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 Attitude of the People 사람들의 태도

  1. Attitude of the People 사람들의 태도

200607 예수님에 대한 바른 태도 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When Jesus spoke again to the people, he sai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Whoever follows me will never walk in darkness, but will have the light of life.”

149:2.1 (1670.2) Jesus understood the minds of men. He knew what was in the heart of man, and had his teachings been left as he presented them, the only commentary being the inspired interpretation afforded by his earth life, all nations and all religions of the world would speedily have embraced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well-meant efforts of Jesus’ early followers to restate his teachings so as to make them the more acceptable to certain nations, races, and religions, only resulted in making such teachings the less acceptable to all other nations, races, and religions.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심정(心情)에 있던 것을 아셨으며, 그가 주셨던 가르침대로, 자신의 지상 생활로 마련한 영감(靈感) 받은 해석이 유일한 주석(註釋)이었던, 그의 가르침이 남아있었더라면, 세상 모든 국가와 모든 종교는 신속히 하나님 나라 복음을 신봉(信奉믿고 받듦)했을 것입니다. 특정 국가들, 인종들 및 종교들이 더 받아들이도록 그의 가르침을 고쳐서 말한 초기 예수 추종자들이 수고한 선의(善意)는 다른 모든 국가들, 인종들 및 종교들이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149:2.2 (1670.3) The Apostle Paul, in his efforts to bring the teachings of Jesus to the favorable notice of certain groups in his day, wrote many letters of instruction and admonition. Other teachers of Jesus’ gospel did likewise, but none of them realized that some of these writings would subsequently be brought together by those who would set them forth as the embodiment of the teachings of Jesus. And so, while so-called Christianity does contain more of the Master’s gospel than any other religion, it does also contain much that Jesus did not teach. Aside from the incorporation of many teachings from the Persian mysteries and much of the Greek philosophy into early Christianity, two great mistakes were made: 사도 바울은 당시에 특정 집단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호의(好意)를 가지고 주목하도록 여러 교육과 권면의 편지를 썼습니다. 예수 복음의 다른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는데, 통합된 예수의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나중에 이 편지 중 얼마를 모을 것이라고 그들 중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소위(所謂) 기독교가 다른 종교보다 주(主)님의 복음을 더 담고 있지만, 예수께서 가르치지 않은 것도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신비 의식(儀式)의 여러 가르침과 여러 헬라(그리스) 철학이 초기 기독교에 포함된 것 외에도, 두 가지 큰 실수가 있었습니다.

149:2.3 (1670.4) 1. The effort to connect the gospel teaching directly onto the Jewish theology, as illustrated by the Christian doctrines of the atonement — the teaching that Jesus was the sacrificed Son who would satisfy the Father’s stern justice and appease the divine wrath. These teachings originated in a praiseworthy effort to make the gospel of the kingdom more acceptable to disbelieving Jews. Though these efforts failed as far as winning the Jews was concerned, they did not fail to confuse and alienate many honest souls in all subsequent generations. 복음의 가르침을 직접 유대교 신학으로 연결하려는 노력, 즉 기독교 속죄(贖罪) 교리- 예수께서 아버지의 용서 없는 정의(正義)를 만족시키고, 신적 진노를 달래시려고 희생당한 아들이셨다는 가르침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더 받아들이게 하려는 칭찬할만한 노력에서 비롯했습니다. 유대인들 개종에 관해 이런 노력이 실패했지만, 이후 모든 세대의 여러 정직한 혼(魂)들을 분명히 혼란스럽게 하여 떠나게 했습니다.

149:2.4 (1670.5) 2. The second great blunder of the Master’s early followers, and one which all subsequent generations have persisted in perpetuating, was to organize the Christian teaching so completely about the person of Jesus. This overemphasis of the personality of Jesus in the theology of Christianity has worked to obscure his teachings, and all of this has made it increasingly difficult for Jews, Mohammedans, Hindus, and other Eastern religionists to accept the teachings of Jesus. We would not belittle the place of the person of Jesus in a religion which might bear his name, but we would not permit such consideration to eclipse his inspired life or to supplant his saving message: the fatherhood of God and the brotherhood of man. 주(主)님의 초기 추종자들의 두 번째 큰 실책은, 이후 모든 세대도 고집스럽게 보존하며 되풀이 했는데, 기독교 가르침을 그렇게 철저히 고유자 예수님에 대해 조직한 것이었습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예수님의 고유성을 이렇게 지나치게 강조하여 그의 가르침이 약화되었고, 이 모두로 인해 유대교, 회교, 힌두교 및 다른 동방 종교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점점 더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이 있는 종교에서 고유자 예수님의 위치를 과소 평가하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는 그런 고려로 인해 그의 영감(靈感) 받은 생애를 가리거나 그의 구원 메시지, 즉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인간의 형제 사랑을 빼앗도록 허락하지 말아야 합니다.

149:2.5 (1670.6) The teachers of the religion of Jesus should approach other religions with the recognition of the truths which are held in common (many of which come directly or indirectly from Jesus’ message) while they refrain from placing so much emphasis on the differences. 예수님의 종교 교사들은 (직·간접적으로 예수님의 메시지에서 있는 여러) 공통된 진리를 인정하면서, 다른 종교들에게 접근해야 하며, 반면에, 차이점에 대해 많이 강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149:2.6 (1671.1) While, at that particular time, the fame of Jesus rested chiefly upon his reputation as a healer, it does not follow that it continued so to rest. As time passed, more and more he was sought for spiritual help. But it was the physical cures that made the most direct and immediate appeal to the common people. Jesus was increasingly sought by the victims of moral enslavement and mental harassments, and he invariably taught them the way of deliverance. Fathers sought his advice regarding the management of their sons, and mothers came for help in the guidance of their daughters. Those who sat in darkness came to him, and he revealed to them the light of life. His ear was ever open to the sorrows of mankind, and he always helped those who sought his ministry. 바로 그때, 예수님의 명성은 주로 치유자로서 평판에 쏠려 있었지만, 계속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자, 더 많이 영적 도움을 위해 그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즉각적 매력은 육체적 치료였습니다. 도덕적 노예상태와 정신적 시달림의 희생자들이 점점 더 예수님을 찾았으며, 그는 변함없이 그들에게 해방의 길을 가르쳤습니다. 아버지들은 자기 아들들의 관리에 대한 충고를 구했고, 어머니들은 자기 딸들의 지도에 대해 도움을 얻으러 왔습니다. 어둠에 앉았던 자들이 그에게 왔고, 그는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드러냈습니다(요8:12, 사9:2). 그의 귀는 언제나 인류의 슬픔에 열려 있었고, 그는 언제나 자신의 보살핌을 찾는 자들을 도왔습니다.

149:2.7 (1671.2) When the Creator himself was on earth, incarnated in the likeness of mortal flesh, it was inevitable that some extraordinary things should happen. But you should never approach Jesus through these so-called miraculous occurrences. Learn to approach the miracle through Jesus, but do not make the mistake of approaching Jesus through the miracle. And this admonition is warranted, notwithstanding that Jesus of Nazareth is the only founder of a religion who performed supermaterial acts on earth. 창조자 자신이 지상에, 필사 육신의 모습으로 성육신(成育身)하셨을 때, 놀라운 어떤 일들이 일어난 것은 부득이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소위(所謂) 이런 기적 사건들을 통해서 결코 예수님께 접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기적에 이르기를 배우고, 기적을 통해 예수님께 접근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 나사렛 예수가 지상에서 초(超)물질적 행동을 하신 종교의 유일한 창시자이지만, 이 권고는 정당합니다.

200614 예수님의 태도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ure in heart, for they will see God.

149:2.8 (1671.3) The most astonishing and the most revolutionary feature of Michael’s mission on earth was his attitude toward women. In a day and generation when a man was not supposed to salute even his own wife in a public place, Jesus dared to take women along as teachers of the gospel in connection with his third tour of Galilee. And he had the consummate courage to do this in the face of the rabbinic teaching which declared that it was “better that the words of the law should be burned than delivered to women.” 지상의 미가엘 사명 중 가장 놀랍고 혁명적인 특징은 여성에 대한 그의 태도였습니다. 남자가 공공장소에서 자기 아내에게도 아는 척하지 말아야 했던 당시에, 예수님은 자신의 갈릴리 세 번째 여행에 대담하게 여성들을 복음의 교사들로 동행시켰습니다. 그는 “율법의 말씀을 여성들에게 주느니 태우는 것이 더 좋다.”고 선포했던 라비(율법학자)의 가르침에 거슬러 이렇게 행하는 완전한 용기를 지녔습니다.

149:2.9 (1671.4) In one generation Jesus lifted women out of the disrespectful oblivion and the slavish drudgery of the ages. And it is the one shameful thing about the religion that presumed to take Jesus’ name that it lacked the moral courage to follow this noble example in its subsequent attitude toward women. 예수께서 한 세대에 오랫동안 경시되어 무시된 상태 및 노예적 고역에서부터 여성들을 높이셨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는 종교에 대해 부끄러운 한 가지는 그 종교의 여성에 대한 후대의 태도에 있어서 이 고귀한 실례를 따를 도덕적 용기가 결핍된 것입니다.

149:2.10 (1671.5) As Jesus mingled with the people, they found him entirely free from the superstitions of that day. He was free from religious prejudices; he was never intolerant. He had nothing in his heart resembling social antagonism. While he complied with the good in the religion of his fathers, he did not hesitate to disregard man-made traditions of superstition and bondage. He dared to teach that catastrophes of nature, accidents of time, and other calamitous happenings are not visitations of divine judgments or mysterious dispensations of Providence. He denounced slavish devotion to meaningless ceremonials and exposed the fallacy of materialistic worship. He boldly proclaimed man’s spiritual freedom and dared to teach that mortals of the flesh are indeed and in truth sons of the living God. 예수님은 사람들과 어울리셨지만, 그들은 그가 그 무렵의 미신(迷信)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종교적 편견이 없었습니다. 그는 결코 편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심정(心情)에 사회적 적개심(敵愾心) 비슷한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선조들의 종교에서 좋은 것은 따르셨지만, 사람이 만든 미신(迷信)과 속박(束縛)의 전통(傳統)은 주저없이 무시하셨습니다. 그는 대담하게 큰 자연재해, 시간적 재난 및 다른 비참한 사건들은 신적 심판이나 신비한 섭리적 천재(天災재앙)가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의미 없는 의식에 속한 노예적 헌신을 비난하셨으며 물질적 경배의 오류를 폭로하셨습니다. 그는 용기 있게 사람의 영적 자유를 선포하셨고, 육신을 지닌 필사자들이 정말로 사실,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대담하게 가르쳤습니다.

149:2.11 (1671.6) Jesus transcended all the teachings of his forebears when he boldly substituted clean hearts for clean hands as the mark of true religion. He put reality in the place of tradition and swept aside all pretensions of vanity and hypocrisy. And yet this fearless man of God did not give vent to destructive criticism or manifest an utter disregard of the religious,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usages of his day. He was not a militant revolutionist; he was a progressive evolutionist. He engaged in the destruction of that which was only when he simultaneously offered his fellows the superior thing which ought to be. 예수께서 참된 종교의 표지로써 청결한 심정(心情)으로 청결한 손을 담대히 바꾸셨을 때, 그는 자기 선조들의 모든 가르침을 초월하셨습니다. 그는 전통의 자리에 실체를 두셨고, 모든 허영(虛榮겉치레)와 위선(僞善겉으로만 체함)의 허식(虛飾겉만 꾸밈)을 일소(一掃모조리 쓸어버림)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 없는 하나님의 사람은 파괴적 비판을 터뜨리거나 당시 종교적·사회적·경제적 및 정치적 관습에 대해 철저히 무시(無視)하는 태도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투쟁적인 혁명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보적인 진화론자였습니다. 그는 있어야만 하는 뛰어난 것을 동료들에게 동시에 제공할 때에만 있던 것을 파괴하기 시작하셨습니다.

149:2.12 (1672.1) Jesus received the obedience of his followers without exacting it. Only three men who received his personal call refused to accept the invitation to discipleship. He exercised a peculiar drawing power over men, but he was not dictatorial. He commanded confidence, and no man ever resented his giving a command. He assumed absolute authority over his disciples, but no one ever objected. He permitted his followers to call him Master. 예수는 강요 없이 추종자들의 순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개인적 소명(召命부르심)을 받은 세 명만 제자도의 초대 수락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이끄는 특유의 권능을 행하셨지만 독재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명령하셨으며, 누구도 그의 명령에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제자들에 대해 절대적 권위가 있었지만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추종자들이 자신을 주(主)라고 부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149:2.13 (1672.2) The Master was admired by all who met him except by those who entertained deep-seated religious prejudices or those who thought they discerned political dangers in his teachings. Men were astonished at the originality and authoritativeness of his teaching. They marveled at his patience in dealing with backward and troublesome inquirers. He inspired hope and confidence in the hearts of all who came under his ministry. Only those who had not met him feared him, and he was hated only by those who regarded him as the champion of that truth which was destined to overthrow the evil and error which they had determined to hold in their hearts at all cost. 고질적인 종교적 편견을 품거나 주님의 가르침에서 정치적 위험성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주(主)님을 만난 모든 이들이 그를 감탄하며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의 독창성과 권위에 놀랐습니다. 그들은 퇴보적이며 골치아픈 탐구자들을 다루는 그의 참을성에 놀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보살핌을 받은 모든 이들의 심정에 소망과 확신을 일으켰습니다. 그를 만난 적이 없었던 자들만 그를 두려워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들의 심정에 붙잡기로 결정한, 악(惡)과 실수(失手)를 무너뜨리도록 정해진 그 진리의 옹호자로 그를 간주한 자들만이 그를 미워했습니다.

149:2.14 (1672.3) On both friends and foes he exercised a strong and peculiarly fascinating influence. Multitudes would follow him for weeks, just to hear his gracious words and behold his simple life. Devoted men and women loved Jesus with a well-nigh superhuman affection. And the better they knew him the more they loved him. And all this is still true; even today and in all future ages, the more man comes to know this God-man, the more he will love and follow after him. 그는 친구들과 적대자들에게 강렬하며 특이한 매력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군중들은 다만 그의 은혜로운 말씀을 듣고 그의 소탈한 삶을 보려고 몇 주간 그를 따르곤 했습니다. 헌신적인 남녀들은 거의 초(超)인간적 애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이 그를 알면 알수록 그들은 그를 더 사랑했습니다. 이 모두는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도 미래 모든 시대에도, 사람이 이 하나님-사람을 알려고 오면 올수록, 그는 그를 더 사랑하고 따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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