjoint executive of the Father and the Son. 3. 자비 돌봄의 계획. 달성계획과 증여계획이 공식화되고 선포된 후에, 무한 영은 홀로 그리고 스스로, 자비 돌봄의 거대하고도 우주적인 사업을 기획(企劃)하고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달성사업과 증여사업 둘 모두에 대한 실천적이고 효력적인 작용에 매우 필수적인 봉사이며, 셋째근원이며 중심의 영적 고유성들은 모두 그렇게 신(神)의 셋째 개인 본성의 일부인, 자비 돌봄의 영과 함께 합니다. 창조뿐만 아니라 관리-행정에 있어서도, 무한 영은 아버지와 아들의 공동 집행자로서 진실 되게 그리고 문자대로 기능하십니다.

7:4.7 (86.1) The Eternal Son is the personal trustee, the divine custodian, of the Father’s universal plan of creature ascension. Having promulgated the universal mandate, “Be you perfect, even as I am perfect,” the Father intrusted the execution of this tremendous undertaking to the Eternal Son; and the Eternal Son shares the fostering of this supernal enterprise with his divine co-ordinate, the Infinite Spirit. Thus do the Deities effectively co-operate in the work of creation, control, evolution, revelation, and ministration — and if required, in restoration and rehabilitation. 영원 아들은 창조물 상승에 대한 아버지의 우주 계획의 개인적 수탁자(受託者)요, 신적 보관자이십니다. “내가 완전한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라.”는 우주적 명령을 공표한 후에, 아버지는 영원 아들에게 이 거대한 사업의 실행을 맡겼으며; 영원 아들은 자신의 신적 협조자인 무한 영과 함께 이 숭고한 사업을 육성시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신(神)들은 창조, 조정, 진화, 계시, 그리고 보살핌에서─필요한 경우에는 복구와 재건의 경우에도─, 효과적으로 협동하십니다.

5. The Spirit of Bestowal 증여의 영

170725 요14:6 그래서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가지 못한다.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7:5.1 (86.2) The Eternal Son without reservation joined with the Universal Father in broadcasting that tremendous injunction to all creation: “Be you perfect, even as your Father in Havona is perfect.” And ever since, that invitation-command has motivated all the survival plans and the bestowal projects of the Eternal Son and his vast family of co-ordinate and associated Sons. And in these very bestowals the Sons of God have become to all evolutionary creatures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하보나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라.”는 엄청난 명령을 모든 창조계에 방송될 때, 영원 아들은 우주 아버지와 아무 조건 없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계속, 그 초청-명령은 영원 아들과 그의 동등하게 연합하는 아들들의 광대한 가족의 생존 계획과 증여 기획 모두에 동기를 부여해 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증여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모든 진화 창조물들에게 “길, 진리, 그리고 생명”이 되어 오셨습니다.

7:5.2 (86.3) The Eternal Son cannot contact directly with human beings as does the Father through the gift of the prepersonal Thought Adjusters, but the Eternal Son does draw near to created personalities by a series of downstepping gradations of divine sonship until he is enabled to stand in man’s presence and, at times, as man himself. 영원 아들은 아버지가 전(前)고유적 생각 조절자라는 선물을 통하여 하는 것처럼 직접 인간 존재들과 접촉하실 수 없지만, 영원 아들은 그가 인간의 현존 속에서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 자체로서 나타나게 될 수 있을 때까지, 신적 아들관계의 일련의 단계적으로 낮아지는 변화에 의해, 창조된 고유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갑니다.

7:5.3 (86.4) The purely personal nature of the Eternal Son is incapable of fragmentation. The Eternal Son ministers as a spiritual influence or as a person, never otherwise. The Son finds it impossible to become a part of creature experience in the sense that the Father-Adjuster participates therein, but the Eternal Son compensates this limitation by the technique of bestowal. What the experience of fragmented entities means to the Universal Father, the incarnation experiences of the Paradise Sons mean to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순수한 개인적 본성은 단편화 될 수 없습니다. 영원 아들은 영적 영향력으로서 또는 어떤 개인으로서 돌볼 수 있지만, 다르게는 결코 하실 수 없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조율자가 거기에 참여하는 그 의미에서는, 창조물 체험의 일부가 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지만 영원 아들은 증여의 기법에 의해 이 한계를 보충합니다. 단편화된 실재들의 체험이 우주 아버지에게 주는 의미는, 천국 아들들의 육신화 체험이 영원 아들에게 주는 의미와 같습니다.

170726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And being found in appearance as a man, he humbled himself and became obedient to death– even death on a cross!

7:5.4 (86.5) The Eternal Son comes not to mortal man as the divine will, the Thought Adjuster indwelling the human mind, but the Eternal Son did come to mortal man on Urantia when the divine personality of his Son, Michael of Nebadon, incarnated in the human nature of Jesus of Nazareth. To share the experience of created personalities, the Paradise Sons of God must assume the very natures of such creatures and incarnate their divine personalities as the actual creatures themselves. Incarnation, the secret of Sonarington, is the technique of the Son’s escape from the otherwise all-encompassing fetters of personality absolutism. 영원 아들은 신적 뜻, 인간 마음속에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로서 필사 사람에게 오시지 않지만, 영원 아들은 그의 아들의 신적 고유성, 네바돈의 미가엘이 나사렛의 예수의 인간 본성으로 육신화 되셨을 때 지구(유란시아)에 있는 필사 사람에게 오셨습니다. 창조된 고유성들의 체험을 공유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천국 아들들은 그러한 창조물들의 바로 그 본성을 취하고 실재적 창조물 자신들로서 그들의 신적 고유성들을 육신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들별의 비밀인 육신화는, 그렇지 않다면, 고유성 절대론이라는 만물을-둘러싸는 족쇄가 되는 그것에서 아들이 벗어나는 기법입니다.

7:5.5 (86.6) Long, long ago the Eternal Son bestowed himself upon each of the circuits of the central creation for the enlightenment and advancement of all the inhabitants and pilgrims of Havona, including the ascending pilgrims of time. On none of these seven bestowals did he function as either an ascender or a Havoner. He existed as himself. His experience was unique; it was not with or as a human or other pilgrim but in some way associative in the superpersonal sense. 아주 먼 옛날, 영원 아들은 상승하는 시간 순례자를 포함하여 하보나의 모든 거주민과 순례자들을 깨우치고 전진하도록 중앙 창조의 순환회로 각각에 자신을 증여하셨습니다. 일곱 번의 이 증여들 중 어느 경우에도 그는 상승자 또는 하보나 시민으로서 기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셨습니다. 그의 체험은 독특 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인간이나 다른 순례자와 함께 또는 그러한 존재로서가 아니었지만, 어떤 면에서 초(超)개인적 의미에서 연관적이었습니다.

7:5.6 (86.7) Neither did he pass through the rest that intervenes between the inner Havona circuit and the shores of Paradise. It is not possible for him, an absolute being, to suspend consciousness of personality, for in him center all lines of spiritual gravity. And during the times of these bestowals the central Paradise lodgment of spiritual luminosity was undimmed, and the Son’s grasp of universal spirit gravity was undiminished. 뿐만 아니라 그는 내부 하보나 순환회로와 천국의 해안 사이에 끼어 있는 휴지(休止) 상태를 지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고유성의 의식이 중지되는 일은 절대 존재인 그에게 전혀 불가능한 일인데, 왜냐하면 그분 안에 모든 계통의 영적 중력이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 증여기간 동안, 영적 광명의 중앙 천국 거점은 빛을 잃지 않았고, 우주 영 중력에 대한 아들의 장악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170727 빌2:7 오히려 자기의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 되어 but made himself nothing, taking the very nature of a servant, being made in human likeness.

7:5.7 (87.1) The bestowals of the Eternal Son in Havona are not within the scope of human imagination; they were transcendental. He added to the experience of all Havona then and subsequently, but we do not know whether he added to the supposed experiential capacity of his existential nature. That would fall within the bestowal mystery of the Paradise Sons. We do, however, believe that whatever the Eternal Son acquired on these bestowal missions, he has ever since retained; but we do not know what it is. 하보나에서 영원 아들의 증여들은 인간이 상상하는 범위 안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초월적입니다. 그가 그 당시와 그 이후에, 전체 하보나의 체험에 포함시켰지만, 우리는 그가 그의 실존적 본성이 지녔다고 예상되는 체험적 수용능력이 포함되었는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 아들들의 증여 신비 속에 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 아들이 이 증여 임무들에서 무엇을 획득하였든지 우리는 그가 그 후로 영원히 보유하신다고 믿지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7:5.8 (87.2) Whatever our difficulty in comprehending the bestowals of the Second Person of Deity, we do comprehend the Havona bestowal of a Son of the Eternal Son, who literally passed through the circuits of the central universe and actually shared those experiences which constitute an ascender’s preparation for Deity attainment. This was the original Michael, the first-born Creator Son, and he passed through the life experiences of the ascending pilgrims from circuit to circuit, personally journeying a stage of each circle with them in the days of Grandfanda, the first of all mortals to attain Havona. 신(神)의 둘째 개인의 증여들을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의 어려움이 어떤 것이든지, 우리는 영원 아들의 한 아들의 하보나 증여를 이해하는데, 그는 중앙우주의 순환회로들을 문자적으로 통과하였고 신(神) 달성을 위한 상승자의 준비를 구성하는 그 체험들을 실재적으로 공유하였습니다. 이 분이 최초-탄생 창조자 아들인 기원적 미가엘이었으며, 그는 그랜드판다, 즉 모든 필사자들 중에서 하보나에 처음으로 도달한 자의 시대에 그들과 함께 각 순환계의 단계를 직접 여행하면서, 이 순환회로에서 다음 순환회로로 상승하는 순례자들의 일생 체험을 두루 거쳐 통과하셨습니다.

7:5.9 (87.3) Whatever else this original Michael revealed, he made the transcendent bestowal of the Original Mother Son real to the creatures of Havona. So real, that forevermore each pilgrim of time who labors in the adventure of making the Havona circuits is cheered and strengthened by the certain knowledge that the Eternal Son of God seven times abdicated the power and glory of Paradise to participate in the experiences of the time-space pilgrims on the seven circuits of progressive Havona attainment. 이 기원적 미가엘이 무엇을 계시하셨든지, 그는 기원적 어머니 아들의 초월 증여가 하보나의 창조물들에게 실제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 아들은 점진적으로 하보나에 도달하는 일곱 순환회로들에서 시간-공간 순례자들의 체험에 참여하기 위해 천국의 권능과 영광을 일곱 번이나 버렸으며, 이것을 분명하게 앎으로써, 그 증여가 너무나 실제적이어서, 하보나 순환회로를 순회하는 모험여행에서 수고하는 시간 순례자 각자는 언제까지나 늘 기운을 내고 힘을 얻게 됩니다.

170728 요14:9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나를 모르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인데 어째서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 Jesus answered: “Don’t you know me, Philip, even after I have been among you such a long time? Anyone who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How can you say, ‘Show us the Father’?

7:5.10 (87.4) The Eternal Son is the exemplary inspiration for all the Sons of God in their ministrations of bestowal throughout the universes of time and space. The co-ordinate Creator Sons and the associate Magisterial Sons, together with other unrevealed orders of sonship, all partake of this wonderful willingness to bestow themselves upon the varied orders of creature life and as the creatures themselves. Therefore, in spirit and because of kinship of nature as well as fact of origin, it becomes true that in the bestowal of each Son of God upon the worlds of space, in and through and by these bestowals, the Eternal Son has bestowed himself upon the intelligent will creatures of the universes. 영원 아들은 시간과 공간의 우주에 두루, 모든 하나님의 아들에게 그들의 증여 보살핌에서 본보기로서의 영감(靈感)이 됩니다. 동등한 창조자 아들들과 연합하는 집정관 아들들은, 계시되지 않은 아들관계의 다른 계층들과 함께, 창조물 삶의 다양한 계층들과 자신들이 창조물이 되어서 자신을 증여하려는 이 경이로운 자발성을 모두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그리고 기원의 사실들뿐만 아니라 본성에서의 친족관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각자가 공간의 세계에 자신을 내어주는 증여에 있어서, 이들 증여 안에서, 증여를 통하여 그리고 증여에 의해서, 영원 아들이 우주의 지능적 의지 창조물들에게 자신을 증여해 왔다는 것이 참으로 진실합니다.

7:5.11 (87.5) In spirit and nature, if not in all attributes, each Paradise Son is a divinely perfect portraiture of the Original Son. It is literally true, whosoever has seen a Paradise Son has seen the Eternal Son of God. 모든 속성에 있어서는 아닐지라도, 영과 본성에 있어서, 각 천국 아들은 기원적 아들에 대해 신적으로 완전한 초상화입니다. 천국 아들을 본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을 이미 본 것이라는 말은 정말로 옳습니다.

6. The Paradise Sons of God 하나님의 천국 아들들

170808 욥38:7 그 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 When the morning stars sang together, and all the sons of God shouted for joy?

7:6.1 (87.6) The lack of a knowledge of the multiple Sons of God is a source of great confusion on Urantia. And this ignorance persists in the face of such statements as the record of a conclave of these divine personalities: “When the Sons of God proclaimed joy, and all of the Morning Stars sang together.” Every millennium of sector standard time the various orders of the divine Sons forgather for their periodic conclaves.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수(多數) 있다는 지식의 부족함이 지구(유란시아)에서의 큰 혼돈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이 무지함은 이 신적 고유성들의 비밀회의에 대한 기록으로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쁨을 선포하였고, 모든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였다.”는 말씀을 대면할 때에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구역 표준시간으로 매 천년마다, 다양한 계층의 신적 아들들이 그들의 주기적 비밀회의를 위해 함께 모입니다.

7:6.2 (87.7) The Eternal Son is the personal source of the adorable attributes of mercy and service which so abundantly characterize all orders of the descending Sons of God as they function throughout creation. All the divine nature, if not all the infinity of attributes, the Eternal Son unfailingly transmits to the Paradise Sons who go out from the eternal Isle to reveal his divine character to the universe of universes. 영원 아들은 하강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든 계층이 창조에 두루 그들이 기능하듯이 그들을 그토록 풍성하게 특징짓는 자비와 봉사의 찬미할만한 속성들의 개인적 근원입니다. 영원 아들은, 속성의 무한함 전체는 아니더라도, 모든 신적 본성을, 그의 신적 성품을 계시하기 위하여 영원한 섬으로부터 우주들의 우주에게로 내보내는 천국 아들들에게 확실하게 전달합니다.

7:6.3 (88.1) The Original and Eternal Son is the offspring-person of the “first” completed and infinite thought of the Universal Father. Every time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Eternal Son jointly project a new, original, identical, unique, and absolute personal thought, that very instant this creative idea is perfectly and finally personalized in the being and personality of a new and original Creator Son. In spirit nature, divine wisdom, and co-ordinate creative power, these Creator Sons are potentially equal with God the Father and God the Son. 기원적이며 영원 아들은”최초로” 완전하고 무한한 사고를 가진 우주 아버지의 후손-개인이십니다. 우주 아버지와 영원 아들이 새롭고, 기원적이고, 동일하고, 독특하고, 절대적인 개인적 사고를 함께 기획할 때마다, 바로 그 순간에 이 창조적 개념은 새롭고도 기원적인 창조자 아들의 존재와 고유성 안에 완전하면서도 최종적으로 고유성이 구현됩니다. 영 본성과 신적 지혜 그리고 동등한 창조적 권능 안에서, 이 창조자 아들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함께 잠재적으로 동등합니다.

7:6.4 (88.2) The Creator Sons go out from Paradise into the universes of time and, with the co-operation of the controlling and creative agencies of the Third Source and Center, complete the organization of the local universes of progressive evolution. These Sons are not attached to, nor are they concerned with, the central and universal controls of matter, mind, and spirit. Hence are they limited in their creative acts by the pre-existence, priority, and primac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and his co-ordinate Absolutes. These Sons are able to administer only that which they bring into existence. Absolute administration is inherent in priority of existence and is inseparable from eternity of presence. The Father remains primal in the universes. 창조자 아들들은 천국에서 나와 시간의 우주들 속으로 들어가고, 셋째근원이며 중심에 속한, 통제하며 창조적인 대리자들의 협동으로, 진보적 진화를 하는 지역우주의 조직을 완성합니다. 이들 아들들은 물질과 마음과 영에 대한 중앙의 우주적인 통제에 배속되지도 않고 관여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첫째근원이며 중심과 그의 동등한 절대자들의 선재(先在)와 우선권과 수위성에 의해서, 그들의 창조적 행위들이 제한을 받습니다. 이 아들들은 그들이 실존하도록 만든 것들만 관리할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관리-행정은 실존(實在)의 우선권에 있어서 본래적이며, 현존(顯存)의 영원성에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우주들 안에서 여전히 시원적으로(첫째로) 남아 계십니다.

7:6.5 (88.3) Much as the Creator Sons are personalized by the Father and the Son, so are the Magisterial Sons personalized by the Son and the Spirit. These are the Sons who, in the experiences of creature incarnation, earn the right to serve as the judges of survival in the creations of time and space. 창조자 아들들이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 고유성이 구현되는 것과 똑같이, 집정관 아들들은 아들과 영에 의해 고유성이 구현됩니다. 이들은 창조물 육신화의 체험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창조계에서 생존을 위한 심판관들로서 봉사하는 권리를 얻는 아들들입니다.

7:6.6 (88.4) The Father, Son, and Spirit also unite to personalize the versatile Trinity Teacher Sons, who range the grand universe as the supernal teachers of all personalities, human and divine. And there are numerous other orders of Paradise sonship that have not been brought to the attention of Urantia mortals.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다재다능한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을 고유성으로 구현하기 위하여 연합하는데, 그들은 인간적이며 신적인 모든 고유성들을 가르치는 숭고한 교사들로서 대우주를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지구(유란시아) 필사자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아들 관계의 수많은 다른 천국 계층들이 있습니다.

7:6.7 (88.5) Between the Original Mother Son and these hosts of Paradise Sons scattered throughout all creation, there is a direct and exclusive channel of communication, a channel whose function is inherent in the quality of spiritual kinship which unites them in bonds of near-absolute spiritual association. This intersonship circuit is entirely different from the universal circuit of spirit gravity, which also centers in the person of the Second Source and Center. All Sons of God who take origin in the persons of the Paradise Deities are in direct and constant communication with the Eternal Mother Son. And such communication is instantaneous; it is independent of time though sometimes conditioned by space. 기원적 어머니 아들과 전체 창조 전반에 흩어져 있는 이 천국 아들들의 무리들 사이에는, 직접적이고 배타적인 교통의 통로가 있는데, 그것은 거의-절대적인 영적 연합의 결속 안에 그들을 연합하는 영적 친족관계의 본질 속에 그 기능이 선천적으로 들어 있는 통로입니다. 이 아들관계의 내적순환회로는, 둘째 근원이며 중심의 개인 안에 역시 중심을 두고 있는 영 중력의 우주 순환회로와는 전혀 다릅니다. 천국 신(神)들의 개인들안에 기원을 두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 전체는 영원한 어머니 아들과 직접적이고도 계속적인 교통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통은 순간적입니다; 그것은 때로 공간에 의해 제약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시간과는 독립적입니다.

7:6.8 (88.6) The Eternal Son not only has at all times perfect knowledge concerning the status, thoughts, and manifold activities of all orders of Paradise sonship, but he also has perfection of knowledge at all times regarding everything of spiritual value which exists in the hearts of all creatures in the primary central creation of eternity and in the secondary time creations of the co-ordinate Creator Sons. 영원 아들은 천국 아들관계의 모든 계층들의 지위와 생각들 그리고 다양한 활동들에 관하여 항상 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성의 시원적(1차적) 중앙 창조 안과 동등한 창조자 아들들의 2차적 시간 창조계 안에 있는, 모든 창조물들의 심정 속에 존재하는 모든 영적 가치에 관하여 항상 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7. The Supreme Revelation of the Father 아버지에 대한 최극 계시

요14:6 그래서 예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가지 못한다.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7:7.1 (88.7) The Eternal Son is a complete, exclusive, universal, and final revelation of the spirit and th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All knowledge of, and information concerning, the Father must come from the Eternal Son and his Paradise Sons. The Eternal Son is from eternity and is wholly and without spiritual qualification one with the Father. In divine personality they are co-ordinate; in spiritual nature they are equal; in divinity they are identical. 영원 아들은 우주 아버지의 영과 고유성에 대한 완전하고 배타적이며 우주적이고 최종적인 계시입니다. 아버지에 관한 모든 지식과 정보는 영원 아들과 그의 천국 아들들로부터 와야만 합니다. 영원 아들은 영원부터 계시며, 전적으로 영적 제한이 없이 아버지와 하나이십니다. 신적 고유성에 있어서 그들은 동등하십니다. 영적 본성에 있어서 그들은 대등하십니다. 신성에 있어서 그들은 동일하십니다.

7:7.2 (89.1) The character of God could not possibly be intrinsically improved upon in the person of the Son, for the divine Father is infinitely perfect, but that character and personality are amplified, by divestment of the nonpersonal and nonspiritual, for revelation to creature beings. The First Source and Center is much more than a personality, but all of the spirit qualities of the father personalit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are spiritually present in the absolute personality of the Eternal Son. 하나님의 성품은 아들의 개인 안에서 본질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있을 수 없는데, 이는 신적 아버지가 무한히 완전하기 때문이지만, 그 성품과 고유성은 피조된 존재들의 계시를 위하여 비(非)고유적이고 비(非)영적인 것을 벗어 버림으로서 증폭됩니다. 첫째근원이며 중심은 고유성을 훨씬 뛰어넘지만, 첫째근원이며 중심의 아버지 고유성의 영 특성들 전체는 영원 아들의 절대적 고유성 안에 영적으로 존재합니다.

7:7.3 (89.2) The primal Son and his Sons are engaged in making a universal revelation of the spiritual and personal nature of the Father to all creation. In the central universe, the superuniverses, the local universes, or on the inhabited planets, it is a Paradise Son who reveals the Universal Father to men and angels. The Eternal Son and his Sons reveal the avenue of creature approach to the Universal Father. And even we of high origin understand the Father much more fully as we study the revelation of his character and personality in the Eternal Son and in the Sons of the Eternal Son. 기원 아들과 그의 아들들은 모든 창조계에 아버지의 영적 개인적 본성의 우주적 계시를 하는 일에 종사하십니다. 중앙우주, 초우주들, 지역우주들, 또는 거주민이 사는 행성들에서 천국 아들은 사람들과 천사들에게 우주 아버지를 계시합니다. 영원 아들과 그의 아들들은 창조물이 우주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큰 길을 계시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높은 기원을 갖는 우리들도 영원 아들과 영원 아들의 아들들 안에서 그의 성품과 고유성에 대한 계시를 공부할 때 훨씬 더 풍부하게 아버지를 이해합니다.

7:7.4 (89.3) The Father comes down to you as a personality only through the divine Sons of the Eternal Son. And you attain the Father by this same living way; you ascend to the Father by the guidance of this group of divine Sons. And this remains true notwithstanding that your very personality is a direct bestowal of the Universal Father. 아버지는 영원 아들의 신적 아들들을 통해서만 고유성으로서 너희에게 내려오신다. 그리고 너희는 이 동일한 살아있는 길에 의해 아버지에게 도달한다. 너희는 신적 아들들의 이 집단의 안내에 의해 아버지에게로 상승한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너희의 고유성이 우주 아버지의 직접적 증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실로 남아 있다.

7:7.5 (89.4) In all these widespread activities of the far-flung spiritual administration of the Eternal Son, do not forget that the Son is a person just as truly and actually as the Father is a person. Indeed, to beings of the onetime human order the Eternal Son will be more easy to approach than the Universal Father. In the progress of the pilgrims of time through the circuits of Havona, you will be competent to attain the Son long before you are prepared to discern the Father. 영원 아들의 멀리-퍼지는 영적 행정에 속하는 이 광범한 활동들 전체에서, 아버지가 개인이신 것처럼 아들이 진실로 그리고 실재적으로 개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정말로, 한 때 인간 계층이었던 존재들에게는 영원 아들이 우주 아버지보다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시간 순례자들이 하보나 순환회로들을 통해 진보할 때, 너희는 너희가 아버지를 식별할 준비를 갖추기 전에 아들에게 도달할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7:7.6 (89.5) More of the character and merciful nature of the Eternal Son of mercy you should comprehend as you meditate on the revelation of these divine attributes which was made in loving service by your own Creator Son, onetime Son of Man on earth, now the exalted sovereign of your local universe — the Son of Man and the Son of God. 너희는 한 때 땅에서 사람의 아들이었고 지금은 너희 지역우주의 드높여진 주권자인 사람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너희 자신의 창조자 아들에 의해 사랑 넘치는 봉사 속에서 만들어졌던 이 신적 속성들에 대한 계시를 너희가 묵상하면서 너희는 영원 아들의 성품과 자비로운 본성을 더 많이 이해해야만 한다.

7:7.7 (89.6) [Indited by a Divine Counselor assigned to formulate this statement depicting the Eternal Son of Paradise.] [천국의 영원 아들을 묘사하는 이 글을 작성하도록 배정된 신성한 조언자에 의해 씌어졌음]

Paper 192 Appearances in Galilee 갈릴리에 출현

Paper 192

Appearances in Galilee 갈릴리에 출현

160626 부활14 – 갈릴리와 부활의 예수님 마28:11-15 11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192:0.1 (2045.1) BY THE time the apostles left Jerusalem for Galilee, the Jewish leaders had quieted down considerably. Since Jesus appeared only to his family of kingdom believers, and since the apostles were in hiding and did no public preaching, the rulers of the Jews concluded that the gospel movement was, after all, effectually crushed. They were, of course, disconcerted by the increasing spread of rumors that Jesus had risen from the dead, but they depended upon the bribed guards effectively to counteract all such reports by their reiteration of the story that a band of his followers had removed the body. 사도들이 갈릴리를 향하여 예루살렘을 떠날 때까지, 유대인 지도자들은 아무 반응도 없이 침묵을 지켰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오직 하나님 나라를 믿는 그의 가족들에게만 나타나셨고, 사도들은 숨어있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설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 통치자들은 복음 운동이 결국 효과적으로 박멸되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그들은, 예수께서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부활의 소문이 점점 더 퍼져나가는 것 때문에 당황했지만, 경비병들에게 뇌물을 주어 이들을 통해, 예수의 추종자들이 그의 시신을 옮겨버렸다는 이야기를 퍼뜨려서 모든 소문들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192:0.2 (2045.2) From this time on, until the apostles were dispersed by the rising tide of persecution, Peter was the generally recognized head of the apostolic corps. Jesus never gave him any such authority, and his fellow apostles never formally elected him to such a position of responsibility; he naturally assumed it and held it by common consent and also because he was their chief preacher. From now on public preaching became the main business of the apostles. After their return from Galilee, Matthias, whom they chose to take the place of Judas, became their treasurer. 이 시기로부터 박해로 인해 사도들이 흩어질 때까지, 베드로는 사도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그런 권한을 주시지도 않았고, 동료 사도들도 공적으로 그를 책임자로 선출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가운데, 대부분의 설교를 했던 베드로 자신이 그 위치를 당연히 받아들여 고수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대중 설교는 사도들의 주요 업무가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갈릴리에서 돌아온 후에는, 유다 대신에 선택한 맛디아가 그들의 회계원이 되었습니다.

192:0.3 (2045.3) During the week they tarried in Jerusalem, Mary the mother of Jesus spent much of the time with the women believers who were stopping at the home of Joseph of Arimathea. 그들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는 그 주간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여 성도들과 함께 아리마대 요셉의 집에 머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192:0.4 (2045.4) Early this Monday morning when the apostles departed for Galilee, John Mark went along. He followed them out of the city, and when they had passed well beyond Bethany, he boldly came up among them, feeling confident they would not send him back. 두 번째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다음 날 아침 일찍 사도들이 갈릴리로 떠날 때, 요한 마가도 그들의 뒤를 따라 갔습니다. 요한 마가는 베다니를 지난 후에는, 사도들이 자기를 되돌려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대담하게 그들과 섞였습니다.

192:0.5 (2045.5) The apostles paused several times on the way to Galilee to tell the story of their risen Master and therefore did not arrive at Bethsaida until very late on Wednesday night. It was noontime on Thursday before they were all awake and ready to partake of breakfast. 사도들은 갈릴리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대화를 위해 여러 번 쉬었기 때문에, 이틀 후 아주 늦은 밤에 벳새다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들은 도착한 다음날 정오가 되어서야 모두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1. Appearance by the Lake 호숫가에 출현

160703 부활15 – 갈릴리 호숫가에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13th) 요21:1-14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192:1.1 (2045.6) About six o’clock Friday morning, April 21, the morontia Master made his thirteenth appearance, the first in Galilee, to the ten apostles as their boat drew near the shore close to the usual landing place at Bethsaida. 4월 21일 금요일 아침 6시 경, 벳새다에서, 열 명의 사도들이 탄 배가 늘 배를 두던 해변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들에게 부활체 주(主)께서 갈릴리 지역에서는 처음, 지금까지 13번째로 나타나셨습니다.

192:1.2 (2045.7) After the apostles had spent the afternoon and early evening of Thursday in waiting at the Zebedee home, Simon Peter suggested that they go fishing. When Peter proposed the fishing trip, all of the apostles decided to go along. All night they toiled with the nets but caught no fish. They did not much mind the failure to make a catch, for they had many interesting experiences to talk over, things which had so recently happened to them at Jerusalem. But when daylight came, they decided to return to Bethsaida. As they neared the shore, they saw someone on the beach, near the boat landing, standing by a fire. At first they thought it was John Mark, who had come down to welcome them back with their catch, but as they drew nearer the shore, they saw they were mistaken — the man was too tall for John. It had occurred to none of them that the person on the shore was the Master. They did not altogether understand why Jesus wanted to meet with them amidst the scenes of their earlier associations and out in the open in contact with nature, far away from the shut-in environment of Jerusalem with its tragic associations of fear, betrayal, and death. He had told them that, if they would go into Galilee, he would meet them there, and he was about to fulfill that promise.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올 때에는 열 한 사도들이 함께 왔지만, 시몬 젤로떼는 갈릴리에 가까이 올수록 점점 더 낙담하여, 벳새다에 도착한 후에는 형제들을 버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세베대의 집에 머물던 10명의 사도들은 목요일 오후와 초저녁을 보낸 후, 시몬 베드로가 고기 잡으러 가자고 제안하였을 때, 사도들 모두 동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들은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아주 최근에 자신들에게 발생한 사건들과 여러 흥미로운 체험들을 나누었기 때문에 고기 잡지 못한 것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벳새다로 돌아오던 그들은 해변에 배를 대어 두는 곳 가까이에서 모닥불 옆에 서 있는 어떤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그가 요한 마가이며, 고기잡이에서 돌아오는 자신들을 환영하려고 그곳에 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해변에 가까이 가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착각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한으로 보기에 그는 너무 키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들 중 누구도 해변에 있는 그 사람이 부활의 주(主)님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도들은 모두, 공포와 배반과 죽음에 비극적으로 연관된 예루살렘의 밀폐된 공간으로부터 멀리 떠나, 사도들 자신과 초기에 함께 하였던 갈릴리의 그 현장 한 가운데 즉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야외에서 주(主)께서 그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아무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사도들과 갈릴리에서 만나시겠다는 약속을 이루기 이루시려는 중이셨습니다.

192:1.3 (2046.1) As they dropped anchor and prepared to enter the small boat for going ashore, the man on the beach called to them, “Lads, have you caught anything?” And when they answered, “No,” he spoke again. “Cast the net on the right side of the boat, and you will find fish.” While they did not know it was Jesus who had directed them, with one accord they cast in the net as they had been instructed, and immediately it was filled, so much so that they were hardly able to draw it up. Now, John Zebedee was quick of perception, and when he saw the heavy-laden net, he perceived that it was the Master who had spoken to them. When this thought came into his mind, he leaned over and whispered to Peter, “It is the Master.” Peter was ever a man of thoughtless action and impetuous devotion; so when John whispered this in his ear, he quickly arose and cast himself into the water that he might the sooner reach the Master’s side. His brethren came up close behind him, having come ashore in the small boat, hauling the net of fishes after them. 그들이 닻을 내린 후 물가로 나가기 위하여 작은 배를 준비하려는데, 해변에 그 사람이 그들에게 “여보시오 친구들, 무엇을 좀 잡았소?”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 전혀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이 바닷가로 나올 때, 다리키아Tarichea의 생선장수 어물상(魚物商)들은 햇빛에 말릴 싱싱한 고기를 직접 구입하려고 늘 그렇게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들이 그에게 “아니요”라고 대답하자, 그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보시오, 그러면 고기를 잡을 것이오.” 그들은 그가 예수님이신 것을 모른 채, 한 마음으로 지시대로 그물을 던졌고, 즉시 그물이 가득하여 거의 들어 올릴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요한 세베대는 고기로 가득한 그물을 보면서 자기들에게 말한 사람이 바로 주(主)이신 것을 언뜻 알아차렸습니다. 그 때 요한 세배대는 베드로에게 가까이 가서 “저분이 주(主)이시다.”라고 속삭였습니다. 항상 경솔하고 성급하게 행동을 옮기던 베드로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주(主)께 할 수 있는 한 빨리 가려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의 형제들은 고기로 가득한 그물을 끌면서 작은 배를 타고 그의 뒤를 좇아서 해변으로 나왔습니다.

192:1.4 (2046.2) By this time John Mark was up and, seeing the apostles coming ashore with the heavy-laden net, ran down the beach to greet them; and when he saw eleven men instead of ten, he surmised that the unrecognized one was the risen Jesus, and as the astonished ten stood by in silence, the youth rushed up to the Master and, kneeling at his feet, said, “My Lord and my Master.” And then Jesus spoke, not as he had in Jerusalem, when he greeted them with “Peace be upon you,” but in commonplace tones he addressed John Mark: “Well, John, I am glad to see you again and in carefree Galilee, where we can have a good visit. Stay with us, John, and have breakfast.” 이 때 요한 마가가 사도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해변으로 달려갔는데, 그는 10명이 아니라 11명이 해변에 서 있는 것을 보면서, 한 사람은 부활한 예수일 것이라고 추측하였습니다. 10명의 사도들이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옆에 서 있는데, 그 소년은 주(主)께 달려가, 그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나의 주님, 나의 주(主)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으라.”라고 말하는 대신, 요한 마가에게 평상시와 똑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요한아, 너를 다시 만나 반갑고, 우리가 편안히 만날 수 있는 안전한 갈릴리에서 마음껏 말할 수 있게 되어 기쁘구나. 요한아, 우리와 함께 아침을 먹도록 해라.”

192:1.5 (2046.3) As Jesus talked with the young man, the ten were so astonished and surprised that they neglected to haul the net of fish in upon the beach. Now spoke Jesus: “Bring in your fish and prepare some for breakfast. Already we have the fire and much bread.” 예수께서 소년에게 말하실 때 10 명의 사도들은 너무 놀라고 당황하여, 해변으로 고기가 들어 있는 그물 끌어올리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아침 식사를 준비해라. 이미 모닥불과 많은 빵이 준비되어 있다.”

192:1.6 (2046.4) While John Mark had paid homage to the Master, Peter had for a moment been shocked at the sight of the coals of fire glowing there on the beach; the scene reminded him so vividly of the midnight fire of charcoal in the courtyard of Annas, where he had disowned the Master, but he shook himself and, kneeling at the Master’s feet, exclaimed, “My Lord and my Master!” 요한 마가가 주(主)께 경의를 표하는 동안, 베드로는 해변에 숯불이 타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잠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주(主)님을 부인했던 안나스의 안마당에서 한 밤중에 타오르던 그 숯불이 생생하게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생각을 떨쳐 버리고, 주(主)의 발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나의 주님, 나의 주(主)여!”라고 소리쳤습니다.

192:1.7 (2046.5) Peter then joined his comrades as they hauled in the net. When they had landed their catch, they counted the fish, and there were 153 large ones. And again was the mistake made of calling this another miraculous catch of fish. There was no miracle connected with this episode. It was merely an exercise of the Master’s preknowledge. He knew the fish were there and accordingly directed the apostles where to cast the net. 그 후 베드로는 그물을 끌어올리는 동료들과 합세하였고, 그들이 잡은 고기를 세어 보니 큰 고기만 153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나중에 이 사건에 대해 물고기 잡은 또 다른 기적이라고 부르는 실수를 다시 저질렀습니다. 이 사건은 기적이 아니라 주(主)가 지니신 선험 지식을 실행에 옮기도록 한 것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물고기가 있는 그 곳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사도들에게 그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지시하셨던 것입니다.

192:1.8 (2047.1) Jesus spoke to them, saying: “Come now, all of you, to breakfast. Even the twins should sit down while I visit with you; John Mark will dress the fish.” John Mark brought seven good-sized fish, which the Master put on the fire, and when they were cooked, the lad served them to the ten. Then Jesus broke the bread and handed it to John, who in turn served it to the hungry apostles. When they had all been served, Jesus bade John Mark sit down while he himself served the fish and the bread to the lad. And as they ate, Jesus visited with them and recounted their many experiences in Galilee and by this very lake.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제 모두 이리 와서 아침 식사를 하여라.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쌍둥이 형제들도 여기 앉아 있어라. 요한 마가가 고기를 준비할 것이다.” 요한 마가는 알맞은 크기의 생선 일곱 마리를 가져왔고, 주(主)께서 그것들을 불 위에 올려놓고, 잘 익은 후, 그 소년이 그것들을 열 명의 사도들에게 배분하였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빵을 떼어 요한에게 주었고, 그는 시장한 사도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들이 음식을 모두 받은 후, 예수님은 요한 마가에게 앉으라고 지시하고 그 소년에게 손수 물고기와 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식사 중 예수님은 그들과 대화하시면서 과거에 이 호수 주변과 갈릴리에서 있었던 많은 체험들을 회상하였습니다.

192:1.9 (2047.2) This was the third time Jesus had manifested himself to the apostles as a group. When Jesus first addressed them, asking if they had any fish, they did not suspect who he was because it was a common experience for these fishermen on the Sea of Galilee, when they came ashore, to be thus accosted by the fish merchants of Tarichea, who were usually on hand to buy the fresh catches for the drying establishments. 이 사건은 사도들 전체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세 번째였습니다. 예수께서 처음에 그들에게 어떤 고기든지 잡았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 의심쩍게 여기지 않았던 것은, 갈릴리 바다의 어부들이 바닷가로 나올 때, 다리키아의 어물상(魚物商)들이 햇빛에 말릴 싱싱한 고기를 직접 구입하려고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체험을 늘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92:1.10 (2047.3) Jesus visited with the ten apostles and John Mark for more than an hour, and then he walked up and down the beach, talking with them two and two — but not the same couples he had at first sent out together to teach. All eleven of the apostles had come down from Jerusalem together, but Simon Zelotes grew more and more despondent as they drew near Galilee, so that, when they reached Bethsaida, he forsook his brethren and returned to his home. 예수님은 10명의 사도들과 요한 마가와 함께 한 시간 이상 이야기를 하셨고, 그 후 그들을 두 명씩 나누어 같이 이야기하며 해변을 거니셨습니다. 이전에 예수께서 처음에 두 명씩 짝지어 내보내시면서 가르치게 하였을 때의 짝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올 때에는 열 한 사도들이 함께 왔지만, 시몬 젤로떼는 갈릴리에 가까이 올수록 점점 더 낙담하여, 벳새다에 도착한 후에는 형제들을 버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192:1.11 (2047.4) Before taking leave of them this morning, Jesus directed that two of the apostles should volunteer to go to Simon Zelotes and bring him back that very day. And Peter and Andrew did so. 예수님은 이 날 아침 그들을 떠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누구든지 자진하여 두 사람이 시몬 젤로떼에게 가서 그 날 당장 그를 데리고 돌아오도록 지시하셨으며,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렇게 하였습니다.

2. Visiting with the Apostles Two and Two 사도들을 둘 씩 방문하심

160710 부활16 – 요한과 베드로와 대화하신 부활의 예수님(13th) 요21:15-23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192:2.1 (2047.5) When they had finished breakfast, and while the others sat by the fire, Jesus beckoned to Peter and to John that they should come with him for a stroll on the beach. As they walked along, Jesus said to John, “John, do you love me?” And when John answered, “Yes, Master, with all my heart,” the Master said: “Then, John, give up your intolerance and learn to love men as I have loved you. Devote your life to proving that love is the greatest thing in the world. It is the love of God that impels men to seek salvation. Love is the ancestor of all spiritual goodness, the essence of the true and the beautiful.” 그들이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다른 사람들은 모닥불 옆에 남아있을 때,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손짓으로 부르셔서 주님과 함께 해변을 거닐자고 하셨습니다. 함께 걸으면서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요한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요한이 “예, 주(主)여, 제 마음을 다하여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자 주(主)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아, 그렇다면, 참지 못하는 네 성격을 버리고, 내가 너를 사랑했듯이 사람들 사랑하기를 배워라.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임을 증명하는 일에 네 일생을 바쳐라. 사람들이 구원을 찾도록 추진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영적 선(善)의 뿌리이며, 참되고(眞) 아름다운(美) 것의 알맹이다.”

192:2.2 (2047.6) Jesus then turned toward Peter and asked, “Peter, do you love me?” Peter answered, “Lord, you know I love you with all my soul.” Then said Jesus: “If you love me, Peter, feed my lambs. Do not neglect to minister to the weak, the poor, and the young. Preach the gospel without fear or favor; remember always that God is no respecter of persons. Serve your fellow men even as I have served you; forgive your fellow mortals even as I have forgiven you. Let experience teach you the value of meditation and the power of intelligent reflection.” 그 후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제가 혼을 다하여 주님 사랑하는 것을 당신이 아십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 약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 그리고 어린 자들 돌아보기를 소홀히 하지 마라. 걱정하지도 편애하지도 말고 복음을 전하라.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라. 내가 너를 섬긴 것처럼, 네 동료들을 섬기라. 내가 너를 용서한 것처럼, 네 동료 사람들을 용서해라. 명상의 가치와 지적 반성의 힘을 경험을 통해 배우라.”

192:2.3 (2047.7) After they had walked along a little farther, the Master turned to Peter and asked, “Peter, do you really love me?” And then said Simon,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 And again said Jesus: “Then take good care of my sheep. Be a good and a true shepherd to the flock. Betray not their confidence in you. Be not taken by surprise at the enemy’s hand. Be on guard at all times — watch and pray.” 조금 더 걸으신 후에, 주(主)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돌아보시며 “베드로야, 네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시몬은 “예,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당신이 아십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내 양을 잘 보살피라. 양 무리들에게 선하고 참된 목자가 되어라. 너에 대한 그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말라. 적의 손아귀에 불시에 당하지 말라. 항상 경계하라. 깨어 있어 기도하라.”

192:2.4 (2047.8) When they had gone a few steps farther, Jesus turned to Peter and, for the third time, asked, “Peter, do you truly love me?” And then Peter, being slightly grieved at the Master’s seeming distrust of him, said with considerable feeling, “Lord, you know all things, and therefore do you know that I really and truly love you.” Then said Jesus: “Feed my sheep. Do not forsake the flock. Be an example and an inspiration to all your fellow shepherds. Love the flock as I have loved you and devote yourself to their welfare even as I have devoted my life to your welfare. And follow after me even to the end.” 몇 발자국 더 걸어간 후에,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보시며 세 번째로 “베드로야, 네가 진실로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를 믿지 못하는 듯이 보이는 주(主)의 태도에 살짝 슬퍼하는 감정을 드러내며 말하였습니다. “주님, 당신은 모든 것을 아시니, 제가 정말로 진실로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당신이 아십니다.” 그러자 예수가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그 무리를 버리지 마라. 너의 모든 동료 목자들에게 본이 되고 감화를 끼치라. 내가 너를 사랑했듯이 양 무리를 사랑하고, 네가 잘 되도록 내가 생명을 바쳤듯이 그들이 잘되도록 너 자신을 바쳐라. 그리고 끝까지 나를 따르라.”

192:2.5 (2048.1) Peter took this last statement literally — that he should continue to follow after him — and turning to Jesus, he pointed to John, asking, “If I follow on after you, what shall this man do?” And then, perceiving that Peter had misunderstood his words, Jesus said: “Peter, be not concerned about what your brethren shall do. If I will that John should tarry after you are gone, even until I come back, what is that to you? Only make sure that you follow me.” 베드로는 자신이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씀의 마지막 부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요한을 가리키며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만일 제가 당신을 따라간다면, 이 사람은 무엇을 하게 될까요?”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의 말을 오해했음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네 형제가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라. 만약 네가 떠난 후에,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요한을 머물러 있게 한다고 해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다만 너는 나를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192:2.6 (2048.2) This remark spread among the brethren and was received as a statement by Jesus to the effect that John would not die before the Master returned, as many thought and hoped, to establish the kingdom in power and glory. It was this interpretation of what Jesus said that had much to do with getting Simon Zelotes back into service, and keeping him at work. 이 말이 형제들 사이에 두루 퍼졌으며, 권능과 영광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희망한 것처럼, 주(主)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요한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시몬 젤로떼가 다시 봉사의 현장으로 돌아와 계속 일했던 것에 많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160717 부활17 – 안드레 및 야고보와 대화하신 부활의 예수님(13th) 요21:24-25 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192:2.7 (2048.3) When they returned to the others, Jesus went for a walk and talk with Andrew and James. When they had gone a short distance, Jesus said to Andrew, “Andrew, do you trust me?” And when the former chief of the apostles heard Jesus ask such a question, he stood still and answered, “Yes, Master, of a certainty I trust you, and you know that I do.” Then said Jesus: “Andrew, if you trust me, trust your brethren more — even Peter. I once trusted you with the leadership of your brethren. Now must you trust others as I leave you to go to the Father. When your brethren begin to scatter abroad because of bitter persecutions, be a considerate and wise counselor to James my brother in the flesh when they put heavy burdens upon him which he is not qualified by experience to bear. And then go on trusting, for I will not fail you. When you are through on earth, you shall come to me.” 그들이 나머지 사람들에게 돌아왔을 때, 예수님은 안드레와 야고보와 함께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조금 걸어간 후에 예수께서 안드레에게 “안드레야, 너는 나를 신뢰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사도들의 전임 우두머리였던 그는 예수께서 그러한 질문을 하자 똑바로 서서 “예, 주(主)여, 저는 결단코 당신을 신뢰하며, 제가 그러하다는 것을 당신도 아십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드레야, 만일 네가 나를 신뢰한다면, 베드로를 포함하여 네 형제들을 더욱 신뢰하여라. 나는 한 때 형제들에 대한 너의 지도력을 신뢰하였다. 이제 나는 아버지께로 가기 위하여 너를 떠나지만, 너는 다른 형제들을 신뢰해야만 한다. 처참한 박해로 인하여 네 형제들이 멀리 흩어지게 된 후, 내 육신의 동생 야고보가 아직 체험이 부족하여, 견딜 수 없는 너무 무거운 짐이, 그에게 지워질 때, 그에게 신중하고 현명한 조언자가 되어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니, 계속 나를 신뢰하라. 네가 이 땅에서의 일생을 마친 후에는 나에게 오게 될 것이다.”

192:2.8 (2048.4) Then Jesus turned to James, asking, “James, do you trust me?” And of course James replied, “Yes, Master, I trust you with all my heart.” Then said Jesus: “James, if you trust me more, you will be less impatient with your brethren. If you will trust me, it will help you to be kind to the brotherhood of believers. Learn to weigh the consequences of your sayings and your doings. Remember that the reaping is in accordance with the sowing. Pray for tranquillity of spirit and cultivate patience. These graces, with living faith, shall sustain you when the hour comes to drink the cup of sacrifice. But never be dismayed; when you are through on earth, you shall also come to be with me.” 그 후 예수님은 야고보를 향하여 “야고보야, 너는 나를 신뢰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야고보는 “예, 주(主)여, 저는 진심으로 당신을 신뢰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야, 네가 나를 더욱 신뢰한다면, 네 형제들에 대해서 참을성을 좀 더 지니라. 나에 대한 신뢰가 너의 형제들에게 친절하도록 너를 도와줄 것이다. 네 말들과 행동들의 결과들에 대해 심사숙고하도록 배우라.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을 명심해라. 영의 평온함을 위하여 기도하고 인내심을 기르도록 하여라. 희생물의 잔을 마셔야 하는 시간이 도래할 때, 살아있는 신앙과 함께, 이 은혜들이 너를 지켜 줄 것이다. 그러나 결코 당황하지 말라. 네가 이 땅을 지나게 되면, 너도 와서 나와 함께 있게 될 것이다.”

160724 부활18 – 도마와 나다나엘과 대화하신 부활의 예수님(13th) 요1:45-49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192:2.9 (2048.5) Jesus next talked with Thomas and Nathaniel. Said he to Thomas, “Thomas, do you serve me?” Thomas replied, “Yes, Lord, I serve you now and always.” Then said Jesus: “If you would serve me, serve my brethren in the flesh even as I have served you. And be not weary in this well-doing but persevere as one who has been ordained by God for this service of love. When you have finished your service with me on earth, you shall serve with me in glory. Thomas, you must cease doubting; you must grow in faith and the knowledge of truth. Believe in God like a child but cease to act so childishly. Have courage; be strong in faith and mighty in the kingdom of God.” 예수님은 그 다음에 도마와 나다니엘과 함께 이야기하셨습니다. 도마에게 “도마야, 너는 나를 섬기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도마는 “예, 주님, 저는 지금 그리고 언제나 당신을 섬깁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나를 섬기려고 한다면, 내가 너를 섬겨왔던 것처럼, 육신의 내 형제들을 섬기라. 이처럼 온전히 행동하는 것에 지치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받은 사람답게 사랑의 봉사를 인내로 견디라. 네가 이 땅에서 나와 함께 하는 이 봉사를 마치면, 영광 안에서 나와 더불어 섬기게 될 것이다. 도마야, 너는 의심하기를 그만두어야만 한다. 너는 신앙 안에서와 진리에 대한 지식 안에서 성장하여야 한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믿으라. 그러나 어린아이같이 행동하는 것은 그만두라. 용기를 가지라. 신앙 안에서 강하고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강건하여라.”

192:2.10 (2049.1) Then said the Master to Nathaniel, “Nathaniel, do you serve me?” And the apostle answered, “Yes, Master, and with an undivided affection.” Then said Jesus: “If, therefore, you serve me with a whole heart, make sure that you are devoted to the welfare of my brethren on earth with tireless affection. Admix friendship with your counsel and add love to your philosophy. Serve your fellow men even as I have served you. Be faithful to men as I have watched over you. Be less critical; expect less of some men and thereby lessen the extent of your disappointment. And when the work down here is over, you shall serve with me on high.” 그 후 주(主)님은 나다니엘에게 “나다니엘아, 너는 나를 섬기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그 사도는 “예, 주(主)여, 온전한 애정으로 그렇게 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섬긴다면, 이 세상에 있는 내 형제들의 행복을 위하여 네가 지칠 줄 모르는 애정으로 헌신해야 함을 명심하라. 네가 조언을 할 때 우정과 함께 하고, 네 철학에 사랑을 더하도록 하여라. 내가 너를 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들을 섬겨라. 내가 너를 돌보아준 것처럼 사람들에게 신실하여라. 비판을 줄이고, 사람들에게 기대(期待)하는 수준을 낮추어서, 너의 실망을 줄이도록 하여라. 그리고 이곳에서의 일을 마치게 되면, 너는 나와 함께 저 높은 곳에서 섬기게 될 것이다.”

160731 부활19 – 마태와 빌립과 대화하신 부활의 예수님(13th) 행8:5-6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192:2.11 (2049.2) After this the Master talked with Matthew and Philip. To Philip he said, “Philip, do you obey me?” Philip answered, “Yes, Lord, I will obey you even with my life.” Then said Jesus: “If you would obey me, go then into the lands of the gentiles and proclaim this gospel. The prophets have told you that to obey is better than to sacrifice. By faith have you become a God-knowing kingdom son. There is but one law to obey — that is the command to go forth proclaim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Cease to fear men; be unafraid to preach the good news of eternal life to your fellows who languish in darkness and hunger for the light of truth. No more, Philip, shall you busy yourself with money and goods. You now are free to preach the glad tidings just as are your brethren. And I will go before you and be with you even to the end.” 그 다음에 주님은 마태와 빌립과 함께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는 빌립에게 “빌립아, 너는 내 말에 순종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은 “예, 주님, 당신이 제 생명을 바치라고 말씀하셔도 저는 순종할 것입니다.” 그러자 주(主)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가 내 말에 순종하고자 한다면, 이방인의 땅으로 가서 이 복음을 선포해라. 선지자들은 희생물을 드리는 것보다 순종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너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 나라의 아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네가 순종해야 유일한 한 가지 법은 네가 나가서 하나님 니라의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며, 진리의 빛에 굶주리고 흑암 속에서 번민하는 네 동료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기쁜 소식을 대담하게 전하라. 빌립아, 너는 더 이상 돈과 재물을 위하여 바쁘게 일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제 너는 네 형제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기쁜 소식을 자유롭게 전파하라. 나는 너의 앞에서 갈 것이며, 끝까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192:2.12 (2049.3) And then, speaking to Matthew, the Master asked, “Matthew, do you have it in your heart to obey me?” Matthew answered, “Yes, Lord, I am fully dedicated to doing your will.” Then said the Master: “Matthew, if you would obey me, go forth to teach all peoples this gospel of the kingdom. No longer will you serve your brethren the material things of life; henceforth you are also to proclaim the good news of spiritual salvation. From now on have an eye single only to obeying your commission to preach this gospel of the Father’s kingdom. As I have done the Father’s will on earth, so shall you fulfill the divine commission. Remember, both Jew and gentile are your brethren. Fear no man when you proclaim the saving truth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heaven. And where I go, you shall presently come.” 그 후 주님은 마태에게 “마태야, 너는 진심으로 내 말에 순종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마태는 “예, 주님 저는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 온전히 헌신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주(主)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야, 만일 네가 내 말에 순종하고자 한다면, 모든 민족들에게로 가서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라. 너는 더 이상 네 형제들의 일생에 필요한 물질적인 사물을 위하여 봉사하지 않아도 되며, 이제부터는 너도 영적인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을 선포하도록 하여라. 지금부터는 오직 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이 복음을 전도하는 임무에만 전념하도록 하여라. 내가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룬 것같이, 너도 신성한 임무를 완수하게 될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네 형제라는 것을 명심해라. 너는 하늘나라 복음이라는 구원의 진리들을 전파할 때 아무도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내가 가는 곳으로, 너도 곧 오게 될 것이다.”

160807 부활20 – 알패오의 쌍둥이들과 대화하신 부활의 예수님(13th) 막3: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2:2.13 (2049.4) Then he walked and talked with the Alpheus twins, James and Judas, and speaking to both of them, he asked, “James and Judas, do you believe in me?” And when they both answered, “Yes, Master, we do believe,” he said: “I will soon leave you. You see that I have already left you in the flesh. I tarry only a short time in this form before I go to my Father. You believe in me — you are my apostles, and you always will be. Go on believing and remembering your association with me, when I am gone, and after you have, perchance, returned to the work you used to do before you came to live with me. Never allow a change in your outward work to influence your allegiance. Have faith in God to the end of your days on earth. Never forget that, when you are a faith son of God, all upright work of the realm is sacred. Nothing which a son of God does can be common. Do your work, therefore, from this time on, as for God. And when you are through on this world, I have other and better worlds where you shall likewise work for me. And in all of this work, on this world and on other worlds, I will work with you, and my spirit shall dwell within you.” 그 후 그는 알패오 쌍둥이, 야고보와 유다와 함께 걸으면서, 두 사람에게 “야고보와 유다야, 너희는 나를 믿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두 사람은 똑같이 “예, 주(主)여, 저희가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곧 너희를 떠날 것이다. 내가 육신으로는 벌써 너희를 떠났다는 것을 너희가 알고 있다. 나는 내 아버지께로 가기 전에, 이런 형체로 잠시 동안만 머무를 것이다. 너희는 나를 믿었고─너희는 내 사도들이며, 또한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 내가 떠난 후에, 너희가 나와 같이 행동하기 전에 너희가 하였던 일로 돌아가게 된다 하더라도, 나와 함께 했던 것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믿어야 한다. 너희들이 외적인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너희들의 충성심을 좌우할 만한 어떤 기회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끝까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져라. 너희가 하나님의 신앙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정직한 일들이 거룩하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라. 하나님의 아들이 하는 일들 중에서 하잘 것 없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지금부터 너희는 일을 할 때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것처럼 하라. 그리고 너희가 이 세상을 마칠 때, 나에게는 너희가 여전히 나를 위하여 일하게 되는 다른 더 좋은 세상이 있느니라.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에 있어서, 이 세상과 다른 세상들에서, 나는 너희들과 같이 일할 것이며, 내 영이 너희 안에 거할 것이다.”

192:2.14 (2049.5) It was almost ten o’clock when Jesus returned from his visit with the Alpheus twins, and as he left the apostles, he said: “Farewell, until I meet you all on the mount of your ordination tomorrow at noontime.” When he had thus spoken, he vanished from their sight. 예수께서 알패오의 쌍둥이와의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신 것은 거의 10시가 되었을 무렵이었으며, 그는 사도들을 떠나시면서 “너희를 사도로 임명하였던 산에서 내일 정오에 너희 모두를 만날 때까지 잘 있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한 후에 그는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3. On the Mount of Ordination 임명하신 산에서

160814 부활21 – 사도들을 임명했던 산에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14th) 마28:16-17 16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192:3.1 (2050.1) At noon on Saturday, April 22, the eleven apostles assembled by appointment on the hill near Capernaum, and Jesus appeared among them. This meeting occurred on the very mount where the Master had set them apart as his apostles and as ambassadors of the Father’s kingdom on earth. And this was the Master’s fourteenth morontia manifestation. 4월 22일 토요일 정오에, 열 한 사도들은 약속대로 가버나움 근처에 있는 동산 위에 모였으며,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이번의 만남은 주(主)의 사도로서 이 세상에 있는 아버지 나라의 대사로서 주께서 그들을 지정하였던 바로 그 산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主)의 14번째 부활체 출현이었습니다.

192:3.2 (2050.2) At this time the eleven apostles knelt in a circle about the Master and heard him repeat the charges and saw him re-enact the ordination scene even as when they were first set apart for the special work of the kingdom. And all of this was to them as a memory of their former consecration to the Father’s service, except the Master’s prayer. When the Master — the morontia Jesus — now prayed, it was in tones of majesty and with words of power such as the apostles had never before heard. Their Master now spoke with the rulers of the universes as one who, in his own universe, had had all power and authority committed to his hand. And these eleven men never forgot this experience of the morontia rededication to the former pledges of ambassadorship. The Master spent just one hour on this mount with his ambassadors, and when he had taken an affectionate farewell of them, he vanished from their sight. 이 때 열 한 사도들은 주(主) 주위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면서 무릎을 꿇었으며, 주께서 반복해서 하시는 위탁의 말씀을 들었고 나라의 특별임무를 위하여 처음 지정되었을 때처럼 사도로 임명하는 장면이 재현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주(主)의 기도를 제외한다면, 이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일을 위해 전에 가졌던 임명식에 대한 기억과 동일하였습니다. 부활체로서의 주(主)께서 기도하실 때, 힘이 있는 말씀과 함께 그의 음성은 장엄하였으며 지금까지 사도들이 전혀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주(主)께서는 그 자신의 우주 안에서 모든 힘과 권한을 손에 쥐신 분으로서 우주들의 통치자들과 의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열 한 명의 사도들은 전에 대사 직분의 서약 위에 부활체적으로 다시 헌신하게 된 이 체험을 결코 잊지 못하였습니다. 주(主)님은 자신의 대사들과 함께 이 산 위에서 한 시간 동안 함께 계셨으며, 그들에게 자애로운 작별 인사를 한 후에, 그들의 시야로부터 사라졌습니다.

192:3.3 (2050.3) And no one saw Jesus for a full week. The apostles really had no idea what to do, not knowing whether the Master had gone to the Father. In this state of uncertainty they tarried at Bethsaida. They were afraid to go fishing lest he come to visit them and they miss seeing him. During this entire week Jesus was occupied with the morontia creatures on earth and with the affairs of the morontia transition which he was experiencing on this world. 그리고 그 후로 한 주일 동안 아무도 예수님을 불 수 없었습니다. 사도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주(主)께서 이미 아버지께로 가셨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불확실한 상태로 그들은 벳새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들에게 왔을 때 그를 만나지 못하게 될까 염려가 되어 고기를 잡으러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이 일 주일 내내, 예수께서는 이 땅에 있는 부활체 창조물들과 함께 계셨으며 자신이 이 세상에서 체험하는 부활체 전환의 업무에 전념하셨습니다.

4. The Lakeside Gathering 호숫가에서 모임

160821 부활22 – 호숫가에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15th) 고전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192:4.1 (2050.4) Word of the appearances of Jesus was spreading throughout Galilee, and every day increasing numbers of believers arrived at the Zebedee home to inquire about the Master’s resurrection and to find out the truth about these reputed appearances. Peter, early in the week, sent out word that a public meeting would be held by the seaside the next Sabbath at three o’clock in the afternoon. 예수께서 여러 번 나타났다는 소문이 온 갈릴리에 퍼졌고, 매일같이 더 많은 신자들이 주(主)의 부활에 관하여 물어보고, 그가 여러 번 보였다는 떠도는 소문이 진실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세베대의 집에 모여들었습니다. 그 주초에, 베드로는 공개 집회가 다음 안식일 오후 3시에 그 바닷가에서 있을 것이라고 공표하였습니다.

192:4.2 (2050.5) Accordingly, on Saturday, April 29, at three o’clock, more than five hundred believers from the environs of Capernaum assembled at Bethsaida to hear Peter preach his first public sermon since the resurrection. The apostle was at his best, and after he had finished his appealing discourse, few of his hearers doubted that the Master had risen from the dead. 따라서, 4월 29일 토요일 3시에, 부활 이후 처음 있는 베드로의 대중 설교를 듣기 위하여 500명 이상의 신자들이 가버나움 근방으로부터 벳새다로 모였습니다. 사도는 자기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으며, 그의 호소하는 강연이 다 끝난 후에는, 주(主)가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청중은 거의 없었습니다.

192:4.3 (2050.6) Peter ended his sermon, saying: “We affirm that Jesus of Nazareth is not dead; we declare that he has risen from the tomb; we proclaim that we have seen him and talked with him.” Just as he finished making this declaration of faith, there by his side, in full view of all these people, the Master appeared in morontia form and, speaking to them in familiar accents, said, “Peace be upon you, and my peace I leave with you.” When he had thus appeared and had so spoken to them, he vanished from their sight. This was the fifteenth morontia manifestation of the risen Jesus. 베드로는 설교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나사렛 예수가 돌아가시지 않았음을 단언합니다. 그가 무덤에서 살아나셨음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그를 보았고 그와 대화를 나누었음을 공포합니다.” 그가 신념에 찬 이 선언을 마쳤을 때,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식별할 수 있는 모습으로, 주(主)께서 그의 옆에 부활체(모론시아 형체)로 나타났으며, 낯익은 어투로 그들에게 “평강이 너희에게 있으라. 그리고 내 평강이 너희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나타나셔서 그 말씀을 그들에게 한 후에, 그는 그들의 시야로부터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부활한 예수가 15번째로 나타나신 부활체(모론시아)현시였습니다.

192:4.4 (2051.1) Because of certain things said to the eleven while they were in conference with the Master on the mount of ordination, the apostles received the impression that their Master would presently make a public appearance before a group of the Galilean believers, and that, after he had done so, they were to return to Jerusalem. Accordingly, early the next day, Sunday, April 30, the eleven left Bethsaida for Jerusalem. They did considerable teaching and preaching on the way down the Jordan, so that they did not arrive at the home of the Marks in Jerusalem until late on Wednesday, May 3. 사도 임명 받은 그 산 위에서 열 한 사도들이 주(主)와 회의를 하는 동안에 들었던 특별한 말씀을 통하여, 사도들은 주(主)께서 갈릴리의 무리들 앞에서 곧 공개적으로 나타나시리라는 것과 그가 그렇게 한 후에는 자기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다음 날인 4월 30일 일요일 이른 아침에, 열 한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벳새다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요단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여러 번 가르치고 설교하였으므로, 5월 3일 수요일 늦은 시각에야 비로소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192:4.5 (2051.2) This was a sad home-coming for John Mark. Just a few hours before he reached home, his father, Elijah Mark, suddenly died from a hemorrhage in the brain. Although the thought of the certainty of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did much to comfort the apostles in their grief, at the same time they truly mourned the loss of their good friend, who had been their stanch supporter even in the times of great trouble and disappointment. John Mark did all he could to comfort his mother and, speaking for her, invited the apostles to continue to make their home at her house. And the eleven made this upper chamber their headquarters until after the day of Pentecost. 요한 마가에게 있어서 이것은 하나의 슬픈 귀향길이었습니다. 그가 도착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그의 아버지 엘리야 마가가 뇌출혈로 인하여 갑자기 죽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그들의 슬픔을 많이 위로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깊은 근심과 낙심에 젖어 있을 때에도 그들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던, 훌륭한 친구를 잃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애도하였습니다. 요한 마가는 최선을 다하여 자기 어머니를 위로하였고, 어머니를 대신해서, 사도들이 그 집에 계속 머물도록 그들을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열 한 명의 사도들은 오순절이 지날 때까지 이 다락방을 그들의 본부로 사용하였습니다.

192:4.6 (2051.3) The apostles had purposely entered Jerusalem after nightfall that they might not be seen by the Jewish authorities. Neither did they publicly appear in connection with the funeral of Elijah Mark. All the next day they remained in quiet seclusion in this eventful upper chamber. 사도들은 유대인 당국자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일부러 해가 진후에 예루살렘에 들어갔습니다. 또한 그들은 엘리야 마가를 장사 지내는 동안에도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파란이 많은 이 다락방에서 다음 날 하루 종일 조용히 은둔하고 있었습니다.

192:4.7 (2051.4) On Thursday night the apostles had a wonderful meeting in this upper chamber and all pledged themselves to go forth in the public preaching of the new gospel of the risen Lord except Thomas, Simon Zelotes, and the Alpheus twins. Already had begun the first steps of chang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 sonship with God and brotherhood with man — into the proclamation of the resurrection of Jesus. Nathaniel opposed this shift in the burden of their public message, but he could not withstand Peter’s eloquence, neither could he overcome the enthusiasm of the disciples, especially the women believers. 목요일 밤에 사도들은 이 다락방에서 훌륭한 회의를 진행하였으며, 도마와 시몬 젤로떼 그리고 알패오 쌍둥이를 제외한 모든 사도들이 공공장소에 나가서 부활한 주님에 대한 새로운 복음을 전파하기로 모두 맹세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관계와 사람들의 형제신분─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선포로 변경시키는 첫 번째 단계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나다니엘은 그들의 공개적인 설교 요지에서 이렇게 변경시키는 것을 반대하였지만, 베드로의 설득력을 당할 수가 없었으며, 제자들, 특히 여자 신도들의 열광도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192:4.8 (2051.5) And so, under the vigorous leadership of Peter and ere the Master ascended to the Father, his well-meaning representatives began that subtle process of gradually and certainly changing the religion of Jesus into a new and modified form of religion about Jesus. 그리하여, 베드로의 원기 왕성한 지도력 아래에서, 그리고 주(主)가 아버지께로 미처 올라가기도 전에, 그의 좋은-의미를 지닌 대표자들은, 예수님의 종교를 예수님에 관한 종교라는 새롭고도 수정된 형태로 차츰차츰 그리고 확실하게 변경하는 미묘한 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Paper 193 Final Appearances and Ascension 마지막 출현과 상승

Paper 193

Final Appearances and Ascension 마지막 출현과 상승

160828 부활23 – 대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 1 (16th) AD30. 4. 9. Am 3:30 이후 요셉 무덤 앞 1(5 여인) 2(막마) / 베다니 나사로 무덤 동산 3(약 12시) 4(가족친구 20명 pm 2시) / 요셉 집 5(25명 여인들 pm4:15) 6(40명 그리스인 플라비우스 오후4:30) 7(엠마오2형제 목동 오후5시) 8(베드로 마가 정원 pm8:30) 9(10사도들 마가 다락방 pm9) 10(전도자들 필라델피아 4/11화 am8시) 11(11사도들 막 다락방 4/16 주일 pm6) 12(로단80 알렉산드리아 4/18화 pm8:30) 13(10 사도 갈릴리 4/21 금 am6:00) 14(11사도 가버나움 고지 4/22토 12시) 15(500 벳새다 호숫가 4/29 토 pm3) 16(61이상 대표자들 니고데모 집 5/5 금 pm9) 눅24:44-48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193:0.1 (2052.1) THE sixteenth morontia manifestation of Jesus occurred on Friday, May 5, in the courtyard of Nicodemus, about nine o’clock at night. On this evening the Jerusalem believers had made their first attempt to get together since the resurrection. Assembled here at this time were the eleven apostles, the women’s corps and their associates, and about fifty other leading disciples of the Master, including a number of the Greeks. This company of believers had been visiting informally for more than half an hour when, suddenly, the morontia Master appeared in full view and immediately began to instruct them. Said Jesus: 예수님의 16번째 모론시아 출현은 5월 5일 금요일, 니고데모의 집 안마당에서 밤 9시 경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날 저녁, 예루살렘의 신자들은 부활 사건 이후(以後) 처음으로, 함께 모이고자 시도하였습니다. 이 때 모인 사람들은 열 한 사도들과, 여자 대원들과 그들의 친구들, 다수의 그리스인들을 포함한 50 여명의 다른 수제자들이었습니다. 이 신자들 무리가 30분 이상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하고 있을 때, 갑자기 모론시아 주(主)가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즉시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93:0.2 (2052.2) “Peace be upon you. This is the most representative group of believers — apostles and disciples, both men and women — to which I have appeared since the time of my deliverance from the flesh. I now call you to witness that I told you beforehand that my sojourn among you must come to an end; I told you that presently I must return to the Father. And then I plainly told you how the chief priests and the rulers of the Jews would deliver me up to be put to death, and that I would rise from the grave. Why, then, did you allow yourselves to become so disconcerted by all this when it came to pass? and why were you so surprised when I rose from the tomb on the third day? You failed to believe me because you heard my words without comprehending the meaning thereof. “평강이 너희에게 있으라. 너희들은 내가 육신에서 해방된 후에 나타난 신자들─사도들과 제자들, 남자들과 여자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무리들이다. 내가 이전에 너희들과 함께 하는 이 기간이 끝나게 되리라고 말한 것; 내가 곧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한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을 증거 하도록 내가 너희들을 이제 부른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사제들과 유대인 통치자들이 어떻게 나를 죽이도록 넘겨주고, 그리고 내가 무덤에서 살아날 것을 분명하게 너희에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을 때, 너희들은 어찌하여 그토록 당황하였느냐? 그리고 내가 셋째 날에 무덤에서 살아났을 때 너희는 왜 그렇게 놀랐느냐? 너희는 내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서 들었기 때문에 내 말을 믿지 못하였다.

193:0.3 (2052.3) “And now you should give ear to my words lest you again make the mistake of hearing my teaching with the mind while in your hearts you fail to comprehend the meaning. From the beginning of my sojourn as one of you, I taught you that my one purpose was to reveal my Father in heaven to his children on earth. I have lived the God-revealing bestowal that you might experience the God-knowing career. I have revealed God as your Father in heaven; I have revealed you as the sons of God on earth. It is a fact that God loves you, his sons. By faith in my word this fact becomes an eternal and living truth in your hearts. When, by living faith, you become divinely God-conscious, you are then born of the spirit as children of light and life, even the eternal life wherewith you shall ascend the universe of universes and attain the experience of finding God the Father on Paradise. 그러니 너희는 이제 내가 가르치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머리로 잘못 듣는 오류를 또 다시 행하지 않도록 내 말에 귀를 잘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내가 너희들 중에 머무는 시작부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이 세상에 있는 그의 자녀들에게 나타내는 것이 한 가지 나의 한 가지 목적이라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왔노라. 나는 너희가 하나님을 아는 생애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계시하는 삶을 살았다. 나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너희들의 아버지임을 계시하였노라. 나는 너희들을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임을 계시하여왔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들인 너희를 사랑하시는 것이 사실이다. 내 말을 믿음으로, 이 사실은 너희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진리가 될 것이다. 살아 있는 신앙에 의해서, 너희가 거룩히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면, 너희는 빛과 생명의 자녀로서 영으로부터 태어나며, 영원한 생명으로 하늘들의 하늘로 올라가고 천국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는 체험을 성취하기까지 할 것이라.

160904 부활24 – 대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 2 (16th) 마28:19-20a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a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193:0.4 (2052.4) “I admonish you ever to remember that your mission among men is to proclaim the gospel of the kingdom — the reality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truth of the sonship of man. Proclaim the whole truth of the good news, not just a part of the saving gospel. Your message is not changed by my resurrection experience. Sonship with God, by faith, is still the saving truth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You are to go forth preaching the love of God and the service of man. That which the world needs most to know is: Men are the sons of God, and through faith they can actually realize, and daily experience, this ennobling truth. My bestowal should help all men to know that they are the children of God, but such knowledge will not suffice if they fail personally to faith-grasp the saving truth that they are the living spirit sons of the eternal Father. The gospel of the kingdom is concerned with the love of the Father and the service of his children on earth.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다음의 충고를 기억하라. 사람들에게 전파해야할 너희들의 임무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버지 신분의 실체와 사람의 아들 관계의 진리니라. 너희들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복음의 일부만 전하지 말고, 좋은 소식의 진리 전체를 전파하라. 너희의 메시지는 나의 부활 체험 때문에 변경될 수 없노라. 신앙으로 하나님의 아들관계가 된다는 것은 바뀔 수 없는 하나님 나라 복음이 지닌 구원의 진리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봉사하라는 진리를 전파하며 나아가라. 세상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을 선포하노라.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들이고, 신앙을 통하여 사람을 고귀하게 만드는 이 진리를 실제로 깨닫고, 나날이 이 진리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너희에게 내어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그러나 그들이 영원한 아버지의 살아있는 영적인 아들이라는 구원의 진리를 신앙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일에 실패한다면, 그러한 지식은 충분하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아버지의 사랑과 땅에서 그 자녀들의 봉사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라.

193:0.5 (2053.1) “Among yourselves, here, you share the knowledge that I have risen from the dead, but that is not strange. I have the power to lay down my life and to take it up again; the Father gives such power to his Paradise Sons. You should the rather be stirred in your hearts by the knowledge that the dead of an age entered upon the eternal ascent soon after I left Joseph’s new tomb. I lived my life in the flesh to show how you can, through loving service, become God-revealing to your fellow men even as, by loving you and serving you, I have become God-revealing to you. I have lived among you as the Son of Man that you, and all other men, might know that you are all indeed the sons of God. Therefore, go you now into all the world preaching this gospel of the kingdom of heaven to all men. Love all men as I have loved you; serve your fellow mortals as I have served you. Freely you have received, freely give. Only tarry here in Jerusalem while I go to the Father, and until I send you the Spirit of Truth. He shall lead you into the enlarged truth, and I will go with you into all the world. I am with you always, and my peace I leave with you.” 지금 너희들은 나의 부활에 대한 지식을 서로 나누고 있지만, 나는 내 생명을 버릴 권세도, 그것을 다시 취할 권세도 가지고 있노라. 하늘 아버지가 그 권세를 주셨노라. 내가 요셉의 새 무덤에서 일어난 즉시 한 시대의 죽은 자들이 영원한 상승을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너희 마음에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섬김으로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처럼, 너희들은 사랑의 봉사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계시하라. 이를 위해 내가 육신으로 일생을 살아왔노라. 너희를 포함한 다른 모든 사람들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임을 알 수 있도록, 내가 사람의 아들로 너희들과 함께 살아왔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제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인류에게 이 하늘의 왕국 복음을 전파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 동료들을 섬겨라. 너희가 대가없이 받았으니 대가없이 주어라.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동안, 그리고 내가 진리의 영을 너희에게 보낼 때까지만 이곳 예루살렘에 머물러라. 그는 너희를 커다란 진리로 인도할 것이며, 너희가 온 세상으로 나아갈 때 내가 너희와 동행할 것이다.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며, 내 평강이 너희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

193:0.6 (2053.2) When the Master had spoken to them, he vanished from their sight. It was near daybreak before these believers dispersed; all night they remained together, earnestly discussing the Master’s admonitions and contemplating all that had befallen them. James Zebedee and others of the apostles also told them of their experiences with the morontia Master in Galilee and recited how he had three times appeared to them. 주(主)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마치신 후에, 그들의 시야로부터 사라졌습니다. 이 신자들이 헤어진 것은 거의 날이 샐 무렵이었습니다. 그들은 주(主)님의 훈계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그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심사숙고하면서 밤새도록 같이 있었습니다. 야고보 세베대와 다른 사도들도 갈릴리에서 부활의 주(主)님과 함께 가졌던 자신들의 체험을 그들과 함께 나누었으며, 주께서 그들에게 세 번 나타나신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습니다.

1. The Appearance at Sychar 시카에 출현

160911 부활25 – 수가(시카Sychar)에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 (17th) 요4:23-24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193:1.1 (2053.3) About four o’clock on Sabbath afternoon, May 13, the Master appeared to Nalda and about seventy-five Samaritan believers near Jacob’s well, at Sychar. The believers were in the habit of meeting at this place, near where Jesus had spoken to Nalda concerning the water of life. On this day, just as they had finished their discussions of the reported resurrection, Jesus suddenly appeared before them, saying: 5월 13일 안식일 오후 4시 경에, 주(主)님은 시카에 있는 야곱의 우물 근처에서 75명가량의 사마리아인들과 날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 신자들은 예수께서 생명의 물에 관하여 날다에게 말씀하였던 이 우물 근처의 이 장소에서 만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날 부활의 소식에 대한 토의를 막 마쳤을 때, 예수가 그들 앞에 갑자기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93:1.2 (2053.4) “Peace be upon you. You rejoice to know that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but this will avail you nothing unless you are first born of the eternal spirit, thereby coming to possess, by faith, the gift of eternal life. If you are the faith sons of my Father, you shall never die; you shall not perish. The gospel of the kingdom has taught you that all men are the sons of God. And this good news concerning the love of the heavenly Father for his children on earth must be carried to all the world. The time has come when you worship God neither on Gerizim nor at Jerusalem, but where you are, as you are, in spirit and in truth. It is your faith that saves your souls. Salvation is the gift of God to all who believe they are his sons. But be not deceived; while salvation is the free gift of God and is bestowed upon all who accept it by faith, there follows the experience of bearing the fruits of this spirit life as it is lived in the flesh. The acceptance of the doctrine of the fatherhood of God implies that you also freely accept the associated truth of the brotherhood of man. And if man is your brother, he is even more than your neighbor, whom the Father requires you to love as yourself. Your brother, being of your own family, you will not only love with a family affection, but you will also serve as you would serve yourself. And you will thus love and serve your brother because you, being my brethren, have been thus loved and served by me. Go, then, into all the world telling this good news to all creatures of every race, tribe, and nation. My spirit shall go before you, and I will be with you always.” “평강이 너희에게 있으라.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너희가 알고 기뻐하였지만, 너희가 먼저 영으로 태어나고 신앙으로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소유하게 되지 못한다면, 이것이 너희에게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만일 너희가 내 아버지의 신앙의 아들이라면, 너희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너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느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있는 자기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이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전해져야만 하느니라. 너희가 게리짐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며, 어디든지 너희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영 안에서와 진리 안에서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때가 왔노라. 너희 혼을 구원하는 것은 바로 너희의 신앙이다. 구원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속지 말아야 하느니라. 구원은 하나님께서 대가 없이 주시는 선물이고 신앙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구원은 육신으로 살아가면서 영적 생명의 열매를 맺는 체험이 동반되느니라. 하나님 아버지 신분의 교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람들의 형제 신분이라는 동반되는 진리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리고 만일 사람이 너희 형제라면, 그는 마찬가지로 너의 이웃 이상인데 , 아버지는 이웃을 너희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너희에게 요구하고 있다. 너희 형제는, 너희가 속한 가족의 일원이니, 너희가 가족적 애정으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또한 너희 자신을 섬기듯 그렇게 섬길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내 형제가 되었기에, 나의 사랑과 섬김을 그렇게 받아 왔으니 그처럼, 너희도 그렇게 너희 형제를 사랑하고 섬길 것이다. 그러니 가라, 온 세상으로 가서 모든 종족과 민족과 국가에 이 좋은 소식을 들려주라. 내 영이 너희 앞에서 먼저 갈 것이며,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193:1.3 (2054.1) These Samaritans were greatly astonished at this appearance of the Master, and they hastened off to the near-by towns and villages, where they published abroad the news that they had seen Jesus, and that he had talked to them. And this was the seventeenth morontia appearance of the Master. 이 사마리아인들은 주(主)의 이 출현에 크게 놀랐으며 그들은 가까운 성읍과 마을로 급히 나가서, 그들이 예수를 보았다는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였다는 소식을 그곳에서 널리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主)의 17번째 부활체 출현 이었습니다.

2. The Phoenician Appearance 페니키아에 출현

160918 부활26 – 페니키아에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 (18th) 갈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193:2.1 (2054.2) The Master’s eighteenth morontia appearance was at Tyre, on Tuesday, May 16, at a little before nine o’clock in the evening. Again he appeared at the close of a meeting of believers, as they were about to disperse, saying: 주(主)의 18번째 부활체 출현은 5월 16일 화요일, 저녁 9시 조금 전에 티레에서 있었습니다. 그는 신자들이 모임을 마치고 막 흩어지려고 할 때 다시 나타났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93:2.2 (2054.3) “Peace be upon you. You rejoice to know that the Son of Man has risen from the dead because you thereby know that you and your brethren shall also survive mortal death. But such survival is dependent on your having been previously born of the spirit of truth-seeking and God-finding. The bread of life and the water thereof are given only to those who hunger for truth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 for God. The fact that the dead rise is not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se great truths and these universe facts are all related to this gospel in that they are a part of the result of believing the good news and are embraced in the subsequent experience of those who, by faith, become, in deed and in truth, the everlasting sons of the eternal God. My Father sent me into the world to proclaim this salvation of sonship to all men. And so send I you abroad to preach this salvation of sonship. Salvation is the free gift of God, but those who are born of the spirit will immediately begin to show forth the fruits of the spirit in loving service to their fellow creatures. And the fruits of the divine spirit which are yielded in the lives of spirit-born and God-knowing mortals are: loving service, unselfish devotion, courageous loyalty, sincere fairness, enlightened honesty, undying hope, confiding trust, merciful ministry, unfailing goodness, forgiving tolerance, and enduring peace. If professed believers bear not these fruits of the divine spirit in their lives, they are dead; the Spirit of Truth is not in them; they are useless branches on the living vine, and they soon will be taken away. My Father requires of the children of faith that they bear much spirit fruit. If, therefore, you are not fruitful, he will dig about your roots and cut away your unfruitful branches. Increasingly, must you yield the fruits of the spirit as you progress heavenward in the kingdom of God. You may enter the kingdom as a child, but the Father requires that you grow up, by grace, to the full stature of spiritual adulthood. And when you go abroad to tell all nations the good news of this gospel, I will go before you, and my Spirit of Truth shall abide in your hearts. My peace I leave with you.” “평강이 너희에게 있으라.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죽음에서의 살아난 것 알게 된 것을 기뻐하라. 왜냐하면 그것에 의하여 너희들 자신과 너희 형제들도 역시 죽음에서 생존될 것을 너희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존은 너희가 사전에 진리를 찾고 하나님을 발견하는 영적 탄생이 이루어졌는지에 달려 있노라. 진리에 굶주리고 정의에 목말라하며 하나님을 향한 자들에게만, 그것으로부터 생명의 빵과 물이 주어진다.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아니다. 이 놀라운 진리들과 우주의 사실들은 기쁜 소식을 믿은 결과에 포함된 일부분으로서 모두 이 복음과 관련되며 신앙에 의해 정말로 그리고 진실로 영원한 하나님의 영속하는 아들들이 된 사람들이 그 후에 갖게 되는 체험에 포함된다. 내 아버지는 아들 관계의 이 구원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시기 위하여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고 나도 아들관계의 이 구원을 전파하기 위하여 너희를 보낸다.. 구원은 하나님의 대가 없는 선물이지만, 영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자기 동료 피조물들을 사랑과 섬김의 삶을 통해 영의 열매를 즉시 보여주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영으로 태어나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삶에 맺히게 되는 신성한 영의 열매들은, 사랑으로 섬김, 애타적(愛他的)인 헌신, 불굴의 충성심, 진지한 공정성, 계몽된 정직성, 사라지지 않는 희망, 자신하고 있는 신뢰, 자비로운 사명활동, 시종여일한 덕, 용서하는 인내심, 그리고 오래 지속되는 평화이다. 만일 신자임을 고백한 자들이, 그들의 삶에, 신성한 영으로부터 나오는 이러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들은 죽어 있는 것이며, 진리의 영이 그들 속에 없고, 그들은 살아있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쓸모없는 가지들이며, 곧 잘라버리게 될 것이다. 내 아버지는 신앙의 자녀들에게 영의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만일 너희에게 열매가 없다면, 너희들의 뿌리들을 파내시고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들을 잘라버리실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하늘 방향으로 진보하면서 점점 더 많은 영의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 너희는 어린아이로 왕국에 들어가게 되지만, 아버지는 너희가 은혜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성숙된 온전한 형상으로 자라갈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너희가 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모든 나라들에게 전하면서 멀리 퍼져 나갈 때, 나는 너희 앞에서 갈 것이며, 내 진리의 영은 너희들의 마음에 거할 것이다. 내 평강이 너희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193:2.3 (2054.4) And then the Master disappeared from their sight. The next day there went out from Tyre those who carried this story to Sidon and even to Antioch and Damascus. Jesus had been with these believers when he was in the flesh, and they were quick to recognize him when he began to teach them. While his friends could not readily recognize his morontia form when made visible, they were never slow to identify his personality when he spoke to them. 그러고 나서 주(主)는 그들의 시야로부터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티레를 떠나서 그들이 이 이야기를 시돈, 그리고 심지어는 안디옥과 다마스커스까지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계실 때 이 신자들과 함께 계셨었으며, 그들은 그가 자기들을 가르치기 시작할 때 그를 즉시 알아보았습니다. 부활체 형체로 눈에 보였을 때 그의 친구들은 바로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였을 때 그의 고유성을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3. Last Appearance in Jerusalem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출현

160925 부활27 – 예루살렘에 마지막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 (19th) AD30. 4. 9. Am 3:30 이후 요셉 무덤 앞 1(5 여인) 2(막마) / 베다니 나사로 무덤 동산 3(약 12시) 4(가족친구 20명 pm 2시) / 요셉 집 5(25명 여인들 pm4:15) 6(40명 그리스인 플라비우스 오후4:30) 7(엠마오2형제 목동 오후5시) 8(베드로 마가 정원 pm8:30) 9(10사도들 마가 다락방 pm9) 10(전도자들 필라델피아 4/11화 am8시) 11(11사도들 막 다락방 4/16 주일 pm6) 12(로단 80명 알렉산드리아 4/18화 pm8:30) 13(10 사도 갈릴리 4/21 금 am6:00) 14(11사도 가버나움 고지 4/22토 12시) 15(500 벳새다 호숫가 4/29 토 pm3) 16(61명 이상 대표자들 니고데모 집 5/5 금 pm9) 17(75명 사마리아인 날다 시카 5/13토 pm4) 18(페니키아 5/16 화 pm9) 18(11 사도 마가 다락방 5/18 목 아침) 18(페니키아 두로 5/16 화 pm9) 19(11명 사도 마가 다락방 5/18 목 아침) 행1:4-8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93:3.1 (2055.1) Early Thursday morning, May 18, Jesus made his last appearance on earth as a morontia personality. As the eleven apostles were about to sit down to breakfast in the upper chamber of Mary Mark’s home, Jesus appeared to them and said: 5월 18일 목요일 아침 일찍, 부활체 고유성의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열 한 사도들이 마리아 마가의 다락방에서 아침 식사를 들기 위해 앉으려고 할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93:3.2 (2055.2) “Peace be upon you. I have asked you to tarry here in Jerusalem until I ascend to the Father, even until I send you the Spirit of Truth, who shall soon be poured out upon all flesh, and who shall endow you with power from on high.” Simon Zelotes interrupted Jesus, asking, “Then, Master, will you restore the kingdom, and will we see the glory of God manifested on earth?” When Jesus had listened to Simon’s question, he answered: “Simon, you still cling to your old ideas about the Jewish Messiah and the material kingdom. But you will receive spiritual power after the spirit has descended upon you, and you will presently go into all the world preaching this gospel of the kingdom. As the Father sent me into the world, so do I send you. And I wish that you would love and trust one another. Judas is no more with you because his love grew cold, and because he refused to trust you, his loyal brethren. Have you not read in the Scripture where it is written: ‘It is not good for man to be alone. No man lives to himself’? And also where it says: ‘He who would have friends must show himself friendly’? And did I not even send you out to teach, two and two, that you might not become lonely and fall into the mischief and miseries of isolation? You also well know that, when I was in the flesh, I did not permit myself to be alone for long periods. From the very beginning of our associations I always had two or three of you constantly by my side or else very near at hand even when I communed with the Father. Trust, therefore, and confide in one another. And this is all the more needful since I am this day going to leave you alone in the world. The hour has come; I am about to go to the Father.” “평강이 너희에게 있으라. 내가 아버지께로 올라가, 높은 곳으로부터 너희에게 힘을 주는 진리의 영을 보내리니, 모든 육체에게 곧 부어지리라. 그 때까지 너희는 이 곳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너희에게 부탁했었노라.” 시몬 젤로떼가 예수님의 말씀을 가로막으며 “그렇다면 주(主)여, 당신께서 그 왕국을 다시 세우실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시몬의 질문을 다 들으신 예수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너는 아직도 유대인의 메시아와 물질적 왕국에 대한 옛 관념들에 매달려 있구나. 그러나 진리의 영이 너에게 임한 후에는 너도 영적인 힘을 얻게 될 것이며, 너는 곧 온 세상에 나가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기를 바라노라. 유다는 그의 사랑이 식었으며, 그의 충실한 형제인 너희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와 더 이상 함께 있지 않는 것이다. 너희는 성경에 ‘혼자 있는 것이 사람에게 좋지 않다. 아무도 혼자 살 수 없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또한 ‘친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호의를 보여 주어야만 한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를 보내어 가르치게 했을 때에도, 너희가 외로움에 빠지지 않고, 고독한 해독과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둘씩 짝을 지어 보내지 않았느냐? 또한 너희도 잘 알다시피, 내가 육신으로 있을 때, 나 혼자서 오랜 기간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조심하였노라. 우리가 함께 일하는 초기부터, 나는 너희들 중에 두 세 사람이 항상 내 옆에 있도록 하였고, 내가 아버지와 교제를 나눌 때에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있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서로 신뢰하고 서로 의탁하라. 오늘날 내가 너희들을 홀로 이 세상에 남겨놓게 되었으니, 이러한 것들이 더욱 필요하다. 그 때가 왔고, 나는 곧 아버지께로 떠날 것이다.”

193:3.3 (2055.3) When he had spoken, he beckoned for them to come with him, and he led them out on the Mount of Olives, where he bade them farewell preparatory to departing from Urantia. This was a solemn journey to Olivet. Not a word was spoken by any of them from the time they left the upper chamber until Jesus paused with them on the Mount of Olives. 말씀을 마친 그는 그들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으로 부르시고, 그들을 데리고 올리브 산으로 올라가셨으며, 그곳에서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하여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셨습니다. 올리브 산으로 가는 여행은 매우 장엄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락방을 떠날 때부터 예수와 함께 올리브 산에서 쉴 때까지 아무도 말이 없었습니다.

4. Causes of Judas’s Downfall 유다 패망의 원인들

161002 부활28 – 유다 패망의 원인1 벧후3:18 여러분은 우리 주님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점점 자라가십시오. 주님께 이제와 영원히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193:4.1 (2055.4) It was in the first part of the Master’s farewell message to his apostles that he alluded to the loss of Judas and held up the tragic fate of their traitorous fellow worker as a solemn warning against the dangers of social and fraternal isolation. It may be helpful to believers, in this and in future ages, briefly to review the causes of Judas’s downfall in the light of the Master’s remarks and in view of the accumulated enlightenment of succeeding centuries. 주님은 사도들에게 작별인사의 서두에서 유다 패망의 원인을 언급하셨으며, 사회적으로 고립하고, 형제우애의 친교에서 고립하는 위험성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함으로서 그들을 배반한, 동료 일꾼에 대한 비극적인 숙명을 거론하셨습니다. 주(主)의 말씀의 빛 아래에서, 지나간 수세기 동안에 계속 발전되어 온 깨우침에 비추어, 유다 패망 원인들을 간단히 돌이켜 보는 일은, 현 시대와 오는 시대의 신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193:4.2 (2055.5) As we look back upon this tragedy, we conceive that Judas went wrong, primarily, because he was very markedly an isolated personality, a personality shut in and away from ordinary social contacts. He persistently refused to confide in, or freely fraternize with, his fellow apostles. But his being an isolated type of personality would not, in and of itself, have wrought such mischief for Judas had it not been that he also failed to increase in love and grow in spiritual grace. And then, as if to make a bad matter worse, he persistently harbored grudges and fostered such psychologic enemies as revenge and the generalized craving to “get even” with somebody for all his disappointments. 우리가 이 비극을 돌이켜 볼 때, 유다는 애초부터 그의 아주 두드러지게 고립된 성격, 보통의 사회적 접촉에서 마음 문을 닫고 멀리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잘못에 빠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동료 사도들을 신뢰하여 속을 털어 놓거나, 거리낌 없이 형제우애를 나누며 사귀기를 끈질기게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사랑을 키우고, 영적인 은혜 가운데 성장함에 있어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유다의 고립된 성격 유형 자체가 유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그는 완고하게 원한을 품었으며, 복수심과 같은 심리적인 적과 자신의 모든 실망에 대하여 누군가에게 “똑같이 복수”하려는 일반화된 열망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193:4.3 (2056.1) This unfortunate combination of individual peculiarities and mental tendencies conspired to destroy a well-intentioned man who failed to subdue these evils by love, faith, and trust. That Judas need not have gone wrong is well proved by the cases of Thomas and Nathaniel, both of whom were cursed with this same sort of suspicion and overdevelopment of the individualistic tendency. Even Andrew and Matthew had many leanings in this direction; but all these men grew to love Jesus and their fellow apostles more, and not less, as time passed. They grew in grace and in a knowledge of the truth. They became increasingly more trustful of their brethren and slowly developed the ability to confide in their fellows. Judas persistently refused to confide in his brethren. When he was impelled, by the accumulation of his emotional conflicts, to seek relief in self-expression, he invariably sought the advice and received the unwise consolation of his unspiritual relatives or those chance acquaintances who were either indifferent, or actually hostile, to the welfare and progress of the spiritual realities of the heavenly kingdom, of which he was one of the twelve consecrated ambassadors on earth. 불행하게도 개인의 특성과 정신적 경향의 이런 조합이 겹쳐져서, 사랑과 믿음 그리고 신뢰로 이러한 악을 정복하지 못했던 선의의 사람이 파멸되었습니다. 유다는 잘못에 빠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도마와 나다니엘의 경우를 통해 잘 증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도 이와 같은 종류의 의심과 개별적 성향이 지나치게 발달되어 괴로움에 시달렸습니다. 심지어 안드레와 마태조차도 이러한 성향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모두,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사랑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료 사도들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지식과 은혜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들은 점점 더 형제들을 신뢰하였고 동료들에게 자신을 속을 털어놓고 의탁할 수 있는 능력이 서서히 계발(啓發)되었습니다. 유다는 고집스럽게 형제들 신뢰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적 갈등들이 누적되어, 할 수 없이 자아표현의 분출구를 찾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는 한결같이, 영적이지 못한 자기 친척들이나 어쩌다 알게 된 자들의 조언과 지혜롭지 못한 위로를 찾았습니다. 유다는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헌신한 열 두 대사들 중의 하나였지만, 유다가 찾았던 그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의 영적 실체의 번영과 진보에 대해 무관심하든지 아니면 실제적인 적대자들이었습니다.

161009 부활29 – 유다 패망의 원인2 엡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193:4.4 (2056.2) Judas met defeat in his battles of the earth struggle because of the following factors of personal tendencies and character weakness: 유다는 이 세상의 갈등과 투쟁하면서, 다음과 같은 자신의 개인적 경향들과 성격적인 연약함 때문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193:4.5 (2056.3) 1. He was an isolated type of human being. He was highly individualistic and chose to grow into a confirmed “shut-in” and unsociable sort of person. 그는 고립된 유형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개인(이기)주의적이었으며, 굳게 폐쇄된 채로 사람들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비사교적인 부류의 사람이 되기로 선택하였습니다.

193:4.6 (2056.4) 2. As a child, life had been made too easy for him. He bitterly resented thwarting. He always expected to win; he was a very poor loser. 어린 시절에 그는 너무 안일하게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다른 것으로 인해 자신의 뜻이 방해 받는 것을 아주 좌절(挫折)스럽고 비통하게 여겨 분개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모든 점에서 승리하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는 아주 초라한 패배자였습니다.

193:4.7 (2056.5) 3. He never acquired a philosophic technique for meeting disappointment. Instead of accepting disappointments as a regular and commonplace feature of human existence, he unfailingly resorted to the practice of blaming someone in particular, or his associates as a group, for all his personal difficulties and disappointments. 그는 실망에 대처하는 철학적인 기법을 습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실망을 인간 존재의 삶에서 흔히 발생하는 정상적인 일상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느끼는 모든 어려움들과 실망스러운 일들에 대해서 특정한 어떤 사람이나 자기 동료 그룹을 어김없이 비난하는 습관을 따르곤 하였습니다.

193:4.8 (2056.6) 4. He was given to holding grudges; he was always entertaining the idea of revenge. 그는 언제나 불만스런 원한의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복수(復讐)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3:4.9 (2056.7) 5. He did not like to face facts frankly; he was dishonest in his attitude toward life situations. 그는 사실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대하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생의 상황들에 대해 정직하지 못한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193:4.10 (2056.8) 6. He disliked to discuss his personal problems with his immediate associates; he refused to talk over his difficulties with his real friends and those who truly loved him. In all the years of their association he never once went to the Master with a purely personal problem. 그는 가까운 동료들과 자기의 개인적 문제를 의논하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는 진실한 자기 친구들과, 그를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동료로 지냈던 수년 동안, 그는 자신의 순수한 개인적 문제로 한 번도 주(主)님께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193:4.11 (2056.9) 7. He never learned that the real rewards for noble living are, after all, spiritual prizes, which are not always distributed during this one short life in the flesh. 그는 고귀한 삶에 대한 진정한 보상은 결국 영적 상급-육신으로 사는 짧은 이생 동안에 항상 공급되는 것은 아니지만-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193:4.12 (2056.10) As a result of his persistent isolation of personality, his griefs multiplied, his sorrows increased, his anxieties augmented, and his despair deepened almost beyond endurance. 그의 고집스런(완고한) 고립된 개인성의 결과로, 그의 비탄은 배가되었고, 그의 슬픔은 깊어졌으며, 그의 근심은 증대되었고, 그의 절망감은 심화되어, 그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거의 넘어섰습니다.

193:4.13 (2057.1) While this self-centered and ultraindividualistic apostle had many psychic, emotional, and spiritual troubles, his main difficulties were: In personality, he was isolated. In mind, he was suspicious and vengeful. In temperament, he was surly and vindictive. Emotionally, he was loveless and unforgiving. Socially, he was unconfiding and almost wholly self-contained. In spirit, he became arrogant and selfishly ambitious. In life, he ignored those who loved him, and in death, he was friendless. 자기중심적이고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이 사도가 심리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많은 문제들을 갖고 있었지만, 다음의 것들이 중요한 문제들이었습니다. 그의 성격은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의심이 많고 복수심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의 기질은 무뚝뚝하고 원한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감정 면에서 사랑도 없었고 용서도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 그는 타인을 신뢰할 수 없어서 솔직하지 못하였고 거의 전적으로 자아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거만하고 이기적 야심가였습니다. 그는 살아있을 때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을 무시하였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193:4.14 (2057.2) These, then, are the factors of mind and influences of evil which, taken altogether, explain why a well-meaning and otherwise onetime sincere believer in Jesus, even after several years of intimate association with his transforming personality, forsook his fellows, repudiated a sacred cause, renounced his holy calling, and betrayed his divine Master. 이러한 마음의 요소들과 악의 영향들이 함께 어우러진 것들을 통해 우리는 유다 패망의 원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한 때 선의를 가지고, 다른 면에서는 예수님을 진지하게 믿었던 사람이, 심지어 사람을 변화시키는 예수님(고유성)과 몇 년 동안의 친밀한 교제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자기 동료들을 버리고, 하늘의 목적을 거절하고, 거룩한 소명을 포기하며, 거룩한 주님을 배반하게 되었는지를 말해줍니다.

5. The Master’s Ascension 주님의 승천(昇天)

161016 부활30 – 예수님의 승천 눅24:49-51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193:5.1 (2057.3) It was almost half past seven o’clock this Thursday morning, May 18, when Jesus arrived on the western slope of Mount Olivet with his eleven silent and somewhat bewildered apostles. From this location, about two thirds the way up the mountain, they could look out over Jerusalem and down upon Gethsemane. Jesus now prepared to say his last farewell to the apostles before he took leave of Urantia. As he stood there before them, without being directed they knelt about him in a circle, and the Master said: 5월 18일 목요일 아침 7시 30분경에, 예수님은 말없이 다소 어리둥절해하는 11명의 사도들과 함께 올리브 산 서쪽 기슭에 도착하셨습니다. 이 산기슭에서부터 위쪽으로 3분의 2 정도 되는 위치에서, 그들은 예루살렘을 바라볼 수 있었고 겟세마네를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 사도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려고 준비하셨습니다. 거기에 주님께서 그들 앞에 서시자, 지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의 주위에 둥글게 원을 그리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주(主)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93:5.2 (2057.4) “I bade you tarry in Jerusalem until you were endowed with power from on high. I am now about to take leave of you; I am about to ascend to my Father, and soon, very soon, will we send into this world of my sojourn the Spirit of Truth; and when he has come, you shall begin the new proclamation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first in Jerusalem and then to the uttermost parts of the world. Love men with the love wherewith I have loved you and serve your fellow mortals even as I have served you. By the spirit fruits of your lives impel souls to believe the truth that man is a son of God, and that all men are brethren. Remember all I have taught you and the life I have lived among you. My love overshadows you, my spirit will dwell with you, and my peace shall abide upon you. Farewell.” “너희가 위로부터 권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내가 너희에게 지시하였노라. 이제 나는 너희를 떠나려고 한다. 나는 내 아버지께로 올라갈 것이고, 곧 바로, 우리는 내가 머물렀던 이 세상에 진리의 영을 보낼 것이라. 그가 오면, 너희는 먼저 예루살렘에서, 그 다음에는 세상의 가장 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새롭게 선포(宣布)하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내가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 동료들을 섬겨라. 너희의 일생동안 영의 열매들로 인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모든 사람들은 서로 형제라는 진리를 사람들(혼)이 믿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모든 것들과 너희들 중에 내가 살았던 그 일생을 기억하라. 나의 사랑이 너희를 보호하고, 내 영이 너희 안에 거할 것이며, 내 평강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잘 있어라.”

193:5.3 (2057.5) When the morontia Master had thus spoken, he vanished from their sight. This so-called ascension of Jesus was in no way different from his other disappearances from mortal vision during the forty days of his morontia career on Urantia. 부활체의 주(主)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자, 그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소위 예수님의 승천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지구에서 부활체의 생애를 사신 40일 동안 사람들 눈에서 사라지셨던 다른 경우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

193:5.4 (2057.6) The Master went to Edentia by way of Jerusem, where the Most Highs, under the observation of the Paradise Son, released Jesus of Nazareth from the morontia state and, through the spirit channels of ascension, returned him to the status of Paradise sonship and supreme sovereignty on Salvington. 주(主)님은 예루셈을 거쳐 에덴시아로 가셨으며, 그곳에서 천국 아들의 감독 아래, 지고자들은 나사렛 예수를 부활체의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하였습니다. 주님은 승천하는 영적 통로를 통해, 천국 아들의 신분과 구원자별 최고 통치자의 지위로 돌아오셨습니다.

193:5.5 (2057.7) It was about seven forty-five this morning when the morontia Jesus disappeared from the observation of his eleven apostles to begin the ascent to the right hand of his Father, there to receive formal confirmation of his completed sovereignty of the universe of Nebadon. 부활체의 예수님은 자기 아버지의 오른편으로 승천하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네바돈 우주에 대한 그의 완전한 주권을 공식적으로 확정 받으시기 위하여, 그의 열 한 명의 사도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신 것은 이 날 아침 7시 45분경이었습니다.

6. Peter Calls a Meeting 베드로가 모임을 소집하다

161023 부활31 – 승천 후 첫 모임Peter Calls a Meeting 행1:12-26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1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193:6.1 (2057.8) Acting upon the instruction of Peter, John Mark and others went forth to call the leading disciples together at the home of Mary Mark. By ten thirty, one hundred and twenty of the foremost disciples of Jesus living in Jerusalem had forgathered to hear the report of the farewell message of the Master and to learn of his ascension. Among this company was Mary the mother of Jesus. She had returned to Jerusalem with John Zebedee when the apostles came back from their recent sojourn in Galilee. Soon after Pentecost she returned to the home of Salome at Bethsaida. James the brother of Jesus was also present at this meeting, the first conference of the Master’s disciples to be called after the termination of his planetary career. 베드로의 지시로, 요한 마가와 다른 사람들은 수제자들을 마리아 마가의 집에서 모이도록 부르러 나갔습니다. 10시 30분에, 예루살렘에 사는 예수의 제자 120명 대부분이 주(主)님의 고별 설교와 승천(昇天) 소식을 듣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들 중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최근에 갈릴리에 머물렀다가 돌아올 때, 그녀도 요한 세베대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오순절 직후 벳새다에 있는 살로메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의 동생 야고보 역시 이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이 모임은 주(主)님의 지상 생애를 마친 후 제자들이 소집한 첫 번째 회의(會議)였습니다.

193:6.2 (2058.1) Simon Peter took it upon himself to speak for his fellow apostles and made a thrilling report of the last meeting of the eleven with their Master and most touchingly portrayed the Master’s final farewell and his ascension disappearance. It was a meeting the like of which had never before occurred on this world. This part of the meeting lasted not quite one hour. Peter then explained that they had decided to choose a successor to Judas Iscariot, and that a recess would be granted to enable the apostles to decide between the two men who had been suggested for this position, Matthias and Justus. 시몬 베드로는 자청하여 동료 사도들의 대표로 주님과 열 한 사도들과의 마지막 만남에 대해서 흥미진지하게 설명하였고 주(主)님의 작별 인사와 승천으로 사라지시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런 모임은 일찍이 이 세상에서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모임의 이 부분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설명하여, 이 자리에 천거된 두 사람, 맛디아와 유스도 중에서 사도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휴회(休會)하였습니다.

193:6.3 (2058.2) The eleven apostles then went downstairs, where they agreed to cast lots in order to determine which of these men should become an apostle to serve in Judas’s place. The lot fell on Matthias, and he was declared to be the new apostle. He was duly inducted into his office and then appointed treasurer. But Matthias had little part in the subsequent activities of the apostles. 그 후 열 한 사도들은 아래층으로 내려가, 두 사람 중에서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가 될 사람을 결정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기로 동의하였습니다. 맛디아가 뽑혀, 그는 새 사도로 선언되었습니다. 그는 정식으로 사도의 직책을 받은 후 회계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맛디아는 거의 사도 활동의 역할이 없었습니다.

193:6.4 (2058.3) Soon after Pentecost the twins returned to their homes in Galilee. Simon Zelotes was in retirement for some time before he went forth preaching the gospel. Thomas worried for a shorter period and then resumed his teaching. Nathaniel differed increasingly with Peter regarding preaching about Jesus in the place of proclaiming the former gospel of the kingdom. This disagreement became so acute by the middle of the following month that Nathaniel withdrew, going to Philadelphia to visit Abner and Lazarus; and after tarrying there for more than a year, he went on into the lands beyond Mesopotamia preaching the gospel as he understood it. 오순절 후 쌍둥이 형제는 갈릴리에 있는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열심당 시몬은 복음을 전도하러 나가기 전에 한 동안 조용히 쉬었습니다. 도마는 그 보다 짧게 고민하다가 다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다니엘은 예전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대신에 예수에 대해 설교하는 것에 대해서 베드로와 갈수록 의견을 달리했습니다. 다음 달 중순경에 이 의견 차이가 너무 깊어져서, 나다니엘이 물러나, 아브너와 나사로를 만나기 위해 필라델피아로 갔으며, 거기서 일 년 이상 머문 후에, 메소포타미아 건너편 땅으로 가서 자신이 이해하는 대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193:6.5 (2058.4) This left but six of the original twelve apostles to become actors on the stage of the early proclamation of the gospel in Jerusalem: Peter, Andrew, James, John, Philip, and Matthew. 원래 12 사도 중 남은 6명만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선포했던 초기 무대에서 배우들이 되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그리고 마태가 그들이었습니다.

193:6.6 (2058.5) Just about noon the apostles returned to their brethren in the upper chamber and announced that Matthias had been chosen as the new apostle. And then Peter called all of the believers to engage in prayer, prayer that they might be prepared to receive the gift of the spirit which the Master had promised to send. 바로 정오 무렵에 사도들은 다락방의 형제들에게 돌아와 맛디아가 새 사도로 선출되었음을 공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베드로는 모든 신자들에게, 주(主)께서 보내겠다고 약속한 영의 선물을 받기 위한 준비를 위해 기도에 동참하도록 초청했습니다.

Paper 194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진리의 영 증여(贈與)

Paper 194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진리의 영 증여(與)

161030 진리의 영1 – 하나님 나라의 복음 행2:1-3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194:0.1 (2059.1) ABOUT one o’clock, as the one hundred and twenty believers were engaged in prayer, they all became aware of a strange presence in the room. At the same time these disciples all became conscious of a new and profound sense of spiritual joy, security, and confidence. This new consciousness of spiritual strength was immediately followed by a strong urge to go out and publicly proclaim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the good news that Jesus had risen from the dead. 약 1시 경에, 120명의 신자들이 기도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들 모두 이상한 존재가 그 방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이 제자들은 모두 영적 기쁨과 안심함 그리고 확신을 주는 새로운 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적인 힘을 새롭게 느끼게 되자, 이들은 즉시 밖에 나가서 공개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하셨다는 새로운 소식을 선포하려는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194:0.2 (2059.2) Peter stood up and declared that this must be 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which the Master had promised them and proposed that they go to the temple and begin the proclamation of the good news committed to their hands. And they did just what Peter suggested. 베드로가 일어서서, 이것이 바로 주(主)님께서 자기들에게 약속하셨던 진리의 영이 오신 것이 분명하다고 선언하고, 그들이 성전에 가서 자신들의 손에 맡겨진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시작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베드로가 제안한 그대로 했습니다.

194:0.3 (2059.3) These men had been trained and instructed that the gospel which they should preach was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sonship of man, but at just this moment of spiritual ecstasy and personal triumph, the best tidings, the greatest news, these men could think of was the fact of the risen Master. And so they went forth, endowed with power from on high, preaching glad tidings to the people — even salvation through Jesus — but they unintentionally stumbled into the error of substituting some of the facts associated with the gospel for the gospel message itself. Peter unwittingly led off in this mistake, and others followed after him on down to Paul, who created a new religion out of the new version of the good news.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포해야할 복음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사람의 자녀 관계라고 훈련과 가르침을 받았지만, 영적 환희와 개인적 승리를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었던 가장 최상의 소식, 가장 큰 뉴스는 주께서 부활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위로부터 권능을 받아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 – 예수님을 통한 구원까지 전파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뜻하지 않게 복음의 내용 자체를 복음과 관련된 몇 가지 사실들로 바꾸어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게 앞장서서 이런 잘못을 행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그를 따랐으며, 바울에게까지 이어져, 바울은 기쁜 소식을 새롭게 해석한 새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194:0.4 (2059.4) The gospel of the kingdom is: the fact of the fatherhood of God, coupled with the resultant truth of the sonship-brotherhood of men. Christianity, as it developed from that day, is: the fact of God as the Father of the Lord Jesus Christ, in association with the experience of believer-fellowship with the risen and glorified Christ.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의 사실과, 이와 함께 그 결과 인간의 아들됨과 형제 신분이라는 진리입니다. 기독교는 그 날부터 발전하여, 부활로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와 믿는 자들이 친교를 나누는 경험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194:0.5 (2059.5) It is not strange that these spirit-infused men should have seized upon this opportunity to express their feelings of triumph over the forces which had sought to destroy their Master and end the influence of his teachings. At such a time as this it was easier to remember their personal association with Jesus and to be thrilled with the assurance that the Master still lived, that their friendship had not ended, and that the spirit had indeed come upon them even as he had promised. 영에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이, 주(主)님을 죽이고 그의 가르침의 영향을 없애려 했던 세력을 이겼다는 승리의 느낌을 드러낼 이 기회를 잡은 것은 당연합니다. 이와 같은 시기에, 그들은 예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기억하고, 주님께서 여전히 살아계셔서 자신들과의 사귐이 끝나지 않았으며, 그의 약속대로 그 영이 정말로 자신들에게 오셨다는 확신으로 감동되는 것이 훨씬 쉬웠습니다.

194:0.6 (2059.6) These believers felt themselves suddenly translated into another world, a new existence of joy, power, and glory. The Master had told them the kingdom would come with power, and some of them thought they were beginning to discern what he meant. 이 신자들은 자신들이 갑자기 기쁨과 권능 그리고 영광이 존재하는 다른 세상으로 옮겨졌음을 느꼈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할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고, 그들 중 몇 몇은 그가 무슨 의미로 말씀하셨는지 깨닫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습니다.

194:0.7 (2059.7) And when all of this is taken into consideration, it is not difficult to understand how these men came to preach a new gospel about Jesus in the place of their former message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en. 이러한 모든 것들을 고려하면, 어떻게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인간의 형제 신분이라는 이전의 메시지 대신에 예수님에 대한 새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The Pentecost Sermon 오순절 설교

161106 진리의 영2 – 오순절 설교 행2:36-41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194:1.1 (2060.1) The apostles had been in hiding for forty days. This day happened to be the Jewish festival of Pentecost, and thousands of visitors from all parts of the world were in Jerusalem. Many arrived for this feast, but a majority had tarried in the city since the Passover. Now these frightened apostles emerged from their weeks of seclusion to appear boldly in the temple, where they began to preach the new message of a risen Messiah. And all the disciples were likewise conscious of having received some new spiritual endowment of insight and power. 사도들은 40일 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이 날은 유대인의 오순절(五旬節) 축제일로서 세계 각지로부터 수천 명의 방문자들이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축제를 위해 왔지만, 대부분은 유월절 이후에도 그 도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두려워하던 사도들이 몇 주간의 은거에서 벗어나 이제 대담하게 성전에 나타나, 그곳에서 부활한 메시아의 새 메시지를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제자들도 똑같이 어떤 새로운 영적 통찰력과 권능이 자신들에게 부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94:1.2 (2060.2) It was about two o’clock when Peter stood up in that very place where his Master had last taught in this temple, and delivered that impassioned appeal which resulted in the winning of more than two thousand souls. The Master had gone, but they suddenly discovered that this story about him had great power with the people. No wonder they were led on into the further proclamation of that which vindicated their former devotion to Jesus and at the same time so constrained men to believe in him. Six of the apostles participated in this meeting: Peter, Andrew, James, John, Philip, and Matthew. They talked for more than an hour and a half and delivered messages in Greek, Hebrew, and Aramaic, as well as a few words in even other tongues with which they had a speaking acquaintance. 베드로가 오후 2시 쯤 주님께서 이 성전에서 마지막으로 가르치셨던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열정적으로 호소했고, 그 결과 거의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떠나 가셨지만, 사도들은, 그에 관한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큰 권능이 있음을 갑작스럽게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예전에 자신들이 예수님께 드렸던 헌신이 올바른 것임을 주장하였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더 나아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강요하는 선포로 당연히 이끌렸습니다. 이 모임에 참여한 여섯 명의 사도들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그리고 마태였습니다. 그들은 1시간 30분 이상 이야기하면서, 헬라어, 히브리어 그리고 아람어로 메시지를 전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익숙한 다른 언어로도 몇 마디씩 설교하였습니다.

194:1.3 (2060.3) The leaders of the Jews were astounded at the boldness of the apostles, but they feared to molest them because of the large numbers who believed their story. 유대 지도자들은 사도들의 대담함에 놀랐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믿었기 때문에 그들을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194:1.4 (2060.4) By half past four o’clock more than two thousand new believers followed the apostles down to the pool of Siloam, where Peter, Andrew, James, and John baptized them in the Master’s name. And it was dark when they had finished with baptizing this multitude. 4시 30분 쯤 2,000명이 넘는 새 신자들은 사도들을 따라 실로암 연못으로 내려갔고, 거기에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주(主)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했습니다. 해질 녘이 되어서야, 그들은 이 사람들에게 주던 세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194:1.5 (2060.5) Pentecost was the great festival of baptism, the time for fellowshipping the proselytes of the gate, those gentiles who desired to serve Yahweh. It was, therefore, the more easy for large numbers of both the Jews and believing gentiles to submit to baptism on this day. In doing this, they were in no way disconnecting themselves from the Jewish faith. Even for some time after this the believers in Jesus were a sect within Judaism. All of them, including the apostles, were still loyal to the essential requirements of the Jewish ceremonial system. 오순절은 타종교에서 유대교로 개종하여 야훼를 섬기려는 이방인들 즉 할례의 의무가 없는 개종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기간으로 세례의 큰 축제였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무리의 유대인들과 믿는 이방인들이 이 날의 세례에 참여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유대의 신앙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 한 동안까지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유대교의 한 분파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도들을 포함하여 그들 모두 유대의 의식적(儀式的) 체계의 기본 요구들을 여전히 신봉하였습니다.

2. The Significance of Pentecost 오순절의 의미

161113 진리의 영3 – 오순절의 의미 1 요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94:2.1 (2060.6) Jesus lived on earth and taught a gospel which redeemed man from the superstition that he was a child of the devil and elevated him to the dignity of a faith son of God. Jesus’ message, as he preached it and lived it in his day, was an effective solvent for man’s spiritual difficulties in that day of its statement. And now that he has personally left the world, he sends in his place his Spirit of Truth, who is designed to live in man and, for each new generation, to restate the Jesus message so that every new group of mortals to appear upon the face of the earth shall have a new and up-to-date version of the gospel, just such personal enlightenment and group guidance as will prove to be an effective solvent for man’s ever-new and varied spiritual difficulties. 예수님은 세상에 사시면서, 사람은 마귀의 자녀라는 미신에서 건져서 하나님의 신앙의 자녀라는 품격으로 사람을 높이는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의 메시지는, 당대에 설교하고 실천하신 것처럼, 그것이 진술된 그 시대 사람의 영적 고난들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개인적으로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대신 진리의 영을 보내셨습니다. 진리의 영은 사람 안에서 살아가시도록 작정되었고, 각각의 새로운 세대들에게 예수의 메시지를 다시 진술하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새로운 집단들이, 새로운 최첨단 해석 버전의 복음을 가지고, 바로 그렇게 개인적으로 깨우치고, 집단적으로 안내를 받아, 그 복음이 언제나 새롭게 발생하는 다양한 영적 어려움들을 위한 효과적인 해결책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할 것입니다.

194:2.2 (2060.7) The first mission of this spirit is, of course, to foster and personalize truth, for it is the comprehension of truth that constitutes the highest form of human liberty. Next, it is the purpose of this spirit to destroy the believer’s feeling of orphanhood. Jesus having been among men, all believers would experience a sense of loneliness had not the Spirit of Truth come to dwell in men’s hearts. 이 영의 첫 번째 사명은 당연히 진리를 길러 개인화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최상의 형태로 인간 해방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진리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이 영의 목적은 신자들 자신이 고아(孤兒)라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진리의 영이 사람들의 마음에 내주하시기 위해 오시지 않았다면, 모든 신자들은 고독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194:2.3 (2061.1) This bestowal of the Son’s spirit effectively prepared all normal men’s minds for the subsequent universal bestowal of the Father’s spirit (the Adjuster) upon all mankind. In a certain sense, this Spirit of Truth is the spirit of both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Creator Son. 아들의 영을 이렇게 주셔서, 뒤를 이어 모든 인류가 우주적으로 주시는 아버지의 영(조절자)을 받을 수 있도록 일반적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효과적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진리의 영은 우주 아버지와 창조주 아들 두 분의 영이십니다.

194:2.4 (2061.2) Do not make the mistake of expecting to become strongly intellectually conscious of the outpoured Spirit of Truth. The spirit never creates a consciousness of himself, only a consciousness of Michael, the Son. From the beginning Jesus taught that the spirit would not speak of himself. The proof, therefore, of your fellowship with the Spirit of Truth is not to be found in your consciousness of this spirit but rather in your experience of enhanced fellowship with Michael. 부어진 진리의 영을 지적으로 강하게 인식되기를 기대하는 오류를 범하지 마십시오. 그 영은 결코 자신을 의식(意識)하게 하지 않으며, 오직 아들이신 예수님만 의식하게 하십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그 영이 스스로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과 우리가 친교를 나누는 증거는 이 영에 대한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예수님과의 더욱 강화된 친교의 체험 속에서 발견됩니다.

194:2.5 (2061.3) The spirit also came to help men recall and understand the words of the Master as well as to illuminate and reinterpret his life on earth. 이 영은 또한 사람이 주(主)의 말씀을 기억하고 이해하도록 도우며, 이 세상에서의 예수님의 일생을 조명하고 재해석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194:2.6 (2061.4) Next, the Spirit of Truth came to help the believer to witness to the realities of Jesus’ teachings and his life as he lived it in the flesh, and as he now again lives it anew and afresh in the individual believer of each passing generation of the spirit-filled sons of God. 다음으로, 진리의 영은, 예수께서 육체로 사셨던 것처럼, 신자가 예수님의 가르침들과 그 일생의 실체들을 증거하도록 돕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지금 다시 사시는 것처럼, 지나가는 각 세대에서, 영으로 충만해진 하나님 자녀들 즉 각 개별 신자 안에서 새롭게 그리고 신선하게 그 실체들이 증언됩니다.

194:2.7 (2061.5) Thus it appears that the Spirit of Truth comes really to lead all believers into all truth, into the expanding knowledge of the experience of the living and growing spiritual consciousness of the reality of eternal and ascending sonship with God. 그렇게, 진리의 영은 진실로 모든 신자들을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고, 영원히 상승하는 하나님의 아들관계에 대해 생생하게 더욱 더 영적으로 의식하는 체험을 아는 확대된 지식으로 인도하려고 오셨습니다.

161127 진리의 영4 – 오순절의 의미 2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194:2.8 (2061.6) Jesus lived a life which is a revelation of man submitted to the Father’s will, not an example for any man literally to attempt to follow. This life in the flesh, together with his death on the cross and subsequent resurrection, presently became a new gospel of the ransom which had thus been paid in order to purchase man back from the clutch of the evil one — from the condemnation of an offended God. Nevertheless, even though the gospel did become greatly distorted, it remains a fact that this new message about Jesus carried along with it many of the fundamental truths and teachings of his earlier gospel of the kingdom. And, sooner or later, these concealed truths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en will emerge to effectually transform the civilization of all mankind.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그 사람을 드러내는 일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문자 그대로 따르는 모델로 살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육체로 사신 이 생애는 십자가 위의 죽으심과 연이어 일어난 부활과 함께, 현재 구속이라는 새로운 복음이 되었습니다. 구속은 마귀의 손아귀 즉 분노하는 하나님의 유죄 판결로부터, 인간을 다시 사기 위해 그렇게 몸값이 지불되었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복음이 크게 왜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에 대한 이 새로운 메시지가 그의 초기 하나님 나라 복음의 근본적 진리와 가르침을 많이 지녔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사람들의 형제 신분이라는 감추어진 이 진리들이 모든 인류의 문명을 효과적으로 변환시키기 위해 세상에 드러날 것입니다.

194:2.9 (2061.7) But these mistakes of the intellect in no way interfered with the believer’s great progress in growth in spirit. In less than a month after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the apostles made more individual spiritual progress than during their almost four years of personal and loving association with the Master. Neither did this substitution of the fact of the resurrection of Jesus for the saving gospel truth of sonship with God in any way interfere with the rapid spread of their teachings; on the contrary, this overshadowing of Jesus’ message by the new teachings about his person and resurrection seemed greatly to facilitate the preaching of the good news. 그러나 이 지적인 오류들은 신자의 영적 성장에 대한 괄목할만한 진보에 있어서 어떤 면으로든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진리의 영을 받은 후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거의 4년에 걸쳐서 주님과 개인적으로 보냈던 사랑하는 관계보다 개별적으로 볼 때 훨씬 더 영적으로 진보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신분이라는 구원의 복음을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사실로 대체한 것도 신속히 퍼져나가는 그들의 가르침에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그의 인물과 부활에 관한 새로운 가르침으로 인하여 예수의 메시지에 드리워진 이 그늘이 오히려 기쁜 소식의 전파를 크게 촉진시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194:2.10 (2061.8) The term “baptism of the spirit,” which came into such general use about this time, merely signified the conscious reception of this gift of the Spirit of Truth and the personal acknowledgment of this new spiritual power as an augmentation of all spiritual influences previously experienced by God-knowing souls. 이 무렵 “영의 세례(洗禮)”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하게 되었는데, 단지 진리의 영이라는 이 선물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였습니다. 또한 이 용어는 하나님을 아는 혼들이 이전에 체험하였던 모든 영적인 영향력이 새로운 이 영적 권능으로 증대되었음을 개인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였습니다.

194:2.11 (2061.9) Since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man is subject to the teaching and guidance of a threefold spirit endowment: the spirit of the Father, the Thought Adjuster; the spirit of the Son, the Spirit of Truth; the spirit of the Spirit, the Holy Spirit. 진리의 영이 주어진 이후, 사람은 삼중적 영 즉, 아버지의 영(생각 조절자), 아들의 영(진리의 영), 영의 영(성령)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194:2.12 (2062.1) In a way, mankind is subject to the double influence of the sevenfold appeal of the universe spirit influences. The early evolutionary races of mortals are subject to the progressive contact of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of the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As man progresses upward in the scale of intelligence and spiritual perception, there eventually come to hover over him and dwell within him the seven higher spirit influences. And these seven spirits of the advancing worlds are: 어떤 면에서, 인류는 우주 영의 영향력이 주는 일곱 가지로 중복된 매력의 영향력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초기 진화 종족들은 지역 우주 어머니 영이 주는 일곱 보조 마음-영들의 진보적 접촉 아래에 있었습니다. 사람이 지적 등급과 영적 인식이 상향으로 진보하면 결국 일곱 가지의 더 높은 영의 영향이 그에게 와서 내주합니다. 진보하는 세계의 이러한 일곱 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94:2.13 (2062.2) 1. The bestowed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 — the Thought Adjusters. 우주 아버지의 영(靈)─생각조절자.

194:2.14 (2062.3) 2. The spirit presence of the Eternal Son — the spirit gravity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and the certain channel of all spirit communion. 영원하신 아들의 영 현존─우주들의 우주의 영 중력과 모든 영 교제의 확실한 경로.

194:2.15 (2062.4) 3. The spirit presence of the Infinite Spirit — the universal spirit-mind of all creation, the spiritual source of the intellectual kinship of all progressive intelligences. 무한 영(靈)의 영 현존─모든 창조의 우주 영-마음, 진보하는 모든 지능들의 지적 유사성의 영적 근원.

194:2.16 (2062.5) 4. The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Creator Son — the Spirit of Truth, generally regarded as the spirit of the Universe Son. 우주 아버지와 창조주 아들의 영─일반적으로 우주 아들의 영으로 간주되는 진리의 영.

194:2.17 (2062.6) 5. The spirit of the Infinite Spirit and the Universe Mother Spirit — the Holy Spirit, generally regarded as the spirit of the Universe Spirit. 무한 영(靈)의 영과 우주 어머니 영의 영─일반적으로 우주 영의 영으로 간주되는 성령.

194:2.18 (2062.7) 6. The mind-spirit of the Universe Mother Spirit —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of the local universe. 우주 어머니 영의 마음-영 ─ 지역 우주의 일곱 보조 마음-영들.

194:2.19 (2062.8) 7. The spirit of the Father, Sons, and Spirits — the new-name spirit of the ascending mortals of the realms after the fusion of the mortal spirit-born soul with the Paradise Thought Adjuster and after the subsequent attainment of the divinity and glorification of the status of the Paradise Corps of the Finality. 아버지, 아들들 그리고 영들의 영─영으로 태어난 사람의 혼과 천국 생각조절자의 융합 이후 그리고 그에 따라 나중에 천국 최종단의 지위에서의 신성과 영광을 달성한 후, 영역들에서 상승하는 사람이 받는 새로운-이름의 영.

194:2.20 (2062.9) And so did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bring to the world and its peoples the last of the spirit endowment designed to aid in the ascending search for God. 그래서 그렇게 진리의 영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주어져서 하나님을 찾는 상승을 돕기 위해 계획된 최종적 영의 부으심이 일어났습니다.

3. What Happened at Pentecost 오순절에 발생한 일

161204 진리의 영5 – 오순절에 발생한 일 1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194:3.1 (2062.10) Many queer and strange teachings became associated with the early narratives of the day of Pentecost. In subsequent times the events of this day, on which the Spirit of Truth, the new teacher, came to dwell with mankind, have become confused with the foolish outbreaks of rampant emotionalism. The chief mission of this outpoured spirit of the Father and the Son is to teach men about the truths of the Father’s love and the Son’s mercy. These are the truths of divinity which men can comprehend more fully than all the other divine traits of character. The Spirit of Truth is concerned primarily with the revelation of the Father’s spirit nature and the Son’s moral character. The Creator Son, in the flesh, revealed God to men; the Spirit of Truth, in the heart, reveals the Creator Son to men. When man yields the “fruits of the spirit” in his life, he is simply showing forth the traits which the Master manifested in his own earthly life. When Jesus was on earth, he lived his life as one personality — Jesus of Nazareth. As the indwelling spirit of the “new teacher,” the Master has, since Pentecost, been able to live his life anew in the experience of every truth-taught believer. 가치 없고 이상한 많은 가르침들이 오순절 날의 초기 이야기들과 연관 되었습니다. 후세에, 인류에 내주하기 위하여 새로운 선생님으로 진리의 영이 왔던 이날의 사건들은 사납게 휩쓸린 감정주의의 어리석은 소동들과 혼동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유출된 이 영의 주된 사명은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자비에 대한 진리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사람들이 다른 모든 성품의 신성한 특징들 보다 더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거룩한 진리들입니다. 진리의 영은 아버지의 영에 대한 본성과 아들의 도덕적인 성품을 계시하는데 주된 관련이 있습니다. 창조주 아들은 육신으로 하나님을 사람에게 계시하였으며, 진리의 영은 마음으로 창조주 아들을 사람들에게 계시합니다. 사람이 일생에 “영의 열매들”을 맺을 때, 그는 단순히 주(主)께서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일생 속에 나타내셨던 그 특징들을 밖으로 나타내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그는 하나의 고유성 – 나사렛 예수 –로서 자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오순절 이후, 주(主)는 “새로운 선생”의 내주하는 영으로서, 진리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신자의 체험 속에서 자신의 새로운 일생을 사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194:3.2 (2062.11) Many things which happen in the course of a human life are hard to understand, difficult to reconcile with the idea that this is a universe in which truth prevails and in which righteousness triumphs. It so often appears that slander, lies, dishonesty, and unrighteousness — sin — prevail. Does faith, after all, triumph over evil, sin, and iniquity? It does. And the life and death of Jesus are the eternal proof that the truth of goodness and the faith of the spirit-led creature will always be vindicated. They taunted Jesus on the cross, saying, “Let us see if God will come and deliver him.” It looked dark on that day of the crucifixion, but it was gloriously bright on the resurrection morning; it was still brighter and more joyous on the day of Pentecost. The religions of pessimistic despair seek to obtain release from the burdens of life; they crave extinction in endless slumber and rest. These are the religions of primitive fear and dread. The religion of Jesus is a new gospel of faith to be proclaimed to struggling humanity. This new religion is founded on faith, hope, and love. 인생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진리가 지배하고, 공의가 승리하는 곳이 우주인데, 이러한 우주에 대한 관념과 조화시켜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너무 자주 죄 – 중상(中傷), 거짓말, 부정직함, 그리고 불의 –가 이기는 듯합니다. 결국에는 신앙이 악, 죄, 그리고 사악함을 이길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일생과 죽음은, 영으로 인도받는 피조물의 선(善)함과 신앙의 진실성이 항상 정당화 될 것이라는 영원한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하나님이 와서 그를 구원하시는지 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되던 그 날은 어둡게 보였지만, 부활의 아침에는 영광스럽게 빛났습니다. 오순절에는 여전히 더욱 빛나고 더욱 기쁨이 넘쳤습니다. 비관적인 절망(絶望)의 종교들은 인생의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기를 추구합니다. 그들은 끝없는 수면과 휴식 안에서 멸절(滅絶)되기를 갈망합니다. 이것들은 원시적인 두려움과 공포에서 비롯된 종교입니다. 예수의 종교는 분투하고 있는 인간들에게 선포해야 하는 새로운 신앙의 복음입니다. 새로운 이 종교는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161211 진리의 영6 – 오순절에 발생한 일 2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Now the Lord is the Spirit, and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freedom.

194:3.3 (2063.1) To Jesus, mortal life had dealt its hardest, cruelest, and bitterest blows; and this man met these ministrations of despair with faith, courage, and the unswerving determination to do his Father’s will. Jesus met life in all its terrible reality and mastered it — even in death. He did not use religion as a release from life. The religion of Jesus does not seek to escape this life in order to enjoy the waiting bliss of another existence. The religion of Jesus provides the joy and peace of another and spiritual existence to enhance and ennoble the life which men now live in the flesh. 그는 삶에서 벗어나려는 도피(逃避)로써 종교를 이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의 종교는 다른 존재가 되어 축복 받을 것이라는 즐거움을 기다리면서 이생의 예수님은 가장 힘들고, 가장 잔혹하고, 가장 비통한 일격(一擊)을 당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신앙과 용기와 확고한 결단력으로 절망적인 이 직무들에 대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끔찍한 모든 삶의 실체를 맞이하여, 죽음까지도 포함에서 그것을 정복하셨습니다. 삶에서 도피하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종교는 사람들이 현재 육신으로 사는 바로 그 삶을 향상시키고 고귀하게 만드는 또 다른 영적 생활의 기쁨과 평강을 제공합니다.

194:3.4 (2063.2) If religion is an opiate to the people, it is not the religion of Jesus. On the cross he refused to drink the deadening drug, and his spirit, poured out upon all flesh, is a mighty world influence which leads man upward and urges him onward. The spiritual forward urge is the most powerful driving force present in this world; the truth-learning believer is the one progressive and aggressive soul on earth. 종교가 인간에게 아편(마취제)이라면, 그것은 예수의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통증 감각을 마비시키는 마취제 마시기를 거절하셨습니다. 모든 육체에게 부어진 그의 영은 사람을 위로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재촉하는 강력한 세계적 영향력입니다. 전진하는 영적 충동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추진력입니다. 진리를 배우는 신자는 지상에서 진보적이며 적극적인 혼을 가진 사람입니다.

194:3.5 (2063.3) On the day of Pentecost the religion of Jesus broke all national restrictions and racial fetters. It is forever true,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On this day the Spirit of Truth became the personal gift from the Master to every mortal. This spirit was bestowed for the purpose of qualifying believers more effectively to preach the gospel of the kingdom, but they mistook the experience of receiving the outpoured spirit for a part of the new gospel which they were unconsciously formulating. 오순절에 예수의 종교는 국가적 제약들과 종족간의 족쇄들을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는 말은 언제까지나 진리입니다. 이 날, 진리의 영은 주(主)께서 모든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주신 선물이 되었습니다. 이 영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도하는 적격(適格)자가 되도록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퍼부어진 영을 받는 체험을, 자신들이 무의식중에 형성하고 있었던 새 복음의 일부로 삼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194:3.6 (2063.4) Do not overlook the fact that the Spirit of Truth was bestowed upon all sincere believers; this gift of the spirit did not come only to the apostles. The one hundred and twenty men and women assembled in the upper chamber all received the new teacher, as did all the honest of heart throughout the whole world. This new teacher was bestowed upon mankind, and every soul received him in accordance with the love for truth and the capacity to grasp and comprehend spiritual realities. At last, true religion is delivered from the custody of priests and all sacred classes and finds its real manifestation in the individual souls of men. 진리의 영이 진실한 모든 신자들에게 증여되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영의 이 선물은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락방에 모여 있던 120명의 남자와 여자들은 모두 이 새로운 선생을 받았으며, 온 세상에서 정직한 심정을 지닌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새로운 선생은 인류에게 수여되었고, 진리를 사랑하고 영적 실체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능력에 따라서 모든 혼(사람)이 그를 받았습니다, 마침내, 참된 종교가 사제(司祭)들과 모든 신성한 계급이 관리하는 상태에서 해방되었으며, 각자 사람(혼) 안에서 참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194:3.7 (2063.5) The religion of Jesus fosters the highest type of human civilization in that it creates the highest type of spiritual personality and proclaims the sacredness of that person. 예수의 종교는 최상의 영적 고유성 유형을 만들고, 그 사람의 신성함을 선포한다는 점에서 최상의 인간 문명 유형을 육성합니다.

161218 진리의 영7 – 오순절에 발생한 일 3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But the Counselor, the Holy Spiri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will teach you all things and will remind you of everything I have said to you.

194:3.8 (2063.6) 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on Pentecost made possible a religion which is neither radical nor conservative; it is neither the old nor the new; it is to be dominated neither by the old nor the young. The fact of Jesus’ earthly life provides a fixed point for the anchor of time, while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provides for the everlasting expansion and endless growth of the religion which he lived and the gospel which he proclaimed. The spirit guides into all truth; he is the teacher of an expanding and always-growing religion of endless progress and divine unfolding. This new teacher will be forever unfolding to the truth-seeking believer that which was so divinely folded up in the person and nature of the Son of Man. 오순절에 진리의 영이 오셔서, 급진적이지도 않고, 보수적이지도 않은 종교가 가능해졌습니다. 그 종교는 오래된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노인들에게 지배되지도 않고, 청년들에게 지배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 생활을 하셨다는 사실은 시간의 닻을 위한 정점(定點)을 제공합니다. 반면에 진리의 영의 수여(授與: 베풀어 주심)는 주님께서 사셨던 종교와 선포하셨던 복음의 영속적인 확장과 끝없는 성장을 마련합니다. 그 영은 모든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그는 끝없는 진보와 신성이 펼쳐져서 확장되고 항상 성장하는 종교의 선생입니다. 이 새로운 선생은 진리를 찾는 신자에게, 사람의 아들의 인격과 성품 안에 신성하게 감춰진 것을 언제까지나 펼쳐줄 것입니다.

194:3.9 (2064.1) The manifestations associated with the bestowal of the “new teacher,” and the reception of the apostles’ preaching by the men of various races and nations gathered together at Jerusalem, indicate the universality of the religion of Jesus. The gospel of the kingdom was to be identified with no particular race, culture, or language. This day of Pentecost witnessed the great effort of the spirit to liberate the religion of Jesus from its inherited Jewish fetters. Even after this demonstration of pouring out the spirit upon all flesh, the apostles at first endeavored to impose the requirements of Judaism upon their converts. Even Paul had trouble with his Jerusalem brethren because he refused to subject the gentiles to these Jewish practices. No revealed religion can spread to all the world when it makes the serious mistake of becoming permeated with some national culture or associated with established racial, social, or economic practices. “새로운 선생”의 증여(贈與:선물로 주심)와 관련되어 나타난 현상들과, 예루살렘에 함께 모였던 여러 인종과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도들의 설교를 받아들인 것은, 예수의 종교가 지닌 보편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특정한 인종, 문화 또는 언어와 동일시(同一視)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순절 바로 이 날에 그 영의 위대한 수고로 예수의 종교는, 이어져 왔던 유대교의 사슬에서 분명히 해방되었습니다. 비록 모든 육체에 영이 부어졌음이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처음 개종자들에게 유대교의 요구조건들을 부과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심지어 바울도 이 예루살렘 형제들과 다투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이 유대 관습에 복종되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계시(啓示) 종교는 어떤 민족 문화에 젖어 들거나, 확립된 인종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관습과 연결되는 심각한 잘못에 빠질 때에는 온 세상에 퍼질 수 없습니다.

194:3.10 (2064.2) The bestowal of the Spirit of Truth was independent of all forms, ceremonies, sacred places, and special behavior by those who received the fullness of its manifestation. When the spirit came upon those assembled in the upper chamber, they were simply sitting there, having just been engaged in silent prayer. The spirit was bestowed in the country as well as in the city. It was not necessary for the apostles to go apart to a lonely place for years of solitary meditation in order to receive the spirit. For all time, Pentecost disassociates the idea of spiritual experience from the notion of especially favorable environments. 진리의 영의 수여는 어떤 형식들, 의식(儀式)들, 거룩한 장소들, 그리고 그 영이 나타남을 충분히 받았던 사람들의 특별한 행위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 영이 임하였을 때, 그들은 단지 거기에 앉아서, 아무 말 없이 기도에 막 들어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영은 도시에서 뿐만이 아니라 시골에서도 주어졌습니다. 사도들은 그 영을 받기 위해 뿔뿔이 헤어져 외로운 곳에서 몇 년씩 고독하게 묵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순절은 영적 체험의 개념이 특별히 유리한 환경에서 얻어진다는 관념으로부터 언제나 분리시킵니다.

194:3.11 (2064.3) Pentecost, with its spiritual endowment, was designed forever to loose the religion of the Master from all dependence upon physical force; the teachers of this new religion are now equipped with spiritual weapons. They are to go out to conquer the world with unfailing forgiveness, matchless good will, and abounding love. They are equipped to overcome evil with good, to vanquish hate by love, to destroy fear with a courageous and living faith in truth. Jesus had already taught his followers that his religion was never passive; always were his disciples to be active and positive in their ministry of mercy and in their manifestations of love. No longer did these believers look upon Yahweh as “the Lord of Hosts.” They now regarded the eternal Deity as the “God and Father of the Lord Jesus Christ.” They made that progress, at least, even if they did in some measure fail fully to grasp the truth that God is also the spiritual Father of every individual. 오순절은, 영의 부어주심과 함께, 주(主)님의 종교가 물리적 힘에 조금도 의존하지 않고 영원히 벗어나도록 예정되었습니다. 새로운 이 종교의 선생들은 이제 영적 무기들을 갖추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는 용서, 견줄 수 없는 선한 뜻, 그리고 풍성한 사랑으로 나가서 세상을 정복해야 합니다. 그들은 선으로 악을 이기고, 사랑으로 미움을 정복하며, 진리에 대해 용감하고 살아있는 신앙으로 두려움을 파괴할 장비를 갖추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종교가 결코 소극적(수동적)이 아니라고 이미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자비(慈悲)로 봉사하고 사랑을 드러낼 때, 항상 적극적이고 긍정적이어야 했습니다. 이 신자들은 야훼를 더 이상 “만군의 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영원한 신(神)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또한 모든 각 개인의 영적 아버지라는 진리를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어느 정도 실패했지만, 적어도 거기까지는 진보했습니다.

194:3.12 (2064.4) Pentecost endowed mortal man with the power to forgive personal injuries, to keep sweet in the midst of the gravest injustice, to remain unmoved in the face of appalling danger, and to challenge the evils of hate and anger by the fearless acts of love and forbearance. Urantia has passed through the ravages of great and destructive wars in its history. All participants in these terrible struggles met with defeat. There was but one victor; there was only one who came out of these embittered struggles with an enhanced reputation — that was Jesus of Nazareth and his gospel of overcoming evil with good. The secret of a better civilization is bound up in the Master’s teachings of the brotherhood of man, the good will of love and mutual trust. 오순절은 사람에게 개인적 상처를 용서하고, 가장 지독한 불공평의 상황에서도 부드러움을 유지하며, 무시무시한 위험에 직면하여서도 여전히 태연하고, 두려움 없이 사랑과 인내의 행위로 미움과 분노의 악을 도전하는 권능을 주었습니다. 이 땅은 역사(歷史) 속에서 엄청나고 파괴적인 전쟁들에 의한 참혹한 피해들을 겪어 왔습니다. 이 끔찍한 투쟁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패배했습니다. 승자(勝者)는 오직 하나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비참한 투쟁들로부터, 높은 명성과 함께 떠오른 유일한 승자는 – 나사렛 예수와, 선으로 악을 정복하는 그의 복음뿐이었습니다. 보다 나은 문명에 대한 비결은 사람의 형제신분에 대한 주(主)님의 가르침들, 즉 사랑하고 서로 신뢰하는 선한 뜻 안에 깊이 묻혀 있습니다.

16-17 진리의 영(8) – 오순절에 발생한 일 4 요일 2:21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I do not write to you because you do not know the truth, but because you do know it and because no lie comes from the truth.

194:3.13 (2065.1) Up to Pentecost, religion had revealed only man seeking for God; since Pentecost, man is still searching for God, but there shines out over the world the spectacle of God also seeking for man and sending his spirit to dwell within him when he has found him. 오순절까지 종교는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을 드러냈을 뿐이지만, 오순절 이후로,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을 찾지만,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찾으시고 그를 발견한 후에는 그 안에 내주하도록 자신의 영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장관(壯觀)을 온 세상에 비추고 있습니다.

194:3.14 (2065.2) Before the teachings of Jesus which culminated in Pentecost, women had little or no spiritual standing in the tenets of the older religions. After Pentecost, in the brotherhood of the kingdom woman stood before God on an equality with man. Among the one hundred and twenty who received this special visitation of the spirit were many of the women disciples, and they shared these blessings equally with the men believers. No longer can man presume to monopolize the ministry of religious service. The Pharisee might go on thanking God that he was “not born a woman, a leper, or a gentile,” but among the followers of Jesus woman has been forever set free from all religious discriminations based on sex. Pentecost obliterated all religious discrimination founded on racial distinction, cultural differences, social caste, or sex prejudice. No wonder these believers in the new religion would cry out, “Where the spirit of the Lord is, there is liberty.” 오순절에서 절정에 이른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기 이전에, 여인들은 오래된 여러 종교의 교리에서 영적 지위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었습니다. 오순절 이후에, 여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형제 신분으로 남자들과 동등하게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영을 이렇게 특별히 체험한 120명 중에 여(女)제자들이 많이 있었으며, 그들은 남성 신자들과 똑같이 이 축복을 누렸습니다. 남자들은 이제 종교적 예배 사역에 있어서 더 이상 독점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여자나 한센병(Hansen病) 환자 또는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계속 감사드릴지 모르지만,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 중에서 여자는 성(性)에 근거를 둔 온갖 종교적 차별에서 언제까지나 해방되었습니다. 오순절은 인종적 구별, 문화적 차이들, 사회적 특권계급, 또는 성(性)적 편견에 근간을 둔 모든 종교적 차별을 없애버렸습니다. 새 종교를 믿는 이 사람들이 “주(主)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고 외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94:3.15 (2065.3) Both the mother and brother of Jesus were present among the one hundred and twenty believers, and as members of this common group of disciples, they also received the outpoured spirit. They received no more of the good gift than did their fellows. No special gift was bestowed upon the members of Jesus’ earthly family. Pentecost marked the end of special priesthoods and all belief in sacred families.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도 120명의 신자들 속에 있었으며, 그들도 이러한 보통 제자들의 일원으로서 부어진 영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동료들이 받은 것보다 좋은 선물을 더 많이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집안 식구라고 해서 특별한 선물이 주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오순절은 특별한 사제(司祭) 신분과 거룩하게 여겨지는 가계(家系)에 대한 모든 믿음을 종식(終熄)시켰습니다.

194:3.16 (2065.4) Before Pentecost the apostles had given up much for Jesus. They had sacrificed their homes, families, friends, worldly goods, and positions. At Pentecost they gave themselves to God, and the Father and the Son responded by giving themselves to man — sending their spirits to live within men. This experience of losing self and finding the spirit was not one of emotion; it was an act of intelligent self-surrender and unreserved consecration. 오순절 이전에 사도들은 예수님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했었습니다. 그들은 집, 가족, 친구, 세상의 재물과 지위를 희생했습니다. 오순절에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고, 아버지와 아들은 그 응답으로 사람들 안에 내주하도록 자신들의 영을 보내셔서 자신들을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자아(自我)를 버리고 영(靈)을 얻는 이 체험은 감정의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적으로 자아를 포기하고 조건 없이 헌신하는 행동이었습니다.

194:3.17 (2065.5) Pentecost was the call to spiritual unity among gospel believers. When the spirit descended on the disciples at Jerusalem, the same thing happened in Philadelphia, Alexandria, and at all other places where true believers dwelt. It was literally true that “there was but one heart and soul among the multitude of the believers.” The religion of Jesus is the most powerful unifying influence the world has ever known. 오순절은 복음을 믿는 자들 사이에 있는 영적 일치(一致)에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 영이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에게 임하였을 때와 똑같은 일이 필라델피아와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참된 신자들이 거주하는 모든 다른 장소들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믿는 회중 사이에 오로지 한 가지 심정과 혼이 있었다.”는 표현은 글자 그대로 진실이었습니다. 예수의 종교는 세상이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통합하는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194:3.18 (2065.6) Pentecost was designed to lessen the self-assertiveness of individuals, groups, nations, and races. It is this spirit of self-assertiveness which so increases in tension that it periodically breaks loose in destructive wars. Mankind can be unified only by the spiritual approach, and the Spirit of Truth is a world influence which is universal. 오순절은 개인, 집단, 국가, 종족들의 자기-주장을 줄이도록 예정되었습니다. 이러한 자기-주장의 정신은 긴장을 고조(高調)시켜 주기적인 파괴적 전쟁으로 터져 나오게 합니다. 인류는 영적 접근을 통해서만 통합될 수 있으며, 진리의 영은 우주적인 세상의 영향력입니다.

194:3.19 (2065.7) The coming of the Spirit of Truth purifies the human heart and leads the recipient to formulate a life purpose single to the will of God and the welfare of men. The material spirit of selfishness has been swallowed up in this new spiritual bestowal of selflessness. Pentecost, then and now, signifies that the Jesus of history has become the divine Son of living experience. The joy of this outpoured spirit, when it is consciously experienced in human life, is a tonic for health, a stimulus for mind, and an unfailing energy for the soul. 진리의 영의 오심은 인간의 심정을 깨끗이 하고, 받아들이는 자들을 인도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과 사람들의 복지(행복)에 대한 단 하나의 일생의 목적을 형성하게 합니다. 이기심(利己心)이라는 물질적 정신은 이기심 없는 이 새로운 영적 증여 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습니다. 오순절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역사의 예수께서 생생하게 체험하는 신적 아들이 되셨음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부어주신 영의 기쁨은, 인간 일생을 통해 의식적으로 겪을 때, 건강을 위해서는 큰 힘이 되고, 마음에는 자극이 되며, 혼을 위해서는 한없는 에너지가 됩니다.

194:3.20 (2065.8) Prayer did not bring the spirit on the day of Pentecost, but it did have much to do with determining the capacity of receptivity which characterized the individual believers. Prayer does not move the divine heart to liberality of bestowal, but it does so often dig out larger and deeper channels wherein the divine bestowals may flow to the hearts and souls of those who thus remember to maintain unbroken communion with their Maker through sincere prayer and true worship. 기도로 오순절에 영이 임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도는 개별적 신자들을 특징짓는 수용(受容)성의 능력을 결정하는 데에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기도가 신(神)의 심정을 움직여 아낌없이 주도록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신실한 기도와 참된 경배를 통하여 창조자와 중단 없이 계속 교통하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혼(魂)으로 신께서 주시는 것들이 흘러갈 수 있도록 확대되고 깊어진 통로를 자주 만들어 냅니다.

4. Beginnings of the Christian Church 기독교회의 시작

170101 진리의 영(9) – 기독교의 시작 1 행2:32-33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God has raised this Jesus to life, and we are all witnesses of the fact. 33 Exalted to the right hand of God, he has received from the Father the promised Holy Spirit and has poured out what you now see and hear.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 대신에 복음에 대한 생생한 예증적 주석(해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아님
194:4.1 (2066.1) When Jesus was so suddenly seized by his enemies and so quickly crucified between two thieves, his apostles and disciples were completely demoralized. The thought of the Master, arrested, bound, scourged, and crucified, was too much for even the apostles. They forgot his teachings and his warnings. He might, indeed, have been “a prophet mighty in deed and word before God and all the people,” but he could hardly be the Messiah they had hoped would restore the kingdom of Israel. 예수께서 그렇게 갑자기 적들에게 붙잡히셨으며, 그렇게 빨리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사도들과 제자들은 완전히 사기(士氣)가 꺾였습니다. 체포되어, 묶여, 채찍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主)님에 대한 기억 은 사도들에게도 매우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그의 가르침과 경고를 잊었습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눅24:19)”이셨지만, 그들이 바랐던 대로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할 메시아는 도저히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심정에 살아계심 하나님은 마음의 교리가 아니라 혼 안에 살아있는 실재
194:4.2 (2066.2) Then comes the resurrection, with its deliverance from despair and the return of their faith in the Master’s divinity. Again and again they see him and talk with him, and he takes them out on Olivet, where he bids them farewell and tells them he is going back to the Father. He has told them to tarry in Jerusalem until they are endowed with power — until the Spirit of Truth shall come. And on the day of Pentecost this new teacher comes, and they go out at once to preach their gospel with new power. They are the bold and courageous followers of a living Lord, not a dead and defeated leader. The Master lives in the hearts of these evangelists; God is not a doctrine in their minds; he has become a living presence in their souls. 그 후 부활이 오자 절망에서 일어나 주(主)님의 신성에 대한 그들의 신앙이 회복됩니다. 그들은 여러 번 주님을 만나 함께 이야기합니다. 그는 그들을 올리브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그곳에서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간다고 이르십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 와서 그들이 권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무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에 이 새로운 선생이 오시자, 그들은 즉시 새 힘으로 그들의 복음을 전파하러 나갑니다. 그들은 패배하고 죽은 지도자가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을 대담하고 용감하게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주(主)님은 이 복음 전파자들의 가슴(심정)에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 있는 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혼 안에 살아있는 실재이십니다.

초기 신자들의 생활 매일 모여 성찬 찬미 말씀증거
194:4.3 (2066.3) “Day by day they continued steadfastly and with one accord in the temple and breaking bread at home. They took their food with gladness and singleness of heart, praising God and having favor with all the people. They were all filled with the spirit, and they spoke the word of God with boldness. And the multitudes of those who believed were of one heart and soul; and not one of them said that aught of the things which he possessed was his own, and they had all things in common.”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 (행2:46-47a).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4:31b-32).

예수님의 메시지 하나님 나라의 복음 하나님의 아버지 신분 사람의 형제 신분 급격한 변경 사도들의 메시지 부활하신 그리스도
194:4.4 (2066.4) What has happened to these men whom Jesus had ordained to go forth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an? They have a new gospel; they are on fire with a new experience; they are filled with a new spiritual energy. Their message has suddenly shifted to the proclamation of the risen Christ: “Jesus of Nazareth, a man God approved by mighty works and wonders; him, being delivered up by the determinate counsel and foreknowledge of God, you did crucify and slay. The things which God foreshadowed by the mouth of all the prophets, he thus fulfilled. This Jesus did God raise up. God has made him both Lord and Christ. Being, by the right hand of God, exalted and having received from the Father the promise of the spirit, he has poured forth this which you see and hear. Repent, that your sins may be blotted out; that the Father may send the Christ, who has been appointed for you, even Jesus, whom the heaven must receive until the times of the restoration of all things.”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 ,하나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의 형제신분을 나아가 전파하라 고 임명한 이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그들은 새로운 복음을 가졌고, 새로운 체험으로 흥분했으며, 새로운 영적 에너지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급격히 변경되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 못 박아 죽였으나(행2:22-23 ). …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행3:18).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행: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b).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2:33). …너희가 회개하고 …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시리니 …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행3:19-21a).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초림(일생 죽음 부활) 재림
194:4.5 (2066.5)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message of Jesus, had been suddenly changed into the gospel of the Lord Jesus Christ. They now proclaimed the facts of his life, death, and resurrection and preached the hope of his speedy return to this world to finish the work he began. Thus the message of the early believers had to do with preaching about the facts of his first coming and with teaching the hope of his second coming, an event which they deemed to be very near at hand. 하나님 나라의 복음, 예수의 메시지는,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갑자기 변경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그의 일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사실들을 선포하였으며, 그가 시작했던 일을 완성하기 위하여 그가 이 세상으로 속히 돌아오시리라는 희망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래서 초기 신자들의 메시지는 그의 초림(初臨)에 대한 사실들을 전파하는 것과, 그들이 아주 가까운 시간에 일어나리라고 생각하는 사건인, 그의 재림(再臨)에 대한 희망을 가르치는 것과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교리가 됨 예수가 모든 것을 결정 살아계심 죽으심 영 주심 재림 새로운 교리 하나님은 주 예수의 아버지 예수 믿는 자들의 친교 예수를 받은 사랑에서 나옴 옛 교리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늘 아버지의 가족 나라에 속한 형제들의 친교 필사자 사람이 형제라는 인식에서 나옴
194:4.6 (2067.1) Christ was about to become the creed of the rapidly forming church. Jesus lives; he died for men; he gave the spirit; he is coming again. Jesus filled all their thoughts and determined all their new concepts of God and everything else. They were too much enthused over the new doctrine that “God is the Father of the Lord Jesus” to be concerned with the old message that “God is the loving Father of all men,” even of every single individual. True, a marvelous manifestation of brotherly love and unexampled good will did spring up in these early communities of believers. But it was a fellowship of believers in Jesus, not a fellowship of brothers in the family kingdom of the Father in heaven. Their good will arose from the love born of the concept of Jesus’ bestowal and not from the recognition of the brotherhood of mortal man. Nevertheless, they were filled with joy, and they lived such new and unique lives that all men were attracted to their teachings about Jesus. They made the great mistake of using the living and illustrative commentary on the gospel of the kingdom for that gospel, but even that represented the greatest religion mankind had ever known. 그리스도가 급속히 형성되는 교회의 교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살아 계시며, 사람들을 위해 죽으셨고, 영을 주셨으며, 다시 오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모든 생각을 채웠고, 하나님과 그 밖의 모든 것들에 대한 그들의 모든 새로운 개념들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주 예수의 아버지시다.”라는 새로운 교리에 너무 열광한 나머지, 모든 개별존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다.”라는 옛 메시지에 관심을 두지 못했습니다. 형제 사랑과 전례가 없는 선한 뜻이 이러한 초기 신자들의 공동체 속에서 솟아나 놀랍게 표현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를 믿는 신자들의 친교 였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가족 나라에 속하는 형제들의 친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선한 뜻은 예수님의 증여 개념에서 발생된 사랑에서 기인된 것이었으며,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형제라는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쁨으로 가득하였으며, 예수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에 모든 사람들이 매혹되는 그러한 새롭고도 독특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한 생생한 예증적인 주석(해설)을 바로 그 복음 대신에 사용하는 큰 오류를 범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인류가 일찍이 알게 된 가장 위대한 종교였습니다.

170108 진리의 영(10) – 기독교의 시작 2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 apostles’ teaching and to the fellowship, to the breaking of bread and to prayer(Niv).

194:4.7 (2067.2) Unmistakably, a new fellowship was arising in the world. “The multitude who believed continued steadfastly in the apostles’ teaching and fellowship, in the breaking of bread, and in prayers.” They called each other brother and sister; they greeted one another with a holy kiss; they ministered to the poor. It was a fellowship of living as well as of worship. They were not communal by decree but by the desire to share their goods with their fellow believers. They confidently expected that Jesus would return to complete the establishment of the Father’s kingdom during their generation. This spontaneous sharing of earthly possessions was not a direct feature of Jesus’ teaching; it came about because these men and women so sincerely and so confidently believed that he was to return any day to finish his work and to consummate the kingdom. But the final results of this well-meant experiment in thoughtless brotherly love were disastrous and sorrow-breeding. Thousands of earnest believers sold their property and disposed of all their capital goods and other productive assets. With the passing of time, the dwindling resources of Christian “equal-sharing” came to an end — but the world did not. Very soon the believers at Antioch were taking up a collection to keep their fellow believers at Jerusalem from starving. 분명히, 새로운 친교(親交) 모임이 세상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기독교의 시작).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 apostles’ teaching and to the fellowship, to the breaking of bread and to prayer(Niv). And they continued stedfastly in the apostles’ doctrine and fellowship, and in breaking of bread, and in prayers(Kjv). 그들은 서로 형제와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서로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하였고, 가난한 자들을 보살폈습니다. 그것은 경배의 친교만이 아니라 생활의 친교였습니다. 그들은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재물을 동료 신자들과 나누고자 하는 열망에 의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예수께서 아버지의 나라 설립을 마치려고 돌아오실 것을 확신하면서 기대하였습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세상의 소유물을 나누는 것은 예수 가르침의 직접적인 특성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언젠가 돌아와서 자신의 일을 완성하고 그 나라를 성취하실 것이라고 이 남자와 여자들은 너무도 진지하고 확실히 믿었기 때문에 이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선한 의도가 담겨 있지만, 이렇게 경솔한 형제 사랑을 실험한 최종적 결과는 비참하였고 슬픔을 낳았습니다. 수천 명의 착실한 신자들은 그들의 부동산을 팔았고 그들의 자본(資本)이 되는 모든 재물들과 기타 생산적인 자산 일체를 처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기독교인들의 “함께 나누는” 자산은 줄어들어 끝이 나게 되었지만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습니다. 얼마 안 되어, 안디옥에 있는 신자들은, 예루살렘의 동료 신자들이 굶지 않도록 모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194:4.8 (2067.3) In these days they celebrated the Lord’s Supper after the manner of its establishment; that is, they assembled for a social meal of good fellowship and partook of the sacrament at the end of the meal. 이 무렵, 그들은 주님의 만찬(晩餐)을, 그것이 창설된 방법에 따라서 거행하였습니다. 즉 그들이 함께 모여 사이좋게 교제하면서 음식을 서로 나누고, 그 식사가 마칠 때, 성찬식에 참여했습니다.

194:4.9 (2067.4) At first they baptized in the name of Jesus; it was almost twenty years before they began to baptize in “the name of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Baptism was all that was required for admission into the fellowship of believers. They had no organization as yet; it was simply the Jesus brotherhood. 처음에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 후 거의 20년이 지났을 때 비로소,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세례는 신자들의 친교에 가입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아무 조직도 갖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모임은 단순히 예수의 형제신분이었습니다.

194:4.10 (2067.5) This Jesus sect was growing rapidly, and once more the Sadducees took notice of them. The Pharisees were little bothered about the situation, seeing that none of the teachings in any way interfered with the observance of the Jewish laws. But the Sadducees began to put the leaders of the Jesus sect in jail until they were prevailed upon to accept the counsel of one of the leading rabbis, Gamaliel, who advised them: “Refrain from these men and let them alone, for if this counsel or this work is of men, it will be overthrown; but if it is of God, you will not be able to overthrow them, lest haply you be found even to be fighting against God.” They decided to follow Gamaliel’s counsel, and there ensued a time of peace and quiet in Jerusalem, during which the new gospel about Jesus spread rapidly. 이 예수의 종파는 급속히 성장했고, 사두개인들은 한 번 더 그들을 주목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상황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 가운데 어떤 것도 유대인의 율법을 지키는 것과 충돌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예수 종파의 지도자들을 투옥시키기 시작했고, 지도하는 랍비들 중 하나인 가말리엘의 다음과 같은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설득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했습니다. 행5:38-39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And now I say unto you, Refrain from these men, and let them alone: for if this counsel or this work be of men, it will come to nought: But if it be of God, ye cannot overthrow it; lest haply ye be found even to fight against God. 그들은 가말리엘의 조언을 따르기로 결정하였고, 예루살렘에는 평화와 안정이 계속되었으며, 그 동안 예수에 관한 새 복음이 신속하게 퍼졌습니다.

194:4.11 (2068.1) And so all went well in Jerusalem until the time of the coming of the Greeks in large numbers from Alexandria. Two of the pupils of Rodan arrived in Jerusalem and made many converts from among the Hellenists. Among their early converts were Stephen and Barnabas. These able Greeks did not so much have the Jewish viewpoint, and they did not so well conform to the Jewish mode of worship and other ceremonial practices. And it was the doings of these Greek believers that terminated the peaceful relations between the Jesus brotherhood and the Pharisees and Sadducees. Stephen and his Greek associate began to preach more as Jesus taught, and this brought them into immediate conflict with the Jewish rulers. In one of Stephen’s public sermons, when he reached the objectionable part of the discourse, they dispensed with all formalities of trial and proceeded to stone him to death on the spot.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에서 많은 그리스인들이 올 때까지, 예루살렘에서는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로단의 두 생도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헬라파 중에서 많은 사람이 개종(改宗)했습니다. 그들의 초기 개종자들 가운데 스테반과 바나바가 있었습니다. 이 유능한 그리스인들은 유대인의 관점과 많이 달라서, 유대인 형태의 예배와 다른 예식의 관습을 잘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 그리스인 신자들의 행위 때문에, 예수의 형제신분 단체와 바리새인•사두개인들 사이에 평화로운 관계가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스테반과 그리스인 동료들은 예수께서 가르치셨던 대로 더욱 전파하기 시작하여, 그들은 곧 유대인 통치자들과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스테반의 대중 설교 중 하나에서, 강연(講演) 중 못마땅한 부분에 이르자, 그들은 모든 공식적 재판 절차를 무시하고, 현장에서 그를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194:4.12 (2068.2) Stephen, the leader of the Greek colony of Jesus’ believers in Jerusalem, thus became the first martyr to the new faith and the specific cause for the formal organization of the early Christian church. This new crisis was met by the recognition that believers could not longer go on as a sect within the Jewish faith. They all agreed that they must separate themselves from unbelievers; and within one month from the death of Stephen the church at Jerusalem had been organized under the leadership of Peter, and James the brother of Jesus had been installed as its titular head. 스테반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믿는 그리스 거류민의 지도자였고, 이렇게 새로운 신앙의 첫 순교자가 되었으며, 초기 기독교회를 정식으로 조직하는 특별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위기로 인해, 신자들은 이제는 더 유대 신앙의 한 종파로서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인식(認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비(非)신자들과 따로 분리해야 한다고 모두 찬성했습니다. 스테반이 죽은 지 한 달이 안 되어,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의 지도 아래 조직되어,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명목상 수장(首長)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4:4.13 (2068.3) And then broke out the new and relentless persecutions by the Jews, so that the active teachers of the new religion about Jesus, which subsequently at Antioch was called Christianity, went forth to the ends of the empire proclaiming Jesus. In carrying this message, before the time of Paul the leadership was in Greek hands; and these first missionaries, as also the later ones, followed the path of Alexander’s march of former days, going by way of Gaza and Tyre to Antioch and then over Asia Minor to Macedonia, then on to Rome and to the uttermost parts of the empire. 그 후 유대인들에 의해 잔인한 박해가 새롭게 시작되어, 예수에 대해 새로운 종교를 가르치는 의욕적인 선생들은 예수를 선포하면서 그 제국의 변방(邊方)들을 향하여 퍼져 나갔으며, 그 종교는 후에 안디옥에서 기독교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메시지를 전함에 있어서, 바울이 등장하기 전에는 그리스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최초의 선교사들은, 그 뒤를 이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전에 알렉산더가 행진하였던 길을 따라서, 가자와 티레를 거쳐 안디옥으로 갔으며, 이어서 소아시아를 지나 마케도니아로 갔고, 그 후에는 계속 로마와 그 제국의 가장 먼 지방들까지 갔습니다.

Paper 6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

Paper 6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

170510 요1:18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품안에 계시는 외아들이 그분을 알리셨다. No one has ever seen God, but God the One and Only, who is at the Father’s side, has made him known.

6:0.1 (73.1) THE Eternal Son is the perfect and final expression of the “first” personal and absolute concept of the Universal Father. Accordingly, whenever and however the Father personally and absolutely expresses himself, he does so through his Eternal Son, who ever has been, now is, and ever will be, the living and divine Word. And this Eternal Son is residential at the center of all things, in association with, and immediately enshrouding the personal presence of, the Eternal and Universal Father. 영원 아들은 우주 아버지의 “첫 번째” 고유한 절대적 개념에 대한 완전한 최종적 표현입니다. 따라서 아버지께서는 고유적이며 절대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때마다, 표현하는 방법마다, 영원 아들을 통하여 그렇게 행하시는데, 영원 아들은 언제나 그러하였고, 지금도 그러하고, 언제나 그러하실, 살아 계신 신적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영원 아들은 영원 우주 아버지와 연합하면서 그 고유적 현존을 즉각적으로 감싸는, 만물의 중심에 거(居)하십니다.

6:0.2 (73.2) We speak of God’s “first” thought and allude to an impossible time origin of the Eternal Son for the purpose of gaining access to the thought channels of the human intellect. Such distortions of language represent our best efforts at contact-compromise with the time-bound minds of mortal creatures. In the sequential sense the Universal Father never could have had a first thought, nor could the Eternal Son ever have had a beginning. But I was instructed to portray the realities of eternity to the time-limited minds of mortals by such symbols of thought and to designate the relationships of eternity by such time concepts of sequentiality. 우리는 인간 지성의 생각 통로로 가는 접근경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첫 번째” 생각을 말하고 영원 아들의 불가능한 시간 기원에 대하여 암시합니다. 이러한 언어의 왜곡은 시간에-매인 필사 창조물의 마음과 접촉-절충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노력을 뜻합니다. 순차적 의미로, 우주 아버지께서 첫 번째 생각을 하셨을 수도 없고, 영원 아들이 시작하신 때도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시간에-제한을 받는 필사자의 마음에 그러한 생각의 상징들로 영원의 실체들을 묘사하고, 그러한 순차성의 시간 개념으로 영원성의 관계들을 나타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6:0.3 (73.3) The Eternal Son is the spiritual personalization of the Paradise Father’s universal and infinite concept of divine reality, unqualified spirit, and absolute personality. And thereby does the Son constitute the divine revelation of the creator identity of the Universal Father. The perfect personality of the Son discloses that the Father is actually the eternal and universal source of all the meanings and values of the spiritual, the volitional, the purposeful, and the personal. 영원 아들은, 신적 실체, 분별이 불가능한 영, 그리고 절대 고유성으로 구성된 천국 아버지의 우주적 무한한 개념이 영적(靈的) 고유성화 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아들은 우주 아버지의 창조자 정체성을 구성하여 신적으로 계시하십니다. 아들의 완전한 고유성은, 아버지께서 실제로 영적, 의지적, 목적적, 그리고 고유적인 모든 의미와 가치의 영원한 우주적 근원임을 드러냅니다.

6:0.4 (73.4) In an effort to enable the finite mind of time to form some sequential concept of the relationships of the eternal and infinite beings of the Paradise Trinity, we utilize such license of conception as to refer to the “Father’s first personal, universal, and infinite concept.” It is impossible for me to convey to the human mind any adequate idea of the eternal relations of the Deities; therefore do I employ such terms as will afford the finite mind something of an idea of the relationship of these eternal beings in the subsequent eras of time. We believe the Son sprang from the Father; we are taught that both are unqualifiedly eternal. It is apparent, therefore, that no time creature can ever fully comprehend this mystery of a Son who is derived from the Father, and yet who is co-ordinately eternal with the Father himself. 시간 속에 사는 유한한 마음에 천국 삼위일체의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들의 관계에 대한 어떤 순차적 개념을 형성하려는 노력으로, 우리는 “아버지의 첫 번째 고유적, 우주적, 그리고 무한한 개념”을 그렇게 언급하도록 허락된 개념을 사용합니다. 신(神)들의 영원한 관계에 대한 어떤 적절한 관념을 인간 마음에 전달하는 일이 나에게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용어들을 사용하여 차후 시대에 이 영원한 존재들의 관계에 대한 다소의 관념을 유한한 마음에게 제공할 것입니다. 우리는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나오셨다고 믿고 있으며, 우리는 두 분 모두 무조건unqualifiedly 영원하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로부터 유래되었고, 그럼에도 여전히 아버지 자신과 동등하게 영원한, 아들의 이 신비를, 어떤 시간적 창조물이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1. Identity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정체성

170517 요1:1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말씀되시는 그리스도가 계셨다.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셨다. (John 1:1 KJV)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6:1.1 (73.5) The Eternal Son is the original and only-begotten Son of God. He is God the Son, the Second Person of Deity and the associate creator of all things. As the Father is the First Great Source and Center, so the Eternal Son is the Second Great Source and Center. 영원 아들은 하나님께서 최초에 하나만 얻은 독생자이십니다. 그는 아들 하나님이시며, 신(神)의 두 번째 개인이시고, 만물의 부(副)창조자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첫 번째 위대한 근원이며 중심이신 것처럼, 영원 아들은 두 번째 위대한 근원이며 중심이십니다.

6:1.2 (74.1) The Eternal Son is the spiritual center and the divine administrator of the spiritual government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The Universal Father is first a creator and then a controller; the Eternal Son is first a cocreator and then a spiritual administrator. “God is spirit,” and the Son is a personal revelation of that spirit. The First Source and Center is the Volitional Absolute; the Second Source and Center is the Personality Absolute. 영원 아들은 온 우주의 영적 정부에서 영적 중심이시며, 신적 경영자입니다. 우주 아버지는 첫째로 창조자이시고, 그 다음으로는 조정자이십니다. 영원 아들은 첫째로 공동 창조자이시고, 그 다음으로는 영적 행정관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아들은 영이신 하나님의 개인적 계시이십니다. 첫째 근원이며 중심은 의지적 절대자Volitional Absolute이시며, 둘째 근원이며 중심은 고유성 절대자Personality Absolute이십니다.

6:1.3 (74.2) The Universal Father never personally functions as a creator except in conjunction with the Son or with the co-ordinate action of the Son. Had the New Testament writer referred to the Eternal Son, he would have uttered the truth when he wrote: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All things were made by him, and without him was not anything made that was made.” 우주의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하거나 아들과 나란히 행동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창조자로서 몸소 활동하지 않으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했을 때 신약의 저자(著者)가 영원 아들을 언급했었더라면 진리를 말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170518 요일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1 John 1:1 KJV) That which was from the beginning, which we have heard, which we have seen with our eyes, which we have looked upon, and our hands have handled, of the Word of life;

6:1.4 (74.3) When a Son of the Eternal Son appeared on Urantia, those who fraternized with this divine being in human form alluded to him as “He who was from the beginning, whom we have heard, whom we have seen with our eyes, whom we have looked upon, and our hands have handled, even the Word of life.” And this bestowal Son came forth from the Father just as truly as did the Original Son, as is suggested in one of his earthly prayers: “And now, O my Father, glorify me with your own self, with the glory which I had with you before this world was.” 영원 아들의 한 아들이 지구(유란시아)에 나타났을 때, 사람의 모습을 입은 이 신적 존재와 친하게 사귄 사람들은, 그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라고 언급했습니다. 최초의 아들이 참으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수여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왔고, 이것은 그가 땅에서 하신 기도 중 하나에 제시된 바와 같습니다.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John 17:5 KJV) And now, O Father, glorify thou me with thine own self with the glory which I had with thee before the world was.”

6:1.5 (74.4) The Eternal Son is known by different names in various universes. In the central universe he is known as the Co-ordinate Source, the Cocreator, and the Associate Absolute. On Uversa, the headquarters of the superuniverse, we designate the Son as the Co-ordinate Spirit Center and as the Eternal Spirit Administrator. On Salvington, the headquarters of your local universe, this Son is of record as the Second Eternal Source and Center. The Melchizedeks speak of him as the Son of Sons. On your world, but not in your system of inhabited spheres, this Original Son has been confused with a co-ordinate Creator Son, Michael of Nebadon, who bestowed himself upon the mortal races of Urantia. 영원 아들은 여러 우주에서 다른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앙 우주에서 그분은 동등한 근원, 공동 창조자, 부(副)절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우주 본부 우버르사에서 우리는 그 아들을 동등한 영 중심, 영원 영 행정관으로 부릅니다. 너희 지역 우주 본부 구원자별에서 이 아들은 두 번째 영원 근원과 중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멜기세덱들은 그를 아들 중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창조물이 거주하는 구체로 된 너희 체계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너희 세계에서 이 최초의 아들은 한 동격의 창조자 아들, 네바돈의 미가엘과 혼동되어 왔는데, 그는 유란시아의 필사 종족들에게 자신을 수여하셨습니다.

6:1.6 (74.5) Although any of the Paradise Sons may fittingly be called Sons of God, we are in the habit of reserving the designation “the Eternal Son” for this Original Son, the Second Source and Center, cocreator with the Universal Father of the central universe of power and perfection and cocreator of all other divine Sons who spring from the infinite Deities. 천국 아들들 가운데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로 적절히 불릴 수 있을지라도, 우리는 이 최초의 아들, 두 번째 근원이며 중심, 우주의 아버지와 함께 권능과 완전성으로 이루어진 중앙 우주의 공동 창조자, 무한 신들로부터 솟아오른 다른 모든 신적 아들들의 공동 창조자를 부를 때 습관적으로 “영원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합니다.

2. Nature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본성

170525 요14:9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도 네가 나를 모르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인데 어째서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 (John 14:9 KJV) Jesus saith unto him, Have I been so long time with you, and yet hast thou not known me, Philip? he that hath seen me hath seen the Father; and how sayest thou then, Show us the Father?

6:2.1 (74.6) The Eternal Son is just as changeless and infinitely dependable as the Universal Father. He is also just as spiritual as the Father, just as truly an unlimited spirit. To you of lowly origin the Son would appear to be more personal since he is one step nearer you in approachability than is the Universal Father. 영원 아들은 우주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변함이 없으시고 무한히 신뢰할 만하십니다. 그는 바로 아버지와 똑같이 영적이시며, 참으로 똑같이 제한이 없는 영이십니다. 낮은 기원을 지닌 너희에게 그 분은 우주 아버지보다 접근성에서 한발자국 더 너희에게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아들이 좀 더 개인적으로 생각됩니다.

6:2.2 (74.7) The Eternal Son is the eternal Word of God. He is wholly like the Father; in fact, the Eternal Son is God the Father personally manifest to the universe of universes. And thus it was and is and forever will be true of the Eternal Son and of all the co-ordinate Creator Sons: “He who has seen the Son has seen the Father.” 영원 아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십니다. 그는 온통 아버지와 같으시며; 사실, 영원 아들은 우주들의 우주에 개인적으로 드러낸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영원 아들과 동등한 모든 창조주 아들에 대해서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는 이 말은 전에도 진실했고, 지금도 진실하며, 그리고 언제까지나 진실일 것입니다.

6:2.3 (74.8) In nature the Son is wholly like the spirit Father. When we worship the Universal Father, actually we at the same time worship God the Son and God the Spirit. God the Son is just as divinely real and eternal in nature as God the Father. 본성에 있어서 아들은 온통 영 아버지와 같습니다. 우리가 우주 아버지를 경배할 때, 실제로 우리는 아들 하나님과 영 하나님을 동시에 경배합니다. 아들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처럼 그렇게 본성에 있어서 신적으로 실재하며 영원하십니다.

6:2.4 (75.1) The Son not only possesses all the Father’s infinite and transcendent righteousness, but the Son is also reflective of all the Father’s holiness of character. The Son shares the Father’s perfection and jointly shares the responsibility of aiding all creatures of imperfection in their spiritual efforts to attain divine perfection.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무한하고 초월적인 공의(公義)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아들은 또한 아버지의 모든 거룩한 성품까지도 반영합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완전성을 함께 공유하며, 신적 완전성에 도달하려는 저들의 영적 노력 가운데 있는 모든 불완전성의 창조물들을 도와주는 책임도 함께 공유하십니다.

170526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래서 예배하는 사람은 영적인 진실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6:2.5 (75.2) The Eternal Son possesses all the Father’s character of divinity and attributes of spirituality. The Son is the fullness of God’s absoluteness in personality and spirit, and these qualities the Son reveals in his personal management of the spiritual government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영원 아들은 아버지의 모든 신성의 성품과 영성(靈性)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은 고유성과 영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성의 충만함이며, 영원 아들은 우주들의 우주의 영적 정부를 개인적으로 경영하면서 이러한 본질 특성을 드러내십니다.

6:2.6 (75.3) God is, indeed, a universal spirit; God is spirit; and this spirit nature of the Father is focalized and personalized in the Deity of the Eternal Son. In the Son all spiritual characteristics are apparently greatly enhanced by differentiation from the universality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And as the Father shares his spirit nature with the Son, so do they together just as fully and unreservedly share the divine spirit with the Conjoint Actor, the Infinite Spirit. 하나님은, 참으로, 우주적 영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 영 본성은 영원 아들의 신(神)으로 집중되고 개인성화 됩니다. 아들 안에서, 모든 영적 성품들은 첫째근원이며 중심의 보편성으로부터 구별되어, 대단히 명백하게 증진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의 영 본성을 아들과 함께 공유하듯이, 그들은 공동 행위자, 무한 영과 더불어, 신적 영을 마찬가지로 충분하게 거리낌 없이 함께 공유하십니다.

6:2.7 (75.4) In the love of truth and in the creation of beauty the Father and the Son are equal except that the Son appears to devote himself more to the realization of the exclusively spiritual beauty of universal values. 아들이 우주적 가치에 대해 전적으로 영적인 아름다움(美)의 실현에 자신을 더욱 헌신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버지와 아들은, 진리를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함에 있어서, 동등하십니다.

6:2.8 (75.5) In divine goodness I discern no difference between the Father and the Son. The Father loves his universe children as a father; the Eternal Son looks upon all creatures both as father and as brother. 신적 선(善)에 있어서, 나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어떤 차이점도 분별하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그의 우주 자녀들을 아버지로서 사랑하시며, 영원 아들은 모든 창조물들을 아버지와 형제로서 바라보십니다.

3. Ministry of the Father’s Love 아버지 사랑의 돌봄

170531 대상16:34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his love endures forever.

6:3.1 (75.6) The Son shares the justice and righteousness of the Trinity but overshadows these divinity traits by the infinite personalization of the Father’s love and mercy; the Son is the revelation of divine love to the universes. As God is love, so the Son is mercy. The Son cannot love more than the Father, but he can show mercy to creatures in one additional way, for he not only is a primal creator like the Father, but he is also the Eternal Son of that same Father, thereby sharing in the sonship experience of all other sons of the Universal Father. 아들은 삼위일체의 정의(正義)와 공의(公義)를 공유하지만, 이러한 신성의 특성들(정의와 공의)은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의 무한한 고유성 구현으로 그 빛이 가려지고 있습니다. 아들은 우주에 대한 신적 사랑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처럼, 아들은 자비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지만, 그는 한 가지 추가적 방법으로 창조물들에게 자비를 보여 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아버지처럼 최초의 창조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동일한 아버지의 영원 아들로서, 우주 아버지의 다른 모든 아들들의 지닌 아들관계 체험을 함께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6:3.2 (75.7) The Eternal Son is the great mercy minister to all creation. Mercy is the essence of the Son’s spiritual character. The mandates of the Eternal Son, as they go forth over the spirit circuits of the Second Source and Center, are keyed in tones of mercy. 영원 아들은 모든 창조물에게 위대한 자비의 봉사자이십니다. 자비는 아들의 영 성품의 본질입니다. 영원 아들의 명령이 둘째 근원이며 중심의 영 순환회로들을 건너 나아갈 때, 그 명령은 자비의 음정으로 조율됩니다.

6:3.3 (75.8) To comprehend the love of the Eternal Son, you must first perceive its divine source, the Father, who is love, and then behold the unfolding of this infinite affection in the far-flung ministry of the Infinite Spirit and his almost limitless host of ministering personalities. 영원 아들의 사랑을 이해하려면, 그것의 신적 근원, 사랑이신 아버지를 너희가 먼저 파악해야만 하며, 그 다음에, 무한 영(靈)과 그의 거의 한없는 섬김의 고유성 무리들이 멀리까지 미치는 섬김에서, 이 무한한 애정이 펼쳐지는 것을 보아야만 합니다.

170601 요일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And so we know and rely on the love God has for us. God is love.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n him.

6:3.4 (75.9) The ministry of the Eternal Son is devoted to the revelation of the God of love to the universe of universes. This divine Son is not engaged in the ignoble task of trying to persuade his gracious Father to love his lowly creatures and to show mercy to the wrongdoers of time. How wrong to envisage the Eternal Son as appealing to the Universal Father to show mercy to his lowly creatures on the material worlds of space! Such concepts of God are crude and grotesque. Rather should you realize that all the merciful ministrations of the Sons of God are a direct revelation of the Father’s heart of universal love and infinite compassion. The Father’s love is the real and eternal source of the Son’s mercy. 영원 아들의 봉사는 온 우주에 사랑의 하나님을 드러내는(계시) 데에 바쳐집니다. 이 신적 아들은 그의 인자한 아버지가 미천한 창조물들을 사랑하도록 설득하고, 시간 속에 살면서 그릇된 행동을 한 자들에게 자비를 보이도록 설득하려고 애쓰는 미천한 일에 종사하지 않습니다. 공간의 물질세계에 있는 그의 낮은 창조물들을 위하여 우주 아버지가 자비를 보여주시도록 간청하는 영원 아들을 그려보는 것은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개념은 유치하고 기괴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든 자비로운 직무는 우주의 사랑과 무한한 연민을 가진 아버지의 진심을 직접 계시하는 것임을, 너희는 깨달아야만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이 베푸는 자비의 실재이자 영원한 근원입니다.

6:3.5 (75.10) God is love, the Son is mercy. Mercy is applied love, the Father’s love in action in the person of his Eternal Son. The love of this universal Son is likewise universal. As love is comprehended on a sex planet, the love of God is more comparable to the love of a father, while the love of the Eternal Son is more like the affection of a mother. Crude, indeed, are such illustrations, but I employ them in the hope of conveying to the human mind the thought that there is a difference, not in divine content but in quality and technique of expression, between the love of the Father and the love of the Son.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아들은 자비이십니다. 자비는 적용된 사랑, 그의 영원 아들의 개인 안에서 행하여지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이 우주 아들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우주적입니다. 사랑이 남녀 성(性)의 구별이 있는 행성에서 이해되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에 더 견줄만하고 반면에, 영원 아들의 사랑은 어머니의 애정과 더 비슷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정말로 미숙하기 그지없지만, 나는 그것들을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사랑 사이에, 그 신적 내용이 다른 것이 아니라 본질과 표현의 기법에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인간 마음에 전달하려는 희망으로 그것들을 사용합니다.

4. Attributes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속성

170607 골1: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기 전에 계신 분입니다. He is the image of the invisible God, the firstborn over all creation.

6:4.1 (76.1) The Eternal Son motivates the spirit level of cosmic reality; the spiritual power of the Son is absolute in relation to all universe actualities. He exercises perfect control over the interassociation of all undifferentiated spirit energy and over all actualized spirit reality through his absolute grasp of spirit gravity. All pure unfragmented spirit and all spiritual beings and values are responsive to the infinite drawing power of the primal Son of Paradise. And if the eternal future should witness the appearance of an unlimited universe, the spirit gravity and the spirit power of the Original Son will be found wholly adequate for the spiritual control and effective administration of such a boundless creation. 영원 아들은 질서 우주에 있는 실체의 영 수준을 자극하십니다. 아들의 영적 권능은 모든 우주 실제 사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절대적입니다. 그는 영 중력(重力)에 대한 자신의 절대적 장악(파악)을 통하여, 차별화되지 않은 모든 영 에너지의 상호연합과 실제화된 모든 영 실체에 대해 완전한 조정을 행사하십니다. 순수하고 단편화되지 않은 모든 영과 모든 영적 존재와 가치는, 최초의 천국 아들의 무한히 끌어 당기는 권능에 응답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미래가 무제한적 우주의 출현을 목격하는 경우, 기원 아들의 영 중력과 영 권능은, 그러한 한없는 창조에 대한 영적 조정과 효과적인 관리에 온전히 적합하다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6:4.2 (76.2) The Son is omnipotent only in the spiritual realm. In the eternal economy of universe administration, wasteful and needless repetition of function is never encountered; the Deities are not given to useless duplication of universe ministry. 아들은 영적 영역 안에서만 전능(全能)하십니다. 우주 관리의 영원한 섭리 안에서, 낭비적이고 불필요한 기능적 반복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神)들은 우주 돌봄에서 쓸모없이 중복을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6:4.3 (76.3) The omnipresence of the Original Son constitutes the spiritual unity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The spiritual cohesion of all creation rests upon the everywhere active presence of the divine spirit of the Eternal Son. When we conceive of the Father’s spiritual presence, we find it difficult to differentiate it in our thinking from the spiritual presence of the Eternal Son. The spirit of the Father is eternally resident in the spirit of the Son. 기원 아들의 전재(全在)는 우주들의 우주의 영적 통일을 구성합니다. 모든 창조의 영적 응집은 도처에 있는 영원 아들의 신적 영의 능동적인 현존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영적 현존을 생각할 때, 우리의 사고(思考) 속에서 그것을 영원 아들의 영적 현존과 구별하기 어려움을 발견합니다. 아버지의 영은 영원히 아들의 영 안에 거(居)하십니다.

6:4.4 (76.4) The Father must be spiritually omnipresent, but such omnipresence appears to be inseparable from the everywhere spirit activities of the Eternal Son. We do, however, believe that in all situations of Father-Son presence of a dual spiritual nature the spirit of the Son is co-ordinate with the spirit of the Father. 아버지는 영적으로 전재(全在)하는 것이 틀림없지만, 그러한 전재(全在)는 영원 아들의 모든 곳에서의 영 활동과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원적(二元的)인 영적 본성을 갖는 아버지-아들 현존의 모든 상황들에 있어서 아들의 영이 아버지의 영과 합동한다고 믿습니다.

170608 골1:16 그분에 의해서 모든 것이 창조되었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것들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천사들과 영적 존재들과 만물이 다 그분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For by him all things were created: things in heaven and on earth, visible and invisible, whether thrones or powers or rulers or authorities; all things were created by him and for him.

6:4.5 (76.5) In his contact with personality, the Father acts in the personality circuit. In his personal and detectable contact with spiritual creation, he appears in the fragments of the totality of his Deity, and these Father fragments have a solitary, unique, and exclusive function wherever and whenever they appear in the universes. In all such situations the spirit of the Son is co-ordinate with the spiritual function of the fragmented presence of the Universal Father. 고유성과의 접촉에 있어서, 아버지는 고유성 순환회로 안에서 활동하십니다. 영적 창조물에 대한 아버지의 개인적이며 탐지 가능한 접촉에 있어서, 그는 자신의 신(神)의 전체성의 단편들 안에서 나타나시며, 아버지의 이 단편들은 그들이 우주들에서 언제 어느 곳에 나타나든지 단독적이며 독특한, 배타적 기능을 갖습니다. 그러한 모든 경우에도 아들의 영은 우주 아버지의 단편화된 현존의 영적 기능과 합동하십니다.

6:4.6 (76.6) Spiritually the Eternal Son is omnipresent. The spirit of the Eternal Son is most certainly with you and around you, but not within you and a part of you like the Mystery Monitor. The indwelling Father fragment adjusts the human mind to progressively divine attitudes, whereupon such an ascending mind becomes increasingly responsive to the spiritual drawing power of the all-powerful spirit-gravity circuit of the Second Source and Center. 영원 아들은 영적으로 전재(全在)하십니다. 영원 아들의 영은 가장 분명하게 너희와 함께 하시고 너희 주위에 계시지만, 신비 감시자처럼 너희 안에 너희의 일부로서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내주하는 아버지의 단편은 인간 마음을 점진적으로 신적 태도에 맞도록 조절하여, 그렇게 상승하는 마음은 둘째근원이며 중심의 모든-권능을 지닌 영-중력 순환회로의 영적으로 끌어당기는 힘에 점점 더 응답하게 됩니다.

6:4.7 (76.7) The Original Son is universally and spiritually self-conscious. In wisdom the Son is the full equal of the Father. In the realms of knowledge, omniscience, we cannot distinguish between the First and Second Sources; like the Father, the Son knows all; he is never surprised by any universe event; he comprehends the end from the beginning. 기원 아들은 우주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자아-의식적이십니다. 지혜에 있어서 아들은 아버지와 완전히 동일하십니다. 지식의 영역, 전지(全知)함에 있어서, 우리는 첫째근원과 둘째 근원을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처럼 아들도 모든 것을 아십니다. 아들은 어떠한 우주 결과에도 결코 놀라지 않습니다. 그는 시작부터 끝을 이해하십니다.

170609 골1:17 그리고 그분은 모든 것이 있기 전에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hold together.

6:4.8 (77.1) The Father and the Son really know the number and whereabouts of all the spirits and spiritualized beings in the universe of universes. Not only does the Son know all things by virtue of his own omnipresent spirit, but the Son, equally with the Father and the Conjoint Actor, is fully cognizant of the vast reflectivity intelligence of the Supreme Being, which intelligence is at all times aware of all things that transpire on all the worlds of the seven superuniverses. And there are other ways in which the Paradise Son is omniscient. 아버지와 아들은 우주들의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영들과 영성화된 존재들의 숫자와 소재(所在)를 정말로 다 아십니다. 아들은 자신의 전재(全在)하는 영으로 만물을 아실뿐만 아니라, 아들은 아버지 및 공동행위자와 동등하게, 최극 존재의 방대한 반영적 지성을 충만하게 인지하시는데, 그 지성은 일곱 초우주에 속한 모든 세계들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언제나 아십니다. 그리고 천국 아들이 전지(全知)하신 다른 방법들도 있습니다.

6:4.9 (77.2) The Eternal Son, as a loving, merciful, and ministering spiritual personality, is wholly and infinitely equal with the Universal Father, while in all those merciful and affectionate personal contacts with the ascendant beings of the lower realms the Eternal Son is just as kind and considerate, just as patient and long-suffering, as are his Paradise Sons in the local universes who so frequently bestow themselves upon the evolutionary worlds of time. 사랑스럽고, 자비롭게 봉사하시는 영적 고유성으로서의 영원 아들은, 전적으로 무한하게 우주 아버지와 동일하시지만, 반면에 더 낮은 영역의 상승하는 존재들과의 모든 자비롭고 애정 어린 개인적 접촉에 있어서, 영원 아들은 진화하는 시간 세계에 그렇게도 자주 자신들을 수여하는 지역우주들의 천국 아들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렇게 친절하시고 자상하시며, 그렇게 인내하시고 참을성이 있으십니다.

6:4.10 (77.3) It is needless further to expatiate on the attributes of the Eternal Son. With the exceptions noted, it is only necessary to study the spiritual attributes of God the Father to understand and correctly evaluate the attributes of God the Son. 영원 아들의 속성에 관하여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급했던 예외들과 함께, 아들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하여 다만 아버지 하나님의 영적 속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5. Limitations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한계

170613 요5:19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지 않으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은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시든지 아들은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이다. Jesus gave them this answer: “I tell you the truth, the Son can do nothing by himself; he can do only what he sees his Father doing, because whatever the Father does the Son also does.

6:5.1 (77.4) The Eternal Son does not personally function in the physical domains, nor does he function, except through the Conjoint Actor, in the levels of mind ministry to creature beings. But these qualifications do not in any manner otherwise limit the Eternal Son in the full and free exercise of all the divine attributes of spiritual omniscience, omnipresence, and omnipotence. 영원 아들은 물리적 권역에서 개인적으로 기능할 수 없으며, 공동행위자를 통하지 않고는, 창조물에게 마음 돌봄의 수준에서 기능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본질은, 영적인 전지, 편재(遍在), 그리고 전능이라는 모든 신적 속성을 충만하고 자유롭게 행사함에 있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영원 아들을 달리 제한하지 않습니다.

6:5.2 (77.5) The Eternal Son does not personally pervade the potentials of spirit inherent in the infinity of the Deity Absolute, but as these potentials become actual, they come within the all-powerful grasp of the spirit-gravity circuit of the Son. 영원 아들은 신(神) 절대자의 무한 속에 선천적으로 들어있는 영 잠재를 몸소 가득 퍼지게 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잠재들이 실제적이 되면서, 그것들은 아들의 영-중력 순환회로의 모든-권능을 지닌 장악 안에 들어옵니다.

6:5.3 (77.6) Personality is the exclusive gift of the Universal Father. The Eternal Son derives personality from the Father, but he does not, without the Father, bestow personality. The Son gives origin to a vast spirit host, but such derivations are not personalities. When the Son creates personality, he does so in conjunction with the Father or with the Conjoint Creator, who may act for the Father in such relationships. The Eternal Son is thus a cocreator of personalities, but he bestows personality upon no being and of himself, alone, never creates personal beings. This limitation of action does not, however, deprive the Son of the ability to create any or all types of other-than-personal reality. 고유성은 우주 아버지의 배타적 선물입니다. 영원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고유성을 얻으셨지만, 아들은 아버지 없이 고유성을 증여하지 않으십니다. 아들은 광대한 영 무리를 기원시키지만, 그러한 파생체들은 고유성들이 아닙니다. 아들이 고유성을 창조할 때, 그는 아버지와 함께 하든지 혹은 그러한 관계에 있어서 아버지를 대신할 수도 있는, 공동창조주와 함께 하십니다. 그와 같이 영원 아들은 고유성들의 공동창조자이지만, 그는 어떤 존재에게도 고유성을 증여하지 않으며, 혼자서는 결코 개인적 존재를 창조하지 않으십니다. 아무튼, 행위에 대한 이러한 제한은, 개인적-실체-이외의 일부 또는 모든 다른 유형들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아들에게서 빼앗지는 않습니다.

170614 창1:26 그리고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Then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in our likeness, and let them rule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the birds of the air, over the livestock, over all the earth, and over all the creatures that move along the ground.”

6:5.4 (77.7) The Eternal Son is limited in transmittal of creator prerogatives. The Father, in eternalizing the Original Son, bestowed upon him the power and privilege of subsequently joining with the Father in the divine act of producing additional Sons possessing creative attributes, and this they have done and now do. But when these co-ordinate Sons have been produced, the prerogatives of creatorship are apparently not further transmissible. The Eternal Son transmits creatorship powers only to the first or direct personalization. Therefore, when the Father and the Son unite to personalize a Creator Son, they achieve their purpose; but the Creator Son thus brought into existence is never able to transmit or delegate the prerogatives of creatorship to the various orders of Sons which he may subsequently create, notwithstanding that, in the highest local universe Sons, there does appear a very limited reflection of the creative attributes of a Creator Son. 영원 아들은 창조자 특권을 물려주는 데에 있어서 제한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기원 아들을 영원하게 하면서, 창조적 속성을 지닌 추가 아들들을 낳는 신적 행위 가운데, 계속하여 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권능과 특권을 그에게 부여하셨고, 그들(아버지와 영원 아들)은 이것을 해오셨고, 지금도 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합동 아들들이 나오게 되면, 창조자로서의 특권은 더 이상 물려질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영원 아들은 창조자로서의 권능을 오직 최초의, 또는 직접적 고유성 구현에만 물려줍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이 창조주 아들을 고유성화 하려고 결합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십니다. 그러나 이렇게 출현된 창조주 아들은, 가장 높은 지역우주 아들 안에서, 창조주 아들의 창조적 속성의 매우 제한된 반영이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하여 창조할지 모르는 다양한 계층의 아들들에게 창조자신분의 특권을 결코 물려주거나 또는 위임할 수 없습니다.

6:5.5 (78.1) The Eternal Son, as an infinite and exclusively personal being, cannot fragmentize his nature, cannot distribute and bestow individualized portions of his selfhood upon other entities or persons as do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Infinite Spirit. But the Son can and does bestow himself as an unlimited spirit to bathe all creation and unceasingly draw all spirit personalities and spiritual realities to himself. 영원 아들은, 무한하고 배타적으로 고유적인 존재로서, 우주 아버지나 무한 영이 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본성을 단편화 시킬 수 없으며, 그의 자아신분의 개별화된 부분을 다른 실재들이나 개인들에게 분배할 수도 없고 증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모든 창조계를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무제한적 영으로서 자신을 증여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으며 모든 영 고유성들과 영적 실체들을 자신에게로 끊임없이 끌어들이십니다.

6:5.6 (78.2) Ever remember, the Eternal Son is the personal portrayal of the spirit Father to all creation. The Son is personal and nothing but personal in the Deity sense; such a divine and absolute personality cannot be disintegrated or fragmentized. God the Father and God the Spirit are truly personal, but they are also everything else in addition to being such Deity personalities. 영원 아들은 모든 창조물들에게 영 아버지의 고유적 묘사임을 늘 기억하라. 아들은 고유적이며 신(神) 감각에 있어서 단지 고유적일 뿐입니다. 그러한 신적이며 절대적인 고유성은 분해될 수도 없고 단편화될 수도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영 하나님은 참으로 고유적이시지만, 그들은 그러한 신(神) 고유성 존재일 뿐만이 아니라 또한 모든 것이십니다.

6:5.7 (78.3) Though the Eternal Son cannot personally participate in the bestowal of the Thought Adjusters, he did sit in council with the Universal Father in the eternal past, approving the plan and pledging endless co-operation, when the Father, in projecting the bestowal of the Thought Adjusters, proposed to the Son, “Let us make mortal man in our own image.” And as the spirit fragment of the Father dwells within you, so does the spirit presence of the Son envelop you, while these two forever work as one for your spiritual advancement. 비록 영원 아들이 생각조절자 증여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영원한 과거에 우주 아버지와의 협의에 참가하셨고, 아버지가 생각조절자 증여를 기획하면서 아들에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따라서 필사 사람을 만들자”라고 제안하셨을 때, 그 계획을 승인하고 끝없는 협조를 서약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 단편이 너희 속에 거(居)하는 것과 같이, 아들의 영 현존이 너희를 감싸며, 동시에 이 둘은 하나가 되어 너희의 영적 전진을 위하여 언제까지나 일하십니다.

6. The Spirit Mind 영 마음

170615 고전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며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아신 것처럼 내가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Now we see but a poor reflection as in a mirror; then we shall see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then I shall know fully, even as I am fully known.

6:6.1 (78.4) The Eternal Son is spirit and has mind, but not a mind or a spirit which mortal mind can comprehend. Mortal man perceives mind on the finite, cosmic, material, and personal levels. Man also observes mind phenomena in living organisms functioning on the subpersonal (animal) level, but it is difficult for him to grasp the nature of mind when associated with supermaterial beings and as a part of exclusive spirit personalities. Mind must, however, be differently defined when it refers to the spirit level of existence, and when it is used to denote spirit functions of intelligence. That kind of mind which is directly allied with spirit is comparable neither to that mind which co-ordinates spirit and matter nor to that mind which is allied only with matter. 영원 아들은 영이시고 마음을 가졌지만, 필사자 마음이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나 영은 아닙니다. 필사 사람은 유한한, 질서우주의, 물질적이며 개인적 차원에서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또한 사람은 하위-개인적(동물적) 차원에서 기능하는 살아있는 유기체 안의 마음 현상도 관찰하지만, 초물질적 존재와 배타적 영 고유성들의 한 부분으로서 연합될 때, 마음의 본성을 파악하는 일이 그에게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그것이 존재의 영 차원을 언급할 때와, 그것이 지능존재의 영 기능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될 때는, 다르게 정의(定意)되어야만 합니다. 영과 직접적으로 결연을 맺은 그러한 종류의 마음은, 영과 물질을 합동시키는 마음이나 혹은 오직 물질과 결연을 맺은 마음 그 어느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6:6.2 (78.5) Spirit is ever conscious, minded, and possessed of varied phases of identity. Without mind in some phase there would be no spiritual consciousness in the fraternity of spirit beings. The equivalent of mind, the ability to know and be known, is indigenous to Deity. Deity may be personal, prepersonal, superpersonal, or impersonal, but Deity is never mindless, that is, never without the ability at least to communicate with similar entities, beings, or personalities. 영은 정체성의 다양한 위상들을 항상 의식하고, 유념하고, 그것들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떤 위상에서 마음이 없다면, 영 존재들의 형제우애에 영적 의식이 없게 될 것입니다. 마음에 상당하는 것, 즉 알고 알려지는 능력은 신(神)에게 있어서 타고난 것입니다. 신(神)은 개인적, 전(前)개인적, 초(超)개인적, 또는 미(未)개인적일 수도 있으나, 신(神)은 결코 마음이 없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비슷한 실재들, 존재들, 혹은 고유성들과 최소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결코 없을 수는 없습니다.

6:6.3 (78.6) The mind of the Eternal Son is like that of the Father but unlike any other mind in the universe, and with the mind of the Father it is ancestor to the diverse and far-flung minds of the Conjoint Creator. The mind of the Father and the Son, that intellect which is ancestral to the absolute mind of the Third Source and Center, is perhaps best illustrated in the premind of a Thought Adjuster, for, though these Father fragments are entirely outside of the mind circuits of the Conjoint Actor, they have some form of premind; they know as they are known; they enjoy the equivalent of human thinking. 영원 아들의 마음은 아버지의 그것과 같지만, 우주에 있는 어느 다른 마음과도 같지 않으며, 아버지의 마음과 함께 그것은 공동창조주의 다양하고 멀리-퍼지는 마음들의 조상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 셋째근원이며 중심의 절대적 마음의 원조(元祖)인 지성은, 아마도 생각조절자의 전(前)마음으로 가장 잘 설명되는데, 이는, 아버지의 이 단편들이 전적으로 공동행위자의 마음 순환회로 밖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전(前)마음의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알려진 그대로 알고 있고; 그들은 인간의 사고와 동등한 것을 누립니다.

6:6.4 (78.7) The Eternal Son is wholly spiritual; man is very nearly entirely material; therefore much pertaining to the spirit personality of the Eternal Son, to his seven spiritual spheres encircling Paradise and to the nature of the impersonal creations of the Paradise Son, will have to await your attainment of spirit status following your completion of the morontia ascension of the local universe of Nebadon. And then, as you pass through the superuniverse and on to Havona, many of these spirit-concealed mysteries will clarify as you begin to be endowed with the “mind of the spirit” — spiritual insight. 영원 아들은 온전히 영적(靈的)이시며; 사람은 거의 온통 물질적입니다; 따라서 영원 아들의 영 고유성, 천국을 에워 도는 그의 일곱 개의 영적 구체들, 그리고 천국 아들의 미(未)개인적 창조계들의 본성에 관한 많은 것들은, 너희가 네바돈 지역우주에서 모론시아 상승의 완성을 마치고 나서 너의 영 지위 달성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너희가 초우주를 지나 하보나에 이르면서, 너희가”영의 마음”─영적 통찰력─자질을 부여받음에 따라, 이러한 영-숨겨진 비밀들의 대부분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7. Personality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고유성

170616 히1:3 그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하나님의 본성을 그대로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며 죄를 깨끗게 하시고 하늘에 계시는 위대하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The Son is the radiance of God’s glory and the exact representation of his being, sustaining all things by his powerful word. After he had provided purification for sins, he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Majesty in heaven.

6:7.1 (79.1) The Eternal Son is that infinite personality from whose unqualified personality fetters the Universal Father escaped by the technique of trinitization, and by virtue of which he has ever since continued to bestow himself in endless profusion upon his ever-expanding universe of Creators and creatures. The Son is absolute personality; God is father personality — the source of personality, the bestower of personality, the cause of personality. Every personal being derives personality from the Universal Father just as the Original Son eternally derives his personality from the Paradise Father. 영원 아들은, 우주 아버지를 속박한 바로 그 분별불가적 고유성으로부터 삼위일체화의 기법에 의해 탈출한, 그 무한한 고유성이며, 그 덕분으로 그는 그 후로 늘 계속 창조주들과 창조물들의 늘-팽창하는 그의 우주 위에 끝없는 풍부함으로 자신을 증여해 왔습니다. 아들은 절대 고유성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고유성─고유성의 근원, 고유성의 증여자, 고유성의 원인─이십니다. 모든 개인적 존재는, 기원 아들이 천국 아버지로부터 그의 고유성을 영원히 얻은 것과 같이, 우주 아버지로부터 고유성을 얻습니다.

6:7.2 (79.2) The personality of the Paradise Son is absolute and purely spiritual, and this absolute personality is also the divine and eternal pattern, first, of the Father’s bestowal of personality upon the Conjoint Actor and, subsequently, of his bestowal of personality upon the myriads of his creatures throughout a far-flung universe. 천국 아들의 고유성은 절대적이고, 순수하게 영적이며, 이 절대 고유성은 또한 신적이며 영원한 원형 틀인데, 우선, 공동행위자에 대한 아버지의 고유성 증여의 원형 틀이며, 다음으로는, 멀리-퍼지는 우주에 두루 그의 수많은 창조물에 대한 고유성 증여의 원형 틀입니다.

6:7.3 (79.3) The Eternal Son is truly a merciful minister, a divine spirit, a spiritual power, and a real personality. The Son is the spiritual and personal nature of God made manifest to the universes — the sum and substance of the First Source and Center, divested of all that which is nonpersonal, extradivine, nonspiritual, and pure potential. But it is impossible to convey to the human mind a word picture of the beauty and grandeur of the supernal personality of the Eternal Son. Everything that tends to obscure the Universal Father operates with almost equal influence to prevent the conceptual recognition of the Eternal Son. You must await your attainment of Paradise, and then you will understand why I was unable to portray the character of this absolute personality to the understanding of the finite mind. 영원 아들은 진실로 자비로운 성직자이시고, 신적 영이시며, 영적 권능이시고, 실제 고유성이십니다. 아들은 우주에 현시된 하나님이 만드신 영적이고 고유적인 본성─비(非)개인적이고, 가외(加外여분의)신성이며, 비(非)영적이고, 순수하게 잠재적인 모든 것을 벗겨낸 첫째근원이며 중심의 전체이자 본체─입니다. 그러나 영원 아들의 숭고한 고유성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말의 묘사로 인간 마음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주 아버지를 가려서 희미하게 이끄는 모든 것이, 거의 똑같은 영향력을 가지고, 영원 아들에 대한 개념적 인식을 막도록 영향을 줍니다. 너희는 너희의 천국 달성을 기다려야만 하며, 그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왜 유한한 마음이 이해하도록 이 절대 고유성의 특성을 묘사할 수 없었는지,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8. Realization of the Eternal Son 영원 아들의 실체화

170620 요5:17-18 17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므로 나도 일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과 똑같은 자리에 올려 놓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이유로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17 Jesus said to them, “My Father is always at his work to this very day, and I, too, am working.” 18 For this reason the Jews tried all the harder to kill him; not only was he breaking the Sabbath, but he was even calling God his own Father, making himself equal with God.

6:8.1 (79.4) Concerning identity, nature, and other attributes of personality, the Eternal Son is the full equal, the perfect complement, and the eternal counterpart of the Universal Father. In the same sense that God is the Universal Father, the Son is the Universal Mother. And all of us, high and low, constitute their universal family. 고유성의 정체성과 본성 그리고 기타 속성들에 관해서 살펴보면, 영원 아들은 우주 아버지와 충만히 동등한 분이시고 완전한 보완자이시며 그리고 우주 아버지의 영원한 짝이십니다. 하나님이 우주 아버지이신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에서 본다면, 아들은 우주 어머니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들 모두는 신분이 높든 낮든 그 분들의 우주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6:8.2 (79.5) To appreciate the character of the Son, you should study the revelation of the divine character of the Father; they are forever and inseparably one. As divine personalities they are virtually indistinguishable by the lower orders of intelligence. They are not so difficult of separate recognition by those whose origin is in the creative acts of the Deities themselves. Beings of nativity in the central universe and on Paradise discern the Father and the Son not only as one personal unity of universal control but also as two separate personalities functioning in definite domains of universe administration. 아들의 성품을 올바르게 알기 위하여, 당신들은 아버지의 신적 성격에 대한 계시를 연구해야만 합니다. 그 분들은 언제까지나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적 고유성으로서, 그 분들은 비교적 낮은 수준의 지능존재에게는 실제로 분별될 수 없습니다. 신(神) 자신들의 창조적 활동 안에 기원을 두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들을 분리해서 인식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중앙우주와 천국에서 태어난 존재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우주를 조정하는 하나의 고유적 통일체일 뿐 아니라 우주 관리의 한정된 권역 안에서 기능하는 두 개의 분리된 고유성임을 식별합니다.

6:8.3 (79.6) As persons you may conceive of the Universal Father and the Eternal Son as separate individuals, for they indeed are; but in the administration of the universes they are so intertwined and interrelated that it is not always possible to distinguish between them. When, in the affairs of the universes, the Father and the Son are encountered in confusing interassociations, it is not always profitable to attempt to segregate their operations; merely recall that God is the initiating thought and the Son is the expressionful word. In each local universe this inseparability is personalized in the divinity of the Creator Son, who stands for both Father and Son to the creatures of ten million inhabited worlds. 개인으로서의 당신들은 우주 아버지와 영원 아들을 분리된 개별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는 그 분들이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주들의 관리에 있어서 그분들은 너무도 서로 얽혀있고, 서로 연관되어 있어서, 그들 사이를 식별하는 것이 항상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우주의 사무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이 혼란스러운 상호연합 속에서 만나게 될 때, 그 분들의 활동을 분리시키려는 시도가 항상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은 창시(創始)하는 생각이고, 아들은 표현이 풍부한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각 지역우주에서 이 분리할 수 없음은 창조주 아들의 신성 안에서 고유성화 되어있으며, 그는 천만 거주세계의 창조물들에게 아버지와 아들 두 분 모두를 대표하십니다.

170621 계20:12 그리고 나는 죽은 사람들이 모두 그 보좌 앞에 서 있고 책들이 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또 다른 책이 한 권 있었는데 그것은 생명책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그 책들에 기록된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And I saw the dead, great and small, standing before the throne, and books were opened. Another book was opened, which is the book of life. The dead were judged according to what they had done as recorded in the books.

6:8.4 (80.1) The Eternal Son is infinite, but he is approachable through the persons of his Paradise Sons and through the patient ministry of the Infinite Spirit. Without the bestowal service of the Paradise Sons and the loving ministry of the creatures of the Infinite Spirit, beings of material origin could hardly hope to attain the Eternal Son. And it is equally true: With the help and guidance of these celestial agencies the God-conscious mortal will certainly attain Paradise and sometime stand in the personal presence of this majestic Son of Sons. 영원 아들은 무한하시지만, 그의 천국 아들들의 개인을 통하여, 그리고 무한 영의 인내하는 돌봄을 통하여 그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천국 아들들이 베푸는 증여 봉사와 무한 영의 창조물들에 대한 사랑의 돌봄 없이는, 물질적 기원을 지닌 존재들이 영원 아들에게 도달할 희망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똑같이 참 말입니다. 하나님을-의식하는 필사자는, 이 하늘 대리자들의 도움과 안내로 확실히 천국에 도달할 것이며, 언젠가는 이 장엄한 아들들 중의 아들의 고유적 현존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6:8.5 (80.2) Even though the Eternal Son is the pattern of mortal personality attainment, you find it easier to grasp the reality of both the Father and the Spirit because the Father is the actual bestower of your human personality and the Infinite Spirit is the absolute source of your mortal mind. But as you ascend in the Paradise path of spiritual progression, the personality of the Eternal Son will become increasingly real to you, and the reality of his infinitely spiritual mind will become more discernible to your progressively spiritualizing mind. 비록 영원 아들이 필사자의 고유성들이 도달해야 하는 원형틀이지만, 당신들은 아버지와 영, 두 분의 실체 파악이 더 쉽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너희에게 인간 고유성을 실제로 증여하는 분이시고, 무한 영은 당신들 필사자가 지닌 마음의 절대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진보하는 천국 경로로 당신들이 상승함에 따라, 영원 아들의 고유성은 당신들에게 점점 더 실제가 될 것이고, 그의 무한히 영적인 마음의 실체는 점진적으로 영성화 되어가는 당신들의 마음으로 더 많이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6:8.6 (80.3) Never can the concept of the Eternal Son shine brightly in your material or subsequent morontial mind; not until you spiritize and commence your spirit ascension will the comprehension of the personality of the Eternal Son begin to equal the vividness of your concept of the personality of the Creator Son of Paradise origin who, in person and as a person, onetime incarnated and lived on Urantia as a man among men. 영원 아들의 개념은 너희의 물질적 마음 또는 그 이후의 부활체(모론시아) 마음에서 결코 환하게 빛날 수 없습니다. 너희가 영성화 되고 너희 영의 상승이 시작하기까지는, 영원 아들의 고유성에 대한 이해는, 개인 안에서와 한 개인으로서, 한때 지구(유란시아)에 육신화 되었고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살았던 분이신, 천국의 기원을 지닌 창조주 아들 고유성에 대한 너희의 선명한 개념과 동일한 것으로 시작할 수 없습니다.

170621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6:8.7 (80.4) Throughout your local universe experience the Creator Son, whose personality is comprehensible by man, must compensate for your inability to grasp the full significance of the more exclusively spiritual, but none the less personal, Eternal Son of Paradise. As you progress through Orvonton and Havona, as you leave behind you the vivid picture and deep memories of the Creator Son of your local universe, the passing of this material and morontia experience will be compensated by ever-enlarging concepts and intensifying comprehension of the Eternal Son of Paradise, whose reality and nearness will ever augment as you progress Paradiseward. 너희가 속해 있는 지역우주 체험 전체를 통해서, 인간에 의해 그 고유성이 이해될 수 있는 창조주 아들은, 더욱 배타적으로 영적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천국 영원 아들에 대한 충만한 중요성을 파악할 수 없는 너희의 무능력을 보완하셔야만 합니다. 너희가 오르본톤과 하보나를 거쳐 진보함에 따라서, 너희가 너희 지역우주의 창조주 아들에 대한 생생한 모습과 깊은 기억을 뒤에 남겨두고 떠나갈 때, 거쳐서 지나가는 이 물질적인 체험과 부활체(모론시아) 체험은 천국의 영원 아들에 대해 계속 확장되는 개념과 강화되는 이해에 의하여 보완될 것이며, 그의 실체와 친숙함은 너희가 천국을 향하여 진보함에 따라 항상 증대될 것이다.

6:8.8 (80.5) The Eternal Son is a grand and glorious personality. Although it is beyond the powers of the mortal and material mind to grasp the actuality of the personality of such an infinite being, doubt not, he is a person. I know whereof I speak. Times almost without number I have stood in the divine presence of this Eternal Son and then journeyed forth in the universe to execute his gracious bidding. 영원 아들은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고유성이십니다. 그처럼 무한한 존재가 지닌 고유성의 실제 파악은 필사자와 물질적 마음이 지닌 권능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의심할 바 없이, 그 분은 하나의 개인이십니다. 나는 내가 말하는 바를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거의 셀 수 없이 수많은 시간을 영원 아들의 신적 현존 속에 서 있었고, 그 후 그의 인자하신 명령을 실행하기 위하여 우주를 향해 여행을 떠나왔습니다.

6:8.9 (80.6) [Indited by a Divine Counselor assigned to formulate this statement depicting the Eternal Son of Paradise.] [천국의 영원 아들을 설명하는 이 글을 작성하도록 배정된 신적 조언자가 진술하였습니다].

Paper 132 The Sojourn at Rome 로마 체류(滯留) 기간

Paper 132

The Sojourn at Rome 로마 체류(滯留) 기간

132:0.1 (1455.1) SINCE Gonod carried greetings from the princes of India to Tiberius, the Roman ruler, on the third day after their arrival in Rome the two Indians and Jesus appeared before him. The morose emperor was unusually cheerful on this day and chatted long with the trio. And when they had gone from his presence, the emperor, referring to Jesus, remarked to the aide standing on his right, “If I had that fellow’s kingly bearing and gracious manner, I would be a real emperor, eh?” 인도의 왕자들이 로마의 통치자인 티베리우스Tiberius에게 보내는 서신을 고노드가 가지고 왔으므로, 로마에 도착한지 3일 후에 이 두 인도인들과 예수는 티베리우스를 만나러 갔습니다. 성미가 괴팍한 이 황제는 그날따라 평소와는 달리 매우 기분이 좋았고 이 세 사람들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자기 앞에서 물러가자, 이 황제는 오른 쪽에 서 있던 측근에게 예수에 대해, “만약 내가 저 사람의 왕다운 자태와 우아한 태도를 가졌다면, 나도 진짜 황제가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하였습니다.

132:0.2 (1455.2) While at Rome, Ganid had regular hours for study and for visiting places of interest about the city. His father had much business to transact, and desiring that his son grow up to become a worthy successor in the management of his vast commercial interests, he thought the time had come to introduce the boy to the business world. There were many citizens of India in Rome, and often one of Gonod’s own employees would accompany him as interpreter so that Jesus would have whole days to himself; this gave him time in which to become thoroughly acquainted with this city of two million inhabitants. He was frequently to be found in the forum, the center of political, legal, and business life. He often went up to the Capitolium and pondered the bondage of ignorance in which these Romans were held as he beheld this magnificent temple dedicated to Jupiter, Juno, and Minerva. He also spent much time on Palatine hill, where were located the emperor’s residence, the temple of Apollo, and the Greek and Latin libraries.로마에 있는 동안, 가니드는 규칙적으로 공부하고, 그 도시에서 흥미로운 곳들을 정규적으로 방문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의 아버지 고노드는 사업상의 많은 거래가 하였으며, 자기 아들이 성장해서 자신의 뒤를 따라, 거대한 무역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관리하는 훌륭한 후계자가 되기를 원하여서, 이 소년에게 상업계의 현실을 보여 줄 시기가 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로마에는 많은 인도 시민들이 있었고, 고노드가 직접 채용한 사람들 중 하나가 그를 위해 통역을 자주 맡아 주었기 때문에, 예수는 자유로운 시간을 확보하여 예수는 2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이 도시에 대하여 정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 사법, 및 상업 활동의 중심지가 되는 광장(廣場)을 자주 방문하였습니다. 그는 캐피토리움Capitolium에 종종 올라갔고 거기서 쥬피터Jupiter와 쥬노Juno와 미네르바Minerva에게 바쳐진 이 웅장한 신전을 보면서, 이 로마인들이 붙들려 있는 무지한 속박에 대해 깊이 묵상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팔라틴 언덕 Palatine hill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곳에는 황제의 저택과 아폴로Apollo 신전 그리고 그리스와 라틴 도서관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132:0.3 (1455.3) At this time the Roman Empire included all of southern Europe, Asia Minor, Syria, Egypt, and northwest Africa; and its inhabitants embraced the citizens of every country of the Eastern Hemisphere. His desire to study and mingle with this cosmopolitan aggregation of Urantia mortals was the chief reason why Jesus consented to make this journey. 당시 로마 제국은 남부 유럽 전체,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북서 아프리카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그 곳의 주민들 중 동반구(東半球)에 위치한 나라의 시민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여행에 동참하기로 승낙한 주된 이유는 바로 이 세계적 집결지에서 세상 사람들을 연구하고 그들과 교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32:0.4 (1455.4) Jesus learned much about men while in Rome, but the most valuable of all the manifold experiences of his six months’ sojourn in that city was his contact with, and influence upon, the religious leaders of the empire’s capital. Before the end of the first week in Rome Jesus had sought out, and had made the acquaintance of, the worth-while leaders of the Cynics, the Stoics, and the mystery cults, in particular the Mithraic group. Whether or not it was apparent to Jesus that the Jews were going to reject his mission, he most certainly foresaw that his messengers were presently coming to Rome to proclaim the kingdom of heaven; and he therefore set about, in the most amazing manner, to prepare the way for the better and more certain reception of their message. He selected five of the leading Stoics, eleven of the Cynics, and sixteen of the mystery-cult leaders and spent much of his spare time for almost six months in intimate association with these religious teachers. And this was his method of instruction: Never once did he attack their errors or even mention the flaws in their teachings. In each case he would select the truth in what they taught and then proceed so to embellish and illuminate this truth in their minds that in a very short time this enhancement of the truth effectively crowded out the associated error; and thus were these Jesus-taught men and women prepared for the subsequent recognition of additional and similar truths in the teachings of the early Christian missionaries. It was this early acceptance of the teachings of the gospel preachers which gave that powerful impetus to the rapid spread of Christianity in Rome and from there throughout the empire.예수는 로마에 머무는 동안 사람들에 대해 많이 배웠지만, 그가 이 도시에서 6개월의 다양한 체류 경험들 중에서 가장 가치 있었던 것은, 그 제국의 수도(首都)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었습니다. 로마에서 첫 주간(週間)이 지나가기 전에, 예수는 견유학파, 스토아학파, 신비적 종파들, 그리고 특히 미트라 숭배 집단의 훌륭한 지도자들을 찾았으며 그들과 친숙해졌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사명에 대한 유대인들의 거부를 분명히 알고 있었는지의 유무에 상관없이, 그는 자신의 사자(使者)들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하여 로마로 올 것임을 아주 확실히 예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그들이 전하게 될 복음이 좀 더 수월하고 확실히 수용되도록 미리 그 길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스토아학파에서 뛰어난 5명, 견유학파에서 11명, 그리고 신비 종파의 지도자들 중에서 16명을 선택하였으며, 이 종교 교사들과 가깝게 교제하면서 거의 6개월 동안 자기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그가 다음과 같이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그들의 실책들을 한 번도 공격하지 않았고 그들의 가르침이 내포하는 결점들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각 경우마다 그들의 가르침 속에 있는 진리를 분리한 후에 이 진리가 그들의 정신 속에서 조정되고 밝게 빛나도록 유도하여, 짧은 시간 내에 이러한 진리의 강화로, 관련된 오류를 효과적으로 밀어내게 만들었습니다. 예수가 가르쳤던 이 남녀들은, 나중에 초기 기독교 선교사들의 교훈 속에서 좀 더 첨부된 비슷한 진리들을 알아볼 수 있도록 준비되었습니다. 복음 전파자들의 가르침이 이런 방식으로 일찍부터 수용되었기 때문에, 로마에서 기독교는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으며, 그곳에서부터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강력한 촉진제가 제공되었습니다.

132:0.5 (1456.1) The significance of this remarkable doing can the better be understood when we record the fact that, out of this group of thirty-two Jesus-taught religious leaders in Rome, only two were unfruitful; the thirty became pivotal individuals in the establishment of Christianity in Rome, and certain of them also aided in turning the chief Mithraic temple into the first Christian church of that city. We who view human activities from behind the scenes and in the light of nineteen centuries of time recognize just three factors of paramount value in the early setting of the stage for the rapid spread of Christianity throughout Europe, and they are: 주목할 만한 이 업적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가 로마에서 가르쳤던 32명의 종교 지도자들 중 오직 두 명만이 결실을 맺지 못했으며, 30명은 로마에서의 기독교 설립에 있어서 중심인물들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최고의 미드라교 신전이 그 도시의 첫 기독교 교회로 바뀌도록 공헌하기도 하였습니다. 19세기 시대의 관점에서 고려해 볼 때, 유럽 전역에 기독교가 빨리 전파되는 무대를 위해 탁월한 가치를 갖는 세 가지 요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32:0.6 (1456.2) 1. The choosing and holding of Simon Peter as an apostle. 1. 시몬 베드로를 사도(使徒)로 선택하고 유지함.

132:0.7 (1456.3) 2. The talk in Jerusalem with Stephen, whose death led to the winning of Saul of Tarsus. 2. 자신의 죽음으로 다소의 사울을 얻게 된 스데반과 예수님의 예루살렘에서의 대화.

132:0.8 (1456.4) 3. The preliminary preparation of these thirty Romans for the subsequent leadership of the new religion in Rome and throughout the empire. 3. 로마와 제국 전역에서 새로운 종교 지도자가 되도록 준비시킨 30명의 이 로마인들.

132:0.9 (1456.5) Through all their experiences, neither Stephen nor the thirty chosen ones ever realized that they had once talked with the man whose name became the subject of their religious teaching. Jesus’ work in behalf of the original thirty-two was entirely personal. In his labors for these individuals the scribe of Damascus never met more than three of them at one time, seldom more than two, while most often he taught them singly. And he could do this great work of religious training because these men and women were not tradition bound; they were not victims of a settled preconception as to all future religious developments.스데반과 선택받은 30명의 로마인들도, 자신들의 모든 경험 전반에 걸쳐서, 자기들이 한 때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사람의 이름이 자신들의 종교적 가르침의 주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원래 이 32명을 위한 예수의 활동은 온전히 사적(私的)인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을 준비시키는 수고에 있어, 다마스커스의 서기관은 결코 동시에 세 사람 이상을 만나지 않았으며, 두 사람 이상인 경우도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는 대부분 그들을 한 사람씩 가르쳤습니다. 그가 이렇게 위대한 종교적 훈련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남자들과 여자들이 전통에 매어 있지 않았기 때문으로, 이들은, 미래의 모든 종교적 진보와는 달리, 고정된 선입견의 희생자들이 아니었습니다.

132:0.10 (1456.6) Many were the times in the years so soon to follow that Peter, Paul, and the other Christian teachers in Rome heard about this scribe of Damascus who had preceded them, and who had so obviously (and as they supposed unwittingly) prepared the way for their coming with the new gospel. Though Paul never really surmised the identity of this scribe of Damascus, he did, a short time before his death, because of the similarity of personal descriptions, reach the conclusion that the “tentmaker of Antioch” was also the “scribe of Damascus.” On one occasion, while preaching in Rome, Simon Peter, on listening to a description of the Damascus scribe, surmised that this individual might have been Jesus but quickly dismissed the idea, knowing full well (so he thought) that the Master had never been in Rome.몇 년 후 많은 사람들이 매우 신속하게 이들의 뒤를 따랐으며, 베드로와 바울 및 로마에 왔던 다른 기독교 선생들은 자기들보다 먼저 와서, 자기들이 새로운 복음을 가지고 올 수 있도록 매우 분명히 그 길을 준비해 놓았던 이 다마스커스의 서기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다마스커스의 서기관의 정체를 한 번도 실제적으로 추측한 적이 없었지만, 그가 죽기 얼마 전, 그에 대한 개인적 설명들의 유사성을 근거로, “안디옥의 천막 짓는 이” 가 바로 “다마스커스의 서기관”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한 번은, 시몬 베드로가, 로마에서 전도하는 동안, 다마스커스의 서기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어쩌면 이 사람이 바로 예수라고 추측하였지만, 그는 자기 스승이 로마에 온 적이 없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곧 그 생각을 지워버렸습니다.

1. True Values 참된 가치

160720 수요 예수51 (29세-AD23) 로마 체류 기간

132:1.1 (1456.7) It was with Angamon, the leader of the Stoics, that Jesus had an all-night talk early during his sojourn in Rome. This man subsequently became a great friend of Paul and proved to be one of the strong supporters of the Christian church at Rome. In substance, and restated in modern phraseology, Jesus taught Angamon: 로마 체류기간의 초기에 예수께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스토아학파의 지도자인 앙가몬Angamon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중에 바울의 훌륭한 친구가 되었고, 로마에서 기독교 교회를 강력하게 지지한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가 앙가몬에게 가르쳤던 내용을 현대 언어로 다시 요약하여 서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32:1.2 (1457.1) The standard of true values must be looked for in the spiritual world and on divine levels of eternal reality. To an ascending mortal all lower and material standards must be recognized as transient, partial, and inferior. The scientist, as such, is limited to the discovery of the relatedness of material facts. Technically, he has no right to assert that he is either materialist or idealist, for in so doing he has assumed to forsake the attitude of a true scientist since any and all such assertions of attitude are the very essence of philosophy. 참된 가치관의 기준은 영적 세계에서와 영원한 실체의 신성한 차원들에서 찾아야만 한다. 사람에게 저급하고 물질적인 모든 기준들은 과도기적이고, 부분적이며 열등한 것으로 인지되어야만 한다. 과학자들은 물질적 사실들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면에 국한하여 영향을 끼친다. 기술적으로 볼 때, 과학자는 자신이 물질주의자나 혹은 이상주의자라고 주장할 권리가 없는 이유는 자신이 주장하는 태도의 일부 또는 전부가 바로 철학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자신을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것은 그가 진정한 과학자의 태도를 거부하는 것으로 가정했기 때문이다.

132:1.3 (1457.2) Unless the moral insight and the spiritual attainment of mankind are proportionately augmented, the unlimited advancement of a purely materialistic culture may eventually become a menace to civilization. A purely materialistic science harbors within itself the potential seed of the destruction of all scientific striving, for this very attitude presages the ultimate collapse of a civilization which has abandoned its sense of moral values and has repudiated its spiritual goal of attainment. 만약 인류의 도덕적 통찰력과 영적 달성이 균형이 잡힌 비율로 증대되지 않는다면, 물질적 문화의 무제한적인 발전은 결국 문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물질적인 과학은 모든 과학적 투쟁성과를 파괴하는 잠재적 씨앗을 그 자체 내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속성은, 한 문명이 스스로 도덕적 가치에 대한 감각sense of moral values을 포기하면서 영적 달성의 목표를 배척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문명의 궁극적 붕괴를 가져오는 전조가 된다.

132:1.4 (1457.3) The materialistic scientist and the extreme idealist are destined always to be at loggerheads. This is not true of those scientists and idealists who are in possession of a common standard of high moral values and spiritual test levels. In every age scientists and religionists must recognize that they are on trial before the bar of human need. They must eschew all warfare between themselves while they strive valiantly to justify their continued survival by enhanced devotion to the service of human progress. If the so-called science or religion of any age is false, then must it either purify its activities or pass away before the emergence of a material science or spiritual religion of a truer and more worthy order. 물질적인 과학자와 극단적인 이상주의자는 항상 서로 투쟁하면서 다투게 되어 있다. 이것은 높은 도덕적 가치와 영적 시험 차원의 상식적 기준을 소유한 과학자와 이상주의자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모든 시대에, 과학자들과 종교가들은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들은 인간의 진보를 이루는 임무에 더욱 더 헌신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속적인 생존을 정당화하려고 용감하게 분투하는 한편, 그들은 서로 간의 모든 전쟁을 피해가야만 한다. 만약에 어떤 시대의 과학이나 종교가 거짓되다면, 좀 더 진실하고 좀 더 가치 있는 질서의 물질적 과학 또는 영적 종교가 시작되기 전에 그것들의 활동들은 정화되거나 아니면 사라져야만 한다.

2. Good and Evil160727 수요 예수52 (29세-AD23) 로마 체류 기간(선과 악GOOD AND EVIL)

132:2.1 (1457.4) Mardus was the acknowledged leader of the Cynics of Rome, and he became a great friend of the scribe of Damascus. Day after day he conversed with Jesus, and night upon night he listened to his supernal teaching. Among the more important discussions with Mardus was the one designed to answer this sincere Cynic’s question about good and evil. In substance, and in twentieth-century phraseology, Jesus said: 마르두스Mardus는 로마에서 유명한 견유학파Cynics 지도자였으며, 다마스커스Damascus의 서기관에게 훌륭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매일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눴으며, 밤에는 그의 고귀한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여러 토론 가운데 이 진지한 견유학자의 질문에 예수께서 답변하려는 의도로 마련된 내용들을 요약해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32:2.2 (1457.5) My brother, good and evil are merely words symbolizing relative levels of human comprehension of the observable universe. If you are ethically lazy and socially indifferent, you can take as your standard of good the current social usages. If you are spiritually indolent and morally unprogressive, you may take as your standards of good the religious practices and traditions of your contemporaries. But the soul that survives time and emerges into eternity must make a living and personal choice between good and evil as they are determined by the true values of the spiritual standards established by the divine spirit which the Father in heaven has sent to dwell within the heart of man. This indwelling spirit is the standard of personality survival.나의 형제여, 선(善)과 악(惡)이란 말은, 관찰이 가능한 우주에 대하여 인간이 이해하고 있는 상대적 차원을 상징하는 단어에 불과하다. 만일 네가 윤리적으로 게으르고 사회적으로 무관심하다면, 선에 대한 너의 기준으로, 현재의 사회적 관례들을 선택할 수도 있다. 만약 네가 영적으로 나태하고 도덕적으로 진보적이지 못하다면, 너는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종교적 관행과 전통을 네 선의 기준으로 삼아도 된다. 그러나 시간의 세계에서 생존하여 영원을 향해서 나아가는 혼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마음 안에 거하도록 보내준 거룩한 영에 의해 세워주신 영적인 기준들에 대한 진정한 가치에 따라서 선과 악 사이에서 생명력 있는 개인적인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이러한 내주(內住)하는 영이 개인성(고유성) 생존의 기준이다.

132:2.3 (1457.6) Goodness, like truth, is always relative and unfailingly evil-contrasted. It is the perception of these qualities of goodness and truth that enables the evolving souls of men to make those personal decisions of choice which are essential to eternal survival. 진리와 마찬가지로, 선이란 항상 상대적이며, 반드시 악과 대조된다. 이들 선과 진리의 특성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진전하는 혼이 영원한 생존에 필수적인 선택을 개인이 결정할 수 있게 한다.

132:2.4 (1458.1) The spiritually blind individual who logically follows scientific dictation, social usage, and religious dogma stands in grave danger of sacrificing his moral freedom and losing his spiritual liberty. Such a soul is destined to become an intellectual parrot, a social automaton, and a slave to religious authority. 과학적 명령과 사회적 관례 그리고 종교적 교리를 논리적으로 따라가는, 영적으로 눈이 어두운 개인들은 자신의 도덕적 자유를 희생하고 영적 자유를 잃어버리는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러한 혼은 지적 앵무새나 사회적 자동기계나 종교적 권력의 노예가 될 운명에 처해 있다.

132:2.5 (1458.2) Goodness is always growing toward new levels of the increasing liberty of moral self-realization and spiritual personality attainment — the discovery of, and identification with, the indwelling Adjuster. An experience is good when it heightens the appreciation of beauty, augments the moral will, enhances the discernment of truth, enlarges the capacity to love and serve one’s fellows, exalts the spiritual ideals, and unifies the supreme human motives of time with the eternal plans of the indwelling Adjuster, all of which lead directly to an increased desire to do the Father’s will, thereby fostering the divine passion to find God and to be more like him. 선(善)은 도덕적인 자아실현과 영적 개인성의 달성 — 내주하는 아버지의 영을 발견하고 더불어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 —을 향한 증대되는 자유의 새로운 단계들을 향하여 항상 성장한다. 체험은, 아름다움(美)을 깊이 이해하도록 자극하고, 도덕적 의지를 강화시키며, 진리에 대한 식별력을 증대시키고, 동료들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힘을 확대하며, 영적 이상을 고양(高揚)시키고, 시간 안에 있는 인간이 지닌 최상의 동기와 내주하는 아버지 영의 영원한 계획과 통합할 때, 선(善)하며, 그러한 모든 것들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소망이 커지도록 직접적으로 인도하고, 그를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를 더욱 닮아가려는 거룩한 열망을 성숙시킵니다.

132:2.6 (1458.3) As you ascend the universe scale of creature development, you will find increasing goodness and diminishing evil in perfect accordance with your capacity for goodness-experience and truth-discernment. The ability to entertain error or experience evil will not be fully lost until the ascending human soul achieves final spirit levels. 네가 피조물이 발전하는 우주적인 기준이 상승함에 따라 즉 선을 체험하고 진리를 식별하는 너의 수용능력과 온전한 조화 가운데, 너는 증대되는 선과 감소하는 악을 발견할 것이다. 상승하는 인간의 혼이 최종적 영적 단계를 성취할 때까지는, 실수하고 악을 경험하는 능력을 온전히 상실하지 않게 될 것이다.

132:2.7 (1458.4) Goodness is living, relative, always progressing, invariably a personal experience, and everlastingly correlated with the discernment of truth and beauty. Goodness is found in the recognition of the positive truth-values of the spiritual level, which must, in human experience, be contrasted with the negative counterpart — the shadows of potential evil. 선(善)은 살아있고, 상대적이며, 항상 진보하고, 변함없는 하나의 개인적 체험이며, 진리(眞)와 아름다움(美)을 식별하는 것과 영속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선은 영적 차원의 긍정적 진리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는 가운데 발견되며, 그것은 인간의 체험 안에서, 부정적인 상응 즉 잠재적인 악의 그림자와 대비되어야만 한다.

132:2.8 (1458.5) Until you attain Paradise levels, goodness will always be more of a quest than a possession, more of a goal than an experience of attainment. But even as you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you experience increasing satisfaction in the partial attainment of goodness. The presence of goodness and evil in the world is in itself positive proof of the existence and reality of man’s moral will, the personality, which thus identifies these values and is also able to choose between them. 네가 천국의 차원들에 도달할 때까지, 선은 항상 성취한 체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목표가 될 것이며, 소유라기보다는 계속적인 추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정의에 굶주리고 목말라 할지라도, 부분적인 선의 성취 가운데, 더욱 충만해져가는 만족을 체험하게 된다. 이 세상에 선과 악이 현존한다는 사실은, 사람의 도덕적 의지의 존재와 실체, 그리고 이들 가치들을 감정하고, 그 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개인성의 존재와 실체의 명확한 증거이다.

132:2.9 (1458.6) By the time of the attainment of Paradise the ascending mortal’s capacity for identifying the self with true spirit values has become so enlarged as to result in the attainment of the perfection of the possession of the light of life. Such a perfected spirit personality becomes so wholly, divinely, and spiritually unified with the positive and supreme qualities of goodness, beauty, and truth that there remains no possibility that such a righteous spirit would cast any negative shadow of potential evil when exposed to the searching luminosity of the divine light of the infinite Rulers of Paradise. In all such spirit personalities, goodness is no longer partial, contrastive, and comparative; it has become divinely complete and spiritually replete; it approaches the purity and perfection of the Supreme. 천국에 도달하는 시기에 이르면, 자아를 진정한 영적 가치들로 자기화할 수 있는, 상승하는 존재의 수용능력은 생명의 빛을 소유하는 완전성의 성취라는 결과를 낳기까지 그렇게 확대된다. 그렇게 완전해진 영 개인성은, 너무나 전적으로, 거룩하게, 그리고 영적으로, 선함(善), 아름다움(美), 그리고 진리(眞)의 적극적이며 최상의 특성과 통합되며, 무한한 천국 통치자의 거룩한 빛이 밝히 드러날 때, 정의로운 영은 그 어떠한 잠재적 악의 부정적인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어떤 가능성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러한 모든 영적 개인성에서, 선(善)은 더 이상 부분적이거나, 대조적이거나, 비교 되지 않는다. 그것은 거룩하게 완성되었고 영적으로 충만하게 되었으며, 최상 존재의 순수함과 완전성에 가까워진다.

132:2.10 (1458.7) The possibility of evil is necessary to moral choosing, but not the actuality thereof. A shadow is only relatively real. Actual evil is not necessary as a personal experience. Potential evil acts equally well as a decision stimulus in the realms of moral progress on the lower levels of spiritual development. Evil becomes a reality of personal experience only when a moral mind makes evil its choice. 악의 가능성은 도덕적 선택을 위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제성은 아니다. 그림자는 단지 상대적으로 실재할 뿐이다. 실제적 악은 하나의 개인적 체험으로서 필연적이지 않다. 잠재적인 악은, 영적 발전의 낮은 차원에 대한 도덕적 진보의 영역 가운데, 결단의 자극제로 동일하게 적절히 작용한다. 악은 오직 도덕적 마음이 악을 선택했을 때에만, 하나의 개인적 체험의 실체가 된다.

3. Truth and Faith160810 수요 예수53 (29세-AD23) 로마 체류 기간(진리와 신앙TRUTH AND FAITH)

132:3.1 (1459.1) Nabon was a Greek Jew and foremost among the leaders of the chief mystery cult in Rome, the Mithraic. While this high priest of Mithraism held many conferences with the Damascus scribe, he was most permanently influenced by their discussion of truth and faith one evening. Nabon had thought to make a convert of Jesus and had even suggested that he return to Palestine as a Mithraic teacher. He little realized that Jesus was preparing him to become one of the early converts to the gospel of the kingdom. Restated in modern phraseology, the substance of Jesus’ teaching was: 나본Nabon은 그리스 유대인이었고, 로마에서 최고 신비종교였던 미트라교의 지도자들 중에서 지도자였습니다. 미트라교Mithraism의 이 고위 사제는, 다마스커스의 서기관Damascus scribe과의 여러 번의 만남 중에서, 어느 날 저녁 나누었던 진리와 신앙에 관한 토론으로 가장 지속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나본은 예수를 개종시켜서 미트라교의 선생이 되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도록 그에게 제의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가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한 초기 개종자들 중의 하나로 자신을 준비시키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요지를 현대 용어로 다시 서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32:3.2 (1459.2) Truth cannot be defined with words, only by living. Truth is always more than knowledge. Knowledge pertains to things observed, but truth transcends such purely material levels in that it consorts with wisdom and embraces such imponderables as human experience, even spiritual and living realities. Knowledge originates in science; wisdom, in true philosophy; truth, in the religious experience of spiritual living. Knowledge deals with facts; wisdom, with relationships; truth, with reality values. 진리는 말이 아니라, 단지 삶에 의해서만 정의(定意)되어질 수 있다. 진리는 항상 지식 이상의 것이다. 지식은 관찰할 수 있는 사물들과 관련되어 있지만, 진리는 그렇게 순전히 물질적인 차원들을 초월하며, 그 안에서 지혜와 조화를 이루어 결합되고, 측정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인간의 체험이 되게 하며, 게다가 영적이고 살아있는 실체들로 받아들이게 한다. 지식은 과학에서, 지혜는 진정한 철학에서, 진리는 영적 삶의 종교적 체험에서 비롯된다. 지식은 사실들을, 지혜는 관계들을, 진리는 실체에 대한 가치들을 다룬다.

132:3.3 (1459.3) Man tends to crystallize science, formulate philosophy, and dogmatize truth because he is mentally lazy in adjusting to the progressive struggles of living, while he is also terribly afraid of the unknown. Natural man is slow to initiate changes in his habits of thinking and in his techniques of living. 사람은 과학을 결정화하고, 철학을 정형화하며, 진리를 교리화(敎理化)하려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삶의 발전적인 투쟁에 적응시키는 일에 정신적으로 나태하고, 또 한편으로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몹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연적인 사람은 자기 사고방식이나 살아가는 기법들의 변화를 시도하는데 있어서 둔하다.

132:3.4 (1459.4) Revealed truth, personally discovered truth, is the supreme delight of the human soul; it is the joint creation of the material mind and the indwelling spirit. The eternal salvation of this truth-discerning and beauty-loving soul is assured by that hunger and thirst for goodness which leads this mortal to develop a singleness of purpose to do the Father’s will, to find God and to become like him. There is never conflict between true knowledge and truth. There may be conflict between knowledge and human beliefs, beliefs colored with prejudice, distorted by fear, and dominated by the dread of facing new facts of material discovery or spiritual progress. 계시된 진리, 개인적으로 발견된 진리는, 인간 혼이 누리는 최상의 기쁨이다. 그것은 물질적인 마음과 내재하는 영이 공동으로 창조한 것이다. 진리(眞)를 식별하고 아름다움(美)을 사랑하는 이 혼의 영원한 구원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찾으며 그를 닮아가려는 단 한 가지의 목적만을 개발하도록 이 사람을 인도하는 선(善)에 대한 굶주림과 목마름에 의하여 확인된다. 진정한 지식과 진리 사이에는 아무 충돌이 없다. 지식과 인간 신념들, 편견으로 채색되고, 두려움에 의해 변형되고, 물질적 발견이나 영적 진보의 새로운 사실들에 대처하는 것을 두려워함으로써 지배를 당하는 신념들 사이에서 아마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132:3.5 (1459.5) But truth can never become man’s possession without the exercise of faith. This is true because man’s thoughts, wisdom, ethics, and ideals will never rise higher than his faith, his sublime hope. And all such true faith is predicated on profound reflection, sincere self-criticism, and uncompromising moral consciousness. Faith is the inspiration of the spiritized creative imagination. 그러나 진리는 신앙의 실천 없이는 절대로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조금도 틀리지 않는 것은, 사람의 생각들과 지혜 그리고 윤리와 이상들은 그 자신의 신앙 즉 자신의 최고의 희망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참된 신앙은 심오한 반영과, 진지한 자아비판, 그리고 타협하지 않는 도덕적 의식 위에 세워진다. 신앙은 영성화된 창조적 상상력의 영감이다.

132:3.6 (1459.6) Faith acts to release the superhuman activities of the divine spark, the immortal germ, that lives within the mind of man, and which is the potential of eternal survival. Plants and animals survive in time by the technique of passing on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 identical particles of themselves. The human soul (personality) of man survives mortal death by identity association with this indwelling spark of divinity, which is immortal, and which functions to perpetuate the human personality upon a continuing and higher level of progressive universe existence. The concealed seed of the human soul is an immortal spirit. The second generation of the soul is the first of a succession of personality manifestations of spiritual and progressing existences, terminating only when this divine entity attains the source of its existence, the personal source of all existence, God, the Universal Father.신앙은 불멸의 씨앗인 거룩한 불꽃의 초인간적 활동들이 이루어지도록 작용하는데, 그 씨앗은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있으며, 영원한 생존에 대한 잠재력이다. 식물들과 동물들은, 자기와 동일한 입자들을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하는 기법으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존한다. 사람의 인간 혼(개인성)은 내주하는 이 신성(神性)의 불꽃과 본성적으로 연합함으로써 이 세상의 죽음에서 살아남는데, 그 불꽃은 불멸하는 것으로, 인간의 개인성이 지속적이며 더 높은 차원의 진보적 우주 실재로서 영속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인간 혼의 그 숨겨진 씨앗은 하나의 불멸하는 영이다. 혼의 두 번째 세대는, 영적이고 진보하는 실재들의 개인성 현시이며, 이것은 오직 이 신성한 실존개체가 그 실재의 근원, 모든 실재의 개인적 근원, 하나님, 우주 아버지께 이르렀을 때에만 끝나는 그 개인성 현시의 첫 번째 계승이다.

132:3.7 (1459.7) Human life continues — survives — because it has a universe function, the task of finding God. The faith-activated soul of man cannot stop short of the attainment of this goal of destiny; and when it does once achieve this divine goal, it can never end because it has become like God — eternal.인간의 생명은 계속 이어져 생존한다. 이는 그것이 하나의 우주 기능의 과제 즉 하나님을 찾아내는 임무를 지녔기 때문이다. 신앙이 활성화된 사람의 혼은, 이러한 운명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지할 수 없으며, 일단 이러한 신성한 목적에 도달하게 되면, 그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처럼 되었기 때문에 절대로 끝날 수 없다.

132:3.8 (1460.1) Spiritual evolution is an experience of the increasing and voluntary choice of goodness attended by an equal and progressive diminution of the possibility of evil. With the attainment of finality of choice for goodness and of completed capacity for truth appreciation, there comes into existence a perfection of beauty and holiness whose righteousness eternally inhibits the possibility of the emergence of even the concept of potential evil. Such a God-knowing soul casts no shadow of doubting evil when functioning on such a high spirit level of divine goodness.영적 진화는, 선(善)을 점점 더 많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하나의 체험이며, 그로써 악하게 될 가능성이 대등하게 그리고 점진적으로 감소되는 것을 성취한다. 선(善)에 대한 선택의 최종과 진리의 깊은 인식에 대한 완벽한 수용능력을 달성하면서, 그 정의righteousness가 잠재적 악의 개념조차도 발생하게 될 가능성을 영원히 차단하는 아름다움(美)과 거룩함에 대한 완전성이 실재로 나오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그러한 혼은, 거룩한 선이라는 높은 영적 차원에서 작용할 때, 의심을 일으킬 만한 어떤 악의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는다.

132:3.9 (1460.2) The presence of the Paradise spirit in the mind of man constitutes the revelation promise and the faith pledge of an eternal existence of divine progression for every soul seeking to achieve identity with this immortal and indwelling spirit fragment of the Universal Father.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천국 영의 현존은, 우주 아버지의 영원히 내주하는 이 영 단편과의 정체성 성취를 위해 애쓰는 모든 혼을 위하여, 거룩한 진보의 영원한 실재의 계시 약속과 신앙 서약을 성립시킨다.

132:3.10 (1460.3) Universe progress is characterized by increasing personality freedom because it is associated with the progressive attainment of higher and higher levels of self-understanding and consequent voluntary self-restraint. The attainment of perfection of spiritual self-restraint equals completeness of universe freedom and personal liberty. Faith fosters and maintains man’s soul in the midst of the confusion of his early orientation in such a vast universe, whereas prayer becomes the great unifier of the various inspirations of the creative imagination and the faith urges of a soul trying to identify itself with the spirit ideals of the indwelling and associated divine presence. 우주에서 진보의 특징은 개인성 해방의 증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아를 이해하고 그로 인해 자발적 자아 억제라는 더욱 높고 높은 차원들에 대한 진보적 달성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영적 자아 억제의 완전한 성취는, 우주의 자유와 개인적 해방의 완성과 같다. 신앙은 그러한 광대한 우주 안에서 적응하는 초기의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의 혼을 돌보고 관리하며, 그에 반하여 기도는, 내주하고 연합된 신성한 존재의 영적 이상들에 자신을 동일화시키려고 노력하는 혼의 신앙적 충동들과 창조적인 상상력의 다양한 영감을 놀라울 정도로 통일시켜 준다.

132:3.11 (1460.4) Nabon was greatly impressed by these words, as he was by each of his talks with Jesus. These truths continued to burn within his heart, and he was of great assistance to the later arriving preachers of Jesus’ gospel. 나본은 예수와의 다른 모든 이야기들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러한 말들에 매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진리들은 그의 마음속에서 계속 타올랐으며, 결국 그는 나중에 도착한 예수의 복음을 설교하는 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4. Personal Ministry160817 수요 예수54 (29세-AD23) 로마 체류 기간(개인적 사명활동PERSONAL MINISTRY)

132:4.1 (1460.5) Jesus did not devote all his leisure while in Rome to this work of preparing men and women to become future disciples in the oncoming kingdom. He spent much time gaining an intimate knowledge of all races and classes of men who lived in this, the largest and most cosmopolitan city of the world. In each of these numerous human contacts Jesus had a double purpose: He desired to learn their reactions to the life they were living in the flesh, and he was also minded to say or do something to make that life richer and more worth while. His religious teachings during these weeks were no different than those which characterized his later life as teacher of the twelve and preacher to the multitudes. 예수께서는 로마에 있는 동안,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와 그를 위한 장래 제자들을 준비시키는 일에만 그의 여가 시간을 모두 다 소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적인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인종들과 계층들로 구성된 남녀 사람들에 대한 상세한 지식들을 수집하는 일에도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때마다, 예수께서는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그는 육신의 삶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알고 싶어 하셨습니다. 둘째, 그는 사람들의 일생이 더 풍부하고 가치가 있도록 무엇인가를 말하거나 행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 시절의 그의 종교적 가르침들은, 그의 후반기에 있었던 열 두 제자들의 선생이었을 때와 많은 군중들의 설교자였을 때 행했던 가르침들의 특징과 전혀 차이가 없었습니다.

132:4.2 (1460.6) Always the burden of his message was: the fact of the heavenly Father’s love and the truth of his mercy, coupled with the good news that man is a faith-son of this same God of love. Jesus’ usual technique of social contact was to draw people out and into talking with him by asking them questions. The interview would usually begin by his asking them questions and end by their asking him questions. He was equally adept in teaching by either asking or answering questions. As a rule, to those he taught the most, he said the least. Those who derived most benefit from his personal ministry were overburdened, anxious, and dejected mortals who gained much relief because of the opportunity to unburden their souls to a sympathetic and understanding listener, and he was all that and more. And when these maladjusted human beings had told Jesus about their troubles, always was he able to offer practical and immediately helpful suggestions looking toward the correction of their real difficulties, albeit he did not neglect to speak words of present comfort and immediate consolation. And invariably would he tell these distressed mortals about the love of God and impart the information, by various and sundry methods, that they were the children of this loving Father in heaven.그의 메시지의 요지는 항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사실과 그의 자비라는 진리와 함께, 사람은 이 동일한 사랑의 하나님의 신앙 아들faith-son이라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할 때 사용하셨던 예수님의 통상적인 방식은 대화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질문을 통해 사람들을 대화 가운데로 이끌어 내시곤 하셨습니다. 대화는 흔히 예수께서 그들에게 던지셨던 질문으로 시작되었고, 그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것으로 끝이 나곤 하였습니다. 그는 질문과 대답을 통한 가르침의 전달 모두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는 가장 많이 가르쳤던 사람들에게, 가장 적게 말하였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사명활동을 통해 가장 많은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진 자들과 걱정이 많고 낙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는 동정심이 많고 이해해 주는 이 사람에게 자신들의 혼의 짐을 내려놓게 되어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며, 그는 이러한 위로 보다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께 자신들의 고민들을 털어놓았을 때, 예수는 그들의 미래를 위해 실제적 어려움을 풀어 나갈 수 있도록 실질적이며 즉각적 도움이 되는 제안들을 항상 해 줄 수 있었지만, 현재의 평안과 당장에 필요한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고난 받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그들이 바로 사랑이 많은 하늘 아버지의 자녀들이라는 소식을 다양한 모든 방법으로 전하곤 하셨습니다.

132:4.3 (1461.1) In this manner, during the sojourn in Rome, Jesus personally came into affectionate and uplifting contact with upward of five hundred mortals of the realm. He thus gained a knowledge of the different races of mankind which he could never have acquired in Jerusalem and hardly even in Alexandria. He always regarded this six months as one of the richest and most informative of any like period of his earth life. 이런 식으로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예수께서는 그 곳에 있는 500명 이상의 사람들과 넘치는 애정으로 사람의 정신을 고양하는 개인적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그는, 예루살렘이나 심지어 알렉산드리아에서도 얻지 못한 여러 다른 인종들에 대한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상 일생 중에서 이 6개월의 기간을 가장 풍부하고 유익한 시기 중의 하나로 늘 여기셨습니다.

132:4.4 (1461.2) As might have been expected, such a versatile and aggressive man could not thus function for six months in the world’s metropolis without being approached by numerous persons who desired to secure his services in connection with some business or, more often, for some project of teaching, social reform, or religious movement. More than a dozen such proffers were made, and he utilized each one as an opportunity for imparting some thought of spiritual ennoblement by well-chosen words or by some obliging service. Jesus was very fond of doing things — even little things — for all sorts of people.예측할 수 있듯이 예수처럼 재능이 많고 적극적인 사람이 세계의 중심지에서, 수많은 사업 제안이나 사람들의 교섭을 받지 않은 채로 6개월 동안 그런 활동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빈번하게 교육 방면에서의 구체적인 프로젝트, 사회 개혁이나 종교적 운동과 관련된 예수님의 활동에 대한 제의가 12번 이상 들어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수께서는 적절한 말과 친절한 봉사를 통해, 영적 고결함에 대한 사상을 주는 기회로 활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위해 행하는 일이라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132:4.5 (1461.3) He talked with a Roman senator on politics and statesmanship, and this one contact with Jesus made such an impression on this legislator that he spent the rest of his life vainly trying to induce his colleagues to change the course of the ruling policy from the idea of the government supporting and feeding the people to that of the people supporting the government. Jesus spent one evening with a wealthy slaveholder, talked about man as a son of God, and the next day this man, Claudius, gave freedom to one hundred and seventeen slaves. He visited at dinner with a Greek physician, telling him that his patients had minds and souls as well as bodies, and thus led this able doctor to attempt a more far-reaching ministry to his fellow men. He talked with all sorts of people in every walk of life. The only place in Rome he did not visit was the public baths. He refused to accompany his friends to the baths because of the sex promiscuity which there prevailed.그는 로마의 어떤 원로원 의원과 정치와 정치적 수완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였고, 예수와의 이 한 번의 만남에 의하여 이 입법부 의원은 커다란 감명을 받았으며, 그는 자신의 동료들로 하여금 정부가 국민을 후원하고 부양하는 개념으로부터 국민이 정부를 후원하는 관념으로 통치 제도의 방침을 바꾸도록 유도하려고 여생을 다해 노력하였지만 성취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자녀로서의 사람이라는 주제로 어떤 부유한 노예 소유자와 하루 저녁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클라우디오스Claudius라는 이 사람은 다음 날 117명의 자기 노예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켰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저녁 식사시간에 어떤 그리스 의사를 만났는데, 그의 환자들이 육체 이외에도 마음과 혼을 갖고 있다고 그에게 말해주었으며, 그 결과, 이 유능한 의사는 자기 이웃들을 향한 이전보다 훨씬 멀리까지 의사로서의 사명 활동에 애를 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계급에 속하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로마에서 방문하지 않은 유일한 장소는 바로 공중목욕탕이었습니다. 난잡한 성(性) 행위가 그곳에서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친구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는 것을 거절하셨습니다.

132:4.6 (1461.4) To a Roman soldier, as they walked along the Tiber, he said: “Be brave of heart as well as of hand. Dare to do justice and be big enough to show mercy. Compel your lower nature to obey your higher nature as you obey your superiors. Revere goodness and exalt truth. Choose the beautiful in place of the ugly. Love your fellows and reach out for God with a whole heart, for God is your Father in heaven.”그는 로마의 병정과 함께 티버Tiber 강변을 걸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손뿐만이 아니라 마음이 용감해야 한다. 대담하게 공의를 행하고 자비를 보이기에 충분할 만큼 성장해야 한다. 네가 상관들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너의 낮은 본성으로 하여금 더 높은 본성에 복종하게 해야 한다. 선을 존중하고 진리를 고양(高揚)시키기 바란다. 추한 것들 대신에 아름다운 것들을 선택하라. 너의 동료들을 사랑하고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아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132:4.7 (1461.5) To the speaker at the forum he said: “Your eloquence is pleasing, your logic is admirable, your voice is pleasant, but your teaching is hardly true. If you could only enjoy the inspiring satisfaction of knowing God as your spiritual Father, then you might employ your powers of speech to liberate your fellows from the bondage of darkness and from the slavery of ignorance.” This was the Marcus who heard Peter preach in Rome and became his successor. When they crucified Simon Peter, it was this man who defied the Roman persecutors and boldly continued to preach the new gospel. 공개토론회의 연사(演士)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너의 웅변술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고, 너의 논리는 감탄할 만하며, 네 목소리는 듣기에 아름답지만, 너의 가르침은 진리와 너무 거리가 멀다. 만일 네가, 너의 영적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아는 영감이 넘치는 만족을 누릴 수만 있다면, 너는 너의 동료들을 어둠의 속박과 무지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에 너의 연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바로 로마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의 후계자가 되었던 마커스Marcus였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십자가에 달렸을 때, 로마의 박해자들에게 도전하고 새로운 복음 설교를 계속하였던 이가 바로 이 사람이었습니다.

132:4.8 (1462.1) Meeting a poor man who had been falsely accused, Jesus went with him before the magistrate and, having been granted special permission to appear in his behalf, made that superb address in the course of which he said: “Justice makes a nation great, and the greater a nation the more solicitous will it be to see that injustice shall not befall even its most humble citizen. Woe upon any nation when only those who possess money and influence can secure ready justice before its courts! It is the sacred duty of a magistrate to acquit the innocent as well as to punish the guilty. Upon the impartiality, fairness, and integrity of its courts the endurance of a nation depends. Civil government is founded on justice, even as true religion is founded on mercy.” The judge reopened the case, and when the evidence had been sifted, he discharged the prisoner. Of all Jesus’ activities during these days of personal ministry, this came the nearest to being a public appearance. 누명을 쓴 한 가엾은 사람을 만났을 때, 예수께서는 그와 함께 행정관에게 가서, 그를 대변해 줄 수 있는 특별한 허락을 얻은 후에, 그 과정 중에 놀라운 연설을 하셨습니다. “공의가 한 나라를 위대하게 만들기 때문에, 나라가 위대해질수록, 가장 미천한 시민에게까지 불의가 행해지지 않도록 더욱 애를 써야만 할 것이다. 단지 돈과 세력이 있는 자들에게만 법정에서 공의를 행하려 하는 나라에는 재앙이 있을 것이라! 죄지은 자를 벌주는 것뿐만 아니라, 죄 없는 자를 풀어주는 것도 행정관의 신성한 의무이다. 법정의 공명정대, 공정성, 그리고 고결성 위에 한 나라의 존망이 달려 있다. 진정한 종교가 자비 위에 세워지는 것처럼, 시민의 정부는 공의 위에 세워진다.” 그 재판관은 그 사건의 재판을 다시 열었으며, 증거를 면밀히 검사한 뒤에 죄수를 석방하였다. 이 기간 동안 예수님의 개인적 사명적 활동 중에서, 이 사건이 공개적인 활동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5. Counseling the Rich Man160824 수요 예수55 (29세-AD23) 로마 체류 기간(부자에게 준 조언COUNSELING THE RICH MAN)

132:5.1 (1462.2) A certain rich man, a Roman citizen and a Stoic, became greatly interested in Jesus’ teaching, having been introduced by Angamon. After many intimate conferences this wealthy citizen asked Jesus what he would do with wealth if he had it, and Jesus answered him: “I would bestow material wealth for the enhancement of material life, even as I would minister knowledge, wisdom, and spiritual service for the enrichment of the intellectual life, the ennoblement of the social life, and the advancement of the spiritual life. I would administer material wealth as a wise and effective trustee of the resources of one generation for the benefit and ennoblement of the next and succeeding generations.”금욕주의자이며 로마시민인 어떤 부자가, 앙가몬Angamon의 소개를 받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매우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의 친숙한 만남 후, 이 부자는 예수님께 그가 만일 많은 재산을 가졌다면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겠느냐고 물었으며, 예수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지식은 지적생활의 풍요를 위해, 지혜는 사회생활의 고상함을 위해, 영적 봉사활동은 영적인 생활의 진보를 위해 사용하는 것처럼, 나는 물질적 재산은 물질적 생활의 향상을 위해 사용할 것이다. 한 세대의 자원을 현명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자로서, 다음 세대와 계속되는 후손들의 이익과 고상함을 위하여 책임지고, 재산들을 관리할 것이다.”

132:5.2 (1462.3) But the rich man was not fully satisfied with Jesus’ answer. He made bold to ask again: “But what do you think a man in my position should do with his wealth? Should I keep it, or should I give it away?” And when Jesus perceived that he really desired to know more of the truth about his loyalty to God and his duty to men, he further answered: “My good friend, I discern that you are a sincere seeker after wisdom and an honest lover of truth; therefore am I minded to lay before you my view of the solution of your problems having to do with the responsibilities of wealth. I do this because you have asked for my counsel, and in giving you this advice, I am not concerned with the wealth of any other rich man; I am offering advice only to you and for your personal guidance. If you honestly desire to regard your wealth as a trust, if you really wish to become a wise and efficient steward of your accumulated wealth, then would I counsel you to make the following analysis of the sources of your riches: Ask yourself, and do your best to find the honest answer, whence came this wealth? And as a help in the study of the sources of your great fortune, I would suggest that you bear in mind the following ten different methods of amassing material wealth: 그러나 그 부자는 예수님의 대답에 충분히 만족할 수 없어서, 그는 대담하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은 자기 재산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그것을 간직해야 합니까? 아니면 남들에게 나눠 주어야 합니까?” 하나님에 대한 그의 충성심과 사람들에 대한 그의 의무에 대한 진리를 그가 진정으로 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예수는, 다음과 같이 덧붙여 대답하였습니다. “나의 선한 친구여, 네가 지혜를 진지하게 구하는 자이며 진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라는 것을 나는 알 수가 있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재물에 대한 의무들을 이행하는 것과 관련된 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의 견해를 제시하겠노라.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네가 나의 조언을 요청하였기 때문이며, 이 충고는 다른 부자들의 재물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므로, 나는 오직 너에게만 해당되는 개인적 지침이 되도록 충고하는 것이다. 만일 네가 진정으로 너의 재물을 하나의 신탁물로 여기며, 네가 그 축적된 재물에 대하여 현명하며 유능한 청지기가 되기를 정말로 원한다면, 너의 부(富)의 근원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해 너에게 조언을 하고자 한다. 이 재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네 자신에게 물어보고, 그런 후 정직하게 대답을 찾도록 최선을 다해라. 너의 많은 재산의 출처에 대한 연구에 도움이 되도록, 다음과 같이 물질적 재산 축적에 대한 열 가지 방법에 대한 제안을 고려하기를 바란다.

132:5.3 (1462.4) “1. Inherited wealth — riches derived from parents and other ancestors.1. 상속된 재산 — 부모나 다른 조상들로부터의 부(富).

132:5.4 (1462.5) “2. Discovered wealth — riches derived from the uncultivated resources of mother earth.2. 발견되어진 재산 — 본래의 땅에 있지만 개발되지 않은 자원으로부터의 부.

132:5.5 (1462.6) “3. Trade wealth — riches obtained as a fair profit in the exchange and barter of material goods.3. 거래에 의해 얻은 재산 — 물질적 상품의 물물교환에서 정당한 이익으로 얻어진 부.

132:5.6 (1462.7) “4. Unfair wealth — riches derived from the unfair exploitation or the enslavement of one’s fellows.4. 부당한 재산 — 부당한 착취나 혹은 자신의 동료를 노예화함으로 얻어진 부.

132:5.7 (1463.1) “5. Interest wealth — income derived from the fair and just earning possibilities of invested capital.5. 금리로 얻은 재산 — 투자한 자본의 공정하고 정당한 수익 가능성으로부터의 수입.

132:5.8 (1463.2) “6. Genius wealth — riches accruing from the rewards of the creative and inventive endowments of the human mind.6. 타고난 재능으로 얻은 재산 — 사람의 마음속에 타고난 창조적이고 발명적인 자질에 대한 보상으로 얻은 부.

132:5.9 (1463.3) “7. Accidental wealth — riches derived from the generosity of one’s fellows or taking origin in the circumstances of life.7. 우연히 얻은 재산 — 자신의 동료의 관대함으로부터 혹은 일생의 환경에서 온 부(富).

132:5.10 (1463.4) “8. Stolen wealth — riches secured by unfairness, dishonesty, theft, or fraud.8. 훔친 재산 — 부당함, 부정직함, 도둑질, 혹은 사기에 의한 부.

132:5.11 (1463.5) “9. Trust funds — wealth lodged in your hands by your fellows for some specific use, now or in the future.9. 신탁된 기금 — 현재나 혹은 미래에 있어서 어떤 특정한 사용을 위해 네 이웃들로부터 너에게 맡겨진 재산.

132:5.12 (1463.6) “10. Earned wealth — riches derived directly from your own personal labor, the fair and just reward of your own daily efforts of mind and body.10. 벌어서 모은 재산 — 네 자신의 노동, 마음과 육체를 사용하여 네가 직접 매일 수고한 것에 대한 공정하고 정당한 보수로부터 직접적으로 얻은 부.

132:5.13 (1463.7) “And so, my friend, if you would be a faithful and just steward of your large fortune, before God and in service to men, you must approximately divide your wealth into these ten grand divisions, and then proceed to administer each portion in accordance with the wise and honest interpretation of the laws of justice, equity, fairness, and true efficiency; albeit, the God of heaven would not condemn you if sometimes you erred, in doubtful situations, on the side of merciful and unselfish regard for the distress of the suffering victims of the unfortunate circumstances of mortal life. When in honest doubt about the equity and justice of material situations, let your decisions favor those who are in need, favor those who suffer the misfortune of undeserved hardships.” “그러므로, 나의 친구여, 네가 만일 너의 많은 재산에 대한 신실하고 의로운 청지기라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봉사함에 있어서, 재산을 대략 이러한 열 가지의 부문으로 나누어야만 한다. 그런 다음, 그러한 각각의 몫을 공의, 공평, 공정성, 진정한 효율성이라는 법칙들의 현명하고 정직한 판단에 따라서 계속 관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네가 가끔 확실치 않은 상황들에 처하여, 인간 일생의 불행한 환경 아래 고통 받는 희생자들의 괴로움을 도와주며 자비롭고 사심 없는 배려를 하는 중에서 실수를 범한다고 한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너를 책망하지 않으실 것이다. 물질적 상황의 공평함과 공의에 대해서 진정으로 확실하게 알지 못할 경우에 있어서는, 궁핍한 자에게 유리하고 불행으로 부당하게 고생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해라.”

132:5.14 (1463.8) After discussing these matters for several hours and in response to the rich man’s request for further and more detailed instruction, Jesus went on to amplify his advice, in substance saying: “While I offer further suggestions concerning your attitude toward wealth, I would admonish you to receive my counsel as given only to you and for your personal guidance. I speak only for myself and to you as an inquiring friend. I adjure you not to become a dictator as to how other rich men shall regard their wealth. I would advise you: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여러 시간을 토의한 후에, 그 부자는 좀 더 자세한 가르침을 간청하였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는 자신의 충고를 상세하게 설명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내가 재산에 대한 너의 태도에 관하여 좀 더 상세하게 제안함에 있어서, 나의 조언을 단지 너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그리고 네 개인적 지침으로만 받아들일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나는 오직 내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질문하는 친구에 대한 답변으로 말할 뿐이다. 다른 부자들이 자기들의 재산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네가 명령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너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자 한다.

132:5.15 (1463.9) “1. As steward of inherited wealth you should consider its sources. You are under moral obligation to represent the past generation in the honest transmittal of legitimate wealth to succeeding generations after subtracting a fair toll for the benefit of the present generation. But you are not obligated to perpetuate any dishonesty or injustice involved in the unfair accumulation of wealth by your ancestors. Any portion of your inherited wealth which turns out to have been derived through fraud or unfairness, you may disburse in accordance with your convictions of justice, generosity, and restitution. The remainder of your legitimate inherited wealth you may use in equity and transmit in security as the trustee of one generation for another. Wise discrimination and sound judgment should dictate your decisions regarding the bequest of riches to your successors. 1. 상속되어진 재산의 청지기로서 너는 그것의 근원을 살펴보아야 한다. 너는 정당한 재산에 대하여 현세대의 이득을 위한 공정한 몫을 제한 후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 주는 일에 있어서, 과거의 세대들을 대표하는 도덕적 의무 아래에 있다. 그러나 네 조상들에 의해 부당하게 축적된 재산에 내포된 어떤 부정이나 불의든지 계속 유지시킬 의무는 없다. 사기나 부당함에서 연유되었다고 밝혀진, 너에게 상속된 재산의 어떤 부분이라도, 너는 공의와 관대함 그리고 배상에 대한 네 신념에 의거하여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정당하게 상속된 너의 나머지 재산은 네가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고,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넘겨주는 신탁자로서 안전하게 전해야 한다. 네 후손들에게 재물을 전해주는 데 있어서, 현명한 식별력과 건전한 판단력이 네 의사 결정들을 좌우해야 할 것이다.

132:5.16 (1463.10) “2. Everyone who enjoys wealth as a result of discovery should remember that one individual can live on earth but a short season and should, therefore, make adequate provision for the sharing of these discoveries in helpful ways by the largest possible number of his fellow men. While the discoverer should not be denied all reward for efforts of discovery, neither should he selfishly presume to lay claim to all of the advantages and blessings to be derived from the uncovering of nature’s hoarded resources. 2. 발견에 의한 결과로 재산을 얻은 모든 사람은, 한 개별존재가 이 땅에 살 수 있는 것은 아주 짧은 기간뿐임을 기억해야만 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능한 한 많은 숫자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 그러한 발견들을 그들과 나누어 가지도록 적절한 준비를 해야 한다. 발견한 자의 수고의 대가가 무시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또한 자연의 숨겨진 보물의 자원으로부터 유래한 모든 이익들과 축복들을 자신만의 것이라는 이기적인 권리 주장을 해서도 안 될 것이다.

132:5.17 (1464.1) “3. As long as men choose to conduct the world’s business by trade and barter, they are entitled to a fair and legitimate profit. Every tradesman deserves wages for his services; the merchant is entitled to his hire. The fairness of trade and the honest treatment accorded one’s fellows in the organized business of the world create many different sorts of profit wealth, and all these sources of wealth must be judged by the highest principles of justice, honesty, and fairness. The honest trader should not hesitate to take the same profit which he would gladly accord his fellow trader in a similar transaction. While this sort of wealth is not identical with individually earned income when business dealings are conducted on a large scale, at the same time, such honestly accumulated wealth endows its possessor with a considerable equity as regards a voice in its subsequent distribution. 3. 사람들이 세계의 상업을 위해 무역이나 물물교환을 수단으로 선택하는 한, 그들은 정당하고 합법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다. 모든 소매상인들은 자신의 봉사에 대한 임금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무역업자는 그를 고용할 권리가 있다. 이 세상의 조직화된 상업에 있어서 정당한 무역과 자신의 동료들에 대한 공정한 대우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이익금을 창출한다. 이러한 모든 재산의 근원들은 공의와 정직 그리고 공정성이라는 최고의 원칙들에 의해 판별되어야 한다. 정직한 무역업자는, 같은 종류의 거래를 하는 동료 무역업자들과 기꺼이 화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똑같은 이익을 남기는 일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종류의 재산이 큰 규모의 상업거래에 의하여 얻어졌을 때, 그것이 개별적으로 번 것과 동일하지 않다 하더라도, 그렇게 정직하게 축적되어진 재산은 나중에 그것의 분배에 있어서 소유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상당히 공평하게 나뉘어져야만 한다.

132:5.18 (1464.2) “4. No mortal who knows God and seeks to do the divine will can stoop to engage in the oppressions of wealth. No noble man will strive to accumulate riches and amass wealth-power by the enslavement or unfair exploitation of his brothers in the flesh. Riches are a moral curse and a spiritual stigma when they are derived from the sweat of oppressed mortal man. All such wealth should be restored to those who have thus been robbed or to their children and their children’s children. An enduring civilization cannot be built upon the practice of defrauding the laborer of his hire. 4. 하나님을 알고 신성한 의지를 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억압에 의한 재산 착취에 가담하지 못할 것이다. 숭고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육신의 형제들을 노예화하거나 부당하게 착취함으로써 부(富)를 축적하지 않을 것이고 재산의 힘을 모으려고 분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억압된 사람들의 땀으로부터 얻어졌을 때, 부(富)는 도덕적 저주와 영적 오점이 된다. 그러한 모든 재산은, 그런 식으로 빼앗긴 사람들이나 아니면 그 자손과 자손의 자손에게 반환되어야 한다. 지속적인 문명은, 고용된 노동자를 착취하는 관습 위에서는 세워질 수 없다.

132:5.19 (1464.3) “5. Honest wealth is entitled to interest. As long as men borrow and lend, that which is fair interest may be collected provided the capital lent was legitimate wealth. First cleanse your capital before you lay claim to the interest. Do not become so small and grasping that you would stoop to the practice of usury. Never permit yourself to be so selfish as to employ money-power to gain unfair advantage over your struggling fellows. Yield not to the temptation to take usury from your brother in financial distress. 5. 정당한 재산은 이자를 받을 권리가 있다. 사람들이 빌리고 빌려주는 한, 빌려준 원금에 대하여 받을 수 있는 공정한 이자는 합법적인 재산이다. 이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먼저 네 원금을 정화시켜라. 너무나도 인색하고 욕심이 많아져서, 높은 이자로 폭리를 취할 만큼 비열해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너무 이기적이 되어, 돈의 힘을 이용하여, 고전하는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얻지 않도록 해라. 경제적으로 곤란을 받고 있는 네 형제들로부터 폭리를 취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마라.

132:5.20 (1464.4) “6. If you chance to secure wealth by flights of genius, if your riches are derived from the rewards of inventive endowment, do not lay claim to an unfair portion of such rewards. The genius owes something to both his ancestors and his progeny; likewise is he under obligation to the race, nation, and circumstances of his inventive discoveries; he should also remember that it was as man among men that he labored and wrought out his inventions. It would be equally unjust to deprive the genius of all his increment of wealth. And it will ever be impossible for men to establish rules and regulations applicable equally to all these problems of the equitable distribution of wealth. You must first recognize man as your brother, and if you honestly desire to do by him as you would have him do by you, the commonplace dictates of justice, honesty, and fairness will guide you in the just and impartial settlement of every recurring problem of economic rewards and social justice. 6. 만일 네가 우수한 천부적 재능에 의해 우연히 재산을 얻었다면, 만일 발명하는 자질에 대한 보상으로 너의 재산이 주어졌다면, 그러한 보상에 대해 부당한 몫을 주장하지 마라. 비범한 자질은 그의 조상들과 그의 자손들 둘 모두에게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그는 인류, 국가, 그리고 자신의 독창적인 발견들을 가능하게 한 환경들에게도 의무가 있으며, 자기가 수고하여 발명한 것도, 사람들 속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룩한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의 재산을 증식하는 비범한 재능을 박탈하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로 불공정한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부의 공정한 분배에서 이들에 관한 모든 문제에 동등하게 적용할 수 있는 규율과 규칙들을 세운다는 것은 사람에게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너는 먼저 사람들이 네 형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고, 네 의도대로 상대방을 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너도 그의 의도대로 그에게 해주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공의, 정직, 공정이라는 평범한 양심의 지시가 경제적인 보상들과 사회정의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서 바른 길에서 치우치지 않도록, 너를 안내해줄 것이다.

132:5.21 (1464.5) “7. Except for the just and legitimate fees earned in administration, no man should lay personal claim to that wealth which time and chance may cause to fall into his hands. Accidental riches should be regarded somewhat in the light of a trust to be expended for the benefit of one’s social or economic group. The possessors of such wealth should be accorded the major voice in the determination of the wise and effective distribution of such unearned resources. Civilized man will not always look upon all that he controls as his personal and private possession. 7. 관리를 통해서 획득한 올바르고 정당한 보수를 제외하고, 시간과 기회로 인해서 자기 손안에 떨어진 재산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개인적 소유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우연히 얻은 재산은, 자신이 소속된 사회적, 경제적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쓰이기 위한 신탁물이라는 입장에서 간주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한 재산의 소유자들은, 노력 없이 얻은 그러한 자원에 대한 현명하고 효력적인 분배를 결정함에 있어서 다수의 의견에 따라야만 할 것이다. 교양이 높은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관리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의 개인적이며 사적(私的)인 소유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132:5.22 (1465.1) “8. If any portion of your fortune has been knowingly derived from fraud; if aught of your wealth has been accumulated by dishonest practices or unfair methods; if your riches are the product of unjust dealings with your fellows, make haste to restore all these ill-gotten gains to the rightful owners. Make full amends and thus cleanse your fortune of all dishonest riches. 8. 만일 네 재산의 어떤 부분이라도 사기 행위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만일 네 재산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부정직한 일이거나 정당하지 못한 수단에 의해서 축적된 것이며, 만일 네 재산이 네 이웃들과의 불공정한 거래에 의한 산물이라면, 잘못 얻어진 이러한 모든 소득물을 당연히 받아야 할 주인들에게 서둘러서 반환해라. 충분한 보상을 통하여 너의 모든 부정직한 재산을 깨끗하게 만들어라.

132:5.23 (1465.2) “9. The trusteeship of the wealth of one person for the benefit of others is a solemn and sacred responsibility. Do not hazard or jeopardize such a trust. Take for yourself of any trust only that which all honest men would allow. 9.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한 사람이 그 재산을 신탁 관리하는 일은 하나의 중대하고 신성한 의무를 갖는다. 그러한 신용에 해를 입히거나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 모든 공정한 사람들이 허용할 수 있는 만큼의 양(量)만을 그 신탁금에서 네 몫으로 떼어놓아라.

132:5.24 (1465.3) “10. That part of your fortune which represents the earnings of your own mental and physical efforts — if your work has been done in fairness and equity — is truly your own. No man can gainsay your right to hold and use such wealth as you may see fit provided your exercise of this right does not work harm upon your fellows.” 10. 너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노력으로 얻은 네 재산은, 만약 그 일이 공정함과 공평함으로 된 것이었다면, 진정한 네 소유이다. 그러한 재산을 간직하고 사용하는 너의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서, 네가 보기에 그것이 네 이웃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반박할 수 없다.

132:5.25 (1465.4) When Jesus had finished counseling him, this wealthy Roman arose from his couch and, in saying farewell for the night, delivered himself of this promise: “My good friend, I perceive you are a man of great wisdom and goodness, and tomorrow I will begin the administration of all my wealth in accordance with your counsel.” 예수께서 그에게 조언을 끝내자, 이 부유한 로마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 인사를 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약속하였습니다. “나의 선한 친구여, 나는 당신이 위대한 지혜와 선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나는 내일부터 당신의 조언에 따라 나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6. Social Ministry160831 수요 예수56 (29세-AD23) 로마 체류 기간(사회적인 사역SOCIAL MINISTRY)

132:6.1 (1465.5) Here in Rome also occurred that touching incident in which the Creator of a universe spent several hours restoring a lost child to his anxious mother. This little boy had wandered away from his home, and Jesus found him crying in distress. He and Ganid were on their way to the libraries, but they devoted themselves to getting the child back home. Ganid never forgot Jesus’ comment: “You know, Ganid, most human beings are like the lost child. They spend much of their time crying in fear and suffering in sorrow when, in very truth, they are but a short distance from safety and security, even as this child was only a little way from home. And all those who know the way of truth and enjoy the assurance of knowing God should esteem it a privilege, not a duty, to offer guidance to their fellows in their efforts to find the satisfactions of living. Did we not supremely enjoy this ministry of restoring the child to his mother? So do those who lead men to God experience the supreme satisfaction of human service.” And from that day forward, for the remainder of his natural life, Ganid was continually on the lookout for lost children whom he might restore to their homes. 로마에서 우주의 창조주가 길 잃은 아이를 걱정하던 어머니에게 아이를 돌려주기 위해 몇 시간 지체했던 감동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집에서 멀리 나와 방황하며,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였습니다. 그와 가니드는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지만, 아이의 집을 찾기 위해 전념하였습니다. 가니드는 예수께서 하셨던 다음의 말을 결코 잊지 못하였습니다. “가니드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 잃은 이 아이와 같단다. 이 아이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방황한 것처럼, 사람들은 지척에 안전과 보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 두려움 때문에 울며, 슬픔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말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확신을 누리고, 진리의 길을 아는 모든 자들은, 삶의 만족을 찾아 헤매는 자기 이웃들에게, 의무가 아닌 특권으로써, 안내자 역할을 해야만 한다. 이 아이에게 어머니 찾아주는 이 일을 하면서 우리가 최상의 기쁨을 누리지 않았더냐.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자들은, 인간이 하는 모든 일들 중 최상의 만족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가니드는 길 잃은 아이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자신의 여생동안 계속하였습니다.

132:6.2 (1465.6) There was the widow with five children whose husband had been accidentally killed. Jesus told Ganid about the loss of his own father by an accident, and they went repeatedly to comfort this mother and her children, while Ganid sought money from his father to provide food and clothing. They did not cease their efforts until they had found a position for the eldest boy so that he could help in the care of the family.남편을 사고로 사별한 후, 다섯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사는 과부가 있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아버지를 사고로 잃었던 일에 대하여 가니드에게 이야기하였으며, 그들은 계속해서 이 어머니와 아이들을 위로하였고, 가니드는 아버지로부터 돈을 받아서 음식과 옷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과부의 장남에게 직장을 구해 주어서 그가 가족들을 돌볼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러한 수고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132:6.3 (1465.7) That night, as Gonod listened to the recital of these experiences, he said to Jesus, good-naturedly: “I propose to make a scholar or a businessman of my son, and now you start out to make a philosopher or philanthropist of him.” And Jesus smilingly replied: “Perhaps we will make him all four; then can he enjoy a fourfold satisfaction in life as his ear for the recognition of human melody will be able to recognize four tones instead of one.” Then said Gonod: “I perceive that you really are a philosopher. You must write a book for future generations.” And Jesus replied: “Not a book — my mission is to live a life in this generation and for all generations. I —” but he stopped, saying to Ganid, “My son, it is time to retire.” 그 날 밤, 고노드는 이러한 체험들에 관해서 설명을 듣다가, 예수에게 부드럽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내 아들을 학자나 사업가로 키우려고 하였는데, 당신은 이제 이 아이를 철학자나 자선가로 만들기로 작정하셨군요.” 그러자 예수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마 우리는 당신이 말한 그 네 가지 전부를 그가 성취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의 귀가 한 가지 음색이 아니라 네 가지 음색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일생 네 곱절의 만족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고노드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철학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신은 후손들을 위하여 책을 쓰셔야 되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책이 아니라 나의 사명은 이 세대와 모든 세대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는 말을 멈추면서 가니드에게, “나의 아들아, 이제 잘 시간이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7. Trips About Rome160921 수요 예수57 (29세-AD23) 로마 체류 기간(로마 주변 여행TRIPS ABOUT ROME)

132:7.1 (1466.1) Jesus, Gonod, and Ganid made five trips away from Rome to points of interest in the surrounding territory. On their visit to the northern Italian lakes Jesus had the long talk with Ganid concerning the impossibility of teaching a man about God if the man does not desire to know God. They had casually met a thoughtless pagan while on their journey up to the lakes, and Ganid was surprised that Jesus did not follow out his usual practice of enlisting the man in conversation which would naturally lead up to the discussion of spiritual questions. When Ganid asked his teacher why he evinced so little interest in this pagan, Jesus answered: 예수와 고노드와 가니드는, 로마를 떠나 그 변방의 지역들에 있는 흥미로운 곳을 중심으로, 다섯 차례 여행을 하였습니다. 북부 이탈리아에 있는 호수를 방문하였을 때, 사람이 하나님 알기를 원하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하여 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에 관하여, 예수는 가니드와 오랫동안 이야기하였습니다. 호수로 올라가는 길에서, 그들은 경솔한 한 이방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평소와는 달리,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말을 걸어 자연스럽게 영적 질문들을 끌어내어 토의를 시도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가니드는 의아해 하였습니다. 가니드가 그의 선생에게 왜 이 이방인에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느냐고 묻자,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132:7.2 (1466.2) “Ganid, the man was not hungry for truth. He was not dissatisfied with himself. He was not ready to ask for help, and the eyes of his mind were not open to receive light for the soul. That man was not ripe for the harvest of salvation; he must be allowed more time for the trials and difficulties of life to prepare him for the reception of wisdom and higher learning. Or, if we could have him live with us, we might by our lives show him the Father in heaven, and thus would he become so attracted by our lives as sons of God that he would be constrained to inquire about our Father. You cannot reveal God to those who do not seek for him; you cannot lead unwilling souls into the joys of salvation. Man must become hungry for truth as a result of the experiences of living, or he must desire to know God as the result of contact with the lives of those who are acquainted with the divine Father before another human being can act as the means of leading such a fellow mortal to the Father in heaven. If we know God, our real business on earth is so to live as to permit the Father to reveal himself in our lives, and thus will all God-seeking persons see the Father and ask for our help in finding out more about the God who in this manner finds expression in our lives.”“가니드야, 그 사람은 진리를 알고자 갈급해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불만이 없었다. 그는 도움을 요청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의 마음의 눈은 혼을 위한 빛을 얻기 위해 열려있지 않았다. 저 사람은 구원의 수확을 할 준비가 되지 있지 않았다. 그가 지혜와 높은 깨달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생활의 시험과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단다. 그가 준비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와 함께 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을 통하여 그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보여 줄 수도 있다. 그가 하나님 자녀로서의 우리의 삶에 매료가 된 결과로 그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당연히 우리에게 질문할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드러낼 수 없다. 원하지 않는 혼을 구원의 기쁨으로 인도할 수 없단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겪는 체험을 통해 진리에 대하여 굶주려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사람이 그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그는 신성한 아버지를 알고 지내온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그가 하나님을 알고자 갈망하여야만 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면, 이 땅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생활을 통해 아버지께서 자신을 계시하도록 허용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찾는 모든 개인들이 우리의 삶을 통해 아버지를 볼 것이고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난 하나님을 더욱 찾기 위해서 우리의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132:7.3 (1466.3) It was on the visit to Switzerland, up in the mountains, that Jesus had an all-day talk with both father and son about Buddhism. Many times Ganid had asked Jesus direct questions about Buddha, but he had always received more or less evasive replies. Now, in the presence of the son, the father asked Jesus a direct question about Buddha, and he received a direct reply. Said Gonod: “I would really like to know what you think of Buddha.” And Jesus answered: 스위스를 방문하는 중 높은 산에 있을 때, 예수께서는 그 부자(父子)와 함께 하루 종일 불교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가니드는 예수에게 여러 차례 부처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들을 했었지만, 그는 항상 다소 회피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자기 아들 앞에서, 아버지 고노드가 예수님께 부처에 대해 직접적인 질문을 하였는데, 그는 바로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고노드가, “저는 당신이 부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진심으로 알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132:7.4 (1466.4) “Your Buddha was much better than your Buddhism. Buddha was a great man, even a prophet to his people, but he was an orphan prophet; by that I mean that he early lost sight of his spiritual Father, the Father in heaven. His experience was tragic. He tried to live and teach as a messenger of God, but without God. Buddha guided his ship of salvation right up to the safe harbor, right up to the entrance to the haven of mortal salvation, and there, because of faulty charts of navigation, the good ship ran aground. There it has rested these many generations, motionless and almost hopelessly stranded. And thereon have many of your people remained all these years. They live within hailing distance of the safe waters of rest, but they refuse to enter because the noble craft of the good Buddha met the misfortune of grounding just outside the harbor. And the Buddhist peoples never will enter this harbor unless they abandon the philosophic craft of their prophet and seize upon his noble spirit. Had your people remained true to the spirit of Buddha, you would have long since entered your haven of spirit tranquillity, soul rest, and assurance of salvation. “당신들의 부처는 불교보다 훨씬 뛰어났었소. 부처는 위대한 사람이었고, 자기 민족에게는 선지자와 같았지만, 그는 고아(孤兒) 선지자 이었소. 이는 그가 일찍이 자신의 영적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 보는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뜻이오. 그의 체험은 비극이었소. 그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사자(使者)처럼 살고자 했고 가르치려고 노력하였소. 부처는 자기가 탄 구원의 배를 사람이 얻을 구원의 안식처의 입구까지, 안전한 항구의 문턱에까지는 인도하였으나, 바로 그곳에서 잘못된 해도(海圖) 때문에, 그 훌륭한 배는 좌초되었던 것이오. 그 배는 지나간 수많은 세대들 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거의 희망을 잃으면서 지금껏 그곳에 묶여 있소. 그리고 당신의 민족 대부분은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거기에 머물러 있소. 그들은 안식하는 안전한 바다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지만, 훌륭한 부처의 고상한 배가 항구 바로 밖에서 가라앉는 불행을 당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 안으로 들어오기를 거절하였소. 그리고 불교신자들은 그들의 선지자의 철학적 배를 포기하고 그의 고상한 마음을 포착하지 않는 한, 이 항구에 들어올 수가 없소. 당신 민족이 부처의 마음에 진실하게 남아 있었더라면, 당신들은 오래 전에 영적 고요함과 혼의 안식과 구원의 확신이라는 안식처에 들어왔었을 것이오.”

132:7.5 (1467.1) “You see, Gonod, Buddha knew God in spirit but failed clearly to discover him in mind; the Jews discovered God in mind but largely failed to know him in spirit. Today, the Buddhists flounder about in a philosophy without God, while my people are piteously enslaved to the fear of a God without a saving philosophy of life and liberty. You have a philosophy without a God; the Jews have a God but are largely without a philosophy of living as related thereto. Buddha, failing to envision God as a spirit and as a Father, failed to provide in his teaching the moral energy and the spiritual driving power which a religion must possess if it is to change a race and exalt a nation.” “고노드여, 부처가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알았지만, 마음속에서 그를 분명하게 발견하는 데에는 실패하였으며, 반면에 유대인들은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을 발견하였지만, 영적으로 그를 아는 데에는 크게 실패하였소. 오늘날, 불교신자들은 하나님이 없는 철학 안에서 버둥거리고 있고, 반면에 나의 민족들은 가련하게도 생명과 해방의 구원이 되는 철학을 가지지 못한 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있소. 당신들은 하나님 없는 하나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거기에 관련되는 삶의 철학은 거의 갖고 있지 못하고 있소. 마음속에 하나님을 영으로 그리고 아버지로 바라보지 못한 부처는, 그의 가르침에 있어서 하나의 종교가 반드시 소유해야 하는 — 만약에 종교가 인류를 변화시키고 한 국가를 높여주는 것이라면 — 도덕적 에너지와 영적으로 연유되는 힘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였소.”

132:7.6 (1467.2) Then exclaimed Ganid: “Teacher, let’s you and I make a new religion, one good enough for India and big enough for Rome, and maybe we can trade it to the Jews for Yahweh.” And Jesus replied: “Ganid, religions are not made. The religions of men grow up over long periods of time, while the revelations of God flash upon earth in the lives of the men who reveal God to their fellows.” But they did not comprehend the meaning of these prophetic words. 그러자 가니드가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하나의 새로운 종교, 인도를 위해 충분히 훌륭하며, 로마를 위해서도 충분히 거창한 것을 만들지요,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그 종교가 야훼를 대신할 수 있도록 유대인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가니드야, 종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종교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자라나는 것이며, 반면에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을 자기 동료들에게 나타내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 세상에서 섬광처럼 번쩍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예언적인 말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132:7.7 (1467.3) That night after they had retired, Ganid could not sleep. He talked a long time with his father and finally said, “You know, father, I sometimes think Joshua is a prophet.” And his father only sleepily replied, “My son, there are others —” 그날 밤, 그들이 잠자리로 돌아갔을 때, 가니드는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오래도록 이야기를 하였으며,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버지, 저는 어떤 때는 여호수아가 선지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단지 졸음 섞인 말투로, “아들아, 다른 사람들도 있단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132:7.8 (1467.4) From this day, for the remainder of his natural life, Ganid continued to evolve a religion of his own. He was mightily moved in his own mind by Jesus’ broadmindedness, fairness, and tolerance. In all their discussions of philosophy and religion this youth never experienced feelings of resentment or reactions of antagonism. 그 날 이후, 가니드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내내, 자기 자신의 종교를 발전시키는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는 예수의 편견 없는 마음과 공정함과 관대함 때문에 그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굉장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철학과 종교에 대한 그들의 모든 토론들 속에서, 이 젊은이는 예수에게서 한 번도 분개심의 감정이거나 반목의 반응들을 체험하지 못하였습니다.

132:7.9 (1467.5) What a scene for the celestial intelligences to behold, this spectacle of the Indian lad proposing to the Creator of a universe that they make a new religion! And though the young man did not know it, they were making a new and everlasting religion right then and there — this new way of salvation, the revelation of God to man through, and in, Jesus. That which the lad wanted most to do he was unconsciously actually doing. And it was, and is, ever thus. That which the enlightened and reflective human imagination of spiritual teaching and leading wholeheartedly and unselfishly wants to do and be, becomes measurably creative in accordance with the degree of mortal dedication to the divine doing of the Father’s will. When man goes in partnership with God, great things may, and do, happen.이 인도 청년이 우주의 창조주에게 새로운 종교를 만들자고 제의하는 광경은, 주시하고 있던 천상의 지적 존재들에게는 얼마나 굉장한 구경거리였는지! 비록 이 젊은이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의 영원히 존속하는 새 종교 즉 예수를 통하여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사람에게 계시하는, 이 새로운 구원의 방법을 그 때 그곳에서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청년이 가장 하고 싶었던 그것을, 그는 의식하지 못한 채, 실제로는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이루어 졌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영적 가르침과 인도함으로 계몽되어지고 반영되어지는 인간의 상상력이 온 가슴으로 그리고 이기심을 버린 채, 하고 싶은 그것과 되고 싶어 하는 그것은, 아버지의 성스런 의지를 행하려는 인간의 헌신의 정도에 따라서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창조되어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되어 살아갈 때, 위대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으며, 또한 일어나게 됩니다.

Paper 133 The Return from Rome 로마에서 돌아옴

Paper 133

The Return from Rome 로마에서 돌아옴

133:0.1 (1468.1) WHEN preparing to leave Rome, Jesus said good-bye to none of his friends. The scribe of Damascus appeared in Rome without announcement and disappeared in like manner. It was a full year before those who knew and loved him gave up hope of seeing him again. Before the end of the second year small groups of those who had known him found themselves drawn together by their common interest in his teachings and through mutual memory of their good times with him. And these small groups of Stoics, Cynics, and mystery cultists continued to hold these irregular and informal meetings right up to the time of the appearance in Rome of the first preachers of the Christian religion. 로마를 떠나려는 준비를 마칠 때까지, 예수께서는 자기의 친구들 중 아무에게도 작별인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마스커스Damascus의 서기관은 예고 없이 왔다가, 같은 방법으로 예고 없이 떠나가셨습니다. 그를 알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다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게 된 시점은 그가 떠나신 후 거의 1년이 지나갔을 때였습니다. 이 두 번째 해가 다 지나가기 전에, 예수를 알고 지냈던 작은 그룹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공통적인 관심과 그와 함께 즐겁게 보냈던 서로의 기억들을 나누며 서로 함께 모이게 되었습니다. 스토아학파, 견유학파, 신비주의자들로 구성된 이 소규모의 그룹은, 비록 불규칙적이며 비공식적으로 모임을 진행하였지만, 초기 기독교 설교자들이 로마에 오게 되었을 때까지도 계속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133:0.2 (1468.2) Gonod and Ganid had purchased so many things in Alexandria and Rome that they sent all their belongings on ahead by pack train to Tarentum, while the three travelers walked leisurely across Italy over the great Appian Way. On this journey they encountered all sorts of human beings. Many noble Roman citizens and Greek colonists lived along this road, but already the progeny of great numbers of inferior slaves were beginning to make their appearance. 고노드Gonod와 가니드Ganid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와 로마Rome에서 너무 많은 물건들을 구입하였기 때문에 그 물건들을 보내는 수송편에 미리 타렌툼Tarentum까지 보냈습니다. 그 동안 이 세 명의 여행자는 거대한 아피아 도로Appian Way를 따라 이탈리아Italy를 가로질러 한가하게 도보로 여행하였습니다. 이 여행에서 그들은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많은 고귀한 로마 시민들과 식민지 주민인 그리스인들이 이 길을 주변을 따라서 살고 있었으며, 수많은 비천한 노예들의 자손들도 일찍부터 그 길을 따라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133:0.3 (1468.3) One day while resting at lunch, about halfway to Tarentum, Ganid asked Jesus a direct question as to what he thought of India’s caste system. Said Jesus: “Though human beings differ in many ways, the one from another, before God and in the spiritual world all mortals stand on an equal footing. There are only two groups of mortals in the eyes of God: those who desire to do his will and those who do not. As the universe looks upon an inhabited world, it likewise discerns two great classes: those who know God and those who do not. Those who cannot know God are reckoned among the animals of any given realm. Mankind can appropriately be divided into many classes in accordance with differing qualifications, as they may be viewed physically, mentally, socially, vocationally, or morally, but as these different classes of mortals appear before the judgment bar of God, they stand on an equal footing; God is truly no respecter of persons. Although you cannot escape the recognition of differential human abilities and endowments in matters intellectual, social, and moral, you should make no such distinctions in the spiritual brotherhood of men when assembled for worship in the presence of God.” 타렌툼에 거의 절반 정도 도달했을 때, 점심시간에 거리에서 휴식을 취하던 어느 날, 가니드는 인도의 특권 계급 제도에 대해 직접적인 질문을 통해 예수의 견해를 여쭈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인간 존재들이 여러 방면에서 서로 많이 다르지만, 하나님 앞과 영적 세계에서 사람들은 모두 동등한 자격으로 서 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으로는, 오직 두 그룹의 인간들이 있을 뿐이다. 한 그룹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갈망하는 자들이며, 다른 그룹은 그렇지 않은 자들이다. 우주적인 견해를 가지고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을 고려해보면,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바로 하나님을 아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이다.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자들은 주어진 영역이 어디에 있든지, 그들은 모두 동물로 간주된다. 사람들은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직업적, 도덕적 등으로, 사람들이 다양하게 바라보는 모습과 서로 다른 여러 자격 조건들에 따라서 많은 계층으로 적당하게 나누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른 계층들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는, 모두 다 하나의 동등한 신분으로 서게 된다. 하나님은 진실로 개개인의 사람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지 않으신다. 너희가 지적, 사회적, 도덕적 문제에서는 서로 다른 인간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현존 가운데 경배하기 위해 모이는 경우, 사람의 영적 형제관계 안에서는 그 어떤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1. Mercy and Justice 자비와 정의(正義)

133:1.1 (1468.4) A very interesting incident occurred one afternoon by the roadside as they neared Tarentum. They observed a rough and bullying youth brutally attacking a smaller lad. Jesus hastened to the assistance of the assaulted youth, and when he had rescued him, he tightly held on to the offender until the smaller lad had made his escape. The moment Jesus released the little bully, Ganid pounced upon the boy and began soundly to thrash him, and to Ganid’s astonishment Jesus promptly interfered. After he had restrained Ganid and permitted the frightened boy to escape, the young man, as soon as he got his breath, excitedly exclaimed: “I cannot understand you, Teacher. If mercy requires that you rescue the smaller lad, does not justice demand the punishment of the larger and offending youth?” In answering, Jesus said: 그들이 타렌툼Tarentum에 가까이 도착한 어느 날 오후 길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은 매우 거칠고 난폭한 어느 소년이 자기보다 작은 한 아이를 괴롭히는 광경이었습니다. 예수는 폭행을 당하는 그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급히 달려갔으며, 그를 구해낸 후에는 그 작은 아이가 멀리 도망갈 때까지 그 가해자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 후 예수께서 그 어린 깡패를 놓아주는 순간, 가니드가 그 소년에게 달려들어 그를 호되게 때리기 시작하였으며, 예수께서 즉시 가니드를 저지시키자 가니드는 매우 놀랐습니다. 예수께서 가니드를 말리면서, 겁먹은 그 불량소년이 도망하도록 도와주었을 때, 가니드는 숨을 돌리기 무섭게 흥분하여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자비를 베풀기 위하여 선생님이 그 작은 어린아이를 구해야만 했다면, 그 아이보다 크고 공격적인 그 불량소년에게 벌을 주는 공의도 당연히 행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33:1.2 (1469.1) “Ganid, it is true, you do not understand. Mercy ministry is always the work of the individual, but justice punishment is the function of the social, governmental, or universe administrative groups. As an individual I am beholden to show mercy; I must go to the rescue of the assaulted lad, and in all consistency I may employ sufficient force to restrain the aggressor. And that is just what I did. I achieved the deliverance of the assaulted lad; that was the end of mercy ministry. Then I forcibly detained the aggressor a sufficient length of time to enable the weaker party to the dispute to make his escape, after which I withdrew from the affair. I did not proceed to sit in judgment on the aggressor, thus to pass upon his motive — to adjudicate all that entered into his attack upon his fellow — and then undertake to execute the punishment which my mind might dictate as just recompense for his wrongdoing. Ganid, mercy may be lavish, but justice is precise. Cannot you discern that no two persons are likely to agree as to the punishment which would satisfy the demands of justice? One would impose forty lashes, another twenty, while still another would advise solitary confinement as a just punishment. Can you not see that on this world such responsibilities had better rest upon the group or be administered by chosen representatives of the group? In the universe, judgment is vested in those who fully know the antecedents of all wrongdoing as well as its motivation. In civilized society and in an organized universe the administration of justice presupposes the passing of just sentence consequent upon fair judgment, and such prerogatives are vested in the juridical groups of the worlds and in the all-knowing administrators of the higher universes of all creation.” “가니드야, 네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자비를 베푸는 활동은 항상 개별적인 일이지만, 공의에 의한 처벌은 사회나 정부 또는 우주를 관리하는 집단들의 기능이다. 나는 한 개별존재로서 자비를 베풀 권한이 있고, 곤경에 처한 그 아이를 구해 주어야만 하였으며, 가해자를 멈추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완력을 사용하는 것도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방금 내가 행한 일이었다. 나는 곤경에 처한 그 아이가 해방되도록 도와주었고 그것으로 나의 자비의 행위는 끝이 난 것이다. 그 후 나는 약한 자가 도망하기에 충분한 시간만큼 가해자를 힘으로 붙잡아 두었고, 그 후에는 그 일에서 물러났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가해자를 판결하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고, 그가 자기 이웃을 공격하도록 만든 모든 것들에 대해 판단을 내리기 위해, 그의 동기를 판결하고, 그의 그릇된 행동에 적절한 응징의 배상으로, 내 마음이 지시했었을 처벌을 가하지도 않았다. 가니드야, 자비는 아낌없이 줄 수 있는 것이지만, 공의는 정확한 것이다. 공의를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징벌을 결정함에 있어서는, 단지 두 사람 조차도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겠느냐? 공정한 형벌로, 한 사람은 40대의 매를, 다른 사람은 20대의 매를, 또 어떤 다른 이는 격리 감금을 부과하려고 할 수도 있다. 이 세상에서는 그러한 책임이 집단에게 맡겨지거나 혹은 그 집단이 뽑은 대표자들에게 맡겨지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모르겠느냐? 우주에서는, 그것의 동기만이 아니라 모든 그릇된 행동의 선행 사정을 충분히 알고 있는 존재들에게 심판이 맡겨져 있다. 모든 문명화된 사회와 잘 조직된 우주에서, 공의의 실행은 정당한 심판에 의한 의로운 판결 결과의 집행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러한 특권은 세상들의 사법집단과 모든 창조에 해당되는 높은 우주들의 전지(全知)한 행정가들에게 속해 있는 것이다.”

133:1.3 (1469.2) For days they talked about this problem of manifesting mercy and administering justice. And Ganid, at least to some extent, understood why Jesus would not engage in personal combat. But Ganid asked one last question, to which he never received a fully satisfactory answer; and that question was: “But, Teacher, if a stronger and ill-tempered creature should attack you and threaten to destroy you, what would you do? Would you make no effort to defend yourself?” Although Jesus could not fully and satisfactorily answer the lad’s question, inasmuch as he was not willing to disclose to him that he (Jesus) was living on earth as the exemplification of the Paradise Father’s love to an onlooking universe, he did say this much: 그들은 여러 날 동안 자비의 행함과 공의의 시행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토의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니드는 예수가 개인적 싸움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였던 이유를 부분적으로 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니드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더 하였는데, 그는 그것에 대해 충분하게 만족스러운 답변을 결코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 만약 힘이 더 세고 성격이 고약한 사람이 선생님을 공격하면서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선생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실 것입니까?” 예수는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우주에게 천국 아버지의 사랑을 본보기로 보여주기 위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밝히기를 꺼려하였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의 질문에 충분히 만족할 만한 답변을 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133:1.4 (1469.3) “Ganid, I can well understand how some of these problems perplex you, and I will endeavor to answer your question. First, in all attacks which might be made upon my person, I would determine whether or not the aggressor was a son of God — my brother in the flesh — and if I thought such a creature did not possess moral judgment and spiritual reason, I would unhesitatingly defend myself to the full capacity of my powers of resistance, regardless of consequences to the attacker. But I would not thus assault a fellow man of sonship status, even in self-defense. That is, I would not punish him in advance and without judgment for his assault upon me. I would by every possible artifice seek to prevent and dissuade him from making such an attack and to mitigate it in case of my failure to abort it. Ganid, I have absolute confidence in my heavenly Father’s overcare; I am consecrated to doing the will of my Father in heaven. I do not believe that real harm can befall me; I do not believe that my lifework can really be jeopardized by anything my enemies might wish to visit upon me, and surely we have no violence to fear from our friends. I am absolutely assured that the entire universe is friendly to me — this all-powerful truth I insist on believing with a wholehearted trust in spite of all appearances to the contrary.” “가니드야, 이러한 문제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너를 무척 혼란에 빠지게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으며, 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도록 노력해 보겠다. 우선, 나는 내 개인에게 주어진 모든 공격에 대해서는, 그 가해자가 하나님의 아들 즉 육신적으로 나의 형제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볼 것이며, 만약 그가 도덕적 판단과 영적 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되면, 나는 주저 없이 가해자에게 발생될 결과에 상관없이, 내 온 힘을 다하여 나 자신을 방어할 것이다. 그러나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나는 아들 관계를 이룩한 지위에 있는 이웃에게는 그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향한 그의 폭행에 대해 판단을 하지 않은 채로 미리 그에게 응징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로 하여금 그가 그러한 공격을 하지 않도록 예방하여 중지시킬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할 것이고, 그것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에는 그 공격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가니드야, 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배려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으며,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헌신하였다. 진정한 해(害)가 나에게 미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으며, 나를 배척하는 자들이 나에게 가하려는 어떤 행동에 의해서든지 내 일생의 사명이 정말로 위태로워지리라고는 믿지 않으며, 두려워할 만한 어떤 폭행도 우리 친구들로부터 당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나는 우주 전체가 나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나는 모든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심에서 우러나오는 확신을 가지고, 모든 힘을 지닌 이 진리를 믿고자 한다.”

133:1.5 (1470.1) But Ganid was not fully satisfied. Many times they talked over these matters, and Jesus told him some of his boyhood experiences and also about Jacob the stone mason’s son. On learning how Jacob appointed himself to defend Jesus, Ganid said: “Oh, I begin to see! In the first place very seldom would any normal human being want to attack such a kindly person as you, and even if anyone should be so unthinking as to do such a thing, there is pretty sure to be near at hand some other mortal who will fly to your assistance, even as you always go to the rescue of any person you observe to be in distress. In my heart, Teacher, I agree with you, but in my head I still think that if I had been Jacob, I would have enjoyed punishing those rude fellows who presumed to attack you just because they thought you would not defend yourself. I presume you are fairly safe in your journey through life since you spend much of your time helping others and ministering to your fellows in distress — well, most likely there’ll always be someone on hand to defend you.” And Jesus replied: “That test has not yet come, Ganid, and when it does, we will have to abide by the Father’s will.” And that was about all the lad could get his teacher to say on this difficult subject of self-defense and nonresistance. On another occasion he did draw from Jesus the opinion that organized society had every right to employ force in the execution of its just mandates. 그러나 가니드는 충분히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들에 대하여 여러 번 이야기하였고, 예수는 그에게 자기 소년시절의 체험들과 석공의 아들 야고보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었습니다. 야고보가 예수-수호를 자신의 일로 삼았던 사실을 듣고 나서, 가니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선생님과 같이 친절한 사람을 공격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고, 만약 어떤 이가 생각지 않고 그런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마치 선생님이 언제나 곤경에 빠진 사람을 보고는 구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을 재빨리 도와 줄 어떤 사람이 틀림없이 가까이에 있게 된다는 것이군요. 선생님, 마음으로는 저도 동의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제가 만약 야고보였다면, 선생님이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공격했다고 여겨지는 무뢰한 사람들에 대해 처벌하는 일을 저는 매우 즐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맴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곤경에 빠진 친구들을 돌보는 일에 많은 시간을 바치셨으며, 동시에 선생님에게는 언제든지 방어해 줄 어떤 사람이 항상 곁에 있을 것이므로, 선생님의 삶의 여정이 상당히 안전하실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자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가니드야, 그 시험은 아직 임하지 않았으며, 그 때가 이르면, 우리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자기방어와 무저항에 관한 이 어려운 주제에 대해 이 소년이 자기 선생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전부였습니다. 그는 다른 기회를 포착하여, 조직된 사회는 올바른 권한을 시행함에 있어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이 있다는 견해를 예수로부터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2. Embarking at Tarentum 타렌툼에서 배에 오르심

133:2.1 (1470.2) While tarrying at the ship landing, waiting for the boat to unload cargo, the travelers observed a man mistreating his wife. As was his custom, Jesus intervened in behalf of the person subjected to attack. He stepped up behind the irate husband and, tapping him gently on the shoulder, said: “My friend, may I speak with you in private for a moment?” The angry man was nonplused by such an approach and, after a moment of embarrassing hesitation, stammered out — “er — why — yes, what do you want with me?” When Jesus had led him to one side, he said: “My friend, I perceive that something terrible must have happened to you; I very much desire that you tell me what could happen to such a strong man to lead him to attack his wife, the mother of his children, and that right out here before all eyes. I am sure you must feel that you have some good reason for this assault. What did the woman do to deserve such treatment from her husband? As I look upon you, I think I discern in your face the love of justice if not the desire to show mercy. I venture to say that, if you found me out by the wayside, attacked by robbers, you would unhesitatingly rush to my rescue. I dare say you have done many such brave things in the course of your life. Now, my friend, tell me what is the matter? Did the woman do something wrong, or did you foolishly lose your head and thoughtlessly assault her?” It was not so much what he said that touched this man’s heart as the kindly look and the sympathetic smile which Jesus bestowed upon him at the conclusion of his remarks. Said the man: “I perceive you are a priest of the Cynics, and I am thankful you restrained me. My wife has done no great wrong; she is a good woman, but she irritates me by the manner in which she picks on me in public, and I lose my temper. I am sorry for my lack of self-control, and I promise to try to live up to my former pledge to one of your brothers who taught me the better way many years ago. I promise you.” 화물을 내리기 위한 배를 기다리면서,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 여행자들은 한 남자가 자기 부인을 학대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평상시 그의 습관대로, 예수께서는 공격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위하여 중재에 나섰습니다. 그는 성난 남편의 뒤로 걸어 나가서 그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리면서 말하였습니다. “나의 친구여, 나와 잠깐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겠나?” 화난 그 남자는 그러한 접근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리고 잠시 당황하여 주저하다가 더듬거리며 말하기를 “저~어, 그러시지요, 저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예수께서는 그를 한 쪽으로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의 친구여, 내가 보기에는 아주 끔찍한 어떤 일이 당신에게 일어난 것 같아 보이는데, 무슨 일 때문에, 너 같이 건장한 사람이,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아내, 자기 아이들의 어머니를 공격하게 했는지 내게 말을 좀 해주었으면 한다. 네가 이러한 폭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저 여인이 무슨 일을 했기에 자기 남편으로부터 이러한 대접을 받고 있는가? 내가 보기에, 네가 자비를 베풀 의향은 없다고 하더라도, 공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네 얼굴에서 읽을 수 있다. 내가 감히 말하겠는데, 만약 네가 길가에서 도적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면, 너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달려와 나를 구했을 것이다. 나는 네가 네 일생의 여정에서 그러한 용감한 일을 아마 여러 번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 나의 친구여, 무엇이 문제인지 나에게 말해 보아라. 저 여인이 무슨 그릇된 일을 했느냐? 아니면 네가 어리석게도 이성을 잃고 생각 없이 그녀에게 폭행을 했느냐?” 이 남자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은, 예수가 말한 내용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말을 마치면서 예수께서 그에게 보여준 친절한 표정과 동정심이 가득한 미소였습니다. 그 남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견유학파의 사제이신 것 같은데, 저를 말려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 아내는 그렇게 큰 그릇된 일은 저지르지 않았으며, 착한 여자입니다만, 공공장소에서 저를 비난하여 화를 돋우었기 때문에 제가 이성을 잃었습니다. 제가 자제력을 잃은 것에 대해 사과를 드리며, 저에게 더 나은 삶의 방법을 가르쳤던 당신의 형제들 중의 한 분에게 오래 전에 하였던 저의 서약에 맞게 살 것을 약속합니다. 정말 약속합니다.”

133:2.2 (1471.1) And then, in bidding him farewell, Jesus said: “My brother, always remember that man has no rightful authority over woman unless the woman has willingly and voluntarily given him such authority. Your wife has engaged to go through life with you, to help you fight its battles, and to assume the far greater share of the burden of bearing and rearing your children; and in return for this special service it is only fair that she receive from you that special protection which man can give to woman as the partner who must carry, bear, and nurture the children. The loving care and consideration which a man is willing to bestow upon his wife and their children are the measure of that man’s attainment of the higher levels of creative and spiritual self-consciousness. Do you not know that men and women are partners with God in that they co-operate to create beings who grow up to possess themselves of the potential of immortal souls? The Father in heaven treats the Spirit Mother of the children of the universe as one equal to himself. It is Godlike to share your life and all that relates thereto on equal terms with the mother partner who so fully shares with you that divine experience of reproducing yourselves in the lives of your children. If you can only love your children as God loves you, you will love and cherish your wife as the Father in heaven honors and exalts the Infinite Spirit, the mother of all the spirit children of a vast universe.”그런 다음, 그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예수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의 형제여, 여자가 기꺼이 그리고 자발적으로 남자에게 권한을 주지 않는 한, 그가 그녀에 대하여 어떤 정당한 권한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 네 아내는 너와 일생을 같이 보내고, 고난을 함께 헤쳐 나가도록 너를 돕고, 너의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일에 있어서 더욱 힘든 몫을 담당하기로 약속하였다. 이러한 특별한 봉사에 대한 대가(代價)로, 한 남자가 자기 아이들을 낳아주고 길러주어야만 하는 동반자로서의 그 여인에게 줄 수 있는 특별한 보호를, 그녀는 너로부터 받는 것이 당연하다. 한 남자가 자기 아내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가득한 보호와 배려는, 창조적이고 영적 자아-의식의 높은 차원에 대해 그가 도달해 있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불멸 혼의 잠재성이 스스로 소유하도록 자라나는 존재를 창조하는 데 그들이 협력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반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겠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우주의 자녀들의 영 어머니를 그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대우하신다. 너의 자녀들의 삶 안에서, 너희 자신을 생산하는 신성한 체험을 너와 함께 그토록 충만하게 공유하는 어머니 동반자와 협력하여, 너의 일생에 관련되는 것들을 분담하는 것이, 하나님다운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듯이, 네가 너의 자녀들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광대한 우주의 모든 영 자녀의 어머니, 무한 영에게 영예를 돌리고 드높이는 것처럼, 너는 너의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133:2.3 (1471.2) As they went on board the boat, they looked back upon the scene of the teary-eyed couple standing in silent embrace. Having heard the latter half of Jesus’ message to the man, Gonod was all day occupied with meditations thereon, and he resolved to reorganize his home when he returned to India. 그들은 배에 오르면서, 눈물에 젖은 채 말 없이 포옹하며 서 있는 부부의 모습을 뒤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하였던 예수의 말 중에서 후반 부분을 듣고 난 고노드는, 하루 종일 그 내용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었으며, 인도에 돌아가면, 자기 가정을 개혁시키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133:2.4 (1471.3) The journey to Nicopolis was pleasant but slow as the wind was not favorable. The three spent many hours recounting their experiences in Rome and reminiscing about all that had happened to them since they first met in Jerusalem. Ganid was becoming imbued with the spirit of personal ministry. He began work on the steward of the ship, but on the second day, when he got into deep religious water, he called on Joshua to help him out. 니코폴리스Nicopolis로의 여정은 순탄하였지만, 바람의 방향이 좋지 않아 속도가 느렸습니다. 세 사람은 로마에서 있었던 그들의 체험들에 대해 많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예루살렘에서 서로 처음 만난 이래로 자기들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회상하였습니다. 가니드에게는 개인적인 사명 활동의 영이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배의 항해사 일을 시작하였지만, 둘째 날에, 깊은 종교적 바다에 빠지자, 자기를 도와 달라며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133:2.5 (1471.4) They spent several days at Nicopolis, the city which Augustus had founded some fifty years before as the “city of victory” in commemoration of the battle of Actium, this site being the land whereon he camped with his army before the battle. They lodged in the home of one Jeramy, a Greek proselyte of the Jewish faith, whom they had met on shipboard. The Apostle Paul spent all winter with the son of Jeramy in the same house in the course of his third missionary journey. From Nicopolis they sailed on the same boat for Corinth, the capital of the Roman province of Achaia. 그들은 니코폴리스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으며, 그 도시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50년 전에 악티움Actium의 전투를 기념하기 위하여 “승리의 도시”로 세운 곳이었고, 그가 그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집단을 이끌고 야영을 했던 장소였습니다. 그들은 배에서 만나게 된 그리스 사람인, 예라미Jeramy의 집에 머물렀는데, 그는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세 번째 선교 여행 때 예라미의 아들과 함께 바로 이 집에서 겨울을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후 그들은 같은 배를 타고 니코폴리스를 떠나 아카이아Achaia라는 로마Roman 식민지의 수도인 고린도Corinth로 항해하였습니다.

3. At Corinth고린도에서

행18:8
133:3.1 (1471.5) By the time they reached Corinth, Ganid was becoming very much interested in the Jewish religion, and so it was not strange that, one day as they passed the synagogue and saw the people going in, he requested Jesus to take him to the service. That day they heard a learned rabbi discourse on the “Destiny of Israel,” and after the service they met one Crispus, the chief ruler of this synagogue. Many times they went back to the synagogue services, but chiefly to meet Crispus. Ganid grew to be very fond of Crispus, his wife, and their family of five children. He much enjoyed observing how a Jew conducted his family life. 그들이 고린도Corinth에 도착할 즈음에, 가니드Ganid는 유대 종교에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래서 어느 날 그들이 유대 회당을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그가 예수께 함께 경배에 참석하자고 제안하게 된 것은 전혀 뜻밖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날 그들은 박식한 랍비의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한 설교를 들었으며, 경배 후에 그들은 이 회당의 가장 높은 지도자인 크리스보Crispus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그 회당을 여러 차례 다시 찾아갔는데, 주로 크리스보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니드는 크리스보와 그의 아내와 5명의 아이들을 매우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유대인이 그의 가정을 어떻게 이끄는지 살펴보며 매우 좋아했습니다.

133:3.2 (1472.1) While Ganid studied family life, Jesus was teaching Crispus the better ways of religious living. Jesus held more than twenty sessions with this forward-looking Jew; and it is not surprising, years afterward, when Paul was preaching in this very synagogue, and when the Jews had rejected his message and had voted to forbid his further preaching in the synagogue, and when he then went to the gentiles, that Crispus with his entire family embraced the new religion, and that he became one of the chief supports of the Christian church which Paul subsequently organized at Corinth. 가니드가 가정생활을 공부하는 동안, 예수께서는 크리스보에게 종교 생활에 대한 더 나은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는 진취적인 이 유대인과 20번 이상 만났으며, 여러 해가 지난 후, 바울이 바로 이 회당에서 설교를 하자, 유대인들이 그의 복음을 배척하고 더 이상 그에게 회당에서 설교하는 것을 금지시켰으므로, 그가 이방인들에게로 갔을 때, 크리스보가 그의 온 가족과 함께 그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였다는 점과 바울이 나중에 고린도에서 조직한 기독교 교회의 주요 지지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던 것은 뜻밖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133:3.3 (1472.2) During the eighteen months Paul preached in Corinth, being later joined by Silas and Timothy, he met many others who had been taught by the “Jewish tutor of the son of an Indian merchant.” 바울은, 훗날에 실라스 그리고 디모데와 합세하여 고린도에서 18개월 동안 설교를 하였을 때, “인도 상인 아들의 유대인 가정교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133:3.4 (1472.3) At Corinth they met people of every race hailing from three continents. Next to Alexandria and Rome, it was the most cosmopolitan city of the Mediterranean empire. There was much to attract one’s attention in this city, and Ganid never grew weary of visiting the citadel which stood almost two thousand feet above the sea. He also spent a great deal of his spare time about the synagogue and in the home of Crispus. He was at first shocked, and later on charmed, by the status of woman in the Jewish home; it was a revelation to this young Indian. 고린도Corinth에서 그들은 세 대륙(大陸)으로부터 온 모든 종족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곳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와 로마Rome 다음으로 지중해the Mediterranean 제국에 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들이 많이 있었고, 가니드는 거의 해발 2,000피트 위에 서 있는 도시를 방문하는 일에 한 번도 싫증을 내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여가시간 중 많은 부분을 유대 회당과 크리스보의 집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유대 가정에서의 여자의 위치를 알고 나서, 처음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고 나중에는 매료되었는데, 그것이 이 젊은 인도인에게는 하나의 계시와도 같았습니다.

133:3.5 (1472.4) Jesus and Ganid were often guests in another Jewish home, that of Justus, a devout merchant, who lived alongside the synagogue. And many times, subsequently, when the Apostle Paul sojourned in this home, did he listen to the recounting of these visits with the Indian lad and his Jewish tutor, while both Paul and Justus wondered whatever became of such a wise and brilliant Hebrew teacher. 예수와 가니드는 또 다른 유대인 가정으로부터 자주 초대를 받았는데, 회당 옆에 위치한 믿음이 깊은 상인인 유스도의 집이었습니다(행18:7). 그리고 훗날에는 사도 바울이 여러 번 그의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거기에서도 그는 인도 청년과 그의 유대인 가정교사와의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러는 동안 바울과 유스도는 그토록 현명하고 총명한 유대인 선생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였습니다.

133:3.6 (1472.5) When in Rome, Ganid observed that Jesus refused to accompany them to the public baths. Several times afterward the young man sought to induce Jesus further to express himself in regard to the relations of the sexes. Though he would answer the lad’s questions, he never seemed disposed to discuss these subjects at great length. One evening as they strolled about Corinth out near where the wall of the citadel ran down to the sea, they were accosted by two public women. Ganid had imbibed the idea, and rightly, that Jesus was a man of high ideals, and that he abhorred everything which partook of uncleanness or savored of evil; accordingly he spoke sharply to these women and rudely motioned them away. When Jesus saw this, he said to Ganid: “You mean well, but you should not presume thus to speak to the children of God, even though they chance to be his erring children. Who are we that we should sit in judgment on these women? Do you happen to know all of the circumstances which led them to resort to such methods of obtaining a livelihood? Stop here with me while we talk about these matters.” The courtesans were astonished at what he said even more than was Ganid. 로마에 있을 때, 가니드는 예수가 그들과 함께 공중목욕탕에 가기를 거절하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 후에 이 젊은이는 예수로 하여금 성(性)의 관계들에 대하여 좀 더 자기 의견을 표현하도록 여러 차례 유도해 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그 청년의 질문들에 대답을 하기는 하였지만, 이러한 주제에 대하여 길게 토의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듯이 보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그들이 성벽이 바다로 이어지는 곳 가까이로 나가서 고린도를 산보하고 있었을 때, 두 매춘부가 말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이상(理想)을 지닌 분으로서, 부정(不淨)한 것이나 악의 기미가 있는 모든 것을 혐오하신다고 여겼던 가니드는 이 여자들을 날카롭게 쏘아붙이면서, 그녀들에게 비키라고 거칠게 손짓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본 예수가 가니드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의 호의는 고맙지만, 비록 어쩌다가 그들이 실수를 범했지만 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런 식으로 주제넘게 얘기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우리가 누구기에 이 여자들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겠는가? 그들이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그러한 수단에 의지하도록 그들을 몰아붙인 모든 환경들을 네가 다 알 수 있느냐? 우리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하면서, 여기에 잠시 멈추자꾸나.” 매춘부들은 가니드 보다는 오히려 예수의 말에 더 놀랐습니다.

133:3.7 (1472.6) As they stood there in the moonlight, Jesus went on to say: “There lives within every human mind a divine spirit, the gift of the Father in heaven. This good spirit ever strives to lead us to God, to help us to find God and to know God; but also within mortals there are many natural physical tendencies which the Creator put there to serve the well-being of the individual and the race. Now, oftentimes, men and women become confused in their efforts to understand themselves and to grapple with the manifold difficulties of making a living in a world so largely dominated by selfishness and sin. I perceive, Ganid, that neither of these women is willfully wicked. I can tell by their faces that they have experienced much sorrow; they have suffered much at the hands of an apparently cruel fate; they have not intentionally chosen this sort of life; they have, in discouragement bordering on despair, surrendered to the pressure of the hour and accepted this distasteful means of obtaining a livelihood as the best way out of a situation that to them appeared hopeless. Ganid, some people are really wicked at heart; they deliberately choose to do mean things, but, tell me, as you look into these now tear-stained faces, do you see anything bad or wicked?” And as Jesus paused for his reply, Ganid’s voice choked up as he stammered out his answer: “No, Teacher, I do not. And I apologize for my rudeness to them — I crave their forgiveness.” Then said Jesus: “And I bespeak for them that they have forgiven you as I speak for my Father in heaven that he has forgiven them. Now all of you come with me to a friend’s house where we will seek refreshment and plan for the new and better life ahead.” Up to this time the amazed women had not uttered a word; they looked at each other and silently followed as the men led the way. 그들은 그 곳에서 달빛 아래에 서 있었고, 예수님은 계속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선물, 즉 신성한 영(靈)이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서 살고 계시다. 이 선한 영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발견하여 그분을 알도록 돕는 일에 언제나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또한 인간 안에는 각자와 종족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도록 창조주께서 넣어주신 많은 자연적인 물리적 경향들이 있다. 그래서 지금, 남성과 여성들은 자신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이기심과 죄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에서 살면서 다양하게 겪는 어려움에 맞서 분투하면서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가니드야, 이 두 여인들 중 누구도 의도적으로 사악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다. 그들은 많은 슬픔을 경험했다는 것을 그들의 얼굴 표정을 통해 나는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잔인한 숙명의 손에서 매우 심한 고통을 겪어왔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이런 종류의 일생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절망의 경계에 이르는 낙심 안에서, 그들에게 다가왔던 그 시간의 압력에 굴복하였고, 어쩔 수없이 택해야 하는 생계의 수단을 취한 것이며, 자신들에게 그 어떤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이러한 수단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가니드야, 어떤 자들은 진정으로 마음의 동기부터 악하다. 그런 사람들은 비열한 일들을 고의적으로 선택해서 행한다, 그러나 네가 지금 이렇게 눈물 젖은 얼굴들을 들여다보면서, 나쁘다거나 간악한 그 어떤 것을 찾을 수 있느냐?” 예수가 그의 대답을 듣기 위해 말을 멈추자, 가니드는 할 말이 없어서 머뭇거리며 간신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들에 대한 저의 무례함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그들의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을 용서하셨음을 선포하는 것처럼, 그들이 너를 용서했음을 그들을 대신하여 내가 말하노라. 자, 너희 모두 나와 함께 친구의 집으로 가서, 간단히 식사를 한 후, 앞으로 새로운 일생을 살기 위한 계획을 세워 보자.” 놀란 여인들은 이때까지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서로 쳐다보다가 남자들이 이끄는 그 길을 조용히 따라갔습니다.

133:3.8 (1473.1) Imagine the surprise of Justus’ wife when, at this late hour, Jesus appeared with Ganid and these two strangers, saying: “You will forgive us for coming at this hour, but Ganid and I desire a bite to eat, and we would share it with these our new-found friends, who are also in need of nourishment; and besides all this, we come to you with the thought that you will be interested in counseling with us as to the best way to help these women get a new start in life. They can tell you their story, but I surmise they have had much trouble, and their very presence here in your house testifies how earnestly they crave to know good people, and how willingly they will embrace the opportunity to show all the world — and even the angels of heaven — what brave and noble women they can become.”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예수가 가니드와 함께 이러한 두 낯선 이들을 데리고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을 때, 유스도의 아내의 놀라움을 상상해 보라. “이런 시간에 찾아온 것에 대해 용서하기 바라며, 가니드와 내 몫으로 약간의 음식을 주면 좋겠고, 새로 발견한 우리 친구들도 또한 양식이 필요하니, 이러한 우리 친구들과 더불어 나누어 먹고자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와 함께 이 여인들이 일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는 최선의 방법을 조언하는 데에, 너희가 관심이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이렇게 오게 되었다. 저들이 너희에게 자기들의 사연을 말하겠지만, 추측컨대 그들은 많은 곤경을 겪어 왔으며, 여기 너의 집에 지금 있는 그들이 있다는 자체가, 바로 그들이 간절하게 선한 사람들 만나기를 열망하며, 자신들도 용기가 있으며 고귀한 여자가 되어 온 세상과 하늘의 천사들에게도 새롭게 될 자신들 보여줄 기회를 잡고 싶은 지 증언하고 있노라.”

133:3.9 (1473.2) When Martha, Justus’ wife, had spread the food on the table, Jesus, taking unexpected leave of them, said: “As it is getting late, and since the young man’s father will be awaiting us, we pray to be excused while we leave you here together — three women — the beloved children of the Most High. And I will pray for your spiritual guidance while you make plans for a new and better life on earth and eternal life in the great beyond.” 유스도의 아내인 마르다가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자, 예수는 뜻밖에 작별을 고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시간도 너무 늦었고 이 젊은이의 아버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지고자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인 너희들, 세 여인을 여기에 남겨 두고 먼저 떠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너희들이 땅에서 새롭고 좀 더 나은 일생과 그 이후의 영원한 일생을 위한 계획을 짜는 동안에, 나는 너희들이 영적으로 인도 받도록 기도할 것이다.”

133:3.10 (1473.3) Thus did Jesus and Ganid take leave of the women. So far the two courtesans had said nothing; likewise was Ganid speechless. And for a few moments so was Martha, but presently she rose to the occasion and did everything for these strangers that Jesus had hoped for. The elder of these two women died a short time thereafter, with bright hopes of eternal survival, and the younger woman worked at Justus’ place of business and later became a lifelong member of the first Christian church in Corinth. 그렇게 예수와 가니드는 그 여인들에게서 떠났습니다. 이때까지 두 매춘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가니드 역시 마찬가지로 말을 잃고 있었습니다. 잠시 동안 마르다도 말이 없었지만, 그녀는 곧 이러한 난국에 대처하여, 낯선 이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께서 그녀에게 기대하였던 모든 일을 이행하였습니다. 이 두 여인들 중에 나이든 이는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영원한 삶에 대한 밝은 희망을 안고 세상을 떠났고, 어린 여인은 유스도의 일터에서 일하였으며, 나중에는 고린도에서의 첫 기독교 교회에서 일생동안 회원이 되었습니다.

133:3.11 (1473.4) Several times in the home of Crispus, Jesus and Ganid met one Gaius, who subsequently became a loyal supporter of Paul. During these two months in Corinth they held intimate conversations with scores of worth-while individuals, and as a result of all these apparently casual contacts more than half of the individuals so affected became members of the subsequent Christian community. 예수와 가니드는 크리스보의 집에서 가이우스라는 사람을 여러 차례 만났는데, 그는 나중에 바울의 충실한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두 달 동안 고린도에서 수십 명의 훌륭한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눴고, 비공식적인 것으로 보이는 그러한 접촉의 결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반 이상은 훗날에 발족된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133:3.12 (1473.5) When Paul first went to Corinth, he had not intended to make a prolonged visit. But he did not know how well the Jewish tutor had prepared the way for his labors. And further, he discovered that great interest had already been aroused by Aquila and Priscilla, Aquila being one of the Cynics with whom Jesus had come in contact when in Rome. This couple were Jewish refugees from Rome, and they quickly embraced Paul’s teachings. He lived with them and worked with them, for they were also tentmakers. It was because of these circumstances that Paul prolonged his stay in Corinth. 바울이 처음으로 고린도에 갔을 때, 그는 장기간 방문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고에 대비하여, 그 유대인 개인교사가 길을 얼마나 잘 준비해 놓았었는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아퀼라와 프리실라에 의해 큰 세력이 이미 조성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는데, 아퀼라는 견유학파의 한 사람이었고 로마에서 예수와 접촉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부부는 로마에서 온 유대인 피난자들이었고 바울의 가르침을 신속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들도 역시 천막을 짓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과 함께 살면서 같이 일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하여 바울은 고린도에서의 체류 기간을 연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4. Personal Work in Corinth고린도에서의 개인적인 일

고전3:1-2
133:4.1 (1474.1) Jesus and Ganid had many more interesting experiences in Corinth. They had close converse with a great number of persons who greatly profited by the instruction received from Jesus. 예수와 가니드는 고린도에서 재미있는 여러 일들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들은 모두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생명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연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셨습니다.

133:4.2 (1474.2) The miller he taught about grinding up the grains of truth in the mill of living experience so as to render the difficult things of divine life readily receivable by even the weak and feeble among one’s fellow mortals. Said Jesus: “Give the milk of truth to those who are babes in spiritual perception. In your living and loving ministry serve spiritual food in attractive form and suited to the capacity of receptivity of each of your inquirers.” 그는 방앗간 주인에게, 거룩한 생명이란 삶의 체험이라는 방앗간에서 진리의 곡식을 가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인 것들을 깨닫는 데 있어서 아직 아기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진리의 우유를 주어라. 생생한 사랑의 섬김을 위해서, 네게 질문하는 각 사람이 수용하는 능력에 맞춘 매력적인 형태로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라.”

133:4.3 (1474.3) To the Roman centurion he said: “Render unto Caesar the things which are Caesar’s and unto God the things which are God’s. The sincere service of God and the loyal service of Caesar do not conflict unless Caesar should presume to arrogate to himself that homage which alone can be claimed by Deity. Loyalty to God, if you should come to know him, would render you all the more loyal and faithful in your devotion to a worthy emperor.” 그는 로마의 백부장에게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시저에게 속한 것들은 시저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것들은 하나님께 바쳐라. 시저가 오만해져서 신(神)에게만 요구되는 경의를 스스로 취하지 않는 한,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경배와 황제에 대한 충성스러운 봉사는 서로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에 대한 충성은, 덕망 있는 황제를 향한 네 헌신을 더욱 충성되며 신실하게 할 것이다.”

133:4.4 (1474.4) To the earnest leader of the Mithraic cult he said: “You do well to seek for a religion of eternal salvation, but you err to go in quest of such a glorious truth among man-made mysteries and human philosophies. Know you not that the mystery of eternal salvation dwells within your own soul? Do you not know that the God of heaven has sent his spirit to live within you, and that this spirit will lead all truth-loving and God-serving mortals out of this life and through the portals of death up to the eternal heights of light where God waits to receive his children? And never forget: You who know God are the sons of God if you truly yearn to be like him.” 예수님은 미트라교(敎)의 진지한 지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영원한 구원의 종교를 찾으려고 노력은 잘하고 있지만, 사람이 만든 신비들과 인간의 철학들 사이에서 그렇게 영광스러운 진리를 추구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영원한 구원의 신비가 네 자신의 혼속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하늘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을 보내어 네 안에 살게 하셨다는 것을 모르겠느냐?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영은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을 인도하여 이 세상의 생명에서 건져 죽음의 입구를 지나 영원한 최고의 빛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그곳에서 자신의 자녀들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시느니라. 네가 그와 같이 되기를 진실로 열망한다면 하나님을 아는 너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133:4.5 (1474.5) To the Epicurean teacher he said: “You do well to choose the best and esteem the good, but are you wise when you fail to discern the greater things of mortal life which are embodied in the spirit realms derived from the realization of the presence of God in the human heart? The great thing in all human experience is the realization of knowing the God whose spirit lives within you and seeks to lead you forth on that long and almost endless journey of attaining the personal presence of our common Father, the God of all creation, the Lord of universes.” 예수님은 에피크로스(쾌락주의) 학파의 선생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최선을 선택하고, 선을 존중히 여기는 일은 잘하고 있구나. 그러나 인간의 마음 안에 계신 하나님의 현존의 깨닫지 못하고, 그 깨달음에서 비롯된 영적 영역과 그 영역에서 구현되는 인간 생명의 더 위대한 것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과연 네가 현명한 상태일까? 인간의 모든 체험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한 자각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네 안에 거하면서, 우리가 공유하는 아버지, 모든 창조의 하나님이시며 우주들의 주님이신 그를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오랜 여행, 거의 끝이 없는 여정으로, 너를 인도하기 위해 애쓰느니라.”

133:4.6 (1474.6) To the Greek contractor and builder he said: “My friend, as you build the material structures of men, grow a spiritual character in the similitude of the divine spirit within your soul. Do not let your achievement as a temporal builder outrun your attainment as a spiritual son of the kingdom of heaven. While you build the mansions of time for another, neglect not to secure your title to the mansions of eternity for yourself. Ever remember, there is a city whose foundations are righteousness and truth, and whose builder and maker is God.” 예수님은 그리스의 건축자에게 다음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친구여, 네가 사람들의 물질적 건물들을 짓는 것처럼, 네 혼속에 있는 그 신성한 영을 닮도록 영적인 인격을 발전시켜라. 이 세상의 일시적인 건축자로서의 성취가 하늘나라의 영적 아들이 되는 일을 앞서지 않도록 하라. 네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시간의 맨션들을 짓는 동안, 너 자신을 위해 짓는 영원한 맨션에 대한 소유권 확보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건축하시고 창조하신 도성 즉 정의와 진리에 기초한 도성(都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라.”

133:4.7 (1474.7) To the Roman judge he said: “As you judge men, remember that you yourself will also some day come to judgment before the bar of the Rulers of a universe. Judge justly, even mercifully, even as you shall some day thus crave merciful consideration at the hands of the Supreme Arbiter. Judge as you would be judged under similar circumstances, thus being guided by the spirit of the law as well as by its letter. And even as you accord justice dominated by fairness in the light of the need of those who are brought before you, so shall you have the right to expect justice tempered by mercy when you sometime stand before the Judge of all the earth.” 예수님은 로마의 법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사람들을 재판할 때, 너 자신도 언젠가는 우주 통치자의 심판대 앞에 서서 심판 받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공정하고 자비하게 판결하되, 너도 언젠가는 최상의 중재자의 손으로부터 자비로운 긍휼을 간청하게 될 것임을 염두에 두어라. 네가 비슷한 상황에서 심판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판결하여 법의 문자뿐만이 아니라 법의 정신을 따라야 하느니라. 그리고 네 앞에 소환되어 온 사람들의 어려운 입장을 고려하여 공정함으로 조정된 정의를 베푸는 것처럼, 너도 언젠가는 온 지상의 재판관 앞에 서서 자비로 완화된 정의를 기대할 권리를 갖게 될 것이다.

133:4.8 (1475.1) To the mistress of the Greek inn he said: “Minister your hospitality as one who entertains the children of the Most High. Elevate the drudgery of your daily toil to the high levels of a fine art through the increasing realization that you minister to God in the persons whom he indwells by his spirit which has descended to live within the hearts of men, thereby seeking to transform their minds and lead their souls to the knowledge of the Paradise Father of all these bestowed gifts of the divine spirit.” 예수님은 그리스 숙박소의 여주인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극이 높으신 자의 자녀들을 대접하는 사람으로서 친절을 베풀라. 사람을 향한 섬김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봉사임을 깊이 깨달아 가면서 일상적인 단조롭고 힘든 일들을 예술적인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라. 하나님은 자신의 영을 통해 각 사람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들의 마음에 거하도록 하나님께서 내려 보내셨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렇게 신성한 영으로 선물을 주신 천국 아버지를 알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 주며 그들의 혼을 인도하려고 애쓰시느니라.

신5:7 고린도에서의 개인적인 일2
133:4.9 (1475.2) Jesus had many visits with a Chinese merchant. In saying good-bye, he admonished him: “Worship only God, who is your true spirit ancestor. Remember that the Father’s spirit ever lives within you and always points your soul-direction heavenward. If you follow the unconscious leadings of this immortal spirit, you are certain to continue on in the uplifted way of finding God. And when you do attain the Father in heaven, it will be because by seeking him you have become more and more like him. And so farewell, Chang, but only for a season, for we shall meet again in the worlds of light where the Father of spirit souls has provided many delightful stopping-places for those who are Paradise-bound.” 예수님은 어느 중국인 상인과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예수님은 그에게 권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너의 진정한 영 조상이시므로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라. 아버지의 영은 언제까지나 네 안에서 너와 함께 살고 있으며, 너의 혼이 가야할 방향이 항상 하늘을 향하도록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네가 이 불멸의 영의 무의식적 인도를 따른다면, 너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높이 들린 길 위에서 분명하게 계속 전진할 것이다. 그리고 네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르게 되는 것은 그를 계속 추구하면서 더욱 그와 같이 되어져 왔기 때문이다. 자, 미스터 장! 잘 있어라, 그러나 단지 한 시절뿐이니, 이는 우리가 다시 빛의 세계에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빛의 세계들은 영 혼들의 아버지께서 천국에 묶여있는 자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즐거움이 가득한 곳들이며 방문하게 될 장소들이란다.

133:4.10 (1475.3) To the traveler from Britain he said: “My brother, I perceive you are seeking for truth, and I suggest that the spirit of the Father of all truth may chance to dwell within you. Did you ever sincerely endeavor to talk with the spirit of your own soul? Such a thing is indeed difficult and seldom yields consciousness of success; but every honest attempt of the material mind to communicate with its indwelling spirit meets with certain success, notwithstanding that the majority of all such magnificent human experiences must long remain as superconscious registrations in the souls of such God-knowing mortals.” 영국에서 온 여행자에게,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형제여, 나는 네가 진리를 찾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노라. 모든 진리의 아버지의 영이 네 안에 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제안한다. 너는 네가 지닌 네 혼의 영(靈)과 진지하게 이야기하려고 언제라도 애쓴 적이 있었는가? 그러한 일은 참으로 어렵고, 성공에 대한 의식을 얻는 것도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물질적 마음이 그 안에서 내주하는 영과 교통하려는 모든 정직한 시도는 확실히 성공을 거두노라. 드물지만, 그런 모든 놀라운 인간 체험의 대부분이 그처럼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혼 안에 초(超)의식적 등록으로서 오랫동안 남아 있노라.”

133:4.11 (1475.4) To the runaway lad Jesus said: “Remember, there are two things you cannot run away from — God and yourself. Wherever you may go, you take with you yourself and the spirit of the heavenly Father which lives within your heart. My son, stop trying to deceive yourself; settle down to the courageous practice of facing the facts of life; lay firm hold on the assurances of sonship with God and the certainty of eternal life, as I have instructed you. From this day on purpose to be a real man, a man determined to face life bravely and intelligently.” 예수님은 가출한 소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피해서 도망할 수 없는 두 가지 즉 하나님과 네 자신이 있음을 기억해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는 네 마음에 함께 살고 있는 하늘 아버지의 영과 네 자신을 가지고 있단다. 아이야, 네 자신을 속이려는 시도를 멈추어라. 삶에 다가오는 사실들을 직면하는 용맹스러운 습성에 뿌리를 내리라. 내가 가르친 대로, 하나님의 아들 됨을 확신하고 영원한 일생의 확실함을 굳게 붙잡으라. 지금 오늘부터, 진정한 남자, 용감하고 총명하게 삶을 직면하기로 각오를 가진 남자가 될 것임을 목적으로 두라.”

133:4.12 (1475.5) To the condemned criminal he said at the last hour: “My brother, you have fallen on evil times. You lost your way; you became entangled in the meshes of crime. From talking to you, I well know you did not plan to do the thing which is about to cost you your temporal life. But you did do this evil, and your fellows have adjudged you guilty; they have determined that you shall die. You or I may not deny the state this right of self-defense in the manner of its own choosing. There seems to be no way of humanly escaping the penalty of your wrongdoing. Your fellows must judge you by what you did, but there is a Judge to whom you may appeal for forgiveness, and who will judge you by your real motives and better intentions. You need not fear to meet the judgment of God if your repentance is genuine and your faith sincere. The fact that your error carries with it the death penalty imposed by man does not prejudice the chance of your soul to obtain justice and enjoy mercy before the heavenly courts.” 마지막 시간이 임한 사형수에게,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형제여, 너는 악한 시대에 범죄로 길을 잃어버렸고, 범죄의 올가미에 걸려들었구나. 너와 대화를 나눈 결과, 나는 네가 이 세상에서의 생명을 대가(代價)로 지불해야 할 만큼의 악한 일을 계획적으로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그러나 너는 이 악을 행했고, 너의 동료들은 너를 죄인으로 심판하였으며, 너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너나 나나, 국가가 자신의 방식으로 선택하는 자아-방어의 이러한 권리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너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 부과된 벌을, 인간적으로는 피할 길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너의 동료들은 너의 행위에 의거하여 판단을 하였지만, 네가 용서를 구할 수 있는 하나의 심판관이 있는데, 그는 너의 참된 동기를 살피고 훨씬 나은 의도로써 너를 심판하실 것이다. 만약 너의 참회가 순수하고 너의 신앙이 진지한 것이라면, 너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너의 실수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린 사실은, 하늘에 있는 법정에서 네 혼이 정의를 구하고 자비를 누릴 기회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133:4.13 (1476.1) Jesus enjoyed many intimate talks with a large number of hungry souls, too many to find a place in this record. The three travelers enjoyed their sojourn in Corinth. Excepting Athens, which was more renowned as an educational center, Corinth was the most important city in Greece during these Roman times, and their two months’ stay in this thriving commercial center afforded opportunity for all three of them to gain much valuable experience. Their sojourn in this city was one of the most interesting of all their stops on the way back from Rome. 예수님은 여기에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갈급한 혼들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이 세 여행자는 고린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교육의 중심지로 더욱 알려진 아테네를 제외하면, 고린도는 이러한 로마 통치 시대 동안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으며, 번성하는 이 상업의 중심지에서 두 달을 머무는 동안 그들은 가치 있는 체험들을 많이 겪게 되었습니다. 이 도시에서의 체류는 로마에서 돌아가는 길에 들렸던 모든 장소들 중에서 가장 흥미 있는 것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133:4.14 (1476.2) Gonod had many interests in Corinth, but finally his business was finished, and they prepared to sail for Athens. They traveled on a small boat which could be carried overland on a land track from one of Corinth’s harbors to the other, a distance of ten miles. 고노드는 고린도에서 많은 수입을 얻었으며, 마침내 그의 사업상의 일을 모두 끝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테네로 항해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10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고린도의 어느 항구에서 다른 항구까지, 육로로 옮길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배로 여행하였습니다.

5. At Athens — Discourse on Science아테네에서At Athens(과학에 대한 논의)

133:5.1 (1476.3) They shortly arrived at the olden center of Greek science and learning, and Ganid was thrilled with the thought of being in Athens, of being in Greece, the cultural center of the onetime Alexandrian empire, which had extended its borders even to his own land of India. There was little business to transact; so Gonod spent most of his time with Jesus and Ganid, visiting the many points of interest and listening to the interesting discussions of the lad and his versatile teacher. 그들은 곧 그리스의 과학과 학문의 오래된 중심지에 도착하였고, 가니드는 그리스에, 그것도 아테네에 와 있다는 생각에 흥분하였는데, 그 곳이 자기 나라인 인도 국경까지 한 때 지배하였던 알렉산더 제국의 문화적 중심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노드는 사업상 볼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흥미 있는 여러 장소들을 방문하고, 다방면의 학식을 가진 선생이 자기 아들과 주고받는 재미있는 토의들에 귀를 기울이면서 예수님과 가니드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133:5.2 (1476.4) A great university still thrived in Athens, and the trio made frequent visits to its halls of learning. Jesus and Ganid had thoroughly discussed the teachings of Plato when they attended the lectures in the museum at Alexandria. They all enjoyed the art of Greece, examples of which were still to be found here and there about the city. 아테네에는 커다란 대학 하나가 여전히 번영을 누리고 있었고, 그 세 사람은 그 대학 강의실에 자주 들렀습니다. 예수님과 가니드는 이전에 알렉산드리아의 박물관에서 열렸던 강의에 참석하여, 플라톤의 가르침을 면밀히 토론했었습니다. 그들 모두 도시 곳곳에서 여전히 발견되는 그리스의 예술 작품들을 관람하였습니다.

133:5.3 (1476.5) Both the father and the son greatly enjoyed the discussion on science which Jesus had at their inn one evening with a Greek philosopher. After this pedant had talked for almost three hours, and when he had finished his discourse, Jesus, in terms of modern thought, said: 어느 날 저녁 고노드와 가니드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숙소에서 그리스 철학자와 과학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매우 즐겁게 들었습니다. 이 현학자(衒學者)는 거의 세 시간 동안 견해를 피력하였고, 그의 말이 끝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현대적인 사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33:5.4 (1476.6) Scientists may some day measure the energy, or force manifestations, of gravitation, light, and electricity, but these same scientists can never (scientifically) tell you what these universe phenomena are. Science deals with physical-energy activities; religion deals with eternal values. True philosophy grows out of the wisdom which does its best to correlate these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observations. There always exists the danger that the purely physical scientist may become afflicted with mathematical pride and statistical egotism, not to mention spiritual blindness. 과학자들이 언젠가는 중력, 빛, 그리고 전기의 에너지와 힘을 측량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 과학자들은 이러한 우주 현상이 무엇인지를 결코 과학적으로 말해 줄 수 없다. 과학은 물질적 에너지 작용들을 다루며, 종교는 영원한 가치들을 다룬다. 진정한 철학은, 이러한 양적인 관찰과 질적인 관찰을 연관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지혜로부터 태동된다. 순전히 물질적인 과학자들은, 영적으로 눈 먼 것은 그만두고라도, 수학적 자부심과 통계학적 자기중심주의에 시달리게 되는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133:5.5 (1476.7) Logic is valid in the material world, and mathematics is reliable when limited in its application to physical things; but neither is to be regarded as wholly dependable or infallible when applied to life problems. Life embraces phenomena which are not wholly material. Arithmetic says that, if one man could shear a sheep in ten minutes, ten men could shear it in one minute. That is sound mathematics, but it is not true, for the ten men could not so do it; they would get in one another’s way so badly that the work would be greatly delayed. 논리는 물질적 세상에서 유효하고, 수학은 물질적인 것들에게 제한적으로 적용될 경우에만 신뢰할 수 있지만, 일생의 문제들에 적용될 경우에는 그 두 가지 모두, 전적으로 믿을 만하거나 틀림이 없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일생은 전적으로 물질적인 것만은 아닌 현상들을 포함한다. 만약 한 사람이 양 한 마리의 털을 깎는데 10분이 소요된다면, 수학은 열 사람이 1분에 그 양의 털을 깎을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수학적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실제적으로는 사실이 아닌데, 왜냐하면 열 사람이 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들은 서로에게 방해가 되어 일이 매우 지연될 것이기 때문이다.

133:5.6 (1477.1) Mathematics asserts that, if one person stands for a certain unit of intellectual and moral value, ten persons would stand for ten times this value. But in dealing with human personality it would be nearer the truth to say that such a personality association is a sum equal to the square of the number of personalities concerned in the equation rather than the simple arithmetical sum. A social group of human beings in co-ordinated working harmony stands for a force far greater than the simple sum of its parts. 만약 한 사람이 어떤 특정한 단위의 지적(知的) 그리고 도덕적 가치를 나타내고 있다면, 수학은 열 사람이 10 배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고유성을 다루는데 있어서, 그러한 고유성의 연합은 단순한 산술적 합계라기보다는 오히려 관련된 등식에서, 고유성들 숫자의 제곱한 것과 같은 합계가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합력하여 조화롭게 일하는 인간 사회 집단은 그 부분들의 단순한 합계보다는 훨씬 더 큰 세력을 나타낸다.

133:5.7 (1477.2) Quantity may be identified as a fact, thus becoming a scientific uniformity. Quality, being a matter of mind interpretation, represents an estimate of values, and must, therefore, remain an experience of the individual. When both science and religion become less dogmatic and more tolerant of criticism, philosophy will then begin to achieve unity in the intelligent comprehension of the universe. 양(量)은 하나의 사실로 증명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적 균일성을 갖추게 된다. 본질은 마음의 해석 문제로서, 가치들에 대한 평가를 뜻하기 때문에, 그것은 반드시 개인의 체험으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 과학과 종교 둘 모두 독단이 줄어 비평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철학은 우주에 대한 지적 이해를 통하여 합일을 이루기 시작할 것이다.

133:5.8 (1477.3) There is unity in the cosmic universe if you could only discern its workings in actuality. The real universe is friendly to every child of the eternal God. The real problem is: How can the finite mind of man achieve a logical, true, and corresponding unity of thought? This universe-knowing state of mind can be had only by conceiving that the quantitative fact and the qualitative value have a common causation in the Paradise Father. Such a conception of reality yields a broader insight into the purposeful unity of universe phenomena; it even reveals a spiritual goal of progressive personality achievement. And this is a concept of unity which can sense the unchanging background of a living universe of continually changing impersonal relations and evolving personal relationships. 너희가 우주의 작용을 실제로 인식한다면, 조화로운 우주 안에는 통일성이 존재한다. 실제 우주는 영원한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호의적이다. 유한한 사람의 마음이 논리적이고 진실하며 일치하는 사고의 통일성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진정한 문제이다. 우주를 아는 이 마음 상태는, 양적인 사실과 질적인 가치가 천국 아버지 안에서 공통적 원인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만 소유될 수 있다. 실체에 대한 그러한 개념은, 우주 현상의 의도적 통일에 대한 확대된 통찰력을 갖게 한다. 그것은 진보적 고유성 성취의 영적 목표까지도 드러낸다. 그리고 이것이, 계속, 변하는 미(未)고유적 관계들과 진화하는 고유적 관계들에 대한 살아있는 우주에 대한 변화하지 않는 배경을 감지할 수 있는 통일성의 개념이다.

133:5.9 (1477.4) Matter and spirit and the state intervening between them are three interrelated and interassociated levels of the true unity of the real universe. Regardless of how divergent the universe phenomena of fact and value may appear to be, they are, after all, unified in the Supreme. 물질과 영 그리고 그들 사이에 개재된 상태는, 실제 우주의 진정한 통일이 이루는 서로 관계되고 상호 연합된 세 가지 차원들이다. 사실과 가치에 대한 우주 현상이 얼마나 분산되어 보이는가에 상관없이, 그들은 어찌되었건, 최극자 안에 통합되어 있다.

133:5.10 (1477.5) Reality of material existence attaches to unrecognized energy as well as to visible matter. When the energies of the universe are so slowed down that they acquire the requisite degree of motion, then, under favorable conditions, these same energies become mass. And forget not, the mind which can alone perceive the presence of apparent realities is itself also real. And the fundamental cause of this universe of energy-mass, mind, and spirit, is eternal — it exists and consists in the nature and reactions of the Universal Father and his absolute co-ordinates. 물질 존재의 실체성은 눈에 보이는 사물들뿐만 아니라 인식되지 않는 에너지에게도 부여됩니다. 우주 에너지들이 속도가 매우 느려져서 필요한 운동 정도를 획득하면, 바로 이 에너지들은, 적합한 조건 속에서 질량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명백한 실체들의 현존을 단독으로 감지할 수 있는 마음 그 자체도 또한 실제라는 점을 잊지 마라. 그리고 에너지-질량, 마음 그리고 영으로 이루어진 이 우주의 근본적인 원인은 영원하다─그것은 우주 아버지와 그의 절대 합동자들의 본성과 반응들 안에 존재하고 그것을 구성하고 있다.

133:5.11 (1477.6) They were all more than astounded at the words of Jesus, and when the Greek took leave of them, he said: “At last my eyes have beheld a Jew who thinks something besides racial superiority and talks something besides religion.” And they retired for the night. 그들은 모두 예수님의 말에 경탄했습니다. 그 때 그 그리스인이 떠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인종적 우월감이나 종교와는 상관없는 어떤 것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유대인을 마침내 만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133:5.12 (1477.7) The sojourn in Athens was pleasant and profitable, but it was not particularly fruitful in its human contacts. Too many of the Athenians of that day were either intellectually proud of their reputation of another day or mentally stupid and ignorant, being the offspring of the inferior slaves of those earlier periods when there was glory in Greece and wisdom in the minds of its people. Even then, there were still many keen minds to be found among the citizens of Athens. 아테네에서의 체류는 즐겁고 유익했지만, 인간들과의 접촉에 있어서 그렇게 특별한 결실을 맺지는 못했습니다. 그 당시 거의 대부분의 아테네인들은 자기들의 과거 명성에 대하여 지적 자만심을 가졌든지. 아니면 과거의 시절에 그리스가 영광을 누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지혜가 있었던 때에 살았던 열등한 노예들의 후손들의 존재 즉 정신적으로 어리석고 무지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 당시에도 아테네의 시민들 중에는 명민한 마음들이 여전히 많이 있었습니다.

6. At Ephesus — Discourse on the Soul 에베소에서(혼에 대한 강론)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What good will it be for a man if he gains the whole world, yet forfeits his soul? Or what can a man give in exchange for his soul?

133:6.1 (1477.8) On leaving Athens, the travelers went by way of Troas to Ephesus, the capital of the Roman province of Asia. They made many trips out to the famous temple of Artemis of the Ephesians, about two miles from the city. Artemis was the most famous goddess of all Asia Minor and a perpetuation of the still earlier mother goddess of ancient Anatolian times. The crude idol exhibited in the enormous temple dedicated to her worship was reputed to have fallen from heaven. Not all of Ganid’s early training to respect images as symbols of divinity had been eradicated, and he thought it best to purchase a little silver shrine in honor of this fertility goddess of Asia Minor. That night they talked at great length about the worship of things made with human hands. 아테네Athens를 떠난 그 여행자들은 트로아Troas를 경유하여 아시아 지방에서 로마Roman의 수도 역할을 하는 에베소Ephesus로 갔습니다. 그들은 도시에서 3.2 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에베소인들의 유명한 아르테미스Artemis 신전(神殿)을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아르테미스Artemis는 소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여신(女神)이었으며, 그것은 고대 아나톨리안Anatolian에서 있었던 아주 초기 시대의 어머니 여신을 이제껏 계속 보존한 것이었습니다. 그 여신을 경배하기 위해 바쳐진 거대한 사원에는 조잡한 우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가니드는 신성(神性)의 상징으로 형상을 존경하도록 일찍부터 배웠던 것들을 모두 버리지는 못하고 있었으며, 소아시아의 이 다산(多産)의 여신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은으로 만들어진 작은 성물함(聖物函)을 사는 것이 아주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날 밤에, 그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물건들을 경배하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33:6.2 (1478.1) On the third day of their stay they walked down by the river to observe the dredging of the harbor’s mouth. At noon they talked with a young Phoenician who was homesick and much discouraged; but most of all he was envious of a certain young man who had received promotion over his head. Jesus spoke comforting words to him and quoted the olden Hebrew proverb: “A man’s gift makes room for him and brings him before great men.” 그곳에 머물던 셋째 날에, 그들은 항만 입구 준설하는 것을 살펴보기 위하여 강을 따라 걸어 내려갔습니다. 점심 때, 그들은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면서 매우 풀이 죽어 있는 한 젊은 페니키아Phoenician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승진을 임명받은 어떤 젊은이를 시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위안의 말을 해주면서, 유대의 오래된 속담을 인용하셨습니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길을 열어 주고 그를 높은 사람 앞으로 인도한다.”(잠언18:16).

133:6.3 (1478.2) Of all the large cities they visited on this tour of the Mediterranean, they here accomplished the least of value to the subsequent work of the Christian missionaries. Christianity secured its start in Ephesus largely through the efforts of Paul, who resided here more than two years, making tents for a living and conducting lectures on religion and philosophy each night in the main audience chamber of the school of Tyrannus. 그들이 지중해 여행에서 방문한 모든 큰 도시들 중에서, 이곳에서 이룬 성과는 나중에 기독교 선교사들의 사역에 있어서 가장 효과가 부족했습니다. 기독교가 에베소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체적으로 바울의 노력을 통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2년 넘게 살았고, 생계를 위해 텐트를 제조하면서 티라누스 학파의 주요 강당에서 매일 밤 종교와 철학에 관하여 강의하였습니다.

133:6.4 (1478.3) There was a progressive thinker connected with this local school of philosophy, and Jesus had several profitable sessions with him. In the course of these talks Jesus had repeatedly used the word “soul.” This learned Greek finally asked him what he meant by “soul,” and he replied: 이 지역의 철학학파와 관련된 한 진보적인 사상가가 있었는데, 예수님은 그와 몇 차례의 유익한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토의를 통하여 예수님은 “혼”이라는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 학식 있는 그리스인은 마침내 예수님께 그가 사용하는 “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쭈었을 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133:6.5 (1478.4) “The soul is the self-reflective, truth-discerning, and spirit-perceiving part of man which forever elevates the human being above the level of the animal world. Self-consciousness, in and of itself, is not the soul. Moral self-consciousness is true human self-realization and constitutes the foundation of the human soul, and the soul is that part of man which represents the potential survival value of human experience. Moral choice and spiritual attainment, the ability to know God and the urge to be like him, a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soul. The soul of man cannot exist apart from moral thinking and spiritual activity. A stagnant soul is a dying soul. But the soul of man is distinct from the divine spirit which dwells within the mind. The divine spirit arrives simultaneously with the first moral activity of the human mind, and that is the occasion of the birth of the soul. “혼은, 자아를-반영하고, 진리를-식별하고, 영을-감지하고 있는 사람의 한 부분이며, 그것은 인간존재를 동물세계의 차원을 뛰어넘어 언제까지나 고양(高揚)시키는 것이다. 자아-의식 자체만으로 저절로 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자아-의식이 참된 인간 자아-실현이며 인간 혼의 기초를 이루고 있고, 혼은 사람의 한 부분으로서 인간 체험에서 잠재적인 생존의 가치를 대표한다. 도덕적 선택과 영적 달성, 하나님을 알려는 능력과 그와 같이 되고자하는 충동이 혼의 특징들이다. 사람의 혼은 도덕적 사고와 영적 활동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정체되어 있는 혼은 죽어 가는 혼이다. 하지만 사람의 혼은 마음 안에 내주하고 있는 신성한 영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신성한 영은 인간 마음의 첫 번째 도덕적 활동과 동시에 도착하며, 그 때가 바로 혼이 탄생되는 때이다.

133:6.6 (1478.5) “The saving or losing of a soul has to do with whether or not the moral consciousness attains survival status through eternal alliance with its associated immortal spirit endowment. Salvation is the spiritualization of the self-realization of the moral consciousness, which thereby becomes possessed of survival value. All forms of soul conflict consist in the lack of harmony between the moral, or spiritual, self-consciousness and the purely intellectual self-consciousness. “혼이 구원되거나 또는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도덕적 의식이 그것과 연합된 불멸하는 영적 자질과의 영원한 결합을 통하여, 생존의 지위를 달성했는지 아닌지에 달려 있다. 구원은 도덕적 의식의 자아실현에서의 영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생존의 가치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형태의 혼의 갈등은, 도덕적이거나 혹은 영적인, 자아-의식과 순수하게 지적인 자아-의식 사이의 조화 부족에서 기인된다.”

133:6.7 (1478.6) “The human soul, when matured, ennobled, and spiritualized, approaches the heavenly status in that it comes near to being an entity intervening between the material and the spiritual, the material self and the divine spirit. The evolving soul of a human being is difficult of description and more difficult of demonstration because it is not discoverable by the methods of either material investigation or spiritual proving. Material science cannot demonstrate the existence of a soul, neither can pure spirit-testing. Notwithstanding the failure of both material science and spiritual standards to discover the existence of the human soul, every morally conscious mortal knows of the existence of his soul as a real and actual personal experience.” “인간의 혼은, 성숙되고 고상해지고 영성화 되었을 때,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물질 자체와 신성한 영 사이에 개재된intervening 하나의 실존개체의 존재로 더 가까워지면서, 하늘의 상태에 접근하게 된다. 인간 존재의 진화하는 혼은, 묘사하기가 어렵고, 그것을 실증하기란 더욱 힘들다, 왜냐하면 그것은 물질적 조사나 혹은 영적 증명의 방법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질적 과학은 혼의 실재를 드러낼 수 없으며, 순수한 영-테스트도 마찬가지이다. 물질적 과학과 영적 기준 모두 인간 혼의 실재를 발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의식을 가진 모든 사람은 자신의 혼을 하나의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개인적 체험으로 알고 있다.”

7. The Sojourn at Cyprus — Discourse on Mind 키프로스에서(마음에 대한 말씀)

133:7.1 (1479.1) Shortly the travelers set sail for Cyprus, stopping at Rhodes. They enjoyed the long water voyage and arrived at their island destination much rested in body and refreshed in spirit. 그 여행자들은 로데Rhodes에 잠시 머무르다가 키프로스Cyprus를 향하여 항해하였습니다. 그들은 긴 해상 여행을 즐겼으며, 육신과 영의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에 그들의 목적지인 그 섬에 도착하였습니다.

133:7.2 (1479.2) It was their plan to enjoy a period of real rest and play on this visit to Cyprus as their tour of the Mediterranean was drawing to a close. They landed at Paphos and at once began the assembly of supplies for their sojourn of several weeks in the near-by mountains. On the third day after their arrival they started for the hills with their well-loaded pack animals. 그들의 지중해 여행이 거의 끝 무렵에 가까이 왔기 때문에, 키프로스Cyprus 방문에서는 단지 휴식을 취하고 즐기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보Paphos에 상륙하였으며, 근처에 있는 산에서 몇 주간을 지내기 위한 생필품들을 즉시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도착한 지 3일 만에 그들은 물건을 동물들에게 싣고 산을 향해 떠났습니다.

133:7.3 (1479.3) For two weeks the trio greatly enjoyed themselves, and then, without warning, young Ganid was suddenly taken grievously ill. For two weeks he suffered from a raging fever, oftentimes becoming delirious; both Jesus and Gonod were kept busy attending the sick boy. Jesus skillfully and tenderly cared for the lad, and the father was amazed by both the gentleness and adeptness manifested in all his ministry to the afflicted youth. They were far from human habitations, and the boy was too ill to be moved; so they prepared as best they could to nurse him back to health right there in the mountains. 두 주 동안 이 세 사람들은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갑작스럽게도 어린 가니드가 몹시 앓게 되었습니다. 두 주일 동안 그는 심한 열로 고생을 하였고, 가끔씩 헛소리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고노드는 아픈 소년을 간호하느라 바빴습니다. 예수는 능숙하고 부드럽게 그 소년을 돌보았는데, 그 아버지는 고통 받는 소년을 돌보는 모든 일에 있어서 예수의 자상함과 능숙함으로 인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있었고, 게다가 그 소년의 병은 너무 심해서 이동할 수도 없었으므로, 그들은 그 산 속에서 소년이 회복하도록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 할 뿐이었습니다.

133:7.4 (1479.4) During Ganid’s convalescence of three weeks Jesus told him many interesting things about nature and her various moods. And what fun they had as they wandered over the mountains, the boy asking questions, Jesus answering them, and the father marveling at the whole performance. 가니드가 회복하고 있던 3주 동안, 예수님은 그에게 자연과 자연의 여러 가지의 변화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산을 배회하면서 그들이 즐겼던 것은, 그 소년이 질문을 하고 예수께서 대답을 하는 것이었고, 그 소년의 아버지는 이 모든 일에 감탄하였습니다.

133:7.5 (1479.5) The last week of their sojourn in the mountains Jesus and Ganid had a long talk on the functions of the human mind. After several hours of discussion the lad asked this question: “But, Teacher, what do you mean when you say that man experiences a higher form of self-consciousness than do the higher animals?” And as restated in modern phraseology, Jesus answered: 그 산에서 머물렀던 마지막 주간에, 예수님과 가니드는 인간 마음의 작용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여러 시간 동안의 토의 끝에 그 소년은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 사람이 고등 동물들보다 더 높은 자아-의식의 형태를 체험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대답을 현대 용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33:7.6 (1479.6) My son, I have already told you much about the mind of man and the divine spirit that lives therein, but now let me emphasize that self-consciousness is a reality. When any animal becomes self-conscious, it becomes a primitive man. Such an attainment results from a co-ordination of function between impersonal energy and spirit-conceiving mind, and it is this phenomenon which warrants the bestowal of an absolute focal point for the human personality, the spirit of the Father in heaven. 아이야, 사람의 마음과 그 안에 거하는 신성한 영에 대하여 나는 이미 많은 이야기를 네게 해주었지만, 지금은 자아-의식이 하나의 실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어떤 동물이 자아-의식을 갖게 되면, 하나의 원시인이 된다. 그런 성취는 미(未)고유적 에너지와 영을 이해하는 마음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룬 작용의 결과이며, 이러한 현상은, 인간 고유성을 위한 하나의 절대적 초점(焦點)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이 수여됨을 보증하는 것이다.

133:7.7 (1479.7) Ideas are not simply a record of sensations; ideas are sensations plus the reflective interpretations of the personal self; and the self is more than the sum of one’s sensations. There begins to be something of an approach to unity in an evolving selfhood, and that unity is derived from the indwelling presence of a part of absolute unity which spiritually activates such a self-conscious animal-origin mind. 관념들Ideas는 감각한 것들에 대한 단순한 기록이 아니며, 관념들이란 감각한 것들 위에 고유 자아의 반영적 해석을 덧붙인 것이며, 그 자아는 그가 감각한 것들의 전체 합계보다 큰 것이다. 진화하는 자아 신분 안에서 합일로 접근하는 그 무엇이 시작되며, 그 합일은 절대 합일의 일부분인 내주하는 현존으로부터 비롯되는데, 그것이 자아-의식적인 동물-기원 마음을 영적으로 활성화시킨다.

133:7.8 (1479.8) No mere animal could possess a time self-consciousness. Animals possess a physiological co-ordination of associated sensation-recognition and memory thereof, but none experience a meaningful recognition of sensation or exhibit a purposeful association of these combined physical experiences such as is manifested in the conclusions of intelligent and reflective human interpretations. And this fact of self-conscious existence, associated with the reality of his subsequent spiritual experience, constitutes man a potential son of the universe and foreshadows his eventual attainment of the Supreme Unity of the universe. 동물에 불과한 존재들은 어떤 것도, 시간에 대한 자아-의식을 소유할 수 없다. 동물들은 연합된 감각-인식과 그것을 기억하는 생리학적 합동 체계를 소유하고는 있지만, 감각에 대한 의미 있는 인식을 체험한다거나 혹은 지능적이고 반영적인 인간의 해석들이 내리는 결론 속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통합된 육체적인 체험들의 의도적인 연합을 나타내는 경우는 전혀 없다. 자아-의식이 실재한다는 이러한 사실은, 그 뒤에 일어나는 자신의 영적 체험에 대한 실체성과 연관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우주의 잠재적인 아들이 되게 하고 결국에는 그가 우주의 최극 합일을 달성하게 됨을 예시한다.

133:7.9 (1480.1) Neither is the human self merely the sum of the successive states of consciousness. Without the effective functioning of a consciousness sorter and associator there would not exist sufficient unity to warrant the designation of a selfhood. Such an ununified mind could hardly attain conscious levels of human status. If the associations of consciousness were just an accident, the minds of all men would then exhibit the uncontrolled and random associations of certain phases of mental madness.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아는 단지 의식의 연속 상태들에 대한 합계도 아니다. 의식 분류자와 연합자의 효율적 작용 없이는, 자아 신분이라는 명칭을 정당화시킬만한 충분한 합일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통합되지 않은 마음은, 인간 지위의 의식적 수준에 거의 이를 수 없다. 만일 의식의 결합이 단지 우연에 불과하였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들은 통제되지 못하고 되는대로 움직이는 정신적 광란의 현상들의 상태들과 연관되었음을 나타낼 것이다.

133:7.10 (1480.2) A human mind, built up solely out of the consciousness of physical sensations, could never attain spiritual levels; this kind of material mind would be utterly lacking in a sense of moral values and would be without a guiding sense of spiritual dominance which is so essential to achieving harmonious personality unity in time, and which is inseparable from personality survival in eternity. 오로지 물리적 감각의 의식으로 만들어진, 인간 마음은 영적 수준에 결코 이를 수 없다. 이런 물리적 마음의 종류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감각이 철저히 모자라고, 영적 영역으로 안내하는 감각이 없게 된다. 영적 영역으로 안내하는 감각은 시간 안에서 조화로운 고유성 합일을 성취하는데 너무나 필수적이고, 영원 안에서 생존하는 고유성과 떼어낼 수 없다.

133:7.11 (1480.3) The human mind early begins to manifest qualities which are supermaterial; the truly reflective human intellect is not altogether bound by the limits of time. That individuals so differ in their life performances indicates, not only the varying endowments of heredity and the different influences of the environment, but also the degree of unification with the indwelling spirit of the Father which has been achieved by the self, the measure of the identification of the one with the other. 인간 마음은 초물질적인 본질들을 일찍부터 나타내기 시작한다. 참으로 반영적인 인간 지성은 모두 시간의 한계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개인들이 일생에서 이룩한 성취들이 그토록 다른 것은, 유전형질의 다양한 자질들과 다른 환경적 영향뿐 아니라, 자아에 의해 성취되고 있는 아버지의 내주하는 영과 연합된 정도 즉, 하나와 다른 하나가 어느 정도 동일시되었는지를 가리키는 척도이다.

133:7.12 (1480.4) The human mind does not well stand the conflict of double allegiance. It is a severe strain on the soul to undergo the experience of an effort to serve both good and evil. The supremely happy and efficiently unified mind is the one wholly dedicated to the doing of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Unresolved conflicts destroy unity and may terminate in mind disruption. But the survival character of a soul is not fostered by attempting to secure peace of mind at any price, by the surrender of noble aspirations, and by the compromise of spiritual ideals; rather is such peace attained by the stalwart assertion of the triumph of that which is true, and this victory is achieved in the overcoming of evil with the potent force of good. 인간의 마음은 이중으로 충성하는 모순을 잘 견디지 못한다. 선과 악 모두를 섬기려고 노력하는 체험은 혼에게 심각한 부담이 된다. 최상으로 행복하고 효과적으로 통합된 마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 전심으로 헌신된 마음이다. 해결되지 않은 갈등들은 합일을 파괴하며 마음의 분열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혼이 살아남을 수 있는 특성은, 어떤 값을 치르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는 시도나, 고귀한 포부를 포기하거나, 또는 영적인 이상들을 타협한다고 해서, 육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평화는 참된 것이 승리하기를 꿋꿋하게 주장함으로써 성취되며, 이 승리는 강력한 선(善)의 힘으로 악(惡)을 극복함으로써 이루어진다.

133:7.13 (1480.5) The next day they departed for Salamis, where they embarked for Antioch on the Syrian coast. 다음 날 그들은 살라미스Salamis를 향해 떠났고, 그곳에서 그들은 시리아 해변에 있는 안디옥Antioch으로 출항하였습니다.

8. At Antioch 안디옥에서

133:8.1 (1480.6) Antioch was the capital of the Roman province of Syria, and here the imperial governor had his residence. Antioch had half a million inhabitants; it was the third city of the empire in size and the first in wickedness and flagrant immorality. Gonod had considerable business to transact; so Jesus and Ganid were much by themselves. They visited everything about this polyglot city except the grove of Daphne. Gonod and Ganid visited this notorious shrine of shame, but Jesus declined to accompany them. Such scenes were not so shocking to Indians, but they were repellent to an idealistic Hebrew. 전9:10 너는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라. 안디옥Antioch은 시리아Syria 지방에서 로마의 수도 역할을 하는 도시였고, 그 제국의 총독이 거주하는 공관이 있었습니다. 안디옥은 5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로서, 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지만, 사악함과 비도덕적 악명으로는 첫 번째였습니다. 고노드는 처리할 업무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과 가니드는 둘 만의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그들은 다프니Daphne의 작은 숲을 제외하고, 여러 나라의 말들을 사용하는 이 도시의 모든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고노드와 가니드는 악명 높은 치욕의 신전을 방문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가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러한 장면이 두 인도인들에게는 충격이 되지 않았지만, 이상주의적 히브리인에게는 불쾌했습니다.

133:8.2 (1480.7) Jesus became sober and reflective as he drew nearer Palestine and the end of their journey. He visited with few people in Antioch; he seldom went about in the city. After much questioning as to why his teacher manifested so little interest in Antioch, Ganid finally induced Jesus to say: “This city is not far from Palestine; maybe I shall come back here sometime.” 예수님은 여행이 끝나는 팔레스타인에 가까이 이를수록, 더 엄숙해지고 생각에 잠기곤 하였습니다. 그는 안디옥에서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았으며, 그 도시를 돌아다니는 일도 거의 드물었습니다. 가니드는 예수님이 안디옥에 거의 관심이 없는 이유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한 끝에, 결국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도시는 팔레스타인에서 그렇게 멀지 않으므로, 언젠가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133:8.3 (1481.1) Ganid had a very interesting experience in Antioch. This young man had proved himself an apt pupil and already had begun to make practical use of some of Jesus’ teachings. There was a certain Indian connected with his father’s business in Antioch who had become so unpleasant and disgruntled that his dismissal had been considered. When Ganid heard this, he betook himself to his father’s place of business and held a long conference with his fellow countryman. This man felt he had been put at the wrong job. Ganid told him about the Father in heaven and in many ways expanded his views of religion. But of all that Ganid said, the quotation of a Hebrew proverb did the most good, and that word of wisdom was: “Whatsoever your hand finds to do, do that with all your might.” 가니드는 안디옥에서 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 젊은이는 이해가 빠른 학생이었기 때문에, 예수의 가르침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벌써 실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안디옥에서 그의 아버지의 사업에 관여를 하고 있었던 한 인도인이 있었는데, 그가 너무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불평까지 심해서, 그를 해고하는 것에 대해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가니드가 이 말을 듣자, 그는 아버지의 사업장으로 가서 자신의 동족인 그 사람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적당하지 않은 자리에 배치되었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가니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으며, 여러 방면으로 그의 종교적 관점을 넓혀 주었습니다. 그러나 가니드가 말한 모든 것들 중에서 유대 속담의 인용이 그에게 가장 효력이 있었는데, 그 지혜의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너는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라(전9:10).

133:8.4 (1481.2) After preparing their luggage for the camel caravan, they passed on down to Sidon and thence over to Damascus, and after three days they made ready for the long trek across the desert sands. 그들은 낙타로 여행하기 위해 짐을 준비한 후, 시돈Sidon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다시 다마스쿠스Damascus를 지나, 3일 후에는 사막의 모래벌판을 횡단하는 먼 길을 위해 준비를 마쳤습니다.

9. In Mesopotamia 메소포타미아에서

잠4:7-8 7 지혜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지혜를 얻어라 그 어떤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깨달음을 얻어라. 8 지혜를 찬양하라. 지혜가 너를 높일 것이다. 지혜를 고이 간직하라. 지혜가 너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133:9.1 (1481.3) The caravan trip across the desert was not a new experience for these much-traveled men. After Ganid had watched his teacher help with the loading of their twenty camels and observed him volunteer to drive their own animal, he exclaimed, “Teacher, is there anything that you cannot do?” Jesus only smiled, saying, “The teacher surely is not without honor in the eyes of a diligent pupil.” And so they set forth for the ancient city of Ur. 사막(沙漠)을 횡단하는 대상(카라반caravan) 여행은, 여행에 이력이 난 이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 20 마리의 낙타에 짐 싣는 것을 돕고, 짐승들을 손수 이끌고 가려고 자원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가니드는, 감탄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할 수 없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단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의 눈에는 명예롭지 않은 선생이 있을 수 없다는 게 분명하구나.” 그렇게 그들은 고대 도시 우르Ur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133:9.2 (1481.4) Jesus was much interested in the early history of Ur, the birthplace of Abraham, and he was equally fascinated with the ruins and traditions of Susa, so much so that Gonod and Ganid extended their stay in these parts three weeks in order to afford Jesus more time to conduct his investigations and also to provide the better opportunity to persuade him to go back to India with them. 예수님은 아브라함Abraham의 출생지인 우르의 초기 역사(歷史)에 많은 관심을 가지셨으며, 수사Susa의 옛 터들과 전통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매료되었으므로, 고노드와 가니드는 예수님께서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하실 수 있도록 하고, 예수께서 자신들과 함께 인도로 같이 가시도록 설득하는 더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그 곳에서 3주간을 연장하여 머물렀습니다.

133:9.3 (1481.5) It was at Ur that Ganid had a long talk with Jesus regarding the difference between knowledge, wisdom, and truth. And he was greatly charmed with the saying of the Hebrew wise man: “Wisdom is the principal thing; therefore get wisdom. With all your quest for knowledge, get understanding. Exalt wisdom and she will promote you. She will bring you to honor if you will but embrace her.” 가니드는 우르에서 지식, 지혜, 진리 사이의 차이점들에 대하여 예수님과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히브리 현인(賢人)의 다음과 같은 말에 매우 매료되었습니다. ‘지혜가 기본적인 것이니, 지혜를 얻어라. 네가 탐구한 모든 지식으로 명철을 얻어라. 지혜를 높이면, 그가 너를 높이 들 것이라. 만일 지혜를 품기만 하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133:9.4 (1481.6) At last the day came for the separation. They were all brave, especially the lad, but it was a trying ordeal. They were tearful of eye but courageous of heart. In bidding his teacher farewell, Ganid said: “Farewell, Teacher, but not forever. When I come again to Damascus, I will look for you. I love you, for I think the Father in heaven must be something like you; at least I know you are much like what you have told me about him. I will remember your teaching, but most of all, I will never forget you.” Said the father, “Farewell to a great teacher, one who has made us better and helped us to know God.” And Jesus replied, “Peace be upon you, and may the blessing of the Father in heaven ever abide with you.” And Jesus stood on the shore and watched as the small boat carried them out to their anchored ship. Thus the Master left his friends from India at Charax, never to see them again in this world; nor were they, in this world, ever to know that the man who later appeared as Jesus of Nazareth was this same friend they had just taken leave of — Joshua their teacher. 마침내 이별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용감했습니다. 특히 그 젊은이가 그랬지만, 이별은 어려운 시련이었습니다. 그들은 눈시울을 적시었으나 용기를 냈습니다. 가니드는 자기 선생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선생님, 그러나 영원히 가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다마스쿠스Damascus에 다시 오면, 선생님을 찾아뵙겠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선생님과 같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며, 적어도 아버지에 관하여 당신이 내게 일러 준 것과 당신이 무척 비슷한 줄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들을 기억하겠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저는 선생님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말하기를, “우리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시고, 하나님을 알도록 도와주신 위대한 선생님에게 작별(作別)을 고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평화가 당신들 위에 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는 해변 가에 서서, 작은 배가 그들을 태우고, 정박하여 기다리고 있는 배 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主)님은 인도India에서 온 그의 친구들을 카락스Charax에서 작별하였는데, 이 세상에서 다시는 그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나사렛의 예수로 나타난 그 사람이, 그들이 방금 작별을 한 동일한 이 친구 – 여호수아 그들의 선생이었음을 이 세상에서는 결코 알지 못하였습니다.

133:9.5 (1481.7) In India, Ganid grew up to become an influential man, a worthy successor of his eminent father, and he spread abroad many of the noble truths which he had learned from Jesus, his beloved teacher. Later on in life, when Ganid heard of the strange teacher in Palestine who terminated his career on a cross, though he recognized the similarity between the gospel of this Son of Man and the teachings of his Jewish tutor, it never occurred to him that these two were actually the same person. 인도에서, 가니드는 성장하여 유능한 아버지의 훌륭한 계승자로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으며, 자기가 사랑하는 예수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고귀한 많은 진리들을 널리 전하였습니다. 만년(晩年)에 가니드는 십자가에서 생애를 마친 이상한 선생이 팔레스타인에 있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이 사람의 아들의 복음과 자신의 유대인 선생님의 가르침 사이에 비슷한 점을 발견하였지만, 이 두 사람이 실제로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결코 하지 못하였습니다.

133:9.6 (1482.1) Thus ended that chapter in the life of the Son of Man which might be termed: The mission of Joshua the teacher. 이렇게 사람의 아들의 일생에서 여호수아 선생의 사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章)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영

진리의 영THE SPIRIT OF TRUTH

명제1. 예수께서 육신으로는 제자들을 떠나고, 영으로는 충만히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계속하여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갔을 때, 너희를 위해 이 세상에서 내가 한 일을 아버지께서 충분히 승인하신 후에, 그리고 나 자신의 권역에 대한 최종 주권을 받은 후에, 나는 나의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릴 것이다. 내 자녀들을 세상에 홀로 남겨두면서, 그들에게 다른 선생을 보내주는 것이 저의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허락하면, 내가 모든 육체에게 진리의 영을 쏟아 부을 것이다. 내 아버지의 영이 이미 너희 안에 있으니, 그 날이 되면, 너희가 지금 아버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너희가 나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선물은 살아있는 진리의 영이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처음에는 이 영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지 않겠지만, 빛의 자녀들은 모두 그를 기쁘게 전심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너희가 나를 아는 것처럼 그가 올 때 너희는 이 영을 알게 될 것이며, 너희는 이 선물을 너희 마음속에 받아들일 것이며,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할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아무 도움과 인도함이 없이 너희를 떠난 것이 아님을 깨달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내가 오직 육신으로 너희와 같이 있을 수 있다. 앞으로는 너희들이 어디에 있든지, 너희뿐만 아니라 나의 현존을 원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 각자와 동시에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떠나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느냐? 내가 육신으로는 그렇게 너희를 떠나고 그로서 더욱 좋게 그리고 더욱 충만하게 영으로 너희와 함께 할 수도 있음을 깨닫지 못하겠느냐?

명제2. 이 새로운 선생은 진리에 대한 살아있는 확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성도들의 마음 안으로 보내시고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새로운 조력자(助力者)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신이 주시는 이 자질은 진리의 글이나 율법이 아니고, 진리의 형식이나 표현으로 기능하는 것도 아닙니다. 새로운 선생은 진리에 대한 확신, 진정한 영적 차원에 있는 참된 의미에 대한 인식이며 확신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선생은 살아있고 성장하는 진리, 확대되고, 펼쳐지며 적응하는 진리의 영입니다.

명제3. 성령이 임하신 이 사람들은 기쁨과 권능의 새 세상으로 변화된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꼈습니다.

성령이 임하신 이 사람들은, 주(主)님을 죽이려 하고 그 가르침의 영향을 없애버리려고 하였던 그 세력에 대해, 자신들의 승리의 감정들을 표현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그들의 개인적 관련을 기억하면서, 주(主)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며, 자신들과의 친구 관계가 끝나지 않았으며, 그의 약속대로 성령이 도래하심에 대한 확신으로 자연스럽게 감동되었습니다.
 

이 신자들은 자기들이 다른 세계에 있음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기쁨과 힘과 영광의 새로운 생활로 갑자기 전환되었음을 느꼈습니다. 주(主)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도래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사실이 성령의 오심으로 성취되기 시작했다고 그들 중의 일부는,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명제4.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새 복음을 전파하게 된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고려되고 나면, 어떻게 하여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들의 형제신분이라는 내용의 초기 메시지 대신에 예수에 관한 새로운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명제5.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로 2,000 명의 사람들이 회심했습니다.

베드로는 오후 2시경에, 주(主)께서 성전에서 마지막으로 가르치셨던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열정적으로 호소하였습니다. 그 결과, 2,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의 선포에 감동을 받아 하나님 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떠나가신 주(主)에 관한 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그 순간 발견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그들이 이전의 예수님을 향한 자신들의 헌신을 정당화하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강요하는 설교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 집회에 참석한 여섯 명의 사도들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그리고 마태였습니다. 그들은 1시간 30분 이상을 이야기하였고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그리고 아람어로 메시지를 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쉽게 말할 수 있는 다른 언어로도 몇 마디씩 설교하였습니다.

명제6. 이 영의 사역은 진리를 인격화하고, 고아와 같은 모든 느낌을 제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영의 첫 번째 임무는 물론 진리로 양육하여 인격화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최상의 형태를 구성하는 것이 바로 진리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의 두 번째 임무는, 신자들 자신이 고아처럼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람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모든 신자들은 진리의 영이 아직 사람들 마음속에 내주하기 위하여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명제7. 아들의 영을 주심으로 정상적인 마음이 아버지의 영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었습니다.

먼저 아들의 영을 주시는 그 결과로 모든 인류에게 아버지의 영을 우주적으로 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영이 부어짐으로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의 마음이 아버지의 영을 받을 준비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진리의 영은 우주 아버지와 창조주 아들 두 분의 영이십니다.

명제8. 성령은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며, 예수 교훈의 실체를 강화하십니다.

다음으로, 진리의 영은 신자가 예수 가르침들의 실체와 그의 일생의 실체의 증인으로 살도록 돕기 위해서 왔습니다. 진리의 영은 예수께서 육신으로 사셨듯이, 그가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진 하나님의 아들들의 각 세대의 개별 신자들 안에서 다시 새롭고 신선하게 지금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진리의 영은 실제로 모든 신자들을 모든 진리로 이끌며, 영원하며, 상승하는 하나님의 아들 관계의 실체 안에 있는, 살아 성장하는 영적 의식의 체험이 확대되는 지식으로 인도하십니다.

명제9. 진리의 영은 일곱 번 영의 수여를 완료했습니다.

얼마간, 인류는 우주 영이 주는 영향들의 일곱 가지 힘의 중복된 작용을 필요로 합니다. 사람들의 초기 진화 종족들은 지역 우주 어머니 영의 일곱 가지 보조 마음-영들의 진보적 접촉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지성과 영적 인식의 단계에서 상향 진보함에 따라, 결국 일곱의 더 높은 영(靈)의 영향들이 그에게 날아와 그의 안에 내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보하는 세계들의 이 일곱 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주 아버지의 증여된 영(靈) — 생각을 조절하는 자들.

2. 영원한 아들의 영 현존 — 우주들의 우주의 영 중력과 모든 영 교제의 확실한 경로.

3. 무한한 영(靈)의 영 현존 — 모든 창조의 우주 영-마음, 진보하는 모든 지성들의 지적 유사성의 영적 근원.

4. 우주 아버지와 창조주 아들의 영 — 일반적으로 우주 아들의 영으로 간주되는 진리의 영.

5. 무한 영(靈)의 영과 우주 어머니 영의 영 — 일반적으로 우주 영의 영으로 간주되는 성령.

6. 우주 어머니 영의 마음-영 — 지역 우주의 일곱 보조 마음-영들.

7. 아버지, 아들들 그리고 영들의 영 — 영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혼과 천국 생각조절자의 융합 이후와 그에 따르는 신성과 천국 최종의 무리군단의 지위로 영화롭게 된 이후의 영역에서 상승하는 사람들의 새로 이름을 받은 영.

명제l0. 오순절에 예수님의 종교는 모든 국가적인 제약과 종족적인 속박들을 제거하였습니다.

그 오순절 날에 예수의 종교는 모든 국가적 제약들과 종족간의 족쇄들을 깨뜨렸습니다. “주님의 영이 있는 곳에 자유(해방)가 있다.”는 말은 언제까지나 진리입니다. 이 날, 진리의 영은 주(主)님으로부터 모든 사람 각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주어진 선물이 되었습니다. 이 영은 자격을 갖춘 신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졌지만, 그들은 쏟아 부어진 영을 받는 체험을,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형성하고 있었던 새로운 복음의 일부분으로 삼는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명제11. 오순절은 언제나 영적 체험의 관념을 특별히 호의적인 환경에 대한 개념에서 분리시킵니다.

진리의 영을 부어주심은 모든 형식들, 의식(儀式)들, 거룩한 장소들, 그리고 진리의 영의 임재하심을 충만히 받은 사람들의 특별한 행위와는 무관합니다. 다락방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영이 임하였을 때, 그들은 다만 아무 소리 없이 기도하면서 그곳에 앉아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영은 도시에서뿐만 아니라 교외 지역에서도 부어졌습니다. 사도들은 그 영을 받기 위하여 뿔뿔이 헤어져 고립된 장소에서 몇 년간의 고독한 묵상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오순절은 영적 체험에 대한 관념을 특별히 호의적인 환경들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분리시킵니다.

명제12. 오순절은 사랑의 인내의 두려움 없는 행위로, 증오와 분노의 악에 대항하는 권능을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오순절은 사람에게 개인적 상처를 용서하는 힘과, 가장 심각한 불공평의 상황에서도 상냥할 수 있는 힘과, 무시무시한 위험에 직면한 가운데에서 여전히 태연할 수 있는 힘, 그리고 사랑과 인내의 두려움 없는 행동을 통해 미움과 분노의 악에게 도전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했습니다. 지구는 그 역사적으로 참혹한 피해들과 파괴적인 전쟁들을 겪어 왔습니다. 이러한 끔찍한 투쟁 속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은 좌절을 체험하였습니다. 승리자는 오직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비참한 투쟁들을 뚫고 높은 명성과 함께 떠오른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사렛 예수와 선으로 악을 정복하는 그의 복음뿐이었습니다. 보다 나은 문명화에 대한 비결은 사람의 형제신분에 대한 주(主)의 가르침들, 사랑의 선한 뜻, 그리고 상호 신뢰 속에 깊이 묻혀 있습니다.

명제13. 인류는 영적인 접근으로만 통합될 수 있습니다.

오순절은 개인들, 집단들, 국가들 그리고 인종들의 자기주장을 줄여 나가도록 예정되었습니다. 긴장이 고조되어 주기적인 파괴적 전쟁으로 터져 나온 이유는 바로 이 자기주장의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인류는 영적인 접근을 통해서만 통합될 수 있으며, 진리의 영은 세상을 향한 보편적인 영향력입니다.

명제14. 오순절은 역사의 예수께서 살아있는 체험을 위한 신적인 아들 되심을 뜻합니다.

진리의 영의 도래는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받아들이는 자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복지에 심혈을 기울인 일생의 목적을 갖게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물질적 정신은 이기심 없는 이 새로운 영적 수여에 휩싸여 사라졌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순절은 역사적 예수께서 생생하게 체험하는 신적인 아들이 되셨음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부어진 영의 기쁨은, 인간의 삶에서 의식적으로 체험될 때, 건강을 위한 원기 회복제이며, 마음을 위한 자극이고, 혼에는 부단한 힘이 됩니다.

명제15. 진리의 영의 영향력은 지역 우주를 통해 계속됩니다.

사람이 우주들을 통해서 올라가면서 이 영적 회로들을 이용하지만, 결코 그의 영원한 고유성의 한 부분으로 소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적 봉사를 베푸는 이 회로들은, 진리의 영이든, 성령이든, 또는 초우주 영의 현존이든지에 관계없이, 하나님 자녀들의 고유성 안에서 일어나는 가치들을 받아들여 그에 반응을 수 있습니다. 이 가치들은 하나님(칠중)을 통해 최상위에게 충실히 전달됩니다.

하나님 나라 9-성경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6 단계

성경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6 단계SIX PHASES OF THE KINGDOM IN THE BIBLE

1. 개인적인 체험.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2. 하나님 나라의 사회적 측면.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마10:7).

3. 초인간적인 형제정신.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26:29).

4. 사람의 다음 세대.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5. 빛과 생명의 시대.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6. 예수님의 통치권.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눅23:42).

하나님 나라 8-새계명

새 계명THE NEW COMMANDMENT

명제1. 예수님의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나는 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면서, 너희 혼에게 어떤 새로운 부담을 더하지 않으며, 오히려 나는 너희에게 새로운 기쁨을 주고, 너희 마음이 친구들에게 애정을 쏟는 환희를 깨달음으로써 새로운 즐거움을 체험하게 하노라. 나는 흘러나오는 슬픔을 참으면서라도, 너희들과 너희 친구들에게 나의 애정을 줌으로써, 최상의 기쁨을 체험하고자 하노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내가 청하였을 때, 나는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애정을 너희 앞에 높이 들어 나타내었던 것인데, 왜냐하면 사람이 친구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너희는 내 친구들이며, 내가 너희에게 가르쳤던 것을 너희가 기꺼이 행하기만 하면 너희는 영원히 나의 친구가 될 것이다. 너희는 나를 주(主)라고 불렀지만, 나는 너희를 하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노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만일 너희가 서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너희는 내 친구가 될 것이며, 아버지께서 내게 나타내시는 것을 언제까지나 너희에게 이야기해줄 것이라.

하나님 나라 7-예수의 종교

예수의 종교THE RELIGION OF JESUS

명제1. 예수의 종교는 7가지 필수조건을 제공하는 최종적 구원을 제공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지식과 지혜와 신앙과 진리 그리고 사랑의 조화로운 통합을 온전히 수용하여, 철학적 안정성과 윤리적 민감성과 하나님 인식 그리고 개인적 구원에 대한 적극적 확신을 완전하면서도 동시적으로 제공하는, 최초의 종교를 이루었습니다.

예수의 신앙은 인간 구원의 최종, 인간의 우주 달성의 궁극에 이르는 길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1. 물질적 사슬에서의 구원 – 영이신 하나님과의 아들관계인 개인성을 실현하여 물질적인 사슬로부터의 구원.

2. 지적(知的) 사슬에서 구원 – 사람이 진리를 알게 되니, 진리가 그를 자유롭게 함.

3. 영적 시각장애 사슬에서 구원 – 사람들의 형제우애관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 모든 창조물들의 형제신분 인식, 영적 실체에 대한 봉사 발견, 영 가치의 선함에 대한 활동적 계시.

4. 자아의 미완성으로부터의 구원 – 우주의 영적 차원 달성과 조화의 영원한 실현 및 천국의 완성 실현.

5. 자아로부터의 구원 – 궁극적 마음의 우주 차원의 달성과 모든 다른 자아 존재와의 합동 달성을 통해 자아의식 한계에서 해방.

6. 시간으로부터의 구원 – 하나님을 인지하고 하나님께 봉사하는 끝없는 진보를 통한 영원한 삶의 성취.

7. 유한으로부터의 구원-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과 초월 존재이신 하나님 발견을 통해 성취.

명제2. 예수의 가르침들은 미신, 마술, 신화 그리고 교조주의의 종교를 최종적으로 제거하였습니다.

자연적인 종교의 마술적이고 신화적인 근원적 배경은 후대의 계시 종교와 예수의 종교인 더할 나위 없이 구원하는 복음에 대한 실체와 진리를 무효화시키지 않습니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마침내 마술적인 미신들과 신화적 환상들 그리고 전통적인 교조주의(敎條主義)의 속박을 제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의 마술과 신화는, 초(超)물질적 가치들과 존재들의 실재 그리고 실체를 가정함으로써 후대의 뛰어난 종교를 위한 길을, 매우 효과적으로 예비하였습니다.

명제3. 일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즐겁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러한 진리들이 다시 세상에 선포된다면, 성화(聖化)된 종교적 동기를 지닌 그의 진지한 인간 생애의 제시에 그들은 다시 한 번 응답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의 말을 즐겁게 듣는 이유는 그가 그들 중의 하나인 겸손한 보통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 선생님은 진실로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명제4. 예수님은 바울의 인간에 대한 염세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사악하기보다는 약하다고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편안함을 느끼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는 미신적 금기 사항들의 노예가 된 상태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셨으며, 세상이 근본적으로 악한 것이 아님을 그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지상의 자기 일생에서 도피하기를 갈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육신으로 있는 동안 아버지의 뜻 실천을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하셨습니다. 그는 현실 세계의 한 복판에서 이상적인 종교적 일생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의 인간에 대한 염세적인 견해를 갖지 있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보셨으며, 생존을 선택한 그들 앞에 펼쳐질 장엄하고 영원한 미래를 내다 보셨습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회의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사람을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보십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사악하기보다는 약하다고 보셨으며, 타락했다기보다는 마음이 산란한 상태라고 보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처지가 어떻든지 간에,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었고, 자신의 형제들이었습니다.

명제5. 예수께서는 복음을 자신에 대한 종교로 바꾸는 위험성에 대해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는 그들 가운데서 함께 사신 그의 삶과 그의 가르침, 그리고 후에 생길 수도 있는 자신에 관한 가르침들 사이의 차이점을, 사도들에게 분명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는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왕국과 거기에 관련된 복음이 너희들의 메시지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와 나의 가르침에 관해서 설교하는 잘못된 옆길로 빠지지 말도록 유의하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에 대하여 내가 계시한 것을 표현하라. 그러나 나의 믿음들과 가르침들에 관해서 믿음과 가르침과 관련된 전설을 창조하거나 하나의 종파를 만드는 잘못된 옆길로 빠지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이번에도 그가 왜 그런 말씀을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였으며, 그가 왜 자기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지 감히 묻는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명제6. 베드로는 예수의 종교를 예수에 관한 종교로 변경하는 미묘한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의 원기 왕성한 지도력 아래에서, 그리고 주(主)가 아버지께로 미처 올라가기도 전에, 예수님에 대해 선한 뜻을 가진 지도자들은, 예수의 종교를 예수에 관한 종교라는 새롭고도 수정된 형태로 차츰차츰 그리고 확실하게 변경하는 미묘한 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 6-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뜻THE FATHER'S WILL

명제1.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a. 부정적인 방법 – 나의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으로 하소서.

b. 긍정적인 방법 –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는 것은, 비록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에서 하나님의 사실적 현존 앞에 실제적으로 서있기 전에 오랜 세월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실상은 사람이 영 아버지를 영적으로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선택은 피조물 의지의 부정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나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적극적인 긍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이러한 선택이 이루어지고 나면, 하나님을 선택한 자녀들은 곧 내주하는 하나님의 영과 내적인 연합이 이루진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완전을 이루어 가면서, 사람의 개인성과 하나님의 개인성 즉 두 개인성은 서로 자아-의지적인 상호관계를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영원한 동반자의 관계 안에서 영원하게 연합되며, 예배의 친교 안에서, 최상의 만족을 얻게 됩니다.

명제2. 최상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체 뜻 중에서 가장 높은 유한한 표현으로 드러나십니다.

어떤 곳에서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정도까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에 이르면, 하나님의 잠재적 전능성은 우리에게 한 단계 더 실제적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근원의 첫째이며 중심 목적이며, 그것은 절대적 삼위 안에서 잠재적이 되고, 영원한 성자를 통해 개인성으로 드러나며, 무한한 성령의 모든 활동을 통해 연합되고, 천국의 영존하는 틀 안에서 영원화 하게 됩니다. 그리고 최상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체 뜻 중에서 가장 높은 유한한 표현으로 드러나십니다.

하나님 나라 5-새롭고 살아있는 길

새롭고 살아있는 길THE NEW AND LIVING WAY

명제1. 예수님은 새롭게 살아있는 길을 이루셨습니다. 그는 그 길을 아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진리이십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사는 우리 인간들의 영적인 고양(高揚)을 위해 살다가 죽으시면서 “새롭고 살아있는 길”을 확립하십니다. 그의 삶은 천국의 진리가 육체 안에서 성육신 된 것이며, 그것을 아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진리이며 참된 진리의 영이십니다.

명제2. “지상의 새롭고 살아있는 길”은, 사람들이 죽음 이후에 맨션 세계로 다시 직접 갈 수 있음을 뜻합니다.

지상에서 이 “새롭고 살아있는 길”의 확립은 진리의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사실의 문제였습니다. 루시퍼 반란으로 이 세상이 고립되어, 죽음에 처한 사람들은 맨션세계에 직접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오시기 전, 모든 혼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특별한 부활의 때까지 수면상태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모세도 특별 부활의 때까지 다른 편으로 건너가도록 허용되지 않았으며, 타락한 마귀는 이러한 해방 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부터 사람들은 다시 부활의 세계로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명제3. 예수님은 힘이 있으면서도 그 힘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를 거절하는 인격자로서 큰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많은 환난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자연스럽고, 일반적이지만, 어렵고, 고된 방법들을 선택하며, 인류의 가슴속에 하나님 나라를 설립하셨으며, 이는 앞으로 따라오는 자신의 지상 자녀들이 하나님 나라를 성장·확대하는 사역 속에서 겪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아들은, “많은 환난을 겪음으로써 모든 세대의 많은 자녀들이 그 나라에 들어갈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는 이제 힘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것을 순전히 이기적이거나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하기를 끊임없이 거절하는, 인격자로서의 큰 시험을 겪고 계셨습니다.

명제4. 사랑의 통찰력은 진리, 아름다움, 그리고 선을 향한 목마름을 일으키며, 사람은 그 안에서 영광스럽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적인 삶이라는 낮은 차원으로 내리기에는, 너무나 위대하고 고상합니다. 동물은 환경에 순응해야 하는 존재이지만, 경건한 사람은 자신의 환경을 초월하며, 신성한 사랑의 통찰력으로 현재의 물질적 세상의 한계들을 벗어납니다. 이러한 사랑의 개념은 사람의 혼속에서 진리(眞), 아름다움(美) 그리고 선(善)을 찾도록 인도합니다. 사람이 그것들을 발견하면, 그는 그 안에서 영화롭게 됩니다. 그는 진리와 아름다움 그리고 선으로 살아가며, 정의(正義)를 행하려는 소망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 4-나라의 열쇠들

나라의 열쇠들KEYS OF THE KINGDOM

명제1. 나라의 열쇠는 성실함입니다.

나라의 열쇠는 성실함, 더욱 성실함 그리고 더욱 더 성실함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열쇠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열쇠들을 사용하여 영적 진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열쇠를 사용하는 방법은 결심하고, 더욱 결심하고, 그리고 더욱 더 결심하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도덕적 선택은 가능한대로 가장 높은 가치를 선택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선택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행동의 사람이라면 그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명제2. 하나님을 찾으려는 인간의 선택은 유한성을 넘어서는 행위입니다.

인간 의지의 전체 범위는 하나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엄밀히 유한하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와 같이 되고자 하는 선택은 유한성을 넘어섭니다. 오직 영원만이 이러한 선택의 초(超)유한성과 절대성을 밝힐 수 있습니다.

명제3. 예수께서는 나라의 이중 개념, 즉 이 세상과 천국에서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이중적 본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명백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첫째,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숭고한 욕구 즉 윤리적으로 개선된 도덕적 행위의 선한 열매를 맺는 사심 없는 사랑입니다.

둘째, 하늘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자들의 목표이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완전하게 성취된 곳이며, 하나님의 뜻이 더욱 거룩하게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명제4. 예수님은 두 가지 즉 신실한 믿음과 진리에 대한 갈증을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필수 조건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믿는 자는 신앙으로 하나님 나라에 지금 들어간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여러 말씀들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두 가지 필수 조건을 가르치셨습니다.

첫째는 신앙과 성실성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와서, 아들관계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의심 없이, 아버지의 지혜에 대한 참된 신뢰와 충만한 자신감으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복종하는 것과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열린 마음으로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어 나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진리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의를 향한 갈증 즉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동기로 변화된 마음입니다.

믿음에 대한 성경 구절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하나님 나라 3-하나님 아버지 되심과 사람의 형제정신

하나님 아버지 되심과 사람의 형제정신FATHERHOOD OF GOD AND BROTHERHOOD OF MAN

명제1. 인간의 형제정신은 보편적이므로 각자 관계의 본질인 동시에 전체 관계의 본질입니다.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이 사랑은 모든 개인을 포함한 신적인 가족, 천국 아버지의 자녀, 자유의지를 지닌 자녀들 사이에 보편적인 형제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보편적 형제 정신은 전체의 관계입니다. 형제정신은 전체의 실제이며, 부분의 본질과는 대조적으로 전체라는 본질을 갖고 있습니다.

명제2. 형제정신은 전체로서 부분의 유익과 고통을 평가한다는 의미입니다.

형제 정신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인격 사이에 있는 관계의 사실로 구성됩니다. 어떤 인격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이득(利得)이나 손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부분의 유익과 고통은 전체로서 평가됩니다. 각 사람의 훌륭한 노력은 모든 사람에게 이득을 주며, 각 사람의 잘못이나 악은 모든 사람의 시련을 더해 준다. 부분이 움직이는 대로, 전체가 움직인다. 전체의 진보가 어떠하면, 부분의 진보도 그러하다. 부분과 전체의 상대 속도는 그 부분이 전체의 관성(慣性) 때문에 늦어지든지, 우주 형제 정신의 운동량 때문에 앞으로 밀려 가든지를 결정한다.

명제3. 항상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으셔야만, 인간이 나중에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우리들의 의식은 사실fact에서 의미meaning를 거쳐 가치value로 나아갑니다. 창조주의 의식은 생각의 가치에서 말씀의 의미를 거쳐 행동의 사실로 나아갑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실존적 무한의 고유한 절대적 통일의 장벽을 깨뜨리기 위해 행동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모델이 되는 우주, 완전한 인격들, 근본적인 진·선·미를 마련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찾으셔서, 나중에 인간이 하나님을 찾도록 하십니다. 언제나 우주의 아버지 하나님이 계셔야만, 하나님의 자녀 신분이 존재하고, 그 결과, 우주의 형제 정신이 존재하게 됩니다.

명제4.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가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라고 너희를 보내노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라. 너희가 온 세상으로 나가 이 하나님 나라 복음 전도의 명령을 다시 듣도록 너희가 모두 있을 때 나타나기 위해 내가 한 주 내내 머물렀느니라. 내가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버지가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그렇게 보내노라. 내가 아버지를 드러낸 것 같이, 너희도 말로만이 아니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지라. 사람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사랑하라고 너희를 보내노라. 너희는 하늘의 기쁨을 선포할 뿐 아니라, 매일의 체험을 통해 신적인 삶의 영적인 실체를 나타내야 하리라.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을 이미 가졌음이라. 너희가 지금은 여기에서 문을 닫고 숨어 있지만, 믿음을 통해, 하늘의 권능인 진리의 영이 오면, 너희는 너희 빛을 감추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온 인류에게 알리리라. 지금은 두려움 때문에 너희가 도피해 했지만, 진리의 영으로 세례를 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얻는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새로운 체험 가운데 너희는 용기 있고 기쁘게 떠나가리라.”

명제5.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명은 예수님의 일생의 사실과 하나님 아들됨의 진리에 토대가 있습니다.

“너희는 여기 갈릴리에 잠시 머물러 전통주의(傳統主義)의 거짓된 안전감에서 살아있는 체험을 통해 얻는 최상의 실체인 사실•진리•신앙에 근거한 새로운 질서의 권위로 전환되는 과도기의 충격에서 회복할지라. 세상에 대한 너희의 사명은 내가 너희와 살면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생을 살았다는 사실과, 너희와 모든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에 기초를 두느니라. 그리고 그 사명은 너희가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고 섬겼듯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실제적인 살아있는 체험의 일생으로 이루어지리라. 믿음이 너희의 빛을 세상에게 드러내리라. 진리의 계시가 전통으로 닫힌 눈을 뜨게 하리라. 너희 사랑의 섬김이 무지로 생긴 편견(偏見)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리라. 이해하는 공감과 사심 없는 헌신으로 동료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감으로, 너희는 아버지 사랑을 아는 유익한 지식으로 저희를 이끌리라.”

명제6. 유대인은 선을, 그리스인들은 미를, 힌두교도들은 헌신을, 고행자들은 존경을, 로마인들은 충성심을 따르지만, 예수님은 사랑으로 봉사하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선을 찬미하고,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을 숭상하며, 힌두교들은 헌신을 높이고, 금욕주의자들은 존경을 따르며, 로마인들은 충성심을 드높이지만, 나는 육체로 형제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일생을 제자들에게 요구하노라.”

하나님 나라 2-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JESUS' TEACHING ABOUT THE KINGDOM

명제1. 하나님 나라는 생명과 자유에 관한 7가지 부요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진리와 그에 관계되어 사람이 형제라는 사실, 이 두 가지 개념으로 시작되고 거기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님은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오랜 세월에 걸친 동물적 두려움에서 사람을 해방하고, 동시에 영적 자유를 지닌 새 삶으로 인간 생활이 부요하게 될 것을 예수님은 선언하셨습니다.

1. 새로운 용기와 증대된 영적 권능의 소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며, 영생(永生)을 소망하도록 격려합니다.

2. 그 복음은 가난한 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해 새로운 확신과 참된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3. 복음 자체 안에, 도덕적 가치의 새 표준과, 인간 행위를 측량하는 새 윤리(倫理)의 척도가 있습니다. 그 결과, 새로운 체제의 인간 사회 이상을 보여줍니다.

4. 그 복음은 영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 보다는 상위(上位)에 있음을 말합니다. 복음은 영적 실체들을 영화롭게 하고 초인간적 이상을 높입니다.

5. 이 복음은 영적 달성을 참된 삶의 목표로 제시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도덕적 가치와 신적인 위엄성을 새롭게 부여받았습니다.

6. 영원한 실체들은 땅에서 바르게 노력한 결과와 보상이라고 예수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이 땅에서 사는 이유는 고귀한 운명을 자각한 결과로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7. 새 복음은 인간의 구원이 원대한 신적 목적의 계시임을 확증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들이 끝없이 섬기는 미래의 운명을 통해 완성되고 실현됩니다.

명제2. 예수님은 나라의 정의를 엄밀하게 정의하지 않으셨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형제 정신의 모습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5 단계로 제시하셨습니다.

1. 믿는 자녀들이 개인마다 마음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친교를 나누는 영적 생활의 체험.

2. 복음을 믿는 자들의 소유한 형제 정신의 확장. 믿는 각자의 마음을 하나님의 영이 다스리는 결과, 도덕성이 확장되어 윤리적으로 살아있는 사회의 모습.

3.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영적 존재들이 나누는 초인간적인 형제정신의 나라.

4.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전망과 더불어 영적 생활의 개선으로 발전된 새로운 사회 체제(다음 세대)의 여명(黎明)을 향한 진보.

5. 지상에서 누리는 빛과 생명의 영적 시대로서 성숙한 미래적 하나님 나라.

명제3. 주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의 중요한 모습을 5 항목으로 제시하셨습니다.

1. 개인 우선.

2. 사람의 체험에서 결정 요소인 의지.

3. 하나님 아버지와 누리는 영적인 사귐.

4. 사람에 대한 사랑의 봉사로 얻는 최상의 만족.

5. 물질적인 것을 초월하는 영적인 사람의 인격.

명제4. 나라를 믿는 자녀들은 영생을 가지고, 하늘(우주)을 향해 천국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중의 한 가지는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아버지를 땅에 있는 자녀들에게 계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인생 체험을 위해 하나님을 드러내신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가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이 사실은 우리 가슴속에서 영원토록 살아있는 진리가 됩니다. 살아있는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신성하게 의식하게 될 때, 우리는 빛과 생명의 자녀로서 영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우리는 영생을 가지고 온 하늘(우주)을 향해 천국 아버지 하나님을 찾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명제5.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인간의 형제 정신의 실제입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땅에서 그 자녀들을 섬기는 봉사와 관계됩니다.

우리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福音)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실제와 사람이 자녀라는 진리를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모든 진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의 메시지는 예수님의 부활 경험으로 변경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에 대한 봉사를 전파해야 합니다.

세상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믿음을 통하여 인간을 고귀하게 하는 이 진리를 실제로 깨닫고 매일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 각자들이 영원한 아버지의 살아 있는 영 자녀(아들)이라는 진리를 직접 붙잡아야만 합니다.

하나님 나라 1-나라의 개념

나라의 개념CONCEPTS OF THE KINGDOM

명제1. 히브리 성서는 하나님 나라를 오늘의 현실과 미래의 소망으로 제시합니다.

히브리 성서 전체를 살펴보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1. 오늘의 현실

2. 미래의 소망 즉, 메시아가 출현하여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는 희망으로서 세례 요한이 가르쳤던 하나님 나라의 개념입니다. 초기부터 예수님과 사도들은 이 두 가지 개념을 다 가르쳤습니다.

3. 후일 유대인들의 개념 – 초자연적 기원과 기적으로 개시되는 세계적인 초월적 국가의 개념

4. 페르시아인의 교훈 – 세상의 종말에 선이 악을 정복하여 신의 나라가 확립됨.

명제2. 나라의 개념은 네 집단의 아이디어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지상에 오시기 바로 전에, 유대인들은 이 모든 하나님 나라 이념을 유대인이 승리하는 시대를 견고히 세우기 위해 메시아가 온다는 종말적인 개념으로 통합하고 혼합시켰습니다. 그 때는 땅과 새로운 세상에서, 하나님이 최고로 다스리는 영원한 시대로서 온 인류가 야훼를 경배할 시대였습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 예수님은 유대와 페르시아 종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절정에 있었던 유산(遺産)을 이용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기독교 시대의 여러 세기를 통하여 이해와 오해가 뒤섞여 있는 하나님 나라는 뚜렷하게 다른 네 집단의 아이디어를 담고 있습니다.

1. 유대인의 개념

2. 페르시아인의 개념

3. 예수님의 개념 – 너희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로서 인격적인 경험을 동반하는 나라를 뜻합니다. 예수께서는 대중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대한 다양한 개념을 제시하셨지만, 사도들에게 언제나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땅에 있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사람이 직접 겪는 체험이 포함된다고 하셨으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최종적 말씀은 언제나 “너희 안에 있는 나라”라고 하셨습니다.

4. 기독교의 창시자와 선포자들이 세상에 대하여 강조하려고 애쓴 복합적이며 혼동된 개념들.

명제3.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래된 혼란은 세 가지 요소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용어에 대해 여기세기에 있었던 혼동은 다음의 세 가지 요인에 기인합니다.

1. 예수님과 사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다시 진술하는 여러 진보적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발생한 혼동.

2. 유대교에서 이방인의 토양으로 초기의 기독교를 옮겨 심는 것과 불가피하게 연결된 혼동.

3. 기독교가 ‘예수의 인격’이라는 중심 개념에 관하여 조직된 종교가 되어갔다는 사실 속에 내재되어 있었던 혼동.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점점 더 예수에 대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0 -개요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HEAVEN

 

참고구절 히11:1, 요14:1, 요1:12, 엡2:8, 히12:2

 

I. 나라의 개념들CONCEPTS OF THE KINGDOM

II.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JESUS' TEACHING ABOUT THE KINGDOM

III. 하나님 아버지 되심과 사람의 형제정신FATHERHOOD OF GOD AND BROTHERHOOD OF MAN

IV. 나라의 핵심KEYS OF THE KINGDOM

V. 살아있는 새 길THE LIVING AND NEW WAY

VI. 아버지의 뜻THE FATHER'S WILL

VII. 예수님의 종교THE RELIGION OF JESUS

VIII. 새계명THE NEW COMMANDMENT

 

* 이후 하나님 나라는 하늘나라와 동일한 용어로 사용합니다.

Paper 134 The Transition Years 과도기(過渡期) 시절

Paper 134

The Transition Years 과도기(過渡期) 시절

요일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134:0.1 (1483.1) DURING the Mediterranean journey Jesus had carefully studied the people he met and the countries through which he passed, and at about this time he reached his final decision as to the remainder of his life on earth. He had fully considered and now finally approved the plan which provided that he be born of Jewish parents in Palestine, and he therefore deliberately returned to Galilee to await the beginning of his lifework as a public teacher of truth; he began to lay plans for a public career in the land of his father Joseph’s people, and he did this of his own free will. 지중해를 여행하는 동안에 예수님은 만났던 사람들과 거쳐 갔던 나라들에 관하여 주의 깊게 연구하였으며, 이 무렵, 땅에서 보내야하는 여생(餘生)에 관하여 마지막 결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자신이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계획을 충분하게 고려하였고 이제 그 계획을 최종적으로 승인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대중(大衆)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필생의 사명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아버지 요셉의 민족의 땅에서 공생애를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이것을 행하셨습니다.

134:0.2 (1483.2) Jesus had found out through personal and human experience that Palestine was the best place in all the Roman world wherein to set forth the closing chapters, and to enact the final scenes, of his life on earth. For the first time he became fully satisfied with the program of openly manifesting his true nature and of revealing his divine identity among the Jews and gentiles of his native Palestine. He definitely decided to finish his life on earth and to complete his career of mortal existence in the same land in which he entered the human experience as a helpless babe. His Urantia career began among the Jews in Palestine, and he chose to terminate his life in Palestine and among the Jews. 예수님은 개인적인 인간의 경험을 통해서, 팔레스타인이 모든 로마 제국에서, 지상 생애의 마지막 장(章)을 마련하고, 최종 장면을 연출하기에 최적의 장소임을 발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자신이 태어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그의 참된 성품을 숨김없이 나타내고, 신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계획으로 충분히 만족(滿足)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기력한 아기로서 인간 경험을 시작하게 되었던 바로 그 땅에서 지상 생애를 반드시 끝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경력을 완성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지상에서 예수님의 생애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으로 시작하셨고,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으로 자신의 일생을 마치기로 선택하셨습니다.

1. The Thirtieth Year (A.D. 24)서른 살 되던 해(서기 24년)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y is a temple of the Holy Spirit, who is in you, whom you have received from God? You are not your own;

134:1.1 (1483.3) After taking leave of Gonod and Ganid at Charax (in December of A.D. 23), Jesus returned by way of Ur to Babylon, where he joined a desert caravan that was on its way to Damascus. From Damascus he went to Nazareth, stopping only a few hours at Capernaum, where he paused to call on Zebedee’s family. There he met his brother James, who had sometime previously come over to work in his place in Zebedee’s boatshop. After talking with James and Jude (who also chanced to be in Capernaum) and after turning over to his brother James the little house which John Zebedee had managed to buy, Jesus went on to Nazareth. AD 23년 12월, 카락스Charax에서 고노드와 가니드를 떠나보낸 후에, 예수님은 우르Ur를 경유하여 바빌론Babylon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다마스쿠스Damascus로 가는 사막의 대상caravan과 합세하였습니다. 다마스쿠스로부터 나사렛Nazareth으로 돌아가는 도중, 가버나움Capernaum에 단 몇 시간 동안만 들렸을 때, 거기에서 세베대Zebedee의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 그는 동생 야고보James를 만났으며, 야고보는 세베대의 배를 만드는 목공소에서 예수님 대신 일하기 위해 얼마 전부터 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우연히 가버나움에 들렸었던 유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 요한 세베대가 매입하여 관리하던 작은 집을 동생 야고보에게 넘겨준 다음, 계속 나사렛으로 갔습니다.

134:1.2 (1483.4) At the end of his Mediterranean journey Jesus had received sufficient money to meet his living expenses almost up to the time of the beginning of his public ministry. But aside from Zebedee of Capernaum and the people whom he met on this extraordinary trip, the world never knew that he made this journey. His family always believed that he spent this time in study at Alexandria. Jesus never confirmed these beliefs, neither did he make open denial of such misunderstandings. 지중해 여행을 마쳤을 때, 예수님은 공적 사역을 시작할 때까지 필요한 생활비를 넉넉히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버나움의 세베대와 이 특별한 여행에서 그가 만났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가 이러한 여행을 했었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이 기간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공부를 하면서 지냈었다고 언제나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러한 믿음에 대해 옳다고 확인하지도 않았고, 또한 그러한 오해들을 드러내놓고 부인하지도 않으셨습니다.

134:1.3 (1483.5) During his stay of a few weeks at Nazareth, Jesus visited with his family and friends, spent some time at the repair shop with his brother Joseph, but devoted most of his attention to Mary and Ruth. Ruth was then nearly fifteen years old, and this was Jesus’ first opportunity to have long talks with her since she had become a young woman. 나사렛에 머물던 몇 주간 동안, 예수님은 가족과 친구들을 방문하거나 동생 요셉과 수리소에서 함께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지만, 대부분의 관심은 마리아Mary와 룻Ruth에게 두었습니다. 룻은 그 때 거의 15살이었는데, 누이가 처녀가 된 이래로, 예수님이 그녀와 오랜 대화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134:1.4 (1484.1) Both Simon and Jude had for some time wanted to get married, but they had disliked to do this without Jesus’ consent; accordingly they had postponed these events, hoping for their eldest brother’s return. Though they all regarded James as the head of the family in most matters, when it came to getting married, they wanted the blessing of Jesus. So Simon and Jude were married at a double wedding in early March of this year, A.D. 24. All the older children were now married; only Ruth, the youngest, remained at home with Mary. 시몬Simon과 유다Jude는 한 동안 결혼하고 싶었지만, 예수님의 동의 없이는 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맏형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으로 결혼을 미루었습니다. 비록 그들 모두 대부분의 문제에 있어서 야고보를 가장(家長)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막상 결혼이 임박해지자 예수님의 축복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시몬과 유다는 이 해 AD 24년 3월 초순에 합동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나이든 아이들은 이제 모두 결혼하였고, 가장 나이가 어린 룻만이 마리아와 함께 집에 남았습니다.

134:1.5 (1484.2) Jesus visited with the individual members of his family quite normally and naturally, but when they were all together, he had so little to say that they remarked about it among themselves. Mary especially was disconcerted by this unusually peculiar behavior of her first-born son. 예수님은 가족들을 개인별로 만날 때는 매우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게 행동하셨습니다. 그러나 다 같이 있었을 때에는 거의 말이 없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자기들끼리 그것에 대해 한마디씩 했습니다. 특히 마리아는 맏아들의 이상한 태도 때문에 불안했습니다.

134:1.6 (1484.3) About the time Jesus was preparing to leave Nazareth, the conductor of a large caravan which was passing through the city was taken violently ill, and Jesus, being a linguist, volunteered to take his place. Since this trip would necessitate his absence for a year, and inasmuch as all his brothers were married and his mother was living at home with Ruth, Jesus called a family conference at which he proposed that his mother and Ruth go to Capernaum to live in the home which he had so recently given to James. Accordingly, a few days after Jesus left with the caravan, Mary and Ruth moved to Capernaum, where they lived for the rest of Mary’s life in the home that Jesus had provided. Joseph and his family moved into the old Nazareth home. 예수께서 나사렛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을 무렵에 이 도시를 지나가던 어느 큰 대상(카라반)의 안내자가 심한 병에 걸렸는데, 외국어에 능통하였던 예수께서 그의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자원하였습니다. 그는 이 여행 때문에 일 년 동안 집을 비워야 했고, 동생들이 모두 결혼해서 집에는 어머니와 룻뿐이었기 때문에, 그는 가족회의를 소집하였고, 그 자리에서 그는 자기가 최근에 야고보에게 넘겨주었던 가버나움 집으로 어머니와 룻이 이사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가 대상들과 떠난 며칠 뒤에, 마리아와 룻은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였고, 그곳에서 그들은 마리아의 여생(餘生) 동안 예수께서 마련하신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나사렛의 고향집으로 들어왔습니다.

134:1.7 (1484.4) This was one of the more unusual years in the inner experience of the Son of Man; great progress was made in effecting working harmony between his human mind and the indwelling Adjuster. The Adjuster had been actively engaged in reorganizing the thinking and in rehearsing the mind for the great events which were in the not then distant future. The personality of Jesus was preparing for his great change in attitude toward the world. These were the in-between times, the transition stage of that being who began life as God appearing as man, and who was now making ready to complete his earth career as man appearing as God. AD24년, 이 해는 사람의 아들의 내적 체험에 있어서 매우 특별한 몇 해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의 인간 마음과 내주하는 조절자 사이에서 조화(調和)를 이루는 일에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장래에 일어날 위대한 사건들을 위하여, 조절자는 예수님의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훈련시키는 일(rehearsing)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고유성은 세상을 향한 태도에 있어서 큰 변화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간들은 양단의 중간 시기, 인간으로 나타난 하나님으로서의 일생(一生)을 시작하고, 하나님으로 나타난 사람으로서의 땅에서의 생애를 마치려고 이제 준비하는 과도기였습니다.

2. The Caravan Trip to the Caspian 카스피까지 간 대상(카라반) 여행

  •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Finally, brothers, whatever is true, whatever is noble, whatever is right, whatever is pure, whatever is lovely, whatever is admirable—if anything is excellent or praiseworthy—think about such things.

134:2.1 (1484.5) It was the first of April, A.D. 24, when Jesus left Nazareth on the caravan trip to the Caspian Sea region. The caravan which Jesus joined as its conductor was going from Jerusalem by way of Damascus and Lake Urmia through Assyria, Media, and Parthia to the southeastern Caspian Sea region. It was a full year before he returned from this journey. 예수께서 나사렛을 출발하여 대상caravan들과 함께 카스피Caspian 해(海)로 여행을 떠난 것은 기원 후 24년 4월 1일의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안내자로서 합세하였던 그 대상(隊商)은 예루살렘Jerusalem을 출발하여 다마스쿠스Damascus와 우르미아Urmia 호수(湖水)를 경유하고 앗시리아Assyria, 메디아Media, 파르티아Parthia를 거쳐 남동부 카스피 지역으로 갔습니다. 이 여행에서 그가 돌아오기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134:2.2 (1484.6) For Jesus this caravan trip was another adventure of exploration and personal ministry. He had an interesting experience with his caravan family — passengers, guards, and camel drivers. Scores of men, women, and children residing along the route followed by the caravan lived richer lives as a result of their contact with Jesus, to them, the extraordinary conductor of a commonplace caravan. Not all who enjoyed these occasions of his personal ministry profited thereby, but the vast majority of those who met and talked with him were made better for the remainder of their natural lives. 예수님에게 있어서 이 대상 여행은 탐험하면서 개인적으로 사역하는 또 다른 모험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대상 일행들─승객들, 안내원들, 낙타 부리는 자들─과 함께 흥미 있는 체험을 했습니다. 대상이 지나갔던 길을 따라 살고 있었던 많은 남녀 어른들과 아이들은, 그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대상을 이끄는 비범(非凡)한 안내자로 보였던 예수님과 접촉한 결과로,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사역하였던 이 기회들을 누렸던 사람들 전부가 이익을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의 대다수는 더 나은 여생(餘生)을 누렸습니다.

134:2.3 (1484.7) Of all his world travels this Caspian Sea trip carried Jesus nearest to the Orient and enabled him to gain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Far-Eastern peoples. He made intimate and personal contact with every one of the surviving races of Urantia excepting the red. He equally enjoyed his personal ministry to each of these varied races and blended peoples, and all of them were receptive to the living truth which he brought them. The Europeans from the Far West and the Asiatics from the Far East alike gave attention to his words of hope and eternal life and were equally influenced by the life of loving service and spiritual ministry which he so graciously lived among them. 그의 모든 여행 중에서 이 카스피 해의 여행은 예수님께서 동방에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였으며, 그래서 그는 극동(極東)지방 사람들을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홍인종을 제외하고 지구에 살아남아 있는 각 종족들과 친밀하게 개인적으로 접촉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여러 인종들과 혼합 사람들 각자에게 동등하게 개인적으로 베푼 사역활동을 즐겼으며, 그들 모두 예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살아있는 진리를 잘 받아들였습니다. 극서(極西)지방에서 온 유럽인들Europeans이나 극동지방에서 온 아시아인들Asiatics은, 희망과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그의 말에 똑같이 주의를 기울였으며, 그들 가운데 예수께서 그토록 인자하게 사셨던 사랑의 봉사와 영적 사역에 의하여 똑같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134:2.4 (1485.1) The caravan trip was successful in every way. This was a most interesting episode in the human life of Jesus, for he functioned during this year in an executive capacity, being responsible for the material intrusted to his charge and for the safe conduct of the travelers making up the caravan party. And he most faithfully, efficiently, and wisely discharged his multiple duties. 그 대상caravan 여행은 모든 점에서 성공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인간 일생에서 매우 흥미 있는 에피소드(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해에 집행(執行)하는 자격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물질과 카라반(대상) 일행을 이루고 있던 여행자들의 안전한 행위를 책임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가장 신실하고, 효과적으로 그리고 현명하게 여러 가지 임무들을 처리하였습니다.

134:2.5 (1485.2) On the return from the Caspian region, Jesus gave up the direction of the caravan at Lake Urmia, where he tarried for slightly over two weeks. He returned as a passenger with a later caravan to Damascus, where the owners of the camels besought him to remain in their service. Declining this offer, he journeyed on with the caravan train to Capernaum, arriving the first of April, A.D. 25. No longer did he regard Nazareth as his home. Capernaum had become the home of Jesus, James, Mary, and Ruth. But Jesus never again lived with his family; when in Capernaum he made his home with the Zebedees. 카스피 지역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은 우르미아Urmia 호수에서 대상 안내자의 자리를 사직하고 2주가 약간 넘게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나중에 다마스쿠스Damascus로 가는 대상 대열에 승객으로 합세하여 돌아왔는데, 그곳에서 그 낙타들의 주인은 그에게 남아서 같이 일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가버나움Capernaum으로 가는 대상들과 함께 계속 여행하여 AD 25년 4월 1일에 가버나움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나사렛Nazareth을 자기 고향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가버나움Capernaum이 예수와 야고보James와 마리아Mary와 룻Ruth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다시 가족과 함께 살지 않았으며, 가버나움에 있을 때에는 세베대Zebedees의 집에 자신의 거처(居處)를 정하였습니다.

3. The Urmia Lectures우르미아에서의 강연

134:3.1 (1485.3) On the way to the Caspian Sea, Jesus had stopped several days for rest and recuperation at the old Persian city of Urmia on the western shores of Lake Urmia. On the largest of a group of islands situated a short distance offshore near Urmia was located a large building — a lecture amphitheater — dedicated to the “spirit of religion.” This structure was really a temple of the philosophy of religions. 카스피 해(海)로 가는 길에, 예수님은 휴식과 원기회복을 위하여 우르미아 호수의 서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페르시아 도시인 우르미아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습니다. 우르미아 근처 해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섬들 중에서 가장 큰 섬에는 큰 건물 – 원형극장식의 강연 장소 – 이 “종교의 정신spirit”에 봉헌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이 건물은 종교 철학을 다루는 사원(寺院)이었습니다.

134:3.2 (1485.4) This temple of religion had been built by a wealthy merchant citizen of Urmia and his three sons. This man was Cymboyton, and he numbered among his ancestors many diverse peoples. 이 종교 사원은 우르미아의 시민인 어느 부유한 상인(商人)과 그의 세 아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심보이톤Cymboyton이었으며, 그의 선조들 중에는 다른 여러 민족들이 있었습니다.

134:3.3 (1485.5) The lectures and discussions in this school of religion began at ten o’clock every morning in the week. The afternoon sessions started at three o’clock, and the evening debates opened at eight o’clock. Cymboyton or one of his three sons always presided at these sessions of teaching, discussion, and debate. The founder of this unique school of religions lived and died without ever revealing his personal religious beliefs. 이 종교학교의 강의와 토론은 주 중 매일 오전 10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오후 수업은 3시에 시작하였으며, 저녁 토론회는 8시에 열렸습니다. 심보이톤Cymboyton이나 그의 세 아들들 중의 하나가 이 강의•논의•토론 시간에 언제나 사회(司會)를 보았습니다. 독특한 이 종교 학교의 창시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종교적 신념을 밝히지 않은 채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134:3.4 (1485.6) On several occasions Jesus participated in these discussions, and before he left Urmia, Cymboyton arranged with Jesus to sojourn with them for two weeks on his return trip and give twenty-four lectures on “The Brotherhood of Men,” and to conduct twelve evening sessions of questions, discussions, and debates on his lectures in particular and on the brotherhood of men in general. 예수님은 여러 차례 이 논의에 참여했고, 우르미아를 떠나기 전에, 심보이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는 길에 그들과 2주간 동안 머물러 있도록 조정하여, “사람들의 형제신분The Brotherhood of Men”이라는 주제로 24번 강의하고, 특히 그의 강의에 대하여,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의 형제 정신에 대하여, 질문하고 토의하고 토론하는 저녁 시간을 12회 인도하도록 했습니다.

134:3.5 (1485.7) In accordance with this arrangement, Jesus stopped off on the return trip and delivered these lectures. This was the most systematic and formal of all the Master’s teaching on Urantia. Never before or after did he say so much on one subject as was contained in these lectures and discussions on the brotherhood of men. In reality these lectures were on the “Kingdom of God” and the “Kingdoms of Men.” 이러한 일정에 따라 예수님은 돌아오는 길에 우르미아에 들려 계획된 강의들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 계셨던 주님의 모든 가르침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형식을 갖춘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형제신분에 대하여, 이 강의들과 토의들에서처럼, 그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강의들은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와 “사람의 나라Kingdoms of Men”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134:3.6 (1486.1) More than thirty religions and religious cults were represented on the faculty of this temple of religious philosophy. These teachers were chosen, supported, and fully accredited by their respective religious groups. At this time there were about seventy-five teachers on the faculty, and they lived in cottages each accommodating about a dozen persons. Every new moon these groups were changed by the casting of lots. Intolerance, a contentious spirit, or any other disposition to interfere with the smooth running of the community would bring about the prompt and summary dismissal of the offending teacher. He would be unceremoniously dismissed, and his alternate in waiting would be immediately installed in his place. 30개가 넘는 종교들과 종교적 종파들이, 종교 철학 전당의 교수진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교수진들이 대표하는 각 종교 집단이 이 선생들을 선택하고 지원하고 충분히 인가하였습니다. 이 무렵에는 약 75명의 선생들이 교수진으로 활동하였고, 그들은 각 집마다 약 12명이 함께 사는 사택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초승달이 뜰 때마다 이 집단들의 구성원들은 제비를 뽑아서 교체되었습니다. 편협함, 다투기를 좋아하는 정신, 또는 공동체를 순조롭게 운영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어떤 다른 경향을 나타나는 경우에는, 위반한 선생으로서 그 즉시 즉각적으로 해직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 예식을 거치지 않고 해직되었고, 교대 대기자가 곧 그 자리에 임명되었습니다.

134:3.7 (1486.2) These teachers of the various religions made a great effort to show how similar their religions were in regard to the fundamental things of this life and the next. There was but one doctrine which had to be accepted in order to gain a seat on this faculty — every teacher must represent a religion which recognized God — some sort of supreme Deity. There were five independent teachers on the faculty who did not represent any organized religion, and it was as such an independent teacher that Jesus appeared before them. 다양한 종교들을 대표하는 이 선생들은 이생과 다음 생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그들의 종교가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를 보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교수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의 원칙만이 적용되었습니다. 각 선생은 하나님 – 어떤 종류의 최고의 신(神)supreme Deity – 을 인정하는 종교를 대표해야만 했습니다. 교수진 가운데에는 어떤 조직화된 종교도 대표하지 않는 독립된 5명의 선생들이 있었는데, 예수는 그러한 독립된 선생으로 그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134:3.8 (1486.3) [When we, the midwayers, first prepared the summary of Jesus’ teachings at Urmia, there arose a disagreement between the seraphim of the churches and the seraphim of progress as to the wisdom of including these teachings in the Urantia Revelation. Conditions of the twentieth century, prevailing in both religion and human governments, are so different from those prevailing in Jesus’ day that it was indeed difficult to adapt the Master’s teachings at Urmia to the problems of the kingdom of God and the kingdoms of men as these world functions are existent in the twentieth century. We were never able to formulate a statement of the Master’s teachings which was acceptable to both groups of these seraphim of planetary government. Finally, the Melchizedek chairman of the revelatory commission appointed a commission of three of our number to prepare our view of the Master’s Urmia teachings as adapted to twentieth-century religious and political conditions on Urantia. Accordingly, we three secondary midwayers completed such an adaptation of Jesus’ teachings, restating his pronouncements as we would apply them to present-day world conditions, and we now present these statements as they stand after having been edited by the Melchizedek chairman of the revelatory commission.]

4. Sovereignty — Divine and Human주권─신성한 것과 인간의 것

170111 수요 예수73 (30세-AD24) 주권─신성한 것과 인간의 것 Sovereignty — Divine and Human 마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134:4.1 (1486.4) The brotherhood of men is founded on the fatherhood of God. The family of God is derived from the love of God — God is love. God the Father divinely loves his children, all of them. 사람의 형제신분은 하나님의 아버지신분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기인합니다. –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자녀들을 신적으로 사랑하십니다.

134:4.2 (1486.5) The kingdom of heaven, the divine government, is founded on the fact of divine sovereignty — God is spirit. Since God is spirit, this kingdom is spiritual. The kingdom of heaven is neither material nor merely intellectual; it is a spiritual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man. 하늘나라, 신적인 정부(政府)는 신적인 주권 – 하나님은 영(靈)이십니다. – 라는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이 나라는 영적(靈的)입니다. 하늘나라는 물질적이지도 않고 단순히 지적이지도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적 관계입니다.

134:4.3 (1486.6) If different religions recognize the spirit sovereignty of God the Father, then will all such religions remain at peace. Only when one religion assumes that it is in some way superior to all others, and that it possesses exclusive authority over other religions, will such a religion presume to be intolerant of other religions or dare to persecute other religious believers. 만약 다른 종교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한다면, 그런 모든 종교들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의 종교가 어떤 면에서 다른 모든 종교들보다 우월하고, 그것이 다른 종교들에 대해 배타적인 권위를 갖는 경우에, 그런 종교는 다른 종교들을 용납하지 않거나 감히 다른 종교들의 신자들을 박해(迫害)할 것입니다.

134:4.4 (1487.1) Religious peace — brotherhood — can never exist unless all religions are willing to completely divest themselves of all ecclesiastical authority and fully surrender all concept of spiritual sovereignty. God alone is spirit sovereign. 종교적 평화 – 형제신분 –은 모든 종교들이 교단의 모든 권한을 자발적으로 완전히 버리고, 영적 주권에 대한 모든 관념을 전부 포기(抛棄)하지 않는 한,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영적 주권자이십니다.

134:4.5 (1487.2) You cannot have equality among religions (religious liberty) without having religious wars unless all religions consent to the transfer of all religious sovereignty to some superhuman level, to God himself. 모든 종교들이 모든 종교적 주권(主權)을 초인간적 수준의 하나님 자신에게 넘겨드리기로 동의하지 않는다면, 종교적 전쟁 없이 종교들 사이에 평등(종교적 해방)을 얻을 수 없습니다.

134:4.6 (1487.3) The kingdom of heaven in the hearts of men will create religious unity (not necessarily uniformity) because any and all religious groups composed of such religious believers will be free from all notions of ecclesiastical authority — religious sovereignty. 사람들의 심정 속에 있는 하늘나라는 종교적 연합(반드시 획일적일 필요는 없지만)을 만들어 낼 것인데, 왜냐하면 그런 종교적 신자들로 구성된 모든 종교는 교단의 권한 – 종교적 주권 –에 대한 모든 개념에서 해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34:4.7 (1487.4) God is spirit, and God gives a fragment of his spirit self to dwell in the heart of man. Spiritually, all men are equal. The kingdom of heaven is free from castes, classes, social levels, and economic groups. You are all brethren. 하나님은 영이시며, 하나님은 자신의 영 그 자체의 한 단편(분신分身)을 사람의 심정 안에 내주하도록 보내 주십니다. 영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합니다. 하늘나라는 신분, 특권계급, 사회적 수준이나 경제적 단체들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형제들입니다.

134:4.8 (1487.5) But the moment you lose sight of the spirit sovereignty of God the Father, some one religion will begin to assert its superiority over other religions; and then, instead of peace on earth and good will among men, there will start dissensions, recriminations, even religious wars, at least wars among religionists.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영적 주권을 잃어버리는 순간, 어느 한 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서 평화가 이루어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뜻이 이루어지는 대신, 종교인들 사이에서 불화와 비난이 시작될 것이고 심지어 전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134:4.9 (1487.6) Freewill beings who regard themselves as equals, unless they mutually acknowledge themselves as subject to some supersovereignty, some authority over and above themselves, sooner or later are tempted to try out their ability to gain power and authority over other persons and groups. The concept of equality never brings peace except in the mutual recognition of some overcontrolling influence of supersovereignty. 스스로를 동등하게 여기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들은, 그들 위에 있는 높은 권한, 즉 어떤 초(超)주권의 지배를 받는다고 서로가 인정하지 않는 한, 조만간에 다른 개인들과 단체들을 지배하기 위한 권력과 권한을 갖기 위하여 자신들의 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어떤 초(超)주권의 전권으로 지배하는 영향력을 서로 인정하지 않고서는, 평등(平等)의 개념이 평화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134:4.10 (1487.7) The Urmia religionists lived together in comparative peace and tranquillity because they had fully surrendered all their notions of religious sovereignty. Spiritually, they all believed in a sovereign God; socially, full and unchallengeable authority rested in their presiding head — Cymboyton. They well knew what would happen to any teacher who assumed to lord it over his fellow teachers. There can be no lasting religious peace on Urantia until all religious groups freely surrender all their notions of divine favor, chosen people, and religious sovereignty. Only when God the Father becomes supreme will men become religious brothers and live together in religious peace on earth. 우르미아 종교인들은 종교적 주권에 대한 자신들의 모든 신념들을 온전히 포기했기 때문에, 비교적 평화스럽고 고요하게 함께 살아갔습니다. 영적으로, 그들은 모두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도전할 수 없는 충분한 권한은 그들을 주관하는 수장(首長), 심보이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동료 선생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는 누구든지 막론하고, 그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 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신적인 은총과 선택받은 민족 그리고 종교적 주권에 대한 자신들의 모든 관념을 모든 종교적 집단들이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포기하기 전까지는, 영구한 종교적 평화(平和)를 이 땅에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이 최극의 뜻이 될 때에만,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형제들이 되고 이 세상에서 종교적인 평화 속에 함께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5. Political Sovereignty 정치적 주권

170118 수요 예수74 (30세-AD24) 정치적 주권 단4: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134:5.1 (1487.8) [While the Master’s teaching concerning the sovereignty of God is a truth — only complicated by the subsequent appearance of the religion about him among the world’s religions — his presentations concerning political sovereignty are vastly complicated by the political evolution of nation life during the last nineteen hundred years and more. In the times of Jesus there were only two great world powers — the Roman Empire in the West and the Han Empire in the East — and these were widely separated by the Parthian kingdom and other intervening lands of the Caspian and Turkestan regions. We have, therefore, in the following presentation departed more widely from the substance of the Master’s teachings at Urmia concerning political sovereignty, at the same time attempting to depict the import of such teachings as they are applicable to the peculiarly critical stage of the evolu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in the twentieth century after Christ.][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주(主)의 가르침은 진리입니다. 다만 세상 종교들 사이에서 그에 관한 종교가 나중에 출현되어 단지 복잡해졌을 뿐입니다. 반면에, 정치적 주권에 관한 주님의 발표는 지난 1,900여 년 동안에 국가 생활의 정치적 진화에 의하여 광범위하게 복잡해졌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단지 두 개의 세계적인 강국들 – 서양의 로마제국과 동양의 한(漢) 제국─이 있었을 뿐이며, 이 두 제국은 파르티아Parthian 왕국과 카스피Caspian와 투루키스탄Turkestan 지역의 다른 국가들 때문에 널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의 발표가 정치적 주권에 관해 우르미아Urmia에서 주(主)님께서 가르치신 내용과 동떨어져 있지만, 동시에 그리스도 이후 20세기에 정치적 주권이 진화하는 특별한 결정적 단계에 주님의 가르침이 적용되도록 그 가르침의 의미를 서술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134:5.2 (1487.9) War on Urantia will never end so long as nations cling to the illusive notions of unlimited national sovereignty. There are only two levels of relative sovereignty on an inhabited world: the spiritual free will of the individual mortal and the collective sovereignty of mankind as a whole. Between the level of the individual human being and the level of the total of mankind, all groupings and associations are relative, transitory, and of value only in so far as they enhance the welfare, well-being, and progress of the individual and the planetary grand total — man and mankind. 국가가 무제한적인 국가 주권(主權)을 가지고 있다는 허상에 집착하는 한, 이 땅에서 전쟁은 결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세계에는 오직 두 가지 차원의 상대적 주권만이 있을 뿐인데 바로 인간 개개인의 영적 자유의지와 인류 전체의 집합적 주권입니다. 개별 인간 존재의 차원과 인류 전체의 차원 사이에서, 모든 단체와 연합들은 상대적이고 일시적이며 오직 그들이 개별존재와 행성 전체 즉 사람과 인류의 복지와 안녕 그리고 진보를 향상(向上)시키는 경우에만 가치가 있을 뿐입니다.

134:5.3 (1488.1) Religious teachers must always remember that the spiritual sovereignty of God overrides all intervening and intermediate spiritual loyalties. Someday civil rulers will learn that the Most Highs rule in the kingdoms of men. 종교 교사들은 하나님의 영적 통치권이, 중재하고 중개하는 모든 영적 충성심에 우선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만 합니다. 시민 정부의 통치자들은 사람의 왕국들을 통치하는 지고자들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입니다.

134:5.4 (1488.2) This rule of the Most Highs in the kingdoms of men is not for the especial benefit of any especially favored group of mortals. There is no such thing as a “chosen people.” The rule of the Most Highs, the overcontrollers of political evolution, is a rule designed to foster the greatest good to the greatest number of all men and for the greatest length of time. 사람들의 나라 안에 있는 지고자the Most Highs들의 이 통치는 특별히 혜택을 누리는 어떤 사람들 단체의 특별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선택받은 민족”과 같은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고자들, 즉 정치적 진화를 위에서 총괄하는 분들의 통치는 최다수(最多數)에게, 최장(最長) 기간에, 최대의 이익을 주도록 설계된 법칙입니다.

134:5.5 (1488.3) Sovereignty is power and it grows by organization. This growth of the organization of political power is good and proper, for it tends to encompass ever-widening segments of the total of mankind. But this same growth of political organizations creates a problem at every intervening stage between the initial and natural organization of political power — the family — and the final consummation of political growth — the government of all mankind, by all mankind, and for all mankind. 주권(主權)은 권력이며 그것은 조직에 의하여 성장합니다. 이러한 정치적 권력 조직의 성장은 유익하고 바람직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인류 전체의 가장 넓은 부분들을 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정치조직의 성장은, 초기의 자연스러운 정치권력 – 가족(家族) – 의 조직과 최종적인 정치적 성장의 성취 – 모든 인류의, 모든 인류에 의한, 모든 인류를 위한 – 사이에 있는 모든 중간 단계마다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134:5.6 (1488.4) Starting out with parental power in the family group, political sovereignty evolves by organization as families overlap into consanguineous clans which become united, for various reasons, into tribal units — superconsanguineous political groupings. And then, by trade, commerce, and conquest, tribes become unified as a nation, while nations themselves sometimes become unified by empire. 가족 집단 속에 있는 부모의 권력으로부터 출발하여, 정치적 주권은 조직에 의해 진화합니다. 가족들이 혈연관계의 씨족으로 이어지고, 씨족들은 여러 이유로 부족(部族) 단위 -혈연관계를 초월한 정치적 집단들 –로 연합됩니다. 그런 다음, 무역과 상업 그리고 정복을 통해 부족들이 하나의 국가로 연합되고, 국가들 자체는 때때로 제국으로 연합됩니다.

134:5.7 (1488.5) As sovereignty passes from smaller groups to larger groups, wars are lessened. That is, minor wars between smaller nations are lessened, but the potential for greater wars is increased as the nations wielding sovereignty become larger and larger. Presently, when all the world has been explored and occupied, when nations are few, strong, and powerful, when these great and supposedly sovereign nations come to touch borders, when only oceans separate them, then will the stage be set for major wars, world-wide conflicts. So-called sovereign nations cannot rub elbows without generating conflicts and eventuating wars. 소규모의 집단에서 대규모의 집단으로 주권이 넘어감에 따라 전쟁은 줄어듭니다. 다시 말해서, 작은 국가들 간의 사소한 전쟁들은 줄어드는 반면에, 주권을 행사하는 국가들은 커갈수록 더 큰 전쟁이 일어날 잠재성이 증가합니다. 당장에 온 세상이 탐험되어 점령되고, 나라들의 수가 얼마 안 되지만 강하고 강력하며, 이러한 엄청난 주권을 지닌 나라들의 국경이 서로 이웃하게 되고, 대양(大洋)으로만 겨우 나라들이 분리되어 있다면, 대규모의 전쟁, 즉 세계적인 충돌을 위한 무대가 준비될 것입니다. 소위 주권을 가진 국가들은, 갈등이 일어나 결국 전쟁하지 않고는 서로 잘 지낼 수 없습니다.

134:5.8 (1488.6) The difficulty in the evolu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from the family to all mankind, lies in the inertia-resistance exhibited on all intervening levels. Families have, on occasion, defied their clan, while clans and tribes have often been subversive of the sovereignty of the territorial state. Each new and forward evolu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is (and has always been) embarrassed and hampered by the “scaffolding stages” of the previous developments in political organization. And this is true because human loyalties, once mobilized, are hard to change. The same loyalty which makes possible the evolution of the tribe, makes difficult the evolution of the supertribe — the territorial state. And the same loyalty (patriotism) which makes possible the evolution of the territorial state, vastly complicates the evolutionary development of the government of all mankind. 가족으로부터 전체 인류로 확대되는 정치적 주권의 진화에서 겪는 어려움은, 중간에 개입하는 모든 차원에서 나타나는 관성(慣性)과 저항 안에 놓여 있습니다. 가족들은 경우에 따라 자기들의 씨족에게 도전해 왔으며, 반면에 씨족들과 부족들은 지역 국가의 주권을 종종 전복해왔습니다. 정치적 주권의 진화가 각각 새롭게 나아가는 경우 항상 언제나 그래왔지만, 정치적 조직에서, 이전에 개발된 “발판 단계”로 인해 난처해지고 방해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인 이유는, 일단 동원되면, 인간의 충성심은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족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던 바로 그 충성심은 부족을 초월한 – 지역 국가 – 진화를 어렵게 합니다. 그리고 지역적 국가의 진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동일한 충성심(애국심)이 모든 인류 정부의 진화적 발전을 매우 복잡하게 만듭니다.

134:5.9 (1488.7) Political sovereignty is created out of the surrender of self-determinism, first by the individual within the family and then by the families and clans in relation to the tribe and larger groupings. This progressive transfer of self-determination from the smaller to ever larger political organizations has generally proceeded unabated in the East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Ming and the Mogul dynasties. In the West it obtained for more than a thousand years right on down to the end of the World War, when an unfortunate retrograde movement temporarily reversed this normal trend by re-establishing the submerged political sovereignty of numerous small groups in Europe. 정치적 주권은, 처음에는 가족 안에서 개인이, 다음에는 부족 및 더 큰 집합과 관계된 가족과 씨족들이, 자결(자아결정)주의를 버림으로 만들어집니다. 작은 데서부터 항상 더 큰 정치 조직으로 자결(自決)을 이렇게 진취적으로 양도(讓渡)하는 것은 명(明) 나라와 몽고 왕조가 세워진 뒤로, 동양에서는 대체로 줄어들지 않고 진행되었습니다. 서양에서 그것은, 1천 년이 넘도록, 바로 세계 대전(大戰)이 끝날 때까지 진행되었고, 이 때 유럽에서 수많은 작은 집단들이, 사라졌던 정치적 주권을 다시 확립함으로써, 불행한 역행(逆行) 운동이 이 정상(正常)적인 경향을 일시에 바꿔 놓았습니다.

134:5.10 (1489.1) Urantia will not enjoy lasting peace until the so-called sovereign nations intelligently and fully surrender their sovereign powers into the hands of the brotherhood of men — mankind government. Internationalism — Leagues of Nations — can never bring permanent peace to mankind. World-wide confederations of nations will effectively prevent minor wars and acceptably control the smaller nations, but they will not prevent world wars nor control the three, four, or five most powerful governments. In the face of real conflicts, one of these world powers will withdraw from the League and declare war. You cannot prevent nations going to war as long as they remain infected with the delusional virus of national sovereignty. Internationalism is a step in the right direction. An international police force will prevent many minor wars, but it will not be effective in preventing major wars, conflicts between the great military governments of earth. 이른바 주권 국가들이 그 주권의 권력을 사람의 형제 정신―인류 정부―의 손에 총명하게, 완전히 내어주기까지, 지구는 오래 지속되는 평화를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국제주의―국제 연맹―은 결코 인류에게 영구한 평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나라들의 세계적 연방들이 작은 전쟁을 효과적으로 막고 작은 나라들을 만족스럽게 통제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방들은 세계 전쟁을 방지하거나, 초강대국 서넛이나 다섯을 통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실제적인 갈등에 직면하게 되면, 이 강대국들 가운데 하나가 연맹으로부터 탈퇴하고 전쟁을 선포할 것입니다. 국가가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망상(妄想)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 한, 국가들 간의 전쟁을 미리 예방할 수 없습니다. 국제주의는 올바른 방향에로의 첫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국제 경찰력은 많은 작은 전쟁을 방지하겠지만, 이 세상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정부들 사이의 갈등인 큰 전쟁을 방지하는 데에는 효력이 없을 것입니다.

134:5.11 (1489.2) As the number of truly sovereign nations (great powers) decreases, so do both opportunity and need for mankind government increase. When there are only a few really sovereign (great) powers, either they must embark on the life and death struggle for national (imperial) supremacy, or else, by voluntary surrender of certain prerogatives of sovereignty, they must create the essential nucleus of supernational power which will serve as the beginning of the real sovereignty of all mankind. 참으로 주권을 가진 국가(강대국)의 수가 줄어드는 데 따라서, 인류 정부의 기회와 필요가 늘어납니다. 정말로 주권을 가진 (큰) 강국들이 겨우 몇 나라만 있을 때는, 민족(제국) 우위성을 얻으려고 생사를 건 싸움을 시작하든지, 아니면, 주권의 특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하여, 인류의 참된 주권의 시작으로서 사용될 초국가 권력의 필수 핵심(核心)을 만들어야 합니다.

134:5.12 (1489.3) Peace will not come to Urantia until every so-called sovereign nation surrenders its power to make war into the hands of a representative government of all mankind. Political sovereignty is innate with the peoples of the world. When all the peoples of Urantia create a world government, they have the right and the power to make such a government SOVEREIGN; and when such a representative or democratic world power controls the world’s land, air, and naval forces, peace on earth and good will among men can prevail — but not until then. 소위 주권 국가가 모두 전쟁을 수행할 권력을 인류의 대표 정부에게 양보할 때까지, 평화는 지구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적 주권은 세계의 여러 민족에게 타고난 것입니다. 지구의 모든 민족이 하나의 세계 정부를 창립할 때, 그들은 그러한 정부가 주권을 갖도록 할 권한과 권력이 있습니다. 그러한 대표적 또는 민주적 세계 권력이 지구에서 세계의 육군•해군•공군을 통제할 때, 땅에 평화가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 선의(善意)가 지배할 것입니다. – 그러나 그 때까지는 불가능합니다.

134:5.13 (1489.4) To use an important nineteenth- and twentieth-century illustration: The forty-eight states of the American Federal Union have long enjoyed peace. They have no more wars among themselves. They have surrendered their sovereignty to the federal government, and through the arbitrament of war, they have abandoned all claims to the delusions of self-determination. While each state regulates its internal affairs, it is not concerned with foreign relations, tariffs, immigration, military affairs, or interstate commerce. Neither do the individual states concern themselves with matters of citizenship. The forty-eight states suffer the ravages of war only when the federal government’s sovereignty is in some way jeopardized. 19세기 및 20세기의 중요한 예를 하나 들어본다면, 아메리카 연방의 48주는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이제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권을 연방 정부에게 넘겨주었고, 전쟁의 중재를 통해서, 자체적 결정권이라는 망상에 대한 모든 주장을 버렸습니다. 각 주(州)정부가 그 내부(內部) 사무를 규제하지만, 외교 관계, 관세, 이민, 군사(軍事) 또는 주정부 간의 통상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개별 주(州)는 시민권의 문제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48주는 오직 연방 정부의 주권이 어떤 면에서 위협을 받을 때에만 전쟁의 참화(慘禍)를 겪게 됩니다.

134:5.14 (1489.5) These forty-eight states, having abandoned the twin sophistries of sovereignty and self-determination, enjoy interstate peace and tranquillity. So will the nations of Urantia begin to enjoy peace when they freely surrender their respective sovereignties into the hands of a global government — the sovereignty of the brotherhood of men. In this world state the small nations will be as powerful as the great, even as the small state of Rhode Island has its two senators in the American Congress just the same as the populous state of New York or the large state of Texas. 이 48주는 주권과 자체 결정권이라는 두 가지 궤변을 버렸고, 주 사이에서 평화와 평온을 누립니다. 마찬가지로 지구의 국가들도 각자의 주권을 세계 정부 – 사람의 형제 정신의 주권 – 에 자유롭게 양보할 때 평화를 누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인구가 많은 뉴욕 주나 큰 텍사스 주와 똑같이, 작은 로드 아이랜드 주가 미국 국회에 상원(上院) 의원 두 명을 가진 것처럼, 이 세계 국가에서 작은 나라들은 큰 나라만큼 강력해질 것입니다.

134:5.15 (1490.1) The limited (state) sovereignty of these forty-eight states was created by men and for men. The superstate (national) sovereignty of the American Federal Union was created by the original thirteen of these states for their own benefit and for the benefit of men. Sometime the supernational sovereignty of the planetary government of mankind will be similarly created by nations for their own benefit and for the benefit of all men. 이 48주(州)의 제한된 주권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주를 관할하는 아메리카 연방이 가진 국가적 주권은 이 여러 주 가운데 최초의 13개 주가 자체의 이익을 위하여, 주민(州民)들의 이익을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언젠가 인류의 행성 정부의 초국가적 주권을 여러 나라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비슷한 형태로 만들 것입니다.

134:5.16 (1490.2) Citizens are not born for the benefit of governments; governments are organizations created and devised for the benefit of men. There can be no end to the evolu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short of the appearance of the government of the sovereignty of all men. All other sovereignties are relative in value, intermediate in meaning, and subordinate in status. 시민들은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만들어지고 고안된 조직입니다. 모든 사람의 주권을 대표하는 정부가 나타나지 못하면, 정치적 주권의 진화에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다른 주권의 가치는 상대적이며, 그 의미는 중간적이고, 그 지위는 종속적입니다.

134:5.17 (1490.3) With scientific progress, wars are going to become more and more devastating until they become almost racially suicidal. How many world wars must be fought and how many leagues of nations must fail before men will be willing to establish the government of mankind and begin to enjoy the blessings of permanent peace and thrive on the tranquillity of good will — world-wide good will — among men? 과학의 진보와 함께, 거의 인종족 자살(自殺)행위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갈수록 더 끔찍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류의 정부를 기꺼이 세우고, 영구한 평화의 복을 누리기 시작하고, 사람들 사이에 선의―세계적 선의―에서 생기는 평안을 토대로 번영하기까지, 몇 차례나 세계 전쟁을 치러야 하고, 얼마나 많은 국가 연맹이 실패해야만 할 것인가?

6. Law, Liberty, and Sovereignty 법, 자유, 그리고 주권

170125 수요 예수75 (30세-AD24) 법, 자유, 주권 눅21:9-10 9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10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34:6.1 (1490.4) If one man craves freedom — liberty — he must remember that all other men long for the same freedom. Groups of such liberty-loving mortals cannot live together in peace without becoming subservient to such laws, rules, and regulations as will grant each person the same degree of freedom while at the same time safeguarding an equal degree of freedom for all of his fellow mortals. If one man is to be absolutely free, then another must become an absolute slave. And the relative nature of freedom is true socially, economically, and politically. Freedom is the gift of civilization made possible by the enforcement of LAW. 한 사람이 자유(해방)를 열망한다면,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역시 자기와 똑같은 자유를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해방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들의 집단은, 각 사람에게 같은 정도의 자유를 허락하는 동시에 그의 동료 모든 사람들에게도 같은 양의 자유를 보장해줄, 법과 규칙 그리고 규정들을 지키지 않고서는 함께 평화롭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되려면, 또 다른 한 사람은 절대적인 노예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유의 상대적인 속성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참됩니다. 자유는 법 집행으로 누릴 수 있는 문명의 선물입니다.

134:6.2 (1490.5) Religion makes it spiritually possible to realize the brotherhood of men, but it will require mankind government to regulate the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problems associated with such a goal of human happiness and efficiency. 종교는 사람의 형제 정신의 실현을 영적으로 가능하게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행복이나 효율성에 관계되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문제들을 규정하는 인류 전체의 정부(政府)가 필요할 것입니다.

134:6.3 (1490.6) There shall be wars and rumors of wars — nation will rise against nation — just as long as the world’s political sovereignty is divided up and unjustly held by a group of nation-states. England, Scotland, and Wales were always fighting each other until they gave up their respective sovereignties, reposing them in the United Kingdom. 세상의 정치적 주권이 분리되어 있으며, 국가-주정부들 집단이 불공정하게 차지하는 한, 전쟁이 있고, 전쟁의 소문이 있을 것이다. – 나라와 나라가 대항하여 일어날 것입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웨일즈는 그들이 각자의 주권을 영연방(英聯邦)에 위임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134:6.4 (1490.7) Another world war will teach the so-called sovereign nations to form some sort of federation, thus creating the machinery for preventing small wars, wars between the lesser nations. But global wars will go on until the government of mankind is created. Global sovereignty will prevent global wars — nothing else can. 또 다른 세계 전쟁을 통해, 소위 말하는 주권 국가들은 어떤 종류의 연합정부를 형성해야 하는 지 배우게 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작은 전쟁, 약소국가들 사이의 전쟁을 예방하는 기구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전쟁은 인류 전체의 정부가 생길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지구 전체의 통제권이 세계적 전쟁들을 방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134:6.5 (1490.8) The forty-eight American free states live together in peace. There are among the citizens of these forty-eight states all of the various nationalities and races that live in the ever-warring nations of Europe. These Americans represent almost all the religions and religious sects and cults of the whole wide world, and yet here in North America they live together in peace. And all this is made possible because these forty-eight states have surrendered their sovereignty and have abandoned all notions of the supposed rights of self-determination. 미국의 독립된 48개의 주는 평화를 유지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 48개 주들의 시민들 중에는, 항상 전쟁에 시달리는 유럽의 국가들에 살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국적과 인종들도 섞여 있습니다. 이 미국(美國)인들은 전 세계 모든 종교들과 종교적 종파(宗派)들을 대표하고 있지만, 그들은 이 북미(北美) 지역에서 평화롭게 함께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은 이 48개 주들이 자신들의 주권을 포기하고 자체적 결정 권리에 대한 모든 개념을 버렸기 때문에 가능해졌습니다.

134:6.6 (1490.9) It is not a question of armaments or disarmament. Neither does the question of conscription or voluntary military service enter into these problems of maintaining world-wide peace. If you take every form of modern mechanical armaments and all types of explosives away from strong nations, they will fight with fists, stones, and clubs as long as they cling to their delusions of the divine right of national sovereignty. 그것은 무장(武裝)과 비무장(非武裝)의 문제가 아닙니다. 징병제도 혹은 자발적 군대 복무를 선택하는 문제도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이러한 문제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강대국들로부터 현대의 기계화된 무기(武器)들과 모든 유형의 폭탄들을 다 빼앗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국가적 주권을 신(神)이 준 권리라는 망상에 붙들려 있는 한, 그들은 주먹과 돌과 방망이를 가지고라도 싸울 것입니다.

134:6.7 (1491.1) War is not man’s great and terrible disease; war is a symptom, a result. The real disease is the virus of national sovereignty. 전쟁은 사람이 지닌 중대하고 끔직한 병이 아닙니다. 전쟁은 증상이며 결과입니다. 진짜 병은 국가적 주권이라는 바이러스입니다.

134:6.8 (1491.2) Urantia nations have not possessed real sovereignty; they never have had a sovereignty which could protect them from the ravages and devastations of world wars. In the creation of the global government of mankind, the nations are not giving up sovereignty so much as they are actually creating a real, bona fide, and lasting world sovereignty which will henceforth be fully able to protect them from all war. Local affairs will be handled by local governments; national affairs, by national governments; international affairs will be administered by global government. 이 땅의 국가들은 진정한 주권을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세계적 전쟁들의 참상과 황폐함에서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주권(主權)을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범세계적인 인류 전체 정부를 구성하면서, 국가들은 주권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진실하며 지속적으로, 이후로는 모든 전쟁으로부터 자신들을 충분히 보호해 주는 줄 수 있는 세계적 주권을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역 문제들은 지역 정부가, 국가적 문제들은 국가 정부가 처리하고, 국제적 문제들은 범세계 정부가 관리할 것입니다.

134:6.9 (1491.3) World peace cannot be maintained by treaties, diplomacy, foreign policies, alliances, balances of power, or any other type of makeshift juggling with the sovereignties of nationalism. World law must come into being and must be enforced by world government — the sovereignty of all mankind. 세계평화는, 조약(條約), 외교, 대외 정책, 연맹, 힘의 균형, 혹은 민족주의적 주권으로 조작하는 어떤 다른 유형의 미봉책으로도 유지될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통용되는 법이 만들어져, 그것은 세계정부─모든 인류의 주권─에 의해 집행되어야 합니다.

134:6.10 (1491.4) The individual will enjoy far more liberty under world government. Today, the citizens of the great powers are taxed, regulated, and controlled almost oppressively, and much of this present interference with individual liberties will vanish when the national governments are w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