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6 Monarchial Government 군주(君主)의 정부(政府)

6. Monarchial Government 군주(君主)의 정부(政府)

70:6.1 (789.8) Effective state rule only came with the arrival of a chief with full executive authority. Man found that effective government could be had only by conferring power on a personality, not by endowing an idea. 효과적인 국가 통치는 충분한 실행 권위를 지닌 추장의 도래와 함께 겨우 다가왔습니다. 효과적인 정부(政府)는, 관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고유성)에게 권력을 줌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이 발견했습니다.

70:6.2 (789.9) Rulership grew out of the idea of family authority or wealth. When a patriarchal kinglet became a real king, he was sometimes called “father of his people.” Later on, kings were thought to have sprung from heroes. And still further on, rulership became hereditary, due to belief in the divine origin of kings. 통치권은 가족의 권위 또는 재산의 관념에서 생겼습니다. 족장적 소왕(小王)이 실제 왕(王)이 되자, 그는 때로 “자기 민족의 아버지”라고 불렸습니다. 나중에는, 영웅들로부터 왕들이 솟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훨씬 후대에는 왕들의 신적 기원을 믿었기 때문에, 통치권이 세습되었습니다.

70:6.3 (789.10) Hereditary kingship avoided the anarchy which had previously wrought such havoc between the death of a king and the election of a successor. The family had a biologic head; the clan, a selected natural leader; the tribe and later state had no natural leader, and this was an additional reason for making the chief-kings hereditary. The idea of royal families and aristocracy was also based on the mores of “name ownership” in the clans. 세습(世襲) 왕권은 왕의 사후 후계자가 선출되는 사이에 엄청나게 파괴적인 이전의 무정부상태를 겪지 않게 했습니다. 가족은 생물학적 지도자가 있었고; 씨족은 선출한 자연적 지도자가 있었으며; 부족과 후대의 국가는 자연스러운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추장-왕들을 세습하게 한 추가적 이유였습니다. 왕가(王家)들과 귀족제의 관념은 또한 씨족들 안에서 “이름 소유권”을 주는 관례에 기초를 두었습니다.

70:6.4 (790.1) The succession of kings was eventually regarded as supernatural, the royal blood being thought to extend back to the times of the materialized staff of Prince Caligastia. Thus kings became fetish personalities and were inordinately feared, a special form of speech being adopted for court usage. Even in recent times it was believed that the touch of kings would cure disease, and some Urantia peoples still regard their rulers as having had a divine origin. 왕들의 계승은 결국 초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왕족의 혈연(血緣) 존재는 왕자 칼리가스티아의 물질화 참모진의 시대까지 거슬러 연장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왕들은 미신으로 숭배를 받는 고유성들이 되었고 과도하게 두려워해서, 특별한 형태의 어투가 왕실(王室) 어법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왕과 접촉하면 질병이 치유된다고 믿었으며, 지구(유란시아)의 어떤 민족들은 여전히 그들의 통치자가 신적 기원을 가졌다고 여깁니다.

70:6.5 (790.2) The early fetish king was often kept in seclusion; he was regarded as too sacred to be viewed except on feast days and holy days. Ordinarily a representative was chosen to impersonate him, and this is the origin of prime ministers. The first cabinet officer was a food administrator; others shortly followed. Rulers soon appointed representatives to be in charge of commerce and religion; and the development of a cabinet was a direct step toward depersonalization of executive authority. These assistants of the early kings became the accepted nobility, and the king’s wife gradually rose to the dignity of queen as women came to be held in higher esteem. 초기의 미신적 숭배의 대상이었던 왕은 흔히 떨어져 지냈습니다. 그는 너무 신성해서 잔치 기간과 거룩한 날들을 제외하고는 볼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대개 대리자가 그의 역할을 하도록 선출되었는데 이것이 수상(首相)의 기원입니다. 내각의 첫 관리는 식량 관리자였고, 다른 직책들이 곧 뒤따랐습니다. 통치자들은 곧 상업과 종교를 책임지도록 대리자들을 임명했습니다. 내각의 발전은 실행 권위를 객관화하는 직접적 단계였습니다. 초기 왕들의 이런 협력자들은 인정된 귀족이 되었고, 여성들이 높이 존중받게 되면서 왕의 아내는 점차 왕비의 존엄으로 올라갔습니다.

70:6.6 (790.3) Unscrupulous rulers gained great power by the discovery of poison. Early court magic was diabolical; the king’s enemies soon died. But even the most despotic tyrant was subject to some restrictions; he was at least restrained by the ever-present fear of assassination. The medicine men, witch doctors, and priests have always been a powerful check on the kings. Subsequently, the landowners, the aristocracy, exerted a restraining influence. And ever and anon the clans and tribes would simply rise up and overthrow their despots and tyrants. Deposed rulers, when sentenced to death, were often given the option of committing suicide, which gave origin to the ancient social vogue of suicide in certain circumstances. 비양심적인 통치자들은 독약을 발견하여 큰 권력을 얻었습니다. 초기 궁정 마술은 극악무도(極惡無道)했습니다. 왕의 적대자들이 곧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포학(暴虐잔인하고 난폭)한 폭군도 어떤 제한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암살의 두려움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그가 억제되었습니다. 주술사(呪術師)들과 마법사(魔法師)들 및 사제들은 왕들에게 항상 강력한 저지(沮止) 세력이었습니다. 후에는 지주(地主)들, 즉 귀족들이 억제하는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씨족들과 부족들이 단순히 일어나 자기들의 독재군주와 폭군을 타도(打倒쳐서 부숴버림)하곤 했습니다. 폐위된 통치자들이 사형 선고를 받으면, 흔히 자살의 선택권이 주어졌으며. 특정 상황에서 자살하는 고대 사회적 유행의 기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