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11 Simon the Zealot 열심당원 시몬

11. Simon the Zealot 열심당원 시몬

180311 열심당원 시몬 눅6: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Matthew, Thomas, James son of Alphaeus, Simon who was called the Zealot,

139:11.1 (1564.6) Simon Zelotes, the eleventh apostle, was chosen by Simon Peter. He was an able man of good ancestry and lived with his family at Capernaum. He was twenty-eight years old when he became attached to the apostles. He was a fiery agitator and was also a man who spoke much without thinking. He had been a merchant in Capernaum before he turned his entire attention to the patriotic organization of the Zealots. 시몬 젤로테는 11번째 사도로, 시몬 베드로가 선택했습니다. 그는 훌륭한 가문에 속한 유능한 사람이었고, 가버나움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사도들에게 소속되었을 때 28세였습니다. 그는 격렬한 선동가였으며, 또한 생각 없이 많이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애국적 조직인 열심당에 심혈을 다하기 전까지 가버나움의 상인이었습니다.

139:11.2 (1564.7) Simon Zelotes was given charge of the diversions and relaxation of the apostolic group, and he was a very efficient organizer of the play life and recreational activities of the twelve. 시몬 젤로테는 사도 그룹의 기분 전환과 휴식을 담당했으며, 그는 12사도들의 운동 생활과 오락 활동에 대해 아주 효율적인 조직가였습니다.

139:11.3 (1564.8) Simon’s strength was his inspirational loyalty. When the apostles found a man or woman who floundered in indecision about entering the kingdom, they would send for Simon. It usually required only about fifteen minutes for this enthusiastic advocate of salvation through faith in God to settle all doubts and remove all indecision, to see a new soul born into the “liberty of faith and the joy of salvation.” 시몬의 강점은 영감(靈感)을 일으키는 충성이었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주저하며 버둥거리는 남자나 여자를 발견하면, 그들은 시몬을 부르곤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신앙)으로 구원된다는 이 열성적인 주창자가, 모든 의심들을 해결하고 모든 망설임을 없애고, 새로운 혼이 “신앙의 해방과 구원의 기쁨”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는데 대개 약 15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139:11.4 (1565.1) Simon’s great weakness was his material-mindedness. He could not quickly change himself from a Jewish nationalist to a spiritually minded internationalist. Four years was too short a time in which to make such an intellectual and emotional transformation, but Jesus was always patient with him. 시몬의 큰 약점은 물질적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는 유대 민족주의자로부터 영적 마음을 가진 국제주의자로, 자신을 빨리 전환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런 지적 감정적 변환을 이루기에 4년은 너무 짧았지만, 예수님은 항상 그를 인내하셨습니다.

139:11.5 (1565.2) The one thing about Jesus which Simon so much admired was the Master’s calmness, his assurance, poise, and inexplicable composure. 시몬이 예수에 대해 그토록 탄복한 한 가지는 주(主)님의 고요함, 그의 확신, 평정,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침착성이었습니다.

139:11.6 (1565.3) Although Simon was a rabid revolutionist, a fearless firebrand of agitation, he gradually subdued his fiery nature until he became a powerful and effective preacher of “Peace on earth and good will among men.” Simon was a great debater; he did like to argue. And when it came to dealing with the legalistic minds of the educated Jews or the intellectual quibblings of the Greeks, the task was always assigned to Simon. 시몬은 과격한 혁명가였고, 두려움 없이 선동하는 선동가였지만, 그가 “땅에서 평화와 사람들 사이에서 선한 뜻”을 전하는 강력하고 유능한 설교자가 되기까지, 그는 점차 불같은 성품을 가라앉혔습니다. 시몬은 뛰어난 토론자였고, 논쟁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주의적 마음을 가진 교육받은 유대인이나 지적 궤변의 그리스인들을 다루는 과제는 언제나 시몬이 맡았습니다.

139:11.7 (1565.4) He was a rebel by nature and an iconoclast by training, but Jesus won him for the higher concepts of the kingdom of heaven. He had always identified himself with the party of protest, but he now joined the party of progress, unlimited and eternal progression of spirit and truth. Simon was a man of intense loyalties and warm personal devotions, and he did profoundly love Jesus. 그는 천성이 반항아였고, 훈련받은 인습 타파주의자였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더 높은 개념을 위해 그를 설득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을 항의당(抗議黨)과 항상 동일시했었지만, 이제는 영과 진리의 한없이 영원한 진보, 그 진보당(進步黨)에 가입했습니다. 시몬은 강렬한 충성심따뜻하게 직접 헌신하는 사람이었고, 예수님을 충심으로 사랑했습니다.

139:11.8 (1565.5) Jesus was not afraid to identify himself with business men, laboring men, optimists, pessimists, philosophers, skeptics, publicans, politicians, and patriots. 예수님은 자신을 사업가, 노동자, 낙천가, 비관론자, 철학자, 회의론자, 세리, 정치가, 애국자들과 동일시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139:11.9 (1565.6) The Master had many talks with Simon, but he never fully succeeded in making an internationalist out of this ardent Jewish nationalist. Jesus often told Simon that it was proper to want to see the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orders improved, but he would always add: “That is not the business of the kingdom of heaven. We must be dedicated to the doing of the Father’s will. Our business is to be ambassadors of a spiritual government on high, and we must not immediately concern ourselves with aught but the representation of the will and character of the divine Father who stands at the head of the government whose credentials we bear.” It was all difficult for Simon to comprehend, but gradually he began to grasp something of the meaning of the Master’s teaching. 주(主)님은 시몬과 많이 이야기하셨지만, 이 열렬한 유대 민족주의자를 국제주의자로 만드는 데 결코 충분히 성공하지 못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주 시몬에게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질서들이 개선되기를 보려는 것은 적절하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항상 다음의 말을 덧붙이곤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직무가 아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 헌신해야만 한다. 우리의 직무는 높은 영적 정부(政府)의 대사가 되는 것이며, 신임장을 지닌 우리는 그 정부(政府)의 정상(頂上)에 계신 신적 아버지의 뜻과 성품을 대표하는 외에 어떤 것도 자신에 대해 바로 염려하지 말아야만 하느니라.” 시몬은 모두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점차 주님께서 가르치신 어지간한 의미를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139:11.10 (1565.7) After the dispersion because of the Jerusalem persecutions, Simon went into temporary retirement. He was literally crushed. As a nationalist patriot he had surrendered in deference to Jesus’ teachings; now all was lost. He was in despair, but in a few years he rallied his hopes and went forth to proclaim the gospel of the kingdom. 예루살렘의 박해로 흩어진 후, 시몬은 잠간 은둔했습니다. 그는 글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는 민족주의적 애국자로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존중하여 항복했으며, 이제 모두 잃었습니다. 그는 절망했지만, 몇 년 내에 그는 자기 소망들을 다시 모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러 나갔습니다.

139:11.11 (1565.8) He went to Alexandria and, after working up the Nile, penetrated into the heart of Africa, everywhere preaching the gospel of Jesus and baptizing believers. Thus he labored until he was an old man and feeble. And he died and was buried in the heart of Africa. 그는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나일 강으로 올라가며 일한 후, 아프리카의 심장부를 통과하며 모든 곳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설교하며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늙고 쇠약해질 때까지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어서 아프리카의 심장부에 묻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