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Ministry of the Father’s Love 아버지 사랑의 봉사

3. Ministry of the Father’s Love 아버지 사랑의 봉사

170531 대상16:34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his love endures forever.

6:3.1 (75.6) The Son shares the justice and righteousness of the Trinity but overshadows these divinity traits by the infinite personalization of the Father’s love and mercy; the Son is the revelation of divine love to the universes. As God is love, so the Son is mercy. The Son cannot love more than the Father, but he can show mercy to creatures in one additional way, for he not only is a primal creator like the Father, but he is also the Eternal Son of that same Father, thereby sharing in the sonship experience of all other sons of the Universal Father. 아들은 삼위일체의 정의(正義)와 공의(公義)를 공유하지만, 이러한 신성의 특성들(정의와 공의)은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의 무한한 고유성 구현으로 그 빛이 가려지고 있습니다. 아들은 우주에 대한 신적 사랑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처럼, 아들은 자비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지만, 그는 한 가지 추가적 방법으로 창조물들에게 자비를 보여 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아버지처럼 최초의 창조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동일한 아버지의 영원 아들로서, 우주 아버지의 다른 모든 아들들의 지닌 아들관계 체험을 함께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6:3.2 (75.7) The Eternal Son is the great mercy minister to all creation. Mercy is the essence of the Son’s spiritual character. The mandates of the Eternal Son, as they go forth over the spirit circuits of the Second Source and Center, are keyed in tones of mercy. 영원 아들은 모든 창조물에게 위대한 자비의 봉사자이십니다. 자비는 아들의 영 성품의 본질입니다. 영원 아들의 명령이 둘째 근원이며 중심의 영 순환회로들을 건너 나아갈 때, 그 명령은 자비의 음정으로 조율됩니다.

6:3.3 (75.8) To comprehend the love of the Eternal Son, you must first perceive its divine source, the Father, who is love, and then behold the unfolding of this infinite affection in the far-flung ministry of the Infinite Spirit and his almost limitless host of ministering personalities. 영원 아들의 사랑을 이해하려면, 그것의 신적 근원, 사랑이신 아버지를 너희가 먼저 파악해야만 하며, 그 다음에, 무한 영(靈)과 그의 거의 한없는 섬김의 고유성 무리들이 멀리까지 미치는 섬김에서, 이 무한한 애정이 펼쳐지는 것을 보아야만 합니다.

170601 요일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And so we know and rely on the love God has for us. God is love.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n him.

6:3.4 (75.9) The ministry of the Eternal Son is devoted to the revelation of the God of love to the universe of universes. This divine Son is not engaged in the ignoble task of trying to persuade his gracious Father to love his lowly creatures and to show mercy to the wrongdoers of time. How wrong to envisage the Eternal Son as appealing to the Universal Father to show mercy to his lowly creatures on the material worlds of space! Such concepts of God are crude and grotesque. Rather should you realize that all the merciful ministrations of the Sons of God are a direct revelation of the Father’s heart of universal love and infinite compassion. The Father’s love is the real and eternal source of the Son’s mercy. 영원 아들의 봉사는 온 우주에 사랑의 하나님을 드러내는(계시) 데에 바쳐집니다. 이 신적 아들은 그의 인자한 아버지가 미천한 창조물들을 사랑하도록 설득하고, 시간 속에 살면서 그릇된 행동을 한 자들에게 자비를 보이도록 설득하려고 애쓰는 미천한 일에 종사하지 않습니다. 공간의 물질세계에 있는 그의 낮은 창조물들을 위하여 우주 아버지가 자비를 보여주시도록 간청하는 영원 아들을 그려보는 것은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개념은 유치하고 기괴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들의 모든 자비로운 직무는 우주의 사랑과 무한한 연민을 가진 아버지의 진심을 직접 계시하는 것임을, 너희는 깨달아야만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이 베푸는 자비의 실재이자 영원한 근원입니다.

6:3.5 (75.10) God is love, the Son is mercy. Mercy is applied love, the Father’s love in action in the person of his Eternal Son. The love of this universal Son is likewise universal. As love is comprehended on a sex planet, the love of God is more comparable to the love of a father, while the love of the Eternal Son is more like the affection of a mother. Crude, indeed, are such illustrations, but I employ them in the hope of conveying to the human mind the thought that there is a difference, not in divine content but in quality and technique of expression, between the love of the Father and the love of the Son.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아들은 자비이십니다. 자비는 적용된 사랑, 그의 영원 아들의 개인 안에서 행하여지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이 우주 아들의 사랑도 마찬가지로 우주적입니다. 사랑이 남녀 성(性)의 구별이 있는 행성에서 이해되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에 더 견줄만하고 반면에, 영원 아들의 사랑은 어머니의 애정과 더 비슷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정말로 미숙하기 그지없지만, 나는 그것들을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사랑 사이에, 그 신적 내용이 다른 것이 아니라 본질과 표현의 기법에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인간 마음에 전달하려는 희망으로 그것들을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