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9 The Time of Waiting 기다리는 시간

9. The Time of Waiting 기다리는 시간

170215 수요 예수78 기다리는 시간(31세 AD25) 마3:1-2, 5-6

134:9.1 (1494.4) It was now near the end of the summer, about the time of the day of atonement and the feast of tabernacles. Jesus had a family meeting in Capernaum over the Sabbath and the next day started for Jerusalem with John the son of Zebedee, going to the east of the lake and by Gerasa and on down the Jordan valley. While he visited some with his companion on the way, John noted a great change in Jesus. 이제는 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 되었고, 속죄의 날과 초막(草幕)절 축제가 가까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가버나움Capernaum에서 가족모임을 가진 후, 다음 날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떠났습니다. 그들은 호수의 동쪽으로 가며 게라사Gerasa를 지나서 요단Jordan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가는 길에 예수께서 동행자와 함께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요한은 예수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눈치로 알아차렸습니다.

134:9.2 (1494.5) Jesus and John stopped overnight at Bethany with Lazarus and his sisters, going early the next morning to Jerusalem. They spent almost three weeks in and around the city, at least John did. Many days John went into Jerusalem alone while Jesus walked about over the near-by hills and engaged in many seasons of spiritual communion with his Father in heaven. 예수님과 요한은 베다니Bethany에서 나사로Lazarus와 그의 자매들과 함께 그날 밤 묵었으며, 다음 날 아침 일찍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거의 3주를 그 도성(都城)의 안과 근처에서 보냈는데, 적어도 요한은 그랬습니다. 요한은 여러 날 혼자서 예루살렘에 들어갔고, 한편 예수님은 근처에 있는 언덕을 거닐거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영적 교제를 여러 차례 가지셨습니다.

134:9.3 (1494.6) Both of them were present at the solemn services of the day of atonement. John was much impressed by the ceremonies of this day of all days in the Jewish religious ritual, but Jesus remained a thoughtful and silent spectator. To the Son of Man this performance was pitiful and pathetic. He viewed it all as misrepresentative of the character and attributes of his Father in heaven. He looked upon the doings of this day as a travesty upon the facts of divine justice and the truths of infinite mercy. He burned to give vent to the declaration of the real truth about his Father’s loving character and merciful conduct in the universe, but his faithful Monitor admonished him that his hour had not yet come. But that night, at Bethany, Jesus did drop numerous remarks which greatly disturbed John; and John never fully understood the real significance of what Jesus said in their hearing that evening. 두 사람 모두 속죄의 날의 엄숙한 경배에 참석하였습니다. 요한은 모든 유대 종교 의식의 날들 중 이날의 의식에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지만, 예수는 생각에 잠긴 채, 조용한 구경꾼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사람의 아들에게는 이제 이러한 일들이 가엾고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것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품과 속성을 잘못 나타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 날의 모든 행위들이 신적인 정의의 사실들과 무한한 자비의 진리들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를 낸 장면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이 넘치는 성품과 우주에서의 그분의 자비로우신 행위성에 대한 진정한 진리를 선포하고 싶은 열정에 타올랐지만, 신실한 감시자가 그에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베다니에서, 그가 제시하였던 많은 의견들로 인해 요한은 매우 혼란되었으며, 요한은 그날 밤 예수께서 그들이 들었던 것에 대해 하신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134:9.4 (1495.1) Jesus planned to remain throughout the week of the feast of tabernacles with John. This feast was the annual holiday of all Palestine; it was the Jewish vacation time. Although Jesus did not participate in the merriment of the occasion, it was evident that he derived pleasure and experienced satisfaction as he beheld the lighthearted and joyous abandon of the young and the old. 예수님은 초막절 축제 주간 내내 요한과 함께 남아 있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이 축제는 모든 팔레스타인에서 해마다 있었던 공휴일이었으며, 유대인들의 휴가철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은 그 절기(節氣)의 흥겨운 잔치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노소(老少)를 막론하고 아무 걱정 없이 기쁘게 마음껏 노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했으며 만족스러워 했음이 분명하였습니다.

134:9.5 (1495.2) In the midst of the week of celebration and ere the festivities were finished, Jesus took leave of John, saying that he desired to retire to the hills where he might the better commune with his Paradise Father. John would have gone with him, but Jesus insisted that he stay through the festivities, saying: “It is not required of you to bear the burden of the Son of Man; only the watchman must keep vigil while the city sleeps in peace.” Jesus did not return to Jerusalem. After almost a week alone in the hills near Bethany, he departed for Capernaum. On the way home he spent a day and a night alone on the slopes of Gilboa, near where King Saul had taken his life; and when he arrived at , he seemed more cheerful than when he had left John in Jerusalem. 경축하는 주간의 중간, 축제가 아직 끝나기도 전에, 예수님은 자신의 천국 아버지와 좀 더 긴밀한 교제하기를 위하여 언덕으로 물러나가겠다는 말을 하고 요한에게서 떠나가셨습니다. 요한이 그와 함께 가려고 하였으나 예수님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축제가 끝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도록 지시하셨습니다. “너는 사람의 아들의 짐을 지는 것이 요구되지 않느니라. 도시가 평화 속에 잠들어 있는 동안 파수꾼만이 밤새 지켜 있어야 하느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Jerusalem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베다니Bethany 근처에 있는 언덕에서 거의 일주일을 홀로 지낸 후, 그는 가버나움Capernaum으로 갔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사울 왕King Saul이 목숨을 버렸던 장소 가까이에 있는 길보아Gilboa산 기슭에서 하루 밤과 낮을 혼자 지냈으며, 그가 가버나움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예루살렘에서 요한을 떠났을 때보다도 더 쾌활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134:9.6 (1495.3) The next morning Jesus went to the chest containing his personal effects, which had remained in Zebedee’s workshop, put on his apron, and presented himself for work, saying, “It behooves me to keep busy while I wait for my hour to come.” And he worked several months, until January of the following year, in the boatshop, by the side of his brother James. After this period of working with Jesus, no matter what doubts came up to becloud James’s understanding of the lifework of the Son of Man, he never again really and wholly gave up his faith in the mission of Jesus. 다음 날 아침 예수님은 세베대의 작업소에 남겨 두었던 자신의 소지품이 들어있는 상자(箱子)로 가서 작업복을 꺼내 입고,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직접 작업에 참여하였습니다. “나의 때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바쁘게 지내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그는 이듬 해 1월까지 동생 야고보 곁, 배를 만드는 목공소에서, 몇 달 동안 일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일한 이 기간이 끝난 후부터, 야고보는 자신이 이해하기 힘든 사람의 아들의 일생의 과업에 대해 어떤 의심이 떠오르든지 상관없이, 결코 다시는 예수의 사명에 대한 신앙을 다시는 정말로 그리고 모두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134:9.7 (1495.4) During this final period of Jesus’ work at the boatshop, he spent most of his time on the interior finishing of some of the larger craft. He took great pains with all his handiwork and seemed to experience the satisfaction of human achievement when he had completed a commendable piece of work. Though he wasted little time upon trifles, he was a painstaking workman when it came to the essentials of any given undertaking. 배를 만드는 목공소에서 예수께서 마지막 작업을 하셨던 이 기간 동안, 그는 좀 더 큰 몇몇 배의 실내를 마무리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 훌륭한 배를 완성시켜 칭찬할만한 작품을 마쳤을 때 인간다운 성취의 만족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사소한 일들에는 거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지만, 맡은 일의 핵심이 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공을 많이 들이는 일꾼이셨습니다.

134:9.8 (1495.5) As time passed, rumors came to Capernaum of one John who was preaching while baptizing penitents in the Jordan, and John preached: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repent and be baptized.” Jesus listened to these reports as John slowly worked his way up the Jordan valley from the ford of the river nearest to Jerusalem. But Jesus worked on, making boats, until John had journeyed up the river to a point near Pella in the month of January of the next year, A.D. 26, when he laid down his tools, declaring, “My hour has come,” and presently presented himself to John for baptism. 시간이 지나자, 요단 강에서 회개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설교하는 어떤 요한이라는 사람의 소문이 가버나움에 도착했는데, 요한은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예수님은 요한이 활동을 하면서 예루살렘에 가장 가까운 강의 개울로부터 요단 계곡을 따라 거슬러 천천히 올라오고 있다는 이러한 소식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인 서기 26년 1월, 요한이 펠라Pella 가까이에 있는 지점까지 강을 따라 올라올 때까지, 예수님은 배를 만드는 일을 계속하였으며, 이 때 그는 연장을 내려놓고, “나의 때가 이르렀도다.”라고 선언하였고, 당장 세례를 받으러 요한 앞에 나섰습니다.

134:9.9 (1495.6) But a great change had been coming over Jesus. Few of the people who had enjoyed his visits and ministrations as he had gone up and down in the land ever subsequently recognized in the public teacher the same person they had known and loved as a private individual in former years. And there was a reason for this failure of his early beneficiaries to recognize him in his later role of public and authoritative teacher. For long years this transformation of mind and spirit had been in progress, and it was finished during the eventful sojourn on Mount Harmon. 그러나 엄청난 변화가 이미 예수님에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 지역의 땅들을 오가며 방문하고 봉사하며 보살폈던 사람들 중에서 거의 아무도, 나중에 대중을 가르치는 그 선생이 이전에, 그들이 사적인 한 개인으로 알고 지내며 사랑하였던 바로 그 동일한 사람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덕을 입은 사람들이, 그가 나중에 대중을 가르치는 권위 있는 선생 역할로 나타난 그의 모습을 이렇게 알아보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이러한 마음과 영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그것은 그 파란만장한 헤르몬Harmon 산에서의 체류 기간 동안에 완성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34-8 The Sojourn on Mount Hermon 헤르몬 산에서의 체류

8. The Sojourn on Mount Hermon 헤르몬 산에서의 체류

170208 수요 예수77 31세 AD25 헤르몬 산에서의 체류 마4:3-11

134:8.1 (1492.8) After spending some time in the vicinity of Caesarea-Philippi, Jesus made ready his supplies, and securing a beast of burden and a lad named Tiglath, he proceeded along the Damascus road to a village sometime known as Beit Jenn in the foothills of Mount Hermon. Here, near the middle of August, A.D. 25, he established his headquarters, and leaving his supplies in the custody of Tiglath, he ascended the lonely slopes of the mountain. Tiglath accompanied Jesus this first day up the mountain to a designated point about 6,000 feet above sea level, where they built a stone container in which Tiglath was to deposit food twice a week. 예수님은, 케자리아 빌립보Caesarea-Philippi 근처에서 얼마 동안을 지낸 후에, 생필품(生必品)들을 준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짐을 싣는 짐승과, 티글라스Tiglath라는 아이를 데리고 다마스쿠스Damascus 길을 따라 헤르몬Hermon 산기슭에 있는 한때 베이트 젠Beit Jenn이라고 알려진 마을로 나아갔습니다. 서기 25년 8월 중순 경 그곳에서 그는 본부를 정하고 물자들을 티글라스에게 맡긴 후, 인적이 드문 산비탈을 올라갔습니다. 그 첫째 날에 티글라스는 약 해발 6,000피트(1800미터) 되는 지점까지 예수님과 동행하였고, 그들은 그곳에 돌로 저장고를 지었으며, 티글라스가 일주일에 두 번씩 그곳에 음식을 갖다 놓기로 하였습니다.

134:8.2 (1493.1) The first day, after he had left Tiglath, Jesus had ascended the mountain only a short way when he paused to pray. Among other things he asked his Father to send back the guardian seraphim to “be with Tiglath.” He requested that he be permitted to go up to his last struggle with the realities of mortal existence alone. And his request was granted. He went into the great test with only his indwelling Adjuster to guide and sustain him. 첫 날, 티글라스를 보낸 후, 예수님은 산을 약간 더 올라가서 기도하기 위해 멈추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아버지에게 “티글라스와 함께 있도록” 수호 세라핌천사를 돌려보내기를 요청하셨습니다.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로서의 현실과 마지막 투쟁까지 홀로 감당하도록 허락해 주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 요청은 허락되었습니다. 그는 단지 그를 인도하고 지지하기 위해 내주하는 조절자와 함께 이 엄청난 시험에 들어갔습니다.

134:8.3 (1493.2) Jesus ate frugally while on the mountain; he abstained from all food only a day or two at a time. The superhuman beings who confronted him on this mountain, and with whom he wrestled in spirit, and whom he defeated in power, were real; they were his archenemies in the system of Satania; they were not phantasms of the imagination evolved out of the intellectual vagaries of a weakened and starving mortal who could not distinguish reality from the visions of a disordered mind. 예수님은 산에 있을 동안에 음식을 절약해서 드셨으며, 한 번에 하루나 이틀씩만 금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산에서 대면하였던 초인간 존재들과 영적으로 씨름을 하셨으며, 권능으로 물리쳤던 그 존재들은 실재했습니다. 그들은 사타니아Satania 체계에 있는 그의 대적(大敵)들이었으며, 마음 착란을 일으켜서 환상(幻想)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허약하고 굶주린 사람의 변덕스러운 지성에서 연유된 망상적 환영(幻影)들이 아니었습니다.

134:8.4 (1493.3) Jesus spent the last three weeks of August and the first three weeks of September on Mount Hermon. During these weeks he finished the mortal task of achieving the circles of mind-understanding and personality-control. Throughout this period of communion with his heavenly Father the indwelling Adjuster also completed the assigned services. The mortal goal of this earth creature was there attained. Only the final phase of mind and Adjuster attunement remained to be consummated. 예수님은 8월의 마지막 3주간과 9월의 첫 3주간을 헤르몬Hermon 산에서 지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예수님은 마음-이해와 고유성-조정의 순환계들을 성취하는 사람의 임무를 완료하셨습니다. 그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교제를 갖는 이 기간 동안, 내주 하는 조절자도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을 완료하였습니다. 이 지상의 창조체로서의 인간 목표는 그곳에서 달성되었습니다. 다만 마음과 조절자의 조율이라는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134:8.5 (1493.4) After more than five weeks of unbroken communion with his Paradise Father, Jesus became absolutely assured of his nature and of the certainty of his triumph over the material levels of time-space personality manifestation. He fully believed in, and did not hesitate to assert, the ascendancy of his divine nature over his human nature. 5주가 넘도록 천국 아버지와 중단 없는 친교를 나눈 뒤에, 예수님은 자신의 본성에 대하여 그리고 고유성이 시간-공간에 나타나는 물질적 차원을 확실히 극복했다는 승리의 확실성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성한 본성이 인간 본성의 상위에서 지배한다는 것을 충만하게 믿게 되었고, 주저 없이 그것을 주장하였습니다.

134:8.6 (1493.5) Near the end of the mountain sojourn Jesus asked his Father if he might be permitted to hold conference with his Satania enemies as the Son of Man, as Joshua ben Joseph. This request was granted. During the last week on Mount Hermon the great temptation, the universe trial, occurred. Satan (representing Lucifer) and the rebellious Planetary Prince, Caligastia, were present with Jesus and were made fully visible to him. And this “temptation,” this final trial of human loyalty in the face of the misrepresentations of rebel personalities, had not to do with food, temple pinnacles, or presumptuous acts. It had not to do with the kingdoms of this world but with the sovereignty of a mighty and glorious universe. The symbolism of your records was intended for the backward ages of the world’s childlike thought. And subsequent generations should understand what a great struggle the Son of Man passed through that eventful day on Mount Hermon. 산에서의 체류 기간이 끝나갈 무렵,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요셉의 아들 여호수아Joshua라는 사람의 아들로서 사타니아Satania에 있는 자신의 적들과 회의를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요청은 받아들여졌습니다. 헤르몬 산에서의 마지막 주간에, 엄청난 유혹, 우주적 시험(재판)이 벌어졌습니다. 사탄(루시퍼를 대변한)과 반역적인 행성왕자 칼리가스티아Caligastia가 예수님 앞으로 나왔고 그가 충분히 볼 수 있도록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 이 “유혹”, 반역적인 고유성들의 잘못된 대표 권한 앞에서 인간의 충성심에 대한 이 마지막 시험은 음식이나 성전의 꼭대기 또는 무엄한 행위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왕국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위력 있고 영광스러운 우주의 주권과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록으로 전해진 그 상징은, 유치하게 생각하는 진부한 시대의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후대의 세대들은 그 파란만장한 날에 헤르몬 산에서 사람의 아들이 겪어야 했던 투쟁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나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134:8.7 (1493.6) To the many proposals and counterproposals of the emissaries of Lucifer, Jesus only made reply: “May the will of my Paradise Father prevail, and you, my rebellious son, may the Ancients of Days judge you divinely. I am your Creator-father; I can hardly judge you justly, and my mercy you have already spurned. I commit you to the adjudication of the Judges of a greater universe.” 루시퍼의 사자(使者)들이 제시한 많은 제안들과 반대 제안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단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천국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반역을 일으키는 나의 아들인 너에게는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신적 판결이 있기를 바라노라. 나는 너의 창조주-아버지이다. 나는 너를 도저히 공정하게 판가름할 수 없으며, 너는 이미 나의 자비를 거절하였노라. 나는 너를 더 높은 우주의 재판관들의 판결에 맡기노라.

134:8.8 (1494.1) To all the Lucifer-suggested compromises and makeshifts, to all such specious proposals about the incarnation bestowal, Jesus only made reply, “The will of my Father in Paradise be done.” And when the trying ordeal was finished, the detached guardian seraphim returned to Jesus’ side and ministered to him. 루시퍼가 제안한 모든 절충안들과 미봉책들에 대하여, 성육신하신 증여에 대한 그럴듯한 모든 제안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오직, “천국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지어다.”라고 대답하실 뿐이었습니다. 시험적인 호된 시련이 끝나자, 떠나갔던 수호 성(聖)천사가 예수의 곁으로 돌아와서 그를 섬겼습니다.

134:8.9 (1494.2) On an afternoon in late summer, amid the trees and in the silence of nature, Michael of Nebadon won the unquestioned sovereignty of his universe. On that day he completed the task set for Creator Sons to live to the full the incarnated life in the likeness of mortal flesh on the evolutionary worlds of time and space. The universe announcement of this momentous achievement was not made until the day of his baptism, months afterward, but it all really took place that day on the mountain. And when Jesus came down from his sojourn on Mount Hermon, the Lucifer rebellion in Satania and the Caligastia secession on Urantia were virtually settled. Jesus had paid the last price required of him to attain the sovereignty of his universe, which in itself regulates the status of all rebels and determines that all such future upheavals (if they ever occur) may be dealt with summarily and effectively. Accordingly, it may be seen that the so-called “great temptation” of Jesus took place sometime before his baptism and not just after that event. 늦은 여름의 어느 날 오후, 나무들로 둘러싸인 자연의 정적 속에서, 네바돈의 미가엘은 자신의 우주의 절대적 주권을 성취하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진화하는 세상에서 창조주 아들들이 인간의 육신과 같은 모습으로 성육신한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임무를, 그는 바로 그 날에 완성하셨습니다. 이 감격적인 성취에 대한 우주의 발표는 그로부터 몇 달 후에 있었던 그의 세례의 날까지 미루어졌지만, 그 모든 것은 산에서 그날 실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께서 헤르몬 산에서 내려왔을 때, 사타니아에서의 루시퍼의 반란과 지구(유란시아)에서의 칼리가스티아의 탈퇴는 실제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우주 주권을 갖기 위하여 그에게 요구되어진 마지막 값을 이미 지불하였으며, 그것은 그 자체적으로 모든 반역 현상들을 통제하고, 그러한 모든 미래의 격변들이 (그런 것들이 만약 발생한다면) 즉시 효과적으로 다루어지도록 정해졌습니다. 따라서 소위 예수님의 “큰 시험”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의 세례 직후가 아니라 세례 이전에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134:8.10 (1494.3) At the end of this sojourn on the mountain, as Jesus was making his descent, he met Tiglath coming up to the rendezvous with food. Turning him back, he said only: “The period of rest is over; I must return to my Father’s business.” He was a silent and much changed man as they journeyed back to Dan, where he took leave of the lad, giving him the donkey. He then proceeded south by the same way he had come, to Capernaum.산에서의 체류를 끝내고 예수께서 하산하실 때, 그는 음식을 가지고 올라오던 티글라스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되돌려 보내며 단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휴식기간이 끝났고 나는 아버지의 일을 위해 돌아가야만 하노라.” 그들이 단으로 돌아갈 때 그는 아무 말이 없었으며, 많이 변화된 상태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소년에게 당나귀를 주고 그와 작별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가 왔던 같은 길을 따라 남쪽 방향의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134-7 The Thirty-First Year (A.D. 25) 31세 되던 해 (서기 25년)

7. The Thirty-First Year (A.D. 25) 31세 되던 해 (서기 25년)

170201 수요 예수76 (31세-AD25) 31세 되시던 해(서기 25년) 눅4:1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하여 요단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134:7.1 (1492.1) When Jesus returned from the journey to the Caspian Sea, he knew that his world travels were about finished. He made only one more trip outside of Palestine, and that was into Syria. After a brief visit to Capernaum, he went to Nazareth, stopping over a few days to visit. In the middle of April he left Nazareth for Tyre. From there he journeyed on north, tarrying for a few days at Sidon, but his destination was Antioch. 예수께서 카스피Caspian 해(海)로 떠났던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세상 여행이 거의 끝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팔레스타인Palestine 밖으로 여행한 것은 한 번밖에는 더 이상 없었는데, 그것은 시리아Syria로 간 것이었습니다. 가버나움Capernaum을 잠시 방문한 후, 그는 나사렛Nazareth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습니다. 4월 중순에 그는 티레Tyre를 향하여 나사렛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북쪽으로 여행하여 시돈Sidon에 며칠 동안 머물렀지만, 그의 목적지는 안디옥Antioch이었습니다.

134:7.2 (1492.2) This is the year of Jesus’ solitary wanderings through Palestine and Syria. Throughout this year of travel he was known by various names in different parts of the country: the carpenter of Nazareth, the boatbuilder of Capernaum, the scribe of Damascus, and the teacher of Alexandria. 이 해에 예수님은 홀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이 해의 여행을 통하여, 그는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나사렛Nazareth의 목수, 가버나움Capernaum의 배 건조자, 다마스쿠스Damascus의 서기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선생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134:7.3 (1492.3) At Antioch the Son of Man lived for over two months, working, observing, studying, visiting, ministering, and all the while learning how man lives, how he thinks, feels, and reacts to the environment of human existence. For three weeks of this period he worked as a tentmaker. He remained longer in Antioch than at any other place he visited on this trip. Ten years later, when the Apostle Paul was preaching in Antioch and heard his followers speak of the doctrines of the Damascus scribe, he little knew that his pupils had heard the voice, and listened to the teachings, of the Master himself. 안디옥Antioch에서 사람의 아들은 일하고, 관찰하고, 공부하고, 방문하고, 봉사하면서 두 달이 넘도록 살았고, 그 동안 계속,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며, 어떻게 인간 존재의 환경에 반응하는가를 배웠습니다. 이 기간 중 3주 동안, 그는 천막 짓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 해의 여행에서 방문했던 다른 어떤 곳보다, 안디옥에 더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10년 후, 사도 바울이 안디옥에서 설교하면서, 추종자들이 다마스쿠스 서기관Damascus scribe의 신조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의 생도들이 바로 그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134:7.4 (1492.4) From Antioch Jesus journeyed south along the coast to Caesarea, where he tarried for a few weeks, continuing down the coast to Joppa. From Joppa he traveled inland to Jamnia, Ashdod, and Gaza. From Gaza he took the inland trail to Beersheba, where he remained for a week. 예수님은 안디옥에서 케자리아Caesarea를 향하여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여행하였고, 그곳에서 몇 주를 머문 후 계속해서 해변을 따라 요파Joppa로 내려갔습니다. 요파에서 그는 잠니아Jamnia, 아쉬돗Ashdod, 가자Gaza를 향하여 내륙으로 여행하였습니다. 가자에서부터 그는 내륙 도로를 택하여 비엘세바Beersheba로 갔고 그곳에서 일 주일동안 머물렀습니다.

134:7.5 (1492.5) Jesus then started on his final tour, as a private individual, through the heart of Palestine, going from Beersheba in the south to Dan in the north. On this journey northward he stopped at Hebron, Bethlehem (where he saw his birthplace), Jerusalem (he did not visit Bethany), Beeroth, Lebonah, Sychar, Shechem, Samaria, Geba, En-Gannim, Endor, Madon; passing through Magdala and Capernaum, he journeyed on north; and passing east of the Waters of Merom, he went by Karahta to Dan, or Caesarea-Philippi. 그 후 예수님은 사적(私的)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나셨는데, 팔레스타인Palestine의 심장부를 거쳐서, 남쪽에 비엘세바Beersheba로부터 북쪽으로 단Dan까지 갔습니다. 북쪽으로 가는 이 여행에서, 그는 헤브론Hebron•베들레헴Bethlehem (여기서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곳을 보았습니다)•예루살렘Jerusalem(베다니Bethany에는 들리지 않았습니다)•비어롯Beeroth•레보나Lebonah•시카Sychar•세켐Shechem•사마리아Samaria•게바Geba•엔가님En-Gannim•엔도르Endor•마돈Madon을 들렀습니다. 그는 막달라Magdala와 가버나움Capernaum을 지나서, 북쪽으로 줄곧 여행했습니다. 메롬Merom의 우물 동쪽을 지나서, 가라타Karahta의 길로 단Dan, 곧 케자리아 빌립비Caesarea-Philippi로 갔습니다.

134:7.6 (1492.6) The indwelling Thought Adjuster now led Jesus to forsake the dwelling places of men and betake himself up to Mount Hermon that he might finish his work of mastering his human mind and complete the task of effecting his full consecration to the remainder of his lifework on earth. 내주하는 생각 조절자는 이제 사람들의 거처를 떠나 헤르몬Hermon 산으로 가도록 예수님을 인도하였고, 그 위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인간 마음의 숙달을 마쳤으며, 이 땅에서 남은 일생의 사명에 충만히 헌신하는 과제를 완수하셨습니다.

134:7.7 (1492.7) This was one of those unusual and extraordinary epochs in the Master’s earth life on Urantia. Another and very similar one was the experience he passed through when alone in the hills near Pella just subsequent to his baptism. This period of isolation on Mount Hermon marked the termination of his purely human career, that is, the technical termination of the mortal bestowal, while the later isolation marked the beginning of the more divine phase of the bestowal. And Jesus lived alone with God for six weeks on the slopes of Mount Hermon. 이 때는 유란시아(지구)에서의 주님의 지상 일생에 있어서 드문, 특별한 기간이었습니다. 매우 비슷한 또 하나의 기간은, 세례를 받고 난 바로 뒤에, 주님께서 펠라Pella 근처 작은 산에서 혼자 있을 때 거쳤던 체험이었습니다. 헤르몬Hermon 산에서 이러한 고립 기간은 그의 순수한 인간적 생애의 종료,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수여 절차가 종결되었다는 표지였습니다. 반면에 나중에 있었던 고립기간은 자신을 내어주는 수여에 있어서 더욱 신적인 단계가 시작되었다는 표지였습니다. 예수님은 헤르몬 산기슭에서 6주 동안 홀로 하나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134-6 Law, Liberty, and Sovereignty 법, 자유, 그리고 주권

6. Law, Liberty, and Sovereignty 법, 자유, 그리고 주권

170125 수요 예수75 (30세-AD24) 법, 자유, 주권 눅21:9-10 9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10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34:6.1 (1490.4) If one man craves freedom — liberty — he must remember that all other men long for the same freedom. Groups of such liberty-loving mortals cannot live together in peace without becoming subservient to such laws, rules, and regulations as will grant each person the same degree of freedom while at the same time safeguarding an equal degree of freedom for all of his fellow mortals. If one man is to be absolutely free, then another must become an absolute slave. And the relative nature of freedom is true socially, economically, and politically. Freedom is the gift of civilization made possible by the enforcement of LAW. 한 사람이 자유(해방)를 열망한다면,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역시 자기와 똑같은 자유를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해방을 사랑하는 그런 사람들의 집단은, 각 사람에게 같은 정도의 자유를 허락하는 동시에 그의 동료 모든 사람들에게도 같은 양의 자유를 보장해줄, 법과 규칙 그리고 규정들을 지키지 않고서는 함께 평화롭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되려면, 또 다른 한 사람은 절대적인 노예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유의 상대적인 속성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참됩니다. 자유는 법 집행으로 누릴 수 있는 문명의 선물입니다.

134:6.2 (1490.5) Religion makes it spiritually possible to realize the brotherhood of men, but it will require mankind government to regulate the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problems associated with such a goal of human happiness and efficiency. 종교는 사람의 형제 정신의 실현을 영적으로 가능하게 하지만, 그러한 인간의 행복이나 효율성에 관계되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문제들을 규정하는 인류 전체의 정부(政府)가 필요할 것입니다.

134:6.3 (1490.6) There shall be wars and rumors of wars — nation will rise against nation — just as long as the world’s political sovereignty is divided up and unjustly held by a group of nation-states. England, Scotland, and Wales were always fighting each other until they gave up their respective sovereignties, reposing them in the United Kingdom. 세상의 정치적 주권이 분리되어 있으며, 국가-주정부들 집단이 불공정하게 차지하는 한, 전쟁이 있고, 전쟁의 소문이 있을 것이다. – 나라와 나라가 대항하여 일어날 것입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웨일즈는 그들이 각자의 주권을 영연방(英聯邦)에 위임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134:6.4 (1490.7) Another world war will teach the so-called sovereign nations to form some sort of federation, thus creating the machinery for preventing small wars, wars between the lesser nations. But global wars will go on until the government of mankind is created. Global sovereignty will prevent global wars — nothing else can. 또 다른 세계 전쟁을 통해, 소위 말하는 주권 국가들은 어떤 종류의 연합정부를 형성해야 하는 지 배우게 될 것이며, 그렇게 해서 작은 전쟁, 약소국가들 사이의 전쟁을 예방하는 기구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전쟁은 인류 전체의 정부가 생길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지구 전체의 통제권이 세계적 전쟁들을 방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134:6.5 (1490.8) The forty-eight American free states live together in peace. There are among the citizens of these forty-eight states all of the various nationalities and races that live in the ever-warring nations of Europe. These Americans represent almost all the religions and religious sects and cults of the whole wide world, and yet here in North America they live together in peace. And all this is made possible because these forty-eight states have surrendered their sovereignty and have abandoned all notions of the supposed rights of self-determination. 미국의 독립된 48개의 주는 평화를 유지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 48개 주들의 시민들 중에는, 항상 전쟁에 시달리는 유럽의 국가들에 살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국적과 인종들도 섞여 있습니다. 이 미국(美國)인들은 전 세계 모든 종교들과 종교적 종파(宗派)들을 대표하고 있지만, 그들은 이 북미(北美) 지역에서 평화롭게 함께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은 이 48개 주들이 자신들의 주권을 포기하고 자체적 결정 권리에 대한 모든 개념을 버렸기 때문에 가능해졌습니다.

134:6.6 (1490.9) It is not a question of armaments or disarmament. Neither does the question of conscription or voluntary military service enter into these problems of maintaining world-wide peace. If you take every form of modern mechanical armaments and all types of explosives away from strong nations, they will fight with fists, stones, and clubs as long as they cling to their delusions of the divine right of national sovereignty. 그것은 무장(武裝)과 비무장(非武裝)의 문제가 아닙니다. 징병제도 혹은 자발적 군대 복무를 선택하는 문제도 세계평화를 유지하는 이러한 문제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강대국들로부터 현대의 기계화된 무기(武器)들과 모든 유형의 폭탄들을 다 빼앗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국가적 주권을 신(神)이 준 권리라는 망상에 붙들려 있는 한, 그들은 주먹과 돌과 방망이를 가지고라도 싸울 것입니다.

134:6.7 (1491.1) War is not man’s great and terrible disease; war is a symptom, a result. The real disease is the virus of national sovereignty. 전쟁은 사람이 지닌 중대하고 끔직한 병이 아닙니다. 전쟁은 증상이며 결과입니다. 진짜 병은 국가적 주권이라는 바이러스입니다.

134:6.8 (1491.2) Urantia nations have not possessed real sovereignty; they never have had a sovereignty which could protect them from the ravages and devastations of world wars. In the creation of the global government of mankind, the nations are not giving up sovereignty so much as they are actually creating a real, bona fide, and lasting world sovereignty which will henceforth be fully able to protect them from all war. Local affairs will be handled by local governments; national affairs, by national governments; international affairs will be administered by global government. 이 땅의 국가들은 진정한 주권을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세계적 전쟁들의 참상과 황폐함에서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주권(主權)을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범세계적인 인류 전체 정부를 구성하면서, 국가들은 주권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진실하며 지속적으로, 이후로는 모든 전쟁으로부터 자신들을 충분히 보호해 주는 줄 수 있는 세계적 주권을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역 문제들은 지역 정부가, 국가적 문제들은 국가 정부가 처리하고, 국제적 문제들은 범세계 정부가 관리할 것입니다.

134:6.9 (1491.3) World peace cannot be maintained by treaties, diplomacy, foreign policies, alliances, balances of power, or any other type of makeshift juggling with the sovereignties of nationalism. World law must come into being and must be enforced by world government — the sovereignty of all mankind. 세계평화는, 조약(條約), 외교, 대외 정책, 연맹, 힘의 균형, 혹은 민족주의적 주권으로 조작하는 어떤 다른 유형의 미봉책으로도 유지될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통용되는 법이 만들어져, 그것은 세계정부─모든 인류의 주권─에 의해 집행되어야 합니다.

134:6.10 (1491.4) The individual will enjoy far more liberty under world government. Today, the citizens of the great powers are taxed, regulated, and controlled almost oppressively, and much of this present interference with individual liberties will vanish when the national governments are willing to trustee their sovereignty as regards international affairs into the hands of global government. 세계 정부 아래에서 개인은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오늘날 강대국의 시민들은 거의 강제적으로 세금(稅金)을 징수 당하고, 제약 받고, 통제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재의 개인의 자유에 대한 대부분의 간섭은, 국가정부가 기꺼이 국제적 문제들에 관하여 그들의 주권을 범세계적 정부에게 맡길 때 사라질 것입니다.

134:6.11 (1491.5) Under global government the national groups will be afforded a real opportunity to realize and enjoy the personal liberties of genuine democracy. The fallacy of self-determination will be ended. With global regulation of money and trade will come the new era of world-wide peace. Soon may a global language evolve, and there will be at least some hope of sometime having a global religion — or religions with a global viewpoint. 범세계적 정부 아래에서 국가 집단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개인적 자유를 실현하고 누릴 진정한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자체적인-결정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돈과 무역에 대한 범세계적 차원의 규제에 의해서 세계적 평화의 새로운 시대가 다가올 것입니다. 곧 범세계적 언어가 진화되고, 적어도 범세계적 종교 혹은 범세계적 관점을 가진 종교들을 언젠가 소유하게 된다는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134:6.12 (1491.6) Collective security will never afford peace until the collectivity includes all mankind. 집단의 안전은 그 집합체가 온 인류를 포함할 때까지는, 결코 평화를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134:6.13 (1491.7) The political sovereignty of representative mankind government will bring lasting peace on earth, and the spiritual brotherhood of man will forever insure good will among all men. And there is no other way whereby peace on earth and good will among men can be realized. 인류를 대표하는 정부(政府)의 정치적 주권은 지구에 영원한 평화를 가져올 것이며, 사람의 영적 형제신분은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선의(善意)를 언제까지나 보장할 것입니다. 지상의 평화와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뜻이 실현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 ~ ~ ~

134:6.15 (1491.8) After the death of Cymboyton, his sons encountered great difficulties in maintaining a peaceful faculty. The repercussions of Jesus’ teachings would have been much greater if the later Christian teachers who joined the Urmia faculty had exhibited more wisdom and exercised more tolerance. 심보이톤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들은 평화스러운 교수진을 유지해 나가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만약 우르미아 교수진에 들어간 후대의 기독교 선생들이 좀 더 지혜롭고 좀 더 관대했더라면, 예수님의 가르침의 반향은 훨씬 더 컸을 것입니다.

134:6.16 (1491.9) Cymboyton’s eldest son had appealed to Abner at Philadelphia for help, but Abner’s choice of teachers was most unfortunate in that they turned out to be unyielding and uncompromising. These teachers sought to make their religion dominant over the other beliefs. They never suspected that the oft-referred-to lectures of the caravan conductor had been delivered by Jesus himself. 심보이톤Cymboyton의 맏아들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 있는 아브너Abner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브너가 선택한 선생들은 고집이 세고 완고한 자들로 드러나 가장 유감스럽게 되었습니다. 이 선생들은 자신들의 종교로 다른 믿음들을 지배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들은 대상caravan의 지휘자라고 불리는 사람의 강의(講義)가, 예수님 자신이 강연했었던 것이라고는 결코 추측도 하지 못했습니다.

134:6.17 (1491.10) As confusion increased in the faculty, the three brothers withdrew their financial support, and after five years the school closed. Later it was reopened as a Mithraic temple and eventually burned down in connection with one of their orgiastic celebrations. 교수진 사이에서 혼란이 커지자, 세 형제들은 그들의 재정 지원을 끊었고, 5년 뒤에 그 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나중에 그 학교는 미트라 신전(神殿)으로 다시 문을 열었으나 결국 주신(酒神) 축제들의 하나와 연관되어 불에 타버렸습니다.

134-5 Political Sovereignty 정치적 주권

5. Political Sovereignty 정치적 주권

170118 수요 예수74 (30세-AD24) 정치적 주권 단4:25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134:5.1 (1487.8) [While the Master’s teaching concerning the sovereignty of God is a truth — only complicated by the subsequent appearance of the religion about him among the world’s religions — his presentations concerning political sovereignty are vastly complicated by the political evolution of nation life during the last nineteen hundred years and more. In the times of Jesus there were only two great world powers — the Roman Empire in the West and the Han Empire in the East — and these were widely separated by the Parthian kingdom and other intervening lands of the Caspian and Turkestan regions. We have, therefore, in the following presentation departed more widely from the substance of the Master’s teachings at Urmia concerning political sovereignty, at the same time attempting to depict the import of such teachings as they are applicable to the peculiarly critical stage of the evolu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in the twentieth century after Christ.][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주(主)의 가르침은 진리입니다. 다만 세상 종교들 사이에서 그에 관한 종교가 나중에 출현되어 단지 복잡해졌을 뿐입니다. 반면에, 정치적 주권에 관한 주님의 발표는 지난 1,900여 년 동안에 국가 생활의 정치적 진화에 의하여 광범위하게 복잡해졌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단지 두 개의 세계적인 강국들 – 서양의 로마제국과 동양의 한(漢) 제국─이 있었을 뿐이며, 이 두 제국은 파르티아Parthian 왕국과 카스피Caspian와 투루키스탄Turkestan 지역의 다른 국가들 때문에 널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의 발표가 정치적 주권에 관해 우르미아Urmia에서 주(主)님께서 가르치신 내용과 동떨어져 있지만, 동시에 그리스도 이후 20세기에 정치적 주권이 진화하는 특별한 결정적 단계에 주님의 가르침이 적용되도록 그 가르침의 의미를 서술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134:5.2 (1487.9) War on Urantia will never end so long as nations cling to the illusive notions of unlimited national sovereignty. There are only two levels of relative sovereignty on an inhabited world: the spiritual free will of the individual mortal and the collective sovereignty of mankind as a whole. Between the level of the individual human being and the level of the total of mankind, all groupings and associations are relative, transitory, and of value only in so far as they enhance the welfare, well-being, and progress of the individual and the planetary grand total — man and mankind. 국가가 무제한적인 국가 주권(主權)을 가지고 있다는 허상에 집착하는 한, 이 땅에서 전쟁은 결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세계에는 오직 두 가지 차원의 상대적 주권만이 있을 뿐인데 바로 인간 개개인의 영적 자유의지와 인류 전체의 집합적 주권입니다. 개별 인간 존재의 차원과 인류 전체의 차원 사이에서, 모든 단체와 연합들은 상대적이고 일시적이며 오직 그들이 개별존재와 행성 전체 즉 사람과 인류의 복지와 안녕 그리고 진보를 향상(向上)시키는 경우에만 가치가 있을 뿐입니다.

134:5.3 (1488.1) Religious teachers must always remember that the spiritual sovereignty of God overrides all intervening and intermediate spiritual loyalties. Someday civil rulers will learn that the Most Highs rule in the kingdoms of men. 종교 교사들은 하나님의 영적 통치권이, 중재하고 중개하는 모든 영적 충성심에 우선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만 합니다. 시민 정부의 통치자들은 사람의 왕국들을 통치하는 지고자들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입니다.

134:5.4 (1488.2) This rule of the Most Highs in the kingdoms of men is not for the especial benefit of any especially favored group of mortals. There is no such thing as a “chosen people.” The rule of the Most Highs, the overcontrollers of political evolution, is a rule designed to foster the greatest good to the greatest number of all men and for the greatest length of time. 사람들의 나라 안에 있는 지고자the Most Highs들의 이 통치는 특별히 혜택을 누리는 어떤 사람들 단체의 특별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선택받은 민족”과 같은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고자들, 즉 정치적 진화를 위에서 총괄하는 분들의 통치는 최다수(最多數)에게, 최장(最長) 기간에, 최대의 이익을 주도록 설계된 법칙입니다.

134:5.5 (1488.3) Sovereignty is power and it grows by organization. This growth of the organization of political power is good and proper, for it tends to encompass ever-widening segments of the total of mankind. But this same growth of political organizations creates a problem at every intervening stage between the initial and natural organization of political power — the family — and the final consummation of political growth — the government of all mankind, by all mankind, and for all mankind. 주권(主權)은 권력이며 그것은 조직에 의하여 성장합니다. 이러한 정치적 권력 조직의 성장은 유익하고 바람직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인류 전체의 가장 넓은 부분들을 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정치조직의 성장은, 초기의 자연스러운 정치권력 – 가족(家族) – 의 조직과 최종적인 정치적 성장의 성취 – 모든 인류의, 모든 인류에 의한, 모든 인류를 위한 – 사이에 있는 모든 중간 단계마다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134:5.6 (1488.4) Starting out with parental power in the family group, political sovereignty evolves by organization as families overlap into consanguineous clans which become united, for various reasons, into tribal units — superconsanguineous political groupings. And then, by trade, commerce, and conquest, tribes become unified as a nation, while nations themselves sometimes become unified by empire. 가족 집단 속에 있는 부모의 권력으로부터 출발하여, 정치적 주권은 조직에 의해 진화합니다. 가족들이 혈연관계의 씨족으로 이어지고, 씨족들은 여러 이유로 부족(部族) 단위 -혈연관계를 초월한 정치적 집단들 –로 연합됩니다. 그런 다음, 무역과 상업 그리고 정복을 통해 부족들이 하나의 국가로 연합되고, 국가들 자체는 때때로 제국으로 연합됩니다.

134:5.7 (1488.5) As sovereignty passes from smaller groups to larger groups, wars are lessened. That is, minor wars between smaller nations are lessened, but the potential for greater wars is increased as the nations wielding sovereignty become larger and larger. Presently, when all the world has been explored and occupied, when nations are few, strong, and powerful, when these great and supposedly sovereign nations come to touch borders, when only oceans separate them, then will the stage be set for major wars, world-wide conflicts. So-called sovereign nations cannot rub elbows without generating conflicts and eventuating wars. 소규모의 집단에서 대규모의 집단으로 주권이 넘어감에 따라 전쟁은 줄어듭니다. 다시 말해서, 작은 국가들 간의 사소한 전쟁들은 줄어드는 반면에, 주권을 행사하는 국가들은 커갈수록 더 큰 전쟁이 일어날 잠재성이 증가합니다. 당장에 온 세상이 탐험되어 점령되고, 나라들의 수가 얼마 안 되지만 강하고 강력하며, 이러한 엄청난 주권을 지닌 나라들의 국경이 서로 이웃하게 되고, 대양(大洋)으로만 겨우 나라들이 분리되어 있다면, 대규모의 전쟁, 즉 세계적인 충돌을 위한 무대가 준비될 것입니다. 소위 주권을 가진 국가들은, 갈등이 일어나 결국 전쟁하지 않고는 서로 잘 지낼 수 없습니다.

134:5.8 (1488.6) The difficulty in the evolu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from the family to all mankind, lies in the inertia-resistance exhibited on all intervening levels. Families have, on occasion, defied their clan, while clans and tribes have often been subversive of the sovereignty of the territorial state. Each new and forward evolu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is (and has always been) embarrassed and hampered by the “scaffolding stages” of the previous developments in political organization. And this is true because human loyalties, once mobilized, are hard to change. The same loyalty which makes possible the evolution of the tribe, makes difficult the evolution of the supertribe — the territorial state. And the same loyalty (patriotism) which makes possible the evolution of the territorial state, vastly complicates the evolutionary development of the government of all mankind. 가족으로부터 전체 인류로 확대되는 정치적 주권의 진화에서 겪는 어려움은, 중간에 개입하는 모든 차원에서 나타나는 관성(慣性)과 저항 안에 놓여 있습니다. 가족들은 경우에 따라 자기들의 씨족에게 도전해 왔으며, 반면에 씨족들과 부족들은 지역 국가의 주권을 종종 전복해왔습니다. 정치적 주권의 진화가 각각 새롭게 나아가는 경우 항상 언제나 그래왔지만, 정치적 조직에서, 이전에 개발된 “발판 단계”로 인해 난처해지고 방해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인 이유는, 일단 동원되면, 인간의 충성심은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족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던 바로 그 충성심은 부족을 초월한 – 지역 국가 – 진화를 어렵게 합니다. 그리고 지역적 국가의 진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동일한 충성심(애국심)이 모든 인류 정부의 진화적 발전을 매우 복잡하게 만듭니다.

134:5.9 (1488.7) Political sovereignty is created out of the surrender of self-determinism, first by the individual within the family and then by the families and clans in relation to the tribe and larger groupings. This progressive transfer of self-determination from the smaller to ever larger political organizations has generally proceeded unabated in the East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Ming and the Mogul dynasties. In the West it obtained for more than a thousand years right on down to the end of the World War, when an unfortunate retrograde movement temporarily reversed this normal trend by re-establishing the submerged political sovereignty of numerous small groups in Europe. 정치적 주권은, 처음에는 가족 안에서 개인이, 다음에는 부족 및 더 큰 집합과 관계된 가족과 씨족들이, 자결(자아결정)주의를 버림으로 만들어집니다. 작은 데서부터 항상 더 큰 정치 조직으로 자결(自決)을 이렇게 진취적으로 양도(讓渡)하는 것은 명(明) 나라와 몽고 왕조가 세워진 뒤로, 동양에서는 대체로 줄어들지 않고 진행되었습니다. 서양에서 그것은, 1천 년이 넘도록, 바로 세계 대전(大戰)이 끝날 때까지 진행되었고, 이 때 유럽에서 수많은 작은 집단들이, 사라졌던 정치적 주권을 다시 확립함으로써, 불행한 역행(逆行) 운동이 이 정상(正常)적인 경향을 일시에 바꿔 놓았습니다.

134:5.10 (1489.1) Urantia will not enjoy lasting peace until the so-called sovereign nations intelligently and fully surrender their sovereign powers into the hands of the brotherhood of men — mankind government. Internationalism — Leagues of Nations — can never bring permanent peace to mankind. World-wide confederations of nations will effectively prevent minor wars and acceptably control the smaller nations, but they will not prevent world wars nor control the three, four, or five most powerful governments. In the face of real conflicts, one of these world powers will withdraw from the League and declare war. You cannot prevent nations going to war as long as they remain infected with the delusional virus of national sovereignty. Internationalism is a step in the right direction. An international police force will prevent many minor wars, but it will not be effective in preventing major wars, conflicts between the great military governments of earth. 이른바 주권 국가들이 그 주권의 권력을 사람의 형제 정신―인류 정부―의 손에 총명하게, 완전히 내어주기까지, 지구는 오래 지속되는 평화를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국제주의―국제 연맹―은 결코 인류에게 영구한 평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나라들의 세계적 연방들이 작은 전쟁을 효과적으로 막고 작은 나라들을 만족스럽게 통제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방들은 세계 전쟁을 방지하거나, 초강대국 서넛이나 다섯을 통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실제적인 갈등에 직면하게 되면, 이 강대국들 가운데 하나가 연맹으로부터 탈퇴하고 전쟁을 선포할 것입니다. 국가가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망상(妄想)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 한, 국가들 간의 전쟁을 미리 예방할 수 없습니다. 국제주의는 올바른 방향에로의 첫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국제 경찰력은 많은 작은 전쟁을 방지하겠지만, 이 세상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정부들 사이의 갈등인 큰 전쟁을 방지하는 데에는 효력이 없을 것입니다.

134:5.11 (1489.2) As the number of truly sovereign nations (great powers) decreases, so do both opportunity and need for mankind government increase. When there are only a few really sovereign (great) powers, either they must embark on the life and death struggle for national (imperial) supremacy, or else, by voluntary surrender of certain prerogatives of sovereignty, they must create the essential nucleus of supernational power which will serve as the beginning of the real sovereignty of all mankind. 참으로 주권을 가진 국가(강대국)의 수가 줄어드는 데 따라서, 인류 정부의 기회와 필요가 늘어납니다. 정말로 주권을 가진 (큰) 강국들이 겨우 몇 나라만 있을 때는, 민족(제국) 우위성을 얻으려고 생사를 건 싸움을 시작하든지, 아니면, 주권의 특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하여, 인류의 참된 주권의 시작으로서 사용될 초국가 권력의 필수 핵심(核心)을 만들어야 합니다.

134:5.12 (1489.3) Peace will not come to Urantia until every so-called sovereign nation surrenders its power to make war into the hands of a representative government of all mankind. Political sovereignty is innate with the peoples of the world. When all the peoples of Urantia create a world government, they have the right and the power to make such a government SOVEREIGN; and when such a representative or democratic world power controls the world’s land, air, and naval forces, peace on earth and good will among men can prevail — but not until then. 소위 주권 국가가 모두 전쟁을 수행할 권력을 인류의 대표 정부에게 양보할 때까지, 평화는 지구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적 주권은 세계의 여러 민족에게 타고난 것입니다. 지구의 모든 민족이 하나의 세계 정부를 창립할 때, 그들은 그러한 정부가 주권을 갖도록 할 권한과 권력이 있습니다. 그러한 대표적 또는 민주적 세계 권력이 지구에서 세계의 육군•해군•공군을 통제할 때, 땅에 평화가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 선의(善意)가 지배할 것입니다. – 그러나 그 때까지는 불가능합니다.

134:5.13 (1489.4) To use an important nineteenth- and twentieth-century illustration: The forty-eight states of the American Federal Union have long enjoyed peace. They have no more wars among themselves. They have surrendered their sovereignty to the federal government, and through the arbitrament of war, they have abandoned all claims to the delusions of self-determination. While each state regulates its internal affairs, it is not concerned with foreign relations, tariffs, immigration, military affairs, or interstate commerce. Neither do the individual states concern themselves with matters of citizenship. The forty-eight states suffer the ravages of war only when the federal government’s sovereignty is in some way jeopardized. 19세기 및 20세기의 중요한 예를 하나 들어본다면, 아메리카 연방의 48주는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이제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권을 연방 정부에게 넘겨주었고, 전쟁의 중재를 통해서, 자체적 결정권이라는 망상에 대한 모든 주장을 버렸습니다. 각 주(州)정부가 그 내부(內部) 사무를 규제하지만, 외교 관계, 관세, 이민, 군사(軍事) 또는 주정부 간의 통상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개별 주(州)는 시민권의 문제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48주는 오직 연방 정부의 주권이 어떤 면에서 위협을 받을 때에만 전쟁의 참화(慘禍)를 겪게 됩니다.

134:5.14 (1489.5) These forty-eight states, having abandoned the twin sophistries of sovereignty and self-determination, enjoy interstate peace and tranquillity. So will the nations of Urantia begin to enjoy peace when they freely surrender their respective sovereignties into the hands of a global government — the sovereignty of the brotherhood of men. In this world state the small nations will be as powerful as the great, even as the small state of Rhode Island has its two senators in the American Congress just the same as the populous state of New York or the large state of Texas. 이 48주는 주권과 자체 결정권이라는 두 가지 궤변을 버렸고, 주 사이에서 평화와 평온을 누립니다. 마찬가지로 지구의 국가들도 각자의 주권을 세계 정부 – 사람의 형제 정신의 주권 – 에 자유롭게 양보할 때 평화를 누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인구가 많은 뉴욕 주나 큰 텍사스 주와 똑같이, 작은 로드 아이랜드 주가 미국 국회에 상원(上院) 의원 두 명을 가진 것처럼, 이 세계 국가에서 작은 나라들은 큰 나라만큼 강력해질 것입니다.

134:5.15 (1490.1) The limited (state) sovereignty of these forty-eight states was created by men and for men. The superstate (national) sovereignty of the American Federal Union was created by the original thirteen of these states for their own benefit and for the benefit of men. Sometime the supernational sovereignty of the planetary government of mankind will be similarly created by nations for their own benefit and for the benefit of all men. 이 48주(州)의 제한된 주권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주를 관할하는 아메리카 연방이 가진 국가적 주권은 이 여러 주 가운데 최초의 13개 주가 자체의 이익을 위하여, 주민(州民)들의 이익을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언젠가 인류의 행성 정부의 초국가적 주권을 여러 나라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비슷한 형태로 만들 것입니다.

134:5.16 (1490.2) Citizens are not born for the benefit of governments; governments are organizations created and devised for the benefit of men. There can be no end to the evolution of political sovereignty short of the appearance of the government of the sovereignty of all men. All other sovereignties are relative in value, intermediate in meaning, and subordinate in status. 시민들은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만들어지고 고안된 조직입니다. 모든 사람의 주권을 대표하는 정부가 나타나지 못하면, 정치적 주권의 진화에 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다른 주권의 가치는 상대적이며, 그 의미는 중간적이고, 그 지위는 종속적입니다.

134:5.17 (1490.3) With scientific progress, wars are going to become more and more devastating until they become almost racially suicidal. How many world wars must be fought and how many leagues of nations must fail before men will be willing to establish the government of mankind and begin to enjoy the blessings of permanent peace and thrive on the tranquillity of good will — world-wide good will — among men? 과학의 진보와 함께, 거의 인종족 자살(自殺)행위에 이르기까지 전쟁은 갈수록 더 끔찍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류의 정부를 기꺼이 세우고, 영구한 평화의 복을 누리기 시작하고, 사람들 사이에 선의―세계적 선의―에서 생기는 평안을 토대로 번영하기까지, 몇 차례나 세계 전쟁을 치러야 하고, 얼마나 많은 국가 연맹이 실패해야만 할 것인가?

134-4 Sovereignty — Divine and Human 주권 ─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4. Sovereignty — Divine and Human 주권 ─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170111 수요 예수73 (30세-AD24) 주권─신성한 것과 인간의 것 Sovereignty — Divine and Human 마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134:4.1 (1486.4) The brotherhood of men is founded on the fatherhood of God. The family of God is derived from the love of God — God is love. God the Father divinely loves his children, all of them. 사람의 형제신분은 하나님의 아버지신분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기인합니다. –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자녀들을 신적으로 사랑하십니다.

134:4.2 (1486.5) The kingdom of heaven, the divine government, is founded on the fact of divine sovereignty — God is spirit. Since God is spirit, this kingdom is spiritual. The kingdom of heaven is neither material nor merely intellectual; it is a spiritual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man. 하늘나라, 신적인 정부(政府)는 신적인 주권 – 하나님은 영(靈)이십니다. – 라는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이 나라는 영적(靈的)입니다. 하늘나라는 물질적이지도 않고 단순히 지적이지도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영적 관계입니다.

134:4.3 (1486.6) If different religions recognize the spirit sovereignty of God the Father, then will all such religions remain at peace. Only when one religion assumes that it is in some way superior to all others, and that it possesses exclusive authority over other religions, will such a religion presume to be intolerant of other religions or dare to persecute other religious believers. 만약 다른 종교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한다면, 그런 모든 종교들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하나의 종교가 어떤 면에서 다른 모든 종교들보다 우월하고, 그것이 다른 종교들에 대해 배타적인 권위를 갖는 경우에, 그런 종교는 다른 종교들을 용납하지 않거나 감히 다른 종교들의 신자들을 박해(迫害)할 것입니다.

134:4.4 (1487.1) Religious peace — brotherhood — can never exist unless all religions are willing to completely divest themselves of all ecclesiastical authority and fully surrender all concept of spiritual sovereignty. God alone is spirit sovereign. 종교적 평화 – 형제신분 –은 모든 종교들이 교단의 모든 권한을 자발적으로 완전히 버리고, 영적 주권에 대한 모든 관념을 전부 포기(抛棄)하지 않는 한, 결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영적 주권자이십니다.

134:4.5 (1487.2) You cannot have equality among religions (religious liberty) without having religious wars unless all religions consent to the transfer of all religious sovereignty to some superhuman level, to God himself. 모든 종교들이 모든 종교적 주권(主權)을 초인간적 수준의 하나님 자신에게 넘겨드리기로 동의하지 않는다면, 종교적 전쟁 없이 종교들 사이에 평등(종교적 해방)을 얻을 수 없습니다.

134:4.6 (1487.3) The kingdom of heaven in the hearts of men will create religious unity (not necessarily uniformity) because any and all religious groups composed of such religious believers will be free from all notions of ecclesiastical authority — religious sovereignty. 사람들의 심정 속에 있는 하늘나라는 종교적 연합(반드시 획일적일 필요는 없지만)을 만들어 낼 것인데, 왜냐하면 그런 종교적 신자들로 구성된 모든 종교는 교단의 권한 – 종교적 주권 –에 대한 모든 개념에서 해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34:4.7 (1487.4) God is spirit, and God gives a fragment of his spirit self to dwell in the heart of man. Spiritually, all men are equal. The kingdom of heaven is free from castes, classes, social levels, and economic groups. You are all brethren. 하나님은 영이시며, 하나님은 자신의 영 그 자체의 한 단편(분신分身)을 사람의 심정 안에 내주하도록 보내 주십니다. 영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합니다. 하늘나라는 신분, 특권계급, 사회적 수준이나 경제적 단체들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형제들입니다.

134:4.8 (1487.5) But the moment you lose sight of the spirit sovereignty of God the Father, some one religion will begin to assert its superiority over other religions; and then, instead of peace on earth and good will among men, there will start dissensions, recriminations, even religious wars, at least wars among religionists.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영적 주권을 잃어버리는 순간, 어느 한 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서 평화가 이루어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뜻이 이루어지는 대신, 종교인들 사이에서 불화와 비난이 시작될 것이고 심지어 전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134:4.9 (1487.6) Freewill beings who regard themselves as equals, unless they mutually acknowledge themselves as subject to some supersovereignty, some authority over and above themselves, sooner or later are tempted to try out their ability to gain power and authority over other persons and groups. The concept of equality never brings peace except in the mutual recognition of some overcontrolling influence of supersovereignty. 스스로를 동등하게 여기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들은, 그들 위에 있는 높은 권한, 즉 어떤 초(超)주권의 지배를 받는다고 서로가 인정하지 않는 한, 조만간에 다른 개인들과 단체들을 지배하기 위한 권력과 권한을 갖기 위하여 자신들의 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어떤 초(超)주권의 전권으로 지배하는 영향력을 서로 인정하지 않고서는, 평등(平等)의 개념이 평화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134:4.10 (1487.7) The Urmia religionists lived together in comparative peace and tranquillity because they had fully surrendered all their notions of religious sovereignty. Spiritually, they all believed in a sovereign God; socially, full and unchallengeable authority rested in their presiding head — Cymboyton. They well knew what would happen to any teacher who assumed to lord it over his fellow teachers. There can be no lasting religious peace on Urantia until all religious groups freely surrender all their notions of divine favor, chosen people, and religious sovereignty. Only when God the Father becomes supreme will men become religious brothers and live together in religious peace on earth. 우르미아 종교인들은 종교적 주권에 대한 자신들의 모든 신념들을 온전히 포기했기 때문에, 비교적 평화스럽고 고요하게 함께 살아갔습니다. 영적으로, 그들은 모두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도전할 수 없는 충분한 권한은 그들을 주관하는 수장(首長), 심보이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동료 선생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는 누구든지 막론하고, 그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 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신적인 은총과 선택받은 민족 그리고 종교적 주권에 대한 자신들의 모든 관념을 모든 종교적 집단들이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포기하기 전까지는, 영구한 종교적 평화(平和)를 이 땅에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이 최극의 뜻이 될 때에만,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형제들이 되고 이 세상에서 종교적인 평화 속에 함께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134-3 The Urmia Lectures 우르미아 강연

3. The Urmia Lectures우르미아 강연

134:3.1 (1485.3) On the way to the Caspian Sea, Jesus had stopped several days for rest and recuperation at the old Persian city of Urmia on the western shores of Lake Urmia. On the largest of a group of islands situated a short distance offshore near Urmia was located a large building — a lecture amphitheater — dedicated to the “spirit of religion.” This structure was really a temple of the philosophy of religions. 카스피 해(海)로 가는 길에, 예수님은 휴식과 원기회복을 위하여 우르미아 호수의 서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페르시아 도시인 우르미아에서 며칠 동안 머물렀습니다. 우르미아 근처 해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섬들 중에서 가장 큰 섬에는 큰 건물 – 원형극장식의 강연 장소 – 이 “종교의 정신spirit”에 봉헌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이 건물은 종교 철학을 다루는 사원(寺院)이었습니다.

134:3.2 (1485.4) This temple of religion had been built by a wealthy merchant citizen of Urmia and his three sons. This man was Cymboyton, and he numbered among his ancestors many diverse peoples. 이 종교 사원은 우르미아의 시민인 어느 부유한 상인(商人)과 그의 세 아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심보이톤Cymboyton이었으며, 그의 선조들 중에는 다른 여러 민족들이 있었습니다.

134:3.3 (1485.5) The lectures and discussions in this school of religion began at ten o’clock every morning in the week. The afternoon sessions started at three o’clock, and the evening debates opened at eight o’clock. Cymboyton or one of his three sons always presided at these sessions of teaching, discussion, and debate. The founder of this unique school of religions lived and died without ever revealing his personal religious beliefs. 이 종교학교의 강의와 토론은 주 중 매일 오전 10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오후 수업은 3시에 시작하였으며, 저녁 토론회는 8시에 열렸습니다. 심보이톤Cymboyton이나 그의 세 아들들 중의 하나가 이 강의•논의•토론 시간에 언제나 사회(司會)를 보았습니다. 독특한 이 종교 학교의 창시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종교적 신념을 밝히지 않은 채로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134:3.4 (1485.6) On several occasions Jesus participated in these discussions, and before he left Urmia, Cymboyton arranged with Jesus to sojourn with them for two weeks on his return trip and give twenty-four lectures on “The Brotherhood of Men,” and to conduct twelve evening sessions of questions, discussions, and debates on his lectures in particular and on the brotherhood of men in general. 예수님은 여러 차례 이 논의에 참여했고, 우르미아를 떠나기 전에, 심보이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는 길에 그들과 2주간 동안 머물러 있도록 조정하여, “사람들의 형제신분The Brotherhood of Men”이라는 주제로 24번 강의하고, 특히 그의 강의에 대하여,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의 형제 정신에 대하여, 질문하고 토의하고 토론하는 저녁 시간을 12회 인도하도록 했습니다.

134:3.5 (1485.7) In accordance with this arrangement, Jesus stopped off on the return trip and delivered these lectures. This was the most systematic and formal of all the Master’s teaching on Urantia. Never before or after did he say so much on one subject as was contained in these lectures and discussions on the brotherhood of men. In reality these lectures were on the “Kingdom of God” and the “Kingdoms of Men.” 이러한 일정에 따라 예수님은 돌아오는 길에 우르미아에 들려 계획된 강의들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 계셨던 주님의 모든 가르침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형식을 갖춘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형제신분에 대하여, 이 강의들과 토의들에서처럼, 그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강의들은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와 “사람의 나라Kingdoms of Men”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134:3.6 (1486.1) More than thirty religions and religious cults were represented on the faculty of this temple of religious philosophy. These teachers were chosen, supported, and fully accredited by their respective religious groups. At this time there were about seventy-five teachers on the faculty, and they lived in cottages each accommodating about a dozen persons. Every new moon these groups were changed by the casting of lots. Intolerance, a contentious spirit, or any other disposition to interfere with the smooth running of the community would bring about the prompt and summary dismissal of the offending teacher. He would be unceremoniously dismissed, and his alternate in waiting would be immediately installed in his place. 30개가 넘는 종교들과 종교적 종파들이, 종교 철학 전당의 교수진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교수진들이 대표하는 각 종교 집단이 이 선생들을 선택하고 지원하고 충분히 인가하였습니다. 이 무렵에는 약 75명의 선생들이 교수진으로 활동하였고, 그들은 각 집마다 약 12명이 함께 사는 사택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초승달이 뜰 때마다 이 집단들의 구성원들은 제비를 뽑아서 교체되었습니다. 편협함, 다투기를 좋아하는 정신, 또는 공동체를 순조롭게 운영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어떤 다른 경향을 나타나는 경우에는, 위반한 선생으로서 그 즉시 즉각적으로 해직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 예식을 거치지 않고 해직되었고, 교대 대기자가 곧 그 자리에 임명되었습니다.

134:3.7 (1486.2) These teachers of the various religions made a great effort to show how similar their religions were in regard to the fundamental things of this life and the next. There was but one doctrine which had to be accepted in order to gain a seat on this faculty — every teacher must represent a religion which recognized God — some sort of supreme Deity. There were five independent teachers on the faculty who did not represent any organized religion, and it was as such an independent teacher that Jesus appeared before them. 다양한 종교들을 대표하는 이 선생들은 이생과 다음 생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그들의 종교가 어떤 유사성이 있는지를 보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교수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의 원칙만이 적용되었습니다. 각 선생은 하나님 – 어떤 종류의 최고의 신(神)supreme Deity – 을 인정하는 종교를 대표해야만 했습니다. 교수진 가운데에는 어떤 조직화된 종교도 대표하지 않는 독립된 5명의 선생들이 있었는데, 예수는 그러한 독립된 선생으로 그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134:3.8 (1486.3) [When we, the midwayers, first prepared the summary of Jesus’ teachings at Urmia, there arose a disagreement between the seraphim of the churches and the seraphim of progress as to the wisdom of including these teachings in the Urantia Revelation. Conditions of the twentieth century, prevailing in both religion and human governments, are so different from those prevailing in Jesus’ day that it was indeed difficult to adapt the Master’s teachings at Urmia to the problems of the kingdom of God and the kingdoms of men as these world functions are existent in the twentieth century. We were never able to formulate a statement of the Master’s teachings which was acceptable to both groups of these seraphim of planetary government. Finally, the Melchizedek chairman of the revelatory commission appointed a commission of three of our number to prepare our view of the Master’s Urmia teachings as adapted to twentieth-century religious and political conditions on Urantia. Accordingly, we three secondary midwayers completed such an adaptation of Jesus’ teachings, restating his pronouncements as we would apply them to present-day world conditions, and we now present these statements as they stand after having been edited by the Melchizedek chairman of the revelatory commission.] [우리 중도자들이 우르미아에서 예수님 교훈의 요약을 처음 준비했을 때, 교회의 세라핌천사들과 진보의 세라핌천사들 사이에, 유란시아 계시에 이런 가르침들을 포함하는 지혜에 관하여 불일치가 일어났습니다. 중교와 인간 정부(政府) 둘 다 만연한 20세기의 상황은 예수님 당시에 만연한 그런 상황과 아주 달라서, 이러한 세계 기능들이 20세기에 현존하듯이, 우르미아에서 하셨던 주님의 가르침을 하느님의 나라와 인간들의 나라 문제들에 적응시키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행성 정부(政府)에 속한 이런 세라핌천사의 두 집단이 받아들일 주님의 교훈에 대한 진술을 결코 공식적으로 서술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계시 위원회의 멜기세덱 의장이 우리 회원 중 3명의 위원회를 지명하여, 유란시아의 20세기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상황에 적합하게, 주님의 우르미아 교훈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준비시켰습니다. 따라서 우리 2차 중도자 셋은 예수 교훈을 오늘날 세계 상황에 적용하듯이 그의 선언을 새로 진술하여, 그렇게 예수 교훈의 번안(飜案)을 완료했으며, 계시 위원회의 멜기세덱 의장이 편집한 후 그대로, 우리는 이제 이 진술문을 제시합니다.]

134-2 The Caravan Trip to the Caspian 카스피까지 간 대상(카라반) 여행

2. The Caravan Trip to the Caspian 카스피까지 간 대상(카라반) 여행

  •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Finally, brothers, whatever is true, whatever is noble, whatever is right, whatever is pure, whatever is lovely, whatever is admirable—if anything is excellent or praiseworthy—think about such things.

134:2.1 (1484.5) It was the first of April, A.D. 24, when Jesus left Nazareth on the caravan trip to the Caspian Sea region. The caravan which Jesus joined as its conductor was going from Jerusalem by way of Damascus and Lake Urmia through Assyria, Media, and Parthia to the southeastern Caspian Sea region. It was a full year before he returned from this journey. 예수께서 나사렛을 출발하여 대상caravan들과 함께 카스피Caspian 해(海)로 여행을 떠난 것은 기원 후 24년 4월 1일의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안내자로서 합세하였던 그 대상(隊商)은 예루살렘Jerusalem을 출발하여 다마스쿠스Damascus와 우르미아Urmia 호수(湖水)를 경유하고 앗시리아Assyria, 메디아Media, 파르티아Parthia를 거쳐 남동부 카스피 지역으로 갔습니다. 이 여행에서 그가 돌아오기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134:2.2 (1484.6) For Jesus this caravan trip was another adventure of exploration and personal ministry. He had an interesting experience with his caravan family — passengers, guards, and camel drivers. Scores of men, women, and children residing along the route followed by the caravan lived richer lives as a result of their contact with Jesus, to them, the extraordinary conductor of a commonplace caravan. Not all who enjoyed these occasions of his personal ministry profited thereby, but the vast majority of those who met and talked with him were made better for the remainder of their natural lives. 예수님에게 있어서 이 대상 여행은 탐험하면서 개인적으로 사역하는 또 다른 모험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대상 일행들─승객들, 안내원들, 낙타 부리는 자들─과 함께 흥미 있는 체험을 했습니다. 대상이 지나갔던 길을 따라 살고 있었던 많은 남녀 어른들과 아이들은, 그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대상을 이끄는 비범(非凡)한 안내자로 보였던 예수님과 접촉한 결과로,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사역하였던 이 기회들을 누렸던 사람들 전부가 이익을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의 대다수는 더 나은 여생(餘生)을 누렸습니다.

134:2.3 (1484.7) Of all his world travels this Caspian Sea trip carried Jesus nearest to the Orient and enabled him to gain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Far-Eastern peoples. He made intimate and personal contact with every one of the surviving races of Urantia excepting the red. He equally enjoyed his personal ministry to each of these varied races and blended peoples, and all of them were receptive to the living truth which he brought them. The Europeans from the Far West and the Asiatics from the Far East alike gave attention to his words of hope and eternal life and were equally influenced by the life of loving service and spiritual ministry which he so graciously lived among them. 그의 모든 여행 중에서 이 카스피 해의 여행은 예수님께서 동방에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였으며, 그래서 그는 극동(極東)지방 사람들을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홍인종을 제외하고 지구에 살아남아 있는 각 종족들과 친밀하게 개인적으로 접촉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여러 인종들과 혼합 사람들 각자에게 동등하게 개인적으로 베푼 사역활동을 즐겼으며, 그들 모두 예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살아있는 진리를 잘 받아들였습니다. 극서(極西)지방에서 온 유럽인들Europeans이나 극동지방에서 온 아시아인들Asiatics은, 희망과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그의 말에 똑같이 주의를 기울였으며, 그들 가운데 예수께서 그토록 인자하게 사셨던 사랑의 봉사와 영적 사역에 의하여 똑같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134:2.4 (1485.1) The caravan trip was successful in every way. This was a most interesting episode in the human life of Jesus, for he functioned during this year in an executive capacity, being responsible for the material intrusted to his charge and for the safe conduct of the travelers making up the caravan party. And he most faithfully, efficiently, and wisely discharged his multiple duties. 그 대상caravan 여행은 모든 점에서 성공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인간 일생에서 매우 흥미 있는 에피소드(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해에 집행(執行)하는 자격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물질과 카라반(대상) 일행을 이루고 있던 여행자들의 안전한 행위를 책임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가장 신실하고, 효과적으로 그리고 현명하게 여러 가지 임무들을 처리하였습니다.

134:2.5 (1485.2) On the return from the Caspian region, Jesus gave up the direction of the caravan at Lake Urmia, where he tarried for slightly over two weeks. He returned as a passenger with a later caravan to Damascus, where the owners of the camels besought him to remain in their service. Declining this offer, he journeyed on with the caravan train to Capernaum, arriving the first of April, A.D. 25. No longer did he regard Nazareth as his home. Capernaum had become the home of Jesus, James, Mary, and Ruth. But Jesus never again lived with his family; when in Capernaum he made his home with the Zebedees. 카스피 지역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은 우르미아Urmia 호수에서 대상 안내자의 자리를 사직하고 2주가 약간 넘게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나중에 다마스쿠스Damascus로 가는 대상 대열에 승객으로 합세하여 돌아왔는데, 그곳에서 그 낙타들의 주인은 그에게 남아서 같이 일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가버나움Capernaum으로 가는 대상들과 함께 계속 여행하여 AD 25년 4월 1일에 가버나움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나사렛Nazareth을 자기 고향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가버나움Capernaum이 예수와 야고보James와 마리아Mary와 룻Ruth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다시 가족과 함께 살지 않았으며, 가버나움에 있을 때에는 세베대Zebedees의 집에 자신의 거처(居處)를 정하였습니다.

134-1 The Thirtieth Year (A.D. 24)서른 살 되던 해(서기 24년)

1. The Thirtieth Year (A.D. 24)서른 살 되던 해(서기 24년)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y is a temple of the Holy Spirit, who is in you, whom you have received from God? You are not your own;

134:1.1 (1483.3) After taking leave of Gonod and Ganid at Charax (in December of A.D. 23), Jesus returned by way of Ur to Babylon, where he joined a desert caravan that was on its way to Damascus. From Damascus he went to Nazareth, stopping only a few hours at Capernaum, where he paused to call on Zebedee’s family. There he met his brother James, who had sometime previously come over to work in his place in Zebedee’s boatshop. After talking with James and Jude (who also chanced to be in Capernaum) and after turning over to his brother James the little house which John Zebedee had managed to buy, Jesus went on to Nazareth. AD 23년 12월, 카락스Charax에서 고노드와 가니드를 떠나보낸 후에, 예수님은 우르Ur를 경유하여 바빌론Babylon으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다마스쿠스Damascus로 가는 사막의 대상caravan과 합세하였습니다. 다마스쿠스로부터 나사렛Nazareth으로 돌아가는 도중, 가버나움Capernaum에 단 몇 시간 동안만 들렸을 때, 거기에서 세베대Zebedee의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 때 그는 동생 야고보James를 만났으며, 야고보는 세베대의 배를 만드는 목공소에서 예수님 대신 일하기 위해 얼마 전부터 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우연히 가버나움에 들렸었던 유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 요한 세베대가 매입하여 관리하던 작은 집을 동생 야고보에게 넘겨준 다음, 계속 나사렛으로 갔습니다.

134:1.2 (1483.4) At the end of his Mediterranean journey Jesus had received sufficient money to meet his living expenses almost up to the time of the beginning of his public ministry. But aside from Zebedee of Capernaum and the people whom he met on this extraordinary trip, the world never knew that he made this journey. His family always believed that he spent this time in study at Alexandria. Jesus never confirmed these beliefs, neither did he make open denial of such misunderstandings. 지중해 여행을 마쳤을 때, 예수님은 공적 사역을 시작할 때까지 필요한 생활비를 넉넉히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버나움의 세베대와 이 특별한 여행에서 그가 만났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가 이러한 여행을 했었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이 기간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공부를 하면서 지냈었다고 언제나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러한 믿음에 대해 옳다고 확인하지도 않았고, 또한 그러한 오해들을 드러내놓고 부인하지도 않으셨습니다.

134:1.3 (1483.5) During his stay of a few weeks at Nazareth, Jesus visited with his family and friends, spent some time at the repair shop with his brother Joseph, but devoted most of his attention to Mary and Ruth. Ruth was then nearly fifteen years old, and this was Jesus’ first opportunity to have long talks with her since she had become a young woman. 나사렛에 머물던 몇 주간 동안, 예수님은 가족과 친구들을 방문하거나 동생 요셉과 수리소에서 함께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지만, 대부분의 관심은 마리아Mary와 룻Ruth에게 두었습니다. 룻은 그 때 거의 15살이었는데, 누이가 처녀가 된 이래로, 예수님이 그녀와 오랜 대화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134:1.4 (1484.1) Both Simon and Jude had for some time wanted to get married, but they had disliked to do this without Jesus’ consent; accordingly they had postponed these events, hoping for their eldest brother’s return. Though they all regarded James as the head of the family in most matters, when it came to getting married, they wanted the blessing of Jesus. So Simon and Jude were married at a double wedding in early March of this year, A.D. 24. All the older children were now married; only Ruth, the youngest, remained at home with Mary. 시몬Simon과 유다Jude는 한 동안 결혼하고 싶었지만, 예수님의 동의 없이는 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맏형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으로 결혼을 미루었습니다. 비록 그들 모두 대부분의 문제에 있어서 야고보를 가장(家長)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막상 결혼이 임박해지자 예수님의 축복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시몬과 유다는 이 해 AD 24년 3월 초순에 합동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나이든 아이들은 이제 모두 결혼하였고, 가장 나이가 어린 룻만이 마리아와 함께 집에 남았습니다.

134:1.5 (1484.2) Jesus visited with the individual members of his family quite normally and naturally, but when they were all together, he had so little to say that they remarked about it among themselves. Mary especially was disconcerted by this unusually peculiar behavior of her first-born son. 예수님은 가족들을 개인별로 만날 때는 매우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게 행동하셨습니다. 그러나 다 같이 있었을 때에는 거의 말이 없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자기들끼리 그것에 대해 한마디씩 했습니다. 특히 마리아는 맏아들의 이상한 태도 때문에 불안했습니다.

134:1.6 (1484.3) About the time Jesus was preparing to leave Nazareth, the conductor of a large caravan which was passing through the city was taken violently ill, and Jesus, being a linguist, volunteered to take his place. Since this trip would necessitate his absence for a year, and inasmuch as all his brothers were married and his mother was living at home with Ruth, Jesus called a family conference at which he proposed that his mother and Ruth go to Capernaum to live in the home which he had so recently given to James. Accordingly, a few days after Jesus left with the caravan, Mary and Ruth moved to Capernaum, where they lived for the rest of Mary’s life in the home that Jesus had provided. Joseph and his family moved into the old Nazareth home. 예수께서 나사렛을 떠나려고 준비하고 있을 무렵에 이 도시를 지나가던 어느 큰 대상(카라반)의 안내자가 심한 병에 걸렸는데, 외국어에 능통하였던 예수께서 그의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자원하였습니다. 그는 이 여행 때문에 일 년 동안 집을 비워야 했고, 동생들이 모두 결혼해서 집에는 어머니와 룻뿐이었기 때문에, 그는 가족회의를 소집하였고, 그 자리에서 그는 자기가 최근에 야고보에게 넘겨주었던 가버나움 집으로 어머니와 룻이 이사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가 대상들과 떠난 며칠 뒤에, 마리아와 룻은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였고, 그곳에서 그들은 마리아의 여생(餘生) 동안 예수께서 마련하신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나사렛의 고향집으로 들어왔습니다.

134:1.7 (1484.4) This was one of the more unusual years in the inner experience of the Son of Man; great progress was made in effecting working harmony between his human mind and the indwelling Adjuster. The Adjuster had been actively engaged in reorganizing the thinking and in rehearsing the mind for the great events which were in the not then distant future. The personality of Jesus was preparing for his great change in attitude toward the world. These were the in-between times, the transition stage of that being who began life as God appearing as man, and who was now making ready to complete his earth career as man appearing as God. AD24년, 이 해는 사람의 아들의 내적 체험에 있어서 매우 특별한 몇 해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의 인간 마음과 내주하는 조절자 사이에서 조화(調和)를 이루는 일에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장래에 일어날 위대한 사건들을 위하여, 조절자는 예수님의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훈련시키는 일(rehearsing)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고유성은 세상을 향한 태도에 있어서 큰 변화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간들은 양단의 중간 시기, 인간으로 나타난 하나님으로서의 일생(一生)을 시작하고, 하나님으로 나타난 사람으로서의 땅에서의 생애를 마치려고 이제 준비하는 과도기였습니다.

134-0 The Transition Years 과도기(過渡期) 시절

Paper 134

The Transition Years 과도기(過渡期) 시절

요일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134:0.1 (1483.1) DURING the Mediterranean journey Jesus had carefully studied the people he met and the countries through which he passed, and at about this time he reached his final decision as to the remainder of his life on earth. He had fully considered and now finally approved the plan which provided that he be born of Jewish parents in Palestine, and he therefore deliberately returned to Galilee to await the beginning of his lifework as a public teacher of truth; he began to lay plans for a public career in the land of his father Joseph’s people, and he did this of his own free will. 지중해를 여행하는 동안에 예수님은 만났던 사람들과 거쳐 갔던 나라들에 관하여 주의 깊게 연구하였으며, 이 무렵, 땅에서 보내야하는 여생(餘生)에 관하여 마지막 결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자신이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계획을 충분하게 고려하였고 이제 그 계획을 최종적으로 승인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대중(大衆)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필생의 사명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아버지 요셉의 민족의 땅에서 공생애를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이것을 행하셨습니다.

134:0.2 (1483.2) Jesus had found out through personal and human experience that Palestine was the best place in all the Roman world wherein to set forth the closing chapters, and to enact the final scenes, of his life on earth. For the first time he became fully satisfied with the program of openly manifesting his true nature and of revealing his divine identity among the Jews and gentiles of his native Palestine. He definitely decided to finish his life on earth and to complete his career of mortal existence in the same land in which he entered the human experience as a helpless babe. His Urantia career began among the Jews in Palestine, and he chose to terminate his life in Palestine and among the Jews. 예수님은 개인적인 인간의 경험을 통해서, 팔레스타인이 모든 로마 제국에서, 지상 생애의 마지막 장(章)을 마련하고, 최종 장면을 연출하기에 최적의 장소임을 발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자신이 태어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그의 참된 성품을 숨김없이 나타내고, 신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계획으로 충분히 만족(滿足)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기력한 아기로서 인간 경험을 시작하게 되었던 바로 그 땅에서 지상 생애를 반드시 끝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경력을 완성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지상에서 예수님의 생애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으로 시작하셨고,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으로 자신의 일생을 마치기로 선택하셨습니다.

82-6 Racial Mixtures 인종 혼합

6. Racial Mixtures 인종 혼합

82:6.1 (919.7) There are no pure races in the world today. The early and original evolutionary peoples of color have only two representative races persisting in the world, the yellow man and the black man; and even these two races are much admixed with the extinct colored peoples. While the so-called white race is predominantly descended from the ancient blue man, it is admixed more or less with all other races much as is the red man of the Americas. 오늘날 세상에는 순수한 인종이 없습니다. 초기의 기원적인 진화 유색 종족은 대표적인 2가지 인종만 세상에 남아 있는데, 황인종과 흑인종입니다. 이 두 인종도 멸종한 유색 종족과 많이 혼합되었습니다. 소위 백인종은 대개 고대 청인의 후손이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홍인종처럼, 모든 다른 종족들과 어느 정도 섞였습니다.

82:6.2 (919.8) Of the six colored Sangik races, three were primary and three were secondary. Though the primary races — blue, red, and yellow — were in many respects superior to the three secondary peoples, it should be remembered that these secondary races had many desirable traits which would have considerably enhanced the primary peoples if their better strains could have been absorbed. 육색(六色) 상긱 인종 중 셋은 1차이고 셋은 2차였습니다. 1차 인종들 – 청인, 홍인, 황인 –은 여러 면에서 2차 세 종족보다 우수했지만, 이 2차 인종들에게는, 자신들의 더 좋은 특성들이 흡수될 수 있었더라면, 1차 종족들을 상당히 향상했었을, 여러 바람직한 특성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82:6.3 (920.1) Present-day prejudice against “half-castes,” “hybrids,” and “mongrels” arises because modern racial crossbreeding is, for the greater part, between the grossly inferior strains of the races concerned. You also get unsatisfactory offspring when the degenerate strains of the same race intermarry. 현대 인종의 잡종이 대부분 관련된 인종 중에서 아주 열등한 혈통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혼혈,” “튀기,” 및 “잡종”에 대한 현대의 편견이 생깁니다. 너희도 동족의 퇴화 혈통이 근친 결혼하면 불만스러운 자손을 얻습니다.

82:6.4 (920.2) If the present-day races of Urantia could be freed from the curse of their lowest strata of deteriorated, antisocial, feeble-minded, and outcast specimens, there would be little objection to a limited race amalgamation. And if such racial mixtures could take place between the highest types of the several races, still less objection could be offered. 오늘날 유란시아 인종들에게 열등하고, 반사회적이며, 저능하고, 폐기된 인종에 속한 최저 계층의 불행이 없다면, 제한적인 이인종(異人種) 융합에 반감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인종 혼합이 최고 유형의 몇몇 인종 사이에 일어날 수 있다면, 더구나 반대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82:6.5 (920.3) Hybridization of superior and dissimilar stocks is the secret of the creation of new and more vigorous strains. And this is true of plants, animals, and the human species. Hybridization augments vigor and increases fertility. Race mixtures of the average or superior strata of various peoples greatly increase creative potential, as is shown in the present population of the United States of North America. When such matings take place between the lower or inferior strata, creativity is diminished, as is shown by the present-day peoples of southern India. 우수한 다른 인종의 교배가 새롭고 더 강건한 혈통이 창조되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식물, 동물 및 인종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잡종 번식이 생기를 증가시키고 생식 능력을 증대합니다. 다양한 종족의 평균적 혹은 우수한 계층의 인종 혼합은, 현재 북아메리카의 미국 인구에서 보듯이, 창조적인 잠재성을 크게 강화합니다. 그런 짝짓기가 낮은 열등 계층 사이에서 일어나면, 오늘날 남부 인도의 종족에서 보듯이, 창조성이 줄어듭니다. 

82:6.6 (920.4) Race blending greatly contributes to the sudden appearance of new characteristics, and if such hybridization is the union of superior strains, then these new characteristics will also be superior traits. 인종 혼합은 돌연한 새 특성의 출현에 큰 도움이 되며, 그런 교배가 우수한 혈통의 연합이라면, 이런 새 특성들도 우수한 특성이 될 것입니다.

82:6.7 (920.5) As long as present-day races are so overloaded with inferior and degenerate strains, race intermingling on a large scale would be most detrimental, but most of the objections to such experiments rest on social and cultural prejudices rather than on biological considerations. Even among inferior stocks, hybrids often are an improvement on their ancestors. Hybridization makes for species improvement because of the role of the dominant genes. Racial intermixture increases the likelihood of a larger number of the desirable dominants being present in the hybrid. 현재 인종들이 열등하고 퇴화한 혈통으로 지나친 부담이 되므로, 대규모의 인종 혼합은 가장 해롭겠지만, 그런 실험에 대한 대부분의 반대는, 생물학적 이유보다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편견에 근거합니다. 열등한 종족 중에서도, 튀기가 종종 그 조상들보다 낫습니다. 우성 유전자의 역할 때문에, 교배가 종자를 개선합니다. 인종 혼합으로, 잡종 안에 존재할, 바람직한 우성 유전성의 가능성이 더 많이 늘어납니다.

82:6.8 (920.6) For the past hundred years more racial hybridization has been taking place on Urantia than has occurred in thousands of years. The danger of gross disharmonies as a result of crossbreeding of human stocks has been greatly exaggerated. The chief troubles of “half-breeds” are due to social prejudices. 수천 년간 일어났던 것보다 과거 수백 년간 인종 교배가 유란시아에서 더 많이 발생했습니다. 인간 혈통이 교배한 결과로써 심한 부조화의 위험이 많이 과장되었습니다. “잡종들”의 주된 문제는 사회적 편견 때문입니다.

82:6.9 (920.7) The Pitcairn experiment of blending the white and Polynesian races turned out fairly well because the white men and the Polynesian women were of fairly good racial strains. Interbreeding between the highest types of the white, red, and yellow races would immediately bring into existence many new and biologically effective characteristics. These three peoples belong to the primary Sangik races. Mixtures of the white and black races are not so desirable in their immediate results, neither are such mulatto offspring so objectionable as social and racial prejudice would seek to make them appear. Physically, such white-black hybrids are excellent specimens of humanity, notwithstanding their slight inferiority in some other respects. 백인 남성들과 폴리네시아 여성들이 상당한 좋은 인종 혈통들이어서, 백인과 폴리네시아인(人)을 섞는 핏케언 실험은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최고 유형의 백인, 홍인 및 황인종의 교배는 즉시 생물학적으로 효과적인 여러 새로운 특성들을 낳을 것입니다. 이런 세 종족은 1차 상긱 인종에 속합니다. 백인과 흑인의 혼합은 즉각적 결과에서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으며, 그런 흑백 혼혈아 자손이 너무 못마땅해서 사회적이며 인종적인 편견으로 그들이 나타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그런 흑백 혼혈들은, 몇 가지 다른 면에서 약간 열등하지만, 인류의 훌륭한 표본입니다.

82:6.10 (920.8) When a primary Sangik race amalgamates with a secondary Sangik race, the latter is considerably improved at the expense of the former. And on a small scale — extending over long periods of time — there can be little serious objection to such a sacrificial contribution by the primary races to the betterment of the secondary groups. Biologically considered, the secondary Sangiks were in some respects superior to the primary races. 1차 상긱 인종이 2차 상긱 인종과 혼합하면, 후자는 전자의 희생으로 상당히 개선됩니다. 그리고 소규모로 – 장기간에 연장될 때, 2차 집단의 개선에 대한 1차 인종의 그런 희생적 공헌에 심각한 반대가 거의 있을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 고려할 때, 2차 상긱들은 몇 가지 면에서 1차 인종들보다 우월했습니다.

82:6.11 (921.1) After all, the real jeopardy of the human species is to be found in the unrestrained multiplication of the inferior and degenerate strains of the various civilized peoples rather than in any supposed danger of their racial interbreeding. 결국, 인류의 실제 위험은, 소위 어떤 인종 교배의 위험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화된 다양한 종족 중에서 열등하고 퇴화한 혈통들의 억제되지 않은 증식에서 발견됩니다.

82:6.12 (921.2) [Presented by the Chief of Seraphim stationed on Urantia.][유란시아에 배치된 수석 세라핌천사가 제시함]

36-5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일곱 보조 마음-영들

5.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일곱 보조 마음-영들

36:5.1 (401.5) It is the presence of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on the primitive worlds that conditions the course of organic evolution; that explains why evolution is purposeful and not accidental. These adjutants represent that function of the mind ministry of the Infinite Spirit which is extended to the lower orders of intelligent life through the operations of a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The adjutants are the children of the Universe Mother Spirit and constitute her personal ministry to the material minds of the realms. Wherever and whenever such mind is manifest, these spirits are variously functioning. 생물진화 과정을 결정하는 것은 원시 세계에 있는 일곱 보조 마음-영들의 존재입니다. 그것이 진화가 의도적이며, 우발적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런 보조자들은, 지역 우주 어머니 영(靈)의 작용을 통해 하등 계열의 지능적 생명으로 확장되는, 무한 영(靈)의 그런 마음 사역 기능을 나타냅니다. 보조자들은 우주 어머니 영(靈)의 자녀들이며, 물질 영역의 마음들에 대한 그녀의 직접적 보살핌입니다. 그런 마음이 나타나는 어느 곳, 언제라도, 이런 영들이 다양하게 활동합니다.

36:5.2 (401.6)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are called by names which are the equivalents of the following designations: intuition, understanding, courage, knowledge, counsel, worship, and wisdom. These mind-spirits send forth their influence into all the inhabited worlds as a differential urge, each seeking receptivity capacity for manifestation quite apart from the degree to which its fellows may find reception and opportunity for function. 일곱 보조 마음-영들은 다음의 명칭에 해당하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직관(直觀), 이해(理解), 용기(勇氣), 지식(知識), 조언(助言), 경배(敬拜) 및 지혜(智慧). 이 마음 영들은, 그 동료들이 수용과 기능을 위한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 정도와 아주 개별적으로, 각각 표현을 위한 수용 능력을 추구하면서, 자기 영향력을 모든 거주 세계들에 차별적 충동으로 보냅니다.

36:5.3 (401.7) The central lodgments of the adjutant spirits on the Life Carrier headquarters world indicate to the Life Carrier supervisors the extent and quality of the mind function of the adjutants on any world and in any given living organism of intellect status. These life-mind emplacements are perfect indicators of living mind function for the first five adjutants. But with regard to the sixth and seventh adjutant spirits — worship and wisdom — these central lodgments record only a qualitative function. The quantitative activity of the adjutant of worship and the adjutant of wisdom is registered in the immediate presence of the Divine Minister on Salvington, being a personal experience of the Universe Mother Spirit. 생명 운반자 본부 세계에 있는 보조 영(靈)들의 중앙 거점들은 생명 운반자 감독자들에게, 어떤 세계나 지적 상태에 속한 기존의 살아있는 유기물에 있는 보조자들의 마음 기능의 정도와 특질을 나타냅니다. 이런 생명-마음이 설치된 장치는 처음 다섯 보조자를 위해 살아있는 마음 기능을 완전히 표시합니다. 그러나 여섯째와 일곱째 보조 영들 – 경배와 지혜 –에 관해서, 이 중앙 거점들은 질적(質的) 기능만 기록합니다. 경배 보조자와 지혜 보조자의 양적(量的) 활동은, 우주 어머니 영의 고유적 체험으로, 샐빙톤에 있는 신적 성직자의 현존에 즉각 등록됩니다.

36:5.4 (402.1) The seven adjutant mind-spirits always accompany the Life Carriers to a new planet, but they should not be regarded as entities; they are more like circuits. The spirits of the seven universe adjutants do not function as personalities apart from the universe presence of the Divine Minister; they are in fact a level of consciousness of the Divine Minister and are always subordinate to the action and presence of their creative mother. 일곱 보조 마음-영들은 언제나 새 행성으로 생명 운반자들과 동반하지만, 그들을 독립체들로 간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회로와 더 비슷합니다. 일곱 우주 보조자 영들은 신적 성직자의 우주 현존과 별도의 고유성들로서 기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실 신적 성직자의 의식 수준이며, 언제나 자신들의 창조적 어머니의 행동과 현존에 종속합니다.

36:5.5 (402.2) We are handicapped for words adequately to designate these seven adjutant mind-spirits. They are ministers of the lower levels of experiential mind, and they may be described, in the order of evolutionary attainment, as follows: 우리가 이 일곱 보조 마음-영들을 적절히 부를 말로 인해 지장을 받습니다. 그들은 체험적 마음에 속한 하등 수준의 성직자들이며, 진화적 도달의 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36:5.6 (402.3) 1. The spirit of intuition — quick perception, the primitive physical and inherent reflex instincts, the directional and other self-preservative endowments of all mind creations; the only one of the adjutants to function so largely in the lower orders of animal life and the only one to make extensive functional contact with the nonteachable levels of mechanical mind. 직관(直觀)의 영 – 빠른 인식, 원시적이며 물리적인 선천적 반사 본능, 모든 마음 창조계의 지향적이며 그 외에 자기-보존 자질, 동물 생명의 하등 계열에서 그렇게 주로 기능하는 유일한 보조자이며, 기계적 마음의 가르칠 수 없는 수준과 기능적으로 넓게 접촉하는 유일한 보조자.

36:5.7 (402.4) 2. The spirit of understanding — the impulse of co-ordination, the spontaneous and apparently automatic association of ideas. This is the gift of the co-ordination of acquired knowledge, the phenomenon of quick reasoning, rapid judgment, and prompt decision. 이해(理解)의 영 – 통합 조정의 충동, 무의식적이며 외관상 자동적인 관념들의 결합. 이것은 획득한 지식을 통합-조정하는 재능, 빠른 추론, 신속한 판단 및 즉각 결정의 현상입니다.

36:5.8 (402.5) 3. The spirit of courage — the fidelity endowment — in personal beings, the basis of character acquirement and the intellectual root of moral stamina and spiritual bravery. When enlightened by facts and inspired by truth, this becomes the secret of the urge of evolutionary ascension by the channels of intelligent and conscientious self-direction. 용기(勇氣)의 영 – 충실 자질 – 고유 존재들 안에서, 성품 획득의 토대이며 도덕적 끈기와 영적 용맹의 지적 뿌리. 사실들로 빛을 받고, 진리로 영감을 받을 때, 이것은 지능적 양심에 속한 자기-방향의 경로로 진화 상승하는 충동의 열쇠가 됩니다.

36:5.9 (402.6) 4. The spirit of knowledge — the curiosity-mother of adventure and discovery, the scientific spirit; the guide and faithful associate of the spirits of courage and counsel; the urge to direct the endowments of courage into useful and progressive paths of growth. 지식(知識)의 영 – 모험과 발견의 호기심-원천, 과학의 영. 용기와 조언의 영들의 안내자이며 신실한 동료. 용기의 자질을 유익한 진보적 성장의 행로로 지도하는 충동.

36:5.10 (402.7) 5. The spirit of counsel — the social urge, the endowment of species co-operation; the ability of will creatures to harmonize with their fellows; the origin of the gregarious instinct among the more lowly creatures. 조언(助言)의 영 – 사회적 충동, 종(種)의 협력 자질. 자기 동료들과 조화하는 의지 창조물들의 능력. 하등 창조물 사이에서 무리로 살아가는 본능의 기원.

36:5.11 (402.8) 6. The spirit of worship — the religious impulse, the first differential urge separating mind creatures into the two basic classes of mortal existence. The spirit of worship forever distinguishes the animal of its association from the soulless creatures of mind endowment. Worship is the badge of spiritual-ascension candidacy. 경배(敬拜)의 영 – 종교적 충동, 마음 창조물들을 2가지 필사 존재의 기본 등급으로 분류하는 최초의 차별적 충동. 경배의 영은 마음 자질에 속한 혼이 없는 창조물들로부터 그 관련 동물을 영원히 구별합니다. 경배는 영-상승 후보자의 표지입니다.

36:5.12 (402.9) 7. The spirit of wisdom — the inherent tendency of all moral creatures towards orderly and progressive evolutionary advancement. This is the highest of the adjutants, the spirit co-ordinator and articulator of the work of all the others. This spirit is the secret of that inborn urge of mind creatures which initiates and maintains the practical and effective program of the ascending scale of existence; that gift of living things which accounts for their inexplicable ability to survive and, in survival, to utilize the co-ordination of all their past experience and present opportunities for the acquisition of all of everything that all of the other six mental ministers can mobilize in the mind of the organism concerned. Wisdom is the acme of intellectual performance. Wisdom is the goal of a purely mental and moral existence. 지혜(智慧)의 영 – 질서 있게 진보하는 진화적 발달을 향한 모든 도덕적 창조물들의 본래 경향. 이것은 최고의 보조자, 다른 모든 자의 과업에 대한 영(靈) 통합-조정자이며 교합자(咬合子)입니다. 이 영(靈)은, 상승 존재 단계의 실용적인 효과적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유지하는, 마음 창조물들의 그런 천부적 충동의 비밀입니다. 다른 모든 여섯 정신 사역자들이, 관련된 유기체의 마음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의 모두를 얻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 과거 경험과 현재 기회들을 통합-조정하여, 생존하고, 생존자 중에서, 이용하는, 그들의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을 설명하는 살아있는 존재들의 그런 재능. 지혜는 지적 성취의 절정입니다. 지혜는 아주 정신적인 도덕적 존재의 목표입니다.

36:5.13 (403.1) The adjutant mind-spirits experientially grow, but they never become personal. They evolve in function, and the function of the first five in the animal orders is to a certain extent essential to the function of all seven as human intellect. This animal relationship makes the adjutants more practically effective as human mind; hence animals are to a certain extent indispensable to man’s intellectual as well as to his physical evolution. 보조 마음-영들은 체험으로 성장하지만, 그들은 결코 고유적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능적으로 진화하며, 동물 계층의 처음 다섯 기능은 인간 지성으로서 일곱 가지 모든 기능에 어느 정도까지 필수적입니다. 이런 동물 관계는 보조자들을 인간 마음으로서 실제로 더 효력이 있게 합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사람의 육체적 진화뿐만 아니라, 사람의 지적 진화에 어느 정도 필수적입니다.

36:5.14 (403.2) These mind-adjutants of a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are related to creature life of intelligence status much as the power centers and physical controllers are related to the nonliving forces of the universe. They perform invaluable service in the mind circuits on the inhabited worlds and are effective collaborators with the Master Physical Controllers, who also serve as controllers and directors of the preadjutant mind levels, the levels of nonteachable or mechanical mind. 동력 중심 및 물리 조정자들이 우주의 생명이 없는 기세와 관련되어 있듯이, 지역 우주 어머니 영(靈)에 속한 이런 마음-보조자들은 지능적 상태에 속한 창조물 생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거주 세계의 마음 회로에서 매우 귀중하게 봉사하며, 보조 마음 수준 이전(以前), 즉 가르칠 수 없는 기계적 마음 수준의 조정자들과 관리자들로 역시 섬기는, 주(主) 물리 조정자들에게 효과적인 협력자들입니다.

36:5.15 (403.3) Living mind, prior to the appearance of capacity to learn from experience, is the ministry domain of the Master Physical Controllers. Creature mind, before acquiring the ability to recognize divinity and worship Deity, is the exclusive domain of the adjutant spirits. With the appearance of the spiritual response of the creature intellect, such created minds at once become superminded, being instantly encircuited in the spirit cycles of the local universe Mother Spirit. 체험에서 배우는 능력의 출현에 앞선, 살아있는 마음은 주(主) 물리 조정자들이 보살피는 권역입니다. 창조물 마음은, 신성(神性)을 알아보고 신(神)을 경배하는 능력을 얻기 전(前)에, 보조 영(靈)들이 독점하는 권역입니다. 창조물 지성에 속한 영적 응답의 출현으로, 그렇게 창조된 마음들은 즉시 초(超)마음이 되어, 즉각, 지역 우주 어머니 영(靈)에 속한 영(靈) 순환의 회로가 됩니다.

36:5.16 (403.4) The adjutant mind-spirits are in no manner directly related to the diverse and highly spiritual function of the spirit of the personal presence of the Divine Minister, the Holy Spirit of the inhabited worlds; but they are functionally antecedent to, and preparatory for, the appearance of this very spirit in evolutionary man. The adjutants afford the Universe Mother Spirit a varied contact with, and control over, the material living creatures of a local universe, but they do not repercuss in the Supreme Being when acting on prepersonality levels. 보조 마음-영들은 신적 성직자, 거주 세계의 성령(聖靈) 자신의 현존에 속한 영(靈)의 다양하고 고귀한 영적 기능에 결코 직접 관련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화적 사람 안에 있는 바로 이 영(靈)의 출현에 기능적으로 선행하여 준비합니다. 보조자들은 우주 어머니 영(靈)이 지역 우주의 살아있는 물질 창조물들과 다양하게 접촉하고 전반적으로 조정하게 하지만, 고유성 이전의 수준에서 기능할 때, 그들은 최극 존재 안에서 반향의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36:5.17 (403.5) Nonspiritual mind is either a spirit-energy manifestation or a physical-energy phenomenon. Even human mind, personal mind, has no survival qualities apart from spirit identification. Mind is a divinity bestowal, but it is not immortal when it functions without spirit insight, and when it is devoid of the ability to worship and crave survival. (非)영적 마음은 영(靈)-에너지 표현 혹은 물리적-에너지 현상입니다. 인간의 마음, 고유적 마음도 영(靈) 정체성을 빼면 생존할 특성이 없습니다. 마음은 신적 증여이지만, 그것이 영(靈) 통찰력 없이 기능하고, 경배하며 생존을 갈망할 능력이 없으면, 불멸이 아닙니다.

156-5 Jesus’ Teaching at Tyre 티레에서 예수의 가르침

5. Jesus’ Teaching at Tyre 티레에서 예수의 가르침

210808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Do not be overcome by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156:5.1 (1737.5) On this Wednesday afternoon, in the course of his address, Jesus first told his followers the story of the white lily which rears its pure and snowy head high into the sunshine while its roots are grounded in the slime and muck of the darkened soil beneath. “Likewise,” said he, “mortal man, while he has his roots of origin and being in the animal soil of human nature, can by faith raise his spiritual nature up into the sunlight of heavenly truth and actually bear the noble fruits of the spirit.” 이 수요일 오후에 강연 중에 예수께서 따르는 자들에게 어두운 땅 아래 진흙과 거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햇빛에 순결하고 새하얀 꽃송이를 높이 들고 있는 흰 백합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하셨습니다. 그는 “마찬가지로, 필사자는 인간 본성의 동물성 토양에 자기 기원과 존재의 뿌리가 있지만, 신앙으로 자신의 영적 본성을 하늘 진리의 햇빛 속으로 일으켜 세워 영(靈)의 고상한 열매를 실제로 맺을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6:5.2 (1738.1) It was during this same sermon that Jesus made use of his first and only parable having to do with his own trade — carpentry. In the course of his admonition to “Build well the foundations for the growth of a noble character of spiritual endowments,” he said: “In order to yield the fruits of the spirit, you must be born of the spirit. You must be taught by the spirit and be led by the spirit if you would live the spirit-filled life among your fellows. But do not make the mistake of the foolish carpenter who wastes valuable time squaring, measuring, and smoothing his worm-eaten and inwardly rotting timber and then, when he has thus bestowed all of his labor upon the unsound beam, must reject it as unfit to enter into the foundations of the building which he would construct to withstand the assaults of time and storm. Let every man make sure that the intellectual and moral foundations of character are such as will adequately support the superstructure of the enlarging and ennobling spiritual nature, which is thus to transform the mortal mind and then, in association with that re-created mind, is to achieve the evolvement of the soul of immortal destiny. Your spirit nature — the jointly created soul — is a living growth, but the mind and morals of the individual are the soil from which these higher manifestations of human development and divine destiny must spring. The soil of the evolving soul is human and material, but the destiny of this combined creature of mind and spirit is spiritual and divine.” 이 설교를 하시며, 예수님은 자신의 직업 – 목수직과 관련된 비유를 처음 유일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영적 자질에 속한 고귀한 성품의 성장을 위한 토대를 잘 세우라.”고 권고하시며 그가 말씀하셨습니다. “영의 열매를 맺으려면 너희가 영으로 태어나야만 하느니라. 너희가 사람들 사이에서 영(靈)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려면 너희는 영의 가르침을 받고 영으로 인도되어야만 하느니라. 단연코, 벌레 먹어 내부가 썩은 목재를 직각이 되게 하고, 치수를 재며, 반반하게 하여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 다음, 이런 식으로 썩은 기둥에 자신의 모든 수고를 쏟았을 때, 시간과 모진 비바람의 공격을 버티도록 자신이 세운 건물의 토대가 되기에 부적당하여, 그것을 버려야만 하는 어리석은 목수의 잘못을 범하지 말라. 그렇게 필사자 마음을 변환한 후, 다시-만들어진 그런 마음과 함께, 불멸의 운명에 속한 혼(魂)의 진화를 이루는 영적 본성, 확대되어 품위 있게 하는 영적 본성의 상부 구조를 충분히 버티도록, 그런 지적, 도덕적 성품의 토대가 있는지 각자 확보하라. 너희 영(靈) 본성–공동으로 창조된 혼(魂)-은 살아있는 성장이지만, 개인의 마음과 품행은, 이런 인간 개발의 더 높은 표명과 신적 운명이 솟아나야 하는, 토양이니라. 진화하는 혼(魂)의 토양은 인간적이고 물질적이지만, 이렇게 결합한 마음과 영을 지닌 창조물의 운명은 영적이고 신적이니라.”

156:5.3 (1738.2) On the evening of this same day Nathaniel asked Jesus: “Master, why do we pray that God will lead us not into temptation when we well know from your revelation of the Father that he never does such things?” Jesus answered Nathaniel: 바로 이날 저녁에 나다니엘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아버지께서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으신다는 그에 대한 당신의 계시로 우리가 잘 아는데, 하느님이 우리를 유혹으로 이끌지 않도록 왜 우리가 기도하는지요?” 예수께서 나다니엘에게 대답하셨습니다.

156:5.4 (1738.3) “It is not strange that you ask such questions seeing that you are beginning to know the Father as I know him, and not as the early Hebrew prophets so dimly saw him. You well know how our forefathers were disposed to see God in almost everything that happened. They looked for the hand of God in all natural occurrences and in every unusual episode of human experience. They connected God with both good and evil. They thought he softened the heart of Moses and hardened the heart of Pharaoh. When man had a strong urge to do something, good or evil, he was in the habit of accounting for these unusual emotions by remarking: ‘The Lord spoke to me saying, do thus and so, or go here and there.’ Accordingly, since men so often and so violently ran into temptation, it became the habit of our forefathers to believe that God led them thither for testing, punishing, or strengthening. But you, indeed, now know better. You know that men are all too often led into temptation by the urge of their own selfishness and by the impulses of their animal natures. When you are in this way tempted, I admonish you that, while you recognize temptation honestly and sincerely for just what it is, you intelligently redirect the energies of spirit, mind, and body, which are seeking expression, into higher channels and toward more idealistic goals. In this way may you transform your temptations into the highest types of uplifting mortal ministry while you almost wholly avoid these wasteful and weakening conflicts between the animal and spiritual natures. “초기 히브리 선지자들이 아버지를 아주 희미하게 본 것과 다르게,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처럼, 네가 그를 알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네가 그렇게 묻는 것은 이상하지 않으니라. 너는 우리 조상들이 일어난 거의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보려는 경향이 있었는지 잘 아느니라. 그들은 모든 자연 사건과 인간 경험의 모든 드문 사건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찾았느니라. 그들은 하느님을 선과 악으로 연결했느니라. 그들은 그가 모세의 심정을 누그러뜨렸고 바로의 심정을 완고하게 했다고 생각했도다(출4:21). 사람이 선이나 악, 어떤 것을 행할 강한 충동을 지녔을 때, 그는 이런 드문 감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습관적으로 설명했느니라. ‘주께서 나에게 이르기를, 이렇게 저렇게 하든지, 이리 저리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그렇게 자주 그토록 격렬히 유혹되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자신들을 시험하고, 벌하며, 강하게 하는, 그쪽으로 인도했다고 믿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습관이 되었느니라. 그러나 너는 정말 이제 잘 알고 있느니라. 너는, 사람들 모두 그들 자신의 이기적 충동과 자신들의 동물적 본성의 충동으로 너무 자주 유혹받았다는 것을 아느니라. 네가 이렇게 유혹되면, 내가 너를 권고하노니, 너는 유혹이 바로 무엇인지 정직하고 신실하게 알아내면서, 너는 더 높은 경로와 더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표현하고 있는 영(靈), 마음 및 몸의 에너지 방향을, 영리하게 수정하라. 이렇게 너는, 동물적이며 영적인 본성 사이에 낭비하고 약하게 하는 이런 갈등을 거의 완전히 피하면서, 네 유혹을 필사자 보살핌을 향상하는 최고 유형들로 변환할 수 있느니라.

156:5.5 (1738.4) “But let me warn you against the folly of undertaking to surmount temptation by the effort of supplanting one desire by another and supposedly superior desire through the mere force of the human will. If you would be truly triumphant over the temptations of the lesser and lower nature, you must come to that place of spiritual advantage where you have really and truly developed an actual interest in, and love for, those higher and more idealistic forms of conduct which your mind is desirous of substituting for these lower and less idealistic habits of behavior that you recognize as temptation. You will in this way be delivered through spiritual transformation rather than be increasingly overburdened with the deceptive suppression of mortal desires. The old and the inferior will be forgotten in the love for the new and the superior. Beauty is always triumphant over ugliness in the hearts of all who are illuminated by the love of truth. There is mighty power in the expulsive energy of a new and sincere spiritual affection. And again I say to you, be not overcome by evil but rather overcome evil with good.” “그러나 하나의 욕망을, 인간 의지의 단순한 힘을 통해, 다른 욕망과 아마 우월한 욕망으로 대체하는 노력으로 유혹을 극복하려는 어리석음에 대해 내가 네게 경고하노라. 네가 더 모자라고 낮은 본성의 유혹을 진실로 이기려면, 네가 유혹이라고 알아차린, 이렇게 더 낮고 더 이상적(理想的)이지 않은 행실 습관을 네 마음이 대체하려는, 더 높고 더 이상적(理想的)인 행동 형태에 대해, 네가 정말 진실로 실제로 관심과 사랑을 개발한, 영적으로 우세한 자리로 네가 와야 하느니라. 너는 필사 욕망을 거짓으로 감추어 점차 과중한 부담이 되기보다 오히려 이렇게 영적 변환을 통해서 해방되리라. 낡고 열등한 것들은 새롭게 우월한 것을, 사랑하여 잊혀질 것이니라. 아름다움은, 진리의 사랑으로 빛을 받은 모든 자의 심정에서, 언제나 추악함을 이기느니라. 새롭고 신실한 영적 애정의 밀어 내보내는 에너지에는 강력한 권능이 있느니라. 다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에 지지 말고 도리어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

210815 신적 사랑 요일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Dear friends, since God so loved us, we also ought to love one another.

156:5.6 (1739.1) Long into the night the apostles and evangelists continued to ask questions, and from the many answers we would present the following thoughts, restated in modern phraseology: 밤새도록 사도들과 전도자들은 계속 질문했고, 여러 대답에서 우리는 현대적 표현으로 다시 진술하면서 다음의 생각들을 제시하려 합니다.

156:5.7 (1739.2) Forceful ambition, intelligent judgment, and seasoned wisdom are the essentials of material success. Leadership is dependent on natural ability, discretion, will power, and determination. Spiritual destiny is dependent on faith, love, and devotion to truth —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 the wholehearted desire to find God and to be like him. 강력한 야망, 지능적 판단 및 숙련된 지혜는 물질적 성공에 필수 요소입니다. 지도력은 타고난 능력, 재량권, 의지력 및 결단력에 달려 있습니다. 영적 운명은 신앙, 사랑, 및 진리에 대한 헌신 – 공의(公義)에 대한 갈망과 열망 – 하느님을 찾고 그를 닮으려는 전심의 요망(要望)에 달려 있습니다.

156:5.8 (1739.3) Do not become discouraged by the discovery that you are human. Human nature may tend toward evil, but it is not inherently sinful. Be not downcast by your failure wholly to forget some of your regrettable experiences. The mistakes which you fail to forget in time will be forgotten in eternity. Lighten your burdens of soul by speedily acquiring a long-distance view of your destiny, a universe expansion of your career. 너희가 인간이라는 발견으로 낙담하지 말라. 인간 본성이 악을 향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본래 죄가 되지 않습니다. 너희의 유감스러운 일부 체험을 완전히 잊지 못했다고 기운을 잃고 풀이 죽지 말라. 시간 안에서 잊지 못한 실수는 영원 안에서 잊혀질 것입니다. 너희 운명의 장거리 관점, 너희 생애의 우주 확장을 빨리 얻어서 너희 혼(魂)의 부담을 가볍게 하라.

156:5.9 (1739.4) Make not the mistake of estimating the soul’s worth by the imperfections of the mind or by the appetites of the body. Judge not the soul nor evaluate its destiny by the standard of a single unfortunate human episode. Your spiritual destiny is conditioned only by your spiritual longings and purposes. 마음의 불완전성이나 육체의 욕망으로 혼(魂)의 가치를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 잘못된 인간의 사건 하나의 기준으로 혼(魂)을 판단하거나 그 운명을 평가하지 말라. 너희의 영적 운명은 너희의 영적 갈망과 목적만으로 결정됩니다. 

156:5.10 (1739.5) Religion is the exclusively spiritual experience of the evolving immortal soul of the God-knowing man, but moral power and spiritual energy are mighty forces which may be utilized in dealing with difficult social situations and in solving intricate economic problems. These moral and spiritual endowments make all levels of human living richer and more meaningful. 종교는 오로지 하느님을-아는 사람의 진화하는 불멸 혼(魂)이 겪는 영적 체험이지만, 도덕적 권능과 영적 에너지는 어려운 사회적 상황을 다루고 뒤얽힌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활용되는 강력한 세력입니다. 이런 도덕적이며 영적인 자질은 인간 생활의 모든 수준을 더 부유하고 더 의미 있게 만듭니다.

156:5.11 (1739.6) You are destined to live a narrow and mean life if you learn to love only those who love you. Human love may indeed be reciprocal, but divine love is outgoing in all its satisfaction-seeking. The less of love in any creature’s nature, the greater the love need, and the more does divine love seek to satisfy such need. Love is never self-seeking, and it cannot be self-bestowed. Divine love cannot be self-contained; it must be unselfishly bestowed.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만 너희가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너희는 편협하고 하잘것없는 삶을 살 것이 뻔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정말 상호적일 수 있지만, 신적 사랑은 만족을-추구하는 모든 점에서 개방적입니다. 어떤 창조물의 본성에서 사랑이 적을수록, 사랑의 필요가 더 커지며, 신적 사랑은 그런 필요를 충족시키려고 더 많이 시도합니다. 사랑은 결코 이기적이 아니며, 그것은 자신에게 줄 수 없습니다. 신적 사랑은 자족(自足 스스로 필요를 채움)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 욕심 없이 증여되어야 합니다.

156:5.12 (1739.7) Kingdom believers should possess an implicit faith, a whole-souled belief, in the certain triumph of righteousness. Kingdom builders must be undoubting of the truth of the gospel of eternal salvation. Believers must increasingly learn how to step aside from the rush of life — escape the harassments of material existence — while they refresh the soul, inspire the mind, and renew the spirit by worshipful communion. 하느님 나라 신자들은, 공의(公義)의 확실한 승리에 대한 절대적 신앙, 마음에서 우러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 건축자들은 영원한 구원의 복음이 진리임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자들은 분망한 생활에서 물러나 –물질 존재의 괴로움을 피하면서, 혼(魂)을 새롭게 하고, 마음에 영감을 주고, 경배의 친교로 영(靈)을 새롭게 하는 법을 점차 배워야 합니다.

156:5.13 (1739.8) God-knowing individuals are not discouraged by misfortune or downcast by disappointment. Believers are immune to the depression consequent upon purely material upheavals; spirit livers are not perturbed by the episodes of the material world. Candidates for eternal life are practitioners of an invigorating and constructive technique for meeting all of the vicissitudes and harassments of mortal living. Every day a true believer lives, he finds it easier to do the right thing. 하느님을-아는 개인들은 불행한 일로 낙담하거나 어긋한 기대로 풀이 죽지 않습니다. 신자들은 순전히 물질적인 격변의 결과로 일어나는 우울증에 면역되어 있습니다. 영(靈)으로 사는 자들은 물질 세상의 사건으로 당황하지 않습니다. 영생(永生)의 후보자들은, 필사자 생활의 모든 흥망과 괴로움에 대처하도록, 격려하는 건설적 기법의 수습(修習)자들입니다. 참 신자는 날마다 살면서, 옳은 일을 하기가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56:5.14 (1740.1) Spiritual living mightily increases true self-respect. But self-respect is not self-admiration. Self-respect is always co-ordinate with the love and service of one’s fellows. It is not possible to respect yourself more than you love your neighbor; the one is the measure of the capacity for the other. 영적 생활은 참된 자존심(自尊心 자기 품위를 스스로 높임)을 대단히 증진합니다. 그러나 자존심은 자화자찬(自畵自讚 자만)이 아닙니다. 자존심은 언제나 동료들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조화를 이룹니다. 너희가 너희 이웃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너희 자신을 존중할 수 없습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에 대한 수용력의 척도입니다.

210822 거저 받고 거저 주는 사랑 마10:8b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Freely you have received, freely give.

156:5.15 (1740.2) As the days pass, every true believer becomes more skillful in alluring his fellows into the love of eternal truth. Are you more resourceful in revealing goodness to humanity today than you were yesterday? Are you a better righteousness recommender this year than you were last year? Are you becoming increasingly artistic in your technique of leading hungry souls into the spiritual kingdom? 날이 갈수록, 모든 참 신자는 자기 동료들을 영원한 진리의 사랑으로 아주 잘 매혹하게 됩니다. 너희는 어제보다 오늘 더 풍성하게 사람들에게 선(善)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너희는 작년보다 올해 더 공의(公義)를 추천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굶주린 혼(婚)들을 영적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는 너희 기법에서 점점 숙달되고 있습니까?

156:5.16 (1740.3) Are your ideals sufficiently high to insure your eternal salvation while your ideas are so practical as to render you a useful citizen to function on earth in association with your mortal fellows? In the spirit, your citizenship is in heaven; in the flesh, you are still citizens of the earth kingdoms. Render to the Caesars the things which are material and to God those which are spiritual. 너희 생각들은 너희 필사 동료와 함께 너희가 지상에서 유능한 시민의 역할을 하기에 그렇게 실용적이면서, 너희 이상(理想)들은 너희 영원한 구원을 보증하기에 충분히 고결합니까? 영(靈)으로, 너희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육체로, 너희는 아직 지상 나라의 시민들입니다. 물질적인 것들은 가이사에게, 영적인 것들은 하느님께 바치라.

156:5.17 (1740.4) The measure of the spiritual capacity of the evolving soul is your faith in truth and your love for man, but the measure of your human strength of character is your ability to resist the holding of grudges and your capacity to withstand brooding in the face of deep sorrow. Defeat is the true mirror in which you may honestly view your real self. 진화하는 혼(魂)의 영적 수용력의 척도는 진리에 대한 너희 신앙과 사람에 대한 너희 사랑이지만, 너희 인간적 성품의 강도(强度 강한 정도)는 품은 원한을 물리치는 너희 능력과 깊은 슬픔에 직면해 곱씹기에 저항하는 너희 수용력입니다. 실패는 너희가 실제 자신을 거짓 없이 판단할 수 있는 참 거울입니다.

156:5.18 (1740.5) As you grow older in years and more experienced in the affairs of the kingdom, are you becoming more tactful in dealing with troublesome mortals and more tolerant in living with stubborn associates? Tact is the fulcrum of social leverage, and tolerance is the earmark of a great soul. If you possess these rare and charming gifts, as the days pass you will become more alert and expert in your worthy efforts to avoid all unnecessary social misunderstandings. Such wise souls are able to avoid much of the trouble which is certain to be the portion of all who suffer from lack of emotional adjustment, those who refuse to grow up, and those who refuse to grow old gracefully. 너희가 더 나이가 들고 하느님 나라 업무를 더 경험하면서, 성가신 필사자들을 더 적절히 다루고 고집 센 동료들과 함께 살면서 더 관대해지고 있습니까? 기지(機智 재치 슬기)는 사회적 영향력의 받침점이며, 관용(寬容)은 위대한 혼(魂)의 표지입니다. 너희가 이렇게 진기한 매력적 재능을 지니고 있다면, 날이 갈수록 너희는 불필요한 모든 사회적 오해를 피하려는 너희의 합당한 수고에 더 기민하게 숙달할 것입니다. 그렇게 현명한 혼(魂)들은, 감정적 부적응으로 고통을 받는 자들, 철들지 않으려는 자들 및 품위 있는 노인이 되지 않으려는 자들의 몫이 될 것이 분명한, 대부분의 어려움을 피할 수 있습니다.

156:5.19 (1740.6) Avoid dishonesty and unfairness in all your efforts to preach truth and proclaim the gospel. Seek no unearned recognition and crave no undeserved sympathy. Love, freely receive from both divine and human sources regardless of your deserts, and love freely in return. But in all other things related to honor and adulation seek only that which honestly belongs to you. 너희가 진리를 전하고 복음을 선포하려고 온전히 애쓸 때 부정직과 부당함을 피하라. 노력 없이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과분한 공감을 바라지 말라. 사랑, 너희의 공적(功績)에 상관없이, 신과 인간의 자원으로부터 거저 받고, 답례로 거저 사랑하라. 그러나 명예와 과찬(過讚)에 관련된 다른 모든 일에서는 정직하게 너희에게 속한 것만 구하라.

156:5.20 (1740.7) The God-conscious mortal is certain of salvation; he is unafraid of life; he is honest and consistent. He knows how bravely to endure unavoidable suffering; he is uncomplaining when faced by inescapable hardship. 하느님을-의식하는 필사자는 구원을 확신합니다. 그는 삶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정직하며 변함이 없습니다. 그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용감히 견디는 방법을 압니다. 그는 불가피한 곤란에 직면할 때 불평하지 않습니다.

156:5.21 (1740.8) The true believer does not grow weary in well-doing just because he is thwarted. Difficulty whets the ardor of the truth lover, while obstacles only challenge the exertions of the undaunted kingdom builder. 참된 신자는 방해가 있다고 해서 선행에 지치지 않습니다. 어려움은 진리를 사랑하는 자의 열정을 자극하며, 게다가 장애물은 불굴의 하느님 나라 건축자들의 노력을 촉구(促求 재촉하여 요구)할 뿐입니다.

156:5.22 (1740.9) And many other things Jesus taught them before they made ready to depart from Tyre. 그리고 그들이 티레를 떠나려고 준비하기 전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른 여러 가지를 가르쳤습니다.

156:5.23 (1740.10) The day before Jesus left Tyre for the return to the region of the Sea of Galilee, he called his associates together and directed the twelve evangelists to go back by a route different from that which he and the twelve apostles were to take. And after the evangelists here left Jesus, they were never again so intimately associated with him.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지역으로 돌아오려고 티레를 떠나기 전날, 그는 자기 동료들을 함께 불러서, 12 전도자가 자신과 12 사도가 가려고 택한 것과 다른 노선으로 돌아가도록 지시했습니다. 전도자들이 여기에서 예수님을 떠난 후, 그들은 결코 다시 그렇게 친밀히 그와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82-5 Endogamy and Exogamy 동족(同族) 결혼과 족외(族外) 결혼

5. Endogamy and Exogamy 동족(同族) 결혼과 족외(族外) 결혼

82:5.1 (918.1) Very early the savage observed that race mixture improved the quality of the offspring. It was not that inbreeding was always bad, but that outbreeding was always comparatively better; therefore the mores tended to crystallize in restriction of sex relations among near relatives. It was recognized that outbreeding greatly increased the selective opportunity for evolutionary variation and advancement. The outbred individuals were more versatile and had greater ability to survive in a hostile world; the inbreeders, together with their mores, gradually disappeared. This was all a slow development; the savage did not consciously reason about such problems. But the later and advancing peoples did, and they also made the observation that general weakness sometimes resulted from excessive inbreeding. 아주 초기에 야만인은 인종 혼합으로 자손의 질이 향상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족내 교배가 언제나 나쁘지는 않았지만, 족외 교배는 언제나 비교적 더 나았습니다. 따라서 관습은 가까운 친척 사이의 성관계를 구체적으로 제한하게 되었습니다. 족외 교배가 진화적 변화와 진보를 위하여 선택하는 기회를 아주 증가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족외 교배한 개인들이 더 다재다능했고, 각박한 세상에서 생존할 능력이 훨씬 컸습니다. 족내 교배자들은 자신들의 관습과 함께 점차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아주 더딘 발전이었습니다. 야만인들은 그런 문제에 관해 의식적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진보한 민족들은 그렇게 했고, 그들은 또한 일반적 결함이 지나친 족내 교배에서 종종 일어났음을 관찰했습니다.

82:5.2 (918.2) While the inbreeding of good stock sometimes resulted in the upbuilding of strong tribes, the spectacular cases of the bad results of the inbreeding of hereditary defectives more forcibly impressed the mind of man, with the result that the advancing mores increasingly formulated taboos against all marriages among near relatives. 좋은 혈통의 족내 교배로 때때로 강한 부족이 설립되었지만, 족내 교배로 인한 유전적 장애의 나쁜 결과로 놀란 경우가 사람의 마음이 더욱 강력히 인식된 결과로, 진보하는 관습이 가까운 친척 사이의 모든 결혼을 반대하는 금기를 점차 만들어냈습니다.

82:5.3 (918.3) Religion has long been an effective barrier against outmarriage; many religious teachings have proscribed marriage outside the faith. Woman has usually favored the practice of in-marriage; man, outmarriage. Property has always influenced marriage, and sometimes, in an effort to conserve property within a clan, mores have arisen compelling women to choose husbands within their fathers’ tribes. Rulings of this sort led to a great multiplication of cousin marriages. In-mating was also practiced in an effort to preserve craft secrets; skilled workmen sought to keep the knowledge of their craft within the family. 종교는 오랫동안 족외 결혼을 반대하는 실제 장벽이었습니다. 여러 종교적 가르침은 신앙 밖의 결혼을 금지했습니다. 여성은 대개 족내 결혼의 관습을, 남성은 족외 결혼의 관습을 더 좋아했습니다. 재산은 언제나 결혼에 영향을 미쳤고, 때로 씨족 내부에 재산을 보존하려고, 자기 조상의 부족 내에서 남편을 선택하도록 여성들에게 강요하는 관습이 생겼습니다. 이런 유형의 판결로 사촌 결혼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내부-짝짓기 또한 기술 비법을 보존하려고 행해졌습니다. 숙련된 장인들은 가족 내에서 자신들의 기술 지식을 지키려 했습니다.

82:5.4 (918.4) Superior groups, when isolated, always reverted to consanguineous mating. The Nodites for over one hundred and fifty thousand years were one of the great in-marriage groups. The later-day in-marriage mores were tremendously influenced by the traditions of the violet race, in which, at first, matings were, perforce, between brother and sister. And brother and sister marriages were common in early Egypt, Syria, Mesopotamia, and throughout the lands once occupied by the Andites. The Egyptians long practiced brother and sister marriages in an effort to keep the royal blood pure, a custom which persisted even longer in Persia. Among the Mesopotamians, before the days of Abraham, cousin marriages were obligatory; cousins had prior marriage rights to cousins. Abraham himself married his half sister, but such unions were not allowed under the later mores of the Jews. 우수한 집단은, 고립되었을 때, 언제나 동족 짝짓기로 되돌아갔습니다. 놋-사람들은 15만 년 이상 거대한 족내 결혼 집단 중 하나였습니다. 후일에 족내 결혼 관습은 보라 인종의 전통으로 엄청나게 영향을 받았는데, 처음에 보라 인종의 짝짓기는 부득이 남매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매 결혼은 초기 이집트, 시리아, 메소포타미아와 안드-사람들이 일찍이 차지했던 전(全) 지역에서 일반적이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왕족의 혈통을 순수하게 지키려고 오랫동안 남매 결혼을 실행했는데, 페르시아에서 훨씬 오래 이어진 관습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브라함 시대 이전에 사촌 결혼은 의무적이었습니다. 사촌들은 먼저 사촌들과 결혼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자신도 자기 이복 누이와 결혼했지만, 그런 결혼은 후대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82:5.5 (919.1) The first move away from brother and sister marriages came about under the plural-wife mores because the sister-wife would arrogantly dominate the other wife or wives. Some tribal mores forbade marriage to a dead brother’s widow but required the living brother to beget children for his departed brother. There is no biologic instinct against any degree of in-marriage; such restrictions are wholly a matter of taboo. 남매 결혼에서 멀어진 첫 행동은, 다처(多妻) 관습 아래에서, 자매-아내가 다른 아내나 아내들을 오만하게 지배하곤 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어떤 부족의 관습은 죽은 형제의 과부와 결혼하는 것을 금했지만, 살아있는 형제가 자기 죽은 형제를 위해 자녀들을 낳도록 규정했습니다. 족내 결혼을 반대하는 어떤 촌수의 생물학적 본능은 없습니다. 그런 제한은 전적으로 금기의 문제입니다.

82:5.6 (919.2) Outmarriage finally dominated because it was favored by the man; to get a wife from the outside insured greater freedom from in-laws. Familiarity breeds contempt; so, as the element of individual choice began to dominate mating, it became the custom to choose partners from outside the tribe. 남자들이 족외 결혼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결국 족외 결혼이 보급되었습니다. 외부에서 아내를 얻으면 인척들에게서 더 큰 자유가 보장되었습니다. 잘 알면 얕보기 쉬우므로, 개인 선택의 요소가 짝짓기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부족 밖에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습니다.

82:5.7 (919.3) Many tribes finally forbade marriages within the clan; others limited mating to certain castes. The taboo against marriage with a woman of one’s own totem gave impetus to the custom of stealing women from neighboring tribes. Later on, marriages were regulated more in accordance with territorial residence than with kinship. There were many steps in the evolution of in-marriage into the modern practice of outmarriage. Even after the taboo rested upon in-marriages for the common people, chiefs and kings were permitted to marry those of close kin in order to keep the royal blood concentrated and pure. The mores have usually permitted sovereign rulers certain licenses in sex matters. 여러 부족은 결국 씨족 내부의 결혼을 금지했습니다. 다른 부족들은 특정 계급과 짝짓기를 제한했습니다. 자기 토템(종족 상징 자연물)의 여성과 결혼을 반대하는 금기가 이웃 부족들에게서 여성을 훔치는 관습을 촉진했습니다. 나중에 결혼은, 친척 관계보다 지역 소재에 따라 더 규제되었습니다. 족내 결혼이 족외 결혼의 현대적 관습으로 진화하는 데 여러 단계가 있었습니다. 서민을 위해 족내 결혼에 금기가 적용된 후에도, 족장들과 왕들은 왕족 혈통을 모아 순수하게 유지하려고 가까운 혈연끼리 결혼하도록 허용했습니다. 관습은 대개 군림하는 통치자들에게 성(性) 문제에 있어서 어느 정도 방종을 허용했습니다.

82:5.8 (919.4) The presence of the later Andite peoples had much to do with increasing the desire of the Sangik races to mate outside their own tribes. But it was not possible for out-mating to become prevalent until neighboring groups had learned to live together in relative peace. 상긱 종족들이 자기 부족 밖에서 짝을 지으려는 욕구가 증가한 것은 후대 안드 민족의 존재와 많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웃 집단들이 비교적 평화롭게 같이 살아가기를 배울 때까지, 족외-짝짓기가 널리 유행할 수 없었습니다.

82:5.9 (919.5) Outmarriage itself was a peace promoter; marriages between the tribes lessened hostilities. Outmarriage led to tribal co-ordination and to military alliances; it became dominant because it provided increased strength; it was a nation builder. Outmarriage was also greatly favored by increasing trade contacts; adventure and exploration contributed to the extension of the mating bounds and greatly facilitated the cross-fertilization of racial cultures. 족외 결혼 자체는 평화 촉진자였습니다. 부족 사이의 결혼으로 적개심이 줄었습니다. 족외 결혼으로 부족적 통합-조정과 군사 동맹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힘이 증대되어서 족외 결혼이 유행했습니다. 족외 결혼이 국가를 세웠습니다. 교역 접촉의 증가로 족외 결혼 역시 더 지지를 받았습니다. 모험과 탐험이 짝짓는 범위의 확장에 큰 도움이 되었고, 인종 문화의 상호 교류를 크게 도왔습니다.

82:5.10 (919.6) The otherwise inexplicable inconsistencies of the racial marriage mores are largely due to this outmarriage custom with its accompanying wife stealing and buying from foreign tribes, all of which resulted in a compounding of the separate tribal mores. That these taboos respecting in-marriage were sociologic, not biologic, is well illustrated by the taboos on kinship marriages, which embraced many degrees of in-law relationships, cases representing no blood relation whatsoever. 종족 결혼 관습에 속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모순은 대개, 타 부족에서 아내 절도 및 구매와 동반한, 이러한 족외결혼 관습 때문인데, 이런 모든 것들의 결과로 분리된 부족 관습이 혼합되었습니다. 족내 결혼에 관한 이런 금기들은 생물학적이지 않고, 사회적이라는 사실은, 많은 정도의 인척 관계, 즉 혈연관계가 조금도 없는 경우를 나타내는 것까지 포함하는, 친족 결혼의 금기로 잘 설명됩니다.

36-4 Melchizedek Life Carriers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들

4. Melchizedek Life Carriers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들

36:4.1 (400.5) In every local system of inhabited worlds throughout Nebadon there is a single sphere whereon the Melchizedeks have functioned as life carriers. These abodes are known as the system midsonite worlds, and on each of them a materially modified Melchizedek Son has mated with a selected Daughter of the material order of sonship. The Mother Eves of such midsonite worlds are dispatched from the system headquarters of jurisdiction, having been chosen by the designated Melchizedek life carrier from among the numerous volunteers who respond to the call of the System Sovereign addressed to the Material Daughters of his sphere. 네바돈 전체의 모든 거주 세계가 속한 지역 체계마다, 멜기세덱들이 생명 운반자들로 활동하는 구체가 하나 있습니다. 이런 거처들은 체계의 중한(中限) 세계로 알려져 있으며, 그 각각에 물질적으로 변형된 멜기세덱 아들이, 아들(자녀) 된 물질 계층의 선정된 딸과 부부가 됩니다. 지명된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가, 체계 주권자가 자기 구체에 속한 물질 딸들 앞으로 보낸 초청에 응답하는 수많은 지원자 중에서, 관할권을 지닌 체계 본부에서 파송된, 그러한 중한(中限) 세계들의 어머니 이브들을 선정합니다.

36:4.2 (400.6) The progeny of a Melchizedek life carrier and a Material Daughter are known as midsoniters. The Melchizedek father of such a race of supernal creatures eventually leaves the planet of his unique life function, and the Mother Eve of this special order of universe beings also departs upon the appearance of the seventh generation of planetary offspring. The direction of such a world then devolves upon her eldest son.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와 물질 딸의 자손은 중한(中限)자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고귀한 창조물 종족의 멜기세덱 아버지는 자신이 독특한 생명 역할을 행한 행성을 결국 떠나며, 우주 존재 중 이렇게 특별한 계층의 어머니 이브도 일곱 번째 세대의 행성 자손이 나타나면 떠납니다. 그 후 그런 세계의 방침은 그녀의 장남에게 맡겨집니다.

36:4.3 (400.7) The midsonite creatures live and function as reproducing beings on their magnificent worlds until they are one thousand standard years of age; whereupon they are translated by seraphic transport. Midsoniters are nonreproducing beings thereafter because the technique of dematerialization which they pass through in preparation for enseraphiming forever deprives them of reproductive prerogatives. 중한(中限) 창조물들은 1,000 표준 나이까지 자신들의 장엄한 세계들에서 재생산하는 존재들로 살면서 활동합니다. 그때 세라핌 천사 수송으로 그들이 옮겨집니다. 그 후 중한(中限)자들은 세라핌천사 안에 들어가는 준비로 통과하는 비물질화 기법으로 재생산 특권이 영구히 박탈되어 비(非)생식 존재들이 됩니다.

36:4.4 (400.8) The present status of these beings can hardly be reckoned as either mortal or immortal, neither can they be definitely classified as human or divine. These creatures are not Adjuster indwelt, hence hardly immortal. But neither do they seem to be mortal; no midsoniter has experienced death. All midsoniters ever born in Nebadon are alive today, functioning on their native worlds, on some intervening sphere, or on the Salvington midsonite sphere in the finaliters’ group of worlds. 이런 존재들의 현재 상태를 거의 필사나 불멸로 볼 수 없으며, 그들은 인간적 혹은 신적으로 뚜렷하게 분류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창조물들은 조율자가 내주하지 않으므로 도저히 불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필사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어떤 중한(中限)자도 죽음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네바돈에서 지금까지 태어난 모든 중한(中限)자는 자신들이 태어난 세계에서, 중간에 끼어 있는 구체에서, 혹은 최종자 집단의 세계에 있는 샐빙톤 중한(中限) 구체에서 활동하면서, 오늘날 살아있습니다.

36:4.5 (401.1) The Salvington Worlds of the Finaliters. The Melchizedek life carriers, as well as the associated Mother Eves, go from the system midsonite spheres to the finaliters’ worlds of the Salvington circuit, where their offspring are also destined to forgather. 최종자들의 샐빙톤 세계들.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들은 관련된 어머니 이브들과 마찬가지로 체계 중한(中限) 구체들에서, 자신들의 자손 역시 모이도록 정해진, 샐빙톤 회로에 속한 최종자들의 세계들까지 갑니다.

36:4.6 (401.2) It should be explained in this connection that the fifth group of seven primary worlds in the Salvington circuit are the Nebadon worlds of the finaliters. The children of the Melchizedek life carriers and the Material Daughters are domiciled on the seventh world of the finaliters, the Salvington midsonite sphere. 이와 관련해, 샐빙톤 회로에 있는 일곱 1차 세계들의 다섯째 집단은 네바돈 최종자들의 세계들이라고 설명되어야 합니다.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들과 물질 딸들의 자녀들은 최종자들의 일곱째 세계, 샐빙톤 중한(中限)자 구체에서 삽니다.

36:4.7 (401.3) The satellites of the seven primary worlds of the finaliters are the rendezvous of the personalities of the super- and central universes who may be executing assignments in Nebadon. While the ascending mortals go about freely on all of the cultural worlds and training spheres of the 490 worlds comprising the Melchizedek University, there are certain special schools and numerous restricted zones which they are not permitted to enter. This is especially true of the forty-nine spheres under the jurisdiction of the finaliters. 최종자들의 일곱 1차 세계들의 위성들은, 네바돈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초우주와 중앙 우주 고유성들의 회합 장소입니다. 상승하는 필사자들이 멜기세덱 대학을 이루는 490 세계에 속한 문화 세계와 훈련 구체 전체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반면에, 그들이 들어가도록 허락되지 않은 특정한 특수 학교들과 수많은 제한 지역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최종자들의 관할권에 있는 49 구체들에 특히 해당합니다.

36:4.8 (401.4) The purpose of the midsonite creatures is not at present known, but it would appear that these personalities are forgathering on the seventh finaliter world in preparation for some future eventuality in universe evolution. Our inquiries concerning the midsonite races are always referred to the finaliters, and always do the finaliters decline to discuss the destiny of their wards. Regardless of our uncertainty as to the future of the midsoniters, we do know that every local universe in Orvonton harbors such an accumulating corps of these mysterious beings. It is the belief of the Melchizedek life carriers that their midsonite children will some day be endowed with the transcendental and eternal spirit of absonity by God the Ultimate. 중한(中限) 창조물들의 목적은 현재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이런 고유성들이 우주 진화에서 미래 궁극을 위한 준비로 일곱째 최종자 세계에 모일 것으로 보입니다. 중한(中限)종족에 관해, 우리 문의를 언제나 최종자들에게 조회해도, 최종자들은 자기 피후견인들의 운명에 관한 토의를 언제나 정중히 사양합니다. 중한(中限)자들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불확실과 관계없이, 우리는 오르본톤의 지역 우주마다 신비한 이런 존재들이 모이는 단체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멜기세덱 생명 운반자들은 궁극 하느님이 언젠가 자신들의 중한(中限) 자녀들에게 절한(絶限)의 초월적인 영원한 영(靈)을 증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S135 John the Baptist 개요 135편 세례(洗禮) 요한

S135 John the Baptist 개요 135편 세례(洗禮) 요한

135:0.1 (1496.1) JOHN the Baptist was born March 25, 7 B.C., in accordance with the promise that Gabriel made to Elizabeth in June of the previous year. 세례 요한은, 일 년 전 6월에 가브리엘이 엘리자벳에게 나타나서 약속한 대로, BC 7년 3월 25일에 태어났습니다.

  1. John Becomes a Nazarite 나실인이 된 요한

135:1.1 (1496.6) His parents had selected his age of fourteen as the appropriate year for him to take the formal Nazarite vow. 그의 부모는 그의 14살이 정식 나실인으로 서약하기에 적당한 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135:1.2 (1496.7) John as a life Nazarite was looked upon as a sanctified and holy personality. 요한은 종신(終身) 나실인으로서 신성하고 거룩한 인격으로 여겨졌습니다. 135:1.4 (1497.2) When sixteen years old, John, as a result of reading about Elijah, became greatly impressed with the prophet of Mount Carmel and decided to adopt his style of dress. 16세가 되었을 때, 요한은 엘리야에 관한 글을 읽은 결과로 갈멜산의 선지자에게 크게 감명(感銘)을 받아 그의 복장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1. The Death of Zacharias 사가랴의 죽음

135:2.1 (1497.3) After an illness of several months Zacharias died in July, A.D. 12, when John was just past eighteen years of age. 몇 달 동안 병을 앓은 후, 사가랴는 서기(西紀) 12년 7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 요한은 막 18세가 되었습니다. 135:2.2 (1497.4) In September of this year Elizabeth and John made a journey to Nazareth to visit Mary and Jesus. 이해 9월에 엘리자벳과 요한은 마리아와 예수를 방문하러 나사렛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He was admonished, not only by Jesus’ words but also by his example, to return home, take care of his mother, and await the “coming of the Father’s hour.” 예수의 말뿐만 아니라 그의 본보기에 의해 그는 깨닫게 되어,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보살피며 “아버지 시간의 도래”를 기다렸습니다. 135:2.4 (1497.6) He was very fond of Abner, the acknowledged leader and head of the Engedi colony. 그는 엥게디 거류민단의 유명한 지도자이며 우두머리인 아브너를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1. The Life of a Shepherd 목자의 생활

135:3.1 (1497.7) John’s life as a shepherd afforded him a great deal of time for thought. 요한의 생활은 목자였기에 그는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많았습니다. 135:3.3 (1498.2) John was never able completely to rise above the confusion produced by what he had heard from his parents concerning Jesus and by passages which he read in the Scriptures. 요한은 예수에 관해 부모에게서 들은 것과 성서에서 자신이 읽은 구절들로 인해 생긴 혼란에서 결코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His mother assured him that his distant cousin, Jesus of Nazareth, was the true Messiah, that he had come to sit on the throne of David, and that he (John) was to become his advance herald and chief support. 그의 어머니는 먼 사촌, 나사렛 예수가 참 메시아이며, 그는 다윗의 보좌에 앉을 것이고, 그(요한)는 그의 도래를 미리 알리는 큰 기둥이 될 것이라고 그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135:3.4 (1498.3) The feeling grew in John’s heart that he was to be the last of the old prophets and the first of the new. 자신이 옛 선지자들의 마지막이며 새 선지자들의 첫째가 되리라는 느낌이 요한의 심정에서 자라났습니다.

  1. The Death of Elizabeth 엘리자벳의 죽음

135:4.1 (1499.1) On August 17, A.D. 22, when John was twenty-eight years of age, his mother suddenly passed away. AD 22년 8월 17일, 요한이 28세가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135:4.6 (1499.6) At last he thought out the method of proclaiming the new age, the kingdom of God; he settled that he was to become the herald of the Messiah; he swept aside all doubts and departed from Engedi one day in March of A.D. 25 to begin his short but brilliant career as a public preacher. 드디어 그는 새 시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는 자신이 메시아의 선구자가 되기로 정했습니다. 그는 모든 의심을 쓸어버리고, AD 25년 3월 어느 날, 짧았지만 대중 설교자로서 눈부신 생애를 시작하려고 엥게디를 떠났습니다.

  1. The Kingdom of God 하느님의 나라

135:5.2 (1500.2) To the Jews of Palestine the phrase “kingdom of heaven” was an absolutely righteous state.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에게 “하늘나라”는 절대적으로 공의로운 국가였습니다. 135:5.4 (1500.4) Many looked expectantly for a new king in Palestine, for a regenerated Jewish nation. Another group of devout Jews taught that the world was approaching its certain end, and that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were to usher in the establishment of the kingdom of God. 많은 사람은 재건된 유대 국가를 위해 새로운 왕이 팔레스타인에 나타나 다스릴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믿음이 깊은 다른 유대인 집단은, 세상은 확실히 종말에 가까웠다는 것과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느님 나라 설립을 예고하고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135:5.5 (1500.5) The literalists taught that a world-wide war would ensue which would destroy all unbelievers, while the faithful would sweep on to universal and eternal victory. The spiritists taught that the kingdom would be ushered in by the great judgment of God, at the same time elevating the believing saints of the chosen people to high seats of honor and authority with the Son of Man. 문자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인 전쟁이 잇달아 일어나 믿지 않는 모든 자들이 멸망하는 반면에 신실히 믿는 자들은 우주적이며 영원한 승리로 압승할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 심판으로 그 나라가 임하는 동시에, 선택된 백성 중에서 믿는 성도들은 사람의 아들과 함께 명예롭고 권위 있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135:5.6 (1501.1) Some of the Jews held to the opinion that God might possibly establish this new kingdom by direct and divine intervention, but the vast majority believed that he would interpose some representative intermediary, the Messiah. 어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직접적인 신적 개입으로, 새로운 이 나라 설립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품었지만, 대다수는 중재(仲裁)하는 메시아가 대리인(代理人)으로 개입하리라고 믿었습니다. 135:5.8 (1501.3) Each of these various groups of Jewish-kingdom expectants was intrigued by the proclamations of this sincere, enthusiastic, rough-and-ready preacher of righteousness and repentance, who so solemnly exhorted his hearers to “flee from the wrath to come.” 이렇게 유대 왕국을 기다리는 여러 집단은 각자, 성실히, 열성적으로, 공의와 회개를 부르짖는 이 투박한 설교자의 외침에 매료되었으며, 그는 청중에게 “다가올 진노로부터 도피하라.”고 매우 엄숙하게 훈계했습니다.

  1. John Begins to Preach 요한이 설교를 시작하다

135:6.1 (1501.4) Early in the month of March, A.D. 25, John began to preach to the people who passed by on their way back and forth across the river Jordan. 서기 25년 3월 초기에, 요한은 요단강을 건너 오가는 도중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135:6.4 (1502.2) Only fifteen months intervened between the time John began to preach and baptize and his arrest and imprisonment at the instigation of Herod Antipas, but in this short time he baptized considerably over one hundred thousand penitents. 요한이 설교와 세례를 시작한 때부터 헤롯 안티파스의 선동으로 체포되어 갇힐 때까지 겨우 15개월이었으나, 이 짧은 기간에 그는 10만 명이 훨씬 넘는 회개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135:6.8 (1502.6) He counseled all: “Make ready for the end of the age —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그는 모두에게 권했습니다. “시대의 종말을 위해 준비하라─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1. John Journeys North 요한이 북쪽으로 여행하다.

135:7.2 (1503.2) As John journeyed north, he thought much about Jesus. “There will come after me one who is greater than I, whose sandal straps I am not worthy to stoop down and unloose. I baptize you with water, but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his shovel is in his hand thoroughly to cleanse his threshing floor; he will gather the wheat into his garner, but the chaff will he burn up with the judgment fire.” 요한은 북쪽으로 여행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위대하시니,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노라.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그 분은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줄 것이다. 자기 타작마당을 샅샅이 깨끗하게 하려고 그의 손에 삽을 들고 있느니라. 알곡은 곡간에 모아들이시겠지만, 쭉정이는 심판의 불에 태우시리라(막1:7-8, 마3:11-12).”

  1. Meeting of Jesus and John 예수님과 요한의 만남

135:8.6 (1504.4) John was atremble with emotion as he made ready to baptize Jesus of Nazareth in the Jordan at noon on Monday, January 14, A.D. 26. Thus did John baptize Jesus and his two brothers James and Jude. The four men still standing in the water heard a strange sound, and presently there appeared for a moment an apparition immediately over the head of Jesus, and they heard a voice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요한은 AD 26년 1월 14일, 월요일 정오에 요단강에서 나사렛 예수에게 세례 준비를 하면서 감정에 북받쳐 전율하였습니다. 그렇게 요한은 예수님과 그의 두 동생, 야고보와 유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여전히 물속에 서 있던 네 사람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이내 하나의 환영(幻影)이 잠깐 예수의 머리 바로 위에 나타났으며, 그들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아주 기뻐하는 자라(3:17).”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135:8.7 (1504.5) John had said, “Now I know of a certainty that you are the Deliverer.” But Jesus made no reply. 요한은 “이제 나는 당신이 해방자임을 확실히 압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 Forty Days of Preaching 40일간의 설교

135:9.2 (1505.2) It was a tense time, these forty days of tarrying, waiting for the return of Jesus. 예수께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머물렀던 이 40일은 매우 긴장된 시간이었습니다. 135:9.7 (1505.7) It was early on the morning of Sabbath, February 23, that the company of John, engaged in eating their morning meal, looked up toward the north and beheld Jesus coming to them. As he approached them, John stood upon a large rock and, lifting up his sonorous voice, said: “Behold the Son of God, the deliverer of the world! I beheld the divine spirit descending upon this man, and I heard the voice of God declare,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2월 23일 안식일 이른 아침에, 요한의 일행이 아침식사를 하는 중에 북쪽으로 올려보다가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자, 요한은 큰 바위 위에 올라서서 우렁찬 목소리를 높여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세상의 해방자를 보라! 나는 성령이 이 사람 위에 강림하는 것을 보았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아주 기뻐하는 자라.’고 선포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노라.” 135:9.9 (1506.2) To John’s inquiries about his own preaching and mission Jesus only said, “My Father will guide you now and in the future as he has in the past.” 자신의 설교와 사명에 대한 요한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단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과거에 하셨듯이 현재와 미래에도 너를 인도하시리라.”

  1. John Journeys South 요한이 남쪽으로 여행가다

135:10.1 (1506.3) Since Jesus had gone north into Galilee, John felt led to retrace his steps southward. Accordingly, on Sunday morning, March 3, John and the remainder of his disciples began their journey south. 예수께서 북쪽 갈릴리로 가셔서, 요한은 남쪽으로 발걸음을 되돌려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서 33일 일요일 아침에 요한과 나머지 제자들은 남쪽으로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135:10.2 (1506.4) In the weeks following the baptism of Jesus the character of John’s preaching gradually changed into a proclamation of mercy for the common people, while he denounced with renewed vehemence the corrupt political and religious rulers.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이후 몇 주 동안, 요한의 설교의 특징은 점차 보통 사람들을 위한 자비의 선포로 바뀌어 갔으며, 반면에 그는 다시 되살아난 격렬함으로 부패한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공공연히 비난하였습니다. 135:10.3 (1506.5) Herod resented John’s public criticisms of his domestic affairs. Accordingly, very early in the morning of June 12, the agents of Herod placed John under arrest. 헤롯은 자신의 가정 문제에 대해 요한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나 있었습니다. 따라서 6월 12일 아주 이른 아침, 헤롯의 부하들이 요한을 체포하였습니다.

  1. John in Prison 감옥에 갇힌 요한

135:11.1 (1506.6) For more than a year and a half this rugged man of God’s outdoors languished in that despicable prison. 광야에서 살던 억센 이 하나님의 사람은 그 경멸스러운 감옥에서 일 년 반 이상이나 있으면서 괴로운 생활 가운데 시들어갔습니다.

135:11.3 (1507.2) It was a sore disappointment to John that Jesus sent him no word, that he came not to see him, and that he exercised none of his great power to deliver him from prison. But Jesus knew all about this. He had great love for John, but being now cognizant of his divine nature and knowing fully the great things in preparation for John when he departed from this world and also knowing that John’s work on earth was finished, he constrained himself not to interfere in the natural outworking of the great preacher-prophet’s career. 예수께서 아무 말도 그에게 보내지 않는 점과 그를 만나러 오지 않는 점 그리고 그를 감옥에서 구하기 위해 큰 권능도 하나도 쓰지 않으신 점은 그에게 비통한 실망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매우 사랑하셨지만, 이제는 자신의 신적 본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가 이 세상을 하직하면 그에게는 위대한 일들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또한 땅에서 요한의 일은 끝이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대한 설교자-선지자 생애의 자연스러운 끝마무리에 간섭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자제하셨습니다.

135:11.4 (1507.3) Just a few days before his death John, the Son of Man replied: “Go back to John and tell him that I have not forgotten but to suffer me also this, for it becomes us to fulfill all righteousness. Tell John what you have seen and heard — that the poor have good tidings preached to them — and, finally, tell the beloved herald of my earth mission that he shall be abundantly blessed in the age to come if he finds no occasion to doubt and stumble over me.” And this was the last word John received from Jesus. This message greatly comforted him and did much to stabilize his faith and prepare him for the tragic end of his life in the flesh which followed so soon upon the heels of this memorable occasion. 죽기 바로 며칠 전에, 사람의 아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요한에게 돌아가서, 내가 잊지 않고 있다는 것과 이 또한 나에게 고통이며, 그것으로 우리가 모든 공의(公義)를 성취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에게 말하라. 요한에게 너희가 보고 들은 것 가난한 자가 기쁜 소식을 들었다는 것 을 전하고, 마지막으로, 나의 지상 사명의 귀한 전령에게, 그가 나를 의심하거나 실족하지 않는다면, 그는 장차 다가올 시대에 넘치는 복을 받으리라는 것을 전하라.” 이것이 요한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이 메시지는 그를 매우 안심시켰으며, 그의 신앙을 굳건하게 해 주었고, 이 기억할 만한 사건 바로 직후에 일어났던 그의 육신의 일생의 비극적인 종말에 대해 그를 준비시켜 주었습니다.

  1. Death of John the Baptist 세례 요한의 죽음

135:12.1 (1508.1) As John was working in southern Perea when arrested, he was taken immediately to the prison of the fortress of Machaerus, where he was incarcerated until his execution. 요한이 남쪽 페레아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되었을 때, 그는 즉시 마캐루스의 요새에 있는 교도소로 보내졌고, 처형을 당할 때까지 그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135:12.5 (1508.5) Since Herodias had failed to bring about John’s death by direct appeal to Herod, she now set herself to the task of having John put to death by cunning planning. 헤로디아스는 헤롯에게 요한을 죽여 달라는 자신의 직접적인 청원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제 요한을 죽이기 위하여 간악한 계획을 세우는 일에 직접 착수했습니다.

135:12.6 (1508.6) In the course of the evening’s festivities and entertainment, Herodias presented her daughter to dance before the banqueters. Herod was very much pleased with the damsel’s performance and, calling her before him, said: “You are charming. I am much pleased with you. Ask me on this my birthday for whatever you desire, and I will give it to you, even to the half of my kingdom.” And Herod did all this while well under the influence of his many wines. The young lady drew aside and inquired of her mother what she should ask of Herod. Herodias said, “Go to Herod and ask for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And the young woman, returning to the banquet table, said to Herod, “I request that you forthwith give me the head of John the Baptist on a platter.” 헤로디아스는 저녁 잔치들과 연회의 순서 속에 자기 딸을 연회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도록 하였습니다. 헤롯은 처녀의 공연에 매우 심히 기분이 좋아져서 그녀를 불러 말했습니다. “너는 매력이 있구나. 네가 나를 매우 기쁘게 하였으니, 나의 생일인 오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구하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노라.” 헤롯은 포도주에 몹시 취한 그 기운으로 이 모든 일을 했습니다. 젊은 처녀는 물러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헤롯에게 구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헤로디아스는 말하였습니다. “헤롯에게 가서 세례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그리고 젊은 처녀는 연회 식탁으로 돌아와서 헤롯에게 말하였습니다. “당장 세례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내게 주기를 요청하옵니다.”

135:12.7 (1508.7) Herod was filled with fear and sorrow, but because of his oath and because of all those who sat at meat with him, he would not deny the request. And Herod Antipas sent a soldier, commanding him to bring the head of John. So was John that night beheaded in the prison, the soldier bringing the head of the prophet on a platter and presenting it to the young woman at the rear of the banquet hall. And the damsel gave the platter to her mother. When John’s disciples heard of this, they came to the prison for the body of John, and after laying it in a tomb, they went and told Jesus. 헤롯은 두려움과 슬픔에 휩싸였지만, 자신이 맹세한 것과 그와 함께 앉아 회식하던 자들로 인하여 그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헤롯 안티파스는 군인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 요한은 교도소에서 목이 베어졌고, 그 군인은 선지자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그것을 연회장 뒤에 있는 그 젊은 여인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 처녀는 그 소반을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서 요한의 시체를 가지러 교도소로 왔으며, 그들은 요한의 시신을 무덤에 묻은 후에 예수님께 가서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156-4 At Tyre 티레에서

4. At Tyre 티레에서

156:4.1 (1737.2) From July 11 to July 24 they taught in Tyre. Each of the apostles took with him one of the evangelists, and thus two and two they taught and preached in all parts of Tyre and its environs. The polyglot population of this busy seaport heard them gladly, and many were baptized into the outward fellowship of the kingdom. Jesus maintained his headquarters at the home of a Jew named Joseph, a believer, who lived three or four miles south of Tyre, not far from the tomb of Hiram who had been king of the city-state of Tyre during the times of David and Solomon. 7월 11일(월)에서 24일(일요일)까지 그들은 티레에서 가르쳤습니다. 사도들은 각자 전도자 한 명씩 데려가서 이렇게 둘씩 티레와 그 주변의 모든 지역에서 그들은 가르치고 전도했습니다. 바쁜 이 항구 도시의 다국적 주민들은 즐거이 그들의 말을 듣고, 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아 하늘나라의 눈에 보이는 회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티레 남쪽으로 3-4마일(4.8-6.4km) 떨어져 사는 요셉이라는 유대인 신자의 집을 본부로 유지했는데,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도시 국가 티레의 왕이었던 히람의 무덤에서 멀지 않았습니다.

156:4.2 (1737.3) Daily, for this period of two weeks, the apostles and evangelists entered Tyre by way of Alexander’s mole to conduct small meetings, and each night most of them would return to the encampment at Joseph’s house south of the city. Every day believers came out from the city to talk with Jesus at his resting place. The Master spoke in Tyre only once, on the afternoon of July 20, when he taught the believers concerning the Father’s love for all mankind and about the mission of the Son to reveal the Father to all races of men. There was such an interest in the gospel of the kingdom among these gentiles that, on this occasion, the doors of the Melkarth temple were opened to him, and it is interesting to record that in subsequent years a Christian church was built on the very site of this ancient temple. 이 2주간 매일, 사도들과 전도자들은 소모임들을 인도하러 알렉산더의 방파제 항구를 거쳐 티레로 들어갔고, 그들 대부분이 매일 밤 도시의 남쪽 요셉의 집에 있는 야영지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매일 신자들이, 예수님의 휴식처에서 그와 얘기하려고 도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주님은, 모든 인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과 관련하여 모든 인류에게 아버지를 계시하는 아들의 사명에 관해 신자들을 가르쳤던, 7월 20일(수) 오후에 겨우 한 번 티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이방인들 사이에 하늘나라 복음에 너무 관심이 많아서, 이때, 멜카트 신전의 문이 그에게 열렸고, 몇 년이 지나서, 이 고대 신전의 그 자리에 기독교 교회가 세워진 기록은 흥미롭습니다.

156:4.3 (1737.4) Many of the leaders in the manufacture of Tyrian purple, the dye that made Tyre and Sidon famous the world over, and which contributed so much to their world-wide commerce and consequent enrichment, believed in the kingdom. When, shortly thereafter, the supply of the sea animals which were the source of this dye began to diminish, these dye makers went forth in search of new habitats of these shellfish. And thus migrating to the ends of the earth, they carried with them the message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an — the gospel of the kingdom. 자주(紫朱)색, 전 세계에 티레와 시돈을 유명하게 만들어, 세계적인 그들 상업의 결과로 풍족함에 아주 많이 도움이 된, 염료를 제조하는 여러 지도자가 하늘나라를 믿었습니다. 그 후 머지않아 이 염료의 근원이었던 바다 동물(Murex brandaris & Purpura haemastoma)의 공급이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 이 염료 제조업자들은 이런 조개의 새 서식지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그리고 땅끝까지 이렇게 이동하면서, 그들은 하느님의 아버지 되심과 인간의 형제 사랑 – 하늘나라 복음의 메시지를 가지고 갔습니다.

4장 13분 45초부터

 

156-3 The Journey up the Coast 해안을 올라가며 여행함

3. The Journey up the Coast 해안을 올라가며 여행함

210801 하늘나라 복음의 메시지 눅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But he said, “I must preach the good news of the kingdom of God to the other towns also, because that is why I was sent.”

156:3.1 (1736.6) On Tuesday, June 28, the Master and his associates left Sidon, going up the coast to Porphyreon and Heldua. They were well received by the gentiles, and many were added to the kingdom during this week of teaching and preaching. The apostles preached in Porphyreon and the evangelists taught in Heldua. While the twenty-four were thus engaged in their work, Jesus left them for a period of three or four days, paying a visit to the coast city of Beirut, where he visited with a Syrian named Malach, who was a believer, and who had been at Bethsaida the year before. 6월 28일 화요일에 예수님과 동료들은 시돈을 떠나 해안을 따라 포르피리온과 헬두아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방인들이 그들을 완전히 받아들였고, 가르치고 전도하는 이 주간에 많은 이들이 하늘나라에 추가되었습니다. 사도들은 포르피리온에서 전도하고 전도자들은 헬두아에서 가르쳤습니다. 24명이 이렇게 일하는 동안, 예수님은 사나흘 간 그들을 떠나, 해안 도시 베이루트를 방문하여, 신자로서 작년에 벳새다에 왔었던 말라크라는 이름의 시리아인(人)을 방문했습니다.

156:3.2 (1737.1) On Wednesday, July 6, they all returned to Sidon and tarried at the home of Justa until Sunday morning, when they departed for Tyre, going south along the coast by way of Sarepta, arriving at Tyre on Monday, July 11. By this time the apostles and the evangelists were becoming accustomed to working among these so-called gentiles, who were in reality mainly descended from the earlier Canaanite tribes of still earlier Semitic origin. All of these peoples spoke the Greek language. It was a great surprise to the apostles and evangelists to observe the eagerness of these gentiles to hear the gospel and to note the readiness with which many of them believed. 7월 6일 수요일에 그들 모두 시돈으로 돌아와 일요일 아침까지 유스타의 집에 머물렀고, 그들이 티레로 떠나, 사렙타를 거쳐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 7월 11일 월요일에 티레에 도착했습니다. 이 무렵 사도들과 전도자들은 소위 이런 이방인들 사이의 과업에 익숙해졌는데, 그들 대부분은 실제로, 훨씬 이른 셈족 기원의 초기 가나안 부족들의 후손이었습니다. 이 민족들 모두 그리스(헬라)어를 말했습니다. 이런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는 열망을 관찰하고 그들 대부분이 흔쾌히 믿는 것을 주목하면서 사도들과 전도자들은 아주 놀랐습니다.

3장 13분 44초까지 

156-2 Teaching in Sidon 시돈에서 가르침

2. Teaching in Sidon 시돈에서 가르침

210725 영적 진보 히5:11-14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11 We have much to say about this, but it is hard to explain because you are slow to learn. 12 In fact, though by this time you ought to be teachers, you need someone to teach you the elementary truths of God’s word all over again. You need milk, not solid food! 13 Anyone who lives on milk, being still an infant, is not acquainted with the teaching about righteousness. 14 But solid food is for the mature, who by constant use have trained themselves to distinguish good from evil.

156:2.1 (1735.5) In entering Sidon, Jesus and his associates passed over a bridge, the first one many of them had ever seen. As they walked over this bridge, Jesus, among other things, said: “This world is only a bridge; you may pass over it, but you should not think to build a dwelling place upon it.” 시돈에 들어가면서, 예수님과 동료들은, 그들 중 여럿이 처음 본 다리를 건넜습니다. 그들이 이 다리 위를 걸으면서 특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다리에 불과하니라. 너희가 그것을 건널 수 있지만, 너희는 그 위에 거처를 지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156:2.2 (1735.6) As the twenty-four began their labors in Sidon, Jesus went to stay in a home just north of the city, the house of Justa and her mother, Bernice. Jesus taught the twenty-four each morning at the home of Justa, and they went abroad in Sidon to teach and preach during the afternoons and evenings. 24명이 시돈에서 일하기 시작하자, 예수님은 도시 바로 북쪽의 집, 유스타와 그녀의 어머니 버니게의 집에 머물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매일 오전에 유스타의 집에서 24명을 가르쳤고, 그들은 오후와 저녁에 시돈으로 나가 가르치고 전도했습니다.

156:2.3 (1735.7) The apostles and the evangelists were greatly cheered by the manner in which the gentiles of Sidon received their message; during their short sojourn many were added to the kingdom. This period of about six weeks in Phoenicia was a very fruitful time in the work of winning souls, but the later Jewish writers of the Gospels were wont lightly to pass over the record of this warm reception of Jesus’ teachings by these gentiles at this very time when such a large number of his own people were in hostile array against him. 사도들과 전도자들은 시돈의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크게 격려받았습니다. 그들이 짧게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더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페니키아에서 약 6주간의 이 기간은 혼(魂)들을 얻는 과업에서 아주 결실이 풍부한 시기였지만 나중에 복음서의 유대인 저자들은, 그렇게 많은 수의 동족이 그를 거슬러 적대적으로 정렬하던, 바로 이때 이런 이방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렇게 따스하게 받아들인 기록을 경솔히 무시하곤 했습니다.

156:2.4 (1736.1) In many ways these gentile believers appreciated Jesus’ teachings more fully than the Jews. Many of these Greek-speaking Syrophoenicians came to know not only that Jesus was like God but also that God was like Jesus. These so-called heathen achieved a good understanding of the Master’s teachings about the uniformity of the laws of this world and the entire universe. They grasped the teaching that God is no respecter of persons, races, or nations; that there is no favoritism with the Universal Father; that the universe is wholly and ever law-abiding and unfailingly dependable. These gentiles were not afraid of Jesus; they dared to accept his message. All down through the ages men have not been unable to comprehend Jesus; they have been afraid to. 여러 면에서 이 이방인 신자들은 유대인들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 충분히 헤아렸습니다. 이 그리스(헬라)-말을 하는 이 여러 시리아-페니키아인(人)들은 예수께서 하느님과 같으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도 예수님과 같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위 이 이방인들은 이 세상과 전 우주 법칙의 획일성에 대한 주(主)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 인종이나 국가를 차별하지 않는 분이고, 우주 아버지는 편애가 없으며, 우주는 전적으로 언제나 법률을 따르며 확실히 신뢰할 만하다는 가르침을 그들이 파악했습니다. 이런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담하게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시대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이해하기를 두려워했던 것이었습니다.

156:2.5 (1736.2) Jesus made it clear to the twenty-four that he had not fled from Galilee because he lacked courage to confront his enemies. They comprehended that he was not yet ready for an open clash with established religion, and that he did not seek to become a martyr. It was during one of these conferences at the home of Justa that the Master first told his disciples that “even though heaven and earth shall pass away, my words of truth shall not.” 예수님은 자신의 대적들을 맞설 용기가 부족해서 갈릴리에서 도피하지 않았다고 24명에게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가 아직 기성 종교와 공개적으로 충돌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가 순교자가 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들이 이해했습니다. 유스타 집의 이런 회의 중 하나에서 주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하늘과 땅이 없어져도 내 진리의 말은 없어지지 않으리라(막13:3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6:2.6 (1736.3) The theme of Jesus’ instructions during the sojourn at Sidon was spiritual progression. He told them they could not stand still; they must go forward in righteousness or retrogress into evil and sin. He admonished them to “forget those things which are in the past while you push forward to embrace the greater realities of the kingdom.” He besought them not to be content with their childhood in the gospel but to strive for the attainment of the full stature of divine sonship in the communion of the spirit and in the fellowship of believers. 시돈에 머무는 동안 예수님의 교훈 주제는 영적 진보였습니다. 그는 그들이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공의(公義)로 전진하거나, 악과 죄로 퇴보해야 합니다. 그가 그들에게 “과거에 있는 그런 것들을 잊고, 반면에 하늘나라의 더 큰 실체들을 붙잡으려고 (곤란을 무릅쓰고) 밀고 나아가라.”라고 훈계하셨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복음 안에서 어린 단계로 만족하지 말고, 영의 교통과 신자의 친교 가운데 신적 자녀로 충분한 성장에 도달하도록 애쓰기를 강하게 바라셨습니다.

156:2.7 (1736.4) Said Jesus: “My disciples must not only cease to do evil but learn to do well; you must not only be cleansed from all conscious sin, but you must refuse to harbor even the feelings of guilt. If you confess your sins, they are forgiven; therefore must you maintain a conscience void of offense.”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제자들은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워야 하느니라. 너희는 의식적인 모든 죄를 씻어낼 뿐만 아니라 죄책감의 느낌도 품지 않으려 해야만 하느니라. 너희가 죄를 고백하면 그것은 용서받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양심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니라.”

156:2.8 (1736.5) Jesus greatly enjoyed the keen sense of humor which these gentiles exhibited. It was the sense of humor displayed by Norana, the Syrian woman, as well as her great and persistent faith, that so touched the Master’s heart and appealed to his mercy. Jesus greatly regretted that his people — the Jews — were so lacking in humor. He once said to Thomas: “My people take themselves too seriously; they are just about devoid of an appreciation of humor. The burdensome religion of the Pharisees could never have had origin among a people with a sense of humor. They also lack consistency; they strain at gnats and swallow camels.” 예수님은 이런 이방인들이 드러낸 명민한 유머 감각을 크게 즐거워하셨습니다. 시리아 여성 노라나의 커다란 불굴(不屈)의 신앙만이 아니라 그녀가 보여준 유머 감각도 주님의 심정을 그렇게 움직였고 주님의 자비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 – 유대인-의 유머가 아주 부족하여 많이 아쉬워했습니다. 그가 이전에 도마에게 말했습니다. “내 민족은 스스로 너무 심각하니라. 그들은 거의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바리새인들의 부담스러운 종교는 유머 감각을 지닌 민족 사이에서 결코 생길 수 없느니라. 그들은 일관성도 부족하니라. 그들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마23:24).”

82-4 Marriage Under the Property Mores 재산 관습 아래의 결혼

4. Marriage Under the Property Mores 재산 관습 아래의 결혼

82:4.1 (917.4) Marriage has always been closely linked with both property and religion. Property has been the stabilizer of marriage; religion, the moralizer. 결혼은 언제나 재산과 종교 모두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재산은 결혼을 안정시켰고, 종교는 결혼의 도덕을 높였습니다.

82:4.2 (917.5) Primitive marriage was an investment, an economic speculation; it was more a matter of business than an affair of flirtation. The ancients married for the advantage and welfare of the group; wherefore their marriages were planned and arranged by the group, their parents and elders. And that the property mores were effective in stabilizing the marriage institution is borne out by the fact that marriage was more permanent among the early tribes than it is among many modern peoples. 원시 결혼은 투자, 경제적 투기였습니다. 그것은 연애 놀이라기보다 업무였습니다. 고대인들은 집단의 이득과 복지를 위해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집단, 그 부모들과 장로들이 결혼을 계획하고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이 여러 현대 민족들 사이보다는 초기 부족들 사이에서 더 영구적이었다는 사실이, 재산 관습이 결혼제도의 안정에 효과적이었음을 실증합니다.

82:4.3 (917.6) As civilization advanced and private property gained further recognition in the mores, stealing became the great crime. Adultery was recognized as a form of stealing, an infringement of the husband’s property rights; it is not therefore specifically mentioned in the earlier codes and mores. Woman started out as the property of her father, who transferred his title to her husband, and all legalized sex relations grew out of these pre-existent property rights. The Old Testament deals with women as a form of property; the Koran teaches their inferiority. Man had the right to lend his wife to a friend or guest, and this custom still obtains among certain peoples. 문명이 발전하고 사유 재산이 관습에서 더 인정을 얻게 되었을 때, 절도는 큰 죄가 되었습니다. 간통은 남편의 재산권 침해하는 절도의 형태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초기 규칙과 관습에서 분명히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여성은 그녀 아버지의 재산으로 시작하여 그녀의 소유권이 그녀 남편에게 양도되었고, 법적인 모든 성(性)관계는 이렇게 미리 있었던 재산권에서 생겼습니다. 구약(舊約)은 여성들을 재산의 형태로 다룹니다. 코란은 여성이 열등하다고 가르칩니다. 남자는 자기 아내를 친구나 손님에게 빌려줄 권리가 있었고, 이런 관습은 여전히 어떤 민족들 사이에 통용됩니다.

82:4.4 (917.7) Modern sex jealousy is not innate; it is a product of the evolving mores. Primitive man was not jealous of his wife; he was just guarding his property. The reason for holding the wife to stricter sex account than the husband was because her marital infidelity involved descent and inheritance. Very early in the march of civilization the illegitimate child fell into disrepute. At first only the woman was punished for adultery; later on, the mores also decreed the chastisement of her partner, and for long ages the offended husband or the protector father had the full right to kill the male trespasser. Modern peoples retain these mores, which allow so-called crimes of honor under the unwritten law. 현대의 성(性) 질투심은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화 관습의 산물입니다. 원시인은 자기 아내에 대해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재산을 단지 보호했습니다. 남편보다 아내에게 더 엄격한 성(性) 가치를 지키게 한 이유는 아내의 배우자에 대한 부정(不貞)이 상속과 유산을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먼 문명의 진전 초기에 사생아는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여성만 간통으로 처벌했습니다. 나중에 관습은 여자의 상대자도 처벌하도록 판결했으며, 오랫동안 화가 난 남편이나 보호자 아버지는 남성 침해자를 죽일 완전한 권리가 있었습니다. 현대 민족들은 불문율에 따라 소위 명예-침해죄를 허락하는 이런 관습을 유지합니다.

82:4.5 (917.8) Since the chastity taboo had its origin as a phase of the property mores, it applied at first to married women but not to unmarried girls. In later years, chastity was more demanded by the father than by the suitor; a virgin was a commercial asset to the father — she brought a higher price. As chastity came more into demand, it was the practice to pay the father a bride fee in recognition of the service of properly rearing a chaste bride for the husband-to-be. When once started, this idea of female chastity took such hold on the races that it became the practice literally to cage up girls, actually to imprison them for years, in order to assure their virginity. And so the more recent standards and virginity tests automatically gave origin to the professional prostitute classes; they were the rejected brides, those women who were found by the grooms’ mothers not to be virgins. 순결 금기는 재산 관습의 단계로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처음에, 미혼 소녀들이 아니라, 기혼 여성에게 적용되었습니다. 후대에 구혼자보다 아버지가 더 순결을 요구했습니다. 처녀는 아버지에게 상업적 자산 – 처녀는 더 값이 나갔습니다. 순결이 더 요구되면서, 남편이 되려는 자를 위해 순결한 신부를 훌륭하게 양육한 봉사를 인정하면서, 신부 아버지에게 신부-값을 치르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여성 순결의 이런 관념이 일단 시작되면서 종족을 장악하게 되자, 소녀들의 처녀성을 보증하려고, 실제로 그들을 수년간 감금하는 것이 소녀들을 정말로 투옥하는 관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최근의 기준과 처녀성 테스트는 자동으로 전문 매춘 계급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거부된 신부들, 즉, 신랑 어머니들에게 처녀가 아닌 것으로 밝혀진 그런 여성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