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 Thursday Afternoon on the Lake 목요일 오후 호수에서

8. Thursday Afternoon on the Lake 목요일 오후 호수에서

180826 아버지의 뜻을 행함(1) 살후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For even when we were with you, we gave you this rule: “If a man will not work, he shall not eat.”

140:8.1 (1579.3) Jesus well knew that his apostles were not fully assimilating his teachings. He decided to give some special instruction to Peter, James, and John, hoping they would be able to clarify the ideas of their associates. He saw that, while some features of the idea of a spiritual kingdom were being grasped by the twelve, they steadfastly persisted in attaching these new spiritual teachings directly onto their old and entrenched literal concepts of the kingdom of heaven as a restoration of David’s throne and the re-establishment of Israel as a temporal power on earth. Accordingly, on Thursday afternoon Jesus went out from the shore in a boat with Peter, James, and John to talk over the affairs of the kingdom. This was a four hours’ teaching conference, embracing scores of questions and answers, and may most profitably be put in this record by reorganizing the summary of this momentous afternoon as it was given by Simon Peter to his brother, Andrew, the following morning: 예수님은 사도들이 자신의 가르침들을 충분히 체득하지 못하고 있음을 잘 아셨습니다. 그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동료들에게 가르침의 관념들을 분명히 설명하기를 바라면서, 그들에게 다소 특별한 가르침을 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12사도들이 영적 나라의 관념의 어떤 특성들을 이해하는 반면에, 다윗의 보좌를 회복하는 하나님 나라와 땅에서 현세적 권능으로서 이스라엘을 재건하는, 그들의 오랫동안 확립된 문자적 개념들 위에 직접적으로 새로운 이 영적 가르침들을 첨가하려고, 굽히지 않고 집착했음을 예수께서 보셨습니다. 따라서 목요일 오후에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일을 논의하려고 배를 타고 물가를 떠나가셨습니다. 이것은 수십 가지 질문과 대답을 포함한 4시간의 수업(교수敎授회의會議)로, 시몬 베드로가 다음 날 아침에 형 안드레에게 주었던 이 중요한 오후 요약을 재구성하여 이 기록에 넣는 것이 가장 유익할 것입니다.

140:8.2 (1579.4) 1. Doing the Father’s will. Jesus’ teaching to trust in the overcare of the heavenly Father was not a blind and passive fatalism. He quoted with approval, on this afternoon, an old Hebrew saying: “He who will not work shall not eat.” He pointed to his own experience as sufficient commentary on his teachings. His precepts about trusting the Father must not be adjudged by the social or economic conditions of modern times or any other age. His instruction embraces the ideal principles of living near God in all ages and on all worlds. 아버지의 뜻을 행함. 하늘 아버지의 보호를 신뢰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맹목적이며 수동적인 운명론(運命論숙명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 날 오후에, 오래된 히브리 속담에 동의하며 인용하셨습니다. “일하지 않으려는 자는 먹지 말라.” 그는 자신의 체험으로 가르침들을 충분히 설명(주석)했습니다. 아버지를 신뢰함에 대한 그의 교훈들은 현대나 다른 시대의 사회적 또는 경제적 상황으로 판단되지 말아야만 합니다. 그의 교훈은 모든 시대와 모든 세계에서 하나님과 가깝게 사는 이상적 원리들을 포함합니다.

140:8.3 (1579.5) Jesus made clear to the three the difference between the requirements of apostleship and discipleship. And even then he did not forbid the exercise of prudence and foresight by the twelve. What he preached against was not forethought but anxiety, worry. He taught the active and alert submission to God’s will. In answer to many of their questions regarding frugality and thriftiness, he simply called attention to his life as carpenter, boatmaker, and fisherman, and to his careful organization of the twelve. He sought to make it clear that the world is not to be regarded as an enemy; that the circumstances of life constitute a divine dispensation working along with the children of God. 예수님은 세 사도들에게 사도의 신분과 제자의 신분 자격 차이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12사도들이 검약(儉約아껴 씀)과 선견(先見내다 봄)의 실천을 금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반대하신 설교는 예상(豫想미리 생각함)이 아니라 걱정·근심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적극적으로 기민하게 복종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검약(儉約아껴 씀)과 검소(儉素수수함)에 대한 사도들의 많은 질문에 대답으로, 그는 단지 목수, 배-제작자, 어부였던 자신의 일생과 12사도의 신중한 자신의 조직을 환기(喚起)시켰습니다. 세상을 적으로 간주하지 말고, 생활환경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작용하는 신적 섭리의 요소라고 그는 분명히 밝히려 애쓰셨습니다.

180902 아버지의 뜻을 행함(2) 마5:43-44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3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Love your neighbor and hate your enemy.’ 44 But I tell you: Love your enemies and pray for those who persecute you,

140:8.4 (1579.6) Jesus had great difficulty in getting them to understand his personal practice of nonresistance. He absolutely refused to defend himself, and it appeared to the apostles that he would be pleased if they would pursue the same policy. He taught them not to resist evil, not to combat injustice or injury, but he did not teach passive tolerance of wrongdoing. And he made it plain on this afternoon that he approved of the social punishment of evildoers and criminals, and that the civil government must sometimes employ force for the maintenance of social order and in the execution of justice.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무저항 실천을 이해시키는데 아주 어려웠습니다. 그는 무조건 자기 방어를 거부하셨으며, 사도들이 동일한 정책을 추구한다면 그가 기뻐하실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사도들이 악에 저항하지 말고, 불법이나 손해(損害)와 싸우지 말라고 가르치셨지만, 범죄를 수동적으로 참으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날 오후에, 악인들과 범죄자들의 사회적 처벌을 찬성하셨으며, 국가 정부가 때로는 사회 질서 유지와 정의 실행으로 무력을 사용해야만 한다고 명백히 밝히셨습니다.

140:8.5 (1579.7) He never ceased to warn his disciples against the evil practice of retaliation; he made no allowance for revenge, the idea of getting even. He deplored the holding of grudges. He disallowed the idea of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He discountenanced the whole concept of private and personal revenge, assigning these matters to civil government, on the one hand, and to the judgment of God, on the other. He made it clear to the three that his teachings applied to the individual, not the state. He summarized his instructions up to that time regarding these matters, as: 그는 사도들에게 보복(報復앙갚음)하는 악행(惡行)에 대항하라고 끊임없이 경고하셨습니다. 그는 복수(復讎), 즉 원수 갚는 관념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평(원한)을 품는 것도 개탄(慨嘆분함과 걱정으로 탄식)하셨습니다.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관념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적이며 개인적인 복수(復讎)의 모든 개념을 찬성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한편으로는 국가 정부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습니다. 그는 세 사도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에게 적용된다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는 이 문제들에 대해 그 때까지 자신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셨습니다.

140:8.6 (1580.1) Love your enemies — remember the moral claims of human brotherhood.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 인간의 형제 됨이라는 도덕적 요구를 기억하라.

140:8.7 (1580.2) The futility of evil: A wrong is not righted by vengeance. Do not make the mistake of fighting evil with its own weapons. 악은 무용성(無用性쓸데없음): 잘못은 보복으로 고쳐지지 않습니다. 악 자체의 무기로 악과 싸우는 잘못을 행하지 말라.

140:8.8 (1580.3) Have faith — confidence in the eventual triumph of divine justice and eternal goodness. 신앙, 즉 신적 정의(正義올바른 도리)와 영원한 선(善)이 결국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지라.

180909 정치적 태도 마22: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Caesar’s,” they replied. Then he said to them, “Give to Caesar what is Caesar’s, and to God what is God’s.”

140:8.9 (1580.4) 2. Political attitude. He cautioned his apostles to be discreet in their remarks concerning the strained relations then existing between the Jewish people and the Roman government; he forbade them to become in any way embroiled in these difficulties. He was always careful to avoid the political snares of his enemies, ever making reply, “Render to Caesar the things which are Caesar’s and to God the things which are God’s.” He refused to have his attention diverted from his mission of establishing a new way of salvation; he would not permit himself to be concerned about anything else. In his personal life he was always duly observant of all civil laws and regulations; in all his public teachings he ignored the civic, social, and economic realms. He told the three apostles that he was concerned only with the principles of man’s inner and personal spiritual life. 정치적 태도.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유대 민족과 로마정부 사이에 그 때 존재하는 긴장관계에 대해 비평을 삼가라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그들이 여하튼 이 어려움들에 휩쓸리는 것을 그가 금하셨습니다. 그는 늘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답하시면서, 적들의 정치적 함정을 피하려고 언제나 조심하셨습니다. 그는 구원의 새 길을 세우는 자신의 사명에서 딴 데로 주의(注意)돌리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다른 것에 관여되도록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 생활에서, 그는 항상 모든 시민법과 규정을 당연히 지켰습니다. 그는 모든 공적 가르침에서 시민적, 사회적, 경제적 영역은 무시했습니다. 그는 사람의 내적·개인적 영적 생활의 원리들에만 자신이 관련되었다고 세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40:8.10 (1580.5) Jesus was not, therefore, a political reformer. He did not come to reorganize the world; even if he had done this, it would have been applicable only to that day and generation. Nevertheless, he did show man the best way of living, and no generation is exempt from the labor of discovering how best to adapt Jesus’ life to its own problems. But never make the mistake of identifying Jesus’ teachings with any political or economic theory, with any social or industrial system. 따라서 예수님은 정치적 개혁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재조직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가 그러셨더라도, 그것은 그 당시 세대에만 적용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사람에게 최선으로 사는 길을 보이셨으며, 어떤 세대도 자기 문제들에 최선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적응시키는 방법을 찾는 수고에서 면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떤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론, 어떤 사회적 또는 산업적 체계와 동일시하는 실수를 결코 저지르지 말라.

180916 사회적 태도 마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Do not judge, or you too will be judged.”

140:8.11 (1580.6) 3. Social attitude. The Jewish rabbis had long debated the question: Who is my neighbor? Jesus came presenting the idea of active and spontaneous kindness, a love of one’s fellow men so genuine that it expanded the neighborhood to include the whole world, thereby making all men one’s neighbors. But with all this, Jesus was interested only in the individual, not the mass. Jesus was not a sociologist, but he did labor to break down all forms of selfish isolation. He taught pure sympathy, compassion. Michael of Nebadon is a mercy-dominated Son; compassion is his very nature. 사회적 태도. 유대 랍비들은 ‘누가 나의 이웃인가?’라는 문제를 오랫동안 논의해 왔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적극적이며 자발적인 친절 관념을 제시하셨습니다. 동료 인간들을 그토록 진심으로 사랑하셔서 이웃됨이 전(全) 세계를 포함하도록 확장하셔서,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이웃들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와 함께, 예수님은 집단이 아니라 오직 개인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사회학자가 아니었지만 모든 형태의 이기적 고립을 부수려고 수고하셨습니다. 그는 순수한 공감, 연민을 가르치셨습니다. 네바돈의 미가엘은 자비에-사로잡힌 아들이시며, 연민은 바로 그의 본성입니다.

140:8.12 (1580.7) The Master did not say that men should never entertain their friends at meat, but he did say that his followers should make feasts for the poor and the unfortunate. Jesus had a firm sense of justice, but it was always tempered with mercy. He did not teach his apostles that they were to be imposed upon by social parasites or professional alms-seekers. The nearest he came to making sociological pronouncements was to say, “Judge not, that you be not judged.” 주(主)님은 사람들이 친구들을 식사에 초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지 않으셨지만, 자신의 추종자들에게는 가난한 자들과 불우한(버림받은) 자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야만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확고한 정의감을 지니셨지만, 그것은 언제나 자비로 조절되었습니다. 그는 사도들에게 사회의 식객(食客하는 일없이 얻어먹는 사람)들이나 직업적 자선-구걸자들에게 이용당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사회학적 선언에 가장 밀접했던 말씀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였습니다.

140:8.13 (1580.8) He made it clear that indiscriminate kindness may be blamed for many social evils. The following day Jesus definitely instructed Judas that no apostolic funds were to be given out as alms except upon his request or upon the joint petition of two of the apostles. In all these matters it was the practice of Jesus always to say, “Be as wise as serpents but as harmless as doves.” It seemed to be his purpose in all social situations to teach patience, tolerance, and forgiveness. 그는 분별없는 친절이 많은 사회악의 책임일 수 있다고 밝히셨습니다. 다음날 예수님은 자신의 요구나 사도들 2명의 공동 요청이 아니면, 사도의 기금(재산)을 자선(구제)금으로 주지 말라고, 유다에게 단호히 지시하셨습니다. 이 모든 문제들에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고 예수님은 늘 습관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회적 상황에서 인내, 관용 그리고 용서를 가르치는 것이 그의 목적인 듯했습니다.

140:8.14 (1581.1) The family occupied the very center of Jesus’ philosophy of life — here and hereafter. He based his teachings about God on the family, while he sought to correct the Jewish tendency to overhonor ancestors. He exalted family life as the highest human duty but made it plain that family relationships must not interfere with religious obligations. He called attention to the fact that the family is a temporal institution; that it does not survive death. Jesus did not hesitate to give up his family when the family ran counter to the Father’s will. He taught the new and larger brotherhood of man — the sons of God. In Jesus’ time divorce practices were lax in Palestine and throughout the Roman Empire. He repeatedly refused to lay down laws regarding marriage and divorce, but many of Jesus’ early followers had strong opinions on divorce and did not hesitate to attribute them to him. All of the New Testament writers held to these more stringent and advanced ideas about divorce except John Mark. 가족은 여기와 향후 예수님의 생활 철학에서 바로 핵심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가족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가르친 반면에 조상들을 과도히 공경하는 유대인의 경향을 바로잡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가정생활을 최상의 인간적 의무로 격찬했지만 가족관계가 종교적 책임에 저촉(抵觸거슬림)하지 말아야한다고 밝히셨습니다. 그는 가족이 현세적 제도이며, 죽음 이후에 생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예수님은 가족이 아버지의 뜻에 거스를 때, 자기 가족을 주저함없이 포기하셨습니다. 그는 새롭고 폭넓게 사람의 형제 됨 –하나님의 아들들–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타인과 로마제국 전역에서 이혼풍습이 넘쳤습니다. 그는 결혼과 이혼에 관한 법칙 규정을 거듭해서 거부하셨지만, 예수님의 초기 추종자들 대부분은 이혼에 대해 확고한 의견들을 지녔고, 그것들을 서슴없이 예수님의 의견으로 돌렸습니다. 요한 마가를 제외하고 모든 신약(新約) 성서(聖書)의 저자들은 이혼에 대해 더 엄중하고 진보적인 이 관념들을 고수했습니다.

180923 경제적 태도 눅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Then he said to them, “Watch out! Be on your guard against all kinds of greed; a man’s life does not consist in the abundance of his possessions.”

140:8.15 (1581.2) 4. Economic attitude. Jesus worked, lived, and traded in the world as he found it. He was not an economic reformer, although he did frequently call attention to the injustice of the unequal distribution of wealth. But he did not offer any suggestions by way of remedy. He made it plain to the three that, while his apostles were not to hold property, he was not preaching against wealth and property, merely its unequal and unfair distribution. He recognized the need for social justice and industrial fairness, but he offered no rules for their attainment. 경제적 태도. 예수님은 자신이 파악한 대로 세상에서 일하였고 사셨으며 거래하셨습니다. 그가 경제 개혁가는 아니었지만, 부(富)의 불평등한 분배의 부당함에 자주 환기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방지책으로 어떤 제안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 사도들에게, 그의 사도들이 재산을 붙들고 있지 않아야 함은, 부와 재산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단지 불평등하고 부당한 분배에 대한 설교라고 밝히셨습니다. 그는 사회적 정의와 산업적 공평의 필요를 인정했지만, 그 달성을 위해 어떤 규율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140:8.16 (1581.3) He never taught his followers to avoid earthly possessions, only his twelve apostles. Luke, the physician, was a strong believer in social equality, and he did much to interpret Jesus’ sayings in harmony with his personal beliefs. Jesus never personally directed his followers to adopt a communal mode of life; he made no pronouncement of any sort regarding such matters. 그는 열 두 사도들을 제외한 그의 추종자들에게 현세의 소유물을 피하라고 결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의사(醫師) 누가는 사회적 평등의 강한 신봉자였고, 예수님의 말씀들을 자신의 개인적 믿음들과 조화되게 많이 해석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추종자들이 공동생활 방식을 받아들이라고 직접 지시한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는 그런 문제들에 관해 어떤 종류의 선언도 하지 않았습니다.

140:8.17 (1581.4) Jesus frequently warned his listeners against covetousness, declaring that “a man’s happiness consists not in the abundance of his material possessions.” He constantly reiterated, “What shall it profit a man if he gain the whole world and lose his own soul?” He made no direct attack on the possession of property, but he did insist that it is eternally essential that spiritual values come first. In his later teachings he sought to correct many erroneous Urantia views of life by narrating numerous parables which he presented in the course of his public ministry. Jesus never intended to formulate economic theories; he well knew that each age must evolve its own remedies for existing troubles. And if Jesus were on earth today, living his life in the flesh, he would be a great disappointment to the majority of good men and women for the simple reason that he would not take sides in present-day political, social, or economic disputes. He would remain grandly aloof while teaching you how to perfect your inner spiritual life so as to render you manyfold more competent to attack the solution of your purely human problems. 예수님은 청중들에게 탐욕에 대해 자주 경고하시면서, “사람의 행복은 그의 물질적 소유의 풍부함에 있지 않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혼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라고 변함없이 반복하셨습니다. 그는 재산의 소유에 대해 직접 공격하지 않았지만, 영적 가치가 먼저라는 영원한 본질을 주장하셨습니다. 후기 가르침에서 그는 대중 사역의 과정에서 제시한 수많은 비유들을 얘기하여 지구(유란시아)의 잘못된 여러 인생의 관점들을 바로잡으려고 애쓰셨습니다. 예수님은 경제이론을 세우려는 의도가 결코 없었습니다. 그는 시대마다 당면 문제에 대한 자체의 개선책을 끌어내야만 함을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육신으로 사시면서 오늘날 지상에 계셨다면, 그가 오늘날의 정치적, 사회적 또는 경제적 분쟁에서 어떤 편도 들지 않을 것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인해 대부분의 선남선녀들에게 큰 실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너희를 몇 배나 유능하게 만들어 순전히 너희 인간 문제들의 해결에 달려들도록, 너희 내적인 영적 생활을 온전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면서 숭고하게 초연(超然현실에 참견하지 않음)할 것입니다.

140:8.18 (1581.5) Jesus would make all men Godlike and then stand by sympathetically while these sons of God solve their own political, social, and economic problems. It was not wealth that he denounced, but what wealth does to the majority of its devotees. On this Thursday afternoon Jesus first told his associates that “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같이 만들어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및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동안 공감을 나타내시며 곁에 계실 것입니다. 그가 비난하신 것은 부유함이 아니라, 그 부유함이 광신적으로 부(富)를 의지하는 대다수에게 행하는 것(영향)이었습니다. 이 목요일 오후에 예수님은 처음으로 동료들에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라고 하셨습니다.

180930 개인적 종교1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Not everyone who says to me, ‘Lord, Lord,’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ut only he who does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140:8.19 (1581.6) 5. Personal religion. You, as did his apostles, should the better understand Jesus’ teachings by his life. He lived a perfected life on Urantia, and his unique teachings can only be understood when that life is visualized in its immediate background. It is his life, and not his lessons to the twelve or his sermons to the multitudes, that will assist most in revealing the Father’s divine character and loving personality. 개인적 종교. 너희는, 그의 사도들이 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그의 가르침을 더 온전히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는 지구(유란시아)에서 완성된 일생을 사셨고, 직접적인 배경 안에서 그 생애가 구체적으로 그려질 때에만, 그의 유일한 가르침들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신적 성품과 애정 어린 고유성을 드러내도록 최대로 도움이 될 것은, 예수님의 일생이지, 열 두 사도들에게 주신 가르침들이나 대중들에게 주신 그의 설교가 아닙니다.

140:8.20 (1582.1) Jesus did not attack the teachings of the Hebrew prophets or the Greek moralists. The Master recognized the many good things which these great teachers stood for, but he had come down to earth to teach something additional, “the voluntary conformity of man’s will to God’s will.” Jesus did not want simply to produce a religious man, a mortal wholly occupied with religious feelings and actuated only by spiritual impulses. Could you have had but one look at him, you would have known that Jesus was a real man of great experience in the things of this world. The teachings of Jesus in this respect have been grossly perverted and much misrepresented all down through the centuries of the Christian era; you have also held perverted ideas about the Master’s meekness and humility. What he aimed at in his life appears to have been a superb self-respect. He only advised man to humble himself that he might become truly exalted; what he really aimed at was true humility toward God. He placed great value upon sincerity — a pure heart. Fidelity was a cardinal virtue in his estimate of character, while courage was the very heart of his teachings. “Fear not” was his watchword, and patient endurance his ideal of strength of character. The teachings of Jesus constitute a religion of valor, courage, and heroism. And this is just why he chose as his personal representatives twelve commonplace men, the majority of whom were rugged, virile, and manly fishermen. 예수님은 히브리 선지자들이나 그리스 도덕가들의 가르침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주(主)님은 이 위대한 선생들이 대표했던 여러 좋은 것들을 인정하셨지만, 그는 추가적인 어떤 것, 즉 “하나님의 뜻에 대한 사람 의지의 자발적 순종(順從)”을 가르치려고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종교인, 즉 종교적 감정으로 가득 차서 영적 충동만으로 움직이는 필사자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한 번만이라도 그를 볼 수 있었다면, 예수님이 이 세상일에서 위대한 체험을 하신 진정한 사람이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예수님의 가르침들은 여러 세기의 기독교 시대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왜곡되었고 굉장히 와전(訛傳사실과 다르게 전해짐)되었습니다. 너희들도 주(主)님의 온유함과 겸손에 대해 왜곡된 관념을 품어 왔습니다. 그의 인생 목표는 최상의 자아-존중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사람이 겸손해야 진실로 고귀해질 수 있다고 충고만 하셨습니다. 그가 실제로 목표삼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겸손이었습니다. 그는 성실–순수한 심정-에 위대한 가치를 두셨습니다. 충성은 그가 성품을 평가하는 중요한 미덕이었던 반면에 용기는 그의 가르침의 핵심이었습니다. “두려워 말라”는 말은 그의 표어였고, 끈기 있는 인내는 강건한 성품에 대한 그의 이상(理想완전한 상태)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용맹(勇猛용감), 용기(勇氣굳셈) 및 영웅심(英雄心)의 종교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가 자신의 개인적 대표자들로서 12명의 평범한 사람들, 즉 대다수가 소박하고 힘차며 씩씩한 어부들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140:8.21 (1582.2) Jesus had little to say about the social vices of his day; seldom did he make reference to moral delinquency. He was a positive teacher of true virtue. He studiously avoided the negative method of imparting instruction; he refused to advertise evil. He was not even a moral reformer. He well knew, and so taught his apostles, that the sensual urges of mankind are not suppressed by either religious rebuke or legal prohibitions. His few denunciations were largely directed against pride, cruelty, oppression, and hypocrisy. 예수님은 그 시대의 사회악(社會惡)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습니다. 도덕적 비행(非行)도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긍정적으로 참된 미덕을 가르치는 선생이셨습니다. 그는 가르치실 때 부정적 방법을 신중히 피하셨습니다. 그는 악이 선전(宣傳)되기를 거부하였다. 그는 도덕적 개혁가도 아니셨습니다. 그는 인간의 관능적 충동이 종교적 비난이나 법적 금지로 억제되지 않음을 잘 아셨고, 사도들에게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의 몇 가지 비난은 주로 자만(自慢스스로 자랑함), 잔인(殘忍인정없이 모짐), 억압(抑壓억지로 억누름), 위선(僞善겉으로만 착한 체함)을 향했습니다.

140:8.22 (1582.3) Jesus did not vehemently denounce even the Pharisees, as did John. He knew many of the scribes and Pharisees were honest of heart; he understood their enslaving bondage to religious traditions. Jesus laid great emphasis on “first making the tree good.” He impressed the three that he valued the whole life, not just a certain few special virtues. 예수님은 요한이 했듯이 바리새인들까지 맹렬히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심정이 정직했음을 아셨습니다. 그는 종교적 전통에 노예로 속박된 그들을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나무를 좋게 만드는 것”에 큰 비중을 두셨습니다. 그는 세 사도들에게, 자신은 몇 가지 특별한 미덕들이 아니라, 일생 전체를 평가한다고 명심하게 했습니다.

181007 개인적 종교2(성장) 마13:31-32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1 He told them another parable: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mustard seed, which a man took and planted in his field. 32 Though it is the smallest of all your seeds, yet when it grows, it is the largest of garden plants and becomes a tree, so that the birds of the air come and perch in its branches.”

140:8.23 (1582.4) The one thing which John gained from this day’s teaching was that the heart of Jesus’ religion consisted in the acquirement of a compassionate character coupled with a personality motivated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요한은 이 날 가르침에서 얻은 한 가지는 예수님 종교의 핵심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고유성과 연결된 온정(溫情따뜻한 공감)의 성격 획득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40:8.24 (1582.5) Peter grasped the idea that the gospel they were about to proclaim was really a fresh beginning for the whole human race. He conveyed this impression subsequently to Paul, who formulated therefrom his doctrine of Christ as “the second Adam.” 베드로는 그들이 선포할 복음이 정말로 온 인류를 위한 새로운 시작이라는 관념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이 감동적 인상을 나중에 바울에게 전했고, 바울은 거기에서 그리스도가 “두 번째 아담”이라는 자신의 교리를 고안했습니다.

140:8.25 (1582.6) James grasped the thrilling truth that Jesus wanted his children on earth to live as though they were already citizens of the completed heavenly kingdom. 야고보는 예수님의 자녀들이 땅에서 이미 완성된 하늘나라의 시민들인 것처럼 살기를 예수님께서 원하신다는 감격적인 진리를 붙잡았습니다.

140:8.26 (1582.7) Jesus knew men were different, and he so taught his apostles. He constantly exhorted them to refrain from trying to mold the disciples and believers according to some set pattern. He sought to allow each soul to develop in its own way, a perfecting and separate individual before God. In answer to one of Peter’s many questions, the Master said: “I want to set men free so that they can start out afresh as little children upon the new and better life.” Jesus always insisted that true goodness must be unconscious, in bestowing charity not allowing the left hand to know what the right hand does. 예수님은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아셨고, 그렇게 사도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사도들에게 제자들과 신자들을 어떤 정해진 틀에 따라 만들려고 하지 말라고 항상 타이르셨습니다. 그는 각자(혼) 자신의 방법으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독립된 개인(個人)을 개발하도록 놔두기 바라셨습니다. 베드로의 여러 질문 중 하나에 대답하여 주(主)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어린이들처럼 새롭게 더 나은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방하기를 바라노라.” 예수님은 참된 선(善)은 의식하지 않게, 즉 구제(救濟)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만 한다고 항상 주장하셨습니다.

140:8.27 (1583.1) The three apostles were shocked this afternoon when they realized that their Master’s religion made no provision for spiritual self-examination. All religions before and after the times of Jesus, even Christianity, carefully provide for conscientious self-examination. But not so with the religion of Jesus of Nazareth. Jesus’ philosophy of life is without religious introspection. The carpenter’s son never taught character building; he taught character growth, declaring tha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mustard seed. But Jesus said nothing which would proscribe self-analysis as a prevention of conceited egotism. 세 사도들은 주(主)님의 종교는 영적 자기-반성을 위한 규정이 없음을 깨닫고 이날 오후에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시대 이전과 이후의 모든 종교는, 기독교도, 양심적인 자기-반성을 신중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님의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인생철학은 종교적 자기반성이 없습니다. 목수의 아들은 결코 인격 도야(陶冶 교육, 훈련, 형성, 개발)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나라가 겨자씨와 같다고 선언하시면서, 인격 성장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만한 자기과시(自己誇示)벽(癖병, 버릇)의 예방책으로써 자아-분석을 금지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181014 개인적 종교3 마13:45-46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5 “Again,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merchant looking for fine pearls. 46 When he found one of great value, he went away and sold everything he had and bought it.

140:8.28 (1583.2) The right to enter the kingdom is conditioned by faith, personal belief. The cost of remaining in the progressive ascent of the kingdom is the pearl of great price, in order to possess which a man sells all that he has.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권리는 신앙, 개인적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보적 상승을 유지하는 비용은, 사람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얻으려는 값비싼 진주입니다.

140:8.29 (1583.3) The teaching of Jesus is a religion for everybody, not alone for weaklings and slaves. His religion never became crystallized (during his day) into creeds and theological laws; he left not a line of writing behind him. His life and teachings were bequeathed the universe as an inspirational and idealistic inheritance suitable for the spiritual guidance and moral instruction of all ages on all worlds. And even today, Jesus’ teaching stands apart from all religions, as such, albeit it is the living hope of every one of them. 예수님의 가르침은 약한 사람들과 노예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종교입니다. 그의 종교는 그 당시 결코 신조들과 신학적 법칙으로 구체화(명확히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뒤에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일생과 가르침은 온 세상의 모든 세대에게 영적 안내와 도덕적 교훈에 알맞게 영감을 주는 이상주의(理想主義)적 유산으로서 우주에 증여(贈與선물로 줌)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자체로 모든 종교들에게 살아있는 희망이지만, 모든 종교들과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

140:8.30 (1583.4) Jesus did not teach his apostles that religion is man’s only earthly pursuit; that was the Jewish idea of serving God. But he did insist that religion was the exclusive business of the twelve. Jesus taught nothing to deter his believers from the pursuit of genuine culture; he only detracted from the tradition-bound religious schools of Jerusalem. He was liberal, big-hearted, learned, and tolerant. Self-conscious piety had no place in his philosophy of righteous living. 예수님은 종교를 사람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추구할 것이라고 사도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한 유대인들의 관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교를 열 두 사도들이 전념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신자들에게 진정한 문화의 추구를 막는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통에 묶여있던 예루살렘의 종교학파들에서 신자들을 단지 떼어놓으셨습니다. 그는 개방적이고, 마음이 넓으며, 박식했고, 너그러웠습니다. 과도하게 자기를 의식하는 경건은 정의롭게 사는 그의 철학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40:8.31 (1583.5) The Master offered no solutions for the nonreligious problems of his own age nor for any subsequent age. Jesus wished to develop spiritual insight into eternal realities and to stimulate initiative in the originality of living; he concerned himself exclusively with the underlying and permanent spiritual needs of the human race. He revealed a goodness equal to God. He exalted love — truth, beauty, and goodness — as the divine ideal and the eternal reality. 주(主)님은 자신의 세대나 후세대의 비(非)종교적 문제들을 위해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실체들을 꿰뚫는 영적 통찰력을 개발하고 독창적 삶을 주도하도록 격려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는 인류의 근원적이며 변하지 않는 영적 필요에만 오로지 관여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한 선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사랑-진(眞), 미(美), 선(善)-을 신적 이상과 영원한 실체로 높였습니다.

140:8.32 (1583.6) The Master came to create in man a new spirit, a new will — to impart a new capacity for knowing the truth, experiencing compassion, and choosing goodness — the will to be in harmony with God’s will, coupled with the eternal urge to become perfect, even as the Father in heaven is perfect. 주(主)님은 사람 안에 새로운 영, 새로운 의지를 창조하여 – 진리를 알고, 온정(溫情따뜻한 공감)을 체험하며, 선을 선택하는 새 능력, 즉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하게 되려는 영원한 충동과 함께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려는 의지를 나눠주려고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