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4 The Rule of Living 생활 규칙

  1. The Rule of Living 생활 규칙

200105 황금률(黃金律) 1 마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So in everything, 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for this sums up the Law and the Prophets.

147:4.1 (1650.2) On the evening of this same Sabbath day, at Bethany, while Jesus, the twelve, and a group of believers were assembled about the fire in Lazarus’s garden, Nathaniel asked Jesus this question: “Master, although you have taught us the positive version of the old rule of life, instructing us that we should do to others as we wish them to do to us, I do not fully discern how we can always abide by such an injunction. Let me illustrate my contention by citing the example of a lustful man who thus wickedly looks upon his intended consort in sin. How can we teach that this evil-intending man should do to others as he would they should do to him?”바로 이 안식일 저녁에 베다니에서 예수님과 12사도들 및 신자 일행이 나사로의 정원 불 옆에 모였을 때, 나다니엘이 예수께 이 질문을 했습니다. “주(主)여, 남들이 우리에게 행하기를 바라듯이 우리가 남들에게 행해야한다고 가르치시며, 옛 생활 규칙에 대한 명백한 해석을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셨지만 그런 명령을 우리가 항상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저는 충분히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약혼자를 그토록 거칠게 범하려는 호색한(好色漢)의 예로 제 주장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악행하려는 사람에게 타인들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가 타인들에게 해야 한다고 우리가 어떻게 가르칠 수 있습니까?”

147:4.2 (1650.3) When Jesus heard Nathaniel’s question, he immediately stood upon his feet and, pointing his finger at the apostle, said: “Nathaniel, Nathaniel! What manner of thinking is going on in your heart? Do you not receive my teachings as one who has been born of the spirit? Do you not hear the truth as men of wisdom and spiritual understanding? When I admonished you to do 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I spoke to men of high ideals, not to those who would be tempted to distort my teaching into a license for the encouragement of evil-doing.” 예수께서 나다니엘의 질문을 듣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사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니엘아, 나다니엘아! 네 심정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너는 영(靈)으로 난 자로서 내 가르침들을 받아들이지 않느냐? 너는 지혜와 영적 분별의 사람으로서 진리를 듣지 않느냐? 타인들이 너희에게 해주기 바라는 것처럼 너희가 타인들에게 행하라고 내가 너희에게 타이를 때, 나는 높은 이상(理想)의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지, 내 가르침을 왜곡하여 악행을 조장하는 방종으로 부추기는 자들에게 하지 않았느니라.”

147:4.3 (1650.4) When the Master had spoken, Nathaniel stood up and said: “But, Master, you should not think that I approve of such an interpretation of your teaching. I asked the question because I conjectured that many such men might thus misjudge your admonition, and I hoped you would give us further instruction regarding these matters.” And then when Nathaniel had sat down, Jesus continued speaking: “I well know, Nathaniel, that no such idea of evil is approved in your mind, but I am disappointed in that you all so often fail to put a genuinely spiritual interpretation upon my commonplace teachings, instruction which must be given you in human language and as men must speak. Let me now teach you concerning the differing levels of meaning attached to the interpretation of this rule of living, this admonition to ‘do to others that which you desire others to do to you’: 주(主)께서 말을 마치자, 나다니엘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主)여, 제가 선생님의 가르침에 대한 그런 해석을 찬성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많은 이들이 선생님의 권고를 그렇게 잘못 본다고 제가 추측하고, 이 문제들에 관해 설명을 더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질문을 드립니다.” 그리고 나서 나다니엘이 자리에 앉자, 예수께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니엘아, 네 마음으로 그런 악한 관념을 지지하지 않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지만, 나는 너희 모두 그렇게 자주 내 평범한 가르침들, 즉 인간 언어로 사람들이 말해야 하는 대로 너희에게 주어져야 하는 교훈을 참되게 영적으로 해석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실망하노라. ‘타인들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타인들에게 행하라.’는 이 생활 규칙, 즉 이 권고에 대한 해석에 첨부된 다른 차원의 의미에 관해 이제 내가 너희를 가르치리라.”

147:4.4 (1650.5) “1. The level of the flesh. Such a purely selfish and lustful interpretation would be well exemplified by the supposition of your question. 육신의 차원. 그렇게 순전히 이기적이고 호색적인 해석은 네 질문의 추측(推測)으로 잘 예시되느니라.

147:4.5 (1650.6) “2. The level of the feelings. This plane is one level higher than that of the flesh and implies that sympathy and pity would enhance one’s interpretation of this rule of living. 느낌의 차원. 이 수준은 육신의 차원보다 한 차원 높으며, 이 삶의 규칙에 대한 자신의 해석은 공감(共感)과 연민(憐愍)으로 향상될 것을 뜻하느니라.

147:4.6 (1650.7) “3. The level of mind. Now come into action the reason of mind and the intelligence of experience. Good judgment dictates that such a rule of living should be interpreted in consonance with the highest idealism embodied in the nobility of profound self-respect. 마음의 차원. 마음의 이성(理性)과 체험의 지능을 이제 실행하라. 그런 생활 규칙은 최고의 이상주의(理想主義)와 조화롭게 해석되고 심오한 자기-존중의 고귀함으로 구현되어야 한다고 현명한 판단이 지시하느니라.

200112 황금률(黃金律) 2 눅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Do 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147:4.7 (1651.1) “4. The level of brotherly love. Still higher is discovered the level of unselfish devotion to the welfare of one’s fellows. On this higher plane of wholehearted social service growing out of the consciousness of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consequent recognition of the brotherhood of man, there is discovered a new and far more beautiful interpretation of this basic rule of life. 형제 사랑의 차원. 더 높은 차원에서 자기 동료들의 복지(福祉)를 위한 이타적 헌신이 발견되니라. 전심을 다해 사회적으로 봉사하는 더 높은 수준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의식한 결과 사람의 형제 됨을 인식하여 발생하며, 거기에서 생활의 이 기본 규칙에 대한 새롭고 훨씬 아름다운 해석이 발견되느니라.

147:4.8 (1651.2) “5. The moral level. And then when you attain true philosophic levels of interpretation, when you have real insight into the rightness and wrongness of things, when you perceive the eternal fitness of human relationships, you will begin to view such a problem of interpretation as you would imagine a high-minded, idealistic, wise, and impartial third person would so view and interpret such an injunction as applied to your personal problems of adjustment to your life situations. 도덕의 차원. 그 후 너희가 해석의 참된 철학적 차원에 도달하고, 사물의 옳고 그름에 대한 실제 통찰력을 지니며, 인간관계의 영원한 적합성(適合性)을 감지하면, 너희가 고상하고, 이상주의(理想主義)적이며, 현명하고, 공평한 제3자가 그런 명령을 그렇게 보고 해석하리라고 너희가 상상하듯이, 너희 생활환경에 너희가 개인적으로 조율할 문제를 적용하듯이, 너희가 그런 해석의 문제로 판단하기 시작하리라.

147:4.9 (1651.3) “6. The spiritual level. And then last, but greatest of all, we attain the level of spirit insight and spiritual interpretation which impels us to recognize in this rule of life the divine command to treat all men as we conceive God would treat them. That is the universe ideal of human relationships. And this is your attitude toward all such problems when your supreme desire is ever to do the Father’s will. I would, therefore, that you should do to all men that which you know I would do to them in like circumstances.” 영적 차원. 그리고 그 다음에 마지막이지만 가장 중요한, 영(靈) 통찰력과 영적 해석의 차원에 우리가 도달하는데, 이것이 우리를 재촉하여 이 생활 규칙에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을 대하신다고 우리가 생각하듯이 모든 사람들을 대하라는, 신적 명령을 알아보게 하느니라. 그것이 인간관계의 우주 이상(理想)이니라. 너희 최고 소망이 언제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면 이것이 그런 모든 문제들을 향한 너희의 태도이니라. 그러므로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모든 이들에게 행할 것이라고 너희가 아는 것을 너희가 그들에게 행하기를 내가 바라노라.

147:4.10 (1651.4) Nothing Jesus had said to the apostles up to this time had ever more astonished them. They continued to discuss the Master’s words long after he had retired. While Nathaniel was slow to recover from his supposition that Jesus had misunderstood the spirit of his question, the others were more than thankful that their philosophic fellow apostle had had the courage to ask such a thought-provoking question. 이때까지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중에서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물러나신 후 오래도록 그들은 주(主)님의 말씀을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예수께서 나다니엘의 질문에 담긴 참뜻을 오해하셨다는 그의 추측으로부터 그는 천천히 회복되었지만, 다른 사도들은 철학적인 동료 사도가 그런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여쭐 용기를 지닌 것에 대해 아주 고맙게 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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