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3 The Healing at Sundown 일몰(日沒해질녁)의 치유

3. The Healing at Sundown 일몰(日沒해질녁)의 치유

190929 일몰(日沒해질녘)의 치유 4:40 해 질 적에 각색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When the sun was setting, the people brought to Jesus all who had various kinds of sickness, and laying his hands on each one, he healed them.

145:3.1 (1631.6) By the time Jesus and his apostles had made ready to partake of their evening meal near the end of this eventful Sabbath day, all Capernaum and its environs were agog over these reputed miracles of healing; and all who were sick or afflicted began preparations to go to Jesus or to have themselves carried there by their friends just as soon as the sun went down. According to Jewish teaching it was not permissible even to go in quest of health during the sacred hours of the Sabbath. 이 다사(多事)한 안식일의 끝날 즈음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이 저녁식사 준비를 마쳤을 때, 모든 가버나움과 그 인근에는 이 치료(治療)의 기적 소문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해가 떨어지자마자, 병들거나 고통 받는 모든 자들이 예수님께 가거나 친구들에 실려서 갈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의 가르침에 따라, 안식일의 신성(神性)한 시간에는 건강을 찾아 나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145:3.2 (1632.1) Therefore, as soon as the sun sank beneath the horizon, scores of afflicted men, women, and children began to make their way toward the Zebedee home in Bethsaida. One man started out with his paralyzed daughter just as soon as the sun sank behind his neighbor’s house. 그래서 해가 지평선(地平線) 아래로 가라앉자마자, 고통 받는 여러 남녀와 아이들이 벳새다의 세베대 집으로 길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이웃 집 뒤편으로 해가 떨어지자마자 즉시 마비(痲痹)된 자기 딸을 데리고 출발했습니다.

145:3.3 (1632.2) The whole day’s events had set the stage for this extraordinary sundown scene. Even the text Jesus had used for his afternoon sermon had intimated that sickness should be banished; and he had spoken with such unprecedented power and authority! His message was so compelling! While he made no appeal to human authority, he did speak directly to the consciences and souls of men. Though he did not resort to logic, legal quibbles, or clever sayings, he did make a powerful, direct, clear, and personal appeal to the hearts of his hearers. 그 날 모든 사건들은 이 놀라운 일몰(해질녘)의 장면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예수께서 오후 설교에서 사용했던 본문도 질병이 떠나가야 한다고 암시하고 있었습니다(…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라 출23:25). 또한 그는 전례 없는 그런 권능과 권위로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얼마나 감동스러웠던가! 그는 인간의 권위에 어떤 호소도 하지 않으셨고, 사람들의 의식과 혼에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논리적, 율법적 재담 및 재치 있는 속담을 쓰지 않았지만, 그는 힘차게 직접적으로 분명히 그리고 개인적으로 청중들의 심정을 움직였습니다.

145:3.4 (1632.3) That Sabbath was a great day in the earth life of Jesus, yes, in the life of a universe. To all local universe intents and purposes the little Jewish city of Capernaum was the real capital of Nebadon. The handful of Jews in the Capernaum synagogue were not the only beings to hear that momentous closing statement of Jesus’ sermon: “Hate is the shadow of fear; revenge the mask of cowardice.” Neither could his hearers forget his blessed words, declaring, “Man is the son of God, not a child of the devil.” 그 안식일은 예수님의 지상(地上) 일생에서, 정말로, 우주의 일생에서 위대한 날이었습니다. 사실 지역우주에서 유대의 작은 도시 가버나움이 네바돈의 진정한 수도였습니다. 예수님의 설교에서 “증오는 두려움의 그림자이며, 복수는 비겁함의 가면이라.”는 중요한 마지막 진술을 듣는 존재들은 가버나움 회당에 있었던 소수의 유대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청중들은 “사람은 악마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언하는 그의 축복의 말씀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145:3.5 (1632.4) Soon after the setting of the sun, as Jesus and the apostles still lingered about the supper table, Peter’s wife heard voices in the front yard and, on going to the door, saw a large company of sick folks assembling, and that the road from Capernaum was crowded by those who were on their way to seek healing at Jesus’ hands. On seeing this sight, she went at once and informed her husband, who told Jesus. 해가 진 직후, 예수님과 사도들이 여전히 저녁 식탁에 계실 때, 베드로의 아내가 앞마당에서 여러 소리를 듣고 문으로 가면서, 아픈 사람들이 모여 있는 큰 무리와 예수님의 손으로 치료받으러 오는 자들로 가득한 가버나움의 도로를 보았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그녀는 즉시 들어가 남편에게 알렸고, 그는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145:3.6 (1632.5) When the Master stepped out of the front entrance of Zebedee’s house, his eyes met an array of stricken and afflicted humanity. He gazed upon almost one thousand sick and ailing human beings; at least that was the number of persons gathered together before him. Not all present were afflicted; some had come assisting their loved ones in this effort to secure healing. 주(主)께서 세베대의 집 앞 입구로 나가자, 괴로움으로 시달려 줄지어 있는 사람들을 마주했습니다. 그는 아파서 병든 거의 1,000명의 존재들을 지켜보셨습니다. 적어도 그런 수(數)의 사람들이 그 앞에 함께 모였기 때문입니다. 모여 있는 모두가 고통 받는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얼마는 이렇게 치료받으러 애쓰는, 그들이 사랑하는 자들을 도우려 왔기 때문입니다.

145:3.7 (1632.6) The sight of these afflicted mortals, men, women, and children, suffering in large measure as a result of the mistakes and misdeeds of his own trusted Sons of universe administration, peculiarly touched the human heart of Jesus and challenged the divine mercy of this benevolent Creator Son. But Jesus well knew he could never build an enduring spiritual movement upon the foundation of purely material wonders. It had been his consistent policy to refrain from exhibiting his creator prerogatives. Not since Cana had the supernatural or miraculous attended his teaching; still, this afflicted multitude touched his sympathetic heart and mightily appealed to his understanding affection. 그 자신이 신뢰했던 우주 경영의 아들들의 실수와 범죄의 결과로 크게 시달리며 이렇게 고통 받는 필사자들, 즉 남녀 및 아이들의 모습이 특히 예수님의 인간 심정을 건드려 이 자애로운 창조자 아들의 신적 자비를 자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순전히 물질적 이적의 토대에 지속적인 영적 운동을 결코 세울 수 없음을 잘 아셨습니다. 자신의 창조자 특권을 삼가는 것이 그의 일관된 방침이었습니다. 가나 이후로 초자연적이거나 기적 같은 일이 그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통 받는 이 무리가 그의 공감하는 심정을 건드렸으며 그의 동정적인 애정에 힘차게 호소했습니다.

145:3.8 (1632.7) A voice from the front yard exclaimed: “Master, speak the word, restore our health, heal our diseases, and save our souls.” No sooner had these words been uttered than a vast retinue of seraphim, physical controllers, Life Carriers, and midwayers, such as always attended this incarnated Creator of a universe, made themselves ready to act with creative power should their Sovereign give the signal. This was one of those moments in the earth career of Jesus in which divine wisdom and human compassion were so interlocked in the judgment of the Son of Man that he sought refuge in appeal to his Father’s will. 앞마당에서 한 사람이 외쳤습니다. “주(主)여, 말씀으로 우리 건강을 회복하시고, 병을 고치시며, 우리의 혼을 구원하소서.”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주의 성육신(成育身)한 창조자를 항상 섬기는 세라핌천사들, 물리 조정자들, 생명 운반자들, 중도자들의 광대한 수행원들이, 그들의 주권자가 신호하면, 창조적 권능으로 행동하려고 스스로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인자(人子)의 판단 중에서 신적 지혜와 인간적 공감이 맞물렸던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여러 순간 중 하나였으며, 그는 아버지의 뜻에 호소하며 의지했습니다.

145:3.9 (1632.8) When Peter implored the Master to heed their cry for help, Jesus, looking down upon the afflicted throng, answered: “I have come into the world to reveal the Father and establish his kingdom. For this purpose have I lived my life to this hour. If, therefore, it should be the will of Him who sent me and not inconsistent with my dedication to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heaven, I would desire to see my children made whole — and —” but the further words of Jesus were lost in the tumult. 도움의 소리에 유념해달라고 베드로가 주님께 애원하자, 예수님은 괴로워하는 군중들을 내려다보시며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아버지를 드러내고 그의 하늘나라를 세우러 왔느니라. 나는 이 시간까지 이 목적을 위하여 내 삶을 살았느니라. 그러므로 그것이 나를 보내신 그분의 뜻이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내 헌신과 모순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자녀들이 건강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 그리고 -” 그러나 그 이상의 예수님 말씀은 소란 속에 파묻혔습니다.

145:3.10 (1633.1) Jesus had passed the responsibility of this healing decision to the ruling of his Father. Evidently the Father’s will interposed no objection, for the words of the Master had scarcely been uttered when the assembly of celestial personalities serving under the command of Jesus’ Personalized Thought Adjuster was mightily astir. The vast retinue descended into the midst of this motley throng of afflicted mortals, and in a moment of time 683 men, women, and children were made whole, were perfectly healed of all their physical diseases and other material disorders. Such a scene was never witnessed on earth before that day, nor since. And for those of us who were present to behold this creative wave of healing, it was indeed a thrilling spectacle. 예수님은 이런 치유 결정의 책임을 자기 아버지의 판결에 맡겼습니다. 주(主)께서 말씀하심과 동시에, 예수님의 고유성화 생각 조율자의 명령 아래에서 섬기는 천상의 고유성들의 모임이 힘차게 움직였기 때문에, 분명히 아버지의 뜻은 어떤 반대도 없었습니다. 광대한 수행원들이 고통 받는 필사자들의 뒤섞인 이 군중 가운데 내려왔고, 순식간에 683명의 남녀와 아이들이 건강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모든 육체적 질병들과 다른 물질적 장애들이 완전하게 치료되었습니다. 그런 장면은 지상에서 그 날 이전과 이후에 결코 목격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창조적인 치료의 물결을 보는 현장에 있던 우리에게, 그것은 진정 감격적인 장관이었습니다.

145:3.11 (1633.2) But of all the beings who were astonished at this sudden and unexpected outbreak of supernatural healing, Jesus was the most surprised. In a moment when his human interests and sympathies were focused upon the scene of suffering and affliction there spread out before him, he neglected to bear in his human mind the admonitory warnings of his Personalized Adjuster regarding the impossibility of limiting the time element of the creator prerogatives of a Creator Son under certain conditions and in certain circumstances. Jesus desired to see these suffering mortals made whole if his Father’s will would not thereby be violated. The Personalized Adjuster of Jesus instantly ruled that such an act of creative energy at that time would not transgress the will of the Paradise Father, and by such a decision — in view of Jesus’ preceding expression of healing desire — the creative act was. What a Creator Son desires and his Father wills IS. Not in all of Jesus’ subsequent earth life did another such en masse physical healing of mortals take place. 그러나 별안간 예기치 않은 이 초자연적 치료의 발생으로 놀랐던 모든 존재들 중에 예수께서 가장 놀라셨습니다. 그의 인간적 관심과 공감이 그 앞에 펼쳐진 고통과 고생의 장면에 집중되는 순간, 특정한 조건들과 특정한 상황 아래에서 창조자 아들의 창조자 특권들에 속한 시간 요소를 제한하기가 불가능함에 대해서 자신의 고유성화 조율자가 충고한 경고들을 그는 인간 마음으로 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아버지의 뜻이 어긋나지 않는다면, 고생하는 이 필사자들이 건강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유성화 조율자는 그 때 그런 창조적 에너지의 행위가 천국 아버지의 뜻을 어기지 않게 된다고 즉시 판단했으며, 그런 결정에 따라 – 예수께서 치료의 소망을 앞서 표현하신 데 비추어 – 창조적 행위가 있었습니다. 창조자 아들이 원하고 그의 아버지께서 뜻하시는 것은 존재합니다. 이후 예수님의 모든 지상 생애에서 필사자들의 그런 집단적 육신 치유는 결코 다시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145:3.12 (1633.3) As might have been expected, the fame of this sundown healing at Bethsaida in Capernaum spread throughout all Galilee and Judea and to the regions beyond. Once more were the fears of Herod aroused, and he sent watchers to report on the work and teachings of Jesus and to ascertain if he was the former carpenter of Nazareth or John the Baptist risen from the dead. 예상되었던 대로, 가버나움의 벳새다에서 일몰(해질녘) 치료의 이 소문이 온 갈릴리와 유대 전역과 그 지역 너머까지 퍼졌습니다. 다시 한 번 헤롯에게 두려움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는 감시자들을 보냈으며,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에 대해 보고하고, 그가 이전의 나사렛 목수인지 아니면 죽은 자 중에서 일어난 세례 요한인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145:3.13 (1633.4) Chiefly because of this unintended demonstration of physical healing, henceforth, throughout the remainder of his earth career, Jesus became as much a physician as a preacher. True, he continued his teaching, but his personal work consisted mostly in ministering to the sick and the distressed, while his apostles did the work of public preaching and baptizing believers. 뜻하지 않은 이런 육신 치료의 증거로, 이후 그의 남은 지상 생애 내내, 예수님은 대개 의사이면서 설교자가 되셨습니다. 정말 그는 계속 가르치셨지만, 대부분 개인적으로 병들고 고통 받는 자들을 보살피셨던 반면에 그의 사도들은 대중에게 설교했으며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145:3.14 (1633.5) But the majority of those who were recipients of supernatural or creative physical healing at this sundown demonstration of divine energy were not permanently spiritually benefited by this extraordinary manifestation of mercy. A small number were truly edified by this physical ministry, but the spiritual kingdom was not advanced in the hearts of men by this amazing eruption of timeless creative healing. 그러나 이 해질녘의 신적 에너지가 나타나 초자연적 혹은 창조적으로 육체가 치료된 자들 대부분은 이 놀라운 자비의 나타남으로 계속 영적으로 유익되지 않았습니다. 소수가 이 육체적 사역으로 교화(敎化)되었지만, 이 놀라운 무(無)시간의 창조적 치료의 사건으로, 영적 하늘나라가 사람들의 심정에서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145:3.15 (1633.6) The healing wonders which every now and then attended Jesus’ mission on earth were not a part of his plan of proclaiming the kingdom. They were incidentally inherent in having on earth a divine being of well-nigh unlimited creator prerogatives in association with an unprecedented combination of divine mercy and human sympathy. But such so-called miracles gave Jesus much trouble in that they provided prejudice-raising publicity and afforded much unsought notoriety. 가끔씩 예수님의 지상 사명에 동반되었던 치유의 이적은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그의 계획의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신적 자비와 인간적 공감의 전례 없는 결합과 관련하여, 거의 제한이 없는 창조자 특권을 지닌 신적 존재가 지상에 계시면, 치유 이적들은 본래 부수적(우연히 따르는)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편견을-일으키는 평판을 제공했고 원치 않는 나쁜 평판을 많이 제공했다는 점에서, 소위 그런 기적들은 예수님께 많은 곤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