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4 John Zebedee 요한 세베대

4. John Zebedee 요한 세베대

180107 요한 세베대 1 요21: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7 Then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said to Peter, “It is the Lord!” As soon as Simon Peter heard him say, “It is the Lord,” he wrapped his outer garment around him (for he had taken it off) and jumped into the water. 20 Peter turned and saw that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was following them. (This was the one who had leaned back against Jesus at the supper and had said, “Lord, who is going to betray you?”)

139:4.1 (1553.6) When he became an apostle, John was twenty-four years old and was the youngest of the twelve. He was unmarried and lived with his parents at Bethsaida; he was a fisherman and worked with his brother James in partnership with Andrew and Peter. Both before and after becoming an apostle, John functioned as the personal agent of Jesus in dealing with the Master’s family, and he continued to bear this responsibility as long as Mary the mother of Jesus lived. 가정배경 사도가 되었을 때, 요한은 24세였고, 12명 중 가장 나이가 어렸습니다. 그는 미혼(未婚)으로 벳새다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어부였고, 형 야고보와 함께 안드레 및 베드로와 동업했습니다. 사도가 되기 전후에, 요한은 주(主)님의 가족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개인적 대리인 역할을 하였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살아 있는 동안에 계속 이 책임을 맡았습니다.

139:4.2 (1553.7) Since John was the youngest of the twelve and so closely associated with Jesus in his family affairs, he was very dear to the Master, but it cannot be truthfully said that he was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You would hardly suspect such a magnanimous personality as Jesus to be guilty of showing favoritism, of loving one of his apostles more than the others. The fact that John was one of the three personal aides of Jesus lent further color to this mistaken idea, not to mention that John, along with his brother James, had known Jesus longer than the others. “예수께서 사랑한 그 제자로 불린 이유 요한은 12 중 가장 어렸고, 가족 업무로 예수님과 친밀히 관련되어, 주(主)님께 매우 소중했지만, “예수께서 사랑한 그 제자라고 정말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그렇게 관대한 고유성이, 다른 사람들보다 사도들 중 하나를 더 사랑하는 편애를 보이는 죄가 있다고 너희는 거의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형 야고보와 함께 요한이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알아온 것에다가, 그가 예수님의 개인적 3 비서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이 잘못된 생각을 더 그럴 듯하게 만들었습니다.

139:4.3 (1554.1) Peter, James, and John were assigned as personal aides to Jesus soon after they became apostles. Shortly after the selection of the twelve and at the time Jesus appointed Andrew to act as director of the group, he said to him: “And now I desire that you assign two or three of your associates to be with me and to remain by my side, to comfort me and to minister to my daily needs.” And Andrew thought best to select for this special duty the next three first-chosen apostles. He would have liked to volunteer for such a blessed service himself, but the Master had already given him his commission; so he immediately directed that Peter, James, and John attach themselves to Jesus. 축복받은 특별한 임무와 봉사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사도가 된 직후 예수님의 개인 비서들로 배치되었습니다. 12명이 선택된 직후, 예수께서 안드레를 그 무리의 관리자로 임명하셨을 때, 그는 안드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네가 너의 동료 중 두 세 사람을 임명하여 나와 함께 내 곁에 남아서 나를 도와 내 일상의 필요들을 보살피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안드레는 이 특별 임무에, (자기) 다음으로 선택된 3명의 첫 사도들을 뽑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축복받은 봉사에 자신이 자원하고 싶었지만, 주(主)님은 그에게 이미 임무를 주셨기 때문에, 그는 즉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도록 지시했습니다.

139:4.4 (1554.2) John Zebedee had many lovely traits of character, but one which was not so lovely was his inordinate but usually well-concealed conceit. His long association with Jesus made many and great changes in his character. This conceit was greatly lessened, but after growing old and becoming more or less childish, this self-esteem reappeared to a certain extent, so that, when engaged in directing Nathan in the writing of the Gospel which now bears his name, the aged apostle did not hesitate repeatedly to refer to himself as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In view of the fact that John came nearer to being the chum of Jesus than any other earth mortal, that he was his chosen personal representative in so many matters, it is not strange that he should have come to regard himself as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since he most certainly knew he was the disciple whom Jesus so frequently trusted. 요한 세베대의 특성 요한 세베대는 성품 중 사랑스러운 특성이 많았지만, 그리 사랑스럽지 않았던 한 가지는 과도하지만 잘 감춰진 자만(自慢 자기 과대 평가)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오랜 교제로 그의 성품은 많은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이 자만이 크게 줄었지만, 나이 들어 다소 유치해진 후, 이 자존심(自尊心)이 어느 정도 다시 나타나, 그가 이제 자기 이름을 담은 복음을 기록하도록 나단을 지시하면서, 노년의 사도는 망설임 없이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로 거듭 언급했습니다. 요한이 세상의 다른 어떤 필사자보다 더 가까운 예수님의 친구였으며, 그토록 많은 경우에 예수께서 선택한 개인적 대리인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그가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로 여기게 된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예수께서 그렇게 자주 신뢰하셨던 제자였음을 가장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39:4.5 (1554.3) The strongest trait in John’s character was his dependability; he was prompt and courageous, faithful and devoted. His greatest weakness was this characteristic conceit. He was the youngest member of his father’s family and the youngest of the apostolic group. Perhaps he was just a bit spoiled; maybe he had been humored slightly too much. But the John of after years was a very different type of person than the self-admiring and arbitrary young man who joined the ranks of Jesus’ apostles when he was twenty-four. 성품의 변화 요한의 성품 중 가장 강한 특성은 그의 신뢰성이었습니다. 그는 신속하고 용감하며, 성실하고 헌신적이었습니다. 가장 큰 약점은 이 특징적 자만이었습니다. 그는 가족 중 막내였고 사도 그룹에서도 가장 어렸습니다. 그는 버릇이 좀 없었을지 모르는데 아마 약간 과도하게 어르면서 자랐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수년 후 요한은, 24세에 예수님의 사도 등급에 참여했던 자화자찬하며 제멋대로 행하던 젊은이와는 아주 다른 유형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139:4.6 (1554.4) Those characteristics of Jesus which John most appreciated were the Master’s love and unselfishness; these traits made such an impression on him that his whole subsequent life became dominated by the sentiment of love and brotherly devotion. He talked about love and wrote about love. This “son of thunder” became the “apostle of love”; and at Ephesus, when the aged bishop was no longer able to stand in the pulpit and preach but had to be carried to church in a chair, and when at the close of the service he was asked to say a few words to the believers, for years his only utterance was, “My little children, love one another.” 요한이 가장 높이 평가한 예수님의 특징들은, ()님의 사랑과 이기심 없는 태도였습니다. 이 특성들에 무척 감명을 받아 그 후 그의 전 생애는 사랑의 정서와 형제의 헌신으로 지배되었습니다. 그는 사랑을 논하며 사랑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이 “우뢰의 아들”은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에서 연로한 감독이 더 이상 설교단에 서서 설교할 수 없어서 의자에 앉은 채로 교회로 옮겨져야만 했는데, 예배가 끝나 신자들에게 몇 마디 말씀을 하시라고 요청을 받았을 때, 여러 해 동안 그는 이렇게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

180114 요한 세베대 2 계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I, John, your brother and companion in the suffering and kingdom and patient endurance that are ours in Jesus, was on the island of Patmos because of the word of God and the testimony of Jesus.

139:4.7 (1554.5) John was a man of few words except when his temper was aroused. He thought much but said little. As he grew older, his temper became more subdued, better controlled, but he never overcame his disinclination to talk; he never fully mastered this reticence. But he was gifted with a remarkable and creative imagination. 극복하지 못한 침묵 요한은 성질이 격해진 때를 제외하면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많이 생각했지만 말은 거의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질이 많이 순해졌고, 더 조절되었지만, 말하기 싫어하는 경향은 결코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과묵함을 결코 충분히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랍고 창조적인 상상력의 재능이 있었습니다.

139:4.8 (1555.1) There was another side to John that one would not expect to find in this quiet and introspective type. He was somewhat bigoted and inordinately intolerant. In this respect he and James were much alike — they both wanted to call down fire from heaven on the heads of the disrespectful Samaritans. When John encountered some strangers teaching in Jesus’ name, he promptly forbade them. But he was not the only one of the twelve who was tainted with this kind of self-esteem and superiority consciousness. 요한의 자존심과 우월 의식 요한에게는 이 조용하고 내성적 유형에서 기대할 수 없는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소 고집이 세고 지나치게 편협했습니다. 이 면에서 그와 야고보는 아주 비슷했습니다. 그들 두 사람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무례한 사마리아인들의 머리 위에, 내리고 싶어 했습니다. 요한은, 어떤 낯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을 보자, 즉시 그들을 제지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12 명 중에서, 이 종류의 자존심과 우월 의식에 오염된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39:4.9 (1555.2) John’s life was tremendously influenced by the sight of Jesus’ going about without a home as he knew how faithfully he had made provision for the care of his mother and family. John also deeply sympathized with Jesus because of his family’s failure to understand him, being aware that they were gradually withdrawing from him. This entire situation, together with Jesus’ ever deferring his slightest wish t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and his daily life of implicit trust, made such a profound impression on John that it produced marked and permanent changes in his character, changes which manifested themselves throughout his entire subsequent life. 예수께 영향 받은 변화 요한의 일생은, 예수께서 얼마나 성실히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 대비하셨는지 알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집 없이 지내는 모습에서 엄청나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요한은 예수님의 가족이 그를 이해하지 못해서 예수님과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깊이 공감했습니다. 예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는 가장 사소한 소원도 미루지 않고 매일 무조건 신뢰하는 생활과 더불어, 이 모든 상황이 요한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그의 성품에 뚜렷한 영속적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변화들은 후에 그의 전 일생에 걸쳐 드러났습니다.

139:4.10 (1555.3) John had a cool and daring courage which few of the other apostles possessed. He was the one apostle who followed right along with Jesus the night of his arrest and dared to accompany his Master into the very jaws of death. He was present and near at hand right up to the last earthly hour and was found faithfully carrying out his trust with regard to Jesus’ mother and ready to receive such additional instructions as might be given during the last moments of the Master’s mortal existence. One thing is certain, John was thoroughly dependable. John usually sat on Jesus’ right hand when the twelve were at meat. He was the first of the twelve really and fully to believe in the resurrection, and he was the first to recognize the Master when he came to them on the seashore after his resurrection. 요한의 침착한 용기 요한은 다른 사도들이 거의 갖지 못한, 침착하며 대담한 용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체포되던 밤 예수님을 바로 따라갔고, 바로 죽음의 자리까지 대담하게 주(主)님과 동행했던 유일한 사도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함께 했으며, 세상에서 바로 마지막 시간까지도 가까이 있었으며, 예수님의 어머니에 관해 그의 신뢰를 성실히 수행했고, 주(主)님의 필사자 실존으로서 마지막 순간에도 추가 지시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는 확실한데, 요한은 철저히 믿을 만했습니다. 12 사도들이 식사를 할 때, 요한은 대개 예수님의 오른 편에 앉았습니다. 그는 12 중 첫째로 정말 충분히 부활을 믿었고, 부활 후 해변에서 그들에게 오셨을 때, 처음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139:4.11 (1555.4) This son of Zebedee was very closely associated with Peter in the early activities of the Christian movement, becoming one of the chief supporters of the Jerusalem church. He was the right-hand support of Peter on the day of Pentecost. 기독 운동의 초기 활동의 지지자 이 세베대의 아들은 기독 운동의 초기 활동에서 베드로와 아주 밀접히 관련되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 지지자들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오순절 날 베드로의 오른팔로 지지했습니다.

139:4.12 (1555.5) Several years after the martyrdom of James, John married his brother’s widow. The last twenty years of his life he was cared for by a loving granddaughter. 요한의 말년 야고보의 순교 몇 년 후, 요한은 형의 과부와 결혼했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20년은 사랑스러운 손녀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139:4.13 (1555.6) John was in prison several times and was banished to the Isle of Patmos for a period of four years until another emperor came to power in Rome. Had not John been tactful and sagacious, he would undoubtedly have been killed as was his more outspoken brother James. As the years passed, John, together with James the Lord’s brother, learned to practice wise conciliation when they appeared before the civil magistrates. They found that a “soft answer turns away wrath.” They also learned to represent the church as a “spiritual brotherhood devoted to the social service of mankind” rather than as “the kingdom of heaven.” They taught loving service rather than ruling power — kingdom and king. “인류의 사회적 봉사에 헌신하는 영적 형제 신분”으로서의 교회 요한은 여러 번 투옥되었고, 다른 황제가 로마에서 권력을 잡기까지 4년 동안 팟모섬에 추방되었습니다. 요한이 눈치와 총명이 없었다면, 거침없었던 형 야고보처럼 그는 확실히 죽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 주님의 동생 야고보와 함께, 국가의 재판관들 앞에 나타났을 때, 요한은 지혜롭게 화해하기를 배웠습니다. 그들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합니다(잠15:1).”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교회가 “하늘나라”라기보다는 “인류의 사회적 봉사에 헌신하는 영적 형제 신분”의 표현임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지배하는 권능 – 왕국과 왕 -보다 사랑하는 봉사를 가르쳤습니다.

139:4.14 (1555.7) When in temporary exile on Patmos, John wrote the Book of Revelation, which you now have in greatly abridged and distorted form. This Book of Revelation contains the surviving fragments of a great revelation, large portions of which were lost, other portions of which were removed, subsequent to John’s writing. It is preserved in only fragmentary and adulterated form. 요한계시록 팟모섬에 잠시 유배되었을 때, 요한은 계시록을 썼는데, 너희가 지금 갖고 있는 계시록은 크게 단축되고 왜곡된 형태이다. 이 계시록은 큰 계시 중 남은 단편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요한이 기록한 이후에, 커다란 부분들은 소실되었고, 다른 부분들은 제거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단편적이고 불순물이 섞여 오염된 형태로 보존되었습니다.

139:4.15 (1555.8) John traveled much, labored incessantly, and after becoming bishop of the Asia churches, settled down at Ephesus. He directed his associate, Nathan, in the writing of the so-called “Gospel according to John,” at Ephesus, when he was ninety-nine years old. Of all the twelve apostles, John Zebedee eventually became the outstanding theologian. He died a natural death at Ephesus in A.D. 103 when he was one hundred and one years of age. 요한은 많이 여행하고, 쉼 없이 수고했으며, 아시아 교회들의 감독이 된 후 에베소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99세에 에베소에서 자기 동료 나단에게 소위 요한에 의한 복음을 쓰도록 지시했습니다. 12 사도 중에서 요한 세베대는 결국 탁월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AD 103년 에베소에서 101세의 나이로 자연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