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1 Concepts of the Expected Messiah 기대하던 메시아 개념

1. Concepts of the Expected Messiah 기대하던 메시아 개념

170705 수요 예수91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136:1.1 (1509.3) The Jews entertained many ideas about the expected deliverer, and each of these different schools of Messianic teaching was able to point to statements in the Hebrew scriptures as proof of their contentions. In a general way, the Jews regarded their national history as beginning with Abraham and culminating in the Messiah and the new age of the kingdom of God. In earlier times they had envisaged this deliverer as “the servant of the Lord,” then as “the Son of Man,” while latterly some even went so far as to refer to the Messiah as the “Son of God.” But no matter whether he was called the “seed of Abraham” or “the son of David,” all were agreed that he was to be the Messiah, the “anointed one.” Thus did the concept evolve from the “servant of the Lord” to the “son of David,” “Son of Man,” and “Son of God.” 유대인들은 고대하던 구원자(해방자)에 관한 많은 관념들을 갖고 있었으며, 메시아를 가르치는 이들 여러 다른 학파들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근거를 히브리 경전의 문구들에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민족적 역사를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메시아와 하나님의 나라인 새 시대에서 절정에 이르는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이 구원자(해방자)를 “주님의 종”으로 상상하였고, 그 다음에는 “사람의 아들”로, 또한 더 후대에 더러는 메시아를 “하나님의 아들”로 언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를 “아브라함의 씨”나 “다윗의 아들”로 부르든, 상관하지 않고, 그가 메시아,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되리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그 개념은 “주님의 종”으로부터 “다윗의 아들”, “사람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로까지 발전되었습니다.

136:1.2 (1509.4) In the days of John and Jesus the more learned Jews had developed an idea of the coming Messiah as the perfected and representative Israelite, combining in himself as the “servant of the Lord” the threefold office of prophet, priest, and king. 요한과 예수님 당시에 활동하던 좀 더 유식한 유대인들은 곧 오실 메시아를 완전하게 된 대표적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관념으로 개발하여 그 안에 선지자와 제사장 그리고 왕이라는 삼중적 직분을 “주님의 종”으로 통합시켰습니다.

136:1.3 (1509.5) The Jews devoutly believed that, as Moses had delivered their fathers from Egyptian bondage by miraculous wonders, so would the coming Messiah deliver the Jewish people from Roman domination by even greater miracles of power and marvels of racial triumph. The rabbis had gathered together almost five hundred passages from the Scriptures which, notwithstanding their apparent contradictions, they averred were prophetic of the coming Messiah. And amidst all these details of time, technique, and function, they almost completely lost sight of the personality of the promised Messiah. They were looking for a restoration of Jewish national glory — Israel’s temporal exaltation — rather than for the salvation of the world. It therefore becomes evident that Jesus of Nazareth could never satisfy this materialistic Messianic concept of the Jewish mind. Many of their reputed Messianic predictions, had they but viewed these prophetic utterances in a different light, would have very naturally prepared their minds for a recognition of Jesus as the terminator of one age and the inaugurator of a new and better dispensation of mercy and salvation for all nations. 유대인들은 모세가 자기 선조들을 이집트의 억압으로부터 놀라운 기적으로 구했던 것처럼, 오시는 메시아는 더욱 더 큰 기적의 권능과 인종적 승리의 경이로움을 가지고 유대 백성을 로마의 통치로부터 구해줄 것이라고 열렬하게 믿었습니다. 랍비들은 성서에서 거의 500 구절을 수집하였으며, 명백한 모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들이 오시는 메시아를 예언한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 기법, 기능의 세부사항에 집착하는 가운데, 그들은 약속된 메시아의 고유성(인격)에 대한 시각은 거의 완벽하게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구원보다는 유대의 민족적 영광─이스라엘의 세속적인 지위 향상─이 회복되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러한 물질주의적인 메시아의 개념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음이 명백해집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유명한 메시아 예언들 대부분 즉, 이 예언적 언급들을 다른 빛으로 보았었더라면, 예수님을,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자로서, 모든 민족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푸는 새롭고 더 좋은 섭리시대를 시작하는 분으로, 인식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매우 자연스럽게 준비시켰을 것입니다.

136:1.4 (1510.1) The Jews had been brought up to believe in the doctrine of the Shekinah. But this reputed symbol of the Divine Presence was not to be seen in the temple. They believed that the coming of the Messiah would effect its restoration. They held confusing ideas about racial sin and the supposed evil nature of man. Some taught that Adam’s sin had cursed the human race, and that the Messiah would remove this curse and restore man to divine favor. Others taught that God, in creating man, had put into his being both good and evil natures; that when he observed the outworking of this arrangement, he was greatly disappointed, and that “He repented that he had thus made man.” And those who taught this believed that the Messiah was to come in order to redeem man from this inherent evil nature. 유대인들은 후광(後光)의 교리를 믿도록 양육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신성한 현존의 이 유명한 상징은 성전에서 나타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시는 메시아가 그것의 회복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종족의 죄와 가정(假定)된, 사람의 악한 본성에 대하여 혼동된 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담의 죄로 인류가 저주를 받게 되었고, 메시아가 이 저주를 없애고 사람에게 신적 은총이 회복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면서 그 존재 안에 선과 악의 본성들을 모두 넣었다고 가르쳤으며; 그가 이러한 일의 결과를 보고 매우 실망하셨으며, “그렇게 사람을 만든 것을 후회하셨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가르쳤던 자들은, 이러한 본래부터 악한 본성에서 사람을 구출하기 위하여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136:1.5 (1510.2) The majority of the Jews believed that they continued to languish under Roman rule because of their national sins and because of the halfheartedness of the gentile proselytes. The Jewish nation had not wholeheartedly repented; therefore did the Messiah delay his coming. There was much talk about repentance; wherefore the mighty and immediate appeal of John’s preaching, “Repent and be baptized, for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And the kingdom of heaven could mean only one thing to any devout Jew: The coming of the Messiah.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민족적 죄 때문에, 그리고 이방인 개종자들의 반신반의하는 건성 때문에, 자신들이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계속 쇠약해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유대 민족은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메시아가 오는 것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회개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돌았는데; 그런 이유로 해서 요한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라고 했던 설교는 그들에게 강력하면서도 즉각적인 호소력을 나타내었습니다. 어떤 열렬한 유대인에게라도 하늘나라라는 말은 오직 한 가지만을 의미했는데: 그것은 메시아의 도래였습니다.

136:1.6 (1510.3) There was one feature of the bestowal of Michael which was utterly foreign to the Jewish conception of the Messiah, and that was the union of the two natures, the human and the divine. The Jews had variously conceived of the Messiah as perfected human, superhuman, and even as divine, but they never entertained the concept of the union of the human and the divine. And this was the great stumbling block of Jesus’ early disciples. They grasped the human concept of the Messiah as the son of David, as presented by the earlier prophets; as the Son of Man, the superhuman idea of Daniel and some of the later prophets; and even as the Son of God, as depicted by the author of the Book of Enoch and by certain of his contemporaries; but never had they for a single moment entertained the true concept of the union in one earth personality of the two natures, the human and the divine. The incarnation of the Creator in the form of the creature had not been revealed beforehand. It was revealed only in Jesus; the world knew nothing of such things until the Creator Son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the mortals of the realm. 미가엘 증여에 있어서, 유대 메시아의 개념과 매우 다른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두 본성의 연합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대하여 완전한 인간, 초인간, 그리고 신성한 존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개념을 갖고 있었지만, 결코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연합이라는 개념을 결코 생각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에게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초기의 선지자들이 제시하였던 대로, 메시아에 대한 인간 개념을 다윗의 아들로서 파악했습니다. 다니엘과 후기의 여러 선지자들은 초인간적 관념인 사람의 아들로서 파악했고; 에녹서의 저자나 그의 동시대 사람들 중 일부에 의해 묘사되었던 대로,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해하고는 있었지만; 그들은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두 가지의 본성이 이 세상의 한 고유성으로 연합한다는 참된 개념은 한 순간도 고려해본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창조물의 형상으로 창조주가 육신이 되심은 과거에는 한 번도 계시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예수님 안에서만 계시되었으며; 창조주 아들이 육신으로 와서 그 땅의 필사자들 가운데에 거하시기 전까지, 세상은 그러한 일들을 알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