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6 The Misunderstanding of Suffering — Discourse on Job 고통에 대한 오해─욥에 대한 강연

  1. The Misunderstanding of Suffering —
    Discourse on Job 고통에 대한 오해─욥에 대한 강연

200419 고통에 대한 오해 – 욥(1) 욥42:5-6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5 My ears had heard of you but now my eyes have seen you. 6 Therefore I despise myself and repent in dust and ashes.

148:6.1 (1662.3) It was this same evening at Bethsaida that John also asked Jesus why so many apparently innocent people suffered from so many diseases and experienced so many afflictions. In answering John’s questions, among many other things, the Master said: 바로 이날 저녁 벳새다에서, 요한도 예수께 언뜻 보기에 왜 그렇게 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많은 질병으로 고생했고 그렇게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여쭈었습니다. 요한의 질문에 답하시면서, 다른 여러 가지들 중에, 주(主)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48:6.2 (1662.4) “My son, you do not comprehend the meaning of adversity or the mission of suffering. Have you not read that masterpiece of Semitic literature — the Scripture story of the afflictions of Job? Do you not recall how this wonderful parable begins with the recital of the material prosperity of the Lord’s servant? You well remember that Job was blessed with children, wealth, dignity, position, health, and everything else which men value in this temporal life. According to the time-honored teachings of the children of Abraham such material prosperity was all-sufficient evidence of divine favor. But such material possessions and such temporal prosperity do not indicate God’s favor. My Father in heaven loves the poor just as much as the rich; he is no respecter of persons. “내 아들아, 너는 역경의 의미나 고통의 임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느니라. 너는 셈족 문학의 걸작 – 욥의 고통에 관한 성서 이야기를 읽지 않았느냐? 너는 어떻게 이 놀라운 비유가 주(主)의 종의 물질적 번영의 낭독으로 시작하는지 생각나지 않느냐? 욥은 자녀들, 재산, 명예, 지위, 건강 및 사람들이 이 현세에서 가치를 두는 다른 모든 것에 복이 있었음을 너는 잘 기억하느니라(욥1:1-3). 아브라함 자손들의 유서 깊은 교훈에 의하면, 그런 물질적 번영은 완전히 충분한 신적 총애(寵愛)의 증거였느니라. 그러나 그런 물질적 재산과 그런 현세적 번영은 하나님의 총애(寵愛)를 나타내지 않느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는 부자와 똑같이 가난한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분이기 때문이라.

148:6.3 (1663.1) “Although transgression of divine law is sooner or later followed by the harvest of punishment, while men certainly eventually do reap what they sow, still you should know that human suffering is not always a punishment for antecedent sin. Both Job and his friends failed to find the true answer for their perplexities. And with the light you now enjoy you would hardly assign to either Satan or God the parts they play in this unique parable. While Job did not, through suffering, find the resolution of his intellectual troubles or the solution of his philosophical difficulties, he did achieve great victories; even in the very face of the breakdown of his theological defenses he ascended to those spiritual heights where he could sincerely say, ‘I abhor myself’; then was there granted him the salvation of a vision of God. So even through misunderstood suffering, Job ascended to the superhuman plane of moral understanding and spiritual insight. When the suffering servant obtains a vision of God, there follows a soul peace which passes all human understanding. “신적 법칙의 위반(違反)에는 조만간 처벌의 결과가 따르며, 한편 사람들은 반드시 언젠가 자신들이 뿌리는 것을 거두지만(욥4:8), 여전히 너는 인간 고통이 앞선 죄에 대한 처벌이 아님을 언제나 알아야 하느니라. 욥과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혼란들에 대한 참된 답을 찾지 못했느니라. 그리고 네가 지금 누리는 빛으로, 너는 도저히 사탄이나 하나님이 이 독특한 비유에서 그들이 담당하는 부분들을 선정할 수 없을 것이라. 욥은 고통을 통해 자신의 지적 고민과 철학적 곤경의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는 대단한 승리에 이르렀느니라. 눈앞에서 자신의 신학적 항변(抗辯자기 변호)이 부서지면서도, 그는 ‘저 자신을 혐오한다(욥42:6).’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는 그런 영적 고지(高地)에 올라갔느니라. 그때 그에게 하나님이 보이는 구원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라. 그렇게 오해한 고통을 통해서도, 욥은 초(超)인간 단계의 도덕적 이해와 영적 통찰력에 올라갔느니라. 고통을 겪는 종이 하나님을 보게 되면, 인간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혼(魂)의 평화가 따르느니라.

148:6.4 (1663.2) “The first of Job’s friends, Eliphaz, exhorted the sufferer to exhibit in his afflictions the same fortitude he had prescribed for others during the days of his prosperity. Said this false comforter: ‘Trust in your religion, Job; remember that it is the wicked and not the righteous who suffer. You must deserve this punishment, else you would not be afflicted. You well know that no man can be righteous in God’s sight. You know that the wicked never really prosper. Anyway, man seems predestined to trouble, and perhaps the Lord is only chastising you for your own good.’ No wonder poor Job failed to get much comfort from such an interpretation of the problem of human suffering. “욥의 친구 중 첫째 엘리바스는 고통받는 자가 번영의 시절에 타인들에게 권했던 똑같은 인내를 고통 중에 드러내라고 권고했느니라. 이 거짓 위로자가 말했느니라. ‘욥이여, 너의 종교를 신뢰하라. 고통받는 자는 사악한 자이며 의로운 자가 아님을 기억하라. 너는 이 처벌을 받아 마땅하니 그렇지 않으면 고통을 받지 않았으리라.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을 네가 잘 아느니라. 사악한 자는 결코 정말 번영할 수 없음을 네가 아느니라. 어쨌든 사람은 고통을 받도록 예정된 듯하고 아마 주(主)께서 너를 위해 혼내실 뿐이라(욥4-5장)’. 가련한 욥이 인간 고통의 문제에 대한 그런 해석에서 큰 위로를 얻지 못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148:6.5 (1663.3) “But the counsel of his second friend, Bildad, was even more depressing, notwithstanding its soundness from the standpoint of the then accepted theology. Said Bildad: ‘God cannot be unjust. Your children must have been sinners since they perished; you must be in error, else you would not be so afflicted. And if you are really righteous, God will certainly deliver you from your afflictions. You should learn from the history of God’s dealings with man that the Almighty destroys only the wicked.’ “그러나 그의 둘째 친구 빌닷의 조언은, 당시 인정된 신학의 관점에서 적절했지만, 심지어 더 억압적이었느니라. 빌닷이 말했느니라. ‘하나님은 부당할 수 없느니라. 너희 자녀들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은 틀림없이 죄인들이니라(욥8:4). 너는 분명히 잘못되어 있으니, 그렇지 않다면 네가 그렇게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라. 네가 정말 의롭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를 네 고난에서 건지리라. 전능자는 사악한 자만 죽이신다는 것을 하나님이 사람을 다루신 역사로부터 너는 배워야만 하리라(욥8).’

148:6.6 (1663.4) “And then you remember how Job replied to his friends, saying: ‘I well know that God does not hear my cry for help. How can God be just and at the same time so utterly disregard my innocence? I am learning that I can get no satisfaction from appealing to the Almighty. Cannot you discern that God tolerates the persecution of the good by the wicked? And since man is so weak, what chance has he for consideration at the hands of an omnipotent God? God has made me as I am, and when he thus turns upon me, I am defenseless. And why did God ever create me just to suffer in this miserable fashion?’ “그때 어떻게 욥이 자기 친구들에게 말하며 대답했는지 너는 기억하느니라. ‘내가 잘 알거니와 하나님은 도와달라는 내 외침을 듣지 않으시니라. 어떻게 하나님이 의로우신 동시에 그렇게 완전히 나의 무죄를 무시하실 수 있으신가? 전능자에게 호소해도 아무 만족도 얻을 수 없음을 내가 알게 되느니라. 사악한 자에 의한 선한 자의 박해를 묵인하시는 하나님을 너희는 깨달을 수 없느냐? 그리고 사람이 그렇게 약한데, 전능한 하나님의 손에서 배려받을 무슨 기회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내 모습대로 나를 만드셨고(욥10:8), 그가 그렇게 나를 맞서시면, 나는 방어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비참하게 단지 내가 고통을 받도록 도대체 왜 나를 만드셨는가(욥9-10)?”

148:6.7 (1663.5) “And who can challenge the attitude of Job in view of the counsel of his friends and the erroneous ideas of God which occupied his own mind? Do you not see that Job longed for a human God, that he hungered to commune with a divine Being who knows man’s mortal estate and understands that the just must often suffer in innocence as a part of this first life of the long Paradise ascent? Wherefore has the Son of Man come forth from the Father to live such a life in the flesh that he will be able to comfort and succor all those who must henceforth be called upon to endure the afflictions of Job. “그리고 그의 친구들의 조언과 그 자신의 마음을 차지했던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의 관점에서, 누가 욥의 태도에 도전할 수 있는가? 욥은 인간적인 하나님을 갈망했으며, 그가 사람의 필사자 상태를 알고, 오랜 천국 상승 생애에 속한 이 첫 일부로서, 의로운 자가 종종 무죄 가운데 고통을 받아야 함을 이해하는, 신적 존재와 친밀히 소통하기에 갈급했음을 너는 모르느냐? 그러므로 이후 욥의 고통을 견디도록 요구받아야만 했던 모든 이들을 인자(人子)가 위로하고 도울 수 있도록 그가 육체로 그렇게 살려고 아버지에게서 왔느니라.

148:6.8 (1663.6) “Job’s third friend, Zophar, then spoke still less comforting words when he said: ‘You are foolish to claim to be righteous, seeing that you are thus afflicted. But I admit that it is impossible to comprehend God’s ways. Perhaps there is some hidden purpose in all your miseries.’ And when Job had listened to all three of his friends, he appealed directly to God for help, pleading the fact that ‘man, born of woman, is few of days and full of trouble.’ “다음에 욥의 셋째 친구 소팔은 더 위로되지 않게 말했느니라. ‘네가 그렇게 고난을 받는 것을 보니, 의롭다고 주장하는 네가 어리석구나.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내가 인정하노라. 아마 너의 모든 비극에 어떤 숨겨진 목적이 있도다(욥11).’ 그리고 자기 세 친구 모두의 이야기를 욥이 듣고 나서, 그는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다(욥14:1).’는 사실을 탄원하면서 하나님께 직접 도움을 호소했느니라.

200426 고통에 대한 오해 – 욥(2) 애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For he does not willingly bring affliction or grief to the children of men.

148:6.9 (1664.1) “Then began the second session with his friends. Eliphaz grew more stern, accusing, and sarcastic. Bildad became indignant at Job’s contempt for his friends. Zophar reiterated his melancholy advice. Job by this time had become disgusted with his friends and appealed again to God, and now he appealed to a just God against the God of injustice embodied in the philosophy of his friends and enshrined even in his own religious attitude. Next Job took refuge in the consolation of a future life in which the inequities of mortal existence may be more justly rectified. Failure to receive help from man drives Job to God. Then ensues the great struggle in his heart between faith and doubt. Finally, the human sufferer begins to see the light of life; his tortured soul ascends to new heights of hope and courage; he may suffer on and even die, but his enlightened soul now utters that cry of triumph, ‘My Vindicator lives!’ “그 후 그의 친구들과 두 번째 회의가 시작되었노라. 엘리바스는 더 통렬하고, 비난적이며, 신랄해졌느니라(욥15, 22). 빌닷은 친구들을 경멸하는 욥에게 분개(憤慨)했노라(욥18, 25). 소팔은 그의 우울한 충고를 반복했느니라(욥20). 이때 욥은 그의 친구들에게 넌더리가 나서 하나님께 다시 호소했으며(욥16-17, 19, 21), 이제 그는 친구들의 철학으로 표현되었고, 그 자신의 종교적 태도에도 담겨있는 부당한 하나님에 맞서 공정한 하나님께 간청했느니라(욥23-24, 26). 다음으로 욥은 필사 실존의 불공평이 더 공정하게 개정될 수도 있는, 미래 생애에서 위안을 찾았느니라(욥19:26).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하여(욥19:13-19) 욥은 하나님을 찾게 되느니라(욥27-31). 그 후 그의 심정에서 신앙과 의심 사이에 큰 다툼이 계속 일어나느니라. 결국 고통 받는 인간은 생명의 빛을 보기 시작하자, 시달리던 그의 혼(魂)은 희망과 용기의 새 고지(高地)에 이르느니라. 그는 괴로워하다 죽을 수도 있지만, 눈이 열린 그의 혼(魂)은 지금 승리의 탄성으로 ‘내 옹호(擁護)자가 살아계시느니라!’고 외치느니라(욥19:25).

148:6.10 (1664.2) “Job was altogether right when he challenged the doctrine that God afflicts children in order to punish their parents. Job was ever ready to admit that God is righteous, but he longed for some soul-satisfying revelation of the personal character of the Eternal. And that is our mission on earth. No more shall suffering mortals be denied the comfort of knowing the love of God and understanding the mercy of the Father in heaven. While the speech of God spoken from the whirlwind was a majestic concept for the day of its utterance, you have already learned that the Father does not thus reveal himself, but rather that he speaks within the human heart as a still, small voice, saying, ‘This is the way; walk therein.’ Do you not comprehend that God dwells within you, that he has become what you are that he may make you what he is!” “하나님이 부모를 처벌하기 위해 자녀들을 괴롭힌다는 교리에 욥이 이의(異意)를 제기했을 때, 그는 참으로 옳았느니라. 욥은 언제나 하나님이 의로우심을 인정할 준비되어 있었지만, 그는 혼(魂)이-만족하는 영원자의 고유적 성품에 대한 계시를 갈망했느니라. 그리고 그것이 지상에서 우리의 사명이니라. 고통 받는 어떤 필사자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비를 이해함으로 얻는 위로를 더 이상 부인하지 못하리라. 말씀의 시절에는 하나님이 회오리바람으로 말씀하신다는 장엄한 개념이 있었지만(욥38:1), 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을 계시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심정에 고요히, 세미한 음성으로(왕상19:12b) ‘여기가 길이니 이리로 걸으라(사30:21b).’고 그가 말씀하심을 너희는 이미 배웠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고(욥8:18, 요일4:13), 그는 너희가 되셨으며, 그는 너희를 자신으로 만들 수도 있음을 너는 파악하지 못하느냐!”

148:6.11 (1664.3) Then Jesus made this final statement: “The Father in heaven does not willingly afflict the children of men. Man suffers, first, from the accidents of time and the imperfections of the evil of an immature physical existence. Next, he suffers the inexorable consequences of sin — the transgression of the laws of life and light. And finally, man reaps the harvest of his own iniquitous persistence in rebellion against the righteous rule of heaven on earth. But man’s miseries are not a personal visitation of divine judgment. Man can, and will, do much to lessen his temporal sufferings. But once and for all be delivered from the superstition that God afflicts man at the behest of the evil one. Study the Book of Job just to discover how many wrong ideas of God even good men may honestly entertain; and then note how even the painfully afflicted Job found the God of comfort and salvation in spite of such erroneous teachings. At last his faith pierced the clouds of suffering to discern the light of life pouring forth from the Father as healing mercy and everlasting righteousness.” 그런 후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진술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기꺼이 괴롭히지 않으시니라(애3:33). 사람은 먼저 시간의 사고(事故)와 미숙한 물리적 실존에 속한 악(惡)의 불완전(不完全)한 결함을 겪느니라. 다음으로 그는 죄 – 빛과 생명의 법칙 위반(違反) -의 냉혹한 결과를 겪느니라. 마지막으로, 사람은 지상에서 하늘의 공의로운 통치에 적대하는 반역으로 끈덕진 자기 사악(肆惡)의 결과를 거두느니라. 그러나 사람의 불행은 신적 심판의 개인적 천벌(天罰)이 아니니라. 사람은 자기 현세적 고난을 줄이기 위해 진력할 수 있고, 진력해야 하리라. 그러나 악마의 요청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괴롭힌다는 미신에서 단호히 벗어나라. 선한 사람들도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을 정말로 얼마나 많이 품을 수도 있는지 바로 발견하도록 욥기를 연구하라. 그런 후 그런 잘못된 교훈에도 불구하고, 쓰라리게 고난을 받던 욥까지도 어떻게 위로와 구원의 하나님을 발견했는지 주목하라. 드디어 그의 신앙은, 치유의 자비와 끝없는 공의(公義)로서, 아버지로부터 쏟아지는 생명의 빛을 알아보고, 고통의 구름을 꿰뚫었느니라.”

148:6.12 (1664.4) John pondered these sayings in his heart for many days. His entire afterlife was markedly changed as a result of this conversation with the Master in the garden, and he did much, in later times, to cause the other apostles to change their viewpoints regarding the source, nature, and purpose of commonplace human afflictions. But John never spoke of this conference until after the Master had departed. 요한은 이 말씀들을 심정에서 여러 날 깊이 생각했습니다. 정원에서 주(主)님과 나눈 이 대화의 결과로 그의 전(全) 여생은 뚜렷하게 변했으며, 그는 평범한 인간 고통의 근원, 본성 및 목적에 관해서 다른 사도들이 그들의 관점을 바꾸도록 나중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주(主)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까지 결코 이 논의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148-6 The Misunderstanding of Suffering — Discourse on Job 고통에 대한 오해─욥에 대한 강연”에 한개의 의견

댓글은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