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3 The Sojourn at Amathus 아마투스에 머무름

3. The Sojourn at Amathus 아마투스에 머무름

181209 영적 능력으로 쉬게 하리라 마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8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and I will give you rest. 29 Take my yoke upon you and learn from me, for I am gentle and humble in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30 For my yoke is easy and my burden is light.”

141:3.1 (1589.2) The Master and his apostles remained near Amathus for almost three weeks. The apostles continued to preach twice daily to the multitude, and Jesus preached each Sabbath afternoon. It became impossible to continue the Wednesday playtime; so Andrew arranged that two apostles should rest each day of the six days in the week, while all were on duty during the Sabbath services. 주(主)님과 사도들은 아마투스 근처에 거의 3주간 남아있었습니다. 사도들은 매일 2번씩 군중에게 계속 설교했고, 예수님은 매 안식일 오후에 설교하셨습니다. 수요일 휴식은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드레는 한 주에서 6일 동안은 매일 두 명씩 사도들이 쉬도록 정했고, 한편 안식일 예배에는 모두가 근무했습니다.

141:3.2 (1589.3) Peter, James, and John did most of the public preaching. Philip, Nathaniel, Thomas, and Simon did much of the personal work and conducted classes for special groups of inquirers; the twins continued their general police supervision, while Andrew, Matthew, and Judas developed into a general managerial committee of three, although each of these three also did considerable religious work.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대부분의 공(公)적 설교를 했습니다. 빌립, 나다니엘, 도마, 시몬은 개인적으로 많이 일했고 특별한 그룹의 질문자들을 위해 학급을 운영했습니다. 쌍둥이들은 일반 치안 감독을 계속했고, 한편 안드레, 마태, 유다는 3인의 일반 관리 위원회를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 셋은 또한 각자 종교적 일을 상당히 했습니다.

141:3.3 (1589.4) Andrew was much occupied with the task of adjusting the constantly recurring misunderstandings and disagreements between the disciples of John and the newer disciples of Jesus. Serious situations would arise every few days, but Andrew, with the assistance of his apostolic associates, managed to induce the contending parties to come to some sort of agreement, at least temporarily. Jesus refused to participate in any of these conferences; neither would he give any advice about the proper adjustment of these difficulties. He never once offered a suggestion as to how the apostles should solve these perplexing problems. When Andrew came to Jesus with these questions, he would always say: “It is not wise for the host to participate in the family troubles of his guests; a wise parent never takes sides in the petty quarrels of his own children.” 안드레는, 요한의 제자들과 새로운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오해와 의견 차이를 조율하는 업무로 많이 분주했습니다. 며칠마다 심각한 사태가 일어났지만, 안드레는, 동료 사도들의 도움으로, 다투는 일행들을 권유해서 적어도 일시적으로 어느 정도 합의하도록 처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어떤 회의에도 참여하기를 거부하셨고, 그는 이 어려움들을 적절히 조율하는 어떤 충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사도들이 이런 곤란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한 번도 제안하지 않으셨습니다. 안드레가 이 질문들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오면, 그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손님의 가정불화에 관여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니라.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들의 사소한 싸움에 어느 편을 들지 않느니라.”

141:3.4 (1589.5) The Master displayed great wisdom and manifested perfect fairness in all of his dealings with his apostles and with all of his disciples. Jesus was truly a master of men; he exercised great influence over his fellow men because of the combined charm and force of his personality. There was a subtle commanding influence in his rugged, nomadic, and homeless life. There was intellectual attractiveness and spiritual drawing power in his authoritative manner of teaching, in his lucid logic, his strength of reasoning, his sagacious insight, his alertness of mind, his matchless poise, and his sublime tolerance. He was simple, manly, honest, and fearless. With all of this physical and intellectual influence manifest in the Master’s presence, there were also all those spiritual charms of being which have become associated with his personality — patience, tenderness, meekness, gentleness, and humility. 주(主)님은 사도들과 모든 제자를 다루는 온갖 일에서 뛰어난 지혜를 나타냈고 온전한 공평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 사람들의 달인(達人)이셨습니다. 그는 고유성의 결합된 매력과 힘으로 동료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의 어렵게 방랑하는 노숙(露宿) 생활에는 미묘하며 위엄 있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권위 있는 교육 태도, 명료한 논리, 추리력(推理力), 총명한 통찰력, 빈틈없는 마음, 비길 수 없는 안정(安定), 탁월한 포용력(包容力)에는 지적(知的) 매력과 영적 흡인력(吸引力)이 있었습니다. 그는 순수하고 남자다우며 정직하고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님의 인품(人品)에는 이 모든 육체적·지적 영향력 리스트와 더불어, 또한 그의 고유성과 관련된 그 모든 존재의 영적 매력들 – 참을성, 다정함, 온화함, 품위, 및 겸손(謙遜) -이 있었습니다.

141:3.5 (1589.6) Jesus of Nazareth was indeed a strong and forceful personality; he was an intellectual power and a spiritual stronghold. His personality not only appealed to the spiritually minded women among his followers, but also to the educated and intellectual Nicodemus and to the hardy Roman soldier, the captain stationed on guard at the cross, who, when he had finished watching the Master die, said, “Truly, this was a Son of God.” And red-blooded, rugged Galilean fishermen called him Master. 나사렛 예수는 진실로 강하고 힘센 고유성이었습니다. 그는 지적 권능과 영적(靈的) 요새(要塞)였습니다. 그의 고유성은 추종자들 중에 영적 마음의 여성들만이 아니라, 교육받은 지적 니고데모강건한 로마 군인의 마음까지 끌었습니다. 십자가에서 근무하던 그 대장은 주님의 죽음을 보고 나서 말했습니다. “진실로 이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그리고 원기 왕성하고 억센 갈릴리 어부들은 그를 주(主)님으로 불렀습니다.

141:3.6 (1590.1) The pictures of Jesus have been most unfortunate. These paintings of the Christ have exerted a deleterious influence on youth; the temple merchants would hardly have fled before Jesus if he had been such a man as your artists usually have depicted. His was a dignified manhood; he was good, but natural. Jesus did not pose as a mild, sweet, gentle, and kindly mystic. His teaching was thrillingly dynamic. He not only meant well, but he went about actually doing good. 예수님의 초상화(肖像畵)들은 가장 유감스럽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그림들은 젊은이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수님이 너희 화가들이 흔히 그렸던 그런 사람이었다면, 성전(聖殿) 상인들이 예수 앞에서 전혀 도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모습은 당당한 어른으로, 그는 선했지만, 꾸밈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온순하고 다정하며, 상냥하고 친절한 신비주의자(神秘主義者)의 자세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떨리도록 힘찼습니다. 그는 호의(好意)만이 아니라 실제로 돌아다니며 선행을 행하셨습니다.

141:3.7 (1590.2) The Master never said, “Come to me all you who are indolent and all who are dreamers.” But he did many times say, “Come to me all you who labor, and I will give you rest — spiritual strength.” The Master’s yoke is, indeed, easy, but even so, he never imposes it; every individual must take this yoke of his own free will. 주(主)님은 “게으른 너희와 꿈꾸는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는 너희는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영적 능력 –을 주리라.” 주(主)님의 멍에는, 정말로, 쉽지만, 그래도 그는 결코 강요하지 않습니다. 각 개인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이 멍에를 메어야 합니다.

141:3.8 (1590.3) Jesus portrayed conquest by sacrifice, the sacrifice of pride and selfishness. By showing mercy, he meant to portray spiritual deliverance from all grudges, grievances, anger, and the lust for selfish power and revenge. And when he said, “Resist not evil,” he later explained that he did not mean to condone sin or to counsel fraternity with iniquity. He intended the more to teach forgiveness, to “resist not evil treatment of one’s personality, evil injury to one’s feelings of personal dignity.” 예수님은 희생, 즉 자만과 이기심을 희생시킨 승리를 묘사하셨습니다. 자비를 보여서, 그는 모든 원한, 불만, 분노, 그리고 이기적 권세와 복수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영적 해방을 생생히 묘사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악에 저항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죄를 눈감아주거나 사악(邪惡)과 함께 하라는 조언(助言)을 뜻하지 않는다고 그가 나중에 설명하셨습니다. 그는 용서를 더 가르치려고, “사람의 고유성을 취급하는 악, 즉 사람의 고유적 존엄의 감정들을 해치는 악에 저항하지 말라.”는 의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