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8 The Idealization of Marriage 결혼의 이상화(理想化)

8. The Idealization of Marriage 결혼의 이상화(理想化)

83:8.1 (929.4) Marriage which culminates in the home is indeed man’s most exalted institution, but it is essentially human; it should never have been called a sacrament. The Sethite priests made marriage a religious ritual; but for thousands of years after Eden, mating continued as a purely social and civil institution. 가정에서 절정에 이르는 결혼은 정말 인간의 가장 고귀한 제도이지만, 본질상 인간적입니다. 그것은 결코 성례(聖禮)라고 부르지 말아야 했습니다. 셋-사람들 사제들이 결혼을 종교 의례(儀禮)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에덴 이후 수천 년 동안, 짝짓기는 순전히 사회적 시민 제도로 지속했습니다.

83:8.2 (929.5) The likening of human associations to divine associations is most unfortunate. The union of husband and wife in the marriage-home relationship is a material function of the mortals of the evolutionary worlds. True, indeed, much spiritual progress may accrue consequent upon the sincere human efforts of husband and wife to progress, but this does not mean that marriage is necessarily sacred. Spiritual progress is attendant upon sincere application to other avenues of human endeavor. 인간의 결합을 신적 결합에 견주는 것이 가장 유감스럽습니다. 결혼-가정 관계에서 남편과 아내의 연합은 진화 세계 필사자들의 물질적 활동입니다. 사실 정말로, 대부분의 영적 진보는 진보하려는 남편과 아내의 신실한 인간적 노력의 결과로 생기지만, 이것은, 결혼이 필연적으로 신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영적 진보는 인간적 노력을 다른 방법에 신실히 적용할 때 따라옵니다.

83:8.3 (929.6) Neither can marriage be truly compared to the relation of the Adjuster to man nor to the fraternity of Christ Michael and his human brethren. At scarcely any point are such relationships comparable to the association of husband and wife. And it is most unfortunate that the human misconception of these relationships has produced so much confusion as to the status of marriage. 결혼은 정말로 조율자와 인간의 관계나, 그리스도 미가엘과 그의 인간 형제들의 우애에 견줄 수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도 그런 관계들은 단연 남편과 아내의 결합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런 관계들에 대한 인간적 오해가 결혼의 상태에 대해 그렇게 많은 혼란을 일으켰다는 것이 가장 유감스럽습니다.

83:8.4 (929.7) It is also unfortunate that certain groups of mortals have conceived of marriage as being consummated by divine action. Such beliefs lead directly to the concept of the indissolubility of the marital state regardless of the circumstances or wishes of the contracting parties. But the very fact of marriage dissolution itself indicates that Deity is not a conjoining party to such unions. If God has once joined any two things or persons together, they will remain thus joined until such a time as the divine will decrees their separation. But, regarding marriage, which is a human institution, who shall presume to sit in judgment, to say which marriages are unions that might be approved by the universe supervisors in contrast with those which are purely human in nature and origin? 어떤 필사자 집단이 결혼을 신적 행위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해 낸 것도 유감스럽습니다. 그런 믿음은 계약 당사자들의 상황이나 소원에 개의(介意)치 않고, 결혼 상태에 대한 확고 불변의 개념으로 바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결혼이 해체(解體)되는 바로 그 자체의 사실이, 신(神)이 그런 연합에 대한 결합 당사자가 아님을 나타냅니다. 하느님이 일단 어떤 두 물건이나 인간들을 하나로 결합했다면, 신적 뜻이 그것들의 분리를 명하는 그런 시간까지 그것들은 그렇게 결합하여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제도인 결혼에 관해, 본성과 기원이 순전히 인간적인 결혼과 현저히 다르게, 어떤 결혼이 우주 감독자들이 허락한 연합이라고 말하면서, 감히 누가 판가름할 것입니까?

83:8.5 (930.1) Nevertheless, there is an ideal of marriage on the spheres on high. On the capital of each local system the Material Sons and Daughters of God do portray the height of the ideals of the union of man and woman in the bonds of marriage and for the purpose of procreating and rearing offspring. After all, the ideal mortal marriage is humanly sacred. 그렇지만, 높은 구체들에 결혼의 이상(理想)이 있습니다. 각 지역 체계의 수도에서, 하느님의 물질 아들들과 딸들이, 결혼의 결속과 자녀 출산과 양육의 목적으로, 남녀가 연합하는 이상적 극치를 묘사합니다. 결국 이상적(理想的)인 필사자 결혼은 인간적으로 신성합니다.

83:8.6 (930.2) Marriage always has been and still is man’s supreme dream of temporal ideality. Though this beautiful dream is seldom realized in its entirety, it endures as a glorious ideal, ever luring progressing mankind on to greater strivings for human happiness. But young men and women should be taught something of the realities of marriage before they are plunged into the exacting demands of the interassociations of family life; youthful idealization should be tempered with some degree of premarital disillusionment. 결혼은 언제나, 여전히 현세적 이상성(理想性)에 대한 인간 최극의 꿈입니다. 이 아름다운 꿈이 좀처럼 완전히 실현되지 않아도, 그것은, 인간 행복을 위해 더 크게 노력하도록 언제나 진보하는 인간을 유혹하면서, 빛나는 이상(理想)으로 지속합니다. 그러나 젊은 남녀는 서로 연합하는 가정생활의 힘든 요구에 돌입하기 전에, 그들은 결혼의 현실성을 어느 정도 배워야 합니다. 젊은이 특유의 이상화(理想化)는 어느 정도 혼전(婚前)의 환멸(幻滅)로 완화되어야 합니다.

83:8.7 (930.3) The youthful idealization of marriage should not, however, be discouraged; such dreams are the visualization of the future goal of family life. This attitude is both stimulating and helpful providing it does not produce an insensitivity to the realization of the practical and commonplace requirements of marriage and subsequent family life. 그래도 젊은이 특유의 이상화(理想化)는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꿈들은 가정생활의 미래 목표를 생생하게 마음에 그리는 것입니다. 결혼과 이어지는 가정생활의 실제적이며 일상적인 필요의 실상에 둔감해지지 않는다면, 이런 태도는 격려와 도움이 됩니다.

83:8.8 (930.4) The ideals of marriage have made great progress in recent times; among some peoples woman enjoys practically equal rights with her consort. In concept, at least, the family is becoming a loyal partnership for rearing offspring, accompanied by sexual fidelity. But even this newer version of marriage need not presume to swing so far to the extreme as to confer mutual monopoly of all personality and individuality. Marriage is not just an individualistic ideal; it is the evolving social partnership of a man and a woman, existing and functioning under the current mores, restricted by the taboos, and enforced by the laws and regulations of society. 결혼의 이상(理想)이 최근에 크게 진보했습니다. 일부 민족에서 여성은 실지로 그녀의 배우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립니다. 적어도 개념으로 가정은, 성적(性的) 정절과 함께, 자녀를 양육하는 충실한 동반자 관계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이런 결혼도 모든 고유성과 개인성에 대해 상호 독점권을 부여하도록 극심하기까지 방향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결혼은 개인주의적 이상(理想)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금기로 제한되고, 사회의 법률과 규정으로 시행되며, 현행 관습에 따라 존재하고 작용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진화하는 사회적 동반자 관계입니다.

83:8.9 (930.5) Twentieth-century marriages stand high in comparison with those of past ages, notwithstanding that the home institution is now undergoing a serious testing because of the problems so suddenly thrust upon the social organization by the precipitate augmentation of woman’s liberties, rights so long denied her in the tardy evolution of the mores of past generations. 여성의 자유, 과거 세대의 관습이 마지못해 진화하는 가운데 그토록 오래 여성에게 주지 않았던 권리가 느닷없이 증대하여 사회 조직에 너무 갑자기 밀어닥친 문제들로 인하여, 가정 제도가 지금 만만찮은 시험을 견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결혼은 과거 시대와 비교하여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83:8.10 (930.6) [Presented by the Chief of Seraphim stationed on Urantia.][유란시아에 배치된 수석 세라핌천사가 제시함]

37-6 Celestial Overseers 천상의 시찰(視察)자들

6. Celestial Overseers 천상의 시찰(視察)자들

37:6.1 (412.1) The Nebadon educational system is jointly administered by the Trinity Teacher Sons and the Melchizedek teaching corps, but much of the work designed to effect its maintenance and upbuilding is carried on by the Celestial Overseers. These beings are a recruited corps embracing all types of individuals connected with the scheme of educating and training the ascending mortals. There are upward of three million of them in Nebadon, and they are all volunteers who have qualified by experience to serve as educational advisers to the entire realm. From their headquarters on the Salvington worlds of the Melchizedeks, these overseers range the local universe as inspectors of the Nebadon school technique designed to effect the mind training and the spirit education of the ascending creatures.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과 멜기세덱 교수단(團)이 네바돈 교육 체계를 공동으로 운영하지만, 천상의 시찰(視察)자들이 그것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대부분의 과업을 수행합니다. 이런 존재들은 상승 필사자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기획과 연결된 모든 유형의 개인들을 포함하는 모집단(團)입니다. 네바돈에는 그들이 3백만 이상(以上)이며, 그들은 모두, 전체 영역에 교육 고문들로서 섬기는 체험으로 자격을 갖춘 자원자들입니다. 멜기세덱들에 속한 샐빙톤 세계들에 있는 그들의 본부로부터, 이런 시찰(視察)자들은, 상승 창조물들의 마음 훈련과 영(靈) 교육을 위해 의도된 네바돈 학교 기법의 조사자들로서, 지역 우주를 찾아다닙니다.

37:6.2 (412.2) This training of mind and education of spirit is carried on from the worlds of human origin up through the system mansion worlds and the other spheres of progress associated with Jerusem, on the seventy socializing realms attached to Edentia, and on the four hundred and ninety spheres of spirit progress encircling Salvington. On the universe headquarters itself are numerous Melchizedek schools, the colleges of the Universe Sons, the seraphic universities, and the schools of the Teacher Sons and the Union of Days. Every possible provision is made to qualify the various personalities of the universe for advancing service and improving function. The entire universe is one vast school. 이런 마음 훈련과 영(靈) 교육은 인간이 기원한 세계들부터 체계 저택 세계들과 예루셈과 관련된 다른 진보 구체들까지, 에덴시아에 속한 70 사회화 영역들과 샐빙톤을 에워싸는, 영(靈) 진보에 속한 490 구체들에서, 수행됩니다. 우주 본부 자체에 수많은 멜기세덱 학교, 우주 아들들의 학부, 세라핌천사 대학 및 교사 아들들과 연합으로 늘 계신 이의 학교가 있습니다. 우주의 다양한 고유성이 봉사를 증진하고 기능을 향상하기 위해 자격을 갖추도록 가능한 모든 준비가 마련됩니다. 전체 우주는 하나의 광대한 학교입니다.

37:6.3 (412.3) The methods employed in many of the higher schools are beyond the human concept of the art of teaching truth, but this is the keynote of the whole educational system: character acquired by enlightened experience. The teachers provide the enlightenment; the universe station and the ascender’s status afford the opportunity for experience; the wise utilization of these two augments character. 여러 고등학교에서 사용된 방법들은 진리 교수법에 속한 인간적 개념을 초월하지만, 모든 교육 체계의 기본방침은, 진보한(영적 통찰력) 체험으로 획득된 성품(性品)이라는, 이것입니다. 교사들이 교화(敎化 영적 통찰력)을 줍니다. 우주 기지와 상승자의 자격이 체험의 기회를 공급합니다. 이 두 가지를 슬기롭게 사용하여 성품(性品)이 늘어납니다.

37:6.4 (412.4) Fundamentally, the Nebadon educational system provides for your assignment to a task and then affords you opportunity to receive instruction as to the ideal and divine method of best performing that task. You are given a definite task to perform, and at the same time you are provided with teachers who are qualified to instruct you in the best method of executing your assignment. The divine plan of education provides for the intimate association of work and instruction. We teach you how best to execute the things we command you to do. 기본적으로 네바돈 교육 체계는 과업에 대해 너희 임무를 고려한 후, 너희에게 그 과업을 최선으로 수행할 이상적(理想的)이며 신적인 방법에 관해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합니다. 너희에게 수행할 명확한 과제가 주어지는 동시에, 너희에게 너희 임무를 실행하는 최고의 방법을 너희에게 교육할 자격을 갖춘 교사들이 너희에게 제공됩니다. 교육의 신적 계획은 과업과 교육이 깊이 연결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너희에게 행하도록 명령한 일을 가장 잘 실행하는 방법을 너희에게 가르칩니다.

37:6.5 (412.5) The purpose of all this training and experience is to prepare you for admission to the higher and more spiritual training spheres of the superuniverse. Progress within a given realm is individual, but transition from one phase to another is usually by classes. 이런 모든 훈련과 체험의 목적은 초우주의 더 높고 더 영적인 훈련 구체들에 들어가도록 너희를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주어진 영역 안에서 진보는 개인적이지만,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행(移行 옮김)은 대개 학급별입니다.

37:6.6 (412.6) The progression of eternity does not consist solely in spiritual development. Intellectual acquisition is also a part of universal education. The experience of the mind is broadened equally with the expansion of the spiritual horizon. Mind and spirit are afforded like opportunities for training and advancement. But in all this superb training of mind and spirit you are forever free from the handicaps of mortal flesh. No longer must you constantly referee the conflicting contentions of your divergent spiritual and material natures. At last you are qualified to enjoy the unified urge of a glorified mind long since divested of primitive animalistic trends towards things material. 영원의 진보는 영적 발전만이 아닙니다. 지적 습득도 우주 교육의 일부입니다. 마음의 체험이 영적 시야의 확장과 동시에 확장됩니다. 마음과 영(靈)은 훈련과 증진을 위한 기회처럼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과 영(靈)을 모두 최상으로 훈련할 때, 너희는 언제나 필사 육신의 장애가 없습니다. 너희가 서로 다른 너희의 영적, 물질적 본성이 충돌하는 투쟁을 그 이상 계속 중재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너희는, 물질적인 것들을 향한 원시적 동물 경향을 오래전에 벗어나, 영화롭게 통일된 마음의 충동을 누릴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37:6.7 (413.1) Before leaving the universe of Nebadon, most Urantia mortals will be afforded opportunity to serve for a longer or shorter time as members of the Nebadon corps of Celestial Overseers. 네바돈 우주를 떠나기 전에, 대부분의 유란시아 필사자들은 천상의 시찰(視察)자들로 구성된 네바돈단(團)의 회원으로서, 장·단기간에 섬길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S138 Training the Kingdom’s Messengers 개요 138편 하나님 나라 메신저들의 훈련

S138 Training the Kingdom’s Messengers 개요 138편 하나님 나라 메신저들의 훈련

138:0.1 (1538.1) AFTER preaching the sermon on “The Kingdom,” Jesus called the six apostles together that afternoon and began to disclose his plans for visiting the cities around and about the Sea of Galilee. “나라”에 대해 설교하신 후, 예수님은 그날 오후 6명의 사도들을 불러 모아서 갈릴리 바다 주변과 그 인근에 있는 도시들을 방문하려는 그의 계획을 드러내기 시작하셨습니다.

  1. Final Instructions 최종적 지시들

138:1.1 (1538.3) The next day, Sunday, June 23, A.D. 26, Jesus imparted his final instructions to the six. He sent them forth by twos, James and John going to Kheresa, Andrew and Peter to Capernaum, while Philip and Nathaniel went to Tarichea. 다음 날, 서기 26년 6월 23일 일요일에 예수님은 6명의 사도들에게 최종적으로 지시하셨습니다. 그는 그들을 둘씩 짝을 지어 보냈는데, 야고보와 요한은 게레사로, 안드레와 베드로는 가버나움으로, 빌립과 나다니엘은 타리케아로 갔습니다.

138:1.2 (1538.4) Before they began this first two weeks of service, Jesus announced to them that he desired to ordain twelve apostles to continue the work of the kingdom after his departure and authorized each of them to choose one man from among his early converts for membership in the projected corps of apostles. 그들이 이러한 첫 번째 두 주간의 봉사를 시작하기 전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가 떠난 후, 나라의 일을 계속할 12명의 사도들을 임명하기 원한다고 발표하셨으며, 기획된 사도단(團)의 회원 자격으로 그의 초기 개종자 중 한 사람씩 그들 각자가 선택하도록 권한을 주셨습니다.

  1. Choosing the Six 여섯 명 선택

138:2.1 (1539.4) This first missionary tour of the six was eminently successful. They returned to Jesus more fully realizing that, after all, religion is purely and wholly a matter of personal experience. 이 첫 번째 여섯 명의 선교(宣敎) 여행은 굉장히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종교란 순전히 전적으로 개인적 체험의 문제임을 더욱 충분히 인식하면서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138:2.3 (1539.6) The newly selected apostles were: 새로 뽑힌 사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38:2.4 (1539.7) 1. Matthew Levi, the customs collector of Capernaum was selected by Andrew. 마태 레위는 가버나움의 세관 징수원이며, 안드레가 그를 선택했습니다.

138:2.5 (1539.8) 2. Thomas Didymus, a fisherman of Tarichea was selected by Philip. 도마 디디머스는 타리케아의 어부이며, 빌립이 그를 선택했습니다.

138:2.6 (1539.9) 3. James Alpheus, a fisherman and farmer of Kheresa, was selected by James Zebedee. 야고보 알페오는 게레사의 어부(漁夫)이자 농부이며, 야고보 세베대가 그를 선택했습니다.

138:2.7 (1539.10) 4. Judas Alpheus, the twin brother of James Alpheus, also a fisherman, was selected by John Zebedee. 유다 알페오는 야고보 알페오의 쌍둥이 형제로, 그 역시 어부이며 요한 세베대가 그를 선택했습니다.

138:2.8 (1540.1) 5. Simon Zelotes was a high officer in the patriotic organization of the Zealots was selected by Peter. 시몬 젤로떼는 열심당이라는 애국적 조직에서 높은 장교였고, 베드로가 그를 선택했습니다.

138:2.9 (1540.2) 6. Judas Iscariot was an only son of wealthy Jewish parents living in Jericho. Because of his experience with finances, Nathaniel invited him to join their ranks. 가룟 유다는 여리고에 사는 어느 부유한 유대인 부모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재정에 관한 경력 때문에, 나다니엘이 그를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도록 초청했습니다.

  1. The Call of Matthew and Simon 마태와 시몬을 부르심

138:3.1 (1540.4) The next day Jesus and the six went to call upon Matthew, the customs collector. Matthew was awaiting them, having balanced his books and made ready to turn the affairs of his office over to his brother. As they approached the toll house, Andrew stepped forward with Jesus, who, looking into Matthew’s face, said, “Follow me.” And he arose and went to his house with Jesus and the apostles. 다음 날(AD 26. 7. 9. ) 예수님과 여섯 사도는 세리(세관 징수원) 마태를 방문하러 갔습니다. 마태는 그의 장부를 정리해 놓고, 동생에게 그의 사무실의 관련된 일들을 넘겨줄 준비를 마친 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세금징수소에 접근했을 때, 안드레가 예수님과 함께 앞으로 나갔으며, 예수님은 마태의 얼굴을 바라보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예수님과 사도들을 자기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138:3.3 (1540.6) After a noontide luncheon at Matthew’s house they all went with Peter to call upon Simon the Zealot, whom they found at his old place of business, which was now being conducted by his nephew. When Peter led Jesus up to Simon, the Master greeted the fiery patriot and only said, “Follow me.” 마태의 집에서 점심식사 후에, 그들은 모두 베드로와 함께 열심당원 시몬을 방문하러 가서 그가 이전에 사업을 하던 장소에서 만났는데, 이제는 그의 조카가 그 일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시고 시몬에게 갔을 때, 주(主)님은 그 열성 애국자에게 인사하면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만 하셨습니다.

157-6 The Next Afternoon 다음 날 오후

6. The Next Afternoon 다음 날 오후

211010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길 요10:10b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I have come that they may have life, and have it to the full.

157:6.1 (1748.4) Jesus and the apostles remained another day at the home of Celsus, waiting for messengers to arrive from David Zebedee with funds. Following the collapse of the popularity of Jesus with the masses there occurred a great falling off in revenue. When they reached Caesarea-Philippi, the treasury was empty. Matthew was loath to leave Jesus and his brethren at such a time, and he had no ready funds of his own to hand over to Judas as he had so many times done in the past. However, David Zebedee had foreseen this probable diminution of revenue and had accordingly instructed his messengers that, as they made their way through Judea, Samaria, and Galilee, they should act as collectors of money to be forwarded to the exiled apostles and their Master. And so, by evening of this day, these messengers arrived from Bethsaida bringing funds sufficient to sustain the apostles until their return to embark upon the Decapolis tour. Matthew expected to have money from the sale of his last piece of property in Capernaum by that time, having arranged that these funds should be anonymously turned over to Judas. 예수와 사도들은, 메신저들이 다윗 세베대가 보낸 자금을 갖고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셀수스의 집에 하루 더 머물렀습니다. 예수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기가 무너진 후, 수익이 크게 줄었습니다. 그들이 가이사랴-빌립보에 도착했을 때, 기금이 없었습니다. 마태는 그런 때에 예수와 자기 형제들을 떠나기 싫었으며, 그는 과거에 그렇게 여러 번 했듯이, 자신이 유다에게 넘겨줄 준비된 자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세베대가 이런 수익의 감소를 미리 알아서, 자기 메신저들에게 그들이 유대, 사마리아 및 갈릴리를 지나갈 때, 자신들의 추방된 사도들과 주님에게 보낼 돈을 걷는 수금원처럼 행해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이날 저녁에 이 메신저들이 벳새다로부터 사도들이 데카폴리스 여행을 시작하여 돌아올 때까지, 그들을 지원할 충분한 기금을 가지고 도착했습니다. 마태는 그 무렵 가버나움에 있는 자기의 마지막 구획의 땅을 매각(賣却)하여 돈을 확보할 작정이었고, 이 자금을 유다에게 익명으로 넘겨주기로 했습니다.

157:6.2 (1749.1) Neither Peter nor the other apostles had a very adequate conception of Jesus’ divinity. They little realized that this was the beginning of a new epoch in their Master’s career on earth, the time when the teacher-healer was becoming the newly conceived Messiah — the Son of God. From this time on a new note appeared in the Master’s message. Henceforth his one ideal of living was the revelation of the Father, while his one idea in teaching was to present to his universe the personification of that supreme wisdom which can only be comprehended by living it. He came that we all might have life and have it more abundantly.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도 예수님의 신성(神性)에 대해 그다지 적절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때가 자기들 주님의 지상 생애에서, 교사-치유자가 새롭게 착상(着想)된 메시아-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때, 새로운 획시대적(劃時代的 시대의 구획을 긋는) 시작이었음을 조금도 몰랐습니다. 이때부터 주님의 메시지에 새로운 특색이 나타났습니다. 이후 그가 사는 한 가지 이상(理想)은 아버지를 드러내는 것이었던 동시에, 그가 가르치는 한 가지 관념(觀念)은 그렇게 살아야만 파악될 수 있는, 그런 최극 지혜의 고유성(固有性)화를 자기 우주에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모두 생명을 얻고 그것을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오셨습니다(요10:10b).

157:6.3 (1749.2) Jesus now entered upon the fourth and last stage of his human life in the flesh. The first stage was that of his childhood, the years when he was only dimly conscious of his origin, nature, and destiny as a human being. The second stage was the increasingly self-conscious years of youth and advancing manhood, during which he came more clearly to comprehend his divine nature and human mission. This second stage ended with the experiences and revelations associated with his baptism. The third stage of the Master’s earth experience extended from the baptism through the years of his ministry as teacher and healer and up to this momentous hour of Peter’s confession at Caesarea-Philippi. This third period of his earth life embraced the times when his apostles and his immediate followers knew him as the Son of Man and regarded him as the Messiah. The fourth and last period of his earth career began here at Caesarea-Philippi and extended on to the crucifixion. This stage of his ministry was characterized by his acknowledgment of divinity and embraced the labors of his last year in the flesh. During the fourth period, while the majority of his followers still regarded him as the Messiah, he became known to the apostles as the Son of God. Peter’s confession marked the beginning of the new period of the more complete realization of the truth of his supreme ministry as a bestowal Son on Urantia and for an entire universe, and the recognition of that fact, at least hazily, by his chosen ambassadors. 예수는 이제 육신으로 자기 인간 생활의 넷째,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첫 단계는 그의 유년기(幼年期)로, 그가 인간으로서 자신의 기원, 본성 및 운명을 어렴풋이 의식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둘째 단계는 점점 자신을 의식하던 청년기(靑年期)와 나이 든 성년기(成年期)로, 그는 자신의 신적 본성과 인간적 사명을 더 분명히 파악한 기간이었습니다. 이 둘째 단계는 자신의 세례와 관련된 체험과 계시로 끝났습니다. 주님의 지상 체험 중 셋째 단계는 세례로부터 교사와 치유자로서 돌보던 여러 해를 거쳐 가이사랴-빌립보에서 베드로가 고백하던 이 중요한 시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의 지상 생활 중 이 셋째 시기는 그의 사도들과 직계 추종자들이 그를 사람의 아들(인자人子)로 알고 그를 메시아로 여겼던 시기가 포함되었습니다. 그의 지상 생애 중 넷째, 마지막 시기는 이곳 가이사랴-빌립보에서 시작되어 십자가 처형(處刑)까지 걸쳐 있습니다. 그가 돌보던 이 단계의 특징은 그의 신성(神性)을 승인(承認 마땅하다고 인정)한 것이었고, 육신으로 수고한 그의 마지막 해가 포함되었습니다. 넷째 시기에, 그의 추종자 대부분은 여전히 그를 메시아로 여겼던 반면에, 그는 사도들에게 하느님의 아들로 알려졌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유란시아에서 그리고 전(全) 우주를 위한 증여 아들로서, 그가 최극으로 돌보는 진리가 더 철저히 실현되고, 자신이 선택한 대사들이 적어도 막연(漠然)히 그 사실을 알아본, 새 시기의 시작을 나타냈습니다.

157:6.4 (1749.3) Thus did Jesus exemplify in his life what he taught in his religion: the growth of the spiritual nature by the technique of living progress. He did not place emphasis, as did his later followers, upon the incessant struggle between the soul and the body. He rather taught that the spirit was easy victor over both and effective in the profitable reconciliation of much of this intellectual and instinctual warfare.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의 종교로 자신이 가르친 것, 살아있는 진보의 기법으로 영적 본성이 성장하는 것을, 자신의 생활로 예증(例證 예를 들어 증명)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후대 추종자들이 했듯이, 혼(魂)과 몸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영(靈)이 이 둘을 쉽게 정복하고, 이런 지적이며 본능적인 대부분의 싸움을 유익하게 효과적으로 조화시킨다고 가르쳤습니다.

157:6.5 (1749.4) A new significance attaches to all of Jesus’ teachings from this point on. Before Caesarea-Philippi he presented the gospel of the kingdom as its master teacher. After Caesarea-Philippi he appeared not merely as a teacher but as the divine representative of the eternal Father, who is the center and circumference of this spiritual kingdom, and it was required that he do all this as a human being, the Son of Man. 이때부터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에 새로운 의미가 붙어 있습니다. 가이사랴-빌립보 이전에, 그는 하느님 나라 복음의 수석 교사로서 그것을 제시했습니다. 가이사랴-빌립보 이후에, 그는 교사만이 아니라, 이런 영적 하느님 나라의 중심이자 그 영역이신, 영원 아버지의 신적 대리자로 나타났고, 그는 이 모두를 인간, 사람의 아들(인자人子)로서 행해야 했습니다.

157:6.6 (1749.5) Jesus had sincerely endeavored to lead his followers into the spiritual kingdom as a teacher, then as a teacher-healer, but they would not have it so. He well knew that his earth mission could not possibly fulfill the Messianic expectations of the Jewish people; the olden prophets had portrayed a Messiah which he could never be. He sought to establish the Father’s kingdom as the Son of Man, but his followers would not go forward in the adventure. Jesus, seeing this, then elected to meet his believers part way and in so doing prepared openly to assume the role of the bestowal Son of God. 예수님은 자기 추종자들을 영적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려고, 교사로서, 다음에는 교사-치유자로서 진정으로 애썼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지상 사명으로 유대 민족의 메시아적 기대를 아무리 해도 충족시킬 수 없음을 잘 알았습니다. 옛 선지자들은, 그가 결코 될 수 없는 메시아를 묘사했습니다. 그는 사람의 아들(인자人子)로서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려 했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모험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본 후,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어느 정도 맞추기로 하고, 그렇게 하면서, 하느님의 증여 아들의 임무를 드러내놓고 떠맡기로 준비했습니다.

83-7 The Dissolution of Wedlock 혼인의 해약(解約)

7. The Dissolution of Wedlock 혼인의 해약(解約)

83:7.1 (928.2) In the early evolution of the marital mores, marriage was a loose union which could be terminated at will, and the children always followed the mother; the mother-child bond is instinctive and has functioned regardless of the developmental stage of the mores. 혼인 관습의 초기 진화에서, 결혼은 마음대로 끝낼 수 있는 느슨한 연합이었고, 자녀들은 언제나 어머니를 따라갔습니다. 어머니-자녀 결속은 본능적이며, 관습의 발전 단계와 관계없이 작용했습니다.

83:7.2 (928.3) Among primitive peoples only about one half the marriages proved satisfactory. The most frequent cause for separation was barrenness, which was always blamed on the wife; and childless wives were believed to become snakes in the spirit world. Under the more primitive mores, divorce was had at the option of the man alone, and these standards have persisted to the twentieth century among some peoples. 원시 민족 중 절반 정도만 결혼을 만족스러운 것으로 알았습니다. 가장 빈번한 별거의 원인은 불임(不姙)이었고, 언제나 아내에게 책임을 지게 했습니다. 아이가 없는 아내들은 영(靈) 세계에서 뱀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더 원시적인 관습에 따라, 이혼(離婚)은 남성만의 선택권이었으며, 이런 기준은 어떤 민족 중에서 20세기까지 이어졌습니다.

83:7.3 (928.4) As the mores evolved, certain tribes developed two forms of marriage: the ordinary, which permitted divorce, and the priest marriage, which did not allow for separation. The inauguration of wife purchase and wife dowry, by introducing a property penalty for marriage failure, did much to lessen separation. And, indeed, many modern unions are stabilized by this ancient property factor. 관습이 진화하면서, 어떤 부족들은 2가지 형태의 결혼을 발전시켰습니다. 이혼을 허락하는 일상 결혼과 별거를 허락하지 않는 성직자 결혼이었습니다. 결혼 실패에 대한 재산 위약금을 도입한, 아내구입과 아내 지참금의 시작으로 별거(別居)가 크게 줄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여러 현대적 연합은 이런 고대의 재산 요소로 안정됩니다.

83:7.4 (928.5) The social pressure of community standing and property privileges has always been potent in the maintenance of the marriage taboos and mores. Down through the ages marriage has made steady progress and stands on advanced ground in the modern world, notwithstanding that it is threateningly assailed by widespread dissatisfaction among those peoples where individual choice — a new liberty — figures most largely. While these upheavals of adjustment appear among the more progressive races as a result of suddenly accelerated social evolution, among the less advanced peoples marriage continues to thrive and slowly improve under the guidance of the older mores. 공동체 존속과 재산 특권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결혼 금기와 관습의 유지에 언제나 유력했습니다. 개인적 선택–새로운 해방-이 가장 크게 자리를 차지하는, 그런 민족 중에 만연(漫然)한 불만(不滿)으로 결혼이 위협적으로 습격을 받지만, 대대로 결혼은 한결같이 진보했고, 결혼은 현대 세계에서 진보한 지반에 서 있습니다. 조율 중인 이런 격변이, 갑자기 가속된 사회적 진화의 결과로서, 더 진보한 인종 중에서 나타나지만, 덜 진보한 민족 중에서, 더 오랜 관습의 안내에 따라, 결혼은 계속 번영하고 서서히 향상하고 있습니다.

83:7.5 (928.6) The new and sudden substitution of the more ideal but extremely individualistic love motive in marriage for the older and long-established property motive, has unavoidably caused the marriage institution to become temporarily unstable. Man’s marriage motives have always far transcended actual marriage morals, and in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the Occidental ideal of marriage has suddenly far outrun the self-centered and but partially controlled sex impulses of the races. The presence of large numbers of unmarried persons in any society indicates the temporary breakdown or the transition of the mores. 결혼에서 더 이상적이지만 극도로 개인주의적 사랑 동기가 더 오래된, 옛 재산 동기를 갑자기 새롭게 대체하여, 어쩔 수 없이 결혼제도가 일시적으로 흔들거리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결혼 동기는 현행의 결혼 도덕을 언제나 훨씬 초월했으며, 19세기와 20세기에 서양의 결혼 이상(理想)은, 자기-중심적이지만 부분적으로 통제된 인류의 성(性) 충동을 갑자기 훨씬 앞질렀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도, 많은 미혼(未婚) 사람의 존재는 일시적 붕괴나 관습의 과도기를 나타냅니다.

83:7.6 (928.7) The real test of marriage, all down through the ages, has been that continuous intimacy which is inescapable in all family life. Two pampered and spoiled youths, educated to expect every indulgence and full gratification of vanity and ego, can hardly hope to make a great success of marriage and home building — a lifelong partnership of self-effacement, compromise, devotion, and unselfish dedication to child culture. 대대로 모든 세대에서, 결혼에 대한 진정한 시험은, 모든 가정생활에서 불가피한, 부단한 친밀함이었습니다. 모든 방종(放縱)과 허영과 자만을 완전히 채우도록 교육받은, 제멋대로 버릇없이 행동하는 두 젊은이는 결혼과 가정(家庭) 세우기 – 자기를 삼가고, 양보하며, 헌신하고, 자녀 양육에 이타적으로 헌신하는 평생 배우자 됨에, 크게 성공하기를 도저히 바랄 수 없습니다. 

83:7.7 (929.1) The high degree of imagination and fantastic romance entering into courtship is largely responsible for the increasing divorce tendencies among modern Occidental peoples, all of which is further complicated by woman’s greater personal freedom and increased economic liberty. Easy divorce, when the result of lack of self-control or failure of normal personality adjustment, only leads directly back to those crude societal stages from which man has emerged so recently and as the result of so much personal anguish and racial suffering. 구혼(求婚)에 들어가는 높은 정도의 상상력과 환상적인 낭만이, 현대 서양 민족 중에서 점점 증가하는 이혼 경향에 주로 책임이 있으며, 여성의 개인적 자유가 커지고, 경제적 해방이 증대하여, 이 모두가 더 악화합니다. 자제(自制) 부족이나 정상적인 인격 조율 실패의 결과로, 쉬운 이혼(離婚)은, 사람이 아주 최근에, 그렇게 많은 개인적인 번민과 인종적 고통의 결과로써, 벗어났던, 그런 미숙한 사회적 단계로 바로 되돌아가게 할 뿐입니다.

83:7.8 (929.2) But just so long as society fails to properly educate children and youths, so long as the social order fails to provide adequate premarital training, and so long as unwise and immature youthful idealism is to be the arbiter of the entrance upon marriage, just so long will divorce remain prevalent. And in so far as the social group falls short of providing marriage preparation for youths, to that extent must divorce function as the social safety valve which prevents still worse situations during the ages of the rapid growth of the evolving mores. 그러나 사회가 아이들과 젊은이를 적절히 교육하지 못하고, 사회 계층이 충분히 혼전 훈련을 제공하지 못하며, 분별없이 미숙한 젊은이 특유의 이상주의(理想主義)가 결혼의 중재자가 되는 한, 이혼(離婚)은 바로 그렇게 오래 널리 유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 집단이 젊은이를 위한 결혼 준비의 마련에 미흡한 한, 그 정도까지, 이혼(離婚)은, 진화 관습의 급속한 성장 시대에, 더 악화하는 상황을 예방하는, 사회적 안전밸브로서 작용해야 합니다.

83:7.9 (929.3) The ancients seem to have regarded marriage just about as seriously as some present-day people do. And it does not appear that many of the hasty and unsuccessful marriages of modern times are much of an improvement over the ancient practices of qualifying young men and women for mating. The great inconsistency of modern society is to exalt love and to idealize marriage while disapproving of the fullest examination of both. 고대인(人)들은 바로 오늘날 일부 사람들이 하듯이 결혼을 거의 진지하게 여긴 듯합니다. 그리고 현대의 조급하고, 실패한 여러 결혼은, 젊은 남녀가 짝지을 자격을 준 고대 관행을 넘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의 커다란 모순은, 사랑의 격찬과 결혼의 이상화(理想化), 둘 모두를 완전히 점검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격찬하고 결혼을 이상화(理想化)하는 것입니다.

37-5 High Commissioners 고등 판무관(辦務官)들

5. High Commissioners 고등 판무관(辦務官)들

37:5.1 (410.4) The High Commissioners are Spirit-fused ascendant mortals; they are not Adjuster fused. You quite well understand about the universe-ascension career of a mortal candidate for Adjuster fusion, that being the high destiny in prospect for all Urantia mortals since the bestowal of Christ Michael. But this is not the exclusive destiny of all mortals in the prebestowal ages of worlds like yours, and there is another type of world whose inhabitants are never permanently indwelt by Thought Adjusters. Such mortals are never permanently joined in union with a Mystery Monitor of Paradise bestowal; nevertheless, the Adjusters do transiently indwell them, serving as guides and patterns for the duration of the life in the flesh. During this temporary sojourn they foster the evolution of an immortal soul just as in those beings with whom they hope to fuse, but when the mortal race is run, they take eternal leave of the creatures of temporary association. 고등 판무관(辦務官)들은 영(靈)-융합 상승 필사자들입니다. 그들은 조율자와 융합되지 않습니다. 너희는 조율자와 융합하는 필사 후보자의 우주-상승 생애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미가엘의 증여 이후로 모든 유란시아 필사자에게 계획된 높은 운명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희와 비슷한 세계에 속한 증여 이전 세대에 있는 모든 필사자의 독점적 운명이 아니며, 생각 조율자들이 거주자들에게 결코 영구히 내주하지 않는 또 다른 유형의 세계들이 있습니다. 그런 필사자들은 천국 증여의 신비 감시자와 연합하여 결코 영구히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조율자들은 잠시 그들에게 내주하여 육신으로 사는 동안 안내자와 원본들로서 섬깁니다. 이렇게 잠시 머무는 동안, 그들은, 융합하기를 원하는 그런 존재들과 똑같이, 불멸 혼(魂)의 진화를 촉진하지만, 필사 생애가 지나가면, 그들은 일시적으로 결합했던 창조물들을 영원히 떠납니다.

37:5.2 (410.5) Surviving souls of this order attain immortality by eternal fusion with an individualized fragment of the spirit of the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They are not a numerous group, at least not in Nebadon. On the mansion worlds you will meet and fraternize with these Spirit-fused mortals as they ascend the Paradise path with you as far as Salvington, where they stop. Some of them may subsequently ascend to higher universe levels, but the majority will forever remain in the service of the local universe; as a class they are not destined to attain Paradise. 이런 계열의 생존 혼(魂)들은 지역 우주 어머니 영(靈)의 개인화 영(靈) 분신과 영원히 융합하여 불멸에 이릅니다. 그들은 다수의 집단이 아니며, 적어도 네바돈에서 그렇지 않습니다. 저택 세계에서 너희는 이런 영(靈)-융합 필사자들과 만나서, 그들이 멈추는 샐빙톤까지, 그들은 너희와 천국 경로로 상승하면서, 친하게 사귈 것입니다. 그들의 일부는 계속해서 더 높은 우주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지만, 대다수는 지역 우주를 섬기면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그들 부류는 천국에 도달할 운명이 아닙니다.

37:5.3 (411.1) Not being Adjuster fused, they never become finaliters, but they do eventually become enrolled in the local universe Corps of Perfection. They have in spirit obeyed the Father’s command, “Be you perfect.” 그들은 조율자와 융합되지 않아서 결코 최종자들이 되지 않으나, 그들은 결국 지역 우주에서 완전단(團)에 등록됩니다. 그들은 “너희는 완전하라.”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영(靈)으로 순종했습니다.

37:5.4 (411.2) After attaining the Nebadon Corps of Perfection, Spirit-fused ascenders may accept assignment as Universe Aids, this being one of the avenues of continuing experiential growth which is open to them. Thus do they become candidates for commissions to the high service of interpreting the viewpoints of the evolving creatures of the material worlds to the celestial authorities of the local universe. 네바돈 완전단(團)에 이른 후, 영(靈)-융합 상승자들은 우주 조력자들로서 임무를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은 자신들에게 열린, 계속된 체험 성장의 수단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지역 우주에 속한 천상의 당국자들에게 진화 창조물들의 관점을 해석하여 고등으로 섬기는 판무관(辦務官) 후보자들이 됩니다.

37:5.5 (411.3) The High Commissioners begin their service on the planets as race commissioners. In this capacity they interpret the viewpoints and portray the needs of the various human races. They are supremely devoted to the welfare of the mortal races whose spokesmen they are, ever seeking to obtain for them mercy, justice, and fair treatment in all relationships with other peoples. Race commissioners function in an endless series of planetary crises and serve as the articulate expression of whole groups of struggling mortals. 고등 판무관(辦務官)들은 종족 판무관(辦務官)들로서 행성들에서 근무를 시작합니다. 이런 자격으로 그들은 다양한 인종의 관점을 해석하고 그 필요를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과 모든 관계에서 자신들이 대변하는 필사 인종이 자비, 정의 및 공정한 대우를 받도록 언제나 힘쓰면서, 그들의 복지에 최극으로 헌신합니다. 종족 판무관(辦務官)들은 일련의 끝없는 행성 위기 가운데 활동하며, 분투하는 모든 필사자 집단의 주장을 명확히 표현하여 섬깁니다.

37:5.6 (411.4) After long experience in problem solving on the inhabited worlds, these race commissioners are advanced to the higher levels of function, eventually attaining the status of High Commissioners of and in the local universe. The last registration recorded slightly over one and one-half billion of these High Commissioners in Nebadon. These beings are not finaliters, but they are ascendant beings of long experience and of great service to their native realm. 거주 세계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오랜 체험 후, 이런 종족 판무관(辦務官)들은 더 높은 수준의 활동으로 전진하여 결국 지역 우주에 있는 지역 우주의 고등 판무관(辦務官)들의 자격에 도달합니다. 마지막 기재 사항에는 네바돈에서 이런 고등 판무관(辦務官)들이 15억을 조금 넘는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존재들은 최종자들이 아니지만, 그들은 오랜 체험을 하면서, 자신들의 출생 영역에서 매우 큰 도움이 되는 상승 존재들입니다.

37:5.7 (411.5) We invariably find these commissioners in all the tribunals of justice, from the lowest to the highest. Not that they participate in the proceedings of justice, but they do act as friends of the court, advising the presiding magistrates respecting the antecedents, environment, and inherent nature of those concerned in the adjudication. 우리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모든 사법 재판소에서, 항상 이런 판무관(辦務官)들을 발견합니다. 그들이 사법 절차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들은 판결에 관련된 자들의 신원(身元), 정황 및 원래 본성에 관해, 주재하는 치안 판사에게 조언하면서, 법원의 후원자들로서 활동합니다.

37:5.8 (411.6) High Commissioners are attached to the various messenger hosts of space and always to the ministering spirits of time. They are encountered on the programs of various universe assemblies, and these same mortal-wise commissioners are always attached to the missions of the Sons of God to the worlds of space. 고등 판무관(辦務官)들은 다양한 공간의 메신저 무리와 언제나 시간 안에서 보살피는 영(靈)들에게 언제나 소속됩니다. 그들은 다양한 우주 모임의 일정에서 마주치게 되며, 바로 이 필사자와 같은 판무관(辦務官)들은 언제나 공간의 세계에 대한 하느님 아들들의 사명에 소속됩니다.

37:5.9 (411.7) Whenever fairness and justice require an understanding of how a contemplated policy or procedure would affect the evolutionary races of time, these commissioners are at hand to present their recommendations; they are always present to speak for those who cannot be present to speak for themselves. 공정(公正)과 정의(正義)로 인해, 생각하고 헤아려 본 정책이나 절차가 시간의 진화 종족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이런 판무관(辦務官)들은 언제든지 자신들의 권고를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바로 대변할 수 없는 자들을 위해 항상 대변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37:5.10 (411.8) The Worlds of the Spirit-fused Mortals. The eighth group of seven primary worlds and tributary satellites in the Salvington circuit are the exclusive possession of the Spirit-fused mortals of Nebadon. Ascending Adjuster-fused mortals are not concerned with these worlds except to enjoy many pleasant and profitable sojourns as the invited guests of the Spirit-fused residents. 영(靈)-융합 필사자들의 세계들. 샐빙톤 회로의 일곱 1차 세계들의 8번째 집단과 종속 위성들은 네바돈의 영(靈)-융합 필사자들이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상승하는 조율자-융합 필사자들은, 영(靈)-융합 거주자들의 초대 손님들로서, 아주 즐겁고 유익한 체류를 즐기는 것 외에, 이런 세계들에 관련되지 않습니다.

37:5.11 (411.9) Except for those few who attain Uversa and Paradise, these worlds are the permanent residence of the Spirit-fused survivors. Such designed limitation of mortal ascent reacts to the good of the local universes by insuring the retention of a permanent evolved population whose augmenting experience will continue to enhance the future stabilization and diversification of the local universe administration. These beings may not attain Paradise, but they achieve an experiential wisdom in the mastery of Nebadon problems that utterly surpasses anything attained by the transient ascenders. And these surviving souls continue as unique combinations of the human and the divine, being increasingly able to unite the viewpoints of these two widely separate levels and to present such a dual viewpoint with ever-heightening wisdom. 유버르사와 천국에 이르는 그런 소수(小數)를 제외하고, 이런 세계들은 영(靈)-융합 생존자들의 영구 거주지입니다. 필사자 상승의 그런 의도된 제한은, 영구히 진화된 인구를 확실히 유지하여 지역 우주들의 선(善)에 반응하며, 그들의 증대되는 체험이 지역 우주 경영에 속한 미래 안정화와 다양성을 계속 강화하게 될 것입니다. 이 존재들은 천국에 이르지 못할 수 있지만, 그들은, 일시적 상승자들이 달성하는 어떤 것도 완전히 뛰어넘는 네바돈 문제들을 숙달하면서 체험적 지혜를 얻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존하는 혼(魂)들은, 이렇게 대단히 분리된 두 수준의 관점을 점차 연합하고, 항상-고양하는 지혜로 그런 이중적 관점을 제시하면서,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독특하게 결합하여 지속합니다.

157-5 The New Concept 새로운 개념

  1. The New Concept 새로운 개념

211003 인자(人子)와 신자(神子)의 통합된 본성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Simon Peter answered,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157:5.1 (1748.1) The new and vital feature of Peter’s confession was the clear-cut recognition that Jesus was the Son of God, of his unquestioned divinity. Ever since his baptism and the wedding at Cana these apostles had variously regarded him as the Messiah, but it was not a part of the Jewish concept of the national deliverer that he should be divine. The Jews had not taught that the Messiah would spring from divinity; he was to be the “anointed one,” but hardly had they contemplated him as being “the Son of God.” In the second confession more emphasis was placed upon the combined nature, the supernal fact that he was the Son of Man and the Son of God, and it was upon this great truth of the union of the human nature with the divine nature that Jesus declared he would build the kingdom of heaven. 베드로 고백의 매우 중요한 새로운 특징은, 예수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그의 신성(神性)에 대해,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선명한 인식이었습니다. 그의 세례와 가나의 결혼식 이후 줄곧 이 사도들은 다양하게 그를 메시아로 여겼지만, 그가 신적이어야 함은 유대 국가의 해방자 개념의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신성(神性) 출신이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되어야 했지만, 그들은 그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고백은 그가 인자(人子 인간의 아들)이며 신자(神子 하느님의 아들)라는 숭고한 사실, 통합된 본성에 더 중점을 두었고, 인간적 본성과 신적 본성이 연합한 이 위대한 진리 위에 예수가 하늘나라를 세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157:5.2 (1748.2) Jesus had sought to live his life on earth and complete his bestowal mission as the Son of Man. His followers were disposed to regard him as the expected Messiah. Knowing that he could never fulfill their Messianic expectations, he endeavored to effect such a modification of their concept of the Messiah as would enable him partially to meet their expectations. But he now recognized that such a plan could hardly be carried through successfully. He therefore elected boldly to disclose the third plan — openly to announce his divinity, acknowledge the truthfulness of Peter’s confession, and directly proclaim to the twelve that he was a Son of God. 예수는 지상에서 자기 생애를 살면서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로서 자기 증여 사명을 완수하려 했습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기대하던 메시아로 여기려 했습니다. 자신이 그들의 메시아적 기대를 결코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부분적으로 그들의 기대를 채우면서 그들의 메시아 개념을 그렇게 수정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런 계획이 도저히 훌륭하게 달성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신성(神性)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베드로 고백의 참됨을 인정하며, 12 사도에게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직접 선포하는, 세 번째 계획을 대담하게 드러내기로 정했습니다.

157:5.3 (1748.3) For three years Jesus had been proclaiming that he was the “Son of Man,” while for these same three years the apostles had been increasingly insistent that he was the expected Jewish Messiah. He now disclosed that he was the Son of God, and upon the concept of the combined nature of the Son of Man and the Son of God, he determined to build the kingdom of heaven. He had decided to refrain from further efforts to convince them that he was not the Messiah. He now proposed boldly to reveal to them what he is, and then to ignore their determination to persist in regarding him as the Messiah. 3년간 예수는, 자신이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라고 선포했던 반면에, 바로 이 3년간 사도들은, 그가 기대하던 유대 메시아라고 점차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털어놓았고, 사람의 아들과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통합된 본성의 개념 위에 하늘나라를 세우기로 자신이 결정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그들을 설득하려는 추가 노력을 그만두기로 정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그들에게 뚜렷이 밝힌 후, 자신을 메시아로 여겨 집착하는 그들의 결정을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83-6 True Monogamy — Pair Marriage 진정한 단혼(單婚) – 일부일처(一夫一妻)

6. True Monogamy — Pair Marriage 진정한 단혼(單婚) – 일부일처(一夫一妻)

83:6.1 (927.2) Monogamy is monopoly; it is good for those who attain this desirable state, but it tends to work a biologic hardship on those who are not so fortunate. But quite regardless of the effect on the individual, monogamy is decidedly best for the children. 단혼(單婚)은 독점입니다. 이런 바람직한 상태에 이른 자들에게는 좋지만, 그렇게 운이 좋지 않은 자들에게는 생물학적 곤란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전혀 상관없이, 단혼(單婚)이 자녀들에게는 단연코 가장 좋습니다.

83:6.2 (927.3) The earliest monogamy was due to force of circumstances, poverty. Monogamy is cultural and societal, artificial and unnatural, that is, unnatural to evolutionary man. It was wholly natural to the purer Nodites and Adamites and has been of great cultural value to all advanced races. 가장 초기의 단혼(單婚)은 환경의 힘, 가난 때문이었습니다. 단혼(單婚)은 문화적, 사회적이고, 인위적으로 꾸며낸, 즉, 진화 인간에게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것은 더 순수한 놋-사람들과 아담-사람들에게 완전히 자연스러웠으며, 모든 진보한 인종에게 문화적 가치가 컸습니다.

83:6.3 (927.4) The Chaldean tribes recognized the right of a wife to impose a premarital pledge upon her spouse not to take a second wife or concubine; both the Greeks and the Romans favored monogamous marriage. Ancestor worship has always fostered monogamy, as has the Christian error of regarding marriage as a sacrament. Even the elevation of the standard of living has consistently militated against plural wives. By the time of Michael’s advent on Urantia practically all of the civilized world had attained the level of theoretical monogamy. But this passive monogamy did not mean that mankind had become habituated to the practice of real pair marriage. 갈대아 부족들은, 둘째 아내나 첩을 취하지 않도록 배우자에게, 혼전 서약을 부과하는 아내의 권리를 인정했습니다. 그리스인(人)과 로마인(人) 모두 단혼(單婚) 결혼을 지지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결혼을 성례(聖禮)로 여기는 잘못을 한 것처럼, 조상 숭배는 언제나 단혼(單婚)을 조장했습니다. 생활 수준의 향상까지도 일관되게 복수 아내를 방해했습니다. 유란시아에 미가엘이 출현할 때까지 모든 문명화된 세상은 실지로 이론상 단혼(單婚)의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런 수동적 단혼(單婚)은, 인류가 진정한 일부일처제의 관행에 익숙해졌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83:6.4 (927.5) While pursuing the monogamic goal of the ideal pair marriage, which is, after all, something of a monopolistic sex association, society must not overlook the unenviable situation of those unfortunate men and women who fail to find a place in this new and improved social order, even when having done their best to co-operate with, and enter into, its requirements. Failure to gain mates in the social arena of competition may be due to insurmountable difficulties or multitudinous restrictions which the current mores have imposed. Truly, monogamy is ideal for those who are in, but it must inevitably work great hardship on those who are left out in the cold of solitary existence. 결국 독점적인 성(性) 결합과 같은 이상적인 일부일처제의 단혼(單婚)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사회는, 남녀들이 사회 제도의 요청에 최선으로 협력하고 참여했음에도, 이렇게 새롭게 개선된 사회 제도에서 자리를 찾지 못해, 유감스러운 그런 남녀들이 선망의 대상이 못 되는 상황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경쟁의 사회적 무대에서 배우자를 얻지 못한 것은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나 현행 관습이 부과한 다양한 제약들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진실로 단혼(單婚)은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이상적이지만, 춥게 홀로 살도록 버려진 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커다란 곤경에 처하게 합니다.

83:6.5 (927.6) Always have the unfortunate few had to suffer that the majority might advance under the developing mores of evolving civilization; but always should the favored majority look with kindness and consideration on their less fortunate fellows who must pay the price of failure to attain membership in the ranks of those ideal sex partnerships which afford the satisfaction of all biologic urges under the sanction of the highest mores of advancing social evolution. 언제나 불행한 소수는, 대다수가 진화하는 문명에 속한 발전 도상의 관습 아래에서 진보하는 것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혜택받은 대다수는, 진보하는 사회적 진화 중 최고 관습의 규약 아래에서 모든 생물학적 충동에 만족을 주는, 그런 이상적 성(性) 배우자권 계층의 회원 자격에 이르지 못한 값을 치러야 했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동료를 언제나 친절과 배려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83:6.6 (927.7) Monogamy always has been, now is, and forever will be the idealistic goal of human sex evolution. This ideal of true pair marriage entails self-denial, and therefore does it so often fail just because one or both of the contracting parties are deficient in that acme of all human virtues, rugged self-control. 단혼(單婚)은 언제나 인간의 성(性) 진화의 이상적 목표였고, 지금도 그러며, 영원히 그럴 것입니다. 참된 일부일처제의 이런 이상(理想)에 극기(克己)가 필요하므로, 결혼 당사자 중 하나 혹은 둘 다, 오로지 모든 인간 미덕의 절정, 엄격한 자제(自制)가 모자라서 그토록 자주 실패합니다.

83:6.7 (927.8) Monogamy is the yardstick which measures the advance of social civilization as distinguished from purely biologic evolution. Monogamy is not necessarily biologic or natural, but it is indispensable to the immediate maintenance and further development of social civilization. It contributes to a delicacy of sentiment, a refinement of moral character, and a spiritual growth which are utterly impossible in polygamy. A woman never can become an ideal mother when she is all the while compelled to engage in rivalry for her husband’s affections. 단혼(單婚)은 순전히 생물학적 진화와 구별되는, 사회적 문명의 진보를 측정하는 척도입니다. 단혼(單婚)은 반드시 생물학적 혹은 자연발생적이지 않아도, 사회 문명의 즉각적 정비(整備)와 추가 발전에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것은 감정의 섬세함, 세련된 도덕적 특성 및 복혼(複婚)에서는 완전히 불가능한 영적 성장에 기여(寄與)합니다. 여성은, 자기 남편의 애정을 위해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내내, 결코 이상적인 어머니가 될 수 없습니다.

83:6.8 (928.1) Pair marriage favors and fosters that intimate understanding and effective co-operation which is best for parental happiness, child welfare, and social efficiency. Marriage, which began in crude coercion, is gradually evolving into a magnificent institution of self-culture, self-control, self-expression, and self-perpetuation. 일부일처제는 부모의 행복, 자녀의 복지 및 사회적 증진에 최선(最善)인, 친밀한 이해 및 효과적 협력을 뒷받침하고 촉진합니다. 미숙한 강압으로 시작된 결혼은 자기 수양(修攘), 자제(自制 극기), 자기표현 및 자기 영속(永續)의 훌륭한 제도로 점차 진화하고 있습니다.

37-4 Most High Assistants 지고(至高)보좌관들

4. Most High Assistants 지고(至高)보좌관들

37:4.1 (409.6) The Most High Assistants are a group of volunteering beings, of origin outside the local universe, who are temporarily assigned as central and superuniverse representatives to, or observers of, the local creations. Their number varies constantly but is always far up in the millions. 지고(至高)보좌관들은 지역 우주 밖에서 기원한, 자원(自願)하는 존재 집단이며, 지역 창조계에, 중앙 및 초우주 대표자들로서 혹은 지역 창조계의 관찰자들로서 임시로 배정되었습니다. 그들의 수(數)는 빈번히 변하지만 언제나 수백만에 이릅니다.

37:4.2 (409.7) From time to time we thus benefit from the ministry and assistance of such Paradise-origin beings as Perfectors of Wisdom, Divine Counselors, Universal Censors, Inspired Trinity Spirits, Trinitized Sons, Solitary Messengers, supernaphim, seconaphim, tertiaphim, and other gracious ministers, who sojourn with us for the purpose of helping our native personalities in the effort to bring all Nebadon into fuller harmony with the ideas of Orvonton and the ideals of Paradise. 때때로 우리는 모든 네바돈을 오르본톤의 관념들 및 천국의 이상(理想)들과 최대한 더 조화되도록, 우리의 토착 고유성들을 위해, 우리와 함께 머무는 지혜의 완전자들, 신적 조언자들, 우주 검열자들, 영감받은 삼위일체 영(靈)들, 삼위일체화 아들들, 단독 메신저들, 초천사들, 2품천사들, 3품천사들 및 다른 은혜로운 사역자들과 같은 그런 천국 기원 존재들의 보살핌과 지원으로 이렇게 혜택을 입습니다.

37:4.3 (410.1) Any of these beings may be voluntarily serving in Nebadon and hence be technically outside our jurisdiction, but when functioning by assignment, such personalities of the super- and central universes are not wholly exempt from the regulations of the local universe of their sojourn, though they continue to function as representatives of the higher universes and to work in accordance with the instructions which constitute their mission in our realm. Their general headquarters is situated in the Salvington sector of the Union of Days, and they operate in Nebadon subject to the oversupervision of this ambassador of the Paradise Trinity. When serving in unattached groups, these personalities from the higher realms are usually self-directing, but when serving on request, they often voluntarily place themselves wholly under the jurisdiction of the supervising directors of the realms of assigned function. 이런 존재 중 누구나 네바돈에서 자원하여 섬길 수 있어서, 기술적으로 우리 권한 밖에 있지만, 배정받아 활동할 때, 초우주 및 중앙 우주의 그런 고유성들은, 더 높은 우주의 대표자들로서 활동과 우주 영역에서 그들의 사명을 이루는 지시에 따른 일을 지속해도, 자신들이 머무는 지역 우주의 규정에서 완전히 면제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총본부는 연합으로 늘 계신 이의 샐빙톤 구역에 있으며, 그들은 이 천국 삼위일체의 대사(大使)의 전반적 감독 아래, 네바돈에서 일합니다. 무소속 집단으로 섬기면서, 더 높은 영역 출신의 이런 고유성들은 대개 스스로 결정하지만, 요청을 받아 섬기게 되면, 그들은 흔히 배정된 활동 영역을 감독하는 관리자들의 관할 아래에 전적으로 자신을 배속(配屬)합니다.

37:4.4 (410.2) Most High Assistants serve in local universe and in constellation capacities but are not directly attached to the system or planetary governments. They may, however, function anywhere in the local universe and may be assigned to any phase of Nebadon activity — administrative, executive, educational, and others. 지고(至高)보좌관들은 지역 우주와 성좌에서 자격을 가지고 섬기지만, 체계나 행성 정부에 직접 소속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지역 우주 어디에서도 활동할 수 있으며 네바돈 활동(경영, 실행, 교육 및 다른 분야)의 어떤 단계에도 배정될 수 있습니다.

37:4.5 (410.3) Most of this corps is enlisted in assisting the Nebadon Paradise personalities — the Union of Days, the Creator Son, the Faithfuls of Days, the Magisterial Sons, and the Trinity Teacher Sons. Now and then in the transaction of the affairs of a local creation it becomes wise to withhold certain details, temporarily, from the knowledge of practically all of the native personalities of that local universe. Certain advanced plans and complex rulings are also better grasped and more fully understood by the more mature and farseeing corps of Most High Assistants, and it is in such situations, and many others, that they are so highly serviceable to the universe rulers and administrators. 대부분의 이 집단은 네바돈 천국 고유성들-연합으로 늘 계신 이, 창조자 아들, 충심으로 늘 계신 이, 치안 아들들 및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을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지원합니다. 간혹 지역 창조계의 업무를 처리할 때, 그 지역 우주의 모든 토착 고유성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으로부터 특정 세부 사항을 일시적으로 보류하는 것이 사려(思慮) 있게 됩니다. 더 성숙하여 선견지명이 있는, 지고(至高) 보좌관(補佐官)단(團)이 특정 진보 계획과 복잡한 판결들도 더 잘 파악하고 더 온전히 이해하며, 그런 상황 및 여러 다른 경우에, 그들은 우주 통치자들과 경영자들에게 아주 대단히 유용합니다.

157-4 The Talk About the Kingdom 하느님 나라에 대한 담화(談話)

4. The Talk About the Kingdom 하느님 나라에 대한 담화(談話)

210926 살아있는 성전(聖殿)의 실체 마16:18-20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18 And I tell you that you are Peter, and 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ades will not overcome it. 19 I will give you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whatever you bind on earth will be bound in heaven, and whatever you loose on earth will be loosed in heaven.” 20 Then he warned his disciples not to tell anyone that he was the Christ.

157:4.1 (1746.5) Since the occasions of Jesus’ baptism by John and the turning of the water into wine at Cana, the apostles had, at various times, virtually accepted him as the Messiah. For short periods some of them had truly believed that he was the expected Deliverer. But hardly would such hopes spring up in their hearts than the Master would dash them to pieces by some crushing word or disappointing deed. They had long been in a state of turmoil due to conflict between the concepts of the expected Messiah which they held in their minds and the experience of their extraordinary association with this extraordinary man which they held in their hearts. 예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고, 가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 이후로, 사도들은 여러 차례 그를 사실상 메시아로 받아들였습니다. 짧은 기간에 그들의 일부는 진심으로 그를 기대하는 해방자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심정에 그런 희망들이 솟아나자마자 주님은 결정적인 말이나 기대에 어긋나는 행위로 그것들을 산산이 좌절시키곤 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품은, 기대하는 메시아 개념과 자신들의 심정에 품은, 비범한 이 사람과 자신들과 엄청난 교제의 경험 사이에 있는 갈등 때문에 오랫동안 혼란 상태에 있었습니다.

157:4.2 (1746.6) It was late forenoon on this Wednesday when the apostles assembled in Celsus’ garden for their noontime meal. During most of the night and since they had arisen that morning, Simon Peter and Simon Zelotes had been earnestly laboring with their brethren to bring them all to the point of the wholehearted acceptance of the Master, not merely as the Messiah, but also as the divine Son of the living God. The two Simons were well-nigh agreed in their estimate of Jesus, and they labored diligently to bring their brethren around to the full acceptance of their views. While Andrew continued as the director-general of the apostolic corps, his brother, Simon Peter, was becoming, increasingly and by common consent, the spokesman for the twelve. 이 수요일(AD 29. 8/10) 오전 늦게 사도들이 정오 식사를 하려고 셀수스의 정원에 모였습니다. 밤새도록 그리고 그들이 그날 아침 일어난 이후, 시몬 베드로와 시몬 젤로떼는 형제들 모두가 주님을 전심으로, 메시아뿐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의 신적 아들로, 받아들이도록 열심히 애썼습니다. 두 시몬은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의견이 거의 일치해서, 그들은 자기 형제들도 자신들의 관점을 최대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려고 부지런히 수고했습니다. 안드레가 여전히 사도단(團)의 단장으로 있는 동안, 그의 형제 시몬 베드로가 만장일치로 점차 12 사도의 대변인이 되고 있었습니다.

157:4.3 (1747.1) They were all seated in the garden at just about noon when the Master appeared. They wore expressions of dignified solemnity, and all arose to their feet as he approached them. Jesus relieved the tension by that friendly and fraternal smile which was so characteristic of him when his followers took themselves, or some happening related to themselves, too seriously. With a commanding gesture he indicated that they should be seated. Never again did the twelve greet their Master by arising when he came into their presence. They saw that he did not approve of such an outward show of respect. 그들은 바로 낮 12시 무렵 주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모두 정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위엄 있는 엄숙한 표정을 지었고, 그가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모두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추종자들 스스로 혹은 자신들에게 관련된 어떤 사건을 너무 심각하게 여길 때, 자신의 매우 특징적인, 친절한 형제의 미소로 긴장을 풀었습니다. 그는 위엄 있는 손짓으로 그들에게 앉으라고 했습니다. 열두 사도는 주(主)께서 자기들 앞에 오셨을 때, 다시는 일어나서 주님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가 그런 외적인 존경의 표시를 좋게 여기지 않으셨음을, 알았습니다.

157:4.4 (1747.2) After they had partaken of their meal and were engaged in discussing plans for the forthcoming tour of the Decapolis, Jesus suddenly looked up into their faces and said: “Now that a full day has passed since you assented to Simon Peter’s declaration regarding the identity of the Son of Man, I would ask if you still hold to your decision?” On hearing this, the twelve stood upon their feet, and Simon Peter, stepping a few paces forward toward Jesus, said: “Yes, Master, we do. We believe that you are the Son of the living God.” And Peter sat down with his brethren. 그들이 함께 식사하고 이번 데카폴리스 여행 계획을 의논한 후에, 예수께서 갑자기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의 정체성에 관한 시몬 베드로의 선언에 동의한 후, 꼬박 하루가 지났기에, 너희가 여전히 너희의 결정을 굳게 지키는지 내가 알고자 하노라.” 이 말을 듣고, 12 사도가 일어서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로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말했습니다. “예, 주(主)님!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우리가 믿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형제들과 함께 앉았습니다.

157:4.5 (1747.3) Jesus, still standing, then said to the twelve: “You are my chosen ambassadors, but I know that, in the circumstances, you could not entertain this belief as a result of mere human knowledge. This is a revelation of the spirit of my Father to your inmost souls. And when, therefore, you make this confession by the insight of the spirit of my Father which dwells within you, I am led to declare that upon this foundation will I build the brotherhood of the kingdom of heaven. Upon this rock of spiritual reality will I build the living temple of spiritual fellowship in the eternal realities of my Father’s kingdom. All the forces of evil and the hosts of sin shall not prevail against this human fraternity of the divine spirit. And while my Father’s spirit shall ever be the divine guide and mentor of all who enter the bonds of this spirit fellowship, to you and your successors I now deliver the keys of the outward kingdom — the authority over things temporal — the social and economic features of this association of men and women as fellows of the kingdom.” And again he charged them, for the time being, that they should tell no man that he was the Son of God. 예수님은 여전히 서서 이내 열두 사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선택한 대사들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너희가 단순히 인간 지식의 결과로써 이런 믿음을 품을 수 없음을 내가 아느니라. 이것은 너희 가장 깊은 혼들에 내 아버지의 영(靈)이 계시한 것이니라. 그리고 너희 안에 내주하시는 내 아버지 영(靈)의 통찰로 너희가 이 고백을 했으니, 내가 이 기초(基礎) 위에 하늘나라의 형제 사랑을 세우리라고 내가 선언하게 되느니라. 영적 실체(實體)의 이 반석(磐石) 위에 내가 내 아버지 나라의 영원한 실체 안에서 영적으로 교제하는 살아있는 성전(聖殿)을 세우리라. 모든 악(惡)의 세력과 죄(罪)의 무리가 신적 영(靈)의 이런 인간의 형제 사랑을 거슬러 이기지 못하리라. 그리고 내 아버지의 영(靈)이, 이런 영(靈) 친교의 유대(紐帶 끈과 띠)에 들어가는 모든 자에게, 언제나 신적 안내자와 스승이 되실 것이며, 게다가 나는 이제 너희와 너희 계승자들에게 눈에 보이는 하느님 나라의 열쇠들 – 현세적인 것에 대한 권위 – 하느님 나라의 동료로서 남녀의 이런 단체에 속한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특성을 전달하노라.” 그리고 다시 그는 그들에게 당분간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157:4.6 (1747.4) Jesus was beginning to have faith in the loyalty and integrity of his apostles. The Master conceived that a faith which could stand what his chosen representatives had recently passed through would undoubtedly endure the fiery trials which were just ahead and emerge from the apparent wreckage of all their hopes into the new light of a new dispensation and thereby be able to go forth to enlighten a world sitting in darkness. On this day the Master began to believe in the faith of his apostles, save one. 예수님은 자기 사도들의 충성과 고결(高潔)을 신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선택한 대리자들이 최근에 경험한 것에 맞설 수 있는 신앙이, 틀림없이 눈앞에 닥친 격렬한 시련을 견디고, 그들의 모든 소망의 명백한 파멸에서 새로운 섭리의 새 빛으로 나타나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세계에 영적 통찰력을 주려고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날 주님은 하나만 제외하고 자기 사도들의 신앙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157:4.7 (1747.5) And ever since that day this same Jesus has been building that living temple upon that same eternal foundation of his divine sonship, and those who thereby become self-conscious sons of God are the human stones which constitute this living temple of sonship erecting to the glory and honor of the wisdom and love of the eternal Father of spirits. 그리고 그날 이후로 바로 이 예수님은 자신의 신적 아들 된 바로 그 영원한 기초 위에 살아 있는 성전을 세우고 계시며, 자신을 하느님의 자녀(아들)들로 인식하게 된 자들은, 영(靈)들의 영원한 아버지의 지혜와 사랑에 속한 영광과 영예를 구축하면서, 아들 된 살아있는 이 성전(聖殿)을 이루는 인간 석재(石材 돌)들입니다.

157:4.8 (1747.6) And when Jesus had thus spoken, he directed the twelve to go apart by themselves in the hills to seek wisdom, strength, and spiritual guidance until the time of the evening meal. And they did as the Master admonished them.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열두 사도가 자기들끼리 따로 언덕에 가서, 저녁 식사 시간까지, 지혜, 힘 및 영적 인도를 구하라고 그가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께서 자신들에게 권고하신 대로 행했습니다.

S137 Tarrying Time in Galilee 개요 137편 갈릴리에 머무른 기간

S137 Tarrying Time in Galilee 개요 137편 갈릴리에 머무른 기간

137:0.1 (1524.1) EARLY on Saturday morning, February 23, A.D. 26, Jesus came down from the hills to rejoin John’s company encamped at Pella. 서기 26년(32세-31세 6개월) 2월 23일 토요일 이른 아침, 예수님은 펠라에서 야영을 하고 있던 요한의 무리들과 합류하기 위하여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1. Choosing the First Four Apostles 첫 번째 네 명의 제자를 택함

137:1.1 (1524.2) During this Sabbath two of John’s leading disciples spent much time with Jesus. Of all John’s followers one named Andrew was the most profoundly impressed with Jesus; Andrew said: “I have observed you ever since you came to Capernaum, and I believe you are the new Teacher, and though I do not understand all your teaching, I have fully made up my mind to follow you; I would sit at your feet and learn the whole truth about the new kingdom.” And Jesus, with hearty assurance, welcomed Andrew as the first of his apostles, that group of twelve who were to labor with him in the work of establishing the new kingdom of God in the hearts of men. 이 안식일 동안 요한의 수제자(首弟子) 두 명이 예수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요한의 모든 제자들 중에서 안드레라고 이름하는 사람이 예수님으로부터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안드레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당신이 가버나움에 오신 이래부터 당신을 계속 지켜보았으며, 당신이 바로 그 새로운 선생님이신 것을 믿으며; 당신의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당신을 따르기로 마음을 확실히 정하였습니다. 당신께 복종하면서 새로운 왕국에 대한 모든 진리를 배우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확신으로, 자신과 함께 사람들의 심정에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될 열 두 명의 그룹에서 첫 번째 사도로 그를 환영하셨습니다.

137:1.3 (1524.4) Andrew beckoned to Jesus to draw aside while he announced that his brother desired to join himself to the service of the new kingdom. And in welcoming Simon as his second apostle, Jesus said: “Simon, your enthusiasm is commendable, but it is dangerous to the work of the kingdom. I admonish you to become more thoughtful in your speech. I would change your name to Peter.” 안드레는 예수님을 한쪽 옆으로 불러내어, 자기 동생도 역시 새로운 왕국의 일을 하는데 참여하길 원하고 있다고 그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시몬을 자신의 두 번째 사도로 환영하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너의 정열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것은 왕국의 일에 있어서는 위험하다. 나는 네가 언행에 있어서 좀 더 사려가 깊어지기를 바란다. 나는 네 이름을 베드로로 바꾸고자 하노라.”

137:1.6 (1525.3) Jesus was asleep when they reached his abode, but they awakened him, saying: John then made bold to ask, “But, Master, will James and I be associates with you in the new kingdom, even as Andrew and Simon?” And Jesus, laying a hand on the shoulder of each of them, said: “You have been with me in the kingdom from the beginning. At all times concern yourselves only with doing the will of the Father who is in heaven.” 그들이 예수님의 거처에 도착했을 때에 예수님은 잠들어 있었지만, 그들은 그를 깨워서 말하였습니다. 요한은, “그러면 주(主)여, 야고보와 저도 안드레와 시몬처럼 새로운 왕국에서 당신의 동료가 되는 것입니까?”라고 대담하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 각각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너희는 맨 처음부터 나와 함께 왕국 안에 있었느니라. 모든 때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만 너희 자신을 염려하라.”

137:1.7 (1525.4) From this day on the term apostle was employed to distinguish the chosen family of Jesus’ advisers from the vast multitude of believing disciples who subsequently followed him. 이날부터, 예수님의 선택된 조언자들 일행과, 훗날 그를 따르던 광대한 무리의 믿는 제자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도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습니다.

  1. Choosing Philip and Nathaniel 빌립과 나다니엘을 택함

137:2.4 (1526.4) Peter took Philip to one side and proceeded to explain that they, referring to himself, Andrew, James, and John, had all become associates of Jesus in the new kingdom and strongly urged Philip to volunteer for service. 베드로는 빌립을 한쪽으로 데리고 나가, 자신과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모두 언급하며 예수님의 새로운 왕국의 동료가 되었다고 설명했으며, 빌립에게도 봉사에 자원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였습니다. 137:2.5 (1526.5) It suddenly dawned on Philip that Jesus was a really great man, possibly the Messiah, and he decided to abide by Jesus’ decision in this matter; and he went straight to him, asking, “Teacher, shall I go down to John or shall I join my friends who follow you?” And Jesus answered, “Follow me.” Philip was thrilled with the assurance that he had found the Deliverer. 빌립은 예수께서 실제로 위대한 인물이고 아마도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으며, 이 일에 대해 예수님의 결정을 따르기로 결심하였고, 곧장 예수께로 가서 요청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요한을 보러 길을 내려가야 합니까, 아니면 당신을 따르는 내 친구들과 같이 가야 합니까?” 예수는 “나를 따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빌립은 자기가 해방자를 찾았다는 확신으로 인해 감격스러웠습니다.

137:2.6 (1526.6) Philip now motioned to the group to remain where they were while he hurried back to break the news of his decision to his friend Nathaniel, who still tarried behind under the mulberry tree, turning over in his mind the many things which he had heard concerning John the Baptist, the coming kingdom, and the expected Messiah. Philip broke in upon these meditations, exclaiming, “I have found the Deliverer, him of whom Moses and the prophets wrote and whom John has proclaimed.” Nathaniel, looking up, inquired, “Whence comes this teacher?” And Philip replied, “He is Jesus of Nazareth, the son of Joseph, the carpenter, more recently residing at Capernaum.” And then, somewhat shocked, Nathaniel asked, “Can any such good thing come out of Nazareth?” But Philip, taking him by the arm, said, “Come and see.” 아직도 뽕나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 나다니엘에게 자신이 결정한 소식을 알리려고 급히 그에게로 가면서, 빌립은 일행에게 그 자리에 그냥 남아있어 달라고 손짓으로 표시하였으며, 나다니엘은 세례 요한과 다가오는 왕국 그리고 기대하고 있는 메시아에 대해 자기가 들어왔던 많은 것들을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그의 묵상을 깨뜨리면서, “나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기록하고 요한이 선포하였던 해방자를 발견하였다.”라고 외쳤습니다. 나다니엘이 그를 쳐다보면서, “이 선생님은 어디 출신이신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그는 요셉의 아들인 목수인데, 최근에는 가버나움에 사셨던 나사렛의 예수이시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약간 놀란 나다니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가 있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그의 팔을 끌면서, “가서 만나보자.”라고 말하였습니다.

137:2.7 (1527.1) Philip led Nathaniel to Jesus, who, looking benignly into the face of the sincere doubter, said: “Behold a genuine Israelite, in whom there is no deceit. Follow me.” And Nathaniel, turning to Philip, said: “You are right. He is indeed a master of men. I will also follow, if I am worthy.” And Jesus nodded to Nathaniel, again saying, “Follow me.” 빌립이 나다니엘을 예수께로 데려갔으며, 그는 진지하게 의심하고 있는 얼굴을 인자하게 들여다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이스라엘 사람을 보라, 그의 안에는 아무 거짓이 없도다. 나를 따르라.” 그러자 나다니엘은 빌립을 돌아보며, “네 말이 맞다. 그는 진정 사람들의 주(主)이시다. 나도 자격이 된다면, 따르겠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니엘에게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다시 한 번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The Visit to Capernaum 가버나움 방문

137:3.2 (1527.5) Before leaving Nazareth, the new associates of Jesus told Joseph and other members of Jesus’ family about the wonderful events of the then recent past and gave free expression to their belief that Jesus was the long-expected deliverer. 나사렛을 떠나기 전에, 예수님의 새로운 동료들은 요셉과 예수님의 다른 가족들에게, 지난 얼마 동안에 일어난 놀라운 사건들에 대해 말했고, 예수님은 자신들이 오래 기다려오던 해방자(구원자)라는 믿음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였습니다.

137:3.3 (1527.6) Jude was present at Jesus’ baptism and, with his brother James, had become a firm believer in Jesus’ mission on earth. 유다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의 형 야고보와 함께 있었으며, 예수님의 지상 사명을 굳게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137:3.4 (1527.7) Jesus arrived in Capernaum Monday night, but he did not go to his own home, where lived James and his mother; he went directly to the home of Zebedee. 예수님은 월요일 밤(AD 26, 2월 25일)에 가버나움에 도착하였으나, 야고보와 어머니가 살고 있던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곧장 세베대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137:3.6 (1528.2) On the next day, Tuesday, they all journeyed over to Cana for the wedding of Naomi, which was to take place on the following day. And in spite of Jesus’ repeated warnings that they tell no man about him “until the Father’s hour shall come,” they insisted on quietly spreading the news abroad that they had found the Deliverer. They each confidently expected that Jesus would inaugurate his assumption of Messianic authority at the forthcoming wedding at Cana, and that he would do so with great power and sublime grandeur. They remembered what had been told them about the phenomena attendant upon his baptism, and they believed that his future course on earth would be marked by increasing manifestations of supernatural wonders and miraculous demonstrations. Accordingly, the entire countryside was preparing to gather together at Cana for the wedding feast of Naomi and Johab the son of Nathan. 다음 날 화요일(AD 26, 2월 26일)에, 그들은 모두 그 다음 날로 예정된 나오미의 결혼식(結婚式)에 참석하러 가나를 향하여 여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시간이 올 때까지” 자신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거듭된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이 해방자(구원자)를 발견하였다는 소식을 은밀하게 널리 퍼뜨렸습니다. 그들 각자가, 다가올 가나의 결혼식에서 예수님이 메시아적 권위 수락을 시작하실 것이며 대단한 권능과 숭고한 위엄으로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확신 가운데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세례에서 일어났던 현상에 대해 이미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그의 지상생활에서 다가올 과정에는 초자연적 경이(驚異)들이 더욱 드러날 것과 기적적인 실증들을 남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온 시골 사람들은 나오미와 나단의 아들인 요합의 결혼 잔치를 위해 가나에 함께 모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137:3.7 (1528.3) Mary had not been so joyous in years. She journeyed to Cana in the spirit of the queen mother on the way to witness the coronation of her son. Not since he was thirteen years old had Jesus’ family and friends seen him so carefree and happy, so thoughtful and understanding of the wishes and desires of his associates, so touchingly sympathetic. And so they all whispered among themselves, in small groups, wondering what was going to happen. What would this strange person do next? How would he usher in the glory of the coming kingdom? And they were all thrilled with the thought that they were to be present to see the revelation of the might and power of Israel’s God. 마리아는 몇 년 동안 이렇게 즐거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즉위식을 보려고 행차하는 황태후의 기분으로 가나를 향해 여행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가 열세 살 되던 해 이후로, 그렇게 염려 없이 자유롭고 행복하며, 주변 사람들의 소원과 희망을 그렇게 헤아리고 이해하며, 그렇게 감동적으로 공감하는 그의 모습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무슨 일이 일어날려는 지에 궁금해 하면서 속삭였습니다. 이 이상한 사람이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할 것인가? 그는 다가올 왕국의 영광을 어떻게 열어 보일 것인가? 그들은 모두 이스라엘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드러나는 것을 목격하는 현장에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떨렸습니다.

  1. The Wedding at Cana 가나의 결혼식

137:4.1 (1528.4) It was a Jewish custom to celebrate weddings on Wednesday, and the invitations had been sent abroad for the wedding one month previously. 결혼식은 수요일(AD26. 2. 27)에 축하하는 것이 유대관습이었으며, 초청장은 결혼식 한 달 전에 보내졌습니다. 137:4.7 (1529.4) Before the wedding supper was over, the servants brought the father of the bridegroom the disconcerting news that the wine was running short. The mother of the bridegroom confided to Mary that the supply of wine was exhausted. And Mary confidently said: “Have no worry — I will speak to my son. He will help us.” 결혼 만찬이 끝나기 전에, 하인들은 신랑의 아버지에게 포도주가 떨어져 가고 있다는 당황스러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신랑의 어머니는 마리아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내 아들에게 말하겠습니다. 그가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137:4.8 (1529.5) As Jesus was standing alone in a corner of the garden, his mother approached him, saying, “My son, they have no wine.” And Jesus answered, “My good woman, what have I to do with that?” Said Mary, “But I believe your hour has come; cannot you help us?” Jesus replied: “Again I declare that I have not come to do things in this wise. Why do you trouble me again with these matters?” And then, breaking down in tears, Mary entreated him, “But, my son, I promised them that you would help us; won’t you please do something for me?” And then spoke Jesus: “Woman, what have you to do with making such promises? See that you do it not again. We must in all things wait upon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예수께서 정원 한쪽에 혼자 서 계실 때에, 그의 어머니가 가까이 와서 말하기를, “내 아들아, 그들에게 포도주가 다 떨어졌느니라.” 그리자 예수님은, “선한 여인이시여, 내가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네 시간이 왔다고 믿는다.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없겠느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내가 선언합니다만, 나는 이런 식의 일을 행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왜 이러한 일들로 또 나를 괴롭히십니까?” 그러자 마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애원하기를, “그렇지만 내 아들아, 나는 그들에게 네가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제발 나를 위해 뭔가를 하지 않겠느냐?”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여, 무슨 관계가 있어서 그러한 약속을 하셨습니까? 다시는 그런 약속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섬겨야만 합니다.”

137:4.9 (1530.1) Mary the mother of Jesus was crushed; she was stunned! As she stood there before him motionless, with the tears streaming down her face, the human heart of Jesus was overcome with compassion for the woman who had borne him in the flesh; and bending forward, he laid his hand tenderly upon her head, saying: “Now, now, Mother Mary, grieve not over my apparently hard sayings, for have I not many times told you that I have come only to do the will of my heavenly Father? Most gladly would I do what you ask of me if it were a part of the Father’s will — “ and Jesus stopped short, he hesitated. Mary seemed to sense that something was happening. Leaping up, she threw her arms around Jesus’ neck, kissed him, and rushed off to the servants’ quarters, saying, “Whatever my son says, that do.” But Jesus said nothing. He now realized that he had already said — or rather desirefully thought — too much.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풀이 꺾였으며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녀는 예수님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자, 예수님의 인간적 심정은 자신을 낳은 여인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몸을 앞으로 굽혀 그녀의 머리 위에 부드럽게 손을 얹으며 말하였습니다. “, , 어머니 마리아여, 겉으로 보기에 매정한 나의 말에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나는 단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온 것이라고 내가 여러 번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내게 부탁하시는 일이 아버지 뜻의 일부분이라면 얼마든지 기꺼이 하겠는데” 예수님은 잠시 멈추었고, 망설였습니다. 마리아는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했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일어나 예수님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춘 후, 하인들이 있는 곳으로 서둘러 가면서, “내 아들이 말한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행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이미 너무 많은 말을아니 차라리 바램이 넘치는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37:4.10 (1530.2) Mary was dancing with glee. She did not know how the wine would be produced, but she confidently believed that she had finally persuaded her first-born son to assert his authority, to dare to step forth and claim his position and exhibit his Messianic power. And, because of the presence and association of certain universe powers and personalities, of which all those present were wholly ignorant, she was not to be disappointed. The wine Mary desired and which Jesus, the God-man, humanly and sympathetically wished for, was forthcoming. 마리아는 기뻐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녀는 포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될지는 몰랐지만, 자기가 마침내 자기 맏아들이 그의 권위를 주장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의 지위를 선포하고 메시아의 권능을 드러내도록 설득하였다고 지신 있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특정한 우주의 권능과 고유성들의 현존과 연합 때문에, 그녀는 실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원했고 하나님인간이신 예수께서 인간적인 공감으로 바랐던 포도주가 막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137:4.12 (1530.4) Of all persons present at the marriage feast of Cana, Jesus was the most surprised. In the face of the expressed wish of the Universe Creator Sovereign, there was no escaping the instantaneous appearance of wine. 가나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 가장 놀란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우주적 창조자 주권자가 표현한 소망의 면전에서 포도주가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137:4.13 (1530.5) But this was in no sense a miracle. At Cana on this occasion the agents of the Creator made wine just as they do by the ordinary natural processes except that they did it independently of time and with the intervention of superhuman agencies in the matter of the space assembly of the necessary chemical ingredients. 그러나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에서 이 경우에 창조주 대리자들은, 그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화학적 요소들을 공간에서 조립하는 문제에 있어서 초인간 대리자들이 개입했다는 것 외에는, 평범한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서 포도주를 만들었습니다.

137:4.16 (1531.3) Mary and the disciples of Jesus were greatly rejoiced at the supposed miracle which they thought Jesus had intentionally performed, but Jesus withdrew to a sheltered nook of the garden and engaged in serious thought for a few brief moments. 마리아와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대하던 기적을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행하였다고 생각하고 기쁨을 크게 즐거워했지만, 예수님은 정원의 아늑한 외진 곳으로 물러나 잠시 심각한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137:4.17 (1531.4) Jesus now fully comprehended that he must constantly be on guard lest his indulgence of sympathy and pity become responsible for repeated episodes of this sort. Nevertheless, many similar events occurred before the Son of Man took final leave of his mortal life in the flesh. 예수님은 이제, 공감과 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는 주의해야만 이런 종류의 반복된 일화들에 책임질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사건들이 사람의 아들의 육신의 생명이 마치기 전에 여러 번 발생했습니다.

  1. Back in Capernaum 가버나움으로 돌아옴

137:5.1 (1531.5) Though many of the guests remained for the full week of wedding festivities, Jesus, with his newly chosen disciple-apostles — James, John, Andrew, Peter, Philip, and Nathaniel — departed very early the next morning for Capernaum, going away without taking leave of anyone. 많은 손님들은 결혼 연회가 있는 그 주간 내내 머물러 있었지만, 예수님은 자기가 새로 뽑은 제자-사도들 – 야고보, 요한,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니엘 –을 데리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다음 날 아침(AD 26. 2. 28. ) 일찍 가버나움으로 떠났습니다. 137:5.2 (1531.6) After supper that evening, in this home of Zebedee and Salome, there was held one of the most important conferences of all Jesus’ earthly career. Only the six apostles were present at this meeting. But when Jesus set out to make clear to them who he was and what was to be his mission on earth and how it might possibly end, they were stunned. They could not grasp what he was telling them. 그날 밤 저녁식사 후에, 세베대와 살로메의 집에서, 예수님의 든 지상(地上)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 중 하나가 열렸습니다. 단지 여섯 명의 사도들만이 그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기가 누구이며, 땅에서 그의 사명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 그들에게 명백하게 설명하자, 그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그가 하시는 말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137:5.3 (1532.1) Jesus came clearly to comprehend that he never would be able to make his followers see him in any other light than as the long-expected Messiah. 예수님은 자신의 추종자들이 그렇게 오래 기대한 메시아 이외에 다른 각도에서 자신을 보게 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1. The Events of a Sabbath Day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들

137:6.1 (1532.3) Jesus’ first public appearance following his baptism was in the Capernaum synagogue on Sabbath, March 2, A.D. 26. 예수님의 세례 이후 그의 첫 공적 출현은 AD 26년 3월 2일(토)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있었습니다. 137:6.2 (1532.4) When Jesus stood up, the ruler of the synagogue handed him the Scripture roll, and he read from the Prophet Isaiah. 예수께서 일어서자, 회당장은 그에게 성서 두루마리를 건네주었으며, 그는 선지자 이사야의 글부터 읽었습니다. 137:6.3 (1533.1) When he had finished this reading, Jesus handed the roll back to its keeper. Before sitting down, he simply said: “Be patient and you shall see the glory of God; even so shall it be with all those who tarry with me and thus learn to do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이 낭독을 마치고, 예수께서는 두루마리를 관리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자리에 앉기 전에 그는 단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라, 그러면 너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나와 함께 머물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을 이렇게 배우는 사람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137:6.4 (1533.2) That afternoon Jesus and his apostles, with James and Jude, entered a boat and pulled down the shore a little way, where they anchored while he talked to them about the coming kingdom. And they understood more than they had on Thursday night. 그날(AD 26. 3. 2. 토) 오후에 예수님과 야고보와 유다를 포함한 사도들은 배를 타고 해변을 따라 좀 떨어진 곳으로 나갔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래할 하느님 나라에 대해 말하는 동안, 그들은 그곳에 닻을 내렸습니다. 137:6.5 (1533.3) Jesus said: “Be patient, be gentle. Be ever obedient to the Father’s will. Make yourselves ready for the call of the kingdom. While you will experience great joy in the service of my Father, you should also be prepared for trouble, for I warn you that it will be only through much tribulation that many will enter the kingdom. We go forth to labor for a generation of sign seekers. They will be slow to recognize in the revelation of my Father’s love the credentials of my mission.”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인내하며 관대하라. 항상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라. 하느님 나라의 부르심에 너희 자신을 준비하라. 내 아버지를 섬기면서 너희가 큰 기쁨을 체험하는 반면에 너희는 또한 고난에 대비해야 하리니, 많은 시련을 겪어야만 여러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기 때문이라. 우리는 표적을 찾는 자들에 속한 세대를 향해 수고하러 나아가고 있느니라. 그들은 내 아버지 사랑의 계시 안에 있는 내 사명에 대한 신임장을 더디 알아볼 것이니라.

  1. Four Months of Training 4개월의 훈련

137:7.1 (1533.5) For four long months — March, April, May, and June — this tarrying time continued; Jesus held over one hundred long and earnest, though cheerful and joyous, sessions with these six associates and his own brother James. 4개월─3월, 4월, 5월, 6월─에 걸치는 이 긴 기다림의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섯 명의 동료들과 친동생 야고보에게 100번이 넘는 길고도 진지한, 그러나 유쾌하고 즐거운 강의를 하셨습니다. 137:7.2 (1534.1) Jesus possessed that matchless grace of personality which enabled him so to live among them that they were not dismayed by his divinity. And they were held together by his matchless personality and by the gracious words which he spoke to them evening upon evening. 예수님은 비할 데 없이 은혜로운 그런 고유성을 갖고 계셔서, 자신의 신성(神性)으로 그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그들 중에서 그렇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할 데 없는 예수님의 고유성과, 저녁마다 그가 그들에게 주시는 은혜로운 말씀들로 단합되어 갔습니다.

137:7.13 (1535.5) While Jesus laid emphasis on the proclamation of the “good tidings of the kingdom of heaven.” He unfailingly impressed upon his associates that they must “show forth love, compassion, and sympathy.” He early taught his followers that the kingdom of heaven was a spiritual experience having to do with the enthronement of God in the hearts of men. 예수는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의 선포에 중점을 두셨습니다. 그는 자기 동료들이 “사랑과 연민과 공감을 보여야 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셨습니다. 그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하늘나라는 사람들의 심정으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과 관련된 영적 체험임을 일찍부터 가르치셨습니다. 137:7.14 (1535.6) He did not precipitate confusion by the presentation of truth too far beyond their capacity to comprehend. 그는 그들의 이해 능력을 너무 뛰어넘는 진리의 제시로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1. Sermon on the Kingdom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

137:8.1 (1535.7) On Sabbath, June 22, Jesus occupied the synagogue pulpit for the second time since bringing his apostles to Capernaum. 6월 22일(토) 안식일에, 예수께서 사도들을 가버나움으로 데리고 오신 이래 두 번째 회당 설교를 맡았습니다. 137:8.6 (1536.3) “I have come to proclaim the establishment of the Father’s kingdom. And this kingdom shall include the worshiping souls of Jew and gentile, rich and poor, free and bond, for my Father is no respecter of persons; his love and his mercy are over all. “나는 아버지 나라의 설립을 선포하려고 왔노라. 이 나라는 유대인과 이방인, 부자와 가난한 자, 자유로운 자와 얽매인 자들의 경배하는 혼들을 포함할 것이니, 내 아버지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라; 그의 사랑과 자비는 모두에게 주시느니라.” 137:8.7 (1536.4) “The Father in heaven sends his spirit to indwell the minds of men, and when I shall have finished my work on earth, likewise shall the Spirit of Truth be poured out upon all flesh. My disciples sha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y their moral decisions and by their spirit victories; and when they once enter therein, they shall find joy, righteousness, and eternal life.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사람들의 마음에 거하도록 그의 영(靈)을 보내신다. 내가 지상에서 내 일을 완결할 때, 마찬가지로 진리의 영이 모든 육체 위에 부어질 것이다. 나의 제자들은 그들의 도덕적 결정과 그들의 영 승리들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라. 그들이 일단 거기로 들어가면, 그들은 기쁨과 공의와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137:8.8 (1536.5) “Those who first seek to enter the kingdom, thus beginning to strive for a nobility of character like that of my Father, shall presently possess all else that is needful. But I say to you in all sincerity: Unless you seek entrance into the kingdom with the faith and trusting dependence of a little child, you shall in no wise gain admission. “먼저 그 나라에 들어가려고, 그렇게 내 아버지가 지니신 것과 같은, 성품의 고귀함을 얻으려고 애쓰기 시작하는 자들은, 즉시 필요한 다른 모든 것들을 소유할 것이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모든 성실함으로 이르노니, 어린아이의 신앙과 신뢰하는 믿음(의존)으로 나라 안으로 들어가려하지 않으면, 너희는 도저히 입국이 허가되지 않을 것이라. 137:8.9 (1536.6) “And this kingdom of God is righteousness,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그리고 이 하나님 나라는 성령(聖靈) 안에 있는 공의, 평화, 그리고 기쁨이라. 137:8.10 (1536.7) “When you enter the heavenly kingdom, you will be baptized with the Holy Spirit. “너희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성령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으리라. 137:8.11 (1536.8) “In my Father’s kingdom there shall be only those who seek perfection through service, for I declare that he who would be great in my Father’s kingdom must first become server of all. “내 아버지의 나라에는 섬김으로 완전을 찾는 자들만 있을 것이며, 내가 선언하노니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큰 자가 되려면 먼저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만 하리라.

137:8.13 (1536.10) “The kingdom of heaven is a life of progressive righteousness and increasing joy in the perfecting service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하늘나라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완전히 섬기면서 진보하는 공의와 기쁨이 증가하는 생활이라. 137:8.14 (1537.1) “No matter what price you may pay to enter the kingdom of heaven, you shall receive manyfold more of joy and spiritual progress in this world, and in the age to come eternal life. “너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어떤 값을 치러도, 너희는 이 세상에서 여러 배의 많은 기쁨과 영적 진보를 받을 것이며, 다가오는 시대에 영원한 생명을 받으리라. 137:8.15 (1537.2) “All who enter therein shall find abundant liberty and joyous salvation. “거기에 들어가는 모든 자는 풍부한 해방과 기쁜 구원을 찾을 것이라. 137:8.16 (1537.3) “Those who shall ascend to my Father will certainly attain the right hand of his glory in Paradise. And all who enter the kingdom of heaven shall become the sons of God, and in the age to come so shall they ascend to the Father. And I have not come to call the would-be righteous but sinners and all who hunger and thirst for the righteousness of divine perfection. “내 아버지께 상승할 자들은 반드시 천국에서 그의 영광의 우편에 도달할 것이라. 그리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모든 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자녀들)이 될 것이며, 다가오는 시대에 그들은 그렇게 아버지께로 상승할 것이라. 그리고 나는, 의롭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자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과 신적 완전의 공의에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모든 자를 부르러 온 것이다. 137:8.17 (1537.4) “Now have I come proclaiming faith, the gift of God, as the price of entrance into the kingdom of heaven. If you would but believe that my Father loves you with an infinite love, then you are in the kingdom of God.” “나는 이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값으로, 하나님의 선물, 신앙을 선포하러 왔노라. 너희는 내 아버지께서 무한한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너희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것이라.”

157-3 Peter’s Confession 베드로의 고백

  1. Peter’s Confession 베드로의 고백

210919 해방자,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마16:13-17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3 When Jesus came to the region of Caesarea Philippi, he asked his disciples, “Who do people say the Son of Man is?” 14 They replied, “Some say John the Baptist; others say Elijah; and still others, Jeremiah or one of the prophets.” 15 “But what about you?” he asked. “Who do you say I am?” 16 Simon Peter answered,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17 Jesus replied, “Blessed are you, Simon son of Jonah, for this was not revealed to you by man, but by my Father in heaven.

157:3.1 (1745.2) Early Tuesday morning Jesus and the twelve apostles left Magadan Park for Caesarea-Philippi, the capital of the Tetrarch Philip’s domain. Caesarea-Philippi was situated in a region of wondrous beauty. It nestled in a charming valley between scenic hills where the Jordan poured forth from an underground cave. The heights of Mount Hermon were in full view to the north, while from the hills just to the south a magnificent view was had of the upper Jordan and the Sea of Galilee. 화요일(8/9) 아침 일찍 예수님과 12 사도는 마가단 공원을 떠나 분봉(分封)왕 빌립 영토의 수도, 가이사랴-빌립보로 향했습니다. 가이사랴-빌립보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지역에 있었습니다. 그곳은 요단강에 지하 동굴에서 쇄도하는 경치 좋은 언덕 사이의 매력적인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헤르몬 산의 정상이 북쪽으로 완전히 보였고, 한편 언덕에서 바로 남쪽으로 요단강 상류와 갈릴리 바다의 멋진 경관이 보였습니다.

157:3.2 (1745.3) Jesus had gone to Mount Hermon in his early experience with the affairs of the kingdom, and now that he was entering upon the final epoch of his work, he desired to return to this mount of trial and triumph, where he hoped the apostles might gain a new vision of their responsibilities and acquire new strength for the trying times just ahead. As they journeyed along the way, about the time of passing south of the Waters of Merom, the apostles fell to talking among themselves about their recent experiences in Phoenicia and elsewhere and to recounting how their message had been received, and how the different peoples regarded their Master.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 업무에 대한 초기 체험으로 헤르몬산에 갔었고, 이제 그는 자기 업무의 획기적 막바지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시련과 승리의 이 산에 돌아가려고 했고, 거기서 사도들이 자신들의 책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얻고 눈앞의 곤경을 위해 새 힘을 얻게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들이 여행 과정에 메롬 물가 남쪽을 지나칠 무렵에 사도들은 페니키아와 다른 곳에서 자신들의 최근 경험에 대해 자기들끼리 말하고, 자신들의 메시지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다른 민족들이 자신들의 주(主)님을 어떻게 존경하는지 자세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157:3.3 (1745.4) As they paused for lunch, Jesus suddenly confronted the twelve with the first question he had ever addressed to them concerning himself. He asked this surprising question, “Who do men say that I am?” 그들이 점심을 먹으려고 잠시 멈췄을 때, 예수께서 갑자기, 자신에 관해 지금까지 12 사도에게 하지 않았던 첫 질문으로 그들을 마주 대하셨습니다. 그는 이 놀라운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57:3.4 (1746.1) Jesus had spent long months in training these apostles as to the nature and character of the kingdom of heaven, and he well knew the time had come when he must begin to teach them more about his own nature and his personal relationship to the kingdom. And now, as they were seated under the mulberry trees, the Master made ready to hold one of the most momentous sessions of his long association with the chosen apostles.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본성과 특성에 관해 이 사도들을 훈련하며 수개월이나 보내서, 그는 그가 자신의 본성과 하느님 나라에 대한 자신의 고유 관계에 대해 더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뽕나무 밑에 앉았을 때, 주님은 자신이 선택한 사도들과 오랜 교제 중 가장 중요한 회의 중 하나를 하려고 준비했습니다.

157:3.5 (1746.2) More than half the apostles participated in answering Jesus’ question. They told him that he was regarded as a prophet or as an extraordinary man by all who knew him; that even his enemies greatly feared him, accounting for his powers by the indictment that he was in league with the prince of devils. They told him that some in Judea and Samaria who had not met him personally believed he was John the Baptist risen from the dead. Peter explained that he had been, at sundry times and by various persons, compared with Moses, Elijah, Isaiah, and Jeremiah. When Jesus had listened to this report, he drew himself upon his feet, and looking down upon the twelve sitting about him in a semicircle, with startling emphasis he pointed to them with a sweeping gesture of his hand and asked, “But who say you that I am?” There was a moment of tense silence. The twelve never took their eyes off the Master, and then Simon Peter, springing to his feet, exclaimed: “You are the Deliverer, the Son of the living God.” And the eleven sitting apostles arose to their feet with one accord, thereby indicating that Peter had spoken for all of them. 사도 중 절반 이상이 예수의 질문에 답하며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아는 모든 이가 그를 선지자나 비범한 사람으로 여기며, 그의 적들조차, 그가 악령들의 왕과 결탁했다는 기소로 그의 권능을 설명하면서, 그를 매우 두려워한다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직접 그를 만나지 못한 유대와 사마리아의 몇 사람은 그가 죽은 자 중에서 살아난 세례 요한으로 믿는다고 그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러 차례, 다양한 사람들이 그를 모세, 엘리야, 이사야 및 예레미아와 비교했다고 베드로가 설명했습니다(마16:13-14). 예수께서 이런 보고를 들은 후, 그가 똑바로 서서, 반원으로 자기 주위에 앉은 12 사도를 내려 보면서, 그가 곡선을 그리는 손짓으로 그들을 가리켜, 놀라울 정도로 강조하면서 “하지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했습니다. 긴장된 침묵의 순간이 흘렀습니다. 12 사도는 주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으며, 그때 시몬 베드로가 벌떡 일어나, “당신은 해방자,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입니다(마16:15-16).”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앉아 있는 11 사도들이, 베드로가 자기 모두를 위해서 말했다는 표시로써, 함께 일어났습니다.

157:3.6 (1746.3) When Jesus had beckoned them again to be seated, and while still standing before them, he said: “This has been revealed to you by my Father. The hour has come when you should know the truth about me. But for the time being I charge you that you tell this to no man. Let us go hence.” 예수께서 손짓으로 그들에게 다시 앉으라고 하셨고, 여전히 그들 앞에 서서, 그가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가 이것을 너희에게 계시하셨느니라(마16:17). 너희가 나에 대한 진상을 알아야 할 때가 왔느니라. 그러나 당분간 너희는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마16:20). 이제 가자.”

157:3.7 (1746.4) And so they resumed their journey to Caesarea-Philippi, arriving late that evening and stopping at the home of Celsus, who was expecting them. The apostles slept little that night; they seemed to sense that a great event in their lives and in the work of the kingdom had transpired. 그래서 그렇게 그들은 가이사랴-빌립보로 다시 여행하여, 그날 저녁 늦게 도착하여 그들을 기다리던 셀수스의 집에서 여장(旅裝 여행할 때의 차림)을 풀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날 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애와 하느님 나라 과업에서 커다란 사건이 일어났음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83-5 Plural Marriages 복혼(複婚)

  1. Plural Marriages 복혼(複婚)

83:5.1 (925.6) In the early history of marriage the unmarried women belonged to the men of the tribe. Later on, a woman had only one husband at a time. This practice of one-man-at-a-time was the first step away from the promiscuity of the herd. While a woman was allowed but one man, her husband could sever such temporary relationships at will. But these loosely regulated associations were the first step toward living pairwise in distinction to living herdwise. In this stage of marriage development children usually belonged to the mother. 초기 결혼 역사에서 미혼 여성들은 부족의 남성들에게 속했습니다. 나중에 한 여성은 한 번에 한 남편만 있었습니다. 한 번에 한 남성이라는 이런 관례는 무리의 집단적 난혼(亂婚)을 떠나는 첫 단계였습니다. 한 여성에게는 한 남성뿐이었지만, 그녀의 남편은 그런 일시적 관계를 마음대로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헐겁게 규정하는 이런 관계는 무리로 사는 것과 구별되어 짝으로 살아가기 위한 첫 단계였습니다. 결혼 발전의 이 단계에서 아이들은 대개 어머니에게 속했습니다.

83:5.2 (925.7) The next step in mating evolution was the group marriage. This communal phase of marriage had to intervene in the unfolding of family life because the marriage mores were not yet strong enough to make pair associations permanent. The brother and sister marriages belonged to this group; five brothers of one family would marry five sisters of another. All over the world the looser forms of communal marriage gradually evolved into various types of group marriage. And these group associations were largely regulated by the totem mores. Family life slowly and surely developed because sex and marriage regulation favored the survival of the tribe itself by insuring the survival of larger numbers of children. 짝짓기 진화의 다음 단계는 집단 결혼이었습니다. 결혼의 이런 공동 단계가 가족생활의 전개에 개입된 것은, 결혼 관습이 쌍의 결합을 영속하게 할 정도로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매 결혼이 이런 집단에 속했습니다. 한 가정의 다섯 형제가 다른 가정의 다섯 자매와 결혼하곤 했습니다. 전 세계에 더 헐거운 형태의 공동 결혼이 점차 다양한 유형의 집단 결혼으로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집단 결합은 대개 토템(가족·종족의 상징으로 숭배하는 자연물·동물) 관습으로 규정되었습니다. 가족생활은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발전했는데, 성(性)과 결혼 규정으로, 더 많은 수의 자녀들이 살아남도록 지켜져서, 부족 자체의 생존이 유리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83:5.3 (926.1) Group marriages gradually gave way before the emerging practices of polygamy — polygyny and polyandry — among the more advanced tribes. But polyandry was never general, being usually limited to queens and rich women; furthermore, it was customarily a family affair, one wife for several brothers. Caste and economic restrictions sometimes made it necessary for several men to content themselves with one wife. Even then, the woman would marry only one, the others being loosely tolerated as “uncles” of the joint progeny. 더 진보한 부족 중에서, 복혼(複婚)-일부다처(一夫多妻)와 일처다부(一妻多夫)-관행이 출현하기 전에, 집단 결혼은 점차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일처다부는, 보통 여왕들과 부유한 여성들에게 한정되어서,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관례상 여러 형제가 한 아내와 사는 집안일이었습니다. 카스트(특권계급)와 경제적 제한으로 때때로 여러 남성이 한 아내로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설령 그래도, 여성은 단 하나와 결혼하고, 나머지는 공동 자녀의 “삼촌들”로서 어렴풋이 묵인되었습니다.

83:5.4 (926.2) The Jewish custom requiring that a man consort with his deceased brother’s widow for the purpose of “raising up seed for his brother,” was the custom of more than half the ancient world. This was a relic of the time when marriage was a family affair rather than an individual association. 남성이 “자기 형제에게 씨가 있게(창38:8)” 하려고 죽은 형제의 과부와 사귀도록 요구한 유대인 관습은 고대 세계 절반 이상의 관습이었습니다. 이것은, 결혼이 개인 결합이기보다 집안일이었던, 시대의 잔재였습니다.

83:5.5 (926.3) The institution of polygyny recognized, at various times, four sorts of wives: 일부다처(一夫多妻) 제도는 여러 차례에 네 종류의 아내를 인정했습니다.

83:5.6 (926.4) 1. The ceremonial or legal wives. 정식 법적 아내들.

83:5.7 (926.5) 2. Wives of affection and permission. 애정으로 허락된 아내들.

83:5.8 (926.6) 3. Concubines, contractual wives. 첩, 계약 아내들.

83:5.9 (926.7) 4. Slave wives. 노예 아내들.

83:5.10 (926.8) True polygyny, where all the wives are of equal status and all the children equal, has been very rare. Usually, even with plural marriages, the home was dominated by the head wife, the status companion. She alone had the ritual wedding ceremony, and only the children of such a purchased or dowered spouse could inherit unless by special arrangement with the status wife. 모든 아내가 동등한 자격으로, 모든 자녀가 동등한, 진정한 일부다처(一夫多妻)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대개, 복혼(複婚)이라도, 반려자 자격이 있는 수석 아내가 가정을 좌우했습니다. 그녀만 제의(祭儀)적 결혼식을 했고, 자격이 있는 아내의 특별한 합의가 없는 한, 그렇게 구매하고 지참금을 낸 배우자의 자녀들만 상속(相續)할 수 있었습니다.

83:5.11 (926.9) The status wife was not necessarily the love wife; in early times she usually was not. The love wife, or sweetheart, did not appear until the races were considerably advanced, more particularly after the blending of the evolutionary tribes with the Nodites and Adamites. 자격이 있는 아내가 반드시 사랑하는 아내는 아니었습니다. 옛날에 그녀는 대개 그렇지 않았습니다. 진화 부족들이 놋-사람들 및 아담-사람들과 혼합된 이후 특히 더, 종족들이 상당히 진보했을 때까지, 사랑하는 아내, 즉 연인은 등장(登場)하지 않았습니다.

83:5.12 (926.10) The taboo wife — one wife of legal status — created the concubine mores. Under these mores a man might have only one wife, but he could maintain sex relations with any number of concubines. Concubinage was the steppingstone to monogamy, the first move away from frank polygyny. The concubines of the Jews, Romans, and Chinese were very frequently the handmaidens of the wife. Later on, as among the Jews, the legal wife was looked upon as the mother of all children born to the husband. 금기 아내–법적 자격이 있는 한 아내-가 첩 관습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관습에 따라 남성은 한 명의 아내만 있었지만, 그는 첩들이 몇이라도 성(性)관계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축첩(蓄妾)이 일부일처(一夫一妻)제의 발판, 명백한 일부다처(一夫多妻)에서 멀어지는 첫 조처였습니다. 유대인, 로마인과 중국인의 첩들은 아주 빈번히 아내의 하녀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유대인 사이에서 그렇듯이, 법적 아내를 남편에게 태어난 모든 자녀의 어머니로 여겼습니다.

83:5.13 (926.11) The olden taboos on sex relations with a pregnant or nursing wife tended greatly to foster polygyny. Primitive women aged very early because of frequent childbearing coupled with hard work. (Such overburdened wives only managed to exist by virtue of the fact that they were put in isolation one week out of each month when they were not heavy with child.) Such a wife often grew tired of bearing children and would request her husband to take a second and younger wife, one able to help with both childbearing and the domestic work. The new wives were therefore usually hailed with delight by the older spouses; there existed nothing on the order of sex jealousy. 임신하거나 수유(授乳) 중인 아내와 성(性)관계에 대한 오래된 금기가 일부다처(一夫多妻)를 조장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원시 여성들은 잦은 해산과 힘든 노동이 결부되어 아주 일찍 늙었습니다. (그렇게 과로한 아내들은 자녀를 임신하지 않았을 때, 매달 일주일씩 그들이 격리되었다는 사실 덕분에 겨우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는 자녀를 낳느라 자주 지쳐서, 해산하고 가사(家事)를 도울 수 있는, 두 번째로 더 젊은 아내를 얻으라고 남편에게 요청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이 든 배우자들은 대개 새 아내들을 기쁘게 환호하며 맞이했습니다. 거기에는 성적 시샘의 종류가 전혀 없었습니다.

83:5.14 (926.12) The number of wives was only limited by the ability of the man to provide for them. Wealthy and able men wanted large numbers of children, and since the infant mortality was very high, it required an assembly of wives to recruit a large family. Many of these plural wives were mere laborers, slave wives. 아내의 수(數)는 그들을 부양할 남성의 능력으로만 제한되었습니다. 부유하고 능력 있는 남성들은 많은 수(數)의 자녀를 원했고, 유아 사망률이 아주 높아서, 대가족을 만들려면 아내들을 모아야 했습니다. 이런 복수(複數) 아내들의 여럿은 단순히 노동하는 노예 아내들이었습니다.

83:5.15 (927.1) Human customs evolve, but very slowly. The purpose of a harem was to build up a strong and numerous body of blood kin for the support of the throne. A certain chief was once convinced that he should not have a harem, that he should be contented with one wife; so he promptly dismissed his harem. The dissatisfied wives went to their homes, and their offended relatives swept down on the chief in wrath and did away with him then and there. 인간의 관습은 진화하지만 아주 느립니다. 후궁의 목적은 왕권을 유지하려고 강한 여러 혈연관계 집단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족장은 한때 자신이 후궁을 가지지 말고, 한 아내로 만족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자기 후궁을 해산시켰습니다. 불만스러운 아내들은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고, 기분이 상한 그들의 친척들이 격노하여 족장을 급습했고 즉시 그를 죽였습니다.

37-3 The Archangels 천사장들

  1. The Archangels 천사장들

37:3.1 (408.4) Archangels are the offspring of the Creator Son and the Universe Mother Spirit. They are the highest type of high spirit being produced in large numbers in a local universe, and at the time of the last registry there were almost eight hundred thousand in Nebadon. 천사장들은 창조주 아들과 우주 어머니 영(靈)의 자손입니다. 그들은 지역 우주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최고 유형의 높은 영(靈)이며, 최종 등록 당시에, 네바돈에 거의 80만이 있었습니다.

37:3.2 (408.5) Archangels are one of the few groups of local universe personalities who are not normally under the jurisdiction of Gabriel. They are not in any manner concerned with the routine administration of the universe, being dedicated to the work of creature survival and to the furtherance of the ascending career of the mortals of time and space. While not ordinarily subject to the direction of the Bright and Morning Star, the archangels do sometimes function by his authority. They also collaborate with others of the Universe Aids, such as the Evening Stars, as is illustrated by certain transactions depicted in the narrative of life transplantation on your world. 천사장들은 보통 가브리엘의 관할권에 없는 지역 우주 고유성들 중 소수 집단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창조물 생존의 과업과 시공간 필사자들이 속한 상승 생애의 촉진에 전념하면서, 어떤 면에서도 우주의 일상 경영과 관련되지 않습니다. 천사장들은 보통 광명한 새벽별의 지시를 받지 않지만, 그들은 때로 그의 권한으로 활동합니다. 그들도, 너희 세계의 생명 이식(移植) 이야기에서 서술된 처리로 설명되어 있듯이, 저녁별들과 같은 다른 우주 조력자들에게 협력합니다.

37:3.3 (408.6) The archangel corps of Nebadon is directed by the first-born of this order, and in more recent times a divisional headquarters of the archangels has been maintained on Urantia. It is this unusual fact that soon arrests the attention of extra-Nebadon student visitors. Among their early observations of intrauniverse transactions is the discovery that many ascendant activities of the Brilliant Evening Stars are directed from the capital of a local system, Satania. On further examination they discover that certain archangel activities are directed from a small and apparently insignificant inhabited world called Urantia. And then ensues the revelation of Michael’s bestowal on Urantia and their immediately quickened interest in you and your lowly sphere. 이 계열의 첫 태생이 네바돈의 천사장단(團)을 관리하며, 최근에 천사장의 분과 본부가 유란시아에 유지되었습니다. 이런 유별난 사실이 곧 네바돈 밖의 학생 방문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내부우주의 처리에 대한 그들의 초기 관찰을 보면, 찬란한 저녁별들의 여러 상승 활동이 지역 체계 사타니아의 수도에서 관리되어 있음이 발견됩니다. 추가(追加)조사로 그들은, 어떤 천사장 활동이 유란시아라는 작고, 언뜻 보기에 하찮은 거주 세계에서 관리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런 다음, 유란시아에서 미가엘의 증여 계시와 너희와 너희의 초라한 구체에 대한 그들의 즉각적인 빠른 관심이 잇달아 일어납니다.

37:3.4 (409.1) Do you grasp the significance of the fact that your lowly and confused planet has become a divisional headquarters for the universe administration and direction of certain archangel activities having to do with the Paradise ascension scheme? This undoubtedly presages the future concentration of other ascendant activities on the bestowal world of Michael and lends a tremendous and solemn import to the Master’s personal promise, “I will come again.” 너희는, 너희의 초라하고 혼란스러워하는 행성이 우주 경영과 천국 상승 기획에 관련된 어떤 천사장 활동의 관리를 위한 분과 본부가 되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파악합니까? 이것은 확실히, 미가엘의 증여 세계에서 다른 상승 활동에 속한 미래 집결의 전조(前兆)가 되며, “내가 다시 오리라.”는 주(主)님의 직접적 약속에 굉장히 엄연한 중요성을 제공합니다.

37:3.5 (409.2) In general, the archangels are assigned to the service and ministry of the Avonal order of sonship, but not until they have passed through extensive preliminary training in all phases of the work of the various ministering spirits. A corps of one hundred accompanies every Paradise bestowal Son to an inhabited world, being temporarily assigned to him for the duration of such a bestowal. If the Magisterial Son should become temporary ruler of the planet, these archangels would act as the directing heads of all celestial life on that sphere. 대개 천사장들은, 아들된 아보날 계열의 섬김과 돌봄에 배치되지만, 그들이 다양하게 보살피는 영(靈)들의 모든 과업 단계에서 다방면의 예비 훈련을 통과할 때까지 배정받지 못합니다. 모든 천국 증여 아들의 그런 증여 기간에 그에게 임시로 배정된 100명의 단(團)이 거주 세계로 함께 갑니다. 치안(治安) 아들이 행성의 임시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면, 이런 천사장들은 그 구체에 있는 모든 천상 생명을 관리하는 수석들로서 행동할 것입니다.

37:3.6 (409.3) Two senior archangels are always assigned as the personal aids of a Paradise Avonal on all planetary missions, whether involving judicial actions, magisterial missions, or bestowal incarnations. When this Paradise Son has finished the judgment of a realm and the dead are called to record (the so-called resurrection), it is literally true that the seraphic guardians of the slumbering personalities respond to “the voice of the archangel.” The roll call of a dispensation termination is promulgated by an attendant archangel. This is the archangel of the resurrection, sometimes referred to as the “archangel of Michael.” 천사장들 선임 2명이, 사법 활동, 치안 사명 혹은 증여 성육신을 포함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모든 행성 임무에서 천국 아보날의 개인적 조력자들로 언제나 배정됩니다. 이런 천국 아들이 그 영역의 판결을 마치고 죽은 자들이 등록(소위 부활)하도록 부름을 받을 때, 잠을 자는 고유성들의 세라핌천사 보관자들이 “천사장의 음성(살전4:16)”에 응답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사실입니다. 수행 천사장이 섭리시대 종결의 호출을 공포(公布)합니다. 이분이 때로 “미가엘의 천사장”으로 불리는 부활의 천사장입니다.

37:3.7 (409.4) The Worlds of the Archangels. The seventh group of the encircling Salvington worlds, with their associated satellites, is assigned to the archangels. Sphere number one and all of its six tributary satellites are occupied by the personality record keepers. This enormous corps of recorders busy themselves with keeping straight the record of each mortal of time from the moment of birth up through the universe career until such an individual either leaves Salvington for the superuniverse regime or is “blotted out of recorded existence” by the mandate of the Ancients of Days. 천사장들의 세계들. 샐빙톤 세계들을 둘러싸는 일곱째 집단은, 관련된 그들의 위성들과 함께, 천사장들에게 배정됩니다. 구체 1번과 그 종속된 여섯 위성들 모두 고유성 기록 관리자들이 차지합니다. 이렇게 막대한 기록단(團)은, 탄생 순간에서 온 우주 생애를 거쳐 그런 개인이 초우주 체제를 향해 샐빙톤을 떠나든지 아니면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명령으로 “기록된 존재가 지워질” 때까지, 각 필사자의 시간 기록을 착실히 하느라 분주합니다.

37:3.8 (409.5) It is on these worlds that personality records and identification sureties are classified, filed, and preserved during that time which intervenes between mortal death and the hour of repersonalization, the resurrection from death. 이런 세계들에서, 필사자 죽음과 재(再)고유성화, 죽음에서 부활하는 시간 사이에 일어나는 그런 시간 동안, 고유성 기록들과 신분 증명 보증이 분류되고, 정리되어, 보존됩니다.

157-2 At Bethsaida-Julias 벳새다-율리아스에서

2. At Bethsaida-Julias 벳새다-율리아스에서

210912 위선의 누룩을 조심하라 마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Then Jesus said unto them, Take heed and beware of the leaven of the Pharisees and of the Sadducees.

157:2.1 (1744.4) On Monday, August 8, while Jesus and the twelve apostles were encamped in Magadan Park, near Bethsaida-Julias, more than one hundred believers, the evangelists, the women’s corps, and others interested in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came over from Capernaum for a conference. And many of the Pharisees, learning that Jesus was here, came also. By this time some of the Sadducees were united with the Pharisees in their effort to entrap Jesus. Before going into the closed conference with the believers, Jesus held a public meeting at which the Pharisees were present, and they heckled the Master and otherwise sought to disturb the assembly. Said the leader of the disturbers: “Teacher, we would like you to give us a sign of your authority to teach, and then, when the same shall come to pass, all men will know that you have been sent by God.” And Jesus answered them: “When it is evening, you say it will be fair weather, for the heaven is red; in the morning it will be foul weather, for the heaven is red and lowering. When you see a cloud rising in the west, you say showers will come; when the wind blows from the south, you say scorching heat will come. How is it that you so well know how to discern the face of the heavens but are so utterly unable to discern the signs of the times? To those who would know the truth, already has a sign been given; but to an evil-minded and hypocritical generation no sign shall be given.” 8월 8일 월요일에 예수님과 12사도는 벳새다-율리아스 근처 마가단 공원에서 야영하는 동안, 100명의 이상의 신자, 전도자들, 여성단(女性團) 및 하느님 나라 설립에 관심이 있는 다른 이들이 회의하려고 가버나움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 바리새인도, 예수께서 여기 계신 것을 알고, 왔습니다. 이 무렵 일부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 연합하여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신자들과 비공개(非公開)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참석한 공개 모임을 열었으며, 그들은 주(主)님을 야유하고, 그렇지 않으면 집회를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방해자들의 두목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에게 당신이 가르치는 권한의 표적을 주시고, 그 후, 같은 표적이 일어나면, 모든 사람이 당신을 하느님이 보내신 줄 알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저녁이 되어, 하늘이 붉으면, 너희는 날이 맑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잔뜩 흐리면, 날이 궂겠다 하니라(마16:1-3a). 너희가 서쪽에서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너희는 소나기가 오리라 하고,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심히 더우리라 하니라(눅12:54-55). 어째서 너희는 하늘의 기상(氣像)을 분별할 줄 잘 알면서 시대의 표적을 그토록 아예 분별할 수 없느냐(마16:3b)? 진리를 알려는 자들은 이미 표적을 받았지만, 악의로 해석하는 위선적 세대는 아무 표적도 받지 못하리라.”

157:2.2 (1745.1) When Jesus had thus spoken, he withdrew and prepared for the evening conference with his followers. At this conference it was decided to undertake a united mission throughout all the cities and villages of the Decapolis as soon as Jesus and the twelve should return from their proposed visit to Caesarea-Philippi. The Master participated in planning for the Decapolis mission and, in dismissing the company, said: “I say to you, beware of the leaven of the Pharisees and the Sadducees. Be not deceived by their show of much learning and by their profound loyalty to the forms of religion. Be only concerned with the spirit of living truth and the power of true religion. It is not the fear of a dead religion that will save you but rather your faith in a living experience in the spiritual realities of the kingdom. Do not allow yourselves to become blinded by prejudice and paralyzed by fear. Neither permit reverence for the traditions so to pervert your understanding that your eyes see not and your ears hear not. It is not the purpose of true religion merely to bring peace but rather to insure progress. And there can be no peace in the heart or progress in the mind unless you fall wholeheartedly in love with truth, the ideals of eternal realities. The issues of life and death are being set before you — the sinful pleasures of time against the righteous realities of eternity. Even now you should begin to find deliverance from the bondage of fear and doubt as you enter upon the living of the new life of faith and hope. And when the feelings of service for your fellow men arise within your soul, do not stifle them; when the emotions of love for your neighbor well up within your heart, give expression to such urges of affection in intelligent ministry to the real needs of your fellows.”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후, 그는 물러가서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저녁 회의를 준비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예수님과 12 사도가 제안을 받은 가이사랴-빌립보 방문에서 돌아오자마자 데카폴리스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 널리 연합 선교를 하기로 정했습니다. 주(主)님은 데카폴리스 선교를 위한 계획에 참여하셨고, 일행을 해산시키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마16:6, 막8:15, 눅12:1b). 많은 학식의 과시와 종교 형식에 대한 뿌리 깊은 그들의 충성에 속지 말라. 살아있는 진리의 영(靈)과 참 종교의 권능에만 관여하라. 너희를 구원할 것은 죽은 종교의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 나라의 영적 실체 안에 있는 살아있는 체험에 대한 너희 신앙이라. 너희 자신이 편견으로 눈이 멀고 두려움으로 마비되게 하지 말라. 전통을 존중해서, 너희가 너무 잘못 이해하여 너희 눈으로 보지 못하고 너희 귀로 듣지 못하도록 용납하지 말라. 참 종교의 목적은 단순히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실히 진보하는 것이라. 그리고 너희가 전심으로 진리, 영원한 실체들의 이상(理想)들과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어떤 심정의 평화나 마음의 진보가 조금도 있을 수 없느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 영원에 속한 의로운 실체들을 반대하는 시간에 속한 죄 많은 쾌락이 너희 앞에 놓여 있느니라. 너희는 신앙과 소망의 새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지금도, 너희는 두려움과 의심의 속박에서 해방을 찾아내기 시작해야 하느니라. 그리고 너희 혼(魂) 안에서 같은 너희 인간들을 섬기려는 느낌이 일어나면, 그것들을 억누르지 말라. 너희 이웃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너희 심정에서 솟아나면, 너희 동료의 참된 필요를 지능적으로 돌보는 가운데, 그런 애정의 충동을 표현하라.”

83-4 The Wedding Ceremony 결혼식

4. The Wedding Ceremony 결혼식

83:4.1 (924.4) The wedding ceremony grew out of the fact that marriage was originally a community affair, not just the culmination of a decision of two individuals. Mating was of group concern as well as a personal function. 결혼은 두 개인 결정의 성취만 아니라, 원래 공동체 업무였다는 사실에서, 결혼식이 발전하여 커졌습니다. 짝짓기는 개인적 활동만이 아니라 집단적 관심사였습니다.

83:4.2 (924.5) Magic, ritual, and ceremony surrounded the entire life of the ancients, and marriage was no exception. As civilization advanced, as marriage became more seriously regarded, the wedding ceremony became increasingly pretentious. Early marriage was a factor in property interests, even as it is today, and therefore required a legal ceremony, while the social status of subsequent children demanded the widest possible publicity. Primitive man had no records; therefore must the marriage ceremony be witnessed by many persons. 마술, 의례(儀禮) 및 예식(禮式)이 고대인(人)들의 온 생활을 둘러쌌고 결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문명이 진보하면서, 결혼이 더 진지하게 여겨지게 되자, 결혼식이 점차 자랑하여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초기 결혼은, 오늘날에도 그렇듯이, 재산 이익(利益)의 요인이었으므로, 법적 예식이 필요했고, 게다가 차후 자녀들의 사회적 신분을 최대한 널리 알려야 했습니다. 원시인은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결혼식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83:4.3 (924.6) At first the wedding ceremony was more on the order of a betrothal and consisted only in public notification of intention of living together; later it consisted in formal eating together. Among some tribes the parents simply took their daughter to the husband; in other cases the only ceremony was the formal exchange of presents, after which the bride’s father would present her to the groom. Among many Levantine peoples it was the custom to dispense with all formality, marriage being consummated by sex relations. The red man was the first to develop the more elaborate celebration of weddings. 처음에 결혼식은 약혼과 더 비슷했고, 동거(同居)의 의도를 공개적으로 알릴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결혼은 정식으로 같이 식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부 부족 중에서 부모들은 자기 딸을 남편에게 단지 데려갔습니다. 다른 경우에 유일한 예식은 정식의 선물 교환이었으며, 그 후 신부의 아버지가 그녀를 신랑에게 소개하곤 했습니다. 여러 레반트 민족들은 모든 예식 없이, 성(性)관계로 신방(新房)을 차리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홍인이 더 정교한 혼인 잔치를 처음 개발했습니다.

83:4.4 (924.7) Childlessness was greatly dreaded, and since barrenness was attributed to spirit machinations, efforts to insure fecundity also led to the association of marriage with certain magical or religious ceremonials. And in this effort to insure a happy and fertile marriage, many charms were employed; even the astrologers were consulted to ascertain the birth stars of the contracting parties. At one time the human sacrifice was a regular feature of all weddings among well-to-do people. 아이가 없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고, 불임(不姙)을 영(靈) 간계의 탓으로 여겼기 때문에, 다산 보증의 노력으로, 결혼은 어떤 마술이나 종교적 예식의 관련으로 또한 이어졌습니다. 행복한 다산 결혼을 보증하려는 이런 노력으로, 여러 부적이 사용되었습니다. 결혼 당사자들의 출생 별들을 확인하려고 점성술사들의 의견까지 들었습니다. 한때 부유한 사람들의 모든 결혼에서 인신(人身) 공양(供養)이 일상적 특색이었습니다.

83:4.5 (925.1) Lucky days were sought out, Thursday being most favorably regarded, and weddings celebrated at the full of the moon were thought to be exceptionally fortunate. It was the custom of many Near Eastern peoples to throw grain upon the newlyweds; this was a magical rite which was supposed to insure fecundity. Certain Oriental peoples used rice for this purpose. 행운의 날들을 찾았고, 목요일을 가장 좋은 날로 여겼으며, 만월(滿月)에 행하는 결혼이 특별한 행운이 되리라고 여겼습니다. 여러 근동(近東) 민족은 신혼부부에게 곡물을 던지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다산을 보증한다고 알려진 마술적 제의(祭儀)였습니다. 어떤 동양 민족들은 이런 목적으로 쌀을 사용했습니다.

83:4.6 (925.2) Fire and water were always considered the best means of resisting ghosts and evil spirits; hence altar fires and lighted candles, as well as the baptismal sprinkling of holy water, were usually in evidence at weddings. For a long time it was customary to set a false wedding day and then suddenly postpone the event so as to put the ghosts and spirits off the track. 불과 물은 유령들과 악령들을 격퇴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항상 여겼습니다. 따라서 세례(洗禮)에 뿌리는 성수(聖水)와 마찬가지로, 제단의 불과 촛불은 결혼식에서 대개 두드러지게 보였습니다. 거짓으로 결혼일을 정한 후, 유령들과 영(靈)들을 물리치려고 갑자기 행사를 연기하는 것은 오랜 관습이었습니다.

83:4.7 (925.3) The teasing of newlyweds and the pranks played upon honeymooners are all relics of those far-distant days when it was thought best to appear miserable and ill at ease in the sight of the spirits so as to avoid arousing their envy. The wearing of the bridal veil is a relic of the times when it was considered necessary to disguise the bride so that ghosts might not recognize her and also to hide her beauty from the gaze of the otherwise jealous and envious spirits. The bride’s feet must never touch the ground just prior to the ceremony. Even in the twentieth century it is still the custom under the Christian mores to stretch carpets from the carriage landing to the church altar. 신혼부부를 놀리고 신혼여행자들에게 하는 장난은, 영(靈)들의 시샘이 일어나지 않도록, 영(靈)들의 눈에 비참하고 불편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던 때, 그렇게 아주 먼 시대의 모든 잔재입니다. 면사포를 입는 것은, 유령들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질투하고 시샘하는 다른 영(靈)들의 시선에서 그녀의 아름다움도 숨기도록, 신부를 위장해야만 한다고 여겼던, 당시의 잔재입니다. 예식 직전에 신부의 발이 땅에 닿지 말아야 했습니다. 20세기에도 기독교 관습에 따라, 도착한 차량에서 교회 제단까지 융단(絨緞)을 까는 것이 아직도 관습입니다.

83:4.8 (925.4) One of the most ancient forms of the wedding ceremony was to have a priest bless the wedding bed to insure the fertility of the union; this was done long before any formal wedding ritual was established. During this period in the evolution of the marriage mores the wedding guests were expected to file through the bedchamber at night, thus constituting legal witness to the consummation of marriage. 결혼식의 가장 오래된 형태 중 하나는 결혼의 다산을 보증하려고 사제가 결혼 동침(同寢)을 축복(祝福)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떤 공식적인 결혼제의(祭儀) 훨씬 이전에 이루어졌습니다. 결혼 관습이 진화하는 이런 시기에, 하객들은 밤에 침실을 통해 지나가도록 예정되어서, 결혼 성사의 법적 증인이 되었습니다.

83:4.9 (925.5) The luck element, that in spite of all premarital tests certain marriages turned out bad, led primitive man to seek insurance protection against marriage failure; led him to go in quest of priests and magic. And this movement culminated directly in modern church weddings. But for a long time marriage was generally recognized as consisting in the decisions of the contracting parents — later of the pair — while for the last five hundred years church and state have assumed jurisdiction and now presume to make pronouncements of marriage. 혼전(婚前)의 모든 시험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혼은 불행해졌다는 행운 요소로 인해서, 원시인(人)은 결혼 실패를 막으려고 보증을 찾게 되었고, 사제들과 마술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이 바로 현대 교회 결혼으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결혼은 일반적으로 계약하는 부모들(나중에는 그 쌍)의 결정이라고 인정되었던 반면에 지난 500년 동안에 교회와 국가가 관할권을 떠맡았고, 지금은 대담하게 결혼을 선언합니다.

37-2 The Brilliant Evening Stars 찬란한 저녁별들

2. The Brilliant Evening Stars 찬란한 저녁별들

37:2.1 (407.1) These brilliant creatures were planned by the Melchizedeks and were then brought into being by the Creator Son and the Creative Spirit. They serve in many capacities but chiefly as liaison officers of Gabriel, the local universe chief executive. One or more of these beings function as his representatives at the capital of every constellation and system in Nebadon. 멜기세덱들이 이들 찬란한 창조물들을 계획한 다음에 창조주 아들과 창조적 영(靈)이 낳았습니다. 그들은 여러 능력이 있지만 주로 지역 우주 수석 실행자 가브리엘의 연락 장교로 섬깁니다. 이런 존재 중 하나 혹은 그 이상이 네바돈에 있는 모든 성좌와 체계 수도에 가브리엘의 대행자로 활동합니다.

37:2.2 (407.2) As chief executive of Nebadon, Gabriel is ex officio chairman of, or observer at, most of the Salvington conclaves, and as many as one thousand of these are often in session simultaneously. The Brilliant Evening Stars represent Gabriel on these occasions; he cannot be in two places at the same time, and these superangels compensate for this limitation. They perform an analogous service for the corps of the Trinity Teacher Sons. 네바돈의 수석 실행자, 가브리엘은 셀빙톤의 비밀회의 대부분에서 직권상 의장 혹은 참관자이며, 1,000개 되는 이런 회의들이 종종 동시에 열립니다. 이런 경우에 찬란한 저녁별들이 가브리엘을 대표합니다. 그는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 없으며, 이런 초(超)천사들이 이런 한계를 보충합니다. 그들은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 단(團)을 위한 비슷한 봉사를 수행합니다.

37:2.3 (407.3) Though personally occupied with administrative duties, Gabriel maintains contact with all other phases of universe life and affairs through the Brilliant Evening Stars. They always accompany him on his planetary tours and frequently go on special missions to the individual planets as his personal representatives. On such assignments they have sometimes been known as “the angel of the Lord.” They frequently go to Uversa to represent the Bright and Morning Star before the courts and assemblies of the Ancients of Days, but they seldom journey beyond the confines of Orvonton. 개인적으로 경영 직책에 종사하지만, 가브리엘은 찬란한 저녁별들을 통해 다른 모든 단계의 우주 생활과 업무들과 접촉을 유지합니다. 그들은 그가 행성을 여행할 때 언제나 그와 함께 가며, 그의 개인적 대리인으로서 특수임무로 개별 행성에 자주 갑니다. 그런 임무에 그들은 때로“주님의 천사”로 알려졌습니다. 그들은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법정과 의회 앞에서 광명한 새벽별을 대표해서 자주 유버르사에 가지만, 그들은 좀처럼 오르본톤 경계를 넘어서 여행하지 않습니다.

37:2.4 (407.4) The Brilliant Evening Stars are a unique twofold order, embracing some of created dignity and others of attained service. The Nebadon corps of these superangels now numbers 13,641. There are 4,832 of created dignity, while 8,809 are ascendant spirits who have attained this goal of exalted service. Many of these ascendant Evening Stars started their universe careers as seraphim; others have ascended from unrevealed levels of creature life. As an attainment goal this high corps is never closed to ascension candidates so long as a universe is not settled in light and life. 찬란한 저녁별들은 일부의 창조된 존엄층과 봉사로 도달하는 나머지 계층을 포함하는, 독특한 2중 계층입니다. 이들 초(超)천사로 이루어진 네바돈단(團)은 현재 13,641명입니다. 창조된 존엄층은 4,832명이고 한편 8,809명은 고귀하게 섬기는 이런 목표에 도달한 상승 영(靈)들입니다. 이렇게 여러 상승 저녁별들은 세라핌천사로서 자기들의 우주 생애를 시작했습니다. 나머지는 미(未)계시 수준의 창조물 생애에서 상승했습니다. 도달 목표로서, 이런 높은 단(團)은, 우주가 빛과 생명에 자리를 잡지 않은 한, 결코 상승 후보자들 가까이에 있지 않습니다.

37:2.5 (407.5) Both types of Brilliant Evening Stars are easily visible to morontia personalities and certain types of supermortal material beings. The created beings of this interesting and versatile order possess a spirit force which can be manifested independently of their personal presence. 찬란한 저녁별의 두 유형은 모론시아 고유성들과 어떤 유형의 초(超)필사 물질 존재들에게 쉽게 보입니다. 이렇게 흥미롭고 다재다능한 계층에 속한 창조된 존재들은, 자신들의 고유적 현존과 관계없이 분명히 나타날 수 있는 영(靈) 기세를 소유합니다.

37:2.6 (407.6) The head of these superangels is Gavalia, the first-born of this order in Nebadon. Since the return of Christ Michael from his triumphant bestowal on Urantia, Gavalia has been assigned to the ascendant mortal ministry, and for the last nineteen hundred Urantia years his associate, Galantia, has maintained headquarters on Jerusem, where he spends about half of his time. Galantia is the first of the ascendant superangels to attain this high estate. 이들 초(超)천사들의 수석은 네바돈의 이 계층에서 처음 태어난 가발리아입니다. 그리고 미가엘이 유란시아에서 승리한 자신의 증여에서 돌아온 이후, 가발리아는 상승 필사자를 보살피도록 배정되었고, 유란시아 시간으로 마지막 1,900년 동안 그의 동료 갈란시아는, 거의 절반의 자기 시간을 보낸, 예루셈에서 본부를 유지했습니다. 갈란시아는 이 높은 신분에 도달한 상승 초(超)천사 중 첫째입니다.

37:2.7 (407.7) No grouping or company organization of the Brilliant Evening Stars exists other than their customary association in pairs on many assignments. They are not extensively assigned on missions pertaining to the ascendant career of mortals, but when thus commissioned, they never function alone. They always work in pairs — one a created being, the other an ascendant Evening Star. 찬란한 저녁별들의 집단화 또는 단체 조직은, 여러 임무에 통상 쌍으로 결합하는 이외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필사자들의 상승 생애에 속한 임무에 널리 임명되지 않으나, 그렇게 임명되면, 그들은 결코 홀로 활동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쌍-하나의 창조된 존재와 다른 하나의 상승 저녁별-으로 일합니다.

37:2.8 (407.8) One of the high duties of the Evening Stars is to accompany the Avonal bestowal Sons on their planetary missions, even as Gabriel accompanied Michael on his Urantia bestowal. The two attending superangels are the ranking personalities of such missions, serving as cocommanders of the archangels and all others assigned to these undertakings. It is the senior of these superangel commanders who, at the significant time and age, bids the Avonal bestowal Son, “Be about your brother’s business.” 저녁별들의 높은 임무 중 하나는, 가브리엘이 미가엘의 유란시아 증여에 그와 함께 갔듯이, 아보날 증여 아들들의 행성 사명에 함께 가는 것입니다. 수행하는 두 초(超)천사들은, 천사장들과 이런 업무에 배정된 다른 모두의 공동 지휘관들로서 섬기는, 그런 사명에 속한 상급 고유성들입니다. 이런 초(超)천사 지휘관 중 선임이, 중요한 시간과 시대에, 아보날 증여 아들에게, “당신 형의 업무를 돌보소서.”라고 말합니다.

37:2.9 (408.1) Similar pairs of these superangels are assigned to the planetary corps of Trinity Teacher Sons that functions to establish the postbestowal or dawning spiritual age of an inhabited world. On such assignments the Evening Stars serve as liaisons between the mortals of the realm and the invisible corps of Teacher Sons. 비슷한 이런 초(超)천사 쌍들은, 거주 세계의 증여 이후(以後) 혹은 영적 여명(黎明) 시대를 확립하려고 활동하는, 삼위일체 교사 아들들의 행성 단(團)에 배정됩니다. 그런 임무에, 저녁별들은 그 영역의 필사자들과 교사 아들들의 비(非)가시(可視)적 단(團) 사이에 연락관들로 섬깁니다.

37:2.10 (408.2) The Worlds of the Evening Stars. The sixth group of seven Salvington worlds and their forty-two tributary satellites are assigned to the administration of the Brilliant Evening Stars. The seven primary worlds are presided over by the created orders of these superangels, while the tributary satellites are administered by ascendant Evening Stars. 저녁별들의 세계들. 일곱 샐빙톤 세계의 여섯째 집단과 그것들의 42 종속 위성들은 찬란한 저녁별들의 경영에 할당되어 있습니다. 이런 초(超)천사들 중 창조된 계층이 일곱 1차 세계들이 주관하며, 한편 상승 저녁별들이 종속 위성들을 경영합니다.

37:2.11 (408.3) The satellites of the first three worlds are devoted to the schools of the Teacher Sons and the Evening Stars dedicated to the spirit personalities of the local universe. The next three groups are occupied by similar joint schools devoted to the training of ascending mortals. The seventh-world satellites are reserved for the triune deliberations of the Teacher Sons, the Evening Stars, and the finaliters. During recent times these superangels have been closely identified with the local universe work of the Corps of the Finality, and they have long been associated with the Teacher Sons. There exists a liaison of tremendous power and import between the Evening Stars and the Gravity Messengers attached to the finaliter working groups. The seventh primary world itself is reserved for those unrevealed matters which pertain to the future relationship that will obtain between the Teacher Sons, the finaliters, and the Evening Stars consequent upon the completed emergence of the superuniverse manifestation of the personality of God the Supreme. 처음 세 세계의 위성들은, 지역 우주의 영(靈) 고유성들에게 헌신적인, 교사 아들들과 저녁별의 학교들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 집단은 상승 필사자들에게 헌신적인, 비슷한 공동 학교들이 차지합니다. 일곱째 세계 위성들은, 교사 아들들, 저녁별들 및 최종자들의 삼자일치적 심의를 위해 확보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이런 초(超)천사들은 최종단(最終團)의 지역 우주 과업과 밀접하게 동일시되었고, 그들은 교사 아들들과 오랫동안 관련되었습니다. 저녁별들과 최종자 작업 그룹에 부속된 중력 메신저들 사이에 엄청난 동력과 중요성에 속한 연락관이 존재합니다. 일곱째 1차 세계 자체는, 최극자 하느님의 고유성의 완료된 출현이 초우주에 드러나는 결과로, 교사 아들들, 최종자들 및 저녁별들 사이에 도달할, 미래 관계에 속한 미(未)계시 문제들을 위해 확보되어 있습니다.

157-1 The Temple-Tax Collector 성전-세(稅) 징수원

1. The Temple-Tax Collector 성전-세(稅) 징수원

210905 성전-세(稅)의 진실 마17:24-27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24 After Jesus and his disciples arrived in Capernaum, the collectors of the two-drachma tax came to Peter and asked, “Doesn’t your teacher pay the temple tax?” 25 “Yes, he does,” he replied. When Peter came into the house, Jesus was the first to speak. “What do you think, Simon?” he asked. “From whom do the kings of the earth collect duty and taxes–from their own sons or from others?” 26 “From others,” Peter answered. “Then the sons are exempt,” Jesus said to him. 27 “But so that we may not offend them, go to the lake and throw out your line. Take the first fish you catch; open its mouth and you will find a four-drachma coin. Take it and give it to them for my tax and yours.”

157:1.1 (1743.3) As Jesus, with Andrew and Peter, tarried by the lake near the boatshop, a temple-tax collector came upon them and, recognizing Jesus, called Peter to one side and said: “Does not your Master pay the temple tax?” Peter was inclined to show indignation at the suggestion that Jesus should be expected to contribute to the maintenance of the religious activities of his sworn enemies, but, noting a peculiar expression on the face of the tax collector, he rightly surmised that it was the purpose to entrap them in the act of refusing to pay the customary half shekel for the support of the temple services at Jerusalem. Accordingly, Peter replied: “Why of course the Master pays the temple tax. You wait by the gate, and I will presently return with the tax.” 예수께서 안드레 및 베드로와 함께 배 작업장 근처 호숫가에 머물 때, 성전-세(稅) 징수원이 그들에게 와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한편으로 베드로를 불러 말했습니다. “너의 주님이 성전 세(稅)를 내지 않는가?” 베드로는, 예수가 단언한 그의 적들의 종교적 활동 유지에 바쳐야 한다는 제안에 분개하려 했으나, 세(稅) 징수원의 기묘한 표정을 알아차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봉사를 지원하는 관례적인 반 세겔의 납부를 거절했다는 법률로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의도를, 정확히 짐작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물론 주께서 성전 세(稅)를 내십니다. 당신이 문 옆에 기다리면 내가 곧 세금을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157:1.2 (1743.4) Now Peter had spoken hastily. Judas carried their funds, and he was across the lake. Neither he, his brother, nor Jesus had brought along any money. And knowing that the Pharisees were looking for them, they could not well go to Bethsaida to obtain money. When Peter told Jesus about the collector and that he had promised him the money, Jesus said: “If you have promised, then should you pay. But wherewith will you redeem your promise? Will you again become a fisherman that you may honor your word? Nevertheless, Peter, it is well in the circumstances that we pay the tax. Let us give these men no occasion for offense at our attitude. We will wait here while you go with the boat and cast for the fish, and when you have sold them at yonder market, pay the collector for all three of us.” 그때 베드로는 성급히 말했습니다. 유다가 그들의 자금을 갖고 있었고, 그는 호수 건너편에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형제 및 예수님도 돈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을 찾는 줄 알면서, 그들은 돈을 가지러 벳새다에 바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징수원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이 그에게 돈을 약속했다고 말하자, 예수께서 말했습니다. “네가 약속했으면, 네가 내야 하느니라. 하지만 무엇으로 네 약속을 지키려느냐? 네 말을 지키려고 네가 다시 어부가 되려느냐? 그렇지만, 베드로야, 사정이 그러하니, 우리가 세금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니라. 이들이 우리 태도로 성나지 않게 하자. 네가 배로 가서 그물을 던지는 동안 우리가 여기서 기다릴 것이니, 네가 저쪽 시장에 그것을 팔아서, 우리 셋 모두를 위해 징수원에게 내라.”

157:1.3 (1744.1) All of this had been overheard by the secret messenger of David who stood near by, and who then signaled to an associate, fishing near the shore, to come in quickly. When Peter made ready to go out in the boat for a catch, this messenger and his fisherman friend presented him with several large baskets of fish and assisted him in carrying them to the fish merchant near by, who purchased the catch, paying sufficient, with what was added by the messenger of David, to meet the temple tax for the three. The collector accepted the tax, forgoing the penalty for tardy payment because they had been for some time absent from Galilee. 근처에 서 있던 다윗의 비밀 메신저가 이 모든 말을 엿들은 후에, 해안 근처에서 고기를 낚는 동료에게 빨리 오라고 신호했습니다. 베드로가 고기 잡으러 배로 나가려고 준비했을 때, 이 메신저와 그의 어부 친구가 그에게 커다란 생선 바구니 몇 개를 주었고, 그를 도와서 바로 근처에서 물고기를 사들여 충분히 지급하는 생선 상인에게 그것들을 옮겼고, 세 명의 성전 세(稅)를 채우려고 다윗의 메신저가 그것에 보탰습니다. 징수원은, 그들이 한동안 갈릴리에 없었기에 납부를 지체한 벌금 없이 세금을 받았습니다.

157:1.4 (1744.2) It is not strange that you have a record of Peter’s catching a fish with a shekel in its mouth. In those days there were current many stories about finding treasures in the mouths of fishes; such tales of near miracles were commonplace. So, as Peter left them to go toward the boat, Jesus remarked, half-humorously: “Strange that the sons of the king must pay tribute; usually it is the stranger who is taxed for the upkeep of the court, but it behooves us to afford no stumbling block for the authorities. Go hence! maybe you will catch the fish with the shekel in its mouth.” Jesus having thus spoken, and Peter so soon appearing with the temple tax, it is not surprising that the episode became later expanded into a miracle as recorded by the writer of Matthew’s Gospel. 베드로가 한 세겔을 입에 물고 있는 생선을 잡았다는 기록을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마17:27)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당시 생선 입에 있는 보물의 발견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돌고 있었습니다. 기적에 가까운 그런 이야기들은 흔해 빠졌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을 떠나 배를 향해 가자, 예수께서 다소 익살스럽게 말했습니다. “왕의 자녀들이 세금을 내야만 하다니, 이상하구나. 대개 외부인들이 왕실 유지를 위해 납세하지만, 우리는 당국에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하느니라. 가라! 네가 입에 세겔이 있는 생선을 잡을지도 모르겠구나.” 예수께서 이렇게 말했고, 베드로가 바로 성전 세(稅)를 가지고 나타났기 때문에, 마태복음의 저자가 기록했듯이 사건이 나중에 기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157:1.5 (1744.3) Jesus, with Andrew and Peter, waited by the seashore until nearly sundown. Messengers brought them word that Mary’s house was still under surveillance; therefore, when it grew dark, the three waiting men entered their boat and slowly rowed away toward the eastern shore of the Sea of Galilee. 예수님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함께 거의 해가 질 때까지 해변에서 기다렸습니다. 메신저들은, 마리아의 집이 여전히 감시받고 있었다는 소식을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래서 날이 어두워지자, 기다리던 세 사람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동쪽 해안을 향해 서서히 계속 노를 저었습니다.

157-0 At Caesarea-Philippi 가이사랴-빌립보에서

Paper 157

At Caesarea-Philippi 가이사랴-빌립보에서

157:0.1 (1743.1) BEFORE Jesus took the twelve for a short sojourn in the vicinity of Caesarea-Philippi, he arranged through the messengers of David to go over to Capernaum on Sunday, August 7, for the purpose of meeting his family. By prearrangement this visit was to occur at the Zebedee boatshop. David Zebedee had arranged with Jude, Jesus’ brother, for the presence of the entire Nazareth family — Mary and all of Jesus’ brothers and sisters — and Jesus went with Andrew and Peter to keep this appointment. It was certainly the intention of Mary and the children to keep this engagement, but it so happened that a group of the Pharisees, knowing that Jesus was on the opposite side of the lake in Philip’s domains, decided to call upon Mary to learn what they could of his whereabouts. The arrival of these Jerusalem emissaries greatly perturbed Mary, and noting the tension and nervousness of the entire family, they concluded that Jesus must have been expected to pay them a visit. Accordingly they installed themselves in Mary’s home and, after summoning reinforcements, waited patiently for Jesus’ arrival. And this, of course, effectively prevented any of the family from attempting to keep their appointment with Jesus. Several times during the day both Jude and Ruth endeavored to elude the vigilance of the Pharisees in their efforts to send word to Jesus, but it was of no avail. 예수께서 12사도를 데리고 가이사랴-빌립보 부근에 잠시 머무르기 전에, 그는 자기 가족을 만나려고, 8월 7일 일요일에 가버나움으로 건너가도록 다윗의 메신저를 통해 준비하셨습니다. 이 방문은 세베대 배 작업장에서 만나기로 미리 정했습니다. 다윗 세배대가 예수님의 동생 유다와 함께 모든 나사렛 가족 – 마리아와 모든 예수님의 형제, 자매들이 참석하도록 준비했고, 예수님은 안드레 및 베드로와 함께 이 약속을 지키려고 갔습니다. 마리아와 자녀들은 이 약속을 분명히 지키려고 했지만, 우연히 바리새인 무리가 예수께서 빌립의 영토에 있는 호수 건너편에 있음을 알고, 그의 소재를 알려고 마리아를 방문하기로 정했습니다. 이런 예루살렘 밀정들의 도착으로 마리아는 매우 불안했으며, 온 가족의 긴장과 불안을 알아차리고, 예수께서 그들을 틀림없이 방문할 작정이라고 그들이 추정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마리아의 집에 앉아 증원군을 부른 후, 예수의 도착을 끈기 있게 기다렸습니다. 물론 가족 중 누구도 이것으로 인해 예수님과 약속을 실제로 지키려고 해 볼 수 없었습니다. 낮에 몇 번씩 유다와 룻은 바리새인들의 경계를 피해 예수님께 소식을 전하려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157:0.2 (1743.2) Early in the afternoon David’s messengers brought Jesus word that the Pharisees were encamped on the doorstep of his mother’s house, and therefore he made no attempt to visit his family. And so again, through no fault of either, Jesus and his earth family failed to make contact. 이른 오후에 다윗의 메신저들이 예수께 소식을 가져와, 바리새인들이 그 모친의 집 문간에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해서, 그는 가족을 방문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누구의 잘못도 없이, 예수님과 지상 가족들은 연락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S136 Baptism and the Forty Days 개요136편 세례와 40일

S136 Baptism and the Forty Days 개요136편 세례와 40일

136:0.2 (1509.2) When John preached the coming kingdom, the burden of his message was: Repent! flee from the wrath to come. When Jesus began to preach, there remained the exhortation to repentance, but such a message was always followed by the gospel, the good tidings of the joy and liberty of the new kingdom. 요한이 다가오는 나라를 전파하였을 때, 그의 메시지의 요점은 “회개하라! 앞으로 올 진노(震怒)를 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설교를 시작하였을 때, 회개하라는 권고는 같았지만, 그러한 메시지에는 언제는 복음, 즉 새로운 나라의 기쁨과 자유의 행복한 소식이 뒤따랐습니다.

  1. Concepts of the Expected Messiah 기대하던 메시아 개념

136:1.1 (1509.3) The concept evolve from the “servant of the Lord” to the “son of David,” “Son of Man,” and “Son of God.” 그 개념은 “주님의 종(왕, 제사장, 선지자)”으로부터 “다윗의 아들(완전한 인간),” “사람의 아들(초인간),”과 “하느님의 아들(신적 존재)”까지 발전되었습니다. 136:1.3 (1509.5) But they almost completely lost sight of the personality of the promised Messiah. They were looking for a restoration of Jewish national glory — Israel’s temporal exaltation — rather than for the salvation of the world. It therefore becomes evident that Jesus of Nazareth could never satisfy this materialistic Messianic concept of the Jewish mind. 그러나 그들은 약속된 메시아의 고유성(인격)에 대한 시각은 거의 완벽하게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구원보다는 유대의 민족적 영광─이스라엘의 세속적인 지위 향상─이 회복되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러한 물질주의적인 메시아의 개념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음이 명백해집니다. 136:1.5 (1510.2) And the kingdom of heaven could mean only one thing to any devout Jew: The coming of the Messiah. 어떤 열렬한 유대인에게라도 하늘나라라는 말은 오직 한 가지만을 의미했는데: 그것은 메시아의 도래였습니다.

136:1.6 (1510.3) There was one feature of the bestowal of Michael which was utterly foreign to the Jewish conception of the Messiah, and that was the union of the two natures, the human and the divine. Never had the Jews for a single moment entertained the true concept of the union in one earth personality of the two natures, the human and the divine. The incarnation of the Creator in the form of the creature had not been revealed beforehand. It was revealed only in Jesus; the world knew nothing of such things until the Creator Son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the mortals of the realm. 미가엘 증여에 있어서, 유대 메시아의 개념과 매우 다른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두 본성의 연합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두 가지의 본성이 이 세상의 한 고유성으로 연합한다는 참된 개념은 한순간도 고려해본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창조물의 형상으로 창조주가 육신이 되심은 과거에는 한 번도 계시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예수님 안에서만 계시되었으며; 창조주 아들이 육신으로 와서 그 땅의 필사자들 가운데에 거하시기 전까지, 세상은 그러한 일들을 알 수 없었습니다.

  1. The Baptism of Jesus 예수님의 세례

136:2.3 (1511.2) As John laid his hands upon Jesus to baptize him, and he heard this same spirit of Paradise origin now speak,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And John, with Jesus’ two brothers, also heard these words. Only the eyes of Jesus beheld the Personalized Adjuster. 요한이 그에게 세례를 주기 위하여 예수님 위에 손을 얹자, 천국 기원의 바로 그 영이 당시에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의 두 동생과 요한도 이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의 눈에만 고유성화 조율자가 보였습니다. 136:2.4 (1511.3) And while the four of them tarried in the water, Jesus, looking up to the near-by Adjuster, prayed: “My Father who reigns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even as it is in heaven.” When he had prayed, the “heavens were opened,” and the Son of Man saw the vision, presented by the now Personalized Adjuster, of himself as a Son of God as he was before he came to earth in the likeness of mortal flesh, and as he would be when the incarnated life should be finished. This heavenly vision was seen only by Jesus. 그들 네 명이 물에 머무는 동안, 예수님은 바로 근처의 조율자를 바라보며 기도하셨습니다. “하늘을 다스리는 내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그가 기도를 마치자, “하늘들이 열리고,” 사람의 아들은 이제 고유성화 조율자가 제시한, 자신이 필사자 육신의 모습으로 지상에 오기 이전(以前)과 육신화 생애를 마치고 되어질 이후(以後)의 하느님 아들로서 자신의 환영(幻影)을 보았습니다. 예수님만 이런 하늘의 환영을 봤습니다.

136:2.6 (1512.2) When Jesus was baptized, he repented of no misdeeds; he made no confession of sin. His was the baptism of consecration to the performance of the will of the heavenly Father. At his baptism he heard the unmistakable call of his Father, the final summons to be about his Father’s business. 예수께서 세례를 받았을 때, 그는 아무런 잘못도 회개하지 않았으며; 아무 죄도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헌신하는 세례였습니다. 세례받을 때, 그는 아버지의 일을 시작하라는 마지막 호출인 아버지의 명백한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136:2.7 (1512.3) This day of baptism ended the purely human life of Jesus. The divine Son has found his Father, the Universal Father has found his incarnated Son, and they speak the one to the other. 세례받은 이 날에 예수님은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일생을 끝마쳤습니다. 136:2.8 (1512.4) In the very year of A.D. 26, (Jesus was almost thirty-one and one-half years old when he was baptized.) 바로 서기 26년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는 거의 31살 반이었습니다).

  1. The Forty Days 40일

136:3.1 (1512.5) This Prince of Urantia, so soon to be proclaimed supreme Sovereign of Nebadon, now went into forty days of retirement to formulate the plans and determine upon the technique of proclaiming the new kingdom of God in the hearts of men. 곧 네바돈의 최극 주권자로 선포될, 유란시아의 이 왕자는, 사람들의 심정에 새로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할 계획을 구상하고 그 기법을 결정짓기 위하여, 이제 40일간 은둔에 들어갔습니다. 136:3.2 (1512.6) During this isolation in the Perean hills he determined upon the policy to be pursued and the methods to be employed in the new and changed phase of earth life which he was about to inaugurate. 페레아 언덕에서 혼자 계셨던 이 기간에, 그는 새롭게 변경된 지상 일생의 국면에서, 자신이 곧 시작하여 추구해야 할 정책과 사용되어야 할 방법들을 결정하셨습니다.

  1. Plans for Public Work 공(公)사역 계획

136:4.6 (1514.7) Gabriel had reminded Jesus that there were two ways in which he might manifest himself to the world in case he should choose to tarry on Urantia for a time. 가브리엘은 예수께서 유란시아에 한동안 머물기로 선택할 경우,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136:4.7 (1515.1) 1. His own way — the way that might seem most pleasant and profitable from the standpoint of the immediate needs of this world and the present edification of his own universe. 그 자신의 방법 – 이 세상의 즉각적 필요와 자기 우주의 당면한 계발(啓發)의 입장에서 가장 적절히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방법.

136:4.8 (1515.2) 2. The Father’s way — the exemplification of a farseeing ideal of creature life visualized by the high personalities of the Paradise administration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아버지의 방법 – 우주들의 우주의 천국 경영을 맡은 높은 고유성들이 구상한, 창조물 일생의 선견지명이 있는 이상(理想)의 모범.

136:4.9 (1515.3) On the third day of this isolation Jesus promised himself he would go back to the world to finish his earth career, and that in a situation involving any two ways he would always choose the Father’s will. And he lived out the remainder of his earth life always true to that resolve. Even to the bitter end he invariably subordinated his sovereign will to that of his heavenly Father. 이 고립의 3일에, 예수께서는 자기 지상 생애를 마치려고 세상으로 돌아가, 두 방법이 포함된 상황에서 항상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지상 생애의 나머지를 언제나 그런 결심에 충실하게 사셨습니다. 쓰라린 마지막에도 그는 변함없이 자기 주권적 뜻을 하늘 아버지의 뜻에 종속시켰습니다.

  1. The First Great Decision 첫 번째 중대한 결정

136:5.1 (1516.1) On the third day after beginning this conference with himself and his Personalized Adjuster, Jesus was presented with the vision of the assembled celestial hosts of Nebadon sent by their commanders to wait upon the will of their beloved Sovereign. This mighty host embraced twelve legions of seraphim and proportionate numbers of every order of universe intelligence. 자기 자신과 그의 고유성화 조율자와의 협의가 시작된 지 3일째 되는 날, 사랑하는 주권자의 뜻을 섬기라고 그들의 사령관이 보낸 네바돈 천상의 무리가 집합되어있는 환영(幻影)이 예수님에게 보였습니다. 이 강력한 무리는 12 군단의 세라핌 천사들과, 우주의 각 계층들로부터 온 균등한 숫자의 지능존재들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136:5.5 (1517.1) He had by a single decision excluded all of his attendant universe hosts of varied intelligences from participating in his ensuing public ministry except in such matters as concerned time only. It therefore becomes evident that any possible supernatural or supposedly superhuman accompaniments of Jesus’ ministry pertained wholly to the elimination of time unless the Father in heaven specifically ruled otherwise. 단 한 번의 결정으로, 그는 시간에 관한 문제만을 제외하고는, 자기가 계속적인 대중을 위한 공(公) 사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양한 우주 지능존재들 무리의 참여를 배제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공(公) 사역에서 따라다녔던 초자연적이거나 초인간적 업적이라고 이야기되는 것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특별히 다른 방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닌 한, 전적으로 시간 제거에 관계된 것임이 명백해졌습니다.

  1. The Second Decision 두 번째 결정

136:6.2 (1518.1) He now definitely decided against a policy which would transcend, violate, or outrage his own established natural laws. The Master chose a program of living which was the equivalent of deciding against miracles and wonders. Again he surrendered everything into the hands of his Paradise Father. 이제 그는 자신이 세운 자연법칙을 초월하거나 위반하거나 어기는 정책은 피하기로 분명하게 결정하였습니다. 주(主)님은 기적이나 이적을 행하지 않겠다는 결정에 상당하는 삶의 프로그램을 선택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의 천국 아버지의 손에 맡겼습니다. 136:6.4 (1518.3) He purposed to follow the unnatural course — he decided not to seek self-preservation. 그는 부자연스러운 과정을 따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 자아보존을 추구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36:6.11 (1519.4) Jesus thus revealed to the creatures of his universe the technique of the new and better way, the higher moral values of living and the deeper spiritual satisfactions of evolutionary human existence on the worlds of space. 이렇게 예수님은 자기 우주의 창조물들에게, 더 높은 도덕적 삶의 가치와 공간의 세계에서 진화하는 인간 존재가 누릴 더 깊은 영적 만족의 새롭고 나은 길로 가는 기법을 계시하셨습니다.

  1. The Third Decision 세 번째 결정

136:7.1 (1519.5) He decided to refrain from all superhuman intervention when the crisis of his life in the flesh should come. 그는 육신상의 삶의 위기가 올 때, 모든 초인간적 개입을 금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36:7.2 (1519.6) Jesus knew his fellow countrymen were expecting a Messiah who would be above natural law. But such a course, however gratifying to the sign-seeking Jews, would be, not a revelation of his Father, but a questionable trifling with the established laws of the universe of universes. 예수님은 자기 동료 민족이 자연법칙을 초월하는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은, 표적을 찾는 유대인들을 만족시키더라도, 그의 아버지를 나타내 보이는 길은 아닐 것이며 단지 우주들의 우주에 세워져 있는 법칙들을 의심스럽게 하는 무익한 행동일 뿐입니다. 136:7.4 (1520.1) Throughout his entire earth life Jesus was consistently loyal to this decision. 예수님은 자신의 지상 일생 내내, 끊임없이 이 결정에 충실하였습니다.

  1. The Fourth Decision 네 번째 결정

136:8.8 (1521.3) He refused to prostitute his divine attributes for the purpose of acquiring unearned popularity or for gaining political prestige. He would not countenance the transmutation of divine and creative energy into national power or international prestige. Jesus of Nazareth refused to compromise with evil, much less to consort with sin. The Master triumphantly put loyalty to his Father’s will above every other earthly and temporal consideration. 그는, 노력 없이 얻는, 인기를 얻는 목적이나 정치적 명성을 얻으려고 자신의 신적 속성들을 악용하기를 거절하셨습니다. 그는 신적이며 창조적인 에너지를 민족적 권능이나 국제적 명성으로 변질시키는 것을 묵인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죄와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악과 타협하는 것도 거부하셨습니다. 주(主)님은, 다른 세속적이며 현세적으로 고려할 모든 것 위에 아버지의 뜻에 충성하는 것을, 승리한 마음으로 올려놓으셨습니다.

  1. The Fifth Decision 다섯 번째 결정

136:9.2 (1522.1) The Jews envisaged a deliverer who would come in miraculous power to cast down Israel’s enemies and establish the Jews as world rulers, free from want and oppression. Jesus knew that this hope would never be realized. He knew that the kingdom of heaven had to do with the overthrow of evil in the hearts of men, and that it was purely a matter of spiritual concern. He thought out the advisability of inaugurating the spiritual kingdom with a brilliant and dazzling display of power — and such a course would have been permissible and wholly within the jurisdiction of Michael — but he fully decided against such a plan. 유대인들은 해방자를, 기적의 힘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적들을 쳐부수고, 유대인들을 세상의 통치자들로 만들어 주며, 빈곤과 억압에서 해방시켜주는 자로 마음속에 그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희망이 결코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늘나라는 사람들의 심정에서 악을 버려야만 하는 일이며, 그것은 순수하게 영적 관련 문제였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는 찬란하며 눈부신 권능을 전시하는 영적 왕국의 취임식의 대안─그런 과정은 허락될 것이며 전적으로 미가엘의 관할권 안에 있었습니다.─을 생각했지만, 그는 그러한 계획을 반대하기로 완전히 결정하셨습니다.

  1. The Sixth Decision 여섯 번째 결정

136:10.1 (1523.6) On the last day of this memorable isolation, before starting down the mountain to join John and his disciples, the Son of Man made his final decision. And this decision he communicated to the Personalized Adjuster in these words, “And in all other matters, as in these now of decision-record, I pledge you I will be subject to the will of my Father.” 이 기억할만한 고립의 마지막 날, 요한과 그의 제자들에게 합류하러 산에서 내려가시기 전에, 사람의 아들은 그의 마지막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그는 이 결정을 다음과 같은 말로 고유성화 조율자에게 통보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다른 문제에서, 이제 이 여러 기록된-결정대로, 나는 나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할 것을 당신께 서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