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4 The Death of Elizabeth 엘리자벳의 죽음

4. The Death of Elizabeth 엘리자벳의 죽음

170308 수요 예수81 엘리자벳의 죽음 말4:5-6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5 Behold, I will send you Elijah the prophet before the coming of the great and dreadful day of the LORD: 6 And he shall turn the heart of the fathers to the children, and the heart of the children to their fathers, lest I come and smite the earth with a curse.
135:4.1 (1499.1) On August 17, A.D. 22, when John was twenty-eight years of age, his mother suddenly passed away. Elizabeth’s friends, knowing of the Nazarite restrictions regarding contact with the dead, even in one’s own family, made all arrangements for the burial of Elizabeth before sending for John. When he received word of the death of his mother, he directed Ezda to drive his herds to Engedi and started for Hebron. AD 22년 8월 17일, 요한이 28세가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직계가족이라 할지라도 죽은 자와 접촉할 수 없다는 나실인의 제약 조건들을 알고 있는 엘리자벳의 친구들은, 요한에게 그 소식을 알리기 전에 엘리자벳의 장례식 준비를 모두 끝냈습니다. 그가 어머니 죽음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에즈다에게 양떼들을 엥게디로 몰고 가도록 시켰고 자신은 헤브론으로 출발했습니다.

135:4.2 (1499.2) On returning to Engedi from his mother’s funeral, he presented his flocks to the brotherhood and for a season detached himself from the outside world while he fasted and prayed. John knew only of the old methods of approach to divinity; he knew only of the records of such as Elijah, Samuel, and Daniel. Elijah was his ideal of a prophet. Elijah was the first of the teachers of Israel to be regarded as a prophet, and John truly believed that he was to be the last of this long and illustrious line of the messengers of heaven. 어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엥게디로 돌아와서 그는 자기 양떼를 형제회에게 기증하고, 금식과 기도를 하면서 한 계절 바깥세상과의 접촉을 끊었습니다. 요한은 신성(神性)에 접근하는 오래된 방식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엘리야, 사무엘, 다니엘의 기록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그에게 선지자의 이상(理想)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선지자로 여겼던 이스라엘의 선생들 중에서 첫째가는 사람이었으며, 요한은 자신이 하늘 왕국의 메신저(사자)로서의 이러한 장구하게 빛나는 계열의 마지막 선지자가 되리라고 진정으로 믿었습니다.

135:4.3 (1499.3) For two and a half years John lived at Engedi, and he persuaded most of the brotherhood that “the end of the age was at hand”; that “the kingdom of heaven was about to appear.” And all his early teaching was based upon the current Jewish idea and concept of the Messiah as the promised deliverer of the Jewish nation from the domination of their gentile rulers. 2년 반 동안, 요한은 엥게디에서 살았고, “그 시대의 마지막이 가까이 온 것” 즉 “하늘나라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형제회 대부분의 사람들을 설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초기의 모든 가르침들은, 당시의 유대 관념과, 그들의 이방 통치자의 손으로부터 유대 민족을 구원하는 약속된 메시아의 개념에 근거를 두었습니다.

135:4.4 (1499.4) Throughout this period John read much in the sacred writings which he found at the Engedi home of the Nazarites. He was especially impressed by Isaiah and by Malachi, the last of the prophets up to that time. He read and reread the last five chapters of Isaiah, and he believed these prophecies. Then he would read in Malachi: “Behold, I will send you Elijah the prophet before the coming of the great and dreadful day of the Lord; and he shall turn the hearts of the fathers toward the children and the hearts of the children toward their fathers, lest I come and smite the earth with a curse.” And it was only this promise of Malachi that Elijah would return that deterred John from going forth to preach about the coming kingdom and to exhort his fellow Jews to flee from the wrath to come. John was ripe for the proclamation of the message of the coming kingdom, but this expectation of the coming of Elijah held him back for more than two years. He knew he was not Elijah. What did Malachi mean? Was the prophecy literal or figurative? How could he know the truth? He finally dared to think that, since the first of the prophets was called Elijah, so the last should be known, eventually, by the same name. Nevertheless, he had doubts, doubts sufficient to prevent his ever calling himself Elijah. 이 기간 내내 요한은 나실인들의 본거지인 엥게디에서 자신이 발견한 성스러운 글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는 특별히 이사야와 당대에 이르기까지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에 의해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사야서의 마지막 다섯 장을 읽고 또 읽었으며, 그는 이 예언들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음의 구절을 말라기에서 읽었습니다. “보라,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요한은 엘리야가 돌아온다는 말라기의 약속 때문에 곧 도래할 왕국에 대해 설교하고,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들에게 앞으로 올 진노로부터 도망갈 것을 권고하러 나아가는 것을 철회하였습니다. 요한은 곧 도래할 왕국의 메시지를 바로 선포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지만, 앞으로 올 엘리야에 대한 기대가 그로 하여금 2년 이상이나 붙들어 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말라기가 의미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예언은 문자그대로의 의미였을까? 아니면 상징적인 것이었을까? 어떻게 진실을 알 수 있을까? 그는 마침내 선지자들 중에서 첫 번째가 엘리야로 불렸으므로 마지막 선지자도 결국에는 같은 이름으로 불려야 할 것이라고 감히 생각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엘리야라고 부르지 않을 만큼, 그러한 생각에 대해 상당한 회의를 품었습니다.

135:4.5 (1499.5) It was the influence of Elijah that caused John to adopt his methods of direct and blunt assault upon the sins and vices of his contemporaries. He sought to dress like Elijah, and he endeavored to talk like Elijah; in every outward aspect he was like the olden prophet. He was just such a stalwart and picturesque child of nature, just such a fearless and daring preacher of righteousness. John was not illiterate, he did well know the Jewish sacred writings, but he was hardly cultured. He was a clear thinker, a powerful speaker, and a fiery denunciator. He was hardly an example to his age, but he was an eloquent rebuke. 요한이 그 시대의 사람들의 죄와 타락에 대해 직선적이고 비타협적인 공격 방법을 선택한 것은 엘리야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엘리야처럼 옷을 입었고 엘리야처럼 말하려고 애를 썼는데, 겉으로 보이는 모든 면에서 그는 옛 선지자의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그는 본성적으로 건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사람이었고, 조금도 두려움이 없이, 담대한 정의로운 설교자였습니다. 요한은 무식한 자가 아니었으며 유대의 거룩한 기록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교양으로 세련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명철한 사색가였고 힘 있는 웅변가였으며 불같은 탄핵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시대의 전형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설득력 있게 꾸짖었습니다.

135:4.6 (1499.6) At last he thought out the method of proclaiming the new age, the kingdom of God; he settled that he was to become the herald of the Messiah; he swept aside all doubts and departed from Engedi one day in March of A.D. 25 to begin his short but brilliant career as a public preacher. 드디어 그는 하나님의 나라 즉 새 시대를 선포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었는데, 그는 자신이 메시아의 사자(선구자)가 되기로 결정을 하였으며, 모든 의심을 쓸어버리고, AD 25년 3월 어느 날, 짧기는 하였지만 대중 설교자로서 눈부신 생애를 시작하기 위하여 엥게디를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