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3 The Tower of Babel 바벨탑

  1. The Tower of Babel 바벨탑

77:3.1 (858.2) After the submergence of Dalamatia the Nodites moved north and east, presently founding the new city of Dilmun as their racial and cultural headquarters. And about fifty thousand years after the death of Nod, when the offspring of the Prince’s staff had become too numerous to find subsistence in the lands immediately surrounding their new city of Dilmun, and after they had reached out to intermarry with the Andonite and Sangik tribes adjoining their borders, it occurred to their leaders that something should be done to preserve their racial unity. Accordingly a council of the tribes was called, and after much deliberation the plan of Bablot, a descendant of Nod, was endorsed. 달라마시아의 침몰(沈沒) 후, 놋-사람들은 북쪽과 동쪽으로 옮겼고, 즉시 새 도시 딜문을 자기 종족의 문화적 본부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놋이 죽은 지 거의 50,000년에, 왕자 참모진의 자손이 너무 많아서 그들의 새 도시 딜문 바로 주변의 지역에서 생계가 어려워졌고, 그들의 국경에 인접한 안돈-사람들 및 상긱 부족들과 접촉하여 결혼한 후, 자기 종족의 단일성 유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생각이 났습니다. 따라서 부족 회의가 소집되었고, 여러 심의(審議살펴 의논함) 끝에 놋의 후손 바블롯의 계획을 지지했습니다.

77:3.2 (858.3) Bablot proposed to erect a pretentious temple of racial glorification at the center of their then occupied territory. This temple was to have a tower the like of which the world had never seen. It was to be a monumental memorial to their passing greatness. There were many who wished to have this monument erected in Dilmun, but others contended that such a great structure should be placed a safe distance from the dangers of the sea, remembering the traditions of the engulfment of their first capital, Dalamatia. 바블롯은 당시 그들의 점령지 중앙에 종족을 기려 과시하는 성전 세우기를 제안했습니다. 이 성전은 세상에 없었던 유형의 탑을 포함할 예정이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 한때의 위대함에 대한 엄청난 기념관이 될 것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딜문에 이 기념탑을 세우려고 했지만, 다른 이들은 자신들의 첫 수도, 달라마시아의 침몰된 전승을 기억하면서, 그렇게 커다란 건축물은 바다의 위험에서 안전한 거리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77:3.3 (858.4) Bablot planned that the new buildings should become the nucleus of the future center of the Nodite culture and civilization. His counsel finally prevailed, and construction was started in accordance with his plans. The new city was to be named Bablot after the architect and builder of the tower. This location later became known as Bablod and eventually as Babel. 바블롯은 새 건물들이 놋-사람 문화와 문명의 미래 중심의 핵심이 되도록 계획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방침이 압도했고, 그의 계획에 따라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새 도시는 탑의 설계자와 건축자의 이름을 따서 바블롯으로 불렀습니다. 이 지역은 후에 바블롯드로 알려졌다가, 결국 바벨로 알려졌습니다.

77:3.4 (858.5) But the Nodites were still somewhat divided in sentiment as to the plans and purposes of this undertaking. Neither were their leaders altogether agreed concerning either construction plans or usage of the buildings after they should be completed. After four and one-half years of work a great dispute arose about the object and motive for the erection of the tower. The contentions became so bitter that all work stopped. The food carriers spread the news of the dissension, and large numbers of the tribes began to forgather at the building site. Three differing views were propounded as to the purpose of building the tower: 그러나 놋-사람들은 이 사업의 계획과 목적에 관해 여전히 정서적으로 얼마간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지도자들도 건축 계획이나 건물이 완성된 후 그것들의 용도에 관해 전부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았습니다. 4년 반 동안 일한 후, 탑을 세우는 목적과 동기에 대해, 말다툼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논쟁이 격렬하게 되어 모든 작업이 멈췄습니다. 음식 운반자들이 의견 충돌의 소식을 퍼뜨렸고, 여러 부족이 건축용지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탑을 세우는 목적에 관해 세 가지 다른 의견이 제안되었습니다.

77:3.5 (858.6) 1. The largest group, almost one half, desired to see the tower built as a memorial of Nodite history and racial superiority. They thought it ought to be a great and imposing structure which would challenge the admiration of all future generations. 가장 큰 집단은, 거의 절반으로, 놋-사람의 역사와 종족 우월의 기념관으로 건축된 탑을 보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후손이 탄복하게 될 거대하고 당당한 건축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77:3.6 (858.7) 2. The next largest faction wanted the tower designed to commemorate the Dilmun culture. They foresaw that Bablot would become a great center of commerce, art, and manufacture. 다음으로 큰 당파는 딜문 문화를 기념하도록 설계된 탑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바블롯이 상업, 예술 및 제조업의 거대한 중심지가 되리라고 예측했습니다.

77:3.7 (859.1) 3. The smallest and minority contingent held that the erection of the tower presented an opportunity for making atonement for the folly of their progenitors in participating in the Caligastia rebellion. They maintained that the tower should be devoted to the worship of the Father of all, that the whole purpose of the new city should be to take the place of Dalamatia — to function as the cultural and religious center for the surrounding barbarians. 가장 적은 소수 파견단은 탑을 세워 칼리가스티아 반역에 참여한 자기 조상들의 어리석음을 배상(賠償)하는 기회로 삼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탑은 모두의 아버지 경배에 바쳐져야 하고, 새 도시의 모든 목적은, 주변 야만인들을 위한 문화적·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하는 달라마시아를 대신해야 한다고 단언했습니다.

77:3.8 (859.2) The religious group were promptly voted down. The majority rejected the teaching that their ancestors had been guilty of rebellion; they resented such a racial stigma. Having disposed of one of the three angles to the dispute and failing to settle the other two by debate, they fell to fighting. The religionists, the noncombatants, fled to their homes in the south, while their fellows fought until well-nigh obliterated. 종교적 집단은 즉시 부결(否決)되었습니다. 대다수는 자기 조상들이 반역의 죄가 있다는 가르침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종족의 치욕에 분개했습니다. 분쟁하는 세 입장 중 하나를 처리하고, 토론으로 다른 두 가지를 해결하지 못하자, 그들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전투하지 않는 신자들은 남쪽에 있는 고향으로 피했지만, 그들의 동료들은 거의 멸망하기까지 싸웠습니다.

77:3.9 (859.3) About twelve thousand years ago a second attempt to erect the tower of Babel was made. The mixed races of the Andites (Nodites and Adamites) undertook to raise a new temple on the ruins of the first structure, but there was not sufficient support for the enterprise; it fell of its own pretentious weight. This region was long known as the land of Babel. 약 12,000년 전에, 바벨탑을 세우려는 두 번째 시도가 있었습니다. 안드-사람(놋-사람들과 아담-사람들)의 혼합 종족들이 첫 건축물의 폐허에 새 성전을 세우려 했으나, 그 일에 충분한 지지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자체의 과시적 무게로 붕괴했습니다. 이 지역은 바벨의 땅으로 오랫동안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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