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The Father’s Supreme Rule 아버지의 최극 통치

  1. The Father’s Supreme Rule 아버지의 최극 통치

3:5.1 (50.6) In his contact with the post-Havona creations, the Universal Father does not exercise his infinite power and final authority by direct transmittal but rather through his Sons and their subordinate personalities. And God does all this of his own free will. Any and all powers delegated, if occasion should arise, if it should become the choice of the divine mind, could be exercised direct; but, as a rule, such action only takes place as a result of the failure of the delegated personality to fulfill the divine trust. At such times and in the face of such default and within the limits of the reservation of divine power and potential, the Father does act independently and in accordance with the mandates of his own choice; and that choice is always one of unfailing perfection and infinite wisdom. 고전10:26 이것은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For the earth is the Lord’s, and the fulness thereof. 하나님 아버지는 하보나(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상태에서 천국을 감싸고 있는 순환 회로) 이후의 창조계에 접촉하실 때, 직접적 전달 방식으로 자신의 무한한 권능과 최종적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아들들과 그들의 하위 고유성들을 통하여 행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일을 자신의 자유 의지로 행하십니다. 만일 어떤 경우가 발생하여, 신적 마음의 선택이 요청될 경우라면, 모든 위임된 권능들은 직접 행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행위는 위임받은 고유성이 신적 신뢰를 성취하지 못하고 실패한 경우에만 발생됩니다. 그런 경우 그렇게 불이행으로 실패하여 신적 권능과 잠재성이 유보되는 한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독자적으로 행동하시며, 스스로 선택한 권한에 따라 행동하십니다. 그 선택은 항상 절대로 틀림이 없는 완전성과 무한한 지혜 중 하나입니다.

3:5.2 (51.1) The Father rules through his Sons; on down through the universe organization there is an unbroken chain of rulers ending with the Planetary Princes, who direct the destinies of the evolutionary spheres of the Father’s vast domains. It is no mere poetic expression that exclaims: “The earth is the Lord’s and the fullness thereof.” “He removes kings and sets up kings.” “The Most Highs rule in the kingdoms of men.”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들을 통하여 통치하시며, 우주 조직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하나님 아버지의 거대한 권역에 속하는 진화 구체들의 운명을 지도하는 권한을 지닌 행성 영주들로 끝나는 통치자들의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외침은 단순하게 시(詩)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시24:1 (다윗의 시)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요 세계와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체도 다 여호와의 것이다. The earth is the LORD’s, and the fulness thereof; the world, and they that dwell therein. 단2:21 그는 때와 시대를 바꾸시며 왕을 세우고 폐하시며 지혜로운 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 분이시다. And he changeth the times and the seasons: he removeth kings, and setteth up kings: he giveth wisdom unto the wise, and knowledge to them that know understanding: 단5:21 그래서 그는 인간 사회에서 쫓겨났으며 그의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이 되어 들나귀와 함께 살고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의 몸은 하늘의 이슬에 젖었습니다. 결국 그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누구에게든지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나라를 준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And he was driven from the sons of men; and his heart was made like the beasts, and his dwelling was with the wild asses: they fed him with grass like oxen, and his body was wet with the dew of heaven; till he knew that the most high God ruled in the kingdom of men, and that he appointeth over it whomsoever he will.

3:5.3 (51.2) In the affairs of men’s hearts the Universal Father may not always have his way; but in the conduct and destiny of a planet the divine plan prevails; the eternal purpose of wisdom and love triumphs. 사람의 심정 속에 있는 일들의 경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항상 자신의 방법대로 행하지 아니하실지라도, 행성의 행위와 운명에 경우에는 하나님의 신적 계획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혜와 사랑을 이루는 영원한 목적은 승리를 거둡니다.

3:5.4 (51.3) Said Jesus: “My Father, who gave them to me, is greater than all; and no one is able to pluck them out of my Father’s hand.” As you glimpse the manifold workings and view the staggering immensity of God’s well-nigh limitless creation, you may falter in your concept of his primacy, but you should not fail to accept him as securely and everlastingly enthroned at the Paradise center of all things and as the beneficent Father of all intelligent beings. There is but “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above all and in all,” “and he is before all things, and in him all things consist.”요10: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아버지는 그 무엇보다도 위대하신 분이시므로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갈 자가 없다. My Father, which gave them me, is greater than all; and no man is able to pluck them out of my Father’s hand.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족스럽게 창조하신 무한성의 다양한 현장들을 얼핏 보고 어마어마한 광대함을 보고, 하나님의 수위(首位)성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흔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천국 중심에 있는 보좌에 확실하게 영속적으로 좌정(坐定:앉아 계심)하시고, 모든 지적 존재들의 자애로운 아버지이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만 합니다. 엡4:6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해 일하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One God and Father of all, who is above all, and through all, and in you all. 골1:17 그리고 그분은 모든 것이 있기 전에 계시고 모든 것은 그분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And he is before all things, and by him all things consist.

3:5.5 (51.4) The uncertainties of life and the vicissitudes of existence do not in any manner contradict the concept of the universal sovereignty of God. All evolutionary creature life is beset by certain inevitabilities. Consider the following: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No temptation has seized you except what is common to man. And God is faithful; he will not let you be tempted beyond what you can bear. But when you are tempted, he will also provide a way out so that you can stand up under it. 생명의 불확실성과 존재의 변천성은 하나님의 우주적 주권이라는 개념과 어떤 방식으로도 모순되지 않습니다. 모든 진화적 창조물의 삶은 명백한 필연성으로 인해 시달리고 있습니다. 다음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3:5.6 (51.5) 1. Is courage strength of character — desirable? Then must man be reared in an environment which necessitates grappling with hardships and reacting to disappointments. 용기(인격의 강인함)가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사람은 어려움과 부딪쳐 싸우고 실망들에 대한 반응이 필요한 환경 가운데에서 성장해야만 합니다.

3:5.7 (51.6) 2. Is altruism service of one’s fellows — desirable? Then must life experience provide for encountering situations of social inequality. 이타심(동료를 향한 섬김)이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인생의 경험은 사회적 불평등과 마주치는 상황이 제공되어야만 합니다.

3:5.8 (51.7) 3. Is hope the grandeur of trust — desirable? Then human existence must constantly be confronted with insecurities and recurrent uncertainties. 소망(신뢰의 장엄함)이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인간 실존은 불안정과 되풀이되는 불확실성에 계속 직면해야만 합니다.

3:5.9 (51.8) 4. Is faith the supreme assertion of human thought — desirable? Then must the mind of man find itself in that troublesome predicament where it ever knows less than it can believe. 신앙(인간적 사고에 대한 최고의 주장)이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은 그 마음으로 알 수 있는 것보다 언제나 더 큰 믿음이 요구되는 곤란과 곤경 가운데 있어야만 합니다.

3:5.10 (51.9) 5. Is the love of truth and the willingness to go wherever it leads, desirable? Then must man grow up in a world where error is present and falsehood always possible. 진리에 대한 사랑과 진리가 인도하는 데로 어디든지 기꺼이 가려는 의지는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사람은 실수가 존재하고 언제나 거짓이 가능한 세상에서 성장해야만 합니다.

3:5.11 (51.10) 6. Is idealism the approaching concept of the divine — desirable? Then must man struggle in an environment of relative goodness and beauty, surroundings stimulative of the irrepressible reach for better things. 이상주의(신적인 것을 향해 접근하는 개념)는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사람은 상대적 선과 아름다움의 환경, 즉 더 나은 것에 끊임없이 도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사회적 환경에서 투쟁해야만 합니다.

3:5.12 (51.11) 7. Is loyalty devotion to highest duty — desirable? Then must man carry on amid the possibilities of betrayal and desertion. The valor of devotion to duty consists in the implied danger of default. 충성(최상의 의무를 향한 헌신)은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인간은 배신과 버려짐의 가능성 가운데에서 견디어야만 합니다. 의무에 헌신하는 용기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내재된 위험 안에 존재합니다.

3:5.13 (51.12) 8. Is unselfishness the spirit of self-forgetfulness — desirable? Then must mortal man live face to face with the incessant clamoring of an inescapable self for recognition and honor. Man could not dynamically choose the divine life if there were no self-life to forsake. Man could never lay saving hold on righteousness if there were no potential evil to exalt and differentiate the good by contrast. 이타(利他)는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자아가 인정받고 명예를 얻으려고 끊임없이 외치는 피할 수 없는 함성에 직면하여 살아야만 합니다. 사람은 만약 버려야할 자기생명이 없다면, 신적 생명을 역동적으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선(善)을 높이고 그와 대조적으로 차별되는 잠재적 악(惡)이 없다면, 결코 구원의 의(올바름righteousness)를 붙들지 않게 됩니다.

3:5.14 (51.13) 9. Is pleasure the satisfaction of happiness — desirable? Then must man live in a world where the alternative of pain and the likelihood of suffering are ever-present experiential possibilities. 9. 기쁨(행복의 만족감)은 바람직합니까? 그렇다면 인간은 고생의 대안들과 고통을 겪을 개연성이 항상 실재로 겪을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3:5.15 (52.1) Throughout the universe, every unit is regarded as a part of the whole. Survival of the part is dependent on co-operation with the plan and purpose of the whole, the wholehearted desire and perfect willingness to do the Father’s divine will. The only evolutionary world without error (the possibility of unwise judgment) would be a world without free intelligence. In the Havona universe there are a billion perfect worlds with their perfect inhabitants, but evolving man must be fallible if he is to be free. Free and inexperienced intelligence cannot possibly at first be uniformly wise. The possibility of mistaken judgment (evil) becomes sin only when the human will consciously endorses and knowingly embraces a deliberate immoral judgment. 고전12: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아도 그것이 다 한 몸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와 같습니다. The body is a unit, though it is made up of many parts; and though all its parts are many, they form one body. So it is with Christ. 우주에 있는 각 단위는 전체의 일부분으로 여겨집니다. 부분의 생존은 전체의 계획과 목적에 협력, 즉 하나님 아버지의 신적인 뜻을 행하기 위한 온 마음의 요망과 완전한 자발성에 달려 있습니다. 실수(지혜롭지 못한 판단의 가능성)가 없는 유일한 진화 세계는 자유로운 지능 존재가 없는 세계일 것입니다. 하보나 우주에는 완전한 거주민들과 함께 10억의 완전한 세계들이 있지만, 진화하는 인간은 그가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오류에 빠질 수 있어야만 합니다. 자유를 지니고 있으면서 경험이 없는 지능 존재는 처음에는 변함없이 지혜롭게 될 가능성이 도무지 없습니다. 잘못된 판단(악)의 가능성은 인간 의지가 의식적으로 시인하고, 고의적인 비도덕적 판단인 줄을 알면서 수용할 때에만 죄가 됩니다.

3:5.16 (52.2) The full appreciation of truth, beauty, and goodness is inherent in the perfection of the divine universe. The inhabitants of the Havona worlds do not require the potential of relative value levels as a choice stimulus; such perfect beings are able to identify and choose the good in the absence of all contrastive and thought-compelling moral situations. But all such perfect beings are, in moral nature and spiritual status, what they are by virtue of the fact of existence. They have experientially earned advancement only within their inherent status. Mortal man earns even his status as an ascension candidate by his own faith and hope. Everything divine which the human mind grasps and the human soul acquires is an experiential attainment; it is a reality of personal experience and is therefore a unique possession in contrast to the inherent goodness and righteousness of the inerrant personalities of Havona. 진(眞)미(美)선(善)에 대한 온전한 인식은 신적 우주의 완전성 안에 선천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하보나 세계의 거주민들은 선택의 자극으로써 상대적 가치 수준이라는 잠재성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완전한 존재들은 대조되면서 생각을 강요하는 모든 도덕적 상황들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선(善)을 식별하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완전한 존재들은 도덕적 본성과 영적 지위에 있어서, 실재의 사실 때문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천적인 지위의 한계 안에서만 경험적으로 진보를 이룩해 왔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심지어 상승하는 후보자로서의 지위도 자신의 신앙과 소망에 의해서 얻습니다. 인간의 마음으로 파악하고, 혼으로 획득하는 신적인 모든 것은 경험적 성취입니다. 그것은 고유적 경험의 실체이며, 따라서 잘못이 없는 하보나의 고유성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善)과 공의(公義)righteousness와는 대조적인 독특한 소유물입니다.

3:5.17 (52.3) The creatures of Havona are naturally brave, but they are not courageous in the human sense. They are innately kind and considerate, but hardly altruistic in the human way. They are expectant of a pleasant future, but not hopeful in the exquisite manner of the trusting mortal of the uncertain evolutionary spheres. They have faith in the stability of the universe, but they are utter strangers to that saving faith whereby mortal man climbs from the status of an animal up to the portals of Paradise. They love the truth, but they know nothing of its soul-saving qualities. They are idealists, but they were born that way; they are wholly ignorant of the ecstasy of becoming such by exhilarating choice. They are loyal, but they have never experienced the thrill of wholehearted and intelligent devotion to duty in the face of temptation to default. They are unselfish, but they never gained such levels of experience by the magnificent conquest of a belligerent self. They enjoy pleasure, but they do not comprehend the sweetness of the pleasure escape from the pain potential. 롬8:17-18 17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18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17 Now if we are children, then we are heirs-heirs of God and co-heirs with Christ, if indeed we share in his sufferings in order that we may also share in his glory. 18 I consider that our present sufferings are not worth comparing with the glory that will be revealed in us. 하보나의 창조물들은 본래부터 용기가 있지만, 인간적인 의미에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친절하고 사려가 깊지만, 인간적으로 볼 때는 이타심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즐거운 미래를 기대하고 있지만, 불확실한 진화 구체들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처럼 아름다운 태도를 가지고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우주의 안정성에 있어서는 신앙을 갖고 있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동물의 상태에서 시작해서 천국의 입구까지 오르게 하는 구원의 신앙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문외한(전문적인 지식도 없고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사람門外漢)들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지만, 혼을 구원하는 본질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들은 이상주의(理想主義)자들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짜릿한 선택으로 최고의 환희를 맛보는 기쁨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지합니다. 그들은 충성되지만, 주어진 의무를 행하지 않게 하는 유혹의 한복판에서, 전심으로 그리고 지성을 다해 의무에 헌신하는 전율은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이지 않지만, 싸우기 좋아하는 자아를 당당히 정복하는 그런 수준의 경험은 결코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기쁨을 즐기지만, 잠재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기쁨의 단맛은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