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6 Honest Nathaniel 정직한 나다니엘

6. Honest Nathaniel 정직한 나다니엘

180204 정직한 나다니엘 요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Jesus saw Nathanael coming to him, and saith of him, Behold an Israelite indeed, in whom is no guile!

139:6.1 (1558.2) Nathaniel, the sixth and last of the apostles to be chosen by the Master himself, was brought to Jesus by his friend Philip. He had been associated in several business enterprises with Philip and, with him, was on the way down to see John the Baptist when they encountered Jesus. 나다니엘은 주(主)님께서 6번째로 직접 선택한 사도로서, 친구 빌립이 그를 예수님께 안내했습니다. 그는 여러 사업 기획으로 빌립과 관련되어 있었고, 그와 함께 세례자 요한을 만나러 내려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139:6.2 (1558.3) When Nathaniel joined the apostles, he was twenty-five years old and was the next to the youngest of the group. He was the youngest of a family of seven, was unmarried, and the only support of aged and infirm parents, with whom he lived at Cana; his brothers and sister were either married or deceased, and none lived there. Nathaniel and Judas Iscariot were the two best educated men among the twelve. Nathaniel had thought to become a merchant. 나다니엘이 사도로 참여했을 때, 그는 25세로 그룹에서 두 번째로 젊었습니다. 그는 일곱 명 가족 중 막내로 미혼(未婚)이었으며, 가나에서 함께 사는 연세 들고 허약한 부모의 유일한 부양자였습니다. 그의 형들과 누나들은 결혼을 했거나 죽어서 거기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습니다. 나다니엘과 유다 가룟은 12명 중 가장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나다니엘은 상인이 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39:6.3 (1558.4) Jesus did not himself give Nathaniel a nickname, but the twelve soon began to speak of him in terms that signified honesty, sincerity. He was “without guile.” And this was his great virtue; he was both honest and sincere. The weakness of his character was his pride; he was very proud of his family, his city, his reputation, and his nation, all of which is commendable if it is not carried too far. But Nathaniel was inclined to go to extremes with his personal prejudices. He was disposed to prejudge individuals in accordance with his personal opinions. He was not slow to ask the question, even before he had met Jesus, “Can any good thing come out of Nazareth?” But Nathaniel was not obstinate, even if he was proud. He was quick to reverse himself when he once looked into Jesus’ face. 예수께서 직접 나다니엘에게 별명을 주지 않으셨지만, 12 사도들은 곧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의미의 용어로 그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간사(奸詐)가 없는” 사람으로 이것이 그의 큰 장점이었는데, 그는 정직하면서 성실했습니다. 그의 성품 중에서 단점은 (강한) 자부심이었는데; 그는 자기 가족, 도시, 명성, 민족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했으며, 그 모두는 도가 지나치지 않는다면, 칭찬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다니엘은 개인적인 편견에서 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개인적 견해로 개인들을 미리 판단하는 성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기도 전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라고 서슴지 않고 질문했습니다. 그러나 나다니엘은 자부심이 강했지만, 완고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일단 예수님의 얼굴을 보자, 얼른 자기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139:6.4 (1558.5) In many respects Nathaniel was the odd genius of the twelve. He was the apostolic philosopher and dreamer, but he was a very practical sort of dreamer. He alternated between seasons of profound philosophy and periods of rare and droll humor; when in the proper mood, he was probably the best storyteller among the twelve. Jesus greatly enjoyed hearing Nathaniel discourse on things both serious and frivolous. Nathaniel progressively took Jesus and the kingdom more seriously, but never did he take himself seriously. 여러 면에서 나다니엘은 12 중에서 이상야릇한 천재였습니다. 그는 사도 철학자이며 몽상가였지만, 매우 실천적인 몽상가였습니다. 그는 한 동안 심오한 철학에 빠져 있다가 얼마 동안 희한하게 익살스런 분위기 사이를 오락가락했습니다. 적절한 분위기에서 그는 12 중 어쩌면 최고의 이야기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진지한 것들과 하찮은 것들에 대한 나다니엘의 담론 듣기를 아주 즐기셨습니다. 나다니엘은 점진적으로, 예수님과 그 나라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지만, 자신을 진지하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139:6.5 (1558.6) The apostles all loved and respected Nathaniel, and he got along with them splendidly, excepting Judas Iscariot. Judas did not think Nathaniel took his apostleship sufficiently seriously and once had the temerity to go secretly to Jesus and lodge complaint against him. Said Jesus: “Judas, watch carefully your steps; do not overmagnify your office. Who of us is competent to judge his brother? It is not the Father’s will that his children should partake only of the serious things of life. Let me repeat: I have come that my brethren in the flesh may have joy, gladness, and life more abundantly. Go then, Judas, and do well that which has been intrusted to you but leave Nathaniel, your brother, to give account of himself to God.” And the memory of this, with that of many similar experiences, long lived in the self-deceiving heart of Judas Iscariot. 사도들 모두 나다니엘을 사랑하고 존중했으며, 그는 유다 가룟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지냈습니다. 유다는 나다니엘이 사도직을 충분히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며, 한 번 무모히 예수님께 몰래 가서 그에 대해 불평을 제기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야, 신중히 행동하라. 너의 직무를 너무 넘어서지 말라. 우리 중 누가 자기 형제를 판단할 자격이 있겠느냐? 자녀들이 삶에서 진지한 것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다시 말하는데, 나는 육신으로 내 형제들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일생이 더 풍성하도록 왔노라. 유다야, 그러니 가서 너에게 맡겨진 일을 잘하고, 네 형제 나다니엘이 하나님께 스스로 설명하도록 놔두라.” 그리고 이 기억은 비슷한 여러 경험들과 함께, 자기를 기만하는 유다 가룟의 심정에 오래 남아있었습니다.

139:6.6 (1559.1) Many times, when Jesus was away on the mountain with Peter, James, and John, and things were becoming tense and tangled among the apostles, when even Andrew was in doubt about what to say to his disconsolate brethren, Nathaniel would relieve the tension by a bit of philosophy or a flash of humor; good humor, too.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과 함께 산으로 멀리 떠나계실 때, 사도들 사이에서 일들이 긴박히 엉켰을 때, 그리고 안드레까지 우울한 형제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할 때, 여러 번, 나다니엘이 약간의 철학이나 혹은 번쩍이는 유머로, 그것도 기분 좋게, 긴장을 풀어주곤 했습니다.

139:6.7 (1559.2) Nathaniel’s duty was to look after the families of the twelve. He was often absent from the apostolic councils, for when he heard that sickness or anything out of the ordinary had happened to one of his charges, he lost no time in getting to that home. The twelve rested securely in the knowledge that their families’ welfare was safe in the hands of Nathaniel. 나다니엘의 임무는 12사도들의 가족들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주 사도 회의에 결석했는데, 그가 맡고 있는 가족들 중에서 병이나 어떤 일이 생겼다고 들었을 때, 그는 지체하지 않고 그 집을 방문했기 때문입니다. 12사도들은 가족의 복지가 나다니엘의 손에 안전하게 맡겨져 있음을 알고 안심하며 지냈습니다.

139:6.8 (1559.3) Nathaniel most revered Jesus for his tolerance. He never grew weary of contemplating the broadmindedness and generous sympathy of the Son of Man. 나다니엘은 예수님의 포용력 때문에 그를 가장 존경했습니다. 그는 사람의 아들의 관대한 마음과 너그러운 공감을 묵상하면서 결코 싫증나지 않았습니다.

139:6.9 (1559.4) Nathaniel’s father (Bartholomew) died shortly after Pentecost, after which this apostle went into Mesopotamia and India proclaiming the glad tidings of the kingdom and baptizing believers. His brethren never knew what became of their onetime philosopher, poet, and humorist. But he also was a great man in the kingdom and did much to spread his Master’s teachings, even though he did not participate in the organization of the subsequent Christian church. Nathaniel died in India. 나다니엘의 아버지(바돌로메)가 오순절 직후에 별세한 후, 이 사도는 메소포타미아와 인도로 가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의 형제들은, 한 때 그들의 철학자요 시인이며 익살꾼(해학가諧謔家)이 어떻게 되었는지 결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이었으며, 그는 나중에 기독교회의 조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주(主)님의 가르침을 멀리 펼치며 많이 일했습니다. 나다니엘은 인도에서 별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