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2 At Jotapata 요타파타에서

2. At Jotapata 요타파타에서

191027 기도와 심정(心情)의 일치 잠 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If anyone turns a deaf ear to the law, even his prayers are detestable.

146:2.1 (1638.1) While the common people of Jotapata heard Jesus and his apostles gladly and many accepted the gospel of the kingdom, it was the discourse of Jesus to the twenty-four on the second evening of their sojourn in this small town that distinguishes the Jotapata mission. Nathaniel was confused in his mind about the Master’s teachings concerning prayer, thanksgiving, and worship, and in response to his question Jesus spoke at great length in further explanation of his teaching. Summarized in modern phraseology, this discourse may be presented as emphasizing the following points: 요타파타의 보통 사람들은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의 메시지를 기쁘게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요타파타의 선교의 특징은 이 작은 도시에서 머물던 둘째 날 밤에 예수께서 24 명들에게 하셨던 강연이었습니다. 나다니엘은 기도, 감사 및 경배에 관한 주(主)님의 가르침들에 대해 마음으로 혼란스러워 여쭌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예수님은 자기 가르침에 덧붙여 길게 설명하셨습니다. 현대 어법으로 요약하면, 이 강연은 다음의 요점들을 강조하는 것으로 제시될 수 있습니다.

146:2.2 (1638.2) 1. The conscious and persistent regard for iniquity in the heart of man gradually destroys the prayer connection of the human soul with the spirit circuits of communication between man and his Maker. Naturally God hears the petition of his child, but when the human heart deliberately and persistently harbors the concepts of iniquity, there gradually ensues the loss of personal communion between the earth child and his heavenly Father. 의식적으로 고집스럽게(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사악을 심정에 품으면, 사람과 조물주 사이에 있는 영 소통의 회로와 인간 혼(魂)의 기도 연결이 점차 파괴됩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자기 자녀의 간청을 듣고 계시지만, 인간의 심정이 의도적으로 고집스럽게 사악의 개념을 품으면, 직후에 그 결과로써, 지상 자녀와 그의 하늘 아버지 사이에 고유적인 친교의 상실이 점차 일어납니다.

146:2.3 (1638.3) 2. That prayer which is inconsistent with the known and established laws of God is an abomination to the Paradise Deities. If man will not listen to the Gods as they speak to their creation in the laws of spirit, mind, and matter, the very act of such deliberate and conscious disdain by the creature turns the ears of spirit personalities away from hearing the personal petitions of such lawless and disobedient mortals. Jesus quoted to his apostles from the Prophet Zechariah: “But they refused to hearken and pulled away the shoulder and stopped their ears that they should not hear. Yes, they made their hearts adamant like a stone, lest they should hear my law and the words which I sent by my spirit through the prophets; therefore did the results of their evil thinking come as a great wrath upon their guilty heads. And so it came to pass that they cried for mercy, but there was no ear open to hear.” And then Jesus quoted the proverb of the wise man who said: “He who turns away his ear from hearing the divine law, even his prayer shall be an abomination.” 알려져 확립된 하나님의 법칙과 일치하지 않는 기도는 천국 신(神)들에게 몹시 혐오(嫌惡싫어하고 미워함)스러운 행위입니다. 하나님들께서 영, 마음 및 물질의 법칙으로 그들의 창조계에 말씀하실 때, 사람이 하나님들을 경청하지 않으면, 영 고유성들은 바로 그런 창조물의 고의적이며 의식적인 경멸의 행위 때문에 불법적이고 불순종하는 필사자들의 그런 개인적 간청들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스가랴 선지자를 인용하셨습니다.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나의 법과 내 영으로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그들의 악한 생각의 결과로 인해 그들의 간악한 머리들 위에 큰 노()가 내렸도다. 그래서 일어난 대로, 그들이 큰 소리로 자비를 구했지만 열려 들을 귀가 없었더라(7:11-13).” 그 후 예수님은 지혜자의 잠언을 인용하셨습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신적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28:9).”

146:2.4 (1638.4) 3. By opening the human end of the channel of the God-man communication, mortals make immediately available the ever-flowing stream of divine ministry to the creatures of the worlds. When man hears God’s spirit speak within the human heart, inherent in such an experience is the fact that God simultaneously hears that man’s prayer. Even the forgiveness of sin operates in this same unerring fashion. The Father in heaven has forgiven you even before you have thought to ask him, but such forgiveness is not available in your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until such a time as you forgive your fellow men. God’s forgiveness in fact is not conditioned upon your forgiving your fellows, but in experience it is exactly so conditioned. And this fact of the synchrony of divine and human forgiveness was thus recognized and linked together in the prayer which Jesus taught the apostles. 하나님-사람간의 소통 경로에서 인간 쪽을 열어 놓으면, 필사자들은 세계들의 창조물들에게 항상 흐르는 신적 사역의 흐름을 즉시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인간의 심정 안에서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는 그런 체험에 본래적인 것은 하나님이 동시에 그 인간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죄용서도 이와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구하려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는 너희를 용서하셨지만, 너희가 너희 동료 사람들을 용서하기까지 너희 고유적인 종교 체험에서 그런 용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용서는 동료들을 향한 너희의 용서에 달려 있지 않지만 그것은 체험적으로 정확히 그렇게 조건적입니다. 그래서 신적이며 인간적인 용서가 동조(同調동시에 작용)하는 이 사실은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치셨던 기도에서 그렇게 인식하게 되었고 함께 연결되어졌습니다.

146:2.5 (1638.5) 4. There is a basic law of justice in the universe which mercy is powerless to circumvent. The unselfish glories of Paradise are not possible of reception by a thoroughly selfish creature of the realms of time and space. Even the infinite love of God cannot force the salvation of eternal survival upon any mortal creature who does not choose to survive. Mercy has great latitude of bestowal, but, after all, there are mandates of justice which even love combined with mercy cannot effectively abrogate. Again Jesus quoted from the Hebrew scriptures: “I have called and you refused to hear; I stretched out my hand, but no man regarded. You have set at naught all my counsel, and you have rejected my reproof, and because of this rebellious attitude it becomes inevitable that you shall call upon me and fail to receive an answer. Having rejected the way of life, you may seek me diligently in your times of suffering, but you will not find me.” 우주에는 기본적인 정의(正義)의 법칙이 있으며, 자비(慈悲)가 이것을 회피하기에 무력합니다. 철저히 이기적인, 시공 영역의 창조물은 천국의 이타적 영광들을 수용(受容받아들임)하기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도 생존을 선택하지 않는 어떤 필사 창조물에게 강제로 영원히 생존하는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자비(慈悲)는 커다란 허용 범위로 베풀어지지만 결국 자비와 결합한 사랑도 사실 폐기할 수 없는 정의(正義)의 요구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히브리 성서를 인용하셨습니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너희는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거절했은즉, 이런 반역하는 태도로 인하여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으리니, 너희가 나를 불러도 대답을 얻지 못하리라. 생명의 길을 거절했기에, 곤란의 때에 너희가 부지런히 나를 찾을 것이나 나를 만나지 못하리라(잠1:24-25, 28)”

146:2.6 (1639.1) 5. They who would receive mercy must show mercy; judge not that you be not judged. With the spirit with which you judge others you also shall be judged. Mercy does not wholly abrogate universe fairness. In the end it will prove true: “Whoso stops his ears to the cry of the poor, he also shall some day cry for help, and no one will hear him.” The sincerity of any prayer is the assurance of its being heard; the spiritual wisdom and universe consistency of any petition is the determiner of the time, manner, and degree of the answer. A wise father does not literally answer the foolish prayers of his ignorant and inexperienced children, albeit the children may derive much pleasure and real soul satisfaction from the making of such absurd petitions. 자비를 받으려 하는 자들은 반드시 자비를 보여야 합니다. 심판을 받지 않도록 심판하지 마십시오. 너희가 남을 심판하는 그 정신(영)으로 너희도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자비(慈悲)가 우주의 공평함을 전부 파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다음의 구절이 참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도움을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21:13).” 기도의 신실함이 듣고 계심의 보증입니다. 응답의 시기, 방식과 정도는 간청의 영적 지혜와 우주 일치성이 결정합니다. 지혜로운 아버지는 무지하고 미숙한 자기 자녀들의 어리석은 기도들을 글자 그대로 응답하지 않지만, 자녀들은 그런 부조리한 간청에서 많은 기쁨과 실제 혼(魂)의 만족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146:2.7 (1639.2) 6. When you have become wholly dedicated to the doing of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the answer to all your petitions will be forthcoming because your prayers will be in full accordance with the Father’s will, and the Father’s will is ever manifest throughout his vast universe. What the true son desires and the infinite Father wills IS. Such a prayer cannot remain unanswered, and no other sort of petition can possibly be fully answered. 너희가 하늘 아버지 뜻의 실행에 전적으로 헌신하면, 너희 기도는 아버지의 뜻과 충분히 일치될 것이며 아버지의 뜻이 언제나 자신의 광대한 우주 전체에 드러나므로 너희의 모든 간청에 대한 응답이 다가올 것입니다. 참 자녀가 원하고 무한 아버지께서 뜻하는 것은 존재합니다. 그런 기도는 응답을 받지 않을 수 없지만, 다른 종류의 간청은 도저히 충분하게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146:2.8 (1639.3) 7. The cry of the righteous is the faith act of the child of God which opens the door of the Father’s storehouse of goodness, truth, and mercy, and these good gifts have long been in waiting for the son’s approach and personal appropriation. Prayer does not change the divine attitude toward man, but it does change man’s attitude toward the changeless Father. The motive of the prayer gives it right of way to the divine ear, not the social, economic, or outward religious status of the one who prays. 공의(公義)로운 자의 외침은 하나님 자녀의 신앙 행위로써, 선함, 진리 및 자비로 가득한 아버지 창고의 문을 열게 하며, 이 좋은 선물들은 그 자녀가 접근하여 직접 사용하기를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것들입니다. 기도는 사람을 향한 신적 태도를 바꾸지 않지만, 변함없는 아버지를 향한 사람의 태도를 바꿉니다. 신적 귀에 이르는 통행권은 기도의 동기(動機)이지, 기도하는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또는 외적인 종교적 상태가 아닙니다.

191103 윤리적 기도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146:2.9 (1639.4) 8. Prayer may not be employed to avoid the delays of time or to transcend the handicaps of space. Prayer is not designed as a technique for aggrandizing self or for gaining unfair advantage over one’s fellows. A thoroughly selfish soul cannot pray in the true sense of the word. Said Jesus: “Let your supreme delight be in the character of God, and he shall surely give you the sincere desires of your heart.” “Commit your way to the Lord; trust in him, and he will act.” “For the Lord hears the cry of the needy, and he will regard the prayer of the destitute.” 시간의 지연을 피하거나 공간의 장애를 뛰어 넘으려고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자기를 확대하거나 동료들보다 공정하지 못한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이기적인 혼은 참된 의미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최극의 기쁨을 하나님의 성품에 두면, 네 심정의 신실한 소원을 너에게 확실히 주시리라(시37:4).” “너의 길을 주께 맡기고; 그를 신뢰하면 그가 행하시리라(시37:5).” “주님은 궁핍한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시72:12),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기 때문이라(시102:17).”

146:2.10 (1639.5) 9. “I have come forth from the Father; if, therefore, you are ever in doubt as to what you would ask of the Father, ask in my name, and I will present your petition in accordance with your real needs and desires and in accordance with my Father’s will.” Guard against the great danger of becoming self-centered in your prayers. Avoid praying much for yourself; pray more for the spiritual progress of your brethren. Avoid materialistic praying; pray in the spirit and for the abundance of the gifts of the spirit. “내가 아버지로부터 왔으니 너희가 아버지께 무엇을 구할지 망설일 때마다 내 이름으로 구하라(요14:14), 그러면 너희의 진정한 필요와 소원에 따라서, 또한 내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내가 너희 간구(干求)를 전하리라.” 기도할 때 자기중심적이 되는 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자신을 위하여 많이 기도하기를 피하고, 너희 형제들의 영적 진보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하십시오. 물질주의적 기도를 피하고; 영으로, 영의 풍성한 선물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146:2.11 (1639.6) 10. When you pray for the sick and afflicted, do not expect that your petitions will take the place of loving and intelligent ministry to the necessities of these afflicted ones. Pray for the welfare of your families, friends, and fellows, but especially pray for those who curse you, and make loving petitions for those who persecute you. “But when to pray, I will not say. Only the spirit that dwells within you may move you to the utterance of those petitions which are expressive of your inner relationship with the Father of spirits.” 너희가 병든 자와 괴로워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때, 너희 간청이 이렇게 고생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사랑과 지능적 돌봄을 대신하리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너희 가족, 친구, 동료들의 복지를 위해 기도하되, 특별히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애정을 품고 간구하십시오. “그러나 언제 기도할지 나는 이르지 않으리라. 단지 너희 안에 내주하는 영(靈)이 너를 감동하여 영들의 아버지와 너희의 내적 관계를 표현하는 그러한 간구를 말하게 하리라.”

146:2.12 (1640.1) 11. Many resort to prayer only when in trouble. Such a practice is thoughtless and misleading. True, you do well to pray when harassed, but you should also be mindful to speak as a son to your Father even when all goes well with your soul. Let your real petitions always be in secret. Do not let men hear your personal prayers. Prayers of thanksgiving are appropriate for groups of worshipers, but the prayer of the soul is a personal matter. There is but one form of prayer which is appropriate for all God’s children, and that is: “Nevertheless, your will be done.” 많은 이들은 곤란할 때만 기도에 매달립니다. 그런 습관은 경솔하고 그르치게 만듭니다. 사실, 너희가 시달릴 때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너희는 혼(魂)과 함께 모든 일이 잘 풀릴 때에도 또한 너희 아버지께 기도하기를 명심하십시오. 너희의 실제 간구는 항상 비밀리에 하십시오. 자기만의 기도는 사람들이 듣게 않게 하십시오. 감사의 기도들은 경배하는 자들의 집단들에서 적절하지만, 혼(魂)의 기도는 고유적 개인 문제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한 가지 적절한 기도 형태는 이것입니다. “그래도,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146:2.13 (1640.2) 12. All believers in this gospel should pray sincerely for the extension of the kingdom of heaven. Of all the prayers of the Hebrew scriptures he commented most approvingly on the petition of the Psalmist: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Purge me from secret sins and keep back your servant from presumptuous transgression.” Jesus commented at great length on the relation of prayer to careless and offending speech, quoting: “Set a watch, O Lord, before my mouth; keep the door of my lips.” “The human tongue,” said Jesus, “is a member which few men can tame, but the spirit within can transform this unruly member into a kindly voice of tolerance and an inspiring minister of mercy.” 이 복음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진정으로 하늘나라의 확장을 위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히브리 성서(聖書)의 모든 기도 중에서 그는 시편 기자의 간구를 가장 만족스럽게 논평하셨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은밀한 죄들에서 씻으시고, 당신의 종으로 고범(故犯일부러 범한)죄를 짓지 말게 하소서(시19:12b-13a).” 예수님은 기도와 관련하여 경솔하며 거슬리는 말투에 대해 매우 길게 논평하면서 인용하셨습니다. “오, 주님,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인간의 혀는 사람이 거의 길들이기 어려운 지체이지만(약3:8a), 내주하는 영(靈)이 다루기 어려운 이 지체를 친절한 관용의 음성과 자비로써 감동을 주는 봉사자로 바꿀 수 있느니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46:2.14 (1640.3) 13. Jesus taught that the prayer for divine guidance over the pathway of earthly life was next in importance to the petition for a knowledge of the Father’s will. In reality this means a prayer for divine wisdom. Jesus never taught that human knowledge and special skill could be gained by prayer. But he did teach that prayer is a factor in the enlargement of one’s capacity to receive the presence of the divine spirit. When Jesus taught his associates to pray in the spirit and in truth, he explained that he referred to praying sincerely and in accordance with one’s enlightenment, to praying wholeheartedly and intelligently, earnestly and steadfastly. 예수님은 모든 지상 생애의 여정에서 신적 안내를 위한 기도가, 아버지의 뜻을 알려는 간구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실제로 이것은 신적 지혜를 위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인간의 지식과 특별한 기술을 얻을 수 있다고 결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란, 사람이 신적 영의 현존을 받아들이는 수용력을 확대하는 요소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동료들에게 영과 진리로(요4:24)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던 것은, 사람의 깨우침에 따라 신실히 기도하며, 전심으로, 지능적으로, 열심히 또한 확고히 기도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146:2.15 (1640.4) 14. Jesus warned his followers against thinking that their prayers would be rendered more efficacious by ornate repetitions, eloquent phraseology, fasting, penance, or sacrifices. But he did exhort his believers to employ prayer as a means of leading up through thanksgiving to true worship. Jesus deplored that so little of the spirit of thanksgiving was to be found in the prayers and worship of his followers. He quoted from the Scriptures on this occasion, saying: “It is a good thing to give thanks to the Lord and to sing praises to the name of the Most High, to acknowledge his loving-kindness every morning and his faithfulness every night, for God has made me glad through his work. In everything I will give thanks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화려한 문체의 반복(마6:7a), 감동적인 어법, 금식, 참회(고행), 희생제물로 인해 기도가 더 효험이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신자들에게 감사를 통해 참된 경배로 이어지는 수단으로 기도를 사용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의 기도와 경배에서 감사의 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점을 유감스러워 하셨습니다. 그는 성서를 인용하여 이 경우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며 지고자(至高者)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시92:1-2, 4) 모든 일에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감사하리이다(살전5:18).”

146:2.16 (1640.5) 15. And then Jesus said: “Be not constantly overanxious about your common needs. Be not apprehensive concerning the problems of your earthly existence, but in all these things by prayer and supplication, with the spirit of sincere thanksgiving, let your needs be spread out before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Then he quoted from the Scriptures: “I will praise the name of God with a song and will magnify him with thanksgiving. And this will please the Lord better than the sacrifice of an ox or bullock with horns and hoofs.” 그 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일상적 필요로 인해 계속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 너희 지상 존재의 문제들로 인해 염려하지 말고 이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필요를 신실한 감사의 영으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펼쳐놓으라(빌4:6).” 그 후 그는 성서를 인용하셨습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주님을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69:30-31).”

146:2.17 (1641.1) 16. Jesus taught his followers that, when they had made their prayers to the Father, they should remain for a time in silent receptivity to afford the indwelling spirit the better opportunity to speak to the listening soul. The spirit of the Father speaks best to man when the human mind is in an attitude of true worship. We worship God by the aid of the Father’s indwelling spirit and by the illumination of the human mind through the ministry of truth. Worship, taught Jesus, makes one increasingly like the being who is worshiped. Worship is a transforming experience whereby the finite gradually approaches and ultimately attains the presence of the Infinite.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그들이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 후, 내주하는 영이 경청하는 혼에게 말할 더 좋은 기회를 드리기 위해 조용히 받아들이며 잠시 머물러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아버지의 영은, 인간의 마음이 참된 경배의 태도로 있을 때, 사람에게 말하기가 가장 좋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내주하는 영의 도움과 진리의 사역을 통해 인간 마음을 조명하여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사람은 경배하면서 경배를 받는 존재를 점차 닮는다고 예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경배는, 유한자가 무한자의 현존에 점차 접근하여 결국 도달하는 변화의 체험입니다.

146:2.18 (1641.2) And many other truths did Jesus tell his apostles about man’s communion with God, but not many of them could fully encompass his teaching.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사람과 하나님의 친교에 대한 여러 다른 진리들을 말씀하셨지만 그들 대부분은 그의 가르침을 충분히 통합하여 아우를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