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0 Evolution of Justice 정의(正義)의 진화

10. Evolution of Justice 정의(正義)의 진화

70:10.1 (794.13) Natural justice is a man-made theory; it is not a reality. In nature, justice is purely theoretic, wholly a fiction. Nature provides but one kind of justice — inevitable conformity of results to causes. 자연적 정의(正義)는 사람이 만든 이론입니다. 그것은 실체가 아닙니다. 자연에서, 정의(正義)는 순전히 이론적이며, 전부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자연은 단 한 가지 종류의 정의(正義) – 원인에 대한 결과의 필연적 일치성-를 제공합니다.

70:10.2 (794.14) Justice, as conceived by man, means getting one’s rights and has, therefore, been a matter of progressive evolution. The concept of justice may well be constitutive in a spirit-endowed mind, but it does not spring full-fledgedly into existence on the worlds of space. 사람이 고안한 정의(正義)는 권리 획득을 의미하므로 점진적 진화의 문제였습니다. 정의(正義)의 개념은 영이 부여된 마음에 아주 본질적일 수 있지만, 그것은 공간의 세계들에서 성숙한 실존으로 솟아나지 않습니다.

70:10.3 (794.15) Primitive man assigned all phenomena to a person. In case of death the savage asked, not what killed him, but who? Accidental murder was not therefore recognized, and in the punishment of crime the motive of the criminal was wholly disregarded; judgment was rendered in accordance with the injury done. 원시인은 모든 현상을 개인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죽음의 경우 미개인들은 무엇이 그를 죽였는지가 아니라 누가 죽였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발적 살인은 인정되지 않았고, 죄를 처벌할 때 범죄자의 동기는 완전히 무시되었습니다. 입은 상해에 따라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70:10.4 (795.1) In the earliest primitive society public opinion operated directly; officers of law were not needed. There was no privacy in primitive life. A man’s neighbors were responsible for his conduct; therefore their right to pry into his personal affairs. Society was regulated on the theory that the group membership should have an interest in, and some degree of control over, the behavior of each individual. 최초의 원시 사회에서는 여론이 직접 작용했으며, 법관들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원시생활에는 사생활이 없었습니다. 이웃들이 그의 행위에 대해 책임졌기 때문에 그들은 그의 개인적 용무에 꼬치꼬치 파고들 권리가 있었습니다. 집단의 회원은 각 개인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어느 정도 관리해야만 한다는 이론에 따라 사회가 규제되었습니다.

70:10.5 (795.2) It was very early believed that ghosts administered justice through the medicine men and priests; this constituted these orders the first crime detectors and officers of the law. Their early methods of detecting crime consisted in conducting ordeals of poison, fire, and pain. These savage ordeals were nothing more than crude techniques of arbitration; they did not necessarily settle a dispute justly. For example: When poison was administered, if the accused vomited, he was innocent. 유령들이 주술사들과 사제들을 통해 정의(正義)를 집행한다고 아주 일찍부터 믿었습니다. 이것이 이 계층들을 최초의 범죄 탐지자들과 법관들로 만들어냈습니다. 범죄를 탐지하는 그들의 초기 방법들은 독약, 불 및 고통으로 죄인 판별법을 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야만적인 죄인 판별법들은 서툰 조정 기법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분쟁을 반드시 공정하게 수습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독약을 복용했을 때 피고인이 토해내면 그는 무죄였습니다.

70:10.6 (795.3) The Old Testament records one of these ordeals, a marital guilt test: If a man suspected his wife of being untrue to him, he took her to the priest and stated his suspicions, after which the priest would prepare a concoction consisting of holy water and sweepings from the temple floor. After due ceremony, including threatening curses, the accused wife was made to drink the nasty potion. If she was guilty, “the water that causes the curse shall enter into her and become bitter, and her belly shall swell, and her thighs shall rot, and the woman shall be accursed among her people.” If, by any chance, any woman could quaff this filthy draught and not show symptoms of physical illness, she was acquitted of the charges made by her jealous husband. 구약 성경은 이 죄인 판별법들 중 하나, 부부간의 죄책감 테스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아내의 부정(不貞)을 의심해서, 그녀를 사제에게 데려가 그의 의심을 말하면, 그 후 사제는 거룩한 물과 성전 바닥의 먼지로 혼합 음료를 준비하곤 했습니다. 위협적인 저주가 포함된 정식 의식(儀式) 후에, 고발된 아내는 불결한 그 음료를 마셔야만 했습니다. 그녀가 죄를 범했다면, “저주를 일으키는 그 물이 그녀의 속으로 들어가 쓰게 될 것이며 그녀의 배는 부을 것이고, 넓적다리는 썩을 것이며, 여인은 자기 민족 중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우연히, 어떤 여인이 그 불결한 물을 들이켜 마신 후 육체적 질병의 증상이 없으면, 그녀는 질투심이 많은 남편의 고소에서 석방되었습니다(민5:11-31).

70:10.7 (795.4) These atrocious methods of crime detection were practiced by almost all the evolving tribes at one time or another. Dueling is a modern survival of the trial by ordeal. 진화하는 거의 모든 부족들이 한 때 또는 다른 때 범죄를 탐지하는 이 잔학한 방법들을 실행했습니다. 결투는 죄인 판별법에 의한 재판의 현대적 잔존입니다.

70:10.8 (795.5) It is not to be wondered that the Hebrews and other semicivilized tribes practiced such primitive techniques of justice administration three thousand years ago, but it is most amazing that thinking men would subsequently retain such a relic of barbarism within the pages of a collection of sacred writings. Reflective thinking should make it clear that no divine being ever gave mortal man such unfair instructions regarding the detection and adjudication of suspected marital unfaithfulness. 히브리인들과 반(半)문명화된 부족들이 3,000년 전에 그런 원시적 정의(正義) 집행 기법들을 실행한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생각이 깊은 사람들이 후에 그런 야만의 유물을 신성한 저작(著作)의 한 책에 남겨두려 했다는 사실은 아주 어처구니없습니다. 사려 깊게 생각하면 어떤 신적 존재도 필사 인간에게, 의심받는 부부간에 있는 부정(不貞)의 탐지와 판결에 대해, 그런 부당한 지시를 주지 않았음에 의심할 여지가 없어야 합니다.

70:10.9 (795.6) Society early adopted the paying-back attitude of retaliation: an eye for an eye, a life for a life. The evolving tribes all recognized this right of blood vengeance. Vengeance became the aim of primitive life, but religion has since greatly modified these early tribal practices. The teachers of revealed religion have always proclaimed, “‘Vengeance is mine,’ says the Lord.” Vengeance killing in early times was not altogether unlike present-day murders under the pretense of the unwritten law. 사회는 일찍부터 눈에는 눈으로, 생명에는 생명으로 보복하여 되갚는 태도를 채택했습니다. 진화하는 모든 부족들은 피로 보복하는 이러한 권리를 인정했습니다. 복수가 원시적 생활의 목적이 되었지만, 종교는 그 후 이러한 초기 부족의 관습들을 크게 변경시켰습니다. 계시 종교의 교사들은 “‘보수(報讎앙갚음)는 내 것이라(신32:35).’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항상 선포했습니다. 초기 시대에 복수하는 살인은 불문율(不文律암묵 중에 정당화하는 원칙)을 구실로 행해진 현대의 살인들과 대체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70:10.10 (795.7) Suicide was a common mode of retaliation. If one were unable to avenge himself in life, he died entertaining the belief that, as a ghost, he could return and visit wrath upon his enemy. And since this belief was very general, the threat of suicide on an enemy’s doorstep was usually sufficient to bring him to terms. Primitive man did not hold life very dear; suicide over trifles was common, but the teachings of the Dalamatians greatly lessened this custom, while in more recent times leisure, comforts, religion, and philosophy have united to make life sweeter and more desirable. Hunger strikes are, however, a modern analogue of this old-time method of retaliation. 자살은 보복의 흔한 형태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생전에 스스로 복수할 수 없다면, 유령으로 돌아와 자기 원수에게 분노로 벌할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아주 널리 퍼진 후로, 원수의 문간에서 자살한다는 협박은 흔히 원수를 항복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원시인은 생명을 그다지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소한 일로 흔하게 자살했지만, 달라마시아 사람들의 가르침으로 이런 관습이 아주 감소한 반면에 최근에 이르러 여가(餘暇), 안락함, 종교 및 철학이 결합하여 생활을 더욱 감미롭고 매력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단식투쟁은 이렇게 보복하는 고대 방법의 현대판(現代版)입니다.

70:10.11 (796.1) One of the earliest formulations of advanced tribal law had to do with the taking over of the blood feud as a tribal affair. But strange to relate, even then a man could kill his wife without punishment provided he had fully paid for her. The Eskimos of today, however, still leave the penalty for a crime, even for murder, to be decreed and administered by the family wronged. 진보된 부족의 율법에 속한 공식적인 가장 최초의 것들 중 하나는 피의 숙원(宿怨묵은 원한)을 부족의 일로 이어받는 것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상한 말이지만, 당시 남자가 아내를 위해 충분히 값을 치렀다면 처벌 없이 그녀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에스키모인들은 범죄에 대해, 심지어 살인의 경우에도, 학대받은 가족이 판결하고 처분하도록, 처벌을 여전히 남깁니다.

70:10.12 (796.2) Another advance was the imposition of fines for taboo violations, the provision of penalties. These fines constituted the first public revenue. The practice of paying “blood money” also came into vogue as a substitute for blood vengeance. Such damages were usually paid in women or cattle; it was a long time before actual fines, monetary compensation, were assessed as punishment for crime. And since the idea of punishment was essentially compensation, everything, including human life, eventually came to have a price which could be paid as damages. The Hebrews were the first to abolish the practice of paying blood money. Moses taught that they should “take no satisfaction for the life of a murderer, who is guilty of death; he shall surely be put to death.” 또 다른 진보는 금기 위반의 경우 벌금의 부과, 즉 처벌 규정이었습니다. 이러한 벌금은 최초의 공적 수익이 되었습니다. “위자료”를 지불하는 관습 역시 유혈의 복수 대신에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손해액은 대개 여성들이나 가축으로 지불했습니다. 실제로 벌금, 즉 금전적 보상금이 범죄에 대한 형벌로서 부과되기 전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형벌에 대한 관념이 근본적으로 배상(賠償손해를 물어줌)이 된 이후로, 인간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은 결국 손해액으로 지불될 수 있는 값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위자료를 지불하는 관습을 처음으로 폐지했습니다. 모세는 “살인죄를 범한 고살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라(민35:31).”고 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70:10.13 (796.3) Justice was thus first meted out by the family, then by the clan, and later on by the tribe. The administration of true justice dates from the taking of revenge from private and kin groups and lodging it in the hands of the social group, the state. 이렇게 정의(正義)는 처음에는 가족에게, 다음에 씨족에게, 후대에는 부족에게 할당되었습니다. 복수하는 참된 정의(正義)의 시행은 사적인 혈연 집단의 복수에서 사회적 집단, 즉 국가의 손에 맡기게 됩니다.

70:10.14 (796.4) Punishment by burning alive was once a common practice. It was recognized by many ancient rulers, including Hammurabi and Moses, the latter directing that many crimes, particularly those of a grave sex nature, should be punished by burning at the stake. If “the daughter of a priest” or other leading citizen turned to public prostitution, it was the Hebrew custom to “burn her with fire.” 산 채로 화형을 시키는 형벌이 한 때 흔한 관습이었습니다. 함무라비와 모세를 포함한 고대의 많은 통치자들이 이 관습을 인정했는데, 모세는 여러 범죄들, 특히 심각한 성(性)적 기질의 범죄자들은 화형으로 처벌받게 했습니다. “제사장의 딸”이나 다른 지도적 시민의 딸이 공창(公娼영업적 매음)이 되면, “그녀를 화형(火刑불살라 죽임)(레21:9)”하는 것이 히브리 관습이었습니다.

70:10.15 (796.5) Treason — the “selling out” or betrayal of one’s tribal associates — was the first capital crime. Cattle stealing was universally punished by summary death, and even recently horse stealing has been similarly punished. But as time passed, it was learned that the severity of the punishment was not so valuable a deterrent to crime as was its certainty and swiftness. 자기 동료들을 “팔아-넘기거나” 배반(背叛)하는 반역죄는 최초의 죽을 죄였습니다. 가축 절도(竊盜)는 대개 즉결 사형으로 처형되었고, 최근에도 말 도둑이 마찬가지로 처벌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가혹한 처벌이 확실하고 즉각적인 것만큼 범죄를 억제하는 가치가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70:10.16 (796.6) When society fails to punish crimes, group resentment usually asserts itself as lynch law; the provision of sanctuary was a means of escaping this sudden group anger. Lynching and dueling represent the unwillingness of the individual to surrender private redress to the state. 사회가 범죄를 처벌하지 못하면, 집단 분노는 대개 사형(私刑사사로운 제재)으로 드러납니다. 성역(聖域피난처, 도피성)의 규정은 이러한 갑작스러운 집단적 분노를 피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사형(私刑사적 제재, 대개 교수형)과 결투(決鬪)는 사적(私的) 교정(矯正바로잡음)을 개인이 국가에게 넘겨주지 않으려는 저항을 나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