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 The Genesis of War 전쟁의 발생

1. The Genesis of War 전쟁의 발생

70:1.1 (783.4) War is the natural state and heritage of evolving man; peace is the social yardstick measuring civilization’s advancement. Before the partial socialization of the advancing races man was exceedingly individualistic, extremely suspicious, and unbelievably quarrelsome. Violence is the law of nature, hostility the automatic reaction of the children of nature, while war is but these same activities carried on collectively. And wherever and whenever the fabric of civilization becomes stressed by the complications of society’s advancement, there is always an immediate and ruinous reversion to these early methods of violent adjustment of the irritations of human interassociations. 전쟁은 진화하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상태이며 유산입니다. 평화는 문명의 진보를 측정하는 사회적 척도입니다. 진보하는 종족들이 부분적인 사회화를 이루기 전에, 사람은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며, 몹시 의심이 많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싸우기를 좋아했습니다. 폭력은 자연의 법칙이고, 적개심은 자연인의 자동적인 반응인 반면에 전쟁은 똑같은 이 행동들이 집단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사회의 진보의 분규(紛糾시끄러움)로 문명의 조직이 긴장되는 장소나 시기마다 인간의 상호관계에 속한 자극을 폭력으로 조율하려는 이러한 초기 방법들로 즉시 파괴적으로 항상 되돌아갑니다.

70:1.2 (783.5) War is an animalistic reaction to misunderstandings and irritations; peace attends upon the civilized solution of all such problems and difficulties. The Sangik races, together with the later deteriorated Adamites and Nodites, were all belligerent. The Andonites were early taught the golden rule, and, even today, their Eskimo descendants live very much by that code; custom is strong among them, and they are fairly free from violent antagonisms. 전쟁은 오해와 자극에 대한 동물적 반응입니다. 평화는 그런 모든 문제들과 어려움들에 대한 문명화된 해결의 결과로 일어납니다. 상긱 종족들은, 후대에 타락한 아담족속들과 놋족속들과 함께, 모두 호전(好戰)적이었습니다. 안돈족속들은 일찍이 황금률을 배웠으며, 오늘날까지 그 에스키모 후손들은 대체로 그 규정으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관습에 철저하며, 그들은 폭력적인 적대관계가 거의 없습니다.

70:1.3 (783.6) Andon taught his children to settle disputes by each beating a tree with a stick, meanwhile cursing the tree; the one whose stick broke first was the victor. The later Andonites used to settle disputes by holding a public show at which the disputants made fun of and ridiculed each other, while the audience decided the winner by its applause. 안돈은 각자 나뭇가지로 나무를 두드리는 동시에 나무에게 악담하면서 자녀들이 논쟁을 진정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먼저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자가 승리자였습니다. 나중에 안돈족속들은 공개적인 쇼를 열어서 논쟁을 해결하곤 했는데, 논쟁자들이 서로 놀려대며 조롱하는 동안 청중들이 박수로 승자를 결정했습니다. 

70:1.4 (783.7) But there could be no such phenomenon as war until society had evolved sufficiently far to actually experience periods of peace and to sanction warlike practices. The very concept of war implies some degree of organization. 그러나 사회가 평화로운 기간을 실제로 경험하고 전쟁 비슷한 실천을 인정할 만큼 충분히 진화될 때까지 전쟁이라고 할 만한 현상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전쟁을 한다는 바로 그 개념은 어느 정도의 조직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70:1.5 (784.1) With the emergence of social groupings, individual irritations began to be submerged in the group feelings, and this promoted intratribal tranquillity but at the expense of intertribal peace. Peace was thus first enjoyed by the in-group, or tribe, who always disliked and hated the out-group, foreigners. Early man regarded it a virtue to shed alien blood. 사회 집단들이 생겨나자, 개별적인 자극들은 집단적인 감정으로 가라앉기 시작했고, 이것은 부족 간의 평화를 희생시키는 대가로 부족 내부의 평온을 증진시켜 주었습니다. 이처럼 평화는 처음에는 집단 또는 부족 내부에서 이루어졌고, 항상 그 집단에 속하지 않는 자들, 이방인들을 싫어하고 미워했습니다. 초기 사람은 외부인에게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을 일종의 덕목으로 간주했습니다.

70:1.6 (784.2) But even this did not work at first. When the early chiefs would try to iron out misunderstandings, they often found it necessary, at least once a year, to permit the tribal stone fights. The clan would divide up into two groups and engage in an all-day battle. And this for no other reason than just the fun of it; they really enjoyed fighting. 그러나 이것도 처음부터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초기 지도자들이 오해들을 제거시키고자 하였을 때, 그들은 부족끼리 투석전(投石戰)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은 필요하다는 것을 종종 발견했습니다. 그 씨족은 두 개의 집단들로 나뉘어 하루 종일 싸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이유는 오직 재미를 위한 것이었고; 그들은 실제로 그러한 싸움을 즐겼던 것입니다. 

70:1.7 (784.3) Warfare persists because man is human, evolved from an animal, and all animals are bellicose. Among the early causes of war were: 사람은 동물에서 진화한 인간이며, 모든 동물은 호전(好戰)적이므로 전쟁이 지속합니다. 전쟁의 초기 원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70:1.8 (784.4) 1. Hunger, which led to food raids. Scarcity of land has always brought on war, and during these struggles the early peace tribes were practically exterminated. 배고픔이 식량 약탈로 이끌었습니다. 땅이 부족하여 항상 전쟁이 일어났고, 이러한 투쟁 중에 초기의 평화롭던 부족들은 실제로 몰살되었습니다.

70:1.9 (784.5) 2. Woman scarcity — an attempt to relieve a shortage of domestic help. Woman stealing has always caused war. 여성의 부족 – 가사(家事) 도움의 부족을 해소하려는 시도. 여성 절도는 항상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70:1.10 (784.6) 3. Vanity — the desire to exhibit tribal prowess. Superior groups would fight to impose their mode of life upon inferior peoples. 허영심 – 부족의 용맹을 과시하려는 욕망. 우수한 집단들은 열등한 민족들에게 자기들의 생활 방식을 강요하려고 전쟁하곤 했습니다.

70:1.11 (784.7) 4. Slaves — need of recruits for the labor ranks. 노예들─노동자 계급 확보의 필요성.

70:1.12 (784.8) 5. Revenge was the motive for war when one tribe believed that a neighboring tribe had caused the death of a fellow tribesman. Mourning was continued until a head was brought home. The war for vengeance was in good standing right on down to comparatively modern times. 이웃 부족이 동료 부족의 일원을 죽게 했다고, 한 부족이 믿으면, 복수는 전쟁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머리를 집으로 가져올 때까지 계속 애도(哀悼)했습니다. 복수(復讎)를 위한 전쟁은 비교적 현대까지 내려온 공정하게 확립된 정의였습니다.

70:1.13 (784.9) 6. Recreation — war was looked upon as recreation by the young men of these early times. If no good and sufficient pretext for war arose, when peace became oppressive, neighboring tribes were accustomed to go out in semifriendly combat to engage in a foray as a holiday, to enjoy a sham battle. 오락 – 이 초기 시대에 청년들은 전쟁을 오락으로 여겼습니다. 전쟁을 위해 그럴듯하고 충분한 구실이 생기지 않고, 평화가 답답할 때, 가까운 부족들은 가짜 전투를 즐기러 노는 날 약탈하려고 어느 정도 우호적인 전투에 나서곤 했습니다.

70:1.14 (784.10) 7. Religion — the desire to make converts to the cult. The primitive religions all sanctioned war. Only in recent times has religion begun to frown upon war. The early priesthoods were, unfortunately, usually allied with the military power. One of the great peace moves of the ages has been the attempt to separate church and state. 종교 – 종파로 개종시키려는 욕망. 원시적 종교들은 모두 전쟁을 찬성했습니다. 단지 최근에 종교가 전쟁에 난색을 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사제들은 공교롭게 대개 군사력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오랫동안 위대한 평화 조처 중 하나는 교회와 정부를 분리하려는 시도였습니다.

70:1.15 (784.11) Always these olden tribes made war at the bidding of their gods, at the behest of their chiefs or medicine men. The Hebrews believed in such a “God of battles”; and the narrative of their raid on the Midianites is a typical recital of the atrocious cruelty of the ancient tribal wars; this assault, with its slaughter of all the males and the later killing of all male children and all women who were not virgins, would have done honor to the mores of a tribal chieftain of two hundred thousand years ago. And all this was executed in the “name of the Lord God of Israel.” 고대의 이 부족들은 항상 자기 하나님들의 분부대로, 그들의 족장(族長)들이나 주술사(呪術師)들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그런 “전투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이 미디안-사람을 침략한 이야기는 고대의 부족 전쟁에 속한 아주 지독히 잔학한 전형적인 상술(詳述상세한 설명)입니다. 모든 남자들과 나중에는 모든 남자 아이들과 처녀가 아닌 모든 여자들을 학살한 이 습격은 20만 년 전의 부족 추장(酋長)이 세운 관습에 경의를 표하려고 자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실행되었습니다.

70:1.16 (784.12) This is a narrative of the evolution of society — the natural outworking of the problems of the races — man working out his own destiny on earth. Such atrocities are not instigated by Deity, notwithstanding the tendency of man to place the responsibility on his gods. 이것은 사회의 진화 – 종족 문제들의 자연적 과업 – 사람이 땅에서 자신의 운명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잔학 행위들은, 자기 하나님들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사람의 경향에도 불구하고, 신(神)이 선동한 것이 아닙니다.

70:1.17 (784.13) Military mercy has been slow in coming to mankind. Even when a woman, Deborah, ruled the Hebrews, the same wholesale cruelty persisted. Her general in his victory over the gentiles caused “all the host to fall upon the sword; there was not one left.” 군사적(軍事的) 자비는 인류에게 서서히 찾아왔습니다. 여성 드보라가 히브리인들을 다스릴 때에도, 똑같은 대규모의 잔학한 행위가 계속되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승리한 그녀의 장군은 “모든 무리가 칼에 엎드러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다(삿4:16).”고 했습니다.

70:1.18 (785.1) Very early in the history of the race, poisoned weapons were used. All sorts of mutilations were practiced. Saul did not hesitate to require one hundred Philistine foreskins as the dowry David should pay for his daughter Michal. 인류 역사의 아주 초기에 독이 있는 무기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온갖 종류의 절단(切斷)이 시행되었습니다. 사울은 그의 딸 미갈을 위해 다윗이 지불해야만 하는 신부 혼인 지참금으로 필리스틴 사람 100명의 포피(包皮)를 망설이지 않고 요구했습니다.

70:1.19 (785.2) Early wars were fought between tribes as a whole, but in later times, when two individuals in different tribes had a dispute, instead of both tribes fighting, the two disputants engaged in a duel. It also became a custom for two armies to stake all on the outcome of a contest between a representative chosen from each side, as in the instance of David and Goliath. 초기 전쟁들은 부족들 전체가 싸웠지만, 나중에는 다른 부족들에 속한 두 개인들이 분쟁이 있으면, 두 부족들이 싸우는 대신에, 두 분쟁자들이 결투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경우처럼 두 군대의 각 편에서 뽑힌 대표 사이의 결투 결과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이 또한 관습이 되었습니다.

70:1.20 (785.3) The first refinement of war was the taking of prisoners. Next, women were exempted from hostilities, and then came the recognition of noncombatants. Military castes and standing armies soon developed to keep pace with the increasing complexity of combat. Such warriors were early prohibited from associating with women, and women long ago ceased to fight, though they have always fed and nursed the soldiers and urged them on to battle. 전쟁에 속한 첫 개선(改善)은 포로삼기였습니다. 그 다음에, 여성들은 적대행위에서 제외되었으며, 그 후에는 비(非)전투원으로 인정했습니다. 증가하는 전투의 복잡성과 보조를 맞춰 군대 계급과 예비군이 곧 개발되었습니다. 그런 전사(戰士)들은 일찍부터 여성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했고, 여성들은 오래 전에 싸움을 그만두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군인들을 먹이고 돌보았으며 그들이 전투하도록 자극했습니다.

70:1.21 (785.4) The practice of declaring war represented great progress. Such declarations of intention to fight betokened the arrival of a sense of fairness, and this was followed by the gradual development of the rules of “civilized” warfare. Very early it became the custom not to fight near religious sites and, still later, not to fight on certain holy days. Next came the general recognition of the right of asylum; political fugitives received protection. 전쟁 선언의 관습은 큰 진보에 해당되었습니다. 그런 싸울 의도의 선언은 공정감(公正感)이 출현한 조짐이 되었고, 이를 따라 “문명화된” 전쟁 규칙들이 점차 개발되었습니다. 아주 일찍부터 종교적 장소 근처에서는 싸우지 않고, 훨씬 나중에는 특정한 거룩한 날에 싸우지 않는 것이 관습이 되었습니다. 다음에 피난처의 권리에 대한 일반적인 인정이 되었습니다. 정치적인 망명자들은 보호를 받았습니다.

70:1.22 (785.5) Thus did warfare gradually evolve from the primitive man hunt to the somewhat more orderly system of the later-day “civilized” nations. But only slowly does the social attitude of amity displace that of enmity. 그렇게 전쟁은 원시적 사람 사냥에서 후일 “문명화된” 국가들의 얼마간 더 질서를 지키는 체계로 점차 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친선의 사회적 태도는 반목의 태도를 다만 서서히 쫓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