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4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4.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loses its saltiness, how can it be made salty again?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by men.

140:4.1 (1572.1) The so-called “Sermon on the Mount” is not The Gospel of Jesus . It does contain much helpful instruction, but it was Jesus’ ordination charge to the twelve apostles. It was the Master’s personal commission to those who were to go on preaching the gospel and aspiring to represent him in the world of men even as he was so eloquently and perfectly representative of his Father. 소위 “산상수훈(山上垂訓)”은 예수님의 복음이 아닙니다. 유익한 많은 가르침을 담고 있지만, 그것은 예수께서 임직하는 열 두 사도들에게 주신 훈시였습니다. 그것은 주(主)님께서 그렇게 생생하고 완전히 자신의 아버지를 대표하셨듯이, 사람들의 세상에서 계속 복음을 설교하고 그를 대표하려는 자들에게 직접주신 주님의 위임사항(부탁)이었습니다.

140:4.2 (1572.2)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salt with a saving savor. But if this salt has lost its savor, wherewith shall it be salted? It is henceforth good for nothing but to be cast out and trodden under foot of men.” “내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내보낼 때, 너희는 세상의 소금, 맛을 잃지 않은 소금이니라. 그러나 만일 이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0:4.3 (1572.3) In Jesus’ time salt was precious. It was even used for money. The modern word “salary” is derived from salt. Salt not only flavors food, but it is also a preservative. It makes other things more tasty, and thus it serves by being spent. 예수님 당시 소금은 귀중했습니다. 소금은 돈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현대 용어 ‘급여'(Salary)’는 소금(salt)에서 파생합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낼 뿐만 아니라 또한 방부제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들을 더욱 맛있게 하고, 그렇게 소모됨으로 봉사합니다.

140:4.4 (1572.4)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set on a hill cannot be hid. Neither do men light a candle and put it under a bushel, but on a candlestick; and it gives light to all who are in the house. Let your light so shine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your good works and be led to glorify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도시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들이 촛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촛대 위에 두느니라. 그리고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너희 빛이 사람 앞에 그렇게 비치게 하여 그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인도하라.

140:4.5 (1572.5) While light dispels darkness, it can also be so “blinding” as to confuse and frustrate. We are admonished to let our light so shine that our fellows will be guided into new and godly paths of enhanced living. Our light should so shine as not to attract attention to self. Even one’s vocation can be utilized as an effective “reflector” for the dissemination of this light of life. 빛은 어두움을 몰아내지만 한편, 빛은 또한 그렇게 혼란과 좌절에 빠지도록 “눈을 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빛을 비추어 우리 동료들을 향상된 생활 즉 새롭고 경건한 방향으로 이끌라고 권고를 받노라. 우리의 빛은 자신에게 주의를 끌도록 비추지 말아야만 하리라. 사람의 직업도 이 생명의 빛을 퍼뜨리는 효과적인 “반사체”로 이용될 수 있느니라.

140:4.6 (1572.6) Strong characters are not derived from not doing wrong but rather from actually doing right. Unselfishness is the badge of human greatness. The highest levels of self-realization are attained by worship and service. The happy and effective person is motivated, not by fear of wrongdoing, but by love of right doing. 강건한 성품은 잘못을 행하지 않음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실제 옳은 일을 행함으로 얻어지느니라. 비(非)이기심은 인간적 위대함의 표지(標識)라. 최고 수준의 자아-실현은 경배와 봉사로 달성되느니라. 복된 유능한 사람은 잘못할까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바른 행동을 사랑하는 동기로 행하느니라.

140:4.7 (1572.7) “By their fruits you shall know them.” Personality is basically changeless; that which changes — grows — is the moral character. The major error of modern religions is negativism. The tree which bears no fruit is “hewn down and cast into the fire.” Moral worth cannot be derived from mere repression — obeying the injunction “Thou shalt not.” Fear and shame are unworthy motivations for religious living. Religion is valid only when it reveals the fatherhood of God and enhances the brotherhood of men. “그들의 열매로 너희는 그들을 알리라.” 고유성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며, 변하는 – 성장하는 -것은 도덕적 성품이다. 현대 종교들이 주된 실수는 부정(소극)주의이다.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혀 불에 던져진다.” 도덕적 가치는 단순한 억압 – “하지 말라”는 금지명령에 순종해서 얻을 수 없다. 종교생활에서 두려움과 부끄러움은 가치 없는 동기니라. 종교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계시하고 사람의 형제 됨을 향상시킬 때만 정당하니라.

140:4.8 (1572.8) An effective philosophy of living is formed by a combination of cosmic insight and the total of one’s emotional reactions to the social and economic environment. Remember: While inherited urges cannot be fundamentally modified, emotional responses to such urges can be changed; therefore the moral nature can be modified, character can be improved. In the strong character emotional responses are integrated and co-ordinated, and thus is produced a unified personality. Deficient unification weakens the moral nature and engenders unhappiness. 효과적인 생활철학은, 질서우주 통찰력과, 사회 및 경제적 환경에 대한 모든 감정적 반응들이 결합되어 형성된다. 다음을 기억하라. 타고난 충동은 근본적으로 변경될 수 없는 반면에, 그런 충동에 대한 감정적 반응은 변화될 수 있다. 따라서 도덕적 본성은 변경될 수 있고 성품은 향상될 수 있다. 강건한 성품에서 감정적 반응들이 통합되고 조화되며, 그렇게 해서 통합된 고유성이 생긴다. 불완전한 통합이 도덕적 본성을 약화시키고 불행을 일으킨다.

140:4.9 (1572.9) Without a worthy goal, life becomes aimless and unprofitable, and much unhappiness results. Jesus’ discourse at the ordination of the twelve constitutes a master philosophy of life. Jesus exhorted his followers to exercise experiential faith. He admonished them not to depend on mere intellectual assent, credulity, and established authority. 가치 있는 목표가 없다면, 인생은 정처 없이 무익하며 많은 불행이 일어난다. 열 두 사도 임직식에서 주신 예수님의 강론은 최상의 인생철학입니다. 예수님은 추종자들에게 체험적 신앙을 실행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는 단순한 지적 동의, 쉽게 믿는 경향, 및 확립된 권위에 의존하지 말라고 사도들을 훈계하셨습니다.

140:4.10 (1573.1) Education should be a technique of learning (discovering) the better methods of gratifying our natural and inherited urges, and happiness is the resulting total of these enhanced techniques of emotional satisfactions. Happiness is little dependent on environment, though pleasing surroundings may greatly contribute thereto. 교육은 우리의 본성적인 타고난 충동을 만족시키는 더 좋은 방법을 배우고(발견하는) 기법이 되어야 하며, 행복은 감정을 만족시키는 이 향상된 기법들의 결과적 총합이다. 즐거운 환경이 행복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해도, 행복은 거의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다.

140:4.11 (1573.2) Every mortal really craves to be a complete person, to be perfect even as the Father in heaven is perfect, and such attainment is possible because in the last analysis the “universe is truly fatherly.”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전하듯이 필사자마다 정말 완비된(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며, 결국 “우주는 참으로 아버지답기” 때문에 그러한 달성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