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2 The Baptism of Jesus 예수님의 세례

2. The Baptism of Jesus 예수님의 세례

170712 수요 예수92 눅3:21-22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21 When all the people were being baptized, Jesus was baptized too. And as he was praying, heaven was opened 22 and the Holy Spirit descended on him in bodily form like a dove. And a voice came from heaven: “You are my Son, whom I love; with you I am well pleased.”

136:2.1 (1510.4) Jesus was baptized at the very height of John’s preaching when Palestine was aflame with the expectancy of his message —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 when all Jewry was engaged in serious and solemn self-examination. The Jewish sense of racial solidarity was very profound. The Jews not only believed that the sins of the father might afflict his children, but they firmly believed that the sin of one individual might curse the nation. Accordingly, not all who submitted to John’s baptism regarded themselves as being guilty of the specific sins which John denounced. Many devout souls were baptized by John for the good of Israel. They feared lest some sin of ignorance on their part might delay the coming of the Messiah. They felt themselves to belong to a guilty and sin-cursed nation, and they presented themselves for baptism that they might by so doing manifest fruits of race penitence. It is therefore evident that Jesus in no sense received John’s baptism as a rite of repentance or for the remission of sins. In accepting baptism at the hands of John, Jesus was only following the example of many pious Israelites. 예수님은, 요한의 설교가 절정에 달하여 팔레스타인이 그의 메시지─“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에 대한 기대감으로 불이 붙고, 온 유대가 심각하고 엄숙하게 자기-반성을 할 당시에,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인종적 연대감은 굉장히 깊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버지의 죄가 그의 자녀들을 괴롭힌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한 개별존재의 죄가 민족을 저주할 수도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따라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러 나아갔던 사람들 모두가, 요한이 비난하였던 특정한 죄를 자신들이 지었다고 여겼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많은 사람들(혼들)은 이스라엘의 평안을 위하여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혹시라도 그들이 알지 못하는 죄 때문에 메시아가 오시는 것이 지연될까봐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죄가 있고 죄로 저주받은 민족에 속해 있다고 느꼈으므로, 스스로 세례를 받으러 나갔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종족적 참회의 결실을 나타내려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어떤 의미에서도 회개의 의식이나 죄 사함을 위하여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합니다. 요한의 손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예수께서 여러 독실한 유대인들의 본보기를 따른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136:2.2 (1511.1) When Jesus of Nazareth went down into the Jordan to be baptized, he was a mortal of the realm who had attained the pinnacle of human evolutionary ascension in all matters related to the conquest of mind and to self-identification with the spirit. He stood in the Jordan that day a perfected mortal of the evolutionary worlds of time and space. Perfect synchrony and full communication had become established between the mortal mind of Jesus and the indwelling spirit Adjuster, the divine gift of his Father in Paradise. And just such an Adjuster indwells all normal beings living on Urantia since the ascension of Michael to the headship of his universe, except that Jesus’ Adjuster had been previously prepared for this special mission by similarly indwelling another superhuman incarnated in the likeness of mortal flesh, Machiventa Melchizedek. 나사렛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러 요단강으로 내려갔을 때, 그는 마음의 정복에 관계되고 영과 함께하는 자아(自我)-정체화 달성에 관계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진화적 상승의 정점에 도달한, 그 영역의 필사자이셨습니다. 그는 그 날, 시간과 공간의 진화하는 세상들 속에서 하나의 완전하게 된 필사자로 요단강에 서셨습니다. 완전한 동시성과 충만한 소통이, 예수님의 필사자 마음과 내주(內住)하는 영 조절자, 즉 천국에 계신 아버지의 신적 선물 사이에, 확립되었습니다. 그리고 필사자 육신, 즉 마키벤타 멜기세덱의 모습으로 육신화하여 또다른 초인간 안에 내주하심처럼 비슷하게, 예수님의 조절자가 이러한 특별 임무를 위하여 앞서서 준비되신 것을 제외하고는, 미가엘이 자기 우주의 우두머리 신분으로 상승하신 이래로, 바로 그런 조절자가 지구(유란시아)에 살고 있는 모든 정상 존재들 안에 내주하십니다.

136:2.3 (1511.2) Ordinarily, when a mortal of the realm attains such high levels of personality perfection, there occur those preliminary phenomena of spiritual elevation which terminate in eventual fusion of the matured soul of the mortal with its associated divine Adjuster. And such a change was apparently due to take place in the personality experience of Jesus of Nazareth on that very day when he went down into the Jordan with his two brothers to be baptized by John. This ceremony was the final act of his purely human life on Urantia, and many superhuman observers expected to witness the fusion of the Adjuster with its indwelt mind, but they were all destined to suffer disappointment. Something new and even greater occurred. As John laid his hands upon Jesus to baptize him, the indwelling Adjuster took final leave of the perfected human soul of Joshua ben Joseph. And in a few moments this divine entity returned from Divinington as a Personalized Adjuster and chief of his kind throughout the entire local universe of Nebadon. Thus did Jesus observe his own former divine spirit descending on its return to him in personalized form. And he heard this same spirit of Paradise origin now speak,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And John, with Jesus’ two brothers, also heard these words. John’s disciples, standing by the water’s edge, did not hear these words, neither did they see the apparition of the Personalized Adjuster. Only the eyes of Jesus beheld the Personalized Adjuster. 일반적으로, 그 영역에 있는 한 필사자가 그렇게 높은 고유성의 완전함의 차원에 도달할 때, 거기에는 필사자의 성숙한 혼이 그와 관계된 신적 조절자와의 결국 발생하는 융합으로 종결되는, 영적 고양(高揚)의 예비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예수께서 두 동생들과 함께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요단강에 내려가신 그 날에 나사렛 예수의 고유성 체험 속에서 일어나도록 명백하게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의식(儀式)은 그가 지구(유란시아)에서의 순수한 인간 일생의 마지막 행동이었으며, 많은 초인간적 관찰자들은 조절자가 자신이 내주하고 있던 마음과 융합하는 것을 목격하리라고 기대했었지만, 그들은 모두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롭고 더 큰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요한이 그에게 세례를 주기 위하여 예수님 위에 손을 얹자, 내주하던 조절자가 요셉의 아들 여호수아의 완전해진 인간 혼으로부터 마지막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이 신적 실존개체는 고유성이 구현된 조절자가 되어 신별로부터 돌아왔는데, 그는 네바돈에 있는 전체 지역우주를 통틀어서 가장 우두머리가 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그 자신의 이전의 신적 영이 고유성이 구현된 형태로 자기에게로 되돌아 내려오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리고 천국으로부터 기원된 바로 그 영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의 두 동생들과 요한도 역시 이 말을 들었습니다. 물가에 서있던 요한의 제자들은 이러한 말들을 듣지 못하였고, 고유성이 구현된 조절자의 출현도 또한 보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눈에만 고유성이 구현된 조절자가 보였습니다.

136:2.4 (1511.3) When the returned and now exalted Personalized Adjuster had thus spoken, all was silence. And while the four of them tarried in the water, Jesus, looking up to the near-by Adjuster, prayed: “My Father who reigns in heaven, hallowed be your name.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on earth, even as it is in heaven.” When he had prayed, the “heavens were opened,” and the Son of Man saw the vision, presented by the now Personalized Adjuster, of himself as a Son of God as he was before he came to earth in the likeness of mortal flesh, and as he would be when the incarnated life should be finished. This heavenly vision was seen only by Jesus. 이제는 고귀한 신분이 된 고유성 구현된 조절자가 다시 돌아와 그렇게 말할 때, 모든 사람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들 네 명이 물속에 머물러 있는 동안, 예수님은 가까이에 있는 조절자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하늘을 다스리시는 나의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옵소서!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가 기도를 마쳤을 때, “하늘들이 열리고,” 사람의 아들은 자신의 환영(幻影)을 보았는데, 그것은 이제 고유성이 구현된 조절자에 의해 제시되어진 것이었으며, 그가 육신을 입고 필사자로 내려오기 전의 자신의 모습과, 그가 육신화된 일생을 끝냈을 후에 될 그의 모습인,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기 환영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늘의 환영은 오직 예수께만 보였습니다.

136:2.5 (1512.1) It was the voice of the Personalized Adjuster that John and Jesus heard, speaking in behalf of the Universal Father, for the Adjuster is of, and as, the Paradise Father. Throughout the remainder of Jesus’ earth life this Personalized Adjuster was associated with him in all his labors; Jesus was in constant communion with this exalted Adjuster. 요한과 예수께서 들었던 것은, 우주 아버지를 대신해서 말했던, 고유성이 구현된 조절자의 목소리였는데, 왜냐하면 조절자가 천국 아버지의 일부이고, 아버지로서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신 땅에서의 나머지 일생을 통하여, 이 고유성이 구현된 조절자가 그의 모든 일에 있어서 그와 함께 관련되셨으며, 예수님은 고귀한 신분이 된 이 조절자와 항상 교제하였습니다.

136:2.6 (1512.2) When Jesus was baptized, he repented of no misdeeds; he made no confession of sin. His was the baptism of consecration to the performance of the will of the heavenly Father. At his baptism he heard the unmistakable call of his Father, the final summons to be about his Father’s business, and he went away into private seclusion for forty days to think over these manifold problems. In thus retiring for a season from active personality contact with his earthly associates, Jesus, as he was and on Urantia, was following the very procedure that obtains on the morontia worlds whenever an ascending mortal fuses with the inner presence of the Universal Father. 예수께서 세례를 받았을 때, 그는 아무런 잘못도 회개하지 않았으며; 아무 죄도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헌신하는 세례였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에, 그는 아버지의 일을 시작하라는 마지막 호출인 아버지의 명백한 부르심을 들었으며, 이러한 복합적인 문제들을 심사숙고할 수 있도록 혼자 있기 위하여 40일 동안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지상의 동료들과 활발한 인격(고유성) 접촉을 그렇게 얼마동안 피하심으로써, 자신이 계셨던 그대로, 부활체(모론시아) 세상들에서 상승하는 필사자가 우주 아버지의 내적 현존과 융합할 때마다 거치는 바로 그 과정을 지구(유란시아)에서 밟으셨습니다.

136:2.7 (1512.3) This day of baptism ended the purely human life of Jesus. The divine Son has found his Father, the Universal Father has found his incarnated Son, and they speak the one to the other. 세례 받은 이 날에 예수님은 순수한 인간으로서의 일생을 끝마쳤습니다. 신적 아들은 자기 아버지를 발견하였고, 우주의 아버지는 자신의 육신화한 아들을 발견하셨으며,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136:2.8 (1512.4) (Jesus was almost thirty-one and one-half years old when he was baptized. While Luke says that Jesus was baptized in the fifteenth year of the reign of Tiberius Caesar, which would be A.D. 29 since Augustus died in A.D. 14, it should be recalled that Tiberius was coemperor with Augustus for two and one-half years before the death of Augustus, having had coins struck in his honor in October, A.D. 11. The fifteenth year of his actual rule was, therefore, this very year of A.D. 26, that of Jesus’ baptism. And this was also the year that Pontius Pilate began his rule as governor of Judea.)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당시(AD 26, 1.14)에, 거의 31살 반이었습니다. 누가는 티베리우스 시저가 통치하던 15년째 해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았다고 말했는데, 아우구스투스가 서기 14년에 죽었으므로, 그것은 서기 29년이 되어야 하는데, 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가 죽기 전에 그와 함께 2년 반 동안 함께 공동 황제로 있었고, 서기 11년 10월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동전을 주조하였음을 상기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그의 실제로 통치하던 15년째 되는 해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던 바로 서기 26년이 됩니다. 그리고 이 해에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 지방의 총독으로 다스리기 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