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146 First Preaching Tour of Galilee 갈릴리의 첫 전도 여행

Paper 146

First Preaching Tour of Galilee 갈릴리의 첫 전도 여행

191020 자연 숭배와 복음 신9:16-21 16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급속히 여호와의 명하신 도를 떠났기로 17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에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었노라 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케 하여 크게 죄를 얻었음이라 19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 하였었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21 너희의 죄 곧 너희의 만든 송아지를 취하여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었느니라 16 When I looked, I saw that you had sinned against the LORD your God; you had made for yourselves an idol cast in the shape of a calf. You had turned aside quickly from the way that the LORD had commanded you. 17 So I took the two tablets and threw them out of my hands, breaking them to pieces before your eyes. 18 Then once again I fell prostrate before the LORD for forty days and forty nights; I ate no bread and drank no water, because of all the sin you had committed, doing what was evil in the LORD’s sight and so provoking him to anger. 19 I feared the anger and wrath of the LORD, for he was angry enough with you to destroy you. But again the LORD listened to me. 20 And the LORD was angry enough with Aaron to destroy him, but at that time I prayed for Aaron too. 21 Also I took that sinful thing of yours, the calf you had made, and burned it in the fire. Then I crushed it and ground it to powder as fine as dust and threw the dust into a stream that flowed down the mountain.

146:0.1 (1637.1) THE first public preaching tour of Galilee began on Sunday, January 18, A.D. 28, and continued for about two months, ending with the return to Capernaum on March 17. On this tour Jesus and the twelve apostles, assisted by the former apostles of John, preached the gospel and baptized believers in Rimmon, Jotapata, Ramah, Zebulun, Iron, Gischala, Chorazin, Madon, Cana, Nain, and Endor. In these cities they tarried and taught, while in many other smaller towns they proclaimed the gospel of the kingdom as they passed through. 갈릴리에서 첫 대중 전도여행은 AD 28년 1월 18일 일요일에 시작되어, 약 2달 간 계속되었으며, 3월 17일에 가버나움으로 돌아오면서 끝났습니다. 이 여행에서 예수님과 12사도들은, 요한의 이전(以前) 사도들의 도움으로, 림몬, 요타파타, 라마, 스불론, 이론, 기샬라, 코라진, 매돈, 가나, 내인, 엔도르에서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은 이 도시들에 머물러 가르쳤고, 한편 다른 여러 작은 도시들을 지나가면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146:0.2 (1637.2) This was the first time Jesus permitted his associates to preach without restraint. On this tour he cautioned them on only three occasions; he admonished them to remain away from Nazareth and to be discreet when passing through Capernaum and Tiberias. It was a source of great satisfaction to the apostles at last to feel they were at liberty to preach and teach without restriction, and they threw themselves into the work of preaching the gospel, ministering to the sick, and baptizing believers, with great earnestness and joy. 예수님은 이번에 처음으로 동료들에게 자유로이 전도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여행에서 그는 세 경우만 그들에게 조심시켰습니다. 그는 그들이 나사렛에서 떨어지며, 가버나움과 티베리아스를 지나갈 때 신중하라고 타이르셨습니다. 마침내 사도들은 마음대로 전도하고 자유로이 가르칠 수 있었다고 느껴서 큰 만족을 얻었으며, 큰 열심과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고 병자들을 돌아보며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에 주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1. Preaching at Rimmon 림몬에서 전도함

146:1.1 (1637.3) The small city of Rimmon had once been dedicated to the worship of a Babylonian god of the air, Ramman. Many of the earlier Babylonian and later Zoroastrian teachings were still embraced in the beliefs of the Rimmonites; therefore did Jesus and the twenty-four devote much of their time to the task of making plain the difference between these older beliefs and the new gospel of the kingdom. Peter here preached one of the great sermons of his early career on “Aaron and the Golden Calf.” 작은 도시인 림몬은 한때 바빌론의 대기(大氣)의 신(하나님) 람만 숭배에 바쳐졌습니다. 초기 바빌론과 후기 조로아스터교의 여러 가르침들은 여전히 림몬 사람들의 믿음들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24명은 이 옛 믿음들과 하늘나라 새 복음의 차이를 명백히 하려는 업무에 많은 시간을 바쳤습니다. 베드로는 여기에서 초기 생애의 위대한 설교들 중 한 가지, 즉“아론과 금송아지(출32:1-35, 신9:16-21)”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146:1.2 (1637.4) Although many of the citizens of Rimmon became believers in Jesus’ teachings, they made great trouble for their brethren in later years. It is difficult to convert nature worshipers to the full fellowship of the adoration of a spiritual ideal during the short space of a single lifetime. 림몬의 여러 시민들이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믿고 신자(信者)들이 되었지만, 그들은 나중에 자신들의 형제들에게 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한 번의 단기간에 자연 숭배자들을 영적 이상(理想)의 찬미에 몰두하는 동료로 개종시키기는 어렵습니다.

146:1.3 (1637.5) Many of the better of the Babylonian and Persian ideas of light and darkness, good and evil, time and eternity, were later incorporated in the doctrines of so-called Christianity, and their inclusion rendered the Christian teachings more immediately acceptable to the peoples of the Near East. In like manner, the inclusion of many of Plato’s theories of the ideal spirit or invisible patterns of all things visible and material, as later adapted by Philo to the Hebrew theology, made Paul’s Christian teachings more easy of acceptance by the western Greeks. 바빌론과 페르시아의 빛과 어둠, 선과 악, 시간과 영원에 관한 여러 향상된 관념들은 나중에 소위 기독교 교리로 통합되었고, 그런 포함으로 근동(近東) 민족들은 기독교 가르침들을 곧 바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만물의 이상적(理想的) 영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원본들에 대한 플라톤의 여러 이론들이 포함되어, 나중에 필로가 히브리 신학에 적응시키자, 바울의 기독교 가르침들은 서방 그리스인들에게 더 쉽게 수용되었습니다.

146:1.4 (1637.6) It was at Rimmon that Todan first heard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he later carried this message into Mesopotamia and far beyond. He was among the first to preach the good news to those who dwelt beyond the Euphrates림몬에서 토단이 처음 하늘나라의 복음을 들었고, 그는 나중에 이 메시지를 메소포타미아와 훨씬 너머까지 전달했습니다. 그는 유프라테스 너머에 살던 자들에게 복음을 첫째로 전한 사람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2. At Jotapata 요타파타에서

191027 기도와 심정(心情)의 일치 잠 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If anyone turns a deaf ear to the law, even his prayers are detestable.

146:2.1 (1638.1) While the common people of Jotapata heard Jesus and his apostles gladly and many accepted the gospel of the kingdom, it was the discourse of Jesus to the twenty-four on the second evening of their sojourn in this small town that distinguishes the Jotapata mission. Nathaniel was confused in his mind about the Master’s teachings concerning prayer, thanksgiving, and worship, and in response to his question Jesus spoke at great length in further explanation of his teaching. Summarized in modern phraseology, this discourse may be presented as emphasizing the following points: 요타파타의 보통 사람들은 예수님과 그의 사도들의 메시지를 기쁘게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요타파타의 선교의 특징은 이 작은 도시에서 머물던 둘째 날 밤에 예수께서 24 명들에게 하셨던 강연이었습니다. 나다니엘은 기도, 감사 및 경배에 관한 주(主)님의 가르침들에 대해 마음으로 혼란스러워 여쭌 질문에 대답하시면서 예수님은 자기 가르침에 덧붙여 길게 설명하셨습니다. 현대 어법으로 요약하면, 이 강연은 다음의 요점들을 강조하는 것으로 제시될 수 있습니다.

146:2.2 (1638.2) 1. The conscious and persistent regard for iniquity in the heart of man gradually destroys the prayer connection of the human soul with the spirit circuits of communication between man and his Maker. Naturally God hears the petition of his child, but when the human heart deliberately and persistently harbors the concepts of iniquity, there gradually ensues the loss of personal communion between the earth child and his heavenly Father. 의식적으로 고집스럽게(반복해서 지속적으로) 사악을 심정에 품으면, 사람과 조물주 사이에 있는 영 소통의 회로와 인간 혼(魂)의 기도 연결이 점차 파괴됩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자기 자녀의 간청을 듣고 계시지만, 인간의 심정이 의도적으로 고집스럽게 사악의 개념을 품으면, 직후에 그 결과로써, 지상 자녀와 그의 하늘 아버지 사이에 고유적인 친교의 상실이 점차 일어납니다.

146:2.3 (1638.3) 2. That prayer which is inconsistent with the known and established laws of God is an abomination to the Paradise Deities. If man will not listen to the Gods as they speak to their creation in the laws of spirit, mind, and matter, the very act of such deliberate and conscious disdain by the creature turns the ears of spirit personalities away from hearing the personal petitions of such lawless and disobedient mortals. Jesus quoted to his apostles from the Prophet Zechariah: “But they refused to hearken and pulled away the shoulder and stopped their ears that they should not hear. Yes, they made their hearts adamant like a stone, lest they should hear my law and the words which I sent by my spirit through the prophets; therefore did the results of their evil thinking come as a great wrath upon their guilty heads. And so it came to pass that they cried for mercy, but there was no ear open to hear.” And then Jesus quoted the proverb of the wise man who said: “He who turns away his ear from hearing the divine law, even his prayer shall be an abomination.” 알려져 확립된 하나님의 법칙과 일치하지 않는 기도는 천국 신(神)들에게 몹시 혐오(嫌惡싫어하고 미워함)스러운 행위입니다. 하나님들께서 영, 마음 및 물질의 법칙으로 그들의 창조계에 말씀하실 때, 사람이 하나님들을 경청하지 않으면, 영 고유성들은 바로 그런 창조물의 고의적이며 의식적인 경멸의 행위 때문에 불법적이고 불순종하는 필사자들의 그런 개인적 간청들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스가랴 선지자를 인용하셨습니다.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나의 법과 내 영으로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그들의 악한 생각의 결과로 인해 그들의 간악한 머리들 위에 큰 노()가 내렸도다. 그래서 일어난 대로, 그들이 큰 소리로 자비를 구했지만 열려 들을 귀가 없었더라(7:11-13).” 그 후 예수님은 지혜자의 잠언을 인용하셨습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신적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28:9).”

146:2.4 (1638.4) 3. By opening the human end of the channel of the God-man communication, mortals make immediately available the ever-flowing stream of divine ministry to the creatures of the worlds. When man hears God’s spirit speak within the human heart, inherent in such an experience is the fact that God simultaneously hears that man’s prayer. Even the forgiveness of sin operates in this same unerring fashion. The Father in heaven has forgiven you even before you have thought to ask him, but such forgiveness is not available in your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until such a time as you forgive your fellow men. God’s forgiveness in fact is not conditioned upon your forgiving your fellows, but in experience it is exactly so conditioned. And this fact of the synchrony of divine and human forgiveness was thus recognized and linked together in the prayer which Jesus taught the apostles. 하나님-사람간의 소통 경로에서 인간 쪽을 열어 놓으면, 필사자들은 세계들의 창조물들에게 항상 흐르는 신적 사역의 흐름을 즉시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인간의 심정 안에서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말씀을 듣게 되는 그런 체험에 본래적인 것은 하나님이 동시에 그 인간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죄용서도 이와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구하려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는 너희를 용서하셨지만, 너희가 너희 동료 사람들을 용서하기까지 너희 고유적인 종교 체험에서 그런 용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용서는 동료들을 향한 너희의 용서에 달려 있지 않지만 그것은 체험적으로 정확히 그렇게 조건적입니다. 그래서 신적이며 인간적인 용서가 동조(同調동시에 작용)하는 이 사실은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치셨던 기도에서 그렇게 인식하게 되었고 함께 연결되어졌습니다.

146:2.5 (1638.5) 4. There is a basic law of justice in the universe which mercy is powerless to circumvent. The unselfish glories of Paradise are not possible of reception by a thoroughly selfish creature of the realms of time and space. Even the infinite love of God cannot force the salvation of eternal survival upon any mortal creature who does not choose to survive. Mercy has great latitude of bestowal, but, after all, there are mandates of justice which even love combined with mercy cannot effectively abrogate. Again Jesus quoted from the Hebrew scriptures: “I have called and you refused to hear; I stretched out my hand, but no man regarded. You have set at naught all my counsel, and you have rejected my reproof, and because of this rebellious attitude it becomes inevitable that you shall call upon me and fail to receive an answer. Having rejected the way of life, you may seek me diligently in your times of suffering, but you will not find me.” 우주에는 기본적인 정의(正義)의 법칙이 있으며, 자비(慈悲)가 이것을 회피하기에 무력합니다. 철저히 이기적인, 시공 영역의 창조물은 천국의 이타적 영광들을 수용(受容받아들임)하기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도 생존을 선택하지 않는 어떤 필사 창조물에게 강제로 영원히 생존하는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자비(慈悲)는 커다란 허용 범위로 베풀어지지만 결국 자비와 결합한 사랑도 사실 폐기할 수 없는 정의(正義)의 요구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히브리 성서를 인용하셨습니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너희는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거절했은즉, 이런 반역하는 태도로 인하여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으리니, 너희가 나를 불러도 대답을 얻지 못하리라. 생명의 길을 거절했기에, 곤란의 때에 너희가 부지런히 나를 찾을 것이나 나를 만나지 못하리라(잠1:24-25, 28)”

146:2.6 (1639.1) 5. They who would receive mercy must show mercy; judge not that you be not judged. With the spirit with which you judge others you also shall be judged. Mercy does not wholly abrogate universe fairness. In the end it will prove true: “Whoso stops his ears to the cry of the poor, he also shall some day cry for help, and no one will hear him.” The sincerity of any prayer is the assurance of its being heard; the spiritual wisdom and universe consistency of any petition is the determiner of the time, manner, and degree of the answer. A wise father does not literally answer the foolish prayers of his ignorant and inexperienced children, albeit the children may derive much pleasure and real soul satisfaction from the making of such absurd petitions. 자비를 받으려 하는 자들은 반드시 자비를 보여야 합니다. 심판을 받지 않도록 심판하지 마십시오. 너희가 남을 심판하는 그 정신(영)으로 너희도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자비(慈悲)가 우주의 공평함을 전부 파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다음의 구절이 참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도움을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21:13).” 기도의 신실함이 듣고 계심의 보증입니다. 응답의 시기, 방식과 정도는 간청의 영적 지혜와 우주 일치성이 결정합니다. 지혜로운 아버지는 무지하고 미숙한 자기 자녀들의 어리석은 기도들을 글자 그대로 응답하지 않지만, 자녀들은 그런 부조리한 간청에서 많은 기쁨과 실제 혼(魂)의 만족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146:2.7 (1639.2) 6. When you have become wholly dedicated to the doing of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the answer to all your petitions will be forthcoming because your prayers will be in full accordance with the Father’s will, and the Father’s will is ever manifest throughout his vast universe. What the true son desires and the infinite Father wills IS. Such a prayer cannot remain unanswered, and no other sort of petition can possibly be fully answered. 너희가 하늘 아버지 뜻의 실행에 전적으로 헌신하면, 너희 기도는 아버지의 뜻과 충분히 일치될 것이며 아버지의 뜻이 언제나 자신의 광대한 우주 전체에 드러나므로 너희의 모든 간청에 대한 응답이 다가올 것입니다. 참 자녀가 원하고 무한 아버지께서 뜻하는 것은 존재합니다. 그런 기도는 응답을 받지 않을 수 없지만, 다른 종류의 간청은 도저히 충분하게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146:2.8 (1639.3) 7. The cry of the righteous is the faith act of the child of God which opens the door of the Father’s storehouse of goodness, truth, and mercy, and these good gifts have long been in waiting for the son’s approach and personal appropriation. Prayer does not change the divine attitude toward man, but it does change man’s attitude toward the changeless Father. The motive of the prayer gives it right of way to the divine ear, not the social, economic, or outward religious status of the one who prays. 공의(公義)로운 자의 외침은 하나님 자녀의 신앙 행위로써, 선함, 진리 및 자비로 가득한 아버지 창고의 문을 열게 하며, 이 좋은 선물들은 그 자녀가 접근하여 직접 사용하기를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것들입니다. 기도는 사람을 향한 신적 태도를 바꾸지 않지만, 변함없는 아버지를 향한 사람의 태도를 바꿉니다. 신적 귀에 이르는 통행권은 기도의 동기(動機)이지, 기도하는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또는 외적인 종교적 상태가 아닙니다.

191103 윤리적 기도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146:2.9 (1639.4) 8. Prayer may not be employed to avoid the delays of time or to transcend the handicaps of space. Prayer is not designed as a technique for aggrandizing self or for gaining unfair advantage over one’s fellows. A thoroughly selfish soul cannot pray in the true sense of the word. Said Jesus: “Let your supreme delight be in the character of God, and he shall surely give you the sincere desires of your heart.” “Commit your way to the Lord; trust in him, and he will act.” “For the Lord hears the cry of the needy, and he will regard the prayer of the destitute.” 시간의 지연을 피하거나 공간의 장애를 뛰어 넘으려고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자기를 확대하거나 동료들보다 공정하지 못한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이기적인 혼은 참된 의미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최극의 기쁨을 하나님의 성품에 두면, 네 심정의 신실한 소원을 너에게 확실히 주시리라(시37:4).” “너의 길을 주께 맡기고; 그를 신뢰하면 그가 행하시리라(시37:5).” “주님은 궁핍한 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시72:12),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기 때문이라(시102:17).”

146:2.10 (1639.5) 9. “I have come forth from the Father; if, therefore, you are ever in doubt as to what you would ask of the Father, ask in my name, and I will present your petition in accordance with your real needs and desires and in accordance with my Father’s will.” Guard against the great danger of becoming self-centered in your prayers. Avoid praying much for yourself; pray more for the spiritual progress of your brethren. Avoid materialistic praying; pray in the spirit and for the abundance of the gifts of the spirit. “내가 아버지로부터 왔으니 너희가 아버지께 무엇을 구할지 망설일 때마다 내 이름으로 구하라(요14:14), 그러면 너희의 진정한 필요와 소원에 따라서, 또한 내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내가 너희 간구(干求)를 전하리라.” 기도할 때 자기중심적이 되는 큰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자신을 위하여 많이 기도하기를 피하고, 너희 형제들의 영적 진보를 위해 더 많이 기도하십시오. 물질주의적 기도를 피하고; 영으로, 영의 풍성한 선물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146:2.11 (1639.6) 10. When you pray for the sick and afflicted, do not expect that your petitions will take the place of loving and intelligent ministry to the necessities of these afflicted ones. Pray for the welfare of your families, friends, and fellows, but especially pray for those who curse you, and make loving petitions for those who persecute you. “But when to pray, I will not say. Only the spirit that dwells within you may move you to the utterance of those petitions which are expressive of your inner relationship with the Father of spirits.” 너희가 병든 자와 괴로워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때, 너희 간청이 이렇게 고생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사랑과 지능적 돌봄을 대신하리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너희 가족, 친구, 동료들의 복지를 위해 기도하되, 특별히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애정을 품고 간구하십시오. “그러나 언제 기도할지 나는 이르지 않으리라. 단지 너희 안에 내주하는 영(靈)이 너를 감동하여 영들의 아버지와 너희의 내적 관계를 표현하는 그러한 간구를 말하게 하리라.”

146:2.12 (1640.1) 11. Many resort to prayer only when in trouble. Such a practice is thoughtless and misleading. True, you do well to pray when harassed, but you should also be mindful to speak as a son to your Father even when all goes well with your soul. Let your real petitions always be in secret. Do not let men hear your personal prayers. Prayers of thanksgiving are appropriate for groups of worshipers, but the prayer of the soul is a personal matter. There is but one form of prayer which is appropriate for all God’s children, and that is: “Nevertheless, your will be done.” 많은 이들은 곤란할 때만 기도에 매달립니다. 그런 습관은 경솔하고 그르치게 만듭니다. 사실, 너희가 시달릴 때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너희는 혼(魂)과 함께 모든 일이 잘 풀릴 때에도 또한 너희 아버지께 기도하기를 명심하십시오. 너희의 실제 간구는 항상 비밀리에 하십시오. 자기만의 기도는 사람들이 듣게 않게 하십시오. 감사의 기도들은 경배하는 자들의 집단들에서 적절하지만, 혼(魂)의 기도는 고유적 개인 문제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한 가지 적절한 기도 형태는 이것입니다. “그래도,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146:2.13 (1640.2) 12. All believers in this gospel should pray sincerely for the extension of the kingdom of heaven. Of all the prayers of the Hebrew scriptures he commented most approvingly on the petition of the Psalmist: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Purge me from secret sins and keep back your servant from presumptuous transgression.” Jesus commented at great length on the relation of prayer to careless and offending speech, quoting: “Set a watch, O Lord, before my mouth; keep the door of my lips.” “The human tongue,” said Jesus, “is a member which few men can tame, but the spirit within can transform this unruly member into a kindly voice of tolerance and an inspiring minister of mercy.” 이 복음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진정으로 하늘나라의 확장을 위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히브리 성서(聖書)의 모든 기도 중에서 그는 시편 기자의 간구를 가장 만족스럽게 논평하셨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은밀한 죄들에서 씻으시고, 당신의 종으로 고범(故犯일부러 범한)죄를 짓지 말게 하소서(시19:12b-13a).” 예수님은 기도와 관련하여 경솔하며 거슬리는 말투에 대해 매우 길게 논평하면서 인용하셨습니다. “오, 주님,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인간의 혀는 사람이 거의 길들이기 어려운 지체이지만(약3:8a), 내주하는 영(靈)이 다루기 어려운 이 지체를 친절한 관용의 음성과 자비로써 감동을 주는 봉사자로 바꿀 수 있느니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46:2.14 (1640.3) 13. Jesus taught that the prayer for divine guidance over the pathway of earthly life was next in importance to the petition for a knowledge of the Father’s will. In reality this means a prayer for divine wisdom. Jesus never taught that human knowledge and special skill could be gained by prayer. But he did teach that prayer is a factor in the enlargement of one’s capacity to receive the presence of the divine spirit. When Jesus taught his associates to pray in the spirit and in truth, he explained that he referred to praying sincerely and in accordance with one’s enlightenment, to praying wholeheartedly and intelligently, earnestly and steadfastly. 예수님은 모든 지상 생애의 여정에서 신적 안내를 위한 기도가, 아버지의 뜻을 알려는 간구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실제로 이것은 신적 지혜를 위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인간의 지식과 특별한 기술을 얻을 수 있다고 결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란, 사람이 신적 영의 현존을 받아들이는 수용력을 확대하는 요소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동료들에게 영과 진리로(요4:24)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던 것은, 사람의 깨우침에 따라 신실히 기도하며, 전심으로, 지능적으로, 열심히 또한 확고히 기도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146:2.15 (1640.4) 14. Jesus warned his followers against thinking that their prayers would be rendered more efficacious by ornate repetitions, eloquent phraseology, fasting, penance, or sacrifices. But he did exhort his believers to employ prayer as a means of leading up through thanksgiving to true worship. Jesus deplored that so little of the spirit of thanksgiving was to be found in the prayers and worship of his followers. He quoted from the Scriptures on this occasion, saying: “It is a good thing to give thanks to the Lord and to sing praises to the name of the Most High, to acknowledge his loving-kindness every morning and his faithfulness every night, for God has made me glad through his work. In everything I will give thanks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화려한 문체의 반복(마6:7a), 감동적인 어법, 금식, 참회(고행), 희생제물로 인해 기도가 더 효험이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신자들에게 감사를 통해 참된 경배로 이어지는 수단으로 기도를 사용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의 기도와 경배에서 감사의 영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점을 유감스러워 하셨습니다. 그는 성서를 인용하여 이 경우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며 지고자(至高者)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시92:1-2, 4) 모든 일에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감사하리이다(살전5:18).”

146:2.16 (1640.5) 15. And then Jesus said: “Be not constantly overanxious about your common needs. Be not apprehensive concerning the problems of your earthly existence, but in all these things by prayer and supplication, with the spirit of sincere thanksgiving, let your needs be spread out before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Then he quoted from the Scriptures: “I will praise the name of God with a song and will magnify him with thanksgiving. And this will please the Lord better than the sacrifice of an ox or bullock with horns and hoofs.” 그 후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일상적 필요로 인해 계속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 너희 지상 존재의 문제들로 인해 염려하지 말고 이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필요를 신실한 감사의 영으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펼쳐놓으라(빌4:6).” 그 후 그는 성서를 인용하셨습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주님을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69:30-31).”

146:2.17 (1641.1) 16. Jesus taught his followers that, when they had made their prayers to the Father, they should remain for a time in silent receptivity to afford the indwelling spirit the better opportunity to speak to the listening soul. The spirit of the Father speaks best to man when the human mind is in an attitude of true worship. We worship God by the aid of the Father’s indwelling spirit and by the illumination of the human mind through the ministry of truth. Worship, taught Jesus, makes one increasingly like the being who is worshiped. Worship is a transforming experience whereby the finite gradually approaches and ultimately attains the presence of the Infinite.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그들이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 후, 내주하는 영이 경청하는 혼에게 말할 더 좋은 기회를 드리기 위해 조용히 받아들이며 잠시 머물러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아버지의 영은, 인간의 마음이 참된 경배의 태도로 있을 때, 사람에게 말하기가 가장 좋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내주하는 영의 도움과 진리의 사역을 통해 인간 마음을 조명하여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사람은 경배하면서 경배를 받는 존재를 점차 닮는다고 예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경배는, 유한자가 무한자의 현존에 점차 접근하여 결국 도달하는 변화의 체험입니다.

146:2.18 (1641.2) And many other truths did Jesus tell his apostles about man’s communion with God, but not many of them could fully encompass his teaching.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사람과 하나님의 친교에 대한 여러 다른 진리들을 말씀하셨지만 그들 대부분은 그의 가르침을 충분히 통합하여 아우를 수 없었습니다.

3. The Stop at Ramah 라마에 들르심

191110 영적(靈的) 확신(確信)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The Spirit himself testifie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God’s children.

146:3.1 (1641.3) At Ramah Jesus had the memorable discussion with the aged Greek philosopher who taught that science and philosophy were sufficient to satisfy the needs of human experience. Jesus listened with patience and sympathy to this Greek teacher, allowing the truth of many things he said but pointing out that, when he was through, he had failed in his discussion of human existence to explain “whence, why, and whither,” and added: “Where you leave off, we begin. Religion is a revelation to man’s soul dealing with spiritual realities which the mind alone could never discover or fully fathom. Intellectual strivings may reveal the facts of life, but the gospel of the kingdom unfolds the truths of being. You have discussed the material shadows of truth; will you now listen while I tell you about the eternal and spiritual realities which cast these transient time shadows of the material facts of mortal existence?” For more than an hour Jesus taught this Greek the saving truths of the gospel of the kingdom. The old philosopher was susceptible to the Master’s mode of approach, and being sincerely honest of heart, he quickly believed this gospel of salvation. 예수님은 라마에서 연로(年老)한 그리스 철학자와 잊지 못할 토의를 하셨는데, 그는 인간 체험의 필요를 채우기에 과학과 철학으로 충분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이 그리스 선생이 말한 여러 부분의 진리를 인정하시며 인내와 공감으로 경청하셨지만, 그가 말을 마치자, 그가 인간 존재의 논의를 “어디서, 왜, 어디로”로 설명하지 못한 점을 단지 지적하면서 다음을 덧붙였습니다. “네가 끝낸 지점에서 우리는 시작하노라. 종교는 사람의 혼에 대한 계시로 영적 실체들을 다루며, 영적 실체들은 마음 홀로 결코 발견하거나 충분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지적(知的) 분투가 생명의 사실들을 드러낼 수도 있지만, 하늘나라의 복음은 존재의 진리들을 펴서 밝히느니라. 너는 진리의 물질적 그림자들을 논의했는데, 영원한 영적 실체들에 대해 내가 너에게 말하는 동안 너는 들어보겠느냐? 그것은 필사 실존의 물질적 사실들에 대한 이러한 과도기적 시간의 그림자들을 투영하느니라.” 한 시간 이상 예수께서 이 그리스인에게 구원하는 하늘나라 복음의 진리들을 가르치셨습니다. 노(老)철학자는 주(主)님의 접근 방식에 민감히 받아들여, 진정 정직한 심정으로 이 구원의 복음을 빨리 믿었습니다.

146:3.2 (1641.4) The apostles were a bit disconcerted by the open manner of Jesus’ assent to many of the Greek’s propositions, but Jesus afterward privately said to them: “My children, marvel not that I was tolerant of the Greek’s philosophy. True and genuine inward certainty does not in the least fear outward analysis, nor does truth resent honest criticism. You should never forget that intolerance is the mask covering up the entertainment of secret doubts as to the trueness of one’s belief. No man is at any time disturbed by his neighbor’s attitude when he has perfect confidence in the truth of that which he wholeheartedly believes. Courage is the confidence of thoroughgoing honesty about those things which one professes to believe. Sincere men are unafraid of the critical examination of their true convictions and noble ideals.” 사도들은 그리스인의 여러 명제들에 동의하신 예수님의 개방적인 태도로 인해 조금 당황했지만, 그 후 예수님은 은밀히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자녀들아, 내가 그리스인의 철학을 묵인했다고 놀라지 말라. 진정 참된 내적 확신은 외적 분석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는 정직한 비평을 분개하지 않느니라. 편협(偏狹)함은 자기 믿음의 진정성에 대해 품고 있는 은밀한 의심(疑心)을 은폐하는 가면(假面)임을 너희는 결코 잊지 말라. 자신이 전심으로 믿는 것을 진리라고 온전히 신뢰한다면 언제라도 이웃의 태도로 인해 흔들리지 않느니라. 용기(勇氣)는 믿는다고 고백한 것들에 대해 철저히 정직(正直)한 확신(確信)이니라. 신실한 사람들은 자신의 참된 확신과 숭고한 이상(理想)에 대해 비판적인 검증을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146:3.3 (1641.5) On the second evening at Ramah, Thomas asked Jesus this question: “Master, how can a new believer in your teaching really know, really be certain, about the truth of this gospel of the kingdom?” 라마에서 둘째 날 저녁에 도마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主)여, 주님의 가르침을 새로 믿는 자가 이 하늘나라의 복음의 진리를 정말로 어떻게 알고 실제로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146:3.4 (1641.6) And Jesus said to Thomas: “Your assurance that you have entered into the kingdom family of the Father, and that you will eternally survive with the children of the kingdom, is wholly a matter of personal experience — faith in the word of truth. Spiritual assurance is the equivalent of your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in the eternal realities of divine truth and is otherwise equal to your intelligent understanding of truth realities plus your spiritual faith and minus your honest doubts. 그러자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버지의 하늘나라 가족으로 들어가서, 하늘나라 자녀로서 영원히 생존할 것이라는 너희의 확신은 전적으로 개인적 체험 – 진리의 말씀에 대한 신앙 –의 문제이니라. 영적 확신은 신적 진리의 영원한 실체들을 너희가 개인적으로 체험한 종교에 해당하며, 또한 다른 점에서 진리 실체들에 대한 너희의 지능적 이해에 너희 영적 신앙을 더하고 너희의 정직한 의심들을 뺀 것과 같으니라.

146:3.5 (1642.1) “The Son is naturally endowed with the life of the Father. Having been endowed with the living spirit of the Father, you are therefore sons of God. You survive your life in the material world of the flesh because you are identified with the Father’s living spirit, the gift of eternal life. Many, indeed, had this life before I came forth from the Father, and many more have received this spirit because they believed my word; but I declare that, when I return to the Father, he will send his spirit into the hearts of all men. “아들(자녀)은 당연히 아버지의 생명이 있느니라. 살아있는 아버지의 영을 받았으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이니라. 너희는 아버지의 살아있는 영, 영원한 생명의 선물과 동일한 존재로 간주되므로, 너희는 육신에 속한 물질 세상에서 너희 생명이 살아남느니라. 내가 아버지로부터 오기 전에 정말로 많은 이들이 이 생명을 가졌고, 그들이 내 말을 믿었으므로 더 많은 이들이 이 영을 받았지만,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그가 모든 사람들의 심정에 그의 영을 보내실 것이라고 내가 선언하노라.”

146:3.6 (1642.2) “While you cannot observe the divine spirit at work in your minds, there is a practical method of discovering the degree to which you have yielded the control of your soul powers to the teaching and guidance of this indwelling spirit of the heavenly Father, and that is the degree of your love for your fellow men. This spirit of the Father partakes of the love of the Father, and as it dominates man, it unfailingly leads in the directions of divine worship and loving regard for one’s fellows. At first you believe that you are sons of God because my teaching has made you more conscious of the inner leadings of our Father’s indwelling presence; but presently the Spirit of Truth shall be poured out upon all flesh, and it will live among men and teach all men, even as I now live among you and speak to you the words of truth. And this Spirit of Truth, speaking for the spiritual endowments of your souls, will help you to know that you are the sons of God. It will unfailingly bear witness with the Father’s indwelling presence, your spirit, then dwelling in all men as it now dwells in some, telling you that you are in reality the sons of God. “너희가 너희 마음에서 활동하는 신적 영을 주시(注視눈여겨봄)할 수 없지만, 내주하는 하늘 아버지의 이 영의 가르침과 인도에 너희 혼(魂)의 권능이 조정되는 정도를 알아보는 실용적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너희 동료에 대한 너희 사랑의 정도이니라. 이 아버지의 영은 아버지의 사랑과 함께 하므로, 그것이 사람을 사로잡으면, 신적 경배와 동료들을 깊은 애정으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반드시 인도합니다. 처음에는 내 가르침으로 인해 너희가 내주하는 우리 아버지의 현존(現存)의 내적 이끄심을 더 의식하게 되므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임을 너희가 믿지만, 곧 진리의 영이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질 것이며, 지금 내가 너희와 함께 살면서 너희에게 진리의 말을 하는 것과 같이, 그것이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리라. 그리고 이 진리의 영은 너희 혼(魂)들에게 주신 영적 재질을 나타내면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임을 너희가 알도록 도우리라(롬8:16). 그것은 지금은 몇 사람 안에 거주하면서 말하시는 것처럼, 그 때는 모든 사람들 안에 내주하면서, 너희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자녀)들임을, 아버지의 내주하는 현존 즉 너희의 영과 함께 반드시 증언하리라.

146:3.7 (1642.3) “Every earth child who follows the leading of this spirit shall eventually know the will of God, and he who surrenders to the will of my Father shall abide forever. The way from the earth life to the eternal estate has not been made plain to you, but there is a way, there always has been, and I have come to make that way new and living. He who enters the kingdom has eternal life already — he shall never perish. But much of this you will the better understand when I shall have returned to the Father and you are able to view your present experiences in retrospect.” “이 영의 인도를 따르는 모든 세상의 자녀들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알 것이며, 내 아버지의 뜻에 내맡기는 자는 언제까지나 견디리라. 지상 생활에서 영원한 상태에 이르는 길은 너희에게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거기에는 길이 있으며 항상 있었는데, 살아있는 새 길로 만들려고 내가 왔느니라.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가졌으니 – 그는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간 후, 너희는 이러한 많은 것을 더 잘 이해할 것이며, 너희 현재의 체험들을 회고하면서 검증할 수 있으리라.”

146:3.8 (1642.4) And all who heard these blessed words were greatly cheered. The Jewish teachings had been confused and uncertain regarding the survival of the righteous, and it was refreshing and inspiring for Jesus’ followers to hear these very definite and positive words of assurance about the eternal survival of all true believers. 이러한 축복의 말씀을 들은 모든 이들은 많이 기뻤습니다. 의로운 자들의 생존에 관한 유대교의 가르침들은 혼란스럽고 확실하지 않았는데, 참된 모든 신자들의 영원한 생존에 대해 아주 분명히 확신하는 긍정적인 말씀을 들은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후련한 마음으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146:3.9 (1642.5) The apostles continued to preach and baptize believers, while they kept up the practice of visiting from house to house, comforting the downcast and ministering to the sick and afflicted. The apostolic organization was expanded in that each of Jesus’ apostles now had one of John’s as an associate; Abner was the associate of Andrew; and this plan prevailed until they went down to Jerusalem for the next Passover. 사도들은 계속 전도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한편 관례대로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고 병든 자와 고통 받는 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들 각자가 요한의 사도 하나씩 동료로 하여, 사도 조직이 확장되었습니다. 아브너는 안드레의 동료였고, 그들이 다음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내려갈 때까지 이 계획대로 되었습니다.

146:3.10 (1642.6) The special instruction given by Jesus during their stay at Zebulun had chiefly to do with further discussions of the mutual obligations of the kingdom and embraced teaching designed to make clear the differences between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and the amities of social religious obligations. This was one of the few times the Master ever discussed the social aspects of religion. Throughout his entire earth life Jesus gave his followers very little instruction regarding the socialization of religion. 스불론에 머물 때 예수께서 주신 특별 교육은 주로 하늘나라의 상호 의무들에 대한 연장된 토의와 관련되었고, 개인의 종교적 체험과 사회의 종교적 의무에 속한 친목, 이 둘의 차이를 밝히려고 계획된 가르침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主)께서 일찍이 종교의 사회적 측면을 논의하셨던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전(全) 지상 생애를 통해, 예수님은 추종자들에게 종교의 사회화(社會化)에 대한 가르침을 거의 주지 않으셨습니다.

146:3.11 (1643.1) In Zebulun the people were of a mixed race, hardly Jew or gentile, and few of them really believed in Jesus, notwithstanding they had heard of the healing of the sick at Capernaum. 스불론 사람들은 거의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 혼합 종족이었으며, 가버나움에서 병자를 고친 소문을 그들이 들었지만, 그들 중에서 정말로 예수님을 믿은 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4. The Gospel at Iron 이론에서 복음 전도 

191117 하늘나라 신앙고백 막 1:40-45 40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40 A man with leprosy came to him and begged him on his knees, “If you are willing, you can make me clean.” 41 Filled with compassion, Jesus reached out his hand and touched the man. “I am willing,” he said. “Be clean!” 42 Immediately the leprosy left him and he was cured. 43 Jesus sent him away at once with a strong warning: 44 “See that you don’t tell this to anyone. But go, show yourself to the priest and offer the sacrifices that Moses commanded for your cleansing, as a testimony to them.” 45 Instead he went out and began to talk freely, spreading the news. As a result, Jesus could no longer enter a town openly but stayed outside in lonely places. Yet the people still came to him from everywhere.

146:4.1 (1643.2) At Iron, as in many of even the smaller cities of Galilee and Judea, there was a synagogue, and during the earlier times of Jesus’ ministry it was his custom to speak in these synagogues on the Sabbath day. Sometimes he would speak at the morning service, and Peter or one of the other apostles would preach at the afternoon hour. Jesus and the apostles would also often teach and preach at the weekday evening assemblies at the synagogue. Although the religious leaders at Jerusalem became increasingly antagonistic toward Jesus, they exercised no direct control over the synagogues outside of that city. It was not until later in Jesus’ public ministry that they were able to create such a widespread sentiment against him as to bring about the almost universal closing of the synagogues to his teaching. At this time all the synagogues of Galilee and Judea were open to him. 갈릴리와 유대의 여러 작은 도시들처럼 이론에도 회당이 있었는데,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관례처럼 이런 회당에서 안식일에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 아침 예배에 그가 말씀하셨고,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 중 하나가 오후에 설교하곤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사도들은 회당의 주(週)중 저녁 모임에서 자주 가르치고 설교하곤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점차 예수님을 적대시(敵對視)했지만, 그들이 도시(예루살렘) 밖 모든 회당을 직접 조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후기 공(公)사역까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일반 회당들이 거의 문을 닫게 될 만큼 그들이 예수님을 적대시하는 그런 정서를 폭넓게 일으킬 수 없었습니다. 이 당시 갈릴리와 유대의 모든 회당들은 그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146:4.2 (1643.3) Iron was the site of extensive mineral mines for those days, and since Jesus had never shared the life of the miner, he spent most of his time, while sojourning at Iron, in the mines. While the apostles visited the homes and preached in the public places, Jesus worked in the mines with these underground laborers. The fame of Jesus as a healer had spread even to this remote village, and many sick and afflicted sought help at his hands, and many were greatly benefited by his healing ministry. But in none of these cases did the Master perform a so-called miracle of healing save in that of the leper. 이론은 당시 광물질이 풍부한 광산(鑛山) 현장이었고, 예수님은 광부의 생활을 하신 적이 없어서, 이론에 머물던 대부분의 시간을 광산에서 보냈습니다. 사도들이 가정을 방문하고 공적(公的) 장소에서 설교하는 동안, 예수님은 이 지하 노동자들과 함께 광산에서 일하셨습니다. 치유(治癒)자로서 예수님의 명성이 이 외딴 마을까지도 퍼졌고, 많은 병자들과 고통 받는 자들이 그의 손에서 도움을 구했으며, 그의 치유 사역으로 많은 이들이 크게 득을 봤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나병(癩病한센병)환자의 경우를 제외하고 주(主)님은 소위 치유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146:4.3 (1643.4) Late on the afternoon of the third day at Iron, as Jesus was returning from the mines, he chanced to pass through a narrow side street on his way to his lodging place. As he drew near the squalid hovel of a certain leprous man, the afflicted one, having heard of his fame as a healer, made bold to accost him as he passed his door, saying as he knelt before him: “Lord, if only you would, you could make me clean. I have heard the message of your teachers, and I would enter the kingdom if I could be made clean.” And the leper spoke in this way because among the Jews lepers were forbidden even to attend the synagogue or otherwise engage in public worship. This man really believed that he could not be received into the coming kingdom unless he could find a cure for his leprosy. And when Jesus saw him in his affliction and heard his words of clinging faith, his human heart was touched, and the divine mind was moved with compassion. As Jesus looked upon him, the man fell upon his face and worshiped. Then the Master stretched forth his hand and, touching him, said: “I will — be clean.” And immediately he was healed; the leprosy no longer afflicted him. 이론에서 셋째 날 늦은 오후에, 예수께서 광산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좁은 골목을 우연히 지나 가셨습니다. 그가 어떤 나병환자의 누추한 오두막집 근처로 다가갔을 때, 시달리던 그는 치유자로서 예수님의 명성을 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문 앞을 지나가실 때, 감히 그에게 다가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속한 선생들의 메시지를 들었으며, 제가 깨끗해진다면, 저도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나병환자가 이렇게 말했던 것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나병환자들은 회당에 참석하거나 달리 대중 경배에 참가하는 것조차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나병에서 치유되지 않으면, 다가오는 하늘나라로 자신이 환영받을 수 없다고 정말 믿었습니다. 예수께서 시달리던 그를 보셨고 매달리던 그의 신앙의 말을 들었을 때, 그의 인간 심정이 감동을 받았으며 신적 마음이 긍휼히 여겼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바라보시자 그 사람은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그 때 주(主)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 깨끗해지라.” 그러자 즉시 그가 치유되었으며; 나병이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146:4.4 (1643.5) When Jesus had lifted the man upon his feet, he charged him: “See that you tell no man about your healing but rather go quietly about your business, showing yourself to the priest and offering those sacrifices commanded by Moses in testimony of your cleansing.” But this man did not do as Jesus had instructed him. Instead, he began to publish abroad throughout the town that Jesus had cured his leprosy, and since he was known to all the village, the people could plainly see that he had been cleansed of his disease. He did not go to the priests as Jesus had admonished him. As a result of his spreading abroad the news that Jesus had healed him, the Master was so thronged by the sick that he was forced to rise early the next day and leave the village. Although Jesus did not again enter the town, he remained two days in the outskirts near the mines, continuing to instruct the believing miners further regard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예수께서 그 사람을 일으켜서 그에게 분부하셨습니다. “너의 치유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조용히 너의 일을 처리하되, 제사장에게 자신을 보이고, 네가 깨끗이 치유된 증거로 모세가 명한 제물을 드리라.” 그러나 이 사람은 예수께서 지시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그는 온 동네에 다니며 예수께서 자기 나병을 치유했다고 떠들기 시작했으며, 마을 전체가 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질병에서 깨끗이 나은 것을 사람들이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신에게 권면하신대로 제사장에게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치유하셨다는 소식을 그가 사방에 퍼뜨린 결과, 환자들이 주(主)님께 모여들어, 그는 다음 날 일찍 일어나 그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동네로 다시 들어가지 않았지만, 광산 근처 변두리에 이틀을 남아 있으면서 믿는 광부들에게 하늘나라의 복음에 대해 계속 더 가르치셨습니다.

146:4.5 (1644.1) This cleansing of the leper was the first so-called miracle which Jesus had intentionally and deliberately performed up to this time. And this was a case of real leprosy. 나병환자를 이렇게 고친 것은 예수께서 이때까지 의도적으로, 고의적으로 행한 소위 첫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진짜 나병의 경우였습니다.

146:4.6 (1644.2) From Iron they went to Gischala, spending two days proclaiming the gospel, and then departed for Chorazin, where they spent almost a week preaching the good news; but they were unable to win many believers for the kingdom in Chorazin. In no place where Jesus had taught had he met with such a general rejection of his message. The sojourn at Chorazin was very depressing to most of the apostles, and Andrew and Abner had much difficulty in upholding the courage of their associates. And so, passing quietly through Capernaum, they went on to the village of Madon, where they fared little better. There prevailed in the minds of most of the apostles the idea that their failure to meet with success in these towns so recently visited was due to Jesus’ insistence that they refrain, in their teaching and preaching, from referring to him as a healer. How they wished he would cleanse another leper or in some other manner so manifest his power as to attract the attention of the people! But the Master was unmoved by their earnest urging. 그들은 이론에서 기스칼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며 이틀을 지낸 후, 코라진으로 떠나, 거기에서 그들이 복음을 전도하며 거의 1주일을 보냈지만 하늘나라를 믿는 신자들을 코라진에서 많이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셨던 어떤 곳에서도 그의 메시지가 그토록 전반적으로 거부당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도들은 코라진에 머물면서 많이 억눌렸으며, 안드레와 아브너는 동료들의 용기를 유지하기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조용히 가버나움을 지나 그들은 줄곧 매돈 마을로 갔는데, 거기에서도 일이 잘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방문했던 이런 마을들에서 성공하지 못한 실패가, 가르치고 전도할 때, 예수님을 치유자로서 사도들이 언급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주장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대부분의 사도들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예수께서 또 다른 나병환자를 고치거나 다른 방식으로 그의 권능을 드러내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를 그들이 얼마나 바랐던가! 그러나 주(主)님은 그들의 진지한 재촉에 꼼짝하지 않으셨습니다.

5. Back in Cana 가나로 돌아옴

191124 하나님 권능을 믿는 신앙 요4:46-54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46 Once more he visited Cana in Galilee, where he had turned the water into wine. And there was a certain royal official whose son lay sick at Capernaum. 47 When this man heard that Jesus had arrived in Galilee from Judea, he went to him and begged him to come and heal his son, who was close to death. 48 “Unless you people see miraculous signs and wonders,” Jesus told him, “you will never believe.” 49 The royal official said, “Sir, come down before my child dies.” 50 Jesus replied, “You may go. Your son will live.” The man took Jesus at his word and departed. 51 While he was still on the way, his servants met him with the news that his boy was living. 52 When he inquired as to the time when his son got better, they said to him, “The fever left him yesterday at the seventh hour.” 53 Then the father realized that this was the exact time at which Jesus had said to him, “Your son will live.” So he and all his household believed. 54 This was the second miraculous sign that Jesus performed, having come from Judea to Galilee.

146:5.1 (1644.3) The apostolic party was greatly cheered when Jesus announced, “Tomorrow we go to Cana.” They knew they would have a sympathetic hearing at Cana, for Jesus was well known there. They were doing well with their work of bringing people into the kingdom when, on the third day, there arrived in Cana a certain prominent citizen of Capernaum, Titus, who was a partial believer, and whose son was critically ill. He heard that Jesus was at Cana; so he hastened over to see him. The believers at Capernaum thought Jesus could heal any sickness. 예수께서 “우리가 내일 가나로 갈 것이라.”고 발표하시자, 사도 일행은 매우 기뻤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잘 알려져 있어서 가나에서는 호의적으로 경청하며 모일 것을 그들이 알았습니다. 그들이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사역을 잘 하고 있던 셋째 날 가버나움의 저명인사 타이투스가 가나에 도착했는데, 그는 어중간한 신자로서 그의 아들은 위독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가나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나러 서둘러 갔습니다. 가버나움의 신자들은 예수께서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46:5.2 (1644.4) When this nobleman had located Jesus in Cana, he besought him to hurry over to Capernaum and heal his afflicted son. While the apostles stood by in breathless expectancy, Jesus, looking at the father of the sick boy, said: “How long shall I bear with you? The power of God is in your midst, but except you see signs and behold wonders, you refuse to believe.” But the nobleman pleaded with Jesus, saying: “My Lord, I do believe, but come ere my child perishes, for when I left him he was even then at the point of death.” And when Jesus had bowed his head a moment in silent meditation, he suddenly spoke, “Return to your home; your son will live.” Titus believed the word of Jesus and hastened back to Capernaum. And as he was returning, his servants came out to meet him, saying, “Rejoice, for your son is improved — he lives.” Then Titus inquired of them at what hour the boy began to mend, and when the servants answered “yesterday about the seventh hour the fever left him,” the father recalled that it was about that hour when Jesus had said, “Your son will live.” And Titus henceforth believed with a whole heart, and all his family also believed. This son became a mighty minister of the kingdom and later yielded up his life with those who suffered in Rome. Though the entire household of Titus, their friends, and even the apostles regarded this episode as a miracle, it was not. At least this was not a miracle of curing physical disease. It was merely a case of preknowledge concerning the course of natural law, just such knowledge as Jesus frequently resorted to subsequent to his baptism. 이 귀인(貴人)이 가나에서 예수님을 만나자, 가버나움으로 서둘러 가셔서 괴로워하는 자기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사도들이 숨을 죽이고 서 있는 동안, 예수님은 아픈 아들의 아버지를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얼마나 오래 참으랴? 너희 중에 하나님의 권능이 있지만, 너희는 표적과 이적을 보지 못하면 믿기를 거절하는구나.” 그러자 이 귀인(貴人)이 예수께 간청하며 말했습니다. “내 주(主)여, 제가 믿습니다. 그러나 제 아들이 죽기 전에 가소서. 제가 떠날 때, 그 아이는 거의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잠시 고개를 숙여 묵상(默想)하다가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라. 네 아들이 살 것이다.” 타이투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버나움으로 서둘러 돌아갔습니다. 그가 돌아가는 중에 그의 하인들이 그를 만나러 나와 말했습니다. “기뻐하십시오. 당신의 아들이 호전(好轉)되었습니다. ─그가 살았습니다.” 그 때 타이투스가 그들에게 몇 시에 소년이 낫기 시작했는지 묻자, 하인들이 “어제 제7시(오후 1시) 경에 열기가 떨어졌습니다.”라고 말하자,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리라.”고 말씀하셨던 시각 무렵임을 그 아버지는 생각해냈습니다. 이후 타이투스는 전심으로 믿었고, 그의 온 가족들도 믿었습니다. 이 아들은 하늘나라의 막강한 사역자가 되었고, 나중에 로마에서 순교하던 자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타이투스의 모든 가족들, 친구들 및 사도들도 이 특별한 사건을 기적으로 여겼지만,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이것은 육신의 병을 치료한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 법칙의 과정에 대한 사전지식의 경우로써 예수께서 세례 이후 자주 사용하시던 바로 그런 지식이었습니다.

146:5.3 (1645.1) Again was Jesus compelled to hasten away from Cana because of the undue attention attracted by the second episode of this sort to attend his ministry in this village. The townspeople remembered the water and the wine, and now that he was supposed to have healed the nobleman’s son at so great a distance, they came to him, not only bringing the sick and afflicted but also sending messengers requesting that he heal sufferers at a distance. And when Jesus saw that the whole countryside was aroused, he said, “Let us go to Nain.” 이 마을에서 이런 종류의 특별한 사건을 두 번째 행하심으로 지나친 관심을 끌게 되어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다시 가나를 서둘러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물과 포도주를 기억했고, 이제 그가 그토록 먼 거리에서 귀인의 아들을 고친 것으로 여겨서, 그들은 그에게 환자와 시달리는 자들을 데려올 뿐만 아니라, 그가 멀리서 환자들을 치료하시도록 요청하는 메신저들을 또한 보냈습니다. 모든 시골의 떠들썩한 반응을 보신 예수님은 “나인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6. Nain and the Widow’s Son 나인과 과부의 아들

191201 기적과 의식(意識)의 확장 눅7:11-17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쌔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1 Soon afterward, Jesus went to a town called Nain, and his disciples and a large crowd went along with him. 12 As he approached the town gate, a dead person was being carried out–the only son of his mother, and she was a widow. And a large crowd from the town was with her. 13 When the Lord saw her, his heart went out to her and he said, “Don’t cry.”14 Then he went up and touched the coffin, and those carrying it stood still. He said, “Young man, I say to you, get up!” 15 The dead man sat up and began to talk, and Jesus gave him back to his mother. 16 They were all filled with awe and praised God. “A great prophet has appeared among us,” they said. “God has come to help his people.” 17 This news about Jesus spread throughout Judea and the surrounding country.

146:6.1 (1645.2) These people believed in signs; they were a wonder-seeking generation. By this time the people of central and southern Galilee had become miracle minded regarding Jesus and his personal ministry. Scores, hundreds, of honest persons suffering from purely nervous disorders and afflicted with emotional disturbances came into Jesus’ presence and then returned home to their friends announcing that Jesus had healed them. And such cases of mental healing these ignorant and simple-minded people regarded as physical healing, miraculous cures. 이 사람들은 표적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구하는 세대였습니다. 이때까지 갈릴리 중부와 남부의 사람들은 예수님과 그의 개인적 사역에 대해서 기적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완전히 신경쇠약과 정서장애로 시달리는 수십, 수백의 정직한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온 후 집으로 돌아가 자기 친구들에게, 예수께서 자신들을 치유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무지하고 단순한 이 사람들은 그런 정신 치료의 경우를 육체적 치유, 기적의 치료로 여겼습니다.

146:6.2 (1645.3) When Jesus sought to leave Cana and go to Nain, a great multitude of believers and many curious people followed after him. They were bent on beholding miracles and wonders, and they were not to be disappointed. As Jesus and his apostles drew near the gate of the city, they met a funeral procession on its way to the near-by cemetery, carrying the only son of a widowed mother of Nain. This woman was much respected, and half of the village followed the bearers of the bier of this supposedly dead boy. When the funeral procession had come up to Jesus and his followers, the widow and her friends recognized the Master and besought him to bring the son back to life. Their miracle expectancy was aroused to such a high pitch they thought Jesus could cure any human disease, and why could not such a healer even raise the dead? Jesus, while being thus importuned, stepped forward and, raising the covering of the bier, examined the boy. Discovering that the young man was not really dead, he perceived the tragedy which his presence could avert; so, turning to the mother, he said: “Weep not. Your son is not dead; he sleeps. He will be restored to you.” And then, taking the young man by the hand, he said, “Awake and arise.” And the youth who was supposed to be dead presently sat up and began to speak, and Jesus sent them back to their homes. 예수께서 가나를 떠나 나인으로 가려 하자, 수많은 신자들과 호기심 있는 여러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들은 기적과 이적에 몰두했으며,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성문 근처에 이르렀을 때, 나인의 한 홀어머니의 외아들을 운구하여 근처 공동묘지를 향하는 장례 행렬을 만났습니다. 이 여인은 아주 존경을 받고 있어서, 동네 사람들 절반이, 죽었다고 여긴 이 소년의 관을 들고 가는 상여꾼(喪輿시신 운반자)들을 따라갔습니다. 장례의 행렬이 예수님과 그의 신자들 앞에 이르자, 과부와 그녀의 친구들이 주(主)님을 알아보고 아들을 살려달라고 그에게 간청했습니다. 기적의 기대감이 높이 일어나, 예수께서 인간의 어떤 병도 고칠 수 있으니, 그런 치유자라면 죽은 자도 살릴 수 있으리라고 그들이 생각했습니다. 끈질긴 간청을 받으면서, 예수님은 앞으로 나아가 관의 뚜껑을 열고 그 소년을 살펴보셨습니다. 그 청년이 실제로 죽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자신이 막을 수 있는 비극임을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를 향해 말하셨습니다. “울지 말라. 너의 아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느니라. 그가 너에게 되돌아오리라.” 그런 후 청년의 손을 잡고 “깨어 일어나라.”고 말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은 것으로 여겼던 청년이 즉시 일어나 앉아 말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은 그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146:6.3 (1645.4) Jesus endeavored to calm the multitude and vainly tried to explain that the lad was not really dead, that he had not brought him back from the grave, but it was useless. The multitude which followed him, and the whole village of Nain, were aroused to the highest pitch of emotional frenzy. Fear seized many, panic others, while still others fell to praying and wailing over their sins. And it was not until long after nightfall that the clamoring multitude could be dispersed. And, of course, notwithstanding Jesus’ statement that the boy was not dead, everyone insisted that a miracle had been wrought, even the dead raised. Although Jesus told them the boy was merely in a deep sleep, they explained that that was the manner of his speaking and called attention to the fact that he always in great modesty tried to hide his miracles. 예수님은 군중을 진정시키고, 그 젊은이가 실제로 죽지 않았으며, 자신이 그를 죽음에서 되살리지 않았다고 설명하려고 애쓰셨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군중과 나인의 온 동네는 감정적 격앙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다수가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다른 이들은 공포에 빠진 한편 다른 이들은 계속 엎드려 기도하며 자신들의 죄를 한탄하여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한참 지난 후 소란스런 군중들이 흩어졌습니다. 물론 소년이 죽지 않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기적이 일어났으며 죽은 자도 일어났다고 모든 사람이 주장했습니다. 그 소년은 단지 깊이 잠들었던 것이라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방식이라고 그들이 설명했으며, 그는 항상 아주 조심스럽게 자신의 기적을 숨기려 하셨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146:6.4 (1646.1) So the word went abroad throughout Galilee and into Judea that Jesus had raised the widow’s son from the dead, and many who heard this report believed it. Never was Jesus able to make even all his apostles fully understand that the widow’s son was not really dead when he bade him awake and arise. But he did impress them sufficiently to keep it out of all subsequent records except that of Luke, who recorded it as the episode had been related to him. And again was Jesus so besieged as a physician that he departed early the next day for Endor.

7. At Endor 엔도르에서

191208 오순절 이전의 탈선한 중도자들 삼상 28:7-25 7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8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쌔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는 사울이 가로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올리라 9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의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10 사울이 여호와로 그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당치 아니하리라 11 여인이 가로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사울이 가로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12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13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14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 모양이 어떠하냐 그가 가로되 한 노인이 올라 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줄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15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군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 나의 행할 일을 배우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16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17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신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18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1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라 20 사울이 갑자기 땅에 온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을 인하여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 기력이 진하였으니 이는 그가 종일 종야에 식물을 먹지 못하였음이라 21 그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심히 고통함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여종이 왕의 말씀을 듣고 나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왕이 내게 이르신 말씀을 청종하였사오니 22 그런즉 청컨대 이제 여종의 말을 들으사 나로 왕의 앞에 한 조각 떡을 드리게 하시고 왕은 잡수시고 길 가실 때에 기력을 얻으소서 23 사울이 거절하여 가로되 내가 먹지 아니하겠노라 그 신하들과 여인이 강권하매 그 말을 듣고 땅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으니라 24 여인의 집에 살진 송아지가 있으므로 그것을 급히 잡고 가루를 취하여 뭉쳐 무교병을 만들고 구워서 25 사울의 앞에와 그 신하들의 앞에 드리니 그들이 먹고 일어나서 그 밤에 가니라 7 Saul then said to his attendants, “Find me a woman who is a medium, so I may go and inquire of her.” “There is one in Endor,” they said. 8 So Saul disguised himself, putting on other clothes, and at night he and two men went to the woman. “Consult a spirit for me,” he said, “and bring up for me the one I name.” 9 But the woman said to him, “Surely you know what Saul has done. He has cut off the mediums and spiritists from the land. Why have you set a trap for my life to bring about my death?” 10 Saul swore to her by the LORD, “As surely as the LORD lives, you will not be punished for this.” 11 Then the woman asked, “Whom shall I bring up for you?” “Bring up Samuel,” he said. 12 When the woman saw Samuel, she cried out at the top of her voice and said to Saul, “Why have you deceived me? You are Saul!” 13 The king said to her, “Don’t be afraid. What do you see?” The woman said, “I see a spirit coming up out of the ground.” 14 “What does he look like?” he asked. “An old man wearing a robe is coming up,” she said. Then Saul knew it was Samuel, and he bowed down and prostrated himself with his face to the ground. 15 Samuel said to Saul, “Why have you disturbed me by bringing me up?” “I am in great distress,” Saul said. “The Philistines are fighting against me, and God has turned away from me. He no longer answers me, either by prophets or by dreams. So I have called on you to tell me what to do.” 16 Samuel said, “Why do you consult me, now that the LORD has turned away from you and become your enemy? 17 The LORD has done what he predicted through me. The LORD has torn the kingdom out of your hands and given it to one of your neighbors—to David. 18 Because you did not obey the LORD or carry out his fierce wrath against the Amalekites, the LORD has done this to you today. 19 The LORD will hand over both Israel and you to the Philistines, and tomorrow you and your sons will be with me. The LORD will also hand over the army of Israel to the Philistines.” 20 Immediately Saul fell full length on the ground, filled with fear because of Samuel’s words. His strength was gone, for he had eaten nothing all that day and night. 21 When the woman came to Saul and saw that he was greatly shaken, she said, “Look, your maidservant has obeyed you. I took my life in my hands and did what you told me to do. 22 Now please listen to your servant and let me give you some food so you may eat and have the strength to go on your way.” 23 He refused and said, “I will not eat.” But his men joined the woman in urging him, and he listened to them. He got up from the ground and sat on the couch. 24 The woman had a fattened calf at the house, which she butchered at once. She took some flour, kneaded it and baked bread without yeast. 25 Then she set it before Saul and his men, and they ate. That same night they got up and left.

146:7.1 (1646.2) At Endor Jesus escaped for a few days from the clamoring multitudes in quest of physical healing. During their sojourn at this place the Master recounted for the instruction of the apostles the story of King Saul and the witch of Endor. Jesus plainly told his apostles that the stray and rebellious midwayers who had oftentimes impersonated the supposed spirits of the dead would soon be brought under control so that they could no more do these strange things. He told his followers that, after he returned to the Father, and after they had poured out their spirit upon all flesh, no more could such semispirit beings — so-called unclean spirits — possess the feeble- and evil-minded among mortals엔도르에서 예수님은 육체적 치유를 시끄럽게 요구하는 군중으로부터 며칠을 피하셨습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주(主)님은 사울 왕과 엔도르의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사도들을 가르치려고 자세히 얘기하셨습니다. 죽은 자의 영들로 여겨져 자주 남의 흉내를 내었고, 탈선하여 반역한 중도자들이 곧 통제되어 더 이상 이런 이상한 짓들을 할 수 없게 되리라고 예수는 사도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께 돌아간 후, 자기들이 자신들의 영을 모든 육신에 쏟아 부은 후, 소위 더러운 영들로 불리는 그런 반(半)영 존재들이 더 이상 연약하고 악한 의도를 지닌 필사자들에게 빙의(憑依옮겨 붙음)될 수 없으리라고 신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46:7.2 (1646.3) Jesus further explained to his apostles that the spirits of departed human beings do not come back to the world of their origin to communicate with their living fellows. Only after the passing of a dispensational age would it be possible for the advancing spirit of mortal man to return to earth and then only in exceptional cases and as a part of the spiritual administration of the planet. 예수는 자기 사도들에게, 죽은 인간 존재들의 영들은 살아있는 자기 동료들과 교통하려고 기원된 그들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더 설명하셨습니다. 다만 섭리 시대가 지난 후, 진보된 필사 사람의 영이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데, 게다가 예외적 경우에, 행성의 영적 경영의 부분으로서만 가능합니다.

146:7.3 (1646.4) When they had rested two days, Jesus said to his apostles: “On the morrow let us return to Capernaum to tarry and teach while the countryside quiets down. At home they will have by this time partly recovered from this sort of excitement.” 그들이 이틀간 쉬었을 때,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골이 조용해지는 동안 우리는 내일 가버나움으로 돌아가서, 머물러 가르치자. 그들의 상태가 이 무렵 이런 종류의 소동에서 얼마간 나아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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