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196 The Faith of Jesus 예수님의 신앙

Paper 196

The Faith of Jesus 예수님의 신앙

170521 예수님의 신앙 1 – 서론 1 시143:10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Teach me to do your will, for you are my God; may your good Spirit lead me on level ground.

196:0.1 (2087.1) JESUS enjoyed a sublime and wholehearted faith in God. He experienced the ordinary ups and downs of mortal existence, but he never religiously doubted the certainty of God’s watchcare and guidance. His faith was the outgrowth of the insight born of the activity of the divine presence, his indwelling Adjuster. His faith was neither traditional nor merely intellectual; it was wholly personal and purely spiritual. 예수님은 숭고한 신앙과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누리셨습니다. 그는 필사(必死) 존재의 일반적인 기복(높아짐과 낮아짐起伏)을 겪으셨지만, 확실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에 대해 결코 신앙적으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앙은 신적 현존 즉, 내재(內在)하는 조절자의 활동에서 발생한 통찰력의 결과였습니다. 그의 신앙은 전통적이거나 단순히 지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온전히 개인적이며 순전히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196:0.2 (2087.2) The human Jesus saw God as being holy, just, and great, as well as being true, beautiful, and good. All these attributes of divinity he focused in his mind as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Jesus’ God was at one and the same time “The Holy One of Israel” and “The living and loving Father in heaven.” The concept of God as a Father was not original with Jesus, but he exalted and elevated the idea into a sublime experience by achieving a new revelation of God and by proclaiming that every mortal creature is a child of this Father of love, a son of God. 인간 예수는 하나님이 진실하고 아름답고 선하실 뿐 아니라 거룩하고 공정(公正)하며 위대하신 분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모든 신성의 속성들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으로 마음에 모아서 집중했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시며 동시에 “살아계시며 사랑하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로서 하나님 개념은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성취하고, 모든 필사(必死) 창조물이 이 사랑의 아버지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여, 그 개념(하나님 아버지)을 숭고한 체험으로 높이고 향상시켰습니다.

196:0.3 (2087.3) Jesus did not cling to faith in God as would a struggling soul at war with the universe and at death grips with a hostile and sinful world; he did not resort to faith merely as a consolation in the midst of difficulties or as a comfort in threatened despair; faith was not just an illusory compensation for the unpleasant realities and the sorrows of living. In the very face of all the natural difficulties and the temporal contradictions of mortal existence, he experienced the tranquillity of supreme and unquestioned trust in God and felt the tremendous thrill of living, by faith, in the very presence of the heavenly Father. And this triumphant faith was a living experience of actual spirit attainment. Jesus’ great contribution to the values of human experience was not that he revealed so many new ideas about the Father in heaven, but rather that he so magnificently and humanly demonstrated a new and higher type of living faith in God. Never on all the worlds of this universe, in the life of any one mortal, did God ever become such a living reality as in the human experience of Jesus of Nazareth. 예수님은, 우주와의 전쟁에서 분투하는 사람(혼)이나 적개심과 죄로 가득한 세상과 사생결단을 하듯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어려움 가운데에서 위안이나, 절망의 위협 중에 얻는 위로로서 신앙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은 그저 불쾌한 현실과 생활의 슬픔에 대한 허상(虛像)적 보상(報償)이 아니었습니다. 필사(必死) 존재가 겪는 모든 자연스런 곤경과 현세의 모순에 바로 직면해서, 그는 최상의 평온을 누리면서 의심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하늘 아버지의 바로 그 존전에서 신앙으로 살아가는 엄청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승리를 거둔 신앙은 실제로 영에 도달한 살아있는 체험이었습니다. 인간 체험의 가치에 대해 예수께서 크게 기여한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하여 새 관념을 많이 드러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새롭고 더 높은 유형의 하나님에 대한 살아 있는 신앙을 장엄하게 인간적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의 모든 세상에서, 어느 한 필사(必死)자의 일생에, 나사렛 예수의 인간 체험의 경우처럼 하나님이 그토록 살아있는 실체가 되신 적이 없었습니다.

170528 예수님의 신앙 2 – 서론 2 막11: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Have faith in God,” Jesus answered.

196:0.4 (2087.4) In the Master’s life on Urantia, this and all other worlds of the local creation discover a new and higher type of religion, religion based on personal spiritual relations with the Universal Father and wholly validated by the supreme authority of genuine personal experience. This living faith of Jesus was more than an intellectual reflection, and it was not a mystic meditation. 주(主)님의 지상(유란시아) 생활에서, 지역 창조의 이 세계와 다른 모든 세계들은, 새롭고 더 높은 유형의 종교, 우주 아버지와 개인적인 영적 관계에 근거하고 있으며, 진정한 개인적 체험의 최극 권위에 의해 전적으로 확인된 종교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이 살아있는 신앙은 지적(知的)인 반사 이상(以上)이었으며, 신비적 명상이 아니었습니다.

196:0.5 (2087.5) Theology may fix, formulate, define, and dogmatize faith, but in the human life of Jesus faith was personal, living, original, spontaneous, and purely spiritual. This faith was not reverence for tradition nor a mere intellectual belief which he held as a sacred creed, but rather a sublime experience and a profound conviction which securely held him. His faith was so real and all-encompassing that it absolutely swept away any spiritual doubts and effectively destroyed every conflicting desire. Nothing was able to tear him away from the spiritual anchorage of this fervent, sublime, and undaunted faith. Even in the face of apparent defeat or in the throes of disappointment and threatening despair, he calmly stood in the divine presence free from fear and fully conscious of spiritual invincibility. Jesus enjoyed the invigorating assurance of the possession of unflinching faith, and in each of life’s trying situations he unfailingly exhibited an unquestioning loyalty to the Father’s will. And this superb faith was undaunted even by the cruel and crushing threat of an ignominious death. 신학(神學)은 신앙을 고착시키고, 공식화하며, 정의(定意)하고, 교리화(독단적으로 단정)하겠지만, 예수님의 인간 일생에서 신앙은 개인적이고, 살아있으며, 근원적이고, 자발적이며, 순전히 영적이었습니다. 이 신앙은 전통에 대한 숭배도 아니었고, 그가 신성한 신조(信條)로 지녔던 단순한 지적 믿음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를 단단히 붙든 숭고한 체험이자 깊은 확신이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너무나 실제적이며 모든 것을 포괄했기 때문에, 그 어떤 영적 의심들도 절대적으로 쓸어버리고, 상반되는 모든 욕망을 실질적으로 파괴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이 열렬하고 숭고한 불굴(不屈)의 신앙이 닻을 내린 영적 정박지(碇泊地)로부터 그를 떼어낼 수 없었습니다. 명백한 패배에 직면하거나 또는 실망과 위협적인 절망의 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두려움 없이 영적 불굴(不屈불패)을 충만히 의식하면서 신적 현존 앞에서 차분하게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위축되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활력을 불어넣는 확신을 향유하였으며, 일생의 시험적인 각각의 상황에서 그는 아버지의 뜻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충성을, 끊임없이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이 장엄한 신앙은 심지어 치욕스러운 죽음의 잔인하고 압도적인 위협에 의해서도 꺾이지 않았습니다.

196:0.6 (2088.1) In a religious genius, strong spiritual faith so many times leads directly to disastrous fanaticism, to exaggeration of the religious ego, but it was not so with Jesus. He was not unfavorably affected in his practical life by his extraordinary faith and spirit attainment because this spiritual exaltation was a wholly unconscious and spontaneous soul expression of his personal experience with God. 종교적 특성에 있어서, 강한 영적 신앙은 너무나 많은 경우에 비참한 광신(狂信), 종교적 과대 자아로 직접 이끌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실생활에 있어서 특별한 신앙과 영적 달성으로 인해서 불리하게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영적 고양(高揚)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체험이 전적으로 무의식적이며 자발적인 혼의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170604 예수님의 신앙 3 – 서론 3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But seek ye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shall be added unto you.

196:0.7 (2088.2) The all-consuming and indomitable spiritual faith of Jesus never became fanatical, for it never attempted to run away with his well-balanced intellectual judgments concerning the proportional values of practical and commonplace social, economic, and moral life situations. The Son of Man was a splendidly unified human personality; he was a perfectly endowed divine being; he was also magnificently co-ordinated as a combined human and divine being functioning on earth as a single personality. Always did the Master co-ordinate the faith of the soul with the wisdom-appraisals of seasoned experience. Personal faith, spiritual hope, and moral devotion were always correlated in a matchless religious unity of harmonious association with the keen realization of the reality and sacredness of all human loyalties — personal honor, family love, religious obligation, social duty, and economic necessity. 온통 절실하며 굴복할 줄 모르는 예수님의 영적 믿음은 결코 광신이 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의 신앙은 실제적이며 평범한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생활 상황의 비례적 가치에 관한 그의 잘 균형이 잡힌 지적 판단에서 결코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훌륭하게 통합된 인간 고유성이었습니다. 그는 완전하게 증여된 신적 존재였습니다. 그는 또한 이 땅에서 인간 존재와 신적 존재가 결합하여 훌륭하게 통합된 하나의 고유성으로 활동하는 존재이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혼의 신앙을 성숙한 경험으로 얻은 지혜의 평가로 조화를 이루셨습니다. 모든 인간적 충성─개인적 명예, 가족적 사랑, 종교적 의무, 사회적 의무, 그리고 경제적 필요성─의 현실과 신성함에 대한 선명한 자각(깨달음)과 조화롭게 연합하여 비길 데 없는 종교적 통일성 안에서, 개인적 신앙, 영적 소망 그리고 도덕적 헌신은 항상 서로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196:0.8 (2088.3) The faith of Jesus visualized all spirit values as being found in the kingdom of God; therefore he said, “Seek first the kingdom of heaven.” Jesus saw in the advanced and ideal fellowship of the kingdom the achievement and fulfillment of the “will of God.” The very heart of the prayer which he taught his disciples was, “Your kingdom come; your will be done.” Having thus conceived of the kingdom as comprising the will of God, he devoted himself to the cause of its realization with amazing self-forgetfulness and unbounded enthusiasm. But in all his intense mission and throughout his extraordinary life there never appeared the fury of the fanatic nor the superficial frothiness of the religious egotist. 예수님의 신앙은 모든 영 가치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먼저 하늘나라를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진보된 이상적 친교 안에서 “하나님 뜻”이 성취(이루어짐)와 완성(실현)됨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의 바로 그 핵심은 “당신의 나라가 임하시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포함하는 것으로 나라를 이해했기에, 그는 그것을 실현하는 운동에 놀랄 정도로 자신을-잊어버리고, 한없는 열정으로 자신을 헌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극심한 임무와 그의 특별한 일생 전체를 통해서, 광신자의 격분이나 종교적 이기주의자의 피상적 천박함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96:0.9 (2088.4) The Master’s entire life was consistently conditioned by this living faith, this sublime religious experience. This spiritual attitude wholly dominated his thinking and feeling, his believing and praying, his teaching and preaching. This personal faith of a son in the certainty and security of the guidance and protection of the heavenly Father imparted to his unique life a profound endowment of spiritual reality. And yet, despite this very deep consciousness of close relationship with divinity, this Galilean, God’s Galilean, when addressed as Good Teacher, instantly replied, “Why do you call me good?” When we stand confronted by such splendid self-forgetfulness, we begin to understand how the Universal Father found it possible so fully to manifest himself to him and reveal himself through him to the mortals of the realms. 주(主)님의 일생 전체는 한결같이 이 살아있는 신앙, 이 숭고한 종교적 체험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이 영적 태도는 그의 사고와 느낌, 그의 믿음과 기도, 그의 가르침과 설교를 전적으로 지배하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인도와 보호의 확신과 보장에 대한 아들의 이 개인적 신앙은 그의 독특한 일생에 있어서 영적 실체의 심오한 자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신성과 가까운 관계의 바로 이 깊은 의식에도 불구하고, 이 갈릴리인, 하나님의 갈릴리인은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렸을 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일컫느냐?”라고 바로 응답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훌륭한 자아-망각을 대할 때, 우리는 어떻게 우주 아버지가 그에게 자신을 그렇게 충분히 나타내고 그 영역들의 필사자들에게 그를 통한 자기 계시가 어떻게 발견이 가능한지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170611 예수님의 신앙 4 – 서론 4 요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My food,” said Jesus, “is 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and to finish his work.

196:0.10 (2088.5) Jesus brought to God, as a man of the realm, the greatest of all offerings: the consecration and dedication of his own will to the majestic service of doing the divine will. Jesus always and consistently interpreted religion wholly in terms of the Father’s will. When you study the career of the Master, as concerns prayer or any other feature of the religious life, look not so much for what he taught as for what he did. Jesus never prayed as a religious duty. To him prayer was a sincere expression of spiritual attitude, a declaration of soul loyalty, a recital of personal devotion, an expression of thanksgiving, an avoidance of emotional tension, a prevention of conflict, an exaltation of intellection, an ennoblement of desire, a vindication of moral decision, an enrichment of thought, an invigoration of higher inclinations, a consecration of impulse, a clarification of viewpoint, a declaration of faith, a transcendental surrender of will, a sublime assertion of confidence, a revelation of courage, the proclamation of discovery, a confession of supreme devotion, the validation of consecration, a technique for the adjustment of difficulties, and the mighty mobilization of the combined soul powers to withstand all human tendencies toward selfishness, evil, and sin. He lived just such a life of prayerful consecration to the doing of his Father’s will and ended his life triumphantly with just such a prayer. The secret of his unparalleled religious life was this consciousness of the presence of God; and he attained it by intelligent prayer and sincere worship — unbroken communion with God — and not by leadings, voices, visions, or extraordinary religious practices. 예수님은 그 영역의 사람으로서 모든 헌물 중에서 가장 큰 것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것은 신적 뜻을 행하는 장엄한 봉사에, 자신의 뜻을 봉헌하고 헌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일관되게 종교를 전적으로 아버지의 의지라는 관점에서 해석하셨습니다. 종교적 생활의 기도나 혹은 다른 면들에 관하여, 주(主)의 생애를 공부할 때, 그가 무엇을 가르쳤는가를 보기보다는, 그가 무엇을 행하셨는가를 바라보라. 예수님은 종교적 의무로서 기도를 한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에게 기도(祈禱)는 영적 태도의 진지한 표현, 혼의 충성에 대한 선언. 개인적 헌신에 대한 낭독, 감사의 표현, 감정적 긴장의 방지, 갈등의 예방, 지적 사고의 고양(高揚), 욕망을 고귀하게 만듦, 도덕적 결정의 입증, 생각의 풍성함, 더욱 높은 성향의 활력화, 충동의 봉헌, 관점의 해명, 신앙의 선언, 의지의 초월적 항복(양도), 자신감의 숭고한 단언, 용기의 계시, 발견의 선언, 최극 헌신의 고백, 봉헌의 확인, 어려움의 조절기법, 그리고 이기심, 악, 죄를 향해 달려가는 인간 성향을 물리치려고 결합한 혼의 권능을 힘차게 동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행함에 있어서, 기도하며 헌신하는 바로 그러한 일생을 사셨으며, 바로 그러한 기도로 자신의 일생을 승리로 마치셨습니다. 그의 비교될 수없는 종교적 일생의 비밀은 하나님 현존에 대한 이 의식(意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지능적 기도와 진지한 경배─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로 얻었으며 인도됨이나, 음성이나, 환상 또는 비상한 종교적 관습에 의해 얻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196:0.11 (2089.1) In the earthly life of Jesus, religion was a living experience, a direct and personal movement from spiritual reverence to practical righteousness. The faith of Jesus bore the transcendent fruits of the divine spirit. His faith was not immature and credulous like that of a child, but in many ways it did resemble the unsuspecting trust of the child mind. Jesus trusted God much as the child trusts a parent. He had a profound confidence in the universe — just such a trust as the child has in its parental environment. Jesus’ wholehearted faith in the fundamental goodness of the universe very much resembled the child’s trust in the security of its earthly surroundings. He depended on the heavenly Father as a child leans upon its earthly parent, and his fervent faith never for one moment doubted the certainty of the heavenly Father’s overcare. He was not disturbed seriously by fears, doubts, and skepticism. Unbelief did not inhibit the free and original expression of his life. He combined the stalwart and intelligent courage of a full-grown man with the sincere and trusting optimism of a believing child. His faith grew to such heights of trust that it was devoid of fear. 예수님의 지상 생애에서 종교는 살아있는 체험, 영적 경외심에서부터 실질적인 공의로 넘어가는 직접적이고 개인적 활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앙은 신적 영의 초월적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아이의 것처럼 미숙하거나 경솔한 것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아이의 마음처럼 의심하지 않는 신뢰와 비슷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부모를 신뢰하는 것과 아주 흡사하게 하나님을 신뢰하셨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의 환경을 신뢰하듯이 바로 그렇게 예수님은 우주를 깊이 신뢰하셨습니다. 우주의 근본적인 선함에 대한 예수님의 전심을 다하는 신앙은 지상 환경의 안전함을 믿는 아이의 신뢰와 매우 흡사하였습니다. 그는 어린아이가 지상의 부모에게 의지하듯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의지하셨고, 그의 열렬한 신앙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지나친 보호에 대한 확신을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려움과 의심 그리고 회의(懷疑)로 인하여 심각하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불신이 그의 일생에서 자유롭고 기원적인 표현을 가로막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충분히 성장한 어른의 건장하고 지적인 용기와, 믿는 아이가 지닌 순수하게 신뢰하는 낙천성을 결합하셨습니다. 그의 신앙은 두려움이 없는 그러한 신뢰의 경지까지 성장하셨습니다.

170618 예수님의 신앙 5 –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 서론 5 마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And he said: “I tell you the truth,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littl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196:0.12 (2089.2) The faith of Jesus attained the purity of a child’s trust. His faith was so absolute and undoubting that it responded to the charm of the contact of fellow beings and to the wonders of the universe. His sense of dependence on the divine was so complete and so confident that it yielded the joy and the assurance of absolute personal security. There was no hesitating pretense in his religious experience. In this giant intellect of the full-grown man the faith of the child reigned supreme in all matters relating to the religious consciousness. It is not strange that he once said, “Except you become as a little child, you shall not enter the kingdom.” Notwithstanding that Jesus’ faith was childlike, it was in no sense childish. 예수님의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유치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신앙은 어린아이가 지닌 신뢰의 순수성에 도달하셨습니다. 그의 신앙은 그렇게 절대적이고 의심이 없어서 다른 동료 존재들과의 만남에 대한 매력과 우주의 경이로움들에 반응하였습니다. 신적인 것에 대한 그의 의존 감각은 그렇게 완벽하고 그렇게 자신만만하여 그것은 절대적 개인적 안전에 대한 기쁨과 확신을 낳았습니다. 그의 종교적 체험에는 주저하는 티가 전혀 없었습니다. 충분히-성장한 사람의 이 위대한 지성 안에서 어린아이의 신앙이 종교적 인식에 관계되는 모든 일들을 최고로 지배하였습니다. 그가 언젠가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고는, 너희가 하늘나라로 들어가지 못할지니라.”고 말씀한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유치하지는 않았습니다.

170625 예수님의 신앙 6 – 나를 따르라 요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Jesus said this to indicate the kind of death by which Peter would glorify God. Then he said to him, “Follow me!”

JESUS WANTS US TO BELIEVE WITH HIM
196:0.13 (2089.3) Jesus does not require his disciples to believe in him but rather to believe with him, believe in the reality of the love of God and in full confidence accept the security of the assurance of sonship with the heavenly Father. The Master desires that all his followers should fully share his transcendent faith. Jesus most touchingly challenged his followers, not only to believe what he believed, but also to believe as he believed. This is the full significance of his one supreme requirement, “Follow me.”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그와 함께 믿되, 하나님 사랑이 실체임을 믿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관계에 대한 확신이 보장됨을 충만한 자신감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주(主)님은 모든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초월적 신앙을 충분히 나누어 가지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믿었던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가 믿었던 것처럼 믿으라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가장 비장하게 도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를 따르라.”는 그의 한 가지 최상의 요구가 지닌 충분한 의미(意味)입니다.

170702 예수님의 신앙 7 – 하나님의 뜻 실천, 신앙으로 살아감 요6: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For I have come down from heaven not to do my will but to do the will of him who sent me.

196:0.14 (2090.1) Jesus’ earthly life was devoted to one great purpose — doing the Father’s will, living the human life religiously and by faith. The faith of Jesus was trusting, like that of a child, but it was wholly free from presumption. He made robust and manly decisions, courageously faced manifold disappointments, resolutely surmounted extraordinary difficulties, and unflinchingly confronted the stern requirements of duty. It required a strong will and an unfailing confidence to believe what Jesus believed and as he believed. 예수님의 지상 일생은 단 한 가지의 목적─아버지의 뜻을 행함, 인간의 일생을 종교적으로 그리고 신앙으로 살아감─에 바쳐졌습니다. 예수님의 신앙은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신뢰하는 것이었지만, 전혀 주제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건하고 당당하게 결정을 내리셨으며, 수많은 실망들에 용감하게 대처하였고, 특별한 어려움들을 단호히 극복하셨으며, 의무의 엄격한 요구들에 망설임 없이 직면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믿었던 것을 믿고, 그가 믿은 대로 믿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와 끊임없는 자신감이 요구되었습니다.

1. Jesus — The Man 예수─인간

170709 예수님의 신앙 8 – 인간 예수의 헌신 1 Jesus — The Man 마22:37-39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37 Jesus replied: ”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38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39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40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196:1.1 (2090.2) Jesus’ devotion to the Father’s will and the service of man was even more than mortal decision and human determination; it was a wholehearted consecration of himself to such an unreserved bestowal of love. No matter how great the fact of the sovereignty of Michael, you must not take the human Jesus away from men. The Master has ascended on high as a man, as well as God; he belongs to men; men belong to him. How unfortunate that religion itself should be so misinterpreted as to take the human Jesus away from struggling mortals! Let not the discussions of the humanity or the divinity of the Christ obscure the saving truth that Jesus of Nazareth was a religious man who, by faith, achieved the knowing and the doing of the will of God; he was the most truly religious man who has ever lived on Urantia. 아버지의 뜻과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대한 예수님의 헌신은 필사자의 결정과 인간의 결심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러한 아낌없는 사랑의 증여를 향해 전심을 다한 예수님 자신의 헌신이었습니다. 미가엘의 주권의 사실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너희는 인간 예수를 사람들로부터 떼어놓아서는 안 된다. 주(主)님은 하나님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높은 자리에 오르셨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속하시며, 사람들은 그에 속합니다. 종교가 스스로, 분투하는 필사자들로부터 인간 예수를 떼어놓을 정도로 그렇게 잘못 해석되어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토론들 때문에 나사렛 예수께서 신앙이 깊은 사람이시며, 신앙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행함을 성취하셨다는 구원의 진리가 흐려지지 않도록 하라. 그는 이제까지 지구(유란시아)에 살았던 최상의 참된 신앙인이셨습니다.

170716 예수님의 신앙 9 – 평범한 인간 예수 2 막12: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David himself calls him ‘Lord.’ How then can he be his son?” The large crowd listened to him with delight.

196:1.2 (2090.3) The time is ripe to witness the figurative resurrection of the human Jesus from his burial tomb amidst the theological traditions and the religious dogmas of nineteen centuries. Jesus of Nazareth must not be longer sacrificed to even the splendid concept of the glorified Christ. What a transcendent service if, through this revelation, the Son of Man should be recovered from the tomb of traditional theology and be presented as the living Jesus to the church that bears his name, and to all other religions! Surely the Christian fellowship of believers will not hesitate to make such adjustments of faith and of practices of living as will enable it to “follow after” the Master in the demonstration of his real life of religious devotion to the doing of his Father’s will and of consecration to the unselfish service of man. Do professed Christians fear the exposure of a self-sufficient and unconsecrated fellowship of social respectability and selfish economic maladjustment? Does institutional Christianity fear the possible jeopardy, or even the overthrow, of traditional ecclesiastical authority if the Jesus of Galilee is reinstated in the minds and souls of mortal men as the ideal of personal religious living? Indeed, the social readjustments, the economic transformations, the moral rejuvenations, and the religious revisions of Christian civilization would be drastic and revolutionary if the living religion of Jesus should suddenly supplant the theologic religion about Jesus. 19 세기의 신학적 전통과 종교적 교리 가운데 있는, 예수님이 묻힌 무덤으로부터, 인간 예수의 상징적인 부활을 증언할 시기가 무르익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은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라는 화려한 개념으로 더 이상 희생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계시를 통하여, 사람의 아들이 전통적 신학의 무덤으로부터 회복되어야하고 그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교회와 다른 모든 종교들에게, 살아 계신 예수로서 제시된다면, 얼마나 초월적인 봉사일 것인가! 기독교 신자 교인들의 친교(형제관계)는, 주(主)를 “뒤 따르는 것”이 가능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과 사람에 대한 이타적 봉사에 몸을 바친 종교적 헌신이라는 그의 실제 삶의 실연(實演) 안에서, 그를 따라 신앙과 삶의 실천에서 주저하지 않고 그러한 조정을 이루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믿는다고 공언한 기독교인들이 사회적인 체면과 경제에서의 이기적 조절-불량이라는 자아-충족적이고 헌신하지 않은 친교(동료관계)가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만약 갈릴리의 예수께서 개인적인 종교적 삶의 이상(理想)으로서, 필사 사람들의 마음과 혼속에, 본래대로 계시게 된다면, 제도화된 기독교는 전통적 교회 권위의 위험성, 또는 심지어 전복이 가능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가? 만약 예수님의 살아있는 종교가 예수에 대한 신학적인 종교를 갑자기 대신(代身)한다면, 기독교 문명에서의, 사회적인 재조정·경제적 변환·도덕적 원기의 회복, 그리고 종교적 교정은 정말로 극적이고도 혁명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196:1.3 (2090.4) To “follow Jesus” means to personally share his religious faith and to enter into the spirit of the Master’s life of unselfish service for man.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in human living is to find out what Jesus believed, to discover his ideals, and to strive for the achievement of his exalted life purpose. Of all human knowledge, that which is of greatest value is to know the religious life of Jesus and how he lived it.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그의 종교적인 신앙을 개인적으로 공유하고, 사람을 위하여 사심 없이 봉사한 주(主)님 일생의 영(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예수께서 믿었던 것을 찾아내고, 그의 이상들을 발견하며, 그의 드높여진 일생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분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지식 중에서, 가장 커다란 가치가 있는 것은 예수의 종교적 일생과 그가 어떻게 그 삶을 사셨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196:1.4 (2090.5) The common people heard Jesus gladly, and they will again respond to the presentation of his sincere human life of consecrated religious motivation if such truths shall again be proclaimed to the world. The people heard him gladly because he was one of them, an unpretentious layman; the world’s greatest religious teacher was indeed a layman. 보통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을 즐겁게 들었으며, 그러한 진리들이 다시 세상에 선포된다면, 봉헌(奉獻)된 종교적 동기를 지닌 그의 신실한 인간적 일생의 제시에 그들은 다시 응답할 것입니다. 그는 그들 중의 한 사람, 즉 허세가 없는 보통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말을 즐겁게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 교사(敎師)는 진실로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196:1.5 (2091.1) It should not be the aim of kingdom believers literally to imitate the outward life of Jesus in the flesh but rather to share his faith; to trust God as he trusted God and to believe in men as he believed in men. Jesus never argued about either the fatherhood of God or the brotherhood of men; he was a living illustration of the one and a profound demonstration of the other. 나라를 믿는 자들의 목표는 겉으로 나타난 육신으로 예수님의 일생을 문자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신앙을 공유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것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가 사람들을 믿었던 것처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버지 신분이나 사람들의 형제 신분에 대하여 결코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자의 살아있는 예증이었고 후자의 심오한 실증이었습니다.

196:1.6 (2091.2) Just as men must progress from the consciousness of the human to the realization of the divine, so did Jesus ascend from the nature of man to the consciousness of the nature of God. And the Master made this great ascent from the human to the divine by the conjoint achievement of the faith of his mortal intellect and the acts of his indwelling Adjuster. The fact-realization of the attainment of totality of divinity (all the while fully conscious of the reality of humanity) was attended by seven stages of faith consciousness of progressive divinization. These stages of progressive self-realization were marked off by the following extraordinary events in the Master’s bestowal experience: 사람들이 인간의 의식(意識)으로부터 신적인 것의 실현으로 진보해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사람의 본성으로부터 하나님 본성의 의식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주(主)님은 그의 필사 지성의 신앙과 내재하는 조절자의 활동이 결합된 성취로 인간으로부터 신적으로의 이 위대한 상승을 이루셨습니다. 신성의 전체성을 달성한 사실- 실현화는 (이 기간 내내 인간성의 실체를 충분히 의식하면서) 점진적으로 신성화되는 신앙 의식의 일곱 단계들을 따랐습니다. 이러한 점진적인 자아-실현의 단계들은 주(主)님의 증여 체험에서 다음과 같이 특별한 사건들로 구별되었습니다.

196:1.7 (2091.3) 1. The arrival of the Thought Adjuster. 생각조절자의 도착.

196:1.8 (2091.4) 2. The messenger of Immanuel who appeared to him at Jerusalem when he was about twelve years old. 그가 12살 때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나타난 임마누엘의 사자(使者).

196:1.9 (2091.5) 3. The manifestations attendant upon his baptism. 그의 세례에 수반된 현시(顯示)들.

196:1.10 (2091.6) 4. The experiences on the Mount of Transfiguration. 변화 산에서의 체험들.

196:1.11 (2091.7) 5. The morontia resurrection. 부활체(모론시아) 부활.

196:1.12 (2091.8) 6. The spirit ascension. 영의 상승.

196:1.13 (2091.9) 7. The final embrace of the Paradise Father, conferring unlimited sovereignty of his universe. 그의 우주의 무제한적 주권을 수여한 천국 아버지의 최종적 품에 안김(포옹).

2. The Religion of Jesus 예수님의 종교

170723 예수님의 신앙 10 – 예수님의 종교 1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Looking unto Jesus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who for the joy that was set before him endured the cross, despising the shame, and is set down at the right hand of the throne of God(kjv).

196:2.1 (2091.10) Some day a reformation in the Christian church may strike deep enough to get back to the unadulterated religious teachings of Jesus,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You may preach a religion about Jesus, but, perforce, you must live the religion of Jesus. In the enthusiasm of Pentecost, Peter unintentionally inaugurated a new religion, the religion of the risen and glorified Christ. The Apostle Paul later on transformed this new gospel into Christianity, a religion embodying his own theologic views and portraying his own personal experience with the Jesus of the Damascus road. The gospel of the kingdom is founded on the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of the Jesus of Galilee; Christianity is founded almost exclusively on the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of the Apostle Paul. Almost the whole of the New Testament is devoted, not to the portrayal of the significant and inspiring religious life of Jesus, but to a discussion of Paul’s religious experience and to a portrayal of his personal religious convictions. The only notable exceptions to this statement, aside from certain parts of Matthew, Mark, and Luke, are the Book of Hebrews and the Epistle of James. Even Peter, in his writing, only once reverted to the personal religious life of his Master. The New Testament is a superb Christian document, but it is only meagerly Jesusonian. 언젠가는 기독교 교회 안에서, 우리 신앙의 창시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의 섞이지 않은 종교적 가르침들로 돌아가려는 개혁이 충분히 깊게 일어날 것입니다. 너희는 예수님에 대한 종교를 전파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필연적으로 너희는 반드시 예수님의 종교를 살아야(실천해야)만 한다. 오순절의 열광 속에서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게(뜻하지 않게) 새로운 종교, 부활하여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의 종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후에 이 새로운 복음을 기독교, 그 자신의 신학적 견해들을 체현하면서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묘사한 종교로 변환시켰습니다(행9:1-20).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갈릴리 예수님의 개인적 종교 체험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거의 순전히 사도 바울의 개인적 종교 체험 위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신약의 거의 전부는, 의미 있고 영감을 주는 예수님의 종교적 일생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바울의 종교적 체험에 대한 토론과 그의 개인적인 종교적 확신들에 대한 묘사에 치우쳐 있습니다. 이 진술에 대해 유일하게 두드러진 예외들은,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 복음의 어떤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히브리서와 야고보서뿐입니다. 베드로마저도 그의 글 속에서 자기 주(主)님의 개인적인 종교적 일생에 단지 한번만 눈길을 돌렸을 뿐이었습니다(벧전2:21-23). 신약은 매우 훌륭한 기독교인의 문서이지만,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예수 공동체)로서 빈약할 따름입니다.

196:2.2 (2091.11) Jesus’ life in the flesh portrays a transcendent religious growth from the early ideas of primitive awe and human reverence up through years of personal spiritual communion until he finally arrived at that advanced and exalted status of the consciousness of his oneness with the Father. And thus, in one short life, did Jesus traverse that experience of religious spiritual progression which man begins on earth and ordinarily achieves only at the conclusion of his long sojourn in the spirit training schools of the successive levels of the pre-Paradise career. Jesus progressed from a purely human consciousness of the faith certainties of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to the sublime spiritual heights of the positive realization of his divine nature and to the consciousness of his close association with the Universal Father in the management of a universe. He progressed from the humble status of mortal dependence which prompted him spontaneously to say to the one who called him Good Teacher, “Why do you call me good? None is good but God,” to that sublime consciousness of achieved divinity which led him to exclaim, “Which one of you convicts me of sin?” And this progressing ascent from the human to the divine was an exclusively mortal achievement. And when he had thus attained divinity, he was still the same human Jesus, the Son of Man as well as the Son of God. 육신으로서의 예수님의 일생은 원시적 경외심과 인간적 존경심이 나타나는 초기의 관념에서부터 개인적인 영적 교제의 시기들을 거쳐서 그가 최종적으로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됨을 의식하는 발전되고 고양된 지위에 도달하기까지의 탁월한 종교적 성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은 한 번의 짧은 일생동안에, 사람이 지상에서 시작하여 천국 이전 생애에, 연속적인 단계들의 영 훈련 학교들에서 그의 오랜 체재를 마친 후에만 일반적으로 성취하는, 종교적 영적 진보의 체험을 거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에 대한 신앙 확신들의 순수한 인간 의식으로부터 그의 신적 본성이 적극적으로 실현되는 숭고한 영적 절정에까지, 그리고 우주 경영에 대한 우주 아버지와의 긴밀한 연관의 의식까지 진보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을 선한 선생이라고 부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즉시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니라(마19:16-17, 막10:17-18, 눅18:18-19).”고 말하도록 한 그러한 필사자로서 의존하는 겸손한 상태로부터, “너희 중의 누가 나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느냐?(요8:46)”라고 외치도록 그를 인도한 성취된 신성의 그 숭고한 의식의 정도에 이르기까지 진보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신적인 것까지의 이 진보하는 상승은 전적으로 필사자의 성취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신성을 이루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이 아니라 여전히 동일한 인간 예수, 사람의 아들이셨습니다.

196:2.3 (2092.1) Mark, Matthew, and Luke retain something of the picture of the human Jesus as he engaged in the superb struggle to ascertain the divine will and to do that will. John presents a picture of the triumphant Jesus as he walked on earth in the full consciousness of divinity. The great mistake that has been made by those who have studied the Master’s life is that some have conceived of him as entirely human, while others have thought of him as only divine. Throughout his entire experience he was truly both human and divine, even as he yet is. 마가와 마태 그리고 누가복음은 그가 신적 뜻을 확인하고 그 뜻을 행하려고 장엄한 분투에 임하고 있었을 때의 인간 예수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신성의 충만한 의식으로 지상을 거닐었던 승리한 예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主)님의 일생을 연구한 사람들이 저지른 큰 잘못은, 어떤 사람들은 그를 전적으로 인간이라고 생각하였고, 한편 다른 사람들은 그를 오로지 신(神)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모든 체험을 통하여 그는 진실로 인간인 동시에 신(神)이었으며, 심지어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십니다.

196:2.4 (2092.2) But the greatest mistake was made in that, while the human Jesus was recognized as having a religion, the divine Jesus (Christ) almost overnight became a religion. Paul’s Christianity made sure of the adoration of the divine Christ, but it almost wholly lost sight of the struggling and valiant human Jesus of Galilee, who, by the valor of his personal religious faith and the heroism of his indwelling Adjuster, ascended from the lowly levels of humanity to become one with divinity, thus becoming the new and living way whereby all mortals may so ascend from humanity to divinity. Mortals in all stages of spirituality and on all worlds may find in the personal life of Jesus that which will strengthen and inspire them as they progress from the lowest spirit levels up to the highest divine values,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of all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그러나 가장 큰 과오는, 인간 예수가 종교를 가지신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신적인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룻밤 사이에 종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바울의 기독교는 신적인 그리스도를 숭배하도록 확실히 만들었지만, 그것은 그의 개인적 종교 신앙의 용기와 그의 내재하는 조절자의 영웅적 자질로, 인간성의 낮은 차원들에서부터 신성과 하나가 되기까지 상승하였으며, 그리하여 모든 필사자들이 그것을 통하여 인간성으로부터 신성으로 그렇게 상승할 수 있는 새롭고 살아있는 길이 되신 갈릴리의 투쟁하는 용감한 인간 예수님을 거의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영성(靈性)의 모든 단계들과 온 세상들에 있는 필사자들은 예수님의 개인적 일생 속에서 그들이 가장 낮은 영 차원들에서부터 가장 높은 신적 가치들에 이르기까지와, 모든 개인적인 종교 체험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들이 진보할 때 그들에게 힘을 주고 영감을 주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196:2.5 (2092.3) At the time of the writing of the New Testament, the authors not only most profoundly believed in the divinity of the risen Christ, but they also devotedly and sincerely believed in his immediate return to earth to consummate the heavenly kingdom. This strong faith in the Lord’s immediate return had much to do with the tendency to omit from the record those references which portrayed the purely human experiences and attributes of the Master. The whole Christian movement tended away from the human picture of Jesus of Nazareth toward the exaltation of the risen Christ, the glorified and soon-returning Lord Jesus Christ. 신약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에, 저자들은 부활한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장 깊이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늘나라를 완성하려고 그가 즉시 땅으로 재림하리라고 헌신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주님의 신속한 재림에 대한 이러한 강한 신앙은 주(主)님의 순전한 인간 체험들과 속성들을 보여주는 그러한 자료들을 기록에서 생략하려는 경향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체 기독교 운동은 나사렛 예수의 인간 모습으로부터 부활한 그리스도, 영화롭게 되고 곧-재림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방향으로 향하였습니다.

170730 예수님의 신앙 11 – 예수님의 종교 2 막1:14-15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4 After John was put in prison, Jesus went into Galilee, proclaiming the good news of God. 15 “The time has come,” he said. “The kingdom of God is near.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196:2.6 (2092.4) Jesus founded the religion of personal experience in doing the will of God and serving the human brotherhood; Paul founded a religion in which the glorified Jesus became the object of worship and the brotherhood consisted of fellow believers in the divine Christ. In the bestowal of Jesus these two concepts were potential in his divine-human life, and it is indeed a pity that his followers failed to create a unified religion which might have given proper recognition to both the human and the divine natures of the Master as they were inseparably bound up in his earth life and so gloriously set forth in the original gospel of the kingdom.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인간 형제신분에 봉사하는 개인적 체험의 종교를 설립하셨습니다. 바울은 영화롭게 된 예수님이 경배의 대상이 되었고 형제신분은 신적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 구성된 종교를 설립하였습니다. 예수의 증여에 있어서, 이 두 가지 개념들은 그의 신적-인간의 일생 속에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의 지상의 일생에서 따로 떼어놓을 수 없도록 묶여있고 최초의 (하나님)나라 복음에 영광스럽게 밝혀져 있었음으로 주(主)님의 인간적이며 신적인 두 본성들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그의 추종자들이 통합된 종교 설립에 실패한 것은 정말 애석하다.

196:2.7 (2093.1) You would be neither shocked nor disturbed by some of Jesus’ strong pronouncements if you would only remember that he was the world’s most wholehearted and devoted religionist. He was a wholly consecrated mortal, unreservedly dedicated to doing his Father’s will. Many of his apparently hard sayings were more of a personal confession of faith and a pledge of devotion than commands to his followers. And it was this very singleness of purpose and unselfish devotion that enabled him to effect such extraordinary progress in the conquest of the human mind in one short life. Many of his declarations should be considered as a confession of what he demanded of himself rather than what he required of all his followers. In his devotion to the cause of the kingdom, Jesus burned all bridges behind him; he sacrificed all hindrances to the doing of his Father’s will. 너희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진지하고 헌신적인 종교가였다는 것을 기억만 한다면, 너희는 그의 일부 강경한 발언들 때문에 충격을 받거나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전적으로 정화(淨化)된 필사자,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 남김없이 봉헌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명백한 강한 말씀들 중 많은 것들은 그의 추종자들에게 주는 명령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신앙 고백과 헌신의 서약이었다. 바로 이러한 오로지 한 가지 목적과 사심-없는 헌신으로 그는 한 번의 짧은 일생에서 인간의 마음을 정복하고 그토록 엄청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선언 가운데 많은 것은 모든 추종자에게 요구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자신에게 부과한 요구를 고백한 것으로 여겨져야만 합니다. (하나님) 나라 운동에 헌신하면서, 예수님은 지나온 다리를 모두 불태웠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과정에 있는 장애물을 모두 희생했습니다.

196:2.8 (2093.2) Jesus blessed the poor because they were usually sincere and pious; he condemned the rich because they were usually wanton and irreligious. He would equally condemn the irreligious pauper and commend the consecrated and worshipful man of wealth. 예수께서 가난한 자들을 축복한 것은 그들이 보통 성실하고 신앙심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자들이 대개 방종하고 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는 신앙이 없는 빈민을 꾸짖고, 헌신적인 신앙심 깊은 부자를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196:2.9 (2093.3) Jesus led men to feel at home in the world; he delivered them from the slavery of taboo and taught them that the world was not fundamentally evil. He did not long to escape from his earthly life; he mastered a technique of acceptably doing the Father’s will while in the flesh. He attained an idealistic religious life in the very midst of a realistic world. Jesus did not share Paul’s pessimistic view of humankind. The Master looked upon men as the sons of God and foresaw a magnificent and eternal future for those who chose survival. He was not a moral skeptic; he viewed man positively, not negatively. He saw most men as weak rather than wicked, more distraught than depraved. But no matter what their status, they were all God’s children and his brethren. 예수님은 사람들을 세상에서 편안하게 느끼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미신적인 금기에 노예가 된 상태로부터 그들을 해방시켰으며, 세상은 근본적으로 악하지 않다고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지상 생활에서 도피하기를 갈망하지 않았습니다. 육신으로 있으면서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실천하는 기법에 통달하셨습니다. 그는 실제의 현실 세계 한 복판에서 이상적인 종교적 일생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의 인간에 대한 비관적 견해를 갖지 않았습니다. 주(主)님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보셨고, 생존을 선택한 그들 앞에 펼쳐질 장엄하고 영원한 미래를 내다 보셨습니다. 그는 도덕면에서 회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을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사악하기보다는 연약하다고 보았으며, 타락했다기보다는 갈팡질팡한다고 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상태가 어떻든지,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으며 그의 형제들이었습니다.

196:2.10 (2093.4) He taught men to place a high value upon themselves in time and in eternity. Because of this high estimate which Jesus placed upon men, he was willing to spend himself in the unremitting service of humankind. And it was this infinite worth of the finite that made the golden rule a vital factor in his religion. What mortal can fail to be uplifted by the extraordinary faith Jesus has in him? 그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영원 속에서 자신들에게 높은 가치를 두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두신 이 높은 평가 때문에. 그는 인간을 위한 끊임없는 봉사에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셨습니다. 유한 존재에 대한 이 무한한 가치 때문에 그는 자신의 종교에서 황금률을 필수 요소로 만들었습니다. 어떤 필사자가 예수께서 그를 향해 지니신 특별한 신앙에 의해 높이 향상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96:2.11 (2093.5) Jesus offered no rules for social advancement; his was a religious mission, and religion is an exclusively individual experience. The ultimate goal of society’s most advanced achievement can never hope to transcend Jesus’ brotherhood of men based on the recognition of the fatherhood of God. The ideal of all social attainment can be realized only in the coming of this divine kingdom. 예수님은 사회적 발전을 위한 어떤 규율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명은 종교적이었고, 종교는 전적으로 개별적인 체험입니다. 사회의 가장 진보된 성취의 궁극적 목표가, 하나님의 아버지신분의 깨달음에 기초를 두고 있는, 사람들의 형제신분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회적 달성에 대한 이상(理想)은 이 신적 나라의 도래에서만 실현될 수 있습니다.

3. The Supremacy of Religion 종교의 최극위

196:3.1 (2093.6) Personal, spiritual religious experience is an efficient solvent for most mortal difficulties; it is an effective sorter, evaluator, and adjuster of all human problems. Religion does not remove or destroy human troubles, but it does dissolve, absorb, illuminate, and transcend them. True religion unifies the personality for effective adjustment to all mortal requirements. Religious faith — the positive leading of the indwelling divine presence — unfailingly enables the God-knowing man to bridge that gulf existing between the intellectual logic which recognizes the Universal First Cause as It and those positive affirmations of the soul which aver this First Cause is He, the heavenly Father of Jesus’ gospel, the personal God of human salvation. 개인적, 영적 종교 체험은 대부분의 필사자가 지닌 어려움들에 대한 효율적인 해결책입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 문제들에 대한 효과적인 분류자, 평가자, 그리고 조절자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근심들을 없애거나 파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들을 용해하고, 흡수하고, 밝혀주고, 그리고 초월합니다. 참된 종교는 모든 필사자의 요구들에 대한 효과적 조절을 위해 고유성을 통합합니다. 종교적 신앙 ─내재하는 신적 현존의 적극적 인도─ 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주의 첫째 원인을 그것으로 인식하는 지적인 논리와, 이 첫째 원인이 그 분, 즉 예수 복음의 하늘 아버지이며, 인간 구원의 개인적 하나님이라고 단언하는 혼의 적극적 선언들 사이에 존재하는 심연에 확실히 다리를 놓아 길을 만들게 합니다.

196:3.2 (2094.1) There are just three elements in universal reality: fact, idea, and relation. The religious consciousness identifies these realities as science, philosophy, and truth. Philosophy would be inclined to view these activities as reason, wisdom, and faith — physical reality, intellectual reality, and spiritual reality. We are in the habit of designating these realities as thing, meaning, and value. 우주적 실체에는 꼭 세 가지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사실, 관념, 그리고 관계입니다. 종교적 의식은 이들 실체들을 과학, 철학, 그리고 진리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철학은 이 활동들을 이성, 지혜, 그리고 신앙─물리적 실체, 지적 실체, 영적 실체─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실체들을 사물, 의미, 그리고 가치로 명시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196:3.3 (2094.2) The progressive comprehension of reality is the equivalent of approaching God. The finding of God, the consciousness of identity with reality, is the equivalent of the experiencing of self-completion — self-entirety, self-totality. The experiencing of total reality is the full realization of God, the finality of the God-knowing experience. 실체에 대한 진보적 이해는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에 상응합니다. 하나님의 발견, 실체와 동일한 것을 의식하는 것은 자아-완성 ─ 자아-전체성, 자아-총체성─을 체험하는 것에 상응합니다. 총체적 실체의 체험은 하나님에 대한 충만한 실현, 즉 하나님을-아는 체험의 최종성입니다.

196:3.4 (2094.3) The full summation of human life is the knowledge that man is educated by fact, ennobled by wisdom, and saved — justified — by religious faith. 인간 일생의 충만한 총합은 사람이 사실에 의해 교육되고, 지혜로 고귀해지며, 종교적 신앙으로 의롭다함을 받아-구원받는다는 앎(지식)입니다.

196:3.5 (2094.4) Physical certainty consists in the logic of science; moral certainty, in the wisdom of philosophy; spiritual certainty, in the truth of genuine religious experience. 물질적 확실성은 과학의 논리(論理)에 있으며, 도덕적 확실성은 철학의 지혜에 있고, 영적 확실성은 참된 종교적 체험의 진리에 있습니다.

196:3.6 (2094.5) The mind of man can attain high levels of spiritual insight and corresponding spheres of divinity of values because it is not wholly material. There is a spirit nucleus in the mind of man — the Adjuster of the divine presence. There are three separate evidences of this spirit indwelling of the human mind: 사람의 마음은 전적으로 물질적이지 않기 때문에, 영적 통찰력의 높은 차원들과 가치들의 신성에 상응하는 영역들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영 핵─신적 현존의 조율자─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이 영이 내주하시는 서로 다른 세 개의 증거들이 있습니다.

196:3.7 (2094.6) 1. Humanitarian fellowship — love. The purely animal mind may be gregarious for self-protection, but only the spirit-indwelt intellect is unselfishly altruistic and unconditionally loving. 인도주의적 친교─사랑. 순전히 동물적 마음이 자아-보호를 위하여 집단을 이룰 수는 있지만, 영이 내주하는 지성만이 사심-없이 이타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196:3.8 (2094.7) 2. Interpretation of the universe — wisdom. Only the spirit-indwelt mind can comprehend that the universe is friendly to the individual. 우주의 해석─지혜. 영이 내주하는 마음만이 우주가 개별존재에게 친밀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6:3.9 (2094.8) 3. Spiritual evaluation of life — worship. Only the spirit-indwelt man can realize the divine presence and seek to attain a fuller experience in and with this foretaste of divinity. 삶의 영적 평가─경배. 오직 영이 내주하는 사람만이 신적 현존을 깨달을 수 있으며 이러한 신성을 시식(試食)하면서 그 안에서 훨씬 충만한 체험을 얻으려고 추구할 수 있습니다.

196:3.10 (2094.9) The human mind does not create real values; human experience does not yield universe insight. Concerning insight, the recognition of moral values and the discernment of spiritual meanings, all that the human mind can do is to discover, recognize, interpret, and choose. 인간의 마음은 실제 가치들을 만들지 않습니다. 인간의 체험이 우주 통찰력을 낳지 않습니다. 통찰력, 즉 도덕적 가치들의 인식과 영적 의미들의 식별에 대하여, 인간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발견하고, 인식하며, 해석하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196:3.11 (2094.10) The moral values of the universe become intellectual possessions by the exercise of the three basic judgments, or choices, of the mortal mind: 우주의 도덕적 가치들은 필사 마음의 세 가지 기본적 판단들, 혹은 선택들의 실행에 의하여 지적 소유물들이 됩니다.

196:3.12 (2094.11) 1. Self-judgment — moral choice. 자아-판단─도덕적 선택.

196:3.13 (2094.12) 2. Social-judgment — ethical choice. 사회적-판단─윤리적 선택.

196:3.14 (2094.13) 3. God-judgment — religious choice. 하나님-판단─종교적 선택.

196:3.15 (2094.14) Thus it appears that all human progress is effected by a technique of conjoint revelational evolution. 이렇게 모든 인간적 진보는 공동의 계시적 진화의 방법으로 성취됩니다.

196:3.16 (2094.15) Unless a divine lover lived in man, he could not unselfishly and spiritually love. Unless an interpreter lived in the mind, man could not truly realize the unity of the universe. Unless an evaluator dwelt with man, he could not possibly appraise moral values and recognize spiritual meanings. And this lover hails from the very source of infinite love; this interpreter is a part of Universal Unity; this evaluator is the child of the Center and Source of all absolute values of divine and eternal reality. 신적 연인(戀人)이 사람 안에 살지 있지 않았다면, 그는 사심(私心)없이(비이기적으로) 영적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해석(解釋)자가 마음에 살지 않으면, 사람은 우주의 통일성을 참으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평가(評價)자가 사람과 함께 거주하지 않으면, 사람은 도저히 도덕적 가치들을 평가할 수도 없고 영적 의미들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연인(戀人)은 무한한 사랑의 바로 그 근원으로부터 내려오십니다. 이 해석(解釋)자는 우주적 통일성의 일부이십니다. 이 평가(評價)자는 신적이며 영원한 실체에 담겨있는 모든 절대 가치들의 중심과 근원의 자녀이십니다.

196:3.17 (2095.1) Moral evaluation with a religious meaning — spiritual insight — connotes the individual’s choice between good and evil, truth and error, material and spiritual, human and divine, time and eternity. Human survival is in great measure dependent on consecrating the human will to the choosing of those values selected by this spirit-value sorter — the indwelling interpreter and unifier.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consists in two phases: discovery in the human mind and revelation by the indwelling divine spirit. Through oversophistication or as a result of the irreligious conduct of professed religionists, a man, or even a generation of men, may elect to suspend their efforts to discover the God who indwells them; they may fail to progress in and attain the divine revelation. But such attitudes of spiritual nonprogression cannot long persist because of the presence and influence of the indwelling Thought Adjusters.

196:3.18 (2095.2) This profound experience of the reality of the divine indwelling forever transcends the crude materialistic technique of the physical sciences. You cannot put spiritual joy under a microscope; you cannot weigh love in a balance; you cannot measure moral values; neither can you estimate the quality of spiritual worship.

196:3.19 (2095.3) The Hebrews had a religion of moral sublimity; the Greeks evolved a religion of beauty; Paul and his conferees founded a religion of faith, hope, and charity. Jesus revealed and exemplified a religion of love: security in the Father’s love, with joy and satisfaction consequent upon sharing this love in the service of the human brotherhood.

196:3.20 (2095.4) Every time man makes a reflective moral choice, he immediately experiences a new divine invasion of his soul. Moral choosing constitutes religion as the motive of inner response to outer conditions. But such a real religion is not a purely subjective experience. It signifies the whole of the subjectivity of the individual engaged in a meaningful and intelligent response to total objectivity — the universe and its Maker.

196:3.21 (2095.5) The exquisite and transcendent experience of loving and being loved is not just a psychic illusion because it is so purely subjective. The one truly divine and objective reality that is associated with mortal beings, the Thought Adjuster, functions to human observation apparently as an exclusively subjective phenomenon. Man’s contact with the highest objective reality, God, is only through the purely subjective experience of knowing him, of worshiping him, of realizing sonship with him.

196:3.22 (2095.6) True religious worship is not a futile monologue of self-deception. Worship is a personal communion with that which is divinely real, with that which is the very source of reality. Man aspires by worship to be better and thereby eventually attains the best.

196:3.23 (2095.7) The idealization and attempted service of truth, beauty, and goodness is not a substitute for genuine religious experience — spiritual reality. Psychology and idealism are not the equivalent of religious reality. The projections of the human intellect may indeed originate false gods — gods in man’s image — but the true God-consciousness does not have such an origin. The God-consciousness is resident in the indwelling spirit. Many of the religious systems of man come from the formulations of the human intellect, but the God-consciousness is not necessarily a part of these grotesque systems of religious slavery.

196:3.24 (2095.8) God is not the mere invention of man’s idealism; he is the very source of all such superanimal insights and values. God is not a hypothesis formulated to unify the human concepts of truth, beauty, and goodness; he is the personality of love from whom all of these universe manifestations are derived. The truth, beauty, and goodness of man’s world are unified by the increasing spirituality of the experience of mortals ascending toward Paradise realities. The unity of truth, beauty, and goodness can only be realized in the spiritual experience of the God-knowing personality.

196:3.25 (2096.1) Morality is the essential pre-existent soil of personal God-consciousness, the personal realization of the Adjuster’s inner presence, but such morality is not the source of religious experience and the resultant spiritual insight. The moral nature is superanimal but subspiritual. Morality is equivalent to the recognition of duty, the realization of the existence of right and wrong. The moral zone intervenes between the animal and the human types of mind as morontia functions between the material and the spiritual spheres of personality attainment.

196:3.26 (2096.2) The evolutionary mind is able to discover law, morals, and ethics; but the bestowed spirit, the indwelling Adjuster, reveals to the evolving human mind the lawgiver, the Father-source of all that is true, beautiful, and good; and such an illuminated man has a religion and is spiritually equipped to begin the long and adventurous search for God.

196:3.27 (2096.3) Morality is not necessarily spiritual; it may be wholly and purely human, albeit real religion enhances all moral values, makes them more meaningful. Morality without religion fails to reveal ultimate goodness, and it also fails to provide for the survival of even its own moral values. Religion provides for the enhancement, glorification, and assured survival of everything morality recognizes and approves.

196:3.28 (2096.4) Religion stands above science, art, philosophy, ethics, and morals, but not independent of them. They are all indissolubly interrelated in human experience, personal and social. Religion is man’s supreme experience in the mortal nature, but finite language makes it forever impossible for theology ever adequately to depict real religious experience.

196:3.29 (2096.5) Religious insight possesses the power of turning defeat into higher desires and new determinations. Love is the highest motivation which man may utilize in his universe ascent. But love, divested of truth, beauty, and goodness, is only a sentiment, a philosophic distortion, a psychic illusion, a spiritual deception. Love must always be redefined on successive levels of morontia and spirit progression.

196:3.30 (2096.6) Art results from man’s attempt to escape from the lack of beauty in his material environment; it is a gesture toward the morontia level. Science is man’s effort to solve the apparent riddles of the material universe. Philosophy is man’s attempt at the unification of human experience. Religion is man’s supreme gesture, his magnificent reach for final reality, his determination to find God and to be like him.

196:3.31 (2096.7) In the realm of religious experience, spiritual possibility is potential reality. Man’s forward spiritual urge is not a psychic illusion. All of man’s universe romancing may not be fact, but much, very much, is truth.

196:3.32 (2096.8) Some men’s lives are too great and noble to descend to the low level of being merely successful. The animal must adapt itself to the environment, but the religious man transcends his environment and in this way escapes the limitations of the present material world through this insight of divine love. This concept of love generates in the soul of man that superanimal effort to find truth, beauty, and goodness; and when he does find them, he is glorified in their embrace; he is consumed with the desire to live them, to do righteousness.

196:3.33 (2097.1) Be not discouraged; human evolution is still in progress, and the revelation of God to the world, in and through Jesus, shall not fail.

196:3.34 (2097.2) The great challenge to modern man is to achieve better communication with the divine Monitor that dwells within the human mind. Man’s greatest adventure in the flesh consists in the well-balanced and sane effort to advance the borders of self-consciousness out through the dim realms of embryonic soul-consciousness in a wholehearted effort to reach the borderland of spirit-consciousness — contact with the divine presence. Such an experience constitutes God-consciousness, an experience mightily confirmative of the pre-existent truth of the religious experience of knowing God. Such spirit-consciousness is the equivalent of the knowledge of the actuality of sonship with God. Otherwise, the assurance of sonship is the experience of faith.

196:3.35 (2097.3) And God-consciousness is equivalent to the integration of the self with the universe, and on its highest levels of spiritual reality. Only the spirit content of any value is imperishable. Even that which is true, beautiful, and good may not perish in human experience. If man does not choose to survive, then does the surviving Adjuster conserve those realities born of love and nurtured in service. And all these things are a part of the Universal Father. The Father is living love, and this life of the Father is in his Sons. And the spirit of the Father is in his Sons’ sons — mortal men. When all is said and done, the Father idea is still the highest human concept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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