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 The Strange Preacher 별난 설교자

2. The Strange Preacher 별난 설교자

220116 다른 예수 가족을 기뻐하라 막9:38-41 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38 “Teacher,” said John, “we saw a man driving out demons in your name and we told him to stop, because he was not one of us.” 39 “Do not stop him,” Jesus said. “No one who does a miracle in my name can in the next moment say anything bad about me, 40 for whoever is not against us is for us. 41 I tell you the truth, anyone who gives you a cup of water in my name because you belong to Christ will certainly not lose his reward.

159:2.1 (1764.3) Jesus went over to Gamala to visit John and those who worked with him at that place. That evening, after the session of questions and answers, John said to Jesus: “Master, yesterday I went over to Ashtaroth to see a man who was teaching in your name and even claiming to be able to cast out devils. Now this fellow had never been with us, neither does he follow after us; therefore I forbade him to do such things.” Then said Jesus: “Forbid him not. Do you not perceive that this gospel of the kingdom shall presently be proclaimed in all the world? How can you expect that all who will believe the gospel shall be subject to your direction? Rejoice that already our teaching has begun to manifest itself beyond the bounds of our personal influence. Do you not see, John, that those who profess to do great works in my name must eventually support our cause? They certainly will not be quick to speak evil of me. My son, in matters of this sort it would be better for you to reckon that he who is not against us is for us. In the generations to come many who are not wholly worthy will do many strange things in my name, but I will not forbid them. I tell you that, even when a cup of cold water is given to a thirsty soul, the Father’s messengers shall ever make record of such a service of love.” 예수님은 가말라로 건너가 요한과 그곳에서 그와 함께 일하는 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날 저녁, 질의응답(質疑應答) 시간 후, 요한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주(主)여, 어제 제가 아스타롯으로 건너가 당신으로 이름으로 가르치고, 악령(惡靈)을 쫓아낼 수 있다고 주장도 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이제까지 이 사람이 우리와 함께한 적이 없고, 우리를 따르지도 않아서, 그가 그런 일을 하도록 제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금하지 말라. 너는 이 하느님 나라 복음이 곧 온 세상에 선포될 것을 알아채지 못하느냐? 복음을 믿을 모두가 너의 지시를 받을 것이라고 네가 어떻게 요구할 수 있느냐? 우리 가르침이 벌써 직접적인 우리 영향력의 한계를 넘어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기뻐하라. 요한아, 내 이름으로 큰일을 한다고 자칭하는 자들이 결국 우리 주장(主張)을 뒷받침해야 함을 너는 알지 못하느냐? 그들은 확실히 나를 신속하게 헐뜯어 말하지 않으리라. 여보게, 이런 종류의 문제에서 우리를 적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로 네가 여기는 것이 더 나으리라. 오는 세대에 전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여럿이 내 이름으로 별난 일들을 행할 것이나, 내가 그들을 금하지 않으리라. 내가 네게 이르노니, 목마른 자에게 냉수 한 잔을 줘도, 아버지의 메신저들이 그런 사랑의 봉사를 늘 기록하리라(막9:38-41, 눅9:49-50).”

159:2.2 (1764.4) This instruction greatly perplexed John. Had he not heard the Master say, “He who is not with me is against me”? And he did not perceive that in this case Jesus was referring to man’s personal relation to the spiritual teachings of the kingdom, while in the other case reference was made to the outward and far-flung social relations of believers regarding the questions of administrative control and the jurisdiction of one group of believers over the work of other groups which would eventually compose the forthcoming world-wide brotherhood. 요한은 이 가르침으로 굉장히 어쩔 줄 몰랐습니다. 주(主)께서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대적하느니라(마12:30a, 눅11:23a).”라고 말한 것을, 그가 듣지 않았던가(153.4.3)? 그는, 이 경우에 예수가 하느님 나라의 영적 가르침에 대한 사람의 개인적 관계를 이야기했던 반면에, 다른 경우에 관리 통제 문제와 결국 다가오는 세계적인 형제 공동체를 구성할 다른 집단의 일에 대한 한 신자 집단의 관할권에 관하여 광범위한 외적 신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언급했던 것으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159:2.3 (1765.1) But John oftentimes recounted this experience in connection with his subsequent labors in behalf of the kingdom. Nevertheless, many times did the apostles take offense at those who made bold to teach in the Master’s name. To them it always seemed inappropriate that those who had never sat at Jesus’ feet should dare to teach in his name. 그러나 요한은 자주 하느님 나라를 위한 자신의 계속되는 수고와 관련하여 이 체험을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감히 주(主)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자들에게 여러 번 화를 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의 발 앞에 앉아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 그의 이름으로 감히 가르치는 것은 그들에게 언제나 온당치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159:2.4 (1765.2) This man whom John forbade to teach and work in Jesus’ name did not heed the apostle’s injunction. He went right on with his efforts and raised up a considerable company of believers at Kanata before going on into Mesopotamia. This man, Aden, had been led to believe in Jesus through the testimony of the demented man whom Jesus healed near Kheresa, and who so confidently believed that the supposed evil spirits which the Master cast out of him entered the herd of swine and rushed them headlong over the cliff to their destruction.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고 일하는 것을 요한이 금지한 이 사람은 사도의 권고를 무시했습니다. 그는 아주 계속 애썼고 메소포타미아로 가기 전 카나타에서 상당한 신자 일행을 양육했습니다. 이 사람, 아덴은 케레사 근처에서 예수께서 치료한 미친 사람, 주께서 자신으로부터 쫓아냈다고 추정한 악령(惡靈)이 돼지 떼에 들어가 벼랑 넘어 그것들이 거꾸로 떨어져 죽도록 급습했다고 아주 자신 있게 믿은 그의 증언을 통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151.6.6).

85-2 Worship of Plants and Trees 식물과 나무 숭배

2. Worship of Plants and Trees 식물과 나무 숭배

85:2.1 (945.4) Plants were first feared and then worshiped because of the intoxicating liquors which were derived therefrom. Primitive man believed that intoxication rendered one divine. There was supposed to be something unusual and sacred about such an experience. Even in modern times alcohol is known as “spirits.” 식물은 거기에서 술이 나오기 때문에, 처음에는 두렵게 여기다가 나중에 숭배했습니다. 원시인은 도취(陶醉 술에 취함)가 사람을 신적으로 만든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체험에 대해 보통이 아닌 신성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현대에도 술은 “영靈들(주정酒精 에틸알코올)”로 알려져 있습니다.

85:2.2 (945.5) Early man looked upon sprouting grain with dread and superstitious awe. The Apostle Paul was not the first to draw profound spiritual lessons from, and predicate religious beliefs on, the sprouting grain. 고대인은 무서워하는 미신적 두려움으로 싹이 트는 곡식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싹이 트는 곡식에서 심오한 영적 교훈을 얻고(고전15장 부활), 그것에 종교적 믿음의 기초를 둔 첫째가 아니었습니다.

85:2.3 (945.6) The cults of tree worship are among the oldest religious groups. All early marriages were held under the trees, and when women desired children, they would sometimes be found out in the forest affectionately embracing a sturdy oak. Many plants and trees were venerated because of their real or fancied medicinal powers. The savage believed that all chemical effects were due to the direct activity of supernatural forces. 나무 숭배의 종파(宗派)는 가장 오래된 종교 집단에 속합니다. 모든 조혼(早婚 일찍 혼인함)은 나무 아래에서 거행했고, 여성들이 자녀를 원할 때, 그들이 숲에서 애정을 담아 튼튼한 참나무를 껴안고 있는 것이, 때때로 발견되곤 했습니다. 여러 식물과 나무는 진짜 또는 가공의 약효험(藥效驗) 때문에 숭배받았습니다. 야만인들은 모든 화학적 효과가 초자연적(超自然的) 힘이 직접적 활동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85:2.4 (945.7) Ideas about tree spirits varied greatly among different tribes and races. Some trees were indwelt by kindly spirits; others harbored the deceptive and cruel. The Finns believed that most trees were occupied by kind spirits. The Swiss long mistrusted the trees, believing they contained tricky spirits. The inhabitants of India and eastern Russia regard the tree spirits as being cruel. The Patagonians still worship trees, as did the early Semites. Long after the Hebrews ceased tree worship, they continued to venerate their various deities in the groves. Except in China, there once existed a universal cult of the tree of life. 나무 정령(精靈)에 대한 개념은 서로 다른 부족과 종족 사이에서 아주 다양했습니다. 어떤 나무에는 인정 많은 정령(精靈)이 살고 있었고, 다른 것은 미혹시키는 잔인한 정령(精靈)들을 숨겼습니다. 핀란드인(人)들은 친절한 정령(精靈)이 나무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믿었습니다. 스위스인(人)들은 나무에 교활한 정령(精靈)이 있다고 믿어서 오랫동안 그것들을 의심했습니다. 인도와 동부 러시아 주민은 나무 정령(精靈)을 잔혹하게 여깁니다. 파타고니아 인(人)들은 초기 셈족처럼 아직도 나무를 숭배합니다. 히브리인(人)들은 나무 숭배를 그만둔 지 오랜 후에, 그들은 숲에서 다양한 자기 신(神)들을 계속 숭배했습니다. 중국 외에, 한때 생명 나무의 전반적 종파가 있었습니다.

85:2.5 (946.1) The belief that water or precious metals beneath the earth’s surface can be detected by a wooden divining rod is a relic of the ancient tree cults. The Maypole, the Christmas tree, and the superstitious practice of rapping on wood perpetuate certain of the ancient customs of tree worship and the later-day tree cults. 나무(개암) 점 지팡이로 지표면 아래에 물이나 귀금속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은 고대 나무 종파의 잔재입니다. 5월 축제 기둥, 성탄절 트리와 나무를 톡톡 두드리는 미신적 풍습은 나무 숭배와 훗날 나무 종파의 어떤 고대 관습을 언제까지나 계속하게 합니다.

85:2.6 (946.2) Many of these earliest forms of nature veneration became blended with the later evolving techniques of worship, but the earliest mind-adjutant-activated types of worship were functioning long before the newly awakening religious nature of mankind became fully responsive to the stimulus of spiritual influences. 이런 가장 초기 형태의 자연 숭배 중 대부분은 나중에 진화하는 경배 기법과 혼합되었지만, 새롭게 눈을 뜨는 인류의 종교적 본성이 영적 영향의 자극에 충분히 반응하게 되기 훨씬 전에, 가장 초기의 마음-보조-활성 경배 유형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39-0 The Seraphic Hosts 세라핌천사 무리

Paper 39

The Seraphic Hosts 세라핌 무리

39:0.1 (426.1) AS FAR as we are cognizant, the Infinite Spirit, as personalized on the local universe headquarters, intends to produce uniformly perfect seraphim, but for some unknown reason these seraphic offspring are very diverse. This diversity may be a result of the unknown interposition of evolving experiential Deity; if so, we cannot prove it. But we do observe that, when seraphim have been subjected to educational tests and training discipline, they unfailingly and distinctly classify into the following seven groups: 우리가 인식하는 한, 지역 우주 본부에서 고유화 무한 영(靈)은 완전한 세라핌을 균일하게 생산하려 하지만, 무엇인지 이유가 있어서 이런 세라핌 자녀는 아주 다양합니다. 이런 다양성은 진화하는 체험적 신(神)의 알려지지 않은 개입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라핌이 교육적 시험과 양성 훈련을 받으면, 다음의 7 집단으로 확실히 분명하게 분류되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39:0.2 (426.2) 1. Supreme Seraphim. 최극 세라핌

39:0.3 (426.3) 2. Superior Seraphim. 우수 세라핌

39:0.4 (426.4) 3. Supervisor Seraphim. 감독 세라핌

39:0.5 (426.5) 4. Administrator Seraphim. 경영 세라핌

39:0.6 (426.6) 5. Planetary Helpers. 행성 조수(助手)들

39:0.7 (426.7) 6. Transition Ministers. 과도기 사역자들

39:0.8 (426.8) 7. Seraphim of the Future. 미래의 세라핌

39:0.9 (426.9) To say that any one seraphim is inferior to an angel of any other group would hardly be true. Nevertheless every angel is at first service-limited to the group of original and inherent classification. My seraphic associate in the preparation of this statement, Manotia, is a supreme seraphim and onetime functioned only as a supreme seraphim. By application and devoted service she has, one by one, achieved all seven of the seraphic services, having functioned in well-nigh every avenue of activity open to a seraphim, and now holds the commission of associate chief of seraphim on Urantia. 한 세라핌이 다른 어떤 집단의 천사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모든 천사는 기원적인 본래 분류 집단에 먼저 봉사하도록 제한됩니다. 이 글을 준비하는 내 동료 세라핌, 마노시아는 최극 세라핌이며, 이전에 최극 세라핌으로만 활동했습니다. 열심과 헌신적 봉사로 그녀는 모든 7 세라핌 업무를 하나씩 성취하면서, 세라핌에게 열려 있는 거의 모든 활동 방법으로 역할을 다했으며, 지금은 유란시아에서 세라핌 부(副)수석으로 임관(任官)을 유지합니다.

39:0.10 (426.10) Human beings sometimes find it hard to understand that a created capacity for higher-level ministry does not necessarily imply ability to function on relatively lower service levels. Man begins life as a helpless infant; hence every mortal attainment must embrace all experiential prerequisites; seraphim have no such preadult life — no childhood. They are, however, experiential creatures, and by experience and through additional education they can augment their divine and inherent endowment of ability by the experiential acquirement of functional skill in one or more of the seraphic services. 더 높은 수준의 사역을 위해 창조된 능력이 상대적으로 더 낮은 업무 수준에서 활동하는 능력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인간은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사람은 무력한 젖먹이로 생애를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필사자 달성은 모든 체험적 필수 선행 조건을 포함해야 합니다. 세라핌은 그런 성인 이전의 생애 – 어린 시절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체험적 창조물이며, 체험과 추가 교육으로 그들은 하나 이상의 세라핌 봉사에서 기능 숙련의 체험적 획득으로, 자신들의 신적 능력의 본래 자질을 늘릴 수 있습니다.

39:0.11 (426.11) After being commissioned, seraphim are assigned to the reserves of their inherent group. Those of planetary and administrator status often serve for long periods as originally classified, but the higher the inherent function level, the more persistently do the angelic ministers seek assignment to the lower orders of universe service. Especially do they desire assignment to the reserves of the planetary helpers, and if successful they enroll in the celestial schools attached to the headquarters of the Planetary Prince of some evolutionary world. Here they begin the study of the languages, history, and local habits of the races of mankind. Seraphim must acquire knowledge and gain experience much as do human beings. They are not far removed from you in certain personality attributes. And they all crave to start at the bottom, on the lowest possible level of ministry; thus may they hope to achieve the highest possible level of experiential destiny. 임관(任官) 후, 세라핌은 자기들 본래 집단의 예비대로 배치됩니다. 행성과 경영 지위에 속한 자들은 종종 원래 분류된 대로 오랜 기간 근무하지만 본래 활동 수준이 높을수록, 천사 사역자들은 더 끈기 있게 낮은 계열의 우주 업무에 배치되려고 합니다. 특히 그들은 행성 조수(助手) 예비대에 지정되려 하며, 성공하면, 그들은 일부 진화 세계의 행성 왕자 본부에 부속(付屬)된 천상 학교에 등록합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인류의 언어, 역사와 지역 습성의 연구를 시작합니다. 세라핌은 인간들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식을 얻고 체험을 노력으로 얻어야 합니다. 그들은 어떤 고유성 속성(屬性)에서 결코 너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바닥에서, 가능한 가장 낮은 사역의 수준에서 시작하기를 갈망합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체험적 운명의 가능한 최고 수준에 이르기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S37 Personalities of the Local Universe 개요37편 지역 우주의 고유성들

S37 Personalities of the Local Universe 개요37편 지역 우주의 고유성들

37:0.2 (406.2) Preceding papers have dealt with the created orders of sonship; succeeding narratives will portray the ministering spirits and the ascending orders of sonship. This paper is chiefly concerned with an intervening group, the Universe Aids, but it will also give brief consideration to certain of the higher spirits stationed in Nebadon and to certain of the orders of permanent citizenship in the local universe. 이전의 문서들은 창조된 아들 계열을 다루었습니다. 계속되는 이야기들은 보살피는 영(靈)들과 아들 된 상승 계열을 묘사할 것입니다. 이 문서는 주로 두 사이에 개재된 집단, 우주 조력자들에 관련되지만, 네바돈에 배치된 어떤 고등 영(靈)들과 지역 우주의 어떤 영구 시민권 계열들도 짧게 고찰할 것입니다.

  1. The Universe Aids 우주 조력자들

37:1.2 (406.4) 1. Bright and Morning Stars. 광명한 새벽별들.

37:1.3 (406.5) 2. Brilliant Evening Stars. 찬란한 저녁별들.

37:1.4 (406.6) 3. Archangels. 천사장들.

37:1.5 (406.7) 4. Most High Assistants. 지고 보좌관들

37:1.6 (406.8) 5. High Commissioners. 고등 판무관(辦務官 보호국·식민지에 파견되어 정치·외교 따위의 사무를 처리하는 관리)들.

37:1.7 (406.9) 6. Celestial Overseers. 천상의 시찰(視察)자들.

37:1.8 (406.10) 7. Mansion World Teachers. 저택 세계 교사들.

37:1.9 (406.11) The Bright and Morning Star of our universe is known as Gabriel of Salvington. 우리 우주의 광명한 새벽별은 샐빙톤의 가브리엘로 알려져 있습니다. 37:1.10 (406.12) As the universe grew and administrative problems multiplied, he was provided with a personal staff of unrevealed assistants, and eventually this group was augmented by the creation of the Nebadon corps of Evening Stars. 우주가 성장하고 행정 업무가 늘어나면서, 그에게 미(未)계시 보좌관들에 속한 개인 참모가 준비되었고, 결국, 이 집단은 저녁별들의 네바돈 단(團)의 창조로 늘어났습니다.

  1. The Brilliant Evening Stars 찬란한 저녁별들

37:2.1 (407.1) They serve in many capacities but chiefly as liaison officers of Gabriel, the local universe chief executive. 그들은 여러 능력이 있지만 주로 지역 우주 수석 실행자 가브리엘의 연락 장교로 섬깁니다. 37:2.3 (407.3) Though personally occupied with administrative duties, Gabriel maintains contact with all other phases of universe life and affairs through the Brilliant Evening Stars. 개인적으로 경영 직책에 종사하지만, 가브리엘은 찬란한 저녁별들을 통해 다른 모든 단계의 우주 생활과 업무들과 접촉을 유지합니다. 37:2.4 (407.4) The Brilliant Evening Stars are a unique twofold order, embracing some of created dignity and others of attained service. 찬란한 저녁별들은 일부의 창조된 존엄층과 봉사로 도달하는 나머지 계층을 포함하는, 독특한 2중 계층입니다.

37:2.5 (407.5) Both types of Brilliant Evening Stars are easily visible to morontia personalities and certain types of supermortal material beings. 찬란한 저녁별의 두 유형은 모론시아 고유성들과 어떤 유형의 초(超)필사 물질 존재들에게 쉽게 보입니다. 37:2.6 (407.6) The head of these superangels is Gavalia, the first-born of this order in Nebadon. Galantia is the first of the ascendant superangels to attain this high estate. 이들 초(超)천사들의 수석은 네바돈의 이 계층에서 처음 태어난 가발리아입니다. 갈란시아는 이 높은 신분에 도달한 상승 초(超)천사 중 첫째입니다. 37:2.7 (407.7) No grouping or company organization of the Brilliant Evening Stars exists other than their customary association in pairs on many assignments. 찬란한 저녁별들의 집단화 또는 단체 조직은, 여러 임무에 통상 쌍으로 결합하는 이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37:2.8 (407.8) One of the high duties of the Evening Stars is to accompany the Avonal bestowal Sons on their planetary missions, even as Gabriel accompanied Michael on his Urantia bestowal. 저녁별들의 높은 임무 중 하나는, 가브리엘이 미가엘의 유란시아 증여에 그와 함께 갔듯이, 아보날 증여 아들들의 행성 사명에 함께 가는 것입니다. 37:2.9 (408.1) Similar pairs of these superangels are assigned to the planetary corps of Trinity Teacher Sons that functions to establish the postbestowal or dawning spiritual age of an inhabited world. 비슷한 이런 초(超)천사 쌍들은, 거주 세계의 증여 이후(以後) 혹은 영적 여명(黎明) 시대를 확립하려고 활동하는,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의 행성 단(團)에 배정됩니다. 37:2.10 (408.2) The Worlds of the Evening Stars. The sixth group of seven Salvington worlds and their forty-two tributary satellites are assigned to the administration of the Brilliant Evening Stars. 저녁별들의 세계들. 일곱 샐빙톤 세계의 여섯째 집단과 그것들의 42 종속 위성들은 찬란한 저녁별들의 경영에 할당되어 있습니다.

  1. The Archangels 천사장들

37:3.1 (408.4) Archangels are the offspring of the Creator Son and the Universe Mother Spirit. 천사장들은 창조주 아들과 우주 어머니 영(靈)의 자손입니다. 37:3.2 (408.5) Archangels are one of the few groups of local universe personalities who are not normally under the jurisdiction of Gabriel. 천사장들은 보통 가브리엘의 관할권에 없는 지역 우주 고유성들 중 소수 집단 중 하나입니다. 37:3.3 (408.6) The archangel corps of Nebadon is directed by the first-born of this order, and in more recent times a divisional headquarters of the archangels has been maintained on Urantia. 이 계열의 첫 태생이 네바돈의 천사장단(團)을 관리하며, 최근에 천사장의 분과 본부가 유란시아에 유지되었습니다.

37:3.4 (409.1) Do you grasp the significance of the fact that your lowly and confused planet has become a divisional headquarters for the universe administration and direction of certain archangel activities having to do with the Paradise ascension scheme? This undoubtedly presages the future concentration of other ascendant activities on the bestowal world of Michael and lends a tremendous and solemn import to the Master’s personal promise, “I will come again.” 너희는, 너희의 초라하고 혼란스러워하는 행성이 우주 경영과 천국 상승 기획에 관련된 어떤 천사장 활동의 관리를 위한 분과 본부가 되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파악합니까? 이것은 확실히, 미가엘의 증여 세계에서 다른 상승 활동에 속한 미래 집결의 전조(前兆)가 되며, “내가 다시 오리라.”는 주(主)님의 직접적 약속에 굉장히 엄연한 중요성을 제공합니다.

37:3.5 (409.2) In general, the archangels are assigned to the service and ministry of the Avonal order of sonship, but not until they have passed through extensive preliminary training in all phases of the work of the various ministering spirits. 대개 천사장들은, 아들된 아보날 계열의 섬김과 돌봄에 배치되지만, 그들이 다양하게 보살피는 영(靈)들의 모든 과업 단계에서 다방면의 예비 훈련을 통과할 때까지 배정받지 못합니다. 37:3.6 (409.3) Two senior archangels are always assigned as the personal aids of a Paradise Avonal on all planetary missions, whether involving judicial actions, magisterial missions, or bestowal incarnations. 천사장들 선임 2명이, 사법 활동, 치안 사명 혹은 증여 성육신을 포함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모든 행성 임무에서 천국 아보날의 개인적 조력자들로 언제나 배정됩니다.

37:3.7 (409.4) The Worlds of the Archangels. The seventh group of the encircling Salvington worlds, with their associated satellites, is assigned to the archangels. 천사장들의 세계들. 샐빙톤 세계들을 둘러싸는 일곱째 집단은, 관련된 그들의 위성들과 함께, 천사장들에게 배정됩니다. 37:3.8 (409.5) It is on these worlds that personality records and identification sureties are classified, filed, and preserved during that time which intervenes between mortal death and the hour of repersonalization, the resurrection from death. 이런 세계들에서, 필사자 죽음과 재(再)고유성화, 죽음에서 부활하는 시간 사이에 일어나는 그런 시간 동안, 고유성 기록들과 신분 증명 보증이 분류되고, 정리되어, 보존됩니다.

  1. Most High Assistants 지고(至高)보좌관들

37:4.1 (409.6) The Most High Assistants are a group of volunteering beings, of origin outside the local universe, who are temporarily assigned as central and superuniverse representatives to, or observers of, the local creations. 지고(至高)보좌관들은 지역 우주 밖에서 기원한, 자원(自願)하는 존재 집단이며, 지역 창조계에, 중앙 및 초우주 대표자들로서 혹은 지역 창조계의 관찰자들로서 임시로 배정되었습니다.

37:4.2 (409.7) From time to time we thus benefit from the ministry and assistance of such Paradise-origin beings as Perfectors of Wisdom, Divine Counselors, Universal Censors, Inspired Trinity Spirits, Trinitized Sons, Solitary Messengers, supernaphim, seconaphim, tertiaphim, and other gracious ministers, who sojourn with us for the purpose of helping our native personalities in the effort to bring all Nebadon into fuller harmony with the ideas of Orvonton and the ideals of Paradise. 때때로 우리는 모든 네바돈을 오르본톤의 관념들 및 천국의 이상(理想)들과 최대한 더 조화되도록, 우리의 토착 고유성들을 위해, 우리와 함께 머무는 지혜의 완전자들, 신적 조언자들, 우주 검열자들, 영감받은 삼위일체 영(靈)들, 삼위일체화 아들들, 단독 메신저들, 초천사들, 2품천사들, 3품천사들 및 다른 은혜로운 사역자들과 같은 그런 천국 기원 존재들의 보살핌과 지원으로 이렇게 혜택을 입습니다.

37:4.3 (410.1) Any of these beings may be voluntarily serving in Nebadon and hence be technically outside our jurisdiction, but when functioning by assignment, such personalities of the super- and central universes are not wholly exempt from the regulations of the local universe of their sojourn, though they continue to function as representatives of the higher universes and to work in accordance with the instructions which constitute their mission in our realm. 이런 존재 중 누구나 네바돈에서 자원하여 섬길 수 있어서, 기술적으로 우리 권한 밖에 있지만, 배정받아 활동할 때, 초우주 및 중앙 우주의 그런 고유성들은, 더 높은 우주의 대표자들로서 활동과 우주 영역에서 그들의 사명을 이루는 지시에 따른 일을 지속해도, 자신들이 머무는 지역 우주의 규정에서 완전히 면제되지 않습니다.

37:4.4 (410.2) Most High Assistants serve in local universe and in constellation capacities but are not directly attached to the system or planetary governments. 지고(至高)보좌관들은 지역 우주와 성좌에서 자격을 가지고 섬기지만, 체계나 행성 정부에 직접 소속되지 않습니다. 37:4.5 (410.3) Most of this corps is enlisted in assisting the Nebadon Paradise personalities — the Union of Days, the Creator Son, the Faithfuls of Days, the Magisterial Sons, and the Trinity Teacher Sons. 대부분의 이 집단은 네바돈 천국 고유성들-연합으로 늘 계신 이, 창조자 아들, 충심으로 늘 계신 이, 치안 아들들 및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을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지원합니다.

159-1 The Sermon on Forgiveness 용서에 대한 설교

1. The Sermon on Forgiveness 용서에 대한 설교

220109 거저 받은 용서 마10:8b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Freely you have received, freely give.

159:1.1 (1762.3) One evening at Hippos, in answer to a disciple’s question, Jesus taught the lesson on forgiveness. Said the Master: 어느 날 저녁 히포에서, 한 제자의 질문에 대답하여, 예수께서 용서에 대한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주(主)께서 말했습니다.

159:1.2 (1762.4) “If a kindhearted man has a hundred sheep and one of them goes astray, does he not immediately leave the ninety and nine and go out in search of the one that has gone astray? And if he is a good shepherd, will he not keep up his quest for the lost sheep until he finds it? And then, when the shepherd has found his lost sheep, he lays it over his shoulder and, going home rejoicing, calls to his friends and neighbors, ‘Rejoice with me, for I have found my sheep that was lost.’ I declare that there is more joy in heaven over one sinner who repents than over ninety and nine righteous persons who need no repentance. Even so, it is not the will of my Father in heaven that one of these little ones should go astray, much less that they should perish. In your religion God may receive repentant sinners; in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Father goes forth to find them even before they have seriously thought of repentance. “인정 많은 사람에게 일백 마리의 양이 있고 그중 하나가 길을 잃으면, 그가 아흔아홉 마리를 놓아두고 길 잃은 하나를 바로 찾아 나서지 않느냐? 그리고 그가 선한 목자(牧者)라면, 그가 잃은 양을 발견할 때까지 그것을 계속 수색(搜索)하지 않겠느냐? 그런 다음 목자(牧者)가 자기 잃은 양을 찾으면, 그가 그것을 자기 어깨에 메고 기쁘게 집에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내가 잃었던 내 양을 찾았으니 나와 함께 기뻐하자.’라며 부른다. 내가 선언하노니,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의 의인(義人) 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하늘에서 더 기뻐하리라. 그렇지만, 이런 작은 자들 중 하나가 길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 그들이 멸망하는 것은 더욱 아니라. 너희 종교의 하느님은 회개하는 죄인들을 받아들일 수 있으나 하느님 나라의 아버지는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를 생각하기도 전에 그들을 찾으러 나가시느니라(마18:12-14, 눅15:4-7).

159:1.3 (1762.5) “The Father in heaven loves his children, and therefore should you learn to love one another; the Father in heaven forgives you your sins; therefore should you learn to forgive one another. If your brother sins against you, go to him and with tact and patience show him his fault. And do all this between you and him alone. If he will listen to you, then have you won your brother. But if your brother will not hear you, if he persists in the error of his way, go again to him, taking with you one or two mutual friends that you may thus have two or even three witnesses to confirm your testimony and establish the fact that you have dealt justly and mercifully with your offending brother. Now if he refuses to hear your brethren, you may tell the whole story to the congregation, and then, if he refuses to hear the brotherhood, let them take such action as they deem wise; let such an unruly member become an outcast from the kingdom. While you cannot pretend to sit in judgment on the souls of your fellows, and while you may not forgive sins or otherwise presume to usurp the prerogatives of the supervisors of the heavenly hosts, at the same time, it has been committed to your hands that you should maintain temporal order in the kingdom on earth. While you may not meddle with the divine decrees concerning eternal life, you shall determine the issues of conduct as they concern the temporal welfare of the brotherhood on earth. And so, in all these matters connected with the discipline of the brotherhood, whatsoever you shall decree on earth, shall be recognized in heaven. Although you cannot determine the eternal fate of the individual, you may legislate regarding the conduct of the group, for, where two or three of you agree concerning any of these things and ask of me, it shall be done for you if your petition is not inconsistent with the will of my Father in heaven. And all this is ever true, for, where two or three believers are gathered together, there am I in the midst of them.” “하늘 아버지는 자기 자녀를 사랑하시며, 따라서 너희는 서로 사랑하기를 배워야 하느니라. 하늘 아버지는 너희 죄를 용서하시며, 따라서 너희는 서로 용서하기를 배워야 하느니라. 네 형제가 네게 죄를 범하면, 그에게 가서 슬기(처리 능력)와 인내로 그의 잘못을 밝히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너와 그 형제 사이에서만 행하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너는 네 형제를 얻은 것이라. 그러나 네 형제가 네 말을 듣지 않고, 그가 자기 잘못을 계속 고집하면, 너와 함께 서로 아는 한두 친구를 데리고 그에게 다시 가서 너는 이렇게 두세 증인까지 너의 증언을 확증하고 네가 너를 해친 형제를 공정하고 관대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라. 그때 그가 네 형제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너는 회중에 전말(顚末 처음부터 끝까지의 양상)를 알려도 되고, 그가 형제 공동체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들이 현명하게 여기는 그런 행동을 취하게 하라. 제멋대로 구는 그런 일원은 하느님 나라 밖으로 추방하라. 너희는 감히 너희 동료들의 혼(魂)들을 판가름할 수 없고, 너희가 죄를 용서하거나 달리 감히 하늘 무리 감독자들의 특권을 빼앗을 수 없지만, 그와 동시에 너희가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일시적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너희 손에 맡겨졌느니라. 너희는 영원한 생명에 관한 신적 판결에 간섭할 수 없지만, 그것들이 지상에서 형제 공동체의 일시적 복지에 있어서 중요한 행동 문제는 너희가 결정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그렇게, 형제 공동체의 질서에 관련된 이런 모든 문제에서, 너희가 지상에서 판결한 무엇이든지, 하늘에서 승인(承認 마땅하다고 인정)될 것이라. 너희는 개인의 영원한 파멸을 결정할 수 없지만, 너희는 단체의 경영에 관해 법규를 제정할 수도 있는 것은, 이런 일 중 어떤 것에 관해 너희 중 둘 셋이 마음이 맞아 내게 구하고, 너희 간구가 내 하늘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면, 그것이 너희를 위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항상 틀림이 없으니, 두세 명의 신자가 함께 모인 곳에 내가 그들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니라(마18:15-20).”

159:1.4 (1763.1) Simon Peter was the apostle in charge of the workers at Hippos, and when he heard Jesus thus speak, he asked: “Lord, how often shall my brother sin against me, and I forgive him? Until seven times?” And Jesus answered Peter: “Not only seven times but even to seventy times and seven. Therefore may the kingdom of heaven be likened to a certain king who ordered a financial reckoning with his stewards. And when they had begun to conduct this examination of accounts, one of his chief retainers was brought before him confessing that he owed his king ten thousand talents. Now this officer of the king’s court pleaded that hard times had come upon him, and that he did not have wherewith to pay this obligation. And so the king commanded that his property be confiscated, and that his children be sold to pay his debt. When this chief steward heard this stern decree, he fell down on his face before the king and implored him to have mercy and grant him more time, saying, ‘Lord, have a little more patience with me, and I will pay you all.’ And when the king looked upon this negligent servant and his family, he was moved with compassion. He ordered that he should be released, and that the loan should be wholly forgiven. 시몬 베드로는 히포의 일꾼(전도자)들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그가 듣고 질문했습니다. “주여, 내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내가 몇 번 그를 용서할까요? 일곱 번까지인가요?”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이라도 일곱 번 하라. 따라서 하늘나라는 자기 청지기들에게 재정 결산을 지시한 어떤 왕에 견줄 수 있느니라. 그들이 계정(計定) 심사 집행을 시작하자, 그의 수석 신하 중 하나가 그 앞에 끌려와 자기 왕에게 1만 달란트(6조 10만/일 경우, 1달란트=6,000데나리온, 드라크마)의 빚을 졌다고 고백했느니라. 그때 왕의 조정(朝廷)에 속한 이 관리가, 자기에게 궁핍한 시기가 엄습하여 이 채무를 갚을 것이 없다고 간청했느니라. 그러자 왕이 그의 재산을 압류하고 그의 자녀를 팔아 빚을 갚으라고 명령했더라. 이 수석 청지기가 이렇게 준엄한 판결을 듣고 왕 앞에 엎드려 자비를 베풀어 자신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간청하여 말하기를 ‘주여, 조금 더 저를 참아 주시면 제가 모두 갚겠습니다.’ 왕이 이 게으른 하인과 그의 가족을 보자, 불쌍한 마음이 들었느니라. 왕이 그를 놓아주고, 대출금을 완전히 탕감(蕩減)하라고 명령했느니라(마18:21-27).

159:1.5 (1763.2) “And this chief steward, having thus received mercy and forgiveness at the hands of the king, went about his business, and finding one of his subordinate stewards who owed him a mere hundred denarii, he laid hold upon him and, taking him by the throat, said, ‘Pay me all you owe.’ And then did this fellow steward fall down before the chief steward and, beseeching him, said: ‘Only have patience with me, and I will presently be able to pay you.’ But the chief steward would not show mercy to his fellow steward but rather had him cast in prison until he should pay his debt. When his fellow servants saw what had happened, they were so distressed that they went and told their lord and master, the king. When the king heard of the doings of his chief steward, he called this ungrateful and unforgiving man before him and said: ‘You are a wicked and unworthy steward. When you sought for compassion, I freely forgave you your entire debt. Why did you not also show mercy to your fellow steward, even as I showed mercy to you?’ And the king was so very angry that he delivered his ungrateful chief steward to the jailers that they might hold him until he had paid all that was due. And even so shall my heavenly Father show the more abundant mercy to those who freely show mercy to their fellows. How can you come to God asking consideration for your shortcomings when you are wont to chastise your brethren for being guilty of these same human frailties? I say to all of you: Freely you have received the good things of the kingdom; therefore freely give to your fellows on earth.” “왕의 손에서 이렇게 자비와 용서를 받은 이 수석 청지기가 자기 업무를 시작하다가 자신에게 단지 100데나리온 빚진 자기 하급 청지기 중 하나를 발견하고, 그를 붙잡아 그의 목을 조르며 ‘네가 빚진 모두를 내게 갚으라.’라고 말했더라. 그러자 이 동료 청지기가 수석 청지기 앞에 엎드려, 간청하며 ‘나를 조금만 참아 주시면, 제가 즉시 갚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더라. 그러나 수석 청지기는 자기 동료 청지기에서 자비를 베풀지 않고 도리어 그가 자기 빚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넣었더라. 그의 동료 하인들이 일어난 일을 보고, 너무 괴로워하다가 그들의 군주이며 주인인 왕에게 가서 말했더라. 왕이 자기 수석 청지기의 소행을 듣고, 은혜를 모르고 용서하지 않는 이 사람을 자기 앞에 불러 ‘너는 사악하고 쓸모없는 청지기니라. 네가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을 때, 내가 네 모든 빚을 기꺼이 탕감(蕩減)했도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풀었듯이, 너 또한 너의 동료 청지기에게 왜 자비를 베풀지 않았느냐?’라고 말했더라. 그리고 왕은 아주 몹시 화가 나서 은혜를 모르는 자기 수석 청지기를 교도관들에게 넘겨서 그가 만기(滿期)된 모두를 갚을 때까지 그를 잡아두었더라. 바로 내 하늘 아버지는 자기 동료들에게 기꺼이 자비를 베푸는 자들에게 더 풍성한 자비를 베풀리라. 너희가 이와 같은 인간적 약점의 과실에 대해 늘 너희 형제를 호되게 책망하면서, 어떻게 하느님께 나와 너희가 너희 결점을 헤아려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느냐? 내가 너희 모두에게 이르노라. 너희가 거저 하느님 나라의 좋은 것들을 받았으니, 지상에서 너의 동료들에게 거저 주어라(마18:28-35).”

159:1.6 (1764.1) Thus did Jesus teach the dangers and illustrate the unfairness of sitting in personal judgment upon one’s fellows. Discipline must be maintained, justice must be administered, but in all these matters the wisdom of the brotherhood should prevail. Jesus invested legislative and judicial authority in the group, not in the individual. Even this investment of authority in the group must not be exercised as personal authority. There is always danger that the verdict of an individual may be warped by prejudice or distorted by passion. Group judgment is more likely to remove the dangers and eliminate the unfairness of personal bias. Jesus sought always to minimize the elements of unfairness, retaliation, and vengeance. 예수께서 이렇게 위험을 가르치고, 자기 동료들을 개인적으로 판가름하는 부당성(不當性 이치에 맞지 않음)을 설명하셨습니다. 규율이 유지되고, 정의(正義)가 지배해야 하지만, 이 모든 문제에서 형제 공동체의 지혜가 우세(優勢)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입법권과 사법적 권위를 맡겼습니다. 집단의 이런 권위 임명도 개인적 권위로 행사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인의 판단은 편견으로 치우치거나 열정으로 왜곡될 수 있는 위험이 언제나 있습니다. 집단 판결이 위험을 제거하고 개인적 편견의 부당성을 몰아낼 가능성이 더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부당성(不當性), 보복(報復)과 복수(復讎)의 요소를 최소로 하려고 애썼습니다.

159:1.7 (1764.2) [The use of the term seventy-seven as an illustration of mercy and forbearance was derived from the Scriptures referring to Lamech’s exultation because of the metal weapons of his son Tubal-Cain, who, comparing these superior instruments with those of his enemies, exclaimed: “If Cain, with no weapon in his hand, was avenged seven times, I shall now be avenged seventy-seven.”][자기 대적들의 무기들과 우수한 이런 도구들을 비교하면서, “카인의 손에 어떤 무기도 없이 그가 일곱 번 복수했다면, 나는 이제 일흔-일곱번 복수하리라.”라고 외치며, 자기 아들 투발-카인의 금속 무기 때문에, 미칠 듯이 기뻐하는 라멕을 언급하는 성서에서, 자비와 관용의 실례로 칠십-칠이라는 용어 사용이 유래되었습니다(창4:24).]

85-1 Worship of Stones and Hills 돌과 언덕 숭배

1. Worship of Stones and Hills 돌과 언덕 숭배

85:1.1 (944.5) The first object to be worshiped by evolving man was a stone. Today the Kateri people of southern India still worship a stone, as do numerous tribes in northern India. Jacob slept on a stone because he venerated it; he even anointed it. Rachel concealed a number of sacred stones in her tent. 진화하는 사람이 숭배하는 최초의 대상은 돌이었습니다. 오늘날 남부 인도의 카테리 인종은, 수많은 북부 인도의 부족들이 하듯이, 여전히 돌을 숭배합니다. 야곱은 돌을 받들었기 때문에 돌 위에서 잤습니다(창28:11). 그는 그것을 성별(聖別)하여 기름까지 부었습니다(창28:18). 라헬은 자기 천막에 몇 개의 신성한 돌들을 감추었습니다(창31:19, 34).

85:1.2 (944.6) Stones first impressed early man as being out of the ordinary because of the manner in which they would so suddenly appear on the surface of a cultivated field or pasture. Men failed to take into account either erosion or the results of the overturning of soil. Stones also greatly impressed early peoples because of their frequent resemblance to animals. The attention of civilized man is arrested by numerous stone formations in the mountains which so much resemble the faces of animals and even men. But the most profound influence was exerted by meteoric stones which primitive humans beheld hurtling through the atmosphere in flaming grandeur. The shooting star was awesome to early man, and he easily believed that such blazing streaks marked the passage of a spirit on its way to earth. No wonder men were led to worship such phenomena, especially when they subsequently discovered the meteors. And this led to greater reverence for all other stones. In Bengal many worship a meteor which fell to earth in A.D. 1880. 돌들이 경작지(耕作地)나 목초지 표면에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는 방식 때문에, 그것들은 먼저 고대인에게 예사롭지 않은 것으로 인상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침식 작용과 땅이 뒤집힌 결과를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돌들은 흔히 동물들을 닮아서 고대인들은 그것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동물과 심지어 사람들의 얼굴을 아주 많이 닮은, 산에 있는 수많은 형태의 돌들이 문명인들의 주의를 끕니다. 그러나 원시인들이 웅장하게 이글거리며 대기를 뚫고 돌진하는 운석(隕石)을 보았을 때 가장 깊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유성(流星)은 고대인에게 경외심을 일으켰고, 그렇게 불타는 광선은 영(靈)이 지상으로 오는 통로의 표시라고 그는 쉽게 믿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그 후 운석(隕石)들을 발견했을 때, 그들이 그런 현상을 숭배하게 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다른 돌들에 대한 더 큰 숭배로 이어졌습니다. 벵골에서 다수가 AD 1880년 지상에 떨어진 운석(隕石)을 숭배합니다(인도 북동부 벵갈의 시타마르히, Andhara, Muzaffarpur district, Bengal, India. Fell 1880, Dec. 2, 4 p.m. Stone. A stone weighing about 6 lb. was seen to fall and was made an object of worship in a temple built over the place of fall (L. L. Fermor, Rec. Geol. Surv. India, 1907, vol. 35, pt, 2, p. 92). The Popular Religion and Folklore of Northern India by which was published in 1896 by Crooke, Encyclopaedia of Superstitions, Folklore, and the Occult Sciences of the World by which was published in 1903 by Cora Linn Daniels, C. M. Stevans).

85:1.3 (945.1) All ancient clans and tribes had their sacred stones, and most modern peoples manifest a degree of veneration for certain types of stones — their jewels. A group of five stones was reverenced in India; in Greece it was a cluster of thirty; among the red men it was usually a circle of stones. The Romans always threw a stone into the air when invoking Jupiter. In India even to this day a stone can be used as a witness. In some regions a stone may be employed as a talisman of the law, and by its prestige an offender can be haled into court. But simple mortals do not always identify Deity with an object of reverent ceremony. Such fetishes are many times mere symbols of the real object of worship. 모든 고대의 씨족과 부족은 자신들의 신성한 돌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현대 민족들은 어떤 유형의 돌들 – 자신들의 보석들에 대해 어느 정도 높이 우러러봅니다. 인도에서는 5개 돌의 묶음을, 그리스에서는 30개 돌의 군(群)을, 홍인(紅人)들은 대개 돌로 만든 고리를 우러러봤습니다. 로마인들은 주피터(제우스)에게 빌면서 언제나 공중에 돌을 던졌습니다. 오늘날까지 인도에서 돌을 증인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지역에서 돌은 율법의 부적으로 사용되었고, 돌의 위세(威勢)로, 위반자는 법정에 끌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진한 필사자들이 신(神)을 숭배 의식의 대상과 언제나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그런 주물(呪物)들은 숭배하는 실제 대상의 상징들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85:1.4 (945.2) The ancients had a peculiar regard for holes in stones. Such porous rocks were supposed to be unusually efficacious in curing diseases. Ears were not perforated to carry stones, but the stones were put in to keep the ear holes open. Even in modern times superstitious persons make holes in coins. In Africa the natives make much ado over their fetish stones. In fact, among all backward tribes and peoples stones are still held in superstitious veneration. Stone worship is even now widespread over the world. The tombstone is a surviving symbol of images and idols which were carved in stone in connection with beliefs in ghosts and the spirits of departed fellow beings. 고대인들은 돌들의 구멍들을 특별히 주목했습니다. 그런 다공성(多孔性) 바위들은 질병 치료에 대단히 효험이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돌을 매달려고 귓구멍을 뚫은 것이 아니라 귓구멍을 열어두려고 돌을 넣었습니다. 현대에도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동전에 구멍을 뚫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주물 돌들을 둘러싸고 법석을 떱니다. 사실, 후진 부족들과 민족들 사이에서 여전히 돌들이 미신적으로 숭배됩니다. 돌 숭배는 지금도 전 세계에 퍼져 있습니다. 묘비(墓碑)는, 죽은 동료 존재의 유령(有靈)들과 영(靈)들을 믿는 것과 관련하여, 돌에 새겨진 형상과 우상의 생존 상징입니다.

85:1.5 (945.3) Hill worship followed stone worship, and the first hills to be venerated were large stone formations. It presently became the custom to believe that the gods inhabited the mountains, so that high elevations of land were worshiped for this additional reason. As time passed, certain mountains were associated with certain gods and therefore became holy. The ignorant and superstitious aborigines believed that caves led to the underworld, with its evil spirits and demons, in contrast with the mountains, which were identified with the later evolving concepts of good spirits and deities. 언덕 숭배가 돌 숭배의 뒤를 이었고, 숭배한 첫 언덕들은 커다란 돌 형성층(層)이었습니다. 이것은 즉시 신과 같은 존재들이 산에 산다고 믿는 관습이 되어서, 땅의 고지대(高地帶)가 이런 추가적 이유로 숭배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떤 산들은 어떤 신과 같은 존재들과 관련되어서 거룩해졌습니다. 무지하게 미신에 사로잡힌 토착민들은, 나중에 선한 영(靈)들 및 신(神)들의 진화하는 개념과 동일시되었던, 산들과는 현저히 다르게, 동굴들이 악령들과 귀신들이 있는 저승으로 이어졌다고 믿었습니다.

38-9 The Midway Creatures 중도 창조물들

9. The Midway Creatures 중도 창조물들

38:9.1 (424.1) The midway creatures have a threefold classification: They are properly classified with the ascending Sons of God; they are factually grouped with the orders of permanent citizenship, while they are functionally reckoned with the ministering spirits of time because of their intimate and effective association with the angelic hosts in the work of serving mortal man on the individual worlds of space. 중도 창조물들은 3부분으로 구별합니다. 그들은 당연히 하느님의 상승 아들들로 분류됩니다. 그들은 사실 영구 시민권 계열로 분류되지만, 공간의 개별 세계들에서 필사 사람을 섬기는 일로 천사 무리와 친밀히 실제로 연합하기 때문에 그들은 기능상 시간의 보살피는 영(靈)들에 속합니다.

38:9.2 (424.2) These unique creatures appear on the majority of the inhabited worlds and are always found on the decimal or life-experiment planets, such as Urantia. Midwayers are of two types — primary and secondary — and they appear by the following techniques: 이런 독특한 창조물들은 대부분의 거주 세계들에 출현하며 유란시아와 같은 십진법 즉 생명-실험 행성들에서 언제나 발견됩니다. 중도자들은 1차와 2차 두 가지 유형이 있으며, 그들은 다음의 기법들에 따라서 출현합니다.

38:9.3 (424.3) 1. Primary Midwayers, the more spiritual group, are a somewhat standardized order of beings who are uniformly derived from the modified ascendant-mortal staffs of the Planetary Princes. The number of primary midway creatures is always fifty thousand, and no planet enjoying their ministry has a larger group. 더 영적 집단인, 1차 중도자들은 행성 왕자들의 변경된 상승-필사자 참모들로부터 고르게 파생했으며, 어느 정도 표준화한 계열 존재들입니다. 1차 중도(中途) 창조물들의 수(數)는 항상 5만 명이며, 그들의 보살핌을 누리는 어떤 행성도 더 큰 집단을 갖지 않습니다.

38:9.4 (424.4) 2. Secondary Midwayers, the more material group of these creatures, vary greatly in numbers on the different worlds, though the average is around fifty thousand. They are variously derived from the planetary biologic uplifters, the Adams and Eves, or from their immediate progeny. There are no less than twenty-four diverse techniques involved in the production of these secondary midway creatures on the evolutionary worlds of space. The mode of origin for this group on Urantia was unusual and extraordinary. 이런 창조물 중에서 더 물질적 집단인, 2차 중도자(中途者)들은 평균치가 약 5만 명이지만, 다른 세계들에서는 그 수(數)가 아주 다양합니다. 그들은 행성의 생물학적 향상(向上)자들, 아담들과 이브들 즉 그들의 직계 자손에서 다양하게 파생합니다. 공간의 진화 세계들에서 이런 2차 중도 창조물들의 생산에 관련된 다양한 기법들은 무려 24가지나 됩니다. 유란시아에서 이 집단의 기원 방식은 유별나고 특별했습니다.

38:9.5 (424.5) Neither of these groups is an evolutionary accident; both are essential features in the predetermined plans of the universe architects, and their appearance on the evolving worlds at the opportune juncture is in accordance with the original designs and developmental plans of the supervising Life Carriers. 이 중 어느 집단도 진화적 우발사고가 아닙니다. 둘 다 우주 건축가들이 예정한 계획에 있는 필수 특징들이며, 적절한 때에 진화 세계에서 그들의 출현은 감독하는 생명 운반자들의 원래 설계와 개발 계획과 일치합니다.

38:9.6 (424.6) Primary midwayers are energized intellectually and spiritually by the angelic technique and are uniform in intellectual status.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make no contact with them; and only the sixth and the seventh, the spirit of worship and the spirit of wisdom, are able to minister to the secondary group. 1차 중도자들은 천사의 기법으로 지적, 영적으로 에너지를 얻고, 지적 상태는 한결같습니다. 일곱 보조 마음-영(靈)들은 그들과 연락을 취하지 않습니다. 여섯째와 일곱째, 경배의 영(靈)과 지혜의 영(靈)만 2차 집단을 돌볼 수 있습니다.

38:9.7 (424.7) Secondary midwayers are physically energized by the Adamic technique, spiritually encircuited by the seraphic, and intellectually endowed with the morontia transition type of mind. They are divided into four physical types, seven orders spiritually, and twelve levels of intellectual response to the joint ministry of the last two adjutant spirits and the morontia mind. These diversities determine their differential of activity and of planetary assignment. 2차 중도자들은 아담의 기법으로 물리적으로 에너지를 얻고, 세라핌 기법으로 영적으로 회로화하며, 지적으로 마음에 속한 모론시아 변이(變移) 유형의 재능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리적 4개 유형, 영적으로 7개 계열과, 마지막 두 보조 영(靈)들 및 모론시아 마음의 공동 돌봄에 대한 12개 수준의 지적 반응으로 분류됩니다. 이런 다양성이 자신들 활동 및 행성 임무의 차이를 결정합니다.

38:9.8 (424.8) Primary midwayers resemble angels more than mortals; the secondary orders are much more like human beings. Each renders invaluable assistance to the other in the execution of their manifold planetary assignments. The primary ministers can achieve liaison co-operation with both morontia- and spirit-energy controllers and mind circuiters. The secondary group can establish working connections only with the physical controllers and the material-circuit manipulators. But since each order of midwayer can establish perfect synchrony of contact with the other, either group is thereby able to achieve practical utilization of the entire energy gamut extending from the gross physical power of the material worlds up through the transition phases of universe energies to the higher spirit-reality forces of the celestial realms. 1차 중도자들은 필사자들보다 천사들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2차 계열은 인간과 훨씬 더 비슷합니다. 각각은 그들의 다양한 행성 임무 실행에서 서로에게 매우 귀중한 도움이 됩니다. 1차 사역자들은 모론시아 및 영-에너지 조정자들과 마음 회로자들 둘 모두에게 연락관으로 협업을 할 수 있습니다. 2차 집단은 물리 조정자들과 물질-회로 조종자들과만 작업 연결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 계열의 중도자는 다른 계열과 접촉하여 완전히 동기화할 수 있어서, 각 집단은, 그것으로, 물질세계들의 총(總) 물리력으로부터 우주 에너지들의 변이(變移) 단계를 거쳐 천상 영역의 상급 영(靈)-실체 기세들까지 확장되는 전반적인 모든 에너지를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38:9.9 (425.1) The gap between the material and spiritual worlds is perfectly bridged by the serial association of mortal man, secondary midwayer, primary midwayer, morontia cherubim, mid-phase cherubim, and seraphim. In the personal experience of an individual mortal these diverse levels are undoubtedly more or less unified and made personally meaningful by the unobserved and mysterious operations of the divine Thought Adjuster. 물질과 영적 세계 사이의 간격은 필사 사람, 2차 중도자, 1차 중도자, 모론시아 케루빔, 중간-단계 케루빔 및 세라핌의 연속적 연합으로 완전히 메워집니다. 개별 필사자의 개인적 체험에서, 이런 다양한 수준은 반드시 거의 통합되고, 신적 생각 조율자의 관찰되지 않는 신비한 작용으로, 개인적 의미가 있습니다.

38:9.10 (425.2) On normal worlds the primary midwayers maintain their service as the intelligence corps and as celestial entertainers in behalf of the Planetary Prince, while the secondary ministers continue their co-operation with the Adamic regime of furthering the cause of progressive planetary civilization. In case of the defection of the Planetary Prince and the failure of the Material Son, as occurred on Urantia, the midway creatures become the wards of the System Sovereign and serve under the directing guidance of the acting custodian of the planet. But on only three other worlds in Satania do these beings function as one group under unified leadership as do the united midway ministers of Urantia. 보통 세계들에서 1차 중도자들은 정보단(情報團)과 행성 왕자를 위한 천상의 예능자들로서 자신들의 봉사를 지속하는 한편, 2차 사역자들은 진보적 행성 문명 운동을 촉진하는 아담 체제와 자신들이 계속 협력합니다. 유란시아에서 일어났듯이, 행성 왕자의 변절과 물질 아들의 실패 경우에, 중도 창조물들은 체계 주권자의 피보호자들이 되며, 행성의 임시 관리자의 지도 관리에 따라 섬깁니다. 그러나 사타니아에 속한 다른 3개의 세계에서만, 유란시아의 연합 중도 사역자들이 하듯이 이런 존재들은 통합된 지도력에 따라 한 집단으로 활동합니다.

38:9.11 (425.3) The planetary work of both primary and secondary midwayers is varied and diverse on the numerous individual worlds of a universe, but on the normal and average planets their activities are very different from the duties which occupy their time on isolated spheres, such as Urantia. 1차 및 2차 중도자들 둘 모두의 행성 과업은 우주의 수많은 개별 세계에서 다양하고 여러 가지이지만, 보통 평균적 행성에서 그들의 활동은, 유란시아와 같은 고립된 구체들에서 그들이 시간을 보내는 임무와 아주 다릅니다.

38:9.12 (425.4) The primary midwayers are the planetary historians who, from the time of the arrival of the Planetary Prince to the age of settled light and life, formulate the pageants and design the portrayals of planetary history for the exhibits of the planets on the system headquarters worlds. 1차 중도자들은, 행성 왕자가 도착한 때부터 정착한 빛과 생명의 시대까지, 체계 본부 세계들에서 행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연출(演出) 무대를 고안하고 행성 역사의 연기(演技)를 설계하는, 행성 역사가들입니다.

38:9.13 (425.5) Midwayers remain for long periods on an inhabited world, but if faithful to their trust, they will eventually and most certainly be recognized for their agelong service in maintaining the sovereignty of the Creator Son; they will be duly rewarded for their patient ministry to the material mortals on their world of time and space. Sooner or later all accredited midway creatures will be mustered into the ranks of the ascending Sons of God and will be duly initiated into the long adventure of the Paradise ascent in company with those very mortals of animal origin, their earth brethren, whom they so jealously guarded and so effectively served during the long planetary sojourn. 중도자들은 거주 세계에 오랜 기간 남아 있지만, 그들의 신뢰에 충실하면, 그들은 결국 절대로 틀림없이, 창조자 아들의 주권 유지를 위한 자신들의 오랜 봉사에 대해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공간 세계에서 물질 필사자들에게 자신들이 인내하며 돌본 것에 대해 충분히 보상(報償)될 것입니다. 머잖아 승인된 모든 중도 창조물들은 하느님의 상승 아들들 대열로 소집될 것이며, 자신들이 그토록 방심하지 않고 보호했고, 행성에 오래 머물면서 그토록 실질적으로 섬겼던, 동물 기원의 바로 그 필사자들, 자신들의 지상 형제들과 함께 천국 상승의 긴 모험에 마땅히 들어갈 것입니다.

38:9.14 (425.6) [Presented by a Melchizedek acting by request of the Chief of the Seraphic Hosts of Nebadon.][네바돈에 속한 세라핌 무리 수석의 요청으로 활동하는 멜기세덱이 제시함]

159-0 The Decapolis Tour 데카폴리스 여행

Paper 159

The Decapolis Tour 데카폴리스 여행

220102 데카폴리스 여행 막5: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So the man went away and began to tell in the Decapolishow much Jesus had done for him. And all the people were amazed.

159:0.1 (1762.1) WHEN Jesus and the twelve arrived at Magadan Park, they found awaiting them a group of almost one hundred evangelists and disciples, including the women’s corps, and they were ready immediately to begin the teaching and preaching tour of the cities of the Decapolis. 예수님과 열둘이 마가단 공원에 도착했을 때,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거의 1백 명의 전도자들과 제자들 무리를 발견했는데, 여성단도 포함되었으며, 그들은 데카폴리스의 도시에서 즉시 가르치고 전도하는 여행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159:0.2 (1762.2) On this Thursday morning, August 18, the Master called his followers together and directed that each of the apostles should associate himself with one of the twelve evangelists, and that with others of the evangelists they should go out in twelve groups to labor in the cities and villages of the Decapolis. The women’s corps and others of the disciples he directed to remain with him. Jesus allotted four weeks to this tour, instructing his followers to return to Magadan not later than Friday, September 16. He promised to visit them often during this time. In the course of this month these twelve groups labored in Gerasa, Gamala, Hippos, Zaphon, Gadara, Abila, Edrei, Philadelphia, Heshbon, Dium, Scythopolis, and many other cities. Throughout this tour no miracles of healing or other extraordinary events occurred. (AD 29) 8월 18일 목요일 이 아침에 주께서 따르는 자들을 불러 모아, 각 사도가 12 전도자 중 하나와 합하여, 데카폴리스 도시와 마을에서 다른 전도자들과 함께 12그룹으로 수고하러 나가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여성단과 다른 제자들은 자신과 함께 남도록 지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행에 4주를 배정하고, 9월 16일 금요일을 넘기지 말고 마가단에 돌아오도록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지시했습니다. 그는 이 기간에 종종 그들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월내(月內)에 이 열두 그룹은 게라사, 가말라, 히포, 자폰, 가다라, 아빌라, 에드레이, 필라델피아, 헤스본, 디움, 스키토폴리스와 다른 여러 도시에서 수고했습니다. 이 여행 내내 치유의 기적이나 다른 놀라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85-0 The Origins of Worship 경배의 기원들

Paper 85

The Origins of Worship 경배의 기원들

85:0.1 (944.1) PRIMITIVE religion had a biologic origin, a natural evolutionary development, aside from moral associations and apart from all spiritual influences. The higher animals have fears but no illusions, hence no religion. Man creates his primitive religions out of his fears and by means of his illusions. 도덕적 관련성을 제외하고 모든 영적 영향 없이, 원시 종교는 생물학적 기원을 갖고, 자연 진화적으로 발생했습니다. 고등 동물은 두려움이 있지만, 환상(幻想)이 없어서 종교가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 두려움을 통해 자기 환상(幻想)에 의해 자신의 원시 종교를 만들어 냅니다.

85:0.2 (944.2) In the evolution of the human species, worship in its primitive manifestations appears long before the mind of man is capable of formulating the more complex concepts of life now and in the hereafter which deserve to be called religion. Early religion was wholly intellectual in nature and was entirely predicated on associational circumstances. The objects of worship were altogether suggestive; they consisted of the things of nature which were close at hand, or which loomed large in the commonplace experience of the simple-minded primitive Urantians. 인류의 진화에서 원시적 표현의 경배는 인간 마음이 종교라고 부를 만한 현재와 내세의 삶에 대해 더 복잡한 개념을 명확히 말할 수 있기 훨씬 전에 나타납니다. 초기 종교는 사실상 완전히 지적이었고, 완전히 관련된 상황에 근거했습니다. 숭배의 대상은 모두 연상적(聯想的)이었습니다. 그것들은 가까이에 있거나 단순한 원시 유란시아 사람들의 흔한 체험에서 어렴풋이 크게 떠오른 자연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85:0.3 (944.3) When religion once evolved beyond nature worship, it acquired roots of spirit origin but was nevertheless always conditioned by the social environment. As nature worship developed, man’s concepts envisioned a division of labor in the supermortal world; there were nature spirits for lakes, trees, waterfalls, rain, and hundreds of other ordinary terrestrial phenomena. 종교가 일단 자연 숭배를 넘어서 진화하자, 그것은 영(靈) 기원의 뿌리를 얻었음에도 언제나 사회적 환경에 달려 있었습니다. 자연 숭배의 발달에 따라, 사람의 개념은 초(超)필사 세계의 분업(分業)을 상상했습니다. 호수, 나무, 폭포, 비 및 수백 가지의 다른 보통 지면(地面) 현상에 대한 자연의 영(靈)들이 있었습니다.

85:0.4 (944.4) At one time or another mortal man has worshiped everything on the face of the earth, including himself. He has also worshiped about everything imaginable in the sky and beneath the surface of the earth. Primitive man feared all manifestations of power; he worshiped every natural phenomenon he could not comprehend. The observation of powerful natural forces, such as storms, floods, earthquakes, landslides, volcanoes, fire, heat, and cold, greatly impressed the expanding mind of man. The inexplicable things of life are still termed “acts of God” and “mysterious dispensations of Providence.” 한 번쯤 필사 사람은 자신을 포함하여 지면의 무엇이나 숭배했습니다. 그는 또한 하늘과 지면 아래의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무엇이나 다 숭배했습니다. 원시인은 모든 권능의 현상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파악할 수 없는 모든 자연 현상을 숭배했습니다. 폭풍, 홍수, 지진, 산사태, 화산, 불, 열 및 추위와 같은 강력한 자연력을 관찰하면서 팽창하는 인간의 마음에 크게 새겨졌습니다. 삶에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아직도 “하느님의 행위(불가항력)”와 “불가사의한 신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38-8 Evolution of Cherubim and Sanobim 케루빔과 사노빔의 진화

8. Evolution of Cherubim and Sanobim 케루빔과 사노빔의 진화

38:8.1 (423.1) Numerous avenues of advancing service are open to cherubim and sanobim leading to an enhancement of status, which may be still further augmented by the embrace of the Divine Minister. There are three great classes of cherubim and sanobim with regard to evolutionary potential: 신적 성직자의 포옹으로 더욱 증대될 수 있는 지위 고양(高揚)으로 이어져, 섬김을 증진하는 수많은 방법이 케루빔과 사노빔에게 열려 있습니다. 진화적 잠재력에 관하여 케루빔과 사노빔을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38:8.2 (423.2) 1. Ascension Candidates. These beings are by nature candidates for seraphic status. Cherubim and sanobim of this order are brilliant, though not by inherent endowment equal to the seraphim; but by application and experience it is possible for them to attain full seraphic standing. 상승 후보자들. 이 존재들은 본래 세라핌 신분의 후보자들입니다. 이 계열의 케루빔과 사노빔은 찬란하지만, 타고난 재질은 세라핌과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용과 체험으로 그들은 충분히 세라핌 신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38:8.3 (423.3) 2. Mid-phase Cherubim. All cherubim and sanobim are not equal in ascension potential, and these are the inherently limited beings of the angelic creations. Most of them will remain cherubim and sanobim, although the more gifted individuals may achieve limited seraphic service. 중간-단계 케루빔. 모든 케루빔과 사노빔의 상승 잠재력은 같지 않으며, 이들은 본래 천사 창조계에 속한 제한된 존재들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케루빔과 사노빔으로 남을 것이지만 더 유능한 개별존재들은 제한된 세라핌 섬김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38:8.4 (423.4) 3. Morontia Cherubim. These “fourth creatures” of the angelic orders always retain their quasi-material characteristics. They will continue on as cherubim and sanobim, together with a majority of their mid-phase brethren, pending the completed factualization of the Supreme Being. 모론시아 케루빔. 천사 계열 중 이런 “넷째 창조물들”은 항상 자신들의 반(半)-물질 특질을 지닙니다. 그들은, 자기들 대부분의 중간-단계 형제들과 함께, 최극 존재의 사실화가 완료될 때까지, 계속 케루빔과 사노빔으로 있을 것입니다.

38:8.5 (423.5) While the second and third groups are somewhat limited in growth potential, the ascension candidates may attain the heights of universal seraphic service. Many of the more experienced of these cherubim are attached to the seraphic guardians of destiny and are thus placed in direct line for advancement to the status of Mansion World Teachers when deserted by their seraphic seniors. Guardians of destiny do not have cherubim and sanobim as helpers when their mortal wards attain the morontia life. And when other types of evolutionary seraphim are granted clearance for Seraphington and Paradise, they must forsake their former subordinates when they pass out of the confines of Nebadon. Such deserted cherubim and sanobim are usually embraced by the Universe Mother Spirit, thus achieving a level equivalent to that of a Mansion World Teacher in the attainment of seraphic status. 둘째와 셋째 집단은 성장 잠재력이 약간 제한적이지만, 상승 후보자들은 우주 세라핌 봉사의 정점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케루빔 중 많이 체험한 대다수는 운명의 세라핌 보관자들에게 배속되어, 그들의 세라핌 선임들이 떠나면 저택 세계 교사들의 자격에 진출하는 직항로에 놓입니다. 운명 관리자들은 자신들의 필사 피보호자들이 모론시아 생명을 얻으면, 케루빔과 사노빔을 조수들로 갖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유형의 진화 세라핌이 천사별과 천국으로 출국 허가서를 받아, 그들이 네바돈의 경계 밖으로 나갈 때, 그들은 자신들의 이전 부하들을 떠나야 합니다. 우주 어머니 영(靈)이 대개 그렇게 유기된 케루빔과 사노빔을 포옹하여, 세라핌 자격에 도달한 저택 세계 교사의 자격과 같은 수준에 이릅니다.

38:8.6 (423.6) When, as Mansion World Teachers, the once-embraced cherubim and sanobim have long served on the morontia spheres, from the lowest to the highest, and when their corps on Salvington is overrecruited, the Bright and Morning Star summons these faithful servants of the creatures of time to appear in his presence. The oath of personality transformation is administered; and thereupon, in groups of seven thousand, these advanced and senior cherubim and sanobim are re-embraced by the Universe Mother Spirit. From this second embrace they emerge as full-fledged seraphim. Henceforth, the full and complete career of a seraphim, with all of its Paradise possibilities, is open to such reborn cherubim and sanobim. Such angels may be assigned as guardians of destiny to some mortal being, and if the mortal ward attains survival, then do they become eligible for advancement to Seraphington and the seven circles of seraphic attainment, even to Paradise and the Corps of the Finality. 저택 세계 교사들로서 한번-품에 안긴 케루빔과 사노빔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모론시아 구체들에서 오래 섬기며, 샐빙톤에 있는 자기 군단이 초과 모집되면, 광명한 새벽별이 시간에 속한 창조물 중에서 이렇게 신실한 봉사자들을 자기 앞에 소환합니다. 고유성 변환 서약의 선서 직후에, 7,000명의 집단으로, 우주 어머니 영(靈)이 이렇게 진보한 선임 케루빔과 사노빔을 다시 포옹합니다. 이런 두 번째 포옹에서, 그들은 자격이 충분한 세라핌으로 출현합니다. 이후 모든 천국 가능성과 함께, 세라핌의 충만하고 완전한 생애가 그렇게 다시 태어난 케루빔과 사노빔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런 천사들은 어떤 필사 존재의 운명 관리자들로 임명될 수도 있고, 필사 피보호자가 생존하게 되면, 그들은 천사별과 세라핌이 도달하는 일곱 순환계 및 천국과 최종단(團)까지 나아갈 자격을 갖게 됩니다.

196-1 Jesus — The Man 예수─인간

  1. Jesus — The Man 예수─인간

170709 예수님의 신앙 8 – 인간 예수의 헌신 1 Jesus — The Man 마22:37-39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37 Jesus replied: ”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38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39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40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196:1.1 (2090.2) Jesus’ devotion to the Father’s will and the service of man was even more than mortal decision and human determination; it was a wholehearted consecration of himself to such an unreserved bestowal of love. No matter how great the fact of the sovereignty of Michael, you must not take the human Jesus away from men. The Master has ascended on high as a man, as well as God; he belongs to men; men belong to him. How unfortunate that religion itself should be so misinterpreted as to take the human Jesus away from struggling mortals! Let not the discussions of the humanity or the divinity of the Christ obscure the saving truth that Jesus of Nazareth was a religious man who, by faith, achieved the knowing and the doing of the will of God; he was the most truly religious man who has ever lived on Urantia. 아버지의 뜻과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대한 예수님의 헌신은 필사자의 결정과 인간의 결심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아낌없는 사랑의 증여를 향해 전심을 다한 예수님 자신의 헌신이었습니다. 미가엘의 주권의 사실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너희는 인간 예수를 사람들로부터 떼어놓아서는 안 됩니다. 주(主)님은 하나님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높은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속하시며, 사람들은 그에 속합니다. 종교가 스스로, 분투하는 필사자들로부터 인간 예수를 떼어놓을 정도로 그렇게 잘못 해석되어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토론들 때문에 나사렛 예수께서 신앙이 깊은 사람이시며, 신앙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행함을 성취하셨다는 구원의 진리가 흐려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는 이제까지 유란시아에 살았던 최상의 참된 신앙인이셨습니다.

170716 예수님의 신앙 9 – 평범한 인간 예수 2 막12: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David himself calls him ‘Lord.’ How then can he be his son?” The large crowd listened to him with delight.

196:1.2 (2090.3) The time is ripe to witness the figurative resurrection of the human Jesus from his burial tomb amidst the theological traditions and the religious dogmas of nineteen centuries. Jesus of Nazareth must not be longer sacrificed to even the splendid concept of the glorified Christ. What a transcendent service if, through this revelation, the Son of Man should be recovered from the tomb of traditional theology and be presented as the living Jesus to the church that bears his name, and to all other religions! Surely the Christian fellowship of believers will not hesitate to make such adjustments of faith and of practices of living as will enable it to “follow after” the Master in the demonstration of his real life of religious devotion to the doing of his Father’s will and of consecration to the unselfish service of man. Do professed Christians fear the exposure of a self-sufficient and unconsecrated fellowship of social respectability and selfish economic maladjustment? Does institutional Christianity fear the possible jeopardy, or even the overthrow, of traditional ecclesiastical authority if the Jesus of Galilee is reinstated in the minds and souls of mortal men as the ideal of personal religious living? Indeed, the social readjustments, the economic transformations, the moral rejuvenations, and the religious revisions of Christian civilization would be drastic and revolutionary if the living religion of Jesus should suddenly supplant the theologic religion about Jesus. 19 세기의 신학적 전통과 종교적 교리 가운데 있는, 예수님이 묻힌 무덤으로부터, 인간 예수의 상징적인 부활을 증언할 시기가 무르익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은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라는 화려한 개념으로 더는 희생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계시를 통하여, 사람의 아들이 전통적 신학의 무덤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고 그의 이름을 지닌 교회와 다른 모든 종교에, 살아 계신 예수로서 제시된다면, 얼마나 초월적인 봉사일 것인지요! 확실히 기독교 신자들의 교제는, 자기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종교적 헌신과 사람을 이타적으로 섬겨 헌신하는 자신의 실제 생활로 입증하면서 주님을 “따를” 수 있을 만큼 주저 없이 신앙과 삶의 훈련을 그렇게 조율할 것입니다. 자칭 기독교인들이 사회적인 체면과 이기적인 경제적 조절-불량의 자아-충족적이며 헌신하지 않은 친교가 폭로되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갈릴리의 예수께서 개인적인 종교적 삶의 이상(理想)으로서, 필사 사람들의 마음과 혼(), 본래대로 있다면, 제도적 기독교는 전통적 교회 권위의 위험성, 또는 전복(顚覆)까지도 가능할까 두려워합니까? 예수의 살아있는 종교가 예수에 대한 신학적인 종교를 갑자기 대신(代身)한다면, 사회적 재조정·경제적 변환·도덕적 원기의 회복 및 기독교 문명의 종교적 교정이 정말로 극적이며 혁명적일 것입니다.

196:1.3 (2090.4) To “follow Jesus” means to personally share his religious faith and to enter into the spirit of the Master’s life of unselfish service for man.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in human living is to find out what Jesus believed, to discover his ideals, and to strive for the achievement of his exalted life purpose. Of all human knowledge, that which is of greatest value is to know the religious life of Jesus and how he lived it. “예수 따르기”는 그의 종교적인 신앙을 개인적으로 공유하고, 사람을 위하여 사심 없이 봉사한 ()님 일생의 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예수께서 믿었던 것을 찾아내고, 그의 이상들을 발견하며, 그의 드높여진 일생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분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지식 중에서, 가장 커다란 가치가 있는 것은 예수의 종교적 일생과 그가 어떻게 그 삶을 사셨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196:1.4 (2090.5) The common people heard Jesus gladly, and they will again respond to the presentation of his sincere human life of consecrated religious motivation if such truths shall again be proclaimed to the world. The people heard him gladly because he was one of them, an unpretentious layman; the world’s greatest religious teacher was indeed a layman. 보통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을 즐겁게 들었으며, 그러한 진리들이 다시 세상에 선포된다면, 봉헌(奉獻)된 종교적 동기를 지닌 그의 신실한 인간적 일생의 제시에 그들은 다시 응답할 것입니다. 그는 그들 중의 한 사람, 즉 허세가 없는 보통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말을 즐겁게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 교사(敎師)는 진실로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196:1.5 (2091.1) It should not be the aim of kingdom believers literally to imitate the outward life of Jesus in the flesh but rather to share his faith; to trust God as he trusted God and to believe in men as he believed in men. Jesus never argued about either the fatherhood of God or the brotherhood of men; he was a living illustration of the one and a profound demonstration of the other. 나라를 믿는 자들의 목표는 겉으로 나타난 육신으로 예수님의 일생을 문자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신앙을 공유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가 사람들을 믿었던 것처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버지 신분이나 사람들의 형제 신분에 대하여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자의 살아있는 예증이었고 후자의 심오한 실증이었습니다.

196:1.6 (2091.2) Just as men must progress from the consciousness of the human to the realization of the divine, so did Jesus ascend from the nature of man to the consciousness of the nature of God. And the Master made this great ascent from the human to the divine by the conjoint achievement of the faith of his mortal intellect and the acts of his indwelling Adjuster. The fact-realization of the attainment of totality of divinity (all the while fully conscious of the reality of humanity) was attended by seven stages of faith consciousness of progressive divinization. These stages of progressive self-realization were marked off by the following extraordinary events in the Master’s bestowal experience: 사람들이 인간의 의식(意識)으로부터 신적인 것의 실현으로 진보해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사람의 본성으로부터 하나님 본성의 의식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주(主)님은 그의 필사 지성의 신앙과 내재하는 조율자의 활동이 결합된 성취로 인간으로부터 신적으로의 이 위대한 상승을 이루셨습니다. 신성의 전체성을 달성한 사실- 실현화는 (이 기간 내내 인간성의 실체를 충분히 의식하면서) 점진적으로 신성화되는 신앙 의식의 일곱 단계를 따랐습니다. 이러한 점진적인 자아-실현의 단계들은 주(主)님의 증여 체험에서 다음과 같이 특별한 사건들로 구별되었습니다.

196:1.7 (2091.3) 1. The arrival of the Thought Adjuster. 생각조율자의 도착. BC 2. 2. 11

196:1.8 (2091.4) 2. The messenger of Immanuel who appeared to him at Jerusalem when he was about twelve years old. 그가 12살 때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나타난 임마누엘의 사자(使者). AD 7. 4. 8

196:1.9 (2091.5) 3. The manifestations attendant upon his baptism. 그의 세례에 수반된 현시(顯示)들. AD 26. 1. 14

196:1.10 (2091.6) 4. The experiences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변모(變貌) 산의 체험들. AD 29. 8. 15

196:1.11 (2091.7) 5. The morontia resurrection. 모론시아 부활. AD 30. 4. 9

196:1.12 (2091.8) 6. The spirit ascension. 영의 상승. AD 30. 5. 18

196:1.13 (2091.9) 7. The final embrace of the Paradise Father, conferring unlimited sovereignty of his universe. 그의 우주의 무제한적 주권을 수여한 천국 아버지의 최종적 품에 안김(포옹).

196-0 The Faith of Jesus 예수님의 신앙

Paper 196

The Faith of Jesus 예수님의 신앙

170521 예수님의 신앙 1 – 서론 1 시143:10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Teach me to do your will, for you are my God; may your good Spirit lead me on level ground.

196:0.1 (2087.1) JESUS enjoyed a sublime and wholehearted faith in God. He experienced the ordinary ups and downs of mortal existence, but he never religiously doubted the certainty of God’s watchcare and guidance. His faith was the outgrowth of the insight born of the activity of the divine presence, his indwelling Adjuster. His faith was neither traditional nor merely intellectual; it was wholly personal and purely spiritual. 예수님은 숭고한 신앙과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누리셨습니다. 그는 필사(必死) 존재의 일반적인 기복(높아짐과 낮아짐起伏)을 겪으셨지만, 확실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에 대해 결코 신앙적으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앙은 신적 현존 즉, 내재(內在)하는 조절자의 활동에서 발생한 통찰력의 결과였습니다. 그의 신앙은 전통적이거나 단순히 지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온전히 개인적이며 순전히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196:0.2 (2087.2) The human Jesus saw God as being holy, just, and great, as well as being true, beautiful, and good. All these attributes of divinity he focused in his mind as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Jesus’ God was at one and the same time “The Holy One of Israel” and “The living and loving Father in heaven.” The concept of God as a Father was not original with Jesus, but he exalted and elevated the idea into a sublime experience by achieving a new revelation of God and by proclaiming that every mortal creature is a child of this Father of love, a son of God. 인간 예수는 하나님이 진실하고 아름답고 선하실 뿐 아니라 거룩하고 공정(公正)하며 위대하신 분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모든 신성의 속성들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으로 마음에 모아서 집중했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시며 동시에 “살아계시며 사랑하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로서 하나님 개념은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성취하고, 모든 필사(必死) 창조물이 이 사랑의 아버지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여, 그 개념(하나님 아버지)을 숭고한 체험으로 높이고 향상시켰습니다.

196:0.3 (2087.3) Jesus did not cling to faith in God as would a struggling soul at war with the universe and at death grips with a hostile and sinful world; he did not resort to faith merely as a consolation in the midst of difficulties or as a comfort in threatened despair; faith was not just an illusory compensation for the unpleasant realities and the sorrows of living. In the very face of all the natural difficulties and the temporal contradictions of mortal existence, he experienced the tranquillity of supreme and unquestioned trust in God and felt the tremendous thrill of living, by faith, in the very presence of the heavenly Father. And this triumphant faith was a living experience of actual spirit attainment. Jesus’ great contribution to the values of human experience was not that he revealed so many new ideas about the Father in heaven, but rather that he so magnificently and humanly demonstrated a new and higher type of living faith in God. Never on all the worlds of this universe, in the life of any one mortal, did God ever become such a living reality as in the human experience of Jesus of Nazareth. 예수님은, 우주와의 전쟁에서 분투하는 사람(혼)이나 적개심과 죄로 가득한 세상과 사생결단을 하듯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어려움 가운데에서 위안이나, 절망의 위협 중에 얻는 위로로서 신앙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은 그저 불쾌한 현실과 생활의 슬픔에 대한 허상(虛像)적 보상(報償)이 아니었습니다. 필사(必死) 존재가 겪는 모든 자연스런 곤경과 현세의 모순에 바로 직면해서, 그는 최상의 평온을 누리면서 의심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하늘 아버지의 바로 그 존전에서 신앙으로 살아가는 엄청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승리를 거둔 신앙은 실제로 영에 도달한 살아있는 체험이었습니다. 인간 체험의 가치에 대해 예수께서 크게 기여한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하여 새 관념을 많이 드러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새롭고 더 높은 유형의 하나님에 대한 살아 있는 신앙을 장엄하게 인간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의 모든 세상에서, 어느 한 필사(必死)자의 일생에, 나사렛 예수의 인간 체험의 경우처럼 하나님이 그토록 살아있는 실체가 되신 적이 없었습니다.

170528 예수님의 신앙 2 – 서론 2 막11: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Have faith in God,” Jesus answered.

196:0.4 (2087.4) In the Master’s life on Urantia, this and all other worlds of the local creation discover a new and higher type of religion, religion based on personal spiritual relations with the Universal Father and wholly validated by the supreme authority of genuine personal experience. This living faith of Jesus was more than an intellectual reflection, and it was not a mystic meditation. 주(主)님의 지상(유란시아) 생활에서, 지역 창조의 이 세계와 다른 모든 세계들은, 새롭고 더 높은 유형의 종교, 우주 아버지와 개인적인 영적 관계에 근거하고 있으며, 진정한 개인적 체험의 최극 권위에 의해 전적으로 확인된 종교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이 살아있는 신앙은 지적(知的)인 반사 이상(以上)이었으며, 신비적 명상이 아니었습니다.

196:0.5 (2087.5) Theology may fix, formulate, define, and dogmatize faith, but in the human life of Jesus faith was personal, living, original, spontaneous, and purely spiritual. This faith was not reverence for tradition nor a mere intellectual belief which he held as a sacred creed, but rather a sublime experience and a profound conviction which securely held him. His faith was so real and all-encompassing that it absolutely swept away any spiritual doubts and effectively destroyed every conflicting desire. Nothing was able to tear him away from the spiritual anchorage of this fervent, sublime, and undaunted faith. Even in the face of apparent defeat or in the throes of disappointment and threatening despair, he calmly stood in the divine presence free from fear and fully conscious of spiritual invincibility. Jesus enjoyed the invigorating assurance of the possession of unflinching faith, and in each of life’s trying situations he unfailingly exhibited an unquestioning loyalty to the Father’s will. And this superb faith was undaunted even by the cruel and crushing threat of an ignominious death. 신학(神學)은 신앙을 고착시키고, 공식화하며, 정의(定意)하고, 교리화(독단적으로 단정)하겠지만, 예수님의 인간 일생에서 신앙은 개인적이고, 살아있으며, 근원적이고, 자발적이며, 순전히 영적이었습니다. 이 신앙은 전통에 대한 숭배도 아니었고, 그가 신성한 신조(信條)로 지녔던 단순한 지적 믿음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를 단단히 붙든 숭고한 체험이자 깊은 확신이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너무나 실제적이며 모든 것을 포괄했기 때문에, 그 어떤 영적 의심들도 절대적으로 쓸어버리고, 상반되는 모든 욕망을 실질적으로 파괴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이 열렬하고 숭고한 불굴(不屈)의 신앙이 닻을 내린 영적 정박지(碇泊地)로부터 그를 떼어낼 수 없었습니다. 명백한 패배에 직면하거나 또는 실망과 위협적인 절망의 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두려움 없이 영적 불굴(不屈불패)을 충만히 의식하면서 신적 현존 앞에서 차분하게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위축되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활력을 불어넣는 확신을 향유하였으며, 일생의 시험적인 각각의 상황에서 그는 아버지의 뜻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충성을, 끊임없이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이 장엄한 신앙은 심지어 치욕스러운 죽음의 잔인하고 압도적인 위협에 의해서도 꺾이지 않았습니다.

196:0.6 (2088.1) In a religious genius, strong spiritual faith so many times leads directly to disastrous fanaticism, to exaggeration of the religious ego, but it was not so with Jesus. He was not unfavorably affected in his practical life by his extraordinary faith and spirit attainment because this spiritual exaltation was a wholly unconscious and spontaneous soul expression of his personal experience with God. 종교적 특성에 있어서, 강한 영적 신앙은 너무나 많은 경우에 비참한 광신(狂信), 종교적 과대 자아로 직접 이끌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실생활에 있어서 특별한 신앙과 영적 달성으로 인해서 불리하게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영적 고양(高揚)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체험이 전적으로 무의식적이며 자발적인 혼의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170604 예수님의 신앙 3 – 서론 3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But seek ye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shall be added unto you.

196:0.7 (2088.2) The all-consuming and indomitable spiritual faith of Jesus never became fanatical, for it never attempted to run away with his well-balanced intellectual judgments concerning the proportional values of practical and commonplace social, economic, and moral life situations. The Son of Man was a splendidly unified human personality; he was a perfectly endowed divine being; he was also magnificently co-ordinated as a combined human and divine being functioning on earth as a single personality. Always did the Master co-ordinate the faith of the soul with the wisdom-appraisals of seasoned experience. Personal faith, spiritual hope, and moral devotion were always correlated in a matchless religious unity of harmonious association with the keen realization of the reality and sacredness of all human loyalties — personal honor, family love, religious obligation, social duty, and economic necessity. 온통 절실하며 굴복할 줄 모르는 예수님의 영적 믿음은 결코 광신이 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의 신앙은 실제적이며 평범한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생활 상황의 비례적 가치에 관한 그의 잘 균형이 잡힌 지적 판단에서 결코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훌륭하게 통합된 인간 고유성이었습니다. 그는 완전하게 증여된 신적 존재였습니다. 그는 또한 이 땅에서 인간 존재와 신적 존재가 결합하여 훌륭하게 통합된 하나의 고유성으로 활동하는 존재이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혼의 신앙을 성숙한 경험으로 얻은 지혜의 평가로 조화를 이루셨습니다. 모든 인간적 충성─개인적 명예, 가족적 사랑, 종교적 의무, 사회적 의무, 그리고 경제적 필요성─의 현실과 신성함에 대한 선명한 자각(깨달음)과 조화롭게 연합하여 비길 데 없는 종교적 통일성 안에서, 개인적 신앙, 영적 소망 그리고 도덕적 헌신은 항상 서로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196:0.8 (2088.3) The faith of Jesus visualized all spirit values as being found in the kingdom of God; therefore he said, “Seek first the kingdom of heaven.” Jesus saw in the advanced and ideal fellowship of the kingdom the achievement and fulfillment of the “will of God.” The very heart of the prayer which he taught his disciples was,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Having thus conceived of the kingdom as comprising the will of God, he devoted himself to the cause of its realization with amazing self-forgetfulness and unbounded enthusiasm. But in all his intense mission and throughout his extraordinary life there never appeared the fury of the fanatic nor the superficial frothiness of the religious egotist. 예수님의 신앙은 모든 영 가치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먼저 하늘나라를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진보된 이상적 친교 안에서 “하나님 뜻”이 성취(이루어짐)와 완성(실현)됨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의 바로 그 핵심은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포함하는 것으로 나라를 이해했기에, 그는 그것을 실현하는 운동에 놀랄 정도로 자신을-잊어버리고, 한없는 열정으로 자신을 헌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극심한 임무와 그의 특별한 일생 전체를 통해서, 광신자의 격분이나 종교적 이기주의자의 피상적 천박함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96:0.9 (2088.4) The Master’s entire life was consistently conditioned by this living faith, this sublime religious experience. This spiritual attitude wholly dominated his thinking and feeling, his believing and praying, his teaching and preaching. This personal faith of a son in the certainty and security of the guidance and protection of the heavenly Father imparted to his unique life a profound endowment of spiritual reality. And yet, despite this very deep consciousness of close relationship with divinity, this Galilean, God’s Galilean, when addressed as Good Teacher, instantly replied, “Why do you call me good?” When we stand confronted by such splendid self-forgetfulness, we begin to understand how the Universal Father found it possible so fully to manifest himself to him and reveal himself through him to the mortals of the realms. 주(主)님의 일생 전체는 한결같이 이 살아있는 신앙, 이 숭고한 종교적 체험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이 영적 태도는 그의 사고와 느낌, 그의 믿음과 기도, 그의 가르침과 설교를 전적으로 지배하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인도와 보호의 확신과 보장에 대한 아들의 이 개인적 신앙은 그의 독특한 일생에 있어서 영적 실체의 심오한 자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신성과 가까운 관계의 바로 이 깊은 의식에도 불구하고, 이 갈릴리인, 하나님의 갈릴리인은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렸을 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일컫느냐?”라고 바로 응답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훌륭한 자아-망각을 대할 때, 우리는 어떻게 우주 아버지가 그에게 자신을 그렇게 충분히 나타내고 그 영역들의 필사자들에게 그를 통한 자기 계시가 어떻게 발견이 가능한지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170611 예수님의 신앙 4 – 서론 4 요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My food,” said Jesus, “is 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and to finish his work.

196:0.10 (2088.5) Jesus brought to God, as a man of the realm, the greatest of all offerings: the consecration and dedication of his own will to the majestic service of doing the divine will. Jesus always and consistently interpreted religion wholly in terms of the Father’s will. When you study the career of the Master, as concerns prayer or any other feature of the religious life, look not so much for what he taught as for what he did. Jesus never prayed as a religious duty. To him prayer was a sincere expression of spiritual attitude, a declaration of soul loyalty, a recital of personal devotion, an expression of thanksgiving, an avoidance of emotional tension, a prevention of conflict, an exaltation of intellection, an ennoblement of desire, a vindication of moral decision, an enrichment of thought, an invigoration of higher inclinations, a consecration of impulse, a clarification of viewpoint, a declaration of faith, a transcendental surrender of will, a sublime assertion of confidence, a revelation of courage, the proclamation of discovery, a confession of supreme devotion, the validation of consecration, a technique for the adjustment of difficulties, and the mighty mobilization of the combined soul powers to withstand all human tendencies toward selfishness, evil, and sin. He lived just such a life of prayerful consecration to the doing of his Father’s will and ended his life triumphantly with just such a prayer. The secret of his unparalleled religious life was this consciousness of the presence of God; and he attained it by intelligent prayer and sincere worship — unbroken communion with God — and not by leadings, voices, visions, or extraordinary religious practices. 예수님은 그 영역의 사람으로서 모든 헌물 중에서 가장 큰 것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것은 신적 뜻을 행하는 장엄한 봉사에, 자신의 뜻을 봉헌하고 헌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일관되게 종교를 전적으로 아버지의 의지라는 관점에서 해석하셨습니다. 종교적 생활의 기도나 혹은 다른 면들에 관하여, 주(主)의 생애를 공부할 때, 그가 무엇을 가르쳤는가를 보기보다는, 그가 무엇을 행하셨는가를 바라보라. 예수님은 종교적 의무로서 기도를 한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에게 기도(祈禱)는 영적 태도의 진지한 표현, 혼의 충성에 대한 선언. 개인적 헌신에 대한 낭독, 감사의 표현, 감정적 긴장의 방지, 갈등의 예방, 지적 사고의 고양(高揚), 욕망을 고귀하게 만듦, 도덕적 결정의 입증, 생각의 풍성함, 더욱 높은 성향의 활력화, 충동의 봉헌, 관점의 해명, 신앙의 선언, 의지의 초월적 항복(양도), 자신감의 숭고한 단언, 용기의 계시, 발견의 선언, 최극 헌신의 고백, 봉헌의 확인, 어려움의 조절기법, 그리고 이기심, 악, 죄를 향해 달려가는 인간 성향을 물리치려고 결합한 혼의 권능을 힘차게 동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행함에 있어서, 기도하며 헌신하는 바로 그러한 일생을 사셨으며, 바로 그러한 기도로 자신의 일생을 승리로 마치셨습니다. 그의 비교될 수없는 종교적 일생의 비밀은 하나님 현존에 대한 이 의식(意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지능적 기도와 진지한 경배─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로 얻었으며 인도됨이나, 음성이나, 환상 또는 비상한 종교적 관습에 의해 얻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196:0.11 (2089.1) In the earthly life of Jesus, religion was a living experience, a direct and personal movement from spiritual reverence to practical righteousness. The faith of Jesus bore the transcendent fruits of the divine spirit. His faith was not immature and credulous like that of a child, but in many ways it did resemble the unsuspecting trust of the child mind. Jesus trusted God much as the child trusts a parent. He had a profound confidence in the universe — just such a trust as the child has in its parental environment. Jesus’ wholehearted faith in the fundamental goodness of the universe very much resembled the child’s trust in the security of its earthly surroundings. He depended on the heavenly Father as a child leans upon its earthly parent, and his fervent faith never for one moment doubted the certainty of the heavenly Father’s overcare. He was not disturbed seriously by fears, doubts, and skepticism. Unbelief did not inhibit the free and original expression of his life. He combined the stalwart and intelligent courage of a full-grown man with the sincere and trusting optimism of a believing child. His faith grew to such heights of trust that it was devoid of fear. 예수님의 지상 생애에서 종교는 살아있는 체험, 영적 경외심에서부터 실질적인 공의로 넘어가는 직접적이고 개인적 활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앙은 신적 영의 초월적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아이의 것처럼 미숙하거나 경솔한 것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아이의 마음처럼 의심하지 않는 신뢰와 비슷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부모를 신뢰하는 것과 아주 흡사하게 하나님을 신뢰하셨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환경을 신뢰하듯이 바로 그렇게 예수님은 우주를 깊이 신뢰하셨습니다. 우주의 근본적인 선함에 대한 예수님의 전심을 다하는 신앙은 지상 환경의 안전함을 믿는 아이의 신뢰와 매우 흡사하였습니다. 그는 어린아이가 지상의 부모에게 의지하듯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의지하셨고, 그의 열렬한 신앙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지나친 보호에 대한 확신을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려움과 의심 그리고 회의(懷疑)로 인하여 심각하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불신이 그의 일생에서 자유롭고 기원적인 표현을 가로막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충분히 성장한 어른의 건장하고 지적인 용기와, 믿는 아이가 지닌 순수하게 신뢰하는 낙천성을 결합하셨습니다. 그의 신앙은 두려움이 없는 그러한 신뢰의 경지까지 성장하셨습니다.

170618 예수님의 신앙 5 –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 서론 5 마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And he said: “I tell you the truth,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littl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196:0.12 (2089.2) The faith of Jesus attained the purity of a child’s trust. His faith was so absolute and undoubting that it responded to the charm of the contact of fellow beings and to the wonders of the universe. His sense of dependence on the divine was so complete and so confident that it yielded the joy and the assurance of absolute personal security. There was no hesitating pretense in his religious experience. In this giant intellect of the full-grown man the faith of the child reigned supreme in all matters relating to the religious consciousness. It is not strange that he once said, “Except you become as a little child, you shall not enter the kingdom.” Notwithstanding that Jesus’ faith was childlike, it was in no sense childish. 예수님의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유치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신앙은 어린아이가 지닌 신뢰의 순수성에 도달하셨습니다. 그의 신앙은 그렇게 절대적이고 의심이 없어서 다른 동료 존재들과의 만남에 대한 매력과 우주의 경이로움들에 반응하였습니다. 신적인 것에 대한 그의 의존 감각은 그렇게 완벽하고 그렇게 자신만만하여 그것은 절대적 개인적 안전에 대한 기쁨과 확신을 낳았습니다. 그의 종교적 체험에는 주저하는 티가 전혀 없었습니다. 충분히-성장한 사람의 이 위대한 지성 안에서 어린아이의 신앙이 종교적 인식에 관계되는 모든 일들을 최고로 지배하였습니다. 그가 언젠가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고는, 너희가 하늘나라로 들어가지 못할지니라.”고 말씀한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유치하지는 않았습니다.

170625 예수님의 신앙 6 – 나를 따르라 요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Jesus said this to indicate the kind of death by which Peter would glorify God. Then he said to him, “Follow me!”

JESUS WANTS US TO BELIEVE WITH HIM
196:0.13 (2089.3) Jesus does not require his disciples to believe in him but rather to believe with him, believe in the reality of the love of God and in full confidence accept the security of the assurance of sonship with the heavenly Father. The Master desires that all his followers should fully share his transcendent faith. Jesus most touchingly challenged his followers, not only to believe what he believed, but also to believe as he believed. This is the full significance of his one supreme requirement, “Follow me.”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그와 함께 믿되, 하나님 사랑이 실체임을 믿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관계에 대한 확신이 보장됨을 충만한 자신감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주(主)님은 모든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초월적 신앙을 충분히 나누어 가지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믿었던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가 믿었던 것처럼 믿으라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가장 비장하게 도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를 따르라.”는 그의 한 가지 최상의 요구가 지닌 충분한 의미(意味)입니다.

170702 예수님의 신앙 7 – 하나님의 뜻 실천, 신앙으로 살아감 요6: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For I have come down from heaven not to do my will but 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196:0.14 (2090.1) Jesus’ earthly life was devoted to one great purpose — doing the Father’s will, living the human life religiously and by faith. The faith of Jesus was trusting, like that of a child, but it was wholly free from presumption. He made robust and manly decisions, courageously faced manifold disappointments, resolutely surmounted extraordinary difficulties, and unflinchingly confronted the stern requirements of duty. It required a strong will and an unfailing confidence to believe what Jesus believed and as he believed. 예수님의 지상 일생은 단 한 가지의 목적─아버지의 뜻을 행함, 인간의 일생을 종교적으로 그리고 신앙으로 살아감─에 바쳐졌습니다. 예수님의 신앙은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신뢰하는 것이었지만, 전혀 주제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건하고 당당하게 결정을 내리셨으며, 수많은 실망들에 용감하게 대처하였고, 특별한 어려움들을 단호히 극복하셨으며, 의무의 엄격한 요구들에 망설임 없이 직면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믿었던 것을 믿고, 그가 믿은 대로 믿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와 끊임없는 자신감이 요구되었습니다.

158-8 At Peter’s House 베드로의 집에서

8. At Peter’s House 베드로의 집에서

211226 하늘나라에서 진보하는 길 마18:2-6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2 He called a little child and had him stand among them. 3 And he said: “I tell you the truth,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littl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4 Therefore, whoever humbles himself like this child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5 “And whoever welcomes a little child like this in my name welcomes me. 6 But if anyone causes one of these little ones who believe in me to sin, it would be better for him to have a large millstone hung around his neck and to be drowned in the depths of the sea.

158:8.1 (1761.2) Entering Capernaum at twilight, they went by unfrequented thoroughfares directly to the home of Simon Peter for their evening meal. While David Zebedee made ready to take them across the lake, they lingered at Simon’s house, and Jesus, looking up at Peter and the other apostles, asked: “As you walked along together this afternoon, what was it that you talked about so earnestly among yourselves?” The apostles held their peace because many of them had continued the discussion begun at Mount Hermon as to what positions they were to have in the coming kingdom; who should be the greatest, and so on. Jesus, knowing what it was that occupied their thoughts that day, beckoned to one of Peter’s little ones and, setting the child down among them, said: “Verily, verily, I say to you, except you turn about and become more like this child, you will make little progress in the kingdom of heaven. Whosoever shall humble himself and become as this little one, the same shall becom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And whoso receives such a little one receives me. And they who receive me receive also Him who sent me. If you would be first in the kingdom, seek to minister these good truths to your brethren in the flesh. But whosoever causes one of these little ones to stumble, it would be better for him if a millstone were hanged about his neck and he were cast into the sea. If the things you do with your hands, or the things you see with your eyes give offense in the progress of the kingdom, sacrifice these cherished idols, for it is better to enter the kingdom minus many of the beloved things of life rather than to cling to these idols and find yourself shut out of the kingdom. But most of all, see that you despise not one of these little ones, for their angels do always behold the faces of the heavenly hosts.” 저물녘에 가버나움에 들어가면서, 그들은 저녁 식사를 위해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즉시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갔습니다. 다윗 세베대가 그들을 데리고 호수를 건널 준비를 하고, 그들이 시몬의 집에서 꾸물거리는 사이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을 올려 보시며 물었습니다. “오늘(AD 29. 8. 17 수) 오후에 너희가 함께 걸으면서, 너희끼리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이야기했느냐?” 사도들 대부분이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서 자신들이 차지하려는 어떤 지위, 누가 가장 큰 자가 되어야 하는가 등에 대해 헤르본 산에서 시작한 논의를 계속했기 때문에, 그들은 잠자코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날 무엇이 그들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지 아시고 베드로의 어린 자녀 중 하나를 손짓하여 불러 그 아이를 그들 사이에 앉히고 말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더욱 이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서 조금도 진보하지 않을 것이라. 누구나 스스로 겸손히 이 어린아이처럼 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크게 되리라. 그리고 그런 작은 자를 받아들이는 누구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나를 받아들이는 그들은 나를 보내신 그분도 또한 받아들이는 것이라(막9:33-37). 너희가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가 되려면, 육신으로 있는 너희 형제에게 이런 선한 진리를 주려고 애쓰라. 그러나 이런 작은 자들 중 하나를 실족(失足)하게 하는 누구나 맷돌이 그의 목에 걸려 바다에 던져짐이 더 나을 것이라. 너희가 너희 손으로 하는 것들이나, 너희 눈으로 보는 것들이, 하느님 나라 진보에서 해친다면, 이런 우상들에 매달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보다 세상의 여러 소중한 것들 없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이렇게 아끼는 우상들을 버리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작은 자들 중 하나도 얕보지 않도록 배려하라, 그들의 천사들이 언제나 하늘 무리의 얼굴을 보기 있기 때문이니라(마18:1-10).”

158:8.2 (1761.3) When Jesus had finished speaking, they entered the boat and sailed across to Magadan.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자, 그들은 배에 들어가 마가단으로 가로질러 나아갔습니다.

84-8 Dangers of Self-Gratification 자아-충족의 위험들

8. Dangers of Self-Gratification 자아-충족의 위험들

84:8.1 (942.2) The great threat against family life is the menacing rising tide of self-gratification, the modern pleasure mania. The prime incentive to marriage used to be economic; sex attraction was secondary. Marriage, founded on self-maintenance, led to self-perpetuation and concomitantly provided one of the most desirable forms of self-gratification. It is the only institution of human society which embraces all three of the great incentives for living. 가정생활의 최고 위협은 위협적으로 증가하는, 현대의 쾌락증(症), 자아-충족의 풍조입니다. 결혼하는 주요 동기는 경제적이었고, 성적 매력은 부차적이었습니다. 자아-유지에 근거한 결혼은 자아-영속으로 이어졌고, 부수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형태의 자아-충족 중 하나를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생활의 가장 큰 동기 중 세 가지 모두를 포함하는, 인간 사회의 유일한 제도입니다.

84:8.2 (942.3) Originally, property was the basic institution of self-maintenance, while marriage functioned as the unique institution of self-perpetuation. Although food satisfaction, play, and humor, along with periodic sex indulgence, were means of self-gratification, it remains a fact that the evolving mores have failed to build any distinct institution of self-gratification. And it is due to this failure to evolve specialized techniques of pleasurable enjoyment that all human institutions are so completely shot through with this pleasure pursuit. Property accumulation is becoming an instrument for augmenting all forms of self-gratification, while marriage is often viewed only as a means of pleasure. And this overindulgence, this widely spread pleasure mania, now constitutes the greatest threat that has ever been leveled at the social evolutionary institution of family life, the home. 원래 재산은 자아-유지의 기본 제도였던 반면에 결혼은 자아-영속의 유일한 제도로 기능했습니다. 음식 만족, 놀이와 유머는 간헐적인 성적 탐닉과 함께 자아-충족의 수단이었지만, 진화하는 관습이 자아-충족의 어떤 뚜렷한 제도를 세우지 못했던 사실이 남아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즐거움에 대한 전문 기법을 발전시키는 데 이렇게 실패해서, 모든 인간 제도가 그렇게 철저히 이런 쾌락 추구로 가득합니다. 재산 축적이 모든 형태의 자아-충족을 늘리는 도구가 되어가는 한편, 결혼은 종종 쾌락의 수단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지나친 방종, 이렇게 널리 퍼진 쾌락증(症)이 이제, 가정생활의 사회 진화적 제도에 늘 퍼부어진, 최고의 위협을 만들어냅니다.

84:8.3 (942.4) The violet race introduced a new and only imperfectly realized characteristic into the experience of humankind — the play instinct coupled with the sense of humor. It was there in measure in the Sangiks and Andonites, but the Adamic strain elevated this primitive propensity into the potential of pleasure, a new and glorified form of self-gratification. The basic type of self-gratification, aside from appeasing hunger, is sex gratification, and this form of sensual pleasure was enormously heightened by the blending of the Sangiks and the Andites. 보라 인종이 새로우며, 겨우 불완전하게 실현된 특성, 즉 유머 감각과 결부된 놀이 본능을 인류의 체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적당히 상긱과 안돈-사람들에게 있었지만, 아담 혈통이 이런 원시적 경향을 쾌락의 가능성, 새로운 자아-충족의 미화된 형태로 끌어올렸습니다. 허기 채우기를 제외하고 기본적 형태의 자아-충족은 성욕 충족이며, 이런 형태의 육감적 쾌락은 상긱과 안드-사람들의 혼합으로 굉장히 강화되었습니다.

84:8.4 (942.5) There is real danger in the combination of restlessness, curiosity, adventure, and pleasure-abandon characteristic of the post-Andite races. The hunger of the soul cannot be satisfied with physical pleasures; the love of home and children is not augmented by the unwise pursuit of pleasure. Though you exhaust the resources of art, color, sound, rhythm, music, and adornment of person, you cannot hope thereby to elevate the soul or to nourish the spirit. Vanity and fashion cannot minister to home building and child culture; pride and rivalry are powerless to enhance the survival qualities of succeeding generations. 안드-사람 이후 종족들의 활동성, 호기심, 모험심과 쾌락에 빠지는 특성의 혼합에 실제적 위험이 있습니다. 혼(魂)의 굶주림은 육체적 쾌락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가정과 자녀에 대한 사랑은 어리석은 쾌락 추구로 늘어나지 않습니다. 너희가 예술, 색깔, 소리, 리듬, 음악과 사람을 꾸미는 자원을 다 써도, 너희는 그것으로 혼(魂)을 높이거나 영이 향상하기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허영(虛榮)과 유행(遊行)은 가정 설립과 자녀 양육에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자랑과 경쟁은 다음 세대들의 생존 특성의 향상에 무력합니다.

84:8.5 (942.6) Advancing celestial beings all enjoy rest and the ministry of the reversion directors. All efforts to obtain wholesome diversion and to engage in uplifting play are sound; refreshing sleep, rest, recreation, and all pastimes which prevent the boredom of monotony are worth while. Competitive games, storytelling, and even the taste of good food may serve as forms of self-gratification. (When you use salt to savor food, pause to consider that, for almost a million years, man could obtain salt only by dipping his food in ashes. 진보하는 천상(天上)의 존재들은 모두 휴식과 복귀 관리자들의 보살핌을 누립니다. 건전한 유희(遊戲)를 얻고 향상하는 놀이에 참여하려는 모든 노력은 정상적입니다. 단조로운 권태를 예방하는 상쾌한 잠, 휴식, 오락 및 모든 기분 전환은 가치 있습니다. 경기 종목, 이야기하기와 좋은 음식을 맛보는 것도 자아-충족의 형태로서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너희가 음식 맛을 내려고 소금을 사용하는, 거의 100만 년간, 사람이 자기 음식을 재 속에 담가서만 소금을 얻을 수 있었음을, 잠시 멈추어 생각하라.)

84:8.6 (943.1) Let man enjoy himself; let the human race find pleasure in a thousand and one ways; let evolutionary mankind explore all forms of legitimate self-gratification, the fruits of the long upward biologic struggle. Man has well earned some of his present-day joys and pleasures. But look you well to the goal of destiny! Pleasures are indeed suicidal if they succeed in destroying property, which has become the institution of self-maintenance; and self-gratifications have indeed cost a fatal price if they bring about the collapse of marriage, the decadence of family life, and the destruction of the home — man’s supreme evolutionary acquirement and civilization’s only hope of survival. 사람은 스스로 즐기라. 인류는 무수한 방법으로 쾌락을 찾으라. 진화하는 인류는 모든 형태의 정당한 자아-충족, 오랫동안 상승한 생물학적 투쟁의 결실을 탐구하라. 사람은 오늘날 즐거운 자기 쾌락의 일부를 잘 얻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운명의 목표를 잘 보라! 쾌락이 자아-유지의 제도가 된, 재산을 성공적으로 파괴한다면, 그것은 정말 자멸(自滅)적입니다. 그리고 자아-충족들이 결혼의 붕괴, 가정생활의 타락과 사람의 최고 진화적 성취이며 문명이 생존할 유일한 희망인, 가정의 파괴를 초래한다면, 그것은 정말 치명적인 대가를 치릅니다.

84:8.7 (943.2) [Presented by the Chief of Seraphim stationed on Urantia.][유란시아에 배치된 수석 세라핌이 제시함]

38-7 Cherubim and Sanobim 케루빔과 사노빔

7. Cherubim and Sanobim 케루빔과 사노빔

38:7.1 (422.1) In all essential endowments cherubim and sanobim are similar to seraphim. They have the same origin but not always the same destiny. They are wonderfully intelligent, marvelously efficient, touchingly affectionate, and almost human. They are the lowest order of angels, hence all the nearer of kin to the more progressive types of human beings on the evolutionary worlds. 케루빔과 사노빔은 모든 본질적 재질에서 세라핌과 같습니다. 그들은 같은 기원을 갖지만 언제나 같은 운명은 아닙니다. 그들은 놀랄 만큼 지능적이며, 굉장히 유능하고, 감동적으로 사랑이 넘치며, 거의 인간답습니다. 그들은 가장 낮은 계열의 천사들이어서, 진화 세계에 있는 더 진보적인 인간 유형에 아주 더 가깝습니다.

38:7.2 (422.2) Cherubim and sanobim are inherently associated, functionally united. One is an energy positive personality; the other, energy negative. The right-hand deflector, or positively charged angel, is the cherubim — the senior or controlling personality. The left-hand deflector, or negatively charged angel, is the sanobim — the complement of being. Each type of angel is very limited in solitary function; hence they usually serve in pairs. When serving independently of their seraphic directors, they are more than ever dependent on mutual contact and always function together. 케루빔과 사노빔은 선천적으로 관련되어 있고, 기능적으로 연합해 있습니다. 하나는 에너지 양성 고유성이며 다른 하나는 에너지 음성입니다. 우측(右側) 전향(轉向) 즉 양전하(陽電荷) 천사가 케루빔 – 선임 즉 조정 고유성입니다. 좌측(左側) 전향(轉向) 즉 음전하(陰電荷) 천사가 사노빔 – 보완 존재입니다. 천사의 각 유형은 단독 기능에서 매우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개 쌍으로 섬깁니다. 자신들의 세라핌 관리자들과 별개로 섬길 때, 그들은 언제나 상호 접촉에 더 많이 의존하며 항상 같이 활동합니다.

38:7.3 (422.3) Cherubim and sanobim are the faithful and efficient aids of the seraphic ministers, and all seven orders of seraphim are provided with these subordinate assistants. Cherubim and sanobim serve for ages in these capacities, but they do not accompany seraphim on assignments beyond the confines of the local universe. 케루빔과 사노빔은 세라핌 사역자들에게 충실하고 유능한 조력자들이며, 일곱 계열의 모든 세라핌에게 이러한 하위 조수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케루빔과 사노빔은 이런 능력으로 오랫동안 섬기지만, 지역 우주의 한계를 초월한 임무에는 세라핌과 함께 가지 않습니다.

38:7.4 (422.4) The cherubim and sanobim are the routine spirit workers on the individual worlds of the systems. On a nonpersonal assignment and in an emergency, they may serve in the place of a seraphic pair, but they never function, even temporarily, as attending angels to human beings; that is an exclusive seraphic privilege. 케루빔과 사노빔은 체계의 개별 세계에서 일상의 영(靈) 일꾼들입니다. 개인적이지 않은 임무와 비상시에 그들은 세라핌 쌍 대신에 섬길 수도 있지만, 그들은 잠시라도 인간을 돌보는 천사들로서 활동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라핌의 전용(專用) 특권입니다.

38:7.5 (422.5) When assigned to a planet, cherubim enter the local courses of training, including a study of planetary usages and languages. The ministering spirits of time are all bilingual, speaking the language of the local universe of their origin and that of their native superuniverse. By study in the schools of the realms they acquire additional tongues. Cherubim and sanobim, like seraphim and all other orders of spirit beings, are continuously engaged in efforts at self-improvement. Only such as the subordinate beings of power control and energy direction are incapable of progression; all creatures having actual or potential personality volition seek new achievements. 행성에 배정되면, 케루빔은, 행성의 관습과 언어 연구를 포함해, 지역 훈련 과정을 시작합니다. 시간의 돌보는 영(靈)들은, 자기 출신의 지역 우주 언어와 자신들의 토착 초우주의 언어를 말하면서, 모두 두 언어를 자유로이 구사합니다. 그들은 영역의 학교에서 연구하여 추가 언어 능력을 익힙니다. 케루빔과 사노빔은 세라핌과 다른 계열의 모든 영(靈) 존재들처럼 자기 개선의 노력에 계속 힘씁니다. 동력 조정과 에너지 관리에 속한 그런 하위 존재들만 진보할 수 없습니다. 현재 즉 잠재적 고유성 의지를 지닌 모든 창조물은 새로운 성취를 추구합니다.

38:7.6 (422.6) Cherubim and sanobim are by nature very near the morontia level of existence, and they prove to be most efficient in the borderland work of the physical, morontial, and spiritual domains. These children of the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are characterized by “fourth creatures” much as are the Havona Servitals and the conciliating commissions. Every fourth cherubim and every fourth sanobim are quasi-material, very definitely resembling the morontia level of existence. 케루빔과 사노빔은 본래 모론시아 존재 수준에 아주 가깝고, 그들은 물리적, 모론시아적 및 영적 영역의 경계지 업무에서 가장 유능한 것으로 입증됩니다. 지역 우주 어머니 영(靈)의 이런 자녀들의 특징은, 하보나 봉사자들과 조정 위원회들과 거의 같이 “넷째 창조물들”입니다. 넷째 케루빔과 넷째 사노빔은 모두 반(半)-물질적이며, 모론시아 수준의 존재와 아주 분명히 비슷합니다.

38:7.7 (422.7) These angelic fourth creatures are of great assistance to the seraphim in the more literal phases of their universe and planetary activities. Such morontia cherubim also perform many indispensable borderline tasks on the morontia training worlds and are assigned to the service of the Morontia Companions in large numbers. They are to the morontia spheres about what the midway creatures are to the evolutionary planets. On the inhabited worlds these morontia cherubim frequently work in liaison with the midway creatures. Cherubim and midway creatures are distinctly separate orders of beings; they have dissimilar origins, but they disclose great similarity in nature and function. 이런 넷째 천사 창조물들은 자신들의 우주와 행성 활동의 바로 그 단계에서 세라핌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모론시아 케루빔도 모론시아 훈련 세계들에서 필수적인 대부분의 경계 과업을 수행하며, 많은 모론시아 동반자를 섬기도록 배정됩니다. 모론시아 구체들에 대한 그들의 관계는 진화 행성들에 대한 중도 창조물들의 관계와 같습니다. 거주 세계들에서 이런 모론시아 케루빔은 중도 창조물들과 자주 연락하며 일합니다. 케루빔과 중도 창조물들은 뚜렷하게 독립된 존재 계열들입니다. 그들은 다른 기원을 지니지만, 그들은 본성과 기능에서 아주 닮은 점을 드러냅니다.

158-7 Peter’s Protest 베드로의 항의(抗議)

7. Peter’s Protest 베드로의 항의(抗議)

211219 예수를 따르는 행로 막8:31-38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31 He then began to teach them that the Son of Man must suffer many things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chief priests and teachers of the law, and that he must be killed and after three days rise again. 32 He spoke plainly about this, and Peter took him aside and began to rebuke him. 33 But when Jesus turned and looked at his disciples, he rebuked Peter. “Get behind me, Satan!” he said. “You do not have in mind the things of God, but the things of men.” 34 Then he called the crowd to him along with his disciples and said: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35 For whoever want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e and for the gospel will save it. 36 What good is it for a man to gain the whole world, yet forfeit his soul? 37 Or what can a man give in exchange for his soul? 38 If anyone is ashamed of me and my words in this adulterous and sinful generation, the Son of Man will be ashamed of him when he comes in his Father’s glory with the holy angels.”

158:7.1 (1759.3) Early this Wednesday morning Jesus and the twelve departed from Caesarea-Philippi for Magadan Park near Bethsaida-Julias. The apostles had slept very little that night, so they were up early and ready to go. Even the stolid Alpheus twins had been shocked by this talk about the death of Jesus. As they journeyed south, just beyond the Waters of Merom they came to the Damascus road, and desiring to avoid the scribes and others whom Jesus knew would presently be coming along after them, he directed that they go on to Capernaum by the Damascus road which passes through Galilee. And he did this because he knew that those who followed after him would go on down over the east Jordan road since they reckoned that Jesus and the apostles would fear to pass through the territory of Herod Antipas. Jesus sought to elude his critics and the crowd which followed him that he might be alone with his apostles this day. 이 수요일(AD29. 8. 17) 아침 일찍, 예수님과 열둘은 가이사랴-빌립보를 떠나 벳새대-율리아스 근처 마가단 공원을 향했습니다. 사도들은 그날 밤 거의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일찍 일어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신경이 무딘 알페오 쌍둥이도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런 말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이 남쪽으로 내려가 메롬 물가를 바로 건너 다마스커스 길에 이르자, 자신들을 뒤따라 바로 올 줄로 예수께서 알고 있는 서기관들과 다른 사람들을 피하려고, 예수께서 지시하여, 그들이 다마스커스 길로 갈릴리를 거쳐 가버나움으로 계속 가게 하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자신을 뒤쫓는 그들이, 예수와 사도들은 헤롯 안티파스의 영토를 지나기를 꺼릴 것으로 생각하여, 동쪽 요단 길로 내려갈 것을, 그가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뒤쫓는 비난자들과 군중을 피해, 단지 자기 사도들과 이날 있으려 하셨습니다.

158:7.2 (1759.4) They traveled on through Galilee until well past the time for their lunch, when they stopped in the shade to refresh themselves. And after they had partaken of food, Andrew, speaking to Jesus, said: “Master, my brethren do not comprehend your deep sayings. We have come fully to believe that you are the Son of God, and now we hear these strange words about leaving us, about dying. We do not understand your teaching. Are you speaking to us in parables? We pray you to speak to us directly and in undisguised form.” 그들은 점심시간이 훨씬 지날 때까지 갈릴리를 통해 이동했으며, 기운을 차리려고 그늘에 멈췄습니다. 그들이 같이 식사한 후 안드레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주(主)님, 내 형제들이 당신의 어려운 말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완전히 믿게 되었는데 이제 우리를 떠나, 죽는다는 이런 놀라운 말을 우리가 듣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요? 당신께서 우리에게 똑바로 숨김없이 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158:7.3 (1759.5) In answer to Andrew, Jesus said: “My brethren, it is because you have confessed that I am the Son of God that I am constrained to begin to unfold to you the truth about the end of the bestowal of the Son of Man on earth. You insist on clinging to the belief that I am the Messiah, and you will not abandon the idea that the Messiah must sit upon a throne in Jerusalem; wherefore do I persist in telling you that the Son of Man must presently go to Jerusalem, suffer many things, be rejected by the scribes, the elders, and the chief priests, and after all this be killed and raised from the dead. And I speak not a parable to you; I speak the truth to you that you may be prepared for these events when they suddenly come upon us.” And while he was yet speaking, Simon Peter, rushing impetuously toward him, laid his hand upon the Master’s shoulder and said: “Master, be it far from us to contend with you, but I declare that these things shall never happen to you.” 예수께서 안드레에게 대답하며 말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내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너희가 고백했기 때문에, 내가 지상에서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로 증여를 끝냄에 대한 진리를 부득이 너희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느니라. 너희는 내가 메시아라는 믿음을 우겨 집착하고, 메시아가 예루살렘에서 왕좌(王座)에 앉아야 한다는 생각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주장하여 말하는 것은, 사람의 아들이 곧 예루살렘으로 가서, 많은 일을 겪고, 서기관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에게 버림을 받으며, 이 모든 일 후에 죽임을 당하고 부활해야 하리라. 나는 너희에게 비유를 말하지 않노라. 그런 일들이 우리에게 느닷없이 닥칠 때 너희가 이런 경우에 준비되도록 내가 너희에게 사실을 말하노라.” 그가 아직도 말하는데 시몬 베드로가 성급히 그에게 달려들어 주(主)님의 어깨에 자기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주님, 우리가 당신과 논쟁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런 일들이 당신에게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을 내가 장담합니다.”

158:7.4 (1760.1) Peter spoke thus because he loved Jesus; but the Master’s human nature recognized in these words of well-meant affection the subtle suggestion of temptation that he change his policy of pursuing to the end his earth bestowal in accordance with the will of his Paradise Father. And it was because he detected the danger of permitting the suggestions of even his affectionate and loyal friends to dissuade him, that he turned upon Peter and the other apostles, saying: “Get you behind me. You savor of the spirit of the adversary, the tempter. When you talk in this manner, you are not on my side but rather on the side of our enemy. In this way do you make your love for me a stumbling block to my doing the Father’s will. Mind not the ways of men but rather the will of God.”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인간 본성은 선의(善意)의 애정이 담긴 이런 말에서, 그의 천국 아버지의 뜻대로 자신의 지상 증여를 마치려는 그의 방침을 그가 바꾸라는, 미묘한 유혹의 낌새를 알아차렸습니다. 그가 자신의 다정하고 충성스러운 친구들이라도 자신을 단념시키려는 제안의 허용에 담긴 위험성을 감지했기 때문에, 그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돌리며 말했습니다.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대적자, 유혹자 영(靈)의 낌새가 있도다. 네가 이런 식으로 말하면, 너는 내 편이 아니라 우리 적대자의 편에 있는 것이라. 이런 식으로 너는 나를 위한 너희 사랑을 내가 아버지의 뜻을 행함에 장애물로 만드느니라. 사람의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라(막8:33, 마16:23).”

158:7.5 (1760.2) After they had recovered from the first shock of Jesus’ stinging rebuke, and before they resumed their journey, the Master spoke further: “If any man would come after me, let him disregard himself, take up his responsibilities daily, and follow me. For whosoever would save his life selfishly, shall lose it, but whos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and the gospel’s, shall save it. What does it profit a man to gain the whole world and lose his own soul? What would a man give in exchange for eternal life? Be not ashamed of me and my words in this sinful and hypocritical generation, even as I will not be ashamed to acknowledge you when in glory I appear before my Father in the presence of all the celestial hosts. Nevertheless, many of you now standing before me shall not taste death till you see this kingdom of God come with power.” 그들이 예수님의 날카로운 힐책의 첫 충격에서 회복한 후, 그들이 다시 여행하기 전에, 주님이 덧붙여 말했습니다. “누구라도 나를 따르려면, 자신에게 주의하지 말고, 매일 자기 책임을 수행하며, 나를 따르라. 누구나 자기 생명을 이기적으로 구하려 하면, 그것을 잃을 것이지만, 누구나 나와 복음을 위해 자기 생명을 잃으면, 그것을 구할 것이라.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 자기 혼(魂)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영원한 생명을 취하겠느냐? 이런 죄 많은 위선적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 내가 모든 천상 무리가 있는데 내 아버지 앞에 영광중에 나타날 때, 내가 너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정하리라(마16:24-26, 막8:34-38). 그렇지만, 이제 내 앞에 서 있는 너희 대부분이 이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오는 것을 볼 때까지 죽음을 맛보지 않으리라(마16:28).”

158:7.6 (1760.3) And thus did Jesus make plain to the twelve the painful and conflicting path which they must tread if they would follow him. What a shock these words were to these Galilean fishermen who persisted in dreaming of an earthly kingdom with positions of honor for themselves! But their loyal hearts were stirred by this courageous appeal, and not one of them was minded to forsake him. Jesus was not sending them alone into the conflict; he was leading them. He asked only that they bravely follow.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열 둘에게, 그들이 자신을 따르려면, 자신들이 가야 하는, 수고하며 싸우는 행로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런 말들은 스스로 영예로운 지위로 함께 세상 나라를 꿈꾸며 집착했던 이 갈릴리 어부들에게 얼마나 충격을 일으켰는지! 그러나 그들의 충성스러운 심정은 이런 용기 있는 호소로 감동되어, 그들 중 누구도 그를 저버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그들만 전투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들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이 용감히 따르기만 요청했습니다.

158:7.7 (1760.4) Slowly the twelve were grasping the idea that Jesus was telling them something about the possibility of his dying. They only vaguely comprehended what he said about his death, while his statement about rising from the dead utterly failed to register in their minds. As the days passed, Peter, James, and John, recalling their experience upon the mount of the transfiguration, arrived at a fuller understanding of certain of these matters. 열둘은 예수께서 자신이 죽을 가능성에 대해 자신들에게 무언가 말씀하고 계셨다는 생각을 서서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자기 죽음에 대해 말했던 것을 어렴풋이 이해할 뿐이었고, 게다가 부활에 대한 그의 진술은 그들의 마음에 아예 새겨지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은 변모산에서 자신들의 체험을 생각해 내면서 이런 문제 중 어떤 것을 더 충분히 이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58:7.8 (1760.5) In all the association of the twelve with their Master, only a few times did they see that flashing eye and hear such swift words of rebuke as were administered to Peter and the rest of them on this occasion. Jesus had always been patient with their human shortcomings, but not so when faced by an impending threat against the program of implicitly carrying out his Father’s will regarding the remainder of his earth career. The apostles were literally stunned; they were amazed and horrified. They could not find words to express their sorrow. Slowly they began to realize what the Master must endure, and that they must go through these experiences with him, but they did not awaken to the reality of these coming events until long after these early hints of the impending tragedy of his latter days. 열둘이 자기 주님과 가졌던 모든 관계에서, 이 경우에 베드로와 나머지 그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들이 그런 번쩍이는 눈을 보고 그렇게 즉각적인 힐책의 말을 들은 것은 몇 번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인간적 결점은 언제나 참았지만, 자신의 나머지 지상 생애에 관해 자기 아버지의 뜻을 절대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을 거스르는 임박한 위협에 직면했을 때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정말로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라 무서워 떨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슬픔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무엇을 견디어야 하는지, 자신들이 그와 함께 이런 체험을 거쳐야 함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그의 말기의 임박한 비극에 대한 이런 초기 암시가 있은 지 오랜 후에야 비로소 다가오는 이런 사건들의 실체를 알아챘습니다.

158:7.9 (1761.1) In silence Jesus and the twelve started for their camp at Magadan Park, going by way of Capernaum. As the afternoon wore on, though they did not converse with Jesus, they talked much among themselves while Andrew talked with the Master. 예수님과 열둘은 조용히 가버나움을 거쳐 마가단 공원에 있는 자신들의 야영지로 출발했습니다. 오후가 지나도록, 그들은 예수님과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안드레가 주님과 말하는 동안 그들은 자기들끼리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38-6 Seraphic Organization 세라핌 편제(編制)

6. Seraphic Organization 세라핌 편제(編制)

38:6.1 (421.4) After the second millennium of sojourn at seraphic headquarters the seraphim are organized under chiefs into groups of twelve (12 pairs, 24 seraphim), and twelve such groups constitute a company (144 pairs, 288 seraphim), which is commanded by a leader. Twelve companies under a commander constitute a battalion (1,728 pairs or 3,456 seraphim), and twelve battalions under a director equal a seraphic unit (20,736 pairs or 41,472 individuals), while twelve units, subject to the command of a supervisor, constitute a legion numbering 248,832 pairs or 497,664 individuals. Jesus alluded to such a group of angels that night in the garden of Gethsemane when he said: “I can even now ask my Father, and he will presently give me more than twelve legions of angels.” 세라핌 본부에서 두 번째 천년 간 머문 후, 세라핌은 조장(組長)들 아래에 12 무리(12쌍, 24세라핌)로 편성되고, 그런 12개 조(組)가 한 지도자가 지휘하는 한 중대(144쌍, 288세라핌)를 구성합니다. 한 지휘관 아래에 12개 중대가 한 대대(1,728쌍, 즉 3,456세라핌)를 구성하고, 한 관리자 아래에 12개 대대가 한 세라핌 단위(20,736쌍, 즉 41,472개체)와 같으며, 동시에 한 감독자의 명령을 따르는 12개 단위는 248,832쌍, 즉 497,664개체들에 달하는 한 군단을 구성합니다. 예수께서 “내가 지금도 내 아버지께 요청할 수 있으니, 그가 내게 12개 군단(2,985,984쌍, 즉 5,971,968개체)이 넘는 천사들을 즉시 주시리라(마26:53).”라고 말했을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날 밤 그런 천사 집단을 언급했습니다.

38:6.2 (421.5) Twelve legions of angels comprise a host numbering 2,985,984 pairs or 5,971,968 individuals, and twelve such hosts (35,831,808 pairs or 71,663,616 individuals) make up the largest operating organization of seraphim, an angelic army. A seraphic host is commanded by an archangel or by some other personality of co-ordinate status, while the angelic armies are directed by the Brilliant Evening Stars or by other immediate lieutenants of Gabriel. And Gabriel is the “supreme commander of the armies of heaven,” the chief executive of the Sovereign of Nebadon, “the Lord God of hosts.” 12 군단의 천사들은 2,985,984쌍 즉 5,971,968개체에 이르는 군대(軍隊)이며, 그런 12군대(35,831,808쌍 즉 71,663,616개체)가 가장 큰 세라핌 운영 편제, 천사군(天使軍)을 이룹니다. 천사장 또는 동등한 지위의 다른 고유성이 세라핌 군대를 통솔하는 한편 찬란한 저녁별들 혹은 가브리엘의 다른 직속(直屬) 부관(副官)들이 천사 군대들을 관리합니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하늘 군대의 최고 사령관,” 네바돈 주권자의 수석 실행자, “만군의 주 하느님”입니다.

38:6.3 (421.6) Though serving under the direct supervision of the Infinite Spirit as personalized on Salvington, since the bestowal of Michael on Urantia, seraphim and all other local universe orders have become subject to the sovereignty of the Master Son. Even when Michael was born of the flesh on Urantia, there issued the superuniverse broadcast to all Nebadon which proclaimed, “And let all the angels worship him.” All ranks of angels are subject to his sovereignty; they are a part of that group which has been denominated “his mighty angels.” 샐빙톤의 고유화한 무한 영(靈)의 직계 감독 아래에서 섬기지만, 유란시아에서 미가엘의 증여 이후에, 세라핌과 다른 모든 지역 우주 계열은 주(主) 아들의 주권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미가엘이 유란시아에서 성육신(成育身)했을 때도, “모든 천사는 그를 경배하라.”라고 선포했던 초우주 방송이 모든 네바돈에 전파되었습니다. 모든 천사 계열은 그의 주권을 따릅니다. 그들은 “그의 막강한 천사들”이라고 부르는 그런 집단의 일부입니다.

158-6 In Celsus’ Garden 셀수스의 정원에서

6. In Celsus’ Garden 셀수스의 정원에서

211212 영적(靈的) 위대함 막9:28-32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28 After Jesus had gone indoors, his disciples asked him privately, “Why couldn’t we drive it out?” 29 He replied, “This kind can come out only by prayer.” 30 They left that place and passed through Galilee. Jesus did not want anyone to know where they were, 31 because he was teaching his disciples. He said to them, “The Son of Man is going to be betrayed into the hands of men. They will kill him, and after three days he will rise.” 32 But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he meant and were afraid to ask him about it.

158:6.1 (1758.2) They remained overnight with Celsus, and that evening in the garden, after they had eaten and rested, the twelve gathered about Jesus, and Thomas said: “Master, while we who tarried behind still remain ignorant of what transpired up on the mountain, and which so greatly cheered our brethren who were with you, we crave to have you talk with us concerning our defeat and instruct us in these matters, seeing that those things which happened on the mountain cannot be disclosed at this time.” 그들은 셀수스의 집에 하룻밤 머물렀으며, 그날 저녁 정원에서, 식사하고 휴식한 후, 열둘이 예수님 주위에 모였고, 도마가 말했습니다. “주(主)님, 뒤에 머물던 우리는 산 위에서 일어난 일과 무엇이 당신과 함께 있던 우리 형제들을 그토록 아주 기운이 나게 했는지 아직 모르는 채 있지만, 산에서 일어난 그런 일들은 이때 밝힐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당신이 우리 실패에 관해 우리와 말하고 이런 일에 대해 우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158:6.2 (1758.3) And Jesus answered Thomas, saying: “Everything which your brethren heard on the mountain shall be revealed to you in due season. But I will now show you the cause of your defeat in that which you so unwisely attempted. While your Master and his companions, your brethren, ascended yonder mountain yesterday to seek for a larger knowledge of the Father’s will and to ask for a richer endowment of wisdom effectively to do that divine will, you who remained on watch here with instructions to strive to acquire the mind of spiritual insight and to pray with us for a fuller revelation of the Father’s will, failed to exercise the faith at your command but, instead, yielded to the temptation and fell into your old evil tendencies to seek for yourselves preferred places in the kingdom of heaven — the material and temporal kingdom which you persist in contemplating. And you cling to these erroneous concepts in spite of the reiterated declaration that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그러자 예수께서 도마에게 대답하여 말했습니다. “너희 형제들이 산에서 들었던 모두는 적절한 때에 너희에게 알려질 것이라. 그러나 너희가 아주 분별없이 시도한 것에 대해, 너희 실패의 원인을, 내가 이제 너희에게 밝힐 것이라. 너희 주(主)와 그 동료, 너희 형제들이 아버지의 뜻을 더 크게 알고 그런 신적 뜻을 실제로 행할 더 풍성한 지혜의 자질을 얻기 위해 어제 저쪽 산에 올라갔을 때, 여기 남아 영적 통찰력의 마음을 얻고, 아버지의 뜻이 최대한 드러나도록 우리와 함께 기도에 애쓰라는 지시를 받아 당직(當直)했던 너희가 그 명령에 따라 끝내 신앙하지 못하는 대신에, 유혹에 굴복하여, 너희가 집착하며 기대하는 하늘나라 – 물질적인 뜬세상의 나라에서 자신을 위해 우선적 자리를 찾는 너희의 악한 옛 경향에 빠졌느니라. 그리고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반복하여 선언했지만, 너희는 잘못된 이런 개념에 집착하고 있노라.

158:6.3 (1758.4) “No sooner does your faith grasp the identity of the Son of Man than your selfish desire for worldly preferment creeps back upon you, and you fall to discussing among yourselves as to who should b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a kingdom which, as you persist in conceiving it, does not exist, nor ever shall. Have not I told you that he who would be greatest in the kingdom of my Father’s spiritual brotherhood must become little in his own eyes and thus become the server of his brethren? Spiritual greatness consists in an understanding love that is Godlike and not in an enjoyment of the exercise of material power for the exaltation of self. In what you attempted, in which you so completely failed, your purpose was not pure. Your motive was not divine. Your ideal was not spiritual. Your ambition was not altruistic. Your procedure was not based on love, and your goal of attainment was not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너희 신앙으로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의 정체성을 파악하자마자, 세속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으려는 너희 이기적 욕망이 다시 슬그머니 너희에게 다가와, 너희는,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하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너희끼리 논의하기까지 하나, 너희가 집착하여 상상하는 것과 같은 하늘나라는 존재하지 않고 결코 없을 것이라. 내 아버지의 영적 형제 사랑의 나라에서 가장 큰 자가 되려고 하는 자는 그 스스로 보기에 작아져서 자기 형제들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영적 위대함은 하느님과 같은 이해심 있는 사랑에 있고, 자신을 높이는 물질적 권세의 행사를 누리는 데에 있지 않으니라. 너희가 시도했던 것에서, 너희가 그렇게 완전히 실패한 것에서, 너희 목적(目的)은 순수하지 않았노라. 너희 동기(動機)는 신적이지 않았노라. 너희 이상(理想)은 영적(靈的)이지 않았노라. 너희 포부(抱負)는 애타적(愛他的 타인 사랑)이지 않았노라. 너희 절차(節次)는 사랑에 근거하지 않았고, 너희 도달(到達) 목표(目標)는 하늘 아버지의 뜻이 아니었느니라.

158:6.4 (1758.5) “How long will it take you to learn that you cannot time-shorten the course of established natural phenomena except when such things are in accordance with the Father’s will? nor can you do spiritual work in the absence of spiritual power. And you can do neither of these, even when their potential is present, without the existence of that third and essential human factor, the personal experience of the possession of living faith. Must you always have material manifestations as an attraction for the spiritual realities of the kingdom? Can you not grasp the spirit significance of my mission without the visible exhibition of unusual works? When can you be depended upon to adhere to the higher and spiritual realities of the kingdom regardless of the outward appearance of all material manifestations?” “너희가 이미 정해진 자연 현상의 과정에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를 때를 제외하고, 너희가 할 수 없음을 익히는 데 너희에게 얼마나 걸리겠느냐? 너희에게 영적 권능이 없으면 영적인 일도 할 수 없느니라. 그런 잠재력이 있어도, 그런 셋째 필수적인 인간 요소, 살아있는 신앙에 사로잡힌 개인적 체험 생활이 없으면, 너희는 이들 중 어떤 일도 할 수 없느니라. 너희는 언제나 물질적 징후가 있어야만, 하늘나라의 영적 실체에 사로잡히겠느냐? 너희는 신기한 일들을 눈으로 보지 않으면, 내 사명의 영(靈)적 중요성을 파악할 수 없느냐? 물질적인 모든 징후의 외적 현상에 관계가 없이, 하느님 나라의 더 높은 영적 실체를 충실히 따르도록, 너희를 언제 믿을 수 있겠느냐?”

158:6.5 (1759.1) When Jesus had thus spoken to the twelve, he added: “And now go to your rest, for on the morrow we return to Magadan and there take counsel concerning our mission to the cities and villages of the Decapolis. And in the conclusion of this day’s experience, let me declare to each of you that which I spoke to your brethren on the mountain, and let these words find a deep lodgment in your hearts: The Son of Man now enters upon the last phase of the bestowal. We are about to begin those labors which shall presently lead to the great and final testing of your faith and devotion when I shall be delivered into the hands of the men who seek my destruction. And remember what I am saying to you: The Son of Man will be put to death, but he shall rise again.” 예수께서 열 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덧붙였습니다. “이제 너희는 가서 쉬어라, 내일 우리는 마가단으로 돌아가 데카폴리스 도시와 마을에 대한 우리 선교에 대해 거기에서 논의하리라. 그리고 오늘 체험의 결론으로, 내가 너희 각자에게 산에서 너희 형제들에게 내가 말한 것을 선언하리니, 이런 말을 너희 심정에 깊이 자리 잡게 하라. 사람의 아들은 이제 증여의 최종 단계에 들어가느니라. 내가 나를 죽이려는 자들의 손에 넘겨질 때, 너희 신앙과 헌신에 대한 중요한 최종적 테스트에 곧 이르게 할, 그런 수고를 우리는 이제 막 시작하려 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을 기억하라. 사람의 아들은 죽을 것이지만 그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리라.”

158:6.6 (1759.2) They retired for the night, sorrowful. They were bewildered; they could not comprehend these words. And while they were afraid to ask aught concerning what he had said, they did recall all of it subsequent to his resurrection. 그들은 슬픔에 잠겨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들은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이런 말을 알아차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가 말했던 것에 관해 겁이 나서 도저히 질문하지 못했지만, 그의 부활 이후에 그들은 그런 모든 것을 생각해 냈습니다.

84-7 The Ideals of Family Life 가정생활의 이상(理想)들

7. The Ideals of Family Life 가정생활의 이상(理想)들

84:7.1 (939.4) Sex mating is instinctive, children are the natural result, and the family thus automatically comes into existence. As are the families of the race or nation, so is its society. If the families are good, the society is likewise good. The great cultural stability of the Jewish and of the Chinese peoples lies in the strength of their family groups. 성적 짝짓기는 본능적이고, 자녀는 자연스러운 결과여서 가정은 자동으로 생깁니다. 종족이나 국가에 속한 가정들처럼 그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들이 좋으면 마찬가지로 그 사회도 좋습니다. 유대와 중국 민족의 위대한 문화적 안정은 그들 가족 집단의 능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84:7.2 (939.5) Woman’s instinct to love and care for children conspired to make her the interested party in promoting marriage and primitive family life. Man was only forced into home building by the pressure of the later mores and social conventions; he was slow to take an interest in the establishment of marriage and home because the sex act imposes no biologic consequences upon him.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는 여성의 본능 때문에 여성은 결혼과 원시 가정생활을 촉진하는 이해당사자가 됩니다. 남성은 후일의 관습과 사회적 관습의 압력으로 가정을 세우지 않을 수 없을 뿐이었습니다. 남성은, 성(性)행위가 자신에게 생물학적 영향이 없으므로 결혼과 가정의 설립에 서서히 관심을 가졌습니다.

84:7.3 (939.6) Sex association is natural, but marriage is social and has always been regulated by the mores. The mores (religious, moral, and ethical), together with property, pride, and chivalry, stabilize the institutions of marriage and family. Whenever the mores fluctuate, there is fluctuation in the stability of the home-marriage institution. Marriage is now passing out of the property stage into the personal era. Formerly man protected woman because she was his chattel, and she obeyed for the same reason. Regardless of its merits this system did provide stability. Now, woman is no longer regarded as property, and new mores are emerging designed to stabilize the marriage-home institution: 성적 결합은 자연스럽지만, 결혼은 사회적이며 항상 관습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종교적, 도덕적 및 윤리적) 관습은 재산·자부심(自負心)·기사도(騎士道)와 함께 결혼과 가정 제도를 안정시킵니다. 관습이 변동할 때마다 가정-결혼제도의 안정이 오르내립니다. 결혼은 이제 재산 단계에서 개인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전에 여성은 남성의 재산이었기에 남성이 여성을 보호했고, 같은 이유로 여성이 복종했습니다. 그 장점에 상관없이, 이 체제가 안정을 마련했습니다. 이제 여성을 더는 재산으로 여기지 않으며 결혼-가정 제도를 안정시키려는 새 관습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84:7.4 (939.7) 1. The new role of religion — the teaching that parental experience is essential, the idea of procreating cosmic citizens, the enlarged understanding of the privilege of procreation — giving sons to the Father. 종교의 새 역할 – 부모 체험이 필수적이라는 가르침, 질서우주 시민을 낳는 생각, 자손을 아버지께 드리는 출산 특권에 대한 확장된 이해.

84:7.5 (940.1) 2. The new role of science — procreation is becoming more and more voluntary, subject to man’s control. In ancient times lack of understanding insured the appearance of children in the absence of all desire therefor. 과학의 새 역할 – 인간의 조절로, 더욱더 의도적으로 출산하게 됩니다. 고대에는, 조절에 대한 모든 욕망이 없어서, 이해 결핍 때문에 자녀의 출현이 보장되었습니다.

84:7.6 (940.2) 3. The new function of pleasure lures — this introduces a new factor into racial survival; ancient man exposed undesired children to die; moderns refuse to bear them. 의향(意向) 매력의 새 기능 – 이것이 종족 생존의 새 요소를 끌어들입니다. 고대인은 원하지 않은 자녀가 죽도록 집 밖에 버렸습니다. 현대인들은 원하지 않는 자녀를 낳지 않으려 합니다.

84:7.7 (940.3) 4. The enhancement of parental instinct — each generation now tends to eliminate from the reproductive stream of the race those individuals in whom parental instinct is insufficiently strong to insure the procreation of children, the prospective parents of the next generation. 어버이다운 본능의 향상. 이제 각 세대는, 다음 세대의 예비 부모인 자녀 출산을 보증하기에 어버이다운 본능이 강하지 않은 그런 개인들을, 종족 생식의 흐름에서 몰아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84:7.8 (940.4) But the home as an institution, a partnership between one man and one woman, dates more specifically from the days of Dalamatia, about one-half million years ago, the monogamous practices of Andon and his immediate descendants having been abandoned long before. Family life, however, was not much to boast of before the days of the Nodites and the later Adamites. Adam and Eve exerted a lasting influence on all mankind; for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the world men and women were observed working side by side in the Garden. The Edenic ideal, the whole family as gardeners, was a new idea on Urantia. 그러나 제도로서 가정,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동반자 관계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안돈과 그 직계 후손의 일부일처 관례가 오래전에 버려졌던, 거의 50만 년 전, 달라마시아 시절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놋-사람들과 후대 아담-사람들의 시대 이전(以前)의 가정생활은 자랑할만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온 인류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세계 역사에서 처음으로 남성들과 여성들이 동산에서 나란히 일하는 관습이 지켜졌습니다. 원예가들로서 온 가족, 즉 에덴의 이상(理想)은 유란시아에서 새로운 개념이었습니다.

84:7.9 (940.5) The early family embraced a related working group, including the slaves, all living in one dwelling. Marriage and family life have not always been identical but have of necessity been closely associated. Woman always wanted the individual family, and eventually she had her way. 초기 가정은 모두 한집에 사는, 노예들을 포함해서 관련 노동 집단을 포함했습니다. 결혼과 가정생활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았으나 필연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되었습니다. 여성은 언제나 독립된 가정을 원했으며 결국 여성의 방식대로 했습니다.

84:7.10 (940.6) Love of offspring is almost universal and is of distinct survival value. The ancients always sacrificed the mother’s interests for the welfare of the child; an Eskimo mother even yet licks her baby in lieu of washing. But primitive mothers only nourished and cared for their children when very young; like the animals, they discarded them as soon as they grew up. Enduring and continuous human associations have never been founded on biologic affection alone. The animals love their children; man — civilized man — loves his children’s children. The higher the civilization, the greater the joy of parents in the children’s advancement and success; thus the new and higher realization of name pride comes into existence. 자녀 사랑은 거의 일반적이며, 명백히 생존 가치가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자녀의 복지를 위해 어머니의 이익을 언제나 희생했습니다. 에스키모인(人) 어머니는 심지어 아직도 자기 아기를 씻기는 대신에 핥습니다. 그러나 원시 어머니들은 아주 어렸을 때, 자기 자녀를 기르고 보살폈을 뿐입니다. 동물들처럼, 원시 어머니들은 그들이 자라자마자 그들을 버렸습니다. 오래 이어진 인간관계는 생물학적 애정에만 근거를 둔 적이 없었습니다. 동물들은 자기 새끼를 사랑합니다. 인간 – 문명화된 인간은 자기 자녀들의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문명이 높을수록 부모는 자녀의 진보와 성공을 기뻐합니다. 이렇게 긍지(矜持)라는 이름의 더 높은 새로운 인식이 생깁니다.

84:7.11 (940.7) The large families among ancient peoples were not necessarily affectional. Many children were desired because: 고대 민족들 사이에서 대가족들이 반드시 애정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의 이유로 여러 자녀가 필요했습니다.

84:7.12 (940.8) 1. They were valuable as laborers. 그들이 노동자들로 유용했습니다.

84:7.13 (940.9) 2. They were old-age insurance. 그들은 노령 보험이었습니다.

84:7.14 (940.10) 3. Daughters were salable. 딸들은 팔기에 적합했습니다.

84:7.15 (940.11) 4. Family pride required extension of name. 가정의 긍지(矜持)에 이름의 확장이 필요했습니다.

84:7.16 (940.12) 5. Sons afforded protection and defense. 아들들은 보호와 방어를 감당했습니다.

84:7.17 (940.13) 6. Ghost fear produced a dread of being alone. 유령 공포로 홀로 있기를 두려워했습니다.

84:7.18 (940.14) 7. Certain religions required offspring. 어떤 종교들에는 자손이 필요했습니다.

84:7.19 (940.15) Ancestor worshipers view the failure to have sons as the supreme calamity for all time and eternity. They desire above all else to have sons to officiate in the post-mortem feasts, to offer the required sacrifices for the ghost’s progress through spiritland. 조상 숭배자들은 아들들이 없는 것을 영구히, 영원히 최악의 불행으로 간주합니다. 그들은, 사후(死後) 잔치를 맡아, 영의 나라 내내 유령이 나아가도록 필요한 희생을 바칠, 아들들을 다른 무엇보다 요망합니다.

84:7.20 (941.1) Among ancient savages, discipline of children was begun very early; and the child early realized that disobedience meant failure or even death just as it did to the animals. It is civilization’s protection of the child from the natural consequences of foolish conduct that contributes so much to modern insubordination. 고대 야만인들 사이에서 자녀 훈련은 아주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는 불순종이 동물들에게 바로 그랬듯이, 실패나 죽음도 의미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어리석은 행위의 당연한 결과로부터 아이를 보호한 문명이 현대의 불순종에 아주 많이 도움이 됩니다.

84:7.21 (941.2) Eskimo children thrive on so little discipline and correction simply because they are naturally docile little animals; the children of both the red and the yellow men are almost equally tractable. But in races containing Andite inheritance, children are not so placid; these more imaginative and adventurous youths require more training and discipline. Modern problems of child culture are rendered increasingly difficult by: 에스키모 아이들은 날 때부터 유순한 어린 동물이어서, 훈련이 거의 없이 단순한 징계로 잘 자랍니다. 홍인과 황인의 아이들도 거의 비슷하게 유순합니다. 그러나 안드-사람의 유전을 지닌 인종의 아이들은 그렇게 차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더욱 상상을 좋아하고 모험을 즐기는 젊은이들은 훈련과 징계가 더 필요합니다. 자녀 훈육의 현대적 문제는 다음의 이유로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84:7.22 (941.3) 1. The large degree of race mixture. 심한 혼혈(混血).

84:7.23 (941.4) 2. Artificial and superficial education. 강요된 피상적 교육.

84:7.24 (941.5) 3. Inability of the child to gain culture by imitating parents — the parents are absent from the family picture so much of the time. 아이가 부모를 본받아서 양육될 수 없음 – 부모가 (자녀와 함께 있어야 하는) 가족사진에서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없습니다.

84:7.25 (941.6) The olden ideas of family discipline were biologic, growing out of the realization that parents were creators of the child’s being. The advancing ideals of family life are leading to the concept that bringing a child into the world, instead of conferring certain parental rights, entails the supreme responsibility of human existence. 가정 훈육의 오래된 개념은 생물학적이었는데, 부모들이 아이 존재의 창조자들이라는 인식에서 생겼습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친권(親權) 부여 대신에, 인간 존재에 대한 최고의 책임이 따른다는 개념으로, 가정생활의 진보한 이상(理想)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84:7.26 (941.7) Civilization regards the parents as assuming all duties, the child as having all the rights. Respect of the child for his parents arises, not in knowledge of the obligation implied in parental procreation, but naturally grows as a result of the care, training, and affection which are lovingly displayed in assisting the child to win the battle of life. The true parent is engaged in a continuous service-ministry which the wise child comes to recognize and appreciate. 문명은, 부모가 모든 책임을 떠맡고, 자녀는 모든 권리를 지닌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녀의 부모 존경은 부모 출산에 들어있는 채무(債務 갚을 빚)를 아는 데서 생기지 않고, 자녀가 생존 투쟁을 이기도록 도우면서 애정으로 드러난, 보살핌, 훈련과 애정의 결과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참된 부모는, 슬기로운 자녀가 알아보고 절실히 느끼도록 쉬지 않고 돌보는 섬김에 마음과 힘을 다합니다.

84:7.27 (941.8) In the present industrial and urban era the marriage institution is evolving along new economic lines. Family life has become more and more costly, while children, who used to be an asset, have become economic liabilities. But the security of civilization itself still rests on the growing willingness of one generation to invest in the welfare of the next and future generations. And any attempt to shift parental responsibility to state or church will prove suicidal to the welfare and advancement of civilization. 현재의 산업적 도시 시대에, 결혼제도는 새로운 경제 노선을 따라 진화하고 있습니다. 가정생활은 더욱더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에, 한때 자산이었던 자녀들은 경제적 채무(債務 빚)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명 자체의 보장은 한 세대가 다음 미래 세대의 복지에 기꺼이 투자하는 성장에 여전히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 책임을 국가나 교회로 옮기려는 모든 시도는 문명의 복지와 증진에 자멸을 초래할 것입니다.

84:7.28 (941.9) Marriage, with children and consequent family life, is stimulative of the highest potentials in human nature and simultaneously provides the ideal avenue for the expression of these quickened attributes of mortal personality. The family provides for the biologic perpetuation of the human species. The home is the natural social arena wherein the ethics of blood brotherhood may be grasped by the growing children. The family is the fundamental unit of fraternity in which parents and children learn those lessons of patience, altruism, tolerance, and forbearance which are so essential to the realization of brotherhood among all men. 결혼은, 자녀들과 그 결과인 가정생활과 함께, 가장 높은 인간 본성의 잠재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필사자 고유성의 이런 속성을 분발시켜 표현하는 이상적인 방법을 마련합니다. 가정은 인간종이 생물학적으로 영속하게 합니다. 가정은, 성장하는 자녀들이 혈연적 형제 사랑의 윤리를 파악할 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사회적 활동 무대입니다. 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모든 사람 사이에서 형제 사랑의 실현에 아주 본질적인, 참을성, 애타(愛他)주의, 너그러움과 자제심의 그런 교훈을 배우는, 기본적인 형제 우애 단위입니다.

84:7.29 (941.10) Human society would be greatly improved if the civilized races would more generally return to the family-council practices of the Andites. They did not maintain the patriarchal or autocratic form of family government. They were very brotherly and associative, freely and frankly discussing every proposal and regulation of a family nature. They were ideally fraternal in all their family government. In an ideal family filial and parental affection are both augmented by fraternal devotion. 문명화된 종족들이 더욱 전반적으로 안드-사람들의 가족-회의 관례로 돌아간다면 인간 사회는 크게 개선될 것입니다. 그들은 가부장(家父長)적 혹은 독재적 형태의 가정 정치체제를 유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주 친숙하게 연합하고, 가정의 본래 모습에 속한 모든 제안과 규정을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가정 정치체제에서 더할 나위 없이 우애(友愛)적이었습니다. 이상적(理想的)인 가정에서, 우애(友愛)적 헌신으로, 효성스러운 애정과 어버이다운 애정 둘 다 늘어납니다.

84:7.30 (942.1) Family life is the progenitor of true morality, the ancestor of the consciousness of loyalty to duty. The enforced associations of family life stabilize personality and stimulate its growth through the compulsion of necessitous adjustment to other and diverse personalities. But even more, a true family — a good family — reveals to the parental procreators the attitude of the Creator to his children, while at the same time such true parents portray to their children the first of a long series of ascending disclosures of the love of the Paradise parent of all universe children. 가정생활은 참된 도덕의 조상, 의무에 대한 충성 의식의 선조입니다. 강제적인 가정생활의 결합으로 고유성이 안정되고, 다른 다양한 고유성에 대해 부득이하게 필연적으로 조율하면서, 그 고유성이 활발히 성장하게 합니다. 그러나 더욱더, 참된 가정 – 좋은 가정은 출산 어버이에게, 자기 자녀들 대한 창조주의 태도를 나타내는 동시에 그런 참된 부모는 자기 자녀들에게, 일련의 긴 상승 단계 중 첫째로, 모든 우주 자녀들의 천국 부모의 사랑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묘사합니다.

38-5 Seraphic Training 세라핌 훈련

5. Seraphic Training 세라핌 훈련

38:5.1 (420.6) Seraphim spend their first millennium as noncommissioned observers on Salvington and its associated world schools. The second millennium is spent on the seraphic worlds of the Salvington circuit. Their central training school is now presided over by the first one hundred thousand Nebadon seraphim, and at their head is the original or first-born angel of this local universe. The first created group of Nebadon seraphim were trained by a corps of one thousand seraphim from Avalon; subsequently our angels have been taught by their own seniors. The Melchizedeks also have a large part in the education and training of all local universe angels — seraphim, cherubim, and sanobim. 세라핌천사들은 샐빙톤과 그 관련 세계 학교들에서 임명받지 않은 관찰자들로서 첫째 1 천년을 보냅니다. 둘째 1 천년은 샐빙톤 회로의 세라핌천사 세계들에서 보냅니다. 첫 네바돈 세라(世羅)핌천사 10만 명이 그들의 중앙 훈련 학교를 지금 주관(主管)하고 있으며, 그들의 수석은 이 지역 우주의 최초 즉 첫 번째 천사입니다. 아발론 출신의 1천 세라핌천사단(團)이 네바돈에서 처음 창조된 세라핌천사 집단을 훈련했습니다. 그 후 자신들의 바로 선임들이 우리 천사들을 가르쳤습니다. 멜기세덱들도 모든 지역 우주 천사 – 세라핌, 케루빔과 사노빔의 교육과 훈련에 상세히 관여합니다.

38:5.2 (421.1) At the termination of this period of training on the seraphic worlds of Salvington, seraphim are mobilized in the conventional groups and units of the angelic organization and are assigned to some one of the constellations. They are not yet commissioned as ministering spirits, although they have well entered upon the precommissioned phases of angelic training. 샐빙톤의 세라핌천사 세계들에서 이런 훈련 기간이 끝나면, 세라핌천사들은 기존 집단과 천사 편제(編制) 단위에 동원되며 성좌 중 어느 하나에 배치됩니다. 그들이 천사 훈련 중 임명 직전 단계에 완전히 들어가 있지만, 아직 돌보는 영(靈)들로 임명받지 않습니다.

38:5.3 (421.2) Seraphim are initiated as ministering spirits by serving as observers on the lowest of the evolutionary worlds. After this experience they return to the associate worlds of the headquarters of the assigned constellation to begin their advanced studies and more definitely to prepare for service in some particular local system. Following this general education they are advanced to the service of some one of the local systems. On the architectural worlds associated with the capital of some Nebadon system our seraphim complete their training and are commissioned as ministering spirits of time. 세라핌들은 가장 낮은 진화 세계들에서 관찰자들로 섬기면서 돌보는 영(靈)들로 시작합니다. 이런 체험 뒤, 그들은 고등 연구와 어떤 특별 지역 체계에서 더 확실히 섬길 준비를 시작하려고 배치된 성좌 본부의 관련 세계들로 돌아옵니다. 이런 일반 교육 다음에, 그들은 지역 체계 중 어느 하나에서 섬기도록 진급합니다. 어느 네바돈 체계 수도와 관련된 건축 세계들에서, 우리 세라핌은 자기 훈련을 마치고 시간의 돌보는 영(靈)들로서 임관합니다.

38:5.4 (421.3) When once seraphim are commissioned, they may range all Nebadon, even Orvonton, on assignment. Their work in the universe is without bounds and limitations; they are closely associated with the material creatures of the worlds and are ever in the service of the lower orders of spiritual personalities, making contact between these beings of the spirit world and the mortals of the material realms. 일단 세라핌이 임명받으면 그들은 모든 네바돈, 오르본톤까지 임명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주에서 그들의 과업은 경계도, 한계도 없습니다. 그들은 세계들의 물질 창조물들과 밀접하게 사귀며, 낮은 계열의 영적 고유성들을 언제나 섬기면서, 영(靈) 세계의 이런 존재들과 물질 영역의 필사자들 사이에서 연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