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The Mortal-Bestowal Careers 필사자-증여 생애들

6. The Mortal-Bestowal Careers 필사자-증여 생애들

20:6.1 (228.5) The method whereby a Paradise Son becomes ready for mortal incarnation as a bestowal Son, becomes enmothered on the bestowal planet, is a universal mystery; and any effort to detect the working of this Sonarington technique is doomed to meet with certain failure. Let the sublime knowledge of the mortal life of Jesus of Nazareth sink into your souls, but waste no thought in useless speculation as to how this mysterious incarnation of Michael of Nebadon was effected. Let us all rejoice in the knowledge and assurance that such achievements are possible to the divine nature and waste no time on futile conjectures about the technique employed by divine wisdom to effect such phenomena. 천국 아들이 증여 아들로서 필사 성육신(成肉身)을 위해 준비되어, 증여 행성에서 어머니에게 태어나는 방법은, 우주의 신비입니다. 이 아들별 기법의 작용을 탐지하려는 어떤 노력도 분명히 실패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필사자 생애에 대한 숭고한 지식이 너희 혼에 잠기게 하라, 그러나 네바돈의 미가엘에 속한 이 신비로운 성육신(成肉身)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쓸모없는 추측에 생각을 낭비하지 말라. 그런 업적들이 신적 본성에게 가능하다는 지식과 확신으로, 우리 모두 기뻐하고, 그런 현상을 이루기 위해 신적 지혜가 이용한 기법에 관한 무익한 억측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20:6.2 (229.1) On a mortal-bestowal mission a Paradise Son is always born of woman and grows up as a male child of the realm, as Jesus did on Urantia. These Sons of supreme service all pass from infancy through youth to manhood just as does a human being. In every respect they become like the mortals of the race into which they are born. They make petitions to the Father as do the children of the realms in which they serve. From a material viewpoint, these human-divine Sons live ordinary lives with just one exception: They do not beget offspring on the worlds of their sojourn; that is a universal restriction imposed on all orders of the Paradise bestowal Sons. 필사자-증여 임무에서 천국 아들은, 예수께서 지구(유란시아)에서 하셨듯이, 항상 여성에게서 태어나고 그 영역의 남자아이로 자랍니다. 인간 존재와 똑같이, 최극 봉사의 이 아들들은 모두 유년기에서 청년기를 거쳐 성년이 됩니다. 모든 면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종족의 필사자처럼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봉사하는 영역의 자녀들이 하듯이 아버지에게 간청(懇請)합니다. 물질적 관점에서, 이 인간-신적 아들들은 한 가지만 예외로 하고 평범한 생애들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머무는 세계들에서 자녀를 낳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계층의 천국 증여 아들들에게 부여된 우주적 제약(制約)입니다.

20:6.3 (229.2) As Jesus worked on your world as the carpenter’s son, so do other Paradise Sons labor in various capacities on their bestowal planets. You could hardly think of a vocation that has not been followed by some Paradise Son in the course of his bestowal on some one of the evolutionary planets of time. 예수께서 너희 세계에서 목수의 아들로서 일하셨듯이, 다른 천국 아들들도 자신들의 증여 행성들에서 다양한 능력으로 수고합니다. 어떤 천국 아들이 시간에 속한 진화 행성들 중 어떤 행성에서 증여 과정 중에 종사하지 않았던 직업을 너희는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20:6.4 (229.3) When a bestowal Son has mastered the experience of living the mortal life, when he has achieved perfection of attunement with his indwelling Adjuster, thereupon he begins that part of his planetary mission designed to illuminate the minds and to inspire the souls of his brethren in the flesh. As teachers, these Sons are exclusively devoted to the spiritual enlightenment of the mortal races on the worlds of their sojourn. 증여 아들이 필사자 생애를 사는 체험을 숙달하고, 자신에게 내주한 조율자와 완전히 동조(同調)한 후에 즉시, 그는 육신의 자기 형제들의 마음들을 밝히고(계몽啓蒙) 혼들에 영감을 주도록 고안된 그의 행성 사명의 그 부분을 시작합니다. 교사들로서 이 아들들은 자신들이 머무는 세계들의 필사 종족들을 영적으로 계몽(啓蒙)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합니다.

20:6.5 (229.4) The mortal-bestowal careers of the Michaels and the Avonals, while comparable in most respects, are not identical in all: Never does a Magisterial Son proclaim, “Whosoever has seen the Son has seen the Father,” as did your Creator Son when on Urantia and in the flesh. But a bestowed Avonal does declare, “Whosoever has seen me has seen the Eternal Son of God.” The Magisterial Sons are not of immediate descent from the Universal Father, nor do they incarnate subject to the Father’s will; always do they bestow themselves as Paradise Sons subject to the will of the Eternal Son of Paradise. 미가엘들과 아보날들의 필사자-증여 생애들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동등하지만, 다 똑같지 않습니다. 너희 창조자 아들이 지구(유란시아)에서 육체로 계실 때 하셨듯이, 치안 아들은 “아들을 본 자는 누구나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결코 선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증여된 아보날은 “나를 본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원 아들을 본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치안 아들들은 우주 아버지의 직계 혈통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에 복종해서 성육신(成肉身)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항상 천국 영원 아들의 뜻에 복종해서, 천국 아들들로서 자신들을 증여합니다.

20:6.6 (229.5) When the bestowal Sons, Creator or Magisterial, enter the portals of death, they reappear on the third day. But you should not entertain the idea that they always meet with the tragic end encountered by the Creator Son who sojourned on your world nineteen hundred years ago. The extraordinary and unusually cruel experience through which Jesus of Nazareth passed has caused Urantia to become locally known as “the world of the cross.” It is not necessary that such inhuman treatment be accorded a Son of God, and the vast majority of planets have afforded them a more considerate reception, allowing them to finish their mortal careers, terminate the age, adjudicate the sleeping survivors, and inaugurate a new dispensation, without imposing a violent death. A bestowal Son must encounter death, must pass through the whole of the actual experience of mortals of the realms, but it is not a requirement of the divine plan that this death be either violent or unusual. 증여 아들들, 창조자나 치안관이 죽음의 문에 들어서면, 그들은 셋째 날 다시 등장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1,900년 전 너희 세계에 머물렀던 그 창조자 아들이 당했던 비극적 종말을 그들이 항상 맞이한다는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나사렛 예수가 겪었던 현저하게 잔인한 체험은 지구(유란시아)가 “십자가의 세계”로 지역에 알려진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비인간적 취급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주어질 필요는 없으며, 거의 대부분의 행성들은 그들을 아주 사려 깊게 영접하여, 폭력적으로 죽이지 않고, 그들이 필사자 생애를 마치고, 그 시대를 마감하며, 잠자는 생존자들을 판결하고, 새 섭리시대를 시작하게 합니다. 증여 아들은 반드시 죽어야 하고, 영역들에 속한 필사자들의 실제 체험 전체를 겪어야 하지만, 신적 계획은 이 죽음이 폭력적이거나 유별나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20:6.7 (229.6) When bestowal Sons are not put to death by violence, they voluntarily relinquish their lives and pass through the portals of death, not to satisfy the demands of “stern justice” or “divine wrath,” but rather to complete the bestowal, “to drink the cup” of the career of incarnation and personal experience in all that constitutes a creature’s life as it is lived on the planets of mortal existence. Bestowal is a planetary and a universe necessity, and physical death is nothing more than a necessary part of a bestowal mission. 증여 아들들은 폭력으로 죽지 않으면, 그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죽음의 문을 거치는데, “엄격한 정의(正義)”나 “신적 진노”의 요구를 충족함이 아니라, 오히려 증여를 완성하도록, 필사자 존재의 행성들에서 살아가듯이 창조물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면에서 성육신(成肉身) 생애와 고유적 체험의 “잔을 마시기 위해서”입니다. 증여는 행성과 우주의 필연성(必然性)이며, 육체적 죽음은 증여 임무에서 필요한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20:6.8 (230.1) When the mortal incarnation is finished, the Avonal of service proceeds to Paradise, is accepted by the Universal Father, returns to the local universe of assignment, and is acknowledged by the Creator Son. Thereupon the bestowal Avonal and the Creator Son send their conjoint Spirit of Truth to function in the hearts of the mortal races dwelling on the bestowal world. In the presovereignty ages of a local universe, this is the joint spirit of both Sons, implemented by the Creative Spirit. It differs somewhat from the Spirit of Truth which characterizes the local universe ages following a Michael’s seventh bestowal. 필사자 성육신(成肉身)이 끝나면, 봉사하던 아보날은 천국에 이르러, 우주 아버지의 인정(認定)으로, 배정된 지역 우주로 돌아가, 창조자 아들의 승인을 받습니다. 그 후 즉시, 증여 아보날과 창조자 아들은 증여 세계에 거주하는 필사자 종족들의 마음(심정)에서 활동하도록 자신들의 공동 진리의 영을 파송합니다. 지역 우주의 주권 이전 시대들에서, 이것은 창조적 영이 실행하는, 두 아들들의 합동 영입니다. 그것은 미가엘이 일곱 째 증여 후에 지역 우주 시대를 특징짓는 진리의 영과는 어느 정도 다릅니다.

20:6.9 (230.2) Upon the completion of a Creator Son’s final bestowal the Spirit of Truth previously sent into all Avonal-bestowal worlds of that local universe changes in nature, becoming more literally the spirit of the sovereign Michael. This phenomenon takes place concurrently with the liberation of the Spirit of Truth for service on the Michael-mortal-bestowal planet. Thereafter, each world honored by a Magisterial bestowal will receive the same spirit Comforter from the sevenfold Creator Son, in association with that Magisterial Son, which it would have received had the local universe Sovereign personally incarnated as its bestowal Son. 창조자 아들의 최종 증여가 완성되면, 본성적으로 지역 우주가 달라진, 모든 아보날 증여 세계들에 이전에 보낸 진리의 영은, 더 완전히 주권자 미가엘의 영이 됩니다. 이 현상은 미가엘-필사자-증여 행성에서 봉사하기 위한 진리의 영 해방과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 후, 치안 증여로 영예를 얻은 각 세계는 그 치안 아들과 관련된 칠중 창조자 아들로부터 동일한 영 위로자를 받을 것인데, 영 위로자를 받는 것은 그 증여 아들로서 직접 성육신(成肉身)한 지역 우주 주권자를 갖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