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4 The Aryan Invasion of India 아리아인(人)의 인도 침입

  1. The Aryan Invasion of India 아리아인(人)의 인도 침입

79:4.1 (882.1) The second Andite penetration of India was the Aryan invasion during a period of almost five hundred years in the middle of the third millennium before Christ. This migration marked the terminal exodus of the Andites from their homelands in Turkestan. 두 번째 안드-사람들의 인도 침입은, 그리스도 이전(以前) 3,000년의 중엽, 거의 500년 기간의 아리아인(人) 침입이었습니다. 이 이주는 투르키스탄에 있는 안드-사람들의 고국으로부터 그들의 마지막 집단 대이동의 표지였습니다.

79:4.2 (882.2) The early Aryan centers were scattered over the northern half of India, notably in the northwest. These invaders never completed the conquest of the country and subsequently met their undoing in this neglect since their lesser numbers made them vulnerable to absorption by the Dravidians of the south, who subsequently overran the entire peninsula except the Himalayan provinces. 초기 아리아인(人) 중심지들은 인도 북쪽 절반, 특히 북서쪽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 침략자들은 완전히 국가를 정복하지 않았고, 나중에 히말리야 지방을 제외한 반도 전체에 급속히 퍼졌던 남부 드라비다인(人)들의 병합에 취약할 정도로 적은 수로 인해서, 나중에 그들이 이런 부주의로 파멸하게 되었습니다.

79:4.3 (882.3) The Aryans made very little racial impression on India except in the northern provinces. In the Deccan their influence was cultural and religious more than racial. The greater persistence of the so-called Aryan blood in northern India is not only due to their presence in these regions in greater numbers but also because they were reinforced by later conquerors, traders, and missionaries. Right on down to the first century before Christ there was a continuous infiltration of Aryan blood into the Punjab, the last influx being attendant upon the campaigns of the Hellenistic peoples. 아리아인(人)들은 북쪽 지방을 제외하고 인도에서 인종적 영향이 거의 없었습니다. 데칸에서 그들의 영향은 인종적이기보다는 문화적이고 종교적이었습니다. 인도 북부에서 더 크게 소위 아리아인(人) 혈통이 지속한 것은, 이런 지역에 그들이 더 많이 존재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나중에 정복자들·상인들·선교사들로 인해 그들이 강화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이전(以前) 바로 1세기까지, 아리아인(人) 혈통이 계속 펀자브로 침투했고, 최종 유입은 헬라 민족의 출정으로 수반되었습니다.

79:4.4 (882.4) On the Gangetic plain Aryan and Dravidian eventually mingled to produce a high culture, and this center was later reinforced by contributions from the northeast, coming from China. 갠지스 평원에서 결국 아리아인(人)과 드라비다인(人)이 섞여 높은 문화를 일으켰고, 이 중심지는 나중에 중국에서 나온 북동쪽의 기여로 강화되었습니다.

79:4.5 (882.5) In India many types of social organizations flourished from time to time, from the semidemocratic systems of the Aryans to despotic and monarchial forms of government. But the most characteristic feature of society was the persistence of the great social castes that were instituted by the Aryans in an effort to perpetuate racial identity. This elaborate caste system has been preserved on down to the present time. 인도에서, 아리아인(人)의 반(半)민주적 체제(體制)에서 정부의 전제적(專制的) 군주(君主) 형태까지, 여러 유형의 사회적 조직이 때때로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특징적인 사회 모습은, 인종적 정체성을 지속하려고 아리아인(人)이 제정했던, 엄청난 사회적 카스트(세습 신분 제도)의 지속이었습니다. 정교한 이 카스트 제도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79:4.6 (882.6) Of the four great castes, all but the first were established in the futile effort to prevent racial amalgamation of the Aryan conquerors with their inferior subjects. But the premier caste, the teacher-priests, stems from the Sethites; the Brahmans of the twentieth century after Christ are the lineal cultural descendants of the priests of the second garden, albeit their teachings differ greatly from those of their illustrious predecessors. 아리아인(人) 정복자들이 자신들의 열등한 피지배자들과 인종 융합을 막으려는 헛된 노력으로, 4개의 위대한 카스트 중, 첫째를 제외한 모두를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첫 카스트, 교사-성직자들은 셋-사람들에서 비롯됩니다. 그리스도 이후 20세기의 브라만들은, 그들의 가르침이 자신들의 뛰어난 선조들과 아주 다르지만, 둘째 동산 사제들의 문화적 직계 후손들입니다.

79:4.7 (882.7) When the Aryans entered India, they brought with them their concepts of Deity as they had been preserved in the lingering traditions of the religion of the second garden. But the Brahman priests were never able to withstand the pagan momentum built up by the sudden contact with the inferior religions of the Deccan after the racial obliteration of the Aryans. Thus the vast majority of the population fell into the bondage of the enslaving superstitions of inferior religions; and so it was that India failed to produce the high civilization which had been foreshadowed in earlier times. 아리아인(人)들이 인도에 들어갔을 때, 둘째 동산 종교의 전통에 남아 보전되었던, 그들은 신(神) 개념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브라만 사제들은, 아리아인(人)들의 인종 말살 이후, 데칸의 열등한 종교들과 갑작스러운 접촉으로 강화된 다신교의 기세를 결코 버텨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대한 인구 대부분은 미신에 사로잡힌 열등한 종교의 속박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인도는 초기 시대에 징조가 보였던 높은 문명 산출에 실패했습니다.

79:4.8 (882.8) The spiritual awakening of the sixth century before Christ did not persist in India, having died out even before the Mohammedan invasion. But someday a greater Gautama may arise to lead all India in the search for the living God, and then the world will observe the fruition of the cultural potentialities of a versatile people so long comatose under the benumbing influence of an unprogressing spiritual vision. 그리스도 이전 6세기의 영적 각성이, 이슬람교가 침입하기도 전에 멸종되어, 인도에서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훗날 더 위대한 고타마가 일어나 인도 전체를 이끌어 살아있는 하느님을 찾게 할 수도 있으며, 그때 세상은 후퇴하는 영적 비전의 마비된 영향 아래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있던, 다재다능한 민족의 문화적 잠재성의 열매를 지켜볼 것입니다.

79:4.9 (883.1) Culture does rest on a biologic foundation, but caste alone could not perpetuate the Aryan culture, for religion, true religion, is the indispensable source of that higher energy which drives men to establish a superior civilization based on human brotherhood. 문화는 생물학적 토대에 놓이지만, 종교, 참 종교는 인간의 형제 사랑에 근거한 우월한 문명을 세우도록 인간들을 조종하는 더 높은 에너지의 필수적 근원이기 때문에, 카스트만으로 아리아인(人) 문화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