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5 Jesus Heals the Boy 예수께서 소년을 고치시다.

5. Jesus Heals the Boy 예수께서 소년을 고치시다.

211205 신앙의 신실함과 그 역량 막9:15-27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15 As soon as all the people saw Jesus, they were overwhelmed with wonder and ran to greet him. 16 “What are you arguing with them about?” he asked. 17 A man in the crowd answered, “Teacher, I brought you my son, who is possessed by a spirit that has robbed him of speech. 18 Whenever it seizes him, it throws him to the ground. He foams at the mouth, gnashes his teeth and becomes rigid. I asked your disciples to drive out the spirit, but they could not.” 19 “O unbelieving generation,” Jesus replied, “how long shall I stay with you? How long shall I put up with you? Bring the boy to me.” 20 So they brought him. When the spirit saw Jesus, it immediately threw the boy into a convulsion. He fell to the ground and rolled around, foaming at the mouth. 21 Jesus asked the boy’s father, “How long has he been like this?” “From childhood,” he answered. 22 “It has often thrown him into fire or water to kill him. But if you can do anything, take pity on us and help us.” 23 ” ‘If you can’?” said Jesus. “Everything is possible for him who believes.” 24 Immediately the boy’s father exclaimed, “I do believe; help me overcome my unbelief!” 25 When Jesus saw that a crowd was running to the scene, he rebuked the evil spirit. “You deaf and mute spirit,” he said, “I command you, come out of him and never enter him again.” 26 The spirit shrieked, convulsed him violently and came out. The boy looked so much like a corpse that many said, “He’s dead.” 27 But Jesus took him by the hand and lifted him to his feet, and he stood up.

158:5.1 (1757.1) As Jesus drew near, the nine apostles were more than relieved to welcome him, and they were greatly encouraged to behold the good cheer and unusual enthusiasm which marked the countenances of Peter, James, and John. They all rushed forward to greet Jesus and their three brethren. As they exchanged greetings, the crowd came up, and Jesus asked, “What were you disputing about as we drew near?” But before the disconcerted and humiliated apostles could reply to the Master’s question, the anxious father of the afflicted lad stepped forward and, kneeling at Jesus’ feet, said: “Master, I have a son, an only child, who is possessed by an evil spirit. Not only does he cry out in terror, foam at the mouth, and fall like a dead person at the time of seizure, but oftentimes this evil spirit which possesses him rends him in convulsions and sometimes has cast him into the water and even into the fire. With much grinding of teeth and as a result of many bruises, my child wastes away. His life is worse than death; his mother and I are of a sad heart and a broken spirit. About noon yesterday, seeking for you, I caught up with your disciples, and while we were waiting, your apostles sought to cast out this demon, but they could not do it. And now, Master, will you do this for us, will you heal my son?” 예수께서 접근하자, 아홉 사도가 더욱 안심하면서 그를 환영했으며, 그들은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의 안색에 드러난 즐거운 표정과 여느 때와 다른 열의를 보고 대단히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들 모두 앞으로 달려 나가 예수님과 세 형제를 맞이했습니다. 그들이 인사를 나눌 때 군중이 다가오자, 예수께서 “우리가 다가올 때 너희는 무슨 일로 논쟁하고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당황하여 불안한 사도들이 주님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시달리는 소년을 걱정하는 아버지가 앞에 나와 예수님의 발아래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습니다. “주(主)여, 저는 아들, 악령이 들린 외아들이 있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고, 입에서 게거품을 뿜으며, 발작할 때 죽은 사람처럼 쓰러짐은 말할 것도 없이, 종종 그에게 들린 이 악령이 그를 경련으로 쥐어뜯고 때로는 그를 물과 불 속에도 던졌습니다. 이를 많이 갈고 여러 타박상의 결과로 내 아이가 쇠약해집니다. 그의 삶은 죽음보다 더 형편이 없습니다. 아이 엄마와 저는 슬픈 심정으로 기가 꺾입니다. 당신을 찾다가, 어제 정오쯤, 제가 당신의 제자들을 따라잡았고,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당신의 사도들이 이 귀신을 내쫓으려 했으나 그들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주(主)여, 당신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하시렵니까? 당신께서 내 아들을 고치시렵니까?”

158:5.2 (1757.2) When Jesus had listened to this recital, he touched the kneeling father and bade him rise while he gave the near-by apostles a searching survey. Then said Jesus to all those who stood before him: “O faithless and perverse generation, how long shall I bear with you? How long shall I be with you? How long ere you learn that the works of faith come not forth at the bidding of doubting unbelief?” And then, pointing to the bewildered father, Jesus said, “Bring hither your son.” And when James had brought the lad before Jesus, he asked, “How long has the boy been afflicted in this way?” The father answered, “Since he was a very young child.” And as they talked, the youth was seized with a violent attack and fell in their midst, gnashing his teeth and foaming at the mouth. After a succession of violent convulsions he lay there before them as one dead. Now did the father again kneel at Jesus’ feet while he implored the Master, saying: “If you can cure him, I beseech you to have compassion on us and deliver us from this affliction.” And when Jesus heard these words, he looked down into the father’s anxious face, saying: “Question not my Father’s power of love, only the sincerity and reach of your faith. All things are possible to him who really believes.” And then James of Safed spoke those long-to-be-remembered words of commingled faith and doubt, “Lord, I believe. I pray you help my unbelief.” 예수는 이 상세한 설명을 듣고, 바로 옆의 사도들을 엄중히 보시면서, 그가 무릎 꿇은 아버지에게 손대시고 일어나라고 명했습니다. 다음에 예수께서 자신 앞에 서 있던 모든 자에게 말했습니다. “아, 신앙 없이 비뚤어진 사람들아, 내가 얼마나 너희를 참으랴?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랴? 너희는 얼마나 오래 걸려야, 신앙의 효과가 의심하는 불신의 뜻에서 나오지 않음을 배우느냐?” 그다음 당황하는 아버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네 아들을 이리 데려오라.” 야고보가 예수 앞에 소년을 데려오자, 그가 물었습니다. “소년이 이렇게 앓은 지 얼마나 되었느냐?”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그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앓았습니다.” 그들이 말할 때, 젊은 소년이 격렬한 공격에 사로잡혀 그들 사이에 넘어져 이를 갈고 입에서 게거품을 뿜기 시작했습니다. 연속적인 격렬한 경련 후, 그는 죽은 사람처럼 그들 앞에 누웠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다시 예수의 발아래 무릎을 꿇어 주님께 간청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를 고칠 수 있다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이 고통에서 우리를 건지시기를 제가 간청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듣자, 그는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안색을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의 사랑의 권능을 의심하지 말고, 네 신앙의 신실함과 그 역량(力量)만 의심하라. 진실로 믿는 자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그때 사펫의 야고보가, 신앙과 의심이 뒤섞여, 그렇게 오래 기억될 말을 했습니다. “주여, 제가 믿습니다. 당신께서 제 불신앙을 도우시기를 제가 간구합니다.”

158:5.3 (1757.3) When Jesus heard these words, he stepped forward and, taking the lad by the hand, said: “I will do this in accordance with my Father’s will and in honor of living faith. My son, arise! Come out of him, disobedient spirit, and go not back into him.” And placing the hand of the lad in the hand of the father, Jesus said: “Go your way. The Father has granted the desire of your soul.” And all who were present, even the enemies of Jesus, were astonished at what they saw. 예수께 이 말을 듣자, 그가 앞으로 나가, 손으로 소년을 잡고 말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행함은 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아있는 신앙을 존중함이니라. 내 아들아, 일어나라! 불순종하는 영(靈)아, 그에게서 나와 그에게 다시 들어가지 말라.” 그리고 소년의 손을 아버지의 손에 놓으면서,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갈 길을 가라. 아버지께서 네 혼(魂)의 소망을 허락하셨노라.” 현장에 있던 모두, 예수님의 대적들조차, 자신들이 본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158:5.4 (1757.4) It was indeed a disillusionment for the three apostles who had so recently enjoyed the spiritual ecstasy of the scenes and experiences of the transfiguration, so soon to return to this scene of the defeat and discomfiture of their fellow apostles. But it was ever so with these twelve ambassadors of the kingdom. They never failed to alternate between exaltation and humiliation in their life experiences. 아주 최근에 변모의 광경과 체험의 영적 황홀을 누렸던 세 사도는, 자기 동료 사도들의 이런 좌절과 실패의 광경으로 곧 돌아온 것에, 참으로 환멸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 나라의 이 열두 대사는 늘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생활 체험의 광희(狂喜 미칠 듯이 기뻐함)와 굴욕(屈辱) 사이에서 언제나 오락가락했습니다.

158:5.5 (1758.1) This was a true healing of a double affliction, a physical ailment and a spirit malady. And the lad was permanently cured from that hour. When James had departed with his restored son, Jesus said: “We go now to Caesarea-Philippi; make ready at once.” And they were a quiet group as they journeyed southward while the crowd followed on behind. 이것은 이중 고통, 육체적 질병과 영(靈)적 질병을 정말로 치료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은 그 시간부터 영구히 나았습니다. 야고보가 회복된 자기 아들과 떠나자,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가이사랴-빌립보로 가리니, 즉시 준비하라.” 그들이 남쪽으로 여행할 때 무리가 바싹 뒤를 따랐으며, 그들은 말이 없는 일행이었습니다.

84-6 The Partnership of Man and Woman 남성과 여성의 협력

6. The Partnership of Man and Woman 남성과 여성의 협력

84:6.1 (938.5) The reproductive urge unfailingly brings men and women together for self-perpetuation but, alone, does not insure their remaining together in mutual co-operation — the founding of a home. 번식(繁殖) 충동이 자아-영속을 위해 남녀를 확실히 결합하게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이 함께 남아 서로 협력하면서 가정을 세우도록 책임지게 하지는 않습니다.

84:6.2 (938.6) Every successful human institution embraces antagonisms of personal interest which have been adjusted to practical working harmony, and homemaking is no exception. Marriage, the basis of home building, is the highest manifestation of that antagonistic co-operation which so often characterizes the contacts of nature and society. The conflict is inevitable. Mating is inherent; it is natural. But marriage is not biologic; it is sociologic. Passion insures that man and woman will come together, but the weaker parental instinct and the social mores hold them together. 성공한 어떤 인간 제도나 실제로 활동이 조화되도록 조율한 개인적 이익의 대립을 포함하며, 가정 관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결혼, 가정 설립의 토대는 그렇게 자주 자연과 사회의 연결을 묘사하는 대립적 협력의 최고 표현입니다. 갈등(葛藤)은 피할 수 없습니다. 짝짓기는 타고난 것이며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결혼은 생물학적이지 않고, 사회학적입니다. 남녀가 합할 것을 열정(熱情)이 보증하지만 연약한 어버이의 본능과 사회적 관습이 그들을 단결시킵니다.

84:6.3 (938.7) Male and female are, practically regarded, two distinct varieties of the same species living in close and intimate association. Their viewpoints and entire life reactions are essentially different; they are wholly incapable of full and real comprehension of each other. Complete understanding between the sexes is not attainable. 남녀는 실제로, 밀접하게 친한 관계로 살아가는 동종(同種)의 다른 두 변종(變種)으로 여겨집니다. 그들의 관점과 전체 생활 반응은 본질상 다릅니다. 그들은 서로 충분히 진실로 이해할 능력이 아예 없습니다. 남녀 사이에 완벽한 양해(諒解)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84:6.4 (938.8) Women seem to have more intuition than men, but they also appear to be somewhat less logical. Woman, however, has always been the moral standard-bearer and the spiritual leader of mankind. 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 still fraternizes with destiny.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직관을 지닌 것 같지만, 그들도 약간 덜 논리적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여성은 언제나 인류의 도덕적 기수(旗手)와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요람을 흔드는 손은 여전히 운명(運命)과 친하게 사귑니다.

84:6.5 (938.9) The differences of nature, reaction, viewpoint, and thinking between men and women, far from occasioning concern, should be regarded as highly beneficial to mankind, both individually and collectively. Many orders of universe creatures are created in dual phases of personality manifestation. Among mortals, Material Sons, and midsoniters, this difference is described as male and female; among seraphim, cherubim, and Morontia Companions, it has been denominated positive or aggressive and negative or retiring. Such dual associations greatly multiply versatility and overcome inherent limitations, even as do certain triune associations in the Paradise-Havona system. 남녀 사이의 본성, 반응, 관점 및 사고의 차이는, 우려(憂慮)는커녕, 개별로, 공동으로 인류에게 대단히 유익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여러 계층의 우주 창조물들은 이중 양상(樣相)으로 고유성을 표현하도록 창조됩니다. 필사자들, 물질 아들들 및 중한(中限)자들 사이에서, 이런 차이는 남성과 여성으로 언급됩니다. 세라핌천사, 케루빔과 모론시아 동반자들 사이에서, 그것은 양성적 또는 적극적 그리고 음성적 또는 소극적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이런 이중 결합은, 천국-하보나 체계에서 심지어 어떤 삼자일치적 결합이 행하듯이, 융통성을 대단히 다양화하고 선천적 한계를 극복합니다.

84:6.6 (939.1) Men and women need each other in their morontial and spiritual as well as in their mortal careers. The differences in viewpoint between male and female persist even beyond the first life and throughout the local and superuniverse ascensions. And even in Havona, the pilgrims who were once men and women will still be aiding each other in the Paradise ascent. Never, even in the Corps of the Finality, will the creature metamorphose so far as to obliterate the personality trends that humans call male and female; always will these two basic variations of humankind continue to intrigue, stimulate, encourage, and assist each other; always will they be mutually dependent on co-operation in the solution of perplexing universe problems and in the overcoming of manifold cosmic difficulties. 남성들과 여성들은 필사자 생애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모론시아와 영적 생애들에서도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남녀 사이에 있는 관점의 차이는 심지어 첫 생애를 넘어 지역과 초우주 상승 내내 계속됩니다. 그리고 하보나에서도, 한때 남녀였던 순례자들은 천국으로 상승하면서 여전히 서로 돕게 될 것입니다. 최종단(團)에서도, 창조물은 인간들이 남성과 여성으로 부르는 고유성 경향의 흔적을 없애는 정도까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류의 이런 두 기본 변종(變種)은 언제나 계속 서로에게 흥미를 갖고, 격려하며, 용기를 주고, 서로 거들 것입니다. 그들은 항상 협력하면서 서로 의지하여 복잡한 우주 문제를 해결하고 다양한 질서우주 어려움을 극복할 것입니다.

84:6.7 (939.2) While the sexes never can hope fully to understand each other, they are effectively complementary, and though co-operation is often more or less personally antagonistic, it is capable of maintaining and reproducing society. Marriage is an institution designed to compose sex differences, meanwhile effecting the continuation of civilization and insuring the reproduction of the race. 남녀가 서로 완전히 이해하기를 바랄 수 없지만, 그들은 사실상 서로 보완하는 관계이며, 협력은 종종 거의 개인적으로 대립하지만, 공동체를 유지하고 재생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결혼은 문명을 연장하고 인류의 재생을 보장하는 동시에 성별 차이를 진정시키도록 계획된 제도입니다.

84:6.8 (939.3) Marriage is the mother of all human institutions, for it leads directly to home founding and home maintenance, which is the structural basis of society. The family is vitally linked to the mechanism of self-maintenance; it is the sole hope of race perpetuation under the mores of civilization, while at the same time it most effectively provides certain highly satisfactory forms of self-gratification. The family is man’s greatest purely human achievement, combining as it does the evolution of the biologic relations of male and female with the social relations of husband and wife. 결혼은, 사회 조직의 토대인 가정을, 선두에 서서 바로 세우고 가정을 유지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 제도의 원천입니다. 가정은 자아-유지의 작용에 매우 중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정은 문명의 관습에 따라 인류가 영속하는 유일한 희망인 동시에 분명히 아주 만족스러운 형태의 자아-만족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공합니다. 가정은, 남녀의 생물학적 관계의 진화와 남편과 아내의 사회적 관계를 결합하는, 사람의 가장 위대한, 인간의 순전한 업적입니다.

38-4 The Seraphic Worlds 세라핌천사 세계들

4. The Seraphic Worlds 세라핌천사 세계들

38:4.1 (420.2) The ninth group of seven primary spheres in the Salvington circuit are the worlds of the seraphim. Each of these worlds has six tributary satellites, whereon are the special schools devoted to all phases of seraphic training. While the seraphim have access to all forty-nine worlds comprising this group of Salvington spheres, they exclusively occupy only the first cluster of seven. The remaining six clusters are occupied by the six orders of angelic associates unrevealed on Urantia; each such group maintains headquarters on one of these six primary worlds and carries on specialized activities on the six tributary satellites. Each angelic order has free access to all the worlds of these seven diverse groups. 샐빙톤 회로에 있는 아홉째 집단의 일곱 1차 구체는 세라핌천사 세계들입니다. 이 세계들 각각, 모든 단계의 세라핌천사 훈련에 몰두하는 특수 학교가 있는 여섯 종속 위성을 지닙니다. 세라핌천사들은 샐빙톤 구체들의 이 집단을 이루는 모든 49 세계에 접근하는 반면에 그들은 오직 일곱의 첫 성단만 차지합니다. 남은 여섯 성단은 유란시아에 계시가 되지 않은 여섯 계열의 천사 동료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각 집단은 이들 여섯 1차 세계 중 하나에 본부를 유지하면서 여섯 종속 위성들에서 전문 활동을 수행합니다. 각 천사 계열은 이런 일곱 다양한 집단에 속한 모든 세계에 자유롭게 접근합니다.

38:4.2 (420.3) These headquarters worlds are among the magnificent realms of Nebadon; the seraphic estates are characterized by both beauty and vastness. Here each seraphim has a real home, and “home” means the domicile of two seraphim; they live in pairs. 이런 본부 세계들은 네바돈의 장엄한 권역에 속합니다. 세라핌천사 단지(團地)들의 특징은 아름다움과 광대함입니다. 각 세라핌천사는 여기에 실제 집이 있고, “집”은 두 세라핌천사의 거주지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둘이 한 쌍으로 삽니다.

38:4.3 (420.4) Though not male and female as are the Material Sons and the mortal races, seraphim are negative and positive. In the majority of assignments it requires two angels to accomplish the task. When they are not encircuited, they can work alone; neither do they require complements of being when stationary. Ordinarily they retain their original complements of being, but not necessarily. Such associations are primarily necessitated by function; they are not characterized by sex emotion, though they are exceedingly personal and truly affectionate. 물질 아들들과 필사 종족들처럼 남녀가 아니지만, 세라핌천사들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입니다. 임무의 대부분에서 과업의 성취에 두 천사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회로를 이루지 않을 때 그들은 홀로 일할 수 있습니다. 순회하지 않을 때 그들은 존재의 보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보통 그들은 자신들의 기원적 존재의 보완을 계속 사용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로 기능적으로 그렇게 결합해야 합니다. 그들은 대단히 다사롭고 진심으로 사랑이 넘치지만, 성적(性的) 정서(情緖)의 특징은 없습니다.

38:4.4 (420.5) Besides designated homes, seraphim also have group, company, battalion, and unit headquarters. They forgather for reunions every millennium and are all present in accordance with the time of their creation. If a seraphim bears responsibilities which forbid absence from duty, she alternates attendance with her complement, being relieved by a seraphim of another birth date. Each seraphic partner is thereby present at least every other reunion. 지명 주택외에 세라핌천사들은 또한 소대(小隊), 중대(中隊), 대대(大隊)와 단위 본부가 있습니다. 그들은 천년마다 친목회로 모이며 자신들이 창조된 때에 따라 모두 참석합니다. 세라핌천사가 결근이 허락되지 않는 책임을 맡고 있으면, 다른 생년월일의 세라핌천사와 교체하여, 그녀의 보완자와 교대로 출석합니다. 따라서 각 세라핌천사 동반자는 적어도 다른 모든 친목회에 참석합니다.

38-3 Unrevealed Angels 미(未)계시 천사들

3. Unrevealed Angels 미(未)계시 천사들

38:3.1 (420.1) Numerous orders of spirit beings function throughout the domains of the local universe that are unrevealed to mortals because they are in no manner connected with the evolutionary plan of Paradise ascension. In this paper the word “angel” is purposely limited to the designation of those seraphic and associated offspring of the Universe Mother Spirit who are so largely concerned with the operation of the plans of mortal survival. There serve in the local universe six other orders of related beings, the unrevealed angels, who are not in any specific manner connected with those universe activities pertaining to the Paradise ascent of evolutionary mortals. These six groups of angelic associates are never called seraphim, neither are they referred to as ministering spirits. These personalities are wholly occupied with the administrative and other affairs of Nebadon, engagements which are in no way related to man’s progressive career of spiritual ascent and perfection attainment. 수많은 영(靈) 존재 계열이 필사자들에게 계시 되지 않은 지역 우주의 모든 권역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결코 그들이 천국 상승의 진화 계획과 관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편(編)에서 단어 “천사”는 특별히 대개 필사자 생존 계획의 활동에 주로 연관된, 그런 세라핌 천사 및 관련된 우주 어머니 영의 자녀에 대한 호칭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지역 우주에는, 진화 필사자들의 천국 상승에 속한 그런 우주 활동과 어떤 방식으로든 전혀 연결되지 않은 여섯 계열의 다른 관련 존재들, 즉 미(未)계시 천사들이 봉사합니다. 이런 천사 동료의 여섯 집단은 세라핌 천사로 불리지 않고, 돌보는 영(靈)들로 칭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고유성들은 네바돈의 경영 및 다른 업무, 영적 상승 및 완전 달성에 속한 사람의 진보 생애와 조금도 관련되지 않는 용무에 온전히 전념합니다.

158-4 The Epileptic Boy 뇌전증(간질癎疾) 소년

4. The Epileptic Boy 뇌전증(간질癎疾) 소년

211128 뇌전증(간질癎疾) 소년 눅9:37-39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 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쌔 38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소리질러 가로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저를 잡아 졸지에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심히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37 The next day, when they came down from the mountain, a large crowd met him. 38 A man in the crowd called out, “Teacher, I beg you to look at my son, for he is my only child. 39 A spirit seizes him and he suddenly screams; it throws him into convulsions so that he foams at the mouth. It scarcely ever leaves him and is destroying him.

158:4.1 (1755.7) It was shortly before breakfast time on this Tuesday morning when Jesus and his companions arrived at the apostolic camp. As they drew near, they discerned a considerable crowd gathered around the apostles and soon began to hear the loud words of argument and disputation of this group of about fifty persons, embracing the nine apostles and a gathering equally divided between Jerusalem scribes and believing disciples who had tracked Jesus and his associates in their journey from Magadan. 이 화요일(AD 29. 8. 16) 아침 식사 직전에, 예수님과 그의 동료들이 사도 야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접근했을 때, 그들은 사도들 주위에 모여 있는 꽤 많은 군중을 발견했고, 바로 아홉 사도와 예루살렘 서기관들과 마가단으로부터 여행했던 예수님과 그 동료들의 뒤를 쫓았던 믿는 제자들 사이에 동등하게 나뉜 모임을 포함해서 거의 오십 명의 이 무리가 언쟁하고 반박하는 시끄러운 논쟁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158:4.2 (1755.8) Although the crowd engaged in numerous arguments, the chief controversy was about a certain citizen of Tiberias who had arrived the preceding day in quest of Jesus. This man, James of Safed, had a son about fourteen years old, an only child, who was severely afflicted with epilepsy. In addition to this nervous malady this lad had become possessed by one of those wandering, mischievous, and rebellious midwayers who were then present on earth and uncontrolled, so that the youth was both epileptic and demon-possessed. 군중이 여러 논쟁을 벌였지만, 주된 말다툼은 전날 예수님을 찾아 도착한 어떤 티베리아스 시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 사펫의 야고보에게 격렬하게 간질을 앓는 14살쯤 된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신경병에 더하여 이 소년에게, 당시 지상에 있으면서 방치되어, 그렇게 헤매며, 해롭고 반역하는 중도자 중 하나가 들려서, 청소년은 뇌전증에다가 귀신이 들렸습니다.

158:4.3 (1755.9) For almost two weeks this anxious father, a minor official of Herod Antipas, had wandered about through the western borders of Philip’s domains, seeking Jesus that he might entreat him to cure this afflicted son. And he did not catch up with the apostolic party until about noon of this day when Jesus was up on the mountain with the three apostles. 거의 두 주간, 헤롯 안티파스의 하급관리였던, 걱정 많은 이 아버지는, 이렇게 괴로워하는 아들을 고쳐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예수님을 찾아서 빌립의 영토 서쪽 경계선 여기저기를 헤맸습니다. 예수께서 세 사도와 산에 올라가 계셨던, 그날(AD 29. 8.15 월) 정오쯤 비로소 그는 사도 일행을 따라잡았습니다.

158:4.4 (1756.1) The nine apostles were much surprised and considerably perturbed when this man, accompanied by almost forty other persons who were looking for Jesus, suddenly came upon them. At the time of the arrival of this group the nine apostles, at least the majority of them, had succumbed to their old temptation — that of discussing who should be greatest in the coming kingdom; they were busily arguing about the probable positions which would be assigned the individual apostles. They simply could not free themselves entirely from the long-cherished idea of the material mission of the Messiah. And now that Jesus himself had accepted their confession that he was indeed the Deliverer — at least he had admitted the fact of his divinity — what was more natural than that, during this period of separation from the Master, they should fall to talking about those hopes and ambitions which were uppermost in their hearts. And they were engaged in these discussions when James of Safed and his fellow seekers after Jesus came upon them. 아홉 사도는, 예수를 찾고 있던, 거의 40명의 다른 사람과 함께, 이 사람이 갑자기 자신들을 만났을 때, 매우 놀라서 많이 당황했습니다. 이 무리가 도착했을 때, 적어도 대부분의 아홉 사도는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큰 자가 누구이어야 하는지 논의하는 자신들의 오래된 유혹에 졌습니다. 그들은 각 사도에게 할당될 유망한 자리에 대해 열심히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솔직히 오랫동안 바라던 메시아의 물질적 사명에 속한 사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자신이, 그가 과연 해방자 – 적어도 자신의 신성(神性)에 대한 사실을 인정한, 자신들의 고백을 받아들였고, 그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은, 주님과 이렇게 떨어져 있는 동안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심정에 있는 최고의 그런 희망과 야심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찾는 사펫의 야고보와 그의 동료 수색자들이 사도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이런 토론 중이었습니다.

158:4.5 (1756.2) Andrew stepped up to greet this father and his son, saying, “Whom do you seek?” Said James: “My good man, I search for your Master. I seek healing for my afflicted son. I would have Jesus cast out this devil that possesses my child.” And then the father proceeded to relate to the apostles how his son was so afflicted that he had many times almost lost his life as a result of these malignant seizures. 안드레가 이 아버지와 그의 아들에게 인사하려고 다가가, “누구를 찾으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야고보가 “내 선생님, 나는 당신의 주님을 찾습니다. 나는 내 아픈 아들을 고치려 합니다. 나는 예수께서 내 아이에게 들린 이 악령을 쫓아냈으면 합니다.” 그런 후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너무 앓고 있어서, 이런 악성 발작의 결과로 그가 여러 번 죽을 뻔했는지 관련하여 사도들에게 계속 설명했습니다.

158:4.6 (1756.3) As the apostles listened, Simon Zelotes and Judas Iscariot stepped into the presence of the father, saying: “We can heal him; you need not wait for the Master’s return. We are ambassadors of the kingdom; no longer do we hold these things in secret. Jesus is the Deliverer, and the keys of the kingdom have been delivered to us.” By this time Andrew and Thomas were in consultation at one side. Nathaniel and the others looked on in amazement; they were all aghast at the sudden boldness, if not presumption, of Simon and Judas. Then said the father: “If it has been given you to do these works, I pray that you will speak those words which will deliver my child from this bondage.” Then Simon stepped forward and, placing his hand on the head of the child, looked directly into his eyes and commanded: “Come out of him, you unclean spirit; in the name of Jesus obey me.” But the lad had only a more violent fit, while the scribes mocked the apostles in derision, and the disappointed believers suffered the taunts of these unfriendly critics. 사도들이 듣고 있을 때, 시몬 젤로떼와 가룟 유다가 그 아버지 앞에 나서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그를 고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주께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대사들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런 것들을 숨기지 않습니다. 예수는 해방자이며, 하느님 나라의 열쇠를 우리가 넘겨받았습니다.” 이때까지 안드레와 도마는 한쪽에서 의논 중이었습니다. 나다니엘과 다른 사도들은 어이가 없어서 바라봤습니다. 그들은 모두, 뻔뻔함은 아니어도, 시몬과 유다의 느닷없는 배짱에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이런 일들을 하도록, 받았다면, 내가 간절히 바라기는, 당신들이 이 속박에서 내 아이를 구해낼 그런 말을 해 주십시오.” 그때 시몬이 앞으로 나서서, 자기 손을 아이의 머리에 얹고 그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명령했습니다. “그에게서 나오라, 너 더러운 영(靈)아, 예수의 이름으로 내게 복종하라.” 그러나 소년은 더 격렬히 발작할 뿐이었던 반면에 서기관들은 사도들을 비웃으며 조롱했으며, 실망한 신자들은 이렇게 악의적인 혹평가들의 모욕을 당했습니다.

158:4.7 (1756.4) Andrew was deeply chagrined at this ill-advised effort and its dismal failure. He called the apostles aside for conference and prayer. After this season of meditation, feeling keenly the sting of their defeat and sensing the humiliation resting upon all of them, Andrew sought, in a second attempt, to cast out the demon, but only failure crowned his efforts. Andrew frankly confessed defeat and requested the father to remain with them overnight or until Jesus’ return, saying: “Perhaps this sort goes not out except by the Master’s personal command.” 안드레는 이런 경솔한 노력과 그 어리석은 실패를 아주 유감스레 여겼습니다. 그는 사도들을 따로 불러 모아 기도했습니다. 이때 묵상(默想 마음 기도)한 후, 자신들의 실패에 대한 가책(呵責)을 통렬히 느끼고 자신들 모두에게 쏠린 굴욕(屈辱)을 감지하면서, 안드레는 두 번째 시도하며 귀신을 쫓아내려 했으나 그 노력은 실패로 끝날 뿐이었습니다. 안드레는 솔직히 실패를 인정하고, “이런 종류는 주께서 직접 명령해야 물러날는지 모릅니다.”라고 말하면서, 아버지에게 하룻밤이나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자신들과 함께 남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58:4.8 (1756.5) And so, while Jesus was descending the mountain with the exuberant and ecstatic Peter, James, and John, their nine brethren likewise were sleepless in their confusion and downcast humiliation. They were a dejected and chastened group. But James of Safed would not give up. Although they could give him no idea as to when Jesus might return, he decided to stay on until the Master came back. 그래서 예수님이 열광적이며 황홀한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는 동안, 그들의 아홉 형제도 혼란과 풀이 죽은 굴욕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낙담하여 누그러진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사펫의 야고보는 포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예수께서 언제 오실지에 대해 알려 줄 수 없었지만, 주께서 돌아올 때까지 그는 계속 남아 있기로 정했습니다.

84-5 Woman Under the Developing Mores 발전하는 관습에 따른 여성

5. Woman Under the Developing Mores 발전하는 관습에 따른 여성

84:5.1 (936.5) In self-perpetuation woman is man’s equal, but in the partnership of self-maintenance she labors at a decided disadvantage, and this handicap of enforced maternity can only be compensated by the enlightened mores of advancing civilization and by man’s increasing sense of acquired fairness. 자아-영속에서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지만, 자아를-유지하는 협력에서 여성은 명백히 불리한 입장에서 온 힘을 기울이며, 강요된 모성애로 인한 이런 불이익은 발전하는 문명의 진보한 관습과 기득(旣得 이미 차지하고 있는) 공정성에 대한 남성의 체증(遞增 점차 늘어나는) 감각으로 상쇄(相殺)될 뿐입니다.

84:5.2 (936.6) As society evolved, the sex standards rose higher among women because they suffered more from the consequences of the transgression of the sex mores. Man’s sex standards are only tardily improving as a result of the sheer sense of that fairness which civilization demands. Nature knows nothing of fairness — makes woman alone suffer the pangs of childbirth. 사회가 진화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 성별 기준이 더 높아졌는데, 성별 관습을 어긴 결과로 그들이 더 많이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남성의 성별 기준은 문명이 요구하는 그런 공정성에 대한 순전한 감각의 결과로서 마지못해 좋아질 뿐입니다. 자연은 공정성을 조금도 모릅니다. – 여성 홀로 분만의 고통을 겪도록 내버려 둡니다.

84:5.3 (936.7) The modern idea of sex equality is beautiful and worthy of an expanding civilization, but it is not found in nature. When might is right, man lords it over woman; when more justice, peace, and fairness prevail, she gradually emerges from slavery and obscurity. Woman’s social position has generally varied inversely with the degree of militarism in any nation or age. 현대의 남녀평등 관념은 확장하는 문명에 훌륭하고 가치가 있지만,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힘이 정의(正義)일 때 남성이 여성을 좌지우지합니다. 정의, 평화 및 공정이 더 널리 보급되면, 여성은 점차 노예 상태와 낮은 신분에서 벗어납니다. 여성의 사회적 처지는 어느 민족이나 시대에도, 대개 군국주의 정도와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84:5.4 (937.1) But man did not consciously nor intentionally seize woman’s rights and then gradually and grudgingly give them back to her; all this was an unconscious and unplanned episode of social evolution. When the time really came for woman to enjoy added rights, she got them, and all quite regardless of man’s conscious attitude. Slowly but surely the mores change so as to provide for those social adjustments which are a part of the persistent evolution of civilization. The advancing mores slowly provided increasingly better treatment for females; those tribes which persisted in cruelty to them did not survive. 그러나 남성이 의식적으로나 의도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빼앗지 않았으며 그 후 점차 마지못해 여성에게 그것들을 돌려줍니다. 이 모든 것은 무의식적으로 예기치 못한 사회 진화의 사건이었습니다. 여성이 부가된 권리를 실제로 누릴 때가 되자, 남성의 의식적 태도에 전혀 상관없이 여성이 그것들을 취했습니다.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관습은, 문화의 지속적 진화의 일부인 그런 사회적 조율을 제공하기 위해, 변경됩니다. 진보하는 관습은, 여성을 위해 점차 더 나은 대우를 서서히 제공했습니다. 계속 여성들을 학대한 그런 부족들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84:5.5 (937.2) The Adamites and Nodites accorded women increased recognition, and those groups which were influenced by the migrating Andites have tended to be influenced by the Edenic teachings regarding women’s place in society. 아담-사람들과 놋-사람들은 여자들을 갈수록 더 인정했으며, 이주하는 안드-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은 그런 집단은 사회에서 여성의 처지에 관한 에덴의 가르침으로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84:5.6 (937.3) The early Chinese and the Greeks treated women better than did most surrounding peoples. But the Hebrews were exceedingly distrustful of them. In the Occident woman has had a difficult climb under the Pauline doctrines which became attached to Christianity, although Christianity did advance the mores by imposing more stringent sex obligations upon man. Woman’s estate is little short of hopeless under the peculiar degradation which attaches to her in Mohammedanism, and she fares even worse under the teachings of several other Oriental religions. 초기 중국인과 그리스인(人)들은 대부분의 주변 민족들보다 여성들을 더 잘 대우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인(人)들은 여성들을 지나치게 믿지 않았습니다. 서양에서 여성은, 기독교가 남성에게 더 엄중한 성별 책임을 부과하여 관습을 진전시켰지만, 기독교에 첨부된 바울의 교리에 따라, 힘들게 올라갔습니다. 여성의 지위는 회교(回敎)에서 여성에게 부여한 특징적인 비하(卑下 업신여겨 낮춤)에 따라 거의 희망이 없으며, 여성은 다른 여러 동양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더 어렵게 살아가기까지 합니다.

84:5.7 (937.4) Science, not religion, really emancipated woman; it was the modern factory which largely set her free from the confines of the home. Man’s physical abilities became no longer a vital essential in the new maintenance mechanism; science so changed the conditions of living that man power was no longer so superior to woman power.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 실제로 여성을 해방했습니다. 여성을 가정의 제약에서 충분히 해방한 것은 근대적 공장이었습니다. 새 생활 구조에서 남성의 신체 능력은 지극히 중요한 필수 요소가 더는 아니었습니다. 과학이 생활 조건을 변경하여 남성의 능력이 여성의 능력보다 이제는 뛰어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84:5.8 (937.5) These changes have tended toward woman’s liberation from domestic slavery and have brought about such a modification of her status that she now enjoys a degree of personal liberty and sex determination that practically equals man’s. Once a woman’s value consisted in her food-producing ability, but invention and wealth have enabled her to create a new world in which to function — spheres of grace and charm. Thus has industry won its unconscious and unintended fight for woman’s social and economic emancipation. And again has evolution succeeded in doing what even revelation failed to accomplish. 이런 변화들은 여성을 가사 노예 상태에서 해방하는 경향이 있었고, 여성의 지위가 변경되어 사실상 남성의 사정에 못지않은 어느 정도의 개인적 해방과 성별 결정을 이제 누립니다. 한때 여성의 가치는 식량 생산 능력이었으나, 발명과 부요(富饒)로 여성은 활동하는 새 세계 – 품위와 매력의 영역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산업이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해방을 위해 무의식적이며 의도하지 않은 투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또 진화는 계시조차 성취하지 못한 것을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84:5.9 (937.6) The reaction of enlightened peoples from the inequitable mores governing woman’s place in society has indeed been pendulumlike in its extremeness. Among industrialized races she has received almost all rights and enjoys exemption from many obligations, such as military service. Every easement of the struggle for existence has redounded to the liberation of woman, and she has directly benefited from every advance toward monogamy. The weaker always makes disproportionate gains in every adjustment of the mores in the progressive evolution of society. 사회에서 여성의 처지를 결정하는 불공정한 관습에서 개화된 민족들의 반응은 실로 극도로 추와 같았습니다. 산업화한 인종들 사이에서 여성은 거의 모든 권리를 받아들였고 병역과 같은 여러 의무에서 면제를 누리고 있습니다. 모든 생존 경쟁의 완화로 여성이 해방되었고, 여성은 일부일처주의를 향한 모든 진보에서 즉시 혜택을 받았습니다. 약자는, 사회의 진보적 진화에서 관습이 조율될 때마다, 언제나 어울리지 않게 많은 이익을 얻습니다.

84:5.10 (937.7) In the ideals of pair marriage, woman has finally won recognition, dignity, independence, equality, and education; but will she prove worthy of all this new and unprecedented accomplishment? Will modern woman respond to this great achievement of social liberation with idleness, indifference, barrenness, and infidelity? Today, in the twentieth century, woman is undergoing the crucial test of her long world existence! 일부일처의 이상(理想)들로 여성은 결국 인정, 존엄성, 독립, 평등과 교육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여성이 이렇게 새로운 전례 없는 성취에 합당하다고 입증할까요? 근대 여성이 사회적 해방의 커다란 이런 성취에 나태, 무관심, 불임과 배신으로 반응할까요? 오늘날 20세기에 여성은 자신의 오랜 세계 존재에 대해 결정적인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84:5.11 (938.1) Woman is man’s equal partner in race reproduction, hence just as important in the unfolding of racial evolution; therefore has evolution increasingly worked toward the realization of women’s rights. But women’s rights are by no means men’s rights. Woman cannot thrive on man’s rights any more than man can prosper on woman’s rights. 여성은 종족 번식에서 동등한 남성의 동반자이므로, 종족 진화의 전개에서 똑같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진화는 여성의 권리를 실현하도록 점차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의 권리는 결코 남성들의 권리가 아닙니다. 남성이 여성의 권리로 번영할 수 없는 것처럼 여성은 남성의 권리로 번성할 수 없습니다.

84:5.12 (938.2) Each sex has its own distinctive sphere of existence, together with its own rights within that sphere. If woman aspires literally to enjoy all of man’s rights, then, sooner or later, pitiless and emotionless competition will certainly replace that chivalry and special consideration which many women now enjoy, and which they have so recently won from men. 남녀 각각 자신의 독특한 존재 영역과 그 영역 내에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만약 여성이 남성의 모든 권리를 완전히 누리려 한다면, 여러 여성이 지금 누리고 있으며, 아주 최근에 여성들이 남성들로부터 얻은, 기사도와 특별 배려를, 조만간 냉혹하고 냉담한 경쟁이, 반드시 대신할 것입니다.

84:5.13 (938.3) Civilization never can obliterate the behavior gulf between the sexes. From age to age the mores change, but instinct never. Innate maternal affection will never permit emancipated woman to become man’s serious rival in industry. Forever each sex will remain supreme in its own domain, domains determined by biologic differentiation and by mental dissimilarity. 문명은 결코 남녀 간의 행동 차이를 없앨 수 없습니다. 대대로 관습은 변하지만, 본능은 변하지 않습니다. 선천적 모성애는 해방된 여성이 업계에서 남성의 심각한 경쟁자가 되도록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각 남녀는, 생물학적 구별과 정신적 차이로 결정되는 분야들, 자기 영역에서 최고로 남을 것입니다.

84:5.14 (938.4) Each sex will always have its own special sphere, albeit they will ever and anon overlap. Only socially will men and women compete on equal terms. 각 남녀는, 자기 특유의 영역들이 때때로 겹쳐질지라도, 항상 자기 특유의 영역을 가질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만 남성들과 여성들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것입니다.

38-2 Angelic Natures 천사의 본성들

2. Angelic Natures 천사의 본성들

38:2.1 (419.1) Angels do not have material bodies, but they are definite and discrete beings; they are of spirit nature and origin. Though invisible to mortals, they perceive you as you are in the flesh without the aid of transformers or translators; they intellectually understand the mode of mortal life, and they share all of man’s nonsensuous emotions and sentiments. They appreciate and greatly enjoy your efforts in music, art, and real humor. They are fully cognizant of your moral struggles and spiritual difficulties. They love human beings, and only good can result from your efforts to understand and love them. 천사들은 물질 육체가 없지만, 그들은 뚜렷이 구별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영(靈) 본성과 기원을 지닙니다. 필사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변환자들이나 전환자들의 도움이 없이 육체로 있는 너희들 그대로 인식합니다. 그들은 필사자 생활 방식을 지적으로 이해하며 그들은 사람의 비(非)감각적(感覺的) 감정(感情)과 정서(情緖)를 모두 공유합니다. 그들은 너희가 애쓴 음악, 예술 및 실제 유머를 음미하고 매우 즐깁니다. 그들은 너희 도덕적 투쟁과 영적 어려움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을 사랑하며, 너희가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면, 좋은 것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38:2.2 (419.2) Though seraphim are very affectionate and sympathetic beings, they are not sex-emotion creatures. They are much as you will be on the mansion worlds, where you will “neither marry nor be given in marriage but will be as the angels of heaven.” For all who “shall be accounted worthy to attain the mansion worlds neither marry nor are given in marriage; neither do they die any more, for they are equal to the angels.” Nevertheless, in dealing with sex creatures it is our custom to speak of those beings of more direct descent from the Father and the Son as the sons of God, while referring to the children of the Spirit as the daughters of God. Angels are, therefore, commonly designated by feminine pronouns on the sex planets. 세라핌천사들은 대단히 다정하게 공감하는 존재들이지만, 그들은 성(性)-감정 창조물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너희가 저택 세계에 있게 될 것과 같으니, 그곳에서 너희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으나 하늘의 천사들처럼 있게 되리라(막12:25).” “저택 세계에 이르기에 족하다고 여겨질 자들은 모두,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그들은 그 이상 죽지도 않습니다(눅20:35-36).” 그렇지만 성(性) 창조물들을 다루면서,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더 직접적으로 내려온 그런 존재들을 하느님의 아들들로 부르는 한편 영(靈)의 자녀들은 하느님의 딸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 관습입니다. 따라서 천사들은 성별 행성들에서 보통 여성 대명사로 불립니다.

38:2.3 (419.3) The seraphim are so created as to function on both spiritual and literal levels. There are few phases of morontia or spirit activity which are not open to their ministrations. While in personal status angels are not so far removed from human beings, in certain functional performances seraphim far transcend them. They possess many powers far beyond human comprehension. For example: You have been told that the “very hairs of your head are numbered,” and it is true they are, but a seraphim does not spend her time counting them and keeping the number corrected up to date. Angels possess inherent and automatic (that is, automatic as far as you could perceive) powers of knowing such things; you would truly regard a seraphim as a mathematical prodigy. Therefore, numerous duties which would be tremendous tasks for mortals are performed with exceeding ease by seraphim. 세라핌천사들은 영적, 사실적 수준 모두에서 활동하도록 그렇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들의 직무에 개방되지 않은 모론시아 또는 영(靈) 활동의 단계는 거의 없습니다. 고유적 상태에서 천사들은 인간에게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나, 어떤 기능적 실행에서 세라핌천사들은 인간을 훨씬 초월합니다. 그들은 인간 파악을 훨씬 초월한 여러 권능을 지닙니다. 예를 들어, 너희는 “너희 머리털까지 센 바 되었다.”라고 들었으며, 그것이 사실이지만, 세라핌천사들은 그것들을 세고, 현재까지 그 수(數)를 바로잡으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천사들은 본래 자동으로(즉, 너희가 감지하는 한 자동으로) 그런 것들을 아는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희는 정말로 세라핌천사들을 수리적 천재로 여길 것입니다. 따라서 세라핌천사들은, 필사자들에게 엄청난 과제인 수많은 임무를 굉장히 쉽게 수행합니다.

38:2.4 (419.4) Angels are superior to you in spiritual status, but they are not your judges or accusers. No matter what your faults, “the angels, although greater in power and might, bring no accusation against you.” Angels do not sit in judgment on mankind, neither should individual mortals prejudge their fellow creatures. 천사들은 영적 상태에서 너희보다 우수하지만, 그들은 너희 심판자도, 고발자도 아닙니다. 너희 과실이 무엇이든, “더 큰 권능과 세력을 지닌 천사들이라도 너희를 고발하지 않습니다(벧후2:11).” 천사들은 인류를 재판하지 않으며, 개별 필사자들도 자기 동료 창조물들을 미리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38:2.5 (419.5) You do well to love them, but you should not adore them; angels are not objects of worship. The great seraphim, Loyalatia, when your seer “fell down to worship before the feet of the angel,” said: “See that you do it not; I am a fellow servant with you and with your races, who are all enjoined to worship God.” 너희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너희는 그들을 찬미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사들은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너희 예언자(사도 요한)가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을 때” 위대한 세라핌천사 로얄라시아가 “너는 그렇게 하지 말라. 나는 너와 너희 인종과 함께 하느님을 경배하도록 모두 명령받은 동료 봉사자입니다(계22:8-9).”라고 말했습니다.

38:2.6 (419.6) In nature and personality endowment the seraphim are just a trifle ahead of mortal races in the scale of creature existence. Indeed, when you are delivered from the flesh, you become very much like them. On the mansion worlds you will begin to appreciate the seraphim, on the constellation spheres to enjoy them, while on Salvington they will share their places of rest and worship with you. Throughout the whole morontia and subsequent spirit ascent, your fraternity with the seraphim will be ideal; your companionship will be superb. 본성과 고유성 자질면에서, 세라핌천사들은 창조물 존재의 정도에서 필사자 인류보다 약간 앞서 있을 뿐입니다. 정말로, 너희가 육신에서 벗어나면, 너희는 거의 그들과 같아집니다. 저택세계에서 너희는 세라핌천사들의 진가를 인정하기 시작할 것이며, 성좌 구체에서 그들과 즐겁게 지내며, 한편 샐빙톤에서 그들은 쉬면서 경배하는 자기 자리를 너희와 공유할 것입니다. 모든 모론시아와 이후 영(靈) 상승 내내, 세라핌천사들과 너희의 형제 우애는 이상적(理想的)이 될 것입니다. 너희 교우관계는 훌륭할 것입니다.

158-3 Meaning of the Transfiguration 변모(變貌)의 의미(意味)

3. Meaning of the Transfiguration 변모(變貌)의 의미(意味)

211121 변모의 의미 막9:7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Then a cloud appeared and enveloped them, and a voice came from the cloud: “This is my Son, whom I love. Listen to him!”

158:3.1 (1755.1) That which Peter, James, and John witnessed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was a fleeting glimpse of a celestial pageant which transpired that eventful day on Mount Hermon. The transfiguration was the occasion of: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이 변모산에서 목격한 것은, 헤르몬산(山)에서 그 중대한 날에 일어난 천상의 광경 중 쏜살같은 섬광이었습니다. 변모의 원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58:3.2 (1755.2) 1. The acceptance of the fullness of the bestowal of the incarnated life of Michael on Urantia by the Eternal Mother-Son of Paradise. As far as concerned the requirements of the Eternal Son, Jesus had now received assurance of their fulfillment. And Gabriel brought Jesus that assurance. 천국 영원 어머니-아들이, 유란시아에서 성육신(成育身)한 미가엘의 증여 생애가 충분하다고, 인정함. 영원 아들의 요구에 관한 한, 예수님이 그 요구를 완수했다는 확증(確證)을 이제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브리엘이 그 확증(確證)을 예수께 가져왔습니다.

158:3.3 (1755.3) 2. The testimony of the satisfaction of the Infinite Spirit as to the fullness of the Urantia bestowal in the likeness of mortal flesh. The universe representative of the Infinite Spirit, the immediate associate of Michael on Salvington and his ever-present coworker, on this occasion spoke through the Father Melchizedek. 무한 영(靈)이, 필사자 육신의 모습으로 유란시아에 증여한 충분함에 관해, 만족했다고 선언함. 무한 영(靈)의 우주 대리자, 샐빙톤에서 미가엘 바로 옆에 있는 동료이며 그와 상존(常存)하는 협력자가 이때 아버지 멜기세덱을 통해 전달했습니다.

158:3.4 (1755.4) Jesus welcomed this testimony regarding the success of his earth mission presented by the messengers of the Eternal Son and the Infinite Spirit, but he noted that his Father did not indicate that the Urantia bestowal was finished; only did the unseen presence of the Father bear witness through Jesus’ Personalized Adjuster,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give heed to him.” And this was spoken in words to be heard also by the three apostles. 예수님은 영원 아들과 무한 영(靈)의 메신저들이 제시한 자기 지상 사명의 성공에 관해 이런 선언을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그는 자기 아버지가 유란시아 증여가 완료되었다고 표현하지 않은 것을 주목했습니다. 아버지의 영계(靈界) 존재가 예수의 고유성화 조율자를 통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에게 주의(注意 말을 잘 듣고 그에게 관심을 집중)하라.”라고 말하는 증언을 전달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사도 역시 말로 했던 이것을 들었습니다.

158:3.5 (1755.5) After this celestial visitation Jesus sought to know his Father’s will and decided to pursue the mortal bestowal to its natural end. This was the significance of the transfiguration to Jesus. To the three apostles it was an event marking the entrance of the Master upon the final phase of his earth career as the Son of God and the Son of Man. 천상의 이 방문 이후에 예수님은 자기 아버지의 뜻을 알고자 하셨고, 자연스럽게 필사자 증여를 끝내려고 결심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에게 변모(變貌)의 의미(意味)였습니다. 세 사도에게 그것은 주께서 하느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로서 자기 지상 생애의 최종 단계로 들어감을 나타내는 사건이었습니다.

158:3.6 (1755.6) After the formal visitation of Gabriel and the Father Melchizedek, Jesus held informal converse with these, his Sons of ministry, and communed with them concerning the affairs of the universe. 가브리엘과 아버지 멜기세덱의 공식적 방문 이후에 예수님은 이들, 돌보며 사역하는 자기 아들들과 비공식적으로 서로 이야기하고 우주 업무에 관해 그들과 친하게 이야기하셨습니다.

84-4 Woman’s Status in Early Society 초기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4. Woman’s Status in Early Society 초기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84:4.1 (935.1) Generally speaking, during any age woman’s status is a fair criterion of the evolutionary progress of marriage as a social institution, while the progress of marriage itself is a reasonably accurate gauge registering the advances of human civilization. 보통, 어떤 시대라도 여성의 지위는, 사회 제도로서 결혼에 대한 진화적 진보의 공정한 기준인 한편, 결혼 자체의 진보는 인간 문명의 진보를 나타내는 상당히 정확한 척도입니다.

84:4.2 (935.2) Woman’s status has always been a social paradox; she has always been a shrewd manager of men; she has always capitalized man’s stronger sex urge for her own interests and to her own advancement. By trading subtly upon her sex charms, she has often been able to exercise dominant power over man, even when held by him in abject slavery. 여성의 지위는 언제나 사회적 역설(逆說)이었습니다. 여성은 언제나 남성을 슬기롭게 관리했습니다. 여성은 항상 자신의 이익과 진보를 위해 남성의 더 강한 성적 충동을 이용했습니다. 남성에게 잡혀 절망적인 노예였을 때조차, 자신의 성적 매력을 교묘히 흥정하여, 여성은 종종 남성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84:4.3 (935.3) Early woman was not to man a friend, sweetheart, lover, and partner but rather a piece of property, a servant or slave and, later on, an economic partner, plaything, and childbearer. Nonetheless, proper and satisfactory sex relations have always involved the element of choice and co-operation by woman, and this has always given intelligent women considerable influence over their immediate and personal standing, regardless of their social position as a sex. But man’s distrust and suspicion were not helped by the fact that women were all along compelled to resort to shrewdness in the effort to alleviate their bondage. 초기 여성은 남성에게 친구, 애인, 연인, 배우자가 아니라 오히려 재산의 일부, 하인이나 노예였고, 나중에는 경제적 동반자, 노리개 그리고 아이 낳는 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적당히 만족한 성(性)관계는 언제나 여성의 선택과 협조의 요소가 필요했으며, 이것은 항상 지능적인 여성들에게, 성별로서 자신들의 사회적 처지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직접적인 개인적 입장에 상당히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이 자신들의 속박을 덜려고 계속 기민함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로 인해, 남성의 불신과 의혹은 효과가 없었습니다.

84:4.4 (935.4) The sexes have had great difficulty in understanding each other. Man found it hard to understand woman, regarding her with a strange mixture of ignorant mistrust and fearful fascination, if not with suspicion and contempt. Many tribal and racial traditions relegate trouble to Eve, Pandora, or some other representative of womankind. These narratives were always distorted so as to make it appear that the woman brought evil upon man; and all this indicates the onetime universal distrust of woman. Among the reasons cited in support of a celibate priesthood, the chief was the baseness of woman. The fact that most supposed witches were women did not improve the olden reputation of the sex. 남녀는 서로 이해하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남성은, 여성에 관해, 의심과 경멸은 아니라 해도, 무지한 의혹과 두려운 매혹이 낯설게 뒤섞였다는 점에서 여성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여러 부족과 종족의 전통은 재난을 이브, 판도라, 혹은 어떤 다른 여성 대표자에게 돌립니다. 이런 설화들은, 여성이 남성에게 악을 가져온 것으로 보이게 만들어, 언제나 왜곡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것은, 한때 누구나 여성이 불신당했음을 나타냅니다. 독신 사제직의 옹호에 인용된 주요한 이유는 여성의 천함이었습니다. 가장 소문난 마법사들이 여성이었다는 사실로 여성에 대한 오래된 평판이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84:4.5 (935.5) Men have long regarded women as peculiar, even abnormal. They have even believed that women did not have souls; therefore were they denied names. During early times there existed great fear of the first sex relation with a woman; hence it became the custom for a priest to have initial intercourse with a virgin. Even a woman’s shadow was thought to be dangerous. 남성들은 여성들이 유별나며, 정상이 아니라고까지 오랫동안 여겼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여성들이 혼(魂)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습니다. 초기에 여성과 첫 성(性)관계에 대해 큰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에서 사제가 처녀와 첫 성교를 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습니다. 여성의 그림자까지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84:4.6 (935.6) Childbearing was once generally looked upon as rendering a woman dangerous and unclean. And many tribal mores decreed that a mother must undergo extensive purification ceremonies subsequent to the birth of a child. Except among those groups where the husband participated in the lying-in, the expectant mother was shunned, left alone. The ancients even avoided having a child born in the house. Finally, the old women were permitted to attend the mother during labor, and this practice gave origin to the profession of midwifery. During labor, scores of foolish things were said and done in an effort to facilitate delivery. It was the custom to sprinkle the newborn with holy water to prevent ghost interference. 한때 해산(解産)이 대개 여성을 위험하고 불결하게 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출산 후 긴 정화 예식을 해야 하도록 여러 부족 관습이 정했습니다. 남편이 해산 기간에 참여했던 그런 집단을 제외하고, 출산을 앞둔 어머니를 꺼려서 홀로 남겨두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것도, 피했습니다. 마침내 노파들이 분만 중인 어머니를 돌보도록 허용되었고, 이런 관행이 산파술(産婆術) 직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분만 중에, 해산을 도우려고 어리석은 여러 일을 말하고 행했습니다. 유령(幽靈)의 간섭을 막으려고 신생아에게 성수(聖水)를 뿌리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84:4.7 (935.7) Among the unmixed tribes, childbirth was comparatively easy, occupying only two or three hours; it is seldom so easy among the mixed races. If a woman died in childbirth, especially during the delivery of twins, she was believed to have been guilty of spirit adultery. Later on, the higher tribes looked upon death in childbirth as the will of heaven; such mothers were regarded as having perished in a noble cause. 순수한 부족 중에서 분만은, 2~3시간만 걸려서, 상당히 쉬었습니다. 혼합 인종 중에 분만은 거의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여성이 특히 쌍생아를 낳다가 분만 중에 죽으면, 그녀는 영적 간음죄를 범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나중에 고등 부족들은 출산 중 죽음을 하늘의 뜻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어머니들은 고귀한 이유로 죽었다고 간주했습니다.

84:4.8 (936.1) The so-called modesty of women respecting their clothing and the exposure of the person grew out of the deadly fear of being observed at the time of a menstrual period. To be thus detected was a grievous sin, the violation of a taboo. Under the mores of olden times, every woman, from adolescence to the end of the childbearing period, was subjected to complete family and social quarantine one full week each month. Everything she might touch, sit upon, or lie upon was “defiled.” It was for long the custom to brutally beat a girl after each monthly period in an effort to drive the evil spirit out of her body. But when a woman passed beyond the childbearing age, she was usually treated more considerately, being accorded more rights and privileges. In view of all this it was not strange that women were looked down upon. Even the Greeks held the menstruating woman as one of the three great causes of defilement, the other two being pork and garlic. 여성의 의복과 신체의 노출에 관해 소위 여성의 정숙(貞淑)은 월경 기간에 발견되는 지독한 걱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렇게 발견되는 것은, 무거운 죄, 금기의 위반이었습니다. 고대 관습에 따라, 사춘기에서 분만기의 끝까지 모든 여성은 매월 꼬박 1주일씩 가족과 사회적 격리를 완료해야 했습니다. 여성이 만지고, 앉으며, 누운 모든 것은 “더러워” 졌습니다. 매 월경 이후 소녀의 몸에서 악령을 몰아내려고, 난폭하게 그녀를 때리는 것이 오랜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성이 가임기가 지나면, 그녀는 더 많은 권리와 특권을 받아서, 대개 더 상당히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런 모든 관점에서 여성이 멸시받은 것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인(人)들까지 월경하는 여성을 커다란 3가지 오염 원인 중 하나로 꼽았는데, 나머지 둘은 돼지고기와 마늘이었습니다.

84:4.9 (936.2) However foolish these olden notions were, they did some good since they gave overworked females, at least when young, one week each month for welcome rest and profitable meditation. Thus could they sharpen their wits for dealing with their male associates the rest of the time. This quarantine of women also protected men from over-sex indulgence, thereby indirectly contributing to the restriction of population and to the enhancement of self-control. 이런 옛 개념들이 아무리 어리석었어도, 그것들은 과로한 여성들에게 적어도 젊었을 때, 자유롭게 쉬고 유익하게 묵상하도록 매월 1주일씩 주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일부 쓸모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머지 시간에 자기 남성 동료를 다루기 위한 자신들의 지혜를 연마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여성의 격리로 남성 역시 과도한 성적 탐닉에서 보호되어서, 부차적으로 인구 제한과 자제심 증강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84:4.10 (936.3) A great advance was made when a man was denied the right to kill his wife at will. Likewise, it was a forward step when a woman could own the wedding gifts. Later, she gained the legal right to own, control, and even dispose of property, but she was long deprived of the right to hold office in either church or state. Woman has always been treated more or less as property, right up to and in the twentieth century after Christ. She has not yet gained world-wide freedom from seclusion under man’s control. Even among advanced peoples, man’s attempt to protect woman has always been a tacit assertion of superiority. 남성이 자기 아내를 마음대로 죽일 권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커다란 진보가 이루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결혼 선물을 지닐 수 있게 되었을 때, 진일보했습니다. 나중에 여성은 재산을 소유하고 조정하며 처분까지 하는 법적 권리를 얻었지만, 그녀는 오랫동안 교회나 국가에서 재직할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여성은 그리스도 이후 20세기까지, 20세기에 언제나 어느 정도 재산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여성들은 남성의 조정에서 차단된, 세계적인 자유를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진보한 민족 중에서도, 여성을 보호하려는 남성의 시도는 언제나 우월성에 대한 암묵적 주장이었습니다.

84:4.11 (936.4) But primitive women did not pity themselves as their more recently liberated sisters are wont to do. They were, after all, fairly happy and contented; they did not dare to envision a better or different mode of existence. 그러나 원시 여성들은, 더 최근에 해방된 자매들이 곧잘 하듯이, 자신들을 딱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상당히 행복하고 만족했습니다. 그들은 더 낫거나 다른 존재 방식을 감히 마음에 그리지 못했습니다.

38-1 Origin of Seraphim 세라핌천사들의 기원

1. Origin of Seraphim 세라핌천사들의 기원

38:1.1 (418.4) Seraphim are created by the Universe Mother Spirit and have been projected in unit formation — 41,472 at a time — ever since the creation of the “pattern angels” and certain angelic archetypes in the early times of Nebadon. The Creator Son and the universe representation of the Infinite Spirit collaborate in the creation of a large number of Sons and other universe personalities. Following the completion of this united effort, the Son engages in the creation of the Material Sons, the first of the sex creatures, while the Universe Mother Spirit concurrently engages in her initial solitary effort at spirit reproduction. Thus begins the creation of the seraphic hosts of a local universe. 우주 어머니 영(靈)이 세라핌천사들을 창조하며, 네바돈 초기 시대에 어떤 “원형 천사들”과 천사적 전형(典型)이 창조된 이래, 그들은 한 번에 41,472명씩 단위 편대로 투사(投射)됩니다. 창조자 아들과 무한 영(靈)의 우주 대리가 협력하여 많은 수(數)의 아들들과 다른 우주 고유성들을 창조합니다. 연합한 이런 노력이 완료되면, 아들은 물질 아들들, 첫 성(性) 창조물들의 창조에 착수하는 한편 우주 어머니 영(靈)은 동시에 영(靈)을 재생산하는 자신의 최초 단독 노력에 착수합니다. 이렇게 지역 우주의 세라핌천사 무리의 창조가 시작됩니다.

38:1.2 (418.5) These angelic orders are projected at the time of planning for the evolution of mortal will creatures. The creation of seraphim dates from the attainment of relative personality by the Universe Mother Spirit, not as the later co-ordinate of the Master Son, but as the early creative helper of the Creator Son. Previous to this event the seraphim on duty in Nebadon were temporarily loaned by a neighboring universe. 이런 천사 계열은 필사자 의지 창조물들의 진화를 계획할 때 기획됩니다. 세라핌천사들의 창조는 시작되는데, 주(主) 아들에 속한 후기 조정-통합자로서가 아니라 창조자 아들의 초기 창조적 조력자로서, 우주 어머니 영(靈)에 의해 상대적 고유성에 도달할 때부터 세라핌 천사들의 창조가 시작됩니다. 이 사건 이전에, 네바돈에서 일하는 세라핌천사들은 이웃 우주에서 잠시 빌렸습니다.

38:1.3 (418.6) Seraphim are still being periodically created; the universe of Nebadon is still in the making. The Universe Mother Spirit never ceases creative activity in a growing and perfecting universe. 세라핌천사들은 여전히 정기적으로 창조됩니다. 네바돈 우주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우주 어머니 영(靈)은 성장하면서 완전해지는 우주에서 창조적 활동을 절대 멈추지 않습니다.

38-0 Ministering Spirits of the Local Universe 지역 우주의 돌보는 영들

Paper 38 

Ministering Spirits of the Local Universe 지역 우주의 돌보는 영들

38:0.1 (418.1) THERE are three distinct orders of the personalities of the Infinite Spirit. The impetuous apostle understood this when he wrote respecting Jesus, “who has gone to heaven and is on the right hand of God, angels and authorities and powers being made subject to him.” Angels are the ministering spirits of time; authorities, the messenger hosts of space; powers, the higher personalities of the Infinite Spirit. 무한 영의 고유성들에는 독특한 3 계열이 있습니다. 성급한 사도가 “하늘에 오르사 하느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위들과 권세들이 그에게 복종한(벧전3:22)” 예수에 대해 기록했을 때, 그는 이것을 이해했습니다. 천사들은 시간에 속하여 돌보는 영(靈)들입니다. 권위들은 공간의 메신저 무리입니다. 권세들은 무한 영(靈)의 고등 고유성들입니다.

38:0.2 (418.2) As the supernaphim in the central universe and the seconaphim in a superuniverse, so the seraphim, with the associated cherubim and sanobim, constitute the angelic corps of a local universe. 중앙 우주의 초(超)천사들과 초우주의 2품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세라핌천사들은 케루빔 및 사노빔과 함께, 지역 우주의 천사단(團)을 구성합니다.

38:0.3 (418.3) The seraphim are all fairly uniform in design. From universe to universe, throughout all seven of the superuniverses, they show a minimum of variation; they are the most nearly standard of all spirit types of personal beings. Their various orders constitute the corps of the skilled and common ministers of the local creations. 세라핌천사들은 모두 의장(意匠 그 형상·맵시·색채 또는 그들의 결합 등을 연구하여 거기에 응용한 특수 미장美匠 고안)이 상당히 한결같습니다. 우주에서 우주까지, 모든 초우주 일곱에 걸쳐 그들은 최소의 변화를 나타냅니다. 그들은 모든 영(靈) 유형의 고유 존재 중 가장 표준에 가깝습니다. 그들의 다양한 계열은 지역 창조계에서 숙련된 일반 사역자들로 구성된 단(團)입니다.

158-2 Coming Down the Mountain 산에서 내려옴

2. Coming Down the Mountain 산에서 내려옴

211114 변모 입증에 대한 침묵 요구의 이유 막9:9-13 9 저희가 산에서 내려 올 때에 예수께서 경계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저희가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9 As they were coming down the mountain, Jesus gave them orders not to tell anyone what they had seen until the Son of Man had risen from the dead. 10 They kept the matter to themselves, discussing what “rising from the dead” meant. 11 And they asked him, “Why do the teachers of the law say that Elijah must come first?” 12 Jesus replied, “To be sure, Elijah does come first, and restores all things. Why then is it written that the Son of Man must suffer much and be rejected? 13 But I tell you, Elijah has come, and they have done to him everything they wished, just as it is written about him.”

158:2.1 (1754.1) For about half the distance down the mountain not a word was spoken. Jesus then began the conversation by remarking: “Make certain that you tell no man, not even your brethren, what you have seen and heard on this mountain until the Son of Man has risen from the dead.” The three apostles were shocked and bewildered by the Master’s words, “until the Son of Man has risen from the dead.” They had so recently reaffirmed their faith in him as the Deliverer, the Son of God, and they had just beheld him transfigured in glory before their very eyes, and now he began to talk about “rising from the dead”! 산 아래로 반쯤 내려오는 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다음의 말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너희가 이 산에서 보고 들은 것을, 너희는 너희 형제들만이 아니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세 사도는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라는 주님의 말로 깜짝 놀라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들은 아주 최근에 그를 해방자, 하느님의 아들로 믿는 자신들의 신앙을 다시 단언(端言)했고, 바로 자신들의 눈앞에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그를 막 보았는데, 이제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158:2.2 (1754.2) Peter shuddered at the thought of the Master’s dying — it was too disagreeable an idea to entertain — and fearing that James or John might ask some question relative to this statement, he thought best to start up a diverting conversation and, not knowing what else to talk about, gave expression to the first thought coming into his mind, which was: “Master, why is it that the scribes say that Elijah must first come before the Messiah shall appear?” And Jesus, knowing that Peter sought to avoid reference to his death and resurrection, answered: “Elijah indeed comes first to prepare the way for the Son of Man, who must suffer many things and finally be rejected. But I tell you that Elijah has already come, and they received him not but did to him whatsoever they willed.” And then did the three apostles perceive that he referred to John the Baptist as Elijah. Jesus knew that, if they insisted on regarding him as the Messiah, then must John be the Elijah of the prophecy.베드로는 주(主)님의 죽음을 생각하고 몸서리쳤습니다. – 생각을 하는 것도 너무 싫었고 야고보나 요한이 이 말과 관련하여 질문을 할까 봐 두려워서, 그는 재미있는 대화를 시작하려고 최선으로 생각했으며, 또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마음에 처음 떠오르는 생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주여! 메시아가 나타나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왜 서기관들이 말하는지요? ” 그러자 예수님이, 베드로가 자기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 함을 알고, 대답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참으로 먼저 와서 인자(사람의 아들)를 위해 길을 준비하며, 인자는 많은 일을 겪고 결국 버림받아야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오긴 했으나, 그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이 하려는 대로 그에게 했느니라.” 그러자 그때 세 사도는 그가 세례 요한을 엘리야로 부르신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메시아로 여겨 주장했다면, 요한은 예언서의 엘리야가 되어야 함을 예수께서 알았습니다.

158:2.3 (1754.3) Jesus enjoined silence about their observation of the foretaste of his postresurrection glory because he did not want to foster the notion that, being now received as the Messiah, he would in any degree fulfill their erroneous concepts of a wonder-working deliverer. Although Peter, James, and John pondered all this in their minds, they spoke not of it to any man until after the Master’s resurrection. 예수께서 부활-이후 영광을 미리 경험한 그들의 관찰에 대해 침묵을 요구한 것은, 그가, 이제 메시아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가 얼마든지 이적을-행하는 해방자라는 잘못된 개념을 충족시키려 할 것이라는 생각을 부추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은 이 모두를 마음에 깊이 생각했지만, 그들은 주님의 부활 이후까지 누구에게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158:2.4 (1754.4) As they continued to descend the mountain, Jesus said to them: “You would not receive me as the Son of Man; therefore have I consented to be received in accordance with your settled determination, but, mistake not, the will of my Father must prevail. If you thus choose to follow the inclination of your own wills, you must prepare to suffer many disappointments and experience many trials, but the training which I have given you should suffice to bring you triumphantly through even these sorrows of your own choosing.” 그들이 산을 계속 내려갈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사람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따라서 내가 너희의 확고한 결정에 따라 받아들이기로 찬성했지만, 잘못 생각하지 말라, 내 아버지의 뜻이 우선(優先)되어야 하니라. 따라서 너희가 바로 자기 뜻의 경향을 따르기로 택하면, 너희는 여러 실망과 많은 시련을 겪을 준비를 해야 하지만, 너희 스스로 선택한 이런 고통조차, 내가 너희에게 주었던 훈련으로, 너희는 충분히 승리하게 되리라. ”

158:2.5 (1754.5) Jesus did not take Peter, James, and John with him up to the mount of the transfiguration because they were in any sense better prepared than the other apostles to witness what happened, or because they were spiritually more fit to enjoy such a rare privilege. Not at all. He well knew that none of the twelve were spiritually qualified for this experience; therefore did he take with him only the three apostles who were assigned to accompany him at those times when he desired to be alone to enjoy solitary communion.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모산(變貌山)에 오르신 이유는 그들이 어떤 의미에서도 일어난 일을 입증하기에 다른 사도들보다 더 잘 준비되어 있었거나 그들이 그렇게 유례없는 특권을 누리기에 영적으로 더 적합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그는 열둘 중 누구도 이런 체험을 위해 영적으로 자격이 없었음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단독 친교를 누리려고 홀로 있기를 원했던 그런 때마다 자신과 함께 가도록 지명된 세 사도만 데려가셨습니다.

84-3 The Family Under Father Dominance 가부장(家父長) 가정

3. The Family Under Father Dominance 가부장(家父長) 가정

84:3.1 (933.6) It may be that the instinct of motherhood led woman into marriage, but it was man’s superior strength, together with the influence of the mores, that virtually compelled her to remain in wedlock. Pastoral living tended to create a new system of mores, the patriarchal type of family life; and the basis of family unity under the herder and early agricultural mores was the unquestioned and arbitrary authority of the father. All society, whether national or familial, passed through the stage of the autocratic authority of a patriarchal order. 모성 본능이 여성을 결혼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상 여성이 결혼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은, 관습의 영향과 함께 남성의 우수한 힘이었습니다. 목축 생활이 새로운 관습 체계, 가부장적 유형의 가정생활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목자(牧者)와 초기 농업 관습 아래에서 가정 단결의 토대는 의문의 여지 없이 독단적인 아버지의 권위였습니다. 모든 사회는, 국가이든 가족이든, 가부장적 체제에 속한 독재적 권위의 단계를 겪었습니다.

84:3.2 (934.1) The scant courtesy paid womankind during the Old Testament era is a true reflection of the mores of the herdsmen. The Hebrew patriarchs were all herdsmen, as is witnessed by the saying, “The Lord is my Shepherd.” 구약(舊約) 시대에 여성을 아무렇게나 대우한 것은 목자의 관습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히브리 족장들은, “주는 나의 목자시니(시 23:1a)”라는 말로 입증되듯이, 모두 목자였습니다.

84:3.3 (934.2) But man was no more to blame for his low opinion of woman during past ages than was woman herself. She failed to get social recognition during primitive times because she did not function in an emergency; she was not a spectacular or crisis hero. Maternity was a distinct disability in the existence struggle; mother love handicapped women in the tribal defense. 그러나 과거 시대에 여성에 대한 낮은 평가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 자신의 탓이었습니다. 여성은 비상시에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은 원시 시대에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성은 눈부신 난국의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모성(母性)은 생존 경쟁에서 뚜렷하게 무력했습니다. 모성애(母性愛)는 종족 방어에서 여성을 불리한 입장에 서게 했습니다.

84:3.4 (934.3) Primitive women also unintentionally created their dependence on the male by their admiration and applause for his pugnacity and virility. This exaltation of the warrior elevated the male ego while it equally depressed that of the female and made her more dependent; a military uniform still mightily stirs the feminine emotions. 원시 여성들도 남성의 호전성(好戰性)과 박력(迫力)을 기리고 칭찬하여 무심결에 남성을 의존했습니다. 전사(戰士)를 이렇게 칭찬하여 남성의 자존심을 높였던 반면에 여성의 자존심을 동시에 약하게 하여 더 의존하게 했습니다. 군복(軍服)은 여성의 감정을 여전히 힘차게 움직입니다.

84:3.5 (934.4) Among the more advanced races, women are not so large or so strong as men. Woman, being the weaker, therefore became the more tactful; she early learned to trade upon her sex charms. She became more alert and conservative than man, though slightly less profound. Man was woman’s superior on the battlefield and in the hunt; but at home woman has usually outgeneraled even the most primitive of men. 더 앞선 종족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크거나 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약한 여성은 더 눈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일찍이 익혀서 자기 성적 매력을 이용했습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약간 덜 해박했지만, 더 빈틈없이 신중했습니다. 남성은 전쟁터와 사냥에서 여성보다 뛰어났지만, 여성은 가정에서 대개 가장 야성적인 남성들도 작전으로 이겼습니다.

84:3.6 (934.5) The herdsman looked to his flocks for sustenance, but throughout these pastoral ages woman must still provide the vegetable food. Primitive man shunned the soil; it was altogether too peaceful, too unadventuresome. There was also an old superstition that women could raise better plants; they were mothers. In many backward tribes today, the men cook the meat, the women the vegetables, and when the primitive tribes of Australia are on the march, the women never attack game, while a man would not stoop to dig a root. 목자(牧者)들은 생계를 위해 자기 가축 떼를 돌봤지만, 이런 목축 시대에 여성은 여전히 채소 식량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원시 남성은 농작(農作)을 피했습니다. 그것은 전부 너무 온화하고, 모험적이지 않았습니다. 여성이 어머니들이어서, 그들이 식물을 잘 재배할 수 있다는 옛 미신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진보가 더딘 여러 부족에서, 남성은 고기를, 여성은 채소를 요리하고, 호주의 원시 부족이 행진할 때, 여성은 결코 사냥감을 공격하지 않는 반면에, 남성은 몸을 굽혀 근채류(根菜類 뿌리채소)를 캐지 않습니다.

84:3.7 (934.6) Woman has always had to work; at least right up to modern times the female has been a real producer. Man has usually chosen the easier path, and this inequality has existed throughout the entire history of the human race. Woman has always been the burden bearer, carrying the family property and tending the children, thus leaving the man’s hands free for fighting or hunting. 여성은 언제나 일해야 했습니다. 적어도 현대까지 여성은 실질적 생산자였습니다. 남성은 대개 더 쉬운 길을 택했고 이런 불평등은 전(全) 인류 역사 내내 나타났습니다. 여성이 가산(家産 집 재산)을 떠맡고 자녀를 돌본 까닭에, 남성의 손을 자유롭게 전투나 사냥에 전념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여성은 언제나 고생을 참는 자였습니다.

84:3.8 (934.7) Woman’s first liberation came when man consented to till the soil, consented to do what had theretofore been regarded as woman’s work. It was a great step forward when male captives were no longer killed but were enslaved as agriculturists. This brought about the liberation of woman so that she could devote more time to homemaking and child culture. 남성이 경작하기로 동의하고, 그 이전에 여성의 일로 여겼던 것을 하기로 동의했을 때, 여성의 첫 해방이 왔습니다. 남성 포로들이 더는 죽지 않고 농사짓는 노예가 되었던 것은 커다란 진보였습니다. 이것이 여성을 해방하여 여성은 가사(家事)와 자녀 양육에 시간을 더 쏟을 수 있었습니다.

84:3.9 (934.8) The provision of milk for the young led to earlier weaning of babies, hence to the bearing of more children by the mothers thus relieved of their sometimes temporary barrenness, while the use of cow’s milk and goat’s milk greatly reduced infant mortality. Before the herding stage of society, mothers used to nurse their babies until they were four and five years old. 어린아이들에게 우유를 마련하여 아기들이 더 일찍 젖을 떼게 되어서, 이렇게 때때로 일시적인 불임에서 벗어난 어머니들이 자녀를 더 많이 낳게 되었고, 게다가 소젖과 염소젖의 사용으로 유아 사망률이 크게 줄었습니다. 사회의 목축 단계 이전에는, 아기들이 4~5세가 될 때까지 어머니들이 자기 아기들에게 젖을 먹이곤 했습니다.

84:3.10 (934.9) Decreasing primitive warfare greatly lessened the disparity between the division of labor based on sex. But women still had to do the real work while men did picket duty. No camp or village could be left unguarded day or night, but even this task was alleviated by the domestication of the dog. In general, the coming of agriculture has enhanced woman’s prestige and social standing; at least this was true up to the time man himself turned agriculturist. And as soon as man addressed himself to the tilling of the soil, there immediately ensued great improvement in methods of agriculture, extending on down through successive generations. In hunting and war man had learned the value of organization, and he introduced these techniques into industry and later, when taking over much of woman’s work, greatly improved on her loose methods of labor. 원시 전쟁의 감소로 성별에 따른 분업 사이의 격차가 크게 줄었습니다. 그러나 남성들이 보초 업무를 하는 동안 여성들은 여전히 실질적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어떤 야영지나 마을도 방어 없이 밤낮으로 놔둘 수 없었지만 이런 일도 개를 길들여 다소 해결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농업이 닥쳐오면서 여성의 위신과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습니다. 적어도 이것은 남성이 자신을 농부로 바꾸었던 때까지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성이 경작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자마자, 그 결과 즉시 농업 방법이 크게 개선되었고, 잇따른 세대로 퍼졌습니다. 사냥과 전쟁에서 남성은 조직의 가치를 익혔고, 이런 기법을 산업에 받아들였으며, 나중에 여성의 일을 많이 인계받았을 때, 여성의 산만한 노동 방식이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37-10 Other Local Universe Groups 다른 지역 우주 집단들

10. Other Local Universe Groups 다른 지역 우주 집단들

37:10.1 (416.1) Besides the seraphic and mortal orders, who will be considered in later papers, there are numerous additional beings concerned in the maintenance and perfecting of such a gigantic organization as the universe of Nebadon, which even now has more than three million inhabited worlds, with ten million in prospect. The various Nebadon types of life are much too numerous to be catalogued in this paper, but there are two unusual orders that function extensively on the 647,591 architectural spheres of the local universe, that may be mentioned. 뒤의 글에서 고려될 세라핌천사 및 필사자 계열들 외에, 지금도 3백만 이상이며 1천만 거주 세계가 될, 네바돈 우주와 같이 그렇게 거대한 조직의 유지와 개선에 관련된 수많은 추가 존재들이 있습니다. 다양한 네바돈 유형의 생명이 수없이 많아서 이 글에 목록을 실을 수 없지만, 지역 우주의 647,591 건축 구체에서 넓게 활동하는 색다른 2 계열은 언급될 수 있습니다.

37:10.2 (416.2) The Spironga are the spirit offspring of the Bright and Morning Star and the Father Melchizedek. They are exempt from personality termination but are not evolutionary or ascending beings. Neither are they functionally concerned with the evolutionary ascension regime. They are the spirit helpers of the local universe, executing the routine spirit tasks of Nebadon. 스피롱가는 광명한 새벽별과 아버지 멜기세덱의 영(靈) 자녀들입니다. 그들은 고유성 소멸이 면제되지만, 진화나 상승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진화적 상승 체제에 기능적으로 관여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네바돈의 일상적 영(靈) 과업을 실행하는, 지역 우주의 영(靈) 조력자들입니다.

37:10.3 (416.3) The Spornagia. The architectural headquarters worlds of the local universe are real worlds — physical creations. There is much work connected with their physical upkeep, and herein we have the assistance of a group of physical creatures called spornagia. They are devoted to the care and culture of the material phases of these headquarters worlds, from Jerusem to Salvington. Spornagia are neither spirits nor persons; they are an animal order of existence, but if you could see them, you would agree that they seem to be perfect animals. 스포르나기아. 지역 우주의 건축 본부 세계는 실제 세계 – 물리적 창조계들입니다. 그들의 물리적 유지와 관련된 여러 일이 있으며, 이 점에서 우리는 스포르나기아라고 부르는 물리적 창조물 집단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들은 예루셈에서 샐빙톤까지, 이런 본부 세계의 물질적 단계를 전적으로 보살피고 돌봅니다. 스포르나기아는 영(靈)들도 아니고 고유자들도 아닙니다. 그들은 동물 계열의 존재들이지만, 너희가 그들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이 완전한 동물들처럼 보인다고 너희는 동의할 것입니다.

37:10.4 (416.4) The various courtesy colonies are domiciled on Salvington and elsewhere. We especially profit from the ministry of the celestial artisans on the constellations and benefit from the activities of the reversion directors, who operate chiefly on the capitals of the local systems. 다양한 우대(優待)거류민들이 샐빙톤과 다른 곳에 거주합니다. 우리는 성좌들에 있는 천상의 장인(匠人)이 돌보는 덕을 특별히 입고, 지역 체계의 수도에서 주로 일하는 복귀 관리자들의 활동에서 혜택을 받습니다.

37:10.5 (416.5) Always there is attached to the universe service a corps of ascending mortals, including the glorified midway creatures. These ascenders, after attaining Salvington, are used in an almost endless variety of activities in the conduct of universe affairs. From each level of achievement these advancing mortals reach back and down to extend a helping hand to their fellows who follow them in the upward climb. Such mortals of temporary sojourn on Salvington are assigned on requisition to practically all corps of celestial personalities as helpers, students, observers, and teachers. 영화(榮化 영화롭게)된 중도(中途) 창조물들을 포함하여, 상승 필사단(團)이 언제나 우주 봉사에 배속됩니다. 이런 상승자들은, 샐빙톤에 도달한 후, 우주 업무의 처리에서 거의 끝없이 다양한 활동에 사용됩니다. 각 성취의 수준에서, 이렇게 진보하는 필사자들은, 위로 오르면서 자신들을 따라오는 동료들에게 뒤와 아래로 도움의 손을 내밀어 잡습니다. 샐빙톤에 잠시 머무는 그런 필사자들은 요청에 따라 실제로 모든 천상 고유성단(團)에게 조력자들, 학생들, 관찰자들과 교사들로 임명됩니다.

37:10.6 (416.6) There are still other types of intelligent life concerned with the administration of a local universe, but the plan of this narrative does not provide for the further revelation of these orders of creation. Enough of the life and administration of this universe is being herewith portrayed to afford the mortal mind a grasp of the reality and grandeur of the survival existence. Further experience in your advancing careers will increasingly reveal these interesting and charming beings. This narrative cannot be more than a brief outline of the nature and work of the manifold personalities who throng the universes of space administering these creations as enormous training schools, schools wherein the pilgrims of time advance from life to life and from world to world until they are lovingly dispatched from the borders of the universe of their origin to the higher educational regime of the superuniverse and thence on to the spirit-training worlds of Havona and eventually to Paradise and the high destiny of the finaliters — the eternal assignment on missions not yet revealed to the universes of time and space. 지역 우주의 경영과 관련된 다른 유형들의 지능 생명이 여전히 있지만, 이 이야기의 계획은 이런 계층의 창조계를 추가로 계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필사 마음이 생존 존재의 실체와 장엄함을 파악하도록, 이런 우주의 생명과 경영에 대해 충분히 이것과 함께 묘사되고 있습니다. 너희 진보 생애의 이후 체험에서 이렇게 흥미롭고 매력적인 존재들이 점차 계시가 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시간의 순례자들이 자신들이 기원한 우주의 경계로부터 더 높은 초우주의 교육 체제로, 거기에서 하보나의 영(靈)-훈련 세계들로, 결국 천국과 최종자들의 높은 운명–시간과 공간의 우주들에 아직 계시가 되지 않은 임무에 영원히 배정-까지 애정을 기울여 파송되기까지, 생명에서 생명으로, 세계에서 세계로 전진하는 그곳의 학교들, 거대한 훈련 학교들로서 이런 창조계를 경영하는 공간 우주들에 밀려드는 다양한 고유성들의 본성과 업무에 대한 간단한 개요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37:10.7 (417.1) [Dictated by a Brilliant Evening Star of Nebadon, Number 1,146 of the Created Corps.][네바돈의 찬란한 저녁별, 창조된 단(團)의 1,146번이 구술함]

S139 The Twelve Apostles 개요139편 12 사도들

S139 The Twelve Apostles 개요139편 12 사도들

139:0.2 (1548.2) These twelve men represented many different types of human temperament. 이 12명의 사람은 다양한 인간 기질(氣質)들을 대표했습니다. 139:0.3 (1548.3) All of them, except the Alpheus twins, were graduates of the synagogue schools, having been thoroughly trained in the Hebrew scriptures and in much of the current knowledge of that day. Seven were graduates of the Capernaum synagogue schools, and there were no better Jewish schools in all Galilee. 알페오의 쌍둥이를 제외하고, 그들은 모두 회당 학교의 졸업생들이었으며, 히브리 성서와 그 당시 통용되는 많은 지식으로 철저히 훈련을 받았습니다. 7명은 가버나움 회당 학교들의 졸업생들이었고, 모든 갈릴리에서 더 좋은 유대인 학교는 없었습니다. 139:0.4 (1548.4) They had not all been put through the same rigid and stereotyped educational curriculum. 그들은 똑같이 경직되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교육과정을 모두 밟지 않았습니다.

  1. Andrew, the First Chosen 첫 번째로 선택된 안드레

139:1.1 (1548.5) Andrew, chairman of the apostolic corps of the kingdom, was born in Capernaum. When he became an apostle, Andrew was unmarried but made his home with his married brother, Simon Peter. Both were fishermen and partners of James and John the sons of Zebedee. 하느님 나라의 사도단장, 안드레가버나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사도가 되었을 때, 안드레미혼이었지만, 기혼 남동생 시몬 베드로의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둘 다 어부였고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동업자들이었습니다. 139:1.2 (1548.6) In A.D. 26, the year he was chosen as an apostle, Andrew was 33, a full year older than Jesus and the oldest of the apostles. He sprang from an excellent line of ancestors and was the ablest man of the twelve. Excepting oratory, he was the peer of his associates in almost every imaginable ability. 그가 사도로 선택된 서기 26에, 안드레는 예수님 보다 만 1살이 많은 33사도 중 연장자였습니다. 그는 훌륭한 가계의 조상을 둔 출신으로 12사도들 중에서 가장 유능했습니다. 웅변을 제외하고, 그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능력에 있어서 동료들과 대등했습니다. 139:1.3 (1549.1) Andrew was a good organizer but a better administrator. To the very end Andrew remained dean of the apostolic corps. 안드레유능한 조직가였지만, 오히려 더 훌륭한 행정관리자였습니다. 바로 마지막까지 안드레는 사도단장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139:1.4 (1549.2) Andrew was the chief supporter of Jesus’ policy. 안드레는 예수님의 정책받드는 1등 옹호자였습니다.

139:1.5 (1549.3) Andrew was usually conversant with what was going on; he was an understanding executive and an efficient administrator. He rendered a prompt decision on every matter brought to his notice unless he deemed the problem one beyond the domain of his authority, in which event he would take it straight to Jesus. 안드레는 대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해하는 집행자였고 실력 있는 행정관리자였습니다. 그는 눈에 띠는 모든 문제를 신속히 처리했고, 그의 권한 영역을 넘어선 문제로 판단되면 그 사건을 즉시 예수님께로 가져갔습니다. 139:1.6 (1549.4) Andrew and Peter never seemed to be in the least jealous of each other’s abilities or achievements. 안드레와 베드로는, 각자의 능력이나 업적에 대해 서로 조금이라도 질투하는 것처럼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139:1.8 (1549.6) Of all the apostles, Andrew was the best judge of men. Andrew had a great gift for discovering the hidden resources and latent talents of young people. 모든 사도 중 안드레가 사람들을 가장 잘 판단하였습니다. 안드레는 젊은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는 자원과 잠재적인 재능을 발견하는 탁월한 은사(恩賜)가 있었습니다.

139:1.9 (1549.7) Very soon after Jesus’ ascension on high, Andrew began the writing of a personal record of many of the sayings and doings of his departed Master. After Andrew’s death other copies of this private record were made and circulated freely among the early teachers of the Christian church. These informal notes of Andrew’s were subsequently edited, amended, altered, and added to until they made up a fairly consecutive narrative of the Master’s life on earth. The last of these few altered and amended copies was destroyed by fire at Alexandria about one hundred years after the original was written by the first chosen of the twelve apostles. 예수님의 상승 이후 곧바로, 안드레는 떠나가신 ()님의 많은 말씀들과 행적들의 개인적 기록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안드레의 사후(死後) 이 사적(私的) 기록의 다른 사본들이 만들어져, 기독교회의 초기 선생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회람(回覽)되었습니다. 안드레의 이러한 비공식적 노트들은, 기독교회의 초기 선생들이 주(主)님의 지상 생애를 상당히 일관된 이야기로 만들 때까지, 안드레의 기록 이후에 편집되어, 수정되고, 변경되어, 첨부되었습니다. 변경되고 수정된 마지막 몇 개의 이 사본들은, 12 사도들 중의 첫째로 선택된 사도가 원본을 기록한 지 약 100년이 지나 알렉산드리아에서 불에 타 버렸습니다.

139:1.10 (1550.1) Andrew was a man of clear insight, logical thought, and firm decision, whose great strength of character consisted in his superb stability. Andrew was one of those all-round, even-tempered, self-made, and successful men of modest affairs. 안드레는 명석한 통찰력, 논리적 사고, 확고한 판단력을 지닌 사람으로, 그의 성품 중 큰 장점은 뛰어난 안정감이었습니다. 안드레는 다재다능하고, 침착하며, 자립적이고, 그만그만한 과업에 성공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139:1.11 (1550.2) Andrew admired Jesus because of his consistent sincerity, his unaffected dignity. 안드레는 예수님의 일관된 성실함과 꾸밈없는 기품 때문에 예수님을 사모했습니다. 139:1.12 (1550.3) When the later persecutions finally scattered the apostles from Jerusalem, Andrew journeyed through Armenia, Asia Minor, and Macedonia and, after bringing many thousands into the kingdom, was finally apprehended and crucified in Patrae in Achaia. It was two full days before this robust man expired on the cross, and throughout these tragic hours he continued effectively to proclaim the glad tidings of the salvation of the kingdom of heaven. 나중에 박해로 결국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졌을 때, 안드레는 아르메니아, 소아시아, 마케도니아를 지나 여행하였고, 수천 명을 나라로 인도한 후, 결국 아카이아의 파트라이에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 건장한 사람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만 이틀이 걸렸는데, 이러한 비극적인 시간들 내내 그는 하늘나라 구원의 기쁜 소식을 계속 효과적으로 선포했습니다.

  1. Simon Peter 시몬 베드로

139:2.1 (1550.4) When Simon joined the apostles, he was thirty years of age. He was married, had three children, and lived at Bethsaida, near Capernaum. His brother, Andrew, and his wife’s mother lived with him. 시몬사도들에 합류했을 때, 그는 30였습니다. 그는 결혼해서 세 자녀가 있었고, 가버나움 인근 벳새다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형 안드레와 장모가 그와 함께 살았습니다.

139:2.3 (1550.6) Simon Peter had grown up permitting himself freely to indulge strong feelings; he was constantly getting into difficulties because he persisted in speaking without thinking. This sort of thoughtlessness also made incessant trouble for all of his friends and associates. 시몬 베드로격한 감정에 자유롭게 탐닉하도록 스스로 허용하며 자랐습니다. 그는 생각 없이 말하기를 고집했기 때문에, 항상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런 식의 그의 경솔함은 또한 그의 친구들이나 동료들 모두에게 끊임없는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139:2.4 (1550.7) Peter was a fluent speaker, eloquent and dramatic. He was also a natural and inspirational leader of men, a quick thinker but not a deep reasoner. He was a man of quick decision and sudden action. 베드로는 극적인 능변의 유창한 연사(演士)였습니다. 그는 또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타고난 지도자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었지만, 심오한 추론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빨리 결정하고 급히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39:2.5 (1551.1) The one trait which Peter most admired in Jesus was his supernal tenderness. Peter never grew weary of contemplating Jesus’ forbearance. 베드로가 가장 경탄한 예수님의 한 가지 특성더할 수 없는 다정함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관용을 깊이 생각하면서 싫증난 적이 없었습니다.

139:2.6 (1551.2) He was one of the most inexplicable combinations of courage and cowardice that ever lived on earth. His great strength of character was loyalty, friendship. Peter could withstand persecution and any other form of direct assault, but he withered and shrank before ridicule. 그는 그때까지 세상에 살았던 사람 중 용기와 비겁함이 가장 희한하게 섞인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의 성품 중 큰 장점은 충성과 우정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박해나 다른 형태의 직접적인 모욕은 잘 견디었지만, 조롱 앞에서는 의기소침으로 위축되었습니다. 139:2.7 (1551.3) Peter was the first of Jesus’ apostles to come forward to defend the work of Philip among the Samaritans and Paul among the gentiles; yet later on at Antioch he reversed himself when confronted by ridiculing Judaizers, temporarily withdrawing from the gentiles only to bring down upon his head the fearless denunciation of Paul. 베드로는, 빌립의 사마리아인들 과업과 바울의 이방인들 과업에 대하여, 예수님의 사도 중 가장 먼저 앞장서서 변호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안디옥에서, 조롱하는 유대주의자들과 마주쳤을 때, 그는 자기 입장을 뒤집어, 잠시 이방인으로부터 물러나, 바울의 두려움이 없는 비난에 고개를 떨 꿀 뿐이었습니다.

139:2.8 (1551.4) He was the first one of the apostles to make wholehearted confession of Jesus’ combined humanity and divinity and the first — save Judas — to deny him. 그는 사도 중 예수님의 통합된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전심으로 고백했고, 유다를 제외하고 예수를 부첫 사도였습니다. 139:2.9 (1551.5) But he was the outstanding preacher of the twelve; he did more than any other one man, aside from Paul, to establish the kingdom and send its messengers to the four corners of the earth in one generation. 그러나 그는 12명 중 탁월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바울을 제외하고, 한 세대에, 나라를 세우고, 지구의 전 지역에 메신저들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보냈습니다.

139:2.10 (1551.6) After his rash denials of the Master he found himself, and with Andrew’s sympathetic and understanding guidance he again led the way back to the fish nets while the apostles tarried to find out what was to happen after the crucifixion. When he was fully assured that Jesus had forgiven him and knew he had been received back into the Master’s fold, the fires of the kingdom burned so brightly within his soul that he became a great and saving light to thousands who sat in darkness. 주(主)님을 경솔히 부인한 후, 그는 자신을 발견했으며, 안드레의 공감하며 분별 있는 안내와 함께, 사도들이 십자가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기다리며 찾는 동안, 그는 다시 고기잡이 그물로 돌아가는 길로 앞장섰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기를 용서하셨음을 충분히 확신하고, 자신이 주(主)님의 신도로 복귀하여 수용되었음을 알았을 때, 나라의 불빛이 그의 혼 안에서 아주 밝게 타올라서 어둠에 앉아 있던 수천 명에게 위대한 구원의 빛이 되었습니다.

139:2.11 (1551.7) After leaving Jerusalem and before Paul became the leading spirit among the gentile Christian churches, Peter traveled extensively, visiting all the churches from Babylon to Corinth. He even visited and ministered to many of the churches which had been raised up by Paul. Although Peter and Paul differed much in temperament and education, even in theology, they worked together harmoniously for the upbuilding of the churches during their later years. 예루살렘을 떠난 뒤, 바울이 이방의 기독교회들을 이끄는 인물이 되기 전에, 베드로는 바빌론에서 고린도까지 모든 교회들을 방문하며 널리 여행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세운 많은 교회들까지도 방문하고 섬겼습니다. 비록 베드로와 바울은, 기질과 교육, 그리고 신학도 많이 달랐지만, 그들은 후년에 교회를 설립하는 일에 어울려 함께 일했습니다. 139:2.12 (1552.1) Something of Peter’s style and teaching is shown in the sermons partially recorded by Luke and in the Gospel of Mark. His vigorous style was better shown in his letter known as the First Epistle of Peter; at least this was true before it was subsequently altered by a disciple of Paul. 베드로의 스타일과 교훈의 일부는 누가가 부분적으로 기록한 설교마가복음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강력한 스타일은 베드로 전서로 알려진 그의 서신에 잘 나타나 있는데, 나중에 바울의 제자가 (베드로전서)를 변경하기 전까지 이것이 사실이었습니다. 139:2.13 (1552.2) But Peter persisted in making the mistake of trying to convince the Jews that Jesus was, after all, really and truly the Jewish Messiah. Right up to the day of his death, Simon Peter continued to suffer confusion in his mind between the concepts of Jesus as the Jewish Messiah, Christ as the world’s redeemer, and the Son of Man as the revelation of God, the loving Father of all mankind.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께서 결국 실제로 진정한 유대인의 메시아였다고 유대인들에게 확신시키려고 애쓰는 잘못을 고집했습니다. 바로 죽는 그 날까지, 시몬 베드로의 마음은, 예수가 유대인의 메시아,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속(救贖)자라는 개념과 사람의 아들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시라는 개념 사이에서 계속 혼란을 겪었습니다.

139:2.14 (1552.3) Peter’s wife was a very able woman. For years she labored acceptably as a member of the women’s corps, and when Peter was driven out of Jerusalem, she accompanied him upon all his journeys to the churches as well as on all his missionary excursions. And the day her illustrious husband yielded up his life, she was thrown to the wild beasts in the arena at Rome. 베드로의 아내매우 유능한 여인이었습니다. 여러 해 그녀는 여인들 분대(여전도회)의 일원으로 기쁘게 수고했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자, 그녀는 그의 모든 선교여행 뿐 아니라 모든 교회로 가는 여행에 그와 동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명한 자기 남편이 죽는 날, 그녀는 로마의 투기장에서 사나운 짐승들에게 던져졌습니다. 139:2.15 (1552.4) And so this man Peter, an intimate of Jesus, one of the inner circle, went forth from Jerusalem proclaiming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with power and glory until the fullness of his ministry had been accomplished; and he regarded himself as the recipient of high honors when his captors informed him that he must die as his Master had died — on the cross. And thus was Simon Peter crucified in Rome.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과 친밀한, 내부자 중 하나였던, 이 사람 베드로는 그의 사역을 충만히 완수하기까지, 권능과 영광으로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그를 체포한 자가, 베드로가 그의 주(主)님처럼 –십자가에 달려 – 죽어야만 한다고 알려주자, 자신을 높은 명예를 받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몬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1. James Zebedee 야고보 세베대

139:3.1 (1552.5) James, the older of the two apostle sons of Zebedee, whom Jesus nicknamed “sons of thunder,”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came an apostle. 예수께서 세베대의 두 아들인 사도들을 “우뢰(雨雷)의 아들들”이라고 별명을 붙였는데 둘 중에 형 야고보는 사도가 되었을 때 30였습니다. 139:3.2 (1552.6) This able apostle was a temperamental contradiction; he seemed really to possess two natures, both of which were actuated by strong feelings. 이 유능한 사도기질적인 모순 덩어리였습니다. 그는 실제로 두 본성을 가진 듯했으며, 그 두 본성격한 감정으로 발동했습니다. 139:3.3 (1552.7) Though James was in no sense moody, he could be quiet and taciturn one day and a very good talker and storyteller the next. 야고보는 감각적으로 조금도 변덕스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조용하고 말이 없다가, 다음 날에는 뛰어난 좌담(座談)의 명수이며 이야기꾼이 되었습니다.

139:3.4 (1552.8) The outstanding feature of James’s personality was his ability to see all sides of a proposition. Of all the twelve, he came the nearest to grasping the real import and significance of Jesus’ teaching. 야고보의 고유성 중 눈에 띄는 점은 문제의 모든 면을 볼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모든 12명 중에서, 그는 예수 가르침의 참 의미와 중요성을 가장 가깝게 파악했습니다. 139:3.5 (1553.1) Though James and John had their troubles trying to work together, it was inspiring to observe how well they got along. 야고보와 요한은 함께 일하려고 애쓰면서 고생했지만, 그들이 얼마나 서로 잘 지내는지, 지켜보면 감동을 일으킵니다. 139:3.6 (1553.2) That characteristic of Jesus which James most admired was the Master’s sympathetic affection. Jesus’ understanding interest in the small and the great, the rich and the poor, made a great appeal to him. 야고보가 가장 감탄한 예수님의 성품()님의 공감적 애정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작은 자와 위대한 자, 부자와 가난한 자이해하는 관심이 그에게 가장 큰 매력을 주었습니다.139:3.7 (1553.3) James Zebedee was a well-balanced thinker and planner. 야고보 세베대는 잘 균형 잡힌 사색가이며 입안자였습니다. 139:3.8 (1553.4) He was modest and undramatic, a daily server, an unpretentious worker, seeking no special reward when he once grasped something of the real meaning of the kingdom. 그는 점잖아서 요란스럽지 않았으며, 매일 충실히 섬기며, 허세부리지 않는 일꾼으로서, 일단 나라의 참 의미의 실제를 파악하자 그이상 특별한 보상을 찾지 않았습니다.

139:3.9 (1553.5) James lived his life to the full, and when the end came, he bore himself with such grace and fortitude that even his accuser and informer, who attended his trial and execution, was so touched that he rushed away from the scene of James’s death to join himself to the disciples of Jesus. 야고보는 그의 일생을 충만히 살았으며, 종말이 오자, 그는 그토록 은혜롭게 불굴의 용기로 견디어서, 재판과 집행에 참석했던 고소인과 밀고자까지 감명을 받아, 야고보의 처형장에서 뛰쳐나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합류하였습니다.

  1. John Zebedee 요한 세베대

139:4.1 (1553.6) When he became an apostle, John was twenty-four years old and was the youngest of the twelve. 사도가 되었을 때, 요한24였고, 12명 중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 139:4.2 (1553.7) Since John was the youngest of the twelve and so closely associated with Jesus in his family affairs, he was very dear to the Master, but it cannot be truthfully said that he was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요한은 12 중 가장 어렸고, 가족 업무로 예수님과 친밀히 관련되어, ()님께 매우 소중했지만, “예수께서 사랑한 그 제자”라고 정말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139:4.3 (1554.1) Peter, James, and John were assigned as personal aides to Jesus soon after they became apostles.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사도가 된 직후 예수님의 개인 비서들로 배치되었습니다.

139:4.4 (1554.2) John Zebedee had many lovely traits of character, but one which was not so lovely was his inordinate but usually well-concealed conceit. 요한 세베대성품사랑스러운 특성이 많았지만, 그리 사랑스럽지 않았던 한 가지과도하지만 잘 감춰진 자만(自慢 자기 과대 평가)이었습니다. 139:4.5 (1554.3) The strongest trait in John’s character was his dependability. 요한의 성품 중 가장 강한 특성은 그의 신뢰성이었습니다. 139:4.6 (1554.4) Those characteristics of Jesus which John most appreciated were the Master’s love and unselfishness. 요한이 가장 높이 평가한 예수님의 특징들은, ()님의 사랑과 이기심 없는 태도였습니다.

139:4.7 (1554.5) John was a man of few words except when his temper was aroused. 요한은 성질이 격해진 때를 제외하면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139:4.8 (1555.1) There was another side to John that one would not expect to find in this quiet and introspective type. He was somewhat bigoted and inordinately intolerant. 요한에게는 이 조용하고 내성적 유형에서 기대할 수 없는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소 고집이 세고 지나치게 편협했습니다. 139:4.9 (1555.2) John’s life was tremendously influenced by the sight of Jesus’ going about without a home as he knew how faithfully he had made provision for the care of his mother and family. 요한의 일생은, 예수께서 얼마나 성실히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대비하셨는지 알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집 없이 지내는 모습에서 엄청나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139:4.10 (1555.3) John had a cool and daring courage which few of the other apostles possessed. 요한은 다른 사도들이 거의 갖지 못한, 침착하며 대담한 용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139:4.11 (1555.4) This son of Zebedee was very closely associated with Peter in the early activities of the Christian movement, becoming one of the chief supporters of the Jerusalem church. 이 세베대의 아들은 기독 운동의 초기 활동에서 베드로와 아주 밀접히 관련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 지지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139:4.12 (1555.5) Several years after the martyrdom of James, John married his brother’s widow. The last twenty years of his life he was cared for by a loving granddaughter. 야고보의 순교 몇 년 후, 요한은 형의 과부와 결혼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20년은 사랑스러운 손녀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139:4.13 (1555.6) John was in prison several times and was banished to the Isle of Patmos for a period of four years until another emperor came to power in Rome. 요한은 여러 번 투옥되었고, 다른 황제가 로마에서 권력을 잡기까지 4년 동안 팟모섬에 추방되었습니다. 139:4.14 (1555.7) When in temporary exile on Patmos, John wrote the Book of Revelation, which you now have in greatly abridged and distorted form. This Book of Revelation contains the surviving fragments of a great revelation, large portions of which were lost, other portions of which were removed, subsequent to John’s writing. It is preserved in only fragmentary and adulterated form. 팟모섬에 잠시 유배되었을 때, 요한은 계시록을 썼는데, 너희가 지금 갖고 있는 계시록은 크게 단축되고 왜곡된 형태입니다. 이 계시록은 큰 계시 중 남은 단편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요한이 기록한 이후에, 커다란 부분들은 소실되었고, 다른 부분들은 제거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단편적이고 불순물이 섞여 오염된 형태로 보존되었습니다.

139:4.15 (1555.8) John traveled much, labored incessantly, and after becoming bishop of the Asia churches, settled down at Ephesus. He directed his associate, Nathan, in the writing of the so-called “Gospel according to John,” at Ephesus, when he was ninety-nine years old. Of all the twelve apostles, John Zebedee eventually became the outstanding theologian. He died a natural death at Ephesus in A.D. 103 when he was one hundred and one years of age. 요한많이 여행하고, 쉼 없이 수고했으며, 아시아 교회들의 감독이 된 후 에베소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99세에 에베소에서 자기 동료 나단에게 소위 요한에 의한 복음을 쓰도록 지시했습니다. 12 사도 중에서 요한 세베대는 결국 탁월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AD 103년 에베소에서 101세의 나이로 자연사했습니다.

  1. Philip the Curious 호기심 많은 빌립

139:5.1 (1556.1) Philip was the fifth apostle to be chosen, being called when Jesus and his first four apostles were on their way from John’s rendezvous on the Jordan to Cana of Galilee. 빌립은 다섯 번째 사도로 선택되었는데, 그는 예수님과 첫 네 사도가 요단에서 요한을 만나고 갈릴리의 가나로 가는 도중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139:5.2 (1556.2) Philip was twenty-seven years of age when he joined the apostles; he had recently been married, but he had no children at this time. 빌립이 27세에 사도로 참여했습니다. 그는 최근에 결혼했으며, 이때 아이는 없었습니다.

139:5.3 (1556.3) When the apostles were organized for service, Philip was made steward; it was his duty to see that they were at all times supplied with provisions. 사도들이 봉사하려고 편성할 때, 빌립은 사무장(事務長)이 되었는데, 그들에게 양식이 항상 공급되도록 살피는 것이 그의 의무였습니다. 139:5.4 (1556.4) Philip came from a family of seven, three boys and four girls. He was next to the oldest, and after the resurrection he baptized his entire family into the kingdom. 빌립은 3소년과 4소녀 즉 일곱 (자녀)가 있는 가족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둘째였는데, 부활 후, 온 가족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세례를 주었습니다. 139:5.5 (1556.5) The strong point about Philip was his methodical reliability; the weak point in his make-up was his utter lack of imagination, the absence of the ability to put two and two together to obtain four. 빌립의 강점은 그의 질서정연한 확실성이었고, 기질적 약점전적으로 상상력이 부족해서, 둘에 둘을 더해 넷을 얻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139:5.6 (1556.6) The one quality about Jesus which Philip so continuously admired was the Master’s unfailing generosity. 빌립이 계속 경탄했던 예수님에 관한 한 가지의 특질()님의 끊임없는 관대함이었습니다. 139:5.7 (1557.1) There was little about Philip’s personality that was impressive. He was often spoken of as “Philip of Bethsaida, the town where Andrew and Peter live.” 빌립의 고유성에는 인상적인 점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안드레와 베드로가 사는 성읍 벳새다의 빌립”으로 흔히 불렸습니다. 139:5.8 (1557.2) The apostolic steward was not a good public speaker, but he was a very persuasive and successful personal worker. 사도 사무장은 훌륭한 대중 연설가는 아니었지만, 매우 설득력 있고 성공적인 개인적 일꾼이었습니다.

139:5.9 (1557.3) The inability of Philip to adapt himself to a new situation was well shown when the Greeks came to him at Jerusalem, saying: “Sir, we desire to see Jesus.”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빌립의 무능력예루살렘에서 그리스인들이 그에게 와서: “선생님, 우리는 예수님을 뵙고자 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잘 나타났습니다. 139:5.10 (1557.4) Philip went on through the trying times of the Master’s death, participated in the reorganization of the twelve, and was the first to go forth to win souls for the kingdom outside of the immediate Jewish ranks, being most successful in his work for the Samaritans and in all his subsequent labors in behalf of the gospel. 빌립은 주()께서 죽는 견딜 수 없는 시간을 계속 겪었는데, 12사도의 재조직에 참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혼(사람)들을 얻으려고 직계 유대인 계층 밖으로 제일 먼저 나아갔으며, 사마리아인들을 위한 그의 일과 복음을 위한 훗날의 모든 수고에서 가장 성공했습니다.

139:5.11 (1557.5) Philip’s wife, who was an efficient member of the women’s corps, became actively associated with her husband in his evangelistic work after their flight from the Jerusalem persecutions. 빌립의 아내는 여성 대원 중 유능한 회원으로, 예루살렘 박해를 피한 후 남편의 전도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139:5.12 (1558.1) Philip, the onetime steward of the twelve, was a mighty man in the kingdom, winning souls wherever he went; and he was finally crucified for his faith and buried at Hierapolis. 한때 12사도의 사무장 빌립(하느님) 나라에서 막강한 사람으로 가는 곳마다 혼들을 얻었습니다. 결국 그는 신앙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고 히에라폴리스에 묻혔습니다.

  1. Honest Nathaniel 정직한 나다니엘

139:6.1 (1558.2) Nathaniel, the sixth and last of the apostles to be chosen by the Master himself, was brought to Jesus by his friend Philip. 나다니엘은 주()님께서 6번째로 직접 선택한 사도로서, 친구 빌립이 그를 예수님께 안내했습니다. 139:6.2 (1558.3) When Nathaniel joined the apostles, he was twenty-five years old and was the next to the youngest of the group. He was the youngest of a family of seven, was unmarried, and the only support of aged and infirm parents, with whom he lived at Cana. 나다니엘이 사도로 참여했을 때, 그는 25세로 그룹에서 두 번째로 젊었습니다. 그는 일곱 명 가족 중 막내로 미혼(未婚)이었으며, 가나에서 함께 사는 연세 들고 허약한 부모의 유일한 부양자였습니다.

139:6.3 (1558.4) Jesus did not himself give Nathaniel a nickname, but the twelve soon began to speak of him in terms that signified honesty, sincerity. He was “without guile.” And this was his great virtue; he was both honest and sincere. The weakness of his character was his pride. 예수께서 직접 나다니엘에게 별명을 주지 않으셨지만, 12 사도들은 곧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의미의 용어로 그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간사(奸詐)가 없는사람으로 이것이 그의 큰 장점이었는데, 그는 정직하면서 성실했습니다. 그의 성품 중에서 단점은 (강한) 자부심이었습니다. 139:6.4 (1558.5) In many respects Nathaniel was the odd genius of the twelve. He was the apostolic philosopher and dreamer, but he was a very practical sort of dreamer. He alternated between seasons of profound philosophy and periods of rare and droll humor. 여러 면에서 나다니엘은 12 중 이상야릇한 천재였습니다. 그는 사도 철학자이며 몽상가였지만, 매우 실천적인 몽상가였습니다. 그는 한동안 심오한 철학에 빠져 있다가 얼마간 희한하게 익살스런 분위기 사이를 오락가락했습니다.

139:6.5 (1558.6) The apostles all loved and respected Nathaniel, and he got along with them splendidly, excepting Judas Iscariot. 사도들 모두 나다니엘을 사랑하고 존중했으며, 그는 유다 가룟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지냈습니다. 139:6.6 (1559.1) Many times, when Jesus was away on the mountain with Peter, James, and John, and things were becoming tense and tangled among the apostles, when even Andrew was in doubt about what to say to his disconsolate brethren, Nathaniel would relieve the tension by a bit of philosophy or a flash of humor; good humor, too.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과 함께 산으로 멀리 떠나계실 때, 사도들 사이에서 일들이 긴박히 엉켰을 때, 그리고 안드레까지 우울한 형제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할 때, 여러 번, 나다니엘이 약간의 철학이나 혹은 번쩍이는 유머로, 그것도 기분 좋게, 긴장을 풀어주곤 했습니다.

139:6.7 (1559.2) Nathaniel’s duty was to look after the families of the twelve. 나다니엘의 임무12사도들의 가족들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139:6.8 (1559.3) Nathaniel most revered Jesus for his tolerance. 나다니엘은 예수님의 포용력 때문에 그를 가장 존경했습니다. 139:6.9 (1559.4) Nathaniel’s father (Bartholomew) died shortly after Pentecost, after which this apostle went into Mesopotamia and India proclaiming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and baptizing believers. He also was a great man in the kingdom and did much to spread his Master’s teachings, even though he did not participate in the organization of the subsequent Christian church. Nathaniel died in India. 나다니엘의 아버지(바돌로메)가 오순절 직후에 별세한 후, 이 사도는 메소포타미아와 인도로 가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하느님) 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이었으며, 그는 나중에 기독교회의 조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님의 가르침을 멀리 펼치며 많이 일했습니다. 나다니엘은 인도에서 별세했습니다.

158-1 The Transfiguration 변모(變貌)

  1. The Transfiguration 변모(變貌)

211107 변모의 예수께 주의하라 막9:2-8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더라 2 After six days Jesus took Peter, James and John with him and led them up a high mountain, where they were all alone. There he was transfigured before them. 3 His clothes became dazzling white, whiter than anyone in the world could bleach them. 4 And there appeared before them Elijah and Moses, who were talking with Jesus. 5 Peter said to Jesus, “Rabbi, it is good for us to be here. Let us put up three shelters–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6 (He did not know what to say, they were so frightened.) 7 Then a cloud appeared and enveloped them, and a voice came from the cloud: “This is my Son, whom I love. Listen to him!” 8 Suddenly, when they looked around, they no longer saw anyone with them except Jesus.

158:1.1 (1752.3) Early on the morning of Monday, August 15, Jesus and the three apostles began the ascent of Mount Hermon, and this was six days after the memorable noontide confession of Peter by the roadside under the mulberry trees. 8월 15일 월요일 이른 아침에 예수님과 세 사도는 헤르몬산(山)을 오르기 시작했고, 이날은 뽕나무 아래 길가에서 베드로가 정오에 잊지 못할 고백을 한 지 6일 후였습니다.

158:1.2 (1752.4) Jesus had been summoned to go up on the mountain, apart by himself, for the transaction of important matters having to do with the progress of his bestowal in the flesh as this experience was related to the universe of his own creation. It is significant that this extraordinary event was timed to occur while Jesus and the apostles were in the lands of the gentiles, and that it actually transpired on a mountain of the gentiles.예수는, 이 체험이 자신이 직접 창조한 우주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육신으로 자기를 증여하는 진행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처리하도록 홀로 따로 산에 오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와 사도들이 이방인의 땅에 있을 때 이 특별 사건이 일어나도록 시간이 맞춰져 있었고, 그것이 이방인의 산에서 실제로 발생한 것은 의미심장(意味深長)합니다.

158:1.3 (1752.5) They reached their destination, about halfway up the mountain, shortly before noon, and while eating lunch, Jesus told the three apostles something of his experience in the hills to the east of Jordan shortly after his baptism and also some more of his experience on Mount Hermon in connection with his former visit to this lonely retreat. 그들은 정오 직전, 거의 산 중턱에 있는 목적지에 이르렀고, 점심 식사할 때, 예수는 세 사도에게 자신의 세례 직후 요단강 동편 언덕에서 얼마간의 자기 체험과 이렇게 외진 은신처에 자신의 예전 방문과 관련하여 헤르몬산(山)의 자기 체험까지 조금 더 이야기했습니다.

158:1.4 (1752.6) When a boy, Jesus used to ascend the hill near his home and dream of the battles which had been fought by the armies of empires on the plain of Esdraelon; now he ascended Mount Hermon to receive the endowment which was to prepare him to descend upon the plains of the Jordan to enact the closing scenes of the drama of his bestowal on Urantia. The Master could have relinquished the struggle this day on Mount Hermon and returned to his rule of the universe domains, but he not only chose to meet the requirements of his order of divine sonship embraced in the mandate of the Eternal Son on Paradise, but he also elected to meet the last and full measure of the present will of his Paradise Father. On this day in August three of his apostles saw him decline to be invested with full universe authority. They looked on in amazement as the celestial messengers departed, leaving him alone to finish out his earth life as the Son of Man and the Son of God. 소년 예수는 자기 집 근처 언덕에 올라 에스드랠론 평원에서 제국의 군대들이 싸웠던 전투를 꿈꾸곤 했습니다. 이제 그는 유란시아에 자신을 증여하는 마무리 장면을 일으키려고 요단 평원으로 내려가도록 그가 각오(覺悟)할 자질을 받으려고 헤르몬산(山)에 올랐습니다. 주님은 이날 헤르몬산(山)에서 투쟁을 그만두고 자신이 다스리는 우주 영역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천국 영원 아들의 명령에 담긴 신적 아들된 자기 계열의 자격을 채우려고 택할 뿐만 아니라 천국 자기 아버지의 당면한 뜻을 마지막까지 완전하게 채우기로 정했습니다. 8월의 이날 그의 사도 중 세 명은 그가 주어진 완전한 우주 권위를 거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천상의 메신저들이 그가 사람의 아들과 하느님의 아들로서 자기 지상 생애를 끝까지 마치도록 홀로 남겨 두고 떠날 때, 놀라서 바라보았습니다.

158:1.5 (1753.1) The faith of the apostles was at a high point at the time of the feeding of the five thousand, and then it rapidly fell almost to zero. Now, as a result of the Master’s admission of his divinity, the lagging faith of the twelve arose in the next few weeks to its highest pitch, only to undergo a progressive decline. The third revival of their faith did not occur until after the Master’s resurrection. 사도들의 신앙은 5,000명을 먹일 때 최고점에 있었고 그다음 거의 밑바닥까지 급속히 떨어졌습니다. 이제 주께서 자신의 신성(神性)을 시인한 결과로, 더딘 12의 신앙은, 단지 점차 내려가기 위해, 다음 몇 주간 그 최고조까지 올랐습니다. 주님의 부활 후에 비로소 그들 신앙의 세 번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158:1.6 (1753.2) It was about three o’clock on this beautiful afternoon that Jesus took leave of the three apostles, saying: “I go apart by myself for a season to commune with the Father and his messengers; I bid you tarry here and, while awaiting my return, pray that the Father’s will may be done in all your experience in connection with the further bestowal mission of the Son of Man.” And after saying this to them, Jesus withdrew for a long conference with Gabriel and the Father Melchizedek, not returning until about six o’clock. When Jesus saw their anxiety over his prolonged absence, he said: “Why were you afraid? You well know I must be about my Father’s business; wherefore do you doubt when I am not with you? I now declare that the Son of Man has chosen to go through his full life in your midst and as one of you. Be of good cheer; I will not leave you until my work is finished.” 이 아름다운 오후 세 시쯤에 예수께서 세 사도를 떠나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잠시 아버지와 그의 메신저들과 이야기하러 나 홀로 따로 가노라. 내가 명하노니,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사람의 아들의 추가적 증여 사명에 관련되어 너희 모든 체험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후, 예수는 물러나, 6시쯤까지 돌아오지 않고, 가브리엘 및 아버지 멜기세덱과 내내 논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오랜 부재로 그들이 염려하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왜 두려워했느냐? 내가 내 아버지 일을 해야 한다고 너희가 잘 아는데, 내가 너희와 함께 있지 않을 때 왜 너희가 의혹을 품느냐? 내가 이제 선언하노니, 사람의 아들은 너희 가운데, 너희 중 하나로서, 자기 생애를 온전히 끝까지 마치려고 결정했느니라. 힘내라. 내 일이 마칠 때까지 나는 너희를 떠나지 않으리라. ”

158:1.7 (1753.3) As they partook of their meager evening meal, Peter asked the Master, “How long do we remain on this mountain away from our brethren?” And Jesus answered: “Until you shall see the glory of the Son of Man and know that whatsoever I have declared to you is true.” And they talked over the affairs of the Lucifer rebellion while seated about the glowing embers of their fire until darkness drew on and the apostles’ eyes grew heavy, for they had begun their journey very early that morning. 그들이 함께 조촐히 저녁 식사를 할 때, 베드로가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래 우리 형제들과 떨어져 이 산에 머물러야 하는지요?”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의 영광을 보고, 내가 너희에게 선언한 무엇이나 참인 줄 알 때까지라.” 그리고 그들은 어둠이 다가올 때까지 타오르는 숯불 주위에 앉아 루시퍼 반란 사건에 대해 논의했으며, 그들이 그날 아침 너무 일찍 여행을 시작했기 때문에, 사도들의 눈이 노곤해졌습니다.

158:1.8 (1753.4) When the three had been fast asleep for about half an hour, they were suddenly awakened by a near-by crackling sound, and much to their amazement and consternation, on looking about them, they beheld Jesus in intimate converse with two brilliant beings clothed in the habiliments of the light of the celestial world. And Jesus’ face and form shone with the luminosity of a heavenly light. These three conversed in a strange language, but from certain things said, Peter erroneously conjectured that the beings with Jesus were Moses and Elijah; in reality, they were Gabriel and the Father Melchizedek. The physical controllers had arranged for the apostles to witness this scene because of Jesus’ request. 셋은 거의 30분간 깊이 잠들었다가, 가까이에서 장작이 타는 탁탁 소리에 그들이 갑자기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고, 그들은 천상 세계에 속한 빛의 옷을 입은 찬란한 두 존재와 친밀하게 서로 이야기하는 예수를 보고, 너무 깜짝 놀라 소스라쳤습니다. 예수님의 얼굴과 모습은 하늘빛의 광명(光明)으로 빛났습니다. 이 세 명은 낯선 말로 서로 이야기했지만, 어떤 말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있는 존재들이 모세와 엘리야라고 잘못 추측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가브리엘과 아버지 멜기세덱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요청 때문에 사도들이 눈앞에서 이 장면을 보도록, 물리 조정자들이 조정(調整)했습니다.

158:1.9 (1753.5) The three apostles were so badly frightened that they were slow in collecting their wits, but Peter, who was first to recover himself, said, as the dazzling vision faded from before them and they observed Jesus standing alone: “Jesus, Master, it is good to have been here. We rejoice to see this glory. We are loath to go back down to the inglorious world. If you are willing, let us abide here, and we will erect three tents, one for you, one for Moses, and one for Elijah.” And Peter said this because of his confusion, and because nothing else came into his mind at just that moment. 세 사도는 아주 몹시 두려워서 좀처럼 제정신을 찾지 못했지만, 자신들 앞에서 눈부신 광경이 희미하게 사라지고 홀로 서신 예수님을 보면서, 먼저 제정신이 들었던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예수님, 주(主)여, 여기 있었던 게 좋습니다. 우리가 이 영광을 보니 기쁩니다. 우리는 흉한 세상에 다시 내려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우리를 여기에 남게 하소서, 그러면 우리가 천막 셋을, 하나는 당신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세울 것입니다.” 베드로는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여, 바로 그 순간 그의 마음에 다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158:1.10 (1753.6) While Peter was yet speaking, a silvery cloud drew near and overshadowed the four of them. The apostles now became greatly frightened, and as they fell down on their faces to worship, they heard a voice, the same that had spoken on the occasion of Jesus’ baptism, say: “This is my beloved Son; give heed to him.” And when the cloud vanished, again was Jesus alone with the three, and he reached down and touched them, saying: “Arise and be not afraid; you shall see greater things than this.” But the apostles were truly afraid; they were a silent and thoughtful trio as they made ready to descend the mountain shortly before midnight. 베드로가 아직 말하고 있을 때, 은빛 구름이 다가와 그들 넷을 가렸습니다. 사도들이 이제 너무 두려워서, 그들이 엎드려 경배할 때, 그들은 예수께서 세례받을 때 말했던 바로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그에게 주의(注意 말을 잘 듣고 그에게 관심을 집중)하라.” 구름이 사라지자, 다시 예수님만 셋과 함께 계셨고, 그가 손을 뻗어 그들에게 대시며 말했습니다. “일어나고 두려워 말라. 너희는 이것보다 더 큰 일들을 보리라.” 그러나 사도들은 정말로 겁났습니다. 그들이 한밤중 직전에, 산에서 내려갈 준비를 하면서 그들 셋 모두 말없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84-2 The Early Mother-Family 초기 모계(母系)-가정

  1. The Early Mother-Family 초기 모계(母系)-가정

84:2.1 (932.7) The woman’s periodic hemorrhage and her further loss of blood at childbirth early suggested blood as the creator of the child (even as the seat of the soul) and gave origin to the blood-bond concept of human relationships. In early times all descent was reckoned in the female line, that being the only part of inheritance which was at all certain. 여성의 주기적 출혈과 추가적인 분만 출혈로, 피를 아이의 창조자 (심지어 혼魂의 자리로) 연상하여, 인간관계에 속한 혈연(血緣) 개념이 최초로 생겼습니다. 초기에 모든 후손은, 아주 확실히 상속의 유일한 부분이었던, 여성 혈통으로 여겼습니다.

84:2.2 (932.8) The primitive family, growing out of the instinctive biologic blood bond of mother and child, was inevitably a mother-family; and many tribes long held to this arrangement. The mother-family was the only possible transition from the stage of group marriage in the horde to the later and improved home life of the polygamous and monogamous father-families. The mother-family was natural and biologic; the father-family is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The persistence of the mother-family among the North American red men is one of the chief reasons why the otherwise progressive Iroquois never became a real state. 본능적으로 어머니와 자녀의 생물학적 혈연에서 생긴 원시 가정은 불가피하게 모계(母系) 가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부족은 이런 제도를 오랫동안 고수(固守)했습니다. 모계(母系)-가정은 유목민의 집단 결혼에서 일부다처와 일부일처 부계(父系)-가정들의 후기에 개선된 가정생활로 유일하게 넘어가는 단계였습니다. 모계(母系)-가정은 자연스럽게 발생한 생물학적이었습니다. 부계(父系)-가정은 사회적, 경제적 및 정치적이었습니다. 북(北)아메리카의 홍인(紅人) 사이에서 지속된 모계(母系)-가정이, 다른 점에서 진보적인 이로쿼이인(人)이 결코 실제 국가가 되지 못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84:2.3 (933.1) Under the mother-family mores the wife’s mother enjoyed virtually supreme authority in the home; even the wife’s brothers and their sons were more active in family supervision than was the husband. Fathers were often renamed after their own children. 모계(母系)-가정의 관습에 따라, 아내의 어머니가 가정에서 사실상 최고의 권위를 누렸습니다. 아내의 형제들과 그들의 아들들까지도 가정 관리에 남편보다 더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버지들은 흔히 자기 자녀를 따라 개명(改名)되었습니다.

84:2.4 (933.2) The earliest races gave little credit to the father, looking upon the child as coming altogether from the mother. They believed that children resembled the father as a result of association, or that they were “marked” in this manner because the mother desired them to look like the father. Later on, when the switch came from the mother-family to the father-family, the father took all credit for the child, and many of the taboos on a pregnant woman were subsequently extended to include her husband. The prospective father ceased work as the time of delivery approached, and at childbirth he went to bed, along with the wife, remaining at rest from three to eight days. The wife might arise the next day and engage in hard labor, but the husband remained in bed to receive congratulations; this was all a part of the early mores designed to establish the father’s right to the child. 아주 초기의 종족들은, 자녀를 전적으로 어머니 출신으로 여기면서, 아버지를 거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녀들이 어울리는 결과로서 아버지를 닮거나 자녀들이 아버지를 닮도록 어머니가 원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렇게 “자국이 남아 있다.”라고 믿었습니다. 후에 모계(母系)-가정에서 부계(父系)-가정으로 바뀌자, 아버지가 아이에 대한 모든 공적을 취했으며, 임신부(姙娠婦)에 대한 여러 금기가 나중에 확장되어 그녀의 남편을 포함했습니다. 아버지가 될 사람은 출산 시간이 다가오자 일을 그만두었고, 분만 중에 그는 아내와 마찬가지로 침실로 가서 3일에서 8일간 남아서 쉬었습니다. 아내는 다음날 일어나 중노동을 할 수도 있지만, 남편은 침실에 남아 축하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를 세우려고 의도된 초기 관습의 일부였습니다.

84:2.5 (933.3) At first, it was the custom for the man to go to his wife’s people, but in later times, after a man had paid or worked out the bride price, he could take his wife and children back to his own people. The transition from the mother-family to the father-family explains the otherwise meaningless prohibitions of some types of cousin marriages while others of equal kinship are approved. 처음에는, 남성이 아내의 가족에게 가는 것이 관습이었지만, 후일에 남성이 신붓값을 치르거나 일해서 갚은 후, 그는 자기 아내와 자녀를 자기 가족에게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모계(母系)-가정에서 부계(父系)-가정으로 옮겨져서, 다른 점에서 의미 없는 사촌 결혼의 일부 유형에 대한 금제(禁制)를 설명하는 반면에 동등한 다른 혈족의 결혼은 승인됩니다.

84:2.6 (933.4) With the passing of the hunter mores, when herding gave man control of the chief food supply, the mother-family came to a speedy end. It failed simply because it could not successfully compete with the newer father-family. Power lodged with the male relatives of the mother could not compete with power concentrated in the husband-father. Woman was not equal to the combined tasks of childbearing and of exercising continuous authority and increasing domestic power. The oncoming of wife stealing and later wife purchase hastened the passing of the mother-family. 사냥 관습이 지나가고, 사람이 목축을 주요한 식량 공급으로 장악하면서, 모계(母系)-가정이 빨리 끝났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부계(父系)-가정과 성공적으로 맞설 수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실패로 끝났습니다. 어머니의 남성 친척에게 맡긴 권능은 남편-아버지에게 집중된 권능과 맞설 수 없었습니다. 여성은 해산하고 계속된 권위와 늘어난 가사 생활력을 행사하는, 통합된 과업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 도둑질과 나중의 아내구입이 다가오면서, 모계(母系)-가정은 신속히 지나갔습니다.

84:2.7 (933.5) The stupendous change from the mother-family to the father-family is one of the most radical and complete right-about-face adjustments ever executed by the human race. This change led at once to greater social expression and increased family adventure. 모계(母系)-가정에서 부계(父系)-가정으로의 엄청난 변화는 인류가 일찍이 실행했던 가장 철저하고 완전한 180도 전환 조율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변화는 즉시 더 커다란 사회적 표현과 가정 모험의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37-9 Permanent Citizens of the Local Universe 지역 우주의 영구 시민들

  1. Permanent Citizens of the Local Universe 지역 우주의 영구 시민들

37:9.1 (414.6) As with the super- and central universes, the local universe has its orders of permanent citizenship. These include the following created types: 초우주와 중앙우주에서처럼, 지역 우주는 자체 계열의 영구 시민이 있습니다. 이들은 창조된 다음 유형들을 포함합니다.

37:9.2 (414.7) 1. Susatia. 수사시아.

37:9.3 (414.8) 2. Univitatia. 유니비타시아.

37:9.4 (414.9) 3. Material Sons. 물질 아들들.

37:9.5 (414.10) 4. Midway Creatures. 중도 창조물들.

37:9.6 (414.11) These natives of the local creation, together with the Spirit-fused ascenders and the spironga (who are otherwise classified), constitute a relatively permanent citizenship. These orders of beings are by and large neither ascending nor descending. They are all experiential creatures, but their enlarging experience continues to be available to the universe on their level of origin. While this is not wholly true of the Adamic Sons and midway creatures, it is relatively true of these orders. 지역 창조계의 이런 원주민들은 영-융합 상승자들 및 (다르게 분류되는) 스피롱가와 함께 그렇게 영구 시민을 구성합니다. 이 계열의 존재들은 대체로 상승도 하강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체험적 창조물들이지만, 확장하는 그들의 체험은 그들이 기원한 수준의 우주에 계속 도움이 됩니다. 이것은 아담 아들들과 중도 창조물들에게 완전히 해당하지 않지만, 이런 계열들에 비교적 해당합니다.

37:9.7 (414.12) The Susatia. These marvelous beings reside and function as permanent citizens on Salvington, the headquarters of this local universe. They are the brilliant offspring of the Creator Son and Creative Spirit and are closely associated with the ascendant citizens of the local universe, the Spirit-fused mortals of the Nebadon Corps of Perfection. 수사시아. 이 굉장한 존재들은 이 지역 우주의 본부, 샐빙톤에서 영구 시민으로 거주하며 활동합니다. 그들은 창조자 아들과 창조적 영(靈)의 찬란한 자녀이며 지역 우주의 상승 시민들, 네바돈 완전단(團)의 영(靈)-융합 필사자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37:9.8 (414.13) The Univitatia. Each of the one hundred constellation headquarters clusters of architectural spheres enjoys the continuous ministry of a residential order of beings known as the univitatia. These children of the Creator Son and the Creative Spirit constitute the permanent population of the constellation headquarters worlds. They are nonreproducing beings existing on a plane of life about halfway between the semimaterial status of the Material Sons domiciled on the system headquarters and the more definitely spiritual plane of the Spirit-fused mortals and the susatia of Salvington; but the univitatia are not morontia beings. They accomplish for ascending mortals during the traversal of the constellation spheres what the Havona natives contribute to the pilgrim spirits passing through the central creation. 유니비타시아. 건축 구체에 속한 일백 성좌단 각 본부는 유니비타시아로 알려진 거주 존재 계열의 계속적 보살핌을 누립니다. 창조주 아들과 창조적 영(靈)의 이 자녀들이 성좌 본부 세계들의 영구 주민을 구성합니다. 그들은 체계 본부에 거주하는 물질 아들들의 반(半)물질 상태와 영(靈)-융합 필사자와 샐빙톤에 속한 수사시아의 훨씬 뚜렷한 영적 상태 사이에서 거의 중간 생명의 상태에 있는 비생산 존재입니다. 그러나 유니비타시아는 모론시아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상승 필사자들이 성좌 구체들을 가로지를 때, 하보나 원주민이 중앙 창조계를 통과하는 순례 영(靈)들에 공헌하는 것을, 해냅니다.

37:9.9 (415.1) The Material Sons of God. When a creative liaison between the Creator Son and the universe representative of the Infinite Spirit, the Universe Mother Spirit, has completed its cycle, when no more offspring of the combined nature are forthcoming, then does the Creator Son personalize in dual form his last concept of being, thus finally confirming his own and original dual origin. In and of himself he then creates the beautiful and superb Sons and Daughters of the material order of universe sonship. This is the origin of the original Adam and Eve of each local system of Nebadon. They are a reproducing order of sonship, being created male and female. Their progeny function as the relatively permanent citizens of a system capital, though some are commissioned as Planetary Adams. 하느님의 물질 아들들. 창조자 아들과 무한 영(靈)의 우주 대리자, 우주 어머니 영(靈) 사이에 창조적 교섭(交涉)이 그 순환을 마치고, 통합 본성의 자녀가 그 이상 나오지 않으면, 그다음 창조자 아들은 자신의 마지막 존재의 개념을 이중 형태로 고유화하여서, 결국 자기 본래의 이중 기원을 확증합니다. 그때 그 자체로 그는 우주 자녀된 물질 계열의 아름답고 멋진 아들들과 딸들을 창조합니다. 이것이 네바돈의 각 지역 체계에 속한 본래 아담과 이브의 기원입니다. 그들은,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된, 재생산하는 자녀 계열입니다. 그들의 자손은, 일부가 행성 아담들로 임명되지만, 비교적 체계 수도의 영구 시민들로 활동합니다.

37:9.10 (415.2) On a planetary mission the Material Son and Daughter are commissioned to found the Adamic race of that world, a race designed eventually to amalgamate with the mortal inhabitants of that sphere. Planetary Adams are both descending and ascending Sons, but we ordinarily class them as ascending. 행성 임무에서 물질 아들과 딸은 그 세계의 아담 인종, 결국 그 구체의 필사 거주자들과 함께 혼합하도록 의도된 인종을 세우도록 임명됩니다. 행성 아담들은 하강 및 상승 아들들이지만, 우리는 보통 그들을 상승으로 분류합니다.

37:9.11 (415.3) The Midway Creatures. In the early days of most inhabited worlds, certain superhuman but materialized beings are of assignment, but they usually retire upon the arrival of the Planetary Adams. The transactions of such beings and the efforts of the Material Sons to improve the evolutionary races often result in the appearance of a limited number of creatures who are difficult to classify. These unique beings are often midway between the Material Sons and the evolutionary creatures; hence their designation, midway creatures. In a comparative sense these midwayers are the permanent citizens of the evolutionary worlds. From the early days of the arrival of a Planetary Prince to the far-distant time of the settling of the planet in light and life, they are the only group of intelligent beings to remain continuously on the sphere. On Urantia the midway ministers are in reality the actual custodians of the planet; they are, practically speaking, the citizens of Urantia. Mortals are indeed the physical and material inhabitants of an evolutionary world, but you are all so short-lived; you tarry on your nativity planet such a short time. You are born, live, die, and pass on to other worlds of evolutionary progression. Even the superhuman beings who serve on the planets as celestial ministers are of transient assignment; few of them are long attached to a given sphere. The midway creatures, however, provide continuity of planetary administration in the face of ever-changing celestial ministries and constantly shifting mortal inhabitants. Throughout all of this never-ceasing changing and shifting, the midway creatures remain on the planet uninterruptedly carrying on their work. 중도(中途) 창조물들. 거주 세계 대부분의 초기에, 확실히 초인간적이지만 물질화 존재들이 배정되지만, 그들은 대개 행성 아담들의 도착으로 물러갑니다. 진화 인종을 개선하려는 그런 존재들의 업무와 물질 아들들의 노력으로 대체로 분류하기 어려운, 제한된 수(數)의 창조물들이 출현합니다. 이런 독특한 존재들은 대체로 물질 아들들과 진화 창조물들의 중도에 있어서 그들의 명칭이 중도 창조물들입니다. 상대적 의미로, 이런 중도자들은 진화 세계들의 영구 시민들입니다. 행성 왕자가 도착한 초기에서 행성이 빛과 생명에 정착하는 아득히 먼 시대까지, 그들은 그 구체에 계속 남아 있는 유일한 지능 존재 집단입니다. 유란시아의 중도 사역자들이 실은 행성의 현재 보관(保管)자들입니다. 사실상 그들이 유란시아 시민들입니다. 필사자들은 정말 진화 세계의 육체적인 물질적 주민들이지만, 너희는 모두 너무 목숨이 짧습니다. 너희는 그렇게 잠깐 너희가 태어난 행성에 머뭅니다. 너희는 태어나서, 살다가, 죽어서, 발전하는 다른 진보 세계들로 나아갑니다. 천상의 사역자들로 행성에서 섬기는 초인간 존재들조차 일시적 임무를 받습니다. 그들 중에서 주어진 구체에 오래 배속되는 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중도 창조물들은 늘 변화하는 천상의 사역들과 끊임없이 이동하는 필사 주민들에도 불구하고, 계속 행성을 경영합니다. 이런 모든 끝없는 변화와 이동하는 내내, 중도 창조물들은 행성에 남아서 끊임없이 자신들이 과업을 수행합니다.

37:9.12 (415.4) In like manner, all divisions of the administrative organization of the local universes and superuniverses have their more or less permanent populations, inhabitants of citizenship status. As Urantia has its midwayers, Jerusem, your system capital, has the Material Sons and Daughters; Edentia, your constellation headquarters, has the univitatia, while the citizens of Salvington are twofold, the created susatia and the evolved Spirit-fused mortals. The administrative worlds of the minor and major sectors of the superuniverses do not have permanent citizens. But the Uversa headquarters spheres are continuously fostered by an amazing group of beings known as the abandonters, the creation of the unrevealed agents of the Ancients of Days and the seven Reflective Spirits resident on the capital of Orvonton. These residential citizens on Uversa are at present administering the routine affairs of their world under the immediate supervision of the Uversa corps of the Son-fused mortals. Even Havona has its native beings, and the central Isle of Light and Life is the home of the various groups of Paradise Citizens. 마찬가지로, 지역 우주들과 초우주들에 속한 경영 조직의 모든 분야는 거의 자신들의 영구 주민들, 시민권 신분의 거주자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에 중도자들이 있듯이, 너희 체계 수도 예루셈에 물질 아들들과 딸들이 있습니다. 너희 성좌 본부 에덴시아에 유니비타시아가 있는 반면에 샐빙톤에는 이중적 시민들, 창조된 수사시아와 진화된 영(靈)-융합 필사자들이 있습니다. 초우주의 소구역과 대구역의 경영 세계에는 영구 시민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버르사 본부 구체에는,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과 오르본톤 수도에 거주하는 일곱 반사 영(靈)들의 미(未)계시 대리자들에 속한 창조물, 아반돈터들로 알려진 굉장한 존재 집단이 계속 양육되고 있습니다. 유버르사에 거주하는 이 시민들은, 아들-융합 필사자들로 구성된 유버르사단(團)의 직접 감독에 따라서 현재 자기 세계의 일상 업무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하보나조차 자기 출신 존재들이 있으며, 빛과 생명의 중앙 섬은 다양한 천국 시민 집단의 고향입니다.

S83 The Marriage Institution 개요83편 결혼 제도

S83 The Marriage Institution 개요83편 결혼 제도

83:0.3 (922.3) The self-regarding and self-gratifying sex relationship entails the certain consequences of self-denial and insures the assumption of altruistic duties and numerous race-benefiting home responsibilities. This sex impulse automatically and unerringly compels man to think and eventually leads him to love. 이기적인 자기만족의 성(性)관계가 자기절제의 결과를 남기고, 이타적 의무와 인종에-이로운 수많은 가정 책임을 확실히 떠맡습니다. 이런 성(性) 충동이 자동으로 반드시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어 결국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1. Marriage as a Societal Institution 사회 제도로서의 결혼

83:1.1 (922.4) Marriage is society’s mechanism designed to regulate and control those many human relations which arise out of the physical fact of bisexuality. 결혼은 양성(兩性)의 물리적 사실에서 생기는 그런 여러 인간관계를 규정하고 조정하도록 계획된 사회 기구입니다. 83:1.4 (922.7) Marriage is an institution of society, not a department of the church. 결혼은 사회 제도이며, 교회의 분야가 아닙니다. 83:1.5 (922.8) Primitive marriage was primarily industrial; and even in modern times it is often a social or business affair. 원시 결혼은 원래 산업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서도 결혼은 종종 사회나 사업적 업무입니다.

  1. Courtship and Betrothal 구혼(求婚)과 약혼(約婚)

83:2.1 (923.1) Primitive marriages were always planned by the parents of the boy and girl. 원시 결혼은 언제나 소년과 소녀의 부모가 계획했습니다. 83:2.2 (923.2) So marriage by capture preceded marriage by contract. Pseudo elopement was the transition stage between capture by force and subsequent courtship by charming. 포획 결혼이 계약 결혼보다 먼저 일어났습니다. 위장 도망은 강제 포획과 차후 매력에 의한 구애 사이에 있는 전환 단계였습니다. 83:2.3 (923.3) Later, mock capture became a part of the regular wedding ceremony. 나중에 포획 흉내가 일상 결혼식의 부분이 되었습니다. 83:2.4 (923.4) Man has usually taken the lead in courtship, but not always. And as civilization has progressed, women have had an increasing part in all phases of courtship and marriage. 대개 남자가 구혼(求婚)에 앞장섰지만, 항상 그렇지 않습니다. 문명이 진보하면서, 모든 구혼(求婚)과 결혼 단계에서 여성의 역할이 늘어났습니다. 83:2.5 (923.5) Increasing love, romance, and personal selection in premarital courtship are an Andite contribution to the world races. 혼전 구혼(求婚)에서 사랑, 낭만 및 개인적 선택의 증가는 세계 인종에 대한 안드-사람들의 공헌입니다. 83:2.6 (923.6) The betrothal was originally equivalent to marriage; and among early peoples sex relations were conventional during the engagement. In recent times, religion has established a sex taboo on the period between betrothal and marriage. 약혼은 원래 결혼에 해당했습니다. 그래서 초기 민족들 사이에 약혼 기간의 성(性)관계는 관행적이었습니다. 최근에, 종교가 약혼과 결혼 사이 기간에 성(性) 금기를 확립했습니다.

  1. Purchase and Dowry 아내 사들임과 지참금

83:3.1 (923.7) The purchase price of a wife was regarded as a forfeit or deposit which the husband was doomed to lose in case of divorce or desertion. 아내 구입 가격은, 이혼이나 불법 유기의 경우에 남편이 손해를 보기로 정한 벌금이나 보증금으로 여겼습니다. 83:3.2 (924.1) Service was equivalent to cash in the purchase of a wife. 봉사(奉仕 받들어 섬김)는 아내구입에서 현금과 같았습니다. 83:3.3 (924.2) As civilization progressed, fathers did not like to appear to sell their daughters, and so, while continuing to accept the bride purchase price, they initiated the custom of giving the pair valuable presents which about equaled the purchase money. And upon the later discontinuance of payment for the bride, these presents became the bride’s dowry. 문명이 발전하면서, 아버지들은 자기 딸들을 파는 것같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신부 매입 값을 계속 받으면서, 구매 대금과 거의 같은 값진 선물을 부부에게 주는 관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후일 신부를 위한 금액이 폐지된 후, 이런 선물들은 신부의 지참금이 되었습니다. 83:3.4 (924.3) The idea of a dowry was to convey the impression of the bride’s independence, to suggest far removal from the times of slave wives and property companions. A man could not divorce a dowered wife without paying back the dowry in full. 지참금의 생각은 신부의 자활(自活)하는 인상의 전달, 즉 노예 아내 및 재산 동반자의 시대와 아주 달라졌음을 암시합니다. 남성은 지참금의 전액을 갚지 않으면 지참금을 가져온 아내와 이혼할 수 없었습니다.

  1. The Wedding Ceremony 결혼식

83:4.1 (924.4) The wedding ceremony grew out of the fact that marriage was originally a community affair, not just the culmination of a decision of two individuals. 결혼은 두 개인 결정의 성취만 아니라, 원래 공동체 업무였다는 사실에서, 결혼식이 발전하여 커졌습니다. 83:4.3 (924.6) At first the wedding ceremony was more on the order of a betrothal and consisted only in public notification of intention of living together; later it consisted in formal eating together. 처음에 결혼식은 약혼과 더 비슷했고, 동거(同居)의 의도를 공개적으로 알릴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결혼은 정식으로 같이 식사하는 것이었습니다. 83:4.4 (924.7) Efforts to insure fecundity also led to the association of marriage with certain magical or religious ceremonials. 다산 보증의 노력으로, 결혼은 어떤 마술이나 종교적 예식의 관련으로 또한 이어졌습니다.

83:4.9 (925.5) The luck element, that in spite of all premarital tests certain marriages turned out bad, led primitive man to seek insurance protection against marriage failure; led him to go in quest of priests and magic. And this movement culminated directly in modern church weddings. But for a long time marriage was generally recognized as consisting in the decisions of the contracting parents — later of the pair — while for the last five hundred years church and state have assumed jurisdiction and now presume to make pronouncements of marriage. 혼전(婚前)의 모든 시험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혼은 불행해졌다는 행운 요소로 인해서, 원시인(人)은 결혼 실패를 막으려고 보증을 찾게 되었고, 사제들과 마술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이 바로 현대 교회 결혼으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결혼은 일반적으로 계약하는 부모들(나중에는 그 쌍)의 결정이라고 인정되었던 반면에 지난 500년 동안에 교회와 국가가 관할권을 떠맡았고, 지금은 대담하게 결혼을 선언합니다.

  1. Plural Marriages 복혼(複婚)

83:5.1 (925.6) In the early history of marriage the unmarried women belonged to the men of the tribe. Later on, a woman had only one husband at a time. This practice of one-man-at-a-time was the first step away from the promiscuity of the herd. 초기 결혼 역사에서 미혼 여성들은 부족의 남성들에게 속했습니다. 나중에 한 여성은 한 번에 한 남편만 있었습니다. 한 번에 한 남성이라는 이런 관례는 무리의 집단적 난혼(亂婚)을 떠나는 첫 단계였습니다. 83:5.2 (925.7) The next step in mating evolution was the group marriage. 짝짓기 진화의 다음 단계는 집단 결혼이었습니다. 83:5.3 (926.1) Group marriages gradually gave way before the emerging practices of polygamy — polygyny and polyandry — among the more advanced tribes. 더 진보한 부족 중에서, 복혼(複婚)-일부다처(一夫多妻)와 일처다부(一妻多夫)-관행이 출현하기 전에, 집단 결혼은 점차 무너졌습니다. 83:5.10 (926.8) True polygyny, where all the wives are of equal status and all the children equal, has been very rare. 모든 아내가 동등한 자격으로, 모든 자녀가 동등한, 진정한 일부다처(一夫多妻)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83:5.12 (926.10) The taboo wife — one wife of legal status — created the concubine mores. Concubinage was the steppingstone to monogamy, the first move away from frank polygyny. 금기 아내–법적 자격이 있는 한 아내-가 첩 관습을 만들었습니다. 축첩(蓄妾)이 일부일처(一夫一妻)제의 발판, 명백한 일부다처(一夫多妻)에서 멀어지는 첫 조처였습니다.

  1. True Monogamy — Pair Marriage 진정한 단혼(單婚) – 일부일처(一夫一妻)

83:6.6 (927.7) Monogamy always has been, now is, and forever will be the idealistic goal of human sex evolution. This ideal of true pair marriage entails self-denial, and therefore does it so often fail just because one or both of the contracting parties are deficient in that acme of all human virtues, rugged self-control. 단혼(單婚)은 언제나 인간의 성(性) 진화의 이상적 목표였고, 지금도 그러며,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참된 일부일처제의 이런 이상(理想)에 극기(克己)가 필요하므로, 결혼 당사자 중 하나 혹은 둘 다, 오로지 모든 인간 미덕의 절정, 엄격한 자제(自制)가 모자라서 그토록 자주 실패합니다.

83:6.7 (927.8) Monogamy is the yardstick which measures the advance of social civilization as distinguished from purely biologic evolution. Monogamy is not necessarily biologic or natural, but it is indispensable to the immediate maintenance and further development of social civilization. It contributes to a delicacy of sentiment, a refinement of moral character, and a spiritual growth which are utterly impossible in polygamy. 단혼(單婚)은 순전히 생물학적 진화와 구별되는, 사회적 문명의 진보를 측정하는 척도입니다. 단혼(單婚)은 반드시 생물학적 혹은 자연발생적이지 않아도, 사회 문명의 즉각적 정비(整備)와 추가 발전에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것은 감정의 섬세함, 세련된 도덕적 특성 및 복혼(複婚)에서는 완전히 불가능한 영적 성장에 기여(寄與)합니다. 83:6.8 (928.1) Pair marriage favors and fosters that intimate understanding and effective co-operation which is best for parental happiness, child welfare, and social efficiency. Marriage, which began in crude coercion, is gradually evolving into a magnificent institution of self-culture, self-control, self-expression, and self-perpetuation. 일부일처제는 부모의 행복, 자녀의 복지 및 사회적 증진에 최선(最善)인, 친밀한 이해 및 효과적 협력을 뒷받침하고 촉진합니다. 미숙한 강압으로 시작된 결혼은 자기 수양(修攘), 자제(自制 극기), 자기표현 및 자기 영속(永續)의 훌륭한 제도로 점차 진화하고 있습니다.

  1. The Dissolution of Wedlock 혼인의 해약(解約)

83:7.3 (928.4) The inauguration of wife purchase and wife dowry, by introducing a property penalty for marriage failure, did much to lessen separation. 결혼 실패에 대한 재산 위약금을 도입한, 아내구입과 아내 지참금의 시작으로 별거(別居)가 크게 줄었습니다. 83:7.4 (928.5) The social pressure of community standing and property privileges has always been potent in the maintenance of the marriage taboos and mores. 공동체 존속과 재산 특권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결혼 금기와 관습의 유지에 언제나 유력했습니다. 83:7.6 (928.7) The real test of marriage, all down through the ages, has been that continuous intimacy which is inescapable in all family life. Two pampered and spoiled youths, educated to expect every indulgence and full gratification of vanity and ego, can hardly hope to make a great success of marriage and home building — a lifelong partnership of self-effacement, compromise, devotion, and unselfish dedication to child culture. 대대로 모든 세대에서, 결혼에 대한 진정한 시험은, 모든 가정생활에서 불가피한, 부단한 친밀함이었습니다. 모든 방종(放縱)과 허영과 자만을 완전히 채우도록 교육받은, 제멋대로 버릇없이 행동하는 두 젊은이는 결혼과 가정(家庭) 세우기 – 자기를 삼가고, 양보하며, 헌신하고, 자녀 양육에 이타적으로 헌신하는 평생 배우자 됨에, 크게 성공하기를 도저히 바랄 수 없습니다. 83:7.7 (929.1) Easy divorce, when the result of lack of self-control or failure of normal personality adjustment, only leads directly back to those crude societal stages from which man has emerged so recently and as the result of so much personal anguish and racial suffering. 자제(自制) 부족이나 정상적인 인격 조율 실패의 결과로, 쉬운 이혼(離婚)은, 사람이 아주 최근에, 그렇게 많은 개인적인 번민과 인종적 고통의 결과로써, 벗어났던, 그런 미숙한 사회적 단계로 바로 되돌아가게 할 뿐입니다.

83:7.8 (929.2) But just so long as society fails to properly educate children and youths, so long as the social order fails to provide adequate premarital training, and so long as unwise and immature youthful idealism is to be the arbiter of the entrance upon marriage, just so long will divorce remain prevalent. 그러나 사회가 아이들과 젊은이를 적절히 교육하지 못하고, 사회 계층이 충분히 혼전 훈련을 제공하지 못하며, 분별없이 미숙한 젊은이 특유의 이상주의(理想主義)가 결혼의 중재자가 되는 한, 이혼(離婚)은 바로 그렇게 오래 널리 유행할 것입니다. 83:7.9 (929.3) The great inconsistency of modern society is to exalt love and to idealize marriage while disapproving of the fullest examination of both. 현대 사회의 커다란 모순은, 사랑의 격찬과 결혼의 이상화(理想化), 둘 모두를 완전히 점검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격찬하고 결혼을 이상화(理想化)하는 것입니다.

  1. The Idealization of Marriage 결혼의 이상화(理想化)

83:8.1 (929.4) Marriage which culminates in the home is indeed man’s most exalted institution, but it is essentially human. 가정에서 절정에 이르는 결혼은 정말 인간의 가장 고귀한 제도이지만, 본질상 인간적입니다. 83:8.2 (929.5) The union of husband and wife in the marriage-home relationship is a material function of the mortals of the evolutionary worlds. 결혼-가정 관계에서 남편과 아내의 연합은 진화 세계 필사자들의 물질적 활동입니다. 83:8.3 (929.6) Neither can marriage be truly compared to the relation of the Adjuster to man nor to the fraternity of Christ Michael and his human brethren. 결혼은 정말로 조율자와 인간의 관계나, 그리스도 미가엘과 그의 인간 형제들의 우애에 견줄 수 없습니다. 83:8.5 (930.1) After all, the ideal mortal marriage is humanly sacred. 결국 이상적(理想的)인 필사자 결혼은 인간적으로 신성합니다.

83:8.6 (930.2) Young men and women should be taught something of the realities of marriage before they are plunged into the exacting demands of the interassociations of family life. 젊은 남녀는 서로 연합하는 가정생활의 힘든 요구에 돌입하기 전에, 그들은 결혼의 현실성을 어느 정도 배워야 합니다. 83:8.8 (930.4) Marriage is not just an individualistic ideal; it is the evolving social partnership of a man and a woman, existing and functioning under the current mores, restricted by the taboos, and enforced by the laws and regulations of society. 결혼은 개인주의적 이상(理想)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금기로 제한되고, 사회의 법률과 규정으로 시행되며, 현행 관습에 따라 존재하고 작용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진화하는 사회적 동반자 관계입니다.

158-0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변모(變貌)의 산

Paper 158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변모(變貌)의 산

211031 죽기 전에 하느님의 영광을 보는 자녀 마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After six days Jesus took with him Peter, James and John the brother of James, and led them up a high mountain by themselves.

158:0.1 (1752.1) IT WAS near sundown on Friday afternoon, August 12, A.D. 29, when Jesus and his associates reached the foot of Mount Hermon, near the very place where the lad Tiglath once waited while the Master ascended the mountain alone to settle the spiritual destinies of Urantia and technically to terminate the Lucifer rebellion. And here they sojourned for two days in spiritual preparation for the events so soon to follow. 예수와 그의 동료들은 AD 29년 8월 12일 금요일 오후 거의 해 질 녘에 헤르몬산(山) 기슭에 도착했는데, 주께서 홀로 산에 올라 유란시아의 영적 운명을 결말짓고 루시퍼 반역의 최후를 원칙적으로 마무리하는 동안 소년 티글랏이 한때 기다렸던 바로 그 장소 근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에서 곧 있을 사건을 위해 영적으로 준비하면서 이틀간 머물렀습니다.

158:0.2 (1752.2) In a general way, Jesus knew beforehand what was to transpire on the mountain, and he much desired that all his apostles might share this experience. It was to fit them for this revelation of himself that he tarried with them at the foot of the mountain. But they could not attain those spiritual levels which would justify their exposure to the full experience of the visitation of the celestial beings so soon to appear on earth. And since he could not take all of his associates with him, he decided to take only the three who were in the habit of accompanying him on such special vigils. Accordingly, only Peter, James, and John shared even a part of this unique experience with the Master. 대체로, 예수님은 산에서 무엇이 일어날지 사전(事前)에 아셨으며 모든 사도가 이렇게 체험하기를 그는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들이 이런 자기 계시를 감당하도록, 그들과 함께 산기슭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곧 지상에 출현할 천상 존재들의 방문을 충분히 체험하도록, 자신들을 드러낼 자격이 있는, 그런 영적 수준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함께 모든 동료를 데리고 갈 수 없어서, 그는 그런 특별 철야에 자신과 함께 가곤 했던 세 명만 데려가기로 정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만이 주님과 함께 하나뿐인 이 체험의 일부만이라도 나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