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4 Progress of the Preaching Tour 전도 여행의 진전

  1. Progress of the Preaching Tour 전도 여행의 진전200628 분노와 균형 잡힌 성품 잠25:28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Like a city whose walls are broken down is a man who lacks self-control.

149:4.1 (1673.1) Jesus did very little public work on this preaching tour, but he conducted many evening classes with the believers in most of the cities and villages where he chanced to sojourn with James and John. At one of these evening sessions one of the younger evangelists asked Jesus a question about anger, and the Master, among other things, said in reply: 이 전도 여행에서 예수님은 거의 대중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야보보와 요한과 함께 어쩌다가 머물게 된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 신자들과 여러 저녁 수업을 인도하셨습니다. 이런 저녁 수업 중에 한 번, 젊은 전도자들 중 하나가 예수님께 분노에 대해 질문하자, 주님께서 다른 것들과 함께 대답하셨습니다.

149:4.2 (1673.2) “Anger is a material manifestation which represents, in a general way, the measure of the failure of the spiritual nature to gain control of the combined intellectual and physical natures. Anger indicates your lack of tolerant brotherly love plus your lack of self-respect and self-control. Anger depletes the health, debases the mind, and handicaps the spirit teacher of man’s soul. Have you not read in the Scriptures that ‘wrath kills the foolish man,’ and that man ‘tears himself in his anger’? That ‘he who is slow of wrath is of great understanding,’ while ‘he who is hasty of temper exalts folly’? You all know that ‘a soft answer turns away wrath,’ and how ‘grievous words stir up anger.’ ‘Discretion defers anger,’ while ‘he who has no control over his own self is like a defenseless city without walls.’ ‘Wrath is cruel and anger is outrageous.’ ‘Angry men stir up strife, while the furious multiply their transgressions.’ ‘Be not hasty in spirit, for anger rests in the bosom of fools.’” Before Jesus ceased speaking, he said further: “Let your hearts be so dominated by love that your spirit guide will have little trouble in delivering you from the tendency to give vent to those outbursts of animal anger which are inconsistent with the status of divine sonship.” “분노(忿怒)는 대개 영적 본성이, 결합된 지적(知的) 및 육체적 본성을, 장악하지 못한 척도를 나타내는 물질적 현상이니라. 분노는 너의 형제 사랑에 대한 관용(寬容) 부족에 더해서 자중(自重자기 존중) 부족과 자제(自制자기 절제) 부족을 가리키느니라. 분노는 건강을 소모하고 마음을 저하시키며 사람 혼(魂)의 영(靈) 교사를 방해하느니라.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욥5:2a),’ ‘울분을 터뜨리며 자신을 찢는(욥18:4a)’ 사람과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성미가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14:29).’를 너희가 성경에서 읽지 않았느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며’ 어떻게 ‘과격한 말이 노를 격동하는지(잠15: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슬기(잠19:11a)요,’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벽이 없어 방어할 수 없는 성읍과 같으니라(잠25:28),’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넘치는 물) 같거니와(잠27:4a),’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성내는 자는 범죄함이 늘어나느니라(잠29:22),’ ‘영(靈)으로 조급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7:9).’를 너희는 모두 알고 있느니라.” 예수께서 끝내기 전에, 말씀을 더 하셨습니다. “너희 영(靈) 안내자가, 신적 아들됨의 신분에 맞지 않는, 동물적 분노의 그런 격발을 터뜨리려는 경향에서, 너희를 구해내는 일에 문제가 없도록, 사랑이 너희 심정을 그렇게 다스리게 하라.”

149:4.3 (1673.3) On this same occasion the Master talked to the group about the desirability of possessing well-balanced characters. He recognized that it was necessary for most men to devote themselves to the mastery of some vocation, but he deplored all tendency toward overspecialization, toward becoming narrow-minded and circumscribed in life’s activities. He called attention to the fact that any virtue, if carried to extremes, may become a vice. Jesus always preached temperance and taught consistency — proportionate adjustment of life problems. He pointed out that overmuch sympathy and pity may degenerate into serious emotional instability; that enthusiasm may drive on into fanaticism. He discussed one of their former associates whose imagination had led him off into visionary and impractical undertakings. At the same time he warned them against the dangers of the dullness of overconservative mediocrity. 바로 이때, 주(主)님은 무리에게 균형 잡힌 성품을 갖는 바람직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어떤 직업에 숙달하려면 헌신이 필연적이었음을 그가 인정했지만, 그는 삶의 활동에서 지나친 특화, 즉 편협(偏狹)함으로 삶의 활동을 제한하는 모든 경향을 유감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미덕(美德)도 극단으로 가면 악덕(惡德)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위를 환기(喚起)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절제를 설교하셨고, 일관성- 인생 문제의 균형 잡힌 조율을 가르쳤습니다. 과도한 동정심(同情心)과 연민(憐愍)이 심각한 감정적 불안정으로 악화(惡化)할 수도 있다고 그가 지적하셨습니다. 열광(熱狂)이 광신(狂信)으로 몰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상상력으로 몽상과 비현실적인 일에 이끌렸던 옛 동료 중 하나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동시에 그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평범한 답답함의 위험에 대해서 경고하셨습니다.

149:4.4 (1673.4) And then Jesus discoursed on the dangers of courage and faith, how they sometimes lead unthinking souls on to recklessness and presumption. He also showed how prudence and discretion, when carried too far, lead to cowardice and failure. He exhorted his hearers to strive for originality while they shunned all tendency toward eccentricity. He pleaded for sympathy without sentimentality, piety without sanctimoniousness. He taught reverence free from fear and superstition. 그런 다음 예수님은 용기와 신앙의 위험에 대해, 어떻게 그것들이 경솔한 혼(魂)들을 때로 무모(無謀신중하지 못함)함과 억측(臆測이유와 근거가 없는 짐작)으로 이끄는지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는 또한 신중함과 분별력이 너무 지나치면 어떻게 소심과 실패로 이끄는지 보이셨습니다. 그는 청중들에게 모든 별난 경향을 피하는 동시에 독창성을 위해 애쓰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는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공감(共感), 경건한 체하지 않는 경건(敬虔)을 주장하셨습니다. 그는 두려움과 미신이 없는 경의(敬意)를 가르쳤습니다.

149:4.5 (1674.1) It was not so much what Jesus taught about the balanced character that impressed his associates as the fact that his own life was such an eloquent exemplification of his teaching. He lived in the midst of stress and storm, but he never wavered. His enemies continually laid snares for him, but they never entrapped him. The wise and learned endeavored to trip him, but he did not stumble. They sought to embroil him in debate, but his answers were always enlightening, dignified, and final. When he was interrupted in his discourses with multitudinous questions, his answers were always significant and conclusive. Never did he resort to ignoble tactics in meeting the continuous pressure of his enemies, who did not hesitate to employ every sort of false, unfair, and unrighteous mode of attack upon him. 균형 잡힌 성품에 대해 예수께서 가르친 것이라기 보다는 예수 자신의 생활이 그의 가르침의 감동적인 그런 예증이었다는 사실이 그의 동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는 압박과 격동 가운데 살았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대적들이 계속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지만, 그들은 결코 그를 속일 수 없었습니다. 유식하고 박식한 자들이 그를 넘어뜨리려 했지만, 그는 비틀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를 논쟁에 끌어들이려 했지만, 그의 대답은 언제나 영적 통찰력을 주고, 위엄이 있었으며, 최종적이었습니다. 그의 강연 중 여러 질문으로 중단되었을 때, 그의 대답은 언제나 중대하며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공격하는 온갖 종류의 거짓되고, 부당하며, 불의한 방식을 주저없이 사용하던 대적들의 계속적인 압박에 직면해서 결코 비열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149:4.6 (1674.2) While it is true that many men and women must assiduously apply themselves to some definite pursuit as a livelihood vocation, it is nevertheless wholly desirable that human beings should cultivate a wide range of cultural familiarity with life as it is lived on earth. Truly educated persons are not satisfied with remaining in ignorance of the lives and doings of their fellows. 여러 남녀가 생계 수단의 직업으로서 뚜렷한 어떤 업무에 부지런히 전념해야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 살면서, 인간 존재들은 생활에 관련된 광범위한 문화적 친밀성을 계발해야 하는 것이 전적으로 바람직합니다. 참으로 교양 있는 사람들은 동료들의 생활과 처신을 모르고 지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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