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The Love of God 하나님의 사랑

  1. The Love of God 하나님의 사랑

2:5.1 (38.6) “God is love”; therefore his only personal attitude towards the affairs of the universe is always a reaction of divine affection. The Father loves us sufficiently to bestow his life upon us. “He makes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on the good and sends rain on the just and on the unjust.” 요일4: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16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And so we know and rely on the love God has for us. God is love. Whoever lives in love lives in God, and God in him.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유일한 개인적인 태도는 항상 거룩한 애정으로서의 반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넉넉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마5:45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된 도리이다. 하나님은 해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다 같이 비치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과 의롭지 못한 사람에게 비를 똑같이 내려 주신다. That ye may be the children of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for he maketh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on the good, and sendeth rain on the just and on the unjust.

2:5.2 (39.1) It is wrong to think of God as being coaxed into loving his children because of the sacrifices of his Sons or the intercession of his subordinate creatures, “for the Father himself loves you.” It is in response to this paternal affection that God sends the marvelous Adjusters to indwell the minds of men. God’s love is universal; “whosoever will may come.” He would “have all men be saved by coming into the knowledge of the truth.” He is “not willing that any should perish.” 하나님의 아들들이 희생하거나 종속된 창조물들의 탄원이 하나님께 영향을 미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스스로 우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버이로서 애정의 결과로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에 내주하도록 놀라운 조절자들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적입니다. 롬10:13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는 성경 말씀도 있습니다. For whosoever shall call upon the name of the Lord shall be saved. 계22:17 성령님과 신부가 ‘오소서!’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도 ‘오소서!’ 하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목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누구든지 생명의 물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와서 마음껏 마시십시오. And the Spirit and the bride say, Come. And let him that heareth say, Come. And let him that is athirst come. And whosoever will, let him take the water of life freely. 딤전2: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Who will have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unto the knowledge of the truth. 벧후3:9 주님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약속을 지키는 데 더디신 분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오래 참으셔서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The Lord is not slack concerning his promise, as some men count slackness; but is longsuffering to us-ward, not willing that any should perish, but that all should come to repentance.

2:5.3 (39.2) The Creators are the very first to attempt to save man from the disastrous results of his foolish transgression of the divine laws. God’s love is by nature a fatherly affection; therefore does he sometimes “chasten us for our own profit, that we may be partakers of his holiness.” Even during your fiery trials remember that “in all our afflictions he is afflicted with us.” 히12:10 육체의 아버지는 그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잠시 우리를 징계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를 징계하여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For they verily for a few days chastened us after their own pleasure; but he for our profit, that we might be partakers of his holiness. 인간이 하나님의 법칙들을 어리석게 위반하여 비참한 결과가 발생하게 되면, 창조주들이 가장 먼저 인간을 구하기 위해 애쓰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아버지로서의 애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때때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양육하십니다(chasten us for our own profit). 사63:9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셔서 그들을 직접 구원하셨다. 그가 사랑과 자비로 그들을 구출해 내시고 그들을 항상 돌보셨으나 In all their affliction he was afflicted, and the angel of his presence saved them: in his love and in his pity he redeemed them; and he bare them, and carried them all the days of old. 그러므로 우리는 불 같은 시련 가운데 있을 때에도, 우리가 받는 모든 고난의 한복판에서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고난 받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2:5.4 (39.3) God is divinely kind to sinners. When rebels return to righteousness, they are mercifully received, “for our God will abundantly pardon.” “I am he who blots out your transgressions for my own sake, and I will not remember your sins.” “Behold what manner of love the Father has bestowed upon us that we should be called the sons of God.” 하나님은 죄인들에게도 하늘의 친절로 대하십니다. 반역한 자들이 공의로 되돌아올 때, 하나님은 그들을 자비로 받아주십니다. 하나님은 풍성히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사55:7 악인은 악한 길을 버리며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러면 그가 불쌍히 여기시고 너그럽게 용서하실 것이다. Let the wicked forsake his way And the unrighteous man his thoughts; And let him return to the LORD, And He will have compassion on him, And to our God, For He will abundantly pardon. 사43:25 그러나 나는 나를 위하여 너희 허물을 삭제하는 하나님이니 내가 다시는 너희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I, even I, am he who blots out your transgressions, for my own sake, and remembers your sins no more.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Behold, what manner of love the Father hath bestowed upon us, that we should be called the sons of God: therefore the world knoweth us not, because it knew him not.

2:5.5 (39.4) After all, the greatest evidence of the goodness of God and the supreme reason for loving him is the indwelling gift of the Father — the Adjuster who so patiently awaits the hour when you both shall be eternally made one. Though you cannot find God by searching, if you will submit to the leading of the indwelling spirit, you will be unerringly guided, step by step, life by life, through universe upon universe, and age by age, until you finally stand in the presence of the Paradise personality of the Universal Father. 겔37:14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선하십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가장 큰 증거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선물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물을 주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도록 하십니다. 그 내주하는 선물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생각 조율자로 계십니다. 이 생각 조율자는 자신과 우리가 영원히 하나가 될 때를 그토록 기다리시면서 인내하십니다. 우리는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우리 안에 내주하는 영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되면, 한 걸음씩, 한 생애씩, 우주에서 우주를 거치고, 시대와 시대를 거쳐서 우주의 아버지이신 천국 하나님 아버지의 고유성 면전에 반드시 서게 될 것입니다.

2:5.6 (39.5) How unreasonable that you should not worship God because the limitations of human nature and the handicaps of your material creation make it impossible for you to see him. Between you and God there is a tremendous distance (physical space) to be traversed. There likewise exists a great gulf of spiritual differential which must be bridged; but notwithstanding all that physically and spiritually separates you from the Paradise personal presence of God, stop and ponder the solemn fact that God lives within you; he has in his own way already bridged the gulf. He has sent of himself, his spirit, to live in you and to toil with you as you pursue your eternal universe career. 우리 인간이 지닌 본성적인 한계와 물질로 된 창조물이 지닌 장애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고 해도,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건너야 하는 간극은 엄청난 거리(물리적 공간)가 있습니다. 동시에 그 사이에는 다리를 놓아야만 하는 영적인 거대한 심연도 있습니다. 눅16: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천국 하나님의 고유성 면전에서 물리적으로 영적으로 우리를 분리하는 모든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고 하는 엄숙한 사실을 멈추어서 숙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으로 이미 그 심연에 다리를 놓아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한 우주의 생애를 추구할 때 우리와 함께 수고하기 위해 우리 안에 사시는 자신 즉 자신의 영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2:5.7 (39.6) I find it easy and pleasant to worship one who is so great and at the same time so affectionately devoted to the uplifting ministry of his lowly creatures. I naturally love one who is so powerful in creation and in the control thereof, and yet who is so perfect in goodness and so faithful in the loving-kindness which constantly overshadows us. I think I would love God just as much if he were not so great and powerful, as long as he is so good and merciful. We all love the Father more because of his nature than in recognition of his amazing attributes. 렘9: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But let him that glorieth glory in this, that he understandeth and knoweth me, that I am the LORD which exercise lovingkindness, judgment, and righteousness, in the earth: for in these things I delight, saith the LORD.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창조물들을 높이 들어 자신에게로 끌어 올리는 위대한 일을 위해 애정을 담아 헌신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쁘게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습니다. 호2: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And I will betroth thee unto me for ever; yea, I will betroth thee unto me in righteousness, and in judgment, and in lovingkindness, and in mercies. 우리는 권능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삶을 조정하시는 하나님을 당연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시17:7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Shew thy marvellous lovingkindness, O thou that savest by thy right hand them which put their trust in thee from those that rise up against them. 완전히 선하시며, 신실하신 사랑과 자비로 우리에게 변함없이 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우리에게 마땅한 일이 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위대하지 않고, 능력이 없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토록 선하시고 자비하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대하30:9 너희가 만일 여호와께 돌아오면 너희 형제들과 너희 자녀가 사로잡은 자들에게서 자비를 입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신지라 너희가 그에게로 돌아오면 그의 얼굴을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더라 For if ye turn again unto the LORD, your brethren and your children shall find compassion before them that lead them captive, so that they shall come again into this land: for the LORD your God is gracious and merciful, and will not turn away his face from you, if ye return unto him.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속성들을 인식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2:5.8 (39.7) When I observe the Creator Sons and their subordinate administrators struggling so valiantly with the manifold difficulties of time inherent in the evolution of the universes of space, I discover that I bear these lesser rulers of the universes a great and profound affection. After all, I think we all, including the mortals of the realms, love the Universal Father and all other beings, divine or human, because we discern that these personalities truly love us. The experience of loving is very much a direct response to the experience of being loved. Knowing that God loves me, I should continue to love him supremely, even though he were divested of all his attributes of supremacy, ultimacy, and absoluteness. 진화하는 우주 공간에 본래부터 있는 다양한 시간적 어려움들과 당당하게 투쟁하는 창조주 아들들과 그들에게 속해 있는 여러 행정 담당자들은 우리들을 향해 위대하고 심오한 애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주의 하나님 아버지와 다른 모든 존재들은 우리를 진실로 사랑합니다. 결국, 우리가 이 사실들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체험은 사랑을 받은 체험에 대한 아주 직접적인 반응입니다. 우리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그 하나님이 최극성, 궁극성, 절대성과 같은 모든 속성이 없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계속 사랑할 것입니다.

2:5.9 (40.1) The Father’s love follows us now and throughout the endless circle of the eternal ages. As you ponder the loving nature of God, there is only one reasonable and natural personality reaction thereto: You will increasingly love your Maker; you will yield to God an affection analogous to that given by a child to an earthly parent; for, as a father, a real father, a true father, loves his children, so the Universal Father loves and forever seeks the welfare of his created sons and daughters. 요일4:16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알고 믿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살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And we have known and believed the love that God hath to us. God is love; and he that dwelleth in love dwelleth in God, and God in him.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지금 그리고 영원한 세대의 끝없는 순환 회로를 통해 우리에게 계속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을 숙고해 본다면, 거기에는 단 한가지의 합리적이며 자연스러운 고유성 반응이 있게 됩니다. 우리는 창조주를 점진적으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이 세상의 부모에게 바치는 것과 비슷한 애정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아버지, 진정한 아버지, 참된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우주의 아버지는 자신이 창조한 아들들과 딸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번영을 영원히 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5.10 (40.2) But the love of God is an intelligent and farseeing parental affection. The divine love functions in unified association with divine wisdom and all other infinite characteristics of the perfect nature of the Universal Father. God is love, but love is not God. The greatest manifestation of the divine love for mortal beings is observed in the bestowal of the Thought Adjusters, but your greatest revelation of the Father’s love is seen in the bestowal life of his Son Michael as he lived on earth the ideal spiritual life. It is the indwelling Adjuster who individualizes the love of God to each human soul.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현명하며 통찰력이 있는 어버이의 애정입니다. 신적인 사랑은 신적인 지혜와, 우주의 아버지께서 지니신 완전한 성품의 다른 모든 무한한 특성들과 함께 통합되어 기능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사랑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을 위한 신성한 사랑의 가장 큰 명시(明示)는 하나님의 영(생각 조절자)을 주신 것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아버지 사랑의 가장 큰 계시는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주신 것에서 발견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상적인 영적인 생애를 지상에서 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각 인간의 혼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개별화하는 존재는 내주하는 조절자입니다.

2:5.11 (40.3) At times I am almost pained to be compelled to portray the divine affection of the heavenly Father for his universe children by the employment of the human word symbol love. This term, even though it does connote man’s highest concept of the mortal relations of respect and devotion, is so frequently designative of so much of human relationship that is wholly ignoble and utterly unfit to be known by any word which is also used to indicate the matchless affection of the living God for his universe creatures! How unfortunate that I cannot make use of some supernal and exclusive term which would convey to the mind of man the true nature and exquisitely beautiful significance of the divine affection of the Paradise Father. 우주의 자녀들을 향한 하늘 아버지의 신적 사랑을 묘사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인간 단어의 상징만으로는 다 표현될 수가 없습니다. 이 용어는 인간이 지닌 용어들 중에서 존경과 헌신의 관계에 대한 최상의 개념을 담고 있지만, 너무나 자주 인간적인 관계를 지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용어도 저급하며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창조물에 대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비할 데 없는 애정을 표현하는 알려진 단어들 중에서 전적으로 일치하는 다른 단어가 없습니다. 천국 아버지가 지니신 신적 사랑의 참된 본성과 절묘하게 아름다운 의미를 인간의 마음에 전달될 수 있는 숭고하며 전용적인 단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2:5.12 (40.4) When man loses sight of the love of a personal God, the kingdom of God becomes merely the kingdom of good. Notwithstanding the infinite unity of the divine nature, love is the dominant characteristic of all God’s personal dealings with his creatures. 사람이 한 고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가 없게 된다면,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선한 나라일 뿐입니다. 모든 신적인 본성은 무한히 연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물들과 하나님의 모든 개인적 관계에서 지배적인 특징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