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2 The Death of Zacharias 사가랴의 죽음

2. The Death of Zacharias 사가랴의 죽음

170301 수요 예수80 사가랴의 죽음 & 목자의 생활 단2:31-33 31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135:2.1 (1497.3) After an illness of several months Zacharias died in July, A.D. 12, when John was just past eighteen years of age. This was a time of great embarrassment to John since the Nazarite vow forbade contact with the dead, even in one’s own family. Although John had endeavored to comply with the restrictions of his vow regarding contamination by the dead, he doubted that he had been wholly obedient to the requirements of the Nazarite order; therefore, after his father’s burial he went to Jerusalem, where, in the Nazarite corner of the women’s court, he offered the sacrifices required for his cleansing. 몇 달 동안 병을 앓은 후, 사가랴는 서기(西紀) 12년 7월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요한은 막 18세가 되었습니다. 나실인의 서약 중에는 자신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죽은 사람에게 접촉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일로 요한은 매우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비록 죽은 자 때문에 몸이 더럽혀지는 것에 대하여 서약(誓約)했던 규율을 따르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나실인 계층에게 요청되는 사항에 전적으로 복종했었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예루살렘으로 가서 여인들의 뜰에 있는 나실인의 구역에서 자신의 정화(淨化)를 위하여 요구되는 희생물을 바쳤습니다.

135:2.2 (1497.4) In September of this year Elizabeth and John made a journey to Nazareth to visit Mary and Jesus. John had just about made up his mind to launch out in his lifework, but he was admonished, not only by Jesus’ words but also by his example, to return home, take care of his mother, and await the “coming of the Father’s hour.” After bidding Jesus and Mary good-bye at the end of this enjoyable visit, John did not again see Jesus until the event of his baptism in the Jordan. 이 해 9월에 엘리자벳Elizabeth과 요한John은 마리아Mary와 예수Jesus를 방문하러 나사렛Nazareth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요한은 그의 일생의 임무에 착수하려고 거의 작정하다시피 하였지만, 예수께서 말 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인 본보기에 의해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를 보살피면서 “아버지의 때가 도래하기까지”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이 즐거운 방문을 마치고 예수와 마리아에게 작별한 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는 사건이 있기까지, 요한은 예수님을 다시 만나지 않았습니다.

135:2.3 (1497.5) John and Elizabeth returned to their home and began to lay plans for the future. Since John refused to accept the priest’s allowance due him from the temple funds, by the end of two years they had all but lost their home; so they decided to go south with the sheep herd. Accordingly, the summer that John was twenty years of age witnessed their removal to Hebron. In the so-called “wilderness of Judea” John tended his sheep along a brook that was tributary to a larger stream which entered the Dead Sea at Engedi. The Engedi colony included not only Nazarites of lifelong and time-period consecration but numerous other ascetic herdsmen who congregated in this region with their herds and fraternized with the Nazarite brotherhood. They supported themselves by sheep raising and from gifts which wealthy Jews made to the order. 요한과 엘리자벳은 집으로 돌아와 미래를 위한 계획들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이 성전 기금으로부터 그에게 주어지는 제사장의 수당(手當) 받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2년 쯤 지난 후에는 그들의 집까지도 거의 처분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양떼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요한이 20세 되던 그 해 여름에 그들은 헤브론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소위 “유대 광야”라고 불리는 곳에서, 요한은 엥게디로부터 사해(死海)로 합류하는 좀 더 큰 시냇물의 지류인 개울가를 따라 양을 쳤습니다. 엥게디 촌(거류민단)에는 종신(終身) 나실인들과 일시적으로 봉헌된 나실인들 뿐만이 아니라 금욕하는 수많은 다른 목자(牧者)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가축 떼와 함께 이 지역에 모여서 나실인 형제회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양을 치는 일과, 부유한 유대인이 그 계층에게 기증한 선물들로 생활을 유지하였습니다.

135:2.4 (1497.6) As time passed, John returned less often to Hebron, while he made more frequent visits to Engedi. He was so entirely different from the majority of the Nazarites that he found it very difficult fully to fraternize with the brotherhood. But he was very fond of Abner, the acknowledged leader and head of the Engedi colony.시간이 지나자, 요한이 헤브론으로 돌아가는 횟수가 뜸해졌고 반면에 엥게디Engedi로는 갈수록 자주 방문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나실인들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에 그는 그 형제회와 충분히 형제우애를 나누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엥게디 거류민단의 유명한 지도자이며 우두머리인 아브너Abner를 매우 좋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