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8 The Legend of Creation 창조 설화

8. The Legend of Creation 창조 설화

74:8.1 (836.14) The story of the creation of Urantia in six days was based on the tradition that Adam and Eve had spent just six days in their initial survey of the Garden. This circumstance lent almost sacred sanction to the time period of the week, which had been originally introduced by the Dalamatians. Adam’s spending six days inspecting the Garden and formulating preliminary plans for organization was not prearranged; it was worked out from day to day. The choosing of the seventh day for worship was wholly incidental to the facts herewith narrated. 6일간의 유란시아 창조 이야기는 아담과 이브가 동산을 처음 시찰하는데 꼭 6일간 보냈다는 전통에 근거를 두었습니다(74.3). 이 상황은 달라마시아인(人)들이 최초로 소개한 한 주간(週間)의 시간에 거의 신성한 구속력을 부여했습니다(66.7.17). 아담이 동산을 시찰하고 조직화를 위한 예비 계획의 수립에 6일간 보낸 것은 예정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루하루 일하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경배를 위한 제7일의 선정(選定)은 여기에 서술된 사실에서 완전히 부수적으로 일어났습니다.

74:8.2 (837.1) The legend of the making of the world in six days was an afterthought, in fact, more than thirty thousand years afterwards. One feature of the narrative, the sudden appearance of the sun and moon, may have taken origin in the traditions of the onetime sudden emergence of the world from a dense space cloud of minute matter which had long obscured both sun and moon. 6일간 세계를 창조했다는 전설은, 사실 3만년이 훨씬 지난 나중에 생긴 생각이었습니다. 그 설화 중에 일월(日月)이 별안간 출현했다는 일화(창1:16)는 일월(日月)을 오랫동안 가리고 있었던 미세한 물질로 된 짙은 공간의 구름에서 세계가 갑자기 출현했다는 옛 전통에 기원을 두었을지도 모릅니다.

74:8.3 (837.2) The story of creating Eve out of Adam’s rib is a confused condensation of the Adamic arrival and the celestial surgery connected with the interchange of living substances associated with the coming of the corporeal staff of the Planetary Prince more than four hundred and fifty thousand years previously.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45만년 훨씬 이전에 행성 왕자의 육체를 지닌 참모진의 도래와 관련하여, 살아있는 물질 교환과 연결된 천상(天上)의 수술과 아담의 도착이 혼동된 축약입니다(66.2.7-8).

74:8.4 (837.3) The majority of the world’s peoples have been influenced by the tradition that Adam and Eve had physical forms created for them upon their arrival on Urantia. The belief in man’s having been created from clay was well-nigh universal in the Eastern Hemisphere; this tradition can be traced from the Philippine Islands around the world to Africa. And many groups accepted this story of man’s clay origin by some form of special creation in the place of the earlier beliefs in progressive creation — evolution. 대부분의 세상 민족들은 아담과 이브가 유란시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을 위해 창조된 육체적 형태를 지녔다는 전통에 지배되었습니다. 사람이 진흙에서 창조되었다는 믿음은 동반구(東半球)에서 거의 보편적이었습니다. 이 전통은 필리핀군도에서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집단들은 진보적 창조 – 진화에 대한 초기 믿음들 대신에 특별한 어떤 형태의 창조로 사람이 진흙에서 유래되었다는 이 이야기를 받아들였습니다.

74:8.5 (837.4) Away from the influences of Dalamatia and Eden, mankind tended toward the belief in the gradual ascent of the human race. The fact of evolution is not a modern discovery; the ancients understood the slow and evolutionary character of human progress. The early Greeks had clear ideas of this despite their proximity to Mesopotamia. Although the various races of earth became sadly mixed up in their notions of evolution, nevertheless, many of the primitive tribes believed and taught that they were the descendants of various animals. Primitive peoples made a practice of selecting for their “totems” the animals of their supposed ancestry. Certain North American Indian tribes believed they originated from beavers and coyotes. Certain African tribes teach that they are descended from the hyena, a Malay tribe from the lemur, a New Guinea group from the parrot. 달라마시아와 에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인류는 인간 종족의 점차적 상승을 믿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진화의 사실은 현대적 발견이 아닙니다. 고대인들은 인간의 진보에 대해 서서히 진화적 특성이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초기 그리스인들은 메소포타미아에 근접해 있었지만, 이에 대해 분명한 관념(생각)들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지상 인종들의 진화 개념은 딱하게도 혼란스러웠지만, 대부분의 원시 부족들은 자신들이 다양한 동물들의 후손이라 믿었으며 이를 가르쳤습니다. 원시 민족들은 자기 조상으로 여긴 동물들을 그들의 “토템”으로 선정하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부족들은 자신들이 비버와 코요테(이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어떤 아프리카 부족들은 자신들이 하이에나, 말레이 부족은 여우원숭이, 그리고 뉴기니 집단은 앵무새의 후손이라고 가르칩니다.

74:8.6 (837.5) The Babylonians, because of immediate contact with the remnants of the civilization of the Adamites, enlarged and embellished the story of man’s creation; they taught that he had descended directly from the gods. They held to an aristocratic origin for the race which was incompatible with even the doctrine of creation out of clay. 바빌로니아인(人)들은, 아담-사람 문명의 잔재(殘滓)와 직접 접촉했기 때문에, 사람의 창조 이야기를 확대하고 재미있게 꾸몄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신과 같은 존재들로부터 바로 내려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진흙으로 창조된 교리와도 맞지 않았던, 종족의 귀족적 기원을 품었습니다.

74:8.7 (837.6) The Old Testament account of creation dates from long after the time of Moses; he never taught the Hebrews such a distorted story. But he did present a simple and condensed narrative of creation to the Israelites, hoping thereby to augment his appeal to worship the Creator, the Universal Father, whom he called the Lord God of Israel. 구약 창조 기사는 모세 시대를 한참 지나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그런 왜곡된 이야기를 히브리인(人)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간단히 요약된 창조 설화를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제시하면서, 그것으로써 자신이 이스라엘의 주(主) 하나님으로 불렀던 창조자, 우주 아버지를 경배하라는 그의 호소가 확대되기를 바랐습니다.

74:8.8 (837.7) In his early teachings, Moses very wisely did not attempt to go back of Adam’s time, and since Moses was the supreme teacher of the Hebrews, the stories of Adam became intimately associated with those of creation. That the earlier traditions recognized pre-Adamic civilization is clearly shown by the fact that later editors, intending to eradicate all reference to human affairs before Adam’s time, neglected to remove the telltale reference to Cain’s emigration to the “land of Nod,” where he took himself a wife. 모세는 자신의 초기 가르침에서 아주 지혜롭게, 아담 시대 이전으로 가려 하지 않았으며, 모세는 히브리인(人)들의 최극 스승이어서, 아담의 이야기들은 창조 이야기와 밀접히 연결되었습니다. 더 초기의 전통들은 아담-이전의 문명을 알고 있었는데, 아담 시대 이전(以前)의 인간사(人間事)들에 대한 모든 언급을 지우려 했던, 후대의 편집자들이, 카인이 이주한 “놋의 땅”에서 그가 아내를 얻었다고 내막을 폭로하는 언급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사실로 분명히 드러납니다.

74:8.9 (838.1) The Hebrews had no written language in general usage for a long time after they reached Palestine. They learned the use of an alphabet from the neighboring Philistines, who were political refugees from the higher civilization of Crete. The Hebrews did little writing until about 900 B.C., and having no written language until such a late date, they had several different stories of creation in circulation, but after the Babylonian captivity they inclined more toward accepting a modified Mesopotamian version. 히브리인(人)들은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뒤 오랫동안, 전반적으로 사용한 문자 언어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웃 필리스틴 사람들에게서 알파벳의 사용법을 배웠는데, 이들은 더 높은 크레테 문명의 정치적 망명자들이었습니다. 히브리인(人)들은 기원전 900년경까지 거의 글을 쓰지 않았고, 그토록 늦게까지, 문자 언어가 없어서, 나돌던 몇 가지 다른 창조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바빌론 유수(幽囚포로생활) 후, 수정된 메소포타미아 판(版)을 수용하는 편으로 더 기울었습니다(Enûma Eliš).

74:8.10 (838.2) Jewish tradition became crystallized about Moses, and because he endeavored to trace the lineage of Abraham back to Adam, the Jews assumed that Adam was the first of all mankind. Yahweh was the creator, and since Adam was supposed to be the first man, he must have made the world just prior to making Adam. And then the tradition of Adam’s six days got woven into the story, with the result that almost a thousand years after Moses’ sojourn on earth the tradition of creation in six days was written out and subsequently credited to him. 유대인의 전통은 모세에 대한 것을 명확히 정리했고, 모세가 아브라함의 혈통을 아담까지 추적하려 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아담이 모든 인류의 시작이라고 당연히 여겼습니다. 야훼는 창조자였고, 아담은 첫 사람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야훼는 아담을 만들기 직전에 세상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그 후 아담의 6일에 대한 전통이 그 이야기에 엮어 들어간 그 결과로 모세가 지상에 머문 후 거의 천년이 지난 때에, 6일간의 창조 전통이 기록되었고 나중에 모세의 공적이 되었습니다.

74:8.11 (838.3) When the Jewish priests returned to Jerusalem, they had already completed the writing of their narrative of the beginning of things. Soon they made claims that this recital was a recently discovered story of creation written by Moses. But the contemporary Hebrews of around 500 B.C. did not consider these writings to be divine revelations; they looked upon them much as later peoples regard mythological narratives. 유대교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이미 만물의 기원에 대한 자신들의 설화 기록을 완성했습니다. 그들은 곧 이 서사시(敍事詩)가 최근에 발견된 창조 이야기로서 모세가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500년 경 당시의 히브리인(人)들은 이 글들을 신적 계시들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것들을, 민족들이 나중에 신화적 설화로 여긴 것과 아주 비슷하게, 여겼습니다.

74:8.12 (838.4) This spurious document, reputed to be the teachings of Moses, was brought to the attention of Ptolemy, the Greek king of Egypt, who had it translated into Greek by a commission of seventy scholars for his new library at Alexandria. And so this account found its place among those writings which subsequently became a part of the later collections of the “sacred scriptures” of the Hebrew and Christian religions. And through identification with these theological systems, such concepts for a long time profoundly influenced the philosophy of many Occidental peoples. 모세의 가르침들로 간주된 이 위조문서는, 이집트의 그리스(헬라) 왕 프톨레마이오스의 주목을 끌었고, 그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자기의 새 도서관을 위해 70인 학자들 위원회가 그것을 그리스(헬라)어로 번역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 기사(記寫기록된 글)는 나중에 히브리 및 기독교의 “신성한 경전들”에 속한 후대 모음집의 일부가 된 그런 저술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 신학 체계들과 일체화되어, 그런 개념들이 오랫동안 여러 서양 민족들의 철학에 깊이 영향을 주었습니다.

74:8.13 (838.5) The Christian teachers perpetuated the belief in the fiat creation of the human race, and all this led directly to the formation of the hypothesis of a onetime golden age of utopian bliss and the theory of the fall of man or superman which accounted for the nonutopian condition of society. These outlooks on life and man’s place in the universe were at best discouraging since they were predicated upon a belief in retrogression rather than progression, as well as implying a vengeful Deity, who had vented wrath upon the human race in retribution for the errors of certain onetime planetary administrators. 기독교 교사들은 명령으로 인류가 창조되었다는 믿음을 보존했으며, 이 모든 것은 유토피아적 행복의 옛 황금시대에 대한 가설 형성과 사람 및 초인간의 타락으로 비(非)유토피아적 상태가 된 사회의 이유를 밝히는 이론으로 직접 이끌었습니다. 우주에 있는 생명과 인간의 신분에 대한 이런 사고방식은, 옛 행성 경영자들의 실수에 대한 징벌로 인류에게 분노를 터뜨리며, 복수심에 불타는 신(神)을 암시할 뿐 아니라, 진보가 아니라 오히려 퇴보라는 믿음에 사람들이 근거를 두었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도 용기를 꺾을 뿐이었습니다.

74:8.14 (838.6) The “golden age” is a myth, but Eden was a fact, and the Garden civilization was actually overthrown. Adam and Eve carried on in the Garden for one hundred and seventeen years when, through the impatience of Eve and the errors of judgment of Adam, they presumed to turn aside from the ordained way, speedily bringing disaster upon themselves and ruinous retardation upon the developmental progression of all Urantia. “황금시대”는 신화(神話)지만, 에덴은 사실이었고, 동산 문명은 실제로 전복되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동산에서 117년간 살아낸 그 때, 이브의 성급함과 아담의 판단 오류로, 그들은 규정된 길에서 벗어나, 자신들에게는 재앙이, 유란시아 전체의 개발적 전진에는 파괴적인 지연(遲延더딤)을 신속히 일으켰습니다.

74:8.15 (838.7) [Narrated by Solonia, the seraphic “voice in the Garden.”] [“동산의 음성” 세라핌천사, 솔로니아가 이야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